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신춘문예

 

"경인일보 신춘문예" 역경 딛고 당선 '40대 여성 파워'

[경인일보=]올해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은 40대의 두 여성이 차지했다.지난달 21일 치러진 '2011 경인일보 신춘문예' 최종 심사에서 전북 전주에 사는 김경나(본명 김미경·40)씨가 소설 '비단길'로 당선됐으며, 시부문에서는 동두천에서 거주하고 있는 오다정(본명 김정심·46)씨의 '중세국어 연습 혹은 그림'이 당선작으로 뽑혔다.김경나씨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년간 은행원으로 일한뒤 가정주부로 생활하다 뒤늦게 원광대 문예창작과에 입학, 만학의 의지를 불태우며 소설과 시 등을 공부했다. 김씨는 "어렸을적부터 가정사가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어 이런 경험담을 꼭 소설로 쓰고 싶어 문학을 공부했다"며 "앞으로 더욱 정진해 황순원 같은 훌륭한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시부문의 당선자 오다정씨는 학창시절 백일장 대회를 휩쓸며 문학적 재능을 발휘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농사일과 학원강사, 분식점을 운영하는 등 생업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서른이 돼서야 국민대에 개설된 평생교육원 과정을 통해 시 창작이론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고, 여러 스승들에게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시세계를 정립하게 됐다.오씨는 "시는 나에게 있어 평생의 빛같은 존재"라며 "아이들에게 오랫동안 글쓰기를 가르치며 언젠가는 내 작품을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번 당선으로 문인으로서의 당당한 자격을 얻게돼 기쁘다"고 말했다.한편 이번 2011 경인일보 신춘문예에는 시 부문에 207명 851작품, 소설부문에 107명 115작품 등 총 966작품이 접수됐으며, 이중 예선을 거친 소설 11편, 시 20편이 본심에 올라 최종 당선작이 결정됐다.시상식은 오는 13일 오후 2시 경인일보 본사에서 열리며 소설 당선자에게는 500만원, 시 당선자에게는 300만원의 상금이 각각 수여된다.

2011-01-03 경인일보

[2011경인신춘문예 소설부문]심사평/임철우·김형경

[경인일보=]최종심에 올라온 열 한 편의 작품은 저마다 뚜렷한 개성을 선보이면서도 일정한 완성도를 성취하고 있었다. 많이 써 본 솜씨에 숙련의 기미들이 묻어났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소설적 구성 측면에서 취약함을 드러낸다는 점이었다. 소설은 이야기를 뼈대로 이루어지지만,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 소설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이야기 속에 드러나는 작가의 세계관, 그것을 바탕으로 직조해내는 플롯, 그것을 통해 표현되는 주제 등이 개연성있게 조화될 때 소설이 완성된다는 점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최종적으로 검토된 작품은 다섯 편이었다. 오금숙의 '날개'는 이상의 '날개'를 깔끔하게 패러디한 작품이나, 원본을 넘어서는 자기만의 세계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정영서의 '오버행 구간'은 취업난, 루저 등을 소재로 하여 현실감을 획득하고 있으나 문제를 구조적인 틀 속에서 읽어내는 시각이 부족했다. 박경서의 '안드로메다'는 공들여 쓴 매끈한 작품이지만 구태의연한 소재와 자의식 과잉의 문체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졌다. 김의경의 '웰컴 투 더 바우하우스'는 현실의 한 지점을 생동감있게 포착한 점은 흥미로우나 한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고 주제를 향해 이야기를 수렴시키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당선작으로 결정된 '비단길'은 국도변에서 만난 세 인물의 갈등 관계를 통해 우리 생의 유랑과도 같은 본질을 한 켜 드러내 보이는 작품이다. 차분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역량이 뛰어나고, 이야기속에 숨길 것과 드러낼 것을 적절히 엮어가며 끝까지 긴장을 유지시키는 능력도 돋보였다. 삼자 갈등에서 항용 예견하게 되는 상투적 결말을 파괴하면서 제시되는 클라이맥스의 의외성이 요술처럼 주제를 확장시키는 효과를 보는 일도 즐거웠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문장이나 표현 장치에서 디테일에 좀더 신경썼으면 하는 점이다.

2011-01-03 경인일보

[2011경인신춘문예 소설부문]당선소감/김경나

[경인일보=]철학 수업을 듣고 있다가 연락을 받았습니다. 수업 주제가 '죽음'이었는데 전화를 받자 다시 살아난 사람처럼 어찌된 일인지 제가 걸어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소설은 저에게 무엇이었을까요. 죽음…? 그런 소설을 왜 쓰느냐고 사람들은 물을 것입니다. 죽음을 떠올리면 저는 안경을 쓴 것처럼 소설이 더 잘 보였습니다. 신춘문예 당선소감에 죽음을 쓰고 있는 지금, 이 감각을 저는 즐기고 있는지 모릅니다. 당선이 이런 저 자신을 일깨워줍니다. 놀라운 일입니다.제 안에서 고통을 끌어내 준 스승 윤후명 선생님께 깊은 신뢰를 전합니다. 야생마같다며 붙들어 앉히고 저를 글 쓸 수 있게 해준 큰 은인입니다. 불안해하는 저에게 헌신적인 안정을 보여준 생오지 문순태 선생님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부족한 부분이 글 속에 많이 보였음에도 더 큰 부분을 보아준 저의 급한 성격까지 품어준 두 분 심사위원께도 깊이 고개 숙입니다.모두 고맙습니다. 제 마음속 지인들, 가족들, 전화로 넋두리를 받아주고 제 마음을 아껴주는 이십년지기 친구 현량이에게도 포옹 전합니다. 저를 감당해주는 희생의 대명사 남편에게 이 기쁨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시인들에게 따뜻한 눈빛을. #약력1971년 전북 김제 출생학산고등학교, 원광대 문예창작과 졸업현 전북 전주시 거주, 가정주부

2011-01-03 경인일보

[2011경인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비단길/김경나

[경인일보=]노인이 냄새나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었다. 끄응, 노인이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화장실의 깊은 악취가 바람을 타고 내가 있는 곳까지 흘러 들어왔다. 가슴이 땀에 푹 젖은 노인이 나를 바라보았다."차가 오고 있니."문을 반쯤 열어두고 있으면서도 노인은 자꾸 내게 물었다. 땀에 젖은 흰 머리카락이 이마에 내려와 들러붙었다. 바람이 또 불어왔다. 사주 봐드립니다. 빈 사과 박스를 뜯어 쓴 글자가 바람에 쓰러져 땅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빈 공터 옆 수돗가에 앉아 메밀 국수를 끓이던 나는 고개를 들고 국도를 바라보았다.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길엔 아무도 지나는 사람이 없었다. 바람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고 있는 길이 보였다. 논과 밭으로 이어진 국도변은 구멍가게 하나 보이지 않았는데, 노인과 내가 있는 곳은 폐업한 자동차공업사 안이었다. 노인이 이곳을 사거나 임대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지나가다 텅 비어 찾아든 것이다.쌀이 떨어진 지가 꽤 되었다. 국수에서 옅은 진흙 색깔 물이 우러났다. 나는 국수가 익었는지 한 가닥을 잡아 끊어 먹어보았다. 잘 익었다. 씻어낸 국수를 양은냄비에 담고 찬물에 담가둔 병두유를 국수 위에 부었다. 어설프긴 하지만 그래도 콩국수였다. 지팡이를 든 노인이 검은자위 없는 눈을 불안하게 뜨며 화장실을 나왔다. 변비 때문인지 얼굴이 누렇게 떠 있었다. 나는 손님들에게 맛보이려고 잘라 놓은 수박에서 한 점을 떼어 노인의 국수 안에 넣었다."곧 장마인데 너는 걱정도 안 되느냐. 장마가 지면 손님들은 찾질 않는다.""손님도 안 오는데 수박을 팔라고요?"나는 삐딱하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남자 앞에서는 더 그랬는데, 그 버릇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곧 큰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쌓여 있는 수박들 때문에 한숨이 나왔다. 노인은 공업사 마당에 수박을 쌓아놓고 길을 지나는 손님에게 팔았다. 그것으로 수박점도 치곤 했다. 하지만 노인의 신기가 예전 같지 않았다. 가끔씩 정신은 딴 곳에 있었다. 며칠 전에는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에게 과부라는가 하면 아들이 대학 입시에 붙겠느냐고 묻는 손님에게 곧 죽을 운이니 큰 굿을 하라는 말도 했다. 주역, 당사주, 명리학 같은 점들이 있는데 누가 수박점을 보러 올까. 그래도 간혹 나같은 사람이 있긴 했다. 이곳에 처음 온 날 노인에게 점을 쳤던 기억이 떠올라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오던 손님도 너를 보면 도망치겠구나. 분을 바르거라."눈 먼 노인은 앞을 다 보는 듯 이야기했다. 국수를 먹으면서도 북어처럼 꾸덕꾸덕 마른 걸레를 주며 먼지를 뒤집어쓴 수박들을 닦으라고 했다. 기울고 있는 해이지만 아직 따가운 기운이 남아 있었다. 노인의 그림자는 바람에 날아가지도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거울 같은 그림자를 나는 애써 외면했다.노인이 수돗가에 빈 그릇을 내려놓고 앉았다. 물이 흘러나오는 수도 호스에 머리를 갖다 댔다. 그러더니 물 수압이 낮다며 투덜거렸다. 차가 오느냐고 노인이 금방이라도 물을 것 같아 나는 국도 길을 바라보았다. 앉아 있던 노인이 일어나더니 어느새 지팡이를 들고 화장실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잘 열리지 않는 문을 지팡이로 퉁퉁 두드려보고는 천천히 들어갔다. 변기는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변기 안으로 머리를 들이민 노인이 한손으로 변기 밸브를 내리자 차가운 물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기분이 좋은지 아 시원하다, 라고 중얼거렸다. 가끔 보면 일부러 그러는 것 같기도 했다.나는 설거지 그릇들을 그대로 둔 채 쌓여 있는 수박들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나도 모르게 노인을 따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가 오고 있느냐, 또 내게 물을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검은 선까지 읽어야 한다. 눈이 있으니 넌 그것까지 봐야 해."머리에 묻은 물을 화장실 바닥에 뚝뚝 떨어뜨리며 노인이 말했다. 능구렁이에다 순 사기꾼이라고 한 번은 내가 쏘아준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노인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끄응, 소리가 또 들려왔다. 나는 골라놓은 수박 위에 여러 갈래로 나 있는 선을 들여다보았다. 노인은 점칠 때 하우스 수박이 아닌 노지 수박을 꼭 썼다. 수박 속에 박혀 있는 검은 씨들을 점자 읽듯 손으로 더듬어가며 손님의 사주를 읽곤 했다."생긴 모양으로 사주를 읽고 있구나. 갈라보기 전에는 그 안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야. 안을 봐야 한다. 수박 속은… 끄응, 그 사람의 살아온 길이니까. 물론 사주를 잘 타고 난 사람도 있다."나는 못들은 척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대부분의 수박은 그저 먹을만 하지만 어떤 것은 끄응, 쉰내를 풍긴다. 속은 괜찮은데 껍질이 두꺼운 것도 있어. 꼭지가 떨어진 것도 있고 백태가 낀 듯 허옇게 보이는 먹지 못할 것도 있다."수박을 반으로 갈라 안을 들여다보았다. 촘촘하게 씨가 박혀 있었다. 씨들은 누군가 걸어간 발자국처럼도 보였다."씨가 없는 수박이 나올 때는 끄응, 그 사람이 곧 죽을 것을 암시하는 것이니 말하지 않는 게 좋다. 가만있어야 해. 자칫 다칠 수가 있다. 죽으려고 하는 자는 물귀신처럼 상대를 끌어가지."나는 크고 겉모양새가 좋아 보이는 사람들보다는 어딘가 작고 볼품없어 보이는 나 같은 사람들을 더 자주 보아왔다. 내 가족들이 그랬다. 팔려고 내놓은 수박처럼 국도변에 모여 있으면 아무도 사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꼭지조차 잃어버리고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듯한 수박을 손가락으로 통통 두드려보았다. 수박에도 마음이 있겠지. 일부러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차가 와요."나는 벌떡 일어났다. 샛길에서 차가 한 대 나오는 것이 보였다. 노인의 얼굴이 피어나고 있었다. 변기에 앉아 있던 노인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끄이익. 낡은 봉고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졌다. 볼이 부어 보이고 얼굴빛이 좋지 않은 사내였다."수박이 달고 맛있다오."가늘게 몸을 떨며 노인이 말했다. 잠시 망설이던 사내가 차에서 내렸다."이 공업사 노인이 임대한 거 아니면 창고 하나 씁시다. 다 같은 처지 아니오."갑작스런 말에 노인이 대답을 못하자 사내는 벌써 반 정도 남은 쌀 포대를 수박들 옆에 내려놓고 있었다. 사내가 봉고차 안에 든 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힘이 드는지 식은땀을 흘렸다. 다 떨어진 침낭과 가방 몇 개뿐인 데도 그랬다. 사내가 창고 안에서 나온 것은 한참 뒤였다. 간판을 든 사내는 낡은 의자를 가져와 그것을 발판 삼아 봉고차 위로 올라갔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성인용품'. 노인은 사내가 마음에 걸리는지 자꾸 봉고차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사내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노인이 알고 있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그때 바람에 화장실 문이 텅, 하고 닫혔다. 다행히 노인은 그 소리에 놀라지 않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계속 입술을 달싹거렸다. 말이 나올 듯하다 다시 들어갔다. 노인이 또 몸을 떨기 시작했다. 현기증이 나는지 중심을 잃을 것 같던 노인이 내가 있는 수돗가 쪽으로 위태롭게 걸어왔다. 땀에 젖은 노인이 내 손목을 꽉 붙들었다. 겁이 덜컥 났다. 노인의 말문이 터진 것은 그때였다."소정아."붙잡힌 손목을 노인의 손에서 빼냈다. 내 이름을 부른 사람은 아버지였다. "네게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노인을 바라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떠나질 않았던가. 내 마음속 같은 어둠이 수돗가에 내려앉아 있었다. 아버지의 목소리와 만나게 되면 갑자기 나는 기운이 빠졌다. 신기가 들어온다며 노인이 아버지 목소리를 곧잘 내곤 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나를 붙잡아두고 싶어 노인이 아버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같이 살지 않아 나는 아버지 목소리도 몰랐다. 그래도 노인의 목소리가 싫지 않아 나는 그대로 듣곤 했을 뿐이었다. 노인의 모습을 바라보자 이상하게도 다시 내 그림자가 보이는 듯했다. 그림자를 거울로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뿐일까. 거울 같은 그림자를 들여다보았다. 너무 들여다보아 거울 안에 들어 있던 내가 떠나버린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내 자신은 이미 떠나고 없고, 거울에 비친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인 것 같았다.노인의 몸 떨림이 다행히 잦아들었다. 더는 아버지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표정 없이 쭈그리고 앉아 그릇들을 찬물에 씻었다. 흘러나오는 물에 엉덩이 부근이 젖어들었다. 몸이 추웠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랬다. 노인이 휘청거리며 수도 호스를 잡아 또 머리에 갖다 대고 있었다. 얼굴이 다시 피어났다. 노인이 웃자 내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사실 나는 노인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집어넣는 어딘가 정신 나간 짓을 해도 나이 많은 노인은 아버지처럼 나를 버리거나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제나 옆에 있어주겠지. 나에게 있어 노인이란 뜻은 어디론가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라는 뜻은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이었다. 왜 세상의 아버지들은 젊은 것일까. 죽어서까지도 힘이 센 존재는 내 아버지뿐인 듯 했다. 노인은 음메에에에, 우는 하얀 양같이 나를 가끔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노인과 있으면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착한 여자처럼 노인을 무작정 믿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착한 여자란 말이 싫었다. 착한 여자란 말이 나는 꼭 기다리는 여자라는 뜻 같았다. 그래서 나쁜 여자가 되는 게 더 좋았다. 나쁜 여자란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여자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어쩐지 흑과 백 같아서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다만 떠나는 여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때는 나 자신에게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친하지도 않은 노인과 왜 이곳에 있는지 그런 의문이 일어났다. 그날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다면 나는 어디쯤에 가 있을까. 가지 못한 목적지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 있었다.그 날 나는 화장실이 급했었다. 버스를 타고 가던 도중에 내리고 말았다. 헤드라이트를 켠 버스가 묵은 트림 소리를 내며 사라져갔고, 그 순간 바람을 타고 낯익은 냄새가 코 안으로 들어왔다. 고향의 풀냄새였다. 마음 깊은 불안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풀숲 한가운데 있는 화장실은 다 죽어가는 듯 쿰쿰한 냄새를 풍겼다. 삐걱이는 문을 열었다. 독한 기운이 눈으로 파고 들어왔다. 문이 닫히지 않아 나는 열어둔 채 변기에 쭈그리고 앉았다. 구석에 한 뭉치의 종이가 놓여 있었다.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오돌토돌한 느낌이 손끝에 닿았다. 그것은 점자였다. 누가 점자책을 찢어 화장실 종이로 만들어 쓰고 있는 것일까.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국도변은 불빛 한 점 없었다. 고장난 화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기다란 대나무가 보였다. 하늘로 뻗은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그때였다.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내 잠이 깼으니 사주나 보고 가."수박점 치는 노인이었다. 고향에서 이름이 제법 알려져 있는 맹인 점쟁이였다. 발밑에서 딸각, 하는 소리가 났다. 돌이 내는 소리였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소리가 나는 돌을 바닥에 깔아둔 것일까. 막차가 올 때까지 한두 시간 기다리느니 점을 볼까.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일었다. 사주는 점쟁이의 기가 맑은 아침에 보는 것이라고 어디에선가 들은 말이 떠올랐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아픈 게 아홉수였다. 그때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수박점은 어떻게 치는 것일까. 이제 서른을 넘어선 지금 나는 대나무 앞에 홀로 서 있었다. 나는 세상을 믿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점을 보려고 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누가 기운을 드러내 보이고 답까지 준다는 말인가. 나를 세상에 내놓은 어머니도 내게 보여주지 않았던 일이었다."수박을 한 통 들고 와."수박 값은 따로 내야 한다고 했다. 조금 전에는 왜 보이지 않았을까. 공업사 앞으로 수박들이 만들어낸 듯한 작은 산이 보였다. 모양이 적당한 것을 하나 골라 품에 안았다.사무실 안은 어두웠다. 그 안에 또 작은 방이 하나 있는 게 보였다. 정자체로 쓴 글씨 종이가 벽에 붙어 있었다. '수박 씨로 당신의 운명을 점칩니다.'나는 전등 스위치를 켰다. 좁은 방 안에서 예순은 되어 보이는 노인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나를 기다렸다. 솜이 터져 나온 방석 위에 앉았다. 나도 모르게 의심이 들었다. 불에 그슬려 끝이 오그라든 플라스틱 큰 쟁반이 방바닥에 놓여 있었다. 어딘가 그럴듯해 보이는 것이라곤 방 안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마지못해 수박을 그 자리에 올려놓았다. 노인은 조용히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기다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기다림은 싸고 흔한 음식처럼 어려서 질리게 먹었던 것이다. 답을 보기 위해선 그러나 참아야 했다. 근방에서는 그래도 유명한 노인이었다. 문득 노인이 띠와 태어난 시를 물었다. 그냥 물어보는 것 같았다. 노인은 점자책도 보면서 신기로 수박점도 친다고 했다. 점자책을 펼친 노인이 또 헛기침을 했다."무엇이 궁금해 왔니."노인은 반말이었다. 어두운 방안 때문에 나도 모르게 더 긴장이 되어 목소리가 잠겼다. 하지만 신기를 보고 싶어 말을 아끼는 것도 있었다. 노인이 내 수박을 두 손으로 잡았다. 아직 반으로 가르지도 않았는데 살아온 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만 얼굴이 달아올랐다. 노인이 수박을 반으로 갈랐다. 씨들 사이로 붉은 속살이 길을 내고 있었다. 피곤에 지친 약간의 백태가 있는 창백한 인생, 손수건으로 닦아내어도 또 다시 젖던 어머니의 인생 그리고 내 인생…."다른 여자가 있어."나는 참고 있던 숨을 깊이 내쉬었다. 그 말은 오래 전에 어느 점집에서 어머니에게 해주었던 이야기였다. 나는 그때의 어머니처럼 노인의 말을 믿는 척 하며 믿지 않았다. 사랑은 거대한 도시처럼 나를 집어들어 삼키곤 했다. 왜 나는 혼자가 되어 부메랑처럼 고향으로 돌아온 것일까. 차를 타보니 고향으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 내가 있었다. 나는 가족도 고향도 잊은 채 지내오질 않았던가. 얼굴이 바람에 쓸리듯 시렸다. 고향도 나를 받아주지 않는 것일까."사막으로 가고 있군."다른 사람도 아닌 노인에게서 들으니 쓸쓸함이 더 밀려왔다. 노인이 손가락으로 수박의 씨들을 점자 읽듯이 짚어나갔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내내 마음속에 떠올렸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노인의 말 때문이었을까. 내 가슴 안으로 모래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나는 노인의 검은자위 없는 눈을 바라보았다. 수박 씨 두 개가 그 안에 들어가 있었으면 싶었다. 나는 반으로 갈라진 수박을 들여다보았다. 작은 씨 안에 선인장이 보이고 노인의 눈에서 모래 같은 점자가 보였다. 점자 같은 모래언덕이 사막의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무실 안 창문에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온통 어두운 구름뿐이었다. 별과 달이 보이지 않았다. 비단길로 향하다가 왜 이곳으로 흘러들었는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지? 나 자신도 왜 나아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서른 둘을 짊어진 내가 있을 뿐이었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자리에서 그만 일어나고 싶었다. 듣고 싶은 말은 다 들었으므로 이제 나가야 했다. 곧 버스가 올 것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 유열(幽咽)한 인생들이 점자처럼 어른거렸다. 어쩌면 누군가 내가 떠도는 이유를 알고 있을 것도 같았다. 버리지 않고 따뜻하게 품어줄 보금자리가 세상 어딘가에 있을까. "아침부터 물이 나온다고 했으니 우선 수돗가에 있는 물로 쌀을 씻어라."어느새 노인이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집에 가야 해요.""집이 어딨다구. 화장실을 깨끗이 해놓아라.""가야 한다니까요.""넌 운명이 나와 얽혀 있으니 어디로 갈 생각은 말아라."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하나. 지금 나간다 해도 갈 곳이 없었다. 따뜻하게 안아준 적이 없었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디선가 바람이 휘잉 소리를 내며 나를 밀어냈다. 어쩌면 이제 내가 어머니를 어딘가에 버려두고 있었다."씨앗은 땅에 뱉어야지 그걸 쓰레기통에 버리느냐. 나와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벽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뜬 별과 달도 나를 버리고 떠난 것 같았다. 나의 떠돎은 종착역이 있을까. 나는 지쳐 있었고 배가 고팠다. 나는 땅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넌 운명이 나와 얽혀 있으니 어디로 갈 생각은 말아라.' 노인이 했던 말이 나에게는 너를 버리지 않으마, 라는 소리로 들려왔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버스가 내게서 떠나고 있었다."차가 오고 있니."수돗가에 앉은 노인이 또 내게 물었다. 귀찮아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인은 석 달째 나를 붙잡아두고 있었다. 아니 내가 어쩌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노인에게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오늘만 해도 벌써 버스가 두어 대 지나갔다. 사내가 창고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고장난 물세차기 앞에서 멈췄다. 그것은 가동되지 않는 고물이었다. 사내가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연장통을 들고 나왔다. 이제 창고를 치우는 것도 잊고 물세차기를 고치겠다는 생각에 빠져든 것 같았다."손전등을 비추어 주거라."노인이 말했다. 어둠이 자동차공업사를 감쌌다. 나는 컴컴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의 물건들은 때가 잔뜩 묻어 있었다. 손전등을 켰다. 빛이 나의 턱을 타고 쭉 올라왔다. 거울 속의 나는 나쁜 여자였다. 손전등을 끄자 거울 속의 나는 사라졌다. 몇 분도 안 되어 사내가 물세차기를 고쳤다. 국도 길로 다시 바람이 불었다. 한 장씩 뜯어져 있던 화장실 안 점자 종이가 바람을 타고 공업사 마당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누구의 인생이 바람에 날아가다 떨어져 마당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일까. 손가락으로 볼록한 부분을 더듬었다. 꿈인 듯 다시 눈앞으로 사막이 보였다. 낙타들이 네 다리로 사막을 읽어나가며 터덜터덜 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뱀과 선인장도 있지만 나는 사막에 살고 있는 것들 중에서 바람이 만들어낸 모래언덕인 사구가 마음에 들었다. 사막의 점자였다. 사구는 곰보자국이 있는 노인의 얼굴 같기도 하고 송송 뚫린 내 가슴 속 같기도 했다. 바람이 내 얼굴과 가슴을 휩쓸었다. 어느 순간 잠잠해지면 고요가 찾아왔다. 그러나 고요는 계절처럼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모래들이 깊은 곳 안으로 들어와 욕망처럼 나를 흔들었다.손전등으로 국도변을 비추어보았다. 다시 턱을 향하여 손전등을 올려보았다. 버튼을 눌렀다가 다시 껐다. 탁, 하고 켜자 국도변 샛길 풀들이 놀란 듯 더 불쑥 자라났다. 그 안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손톱만한 불빛이 하늘거리며 내 주변을 날아다녔다. 반딧불이였다. 뒤를 돌아보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가스버너 위에서 라면이 끓었다. 양이 많아 보이게 하려고 뚜껑을 일부러 열지 않은 채 면이 불기만을 기다렸다. 가스버너 불을 껐다. 하지만 라면에 넣을 계란도 파도 없었다. 어제는 호박을 따려다가 밭주인한테 모진 욕을 들었다. 오죽하면 뭔가를 넣고 싶은 마음에 풀이라도 뜯어서 넣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나마 사내가 준 쌀로 밥을 반 냄비 해놓았다. 사무실 문을 열고 노인이 나오고 있었다. 식사 준비가 다 되었는데 어디 있는지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봉고차 있는 곳을 흘낏 나는 바라보았다."라면이 불었지 않니."노인이 큼큼, 냄새를 몇 번 맡더니 젓가락을 들었다. 사내가 봉고차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두 손으로 아랫배를 붙들고 있었다. 속이 편치 않은 모양이었다. 사내는 화장실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민망했던지 걸음을 늦추었다. 첫인상도 어딘가 장이나 간 쪽의 건강이 안 좋아보였다. 죽을 끓여줄 걸 그랬나 싶었다. 얼굴은 호랑이도 잡아먹게 생겼는데 어찌된 일인지 몸은 부실했다. 그때였다. 젓가락을 든 노인이 젓가락을 놓치는 것이었다. 노인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 진동으로 눈까지 뒤집혔다."소정아.""라면이나 먹어요."나는 퉁을 주었다. 노인은 나와 있을 때만 신기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사무실로 들어가 다 찌그러진 양은냄비를 하나 찾아 꺼내왔다. 사내는 아직도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뜸이 덜 든 뜨거운 밥을 몇 수저 퍼서 물에 섞어 버너 위에 올렸다. 끓다가 언제 불이 꺼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맨밥보다야 나았다. 사내가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디론가 떠나거나 딱히 가야할 이유도 없어 보이는 사내였다. 사내에게 죽 그릇을 들이밀어 주었다."고맙소."사내가 말했다. 별 싱거운 소리를 다 하는군.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갑자기 생각난 듯 또 사내를 바라보았다. 다 비운 그릇들을 치우려는데 노인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모처럼 배불리 밥을 먹은 날이었다. 노인은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나는 그 옆 수돗가에 앉아서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 했다. 그 순간 내가 있는 곳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언제 왔는지 사내가 등 뒤에 서 있었다. 나를 지나친 사내가 노인에게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밥을 잘 먹었다는 감사 표시인가? 생각보다는 예의가 있는 사내였다. 비디오 같았다. 하긴, 사내가 줄 것은 이것 밖에 없을 것이었다.별이 뜬 밤이었다. 초저녁잠이 많은 노인은 일찍 잠이 들었다. 노인이 낮에 비디오 제목을 내게 물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길 잘한 것 같았다. 헛기침만 연방 할 게 뻔했다. 정작 그 비디오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노인이 아니라 나였다. 소리를 줄이고 전등을 껐다. 볼륨을 더 줄였다.화면은 차 안이었다. 남녀가 그 안에서 서로 진한 애무를 하고 있었다. 불 꺼진 사무실 창문 밖에서 별이 나를 향해 눈웃음을 치는 것 같았다. 화면이 차 밖을 비추었다. 어? 나도 모르게 그 소리가 입에서 나왔다. 보이는 비디오 화면도 공간이 세차장이었다. 물론 화면 속 세차장은 지금 내가 있는 곳보다 현대식이고 깨끗했다. 공간이 세차장이라서 그런지 화면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화면 속 여자가 차안의 등을 켰다. 그러자 화면 속의 남자가 말했다.'전등 꺼.''너무 어둡잖아.'물세차기 소음이 여자와 남자의 말을 삼켰다. 큰 소음이 났다. 비디오 속 남자가 여자를 깊숙이 누르기 시작했다. 두 다리를 들고 죽은 닭처럼 있어. 남자가 또 말했다. 그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걸레들이 춤을 추듯 움직였다.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누가 무엇이 흔들리는지 모를 정신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내 몸 또한 젖어들었고 그때 노인이 몸을 뒤척였다. 볼륨을 더 줄였다. 국도 길에 널려 있는 돌처럼 지내왔던 나였다. 포르노 비디오를 보니 갑자기 술 마신듯 몸이 달아올랐다.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공업사 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악취가 풍겼다. 변기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나는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깊고 아득한 웅덩이 같았다. 따뜻한 몸만큼 마음을 뒤흔드는 것이 있을까. 몸과 몸이 포개지면 많은 것들이 흔들리면서 일렁였다. 마음을 움직이는 사랑만큼 사람을 붙잡아두는 것이 있을까. 나는 어쩌면 그 사랑이 두려워 더 멀리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변기 안으로 몸을 깊숙이 숙이고 아아아, 메아리 소리를 내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대답하는 것도 같았다. 몸이 또 달아올랐다. 시간이 지나면 술기운이 빠지듯 충동도 서서히 가라앉겠지. 가라앉는다는 생각이 또 나를 서글프게 했다.포르노 비디오는 '순간'이 지나면 그 뒤부터는 지루해졌다. 예전에 이런 비디오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화면 속 모습도 어쩐지 슬펐었다. 오래전에 보았던 비디오 속 남녀는 어찌나 남을 속일 줄 모르던지 그들은 마치 지겨운 직장에 출근한 사람들 같았다. 몸을 섞으며 나오는 남녀의 신음은 삶의 고통스러운 신음으로 바뀌었었다. 지금 화면 속에서 신음소리를 내는 남녀 주인공도 어쩐지 내 귀에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이 들려왔다. 아직도 내 몸은 마르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약도 아니었다.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슬픈 비명을 듣고 있을 사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밤은 길었고 눈이 감기지 않았다. 별처럼 사내들을 하나씩 헤아리며 잠이 들고 싶었다. 잠이 깊이 들지 않아 자다가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또 잠들었다. 비디오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비몽사몽 상태에서 눈을 뜨니 비디오는 꺼져 있었다. 신음소리는 꿈속까지 들어와 있었다. 아직 아침은 아니었다. 별들도 잠든 새벽이었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노인이 검은자위 없는 눈을 뜨고 앉아 있었다. 여명이 노인과 나를 이불처럼 덮어주었다. 노인도 깊이 잠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노인은 늘 같은 눈이었다. 그래서 변함이 없었다. 화면을 보지 못해 소리만 들었을 것을 생각하니 내 마음 한 켠이 시렸다. 노인은 거울 앞에 앉아 더러운 빗으로 머리를 빗고 있었다. 창문이 닫혀서인지 방안은 퀴퀴한 냄새도 나고 더웠다. 노인이 입을 달싹거렸다."내 마음을 아니?"나는 듣고도 안 들은 척 했다. 죽어서야 나는 몸이 따뜻해질 것 같았다. 다른 죽은 이들은 차갑게 식어 있는데 나는 죽어서야 따뜻해지는 운명인 모양이었다."왜 사막인 거냐. 그곳은 그저 모래뿐이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기루 같은 환상일 뿐이야.""고향이 없으니까요."나는 이제 갈 곳이 없었다. 화장실은 더러웠고 풀들은 내 몸을 베기라도 할 듯 나보다 더 독해져 있질 않았던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이 사막일까. 누군가 붙잡아 주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노인은 아니었다. 울고 싶었지만 누군가 저 세상 밖에서 또 울고 있을 테고 그래서 나는 울지 않았다. 사람들은 왜 죽으면 차가워지는 것일까. '다 비웠으니 뜨거워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노인에게 묻고 싶었다. 수박 한 통을 낙타에 싣고 모래언덕을 더듬어가는 내 모습이 안 그려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의 점자를 더듬으며 사막 한가운데로 가고 싶었다. 그 끝이 있을까. 어쩌면 나는 바람에 날려 온 마당에 떨어진 한 장의 점자처럼 내 생을 어딘가에서 버리게 될 것이다. 내 몸에도 점자가 있었다. 수박처럼 여자의 몸에도 씨가 있고 검은 선이 있는데 여자뿐 아니라 사람은 다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남녀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닐까, 읽지 못하는 서로를 그렇게라도 더듬어보기 위해서. 하지만 두려워한 사랑도 나를 붙잡아두지 못했다. 그 사랑도 물처럼 나에게서 흘러갔을 뿐이었다. 그 순간 작고 하얀 양 같은 노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노인의 몸집은 하룻밤 사이에 더 작아져 내가 품에 안아야 할 것 같았다."네 잘못이 아니다."노인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왔다. 아버지 목소리 같기도 했다. 내게서 그걸 기대했는지 노인이 몸을 떨고 있었다. 흔해빠진 영화 대사같이 아득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힘이 셌다. 운명은 내게 어디론가 흘러가라고 말하고 있었다.비디오 속의 남녀를 흉내 내려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옷을 벗었다. 귀가 밝은 노인은 내가 옷 벗는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노인은 몇 배의 귀와 마음으로 세상을 다 보고 듣고 있는 것 같았다.노인이 몸을 움찔했다. 내 몸을 더듬어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노인의 손을 잡아 내 쪽으로 끌어왔다. 얼굴에서부터 방향을 잡아가도록 해주고 싶었다. 노인의 손이 따뜻했다. 신기가 들어와 몸을 떠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늘게 떨었다. 나는 노인의 흘러내린 흰머리를 쓸어 올려 주었다. 나는 이대로 죽고 싶었다.'내 목을 부러뜨려주겠어요?'노인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나보다 아주 오래 산 노인의 손에서 죽으면 아프지 않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말은 되어 나오지 않았다. 노인이 아름답게 보였다. '아름답다' 라는 말은 얼마나 추상적이던가. 나도 모르게 다시 노인의 손을 잡았다. 노인은 점자를 더듬듯 내 인생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지친 감은 눈과 마른 입술, 내 깊지 않은 쇄골을 더듬어 살아온 깊이가 얼마쯤인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내 몸의 점자를 읽어주었으면 싶었다. 몸에도 중심점이 있었다. 몸에는 무수한 선들이 뻗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키우기 나름이었다. 어떤 이들은 제 몸을 키워 별이 되고 우주가 되었다. 노인이 아이처럼 울었다. 그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노인도 나처럼 세상이 두려운 것 같았다. 아직 아침이 오지 않았다. 새벽녘의 바람이 손으로 더듬듯 나를 읽고 있었다. 바람이 노인처럼 머뭇거렸지만 수줍어하며 나를 읽고 있는 시간 문득 이곳에 너무 오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곧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앞으로 더 혼자가 되겠지. 옷을 입은 나는 공업사 밖에 나와 있었다. 사내가 세운 간판은 아직도 희미한 빛을 내뿜었다. 사내는 밤새 슬픈 신음소리를 듣고 있었을까. 봉고차로 가 조용히 열린 차 안을 바라보았다. 볼이 불룩한 사내는 팔짱을 낀 채 잠들어 있었다. 얇은 군용담요 하나만 몸에 덮었다. 사내는 고향이 있을까. 말이 없는 사내라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사내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무언가에 떠밀리듯 이곳을 떠나야 하는 날이 오겠지. 봉고차 안에는 사내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나를 보자 놀란 닭이 벼슬을 더 세웠다. 어디서 온 닭일까. 괜스레 웃음이 새어나왔다. 며칠 전부터 논 근처를 돌아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근처의 닭 농장에서 떨어져 나온 모양이었다. 그 순간 닭이 날갯짓을 하며 TV 위로 올라갔다. 닭을 보고 놀랄 사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디오는 저 혼자 신음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아침이 봉고차 안을 조금씩 채웠다. 사내가 몸을 뒤척였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은 보이지 않았다. 아침이 올 것이란 걸 알기에 별이 더 깊이 잠들어 있는 게 아닐까. 별이 잠들어 있을 때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죽지 않고 사막을 지나갔다. 나처럼 결핍되고 아픈 사람들이 가는 슬프고 아름다운 비단길.'차가 오고 있니.'끊어질 듯 가늘고 약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노인이 마당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말리고 있는 수박 씨앗들이 보였다. 나는 씨앗들을 손에 한움큼 쥐었다. 바깥 공기가 시원했다. 멀리서 라이트를 켜고 차 한 대가 오고 있었다. 차가 출렁일 때마다 라이트 불빛도 따라서 움직였다. 노인의 신기가 내 몸 안으로까지 옮겨 들어온 모양이었다. '자동차공업사 주인이 와요.''네가 그걸 아니?'마치 노인이 내 옆에서 묻는 것 같았다. 아침이 희미한 웃음을 안개처럼 지어보였다. 노인이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노인도 차 소리를 듣고 차가 오는 쪽을 보고 있겠지. 정말 어디론가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노인일까. 차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강하게 쏘며 다가왔다.국도변으로 걸어 나갔다. 첫 버스는 언제 올까. 비척거리며 버스정류장을 지나쳤다. 인연은 고무줄처럼 끊어지지 않고 질겨서 길도 한없이 이어져 있는 게 아닐까. 기억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싶어 걸어가다 보면 다시 인연이길 불러주며 무언가가 나를 기다렸다. 다시 만나게 된 인연처럼 바람이 또 다시 내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렇게나 모여 있는 수박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인연이라면 노인도 사내도 또 어딘가에서 만나게 되겠지.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하여 누군가 대답해줄 수 있다면…. 나는 더 부드러워진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음메에에 양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점자가 있는 모래 언덕을 향해 나는 나아가고 있었다.

2011-01-03 경인일보

"새내기 문인의 깊은 성찰에 따뜻한 박수를…"

[경인일보=김선회기자]예비문인들의 등용문인 '2010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20일 오후 경인일보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올해로 24회째를 맞은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는 시 부문 당선자인 김진기(73)씨와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인 전영일(41)씨를 비롯해 심사위원, 송광석 경인일보 사장 및 임직원, 내빈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소설부문의 심사를 맡은 구효서·이혜경씨는 축사를 통해 "소설 당선작인 전영일씨의 '아내의 화단'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며 "당선자가 처음으로 신춘문예에 지원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균형감각과 품격을 지닌 작품"이라고 평가했다.시 부문을 심사한 정호승·정수자씨는 "김진기씨의 시(詩) '차우차우'는 시가 갖고 있는 본질적 특성인 은유를 통한 삶의 육화, 진정성 등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며 "앞으로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시를 더욱 많이 써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전영일씨는 수상소감을 통해 "부족한 작품에 많은 격려를 해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리고, 무엇보다 철없는 아들을 묵묵히 지켜봐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진기씨는 "기자와 방송국직원, 사업가로 활동하다 시 세계에 입문하게 된 것은 인생 4모작의 마지막 수확이라 할 수 있다"며 소감을 밝혔다. 송광석 경인일보 사장은 "당선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경기·인천지역에서 유일하게 개최되는 경인일보 신춘문예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져 훌륭한 문인들을 더욱 많이 배출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전영일씨에게는 상패와 상금 500만원이, 시 부문 당선자 김진기씨에게는 상패와 상금 300만원이 각각 수여됐다.

2010-01-20 김선회

[경인신춘문예]시부문 당선소감 - 김진기

일요일 아침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좀처럼 흥분을 모르던 내 단단한 노하우가 맥없이 빗장을 풀고 말았다."감사 합니다."남들은 "그 나이에 무슨 시 공부냐? 편히 지내지"하며 핀잔 반 충고 반 던지곤 했다. 그러나 아득한 꿈은 나를 지금에야 불러냈다. 대학에서 4년간 국문학 공부를 한 나는 배고픈 시인의 길을 버리고 현실을 좇아 취업을 택했다. 3년 전 다시 여유를 찾아 시에 매달리게 된 것은 4년 동안 공부한 문학의 애착이 아까워서였다. 나는 국문학 중에서도 특히 시가 좋았다.그러나 시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 보니 이 쪽은 결코 만만한 동네가 아니었다.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복병, 선수마다 꺼내든 무기가 달랐다. 같은 말을 표현하는데 표현하는 방법이 신출귀몰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수없이 망설였다. 아직도 정확한 길은 모른다. 남들이 하루 5시간을 자면 나는 4시간을 자야 하고 남들이 하루에 시 10편을 읽으면 나는 15편을 읽어야 한다. 나는 지금에 머무르지 않겠다. 뒤 돌아보지 않겠다. 기축년 한해는 내 생애에서 가장 힘들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 인생을 다시 공부해야 했다. 돌아가신 부모님은 나를 기특하게 보신 것 같다. 태백산 검용 소물이 흘러 한강의 젖줄이 되듯 내 고향의 맑은 마음도 시처럼 흐를 것이다. 항상 내가 어려울 때 손을 내밀면 조건 없이 도와준 인간미 풍기는 여러 선생님들의 정이 생각난다. 그리고 객지에서 동분서주하는 내 아내와 중국의 큰 아들 내외와 손자 동주, 싱글 의 둘째 아들 모두와 기쁨을 나누고 싶다. 특히 미숙한 내 글을 뽑아 불씨를 당겨 준 경인일보 관계자와 심사 위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약력1937년 강원도 태백산 출생동국대학교 국어 국문학과 졸업전 대한일보 기자, 춘천 문화방송 부장현 태림인더스트리(주) 명예회장

2009-12-31 경인일보

[2010 경인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아내의 화단 - 전영일

1.여름이 가려나? 완연한 가을 날씨다. 오랜만에 밤 산책을 나섰다.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한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사이로 몇몇 별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공원의 나무들을 어루만지며 지나가는 바람의 옷자락엔 약간의 스산함이 배어 있었다. 언뜻언뜻 비치는 달빛에 가슴이 하얗게 물드는 것 같았다. 울타리 쪽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잠시 취해 있다, 고양이 한 마리가 가을의 문 앞을 서성이는 듯 공원 안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것을 나는 유심히 지켜보았다.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너도 나와 같은 거니?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무심코 거리로 나서서 시간의 틈을 메우고 있는 거니?"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녀석은 내가 앉아 있는 벤치 위로 휙 올라서곤 자세를 고쳐 앉는다. 앉음새가 꼭 아내를 닮았다. 보온병에 담긴 원두커피 향을 맡는가 하면 뚜껑을 앞발로 툭툭 건드린다.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눈치다. 나는 달을 더 바라다보았고, 녀석 또한 내가 바라보는 쪽을 멀거니 응시하는 듯했다.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의 배는 동그랗게 불룩해져 있었다. 새끼를 밴 것이리라. 목 아래를 쓰다듬어주자, 녀석은 눈을 감은 채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울대의 떨림이 그대로 손에 전달됐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가 듣기 좋았다. 고양이는 따뜻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는 대화를 나눴다. 약간 망설여졌지만, 녀석에게 이름을 붙여 주고 말았다. '묘심(猫心)', 고양이 '묘(猫)'에 마음 '심(心)'. "심아, 가을이구나! 이젠 어디로 갈 거니?""……"벤치 아래로 사뿐히 내린 묘심은 내 다리를 한 바퀴 빙 돌더니 나를 한 번 올려다보곤, 어슬렁어슬렁 길을 떠났다. 오늘 난 과묵한 녀석 하나를 친구로 얻었다. 내일 또 볼 수 있을까? 바람이 한결 차다. 곧 노란 은행나무 잎들이 거리를 술렁거리다 겨울의 숲 쪽으로 우우우 달려갈 것이다. 아내의 재를 이 곳 화단에 뿌린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동사무소 직원이 방문하여 이것저것 캐묻고 갔다. 통장인 옆집 여자가 신고한 탓이리라. 무의탁 독거노인 판별을 위한 방문이었을 게 분명했다. 멀쩡한 자식이 셋이나 있고 일시불로 받은 연금으로 생활비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말로 돌려보냈지만, 다음 날부터 문 앞에 도시락을 두고 가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쌀을 가져다 놓았고, 반찬통도 두고 갔지만, 일절 내다보지 않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시점부터 다행히도 발길이 뚝 끊겼다. 정년 퇴임한지도 어느 새 4년이 흘렀다. 38년간 초등교사로 일했지만, 지금은 아침마다 집 앞 공원과 그 주변을 청소하고, 폐품수거로 돈벌이를 하며 지낸다.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리수거하고 비질을 마친 다음, 말쑥해진 공원 주변을 바라보는 감회는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다. 반평생 교직에 있었지만 국가에 헌신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내가 헌신할 상대는 나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이지 국가가 아니었다. 더 많은 월급을 바라거나 승진을 종용하지 않던 아내에게 늘 고마웠다. 대신 아내의 고생이 컸다. 퇴임식을 사양하고 조용히 학교를 떠나던 날, 모든 게 후련했다. 인생의 먼지를 모두 털어낸 심정이었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기분이었다. 2."돈이 좀 필요해요."둘째아들 원석이 전화로 한참 뜸을 들이다 한 말이다. 한 달 전 수술 중 환자가 사망하는 의료사고를 낸 막내 원호가 합의금으로 연금의 밑바닥 잔고까지 싹 쓸어가 버린 일은 아직 모르는 눈치다. 환율이 올라 적게 송금한 돈이 마음에 걸렸다. 음대를 졸업하고 3년간 사립 고등학교 음악교사를 하다 미국 유학을 떠났다. 서른이 다 돼 집안에 처음 여자를 데려와선 결혼을 공포하곤, 한 달 만에 파혼했다. 그 뒤론 그나마 있던 말수마저 줄었다. 죽기 전 아내는 짧은 통화로라도 목소리 듣는 걸 감지덕지하곤 했다. 10년 전 원석이 제대하던 날, 퇴근 후 현관에서 나를 맞은 건 원석이 아니라 망치였다. 검은색 털에 늙수그레한 삽살개 혼혈이었다. "부대에 그냥 두고 오기 뭣해 데려왔어요." 원석은 2층에서 내려오다 층계참에 다소곳이 서 있던 망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머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원석아, 와서 잡채 간 좀 봐라." 들뜬 아내의 목소리에서 오랜 시름 하나가 사라진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행동이 굼뜨고 느린 데다 숫기도 없고 말수마저 적어 아내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원석의 제대는 아내에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둘째가 부엌으로 간 사이 망치와 나는 거실을 사이에 두고 잠시 대치했다. 그게 녀석과의 첫 대면이었다. 녀석은 고개를 뻣뻣이 든 채 내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꼬리를 흔들어 반겨하지도 않았고, 주눅이 든 것 같은 표정도 아니었다.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는 시선에서는 약간의 호기심도 엿보였다. 그런 태도가 왠지 모르게 기품이 있어 보였다. 망치는 생각보다 적응력이 빨랐고, 나름 애교도 있었다. 집안에 자식 하나가 더 생긴 것 같았다. 아내는 망치를 꼭 둘째 대하듯 했다. 일을 마치고 귀가해서도 망치부터 찾았다. 원석아, 이리 온. 어떨 땐 망치를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아내는 살뜰하게 망치의 잠자리를 보살피고 끼니때마다 밥을 해 먹였다. 욕실에서 정성껏 망치를 씻기는 아내의 눈빛엔 애정이 가득 서려 있었다. 둘이 함께 손을 잡고 뒷산으로 산책 겸 운동을 나갈 때에도 아내의 눈은 항상 저만치 앞서 걷는 망치를 향해 있었다. 한 번은 그 눈빛이 하도 끈끈하고 친근하여 뜬금없이 질투가 치솟을 지경이었다. 망치는 죽기 1년 전부터 치매를 앓았다. 노환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아내와의 산책을 거부하곤 정원만 빙빙 맴돌았다. 느닷없이 하늘을 향해 짖어대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참치 통조림도 마다하고 아내가 직접 밥을 떠 입에 넣어줘도 도통 먹으려 들지 않았다. 나중엔 더는 삼킬 힘이 없는지 입 밖으로 연방 밀어낼 뿐이었다. 기력이 쇠해 더는 거동조차 못하게 된 망치는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그러나 똥오줌만큼은 신기하리만치 잘 가렸다. 그것이 습관의 위력인지 망치의 의지인지 분간할 순 없었지만, 누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철저했다. "치맨데 흔치않은 경우죠. 드물지만, 간혹 그런 녀석들이 있어요. 영물이 따로 없죠."망치의 안락사를 돕던 광태가 한 말이었다. 광태는 성형외과 의사인 막내 원호의 고교동창으로 강남 반포동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한다. 좀 덜렁대긴 해도 똑똑하고 싹싹한 아이였다. 안락사 주사제는 색깔별로 구분된 각기 다른 병에 담겨져 세 개가 한 세트인 듯 별도의 케이스 안에 들어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모양이구나.""예전에 비하면 많이 늘었어요. 사람에겐 안 되는 일이지만, 동물한텐 다반사인 게 안락사예요."수술대 위에 맥없이 누워 있는 망치의 안색은 몹시 초췌해 보였다. 광태는 망치의 왼쪽 앞발 겨드랑이 근처에 링거를 꽂고 천천히 붕대를 감아 고정했다. 뜻밖에도 안락사 방법은 간단했다. 곁에서 잔뜩 긴장을 하고 지켜본 것에 비하면 싱겁기 짝이 없었다. 진통제, 근육마비제, 심장마비제 순이었다. 주의할 점은 순서였다. 세 번째가 먼저 주사되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인해 극심한 통증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 광태가 들려준 말의 요지였다. "갔군요."동공을 주의 깊게 살피고 청진기를 귀에서 뗀 광태는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망치는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깊은 잠에 빠져든 것처럼 보였다. 광태는 한사코 돈 받기를 거절했다. 망치를 편안히 보내준 답례로 내가 대신 동물병원을 봐주기로 하고 원호를 불러 고급 한정식 집에서 비싼 점심을 사게 했다. 광태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몰래 주사제 한 세트를 챙겼다. 아내가 죽기 석 달 전의 일이었다. 3.아내는 초등학교 졸업 후 스물 셋이 될 때까지 서울 평창동 큰집에서 할머니의 병수발을 들며 살았다. 가난한 집 팔남매 중 둘째로 영월에서 태어났다. 오빠와 동생들의 교육비를 대기 위한 상경이었고, 집안 어른들의 거래에 따른 것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사촌동생들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보낸 뒤, 할머니 방에서 내온 기저귀와 이불을 빨아 넌 다음, 집안 청소를 하고 시장을 보고 반찬을 만들고 저녁밥을 지으며 살았어요. 말이 좋아 손녀고 조카에 사촌 누나지 식모나 다름없는 생활이었죠. 10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할머니를 미워해 본 적은 없어요. 차라리 어른들이 미웠죠.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제게 미룬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어떤 날은 할머니가 측은하기도 했지만, 미워하진 않았어요. 연탄가스 중독으로 하반신 마비에 치매까지 앓았거든요. 할머니는 가끔씩 나를 알아보고 웃기도 했지만, 기저귀에 똥을 싼 채 앉은 자세로 방바닥을 쓸고 돌아다니기도 했고, 기저귀를 벗어 벽에다 똥을 발라 놓기도 했어요. 그런데 정말 이상했던 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딱 일주일 전에 제 정신이 돌아왔다는 점이에요. 여느 때처럼 기저귀를 갈고 방청소를 하고 이부자리를 정리한 다음 방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이러는 거예요. 영심아! 대야에 물 좀 떠 오너라. 깜짝 놀랐어요. 할머니가 제 이름을 부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할머니는 손수 세수를 한 뒤 머리를 빗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어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조카들은 물론, 기별을 받고 황급히 올라온 부모님까지 다 알아봤고, 이름을 불러가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으셨죠. 그렇게 일주일을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지내곤, 장독마다 수북하게 눈이 쌓이던 1월의 어느 날 아침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잠에서 깨지 않았어요. 장례 절차를 마친 후 큰집을 나서면서 전 맹세했어요. 사랑하는 이들에게 똥오줌을 받아내게 하고 아랫도리를 내보이는 짓은 하지 않으리라, 때가 되면 고귀하게 삶을 마무리하리라 다짐했어요." 1969년 가을, 첫 번째 데이트 장소였던 경복궁 중궁전 뒤뜰 툇마루에 앉아 아내가 처음으로 내게 들려준 이야기였다. 어찌나 확고하게 말하던지 아내의 목소리엔 강한 힘이 서려 있었다. 아내의 유일한 취미는 독서였다. 주로 인문학 관련 책들을 선호했지만, 활자가 박힌 거면 뭐든 읽어치우는 습벽이 있었다. 책을 읽다가 까맣게 태워먹은 냄비가 한 둘이 아니었을 정도로 집중력 또한 대단했다. 아내는 제도권 공부를 못한 자신의 한을 자식들을 통해 풀려 하지 않았다. 반찬가게에서나 집에서나 틈만 나면 책을 봤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대입고사를 볼 때까지 자식들 하나하나를 길러내는 아내의 정성은 나로선 도저히 흉내조차 못 낼 정도였다. 아이들이 시험 때마다 벼락치기로 밤을 샐 때면, 곁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었다. 대입고사 날도 남들처럼 간절히 기도하는 법도 없었고, 하릴없이 대학 정문에 엿을 붙이러 가지도 않았다. 그런 날은 반찬가게 문도 열지 않고, 꼼짝도 않은 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아내는 오직 제 힘으로만 나로선 도저히 꿈도 꾸지 못할 다양한 책들을 섭렵해 나갔다. 서가를 가득 메운 책들이 아내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다. 막내 원호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시작한 반찬가게 수입은 나보다 나았다. 아무리 고단해도 피곤한 내색 하나 없이 새벽같이 일어나 일터에 나갔다. 그런 탓에 그 전보다 커피 섭취량이 늘었다. 아내가 만든 음식은 점심 한 나절이면 다 팔려 나갈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전셋집 옥상 텃밭에서 자신이 정성껏 가꾼 유기농 야채들을 재료로 쓰는 것이 비법의 핵심이었다. 또한 부족한 재료들은 직접 산지를 돌며 거래농가들을 선별하고 다녔을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아내의 실력은 3년간 천천히 입소문이 났다. 부촌의 잔치음식들까지 도맡아 하게 된 후로는 수입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그런 만큼 늘 잠이 부족했고, 식사 또한 불규칙했다. 시간에 맞춰 잔칫상을 내기 위해 이집 저집을 끼니도 거른 채 먹는 둥 마는 둥 뛰어다녔고, 남의 음식은 공들여 만들어 놓고 정작 집에 돌아온 자신은 지쳐 아무 것도 못 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하루 4시간도 못 자고 돌아다니던 바쁜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원호의 가출과 오토바이 사고가 잇따라 터져 아내의 속을 뒤집어 놓고 말았다. 유학 간 큰딸 원희와 군대 간 원석에 대한 걱정 또한 끊일 날이 없었다. 그렇게 6년을 더 버틴 아내는 4월의 화창한 봄날, 일산 장항동 전원주택으로 입주할 수 있었다. 4."복수가 찼어요." 응급실 당직 수련의가 한 말이었다. 처음엔 단순 복통인 줄로만 여겼으나, 뜻밖에도 아내의 병명은 난소암 말기였다. 아내는 유독 병원가기를 꺼려했다. 어차피 죽을병은 의사도 못 고친다는 게 평소 아내의 지론이었다. 현대 의학을 맹신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못마땅해 했다. 원희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던 날도 그랬다. 느닷없이 쌍꺼풀을 하고 코를 세우고 나타난 원희에게 아내가 처음 한 말은 '고생 많았지'가 아니었다. '수술대 위에 누워 정신을 놓은 채 의사에게 몸을 맡기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다신 그러지 마라'였다. "여기가 자궁이고 이게 난소인데, 이거 보이시죠?" 모니터 속 마우스가 아내의 자궁 끝 난소에 위치한 종양의 궤적을 따라 움직였다. MRI 사진 속 종양의 크기는 상상 외로 커 보였다. 담당의는 원호의 동문 선배로 여성암 분야 국내 권위자다. 그는 공손한 말씨로 말을 이어갔다. "전이가 벌써 많이 진행됐어요. 여기 보이시죠? 나팔관인데 자궁과 함께 적출해봐야 소용이 없을 정도로 넓게 퍼져 있어요. 생각보다 심각해요. 난소암은 전이 속도가 매우 빨라요. 혈액 검사로도 발견되지 않아 어머님처럼 처음 병원에 오면 대개 다른 부위들로 전이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미국에선 '무언의 살인자'라고 부를 정도로 매우 공격적인 암이에요."아내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가끔 통증이 있을 때마다 진통제를 먹고 그럭저럭 넘긴 게 저렇게 큰 종양을 키운 원인이리라. "다른 부위로도 이미 전이됐을 가능성이 높아요. 일단 입원하시고 몇 가지 검사를 더 한 다음에 결과를 보고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죠."말기 암환자 선고를 받은 후 아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정원의 텃밭을 확장하는 공사였다. 장독으로 쓸 옹기들을 사들이고, 인부들을 불러다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바르고, 흙을 퍼 나르고 정성껏 옹기들을 묻었다. 가장자리 쪽으로 배치한 화단에 꽃들을 옮겨 심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농산물 시장에 나가 장을 본 후 김장을 하고 된장과 고추장, 간장을 담갔다. 피곤한 기색도 없이, 일사천리로 해치웠다. 그리곤 사흘을 꼬박 몸살을 앓았다. 아내의 노력은 한 달도 못 가 수포가 되고 말았다. 집을 부동산 중개소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건 원호 때문이었다. 10년 넘게 살아온 2층 전원주택이었다. 전문의 자격을 따자마자 강남에 병원을 개업해달라는 원호의 우격다짐에 '여보, 당신이 참아요. 그냥 들어 줍시다'는 말이 그만이었다. 아내는 서둘러 이삿짐을 꾸려 뒤도 한 번 안 돌아보고 나섰다. 아내가 새로 정한 보금자리는 부천시 원미구 고강동에 있는 3층 단독주택 반 지하에 자리해 있었다. 서울 변두리와 접경인 지역으로 근처엔 아담한 산도 있어 공기도 맑았다. 다만 김포공항이 가까워 소음이 좀 심한 편이었다. 새로 이사 온 집에서도 아내의 눈썰미가 느껴졌다. 방 두 칸에 좁은 욕실이 딸린 깔끔한 집이었다. 둘이 살기에 딱 좋은 평수였다. 일산 전원주택 정원에 있던 아내의 텃밭은 집 앞 공원 울타리 가장자리로 일부 자리를 옮겼고, 나머지는 장독들과 함께 3층 주인집 옥상에 옮겨 놓았다. 주인집이 옥상의 빈터를 빨래를 널어두는 곳으로만 사용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지만, 아내가 이 집을 고른 데는 그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출입문이 주택가 자그마한 공원의 대각선 맞은편에 위치해 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으리라. "당신과 다시 결혼해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기분이야."이사 후 첫날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기지개를 켜며 아내가 한 말이었다. '우리의 첫 보금자리였던 부평 사글셋방보단 훨씬 좋다'며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그때 아내의 표정에선 신혼 때 못지않은 열정이 느껴졌다. 예순셋의 말기 암환자라곤 도무지 믿겨지지 않을 만큼 밝고 활기차 보였다. 5.내 팔에 의지해 암센터 병동 복도를 걷다 말곤 한 움큼 빠진 머리카락을 쥐어 보이며 머쓱하게 웃던 아내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나빠졌다. 난소에서부터 시작된 종양은 아내의 복막과 골반 내 림프절로도 이미 전이된 뒤였다. 전이 속도는 담당의의 예측을 초월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진행되었다. 흉부와 목의 임파선까지 전이되는 데엔 석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내는 수술은 단호하게 거부했지만, 큰딸 원희가 닦달하다시피 몰아세운 항암치료만큼은 끝내 만류하지 못했다. 원희의 관심은 아내가 겪게 될 고통보다는 자기 체면을 차리는 데 있는 듯했다.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 따윈 관심조차 없다는 말투였다. "엄마는 내가 나중에 사람들한테 '제 어미가 암에 걸렸는데 돈도 많이 버는 년이 맹추같이 아무 것도 안 하고, 엄마 말대로 곱게 죽게 만든 천하에 못된 년'이란 소리를 꼭 듣게 해야 속이 시원하겠어? 남들 다 그렇게 하는데, 나도 효도 좀 하자.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해라. 엄마."나는 원희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원희는 아내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부지불식간의 일이었지만, 달래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자기 생각을 아내에게 관철할 필요가 있을 때, 원희는 말끝마다 '엄마'라는 말을 넣어 발음하곤 했다.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과 함께. 그 말만 나오면 아내는 즉각 꼬리를 내렸다. 원희는 '엄마'라는 말을 주로 아내의 입막음용으로 썼다. 원희가 한 말은 '고통을 참다 죽어라'는 것과 같았다. 그런 걸 자식이랍시고 끌어안아 달래고 있는 아내를 보곤, 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쟤들도 한이 될까봐 저러는 모양인데, 그냥 하라는 대로 하게 놔둡시다. 그래야 나중에 어미 탓 않고 잘들 살 거 아니우."원희는 매번 그런 식이었다. 아내가 질색하던 밍크코트를 강제로 입혀선, 기필코 제 자식 돌잔치에 앉혔다. 강남 영어학원에서 유명세를 타고 EBS 영어강좌를 맡게 된 기념으로 최신형 냉장고와 로봇청소기를 집안에 사들였을 때도 그랬다. 그것들을 일러 엄마한테 주는 '선물'이라 말했다. "멀쩡한 냉장고가 있고, 진공청소기도 쓰던 게 있는데, 뭘 또 사니? 필요하면 너나 써라. 그리고 '선물'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주는 거지, 필요하지도 않은 걸 강제로 떠맡길 때 쓰는 말은 아니잖니?"그러나 가전제품 대리점 직원들이 새 냉장고를 설치하고 전에 쓰던 것을 수거해 돌아갔을 때도 아내는 원희가 진두지휘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둘 뿐이었다. 매사가 그 모양이었다. 원희는 항상 자기 생각만 앞세워 행동했고, 원희가 그럴 때마다 아내는 마지못해 수긍하곤 했다. 아내를 막무가내로 떠밀다시피 국립암센터 병원으로 데려온 것도 원희였다. 그걸 자신이 베풀 수 있는 효도의 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 덕에 아내는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지만, 항암치료의 고통을 안겨준 원희를 탓하는 말은 일절 꺼내지 않았다. 대신 이를 꽉 깨물고 견뎠다. 어금니가 다 빠져버릴 때까지. 아내는 나로선 흉내조차 못 낼 지독한 면이 있었다. 한 달만 있다 가자던 아내는 원희 덕에 두 달을 더 병실에 머물러야 했다. 아내는 집에 가고 싶어 안달이었다. 주인집 옥상에 둔 장독들과 공원 화단에 옮겨 심은 꽃들 생각에 한시도 시름을 놓지 못했다. 옷가지를 챙기러 내가 잠시 집에 다녀왔을 때도 그것들을 살피지 않고 서둘러 돌아온 나를 들들 볶았을 정도로, 곁에서 간병하는 내 안색보다 멀리서 찬바람을 맞고 있을 그것들의 안부를 살피는 데 더 혼을 쏟았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여보."퇴원 수속을 마치고 온 내 손을 잡고 병실을 나서던 아내가 한 말이었다. 검정색 니트 모자를 뒤집어쓰곤, 3일째 항암치료로 아무 것도 삼킨 게 없는 아내는, 까맣게 타 들어간 혀를 날름 내보이곤 환하게 웃었다. 아내의 살을 갉아먹으며 아내의 몸 전역으로 빠르게 진군해 가던 종양들도 아내의 환한 미소만큼은 쉬이 점령하지 못했다. 아내는 낯선 병실에서 죽음을 맞고 싶어 하지 않았다. 시내 아이스크림 가게 창가에서 아내는 함박눈처럼 웃으며 퇴원을 자축했다. 죽기 두 달 전의 일이었다.6.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 만종분기점을 지나 제천을 거쳐 영월에 도착할 때까지 아내는 잠에 빠져 있었다. 4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을 40년 만에 온 것이다. 죽기 한 달 전 아내와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동강에 닿자마자 아내는 번쩍 눈을 떴다. 아내는 밖으로 나가 강가를 따라 걷다 얼마 못 가 모래톱 위에 앉아 숨을 골랐다. "강은 예전 그대로네. 세찬 물살도 여전하고 빛깔도 참 곱다. 당신이 처음 데이트 신청했을 때, 당신 모습이 어땠는지 내가 말했었나?""아니?""물에 빠진 사자 같았어.""뭐?"아내와 나는 마주 보고 깔깔 웃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밝은 모습이었다. "당신이 교무실 창문에 노크하고 밖에 서 있었잖아.""학교에 맨 먼저 출근하던 사람이 당신이었잖아. 아무도 없을 때 말하려고 밤을 꼴딱 새우고 갔었지.""당신 그때 이렇게 말했어. 내일 시간 있어요? 함께 경복궁에 갑시다."내 말투를 그대로 흉내냈다. 아내와 난 폭소를 터뜨렸다. 아내는 신기할 정도로 흉내를 잘 냈다. 아이들의 볼멘소리를 그대로 따라 했고, 가식적인 정치인들의 특징만 포착해 잘도 흉내냈다. 아내의 성대모사엔 위트가 넘쳤다. "교무실에서 청소를 끝내고 화분에 물을 주고 있는데, 당신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오는 걸 봤어. 모른 척 했지.""다 알고 있었다는 얘기네.""곱슬머리에, 머리도 안 감고 나온 게 꼭 웅덩이에 빠졌다 나온 사자 같았거든. 난 당신이 아이들 가르치는 모습이 좋았어. 학교에 제일 먼저 출근한 사람도 당신이었고, 나머지 공부시키고 교재 연구하느라 제일 늦게 퇴근하던 사람도, 애들하고 운동장을 누비며 뻘뻘 땀을 흘리며 공 차던 사람도 당신이었어." "당신 참 예뻤지. 교무실에 잠깐 들렀는데, 그때 당신 철학책을 읽고 있었어. 아무도 없을 때 틈날 때마다 보는 것 같았거든. 누가 들어오면 금방 덮어버리고 딴 일을 하곤 했으니까. 어찌나 집중해서 읽던지 내가 가까이 가는 기척도 전혀 못 느끼는 것 같더라. 당신 집중력만큼은 지금도 대단하잖아.""근데 왜 아무 말 안했어?""내가 그 쪽엔 젬병이잖아. 아는 것도 없고. 책보단 그림을 더 좋아했지. 그래도 당신, 그쪽에 대해 나한테 뭘 물어보거나 아는 체 한 번 안 했어.""교무 보조로 일했지만, 난 그때 당신 보는 재미로 학교에 다녔어. 초등학교 졸업하고 큰어머니 따라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중학교에 못 간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나는 나대로 나만의 삶이 있을 거다."그때 마침 수달 한 마리가 나타나 세차게 자맥질을 하곤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낮에 돌아다니다니 배가 몹시 고픈 모양이었다. "여보, 저기 저 수달에게도 삶이 있어. 그냥 배가 고파서 나온 게 아니라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한 낮에 먹이를 구하러 나왔다고 생각해봐. 삶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어미 수달의 마음, 그 깊은 속을 누가 다 알겠어? 삶이란 쉽사리 이해될 수 있는 게 아니야. 잠자코 제 뜻을 펼치는 것이고 혼신의 힘을 다해 정면을 향해 휘적휘적 나아가는 거지. 야생의 수달은 가족의 일을 의사와 상의하지 않아. 병원이나 교회로부터 가족의 죽음을 인준 받지도 않지. 굶어죽을지언정 남에게 먹이를 구걸하지도 않고. 제 힘만으로 혼신을 다해 삶을 영위하다 홀로 생을 마감할 뿐이야. 반면에 인간은 며칠 더 살겠다고 죽을 때까지 병실에 누워 고통을 감수하지. 고통스러워 그만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지도 못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겪는 일치곤 정말 비인도적인 관행이지. 난 그렇게 살다 죽지 않을 거야, 여보. 강요된 지침을 따르는 건 내 방식이 아니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그사이 수달이 지나가면서 만든 물길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아내와 나는 한동안 동강의 흐름과 계절의 흐름이 맞닿아 흘러가는 것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내내 잠에 빠져 있었다. 아내가 한 말은 내 머리를 강타하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안락사에 대해 아내만큼 확신이 서지 못한 상태였다. 낮게 코를 골며 잠에 빠진 아내에겐 누구도 범치 못할 고귀한 혼과 힘이 내재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아내의 의지를 가로막을 자신이 없었다. 7.퇴원 후 그토록 그리던 집에 도착한 아내는 온종일 옥상의 장독들을 정성껏 닦는가 하면, 공원 화단에 옮겨 심은 꽃들에 물을 주었고, 밀린 청소와 빨래를 하고 묵은 옷가지들을 정리했다. 어쩐 일인지 자식들과의 통화를 피했고, 대신 각자에게 부칠 마지막 편지를 썼다. 아내에게서 슬픈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내는 바위처럼 단단해 보였고, 햇살 가득한 잔잔한 바다처럼 평온해 보였다. 드디어 아내가 정한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아내의 요구대로 병원에 전화를 넣어 담당의에게 아내의 상태를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통증이 심해져 무통주사와 영양제를 더 맞을 수 있도록 병원에서 사람을 보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오전에 간호사가 다녀간 뒤, 아내는 영양제와 무통주사제가 혼합된 링거액을 덜어내곤 조리개를 조여 두었다가 저녁밥상을 물리고 다시 풀어놓았다. 안락사를 의심받지 않게 하려는 아내의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주사액들이 쭉정이같이 말라버린 아내의 겨드랑이 중심정맥을 타고 심장으로 들어갈 터였다. 그날 오후에 아내는 마지막으로 공원의 꽃들을 둘러보았고, 주인집 옥상에 올라 장독들 하나하나를 따스하게 어루만졌다. 아마도 자식들을 무사히 키워낸 데 대한 답례였으리라. 저물녘엔 장독들 곁에 기대 앉아 한참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곁에서 링거를 들고 따라 나선 나 따윈 안중에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내의 손등은 항암제 투약으로 생긴 상처투성이였다. 발목과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빼곡히 난 바늘구멍을 따라 피멍이 들어 까만 자국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아내의 손등에 있는 멍 자국들 위로 내 눈물이 뚝뚝 떨어졌을 때, 아내는 힘없이 웃어 보이려 애를 썼다. 그 때 아내의 표정은 처음 만났을 때 내게 지어보였던 미소를 떠올리게 했다. 첫 번째 주사제 10cc를 링거 주입구에 투여하자 아내는 스르르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순서를 바꿔 주입하는 실수를 할까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두 번째 근육마비제 투약을 망설이던 나는 더 이상 울음을 참지 못했다. "어서요, 여보." 깜짝 놀란 나는 얼른 눈물을 닦고, 두 번째 주사제 20cc를 주사했다. 그 사이 잠이 든 줄로만 알았던 아내가 낮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환청이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들은 아내의 마지막 음성이었다. 10분이 경과한 후 심장마비제 주사를 마무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얼굴과 몸은 싸늘히 식어 갔고, 딱딱해진 빵조각처럼 한순간에 쪼그라든 것만 같았다. 체온이 사라진 아내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내의 죽음이 아니라 주검에 불과했다. 아내는 죽지 않았고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주검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병원에 도착한 아내의 시신은 담당의의 검안을 거쳐 냉동실로 옮겨졌다. 아내의 사망은 기대했던 일이 당연히 일어난 것처럼 즉각 확인되고 승인되었다. 담당의가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는 동안, 나는 아내가 써 둔 메모대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가족들 외엔 조문객은 따로 받지 말라 했으니 아무 데도 연락하지 마라 신신당부를 했건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시부모를 포함한 원희네 조문객들이 속속들이 도착했고, 아내의 시신 앞에서 더 이상 소란을 피우기 싫었던 나는 원희가 하자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아내가 죽고 나니 아내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딴에는 엄마에 대한 사랑과 도리의 표현임을 어찌하겠는가. 입관절차를 마친 후 장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원희는 수목장을 주장했고, 원석은 가까운 납골당에 안치되길 바랐고, 원호는 적당한 장지를 물색해 볕 좋은 곳에 모시자고 했다. 결국 둘째의 양보 없는 고집으로 아내의 뜻의 일부가 겨우 받아들여졌다. 자식들에게도 저마다 타고난 기질과 욕망과 의지가 있어 부모가 바라는 대로 다 되는 게 아니었다. 애들에게 아내의 유언을 설명하다간 그대로 돌지 싶어 나는 잠자코만 있었다. 아내가 든 관이 계속 눈에 밟혔다. "납골당은 작은 영혼들의 집결지 같아 싫어, 여보. 여기 공원 울타리에 그냥 뿌려줘요. 납골당은 좁아터진 듯 갑갑하지만, 거긴 볕도 잘 들고 내가 좋아하는 꽃들도 있잖아. 거기가 좋을 것 같아. 꼭 내 말대로 해요, 여보. 애들한테 지지 말고." 아내의 유언에 따라 내가 한 일은, 화장장 직원에게 뒷돈을 주고 아내의 유골함을 애들 몰래 바꿔놓는 것이었다. 아내가 선택한 자리는 납골당이 아니라 자신이 손수 일구고 정성을 다해 돌봤던 공원 울타리 옆 화단이었다. 집 앞 공원엔 사시사철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새들이 운다. 아내가 마지막 보고 간 꽃은 공원 울타리를 따라 줄지어 늘어선 '가을의 여신'이었다. 아내는 코스모스를 그렇게 불렀다. 그랬던 아내가 가을의 여신처럼 떠났다. 지금 화단엔 가을의 여신이 뿜어내는 아내의 숨결로 가득하다. 모든 게 다 아내의 기획이었고, 아내의 작품이었다. 8.고물상에게 폐품을 팔아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은행에 들러 원석에게 생활비를 송금하고 막 바로 귀가한 나는, 아내가 남기고 간 서적들을 뒤져 읽고 스케치를 하고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그림을 그린다. 많은 스케치와 몇 점의 유화가 있긴 하지만, 유독 아내의 모습을 담은 그림과 자화상이 많다. 생전 아내의 사진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 아내가 다 태우고 간 까닭이다. 사진이나 보며 허송세월 하지 말라는 아내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말릴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이었다. 생각하면 아내의 얼굴은 실로 다채롭다. 내 기억 속의 아내는 많은 얼굴과 다양한 표정을 가진 사람이다. 한 두 장의 사진으로만 붙잡아 두기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무시하지 못할 값진 의미들이 담겨 있었다. 고흐가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이유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모델을 구할 돈도 없었을 뿐더러 홀로 생활하여 자신과 대면할 시간이 많아서였을 것이다. 물론 내 자화상은 고흐의 방식과는 딴판이다. 그건 아내의 얼굴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인간적인 면모는 최대한 지양하고 동물적인 외관을 갖도록 그리되, 누가 봐도 그것이 아내의 모습임을 직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요컨대 새끼를 밴 묘심과 아내의 이미지가 중첩된 것 같은 느낌으로 묘사하되, 아내의 의지를 잘 살리는 것이다. 연애시절 추억담을 나눌 때 아내의 입에서 터져 나오던 웃음과 퇴원 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한껏 미소 짓던 순간에 얼굴 위로 감돌던 기쁨의 에너지와 그토록 해맑던 미소가 물끄러미 창밖을 보다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질 때의 여운과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인한 두통과 구토의 아픔을 호소할 때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던 고통의 열기와 목에서 울려 나오던 신음까지 최대한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애쓴다. 그에 맞는 색과 형태를 찾기 위해 물감들을 혼합하고 수많은 붓질을 하고 덧칠을 한다. 색의 깊이와 붓의 터치에 따라 아내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건반 위로 빗방울이 튀어 오르는 것만 같은 젊은 피아니스트의 연주처럼 붓을 든 내 손은 캔버스 위에서 춤추듯 노닌다. 어떨 땐 붓끝의 느낌이 분명치 않아 붓을 집어던지고 손끝으로 아내의 얼굴을 직접 터치한다. 그렇게 해서 나는 캔버스 위에서 살아있는 아내를 만난다. 작업에서 중요한 건 눈이라기보다 손의 감각이다. 추운 겨울날 야외 작업을 대비하여 장갑의 손가락 끝 한 마디를 미리 잘라두는 것은 손끝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아내가 공원의 꽃들에게 물을 주거나 옥상의 장독들을 닦던 때의 모습이 선명치 않아 바깥에 나가 작업할 때도 영하의 날씨가 아니면 가급적 장갑을 끼지 않는다. 아내를 온전히 기억하는 것은 머리만이 아니었다. 처음 아내를 안았을 때의 느낌과 손을 잡고 함께 거닐었던 때의 감각의 주체는 머리가 아니라 손이었다. 그것은 손의 영역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타인의 손이 아닌 오직 내 손만을 가려잡은 아내의 의지가 그 안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머리가 기억하고 있는 당시의 이미지가 아니라 아내의 온기와 감촉과 섬세한 떨림을 있는 그대로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정말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내의 이미지가 아니라 삶의 의지들이었다. 나와 함께 살며 아내가 보여주었던 기쁨과 정열의 순간들, 슬픔과 분노의 힘들 말이다. 그런 아내의 실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설레는 일이어서 나는 끼니와 밤낮을 잊은 채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밥을 먹지 않아도 힘이 솟았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한 줄 몰랐다. 그때의 내가 느끼는 희열과 성취감은 교사생활에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쾌감이었다. 묘심을 볼까 싶은 마음에 보온병에 원두커피를 담아 서둘러 공원에 나왔다. 처음 만났던 벤치에 앉아 묘심을 기다린다. 처음엔 길고양이인 것 같았지만, 사람을 피하지 않는 걸 보면 집고양이인 것도 같다. 생긴 걸로 치자면 보통 고양이와 별로 다를 게 없지만, 뭔지 모를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서로에게 강한 이끌림을 느낀 우리는 말없이 친구가 되었다. 이윽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묘심이 나타났다. 공원 왼쪽 출입구를 통과해 대각선을 그리며 당당하게 걸어왔다. 보온병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원두커피 향을 맡곤, 앞발로 요리조리 뚜껑을 가지고 논다. 한 움큼 멸치를 꺼내놨더니 냄새만 맡곤 딴 짓을 한다. 나중에 눈치 챈 사실이지만,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건 원두커피 향이다. 식성과 취향이 제법 까다롭다. 처음부터 원두커피 향에 끌려 내 곁에 와 앉았던 게 분명하다. 캐물으니 금세 시치미를 딱 떼고 앞발을 핥는다. 녀석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아내가 떠난 후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을 느낀다. 귀찮게 몸을 비비지도 않고 먹이를 구걸하지도 않는다. 항상 홀로 다닌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어떤 면에선 자식들보다 낫다. 성인이 된 후에도 줄곧 아내에게 의존적이었고 자식이라는 핑계와 효도라는 명분으로 자신들도 못할 짓을 아내에게 강요했던 자식들에 비하면 훨씬 고등한 동물이다. 그런 자식들에게 아내는 대체 무얼 바라며 살아왔던 걸까. 그것은 아직도 내가 선뜻 아내에 대해 안다고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는 대목이었다. 9."평창동 시절, 시장 사거리에 있던 커피도매점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어요. 그 집에선 커피향이 진동을 했어요. 뜨거운 물에 커피 한 스푼을 갓 풀어 놓은 듯한 향기가 좋았어요. 그땐 왜 그렇게 그 향이 좋았는지 몰라요. 그 냄새를 맡으면 피곤이 싹 가시는 느낌이 들어 좋았던 것 같아요. 항상 찬장에 있었지만 몰래 마시고 싶진 않았어요. 참다가 시장에 가서 대신 그 향기를 맡았어요. 당신은 죽어도 그 향의 진수를 모를 거예요."아내의 찬장 한 켠엔 각기 다른 종류의 커피들이 즐비해 있었다. 가끔 커피의 혼령이 아내에게 깃든 건 아닌지 농담을 했을 정도로, 커피를 입에 달고 사는 아내의 건강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아내의 취향과 의지를 가로막는다는 건 애초부터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커피는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보단 녹차가 좋았다. 커피를 먹고 나면 입 안이 텁텁한 게 개운한 녹차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러던 내 입맛이 변했다. 밤새워 그림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녹차보다는 커피가 더 구미에 당겼다. 요즘은 아내만큼은 아니어도 가공된 정제커피와 갓 볶은 원두커피 향을 감별할 정도의 수준은 되었다. 오늘은 옆 마을 전원주택 단지를 돌고 왔다. 그 곳엔 쓰레기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말끔히 치워졌다기보다 버려진 게 별반 눈에 띄지 않는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부촌의 느낌 그대로다. 이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엔 제법 공들여 지은 고급 인테리어의 비싼 식당들도 몰려 있고, 적당한 크기의 유기농 전문 매장도 있다. 건물 뒤쪽엔 항상 큰 힘 들이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게 참 많다. 유통기한이 지난 건 물론이고 포장한 지 일주일도 안 돼 버려진 것 또한 수두룩하다. 바게트와 쿠키, 치즈머핀과 우유식빵, 파프리카와 애호박, 느타리버섯과 호두, 두부까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그대로다. 혼자 사흘을 먹고도 남는 양이다. 공원 한 쪽에 놓아두면 새들도 먹고 길고양이들도 먹는다.인근 학교에도 건질 게 참 많다. 급식소 납품용 종이상자는 물론 폐휴지, 빈병, 깡통, 우유팩까지 다양하다. 생계를 위해 초등학교 쓰레기터를 뒤지는 것에 부끄러워할 이유도 체면을 차릴 겨를도 없다. 분리수거를 마치고 리어카에 걸터앉아 교실 창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복도를 뛰어다니는 발소리를 새겨듣다보면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또 그림 작업에 대한 생각에 빠져 들곤 한다. 11월 중순에 내리는 첫눈치곤 근사한 함박눈이다. 묘심은 오늘도 공원 화단에 쌓인 눈 위에 제 발자국을 찍고 유유히 사라졌다. 저물녘이면 옥상의 장독들 위에도 제 발자국을 찍어 놓으리라. 요즘은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금방 간다. 그리다 만 아내의 얼굴에 터치를 더 넣어야겠다. 겉모습이 아닌 아내의 내면에서 살아 꿈틀대던 힘의 뉘앙스를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뭔가가 손끝에서 펼쳐지리라. 한가하게 있을 겨를이 없다.

2009-12-31 경인일보

[경인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평 / 구효서·이혜경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서른 한 편이었다. 응모작들은 대부분 암이나 사고로 인한 죽음, 가족간의 갈등, 상처의 악순환 등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다루었다. 현실의 팍팍함이 발랄한 상상력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리라고 짐작하면서도,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은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한편, 작가는 나름대로 생각을 갖고 썼으리라는 짐작이 가지만, 독자에게는 작가의 의도가 와 닿지않는 소설들이 여럿이었다. 아마도 글을 쓰는 동안 이야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작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독자들은 공감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생길 수 있음을 간과 한 듯 하다. 이런 부분에 좀 더 공을 들였다면 좋은 소설이 되었겠다 싶은 아쉬운 작품들이 많았다.이다경의 '유리나방'은 암으로 유방을 절제한 여자가 겪는 상실과 치유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기교를 부리지 않는 담담함이 장점이라면, 상처 입은 채로도 살아내야 하는 게 삶이라는 메시지가 지나치게 선명하게 드러난 게 오히려 약점이 됐다.이계태의 '동굴 속으로'는 저마다 지닌 기억속의 동굴을 지하철 기관사의 시점으로 그렸다. '빨간색 원피스'라는 이미지로 이어진 세 여자, 눈앞에 떨어지는 자살자를 보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기관차와 스프링 복, 동료가 앓는 환상통과 아버지를 괴롭혔던 기억 등 중첩되는 이야기들에서 만만찮은 의욕이 드러나는데, 좀더 정제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김은수의 '사막을 건너는 시간'은 남편을 잃은 여자의 상실과 죄책감이 간결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우편물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간 지점에서 남편이 죽은 연유가 새롭게 밝혀진다는, 신선한 반전일 수도 있는 결말이 조금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곳곳에서 돌출하는 자의식의 과잉때문이 아니었을까. 당선작인 전영일의 '아내의 화단'은 퇴직자의 관점에서 쓰인 작품이다. 삶을 관조하는 시선의 원숙함이 담백한 문장에 실려 있다. 아내를 여의고 노후자금을 자식 뒷바라지에 날린 퇴직자의 이야기가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고양이의 모습에 현재의 자기와 아내의 모습을 투사하고, 아들이 데리고 온 개의 안락사와 아내의 죽음이 겹치는 동안, 생의 쓸쓸한 기미를 환기하는 격조가 느껴진다. 반면, 아내의 모습이 완벽하다 못해 신성시한 점은 결점으로 남는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당선자와 응모자들의 정진을 빈다.

2009-12-31 경인일보

[경인신춘문예]소설부문 당선소감 - 전영일

유독 저물녘 짙푸른 하늘을 배회하는 한 떼의 바람이 좋았다. 그 바람에 싸였던 삶이 오래도록 싹을 틔우고 동물의 줄기와 잎을 키웠다. 바람은 실로 많은 생각들을 불러왔다. 돌이켜 보면 거리에서 삶의 등 뒤를 바라보는 일에 적잖은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내게 삶이란 고귀한 동물의 모태였고, 돌이킬 수 없는 궁지였다. 삶의 거리엔 눈으로는 직감할 수 없는 온갖 힘들로 넘실대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실체를 감각하는 것은 모종의 쾌감을 불러일으켰지만, 삶은 단순히 생의 사진을 담는 액자가 아니었다. 삶에 내재한 힘을 포착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삶은 고정된 틀을 불편해 하는 듯 보였고, 그 갇힘에 숨 막혀 했으며, 끝내 그 틀을 부수는 아름다운 힘을 갖고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런 삶에 대한 끝도 없는 물음에 빠져 지냈다. 고정적인 실체가 없는 고귀한 삶의 힘. 그것이 항상 떨칠 수 없는 신비였고, 크나큰 화두였다.그 오랜 물음이 '아내의 화단'이 돼 세상에 나왔다. 그 또한 형편없는 답을 좇은 흔적에 불과하다. 삶의 화단엔 아직도 잡초들이 널렸다. 턱없이 부족하고 어처구니없는 물음에 화답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끝나지 않은 물음으로 계속 정진하겠다. 오랜 세월 말없이 자식의 등을 바라봐 주신 부모님께 작은 위안이 되길 바란다. # 약력1969년 경북 풍기 출생1997년 인천교육대학교 졸업현재 부천시 부원초등학교 교사

2009-12-31 경인일보

[경인신춘문예] 2005년 詩 당선자 정빈 시인 첫 시집 '길은 언제나…' 발간

[경인일보=김선회기자]"문단의 길을 열어 시를 쓸 수 있게 해준 경인일보에 늘 감사를 드립니다."2005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한 정빈(50·정경미) 시인이 지난해 11월 본인의 첫 시집 '길은 언제나 뜬 눈이다'를 내놓고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가 발표한 시집에는 치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70여편의 시작들이 수록돼 있다."시를 쓰기 시작한지 벌써 햇수로 10년이나 됐네요. 시 세계에 입문한지 만 4년만에 경인일보 신춘문예를 두드렸고 예상밖에 큰 상을 받게 된 것이죠.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친정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데, 동양란과 분재를 가꾸시며 늘 자연과 교감하는 아버지가 작은 풀포기 하나에도 사랑을 베푸시는 것을 보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했죠."정 시인은 습작기간 동안 젊은 시인들의 시를 많이 읽어 본인에게 미흡한 현대 감각을 배우려고 애썼으며, 여행을 통해 자연의 소리에 많은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법정 스님이나 김용택 시인의 글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었어요. 그 분들이 쓴 글 속에서 자연에 대해 많이 느끼고 배운답니다."그는 이번 시집에 실린 시 중에서 '어느 휠체어의 고백'과 '어머니의 가을'을 무척 아낀다고 했다. 두 시 모두 우리 주변 사람들의 역경과 희망을 이야기 한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유독 음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저는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그분들에게 글을 통해서나마 날개를 달아주고 싶어요.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소외된 자들의 꿈을 그려보고 싶다는 것이 제 문학적 바람입니다."정 시인에게 시(詩)란 어떤 의미일까. "저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중독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잡념없이 나 자신에게 흠뻑 빠져 몰입할 수 있어 행복하답니다. 앞으로도 언어를 풀어 작은 세상 하나를 탄생시킨다는 희열감을 느끼면서 글을 쓰고 싶습니다."

2009-12-31 김선회

[경인신춘문예]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가들 축하메시지

[경인일보=] 역대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가들이 경인일보의 창간 50주년과 제24회째를 맞은 신춘문예를 축하하고 신춘문예에 응모할 예비 작가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를 보고 꿈 키우는 후배들 볼때 '뿌듯'■ 이연희(2009년 소설 당선) = "현재 모교(서일대)에서 강의하며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지금 목표는 내년에 단편 소설집을 내는 것이다. 현재 구상이 끝난 작품도 몇개 있고 지금 구상중인 것도 있다. 사실 지금 내가 시간강사 자리를 얻게된 것도 경인일보 신춘문예 덕분이다. 개교 이래로 우리 학교 출신이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이 처음이라 학교에서 파격적으로 대우를 해 준 것 같다. 나를 보고 신춘문예 도전의 꿈을 키우고 있는 학교 후배들도 있어 더욱 뿌듯하다. 소설은 사람이 사람 사는 '일', 사람이 사는 '모습'을 글로 나타내는 것이다. 사람을 잊지 않고 글을 써 줬으면 좋겠다."원하는대로 쓰되 독자의 평가 잊지말아야■ 홍명진(2008년 소설 당선) = "이전에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전태일문학상도 나에게 의미가 있는 수상이었지만, 작가로서 제대로 등단하게 된 계기는 경인일보 신춘문예였다. 주위 선배들과 지도교수님도 '신춘문예'의 의미는 특별하다며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참가해 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신춘문예에 당선된다는 건 한 명의 작가로서 인정받는다는 이야기다.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지역신문 중에서는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다. 선정되는 작품의 질이 곧 신춘문예의 질인데, 당선되는 작품들의 수준을 보면 경인일보 신춘문예의 권위가 괜히 인정받는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언어라는 도구로 나타내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즉,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뜻대로 써야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작가로서 독자들의 냉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잊으면 안된다."신춘문예 출신자들의 정기적 모임 결성 바라■ 심은섭(2006년 시 당선) = "경인일보 신춘문예의 가장 큰 장점은 해마다 심사위원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출신이면 어디 가서나 인정을 해준다. 신춘문예 당선 후 대외활동이 잦아지고 문학계에 완전히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원고나 강의 청탁, 심사위원 위촉 등도 자주 받게 됐다. 향후 신문사에서 신춘문예 출신 문인들에 대한 정기적 모임을 결성해 주었으면 좋겠다."문학공부와 소설 끊임없이 쓰게해 준 계기 ■ 양영아(2000년 소설 당선) =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은 나에게는 문학을 계속 공부하고, 소설을 계속 쓸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계기였다. 그 뒤로 몇몇 작품들을 더 썼고 지금은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글과 계속 만날 수 있게 해준 계기가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이었다.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더욱 위상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수준급의 작품이 선정되고, 내 주위에도 참가하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불어 상금도 신춘문예 중에는 높은 편이라, 단지 돈으로서의 의미가 아닌 '신춘문예의 격'을 말해주는 것 같다."지방지 당선자, 중앙지 재공모 현실 아쉬워 ■ 김현영(1997년 소설 당선) = "아마 등단을 준비하는 예비 문인들에게 신춘문예의 당선의 의미는 모두 똑같을 것이다. 작가냐, 작가지망생이냐 그 차이다. 지금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도 경인일보 신춘문예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체도 모호한 소위 중앙 문단에서는 지방지 신춘문예 출신이라고 글 쓸 수 있는 기회를 안주는 경우도 있어 대부분의 지방지 신춘문예 출신들이 또 다시 중앙지나 창작과 비평, 문학동네에서의 등단을 준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즐겁지 않으면 쓰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글 쓰는 일이 괴롭다면 분명 즐겁게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쉽게 쓰라는 소리는 아니다."

2009-12-31 경인일보

[경인신춘문예]경인신춘문예가 걸어온길

[경인일보=김선회기자]'피와 땀을 찍어서 글을 쓰다.'매년 11월만 되면 전국의 수많은 문학 지망생들의 열기로 달아오르는 신춘문예. 지난 1986년 제정돼 이듬해 제1회 수상자를 배출했던 경인일보 신춘문예가 올해로 24회째를 맞았다. 경기·인천 언론사 중에서 유일하게 개최되는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문단에서 그 역사와 권위를 인정받아 매년 우수 문인들을 배출하며 숱한 화제를 낳았다. 1~6회 신춘문예까지는 소설, 시, 시조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됐으며, 7~9회때는 시조 대신 동화부문이 편성되기도 했다. 그러다 1996년 제10회 행사때부터 소설과 시 두 부문으로 나누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매년 30% 가까운 작품 증가세를 보이는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문학시장에 확실한 문학지킴이로 자리잡았다. 또 우수한 심사위원들도 경인일보 신춘문예를 지켜나가는데 한 몫을 담당했다. 김동리, 조병화, 박재삼, 구인환, 하근찬, 신경림, 정진규, 이호철, 이창동, 현길언, 박범신, 공선옥, 김윤배 등 당대의 기라성같은 소설가와 시인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신춘문예의 권위를 높였다.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공통적으로 문단으로의 진입은 물론 자신들의 첫 소설과 시집을 출간하는데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이 굉장한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한편 지난 2003년도 소설 부문 수상작인 기정옥씨의 '즐거운 세탁소'는 최근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고경태 감독에 의해 영화가 추진중이며, 2000년과 2001년에는 양영아·양영미 자매가 연달아서 소설부문에서 당선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9-12-31 김선회

[2009경인신춘문예]신춘문예 접수에서 당선까지

전국 작가 지망생들과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속에 진행됐던 '2009 경인일보 신춘문예'가 ▲소설부문 '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이연희씨)와 ▲시부문 '정글에서 온 풍경'(유병만씨)을 각각 당선작으로 선정하며 막을 내렸다.지난 12월 10일 마감결과 시부문 870여편, 소설부문 170여편이 올해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접수됐다. 1주일간 진행된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은 다시 1주일간 본심 심사위원들의 손을 거쳤으며, 지난 12월 22일 경인일보 본사 3층에서 진행된 최종 심사에서 당선작을 가려냈다.올해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풍년작'이었다. 전년보다 34%가 늘어난 접수로 지역 문단의 화제를 이끌어냈으며, 10대에서 70대까지 여러 세대가 참여해 소재와 주제 면에서 폭이 어느 해보다 넓어졌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특히 체험에 기반한 진솔한 이야기와 경제 위기로 촉발된 어두운 사회상을 담은 작품을 집단 투고한 40, 50대 중년의 도전도 눈길을 끌었다.역시나 수상의 영광은 현 시대의 풍속을 세부까지 생생하게 묘사하는 한편, 상상력도 아울러 갖춘 작품들이 차지했다.소설부문 심사를 담당한 박범신·성석제 소설가는 당선작 '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에 대해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며 불편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풍속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이처럼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써진 듯한, 자기 완결성이 높은 작품을 읽고 나서 '그래서?'라고 그 다음에 대해 묻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거기에 대한 대답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 또한 오늘의 풍속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한편 한국문단을 이끌어갈 신인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지난 1986년에 제정된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올해로 23회를 맞이했으며, 매년 역량있는 문학도를 발굴하고 있다.당선자들은 상패 및 상금(소설부문 500만원, 시 부문 300만원)을 받게 된다.

2009-01-01 이유리

[2009경인신춘문예 당선작·시부문]정글에서 온 풍경

정글에서 온 풍경 (유병만)베트남 며느리가 순산했다는 읍내 전화에논두렁이 파랗게 깨어나고 있다노인의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완만하게 달라붙어 있던 들판이 뚝 떼어진다잠시 주춤하던 족보의 한 갈래가 생기를 되찾고상속되어져야 할 땅의 분량이 새로운 식량을 서두른다그 압력을 견디지 못한 혼잣말이 논두렁을 가로지르던 바람에 베어 물리고들녘 한 켠이 툭 닫힌 핸드폰 밖에서 곰곰이 쭈그려 앉는다지난 시절은 불임의 푸르름이었다지난날들은 불안한 가계였다일찍 여문 씨알 몇 훑으려다가 부주의한 손가락이 주춤 열리고갈길 바쁜 소나기가 허릴 낮게 구부려 담배내음 짙은 안쪽까지 적신다문득, 월남전에서 아뿔싸그 옛날 그 땅에 고엽제를 뿌렸던 기억을 하자노인의 숨결이 노랗게 말라버린다의족을 짚지 않으면 일어서지 못하는 기억들을 챙기려는 듯낮게 기어 다니던 소나기가 더운 열기의 정수리 위로 떠밀리고웅크려 있던 호흡을 힘껏 곧추세운다며느리가 온 후 집안의 날씨가 더 따뜻해진 것도 태양을 혼수품으로 가져온 때문임을, 논두렁에 묻어 두었던 걱정을 가로질러 읍내로 빠르게 달려간다■ 시부문 당선소감 / 유병만"택했기에 설레고 아파할길… 뚜벅뚜벅 내일 걸어가겠다"내 안에 희미하게 웅크리고 있는 공복이 당신인가요?충혈된 낙타의 눈빛같은 홍차를 오늘도 그들과 함께 마셨습니다. 테러와 전쟁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차도르며 터빈 두른 글썽임으로 찾아와 그들의 나라가 내게 준 집, 티그리스 강물 소리로 거실을 서성거립니다. 양 볼에 눈물을 파종한 맨발의 아이들이 커서를 켜면, 나 또한 어린 촉수를 가진 유령이 되어 한밤중을 수런거립니다.태양의 연인 같던 나라, 별 내리는 구릉과 신기루를 범한 푸른 날의 나의 죄, 유정(油井)에서 길어 올린 사하라의 울음은 꿈의 모래폭풍이 되어 새벽까지 입안에 으적거리곤 합니다. 지구촌에서 온 노동의 얼굴들마다에서 읽는 나, 우리들, 누가 누구에게 과연 이방인일까요. 섬같은 이 땅의 인연이 되어 며느리가 되어 탯줄 잘라 내일을 순산하는 지구촌의 여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희한하고 달콤하다고 낯선 겨울 풍경을 두 손에 가득 받아 웃는 모습에서 함박눈은 내 기억의 사막과 정글 위에 모든 종교가 되어 내립니다.처음 얼음장들의 밤을 사유의 울림으로 함께 걸어 주신 진춘석 선생님, 다른 나무, 다른 열매가 되라는 주문으로 일갈하시던 박경원 시인의 참 정신이 쟁쟁 가슴에 들립니다.도반들의 한글사전 앞에 새로운 격려를 꺼내어 랭보처럼 좋아하시던, 울컥울컥 살가운 중앙대 문창과 이승하 교수님, 한 해 동안 우주를 받아 안느라 향유고래 가시를 감히 목젖에 따끔거리게 했던 장석주 선생님, 경인일보사와 주위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택했기에 설레고 아파해야 할 길임을 잘 압니다.길 없는 길을 열어 낙타처럼 가야겠지요. 발굽보다 가슴이 뜨거워야 하고 알람시계의 새벽을 불면으로 더 많이 살해해야겠지요. 오아시스에 비친 태양의 동공을 만나면 또 글썽거리면서요. 에둘러 돌아와 마주한 당선 소식, 참새들마저 포릉, 포르릉, 자선(慈善)의 썰매를 끌고 날아다니는 계절이어서 이런 받음이 부끄럽습니다. 늦게나마 거실의 공간을 허락해준 곽일영(郭一寧)여사와 미나, 민영의 응원 늘 힘이었다고 뚜벅뚜벅 가야할 내일을 겸허히 추슬러보는 다시 혼자만의 새벽입니다. 편운제의 문우들과 시샘동아리의 맑은 눈빛들, 사계절 환한 '안성 詩 문학회' 사람들이 아른거립니다. 늦깎이에게 마다않고 휘둘러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의 소중하고 고마운 회초리, 기꺼워 옷깃을 여밉니다. - 약력1953년 4월 11일 생 전 중앙주간 '귀국' 외 다수 입선. 월간교통에 '예수님과 교통순경' 단편소설 발표중앙대 문예창작과 수료현재 '지산' 공인중개사 대표■ 시부문 심사평 / 김윤배·홍신선"죽음통해 생명 영속력 표현… 리얼리티+상상력 조화로워"대체로 평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이번의 응모작들은 소재주의가 눈에 띄었다. 시대적 소외의식의 반작용이라고 보여지는 가족애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았다. 이런 시편들은 자연스럽게 회고지향의 색깔을 띄게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지나치게 신춘문예를 의식하고 씌어진 작품들이 많았다. 이 경우 시편들은 결핍된 의식을 드러내거나 현란한 수사와 함께 허위의식으로 시문이 채워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응모작이 응모자의 기본정조에 따라 지향성을 이루면서 독특한 색깔을 드러내고 있어 상당한 수준의 어법을 터득하고 있다고 판단되지만 지나치게 안정되어 있어 파격적인 실험정신을 볼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심사위원 두 사람은 '잘 못 배달된 편지처럼', '정글에서 온 풍경', '김밥에도 천국은 있다', '그녀가 내 마음의 틈에'를 최종심에 올리고 토론을 거쳐 김순자의 '잘 못 배달된 편지처럼'과 유병만의 '정글에서 온 풍경'으로 수상작을 압축했다.'잘 못 배달된 편지처럼'은 현관문 오른쪽에 나란히 붙어 있는 네 개의 명패를 우표로 상상하는 것으로부터 시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화자의 집은 편지봉투이고 집으로 귀가하는 화자는 한통의 편지인 것이다. 편지의 끝에는 의례히 타인의 말인 추신이 따르고 "어디로든 반환되어야 할 떠돌이 우편물이"라고 스스로를 말한다. 삶의 정처 없음과 부박함을 드러내는 '가볍디 가벼운 지구의 검불'이라는 인식은 새롭지는 않으나 성찰의 소산이다.'정글에서 온 풍경'은 베트남 며느리가 순산했다는 전화에 "논두렁이 파랗게 깨어나고 있다"는 신선한 충격으로부터 시가 시작된다. 서사가 있는 이 시편의 주인공은 월남전에 참전했던 퇴역의 군인이며 농사를 짓는 노인이다. 노인에게 "지난 시절은 불임의 푸르름이었"으며 "지난 날은 불안한 가계였"다. 이제 며느리의 순산으로 "잠시 주춤했던 족보의 한 갈래가 생기를 되찾"았을 뿐 아니라 "집안의 날씨가 더 따뜻해진 것도" 며느리가 태양을 혼수감으로 가져온 때문이라고 안도하는 것이다.김순자가 경쾌한 상상력의 시세계를 보인다면 유병만은 삶의 곡진한 무게를 드러낸다. '정글에서 온 풍경'은 월남참전의 역사적 부채의식과 다문화가정으로 대변되는 인류애를 드러내면서 손자로 상징되는 생명과 노인으로 상징되는 죽음의 의미를 통해서 영속하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시는 기본적으로 리얼리티이다. 그러나 리얼리티만으로 시가 되지는 않는다. 상상력이라는 창조적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유병만의 작품은 이와 같은 시의 준거를 모두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심사위원 두 사람은 쉽게 '정글에서 온 풍경'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아깝게 기회를 놓친 김순자의 시도 머지않아 우화등선의 기쁨을 누릴 것으로 믿으며 당선자 유병만의 시세계가 더욱 깊어지고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한다.

2009-01-01 이유리
1 2 3 4 5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