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신춘문예

 

[2010 경인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아내의 화단 - 전영일

1.여름이 가려나? 완연한 가을 날씨다. 오랜만에 밤 산책을 나섰다.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한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사이로 몇몇 별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공원의 나무들을 어루만지며 지나가는 바람의 옷자락엔 약간의 스산함이 배어 있었다. 언뜻언뜻 비치는 달빛에 가슴이 하얗게 물드는 것 같았다. 울타리 쪽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잠시 취해 있다, 고양이 한 마리가 가을의 문 앞을 서성이는 듯 공원 안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것을 나는 유심히 지켜보았다.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너도 나와 같은 거니?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무심코 거리로 나서서 시간의 틈을 메우고 있는 거니?"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녀석은 내가 앉아 있는 벤치 위로 휙 올라서곤 자세를 고쳐 앉는다. 앉음새가 꼭 아내를 닮았다. 보온병에 담긴 원두커피 향을 맡는가 하면 뚜껑을 앞발로 툭툭 건드린다.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눈치다. 나는 달을 더 바라다보았고, 녀석 또한 내가 바라보는 쪽을 멀거니 응시하는 듯했다.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의 배는 동그랗게 불룩해져 있었다. 새끼를 밴 것이리라. 목 아래를 쓰다듬어주자, 녀석은 눈을 감은 채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울대의 떨림이 그대로 손에 전달됐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가 듣기 좋았다. 고양이는 따뜻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는 대화를 나눴다. 약간 망설여졌지만, 녀석에게 이름을 붙여 주고 말았다. '묘심(猫心)', 고양이 '묘(猫)'에 마음 '심(心)'. "심아, 가을이구나! 이젠 어디로 갈 거니?""……"벤치 아래로 사뿐히 내린 묘심은 내 다리를 한 바퀴 빙 돌더니 나를 한 번 올려다보곤, 어슬렁어슬렁 길을 떠났다. 오늘 난 과묵한 녀석 하나를 친구로 얻었다. 내일 또 볼 수 있을까? 바람이 한결 차다. 곧 노란 은행나무 잎들이 거리를 술렁거리다 겨울의 숲 쪽으로 우우우 달려갈 것이다. 아내의 재를 이 곳 화단에 뿌린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동사무소 직원이 방문하여 이것저것 캐묻고 갔다. 통장인 옆집 여자가 신고한 탓이리라. 무의탁 독거노인 판별을 위한 방문이었을 게 분명했다. 멀쩡한 자식이 셋이나 있고 일시불로 받은 연금으로 생활비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말로 돌려보냈지만, 다음 날부터 문 앞에 도시락을 두고 가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쌀을 가져다 놓았고, 반찬통도 두고 갔지만, 일절 내다보지 않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시점부터 다행히도 발길이 뚝 끊겼다. 정년 퇴임한지도 어느 새 4년이 흘렀다. 38년간 초등교사로 일했지만, 지금은 아침마다 집 앞 공원과 그 주변을 청소하고, 폐품수거로 돈벌이를 하며 지낸다.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리수거하고 비질을 마친 다음, 말쑥해진 공원 주변을 바라보는 감회는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다. 반평생 교직에 있었지만 국가에 헌신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내가 헌신할 상대는 나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이지 국가가 아니었다. 더 많은 월급을 바라거나 승진을 종용하지 않던 아내에게 늘 고마웠다. 대신 아내의 고생이 컸다. 퇴임식을 사양하고 조용히 학교를 떠나던 날, 모든 게 후련했다. 인생의 먼지를 모두 털어낸 심정이었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기분이었다. 2."돈이 좀 필요해요."둘째아들 원석이 전화로 한참 뜸을 들이다 한 말이다. 한 달 전 수술 중 환자가 사망하는 의료사고를 낸 막내 원호가 합의금으로 연금의 밑바닥 잔고까지 싹 쓸어가 버린 일은 아직 모르는 눈치다. 환율이 올라 적게 송금한 돈이 마음에 걸렸다. 음대를 졸업하고 3년간 사립 고등학교 음악교사를 하다 미국 유학을 떠났다. 서른이 다 돼 집안에 처음 여자를 데려와선 결혼을 공포하곤, 한 달 만에 파혼했다. 그 뒤론 그나마 있던 말수마저 줄었다. 죽기 전 아내는 짧은 통화로라도 목소리 듣는 걸 감지덕지하곤 했다. 10년 전 원석이 제대하던 날, 퇴근 후 현관에서 나를 맞은 건 원석이 아니라 망치였다. 검은색 털에 늙수그레한 삽살개 혼혈이었다. "부대에 그냥 두고 오기 뭣해 데려왔어요." 원석은 2층에서 내려오다 층계참에 다소곳이 서 있던 망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머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원석아, 와서 잡채 간 좀 봐라." 들뜬 아내의 목소리에서 오랜 시름 하나가 사라진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행동이 굼뜨고 느린 데다 숫기도 없고 말수마저 적어 아내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원석의 제대는 아내에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둘째가 부엌으로 간 사이 망치와 나는 거실을 사이에 두고 잠시 대치했다. 그게 녀석과의 첫 대면이었다. 녀석은 고개를 뻣뻣이 든 채 내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꼬리를 흔들어 반겨하지도 않았고, 주눅이 든 것 같은 표정도 아니었다.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는 시선에서는 약간의 호기심도 엿보였다. 그런 태도가 왠지 모르게 기품이 있어 보였다. 망치는 생각보다 적응력이 빨랐고, 나름 애교도 있었다. 집안에 자식 하나가 더 생긴 것 같았다. 아내는 망치를 꼭 둘째 대하듯 했다. 일을 마치고 귀가해서도 망치부터 찾았다. 원석아, 이리 온. 어떨 땐 망치를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아내는 살뜰하게 망치의 잠자리를 보살피고 끼니때마다 밥을 해 먹였다. 욕실에서 정성껏 망치를 씻기는 아내의 눈빛엔 애정이 가득 서려 있었다. 둘이 함께 손을 잡고 뒷산으로 산책 겸 운동을 나갈 때에도 아내의 눈은 항상 저만치 앞서 걷는 망치를 향해 있었다. 한 번은 그 눈빛이 하도 끈끈하고 친근하여 뜬금없이 질투가 치솟을 지경이었다. 망치는 죽기 1년 전부터 치매를 앓았다. 노환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아내와의 산책을 거부하곤 정원만 빙빙 맴돌았다. 느닷없이 하늘을 향해 짖어대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참치 통조림도 마다하고 아내가 직접 밥을 떠 입에 넣어줘도 도통 먹으려 들지 않았다. 나중엔 더는 삼킬 힘이 없는지 입 밖으로 연방 밀어낼 뿐이었다. 기력이 쇠해 더는 거동조차 못하게 된 망치는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그러나 똥오줌만큼은 신기하리만치 잘 가렸다. 그것이 습관의 위력인지 망치의 의지인지 분간할 순 없었지만, 누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철저했다. "치맨데 흔치않은 경우죠. 드물지만, 간혹 그런 녀석들이 있어요. 영물이 따로 없죠."망치의 안락사를 돕던 광태가 한 말이었다. 광태는 성형외과 의사인 막내 원호의 고교동창으로 강남 반포동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한다. 좀 덜렁대긴 해도 똑똑하고 싹싹한 아이였다. 안락사 주사제는 색깔별로 구분된 각기 다른 병에 담겨져 세 개가 한 세트인 듯 별도의 케이스 안에 들어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모양이구나.""예전에 비하면 많이 늘었어요. 사람에겐 안 되는 일이지만, 동물한텐 다반사인 게 안락사예요."수술대 위에 맥없이 누워 있는 망치의 안색은 몹시 초췌해 보였다. 광태는 망치의 왼쪽 앞발 겨드랑이 근처에 링거를 꽂고 천천히 붕대를 감아 고정했다. 뜻밖에도 안락사 방법은 간단했다. 곁에서 잔뜩 긴장을 하고 지켜본 것에 비하면 싱겁기 짝이 없었다. 진통제, 근육마비제, 심장마비제 순이었다. 주의할 점은 순서였다. 세 번째가 먼저 주사되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인해 극심한 통증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 광태가 들려준 말의 요지였다. "갔군요."동공을 주의 깊게 살피고 청진기를 귀에서 뗀 광태는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망치는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깊은 잠에 빠져든 것처럼 보였다. 광태는 한사코 돈 받기를 거절했다. 망치를 편안히 보내준 답례로 내가 대신 동물병원을 봐주기로 하고 원호를 불러 고급 한정식 집에서 비싼 점심을 사게 했다. 광태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몰래 주사제 한 세트를 챙겼다. 아내가 죽기 석 달 전의 일이었다. 3.아내는 초등학교 졸업 후 스물 셋이 될 때까지 서울 평창동 큰집에서 할머니의 병수발을 들며 살았다. 가난한 집 팔남매 중 둘째로 영월에서 태어났다. 오빠와 동생들의 교육비를 대기 위한 상경이었고, 집안 어른들의 거래에 따른 것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사촌동생들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보낸 뒤, 할머니 방에서 내온 기저귀와 이불을 빨아 넌 다음, 집안 청소를 하고 시장을 보고 반찬을 만들고 저녁밥을 지으며 살았어요. 말이 좋아 손녀고 조카에 사촌 누나지 식모나 다름없는 생활이었죠. 10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할머니를 미워해 본 적은 없어요. 차라리 어른들이 미웠죠.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제게 미룬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어떤 날은 할머니가 측은하기도 했지만, 미워하진 않았어요. 연탄가스 중독으로 하반신 마비에 치매까지 앓았거든요. 할머니는 가끔씩 나를 알아보고 웃기도 했지만, 기저귀에 똥을 싼 채 앉은 자세로 방바닥을 쓸고 돌아다니기도 했고, 기저귀를 벗어 벽에다 똥을 발라 놓기도 했어요. 그런데 정말 이상했던 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딱 일주일 전에 제 정신이 돌아왔다는 점이에요. 여느 때처럼 기저귀를 갈고 방청소를 하고 이부자리를 정리한 다음 방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이러는 거예요. 영심아! 대야에 물 좀 떠 오너라. 깜짝 놀랐어요. 할머니가 제 이름을 부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할머니는 손수 세수를 한 뒤 머리를 빗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어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조카들은 물론, 기별을 받고 황급히 올라온 부모님까지 다 알아봤고, 이름을 불러가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으셨죠. 그렇게 일주일을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지내곤, 장독마다 수북하게 눈이 쌓이던 1월의 어느 날 아침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잠에서 깨지 않았어요. 장례 절차를 마친 후 큰집을 나서면서 전 맹세했어요. 사랑하는 이들에게 똥오줌을 받아내게 하고 아랫도리를 내보이는 짓은 하지 않으리라, 때가 되면 고귀하게 삶을 마무리하리라 다짐했어요." 1969년 가을, 첫 번째 데이트 장소였던 경복궁 중궁전 뒤뜰 툇마루에 앉아 아내가 처음으로 내게 들려준 이야기였다. 어찌나 확고하게 말하던지 아내의 목소리엔 강한 힘이 서려 있었다. 아내의 유일한 취미는 독서였다. 주로 인문학 관련 책들을 선호했지만, 활자가 박힌 거면 뭐든 읽어치우는 습벽이 있었다. 책을 읽다가 까맣게 태워먹은 냄비가 한 둘이 아니었을 정도로 집중력 또한 대단했다. 아내는 제도권 공부를 못한 자신의 한을 자식들을 통해 풀려 하지 않았다. 반찬가게에서나 집에서나 틈만 나면 책을 봤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대입고사를 볼 때까지 자식들 하나하나를 길러내는 아내의 정성은 나로선 도저히 흉내조차 못 낼 정도였다. 아이들이 시험 때마다 벼락치기로 밤을 샐 때면, 곁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었다. 대입고사 날도 남들처럼 간절히 기도하는 법도 없었고, 하릴없이 대학 정문에 엿을 붙이러 가지도 않았다. 그런 날은 반찬가게 문도 열지 않고, 꼼짝도 않은 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아내는 오직 제 힘으로만 나로선 도저히 꿈도 꾸지 못할 다양한 책들을 섭렵해 나갔다. 서가를 가득 메운 책들이 아내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다. 막내 원호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시작한 반찬가게 수입은 나보다 나았다. 아무리 고단해도 피곤한 내색 하나 없이 새벽같이 일어나 일터에 나갔다. 그런 탓에 그 전보다 커피 섭취량이 늘었다. 아내가 만든 음식은 점심 한 나절이면 다 팔려 나갈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전셋집 옥상 텃밭에서 자신이 정성껏 가꾼 유기농 야채들을 재료로 쓰는 것이 비법의 핵심이었다. 또한 부족한 재료들은 직접 산지를 돌며 거래농가들을 선별하고 다녔을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아내의 실력은 3년간 천천히 입소문이 났다. 부촌의 잔치음식들까지 도맡아 하게 된 후로는 수입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그런 만큼 늘 잠이 부족했고, 식사 또한 불규칙했다. 시간에 맞춰 잔칫상을 내기 위해 이집 저집을 끼니도 거른 채 먹는 둥 마는 둥 뛰어다녔고, 남의 음식은 공들여 만들어 놓고 정작 집에 돌아온 자신은 지쳐 아무 것도 못 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하루 4시간도 못 자고 돌아다니던 바쁜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원호의 가출과 오토바이 사고가 잇따라 터져 아내의 속을 뒤집어 놓고 말았다. 유학 간 큰딸 원희와 군대 간 원석에 대한 걱정 또한 끊일 날이 없었다. 그렇게 6년을 더 버틴 아내는 4월의 화창한 봄날, 일산 장항동 전원주택으로 입주할 수 있었다. 4."복수가 찼어요." 응급실 당직 수련의가 한 말이었다. 처음엔 단순 복통인 줄로만 여겼으나, 뜻밖에도 아내의 병명은 난소암 말기였다. 아내는 유독 병원가기를 꺼려했다. 어차피 죽을병은 의사도 못 고친다는 게 평소 아내의 지론이었다. 현대 의학을 맹신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못마땅해 했다. 원희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던 날도 그랬다. 느닷없이 쌍꺼풀을 하고 코를 세우고 나타난 원희에게 아내가 처음 한 말은 '고생 많았지'가 아니었다. '수술대 위에 누워 정신을 놓은 채 의사에게 몸을 맡기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다신 그러지 마라'였다. "여기가 자궁이고 이게 난소인데, 이거 보이시죠?" 모니터 속 마우스가 아내의 자궁 끝 난소에 위치한 종양의 궤적을 따라 움직였다. MRI 사진 속 종양의 크기는 상상 외로 커 보였다. 담당의는 원호의 동문 선배로 여성암 분야 국내 권위자다. 그는 공손한 말씨로 말을 이어갔다. "전이가 벌써 많이 진행됐어요. 여기 보이시죠? 나팔관인데 자궁과 함께 적출해봐야 소용이 없을 정도로 넓게 퍼져 있어요. 생각보다 심각해요. 난소암은 전이 속도가 매우 빨라요. 혈액 검사로도 발견되지 않아 어머님처럼 처음 병원에 오면 대개 다른 부위들로 전이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미국에선 '무언의 살인자'라고 부를 정도로 매우 공격적인 암이에요."아내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가끔 통증이 있을 때마다 진통제를 먹고 그럭저럭 넘긴 게 저렇게 큰 종양을 키운 원인이리라. "다른 부위로도 이미 전이됐을 가능성이 높아요. 일단 입원하시고 몇 가지 검사를 더 한 다음에 결과를 보고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죠."말기 암환자 선고를 받은 후 아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정원의 텃밭을 확장하는 공사였다. 장독으로 쓸 옹기들을 사들이고, 인부들을 불러다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바르고, 흙을 퍼 나르고 정성껏 옹기들을 묻었다. 가장자리 쪽으로 배치한 화단에 꽃들을 옮겨 심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농산물 시장에 나가 장을 본 후 김장을 하고 된장과 고추장, 간장을 담갔다. 피곤한 기색도 없이, 일사천리로 해치웠다. 그리곤 사흘을 꼬박 몸살을 앓았다. 아내의 노력은 한 달도 못 가 수포가 되고 말았다. 집을 부동산 중개소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건 원호 때문이었다. 10년 넘게 살아온 2층 전원주택이었다. 전문의 자격을 따자마자 강남에 병원을 개업해달라는 원호의 우격다짐에 '여보, 당신이 참아요. 그냥 들어 줍시다'는 말이 그만이었다. 아내는 서둘러 이삿짐을 꾸려 뒤도 한 번 안 돌아보고 나섰다. 아내가 새로 정한 보금자리는 부천시 원미구 고강동에 있는 3층 단독주택 반 지하에 자리해 있었다. 서울 변두리와 접경인 지역으로 근처엔 아담한 산도 있어 공기도 맑았다. 다만 김포공항이 가까워 소음이 좀 심한 편이었다. 새로 이사 온 집에서도 아내의 눈썰미가 느껴졌다. 방 두 칸에 좁은 욕실이 딸린 깔끔한 집이었다. 둘이 살기에 딱 좋은 평수였다. 일산 전원주택 정원에 있던 아내의 텃밭은 집 앞 공원 울타리 가장자리로 일부 자리를 옮겼고, 나머지는 장독들과 함께 3층 주인집 옥상에 옮겨 놓았다. 주인집이 옥상의 빈터를 빨래를 널어두는 곳으로만 사용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지만, 아내가 이 집을 고른 데는 그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출입문이 주택가 자그마한 공원의 대각선 맞은편에 위치해 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으리라. "당신과 다시 결혼해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기분이야."이사 후 첫날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기지개를 켜며 아내가 한 말이었다. '우리의 첫 보금자리였던 부평 사글셋방보단 훨씬 좋다'며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그때 아내의 표정에선 신혼 때 못지않은 열정이 느껴졌다. 예순셋의 말기 암환자라곤 도무지 믿겨지지 않을 만큼 밝고 활기차 보였다. 5.내 팔에 의지해 암센터 병동 복도를 걷다 말곤 한 움큼 빠진 머리카락을 쥐어 보이며 머쓱하게 웃던 아내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나빠졌다. 난소에서부터 시작된 종양은 아내의 복막과 골반 내 림프절로도 이미 전이된 뒤였다. 전이 속도는 담당의의 예측을 초월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진행되었다. 흉부와 목의 임파선까지 전이되는 데엔 석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내는 수술은 단호하게 거부했지만, 큰딸 원희가 닦달하다시피 몰아세운 항암치료만큼은 끝내 만류하지 못했다. 원희의 관심은 아내가 겪게 될 고통보다는 자기 체면을 차리는 데 있는 듯했다.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 따윈 관심조차 없다는 말투였다. "엄마는 내가 나중에 사람들한테 '제 어미가 암에 걸렸는데 돈도 많이 버는 년이 맹추같이 아무 것도 안 하고, 엄마 말대로 곱게 죽게 만든 천하에 못된 년'이란 소리를 꼭 듣게 해야 속이 시원하겠어? 남들 다 그렇게 하는데, 나도 효도 좀 하자.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해라. 엄마."나는 원희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원희는 아내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부지불식간의 일이었지만, 달래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자기 생각을 아내에게 관철할 필요가 있을 때, 원희는 말끝마다 '엄마'라는 말을 넣어 발음하곤 했다.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과 함께. 그 말만 나오면 아내는 즉각 꼬리를 내렸다. 원희는 '엄마'라는 말을 주로 아내의 입막음용으로 썼다. 원희가 한 말은 '고통을 참다 죽어라'는 것과 같았다. 그런 걸 자식이랍시고 끌어안아 달래고 있는 아내를 보곤, 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쟤들도 한이 될까봐 저러는 모양인데, 그냥 하라는 대로 하게 놔둡시다. 그래야 나중에 어미 탓 않고 잘들 살 거 아니우."원희는 매번 그런 식이었다. 아내가 질색하던 밍크코트를 강제로 입혀선, 기필코 제 자식 돌잔치에 앉혔다. 강남 영어학원에서 유명세를 타고 EBS 영어강좌를 맡게 된 기념으로 최신형 냉장고와 로봇청소기를 집안에 사들였을 때도 그랬다. 그것들을 일러 엄마한테 주는 '선물'이라 말했다. "멀쩡한 냉장고가 있고, 진공청소기도 쓰던 게 있는데, 뭘 또 사니? 필요하면 너나 써라. 그리고 '선물'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주는 거지, 필요하지도 않은 걸 강제로 떠맡길 때 쓰는 말은 아니잖니?"그러나 가전제품 대리점 직원들이 새 냉장고를 설치하고 전에 쓰던 것을 수거해 돌아갔을 때도 아내는 원희가 진두지휘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둘 뿐이었다. 매사가 그 모양이었다. 원희는 항상 자기 생각만 앞세워 행동했고, 원희가 그럴 때마다 아내는 마지못해 수긍하곤 했다. 아내를 막무가내로 떠밀다시피 국립암센터 병원으로 데려온 것도 원희였다. 그걸 자신이 베풀 수 있는 효도의 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 덕에 아내는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지만, 항암치료의 고통을 안겨준 원희를 탓하는 말은 일절 꺼내지 않았다. 대신 이를 꽉 깨물고 견뎠다. 어금니가 다 빠져버릴 때까지. 아내는 나로선 흉내조차 못 낼 지독한 면이 있었다. 한 달만 있다 가자던 아내는 원희 덕에 두 달을 더 병실에 머물러야 했다. 아내는 집에 가고 싶어 안달이었다. 주인집 옥상에 둔 장독들과 공원 화단에 옮겨 심은 꽃들 생각에 한시도 시름을 놓지 못했다. 옷가지를 챙기러 내가 잠시 집에 다녀왔을 때도 그것들을 살피지 않고 서둘러 돌아온 나를 들들 볶았을 정도로, 곁에서 간병하는 내 안색보다 멀리서 찬바람을 맞고 있을 그것들의 안부를 살피는 데 더 혼을 쏟았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여보."퇴원 수속을 마치고 온 내 손을 잡고 병실을 나서던 아내가 한 말이었다. 검정색 니트 모자를 뒤집어쓰곤, 3일째 항암치료로 아무 것도 삼킨 게 없는 아내는, 까맣게 타 들어간 혀를 날름 내보이곤 환하게 웃었다. 아내의 살을 갉아먹으며 아내의 몸 전역으로 빠르게 진군해 가던 종양들도 아내의 환한 미소만큼은 쉬이 점령하지 못했다. 아내는 낯선 병실에서 죽음을 맞고 싶어 하지 않았다. 시내 아이스크림 가게 창가에서 아내는 함박눈처럼 웃으며 퇴원을 자축했다. 죽기 두 달 전의 일이었다.6.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 만종분기점을 지나 제천을 거쳐 영월에 도착할 때까지 아내는 잠에 빠져 있었다. 4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을 40년 만에 온 것이다. 죽기 한 달 전 아내와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동강에 닿자마자 아내는 번쩍 눈을 떴다. 아내는 밖으로 나가 강가를 따라 걷다 얼마 못 가 모래톱 위에 앉아 숨을 골랐다. "강은 예전 그대로네. 세찬 물살도 여전하고 빛깔도 참 곱다. 당신이 처음 데이트 신청했을 때, 당신 모습이 어땠는지 내가 말했었나?""아니?""물에 빠진 사자 같았어.""뭐?"아내와 나는 마주 보고 깔깔 웃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밝은 모습이었다. "당신이 교무실 창문에 노크하고 밖에 서 있었잖아.""학교에 맨 먼저 출근하던 사람이 당신이었잖아. 아무도 없을 때 말하려고 밤을 꼴딱 새우고 갔었지.""당신 그때 이렇게 말했어. 내일 시간 있어요? 함께 경복궁에 갑시다."내 말투를 그대로 흉내냈다. 아내와 난 폭소를 터뜨렸다. 아내는 신기할 정도로 흉내를 잘 냈다. 아이들의 볼멘소리를 그대로 따라 했고, 가식적인 정치인들의 특징만 포착해 잘도 흉내냈다. 아내의 성대모사엔 위트가 넘쳤다. "교무실에서 청소를 끝내고 화분에 물을 주고 있는데, 당신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오는 걸 봤어. 모른 척 했지.""다 알고 있었다는 얘기네.""곱슬머리에, 머리도 안 감고 나온 게 꼭 웅덩이에 빠졌다 나온 사자 같았거든. 난 당신이 아이들 가르치는 모습이 좋았어. 학교에 제일 먼저 출근한 사람도 당신이었고, 나머지 공부시키고 교재 연구하느라 제일 늦게 퇴근하던 사람도, 애들하고 운동장을 누비며 뻘뻘 땀을 흘리며 공 차던 사람도 당신이었어." "당신 참 예뻤지. 교무실에 잠깐 들렀는데, 그때 당신 철학책을 읽고 있었어. 아무도 없을 때 틈날 때마다 보는 것 같았거든. 누가 들어오면 금방 덮어버리고 딴 일을 하곤 했으니까. 어찌나 집중해서 읽던지 내가 가까이 가는 기척도 전혀 못 느끼는 것 같더라. 당신 집중력만큼은 지금도 대단하잖아.""근데 왜 아무 말 안했어?""내가 그 쪽엔 젬병이잖아. 아는 것도 없고. 책보단 그림을 더 좋아했지. 그래도 당신, 그쪽에 대해 나한테 뭘 물어보거나 아는 체 한 번 안 했어.""교무 보조로 일했지만, 난 그때 당신 보는 재미로 학교에 다녔어. 초등학교 졸업하고 큰어머니 따라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중학교에 못 간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나는 나대로 나만의 삶이 있을 거다."그때 마침 수달 한 마리가 나타나 세차게 자맥질을 하곤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낮에 돌아다니다니 배가 몹시 고픈 모양이었다. "여보, 저기 저 수달에게도 삶이 있어. 그냥 배가 고파서 나온 게 아니라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한 낮에 먹이를 구하러 나왔다고 생각해봐. 삶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어미 수달의 마음, 그 깊은 속을 누가 다 알겠어? 삶이란 쉽사리 이해될 수 있는 게 아니야. 잠자코 제 뜻을 펼치는 것이고 혼신의 힘을 다해 정면을 향해 휘적휘적 나아가는 거지. 야생의 수달은 가족의 일을 의사와 상의하지 않아. 병원이나 교회로부터 가족의 죽음을 인준 받지도 않지. 굶어죽을지언정 남에게 먹이를 구걸하지도 않고. 제 힘만으로 혼신을 다해 삶을 영위하다 홀로 생을 마감할 뿐이야. 반면에 인간은 며칠 더 살겠다고 죽을 때까지 병실에 누워 고통을 감수하지. 고통스러워 그만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지도 못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겪는 일치곤 정말 비인도적인 관행이지. 난 그렇게 살다 죽지 않을 거야, 여보. 강요된 지침을 따르는 건 내 방식이 아니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그사이 수달이 지나가면서 만든 물길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아내와 나는 한동안 동강의 흐름과 계절의 흐름이 맞닿아 흘러가는 것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내내 잠에 빠져 있었다. 아내가 한 말은 내 머리를 강타하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안락사에 대해 아내만큼 확신이 서지 못한 상태였다. 낮게 코를 골며 잠에 빠진 아내에겐 누구도 범치 못할 고귀한 혼과 힘이 내재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아내의 의지를 가로막을 자신이 없었다. 7.퇴원 후 그토록 그리던 집에 도착한 아내는 온종일 옥상의 장독들을 정성껏 닦는가 하면, 공원 화단에 옮겨 심은 꽃들에 물을 주었고, 밀린 청소와 빨래를 하고 묵은 옷가지들을 정리했다. 어쩐 일인지 자식들과의 통화를 피했고, 대신 각자에게 부칠 마지막 편지를 썼다. 아내에게서 슬픈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내는 바위처럼 단단해 보였고, 햇살 가득한 잔잔한 바다처럼 평온해 보였다. 드디어 아내가 정한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아내의 요구대로 병원에 전화를 넣어 담당의에게 아내의 상태를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통증이 심해져 무통주사와 영양제를 더 맞을 수 있도록 병원에서 사람을 보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오전에 간호사가 다녀간 뒤, 아내는 영양제와 무통주사제가 혼합된 링거액을 덜어내곤 조리개를 조여 두었다가 저녁밥상을 물리고 다시 풀어놓았다. 안락사를 의심받지 않게 하려는 아내의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주사액들이 쭉정이같이 말라버린 아내의 겨드랑이 중심정맥을 타고 심장으로 들어갈 터였다. 그날 오후에 아내는 마지막으로 공원의 꽃들을 둘러보았고, 주인집 옥상에 올라 장독들 하나하나를 따스하게 어루만졌다. 아마도 자식들을 무사히 키워낸 데 대한 답례였으리라. 저물녘엔 장독들 곁에 기대 앉아 한참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곁에서 링거를 들고 따라 나선 나 따윈 안중에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내의 손등은 항암제 투약으로 생긴 상처투성이였다. 발목과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빼곡히 난 바늘구멍을 따라 피멍이 들어 까만 자국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아내의 손등에 있는 멍 자국들 위로 내 눈물이 뚝뚝 떨어졌을 때, 아내는 힘없이 웃어 보이려 애를 썼다. 그 때 아내의 표정은 처음 만났을 때 내게 지어보였던 미소를 떠올리게 했다. 첫 번째 주사제 10cc를 링거 주입구에 투여하자 아내는 스르르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순서를 바꿔 주입하는 실수를 할까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두 번째 근육마비제 투약을 망설이던 나는 더 이상 울음을 참지 못했다. "어서요, 여보." 깜짝 놀란 나는 얼른 눈물을 닦고, 두 번째 주사제 20cc를 주사했다. 그 사이 잠이 든 줄로만 알았던 아내가 낮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환청이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들은 아내의 마지막 음성이었다. 10분이 경과한 후 심장마비제 주사를 마무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얼굴과 몸은 싸늘히 식어 갔고, 딱딱해진 빵조각처럼 한순간에 쪼그라든 것만 같았다. 체온이 사라진 아내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내의 죽음이 아니라 주검에 불과했다. 아내는 죽지 않았고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주검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병원에 도착한 아내의 시신은 담당의의 검안을 거쳐 냉동실로 옮겨졌다. 아내의 사망은 기대했던 일이 당연히 일어난 것처럼 즉각 확인되고 승인되었다. 담당의가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는 동안, 나는 아내가 써 둔 메모대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가족들 외엔 조문객은 따로 받지 말라 했으니 아무 데도 연락하지 마라 신신당부를 했건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시부모를 포함한 원희네 조문객들이 속속들이 도착했고, 아내의 시신 앞에서 더 이상 소란을 피우기 싫었던 나는 원희가 하자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아내가 죽고 나니 아내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딴에는 엄마에 대한 사랑과 도리의 표현임을 어찌하겠는가. 입관절차를 마친 후 장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원희는 수목장을 주장했고, 원석은 가까운 납골당에 안치되길 바랐고, 원호는 적당한 장지를 물색해 볕 좋은 곳에 모시자고 했다. 결국 둘째의 양보 없는 고집으로 아내의 뜻의 일부가 겨우 받아들여졌다. 자식들에게도 저마다 타고난 기질과 욕망과 의지가 있어 부모가 바라는 대로 다 되는 게 아니었다. 애들에게 아내의 유언을 설명하다간 그대로 돌지 싶어 나는 잠자코만 있었다. 아내가 든 관이 계속 눈에 밟혔다. "납골당은 작은 영혼들의 집결지 같아 싫어, 여보. 여기 공원 울타리에 그냥 뿌려줘요. 납골당은 좁아터진 듯 갑갑하지만, 거긴 볕도 잘 들고 내가 좋아하는 꽃들도 있잖아. 거기가 좋을 것 같아. 꼭 내 말대로 해요, 여보. 애들한테 지지 말고." 아내의 유언에 따라 내가 한 일은, 화장장 직원에게 뒷돈을 주고 아내의 유골함을 애들 몰래 바꿔놓는 것이었다. 아내가 선택한 자리는 납골당이 아니라 자신이 손수 일구고 정성을 다해 돌봤던 공원 울타리 옆 화단이었다. 집 앞 공원엔 사시사철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새들이 운다. 아내가 마지막 보고 간 꽃은 공원 울타리를 따라 줄지어 늘어선 '가을의 여신'이었다. 아내는 코스모스를 그렇게 불렀다. 그랬던 아내가 가을의 여신처럼 떠났다. 지금 화단엔 가을의 여신이 뿜어내는 아내의 숨결로 가득하다. 모든 게 다 아내의 기획이었고, 아내의 작품이었다. 8.고물상에게 폐품을 팔아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은행에 들러 원석에게 생활비를 송금하고 막 바로 귀가한 나는, 아내가 남기고 간 서적들을 뒤져 읽고 스케치를 하고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그림을 그린다. 많은 스케치와 몇 점의 유화가 있긴 하지만, 유독 아내의 모습을 담은 그림과 자화상이 많다. 생전 아내의 사진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 아내가 다 태우고 간 까닭이다. 사진이나 보며 허송세월 하지 말라는 아내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말릴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이었다. 생각하면 아내의 얼굴은 실로 다채롭다. 내 기억 속의 아내는 많은 얼굴과 다양한 표정을 가진 사람이다. 한 두 장의 사진으로만 붙잡아 두기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무시하지 못할 값진 의미들이 담겨 있었다. 고흐가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이유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모델을 구할 돈도 없었을 뿐더러 홀로 생활하여 자신과 대면할 시간이 많아서였을 것이다. 물론 내 자화상은 고흐의 방식과는 딴판이다. 그건 아내의 얼굴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인간적인 면모는 최대한 지양하고 동물적인 외관을 갖도록 그리되, 누가 봐도 그것이 아내의 모습임을 직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요컨대 새끼를 밴 묘심과 아내의 이미지가 중첩된 것 같은 느낌으로 묘사하되, 아내의 의지를 잘 살리는 것이다. 연애시절 추억담을 나눌 때 아내의 입에서 터져 나오던 웃음과 퇴원 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한껏 미소 짓던 순간에 얼굴 위로 감돌던 기쁨의 에너지와 그토록 해맑던 미소가 물끄러미 창밖을 보다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질 때의 여운과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인한 두통과 구토의 아픔을 호소할 때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던 고통의 열기와 목에서 울려 나오던 신음까지 최대한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애쓴다. 그에 맞는 색과 형태를 찾기 위해 물감들을 혼합하고 수많은 붓질을 하고 덧칠을 한다. 색의 깊이와 붓의 터치에 따라 아내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건반 위로 빗방울이 튀어 오르는 것만 같은 젊은 피아니스트의 연주처럼 붓을 든 내 손은 캔버스 위에서 춤추듯 노닌다. 어떨 땐 붓끝의 느낌이 분명치 않아 붓을 집어던지고 손끝으로 아내의 얼굴을 직접 터치한다. 그렇게 해서 나는 캔버스 위에서 살아있는 아내를 만난다. 작업에서 중요한 건 눈이라기보다 손의 감각이다. 추운 겨울날 야외 작업을 대비하여 장갑의 손가락 끝 한 마디를 미리 잘라두는 것은 손끝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아내가 공원의 꽃들에게 물을 주거나 옥상의 장독들을 닦던 때의 모습이 선명치 않아 바깥에 나가 작업할 때도 영하의 날씨가 아니면 가급적 장갑을 끼지 않는다. 아내를 온전히 기억하는 것은 머리만이 아니었다. 처음 아내를 안았을 때의 느낌과 손을 잡고 함께 거닐었던 때의 감각의 주체는 머리가 아니라 손이었다. 그것은 손의 영역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타인의 손이 아닌 오직 내 손만을 가려잡은 아내의 의지가 그 안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머리가 기억하고 있는 당시의 이미지가 아니라 아내의 온기와 감촉과 섬세한 떨림을 있는 그대로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정말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내의 이미지가 아니라 삶의 의지들이었다. 나와 함께 살며 아내가 보여주었던 기쁨과 정열의 순간들, 슬픔과 분노의 힘들 말이다. 그런 아내의 실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설레는 일이어서 나는 끼니와 밤낮을 잊은 채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밥을 먹지 않아도 힘이 솟았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한 줄 몰랐다. 그때의 내가 느끼는 희열과 성취감은 교사생활에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쾌감이었다. 묘심을 볼까 싶은 마음에 보온병에 원두커피를 담아 서둘러 공원에 나왔다. 처음 만났던 벤치에 앉아 묘심을 기다린다. 처음엔 길고양이인 것 같았지만, 사람을 피하지 않는 걸 보면 집고양이인 것도 같다. 생긴 걸로 치자면 보통 고양이와 별로 다를 게 없지만, 뭔지 모를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서로에게 강한 이끌림을 느낀 우리는 말없이 친구가 되었다. 이윽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묘심이 나타났다. 공원 왼쪽 출입구를 통과해 대각선을 그리며 당당하게 걸어왔다. 보온병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원두커피 향을 맡곤, 앞발로 요리조리 뚜껑을 가지고 논다. 한 움큼 멸치를 꺼내놨더니 냄새만 맡곤 딴 짓을 한다. 나중에 눈치 챈 사실이지만,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건 원두커피 향이다. 식성과 취향이 제법 까다롭다. 처음부터 원두커피 향에 끌려 내 곁에 와 앉았던 게 분명하다. 캐물으니 금세 시치미를 딱 떼고 앞발을 핥는다. 녀석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아내가 떠난 후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을 느낀다. 귀찮게 몸을 비비지도 않고 먹이를 구걸하지도 않는다. 항상 홀로 다닌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어떤 면에선 자식들보다 낫다. 성인이 된 후에도 줄곧 아내에게 의존적이었고 자식이라는 핑계와 효도라는 명분으로 자신들도 못할 짓을 아내에게 강요했던 자식들에 비하면 훨씬 고등한 동물이다. 그런 자식들에게 아내는 대체 무얼 바라며 살아왔던 걸까. 그것은 아직도 내가 선뜻 아내에 대해 안다고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는 대목이었다. 9."평창동 시절, 시장 사거리에 있던 커피도매점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어요. 그 집에선 커피향이 진동을 했어요. 뜨거운 물에 커피 한 스푼을 갓 풀어 놓은 듯한 향기가 좋았어요. 그땐 왜 그렇게 그 향이 좋았는지 몰라요. 그 냄새를 맡으면 피곤이 싹 가시는 느낌이 들어 좋았던 것 같아요. 항상 찬장에 있었지만 몰래 마시고 싶진 않았어요. 참다가 시장에 가서 대신 그 향기를 맡았어요. 당신은 죽어도 그 향의 진수를 모를 거예요."아내의 찬장 한 켠엔 각기 다른 종류의 커피들이 즐비해 있었다. 가끔 커피의 혼령이 아내에게 깃든 건 아닌지 농담을 했을 정도로, 커피를 입에 달고 사는 아내의 건강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아내의 취향과 의지를 가로막는다는 건 애초부터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커피는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보단 녹차가 좋았다. 커피를 먹고 나면 입 안이 텁텁한 게 개운한 녹차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러던 내 입맛이 변했다. 밤새워 그림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녹차보다는 커피가 더 구미에 당겼다. 요즘은 아내만큼은 아니어도 가공된 정제커피와 갓 볶은 원두커피 향을 감별할 정도의 수준은 되었다. 오늘은 옆 마을 전원주택 단지를 돌고 왔다. 그 곳엔 쓰레기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말끔히 치워졌다기보다 버려진 게 별반 눈에 띄지 않는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부촌의 느낌 그대로다. 이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엔 제법 공들여 지은 고급 인테리어의 비싼 식당들도 몰려 있고, 적당한 크기의 유기농 전문 매장도 있다. 건물 뒤쪽엔 항상 큰 힘 들이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게 참 많다. 유통기한이 지난 건 물론이고 포장한 지 일주일도 안 돼 버려진 것 또한 수두룩하다. 바게트와 쿠키, 치즈머핀과 우유식빵, 파프리카와 애호박, 느타리버섯과 호두, 두부까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그대로다. 혼자 사흘을 먹고도 남는 양이다. 공원 한 쪽에 놓아두면 새들도 먹고 길고양이들도 먹는다.인근 학교에도 건질 게 참 많다. 급식소 납품용 종이상자는 물론 폐휴지, 빈병, 깡통, 우유팩까지 다양하다. 생계를 위해 초등학교 쓰레기터를 뒤지는 것에 부끄러워할 이유도 체면을 차릴 겨를도 없다. 분리수거를 마치고 리어카에 걸터앉아 교실 창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복도를 뛰어다니는 발소리를 새겨듣다보면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또 그림 작업에 대한 생각에 빠져 들곤 한다. 11월 중순에 내리는 첫눈치곤 근사한 함박눈이다. 묘심은 오늘도 공원 화단에 쌓인 눈 위에 제 발자국을 찍고 유유히 사라졌다. 저물녘이면 옥상의 장독들 위에도 제 발자국을 찍어 놓으리라. 요즘은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금방 간다. 그리다 만 아내의 얼굴에 터치를 더 넣어야겠다. 겉모습이 아닌 아내의 내면에서 살아 꿈틀대던 힘의 뉘앙스를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뭔가가 손끝에서 펼쳐지리라. 한가하게 있을 겨를이 없다.

2009-12-31 경인일보

[경인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평 / 구효서·이혜경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서른 한 편이었다. 응모작들은 대부분 암이나 사고로 인한 죽음, 가족간의 갈등, 상처의 악순환 등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다루었다. 현실의 팍팍함이 발랄한 상상력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리라고 짐작하면서도,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은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한편, 작가는 나름대로 생각을 갖고 썼으리라는 짐작이 가지만, 독자에게는 작가의 의도가 와 닿지않는 소설들이 여럿이었다. 아마도 글을 쓰는 동안 이야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작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독자들은 공감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생길 수 있음을 간과 한 듯 하다. 이런 부분에 좀 더 공을 들였다면 좋은 소설이 되었겠다 싶은 아쉬운 작품들이 많았다.이다경의 '유리나방'은 암으로 유방을 절제한 여자가 겪는 상실과 치유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기교를 부리지 않는 담담함이 장점이라면, 상처 입은 채로도 살아내야 하는 게 삶이라는 메시지가 지나치게 선명하게 드러난 게 오히려 약점이 됐다.이계태의 '동굴 속으로'는 저마다 지닌 기억속의 동굴을 지하철 기관사의 시점으로 그렸다. '빨간색 원피스'라는 이미지로 이어진 세 여자, 눈앞에 떨어지는 자살자를 보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기관차와 스프링 복, 동료가 앓는 환상통과 아버지를 괴롭혔던 기억 등 중첩되는 이야기들에서 만만찮은 의욕이 드러나는데, 좀더 정제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김은수의 '사막을 건너는 시간'은 남편을 잃은 여자의 상실과 죄책감이 간결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우편물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간 지점에서 남편이 죽은 연유가 새롭게 밝혀진다는, 신선한 반전일 수도 있는 결말이 조금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곳곳에서 돌출하는 자의식의 과잉때문이 아니었을까. 당선작인 전영일의 '아내의 화단'은 퇴직자의 관점에서 쓰인 작품이다. 삶을 관조하는 시선의 원숙함이 담백한 문장에 실려 있다. 아내를 여의고 노후자금을 자식 뒷바라지에 날린 퇴직자의 이야기가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고양이의 모습에 현재의 자기와 아내의 모습을 투사하고, 아들이 데리고 온 개의 안락사와 아내의 죽음이 겹치는 동안, 생의 쓸쓸한 기미를 환기하는 격조가 느껴진다. 반면, 아내의 모습이 완벽하다 못해 신성시한 점은 결점으로 남는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당선자와 응모자들의 정진을 빈다.

2009-12-31 경인일보

[경인신춘문예]소설부문 당선소감 - 전영일

유독 저물녘 짙푸른 하늘을 배회하는 한 떼의 바람이 좋았다. 그 바람에 싸였던 삶이 오래도록 싹을 틔우고 동물의 줄기와 잎을 키웠다. 바람은 실로 많은 생각들을 불러왔다. 돌이켜 보면 거리에서 삶의 등 뒤를 바라보는 일에 적잖은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내게 삶이란 고귀한 동물의 모태였고, 돌이킬 수 없는 궁지였다. 삶의 거리엔 눈으로는 직감할 수 없는 온갖 힘들로 넘실대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실체를 감각하는 것은 모종의 쾌감을 불러일으켰지만, 삶은 단순히 생의 사진을 담는 액자가 아니었다. 삶에 내재한 힘을 포착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삶은 고정된 틀을 불편해 하는 듯 보였고, 그 갇힘에 숨 막혀 했으며, 끝내 그 틀을 부수는 아름다운 힘을 갖고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런 삶에 대한 끝도 없는 물음에 빠져 지냈다. 고정적인 실체가 없는 고귀한 삶의 힘. 그것이 항상 떨칠 수 없는 신비였고, 크나큰 화두였다.그 오랜 물음이 '아내의 화단'이 돼 세상에 나왔다. 그 또한 형편없는 답을 좇은 흔적에 불과하다. 삶의 화단엔 아직도 잡초들이 널렸다. 턱없이 부족하고 어처구니없는 물음에 화답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끝나지 않은 물음으로 계속 정진하겠다. 오랜 세월 말없이 자식의 등을 바라봐 주신 부모님께 작은 위안이 되길 바란다. # 약력1969년 경북 풍기 출생1997년 인천교육대학교 졸업현재 부천시 부원초등학교 교사

2009-12-31 경인일보

[경인신춘문예] 2005년 詩 당선자 정빈 시인 첫 시집 '길은 언제나…' 발간

[경인일보=김선회기자]"문단의 길을 열어 시를 쓸 수 있게 해준 경인일보에 늘 감사를 드립니다."2005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한 정빈(50·정경미) 시인이 지난해 11월 본인의 첫 시집 '길은 언제나 뜬 눈이다'를 내놓고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가 발표한 시집에는 치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70여편의 시작들이 수록돼 있다."시를 쓰기 시작한지 벌써 햇수로 10년이나 됐네요. 시 세계에 입문한지 만 4년만에 경인일보 신춘문예를 두드렸고 예상밖에 큰 상을 받게 된 것이죠.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친정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데, 동양란과 분재를 가꾸시며 늘 자연과 교감하는 아버지가 작은 풀포기 하나에도 사랑을 베푸시는 것을 보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했죠."정 시인은 습작기간 동안 젊은 시인들의 시를 많이 읽어 본인에게 미흡한 현대 감각을 배우려고 애썼으며, 여행을 통해 자연의 소리에 많은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법정 스님이나 김용택 시인의 글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었어요. 그 분들이 쓴 글 속에서 자연에 대해 많이 느끼고 배운답니다."그는 이번 시집에 실린 시 중에서 '어느 휠체어의 고백'과 '어머니의 가을'을 무척 아낀다고 했다. 두 시 모두 우리 주변 사람들의 역경과 희망을 이야기 한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유독 음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저는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그분들에게 글을 통해서나마 날개를 달아주고 싶어요.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소외된 자들의 꿈을 그려보고 싶다는 것이 제 문학적 바람입니다."정 시인에게 시(詩)란 어떤 의미일까. "저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중독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잡념없이 나 자신에게 흠뻑 빠져 몰입할 수 있어 행복하답니다. 앞으로도 언어를 풀어 작은 세상 하나를 탄생시킨다는 희열감을 느끼면서 글을 쓰고 싶습니다."

2009-12-31 김선회

[경인신춘문예]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가들 축하메시지

[경인일보=] 역대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가들이 경인일보의 창간 50주년과 제24회째를 맞은 신춘문예를 축하하고 신춘문예에 응모할 예비 작가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를 보고 꿈 키우는 후배들 볼때 '뿌듯'■ 이연희(2009년 소설 당선) = "현재 모교(서일대)에서 강의하며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지금 목표는 내년에 단편 소설집을 내는 것이다. 현재 구상이 끝난 작품도 몇개 있고 지금 구상중인 것도 있다. 사실 지금 내가 시간강사 자리를 얻게된 것도 경인일보 신춘문예 덕분이다. 개교 이래로 우리 학교 출신이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이 처음이라 학교에서 파격적으로 대우를 해 준 것 같다. 나를 보고 신춘문예 도전의 꿈을 키우고 있는 학교 후배들도 있어 더욱 뿌듯하다. 소설은 사람이 사람 사는 '일', 사람이 사는 '모습'을 글로 나타내는 것이다. 사람을 잊지 않고 글을 써 줬으면 좋겠다."원하는대로 쓰되 독자의 평가 잊지말아야■ 홍명진(2008년 소설 당선) = "이전에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전태일문학상도 나에게 의미가 있는 수상이었지만, 작가로서 제대로 등단하게 된 계기는 경인일보 신춘문예였다. 주위 선배들과 지도교수님도 '신춘문예'의 의미는 특별하다며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참가해 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신춘문예에 당선된다는 건 한 명의 작가로서 인정받는다는 이야기다.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지역신문 중에서는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다. 선정되는 작품의 질이 곧 신춘문예의 질인데, 당선되는 작품들의 수준을 보면 경인일보 신춘문예의 권위가 괜히 인정받는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언어라는 도구로 나타내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즉,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뜻대로 써야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작가로서 독자들의 냉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잊으면 안된다."신춘문예 출신자들의 정기적 모임 결성 바라■ 심은섭(2006년 시 당선) = "경인일보 신춘문예의 가장 큰 장점은 해마다 심사위원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출신이면 어디 가서나 인정을 해준다. 신춘문예 당선 후 대외활동이 잦아지고 문학계에 완전히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원고나 강의 청탁, 심사위원 위촉 등도 자주 받게 됐다. 향후 신문사에서 신춘문예 출신 문인들에 대한 정기적 모임을 결성해 주었으면 좋겠다."문학공부와 소설 끊임없이 쓰게해 준 계기 ■ 양영아(2000년 소설 당선) =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은 나에게는 문학을 계속 공부하고, 소설을 계속 쓸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계기였다. 그 뒤로 몇몇 작품들을 더 썼고 지금은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글과 계속 만날 수 있게 해준 계기가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이었다.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더욱 위상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수준급의 작품이 선정되고, 내 주위에도 참가하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불어 상금도 신춘문예 중에는 높은 편이라, 단지 돈으로서의 의미가 아닌 '신춘문예의 격'을 말해주는 것 같다."지방지 당선자, 중앙지 재공모 현실 아쉬워 ■ 김현영(1997년 소설 당선) = "아마 등단을 준비하는 예비 문인들에게 신춘문예의 당선의 의미는 모두 똑같을 것이다. 작가냐, 작가지망생이냐 그 차이다. 지금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도 경인일보 신춘문예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체도 모호한 소위 중앙 문단에서는 지방지 신춘문예 출신이라고 글 쓸 수 있는 기회를 안주는 경우도 있어 대부분의 지방지 신춘문예 출신들이 또 다시 중앙지나 창작과 비평, 문학동네에서의 등단을 준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즐겁지 않으면 쓰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글 쓰는 일이 괴롭다면 분명 즐겁게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쉽게 쓰라는 소리는 아니다."

2009-12-31 경인일보

[경인신춘문예]경인신춘문예가 걸어온길

[경인일보=김선회기자]'피와 땀을 찍어서 글을 쓰다.'매년 11월만 되면 전국의 수많은 문학 지망생들의 열기로 달아오르는 신춘문예. 지난 1986년 제정돼 이듬해 제1회 수상자를 배출했던 경인일보 신춘문예가 올해로 24회째를 맞았다. 경기·인천 언론사 중에서 유일하게 개최되는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문단에서 그 역사와 권위를 인정받아 매년 우수 문인들을 배출하며 숱한 화제를 낳았다. 1~6회 신춘문예까지는 소설, 시, 시조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됐으며, 7~9회때는 시조 대신 동화부문이 편성되기도 했다. 그러다 1996년 제10회 행사때부터 소설과 시 두 부문으로 나누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매년 30% 가까운 작품 증가세를 보이는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문학시장에 확실한 문학지킴이로 자리잡았다. 또 우수한 심사위원들도 경인일보 신춘문예를 지켜나가는데 한 몫을 담당했다. 김동리, 조병화, 박재삼, 구인환, 하근찬, 신경림, 정진규, 이호철, 이창동, 현길언, 박범신, 공선옥, 김윤배 등 당대의 기라성같은 소설가와 시인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신춘문예의 권위를 높였다.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공통적으로 문단으로의 진입은 물론 자신들의 첫 소설과 시집을 출간하는데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이 굉장한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한편 지난 2003년도 소설 부문 수상작인 기정옥씨의 '즐거운 세탁소'는 최근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고경태 감독에 의해 영화가 추진중이며, 2000년과 2001년에는 양영아·양영미 자매가 연달아서 소설부문에서 당선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9-12-31 김선회

[2009경인신춘문예]신춘문예 접수에서 당선까지

전국 작가 지망생들과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속에 진행됐던 '2009 경인일보 신춘문예'가 ▲소설부문 '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이연희씨)와 ▲시부문 '정글에서 온 풍경'(유병만씨)을 각각 당선작으로 선정하며 막을 내렸다.지난 12월 10일 마감결과 시부문 870여편, 소설부문 170여편이 올해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접수됐다. 1주일간 진행된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은 다시 1주일간 본심 심사위원들의 손을 거쳤으며, 지난 12월 22일 경인일보 본사 3층에서 진행된 최종 심사에서 당선작을 가려냈다.올해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풍년작'이었다. 전년보다 34%가 늘어난 접수로 지역 문단의 화제를 이끌어냈으며, 10대에서 70대까지 여러 세대가 참여해 소재와 주제 면에서 폭이 어느 해보다 넓어졌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특히 체험에 기반한 진솔한 이야기와 경제 위기로 촉발된 어두운 사회상을 담은 작품을 집단 투고한 40, 50대 중년의 도전도 눈길을 끌었다.역시나 수상의 영광은 현 시대의 풍속을 세부까지 생생하게 묘사하는 한편, 상상력도 아울러 갖춘 작품들이 차지했다.소설부문 심사를 담당한 박범신·성석제 소설가는 당선작 '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에 대해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며 불편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풍속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이처럼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써진 듯한, 자기 완결성이 높은 작품을 읽고 나서 '그래서?'라고 그 다음에 대해 묻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거기에 대한 대답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 또한 오늘의 풍속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한편 한국문단을 이끌어갈 신인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지난 1986년에 제정된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올해로 23회를 맞이했으며, 매년 역량있는 문학도를 발굴하고 있다.당선자들은 상패 및 상금(소설부문 500만원, 시 부문 300만원)을 받게 된다.

2009-01-01 이유리

[2009경인신춘문예 당선작·시부문]정글에서 온 풍경

정글에서 온 풍경 (유병만)베트남 며느리가 순산했다는 읍내 전화에논두렁이 파랗게 깨어나고 있다노인의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완만하게 달라붙어 있던 들판이 뚝 떼어진다잠시 주춤하던 족보의 한 갈래가 생기를 되찾고상속되어져야 할 땅의 분량이 새로운 식량을 서두른다그 압력을 견디지 못한 혼잣말이 논두렁을 가로지르던 바람에 베어 물리고들녘 한 켠이 툭 닫힌 핸드폰 밖에서 곰곰이 쭈그려 앉는다지난 시절은 불임의 푸르름이었다지난날들은 불안한 가계였다일찍 여문 씨알 몇 훑으려다가 부주의한 손가락이 주춤 열리고갈길 바쁜 소나기가 허릴 낮게 구부려 담배내음 짙은 안쪽까지 적신다문득, 월남전에서 아뿔싸그 옛날 그 땅에 고엽제를 뿌렸던 기억을 하자노인의 숨결이 노랗게 말라버린다의족을 짚지 않으면 일어서지 못하는 기억들을 챙기려는 듯낮게 기어 다니던 소나기가 더운 열기의 정수리 위로 떠밀리고웅크려 있던 호흡을 힘껏 곧추세운다며느리가 온 후 집안의 날씨가 더 따뜻해진 것도 태양을 혼수품으로 가져온 때문임을, 논두렁에 묻어 두었던 걱정을 가로질러 읍내로 빠르게 달려간다■ 시부문 당선소감 / 유병만"택했기에 설레고 아파할길… 뚜벅뚜벅 내일 걸어가겠다"내 안에 희미하게 웅크리고 있는 공복이 당신인가요?충혈된 낙타의 눈빛같은 홍차를 오늘도 그들과 함께 마셨습니다. 테러와 전쟁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차도르며 터빈 두른 글썽임으로 찾아와 그들의 나라가 내게 준 집, 티그리스 강물 소리로 거실을 서성거립니다. 양 볼에 눈물을 파종한 맨발의 아이들이 커서를 켜면, 나 또한 어린 촉수를 가진 유령이 되어 한밤중을 수런거립니다.태양의 연인 같던 나라, 별 내리는 구릉과 신기루를 범한 푸른 날의 나의 죄, 유정(油井)에서 길어 올린 사하라의 울음은 꿈의 모래폭풍이 되어 새벽까지 입안에 으적거리곤 합니다. 지구촌에서 온 노동의 얼굴들마다에서 읽는 나, 우리들, 누가 누구에게 과연 이방인일까요. 섬같은 이 땅의 인연이 되어 며느리가 되어 탯줄 잘라 내일을 순산하는 지구촌의 여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희한하고 달콤하다고 낯선 겨울 풍경을 두 손에 가득 받아 웃는 모습에서 함박눈은 내 기억의 사막과 정글 위에 모든 종교가 되어 내립니다.처음 얼음장들의 밤을 사유의 울림으로 함께 걸어 주신 진춘석 선생님, 다른 나무, 다른 열매가 되라는 주문으로 일갈하시던 박경원 시인의 참 정신이 쟁쟁 가슴에 들립니다.도반들의 한글사전 앞에 새로운 격려를 꺼내어 랭보처럼 좋아하시던, 울컥울컥 살가운 중앙대 문창과 이승하 교수님, 한 해 동안 우주를 받아 안느라 향유고래 가시를 감히 목젖에 따끔거리게 했던 장석주 선생님, 경인일보사와 주위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택했기에 설레고 아파해야 할 길임을 잘 압니다.길 없는 길을 열어 낙타처럼 가야겠지요. 발굽보다 가슴이 뜨거워야 하고 알람시계의 새벽을 불면으로 더 많이 살해해야겠지요. 오아시스에 비친 태양의 동공을 만나면 또 글썽거리면서요. 에둘러 돌아와 마주한 당선 소식, 참새들마저 포릉, 포르릉, 자선(慈善)의 썰매를 끌고 날아다니는 계절이어서 이런 받음이 부끄럽습니다. 늦게나마 거실의 공간을 허락해준 곽일영(郭一寧)여사와 미나, 민영의 응원 늘 힘이었다고 뚜벅뚜벅 가야할 내일을 겸허히 추슬러보는 다시 혼자만의 새벽입니다. 편운제의 문우들과 시샘동아리의 맑은 눈빛들, 사계절 환한 '안성 詩 문학회' 사람들이 아른거립니다. 늦깎이에게 마다않고 휘둘러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의 소중하고 고마운 회초리, 기꺼워 옷깃을 여밉니다. - 약력1953년 4월 11일 생 전 중앙주간 '귀국' 외 다수 입선. 월간교통에 '예수님과 교통순경' 단편소설 발표중앙대 문예창작과 수료현재 '지산' 공인중개사 대표■ 시부문 심사평 / 김윤배·홍신선"죽음통해 생명 영속력 표현… 리얼리티+상상력 조화로워"대체로 평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이번의 응모작들은 소재주의가 눈에 띄었다. 시대적 소외의식의 반작용이라고 보여지는 가족애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았다. 이런 시편들은 자연스럽게 회고지향의 색깔을 띄게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지나치게 신춘문예를 의식하고 씌어진 작품들이 많았다. 이 경우 시편들은 결핍된 의식을 드러내거나 현란한 수사와 함께 허위의식으로 시문이 채워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응모작이 응모자의 기본정조에 따라 지향성을 이루면서 독특한 색깔을 드러내고 있어 상당한 수준의 어법을 터득하고 있다고 판단되지만 지나치게 안정되어 있어 파격적인 실험정신을 볼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심사위원 두 사람은 '잘 못 배달된 편지처럼', '정글에서 온 풍경', '김밥에도 천국은 있다', '그녀가 내 마음의 틈에'를 최종심에 올리고 토론을 거쳐 김순자의 '잘 못 배달된 편지처럼'과 유병만의 '정글에서 온 풍경'으로 수상작을 압축했다.'잘 못 배달된 편지처럼'은 현관문 오른쪽에 나란히 붙어 있는 네 개의 명패를 우표로 상상하는 것으로부터 시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화자의 집은 편지봉투이고 집으로 귀가하는 화자는 한통의 편지인 것이다. 편지의 끝에는 의례히 타인의 말인 추신이 따르고 "어디로든 반환되어야 할 떠돌이 우편물이"라고 스스로를 말한다. 삶의 정처 없음과 부박함을 드러내는 '가볍디 가벼운 지구의 검불'이라는 인식은 새롭지는 않으나 성찰의 소산이다.'정글에서 온 풍경'은 베트남 며느리가 순산했다는 전화에 "논두렁이 파랗게 깨어나고 있다"는 신선한 충격으로부터 시가 시작된다. 서사가 있는 이 시편의 주인공은 월남전에 참전했던 퇴역의 군인이며 농사를 짓는 노인이다. 노인에게 "지난 시절은 불임의 푸르름이었"으며 "지난 날은 불안한 가계였"다. 이제 며느리의 순산으로 "잠시 주춤했던 족보의 한 갈래가 생기를 되찾"았을 뿐 아니라 "집안의 날씨가 더 따뜻해진 것도" 며느리가 태양을 혼수감으로 가져온 때문이라고 안도하는 것이다.김순자가 경쾌한 상상력의 시세계를 보인다면 유병만은 삶의 곡진한 무게를 드러낸다. '정글에서 온 풍경'은 월남참전의 역사적 부채의식과 다문화가정으로 대변되는 인류애를 드러내면서 손자로 상징되는 생명과 노인으로 상징되는 죽음의 의미를 통해서 영속하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시는 기본적으로 리얼리티이다. 그러나 리얼리티만으로 시가 되지는 않는다. 상상력이라는 창조적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유병만의 작품은 이와 같은 시의 준거를 모두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심사위원 두 사람은 쉽게 '정글에서 온 풍경'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아깝게 기회를 놓친 김순자의 시도 머지않아 우화등선의 기쁨을 누릴 것으로 믿으며 당선자 유병만의 시세계가 더욱 깊어지고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한다.

2009-01-01 이유리

[2009경인신춘문예 당선작·소설부문]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

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 (이연희)문을 열자 남자는 어둠 속에 웅크린 모습으로 앉아 있다. 구김 없이 잘 손질된 와이셔츠를 붙박이장에 넣으며 나는 그를 흘낏 쳐다본다. 다가서기만 하면, 그는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듯하다. 조금도 움직임 없는 남자의 검은 실루엣은, 마치 알몸으로 어머니의 자궁 밖을 갓 탈출한 아이가 두려움에 움츠러들어 있는 것 같다.그는 조용한 남자다. 때때로 나는 그가 이 집에 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그는 내 남편의 애인이다. 어느 날 불쑥 내 삶에 끼어든 남편의 남자.그와 남편과 나는 48평 아파트의 동거인이다. 그와 나는 마주칠 일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한 집에 함께 산다고 해서 늘 얼굴을 마주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와 나는 한 공간 아래 있지만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각각 욕실이 딸린 방에서 그들과 나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을 잔다. 하긴 그것이 별로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늦은 밤 섹스를 끝낸 남편과 그가 샤워라도 해야 할 때, 거실을 걸어 나와 손님용 욕실로 향하는 모습을 나에게 들키는 것은 그들이나 나에게 서로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남편의 방은 신혼 때 시어머니가 와서 쓰던 방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 그 방에는 없던 욕실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블랙과 화이트로 꾸몄단다, 심플하고 좋지.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부터 저 방은 내가 쓰겠다.시어머니는 근 일 년이 넘도록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자신의 집이 아닌 그 방에서 지냈다. 나는 남편과 섹스를 할 때면 벽에 귀를 바싹 붙이고 있는 시어머니를 상상했다. 처음에는 신경이 너무 쓰여 남편과 섹스를 하기 힘들었다. 남편과의 섹스가 그다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때는 남편 역시 나처럼 시어머니가 신경이 쓰여 그러는 줄로 생각했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만 말을 걸었다. 언제나 나는 그림자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늘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시어머니를 보면서 이상한 오기가 생겨났다. 반 년이 넘어가면서 나는 시어머니가 오는 날이면 섹스 때 일부러 더 큰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황한 남편은 내 입을 막았다. 그런 다음 날이면 시어머니는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이렇게 말했다. 교태스러운 년.차츰 시어머니가 오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이내 발길이 끊겼다.그가 온 뒤, 나는 조금 분주해졌다. 먼저, 사 년 동안 매일 오던 파출부를 그만두게 했다. 남편은 힘들테니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했다. 여자가 그를 이상하게 보더라고, 내 먼 친척동생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 눈치더라고. 하긴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가 온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파출부는 그의 옷가지를 세탁실에 가져가며 입술을 삐죽이더니 샐쭉하게 돌아섰다. 여자는 내가 무심하게 창밖으로 흐르는 강물 따위나 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전면유리를 통해 그녀의 표정이나 몸짓 따위를 다 읽고 있었다. 내 앞에서야 늘 마음 좋은 아주머니처럼 넉넉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녀지만 나는 그녀의 교활함을 잘 안다. 늘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늘 그녀를 미소로 대했으며 그 미소 뒤엔 들릴 듯 말 듯한 한숨 소리를 고의로 내비치곤 했다. 남편은 한없이 자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당신이 알아서 하라,며 딱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그가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파출부에게 넉넉한 돈을 쥐어주고 서운한 표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던 날, 파출부는 눈물을 글썽거렸지만, 나는 왠지 모를 후련함과 해방감을 느꼈다. 아마도, 봉투 안의 돈을 재빨리 계산해 보았을 듯한 여자의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눈곱 낀 눈에서, 나는 시어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을 본 듯도 하다. 어쩌면, 여자는 정말 이 집을 그만둔다는 것이 내심 섭섭했는지도 모른다. 평창동 대저택에서 눈도 못 감고 혼자 쓸쓸히 죽어간 시어머니에게 입 속의 혀처럼 눈과 귀가 되어 내 일상을 낱낱이 보고하던 여자. 아마 여자는 그를 내 섹스 파트너로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해 세상을 떠난 시어머니에게 보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는지도. 시어머니에게 내가 '오대 독자 아들을 홀린 여우같은 계집'으로 끝까지 남은 것처럼, 여자에게 내 남편은 '여우같은 계집에게 속은 불쌍한 도련님'일 것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지금 나는 나를 저주스러워했던 시어머니의 돈으로 벤츠를 타고, 명품을 사들이고, 게다가 친정에 마당이 딸린 넓은 집까지 사줬으니, 시어머니에게 한없이 고마울 뿐이다. 남편은 그날로 자신의 모든 짐을 옮겼다. 남편은 일 관계로 해외출장이 잦다. 호텔 하나가 계획되고 만들어지는 동안의 처음과 끝까지, 카운슬러 역할과 더불어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계약은 남편의 손을 거친다. 그 일로 남편은 꽤 많은 돈을 벌어들이며 한 달에 반쯤 집을 비운다. 지난 봄, 남편은 푸껫에 호텔을 짓고 싶어하는 의뢰인의 요청으로 그를 데리고 방콕행 비행기에 올랐다. 남편과 그가 파퐁의 게이거리에 나란히 앉아 맥주에 쏨땀을 곁들여 먹으며 거리 쇼를 하는 코끼리 코에 달러를 쥐어줬을 그 시간, 나는 아파트의 인테리어를 조금 바꿨다. 그들이 전혀 알아챌 수 없을 만큼만. 작은 액자를 드러내기만 하면 그와 남편의 방이 들여다보인다. 벽에 작은 구멍을 내고 확대 렌즈를 달아주던 심부름센터 직원은 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운운해가면서 몰래카메라의 성능에 대해 입에 침을 튀겨가며 얘기했지만, 그건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넉넉한 돈을 받아 챙긴 심부름센터 직원은 자신의 열정적인 과학 예찬론에 내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떨떠름해했지만, 나는 정말 대만족이었다. 나는 고전적인 것이 좋다. 지극히 고전적인 것을 선호하는 남편의 취향이 내게 영향을 끼친 것일까. 어쨌든 그들의 방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세계 각국의 가면 덕분에 벽의 구멍을 숨기는 일은 수월했다. 내가 한 일은 방에 쌓인 가루들을 감쪽같이 없애는 것뿐이었다. 남편과 나 사이에는 아이가 없다. 시어머니는 늘 내게 대를 끊어놓아 집안을 망칠 년이라고 낮고 은밀하게 말하곤 했다. 천하에 둘도 없는 귀부인이었던 그녀가 내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을 나는 이해한다. 내가 그녀였어도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내가 아이를 가졌다해도 그녀는 그리 탐탁해하질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 나는 교태스럽거나 혹은 집안을 망칠 여자였을 뿐이다. 사실 남편이 나를 선택한 것을 나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다. 그저그런 학벌에 별볼일 없는 집안,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외모로 관광호텔의 프런트에 앉아 서비스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 일본인 관광객에게 '스미마셍'을 수없이 반복하며 살아왔던 내게, 남편은 너무 큰 사람이었다. 말투나 손짓 하나에도 기품이 배어있는 남편에게는 내가 근접할 수도 거역할 수도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이가 조금 많다는 것을 빼면 그는 내게 넘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나란히 붙어 있던 세 개의 관광호텔을 하나로 만들어 특급호텔로 탈바꿈 시켰다. 그 과정에서 실업자가 된 내게 연락을 해온 것은 남편이었다. 당신 눈에 담고 있는 갈증이 마음에 들어. 그것이 그의 프러포즈였다. 남편이 나를 사랑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은 내 친정어머니 단 한 사람이다. 어머니는 늘 자신이 생각하기 편한 대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아버지의 바람기마저도 마음 약한 아버지의 착한 심성 때문이며, 중풍으로 쓰러진 후에야 집으로 실려 돌아온 아버지를 보면서도 조강지처를 버리지 않는 양반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내가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법을 단 한 가지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가슴에 멍울이 생겨 브래지어를 해야 할 때도, 초경에서 오는 하복부의 기분 나쁜 팽만감에 대해서도. 모든 것은 다 내 몫이었다. 하긴 내가 남자로 태어났어도 어머니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당연히 저절로 익혀진다고 믿는 어머니의 인생철학은 '타고난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남편과 내가 결혼한 것 또한 그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우리에게 아이가 없는 것도 부부금실이 너무 좋아서라고 생각하는 어머니에게, 나는 남편의 무정자증과 성적 취향에 대해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앞뒤가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 어머니의 환상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지만 굳이 깨고 싶진 않다. 어머니는 남은 생 동안 반신불수인 아버지를 간호하고 텃밭이나 일구며 사는 것이 낙인 사람이다. 사위와 눈도 똑바로 맞추지 못하고 늘 좌불안석인 어머니에게 그것은 좀 잔인한 일이다. 처음 남편을 보았던 날 어머니는 내게,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 생각보다는 젊어 보이는구나, 그치만 너도 여자 나이로는 꽉 찼으니 그만하면 괜찮지, 했다. 그 말을 하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인 내가 실업자가 되었으니 돈 있는 사람과 결혼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아주 얄팍한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덟, 남편은 마흔 하나였다.그가 들어오기로 하면서 남편과 나는 거래를 했다. 남편이 자신이 사는 방식에 내가 가담해주길 바라듯 나도 내가 사는 윤택한 삶을 위해 남편이 필요하다. 남편은 타인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운 사람이 못되고 나는 돈의 위력을 알았다. 그가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선언할 만큼 비사회적이지 않은 것처럼, 나 또한 남들이 나를 행복한 여자로 대해주는 호의에 이미 길들여져 있다. 밖에서 완벽한 부부로 행세하는 대가로 시어머니의 전 재산은 나에게 돌아왔다. 그리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남편은 아주 친절한 사람이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그의 선물뿐만 아니라 내 선물까지 사온다. 남편의 선물은 늘 같다. 세계 각국의 종(鐘)이 내 슈트케이스 가득 들어 있다. 슈트케이스가 열리는 것은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올 때뿐이다. 그것은 아주 요란한 소리를 낸다. 그럴 때면 세상엔 참 많은 종들이 있구나 싶다. 남편은 자신이 선물한 종을 어디에 두었는지 따위는 묻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손을 떠난 것에 대해 꼬치꼬치 물을 만큼 치졸하거나 편협한 사람이 아니다. 남편이 가끔 방에 들어와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힘들지, 할 땐, 우린 정말 다정한 부부다. 욕조에 물을 받는다. 수압이 센 수도꼭지에서는 찬물이 조금 나오는 듯하더니 금세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온다. 욕실의 문을 닫고 나와 그들의 벽에 귀를 댄다. 천천히 액자를 떼어내고 구멍 속을 들여다본다. 남편이 그에게 다가간다. 그는 늘 웅크린 모습으로 남편을 맞이한다. 그래서일까, 남편의 동작이 커 보이는 것은. 남편이 두 팔을 활짝 벌려 그를 안는다. 남편이 나를 저렇게 안아준 적이 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곧 벽을 액자로 가린다. 그들의 섹스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남편은 배후위를 선택할 것이다. 나와의 섹스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욕실 문을 열자 수증기가 내 얼굴에 훅하고 꽂힌다. 거울 속에 내가 없다. 거울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자 내 모습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옷을 벗고 탕 속으로 들어가려던 나는 곧 마음을 바꾼다. 욕조 안의 고무마개를 빼내자 물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하수구로 흘러간 물은 정수과정을 거쳐 언젠가 내 욕조 안을 다시 메울 것이다. 샤워기의 물을 튼다. 뜨거운 물이 몸을 타고 흐르자 나른하다. 서서 오줌을 눈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있던 나의 습관이다. 결혼 전 어머니는 가끔 내게 하수구에서 이상하게 지린내가 올라온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만약 어머니에게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거라고, 내가 샤워하면서 오줌을 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면, 어머니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나의 습관은 되살아났다.남편의 대학 동창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남편은 손수 등이 파인 검은 드레스를 골라주었다. 결혼 열두 해를 맞은 남편 친구 부부의 결혼 기념 모임이었다. 비슷한 부와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의 그저그런 모임이었다. 풀밭 위에 잘 차려진 뷔페식 식단은 내 식욕을 그다지 자극하지 못했다. 남편은 접시에 음식을 덜어와 내 앞에 놓아주었다. 종잇장처럼 맛없는 음식을 한입 가져다 먹으며 나는 남편을 향해 눈웃음을 보냈다. 그들의 화제는 주로 경제와 정치 이야기로 시작해 골프 이야기로 막을 내렸다. 매번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결혼기념일에 굳이 사람들을 초대해 자신의 부와 행복을 과시하는 그들이 내게는 좀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더더군다나 누군가가 유학간 아이들 이야기라도 꺼낼 때 난처해하며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려버리는, 그 중의 또 다른 누군가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들이 정해 놓은 금기 사항은 우리 부부 앞에서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가 지고 바람이 서늘해지자 남편은 내 몸에 숄을 둘러 주었다. 당신도 정 선생님처럼 좀 해 봐요, 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미세스 정처럼 저렇게 젊고 아름다워지면 내 한번 생각해 볼게, 하는 대답에 사람들이 까르르 웃었다. 교묘하게 비틀어 놓은 적의와 조롱의 말투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을 보면 남편의 동조자로서 내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든다.남편과 나는 사람들에게 친구같은 부부로 통한다. 간혹 이상적인 부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서로의 눈을 맞추며 다정하게 웃는다. 부부가 꼭 닮았다며, 어쩌면 그렇게 변함없이 다정하게 살 수 있느냐고 묻는 그들에게, 이상적인 부부란 어떤 것인지 되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나는 그런 쓸데없는 말로 남편과 나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런 물음을 내뱉는 순간, 사람들이 나와 남편 사이를 가늠하고 저울질 할 것을 안다. 이상적인 부부라고 칭찬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남편과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되새김질하며 둘 사이의 균형이 언제 깨지나를 내기하거나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늘어놓는 것쯤은 세 살 배기 어린아이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어차피 그들은 나를 자신들의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남편의 그늘 밑에 내가 존재하는 한 존중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사람들과 만나는 이런 날은 조금 피곤하다. 방까지 따라 들어온 남편이, 많이 피곤하지 쉬어, 하고는 내 숄을 받아 서랍장에 넣는다. 남편이 방을 나가려다 말고 문득 돌아서며 오늘은 이 방에서 잘까, 한다. 내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하자 남편이 미끄러지듯 나가버린다. 남편은 이런 날 하루만이라도 남편 노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화장을 지우는 사이 남편의 방에서 쾅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 벽의 액자를 떼어내고 숨을 낮춘다. 남편이 입술을 달싹이며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남편의 화난 듯한 저런 모습은 처음이다. 잠시 후, 욕실 문을 열고 나오는 그의 얼굴에 물기가 흐른다. 대체 왜 내가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 당신 게임에 너무 깊숙이 들어온 것 같아, 그런데 더 참을 수 없는 건 내가 아직도 당신 앞에 있다는 사실이야. 그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인다. 나는 마른 침을 조심스레 삼킨다. 남편이 그에게 다가가 맨손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아준다. 갑작스레 치밀어 오는 질투심에 하마터면 나는 소리를 지르고 남편의 방으로 뛰어 들어갈 뻔했다. 심호흡을 해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액자로 구멍을 가려버린다. 샤워를 마치고 혼자 침대에 눕는다. 혼자 눕기엔 너무 넓은 침대다. 차라리 내가 방을 옮기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잠이 오질 않는다. 몸을 일으켜 화장대 앞에 선다. 실크 잠옷의 끈을 어깨로 밀어내자 알몸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이를 낳지 않은 내 가슴은 작지만 아직 봉곳하다.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남편은 섹스를 하다가 내 가슴에 손이 닿기라도 하면 흠칫하며 행위를 멈추었다. 그런 날 남편은 내가 잠들기를 기다려 침대에서 살그머니 빠져나가 욕실에서 한참을 있다 나왔다. 욕실에서는 샤워기 물이 흐르는 소리뿐이었다. 남편이 게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나는 그것이 남편의 습관이려니 했다.남편이 게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은 결혼하고 이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따사로운 봄날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그가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을 아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병원에 먼저 가자고 했던 것도 남편이었다. 병원에서 얻어진 결론은 그가 무정자증이라는 것, 단지 그것뿐이었다.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남자의 정자를 받는 것뿐이라고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의사의 한 마디에 얼마나 허탈해하고 참담해했던가.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그러나 늘 그랬듯 위로 받는 것은 나였고 주는 것은 남편이었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욕망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늘 불안하고 절실했던 일이다. 난 남편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다른 병원을 알아보자고 했던 날, 남편의 입에서 나온 '게이'라는 두 음절의 말은 내게 참으로 낯설고 생소했다. 너무 낯설어서 징그럽다든가 역겹다는 생각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 것일까. 난 왠지 모르게 담담했다. 지구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쟁 소식을 뉴스로 대할 때처럼 꼭 그랬다. 단지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교통신호를 위반하고 단속에 걸렸을 때처럼 그럼 이제 어쩌지, 하는 것이었다. 남편이 내게 그랬다. 당신이 원한다면 어떻게든 아이를 낳아도 난 괜찮아. 하지만 나는 아직 실행하지 않고 있다.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남편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우린 서로에게 필요하다.남편이 게이라는 것을 밝힌 후 내게도 변화가 왔다. 무시하려고 해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던, 늘 그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들었던 시어머니 앞에서 당당한 며느리가 됐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방에 들어와 우두커니 앉아 화장대 서랍을 정리한다. 자줏빛 벨벳이 깔린 서랍 안은 파우더가 떨어져 지저분하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짐짓 그가 나갔구나, 하고 혼잣말을 되뇌어본다. 크리넥스 티슈를 한 장 뽑아, 닦는다. 힘을 주어 닦아내려 할수록 파우더 분가루가 더욱 지저분하게 번진다. 티슈에 침을 묻히다, 이건 정말 남편과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세탁실 안에 있는 분무기를 가지러 갈 때였다. 현관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그가 뛰어 들어온다. 나는 그와 부딪히지 않게 오른쪽으로 비켜선다. 공교롭게도 그 또한 오른쪽으로 비켜선다. 나는 다시 왼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도 나와 부딪히지 않게 왼쪽으로 비켜선다. 눈을 마주친 후에야 나는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제자리에 서고, 그는 내 왼쪽으로 돌아 방으로 들어간다. 서있는 동안 내가 생각한 것은, 그래, 나에게 오른쪽은 그에게는 왼쪽이구나.그의 신발 한 짝이 마룻바닥에 반쯤 걸쳐져 올라와 있고, 현관 바닥에는 난데없이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혀있다. 방문 소리가 들린다. 반쯤 걸쳐진 신발은 나를 향해 콧날을 세우고 있다. 그가 내 오른쪽으로 비켜간다. 그는 몸을 돌려 반쯤 걸쳐 있는 신발을 현관 바닥으로 내린다. 그리고 그 신발에 발을 꿴다.목례.등을 돌려 그가 나간다.지금 나는 무엇을 하려다 여기에 서있었나. 그가 나를 비켜 지나갔던 오른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신발장. 가장 아래쪽에 놓인 여름 신발을 위쪽으로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일은 아주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다. 여름 구두를 위로 올린다. 세상에, 이 구두를 이제껏 여기 두다니.돌아서 마루에 발을 딛는 순간 현관에 찍힌 발자국이 보인다. 나는 내 맨발을 더러운 자국 위에 대본다. 이런, 형편없이 작다. 걸레를 가지러 간다. 미처 창문을 닫아 놓지 않은 동안 비가 왔는지, 베란다 바닥이 젖어 있다. 현관에 있는, 이제껏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모든 자국들을 지우기 시작한다. 현관은, 다시 현관이 된다.아침 식사 자리에서 남편이 출장을 갈 때 늘 그랬듯 나에게 행선지를 밝힌다. 그다지 보고해야 할 일도 아닌데 어김없이 요목조목 자신이 묵을 호텔과 전화번호까지 남기는 성의를 보인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그는 늘 얼굴에 홍조를 띤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에 감동하기에는 너무 익숙해져 있으며 많이 무심해져 있다. 이번에는 그와 함께가 아닌 남편 혼자 가는 출장이다. 오늘 당신 스케줄은 어떻게 되지. 남편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묻는다. 손톱 손질 하러 네일숍에 다녀올까 해요. 떠오르는 대로 말하고 나자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만 같다. 그와 나란히 남편을 배웅하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 외출 준비를 한다. 그와 우호적으로 지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에'라는 생각을 해봤을 때, 그가 만약 여자였고 만약 지금이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배워왔던 과거의 어느 시간대라면, 나와 그는 본처와 후실쯤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생각을 지워내기라도 하듯 재빨리 집을 나온다. 나는 가끔 내가 일했던 관광호텔 자리에 가 본다. 결혼을 하면서 일부러 피해 다니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호텔 건너편에 차를 세우고 내가 일했던 자리를 더듬어 보곤 한다. 그렇지만 도무지 내가 있던 곳이 가늠이 안 된다. 그 자리에 들어선 특급호텔은 어쩐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만 같다. 교통경찰이 지휘봉을 들고 다가와 얼른 차를 빼라는 시늉을 한다. 나는 미안하다는 수신호를 보내고 백화점으로 향한다. 명품 매장에서는 나를 알아보는 직원이 많다. 결혼 전 남편과 함께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너무 주눅이 들어서 괜히 얼굴이 상기되고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왠지 사람들이 네가 올 곳이 못돼,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상냥하게 웃는 직원이 나를 비웃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곳이 가장 편하고 좋다. 깨끗하고 안락한 것에 대한 적응은 빠르고 쉬웠다. 누군가가 내 어깨를 친다. 머플러를 사고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나오는 매장 앞에서였다. "얘, 정말 몰라보겠다. 네 소식은 들었어."난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증말 반갑다. 나 여기 백화점에서 하는 교양 강좌 들어. 너도 나와라."난 그냥 가벼운 미소만 짓는다. 그녀가 수다스럽게 말을 늘어놓는다."넌 참 눈에 안 띄는 애였는데, 신랑은 엄청 잘 만난 것 같더라. 여자 팔자는 그저 남편 능력에 달려 있다니까. 우리 요 옆 호텔 커피숍에라도 갈까."난 그녀에게 선약이 있다,고 하곤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건네며 머플러야, 했다. 그녀가 얼른 쇼핑백을 받았다."어머, 네가 필요해서 산 걸텐데, 내가 이래도 되나. 허긴 넌 이런 거 많지. 암튼 고마워. 여튼 언제 우리 한 번 꼭 만나자. 응?"대학을 졸업하고 호텔에 다니는 동안 난 사람들과 약속을 정하고 만난 적이 없다. 밤근무가 많아 사람들과 시간이 맞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다지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아파트 현관에서 깔끔한 정복을 입은 아파트 경비의 인사에 가벼운 목례를 한 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는 짧은 순간, 계기판에서 바뀌는 숫자를 올려다보다 문득 그가 집에 있을까 없을까를 점쳐 본다. 육개월이 넘도록 함께 살아왔지만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그의 겉모습이 전부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의 몸은 단단하다. 마른 체격 때문에 조금 왜소해 보이는 듯하지만, 러닝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러닝머신을 하는 그의 몸은 무척 탄력 있어 보인다. 내가 그의 몸을 본 것은 우연이었다. 한 달쯤 되었을까.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신상품으로 나온 페라가모 구두를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다 막 택시를 타는 그를 보았다. 급히 차를 돌려 그의 뒤를 밟았다. 그는 새로 생긴 휘트니스 센터 안으로 사라졌다.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잠시 후 러닝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은 그가 이층 통유리 앞에 나타났다. 그리곤 밖을 바라보며 러닝머신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척 생기 있고 빛나 보였다. 그 후 나는 가끔 그의 모습을 고의로 훔쳐보곤 했다. 어느 때는 남편과 함께 나란히 뛰기도 했다. 그럴 때면 사이좋은 삼촌과 조카쯤으로 보였다. 그의 생활은 그다지 규칙적이지 않다. 남편이 출장을 가고 난 후 집에 함께 있는 때면 식사를 할 때 외에는 방 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의 식사를 차려 놓고 노크를 할 뿐이다. 그가 조용히 식사를 마치는 동안 나는 혼자 방안에 앉아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본다. 그가 식기세척기 안에 그릇을 넣고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귀로 살필 뿐이다. 나는 그가 하는 일을 모른다. 그렇다고 궁금하지도 않다. 그가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어느 때는 그의 귀가가 늦어지기도 한다. 그런 때 방으로 들어가는 그의 옆얼굴은 멀리 어딘가를 다녀온 사람의 피곤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지나치게 운동을 해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그는 정말 남편을 사랑하는 것일까. 그저 남편의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들의 사랑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언젠가 남편과 헤어질 것이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미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처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연다. 열렸습니다, 하는 여자의 기계음 소리가 들린다. 신발을 벗으려는데 그가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다 내게 웃음을 짓는다. 돌아서는 그의 발걸음이 가볍고 경쾌해 보인다. 남편이 없는 집에 그와 단둘이 있다는 것이 오늘은 조금 어색하고 신경이 쓰인다. 며칠 전의 작은 소동 때문일까. 남편과 그는 그날 이후로 잘 지내는 것 같다.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이면 남편은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남편과의 형식적인 전화가 끝나자 남편 방의 전화벨이 울린다. 남편에게 온 전화일 것이다. 그는 그동안 집밖을 나간 적이 없다. 액자를 떼고 그를 훔쳐보기도 했지만 그는 책을 읽거나 서류 같은 것을 뒤적일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거실 소파에 앉아 남편이 즐겨 읽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막 펼쳐들 때였다. 주위에 켜놓은 촛불로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해 놓은 인도 여인의 사진이 일렁거렸다. 방에서 나온 그가 텔레비전 앞에 바싹 다가앉아 전원을 켠다. 그가 남편이 없는 이 집의 거실에 나와 텔레비전을 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나는 하마터면 무릎에 올려놓았던 잡지를 떨어뜨릴 뻔했다. 어쩌면 그가 나와 있다는 사실보다 늘 정적뿐인 거실에서 작지만 소곤거리듯 들리는 텔레비전 소리가 아주 낯선 곳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마음속에 작은 동요가 일어난 것 같다.나는 이내 평정을 되찾고 그가 없는 듯 잡지를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단지 유령일 뿐이다. 눈에 검은 물안경 같은 것을 쓴 아이들이 팬티만 입은 채로, 커튼을 쳐놓은 어두운 실내에서 강한 자외선을 쐬고 있다. 침묵을 깬 것은 그였다. 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요. 거실에서 텔레비전 앞에 바싹 다가앉아 있던 그가 크리넥스 티슈를 뽑듯 심상하게 묻는다. 몇 마디 말이 잠시 그와 나 사이의 짧은 거리로 가볍게 너풀거린다. 잠깐이지만, 그와 내가 지금껏 몇 마디나 나눠봤나 헤아려본다.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죠. 시큰둥한 내 대답에 그가 재빨리 말한다. 여긴 집이라는 느낌이 안 들어요. 그가 내가 넘기는 책장을 슬쩍 넘겨다본다. 음 나도 그 기사 봤어요, 햇빛에 든 비타민은 아이들의 뼈를 튼튼하게 한다고 하던 걸요. 그가 무엇이 우스운지 소년처럼 덧니를 드러내고 웃는다. 당신한테도 햇빛 비타민이 필요한지도 몰라요. 오늘은 함께 저녁을 먹고 싶어요. 어쩌면 그는 그리 조용한 남자가 아닌지도 모른다. 자신의 감정에 늘 솔직하고 농담을 잘하는 유쾌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밥을 먹을 때 나는 식탁에 항상 세 사람의 밥을 차려놓았지만,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는 않았었다. 제사상 한 귀퉁이에 저승사자 밥을 놓듯, 남편과 내가 먹는 밥상에 그저 수저나 하나 더 놓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함께 밥을 먹자니 정말 농담 같은 얘기다. 가을 햇살이 물고기 비늘처럼 유난히 번뜩인다.그가 차린 저녁 식사 앞에 앉으며 나는 그리 마음이 편치 못하다. 꽤 깔끔하게 만든 오므라이스는 맛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여긴 별로 집 냄새가 안나요. 그가 식기세척기에 접시를 넣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한다. 모델하우스에서 사는 기분이에요. 그가 나를 돌아본다. 당신의 모습을 봤어요. 대체 어떤 모습을 봤다는 것인지 언뜻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 사람과 함께 매일 밤 당신 방을 봤죠, 섹스를 끝내고 나면 우린 늘 당신 방안을 들여다봤어요, 당신은 늘 당신의 가슴을 만지더군요. 마치 남편의 방을 훔쳐보는 것을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부드럽게 만지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터뜨릴 듯이 손가락에 힘을 주더군요. 그가 커피메이커에서 커피를 따르곤 내 앞에 앉는다. 이상하지요, 당신의 모습을 봐야만 우린 잠들 수 있었어요, 당신 역시 그렇다는 걸 알아요. 난 소리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그에게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다. 지금 대체 그가 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을 뿐이었다. 전 내일 여기 없을 거예요, 그 사람은 당신이 내 아이를 낳길 원하지만 그건 그저 완벽한 가정의 모습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요. 지금 나한테 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지요, 내가 남편에게서 떠나길 원하나요. 그가 잠시 사이를 두더니 난 내일 여기 없을 거예요, 한다. 새벽까지 잠을 못자고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는 정말 집에 없었다. 남편은 그가 떠난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담담해 보였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겨울이 되었다는 것을 빼고는 우리는 여전히 다정하고 완벽한 이상적인 부부였다. 텔레비전을 켜자 아름다운 숲의 모습이 나타난다. 따사로운 햇살에 호수가 반짝거린다.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 그곳엔 따사로운 햇살과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자란 자작나무가 있습니다. 핀란드 자작나무의 선물'이라는 멘트와 함께 호수에 뛰어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잡힌다. 서양여자가 얘야 껌 씹고 자는 거 잊지 마라, 자일리톨 껌 씹고 자야지, 하면서 약병처럼 생긴 플라스틱 통에서 알약 같은 껌을 꺼내 잠옷을 입은 아이 둘에게 하나씩 먹이는 광고의 후속편인 것 같았다. 그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보았던 광고였다. 그때 참 이상한 광고라는 생각을 했었다. 자기 전에 껌을 씹으라니. 문득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는 그에게 묻기라도 하듯 되뇌어 본다. 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 어쩌면 그는 핀란드에 갔는지도 모른다.오늘은 남편의 새 파트너가 오는 날이다. 남편과 새 파트너를 위해 대형할인점에서 장을 봤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파트 입구에 들어가려는데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난다. 돌아보니 한 여자가 놀이터를 향해 아이를 부르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여자 아이 하나가 그네를 타고 있다. 아이는 어느새 그네에서 풀쩍 뛰어내려 제 엄마에게 뛰어 간다. 아무런 미련 없이. 그네가 흔들리고 있다. 놀이터 모래 바닥에는 수많은 발자국들이 찍혀 있다. 나는 시소 앞에 비닐봉투를 내려놓는다. 이제 그네는 흔들리지 않는다.그네 앞에 쪼그려 앉는다. 뒷걸음질치며 모래 위에 찍힌 발자국들을 손으로 지우기 시작한다. 온몸에 땀이 흐른다. 어느새 내 등은 시소에 닿는다. 내가 뒷걸음질쳐온 거리만큼 양손이 닿은 거리는 어떤 발자국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몸을 돌려 그네까지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한다. 문득 고개를 드니 시소 옆에 발자국이 하나 남아 있다. 내가 몸을 돌릴 때 생긴 미처 지우지 못한 내 발자국이다. 구멍이다.그가 떠나고 난 후 나는 남편의 방에서 나를 엿보는 구멍을 찾아냈다. 어쩌면 그것은 시어머니가 남기고 간 흔적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부러 없애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아직 아이를 낳는 일을 실행하지 않고 있다. 정말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늘이 잔뜩 무겁게 내려앉아있다. 어쩌면 눈이 올지도 모른다. 온다면, 첫눈이 될 것이다. ■ 소설부문 당선소감 / 이연희"믿어지지않는 당선 전화… 사람냄새나는 글 쓰고파"당선 연락을 받은 날, 일 때문에 부산 광안리 바다 곁에 있었다. 호텔 창밖으로 펼쳐진 광안대교가 막 조명을 밝힌 직후였다. 전화를 끊고도 실감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생각난 듯 창문을 열었다. 창밖에 몰려와 있던 바다 바람이 시위하듯 몰려 들어왔다. 나는 한동안 누구에게도 전화를 할 염도 내지 못했다. 내게는 인연이 없는 일인가보다고 체념하듯 잊고 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 내게 생겼다. 당선이라니!나는 늘 포기가 빠르다. 그런데 포기를 그리 잘 하면서도 그놈의 미련이라는 것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가 보다. 그래서 12월이면 늘 마음이 헛헛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엄마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조금 있다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엄마가 그러는데 누나 뭐가 됐다며? 그제야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래, 뭐가 됐구나. 고등학교 때만 해도 글 쓴답시고 분위기 잡는 애들이 가장 밥맛없었다. 그런 내가 문예창작과를 간 일 자체가 억지 춘향으로 맺은 인연이었다. 졸업만 하자고 남들보다 늦게 들어간 학교였다. 그런데 소설 쓰는 일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고 누군가 내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일이 제법 기뻤다.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지난여름 인도에 다녀왔다. 나는 지저분한 것도 싫어하고 복잡한 것과도 친하지 못하다. 한 마디로 나는 까칠한 사람이다. 열 시간이 넘도록 쿨렁쿨렁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다시는 이런 곳에 오나 봐라 하기도 했고 마지막 날은 인도의 병원 신세까지 졌다. 그런데 지금 왜 하필 그곳이 생각날까. 함께 간 글 쓰는 후배들은 밤새 글 쓰는 일에 대하여 침을 튀기며 이야기 하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나는 여행을 하고 싶었을 뿐이고 이왕이면 패키지여행보다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자유롭게 하는 여행을 바랐을 뿐이었다. 그들의 열정에 나는 잠시 주눅 들었다. 인도는 내게 길 위에서 길을 만난 곳이다. 수많은 길 위에 또 다른 길이 있는 곳.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그러하듯 그곳엔 끝없는 길이 있을 뿐이었다. 만약 내가 이 일을 계기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저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면서도 겁 많은 내가 뛰어들고 싶어 한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다. 소설과 귀한 인연을 맺게 해주신 박철우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큰 인사를 드린다.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을 것 같다.- 약력1972년 서울 생서일대학 문예창작과 졸업서일문학상, 태전문학상, 조선문학 대학문학상 소설 당선■ 소설부문 심사평 / 성석제·박범신"과감하고 담대한 글 전개… 풍속의 세부가 살아있어"한 해를 결산하는 동시에 새해의 출발점에 놓이는 신춘문예, 그 중에서도 소설 부문 투고작은 우리 사회의 풍속을 고스란히 반영하게 마련이다. 가족 해체, 경제위기 속에 소외된 사람들, 노인들의 병고와 생활고에 대한 연민 등 다양한 제재의 투고작 가운데 당선작 후보로 논의된 작품은 다섯편이었다.'푸른 이마'는 발달장애아를 자식으로 둔 여성의 생활이 그려진 작품으로 안정된 문장이 강점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고투와 몸부림이 읽는 사람의 공감을 자아내지 못 하고 개인적인 범주에 머물고 만다는 게 문제였다. '고추 농사'는 오늘날의 고민 많은 아버지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는 소설인데 비슷한 기성 작품들과 구별될 만한 개성이 읽히지 않았다. '코끼리 약국에서 만나자'는 소설 속 인물들의 대사가 생생하고 좀체 쓰지 않는 우리말을 찾아내고 쓰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소설의 전개가 불안하고 말하려는 골자가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반품'은 약점이 별로 없는 작품이다. 비정규직의 힘든 생활과 반품으로 돌아오는 상품을 대비해 가며 삶의 거친 주름과 살결을 조명해내고 있는 점이 호감을 준다. 관찰자의 시각이 날카롭고 의미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작품이 세계의 한 부분을 생생하게 재생해내고 있을 뿐,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데까지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당선작인 '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는 과감하고 담대하다. 묘사는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경쾌하다.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새로운 건 아니지만 부부와 남편의 남자 애인이 한 집에서 동거하는 풍경을 불편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풍속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써진 듯한, 자기 완결성이 높은 작품을 읽고 나서 '그래서?'라고 그 다음에 대해 묻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거기에 대한 대답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 또한 오늘의 풍속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어질 또 다른 작품으로 독자에게 응답할 것으로 기대한다.

2009-01-01 경인일보

시 심사평 / 장석주·최두석

'경제'라는 말의 위력에 비해 '양심'이라는 말의 힘은 너무도 미약해 보이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다. 경제가 아량을 베풀어 셋방이라도 살게 해줘야 양심이 깃들 곳이 있게 된 세상이다. 하지만 경제는 아무리 먹고 마셔도 배고픈 신화 속의 괴물처럼 만족을 모른다. 그 괴물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미약하나마 양심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시다운 시의 징표 가운데 하나는 얼마나 시에 양심이 살아 있느냐이다. 시 쓰기 자체가 살아가는 의미 찾기와 깊이 연관되는 것이라면 그 의미 찾기의 진실성 여부가 양심의 문제로 나타난다. 그것이 돈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돈벌이와 무관하게 시를 읽고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땅에 시가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고 신춘문예의 수많은 투고작 또한 희망의 한 모습이다. 모두 200여 명의 투고자 가운데 마지막까지 검토의 대상이 된 시를 보낸 이는 이문 신지영 심명수 김기훈 김소연씨 등이다. 이문의 '리딩 로드'는 발랄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언어구사가 돋보였는데 시상의 초점이 잘 모이지 않는 것이 흠이었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이야?'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주제 구현에 좀더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신지영의 '열섬'은 시적 형상을 구축하는 저력이 배어 있는 시이다. 하지만 투고작 세 편만으로는 시인으로서의 역량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심명수의 '내 책상 위의 포도 한 알 구를 때'는 상상 자체가 신선하고 재미있는 시이다. 사소한 소재로도 얼마든지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함께 투고한 시들이 이 시를 받쳐주지 못하였다. 김기훈의 '월세 방 있습니다'는 가난에 찌들지 않고 그것을 일종의 동화적 상상력으로 날려버리는 시이다. 무거움에 대해 가벼움으로 대응하는 발상이 신선한 시이다. 한편 김소연의 '꽃신'과 '비'도 가난한 삶의 체험을 우려낸 시인데 소박한 언어 속에 속 깊은 마음이 녹아들어 있다. 마지막 두 사람의 시에 심사에 임한 두 사람은 오래 눈길을 주었는데 결국 '소박한 언어 속의 속 깊은 마음'으로 저울추가 기울었다. 잔뜩 화장한 시가 유행하는 풍조에 견주어 중요한 미덕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빈다.

2008-01-01 경인일보

시 당선자 / 김소연

달이 밝고 자연 경관이 빼어난 곳에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았다. 처음으로 오래도록 집을 떠나 자연과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출발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글을 쓰기 위한 것이 되었다. 집을 떠나지 못하고 도심 속에 있을 때는 내 삶의 힘든 것만 보였다. 그래서 시도 힘들었다. 하지만 자연은 나에게 삶을 다르게 바라보는 법을 깨우쳐 주었다. 석 달 가까이 자연의 신비한 기운을 받으며 낮에는 산길을 걷고, 밤이면 달빛에 젖으며 밤이 새도록 만물의 창조주께 내 살 속 깊은 곳에서 곪고 부르튼 상처들을 들춰 보였다. 사람에게는 보일 수 없는 은밀한 것들조차도 자연의 침묵과 그 신비로움 앞에서는 아무것도 감출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에게 주어진 형벌 같은 이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까지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으로부터 들려오는 시의 소리는 삶이 너무 아프기 때문에 시를 쓸 수밖에 없는 그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나에게 시인의 정신과 삶을 일깨워 준 스승의 가르침을 되새겨 본다. "눈을 뜬 사람은 반딧불만 보아도 '빛난다'고 할 수 있지만, 눈을 뜨지 못한 자는 태양이 떠도 '어둡다'고 한다. 그러니 너는 눈을 뜨라"고 했다. 눈을 떠야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고, 그 생활 속에서 시가 온다는 것을, 시의 흐름에는 나의 생활의 흐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깊은 시는 내가 삶 속에서 그물을 깊이 던져 그것을 있는 힘을 다해 건져 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끝까지 열심히 할 것이다. 조금 더 수고를 하고 조금 더 애를 쓰면서. 마지막 최고까지 몸부림을 치며 정말 그만두고 싶은 순간에도 목숨을 내걸고 조금 더 올라가고 올라가면 더 엄청난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끝끝내 내 앞에 쌓아 놓은 종이가 바닥이 날 때까지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그렇게 시를 쓸 것이다. 고기를 몰아야 이미 쳐 놓은 그물망에 고기가 걸리듯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고달픈 인생이 시를 쓰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그물망에 몰았을 때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커다란 기쁨이 걸려들었다. 그리하여 나에게 삶에 대한 위로와 더불어 커다란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어린 감사를 드린다. 또한, 나의 소망되시는 하나님과 내가 시를 쓸 수 있도록 늘 사랑으로 가르쳐 주신 나의 스승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약 력 1973년 7월 7일 생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현재는 프리랜서로 출판사에서 교정 일을 맡고 있음

2008-01-01 경인일보

단편소설 심사평 / 공선옥·배명희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장연자의 '불청객', 리홍사의 '내 사랑 타워크레인', 이종태의 '마디', 홍명진의 '터틀넥스웨터', 모두 네 편이었다. '불청객'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는 은행원 남편이 불시에 집에 들러 점심을 먹으면서 굳게 잠긴 안방문과 가슴이 살짝 비치는 옷을 입은 아내를 의심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백주 대낮에 굳게 잠긴 안방문을 끝내 열어보지 못한 채 남편은 때마침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데리고 황급히 집을 나온다. 자신이 한때 바람을 피운 내연녀의 가정을 깬 경험이 있는 남편의 심리와 파괴에 대한 욕망과 그것을 절제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이중적인 모습이 잘 드러난 좋은 작품이었다. '내 사랑 타워크레인'은 고아원에서 자란 남자가 어릴 적에 헤어진 쌍둥이 누이를 찾는 이야기다. 공중에 높이 뜬 타워크레인 안에서 할 일이란 쌍안경으로 다른 사람의 거실을 훔쳐보거나 라디오를 듣는 일밖에 없는 타워크레인 기사의 생활을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재치 있게 꾸리는 솜씨가 돋보였다. 그러나 주제에 맞물리지 못하는 타워크레인에 대한 묘사가 많았고, 주인공의 과거가 너무 많은 분량을 차지하여 단편으로서의 균형을 깨트렸다. '마디'는 시신의 얼굴을 화장해주는 직업을 가진 여자의 이야기다. 특이한 소재를 치밀한 묘사로 차분하게 서술해 나간 작품이다. 주인공은 교통사고를 당해 패션디자이너의 길을 포기하고 장례지도사를 택한다. 현재 여자가 황폐한 내면을 갖게 된 원인이 진부하게 묘사되어 단편으로서의 세련미가 떨어졌다. 여자는 알고 지내던 남자의 화장을 마치면서 자신에게서 빠져나간 삶의 의미를 깨닫는데, 깨달음의 빌미를 준 남자의 생애 또한 평면적이라 아쉬웠다. 당선작으로 뽑힌 '터틀넥스웨터'는 안정된 문장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장애를 가진 여자의 원초적 욕망을 외면하지 않고, 인간의 외로움과 소외감을 감싸안으려는 따뜻한 작가의 시선이 돋보였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2008-01-01 경인일보

단편소설 당선자 / 홍명진

몇 년 전 소설 창작 공부를 해보겠다고 중앙대 예술대학원에 원서를 냈었다. 구두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복도에서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면서 몹시 떨었던 생각이 난다. 예제로 문학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소설을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등등의 질문이 나와 있었다. 소신껏 대답하면 된다고 앞서 시험을 보고 나온 이들이 귀띔을 해주었지만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까마득하기만 했다. 그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질문에 나는 무엇이라 답해야 하는가, 아니 그것을 한 번이라도 깊이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가. 소신은커녕 이제껏 나름대로 문학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오고 있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휘발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말을 조리 있게, 체계적으로 할 줄 아는 재주도 없다. 마주 앉은 사람과 똑바로 눈 맞추는 것도 버거워하는 타입이다. 그때 나의 시험관은 신상웅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소설의 '소'자도 문학의 '문'자도 일절 내비치지 않았다. 편안하게 웃으시면서 떨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지원 양식에 표기된 자료를 보시고 그쪽(내 태생지)은 바다가 참 아름다운데, 그 중에서도 바다를 끼고 달리는 7번 국도가 아름답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거기에 나는 웃는 얼굴로 답변을 했던가, 경직된 얼굴을 했었던가? 면접관 앞을 물러나면서 "아, 나는 떨어졌구나!" 생각했다. 결국 내겐 아무것도 묻지 않으신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아무 말 없음'이 내게 주어진 하나의 화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2년 동안의 과정을 수료하고 난 뒤에도 그 '아무 말 없음'이 늘 나를 괴롭혔다. 네 속으로 더 깊이 내려가라는 말처럼 생각되기도 했고, 삶을 똑바로 직시하라는 말처럼 생각되기도 했고, 때로 나의 심리적인 상태와 방황의 시간들 속에서 그것은 전방위로 나를 둘러싸고 놓아주질 않았었다.이제 당선 소식을 들었다고 해서 그 답이 명쾌해졌을 리 없음을 안다. 어쩌면 더욱 다양하고 잔혹하게 나를 괴롭힐지도 모를 일이다. 그 속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 기꺼이 나를 던져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멋진 당선 소감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만큼 나는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리라. 얼떨떨한 기분으로 당선소감을 쓰자니 손끝이 아직도 떨린다. 함께 창작 공부를 하는 마음으로 내 작품에 질책과 더불어 용기를 주었던 이들의 애정에 감사드린다. 열심히 해보라고 사랑으로 응원해준 남편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약 력1967년 경북 영덕 출생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수료전태일 문학상 소설부문 최우수상 수상

2008-01-01 경인일보

[2008 경인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작] 터틀넥 스웨터(홍명진)

가게 출입문에 달아놓은 풍경이 요란하게 울린다. 맑은 쇳소리에 느긋하게 풀어졌던 여자의 감각이 조급하게 오므라든다. 수은주의 온도가 갑자기 내려간 날이면 풍경소리는 더 쟁쟁하고 여운도 오래간다. 여자는 몇 모금 빨지도 못한 담배를 서둘러 비벼 끈다. 치약을 짜놓은 칫솔을 입에 물고 하수저장고의 스위치를 꽂는다. 위이잉 모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소용돌이가 일며 물살이 뒤엉킨다. 여자는 몸을 숙여 깊고 어두운 하수저장고 속을 들여다보며 양치질을 한다. 굵은 플라스틱 파이프가 잠겨 있는 물은 검다. 물을 많이 쓰지 않는 겨울철에는 사흘에 한 번씩만 돌려도 하수저장고의 물이 넘칠 일은 없다. 물이 다 빨려 들어갈 때까지 여자는 윗몸을 숙인 채 칫솔질을 멈추지 않는다. 저장고 바닥에 고여 놓은 벽돌의 한쪽 귀퉁이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여자는 모터의 전기 코드를 뽑는다. "안에 있는 거야?" 까칠한 백양클리닝의 목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으이 추워!" 깃털을 털듯 진저리를 쳐대는 철물점 여자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 스완뜨개방을 들락거리는 고정 멤버들이다. 철물점은 딸의 스웨터를 짜고 있는 중이다. 남편이 설비 일을 나갈 때는 여자가 가게를 보지만 일이 없어 남편이 가게를 보는 요즘, 철물점은 스웨터를 핑계로 거의 뜨개방에서 낮 시간을 보낸다. 덩치가 좋고 수수한 성격에다 입성이 대충인 철물점과는 달리 백양클리닝은 시장통 사람들이 알아주는 멋쟁이다. 남편은 허구한 날 빨랫더미에 파묻혀 허리 펼 짬이 없는데 여자는 세탁소 일엔 아예 관여하지 않는다. 백양클리닝은 반짝이가 살짝 박힌 진보라색 슬러브사에 같은 색상의 순모를 섞어 사각 숄을 짜고 있다. 꼬임이 많고 털이 긴 슬러브사는 무늬 없이 겉뜨기와 안뜨기만 한 단씩 섞어 짜도 그 자체로 포근하고 풍성해 보인다. 실의 색상을 고를 때도 까탈을 부리며 이것저것 집적거리더니 성격마저 진득하질 못해서 숄이 언제 완성될지는 알 수가 없다. 무슨 얘기들을 나누는지 늘 삐걱거리던 두 여자의 힐힐거리는 웃음소리가 제법 길다. 어지러운 웃음소리는 하수 파이프 속으로 빨려들던 소용돌이처럼 여자의 몸을 휘감는다.여자는 입을 헹구고 세면실 벽에 가로로 길게 누운 거울을 들여다본다. 요사이 부쩍 밤잠을 설친 탓인지 조막만한 얼굴은 부스스하고 등의 혹은 더 도드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해가 짧은 겨울철에 여자의 얼굴은 거의 창백하게 가라앉아 있다. 사계절 내내 바깥출입이 드문 편이지만 유독 겨울이면 더하다. 겨울이 닥치면 여자의 몸은 유리그릇처럼 투명해져서 제 몸을 이루고 있는 연약한 뼈마디들이 툭툭 불거지는 것만 같다. 구루병은 일종의 비타민D와 일조량의 부족 때문에 일어난다고 배웠다. 태양광선 일수가 많은 지역이나 생선을 많이 먹는 북극 사람들은 꼽추가 드물다는 걸, 더구나 꼽추는 유전병이 아니라는 걸 구루병을 배울 때 들었던가. 그때 여자는 의식적으로 햇볕을 쬐기 위해 애썼다.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가 수업을 받을 때면 혼자 교실 뒤편의 햇볕이 고인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서서 입을 커다랗게 벌리곤 했다. 여자의 손을 꼭 잡고 유독 습하고 그늘진 곳만 골라 걷던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몸집이 작고 가냘팠던 어머니는 손만은 사내처럼 거칠었다. 손마디 곳곳에 굳은살이 딱딱하게 집혔다. 쇠골무를 끼고 바느질을 하는데도 그랬다. 혼수 이불을 꿰매는 돗바늘에 눌린 자국들이 골무의 크기만큼 굳은살을 만들었다. 바느질품을 팔며 생계를 이었던 어머니는 한밤에도 여자의 머리맡에 앉아 바느질거리를 붙잡고 있었다. 햇빛을 못 보기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곧은 몸을 가지고 살았지만 병신자식보다 더 등을 구부린 채 살아온 사람이 어머니였다."뭐하느라 안에서 그렇게 꿈적대?" 여자가 가게 마룻방으로 들어서자 뜨개질거리를 펼쳐놓던 백양클리닝이 기다렸다는 듯 여자의 시선을 붙든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입이 근질거려 못 참겠다는 표정이다. 여자는 엉덩이 자국이 난 방석을 끌어다 앉는다. 무릎덮개로 무릎을 감싸고 밀쳐두었던 뜨개질감을 잡는다. 철물점은 벌써 전기장판이 깔린 바닥에 질펀하게 앉아 재게 손을 놀리고 있다. 어두운 계열의 그레이와 엷은 보라가 층을 지어 염색된 날염 혼방사를 7㎜짜리 대바늘로 꽈배기 무늬를 넣고 있는 앞판은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다. 백양클리닝처럼 호들갑스럽지 않은 철물점도 뭔가를 은근히 참고 있는 듯 얼굴에 웃음기가 남아 있다."내 참, 어이가 없어서. 글쎄, 우리가 오다보니까 천왕사가 유리문에 딱 붙어서 요렇게 안을 들여다보고 있잖아. 채신머리없이 그게 무슨 짓이야. 지나가는 사람들 눈도 있는데."백양클리닝은 앉은 자세에서 엉덩이를 쑥 빼고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어 흉내까지 낸다."덩치에 안 어울리게 남세스럽긴 하지. 그래도 뭐 무슨 볼일이 있어 그랬겠지."철물점의 대수롭지 않은 말투에 백양클리닝이 발끈한다."볼일은 무슨. 저번 언젠가도 그러고 있는 걸 내가 봤는데. 스완이 기분 나쁠까봐 말은 안 했지만 아니, 사내가 뜨개질방에 볼일이 있을 게 뭐야. 그렇잖아도 갈고리 같은 그 눈만 마주쳐도 어깨가 뻣뻣한 게 기분이 나쁜데. 스완은 이상한 낌새 못 챘어?"별 뜻 없음을 가장한 그 물음 속엔 단순하지 않은 호기심과 의구심이 깔려 있다. 점집 홀아비와 뜨개방의 꼽추 여자. 근거 없는 추문은 애드벌룬처럼 사람들 사이를 둥둥 떠다닐 것이다. 여자는 대꾸 없이 뜨개바늘만 놀린다. 생수남자의 키를 눈대중으로 가늠해 게이지를 냈지만 뒤판이 완성되고 앞판의 모양새가 얼추 잡혔을 땐 그의 몸을 만져본 것처럼 실감이 왔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 저녁 전에는 조끼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는 마음속에 묻어둔 생각이 겉으로 드러날까봐 애써 태연한 척 백양클리닝의 궁금증을 피해간다. 말꼬리를 잡히면 돌고 도는 말의 타래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수다스러운 여자들의 입을 통해 주인인 천왕사 남자의 필리핀인 아내가 한 달 만에 도망을 쳐버렸다는 것도 알았다. 놀란 토끼처럼 눈이 똥그랗고 얼굴이 기름칠을 먹인 것처럼 까맣게 윤기가 났다던 어린 그 여자를 문밖출입조차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제 터도 못 닦는 주제에 무슨 점쟁이냐고 대놓고 힐난하는 소리 역시 여자들의 입을 통해서 들었다. 들어오는 가게마다 수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장사를 접었다고 했다.재래시장 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이 가게는 목이 좋지 않았다. 시장 중앙통의 사거리를 중심으로 온갖 상점들과 난전이 북적대는 위쪽과는 달리 아래쪽으로는 살림집들이 섞이면서 풀이 죽어 있었다. 여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건강원이 들어 있었다. 유리문에는 개소주? 흑염소? 생사탕? 각종 과일즙을 저렴한 가격에 내려준다는 선팅지가 미처 떼어내지 못한 채 붙어 있었고, 시멘트 바닥엔 석유물이 든 듯 거무스름한 얼룩이 져 있었다. 세제를 잔뜩 묻힌 철수세미로 바닥을 닦아내는 동안에도 과즙과 뒤섞인 들큼한 냄새가 나는 듯해 여자는 바닥을 문질러 닦고 또 닦았다. 가겟방 뒤로 낮게 턱이 져 있던 곳은 여자가 들어오면서 미닫이문을 달아 살림방으로 꾸몄다. 옷장과 침대를 놓자 꽉 찬 그 방은 애초에 비품이나 물건들을 쟁여두고 창고처럼 쓰던 곳이었다. 그 안쪽으로 개수대가 놓인 부엌 겸 좁다란 세면실이 있고 뒤쪽 깊숙한 구석에 하수저장고가 있었다. 배수관이 시장통 안으로 흐르는 하수관으로 바로 연결이 되지 않아 모터를 설치해서 물을 빼낸다. 처음 이 가게를 보러 왔을 때 여자는 미궁처럼 검게 뚫려 있는 하수저장고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절망적이고 음침한 기운이 몰려 있는 하수저장고가 마치 여자가 등에 지고 있는 혹처럼 여겨졌다. "천왕사가 스완을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어. 정말 이상한 낌새 못 챘어?"백양클리닝의 말에 여자는 핏기 가신 창백한 얼굴로 웃고 말 뿐 돌돌 말린 실꾸리에서 실을 풀어내 왼손 검지에 걸고 재게 뜨개바늘을 놀린다."고깝게 생각하지 마. 누가 스완이 그렇데? 천왕사가 좀 음충맞아야지. 사내란 그저 점쟁이 할아비가 아니라 천왕신이라도 다 똑같은 거야."백양클리닝의 푸른 눈썹 문신이 갈매기 모양으로 휘어졌다 내려오며 슬쩍 여자의 온몸을 훑듯 스쳐간다. 말 따로 마음 따로, 때로 사람의 마음이란 체에 까불리는 겨와 같다. 학교 때 친구들도 하나같이 그랬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돌아서면서 슬쩍슬쩍 곁눈질로 여자의 등을 쳐다보곤 했다.소문은 어디까지 갔을까? 주인남자가 황토색 개량한복 위에 올겨울 들어서부터 껴입고 다니는 회색 스웨터가 여자의 솜씨라는 것쯤은 눈치챘을 것이다. 해묵은 작품이었다. 톡톡한 순모사로 앞섶을 갈라서 싸개단추를 달고 양쪽에 넉넉한 주머니를 넣었다. 친정아버지 생신 날 드릴 선물이라며 날짜를 맞춰 달라고 다짐까지 두며 재촉하더니 스웨터를 부탁했던 손님은 이사하는 날까지 나타나지도 않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 여자가 포장지에 싼 스웨터를 들고 천왕사로 올라간 건 계약서를 쓸 때 올라가 본 후로는 처음이었다. 다소 요란스럽다 싶게 차려놓은 암자의 불당 같은 내부는 출입구부터 연등이 치렁치렁 걸려 있었다. 키가 작은 여자의 머리에는 닿지 않았지만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숙여야만 할 것 같았다. 전세금이 모자라 차액을 월세로 물기로 하고 들어왔는데 몇 달째 주인남자는 여자가 준비한 월세를 받지 않았다. 검은 올리브색으로 옻칠이 된 탁자를 앞에 놓고 평상다리를 하고 앉은 주인남자 앞에 포장지 꾸러미를 내려놓으면서 여자는 얇은 속이 비치는 것 같아 손이 부끄러웠다. 주인남자는 언제 보아도 표정이 없었다. 울긋불긋한 단청으로 도배된 전면 벽의 험상궂은 탱화 속 신상을 떠다놓은 듯한 얼굴이었다. 주인남자는 여자가 밀어놓은 포장지 꾸러미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팔자에 자식이 아주 없는 게 아니야. 접신이라도 된 듯 덩치와는 다르게 앵앵거리는 주인남자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부처님 손바닥이란 말이 왜 있겠어. 미물 같은 인간들은 지 처지도 모르고 팔자소관을 거스르려고 날뛰지만 엥, 빌어! 빌어서라도 팔자에 있는 떡 부스러기라면 받아먹어야지. 여자는 까닭 없이 목덜미가 뜨거워지고 귓불이 붉어졌다. 마치 제 속에 품은 갈망과 생의 속살을 들켜버린 것처럼. 엉덩이가 푼더분하게 처진 바지저고리에 걸쳐진 스웨터 양쪽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등뼈를 늘인 짐승처럼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았을 주인남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좀처럼 얼굴을 부딪치지 않지만 어쩌다 뒷마당 한쪽 구석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올 때 이층 난간에 서 있는 그와 눈이 마주칠 때도 있었다. 먼저는 무안한 감에 눈을 피하지만 황급히 부엌 쪽문을 통해 가게 안으로 들어올 때는 뒤가 당기는 느낌에 번번이 몸이 허청거렸다. 하수저장고를 들여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도 이층 계단을 밟는 주인남자의 둔탁한 발소리가 들리면 여자는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그럴 때면 여자 외에는 드나드는 사람이 없는 부엌 쪽문의 잠금 고리를 새삼 확인하곤 한다."구절양장 같은 사람 속을 들어가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알아. 하여간 사람들이 천왕사를 찾아오는 걸 보면 아주 알조는 아닌가 봐."코를 쑥 빠뜨리고 뜨개질에 열중이던 철물점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올해 쉰인 철물점은 얼마 전에 첫 손녀를 보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딸이 아이를 낳았다고 쉬쉬하는 눈치더니 백일 지난 손녀딸을 데리고 뜨개방에 나와서는 아까워서 어쩔 줄 몰라 쪽쪽 빨았다. 여자는 보드라운 강보에 싸인 아기를 품에 안아 보았다. 오물거리는 입과 말랑거리는 코, 흑체리 같은 홍채가 여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기의 순두부 같은 살갗에 볼을 비빌 때 한 번도 무언가를 품어보지 못한 여자의 자궁에 더운 물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철물점은 딸의 인연에 낀 액운을 아기가 덮었다는 천왕사 말을 믿는 눈치였다. "사위자리가 영 마음에 안 들었어. 뭘 먹고 살는지, 철없는 것들이 저질러놓은 일이니 어쩔 수 없긴 했는데, 애 낳고 사위가 정신을 좀 차리는 것 같아. 이젠 직장도 잡았어.""그거야 뭐 점쟁이 아니라도 할 소리구만. 자식이 눈앞에서 꼬물거리는데 아무리 철없는 애비라도 그렇지. 지들 둘만 있을 때랑 똑같겠어?"백양클리닝이 입을 삐죽대며 받아친다."그래도 뭐가 보이니까 큰소리를 치지. 아닌 말로 점쟁이는 귀신과 노는 사람인데, 아무렴. 요기 찻길 맞은편에 식당하다 이불가게 낸 여편네는 아주 천왕사에 엎어져 사는데 하나 틀린 것 없이 딱딱 맞춘다던데 뭐.""그랬겠지. 갖다 바친 게 얼만데." 백양클리닝은 여전히 못마땅한 듯 비죽거린다."조상 중에 객사한 사람이 많아 비렁뱅이들이 달려든다고 먹는 장사는 안 된다잖아. 몇 번씩 간판을 갈아치우던 그놈의 식당 엎고 이불가게 차려서는 제법 장사가 되잖아. 천왕사가 그런 거 하나는 아주 용하게 본다는데."철물점은 백양클리닝의 심사가 꼬일수록 능청스레 말을 늘인다."거기가 어디 식당 자리야? 주변이 죄다 옷가겐데. 지나가던 삼척동자도 다 알겠다."백양클리닝은 사사건건 철물점 말에 어깃장을 놓는다. 수세에 몰리면 백양클리닝의 까칠한 목소리는 말끝이 딱딱 부러진다. 여자는 온수기 앞에서 커피를 탄다. 종이컵에 인스턴트커피 믹스를 하나씩 넣고 더운 물을 뽑는다. 18리터들이 푸른 물통의 수위는 거의 바닥이다. 여자는 온수기에 붙어 있는 아쿠아 유통 스티커를 들여다본다. 생수남자의 휴대폰 번호가 상호 밑에 적혀 있다. 남자는 언제든 전화만 하면 달려올 것이다. 생수통을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냉온수 기기에 물통을 꽂아주고, 빈 통을 내가면서도 여자의 눈을 한 번도 바로 쳐다본 적이 없다. 마치 여자의 등에 솟은 혹에 눈이 닿을까봐 무안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럴 때면 여자는 투박하고 넓적한 그 남자의 손이 자신의 등에 닿는 감촉은 어떤 느낌일까 터무니없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여자의 등을 쓸어준 사람은 오로지 어머니밖엔 없었다. 어머니의 손이 등을 쓸 때마다 가시가 박힌 듯한 등뼈에 따뜻한 온기가 돌아 여자의 온몸이 부드러워지곤 했다. 사람들은 감히 여자의 만곡이 심한 등을 만져볼 생각 같은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자는 늘 외로웠다. 좀 모자라긴 해도 그저 사람 심성 하나만 착하면 아무것도 난 바라지 않는다. 내가 널 치우지 못하고 가면 어쩌누…. 어머니의 소원은 그 한 가지였다. 만약 어머니가 생수남자의 선한 눈을 봤더라면 어머니 눈에 꼭 차지 않았을까. 행복한 하루 되세요. 물통을 올려주고 돌아서면서 남자는 한 번도 그 말을 빠뜨린 적이 없다. 어눌하고 더듬거리는 말투였지만 여자에겐 그 말이 따뜻하고 정겹게만 들렸다. 나이 마흔 넘은 노총각이래. 요새 장가 못 간 총각들이 얼마나 수두룩한데. 괜히 딴 나라까지 가서 여자들을 데려오겠어. 이사를 왔을 때 생수집을 연결해주며 철물점 여자가 귀띔한 말이다. "하여튼 난 여기 와서 마시는 커피가 젤 맛있어. 이거 한 잔 안 마시면 하루 종일 체기가 안 내려가는 것 같아서 원."철물점 말에 백양클리닝은 못 들은 척 홀짝홀짝 커피를 마시면서 여자에게 묻는다."이건 또 남자 조끼 같은데?"백양클리닝은 여자가 뜨고 있는 조끼를 끌어다가 손으로 비벼대면서 눈을 빛낸다."스완은 뜨개질 솜씨는 타고났어. 뭐든 시작만 하면 뚝딱 만들어내잖아. 우리 나이 때들은 어려서부터 뜨개질도 숱하게 했는데, 난 좀이 쑤셔서 못 하겠더라고. 주문받은 거야?"그 말에 대답은 않고 여자는 희미하게 웃을 뿐이다. 뜨개질거리를 잡고 있으면 마음속의 번민이 가라앉듯 한순간 몸이 고요해지면서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하지만 이 조끼를 처음 잡았을 때부터 여자는 가슴이 덤벙거려 자주 코를 빠뜨리고 허황되게 마음이 달뜨곤 했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여자도 알 수가 없다."군청색에 벌집무늬가 도도록하게 살아나니까 궁상맞을 것 같은 색깔이 처지지 않고 좋아 보이네. 나도 얇은 바늘로 좀 얌전하게 떠서 그 무늴 넣을 걸 그랬나."철물점도 뜨개질하던 손을 멈추고 백양클리닝이 만지고 있는 조끼를 건너다본다. "난 저 마네킹이 걸치고 있는 스웨터만 보면 탐나더라. 맘 같아서야 하나 해입고 싶지만 내 솜씨론 어림도 없고, 이거 끝내면 볼레로나 짜서 입어야지. 요샌 그게 유행이라며?"백양클리닝의 말에 여자는 마네킹이 걸치고 있는 스웨터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순모와 폴리에스테르 합성사로 진분홍과 감색, 회색과 아이보리, 자주색을 섞어 그러데이션 기법을 살린 터틀넥스웨터는 170센티미터의 가늘고 긴 몸매를 가진 마네킹에게 더할 수 없이 어울린다. 완성된 터틀넥스웨터를 마네킹에게 입힐 때는 알 수 없는 흥분으로 여자의 손끝이 떨렸었다. 그런 몸으로 태어나지 못한 게 안타까웠던 적은 있었지만 마흔이 다 되도록 여자는 옷에 대한 욕심을 부려본 적은 없었다. 올이 굵은 실로 두툼한 풀오버나 망토를 떠서 걸친 게 전부였지만 마네킹을 쳐다볼 때마다 여자의 눈은 아득해지곤 한다.뜨개질하던 손놀림이 자기도 모르게 느려진 여자는 가게 앞을 지나가다 되돌아와 선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뜨개 모자를 푹 뒤집어쓴 턱이 뾰족하고 깡마른 여자의 얼굴이 낯익은 듯하다. 젊은 여자는 마네킹이 걸친 터틀넥스웨터를 쳐다보고 있다. 옷이 마음에 들면 들어와 가격을 물어보는 이도 있지만 대개는 눈독만 들이다 그냥 가기 십상이다. 한낮의 짧은 햇살을 받고 선 여자의 얼굴이 희다 못해 푸르게 보인다. 여기저기에 걸어놓은 자잘한 뜨개 소품에서 피어나는 미세한 보풀 같은 먼지가 가게 안을 파고든 햇살에 실려 마네킹의 어깨위에 내려앉는다. 문밖의 젊은 여자는 한참만에야 문을 열고 들어선다.가게 안으로 들어선 젊은 여자가 마네킹이 걸치고 있는 터틀넥스웨터를 가리키며 가격을 묻자 백양클리닝과 철물점이 더 호기심을 보인다."정해진 가격은 없어요. 사신다면 실값하고 수공비 조금 더 얹어 받는 건데…."여자는 천천히 뜨개바늘을 놀리며 손님을 쳐다본다."그러니까 얼마냐고 묻잖아."철물점이 말끝을 흐리는 여자에게 다그치듯 묻는다."칠만 원은 받아야 해요.""그것 받아서 되겠어. 내 숄만 해도 실값이 그만큼은 들어가는데."여자의 말에 백양클리닝이 손님 눈치를 보며 입바른 소리로 거든다. 손님은 옷이 마음에 드는지 마네킹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다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이며 가게 문을 열고 나간다. 손님이 그냥 나가버리자 철물점과 백양클리닝이 더 실망하는 눈치다. 꼭 팔아야겠다고 뜬 것도 아니어서 임자가 있다면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고 마냥 마네킹이 걸치고 있어도 상관없는 일이다. 벌써 점심 차릴 때가 되었다며 철물점이 뜨개질거리를 챙겨 일어나자 백양클리닝도 싱겁게 따라 일어선다. 동네 여자들이 몰리는 날은 하루 종일 들락거리는 사람들로 뜨개방이 북적이고 오늘처럼 한가한 날은 철물점이나 백양클리닝도 심심한 풍경에 마음을 못 붙이고 일찍 자리를 떠버리기도 한다. 짤랑거리는 풍경소리가 어지럽게 흩어지고 나자 써늘한 한기와 함께 여자의 가슴에서 썰물이라도 빠져나간 듯 쓸쓸함이 묻어난다. 하긴 백양클리닝이나 철물점 여자가 아니라면 늦은 오후가 될 때까지 손님 하나 들지 않는 날도 있다. 여자는 언제나 혼자 있는 일에 익숙하다. 뜨개실을 사면 뜨개질을 가르쳐준다는 쪽지를 문 앞에 붙여 놓았지만 진득하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 뜨개질을 배우는 사람도 거의 없는 편이다. 겨울 한철을 보고 하는 장사지만 갈수록 손뜨개 수요는 줄어들고 있다. 가게 목이 나빠서만은 아니라는 걸 여자도 알고 있다. 여름에는 유리장식장 속의 묵은 뜨개실들을 한쪽으로 치우고 헤어핀이나 액세서리 같은 걸 들여놓아볼 생각이지만 뜨개방을 걷을 생각은 없다.여자는 짜고 있던 조끼를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가 부엌문 옆에 세워진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고 전기밥솥에서 밥을 푼다. 입 안이 껄끄럽다. 아침부터 커피 외에는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다. 식욕이 동하지 않는데도 여자는 개수대 위에 반찬그릇을 올려놓고 밥그릇을 한쪽 손에 든 채 마른 밥을 한 술씩 떠 넣는다. 혼자 먹는 밥만큼 서러운 건 없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은연사 대웅전에 모셔놓은 어머니의 기일이 내일이다. 세상없어도 여자는 그 날 하루만은 문을 닫아걸고 이른 아침 집을 나선다. 두어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도심 속의 절간이지만 여자는 거기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다. 김치 조각 몇 개로 마른 밥 반 공기를 겨우 비운 여자는 설거지거리를 개수통에 몰아넣고 하수저장고 곁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여자는 조금씩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때로 유일한 위안이 된다. 하수저장고 위로 난 철제 계단을 딛는 발자국 소리가 공명통처럼 여자의 머리 위에서 텅텅 울린다. 발자국 소리에 여자는 몸을 더욱 쪼그리고 앉는다. 손님인가? 먼 곳에서 알음알음으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은 거개가 여자들이다. 뒤로 돌아앉은 천왕사의 출입문을 찾지 못해 뜨개방에 들어와 천왕사가 어디냐고 묻는 여자들도 간혹 있다. 담뱃불을 끈 여자는 세면실 바닥의 수챗구멍 근처에서 오줌을 눈다. 날이 추워진 뒤로는 바깥에 딸린 화장실은 대변을 보는 일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도 기온이 더 떨어져 화장실 수도꼭지가 얼어붙으면 물을 퍼 날라야 할 형편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여자는 한 번도 바깥엘 나가보지 않았다.가게로 나온 여자는 둥굴레 티백을 머그컵에 담아 온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는다. 컵 7부까지 물이 차자 물이 쫄쫄거린다. 정기적으로 물이 오는 날은 내일인데, 하루 상간으로 물이 떨어진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일은 가게문을 닫아야 한다. 여자는 뜨개질거리를 끌어당기며 시계를 쳐다본다. 서너 시간 후면 조끼는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뜨거운 둥굴레차 한 모금을 머금자 생수남자의 몸에서 나던 은근하게 무른 짚 냄새가 나는 듯하다. 겨울이 닥쳐왔는데도 남자의 옷차림은 허술했다. 여름내 반소매 티셔츠에 주머니가 주렁주렁한 망사조끼를 걸치고 다니던 것을 벗고 팔목이 긴 셔츠 위에 아쿠아유통 마크가 새겨진 푸른색 작업복을 걸치긴 했지만 홑겹의 작업복은 소매 깃이 날깃날깃했다. 때로 빈 물통을 들고 나간 남자가 문밖에 세워둔 트럭에 휙 올라타 시동을 걸 때는 여자의 몸도 딸려 갈 듯 떨렸다. 트럭의 조수석에 앉아 하루 종일 남자를 따라다니며 사람 사는 세상의 복잡한 길들을 달려보고 싶었다. 매일 배달을 다녀요? 예. 거래처가 많아요. 수금은 잘 되나요? 아니요. 그것 때문에 사장님한테 자주 꾸중 들어요. 여기처럼 또박또박 주는 데가 많지 않아요. 남자는 여자의 오죽잖은 궁금증에도 친절하게 대답했다. 우린 먹어봤자 겨우 얼마밖에 안 되는데…. 여자가 미안한 듯 웃었다. 아, 아닙니다. 끊지만 말고 계속 먹어주세요. 제법 길게 대화를 나눌 때 그는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면서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졌다. 그러다 문을 열고 나갈 때면 문밖에서 자신감이 실린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남자의 목소리가 풍경소리보다 긴 여운을 남기며 되살아난다. 그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다는 주제넘은 생각은 여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지만 남자의 조끼 단이 한 올 한 올 더해질 때면 여자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어릴 때는 어머니가 늘 뜨개옷을 해서 입혔다. 거친 나일론사로 뜬 노란색의 단추 달린 스웨터는 소매 깃에 누런 콧물이 묻어 빤질빤질했다. 스웨터의 팔목이 짧아지자 어머니는 실을 풀어 조끼를 짜 주었다. 바느질하는 어머니 옆에서 여자도 뜨개질을 했다. 어머니가 쓰던 대바늘로 보풀이 피거나 자투리로 남은 실을 가지고 머리띠나 짧은 목도리 따위를 떴다. 코를 빠뜨려 전전긍긍하고 있으면 곁눈질로 건너다보던 어머니가 잃어버린 코를 찾아 주었다. 우리 딸 뜨개질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 바느질로 먹고 살 팔잔가? 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여자는 제 손으로 조끼를 짜 입었다. 가사시간에 뜨개질 실기가 들어 있을 때면 생전 여자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던 친구들이 몰려들어 수업 시간에 한 것을 묻곤 했다. 겨우 메리야스뜨기나 고무뜨기로 목도리를 뜰 수준밖에 안 되는 아이들은 선생이 내는 실기 숙제를 여자에게 부탁해오기도 했다. 여자는 친구들이 부탁을 해오면 거절할 줄 몰랐다. 생전 남에게 부탁 같은 걸 받아본 적이 없는 여자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해줄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꼭 실기 점수를 만점 맞아야 1등을 놓치지 않는다고 부탁한 친구의 장갑 한 켤레를 밤새 뜨기도 했다. 여자는 마법에 걸린 엘리자를 생각했다. 밤마다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 쐐기풀을 뜯어 백조가 되어버린 열한 명의 오빠를 위해 옷을 짜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화형장으로 끌려가는 그 순간까지 입을 꾹 다문 채 손가락이 찢어지고 피가 맺히도록 쐐기 옷을 짜야 했던 공주처럼 여자는 재게 뜨개바늘을 놀렸다. 여자는 차라리 자신이 사악한 마녀의 주문에 걸린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무심한 여자의 손놀림이 기계적으로 빨라진다. 손님이 들어와 가게 안을 둘러보거나 실을 고를 때도 여자는 뜨개바늘을 놓지 않는다. 손님이 수십 가지나 되는 실들을 뒤적거리며 색을 정하지 못해 망설이고 있을 때 여자는 조바심이 난다. 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보고 카탈로그를 펼쳐주거나 쌓인 실들 사이에서 색을 찾지 못할 때는 실 조각을 달아 스카치테이프로 색상을 분류해둔 견본을 내민다. 옷으로 짜였을 때와 색감의 차이는 의외로 다를 수 있다는 걸 여자는 강조한다. 조끼를 짠다며 오십 그램씩 여섯 뭉치가 들어 있는 1파운드짜리 감색 세트를 골라간 손님은 아마 뜨다가 다시 찾아올 것이다. 성인용 조끼 한 벌을 짜는 데는 그보다 두어 뭉치의 실이 더 들어간다. 떠보고 실이 모자라면 다시 오겠다고 손님은 고집스레 말했다. 실은 같은 색상이라도 삶는 염색 솥이 다르면 미미하지만 이색(異色)이 나온다. 여자는 뜨개질거리가 정해지면 아예 실을 모개로 구입하라고 충고한다. 같은 번호의 색상을 구할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손님이 두엇 다녀가고 나자 문밖 풍경이 흐릿해지며 가게 안의 불빛이 도드라진다. 철물점과 백양클리닝은 오늘 다시 안 올 모양이다. 다 뜬 앞판을 뒤판과 돗바늘로 잇고 목둘레와 진동둘레를 마감한다. 여자는 완성된 조끼를 바닥에 펼쳐놓고 흡족한 듯 바라본다. 작업복 잠바 속에 받쳐 입으면 톡톡한 것이 보온성이 뛰어날 것이다. 여자는 온수기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보며 전화번호를 누른다. 물이 떨어졌어요. 오늘 올 수 있죠? 별다른 말이 아닌데도 머릿속에 떠도는 그 말을 생각하자 가슴이 울렁거린다. 신호가 오래 울리도록 전화는 연결되지 않는다. 무슨 일일까. 보통 두서너 번 신호음이 가면 대뜸 안녕하세요, 아쿠아 생숩니다,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여기 뜨개방인데요, 여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남자는 아, 안녕하세요, 어눌한 목소리로 이내 여자를 알아차리곤 했다. 통화 연결이 안 되니 메시지를 남기겠냐는 기계음을 듣고서야 여자는 송수화기를 내려놓는다.드문드문 오가는 사람들이 통유리 상자 안에 든 인형을 바라보듯 여자를 흘끔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이내 걸음을 빨리하며 사라진다. 어둠이 내려앉는 이 짧은 일몰의 시간에 존재감을 잃어버리면 여자는 마음이 겉돌고 몸이 떠서 아귀가 맞지 않는 문처럼 덜컥거린다. 여자는 눈을 끔뻑거리며 문 밖에 둔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다시 한 번 전화를 해볼까 망설이고 있는데 백양클리닝이 지나가며 이쪽을 유심히 쳐다본다. 롱 코트에 숄더백을 멘 차림새가 심상치 않다. 어깨 품이 조붓해 옷맵시가 나이답지 않게 예쁜 백양클리닝은 나 어때? 하는 표정으로 여자에게 손을 살짝 흔들어 보이고는 사라진다. 백양클리닝에게 남자가 있다는 은근한 소문이 진짜일까? 짐작할 수 없는 일들은 종종 이율배반적인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백양클리닝이 여자와 천왕사와의 관계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처럼.여자는 조끼를 개켜 한쪽에 밀어둔다. 손에서 뜨개바늘을 놓으면 여자는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 같다. 늘 무언가를 뜨고 있었고, 뜨는 행위를 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뜰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존재감을 주었다. 더구나 이 조끼를 잡은 순간부터 여자는 몇 배의 존재감으로 차오르는 충만감을 맛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듯한 결락감이 몰려온다. 망연해 있던 여자는 출입문에 달아놓은 풍경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낮에 터틀넥스웨터의 값을 물어보고 간 젊은 여자다. 손님은 주저 없이 마네킹이 걸치고 있는 스웨터를 가리키며 입어 봐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여자가 건네준 스웨터를 들고 손님은 전신 거울 뒤의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마네킹의 사이즈와 거의 흡사한 손님의 몸에 옷은 맞춘 듯이 품이 알맞다. 팔등신의 곧고 긴 몸매, 더군다나 두 번 접힌 목 부분이 손님의 군살 하나 없는 긴 목 아래로 차분히 퍼지며 터틀넥스웨터의 포인트가 제대로 살아난다. 손님이 옷값을 계산하고 나간 뒤 여자는 알몸으로 서 있는 마네킹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놓는다. 자신의 몸이 벌거벗고 있는 마네킹마냥 춥고 아리다. 그리 넓지 않은 가게 안이 텅 빈 듯 허전하다. 여자는 하수저장고가 있는 세면실로 들어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담뱃불을 붙인다. 오전에 한 차례 물을 뺀 하수저장고는 검게 팬 구덩이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물이 찬다면 여자의 몸을 삼키고도 남을 깊이다. 여자는 담뱃불을 끄며 부르르 진저리를 치듯 몸을 떤다.가게로 나오자 주인 남자가 스웨터의 양쪽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어정쩡하게 서 있다. 좁은 가게 안을 훑어보던 남자의 눈은 열없이 비어 있는 여자의 눈을 스치듯 훑는다. 간혹 가위눌리는 꿈을 꿀 때처럼 여자의 몸이 오그라든다. 누군가 부엌 쪽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여자의 머리맡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다. 깨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자는 점점 더 깊이 꿈의 타래 속으로 말려든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는다. 어느새 쪼여들었던 여자의 샅이 터진 토마토처럼 벌어지고 불거진 혹이 곧은 뼈로 펴져 바닥에 납작하게 눌린다. 자신을 내리누르는 완력이 주인남자인가 싶어 베일을 벗길라치면 이내 생수남자의 실루엣과 뒤섞여 헝클어진 실꾸리로 변한다. 꿈은 번번이 캄캄한 하수저장고의 검은 물처럼 차올랐다가 깨고 나면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말짱하게 비어버린다. 스웨터 하나 도톰하니 짤 수 있나? 경망스러운 어린애 같던 주인남자의 목소리는 더없이 평범한 중년남자의 점잖은 목소리로 돌아와 있다. 이젠 스웨터를 벗고는 못 살겠네. 주인남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양쪽 주머니가 축 늘어진 주인남자의 회색 스웨터는 벌써 몇 해나 입은 것처럼 후줄근해 보인다. 여자가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벨 소리에 주인남자의 눈이 여자의 도드라진 이마에 붙박인다. 그는 마치 눈으로 소리를 듣고 있는 귀머거리 같은 표정이다. 여자는 천천히 수화기를 든다. 안녕하세요, 전화번호가 들어와 있어서 전화 드렸는데요. 잘못한 것이 있는 아이처럼 생수남자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없다. 물이 떨어져서요. 생수남자는 여자의 목소리를 알아채지 못한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생수 배달을 그만뒀습니다. 여자는 뜨개방인데요, 라는 말을 목젖까지 밀어 올렸다가 삼킨다. 대리점 전화번호를 가르쳐 드릴까요? 더듬거리는 생수남자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여자가 전화를 끊고 났을 때 주인남자는 가고 없다. 풍경이 흔들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귀가 먹었던가. 유리문에 검은 콜타르가 엉긴 듯 밖은 농밀하게 들이찬 어둠뿐이다. 여자는 뜨개실을 고르고 뜨개바늘을 고른다. 5㎜짜리 바늘을 집었다가 다시 4㎜짜리 바늘을 집어 든다. 시작코를 거는데 머릿속이 멍해진다. 머릿속에 밑그림이 없는 뜨개질은 매듭이 없는 바느질과 같다. 하다못해 목도리조차도 첫코를 거는 그 순간부터 마음이 정해져야만 진행이 가능하다. 주인남자의 게이지를 가늠하며 코를 잡아가다가 알몸으로 구석에 서 있는 마네킹을 쳐다본다. 손님이 한둘 더 들기도 할 시간인데 출입문에 달린 풍경은 얌전하다. 여자는 코를 잡던 실을 풀어버리고 마네킹의 사이즈를 가늠하며 다시 첫코를 건다. 잡아가던 코의 수를 놓쳐 고개를 들자 몸을 말듯 웅크리고 앉아 있는 꼽추여자의 모습이 가게 유리문에 오롯이 도드라진다. 그 모습에 여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2008-01-01 경인일보

시 심사평 / 김정환·도종환

시를 쓰는 우리도 늘 경계에 서 있다.그 경계에 서서 "하루 종일 위태롭게 뒤뚱거리며" 산다. 연못가에서 소금쟁이를 바라보다가 시의 화자가 느꼈던 그 경계의 아슬함과 위태로움은 시에도, 시를 쓰는 삶에도 역시 매일 찾아온다. "잠영도 승천도 하지 못한 채" 우리는 가라앉을 수도 날아오를 수도 없는 진퇴유곡의 경계에 갇혀 살아야 한다.그러나 그 고해(苦海)를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응시하면서 건너가는 일, 그게 우리의 선택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소금쟁이를 맛보다'는 밀도 높게 형상화 하고 있다. 미세한 현상을 놓치지 않는 감각적인 눈이 있고 그것을 깊이 있는 삶의 철학으로 끌고 갈 줄 아는 힘이 있다. 시적 긴장이 살아 있고 시의 내면이 꽉 차 있다. 심사위원들이 당선작으로 합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울러 언어에 의존하고 싶은 유혹에 끌려가기보다는 '호랑이가 없다'와 같은 시에서처럼 삶에서 우러난 시가 좋은 시라는 믿음을 견지하면 좋겠다.'바닷가에 서서','곰국'과 같은 시들도 충분히 당선작이 될 만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야영'도 삶과 언어가 육화되어 있는 탄탄한 작품이었다. 다만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이 이런 작품과 같은 완성도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포클레인','바다는','종착역에 대한 세 개의 레토릭'등도 모두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이번에 선정되지 않은 것이 더 좋은 시를 쓰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2007-01-01 경인일보

시 당선자 / 한창석

어떤 음성도 수신되지 않는 묵음과 잡음뿐인 라디오를 붙잡고 상심해도 그는 당신의 때가 이르기 전에는 응답하시지 않는다. 내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고 맘을 놓아야 당신의 꿈을 나를 도구삼아 이루심을 믿는다. 하나님이 열어 주시지 않으면 호리병에 다시 나를 가두고 네 번째 천년을 기다리려고 했다. 가나안에 다다를 수만 있다면 광야의 시간은 셈하지 않겠다고 기도했다. 그 때 당선 소식을 들었다. 필마단기로 시와 씨름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눈이 젖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 그 분들이 당신의 살을 남김없이 발라내어 나를 먹이신 것을 잘 안다. 당연한 일인 양 받아먹어 온 부끄러움에 목이 메인다. 송하춘 선생님! 내게는 너무도 푸르고 넓은 바다인 그 분의 품에서 나는 영혼의 뼈마디까지 틀어 퍼덕이고 싶었다. 나의 헤엄으로 선생님께 작은 미소라도 드릴 수 있기를 바란 것은 이미 너무 오래된 소원이었다. 정진규 선생님, 최동호 선생님과 김인환 선생님, 이남호 선생님께서도 나의 서툰 헤엄을 지켜보아 주실 것이다. 떠나온 모천의 이상우 선생님, 박범신 선생님, 김석환 선생님, 이재명 선생님, 고운기 선생님을 뵙고 떠나온 나날들만큼 이마를 땅에 대고 아가미를 벌름거려야 할 일이다. 연두부 같은 오빠를 응원해준 동생 정화와 승덕이에게도 언제나 고맙다. 깜깜한 지난 외로움이 달콤했다고 위증하지만 사실 무수한 멀미들은 맵고 썼다. 고비마다 산호섬이 되어 준 소중한 동무들, 대학원 식구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옹알이에 귀 기울여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시시한 시, 시들시들한 시, 급기야 허연 배를 위로하고 떠오르는 시체가 되지 않고 늘 등 푸른 시를 쓰겠다고, 아니 등 푸른 삶을 살겠다고 약속드린다. 끝으로, 귀한 지면을 통해 시인의 삶을 다짐하게 해 주신 경인일보사에 감사드린다. 약력1975년 서울생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고려대학교 국문과 박사 수료

2007-01-01 경인일보

단편소설 심사평 / 백시종·이순원

소설은 글쓴이의 특별한 체험을 오직 사실에 바탕으로 하여 적어나가는 수기와도 다르고, 또 허구에만 지나치게 의존하여 현실적 설득력을 잃어서도 안된다. 허구적 바탕 위에 현실적이고도 보편적인 설득력을 얻을 때 감동과 울림이 있다.'안개별'(홍신영)은 우리가 살아가는 한 시대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그러나 선배와 이모부의 죽음이 한 실에 꿰어지지 않고 작품 안에서 서로 따로 노는 느낌이다.'그 화려하고 참혹한 빛'(허윤실)은 우선 안정된 문장이 눈길을 끈다. 여자는 소아암으로 아이를 잃고, 어린 시절 언니에 대해 가졌던 살의를 떠올린다. 아무리 인과응보적 심정이라 하더라도 삽화도 억지스럽고 연결 자체도 억지스럽다.'옥상'(김태우)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의 입장에서 자살의 유혹과 심리를 그리고 있다. 작품 끝까지 긴장감이 배어난다. 그러나 최근 소설 소재로 너무 익숙하고, 부분부분의 상황 또한 과장되어 있어 제외시켰다.그렇게 보자면 당선작으로 뽑은 '곡비'(조여일) 역시 흠이 없는 게 아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남의 죽음에 가서 곡을 해주던 '곡비'였다는 설정부터가 현재 우리 삶의 시간으로 볼 때 다소 억지스럽다. 그럼에도 문장과 완성도에서 가장 앞서고, 죽음을 통한 한과의 화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무리없이 그려낸 이 작가의 역량을 더 크게 보기로 했다. 부디 정진바란다.

2007-01-01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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