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자 / 조여일

배꽃 같은 내 어머니는 꼽추 춤을 잘 췄다. 속치마 위에 저고리만 입고 그 속에 베개나 옷가지를 넣어 곱사등이가 되었다.사람들은 어머니를 보며 배꼽 빠지게 웃었지만 어린 나는 그런 어머니가 밉고 싫었다.어머니를 미워했던 마음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슴에 똬리처럼 틀고 앉아 있는 어머니를 한 올 한 올 풀어내고 싶다. 이제 희수를 바라보는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제 출발해도 된다는 인정을 받은 거라 생각하고 좋은 작품을 쓰기위해 노력하겠다.삶의 기울기를 문학에 두게 한 채길순 교수님과 문예창작과 교수님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드리고 힘들 때 버팀목이 되어 준 남편과 딸, 문우들, 글쓰기의 영감을 준 그분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바다가 보고 싶다.동해였다. 해안선을 따라 달렸다. 쪽을 삼킨 바다는 날 희롱했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숨이 차 한 박자 쉬고 내게 오려는 듯. 바다와 나는 밀고 당기면서 신경전을 벌였다. 신경전을 벌이는 순간순간이 내게는 시작이고 끝이었다. 나는 바다가 아예 멀어질까봐 조바심을 냈다.바다가 보고 싶다.내가 불리하더라도 해안선을 따라 나는 바다와 질펀하게 신경전을 벌이고 싶다.약력1965년 충남 천안 입장 출생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07-01-01 경인일보

[단편소설 당선작] 곡비(哭婢) - 조여일

엄니는 등에 울음통을 짊어졌다. 보리쌀 한 되에 울고 동전 몇 닢에도 울었다. 엄니가 우는 날은 배가 불렀다. 그래도 나는 '저 놈의 울음 통!' 하면서 잠든 엄니의 등을 발로 차고 도망갔다. 외할머니가 감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아버지가 술에 취해 물에 빠져 죽었다. 엄니는 울지 않았다. 사람들은 엄니를 독한 꼽추라고 했다. 아침부터 비는 간간이 흩뿌린다. 일기예보에는 없던 비다. 묵은 솜 같은 구름은 서로 엉겨있다. 마음이 편편찮다. 일을 끝내놓고 왔더라면 이렇듯 불편하지는 않을 터다. 그가 백중굿에 쓸 깃발을 만들고 그 뜻을 알리는 문구를 먹물로 쓰라고 했다. 그러나 흰색 천으로 깃발만 간신히 만들고 문구는 넣지 못했다. 굿판의 의도를 한 눈에 알 수 있게 쓰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틀을 신중하게 생각했지만 마땅한 문구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흰색 무명천을 길게 마름하고 시침질해서 대나무에 달아놓기만 했다.자동차 바퀴가 미끄러질 것만 같아 두 손으로 운전대를 꽉 잡는다. 어깨가 뻐근하고 눈도 아프다. 등을 움죽거려 허리를 곧추세운다.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위해 속도를 늦춘다. 철책선 너머에 깎아지른 산을 덧씌운 그물망이 보인다. 그물망 밑으로 불규칙한 바위와 간신히 살아남은 것 같은 풀과 아주 작은 묘목들이 눈에 띈다. 장애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한 묘목은 선이 가늘고 볼품없이 휘었다."늦어도 모레 아침까진 와야 한다."어제 아침, 스님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의 넋을 보듬어 줘야 되지 않겠냐는 말씀을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착잡했다. 생전의 어머니에게 살가운 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애틋하게 그립지도 않았다. 이제 와서 스님의 뜻에 따라 어머니 넋을 보듬기엔 서먹하고 낯 뜨거운 일이다. 그러나 스님 말씀을 나몰라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불가의 음력 7월 15일은 우란분절이라 하여 1년 중 가장 좋은 날이다. 지옥문이 열리는 날이라 조상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원하고 영가(靈駕)를 천도한다. 이 날은 스님들의 하안거가 끝나는 날이고 백중일이기도 하다.스님은 백중날 지옥의 문이 열리매 내 정성이 그 곳에 닿아 어머니 넋을 보듬어 천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어머니에 대한 그런 정성이 내게 있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고인이 됐지만 이쯤에서 낙타처럼 짐 진 어머니의 실체에 대한 혐오와 어머니의 존재를 강하게 부정했던 어린 날의 면구스러움을 사죄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스님은 어머니의 영가에게 입힐 한지로 된 해탈복과 이승과 저승 간의 고해 바다를 건널 때 타고 갈 배를 내가 만들길 바랐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천도 제를 지낼 수 없다고 하자 스님은 그것만 만들어 놓으면 백중날 제를 지내고 영가를 태워서 천도하는 일은 당신이 알아서 하겠노라며 완고한 자세를 보였다. 1㎞전방에 휴게소가 있다.그림자처럼 키가 훌쩍한 그는 겨드랑이가 보이도록 왼팔을 크게 벌려 장구의 궁편을 채로 벌처럼 톡 쏠 때 학 같았다. 그러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분무기로 뿌려 놓은 것처럼 안개 같은 푸른 땀이 이마를 덮곤 했다. 대가 없는 강습을 열정적으로 하는 그가 참 신기했다. 풍물패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직업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풍물은 그저 일상생활의 피로나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강습을 하는 건 그의 직업이 쇠잡이인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풍물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처럼 하고자 하는 일에 미쳐야 산다면 나는 설 미쳤다.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모든 것이 무모하게만 생각됐을 그 때, 구청 담벼락에 붙어 있는 풍물 굿의 포스터를 보았다. 상쇠가 채상을 돌리면서 꽹과리를 치는 아주 역동적인 모습이었다. '백중굿'이라고 인쇄된 포스터를 그 자리에 붙박고 한참 쳐다보았다. 그가 속해있는 풍물패와 그의 이름이 선명히 박혀 있었다. 그가 머리에 쓰고 있는 채상과 이름 끝 자를 번갈아 보면서 어쩌면 그는 풍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끝 자가 빙빙 돌고 있는 채상과 모양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깃털로 장식된 채상의 부들은 움직임으로 제 모습을 표현하는 것처럼 그의 이름 끝 자도 출렁이며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그는 움직임으로 자신의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이름과 채상의 묘한 조화! 그는 한번이라도 그런 생각을 해 봤을까.며칠 후 나는 그가 있는 풍물패 '공간'으로 갔다. 반 지하의 계단 밑에서 잠시 망설이다 가슴을 내밀어 숨을 쉬고 두어 번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확실치 않은 남자의 저음을 듣곤 조심스레 문을 당겼는데 삐드득하는 예상치 못한 소리에 얼마나 놀랐던지. 포스터의 역동적인 모습과는 달리 실제의 그는 고요하고 정제된 느낌이었다. 그게 벌써 일 년 전 일이다.흩뿌리던 빗줄기가 어느새 굵다. 앞 차와의 간격이 좁혀진다. 부분적인 정체 구간이다. 차창이 뿌옇게 흐려온다. 티슈로 닦아내도 그때 뿐, 다시 시야를 방해한다. 차창을 조금 연다. 비스듬히 내리는 비가 잘게 튀어 얼굴을 적신다. 간헐적으로 움직이는 윈도 와이퍼 사이로 앞차가 보인다. 뒷좌석 등받이 위쪽에 장식용 강아지 한 쌍이 놓여있다. 점박이다. 강아지의 목은 쉼 없이 달랑거린다. 상체를 앞으로 당겨 강아지를 맥없이 바라본다.어머니의 키는 내 가슴께 닿았다. 갓 돌이 지난 어머니를 여덟 살 난 외삼촌이 등에 업고 감나무를 올라가는데 느슨해진 포대기 밑으로 어머니가 쑥 빠졌다. 떨어지면서 다친 허리가 그대로 굳어 곱사등이가 되었다. 하체에 비해 넓은 어깨는 근육이 잘 늘어나지 않아서 목을 움직일 때마다 따라 움직였다. 그래서 옆이나 뒤를 흘기듯 보았다."북이 '궁'을 잡아먹기 때문에 '따'가 중요한 거야."열채를 잡은 내 오른손에 자꾸만 힘이 들어가자 그는 힘을 빼라며 소리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손과 손목과 팔과 그리고 어깨에 힘을 빼고 쳐야만 옳게 소리가 나온다고, 그러려면 많은 연습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며 입귀에 버캐가 끼도록 설명할 때 그의 눈은 반짝 빛이 나면서 물이 차오른 미루나무 같았다. 그가 내는 예리하고 선명한 소리들은 30평 쯤 되는 지하공간을 에워 싼 올록볼록한 흡음재에 부딪혀 사방을 맴돌다 천장과 벽에 찰싹 달라붙었다. 하다못해 채상이나 고깔에도 그 소리는 배었다. 이중으로 되어 있는 '공간'의 문을 열면 언제나 그를 닮은 소리들이 나를 통과하곤 했다.어머니는 종종 나를 스님이 계신 절로 보냈다. 절 아래는 동네가 여럿 있었고 생명이 태어나기도 했지만 죽기도 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죽음을 품었으리라. 초상은 봄철에 많이 났다. 겨우내 혼신을 소진하고 명줄을 놓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스님께 보냈는데 어머니가 내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까닭임을 어림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동네 어귀를 벗어나면 큰 둑이 있었다. 둑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모두 논이었고 반대쪽은 가뭄을 대비해 물을 가둬놓은 저수지였다. 아이들은 둑 위에서 놀다 지치면 어른들 몰래 저수지에서 멱을 감았고 간혹 물에 빠져 죽었다. 꼭 사람이 죽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어른들은 지박령 때문이라고 했다. 죽은 영혼이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가 아이들을 꼬여 데려가는 거라고. 아버지도 그랬을까?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읜 내게 스님은 아버지였다. 어머니에 대한 불평과 악담을 어린 입술로 오물거릴라 치면 스님은 내 손목을 잡고 극락보전 뒤쪽으로 가곤했다. 그 곳엔 점재된 수많은 동백나무가 완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동백은 산골의 봄추위에도 붉은 꽃을 피웠는데 마치 앙살궂은 나를 꾸짖는 것만 같았다. 산길을 따라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빽빽한 나무숲이 있었다. 그 앞에 나를 세우고 검지로 나무들 틈에 위태롭게 서 있는 비쩍 마른 소나무를 가리켰다. 소나무의 허리는 다른 나무에 비해 턱없이 짧고 비틀렸다."얘야, 환경이 같다고 해서 나무가 똑같이 자랄 수는 없단다. 저 나무도 땅에 뿌리를 내렸을 때는 다른 나무들과 같았단다. 그러나 웃자란 가지에 가려 바람도 덜 맞고 하늘도 제대로 볼 수가 없어 저렇게 된 거란다. 저게 제 탓이겠느냐. 저 나무를 불쌍히 생각해야 한다."스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소나무를 보는 스님의 축축한 눈빛에서 어머니를 가엾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어린 마음에도 느꼈을 뿐. 그러나 스님의 말씀이나 어머니의 처지를 이해하기엔 내 나이가 턱 없이 부족했다. 그저 웃자란 나무들처럼 빨리 커서 지긋지긋한 동네를 벗어나길 간절히 바랐을 뿐이다.국도로 접어든다. 비는 질기게 내린다. 자동차가 갑자기 절룩이며 흙물이 튄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놀란다. 도로가 패어 물이 고여 있었던 모양이다. 빗속의 이정표를 본다. 13이란 숫자가 보인다. 그만 자동차를 시내로 돌린다. 꼬박 여섯 시간을 운전한 탓에 몹시 피곤하다. 지금 스님께 간들 어머니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만 들을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어머니 얘기는 피하고 싶다. 모텔을 찾았으나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30여분을 돌았을까. 다시 제 자리다. 시내가 협소하고 신축한 건물보다는 오래된 건물이 많고 허름하다. 찬찬히 다시 둘러본다. 간신히 하루 여숙 할 곳을 찾는다. 보초병처럼 길게 서 있는 간판의 낡은 빛이 비에 푹 젖은 지푸라기처럼 힘이 없다. 차를 주차 시키고 가방을 챙긴다. 비가 정수리로 떨어진다. 손바닥으로 정수리를 가리며 여관 추녀 밑을 큰 걸음으로 간다. 까맣게 코팅된 여관 유리문에 빨간색으로 오려붙인 장수장, 공기가 들어갔는지 ㅇ자가 조금 떠 있다. 출입문을 열자 사각의 작은 창이 열린다. 주인여자의 얼굴이 창에 꽉 찬다. 영정사진 같다. 방을 하나 달라는 말에 여자는 굼뜨게 일어나 문을 열고 나온다.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여자가 앞장선다. 자연스레 여자의 뒤통수에 눈이 간다. 파마를 한 머리카락은 심하게 눌려있다. 가을철에 배추를 따내고 남은 밑동 같다. 108호 앞에 여자는 멈춘다. 열쇠를 내게 건네주고 휭 하니 가버린다. 그런대로 방은 깨끗하다. 너 댓 평 되는 방에 낡은 가구와 TV가 놓여있다. 가방을 문갑 위에 올려놓고 커튼의 귀퉁이를 들어 밖을 내다 볼 때 여자가 다시 온다. 일회용 칫솔과 수건, 생수가 든 작은 페트병을 놓고 간다."올라가는 건 떨어지기 위해서야."두 달 넘게 오금질을 해도 나아지는 기미가 없자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잡아 줄 테니 해봐."헤실바실하다가 나는 못 이기는 척 일어섰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상체에 힘을 빼야 해. 내 상체를 봐."그의 상체는 해파리 같았다. 하체만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선반은 오금질이 기본이라고 그가 말했다. 오금질을 잘 해야만 가락이 제대로 나온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가락의 배가 달라져서 장구가락이 제 각각이라고.투욱 투욱 투욱.무릎을 조금 굽히고 왼발과 오른발의 뒤꿈치를 번갈아 들어 올렸다 떨어뜨렸다. 발이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몸은 위로 올라갔다가 떨어졌다."호흡으로 원을 만들어야 해, 결국은 모든 게 호흡이야."오금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저리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의 태도가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었다."올라가는 건 떨어지기 위해서라고 했지? 잘 떨어지기 위해선 올라가서 참았다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거야."투욱 투욱 투욱.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의 하얀색 면 티셔츠도 내 겨자 색 스웨터도 땀에 범벅이 됐다. 사람들이 들어와서 손을 잡고 있는 우리를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꾸만 그의 손을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내 손을 채듯 흔들었다. "힘을 빼라니까!"그의 설명대로 나는 발꿈치를 들어서 참아 본다고 한껏 참았다가 떨어졌지만 어찌된 일인지 잘 안됐다."끈기 있게 오랜 시간을 두고 연습해야 해. 풍물은 시간이 켜켜로 쌓여야 되는 거야. 그게 공력이거든."땀에 전 내가 안 돼 보였는지 노력만 한다면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며 그는 하얗게 웃었고 내 가슴은 텅 빈 것 같았다.가슴팍에 항상 고여 있어 퍼 올리기만 했던 감성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신념조차 흔들리는 나는 정말이지 그에게 묻고 싶었다. 정말로 참았다 떨어지면 잘 떨어질 수 있는 거냐고. 정말로 올라가는 건 떨어지기 위해서냐고.딱 한번 어머니가 우는 걸 봤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후 큰 부잣집 최 씨 할머니가 죽었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땐 어머니는 집에 없었고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허기진 나는 무작정 그 집으로 갔다. 대문이 활짝 열린 집안은 불을 밝혀 훤했다. 너른 앞마당엔 멍석위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거나 소반을 든 여자들이 음식상 사이를 바쁘게 오고 갔다. 마루에는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제청 앞에 허리를 꺾고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 짧고 낮게 통곡하라! 말했고 아이고 아이고 하는 선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선소리에 이어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일제히 마른 울음을 울었다. 저고리 섶을 허리까지 내려 입은 어머니를 나는 금세 알아봤다. 어머니는 몸을 틀고 손 갈퀴로 마룻바닥을 긁어가며 울었다. 어머니의 곡소리에 상을 당한 사람들과 문상을 온 사람들은 눈물을 찔끔거렸다. 어머니를 저토록 울게 하는 건 무엇일까?등에처럼 찰싹 달라붙은 낙타 등일까. 나를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만든 것, 어머니를 지독히 미워하게 만든 저것일까. 이상하게 그 순간만은 어머니가 밉지 않고 오히려 어머니의 곡소리에 콧등이 알싸하더니 울음이 올라왔다. 영악하게도 나는 가늘게 눈을 뜨고 어룽거리는 눈물 저쪽으로 어머니를 보고 있었다. 순간, 동그랗게 몸을 말고 우는 어머니가 벌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겁에 질렸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배고픔도 잊은 채 조막손으로 부잣집 문설주를 잡고 목청껏 울었다.갈증이 난다. 여자가 두고 간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 남은 물을 키 작은 냉장고에 넣는다. 옷을 벗고 화장실 문을 연다. 바닥에 깔린 타일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고 샤워부스는 금이 갔다. 밸브를 연다. 제법 물살이 세다. 나는 오랫동안 비누질을 한다. 닫혀있던 피부가 서서히 열리는 것 같다."겐지겐 가락이 빠르게 올라가는 건 넘어가기 위해서야."백중 굿을 앞두고 달팽이처럼 돌돌 말아 진을 치는 연습을 할 때 겐지겐 가락이 늘어지자 그는 미간에 주름을 세웠다."겐지겐은 점점 빨라지면서 달아올라야 해. 그래야만 다음 가락으로 넘어 갈 수 있거든."정말 빨라지는 건 넘어가기 위해서일까? 그래서 그는 밤과 낮의 구분 없이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미친 듯 쇠를 두들기는 걸까. 그는 불안해 보였다. 무엇이 그를 그렇듯 불안하게 만든 걸까."나는 샌드위치야."연습이 끝나자 숨을 고르면서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는 그의 얼굴은 마른모래 같았다."밑에서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고 위에서는 실력이 뛰어난 선배들이 버티고 있거든."오로지 풍물이 좋아 외길을 산 선배들이 제 기술을 전수한다는 건 목숨 반쪽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반면 요즘 젊은이들은 몸이 유연해서 기술을 익히는 속도가 아주 빨라 위기감마저 든다고. 방심했다간 되레 역공을 받기 일쑤라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나이를 먹는다는 게 왜 서러운 건지 이제야 알겠어."땀이 식자 무릎을 펴고 일어서면서 갈라진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의 모습도 그의 말도 무척 쓸쓸했다. 나는 대체 무엇일까? 무엇을 쓰고자 하는 걸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돌아오는 건 허탈감 뿐, 어쩌면 나는 신기루를 쫓는 건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그 곳에 내가 원하는 무엇이 있을 것만 같았다. 대체 무엇일까.밤새 비는 그쳐있다. 버스터미널 안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빈 속을 채운다. 캔 커피를 사들고 운전석에 앉는다. 큰 길로 빠져나와 어제 봐 두었던 13번 국도를 확인한다. 이제 저 숫자를 따라가야 한다. 그 끝에 스님과 어머니가 있다.산골의 봄은 언제나 더디게 왔다. 그래서 한겨울보다 추웠다. 조금씩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고 스님은 추위나 가시거든 가라고 내 손목을 꽉 잡았다. 어머니는 나를 등지고 모로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누워 있을 것이다. 나는 스님이 손아귀의 힘을 풀 때까지 기다리다 스스로 손목을 빼고 이십 리 길을 걸어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의 맨 뒤 칸에 앉아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텅 빈 그 곳에 눈발이 사뭇 사방으로 날리고 있었다. 봄눈치곤 꽤 굵었다. 겁도 없이 무작정 집을 나올 수 있었던 용기는 어머니에 대한 미움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스무 살에 어머니를 버리듯 집을 떠나 타지로 돌았다. 그러다 무슨 마음에선지 어머니를 다시 찾게 되었다. 9년만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집에 없었다. 절로 올라갔다. 어머니가 거기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경내를 한 바퀴 휘 돌아도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고 나를 본 스님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내 어깨를 후려쳤다."어미 잡아먹은 년!"스님은 내 어깨를 몇 번 더 내리쳤다. 이상하게 아프지도 않았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독한 것!"나를 기다리다 지친 어머니는 스님이 계신 절의 공양주가 되었다. 그 곳에서 짧은 여생을 마쳤다.비포장도로다. 길이 양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오른쪽으로 길을 잡는다. 팔월의 산천은 막 잡아 올린 등 푸른 물고기처럼 싱싱하게 파닥인다. 스님이 계신 절의 윤곽이 보인다. 규모가 크지 않아 공양주를 비롯해 스님 몇 분만 수도 중이다. 지금은 하안거 기간이라 스님들이 모두 참선 수행 중일 것이다. 불안할 정도로 가슴이 뛴다. 절 입구에 자동차가 여러 대 주차되어 있다. 한쪽 공간으로 차를 세우고 일주문을 들어선다. 어머니가 세상을 뜬 후 두 번째로 들어서는 문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머니도 스님도 잊고 살고 싶었다.경내엔 관광객이 대여섯 명 정도 있을 뿐 조용하다. 극락보전으로 들어선다. 진한 향냄새와 촛불 냄새가 온 몸 가득 들어온다. 내 기억 속에 살아 있었던 건 어머니의 냄새보다 향냄새였다. 숨을 훅 들이쉬며 부처님을 우러러 합장을 하는데 갑자기 속에서 무엇인가 울컥 올라온다. 눈물이 마구 쏟아진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작적으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나는 부처님 전에 납작 엎드린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나는 몹시 놀라고 당황스럽다. 잠시 후 평상심을 찾은 나는 세월에 밀려 마모가 된 벽화를 둘러보고 극락보전을 나온다. 스님과 자주 가던 숲으로 간다.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가 들린다. 소나무를 본다. 허리 휜 소나무가 외롭고 슬퍼 보인다. 그 동안 많이 자란 것은 아니었으나 예전처럼 볼품없어 보이진 않는다. 다른 나무에 가려 바람도 빛도 제대로 받지 못한 소나무다. 나는 뱀의 등허리 같은 기둥을 어루만진다. 잎의 길이도 다른 나무에 비해 짧다. 나무틈새로 뻗은 가지 끝의 잎이 어머니의 귀밑머리처럼 퇴색되어 있다. 나는 그 잎을 조심스레 뗀다. 쉽게 떨어진다. 어머니는 긴 머리를 말아 올려 조막만한 쪽을 졌다. 조막만한 머리에 버드나무로 만든 비녀를 꽂았다. 옛날엔 죽은 여자에게 버드나무로 만든 비녀를 꽂아주었다고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어머니는 살고 싶지 않았던 걸까."왔느냐?"스님이다. 군데군데 검버섯이 핀 안면에 환한 웃음을 짓는다."암, 와야지. 그래야지."나는 스님께 합장한다. 스님을 따라 방으로 들어간다. 방안 가득 차 향이 배어 있다. 차를 준비하는 스님의 장삼자락을 보면서 문득 어머니의 흰 저고리를 생각한다. 뜨거운 찻물에 차 잎을 띄워 내 앞으로 민다. 어깨를 짓누르는 침묵이 잠시 감돈다. 찻잔의 바닥이 보이고서야 스님은 내 눈을 본다. 깊고 우묵한 눈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눈빛이다. 나는 민망해서 고개를 숙인다."사람은 본디, 목표가 없으면 삶의 의욕을 잃는 법이다. 어미는 네가 삶의 목표였다. 네가 그렇게 가버리고 눈에 띄게 말라갔다. 곱은 등이 더 곱아 보였으니까. 목표가 없어졌으니 살아갈 아무런 의미도 이유도 없었겠지. 모든 것이 부질없었을 게다. 네가 얼마만큼의 세월을 겪어내야 어미 속을 알까 모르겠다만……어미를 불쌍하게 생각해야 한다."자꾸만 울음이 올라와 나는 끝내 스님의 장삼자락에 얼굴을 묻는다. 스님은 손바닥으로 내 등을 문지른다. 온기가 가슴까지 전해진다."어미를 보듬어라. 그래야 네게 한이 없을 게다. 애써 한을 만들지 마라."어머니를 꼽추로 만든 원죄로 끝내 불가에 입적한 외삼촌을 어머니도 한을 만들지 않기 위해 보듬었을까. 평생을 어머니를 위해 부처님 전에 향을 피우고 자신의 잘못을 벌하듯 목탁을 두드린 외삼촌의 말소리가 그렁그렁하다. 한참을 울게 내버려 둔 스님은 내가 진정이 되자 먹을 갈라 이른다. 스님의 말씀에 따라 나는 무릎을 꿇고 먹을 간다. 먹을 가는 동안 마음이 평온하고 경건해진다. 스님은 영가천도에 쓰일 경문을 붓으로 한지에 쓰라 이르곤 자리를 뜬다. 붓을 잡은 손이 가늘게 떨린다. 나는 거의 하루를 준비물을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하룻밤 묵고가라는 스님의 말씀을 뒤로 하고 일주문을 나선다. 스님은 더 이상 잡지 않는다."네 어미의 영가는 백중날 내가 잘 천도할 테니 걱정 말아라. 내생에는 좋은 모습으로 태어나길 너도 빌어라. 이제 네 어미도 한을 풀 게다. 부디 몸조심 하고 어미가 그립거든 오너라."스님은 어서 가라고 손사래를 한다. 공양주가 가면서 먹으라고 은박지에 누룽지를 싸서 준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하고 차에 오른다. 산사에 저녁이내가 끼기 시작한다. 나는 굳이 뒤를 보지 않는다. 아침에 왔던 길인데 새롭다는 생각이 든다. 가속페달을 힘껏 밟으면서 깃발에 넣을 문구를 진원(眞願)이라고 생각한다.백중일은 머슴들을 위한 날이다. 모내기를 끝내고 추수를 앞둔 머슴들의 노고에 양반들이 떡과 술을 장만해서 하루 동안 가무를 즐기며 쉬게 했는데 그것이 풍속이 되었다. 백중 굿에 참여 하지 않겠다는 나를 그는 나무랐다. 하지만 절에 다녀온 후 장구를 치는 일이 시들해졌다. 그래서 구경만 하기로 했다.나는 버스를 타고 놀이마당으로 향한다. 한바탕 풍물을 치기엔 무척 더운 날씨다. 멀리 태평소 소리가 들린다. 곧 굿이 시작될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백중 굿을 보기 위해 모여 있다. 천막 안에서는 '공간'사람들이 관중들에게 대접할 떡과 막걸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들과 인사를 나눈 나는 흰옷에 검정 더그레를 덧입고 그 위에 삼색 띠를 맨 그를 본다. 악기를 메고 고깔을 쓴 사람들이 그에게 시선을 모은다.째째챙드디어 그의 쇠가 선소리를 낸다. 그의 선소리를 따라 장구와 북과 징이 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아! 태초에 누가 저 소리를 만들어 냈을까! 덤덤한 마음도 톡톡 건드려 흔들어 놓는 저 소리. 시작인가 싶으면 끝이고 끝인가 싶으면 시작인 알 수 없는 오묘한 소리에 관중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호성을 지른다. 염천의 풍물소리는 깊고 넓게 파장이 일고 산속 곳곳에 피어 있을 꽃들도 놀라서 떨어질 것만 같다.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사뿐하게 뛰면서 관중들을 희롱한다.눈을 감는다. 그의 쇠 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귀로 듣는다. 차츰 팔뚝에 소름이 돋으면서 마음이 열리고 몸이 달뜨면서 점점 신명이 난다. 그렇게 제 소리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결국 슬퍼진다. 그래서 목을 놓아 울고 싶어진다. 한바탕 울고 나면 가슴에 쌓인 모든 회한이 녹아내릴 것만 같다. 그를 본다. 관중들의 환호에 그의 얼굴도 화색이 돌면서 달아오른다. 쇠 소리가 공명을 일으키는 순간이다. 풍물은 악을 치는 사람도 악을 듣는 사람도 정화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판 굿을 끝낸 그에게 '공간'사람이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라준다. 종이컵을 들고 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온다. 머리꼭지에 수돗물을 틀어놓은 것처럼 그의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른다."풍물을 겉으로 봤을 땐 무척 쉬워 보였어. 그래서 손끝으로 살짝 건드려봤지. 그런데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도무지 알 수 없겠더군. 모래펄 같았어." 그는 손바닥으로 땀을 훑어 내린다."사람들 얼굴을 봐, 저마다 시름이 있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있을 거야. 저 사람들이 풍물소리를 들으면서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그 응어리를 풀어 낼 수 있다면 난 더 바랄 게 없어."그는 입술에 묻은 막걸리를 더그레 자락에 닦고 저만치 물러난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관중들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전에 없는 만족함과 한없는 덧없음이 또렷이 엇갈린다. 그새 어둠이 온다. 더운 날씨를 감안해서 오후 늦게 시작한 탓도 있겠지만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한 까닭이다.백중 굿의 일정도 막바지다. 백여 개의 청죽을 포개어 세운 달집을 관중들이 쓴 소원지를 끼운 새끼줄로 꽁꽁 묶어 누군가 석유를 뿌려 점화한다. 달집은 순식간에 활활 타올랐고 깃발도 흔들린다. 풍물소리는 절정으로 치닫고, 사람들은 소원지에 쓴 소원보다 더 많은 소원들을 빌 것이다.탁탁 소리를 내며 타고 남은 재가 하늘로 솟는다. 내 소원도 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갈까? 어머니가 나를 위해 벌레처럼 몸을 말고 울었다면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소설을 쓰고 싶은 걸까? 어머니, 그토록 혐오하고 존재를 부정했던 어머니인가? 내 속에 설움으로 남아 있는 어머니를 한 올 한 올 풀어내고 싶은 걸까.그의 쇠 소리가 지옥의 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째챙째챙째챙째챙나는 오줌이 마렵다. 그의 휘모리 가락만 들으면 자꾸만 오줌이 마렵다.

2007-01-01 경인일보

[시 심사평/신경림·고형렬]

 예심을 통과한 서른 명의 시를 다시 선고하여 심사한 결과 본심위원은 심은섭씨의 '해발 680m의 굴뚝새'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심은섭씨의 작품은 죽음을 안으로 조용히 끌어들이면서 서정적 상관물에 대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여 생사의 슬픔을 대칭적으로 이미지화하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까지 최종 경합한 장인수씨의 '쪽방 인현동 일 번지' 한창석씨의 '로드 킬' 김명옥씨의 '날마다 황선에 선다'도 수준작이다. 하지만 죽음을 과장되게 표현하고 상투적으로 터치함으로써 시적 진실이 훼손된 부분이 지적되었다. 문명 비판적으로 죽음을 선취하고 삶을 직시하려는 의표가 과한 나머지 시적 성취도는 오히려 떨어졌다. 우리 삶 깊숙이 스며든 죽음의 냄새도 사회적 미학적 거리를 유지할 때만이 시의 의상을 걸칠 수 있다. 당선작은 상당한 수준을 보여준 심미적 작품이다. 죽음의 종결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하고 기억하는 ‘새’와 화자의 복화술은 이 처녀시를 돋보이게 했다. 시 형상이 서정적 자아에게 바라는 요구는 불립문자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 있는 바, 생이 불가피하게 성찰해야 하는 떠도는 자의 비애를 이 시는 건드리고 있다. 특히 산 번지와 도시의 우편번호, 살아있는 자와 죽은 굴뚝새로 매개되는 서사 구조의 소통은 아름답다. 당선자는 이 작품에 구속되지 말고 더 깊은 시세계를 펼쳐 시의 자유를 누리기 바란다.

2006-01-02 경인일보

[당선소감] 시 부문-심 은 섭

 목 매 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 - 詩 종은 울지 않으면 종이다 종은 울지 않으면 종이 아니다 종은 울면 종이다 종은 울면 종이 아니다 부재중인 수신함에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전화 한 통으로 문학의 종이 되려고 한다 나에게 문학 속의 시(詩)는 목 매 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가 되었다 신춘문예 당선의 소식을 듣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고인돌처럼 오래도록 서서 침묵했다 종이 될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을 생각했다 산에 사는 산죽(山竹)이 떠올랐다 속을 더 비워야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길 거라고, 사시사철 푸름을 잃지 말자고, 작은 키라도 더 낮추자는 깨달음이 없어 한 번도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지 못해 대쪽이라고, 이것이 문학의 종이 되려는 해답의 근본이며 해답의 결과이며 해답의 이유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놓으려던 붓을 잡아야겠다 소외 받는 달동네 사람들의 반장이 되어 언어를 잃어버리고 사는 그들의 의미를 써야겠다 영육간에서 방황하는 어휘들을 불러 모으고 다듬어야겠다 지금까지 시의 의미를 부여해주신 이언빈 선생님, 시를 경작하는데 필요한 도구 사용방법을 알려주신 '시와 세계' 발행인 겸 주간이시며 대관령 시인학교를 운영하시는 송준영 선생님, 곁에서 만날 때 마다 격려해주신 김학주 시인께 이 지면을 빌려 감사 드리며 나와 시와의 싸움에서 늘 중립적 입장을 지켜오며 감나무 까치 밥처럼 외톨의 나날이었던 권기순 아내에게도 감사 드린다. 끝으로 문학의 성찬을 마련하고 초대하여 주신 경인일보와 단단하지 못한 작품에 당선이라는 영광을 안겨주신 두 분의 심사위원께 독한 다짐을 바치며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약력〉 심은섭 강릉 출생 2004년 시 전문지 월간 '심상'신인상 민족작가회의 강원도지부 회원 한국 가톨릭 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강릉시지부 감사

2006-01-02 경인일보

[당선소감] 소설 부문-전 윤 희

 나는 한 청년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야구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갸름한 얼굴에 창백할 만큼 하얀 피부. 스물 셋, 어린 나이에 그는 의료사고로 실명하였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1박 2일 교회 세미나에서였다. 그 세미나의 이름은 ‘인카운터’였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의미였다. 두 명의 건장한 청년이 늘 그의 양 팔을 붙들고 그가 어디를 가든지 동행했다. 분명 그는 지독한 슬픔을 안고 그곳에 왔을 것이다. 세미나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를 또 보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감겨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천상의 미소였다. 주위를 둘러보면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이 없다. 미워해서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데도, 어쩌면 너무 사랑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내가 쓴 글이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주진 못하겠지만, 순간일지라도 그 청년의 얼굴에 머금었던 환한 미소를 짓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참 행복할 것이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소설쓰기의 기초부터 가르쳐주신 구효서 선생님과 정찬 선생님, 너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다는 말씀으로 나를 위로하셨던 안혜성 선배님, 재능을 물려주신 아버지, 희생으로 키워주신 어머니, 사랑하는 자매들과 가장 고맙고 소중한 사람, 남편에게 감사드린다. 겨울 햇살이 나른한 오후에 당선 전화를 받았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나의 손은 부끄럽게도 빈손이었다. 지금부터 조금씩 채워가겠다. 전윤희 학력:성심여자대학교(현 가톨릭대학교) 영문과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영문과 졸업 주소:고양시 일산구 마두동 정발마을 건영빌라 303-303

2006-01-02 경인일보

[시 당선작] 해발 680m의 굴뚝새 (심은섭)

 해발 680m의 굴뚝새 -심은섭 면사무소에서 4㎞ 더 지나 우편번호 233-872에 살던 굴뚝새는 사내 굴뚝새를 산 14번지에 묻어 두고 경적소리와 높은 빌딩들이 난무하는 우편번호 100-866 69층 아랫목에서 무-말랭이가 되어 간다 우체국에서 지어준 100-866의 우편번호를 문패에 문신처럼 새겨놓고 살지만 산 14번지 바람소리 전해줄 우편배달부의 발길이 끊어져버린 지가 오래다 몇 날을 견딜 수 있는 수분이 얼마 남지도 않은 해발 680m에 살던 굴뚝새를 굴뚝새의 굴뚝새들이 바라보며 쌀독에 파랑주의보가 내려 호미자루를 놓지 못하던 날들과 냉수에 간장을 섞어 헛배 채우며 새우잠 자던 날도 미납된 등록금 영수증 머리맡에 두고 밤새워 신열을 내던 일들을 떠올린다. 절구공이에 짓이겨진 그녀의 가슴에는 슬픈 보석 몇 개 박혀 있다 두어 개의 천둥소리 하얀 달 몇 개와 서너 개의 태풍 그리고 몇 밤에 내린 무서리에 말라진 몸, 더 말려야 천국의 층계 만이라도 가볍게 오르려는 듯 남아 있는 그들의 짐이 가벼워진다는 것도 안다 점점 더 멀어진 눈과 눈 사이의 간격 문 밖까지 나온 기침소리가 폐경을 맞는다 우편번호 없는 묘비를 들고 오후 내내 창 밖에서 서성이던 검은 도포를 입은 바람이 조등(弔燈)을 든 굴뚝새들의 포효를 뿌리치며 반송되지 않을 정량(定量)의 화석을 목관 속에 편히 눕힌다

2006-01-02 경인일보

[단편소설 당선작] 아버지의 집 (전윤희)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죽으면서 내게 유산을 남겼다고 했다. 이복동생이라는 젊은 남자가 나를 찾아와 말했다. 키가 180센티미터는 족히 됨직한 그는 입 언저리가 내 아들과 닮아있었다. 그는 나보다 열 살 가량 어려 보였다. 벽을 훤하게 튼 유리창이 투명한 카페에서였다. 유월 햇살의 세밀한 결까지 다 보일 듯했다. 한 무더기의 햇살이 그 남자의 얼굴에서 부서졌고 그 위에 다시 햇살이 쏟아졌다. 스피커에선 비틀스의 ‘헤이 쥬드’가 들렸다. 헤이, 쥬드. 그다지 나쁘게 생각하지 마. 슬픈 노래를 좋은 노래로 만들어보자구……. 여느 때 같으면 흥얼거렸을 익숙한 곡이다. 하지만 지독히도 어색한 시간이었다. 그는 오렌지 주스가 들어있는 유리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면서 내게 좀 미안하긴 하지만, 알고 보면 자신이 미안해 할 일은 아니라는 듯한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밝은 하늘색 셔츠를 입고 있었음에도 그의 까칠한 얼굴은 초췌했다. 가평에 있어요. 아버지가 재혼하시기 전이라니까 아마 아실 텐데요. 젊은 남자가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말했다. 나는 가물가물하다는 표정으로 응답했다. 실제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가평에 아버지가 땅을 샀었나?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 땅에 집을 지었다고? 나는 한동안 혼자 골똘했다. 저도 한 번도 못 가봤어요. 그가 창가 쪽으로 눈을 돌리며 흘리듯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무슨 성역이라도 되는 양, 그 곳엔 늘 혼자 가셨죠. 그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성역처럼 지켜 온 가평 집을 내게 물려준다고 해서 기분이 언짢은 것일까? 그가 내다보는 창 너머로 연초록의 신록이 눈부셨다. 카페가 면한 공원에는 몇 무리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그들만의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펄럭이는 스커트 속의 두 다리에 힘을 팍팍 줘가며 부지런히 페달을 밟는 여자 애들. 미니 자동차를 하나 빌려서는 서로 타겠다고 밀쳐대는 어린 남매. 벤치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들. 밖은 한없이 경쾌해보였다. 오직 그와 내가 자리한 탁자 위의 공기만 지구만큼 무거웠다. 이번엔 내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의 눈치를 흘깃거리고 있었다. 이상할 만큼 그 남자에 대해 나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먼 타인 같았다. 그와 나 사이엔 분명 아버지의 유전자가 나눠져 있을 텐데, 나는 조금의 친밀감도 조금의 질투심도 느끼지 않았다. 아마도 내 속에 흐르던 아버지의 피가 다 말라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남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남편에게 먼저 말해야 하나 망설였다. 그가 내놓은 은빛 열쇠꾸러미와 주소가 적힌 종이가 난감했다. 양평 이모 집에 살고 있는 엄마에게 알리는 것은 미루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두 노인네가 손바닥만한 텃밭을 메며 모자랄 것도 없고 남는 것도 없다는 듯 이루어낸 척박한 평화를 굳이 깨뜨릴 필요는 없었다. 결국 행선지도 정하지 못한 채 내 앞에 정차한 택시에 올랐다. 삼성동이요, 아니 사당동이요, 아니 삼성……. 어딜 가냐고 운전사가 두 번째 물을 때 그의 목소리에는 피곤과 신경질이 뒤섞여있었다. 나는 무안한 듯 과천이요, 하고 대답하곤 입을 다물었다. 여느 때 같으면 남편과 점심을 먹으며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이번은 그럴만한 문제 같지가 않았다. 아버지는 나 자신에게도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그에게 불쑥 들이밀 수는 없었다. 묵직한 열쇠꾸러미와 낯선 주소와 함께. 영주의 작업실은 과천 정부종합청사 근처,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근처 어느 오래된 건물 지하에 있었다. 어둡고 눅눅한 계단을 내려가다가 나는 시커먼 물체가 휙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손가락만한 생쥐였다. 소름이 살갗에 파르르 일었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면서 속이 메스꺼웠다. 집으로 곧바로 가지 않은 것을 잠시 후회했다. 하지만 무난한 집안에서 별 탈 없이 자란 남편보단 가난하고 난폭한 부모 밑에서 어두운 유년을 보낸 영주가 이럴 땐 더 가까웠다. 그러니까 너를 버린 아버지가 너한테 집을 남겨주고 죽었단 말이지? 횡설수설 비슷하게 그 남자를 만났던 일을 찔끔찔끔 흘렸는데 영주는 단칼로 자르듯 한마디로 정리했다. 나는 나를 버렸다는 말에 거부감을 느꼈다. 마치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간단하네. 팔아버려! 그녀의 ‘팔아버려’는 너무도 쉽고 힘이 넘쳤다. 팔아서 너 먹고 싶은 거 사먹고 진우 먹고 싶은 거 사주고 다 써버려.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냐? 본래 영주는 거침이 없었다.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영주는 그리던 만화를 계속 그렸고 나는 주전자에 물을 받아 브루스타에서 끓여냈다. 부글부글 물 끓는 소리가 내 몸속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탁자 위에 널브러져있는 커피 믹스로 두 잔의 커피를 만들었다. 영주가 일하고 있는 책상 가까이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의자 끄는 소리가 날카롭게 신경을 긁어댔다. 안 그래도 바지주머니에 넣어 둔 열쇠꾸러미

2006-01-02 경인일보

[단편소설 심사평/김 지 연·최 인 석]

 마지막까지 책상에 남은 작품은 다섯이었다. 그 가운데 이현수의 '고풍을 찾아서'는 관념적인 문장, 부정확한 어휘 같은 것들 때문에, 은승완의 '금서 클럽'은 어색한 비유와 주제가 모호하다는 점 때문에 비교적 일찍 제외되었다. 문장은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온전치 못한 문장으로 온전한 소설이 쓰여질 수는 없다. 황시운의 '사마귀'는 문장도 단정하고 묘사력도 좋으나 인물 관계가 다소 상투적이고 억지스럽다는 지적이 있었다. 인물 관계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요소가 아닌가. 박숙희 '개복숭아 나무'는 안정적인 문장으로 소녀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미순이와의 관계를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호감을 주었다. 특히 소녀와 미순이 사이의 관계가 재미있었다.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에 관한 흥미롭기도 하고 매력적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고통스럽기도 한 탐색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마지막 선택에서 제외되었다. 전윤희의 '아버지의 집'은 크게 새롭다 할 것은 없으나, 먼저 침착하고 단정한 문장이 작가에 대하여 신뢰를 품게 했고, 적절히 자리잡은 매력적인 비유가 호감을 주었다. 재혼으로 일찍 헤어져 임종할 기회도 없었던 아버지, 그후 돌연 나타난 이복동생 남매들, 아버지가 남긴 작은 유산을 싸고 벌어지는 갈등을 과장 없이 잔잔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묘사나 이야기 전개가 실감나고 흥미로웠다. 심사위원들은 큰 어려움 없이 '아버지의 집'을 당선작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소설은 문장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지만 거기 담기는 것은 단순한 문장이나 이야기 이상의 것, 즉 작가의 생각이다. 문장이나 이야기의 새로움도 중요하겠으나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작가의 생각, 그 생각의 새로움일 것이다. 정진하기를 기대한다.

2006-01-02 경인일보

[당선소감] 시 부문-정경미

뙤약볕 내려 쬐는 자갈길을 맨발로 걸어왔습니다. 발이 부르트는 지경에서도 시에 대한 믿음 하나로 마다 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시를 향한 우직한 집념으로 더러는 흔들리는 걸음걸이로 더욱 시에 대한 오기와 열정을 용솟음치게 만들었습니다. 한때는 바닥이 두껍고 편안한 신발을 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에 대한 절명의 애착 때문에 외로운 수행자의 고행처럼 세속적인 소망을 애써 저버린 채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결코 앞으로도 평탄한 걸음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름다움만이 가치있는 것이라고 노래한 키이츠의 행로를 따라 걸어갈 것입니다.가장 진실한 지혜는 사랑하는 마음이라 여겨왔습니다.신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그곳에 빛나는 시의 소재가 숨어있고 현란한 관념과 이미지가 내재해 있음을 깨달아 왔습니다. 그것이 곧 진실의 표정이요 지혜의 속내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다짐해 왔습니다. 당선 소식을 접하자 문득 봉숭아꽃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어릴 적 봉숭아꽃 속에는 시의 텃밭이 되어주신 아버지의 영상이 겹쳐져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세상을 버리신 아버지께서 사랑과 망각을 깨우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8년 전 가을 어느날 봉숭아꽃이 피었다고 나들이 오라시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그리움의 울타리 안에서 피어오릅니다.부족한 글을 눈여겨 살펴주신 경인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부르튼 맨발을 말의 붕대로 감싸주신 하현식 교수님과 이신정 시인을 비롯한 문우들과 악동님께 감격을 나누어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고집스런 시의 길을 따뜻한 눈으로 지켜준 가족들과 아들 성로, 그리고 올케 송인숙님께 고마움을 전하면서 이 영광을 아버지 영전에 드립니다.◇약력 1960년 경남 거제시 연초 출생 현재 부산 금정초등학교 영양사 재직

2005-01-03 경인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시 부문시의 위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시인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좋은 시와 좋은 시인이 눈에 띄게 늘어나지는 않은 것 같다. 원래 그저 좋은 것은 희귀하게 마련이지만 시의 기본적인 품격조차 갖추지 않은 시의 과도한 생산은 시의 위력과 본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한 번쯤은 되돌아 볼 일이다. 영상 매체의 발달에 따라 활자 매체의 존립 근거가 퇴색해 가고 있다는, 단순하고도 문학 외적인 진단에 의한 시의 위기론보다는 좋은 시의 위기를 우려해야 할 시점이 지금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좋은 시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 앞에서 우리는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시는 기존의 시적 상상력을 무너뜨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언어 표현이 생기를 얻을 때 발아한다. 단 한 편만 뽑는 신춘문예를 의식해서일까. 모두들 수준이 엇비슷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오래된 집'은 크게 나무랄 데 없는 깔끔한 시다. 시에서 감정을 제어하는 능력도 오랜 수련의 결과로 생각된다. 하지만 소품이라는 점이 끝내 마음에 걸렸다. 때로 시의 스케일을 크게 잡아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밥상'은 발상이 참신하고 평범한 소재를 평범하지 않게 그린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사람은 앞으로 시를 세밀하게 다듬는 데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듯하다. 난데없는 돌부리들이 곳곳에 출현해 시의 품격을 해치고 있기 때문이다. '경마장 풍경'과 '철거지역' 두 작품을 놓고 고심했다. 앞의 시는 세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바탕으로 시에 삶의 온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 군더더기가 거의 없고 감각적 표현도 아주 볼 만하다. 하지만 어디에선가 본 듯한 몇몇 이미지들이 신선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당선작으로 고른 '철거지역'은 주체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한 객관적 묘사의 시다. 특별히 눈에 띄는 표현은 없지만 안정적으로 시를 마무리하고 있는 점이 믿음직스럽다. 상처 입은 것들에 시의 렌즈를 들이대는 시인으로서의 자세를 지속적으로 지켜나가기를 바란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드린다. /심사위원:정희성·안도현 시인 

2005-01-03 경인일보

단편소설 당선작-가리봉 블루스

“구신이가, 사람이가?”홍탁집에 들어서자 주인 노파는 피에로 분장을 한 내 모습에 놀랐는지 눈곱 낀 눈을 비비며 뒷걸음질쳤다. 한 두 번 본 것도 아니면서 혀끝을 차는 후렴구는 잊지 않았다. 골목입구에 슬레이트 가건물로 세워진 가리봉 홍탁집. 그을음 낀 형광등 밑에 매달린 끈끈이에는 파리들이 새카맣게 붙어 있었다. 기름때가 눌러 붙은 '가리봉동 제 9회 주민체육대회 기념' 거울 옆에 매달려 있는 낡은 선풍기는 후텁지근한 바람을 내뿜고 있었다.“사나놈이 가시나처럼 분칠은… 쯧쯧.”노파는 쉰 깍두기와 사발을 상위에 챙겨놓고는 행주치마에 침을 적셔 내 얼굴을 문질러 댔다. 치마에 배어 있는 쉬지근한 냄새와 입냄새에 고개를 돌렸지만 노파의 억센 손을 빠져 나오기는 쉽지 않았다.“판또마임 할라꼬 분장한 거 아입니꺼. 할매는 우째 예술도 이해 못하는겨?”가게 앞에 스쿠터를 세우고 뒤따라 들어온 덕구 아저씨는 노파에게 붙잡혀 있던 나를 자리에 앉히고 한마디 던졌다. 양 볼이 퀭하니 들어간 아저씨는 마른 체격에 어깨까지 굽어 더 왜소해 보였다.“예술은 무신 얼어직일 예술….”조리대로 몸을 돌리던 노파가 한마디 쥐어박았다. 덕구 아저씨는 얼굴에 흐르는 땀은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고 목에 걸린 카메라를 풀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찍히기나 할까라고 의심한번 가져볼만한 낡은 폴라로이드 카메라였다. 카메라를 대충 살폈는지 그제야 덕구 아저씨는 땀을 훔쳐냈다.“우째 이리 덥노. 삶아 낸다 삶아내. 비라도 시원케 한 줄기 쏟아져 부리제.”나는 선풍기의 방향을 덕구 아저씨에게 고정시켜 주었다. 미지근한 바람에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휘날렸다.“니 방세는 언제 낼끼고? 벌써 다섯 달이다. 낸도 살아야 안카나?”홍어회를 무치던 노파는 한 점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말했다. 토끼장같은 월세방 주인이기도 한 노파는 작정을 한 듯 밀린 방세를 독촉했다.“할매요. 쪼매만 기다려 보소. 사진 하나만 근사하게 나오면 대박이란 거 아입니꺼.”덕구 아저씨는 손톱에 낀 비듬을 다른 손톱으로 빼내며 너스레를 떨었다.“쯧쯧… 미친 놈. 그놈의 얼어직일 예술은… 예술이 밥 먹여 주더냐?”“할매 낼 모레 관 뚜껑에 못질할 껍니꺼? 기둘러 보소. 내 이 심덕구가….”덕구 아저씨는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 불빛이 노파를 향해 번쩍 거렸다.“뭐꼬? 응. 무슨 도깨비 지랄이고?”플래시 빛에 놀랐는지 노파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방세 이야기를 접었다. 독하지 못한 노파는 매번 먼저 방세 독촉을 그만뒀다.“자네. 내가 사진작가라는 거 아나?”덕구 아저씨는 카메라가 뱉어 낸 인화지를 흔들며 말했다. 아저씨는 대학로나 여의도 공원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화장을 지우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소싯적에 사막서 사진 찍었다는 거 야기했던가? 몬들어봤나? 내가 사하라 사막서 사진 찍었다는 거 아이가. 대단채? 잘라꼬 누워 하늘을 보면 쏟아지는 별에 다리 사이의 몽둥이가 꼿꼿이 서는 기라. 모래는 어떻고, 가시내 우유통 맨지는 거처럼 얼매나 부드럽다꼬.”아저씨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켰다.“가시내 젖통이나 맨져보고 그런 소리 하나?”홍어무침을 소복이 담아 내온 노파가 덕구 아저씨의 말을 쥐어박았다.“할매도 무신 소리를 그리 합니꺼. 그래도 낼 모레면 내도 쉰 아닌겨.”“쉰이면 뭐하고 예순이면 뭐하노 이적까지 장가도 몬 간 놈이. 불알 두 쪽 차고 나왔시면 분통같은 가시내 한번 옆구리에 품어 봐야 안카나.”노파는 옆에 앉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고는 덕구 아저씨에게 잔을 채워주었다.“내 말 안했습니꺼. 저는 예술이랑 살림 채렸다꼬.”덕구 아저씨의 능글거리는 말투에 노파는 코끝을 씰룩거리며 홍어무침 한 점을 집어 아저씨 입 속에 억지로 넣었다.“못난 놈, 말이 꽃방석이다. 지랄 말고 술이나 처먹어라. 니도 좀 팍팍 묵어봐라. 사내 자슥이 와그리 깨작거리노 복 없게시리.”노파는 접시를 내 앞으로 밀어 놓았다. 나는 한 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홍어 특유의 알싸함이 코 속으로 파고 들었다.“불쌍한 놈, 에라 이 불쌍한 놈. 니 아배 정말 무심키도 무심타. 아들새끼 버리고 어데 그리 가버리노. 그래도 원망 말그래이. 오죽했시면 그랬겠나, 오죽 했시면….”노파는 벌써 행주치마에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노파는 저글링 강 아저씨를 내 아버지로 알고 있었다. 저글링 강 아저씨 생각 때문이었는지, 모르고 씹어버린 생강 때문이었는지 눈물이 핑 돌았다.“할매, 처녀적에 미인이라는 소리 마이 들었겠네.”덕구 아저씨는 노파의 사진을 이리저리 보며 능청을 떨었다. “니 또 헛소리 할끼고?”노파는 사진을 빼앗고는 흘겨보며 덕구 아저씨

2004-01-01 경인일보

[당선소감] 소설 부문-윤혜진

원고를 발송하고 난 후 어디론가 떠날 생각을 하며 배낭을 꾸렸다. 지퍼가 잠겨지지 않을 만큼 짐을 꽉꽉 채우면서 나는 내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의 크기에 놀랐다. 짐을 내려놓고 다시 꾸려보지만 줄지 않았다. 결국 나는 떠나지 못하고 짐 꾸리기만을 반복했다. 그러는 내내 발바닥이 가려웠다. 발바닥이 가려웠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오늘에야 알았다.오래전부터 나는 나무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기에 약하고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그늘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2003년이 저무는 오늘에서야 소설이라는 토양에 내 잔뿌리를 내려놓고 이젠 나도 나무가 될 수 있지 않을까란 욕심과 기대감을 가져본다. 당장 내일이라도 무거웠던 짐들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 하나 예정되지 않은 이 끝에서 저 끝으로 혼자 걸어야 할 길이지만 여행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낯설음의 빛이던 소설이 내 몸속 깊이 스며들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길 위에서 헛돌기만 하던 나를 꾸준히 지켜봐 주신 숭의여대 교수님과 내 걸음에 무게를 실어주신 한신대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내 여행길을 믿고 지켜봐주신 가족들에게 기쁨을 전한다.79년 경북 예천 출생숭의여대 졸업현 한신대 재학중

2004-01-01 경인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단편소설 부문 금년도 예심을 거쳐 올라온 16편은 대부분 소설쓰기에 대한 생각과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그 중에 두 심사위원이 읽고 그 중에 '까치를 쏘다' '가을 빛' 'Cafe MONG Live', '가리봉 블루스' 네 편을 최종심에 올려놓고 의견을 나누었다.'까치를 쏘다'는 문장이 다듬어져 있고 이야기도 소설로서 품격을 어느 정도 갖추었으나 주제가 너무 단순한 것이 흠이었다. '가을 빛'도 홀로된 아버지와 동거하게 된 딸의 갈등 심리가 비교적 진솔하게 나타나 있으나 너무 평범한 이야기였다. 반면에 'Cafe MONG Live'는 개성적인 문장으로 젊은이의 정서와 의식이 강렬하게 나타나 있으나 너무 조작적인 느낌을 받았다. 반면에 '가리봉 블루스'는 앞의 세 작품이 이르지 못한 부분들을 충족했다는 점에서 아주 쉽게 당선작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개성이 선명하며 독특하였다. 인물들의 언어와 행동 양식이 잘 형상화되었고, 그 대화나 인물에 대한 화자의 묘사 서술 처리도 돋보였다. 특히 가리봉동이라는 서울 변두리지역의 생태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잘 조화되었다. 절제된 언어도 일품이었다. 그런데 결말이 좀 허약한 것이 아쉬웠다.최종심에 오른 네 편 모두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계속 공부하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소설쓰기는 자기가 인식한 세계와 인간을 자기 방법으로 그려내야 한다. 유행이나 남의 방법을 따라가려고 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 그 방법은 인생에 대한 자기 삶의 방법이 되어야 한다. 그 만큼 소설은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점도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이동하·현길언 소설가 ▲시 부문 신문사에서 예심을 거쳐 선자들에게 넘어온 100여편의 작품들을 숙독하며 떠오르는 느낌은 작품 수준의 균등화이다.많은 응모자들의 시적 역량이 일정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주관적인 시적정서를 크게 흠잡을 데 없이 진술한 다수의 시들 앞에서 선자들은 시를 지향하는 응모자들의 유행적 안이주의와 대중적 규격화를 우려했다.특히 압축과 절제가 시의 미덕이라는 점을 망각한 산문화 경향을 심각하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평범을 넘어 기성시단의 구각을 깨트리는 치열한 고뇌는 신춘문예를 통해 새로운 시인으로 등장하려는 신인에게 으뜸으로 요구되는 덕목일 터, 선자들은 그 결핍을 읽으며 아쉬움을 가진다. 심사의 기준으로 시의 정신적 바탕과 깊이, 그리고 언어적 결정능력의 균형을 염두에 두었다.최종적으로 논의된 작품들은 박복영의 '풀잎처럼', 김주관의 '송이보고서', 성유리의 '진혼제', 강전욱의 '불국 찾아 가는 길', 하재청의 '공단세탁소', 이명자의 '길이 휘청거린다' 등이었다.이들 작품중 먼저 박복영과 이명자의 작품들이 제외되었다. 기성시인들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져 독창적 개성이 결핍되어 있었다.김주관의 작품은 재기가 넘치나, 수사적 화려함으로 너무 멋을 부린 나머지 언어의 긴장이 부족해 감동을 주지 못했다. 하재청의 작품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과 건강한 현실의식이 돋보였지만 곳곳에서의 부적절한 표현이 시의 품격을 훼손하고 있었다.강전욱의 시는 독특한 발상과 언어로 선자들의 관심을 모았지만 함께 보낸 시들의 편차가 커 아쉽게 제외되었다.마지막 남은 성유리의 '진혼제'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육친, 죽음, 이별, 인연, 집착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몇 개의 알레고리를 통해 간결하면서도 비범하게 형상화해낸 능력이 돋보였다. 부디 끝없는 노력으로 한국시를 빛내는 큰 시인으로 대성하기 바란다. /하종오·김명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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