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년의 늘찬문화

 

[손경년의 '늘찬문화']미래세대에 대한 의무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일상 감염이 커지는 '비상사태'절망보다는 새 규범 필요 시기말러 8번교향곡 초연 협력의 절정'더 멀리 가려면 함께…' 돌파구코로나19가 재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방역지침을 잘 준수하면 큰 일 없겠지'라는 마음이었는데 이제 늘 다니던 일상 공간에서의 감염 가능성이 커지다 보니 반년 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더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주어진 24시간을 넋 놓고 살 수는 없다. 여전히 잠자고, 먹고, 마시고, 걷고, 청소하고, 생각하고, 긁적이고, 두드리고, 여닫아야 한다. 동시에 폭우와 태풍, 더위를 이겨내려고 애쓴다. 그렇지만 최근의 위기감은 몇 년 전의 것과 다르게 다가온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코로나19'라는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와 세계 곳곳에서의 이상 기후는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그동안 인간이 쌓아온 삶의 열정이나 원칙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 라는 질문은 그래서 회피하기 어렵다.최근에는 지구 곳곳에 코로나뿐만 아니라 대형 화재, 홍수, 지진, 해양 산성화, 동식물의 생화학적 변화 등의 기사를 더 많이 접하게 된다. 그렇지만 '코로나19'처럼 일상에서 강하게 맞닥뜨리지 않으면 지구의 이상징후는 예민한 사람들의 두려움일 뿐, 우리는 마치 아무 이상이 없는 듯 하루하루를 사는 정도의 감수성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비상사태'를 맞이했다는 것이며 이런 경우 그동안 적용해 온 공동체의 규정이나 조건은 효력을 잃게 된다. 예컨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것은 이전의 규정이 아니다. 또 기존의 규정이라면 공연장이나 전시장은 공연과 전시를 수행하면서 관객과 관람객에게 문을 열어야 한다. 그러나 방역차원에서 무관중 공연 혹은 온라인 방식의 전시와 공연이 요구된다. 다중이 사용하는 시설을 이용할 경우 개인 정보를 반드시 남겨야 한다. 이 또한 개인정보보호가 우선인 이전의 방식과는 다르다. 비상사태 속에서는 실존적인 것이 규범적인 것을 앞선다. 왜냐 하면 규범은 '정상 상태' 또는 '정상적 상황'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상사태'의 대응은 '뉴노멀(New Normal)시대'에 맞는 정책과 제도, 생활양식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정상적 상황'이었던 이전의 우리 모습은 어떠했는가. 경제성장을 위해 경쟁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성과주체'로서의 자신을 지독하게 강요하면서 번아웃 상태까지 이르렀으며 배우고, 실험하고,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꿈꾼 것을 생산하는 방식이 아닌 '더 빨리 더 많이' 소비하는 쪽으로 달려온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적어도 지금의 '비상사태'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절망하기보다 '뉴노멀(새로운 규범)'을 위한 기존과 다른 삶의 패러다임을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삼을 수 있으며 그나마 쓸만한 유산을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천인 교향곡(Symphony of a Thousand)'이라는 별칭을 가진 구스타프 말러의 8번 교향곡은 그의 아내 알마에게 헌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0년 9월 12일 뮌헨에서 초연을 할 때 858명 코러스와 171명의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함으로써 압도적인 규모로 강렬한 인상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섬세한 실내악으로부터 가장 웅장한 합창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소리들은 복잡함과 강렬함, 순수함을 표현함으로써 말러의 창조성과 그것을 구현해 낸 코러스와 오케스트라의 협력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말러의 8번 교향곡은 협력이 가져다주는 최고의 결과를 음악으로 드러냈으며 노벨 평화상 수상자 앨 고어가 수상연설에서 인용한 '더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더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은 인류의 협력이 '비상사태'의 현재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라는 것을 일깨운다.'인간은 초협력자들이다'라고 말한 마틴 노왁의 말처럼 우리는 내일의 문제 훨씬 너머까지 관심의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으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들에게까지 돌봄의 의무를 연장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수많은 사람과 협력함으로써 지구의 유산을 미래세대에 전해주어야 할 의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이것이 곧 삶의 지속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믿는데 주저함이 없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前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前 대표이사

2020-08-30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예술이라는 '언어'로 소통하기

16일까지 'BIFAN' 반갑다엄격방역 제한관람 영화 집중하게일어난 일 아닌 일어날 법한 일 담은문화·예술은 역사보다 더 철학적소통 어려운 시대 긍정의 가치경험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는 기존의 에스에프 영화가 보여주는 접근방식과 좀 다르다. 내용을 보면, 지구에 12개의 비행물체가 느닷없이 나타났고, 세계의 나라들은 외계인의 방문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언어학자 루이스를 보내며, 루이스는 외계인과의 대화를 시도, 결국 무기를 주겠다는 그들의 말을 이해하였고, 무기는 그들의 '언어'였다. 그리고 그 '언어'는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 시작과 끝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로 진행되는 선형적인 형태의 지구 언어와 달리, 외계인의 '언어'는 과거, 현재, 미래가 원형으로 연결, 공존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어서 '언어'를 얻은 루이스는 현재에서 미래를 보고 과거에서 문제를 해결하여 인류의 파국을 막는다. 그리고 자신의 불행한 미래를 보았으나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언어'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의사소통이다. '컨택트'를 보면 지구인이 외계인과 소통이 되지 않자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서 두려움과 긴장,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소통이 부재하게 되면 개인 간의 갈등, 사회의 혼란, 국가 간의 전쟁 등으로 표면에 드러난다. 사실 외계인과의 소통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같은 습관과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소통 부재로 인한 갈등과 혼돈이 늘 있었다. '같은' 것이라고 여겼던 것은 사실 '같지 않음'이었고, 그렇게 많이 발화된 말들은 소통을 위한 노력이라기보다 위계를 만들고 존엄을 훼손하는 도구로 쓰인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문화예술계가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는 요즘, 지난 7월 9일 시작해 16일까지 이어질 제24회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BIFAN)가 참으로 반갑다. 화려한 레드카펫과 부대행사는 없었지만 엄격한 방역과 거리두기 제한 관람으로 오롯이 영화에 몰두함으로써 영화제의 본질이 무엇이었던가를 되새김해보는 계기가 된 듯하다. 오랜만에 영화관 객석에 앉아 보게 된 한 편의 영화는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진다. 야마모토 타츠야 감독의 '노사리:순간의 영원'은 '활발'했던 도시의 과거와 텅 빈 아케이드 거리의 불안정한 청년들의 현재, 그리고 '당연한 것'은 잃어버리고 난 다음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진짜'가 사라졌을지라도 사람은 '모조품'을 통해 살아 나갈 수 있다는, 다소 쓸쓸한 '소멸도시'의 풍광을 그려내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고민한 작품이었다.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과 예술이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라고 말한다. 역사는 '일어난 일들'을 보여 주지만, 예술은 인간의 삶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예컨대 예술작품을 만나면 우리는 스스로 의문을 가지면서 '일어날 법한 일들'에 주목하게 되고, 뒤이어 정치와 사회적 현상에 관심을 두는 계기를 얻는다. 향유자의 감성과 창작자의 상상력이 만나 소통을 하는 것, 다시 말해 예술이라는 '언어'로 소통을 하면 개인적 삶, 국가와 사회, 계층과 계급 등의 큰 사안들이 서로 분리되어 이해되지 않도록 도움을 받으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현재 상황에서 나와 같은 방식으로 혹은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최근 우리의 하루하루 삶은 매우 구체적인 상황에 있다. 코로나19의 시기에 '예술을 통한 소통'을 갈망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요청과 다수의 생명과 연동되기 때문에 다중이 모이는 장소를 폐쇄해야 한다는 '방역의 요구'를 동시에 들어야 하는 공공문화시설 운영자는 어떤 언어로, 누구와 소통해야 할 것인지 짚어봐야 한다. 동시에 좀 더 중장기적 관점으로 시야를 넓혀, 지금까지의 문화예술의 생산 및 소비의 방식을 '개인적 계산보다는 공동작업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며, 지속적인 대화와 비교, 풍부한 맥락 검토 등을 통해 세상과 사람에 대한 내러티브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경험을 의미'하는 웨인 부스(wayne Booth)의 '공동-추론(co-duction)' 방식으로 재구조화할 필요도 느낀다. 어쨌거나 우리는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는 시대일수록 영화나 연극, 콘서트와 무용 그리고 문학과 전시를 통해, 소통의 왜곡과 변형을 그나마 본래의 뜻으로 돌려줄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는 믿음을 쉽게 버리지 못할 것이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20-07-12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코로나19' 이후의 희망과 기대

백신 개발 어려워 감염 두려움 더 커문화예술계 '새로운 개념' 요구돼온라인 갤러리등 다양한 기획 시도'움직임의 일상' 준비할 공공기관지원대상 누락없는 정책실행 기대약 두 달 동안 시계추처럼 집과 사무실을 오가는 정도의 움직임과 집 근처의 시장에서 음식물 등 생필품을 사기 위한 나들이 정도로 '사회적 거리두기', 좀 더 엄밀히 표현하자면 '물리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하고 있다. 요즘은 중앙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마다 마치 새롭게 배운 외국어를 말해보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산책 나온 강아지, 길고양이, 비둘기, 참새, 개나리, 철쭉 등에 인사를 건넨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달라진 일상이다.알다시피 우리가 알고 있는 세균은 DNA, RNA를 모두 갖고 있으며, 스스로 생명 활동이 가능한 완전한 세포이자 생물이다. 이에 반해 바이러스는 단백질 외피가 유전물질 한 가닥을 싸고 있는 구조이며, 종류에 따라 DNA, RNA 둘 중 하나만 갖고 있고, 세포막이 없으며 숙주 내에 있을 때만 생명 활동이 가능하다. 바이러스는 세균과 달리 돌연변이가 나타날 수 있고 변이가 빨라서 백신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하니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최근의 공연이나 행사, 축제, 스포츠 등은 대규모 관중 또는 관람객이 함께 모여 공통의 관심사에 몰입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여행은 체험과 모험이 주는 힘을 강조하면서 국가를 넘나드는 관광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여야 성공적이라는 등식은 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코로나19 이후 문화예술계는 규모와 경제적 편익과의 관계, 공연·축제 그리고 관광의 의미 및 가치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동시에 형식과 내용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생활방식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10년 뒤 우리는 놀랍게 바뀐 사회생활과 거리의 모습, 지금과 다른 방식의 사람과 사물에 관한 관심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까지 이루어왔던 만남·연결을 통한 상호이해, 현장이 주는 생생한 체험, 직접 보면서 느끼는 실물의 아우라 등을 느끼는 방식이 바뀔지도 모른다.이반 일리치의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내용 중에 중세의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책을 읽던 독특한 방법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수도사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적혀 있는 양피지로 된 책을 여럿이 모여 낭독하는데, 마치 농사꾼이 자신이 지은 포도밭의 잘 익은 포도를 한 알 한 알 음미하는 것처럼 책의 글자 하나하나를 소리 내어 읽으면서,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음악적 쾌감을 즐겼다고 한다. 코로나바19로 인해 공연장에서의 대규모 공연과 미술관의 전시, 강의실의 교육과 면대면 회의 등이 어려워지자 문화예술계는 '무관중 연주회', '온라인 갤러리', '제한적 관람', 야외에서의 '드라이브인 공연', '랜선공연(동화구연, 라이브 공연, 쇼케이스 발표 등)', 온라인 강의, 화상회의 등 접근이 가능한 다양한 기획을 시도하고 있다. 묵독의 방식이자 혼자서 겪는 체험으로서의 독서가 일반적인 요즘, 이반 일리치의 사례처럼 잊고 있었던 옛 방식의 하나인 '낭독'의 즐거움을 '랜선 동화구연'으로 되살려내기도 한다. 이런 시도는 불과 몇 개월 동안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이제 우리는 '팬데믹'을 대처하는 세계 각국의 모습을 통해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재난대비 '삶의 기술'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류사회에 갖가지 재앙과 질병을 퍼트린 판도라의 남편 '에피메테우스'를 비난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희망'은 '자연의 선량함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에서 우러나오며, 예측할 수 없기에 희망을 품고 뜻밖의 일이기에 놀람, 경이로움의 체험을 얻는다고 한다. 반면에 '기대'는 '인위적으로 계획하고, 통제한 것에 따른 결과에 대한 의존'을 뜻한다고 한다.조만간 코로나19로 인한 '멈춤'에서 '움직임의 일상'을 준비해야 할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은 중장기적 계획과 더불어 당면한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 입안과 실행에 대한 '기대'를 요구받을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시절이든 좋지 않은 시절이든 사회적 역할을 해왔던 예술단체, 예술가들이 '모든 사람'의 지원대상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문화정책·예술정책이 체계적으로 실행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품위와 상식, 인간의 존중과 미덕에 대한 '희망'과 함께./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20-04-19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심각'할수록 구석구석 살펴봐야 할 때

예술인복지재단, 법 적용코로나19 피해 예술인 위해복권기금 180억원으로특별융자 한시적 운영한다니그나마 한숨 돌릴수 있을지…알다시피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전 유럽의 유행병으로 기억하고 있는 흑사병은 쥐에게 붙어있는 벼룩을 통해 인간에게 옮기는 박테리아의 일종인 페스트균이 원인이었다. 최초 진원지는 히말라야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몽골제국 성립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접촉이 빈번해지는 새로운 변화에 따라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에 의하면, '1347년에 제노바의 식민지인 카파를 포위한 타타르족이 흑사병에 전염된 시체들을 석궁에 매달아 도시 내부에 버렸고, 포위를 피해 탈출한 자들이 몸에 있던 병원균을 콘스탄티노플과 해안 도시들을 통해 서유럽 전역에 옮겼다'는 증언이 있다. 이 시대의 자료에 따르면, '흑사병을 신의 재앙 또는 비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범죄행위로 해석', 사람들은 '흑사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종교 행사, 순례, 채찍질을 하거나 집단 히스테리와 특정 인종의 학살도 자행'했다고 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과학적인 설명을 위한 노력과 예방적 차원의 지침들도 있었다'고 한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까지 전 지구적 대응이 요구되는 질병을 '자주' 겪다 보니, 1348년에 시작된 흑사병이 떠올랐다. 물론 현대의 질병관리 수준이나 삶의 환경 자체가 달라서 유사한 경우로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 '코로나19'의 첫 확진자가 나온 1월 20일, 정부는 위기 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로, 1월 27일 '경계' 그리고 2월 23일에는 '심각'으로 상향하였다. 3월 1일 기준으로 중국을 포함, 51개국 8만3천명 이상의 확진자가 확인된 상태이다. 이 전염병은 모든 사람에게 위협적이기에 퇴치는 당연히 인류 공동의 목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전염병의 발생 원인, 감염경로, 안전망 확보 등은 사회 시스템 수준에 따라 적절한 조처를 취해야 하나, 감염에 대한 긴장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노 등의 격렬한 감정폭발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감각의 강화에서 오는 '혐오'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14세기의 '자신의 보호' 방식과 닮아있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우리나라는 '코로나19'의 '경계' 단계에서 문화예술 행사나 공연 등의 실시 여부는 지역특성과 상황에 따라 자율적 대처를 취했으나, '심각' 단계에서는 모든 사업의 취소 또는 연기를 하도록 했다. '코로나19'의 강한 전염성의 특성 탓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의 운영은 아무래도 안전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안전을 우선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대중교통이나 식당, 전통시장, 쇼핑몰 등의 이용도가 떨어지다 보니 소상공인들의 생업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마찬가지로 문화·예술계의 경우도 사업실행 시점에 전면 중단이나 연기를 함에 따라 소규모 예술단체나 예술인들의 생계 문제도 함께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에 시간과 힘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해서 정신이나 육체 따위가 지쳐서 고단'할 때 우리는 '피로하다'고 말하며, 이러한 피로는 수고와 노동 속에 있다. 피로가 위험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사람들이 이를 감내하는 이유는 결과의 성취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소수를 제외하면 금전적 보상이 그리 많지 않은 직종으로 이해되는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연극, 뮤지컬, 오케스트라 등의 공연 한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3개월에서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며, 분야별 예술인들이 모여 기획, 연습 그리고 실행의 과정을 오롯이 거쳐야만 관객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결과가 나온다. 그 과정을 보면 참여한 예술인의 땀을 요구하는 노동이 있고,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의 고단함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들이 수고를 통한 피로를 피하지 않고 기꺼이 정면으로 맞는 이유는 삶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세계 속에 자신을 귀환시킴으로써, 예술을 통한 삶의 성장을 갈구할 때 생기는 허기를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활동이 곧 삶인 예술인들에게 있어서 예술인복지재단이 '예술인복지법 제 10조 6'에 의해 '코로나19'의 피해 예술인을 위해, 복권기금 180억원을 기반으로 2020년 3월부터 특별융자를 한시적으로 운영, 지원한다고 하니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20-03-01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현실 속의 SF, SF 속의 현실

전체주의 공포 보여주는 '1984'사회 억압 지적 '다섯번째 계절'엔데 '지역통화' 만드는 구조 제안 판타지 아닌 '현실' 느꼈다면 '독서의 힘' 쓸만한 것 같다해가 새로 바뀌면 습관에 기대어 계획을 짜긴 하나 한 해의 말미가 되면 시들해져 버린 경험을 많이 했는데, 2020년 1월은 작심삼일의 효력이 지속되어 연말에 짜둔 독서계획이 현재진행형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각종 흥미로운 영상 및 시각적 매체와 속도감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소셜 미디어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드는 책을 고르는, 아니, 책이 나를 선택하는 경험을 하는 것은 마치 도심 한복판의 공원에서 자동차 소리 대신 새소리를 듣는 기분과 비슷하다. 2012년에 출간된 '조지 오웰 -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의 서문 첫 단락에서 저자 고세훈은 "오웰의 고발과 비판은 권력(자)·가해(자)를 향해 치열하게 열려있고, 권력과 가해의 주변에는 늘 지식인이 서성댔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권력 언저리에서 킁킁대며 안일과 위선과 표변을 일삼는 지식인에 대한 거대한 보고서일지 모른다."라고 하는데, 이러한 그의 분석은 SF(Science Fiction) 장르의 거장으로 알려진, 조지 오웰에 대해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권력의 부패한 모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동물농장'(1945)이나 빅브라더를 통한 전체주의의 공포를 보여주는 '1984'(1949)는 당시의 사회주의 지식인에 대한 '내부 비판자'로서의 오웰의 입장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의 책을 '제대로' 읽다 보면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불확실한 소용돌이와 자본주의, 사회주의의 이념, 권력과 지식인의 움직임이 우리 삶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힘을 느낀다.2015년에 발표된 N.K.제미신의 '다섯 번째 계절'은 '고요'라고 불리는 거대한 초대륙에 반년 또는 수세대가 지나도록 지진이 일어나는 재해 시기를 제목으로 삼은 장편 SF이다. 인류 중에 '조산력(造山力)'(지진과 관련된 에너지를 조종하는 능력)을 지닌 '오로진'이라는 종족은 재앙을 불러오는 존재로 여겨져 혐오의 대상이며, '펄크럼'이라는 기관에서 교육받고 관리를 받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 또 교육 후 살아남아도 철저히 도구화되고 착취 받는 존재이다. 제미신은 "내게는 차별을 거부할 특권이 없었다"는 흑인이자 여성의 입장에서 혐오, 인종차별, 성차별이 여전히 작동되는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억압시스템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2016)은 미국인 아버지가 결혼중개회사의 카탈로그에서 고른 열여덟의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어릴 때 어머니가 선물 포장지로 만든 '살아 있는' 종이 동물들과 함께 놀면서 산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어머니가 물려준 피도 싫었던 '나'는 점점 영어로 대화가 안되는 어머니에게 입을 닫았고 그때부터 어머니의 세계도 닫히게 되며, '살아 있는' 종이 동물들도 볼품없는 종이가 되어버린다.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어머니가 남긴 편지를 읽으면서 그제야 종이 동물들이 '살아 있던 비밀'을 알게 된다. "아들, 네가 중국사람처럼 생긴 네 눈을 안 좋아하는 것, 엄마도 알아. 엄마를 닮은 눈 말야(…) 너한테 중국어로 말을 못 걸게 했을 때 엄마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이해할 수 있겠어? 그때 엄만 모든 걸 다시 잃어버린 기분이었어." 켄 리우는 SF, 판타지 문학으로 독자에게 다가와 상상과 환상, 그리고 현실을 교차시키면서 '대화'와 '소통', '공감' 그리고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미하엘 엔데의 '짐크노프'(1960), '모모'(1973), '끝없는 이야기'(1979) 등 동화와 8편의 중·단편들로 구성된 판타지 소설 '자유의 감옥'을 읽다 보면, '현실 너머의 현실'을 넘나드는 판타지 여행을 하면서 우리가 가끔 잊고 살아가는 내면의 세계 및 현재의 문제를 다른 눈으로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된다.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시간경영'이 과연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지를 우화적으로 질문하고 현실의 모순에 대한 미래로부터의 해답을 끌어내고자 하는 엔데는 궁극적으로 '돈'의 문제, 다시 말해 화폐시스템에 대한 '상식'을 의심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지역통화'(경기지역화폐, 부천페이 등과 유사)를 만들어가는 구조를 제안하고 있다. 끝으로 SF 읽기를 통해 판타지가 아닌 현실을 더 명징하게 느꼈다면 '독서의 힘'은 역시 쓸만한 것 같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20-01-05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다음 백년을 상상할 권리

20년간 정책·운영 제대로 했는지되돌아 보면서 변화·혁신 준비현실 절박 할수록 여유 갖고'당대의 결여' 끈질기게 도전인간 고유 권리 제대로 확보해야1999년, 인류는 두 번째 맞이하는 밀레니엄의 삶을 산다는 기대와 동시에, 2000년 1월 1일로 넘어갈 때 날짜와 시각을 다루는 과정에서 드러난 컴퓨터 설계의 오류에 대한 지구적 우려 및 사회적인 파장을 경험했다. 물론, 2000년 이전에 대부분의 국가, 회사나 단체들이 컴퓨터 시스템을 점검, 교체하였기에 막상 1월 1일에는 소소한 일 외에 세계를 흔들만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20년을 보냈다.부천문화재단은 2001년에 만들어졌다. 재단은 그간의 햇수로 보면 19년의 시간을 살았고 내년은 우리 나이 셈법으로 스무 살이 되며, 2021년이면 만 20세가 된다. 지난 시간을 더듬어 살펴보니, 설립 당시 재단의 비전은 지구적 트렌드였던 글로벌라이제이션의 개념을 도입한 '세계지향의 문화도시-세계를 지향하는 부천문화재단'이었다. 그만한 이유와 명분이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갓 출범하는 재단의 비전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원대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10년이 지난 2010년의 문화재단은 '친절', '따뜻', '시민', '행복', '관심', '소통', '공유' 등의 개념을 근간으로 '문화공동체의 지향'을 비전으로 삼았다. 좀 더 삶터의 가까운 곁을 살펴보는 눈이 생겼던 것 같다. 법정문화도시 지정준비를 시작했던 2014년부터의 문화재단은 '시민참여에서 시민주체로의 변화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질문해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개인은 고유하고 유일하며, 모든 개인은 존엄한 대상'이라는 인식에서 출발, 문화재단의 모든 사업을 되돌아볼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부천문화재단은 되돌아보기 위해 오히려 '백년 뒤의 문화정책'을 상상하고 만들어보고자 했다. 대부분의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야 결과가 드러나는 문화정책 또한 중장기 정책을 수립할 때는 주로 5년 또는 10년 정도를 다룬다. 왜냐하면 당장 요구되는 현안의 해결책 제시와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위한 방향 및 예산투여가 가시화되었을 때 비로소 '정책이 실현되었다'고 여기는 관성이 있어서 이 정도의 기간이 적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정책도, 자치단체의 정책도 아닌 기초단위의 재단에 불과한 부천문화재단이 적정한 기간이라고 여기는 5년 혹은 10년을 넘어 굳이 '다음 백년'의 비전을 만들고자 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장 닥친 과제도 많을 텐데 체감도, 예측도 만만치 않은 미래를 그려보겠다는 것은 20년 동안의 재단정책과 운영이 부천의 문화예술진흥과 문화예술생태계를 위해 과연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 여부를 짚어볼 계기를 찾고, 이 과정을 통해 변화와 혁신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본 탓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만나면 현재의 조건에 더 집착하기 때문에, 혁신이니 전환이니 하는 말을 버겁게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지만 흥미롭게도 사람들에게 백년 뒤를 상상해보라고 하면 오히려 먼 미래여서 시간을 번다는 느낌 탓인지 훨씬 자유로운 상상을 하며 혁신방안을 내놓는다. 또 물리학에서 말하는 시간성을 완전히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당대의 사고수준 정도에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의 여부가 미래의 형태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그리 큰 어려움을 갖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꾸는 꿈과 상상은 미래를 바라보는 방향을 결정하고, 미래의 삶을 구성하는 토대가 된다는 것에 대해 다른 의견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나 지자체, 각 지역에 있는 문화재단들, 그리고 규모와 크기와 상관없이 문화예술단체들 모두에게 '다음 백년의 상상하기'를 권하고 싶다. '다음 백년을 상상한다는 것'은 현실이 절박하고 시급할수록 생각할 마음의 공간을 갖고, '당대의 결여'를 끈질기게 도전함으로써 인간 고유의 권리를 제대로 확보하겠다는 의지와 맞닿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다음 백년을 상상한다는 것'을 통해 우리는 유전공학, 인공지능 등 기술발전의 속도가 빨라지고 기후변화 등이 가시화되고 있는 지구 생명의 공동운명과 인간과 생명 종들 사이의 연대와 협력을 미리 준비하고, '사람이 우선'이라는 정부정책이 문화기본권과 시민권을 제대로 실천하도록 힘 있게 이끌 수 있을 것으로 본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9-11-17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사유를 지탱하게 만드는 예술의 힘

몇달간 '조국사태'로 불리는수용적정선 넘은 엄청난 양의 정보'정치라는 거대담론'속 피로증상다행히 예술이 자기몫 다해우리는 분별력 갖고 버티는게 아닐까'정보피로증후군'(IFS : Information Fatigue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1996년 영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루이스가 만든 개념으로 '정보의 과다에서 오는 심리 질환'을 뜻한다. 당시 직업상 많은 양의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난 증상으로, 예컨대 분석적 능력이 저하되고 주의가 산만해지며, 전반적인 불안감과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무기력증 등이 그것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오늘날, 소셜 미디어의 다양한 방식을 통한 확장과 함께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도 전에 정신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더미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정보는 시민민주주의를 성장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나, 그렇다고 정보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알고자 하는 본질로의 접근이 용이해지고 더 나은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보피로증후군'을 만나게 되면 분석적 능력이 마비되고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의 구별이 어려워지는, 다시 말해 '사유의 위축'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우리의 일상은 한 주제의 정보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과의 경제적 갈등이나 외교적 문제로 인한 개인차원의 일본여행 취소 및 상품불매운동도 일어나고,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한 축산농가의 어려움도 발생하며, 다른 한편 상대적으로 개인적 밀도가 높은 문학, 음악, 연극, 전시 등의 행사와 영화 관람, 축제 등의 일상적 예술 활동들이 일어나고 있다. 특별하고 거대한 의도 따위를 앞세우지 않지만 주어진 시간 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살갑게 다가오는 이유는 '미세한 것과 거대한 것'의 유기적 관계를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무기력 증상으로 분별과 사유의 어려움을 겪던 중 명성이 자자한 두 편의 영화를 볼 기회가 생겼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와 이옥섭 감독의 '메기'는 소란스럽지 않게 개인과 사회,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그러면서 적정한 정보량을 제공하고 있어서 결코 피로감을 주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벌새'는 199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어른들의 눈에는 사소하게 보일 수 있는 일들이 생의 전부처럼 여겨지는 15세 여중생 '은희'의 이야기로 영화는 진행된다. 교육 때문에 낡은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아야 하는 것, 부모님이 격하게 싸운 뒤 아무렇지 않은 듯 거실에서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 김일성 사망 소식에 울부짖는 북한의 주민모습 등은 여중생 '은희'의 입장에서는 그저 낯설고 상관없는 일일 뿐이다. 그렇지만 성수대교 붕괴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감으로 인해 자신의 문제로 다가온다. '메기'는 마리아사랑병원의 간호사 '윤영'과 남자친구 '성원', 병원의 부원장 '경진'을 통해 사소한 의심과 믿을 수 없는 믿음, 청년실업과 손찌검, 도시의 싱크홀, 엑스레이와 지진 등 미세한 일상이 연결코를 만들어 커다란 그물망으로 엮이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영화 모두 여성감독이 만들었고, 올바른 것을 강요하거나 선택하라는 식의 압박 없이 '곰곰이 생각할' 가치가 있는 물음을 주고 있으며, 낱낱이 흩어져 있는 개별적인 사건들이 사회의 거대담론과 유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차곡차곡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몇 달간 우리는 균형 잡힌 일상의 뉴스를 접하기보다는 일명 '조국사태'로 불리는 법무부장관 '조국'과 관련한 엄청난 양의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결과 거짓과 사실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수용적정선을 넘어섬으로써 '정보를 주는' 본래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언론은 '정보를 통한 소통의 과정'을 오히려 왜곡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다량의 정보를 통해 세상 이치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면 좋으련만, 도리어 상식적인 이해가 되지 않는 '정치라는 거대담론' 속에서 피로증상으로 판단이 마비되어 버린 듯하다. 그런 와중에 다행히 영화와 문학, 음악 등 다시 말해 예술이 끈기있게 자기 몫을 해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과잉정보에 익사하지 않으면서 분별력을 갖고 사유를 놓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닐까./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9-09-29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주체였던 사람이 진정한 주체 '되어야 하는' 생활문화를 위해

레이몬드 윌리엄즈는 '문화는 일상'(Culture is ordinary)'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내 방식대로 해석한다면 '연속되는 일상이 이루어지는 삶이 곧 문화'이다. 그러니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삶은, 문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정답이 없으며, 따라서 질문을 하는 행위는 삶의 지속성을 의미한다. 누군가 '오늘의 나'에게 '어떤 삶을 원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고르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고르게'와 '인간답게'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과 구체적 실천방식이 있을 것이다. 각자의 생각을 대화와 토론, 논쟁과 담론의 과정을 통해 실천방식을 찾을 것이며, 실천의 결과는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 변화를 가로막는 장벽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실천이 힘을 얻는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안전하면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우리의 손'으로 열어갈 때 비로소 가능하며, 이를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할 역할과 개인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각기 '협의-합의'의 과정에서 '시대의 가치가 반영된 균형 잡기'가 어느 선에서 이루어질 것인가 다시 말해 특정한 누군가에 의해 제시되는 하나의 답이 아닌, 지속적인 질문과 성찰, 수정과 변경의 과정을 어떻게 열어둘 것인가가 한 사회의 문화수준을 이해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 같기도 하다.'부천생활문화페스티벌-다락'이 벌써 5년째 접어들고 있다. 5년 전의 고민을 되돌아보면, 당시 시 행정부와 문화재단, 그리고 이미 동아리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던 활동가들과 함께 '수동적 향유에서 능동적 주체로서의 부천시민, 행복을 스스로 만드는 부천시민, 자율성과 자발성을 내적 동력으로 삼으면서 공적 영역의 부천시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시작한 축제였다. 그때는 생활문화라는 개념을 정립하는 것도 어려웠고 동아리지원을 정부가 해야하냐는 지적에 대해 딱 부러지는 답을 내놓기도 힘들었다. 인구 87만의 부천시민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해야 할 것인지, 주민참여를 독려하는 다양한 공동체 프로그램이 있지만 참여의 방식은 적절한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지라도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은 모여보자고 시작한 2015년 첫 모임은 공무원, 문화재단담당자, 생활문화장르별연합회, 생활문화협동조합 등의 활동가들이었다. 첫 축제에 123개의 동호회가 참여, 생활문화가 시민축제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칭찬도 있었지만, 시민이 아닌 생활문화 강사 중심의 활동이 아니냐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181개의 동호회가 참여한 2016년은 콜라보레이션 방식의 공연을 발표하면서 전년도에 비해 협력수준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생활문화페스티벌의 비전을 제대로 고민했냐는 자기반성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237개 팀이 참여한 2017년도는 공연, 전시 등과 함께 생활문화동호회들이 직접 창작뮤지컬을 만들어 발표함으로써 시민의 자발적 참여 및 창작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과정에서의 '참여 피로도'상승의 고민과 다양한 생활문화동호인들의 의견의 장, 다시 말해 시민참여범위가 적절한가에 대해 참여단체들이 스스로 문제 제기를 했다. 계속되는 문제의식, 질문, 그리고 '적절함'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2018년도는 축제추진자문단을 꾸렸고, 축제준비를 위한 생활문화프로그램 매니저의 운영과 공간별로 참여자의 자발적 운영을 시도했다. 여전히 시민의 참여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방법 모색에 대해서는 고민을 늦추지 않았다. 이제 8월 14일부터 시작되는 전시와 더불어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부천의 수주고등학교 등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 체험 등이 진행된다. 올해는 '축제추진단'을 통해 분야별 콜라보레이션 혹은 시민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장소로 찾아감으로써 지역사회가 반기는 축제운영을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장자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걸음으로써 길을 만든다." 부천에서는 생활문화를 통해 제도화에 갇혀있기보다는 그 제도 속에 포함된 사람들의 목표, 재능 등 공통된 욕구의 변화가 부천시민의 손에 달려있다는 경험을 얻고 '우리'가 걸어가면서'길'을 만들고 '우리는 늘 주체였었고 주체이며, 주체일 것이다'라는 것을 배워가는 중이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9-08-11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법정 문화도시 지정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

지정후 사업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어젠다 공유·합의 방법 고민 필요사회·경제·환경·문화등 모든 영역공공이익과 사회적 가치 이해권리보장 스스로 만들어 가야전국의 지자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문화도시 사업은 작년 예비도시로 지정된 10개의 도시 외에 올해 35개 이상의 지자체가 신청한다는 소문이 있다. 알다시피 문화도시·문화지구의 지정 및 지원에 관한 내용은 '지역문화진흥법' 제4장에 담겨있다. '문화예술, 문화산업, 관광, 전통, 역사, 영상 등 지역별 특색 있는 문화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문화 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정된 도시'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소속으로 설치되어있는 문화도시심의위원회는 지자체가 제출한 문화도시 조성계획 추진 실적을 평가, 계획의 승인일부터 1년 이후 심사를 거쳐 해당 지자체를 문화도시로 지정하게 된다. 이와 함께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지정된 경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승인받은 문화도시 조성계획을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또는 계획의 이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자발적으로 취소를 요청하는 경우는 문화도시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많은 지자체가 법정 문화도시의 지정에 관심을 갖는 일차적인 이유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작년에 선정된 예비사업 도시들은 그동안 컨설팅 및 현장실사를 거쳐 올해 문화도시로 최종 선정될 것이며, 이 경우 일대일 대응방식으로 최대 200억원의 예산지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2019년 예비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자체들은 예산확보라는 입장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미 도시에 대한 문화적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시민들과 지자체의 경우 굳이 문화도시 지정을 원하는 이유는 다양한 문화의 공존과 시민 공감 및 함께 즐길 수 있는 고유한 문화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과 성장이 이루어지는, 그래서 삶의 질이 보장되는 도시를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지역마다 문화도시를 어떻게 꿈꾸는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만 그래도 위로부터의 계획과 실행의 방식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방식, 다시 말해 시민의 주체적인 참여를 통해 '시민들이 원하는 도시'의 모습을 상상하고 만들 수 있는 계획수립을 위해 지자체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이 사업이 설계될 때 고려되었던 미덕이 어느 정도 작동되고 있는 모습의 하나라 여겨진다. 다시 말해 문화도시 예비사업 지정 및 법정문화도시 지정을 위해 준비하는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전문가 컨설팅뿐만 아니라 시민의견 수렴의 방식으로 다양한 주제를 가진 워킹그룹을 조직하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공간문화센터 대표 최정한은 우리가 꿈꾸는 문화도시의 실현이란 '내 안의 시민성을 우리의 시민력으로 변환시키는 문화적 힘이 어떠한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다양성, 지속성, 개방성, 관용성, 자기주도성, 관계지향 및 과정을 통해 시민성을 이끌어내고 궁극적으로 내 삶 및 도시의 관계를 직접 바꾸어 나가는 계기, 즉 '문화를 통한 지역의 재구성'이 이루어질 때 문화도시로서의 면모가 발현된다는 것이다. 특히 '과정'과 '환류'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문화도시 사업의 지향점은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아는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주권자'라는 말에서처럼 '주권자로서의 시민으로부터 뿌리를 먼저 내리는 과정을 포함한 사업수행역량'과 '지속가능한 도시로서의 발전체계를 갖춘 도시'에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도시 예비사업 및 문화도시로 지정되었다 함은 지정 그 자체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지정된 후 어떻게 사업을 진행해 나갈 것인가, 진행과정을 통해 도시 어젠다를 어떻게 시민과 공유, 토론, 합의해 나갈 것인가의 본격적인 과제가 사실상 시작된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법정문화도시로서의 지정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의미는, 사업을 기획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소리, 냄새, 미세먼지, 최소단위의 생활기반조건, 에너지, 반려동물 생존조건, 공공재' 등에 관한 고민을 '위임, 분권, 자율, 협치'와 '우정, 환대, 협력'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나가면서 '사회, 경제, 환경,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이해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시민이 당연한 권리의 보장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실천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9-06-23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지난 5년, 그리고 다시 준비해야 하는 5년

벌써 5년의 시간이 흘렀다. 2015년 7월에 '문화가 융성한 부강한 대한민국'이라는 비전으로 '문화기본법' 시행령 제5조에 따라 '제1차 문화진흥 기본계획(2015~2019)'을 수립, 시행해 온 것에 이어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제2차 문화진흥기본계획'(2020~2024)을 준비하고 있다. '문화기본법'에 의하면 '국가는 문화 진흥을 위하여 5년마다 문화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렇게 수립된 기본계획은 5년 동안 '문화에 관한 국민의 권리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정하고 문화정책의 방향과 그 추진에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문화의 가치와 위상을 높여 문화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가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기여한다. 무엇보다 '제2차 문화진흥기본계획' 수립에 앞서 5년 동안 사업의 실행과정이 어떠하였으며, '문화기본법'의 목적에 얼마만큼 부합했는지를 되짚어 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법정계획으로서의 기본계획이기 때문에 그동안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책목표가 급격히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가 있는 삶', '지역에서 꽃피는 문화', '세계와 소통하는 문화', '남북의 통로가 되는 문화', '문화진흥 기반구축' 등의 5대 정책목표에 따라 18대 정책과제와 59개의 세부추진과제는 5년 동안 대체로 지속적인 실행이 가능하였다. 이는 '제2차 문화진흥기본계획'의 수립단계에서 설정한 정책목표와 정책과제가 향후 5년의 문화진흥사업을 규정할 것이며 바로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지금 기본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시점에 있기 때문에 지역에서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본다.특히 문화정책을 수립할 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문화의 다양성과 자율성 존중', '문화의 창조성 확산', '국민과 국가의 문화 역량을 높이기 위한 지원과 여건 조성', '문화 활동 참여와 문화 교육의 기회 확대', '문화 창조의 자유 보장', '차별 없는 문화복지 증진', '문화의 가치 존중과 문화의 역동성 높이기', '문화의 국제 교류·협력 증진'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행정관료뿐만 아니라 예술가 및 문화예술 관련자들은 대개 알고 있는 사항이다.여기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지점은 '문화진흥기본계획'이 '국민의 문화권 보장', '문화적 가치의 사회적 확산'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 제고'라는 목적에 부합하면서 이를 중심으로 실행계획을 수립한다면, '지역문화진흥법'에 근거한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은 '지역문화진흥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지역 간의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지역별로 특색있는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문화국가를 실현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실행계획을 수립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이라는 서로 다른 법적 근거에 의해 각각의 기본계획 수립을 해야 하지만, 둘 다 '문화진흥'을 위한 것이며 따라서 대상, 지역, 재원규모 등을 고려하면서 방향정립, 세부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지역의 특수성이 반영된 차별적인 추진과제 시행계획을 '문화진흥기본계획'에 반영되도록 한다면 정책실행의 연계성, 일관성을 갖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현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비전과 전략은 '국민의 삶을 바꾸는 포용과 혁신의 사회정책'이다. 인적자본의 창의성과 다양성 증진을 위해 '능동적 참여를 위한 문화정책', '문화예술 영역의 문화적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 '생애주기에 기반한 사회참여적 문화예술교육과 생활문화 확대 등 이용자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는 수요자 지원강화', '포괄적 문화선택권의 보장을 위해 다양한 문화영역의 지원과 장애, 젠더, 종교 등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한 기관의 지원 확대', '쉼과 여유를 통한 일상적 문화향유권 실현으로 개인의 내재된 창의성 회복' 등의 정책패러다임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2020년에는 재정 분권 추진방안으로 문화시설 확충 및 운영과 관련한 지방이양 대상 사업을 '균형발전특별회계자율계정'으로 편성한다고 한다. 새로운 계획수립에 앞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지난 5년 동안 실행되었던 '문화진흥기본계획'이 다음 5년의 단단한 토대가 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검토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환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지역에서의 '정책의 동맥경화'가 발생하지 않고, 현재의 성실한 기본계획이 미래의 계획과 연동하여 작동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9-04-28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지역문화의 중요성과 양적성장 속의 지역문화재단 역할

전국 75개 기초문화재단 운영중지역 기반의 중요 시책 심의·지원수요 많아지는 만큼 성장 가속화운영 전문성 요구되는 '대표이사'고도화된 리더십 요구 부응해야2014년 46개였던 기초문화재단이 2019년 2월 현재 서울 15개, 부산 1개, 인천 2개, 대구 6개, 울산 1개, 경기 14개, 강원 9개, 충북 3개, 충남 4개, 경북 6개, 경남 6개, 전북 3개, 전남 5개 등 총 75개가 설립·운영되고 있다. 이는 전국 226개 시군구 중 33.2%에 해당한다. 광역단위에서는 경기문화재단, 서울문화재단 등 16개 재단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 기초문화재단들은 '사단법인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이하 전지연)'를, 광역문화재단들은 '사단법인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이하 한광연)'를 구성하여 전국적인 협력망을 형성,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알다시피 재단의 설립은 정부, 기업 그리고 개인 차원에서 가능하며, 그 역할과 임무는 다양하다. 한 예로 국가와 정부가 재단을 설립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공식적인 정부행정체계 내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혹은 수행한다 하더라도 효율적이지 못한 임무나 역할을 준 민영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며, 또한 공공의 목적에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로 여기기도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지역사회 및 지방자치정부가 공공서비스의 효율적인 전달을 위해 지역재단의 개념을 도입하는 사례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그러나 우리나라 지역문화재단의 경우를 보면 설립목적과 역할 등이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다소 차이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2014년에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 제19조와 20조에 의한 '지역문화재단의 설립, 지원' 등의 규정과 [지방자치법] 제2조와 19조의 규정을 근거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유산, 문화예술, 생활문화, 문화산업 및 이와 관련된 유형·무형의 문화적 활동의 진흥에 관한 중요 시책을 심의·지원하고 그 사업을 수행하는 공공문화재단'의 개념을 준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각 지자체의 조례에 의해 설립·운영되고,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출연기관이며, [민법] 중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을 적용해야 하는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주민의 문화욕구 증가와 새로운 삶의 방식 등장, 미래가치의 수용 및 시민의 문화권 확장요구가 커짐에 따라 이를 담아 낼 지역단위의 기구에 대한 수요가 더 많아지고 있고 이로 인해 지역문화재단의 양적 성장은 가속화될 것으로 본다. 따라서 지역문화재단의 수가 늘어나는 속도만큼 재단의 질적 역량 또한 함께 상승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올 초, '전지연'에서는 기초문화재단을 대상으로 [기초문화재단 설립 실태조사 및 지역문화재단 역량강화를 위한 전략과 방향 연구](연구책임 디자인 자리)를 수행하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초문화재단의 정규직 성비 분포는 남성 55%, 여성 45%이며, 임원(이사)의 구성은 남성 80%, 여성 20%로 조사되었다. 조사대상 기초문화재단 중 16%는 임원에 여성 구성원이 전혀 없었다. 운영되고 있는 사업의 범위는 기초지자체의 행정업무 분산, 문화시설운영 및 지역축제운영 등 행정 필요에 의한 사업 및 기초지자체의 위탁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대표이사 인사에 영향을 미친 사례도 있었다. 지역문화재단 설립 시 기본 요건으로 문화예술의 특성 및 전문성이 반영될 수 있는 독립성과 자율성의 보장, 즉 '팔길이 원칙'이 지켜지기를 기대하는데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아직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인다.지역문화재단의 질적 역량 향상을 위해서 독립성과 자율성은 필요한 요소이다. 이를 근간으로 지역이 가진 특성과 주민들의 삶의 여건을 반영한 재단비전 설계가 이루어져야 하고 동시에 지역의 문화정책수립과 사업추진의 투명성·공정성을 위한 재단운영의 민주화, 권력형 위계문화의 타파, 성 평등 문화의 정착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최근 몇몇 지역의 문화재단 대표이사 공모 후의 뒷말들이 무성한 것 같다.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예술기구로서 운영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이니만큼 기관장의 자질 및 리더십에 대한 지역사회의 상당한 수준의 요구는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모든 사회문제로부터의 고립이 아닌, 시대정신과 사회적 이슈로부터 균형을 유지하고 정치적, 행정적 간섭과 사적지배로부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문화재단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지역문화재단은 고도화된 리더십 요구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9-03-10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요건, 시민문화주권

오래전 모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학기 초, 학생들은 인터넷을 통해 수강신청을 해야 하는데 인기 있는 과목은 접속이 몰려서 신청에 어려움을 겪거나 혹은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신청마감이 된 날, 당사자인 학생이 아니라 학부모 중 한 분이 학과사무실에 전화를 하여 '접속을 하지 못해 수강신청을 못했으니 방법을 찾아내라'고 큰 소리를 쳤는데 그때 무척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교에서의 수강신청은 학생이 스스로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이지 이를 부모가 대신하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탓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를 집약해 놓은 소위 '핫'한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보면 이보다 더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이 드라마에 중요한 역할로 나오는 '코디선생님'은 학생의 수강신청을 대신하는 정도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입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코디'해 준다. 이에 따라 학생은 '시키는 대로' 공부하면서 따라가기만 하면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주체적으로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인데 이렇게 '코디'를 통해 원하는 해답만 손에 넣은 학생이 과연 주체적 시민으로서의 자존과 참여, 문제해결을 위한 의사결정을 가진 삶을 구성할 수 있을까 싶다. 또 세월이 흘러 이들이 사회의 주요한 위치에 도달했을 때도 선택과 판단을 위해 '코디'를 찾게 되는 것은 아닐까 미리 걱정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우리를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도록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대통령의 신년사는 한 해의 국정방향을 가늠하는 좋은 잣대가 된다. 문재인대통령은 2019년 신년사에서 '사람중심 경제'와 '혁신적 포용국가'를 통해 '함께 잘사는 경제'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다. 특히 사회안전망과 고용안전망 마련, 아이들에게 과감히 투자, 안전문제, 혁신적인 인재양성, 국민경제의 근간으로서 소상공인과 자영업, 농업, 그리고 우리 문화의 성취를 누구나 누리고 문화가 미래 산업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6가지 지향점에 대해 정치적 수사에 머무르지 않고 체감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우리는 새해가 시작되거나 혹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삶의 질의 향상과 고질적인 사회문제해결을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새로운 정책을 기대한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숱하게 만들고 부수었던 정책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멋있게 등장하더라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 정책들이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데 그리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된다. 즉,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출발한 정책담론과 프로그램일지라도 개개인의 자율성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하지만, 이와 동시에 제약 속에 가두어 지배의 익숙함에 빠뜨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화영역에서 일하는 사람인지라 아무래도 신년사 내용 중 '누구나 누리는 문화'에 눈길이 간다. 문화와 예술은 '사람중심'의 사회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바바라 크룩생크의 "시민은 타고나지 않고 만들어진다"는 견해에 따르면 정부의 정책방향을 담은 각종 실천프로그램이 시민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기획'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코디'선생님 기획방식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자신이 되는 길이야말로 타인에게 가장 유용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는 '언제나 당신이 옳다'의 저자 자크 아탈리의 주장처럼, 우리 스스로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를 실천해 나가는 '시민문화주권'의 획득을 통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행복을 위해서는 얼마나 작은 것으로도 충분한가! 정확히 말해 최소한의 것, 가장 부드러운 것, 가장 가벼운 것, 도마뱀의 살랑거리는 소리, 하나의 숨소리, 하나의 날갯짓, 하나의 눈짓… 작은 것들이 최고의 행복을 이루고 있다"고 설파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고통과 환희의 교차 속에서 한 개인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에 빠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래서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할 때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러니 '사람중심'의 사회란 타율적으로 '코디'된 인간구성이 아닌, '주체로서의 시민'이 다수여야 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9-01-13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지역영상미디어센터의 역할 증대와 미디어 리터러시

2002년 시작 전국 45개소 운영중도시정책등 연계 프로그램 기획미래, 창의적 콘텐츠 제작역량 필요 사회·교육적 지원 있어야 할 영역복지 한 형태로 제공될 필요 있어2002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시작한 '영상미디어센터'는 현재 전국의 45개소에서 영상미디어센터, 또는 시민미디어센터라는 명칭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2016년 8월 지역영상문화진흥을 위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개정, 시행됨에 따라 지역영상문화의 활성화가 가능한 법적 근거가 강화되었고, 그동안 영상장비의 대여, 미디어 교육, 시민영상콘텐츠 제작지원 및 동아리 지원, 상영관 운영, 소외계층 미디어 활동지원 등의 사업을 수행해 온 지역영상미디어센터들은 앞으로 생활문화와 연계한 마을 단위의 공동체 라디오 교육과 지역문화시설과 연계한 미디어 교육으로 사업영역이 확장될 가능성이 커졌다. 직접 미디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해문화재단, 부천문화재단, 고양문화재단, 성남문화재단, 강릉문화재단, 화성문화재단 등 6개의 재단은 생활문화로서의 영상문화 및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역할이 커지게 되자 이에 발맞춰 주민자치, 혁신 읍면동, 도시재생 정책 등과 연계한 적극적인 프로그램 기획을 도모하고 있다.21세기 영상정보시대에서 많이 요구되는 것은 미디어 환경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컨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태블릿 등을 활용하여 특정포털을 선택하여 검색 엔진에 원하는 검색어를 입력하는 단계를 '정보의 접근 능력'이라고 한다면, 검색결과 제공되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 자신에게 유용한 정보와 불필요한 정보를 골라내는 과정을 '분석'과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창조'와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필요한 목적에 활용하고 그 내용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읽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미래세대가 당연히 가져야 할 역량으로 여겨질 것이다. 미국의 미디어교육전국연합회(NAMLE)에서는 '모든 종류의 의사소통 수단을 기반으로 접근, 분석, 평가, 창조, 그리고 행동하는 능력'을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능력이 부족할 경우 소통이나 다양한 활동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역량을 높이기 위해 국가가 의무교육을 실시한 것처럼, 경험적 자연 획득이 가능하지 않은 미디어 리터러시 또한 사회적· 교육적 지원이 있어야 할 영역이며, 이런 역할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기관이 지역영상미디어센터라고 할 수 있다.잘 알다시피 디지털 미디어기술의 발전은 많은 사람들이 영상의 단순 소비주체가 아닌 참여적이고 창조적인 영상미디어활동의 주체로 성장하는데 기여했다. 영상매체를 통한 정보의 전달과 접근이 점점 더 중요해짐에 따라 영상으로 기록된 지식과 정보의 파악 및 활용을 위한 교육과 영상제작을 위한 기자재를 시민에게 제공하는 것은 여러모로 필요하다. 사회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신뢰할 만한 정보와 콘텐츠를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며, 이러한 분별력을 통해 고품질의 정보와 콘텐츠를 적절히 활용하여 삶 속에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제공되는 교육이 곧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다.4차 산업혁명의 시대의 '미래직업기술 2020 (Future Work Skills 2020)'이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의미부여 능력, 사회지능, 새로운 사고와 변화적응 능력, 다문화 역량, 컴퓨터 기반의 추론 능력, 뉴미디어 리터러시, 초학문적 개념이해 능력, 문제해결을 위한 과제설계 능력, 인지적 부하관리(Cognitive Load Management), 가상의 협업 능력 등 10개의 직업역량을 제시하고 있다. 언급된 역량 중 하나인 '뉴미디어 리터러시'는, 협의의 의미로 보면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해독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광의의 의미로 보면 '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고 그 미디어가 작동하는 원리와 미디어 콘텐츠를 분별 있고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 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포괄한다. 따라서 문해력과 동등한 위치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우리들이 생비자(prosumer)로서 영상콘텐츠를 통해 자신에게, 또 공동체를 위해 필요하고 유용한 내용을 찾아 소통하고 구성원 간 상호이해와 공존에 기여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보장되는 복지의 한 형태로 제공될 필요가 있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8-11-25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과정관리'와 '거버넌스'가 중요한 생활문화 SOC 투자

혐오시설이었던 쓰레기소각장이문화예술교육 현장으로 재탄생된부천처럼 정책실현을 통해시민과 만나는 거점으로서의생활문화공간이 조성되길 기대발표에 의하면 2019년 정부예산안은 총 470조 5천억원 규모이며, 정부는 그중 10대 생활 SOC(social overhead capital)에 8조7천억원을 투자한다고 한다. 10대 투자분야를 보면, 문화시설· 생활체육시설 등의 편의시설, 지역관광인프라, 도시재생, 농어촌 생활여건 개선, 스마트영농, 노후산단 재생 및 스마트 공장, 복지시설 기능보강, 생활안전인프라, 미세먼지 대응, 신재생에너지 등이다. 일반적으로 SOC 사업은 도로·철도·공항·항만 등 투자의 규모가 매우 크고 효과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역을 뜻하며, 주로 정부나 공공기관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대규모 SOC 위주의 정책을 통한 산업적 성장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나 상대적으로 덜 관심을 두었던 일상에 필요한 생활기반 시설의 확충은 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생활 SOC는 쉽게 이해하자면 거주지와 인접한 곳에 도서관이나 체육센터 등 생활문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이며, 우리의 삶을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또 깨끗하게 하는 시설들이라고 할 수 있다.일전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문화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사람이 있는 문화'를 근간으로 '사람과 생명이 먼저이고 협력과 다양성, 쉼이 있는 문화를 지향'하는 정책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정부의 '국민이 골고루 잘사는 사람 중심 경제를 지향하고, 소득주도성장으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노력'으로서의 지역밀착형 생활 SOC 투자 정책의 약속은 문화정책과 연관하여 '생활문화 확산'을 통한 삶의 질 향상, 주민주체의 지역분권의 실천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생활 SOC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공공건축이 앞으로 어떤 기준과 원칙을 가져야 '사람이 있는 문화'이자 '삶의 질 향상'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승효상 국가건축위원회 위원장은 '좋은 동네 건축이 좋은 삶을 만든다'는 입장에서 건축의 공공성 증진, 설계방식 개선, 설계관리시스템 구축을 통한 혁신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 공공건축의 사업초기기획의 강화와 발주기관의 전문성 보완, 그리고 총괄건축가 및 공공 건축가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다음으로 건축설계 용역시 설계의 품질로 승부하는 설계시장 조성과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건축설계공모 절차의 개선, 공공건축의 시공과정에서 설계자의 설계의도가 구현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 등을 제안하고 있다.2010년 가동이 중단된 폐기물처리시설이었던 부천의 '삼정동쓰레기소각장'이 '부천아트벙커 B39'로의 변신 과정은 생활 SOC의 이해를 돕는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 왜냐하면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 공모선정 후, 부천문화재단과 부천시는 장소성을 찾는 과정에서 출발, 전문역량을 통해 시민의견을 계획에 반영, 법적·제도적 누수가 생기지 않도록 행정적 뒷받침을 수행하면서, '과정 관리'와 민관 거버넌스, 그리고 공공건축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제 12회 2018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과 협력기관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부천아트벙커 B39'는 건축가 김광수의 설계로 전시, 공연, 교육이 가능한 융·복합문화시설로 전체면적 7천200㎡의 약 40%에 해당하는 3천100㎡의 면적을 리모델링하였다. 공간구성은 1층에 전시와 공연이 가능한 멀티 미디어홀, 다목적 야외 공간인 중정 및 카페 조성, 2층에 문화예술, 인문교양,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4곳의 교육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3층부터 6층은 먼지와 함께 쓰레기소각장 그대로의 형태로 아직 폐허로 남아있다.생활 SOC에 대한 정부의 투자계획을 접하게 되니, 시민과 예술가들에 의해 혐오시설이자 유휴공간이었던 쓰레기소각장이 다양한 형태의 문화예술교육 경험과 창의적인 예술 행위가 가능한 공간으로 '구원'된 부천의 사례처럼, 정책실현을 통해 도시 속의 유휴공간들이 생활문화공간으로, 동네의 공공건축으로 거듭나면서 시민과 만나는 거점으로서의 생활문화공간이 지역마다 제대로 조성되기를 기대하게 된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8-10-07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공공서비스 제공과 노동권의 균형점

'휴식 있는 삶' 구성하기 위해선법 작동 공평하게 적용돼야 하고근로자의 '노동권' 지킬 수 있도록문화예술기관의 관리자는균형 유지할 수 있는 방법 찾아야영국의 록밴드 '라디오헤드'는 2003년 새로운 앨범으로 '대통령 찬가(Hail to the Chief)'를 비꼰 표현으로 알려진 '도둑찬가(Hail to the Thief)'를 내놓는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의 하나인 '우리는 젊은 피를 빨아먹다(we suck young blood)'의 가사는 '배고프니? 아프니? 쉬고 싶어 죽겠지? 넌 달콤하니? 넌 신선하니? 손은 묶여있지? 우리는 젊은 피를 원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노랫말을 곰곰이 새기다 보면 지금의 우리들이 비록 스스로 직업을 선택했다고 여길지라도 과연 계약으로부터 자유롭고 얼마만큼의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하고 있는 일을 즐기고 있는지 질문하고 싶어진다. 라디오헤드의 노랫말처럼, 또는 "자본은 죽은 노동인데 이 죽은 노동은 흡혈귀처럼 노동자의 살아 있는 노동을 더 많이 흡수할수록 점점 더 활기를 띤다"고 말한 마르크스의 말처럼 우리는 '일이 즐거운 인생'이라기보다는 자각하지 못한 채 상품 소비를 위해 '즐거움을 저당 잡힌' 삶을 살아 온 것 같다. 그러나 최근 '워라밸(일과 개인의 삶의 균형)'이나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점차 많아지는 것을 보면 '뭔가 아닌 것 같다'는 문제의식과 새로운 삶의 양식에 대한 욕구는 분명 있는 것 같다. 2015년에 제정, 2016년 12월에 일부 개정된 뒤, 2017년 3월21일부터 시행된 '국민여가활성화기본법'과 국회의 환경노동위원회에서 2018년 2월 28일 통과된 뒤 7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내용은 어쨌거나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담아내고 있다. 예컨대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 시행시기가 다르기는 하나 주 40시간의 기준근로시간과 최대 연장근로시간이 12시간의 주 52시간 근로제의 도입을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국민여가활성화기본법'은 '여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켜 일과 여가의 조화를 추구함으로써 국민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총 17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 법에 의하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여가활성화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추진해야 하며, 국가와 지방정부는 조사 및 연구, 여가프로그램의 개발 및 보급, 여가정보의 수집 및 제공, 여가교육의 실시, 여가시설과 공간의 확충, 여가전문인력의 양성, 사회적 약자의 여가활동 지원 민간단체 등의 지원, 우수사례 발굴 및 시상, 여가산업의 육성 등에 대한 필요한 시책의 강구, 지원해야 한다. 법을 근거로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6월5일 '국민여가활성화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국민들이 '여가를 통한 휴식 있는 삶을 기본권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잃어버린 삶의 시간을 회복'시키기 위해 제시된 기본계획에서는 여가참여 기반 구축, 여가 접근성 개선, 여가 생태계 확대 등을 기본 방향으로 8개의 추진 전략과 32개의 중점 과제를 담고 있다. 특히 2022년을 목표도달기준으로 여가참여율은 현재의 42.7%에서 55%로, 문화활동공간 이용률은 64.85%에서 70%로, 여가서비스 일자리 창출은 3만 6천 명에서 5만 6천 명으로 잡고 있다. 법의 이상과 현실과의 간격을 좁혀야 하는, 다시 말해 국민들의 '휴식 있는 삶'을 구성하기 위해 내용을 제공할 수 있는 대부분의 영역이 문화예술분야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바다. 그런데 이러한 목표치를 도달하려면 넘어서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하나 발생한다. 다시 말해 이제 출발한 기본권으로서의 여가를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법의 작동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려면 국민이 요구하는 공적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가짐과 동시에 즐겁게 일하는 근로자로서의 '노동권'을 지켜야 하는 문화예술기관의 관리자는 이 둘 사이의 균형점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의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8-08-12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문제는 실천이야! '문화비전 2030'

현 정부의 '문화비전'이제대로 실천되려면먼저 문화·예술적 제안 장단점을관료들이 판단하려는'야망'을 포기할 필요도 있다작년 새 정부 출범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는 '중장기 문화정책 수립 추진계획'을 확정한 뒤, 그 해 10월 학계 및 민간전문가를 중심으로 '새문화정책준비단'을 구성, 12월에 '문화비전 2030 기조'를 발표한 뒤, 2018년 1월 15일부터 27명으로 구성된 '새문화정책 준비단 분과회의'를 운영하였다. 이와 함께 13회의 문화정책포럼, 4회에 걸친 지역문화발전 연속토론, 3회의 예술정책 토론과 각 4회씩 콘텐츠정책포럼, 체육정책포럼, 열린 광장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이 과정을 통해 제안된 내용을 수렴하여 5월 16일 '문화비전 2030'(이하 문화비전)을 발표하였다. '문화비전'은 '사람이 있는 문화'라는 가치를 근간으로, '개인별 자율성 보장', '공동체의 다양성 실현', '사회적 창의성 확산' 3대 방향의 제시와 '개인의 문화권리 확대, 문화예술인 종사자 지위와 권리보장, 성평등 문화의 실현,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확산, 공정하고 다양한 문화생태계 조성, 지역문화분권 실현, 문화자원의 융합역량 강화, 미래와 평화를 위한 문화협력 확대, 문화를 통한 창의적 사회혁신' 등 9대 의제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현 정부의 문화에 대한 기본철학과 인식은 '사람', '생명', '평등', '감성', '쉼', '협력', '다양성', '자치분권', '공정', '상생' 등과 같은 가치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문화비전'에서 제안된 가치는 '사람의 행복한 삶'과 그것의 '지속적 유지'에 필요한 것이기에 동의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가 현실의 삶 속에서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항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좋은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철학적 논증의 우아함이나 이론적 그럴싸함으로 끝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리처드 레이어드의 '행복이란 좋은 감정을 느끼고 삶을 사랑하며, 이런 감정이 지속되기를 원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문화비전'의 목적하는 바가 '행복한 삶'이라면 '좋은 감정'이 지속될 수 있도록 헌신하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고, 이를 방해하는 장애물은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를 구체화해야 한다. 예컨대 '평등'을 얻고자 한다면 어떠한 불평등도 간과하거나 은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양성'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다름의 이해'를 고려해야 하고 동시에 특정한 종류의 관용이나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여기는 단 한 가지의 형태를 지닌 권리만 인정하지 않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예전에는 정부기구의 대다수 관료들은, 그렇게 책무가 부여되기도 했기에 국민이란 '보살피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 스스로 욕구를 생성, 창조하고 있으며, 비록 소소한 영역에 국한될지라도 주체적으로 해석, 판단,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로서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어서 '관리를 당하는 것'에 머무르고 있지 않다.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현 정부의 '문화비전'이 제대로 실천되려면 일차적으로 문화, 예술적 제안이 갖고 있는 장단점을 관료들이 판단하려는 '야망'을 포기할 필요도 있다. 그럴 경우 설령 관료들이 '관리를 당하는 것'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나 국민들과의 갈등에 직면할지라도, 각각의 역할이 요구되는 '관리'와 '문화예술의 창조'와의 '합리적 타협' 지점이 생길 수 있을 것이며, 이 과정을 통해 예술이 일상의 삶으로 들어가서 '지속적인 행복한 삶'을 이루는 초석이 될 것으로 본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8-06-24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시민은 '삶의 주도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

1월29일,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추행을 폭로함으로써 한국에서의 미투(MeToo) 및 위드유(WithYou) 운동을 촉발하였고, 3월14일 뇌물수수혐의로 피의자 신분이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다른 한편 49개국 567명의 선수가 참가한 평창 동계패럴림픽은 세계인들의 많은 관심과 호응을 끝으로 3월 18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렇듯 작년 5월 10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상상이상의 사회적 지각변동을 겪으면서 우리는 그간 인식했던 혹은 인식하지 못했던 삶의 구석구석 문제를 도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를 갖기 시작했다.2005년에 국가차원에서의 문화정책인 '창의한국'이 발표된 이래, 지역에서는 변화하는 문화지형에 적합한 중장기 문화정책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는 작년 10월부터 '새 문화정책 준비단'을 꾸려 현장토론회, 간담회, 자문회의 등을 수행하면서 개인의 문화적 권리보호와 증진, 문화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보장, 공정하고 다양한 문화생태계 조성,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확산, 지역문화분권실현, 문화자원의 융합역량 강화, 미래와 평화를 위한 문화협력, 문화를 통한 창의적 사회혁신 등의 핵심의제를 중심으로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왔다.그 과정 중의 하나로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드는 문화정책'이라는 제목으로 '소중하고 소박한 대화'를 위한 '50인 모둠토론회'가 3월 14일에 개최되었으며, 페이스북을 통해 토론결과에 대한 내용이 실시간 생중계되었다. 사실 그동안 문화정책의제를 도출하거나 이에 대한 세부목표를 설정할 때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경로가 부재했거나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희박했었던 과거와 비교해 보면 이 또한 격세지감을 갖게 하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참여한 분야별 현장전문가로 구성된 모둠토론자들은 청년문화예술기획,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 대안적인 관광콘텐츠기획, 마을 만들기(미디어, 동호회, 도시재생), 문화·스포츠클럽 공동체, 가족·이웃·공동체로서의 스포츠클럽, 독립문화콘텐츠, 문화예술 기층종사자의 노동권과 인권, 다양한 문화예술 국제교류, 젠더 문화· 여성 문화권, 기반예술강화 등의 10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세부과제 제안과 실효성 및 지속성 여부에 대한 토론을 실시했고, '새 문화정책 준비단'은 이렇게 도출된 내용을 '새 문화정책' 최종 보고서에 반영할 것이라는 약속을 했다.알다시피 정책은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출발, 이에 대한 해석 그리고 해결을 위한 방향을 잡아나가는 것이 핵심이며, 따라서 장기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성이 어떠하냐에 따라 정책의 효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그동안 정책 연구자 및 전문가들이 정책결정을 하는 방식으로 시스템화 되어왔는데, 이와 달리 현 정부는 시민중심의 사회, 아래로부터의 정책을 지향한다고 했던 만큼 시민이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잃지 않도록,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새 문화정책'에 포함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시민은, 신진욱에 의하면, '자유롭고 권력 앞에 당당하며, 만인이 동등하게 존엄함을 믿고 다른 시민들과 기꺼이 연대하며, 평등하고 평화로운 대화와 협동으로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이며, '촛불혁명'과 '미투'를 통해 그 자격을 획득하였기 때문이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8-03-18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예술과 과학은 한통속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의 이인편(里仁篇)에서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라 해 참된 이치를 깨달았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한다. '앎'에 대한 끈질긴 인간의 탐구심의 근간은 무엇일까? 상상력과 창의력(creativity)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보통 창의력이란 새롭고 혁신적인 생각이나 의견을 생각해 내는 능력을 뜻한다. 고생물학자인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은 "탐구와 정복의 정신은 진화의 최고 본질이다. 그것은 자신의 지성과 생명을 예술이나 과학에 헌신한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 된다"고 말한다. 과학의 발견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종종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외친 유레카(Eureka: 나는 알았다)를 인용한다. 우리는 보통 과학자들이란 기존지식을 시험하고자 하는 욕구와 새로운 영역의 탐험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발견하려는 지적탐구를 보여 주는 사람들이며, 우주의 질서나 인체의 구조 등 자연법칙을 찾아내고자 노력한 사람들이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예술가들도 과학자들과 비슷하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아인슈타인이 관심을 가졌던 광학(光學)과 시각화(視覺化)에 대해서 벨라스케즈, 베르메르, 터너 등과 같은 화가들 역시 빛과 색깔, 이미지, 형태 등을 분석하고자 했다. 화가이자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당시 많은 화가나 조각가가 해부학을 통한 표현방식에 관심이 있었을 때, 그는 이미 이를 섭렵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자세와 각도를 자신의 작품에 도입했다. 쇤베르크는 바흐에서 브람스에 이르기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전통적인 협화음과 불협화음의 개념을 포기하면서, 하나의 작품에 반음계의 12음을 모두 사용해 음조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을 시도했다.우리는 예술과 과학의 연결점인 기술발전이 새로운 예술형태를 이끌어내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다. 사진기의 발명은 사진예술장르를 생겨나게 했고, 뤼미에르 형제가 활동사진 카메라를 발명함에 따라 영화, 애니메이션이 새로운 예술로서 자리를 잡게 됐다. 또한 레이저기술은 CD에 소리를 저장하여 음악을 반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게 하는 등 과학기술의 발전은 예술형식 사이의 관계, 즉 화가의 손 및 눈에 대한 관계, 그리고 음악가의 귀에 대한 관계를 변화시키는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물론 시대마다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 인간과 기계가 동시에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예술가가 있기도 하지만, 또 예술과 과학의 기술적 결합이 창작자 개인의 의도와 예술적 통찰, 세계관, 사회적 상황 사이에 복잡한 상호관계 속에서 해석되고, 예술적 완성이 기술적 완성과 반드시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예술에 과학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회피하는 예술가도 있다. 지금 강원도 평창에서는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개막식을 통해 개최국의 문화수준을 가늠하기도 한다. '과거와 미래를 탐험하여 평화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콘셉트로 하여 1218개의 드론 오륜기, 첨단 고출력 레이저로 구성된 무대, 달항아리 형상의 성화대 등 첨단과학과 예술이 서로 만난 개막식 행사를 보면서, 역시 미래의 예술과 과학은 끊임없는 변화와 새로운 아이디어, 형상을 탄생시키는 상상력과 창의력에 빚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8-02-11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틀림없이 다가올 노년에 대하여

세계인구가 50억 명을 돌파한 1987년 7월11일, UN은 이날을 '세계인구의 날'로 선포했다. UN은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를 넘으면 고령화 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하고 있다. 2000년대 초에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는 2017년 8월 말 기준 행정안전부 발표기준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725만7천288명으로 전체인구 5천175만3천820명의 14.02%가 됨에 따라 공식적으로 고령사회가 된 것이다. 통계청은 이런 추세라면 2025년 이후에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되고, 2029년부터는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많아지는 자연인구감소의 시작, 2031년에 이르면 거의 모든 시도의 인구가 감소하는 인구절벽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한다. 고령화와 함께 저출산의 문제도 나타나는데 이러한 현상이 야기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인구지진'(agequake)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예를 들어 학령인구(6~21세)의 감소,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의 재정추계 수정, 노인 빈곤율과 범죄율 상승, 고독사 등의 사회적 문제 증가, 노동인구 감소에 따른 생산성 저하와 GDP 성장률 하락으로 인한 경제 불황,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 현상 가속화 등의 문제를 발 빠르게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모두들 늙어가는 대한민국의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한다.여기서 우리는 고령사회 속의 노년을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생이란 드라마의 다른 막들을 훌륭하게 구상했던 자연이 서투른 작가처럼 마지막 막을 소홀히 했으리라고는 믿기 어렵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어떤 종결이 있어야만 했고 그것은 마치 나무의 열매와 대지의 곡식이 제대로 익은 뒤에 꼭지가 떨어지려고 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라네'라고 한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의 말을 새겨듣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늘어나는 노년인구 때문에 연금은 고갈되고 노인부양에 따른 재정부담을 청년세대가 져야 한다는 우려는 한편으로는 맞고 다른 한편으로는 맞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의 숙명인 생로병사의 과정 속에서 공동체의 존속은 유형의 생산과 더불어 무형의 가치도 반드시 요구하기 때문이다. 달리 생각하면 노년기의 인생은 경쟁 속에서 정신없이 달려온 자신을 차분히 바라보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 예컨대 자기계발에 관심을 가지고 문화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는 중년이상 세대의 문화소비층을 위한 생활문화동호회 활성화, 경력단절 고학력 전문여성인력을 활용한 문화매개·기획자 양성, 은퇴 후를 위한 고령친화 여가시장, 외로움과 고독해소에 기여하는 문화산업, 여행·레저산업, 스포츠산업, 운동 및 건강관리 프로그램, 지식 및 인문교양프로그램, 노래 및 오락프로그램 등 생활문화권 단위에서 제공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제공은 생물학적 나이와 관계없이 더욱 활동적이고 풍요로운 노년기를 보낼 수 있는 '성공적인 노화'의 기회가 될 것이다. 아울러 젊은 세대와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노인의 사회문제에 따른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본다.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는 "쥐가 아직도 주위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배가 가라앉고 있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 때는 '할 일'도 있다는 뜻이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8-01-07 손경년

[손경년의 늘찬문화]계속해서 물어봐야 하는 기본과 원칙

2017년 5월 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비전을 제시하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지형변화를 예고하였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가 전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인해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으로부터 환골탈태(換骨奪胎) 수준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는 현실에서, 문화예술계의 혁신적 문화정책에 대한 갈망은 클 수밖에 없다. 혁신에 대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제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여 기존의 관습, 조직, 방식 등을 완전히 바꿔 새롭게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이런 사전적 의미의 혁신은 상당히 퇴색한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새롭게 들어서는 정부마다 습관적으로 여타 분야의 정책뿐만 아니라 문화정책의 혁신을 약속해 왔고 사실상 혁신의 결과는 미미한 수준의 실천으로만 남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거의 경험 탓에 우리는 혁신에 대해 갖는 기대감의 크기만큼이나 냉소적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문광부는 본부와 18개의 직속기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5개의 공공기관과 지원을 받는 법인 단체 9개 등 산하기관이 44개에 달한다. 특히 내년 발표예정인 새 정부의 문화예술정책 비전수립과 관련, 문광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인복지재단, 생활문화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예술 활동 및 예술가(단체) 지원과 밀접한 기관들의 설립목적, 역할, 기능에 대한 혁신적 재정립을 위해 분과위원회(TFT)를 구성, 토론회, 간담회, 공청회 등을 통한 의견수렴 활동을 수행하는 중이다. 또 지난 11월 9일, 제354회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문화기본법'개정안이 통과되었는데,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과 관계없이'라는 기존의 내용에 '정치적 견해에 관계없이'라는 문구를 추가로 명시함으로써 내용이 바뀌게 되었다. 다시 말해 정치적 견해와 관계없이 문화 표현 및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으며, 특히 정부에 비판적 견해를 가진 문화 예술인들의 예술 활동 또한 정치적 이유로 배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어서 그간 논란이 되었던 블랙리스트 문제를 방지하는 법으로서의 기능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그러나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공론의 장의 확산과 법과 제도의 정비 등을 통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미래세대를 위한 문화정책 비전을 요구하고 또 제대로 제시해야 할 시점에 우리가 서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블랙리스트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둔감하게 지나쳐버렸을지도 모르는 근본적인 질문을 지금부터 다시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문화정책 비전이 무엇이며, 우리의 삶과 사회와 연관된 가치에 대해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문화정책에 있어서의 기본원칙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동의와 합의를 가져왔는지, 혹은 시대정신이 반영된 기본원칙이 있었는지에 대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본을 충실히 정립해야 예술지원체계의 혁신적 방향이나 문화예술 기관 간의 협치체계, 예술인복지, 그리고 지역분권의 주체로서의 지역의 책임과 역할, 문화주권자로서의 국민의 자율성과 주체성 정립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7-11-26 손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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