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꽃

 

[시인의 꽃]꽃 단상(斷想)

꽃은 영감 속에 피며마음을 따라다닌다사람이 외로우면사람과 한방에 같이 살면서 외롭고사람이 슬프면사람과 같이 가면서 슬프다이런 꽃은 꽃 속에 꽃이 있고사랑이 있고 하늘이 있지만그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도 않고누구에게나 그 속을 좀처럼 보이지도 않는다김광섭(1905~1977)우리 마음속에 자신을 닮은 꽃나무 한그루씩 있다. 그 꽃은 누구에게나 피어 있는, 피어나고 있는, 언제 필줄 모르는, 사람마다 다른 모양과 빛깔과 향기를 가졌다. 그렇지만 그 꽃의 봉오리가 가슴 속에 있어서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꽃은 영감 속에 피며/마음을 따라다닌다". 이처럼 마음을 떠나서 살 수 없는 '마음 꽃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외로울 때 같이 외롭고, 슬플 때 함께 슬퍼한다는 것을 탐미할 수 있다. 외롭고 슬픈 이들에게 꽃이 된다는 것 또한 이와 다르지 않겠는가. 그런 당신이라는 "꽃은 꽃 속에 꽃이 있고" 꽃 밖으로 몸을 내민 '꽃 중의 꽃'이 되며 '사랑'과 '하늘'을 품고 있다. 그럴수록 "그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도 않고/누구에게나 그 속을 좀처럼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게 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6-18 권성훈

[시인의 꽃]꽃과 천사

아주 아득했다//꽃과 천사가한마을에 살았다//사랑이 구름 같은 꽃은'사랑'이란 말을 하게 되었고//눈물이 많은 천사는파도처럼 울다가눈물이란 말을 못 찾고 말았다//그때부터말하는 꽃은 천사가 되고말을 못하는 천사는꽃이 되었다황금찬(1918~2017)신화는 있을 법한 이야기를 있는 것처럼 보여준다는 점에서 있었던 사실보다 더 초극적이다. 이것은 모든 만물의 기원을 마치 있었던 것처럼 찾아주기도 하면서 인류 보편적인 심상을 발견하는 원형으로서 작동된다. 또한 현실에서 '있어야 할 것'과 '있는 것'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있어야 할 것'을 통해 '있는 것'을 수정하는 형태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이 시처럼 아주 아득한 옛날 한마을에 꽃과 천사가 살았는데, "말하는 꽃은 천사가 되고/말을 못하는 천사는/꽃이"되었다. 꽃은 '사랑'이란 말을 찾았지만, 천사는 '눈물'이란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꽃이 된 천사는 또다시 '사랑'이라는 말을 찾거나, 누군가 찾아주어야 한다. 그래서 말 못하는 꽃을 위해 '꽃말'이라는 것이 생겨나지 않았겠는가. 꽃의 특징을 중심으로 국가나 민족, 시대에 따라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꽃말이 생겨난 것처럼, 우리 주변에 말 못하는 누군가의 말을 찾아주는 것은 신화를 창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6-04 권성훈

[시인의 꽃]할미꽃

이른 봄 양지 밭에 나물캐던 울 어머니곱다시 다듬어도 검은 머리 희시더니이제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서러움도 잠드시고이 봄 다 가도록 기다림에 지친 삶을삼삼히 눈 감으면 떠오르는 임의 모습그 모정 잊었던 날의 아 허리 굽은 꽃이여하늘 아래 손을 모아 씨앗처럼 받은 가난긴긴 날 배고픈들 그게 무슨 죄입니까적막산 돌아온 봄을 고개 숙는 할미꽃조오현(1932~2018)인간에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죽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이가 들고 있다는 것으로, 늙어가고 있다는 현상을 통해 노년으로 죽음에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만 감지될 뿐. 산과 들판의 양지쪽에서 자라는 할미꽃은 흰 털로 덮인 열매의 덩어리가 꼬부라진 할머니의 하얀 머리카락 같아서 그와 같은 이름이 생겼다. "이른 봄 양지 밭에 나물캐던 울 어머니"의 젊음도 "곱다시 다듬어도 검은 머리 희시더니" 결국 사랑의 배신, 슬픈 추억이라는 꽃말을 가진 할미꽃같이 삶은 죽음을 배신하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서러움도 잠드시고"야 만다. 불가와 세속을 넘나드는 '그 모정'으로 '가난'한 자를 보살피며 허리가 굽어 가며 운명하신 조오현 스님도 "이 봄 다 가도록 기다림에 지친 삶"에 "삼삼히 눈 감으면 떠오르는 임의 모습"이 되지 않았던가. 한동안 그가 보여준 적막산 속에서 우리는 또 얼마나 헤매야 할까.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5-28 권성훈

[시인의 꽃]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찬란한 슬픔의 봄을김영랑 (1903~1950)5월에 개화하는 크고 화려한 모란꽃은 부귀와 명예를 상징하며, '꽃 중의 왕'이라고 하여 '화중지왕(花中之王)'으로도 불린다. 누구에게나 모란꽃처럼 불꽃으로 타올랐던 화려한 날들이 있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그 환희의 순간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과 허탈감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 이 시는 봄날 뒤에 찾아오는 안타까움을 모란꽃에 비유하면서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에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겨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을 맞이하는 정경을 그리고 있다. '여윈 봄'을 있게 한, '오월 어느 날'의 지금쯤 '떨어져 누운 꽃잎'들이 시들어가는 현장에서 우리는 기쁨이 클수록 슬픔도 비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모란이 피기까지"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 마음에 떨어진 꽃잎은 '찬란한 슬픔의 봄'이 되고, 슬픔도 찬란할 수 있다는 '언어적 모순'을 통해 '실제적 진실'에 가닿게 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5-21 권성훈

[시인의 꽃]민들레꽃

요란하지 않아서 좋다화려하지 않아서 마음이 놓인다평범해서 정이 간다평범하고 요란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서평안하다//민들레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씨가 머무는 곳에서강하게 강인하게 피어난다//피어나서요란하지 않아서 좋다화려하지 않아서 좋다수줍어하며 수줍어하며나를 안아 주어 편안하다//민들레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씨가 머무는 곳에서강하게 강인하게 피어난다조병화(1921~2003)아무도 가꾸지 않아도 어느 곳에서나 자리 잡고 사철 꽃을 피우는 민들레 꽃. 솜뭉치 같은 열매 뭉치에 200여개의 씨앗을 품고 있다가, 바람 불면 허공을 날아 어디든지 간다. 산과 들판이 아니더라도 틈을 보인 땅과 햇빛 있는 곳에 정착하여 불평 없이 저 홀로 서식한다. 작고 초라해 보이는 가난한 사람같이 '민들레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 주변에 '씨가 머무는 곳에서' 자리를 내어주지 않아도 '강하게 강인하게 피어난다' 아무것도 없기에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이 식물의 꽃말은 행복이다. 이 행복은 "요란하지 않아서 좋다 화려하지 않아서 마음이 놓인다 평범해서 정이 간다 평범하고 요란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서 평안하다" 그렇지 아니한가. '수줍어하며 수줍어하며' 한 없이 '나를 안아 주어 편안'한 '민들레 사람'이 당신 곁에 있거나, 저 멀리서 '민들레 홀씨'되어 당도하고 있으니, 외로워 말라.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5-14 권성훈

[시인의 꽃]해당화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 합니다.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더니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 그려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 하고 물었습니다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한용운(1879~1944)장미과에 속하는 해당화는 무려 높이가 1.5m되고, 꽃은 지름 6∼9㎝로 5월에 홍자색으로 개화한다. 봄의 끝에서 피어난 해당화는 그 크기와 빛깔만큼 양귀비꽃처럼 매혹적인 향기가 난다. 그리움, 원망, 미인의 잠결이라는 꽃말을 가진 이 꽃은 오지 않는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다 붉게 피어나는 것이다.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라는 기다림과 그 뒤에 "야속한 봄바람"에 떨어질 때 까지 오지 않는 사랑에 대한 원망이 뒤섞여 있다. 시들어가는 사랑을 생각하며 시든 여인의 입술과 같은 꽃잎에 '너는 언제 피었니'라는 물음은 뒤돌아 갈 수 없는 연정을 아프게 물들게 한다.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되지만 셋도, 둘도 될 수 없는 혼자만의 '독백의 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5-07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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