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신춘문예

 

[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총평

일상속 소재 끈질긴 관찰과 상상 즐겨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은 최은의 단편소설 '켄의 세계'와 성영희의 시 '미역귀'다.소설 심사위원들은 예·본심 모두 고심을 거듭했다. 160여편의 원고를 거듭 살펴본 후에 '켄의 세계'를 선택했다. 방민호 심사위원은 "자신의 세계를 잘 세워 올린 소설"이라며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된다"고 평했다. 당선자 최은 씨는 소설쓰기를 시작한 지 2년 남짓 된 신예로, 직장에 다니면서 쓰고있다. 최씨는 "출판사에 다닌 경험이 있어 책과 가까웠고, 소설강좌를 들으면서 쓰기 시작했다" 며 "일상에서 보고 듣는 것들 중 마음에 담기는 것에 상상력을 더해 소설로 만드는 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시부문 당선자 성영희 씨는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시쓰기를 좋아했다고 밝혔다. 그는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부터"라며 "현재는 국문학 공부를 하며 시를 쓰고 있다"고 전했다. 일상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들을 소재로 한 생활시를 즐겨 쓰던 그는 식탁 위에 오른 미역귀를 끈질기게 관찰하고 상상했다. 성 씨는 "고향이 바다라 바다를 소재로 한 시가 많았다. 바다에서 나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시에 담겼다"고 말했다.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2017-01-01 민정주

[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소설부문 당선소감/최은

정신없이 바쁘던 오후, 진동하는 핸드폰을 보고도 못 받았다. 일하는 데가 창구라 개인 전화는 편히 못 받는 편이다. 곧이어 울리는 회사 전화는 재깍 받아, 매번 하는 똑같은 멘트를 읊었다. 말하며 그간 신문사 기자 고객은 못 접해봤다고 생각하는데, 당선 소식이었다. 그날 오후는 업무 실수를 하지 않았나 두 번, 세 번 살펴봐야 했다. 대학 졸업 후 어떤 식으로든 거의 쭉 돈을 벌어왔다. 모든 사회인이 그렇듯 때론 똥밭을 구른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이 좋았다. 자신의 어떤 것을 세계에 내다 팔며 자기를 먹여 살리는 일은 그 자체 지고의 예술이다. 운 좋게 진짜 예술의 영역에 첫 발을 내딛게 됐지만, 평범한 직장인일 수 있는 사람이 예술도 잘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예술은, 좋은 글은 눈먼 채 천상을 더듬는 태도가 아닌 눈이 빠질 정도로 세상을 노려보고, 때론 흙바닥에 혀를 대는 용기이기 때문이다.설탕과자 같은 글, 반대로 단순한 천박과 잔인을 쿨함이라 착각하는 글, 남들 다 살기 힘든데 자기연민이 뚝뚝 흘러넘치는 글, 자족이 소통보다 앞서는 글, 쓰나마나한 글은 안 쓸 거다. 이 화려한 영상 시대에 글이라는 지난 세기의 표현 방식을 붙들고 있다는,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는 좌표 파악에서 늘 출발할 것이다. 기계처럼 바지런히 써 석(石) 중에 옥(玉)을 독자 분들께 최대한 빨리 내밀고 싶다.졸고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 강영숙 선생님, 격려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2017-01-01 경인일보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소설-김환·시-김이솝 수상

'201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21일 오후 수원 인계동 본사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는 단편소설 부문 심사를 맡은 노희준·진연주·서진연 소설가, 시 부문 심사를 맡은 최동호·이승하·권성훈 시인과 송광석 경인일보 대표이사 사장 및 임직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단편소설 '폭발'로 당선된 김환씨는 "졸작을 뽑아주셔서 감사하다. 쉬지 않고 쓰겠다"는 소감을 남겼다.소설부문 노희준 심사위원은 "세차장에서는 겨울에 찬물을 쓰는데, 그 이유는 추울 때는 더운물이 더 빨리 얼기 때문"이라며 "문학의 길을 걷다 보면 힘들 때가 많겠지만, 겨울의 찬물처럼 쓰길 바란다"고 전했다.시 '대봉'으로 당선된 김이솝씨는 "상을 받는 자리가 아니고, 시세계의 신내림을 받는 자리라 생각한다"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시부문 최동호 심사위원은 박목월 시인의 말을 인용해 "좋은 작품을 쓰더라도 세상이 쉽게 알아주는 것은 아니다"며 "당선자들 모두 크고, 넓고, 높이 나아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송광석 사장은 축사를 통해 "문학계와 언론계가 모두 어렵다보니 신춘문예를 하다가도 그만두는 신문사가 많지만, 아무리 세상이 척박해도 신문사로서의 공적기능을 다하기 위해 신춘문예를 포기할 수 없다"며 "당선자들은 시인으로, 소설가로 오늘 다시 태어난 것이므로 힘차게 문학의 길을 정진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당선자에게는 상패와 소설부문 상금 500만원, 시 부문 상금 300만원이 수여됐다.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21일 오후 경인일보 본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시 '대봉'으로 당선된 김이솝(왼쪽)씨와 단편소설 '폭발'로 당선된 김환씨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2016-01-21 민정주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폭발/김 환

거인이 오고 있다큰 소리를 내는 그의 의중은 알수없다기다리며 거울 위에 자화상을 그렸다 매번 왜곡되는 거울회화像을 고정하는 기계장치를 달때거인의 발소리가 달려왔다그의 귀에 저 멀리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거인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감출 수 없는 흥분이 그의 몸 전체를 휘감았다. 그는 신이 나서 좁은 방 안을 펄쩍펄쩍 뛰어다녔다.“거인이 왔다! 이번에야말로 분명 거인이다! 쿵쿵대는 이 소리가 거인의 발소리가 아닐 리가 없다!”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또한 처음보다 훨씬 더 규칙적이었다. 거인이 일정한 속도로 한 걸음씩 도시를 가로질러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거인이 내리는 결론이 무엇이든 그는 거인의 선택과 처분에 모든 것을 내맡길 준비가 완벽히 되어 있었다. 소리의 크기로 보아 거인의 거대한 발바닥이 자신의 집 창문을 캄캄하게 가릴 때까지 채 몇 분이 남지 않았음을 느낀 그는 떨리는 몸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일정한 예의와 격식을 갖추고 반갑게 거인을 맞이할 목적도 있었지만, 주체할 바 없이 끝내주는 기분을 자신이든 주변이든 무엇이든 바꿔놓음으로써 완전히 새롭게 만끽하고 싶은 이유가 더 컸다.“쾅!”“이런! 다 왔다! 거의 다 왔어!”놀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거인이 발걸음을 내딛자, 그저 가만히 기다리다가는 정말 숨이 터져 죽을 지경이 되어 그는 거인처럼 성큼성큼 온 방안을 빠르게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두 팔을 있는 대로 크게 흔들며 발로는 방바닥을 있는 힘껏 굴러가면서 십 수 걸음을 걷고 나자 두 발 뒤꿈치가 금세 아파왔다. 거인의 걸음은 그만 걷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주저앉아서 연신 뒤꿈치를 손으로 문질러 대면서, 그래도 웃음만은 결코 멈출 수 없어 그는 고통의 신음 중간중간에 환희의 깨웃음을 간헐적으로 섞어 넣었다. 그러나 여유를 너무 부렸다. 이 정도 시간이면 이제 거인의 다음 발걸음은 내 차례다. 고통이 다 가시지 않은 발로 그는 절뚝거리며 빠르게 창문으로 걸어가서 커튼에 바싹 귀를 댔다. 아니, 귀가 문제가 아니다. 거인이 내디딜 다음 발이 내 집의 창문이라면 귀가 아니라 눈으로 캄캄해질 내 창을 바라보아야 한다. 거대한 신체로 인해 밤과 같이 어두워질 창 너머로 다가오는 거인을 내 눈으로 똑똑히 맞이해야 한다. 그는 커튼이 쳐진 창문 앞에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버티고 서서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몇 초 뒤 자신에게 거인이 내릴 결론을 기다렸다. 그는 두 눈을 최대한 부릅떴다. 바로 지금일 것이다! 빛을 가리고 거인이 막아선 내 방은 바로 지금 어둠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지금이다! 지금 거인은 바로 내 방 창문 앞에 있어야만 한다!커튼을 뚫고 들어온 빛 때문에 부릅뜬 두 눈에서 계속 눈물이 흘러 그는 더 이상 눈을 깜박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내 눈을 벌린 채로 창문 앞에 서 있는 짓은 그만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주저앉아서 연신 충혈된 두 눈을 손으로 문질러 대면서, 그래도 혹시 덩치 큰 누군가 서 있는 것은 아닌지 문질러 대는 중간중간에 그는 곁눈질을 간헐적으로 창쪽에 해댔다. 그러나 밖은 여전히 밝았다. 고통이 잦아들자 그는 옷을 도로 갈아입고 벽에 기대앉아 거인의 발걸음 소리에 대해 생각했다. 이번에도 거인이 아니라면 대체 그 큰 소리는 어디로부터 매번 들려오는 것일까. 규칙적으로 그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가 거인 말고 또 다른 무엇이 있을까. 결과로 짐작해볼 수 있는 마땅한 원인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창문이 깨졌다면, 누군가가 던진 돌 아니면 날아가다가 갈피를 못 잡고 들이받은 새의 대가리가 원인이다. 돌이 공으로 대체되거나 새의 대가리가 새의 옆구리로 대체될 수는 있겠지만 그래봤자 창문을 깬 것이 어쨌든 창문을 향해서 날아온 어떤 것 때문이라는 원인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일 분여 가까이 깜박이지 않은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그 눈으로 쏟아져 들어온 빛 때문이다. 빛이 바늘이나 손가락으로 대체될 수는 있겠지만 그래봤자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이 어쨌든 눈을 향해 들어온 어떤 것 때문이라는 원인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동일한 이유로, 규칙적이고 큰 소리는 의심할 바 없이 거인이 낸 것이며, 특히 이 경우는 거인을 대체할 만한 다른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심할 여지도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있는데 창문 앞에서 빛을 막아서는 존재는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소리는 절대로 그냥 나지 않는다. 소리는 반드시 소리 내는 것이 있어야 나는 법이다. 작은 소리는 작은 것에서, 큰 소리는 큰 것에서 난다. 작은 것은 작은 소리를, 큰 것은 큰 소리를 낸다. 이 분명한 관계를 어그러뜨리는 예외적인 경우는 사람이 만든 것 중 일부밖에 없다. 예컨대 총이나 폭탄이 그렇다. 그것들의 크기는 그것들이 내는 소리의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주 작다. 하지만 사실 이 경우도 그것들을 그렇게 만든 과학의 힘이 크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창밖의 그 소리를 총이나 폭탄이 낸 것이라고 생각할 근거는 희박하다. 총이 내는 소리는 일단 창밖의 소리에 비해 현실적으로 너무 작다. 그러면 폭탄이 남는데, 폭탄은 전쟁이 터지지 않는 이상 터질 일이 없다. 게다가 걸을 수 있는 존재가 내는 발소리만큼 규칙적으로 터질 가능성도 거의 없다. 전쟁이 났다면 불규칙적으로 여기저기서 크기가 다른 폭발음이 들렸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므로 전쟁은 나지 않았고 따라서 폭탄도 터지지 않았다. 인간이 제작한 이 예외적 결과물들을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큰 소리는 큰 것에서, 작은 소리는 작은 것에서 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인간이 제작하지 않았고 큰 소리를 규칙적으로 내는 존재는 거인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자명하게 도출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만 있고 거인은 없다. 거인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멀리 있는 것일까. 그래서 소리는 방에까지 들릴 만큼 크지만, 그리고 조금씩 이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는 하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막아설 만큼 가까이 있지는 않은 것일까. 결코 나를 향해 걸어오지는 않으면서, 부단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큰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거인의 의중은 과연 무엇일까.기다리는 일이 생활이 되면서 그는 한 가지 놀라운 정신의 능력을 획득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어떤 일에도 절대 조바심을 내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조바심을 내지 않으면 조바심을 낼 단 하나의 자유를 박탈당하지만 그 이외의 모든 국면에서 단 1그램도 박탈당하지 않은 정신과 행위의 자유를 누릴 수가 있다. 거인이 걷기 시작하면 박탈당했던 단 하나의 자유, 오직 이 조바심을 낼 자유만이, 박탈당해 있었으므로 더욱 마음껏 해방과 흥분을 만끽하며 정신의 모든 영역을 지배해버리는 만큼, 거인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리거나 일단 들리면 거인이 한시라도 빨리 와주기를 기다리는 일이 오직 생활이 된 그는 결국 조바심을 내지 않음으로써, 대개 조바심을 내는 바람에 그르치게 되는 모든 일을 그르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와 마땅하고 당당하게 조바심을 내도 좋을 일에 조바심을 낼 자유를 모두 누릴 수 있게 된 셈이다. 이 놀라운 능력을 획득한 소수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동일한 일과 시간의 반복으로부터 지금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매번 새로운 사건의 출현과 불규칙적이고 비정기적인 시간의 도래는 인간의 정신에 조바심을 불어넣는 법이다. 그것은 인간을 매사에 들뜨게 만들어서 하는 일마다 기어코 그르치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싶어 안달이 난 악마의 숨결이다. 이쪽 저쪽으로 방정맞게 옮겨 앉으며 양쪽 귓구멍으로 쉴 새 없이 숨을 불어넣는 악마를 제풀에 지치게 하는 것은, 무엇을 하든 오직 심드렁하고 무심하게 똑같은 시간을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것뿐이다. 반복이 자유를 주며 이 자유는 곧 조바심을 내지 않는 자유, 조바심을 내지 않음으로써 획득되는 자유다. 거인은 그에게 바로 이 자유를 줬다. 발걸음 소리라는 결론과 ‘따라서’ 분명히 있음이라는 원인 사이에 ‘그러나 아직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유예가 가로놓이면서 기다림의 일상이 시작되었으며, 기다림의 일상은 ‘그래도 언젠가는’ 이라는 기대를 끌어들임으로써 매번 반복되어갔다. 반복되는 일상의 규격 안에서 그는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되는 안도와 진실로 조바심을 내지 않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조바심으로부터의 자유는 인간을 어떤 일에 쉽게 실망하거나 애석해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만큼, 그 역시 이번에도 창문을 캄캄하게 가리지 않은 거인에 대하여 일말의 아쉬운 감정 없이 도로 옷을 갈아입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사실 그에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기다림의 일상적 시간을 무엇으로든 메우는 편이 자신이 거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거인을 더 잘 기다릴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데 있었다. 얼마 전까지 그는 오로지 순수하게 거인을 기다리는 행위로만 일상을 반복해왔다. 짧지 않은 세월이었으나 전혀 지루하지 않았으며, 그러므로 골몰할 다른 일을 찾아 안달을 낼 필요도 전혀 찾지 못했다. 그러나 본디 모든 위대한 발견이란 무심한 시간의 지속으로부터 우연한 계기로 촉발되는 법이다. 그에게 우연한 발견은 바로 회화의 작업, 특별히 자화상을 그리는 작업이었다. 기다리는 내내 맞은편 옷장에 붙은 전신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아차린 그는 무심코 자화상을 그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발견해냈는데, 이 발견이 곧바로 기다리는 시간을 메우는 새로운 노동 행위로 채택된 것은 아니었다. 수성 펜으로 거울 속의 자신을 그대로 따라 그리면 세계의 어떤 자화상보다도 더 정확한 자신의 얼굴을 몇 번이고 다시 그려낼 수 있다는 발견은, 말 그대로 회화의 편의성을 증대시키는 우연한 발견일 뿐이었다. 놀라운 일은 실제 회화의 작업 직후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그대로 따라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울 속의 그가 거울 속의 그를 따라 그가 그어나가고 있는 선을 자꾸만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있는 그의 솜씨가 부족해서 그의 그림과 거울 속의 그가 일치하지 않는 수준이라면 조금도 놀라울 일이 아니다. 놀라움의 이유는 거울 속의 그를 그리려고 그가 최초의 선을 긋기 시작하자마자 거울 속의 그가 의도적으로 그의 펜을 벗어나기 시작한다는 데 있었다. 확실히 거울 속의 그의 움직임은 의도적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번번이, 매번 다른 속도로, 게다가 다분히 신경질적으로 자신을 추적하는 그의 펜을 회피하고 있음을 그가 분명하게 알아차릴 정도로 거울 속의 움직임이 크기 때문이었다. 회피하는 얼굴을 추적하는 펜은 당연히 얼굴의 조화와 비례를 무너뜨렸으며 그 결과로 자화상은 언제나 그의 얼굴과는 전혀 다르게 그려졌는데, 딴에는 그것이 큐비즘의 특징적인 일면을 드러낸 것처럼 보이기도 해 한편으로 그는 얼굴을 한참 벗어나 있는 자신의 자화상에 꽤나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동일한 그림을 단 한 편도 생산해내지 않는 진정한 예술 행위의 발견, 이 불일치의 경험이 기다리는 시간을 회화의 작업으로 메우게 한 계기였으며 회화의 시간은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그로 하여금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했다.한 편의 그림을 막 끝낸 그는 늘 그랬듯이 거울을 향해 흡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웃음의 순간, 이 웃음이 결코 진실로 만족스러운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알았다. 거울 속의 그는 억지로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억지스러운 웃음이 맹렬한 소유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도 소유하지 못했다는 강렬한 불만으로부터 유발된 것이라는 사실 역시 그는 바로 알았다. 하루에도 수백 편씩, 그 오랜 시간 자화상을 그려왔으나 자신은 언제나 최후의 한 편만을, 그것도 거울 위에서만 감상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 게다가 거울 위에 그려지는 자화상은 거울 이외의 다른 사물처럼 손에 쥐거나 옮길 수 없으므로 결국 자신이 그린 그림들 중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그림은 단 한 점도 없다는 것. 나의 예술과 노동의 행위로 생산된 결과물에 대한 소유권을 다름 아닌 내가 조금도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더 이상 억지스러운 웃음조차 웃을 수 없게 했다. 거인의 발걸음 소리와 같은 괴성을 거울을 향해 무려 백여 차례나 질러댄 다음에야 그는 가까스로 분노를 가라앉혔다. 수천, 수만 번이나 지워 없애버린 지금까지의 그림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문제는 앞으로 그리는 나의 모든 그림을 소유할 방법을 강구해내는 것인데, 답은 하나뿐이다. 일반적으로 그림은 종이나 직물 위에 그려지는 만큼 나의 자화상도 종이나 직물 위에 그리면 된다. 하지만 나의 특유한 발견은 거울에 자화상을 그리는 것이니, 일단 거울에 자화상을 먼저 그린 다음 뒤가 얼핏 비치는 종이를 거울에 대고 거울에 그린 자화상을 그대로 따라 그리면 그리는 족족 나의 그림을 소유할 수가 있다. 이제부터는 거울 속의 그를 따라 그릴 때 이전보다 좀 더 진하게 선을 그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종이 위에 거울 속의 그를 따라 그린 그림을 따라 그리기 용이해진다. 소유가 가능해진만큼 이제부터 그는 보다 진지하게 회화의 작업을 수행해 나가기로 했다. 작품을 사물의 형태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과 사물화된 그 작품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는 오직 예술가에게만 고유하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한 능력과 권리를 동시에 가지게 된 지금 나는 응당 모자람 없는 예술가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분명 앞으로 그것에 부합하는 예술가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도무지 끝을 알 수 없이 깊고 넓어서 어떤 책임과 사명도 모조리 끌어안고도 족히 남을 예술가의 정신은 무엇보다 진지해야 한다. 거울 위의 회화라는 미술사의 한 장을 차지할 회화 기법의 발견자요 개척자에게 요구되는 진지함의 강도는 유래 없이 강력할 것이다.강도 높은 진지함을 요구받는 예술가의 정신이 그에 합당한 보다 차원 높은 예술을 창작하고 생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소유의 권리를 가진 예술가의 그 의무란 현재의 극복과 고양을 통해서만 이행될 수 있다. 요컨대 예술가는, 그는, 지금보다 더한 회화의 기법을 고안해내야 하고 지금보다 더한 회화를 그려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더 진지해진다.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그가 선택한 진지함의 방법은 거울에 그려내는 그림의 왜곡의 정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화가의 의지와 의식을 통해 감각적인 세계의 상을 의도적으로 왜곡해서 그리는 방식은 이미 전통의 영역에 속해 있다. 거울에 비친 상을 왜곡된 상태로 거울 위에 그린 다음 그것을 베껴내는 방식은 그러므로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방법론적인 혁신을 시도하는, 지극한 예술 생산의 기법이다. 여기에 왜곡의 정도를 더욱 높이겠다는 것, 그것이 예술가로서 그가 택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가만히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의 그도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저러다가도, 그가 거울 속의 그를 그리기 시작하면 그는 그의 펜이 그리고자 하는 궤적을 지속적으로 배반하며 거울 위에 그려낸 그의 얼굴을 그와 전혀 다른 얼굴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이 왜곡을 보다 강렬한 왜곡으로 만드는 회화의 기법, 왜곡에 왜곡을 더해서 왜곡을 더 왜곡시키는 그 ‘더’의 기법, 그것이 무엇일까? 그는 생각했다. 왜곡에 왜곡을 더함으로써 왜곡을 더 왜곡시키려면, 그렇다, ‘더’하면 된다! 왜곡을 ‘더’ 왜곡시키려면 더하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더 할 것은 더하면 될 일이지 다른 무엇이 그보다 더 제격이란 말인가! 예술의 소유에다 그에 걸맞은 진지함까지 더해버린 자신에 대한 감탄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그를 전율시켰다. 그런데,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더할 것인가? 무엇이 왜곡의 정도를 현재보다 더 해줄 수 있을까? 그는 빠르게 방 안을 둘러보았다. 고민할 것도 없이 단박에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 다른 어떤 사물을 더한 것보다 항상 더 더해져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그의 시선이 콱 박혀 있는 지점에 놓여 있는 바로 저것이 거기에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기계였다. 기계라 해도 어떤 복잡성 자체만을 정지된 채 대변하는 사물이 아니라, 태엽을 감았다 놓으면 움직이는 인형과 그 바로 옆에 있는, 상자의 뚜껑을 열면 음악이 나오면서 발레리나가 빙글빙글 도는 모형, 둘이었다. 움직이는 것들을 더하는 것보다 더 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는 단언했다.움직이는 기계 둘을 나의 얼굴 옆에 더해 놓은 다음 그것들을 작동시켜 움직이게 한다. 그러면 거울 속의 두 기계도 따라 움직인다. 내 얼굴을 먼저 그려 일정한 왜곡의 큐비즘적 성과를 거둔 다음, 거울 속의 움직이는 기계 둘을 거울에 따라 그린다. 거울의 기계가 실제의 기계를 거울의 내가 나를 배반하듯이 배반한다면 그것대로, 하지 않는다면 또 그것대로 나는 왜곡에 왜곡을 더하는 예술적 진지함을 성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움직이는 기계의 움직임을 거울에 그리는 것 자체가 정지된 사물의 정지성을 그리는 것보다 더 사물의 왜곡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거울 속에서 움직이는 기계의 움직임을 펜으로 추적하는 동안 그 움직임이 실제의 움직임을 배반한다 해도 그것이 움직이고 있는 한 결과는 동일하다. 어느 경우든 그것은 거울 회화의 일종의 동역학, 내가 발견하고 성취한 거울 회화의 큐비즘적 동역학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엄청난 예술적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체없이 그는 작업에 착수했다.거울의 그림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기계 둘을 더함으로써 심각한 수준의 왜곡이 발생했으며, 그럼으로써 그림은 더욱 심오하고 진지한 예술의 경지를 표현해내고 있었다. 3차원 공간에서 움직이고 있는 기계를 2차원 평면으로 옮기는 작업이 만만하지는 않았으나, 만만한 일은 애초에 예술가에게 할당된 몫이 아니므로 그는 몇 번의 수정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인내의 성과물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니, 아직 손에 넣은 것은 아니다. 예술가의 마지막 작업, 예술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해야 할 단계가 남아 있다. 그는 거울에 종이를 대고 거울의 그림을 베끼기 시작했다. 작품에 대한 소유가 처음이라 그런지 베껴내는 선이 많아질수록 그의 마음 속에 묘하고 벅찬 감격이 조금씩 들어찼다. 다 베낀 그림을 멀찍이 놓고 처음 바라보는 순간, 감격은 결국 포화상태를 넘어 눈물과 함께 밖으로 넘쳐흘렀다.“진정 내 것이다! 처음 가진 진정한 내 것이다! 너 이외의 모든 처음은 모두 처음이 아니다! 오직 너만 진정한 나의 처음이다!”자신이 창조해낸 진정한 예술 작품 앞에서 그는 포효했다. 수만 번의 거울 그림 끝에 탄생한 최후의 결실이자 앞으로 탄생할 수만 점의 그림을 예비하는 최초의 성과였다.“제목을 붙여야 한다!”그래야만 소유가 완전히 마무리된다! 눈물 너머에서 그의 첫 작품이 강력하게 그것을 요구하며 어른거렸다. 어떤 제목을 붙여야 할까? 나의 처음에 어울리는 마땅한 이름이 무엇일까? 제목은 작품의 내용이나 성격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하지만 한편으로 작품을 곧장 지시하는 손쉬운 것이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화가의 그림이란, 예술가의 예술작품이란 모름지기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보다 항상 조금 더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덜 가지고 있거나 똑같이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감상할 이유가 없다. 그것에 관하여 모든 것을 알아채버린 작품은 감상이 끝난 즉시 폐기되고 만다. 예술 작품에는 도무지 모를 것이 있어야 하며 모를 것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모를 것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제목이 내용을 곧장 지시하지 않게 하는 것, 제목과 내용의 거리를 최대한 멀게 하는 것은 모를 것을 영원히 모를 것으로 남게 하는 훌륭한 하나의 방법이다. 제목과 작품 사이에는 수수께끼의 다리가 놓여 있어야 한다. 그림에 따라 다리를 놓는 방법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그림이 어떤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때는 그 사실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 제목을 붙인다. 예컨대 거울에 비친 내 방의 부분을 그림으로 옮긴다고 할 때, 거울 속에서 왜곡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그림에는 ‘1064-시간의 변형’ 등의 제목을 붙여야 다리가 놓인다. 반대로 그림이 어떤 대상을 비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때는 그 대상을 직접 언급하는 제목을 붙인다. 예컨대 거울에 비친 내 방의 부분을 그림으로 옮길 때, 거울 속에서 왜곡이 일어난다면, 그 그림에는 ‘방의 구석’과 같은 제목을 붙이면 다리가 놓인다. 이 경우에 그 대상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 제목을 붙여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감상자들에게 일정한 힌트를 줘야만 도무지 모를 것이 오히려 더 잘 도무지 모를 것으로 남기 때문에 대상을 직접 언급하는 제목을 붙이는 것이 더 낫다. 모를 것은 알 듯하지만 도무지 모를 때 더 모를 것이 되는 법이다. 그렇다면 나는 후자의 방법을 따라 내 첫 작품의 제목을 붙이면 된다. 따라서 그는 ‘발레리나와 인형이 있는 자화상’으로 어렵지 않게 자신의 첫 소유물에 제목을 붙일 수 있었다.예술이 예술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재에 대한 불만족에 있으므로 이제 남은 것은 오직 매 작품마다 정진하고 또 정진하는 것뿐이다. 비록 거울의 내가 매번 새로운 왜곡을 실현해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정진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똑같은 대상을 여러 다른 버전으로 반복해서 그려내는 것도 물론 정진의 훌륭한 실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매번 다른 대상을 그림으로써 예술 세계를 넓히고 예술 활동의 새로운 전기를 모색하는 것이 언제나 정진의 궁극적인 방향과 실천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거울의 그림을 베끼더라도 결코 거울에만 의존해서 그림을 그리지는 않기로 한다. 상이한 그림의 지속적인 산출, 매번 과거를 배반하는 변형의 생산. 이것이 이제부터 진정한 예술가의 길로 들어선 나의 유일한 목표이자 목적이 될 것이다. 그는 무섭게 그림에 몰두해 들어갔다. 좌절과 고뇌와 도약의 시간을 경과한 뒤 마침내 자기 예술의 특정한 사상과 방향성을 획득한 예술가의 역량은, 그것을 작품에 표현하기 위한 구차한 방법들을 일일이 고민하지 않아도 예외 없이 분명하게 그것이 그렇게 창조되고 나타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결과로 예술가를 끌고 간다. 그의 예술 행위는 이제 거침이 없었다. 무엇을 그릴 것인지, 어떻게 그릴 것인지 하는 고민들, 상이함과 변형의 생산과 관련된 일련의 방법적 모색과 같은 것들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행위는 그야말로 기계처럼 자동적이었다.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그는 단박에 원근 기법을 그림 속에 집어넣었다. 누군가 그의 멱살을 끌어당긴 것과 같이 불쑥 거울 바로 앞에까지 얼굴을 들이밀더니 뒤에 배치된 기계들과 자신의 얼굴 사이에 거리를 두고 입체감을 형상화했다. 다음 그림에서는 반대로 뒤로 쭉 빠진 다음 기계들을 거울에 밀착시킨 상태로 원근을 조성했다. 이때는 물론 긴 막대기에 펜을 붙여 그림을 그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기는 했으나 원근 속에서 두 그림이 표현해내는 차이의 성과를 고려할 때, 아무것도 아니었다. 동일한 대상들을 번갈아 전경과 배경에 배치함으로써, 그렇게 그려진 두 그림을 나란히 전시함으로써 그림은 전혀 다른 두 리듬의 상호 간섭을 생산하는 것이다. 자동으로, 그냥 그렇게, 그는 그것을 해냈다.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그는 단박에 기계들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분해해서 순수 기계 장치만을 자신의 옆에 배치했다. 기계 자체, 태엽 장치 자체의 순수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야겠다는 의지와 요구가 그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했을 때의 효과와 차이가 어떠하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은 행위였으나 그림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와 전혀 다른 예술성을 여실히 표현하고 있었다. 왜곡된 자화상 옆에서 순수한 기계성을 강변하고 있는 사물들은 그림 속의 인물을 그 기계적 의미로서 끝없이 간섭한다. 그 간섭은 도무지 모를 의미로 남음으로써 그림의 낯선 지평과 깊이를 일거에 획득한다. 자동으로, 그냥 그렇게, 그는 그것을 해냈다. 자동화된 예술가로서 그는 거기에 또한 원근 기법을 조합했고, 소실점을 향해 자신과 두 기계를 거울 속에 앞으로 나란히 배치했으며, 자신의 옆 얼굴과 두 기계를 사선으로 배치함으로써 구도의 파괴를 시도하는 데에까지 거칠 것 없이 쇄도해 갔다. 모든 것이 가능했으며, 모든 것이 현실화되었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이 예술이었고, 예술은 그가 한 모든 것이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 어느 순간, 자동화된 예술가로서 그는 수백 점의 그림을 소유한 자가 되었다.정진은 그러나, 끝을 모르는 법이다. 불만족스러운 현실은 예술가에게 그 동안 해왔던 모든 것에 대한 번복을 종용한다. 거울에의 의존을 줄이고자 했던 그 때 이미 그에게 끝없는 정진과 진정한 번복의 맹아가 자리 잡고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 그는, 거울에 대한 강렬한 부정과, 성취와 성과를 오로지 자신의 것으로만 취하고자 하는 열망 속에 도사리는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느닷없이 제기된 질문 앞에서 그의 정신은 곤두서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거울에 비친 나와 사물만을 그려야 하는가? 왜 거울이 보여주는 상을 베끼기만 해야 하는가? 이 정도의 예술적 능력을 가진 자가 더 이상 거울에 의존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이 질문들은 자신에게 결국에는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을 질문들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거울 그림의 발견을 가능케 한 재능과 지금까지 중단 없이 발전해 온 예술적 능력의 결말에 순전히 개인의 역량만으로 생산될 예술품에 대한 예술가의 탐욕이 배정되는 것은 그 자체로 일종의 예정된 서사다. 결말에서 다시 완전히 새로운 도입을 감행하는 것, 그럼으로써 결코 끝나지 않을 서사를 새로 시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가의 숙명이요 사명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내가 발견한 거울 그림을 과감하게 부정해야 한다. 가장 위대한 성과를 폐기 처분함으로써 그것이 가장 위대하다고 믿었던 그 믿음을 보란 듯이 추월해버려야 한다. 위대함을 초월하는 더 강한 위대함을 새로운 예술로서 과시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노력은 나로 하여금 부정과 번복의 위대한 성공을 직감하게 한다. 한껏 고양된 나의 예술적 능력은 한시라도 빨리 거울을 버릴 것을 나에게 재촉하고 있다. 나는 너를 더 이상 베낄 이유가 없다.“이 순간부터 나는 오직 나만의 그림을 그릴 것이다. 너는 더 이상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위대한 예술가요 화가다. 위대한 화가는 결코 거울 위에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거울을 노려보며 그는 천천히 두 기계 장치를 작동시켰다. 기계가 움직이자 거울 속의 그가 움직이는 두 기계 가운데에서 그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을 마주 노려보며 그는 펜을 움켜쥐고 종이를 자신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를 노려보고 있는 거울 속의 그를 그리기 위해 그가 최초의 선을 종이에 그으려는데, 그 때였다.“쾅!”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란 초식동물처럼 그의 목이 오른쪽 창문으로 홱 돌아갔다. 폭발음이었다. 잠깐의 시간 뒤 소리는 또 들려왔다.“쾅!”그가 벌떡 일어났다.“거인이 왔다! 이번에야말로 분명 거인이다! 쿵쿵대는 이 소리가 거인의 발소리가 아닐 리가 없다!”“쾅!”“쾅!”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또한 처음보다 더 규칙적이었다. 거인이 일정한 속도로 한 걸음씩 도시를 가로질러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거인이 내리는 결론이 무엇이든 그는 거인의 선택과 처분에 모든 것을 내맡길 준비가 완벽히 되어 있었다. 소리의 크기로 보아 거인의 거대한 발바닥이 자신의 집 창문을 캄캄하게 가릴 때까지 채 몇 분이 남지 않았음을 느낀 그는 떨리는 몸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일정한 예의와 격식을 갖추고 반갑게 거인을 맞이할 목적도 있었지만, 주체할 바 없이 끝내주는 기분을 자신이든 주변이든 무엇이든 바꿔놓음으로써 완전히 새롭게 만끽하고 싶은 이유가 더 컸다.“쾅!”“이런! 다 왔다! 거의 다 왔어!”놀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거인이 발걸음을 내딛자, 그저 가만히 기다리다가는 정말 숨이 터져 죽을 지경이 되어 그는 거인처럼 성큼성큼 온 방안을 빠르게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두 팔을 있는 대로 크게 흔들며 발로는 방바닥을 있는 힘껏 굴러가면서 십 수 걸음을 걷고 나자 두 발 뒤꿈치가 금세 아파왔다. 거인의 걸음은 그만 걷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주저앉아서 연신 뒤꿈치를 손으로 문질러 대면서, 그래도 웃음만은 결코 멈출 수 없어 그는 고통의 신음 중간중간에 환희의 깨웃음을 간헐적으로 섞어 넣었다. 그러나 여유를 너무 부렸다. 이 정도 시간이면 이제 거인의 다음 발걸음은 내 차례다. 고통이 다 가시지 않은 발로 그는 절뚝거리며 빠르게 창문으로 걸어가서 커튼에 바싹 귀를 댔다. 아니, 귀가 문제가 아니다. 거인이 내디딜 다음 발이 내 집의 창문이라면 귀가 아니라 눈으로 캄캄해질 내 창을 바라보아야 한다. 거대한 신체로 인해 밤과 같이 어두워질 창 너머로 다가오는 거인을 내 눈으로 똑똑히 맞이해야 한다. 그는 커튼이 쳐진 창문 앞에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버티고 서서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몇 초 뒤 자신에게 거인이 내릴 결론을 기다렸다. 그는 두 눈을 최대한 부릅떴다. 바로 지금일 것이다! 빛을 가리고 거인이 막아선 내 방은 바로 지금 어둠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지금이다! 지금 거인은 바로 내 방 창문 앞에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재빨리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그의 몸 전체를 관통했다. 이것은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득달같이 거울 앞으로 달려간 그는 펜과 종이를 품에 부둥켜안고서 창문을 향해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지금은 안 돼!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안 돼! 왜 지금이야 왜! 나는 더 이상 거인이 내릴 결론이나 처분 따위 필요 없어! 나는 내 그림을 그려야 해! 완전한 내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쾅!”창문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겁에 질린 쥐새끼처럼 고개를 숙인 채 방 구석 여기저기를 잽싸게 쏘다녔다. 거인의 발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눈 하나와 팔 하나 이외의 모든 신체를 거인에게 내줄 수 있다! 그래, 거인의 발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 거인은 자신의 신체만큼 보폭도 크니 거인의 첫 발을 피할 수만 있다면 다음 발은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지체 없이 일어나서 창문의 커튼을 홱 젖혔다. 수십만 발의 화살처럼 빠르고 육중한 빛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거인을, 거인의 걸음을 보아야만 거인의 발을 피할 수 있다! 창문 앞에 서서 그는 빛으로 가려진 시야가 확보될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눈앞에 거인은 없었다. 그는 성큼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창 밖에 펼쳐진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았지만, 어디에도 거인은 없었다. 분명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고 직전에는 창문이 떨리기까지 했는데, 거인은 없었다.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기 시작하고, 펜과 종이를 움켜쥔 두 손의 힘이 풀리는 듯하던 그 때, 그러나,“쾅!”하고 폭발음이 다시 터졌다.“도대체 이게 뭐야! 거인은 어디에도 없단 말이야!”“쾅!”폭발은 이제 그의 방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쾅!”게다가 밖에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쾅!”이제 폭발의 보폭은 그물처럼 촘촘하고 좁아졌다.“쾅!”소리와 소리의 간격 속에 숨으려던 그의 시도는 모두 헛수고가 되고 말 것이다.“쾅!”폭발은 마치 쥐새끼같은 그의 걸음을 좇고 있는 듯 보이기까지 했다.“쾅!”순간 그는 결코 폭발의 처분을 피하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다. 거울 앞에 서 있는 자신을 그는 바라보았다. 거울 속에서 두 기계 사이에 서 있는 그가 그를 마주보았다. 움켜쥐고 있던 펜과 종이를 그는 놓아버렸다. 거울 속의 그도 그렇게 했다.“쾅!”결국 마지막 폭발은 그 안에서 일어났다. 그는 터져 버렸다. 터져 버리는 그를 거울 속의 그가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끝>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2015-12-31 경인일보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소감/김 환

소설의 등 뒤에 아무 것도 없는 채로, 아무 것도 없게 쓰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래와 기원은 서사를 분명한 목적지에 이르는 길 위를 걸어가도록 손쉽게 강제한다. 안락한 강제성 안에서 서사는 쓰는 자의 오직 물리적일 뿐인 노력과 의지와 수고에 정확히 부합하는 줄거리만을 자신의 몸으로 가진다. 그러나, 그러므로, 그것으로 끝이다. 서사를 끝내지 않기 위해서는 오히려 소설 안에서 서사를 정지시켜야 한다. 쓰는 자의 기억과 기대조차도 일말의 소환될 여지가 없이 정지된 서사는 쓴다는 행위, 쓰고 있다는 것, 그렇게 써 있다는 것 자체를 소설 요소의 가장 우위에 놓는다. 정지된 서사는 정지되어 있으므로 당도할 분명한 목적지를 갖지 않는다. 도무지 이를 데가 없는 길 위에 있는 서사는 그 순간, 하나의 이미지, 혹은 한 편의 시가 된다. 이것이 끝나지 않는 서사로서 소설의 핵심이다.소설의 등 뒤에 아무 것도 없는 채로, 아무 것도 없게 쓰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동시에 그것이 끝이다. 시작과, 그것과 동일한 끝 사이에서 쓰는 자는 오로지 주사위 놀이만을 할 뿐인 신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나의 글을 읽어 준 타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심사위원들에게 더없이 감사하다. 그리고 언제나 나와 함께 그가 서 있었으며, 지금도 서 있다.김환

2015-12-31 경인일보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평/류보선 교수·노희준 소설가

모든 미학은 아슬아슬함을 추구한다. 표면장력이랄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완벽한 결함’이나 ‘불가능성의 증명’에 가깝다. 종종 절묘하게 모자란 상태가 극대화된 긴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본심에 올라온 응모작은 쉽게 분류됐다. 안정성이 뛰어난 작품과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품. 전자가 골고루 잘하지만 이렇다 할 특기는 없는 모범생의 성적표 같았다면, 후자는 무림으로 뛰쳐나가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용기와 내공이 불안한 문하생의 대련 같았달까. 취향 판단으로 흘러서는 안되겠기에 둘 사이의 간극에서 우열을 가리기가 몹시 까다로운 심사였다. 그럼에도 안주보다는 모험에, 현상태보다는 가능성에 손을 들어주자는 쪽으로 협의가 이루어졌다.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아홉 편이었다.‘이제는 사라진 직업의 역사’는 인터뷰의 형식으로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사변성과 허구성을 버무리려는 의도까지는 좋았으나 그 과정에서 톤이 흔들린다. 블랙코미디의 도입은 자구책일뿐 해결책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특정 기성작가의 작품경향이 엿보인다는 점도 당선작으로 뽑기를 망설이게 했다.‘요한의 사례’는 교차시점을 사용하여 사실의 광기가 아닌 진술의 광기가 어떤 식으로 확산되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구조를 갖추었으나 그에 걸맞은 스토리의 참신성을 확보하지 못하여 점차 클리셰로 함몰되어가는듯한 인상을 주었다. 두 작품 모두 자신의 힘을 감당못해 엉뚱한 방향으로 해머를 날려버리는 회전던지기 선수를 보는듯했달까.‘폭발’은 실험적인 서사구조를 떠받치기에 충분한 진지함과 치열함을 갖추고 있었다. 적당히 비워놓음으로써 형상화하는 핍진성의 측면에서도 세월이 엿보였다. 다만 이러한 내적질서를 감안할 때 결말에 반복해 등장하는 거인은 실망스럽다못해 생뚱맞았다. 결말만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뽑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심사위원류보선(문학평론가, 군산대 교수)노희준(소설가)류보선(왼쪽) 교수와 노희준 소설가가 소설부문 평가를 하고 있다.

2015-12-31 경인일보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소감/김이솝

빗방울이 차갑게 공중에 붐비고 있습니다. 8층에서 내려다보는 세계는 어제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제까지의 김이솝이 아닌 것에 대하여 스스로 놀라고 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접하기 전과 후의 모습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 것인지!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어느 날 갑자기 시가 찾아와 평생 열병을 앓게 하고 시 중독자로 만들어 버리더니 이젠 아예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시 내림의 형벌을 가하고 맙니다.그러나 나 자신이 자초한 일입니다. 그 운명을 받아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상처와 역사와 시간의 긴 타래 속에서 더 고뇌하고 좌절하고 극복하라는 명령을 내가 내립니다. 시가 나를 구원해 준 것처럼 내 시가 아파하는 모든 사람, 사물,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들을 치유하고 구원해 주기를 바랍니다. 소통되는 시를 쓰겠습니다. 지금 내리는 겨울비처럼 세상에 붐비는 시를 쓰겠습니다.장석주 선생님 감사합니다. 신미균 시인님, 이진명 시인님, 임동윤 시인님, 문정영 시인님 감사합니다. 시사랑 회원님들, 서교동 시의 도반, 문우님들 감사합니다. 미천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경인일보 담당자님들 정말 고맙습니다.앞으로 좋은 시 쓰겠습니다!■ 약력 1962년 대전출생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졸업현재 (주)해외인증센터 근무김이솝

2015-12-31 경인일보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평/최동호·이승하 시인

예상을 넘어서는 좋은 수준의 작품이, 그것도 예년보다 훨씬 많이 답지한 것은, 중앙과 지방의 간격이 그만큼 좁혀졌다는 뜻일 터이다. 수원과 인천은 물론 서울에서도 많은 예비시인들의 작품이 날아와 쌓였다. 당선작은 신춘문예 역사상 유례가 없었을 거라 생각되는데, 지리산 일대에서 준동하다 죽어간 두 파르티잔(빨치산)과 죽음을 지켜본 어떤 여성의 생을 다룬 시다. 현대사와 가족사와 개인사가 중첩되어 있는데 시는 짧다. 한국전쟁 전에, 전쟁 과정에, 그리고 휴전 후에 몇 명이 지리산 일대에서 죽어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들이 묻힌 지리산 골짜기/ 유골을 찾을 때까진 살아 있어야 한다”고 삽을 놓고 울던, 고인의 어머니와 아내는 이제 연로해 몸도 마음도 성치 못하다. “며느리가 먹여주고 있는 대봉을/ 다 핥지 못하고/ 뚝뚝, 생혈(生血)을 떨구는 어머니”의 그 생혈은 눈물일까 홍시일까. 눈도 귀도 어두운 노파는 눈이 잘 안보이는 이유가, 귀가 잘 안 들리는 이유가 노환에만 있지 않다. 그 시절에 젊은 아낙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고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었다. 노화로 인한 것이 아니라 60년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임을 알고 있는 시인의 역사의식을 두 심사위원은 높이 사기로 했다. 생략과 비약이 좀 심한 것이 약점이지만 독특한 은유법과 의미심장한 상징화는 칭찬해줄 만한 장점이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소 발굽에서 꽃피고(박윤우)’가 단연 높았다. 문제는 이 작품을 받쳐주는 작품이 없다는 것이었다. 시 한 편만 놓고 본다면 신춘문예 당선작 중에서도 화제가 될 시인데 아쉽고 안타깝다. ‘도배사(홍정선)’의 튼튼한 주제의식, ‘늦은 마트(권수옥)’의 따뜻한 시선, ‘절름발이(이경동)’의 세심한 관찰력, ‘스타킹페티시(이인영)’의 신세대적 감각도 놓치기 아까웠지만 내년을 기약하며 더욱 열심히 습작하기 바란다. 한두 해 늦게 등단해서라도 오래오래 시를 쓰는 것이 중요한 일이므로.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낙선자들에게는 격려의 악수를 청한다. ■심사위원최동호(시인, 고려대 명예교수)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이승하(왼쪽) 시인과 최동호 시인이 시부문 평가를 하고 있다.

2015-12-31 경인일보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2016 경인 신춘문예 총평

경인일보 신춘문예 서른번째 주인공은 ‘폭발’의 김환, ‘대봉’의 김이솝이다. 올해 도착한 작품들은 어느 때보다도 심사위원을 괴롭혔다. 소설 부문은 응모작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한 편의 당선작을 선정하기 까지 오랜 고민이 이어졌다. 예심을 맡은 서진연, 진연주 작가는 “저마다의 개성과 장점을 가진 작품이 많았지만 조금씩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고 평했다. 시 부문은 기성시인들의 응모작이 여러 편 있었다. 권성훈 시인은 “신인들을 위한 몇 안되는 자리이니만큼 이들의 작품을 가려내며 예심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소설 당선자 김환(39)은 생업을 접고 지난 6년 동안 소설 쓰기에 매진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철학을 공부하던 그는 학업을 중도에 그만두었다.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인문학 전반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한국문학에서는 예술을 볼 수 없다’는 자각에서 출발한 그의 소설적 자의식은 단호하다. 그는 “한국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매몰돼 있다. 연예프로그램과 같은 소설도 나름의 역할을 하지만 그런 것만 대접받아서는 안된다. 우리에게는 카프카나 도스토옙스키가 없다. 지향할 수 있는 소설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또한 “상상력은 삶으로 증명할 때 윤리가 생긴다. 상상력의 힘으로 트렌드를 넘어서서 내 안의 생각들을 써낼 것”이라고 말했다.시 당선자 김이솝(52)은 50여년 품고 있던 꿈을 이루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쓴 ‘아우’라는 시가 학교 신문에 실린 이후 그는 시인이 되리라는 꿈을 놓은 적이 없다. 어린시절 ‘시를 써서는 세상을 살 수 없다’는 어머니의 만류로 국어국문학과 진학을 포기할 때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시를 곁에 두었다. 당선작 ‘대봉’은 그가 지난해 가을 지리산에서 본 드넓은 대봉밭에서 탄생했다. 대봉을 사러 갔다가 노파와 아주머니에게 들은 빨치산과 남부군 이야기가 그에게는 시로 남았다. 그는 “지나치게 서정적이거나 난해한 시보다는 울림을 주고 정서를 환기시키는 시를 쓰려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가 대중에게 멀어지고, 시는 시를 사는 사람들만의 세계로 갇히는 것이다. 감정, 감동을 환유시켜서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시를 쓰겠다”고 말했다.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2015-12-31 민정주

등단 꿈꾸는 문학도들의 ‘등대’

경인일보가 2016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한다. 수도권 지역 언론 중 유일무이한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그동안 수 많은 문인이 거쳐간 문청 등용문이다.1986년부터 91년까지는 소설, 시, 시조 3개 부문에서 공모를 했다. 93~94년에는 시조를 대신해 동화부문에서 등단자를 배출했으며, 96년부터는 소설과 시 부문에서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94년에는 경인신춘문학회가 사화집 ‘우리시대는 文學的이다’를 펴냈다. 93년까지의 당선자 23명의 작품 126편이 수록돼 있다.경인일보 신춘문예는 남녀노소,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공정한 심사를 통해 신예를 탄생시켰으며 이들 중 많은 수가 문단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2010년 시 부문 당선자 김진기씨의 경우 다른 여러 언론사에까지 소개되며 이슈가 됐다. 당시 73세였던 김 씨는 전국 신춘문예 최고령 당선자로 이름을 알렸다. 평생 문학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의 사연은 많은 문청들을 비롯해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2012년에는 고등학생이 등단해 눈길을 끌었다. 인천 강화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승혁 씨는 당선의 기쁨을 ‘입시에 눈이 빨개져 있던’ 같은 반 친구들과 나누며 정진하는 시인이 될 것을 약속했다.1992년 소설부문 당선자 안은순 작가는 등단 20년만인 2012년 첫 소설을 발표하며 문학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내비쳤다. 이밖에 김현영, 홍명진, 심은섭을 비롯해 경인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이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다.2016경인일보신춘문예는 오는 12월 4일까지 시(3편 이상, 당선작 상금 300만원)와 단편소설(원고지 80~100매, 당선작 상금 500만원)부문 공모를 진행한다.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응모 및 문의:(16488)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효원로 299 경인일보사 빌딩.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자 (031)231-5385, 5348

2015-11-16 민정주

'세월 지나 작가로 산 것이 축복이기를…'

'2015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12일 오후 3시 경인일보 본사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는 단편소설 부문 심사를 맡은 박범신·방민호 소설가, 시 부문 심사를 맡은 유성호·권성훈 문학평론가와 송광석 경인일보 대표이사 사장 및 임직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단편소설 '아저씨, 안녕'으로 당선된 박영씨는 "책을 통해 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용서할 수 있었다"며 "누군가에게도 그런 힘이 될 수 있는 내 이야기를 펼쳐보이겠다"고 전업작가의 포부를 밝혔다. 박범신 작가는 "일흔살까지 순정한 영혼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소설가이기 때문이었고 이는 축복이었다"며 "박영씨도 내 나이가 됐을 때 작가가 된 것이 축복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작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시 '모자이크'로 당선된 이인서씨는 "늦게 시작해 마음이 조급했던 만큼 오늘이 더 기쁘다"며 "당선은 내 꿈이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고 옆에서 응원해 주신 분들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독자와 소통하는 시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유성호 시인은 "이인서씨가 늦게 등단했지만, 시는 젊게 쓴다"며 "오늘이 작가로서의 의미있는 출발이 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송광석 사장은 축사를 통해 "당선자들이 자신을 등단시킨 박범신 작가 등 문단의 거목들을 의지해 문학적으로 큰 성취를 이루기 바란다"고 말했다.이날 당선자에게는 상패와 소설부문 상금 500만원, 시 부문 상금 300만원이 수여됐다. /민정주기자▲ 12일 오후 경인일보 본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5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소설부문 박영(왼쪽)·시 부문 이인서 당선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임열수기자

2015-01-12 민정주

[2015 경인일보 신춘문예]시 부문 심사평/문정희·유성호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참으로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셨다. 그 매체적 위상이 하루하루 달라져가는 경인일보에 읽을 만한 작품들이 이렇게 많이 투고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부쳐진 작품들을 여러 차례 읽어가면서, 일부 작품들이 만만찮은 안목과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시단의 주류 형식을 추수하거나 판박이에 가까운 관습적 상상을 보여주지 않고,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쏟은 것도 퍽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시의 미래적 좌표를 개척해가는 생산적 면모라고 생각되었다.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분들을 가나다순으로 밝히면 김건화, 김덕현, 김재희, 김효숙, 소선아, 오늘샘, 이인서, 이준성, 한용규 씨 등이었다. 오랜 토론 끝에 심사위원들은 이인서 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당선작으로 결정된 이인서 씨의 '모자이크'는 몇 개의 감각적 장면들을 모자이크한 일종의 감각 시편이다. 충격과 반응으로서의 '돌'과 '파편' 사이에서, '구멍'과 '사나운 선' 사이에서, '목소리'와 '얼굴' 사이에서 각각의 모자이크들은 스스로의 독자성과 서로를 얽는 연관성을 동시에 완성하고 있다. 결국 "깨어진 균열의 힘으로 버티고 서 있는 집"이라든지 "깊숙한 구석까지는 채 다다르지 못한 금" 등의 표현이 시인이 '시'를 통해 가 닿고자 하는 세계에 대한 불가피성과 불가능성을 동시에 알려준다. 그래서 "깨진 햇빛 조각 하나가 섞여 있는 창문"은 시인이 가 닿아야 할 '시'의 궁극적 좌표가 되는 셈인데, 결국 이 시편은 자신이 어떤 시를 써야 할지를 모자이크로 그려낸 일종의 메타시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정성과 진정성 그리고 밀도가 잘 어우러진 결실이라고 생각된다.당선작이 되지는 못했지만, 구체성 있는 언어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적 성채를 구축한 경우를 많이 발견하였다는 점을 덧붙인다. 시적 대상을 좀 더 일상 쪽으로 구체화하여 우리 주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타자들을 애정 깊게 응시한 결실들도 많았다. 다음 기회에 더욱 풍성하고도 빛나는 성과가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번 응모자 여러분의 힘찬 정진을 당부 드린다.■ 심사위원문정희(시인, 한국시인협회장),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문정희(오른쪽) 시인과 유성호 문학평론가가 시부문 평가를 하고있다.

2015-01-01 경인일보

[2015 경인일보 신춘문예]2015 경인 신춘문예 총평

2015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은 소설 '아저씨, 안녕'과 시 '모자이크'다. 두 작품 모두 사람을 끌어들이는 중력을 지녔다. 심사위원들의 손도 이들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향했다. 심사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오히려 당선작이 결정된 이후 작품에 관한 평가와 칭찬이 오래 이어졌다. 소설부문 당선자 박영(32)씨는 어린 시절부터 문인의 꿈을 품고 살았다. 16살에 첫 소설을 쓰기 전까지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녀의 문학적 재능을 발견한 주변 사람들은 "시가 서사를 가지려 한다"며 소설 쓰기를 권했다. 그 날 이후 모범생이었던 그녀는 공부는 안하고 소설만 읽는 문제적 학생이 됐다. 문학특기생으로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글쓰기를 통한 소통을 도모하기 보다는 '그로테스크'한 것에 빠져 '나만의 놀이를 하듯' 소설을 썼다.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달라졌다. 박영 씨는 "최근 몇 년사이 소통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재미도 있고, 주제의식도 담긴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선작 '아저씨, 안녕'은 한 공간에 같이 있으면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보느라 '존재하는 이의 부재'를 경험하는 요즘의 현상을 비튼 작품이다. 그녀는 "실상과 반대로 스마트폰만 있으면 같이 있던 사람이 없어도 그 사람이 존재하는 것 같은 효과가 일어나는 현상을 상상했다"며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정말 함께 있는 것인가를 꼬집어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시 부문 당선자 이인서(필명·55)씨는 10여년 전부터 시를 쓰다 5년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에 등록했다. 본격적으로 시를 써볼 결심이 섰다. 시인이 되기로 했다. 그러나 무참히 혹평을 받았다. '당신이 쓴 것은 시가 아니다'라는 말을 들은 그녀는 매우 성실히 공부에 임했다.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일주 일에 한 편을 목표로 5년여동안 시를 썼다. 당선작 '모자이크'는 자신의 아픔을 꺼내어 쓴 시다. 이인서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것들, 깨진 얼음판을 통해 보이는 것들을 소재로 쓴 시로, 안좋았던 기억을 어루만져 준 작품이라 애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너무 묘사에 치우진 게 아닌가 하며 걱정도 했었는데 당선작이 돼서 정말 기쁘다"고 전했다. /민정주기자

2015-01-01 민정주

[2015 경인일보 신춘문예]소설부문 심사평/박범신·방민호

무결점 사랑의 메시지2014년 12월 15일 오전 11시 30분. 경인일보 신사옥 3층에서 심사위원들은 만났다. 이미 예심을 거쳐 올라온 여덟, 아홉 편의 우수한 응모작들을 며칠에 걸쳐 읽고 만난 것이었다. 이 가운데 대략 서너 편을 먼저 꼽아들고 최종 당선작을 가려내게 될 것이었다. 심사위원은 보시다시피 두 사람, 의견의 차이가 크면 자칫 긴 시간을 작품의 장단점들을 놓고 토론을 벌여야 할지도 몰랐다.난 이게 좋던데?한 사람이 이렇게 말을 꺼내는데, 그것은 다른 한 사람도 내심 일등작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다.저도 그렇습니다.생각이나 감각이 같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신기하게도 칼자루 부러진 것을 맞추듯이 의견이 딱 맞아 떨어졌다. 심사가 이렇게 간편하게 끝나기도 어려울 것이다.당선작인 박영 씨의 '아저씨, 안녕'은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다. 기본 설정이나 플롯, 문체 면에서 이만한 밀도를 가진 작품도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고통과 절망과 고독이 넘치는 이 시대에 순수한 사랑을 그 해법으로 제시할 수 있었던 그 혜안이다.최현준씨의 '네버랜드에서 문워크를 추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유머러스한 전개와 환상적인 기법을 살려 아주 효과적으로 제시한 수작이었다. 두 편을 당선작으로 올릴 수 없었음을 유감으로 생각할 정도다. 좌절하지 않고 정진해 주시기를 당부 드린다.장미영씨의 '오렌지 빌라'는 한 빌라에서 일어난 작은 에피소드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현대인의 고독을 의미심장하게 드러내고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작자가 의도한 것이겠지만 중심사건의 뼈대가 굵지 못한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다.'아저씨, 안녕'의 작가 박영 씨의 당선을 깊이 축하 드린다. 당선의 영예를 바탕 삼아 훌륭한 소설가의 길을 걸어 주시리라 기대해 마지 않는다.■ 심사위원박범신(소설가, 상명대학교 석좌교수)방민호(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 박범신(오른쪽) 소설가와 방민호 문학평론가가 소설 부문 평가를 하고있다.

2015-01-01 경인일보

[2015 경인일보 신춘문예]소설부문 당선자/박 영

모래 위에 글자를 적으며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뭇가지 조각을 연필처럼 쥐고는 스삭스삭. 엄마가 저녁을 먹으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글자 놀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면 세상이 컴컴하게 어두웠습니다. 글자들이 모래에 새겨지던 그 소리는 지금도 제 안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제 마음은 여전히 그 모래 터에 묶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선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저는 아무 글자도 적지 못한 채 멈추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저 혼자 모래위에 적었던 글들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더욱 신중해져야겠습니다. 제가 적은 글이 바람에 날아가는 가벼운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생에 조금이나마 무게가 있고 위로가 되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부지런해져야겠습니다.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엉덩이를 붙이고 끝까지 쓰는 게 작가라는 것을 알려주신 고려대학교 교수님 고맙습니다. 자신의 글을 퇴고하는 작업도 소설의 일부라는 것을 일깨워주신 예술서가 이평재 선생님과 문우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지면에 글을 쓸 수 있게 문을 열어주신 박범신, 방민호, 서하진 심사위원님께도 머리 숙여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제일 먼저 알리고 싶었던 가족과 멀리서 공부중인 새벽이에게도 힘내자고 이 자리를 빌려 전하고 싶습니다. '사람의 고통을 껴안는 글을 쓸 것을 몸소 알려주셨던 선생님' 요즘 들어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이제는 한 번 꼭 찾아가 뵙고 오랜만에 담소를 나누고 싶습니다.■ 약력1983년 서울 명동 출생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박 영

2015-01-01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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