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근 칼럼

 

[전호근 칼럼]이름 이야기

고전 구절 인용 작명하는 이유는동아시아의 오랜 지적 전통을복원하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내가 되살리고 싶은 것은오랫동안 지켜온 삶의 문법이고 그중 하나가 이름에 담겨 있다가끔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이름을 짓는 방식은 작명가들이 짓는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주로 고전 구절을 따서 이름을 짓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동아시아의 오랜 지적 전통을 복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통의 복원이라니까 오해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권력으로서의 전통은 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되살리고 싶은 것은 우리의 지식인들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삶의 문법이다. 그중 하나가 이름에 담겨 있다.옛사람들은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명나라 말기의 학자 방학점(方學漸)은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방이지(方以知)'라는 구절을 따서 손자의 이름을 지었다. 올바른 도리를 지켜 지혜로워진다는 이름 덕택인지 방이지(方以智)는 고금과 동서의 지(知)를 망라하는 대지식인이 되었다. 그 자신의 이름인 학점(學漸)도 주역의 점(漸)괘에서 착안한 것으로 삼대가 주역학자였던 집안다운 이름 짓기라 하겠다.방학점의 선배격인 명나라 중기의 유학자 담약수(湛若水)의 이름은 장자의 군자지교담약수(君子之交淡若水)에서 따온 것으로 '담(淡)'을 자신의 성(姓)인 '담(湛)'으로 바꾼 것일 뿐이다.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맑다는 뜻인데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18세기 조선의 인물 중에는 멋진 이름을 가진 이가 많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건 다산 정약용이다. 그의 이름 '약용(若鏞)'은 서경에 나오는 말이다. 다만 '약용(若鏞)'이라는 표현 그대로는 안 나오고 '약금(若金)'으로 찾아야 나온다. 서경 열명편에는 은나라의 고종이 부열을 등용하면서 "만약 쇠붙이일 것 같으면 너로 하여금 숫돌이 되게 하리라(若金 用汝作礪)"고 했는데 여기서 '만약 쇠붙이라면'이라는 뜻인 '약금(若金)'을 취한 것이다. 다산의 아버지는 이에 착안하여 아들형제의 이름에 모두 쇠금(金)자를 넣어서 '약전(若銓)', '약용(若鏞)' 등으로 지었다. 세상을 바로 잡는 저울(銓)이 되고 세상을 울리는 큰 종(鏞)이 되어 사람들을 깨우치라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이름이 좋아서인지 두 사람은 모두 이름값을 했다.'청장관전서'를 남긴 이덕무(李德懋)의 이름도 서경에서 따온 것이다. 서경 중훼지고에는 탕임금의 공덕을 들면서 '덕이 훌륭한 사람에게는 관직을 주어서 덕에 힘쓰게 했다'는 덕무무관(德懋懋官)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덕무의 이름은 덕무(德懋)이고 자는 무관(懋官)이다. 합치면 덕무무관(德懋懋官), 서경의 글귀와 똑같다.'북학의'를 지은 박제가(朴齊家)의 이름은 제가(齊家), 자는 수기(修其)였다. '제가'는 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제가이고, '수기(修其)'는 수기(修己) 또는 수신(修身)과 같은 의미로 재수기신(在修其身)에 따온 이름이니 자와 이름을 모두 대학에서 취한 것이다. 이 두 사람 또한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하지만 이름이 좋다고 반드시 이름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현대 신유학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던 양수명(梁漱溟)의 아버지는 이름이 제(濟)였고 자가 거천(巨川)이었다. 이 또한 서경 열명편에서 "만약 큰물을 건널 것 같으면 너로 하여금 배와 노가 되게 하리라(若濟巨川 用汝作舟楫)"고 한 대목 중 큰물을 건넌다는 뜻인 '제거천(濟巨川)'에서 따온 것이다. 양제의 아버지는 아들이 큰물을 건너는데 쓰이는 훌륭한 재목이 되라는 마음을 담아 이렇게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제는 청나라가 망하자 서세동점의 큰물을 건너지 못하고 적수담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벌써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나는 아들의 아명을 '웅비(熊비)'라고 지었다. 본명을 짓는 것은 할아버지의 몫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명을 지었는데, 곰 웅(熊)자와 곰 비(비)자를 썼다. 웅비(熊비)는 시경의 시 사간(斯干)에 "곰 꿈을 꾸는 것은 사내아이를 낳을 조짐이다(維熊維비 男子之祥)"라고 한 데서 따온 것이다. 아들아이를 낳기 전 아내가 태몽으로 곰 꿈을 꿨기 때문이다. 시경의 구절대로 태몽을 꾼 셈이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2-26 전호근

[전호근 칼럼]맛에 관하여

나는 주사부나 김정희가 느낀그 맛이 어떻다고 말할 순 없지만가족들과 모여 먹는 일이야말로가장 큰 즐거움이란 걸 알 것 같다언젠가 내가 만든 요리 함께 먹으면그땐 맛이 뭔지 말할 수 있을듯언제부턴가 우리 식구 중에서 나만 빼고, 그러니까 아내와 딸, 아들 녀석까지 TV에서 먹는 걸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나오면 넋 놓고 본다. 얼마 전엔 어느 먹방에 유명 요리사 고든 램지가 나왔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나는 식구들의 그런 모습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일쑤였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먹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먹는 걸 보고 즐긴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먹는 모습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일을 기꺼이 감내하는 출연자들은 더 이상해 보였다. 나라면 밥 먹을 때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면 밥이 잘 넘어가지 않을 것만 같아서다.그러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방송을 보고 즐겼는지 생각해보았다. 지금은 거의 보지 않지만 나도 한 때는 스포츠 경기 중계방송을 즐겨 보았다. 야구나 축구 경기는 무척 즐겨 보는 편이었고 가끔은 권투나 이종 격투기를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주로 보았던 셈이다. 으레 치고 박고 싸우거나 승자의 환호와 패자의 눈물이 있는 그런 일들을 보고 즐겼던 것이다.반면 먹방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즐거워하며 음식을 나눠먹는 평화로운 모습이 이어질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득 먹방 보는 식구들이 이상한 게 아니라 그걸 이상하게 바라보는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오래 전 이야기지만 '음식남녀'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요리사인 주사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입맛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스스로 그런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가족들 또한 그의 요리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 요리사 온씨가 그의 고충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이야기한다."베토벤이 좋은 소리는 귀에 있지 않다고 말한 것처럼 좋은 입맛도 입에만 있는 것이 아니야."얼마 후 온씨는 건강을 잃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일하던 주방으로 돌아와 숨을 거둔다. 동료를 잃고 슬픔에 잠긴 주인공은 자신의 요리를 먹는 가족들의 표정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 결과 그는 가족들이 말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요리가 이미 제 맛을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후 그는 평소 마시던 고산차 대신 물을 마신다. 평생 그토록 좋아하던 차맛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입맛을 잃어버린 것이다.이제 주변에서 그가 요리한 음식을 먹으면서 감탄하는 사람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손녀 뻘인 이웃집 어린이 산산은 그의 음식을 언제나 맛있게 먹어주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매일 같이 여러 가지 음식을 요리한 다음 그것을 들고 학교로 가서 산산에게 준다. 아이들은 그가 만든 음식에 환호했고 이후 그는 다른 아이들의 음식까지 만들어서 학교를 드나들기 시작한다. 산산이 집에서 가지고 온 도시락을 대신 먹던 주인공은 조금씩 깨달아 가기 시작한다. 동료 온씨가 맛은 음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던 뜻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딸이 차려준 음식을 먹으며 주인공은 마침내 입맛을 되찾았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찾은 맛은 어떤 맛이었을까?그러고 보니 추사 김정희도 죽기 두 달 전 이런 대련을 썼다.'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최고의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요, 가장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 라는 뜻이다. 이 글귀대로라면 가장 맛있는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따위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김정희의 속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당시 그의 나이가 일흔 한 살이었으니 그의 미각 또한 주사부 만큼이나 온전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여태껏 변변한 요리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주사부나 김정희가 느낀 그 맛이 어떠했을지 감히 말할 수 없다. 다만 가족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함께 음식을 먹는 일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즐거움이라는 뜻만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언젠가 내가 만든 요리를 식구들과 함께 먹는 날이 오면, 그 때는 나도 맛이 무엇인지 비로소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1-22 전호근

[전호근 칼럼]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길속에서 할머니 구한 세 청년그들은 맹자의 가르침 처럼이성이나 다른 능력에 주목 않고아무 생각없이 갑작스런 마음에서인간 본성 선함을 이끌어냈던 것그 용기 존경·감사의 마음 전한다지난 한 주 동안은 유난히 화재 사고가 많았던 모양이다. 며칠 전 TV로 뉴스를 보다가 강원도 춘천시 약사동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 소식을 접했다. 뉴스에 따르면 70대 노부부와 손자가 사는 집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할아버지와 손자는 곧바로 밖으로 대피했지만 휠체어를 타고 있어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손자가 주변에 도움을 청하자 마침 근처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있던 청년 셋이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 휠체어에 앉아 있던 할머니를 구해 나왔다는 것이다.방송사의 카메라 앞에 선 청년 중 한 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안에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할머니를 구해 밖으로 나왔습니다."뉴스를 보고 있던 나에게는 청년이 인터뷰에서 한 말 중 '생각할 겨를도 없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인상 깊게 다가왔다. 맹자가 말한 '출척측은지심( 척慽惻隱之心)'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기 때문이다.일찍이 맹자는 어린 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는 '유자입정(孺子入井)'의 사례를 가정하면서 그런 일을 목도하게 되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출척측은지심( 척惻隱之心)'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여기서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은 그가 주장하는 성선설의 중요한 근거이기도 하다.그는 측은지심을 필두로 악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가리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두고 인간의 선한 본성을 확인할 수 있는 네 가지 마음이라는 뜻에서 사단(四端)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어서 사람이 사지(四肢)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누구나 이 네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만약 이 네 가지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이야기했다. 맹자에 따르면 이런 마음은 배워서 아는 것도 아니고 깊이 생각해서 아는 것도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나오는 양지(良知)요 양심이기 때문이다.맹자가 사단(四端)의 으뜸으로 강조한 측은지심은 흔히 연민이나 동정심 정도로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측은(惻隱)의 '측(惻)'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뜻이고 '은(隱)'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측은지심은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고 헤아리는 마음이라 하겠다.그런데 맹자는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데는 '출척( 척)'이라는 전제가 있다고 말한다. '출척( 척)'은 갑작스러운 상황을 당해 '깜짝 놀라는 마음'이다. 맹자는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 까닭은 아이의 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웃 사람의 칭찬을 바라서도 아니며, 구해주지 않았다는 비난이 두려워서도 아니라고 이야기했다.아이의 부모나 이웃의 칭찬이나 비난을 '생각하지 않는 가운데' 갑자기 일어나는 마음이 '출척( 척)'이라 본 것이다.맹자의 이야기는 참으로 설득력이 있다. 그는 인간이 가진 이성이나 다른 능력에 주목하지 않고 오히려 아무런 생각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마음에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확신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만약 위급한 상황에 처한 어떤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곧바로 행동하지 않고 이것저것 길게 생각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아마도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위험을 두려워 해 소방관이 오기를 기다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난을 염려하여 구조를 주저할 수도 있을 것이며, 행동의 결과에 따른 이로움이나 불리함을 따져보기도 하지 않을까. 그러는 사이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는 영영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이런 이유로 나는 불길 속에서 할머니를 구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발휘한 청년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지면으로나마 먹던 밥알을 토해내고 이웃의 귀중한 생명을 구해낸 세 명의 청년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12-18 전호근

[전호근 칼럼]일한 사람이 쉴 수 있는 세상

한국노동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OECD평균보다 1.7개월 더 많고독일보다 무려 넉달이나 더 일해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한다이젠 우리도 부의 분배만 아니라쉼의 분배에도 많은 관심 가져야중국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한 사람인 묵자는 수레를 만드는 기술 노동자였다. 당시 그를 비롯한 기술자들은 수차와 호미 등 새로운 농기구를 만들어 물질적 풍요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당시의 지배자들은 기술이나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의 노고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들의 삶은 여전히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기술자 집단의 우두머리였던 묵자는 기술과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우려 했다. 그는 인간이 인간인 이유를 노동하는 데서 찾았다."사람은 본디 날짐승이나 길짐승과는 다른 존재다. 짐승들은 깃이나 털을 그대로 옷으로 삼고 물이나 풀을 그대로 먹을거리로 삼지만, 사람은 이들과 달라 노동하는 자는 살아나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자는 살아나갈 수 없다."그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깃이나 털을 그대로 옷으로 삼고 물과 풀을 그대로 먹는 짐승들과는 달리 노동을 통해 자연을 넘어서는 존재다. 되돌려 말하자면, 그에게 일하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가 말하는 정의란 것도 다른 철학자들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그려진다. 그는 남의 것을 훔친 자를 부도덕하다고 비판하지만 그보다 스스로 노동하지 않고 남의 노동을 훔친 행위, 곧 남의 노동을 착취하는 행위야말로 가장 부도덕한 행위라고 비판했다.따라서 그는 그런 노동 착취행위가 가장 큰 규모로 일어나는 침략 전쟁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부당한 폭력이라고 지적한다. 전쟁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사회적 불의라고 규정했던 건 그에게는 당연한 결론이었다. 실제로 그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집단을 구성하여 침략자에게 조직적으로 저항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시대를 대혼란의 시대로 보았지만 혼란을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달랐다. 당시의 혼란을 묵자는 이렇게 정리했다."백성에게는 세 가지 걱정이 있다. 굶주린 자가 먹지 못하는 것, 추위에 떠는 자가 입지 못하는 것, 수고롭게 일한 자가 쉬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야말로 백성들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이 말에서 그의 철학이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백성, 수고롭게 일한 자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자뿐 아니라 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 일하는 자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천 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에 비추어 보아도 묵자의 이야기는 여전히 돌아볼 만한 점이 없지 않다.말할 것도 없이 현대의 한국인들은 고대의 춘추전국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이들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다지 행복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높은 자살률과 낮은 국민 행복도를 보면 한국인의 삶은 대체로 우울해 보인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최근의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우울은 무슨 실존적인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데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OECD에서 발표한 '2017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6년 한국 노동자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 노동자는 OECD 평균보다 1.7개월을 더 일하며,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짧은 독일과 비교하면 무려 넉 달을 더 일한다. 이러니 한국 노동자들은 한 마디로 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하는 이들인 셈이다. 어떤 이들은 노동생산성이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 노동자들의 자질이 독일 노동자보다 넉 달을 더 일해야 할 정도로 떨어진다는 말인가?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많이 일하면 생산성도 따라서 올라간다는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반증으로 이해하고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할 것이다.2천 년 전의 묵자가 일한 자는 쉬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그의 시대적 요청에 명징하게 답한 것처럼 이제 한국 사회도 부의 분배만 아니라 쉼의 분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수고롭게 일한 모든 이들이 마음 놓고 넉넉히 쉴 수 있는 날이 이제는 와야 하지 않을까. 2천 몇 백 년은 너무 오랜 기다림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11-13 전호근

[전호근 칼럼]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커피믹스 따로 팔 수는 있지만탄 커피 돈 받을 수 없다는 할머니돈으로 못 살것 없는 지금의 세상진심어린 친절 감동이기에값어치로 환산할 수 없는 환대거래할 수 없는 가치 지녀내가 한창 골목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던 시절 이야기다. 2009년 어느 가을날에 나는 카메라를 챙긴 다음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서울의 후암동 골목길을 찾았다.용산고등학교를 지나 남산으로 통하는 소월길에 이르기까지 꼬불꼬불 이어지는 후암동 골목길은 갈래가 꽤나 복잡해서 다 돌아보는 데 반나절 가까이 걸린다. 그날은 빛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러 차례 골목길을 오르내리면서 마음에 드는 컷을 많이 건졌다.부지런히 돌아다니던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골목길에는 커피숍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소월길 못미처 용산초등학교 언저리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찾았다. 우리는 전에 다른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믹스커피를 타달라고 해서 마실 요량으로 구멍가게로 들어갔다.안에는 여든이 훨씬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믹스커피를 타 주실 수 있겠느냐고 여쭙자 할머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전자를 꺼내 불에 올렸다.가게는 아주 작았다. 둘러보니 진열된 물건들도 유행 지난 과자가 대부분이었고 양도 많지 않았다. 가게 입구에 설치된 평상에는 커다란 호박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가게로 연결된 좁다란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울퉁불퉁 파손된 곳이 많았다.이윽고 주전자 안의 물이 끓기 시작했고, 잠시 후 우리는 할머니가 타주신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많이 걸었던 터라 그런지 커피가 유난히 맛있었다. 천천히 커피를 다 마시고 난 뒤 우리는 할머니에게 얼마를 드려야할지 여쭈었다.그런데 할머니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놀란 우리는 그러시면 안 된다고 말하며 돈을 꺼내 드리려고 했으나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 돈을 절대 받을 수 없으니 그냥 가라고 하셨다.할머니 말씀은 커피믹스를 따로 팔 수는 있어도 손님에게 커피를 타주고서 돈을 받을 수는 없다고 하신다. 그리고는 "우리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고 하셨다.우리는 할 수 없이 건강하시라고 인사드리고 가게를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나는 커피를 마실 때면 종종 까닭 모를 감동과 함께 그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렸다. 커피를 따로 팔 수는 있지만 손님에게 커피를 타주면서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그 할머니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돈으로 못 살 건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지금 세상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 또한 대개가 거래의 다른 이름이기 십상이다. 거래에는 손님과 주인이라는 고유한 관계는 사라지고 소비자와 판매자라는 무미건조한 관계만 남는다. 소비자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물건을 사고 판매자 또한 물건을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도 물건을 사용할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가격에 맞춰 상품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애덤 스미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맛있는 빵을 원한다면 빵집 주인의 자비심에 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의 이기심에 호소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인 세상이다.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방법은 무엇이든 교환할 수 있는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미 오래 전에 뿌리 내린 자유 시장의 거래 원칙이다. 물건만이 아니다. 돈의 힘은 더없이 편리하고 강력해서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는 한 우리는 어디서나 한껏 친절한 응대를 살 수 있다.하지만 그날 나는 커피를 타주는 할머니의 환대를 돈으로 살 수 없었다. 진심어린 친절이기에 거래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사랑은 사랑으로만 교환할 수 있고 우정은 우정으로만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까닭 모를 감동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환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얼마 전 일이 있어 후암동에 들렀다가 할머니 가게가 있던 곳을 찾았지만 이미 그곳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가게가 있던 골목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가려고 그곳을 떠나 지하철역에 이를 때까지 내 귀에는 계속 할머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10-09 전호근

[전호근 칼럼]마음을 실어 쓴 글 '목민심서'

흉년에 도적질한 자 죽이기보다그 사정을 알고 불쌍히 여기고가난해 자식 낳아도 못 거두면길러줘 백성의 부모노릇 해야이땅의 목민관 정치인·행정가등다산의 마음 조금이라도 가졌는지글자 수로 500만 자가 넘는 다산 정약용의 방대한 저작 중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고전에 대한 탁견으로 가득한 '논어고금주'도 아니요, 혁명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탕론'도 아니며, 두 아들에게 보내는 애끓는 심정의 편지글도 아니라 바로 행정실무지침서인 '목민심서'다.목민심서는 지방 수령이 부임(赴任)에서 해관(解官)에 이르기까지 지켜야 할 덕목과 지침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실무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지방행정학 개론이나 원론 쯤 되는 책이다. 그런데 그런 행정실무지침서를 읽고 감동하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요즘의 그런 책들은 대개 영혼이 빠져 있는 글들로 채워져 있기에 하는 말이다.다산의 목민심서는 그렇지 않다. 읽고 있으면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는 것처럼 마음이 움직인다. 어느 대목에서는 불에 덴 것처럼 깜짝 놀라기도 하고, 때론 백성을 사랑하는 다산의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먹먹해지거나 눈시울이 촉촉해진다.다산은 먼저 목민관의 존재 이유를 물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목민관은 왜 있는가? 오직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다. 이 명제는 절대적이다. 수천 년 이어져 온 유학의 역사에서 이보다 위에 있는 가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실무에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해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자라면, 그런 자는 목민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다산은 "다른 벼슬은 구해도 되지만 목민관의 자리는 구해서는 안 된다" 고 이야기한다. 오직 백성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진정성을 가진 자만이 목민관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다산의 진정성은 역설적으로 그가 폐족의 신분이었기에 확인된다. 역모로 처벌받은 그는 절대 목민관이 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산은 목민하고자 하는 마음만은 끝내 저버릴 수 없었다. 이 책의 이름이 심서(心書)가 된 까닭은 다산이 그런 마음을 실어 쓴 글이기 때문이다.다산의 마음이 보이는 대목을 몇 군데 들어보자.해마다 망종(芒種)날이 되면 백성을 구휼하는 일에 수고했던 이들을 모아 잔치를 베푼다. 다산은 그 의미와 시행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이 잔치는 큰일을 끝내고 나서 수고한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지 기쁜 일이 있어서가 아니므로 그저 한잔 술과 한 접시 고기로 수고한 이들을 대접하는데 그쳐야 한다. 죽은 자가 셀 수 없이 많고 산 자도 병에 걸려 신음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때에 어떻게 즐긴단 말인가. 큰 흉년 뒤에 수령이 잔치를 베풀면 백성들이 장구소리와 노랫소리를 듣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고 성낸 눈으로 질시하니,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춰서는 절대 안 된다. 수령이 조금이라도 반성하고 깨달은 바가 있다면 어찌 이런 짓을 하겠는가?"흉년에 범죄를 저지른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흉년에 도적질한 자는 그 다음해에는 대개 양민이 된다. 이로 보건대 그들을 죽이는 것은 애석한 일이니 그 사정을 알고 불쌍히 여겨야 한다. 맹자가 '흉년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사나워지고 풍년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순해지는 것은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라고 했으니, 어찌 이들을 반역의 무리들과 견주어 같다고 할 것인가. 그런 자들은 유배시켰다가 풍년을 기다려 풀어주는 것이 좋다."세금 징수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봄에 곤궁한 백성을 구제하는 일은 마치 자식을 대하듯 하고, 가을에 세금 거두는 일은 마치 원수를 대하듯 해야 한다."백성 중에 자식을 버리는 일이 있을 때 수령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백성들이 가난하여 자식을 낳아도 잘 거두지 못한다. 흉년이 들면 자식 내버리기를 물건 버리듯 하니, 거두고 길러주어 백성의 부모노릇을 해야 한다."다산은 자신의 글이 세상에 반드시 전해지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백년을 기다려도 좋다는 뜻으로 호를 사암(俟菴)이라고 한 적도 있다. 이제 다산이 세상을 떠난 지 181년이 지났다. 지금 이 땅의 목민관이 된 정치인, 행정가, 법관, 선생들은 다산의 마음을 만분의 일이라도 가지고 있는가. 다산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8-28 전호근

[전호근 칼럼]여름에 그린 겨울 풍경, 세한도(歲寒圖)

그림에 담긴 단아함과 굳건함은추사 도도하고 강건한 성품 아닌유배 당할 수밖에 없었던 '풍파'즉 세한의 계절 이긴 '불멸의 정신'그 표현이 푸른 소나무·잣나무·집긴 시간 극복한 숭고미 '고스란히'얼마 전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틈을 내 대정리에 있는 추사 김정희 유배지에 들렀다. 기념관에 들어서자 맨 먼저 추사의 세한도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 길에 올랐던 해는 1840년이었고 세한도는 유배된 지 5년이 되던 해에 그린 작품으로 추사와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우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걸작이다.1844년 바람이 많이 불던 어느 여름 날, 육지에서 보내 온 거질의 책이 추사에게 전해졌다. 제자 이상적이 만 리 밖 북경에서 여러 해를 두고 구해서 보내준 귀중한 책이다. 추사가 제주에 유배 온 지 어언 다섯 해, 한 때 생사를 같이하던 벗들도 이젠 소식조차 없던 터였다. 추사는 고마운 마음에 갈라진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발문을 썼다. 조선 문인화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세한도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얼핏 보면 세한도에는 제대로 그려진 사물이 없다. 단지 네 그루의 나무와 집 한 채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게다가 먹도 충분치 않고 붓도 부실한지 여기 저기 갈라진 붓 자국이, 화인(畵人)이 마주한 힘겨운 삶을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무슨 나무인지 분명하게 알아보기 힘든 왼 쪽의 나무 두 그루, 그리고 세부 묘사가 전혀 없는 집을 보면 기우뚱하기도 하고 대칭이 맞지 않아 허술하기도 하여 도대체가 사물을 제대로 관찰하고 그린 것 같지 않다. 마치 앞으로 더 가필해서 완성해야 할 그림이거나 아예 그리다가 흥취가 사라져 붓을 던져버린 그림을 보는 것 같다.이처럼 세한도의 풍경은 참으로 볼품이 없다. 그러나 바로 이 볼품없음이야말로 세한도가 담고 있는 '세한의 풍경'이다. 세한도는 어떤 면에서든 풍요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 벼루 열 개에 구멍을 내고 붓 천 자루를 닳게 했던 추사의 필력으로 한 글자를 쓰기도 어려운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 황폐의 끝에서 탄생한 작품이 세한도다.세한도가 명작인 이유는 바로 이 그림 한 장에 그가 추구한 불멸의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추사는 이른바 '문자향(文字香)'을 강조했다. 따라서 추사의 그림을 감상할 때는 단지 눈으로 보이는 '그림'에서만이 아니라 문자의 향(香)이라 할 수 있는 '정신'을 보아야 한다. 다행히 추사는 그림과 함께 그림을 그리게 된 까닭을 발문에 자세히 써 놓았는데 그 발문을 통해 우리는 수 천 년 전부터 세한의 시련을 극복해 온 오래된 이야기와 마주할 수 있다.'세한'은 날씨가 추워졌다는 뜻으로 본디 공자가 "날씨가 추워진 뒤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모든 나무가 다 시들어버린 혹한의 계절에 소나무와 잣나무만은 여전히 푸름을 간직하고 있다. 공자는 이를 칭찬했다. 그런데 추사는 이렇게 묻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이나 날씨가 추워진 뒤나 똑 같은 소나무요 잣나무인데, 왜 공자는 유독 날씨가 추워진 뒤의 소나무와 잣나무만을 칭찬했단 말인가?그리곤 스스로 이렇게 대답한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비로소 그 굳센 뜻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 이 굳센 뜻이야말로 추사가 추구한 불멸의 정신이었다. 지금 창 밖에 부는 세찬 바람도 저 멀리 달아나게 할 정신, 그 정신이 이 세한도에 있는 것이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지에서 감내해야 했던 세한의 계절은 곤궁이고 누추며 고독이었다.세한도에 담긴 단아하고 굳건한 정신은 단지 추사의 도도하고 강건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유배당할 수밖에 없었던 세상의 풍파, 즉 세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세한의 계절을 이기고 난 이후에 생겨난 것이 흔들림 없는 '불멸의 정신'이다. 그 정신이 표현된 것이 세한 이후에도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 그리고 퇴락한 집이다. 이렇게 보면, 추사의 세한도에는 세한의 계절을 모두 거치면서도 그 시간을 이겨내고 극복한 숭고미가 담겨 있다 할 것이다.우리의 삶에 추위가 온다는 것은 시련이다. 그러나 그 시련의 계절에 삶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무더위의 한가운데에서 잠시 세한도를 그려보았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7-24 전호근

[전호근 칼럼]차가운 우동

'追悼'라는 큰 비문 아래에 새겨진'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글씨일본인들 '우물에 독약 타 폭동'유언비어 퍼뜨려 6천명 넘게 학살슬픔을 '기억'하는건 되레 과거를현재로 되살려 내려는 힘 지녀지난 6월 3일부터 6일까지 학술대회 참가차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여행 마지막 날이던 6월 6일 현충일 아침, 우리 일행은 에도도쿄박물관으로 향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연구팀은 아침을 먹지 않고 일단 걷기부터 시작하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시간이 남으면 아침을 먹고 그렇지 않으면 건너뛰기 일쑤다. 다이어트를 하기에 딱 좋긴 하지만 뺄 살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겐 고역이다.연구팀을 이끄는 분은 올 초 서울대 의대를 퇴임한 황상익 명예교수다. 황 교수는 의사이긴 하지만 의사학(醫史學) 전공자이기에 어디를 가든 답사가 기본이라 걷는 거리가 상당하다. 이번에도 하루 평균 17㎞ 정도를 걸었다. 덕분에 최근 오래 앉아 있어서 생겼던 허리통증이 씻은 듯 사라졌다. 의사와 함께 다니면 이렇게 덤으로 얻는 이득이 있다.박물관에 도착했지만 개관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아 있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옳거니! 오늘은 아침을 먹을 수 있겠구나.'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문을 연 식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곳은 문을 열었지만 '준비중(準備中)'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어쩔 수 없이 근처에 있던 편의점에 들어가 먹을거리를 찾았다. 나는 따끈한 우동국물이 먹고 싶어서 우동 사발면과 삼각 김밥을 골랐다. 계산을 하고 나서 부스럭거리며 음식을 꺼내 먹으려고 하는데 지배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편의점 안에서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며 우리를 내보낸다. 쫓겨난 우리가 거리에서 엉거주춤하고 있던 차에, 나는 오던 길에 공원이 있었던 걸 기억하고 일행에게 공원에 가서 먹자고 제안했다.공원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벤치에 앉아 각자 고른 음식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내가 고른 우동은 육수까지 포장되어 있었는데, 살펴보니 육수 포장지에 냉(冷)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내가 바라던 따끈한 우동이 아니라 차가운(冷) 우동이었던 것이다. 얼핏 냉(冷)자 위에 우리를 쫓아낸 지배인 얼굴이 겹쳐 보였다.허기를 해결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한쪽에 비석이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무슨 비석인가 싶어 가까이 가보니 '추도(追悼)'라는 두 글자가 큰 글씨로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라고 새겨져 있었다. 가슴이 아리고 목이 메어왔다."아, 이 비석이 우리를 인도하려고 따뜻한 아침을 먹지 못하게 했구나."비문을 읽어보니 위령비를 세운 것은 1973년의 일이라 한다. 그러니까 대지진 이후 50년, 일본군국주의가 패망한 지 28년이 지나서야 세워진 것이다.1923년 9월에 일어난 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타고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무려 6천명이 넘는 조선인을 학살했다. 학살을 주도한 자는 조선인 폭동 단속령에 따라 각지에서 조직된 자경단(自警團)이었다지만 학살이 가장 먼저 자행된 도쿄와 가나가와현에서는 군대와 경찰이 중심에 있었다.비 앞에서 묵념하면서 당시 조선인들이 느꼈을 절망감이 어땠을지 생각해보았다.그들은 평시에도 일상적 차별로 인해 생존이 쉽지 않았을 터인데, 지진이라는 자연 재앙을 만났으니 보통의 일본인들보다 두려움이 훨씬 더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웃이 갑자기 자신들을 폭도로 몰아 죽이려 했으니 억울함과 두려움이 몇 배 증폭되었을 텐데 일본이라는 국가는 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도리어 학살을 방관하거나 자행했으니 그 공포와 절망감은 이루 다 짐작조차 못할 것이라 하겠다.그런데 비에 새겨진 추도(追悼)의 '도(悼)'는 그런 절망감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다. 도(悼)는 본디 '현재의 슬픔'을 가리키는 글자이고 추(追)는 '기억한다'는 뜻이다. 곧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기억을 가리키는 말이 추도다. '추(追)'자는 어떤 말의 앞에 놓이면 그 말을 과거로 밀어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추도라는 말에는 그런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슬픔을 '기억'하는 행위는 도리어 과거의 일을 현재로 되살려내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비 앞에 멈춰 섰다. 저 비에 새겨진 슬픔을 지나간 일로 만들 수 있는 어떤 글자도 나는 생각해내지 못할 것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6-19 전호근

[전호근 칼럼]죄(罪)와 용서에 관하여

재물보다 사람 아끼라는 말은이 나라 모든이가 귀담아 들어야통치자는 아랫사람의 말 잘 듣고묻는것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신하의 죄 임금이 용서할 수 있지만임금의 죄는 용서해줄 사람 없어춘추시대의 패자 제나라 환공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한 노인을 만났다. 나이를 물어보니 83세라 한다. 환공은 노인에게 오래 산 복으로 자신을 위해 축원해 달라고 했다.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임금님을 위해 축원합니다. 재물을 가벼이 여기시고 사람을 중시하십시오.""좋은 말씀입니다. 좋은 말은 한 번으로 그쳐서는 안 되니 한 마디 더 해주십시오.""임금님을 위해 축원합니다. 임금께서는 부디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그 또한 좋은 말씀입니다. 좋은 말은 반드시 세 번 해야 합니다. 한 마디 더 해주십시오.""임금님을 위해 축원합니다. 임금께서는 부디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죄를 짓지 마십시오."예상치 못한 말은 들은 환공은 크게 화를 내며 이렇게 따졌다."과인은 자식이 어버이에게 죄를 짓고 신하가 임금에게 죄를 짓는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이 신하에게 죄를 짓는다는 말은 처음이오."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그렇지 않습니다. 자식이 죄를 지으면 어버이가 용서해주면 되고 신하가 죄를 지으면 임금이 용서해주면 됩니다. 하지만, 임금이 죄를 지으면 용서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 폭군 걸왕이 탕에게 쫓겨났고 주왕이 무왕에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환공은 노인에게 절하고 그로 하여금 고을을 다스리게 한 뒤 떠났다.유향의 '신서'에 나오는, 2천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노인의 세 마디 말은 참으로 옳다.재물보다 사람을 아끼라는 첫 번째 말은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이가 귀 담아 들어야 한다. 저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도, 침몰 원인을 아직 다 밝히지는 못했으나 따지고 보면 사람을 재물보다 천시하는 풍조가 근본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적재적량을 훨씬 넘어서는 화물을 적재한 이유나 적재된 화물을 고박하지 않은 이유는 모두 사람보다 재물을 아꼈기 때문이 아닌가.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두 번째 말은 모름지기 통치자는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말을 뜻하는 한자 言(언)은 입[口]에서 나오는 음파[≡]가 위쪽으로 퍼져 나가는 모양을 본 뜬 글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입이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래에 위치한 입[口]은 신분이 낮은 사람의 말을 뜻한다. 그러니 말이 통한다는 것은 높은 사람의 말이 아래로 전달된다는 뜻이 아니라 낮은 사람의 말이 위에까지 전달된다는 것을 뜻한다.고래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란 없다.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의 말은 아무리 목소리를 낮게 하더라도 다 알아서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은 말[言]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명령[令]이기 때문이다. 명령을 뜻하는 한자 령(令)은 입[△]이 위쪽에 위치하고 아래에 사람이 엎드려 기는 모양[ ]을 본뜬 글자다. 곧 아래에 있는 사람이 신분이 높은 사람이 하는 말에 복종하는 모양을 그린 글자가 령(令)자의 본뜻이다.명령, 곧 권력자의 말이 쉽게 전달되는 것은 그 말이 꼭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의 하수인들이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때로 온 몸을 던지며 죽음으로 항거해도 그들의 말은 세상에 반향을 일으키기 어렵다. 세상은 귀머거리인 까닭이다.마지막으로 아랫사람에게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그 이유가 절묘하다. 아랫사람의 죄는 윗사람이 용서해줄 수 있지만 윗사람이 지은 죄를 아랫사람이 용서해줄 수는 없는 법이다. 용서라는 말이 그렇다. 용서란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봐준다'는 뜻이다. 애초에 꾸짖거나 벌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일이 용서다. 그러니 아랫사람에게 죄를 짓는다면 그가 나를 용서할 길이 없으니 나 역시 그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다. 위에 버티고 있으면서 아래에 용서를 구한다는 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바가 크니 사면해줘야 한다'는 말처럼 무례하고 교활한 억지다.지금 이 나라의 행정부나 국회에 있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윗사람이 된 이들은 모두 노인의 이 말을 새겨야 할 것이다. 나도 죄를 짓지 않도록 이 말을 명심해 두려고 한다. 나 또한 부모이고 선생이니./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5-15 전호근

[전호근 칼럼]말 한 마디와 국가의 흥망(興亡)

나라 책임질 사람 선택하는 대선선거때마다 입에 담지못할 말 많아본인은 '한때의 말' 이라고 하지만국가와 자신 망친다는 사실 알아야부디 국민이 기억하고 나라 세우는아름다운 말들이 들려 왔으면…노나라 임금 정공이 공자에게 물었다."말 한 마디로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하던데 참으로 그런 말이 있습니까?""한 마디 말로 그 정도 효과를 기약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르기를 '임금 노릇하기는 어렵고 신하노릇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니 임금과 신하가 이런 도리를 안다면 한 마디로 나라를 일으키는데 가깝지 않겠습니까."정공은 다시 물었다."말 한 마디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런 말이 있습니까?""한 마디 말 때문에 나라가 망하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사람들이 이르기를 '임금 노릇하는데 다른 즐거움은 없고 오직 내가 명령을 내리면 아무도 어기지 않으니 이것은 참으로 즐거워할 만하다'고 하니 임금이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잃는데 가깝지 않겠습니까.""..."아무리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일으키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평소 번드레한 말을 미더워하지 않았던 공자다운 말이다.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일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거니와 말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임금과 신하가 이 말로 인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면 적어도 바로 나라가 흥하지는 않더라도 아름다운 미래를 기약할 수는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말 한 마디로 나라를 망하게 할 수는 있을까? 역시 공자의 이야기처럼 한 마디 말로 나라가 망하기는 어렵다. 모름지기 나라라는 커다란 물건이 하루아침에 망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라처럼 큰 물건만 있는 게 아니다. 때로 한 마디 말을 잘못하여 작게는 신세를 망치고 크게는 심지어 나라까지 망친 예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공자가 나라를 망친 예로 든 저 말도 본디 진나라 평공이 한 말이다.진나라 평공이 어느 날 신하들을 불러 함께 술을 마시다가 이렇게 말했다."임금 노릇해보니 별다른 즐거움은 없지만 내가 말하면 아무도 내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은 즐거워 할만하다.""..."모든 신하들이 잠자코 있었는데, 평공 곁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눈 먼 악사 사광이 갑자기 거문고를 번쩍 들어 평공을 향해 집어던졌다. 평공이 깜짝 놀라 몸을 피하자 거문고는 커다란 소리를 내며 뒤쪽 벽에 부딪쳤고 벽에는 구멍이 뚫렸다.평공은 크게 놀라 사광을 꾸짖었다."네 이놈 이게 무슨 짓이냐?"사광은 이렇게 대답했다."임금님, 지금 제 옆에서 어느 놈이 아주 나쁜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말을 임금님이 들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제가 그 놈을 향해 거문고를 집어던진 것입니다.""..."사광의 말은 참으로 옳다. '아무도 내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이 즐겁다'는 말은 임금이 입에 담을 말이 아닌 것이다. 어찌 임금뿐이랴. 모든 사람이 그렇다. 만약 어떤 사람의 주변에 그가 하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생각해볼 일이다. 과연 자신의 말이 모두 옳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을 즐거워하기 때문인지를. 사광의 이야기를 들은 평공도 깨달은 바가 있었던지 뚫린 구멍을 수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실언의 경계로 삼았다고 하니 말이다.2천500년도 더 된 오래 전 이야기다. 하지만 한갓 옛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 어떤 말을 하느냐는 여전히 중요하다. 더욱이 앞으로 5년 간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책임질 사람을 선택하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금까지는 선거 때마다 아름다운 말보다는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말들이 더 많이 들렸다. 개중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도 없지 않았다. 본인은 한 때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말 한 마디가 나라를 망하게 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자신을 망치기에는 충분하다는 사실을 거듭 새겨야 할 것이다.이제 선거가 눈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부디 국민들이 오래도록 기억할 만한, 그래서 나라를 일으킬 수 있는 아름다운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으면 좋겠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4-10 전호근

[전호근 칼럼]선(善)한 고을의 조건

대선주자들 다양한 공약 주장문제는 그들의 선한 이야기가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점이번엔 다수의 기계적 선택 아니길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그렇지않은 사람보다 많은게 '善'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에게 물었다."고을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좋아하면 어떻습니까?""좋지 않다.""고을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미워하면 어떻습니까?""좋지 않다. 고을 사람 중에서 선(善)한 사람은 그를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은 미워하느니만 못하다."공자의 대답은 뜻밖이다. 고을의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대답이야 수긍할 수 있다 쳐도 고을의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말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히려 공자는 선한 사람은 좋아하고 불선한 사람은 미워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그렇다면 세상에는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반드시 비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공자의 말대로라면 고을에서 선한 사람의 수가 불선한 사람의 수보다 많아지면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그럼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인가? 무엇이 선인지는 예부터 수많은 철학자들이 각기 다른 견해를 내놓았을 만큼 풀기 어려운 문젯거리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에우다이모니아는 모두 선이 무엇인지에 대한 각기 다른 견해다. 16세기 조선의 성리학자 이황과 기대승이 8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다퉜던 주제도 다름 아닌 선과 욕망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둘러싸고 일어난 논쟁이었다.그런데 고대 동아시아인들이 어떤 것을 선이라고 생각했는지는, 선(善)이라는 문자의 자의(字義)를 살펴보면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자의 선(善)은 양(羊)자와 공(公)자가 위아래로 배치된 글자다. 여기서 양(羊)은 뿔 달린 양을 그린 글자이고 공(公)은 함께 나눠 먹는다는 뜻을 담고 있는 글자다. 따라서 나눠먹으면 선(善)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선(不善)이다. 사람과 사람의 평화로운 공존을 뜻하는 화(和)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화(和)자 또한 본래 벼를 그린 화(禾)와 공(公)이 합쳐진 글자(和의 옛글자는 '禾公'이다)로 수확한 벼를 나눠먹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선과 평화는 가진 것을 나누는 데 달려있다는 것이 이 두 글자에 들어 있는 오래된 진리다.나눔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고을은 선한 사람이 불선한 사람보다 많은 고을이다. 그런 고을에서는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많다. 이것이 선한 고을의 본모습이다.불행히도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지금의 이 나라는 선한 고을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빈부의 양극화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자살률은 OECD국가 중 가장 높을 뿐 아니라 노동시간 또한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긴 나라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헬조선이나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세간의 말들을 그냥 귓가로 흘려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이 나라의 불선(不善), 불화(不和), 불의(不義)는 심각하다.올해는 이 나라의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헌법재판소 판결이라는 변수가 남아 있지만 광장의 민심을 헤아려보면 현재로서는 조기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출마를 선언한 후보자들은 저마다 공약을 내걸고 자신이 이 나라의 지도자로 적임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면면을 살펴보면 그 어느 때보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많아 보인다. 어떤 이는 기본소득을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사회수당을 강조하고, 어떤 이는 일자리 확대가 답이라고 주장한다.지향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모두 나눔을 더 늘리자는 이야기이니 공자가 말한 좋은 사람이 이 나라에 이렇게 많은가 싶다. 문제는 그들의 선한 이야기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 점일 것이다. 이번에는 다수의 기계적 선택(選擇)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뽑는 '선택(善擇)'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거니와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많은 것이 선한 고을의 조건이기 때문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3-06 전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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