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진 칼럼

 

[홍창진 칼럼] 적당주의

기존 질서에서 '적당히' 하기엔너무 힘들어 새로움을 찾는 것인간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적당주의 인생의 성적표는중간인 50점이 아니라 '0점''엑달'이라고 불리는 청년이 있습니다. 엑셀이라는 회계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 때문에 생긴 별명입니다. 좋은 재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엑달' 때문에 그 청년은 이직을 하고 말았습니다. 왜냐 하면 다른 부서 상사들까지 일을 맡겨서 밤 11시 넘어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이직한 것입니다. 다른 직장에 가서는 '엑달' 임을 감추고 적당히 지낸다고 합니다.'아이디어 뱅크'라고 불리는 청년이 있습니다. 제안 회의 때마다 고민 고민해서 아이디어를 내면 "김 대리 그 건은 자네가 맡아 추진해 봐"라고 떨어진다고 합니다. 처음엔 모르고 5건 연타로 제안했다가 연타로 책임을 떠맡게 되어 휴가도 반납하고 일만 해야 했습니다. 그 후로 이 청년은 제안할 때 핵심 아이디어를 빼고 진부한 아이디어 4개, 기가 막힌 건 1개의 비율로 적당히 제안한다고 합니다.의욕과 열정으로 자기실현을 하려는 청년들이 왜! 적당주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일까요? 왜! 이 사회는 "싫어요" 내지는 "아니오"라고 말 못하고 스스로 기가 죽어서 전체 안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일까요! 모두가 각자 개성을 살려 열정을 뿜어 대면 본인도 보람이 있고 이 사회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텐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성직자 사회 안에서 적당주의도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중들의 아픈 마음을 보다 더 잘 보살펴 주기 위해서 종교 조직을 벗어나 길거리 시위도 하고 강연도 다니면 구설수에 오릅니다. "거룩한 종교가 세속 일에 관여해서는 안된다" "공명심 때문에 그러는 거다" 등등 말이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 듣기 싫으면 그냥 적당히 주어진 일만 하자는 주의도 많이 있습니다.종교 조직도 회사 조직도 기성 질서에서 적당주의를 탈피하기는 너무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기성 질서를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새로운 질서에 희망을 두고 저 또한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피 속에 흐르는 열정을 이 질서에다 쏟아붓지 않고는 화병이 나서 못 견디겠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 새 질서가 기존 질서에 상당히 영향을 준다는 면이 힘이 되고 보람이 됩니다.새 질서는 서로 "아니오" 라고 자유롭게 말하기로 약속하고 시작합니다. 각자 역할만 있을 뿐 상사도 부하도 없이 서로 동등합니다.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된 사건을 중심으로 이것을 개선하려는 모임이 결성되기도 하고, 환경 문제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모임을 결성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들의 이권을 옹호하기 위해서 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하면서 기존 질서 안에도 속해 있지만 동시에 새 질서에도 소속되어 기존 질서의 활동 보다 더 열정을 쏟아붓는 사람이 많습니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질서에서 까불다가 잘려서 밥줄 끊기면 어떡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자유와 정의를 돈줄에 담보 잡히기에는 우리 피가 뜨겁고 진합니다.인생은 "예"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는 맛에 사는 것입니다. 적당히 산다고 인생 성적표가 중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의지를 저당 잡히고 무슨 보람과 기쁨이 있습니까! 적당주의 인생의 성적표는 중간인 50점이 아니라 0 점입니다./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

2016-06-06 홍창진

[홍창진 칼럼] 흙수저 모여서 노래하자!

가난은 죄도 부끄러운 일도 아냐우리는 잘못한게 하나도 없기에정의롭고 부모를 사랑하는 효자형제 걱정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서로 격려하고 더 사랑하며주어진 행복을 포기하지 맙시다일전에 SNS를 통해서 어떤 실험 하나를 본 일이 있습니다. 미국의 가난한 지역 5세 어린이 3명에게 물었습니다. "본인들이 지금 제일 갖고 싶은 물건이 무엇이냐?" 그랬더니 각각 바비인형, 로봇, 게임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물건을 그 어린이들 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회자가 "너희 엄마들이 갖고 싶은 물건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각각 커피머신, 대형TV, 청소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물건들도 가져다 놓았습니다. 잠시 시간을 보낸 후에 사회자가 말했습니다. "이 물건중에 너희는 하나만 가질 수 있단다. 어느 것을 택하겠니?"라고 물었습니다. 어린이들은 눈물을 글썽이긴 했지만 모두 엄마가 원하는 물건을 선택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사회자가 "어린이 여러분! 두 가지 물건 다 가져도 좋습니다"라고 얘기했을 때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5세 아이들조차도 가난하지만 부모의 가난을 탓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여워하고 안타까워합니다. 하물며 청년들이 부모의 가난을 탓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작금에 흙수저 운운하는 정황은 절대로 부모를 탓하는 것도 아니고 돈 많은 부자를 시샘해서도 아닙니다. 재산 가진 사람들을 약간 부러워해도 불만은 없습니다. 단지 흙수저의 불만은 벌어도 벌어도 모이지 않는 소득불균형에서 오는 것입니다. 물론 똑같이 받아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격차가 희망을 포기할 정도라면, 불의, 즉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가난한 젊은이들은 이런 현상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가난이 무슨 죄입니까! 가난은 죄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닙니다. 비록 가난하게 태어났어도, 그래서 학교 교육을 좀 덜 받았어도, 그래서 부자 자녀들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시간 외 근무에 휴일도 없이 일해도 소득 격차가 심한 것은 너무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입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잘못한 것이 한 개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한히 정의롭고 부모를 사랑하는 효자이고 형제들을 걱정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나름 자기 계발도 하고 내 인생을 너무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의기소침할 이유가 없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우리 자신 외에 다른 곳에 있습니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 등 여러 가지 이유야 많이 있겠죠! 그러나 먼저 그런 문제에 분석보다는 우리 스스로 활기를 먼저 찾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흘러가는 인생, 이것저것 분석하며 보내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문제 해결도 즐기며 누리며 해야 합니다.적어도 잘못한 거 없고 정의로운 우리끼리 자주 모입시다! 사람은 모여야 기쁜 존재들입니다. 자주 모여서 우리 서로 서로에게 격려하고 기쁨을 나누며 우리의 기상을 드높입시다. 휴일에 집에만 있지 말고 동네 공원에 모여서 족구도 하고 농구도 하면서 일단 신나게 의기투합해야 합니다. 안주가 부실하면 어떻습니까? 막걸리 한잔 하고 으쌰으쌰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시대는 임금 격차 줄이자고 목소리 좀 높여도 됩니다. 물론 시간 많이 걸리겠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날이 안 올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잘 난 것은 그 여정을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정의롭고 사랑 가득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이 땅에 흙수저 여러분! 우리 가난하다고 행복을 포기하지 맙시다. 더 정의롭게 살고 더 사랑하며 삽시다./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

2016-05-02 홍창진

[홍창진 칼럼] 정치인도 직업인

보수·진보 대변하든 상관없이이시대 정치인은 이념보다'봉사'라는 덕목 갖추어야지역위해 충실히 일하지 않고상대방 비방에 앞장 서는 등선동하는 행위는 가장 나빠선거 때만 되면 종교인들 주가가 좀 오릅니다. 정치인들은 수 천명의 종교 지도자가 선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기회에 저를 찾는 정치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부탁을 드립니다. "제발, 자기 당의 이념에 관해서는 이야기 하지 마라! (다 거짓말이기 때문) 자기가 임기 중에 할 일을 구체적으로 하나 씩 나열하고 꼭 지켜라", "난 깨알 같이 기억 했다가 점수 매겨서 신자들에게 공개하겠다", "내 임기 지나서 다음 선거가 오면 다음 신부에게 인수인계하고 간다" 라고 얘기합니다. 저는 정치인들은 국민이 일정 기간 채용한 봉급 받는 전문 경영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이념 논쟁을 끝낸 (공산주의 몰락으로 인류는 정치적 이념 논쟁이 끝났다고 봄) 이 시대의 정치인은 기간제 고용인일 뿐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급료에 상응하는 일을 잘하냐 못하냐가 제일 중요한 평가 기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봉급 만큼만 일해줘도 땡큐라고 생각합니다. 봉급 만큼도 일 안하는 정치인들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흔히 사람들은 정치를 진보와 보수 진영으로 나누고 자기도 그 진영 중에 하나를 택하여 소속 되어 지지 하여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프로 야구의 관전 방식을 정치에도 도입해야 할 것 같은 착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세상은 자본의 힘에 의해 정치가 새로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제 정치는 이념을 기반으로 사회를 리드하는 집단이 더 이상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치 이론을 전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있지도 않은 이념을 가지고 우리 사회를 너무 분열 시키고 광기를 유발시키기 때문입니다.sns에서 연예인 못지 않게 많이 등장하는 것이 정치인입니다. 실시간 검색에서도 연예인 못지 않습니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과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에 대한 평가의 표현 수위가 도를 넘는다고 생각합니다. 지지하는 정치인의 표현은 거의 용비어천가를 방불케 합니다.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쌍욕을 퍼붓습니다.세상은 더 이상 정치 이념을 통해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생각 합니다. 이제 세상은 각각 자기가 정부이고 스스로가 국가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트렌드가 전체에서 개인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사회 정의를 내세우며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면 어떤 누구도 나서지 않습니다. 60년 전에 공산주의라는 이념은 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지금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이념보다 이 시대의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봉사라고 생각 합니다. 보수를 대변하든 진보를 대변 하든 상관 없습니다. 그가 지역 사회를 위해 얼마나 봉사하는 가를 보고 정치인을 평가 했으면 좋겠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종교인을 평가할 때 기도에 충실하고 거룩함을 요구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직자는 소금이 짠 맛을 잃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정치인이 봉사에 충실하지 않고 이념 논쟁이나 벌리고 상대방 비방에 앞장서 선동하는 일은 제일 나쁜 표양입니다./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

2016-03-28 홍창진

[홍창진 칼럼] 너는 장애인 아니냐?

겉은 멀쩡하고 화려한 사람들이되레 장애인을 무시하고 천대스스로 감추고 절대 드러내고싶지않은 것은 무엇이 있나요?만일 그렇게 살아왔다면 우리는장애를 넘지못한 마음의 미숙아평양을 함께 다녀온 스님의 이야기입니다. 스님이 평양을 다녀와서 동료 스님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거기 불교가 제대로 된 불교 맞아! 그거 다 북한 아이들 쇼 아닌가? 스님들은 다 가짜들이지?" 라고 묻는 스님들에게 "너는 진짜냐?"라고 쏘아붙이셨다고 합니다. 스님으로서 정진하지 못하고 속세에 물들어 헤매고 있다면 가짜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겉보기엔 멀쩡한 정상인도 알고 보면 장애인이 참 많습니다. 자기들은 정상인이라면서 장애인을 무시하고 불쌍하다고 하지만 기실 자기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 "너는 장애인 아니냐?"입니다. 장애는 장애를 인정하는 순간에 장애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장애인이면서 마음은 "왜 하필 내가 장애 여야 하는가?" "그 많은 사람 중에 내가 하필이면 내가 장애를 갖게 되었을까?" 하고 마음으로 원망하고 있다면 장애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도움을 요청할 것은 하고 자기 장애 조건을 고려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는 장애인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닙니다. 이미 그는 장애를 극복한 장애 모양 정상인입니다.정상 모양 장애인들도 장애 모양 장애인들처럼 불평불만이 하늘을 찌릅니다. "내 얼굴! 이게 뭐야! 좀 가냘프게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가 이때 말기 암에 걸리시면 어떻게. 이제 집 사려고 하는데 목돈 다 날리게 생겼네!" "사돈이 이러면 안되지! 제 아들은 뭐 잘 났다고 집 열쇠를 가져오래!" 이루 열거 할 수도 없는 불평들을 얼마든지 쏟아 냅니다. 장애를 인정해야 장애를 극복하는 것인데 스스로 정상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과연 자기 앞에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어떻게 보면 심각한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장애인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자기 자신의 장애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장애인도 정상인도 모두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장애인보다 정상인이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장애인은 장애가 바로 드러나서 인정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억지로라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물론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하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정상인은 장애가 눈으로 바로 드러 나지 않기 때문에 감추려면 얼마든지 감출 수 있기 때문에 본인이 인정하지 않고 시치미를 뚝 떼면 얼마든지 인정 안 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을 동원하면 더 화려하게 장애를 피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를 피해 간다고 장애가 극복되는 것이 아니기에 장애 극복은 정상인이 장애인보다 불리합니다. 거죽으로 멀쩡하다 못해 화려한 사람들이 알고 보면 장애인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장애인들을 무시하고 천대합니다. 이들은 모양으로는 장애인들을 보면서 자기의 치부를 보기 때문에 오히려 경악하고 발악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노이로제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불리는 것일 뿐 정상인인지는 되물어야 합니다. 내가 감추고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혹시 우리는 이 장애를 감추고 평생 살지는 않았나요? 만일 감추고 살아왔다면 우리는 장애를 넘지 못한 마음의 미숙아입니다. 미숙아는 괴로움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끔 겪는 우울과 분노는 혹시 여기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요!/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

2016-02-22 홍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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