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지역과 뉴미디어

지역기업 좋은 콘텐츠 있어도 유통안돼 ‘미래 불투명’ 누구나 업로드해 평가받고 광고수익 올리는 ‘뉴미디어’ 지자체, 공동플랫폼 시스템구축 등 적극 지원 필요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은 제작이 완료되면 지상파 방송을 시작으로 케이블TV, IP-TV, 온라인 VOD로 이어지는 방송 유통과정을 거치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지상파TV에서 방영된 작품들이 2차로 케이블TV 등 후 순위 플랫폼으로 방송되는데 이렇게 1차 지상파에 걸리는 애니메이션 작품 수가 1년에 대략 26개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 26개의 작품이 한해 한국 내 방영되는 애니메이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26개의 작품도 2012년도부터 국산 애니메이션 방송을 의무화한 ‘국산 애니메이션 총량제’(방송법 10조2항)로 인해 지상파 4개사(KBS·MBC·SBS·EBS)가 방송국당 평균 7개 작품을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하기 때문에 지켜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 내 애니메이션 제작회사는 200여 곳, 한 해 26개 작품에 들어가기 위해 기업 간 엄청난 경쟁을 치러내고 있다. 이러한 유통의 문제는 비단 애니메이션 분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콘텐츠분야에서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문제다. 경쟁이 치열한 콘텐츠 분야에 지역 기업과 인력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천신만고 끝에 제작비용을 마련한다 해도 결국 유통의 높은 진입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유통에 대한 인적 네트워크와 유통경험 부족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나 지역 기업에 대한 ‘지역 디스카운트’도 방송국 판권구매 담당자들의 선택에 있어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도 현실이다. 콘텐츠산업 관련, 지역의 큰 고민이 바로 콘텐츠 기업의 부재, 그로 인해 지역에서 육성된 인력의 지역 내 취업 창구의 부재, 결국은 지역 콘텐츠산업의 미래 불투명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대한 해법을 뉴미디어를 통해 찾아보았으면 한다. 뉴미디어는 전 세계 기업과 개인 구분없이 누구나 자신의 콘텐츠를 쉽게 업로드해 시청자에게 평가받고 그 평가를 토대로 광고 수익도 배분받을 수 있는 말 그대로 새로운 플랫폼이다. 뉴미디어의 대표적인 플랫폼 유튜브(You-Tube)의 사례를 하나 언급하겠다. “미국의 평범한 트럭 기사 버틀러는 재미삼아 자신의 일상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한다. 꾸준히 영상을 올리고 시청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던 버틀러는 자신의 홈비디오가 유명세를 타는 것을 깨닫는다. 유튜브 영상을 통해 광고 수익을 벌기 시작하자 버틀러는 주변에서 홈비디오를 재밌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물색하고 메이커 스튜디오를 설립한다. 메이커 스튜디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홈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리는 회사로 월간 조회 수 55억 뷰 이상의 회사다. 다양한 유튜브 채널을 탐내던 디즈니는 결국 메이커 스튜디오를 2014년 3월 5억 달러에 인수한다. 물론 뉴미디어 경쟁도 치열한 것은 사실이다. 필자의 회사도 이러한 시대를 대비해 자체적인 플랫폼 구축을 고민하였으나 시스템구축과 인력확보에도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것을 경험하고 바로 포기한 사례가 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지자체 콘텐츠산업 예산을 지역 콘텐츠의 유통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공동의 플랫폼 채널 구축과 콘텐츠 개발지원, 인력양성 등 지역의 기업과 1인 창작자들이 동시에 자신들의 콘텐츠를 대외적으로 알릴 기회와 수익의 기회를 제공하는 부분에 투입된다면 지역 콘텐츠 업계에도 아이디어, 개발, 산업화, 인력확보 등의 선순환 구조를 가지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진규 (사)한국애니메이션 제작자협회 부회장▲ 남진규 (사)한국애니메이션 제작자협회 부회장

2015-09-17 남진규

추석을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 유산으로

한해 풍년 조상께 감사하고 가족의 화합 다지는 날 전통 문화·정신 세계인 공감할 수 있는 통로 필요 남북공동 세시풍속 조사·연구 통일시대 앞당겨야 곧 추석이 다가온다. 특히 올해는 추석을 기해 헤어졌던 이산가족의 만남의 장이 열린다니 매우 기쁜 소식이다. 이제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1세대들은 거의 타계하는 상황에서 남아있는 보고 싶고 그리운 가족들이 만난다는 것은 혈육 간의 우애를 다지는 것 뿐 아니라 남북 간의 화합과 동질성을 회복하는 지름길인 것이다. 남북한은 공히 조상숭배의 효 사상, 공동체적 질서, 미풍양속의 명절 풍습을 가지고 있다. 21세기 나눔, 배려, 소통, 화합의 동양정신의 가치가 부상되는 이 시기에 미래 지향적인 세계화의 자산으로 키울 수 있다. 특히 추석을 남북한이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운동을 추진할 수 있다. 추석은 1년 중 가장 보름달이 밝은 날로, 처음으로 수확한 햇곡식으로 송편과 각종 음식을 만들어 다례를 지내 1년의 풍년을 하늘과 조상께 감사하고 가족과 이웃 간에 화합을 다지는 날이다. 이는 여름 내내 땀 흘리며 일하던 것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앞으로 올 본격적인 추수기에 대비하여 잠시 일손을 놓고 쉬면서 재충전을 하는 날이기도 하다. 계절도 가장 알맞은 시기라 그래서 속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추석의 유래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왕도를 6부로 나누었는데, 둘로 크게 편을 갈라 각각 왕녀가 대표가 되어 부내의 여인들을 인솔하여 7월 15일부터 8월 14일까지 한 달 동안 두레 길쌈을 하였다. 추석날 그 성과를 심사해서 진 쪽은 이긴 편에 술과 음식을 내고 ‘가배’, ‘가배’ 축하하며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했는데, 이를 ‘가위’라 하며, 오늘날 한가위의 어원이 되었다. 한편 추석날에는 여러 민속놀이가 행해지는데 소놀이, 거북놀이, 줄다리기, 활쏘기 등을 함께 어울려 즐기는 축제의 날이기도 하였다. 특히 대표적인 놀이로는 강강수월래를 들 수 있다. 강강수월래 놀이는 해마다 음력 8월 한가윗날 밤에 추석빔으로 곱게 단장한 부녀자들이 수십 명씩 일정한 장소에 모여 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만들어 뛰놀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민속 고유의 놀이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는데 활용했다는 일화도 있다. 추석날은 여성들이 음식장만 하느라고 고달프기도 했지만 옛날에는 ‘반보기’라 하여 친정 식구들을 만나는 시간이 허용되어 고달픈 시집살이를 위로 받기도 하였다. 추석을 전후하여 사람을 보내 만날 시간과 장소를 연락하여 중간쯤에서 만나 서로 장만해 간 음식을 나눠 먹으며 정담을 나누다가 저녁에 헤어졌다. 겨우 한나절 정을 나눌 수 있다는 데서 ‘온보기’가 못되고 ‘반보기’라고 한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유네스코 세계유형문화유산으로 종묘, 해인사 장경판전, 석굴암·불국사, 창덕궁, 수원화성,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경주역사지구,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조선왕릉, 하회와 양동마을, 남한산성, 백제역사유적지구 등 12개 등재되어 있다. 인류무형유산으로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처용무, 강강술래, 제주 칠머리당 영동굿, 남사당놀이, 영산재, 대목장, 매사냥, 가곡, 줄타기, 택견, 한산모시짜기, 아리랑, 김장문화, 농악 등 12개가 등재되었다. 세계기록유산으로는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하권, 승정원일기,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조선왕조 의궤, 동의보감, 일성록,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난중일기, 새마을운동 기록물 등 11개가 등재되어 있다. 그에 비해 북한은 개성역사유적지구, 고구려 고분군 단 2개뿐이다. 우리 전통문화의 세계유산등재는 유구한 역사 속에 새겨져 있는 창조적 문화콘텐츠와 그 안에 담겨진 정신을 널리 세계에 알려 우리나라의 품격과 신뢰를 높이는 것이다. 그동안 미처 주목하지 못한 우리 안에 내재된 인류 보편적이면서도 보석같은 한민족 특유의 전통유산을 잘 다듬어 세계인과 공감하는 통로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세계문화리더 국가로 위상을 확보할 수 있다. 그 중 설, 추석 등의 세시풍속을 남북한이 공동으로 조사, 연구하여 그 원형과 변화 양상을 탐구하여 세계화하는 작업도 사회문화교류를 통한 진정성 있는 통일의 시대를 여는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5-09-10 이배용

지역주의, 지역 이익 그리고 지역 정체성

지역주의, 지나치게 정치적 활용 ‘부작용’ 유발 지역 기반 둔 ‘정당 설립’ 제도적 장치 마련 시급 지방도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 중요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지역주의다. 그리고 지역주의에 대해서는 온 국민이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적 지역주의에 부정적 시각이 자칫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의 시대에 걸맞은 정당한 지역이익 추구와 지역정체성 강화까지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일단 주민들이 타 지역보다 자기 지역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추구하는 현상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과거 중앙집권적인 권위주의 시절에 억눌려 있던 당연한 욕망이 민주화 이후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국가에서 발생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일부에서 소위 지역이기주의라는 표현을 통해 지역주민의 자기 지역 이익 추구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과도한 중앙집권적 발상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지역 주민들이 자기 지역에 자부심을 느끼고 애향심을 가지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러한 강력한 지역 정체성이 지역주의의 원인인 것처럼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사실 ‘지역주의’라는 표현 그 자체는 아무런 부정적인 요소가 없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동안 이것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초기 지역주의는 특정 지도자와 특정 지역과의 정서적 유대를 기반으로 발전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감정적인 측면이 강조되면서 특정 지역의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내세우는 부작용을 유발했다. 게다가 이러한 지역주의에 비견할 수 있는 다른 사회 갈등구조가 표출되지 못하여, 지역 갈등만이 한국 사회의 유일한 갈등인 것처럼 비추어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지역주의의 정서적 측면은 점차 약화되고 있으며, 그에 대신하여 지역의 이익과 발전이라는 공리주의적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지역 외에도 이념이나 세대, 계급과 같은 다른 갈등들이 정치적으로 중요해지면서, 지역주의가 한국정치에서 가지던 독점적 지위는 약화되었다. 이제는 국민들이 단지 자기 지역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이념적 성향, 자기가 속한 세대의 가치관, 자기가 속한 단체와 계급의 이익 등을 동시에 고려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지역주의는 내용상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승자독식을 기본으로 하는 한국의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선거제도로 인해 이러한 지역주의 현상이 선거 결과에서 과장·확대되어 나타날 뿐이다. 예를 들어,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전체적으로 20~30%의 지지를 받아도 한 지역구에서도 1등을 하지 못하면, 이 표는 모두 사표가 되는 것이다. 선거제도만 개혁해도 현재와 같은 극단적인 형태의 독점적 지역 정당구조는 사라질 것이다.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정당의 설립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일부에서는 지역정당이 지역주의를 강화할 것이라며 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나, 지역의 자기 이익추구가 당연한 일이라는 점, 그리고 이러한 지역정당의 출현이 일부 지역에서 정당 경쟁을 오히려 활성화해 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의 중앙중심의 정당설립 요건을 완화하여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의 설립을 용이하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지역주민이 자기 지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보다 자기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현상이다. 지역이기주의라는 부정적 표현으로 이를 억압하기보다는 이러한 다양한 지역적 이익을 포용하고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 예를 들어, 미국식 상원제 도입이나 권역별 혹은 시도별 비례대표제의 도입 등이다. 같은 맥락에서 지역주민들이 자기 지역에 대한 정체성과 자부심을 가지는 것을 경계하기보다는 오히려 장려할 필요가 있다. 부산학·제주학·대전학 등 특정 지역을 연구하는 지역사회연구를 보다 활성화해야 한다. ‘지방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는 것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명제가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각 지역과 지방이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또한 자신의 특성과 장점을 기반으로 자율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2015-09-03 김 욱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남북, 군사적 신뢰조치로 관계개선 확대해야협상 길었던 만큼 합의이행 과정 험난할 수도북한이 다른소리 할수록 냉정함 잃어선 안돼남북이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만남의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이야기도 길었다. 2+2라는 이례적인 첫 만남에서 예상치 못한 소득이 있었다. 비록 시작은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과 서부전선에서의 포격으로 출발하였다. 군사적 충돌 상황이 남과 북을 협상테이블로 나오게 했지만, 대화를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고 나아가 남북관계 개선대책을 마련하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남북회담사에 유례없는 마라톤 협상의 대미를 장식한 셈이다. 우선 군사문제에 대해선 남북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발짝씩 양보했기에 합의가 가능했다. 남측은 지뢰도발에 대한 북측의 직접적인 사과 대신 유감 표명을 수용하였다. 북측은 남측의 확성기 중단에 ‘비정상적 사태가 신생되지 않는 한’이란 단서조항을 수용함으로써 확성기 방송이 재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는 천안함 사건을 비롯해 과거 발생한 미결된 사건들을 해결하는데 답안지로 활용가능할 것이다.이번 합의가 갖는 보다 큰 의미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특히 당국간 회담 개최를 제1항에 명시한 것은 의미가 크다. 남북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공감하고 향후 분야별 다양한 형태의 대화를 통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민간교류 활성화는 5·24 조치 해제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숨겨진 한 수이다. 결국 의지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민간교류 활성화는 충분히 가능하고 무의미해진 5·24 조치는 자연스럽게 점진적·단계적 해제의 수순을 밟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 회담 결과에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지뢰사건의 주체를 명확하게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과 포격 도발에 관해 언급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지뢰사건에 대한 북한의 유감표명은 간접적인 시인·사과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남측 군인들의 부상에 대해 인도주의적 차원 또는 같은 민족이라는 차원으로 해석할 것이다. 향후 논쟁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남북한의 합의서는 과학적 법칙이 아니라 정치적 해석을 해야 한다.통일부와 통일전선부는 남북관계 전문가 집단이다. 조직적 경험도 풍부하다. 청와대와 조선노동당은 정치적인 집단이다. 합의서까지는 최고지도자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지만 이젠 전문가 집단의 치밀한 이행이 필요하다. 합의문에 남북 통-통라인(통일부-통일전선부)을 재개하는 고위급 대화채널을 구체화하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 합의문에 이산가족상봉과 민간교류 활성화가 포함되어 있는 반면에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를 명시하지 않은 점도 아쉽다. 이 문제는 이산가족상봉 성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를 기대해 본다.향후 진행과정에서 우려되는 점은 이번 합의의 ‘비정상적인 사태’라는 표현의 모호함으로 인해 재발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오는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체로 주장하는 장거리로켓을 발사할 경우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특히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북한의 군사 활동이 지속되는 한 예기치 못한 우발상황과 오인으로 인한 확전 가능성이 상존한다. 최근 상대의 군사적 행동에 대해 완충역할을 하는 조치들이 제거된 상황에서 합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남북관계 개선으로 확대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한 군사적인 신뢰조치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합의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협상이 길었던 만큼 합의를 지켜가야 할 앞으로의 과정은 어쩌면 상상 이상으로 길고 험난한 여정일지도 모른다. 잠깐 숨고르기도 할 여유 없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쌓여가고 있다. 기대처럼 그렇게 무지개 빛 미래는 아니다. 비록 내부 정치적이지만 북한은 합의 이후 약간의 태도변화를 보이며 다른 소리를 하고 있다. 그럴수록 냉정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정말 이번 합의도출이 가능했던 것이 우리의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자세와 원칙고수 때문이라면 말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5-08-27 양무진

문화융성, 지역 디스카운트 해결이 첫걸음

국고 지원사업 신청 지방기업 ‘높은 장벽’ 실감정부·지자체, 지역브랜드 가치 제고 노력해야방치땐 기업성장 저해·문화콘텐츠산업 ‘흔들’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라는 말이 있다. 이는 예전 한국 경제의 불투명성·불확실성을 근거로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하면서 붙여진 수식어다. 이 수식어는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걸쳐 메이드인 코리아(Made in Korea)의 저평가를 대변해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이 수식어를 좀처럼 듣기 힘들다. 한국이라는 브랜드의 가치가 그만큼 상승했다는 결론인데, 상승의 중요한 견인차 중 ‘한류(韓流)’라고 말하는 부분을 크게 부정하는 사람이 없을 듯하다.필자 역시 ‘한류’를 실감했던 사례가 있다. 2년 전, 중국 광둥지역에 자사 애니메이션 ‘뭉게공항’의 완구를 수출한 바 있는데, 그 당시 한국어 포장의 완성품에 대해 중문(中文)으로 다시 포장해야 하는 거 아닐까? 라며 수출단가 상승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중국의 대형마트 담당자는 “무슨 소리냐. 한국어가 표기되어야 중국 상품보다 높은 가격이라도 소비자가 선택한다. 새로운 포장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해 일정 부분 단가를 절감할 수 있었던 경험이 있다.이렇듯 국가나 기업의 브랜드 인지도는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할 수 있다.반면, 국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탈출했으나 지역에서 콘텐츠 기업을 운영하는 현실에서는 지역의 디스카운트가 여러 가지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비단 필자의 회사뿐만 아니라 지역의 ICT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듣게 되면 지역 디스카운트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느껴진다.예를 들어 공공입찰이나 국고 지원사업 신청에서 지역의 기업들은 지역 디스카운트의 높은 장벽을 실감하게 된다. 요즘은 일부 공기관에서 심사시 지역 업체 가점부여를 통해 이를 해소해 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기업들이 체감하기엔 많이 부족해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의 자치단체나 공기관에서도 지역 디스카운트가 발생한다. 입찰이나 용역에서 용역금액이 낮은 것은 지역 업체에서 참여할 가능성이 있지만, 대형사업의 경우 수도권 기업의 차지가 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 된 지 오래라는 부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비즈니스에서 처음 이뤄지는 것이 명함교환인데 이 과정에서 수도권이 아닌 소재지가 지역일 경우 왠지 모를 위축감과 상대방이 우리 회사를 저평가하고 있다는 자격지심으로 회사소개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업무상 해외 전시회나 박람회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은 필자는 외국 기업과 비즈니스할 때 그 기업의 소재지가 수도가 아닌 지역이라도 그렇게 지역 기업에 대한 선입견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경험에, 왜 한국에서는 그런 현상이 더욱 심하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고민끝에 얻어낸 결론 중 하나, 대부분 지역이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도시였다는 점이다.필자 역시 외국 파트너가 춘천을 잘 몰라서 ‘배용준’ ‘겨울연가’ 촬영지라고 어렵게 이해를 시킨 적이 있다. 물론 하나의 예를 들은 것이고 모든 원인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결론적으로 지역 디스카운트의 문제는 지역 업체 특혜와 같은 단기적 해결방안으로는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거시적 관점의 지역 브랜드가치 재고의 정책을 통해 국가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이 문제에 대응해 나아가야 된다. 이 문제를 계속 방치할 경우 지역 기업들의 성장이 저해됨은 물론이고 신규 기업과 인력의 창출이 어려워지며 나아가 지역문화 콘텐츠산업의 기반이 위태해질 것이 자명한 일이다. 이는 현 정부가 추구하는 문화융성 내에 지역 균형 문화발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첫걸음이자 근본(Foundation)이라는 생각이다./ 남진규 (사)한국애니메이션 제작자협회 부회장▲ 남진규 (사)한국애니메이션 제작자협회 부회장

2015-08-20 남진규

광복 70년,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비폭력적 3·1운동 정신 이웃나라에 큰 영향최빈국서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급성장바람직한 통일 위해 진지한 공론의 장 필요해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감격스러웠던 해방의 기쁨도 잠시 분단의 세월도 그만큼 흘렀다. 암울했던 일제 치하에서 35년 만에 벗어나 광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독립을 위한 불굴의 투쟁에 온 민족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 정세와 시대의 흐름을 탄 면도 있지만 그러나 그 중심은 한민족의 독립역량에 기인한 것이다.우리 역사의 면면을 보면 암울했던 시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연 민족의 DNA가 있다. 어려운 시절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도전으로 “할 수 있다” “해야 된다”는 열정과 긍정심을 가지고 온갖 시련을 극복해 왔다. 그러니까 우리는 20세기 한 편린만 보고 우리나라 전체 역사를 평가하는 잣대로 삼을 수 없다. 오랜 역사 속에서 나라를 빼앗기는 가장 큰 시련을 겪었지만 굴하지 않고 극복해 낸 민족의 저력이 무엇인지를 깊이 겸허하게 성찰해야 통일의 길도 바람직하게 열어갈 수 있다.96년 전, 1919년 3월 1일 우리의 선조들은 일본이 총칼로 빼앗은 조국의 독립과 주권을 되찾기 위해 나라 사랑하는 한 마음으로 일어났다. 민족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 독립의 굳은 신념과 애국심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거대한 물결이 되었다. 이 거대한 물결에는 남녀노소, 신분과 계층, 종교와 국내외 지역의 구분도 없었다. 일제의 가혹한 무력탄압에도 불구하고, 유관순 열사 등 독립투쟁에 온 몸을 바친 우리 선조들의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3·1운동의 정신은 중국·인도 등 비슷한 처지의 이웃 나라들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3·1운동과 선열들의 끈질긴 독립투쟁은 카이로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결정할 때에도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이 위대한 3·1정신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법통으로 이어졌고,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으로 계승되면서 번영과 기적의 대한민국 역사를 이룩한 원천이 되었다.광복 70년 만에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수준의 경제강국으로 탈바꿈했다. 남북의 분단과 대치상황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확립하고 광복 70년 만에 이 모든 기적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적이 아니다. 민족의 자존심과 나라를 지키는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 역사 대대로 숱한 역경과 어려움을 이겨 왔기에 이러한 위업이 가능했던 것이다.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선조들이 온몸과 영혼을 바쳐 자주독립을 선언하며 꿈꾸었던 나라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꿈은 자손대대로 풍성한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행복한 나라이며 또한 ‘동양의 영원한 평화’ 더 나아가 ‘세계 평화와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나라를 염원하였다. 이제 우리는 자손 대대로 풍성한 삶의 행복을 길이 누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안보가 튼튼해야 하며, 행복한 삶을 영유할 수 있는 경제력이 동시에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한 바탕에서 모두의 마음을 열고 화합할 수 있는 문화융성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아직도 남북 간에는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고 있는 ‘군사적 대결의 장벽’이 있다. 전쟁과 그 이후 지속된 대결과 대립으로 ‘불신의 장벽’도 쌓여 있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 속에 오랜 기간 살아온 남북한 주민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 사이에 놓인 ‘사회문화적 장벽’도 높은 것이 현실이다.미래지향적으로 통일의 과제는 매우 중대하지만 통일은 목적의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에 당위론적 통일의 주장을 뛰어넘어 바람직한 통일을 이루기 위한 진지한 공론의 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다시는 북한의 무모한 도발로 우리의 소중한 장병들의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상호존중과 신뢰를 통해 통일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5-08-13 이배용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과 의원 정수

많은 정치학자들 의원수 확대 필요하다고 생각지방·농어촌 대표성 보완할 수 있다는 장점현역의원들 희소가치·특권의식 줄어 소극적국회의원 선거구 획정논의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 그동안의 선거구 획정은 항상 선거를 얼마 안 남기고 졸속으로 이뤄져 왔으며, 그 최종 결과는 변함없이 기존 의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언가 좀 다를까 하는 기대를 약간 하게 된다.낙관적인 기대를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표의 등가성 원칙을 내세우며 선거구간 최대 인구편차 기준을 3:1에서 2:1로 낮추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부 충격은 의원들을 어려운 정치적 상황에 빠뜨렸다. 새 기준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기존 선거구의 대대적인 개편이 불가피하며, 그 과정에서 많은 농촌출신 의원의 지역구를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의원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인구 기준을 강조하면, 수도권에 비해 지방, 그리고 도시에 비해 농촌 지역의 대표성이 상대적으로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정치권이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중앙선관위 산하에 설치하면서 과거에 비해 독립성과 권한을 강화해 주었다. 그리고 단순히 선거구획정 문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선거제도 개편과 의원 정수 문제까지 폭넓게 논의하고 있는 것도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현재 정당에 따라, 또 의원 개인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당파적 이익, 의원 개인의 이익을 떠나서 보다 객관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어떠한 결론에 도달하게 될까? 참여연대가 지난 6월과 7월 사이 정치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1.2%가 현행 선거제도를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응답자의 70% 이상이 의원 정수를 33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정치학자라고 해서 개인적인 정치성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치인에 비해서 덜 당파적이고,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 볼 가능성이 높다.이러한 조사결과에 대해 일부 국민은 놀랄 수 있다.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정치를 공부하는 사람은 정치인 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민은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한다. 물론 대부분이 선거제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정치에 대한 폭넓은 불신을 가진 상태에서 의원정수 확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그렇다면 왜 다수의 정치학자들은 의원정수 확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한국 정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안으로서 선거제도의 개편이 필요한데,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서 의원정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학자들이 의원정수 확대를 주장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정수확대 없이 헌재의 2:1 기준에 따라 선거구 획정을 할 경우 지방과 농촌의 대표성 훼손이 불가피한 정치 현실 때문이다. 만약 의원정수를 확대한다면, 이를 비례의석에 배정한 후 비례의석을 권역별 혹은 광역단체별로 배분하는 과정에서 지방과 농촌의 대표성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선거구 획정이라는 난제 해결의 열쇠는 의원정수 확대에 있다. 물론 국민 사이에 널리 퍼진 정치불신을 감안할 때 의원정수 확대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의원정수 확대가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한국의 정치발전과 연계되어 있으며, 또한 이를 통해 지방과 농어촌 지역의 대표성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면, 정치권·학계·시민단체·언론이 힘을 합하여 국민을 얼마든지 설득할 수 있다.현재 의원들은 국민 여론을 핑계로 의원정수 확대에 매우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의원정수 확대는 기존 의원들에게는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의원 수가 확대될 수록 희소가치와 특권의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의원들이 국민 여론을 무기삼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의구심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의원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일부 포기하는 조건으로 의원정수 확대를 제안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2015-08-06 김 욱

8·15 경축사에 담아야 할 내용

北체제 압박·제재만으로는 피로감·무기력증 자초평화통일 원칙·합의서 존중·정상회담 제의 필요대립국면 지속 vs 대화재개 훈풍… 중대한 기로내달 15일이면 광복 70주년을 맞는다. 우리 민족에게 광복절은 남다르다.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에서 벗어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국토가 다시 둘로 쪼개졌다. 전범 국가인 일본은 하나이고 피해 국가인 한국이 두 개로 쪼개진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광복이란 완전한 해방으로써 통일을 의미한다. 역대 정부는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통일논의를 진전시켜 왔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평화통일구상을 제시했다. 남북이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실체를 인정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자는 것이다. 1971년 8월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됨으로써 분단 25년만에 남북대화가 시작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과 99년에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대북화해협력정책의 추진 기조를 명확히 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의 단초를 마련했다. 광복절 경축사에 담긴 대북제의와 정책추진 기조가 남북관계의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을 보여준다.광복 70주년을 맞아 박근혜 대통령의 경축사에 담길 통일비전과 대북제의의 내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경축사를 통해 남북관계 반전의 기회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작금의 남북관계는 불안정하고 앞날도 불투명하다. 우리 측의 거듭된 고위급접촉 제의에 북측은 거부하고 있다. 당국 간 실무회담인 개성공단공동위원회 회의도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다. 체제세습이니 공포정치니 하면서 모든 책임을 북한에 전가해 봤자 남북관계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체제유지에 자신감이 붙은 김정은 제1위원장은 자기식대로 남북관계를 끌고 가려는 모습이다. 젊은 지도자의 독단적 방식은 자신의 구미에 맞는 남북대화만을 요구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 북한은 과연 미얀마·이란·쿠바와 같이 서방세계에 문호를 개방하고 변화의 길로 나설 것인가? 체제의 보루인 핵을 포기하고 우리와 손을 잡을 것인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북한 문제에 피로감이 누적되어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그러나 압박과 제재만으로 김정은 정권이 변화하기를 바라는 것은 피로감과 무기력증을 자초하는 것이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통령은 남북관계 철학을 되새겨야 한다. 남북이 함께하는 평화통일의 철학이다. 통일부를 비롯한 외교안보부처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대화와 유연성이 전략적 접근의 기본이다. 물밑접촉·비공개회담·특사교환·중재자 활용 등은 과거의 잘못된 방식이 아니라 협상의 ABC이다. 박근혜 정부의 보수적인 지지계층은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탈피해야 한다. 제재·압박·고립을 통한 북한 붕괴론은 오히려 김정은 수령독재체제를 더욱 강화 시킬 뿐이다. 남북한 체제 경쟁은 끝난 지 오래다. 북한체제와의 기 싸움은 시간 낭비이다. 올해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현실적이면서 통 큰 대북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첫째,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 손잡고 국제사회의 지지하에 평화통일이 되어야 함을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7·4 공동성명에서부터 10·4 정상선언까지 기존 남북한 합의서를 존중한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셋째, 남북한 최고지도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광복·분단 70주년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해야 한다.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특사교환방문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상회담 개최가 부담스러우면 추석맞이 이산가족 상봉과 연내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고위급회담을 제의해야 한다.현 단계 남북관계는 불안정 속에 대립국면을 지속할 것인지 대화국면으로 전환할 것인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이희호 여사 방북·박근혜 대통령의 통 큰 대북제의·정상회담 개최·이산가족상봉·금강산관광 재개·북미대화·6자회담 재개 등 한반도에 훈풍이 불 것인지, 아니면 북한의 일방적인 8·15 행사·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군사훈련·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강화·북한의 맞대응 핵실험 등 한반도의 긴장이 더욱 고조될 것인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달려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5-07-30 양무진

과거시험 답안지에 담긴 국가경영의 지혜

정치·경제·사회·국방 등 시대정신 총망라임금과 신하·유생 서로 존중·소통 지혜 모아현 시험제도 문제점 전통속에 대안 있을 수도요즈음 부쩍 인적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백만의 매뉴얼도,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사람의 손길과 마음이 닿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유능한 인성이 좋은 인재를 선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선발시험은 채점의 편의를 위해 사지선다나 오지선다형 출제를 하니 능력과 인격과 지혜를 가름하기는 어림도 없다.우리가 지나간 과거는 현재만 못한 것으로 쉽게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고 더구나 기계문명에만 의지하고 물질만능의 풍조, 실용성에만 치우치다 보니 생각하는 교육, 이상과 소신을 물어보는 시험은 뒷전으로 밀리고 암기를 통해 찍어내는 시험에만 익숙해 졌다.고려 광종 때부터 시행되었던(958년) 과거제는 조선시대에 확대되어 우리 실정에 맞게 고치고 다듬어서 최고 권위의 인재 선발시스템으로 정착시켰다. 본질적으로 개인의 능력을 중시했던 과거제는 자연스럽게 신분이동의 통로가 되었다는 데 근대성을 내포하고 있었고, 공부와 교육의 중요성을 더욱 고양시킴으로써 지식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켰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후대 역기능적인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관료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공직자로 갖추어야 할 도덕적 기본 자질은 물론 국가운영의 현안과 고충을 위한 해답과 지혜를 얻으려 했다는 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인재선발 책이었음은 분명하다.과거시험 답안지를 보면 내용도 훌륭하지만 임금 질문의 솔직함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 예로 조선왕조 제11대 임금 중종(1488~1544)은 1515년 과거시험에 이런 문제를 냈다. “내가 부족한 덕으로 다스린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나라의 기강과 법도가 세워지지 않으니 요순시대 정치에 이르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대책을 논하라”는 질문에 조광조는 거침없이 그의 소신을 장문의 답안지에 피력하였다. 첫째, 임금은 하늘의 이치로 사람을 인도하고 감화시켜야 하는데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둘째, 임금이 하늘이라면 신하는 사계절이라 할 수 있는데 신하들을 잘 활용하여 조화의 정치를 하여야 한다. 셋째, 명도(明道)와 근독(謹獨)인데 항상 도를 밝히는 데 전념하고 누가 보나 안보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늘 삼가며 지켜야 할 도리를 강조하였다. 마지막 구절에는 죽음을 무릅쓰고 이 답안을 썼다고 비장의 각오로 표현하였다. 이와 같은 젊은 유생들의 생각은 참신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집념을 가지고 공부했던 지식과 지혜를 동원하여 열정을 다해 답안을 작성하였다. 정몽주의 문무병용의 방안, 정약용의 오객(五客)이라는 제목으로 인재를 재능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는 답안, 박세당의 세금경영 등 재정을 국가시스템으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제언 등 그들이 작성한 답안지, 즉 시권(試券)에는 영혼이 있고 감동이 느껴진다.당시 임금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시제(試題)는 나라의 안정적 발전에 기여할 양질의 인재, 세금제도 등 사회경제적 장치의 효율적 운영, 도적방지 등 사회 안전망의 강화, 신하와 백성들과의 화합, 왕도정치의 실현 등 정치·사회·문화·교육·국방·외교를 총망라하여 시대정신에 따라 다양하였다. 과거시험을 통하여 임금과 신하와 유생들이 서로 존중하면서 소통하는 가운데 국가경영의 지혜를 모으는 것이었다.지금의 대학입시 또는 국가고시에 식견과 경륜을 묻는 항목이 없는 것은 전통의 단절이다. 우리는 늘 온고지신을 외치지만 그것의 구체적 실천과 적용에는 소홀하다. 현행 시험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만 낼 것이 아니라 그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때로 그 대안은 결코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전통 속에 그 해답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고,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시권을 소재로 하는 전시를 통해 양질의 한국적 가치를 발굴하고 또 알려야 하는 이유다./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5-07-16 이배용

기로에 선 대통령과 의회 관계

‘유승민 사퇴’ 대통령제 성패 중대한 영향 미칠것불미스러울지 건전한 관계될지… 향후 마무리 중요민주주의 퇴보처럼 보이겠지만 일시적 현상일뿐지난달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시작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퇴 게임이 2주일 만에 유 원내대표의 사퇴로 일단락됐다. 이번 사태에는 새누리당 내 권력 투쟁, 박근혜-유승민 두 정치인 간의 개인적 인연,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그 핵심에는 대통령-의회 관계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사태가 향후 어떻게 마무리될 지는 지켜봐야 하겠으나,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이번 정권의 향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 대통령-의회 관계의 미래, 그리고 한국 대통령제의 성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다.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에게 보장된 특권 중의 하나로 모든 대통령제 국가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 자체는 별문제가 아니다.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그 내용이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통제를 강화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으로서 이를 달갑지 않게 생각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의사를 국회에 표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중요한 것은 거부권 행사의 방식과 사후 처리에 있다.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의중은 이미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국회의 대행정부 권한 강화라는 취지에 여야가 동의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행정부(대통령) 권력과 비교하면 국회의 권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정치적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권위주의하에서 행정부의 시녀라는 오명을 쓰고 있던 국회가 민주화 이후 점차 국회의 대행정부 독립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제도적 권한을 확대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회의 독립성 확보와 권한 강화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커다란 징표 중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문제는 아직도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감지하면서도 거부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대통령의 의중을 거슬려 국회법 통과를 주도한 유승민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 즉 박 대통령과 주변 참모, 그리고 대통령을 무조건 추종하는 소위 친박 정치인들이다.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유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규정하는 박 대통령의 언술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신뢰를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은 존중해야겠지만, 강력한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입법부-행정부가 융합되어 있는 내각제가 아니라 두 부처가 분리 독립된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은 의회 권력의 중심에 있는 정치인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대통령제의 모델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대통령 권력의 제한성은 상식이다. 미국 대통령 연구의 대가인 뉴스타트(Richard Neustadt)는 대통령의 가장 큰 힘은 설득하는 힘이라고 이미 오래전에 설파한 바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이나 제도(특히 의회)의 협력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인 행동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의미이다. 또한, 대통령제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의회가 끊임없는 소통과 대화를 통해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설득받아야만 함을 의미한다.우리가 권위적인 대통령제가 아니라 민주적인 대통령제를 원한다면, 그리고 박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온화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면, 이번 사태를 현명하게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가 대통령의 한 마디에 여당의 원내대표가 쫓겨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기억될지, 아니면 보다 건전한 대통령-의회 관계를 마련하는 발판이 될지는 향후 마무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처럼 보이는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보다 수평적인 대통령-의회 관계를 통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장기적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2015-07-09 김 욱

남북간에 비공식 특사교환 필요하다

정부, 대북정책 신뢰 명분 있지만 실리추구 약해‘골든 타임’ 걸맞은 전략 부재 안타까울 뿐치열한 외교현장 얽힌 실타래 풀 ‘조정자’ 절실6월부터 8월까지 남북관계의 골든타임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보면 남북관계에서 골든타임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우리의 희망사항은 아닐는지? 또 골든타임을 놓치면 남북관계는 영영 회복이 어려운 건지? 여러 가지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남북관계의 경색은 무엇보다 북한의 요인이 크다. 집권 4년차를 맞은 김정은 정권은 어느정도 통치의 자신감을 가진 듯하다. 핵개발이나 SLBM 실험 등 체제보위 수단을 강화하는 한편, 다양한 현지지도를 통해 선대에 필적하는 지도력을 과시하려 하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정치경험이나 깊은 철학이 부족한 젊은 지도자가 과도한 자신감과 오만함으로 인해 소위 자기방식대로 대외관계를 가져갈 경우 남북관계의 경색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2013년 개성공단 일시중단이나 지난 5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 허가 철회, 광주 U대회 참가철회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변덕과 비일관성은 문제다. 이는 현재 북한 내부의 정책결정과정이 젊은 지도자 한 사람의 판단과 그 지도자의 즉흥성에서 비롯되고 있다.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을 반영하듯이 다시 국방위원회 등 보수군인들이 대남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고 소위 ‘대화파’나 ‘비둘기파’들은 보이지도 않는다.박근혜 정부는 올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제의해 왔으나 북한의 계속적인 대화 거부에 푸념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아쉬운 것은 아직 남북한이 기싸움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골든타임도 때가 있는 법이고, 적절한 카드를 적절한 시기에 사용해야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흔드는 패는 지금이나 작년이나 재작년이나 비슷한 것 같다. 독일의 경우 1970년대 초 대동독정책의 근본 틀을 바꾸었다. 그토록 동독정권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동독체제를 인정하는 대신 동독으로부터 교류와 협력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변화를 이끌어 냈다.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택한 것이다. 이후 한해 300만~400만명의 동서독 주민들이 서로 오고 가면서 친척과 가족들을 상봉하고 분단의 고통이 점차 해소되었다. 이를 위한 통신, 우편, 교통 등 각종 교류협력의 제도적 장치들도 확충되었다. 서독 정부는 대동독 차관을 반대급부와 연계시켜 동독 정부의 양보를 받아냈고, 동서독 관계의 주도권을 확보해 나간 것이다.이런 차원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신뢰라는 좋은 명분은 있지만 실리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너무 미약한 부분이 있다. 정부는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최근 가뭄 지원이나 이희호 여사의 방북 등을 추진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은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근본적인 시도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다고 갑자기 5·24 조치를 해제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핵개발이나 무력도발을 지속하고 있는 북한에게 아무런 확약없이 막무가내식 주장을 수용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골든타임, 골든타임이라고는 하는데 사실 이에 걸맞은 전략이 부재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곧 8·15 광복 70주년을 맞는다. 정부는 올해 초 광복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남북공동행사 등의 사업을 다양하게 구상한 바 있다. 그러나 6·15 남북공동행사가 무산되면서 이마저도 성사되기 어려워 보인다. 남북간에는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늘 대화가 부족하다.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에 신뢰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미중수교나 서독의 통일외교 등 치열한 외교현장에는 헨리 키신저나 한스 디트리히 겐셔와 같은 조정자(coordinator)가 있었다. 남북간에 비공식적으로 특사를 교환하여 얽힌 실타래를 하나둘씩 풀어나가보는 것은 어떨까? 이제 곧 9월 중국의 항일 전승절에 남북 정상의 참여문제로 시끄러울 텐데, 이러한 계기를 활용하기 위해 지금부터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전략을 마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5-07-02 양무진

미당 서정주 시전집

詩 950편 ‘탄생 100주년’ 맞아 사후 첫 간행한국 시문학의 역사이며 우리 생활언어의 변천사우리도 이제는 서로의 흠결 관용으로 껴안아 줘야미당 서정주 시전집(전 5권)이 최근 출간됐다. 1933년부터 2000년까지 70년 가까운 창작기간 동안 발표한 시들 950편을 모아 미당 사후 처음으로 간행하는 정본 시전집이다. 문학계의 경사다. 서정주는 한용운, 김소월, 정지용, 김영랑, 백석 같은 선배 시인들보다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을 했으며, 훨씬 많은 작품을 남겼다. 파란만장한 우여곡절과 번민하는 오욕칠정을 지나 심층 생의 매력을 탐구하는 삶의 지혜와 원숙한 달관을 풍성하게 보여준다. 더구나 올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다. 뜻깊은 시기를 맞아 시의 한 생애와의 온전한 만남은 거듭 경사스러운 일이다. 미당 시전집은 한 개인의 생애사이기도 하지만 우리말과 정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가령 그가 20대 초반에 쓴 ‘화사’라는 시에서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뚱아리냐” 했을 때, 현대 맞춤법 규정과 충돌하는 이상한 소릿값을 감지하게 된다. 주류어가 아닌 변두리어, 교양인의 문어가 아닌 일상 구어로서 자존감을 지켜 나가려는 젊은 시인의 의지는 ‘푸른 하늘을 원통히 물어뜯어야 하는’ 뱀의 저주받은 운명과 동일시되어 일제 강점기의 혹독한 환경에 대응하는 ‘조선어의 투혼’을 증언한다. 암시적 어법 속에 강렬한 저항의 포즈가 있는 것이다.‘큰 이얘기 작은 이얘기들이 오부록이 도란그리며 안끼어 드는 소리.……’(내리는 눈발 속에서는)가 보여주는 관용과 긍정의 세계는 한국전쟁 뒤의 참화와 폐허를 견뎌내는 민초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으며, ‘이때는 꽃은 아직 없었고/꽃노릇을 대신하고 노는 것은/초록빛 도마뱀들이었었네/그리고 타오르는 불빛의/제비들이 날아다녔네.’(멕시코의 영봉 씨트랄테페틀이 어느 날 하신 이야기)에 오면 세계를 굽어보는 여유와 활달한 상상력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그래서 이 시전집은 그 자체로 한국 시문학의 역사요 우리 생활언어의 변천사다.미당의 아름다운 시 세계를 향한 공감과 도취의 반대편에 그의 처신에 대한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의 시인 랭보는 ‘흠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노래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모든 흠결이 덮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당 문학을 다 읽기 전에 그의 흠결부터 말하는 성급함에서 잠시 비켜서는 일은 권면할 만하다. 우리 문학사는 ‘시의 생애’라 부를 만한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져본 적이 없지 않던가. 시인은 “세계의 명산 1천628개를 다 포개 놓은 높이보다도 시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는 한정 없기만 하다”고 토로한다. 시가 생의 매력에 대한 심오한 탐구라는 뜻이다. 돌아보면 우리들 삶은 어제 오늘 다를 바 없다. 뜨거운 난로 위의 물방울처럼 이리저리 몰리며 뛰어다닌다. 급하고 강퍅하고 메마르고 팍팍하다. 배려와 관용과 인내심도 부족하다. 자기 잘못보다는 남의 탓을 하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을 드러내어 헐뜯는다. 좋은 것을 좋다 말하려 해도 주변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 우리는 어느새 진중하고 심오한 생의 심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가 서로의 흠결을 보면서 위로와 관용으로 껴안아 주는 일은 미룰 일이 아니다.원로 언론인 김성우는 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는 어느 색도 물들일 수 있고 어느 색도 지울 수 있는 백색의 염료다. 그리고 아름다운 시가 녹이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분노도 어떤 원한도 시는 용액처럼 녹인다.” 시에는 정서순화의 기능은 물론 상처치유의 기능도 있다. 미당 서정주 시전집이 보여주는 ‘시의 생애’가 바로 그렇다./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2015-06-25 윤재웅

우리에게는 독립기념일이 없다

일제 왕비시해에 백성분노 응집된 이름 ‘대한민국’백범선생의 첫째·둘째·셋째도 소원이었던 ‘독립’명색이 독립국인데 독립은 아직도 어려운 숙제우리에게 독립은 익숙한 말이다. 독립협회도 독립문도 독립신문도 독립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기원하는 의미의 독립이었거나 그 뒤에 생긴 독립군은 마적패로 몰리면서 일제의 토벌 대상이 되었던 군대였다. 대한제국은 백성들의 헌금으로 독립문을 세우고 우리는 그걸 국보로 삼고 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의 개선문적 성격이 짙은 그 독립문은 대한제국과 함께 일제의 감시와 묵인 하에 벌인 조선왕조의 마지막 불꽃놀이였다. 그것들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비를 끔찍하게 시해했던 일제가 들끓는 국제적 여론에 몰리어 시혜적으로 베푼 잔치였던 셈이다. 사무라이들을 동원하여 조선의 왕비를 시해한 사건은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일제가 저지른 만행들 중 으뜸가는 원죄다. 일제는 그 흔적을 지우려고 왕비의 주검을 현장에서 화장해버렸고, 조선왕조는 2년이 넘도록 그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범인을 처벌한 뒤에 장례를 치러야 하는 왕가의 규율 때문이었다. 왕비를 시해한 사무라이들에게는 손도 못 대고 왕비의 주검을 화장할 때 장작더미를 옮겼던 궁인들 세 명을 범인이랍시고 처형했지만 그런 꼼수는 이미 장례의 명분으로는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왕비시해 장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는 에조(英臟)보고서에는 옷을 벗긴 나신(裸身)의 왕비를 사무라이들이 능욕한 뒤 칼로 찔러 죽이고 화장했다고 적혀 있다. 대한제국은 그렇게 시해당한 왕비를 황후로 승격시켜 장례의 명분으로 삼는다. 능욕당하고 화장당한 왕비는 시신도 없는 황후가 되어 그렇게 장례를 치렀다. 당시의 자객 가쯔이까는 왕비에게 휘둘렀던 칼을 쿠시다 신사에 자랑스럽게 기증했다. 독립을 잃은 식민지의 참극이 어찌 이뿐이었겠는가. 왕비가 시해당한 뒤 대한제국의 친일내각 총리 김홍집은 광화문 네거리에서 격분한 군중에게 맞아 죽었다. 안중근 장군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도 왕비시해사건이 부른 피의 복수였고 황해도 해주의 평범했던 청년 김창수(김구)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직접적인 이유도 일제의 왕비시해 만행 때문이었다. 백범 선생은 일본군인을 맨주먹으로 타살(打殺)하고 사형을 언도 받고 구사일생으로 탈옥하여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해서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정한다.일제의 왕비시해 만행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응집된 이름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백범 선생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독립이 소원이라고 그의 일지에 썼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날, 연합군의 승전기념일, 우리가 광복절이라고도 하는 그 날이 민족의 광복이나 해방이나 독립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흉탄에 쓰러지기 훨씬 전부터 백범 선생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미국은 8월 10일, 그러니까 해방도 되기 전에 미리 38선을 그어 조선의 임시적 분할점령을 소련에 제안하고 소련은 이를 즉시 수락한다. 국토분단과 한국전쟁의 단초를 제공한 그 삼팔선은 그러나 임시적 분할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차세계대전 이후의 냉전구도에 대비한 미국의 면밀한 계획의 결과물이었다.한국전쟁 후 삼팔선 대신 휴전선이 생기고 60년 넘도록 우리에게는 아직도 독립기념일이 없다는 것을, 독립은커녕 해방이 되기도 전에 한반도는 미리 분할점령부터 당했다는 것을, 명색은 독립국이면서도 독립이라는 흔한 말이 왜 이토록 어려운 숙제인가를 우리는 아직도 침통하게 되새기고 있다. 핵무기에 버금가는 탄저균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 땅에서 여러 해 동안 실험해왔던 미국이 요즘 수시로 군불 지피는 걸 보면 우리나라는 또 천문학적 비용를 감당하면서 아마도 자청하여 사드를 설치할 것만 같다. /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2015-06-18 정 양

진화 중인 중앙-지방 관계

단체장·교육감, 점점 힘 강해지면서 중앙과 갈등주도적 역할수행, 진화해 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서로 혁신과정 적절하게 수용해 협력 이끌어야이번 메르스(MERS) 전염병 사태는 한국 사회의 여러 부정적 측면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정치적으로 두드러진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력 부재이다. 지난 6월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메르스 관련 긴급기자회견 이후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잘한 일이라고 하고, 다른 편에서는 중앙정부를 무시한 월권행위라며 비판하고 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은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사실 중앙정부, 지방정부, 그리고 시도 교육감 사이에서의 갈등 혹은 협력부재 현상은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정치적 현상이다. 작년 말 교육부와 서울시 교육감 사이에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를 두고 벌어진 힘겨루기, 올해 발생한 누리과정 무상보육 예산편성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자체, 시도 교육감 간의 갈등, 그리고 무상급식을 둘러싼 경남도지사, 경남교육감, 경남 도내 시장·군수들 간의 갈등 등은 좋은 사례들이다. 시도 교육감도 국민의 투표에 선출된 정치적인 자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모든 사례들은 상이한 수준의 정치권력 간 갈등 내지 협력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다.어떻게 보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혹은 상이한 수준의 정치권력 사이)에서의 갈등은 당연한 일이며, 실제로 지방분권화가 일정 수준 이뤄진 국가에서는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수평적으로 나눠진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이 서로 갈등하듯이, 수직적으로 나눠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권력 또한 갈등하게 되어 있다. 권력은 나눠지면 서로 갈등하고 투쟁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아무리 법으로 두 정부의 영역과 역할을 구분하려고 해도 실제 정치과정과 정책과정에서 정부 간 영역 다툼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한국은 지방선거가 부활하고 진정한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20여 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지방분권화는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오랜 중앙집권화의 전통과 미약한 지방분권화로 인해 지방정부가 상대적으로 열세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단체장과 교육감들이 독립적인 정치적 기반을 가지게 되면서 점차 자기 목소리를 낼 필요성과 자원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중앙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던 환경에서 점차 지방의 힘이 강화되면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두 가지 대조적인 해외 사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시사점을 준다.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는 공화국 출발 당시 주정부의 힘이 연방정부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연방 정부의 힘이 강화된 사례이다. 반면 대표적인 단방제 국가인 영국은 강력한 중앙정부를 가지고 출발했으나, 지방자치가 발전해 가면서 지방정부의 힘이 강화된 사례이다.이 두 가지 사례에서 찾을 수 있는 시사점의 하나는 중앙-지방 간 관계가 늘 균형을 찾아 진화하고 있으며, 그 균형점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또 한 가지 시사점은 이러한 진화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권력을 가진 쪽이 자발적으로 권력을 양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권력을 빼앗는 과정에는 많은 갈등과 어려움, 심지어 내전까지 있었으며, 미국정치의 역사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관계의 진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영국에서 지방정부의 권력강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지방정부와 수장의 끊임없는 혁신과 주도권 행사 노력이었다.한국은 현재 지방 열세상황에서 중앙에 대한 지방권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것은 시대적 흐름이며, 지방선거가 계속되는 한 멈출 수 없는 추세이다. 따라서 각종 자치단체와 그 수장에 의한 혁신과 주도적 역할 수행은, 그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서, 이러한 진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러한 중앙-지방 간 관계의 변화와 진화과정을 적절하게 수용함과 동시에, 양자 간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2015-06-11 김 욱

우리나라는 사춘기를 벗어났을까?

외형보다 내실 추구 ‘거화취실’… 선진국 향한 조건포장된 공약에 환경·교육정책 오락가락해선 안돼사회 요구 인재상도 점차 능력·인성 위주로 변화최근 읽은 책 속에서 저자는 중국을 사춘기 소녀처럼 감정이 아주 예민하고 불안정하면서,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사춘기의 나라’라고 표현했다. 한참 사춘기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학생 아들의 모습을 함께 상상하면서 ‘우리나라는 과연 사춘기를 벗어났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본다. 사춘기 아이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급격히 성장하는 과정이라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이고, 자기중심적이면서 겉으로 보이는 외형적 모습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대부분 아이들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넘기고 올바른 자아와 가치관을 가진 참된 성인으로서 성장해 간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 참된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에 비춰 아직 인간의 됨됨이와 내면의 충실함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을 더 중요시하고, 자기중심적 사고에 사로잡혀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사춘기 성인’이 적지 않은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스스로 답을 적어본다.우리나라가 사춘기를 벗어나 참된 성인, 즉 선진국으로 성장해 가는데 ‘거화취실(去華就實)’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국내 모기업의 경영철학으로도 유명한 이 사자성어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을 중요시하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내실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변화와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오랜 시간을 걸쳐 완성돼 온 선진국의 다양한 정책과 제도를 화려하고 거창한 단어로 포장해 여기저기서 마구 쏟아내고 있다. 물론 성공적인 변화와 개혁은 새로운 정책과 제도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기존에 시행하고 있는 정책과 제도에 대한 충분한 평가와 환류, 내실화를 위한 투자와 노력 없이 무조건 새로운 정책과 제도, 조직이나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에는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도자의 강력한 추진력에 의존해서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가시적이고 하드웨어적 성과만을 생각하고, 정책이나 계획수립 단계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최적의 대안을 이끌어내는 힘든 과정을 소홀히 한다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빠져있는 사춘기 아이들과 다름없을 것이다.내실화를 위한 노력은 정치·경제·교육·환경·복지 등 모든 분야에서 필요하다. 특히, 한번 훼손되면 복원하기 힘든 환경 분야와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 올바른 자아와 가치관을 가진 참된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 분야의 내실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화려한 수식어구로 포장된 정치적 공약에 묻혀 중·장기적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추진해야 할 환경과 교육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환경정책이나 제도는 매우 선진화되어 있다. 예를 들면, 최근 환경영향평가제도는 개발사업뿐만 아니라, 정책이나 계획 단계에서부터 환경영향을 고려하기 위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새롭게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선진화된 제도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정밀한 환경정보와 관련 전문가의 부족, 개발사업비에 비해 턱없이 작은 평가비용, 관련 행정기관의 무관심과 형식적인 대처 등은 환경영향평가제도의 내실화를 위해서 우선 해결해야 할 숙제라 하겠다.최근 대학교육의 특성화와 내실화, 유치원 및 초·중등학교의 인성교육 강화를 위한 다양한 교육정책과 사업을 추진하고, 기업 등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상도 화려한 스펙만을 우선시하는 경향에서 내실 있는 직무능력과 인성을 점차 중요하게 고려해 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재미있게 이야기처럼 수학을 풀어가자는 목적으로 도입된 ‘스토리텔링 수학’이 본연의 목적과는 달리 ‘국어야, 수학이야?’ 초등학교 2학년 딸내미의 질문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다시 한 번 ‘거화취실’을 강조하고 싶다./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5-06-04 박경훈

석남꽃 이야기

신라시대 연인의 애절한 사랑에 등장한 꽃젊은 예술가들 전통이야기 콘텐츠화 했으면…정성 다해 투자한다면 놀라운 미래 열릴것바람이다. 바람 분다. 남풍 동풍 훈풍 분다. 그 바람 빗겨 타고 종달새 쨋재거리고, 우쭐우쭐 청보리는 제 허리통 부끄럽다. 우람한 산엣총각, 수줍은 들색시 썸타는 5월. 햇살은 서글서글, 따끈한 듯 선선하다. 태아들은 그래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생명이다. 숨결이다. 가슴 뛰고…, 피는 잘 돌고…, 마음은 박자도 없이 퉁기쳐 달아나는 꿩 새끼들 기분이다. 다들 몰라도 장미는 그걸 아는 눈치다. 산에도 들에도 거리에도 담장 안에서도, 장미는 별까지 자라고 싶다. 꽃피는 건 좋은 일이다. 어머니 배 속 생명의 태동처럼 아름다운 일이다. 보라. 유전자를 복제해서 생명을 영속시키는 게 사랑의 생물학적 정의다. 바람이 선들 불어 아기 발가락 꼬물거리면 지상의 모든 장미의 눈들은 나비처럼 날아올라 서로의 짝을 찾는다. 모든 생명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붓다의 가르침이 교향곡처럼 울려 퍼지는 순간이다. 5월엔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부처님 오신 날이 몰려 있어서 꽃구경을 자주한 편이다. 카네이션이며 장미며 작약꽃 송이송이들이 지하철 승객들처럼 어디에서 실려 왔다 어딘가로 실려 가고, 꽃이 있던 그 자리엔 그 빛깔과 향기의 기억만 점차 희미해져 간다. 그렇게 5월이 가는 동안 간절한 옛날 꽃이야기 하나 떠올라 꽃 사라진 그 자리를 채운다. 정보화 사회 다음 사회는 이야기와 감성이 지배하는 사회라는데 우리의 옛날 꽃 이야기는 여기에 얼마나 어울리는 콘텐츠일지 기대된다. 신라사람 최항은 자(字)를 석남(石南)이라 한다. 애인이 있었으나 부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죽었다. 죽은 지 이레 만에 그녀의 집에 찾아가 ‘이제 부모 반대가 없으니 뜻을 이루자’ 말하고 석남꽃 가지를 나누어 머리에 꽂은 채 항의 집으로 함께 오게 되었다. 항이 자기 집 담을 넘어갔는데 동이 틀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집안사람이 아침에 나와 보니 여인이 기다리고 있는지라 이상히 여겨 물으니 항이 함께 가자 해서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항이 벌써 죽은 지 여드레 되어 오늘 장사지낸다 하니 여인이 믿지 못해 사람들과 함께 관을 열어보게 되었다. 과연 여인의 말대로 항의 머리에 석남꽃이 꽂혀 있었고 벗겨져 있던 신발은 밤새 어디를 돌아다니다 온 듯 신겨져 있었다. 항이 죽은 줄 그때서야 알게 된 여인이 기막혀 죽으려 할 때, 그 소리의 기미에 놀라 다시 살아난 항. 정성 들여 여인을 살려내어서는 한 30년 함께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이 연인들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에 왜 꽃이 등장했을까? 신라 시대의 꽃은 오늘날처럼 감사의 선물로 주고받는 마음의 대체재가 아니었던 듯하다. 그것은 기념품이기보다 오히려 신성한 생명의 상징으로서 겨레의 집단 무의식에 작동하는 ‘부활 프로젝트’의 핵심 소품이었다. 우리 민족서사의 시원인 ‘바리데기 공주’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서천 꽃밭의 그 꽃이 죽은 이를 살리는 매력적인 화소(話素)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것은 석남꽃 이어도 좋고 영산홍이어도 좋으며 도라지꽃이어도 무방하다. 꽃은 식물들의 종족번식 프로그램이요 사랑의 징표인 동시에 수많은 다른 생명체들에 열매를 제공해주는 보살의 화신체 아닌가. 꽃의 이런 무의식 속에 수억 년을 이어온 생명의 간절한 추구, 사랑의 영속과 같은 형이상학이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건 신라사람 최항 만 이어서는 안 된다.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이런 전통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하여 보편적 감화력을 가지는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일에 도전해 보았으면 싶다. 이야기에 정성을 투자하는 이에게 놀라운 미래가 열릴 것이다./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2015-05-28 윤재웅

부르다가 죽을 이름이여

4·3, 4·16, 4·19… 그 많은 죽음 두고 세월은 갔다정작 용서받아야할 몸통은 끝내 나타나지 않아하늘의 말로 우짖는 새소리, 곳곳에 사무칠 것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처박혔어도 세월은 가고 4월이 가고 또 5월이 간다. 4·3이나 4·16이나 4·19나 5·18의 학살과 참살, 무고하게 짓밟힌 그 떼죽음들은 이 나라가 과연 민주공화국인가를 거듭 의심하게 한다. 방방곡곡에 암매장된 한국 현대사는 과연 언제까지 암매장된 채로 세월호와 함께 처박혀 있을 것인가.진실을 인양하자고들 하는데 배가 인양된다고 한들 과연 그 참살의 진상이 인양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진상조사위원회는 진상은폐위원회가 되고 있지 않나 하는 혐의가 지워지지 않는다. ‘세월호의 실소유주가 국정원이 아니라면 나를 고소하라’는 성남시장은 아직도 고소당하지 않았다.용서해 주고 싶어도 용서받을 몸통은 끝내 나타나지 않은 채 세월이 간다. 정권의 시녀였던 언론사 건물이 5·18 때 광주에서 불타기도 했지만 번식력이 왕성한 그 시녀들을 믿고 이 나라는 자식의 영정을 품에 안은 유족들에게 마구 최루액을 쏜다. 눈물 마를 날 없이 사는 유족들에게 얼마나 더 눈물을 쏟으라고 이 나라는 하필이면 최루액 섞은 물대포를 그토록 쏘아댄단 말인가. 짜고 매운 눈물에 범벅된 채 쓰러진 유족들을 질질질 유치장으로 끌고 가는 나라, 이게 나라냐고 사람들은 목이 아프도록 되묻는다.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이 나라가 과연 민주공화국인가를 의심하게 하는 떼죽음의 현장, 팽목항이나 거창이나 무등산이나 한라산 기슭에 소월의 시구를 새겨 초혼비라도 세운다면 떼죽음 당한 원혼들과 그 유족들에게는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될 것인가.세월호에 갇혀 생목숨을 잃은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가 며칠 전 집안에서 유서도 없이 자살했다. 그 아버지는 유서 대신 아들의 이름만 부르다가 부르다가 죽었으리라. 먼저 간 아들의 혼령은 어떡하라고 하필이면 어버이날에 자살했는지 그 소식을 듣는 사람들 억장이 막혔다. 우리 언론들은 누구한테 배운 솜씨인지 유체이탈 화법으로 그 침통한 사건을 깃털처럼 가볍게 처리하고 허겁지겁 지나갔다.세월호 참살의 진상을 유병언으로 도배질하여 세월을 보내던 언론들, 언론이 정권의 시녀임을 만천하에 자처하면서 우민화(愚民化)를 지상의 목표로 삼은 듯한 이 나라 짝퉁언론들은 요즘 정권실세의 부정부패를 정조준하여 목숨과 맞바꾼 성완종 리스트의 몸통을 어떻게든 외면하려고 별별 화제를 재생산하면서 세월을 땜질한다. 그런다고 가려질 몸통이 이미 아닌 데도 말이다.판소리 ‘적벽가’에는 이날치 이동백 등등 여러 명창들의 더늠으로 ‘새타령’이라는 노래가 전해온다. 적벽강에서 떼죽음 당한 원통한 혼령들이 원조(원鳥)라는 새가 되어, 부도덕과 잔인함과 옹졸함 때문에 레임덕을 겪는 암주(暗主) 조조를 따라다니며 그를 원망하고 비난하고 저주하는 것이 적벽가 ‘새타령’이다.새는 하늘과 땅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영물(靈物)이다. 새가 거느리며 몰고 다니는 바람 또한 하늘 아래 원통하게 죽은 혼령들을 불러내는 영매(靈媒)의 숨결이다. 새소리, 그 천의 몸짓과 만의 가락들이 바람을 거느리며 원혼들을 불러내고, 그렇게 불러낸 새소리로 동서양의 무당들은 예부터 하늘의 숨은 뜻을 헤아려 왔다.짝퉁 무당 같은 언론들이 헛소리로 세월을 땜질하며 우민화의 페달을 밟아도 새들은 온갖 하늘의 말로 세상일을 콕콕 찍어가며 지저귀리라. 산산이 부서진 이름들, 부르다가 죽을 이름들, 이 나라 떼죽음의 현장 곳곳에도 하늘의 말로 우짖는 새소리들이 계절도 없이 못 견디게 사무칠 것이다./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2015-05-21 정 양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환상

인사·공천 권한 상당히 제한적으로 변한 현실민주화 이후 독자적 결정할 수 있는것 많지 않아국회와 수평적 관계에서 견제와 협력 이뤄야한국의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알려져 있다. 언론에서 이러한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야당에서 대통령을 견제할 때 가장 즐겨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제가 한국에서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다. 제왕적 대통령은 혹시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가능성 또한 매우 낮다. 대통령제 하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대통령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민주적인 대통령제라면, 대통령은 절대적 힘을 가질 수 없다. 대통령제의 가장 큰 특징은 대통령과 의회 간 구조적 분리이며, 또한 이 분리된 두 기관이 정책결정 권한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늘 국회의 견제를 받게 돼 있으며, 국회의 협력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권력 융합을 특징으로 하는 내각제 하에서 수상이나 총리가 의회의 협력을 어느 정도 보장받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국 대통령제의 성패는 대통령-의회 간 협력의 달성 여부에 달려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과거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시절 대통령이 누리던 제왕적 권한은 민주화가 되면서 이미 사라졌지만, 우리의 기억은 아직도 과거에 머물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없어졌어도 제왕적 ‘대통령’의 가능성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치 제도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매우 제한적임에 틀림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이 여전히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의 주된 근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대통령의 인사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본인이 속한 정당에서 행사하는 공천권이다. 이 두 권한을 가지고 대통령은 의원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현재의 정치 현실에서 이 두 권한 또한 상당히 제한적으로 변했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여전히 중요한 당근임에 틀림 없지만, 최근의 총리와 장관 임명 동의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고유권한 또한 상당부분 국회 그리고 여론의 견제를 받고 있다. 한편 대통령의 의원 공천권은 실로 엄청난 권력이며, 비민주적 정당 구조로 되어 있는 한국의 특수 상황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상적인 권력 또한 점차 줄고 있다. 3김(金)이 물러난 이후 정당 구조가 과거에 비해 점점 분권화되어 가고 있으며, 단임제 하에서 레임덕 현상의 조기화로 인해 대통령이 공천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6년 총선 때 임기를 1년 반 남겨 둔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공천을 좌지우지할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한국의 대통령(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정치현실과 기대와의 커다란 격차에 있다. 많은 국민·언론, 그리고 심지어 정치엘리트 조차도 대통령이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으며, 따라서 대통령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현실 하에서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민주화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이 시간이 갈수록 지지율의 감소를 경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향후 한국 대통령제의 올바른 개혁 방향은 대통령의 권력 약화가 아니다. 이미 대통령의 힘은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제한적이며, 국회의 힘은 상대적으로 커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통령과 국회 양자 간에 견제와 함께 동시에 협력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일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원집정부제의 도입이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적절치 않다. 사실 이 제도의 취지는 대통령 힘의 약화가 아니라 대통령과 의회 간 연결고리의 마련에 있기 때문이다.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한다면, 중임제의 도입을 통한 레임덕 현상의 완화도 필요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당정치의 발전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민주적으로 활발하게 작동하는 정당을 연결고리로 대통령과 국회가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에서 견제와 협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대통령을 위해서 당장에 시급한 것은 대통령 자신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환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2015-05-14 김 욱

귀농·귀촌 활성화와 살기 좋은 농촌 만들기

정부 ‘살고 싶은 농촌’으로 변화되게 관심 필요귀농인 교육프로그램·지원 전문인력 양성 시급지속가능한 ‘농촌형 비즈니스’ 시스템 갖춰야요즘 귀농·귀촌은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한 40~5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마치 유행어처럼 흔히 듣는 얘기가 되고 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도시의 높은 집값과 비싼 생활비로 힘들어진 가정형편을 해결하거나, 도시에서 벗어나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서가 대부분일 것이다. 최근에는 점점 어려워지는 취업난 속에서 귀농을 선택하는 40대 이하의 젊은 층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학기 한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고 외삼촌이 계시는 시골로 가서 농업으로 성공하겠다는 당찬 각오를 남기면서 자퇴신청을 하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지역으로 귀농·귀촌하는 인구가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지난 3월 19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귀농·귀촌인 통계’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농촌으로 이주해 농사를 짓는 귀농가구는 2013년 대비 2% 증가한 1만1천144가구로 40~50대의 1~2인 전입가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전원생활을 선택한 귀촌가구는 작년 대비 무려 55.5% 증가한 3만3천442가구로 나타났다. 귀촌은 주로 수도권에 인접해 생활여건이 좋거나 자연경관이 좋은 농촌지역에 집중되었고, 연령대와 전입가구원 수는 귀농가구와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우리나라 농촌지역이 저출산·고령화 단계를 넘어 무(無)출산·초고령화의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현재 상황에서 귀농·귀촌가구가 계속 증가한다는 것은 농촌 살리기를 위한 작은 희망의 메시지로 느껴진다.이젠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귀농·귀촌가구의 증가를 쇠퇴하는 농촌에서 살기 좋은 살고 싶은 농촌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지난 1월 20일 제정된 ‘귀농어·귀촌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귀농어업인 및 귀촌인의 안정적인 농어촌 정착을 유도하고 농어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법은 올해 7월 21일부터 시행되고 5년마다 귀농어·귀촌지원 종합계획을 수립해 관련 현황 및 실태 파악, 교육훈련과 전문인력 육성, 홍보 및 정보화 촉진, 재원 조달 등의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게 된다.한편 귀농이나 귀촌을 선택했던 사람들이 농촌생활을 접고 다시 도시로 되돌아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귀농·귀촌을 위해서 필요한 교육프로그램과 이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전문인력이 부족한 것도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것은 귀농·귀촌을 선택하는 도시민뿐만 아니라, 이들을 공동체로 받아들일 농촌 마을 주민들에게도 모두 필요한 것이다. 지난 2001년부터 ‘더디지만 제대로 가는 길’을 걸어온 진안군의 ‘살기 좋은 농촌 마을만들기’ 경험과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다양한 시도들이 귀농·귀촌 활성화와 살기 좋은 농촌마을만들기의 해답을 찾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진안군은 전국 최초로 주민이 주도하는 상향식 마을만들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학습활동과 행정 및 마을만들기 전문가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졌고, 2006년 귀농·귀촌 정책과 결합해 연간 100가구 정도가 진안군으로 이주해 오기도 했다.마지막으로 대규모 개발사업의 유치만이 농촌 주민들에게 큰 소득을 안겨준다는 고정된 관념을 조금씩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도시로부터의 귀농·귀촌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지역마다 차별화되고 특색있는 특산물이나 청정한 농산물, 고유한 전통문화와 풍습, 그리고 자연생태 및 농촌경관·역사자원들을 서로 연계한 지속 가능한 농촌형 비즈니스 모델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데 행정과 풀뿌리 민간조직 및 전문가 그룹의 지원과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5-05-07 박경훈

근로자의 날과 노동의 종말

좁은 취업문 뚫기위해 청춘을 바치는 대학생들21세기 지구촌은 창의력이 통하는 ‘예견된 미래’대학, 노동없는 ‘무서운 지옥’ 대처능력 길러줘야5월 1일은 근로자의 날. 메이데이로 불리는 국제노동절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제정된 이 기념일은 정부나 사용자 측에서 각종 포상과 유급휴무를 후원하게 되어 있어 근로자들에겐 특별한 휴일이다. 그러나 대학에선 메이데이가 실감나지 않는다. 강의는 평소대로 이루어지고 구성원들은 특별한 기념행사 대신 하루쯤 대체 휴일을 선택할 수 있는 정도다. 메이데이는 오히려 미래의 근로자가 될 학생들을 걱정하는 날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은 세계적인 고민거리 아닌가. 이들 대다수가 대졸자들이라는 점에서 오늘의 대학은 점차 고민의 생산기지로 바뀌는 중이다.항간에 떠도는 ‘인구론’은 대학정신이 실제 현실과 부합하지 못하는 시스템적 모순을 보여준다. ‘인문계 대학생의 90%가 논다’는 자조와 푸념은 정부의 고용정책에 대한 항변이라기보다, 일찍이 ‘노동의 종말’을 예고한 제러미 리프킨의 ‘피곤을 모르는 기계들에 의한 인간 노동의 탈취’라는 무서운 지옥의 묵시록을 간과한 자책에 가깝다. 지금도 도서관에서 밤늦도록 취업준비에 열중하고 있는 수많은 대학생들은 ‘근로자의 날’이 점차 폐허화 되어 가는 지구생명 공동체를 탈출해 찾아갈 수 있는 ‘희망 행성’과도 같다. 그들은 취업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열정과 청춘과 건강과 재정을 비효율적으로 투자하는 ‘낭비족’이 되어가는 것도 모르고 돌진한다. 화이트칼라의 일자리가 점차 줄어든다는 걸, 취업을 해도 10년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좀처럼 인정하려 않는다. 문제의 심각성은 대학에서도 이런 ‘과잉 노동력’의 위기를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거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는 속담은 오늘의 청년들에게 소중한 교훈이다. 각국의 창업지원정책은 청년 일자리 창출의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 문명사적 패러다임 시프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일 뿐이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고용구조를 바꾸려면 정권 교체를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에 차선 아니면 차차선이라도 찾아야 한다. 창업이 능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위험한 모험길 치고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권유하는 문법 속에는 ‘성공은 개인의 창의와 열정과 도전정신에 달려 있다’는 ‘국가책임 회피론’이 어른거리는지도 모른다. 21세기 지구촌 시민들은 어차피 이래도 어렵고 저래도 어렵다. 컴퓨터나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상상력, 시와 미술과 음악 등이 결합하는 예술적 역량들이 오히려 ‘인구론’의 위기에 대처하는 역설이 될 수 있다면 누가 유심히 귀 기울여줄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예견된 미래다. 다만 창의성은 현실적 구현 능력이 겸비되어야 꽃을 피울 수 있으므로, 미래의 대학들은 과감한 혁신을 통해 노동이 사라지는 ‘무서운 지옥’의 현실에 대처할 수 있는 종합적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최근, 외국대학을 졸업한 뒤 그곳에서 대학관련 유통시스템으로 창업한 후 우리나라에 지사를 세우고 싶어 방한한 한국 청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아이템을 보니 흥미로웠다. 대학 내 단체 티셔츠나 학과 점퍼 등에 대한 유통시스템을 개발하여 학생들의 상권을 보호하고 대학들이 상표와 상호 등의 지적재산권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 공급이 핵심개념이었다. 마침 여러 대학들이 창업선도대학으로 지정되어 이 같이 참신한 사업 아이템을 지원하도록 하기 때문에 그 제도를 소개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권유했다. 나는 이 도전적인 청년이 성공하길 바란다. 그는 ‘무서운 지옥’에 미리 대처하고 있는 ‘퍼스트 무버’이며, 각 대학과 제휴하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는 창의적 상상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길 속에 대학의 내일을 희망적으로 꿈꿀 수 있는 새로운 사례가 보이기 때문이다.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2015-04-30 윤재웅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