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3]⑦ 학술 논문

정체성이 없다 vs 규정하기 힘들다인천의 정체성 학자들의 고민 깊어"사회·문화·심리적 주체회복 절실"악취·회색도시 부정적 이미지 불구세계진출 기회·개방성·발랄함 등"긍정적 측면의 극대화 노력 필요"'인천'은 어떤 도시인가. 인천 하면 어떤 이미지가 생각나는가. 인천이라는 도시의 자랑거리는 무엇인가. 인천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들이다. 인천의 정체성을 몇 개의 단어 등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인천시민이 생각하는 '인천의 정체성'과 외부에서 바라보는 '인천의 정체성'이 다를 수 있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정체성(正體性) :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라고 나와 있다.하지만 '도시의 정체성'은 사전적 의미와 달리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또한 부정적으로 보느냐 긍정적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인천대 이윤희 교수는 '인천학세미나Ⅰ- 인천시민의 지역정체성에 대한 연구'에서 "지역 정체성은 고정된 의식이 아니라, 지역 경제구조나 정치체계의 변동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질 수도 있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변화될 수도 있는 역동적 개념"이라고 했다.실제로 '공업도시' '판자촌' '유흥가' 등의 부정적 이미지는 약해졌다. 반면 인천경제자유구역 개발, GCF(녹색기후기금) 본부 유치 등으로 인해 '국제도시' 등의 새로운 이미지가 형성됐다.일각에서는 "정체성이 없는 것이 인천의 정체성"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다. 도시의 정체성은 지리적 특성, 역사 등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거나, 너무 다양해 특정 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울 뿐이라는 의견이 많다.교수와 연구원 등 학자들은 인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왔다. 이들은 인천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했을까. 인천대 인천학연구원의 '인천학연구'등 학술지에 실린 논문 가운데 '인천의 정체성'을 주제로 한 글들을 정리해 봤다.# 인천, 서울의 주변 도시인가요즘 수도권매립지 사용기한 연장 여부를 두고 서울과 인천이 갈등을 빚고 있다. 또 정부의 영흥화력발전소 7·8호기 증설계획에 대해 인천이 반발하고 있다. 수도권매립지 갈등의 경우, 사용기한 연장에 반대하는 인천시민들의 목소리를 '님비현상'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인천은 서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피해를 봤다.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산업화시기에는 부평공단에 서울의 구로공단과 연계되는 제조업 생산기능이 부과되었고, 서울의 인구가 성장함에 따라 서울과 가까운 부평구, 남동구 등은 주거기능까지 떠맡아야 했다.(중략)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에너지 공급기지로 각종 유류, 가스 저장소 등의 위험시설이나 발전소가 들어섰다. 서울의 환경문제까지 떠맡은 것이다.인천발전연구원의 '2001 인천再발견'에 실린 '인천과 인천사람들:끊임없는 세포분열 그리고 세포들의 자기인식을 위한 노력'(글쓴이 심승희)이란 제목의 글 일부다.심승희 박사는 이 글에서 "인천은 서울의 배후도시라는 점을 지나치게 비판적으로 보기보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서울의 오픈 스페이스가 갖는 장점들을 십분 키워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또 "서울에의 높은 의존성을 문화적 강박관념으로 만들기보다, 지역경제나 지역문화의 독자성을 키워나가려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라고 했다.공업단지와 수도권매립지 등으로 인해 인천은 '회색도시', '악취 나는 도시'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됐다. 인천대 전영우 교수는 '인천학연구'창간호에 낸 학술 논문에서 "서울과의 지리적 근접성은 인천의 이미지를 서울의 주변부, 정체성이 없는 도시로 전락시켰다"고 했다.'인천학연구' 4호에는 '인천의 여성성과 도시 정체성에 관한 연구-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나타난 페마주(Femmage)적 해석을 중심으로-'(구영민·최해안)라는 글이 실렸다.개항 후 백여 년의 세월을 일정한 정체도 없이 상처만 입고 자라온 인천의 도시 환경은 언제나 서울이라는 표상작용을 통해 그 동일성의 차이로서만 변별돼 온 것이 사실이다. 즉, 인천은 서울의 위성도시로서 식민화된 정체성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인하대 구영민 교수는 "(인천은) 중심(서울)이 배출해내는 삶의 온갖 쓰레기들을 받아내고 그것과 함께 자신들도 똑같은 모습으로 소멸해야만 하는 운명에 놓인다"고 했다.그렇다면, 인천이 언제까지 서울의 주변도시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인가.한국교원대 류제헌 교수는 '황해문화'2010년 겨울호 '인천은 지방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서울(중앙)에 대한 종속에서 벗어나 세계적 국제도시로 도약하려면, 우선적으로 정치·경제적 자립을 확보해야 하겠지만 이에 못지않게 사회·문화·심리적 주체를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사회·문화·심리적 주체를 실질적으로 회복하려면, 도시정체성에 대한 공간-비판적 접근이 현재보다는 더욱 실질적으로 확대되고 심화되어야 한다"고 했다.# 바다, 항구 그리고 섬인천 하면 떠오르는 단어에는 바다, 항구, 섬 등이 있다. 인천문화재단 이현식 인천한국근대문학관장은 2004년 9월 나온 '인천학연구'에 '대중문화에 나타난 인천 이미지 연구'라는 학술 논문을 실었다.이 관장은 논문에서 "인천의 이미지로 가장 뚜렷하고도 공통적인 자질은 항구도시로서의 이미지"라고 했다. 또 "바다와 항구를 서민들에게 더욱 가깝게 가져가려는 노력이 더 필요할 것이다. 인천이 바다의 도시, 항구의 도시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최근 인천항 내항 8부두 개방 문제를 놓고 주민들과 항만업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주민들은 8부두를 개방해 바다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구영민 교수는 '인천학연구'2-2호에 실린 학술 논문에서 "(해안 매립으로) 내부도시는 점차 바다와의 연계를 끊을 수밖에 없게 됐다"며 "'인천에는 바다가 없다'는 극단적 문구가 등장하면서 항구도시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했다.이 학술지에는 '영상매체 속에 비쳐진 인천이미지를 통해 본 인천의 정체성 연구'(백철현·김계원)라는 글도 있다.항구로서의 인천의 이미지는 인천의 정체성에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떠나고 도착하는 공간이라는 측면에서는 인천을 평생의 정주공간으로 하고자하는 이미지가 약할 것이다.그러나 동북아, 나아가 세계로의 진출이라는 거시적인 이미지가 정착되어 가 이는 인천의 정체성에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백철현(전 인천대 교수) 박사는 "(항구 등의) 이미지를 긍정적인 측면으로 승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인천은 다양성, 잡종성인천의 도시적 인프라는 항구와 공항을 통한 사람과 물자들의 흐름을 더욱 원활하게 하는 쪽으로 구상되어야 한다. 다양성과 잡종성, 가변성이야말로 인천과 인천인의 체질임을 재확인하고 그것이 가진 개방성과 발랄함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극대화하는 것이 인천문화 부흥의 첩경일 터이다.('2001 인천再발견-인천 의식과 인천 이미지의 변천')인천발전연구원 김창수 인천도시인문학센터장은 이 글을 통해 인천의 도시적 성격을 '다문화성'으로 규정했다.인천은 황해도, 충청도, 전라도 등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또한 인천시민 중에는 서울 입성의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있다. 하지만 인천인을 뜨내기나 떠돌이로 간주하는 태도는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 김 센터장의 얘기다.인하대 최원식 교수는 '새얼'12호 '인천의 인천화'라는 글에서 "인천은 원래 국제주의가 왕성한 곳"이라며 "인천에 모여든 이질적 요소는 중심이 없으며 공중분해할 위험이 다분하지만 중심만 선다면 오히려 중요한 자산이다"고 했다.또 "인천에 오래 살았다고 토박이가 아니다"며 "인천에 어제 도착했을지라도 인천을 위해 일을 할 결의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토박이"라고 했다.최병목(전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박사가 쓴 '인천시민의 특성별 지역정체성 비교'논문은 '한국인구학' 제22권 제1호에 실렸다. 최 박사는 이 논문에서 "주인의식이 없는 곳이므로 너도 나도 와서 정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며 "타 지방인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는 인천의 개방적 분위기가 인천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원만한 적응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했다.글=목동훈기자

2013-04-03 목동훈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3]⑥ 대학

인하대의 설립과 발전과정시유지 기부받아 학교부지 마련2년제 재편위기 지역전체가 맞서인천대가 '국립법인' 되기까지시민단체소송 등 시립화 도화선서명운동·여론조사 '국립' 견인'인천지역의 역사와 문화'. 인하대에 교양과목으로 개설됐던 과목 중 하나다. 인천의 역사와 문화 흐름을 통해 인천의 정체성을 규명하고 전통시대 인천사람들의 생활상을 탐구하겠다는 것이 이 과목의 목표다.인천의 지정학적 특성, 유물로 보는 인천의 역사, 인천의 개항이 갖는 의미, 강화도 등 인천지역 문화유적 답사, 인천의 미래 등이 주된 강의 내용이다.인하대의 설립 과정 등을 살펴보며 인천과의 연계성 등을 살피는 시간도 마련됐다. 1996년께부터 시작된 이 강좌는 지방자치제 도입으로 지역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때 한 학기에 두 강좌가 진행될 정도로 인기있는 교양과목이었다.하지만 2013년 1학기, 이 강좌는 폐강됐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두 학기 모두 폐강됐다. 강좌가 열릴 수 있는 기준인 학생 수 30명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취업과 소위 스펙 쌓기 등의 영향으로 인천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줄어든 것이다.이 강좌의 강의를 맡았던 김상열 한국이민사박물관장은 "인천의 역사를 인천지역 대학생들이 알아야 하는데, 관심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며 "이런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고 말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천의 대학인천지역의 종합대학인 인하대와 인천대는 인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대학이다. 그 이유는 이들 대학의 설립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인하대의 역사와 설립과정, 현재의 모습 등을 담고 있는 '인하 50년사'는 인하대 설립의 중요한 기반 중 하나로 인천항을 통해 이주한 하와이 동포들의 노력을 꼽았다. 하와이 동포들의 기부금 15만 달러가 대학 설립의 기반이었다는 것이다.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기반은 '인천'이었다. 인천에 '경인공업단지'가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하대에서 배출될 인재들이 경인공업단지를 이끌어 나갈 산업일꾼으로 성장하길 기대하는 뜻이 담겨있다고 인하 50년사는 설명하고 있다.'인천'은 인하대가 학교 부지를 마련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인천시는 시유지였던 용현동 일대 41만3천790여㎡를 인하대 부지 설립 기성위원회에 기부했다.이같은 노력으로 설립된 인하대는 개교 4년 만인 1958년 위기를 맞게 된다. 이승만 대통령이 산업 발전을 위해 4년제이던 인하대를 2년제의 직업학교로 재편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학 관계자는 물론 인천지역 유지들은 "동양제일의 공과대학을 지향하는 인하공대를 직업학교 수준으로 격하시키려 한다"며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이같은 반대여론에 인천시의회도 동참했다. 시의회는 건의서를 통해 "인하공대는 비단 인천만의 자랑이 아니오라 대한민국의 과학발전을 약속하는 한줄기 서광이었다"며 "인하공대가 지니고 있는 국가적 사명과 민족적 요청에 비추어 해교(인하공대)를 현 학제대로 존속하고 미비된 시설을 시급히 완비함으로써 동양제일의 공과대학이 되도록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인천시 고등학교장회와 인천시교육회도 인하대의 존치를 건의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인하대의 설립과 발전과정에 '인천'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인천대도 시립화를 거쳐 오늘날 '국립법인'으로 거듭날 때까지 '인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인천대가 시립화되기 직전인 1992년, 최원식 인하대 교수를 중심으로 '선인학원 사태를 우려하는 인천시민의 모임'이 결성된다.이 시민모임은 선인학원 정상화 촉구를 위한 인천시민 1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특히 이 시민모임은 선인학원 설립자 백인엽씨가 선인학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990년 8월 법정화해 형식으로 재단기금 78억원을 유출해 간 과정이 기록된 서류를 발견, 감사원에 제시했다. 이같은 시민단체의 노력과 감사원의 종합감사는 인천대 시립화의 도화선이 됐다.국립대 법인전환 과정에서도 '인천'의 역할이 컸다. 2005년 출범한 '인천대 국립화 범시민추진협의회'는 시민 1천44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조사대상의 82.3%가 인천대의 국립대 전환을 희망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 인천대가 국립화 될 경우, 인천의 인적자원이 인천에서 더욱 순환하고 이들이 인천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여론을 보여줬다.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인천대 국립대 전환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은 서명운동 시작 보름여 만에 130만여명의 서명을 받는 성과를 나타냈다.인천대의 국립화를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확인했고 이는 올 1월 인천대의 국립대 법인 전환을 이끄는 계기가 됐다. 인천대의 발전에 '인천'이 있었던 것이다.# 대학의 미래가 인천의 미래물류, 통상, 근대문화, 공학 등은 인하대와 인천대가 특성화하고 있는 학문분야다.인하대의 특성화 분야 중 대표적인 것은 '물류'다. 대학내 '아태물류학부'를 중심으로 인천경제자유구역과 인천국제공항의 입지적 장점을 최대한 활용, 글로벌 물류전문가를 배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해 '세계 10대 물류스쿨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인하대는 특히 2006년 '물류전문대학원'을 설립하기도 했다.인천대는 '통상'분야를 특화하고 있다. 인천대 동북아경제통상대학은 4년간 전체 학생에게 장학금과 기숙사 생활을 제공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을 10년 이상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인천대는 올해부터 '문화대학원'을 신설해 개항을 중심으로 한 인천의 근대문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공학분야는 인하대와 인천대의 시작과 함께한 학과라는 자부심이 큰 만큼 다양한 육성책을 진행하고 있다. 대학의 미래를 이들 특성화 분야에서 찾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이들 대학의 특성화 분야는 항만과 공항, 공업단지, 개항의 역사 등이 자리하고 있는 '인천'과 직결된다. 대학의 미래가 인천과 연결된다는 것이다.하지만 '인천'을 공부하는 정규수업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천'을 향한 대학들의 관심이 더욱 요구되는 실정이다.인천 학계 지역연구단체는…1972년 기전 문화연구소 첫 발현재 인천대·인하대 각각 운영시민 대상 강좌도 활발히 진행인천 학계의 첫 지역연구단체로는 인천교대(현 경인교대) 고(故) 박광성 교수를 중심으로 구성된 '기전(畿甸)문화연구소'가 꼽힌다.1972년 12월 이 연구소가 처음으로 발행한 '기전문화연구' 창간사는 "아직까지 향토문화에 뜻을 둔 문화인들이 다같이 참여하는 문화단체나 회지가 없었음은 유감"이라며 "향토문화연구의 발전에 다소라도 공헌이 된다면 우리의 소망이 이뤄져 가는 것이라 믿는다"고 기록하고 있다.조선시대 경기도 일대를 의미하던 '기전'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이 논문집은 인천만이 아닌 경기도까지 포괄하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 인천·경기지역의 땅 이름과 전래동화, 민요, 방언 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기전문화연구소는 최근까지 36권의 기전문화연구를 발행하며 지역문화연구를 체계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현재 '인천연구'를 대표하는 곳은 인천대의 인천학연구원과 인하대의 한국학연구소 인천학연구실이다.인천학연구원은 매년 두 차례 인천과 관련한 연구논문을 담은 논문집을 발행하고 있다. 2002년 첫 발행때부터 최근까지는 인천의 인문·역사 등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들어선 경제, 정치, 사회 등의 분야로 다양해지고 있다.인하대 인천학연구실은 개항기 인천의 모습을 중심으로 연구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러시아에서 발간된 '바랴크 탄생과 전몰'이라는 책을 '제물포 해전과 바랴크'라는 제목의 번역본으로 발행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이들 연구단체는 인천을 알리기 위한 시민 대상 강좌도 활발히 진행하는 등 시민들의 '인천 알기'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하지만 인천에 애착을 가진 교수들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목소리다. 인천 연구를 활성화하려면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인천학연구원 남동걸 상임연구위원은 "인천을 연구하는 것은 인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학문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재정 지원 등 다방면의 지원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글=이현준기자

2013-03-27 이현준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3]⑤ 대중문화(노래)

'이별의 인천항' 등 노래 전쟁·항구 이미지 자주 등장1960년대 미군클럽 음악, 김홍탁 등 그룹사운드 영향송창식 배출하고 심수봉 '남자는 배…' 배경이 되기도1980년대 '록' 붐일어 록페스티벌·루비살롱 탄생시켜인천 월미도 문화의 거리 한쪽에 서 있는 '이별의 인천항' 노래비(1999년 10월9일 제막) 하단에 적힌 글(김윤식 작)은 60년 전 탄생한 이 노래를 이렇게 술회한다.'100여 년 전 이 나라 최초 이민선의 노래 소리에 피눈물 뿌리던 곳이요, 8·15광복, 6·25동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리운 사람, 사랑하는 피붙이와 모질게 이별하던 마당이었으니 그 절절한 인간사는 두고라도 뜬구름, 푸른물, 해풍에 쓸리던 갈매기 하나인들 어찌 서러운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랴.오늘, 비록 한 시절을 유행하다 사라진 노래이나 이 고장 인천항의 정한을 실어 세인이 부르던 곡 '이별의 인천항'을 이 비에 새겨 다시 한번 그때 그 시절의 인천을 추억해 본다'.# 송창식과 심수봉1947년 인천에서 태어난 송창식은 인천중학교 재학 시절 경기도 음악 콩쿠르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이후 서울예고 성악과에 진학했지만 가정 형편상 학업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1967년 트윈 폴리오를 결성하고 쎄시봉에서 노래했으며, 1970년 솔로로 데뷔했다. 이내 '고래사냥'과 '피리 부는 사나이', '왜 불러' 등 명곡들을 선보였다. '한번쯤', '우리는', '담배가게 아가씨', '가나다라마바사', '참새의 하루' 등 지금도 송창식은 평단으로부터 새롭게 평가받고 인정받는 가수다.1955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심수봉(본명·심민경)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뇌신경 인프레'라는 병을 얻고 무의도에서 요양하며 지냈다. 인천 인화여고를 다녔고, 그 무렵에 드럼 등 다양한 악기를 배웠다. 대학가요제를 거쳐 스타가 된 그는 인천의 '수봉산'과 같은 예명을 쓰면서 일약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가수가 됐다.심수봉의 대표곡 중 하나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1984년 어느 날 인천항에서 이별하고 슬퍼하는 지인들을 보고 만들어졌다.사람들의 아픔을 달래 줄 노래가 인천항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는 음반을 발표할 때마다 새로운 노래를 직접 만들어서 수록했는데, 대부분 자신이 작곡·작사한 노래가 히트했다. 이와 같은 음악적 재능을 겸비한 심수봉은 한국 가요계 제1세대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손꼽힌다.# 록과 헤비메탈1997년부터 인천 록밴드들의 아지트였던 '락캠프' 덕에 인천 부평구 십정동에는 서울의 홍대처럼 실력파 음악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다.락캠프의 정유천 사장은 인천밴드연합 회장으로, 지역 내 음악인들을 규합하는 역할도 맡았다. 2006년 락캠프가 문을 닫자, 이에 아쉬움을 느낀 30대 초반의 한 남자는 부평 모텔촌에 루비살롱을 열었다.이규영 대표가 이끄는 인디 레이블 루비살롱은 수년 사이 급격히 성장했다. 루비살롱의 활동 영역이 서울 홍대 쪽으로 치우치는 근래 상황에서 2011년 락캠프가 부활했다.인천의 록 붐은 1980년대 일었다. 1987년 강변가요제에서 가창상과 동상을 수상한 '티삼스'는 인하공업전문대학 그룹사운드였다. 티삼스는 1988년 앨범을 내기도 했지만 그들의 '매일 매일 기다려'는 처음이자 마지막 히트송이 되었다.이후 티삼스의 보컬 김화수는 솔로로 데뷔했고, 드러머 채제민은 그룹 '부활'에서 활동 중이다. 비슷한 시기 인천의 드럼 연주자 홍진규는 '블랙신드롬'에서 활동하다가 이전의 소속 그룹이던 '사하라'로 돌아갔다.사하라를 필두로 터보, 제로지, 사두 등은 1990년대까지 인천의 록과 헤비메탈을 전국에 알렸다.당시 인천에선 대형 록페스티벌이 시도됐다. 공항(에어포트)과 항만(시포트), 정보(텔레포트) 등 세 포트를 명칭으로 정한 '송도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이 탄생한 것이다.국내를 대표하는 노이즈 가든, 크래쉬, 자우림, 윤도현 밴드, 시나위, 크라잉 넛, 부활을 비롯 해외에선 딥 퍼플, 드림 시어터, 프로디지 등이 한국으로 날아왔다. 하지만 축제기간 내내 쏟아진 장대비가 축제의 성공을 방해했다.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을 근간으로, 2006년 비즈니스와 레저가 더해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생겼다. 인천에서 대형 대중음악 축제의 막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순간이었다.# 항구와 한국전쟁'이별의 인천항'(세고천 작사·전오승 작곡)은 한국전쟁의 포연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54년, 인천 출신의 가수 박경원에 의해 세상의 빛을 봤다.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인천의 사랑을 그린 인천인의 노래 '이별의 인천항'이 태어난 것이다.'이별의 인천항'을 비롯해 1960년 반야월이 노랫말을 쓴 '인천 블루스'(이재호 작곡·백일희 노래), 배호가 부른 '비 내리는 인천항 부두'(2011년 10월 인천 연안부두 해양광장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1979년 안치행이 만들고 김트리오가 부른 '연안부두' 등은 항구의 이미지를 더욱 애절하게 만든다.이처럼 인천은 귀환의 기쁨보다 이별의 아픔을 그린 노래에 더 자주 등장했다. 항구도시이면서 한국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한국전쟁 이후 부평의 일부는 미군수지원사령부의 땅이 됐다.동인천역 인근 양키시장(송현자유시장)은 각종 원조품과 군용품을 파는 곳으로 유명세를 타며 호황을 누렸다. 미군의 존재는 노래에도 영향을 끼쳤다. 1960년대 들어 미군 클럽에서 연주 활동을 하며 기량을 닦은 음악인들이 가요시장으로 나오게 된다. 서양의 팝이 한국 대중가요의 중심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다.인천에는 당시 그룹사운드를 연 주인공들이 다수 존재했다. '가왕' 조용필이 꼽은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한 김홍탁은 친구 집에서 미군 병사의 연주를 훔쳐보고는 기타에 매료됐다. 그는 미군악대 하사관에게 기타를 배웠다.동산중학교 3학년 때 밴드를 조직했으며, 동산고 입학 후 인천의 미군 클럽 등을 오가며 밴드활동을 했다.대학 진학 무렵 이미 기타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고, 당시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밴드 키보이스(Key Boys)가 그를 스카우트했다. 1963년 결성된 키보이스의 멤버는 김홍탁 외에 윤항기, 차중락, 차도균, 옥상빈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장안의 스타가 됐으며, 한국 그룹사운드 역사의 맨 앞을 장식했다.동산중 밴드부에서 처음 악기를 잡았다는 김대환이 신중현과 함께 결성한 애드 훠(Add 4), 인천 화수동에서 태어난 김명길이 보컬과 기타를 맡아 1969년부터 활동한 데블스도 그룹사운드를 연 주인공들이다.인천에서 태어난 구창모도 미군 클럽의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부평의 미군 클럽에서 연주하던 사촌형을 통해 초등학교 때부터 해외의 음악을 접하고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훗날 구창모는 블랙테트라를 거쳐 송골매에서 스타 반열에 오르고, 솔로 가수로도 성공한다.# 'I love 인천'과 21세기 '연안부두''푸른 하늘에 바다위 은빛날개 아름다운 푸른 바다 꿈꾸는 그대 모습 목백합 향기에 빛나는 I Love 인천, 빛나는 태양 춤추는 파도 너와 나 푸른 꿈 안고서 멀리 함께 달려가자 저 깊은 바다를 품은 도시로…'.2009년 녹음을 마치고 음반도 출시된 'I Love 인천'의 첫 소절이다.안길원 무영건축 회장은 '인천 노래' 만들기를 추진했고, 'I Love 인천'(인순이 노래)과 트로트풍의 '인천에 가자'(문보라 노래) 등 네 가지 스타일의 곡이 탄생했다. 두 곡은 그해 12월 새얼문화재단이 개최한 '가곡과 아리아의 밤'에서 인천시민들을 상대로 첫 선을 보이기도 했다.인천 출신의 중견 싱어송라이터 백영규는 2011년 스토리가 있는 이색 콘서트를 개최했다. 공연을 이끌 가수이자, 기획·연출까지 맡은 백영규는 순수하고 수줍던 옛 시절을 떠올리며 콘서트 '지금 몇시죠?'를 기획했다. 콘서트의 배경은 1971년 인천 신포동이었으며, 배우 윤철형이 DJ로 출연하기도 했다.1970년대 라디오와 DJ문화, 연극적 요소까지 접목시켜 인천이 담긴 콘서트를 만들어 낸 것이다. 백영규는 '지금 몇시죠?'와 지역의 언더그라운드 가수들과 함께하는 '공감 콘서트'를 지난해까지 정기적으로 열었다.가수 조관우는 최근 인천의 대표 응원가로 사랑받고 있는 '연안부두'를 편곡해 직접 부르기로 했다. 조관우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인천시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 응원가 제작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트로트풍의 '연안부두'를 댄스곡 형태로 바꾸기로 했다. 또 원곡의 가사를 일부 변경,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를 바라는 내용을 넣기로 했다.글 = 김영준기자

2013-03-21 김영준

남구의 인천 유일 예술영화관 '영화공간 주안'

2007년 인천시 남구가 설립한 인천 유일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 주안'은 국내외 최신 예술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연중 상영하고 있다.112석의 1관과 136석의 2관은 예술영화를 상영하며, 98석의 3관(실버극장)은 옛 향수를 부르는 영화들을 주로 상영한다. 4관(150석)은 주안영상미디어센터 상영관으로 활용되며, 5관(86석)은 컬처팩토리라는 이름으로 다목적 공연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영화공간 주안은 다양성 증진을 목적으로 구(區) 단위에서 직접 소극장을 운영하는 부분에 그 의미가 있다. 주민들은 자본 집중형 대형 상업영화 뿐만 아니라 제3세계영화·독립영화·저예산영화 등 다양한 영화 영상예술을 가까운 곳에서 쉽고 편하게 접하고 있는 것이다.영화공간 주안이 7년여간 잘 운영될 수 있었던 이유는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자율권 보장'에서 찾아진다.현재까지 영화공간 주안의 프로그램 운영은 전문 프로그래머에게 위임됐다. 때문에 프로그램의 다양화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었다.영화공간 주안의 순기능을 확인한 전국의 지자체들은 벤치마킹을 하고자 이 공간을 찾고 있다. 실제로 전주와 경주 등에는 예술영화관이 설립됐거나 조만간 개관될 예정이다.

2013-03-14 경인일보

인천지역 영화의 살아있는 역사 '애관극장'

'보는 것을 사랑한다'는 의미의 애관(愛觀)극장은 1895년 인천 경동 네거리에 '협률사'라는 이름으로 첫 선을 보였다. 당시 이 공간에서는 날마다 인형극과 창극·신파연극·남사당패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개항 이미지에 맞춰 명칭을 '축항사'로 바꿨다가 1925년께 애관으로 개명했다.한국전쟁때 화재로 손실된 애관극장은 1960년 개보수를 마치고 400석 규모의 극장으로 재개관했다. 영화와 악극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으로 운영됐는데, 한동안 애관극장 부근은 인천 영화산업과 문화를 주도했다.애관극장은 '무영의 악마'(인천건설영화사)와 '날개없는 천사'(국보영화사) 등이 제작·보급되는데 기여하는 등 우리나라 영화예술의 꽃을 피운 토양 역할을 했다.1990년대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의 등장은 애관극장의 인기를 떨어뜨렸다. 인천의 중심 상권이 동인천 부근에서 보다 동쪽으로 이동한 것도 영향을 줬다.애관극장과 함께 인천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오성·명보·중앙·피카디리·미림극장 등은 모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애관극장은 2004년 전면 개보수를 통해 5개 상영관을 갖춘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재탄생했다. 1관은 400석, 2·3관은 각 110석, 4·5관은 각 100여석 규모다.최신식 시설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면서 어릴 적 추억까지 떠올릴 수 있는 애관극장. 지역 영화팬의 발길은 오늘도 애관극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3-03-14 경인일보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3]⑤대중문화(영화)

공항·항만·차이나타운 이어신·구도심과 섬·바닷가 단골국내 로케이션의 메카 급부상최근 '신세계' 이어 5편 촬영중인천영상위원회 지원사업 전개'그대사' 전체 60%가 인천 배경'도가니'도 금창동·만석동 담아'황해' '카운트다운' '타워' 등최근 다양한 유명 작품들 촬영영화의 배경과 장소는 대중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그 장소에 사는 주민들은 영화를 통해 애향심과 자긍심을 느끼기도 한다. 영화는 '인천'이란 도시의 이미지를 어떻게 비추고 있을까? 인천국제공항, 인천항, 차이나타운, 구도심 거리, 섬과 바닷가, 송도국제도시 등이 영화의 배경·장소로 자주 등장한다.섬과 바닷가, 인천항이 '해양도시' 인천을 말해 주듯 인천에서 촬영된 영화에는 인천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장소 또한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이지만, 장소들이 배우를 잡아먹으면 안 된다."지난달 개봉 이후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신세계'의 제작진이 촬영 장소를 물색하면서 정해 둔 원칙이었다.'신세계' 제작진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녀야 했다. 장소 헌팅 과정에서 자동차 엔진오일만 두 번 갈았다고 한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자동차로 주행한 거리만 2만3천㎞라고 하니 최적의 장소를 찾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영화상에서도 최민식과 황정민이 인천에서 만나 대전에서 대화를 나누고, 방에서 나올 때는 부산에서 나오는 식의 장면이 존재할 정도로 영화는 장면의 공간이 가지는 분위기에 많은 신경을 썼다.영화 로케이션의 사전적 의미는 영화에서 실제의 경치나 건조물 따위를 배경으로 촬영하는 일, 즉 야외촬영을 의미한다.인천이 국내 영화 로케이션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다. 영화 '신세계'에는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 제물포시장, 연안부두, 차이나타운 등이 등장한다.이 밖에도 인천시청 복싱팀에 입단해 화제를 모은 여배우 이시영이 주연을 맡은 '남자사용설명서'는 중구 자유공원, 아트플랫폼, 홍예문 일대에서 촬영됐다.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에는 서구 수도권매립지가 자주 등장한다.현재도 인천공항과 영종도, 인천 구도심을 배경으로 5편의 영화가 촬영 중이다. 인천이 야외 촬영지로 각광받는 이유는 공항과 항만이 있고 구시가지와 이색적인 차이나타운, 여기에 인근 송도국제도시까지 여러 콘셉트를 잡을 수 있는 여건을 갖췄기 때문이다.수년 전 '페어 러브' 촬영 당시 배우 안성기는 인천의 매력으로 무의도 등 섬을 꼽았다. 안성기는 과거 '실미도' 촬영 때 인천 섬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인천에서 처음 작업한다는 이하나는 "인천의 갯벌과 강화도 분오리돈대에서의 낙조가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은 '파이란' '천하장사 마돈나' '고양이를 부탁해' 등은 2001년 이후 인천에서 촬영됐다. 2006년 출범한 인천영상위원회는 로케이션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영화와 드라마를 합쳐 61편을 지원했으며, 올해 로케이션 요청도 20여편에 이를 정도다.강석필 인천영상위 사무국장은 "다양한 촬영지를 발굴·유치하고, 관광자원화하는 것이 영상위의 기본 사업 방향이다"면서 "영화 관련 인프라도 확충해 자체 생태계를 육성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2년 이내) 인천에서 촬영된 주요 작품2011년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올랐던 강풀 원작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인생 끝에 찾아온 아름다운 사랑을 깊은 시선으로 담아낸 영화다.영화 중 만석(이순재)과 송이뿐(윤소정)의 사랑이 피어나는 가파른 언덕길은 남구 숭의동이다. 만석이 송이뿐을 생활보호대상자로 등록시키기 위해 손녀(송지효)와 함께 애쓰는 장면은 용현3동 주민센터에서 촬영됐다. 을왕리해수욕장도 이 영화의 주요 배경이다.이처럼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용현동, 십정동, 숭의동, 가좌동, 학익동, 강화도, 을왕리해수욕장 등 영화의 60%를 인천에서 촬영했다.'도가니'는 40% 이상을 인천에서 촬영했다. 인권센터 사무실은 동구 금창동 일대이며, 아이들의 부모가 사는 곳은 만석동 아카사키촌이다. 무진시교육청은 남구청을 활용했다. 용유도 해변을 걷는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과 신흥동 옛 수인역 인근에서 촬영된 열차 사고 장면은 여전히 눈에 선하다.곽경택 감독이 부산 밖 첫 로케이션 영화로 화제를 모았던 '통증'은 서구 가정동과 영종도 공항북로 일원에서 촬영되는 등 영화의 클라이맥스 무대를 인천으로 했다.'황해'에선 주인공(하정우)이 밀항해 한국 땅을 밟는 장소가 청라지역이며, '카운트다운'은 인천공항, 연안부두, 송도국제도시, 가정동 루원시티, 중구 신포동 일원에서 촬영됐다.영화 '터치'의 카메라는 인천산재병원, 십정동, 인천역, 송도국제도시 등을 담고 있으며, 재난 영화 '타워'는 인천테크노파크 IT센터를 배경으로 한다. '러브픽션' 또한 인천공항과 대한항공 정비고에서 촬영됐다.글 =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제공 = 인천영상위원회

2013-03-14 김영준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3]키워드로 본 인천④ 문학(下)

인천은 문학작품의 '상징적 공간'한국전쟁 전후 단골로 등장삶과 분단의 아픔 전달에 제격운행중단 협궤열차 기억도 소재로1980년대 '학출들' 공장 위장전입투쟁 과정서 '노동문학' 탄생1990년대 이후 문학비중 줄었지만인천을 배경삼은 문인들 자리지켜개항 이후 1980년대 까지 인천은 한국 문학에서 '상징적 공간'으로 차용됐다. 해방 후 문학 속 인천은 '분단의 아픔', '산업화의 이면', '포구의 추억', '노동운동' 등의 전형을 드러내는 장소였다.19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에서 '인천'은 희미해졌지만, 이 도시를 배경으로 창작 활동을 하는 문인들이 아직 우리 곁에 있다.# 해방공간 인천항밤이 가까울수록 / 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와 / 주둔소의 네온싸인은 붉고 / 짠그의 불빛은 푸르며 / 마치 유니온 작크가 날리든 / 식민지 향항의 야경을 닮아간다.박인환은 (1947년)에서 식민지 향항(香港·홍콩)을 떠올린다. "가난한 조선의 프로필을 여실히 표현한" 인천항에서 "서울에서 모여든 모리배"가 "황혼의 부두를 방황"하는 풍경을 쓸쓸하게 그렸다. 조병화는 (1950년)에서 "낯선 방언끼리 주점에 앉아 / 정 없이 웃어가는" 모습을 '방언지대'로 묘사했다.식민도시 인천의 영어교사 배인철은 '흑인시' 5편을 남겼다. 인천의 미군 흑인병사들과 교류하면서, '약자'인 흑인들의 아픔을 그렸다. 배인철에게 식민지 인천항은 아프리카의 노예해안(Slave Coast)과 같았다. 그가 1947년 발표한 의 일부분이다.루이스여 / 굳건히 살아라, 늬 몸이 / 늬 하나의 몸이 아니라 / 너와 함께 /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 BLACK AMERICA는 아니 / 온세계 약소민족은 싸우고 있다# 전쟁과 분단의 흔적인천은 한국전쟁 전후를 그리는 작품들이 '단골'로 활용하는 공간이다. 인천의 수많은 섬들은 접경지역이다. 또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인천 바다를 통해 떠나고 찾아오기를 반복한다. 때문에 작품 속 인천은 밝지 않다. 하지만 당시 삶과 분단의 아픔을 전달하기에는 맞춤 장소다.한국전쟁 발발로 엉켜버린 삶을 사는 '지영'과 '기훈'의 고민·방황을 담은 박경리의 (1964) 속 인천은 그 자체로 전쟁터다.최인훈의 에서는 밀항선을 타고 월북하려는 이명준에게 분단의 현실을 명확하게 알려주며, 도피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고리가 인천이다.오빠의 살은 연기가 되고 뼈는 한 줌 가루가 되었다. 어머니는 앞장서서 강화로 가는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강화도에서 내린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서 멀리 개풍군 땅이 보이는 바닷가에 섰다. 그리고 지척으로 보이되 갈 수 없는 땅을 향해 그 한 줌의 먼지를 훨훨 날렸다.박완서의 에서 한국전쟁 중 인민군에 의해 죽은 아들의 유골을 품은 어머니는 인천 강화도를 찾는다. 월남한 가족의 고단함과 아픔을 그린 이 작품에서 인천은 '보이되 갈 수 없는' 고향을 대신하는 슬픈 공간이다.# 공단과 노동자 도시(1978년)는 인천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이 대본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참여해 만든 희곡이다. 1976~78년에 벌어진 '나체 시위', '노동절 행사장 시위' 등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을 담고 있다.노동 영역 중에서도 마이너리티라 할 수 있는 여성들이 자신들이 겪는 불합리함을 효과적으로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의미가 있다. 전문 연극인이 아닌, '소수자'로서의 여성이 자기 표현 방식으로 희곡을 선택한 것이다.1980년대 중후반에는 소위 '학출'들이 인천과 부천 등지의 공장지대에 위장취업을 하고 노동운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문학이 탄생했다. 1986년 가을, 산곡동에서 자취를 하던 당시 스물일곱살의 정화진(본명 황의돈)은 효성동에 있는 '한국특수주물'에서 한 달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듬해 원고지 87장 분량의 단편 을 썼다.정화진은 3년 전 인천을 떠나 현재 경기도 고양에서 소설가 김한수와 함께 '도시농부'로 일하고 있다. 최근 만난 정화진은 을 쓸 당시에 대해 "소설가가 아닌, '혁명'을 꿈꾸는 자로서 정화진이었다. 소설가 정화진으로 살지 않았다"고 말했다.방현석이 쓴 (1989년)의 배경은 주안 5공단이다. 회사의 위장폐업에 맞서 150일간 벌인 농성이 줄거리다. 소설 속 인물들이 인천교 일대 바닷가를 걷다가 나눈 대화의 일부다.저 갈매기들은 아마 썰물을 따라 나가면 드넓은 바다가 열린다는 것을 모를거야. 노동자의 운명은 가난과 굴욕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처럼 똥바다가 바다의 전부라고 생각할 거야.# 인천을 배경으로 삼은 문필가들시인이 서둘러 먼 길 떠난 뒤 그의 빈자리가 주는 씁쓸함을 달랠 길 없던 벗들이, 생전에 시인이 틈틈이 찾아와 거닐곤 하던 이곳에 시비를 세우니, 시인이 남기고 간 빼어난 시편들과 올곧은 시 정신이 길이 기억되기를 바란다.의 박영근 시인은 1985년 인천으로 터를 옮겼다. 2012년 부평구 신트리 공원에 세워진 시비 건립문에 녹아 있는 대로 그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인천에 남았다.이영유도 인천과 함께했다.과 등을 펴낸 이 시인이 쏟아낸 모순된 사회에 대한 분노, 그 안에도 인천의 바다가 등장한다. 인천을 직접적으로 내세운 작품 중 가장 최근 것은 정세훈 시인의(2012)이다. 그에게 인천은 노동의 장소, 아픔을 딛고 새롭게 일어서는 공간이다.(2005)의 이세기나 기형도는 인천 섬, 그 정서를 시 속에 고스란히 담았다. 김윤식은 (2007)을 통해 바다 곁에서 찾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노래했다. 때때로 인천은 '성장소설'의 배경으로 선택받았다. 자전적 성향을 지닌 오정희의 (1979), 김중미의 (2000)과 이에 훨씬 앞선 한남철의 (1983)도 가난한 인천의 아이들이 주인이다.최원식 인하대 교수는 "근대도시, 어린도시의 특징 중 하나가 성장소설이 많이 탄생한다는 점"이라며 "'어떻게 자랄까', '어떻게 변화할까'에 대한 고민을 늘 안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소래포구와 협궤열차이원규의 (1987년)에는 옛 소래포구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이십오 년 전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처음 소래 포구에 올 때 저 협궤 열차를 타고 온 기억이 선명한 그림같이 환하게 떠올랐다. (중략) 그때 이곳은 염전이었고 종검 거리는 시꺼멓게 콜타르를 바른 통나무 소금 창고가 군데군데 엎드려 있는 쓸쓸한 불모의 벌판이었다. 포구에는 쌍돛을 단 중선 배와 한선 예닐곱 척이 거무튀튀한 갯벌 위에 비스듬히 얹혀 누워 있었다.인천 덕적도가 고향인 시인 장석남은 "인천은 내 청춘의 유적지"()라고 했다. 그는 송현동, 화수동, 도화동, 답동 등을 배경으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1991년)이란 시도 있다.작년 6월 수인선이 개통했다. 1994년 운행이 중단된 협궤열차의 기억도 문학의 소재로 쓰였다. 소설가 윤후명의 (1992년)와 시인 이가림의 (1991년)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다.글=/김명래·박석진기자

2013-03-07 김명래·박석진

지금까지 사랑받는 1938년생 캐릭터 '노마'

"노마야~."어린 시절 친구, 옆집 살던 동생… '노마'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묘한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노마는 현덕의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남생이'의 주인공이다.옛 하인천 부둣가를 배경으로 하는 이 단편소설은 막노동을 하다 병을 얻은 아버지, 부두에서 남성들에게 웃음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노마의 시선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 사회적 모순을 그린다.노마는 현덕의 또다른 소설 '경칩'과 '두꺼비가 먹은 돈'에도 등장한다.사회와 가정의 어두운 실체를 담고 있는 소설 내용과 달리 노마는 천진하고 순수하며 개구쟁이다. 더불어 일부에서는 노마가 평안도에서 흔하게 쓰이던 사내아이를 일컫는 호칭이라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이는 노마가 2013년 현재까지 사랑받는 '캐릭터'로 남아 있도록 도왔다. 시간이 흐르며 노마는 소설 밖으로 나와 현실로 파고 들었다.이 결과 노마는 아이들을 위한 영양제 이름에 쓰이기도 하고, 장수 드라마인 '전원일기'의 등장인물 이름으로 선택받기도 했다. 또 문구나 온라인 게임 속 캐릭터 이름으로도 종종 사용된다.노마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나 상품의 공통점은 '밝음'이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일 줄 안다. 이는 우리 시대의 부족한 덕목으로 꼽히는 것들로, 노마를 향한 대중적 사랑이 지속될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2013-02-28 경인일보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3]키워드로 본 인천④ 문학(中)

130년전 인천은 한반도의 문호신세계 환호와 식민도시 절망 뒤섞인제물포 '두얼굴' 단골 소재로 다뤄소설 '혈의 누' 미지의 세계 여는 곳으로시 '인천항' 개항장 생동감 있게 표현노동자들의 애환 그린 작품들도 눈길진우촌·함세덕 근대 인천 뛰어난 극작가개혁의 공간으로 결단과 변화 엿보여130년 전 인천은 한반도의 문호(門戶)였다. 서양 신문물의 국내 '첫 등장' 무대였다. 경성의 '모던뽀이'와 '신녀성'들은 경인철도를 타고 몰려왔다. 만국공원(자유공원)에 올라 밀려들어오는 바닷물 냄새를 맡고, 개항장 거리를 거닐며 이국적 정취를 느끼려는 이들로 붐볐다. 그 이면에는 '식민도시 인천'이 있었다. 화물선을 타고 온 양인들이 부두에 부린 짐을, 수백명의 짐꾼들이 나르는 풍경이 일상이 됐다.'제물포 일자리가 좋다'며 전국에서 쟁기를 버리고 온 이들이 부지기수였지만 팔자를 고치지 못했다. 인천 미두장은 일제가 공인한 투기장이었다. 일확천금을 노린 소규모 자본가들의 꿈은 으레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신세계의 환호와 식민도시의 절망이 제물포에 있었다. 문인들의 촉이 인천을 향했다.# '미지의 세계' … '위험한 출입문'신소설의 출발을 알린 이인직의 '혈의 누'(1906년)에서 인천은 주인공 옥련이 일본 오사카로 향하는 출발지였다. '일청전쟁' 와중에 가족들과 헤어진 옥련은 일본에서 조선 유학생 구완서를 만난다. 구완서는 "독일국과 같이 연방도를 삼되 일본과 만주를 한데 합하야 문명한 강국을 만들고져 하는 비사맥(비스마르크) 같은 마음으로" 옥련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옥련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부모를 찾게 된다. "조선 사람은 누구도 체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한국 현대 문학사', 권영민)를 여는 공간이 인천이었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로 잘 알려진 주요섭은 '구름을 잡으려고'(1935년)에서 인천을 다음과 같이 형상화했다.제물포-그것은 조선이 열어놓은 출입문의 오직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은 위험한 출입문이었다. 인천은 우리나라에서 첫 이민선이 출발한 장소였다. 이 소설에서 주요섭은 주인공 박준식이 돈을 벌러 타국에 간 뒤 갖은 고생을 겪고, 절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근대의 쇼윈도최원식 인하대 교수(국문과)는 "1920~30년대 모더니스트들은 전부 인천에서 놀았다. 인천에 오면 서양이 있었다. 아름다운 양관, 차이나타운, 재팬타운 등 근대의 쇼윈도였다"고 말했다. 박팔양의 시 '인천항'(1927년)은 개항장의 풍경을 생동감있게 표현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80여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누가 읽어도 쉽게 당시 풍경을 떠올릴 수 있다.어제는 Hongkong 오늘은 Chemulpo 또 내일은 Yokohama로 / 세계를 유랑하는 코스모포리탄 / 모자 삐딱하게 쓰고 이 부두에 발을 나릴 제축항 카페- 로부터는 / 술취한 불란서 수병의 노래 / 오! 말세이유! 말쎄이유! / 멀리 두고 와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노래를 부른다김기림은 '길에서-제물포 풍경'(1939년)이란 제목의 연작시에서 인천을 '부끄럼 많은 보석장사 아가씨'로 묘사했다.부끄럼 많은 보석장사 아가씨 / 어둠 속에 숨어서야 / 루비 싸파이어 에머랄드… / 그의 보석 바구니를 살그머니 뒤집니다.인천발전연구원 김창수 도시인문학센터장은 "김기림은 항구도시 인천의 자태를 수줍은 여성처럼 한낮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빛난다고 봤다"며 "아가씨가 뒤지고 있는 보석들은 바다를 건너온 박래품들로 욕망의 은유다"고 했다.# 노동자 도시지금 인천서는 말이야, 아주 큰 방적공장이 낙성되었는데 그곳에는 지금 내가 다니는 방적공장과 달리 여직공을 많이 쓴다누나 … 근 천여 명의 여직공을 쓴대…강경애의 '인간문제'(1934년) 후반부의 주요 무대는 인천이다. 당시 신분에 관계없이 노동력을 팔아 삶이 가능했던 장소가 인천이었다. 주인공 선비는 황해도 용연(장연)에서는 지주의 횡포에 시달렸고, 인천에서는 힘든 공장 일로 병을 얻어 목숨을 잃는다.이 소설은 당시 작품 공간으로 인천을 내세운 유일한 장편소설로 알려져 있다. 작중 대동방적공장은 일본이 세운 동양방적공장이 모델이었다. 강경애는 작중 인물을 통해 "선비야! 우리들을 부리는 감독들과 그들 뒤에 있는 인간들은 덕호(악덕지주)보담도 몇천 배 몇만 배 더 무서운 인간이란다"고 말한다.이태준의 '밤길'(1940년)은 암울하다. 황 서방은 서울에 젊은 아내와 딸 둘, 젖먹이 아들을 두고 인천 월미도 공사장에서 날품팔이를 한다. 서울의 아내가 가출하자 집주인은 굶주림으로 병들어 위독한 갖난 아기를 황 서방에게 데려온다. 의사는 "하루를 넘기기 어렵다"고 말한다.'남의 집에 시체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황 서방은 비가 내리는 날 밤, 아직 숨이 붙어있는 아기를 주안 공동묘지에 묻는다.인천항 부두노동자의 궁핍한 삶을 묘사한 '새벽바다'(1935년)의 작가 엄흥섭은 인천 잡지 '월미' 창간호(1937년)에 기고한 글(해방항시 인천소감)에서 "나는 인천을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슬퍼한다"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날마다 선창가엔 천여명의 노동자가 들끓는다… 그들의 보금자리인 화평리, 송림, 신화수리, 도산정 일대의 혹은 산비탈, 혹은 낭떠러지 혹은 거름자리에 실그러진 성냥갑처럼 게딱지처럼 옹기종기 다닥다닥 앙상히 붙어서 캄캄한 새벽과 저녁 어두운 뒤라야 가는 연기를 올리는 풍경은 동양 제일의 축항시설을 자랑하는 인천으로서의 모순된 대조가 아닐 수 없다# 새로운 결단, 변화하는 인간진우촌과 함세덕은 근대 인천이 배출한 뛰어난 극작가다. "이들이 무대 배경으로 삼은 인천에서는 새로운 결단과 변화하는 인간을 볼 수 있다"고 인천 연극 전공자 윤진현 박사는 설명했다.진우촌의 등단작인 '개혁'(1923년)의 배경은 인천시외의 김승지 집이다. 김승지의 아들 도상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종 춘월과 연애를 한다. 종과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에게 "왜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까. 사람이 사람하고 혼인하는 것이 무슨 큰일입니까"라고 반박한다.부자의 연을 끊겠다고도 한다. 일종의 토론극으로 볼 수 있다. 춘월은 '새로운 세계관'을 상징한다. 진우촌이 볼 때 자유연애와 같은 '개혁'이 가능한 공간이 인천이었다.함세덕의 '심원의 삽화'(1941년)의 배경은 세련된 문화주택이 즐비한 인천 산수정(현 송학동)이다. '심원의 삽화'는 계모가 남편 전처 소생의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직업(교사)도 그만 두고 교육에 '올인'하는 내용이다. 우리 문학에서 계모는 오랫동안 장화홍련전의 '악덕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혈연보다 가족 관계 속 의무가 중요하고, 어린 세대를 잘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 '심원의 삽화'의 주제다. 친일극이었다는 측면에서 벗어나,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던 함세덕이 인천을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윤 박사는 "현재 인천을 배경으로 하는 작가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인천을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공간으로 쓸 수 있을까. 1920년대의 진우촌과 1940년대의 함세덕에게 인천은 개혁의 공간이었다"고 말했다.글=김명래·박석진기자

2013-02-28 김명래·박석진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3]키워드로 본 인천④ 문학(上)

산책자 시선, 귀양살이 한탄하다 이후 서해풍경 예찬애향심 부족 고민하는 현재의 모습과 일정부분 통해효령대군 10세손… 연수 동춘동 소암마을 출생 추정고향생각 남달라 영종 옛모습 묘사 '오가팔영' 눈길인물지 '일몽고' 저자… 치밀한 시선 18세기 인천 기록'인주요' '속인주요'서 활기 넘치는 포구·무속 등 묘사문학 속 인천을 찾았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문학의 범위를 정하는 것부터 막혔다.'인천'을 키워드로 작품을 가려내는 일은 시작할 엄두도 못냈다.문학속 인천을 한 줄기로 꿰어 볼 수 있는 이들을 찾았다.우선 '인천'과 '문학'을 함께 고민해 온 이들을 만났다.인하대 최원식 교수, 인천발전연구원 김창수 인천도시인문학센터장에게 조언을 구했다.'문학으로 인천을 읽다'의 저자 이희환 박사, '인천 고전문학의 이해'를 지은 이영태 박사,'행복한 인천 연극'을 쓴 윤진현 박사 등이 사전 인터뷰에 응했다.이들에게 문학속 인천을 물었다. 공통분모가 보였다.이 지점에서 취재가 시작됐다.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문학 속 현장을 찾아갔다.경인일보는 문학 속 인천을 시기에 따라 3갈래로 나눴다.근대 이전, 개항기, 해방 후 지금까지의 문학작품을 차례로 싣는다.2013년을 사는 우리에게 고전문학의 의미를 묻는다면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주제로 한 고전문학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역사는 흐르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차곡차곡 쌓일 뿐이다. 어제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오늘이다. 때문에 고전문학 속 인천을 되짚는 일은 가소롭지 않다.인천과 관련된 글을 쓴 작가는 이규보, 이인로, 이색, 강희맹, 이규상, 이형상, 권필, 정제두, 이건창, 최석정, 정도전, 유숙, 김용, 권시, 조서강, 이식, 심언광, 김종수 등이 있다. 이들은 당대 최고의 문인으로 인정받았다.누군가는 인천에서 태어났고, 다른 누군가는 인천에 잠시 머물렀다. 신분과 처지에 차이는 있었지만 그들은 인천 곳곳에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진 다양한 감정을 솔직하게 쏟아냈다. 또 당시의 삶을 세세하게 표현했다.수 많은 작가들 중 연구자들이 주요하게 꼽는 이규보, 이형상, 이규상을 중심으로 고전문학 속 인천을 더듬어 봤다.# 처지가 차이를 빚은 두 시선(詩仙), 그리고 인천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최고의 문인', '시대의 아부꾼'이라는 엇갈린 평을 받는 인물이다. 이런 이규보가 인천과 연을 맺은 것은 자의(自意)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오늘날 인천은 이규보의 호를 활용해 역 이름(백운역)을 지을 만큼 지역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그는 나이 52세에 관직 생활의 풍파를 맞아 계양군수로 부임한다. 이규보는 부임 당시 지은 시 '조강부'(祖江賦)에서 '천박한 운명 이제 또 귀양살이 가는 길이지만(命薄如今遭謫去)'이라 말한다. 또 '세찬 바람'(風狂), '도난'(渡難) 등의 표현을 쓰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하지만 13개월 부평 생활을 접고 다시 개경으로 귀경할 시기 인천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달라진다.'처음 내가 이 고을 수령으로 좌천되어 올 때 망망대해의 푸른 물을 돌아보니…(중략)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고 보려하지 않았다…(중략) 서울로 가게 되니 전일에 보던 망망대해의 푸른 물이 좋게만 보였다'. '동국이상국집' 권24기에 실린 이 글에서 그는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며 인간미를 풍긴다.이규보는 또 계양산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의 풍경과 특색을 글로 담아냈고, '농부를 대신하여','국령으로 농민들에게 청주와 쌀밥을 먹이지 못하게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등에서는 당시 사회상을 그렸다.이영태 인하대 동아시아한국학 연구교수는 "이규보의 글에는 신흥사대부, 타 지역 출신 등의 이유로 인천을 '산책자' 시선으로 바라보는 성향이 강하다"며 "이는 들고 나는 사람이 많은 지역적 특색으로 애향심 부족을 고민하는 인천의 현재 모습과 일정 부분 통한다"고 설명했다.반면 병와(甁窩) 이형상( 李衡祥·1653~1733)은 효령대군 10세손, 즉 왕족이며 인천 태생이다. 남동걸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은 '병와집'을 풀이해 이형상의 출생지를 청량산 아래, 현재 연수구 동춘동 소암마을로 추정했다.이형상은 벼슬길의 대부분을 청주목사, 동래부사, 제주목사 등 지방에서 수행했다. 그는 머무는 곳마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바라본 실상을 글로 남겨 최고의 문인이자 '향토학자'로 평가 받는다.평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산 이형상은 죽기 전 5년을 인천에서 보내며 따뜻한 시선이 담긴 '소성록', '소성속록' 등을 남겼다. 정경을 묘사한 작품이 다수를 이루는 두 책 중 소성속록은 '영종도'의 옛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마을 안의 친척끼리 서로 훔치는 일이 있어'란 작품은 '지난 여름에 본 바가지 든 걸인은/그 전 해 곡식 쌓아둔 넉넉한 집 사람인 걸…(중략) 마른 시체는 들에 가득하여 윤리는 끊어지니…'라는 설명으로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렸던 섬 사람들의 삶을 전한다.더불어 '오가팔영'은 바람, 달, 바다, 산 등 자연물을 통해 영종도의 빼어난 여덟 풍경을 묘사한다. 특히 '백운청람'은 '해 질 무렵 푸르스름한 산 기운이 집의 뜰에 가져다 놓고 싶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남 상임연구위원은 "인천 출신임을 자부하며 남다른 애착을 지녔던 이형상은 지역을 대표한 사상가이자 문인으로 인천시민이 본받을 정신을 분명히 보여준다"며 "특히 오가팔영은 신공항 건설 이후 변화한 영종도의 옛 모습을 이해하는데 주요한 작품으로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섬세한 감성으로 인천을 바라 본 이규상18세기 내로라하는 인물을 망라한 인물지 '일몽고'(一夢稿)를 지은 이규상(李奎象·1727~1799)은 인천부사를 지낸 부친 이사질(李思質) 덕분에 젊은 시절을 인천에서 보냈다.관직에 큰 뜻을 두지 않고 학문, 문화예술, 인물사에 몰두한 그는 특유의 치밀한 시선으로 18세기 인천을 글로 남겼다.특히 1765년 인천 곳곳을 유람하고 이를 소재로 지은 '인주요'9편과 '속인주요' 9편은 지방 현실, 지방민 삶, 복식, 무속현장, 역사와 유적, 풍류, 그들에 대한 애정 등을 고루 짐작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인천의 '죽지사'(竹枝詞)로 불린다.인주요 속 인천은 조그맣고 평범하지만 활기 넘치는 포구다.이규상은 '인천 풍속은 궁벽한 깡촌과 같아서…(중략) 광주리를 머리에 인 아낙과 벙거지 쓴 사내가/해 뜨자 조개와 물고기를 잡으러 급히 나서네'(인주요 1연), '얕은 곳 깊은 곳에 크고 작은 대합 묻혔는데…(중략) 포구의 아낙들 다투어 갈고리 들고서/바느질하듯 촘촘히 갯벌을 파고 있네'(인주요 5연) 라고 적었다.또 속인주요에서는 '어부들 염부들 귀신을 좋아해/돼지 찌고 쌀밥 지어 새 봄에 제사 지내네…'(5연), '바닷가 풍속에 가을이 오면 다투어 굿을 하고/여러 생선 놓고 베를 매달고 무당에게 절을 하네…'(7연) 등의 설명으로 당시 인천민들의 무속, 소망을 기록했다.이규상은 이외 인천 관아 서쪽 길로 문학산을 넘어 능허대에 올라 조수를 보며 부친의 시에 차운해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하기도 했다.'흰 물결 몰려 와 땅이 보이지 않는데/산사람이 처음 보니 구름인가 하였네/웅장한 기세를 누가 대적하리요/만물 중에 물이 임금이로다'.글=박석진·김명래기자 사진=임순석기자

2013-02-21 박석진·김명래

문학 속 두얼굴의 '강화 교동도'

현재 인천시 강화군에 속한 교동(喬桐)도는 고전문학과 역사 속에서 '두 얼굴'을 지닌 특별한 장소다.이종묵 서울대 교수에 따르면 옛날 교동은 인천보다 이름이 높았던 고을로, 고려를 대표하는 문인 이색(李穡)에 의해 아름다운 옛 풍광이 고스란히 글로 남아 있다.이색은 14세때 교동에서 가장 높은 화개산 아래 살았고, 젊은 시절을 친구들과 함께 교동에서 지냈다.'끝없는 바다 위 푸른 하늘 나직한데/나는 듯 빠른 배, 해는 서산에 지네/산 밑에 집집마다 막걸리를 걸렀기에/채소에 회 장만하니 닭이 횃대에 오르네'. 이색의 '교동에서'속 교동은 낭만이 깃든 장소다.반대로 교동은 '유배의 섬'이라는 수식어도 가지고 있다.조선의 역사에 왕이 반정(反正)으로 쫓겨난 경우가 3번 있었다.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를 보면 왕위를 빼앗긴 노산군, 연산군, 광해군 중 후자 2명이 교동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연산군은 교동에서 숨졌지만 광해군은 이괄(李括)의 난, 정묘호란 등을 겪으며 태안-교동-제주로 자리를 옮겨 67세에 숨을 거두었다. 광해군은 교동을 떠나며 허무함과 외로움을 담은 시 한편을 남겼다.'바람에 비가 날려 성위에 뿌리는데/백 길 높은 누각 후텁지근 바다 음기…(중략) 고향 생각에 왕손의 풀이 신물이 나고/객지의 꿈 왕도의 물가에서 자주 깨네/고국의 흥망은 소식조차 끊어졌기에/안개 낀 강 외로운 배에 누워있노라'.

2013-02-21 박석진·김명래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3]키워드로 본 인천③ 교과서

인천공항·송도·차이나타운 등 소개국제화·환경·다문화·남북관계 분류탐구과제로 계양산 골프장 다뤄 눈길평화위협 관련 연평도 포격 많이 등장굵직한 사건마다 강화도가 한복판에최근까지 전쟁의 역사와 함께 쓰여져개항기때 모습 한페이지 할애하기도피부에 와닿는 체험학습 필요성 보여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 속의 '인천'. 그 모습은 어떨까. 교과서에 그려진 인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궁금했다. 우리 인천에 사는 초등학교 학생들은 4학년 때 '특별한' 교과서를 만나게 된다. 바로 '인천의 생활'이다. 인천시교육청이 발행한 사회과 탐구학습 교재, 이른바 '지역 교과서'다. 아이들은 이 교과서에서 인천의 어떤 모습을 마주하게 될까.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인천 이야기'도 살펴봤다. 다른 도시의 아이들은 교과서를 통해 인천이란 도시를 상상할 테니 말이다.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도시의 첫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각 출판사들이 내놓은 중학교 '사회1·2'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전시본)를 펼쳐봤다. 검정(檢定) 교과서이다 보니 단원 주제는 동일하지만, 출판사마다 서술하는 방식과 내용 등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인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사회 교과서를 펼치자…'인천국제공항', '송도국제도시', '강화도 갯벌', '차이나타운', '항구도시', '연평도 포격'…. 중학교 사회1·2 교과서에 소개된 인천 '키워드'다. 이를 큰 범주로 묶어보면 국제화, 환경, 다문화, 남북관계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천재교과서가 펴낸 사회1 교과서는 '현장·탐구' 코너에서 바다를 메워 건설 중인 송도국제도시를 소개했다. 과거 송도 갯벌과 현재 빌딩숲 도시 모습을 비교한 2장의 사진은 학생들에게 '개발'과 '환경보전'이란 두 가치에 대해 묻고 있었다. (주)미래엔은 인천을 비교적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 언론 보도를 인용한 인천시 부평구 다문화 사회의 모습이다. '관내에 무려 2,744가구에 이르는 다문화가정이 있으며, 이들 다문화가정 외에도 9,700여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중략) 언어 교육 이외에 가족 간 결속력과 의사소통 강화, 한국 문화 이해 등을 위해…'.(문화일보)다른 페이지에서는 '살아있는 다문화 이야기'(한국의 작은 지구촌)란 제목으로 서울시 용산구의 모슬렘타운 등과 함께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을 소개했다. '전통적인 화교 마을이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중국인들은 현재의 선린동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했다…'. 이 밖에 탐구 과제로는 인천 현안인 계양산 골프장 건설 문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을 다룬 교과서들도 많았다. 좋은책 신사고는 남북 분단이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두려움과 동북아 및 세계 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피해 현장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사진 2# 살기 좋은 도시란… 내 고장 인천은?사회1 교과서에는 '살기 좋은 도시'를 주제로 한 단원이 있다. 교통·안전·의료·교육·주거·문화·환경 등이 그 지표로 제시됐다. 삶의 질을 판단하는 척도였다. 한 교과서는 경기 과천, 제주도 등이 국내에서는 삶의 질이 높은 지역으로 평가받는다고 소개했다.세계화에 발맞춰 지역 브랜드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도 있었다. 사회2 교과서는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도시 슬로건·특산물·관광자원·명소·역사적 인물 등을 꼽았다. 서울의 'Hi Seoul', 안성시의 '안성맞춤', 횡성군의 '한우', 남원시의 캐릭터 '성춘향과 이몽룡' 등이 각 교과서에서 성공적인 대표 브랜드 사례로 실려 있었다.지역 축제도 도시 경쟁력의 하나로 평가됐다. 교과서는 이를 '지역화 전략'이라고 표현했다. 이천 쌀 문화 축제, 보령 머드 축제, 진주 남강 유등 축제, 무주 반딧불 축제 등이 국내 대표 축제로 조명됐다. 인천 이야기는 아쉽게도 이 단원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반도 역사, 그 길을 관통하다인천만큼이나 역사적으로 사연이 많은 도시가 또 어디에 있을까.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이를 대변해 주는 듯했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굵직한 역사적 사건 때마다 인천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특히 강화도가 그랬다.그 시작은 '고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각 출판사들은 우리나라 최초 국가인 고조선을 소개하면서 강화도를 빼놓지 않았다. 고려시대 때도 강화도는 역사의 중심이었다. 특히 '대몽 항쟁기' 개경을 대신한 전시(戰時) '수도'였던 것이다. 지학사는 이렇게 기술했다. '고려에 무리한 조공을 요구하던 몽골은 사신의 피살 사건을 구실로 침략해 왔다. 이로써 40여년에 걸친 전쟁이 시작되었다. 최씨 정권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며…'.임진왜란의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에 조선 한반도는 또다시 전란에 휩싸인다. 바로 '정묘·병자호란'이었다. 삼화출판사는 '조선이 후금에 적대하게 되자 후금은 광해군을 위하여 보복한다는 구실로 조선을 공격하였다(1627년).'고 서술했다. 이때 왕실과 관료들의 피란처가 강화도였다.이후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고치고 조선에 군신 관계를 요구한다. 이를 거절당하자 청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해 왔다. 병자호란(1636)이었다. 청은 10년 전 전쟁을 잊지 않았다. 인조가 강화도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 길목부터 막았던 것이다. 결국 인조는 남한산성에 고립됐다가 결국 청 태종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조선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패전으로 기록되는 이 전쟁에서 강화도는 국운을 결정짓는 중대 갈림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조선 후기에 벌어진 '병인·신미양요' 격전지 역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인 강화도였다. 천재교육 교과서에서는 그래픽을 통해 당시 프랑스와 미국 함대의 침략로 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사진 3강화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강화도 조약'이 그 시발점이었다. 법문사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일본은 조선을…(중략) 개국시키려고 하였다. 이에 일본은 군함 운요호를 강화도에 파견하였고, 조선 수비군은 불법 침략한 운요호에 발포하였다. 이를 구실로 일본군은 초지진과 영종진을 파괴하고…'. 이 불평등 조약으로 부산에 이어 원산과 인천(1883년)이 개항됐다.올해 인천 개항 130주년이 됐다. 제물포 등 개항기 인천의 모습을 소개하기 위해 한 페이지 전면(제목:역사 속으로)을 할애한 교과서가 눈에 띄었다. ┃사진 4조선은 또다시 한반도 전역을 제국주의 열강들의 전쟁터로 내주게 된다. '청일·러일전쟁'이었다. 일본은 두 전쟁에서 인천을 만주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다. 그 결과, 인천과 인천 앞바다가 전쟁의 한복판에 놓이게 됐다.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는 인천 인물인 '이동휘'와 '조봉암' 등이 조명됐다. 그리고 한국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남북 분단 이후 '제1·2차 연평해전'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전쟁의 역사'와 길을 같이 한 인천의 유구한 역사가 교과서 속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다.인천 고잔고등학교 김석훈(역사) 교사는 교과서 속 '인천 바로 알기'의 시작을 '우리 동네'에서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김 교사는 "학생들이 피부로 느낄 만큼 교과서 속에서 인천의 맨살까지 깊숙이 들여다보기는 어렵다"며 "일제 강점기라면, 남동구에 거주하는 사할린 동포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역사를 공부해 보는 체험학습이나 역사 동아리 활동 등이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초등학교 교과서 '인천의 생활' 들여다보니…지역규모·인구변화 한눈에… 다문화이야기도 들려줘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춘 '인천의 생활'에서는 인천의 변화상이 한눈에 펼쳐졌다. 먼저 인천 행정구역을 표시한 두 지도(1936·2011년)가 눈길을 끌었다. 1936년 지도는 중구, 동구, 남구 일대만을 인천 영역으로 구분해 놓고 있었다. 지금의 서구, 계양구, 강화군, 옹진군 등의 지역이 편입되기 전 모습이다. 2011년 지도에선 인천 앞바다 매립의 규모를 엿볼 수 있었다.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선 영종도는 그 크기가 몇 배는 늘었고, 빌딩숲을 이루고 있는 송도국제도시는 과거 바다였다.인구 변화도 그래프를 통해 잘 나타나 있었다. '2010년 인천의 인구는 280만명이 넘습니다. 현재의 인구는 1970년에 비해 4배 정도 늘었습니다'. 교통 환경으로는 영종도와 육지를 잇는 두 개의 다리(영종대교, 인천대교), 경인전철, 인천도시철도 1호선,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경인아라뱃길 등이 실렸다.'함께 살아가는 인천'이란 단원에는 타 도시에서 인천으로 온 지역별 인구(통계청:2010년)가 나와 있다. 경기도가 6만7천913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서울(4만6천82명), 충청도(1만914명), 전라도(8천33명), 경상도(7천105명) 등의 순이었다. 인천 다문화 이야기도 있다. 외국인 근로자, 원어민 교사, 차이나타운 등이 그 예로 제시됐다. '외국인들은 언어와 생활 풍습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인천에서는 이들을 도우며…(중략) 우리 말과 문화를 익히게 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줍니다…'.글=임승재 사진=임순석기자

2013-02-14 임승재

"내고장 자긍심 갖도록 알아가는 계기 만들 것"

"일상생활 속에서부터 내 고장 인천을 알아가는 계기로 삼으려구요."학익여고 배혜선(32·여) 교사는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인천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인천이 서울에 크게 뒤처져 있다는 피해의식이나 매스컴 등을 통해 비쳐지는 부정적인 모습 때문인지 자부심은 아직 부족한 것 같다"며 간담회를 지켜본 소감을 밝혔다.학익여고는 이번 자리를 계기로 학생들에게 내 고장 인천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하는 특화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키로 했다. 예를 들어 인천시 남구 문학동의 인천향교를 소재로 인천 교육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고민해 본다든가, 전통시장 상인들을 직접 인터뷰하며 대형마트 영업규제 이후의 변화 등을 짚어보는 계획이 검토중이다. 이는 학익여고 학생들과의 간담회 자리를 마련해 준 윤영실 교감의 아이디어다."학생들이 '교과서 속의 인천'과 '생활 속의 인천'을 별개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배 교사는 "강화도만 하더라도 그저 교과서에서 나오는 역사의 현장일 뿐이지, 인천의 한 도시라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인천 문화재(향교 등)도 단지 조사에서 그치지 않고, 그 속의 과학 원리를 찾아보거나 현재 인천의 모습을 접목시켜 보는 등 융합교육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배 교사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내 고장에 대해 알아보고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동기 부여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꼭 학교가 아니어도 지역사회 곳곳에서 좋은 계기들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했다.글=임승재·김민재기자 사진=임순석기자

2013-02-07 임승재·김민재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3]키워드로 본 인천② 10대의 시선(下)

경인일보 독자 여러분, '10대의 시선'으로 본 '인천' 모습(경인일보 1월 31일자 9면 보도)은 어떠셨습니까. 우리 아이들은 인천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로, 전 세계 1등인 '인천국제공항'을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또 송도국제도시는 공항과 더불어 인천을 대표하는 자랑거리 중 하나였습니다.하지만 진짜 속마음은 따로 있었습니다. 나와는 무관한 대상, 다시 말해 상당한 '거리감'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인천이란 울타리 안에 커다란 벽이 하나 놓여 있는 셈입니다.인천은 근대 개항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특히 올해는 개항 13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제2의 개항', 즉 인천이 다시금 도약하는 원년의 해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중구 신포동에서 개항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친구들에게 들려준 한 학생이 기억에 남습니다.우리는 아이들의 눈을 통해 인천의 그늘진 현실까지 들여다 봤습니다. 그리고 '인천사람', 그 의미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봤습니다. 이번 '10대의 시선' 편의 주제는 '살기 좋은 도시, 인천 만들기'입니다. 경인일보는 학생들에게 미리 나눠 준 질문지 뒷장에 '송영길 시장님께 바란다'라는 제목으로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적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럼, 학생들의 두 번째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겠습니다."내 고장 인천을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의 의견을 적어주세요. 또 송영길 시장님께 바라는 점도 있을 것 같아요."(임승재 기자)흰 종이 위에 어떤 이야기들이 채워질까. 학생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몇 번이나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고민하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지난달 17일 오후 5시께 학익여자고등학교 학생들과의 특별한 만남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인천 재정위기, 이제 그만!인천의 최대 현안인 '재정' 문제는 어른들만큼이나 우리 아이들에게도 큰 걱정거리였다. 인천이 '빚쟁이가 됐다'거나 '파산 위기에 놓였다'는 이야기를 부모님과 친인척, 그리고 언론 등을 통해 자주 접한다고 했다. 학생들은 인천이 재정난에 허덕이는 도시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굳어질까봐 염려하는 눈치였다.이윤지 학생의 바람은 이랬다. '시장님! 인천 토박이인 저는 주위에서 인천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아무래도 속상할 때가 많아요. 재정난, 치안문제, 저조한 학력…. 인천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대책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 같아요'.심다인 학생도 '맞벌이 부부의 육아나 인천의 특징 중 하나인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한 복지제도를 확충해 뉴스에 인천이 부정적으로만 비치지 않고 살기 좋은 도시의 모범 사례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정은 학생은 축구 소녀팬 입장에서 이야기했다. '심각한 재정난이 제가 좋아하는 인천유나이티드에도 영향이 가더라구요. 팀 핵심 선수들이 다른 구단으로 빠져나가고 있어 속상해요'.재정난을 겪고 있는 만큼 시민의 세금이 엉뚱한 곳에 낭비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학생들은 부실시공이 드러난 '월미은하레일'을 그 대표 사례로 들었다. 오혜진 학생은 '은하레일 어떻게 안 되나요?'라며 착잡한 심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역사가 숨쉬는 구도심에도 관심을…송도국제도시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남구와 중구 등 인천 내에서도 차별을 받는 듯한 지역이 있습니다. 균형 잡힌 발전을 부탁드려요'. 이민아 학생 글이다. '차별'이란 단어에서 구도심의 상대적 박탈감을 읽을 수 있었다. '송도에만'이란 표현도 자주 등장했다. '송도에만 투자를 많이 하지 마시고 골고루 평등하게….'(한희수 학생), '송도에만 신경쓰시지 말고, 남구 등 우리 지역에도…'.(전효진 학생)더 나아가 근대 개항의 역사 등 인천 구도심의 숨은 가치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의견도 있었다. '중구 쪽은 구도심으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잖아요. 그걸 살려내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오혜진 학생), '싹 갈아엎어 버리는 것이 아닌, 그 지역 고유 문화와 지역성을 고려해 개발해 주세요'.(이하영 학생)# 인재들이 찾아오는 교육도시어른들의 괜한 걱정일까, 아니면 결과만을 중시하는 잘못된 교육 풍토에서 비롯된 것일까. 인천 학력을 이야기할 때면 늘 따라붙는 '수능 꼴찌'란 수식어에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단지 수능, 모의고사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저희 학생들은 전혀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습니다'.(이예림 학생), '학업성적 꼴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좋은 정책으로 다른 시·도에서 따라할 본보기를 만들어 주셨으면…'.(태형선 학생) '실망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획기적인 교육정책을 통해 타 지역 우수 학생들이 인천에 이사오고 싶도록…'.(류세현 학생)'경쟁력있는 교육도시' 만들기는 송 시장 대표 공약이다. 아이들은 '인천 학력, 왜 이러냐'는 기성 세대의 한숨 대신에, 인천 교육이 가야 할 길에 대해 그 어떤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계 속의 인천, 그 네임밸류에 대하여…인천시 청소년 웹진(MOO) 기자로 활동한 학생도 있었다. '다문화' 이야기를 꺼낸 정지수 학생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국제화 시대를 대비해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소외된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노동자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학생들은 내년에 인천에서 열릴 아시안게임을 기대했다. 인천의 대외 위상을 한 단계 높일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애영 학생은 '인천의 캐치프레이즈인 동북아 허브도시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만큼 인천에 살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며 이렇게 당부했다. '인천이란 도시의 네임밸류는 물론 중요한 요소예요. 하지만 인천시민들이 편안하게, 즐겁게, 우리 고장에 애정을 가질 수 있게 실감할 수 있는 내부의 요소들에도 집중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인천에서 계속 살겠느냐는 질문에…인천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학생은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기대가 컸던 것일까. 이 질문에 손을 든 학생은 전체 45명 중 5명뿐이었다. 요즘 학생들이 즐겨 쓰는 표현처럼 '멘붕'(멘탈 붕괴의 줄임말, 정신적 충격)이 왔다. 적은 숫자는 그렇다 치고, 아이들의 속마음이 궁금했다.이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꼭 인천에 살아야 될 이유도, 그렇다고 특별히 떠날 이유도 없다는 것이 아이들의 솔직한 대답이었다. '어른이 돼서도 인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송 시장에게 바란다며 조수진 학생이 쓴 글의 일부분이다.글=임승재·김민재기자 사진=임순석기자

2013-02-07 임승재·김민재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3]키워드로 본 인천② 10대의 시선(上)

경인일보 독자 여러분, '인천'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리십니까. 추억의 '월미도'인가요, 아니면 짜장면이 유명한 '차이나타운'인가요. 참, '인천의 강남'이란 '송도국제도시'를 빼먹었네요. 그러고 보니 송도는 '강남스타일' 노래 하나로 전 세계인을 매료시킨 '국제가수' 싸이의 뮤직비디오 촬영 장소이기도 하군요.혹시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인천을 자랑했던 적이 있습니까. 반대로 이 부분은 참 부끄럽다고 느껴 본 적은 없었습니까. 우리 자라나는 학생들은 '내 고장 인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똑같은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들은 참 당찼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는 흔적이 보였습니다.어른들이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볼 만한 답변도 많았습니다. 때로는 요즘 시쳇말로 '돌직구'도 던지더군요. 그 속에는 어른들을 향한 뼈 있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그럼, 학생들과 나눈 이야기 보따리를 두 차례에 걸쳐 풀어보겠습니다.떠오르는 이미지 '인천공항' 압도적자랑거리엔 '송도' 비중높아 눈길반면 체험기회 없어 거리감 상당한 듯# 내 고장, 인천은?"우리 모두 인천사람이에요. 저 역시, 인천에서 초·중·고·대학교를 모두 나오고, 직장까지 구한 남구의 딸입니다. 내 고장 인천에 대해 알아보는 자리예요…."(배혜선 교사)지난 17일 오후 3시30분께 인천시 남구 학익여자고등학교 한 교실. 괜한 걱정이었을까.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생들은 손을 들고 평소 마음 속에 담아뒀던 내 고장 인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냈다. 서지현 학생은 초등학교때 교과서에서 인천을 처음 만났다고 했다. "차이나타운이었어요. 인천에 다른 나라의 문화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어요. 이사오기 전까지는 인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어요."올해 2학년이 되는 학익여고 학생 40명(문과·이과 20명씩)이 이 자리에 함께했다. 연말 대입 시험을 치를 3학년 학생 5명도 시간을 냈다. 인천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단연 '인천국제공항'이었다.미리 나눠 준 질문지(주관식, 중복 답변 허용)에 인천공항을 적은 학생이 17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월미도'(12명), '바다'(12명), '차이나타운'(10명), '송도국제도시'(4명), '인천상륙작전'(3명) 등의 순이었다. 연안부두, 공장, 동북아의 허브도시, 개항, 아시안게임, 항구도시, 인천항, 인하대 등으로 답한 학생들도 있었다. 아시안게임을 꼽은 이영경 학생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인천에서 열리는 큰 국제 행사니까요. 그런데 굉장히 애매해요. 고3이 되는 해라, 공부도 해야 하고 경기도 봐야 하고…." 교실 안이 순간 '빵' 터졌다.파산위기 市재정·낮은 투표율…조폭·마약 등 부정적 이미지에 '한숨'부족한 문화시설 탓에 서울 부러워#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인천우리 학생들은 인천의 그 '무엇'을 자랑하고 싶을까. 이 질문에도 인천공항(18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송도국제도시가 11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는 점이다. 앞서 인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서는 송도가 4표에 그친 것과 대조됐다.이 밖에 차이나타운, 월미도, 연안부두, 소래포구, 아시안게임, 송도 GCF 사무국 유치 등의 순이었다. 재미있는 답변으로는 월미도의 명물인 '디스코팡팡'(놀이기구)이 나왔다. 심다인 학생은 근대 개항의 역사를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신포동에 가 보면 개항 당시 모습을 엿볼 수 있어요. 오래된 우체국도 아직 남아있구요."# 학생들 눈에 비친 인천공항과 송도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전 세계 1등인 인천공항과 글로벌 도시를 꿈꾸는 송도국제도시를 인천의 '최고'로 치면서도, '나와는 무관한' 그 어떤 괴리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예림 학생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실 저희와는 심리적 거리감이 있어요. 한 번도 공항을 가 보지 못한 친구들도 있어요.인천 학생들에게는 공항을 견학할 수 있는 체험 학습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계적인 공항이 인천에 자리하고 있다는 데 자부심은 컸어도 학생들에겐 그저 TV에서나 가끔 접할 수 있는 그런 먼 대상이었다. 송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사는 남구와 너무 차이가 나요. 건물만 봐도 남구 같은 구도심은 허름하잖아요."(송경주 학생)수능 부진에 한마디 "수시집중 한몫"脫인천 원인 교육환경 날카롭게 비판남·북 평화위한 'AG 단일팀' 바람도# 그늘진 우리의 자화상인천에서 살면서 부끄럽거나 불편하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였을까. 학생들의 솔직한 답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공기가 탁하다", "(부실공사 논란)월미도 은하레일", "인천시가 과도한 부채로 파산 위기에 처한 것", "수능 꼴찌 등 성적이 저조하다", "투표율이 낮다"….그냥 볼멘소리가 아니었다. 어른들이 곰곰이 되짚어 볼 문제였다. 이아름 학생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조폭, 불량배, 마약 밀수입, 성매매 등이 인천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인천이 부정적으로 비칠까봐 걱정했다. 태형선 학생은 "대선 개표방송에서 인천 투표율이 또 낮은 것을 보면서 '인천, 아…' 이러면서 가족들 모두 탄식했다"며 아쉬워했다.서울이 부러울 때를 물어봤다. 공통적인 답은 다양한 문화시설이었다. 박홍연 학생은 "지방에 사는 사촌동생이 가끔 인천에 오는데, 매번 서울에 있는 궁궐이나 박물관으로 놀러간다"며 속상해 했다. 계은진 학생도 한마디 거들었다. "오죽하면 '인천에서 돈 벌어 서울에서 쓴다'고 하잖아요. 인천에 문화시설을 많이 만들면 인천에서 벌고 쓰게 되니까 재정 악화 문제도 좀 나아질 것 같아요." 학생들의 진솔한 이야기 속에서 내 고장 인천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났다.# "우리가 진짜 꼴찌인가요?"다음 주제는 교육이었다. 우리 어른들은 인천 학력이 낮다고 걱정한다. 매년 수능 성적이 전국 꼴찌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나근형 교육감만큼이나 학생들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충북에 사는 외삼촌이 '인천은 왜 공부를 못하냐'고 저한테 막 따지는 거예요.앞에 친구들이 말한 것(인천은 수능 성적에 당락이 좌우되는 정시보다 입학사정관제 등 수시에 집중)처럼 이래서 '수능 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했더니, 외삼촌이 다시 '그래도 너무 못한다'고 해서 기분이 나빴어요."(박홍연 학생)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박홍연 학생은 "미술을 하는 친구가 예고를 진학하기 위해 서울로 가 자취까지 했다"며 "아무래도 인천이 서울에 비해 교육환경이 부족한데, 특히 특목고 같은 경우가 심하다"고 말했다. 지역 인재들이 다른 도시로 떠나는 탈(脫)인천 현상의 한 단면이었다.이윤희 학생은 엄마의 강요에 못 이겨 굳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송도의 한 입시학원을 다녀야 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결과는 불만족. 성적이 좀 올랐느냐는 물음에 이양이 "안 올랐다"고 잘라 말하자, 교실 안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아시안게임 남북 단일팀 됐으면…뉴스에서 접한 인천은 어땠을까. 몇몇 학생들이 최근 '수갑 탈주범' 노영대 관련 뉴스를 꼽았다. 탈옥한 노씨가 인천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에 많이 불안했었다고 한다. 치안 지표로 보면 인천은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다.지난해 인구 10만명당 4대 범죄 발생에서 전국 최저, 4대 범죄 검거율에서 전국 최고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체감이 문제다. 이인선 인천지방경찰청장도 최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이 점을 아쉬워한 적이 있다. 오혜진 학생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 뉴스가 기억에 가장 남는다고 했다. "그때 학교에서도 완전히 난리가 났어요. '전쟁이 나는 건가', '나라가 망하는 건가' 하고 겁났어요…."인천 백령도 등 서해 5도 인근 해역은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원해진 남북관계에서 인천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 송영길 인천시장도 이 점에 고민이 많을 듯하다. 전효진 학생은 "인천아시안게임 때 북한과 개막식·폐막식을 협력해 준비하고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경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희망했다.# 한 학생이 '정명'을 묻다2013년은 '인천'이라는 이름을 얻은 지 600년이 되는 해다. 인천항 개항 130주년이기도 하다. 정명 600년은 23명이, 개항 130년은 13명이 '알고 있다'고 손을 들었다. 학생들은 이 자리를 위해 경인일보의 올해 연중기획 '이름600·개항130'을 미리 읽어보고 온 터였다.솔직히 알고 있었던 사람만 손을 들어보자는 제안에 학생들은 배시시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이어서 돌발 질문을 던져봤다. "인천시민의 날은 몇월 며칠일까요?"(인천시 역사자료관이 펴낸 '인천상식문답' 책에서 인용했다. 정답은 10월 15일).학생들은 다들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한참 있다가 한 학생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고 이렇게 물어봤다. "그런데, 아까 '정명'이라는 게 뭐예요…." 정명 600년·개항 130년이란 역사의 무게를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고 무엇을 실천해 나가야 할까. 학생의 질문이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인천사람', 그 의미에 대해…학생들에게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해봤나요? 인천사람이란 말의 의미 말이에요." 한 학생은 '다문화'라는 단어에서 답을 찾았다. 앞서 학생들은 '인천과 다문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었다. "인천에 살고 있는 외국인도 인천의 한 구성원이잖아요."(남윤영 학생) 고향이 인천이든 아니든, 피부색이 같든 다르든, 인천이란 울타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인천사람이라는 얘기였다.김준영 학생은 초등학교 때 동계체전 스키 선수로 참가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인천 대표로 나간 학생이 저밖에 없었어요. 서울이나 지방에서 온 선수들과 다른 색 점퍼를 받았는데, 그때 '내가 인천이구나' 하고 느꼈어요." '내가 인천'이라는 말에 깊은 울림이 전해졌다.글/임승재·김민재기자 사진/임순석기자

2013-01-31 임승재·김민재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3]키워드로 본 인천① Incheon(인천)

외국인들은 인천을 어떻게 바라볼까? 경인일보가 외국인에게 비친 인천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인터넷으로 인천을 검색하자 인천국제공항이 인천보다 비중있게 소개되고 있었다. 이에 인천공항을 찾아 외국인에게 인천에 대해 물었다. 비영어권 국가에서 바라보는 인천에 대한 설명은 인천국제교류센터 실무자 6명에게 들었다. 그 결과, 외국인들에게 '인천공항'이 인천의 전부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그렇다면 인천시민에게 있어서 인천공항은 무엇일까. 단지 인천에 위치한 공공시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인천공항이라는 우수 인프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경인일보는 약 4개월간 '키워드로 본 인천'이라는 중간제목을 걸고 여러 소제·주제로 인천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 첫 키워드가 'Incheon'(외국인이 본 인천)이다.# 온라인에서 인천은 '인천공항'외국에서 대중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검색엔진 '구글(영문버전)'을 이용해 'Incheon'을 검색한 결과, 인천공항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23일 오전 9시, 뉴스분야 관련도에 따른 분류(sorted by relevance)를 선택하자 첫 번째 장 10개 검색 결과 가운데 보도자료 한 건을 제외하고 인천공항에 대한 소식 뿐이다.구글 영문뉴스 관련 90% 공항소식웹문서 공식사이트도 공항이 '상위'인천공항 면세점에서 판매되는 양주를 소개하는 등 인천공항의 '소소한' 소식들이 대부분이었다.웹문서를 검색해 봤다. 위키피디아에 소개된 인천에 대한 설명이 가장 상단에 나왔다. 뒤를 이어 인천공항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설명이 검색됐다. 그 밑에는 인천공항의 공식 웹사이트가 나타났다. 인천시 공식사이트는 그 뒤에 있었다. 중국의 검색엔진인 '바이두'를 이용해 인천을 검색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인천공항이 검색 결과 최상단에 위치했다. 인천공항에 인천이 가려진 모양새였다.# 인천을 '단위'라고 생각하는 외국인지난 20일 오후 2시께 인천공항 3층 출국장을 찾아 무작위로 10명의 외국인에게 인천에 대해 물었다. 공항 환승객, 배낭여행객, 수년 동안 한국에 거주한 외국인 등이 인터뷰 대상이었다.외국인 10명중 8명 인천 가본적없어지역아닌 일종의 단위로 인식하기도인천공항에서 만난 외국인 10명 중 8명이 인천공항 외에 인천지역을 방문한 경험이 없었다. 방문한 경험이 있다는 2명도 몇 시간 머문 것이 다였다. 한국에서 10일 동안 배낭여행을 했다는 태국인 주리앗 왓차랑봉(29·여·Juriat Watcharanvong)씨는 "인천공항에 오기 전 잠깐 시간이 나 차이나타운을 다녀왔다"고 했다.강원도 춘천에 있는 학교에서 1년간 영어교사를 하고 귀국한다는 뉴질랜드 출신 킴벌리 베렌스(23·여·Kimberly Behrens)씨는 "1년 동안 한국에서 지내면서 지인의 결혼식이 있어서 잠깐 인천에 들렀다"고 말했다.인천에 대한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는 외국인 10명 모두 공통적으로 "모르겠다. 공항 이외에 들은 것이 없다"고 답했다.인천이 하나의 지역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본으로 환승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12시간 동안 머물고 있던 미국인 모레스 듀버쏘(30·Mores Duberceau)씨는 "인천이 지역 이름인지 몰랐다. 서울인천공항이라고 생각했다"며 "인천이라고 하니 '인치(inch)'같은 일종의 단위(measurement)로 생각된다" 말했다. 또 다른 환승객인 미국인 네드 레더러(26·Ned Lederer)씨는 "인천공항이라는 것을 몰랐다. 서울공항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GCF 사무국 위치, 인천은 빼고 송도인천을 잘못 소개하고 있는 외국 사전, 매체도 발견됐다.온라인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인천을 '경기도 지방'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브리태니커는 인천에 대한 소개로 '한강의 입구에 위치한 곳(lies near the mouth of the Han River)'이라고 했고 서울과의 접근성 등을 설명했다.외국사전·매체는 경기도 지방 표기GCF 관련 대한민국 송도로만 보도미국 콜럼비아대에서 발간한 백과사전에도 인천이 경기도 지방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사전은 인천을 '서울을 위한 상업 중심지(commercial center for Seoul)'로 소개하기도 했다.인천공항에 대한 외신의 보도에도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CNN, 이코노미스트 등의 매체가 인천공항에 대해 보도한 것을 확인한 결과, 'Seoul's Incheon airport' 'Incheon airport in Seoul' 'Seoul Incheon' 등으로 공항 이름을 표기했다.GCF 사무국 유치와 관련된 워싱턴포스트 등 많은 외신의 보도에서도 인천이라는 이름을 빼고 'Songdo, South Korea'(대한민국 송도)로 보도한 경우가 많았다.인천국제교류센터 유민종(구미권 담당) 대리는 "인천을 검색하면 공항에 대한 소식이 대부분"이라며 "오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여겨진다"고 말했다.글/홍현기기자 사진/임순석기자

2013-01-24 홍현기

인천국제교류센터 직원 6명이 말하는 '외국인들의 인식'

'인천국제공항', '송도(경제자유구역)', '강화도', '바다'.인천을 찾은 세계 각국의 외국인들에게 인천은 크게 네 가지 모습으로 다가왔다. 지난 22일 인천국제교류센터에서 서로 다른 국가의 교류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6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이 설명한 인천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식은 이와 같이 요약될 수 있었다.이중 인천공항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었다.이선아(중국 담당) 과장은 "중국에서 인천은 인천공항이 가장 큰 키워드다. 공항이 있는 도시라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인천공항의 높은 인지도 때문에 정작 인천이 가려지는 경우도 있다. 조미령(러시아 담당) 과장은 "모스크바에서 항공권을 발권하면 모스크바와 서울이 찍힌다"며 "러시아에서 온 분들은 '티켓에 서울이 찍혀 있는데 왜 인천이냐'고 물었다. 공항 자체가 인천에 있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이다"고 말했다.인천대교·송도 보고 '감탄사 연발'밋밋한 유람선과 홍보부족 아쉬워특히 송도는 인천에 대해 몰랐던 사람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오는 곳이라고 한다.유민종(구미권 담당) 대리는 "인천을 보고 나면 굉장히 좋아한다. 어떻게 빠른 시간 내에 비약적으로 성장했는지 묻는다"며 "특히 인천대교나 송도국제도시를 보고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고 소개했다.김소연(아랍권 담당) 대리는 "송도국제도시에 관심이 많다. 어떻게 조성됐는지, 외자는 얼마나 (유치)됐는지 등에 대해 궁금해 한다"고 전했다.강화도는 위치상의 장점과 특유의 멋으로 외국인들에게 기억되는 곳이라고 직원들은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다.이효순(일본 담당) 주임은 "일본인들과 강화 평화전망대를 갔는데 '북한을 볼 수 있었다'며 너무 좋아했다. '의외의 장소에 데리고 가 줘서 고맙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중현 국제교류 팀장(아시안게임 담당)은 "태국 방콕의 시의원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며 "인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강화 홍삼이 유명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유민종 대리도 "강화도는 특색이 있어서 다들 좋아한다"고 말했다.인천의 바다를 좋아한 외국인들이 많았지만 관광 프로그램에 대한 아쉬움은 컸다.김중현 팀장은 "몽골 사람들이 인천에 오면 배를 그렇게 좋아했다"며 "하지만 실제로 타면 실망한다"고 했다. 조미령 과장도 "러시아 사람들도 바다를 좋아한다. 하지만 한 시간 반 동안 배 안에서 공연만 봐서 당황스러웠다"고 털어놨다.이선아 과장은 "상하이에서는 유람선이 야경을 보는 것 위주다"며 "건물의 화려한 조명 등이 만들어 내는 야경이 멋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에서 공연만 본다"고 했다.이들은 인천이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 공감했다. 인천의 명소를 보여주면 좋아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홍현기기자

2013-01-24 홍현기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2]인터뷰/인천발전연구원 김용하 박사

인천발전연구원 김용하(도시기반연구부장) 박사는 개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김 박사는 "일본인이 섬나라 사람이다 보니 갯벌과 매립에 관심이 많았다"며 "땅이 있어야 공업지역과 주거지 등을 만들 수 있으니까 육지부로 확장(매립)해 나갔다"고 했다. 이어 "당시에는 보상이 필요없어 매립이 가능했다"며 "매립은 인천의 큰 특징이다.인천의 해안선이 직선인 것도 매립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처음에는 항만시설이나 공업단지를 만들고자 매립이 이뤄졌다. 이렇게 생긴 땅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의해 공장 증설이 억제되면서 주거용지로 용도가 변경됐다.개항장(제물포)은 격자형으로 계획된 도시다. 서양식 도시계획이 적용된 개항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도시다. 서양식 도시계획이 개항장에서 원인천으로 확산되지 못한 까닭은 서울과 가까운 인천의 지리적 특성 때문. 당시 인천은 서울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에 불과했다. 인천과 서울을 잇는 철도와 도로가 생기자 외국인의 주거지가 서울로 이동하기 시작했다.'서울의 입구'라는 지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천은 양적·질적으로 많이 발전했다.김 박사는 "가장 큰 변화는 섬들이 인천에 편입된 것이다"면서 "매립이 가능했기 때문에 경제자유구역도 들어설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인천을 서울의 위성도시라고 하는데, 이는 인천의 책임이다"며 "서울과 똑같은 도시를 만들려고 하니 그렇게 된 것이다"고 했다.그는 "인천은 서울 때문에 성장했다는 것을 부정하면 안 된다"며 "인천과 서울은 경쟁 관계가 아니다. 보완·동반 관계에서 도시계획을 봐야 한다"고 했다.김 박사는 "인천 자체의 질을 더욱 높여야 한다"며 "공항, 섬, 바다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2013-01-16 목동훈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2]도시공간의 변화

인천시 남구 문학초등학교 교정에는 조선시대 인천지역 행정을 담당했던 인천도호부청사의 객사(客舍)와 동헌(東軒·부사 집무처) 일부가 보존돼 있다. 인천도호부청사가 있는 문학동 일대를 '원(原)인천'이라고 부른다. 이 곳은 조선시대 큰 기능을 하지 못하다가 개항 이후 주목을 받게 된다. 조선시대 '부평'과 '강화'는 국방·행정·교통상 중요한 곳이었다.인천은 개항을 전후로 전근대, 근현대로 구분된다. 1883년 개항으로 당시의 제물포는 근대문물의 유입 경로인 국제적 항구도시가 된다. 개항장(제물포)에는 각국 조계지, 외교·통상을 담당하는 감리아문(監理衙門), 무역관세를 징수하는 해관(海關), 은행, 병원 등 서양식 공공건물이 들어서게 된다.상하수도와 공원 등 여러 편의시설이 만들어지면서 '어촌'에서 '근대화된 도시'로 변모한다. 이후 항만시설, 경인철도, 경인고속도로, 공업단지 조성, 택지개발 등으로 인해 인천지역은 점점 도시화된다.인천지역 도시 면적은 부평, 강화군과 옹진군 등이 편입되고 공유수면 매립이 지속되면서 넓어지게 된다. 매립을 통한 인천의 면적 확장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도시공간 확장 과정600년 전 '인천'은 경기도에 속한 작은 군(郡)이었다. 1413년 조선 태종이 현재의 인천 일부를 '인천군'으로 명명하면서 '인천'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게 된다.개항 전·후 전근대·근현대로 구분1995년 광역시 격상 현재의 틀 갖춰'원인천' '부평' '강화' 합쳐져 형성섬의 자원화 '옹진군 편입' 큰 의미1883년 인천항이 외세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면서 제물포에 항구와 외국인 조계가 설치된다.1895년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인천지역에 '인천부'가 설치된 데 이어 1949년 지방자치법 시행으로 '인천시'로 개칭된다. 1981년 7월 1일 인천직할시로 승격한 뒤 1989년 경기도 옹진군 용유면·영종면, 김포군 계양면이 편입된다.'인천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된 것은 1995년이다. 이때 경기도 강화군, 김포군 검단면, 옹진군이 편입돼 오늘의 '인천'이 됐다. 인천대 서종국(도시행정학과) 교수는 "인천이 광역시로 격상되면서 현재의 도시공간 틀을 갖게 됐다"며 "인천광역시 출범은 인천이 도약하고 크게 변화할 수 있는 전환기가 됐다"고 했다.현재의 인천지역은 과거의 '원인천' '부평' '강화' 등 3개 덩어리가 합쳐진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된다. 옹진군 편입에 따라 인천 앞바다 섬들이 인천의 소중한 자원이 됐다는 점도 인천의 도시공간 변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사건이다.강화는 고려시대 수도 개경의 '목구멍'에 해당하는 곳으로, 특히 여몽전쟁 때 국방상 중요 가치를 인정받았다. 조선이 정묘호란, 병자호란,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을 겪을 때도 강화는 국방상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부평은 조선 전기에 행정상·국방상 중요 구실을 했다. 인하대 최원식(국문과) 교수는 "조선은 농경 사회였다. 부평은 대단한 곡창지대였다"면서 "당시 부평은 현재의 구로구까지 포함하고 있어 조선의 한양과 매우 가까웠다"고 말했다.원인천이 주목을 받게 된 시기는 '1883년 개항' 이후다. 인천 시가지는 개항 초기 항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각국의 조계지에서 시작됐다. 이후 원인천과 부평 등 내륙으로 확산됐다. 인천과 서울을 잇는 철도 건설이 시가지를 확산시키는 촉진제 구실을 했다.# '바다 위에 세워진 도시'개항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서양식 도시계획' 적용과 '공유수면 매립' 활성화다.개항장에는 일본인 전용거주지, 청국인 전용거주지, 각국인 공동거주지가 설치됐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도시계획이다. 조계지를 보면 가로와 소로에 의해 가구와 획지가 구획돼 있다. 필지별로 면적이 기입돼 있다. 공공청사와 도로, 공원, 외국인 공동묘지 등 도시시설도 배치했다.항만시설·공단 확보위해 '매립' 시작1960~70년대 공업지역 형성 급성장2000년대 공항 개항·경제구역 지정위성도시 탈피 독자적 도약발판 마련1906년부터 인천항 시설 확장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인천지역 매립은 항만시설과 공업단지를 확보하기 위해 시작됐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 현대제철 등의 기업이 자리잡고 있는 땅도 매립지다.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 역시 전체 면적(약 118㎢)의 절반 정도가 매립된 곳이다. 중구, 동구, 서구는 행정구역의 50% 이상이 공유수면 매립에 의해 형성됐다.1960~70년대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의해 공업지역이 형성되면서 인구가 크게 증가했고, 경인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시가지가 동서 방향으로 확장돼 갔다. 1980년대에는 연수택지개발지구와 남동공업단지(현 남동인더스파크) 등이 개발됐다. 1990년대에는 계산택지, 삼산택지, 검암구획지구, 검단지역 등 북부지역 개발이 이뤄졌다.2001년 영종도에 인천공항이 들어서면서 인천은 대한민국의 관문이 됐다. 2년 뒤 송도, 청라, 영종 등 3곳은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다. 송도국제도시의 경우, 현재에도 공유수면 매립이 진행되고 있다.공항 개항과 경제자유구역 개발은 인천이 서울의 위성도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도약을 시도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2009년 개통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사장교인 인천대교(송도~영종, 총연장 21.38㎞)도 공항과 경제자유구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지난해 5월 서해와 한강 하류를 연결하는 경인아라뱃길(길이 18㎞의 수로)이 정식 개통됐다. 경인아라뱃길 조성은 환경파괴와 경제적 타당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사업.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논란은 계속되고 있지만, 도시계획적으로 보면 인천 도시공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경인아라뱃길 수로변 토지이용이 어떻게 이뤄질지 주목된다.글/목동훈기자 사진/임순석기자

2013-01-16 목동훈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1]인터뷰/고려대 민족문화硏 김종혁 연구교수

"1413년 인천 정명은 이름보다는 인천의 영역이 정해졌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김종혁 연구교수는 "정명(定名)보다는 정역(定域)이 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일 수도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그는 "인천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은 왕조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행정구역 개편의 한 과정이었다"며 "이름이 지어진 것에 특별한 메시지나 애향심을 부여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로만 받아들이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때부터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다시 개편하기 전까지 500년간의 '인천영역'이 정해진 것이다"고 했다.김 교수는 현재 '인천'이라는 이름의 행정구역 아래 있는 모든 지역에 일치된 정체성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했다. 행정 경계와 문화적 경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그는 "예를 들면 철원군의 경우 강원도에 속해 있지만, 실제 생활권이나 문화권, 심지어 군사 작전권까지 경기도 포천, 의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며 "인천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부평이나 강화같은 지역에 원인천 문화권의 형성이나 확장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했다.지역성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나도 처음에는 지역성은 이미 형성돼 있고 그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지역성은 계속 변화하는 것이라고밖에는 설명이 안된다"고 말했다.이어"지금은 강화, 부평의 지역성과 인천의 지역성이 합쳐져서 새로운 지역성이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100~200년 뒤에는 인천의 지역성이 지금과 다를 것이다"고 했다./김민재기자

2013-01-10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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