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꽃

 

[시인의 꽃]산에 언덕에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화사한 그의 꽃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맑은 그 숨결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울고 간 그의 영혼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신동엽(1930~1969)사랑하는 사람이 불현듯 사라질 때 혹은 그런 사람의 곁에서 떠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움으로 가득 찬 그 사람의 텅 빈 빈자리를 응시하게 된다.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하늘만큼 커져만 가는, 기다림의 숱한 방황의 날들은 빈자리를 채우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을 더듬으며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만이 생각의 꽃을 피운다. 이 꽃은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시시때때로 동시다발적으로 '화사한 그의 꽃'으로 현현된다. 길을 가다가, 산과 언덕을 오르다가 피어나는 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것. 이를테면 아름다웠던 기억이 상징화된 꽃으로 되살아나는 것인 바, 사람은 가고 지나간 시간만이 꽃으로 치환된 것. 이 꽃은 당신이 사랑했던 그 사람의 '맑은 숨결'로서 '바람'과 '인정'을 담아서 거기에 잎사귀를 내민다. 보아라, '쓸쓸한 마음'에 흔들리는 꽃이 있다면 그것은 '울다 간 그의 영혼'이 바람 되어 당신을 찾아온 것일지니.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4-08 권성훈

[시인의 꽃]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천둥은 먹구름 속에서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서정주(1915~2000)세상에 까닭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그냥 피는 꽃도 없으리라. 결과에는 원인이 있고, 이 원인의 근원에는 인연이 있는 법. 만약 지금 당신이 꽃이라고 표상되는, 스펙트럼을 피어 올리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물리적인 관계에서 온 물질인 것. 봄에 마주하게 되는 '한 송이 국화꽃'은 '천둥'을 이기고, '먹구름'을 지나 존재의 형상을 영롱하게 보이지 않던가. 죽음의 입구에서 삶의 출구로 도전장을 내민 '노오란 네 꽃잎'에서 존재에 대한 비의와 경이로움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 배후는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시절과 아픔을 건너온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오는 것인 바, 그리움과 아쉬움이 깊을수록 젊음의 뒤안길은 그만큼 고통스러웠을 것이며, 그것의 출구는 기쁨과 환희로 배가 되지 않던가. 당신이 살고 있는 어두운 세상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잠도 오지' 않는 이유도 지금―여기 있으니, 꽃을 피우고 싶다면 진실로 자신을 세계에 내 던져야 하지 않겠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3-25 권성훈

[시인의 꽃]조화弔花

여기 호올로 핀 들꽃이 있어자욱-히 나리는 안개에잎사귀마다 초라한 등불을 달다아련히 번지는 노을 저쪽에소리도 없이 퍼붓는 어둠먼-종소리 꽃잎에 지다아 저무는 들가에 소복히 핀 꽃이는 떠나간 네 넋의 슬픈 모습이기에지나던 발길 절로 멈추어한 줄기 눈물 가슴을 적시다김광균(1914~1993)조화弔花는 고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꽃으로서 삶의 한 가운데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의 초입에서 사계절 동안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조화는 한 생명이 왔던 '순백의 시간'을 펼친다. 그리고 누구도 가로질러 갈 수 없는 죽음 앞에서 고개 숙여 애도하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거기에서 인간은 세계라는 들판에서 '여기 호올로 핀 들꽃'처럼 내일이라는 미지의 '자욱-히 나리는 안개' 속에서 언제 꺼질 줄 모르는 '초라한 등불' 하나 달고 있는 생명체일 뿐이다. 이 순간도 '아련히 번지는 노을 저쪽에 소리 없이 퍼붓는 어둠'이 있다면, 그것은 '먼-종소리 꽃잎에' 지고 있는 누군가의 목숨인 것. "아 저무는 들가에 소복히 핀 꽃"을 보라. 그렇게 떠나간 이들의 '넋'이 슬프게 피어있지 아니한가. 이 봄날, 가슴에 묻은 사람들이 잊지 못해 하얀 그리움으로 당신을 찾아온 것이니.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3-18 권성훈

[시인의 꽃]산유화

산에는 꽃피네 /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피네 //산에 / 산에 /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 꽃이 좋아 / 산에서 /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 꽃이 지네 /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지네.김소월(1902~1932)산유화는 꽃 이름이 아니라 '산에 꽃이 있다' 라는 의미로 '산유화(山有花)'다. 이른 봄부터 산에 피는, 이름 모를 꽃들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는데, 거기에는 기다림도 설렘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산유화는 언제 피는지, 언제 지는지에 관한 물음을 접은 채, 피어나고 지는 데 있다. 그 꽃은 '갈 봄 여름 없이' 보는 사람에게 피어나는 꽃이며, 반대로 '갈 봄 여름 없이' 지는 꽃으로서 산속 어딘가에서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을 뿐. 마치 겨울을 홀로 보낸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함의 얼굴이 있다면 그러하리라. 따라서 산유화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통과하여 더 이상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은 상태로서 고독의 절정이 피어 올린 근원적 존재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 '산에서 우는 작은 새도 고독이라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는 것같이 누구나 세계라는 산속에서 잠시 홀로 왔다가 간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3-11 권성훈

[시인의 꽃]노변의 꽃들

저것들에게도 분명 무슨 말들이 있을 거다 / 그렇지 않고선 어찌 / 저렇게 온종일 / 바람과 낄낄거린다는 말인가저것들에게도 분명 무슨 사연들이 있을 거다 / 그렇지 않고선 어찌 / 저렇게 밤을 새워 기다린다는 말인가저것들에게도 분명 무슨 사랑들이 있을 거다 / 그렇지 않고선 어찌 / 저렇게 곱게 몸단장을 한다는 말인가그리고 저것들에게도 분명 무슨 미련이 있을 거다 / 그렇지 않고선 어찌 / 저렇게도 해마다 해마다 그 자리 / 그곳에 다시 피어난다는 말인가 / 그러나 나의 길은 가면 못 오는 길한번 지나갈 뿐 / 이제 그 길을 나는 지금 고속으로 / 너를 보며보며 지나가고 있는 거다 / 이렇게 나머질.조병화(1921~2003)이유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그냥 피어나는 꽃들도 없을 것이다. 가꾸지 않았는데도 길가 봄기운과 함께 움트고 있는 꽃들도 그러하리. 3월 어느 날 자신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한 세상 뿌리내린 이름 없는 꽃들을 바라본다. 꽃들의 말이, 꽃들의 사연이, 꽃들의 사랑이 들리는가. 그렇다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해 마다 그 자리'에 피어나는 그들의 생각도 읽을 수 있으리라. 반면 꽃들의 길은 가고 올 수 있지만 사람의 길은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것. 그것도 고속으로 '한번 지나갈 뿐' 그렇게 지나가고 있는 이 길에, 당신은 꽃보다 할 말이, 사연이, 사랑이 그리고 인생의 미련이 얼마나 아름답게 남았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3-04 권성훈

[시인의 꽃]국화

서리에 피는 국화선생이라 불렀더니뜻을 알아주기동지라 여겼더니오늘은아내 사랑을네게 온통 바친다이은상(1903~1982)고통은 극복하고 초월하는 문제가 아니라 참고 견디어 내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고통일수록 배가되며 머물렀다가는 시간마저도 알 수 없기에, 힘든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에 눈을 감고 돌아서지 않으면서 그것에 삶의 의미를 더하여 오히려 즐긴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자는 고통 속에서 꽃을 피우는 존재에게서 고통을 대하는 실천적 방법을 배우는 자세로 사물을 바라본다. 가령 '서리에 피는 국화'를 하나의 자연현상으로 본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이지만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자 한다면 '선생'이 되는 것이다. 사실 국화를 선생으로 있게 한 것은 국화가 아니라 '서리'인바, 이 서리라는 고통이 가중될수록 반대로 선생은 더욱 심오해지며, 연민까지 더해져 '동지' '아내'로 확대된다. 바람 잘날 없는, 오늘도 당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있다면 뛰어넘으려고 하지 말라, 그럴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으니. 어차피 그것은 와 있는 것이니, 지나가는 동안 현자로서 마주하라.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2-25 권성훈

[시인의 꽃]난蘭

이쯤에서 그만 하직下直하고 싶다. //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 나머지 허락 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 // 여유 있는 하직은 // 얼마나 아름다우랴. // 한 포기 난蘭을 기르듯 //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 조용히 살아나고, // 가지를 뻗고, // 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 //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 아아 // 먼 곳에서 그윽이 향기를 // 머금고 싶다.박목월(1915~1978)인간의 욕심은 있는 것과 있어야 할 것 사이에서 생긴다.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있는 것 이상,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욕심은 부피를 채워간다. 가령 욕심은 없음에서 있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있음에서 더 있음으로의 충족되지 않는, 탐함이라고 할 수 있다. 욕망이라는 두 글자에 서식하는 욕구와 요구에 관한 양상과 대상은, 지구적이라고 할 만큼 다양하다. 그것은 충족 가능한 생물학적인 기질과 다르게 충족될 수 없는 주체와 주체 사이, 구성원과 구성원의 상호 관계를 매체로 진화하는데, 거기에는 갈등과 분쟁, 불화와 분열 등이 등식처럼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 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하는, 것은 물욕과 작별하는 것이며, 욕망에 하직을 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유가 생기는 그 사이 난초와 같이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히 살아나는' 것은 정신이며, 그 정신은 가지를 뻗고 '스스로 꽃망울'의 고귀함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윽이 향기'를 머금고 있는 난초꽃은 분명 무욕이 피워 올린 없음에서 있는 꽃이 아닐 수 없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2-18 권성훈

[시인의 꽃]낙화

돌돌돌 가랑잎을 밀치고어느덧 실개울이 흐르기 시작한 뒷골짝에 멧비둘기 종일을 구구구 울고 동백꽃 피 뱉고 떨어지는 뜨락 // 창을 열면 우윳빛 구름 하나 떠 있는 항구에선 언제라도 네가 올 수 있는 뱃고동이 오늘도 아니 오더라고 / 목이 찢어지게 알려오노니 //오라 어서 오라 행길을 가도 훈훈한 바람결이 꼬옥 향긋한 네 살결 냄새가 나는구나 네 머리칼이 얼굴을 간질이는구나 //오라 어서 오라 나의 기다림도 정녕 한이 있겠거니 그때사 네가 온들 빈 창밖엔 멧비둘기만 구구구 울고 뜰에는 나의 뱉고 간 피의 낙화!유치환(1908~1967)겨울은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그 기세를 몰고 오지만 그럴수록 봄은 조금씩 겨울을 파고들고 있다.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겨울과 오려고 하는 봄은 숙명적으로 가고 오지만 그 사이 무엇이 있는가. 겨울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인연처럼 묶여 있다가 '돌돌돌 가랑잎을 밀치고 실개울이 흐르기' 시작할 때 즈음 낙화하는 "동백꽃 피 뱉고 떨어지는 뜨락"처럼 목매는 기다림이 있는 것. 이제 곧 '훈훈한 바람결'에서 '향긋한 네 살결 냄새'에서 '간질이는 네 머리칼'에서 그리움이 봄바람에 실려 올 것이다. 그러나 항구의 뱃고동이 목이 찢어지게 우는 것은,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늘도 아니 오더라고" 애절하고 서글픈 사연들 때문이다. 낙화한 동백꽃은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오라 어서 오라" 애타게 부르다가 '피' 토한 붉은 '그리움의 언어'인 것처럼.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2-11 권성훈

[시인의 꽃]매梅 수선水仙 난蘭

영하 십오 도의 대한大寒도 다 지내고잦았던 눈도 어제부터 다 녹이고뜰 앞의 매화 봉오리도 볼록볼록 하고나한잠 자고 나면 꿈만 시설스러웠다이 늙은 몸에도 이게 벌써 봄 아닌가일깨어 손주와 함께 뛰고 놀고 하였다한 분盆 수선은 농주를 지고 있고여러 난과 혜蕙는 잎새만 퍼런데호올로 병을 기울여 국화주를 마셨다이병기(1891~1968)대한은 '큰 추위'라는 뜻으로 24절기 중 마지막 절기이며 음력 12월 섣달에 들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절후다. 그러나 소한을 지나 대한이 일 년 가운데 가장 춥다고 한 것은, 절기가 중국에서 온 기준인바, 사실상 우리나라에서는 소한 무렵이 더 춥다."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라는 속담처럼 '영하 십오 도의 대한도 다 지내고 잦았던 눈도 어제부터 다 녹이고'있는 뜰 앞을 살펴보면 볼록볼록 움트는 것. 영원히 겨울 속으로 묻혀 버릴 것 같은 시간을 지나 "늙은 몸에도 이게 벌써 봄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밖에는 봄을 먼저 알리는 '매화' '수선화'가, 안에는 잎 새만 시퍼런 '난'도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시인은 벌써 다시 올 봄을 위해 국화주를 마시며 벌그레한 생각의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1-21 권성훈

[시인의 꽃]겨울 까마귀

영혼의 새. // 매우 뛰어난 너와 / 깊이 겪어 본 너는/ 또 다른, // 참으로 아름다운 것과 / 호올로 남는 것은 / 가까워질 수도 있는, / 언어는 본래 //침묵으로부터 고귀하게 탄생한, //열매는 / 꽃이었던, //너와 네 조상들의 빛깔을 두르고, //내가 십이월의 빈 들에 가늘게 서면, / 나의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 굳은 책임에 뿌리박힌 / 나의 나뭇가지에 호올로 앉아, //저무는 하늘이라도 하늘이라도 / 멀뚱거리다가, / 벽에 부딪쳐 / 아, 네 영혼의 흙벽이라도 덤북 물고 있는 소리로, / 까아욱ㅡ / 깍ㅡ //김현승(1913~1975)인간은 홀로 남았을 때 비로소 깨닫는 것이 있다. 꽃밭에서 꽃은 제각기 무리들 속에 파묻혀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 고유한 존재를 식별하지 못하듯, 인간도 우리를 벗어났을 때 나를 바라보게 된다. 우리 안에서는 "매우 뛰어난 너와/깊이 겪어 본 너는/또 다른" 것들로 가득 차 있는데, 가령 그것은 서로의 다른 언어가 얽히고설키어 있지만 홀로 된 침묵은 본질을 찾아가는 고귀한 탄생이라는 것. '열매'가 원래 '꽃'이었다는 단순한 사실도 '십이월의 빈 들녘'을 바라보듯이 '나의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멀뚱거리며 '저무는 하늘'을 고독과 마주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열매 역시 이제 시작하는 1월의 꽃을 피웠기에 다시 비상할 수 있는 것. 침묵을 깨며 날아가는 까마귀의 '까아욱ㅡ' '깍ㅡ' 울음은 오랜 고독이 내는 짧지만 긴 영혼의 소리가 깃들어 있다. 이른바 한 송이 꽃으로 핀 그 언어에는 지난했던 수많은 '언어의 열매'가 맺혀있다는 것.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1-14 권성훈

[시인의 꽃]나의 노래는

나의 노래는 / 라일락꽃과 그 꽃잎에 사운대는 / 바람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너의 타는 눈망울과 / 그 뜨거운 가슴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저어 빨간 장미의 산호빛 웃음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항상 별같이 살고파하는 네 마음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흰 나리꽃이 가쁘도록 내쉬는 짙은 향기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꽃잎이 서로 부딪치며 이뤄지는 죄 없는 입맞춤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소쩍새 미치게 우는 어둔 밤엘랑 아예 찾지 말라.//나의 노래는 / 태양의 꽃가루 쏟아지는 7월 바다의 푸르른 수평선에 있다.신석정(1907~1974)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노래가 숨어 있다. 길을 가다가 문득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한 소절 노래는, 무의미한 소리가 아니라 내면의 유의미한 언어다.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상황과 만났을 때 돌출되는, 나오는 '나의 노래'는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예측 불과하게 작동된다. 봄날 길을 걷다가 라일락꽃과 그 꽃잎에 살랑거리는 바람 속에서, 누군가의 타는 눈망울과 그 뜨거운 가슴 속에서, 빨간 장미의 산호빛 웃음 속에서, 나의 노래를 만난다. 때로는 별같이 살고파하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흰 나리꽃이 가쁘도록 내쉬는 짙은 향기 속에서, 꽃잎이 서로 부딪치듯 일어나는 사랑처럼 죄 없는 입맞춤 속에서도 터져 나오는 노래는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기쁨의 노래' 인 것. 그러나 소쩍새 미치게 우는 그러한 밤, 나의 노래는 "아예 찾지 말라"라는 것은, 밖에서 안으로 부르는 '슬픔의 노래'로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나의 노래는 시들지 않는 "태양의 꽃가루 쏟아지는 7월 바다의 푸르른 수평선"위에 떠있는 청춘과 같이.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2-24 권성훈

[시인의 꽃]마음의 꽃

오늘을 넘어선 가리지 마라! / 슬픔이든, 기쁨이든, 무엇이든, / 오는 때를 보려는 미리의 근심도 //아, 침묵을 품은 사람아, 목을 열어라, / 우리는 아무래도 가고는 말 나그넬러라, / 젊음의 어둔 온천에 입을 적셔라. //춤 추어라, 오늘만의 젖가슴에서, / 사람아, 앞뒤를 헤매지 말고 / 짓태워 버려라! / 끄슬려 버려라! / 오늘의 생명은 오늘의 끝까지만 //아, 밤이 어두워오도다! / 사람은 헛것일러라, / 때는 지나가다, / 울음의 먼 길 모르는 사이로 //우리의 가슴 복판에 숨어 사는 / 열푸른 마음의 꽃아 피어 버리라. / 우리는 오늘을 지리며, 먼 길 가는 나그넬러라. //이상화(1901~1943)저무는 한해는, 오늘이라는 하루가 쌓여 있게 한 것이니. 뒤돌아 보면 무엇이 남아있는가. 타다만 불씨조차 없는 지난날들은 지나가라고 있는 것. 오늘을 잘 살지 못한 죄만 검게 그을린 재처럼 마음 한곳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을 넘어선 가리지 마라!"라는 전언은 내일이 아닌 오늘만을 위한 오늘에 "슬픔이든, 기쁨이든, 무엇이든" 성실하게 보내야 한다는 것. 오늘은 오늘로서 '오는 때' 없이 끝이 나듯, 우리는 하루를 사는 나그네 일 수밖에 없다. 오늘이라는 하루를 누구도 먼저 와 본 사실이 없기에. 또한 오늘은 언제나 늙지 않는 젊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오늘만의 젖가슴에서' 근심일랑 "짓태워 버려라! 끄슬려 버려라!" "오늘의 생명은" 길지 못하여 "오늘의 끝까지만" 있기에. "우리의 가슴 복판에 숨어 사는" 열정이 있는 자여! '지금' 거기서 "마음의 꽃"을 피워라. 우린 모두 내일을 모르는 나그네인 것을.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2-17 권성훈

[시인의 꽃]앉은뱅이꽃

앉은뱅이꽃이 피었다작년 피었던 그 자리에또 피었다 // 진한 보랏빛그러나 주위의 푸르름에 밀려기를 펴지 못하는 풀꽃 // 이름은 왜 하필 앉은뱅이냐그렇게 물어도 아무 말 않고작게 웅크린 앉은뱅이꽃 // 사나흘 지나면 져버릴 것이다그래 그래 지지말고덧없는 소멸그것이 꿈이다꿈이란 꿈 다 꾸어버리고이제는 없는 그 꿈작년 그대로 또 피었다이형기(1933~2005)'지지 않는 꽃'이 있던가. 꽃은 짧게 피었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값지고 아름답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한한 시간 앞에서 유한성을 인정하면서도, 저마다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욕망하며 살아간다. 영원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한 자연과 우주의 원형일 뿐, 그 안에 기거하는 사물들은 한낮 꿈을 꾸는 꽃처럼 시들어가는 것. "작년 피었던 그 자리에 또 피었다"가는 '앉은뱅이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년에 피었던 꽃이 아니듯,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 역시 그대로인 공간에 사람만 매번 바뀌는 이치와 같은 것. '작게 웅크린 앉은뱅이꽃'과 같이 '사나흘 지나면 져버릴 것'을 망각한 채,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인 양 욕망이 이끄는 대로 소유하려고 한다. '덧없는 소멸'로의 끝은 '그것이 꿈'으로 귀결되지만 지금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망에의 질주를 멈출 수 없다. "꿈이란 꿈 다 꾸어버리고 이제는 없는 그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또 꿈을 꾸며 일상으로 나아간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2-10 권성훈

[시인의 꽃]박두진 '꽃'

이는 먼 / 해와 달의 속삭임 /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 엇갈림의 핏방울.꺼질 듯 / 보드라운 /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靜寂. 펼치면 일렁이는 / 사랑의 / 호심湖心아. 박두진(1916~1998)시는 문자―언어로서 시인의 관념을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시의식이 언어라는 사물의 표피를 입고, 생각의 추상이 기호의 구상으로 전환된 것. 일테면 '사랑'이라는 말 자체로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기에 누구나 공감하는 '꽃'으로 표상하고 있다. 저마다 다양한 사랑의 체험에 의해 사랑의 온도로 정서의 결에 배태되어 있는 바,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 중 하나가 '꽃의 은유'다. 이 시의 각 연 끝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과의 이별을 말할 때 어느 누구에게는 '속삭임'과 같은 '비밀한 울음'으로 혼자만이 견뎌왔던 기억에 남아있고, '어느 날' 인가 '아픈 피 흘림' 또는 '엇갈림의 핏방울'처럼 육신이 찢어지는 상처로 기록되어 있으며, '황홀한 한 떨기'를 피워낸 '아름다운 정적'을 통해 조화롭고 균형 있는 미적인 시간으로도 관철된다. 이처럼 한결같이 잊을 수 없는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사랑을, 감각적으로 전해 주는 것이 꽃이다. 우리의 무의식을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湖心아." 당신의 마음속 호수 깊은 곳에 고요하게 잠들어 있던 '첫사랑'의 추억이 춥고 바람 부는, 겨울이면 '꺼질 듯 보드라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듯. 시들은 당신 사랑의 은유도 같은 이치다./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2-03 권성훈

[시인의 꽃]절대신앙

당신의 불꽃으로나의 눈송이가 뛰어듭니다.당신의 불꽃은나의 눈송이를자취도 없이 품어 줍니다.김현승(1913~1975)첫눈이 하늘을 덮었다. 눈앞에서 첫눈은 아쉽게도 하얗게 녹아 까마득하게 사라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뭇가지에 소복이 내려앉으며 눈꽃을 피운다. 한편 눈꽃과 대조적인 불꽃은 불에서 일어나는 강렬한 불꽃으로 서로 물과 불이 가지는 속성으로부터 미학성을 지녔다. 이른바 꽃은 식물의 번식 기관에서 발화되는 것이지만, 눈꽃과 불꽃의 경우 물과 불이라는 원소에 대한 아름답고 화려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시는 '눈송이'라는 시적 주체가 불꽃을 태우고 있는 대상에 동화되는 상황을 통해 물에서 불로 전이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절정에 있는 "당신의 불꽃으로/나의 눈송이가/뛰어"들어가면 불에서 산화된 나도, 불꽃을 피게 되는 바, 이때 물화는 경지에 오른 불의 전도성에 의한 것. 간절한 마음이 온몸을 다해 '몸꽃'을 피웠을 때, '몸'은 사라지고 '자취도 없이 품어'주는 '꽃'만 남게 된다. 향기에 취한 대상 또한 그 순간 꽃이 되고 마는데, 얼마나 마음을 태우고 곡진해져야 '몸꽃'을 피게 할 수 있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1-26 권성훈

[시인의 꽃]박태기 꽃

충혈인지 어혈인지 그쪽으로 자꾸 깊게 물들고 있다 진자주다 한번 되게 그대에게 부딪쳤을 뿐인데 온몸 다닥다닥 꽃 벌기 직전이다 어쩌려고 이러나 등짬을 당겨보지만 돌아서지 않는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갈 때까지 갈 모양이다 다닥다닥 서둔다 어느 문전이라도 걸 벌써 다 알고 있는 눈치다 박태기 꽃 맺힌 걸 다닥다닥 바라다보며 이 봄이 위태위태하다 한번 되게 살구나무가 부딪친 것 만개滿開로 본 것이 엊그제인데 맘먹고 박태기 꽃 마지막을 서둔다 이 늦봄 꿈속의 꿈까지 꾸어 몸 밖의 몸을 보려한다 박태기꽃 진자주 정진규(1939~2017)인간에게 삶과 죽음이 공존하듯이, 한그루 나무에 사계절이 들어있다. 늦가을이 되면 칼집처럼 생긴 꼬투리가 달려서 '칼집나무'라고도 불리는, 박태기나무는 4월부터 '진자주' 색으로 개화한다. 꽃이 밥알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박태기라고 하며, 일부 지방에서는 '밥티나무'라고 불린다. 이 나무는 봄이 되면 '충혈인지 어혈인지' '온몸 다닥다닥 꽃'이 먼저 잎이 피기 전에 7∼8개에서 20∼30개씩 한 군데 모여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우정'이라는 꽃말과 같이 서로 '꿈쩍도 하지 않고 달라붙어 다닥다닥 바라보며' 여기저기에서 출현하는 '위태위태한 봄'의 끝에서 '맘먹고' 피어나듯 봄을 알린다. 마치 "이 늦봄 꿈속의 꿈"을 꾸듯이, 꿈이 '몸 밖에 몸'으로 피는 것같이, 박태기 꽃은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뚫고 나온다. 그것도 진하고 진한 '진자주' 빛깔로 사계를 견뎌온 '세월의 표피'를 몸 밖으로 꿈을 표출하듯이 수놓는, 봄이 그리워지는 11월의 찬바람 끝에 서 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1-19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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