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과거시험 답안지에 담긴 국가경영의 지혜

정치·경제·사회·국방 등 시대정신 총망라임금과 신하·유생 서로 존중·소통 지혜 모아현 시험제도 문제점 전통속에 대안 있을 수도요즈음 부쩍 인적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백만의 매뉴얼도,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사람의 손길과 마음이 닿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유능한 인성이 좋은 인재를 선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선발시험은 채점의 편의를 위해 사지선다나 오지선다형 출제를 하니 능력과 인격과 지혜를 가름하기는 어림도 없다.우리가 지나간 과거는 현재만 못한 것으로 쉽게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고 더구나 기계문명에만 의지하고 물질만능의 풍조, 실용성에만 치우치다 보니 생각하는 교육, 이상과 소신을 물어보는 시험은 뒷전으로 밀리고 암기를 통해 찍어내는 시험에만 익숙해 졌다.고려 광종 때부터 시행되었던(958년) 과거제는 조선시대에 확대되어 우리 실정에 맞게 고치고 다듬어서 최고 권위의 인재 선발시스템으로 정착시켰다. 본질적으로 개인의 능력을 중시했던 과거제는 자연스럽게 신분이동의 통로가 되었다는 데 근대성을 내포하고 있었고, 공부와 교육의 중요성을 더욱 고양시킴으로써 지식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켰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후대 역기능적인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관료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공직자로 갖추어야 할 도덕적 기본 자질은 물론 국가운영의 현안과 고충을 위한 해답과 지혜를 얻으려 했다는 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인재선발 책이었음은 분명하다.과거시험 답안지를 보면 내용도 훌륭하지만 임금 질문의 솔직함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 예로 조선왕조 제11대 임금 중종(1488~1544)은 1515년 과거시험에 이런 문제를 냈다. “내가 부족한 덕으로 다스린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나라의 기강과 법도가 세워지지 않으니 요순시대 정치에 이르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대책을 논하라”는 질문에 조광조는 거침없이 그의 소신을 장문의 답안지에 피력하였다. 첫째, 임금은 하늘의 이치로 사람을 인도하고 감화시켜야 하는데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둘째, 임금이 하늘이라면 신하는 사계절이라 할 수 있는데 신하들을 잘 활용하여 조화의 정치를 하여야 한다. 셋째, 명도(明道)와 근독(謹獨)인데 항상 도를 밝히는 데 전념하고 누가 보나 안보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늘 삼가며 지켜야 할 도리를 강조하였다. 마지막 구절에는 죽음을 무릅쓰고 이 답안을 썼다고 비장의 각오로 표현하였다. 이와 같은 젊은 유생들의 생각은 참신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집념을 가지고 공부했던 지식과 지혜를 동원하여 열정을 다해 답안을 작성하였다. 정몽주의 문무병용의 방안, 정약용의 오객(五客)이라는 제목으로 인재를 재능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는 답안, 박세당의 세금경영 등 재정을 국가시스템으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제언 등 그들이 작성한 답안지, 즉 시권(試券)에는 영혼이 있고 감동이 느껴진다.당시 임금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시제(試題)는 나라의 안정적 발전에 기여할 양질의 인재, 세금제도 등 사회경제적 장치의 효율적 운영, 도적방지 등 사회 안전망의 강화, 신하와 백성들과의 화합, 왕도정치의 실현 등 정치·사회·문화·교육·국방·외교를 총망라하여 시대정신에 따라 다양하였다. 과거시험을 통하여 임금과 신하와 유생들이 서로 존중하면서 소통하는 가운데 국가경영의 지혜를 모으는 것이었다.지금의 대학입시 또는 국가고시에 식견과 경륜을 묻는 항목이 없는 것은 전통의 단절이다. 우리는 늘 온고지신을 외치지만 그것의 구체적 실천과 적용에는 소홀하다. 현행 시험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만 낼 것이 아니라 그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때로 그 대안은 결코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전통 속에 그 해답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고,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시권을 소재로 하는 전시를 통해 양질의 한국적 가치를 발굴하고 또 알려야 하는 이유다./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5-07-16 이배용

기로에 선 대통령과 의회 관계

‘유승민 사퇴’ 대통령제 성패 중대한 영향 미칠것불미스러울지 건전한 관계될지… 향후 마무리 중요민주주의 퇴보처럼 보이겠지만 일시적 현상일뿐지난달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시작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퇴 게임이 2주일 만에 유 원내대표의 사퇴로 일단락됐다. 이번 사태에는 새누리당 내 권력 투쟁, 박근혜-유승민 두 정치인 간의 개인적 인연,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그 핵심에는 대통령-의회 관계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사태가 향후 어떻게 마무리될 지는 지켜봐야 하겠으나,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이번 정권의 향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 대통령-의회 관계의 미래, 그리고 한국 대통령제의 성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다.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에게 보장된 특권 중의 하나로 모든 대통령제 국가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 자체는 별문제가 아니다.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그 내용이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통제를 강화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으로서 이를 달갑지 않게 생각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의사를 국회에 표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중요한 것은 거부권 행사의 방식과 사후 처리에 있다.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의중은 이미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국회의 대행정부 권한 강화라는 취지에 여야가 동의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행정부(대통령) 권력과 비교하면 국회의 권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정치적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권위주의하에서 행정부의 시녀라는 오명을 쓰고 있던 국회가 민주화 이후 점차 국회의 대행정부 독립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제도적 권한을 확대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회의 독립성 확보와 권한 강화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커다란 징표 중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문제는 아직도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감지하면서도 거부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대통령의 의중을 거슬려 국회법 통과를 주도한 유승민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 즉 박 대통령과 주변 참모, 그리고 대통령을 무조건 추종하는 소위 친박 정치인들이다.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유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규정하는 박 대통령의 언술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신뢰를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은 존중해야겠지만, 강력한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입법부-행정부가 융합되어 있는 내각제가 아니라 두 부처가 분리 독립된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은 의회 권력의 중심에 있는 정치인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대통령제의 모델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대통령 권력의 제한성은 상식이다. 미국 대통령 연구의 대가인 뉴스타트(Richard Neustadt)는 대통령의 가장 큰 힘은 설득하는 힘이라고 이미 오래전에 설파한 바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이나 제도(특히 의회)의 협력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인 행동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의미이다. 또한, 대통령제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의회가 끊임없는 소통과 대화를 통해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설득받아야만 함을 의미한다.우리가 권위적인 대통령제가 아니라 민주적인 대통령제를 원한다면, 그리고 박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온화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면, 이번 사태를 현명하게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가 대통령의 한 마디에 여당의 원내대표가 쫓겨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기억될지, 아니면 보다 건전한 대통령-의회 관계를 마련하는 발판이 될지는 향후 마무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처럼 보이는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보다 수평적인 대통령-의회 관계를 통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장기적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2015-07-09 김 욱

남북간에 비공식 특사교환 필요하다

정부, 대북정책 신뢰 명분 있지만 실리추구 약해‘골든 타임’ 걸맞은 전략 부재 안타까울 뿐치열한 외교현장 얽힌 실타래 풀 ‘조정자’ 절실6월부터 8월까지 남북관계의 골든타임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보면 남북관계에서 골든타임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우리의 희망사항은 아닐는지? 또 골든타임을 놓치면 남북관계는 영영 회복이 어려운 건지? 여러 가지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남북관계의 경색은 무엇보다 북한의 요인이 크다. 집권 4년차를 맞은 김정은 정권은 어느정도 통치의 자신감을 가진 듯하다. 핵개발이나 SLBM 실험 등 체제보위 수단을 강화하는 한편, 다양한 현지지도를 통해 선대에 필적하는 지도력을 과시하려 하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정치경험이나 깊은 철학이 부족한 젊은 지도자가 과도한 자신감과 오만함으로 인해 소위 자기방식대로 대외관계를 가져갈 경우 남북관계의 경색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2013년 개성공단 일시중단이나 지난 5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 허가 철회, 광주 U대회 참가철회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변덕과 비일관성은 문제다. 이는 현재 북한 내부의 정책결정과정이 젊은 지도자 한 사람의 판단과 그 지도자의 즉흥성에서 비롯되고 있다.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을 반영하듯이 다시 국방위원회 등 보수군인들이 대남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고 소위 ‘대화파’나 ‘비둘기파’들은 보이지도 않는다.박근혜 정부는 올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제의해 왔으나 북한의 계속적인 대화 거부에 푸념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아쉬운 것은 아직 남북한이 기싸움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골든타임도 때가 있는 법이고, 적절한 카드를 적절한 시기에 사용해야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흔드는 패는 지금이나 작년이나 재작년이나 비슷한 것 같다. 독일의 경우 1970년대 초 대동독정책의 근본 틀을 바꾸었다. 그토록 동독정권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동독체제를 인정하는 대신 동독으로부터 교류와 협력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변화를 이끌어 냈다.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택한 것이다. 이후 한해 300만~400만명의 동서독 주민들이 서로 오고 가면서 친척과 가족들을 상봉하고 분단의 고통이 점차 해소되었다. 이를 위한 통신, 우편, 교통 등 각종 교류협력의 제도적 장치들도 확충되었다. 서독 정부는 대동독 차관을 반대급부와 연계시켜 동독 정부의 양보를 받아냈고, 동서독 관계의 주도권을 확보해 나간 것이다.이런 차원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신뢰라는 좋은 명분은 있지만 실리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너무 미약한 부분이 있다. 정부는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최근 가뭄 지원이나 이희호 여사의 방북 등을 추진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은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근본적인 시도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다고 갑자기 5·24 조치를 해제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핵개발이나 무력도발을 지속하고 있는 북한에게 아무런 확약없이 막무가내식 주장을 수용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골든타임, 골든타임이라고는 하는데 사실 이에 걸맞은 전략이 부재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곧 8·15 광복 70주년을 맞는다. 정부는 올해 초 광복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남북공동행사 등의 사업을 다양하게 구상한 바 있다. 그러나 6·15 남북공동행사가 무산되면서 이마저도 성사되기 어려워 보인다. 남북간에는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늘 대화가 부족하다.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에 신뢰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미중수교나 서독의 통일외교 등 치열한 외교현장에는 헨리 키신저나 한스 디트리히 겐셔와 같은 조정자(coordinator)가 있었다. 남북간에 비공식적으로 특사를 교환하여 얽힌 실타래를 하나둘씩 풀어나가보는 것은 어떨까? 이제 곧 9월 중국의 항일 전승절에 남북 정상의 참여문제로 시끄러울 텐데, 이러한 계기를 활용하기 위해 지금부터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전략을 마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5-07-02 양무진

미당 서정주 시전집

詩 950편 ‘탄생 100주년’ 맞아 사후 첫 간행한국 시문학의 역사이며 우리 생활언어의 변천사우리도 이제는 서로의 흠결 관용으로 껴안아 줘야미당 서정주 시전집(전 5권)이 최근 출간됐다. 1933년부터 2000년까지 70년 가까운 창작기간 동안 발표한 시들 950편을 모아 미당 사후 처음으로 간행하는 정본 시전집이다. 문학계의 경사다. 서정주는 한용운, 김소월, 정지용, 김영랑, 백석 같은 선배 시인들보다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을 했으며, 훨씬 많은 작품을 남겼다. 파란만장한 우여곡절과 번민하는 오욕칠정을 지나 심층 생의 매력을 탐구하는 삶의 지혜와 원숙한 달관을 풍성하게 보여준다. 더구나 올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다. 뜻깊은 시기를 맞아 시의 한 생애와의 온전한 만남은 거듭 경사스러운 일이다. 미당 시전집은 한 개인의 생애사이기도 하지만 우리말과 정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가령 그가 20대 초반에 쓴 ‘화사’라는 시에서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뚱아리냐” 했을 때, 현대 맞춤법 규정과 충돌하는 이상한 소릿값을 감지하게 된다. 주류어가 아닌 변두리어, 교양인의 문어가 아닌 일상 구어로서 자존감을 지켜 나가려는 젊은 시인의 의지는 ‘푸른 하늘을 원통히 물어뜯어야 하는’ 뱀의 저주받은 운명과 동일시되어 일제 강점기의 혹독한 환경에 대응하는 ‘조선어의 투혼’을 증언한다. 암시적 어법 속에 강렬한 저항의 포즈가 있는 것이다.‘큰 이얘기 작은 이얘기들이 오부록이 도란그리며 안끼어 드는 소리.……’(내리는 눈발 속에서는)가 보여주는 관용과 긍정의 세계는 한국전쟁 뒤의 참화와 폐허를 견뎌내는 민초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으며, ‘이때는 꽃은 아직 없었고/꽃노릇을 대신하고 노는 것은/초록빛 도마뱀들이었었네/그리고 타오르는 불빛의/제비들이 날아다녔네.’(멕시코의 영봉 씨트랄테페틀이 어느 날 하신 이야기)에 오면 세계를 굽어보는 여유와 활달한 상상력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그래서 이 시전집은 그 자체로 한국 시문학의 역사요 우리 생활언어의 변천사다.미당의 아름다운 시 세계를 향한 공감과 도취의 반대편에 그의 처신에 대한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의 시인 랭보는 ‘흠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노래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모든 흠결이 덮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당 문학을 다 읽기 전에 그의 흠결부터 말하는 성급함에서 잠시 비켜서는 일은 권면할 만하다. 우리 문학사는 ‘시의 생애’라 부를 만한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져본 적이 없지 않던가. 시인은 “세계의 명산 1천628개를 다 포개 놓은 높이보다도 시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는 한정 없기만 하다”고 토로한다. 시가 생의 매력에 대한 심오한 탐구라는 뜻이다. 돌아보면 우리들 삶은 어제 오늘 다를 바 없다. 뜨거운 난로 위의 물방울처럼 이리저리 몰리며 뛰어다닌다. 급하고 강퍅하고 메마르고 팍팍하다. 배려와 관용과 인내심도 부족하다. 자기 잘못보다는 남의 탓을 하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을 드러내어 헐뜯는다. 좋은 것을 좋다 말하려 해도 주변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 우리는 어느새 진중하고 심오한 생의 심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가 서로의 흠결을 보면서 위로와 관용으로 껴안아 주는 일은 미룰 일이 아니다.원로 언론인 김성우는 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는 어느 색도 물들일 수 있고 어느 색도 지울 수 있는 백색의 염료다. 그리고 아름다운 시가 녹이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분노도 어떤 원한도 시는 용액처럼 녹인다.” 시에는 정서순화의 기능은 물론 상처치유의 기능도 있다. 미당 서정주 시전집이 보여주는 ‘시의 생애’가 바로 그렇다./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2015-06-25 윤재웅

우리에게는 독립기념일이 없다

일제 왕비시해에 백성분노 응집된 이름 ‘대한민국’백범선생의 첫째·둘째·셋째도 소원이었던 ‘독립’명색이 독립국인데 독립은 아직도 어려운 숙제우리에게 독립은 익숙한 말이다. 독립협회도 독립문도 독립신문도 독립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기원하는 의미의 독립이었거나 그 뒤에 생긴 독립군은 마적패로 몰리면서 일제의 토벌 대상이 되었던 군대였다. 대한제국은 백성들의 헌금으로 독립문을 세우고 우리는 그걸 국보로 삼고 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의 개선문적 성격이 짙은 그 독립문은 대한제국과 함께 일제의 감시와 묵인 하에 벌인 조선왕조의 마지막 불꽃놀이였다. 그것들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비를 끔찍하게 시해했던 일제가 들끓는 국제적 여론에 몰리어 시혜적으로 베푼 잔치였던 셈이다. 사무라이들을 동원하여 조선의 왕비를 시해한 사건은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일제가 저지른 만행들 중 으뜸가는 원죄다. 일제는 그 흔적을 지우려고 왕비의 주검을 현장에서 화장해버렸고, 조선왕조는 2년이 넘도록 그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범인을 처벌한 뒤에 장례를 치러야 하는 왕가의 규율 때문이었다. 왕비를 시해한 사무라이들에게는 손도 못 대고 왕비의 주검을 화장할 때 장작더미를 옮겼던 궁인들 세 명을 범인이랍시고 처형했지만 그런 꼼수는 이미 장례의 명분으로는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왕비시해 장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는 에조(英臟)보고서에는 옷을 벗긴 나신(裸身)의 왕비를 사무라이들이 능욕한 뒤 칼로 찔러 죽이고 화장했다고 적혀 있다. 대한제국은 그렇게 시해당한 왕비를 황후로 승격시켜 장례의 명분으로 삼는다. 능욕당하고 화장당한 왕비는 시신도 없는 황후가 되어 그렇게 장례를 치렀다. 당시의 자객 가쯔이까는 왕비에게 휘둘렀던 칼을 쿠시다 신사에 자랑스럽게 기증했다. 독립을 잃은 식민지의 참극이 어찌 이뿐이었겠는가. 왕비가 시해당한 뒤 대한제국의 친일내각 총리 김홍집은 광화문 네거리에서 격분한 군중에게 맞아 죽었다. 안중근 장군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도 왕비시해사건이 부른 피의 복수였고 황해도 해주의 평범했던 청년 김창수(김구)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직접적인 이유도 일제의 왕비시해 만행 때문이었다. 백범 선생은 일본군인을 맨주먹으로 타살(打殺)하고 사형을 언도 받고 구사일생으로 탈옥하여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해서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정한다.일제의 왕비시해 만행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응집된 이름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백범 선생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독립이 소원이라고 그의 일지에 썼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날, 연합군의 승전기념일, 우리가 광복절이라고도 하는 그 날이 민족의 광복이나 해방이나 독립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흉탄에 쓰러지기 훨씬 전부터 백범 선생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미국은 8월 10일, 그러니까 해방도 되기 전에 미리 38선을 그어 조선의 임시적 분할점령을 소련에 제안하고 소련은 이를 즉시 수락한다. 국토분단과 한국전쟁의 단초를 제공한 그 삼팔선은 그러나 임시적 분할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차세계대전 이후의 냉전구도에 대비한 미국의 면밀한 계획의 결과물이었다.한국전쟁 후 삼팔선 대신 휴전선이 생기고 60년 넘도록 우리에게는 아직도 독립기념일이 없다는 것을, 독립은커녕 해방이 되기도 전에 한반도는 미리 분할점령부터 당했다는 것을, 명색은 독립국이면서도 독립이라는 흔한 말이 왜 이토록 어려운 숙제인가를 우리는 아직도 침통하게 되새기고 있다. 핵무기에 버금가는 탄저균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 땅에서 여러 해 동안 실험해왔던 미국이 요즘 수시로 군불 지피는 걸 보면 우리나라는 또 천문학적 비용를 감당하면서 아마도 자청하여 사드를 설치할 것만 같다. /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2015-06-18 정 양

진화 중인 중앙-지방 관계

단체장·교육감, 점점 힘 강해지면서 중앙과 갈등주도적 역할수행, 진화해 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서로 혁신과정 적절하게 수용해 협력 이끌어야이번 메르스(MERS) 전염병 사태는 한국 사회의 여러 부정적 측면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정치적으로 두드러진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력 부재이다. 지난 6월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메르스 관련 긴급기자회견 이후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잘한 일이라고 하고, 다른 편에서는 중앙정부를 무시한 월권행위라며 비판하고 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은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사실 중앙정부, 지방정부, 그리고 시도 교육감 사이에서의 갈등 혹은 협력부재 현상은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정치적 현상이다. 작년 말 교육부와 서울시 교육감 사이에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를 두고 벌어진 힘겨루기, 올해 발생한 누리과정 무상보육 예산편성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자체, 시도 교육감 간의 갈등, 그리고 무상급식을 둘러싼 경남도지사, 경남교육감, 경남 도내 시장·군수들 간의 갈등 등은 좋은 사례들이다. 시도 교육감도 국민의 투표에 선출된 정치적인 자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모든 사례들은 상이한 수준의 정치권력 간 갈등 내지 협력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다.어떻게 보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혹은 상이한 수준의 정치권력 사이)에서의 갈등은 당연한 일이며, 실제로 지방분권화가 일정 수준 이뤄진 국가에서는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수평적으로 나눠진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이 서로 갈등하듯이, 수직적으로 나눠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권력 또한 갈등하게 되어 있다. 권력은 나눠지면 서로 갈등하고 투쟁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아무리 법으로 두 정부의 영역과 역할을 구분하려고 해도 실제 정치과정과 정책과정에서 정부 간 영역 다툼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한국은 지방선거가 부활하고 진정한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20여 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지방분권화는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오랜 중앙집권화의 전통과 미약한 지방분권화로 인해 지방정부가 상대적으로 열세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단체장과 교육감들이 독립적인 정치적 기반을 가지게 되면서 점차 자기 목소리를 낼 필요성과 자원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중앙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던 환경에서 점차 지방의 힘이 강화되면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두 가지 대조적인 해외 사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시사점을 준다.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는 공화국 출발 당시 주정부의 힘이 연방정부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연방 정부의 힘이 강화된 사례이다. 반면 대표적인 단방제 국가인 영국은 강력한 중앙정부를 가지고 출발했으나, 지방자치가 발전해 가면서 지방정부의 힘이 강화된 사례이다.이 두 가지 사례에서 찾을 수 있는 시사점의 하나는 중앙-지방 간 관계가 늘 균형을 찾아 진화하고 있으며, 그 균형점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또 한 가지 시사점은 이러한 진화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권력을 가진 쪽이 자발적으로 권력을 양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권력을 빼앗는 과정에는 많은 갈등과 어려움, 심지어 내전까지 있었으며, 미국정치의 역사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관계의 진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영국에서 지방정부의 권력강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지방정부와 수장의 끊임없는 혁신과 주도권 행사 노력이었다.한국은 현재 지방 열세상황에서 중앙에 대한 지방권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것은 시대적 흐름이며, 지방선거가 계속되는 한 멈출 수 없는 추세이다. 따라서 각종 자치단체와 그 수장에 의한 혁신과 주도적 역할 수행은, 그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서, 이러한 진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러한 중앙-지방 간 관계의 변화와 진화과정을 적절하게 수용함과 동시에, 양자 간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2015-06-11 김 욱

우리나라는 사춘기를 벗어났을까?

외형보다 내실 추구 ‘거화취실’… 선진국 향한 조건포장된 공약에 환경·교육정책 오락가락해선 안돼사회 요구 인재상도 점차 능력·인성 위주로 변화최근 읽은 책 속에서 저자는 중국을 사춘기 소녀처럼 감정이 아주 예민하고 불안정하면서,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사춘기의 나라’라고 표현했다. 한참 사춘기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학생 아들의 모습을 함께 상상하면서 ‘우리나라는 과연 사춘기를 벗어났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본다. 사춘기 아이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급격히 성장하는 과정이라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이고, 자기중심적이면서 겉으로 보이는 외형적 모습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대부분 아이들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넘기고 올바른 자아와 가치관을 가진 참된 성인으로서 성장해 간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 참된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에 비춰 아직 인간의 됨됨이와 내면의 충실함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을 더 중요시하고, 자기중심적 사고에 사로잡혀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사춘기 성인’이 적지 않은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스스로 답을 적어본다.우리나라가 사춘기를 벗어나 참된 성인, 즉 선진국으로 성장해 가는데 ‘거화취실(去華就實)’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국내 모기업의 경영철학으로도 유명한 이 사자성어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을 중요시하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내실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변화와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오랜 시간을 걸쳐 완성돼 온 선진국의 다양한 정책과 제도를 화려하고 거창한 단어로 포장해 여기저기서 마구 쏟아내고 있다. 물론 성공적인 변화와 개혁은 새로운 정책과 제도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기존에 시행하고 있는 정책과 제도에 대한 충분한 평가와 환류, 내실화를 위한 투자와 노력 없이 무조건 새로운 정책과 제도, 조직이나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에는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도자의 강력한 추진력에 의존해서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가시적이고 하드웨어적 성과만을 생각하고, 정책이나 계획수립 단계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최적의 대안을 이끌어내는 힘든 과정을 소홀히 한다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빠져있는 사춘기 아이들과 다름없을 것이다.내실화를 위한 노력은 정치·경제·교육·환경·복지 등 모든 분야에서 필요하다. 특히, 한번 훼손되면 복원하기 힘든 환경 분야와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 올바른 자아와 가치관을 가진 참된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 분야의 내실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화려한 수식어구로 포장된 정치적 공약에 묻혀 중·장기적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추진해야 할 환경과 교육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환경정책이나 제도는 매우 선진화되어 있다. 예를 들면, 최근 환경영향평가제도는 개발사업뿐만 아니라, 정책이나 계획 단계에서부터 환경영향을 고려하기 위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새롭게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선진화된 제도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정밀한 환경정보와 관련 전문가의 부족, 개발사업비에 비해 턱없이 작은 평가비용, 관련 행정기관의 무관심과 형식적인 대처 등은 환경영향평가제도의 내실화를 위해서 우선 해결해야 할 숙제라 하겠다.최근 대학교육의 특성화와 내실화, 유치원 및 초·중등학교의 인성교육 강화를 위한 다양한 교육정책과 사업을 추진하고, 기업 등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상도 화려한 스펙만을 우선시하는 경향에서 내실 있는 직무능력과 인성을 점차 중요하게 고려해 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재미있게 이야기처럼 수학을 풀어가자는 목적으로 도입된 ‘스토리텔링 수학’이 본연의 목적과는 달리 ‘국어야, 수학이야?’ 초등학교 2학년 딸내미의 질문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다시 한 번 ‘거화취실’을 강조하고 싶다./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5-06-04 박경훈

석남꽃 이야기

신라시대 연인의 애절한 사랑에 등장한 꽃젊은 예술가들 전통이야기 콘텐츠화 했으면…정성 다해 투자한다면 놀라운 미래 열릴것바람이다. 바람 분다. 남풍 동풍 훈풍 분다. 그 바람 빗겨 타고 종달새 쨋재거리고, 우쭐우쭐 청보리는 제 허리통 부끄럽다. 우람한 산엣총각, 수줍은 들색시 썸타는 5월. 햇살은 서글서글, 따끈한 듯 선선하다. 태아들은 그래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생명이다. 숨결이다. 가슴 뛰고…, 피는 잘 돌고…, 마음은 박자도 없이 퉁기쳐 달아나는 꿩 새끼들 기분이다. 다들 몰라도 장미는 그걸 아는 눈치다. 산에도 들에도 거리에도 담장 안에서도, 장미는 별까지 자라고 싶다. 꽃피는 건 좋은 일이다. 어머니 배 속 생명의 태동처럼 아름다운 일이다. 보라. 유전자를 복제해서 생명을 영속시키는 게 사랑의 생물학적 정의다. 바람이 선들 불어 아기 발가락 꼬물거리면 지상의 모든 장미의 눈들은 나비처럼 날아올라 서로의 짝을 찾는다. 모든 생명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붓다의 가르침이 교향곡처럼 울려 퍼지는 순간이다. 5월엔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부처님 오신 날이 몰려 있어서 꽃구경을 자주한 편이다. 카네이션이며 장미며 작약꽃 송이송이들이 지하철 승객들처럼 어디에서 실려 왔다 어딘가로 실려 가고, 꽃이 있던 그 자리엔 그 빛깔과 향기의 기억만 점차 희미해져 간다. 그렇게 5월이 가는 동안 간절한 옛날 꽃이야기 하나 떠올라 꽃 사라진 그 자리를 채운다. 정보화 사회 다음 사회는 이야기와 감성이 지배하는 사회라는데 우리의 옛날 꽃 이야기는 여기에 얼마나 어울리는 콘텐츠일지 기대된다. 신라사람 최항은 자(字)를 석남(石南)이라 한다. 애인이 있었으나 부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죽었다. 죽은 지 이레 만에 그녀의 집에 찾아가 ‘이제 부모 반대가 없으니 뜻을 이루자’ 말하고 석남꽃 가지를 나누어 머리에 꽂은 채 항의 집으로 함께 오게 되었다. 항이 자기 집 담을 넘어갔는데 동이 틀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집안사람이 아침에 나와 보니 여인이 기다리고 있는지라 이상히 여겨 물으니 항이 함께 가자 해서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항이 벌써 죽은 지 여드레 되어 오늘 장사지낸다 하니 여인이 믿지 못해 사람들과 함께 관을 열어보게 되었다. 과연 여인의 말대로 항의 머리에 석남꽃이 꽂혀 있었고 벗겨져 있던 신발은 밤새 어디를 돌아다니다 온 듯 신겨져 있었다. 항이 죽은 줄 그때서야 알게 된 여인이 기막혀 죽으려 할 때, 그 소리의 기미에 놀라 다시 살아난 항. 정성 들여 여인을 살려내어서는 한 30년 함께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이 연인들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에 왜 꽃이 등장했을까? 신라 시대의 꽃은 오늘날처럼 감사의 선물로 주고받는 마음의 대체재가 아니었던 듯하다. 그것은 기념품이기보다 오히려 신성한 생명의 상징으로서 겨레의 집단 무의식에 작동하는 ‘부활 프로젝트’의 핵심 소품이었다. 우리 민족서사의 시원인 ‘바리데기 공주’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서천 꽃밭의 그 꽃이 죽은 이를 살리는 매력적인 화소(話素)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것은 석남꽃 이어도 좋고 영산홍이어도 좋으며 도라지꽃이어도 무방하다. 꽃은 식물들의 종족번식 프로그램이요 사랑의 징표인 동시에 수많은 다른 생명체들에 열매를 제공해주는 보살의 화신체 아닌가. 꽃의 이런 무의식 속에 수억 년을 이어온 생명의 간절한 추구, 사랑의 영속과 같은 형이상학이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건 신라사람 최항 만 이어서는 안 된다.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이런 전통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하여 보편적 감화력을 가지는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일에 도전해 보았으면 싶다. 이야기에 정성을 투자하는 이에게 놀라운 미래가 열릴 것이다./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2015-05-28 윤재웅

부르다가 죽을 이름이여

4·3, 4·16, 4·19… 그 많은 죽음 두고 세월은 갔다정작 용서받아야할 몸통은 끝내 나타나지 않아하늘의 말로 우짖는 새소리, 곳곳에 사무칠 것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처박혔어도 세월은 가고 4월이 가고 또 5월이 간다. 4·3이나 4·16이나 4·19나 5·18의 학살과 참살, 무고하게 짓밟힌 그 떼죽음들은 이 나라가 과연 민주공화국인가를 거듭 의심하게 한다. 방방곡곡에 암매장된 한국 현대사는 과연 언제까지 암매장된 채로 세월호와 함께 처박혀 있을 것인가.진실을 인양하자고들 하는데 배가 인양된다고 한들 과연 그 참살의 진상이 인양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진상조사위원회는 진상은폐위원회가 되고 있지 않나 하는 혐의가 지워지지 않는다. ‘세월호의 실소유주가 국정원이 아니라면 나를 고소하라’는 성남시장은 아직도 고소당하지 않았다.용서해 주고 싶어도 용서받을 몸통은 끝내 나타나지 않은 채 세월이 간다. 정권의 시녀였던 언론사 건물이 5·18 때 광주에서 불타기도 했지만 번식력이 왕성한 그 시녀들을 믿고 이 나라는 자식의 영정을 품에 안은 유족들에게 마구 최루액을 쏜다. 눈물 마를 날 없이 사는 유족들에게 얼마나 더 눈물을 쏟으라고 이 나라는 하필이면 최루액 섞은 물대포를 그토록 쏘아댄단 말인가. 짜고 매운 눈물에 범벅된 채 쓰러진 유족들을 질질질 유치장으로 끌고 가는 나라, 이게 나라냐고 사람들은 목이 아프도록 되묻는다.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이 나라가 과연 민주공화국인가를 의심하게 하는 떼죽음의 현장, 팽목항이나 거창이나 무등산이나 한라산 기슭에 소월의 시구를 새겨 초혼비라도 세운다면 떼죽음 당한 원혼들과 그 유족들에게는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될 것인가.세월호에 갇혀 생목숨을 잃은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가 며칠 전 집안에서 유서도 없이 자살했다. 그 아버지는 유서 대신 아들의 이름만 부르다가 부르다가 죽었으리라. 먼저 간 아들의 혼령은 어떡하라고 하필이면 어버이날에 자살했는지 그 소식을 듣는 사람들 억장이 막혔다. 우리 언론들은 누구한테 배운 솜씨인지 유체이탈 화법으로 그 침통한 사건을 깃털처럼 가볍게 처리하고 허겁지겁 지나갔다.세월호 참살의 진상을 유병언으로 도배질하여 세월을 보내던 언론들, 언론이 정권의 시녀임을 만천하에 자처하면서 우민화(愚民化)를 지상의 목표로 삼은 듯한 이 나라 짝퉁언론들은 요즘 정권실세의 부정부패를 정조준하여 목숨과 맞바꾼 성완종 리스트의 몸통을 어떻게든 외면하려고 별별 화제를 재생산하면서 세월을 땜질한다. 그런다고 가려질 몸통이 이미 아닌 데도 말이다.판소리 ‘적벽가’에는 이날치 이동백 등등 여러 명창들의 더늠으로 ‘새타령’이라는 노래가 전해온다. 적벽강에서 떼죽음 당한 원통한 혼령들이 원조(원鳥)라는 새가 되어, 부도덕과 잔인함과 옹졸함 때문에 레임덕을 겪는 암주(暗主) 조조를 따라다니며 그를 원망하고 비난하고 저주하는 것이 적벽가 ‘새타령’이다.새는 하늘과 땅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영물(靈物)이다. 새가 거느리며 몰고 다니는 바람 또한 하늘 아래 원통하게 죽은 혼령들을 불러내는 영매(靈媒)의 숨결이다. 새소리, 그 천의 몸짓과 만의 가락들이 바람을 거느리며 원혼들을 불러내고, 그렇게 불러낸 새소리로 동서양의 무당들은 예부터 하늘의 숨은 뜻을 헤아려 왔다.짝퉁 무당 같은 언론들이 헛소리로 세월을 땜질하며 우민화의 페달을 밟아도 새들은 온갖 하늘의 말로 세상일을 콕콕 찍어가며 지저귀리라. 산산이 부서진 이름들, 부르다가 죽을 이름들, 이 나라 떼죽음의 현장 곳곳에도 하늘의 말로 우짖는 새소리들이 계절도 없이 못 견디게 사무칠 것이다./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2015-05-21 정 양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환상

인사·공천 권한 상당히 제한적으로 변한 현실민주화 이후 독자적 결정할 수 있는것 많지 않아국회와 수평적 관계에서 견제와 협력 이뤄야한국의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알려져 있다. 언론에서 이러한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야당에서 대통령을 견제할 때 가장 즐겨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제가 한국에서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다. 제왕적 대통령은 혹시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가능성 또한 매우 낮다. 대통령제 하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대통령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민주적인 대통령제라면, 대통령은 절대적 힘을 가질 수 없다. 대통령제의 가장 큰 특징은 대통령과 의회 간 구조적 분리이며, 또한 이 분리된 두 기관이 정책결정 권한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늘 국회의 견제를 받게 돼 있으며, 국회의 협력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권력 융합을 특징으로 하는 내각제 하에서 수상이나 총리가 의회의 협력을 어느 정도 보장받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국 대통령제의 성패는 대통령-의회 간 협력의 달성 여부에 달려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과거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시절 대통령이 누리던 제왕적 권한은 민주화가 되면서 이미 사라졌지만, 우리의 기억은 아직도 과거에 머물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없어졌어도 제왕적 ‘대통령’의 가능성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치 제도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매우 제한적임에 틀림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이 여전히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의 주된 근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대통령의 인사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본인이 속한 정당에서 행사하는 공천권이다. 이 두 권한을 가지고 대통령은 의원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현재의 정치 현실에서 이 두 권한 또한 상당히 제한적으로 변했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여전히 중요한 당근임에 틀림 없지만, 최근의 총리와 장관 임명 동의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고유권한 또한 상당부분 국회 그리고 여론의 견제를 받고 있다. 한편 대통령의 의원 공천권은 실로 엄청난 권력이며, 비민주적 정당 구조로 되어 있는 한국의 특수 상황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상적인 권력 또한 점차 줄고 있다. 3김(金)이 물러난 이후 정당 구조가 과거에 비해 점점 분권화되어 가고 있으며, 단임제 하에서 레임덕 현상의 조기화로 인해 대통령이 공천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6년 총선 때 임기를 1년 반 남겨 둔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공천을 좌지우지할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한국의 대통령(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정치현실과 기대와의 커다란 격차에 있다. 많은 국민·언론, 그리고 심지어 정치엘리트 조차도 대통령이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으며, 따라서 대통령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현실 하에서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민주화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이 시간이 갈수록 지지율의 감소를 경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향후 한국 대통령제의 올바른 개혁 방향은 대통령의 권력 약화가 아니다. 이미 대통령의 힘은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제한적이며, 국회의 힘은 상대적으로 커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통령과 국회 양자 간에 견제와 함께 동시에 협력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일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원집정부제의 도입이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적절치 않다. 사실 이 제도의 취지는 대통령 힘의 약화가 아니라 대통령과 의회 간 연결고리의 마련에 있기 때문이다.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한다면, 중임제의 도입을 통한 레임덕 현상의 완화도 필요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당정치의 발전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민주적으로 활발하게 작동하는 정당을 연결고리로 대통령과 국회가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에서 견제와 협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대통령을 위해서 당장에 시급한 것은 대통령 자신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환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2015-05-14 김 욱

귀농·귀촌 활성화와 살기 좋은 농촌 만들기

정부 ‘살고 싶은 농촌’으로 변화되게 관심 필요귀농인 교육프로그램·지원 전문인력 양성 시급지속가능한 ‘농촌형 비즈니스’ 시스템 갖춰야요즘 귀농·귀촌은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한 40~5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마치 유행어처럼 흔히 듣는 얘기가 되고 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도시의 높은 집값과 비싼 생활비로 힘들어진 가정형편을 해결하거나, 도시에서 벗어나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서가 대부분일 것이다. 최근에는 점점 어려워지는 취업난 속에서 귀농을 선택하는 40대 이하의 젊은 층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학기 한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고 외삼촌이 계시는 시골로 가서 농업으로 성공하겠다는 당찬 각오를 남기면서 자퇴신청을 하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지역으로 귀농·귀촌하는 인구가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지난 3월 19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귀농·귀촌인 통계’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농촌으로 이주해 농사를 짓는 귀농가구는 2013년 대비 2% 증가한 1만1천144가구로 40~50대의 1~2인 전입가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전원생활을 선택한 귀촌가구는 작년 대비 무려 55.5% 증가한 3만3천442가구로 나타났다. 귀촌은 주로 수도권에 인접해 생활여건이 좋거나 자연경관이 좋은 농촌지역에 집중되었고, 연령대와 전입가구원 수는 귀농가구와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우리나라 농촌지역이 저출산·고령화 단계를 넘어 무(無)출산·초고령화의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현재 상황에서 귀농·귀촌가구가 계속 증가한다는 것은 농촌 살리기를 위한 작은 희망의 메시지로 느껴진다.이젠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귀농·귀촌가구의 증가를 쇠퇴하는 농촌에서 살기 좋은 살고 싶은 농촌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지난 1월 20일 제정된 ‘귀농어·귀촌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귀농어업인 및 귀촌인의 안정적인 농어촌 정착을 유도하고 농어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법은 올해 7월 21일부터 시행되고 5년마다 귀농어·귀촌지원 종합계획을 수립해 관련 현황 및 실태 파악, 교육훈련과 전문인력 육성, 홍보 및 정보화 촉진, 재원 조달 등의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게 된다.한편 귀농이나 귀촌을 선택했던 사람들이 농촌생활을 접고 다시 도시로 되돌아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귀농·귀촌을 위해서 필요한 교육프로그램과 이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전문인력이 부족한 것도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것은 귀농·귀촌을 선택하는 도시민뿐만 아니라, 이들을 공동체로 받아들일 농촌 마을 주민들에게도 모두 필요한 것이다. 지난 2001년부터 ‘더디지만 제대로 가는 길’을 걸어온 진안군의 ‘살기 좋은 농촌 마을만들기’ 경험과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다양한 시도들이 귀농·귀촌 활성화와 살기 좋은 농촌마을만들기의 해답을 찾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진안군은 전국 최초로 주민이 주도하는 상향식 마을만들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학습활동과 행정 및 마을만들기 전문가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졌고, 2006년 귀농·귀촌 정책과 결합해 연간 100가구 정도가 진안군으로 이주해 오기도 했다.마지막으로 대규모 개발사업의 유치만이 농촌 주민들에게 큰 소득을 안겨준다는 고정된 관념을 조금씩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도시로부터의 귀농·귀촌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지역마다 차별화되고 특색있는 특산물이나 청정한 농산물, 고유한 전통문화와 풍습, 그리고 자연생태 및 농촌경관·역사자원들을 서로 연계한 지속 가능한 농촌형 비즈니스 모델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데 행정과 풀뿌리 민간조직 및 전문가 그룹의 지원과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5-05-07 박경훈

근로자의 날과 노동의 종말

좁은 취업문 뚫기위해 청춘을 바치는 대학생들21세기 지구촌은 창의력이 통하는 ‘예견된 미래’대학, 노동없는 ‘무서운 지옥’ 대처능력 길러줘야5월 1일은 근로자의 날. 메이데이로 불리는 국제노동절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제정된 이 기념일은 정부나 사용자 측에서 각종 포상과 유급휴무를 후원하게 되어 있어 근로자들에겐 특별한 휴일이다. 그러나 대학에선 메이데이가 실감나지 않는다. 강의는 평소대로 이루어지고 구성원들은 특별한 기념행사 대신 하루쯤 대체 휴일을 선택할 수 있는 정도다. 메이데이는 오히려 미래의 근로자가 될 학생들을 걱정하는 날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은 세계적인 고민거리 아닌가. 이들 대다수가 대졸자들이라는 점에서 오늘의 대학은 점차 고민의 생산기지로 바뀌는 중이다.항간에 떠도는 ‘인구론’은 대학정신이 실제 현실과 부합하지 못하는 시스템적 모순을 보여준다. ‘인문계 대학생의 90%가 논다’는 자조와 푸념은 정부의 고용정책에 대한 항변이라기보다, 일찍이 ‘노동의 종말’을 예고한 제러미 리프킨의 ‘피곤을 모르는 기계들에 의한 인간 노동의 탈취’라는 무서운 지옥의 묵시록을 간과한 자책에 가깝다. 지금도 도서관에서 밤늦도록 취업준비에 열중하고 있는 수많은 대학생들은 ‘근로자의 날’이 점차 폐허화 되어 가는 지구생명 공동체를 탈출해 찾아갈 수 있는 ‘희망 행성’과도 같다. 그들은 취업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열정과 청춘과 건강과 재정을 비효율적으로 투자하는 ‘낭비족’이 되어가는 것도 모르고 돌진한다. 화이트칼라의 일자리가 점차 줄어든다는 걸, 취업을 해도 10년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좀처럼 인정하려 않는다. 문제의 심각성은 대학에서도 이런 ‘과잉 노동력’의 위기를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거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는 속담은 오늘의 청년들에게 소중한 교훈이다. 각국의 창업지원정책은 청년 일자리 창출의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 문명사적 패러다임 시프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일 뿐이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고용구조를 바꾸려면 정권 교체를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에 차선 아니면 차차선이라도 찾아야 한다. 창업이 능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위험한 모험길 치고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권유하는 문법 속에는 ‘성공은 개인의 창의와 열정과 도전정신에 달려 있다’는 ‘국가책임 회피론’이 어른거리는지도 모른다. 21세기 지구촌 시민들은 어차피 이래도 어렵고 저래도 어렵다. 컴퓨터나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상상력, 시와 미술과 음악 등이 결합하는 예술적 역량들이 오히려 ‘인구론’의 위기에 대처하는 역설이 될 수 있다면 누가 유심히 귀 기울여줄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예견된 미래다. 다만 창의성은 현실적 구현 능력이 겸비되어야 꽃을 피울 수 있으므로, 미래의 대학들은 과감한 혁신을 통해 노동이 사라지는 ‘무서운 지옥’의 현실에 대처할 수 있는 종합적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최근, 외국대학을 졸업한 뒤 그곳에서 대학관련 유통시스템으로 창업한 후 우리나라에 지사를 세우고 싶어 방한한 한국 청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아이템을 보니 흥미로웠다. 대학 내 단체 티셔츠나 학과 점퍼 등에 대한 유통시스템을 개발하여 학생들의 상권을 보호하고 대학들이 상표와 상호 등의 지적재산권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 공급이 핵심개념이었다. 마침 여러 대학들이 창업선도대학으로 지정되어 이 같이 참신한 사업 아이템을 지원하도록 하기 때문에 그 제도를 소개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권유했다. 나는 이 도전적인 청년이 성공하길 바란다. 그는 ‘무서운 지옥’에 미리 대처하고 있는 ‘퍼스트 무버’이며, 각 대학과 제휴하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는 창의적 상상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길 속에 대학의 내일을 희망적으로 꿈꿀 수 있는 새로운 사례가 보이기 때문이다.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2015-04-30 윤재웅

선별적 복지보다 선별적 증세를

선별적 증세 우선돼야 보편적 복지·급식 기초 잡혀비리 연루돼 공짜 삼키고도 잡아떼는 사람 많아그 내공들 한결같이 소름 돋을 정도로 진부해월사금·사친회비·육성회비·기성회비 등등은 초·중·고등학교 수업료의 변해 온 이름들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초·중·고등학교에 다녔던 사람들은 월사금이나 사친회비 등을 제때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을 많이 겪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시험시간 중에 서무과 직원이 교실에 들이닥쳐 월사금이나 사친회비 안 낸 학생들을 일일이 호명하여 교실 밖으로 내몰기도 했다.내쫓긴 학생들은 울고 싶을 때 뺨 맞은 격으로 답답한 학교를 벗어나 들로 산으로 신바람 나게 먹거리를 찾아다니며 궂은 짓들을 하기도 했고 어떤 아이들은 슬금슬금 다시 학교로 기어들었다. 쫓겨났던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면 시험감독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모르는 체 눈감아 주시기도 했다.학교에서 쫓겨나는 아이들 중에는 집에서 준 월사금이나 사친회비를 딴 데 써버리고 냉가슴을 앓는 아이들도 없지 않았다. 최근 서울 어느 학교에서 급식비 안 낸 학생들을 따로 호명해서 급식비를 재촉한 교감선생님이 화제로 오르내리던데, 사친회비를 딴 데 써버린 아이들처럼 집에서 준 급식비를 딴 데 써버리고 호명 받는 아이들도 필시 비슷한 냉가슴을 앓았을 게다.한국전쟁 전후에 학교에서 쫓겨난 경험을 가진 이들은 그런 정도의 일이 화제가 되어 언론에 오르내리는 세상에 대해서 격세지감이란 말이 실감나기도 했을 테고 비교육적 처사라며 지탄받는 그 교감선생님의 고충에 한 가닥 연민이 앞서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지 않던가. 급식비 안 낸 학생을 하필이면 식사 전에 따로 호명하는 건 누가 봐도 비교육적이다.우리나라 일부 지자체에서도 학생들 무상급식 중단으로 시끄럽다. 무상급식 문제는 때마침 치러야 하는 성완종 회장 리스트 수사와 맞물려 아무래도 상당기간 논란이 계속될 모양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데지 밥 먹으러 가는 데가 아니라는 막말까지 동원된 걸 보면 무상급식 중단에 대한 해당 단체장의 집념도 만만찮아 보인다.그게 몇 년 전 서울시장이 자진사퇴하게 된 일인데도 틀린 답을 애써 옮겨 쓰는 수험생처럼 같은 일로 남다른 집념을 보이는 걸 보면 해당 단체장의 집념에는 그럴 이유가 꼭 있는 것처럼 비장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랫돌 빼 윗돌로 삼는 듯한 그의 대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학부모도 많다고 한다.그런 비장한 집념의 합리성을 따지기 전에 무상급식이라는 말의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의 세금으로 먹는 밥이 어째서 무상급식인가. 공것이라는 말은 ‘공공(公共)의 것’의 준말이다. 공(公)것은 공짜라는 고정관념이 무상이라는 말 속에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혀 있는 건 아닐까. 무상급식 의무급식 등등의 말들이 다소 찜찜한 뒷맛을 남기고 있는 것도 아마 그런 말들 속에 못 박힌 ‘공(公)것은 공짜’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보편적 급식과 선별적 급식의 충돌 지점에서 증세 문제가 필연적인 것처럼 제기되기도 하는데, 국민 건강을 위해서 올렸다는 담뱃값 같은 보편적 증세는 국민의 건강뿐만 아니라 국가의 건강까지 난폭하게 좀먹고 있다. 현실적인 듯 합리적인 듯 내세우는 선별적 복지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선별적 증세다. 선별적 증세가 선행되어야 보편적 복지도 급식도 그나마 기초가 잡힐 것이다.무슨 리스트나 각종 비리와 관련되어 공짜를 꿀꺽 삼키고도 딱 잡아떼는 이들이 요즘 무더기로 거론된다. 왕년의 차떼기에 크게 놀랐던 이들도 요즘의 잡아떼기 행태에는 아예 말문이 막힌다. 꿀꺽꿀꺽 삼키고도 딱 잡아떼는 그 내공들이 한결같이 소름 돋을 정도로 진부하기 때문이다./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2015-04-23 정 양

이념 양극화에 대한 오해

보수·진보 갈등, 유권자 의식 성숙해졌다는 의미상대방 정책 부정적 평가 민주정치 발전 도움 안돼서로다른 생각 이해하고 타협하는 관대함 보여야현재의 한국 정치를 부정적으로 특징짓는 가장 대표적인 표현은 지역주의와 이념 양극화일 것이다. 지역주의의 병폐와 해악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념 양극화 현상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오해와 혼란이 있는 듯하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진보 간 이념 갈등이 중요해진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당시 이념 갈등이 부상하면서 지역 갈등이 한국 정치에서 누리던 독점적 영향력이 완화되었기 때문에, 초창기의 이념 갈등은 오히려 긍정적 시각에서 해석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이념 갈등이 이념 양극화 현상으로 표현되면서, 지역주의에 버금가는 한국 정치의 병폐로 묘사되고 있다.먼저 이념 갈등 그 자체는 결코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사회에서의 갈등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어떠한 갈등이든 그것이 표출되지 않고 숨어있는 것보다는 표출되는 것이 건강한 민주사회의 신호다. 특히 사회의 다양한 갈등 중에서도 이념 갈등은 다른 갈등에 비해서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지역 갈등이나 세대 갈등과 비교해 볼 때 이념 갈등은 타협점을 찾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영남과 호남이 대립할 때는 중간 타협점을 찾기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충돌할 경우 양쪽의 입장을 균형 있게 대변해 주는 세대를 발견하기 어렵다. 반면 보수-진보 간의 갈등에서는 얼마든지 정책적 타협이 가능한데, 그것은 보수와 진보가 기본적으로 연속적 개념이기 때문이다.이념 갈등이 다른 갈등에 비해 바람직한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정책에 대한 입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권자가 특정한 이념성향을 가진다는 것은 정책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선호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보수적 유권자는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을 선호하고 진보적 유권자는 성장보다는 환경보호를 위한 정책을 중시한다. 따라서 많은 유권자의 이념적 성향이 보수와 진보로 분명히 나누어지고 대립한다는 것은 그만큼 유권자의 정치의식이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보다 민주정치가 발전한 서유럽 국가에서 보수-진보 이념 갈등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균열로 자리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이념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표현이 중도 혹은 중도실용주의다. 그런데 중도란 분명한 이념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분명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방을 관용하고 이해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분명한 원칙이나 입장 없이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중도실용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한 중도 정치세력은 분명한 자기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방을 부정하는 독선에서 벗어나 관용과 타협을 실현할 수 있는 세력이다.만약 한국에서의 이념 갈등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보수-진보 간 타협이 선진 민주국가에 비해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념 갈등이나 양극화 그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양자 간 타협이 한국에서 잘 실현되지 않는 이유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이념 갈등이 가지는 특수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분단국가라는 현실이다. 반공, 친북과 연계되면서 이념 갈등은 타협 가능한 정책적 대립보다는 타협이 어려운 감정적인 대립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또 다른 특수성은 이념 갈등이 세대 갈등과 중첩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급속한 근대화를 경험한 결과, 전쟁과 가난을 경험한 기성세대와 비교적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신세대 간에 가치관의 차이가 매우 큰 편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가 이념 갈등과 중첩되어 기성세대는 보수, 젊은 세대는 진보 성향을 가질 확률이 높다. 이념 갈등이 세대 간에 존재하는 기본 가치관의 차이와 결합해 있기 때문에 그만큼 타협이 쉽지 않은 것이다.서구 민주국가에 비해 한국 유권자가 이념적으로 더욱 분극화되어 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 양극화를 내세우며 유권자가 분명한 정책적 입장을 가지는 현상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일은 결코 한국 민주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념을 없애는 일이 아니고, 서로 다른 이념을 관용하고 타협하는 성숙함이다. 이러한 성숙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2015-04-16 김 욱

인간성 회복 위한 지역사회 공동체만들기

인간과 자연 ‘더불어 사는 삶’ 끝없이 노력가정·학교·직장·마을등 인성교육의 장 활용사회문제 해결과 미래세대에 희망 주는 초석많은 논란과 우려 속에서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을 의무화하는 인성교육진흥법이 올해 1월 제정되어 7월부터 시행된다. 이 법에서는 인성교육을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개인과 집단의 이익, 편의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와 오로지 승자만이 인정받는 경쟁중심의 사회에서 점차 상실돼 가는 인간성을 회복하고,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사회문제와 갈등을 치유하는데 인성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에는 대부분의 국민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것처럼, 인성교육이 유치원생이나 초·중등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 중심의 교육에 머무른다면, 그릇된 판단과 행동을 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서 아이들은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학교 중심의 인성교육과 함께 가정을 비롯한 지역사회 전반적으로 인성, 즉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특히 인간성 회복의 관점에서 가정과 학교, 직장, 동네 등의 크고 작은 규모와 다양한 성격의 지역사회에서 인간과 자연을 배려하면서 더불어 갈 수 있는 공동체 형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필자는 환경문제를 공학적으로 접근하는 환경공학 분야의 전공교육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환경교육에서도 인간이 형성한 도시를 자연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유기체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도시 속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이해하고, 자연생태계의 원리를 통해서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지속가능한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강의 주제를 가장 먼저 다룬다.한편으로 생각하면,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지속가능한 도시가 인성교육이나 인간성 회복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이기적 개발행위는 더 이상 다양한 야생 동식물들이 도시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었고, 자동차와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잠식해 버린 정주공간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구조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가진 도시에서 타인, 공동체,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기 위한 인성교육의 효과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최근 국내외적으로 생태성과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지역사회 공동체 만들기가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 하겠다. 도시계획적 시도로서 도시의 사회문제가 무분별한 도시확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토대로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티 형성을 위한 공공시설이나 공원 등의 오픈스페이스 조성, 자동차 중심이 아닌 보행과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체계 및 토지이용,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는 도심 속 자연의 보전과 복원 등을 강조한 미국의 신도시주의(New Urbanism), 일본의 도시환경주의 등이 그 예가 되겠다.아울러, 최근 국내의 많은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을 만들기, 도시재생 사업 등도 상실돼 가는 지역사회 공동체의 개념을 되살리기 위한 시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물론 지역사회 공동체 형성을 통한 인간성 회복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보다는 단순히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으로 전락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간과 자연이 서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 공동체 형성을 위한 다양한 시도와 끊임없는 노력이 인간성 회복을 위한 인성교육의 살아있는 장소로 연결된다면, 현세대의 당면한 많은 사회문제와 갈등을 해결하고, 미래세대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튼튼한 초석이 될 것이다./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5-04-09 박경훈

걷는 즐거움

바쁜 삶 잠시 쉬고 건강도 챙기는 ‘또다른 여유’햇볕·바람·꽃… 자연과 하나되어 ‘행복한 순간’걷다 보면 새로운 느낌이나 영감 얻는 ‘행운도’지난 주말 걷기대회에 참가하고 왔다. 서귀포 유채꽃 국제걷기대회다. 처음엔 ‘걷기대회도 있나?’ 하면서 의아해 했으나 직접 참가해 보니 금세 그 취지에 공감하게 되었다. 바쁘게 살지만 말고 건강을 돌보면서 좀 쉬라는 뜻 아니던가. 따뜻한 햇볕, 시원한 바람, 진노랑빛 흐드러진 유채꽃밭을 배경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걷는 사람들…. 모든 게 도시의 일상과 다른 시간이었다.걸으면서 나는 무얼 했나 되짚어 보았다. 햇살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내 몸의 피부 세포들이 태양풍을 향해 일제히 돛을 펴는 걸, 그리고 햇살은 나만 편애하지 않고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를 사랑한다는 걸 느꼈다. 초록빛을 발산하고 있는 저 동백나무도 나무의 그늘도, 바다의 은빛 물결들이며 영원한 방랑자 구름에게도 자기를 나눠줄 줄 아는 햇살들…. 부처님의 자비 광명, 주님의 은혜로 흔히 비유되는 이런 햇빛이 순간순간의 느낌으로 내 안에서 살아나는 게 행복했다.말보다 실천은 확실히 좋다. 걷기대회에 참가한다고? 이렇게 망설이는 이들에게 나는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걷는 데도 결단이 필요하다!’ 함께 걷는 사람들은 웃는 얼굴로 서로를 격려한다. 아내 건강을 염려하는 남편, 가족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기려는 주부, 자기에게 휴가를 주고 싶은 직장인들. 중국·일본·러시아 등지에서도 많은 인원이 참여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긴다.나는 이들이 자신의 건강만을 위해서 대회에 참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걷는다는 것은 자연과 하나 되는 ‘사건’이라는 것을 모든 참가자는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행복한 표정, 부드러운 미소, 활달한 걸음걸이의 바로 그 순간이 극락이고 천국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걷기대회야말로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의 행복을 누리는 천국여행’이 아니던가. 제주 올레길 열풍이며 스페인 산티아고의 길 순례문화 역시 행복을 찾아가는 자기치유의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걷다 보면 문득 새로운 느낌이나 생각이 찾아오는 행운도 누리게 된다. 예술의 천재들에게 영감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위한 교훈 중에 ‘준비된 사람에게 하늘의 천사가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자연과 하나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다 보면 뜻밖의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배가 비슷한 운명에 있다는 것을 서귀포 중문 일대 야트막한 산언덕에 올랐을 때 나는 비로소 보게 되었다.‘보라 저 운하에 잠자는 배들/정처 없이 떠도는 것은 그들의 버릇’.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여행에의 초대’라는 시가 떠오른 것은 서귀포 앞바다 위의 평화로운 돛배들을 보는 순간이었다. 떠도는 것이 배들의 운명이라면 사람의 사람다움은 걷는 게 아니던가. 이렇게 되자 걷기대회가 갑자기 보람있는 배움의 시간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잠들어 있는 것 같아도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게 배들의 운명인 것처럼, 사람 역시 걸어야 하는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것.고대 그리스의 비극 가운데 ‘오이디푸스대왕’이 있다. 부친살해와 근친상간을 다루고 있는 끔찍한 이야기인데, 거기 인간의 본질을 묻는 수수께끼가 나온다. 괴물 스핑크스가 지나가는 길손에게 이 문제를 내고 알아맞히지 못하면 잡아먹는다. “아침엔 네 발, 낮엔 두 발, 저녁엔 세 발인 짐승은?” 정답은 바로 사람. 어려서는 기어 다니고 성장해서는 두 발로 걸으며 나이 들어서는 지팡이에 의지하게 된다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성찰이 깃들어 있다. 사람은 걸어야 사람이라는 뜻이다. 시중에는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건강관련 서적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걷기 힘든 분들 모두에게 행복한 기회가 오기를!/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2015-04-02 윤재웅

희망고문

유신·삐라… 역사의 시계 거꾸로 가는일 많아져온라인엔 ‘성계육’보다 더 험악한 말들 난무‘희망고문’에 지친 비아냥들 민망하기 그지없어1930년대에 발표된 홍명희의 미완 명저 ‘임꺽정’에는 최영 장군의 사당에 관련된 사연과 거기 송악산 자락에서 펼쳐지는 축제 장면이 홍명희 특유의 된장 냄새 묻은 필치로 자상하게 서술되어 있다. 통나무 모닥불에 통돼지를 굽고 거기 모인 이들이 그 통돼지 구이를 몇첨씩 다투어 뜯어먹으면서 씨름도 하고 그네도 뛰고 제기차기도 윷놀이도 한다.그렇게 뜯어먹는 통돼지구이를 사람들은 성계육이라고들 했다. 이성계가 돼지띠라서 그렇게 통돼지 구이를 만들었단다. 이성계가 닭띠나 개띠였다면 통닭구이나 통개구이가 성계육이 됐을 것이다. 그 성계육 축제는 최영 장군의 억울한 죽음을 기리면서 쿠데타로 고려왕조를 무너뜨린 이성계에 대한 고려유민들의 원한과 저주와 야유가 질펀하게 번지는 현장이었다.관우나 악비 같은 중국 고대사의 비극적 영웅들이 중국 곳곳에 세워진 사당에서 두고두고 중국인들의 기림을 받고 있다고 한다. 고려왕조의 비극적 영웅 최영 장군의 경우 관우나 악비처럼 오늘날까지 이어오지는 않았지만 조선왕조 수백 년 동안 그를 기리기 위한 사당이 만들어지고 그의 충정을 섬기는 민심이 그처럼 축제가 되고 민속이 되어 전해졌던 것 같다.이른바 최고 존엄의 이름을 내세워 성계육을 뜯어먹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그런 반체제적 민속이 봉건왕조 속에서 어떻게 지속되었던 것인지 돌이켜보면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다. 민중적 에너지가 모임 직한 일마다 미리 초를 쳐서 희석시키는 정권에 길든 언론 같은 것들이 그 시대에는 물론 없었겠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북한식으로는 최고 존엄 모독죄, 우리식으로는 국가원수모독죄쯤에 해당될 당시의 서슬 퍼렇던 역모죄, 조선왕조의 원죄로 못 박혔기에 오히려 더 사납게 휘둘러대던 그 역모죄를 어찌 감당하면서 백성들은 그렇게 성계육을 뜯었단 말인가.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매우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비난하는 일은 물론 더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마음 놓고 비난하고 미워하는 것은 행복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통쾌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 시작은 필시 은밀했겠지만 은밀하게 시작되었을 그 모임이 축제가 되고 민속으로 정착되기까지 숱한 고난과 역경을 겪은 고려의 유민들은 마침내 조선왕조의 최고 존엄 이성계를 맘 놓고 원망하고 비난하고 조롱하면서 다투어 성계육을 뜯어먹는 통쾌함을 맘껏 누렸던 것 같다.명예훼손이니 허위사실유포니 종북이니 불온이니 하는 명목으로 걸핏하면 고소하고 가두고 벌금을 물게 하면서 유신시대로 삐라시대로 서북청년단시대로 역사의 시계가 자꾸 거꾸로만 되감기는 것 같은 일들이 끊이지 않아선지 요즘의 온라인에는 성계육보다 더 험악한 말들이 난무하고 그럴수록 사람들은 희망고문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뭔가를 끈질기게 기다리면서 그 기다림 때문에 두고두고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희망고문, 따지고 보면 조선왕조의 성계육 축제도 오랜 세월을 두고 백성들이 견뎌왔던 희망고문의 결과물일 것이다.희망이라는 설렘과 고문이라는 끔찍함이 난폭하게 야합해 버린, 절망보다 더 지긋지긋하고 좌절보다 더 쓰라리고 체념보다 더 인간 존엄이 짓밟히는 게 희망고문이다. 눈조심 말조심 귀조심 심지어 꿈까지 조심하면서 최고 존엄을 맘 놓고 저주하고 조롱하고 미워해도 괜찮은 그런 쾌감을 위해서라면 그런 고문쯤은 과연 얼마든지 견딜 만한 것인가. 그 나물에 그 밥, 걸레는 빨아도 걸레,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같은 말들 속에는 그 희망고문에 지친 비아냥들이 늘 민낯으로 깔려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그런 말들이 민망하기 그지없다./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2015-03-26 정 양

지방에 정치가 있다

권위주의 시절 ‘행정중심 사고’ 지방정치 무시지방분권화 안돼 갈등문제 여전히 중앙에서 결정중앙정치 요인, 실제로 지역에서 생기는 경우 많아지방선거 결과가 중앙정치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거나 혹은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어 있다는 말은 현시대 한국정치와 선거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다. 이 말은 한국 지방자치의 척박한 현실에 경종을 울린다는 교훈적인 측면에서는 가치가 있으나,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중앙보다는 지방에 정치가 더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방정치를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하나는 지방선거 결과의 해석에 있어서 문제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중앙 언론에서 주목하는 것은 어느 정당이 승리했는가의 문제다. 그런데 정당 간의 승패를 결정하는 거시적인 선거 결과(보통 정당들이 차지한 광역단체장 자릿수)는 각 지역과 지방에서 미시적으로 발생하는 정치과정과 갈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특정 정당이 광역단체장 선거에 승리했다고 하자. 그러나 미시적으로 부산 내 여러 지역 선거결과를 들여다보면 지역 간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러한 결과의 차이는 결코 중앙정치 요인에 의해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거시적인 승패 결과만 보면 모든 지방선거가 중앙정치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각 지역과 지방의 이슈와 요인들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정치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행정중심 사고가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과거의 마인드를 갖고 있다. 그래서 지방자치와 지방선거가 실시된 지 벌써 20년이 됐는데도, 지방자치단체는 주민들에게 보다 좋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면 되지, 무슨 정치와 정당이 필요한가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이러한 행정중심의 사고는 정치불신과 결합해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론으로까지 발전했으며, 최근에는 기초의회 폐지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 보면, 정치가 중앙보다 지방에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먼저 가정·학교·직장을 포함한 그 어떤 작은 규모의 자치 단위에도 이해 갈등과 다양한 생각 간의 충돌은 존재하게 마련인데,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고 구성원 간 이익과 가치를 분배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광역단위는 물론 기초단위에서도 다양한 이익과 가치의 충돌이 존재하며, 이의 분배를 위한 정치과정이 분명 존재한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정치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단순 행정서비스인 ‘눈 치우는 일’에도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 중 어느 동네부터 먼저 치울 것인가에 대한 이해 갈등이 있고, 또한 눈을 치우는 과정에서 환경보호를 얼마나 고려할지에 대해서도 보수-진보 간 이념 갈등이 존재한다.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에게 근접한 곳에서 발생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따라서 중앙에서의 갈등보다는 지역과 지방에서의 갈등이 유권자에게는 더 중요하다. 실제로 지방자치가 자리잡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투표행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중앙정치 요인보다는 자신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지역과 지방의 이슈에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서구 민주주의의 국가에 비해 지방이슈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 사실이나, 그것은 지방분권화가 덜 진행돼 지방의 힘이 아직 중앙에 비해 약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즉 여전히 지역과 지방의 문제를 중앙에서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보통 중앙정치 요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실제로는 지방정치의 합인 경우가 많다.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선거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대통령 지지율을 생각해 보자. 대통령 지지율이란 결국 서울을 포함한 각 지방에서 ‘지방정치 요인을 매개로 해서’ 이뤄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합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앙은 서울이 아니고, 서울을 포함한 각 지방의 합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하원의장을 역임한 오닐(Tip O’ Neil)이 남긴 유명한 문구인 “모든 정치가 지방에 있다”는 비단 미국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김 욱 배재대학교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김 욱 배재대학교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2015-03-19 김 욱

변화와 개혁,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

과거탈피 없는 작은 마음도 기득권 될수 있어변하는 교육여건 무시한 개혁… 미래세대 큰 짐지속가능한 발전 함께 고민할때 성공 결실 거둬사회 전반적으로 변화와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누구나 변화와 개혁을 통해서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하지만 변화와 개혁을 위해서 지금껏 가져왔던 기득권은 모두가 내려놓기를 거부한다. 그렇다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은 채 변화와 개혁의 옳은 방향을 찾아내고,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도 그동안 가져왔던 크고 작은 기득권을 그대로 간직한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한다면, 어떠한 변화와 개혁도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더는 변화와 개혁을 미룰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면, 과감히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일반적으로 기득권은 부와 권력 등을 가진 특정 개인이나 조직, 계층 등에 국한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가지고 있는 것을 변함없이 영원히 가지고자 하는 작은 마음도 기득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소 역설적일 수도 있지만, 도로 위에서 약자인 보행자를 배려하는 운전자의 모습, 업무시간이 지났는데도 민원인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해결하려고 애쓰는 공무원의 모습, 방황하는 학생을 위해서 친구처럼 다정하게 오랜 시간 상담을 해주는 선생님의 모습, 맞벌이하는 아내를 위해서 집안일을 함께 하는 남편의 모습, 학생들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이나 직무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오랜 시간 동안 담당해 왔던 교과목을 새롭게 개편하고 새로운 강의교재를 개발하는 교수의 모습도 각자의 위치에서 크고 작은 기득권을 조금씩 내려놓았을 때 가능해 질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지금 대학가는 지난해 불어 닥친 구조개혁의 거센 파도가 올해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고 있다. 저출산 문제 등으로 인해 학령인구가 지속해서 감소되고 있기 때문에 대학의 변화와 그에 따른 구조개혁은 피해갈 수 없다. 하지만 대학의 구조개혁도 모든 구성원들이 그동안 가져왔던 기득권을 조금의 양보도 없이 계속해서 지키고자 한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백년지대계인 교육정책이나 제도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교육여건을 무시한 채 변화와 개혁을 진행하지 않는다면, 현세대의 기득권을 보장받기 위해서 미래 세대에게 짊어지고 가기 힘든 큰 짐을 맡기는 꼴이 될 것이다. 교육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의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와 개혁도 결국 각자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미래 세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달성하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에 공감할 때 모두가 만족하고 동의하는 모습으로 실현될 것이다.이번 칼럼을 쓰면서 지난 1년 동안 운동과 식사조절을 통해서 비만에서 정상체중으로 돌아온 내 몸의 변화와 개혁(?)도 그동안 가져왔던 내 몸의 기득권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비만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불균형적인 영양섭취와 자동차와 같이 과학기술이 가져다준 편리성으로 인한 신체적 활동의 감소가 주된 원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그동안 하루 삼시 세끼, 그것도 부족하여 야식까지 배부르게 챙겨 먹어 왔던 내 몸의 기득권과 잠시를 움직여도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편리성에 대한 기득권을 조금씩 내려놓았을 때, 몸의 변화가 서서히 다가왔다. 오랜 시간 동안 불어난 몸무게를 빼는 일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는 변화가 아니다. 많은 논란과 갈등이 야기되고 있는 공공, 교육, 노동, 금융부문의 변화와 개혁도 모든 이해당사자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현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 성공적인 결실로 맺어질 것이다./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5-03-12 박경훈

문화융성의 참뜻과 길

수도권과 지방·계층간 문화격차 해소 중요관람객 욕구 못 채워주는 콘텐츠 전시행정일뿐행복한 삶 위해 고품격 문화장려와 지원책 필수지난달 26일 미당 서정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낭송 공연이 있었다. 300석 규모의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에 500명 가까이 운집했다. 관객 대부분은 시가 좋아 스스로 찾아온 중년의 문화 향유자들. 이들은 이날 시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시가 실시간 소리로 살아 자기 몸에 다가오는 경험을 다양한 방법으로 즐긴 것.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연극배우, 가수, 시낭송가들은 시의 생명을 매순간 새로 탄생시키고 있었다. 낭송을 마치고 객석에 앉아 있던 이시영 시인이 배우들의 낭송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연극배우들이 시를 낭송하니 확실히 또록또록 들린다. 시인도 독자를 위해 더 노력해야겠네…!” 낭송의 새로운 모형을 보여준 경우는 시낭송가들. ‘국화 옆에서’가 독송, 윤송, 합송으로 변주되면서 새로운 콘텐츠로 태어나는 순간, 객석 전체에 압도적인 감동이 일었다. ‘신부’를 전통음악으로 작곡하여 초연을 한 주인공은 박정욱 명창. 소리꾼 장사익 역시 미당의 ‘저무는 황혼’을 애절한 가락으로 불러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었다. 명사들의 인터뷰 장면이 영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연극배우 손숙 선생의 뼈 있는 말. “요즘 문화융성 문화융성 하는데 그게 별건가. 삶 속에 문화를 들이는 것. 가령 일상에서 시를 자주 낭송하는 것. 우리들 삶 속에, 가슴 속에, 정서 속에 문화나 예술이 촉촉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이 한결 좋아지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날 공연은 문화융성의 체험현장이었다.공연 이틀 전, 대통령은 한국메세나협회 회원 기업인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문화융성을 위한 기업 지원을 독려했다. 정부가 정책을 만들고 기업으로 하여금 문화의 발흥을 도울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문화란 근본적으로 지원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논어’ 옹야편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 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 하다”는 대목이 있다. ‘즐기는 것(樂之者)’은 최상의 공부 방법이자 높디높은 문화향유의 기품과 관습을 뜻한다. 스스로 좋아한 나머지 삶의 일부로 만들고 싶은 기호와 취향. 좋은 것을 좋다 말하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말하는 풍토. 이런 문화가 풍성해야 진정한 문화융성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즐긴다는 건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이날 공연 콘텐츠를 채워준 출연자들에 그 답이 있다. 이들은 흔쾌히 재능기부를 했으며 관객들은 고품격의 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출연진들 모두 미당을 사랑하고 존경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시인, 배우, 가수, 낭송가들의 가슴에 미당의 시는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어서 언제든 꺼내어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고급문화를 사랑하는 진정한 애호가의 정신을 관객들도 이심전심 공감하게 된 점은 이날 공연의 또 다른 수확이다.문화행사에 대한 지원도 이런 바탕 위에서 이루어질 때 그 효과가 커지게 마련이다. 수도권과 지방,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문화격차 해소도 중요하고 특정한 날을 ‘문화가 있는 날’로 정해 다양한 관람 혜택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콘텐츠다.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걸 제공하지 못하면 전시행정이 되기 십상인 게 정부 정책이다. 고품격 문화에 대한 장려, 그리고 이를 스스로 즐기는 이들을 위한 지원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위한 문화융성의 지혜로운 방책이다. 백범 김구선생께서도 ‘나의 소원’에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2015-03-05 윤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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