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꽃

 

[시인의 꽃]겨울 까마귀

영혼의 새. // 매우 뛰어난 너와 / 깊이 겪어 본 너는/ 또 다른, // 참으로 아름다운 것과 / 호올로 남는 것은 / 가까워질 수도 있는, / 언어는 본래 //침묵으로부터 고귀하게 탄생한, //열매는 / 꽃이었던, //너와 네 조상들의 빛깔을 두르고, //내가 십이월의 빈 들에 가늘게 서면, / 나의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 굳은 책임에 뿌리박힌 / 나의 나뭇가지에 호올로 앉아, //저무는 하늘이라도 하늘이라도 / 멀뚱거리다가, / 벽에 부딪쳐 / 아, 네 영혼의 흙벽이라도 덤북 물고 있는 소리로, / 까아욱ㅡ / 깍ㅡ //김현승(1913~1975)인간은 홀로 남았을 때 비로소 깨닫는 것이 있다. 꽃밭에서 꽃은 제각기 무리들 속에 파묻혀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 고유한 존재를 식별하지 못하듯, 인간도 우리를 벗어났을 때 나를 바라보게 된다. 우리 안에서는 "매우 뛰어난 너와/깊이 겪어 본 너는/또 다른" 것들로 가득 차 있는데, 가령 그것은 서로의 다른 언어가 얽히고설키어 있지만 홀로 된 침묵은 본질을 찾아가는 고귀한 탄생이라는 것. '열매'가 원래 '꽃'이었다는 단순한 사실도 '십이월의 빈 들녘'을 바라보듯이 '나의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멀뚱거리며 '저무는 하늘'을 고독과 마주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열매 역시 이제 시작하는 1월의 꽃을 피웠기에 다시 비상할 수 있는 것. 침묵을 깨며 날아가는 까마귀의 '까아욱ㅡ' '깍ㅡ' 울음은 오랜 고독이 내는 짧지만 긴 영혼의 소리가 깃들어 있다. 이른바 한 송이 꽃으로 핀 그 언어에는 지난했던 수많은 '언어의 열매'가 맺혀있다는 것.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1-14 권성훈

[시인의 꽃]나의 노래는

나의 노래는 / 라일락꽃과 그 꽃잎에 사운대는 / 바람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너의 타는 눈망울과 / 그 뜨거운 가슴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저어 빨간 장미의 산호빛 웃음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항상 별같이 살고파하는 네 마음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흰 나리꽃이 가쁘도록 내쉬는 짙은 향기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꽃잎이 서로 부딪치며 이뤄지는 죄 없는 입맞춤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소쩍새 미치게 우는 어둔 밤엘랑 아예 찾지 말라.//나의 노래는 / 태양의 꽃가루 쏟아지는 7월 바다의 푸르른 수평선에 있다.신석정(1907~1974)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노래가 숨어 있다. 길을 가다가 문득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한 소절 노래는, 무의미한 소리가 아니라 내면의 유의미한 언어다.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상황과 만났을 때 돌출되는, 나오는 '나의 노래'는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예측 불과하게 작동된다. 봄날 길을 걷다가 라일락꽃과 그 꽃잎에 살랑거리는 바람 속에서, 누군가의 타는 눈망울과 그 뜨거운 가슴 속에서, 빨간 장미의 산호빛 웃음 속에서, 나의 노래를 만난다. 때로는 별같이 살고파하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흰 나리꽃이 가쁘도록 내쉬는 짙은 향기 속에서, 꽃잎이 서로 부딪치듯 일어나는 사랑처럼 죄 없는 입맞춤 속에서도 터져 나오는 노래는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기쁨의 노래' 인 것. 그러나 소쩍새 미치게 우는 그러한 밤, 나의 노래는 "아예 찾지 말라"라는 것은, 밖에서 안으로 부르는 '슬픔의 노래'로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나의 노래는 시들지 않는 "태양의 꽃가루 쏟아지는 7월 바다의 푸르른 수평선"위에 떠있는 청춘과 같이.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2-24 권성훈

[시인의 꽃]마음의 꽃

오늘을 넘어선 가리지 마라! / 슬픔이든, 기쁨이든, 무엇이든, / 오는 때를 보려는 미리의 근심도 //아, 침묵을 품은 사람아, 목을 열어라, / 우리는 아무래도 가고는 말 나그넬러라, / 젊음의 어둔 온천에 입을 적셔라. //춤 추어라, 오늘만의 젖가슴에서, / 사람아, 앞뒤를 헤매지 말고 / 짓태워 버려라! / 끄슬려 버려라! / 오늘의 생명은 오늘의 끝까지만 //아, 밤이 어두워오도다! / 사람은 헛것일러라, / 때는 지나가다, / 울음의 먼 길 모르는 사이로 //우리의 가슴 복판에 숨어 사는 / 열푸른 마음의 꽃아 피어 버리라. / 우리는 오늘을 지리며, 먼 길 가는 나그넬러라. //이상화(1901~1943)저무는 한해는, 오늘이라는 하루가 쌓여 있게 한 것이니. 뒤돌아 보면 무엇이 남아있는가. 타다만 불씨조차 없는 지난날들은 지나가라고 있는 것. 오늘을 잘 살지 못한 죄만 검게 그을린 재처럼 마음 한곳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을 넘어선 가리지 마라!"라는 전언은 내일이 아닌 오늘만을 위한 오늘에 "슬픔이든, 기쁨이든, 무엇이든" 성실하게 보내야 한다는 것. 오늘은 오늘로서 '오는 때' 없이 끝이 나듯, 우리는 하루를 사는 나그네 일 수밖에 없다. 오늘이라는 하루를 누구도 먼저 와 본 사실이 없기에. 또한 오늘은 언제나 늙지 않는 젊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오늘만의 젖가슴에서' 근심일랑 "짓태워 버려라! 끄슬려 버려라!" "오늘의 생명은" 길지 못하여 "오늘의 끝까지만" 있기에. "우리의 가슴 복판에 숨어 사는" 열정이 있는 자여! '지금' 거기서 "마음의 꽃"을 피워라. 우린 모두 내일을 모르는 나그네인 것을.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2-17 권성훈

[시인의 꽃]앉은뱅이꽃

앉은뱅이꽃이 피었다작년 피었던 그 자리에또 피었다 // 진한 보랏빛그러나 주위의 푸르름에 밀려기를 펴지 못하는 풀꽃 // 이름은 왜 하필 앉은뱅이냐그렇게 물어도 아무 말 않고작게 웅크린 앉은뱅이꽃 // 사나흘 지나면 져버릴 것이다그래 그래 지지말고덧없는 소멸그것이 꿈이다꿈이란 꿈 다 꾸어버리고이제는 없는 그 꿈작년 그대로 또 피었다이형기(1933~2005)'지지 않는 꽃'이 있던가. 꽃은 짧게 피었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값지고 아름답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한한 시간 앞에서 유한성을 인정하면서도, 저마다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욕망하며 살아간다. 영원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한 자연과 우주의 원형일 뿐, 그 안에 기거하는 사물들은 한낮 꿈을 꾸는 꽃처럼 시들어가는 것. "작년 피었던 그 자리에 또 피었다"가는 '앉은뱅이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년에 피었던 꽃이 아니듯,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 역시 그대로인 공간에 사람만 매번 바뀌는 이치와 같은 것. '작게 웅크린 앉은뱅이꽃'과 같이 '사나흘 지나면 져버릴 것'을 망각한 채,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인 양 욕망이 이끄는 대로 소유하려고 한다. '덧없는 소멸'로의 끝은 '그것이 꿈'으로 귀결되지만 지금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망에의 질주를 멈출 수 없다. "꿈이란 꿈 다 꾸어버리고 이제는 없는 그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또 꿈을 꾸며 일상으로 나아간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2-10 권성훈

[시인의 꽃]박두진 '꽃'

이는 먼 / 해와 달의 속삭임 /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 엇갈림의 핏방울.꺼질 듯 / 보드라운 /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靜寂. 펼치면 일렁이는 / 사랑의 / 호심湖心아. 박두진(1916~1998)시는 문자―언어로서 시인의 관념을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시의식이 언어라는 사물의 표피를 입고, 생각의 추상이 기호의 구상으로 전환된 것. 일테면 '사랑'이라는 말 자체로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기에 누구나 공감하는 '꽃'으로 표상하고 있다. 저마다 다양한 사랑의 체험에 의해 사랑의 온도로 정서의 결에 배태되어 있는 바,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 중 하나가 '꽃의 은유'다. 이 시의 각 연 끝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과의 이별을 말할 때 어느 누구에게는 '속삭임'과 같은 '비밀한 울음'으로 혼자만이 견뎌왔던 기억에 남아있고, '어느 날' 인가 '아픈 피 흘림' 또는 '엇갈림의 핏방울'처럼 육신이 찢어지는 상처로 기록되어 있으며, '황홀한 한 떨기'를 피워낸 '아름다운 정적'을 통해 조화롭고 균형 있는 미적인 시간으로도 관철된다. 이처럼 한결같이 잊을 수 없는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사랑을, 감각적으로 전해 주는 것이 꽃이다. 우리의 무의식을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湖心아." 당신의 마음속 호수 깊은 곳에 고요하게 잠들어 있던 '첫사랑'의 추억이 춥고 바람 부는, 겨울이면 '꺼질 듯 보드라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듯. 시들은 당신 사랑의 은유도 같은 이치다./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2-03 권성훈

[시인의 꽃]절대신앙

당신의 불꽃으로나의 눈송이가 뛰어듭니다.당신의 불꽃은나의 눈송이를자취도 없이 품어 줍니다.김현승(1913~1975)첫눈이 하늘을 덮었다. 눈앞에서 첫눈은 아쉽게도 하얗게 녹아 까마득하게 사라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뭇가지에 소복이 내려앉으며 눈꽃을 피운다. 한편 눈꽃과 대조적인 불꽃은 불에서 일어나는 강렬한 불꽃으로 서로 물과 불이 가지는 속성으로부터 미학성을 지녔다. 이른바 꽃은 식물의 번식 기관에서 발화되는 것이지만, 눈꽃과 불꽃의 경우 물과 불이라는 원소에 대한 아름답고 화려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시는 '눈송이'라는 시적 주체가 불꽃을 태우고 있는 대상에 동화되는 상황을 통해 물에서 불로 전이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절정에 있는 "당신의 불꽃으로/나의 눈송이가/뛰어"들어가면 불에서 산화된 나도, 불꽃을 피게 되는 바, 이때 물화는 경지에 오른 불의 전도성에 의한 것. 간절한 마음이 온몸을 다해 '몸꽃'을 피웠을 때, '몸'은 사라지고 '자취도 없이 품어'주는 '꽃'만 남게 된다. 향기에 취한 대상 또한 그 순간 꽃이 되고 마는데, 얼마나 마음을 태우고 곡진해져야 '몸꽃'을 피게 할 수 있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1-26 권성훈

[시인의 꽃]박태기 꽃

충혈인지 어혈인지 그쪽으로 자꾸 깊게 물들고 있다 진자주다 한번 되게 그대에게 부딪쳤을 뿐인데 온몸 다닥다닥 꽃 벌기 직전이다 어쩌려고 이러나 등짬을 당겨보지만 돌아서지 않는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갈 때까지 갈 모양이다 다닥다닥 서둔다 어느 문전이라도 걸 벌써 다 알고 있는 눈치다 박태기 꽃 맺힌 걸 다닥다닥 바라다보며 이 봄이 위태위태하다 한번 되게 살구나무가 부딪친 것 만개滿開로 본 것이 엊그제인데 맘먹고 박태기 꽃 마지막을 서둔다 이 늦봄 꿈속의 꿈까지 꾸어 몸 밖의 몸을 보려한다 박태기꽃 진자주 정진규(1939~2017)인간에게 삶과 죽음이 공존하듯이, 한그루 나무에 사계절이 들어있다. 늦가을이 되면 칼집처럼 생긴 꼬투리가 달려서 '칼집나무'라고도 불리는, 박태기나무는 4월부터 '진자주' 색으로 개화한다. 꽃이 밥알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박태기라고 하며, 일부 지방에서는 '밥티나무'라고 불린다. 이 나무는 봄이 되면 '충혈인지 어혈인지' '온몸 다닥다닥 꽃'이 먼저 잎이 피기 전에 7∼8개에서 20∼30개씩 한 군데 모여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우정'이라는 꽃말과 같이 서로 '꿈쩍도 하지 않고 달라붙어 다닥다닥 바라보며' 여기저기에서 출현하는 '위태위태한 봄'의 끝에서 '맘먹고' 피어나듯 봄을 알린다. 마치 "이 늦봄 꿈속의 꿈"을 꾸듯이, 꿈이 '몸 밖에 몸'으로 피는 것같이, 박태기 꽃은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뚫고 나온다. 그것도 진하고 진한 '진자주' 빛깔로 사계를 견뎌온 '세월의 표피'를 몸 밖으로 꿈을 표출하듯이 수놓는, 봄이 그리워지는 11월의 찬바람 끝에 서 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1-19 권성훈

[시인의 꽃]들국화

산등선 외따른데,애기 들국화바람도 없는데괜히 몸을 뒤누인다.가을은다시 올 테지.다시 올까?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지금처럼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천상병(1930~1993)늦은 11월까지 꽃을 피우는 들국화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국화과 식물을 두루 일컫는 보통명사다. 산과 들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절초, 쑥부쟁이, 감국, 산국 등과 같이, 가을에 등장하는 이러한 꽃을 들국화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식물마다 꽃말이 다른데, 구절초는 가을 여인, 쑥부쟁이는 기다림과 그리움, 감국은 가을의 향기, 산국은 순수한 사랑 등 다양하다. 국화과 식물들의 특징으로 작고 가녀린 형체를 떠올릴 수 있는데, 화자는 이름 모를, 이 꽃을 '애기 들국화'라고 하는 것. 이 시는 산등선 외딴곳에 얼굴을 내민 '애기 들국화'와 시선을 마주치면서 시상이 확장되고 있는 점이다. 어느 늦은 가을날 "바람도 없는데" 몸을 눕히는 연약한 들국화를 보면 언젠가 저렇게 홀로 시들어 갈 인생과 겹쳐져 '나'와 '들국화'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심상. 그것은 우리의 내면에 깃든 '애기 들국화'와 동화되어 안쓰러운 마음이 절로 생기게 되는 것이다. 잠시 생명에의 기쁨을 주고 가는 들국화에게서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을 달래듯이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작고 적은 것들 속에서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을 크고 많은 것들로 바꾸어 보라. 당신의 향기로움은 "다시 올 테지"라고 처음 만난 타인일지라도 그 영혼 속에 남아 기다림을 간직하게 되리니.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1-12 권성훈

[시인의 꽃]따알리아

가을 볕 째앵 하게내려 쪼이는 잔디밭.//함빡 피여난 따알리아.한낮에 함빡 핀 따알리아.//시약시야, 네 살빛도익을 대로 익었구나.//젖가슴과 부끄럼성이익을 대로 익었구나.//시약시야, 순하디순하여다오.암사심처럼 뛰여 다녀 보아라.//물오리 떠돌아다니는힌 못물 같은 하늘 밑에,//함빡 피여나온 따알리아.피다 못해 터저 나오는 따알리아정지용(1905~?)국화과 여러해살이 풀인 다알리아(Dahlia) 꽃은 멕시코가 원산지로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A. Dahl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7~11월 사이 개화하는 이 꽃에 얽힌 전설이 전해진다.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구하던 중 한 여자 미라를 발견했는데, 그 손에 꽃 한송이가 있었고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그 꽃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꽃씨가 되어 떨어졌다. 이를 영국으로 가져와 모종을 했더니 싹이 자라서 꽃이 피었는데, 이 꽃을 재배했던 식물학자 '다알'의 이름을 따서 '다알리아'라고 호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한창 '가을 볕 째앵 하게/내려 쪼이는 잔디밭'에 "함빡 피여난 따알리아"를 보면 살갗이 익을대로 익은 '색시 젖가슴'처럼 부끄러움도 없이 자태를 드러낸다. '순하디 순한 암사슴'같이 '연못가에 함빡 핀' 물오른 이 꽃의 꽃말은 화려, 우아, 감사 등으로 사람들 입가에서도 피어난다. 누군가에게 화려함으로, 우아함으로, 감사함으로 "피다 못해 터져 나오는" 다알리아를 보면 나는 어떠한 꽃으로 피어나 있는가, 자문하게 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0-29 권성훈

[시인의 꽃]밤은 영양이 풍부하다

무르익은/과실의 밀도密度와 같이/밤의 내부는 달도록 고요하다.//잠든 내 어린것들의 숨소리는/작은 벌레와 같이/이 고요 속에 파묻히고,//별들은 나와/자연自然의 구조에/질서 있게 못을 박는다.//한 시대 안에는 밤과 같이 해체解體나 분석分析에는차라리 무디고 어두운 시인들이 산다. 그리하여 토의의 시간이 끝나는 곳에서밤은 상상으로 저들의 나래를 이끌어 준다.//꽃들은 떨어져 열매 속에/그 화려한 자태를 감추듯……//그리하여 시간으로 하여금새벽을 향하여 이 풍성한 밤의 껍질을 서서히 탈피케 할 줄을 안다.김현승(1913~1975)봄에 떨어진 꽃들은 깊어져 가을에 열매를 수확한다. '달도록 고요한' 그 열매의 내부는 밤과 같이 무르익고 밤과 같이 어둡다. 이때 밤은 '과실'이며 동시에 '어둠'으로서 시의식을 통해 배태된 양가적 상징물이 된다. 그러기에 밤은 밤이면서 밤이 아니지만 둘 다 "자연自然의 구조에/질서 있게 못을 박는" 거스르지 못하는 자연의 이치로서 전적으로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에 달려있다. 이것은 구조학의 해체 또는 논리학의 분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시인의 '무디고 어두운' 밤의 시간으로서 '상상으로 저들의 나래를 이끌어' 비로소 밤은 밤으로서 관통하며 밤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꽃들은 떨어져 열매 속에" 보이지 않지만 숨겨진 "그 화려한 자태를" 감각할 수 있는 자만이, 이 가을 "풍성한 밤의 껍질을" 밤바다 벗기며 모든 사물이 비롯된 '새벽을 향하여' 근원에로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0-22 권성훈

[시인의 꽃]꽃들, 바람을 가지고 논다

꽃들, 줄기에 꼼짝 못하게 매달렸어도바람들을 잘도 가지고 논다.//아빠꽃 엄마꽃 형꽃 누나꽃 따라/아기꽃 동생꽃 쌍둥이꽃바람들을 잘도 가지고 논다.//바다에서 파도를 일으키며 놀던 바람도산속에서 바윗덩이를 토닥이며 놀던 바람도공중에서 날짐승을 날게 하던 바람도//꽃들 앞에선 오금을 쓰지 못한다./꽃들 앞에선 그 형체까지를 잃는다.//팔다리 몸통 줄기에 붙들렸어도그 자태만으로 바람의 팔다리를 묶으며그 향기만으로 바람의 형체를 지우며//잘도 가지고 논다.잘도 달래며 논다.조태일(1941~1999)오래 기억되는 시일수록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런 시는 기존의 상식을 깨뜨리고 고정된 의미를 변화시켜 새롭게 만든다. 우리가 아는 한, '바람'은 불어오는 것이며, 바람을 맞이하는 사물의 움직임을 통해 그것의 방향과 세기를 감지한다. 그런데 이미 구축된 바람에 관한 인식을 "꽃들, 줄기에 꼼짝 못하게 매달렸어도/바람들을 잘도 가지고 논다."라고 함으로써 우리는 바람을 낯설게 보게 되는 것. 이제 바람이 주체가 아니라, 꽃이 주체가 되는바, 바람이 꽃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꽃이 바람을 움직이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바다' '산속' '공중'을 가지고 놀던 거대한 바람이라는 존재는 '꽃들 앞에선 오금을 쓰지'못하고 '그 형체까지를 잃어버리는 것' 시는 바로 이러한 역발상을 통해 사람들의 '팔다리 몸통 줄기에' 붙어 있는 고착된 생각을 해체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는 기호의 "그 자태만으로" 의미의 "그 향기만으로" 언어가 시작된 이래 변함없이 우리를 "잘도 가지고 논다./잘도 달래며 논다."라고 할 수 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0-01 권성훈

[시인의 꽃]꽃나무

벌판 한복판에 꽃나무 하나가 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 하나도 없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으로 꽃을 피워가지고 섰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수없소. 나는 막 달아났소 한 꽃나무를 위하여 그러는 것처럼 나는 참 그런 이상스러운 흉내를 내었소.이상(1910~1937)사회 전체나 모든 인류를 특정할 때, 거시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세계다. 세계는 너무나 크고 방대해서 그 깊이와 넓이의 정도를 감지하지 못하여 추상적으로 생겨난 테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영역을 수사적으로 말할 때 '벌판'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세상이라는 '벌판한복판'에 사는 것이며, 언젠가 비, 바람 속에서 소멸될지 모르는 연약한 '꽃나무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이 고독한 근원에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듯이, 자신을 닮은 꽃나무(사람)가 많더라도 당신을 대리할 수 있는 "꽃나무가하나도없소"라고 성찰하게 된다. 벌판 한 복판에 버려진 인생은 스스로 짊어질 수밖에 없는, 가시밭길 속에 피어난 '꽃나무 십자가'인바, 자신을 위하여 '열심으로 생각'하고 '열심으로 꽃을 피워가지고' 산다. 그러나 나라는 '꽃나무'가 타자라는 '꽃나무'에게 다가가면 갈수록 그 '꽃나무는' 당신이 '생각하는 꽃나무'가 아니기에 멀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사는 살벌한 벌판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생각은, 달리 말하자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중심축'이 세계라는 점에서 이제 "이상스러운 흉내" 보다는 당신의 빛깔과 향기에 맞는 고유한 꽃을 피우시길.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9-17 권성훈

[시인의 꽃]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김춘수(1922~2004)'누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서로의 관계맺음을 표상하는 것처럼 이름이 잦아드는 것은, 그 만큼 관계맺음에서 멀어진다는 것. 안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인바, 기억 속에 당신의 이름을 꺼내어 호명함으로써 '내가' 여기 '그에게' 살아 있음을 승인받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사실상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행위로서 자아는 타자의 생각 속에 이름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마치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아무것도 아니며 길가에 지나는 사람들같이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것같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유의미한 그 무엇인가 된다. 당신은 이름 속에 들어있고, 이름은 당신이라는 기억으로 타자에게 전치되는 것이기에, 당신의 그 이름은 누군가에게 당신이 가진 '빛깔과 향기'로서 살아있다. 그렇지만 꽃과 같이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피어 올려야 하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9-10 권성훈

[시인의 꽃]풀꽃과 더불어

아파트 베란다/난초가 죽고 난 화분에 잡초가 제풀에 돋아서/흰 고물 같은 꽃을 피웠다.//저 미미한 풀 한 포기가영원 속의 이 시간을 차지하여무한 속의 이 공간을 차지하여한 떨기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생각하면 할수록/신기하기 그지없다.//하기사 나란 존재가 역시영원 속의 이 공간을 차지하며/무한 속의 이 공간을 차지하며저 풀꽃과 마주한다는 사실도/생각하면 생각할수록/오묘하기 그지없다.//곰곰 그 일들을 생각하다 나는/그만 나란 존재에서 벗어나그 풀꽃과 더불어//영원과 무한의 한 표현으로/영원과 무한의 한 부분으로영원과 무한의 한 사랑으로//이제 여기 존재한다.구상(1919~2004)존재하는 것들의 존재방식을 환원한다면 시―공간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나'란 누군가 있었던 자리에 잠시 머물렀다 돌아가기에 '지금―여기'는 살아있음을 알리는 표상이 된다. '난초가 죽고 난 화분'에서 또 다른 '잡초가 제풀에 돋아'나듯이, "나란 존재가 역시" '영원 속의 이 시간'과 '무한 속의 이 공간'을 임차하고 '흰 고물 같은 꽃'을 피워 올리고 있는 것. 그러나 쓸모없이 보이는 '풀꽃'도 누군가에게는 기쁨과 희망으로서 쓸데 있게 다가가듯이, 자아를 찾는 것도 이처럼 유의미한 원리로 작동된다. 길가에 홀로 핀 풀꽃을 마주하고 생각이 생각 속으로 이어질 때 '그만 나란 존재에서 벗어나' 나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풀꽃'만 남게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영원과 무한 사이'에서 살아있음을 증명할 '한 표현'이 있다면 '한 부분'을 인정하고 '한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쓸모 있는 척하는, 당신도 '이제 여기' 진정으로 존재하게 되리니./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9-03 권성훈

[시인의 꽃]꽃그늘에서

눈물은 속으로 숨고웃음 겉으로 피라우거진 꽃송이 아래조촐히 굴르는 산골 물소리……바람 소리 곳고리 소리어지러이 덧덮인 꽃잎새 꽃낭구꽃다움 아래로말없이 흐르는 물아하 그것은내 마음의 가장 큰 설움이러라하잔한 두어 줄 글 이것이어찌타 내 청춘의 모두가 되노조지훈(1920~1968)빛을 가린 물체 뒷면에 생긴 검은 그늘인 그림자(shadow)를 심리학에서는 은폐되고 억압되어 있는 또 하나의 인격체로 말한다. 이른바 '눈물은 속으로 숨고'있지만 겉으로는 '웃음'으로, '우거진 꽃송이 아래' 지나가는 '물소리'로, '꽃다움 아래로' '말없이 흐르는 물'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림자는 겉과 속의 이중성 또는 양면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꽃그늘'은 꽃의 그림자가 아니라 아무리 아름다운 꽃일지라도 그것에는 억압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송이 꽃도 그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어지러이 덧덮인' 시간을 관통하며 왔는지, 구구절절 알 순 없지만 짐작할 뿐. 마치 당신 "마음의 가장 큰 설움"이 그러하듯, 그것을 '두어 줄 글'을 통해 전할 수 없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빛나는 만큼 빠르게 지나간 '청춘'을 보면 '꽃그늘' 드리워져 있지 않던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8-27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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