춘추칼럼

 

[춘추칼럼] 대북제재의 효과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 현지지도와 당·국가차원 대외활동 활발물가·환율 큰 변동없고 비핵화 커녕 '핵능력 강화'포괄적 제한·금지보다 '대화·제재' 병행전략 필요지난 3월 3일 유엔안보리는 대북제재결의안 2270호를 채택했다. 주요 내용은 무기거래 금지, 제재 대상 지정, 확산 네트워크 구축, 해운·항공·운송 검색 의무화, 생화학무기 프로그램 포기, 대량살상무기 수출통제, 대외교역 제한, 금융거래 중단, 금수대상 사치품 목록 확대 등이다. 대북제재 조치는 한국의 입장이 80% 반영되고 중국의 입장이 20%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2270호가 채택된 지 4개월째 접어든다. 제재 효과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대북제재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한 지표 또는 징후는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지도자나 정권의 공식적인 활동, 둘째, 급격한 시장물가 상승 및 환율변동, 셋째, 대외무역의 감소 폭, 넷째, 주민들의 불만 고조, 다섯째, 핵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 변화 등이다. 정부는 이제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효과는 별로 없고 오히려 역효과를 우려한다.김정은 위원장의 현지지도를 비롯한 당·국가 차원의 대외활동은 활발하다. 김 위원장은 제7차 당 대회를 통해 법적 제도적인 장기집권의 토대를 마련했다. 남은 것은 주민생활향상을 통한 실질적인 주민들의 지지 획득이다. 당 대회 후 민생경제 현지지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주민들의 지지와 직접 연관된다. 대외활동도 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김영남 위원장은 아프리카의 우방국 적도기니 공화국을 방문했다. 당중앙위원회 김영철 부위원장은 쿠바를 방문했다. 윤병세 장관도 쿠바를 방문했다. 쿠바를 둘러싼 남북한의 외교전이 시작됐다. 쿠바에서는 의리를 중시하는 혁명세대와 실리를 중시하는 혁명 2세대 간의 논쟁이 뜨겁다. 아직 쿠바가 북한과 단교하고 한국과 수교한다는 소식은 없다. 쿠바는 혁명세대가 전권을 장악하고 있음을 간과 해서는 안된다. 이수용 부위원장은 중국을 방문했다. 시진핑 주석과 만났다. 제7차 당 대회 결과를 설명하면서 양국 간 당 대 당의 관계복원에 합의했다. 북한은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동북아협력 대화에 최선희 부국장을 파견했다. 최 부국장의 방중은 대화든 대결이든 모두 준비되어 있음을 과시하는 측면도 있지만 주최국 중국에 대한 배려도 담겨 있다. 오는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95주년과 11일 북중우호협력조약 체결 55주년을 맞아 양국 최고지도자 간의 축전정치와 고위급상호교환방문이 복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물가와 환율도 큰 변동이 없다. 5월 기준 쌀 1kg에 북한 돈 4천500원에 거래됐다. 환율도 1달러에 북한 돈 8천400원에 교환됐다. 평양의 택시는 점점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4월 기준 북중간 무역총액은 4억3천만달러로 알려졌다. 전년 동기대비 10%가 감소된 수치다. 무연탄의 대중수출 감소가 핵심적 품목이다. 대북제재의 효과인지 중국의 석탄수요 감소의 영향인지 깊은 분석이 필요하다. 철광석의 대중수출은 늘어났다. 항공유의 대중수입량은 10배 이상 증가됐다. 주민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있어도 조직적인 저항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식량이 다소 부족하지만 비축미를 풀었다는 소식은 없다. 봉사무역을 하는 해외 종업원들의 탈북 숫자는 조금 늘었다. 대북제재의 효과라기보다 해외에서의 비사회주의 생활이 주요 요인으로 분석된다. 핵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불변이다. 핵탄두 폭발실험과 다양한 종류의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경제건설·핵 무력건설 병진 노선을 당규약에 명시했다. 비핵화는 커녕 핵 능력 강화로 가고 있다.박근혜 정부가 구상하는 제재 효과의 경로는 간단하다. 제재를 하면 북한 정권이 불안정하고, 결국 정권 유지를 위해 핵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제재를 하면 북한 정권이 불안정하고, 불안정한 정권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민중봉기로 인해 정권이 붕괴된다는 것이다. 포괄적 제재는 제재대상국의 정책결정자가 아닌 일반 국민들이 고통을 받는다. 국민들은 자국의 권력자가 아닌 제재를 부과한 유엔안보리나 제재를 주도한 국가를 원망한다. 대북제재의 효과는 국제사회와 북한 주민들의 호응이 있을 때 배가된다. 대화와 제재의 병행전략이 요구되는 대목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06-23 양무진

[춘추칼럼] 국민 독서운동 제창

국민들 책 읽지 않으면 그 나라는 결국 '퇴색'중앙·지방정부, 독서운동 적극 확산시켜야국가별 독서율, 글로벌시대 경쟁력과 '직결'신석정 시인은 서재에 '책은 외출을 싫어한다'라고 써서 붙여 놓았다고 한다. 책을 빌려 달라고 하는 이들이 많고, 또 빌려간 책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였기에 이런 궁여지책을 강구하였는지 모른다. 책을 정말로 소중하게 여겼고, 그에 버금하여 독서량이 풍성하였던 선생의 인품이 눈에 선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나폴레옹도 대단한 독서가였다. 그는 전쟁터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하는데, 다 읽고 난 책은 마차 밖으로 던져 버리는 습관이 있었다고 전한다. 청마 유치환 시인도 읽은 책은 보관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그냥 주곤 했다고 한다. 책은 만인의 것임을 나름대로 실천한 셈이다. 독재자 무솔리니도 대단한 독서가로 알려져 있다. 굳이 유명인의 예화를 들지 않더라도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책을 가까이 하면 현인과 벗이 될 수 있다는 독서상우(讀書尙友)란 말이 이를 증거한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목경(目耕)의 즐거움을 능가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쁜 나머지 이 삼매를 누릴 겨를이 없는 것 같다. 학생들도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가까이 한다. 강의가 없는 빈 시간에 야외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낭만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수불석권(手不釋卷)이 아니라 수불석기(手不釋機)에 빠져 있다. OECD에 가입한 주요 국가의 연평균 독서율이 76.5%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거의 책을 읽지 않는 나라에 속한다. 작년에 가구당 책을 사는데 쓴 비용은 1만6천원 꼴로 5년 연속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 참고서나 학습교재를 사는데 쓴 돈이 6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니 일반 교양서적은 거의 구매를 하지 않은 모양이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에 1인당 책 읽는 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로 한국이 소개되었다고 하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이 책을 읽지 않으면 그 나라는 결국 퇴락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경쟁력은 물론 나라의 품격도 하박을 벗어날 수 없다. 한 국가의 독서 경쟁력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범국민적 책읽기 운동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 지속 가능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 먼저 책 읽기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으면 좋겠다. 다문화가정이나 임산부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독서지도사를 파견하거나, 노인들이 읽기에 편하도록 활자가 큰 책을 제작 보급하는 일도 고려해 볼 만하다. 또 영국처럼 지역의 모든 아기에게 책을 선물해 주는 북스타트(Book Start) 운동을 펼쳐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방의 작은 도시 충남 논산에서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논산독서협회(회장·김영란)의 정기 독서 모임은 눈여겨 볼 만하다. '책 읽는 도시! 품격 있는 논산'을 구호로 내걸고 2006년부터 매달 두 권씩 책을 읽고 토론을 하거나, 초청 인사를 모셔서 강연을 듣는다고 한다. 논산시도 공간이 필요하면 시장실이라도 내어주겠다며 이 독서모임의 활성화에 적극적이다. 이런 노력들이 쌓이면 범국민적 독서운동을 촉발시키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서는 국가별 연평균 독서율이 글로벌 시대의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독서율은 세계경제포럼(WEF)의 각종 지수와 직접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서하지 않는 국가와 국민은 지식 기반 경쟁 사회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 세계는 바야흐로 '독서 혁명' 중이다. 독서 후진국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독서흥국(讀書興國)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

2016-06-16 정영길

[춘추칼럼] 코딩교육과 문맹탈출

자신의 목적 '최적 알고리즘' 설계하는 능력돼야대학입학·취업률로 교육 잘되고 있는지 척도 삼아취업 측면에서 이젠 평생교육이 필요한 시대 도래어린 시절에 대나무와 창호지를 가지고 연을 만들어 본 사람은 그 연이 하늘 높이 올라갈 때의 성취감을 기억한다. 고난이도의 조립식 장난감을 완성해본 사람은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웠다. 자신의 손으로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낸 경험은 그래서 늘 특별하다. 요즘에는 스스로 프로그래밍한 소프트웨어가 자신의 의도대로 신기한 일을 해낼 때 통쾌감을 경험하는 아이들이 많다. 음악이나 미술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처럼, 프로그래밍은 아이의 머릿속 상상을 세상에 구현하는 새로운 통로가 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프로그래밍, 즉 코딩(coding)을 가르쳐야 한다는 흐름이 생겼다. 이미 영국이 교육과정에 코딩 교육을 도입했고, 미국이 여러 주에서 도입을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곧 시작된다. 단순 코딩은 번역과 비슷한 과정이라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잘할 수밖에 없고, 이런 기술만을 숙련해서는 미래에 쓸모가 높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통역을 대신하게 돼도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여전히 미래를 위한 좋은 투자지 않나. 접할 수 있는 세상이 훨씬 커지니까.코드카데미의 자크 심즈 창업자가 얼마 전에 방한했다. 코딩에다 가르치는 곳이라는 뜻의 아카데미를 조합한 코드카데미는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기업이다. 전 세계에 수천만 명의 이용자를 두고서 세계적인 코딩 교육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그가 강연한다고 하길래 코딩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강연이려니 했는데, 뜻밖에도 그가 강조한 것은 수학 문맹(computational illiteracy) 해소였다. 계산적 읽고 쓰기(computational literacy)는 계산을 잘하는 능력을 뜻하는 게 아니다.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최적의 방법을 찾는 과정인 알고리즘 설계 능력이 대부분이고, 이를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코딩 능력이 나머지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방식들 중에서 최적인 것을 찾아내고 판단하는 능력인데, 통상의 수학 교육이 지향하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능력과 다르지 않다. 심즈에 이어서 강연한 프라딥 두베이 인텔 병렬컴퓨팅랩 소장도 이 견해에 동의를 표했다. 프로그래밍 기술의 개선으로 원래 프로그램의 속도를 수십 퍼센트 개선할 수 있겠지만, 수십 배 또는 수백 배의 개선은 알고리즘의 개선에서 온다는 것이다. 수학적 문맹을 벗어나야 이런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두베이 소장은 인간의 개입 없이 이미 나와 있는 데이터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아웃사이드인(outside-in) 시대의 도래까지 예고했다. 그러니 코딩 교육이 단순히 프로그램밍 기법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면 곤란하다. 자신의 목적을 구현하는 최적의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능력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물론 코딩 기법도 알아야겠지만, 알고리즘을 코딩해주는 기계학습 시스템의 출현은 불문가지다. 심즈는 국가별로 교육이 잘되고 있는지를 재는 정량적인 척도는 대학 입학률과 취업률이라고 주장했다. 전자는 초중고 교육의 척도이고, 후자는 대학 교육의 척도다. 대학입학률은 우리나라가 기형적으로 높지만 대졸자 취업률은 낮으니, 이 견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초중고 교육은 성공적이고 대학 교육은 실패하고 있는 게 된다. 정말 그런가. 오바마는 여러번 미국 초중고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가시적 목표로 대학입학률을 올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가 한국 초중고 교육의 우수성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한 것도 이런 성공 척도와 일맥상통한다.교육의 성공에 대한 이러한 척도의 무모함에 대해 맹렬히 논쟁하려는 사람에게 심즈는 한마디 더한다. "현행 교육은 대학 입학률과 취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점차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되고 있다" 취업의 측면에서 더 이상 대학은 교육 시스템의 주요 부분이 아니며 코딩 교육을 포함한 평생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실제로 MOOC의 확산 등으로 이미 그 조짐이 보인다. 대학의 존립이 취업이 아닌 다른 가치 창출로 정당화 되어야 하는 시대가 멀지 않은 것 같다./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06-09 박형주

[춘추칼럼] 한 나무의 주검

450년 주민들 사랑 받으며 동고동락했던 '당산나무'영주댐공사로 줄기 잘리고 새까만 피 토한채 죽어나무는 인간들 때문에 피폐해진 땅 살리려는건 아닐까어느 날 메일로 충격적인 사진 몇 장이 날아왔다. 비계파이프가 얼기설기 얽힌 사이사이로 새까맣게 타들어가 죽은 거대한 시체 한 구가 보였다. 수많은 팔이 잘린 온몸 이곳저곳에 이불 홑청처럼 큰 붕대가 친친 감겨 있었다. 붕대는 대부분 풀려 바람에 나부끼고 시체가 흘린 새까만 피로 뒤범벅된 지 오래인 듯했다. 거대한 몸 곳곳에는 링거 줄 몇 개가 무심히 엉켜 있었다. 곡절 많은 세월을, 고단한 역사를 묵묵히 견뎌왔을 그 몸은 비록 팔들이 모두 잘려나갔지만 꿈틀대듯 솟아오른 몸통의 근육들 속에 금방이라도 용트림 치며 끄응, 하고 살아날 것만 같은 힘찬 생기를 정지시키고 있었다. 맞다. 새까맣게 타들어간 이 거대한 시체는 나무다. 메일로 덩그마니 사진만 날아온 터라 사연이 궁금해 차를 몰고, 그 거대한 주검이 인간들에게 항거하듯 서 있을 영주 댐으로 달려갔다. 나무의 주검 앞에는 '보호수'라는 이름 아래 묘비처럼 이렇게 씌어 있었다. "품격:마을 나무, 지정번호:11-28-3-4-19, 지정일자:1982.10.26., 수종 및 수령:느티나무 450년, 소재지:영주시 평은면 강동리 304"450년 세월을 마을사람들 사랑 듬뿍 받으며, 그늘진 평상에서 나눈 숱한 사연들 들어가며 동고동락했을 오지랖 넓은 당산나무. 바람둥이 까치가 집을 서너 채나 지었을 가슴팍 넓은 느티나무. 우듬지 사이로 다람쥐들 오르내리고 까치가 집을 비운 사이 박새며 참새가 후드득 날아들어 잠시 쉬어갔을 다정한 나무. 영주 댐 공사로 느닷없이 수몰지역으로 지정된 마을에서 건져낸 450세의 연세 많으신 나무는 인간으로 치면 12대가 넘는 세월을 뿌리박고 살아온 땅에서 파헤쳐져 하늘 향해 뻗은 팔 같았을 수많은 줄기를 몽땅 잘린 채, 몸통만 남아 낯선 곳으로 강제 이송되었다. 뿌리가 잘려나가 제대로 서있기도 힘든 나무를 살리고자 인간들이 설치한 비계파이프와 거추장스런 붕대와 영양제 주사를 비웃듯, 나무는 새까만 피를 토해내며 죽었다.현장을 안내해준 지율스님은 삶의 터전이 옮겨지는 순간 나무 스스로 생을 거부한 거라고 말했다. 지율스님은 부처의 마음은 곧 생명을 살리는 마음이라며 생명 파괴의 현장 곳곳을 찾아다니며 천막을 짓고 산다. 지율스님을 중심으로 한 환경모임 '내성천과 친구들'은 영주댐 건설 무효화 소송까지 제기했다. 영주댐 건설이 진행되는 동안 주변 지역에 계속 산사태 현상이 일어나고 최근에는 시멘트 댐 벽체 아래서 물이 솟아나와 이대로 담수를 할 경우 댐의 붕괴 위험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그뿐이랴. 낙동강 상류의 지천인 내성천에 들어선 영주 댐 때문에 황금 모래밭이 끝없이 이어지던 내성천은 물길이 막혀 황폐해지고, 주변 논들은 물이 말라 타들어간다. 수많은 유적지와 문화재가 사라졌고 예쁜 학교와 자그마한 소방서와 동네를 이어주던 다리들이 사라졌다. 마을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사라졌다. 영주 댐은 정말 필요했던 것일까. 지율 스님과 '내성천의 친구들'은 내성천 회룡포 부근에 예닐곱 평짜리 4대강 기록관을 세우고 있다. 어리석은 역사가 되풀이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리라."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모두, 모두 다 물구나무서 있어."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렇듯 나무는 인간들의 탐욕으로 얼룩진 이 땅에 뿌리박고 영양분을 섭취하는 게 아니라, 인간들 때문에 피폐해진 이 땅을 두 팔로 지탱하면서 안간힘 쓰며 살려내려는 건 아닐까. 이미 이 땅을 지탱해줄 힘을 포기한 450세 느티나무의 주검에서 우리의 주검을 본다. 이 땅을, 우리 인간을 지탱해줄 나무들을, 수많은 생명체를 앗아간, 지금도 진행 중인 4대강 사업을 어찌할 것인가./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2016-06-02 강맑실

[춘추칼럼] 제 7차 당대회로 본 북한의 대외정책

'김정은 시대' 선포했지만 외교적 미래비전 안보여연방제, 남북 함께하는 과정으로써의 통일은 없어정부에 '군사회담 제안' 북미회담 분위기 조성 의도북한은 지난 6∼9일 평양 4·25 문화회관에서 제7차 노동당 대회를 개최했다. 36년만에 개최되는 대회인 만큼 국내외의 관심이 컸다. 북한은 당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했다. 국제사회는 실패를 기대했다. 해외의 고위급 축하사절단의 방북이 없었다는 점은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한다. 120명의 외신 기자들이 방북한 것은 북한 노력의 결실이다. 최고의 정치행사이며 축제의 장에 북한과 국제사회가 대립하는 모습은 그리 아름다운 장면은 아니다.제7차 당대회의 주제어는 핵, 당, 김정은으로 요약된다. 당규약에 핵보유국을 명시하고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이 항구적인 노선임을 분명히 했다. 군의 인사가 퇴조되고 당의 인사가 확대됐다. 김정은은 당 전체의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보좌기구로써 당중앙위원회 정무국과 부위원장직을 신설했다. 세 개의 주제어를 합성해 보면 핵무기라는 튼튼한 안보에 토대해서 당이 중심이 되어 명실상부한 김정은 시대를 이끌어 가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다. 그러나 새로운 김정은 시대를 선포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낡은 김일성·김정일 주의만 있고 김정은 시대에 부합되는 새로운 지도자상이 없다. 경제발전5개년전략이라는 구호만 있고 구체적인 정책방향과 이행방안도 없다.대남 분야에 있어 대화와 대결이 혼재되어 있다. 군사회담을 제안하면서 주한미군철수 등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남북관계 개선을 주장하면서 서울해방작전·남반부해방작전 등 대남위협 수위를 높였다. 통일3대헌장을 통일의 이정표로 제시했다. 72년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통일3원칙, 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 93년 대화·상호존중의 민족대단결 10대강령 등 김일성의 통일 유훈만 나열했다. 김정은식 통일방안이 없다는 것은 민족문제 해결에 대한 철학의 빈곤을 보여준다.대외 분야에 있어 3원칙인 자주·평화·친선을 재확인했다. 블록불가담(비동맹) 운동을 강화·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했다. 비동맹운동은 냉전시대의 유물로써 21세기 탈냉전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시대변화의 몰이해를 보여준다. 책임있는 핵보유국으로써 세계의 비핵화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핵을 결코 폐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미국과 핵을 가진 동등한 입장에서 핵군축 또는 평화협정 논의를 하겠다는 뜻이다. 핵군축 협상은 전략 무기가 균형을 이룬 국가끼리 가능하다. 북한은 80년대 미국과 전략무기감축협상을 벌였던 소련과 동급으로 착각하고 있다. 작금의 핵비확산(NPT)체제하에서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은 망상이다. 미국은 이중 잣대로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을 핵보유국으로 묵인했다. 묵인은 압박과 제재를 해제한다는 뜻이다. 북한은 미국이 묵인할 정도의 전략적 가치가 없다. 핵보유와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간의 강한 충돌을 예고한다.북한은 제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시대를 선포했지만 외교적인 미래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연방제라는 결과로써의 통일만 있고 남북이 함께하는 과정으로써의 통일이 없다. 냉전시기 블록불가담운동만 있고 탈냉전 시기 국제사회와 함께하는 공존공영운동이 없다. 자주도 우리 민족끼리라는 배타적인 것만 있고 세계인과 함께하는 공동체 인식이 없다. 북한은 제7차 당대회 후 지난 20일 국방위원회 공개서한을 우리측에 보냈다. 당국간 군사회담을 촉구하면서 충돌해소와 통일달성을 위한 실천적 조치가 곧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대남비방중상 중지·핵실험 잠정 중단·병력감축 선언 등이 선제적 조치로 예상된다. 북한의 군사회담 제안은 중국의 대화 촉구를 수용하면서 북미회담의 분위기 조성의 의도가 있다. 우리 정부의 수용 여부는 별로 중요치 않을 수 있다. 우리 국방부는 진정성이 없는 평화공세라면서 거부했다. 지금은 대화가 아니라 압박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북관계는 한가지에만 올인하는 도박게임이 아니다. 도박게임은 반드시 실패한다. 정부는 남북관계를 주도하면서 한반도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압박도 필요하지만 대화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05-26 양무진

[춘추칼럼] 국어기본법 헌법 소원 사건

우리말어휘 대부분 한자어로 한자 모르면 뜻 어려워한자어와 고유어 구분못하면 '사이시옷' 표기 못해한자, 동아시아 소통 도구로 소홀히 여겨선 안돼한자를 섞어 쓸 것인가, 한글로만 표기할 것이냐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며칠 전 헌법재판소에서 국어기본법 위헌 확인 헌법소원 공개 변론이 있었다. 국어기본법의 한글로만 표기해야 한다는 조항이 헌법에 위배 되는지를 따지는 자리였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정규 교과서나 공문서는 한자를 섞어 쓸 수 없고 모두 한글로만 써야 한다. 이 조항이 어문 생활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였다며 관련 단체에서 헌법 소원을 낸 것이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는 심재기 서울대 명예교수가 출석하였는데, 그는 한자와 한글이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공생 관계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 점을 무시하고 학교에서 한글만 가르쳐 왔기 때문에 국어교육이 파행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같은 대학의 권재일 교수는 한글이 가지고 있는 정보 효용성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서, 국한문 혼용은 일제 식민지가 낳은 기형적인 표기 형태이기 때문에 이를 따라서는 안 된다고 반박하였다. 반대 측 대리인 변호사도 정보화 시대에 한글을 사용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으므로 '한글이 언어 인권에 이바지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국어기본법의 이런 조항들이 학습권을 훼손하고 또 문자 선택권과 표현의 자유까지 침해하였는지는 헌법재판소에서 판가름할 일이다. 그러나 법리적 판단에 앞서 두 가지 점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먼저 한글전용이 국어교육 정상화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다. 우리말 어휘의 대부분이 한자어이기 때문에 한자를 모르면 그 뜻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전문 학술용어는 물론, (서류) 결재와 (카드) 결제의 차이를 명확히 아는데도 한자를 익히는 것이 유리하다. 또 국어정서법에 맞게 표기하기 위해서라도 부득불 한자를 알아야 한다. 사이시옷 문제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한자어와 고유어를 구분하지 못하면 사이시옷 표기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수돗물'에는 사이시옷이 필요하지만, '수도세'에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은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한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뇌졸중(腦卒中)을 뇌졸증(腦卒症)으로 잘못 알 거나, '지하철이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집으로 돌아와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와 같은 틀린 표현을 하게 된다. 심지어 국어와 한글을 같은 것으로 이해하거나 한자와 한자어를 혼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자(漢字)라는 호칭의 유래를 잘못 알고 한자를 무조건 외국어로 취급하려는 태도는 곤란하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자(訓民正字)가 아닌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 반포하신 의도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다음으로는 한글전용이 국가 장래에 미칠 영향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글은 정보화시대의 유용한 도구지만 세계화를 염두에 둔다면 한자를 소홀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한자는 우리글이기도 하지만 동아시아의 유용한 소통 도구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우리의 무역 및 관광 상대국 가운데는 한자 문화권 국가가 많다. 자칫하면 우리만 문맹국 신세가 될 수 있다. 한글과 한자를 국어의 양 날개로 인식하면 문화 잠재력이 그만큼 확대될 수 있다. 소리글자와 뜻글자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이상적인 언어구조를 가진 나라는 지구 상에 우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

2016-05-19 정영길

[춘추칼럼]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

中, 첨단 과학기술 경쟁력으로 세계 선두 다퉈인적·물적 규모로 치고 올라와 차별화 불가피특정분야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인재 육성해야전기가 발명되고 나온 초기 전구들은 실사용에 문제가 많았다. 인내심을 무기로 최적의 전구 필라멘트와 내부 기체를 찾아낸 토마스 에디슨은 그래서 백열전구의 발명자라고 불린다. 그의 에디슨 전기회사를 병합한 제너럴 일렉트릭(GE)은 가전으로 출발해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거대 다국적 기업이 됐다. GE는 20세기 온갖 혁신의 대명사였지만 한때 거센 기업 간 경쟁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좌초의 위기도 맞았다. 잭 웰치라는 걸출한 경영자가 이를 해결하고 거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얘기는 현대판 영웅담으로 회자된다. 그런 GE의 가전사업부를 중국 가전회사인 하이얼이 얼마 전에 인수했다. 백열전구 발명자의 흔적은 중국으로 넘어갔고,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던 후발주자 하이얼은 GE라는 브랜드의 날개를 달고 새로운 단계로 넘어갈 것이다. 중국은 이제 값싼 노동력이 아니라 첨단 과학기술 경쟁력으로 세계 선두를 다투는 나라다. 올해 초의 CES에서도 중국 기업들은 유인 드론처럼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가진 첨단 제품을 여럿 보여주었다. 중국의 부상 이면에 있는 내용과 전략도 놀랍다. ICT 만능주의의 묻지 마 투자가 아니라, 과학기술의 전 영역에서 인재를 기르는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해외의 과학기술 인재 천명을 유치해서 엄청난 수준의 대우와 연구비를 제공한다는 천인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고, 당장의 먹고 사는 것과 관계없는 순수수학 분야에서도 전설적인 기하학자와 젊은 천재 정수론 학자 등이 이미 자리를 잡았다. 최근엔 자국의 국내박사 지원책인 '박사후 혁신인재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국가의 중대전략, 첨단기술, 기초과학 분야의 신규 박사 수백 명을 매년 선발해서 최고의 인재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대졸자 초봉의 2~3배에 달하는 지원과 함께 관련 기업에 취업 추천도 하며 외국인 인재의 영구거류증 발급도 쉽게 했다. 외국 유학생의 창업과 영구정착을 위해 취업 제한을 풀고 영주권 신청 자격도 확대했다. 마원의 알리바바가 무서운 것은, 인터넷에서 물건 파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IT 시대를 넘어서 DT(Data Technology) 시대의 도래를 이해하고 주도하는 혜안과 리더십 때문이다. 이러한 큰 그림을 실제로 구현할 인재들이 무섭게 커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성장전략에 대한 고민은 간단치 않다. 인적 물적 규모의 토대 위에 어느새 치고 올라온 중국과는 차별화가 불가피하다. 메이지 유신 이래로 나름의 역사성을 가지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일본과도 다르다. 노벨상 분석을 하면서, 일본 내 교육을 받은 노벨상 수상자의 수가 많은걸 들어서 로컬한 자체 연구가 노벨상의 비밀이라고 결론 내는 경우가 있다. 근대 일본의 역사성을 간과한 채로, 글로벌 과학과 일본의 과학을 별개로 보는 오류로 보인다. 작년 중국의 약초 연구 노벨상 수상처럼 국지성이 돋보이는 예외적 경우가 있다 해서, 섣부른 일반화로 과학기술의 글로벌화라는 숙제를 쉽게 건너뛸 순 없다. 물론 기초과학의 단단한 토대 없이 응용과학만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은 자살 시도에 가깝다. 전기나 무선통신의 출현 같은 근본적 변화의 시기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무지한 채로 선진국의 시혜에 의존하며 속수무책으로 당할 테니까. 알파고 충격에 대응한다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대한 자체 연구력 없이 슈퍼컴과 데이터만 확보하려 한다면 영원한 따라잡기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기초부터 탄탄히 해서 산업의 성장으로 점진적으로 이어가자는 주장도 상투적이고 진부한 클리쉐다.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후발주자의 장점을 못살리니 좋은 전략도 아니다. 기초 분야에서 응용과학까지 전 영역에서 인재를 기르는 전략을 세우되, 분야 간 상호연계에 주목해야 한다. 넘쳐나는 맞춤형 교육과 맞춤형 프로그램은 이제 잊자. 무작정 여러 분야를 묶어서 융합으로 부르는 것도 곤란하다. 특정분야에 묶이지 않는 유연한 소양의 인재를 길러서, 필요에 따라 연계된 분야에도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05-12 박형주

[춘추칼럼] 5월은 어머니, 어머니…

집에서 전권 쥐고 항상 우렁차고 당당했던 어머님여행중 '못이룬 인생계획' 풀며 쓸쓸해 했던 표정가끔 "니가 억지로 끌고 다닐때가 좋았다"고 하신다결혼해서 애를 낳고부터는 4대가 함께 살았다. 시할머님, 시부모님과 함께 마당이 있는 낡은 2층집에서 17년을 살았다. 두 아이들은 그네들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 집의 수많은 추억들을 유리알 들여다보듯 기억한다. 분가를 한 후 몇몇 아파트로 옮겨 다니며 살았는데 아이들은 아파트의 기억들을 떠올릴 때면 한참을 더듬거린다. 나 역시 아파트 시절에 대한 기억은 늘 가물가물하다. 간짓대를 세운 빨랫줄에 이불을 널어 탕탕 털 수 없는 곳, 한밤중에 식구들끼리 마음껏 노래하고 웃고 떠들 수 없는 곳, 베란다 문을 열면 마당으로 나갈 수 없는 곳, 그곳 아파트.거실 유리창 문짝이 맞지 않아 문을 잠글 수도 없어 좀도둑이 들락거렸던 낡은 집이었지만, 시동생까지 여덟 식구가 복작이며 살았던 그 집에서의 수많은 에피소드는 줄거리는 물론, 등장하는 사물의 색깔이며 사람들의 표정까지, 여태 생생히 살아 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그 시절, 큰며느리인 나는 집안일이 서툴렀다. 삶을 살아내는 방법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삶의 작은 문턱조차 쉽사리 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어머님의 지청구를 듣지 않는 날이 드물었다. 직장 다니는 며느리를 대신해 집안일과 아이들 키우는 일을 비롯, 연로하신 어른들까지 챙겨야 했던 어머니는 새벽부터 내가 퇴근하는 저녁까지 하루 종일 가사 노동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집에 있는 휴일이나 주말이면 긴장을 풀고 집안일을 나에게 맡겼는데 그때는 감독관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으리라. 부족한 것 투성이였던 나는 종종 어머니의 잔소리 속에서 휴일과 주말을 보내곤 했다. 가끔 남편과 아이들과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여행 내내 긴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집에 계신 어른들 때문에 나 스스로 안절부절 못했던 것이다.어느 날, 결단을 내렸다. 극심한 차멀미 때문에 어머니는 여행을 엄두도 못 냈다. 나 역시 어머니는 당연히 여행을 못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어머니를 설득하고 또 설득해 초등학생이던 아들과 나, 어머니, 셋이서 아들의 여름방학 숙제를 빙자해 경주로 3박4일 여행을 떠났다. 남편은 거동이 불편한 시할머님을 모셔야 했기에 중학생인 딸과 함께 집에 남았다. 어머니와 떠난 그 첫 여행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내가 운전대를 잡는 순간, 모든 게 역전되었다. 집에서 전권을 쥐고 있던 어머님이었으나 일단 동네를 벗어나자 모든 걸 나에게 맡기고 어린아이처럼 순해지셨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폭우를 만났을 때도 나를 믿어 주었고, 경주에서 몇 번이나 길을 잃고 헤맬 때에도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모든 일정과 선택을 나에게 맡긴 채 오로지 여행을 즐겼다. 그렇게 시작한 어머니와의 여행은 기회 있을 때마다 어머니를 설득해, 분가하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여행이 거듭될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즐거움도 늘어갔다. 술에 대해선 엄격하던 어머니도 설악산 오색 약수터의 한 토속음식점에 들어가서는 나물을 안주 삼아 달큼한 머루주를 한 잔 들고 건배했다. "하따, 너 이거 갖고 안 될 것인디 한 병 더 허지 그냐?" 하며 늦은 밤까지 술을 권했다.어머님과 이렇듯 살가워지는 것 말고도 여행의 소득은 또 있었다. 어느 해, 변산반도 여행길에 내소사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내소사 입구의 커다란 보리수나무 아래 우산 받쳐 쓰고 앉아 어머니는 끝내 이루지 못한 당신의 처녀 적 인생 계획을 잔잔히 풀어 놓았다. 집 안에서의 우렁차고 당당한 모습과는 다른 어머니의 쓸쓸한 표정을 읽어낸 순간, 어머니가 나와 같은 한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머님이 혼자 사신 지도 4대가 함께 산 세월만큼 되어 간다. 지금도 종종 어머님은 말씀하신다. "아야, 맑실아. 텔레비전에서 우리나라 명소라고 소개할 쩍마다 난 하나도 부럽지 않더라고. 다 가본 곳잉께. 그때 니가 억지로 나를 여그저그 끌고 다닐 때는 차멀미도 심허고 힘든 것만 같드니만 참 그때가 좋앗시야잉~"/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2016-05-05 강맑실

[춘추칼럼] 20대 국회에 통일외교안보 전문가가 없다

대북정책 성패여부는 일관성 유지하는게 중요정권 바뀔때마다 정책 바뀌어 실질적 성과 못내전문가 활용 못하고 독선에 빠지면 결국 실패한반도의 긴장 고조는 전쟁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면서 국내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위협 장기화로 한반도 상황은 일촉즉발의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대립과 대결이 구조화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고 통일의 길은 더더욱 아득해 보인다. 한반도의 분단은 70년을 넘어섰다. 세계전쟁의 피해국가이면서 동족상잔을 겪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이다. 통일은 민족의 염원이면서 지상과제이다. 그런데 지상과제 해결에 도움을 줄 20대 국회에 통일외교안보 전문가는 보이지 않는다. 국정의 동반자이고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통일과 무관한 곳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전문성을 중시한다는 비례대표에 어느 당도 통일외교안보 전문가를 배정하지 않았다. 더러 있더라도 당선권과는 거리가 먼 후순위에 배치되어 있다. 지역구 당선자들 중에도 통일외교안보 전문가는 눈에 띄지 않는다. 공천의 불균형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회는 통일외교안보정책을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정부가 독점하는 편파적인 정책 추진을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 중요한 대외정책을 정부와 함께 논의하고 결정해야 할 외교·통일위원회, 국방위원회, 정보위원회에 적합한 인물난이 예상된다. 국민의 대변자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통일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수렴 및 정책입안은 어렵다.대북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와 직결된 대북정책은 장기적 안목에서 벽돌을 쌓듯이 차근차근 준비하고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일관성이 결여된 대북정책으로 인해 남북관계 발전에 장애가 되는 고질적인 병폐가 지속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변경되고, 일관성 있게 추진되지 못하니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다.전문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다. 전문가가 없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 비용과 노력을 들여 성숙한 전문가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 그 노선에 맞지 않는 전문가는 모두 단절되고 폐기됨으로써 제대로 된 정책이 입안되고 추진되기는 어렵다. 오랜 과정을 거쳐 키워놓은 전문가를 활용하지 못하고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그들을 재단해 폐기하고 있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지도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정책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변경·단절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 미래와의 끊임 없는 대화이다. 좋은 역사는 계승하고, 미흡한 것은 개선해 나가는 것이 역사 발전의 교훈이다. 20대 국회가 출발에서부터 역사의 교훈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전관은 현직을 존중하고 현직은 전관의 경험과 지혜를 활용하며 맥락을 이어갈 줄 알아야 한다. 정책은 눈앞의 성과에 급급해서는 안된다. 이전에 했던 것을 이어받아 문제점은 시정·진전시키고 다음 사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역사성과 일관성을 가져야만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이렇게 한다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성과를 내는 정책을 함부로 폐기·변경하지는 못할 것이다. 분단국가인 서독은 20년동안 대화와 교류라는 일관된 대동독정책으로 통일을 일궈냈다. 70년대 초 진보성향의 사민당은 서독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화해협력정책을 펼쳤다. 80년대 보수성향의 기민당은 경제발전을 한걸음 더 도약시키기 위해 화해협력정책을 지속 유지했다. 통독 20년이 지난 오늘날 독일은 진보와 보수 모두가 통일의 역군으로 평가받고 있다. 90년대 말 진보성향의 김대중 정부는 IMF를 극복하기 위해 대북포용정책을 펼쳤다. 2000년대 말 보수성향의 이명박 정부는 자원외교를 통해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 대북강경책을 펼쳤다. 한국과 서독의 정책 출발은 비슷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정책의 단절이 상이한 결과의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정치는 정책이나 사람을 존중하고 잘 활용할 줄 모르는 독선에 빠져있다. 독선과 편가르기에 빠져 소통을 못하고 아집에만 골몰하면 스스로 패자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04-28 양무진

[춘추칼럼] 인문정신과 지식재산

실수 반복하지 않는 지혜로운 인격체 되라는 것미래전쟁 승리는 누가 지식기반 많이 쌓느냐가 관건생존 위해선 창의적 인재 많이 육성하는 수밖에인문학의 고갱이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람공부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하는 공부가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문사철(文史哲)로 요약된다. 인문(人文)은 글자 그대로 사람을 위한 사람의 공부다. 학교 앞에 흔히 새겨둔 '먼저 사람이 되자'라는 표어도 인문학 공부를 하자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옛 사람들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면 기본으로 문학, 사학, 철학을 배워야 한다고 믿었다. 범박하게 규정하면 문학은 현재를, 사학은 과거를, 철학은 미래를 가늠한다고 볼 수 있다. 문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더 멋스럽게 장식하려는 무늬와 같다. 같은 표현이라도 그럴듯하게 별명을 지어 불러야 여유가 생기고 실감도 그만큼 더하게 되기 때문이다.'미는 분노의 감정을 달래준다'는 괴테의 말이나, 시가이흥(詩可以興) 시가이군(詩可以群)이라는 논어의 구절도 이런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아름다움에 취해 흥얼거리다 보면 그만큼 쉽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고 또 흥기(興氣)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역사는 지난 일을 반추하여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과거를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문학이 '왜'를 감지한다면 역사는 '어떻게'를 지향한다. 처녀가 아이를 낳으면 역사가는 인구가 한 명 늘어났다는 결과를 강조하지만, 작가는 왜 하필 그랬을까 하고 그 이유에 주목한다. 이와는 달리 철학은 미래를 전망한다.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그걸 실천하려는 노력이 철학의 밑힘이다. 그래서 칸트도 '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하는 것'을 배우라고 강조한다. 인문학의 덕목이 지향하는 바는 결국 지혜로운 인격체가 돼라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올바른 선택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여 나가는 안목이 필요하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흔히 BCD가운데 C가 펼치는 경우의 수가 인생이라고 한다.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 놓인 선택(Choice)에 의해 삶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선택을 잘 하려면 통찰력과 심미안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현명한 선택은 이 두 힘을 바탕으로 하는 독창성에서 빛을 발한다. 산업사회에서 독창성은 흔히 지식재산으로 상품화 되게 마련이다. 특허, 디자인, 상표, 저작권 등이 지식재산권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지만 2011년에 지식재산기본법을 제정하였고, 이 법률에 의거하여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만들었다. 지식이 곧 재산이 되며, 지식재산 강국이 되어야만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인식한 것이다. 대학 졸업생의 절반이 실업자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창의력 교육을 통한 지식재산의 확대는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세계는 영토전쟁이 아니라 누가 지식재산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날 것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개발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문학은 지혜라는 양분을 통하여 창의적인 생각을 낳게 하는 화수분과 같다. 인문학을 홀대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식기반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화수분을 잘 활용하여 창의적인 인재를 많이 길러내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

2016-04-21 정영길

[춘추칼럼] 선거예측의 신호와 잡음

다양한 요소 측정후 현재와 비슷한 이전상황 찾기예측·검색 가장 유사한것 선별 최적화 이론에 적용문화·사회적 반영 예측모델 우리는 언제쯤 나올까얼마 전에 미국에 갔다가 여러 방송에서 단골로 나오는 얼굴을 보고 '아 미국도 선거철이구나'하고 문득 깨달았다. 영화배우도 아니고 가수도 아닌 이 사람, 네이트 실버는 빅데이터 방식으로 선거예측을 귀신같이 해내서 유명해진 사람이니까. 원래 실버는 야구 경기의 결과를 예측하는 일이 직업이었다. 야구는 통계의 경기라는 속설도 있듯이 각종 통계에 입각해서 전략을 짜는 게 중요한 스포츠여서 이런 분석이 통하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같은 방식으로 선거예측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도했다가 대박을 터트렸다. 지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때 50개 주별로 선거결과 예측을 해서 49개 주에서 완벽히 맞춘 것이다. 이제는 정치 분석가 대접을 받는 경지에 올라서 선거 때마다 언론에 단골로 나오는 유명 인사가 됐다. 선거예측을 하는 수학적 방법을 설명한 그의 2012년 책 '신호와 잡음'은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15위 안에 연속 13주 동안 들었다.미국은 대통령 선거를 간접선거로 치르기 때문에 절차도 복잡하고 선거 예측도 아주 힘들다. 50개 주별로 선거인단 선출결과를 예측해야 하는 데, 주마다 전통도 다르고 절차도 다르니까. 이런 악조건 속에서 실버가 2008년에 딱 하나 틀린 게 인디애나 주인데, 이 주는 양 후보 간에 격차가 영점 몇 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다. 같은 해 미국 상원 선거는 35개 모두를 완벽하게 맞췄다. 이런 이유로 2009년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축적하더니 2012년 오바마 재선 시에는 50개 주 모두에서 완벽한 결과 예측에 성공했다. 올해는 운이 다했는지, 뉴햄프셔는 정확하게 맞추었는데, 아이오와의 공화당 예선은 트럼프가 크루즈를 박빙으로 이기는 것으로 잘못 예상했다.빅데이터 방식의 미래 예측은 사람들의 주관적인 생각조차도 데이터에 반영되어 그 속에 숨어있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아무 질서도 없이 마구잡이로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이터에 질서를 부여하고 유의미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 관점의 대전제는 축적된 데이터의 풍부함인 데 예전에는 그 정도의 방대한 데이터가 축적된 게 없었다. 데이터 쌓는 것도 공짜가 아닌데 필요성을 못 느끼니 데이터를 쌓지 않은 탓이다. 그런데 하드디스크나 클라우드 같은 정보저장 장치들이 저렴해져 비용을 걱정하지 않게 됐다. 게다가 이렇게 쌓인 데이터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는 수학 이론이 크게 발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데이터가 많이 쌓였고 그걸 분석하는 수학이 발전해서 쌍두마차가 완성된 것이다. 방대한 데이터로부터 유의미한 결론을 끄집어낸다는 게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어떤 수학을 써서 이걸 하는 걸까? 수학의 최적화 이론이 주효하게 쓰인다. '한 점에서 다른 점까지 가는 제일 빠른 길이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다루는 분야다. 통상이라면 이 질문의 답은 '두 점을 잇는 직선'이다. 다른 곡선으로 된 길은 더 길 테니까. 그렇지만 두 점 사이에 깊은 웅덩이가 있다면 직선 길이 없을 테니 답이 바뀐다. 복잡해 보이는 장애물을 피해서 가장 빠른 길을 찾는 이런 문제는 중·고등학교 수학에서도 다룬다. 기업에게는 '제품을 얼마 생산하면 기업이윤이 가장 클까?'가 중요한 문제다. 생산비용과 판매가격에 경쟁까지 고려해야 하니, 너무 적게 생산하면 비용이 오르고 많이 생산하면 가격이 폭락한다. 이런 문제도 최적화 이론의 범주에 속한다. 선거예측을 하려면,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요소들을 측정하고 나서 현재 상황과 가장 유사한 이전 상황을 찾아내야 한다. 인터넷 검색도 흡사하다. 그러니 예측이나 검색이란 게 모두 가장 유사한 것을 찾는 과정이고 그래서 최적화 이론의 적용 대상이 되는 것이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총선이 끝났다. 해외에서는 각종 수치화된 데이터로 선거결과를 예측하는 게 유행한지 꽤 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광범위하게 쓰이는 것 같진 않다. 우리나라의 문화와 사회적 상황까지 반영하는 예측 모델은 언제쯤 만들어질까./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04-14 박형주

[춘추칼럼] 투표 그 이후

정책경쟁은 없고 대의민주주의 목표 '집권'으로 둔갑삶의 곳곳에 침투해 있는 '정치' 외면할 수는 없어선거후 공약 실행되지 않기에 국민힘으로 바꿔야1500년경 약 500여 개의 정치 단위들이 혼재해 있던 유럽에서는 이 작은 정치체를 통합해 대국을 이루고 국왕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시대의 과제였다. 그러나 최근 역사학은 오히려 절대주의 시대에 국왕의 권력이 결코 절대적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국왕은 재정권을 쥐고 있는 귀족과 부르주아 등 실력자들의 협조를 얻어야 했고, 반대로 그들은 국왕에 복종하는 척하면서 자신들의 힘을 유지하고 이익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경철 교수는 그의 저서 '문화로 읽는 세계사'에서 절대주의 체제는 국왕이 절대적인 '척'하는 체제로 그것은 매일 장엄하게 상영된 절대주의라는 국가적 연극이었다고 표현한다.일본의 행동하는 정치학자 스기타 아쓰시는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원제 '정치적 사고')라는 책을 통해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대표들을 통해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전하는 대의민주주의를 '연극으로서의 대표제'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정치인은 각각의 역할을 연기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논전을 펼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중략) 정치적 쟁점이 어디에 있고, 대립 축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누구의 의견에 가깝고, 어떤 점이 다른가? 대표들이 펼치는 정치극을 보면서 이런 것들을 명확히 알게 됩니다."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은 똑같지 않다. 계층과 연령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같은 조건에 처한 사람들도 어떤 사안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민의'가 존재하고 국민이 뽑은 대표들이 그것을 전달한다는 것이 대표제에 대한 일반적 생각이지만, 사실상 통일된 확고한 민의가 존재하는 것일까. 스기타는 오히려 전체 민의가 통일되지 못하고 모호하거나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정치인들이 의회에서 논쟁하거나 정당들이 대립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만들어간다고 말한다. 테러방지법에 관심없던 사람들조차 '필리버스터'를 보며 쟁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게 된 것처럼. 그러나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지금, 각 정당과 출마한 국회의원들이 서로 대립하고 논쟁하는 속에서 국민들은 쟁점이 무엇이고 대립 축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인지할 수 있을까. 아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 경쟁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정책들은 오랜 시간 거듭 사유하고 실행하며 그것을 밑거름 삼아 나온 것들이 아니다. 즉흥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껍데기에 불과한 공약들이 졸속으로 만들어지고, 자유주의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대의민주주의의 목표는 '집권'으로 둔갑한 지 오래되었다. 그렇다고 투표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권은 결국 투표한 사람들의 발언권을 강화할 뿐이다.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지을 것인가',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할 것인가',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은 멈춰 버리는 것인가', '노동자들의 권익은 경제 논리에 묻히는가' 등등 우리 삶의 모든 곳에 침투해 있는 정치를 외면할 수는 없다. 문제는 대의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모순이다. 결과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도 아니며, 선거 후에 공약들은 실행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투표의 결과에 상관없이 투표 이후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스기타의 말을 인용해보자."선거나 정당정치가 충분히 기능하지 않는다면, 그 이외의 정치를 육성하여 정치인들을 포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도망쳐버린다면 정치인들에게 모든 것을 백지 위임하게 될 뿐입니다. 정치인의 지위를 직접적으로 좌우하는 선거 이외에 다른 방식은 효과가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의 큰 움직임은 반드시 정치를 바꿉니다."연극이 끝나고 정적과 어둠만이 흐르고 있을 무대 앞에서, 우리는 정치를 바꿀 큰 움직임을 여전히 생각해야 한다./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2016-04-07 강맑실

[춘추칼럼] 유엔안보리 제재 이후 북한의 대응

당·정·군·단체 내세워 13차례 협박성 말폭탄 쏟아내김정은, 수차례 軍 현지지도 핵무력 강화의지 표출경제·핵 병진노선… 7차당대회 국면전환 분수령 될듯북한은 1월 6일 4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핵실험의 의도는 핵능력 고도화를 위한 기술 축적, 핵보유국으로 가겠다는 의지 과시, 미국과의 동등한 입장에서 핵군축 및 평화협정 논의 선점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270호는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여준다.미국은 2270호가 북한이 진지하고 신뢰할 만한 비핵화 협상의 복귀에 효과적일 것으로 주장한다. 압박과 제재를 통한 북한의 비핵화 협상 복귀 전략이다. 한국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활동을 중단케 할 것임을 강조한다. 제재와 압박만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전략이다. 영국은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원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제3자적 입장에서 인류 보편적 가치는 중시하면서도 정치문제에는 다소 거리를 두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평화회담 재개와 비핵화 진전 등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압박과 대화의 병행전략이다. 러시아도 북한이 6자회담으로 복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무게중심이 있다. 국가 간의 입장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제재의 느슨함을 예고한다.북한은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270호 채택 이후 당·정·군 기관과 단체를 내세워 '말폭탄'의 시위를 전개했다. 3월 3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시작으로 정부 대변인 성명,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 국방위원회 성명, 총참모부 성명,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대변인 성명, 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성명 등 총 13차례에 걸쳐 협박성 말폭탄을 쏟아냈다. 300㎜ 신형대구경 방사포와 단거리·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저강도의 맞대응 무력시위도 지속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12차례의 군사분야 현지지도를 통해 핵무력 강화의지표출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저급하면서도 공격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270호 채택 이후 북한의 대응은 다섯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과격한 표현이 많다. 죽탕·성전·타격 등 위협성 말폭탄이 난무하다. 둘째, 핵능력을 과시한다. 핵탄두의 소형화·정밀화·규격화·다종화를 강조한다. 수소탄을 주체탄·통일탄으로 묘사한다. 셋째,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미사일 시험을 직접 지휘하면서 대남·대미 비난도 주도한다. 넷째, 당·정·군 기관과 단체를 내세워 '말폭탄'을 이어간다. 8개 기관이 13차례의 담화와 성명을 발표했다. 다섯째, 미사일 운영 전술과 핵전력의 공개이다. 핵기폭장치와 탄두 덮개, 장거리 미사일을 공개했다. 실험 장면도 공개했다. 평택과 오산을 포함한 수도권에는 사거리 200㎞의 신형방사포, 포항·부산·여수·목포 등 남쪽 항구와 원자력발전소 등의 국가기간시설에는 사거리 500㎞의 개량형 스커드 미사일, 오키나와 주일미군 기지에는 사거리 1천300㎞의 노동미사일, 괌을 목표로 하는 사거리 3천km 내외의 무수단미사일이 주요 공격수단임을 보여준다. 미사일 전력 노출은 김정은 제1위원장만이 가능하다.대응을 통해 본 북한의 전략적 의도는 제7차 당대회를 계기로 국면전환의 가능성을 예고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외부의 위협적 인식보다 내부의 동요 차단이 시급하다. 김 제1위원장은 안보와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주민들은 안보에 토대한 경제난 극복을 갈망한다. 김 제1위원장은 안보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면서 경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서 올해 북한군의 동계훈련 횟수와 규모는 확연하게 줄었다.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시험, 신형방사포와 단거리 미사일 발사가 핵심을 이룬다. 재래식 군사훈련은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 병사들이 제7차 당대회를 준비하는 70일 전투에 동원됐다. 군사적으로 저비용 고효율을 이끌고 정치 경제적으로 체제안전에 토대한 경제발전 전략이 바로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이라고 선전한다. 제7차 당대회가 국면전환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03-31 양무진

[춘추칼럼] 선비정신과 사랑방 문화

엄격하고 너그러우며 멋과 풍류 있는 '여유의 삶'가부장 주거공간으로 손님과 정담 나누는 '쉼터'전통 문화유산 '한류 상품화' 세계인에 각인될 것세계인들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며 한국인은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바람직할까? 한국인의 정체성이나 이미지를 고취해 나가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를 위한 국가 외교정책은 물론 범국민적 정신 운동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야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 하면 신사의 나라를 연상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분명한 국가 캐릭터가 있었으면 좋겠다. 과학 기술이 어느 정도 보편화 되면 문화가 최고의 상품이 되어 국가 경쟁력의 축이 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정신문화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전통이 있다. 선비정신이 바로 이것이다. 조선왕조가 준 최고의 선물이다. 조선은 세계에서 유래가 드문 장수 국가다. 힘이 아닌 교화를 통해 다스리려는 분명한 의지가 있었기에 오백 년이나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성리학적 명분에 근거한 왕도정치를 지향하였고, 그 바탕에 선비라는 모범적 인간 버팀목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선비는 조선왕조가 설정한 최고의 이상형 인간이었던 것이다. 원래 선비라는 말은 몽고어 '박시'에서 왔다고 한다. 또, 신채호는 선의 무리 즉 선배(仙輩)가 어원이라고 하고, 김동욱은 선배(先輩)와 같은 개념으로 신라의 화랑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어질면서도 지식이 충분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훌륭한 사람의 자취나 착한 행실은 반드시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선비 논 데서 용 난다'는 속담도 이래서 생겨난 듯하다.선비는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며 학예일치(學藝一致)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추구하였다. 문사철(文史哲)을 통해 이성적 판단 능력을 높이고, 시서화(詩書畵)를 통해 감성 근력을 키웠다. 선비는 이성 교육과 감성 교육을 아우름으로써 삶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키려 하였다. 머리는 차고 가슴은 따뜻한 인간을 지향하였던 것이다. 원칙을 지키되 그 범위 안에서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을 하는 유연성(經經緯史), 남에게 너그럽고 자신에게는 엄격한 정신력(薄己厚人), 공적인 일은 먼저하고 자신의 일은 뒤로 미루는 책임의식(先公後私), 강자에게 당당하지만 약자에겐 도움을 아끼지 않는 따뜻한 마음씨(抑强扶弱) 등이 선비정신의 대표적인 덕목들이다. 부정과 타협하지 않으며 솔선수범을 우선으로 삼는 성기성물(成己成物)의 태도는 물론, 멋과 풍류를 곁들여 삶 자체를 이상화 하려는 여유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선비정신을 구현하는 열린 공간이 사랑방이다. 우리나라 전통 가옥에서 사랑방은 가부장의 주거공간인 동시에 손님과 정담을 나누는 문화 쉼터이기도 하다. 신독(愼獨)을 위한 개인의 광장인 동시에 인정을 나누는 소통의 마당이었던 셈이다. 이런 전통 덕분인지 70년대만 하더라도 동네 사랑방이 더러 있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서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각 가정의 애경사를 같이 슬퍼하고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풍경을 찾아볼 수 가 없다.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사랑방 문화나 선비정신은 오늘날 되살려야 할 빛나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국제적으로 자랑할 만한 명실상부한 한류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통을 살려 나간다면 한국은 동양의 모범적인 신사인 선비가 많이 사는, 정과 품격이 있는 아름다운 나라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국격도 저절로 상승하리라./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

2016-03-24 정영길

[춘추칼럼] 알파고와 대국이 불공정 하다고?

"천여명 훈수꾼 둔것이나 마찬가지" 주장 오해탓구글, 알고리듬 개선 치중했지만 하드웨어는 그대로CPU 규모도 유럽 세계체스챔피언 꺾을때와 같아열풍 정도가 아니다. 알파고 앞에서 북핵도 총선도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이슈 블랙홀이라고, 이게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될 만하냐고 묻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정말 그럴까?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진 사건의 경중이 분명치 않다면, 역사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게 도움이 된다. 30년 쯤 지나서 살아온 날들을 회고할 때, 인공지능이 다다를 수 있는 한계를 하루 만에 갈아엎은 알파고 대국을 기억할까, 아니면 선거를 앞둔 이합집산의 정치 양상을 기억할까? 넘쳐나는 보도와 분석으로 인한 알파고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를 더하게 되는 이유다. 첫 대국 때만 해도 그냥 화젯거리였다. 언론에 나온 딥러닝이라는 단어는 강 건너 마을 얘기 같았고, 몬테카를로 트리 서치 같은 어려운 말은 금기어였다. 쉬워 보이는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로 퉁치는 바람에 터미네이터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그 무시무시한 스카이넷이 나오는 영화 말이다. 어설프고 선정적인 인공지능의 인간지배 가능성 얘기 대신에, 스테판 호킹 박사가 던진 굵직한 화두인 '인공지능 시대의 자본주의와 부의 재분배' 같은 논의를 시작했으면 더 남는 게 있었을 텐데. 하지만 알파고의 연승이 이어지자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어 이게 아닌데'의 느낌. 점입가경으로 공정성 문제도 튀어나왔지만, 즉시 나서서 이의 제기를 안한다고 잘라 말한 한국기원의 의연함은 존경받을 만하다. 하지만 알파고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알고리듬이다. 이 알고리듬을 분산처리 방식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많은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연결하여 처리속도를 높인다. 보편목적 GPU는 여러 개의 계산을 동시 수행해야 하는 벡터수치계산에 탁월해서 그래픽과 무관한 계산용으로도 흔히 쓰인다. 저가로 슈퍼컴퓨터를 구축할 때 수천 개의 CPU를 모아서 구축한 클러스터로 평행 알고리듬을 돌리는데, 이런 클러스터는 세계 슈퍼컴 경쟁대회에 나가면 하나의 슈퍼컴으로 간주되어 계산력을 평가받는다. 정말로 단독 컴퓨터이어야 한다면, CPU들을 모아 박스 하나에 넣으면 해결된다. 전문가들의 분석으로는, 알파고가 사용한 CPU와 GPU들을 모아서 그렇게 한 대로 만들어도 세계 슈퍼컴 랭킹 500위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분산처리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강력한 CPU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구현해도 현 알파고의 70% 수준의 성능을 낸다. 딥러닝이 평행처리 방식에의 의존도가 낮다는 뜻이다. CPU를 현 수준보다 더 늘리면 오히려 알파고의 성능이 떨어진다는 자체 보고도 있다.1997년에 세계체스챔피언을 꺾은 IBM의 딥블루는 체스를 위해 하드웨어 자체를 구축한 경우였다. 하지만 구글의 목적은 특정 기능만 수행하는 기계 개발이 아니라, 무인자동차나 자동번역기 또는 무인질병진단기 같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보편적 인공지능 알고리듬의 개발이므로, 특정 하드웨어 구축의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CPU 하나를 사용해야 한다거나, 1천여 명의 훈수꾼을 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은, 알고리듬의 분산처리 구현에 대한 오해 탓으로 정리하자. 우리의 천재기사 이세돌은 알파고라는 알고리듬과 대국한 것이고, 의연함과 품격을 시종일관 지켜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결과적으로 구글에겐 환상적인 마케팅 이벤트가 되었지만, 딥마인드는 알파고가 수를 두는 방식을 네이처지 논문으로 사전 공개했고, 대국 방식도 숨기거나 중간에 바꾼 적이 없다. 방대한 기보 데이터를 활용한 알고리듬의 개선에 매달렸지만, 하드웨어는 그대로여서 CPU 규모도 유럽챔피언을 꺾을 때와 동일하다. 불편한 심정에 머물게 아니라, 알파고로 확인된 시대의 변화와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 방대한 데이터가 강력한 수학적 알고리듬과 결합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거대한 변화는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몇 년 뒤면 무인 택시가 길가에서 나를 태울 것이고, 우리는 또 다른 충격을 경험할 것이다./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03-17 박형주

[춘추칼럼] 자남산 여관에서 받은 단풍잎 한 장

남북고위급회담 등 수많은 교류 이뤄지던 곳정부, 핵·미사일 자금원이라며 폐쇄한 개성공단평화통일 향한 상징성 짓밟은채 시간 보내선 안돼"언니이, 기다릴게요~." "그래에, 곧 갈게에~."아니, 이것은 1961년에 만들어진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 말투 아닌가. 60년대의 서울 말씨와 흡사했다. 잠을 깨어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있는 곳은 개성공단의 컨테이너 숙소였다. 잠결에 아련히 들리던 말소리는 개성공단의 여성 노동자들이 주고받은 대화였다. 전날인 2005년 6월 6일, 나에겐 기적 같은 일이 있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저작권 사용료 지불 건으로 '임꺽정'의 저작권자인 작가 홍석중(저자 홍명희의 손자) 선생을 만나러 개성공단에 도착한 것이다. 그것도 늘 꿈에 그리던 대로 일행들과 함께 직접 봉고차를 몰고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비무장지대를 지나, 북측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절차를 밟고 개성공단까지 갔다. 가는 내내 벅찬 마음에 자꾸만 눈물이 솟구쳤다. 분단의 철조망을 치우고 홍석중 선생을 처음 만난 순간, 우리는 서로 뜨겁게 포옹한 채 말을 잃었다. '임꺽정' 저작료 지불은 제작 부수를 밝히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걸 증명해 보이려고 20여 년간 제작 상황을 일일이 손으로 기록해온 열 권의 장부를 협상 테이블 위에 꺼내 놓았다. 그러나 홍석중 선생은 "강대표의 말을 믿지 뭘 믿겠습니까"라는 말과 함께 그걸 들춰보지도 않았다. 신뢰의 끈이 이어지는 순간이었다.선죽교 근처의 자남산 여관 회의장에서 맺은 협상은 그렇게 우리 쪽 제안대로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다음 해인 2006년 6월 5일, 남북 최초로 북측의 저작권자인 홍석중 선생과 남측의 출판권자가 평양에서 만나 '출판권 설정 계약'을 체결하였다. 다른 나라들과는 출판 계약을 자유롭게 하면서 정작 한 민족끼리는 저작물을 주고받을 수도 없었고 저작물 계약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동굴 같은 세월의 빗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개성의 4층짜리 자남산 여관은 남북 고위급 회담은 물론 수많은 민간 교류 차원의 실무협의가 이루어지던 곳이다. 2004년 경제특구로 만들어진 개성공단은 단순히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땅과 값싼 노동력이 만나 상품을 만들어내는 경제적 의미만을 지닌 곳이 아니다. 남북의 민간인들이 서로의 문화를 알아나가고 교류하고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을 풀어가면서 신뢰를 구축해간, 어쩌면 평화통일을 연습하는 운동장 같은 곳이었는지 모른다. 2007년, 금강산 관광에 이은 개성 관광으로 남북은 반세기에 걸친 분단의 장벽 한쪽을 허물고 화해의 미소를 나누었다.정권 초기 대북 정책으로 평화통일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웠던 정부는 지난달 10일, 개성공단을 핵·미사일의 자금원이라고 지목하며 전격적으로 폐쇄했다. 대북정책에 누구보다도 강경했던 이명박 정권조차 천안함 사건이 터지고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개성공단 폐쇄라는 극단적 조처를 취하진 않았다. 왜 그랬을까. 개성공단 폐쇄는 어떤 효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경제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엄청난 긴장과 피해만을 안겨줄 뿐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을 폐쇄한다고 해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중단될 리는 더더구나 없다. 핵 실험을 중단시키거나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붕괴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지 말고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대화와 소통의 상대자로 대하는 자세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게 아닐까.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갑자기 고도화된 건 개성공단에서 벌어들인 자금 때문이 아니라 2008년 이후 6자 회담이 한 번도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는 어느 글에서도 같은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남북은 개성에서 반드시 다시 만나야 한다. 개성공단이 지닌 평화통일을 향한 상징성을 무참히 짓밟은 채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 홍석중 선생이 자남산 여관 뜰에서 나에게 준 붉은 단풍잎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책갈피 속에서 퇴색하지 않고 그리움의 빛깔을 더해가고 있다./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2016-03-10 강맑실

[춘추칼럼] 2270호의 성패는 중국지방정부 손에 달려 있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만장일치 채택중국, 北 원유·식량 지원문제만 중앙정부 주관대부분 경제협력 이끄는 '지방정부' 적극참여 관건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안은 모두 5회 채택되었다. 4차례의 핵실험과 한 차례의 장거리 로켓발사에 대해 제재결의안을 채택했다. 개별국가들의 독자적 대북제재는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를 보완한다. 그동안 대북제재결의안의 핵심내용은 의심물자의 이동을 막는 금수조치, 의심선박에 대한 검색, 달러 거래를 차단하는 금융제재, 개인·단체에 대한 제재 등이다. 유엔안보리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이나 핵실험을 감행할 때마다 기존의 제재를 강화·확대해 왔다. 2087호는 금융기관에 대한 감시와 이중용도(catch-all) 품목에 대한 수출통제가 강화되었다. 2094호는 항공·선박에 대한 통제와 북한 외교관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었다.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대북제재위원회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수출이 2006년 기준 350만달러에서 2010년 기준 200만달러로 줄었다는 것을 성과로 내세운다. 북한 외교관들의 불법거래 행위가 줄었다는 점도 성과로 명시한다. 특히 북한 전제 교역의 90%가 중국과 이루어짐으로써 다른 국가들이 북한과 교역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부분적인 성과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2013년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094호 채택이후 제재이행보고서를 제출한 나라는 193개국 중 42개국에 불과하다. 4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되었다.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는 북한의 비핵화를 이끈 것이 아니라 징벌적인 제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개별국가들의 독자적 대북제재는 미국, 일본, 한국이 주요 행위자이다. 미국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공산국가·반인권국가·반종교국가·테러국가·대량살상무기 확산위험국가 등 온갖 명목으로 북한을 제재해 왔다. 미국은 대북제재에 국제사회의 동참을 이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북한을 정상국가로 이끌지 못했다. 비핵화라는 외교안보적 목적달성에는 더더욱 실패했다. 일본은 대북제재에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비핵화보다 납치문제 해결이 우선이었다. 북한의 핵불능화에 대한 대가로 중유 20만t을 제공하지 않았다. 2014년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간 스톡홀롬 합의서에 독자적인 대북제재 해제를 명시했다. 일본의 대북제재조치는 대부분 이미 시행 중에 있다. 조총련계 인사들의 출입국 및 송금액수를 줄였다 늘였다 하는 정도만 남아있다. 한국의 독자적인 대북제재는 실패했음이 드러났다. 정부는 5·24 조치로 남북간 교역이 중단됨으로써 북한에게 연간 3억달러의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의 설명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자원외교가 북한을 우회함으로써 입은 손실은 30억달러를 훨씬 초과한다.지난 2일(현지시간) 유엔안보리는 대북제재결의안 2270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270호 내용은 포괄·상징·강력으로 요약된다. 개인과 단체의 대상 숫자를 추가하고 광물수출과 같은 경제활동 분야도 포함시킨 것이 포괄적이다. 국가우주개발국 등 정부기관을 명시하고 불법 금융거래하는 외교관을 추방하는 조치는 상징적이다. 특히 항공유 수출을 통제하는 것도 상징적이다. 중국은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독자적인 제재조치로 항공유 수출을 줄여 왔다. 2012년 기준 연간 4만t에서 2015년 기준 1천500t의 규모의 항공유 수출은 북한 공군에 대한 아픔보다 제재의 지속성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광물수출 통제는 북한의 돈줄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조치로 평가된다. 2015년 기준 북한의 대중 광물수출은 13억달러이다. 북한을 드나드는 모든 선박에 대한 통제는 일종의 해상봉쇄로 읽힌다.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270호의 채택과정에서 중국은 '사드' 이슈를 잠재웠다. 미국은 강력한 대북제재결의안을 이끎으로써 자존심을 지켰다. 북한은 평화협정 논의의 명분 확보에 자화자찬할 듯하다. 그러나 한국은 손익계산에 보이지 않는다. 2270호의 성패는 중국의 손에 달려 있다. 중국은 북한과 1천400km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원유·식량 지원문제는 중앙정부에서 관장하지만 대부분 경제협력은 지방정부의 몫이다. 중국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참여가 관건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북한식 말 폭탄만 할 수 있음이 부끄러운 현실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03-03 양무진

[춘추칼럼] 지역 문화원과 귀명창

지역별 다양한 문화자산 있어야 국가경쟁력 향상정부·지자체, 특성 맞는 프로그램 계발·보급 필요기업이 원하는 특허 스토리텔링 등도 지원해 줘야판소리 용어 가운데 귀명창이란 말이 있다. 명창은 국악에서 노래를 특출하게 잘 부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귀가 명창이라니? 귀는 소리를 듣는 역할을 할 뿐 발성기관이 아니다. 한자어와 고유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역설의 미학을 보여주는 조어다. 단순한 애호가의 차원을 넘어 일정한 식견을 갖춰 판소리를 제대로 향유할 줄 하는 사람을 명창에 버금간다고 해서 귀명창이라 부르지만 실은 명창을 뛰어넘는 역할을 한다. 아무리 훌륭한 소리꾼의 노래라도 이걸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소음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문화는 특출한 소수에 의해 비롯되지만, 이를 즐기는 다수의 소비자에 의해 정착되고 확산된다. 단순한 소비 차원을 넘어 우리 일상에 파고드는 생활화 과정을 통해 문화는 꽃이 핀다. 귀명창의 성원에 힘입어 문화가 파급되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귀명창 경험을 해 볼 기회가 사실상 없다. 모든 문화 행사가 중앙 위주인데다 서울에서 흥행에 성공한 것만이 지방 순회공연을 기획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 단체에서 주관하는 각종 축제도 사실상 먹자판이 대부분이다. 고급문화 체험을 통해 감성 근력을 키울 기회가 거의 없는 셈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그러다 보니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문화의 문외한이 될 수밖에 없다. 문화의 귀(耳)도 운동과 마찬가지로 꾸준한 훈련을 해야 감응력이 향상된다. 문화를 향유하는데도 트레이닝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중앙집권적이기 때문에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기회 자체가 박탈된 환경에 놓여 있다. 그러나 지방문화는 중앙에 종속된 영원한 변방문화가 아니다. 또 하나의 다른 중앙문화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지역의 정체성을 근간으로 또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방문화를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지방자치 단체도 긴 안목으로 개성 있는 고급 지방문화를 창달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지역마다 다양한 문화 자산이 축적돼 있어야 국가 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다. 지방문화의 제자리 찾기는 자치단체의 의지와 중앙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처럼 지역마다 유사한 기념물을 짓거나, 축제 행사를 남발하여 재정만 축내면 희망이 없다. 이런 행태가 고착되면 지방의 문화 귀명창이 줄어들어 지방문화 융성은 요원하게 된다. 이것을 보정하는 일환으로 지역 문화원을 활성화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문화원은 지역문화의 진흥을 위해 설립된 법인으로 지역문화 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예산이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지역 문화원들이 향토사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향토사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것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학 연구의 현장성 제고에 기여를 하고 있지만 이 역할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양질의 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지역 문화원이 그 소비층을 두텁게 하는 산파역을 담당해야 한다. 지역 특성에 맞는 사업을 펼치거나 문화 귀명창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계발 보급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 거주하는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상품 및 기술의 작명은 물론 특허에 필요한 스토리텔링 등도 지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미래는 문화가 여지(輿地)며 산업생산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기술과 상품도 이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해야 경쟁력을 갖는 시대가 될 것이기에 사회복지에 버금가는 문화보급 사업을 지역 문화원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벌여나가야 한다. 그래야 백범 김구선생이 희망한 문화강대국의 꿈도 이루어질 수 있다. 허구한 날 시위 문화만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 우리도 언젠가는 피아노 잘 치는 대통령, 시낭송을 즐기는 총리가 통치하는 그런 나라가 도래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줄 때가 되었다./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

2016-02-25 정영길

[춘추칼럼] 직관을 표현하는 언어

과학자 1천여명 시공간 휘게하는 것 탐지해 내19세기 전자기파 존재 확인되자 무선통신 발명휴대폰으로 이어진 전례 또 기대할 수 있으려나아인슈타인은 시공간(space-time)을 다루는 특수상대성이론과 중력(gravitation)을 다루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제안했다. 이 둘은 많이 다른데 최근 중력파와 함께 언론에 자주 등장한 상대성이론은 후자다. 사랑하는 이성과 함께 있는 30분은 싫은 사람과의 5분보다 짧게 느껴진다는 어느 영화 장면은 특수상대성이론을 설명할 때 쓰인다. 달리는 기차에서 따라오는 자동차가 느리게 보이는 상대성이야 예전에 몰랐을 리 없다. 이런 고전적인 상대성에다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빨리 움직일 때는 상대성의 정도가 적어진다는 이상한 생각을 추가한 게 특수상대성이론이다. 빛의 속도로 가는 우주선에서 역시 빛의 속도로 반대방향으로 날아가는 우주선을 보면, 고전적인 상대성으로는 빛의 속도의 두 배로 보여야 한다. 특수상대성이론은 그게 아니고 여전히 빛의 속도로 보인다고 한다. 그러니까 빛의 속도의 몇 배로 나는 우주선 운운하는 소설은 이제 잊자. 그런 건 없다. 특수상대성이론의 결과물인 E=mc2에서 c가 빛의 속도다. 이건 길거리 포스터나 티셔츠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질량 m이 에너지 E로 바뀔 수 있다는 이 유명한 방정식에서 원자폭탄이 나왔고 인류 문명은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질량 50의 가벼운 두 원자핵을 엄청난 고온에 두면 합쳐져서 질량 98의 무거운 원자핵이 되는데, 이때 사라진 질량 2가 무시무시한 에너지로 바뀌어 나온다는 게 핵융합이다. 이걸 사용한 수소폭탄은 나왔지만, 고온의 플라즈마 상태를 유지하며 담아둘 용기가 없어서 아직 핵융합 발전은 상용화되지 못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수학적으로는 그다지 어려울 게 없어서 고등학교를 마치면 배울 수 있다. 개인적으론 대학교 1학년 때 일반물리 담당 교수님이 교과서에 없는 특수상대성 이론을 용감하게 강의하시는 바람에 엉겁결에 배웠다. 여기에서 나오는 로렌츠 변환이라는 수식을 보니 어떤 물체도 빛의 속도보다 빠를 수 없다는 게 자명했다. 아니라면 허수의 질량이 출현해 버리니까.하지만 일반상대성이론은 다르다. 이건 기하학인 데다, 유클리드를 훌쩍 넘어선다. 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특정한 좌표계에 표현하려면 텐서 대수를 써야 한다. 이건 선형대수의 확장인 데다 여러 개의 첨자(index)를 쫓아가야 해서 심오함보다는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다. 아인슈타인은 질량 있는 물체가 주변의 시공간을 휘게 한다고 믿었지만 자신의 직관을 표현할 도구를 찾지 못해 8년을 고심했다. 그의 직관을 표현하는 완벽한 언어인 기하학이론을 19세기에 이미 게오르그 리만이라는 수학자가 구축해 두었다는 것은 그에게 최대의 행운이었다. 그는 고심의 시기인 1915년 초에 괴팅겐 대학에서 강연을 했는데, 강연을 들은 수학자인 다비드 힐버트는 즉시 그 기하학적 의미를 깨닫고 독자적으로 이론을 완성했다. 아인슈타인도 수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리만 기하학을 접하고서 이론을 완성했는데, 결국 두 사람은 그해 말 거의 동시에 중력장방정식에 대한 논문을 출간했다. 질량 있는 물체는 그 주위의 시공간을 휘게 한다. 그래서 질량이 없는 빛조차도 무거운 물체 주위를 지나면 휘게 되는데, 뉴턴이 들으면 기겁할 소리다. 질량이 있는 두 물체가 서로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법칙을 벗어나니까. 결국 엄청난 질량의 블랙홀 근처에서 빛이 휘는 것이 관측되고서야 논란이 종식됐다.일반상대성이론의 또 다른 예상이 중력파다. 무게 50짜리 블랙홀 두 개가 서로를 끌어당기다가 합쳐져서 무게 98인 하나의 블랙홀이 되고, 이때 사라진 무게 2가 에너지가 되어 중력파의 형태로 퍼져 나가며 시공간을 휘게 한다. 핵융합 과정에서 질량 일부가 에너지로 방출되는 것과 흡사하다. 용감한 과학자 1천여 명은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을 통해 이러한 시공간의 휨을 탐지해냈다. 국내 과학자들도 관측 데이터에서 잡음을 제거하는 작업 등을 통해 기여했다. 19세기에 전자기파의 존재가 확인되자 무선통신이 발명되어 휴대폰으로 이어진 전례를 여기서도 기대할 수 있으려나./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02-18 박형주

[춘추칼럼] 학교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게 있나요

"자유학기제 선행학습 기회" 선전해대는 학원사회 계급화·대학 서열화 현상 이젠 바로 잡아야아이들 삶 성적에 빼앗겨 소중한 것 너무 많이 잃어"모든 학교의 등록금이 무료예요. 대학도 마찬가지죠. 대학에 다니는 동안 정부에서 생활비를 대주니까 아르바이트 부담도 없고요. 독립해서 사는 대학생의 경우 매달 6천크로네(약 120만 원)씩 나오거든요. 부모님과 함께 살아도 이 금액의 절반 정도 나오고요."이런 나라가 있느냐고? 있다. 바로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이다. 여기 드는 비용은 모두 기성세대가 내는 세금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월급의 절반이 넘는 세금을 내기 때문에 대학생 복지 등 여러 복지가 가능하다. 이렇게 세금을 많이 떼여도 불만이 없는지 성인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나도 대학 다닐 때 그런 혜택을 누렸는데 당연한 것 아닌가"라는 답변을 한다고 한다. '덴마크에서 길을 찾다' 라는 부제가 달린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졸업 후 직장을 찾을 때까지 2년간은 정부에서 실업보조금을 주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자리를 충분히 고민해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덴마크 학생들은 이처럼 대학 졸업 후는 물론, 학교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진로에 대해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차례 갖는다. 덴마크의 초등학교는 우리나라의 중학교까지 포함한 9학년까지인데, 고등학교는 10학년이 아니라 11학년부터 시작한다. 10학년은 에프터스콜레(영어로 하면 에프터스쿨)인데 1년간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훈련받을 수 있다. 진로 모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기숙학교인 '성인용 자유학교'에서 또다시 자신의 미래에 대해 탐색할 기회를 갖는다. 4년제 대학 진학률은 고등학교 졸업생의 40% 정도이며 40% 정도는 2년제 전문교육기관을 선택한다. 덴마크의 대학은 서열화가 없으며, 대학은 필수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에서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이 모든 게 가능한 이유는 덴마크의 교육제도와 사회보장제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국민의 평등 의식과 연대 의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열쇠 수리공이건 의사건 굴뚝 청소부건 교수건 서로에 대한 차별 의식이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는, 그래서 자신이 무슨 직업을 갖건 모두가 자존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서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중학교 1학년의 1학기, 2학기, 그리고 2학년의 1학기 중, 한 학기를 자유학기제로 시행한다. 한 학기 동안은 중간과 기말시험 없이 토론과 실습 등 참여 위주의 수업을 통해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는 학습 제도이다. 오전에는 국어, 영어, 수학 등 기본과목을 배우고 지필고사 없이 토론과 실습 등의 형성 평가를 한다. 오후에는 진로 체험이나 동아리 활동 등 학생들이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의 적성과 미래에 대한 탐색과 설계를 할 수 있도록 도입된 제도이다. 참 좋은 제도이자 꼭 필요한 교육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이 당장 우려하는 것은 대학입시이다. 성적이 떨어질까 봐 걱정인 것이다. 자유학기제 기간에 선행학습을 많이 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학원가가 호황을 누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과연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학부모들만 탓할 수 있을까. 출신 대학의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니고 직업의 차별화는 여전하다. 성적 최우선의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게 하려고, 자식의 성적에 물불 가리지 않는 학부모들의 심정은 지극히 당연한 게 아닐까. 자유학기제 시행을 앞두고 실시한 어느 설명회에서 한 학부모는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게 있나요?"라며 울분에 찬 항변을 했다고 한다. 사회의 계급화, 대학의 서열화, 연대 의식의 부재, 우리 사회를 뿌리부터 갉아 먹고 있는 이런 거대한 현상을 전면적으로 바로잡지 않는 한, 그 누가 이 학부모의 항변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학교 성적은 한 인간의 수많은 자질 중 하나에 불과하다. 성적 하나로 삶이 송두리째 재단 당하는 경쟁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은 지금 소중한 것을 얼마나 많이 잃어가고 있는가./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2016-02-11 강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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