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근 칼럼

 

[전호근 칼럼]마음을 실어 쓴 글 '목민심서'

흉년에 도적질한 자 죽이기보다그 사정을 알고 불쌍히 여기고가난해 자식 낳아도 못 거두면길러줘 백성의 부모노릇 해야이땅의 목민관 정치인·행정가등다산의 마음 조금이라도 가졌는지글자 수로 500만 자가 넘는 다산 정약용의 방대한 저작 중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고전에 대한 탁견으로 가득한 '논어고금주'도 아니요, 혁명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탕론'도 아니며, 두 아들에게 보내는 애끓는 심정의 편지글도 아니라 바로 행정실무지침서인 '목민심서'다.목민심서는 지방 수령이 부임(赴任)에서 해관(解官)에 이르기까지 지켜야 할 덕목과 지침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실무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지방행정학 개론이나 원론 쯤 되는 책이다. 그런데 그런 행정실무지침서를 읽고 감동하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요즘의 그런 책들은 대개 영혼이 빠져 있는 글들로 채워져 있기에 하는 말이다.다산의 목민심서는 그렇지 않다. 읽고 있으면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는 것처럼 마음이 움직인다. 어느 대목에서는 불에 덴 것처럼 깜짝 놀라기도 하고, 때론 백성을 사랑하는 다산의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먹먹해지거나 눈시울이 촉촉해진다.다산은 먼저 목민관의 존재 이유를 물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목민관은 왜 있는가? 오직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다. 이 명제는 절대적이다. 수천 년 이어져 온 유학의 역사에서 이보다 위에 있는 가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실무에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해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자라면, 그런 자는 목민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다산은 "다른 벼슬은 구해도 되지만 목민관의 자리는 구해서는 안 된다" 고 이야기한다. 오직 백성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진정성을 가진 자만이 목민관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다산의 진정성은 역설적으로 그가 폐족의 신분이었기에 확인된다. 역모로 처벌받은 그는 절대 목민관이 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산은 목민하고자 하는 마음만은 끝내 저버릴 수 없었다. 이 책의 이름이 심서(心書)가 된 까닭은 다산이 그런 마음을 실어 쓴 글이기 때문이다.다산의 마음이 보이는 대목을 몇 군데 들어보자.해마다 망종(芒種)날이 되면 백성을 구휼하는 일에 수고했던 이들을 모아 잔치를 베푼다. 다산은 그 의미와 시행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이 잔치는 큰일을 끝내고 나서 수고한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지 기쁜 일이 있어서가 아니므로 그저 한잔 술과 한 접시 고기로 수고한 이들을 대접하는데 그쳐야 한다. 죽은 자가 셀 수 없이 많고 산 자도 병에 걸려 신음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때에 어떻게 즐긴단 말인가. 큰 흉년 뒤에 수령이 잔치를 베풀면 백성들이 장구소리와 노랫소리를 듣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고 성낸 눈으로 질시하니,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춰서는 절대 안 된다. 수령이 조금이라도 반성하고 깨달은 바가 있다면 어찌 이런 짓을 하겠는가?"흉년에 범죄를 저지른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흉년에 도적질한 자는 그 다음해에는 대개 양민이 된다. 이로 보건대 그들을 죽이는 것은 애석한 일이니 그 사정을 알고 불쌍히 여겨야 한다. 맹자가 '흉년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사나워지고 풍년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순해지는 것은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라고 했으니, 어찌 이들을 반역의 무리들과 견주어 같다고 할 것인가. 그런 자들은 유배시켰다가 풍년을 기다려 풀어주는 것이 좋다."세금 징수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봄에 곤궁한 백성을 구제하는 일은 마치 자식을 대하듯 하고, 가을에 세금 거두는 일은 마치 원수를 대하듯 해야 한다."백성 중에 자식을 버리는 일이 있을 때 수령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백성들이 가난하여 자식을 낳아도 잘 거두지 못한다. 흉년이 들면 자식 내버리기를 물건 버리듯 하니, 거두고 길러주어 백성의 부모노릇을 해야 한다."다산은 자신의 글이 세상에 반드시 전해지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백년을 기다려도 좋다는 뜻으로 호를 사암(俟菴)이라고 한 적도 있다. 이제 다산이 세상을 떠난 지 181년이 지났다. 지금 이 땅의 목민관이 된 정치인, 행정가, 법관, 선생들은 다산의 마음을 만분의 일이라도 가지고 있는가. 다산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8-28 전호근

[전호근 칼럼]여름에 그린 겨울 풍경, 세한도(歲寒圖)

그림에 담긴 단아함과 굳건함은추사 도도하고 강건한 성품 아닌유배 당할 수밖에 없었던 '풍파'즉 세한의 계절 이긴 '불멸의 정신'그 표현이 푸른 소나무·잣나무·집긴 시간 극복한 숭고미 '고스란히'얼마 전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틈을 내 대정리에 있는 추사 김정희 유배지에 들렀다. 기념관에 들어서자 맨 먼저 추사의 세한도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 길에 올랐던 해는 1840년이었고 세한도는 유배된 지 5년이 되던 해에 그린 작품으로 추사와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우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걸작이다.1844년 바람이 많이 불던 어느 여름 날, 육지에서 보내 온 거질의 책이 추사에게 전해졌다. 제자 이상적이 만 리 밖 북경에서 여러 해를 두고 구해서 보내준 귀중한 책이다. 추사가 제주에 유배 온 지 어언 다섯 해, 한 때 생사를 같이하던 벗들도 이젠 소식조차 없던 터였다. 추사는 고마운 마음에 갈라진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발문을 썼다. 조선 문인화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세한도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얼핏 보면 세한도에는 제대로 그려진 사물이 없다. 단지 네 그루의 나무와 집 한 채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게다가 먹도 충분치 않고 붓도 부실한지 여기 저기 갈라진 붓 자국이, 화인(畵人)이 마주한 힘겨운 삶을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무슨 나무인지 분명하게 알아보기 힘든 왼 쪽의 나무 두 그루, 그리고 세부 묘사가 전혀 없는 집을 보면 기우뚱하기도 하고 대칭이 맞지 않아 허술하기도 하여 도대체가 사물을 제대로 관찰하고 그린 것 같지 않다. 마치 앞으로 더 가필해서 완성해야 할 그림이거나 아예 그리다가 흥취가 사라져 붓을 던져버린 그림을 보는 것 같다.이처럼 세한도의 풍경은 참으로 볼품이 없다. 그러나 바로 이 볼품없음이야말로 세한도가 담고 있는 '세한의 풍경'이다. 세한도는 어떤 면에서든 풍요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 벼루 열 개에 구멍을 내고 붓 천 자루를 닳게 했던 추사의 필력으로 한 글자를 쓰기도 어려운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 황폐의 끝에서 탄생한 작품이 세한도다.세한도가 명작인 이유는 바로 이 그림 한 장에 그가 추구한 불멸의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추사는 이른바 '문자향(文字香)'을 강조했다. 따라서 추사의 그림을 감상할 때는 단지 눈으로 보이는 '그림'에서만이 아니라 문자의 향(香)이라 할 수 있는 '정신'을 보아야 한다. 다행히 추사는 그림과 함께 그림을 그리게 된 까닭을 발문에 자세히 써 놓았는데 그 발문을 통해 우리는 수 천 년 전부터 세한의 시련을 극복해 온 오래된 이야기와 마주할 수 있다.'세한'은 날씨가 추워졌다는 뜻으로 본디 공자가 "날씨가 추워진 뒤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모든 나무가 다 시들어버린 혹한의 계절에 소나무와 잣나무만은 여전히 푸름을 간직하고 있다. 공자는 이를 칭찬했다. 그런데 추사는 이렇게 묻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이나 날씨가 추워진 뒤나 똑 같은 소나무요 잣나무인데, 왜 공자는 유독 날씨가 추워진 뒤의 소나무와 잣나무만을 칭찬했단 말인가?그리곤 스스로 이렇게 대답한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비로소 그 굳센 뜻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 이 굳센 뜻이야말로 추사가 추구한 불멸의 정신이었다. 지금 창 밖에 부는 세찬 바람도 저 멀리 달아나게 할 정신, 그 정신이 이 세한도에 있는 것이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지에서 감내해야 했던 세한의 계절은 곤궁이고 누추며 고독이었다.세한도에 담긴 단아하고 굳건한 정신은 단지 추사의 도도하고 강건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유배당할 수밖에 없었던 세상의 풍파, 즉 세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세한의 계절을 이기고 난 이후에 생겨난 것이 흔들림 없는 '불멸의 정신'이다. 그 정신이 표현된 것이 세한 이후에도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 그리고 퇴락한 집이다. 이렇게 보면, 추사의 세한도에는 세한의 계절을 모두 거치면서도 그 시간을 이겨내고 극복한 숭고미가 담겨 있다 할 것이다.우리의 삶에 추위가 온다는 것은 시련이다. 그러나 그 시련의 계절에 삶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무더위의 한가운데에서 잠시 세한도를 그려보았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7-24 전호근

[전호근 칼럼]차가운 우동

'追悼'라는 큰 비문 아래에 새겨진'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글씨일본인들 '우물에 독약 타 폭동'유언비어 퍼뜨려 6천명 넘게 학살슬픔을 '기억'하는건 되레 과거를현재로 되살려 내려는 힘 지녀지난 6월 3일부터 6일까지 학술대회 참가차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여행 마지막 날이던 6월 6일 현충일 아침, 우리 일행은 에도도쿄박물관으로 향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연구팀은 아침을 먹지 않고 일단 걷기부터 시작하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시간이 남으면 아침을 먹고 그렇지 않으면 건너뛰기 일쑤다. 다이어트를 하기에 딱 좋긴 하지만 뺄 살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겐 고역이다.연구팀을 이끄는 분은 올 초 서울대 의대를 퇴임한 황상익 명예교수다. 황 교수는 의사이긴 하지만 의사학(醫史學) 전공자이기에 어디를 가든 답사가 기본이라 걷는 거리가 상당하다. 이번에도 하루 평균 17㎞ 정도를 걸었다. 덕분에 최근 오래 앉아 있어서 생겼던 허리통증이 씻은 듯 사라졌다. 의사와 함께 다니면 이렇게 덤으로 얻는 이득이 있다.박물관에 도착했지만 개관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아 있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옳거니! 오늘은 아침을 먹을 수 있겠구나.'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문을 연 식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곳은 문을 열었지만 '준비중(準備中)'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어쩔 수 없이 근처에 있던 편의점에 들어가 먹을거리를 찾았다. 나는 따끈한 우동국물이 먹고 싶어서 우동 사발면과 삼각 김밥을 골랐다. 계산을 하고 나서 부스럭거리며 음식을 꺼내 먹으려고 하는데 지배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편의점 안에서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며 우리를 내보낸다. 쫓겨난 우리가 거리에서 엉거주춤하고 있던 차에, 나는 오던 길에 공원이 있었던 걸 기억하고 일행에게 공원에 가서 먹자고 제안했다.공원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벤치에 앉아 각자 고른 음식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내가 고른 우동은 육수까지 포장되어 있었는데, 살펴보니 육수 포장지에 냉(冷)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내가 바라던 따끈한 우동이 아니라 차가운(冷) 우동이었던 것이다. 얼핏 냉(冷)자 위에 우리를 쫓아낸 지배인 얼굴이 겹쳐 보였다.허기를 해결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한쪽에 비석이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무슨 비석인가 싶어 가까이 가보니 '추도(追悼)'라는 두 글자가 큰 글씨로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라고 새겨져 있었다. 가슴이 아리고 목이 메어왔다."아, 이 비석이 우리를 인도하려고 따뜻한 아침을 먹지 못하게 했구나."비문을 읽어보니 위령비를 세운 것은 1973년의 일이라 한다. 그러니까 대지진 이후 50년, 일본군국주의가 패망한 지 28년이 지나서야 세워진 것이다.1923년 9월에 일어난 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타고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무려 6천명이 넘는 조선인을 학살했다. 학살을 주도한 자는 조선인 폭동 단속령에 따라 각지에서 조직된 자경단(自警團)이었다지만 학살이 가장 먼저 자행된 도쿄와 가나가와현에서는 군대와 경찰이 중심에 있었다.비 앞에서 묵념하면서 당시 조선인들이 느꼈을 절망감이 어땠을지 생각해보았다.그들은 평시에도 일상적 차별로 인해 생존이 쉽지 않았을 터인데, 지진이라는 자연 재앙을 만났으니 보통의 일본인들보다 두려움이 훨씬 더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웃이 갑자기 자신들을 폭도로 몰아 죽이려 했으니 억울함과 두려움이 몇 배 증폭되었을 텐데 일본이라는 국가는 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도리어 학살을 방관하거나 자행했으니 그 공포와 절망감은 이루 다 짐작조차 못할 것이라 하겠다.그런데 비에 새겨진 추도(追悼)의 '도(悼)'는 그런 절망감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다. 도(悼)는 본디 '현재의 슬픔'을 가리키는 글자이고 추(追)는 '기억한다'는 뜻이다. 곧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기억을 가리키는 말이 추도다. '추(追)'자는 어떤 말의 앞에 놓이면 그 말을 과거로 밀어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추도라는 말에는 그런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슬픔을 '기억'하는 행위는 도리어 과거의 일을 현재로 되살려내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비 앞에 멈춰 섰다. 저 비에 새겨진 슬픔을 지나간 일로 만들 수 있는 어떤 글자도 나는 생각해내지 못할 것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6-19 전호근

[전호근 칼럼]죄(罪)와 용서에 관하여

재물보다 사람 아끼라는 말은이 나라 모든이가 귀담아 들어야통치자는 아랫사람의 말 잘 듣고묻는것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신하의 죄 임금이 용서할 수 있지만임금의 죄는 용서해줄 사람 없어춘추시대의 패자 제나라 환공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한 노인을 만났다. 나이를 물어보니 83세라 한다. 환공은 노인에게 오래 산 복으로 자신을 위해 축원해 달라고 했다.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임금님을 위해 축원합니다. 재물을 가벼이 여기시고 사람을 중시하십시오.""좋은 말씀입니다. 좋은 말은 한 번으로 그쳐서는 안 되니 한 마디 더 해주십시오.""임금님을 위해 축원합니다. 임금께서는 부디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그 또한 좋은 말씀입니다. 좋은 말은 반드시 세 번 해야 합니다. 한 마디 더 해주십시오.""임금님을 위해 축원합니다. 임금께서는 부디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죄를 짓지 마십시오."예상치 못한 말은 들은 환공은 크게 화를 내며 이렇게 따졌다."과인은 자식이 어버이에게 죄를 짓고 신하가 임금에게 죄를 짓는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이 신하에게 죄를 짓는다는 말은 처음이오."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그렇지 않습니다. 자식이 죄를 지으면 어버이가 용서해주면 되고 신하가 죄를 지으면 임금이 용서해주면 됩니다. 하지만, 임금이 죄를 지으면 용서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 폭군 걸왕이 탕에게 쫓겨났고 주왕이 무왕에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환공은 노인에게 절하고 그로 하여금 고을을 다스리게 한 뒤 떠났다.유향의 '신서'에 나오는, 2천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노인의 세 마디 말은 참으로 옳다.재물보다 사람을 아끼라는 첫 번째 말은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이가 귀 담아 들어야 한다. 저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도, 침몰 원인을 아직 다 밝히지는 못했으나 따지고 보면 사람을 재물보다 천시하는 풍조가 근본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적재적량을 훨씬 넘어서는 화물을 적재한 이유나 적재된 화물을 고박하지 않은 이유는 모두 사람보다 재물을 아꼈기 때문이 아닌가.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두 번째 말은 모름지기 통치자는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말을 뜻하는 한자 言(언)은 입[口]에서 나오는 음파[≡]가 위쪽으로 퍼져 나가는 모양을 본 뜬 글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입이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래에 위치한 입[口]은 신분이 낮은 사람의 말을 뜻한다. 그러니 말이 통한다는 것은 높은 사람의 말이 아래로 전달된다는 뜻이 아니라 낮은 사람의 말이 위에까지 전달된다는 것을 뜻한다.고래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란 없다.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의 말은 아무리 목소리를 낮게 하더라도 다 알아서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은 말[言]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명령[令]이기 때문이다. 명령을 뜻하는 한자 령(令)은 입[△]이 위쪽에 위치하고 아래에 사람이 엎드려 기는 모양[ ]을 본뜬 글자다. 곧 아래에 있는 사람이 신분이 높은 사람이 하는 말에 복종하는 모양을 그린 글자가 령(令)자의 본뜻이다.명령, 곧 권력자의 말이 쉽게 전달되는 것은 그 말이 꼭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의 하수인들이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때로 온 몸을 던지며 죽음으로 항거해도 그들의 말은 세상에 반향을 일으키기 어렵다. 세상은 귀머거리인 까닭이다.마지막으로 아랫사람에게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그 이유가 절묘하다. 아랫사람의 죄는 윗사람이 용서해줄 수 있지만 윗사람이 지은 죄를 아랫사람이 용서해줄 수는 없는 법이다. 용서라는 말이 그렇다. 용서란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봐준다'는 뜻이다. 애초에 꾸짖거나 벌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일이 용서다. 그러니 아랫사람에게 죄를 짓는다면 그가 나를 용서할 길이 없으니 나 역시 그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다. 위에 버티고 있으면서 아래에 용서를 구한다는 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바가 크니 사면해줘야 한다'는 말처럼 무례하고 교활한 억지다.지금 이 나라의 행정부나 국회에 있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윗사람이 된 이들은 모두 노인의 이 말을 새겨야 할 것이다. 나도 죄를 짓지 않도록 이 말을 명심해 두려고 한다. 나 또한 부모이고 선생이니./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5-15 전호근

[전호근 칼럼]말 한 마디와 국가의 흥망(興亡)

나라 책임질 사람 선택하는 대선선거때마다 입에 담지못할 말 많아본인은 '한때의 말' 이라고 하지만국가와 자신 망친다는 사실 알아야부디 국민이 기억하고 나라 세우는아름다운 말들이 들려 왔으면…노나라 임금 정공이 공자에게 물었다."말 한 마디로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하던데 참으로 그런 말이 있습니까?""한 마디 말로 그 정도 효과를 기약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르기를 '임금 노릇하기는 어렵고 신하노릇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니 임금과 신하가 이런 도리를 안다면 한 마디로 나라를 일으키는데 가깝지 않겠습니까."정공은 다시 물었다."말 한 마디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런 말이 있습니까?""한 마디 말 때문에 나라가 망하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사람들이 이르기를 '임금 노릇하는데 다른 즐거움은 없고 오직 내가 명령을 내리면 아무도 어기지 않으니 이것은 참으로 즐거워할 만하다'고 하니 임금이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잃는데 가깝지 않겠습니까.""..."아무리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일으키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평소 번드레한 말을 미더워하지 않았던 공자다운 말이다.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일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거니와 말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임금과 신하가 이 말로 인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면 적어도 바로 나라가 흥하지는 않더라도 아름다운 미래를 기약할 수는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말 한 마디로 나라를 망하게 할 수는 있을까? 역시 공자의 이야기처럼 한 마디 말로 나라가 망하기는 어렵다. 모름지기 나라라는 커다란 물건이 하루아침에 망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라처럼 큰 물건만 있는 게 아니다. 때로 한 마디 말을 잘못하여 작게는 신세를 망치고 크게는 심지어 나라까지 망친 예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공자가 나라를 망친 예로 든 저 말도 본디 진나라 평공이 한 말이다.진나라 평공이 어느 날 신하들을 불러 함께 술을 마시다가 이렇게 말했다."임금 노릇해보니 별다른 즐거움은 없지만 내가 말하면 아무도 내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은 즐거워 할만하다.""..."모든 신하들이 잠자코 있었는데, 평공 곁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눈 먼 악사 사광이 갑자기 거문고를 번쩍 들어 평공을 향해 집어던졌다. 평공이 깜짝 놀라 몸을 피하자 거문고는 커다란 소리를 내며 뒤쪽 벽에 부딪쳤고 벽에는 구멍이 뚫렸다.평공은 크게 놀라 사광을 꾸짖었다."네 이놈 이게 무슨 짓이냐?"사광은 이렇게 대답했다."임금님, 지금 제 옆에서 어느 놈이 아주 나쁜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말을 임금님이 들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제가 그 놈을 향해 거문고를 집어던진 것입니다.""..."사광의 말은 참으로 옳다. '아무도 내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이 즐겁다'는 말은 임금이 입에 담을 말이 아닌 것이다. 어찌 임금뿐이랴. 모든 사람이 그렇다. 만약 어떤 사람의 주변에 그가 하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생각해볼 일이다. 과연 자신의 말이 모두 옳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을 즐거워하기 때문인지를. 사광의 이야기를 들은 평공도 깨달은 바가 있었던지 뚫린 구멍을 수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실언의 경계로 삼았다고 하니 말이다.2천500년도 더 된 오래 전 이야기다. 하지만 한갓 옛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 어떤 말을 하느냐는 여전히 중요하다. 더욱이 앞으로 5년 간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책임질 사람을 선택하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금까지는 선거 때마다 아름다운 말보다는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말들이 더 많이 들렸다. 개중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도 없지 않았다. 본인은 한 때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말 한 마디가 나라를 망하게 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자신을 망치기에는 충분하다는 사실을 거듭 새겨야 할 것이다.이제 선거가 눈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부디 국민들이 오래도록 기억할 만한, 그래서 나라를 일으킬 수 있는 아름다운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으면 좋겠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4-10 전호근

[전호근 칼럼]선(善)한 고을의 조건

대선주자들 다양한 공약 주장문제는 그들의 선한 이야기가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점이번엔 다수의 기계적 선택 아니길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그렇지않은 사람보다 많은게 '善'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에게 물었다."고을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좋아하면 어떻습니까?""좋지 않다.""고을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미워하면 어떻습니까?""좋지 않다. 고을 사람 중에서 선(善)한 사람은 그를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은 미워하느니만 못하다."공자의 대답은 뜻밖이다. 고을의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대답이야 수긍할 수 있다 쳐도 고을의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말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히려 공자는 선한 사람은 좋아하고 불선한 사람은 미워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그렇다면 세상에는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반드시 비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공자의 말대로라면 고을에서 선한 사람의 수가 불선한 사람의 수보다 많아지면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그럼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인가? 무엇이 선인지는 예부터 수많은 철학자들이 각기 다른 견해를 내놓았을 만큼 풀기 어려운 문젯거리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에우다이모니아는 모두 선이 무엇인지에 대한 각기 다른 견해다. 16세기 조선의 성리학자 이황과 기대승이 8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다퉜던 주제도 다름 아닌 선과 욕망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둘러싸고 일어난 논쟁이었다.그런데 고대 동아시아인들이 어떤 것을 선이라고 생각했는지는, 선(善)이라는 문자의 자의(字義)를 살펴보면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자의 선(善)은 양(羊)자와 공(公)자가 위아래로 배치된 글자다. 여기서 양(羊)은 뿔 달린 양을 그린 글자이고 공(公)은 함께 나눠 먹는다는 뜻을 담고 있는 글자다. 따라서 나눠먹으면 선(善)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선(不善)이다. 사람과 사람의 평화로운 공존을 뜻하는 화(和)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화(和)자 또한 본래 벼를 그린 화(禾)와 공(公)이 합쳐진 글자(和의 옛글자는 '禾公'이다)로 수확한 벼를 나눠먹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선과 평화는 가진 것을 나누는 데 달려있다는 것이 이 두 글자에 들어 있는 오래된 진리다.나눔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고을은 선한 사람이 불선한 사람보다 많은 고을이다. 그런 고을에서는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많다. 이것이 선한 고을의 본모습이다.불행히도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지금의 이 나라는 선한 고을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빈부의 양극화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자살률은 OECD국가 중 가장 높을 뿐 아니라 노동시간 또한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긴 나라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헬조선이나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세간의 말들을 그냥 귓가로 흘려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이 나라의 불선(不善), 불화(不和), 불의(不義)는 심각하다.올해는 이 나라의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헌법재판소 판결이라는 변수가 남아 있지만 광장의 민심을 헤아려보면 현재로서는 조기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출마를 선언한 후보자들은 저마다 공약을 내걸고 자신이 이 나라의 지도자로 적임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면면을 살펴보면 그 어느 때보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많아 보인다. 어떤 이는 기본소득을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사회수당을 강조하고, 어떤 이는 일자리 확대가 답이라고 주장한다.지향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모두 나눔을 더 늘리자는 이야기이니 공자가 말한 좋은 사람이 이 나라에 이렇게 많은가 싶다. 문제는 그들의 선한 이야기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 점일 것이다. 이번에는 다수의 기계적 선택(選擇)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뽑는 '선택(善擇)'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거니와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많은 것이 선한 고을의 조건이기 때문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3-06 전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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