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 5월은 어머니, 어머니…

집에서 전권 쥐고 항상 우렁차고 당당했던 어머님여행중 '못이룬 인생계획' 풀며 쓸쓸해 했던 표정가끔 "니가 억지로 끌고 다닐때가 좋았다"고 하신다결혼해서 애를 낳고부터는 4대가 함께 살았다. 시할머님, 시부모님과 함께 마당이 있는 낡은 2층집에서 17년을 살았다. 두 아이들은 그네들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 집의 수많은 추억들을 유리알 들여다보듯 기억한다. 분가를 한 후 몇몇 아파트로 옮겨 다니며 살았는데 아이들은 아파트의 기억들을 떠올릴 때면 한참을 더듬거린다. 나 역시 아파트 시절에 대한 기억은 늘 가물가물하다. 간짓대를 세운 빨랫줄에 이불을 널어 탕탕 털 수 없는 곳, 한밤중에 식구들끼리 마음껏 노래하고 웃고 떠들 수 없는 곳, 베란다 문을 열면 마당으로 나갈 수 없는 곳, 그곳 아파트.거실 유리창 문짝이 맞지 않아 문을 잠글 수도 없어 좀도둑이 들락거렸던 낡은 집이었지만, 시동생까지 여덟 식구가 복작이며 살았던 그 집에서의 수많은 에피소드는 줄거리는 물론, 등장하는 사물의 색깔이며 사람들의 표정까지, 여태 생생히 살아 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그 시절, 큰며느리인 나는 집안일이 서툴렀다. 삶을 살아내는 방법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삶의 작은 문턱조차 쉽사리 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어머님의 지청구를 듣지 않는 날이 드물었다. 직장 다니는 며느리를 대신해 집안일과 아이들 키우는 일을 비롯, 연로하신 어른들까지 챙겨야 했던 어머니는 새벽부터 내가 퇴근하는 저녁까지 하루 종일 가사 노동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집에 있는 휴일이나 주말이면 긴장을 풀고 집안일을 나에게 맡겼는데 그때는 감독관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으리라. 부족한 것 투성이였던 나는 종종 어머니의 잔소리 속에서 휴일과 주말을 보내곤 했다. 가끔 남편과 아이들과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여행 내내 긴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집에 계신 어른들 때문에 나 스스로 안절부절 못했던 것이다.어느 날, 결단을 내렸다. 극심한 차멀미 때문에 어머니는 여행을 엄두도 못 냈다. 나 역시 어머니는 당연히 여행을 못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어머니를 설득하고 또 설득해 초등학생이던 아들과 나, 어머니, 셋이서 아들의 여름방학 숙제를 빙자해 경주로 3박4일 여행을 떠났다. 남편은 거동이 불편한 시할머님을 모셔야 했기에 중학생인 딸과 함께 집에 남았다. 어머니와 떠난 그 첫 여행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내가 운전대를 잡는 순간, 모든 게 역전되었다. 집에서 전권을 쥐고 있던 어머님이었으나 일단 동네를 벗어나자 모든 걸 나에게 맡기고 어린아이처럼 순해지셨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폭우를 만났을 때도 나를 믿어 주었고, 경주에서 몇 번이나 길을 잃고 헤맬 때에도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모든 일정과 선택을 나에게 맡긴 채 오로지 여행을 즐겼다. 그렇게 시작한 어머니와의 여행은 기회 있을 때마다 어머니를 설득해, 분가하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여행이 거듭될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즐거움도 늘어갔다. 술에 대해선 엄격하던 어머니도 설악산 오색 약수터의 한 토속음식점에 들어가서는 나물을 안주 삼아 달큼한 머루주를 한 잔 들고 건배했다. "하따, 너 이거 갖고 안 될 것인디 한 병 더 허지 그냐?" 하며 늦은 밤까지 술을 권했다.어머님과 이렇듯 살가워지는 것 말고도 여행의 소득은 또 있었다. 어느 해, 변산반도 여행길에 내소사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내소사 입구의 커다란 보리수나무 아래 우산 받쳐 쓰고 앉아 어머니는 끝내 이루지 못한 당신의 처녀 적 인생 계획을 잔잔히 풀어 놓았다. 집 안에서의 우렁차고 당당한 모습과는 다른 어머니의 쓸쓸한 표정을 읽어낸 순간, 어머니가 나와 같은 한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머님이 혼자 사신 지도 4대가 함께 산 세월만큼 되어 간다. 지금도 종종 어머님은 말씀하신다. "아야, 맑실아. 텔레비전에서 우리나라 명소라고 소개할 쩍마다 난 하나도 부럽지 않더라고. 다 가본 곳잉께. 그때 니가 억지로 나를 여그저그 끌고 다닐 때는 차멀미도 심허고 힘든 것만 같드니만 참 그때가 좋앗시야잉~"/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2016-05-05 강맑실

[춘추칼럼] 20대 국회에 통일외교안보 전문가가 없다

대북정책 성패여부는 일관성 유지하는게 중요정권 바뀔때마다 정책 바뀌어 실질적 성과 못내전문가 활용 못하고 독선에 빠지면 결국 실패한반도의 긴장 고조는 전쟁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면서 국내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위협 장기화로 한반도 상황은 일촉즉발의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대립과 대결이 구조화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고 통일의 길은 더더욱 아득해 보인다. 한반도의 분단은 70년을 넘어섰다. 세계전쟁의 피해국가이면서 동족상잔을 겪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이다. 통일은 민족의 염원이면서 지상과제이다. 그런데 지상과제 해결에 도움을 줄 20대 국회에 통일외교안보 전문가는 보이지 않는다. 국정의 동반자이고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통일과 무관한 곳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전문성을 중시한다는 비례대표에 어느 당도 통일외교안보 전문가를 배정하지 않았다. 더러 있더라도 당선권과는 거리가 먼 후순위에 배치되어 있다. 지역구 당선자들 중에도 통일외교안보 전문가는 눈에 띄지 않는다. 공천의 불균형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회는 통일외교안보정책을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정부가 독점하는 편파적인 정책 추진을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 중요한 대외정책을 정부와 함께 논의하고 결정해야 할 외교·통일위원회, 국방위원회, 정보위원회에 적합한 인물난이 예상된다. 국민의 대변자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통일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수렴 및 정책입안은 어렵다.대북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와 직결된 대북정책은 장기적 안목에서 벽돌을 쌓듯이 차근차근 준비하고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일관성이 결여된 대북정책으로 인해 남북관계 발전에 장애가 되는 고질적인 병폐가 지속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변경되고, 일관성 있게 추진되지 못하니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다.전문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다. 전문가가 없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 비용과 노력을 들여 성숙한 전문가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 그 노선에 맞지 않는 전문가는 모두 단절되고 폐기됨으로써 제대로 된 정책이 입안되고 추진되기는 어렵다. 오랜 과정을 거쳐 키워놓은 전문가를 활용하지 못하고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그들을 재단해 폐기하고 있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지도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정책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변경·단절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 미래와의 끊임 없는 대화이다. 좋은 역사는 계승하고, 미흡한 것은 개선해 나가는 것이 역사 발전의 교훈이다. 20대 국회가 출발에서부터 역사의 교훈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전관은 현직을 존중하고 현직은 전관의 경험과 지혜를 활용하며 맥락을 이어갈 줄 알아야 한다. 정책은 눈앞의 성과에 급급해서는 안된다. 이전에 했던 것을 이어받아 문제점은 시정·진전시키고 다음 사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역사성과 일관성을 가져야만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이렇게 한다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성과를 내는 정책을 함부로 폐기·변경하지는 못할 것이다. 분단국가인 서독은 20년동안 대화와 교류라는 일관된 대동독정책으로 통일을 일궈냈다. 70년대 초 진보성향의 사민당은 서독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화해협력정책을 펼쳤다. 80년대 보수성향의 기민당은 경제발전을 한걸음 더 도약시키기 위해 화해협력정책을 지속 유지했다. 통독 20년이 지난 오늘날 독일은 진보와 보수 모두가 통일의 역군으로 평가받고 있다. 90년대 말 진보성향의 김대중 정부는 IMF를 극복하기 위해 대북포용정책을 펼쳤다. 2000년대 말 보수성향의 이명박 정부는 자원외교를 통해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 대북강경책을 펼쳤다. 한국과 서독의 정책 출발은 비슷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정책의 단절이 상이한 결과의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정치는 정책이나 사람을 존중하고 잘 활용할 줄 모르는 독선에 빠져있다. 독선과 편가르기에 빠져 소통을 못하고 아집에만 골몰하면 스스로 패자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04-28 양무진

[춘추칼럼] 인문정신과 지식재산

실수 반복하지 않는 지혜로운 인격체 되라는 것미래전쟁 승리는 누가 지식기반 많이 쌓느냐가 관건생존 위해선 창의적 인재 많이 육성하는 수밖에인문학의 고갱이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람공부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하는 공부가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문사철(文史哲)로 요약된다. 인문(人文)은 글자 그대로 사람을 위한 사람의 공부다. 학교 앞에 흔히 새겨둔 '먼저 사람이 되자'라는 표어도 인문학 공부를 하자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옛 사람들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면 기본으로 문학, 사학, 철학을 배워야 한다고 믿었다. 범박하게 규정하면 문학은 현재를, 사학은 과거를, 철학은 미래를 가늠한다고 볼 수 있다. 문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더 멋스럽게 장식하려는 무늬와 같다. 같은 표현이라도 그럴듯하게 별명을 지어 불러야 여유가 생기고 실감도 그만큼 더하게 되기 때문이다.'미는 분노의 감정을 달래준다'는 괴테의 말이나, 시가이흥(詩可以興) 시가이군(詩可以群)이라는 논어의 구절도 이런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아름다움에 취해 흥얼거리다 보면 그만큼 쉽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고 또 흥기(興氣)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역사는 지난 일을 반추하여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과거를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문학이 '왜'를 감지한다면 역사는 '어떻게'를 지향한다. 처녀가 아이를 낳으면 역사가는 인구가 한 명 늘어났다는 결과를 강조하지만, 작가는 왜 하필 그랬을까 하고 그 이유에 주목한다. 이와는 달리 철학은 미래를 전망한다.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그걸 실천하려는 노력이 철학의 밑힘이다. 그래서 칸트도 '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하는 것'을 배우라고 강조한다. 인문학의 덕목이 지향하는 바는 결국 지혜로운 인격체가 돼라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올바른 선택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여 나가는 안목이 필요하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흔히 BCD가운데 C가 펼치는 경우의 수가 인생이라고 한다.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 놓인 선택(Choice)에 의해 삶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선택을 잘 하려면 통찰력과 심미안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현명한 선택은 이 두 힘을 바탕으로 하는 독창성에서 빛을 발한다. 산업사회에서 독창성은 흔히 지식재산으로 상품화 되게 마련이다. 특허, 디자인, 상표, 저작권 등이 지식재산권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지만 2011년에 지식재산기본법을 제정하였고, 이 법률에 의거하여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만들었다. 지식이 곧 재산이 되며, 지식재산 강국이 되어야만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인식한 것이다. 대학 졸업생의 절반이 실업자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창의력 교육을 통한 지식재산의 확대는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세계는 영토전쟁이 아니라 누가 지식재산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날 것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개발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문학은 지혜라는 양분을 통하여 창의적인 생각을 낳게 하는 화수분과 같다. 인문학을 홀대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식기반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화수분을 잘 활용하여 창의적인 인재를 많이 길러내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

2016-04-21 정영길

[춘추칼럼] 선거예측의 신호와 잡음

다양한 요소 측정후 현재와 비슷한 이전상황 찾기예측·검색 가장 유사한것 선별 최적화 이론에 적용문화·사회적 반영 예측모델 우리는 언제쯤 나올까얼마 전에 미국에 갔다가 여러 방송에서 단골로 나오는 얼굴을 보고 '아 미국도 선거철이구나'하고 문득 깨달았다. 영화배우도 아니고 가수도 아닌 이 사람, 네이트 실버는 빅데이터 방식으로 선거예측을 귀신같이 해내서 유명해진 사람이니까. 원래 실버는 야구 경기의 결과를 예측하는 일이 직업이었다. 야구는 통계의 경기라는 속설도 있듯이 각종 통계에 입각해서 전략을 짜는 게 중요한 스포츠여서 이런 분석이 통하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같은 방식으로 선거예측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도했다가 대박을 터트렸다. 지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때 50개 주별로 선거결과 예측을 해서 49개 주에서 완벽히 맞춘 것이다. 이제는 정치 분석가 대접을 받는 경지에 올라서 선거 때마다 언론에 단골로 나오는 유명 인사가 됐다. 선거예측을 하는 수학적 방법을 설명한 그의 2012년 책 '신호와 잡음'은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15위 안에 연속 13주 동안 들었다.미국은 대통령 선거를 간접선거로 치르기 때문에 절차도 복잡하고 선거 예측도 아주 힘들다. 50개 주별로 선거인단 선출결과를 예측해야 하는 데, 주마다 전통도 다르고 절차도 다르니까. 이런 악조건 속에서 실버가 2008년에 딱 하나 틀린 게 인디애나 주인데, 이 주는 양 후보 간에 격차가 영점 몇 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다. 같은 해 미국 상원 선거는 35개 모두를 완벽하게 맞췄다. 이런 이유로 2009년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축적하더니 2012년 오바마 재선 시에는 50개 주 모두에서 완벽한 결과 예측에 성공했다. 올해는 운이 다했는지, 뉴햄프셔는 정확하게 맞추었는데, 아이오와의 공화당 예선은 트럼프가 크루즈를 박빙으로 이기는 것으로 잘못 예상했다.빅데이터 방식의 미래 예측은 사람들의 주관적인 생각조차도 데이터에 반영되어 그 속에 숨어있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아무 질서도 없이 마구잡이로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이터에 질서를 부여하고 유의미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 관점의 대전제는 축적된 데이터의 풍부함인 데 예전에는 그 정도의 방대한 데이터가 축적된 게 없었다. 데이터 쌓는 것도 공짜가 아닌데 필요성을 못 느끼니 데이터를 쌓지 않은 탓이다. 그런데 하드디스크나 클라우드 같은 정보저장 장치들이 저렴해져 비용을 걱정하지 않게 됐다. 게다가 이렇게 쌓인 데이터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는 수학 이론이 크게 발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데이터가 많이 쌓였고 그걸 분석하는 수학이 발전해서 쌍두마차가 완성된 것이다. 방대한 데이터로부터 유의미한 결론을 끄집어낸다는 게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어떤 수학을 써서 이걸 하는 걸까? 수학의 최적화 이론이 주효하게 쓰인다. '한 점에서 다른 점까지 가는 제일 빠른 길이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다루는 분야다. 통상이라면 이 질문의 답은 '두 점을 잇는 직선'이다. 다른 곡선으로 된 길은 더 길 테니까. 그렇지만 두 점 사이에 깊은 웅덩이가 있다면 직선 길이 없을 테니 답이 바뀐다. 복잡해 보이는 장애물을 피해서 가장 빠른 길을 찾는 이런 문제는 중·고등학교 수학에서도 다룬다. 기업에게는 '제품을 얼마 생산하면 기업이윤이 가장 클까?'가 중요한 문제다. 생산비용과 판매가격에 경쟁까지 고려해야 하니, 너무 적게 생산하면 비용이 오르고 많이 생산하면 가격이 폭락한다. 이런 문제도 최적화 이론의 범주에 속한다. 선거예측을 하려면,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요소들을 측정하고 나서 현재 상황과 가장 유사한 이전 상황을 찾아내야 한다. 인터넷 검색도 흡사하다. 그러니 예측이나 검색이란 게 모두 가장 유사한 것을 찾는 과정이고 그래서 최적화 이론의 적용 대상이 되는 것이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총선이 끝났다. 해외에서는 각종 수치화된 데이터로 선거결과를 예측하는 게 유행한지 꽤 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광범위하게 쓰이는 것 같진 않다. 우리나라의 문화와 사회적 상황까지 반영하는 예측 모델은 언제쯤 만들어질까./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04-14 박형주

[춘추칼럼] 투표 그 이후

정책경쟁은 없고 대의민주주의 목표 '집권'으로 둔갑삶의 곳곳에 침투해 있는 '정치' 외면할 수는 없어선거후 공약 실행되지 않기에 국민힘으로 바꿔야1500년경 약 500여 개의 정치 단위들이 혼재해 있던 유럽에서는 이 작은 정치체를 통합해 대국을 이루고 국왕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시대의 과제였다. 그러나 최근 역사학은 오히려 절대주의 시대에 국왕의 권력이 결코 절대적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국왕은 재정권을 쥐고 있는 귀족과 부르주아 등 실력자들의 협조를 얻어야 했고, 반대로 그들은 국왕에 복종하는 척하면서 자신들의 힘을 유지하고 이익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경철 교수는 그의 저서 '문화로 읽는 세계사'에서 절대주의 체제는 국왕이 절대적인 '척'하는 체제로 그것은 매일 장엄하게 상영된 절대주의라는 국가적 연극이었다고 표현한다.일본의 행동하는 정치학자 스기타 아쓰시는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원제 '정치적 사고')라는 책을 통해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대표들을 통해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전하는 대의민주주의를 '연극으로서의 대표제'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정치인은 각각의 역할을 연기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논전을 펼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중략) 정치적 쟁점이 어디에 있고, 대립 축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누구의 의견에 가깝고, 어떤 점이 다른가? 대표들이 펼치는 정치극을 보면서 이런 것들을 명확히 알게 됩니다."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은 똑같지 않다. 계층과 연령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같은 조건에 처한 사람들도 어떤 사안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민의'가 존재하고 국민이 뽑은 대표들이 그것을 전달한다는 것이 대표제에 대한 일반적 생각이지만, 사실상 통일된 확고한 민의가 존재하는 것일까. 스기타는 오히려 전체 민의가 통일되지 못하고 모호하거나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정치인들이 의회에서 논쟁하거나 정당들이 대립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만들어간다고 말한다. 테러방지법에 관심없던 사람들조차 '필리버스터'를 보며 쟁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게 된 것처럼. 그러나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지금, 각 정당과 출마한 국회의원들이 서로 대립하고 논쟁하는 속에서 국민들은 쟁점이 무엇이고 대립 축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인지할 수 있을까. 아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 경쟁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정책들은 오랜 시간 거듭 사유하고 실행하며 그것을 밑거름 삼아 나온 것들이 아니다. 즉흥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껍데기에 불과한 공약들이 졸속으로 만들어지고, 자유주의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대의민주주의의 목표는 '집권'으로 둔갑한 지 오래되었다. 그렇다고 투표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권은 결국 투표한 사람들의 발언권을 강화할 뿐이다.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지을 것인가',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할 것인가',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은 멈춰 버리는 것인가', '노동자들의 권익은 경제 논리에 묻히는가' 등등 우리 삶의 모든 곳에 침투해 있는 정치를 외면할 수는 없다. 문제는 대의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모순이다. 결과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도 아니며, 선거 후에 공약들은 실행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투표의 결과에 상관없이 투표 이후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스기타의 말을 인용해보자."선거나 정당정치가 충분히 기능하지 않는다면, 그 이외의 정치를 육성하여 정치인들을 포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도망쳐버린다면 정치인들에게 모든 것을 백지 위임하게 될 뿐입니다. 정치인의 지위를 직접적으로 좌우하는 선거 이외에 다른 방식은 효과가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의 큰 움직임은 반드시 정치를 바꿉니다."연극이 끝나고 정적과 어둠만이 흐르고 있을 무대 앞에서, 우리는 정치를 바꿀 큰 움직임을 여전히 생각해야 한다./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2016-04-07 강맑실

[춘추칼럼] 유엔안보리 제재 이후 북한의 대응

당·정·군·단체 내세워 13차례 협박성 말폭탄 쏟아내김정은, 수차례 軍 현지지도 핵무력 강화의지 표출경제·핵 병진노선… 7차당대회 국면전환 분수령 될듯북한은 1월 6일 4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핵실험의 의도는 핵능력 고도화를 위한 기술 축적, 핵보유국으로 가겠다는 의지 과시, 미국과의 동등한 입장에서 핵군축 및 평화협정 논의 선점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270호는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여준다.미국은 2270호가 북한이 진지하고 신뢰할 만한 비핵화 협상의 복귀에 효과적일 것으로 주장한다. 압박과 제재를 통한 북한의 비핵화 협상 복귀 전략이다. 한국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활동을 중단케 할 것임을 강조한다. 제재와 압박만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전략이다. 영국은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원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제3자적 입장에서 인류 보편적 가치는 중시하면서도 정치문제에는 다소 거리를 두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평화회담 재개와 비핵화 진전 등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압박과 대화의 병행전략이다. 러시아도 북한이 6자회담으로 복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무게중심이 있다. 국가 간의 입장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제재의 느슨함을 예고한다.북한은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270호 채택 이후 당·정·군 기관과 단체를 내세워 '말폭탄'의 시위를 전개했다. 3월 3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시작으로 정부 대변인 성명,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 국방위원회 성명, 총참모부 성명,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대변인 성명, 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성명 등 총 13차례에 걸쳐 협박성 말폭탄을 쏟아냈다. 300㎜ 신형대구경 방사포와 단거리·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저강도의 맞대응 무력시위도 지속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12차례의 군사분야 현지지도를 통해 핵무력 강화의지표출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저급하면서도 공격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270호 채택 이후 북한의 대응은 다섯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과격한 표현이 많다. 죽탕·성전·타격 등 위협성 말폭탄이 난무하다. 둘째, 핵능력을 과시한다. 핵탄두의 소형화·정밀화·규격화·다종화를 강조한다. 수소탄을 주체탄·통일탄으로 묘사한다. 셋째,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미사일 시험을 직접 지휘하면서 대남·대미 비난도 주도한다. 넷째, 당·정·군 기관과 단체를 내세워 '말폭탄'을 이어간다. 8개 기관이 13차례의 담화와 성명을 발표했다. 다섯째, 미사일 운영 전술과 핵전력의 공개이다. 핵기폭장치와 탄두 덮개, 장거리 미사일을 공개했다. 실험 장면도 공개했다. 평택과 오산을 포함한 수도권에는 사거리 200㎞의 신형방사포, 포항·부산·여수·목포 등 남쪽 항구와 원자력발전소 등의 국가기간시설에는 사거리 500㎞의 개량형 스커드 미사일, 오키나와 주일미군 기지에는 사거리 1천300㎞의 노동미사일, 괌을 목표로 하는 사거리 3천km 내외의 무수단미사일이 주요 공격수단임을 보여준다. 미사일 전력 노출은 김정은 제1위원장만이 가능하다.대응을 통해 본 북한의 전략적 의도는 제7차 당대회를 계기로 국면전환의 가능성을 예고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외부의 위협적 인식보다 내부의 동요 차단이 시급하다. 김 제1위원장은 안보와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주민들은 안보에 토대한 경제난 극복을 갈망한다. 김 제1위원장은 안보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면서 경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서 올해 북한군의 동계훈련 횟수와 규모는 확연하게 줄었다.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시험, 신형방사포와 단거리 미사일 발사가 핵심을 이룬다. 재래식 군사훈련은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 병사들이 제7차 당대회를 준비하는 70일 전투에 동원됐다. 군사적으로 저비용 고효율을 이끌고 정치 경제적으로 체제안전에 토대한 경제발전 전략이 바로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이라고 선전한다. 제7차 당대회가 국면전환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03-31 양무진

[춘추칼럼] 선비정신과 사랑방 문화

엄격하고 너그러우며 멋과 풍류 있는 '여유의 삶'가부장 주거공간으로 손님과 정담 나누는 '쉼터'전통 문화유산 '한류 상품화' 세계인에 각인될 것세계인들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며 한국인은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바람직할까? 한국인의 정체성이나 이미지를 고취해 나가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를 위한 국가 외교정책은 물론 범국민적 정신 운동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야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 하면 신사의 나라를 연상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분명한 국가 캐릭터가 있었으면 좋겠다. 과학 기술이 어느 정도 보편화 되면 문화가 최고의 상품이 되어 국가 경쟁력의 축이 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정신문화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전통이 있다. 선비정신이 바로 이것이다. 조선왕조가 준 최고의 선물이다. 조선은 세계에서 유래가 드문 장수 국가다. 힘이 아닌 교화를 통해 다스리려는 분명한 의지가 있었기에 오백 년이나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성리학적 명분에 근거한 왕도정치를 지향하였고, 그 바탕에 선비라는 모범적 인간 버팀목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선비는 조선왕조가 설정한 최고의 이상형 인간이었던 것이다. 원래 선비라는 말은 몽고어 '박시'에서 왔다고 한다. 또, 신채호는 선의 무리 즉 선배(仙輩)가 어원이라고 하고, 김동욱은 선배(先輩)와 같은 개념으로 신라의 화랑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어질면서도 지식이 충분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훌륭한 사람의 자취나 착한 행실은 반드시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선비 논 데서 용 난다'는 속담도 이래서 생겨난 듯하다.선비는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며 학예일치(學藝一致)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추구하였다. 문사철(文史哲)을 통해 이성적 판단 능력을 높이고, 시서화(詩書畵)를 통해 감성 근력을 키웠다. 선비는 이성 교육과 감성 교육을 아우름으로써 삶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키려 하였다. 머리는 차고 가슴은 따뜻한 인간을 지향하였던 것이다. 원칙을 지키되 그 범위 안에서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을 하는 유연성(經經緯史), 남에게 너그럽고 자신에게는 엄격한 정신력(薄己厚人), 공적인 일은 먼저하고 자신의 일은 뒤로 미루는 책임의식(先公後私), 강자에게 당당하지만 약자에겐 도움을 아끼지 않는 따뜻한 마음씨(抑强扶弱) 등이 선비정신의 대표적인 덕목들이다. 부정과 타협하지 않으며 솔선수범을 우선으로 삼는 성기성물(成己成物)의 태도는 물론, 멋과 풍류를 곁들여 삶 자체를 이상화 하려는 여유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선비정신을 구현하는 열린 공간이 사랑방이다. 우리나라 전통 가옥에서 사랑방은 가부장의 주거공간인 동시에 손님과 정담을 나누는 문화 쉼터이기도 하다. 신독(愼獨)을 위한 개인의 광장인 동시에 인정을 나누는 소통의 마당이었던 셈이다. 이런 전통 덕분인지 70년대만 하더라도 동네 사랑방이 더러 있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서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각 가정의 애경사를 같이 슬퍼하고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풍경을 찾아볼 수 가 없다.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사랑방 문화나 선비정신은 오늘날 되살려야 할 빛나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국제적으로 자랑할 만한 명실상부한 한류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통을 살려 나간다면 한국은 동양의 모범적인 신사인 선비가 많이 사는, 정과 품격이 있는 아름다운 나라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국격도 저절로 상승하리라./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

2016-03-24 정영길

[춘추칼럼] 알파고와 대국이 불공정 하다고?

"천여명 훈수꾼 둔것이나 마찬가지" 주장 오해탓구글, 알고리듬 개선 치중했지만 하드웨어는 그대로CPU 규모도 유럽 세계체스챔피언 꺾을때와 같아열풍 정도가 아니다. 알파고 앞에서 북핵도 총선도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이슈 블랙홀이라고, 이게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될 만하냐고 묻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정말 그럴까?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진 사건의 경중이 분명치 않다면, 역사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게 도움이 된다. 30년 쯤 지나서 살아온 날들을 회고할 때, 인공지능이 다다를 수 있는 한계를 하루 만에 갈아엎은 알파고 대국을 기억할까, 아니면 선거를 앞둔 이합집산의 정치 양상을 기억할까? 넘쳐나는 보도와 분석으로 인한 알파고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를 더하게 되는 이유다. 첫 대국 때만 해도 그냥 화젯거리였다. 언론에 나온 딥러닝이라는 단어는 강 건너 마을 얘기 같았고, 몬테카를로 트리 서치 같은 어려운 말은 금기어였다. 쉬워 보이는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로 퉁치는 바람에 터미네이터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그 무시무시한 스카이넷이 나오는 영화 말이다. 어설프고 선정적인 인공지능의 인간지배 가능성 얘기 대신에, 스테판 호킹 박사가 던진 굵직한 화두인 '인공지능 시대의 자본주의와 부의 재분배' 같은 논의를 시작했으면 더 남는 게 있었을 텐데. 하지만 알파고의 연승이 이어지자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어 이게 아닌데'의 느낌. 점입가경으로 공정성 문제도 튀어나왔지만, 즉시 나서서 이의 제기를 안한다고 잘라 말한 한국기원의 의연함은 존경받을 만하다. 하지만 알파고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알고리듬이다. 이 알고리듬을 분산처리 방식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많은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연결하여 처리속도를 높인다. 보편목적 GPU는 여러 개의 계산을 동시 수행해야 하는 벡터수치계산에 탁월해서 그래픽과 무관한 계산용으로도 흔히 쓰인다. 저가로 슈퍼컴퓨터를 구축할 때 수천 개의 CPU를 모아서 구축한 클러스터로 평행 알고리듬을 돌리는데, 이런 클러스터는 세계 슈퍼컴 경쟁대회에 나가면 하나의 슈퍼컴으로 간주되어 계산력을 평가받는다. 정말로 단독 컴퓨터이어야 한다면, CPU들을 모아 박스 하나에 넣으면 해결된다. 전문가들의 분석으로는, 알파고가 사용한 CPU와 GPU들을 모아서 그렇게 한 대로 만들어도 세계 슈퍼컴 랭킹 500위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분산처리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강력한 CPU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구현해도 현 알파고의 70% 수준의 성능을 낸다. 딥러닝이 평행처리 방식에의 의존도가 낮다는 뜻이다. CPU를 현 수준보다 더 늘리면 오히려 알파고의 성능이 떨어진다는 자체 보고도 있다.1997년에 세계체스챔피언을 꺾은 IBM의 딥블루는 체스를 위해 하드웨어 자체를 구축한 경우였다. 하지만 구글의 목적은 특정 기능만 수행하는 기계 개발이 아니라, 무인자동차나 자동번역기 또는 무인질병진단기 같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보편적 인공지능 알고리듬의 개발이므로, 특정 하드웨어 구축의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CPU 하나를 사용해야 한다거나, 1천여 명의 훈수꾼을 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은, 알고리듬의 분산처리 구현에 대한 오해 탓으로 정리하자. 우리의 천재기사 이세돌은 알파고라는 알고리듬과 대국한 것이고, 의연함과 품격을 시종일관 지켜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결과적으로 구글에겐 환상적인 마케팅 이벤트가 되었지만, 딥마인드는 알파고가 수를 두는 방식을 네이처지 논문으로 사전 공개했고, 대국 방식도 숨기거나 중간에 바꾼 적이 없다. 방대한 기보 데이터를 활용한 알고리듬의 개선에 매달렸지만, 하드웨어는 그대로여서 CPU 규모도 유럽챔피언을 꺾을 때와 동일하다. 불편한 심정에 머물게 아니라, 알파고로 확인된 시대의 변화와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 방대한 데이터가 강력한 수학적 알고리듬과 결합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거대한 변화는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몇 년 뒤면 무인 택시가 길가에서 나를 태울 것이고, 우리는 또 다른 충격을 경험할 것이다./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03-17 박형주

[춘추칼럼] 자남산 여관에서 받은 단풍잎 한 장

남북고위급회담 등 수많은 교류 이뤄지던 곳정부, 핵·미사일 자금원이라며 폐쇄한 개성공단평화통일 향한 상징성 짓밟은채 시간 보내선 안돼"언니이, 기다릴게요~." "그래에, 곧 갈게에~."아니, 이것은 1961년에 만들어진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 말투 아닌가. 60년대의 서울 말씨와 흡사했다. 잠을 깨어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있는 곳은 개성공단의 컨테이너 숙소였다. 잠결에 아련히 들리던 말소리는 개성공단의 여성 노동자들이 주고받은 대화였다. 전날인 2005년 6월 6일, 나에겐 기적 같은 일이 있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저작권 사용료 지불 건으로 '임꺽정'의 저작권자인 작가 홍석중(저자 홍명희의 손자) 선생을 만나러 개성공단에 도착한 것이다. 그것도 늘 꿈에 그리던 대로 일행들과 함께 직접 봉고차를 몰고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비무장지대를 지나, 북측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절차를 밟고 개성공단까지 갔다. 가는 내내 벅찬 마음에 자꾸만 눈물이 솟구쳤다. 분단의 철조망을 치우고 홍석중 선생을 처음 만난 순간, 우리는 서로 뜨겁게 포옹한 채 말을 잃었다. '임꺽정' 저작료 지불은 제작 부수를 밝히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걸 증명해 보이려고 20여 년간 제작 상황을 일일이 손으로 기록해온 열 권의 장부를 협상 테이블 위에 꺼내 놓았다. 그러나 홍석중 선생은 "강대표의 말을 믿지 뭘 믿겠습니까"라는 말과 함께 그걸 들춰보지도 않았다. 신뢰의 끈이 이어지는 순간이었다.선죽교 근처의 자남산 여관 회의장에서 맺은 협상은 그렇게 우리 쪽 제안대로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다음 해인 2006년 6월 5일, 남북 최초로 북측의 저작권자인 홍석중 선생과 남측의 출판권자가 평양에서 만나 '출판권 설정 계약'을 체결하였다. 다른 나라들과는 출판 계약을 자유롭게 하면서 정작 한 민족끼리는 저작물을 주고받을 수도 없었고 저작물 계약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동굴 같은 세월의 빗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개성의 4층짜리 자남산 여관은 남북 고위급 회담은 물론 수많은 민간 교류 차원의 실무협의가 이루어지던 곳이다. 2004년 경제특구로 만들어진 개성공단은 단순히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땅과 값싼 노동력이 만나 상품을 만들어내는 경제적 의미만을 지닌 곳이 아니다. 남북의 민간인들이 서로의 문화를 알아나가고 교류하고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을 풀어가면서 신뢰를 구축해간, 어쩌면 평화통일을 연습하는 운동장 같은 곳이었는지 모른다. 2007년, 금강산 관광에 이은 개성 관광으로 남북은 반세기에 걸친 분단의 장벽 한쪽을 허물고 화해의 미소를 나누었다.정권 초기 대북 정책으로 평화통일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웠던 정부는 지난달 10일, 개성공단을 핵·미사일의 자금원이라고 지목하며 전격적으로 폐쇄했다. 대북정책에 누구보다도 강경했던 이명박 정권조차 천안함 사건이 터지고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개성공단 폐쇄라는 극단적 조처를 취하진 않았다. 왜 그랬을까. 개성공단 폐쇄는 어떤 효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경제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엄청난 긴장과 피해만을 안겨줄 뿐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을 폐쇄한다고 해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중단될 리는 더더구나 없다. 핵 실험을 중단시키거나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붕괴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지 말고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대화와 소통의 상대자로 대하는 자세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게 아닐까.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갑자기 고도화된 건 개성공단에서 벌어들인 자금 때문이 아니라 2008년 이후 6자 회담이 한 번도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는 어느 글에서도 같은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남북은 개성에서 반드시 다시 만나야 한다. 개성공단이 지닌 평화통일을 향한 상징성을 무참히 짓밟은 채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 홍석중 선생이 자남산 여관 뜰에서 나에게 준 붉은 단풍잎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책갈피 속에서 퇴색하지 않고 그리움의 빛깔을 더해가고 있다./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2016-03-10 강맑실

[춘추칼럼] 2270호의 성패는 중국지방정부 손에 달려 있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만장일치 채택중국, 北 원유·식량 지원문제만 중앙정부 주관대부분 경제협력 이끄는 '지방정부' 적극참여 관건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안은 모두 5회 채택되었다. 4차례의 핵실험과 한 차례의 장거리 로켓발사에 대해 제재결의안을 채택했다. 개별국가들의 독자적 대북제재는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를 보완한다. 그동안 대북제재결의안의 핵심내용은 의심물자의 이동을 막는 금수조치, 의심선박에 대한 검색, 달러 거래를 차단하는 금융제재, 개인·단체에 대한 제재 등이다. 유엔안보리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이나 핵실험을 감행할 때마다 기존의 제재를 강화·확대해 왔다. 2087호는 금융기관에 대한 감시와 이중용도(catch-all) 품목에 대한 수출통제가 강화되었다. 2094호는 항공·선박에 대한 통제와 북한 외교관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었다.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대북제재위원회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수출이 2006년 기준 350만달러에서 2010년 기준 200만달러로 줄었다는 것을 성과로 내세운다. 북한 외교관들의 불법거래 행위가 줄었다는 점도 성과로 명시한다. 특히 북한 전제 교역의 90%가 중국과 이루어짐으로써 다른 국가들이 북한과 교역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부분적인 성과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2013년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094호 채택이후 제재이행보고서를 제출한 나라는 193개국 중 42개국에 불과하다. 4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되었다.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는 북한의 비핵화를 이끈 것이 아니라 징벌적인 제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개별국가들의 독자적 대북제재는 미국, 일본, 한국이 주요 행위자이다. 미국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공산국가·반인권국가·반종교국가·테러국가·대량살상무기 확산위험국가 등 온갖 명목으로 북한을 제재해 왔다. 미국은 대북제재에 국제사회의 동참을 이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북한을 정상국가로 이끌지 못했다. 비핵화라는 외교안보적 목적달성에는 더더욱 실패했다. 일본은 대북제재에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비핵화보다 납치문제 해결이 우선이었다. 북한의 핵불능화에 대한 대가로 중유 20만t을 제공하지 않았다. 2014년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간 스톡홀롬 합의서에 독자적인 대북제재 해제를 명시했다. 일본의 대북제재조치는 대부분 이미 시행 중에 있다. 조총련계 인사들의 출입국 및 송금액수를 줄였다 늘였다 하는 정도만 남아있다. 한국의 독자적인 대북제재는 실패했음이 드러났다. 정부는 5·24 조치로 남북간 교역이 중단됨으로써 북한에게 연간 3억달러의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의 설명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자원외교가 북한을 우회함으로써 입은 손실은 30억달러를 훨씬 초과한다.지난 2일(현지시간) 유엔안보리는 대북제재결의안 2270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270호 내용은 포괄·상징·강력으로 요약된다. 개인과 단체의 대상 숫자를 추가하고 광물수출과 같은 경제활동 분야도 포함시킨 것이 포괄적이다. 국가우주개발국 등 정부기관을 명시하고 불법 금융거래하는 외교관을 추방하는 조치는 상징적이다. 특히 항공유 수출을 통제하는 것도 상징적이다. 중국은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독자적인 제재조치로 항공유 수출을 줄여 왔다. 2012년 기준 연간 4만t에서 2015년 기준 1천500t의 규모의 항공유 수출은 북한 공군에 대한 아픔보다 제재의 지속성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광물수출 통제는 북한의 돈줄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조치로 평가된다. 2015년 기준 북한의 대중 광물수출은 13억달러이다. 북한을 드나드는 모든 선박에 대한 통제는 일종의 해상봉쇄로 읽힌다.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270호의 채택과정에서 중국은 '사드' 이슈를 잠재웠다. 미국은 강력한 대북제재결의안을 이끎으로써 자존심을 지켰다. 북한은 평화협정 논의의 명분 확보에 자화자찬할 듯하다. 그러나 한국은 손익계산에 보이지 않는다. 2270호의 성패는 중국의 손에 달려 있다. 중국은 북한과 1천400km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원유·식량 지원문제는 중앙정부에서 관장하지만 대부분 경제협력은 지방정부의 몫이다. 중국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참여가 관건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북한식 말 폭탄만 할 수 있음이 부끄러운 현실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03-03 양무진

[춘추칼럼] 지역 문화원과 귀명창

지역별 다양한 문화자산 있어야 국가경쟁력 향상정부·지자체, 특성 맞는 프로그램 계발·보급 필요기업이 원하는 특허 스토리텔링 등도 지원해 줘야판소리 용어 가운데 귀명창이란 말이 있다. 명창은 국악에서 노래를 특출하게 잘 부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귀가 명창이라니? 귀는 소리를 듣는 역할을 할 뿐 발성기관이 아니다. 한자어와 고유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역설의 미학을 보여주는 조어다. 단순한 애호가의 차원을 넘어 일정한 식견을 갖춰 판소리를 제대로 향유할 줄 하는 사람을 명창에 버금간다고 해서 귀명창이라 부르지만 실은 명창을 뛰어넘는 역할을 한다. 아무리 훌륭한 소리꾼의 노래라도 이걸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소음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문화는 특출한 소수에 의해 비롯되지만, 이를 즐기는 다수의 소비자에 의해 정착되고 확산된다. 단순한 소비 차원을 넘어 우리 일상에 파고드는 생활화 과정을 통해 문화는 꽃이 핀다. 귀명창의 성원에 힘입어 문화가 파급되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귀명창 경험을 해 볼 기회가 사실상 없다. 모든 문화 행사가 중앙 위주인데다 서울에서 흥행에 성공한 것만이 지방 순회공연을 기획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 단체에서 주관하는 각종 축제도 사실상 먹자판이 대부분이다. 고급문화 체험을 통해 감성 근력을 키울 기회가 거의 없는 셈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그러다 보니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문화의 문외한이 될 수밖에 없다. 문화의 귀(耳)도 운동과 마찬가지로 꾸준한 훈련을 해야 감응력이 향상된다. 문화를 향유하는데도 트레이닝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중앙집권적이기 때문에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기회 자체가 박탈된 환경에 놓여 있다. 그러나 지방문화는 중앙에 종속된 영원한 변방문화가 아니다. 또 하나의 다른 중앙문화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지역의 정체성을 근간으로 또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방문화를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지방자치 단체도 긴 안목으로 개성 있는 고급 지방문화를 창달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지역마다 다양한 문화 자산이 축적돼 있어야 국가 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다. 지방문화의 제자리 찾기는 자치단체의 의지와 중앙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처럼 지역마다 유사한 기념물을 짓거나, 축제 행사를 남발하여 재정만 축내면 희망이 없다. 이런 행태가 고착되면 지방의 문화 귀명창이 줄어들어 지방문화 융성은 요원하게 된다. 이것을 보정하는 일환으로 지역 문화원을 활성화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문화원은 지역문화의 진흥을 위해 설립된 법인으로 지역문화 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예산이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지역 문화원들이 향토사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향토사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것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학 연구의 현장성 제고에 기여를 하고 있지만 이 역할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양질의 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지역 문화원이 그 소비층을 두텁게 하는 산파역을 담당해야 한다. 지역 특성에 맞는 사업을 펼치거나 문화 귀명창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계발 보급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 거주하는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상품 및 기술의 작명은 물론 특허에 필요한 스토리텔링 등도 지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미래는 문화가 여지(輿地)며 산업생산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기술과 상품도 이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해야 경쟁력을 갖는 시대가 될 것이기에 사회복지에 버금가는 문화보급 사업을 지역 문화원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벌여나가야 한다. 그래야 백범 김구선생이 희망한 문화강대국의 꿈도 이루어질 수 있다. 허구한 날 시위 문화만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 우리도 언젠가는 피아노 잘 치는 대통령, 시낭송을 즐기는 총리가 통치하는 그런 나라가 도래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줄 때가 되었다./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

2016-02-25 정영길

[춘추칼럼] 직관을 표현하는 언어

과학자 1천여명 시공간 휘게하는 것 탐지해 내19세기 전자기파 존재 확인되자 무선통신 발명휴대폰으로 이어진 전례 또 기대할 수 있으려나아인슈타인은 시공간(space-time)을 다루는 특수상대성이론과 중력(gravitation)을 다루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제안했다. 이 둘은 많이 다른데 최근 중력파와 함께 언론에 자주 등장한 상대성이론은 후자다. 사랑하는 이성과 함께 있는 30분은 싫은 사람과의 5분보다 짧게 느껴진다는 어느 영화 장면은 특수상대성이론을 설명할 때 쓰인다. 달리는 기차에서 따라오는 자동차가 느리게 보이는 상대성이야 예전에 몰랐을 리 없다. 이런 고전적인 상대성에다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빨리 움직일 때는 상대성의 정도가 적어진다는 이상한 생각을 추가한 게 특수상대성이론이다. 빛의 속도로 가는 우주선에서 역시 빛의 속도로 반대방향으로 날아가는 우주선을 보면, 고전적인 상대성으로는 빛의 속도의 두 배로 보여야 한다. 특수상대성이론은 그게 아니고 여전히 빛의 속도로 보인다고 한다. 그러니까 빛의 속도의 몇 배로 나는 우주선 운운하는 소설은 이제 잊자. 그런 건 없다. 특수상대성이론의 결과물인 E=mc2에서 c가 빛의 속도다. 이건 길거리 포스터나 티셔츠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질량 m이 에너지 E로 바뀔 수 있다는 이 유명한 방정식에서 원자폭탄이 나왔고 인류 문명은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질량 50의 가벼운 두 원자핵을 엄청난 고온에 두면 합쳐져서 질량 98의 무거운 원자핵이 되는데, 이때 사라진 질량 2가 무시무시한 에너지로 바뀌어 나온다는 게 핵융합이다. 이걸 사용한 수소폭탄은 나왔지만, 고온의 플라즈마 상태를 유지하며 담아둘 용기가 없어서 아직 핵융합 발전은 상용화되지 못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수학적으로는 그다지 어려울 게 없어서 고등학교를 마치면 배울 수 있다. 개인적으론 대학교 1학년 때 일반물리 담당 교수님이 교과서에 없는 특수상대성 이론을 용감하게 강의하시는 바람에 엉겁결에 배웠다. 여기에서 나오는 로렌츠 변환이라는 수식을 보니 어떤 물체도 빛의 속도보다 빠를 수 없다는 게 자명했다. 아니라면 허수의 질량이 출현해 버리니까.하지만 일반상대성이론은 다르다. 이건 기하학인 데다, 유클리드를 훌쩍 넘어선다. 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특정한 좌표계에 표현하려면 텐서 대수를 써야 한다. 이건 선형대수의 확장인 데다 여러 개의 첨자(index)를 쫓아가야 해서 심오함보다는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다. 아인슈타인은 질량 있는 물체가 주변의 시공간을 휘게 한다고 믿었지만 자신의 직관을 표현할 도구를 찾지 못해 8년을 고심했다. 그의 직관을 표현하는 완벽한 언어인 기하학이론을 19세기에 이미 게오르그 리만이라는 수학자가 구축해 두었다는 것은 그에게 최대의 행운이었다. 그는 고심의 시기인 1915년 초에 괴팅겐 대학에서 강연을 했는데, 강연을 들은 수학자인 다비드 힐버트는 즉시 그 기하학적 의미를 깨닫고 독자적으로 이론을 완성했다. 아인슈타인도 수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리만 기하학을 접하고서 이론을 완성했는데, 결국 두 사람은 그해 말 거의 동시에 중력장방정식에 대한 논문을 출간했다. 질량 있는 물체는 그 주위의 시공간을 휘게 한다. 그래서 질량이 없는 빛조차도 무거운 물체 주위를 지나면 휘게 되는데, 뉴턴이 들으면 기겁할 소리다. 질량이 있는 두 물체가 서로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법칙을 벗어나니까. 결국 엄청난 질량의 블랙홀 근처에서 빛이 휘는 것이 관측되고서야 논란이 종식됐다.일반상대성이론의 또 다른 예상이 중력파다. 무게 50짜리 블랙홀 두 개가 서로를 끌어당기다가 합쳐져서 무게 98인 하나의 블랙홀이 되고, 이때 사라진 무게 2가 에너지가 되어 중력파의 형태로 퍼져 나가며 시공간을 휘게 한다. 핵융합 과정에서 질량 일부가 에너지로 방출되는 것과 흡사하다. 용감한 과학자 1천여 명은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을 통해 이러한 시공간의 휨을 탐지해냈다. 국내 과학자들도 관측 데이터에서 잡음을 제거하는 작업 등을 통해 기여했다. 19세기에 전자기파의 존재가 확인되자 무선통신이 발명되어 휴대폰으로 이어진 전례를 여기서도 기대할 수 있으려나./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02-18 박형주

[춘추칼럼] 학교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게 있나요

"자유학기제 선행학습 기회" 선전해대는 학원사회 계급화·대학 서열화 현상 이젠 바로 잡아야아이들 삶 성적에 빼앗겨 소중한 것 너무 많이 잃어"모든 학교의 등록금이 무료예요. 대학도 마찬가지죠. 대학에 다니는 동안 정부에서 생활비를 대주니까 아르바이트 부담도 없고요. 독립해서 사는 대학생의 경우 매달 6천크로네(약 120만 원)씩 나오거든요. 부모님과 함께 살아도 이 금액의 절반 정도 나오고요."이런 나라가 있느냐고? 있다. 바로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이다. 여기 드는 비용은 모두 기성세대가 내는 세금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월급의 절반이 넘는 세금을 내기 때문에 대학생 복지 등 여러 복지가 가능하다. 이렇게 세금을 많이 떼여도 불만이 없는지 성인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나도 대학 다닐 때 그런 혜택을 누렸는데 당연한 것 아닌가"라는 답변을 한다고 한다. '덴마크에서 길을 찾다' 라는 부제가 달린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졸업 후 직장을 찾을 때까지 2년간은 정부에서 실업보조금을 주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자리를 충분히 고민해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덴마크 학생들은 이처럼 대학 졸업 후는 물론, 학교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진로에 대해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차례 갖는다. 덴마크의 초등학교는 우리나라의 중학교까지 포함한 9학년까지인데, 고등학교는 10학년이 아니라 11학년부터 시작한다. 10학년은 에프터스콜레(영어로 하면 에프터스쿨)인데 1년간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훈련받을 수 있다. 진로 모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기숙학교인 '성인용 자유학교'에서 또다시 자신의 미래에 대해 탐색할 기회를 갖는다. 4년제 대학 진학률은 고등학교 졸업생의 40% 정도이며 40% 정도는 2년제 전문교육기관을 선택한다. 덴마크의 대학은 서열화가 없으며, 대학은 필수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에서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이 모든 게 가능한 이유는 덴마크의 교육제도와 사회보장제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국민의 평등 의식과 연대 의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열쇠 수리공이건 의사건 굴뚝 청소부건 교수건 서로에 대한 차별 의식이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는, 그래서 자신이 무슨 직업을 갖건 모두가 자존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서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중학교 1학년의 1학기, 2학기, 그리고 2학년의 1학기 중, 한 학기를 자유학기제로 시행한다. 한 학기 동안은 중간과 기말시험 없이 토론과 실습 등 참여 위주의 수업을 통해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는 학습 제도이다. 오전에는 국어, 영어, 수학 등 기본과목을 배우고 지필고사 없이 토론과 실습 등의 형성 평가를 한다. 오후에는 진로 체험이나 동아리 활동 등 학생들이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의 적성과 미래에 대한 탐색과 설계를 할 수 있도록 도입된 제도이다. 참 좋은 제도이자 꼭 필요한 교육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이 당장 우려하는 것은 대학입시이다. 성적이 떨어질까 봐 걱정인 것이다. 자유학기제 기간에 선행학습을 많이 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학원가가 호황을 누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과연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학부모들만 탓할 수 있을까. 출신 대학의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니고 직업의 차별화는 여전하다. 성적 최우선의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게 하려고, 자식의 성적에 물불 가리지 않는 학부모들의 심정은 지극히 당연한 게 아닐까. 자유학기제 시행을 앞두고 실시한 어느 설명회에서 한 학부모는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게 있나요?"라며 울분에 찬 항변을 했다고 한다. 사회의 계급화, 대학의 서열화, 연대 의식의 부재, 우리 사회를 뿌리부터 갉아 먹고 있는 이런 거대한 현상을 전면적으로 바로잡지 않는 한, 그 누가 이 학부모의 항변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학교 성적은 한 인간의 수많은 자질 중 하나에 불과하다. 성적 하나로 삶이 송두리째 재단 당하는 경쟁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은 지금 소중한 것을 얼마나 많이 잃어가고 있는가./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2016-02-11 강맑실

[춘추칼럼] 사고의 전환이 문제해결 출발점

북핵문제 근본적 해결이 '통일'이라는 인식 버려야개성공단·금강산관광, 北변화 이끈다는 생각 필요압박·제재 실효성 없다면 반드시 부작용 뒤따라북한은 체제와 존엄을 중시하는 나라이다. 주민생활 향상과 경제발전은 체제와 존엄의 하위개념이다. 체제안전이 담보되어야 만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설 수 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것이 보유하는 것보다 체제안전을 담보한다고 확신할 때 핵을 포기할 것이다. 김정은 정권 4년동안 경제발전을 위한 분위기가 호전되어 왔다. 6·28 방침에 의한 가족영농제 중심의 협동농장 개선이 식량증산을 이끌었다. 5·30 조치에 의한 기업의 경영자율권 강화가 연간 1% 내외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전국적으로 장마당을 450여개 정도 허용함으로써 주민생활용품의 수요와 공급을 조절했다. 장마당은 주민들의 불만 목소리를 잠재우고 국가의 재정확충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 경제특구와 관광특구도 더디지만 성과를 내는 가운데 대외투자와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었다. 군부가 군림해 왔던 이권사업 등이 당과 내각으로 이전되었다.김정은 시대 북한 내부의 변화는 경제문제에서 출발했다. 핵무력을 통한 최고의 억지력을 갖춘 후 국방비를 감축하고 유휴자본과 인력을 경제분야에 투자하겠다는 전략을 가졌다. 북한의 시스템상 국방력을 경제부문에 투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군수경제가 민간경제로 전환되는 사이의 안보공백을 핵개발로 메우겠다는 논리이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국제제재 해소 등 대외관계 개선이 필요하다. 핵보유국의 지위는 대외관계 개선의 장애물이다.일부에서는 중국의 강력한 대북압박제재를 촉구한다. 안보문제를 둘러싼 국가이익의 충돌은 흔한 일이다. 북핵문제가 한중의 국가이익을 침해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북핵문제의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한중간의 이견이 크다.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정책이 한미일 동맹을 앞세운 대중포위정책이라고 인식한다. 북한이 붕괴될 경우 난민문제 등 모든 후과를 중국이 짊어져야 할 부담으로 여긴다. 중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는 동참하지만 원조 중단 등의 독자제재에는 반대한다. 북한의 비핵화는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의 최우선 순위임에 틀림없다.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반대하면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은 중국의 역할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협력해 나가야 한다.지난 23년 동안 북핵협상은 치밀한 전략에 의해 추진된 적이 없다. 미국은 북한의 핵확산방지기구(NPT) 탈퇴, 폐연료 재처리시설 재가동, 핵실험 등 위기국면이 발생한 후 사후적 대응조치로써 협상에 임해 왔다. 1994년 북미 고위급협상도 북한이 임의로 핵연료봉을 추출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북핵동결이라는 2·13 합의도 2006년 10월 1차 북핵실험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위기국면에서 북한은 벼랑 끝 전술을 펼쳤고 미국은 급하게 합의를 이루기 위해 북한의 입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1993년 1차 북핵위기가 발생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 왔다. 반면에 한국과 미국은 정권교체와 함께 정책변화를 거듭해 왔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합의 불이행을 비판하지만 북한은 한미의 잦은 정책변화에 불평한다. 한미의 일관된 정책이 북한의 합의이행을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준다.박근혜 정부는 한반도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책무가 있다. 현 단계는 상황악화방지가 급선무이다. 압박이라는 입구전략을 세울 때는 대화라는 출구전략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문제해결전략은 사고의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 북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통일이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남북간의 대화·협력·평화라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이지 북한의 붕괴·흡수라는 결과로서의 통일이 아니다. 북핵문제의 창의적 해결은 북한의 긍정적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이 북한 독재정권에게 도움이 된다는 소극적 사고가 아니라 북한의 변화를 촉진시킨다는 적극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확성기를 틀고 5·24 조치를 강화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징벌적인 의미는 있지만 문제해결을 위한 전략적인 접근은 아니다. 압박과 제재는 실효성이 중요하고 실효성이 없다면 반드시 부작용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북한이 국제규범을 위반했다는 비판도 중요하지만 지난 8년 동안 6자회담의 중단이 북한의 핵 능력을 더욱 고도화시켰다는 6자회담 참여국들의 자기반성도 필요하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02-04 양무진

[춘추칼럼] 지식 재산과 이야기의 힘

금세기들어 가장 큰 규모 삼성과 애플 '특허 전쟁'디자인 등 탄생배경 설명 잘하면 배심원 설득 가능과학기술·지식재산 연계 스토리텔링사업 시급삼성과 애플, 특허 싸움에서 과연 누가 이길까? 두 기업 간의 특허 전쟁이 5년째를 맞고 있다. 이 특허소송에서 지는 쪽은 아마 천문학적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금세기 들어 규모가 가장 큰 특허 전쟁이기 때문이다. 배심원들은 삼성의 유명한 상품들이 애플의 여러 특허를 침해하였다고 매우 불리한 평결을 내린 바 있다. 이 특허 전쟁에서 애플이 삼성을 도살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애널리스트들도 있다. 이런 재판에서는 배심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을 어떻게 설득시키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이런 특허소송이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열릴 수 없을까? 한국인도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날이 오려나.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재판을 국제공용어로 진행하고, 필요한 만큼 권위 있는 외국 전문 법조인을 초빙판사로 모셔오면 된다. 인천 송도 같은 데에 국제특허법원을 만들면 세계 각국의 특허 분쟁을 조정하거나 재판을 전담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지리적 특성과 더불어 종교다원주의 사회라는 장점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권 국가는 물론 유교나 불교 등 다른 종교를 따르는 국가 입장에서는 기독교적 전통이 강한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재판을 받는 것을 망설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종교에 대한 편견이 거의 없다. 원불교와 같은 민족 종교는 물론 기독교 불교 유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가 자유롭게 상생의 꽃을 피우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좋은 자산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특허 분쟁 해결의 중심지로 육성하자는 목표 아래 세계특허(IP) 허브국가 추진위원회가 재작년에 결성되었다. 여야(새누리당 정갑윤 국회부의장,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와 민간인(이광형 KASIST 미래전략대학원장)이 공동대표를 맡고, 국회의원 64명을 포함한 추진위원과 각 분야의 운영위원들이 참여하여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위원회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면 국제 특허소송에서 한국인의 배심원 참여도 가능할 것이다.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에서 보듯 배심원의 역할은 자못 크다. 배심원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소송의 승패를 가늠한다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방법은 무엇일까? 그 동인(動因)은 다름 아닌 이야기의 힘이다. 특허 분쟁의 대상이 되는 상품이나 기술, 디자인 등의 탄생 배경을 배심원에게 그럴듯하게 설명해 주면 좋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잉태되었다는 것을 구체적 사실에 근거하여 입증하면 된다. 그러면 배심원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설득의 곁쇠다. 특정 상품이나 기술이 탄생되는데 이와 같은 시련과 실패가 있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가능한 극적인 구성을 통해 전달하면 주효하다.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하면 그 상품이나 기술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고 특허의 독창성을 담보하는데도 유리하다.지금까지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은 따로국밥이었다. 문학만 하더라도 전통적인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과학기술을 비롯한 다른 영역과 교감하려는 의지가 박약했던 편이다. 그러다 보니 문학을 전공하는 청년의 일자리도 줄어들었다. 이제는 통섭을 통하여 문학도 다양한 분야의 일자리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전통적 글쓰기도 좋지만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외연을 확대해 나가야 할 때다. 과학기술이나 지식재산과 연계한 스토리텔링도 그 중 하나다. 마침 올해 고용노동부에서 상품 및 공간 스토리텔러를 양성하여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무형의 지식재산과 문화예술의 융합을 전략적으로 추구해 나가면 창의적 두뇌자원이 선순환 하여 한국이 지식재산 강국으로 발돋움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

2016-01-28 정영길

[춘추칼럼] 사실과 소문

급속히 퍼지는 SNS로 '근거없는 음모론' 더 기승방대한 데이터·통계홍수로 서로 다른 해석 '충돌'이미 와버린 '빅데이터 시대' 21세기 경쟁력 돼요새 농담 중에 '죄짓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라는 게 있는데, '감옥에 가면 인터넷을 못쓰게 하니까'가 답이라고 한다. 우리 삶에서 인터넷을 쓸 수 없다는 것이 공포감을 줄 정도로 필수적인 게 돼 버린 것이다. 이렇게 삶에서 없으면 못사는 게 돼버린 인터넷을 사람들은 어떤 용도에 쓸까? 많은 이들이 꼽는 가장 중요한 용도는 단연 SNS, 즉 사회연결망 서비스의 사용이다. 한때 대세이던 트위터는 시들해졌다는 얘기도 들리고, 페이스북은 아직 여전한 인기를 누리지만, 대세는 시각적인 소통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즐기는 인스타그램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일종의 집단적 소통 중독증에 걸린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고립된 주인공 맷 데이먼이 일체의 정보를 접할 방법이 차단된 상태에서 취향에 맞지도 않는 디스코 음악이라도 열심히 듣는 장면은 그래서 수긍이 간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의 금단 현상과 유사한 게 아닐까?자연스레 SNS는 개인적 소통의 채널을 넘어서 여론이 모이고 형성되는 길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사실과 소문이 섞여서 온갖 음모론도 돌아다닌다. 요즘 나도는 정체모를 글 중에 일부는 상식과 달라서 우리를 혼란에 빠트린다. 제목부터 생경하고 강하다. 예를 들면, '녹차를 마시느니 걸레 짠 물을 마셔라', '현미는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다', '배추김치를 먹으면 머리가 나빠진다', '두부 먹으면 몸이 썩어 죽는다', '압력밥솥에 지은 밥은 죽음의 물질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공포심을 타고 빠르게 전파되곤 하는 이런 주장이 내세우는 사례들은 대부분 샘플 크기가 작아서 통계적 처리의 관점으로는 무의미하다. 최근에 다시 회자된 음모론의 백미는 미국의 아폴로 유인 우주선의 달 착륙 장면이 조작된 거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 주장은 꽤 오래 전부터 나온 것인데, 냉전시대 구소련의 스푸트닉 우주선 발사로 자존심에 상처받은 미국 정부가 조작을 감행했다는 의심에서 출발했다. 그 뒤로 과학적으로 보이는 근거를 덧붙여가며 진화했고 여러 버전이 출현했다. 최근 버전은 유명한 영화 감독인 스탠리 쿠브릭이 사망 전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인터뷰 동영상이었다. 조작된 착륙 동영상을 제작한 실행자가 자기였다고 쿠브릭이 고백하는 인터뷰여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쿠브릭의 가족및 지인들의 관찰과 사실 확인에 따르면 비슷한 외모를 가진 배우를 출현시켜 연출한 허위 인터뷰로 보인다고 한다.'좋아요' 기능이나 공유 기능을 통해서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SNS의 특징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근거 없는 음모론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결국 사용자는 광범위한 데이터를 이해하고 사실과 소문을 구별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비판적 시각과 검증의 잣대로 무장해야 하고, 방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논리적 생각의 힘에 기대어 홀로 항해할 수 있어야 한다. 고대 아테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비밀을 수와 기하학에서 찾았다. 수학은 변덕과 궤변에서 자유로운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어서 진리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믿었다. 반면에 현대의 우리는 수(數)에 치여 산다. 아무런 의미 없는 방대한 데이터에 둘러싸여 헤매고, 넘치는 통계의 홍수 속에서 서로 다른 해석들의 충돌을 목도한다. 그러니 제멋대로로 보이는 방대한 데이터에서 질서와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는 관점의 출현은 얼마나 놀라운가. 빅데이터와 수학의 결합은 그래서 경이에 가깝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음모론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지 않도록 보호해줄 뿐더러, 종종 시대의 흐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준다. 플라톤이 이미 간파했던 것처럼 수와 논리는 감성적 사고의 대척점에 있는 게 아니고 그 한계를 보완하고 설득력을 더하는 동반자로 기능한다. 이미 우리 곁에 와버린 빅데이터 시대는 이러한 관점으로 인공지능의 개념조차 바꾸어 버렸고 구글 같은 데이터 회사가 무인자동차의 선두주자가 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방대한 데이터에서 의미를 이끌어 내는 능력은 이제 21세기의 경쟁력이 되었다./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 아주대 석좌교수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 아주대 석좌교수

2016-01-21 박형주

[춘추칼럼] 열세 살 적 꽃할머니를 떠올리며

강제로 끌려가 '고통의 삶' 살아간 위안부 할머니'인권유린' 진정한 사죄없이 더 언급 말라는 일본졸속 합의한 정부… '무효화 외침'에 귀기울여야"꽃할머니, 저번에 말린 꽃은 어떻게 됐어요?""아주 예쁘게 잘됐어. 들에서 국화꽃을 또 한 움큼 꺾어 왔지."꽃할머니는 꽃누르미를 하신다. 일주일에 한 번 원예치료사가 찾아와 할머니를 도와드린다.꽃할머니 얼굴은 두 가지다. 시무룩한 얼굴과 활짝 웃는 얼굴."웃어 보려고 해도 웃을 일이 없어. 뭐 그렇게 크게 웃을 일이 있어? 좀 삐죽 웃으면 되지."이렇게 말씀하시지만, 꽃 이야기를 할 때면 늘 활짝 웃으신다.'꽃할머니'란 그림책의 첫머리이다. 꽃누르미를 잘해서 꽃할머니로 불렸던 이 책의 주인공 심달연 할머니는 암 투병 중의 몸으로 2010년 6월 책 헌정식에 참석한 후, 같은 해 12월 돌아가셨다. 꽃할머니가 열세 살 무렵, 언니와 함께 들에서 나물을 캐고 있는데 갑자기 두 남자가 나타나 발로 차고 머리채를 잡아끌어 강제로 트럭에 태웠다. 그리고 다시 배를 타고 며칠을 갔을까, 낯선 나라에 내렸다. 한쪽으로 강이 흐르고 산비탈에 막사가 있었다. 막사 안에 칸칸이 들어 있던 작은 방 하나에 구겨 넣어진 꽃할머니는 그날부터 방 앞에 줄을 선 일본 군인들을 차례차례 온몸으로 받아내어야 했다. 하루에도 몇 명인지 셀 수 없는 그들. 반항하다가 관리인이 던진 칼에 무릎 안쪽이 찢어지기도 했다. 정신을 잃은 날도 많았다.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할머니를 버려두고 떠났다. 한국의 어느 절에 누구의 손에 의해 맡겨졌는지 할머니는 기억하지 못한다. 우연히 그 절에 불공드리러 온 여동생과 기적처럼 만나 고향으로 돌아온 꽃할머니는 숱한 세월을, 일본 군인들에게 폭행당하는 고문 같은 꿈을 꾸며 고통 속에서 보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담을 쌓은 채. 50년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꽃할머니의 아픔을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마음 문을 열면서 꽃누르미를 시작했다. 꽃누르미 작품으로 상을 받을 정도로 할머니 솜씨는 뛰어났다. 1940년, 열세 살 나이로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던 심달연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심달연 할머니는 강제로 트럭에 실려 간 이후 다시는 언니를 만나지 못했다. 심달연 할머니의 언니처럼 대부분의 '위안부'는 일본군과 전쟁터를 함께 옮겨 다니던 중 죽거나, 전쟁이 끝난 후 그대로 버려져 일본, 대만, 중국, 동남아시아 등의 낯선 땅에서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되었다. 그 수는 헤아릴 수가 없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시작으로 용감하게 '일본군 위안부' 증언에 나섰던 238분의 할머니 중 이제 46분의 할머니만 생존해 계신다.일본은 이분들이 다 돌아가시면 그들의 추악한 역사를 지울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자국의 역사교과서를 거짓으로 덧칠하고 적반하장의 망언을 서슴지 않으면서 일본이 기다린 건 역사를 지울 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역사를 다시 현재 속으로 불러들여 진행형으로 형상화한 '평화의 소녀상'이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세워지고,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법적 배상, 가해자 처벌 등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여러 나라에서 통과시키자 일본이 불편해한 건 무엇이었던가. 오로지 자국의 국제적 위신에만 급급해하지 않았던가. 중국을 견제한 한·미·일 공조체제 강화를 위한 미국의 입김에 의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합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 이것으로 일본은 '위안부'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표명했으니 앞으로 더 이상 한국은 '위안부'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행동도, 조처도 취하지 말라는 명령과 다를 게 무언가. 식민지 지배와 대규모의 전쟁 범죄에 대해 지금까지 국제적 사과 한마디 없는 일본, 전쟁 범죄 중에서도 가장 잔혹한 인권 유린이 '위안부' 아니던가.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빠진 협상, 일본의 국가적 책임이나 진정한 사죄가 빠진 허울뿐인 형식적 합의, 가해국이 오히려 피해국을 향해 '위안부' 문제는 앞으로 더 이상 언급하지 말라고 협박하는 듯한 명령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리고 있는 합의, 이게 도대체 합의인가. 졸속으로 합의를 하게 된 계기와 불온한 저의가 미심쩍기 그지없다. 정부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기록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도 변함없이 추진해야 한다.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합의 무효화를 외치며 연일 집회를 여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들의 분노에 찬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 책 헌정식 때 분홍색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고 마냥 부끄러워하던 꽃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리자니, 그 분의 열세 살 적 해맑았을 미소가 꽃처럼 피어난다./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2016-01-14 강맑실

[춘추칼럼] 북한 핵실험의 치밀한 계획과 즉흥적인 결단

존엄성 무시했다며 모란봉악단 철수 北中관계 악화핵보유국으로 美와 동등지위 논의하겠다는 의도유엔안보리 제재 맞서지만 당대회 축포용 이용할듯북한 국방위원회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3년부터 매년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김 제1위원장은 2016년도 북한이 나아갈 방향으로 '인민생활향상과 경제강국 건설'을 제시했다. 인민생활 문제를 국사 가운데 제일국사라는 표현에 잘 나타난다. 정책의 우선순위는 경제, 정치, 군사, 사회문화 순으로 배열했다. 지난 4년 동안 정치·군사 분야는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다는 판단하에 '문제는 경제'라는 인식이 깔려있는 듯하다.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경제·핵 병진노선에 대한 언급이 없다. 5월초 제7차 당대회까지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전략이 담겨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원론적 수사만 있고 대화제의는 없다. 남측의 통일외교를 흡수통일외교로 비판하고 한미군사훈련을 북침전쟁연습이라고 맹비난 한다. 남북관계 장애물들에 대해 비판은 하고 있지만 전제조건·선결조건을 내세우지 않았다. 민족문제·통일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음을 밝혔다. 미국에 대해서는 대북적대시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핵억제력 강화를 통해 맞대응하겠다는 결의도 없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대화제의도 없다. 올해가 미국의 대선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오바마 행정부와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비핵화든 평화협정이든 미국의 차기 행정부와 논의하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담긴 듯하다.북한은 오는 5월초 제7차 당대회 개최가 예정되어 있다. 제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시대를 선포하고 출범 원년을 빛내기 위한 경제강국건설에 집중할 것으로 보였다. 자강력 제일주의라는 구호하에 시장경제 요소가 가미된 경제개혁조치의 확대가 예상되었다. 북한의 장마당은 전국적으로 450여개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따리 장사에서 점차 조직적인 상점으로 확대되고 있다. 주민들의 욕구를 정책적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당·정·군 고위간부들은 노장청의 조화를 이루겠지만 중간간부들은 빠른 속도의 세대교체가 예상된다. 군대는 당적 지도의 강화와 함께 정치사상의 강군화, 도덕의 강군화, 전법의 강군화, 다병종 강군화 등 4대강군화노선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젊은 지도자·청년조선의 구호하에 체육중시, 인민중시 정책을 통하여 사회주의 문명강국에 속도를 낼 듯하다.그러나 북한은 지난 6일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 5월초 제7차 당대회까지 상황을 관리할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핵실험은 국제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지진파의 강도를 볼 때 중폭핵분열실험에 가까운 듯하다. 준비는 친밀하게 했지만 결단은 즉흥적으로 내린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12월 10일 수소폭탄 폭음 운운하였다. 12일 모란봉 악단이 중국공연을 취소하고 철수하였다. 15일 당중앙위원회에서 핵실험 결정서를 채택하였다. 1월 3일에 핵실험에 대한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최후 명령을 하달한 후 6일에 핵실험이 단행되었다. 이번 핵실험의 직접적인 배경은 북중관계의 악화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체제와 존엄을 무시했다는 판단하에 모란봉 악단 철수와 연이어 핵실험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핵실험의 배경은 중국이지만 목표 겨냥은 미국임이 분명하다. 북한은 정부 성명을 통해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이 지속되는 한 핵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역설적으로 미국과 핵보유국의 동등한 지위에서 핵과 평화협정문제를 논의하겠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도 있는 듯하다.향후 남북관계는 장기 경색이 예상된다. 북한은 핵실험 후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강화, 그리고 장거리 로켓 발사로 맞대응하겠다는 전략을 가진 듯하다.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은 이미 확장을 마무리했다.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맞서지만 내부적으로 당대회의 축포용으로 이용할 듯하다. 중국은 대북제재에 동참하겠지만 북미간 대화의 중재자 역할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전략적 접근이다. 한미동맹, 한중협력, 남북대화의 균형을 통해 더 이상의 상황악화를 방지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전략적 접근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가 담겨 있어야 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01-07 양무진

[춘추칼럼] 따뜻한 공동체를 구현하는 세시풍속에 담긴 지혜

조상·어른께 ‘새해인사’ 감사·공경심 심어주는 ‘설날’햇곡식 음식 나누며 가족·이웃간 우애 넘치는 ‘추석’자연순리 따르며 겸허한 자세로 단합과 화목 다져벌써 2015년 을미년 한 해를 보내고 이제 2016년 병신년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항상 새해에는 처음 시작의 기대와 소망이 많았지만 막상 12월로 접어들면 세월의 빠름에 대한 아쉬움과 한편으로는 그래도 한 해를 잘 마무리하게 되었음에 감사의 마음도 함께 있다. 세시풍속은 명절 또는 그에 버금가는 날이다. 예로부터 명절은 경사스러운 날로써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계절에 맞춰 음식을 장만해 사시사철 변화하는 자연의 섭리를 느끼게 했으며 떡과 술과 음식을 이웃과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화합의 의미를 다지는 날이기도 하다.동짓날이 붉은 팥죽을 먹으면서 천체와 소통하는 날이라면, 정월 초하루 설날은 가족들이 모여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또 성묘를 가거나 어른께 세배를 드리면서 감사와 공경심을 심어주었고, 가족 간의 우애를 다지는 일 년의 시작이다.정월대보름은 계층을 뛰어넘어 모든 마을 사람들이 협력과 소통을 다지는 축제가 펼쳐지는 뜻깊은 명절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심신의 기지개를 켜면서 앞으로 바빠지는 농사철을 대비하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움이 새겨져 있다. 대보름은 특히 달맞이하면서 소원을 빌고, 다리밟기는 다리를 밟으면 1년의 액을 피하고 다리가 튼튼해져서 다릿병을 앓지 않는다는 풍속으로 장안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참여하여 대 장관을 이루었다. 또한 부럼을 깨물면 치아도 튼튼해지고 종기와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하며 불포화성 지방을 섭취하여 영양을 보충하는 의미도 크다.한식은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로 설날, 한식, 단오, 추석의 사대 명절 중 하나다. 긴 겨울 얼었던 땅이 녹아서 묘소가 파손된 곳에 다시 떼를 입히고 조상께 차례도 지내는 날이다. 예부터 한식에 찬밥을 먹는다는 유래는 중국 진나라 때 불에 타 죽은 충신 개자추의 고사에 기인한다. 한편으로는 한 해의 불씨를 새로 지피는 날이다. 밥을 지을 수 없어서 찬밥으로 대신했다는 의미도 있다.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천중일이라 하여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다. 이때는 모내기를 막 끝내고 곧 바빠지는 농사철에 대비하여 한 차례 숨을 고르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기다. 특히 여성들의 명절이라 일컬어지며 머리가 맑아지고 더위를 이겨낼 수 있다 하여 창포물에 머리 감고 산언덕에 올라가 그네도 뛰고 심신의 나래를 펴는 날이다. 쑥과 수리취로 떡을 만들어 수릿날이라고도 불렀다. 새로 수확한 앵두를 천신하고 단오고사를 지내 집안의 평안과 오곡의 풍년,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였다. 단오에는 임금이 신하들에게 부채를 나누어 주기도 하고, 군현 단위의 큰 단오제가 지역마다 행해졌으며 대표적인 것이 강릉단오제이다. 추석은 설날과 함께 우리 민족 최고의 명절이다. 추석은 1년 내 땀을 흘려 수확한 햇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며 일 년의 풍성을 감사하고 송편을 빚어 나누면서 가족과 이웃 간의 화목을 다지는 날이다. 여름내 잡초가 자란 산소를 미리 벌초하고 추석날 성묘 가서 조상과 하늘에 대해 감사하며 내년에도 풍요로움을 기원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듯이 일 년 중 더없이 풍성함의 상징이다. 추석은 정월대보름, 6월 보름 유두, 7월 보름 백중과 함께 달 밝은 보름 명절이다. 추석에는 강강술래, 줄다리기, 지신밟기, 가마싸움 등 각종 놀이가 흥겹게 펼쳐진다.10월은 상달이라 하여 각종 민속신앙의 행사가 집중되어 있다. 특히 각 가정에서는 길일을 잡아 고사를 지낸다. 성주신, 조왕신, 터주신, 삼신, 우물신, 대문신 등 가신에게 붉은팥 시루떡을 쪄서 고사를 지낸다. 10월 상달의 고사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지닌 천신제(薦新祭)이기도 하다. 대체로 장독대에 올라서서 지붕 보이는 집은 모두 고사 떡을 돌린다는 미풍양속이 진행되어 왔는데 일 년 동안 수고로움을 서로 위로하고 정을 나누는 따뜻한 공동체의 실천이기도 하다.이처럼 세시풍속은 전통시대 따뜻한 공동체적 단합과 화목을 다지는 의미가 있다. 또한 자연의 순리에 따르며 겸허한 마음자세를 갖추는 근신과 정성이 담겨 있다. 즉 자연과 인간 조화의 지혜를 일깨우는 날인 것이다./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5-12-31 이배용

[춘추칼럼] 안철수 탈당과 반복적인 야당 분열의 원인

야권 지지층 다양하지만 개혁방향성 상당한 이견대선·총선 ‘단순다수제 중심’ 소수정당 매우 불리現선거제도 변화없다면 野 통합·연대 가능성 커안철수 의원이 드디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내년 초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정치권과 일반 국민 모두가 이 사건이 내년 20대 총선, 나아가 한국 정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있다. 실제로 안철수 신당이 어느 정도의 세력을 키울 수 있을지, 이러한 야당 분열이 20대 총선에서 야권에 유리하게 혹은 불리하게 작용할지, 그리고 나아가 이것이 2017년 대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현재로서 판단하기 어렵다. 너무도 많은 변수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의견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단지 개인적 의견일 뿐 객관적인 자료와 분석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현재로서 가능한 것은 이러한 야당 분열 현상이 반복되는 이유를 분석해 보고 그 정치적 의미를 논의하는 것이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현 여당은 상대적으로 커다란 변동 없이 안정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현 야당은 지속적으로 분열과 통합을 반복해 왔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이러한 분열의 원인을 정치인들의 성향 차이, 정당의 내부 구조, 혹은 야당이 직면한 어려움 등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주요 원인이라면 왜 현 여당은 분열하지 않는 지 설명하기 쉽지 않다. 현재의 여당은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을 모태로 하고 있어 야당 못지않게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모여 있으며, 8년에 걸쳐 야당을 지낸 바 있기 때문이다.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인이 아니라 유권자, 즉 정당 지지자들의 이질성에서 찾을 수 있다. 현 여당 지지자들에 비해 현 야당 지지자들은 훨씬 더 다양한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세대 간 차이이다. 일반적으로 젊은 유권자가 야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가장 안정적으로 야당에 표를 던지는 유권자 층은 젊은 유권자가 아니라 50대 이상의 호남 거주 혹은 호남 출신 유권자이다. 그에 비해 젊은 층의 지지 유형은 매우 유동적이다.이는 달리 말하면, 보수보다는 진보 성향이 더욱 이질적임을 의미한다. 물론 보수에도 뉴라이트 등 다양한 세력이 포함되어 있지만, 현상을 지키고자 하는 보수의 다양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 현 상태를 바꾸고 개혁하고자 하는 진보의 경우 개혁의 방향성에 대해서 상당한 이견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경우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간에 커다란 가치관의 차이가 존재하며, 따라서 이들이 생각하는 변화의 내용과 방향 또한 크게 다르다.여권에 비해 야권이 분열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야당 정치인에게 문제가 있어서 가 아니라, 바로 야당 지지층의 다양성에 있다. 그리고 크게 보면 반복적인 야당 분열 현상은 상대적으로 다양한 지지층을 만족시키려는 야당의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그렇게 다양한 지지층을 가지고 있다면, 왜 야당은 분열한 후에 다시 또 통합하는 것일까? 이유는 선거제도에 있다. 현재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모두가 단순다수제 중심인데, 이 제도는 소수정당에게 매우 불리하다. 따라서 선거 승리를 위해서 분열되었던 정당들이 다시 통합 혹은 연대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다시 말하면, 유권자의 다양성과 이질성은 분리와 다당제를 요구하고 있으나, 선거제도가 이를 막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 두 가지 상반된 힘이 작용하면서, 야당의 분열과 통합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사람들은 분열보다는 통합을 좋아한다. 야권 지지자들이 이번 안철수 탈당에 실망하는 이유에는 야당의 분열로 인한 20대 총선 패배 전망도 있지만, 분열 그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 많은 유권자들이 다당제보다 양당제를 선호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강요된 통합, 즉 내용은 분열되었으나 겉모습만 통합한 것보다는 다양한 정치세력이 나누어져 치열하게 경쟁하고 난 이후에 다시 타협과 연대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이번 안철수의 탈당과 신당 창당이 진정한 통합을 위한 발걸음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분열을 위한 분열로 그치고 말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분열된 야당이 다시 통합 혹은 연대할 동인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여당이 이번 사태를 무조건 반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2015-12-24 김 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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