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신춘문예

 

[2009경인신춘문예 당선작·소설부문]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

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 (이연희)문을 열자 남자는 어둠 속에 웅크린 모습으로 앉아 있다. 구김 없이 잘 손질된 와이셔츠를 붙박이장에 넣으며 나는 그를 흘낏 쳐다본다. 다가서기만 하면, 그는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듯하다. 조금도 움직임 없는 남자의 검은 실루엣은, 마치 알몸으로 어머니의 자궁 밖을 갓 탈출한 아이가 두려움에 움츠러들어 있는 것 같다.그는 조용한 남자다. 때때로 나는 그가 이 집에 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그는 내 남편의 애인이다. 어느 날 불쑥 내 삶에 끼어든 남편의 남자.그와 남편과 나는 48평 아파트의 동거인이다. 그와 나는 마주칠 일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한 집에 함께 산다고 해서 늘 얼굴을 마주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와 나는 한 공간 아래 있지만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각각 욕실이 딸린 방에서 그들과 나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을 잔다. 하긴 그것이 별로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늦은 밤 섹스를 끝낸 남편과 그가 샤워라도 해야 할 때, 거실을 걸어 나와 손님용 욕실로 향하는 모습을 나에게 들키는 것은 그들이나 나에게 서로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남편의 방은 신혼 때 시어머니가 와서 쓰던 방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 그 방에는 없던 욕실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블랙과 화이트로 꾸몄단다, 심플하고 좋지.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부터 저 방은 내가 쓰겠다.시어머니는 근 일 년이 넘도록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자신의 집이 아닌 그 방에서 지냈다. 나는 남편과 섹스를 할 때면 벽에 귀를 바싹 붙이고 있는 시어머니를 상상했다. 처음에는 신경이 너무 쓰여 남편과 섹스를 하기 힘들었다. 남편과의 섹스가 그다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때는 남편 역시 나처럼 시어머니가 신경이 쓰여 그러는 줄로 생각했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만 말을 걸었다. 언제나 나는 그림자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늘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시어머니를 보면서 이상한 오기가 생겨났다. 반 년이 넘어가면서 나는 시어머니가 오는 날이면 섹스 때 일부러 더 큰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황한 남편은 내 입을 막았다. 그런 다음 날이면 시어머니는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이렇게 말했다. 교태스러운 년.차츰 시어머니가 오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이내 발길이 끊겼다.그가 온 뒤, 나는 조금 분주해졌다. 먼저, 사 년 동안 매일 오던 파출부를 그만두게 했다. 남편은 힘들테니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했다. 여자가 그를 이상하게 보더라고, 내 먼 친척동생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 눈치더라고. 하긴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가 온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파출부는 그의 옷가지를 세탁실에 가져가며 입술을 삐죽이더니 샐쭉하게 돌아섰다. 여자는 내가 무심하게 창밖으로 흐르는 강물 따위나 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전면유리를 통해 그녀의 표정이나 몸짓 따위를 다 읽고 있었다. 내 앞에서야 늘 마음 좋은 아주머니처럼 넉넉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녀지만 나는 그녀의 교활함을 잘 안다. 늘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늘 그녀를 미소로 대했으며 그 미소 뒤엔 들릴 듯 말 듯한 한숨 소리를 고의로 내비치곤 했다. 남편은 한없이 자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당신이 알아서 하라,며 딱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그가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파출부에게 넉넉한 돈을 쥐어주고 서운한 표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던 날, 파출부는 눈물을 글썽거렸지만, 나는 왠지 모를 후련함과 해방감을 느꼈다. 아마도, 봉투 안의 돈을 재빨리 계산해 보았을 듯한 여자의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눈곱 낀 눈에서, 나는 시어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을 본 듯도 하다. 어쩌면, 여자는 정말 이 집을 그만둔다는 것이 내심 섭섭했는지도 모른다. 평창동 대저택에서 눈도 못 감고 혼자 쓸쓸히 죽어간 시어머니에게 입 속의 혀처럼 눈과 귀가 되어 내 일상을 낱낱이 보고하던 여자. 아마 여자는 그를 내 섹스 파트너로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해 세상을 떠난 시어머니에게 보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는지도. 시어머니에게 내가 '오대 독자 아들을 홀린 여우같은 계집'으로 끝까지 남은 것처럼, 여자에게 내 남편은 '여우같은 계집에게 속은 불쌍한 도련님'일 것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지금 나는 나를 저주스러워했던 시어머니의 돈으로 벤츠를 타고, 명품을 사들이고, 게다가 친정에 마당이 딸린 넓은 집까지 사줬으니, 시어머니에게 한없이 고마울 뿐이다. 남편은 그날로 자신의 모든 짐을 옮겼다. 남편은 일 관계로 해외출장이 잦다. 호텔 하나가 계획되고 만들어지는 동안의 처음과 끝까지, 카운슬러 역할과 더불어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계약은 남편의 손을 거친다. 그 일로 남편은 꽤 많은 돈을 벌어들이며 한 달에 반쯤 집을 비운다. 지난 봄, 남편은 푸껫에 호텔을 짓고 싶어하는 의뢰인의 요청으로 그를 데리고 방콕행 비행기에 올랐다. 남편과 그가 파퐁의 게이거리에 나란히 앉아 맥주에 쏨땀을 곁들여 먹으며 거리 쇼를 하는 코끼리 코에 달러를 쥐어줬을 그 시간, 나는 아파트의 인테리어를 조금 바꿨다. 그들이 전혀 알아챌 수 없을 만큼만. 작은 액자를 드러내기만 하면 그와 남편의 방이 들여다보인다. 벽에 작은 구멍을 내고 확대 렌즈를 달아주던 심부름센터 직원은 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운운해가면서 몰래카메라의 성능에 대해 입에 침을 튀겨가며 얘기했지만, 그건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넉넉한 돈을 받아 챙긴 심부름센터 직원은 자신의 열정적인 과학 예찬론에 내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떨떠름해했지만, 나는 정말 대만족이었다. 나는 고전적인 것이 좋다. 지극히 고전적인 것을 선호하는 남편의 취향이 내게 영향을 끼친 것일까. 어쨌든 그들의 방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세계 각국의 가면 덕분에 벽의 구멍을 숨기는 일은 수월했다. 내가 한 일은 방에 쌓인 가루들을 감쪽같이 없애는 것뿐이었다. 남편과 나 사이에는 아이가 없다. 시어머니는 늘 내게 대를 끊어놓아 집안을 망칠 년이라고 낮고 은밀하게 말하곤 했다. 천하에 둘도 없는 귀부인이었던 그녀가 내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을 나는 이해한다. 내가 그녀였어도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내가 아이를 가졌다해도 그녀는 그리 탐탁해하질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 나는 교태스럽거나 혹은 집안을 망칠 여자였을 뿐이다. 사실 남편이 나를 선택한 것을 나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다. 그저그런 학벌에 별볼일 없는 집안,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외모로 관광호텔의 프런트에 앉아 서비스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 일본인 관광객에게 '스미마셍'을 수없이 반복하며 살아왔던 내게, 남편은 너무 큰 사람이었다. 말투나 손짓 하나에도 기품이 배어있는 남편에게는 내가 근접할 수도 거역할 수도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이가 조금 많다는 것을 빼면 그는 내게 넘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나란히 붙어 있던 세 개의 관광호텔을 하나로 만들어 특급호텔로 탈바꿈 시켰다. 그 과정에서 실업자가 된 내게 연락을 해온 것은 남편이었다. 당신 눈에 담고 있는 갈증이 마음에 들어. 그것이 그의 프러포즈였다. 남편이 나를 사랑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은 내 친정어머니 단 한 사람이다. 어머니는 늘 자신이 생각하기 편한 대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아버지의 바람기마저도 마음 약한 아버지의 착한 심성 때문이며, 중풍으로 쓰러진 후에야 집으로 실려 돌아온 아버지를 보면서도 조강지처를 버리지 않는 양반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내가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법을 단 한 가지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가슴에 멍울이 생겨 브래지어를 해야 할 때도, 초경에서 오는 하복부의 기분 나쁜 팽만감에 대해서도. 모든 것은 다 내 몫이었다. 하긴 내가 남자로 태어났어도 어머니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당연히 저절로 익혀진다고 믿는 어머니의 인생철학은 '타고난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남편과 내가 결혼한 것 또한 그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우리에게 아이가 없는 것도 부부금실이 너무 좋아서라고 생각하는 어머니에게, 나는 남편의 무정자증과 성적 취향에 대해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앞뒤가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 어머니의 환상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지만 굳이 깨고 싶진 않다. 어머니는 남은 생 동안 반신불수인 아버지를 간호하고 텃밭이나 일구며 사는 것이 낙인 사람이다. 사위와 눈도 똑바로 맞추지 못하고 늘 좌불안석인 어머니에게 그것은 좀 잔인한 일이다. 처음 남편을 보았던 날 어머니는 내게,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 생각보다는 젊어 보이는구나, 그치만 너도 여자 나이로는 꽉 찼으니 그만하면 괜찮지, 했다. 그 말을 하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인 내가 실업자가 되었으니 돈 있는 사람과 결혼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아주 얄팍한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덟, 남편은 마흔 하나였다.그가 들어오기로 하면서 남편과 나는 거래를 했다. 남편이 자신이 사는 방식에 내가 가담해주길 바라듯 나도 내가 사는 윤택한 삶을 위해 남편이 필요하다. 남편은 타인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운 사람이 못되고 나는 돈의 위력을 알았다. 그가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선언할 만큼 비사회적이지 않은 것처럼, 나 또한 남들이 나를 행복한 여자로 대해주는 호의에 이미 길들여져 있다. 밖에서 완벽한 부부로 행세하는 대가로 시어머니의 전 재산은 나에게 돌아왔다. 그리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남편은 아주 친절한 사람이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그의 선물뿐만 아니라 내 선물까지 사온다. 남편의 선물은 늘 같다. 세계 각국의 종(鐘)이 내 슈트케이스 가득 들어 있다. 슈트케이스가 열리는 것은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올 때뿐이다. 그것은 아주 요란한 소리를 낸다. 그럴 때면 세상엔 참 많은 종들이 있구나 싶다. 남편은 자신이 선물한 종을 어디에 두었는지 따위는 묻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손을 떠난 것에 대해 꼬치꼬치 물을 만큼 치졸하거나 편협한 사람이 아니다. 남편이 가끔 방에 들어와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힘들지, 할 땐, 우린 정말 다정한 부부다. 욕조에 물을 받는다. 수압이 센 수도꼭지에서는 찬물이 조금 나오는 듯하더니 금세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온다. 욕실의 문을 닫고 나와 그들의 벽에 귀를 댄다. 천천히 액자를 떼어내고 구멍 속을 들여다본다. 남편이 그에게 다가간다. 그는 늘 웅크린 모습으로 남편을 맞이한다. 그래서일까, 남편의 동작이 커 보이는 것은. 남편이 두 팔을 활짝 벌려 그를 안는다. 남편이 나를 저렇게 안아준 적이 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곧 벽을 액자로 가린다. 그들의 섹스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남편은 배후위를 선택할 것이다. 나와의 섹스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욕실 문을 열자 수증기가 내 얼굴에 훅하고 꽂힌다. 거울 속에 내가 없다. 거울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자 내 모습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옷을 벗고 탕 속으로 들어가려던 나는 곧 마음을 바꾼다. 욕조 안의 고무마개를 빼내자 물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하수구로 흘러간 물은 정수과정을 거쳐 언젠가 내 욕조 안을 다시 메울 것이다. 샤워기의 물을 튼다. 뜨거운 물이 몸을 타고 흐르자 나른하다. 서서 오줌을 눈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있던 나의 습관이다. 결혼 전 어머니는 가끔 내게 하수구에서 이상하게 지린내가 올라온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만약 어머니에게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거라고, 내가 샤워하면서 오줌을 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면, 어머니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나의 습관은 되살아났다.남편의 대학 동창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남편은 손수 등이 파인 검은 드레스를 골라주었다. 결혼 열두 해를 맞은 남편 친구 부부의 결혼 기념 모임이었다. 비슷한 부와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의 그저그런 모임이었다. 풀밭 위에 잘 차려진 뷔페식 식단은 내 식욕을 그다지 자극하지 못했다. 남편은 접시에 음식을 덜어와 내 앞에 놓아주었다. 종잇장처럼 맛없는 음식을 한입 가져다 먹으며 나는 남편을 향해 눈웃음을 보냈다. 그들의 화제는 주로 경제와 정치 이야기로 시작해 골프 이야기로 막을 내렸다. 매번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결혼기념일에 굳이 사람들을 초대해 자신의 부와 행복을 과시하는 그들이 내게는 좀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더더군다나 누군가가 유학간 아이들 이야기라도 꺼낼 때 난처해하며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려버리는, 그 중의 또 다른 누군가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들이 정해 놓은 금기 사항은 우리 부부 앞에서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가 지고 바람이 서늘해지자 남편은 내 몸에 숄을 둘러 주었다. 당신도 정 선생님처럼 좀 해 봐요, 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미세스 정처럼 저렇게 젊고 아름다워지면 내 한번 생각해 볼게, 하는 대답에 사람들이 까르르 웃었다. 교묘하게 비틀어 놓은 적의와 조롱의 말투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을 보면 남편의 동조자로서 내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든다.남편과 나는 사람들에게 친구같은 부부로 통한다. 간혹 이상적인 부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서로의 눈을 맞추며 다정하게 웃는다. 부부가 꼭 닮았다며, 어쩌면 그렇게 변함없이 다정하게 살 수 있느냐고 묻는 그들에게, 이상적인 부부란 어떤 것인지 되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나는 그런 쓸데없는 말로 남편과 나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런 물음을 내뱉는 순간, 사람들이 나와 남편 사이를 가늠하고 저울질 할 것을 안다. 이상적인 부부라고 칭찬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남편과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되새김질하며 둘 사이의 균형이 언제 깨지나를 내기하거나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늘어놓는 것쯤은 세 살 배기 어린아이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어차피 그들은 나를 자신들의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남편의 그늘 밑에 내가 존재하는 한 존중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사람들과 만나는 이런 날은 조금 피곤하다. 방까지 따라 들어온 남편이, 많이 피곤하지 쉬어, 하고는 내 숄을 받아 서랍장에 넣는다. 남편이 방을 나가려다 말고 문득 돌아서며 오늘은 이 방에서 잘까, 한다. 내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하자 남편이 미끄러지듯 나가버린다. 남편은 이런 날 하루만이라도 남편 노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화장을 지우는 사이 남편의 방에서 쾅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 벽의 액자를 떼어내고 숨을 낮춘다. 남편이 입술을 달싹이며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남편의 화난 듯한 저런 모습은 처음이다. 잠시 후, 욕실 문을 열고 나오는 그의 얼굴에 물기가 흐른다. 대체 왜 내가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 당신 게임에 너무 깊숙이 들어온 것 같아, 그런데 더 참을 수 없는 건 내가 아직도 당신 앞에 있다는 사실이야. 그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인다. 나는 마른 침을 조심스레 삼킨다. 남편이 그에게 다가가 맨손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아준다. 갑작스레 치밀어 오는 질투심에 하마터면 나는 소리를 지르고 남편의 방으로 뛰어 들어갈 뻔했다. 심호흡을 해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액자로 구멍을 가려버린다. 샤워를 마치고 혼자 침대에 눕는다. 혼자 눕기엔 너무 넓은 침대다. 차라리 내가 방을 옮기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잠이 오질 않는다. 몸을 일으켜 화장대 앞에 선다. 실크 잠옷의 끈을 어깨로 밀어내자 알몸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이를 낳지 않은 내 가슴은 작지만 아직 봉곳하다.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남편은 섹스를 하다가 내 가슴에 손이 닿기라도 하면 흠칫하며 행위를 멈추었다. 그런 날 남편은 내가 잠들기를 기다려 침대에서 살그머니 빠져나가 욕실에서 한참을 있다 나왔다. 욕실에서는 샤워기 물이 흐르는 소리뿐이었다. 남편이 게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나는 그것이 남편의 습관이려니 했다.남편이 게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은 결혼하고 이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따사로운 봄날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그가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을 아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병원에 먼저 가자고 했던 것도 남편이었다. 병원에서 얻어진 결론은 그가 무정자증이라는 것, 단지 그것뿐이었다.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남자의 정자를 받는 것뿐이라고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의사의 한 마디에 얼마나 허탈해하고 참담해했던가.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그러나 늘 그랬듯 위로 받는 것은 나였고 주는 것은 남편이었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욕망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늘 불안하고 절실했던 일이다. 난 남편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다른 병원을 알아보자고 했던 날, 남편의 입에서 나온 '게이'라는 두 음절의 말은 내게 참으로 낯설고 생소했다. 너무 낯설어서 징그럽다든가 역겹다는 생각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 것일까. 난 왠지 모르게 담담했다. 지구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쟁 소식을 뉴스로 대할 때처럼 꼭 그랬다. 단지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교통신호를 위반하고 단속에 걸렸을 때처럼 그럼 이제 어쩌지, 하는 것이었다. 남편이 내게 그랬다. 당신이 원한다면 어떻게든 아이를 낳아도 난 괜찮아. 하지만 나는 아직 실행하지 않고 있다.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남편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우린 서로에게 필요하다.남편이 게이라는 것을 밝힌 후 내게도 변화가 왔다. 무시하려고 해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던, 늘 그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들었던 시어머니 앞에서 당당한 며느리가 됐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방에 들어와 우두커니 앉아 화장대 서랍을 정리한다. 자줏빛 벨벳이 깔린 서랍 안은 파우더가 떨어져 지저분하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짐짓 그가 나갔구나, 하고 혼잣말을 되뇌어본다. 크리넥스 티슈를 한 장 뽑아, 닦는다. 힘을 주어 닦아내려 할수록 파우더 분가루가 더욱 지저분하게 번진다. 티슈에 침을 묻히다, 이건 정말 남편과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세탁실 안에 있는 분무기를 가지러 갈 때였다. 현관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그가 뛰어 들어온다. 나는 그와 부딪히지 않게 오른쪽으로 비켜선다. 공교롭게도 그 또한 오른쪽으로 비켜선다. 나는 다시 왼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도 나와 부딪히지 않게 왼쪽으로 비켜선다. 눈을 마주친 후에야 나는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제자리에 서고, 그는 내 왼쪽으로 돌아 방으로 들어간다. 서있는 동안 내가 생각한 것은, 그래, 나에게 오른쪽은 그에게는 왼쪽이구나.그의 신발 한 짝이 마룻바닥에 반쯤 걸쳐져 올라와 있고, 현관 바닥에는 난데없이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혀있다. 방문 소리가 들린다. 반쯤 걸쳐진 신발은 나를 향해 콧날을 세우고 있다. 그가 내 오른쪽으로 비켜간다. 그는 몸을 돌려 반쯤 걸쳐 있는 신발을 현관 바닥으로 내린다. 그리고 그 신발에 발을 꿴다.목례.등을 돌려 그가 나간다.지금 나는 무엇을 하려다 여기에 서있었나. 그가 나를 비켜 지나갔던 오른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신발장. 가장 아래쪽에 놓인 여름 신발을 위쪽으로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일은 아주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다. 여름 구두를 위로 올린다. 세상에, 이 구두를 이제껏 여기 두다니.돌아서 마루에 발을 딛는 순간 현관에 찍힌 발자국이 보인다. 나는 내 맨발을 더러운 자국 위에 대본다. 이런, 형편없이 작다. 걸레를 가지러 간다. 미처 창문을 닫아 놓지 않은 동안 비가 왔는지, 베란다 바닥이 젖어 있다. 현관에 있는, 이제껏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모든 자국들을 지우기 시작한다. 현관은, 다시 현관이 된다.아침 식사 자리에서 남편이 출장을 갈 때 늘 그랬듯 나에게 행선지를 밝힌다. 그다지 보고해야 할 일도 아닌데 어김없이 요목조목 자신이 묵을 호텔과 전화번호까지 남기는 성의를 보인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그는 늘 얼굴에 홍조를 띤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에 감동하기에는 너무 익숙해져 있으며 많이 무심해져 있다. 이번에는 그와 함께가 아닌 남편 혼자 가는 출장이다. 오늘 당신 스케줄은 어떻게 되지. 남편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묻는다. 손톱 손질 하러 네일숍에 다녀올까 해요. 떠오르는 대로 말하고 나자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만 같다. 그와 나란히 남편을 배웅하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 외출 준비를 한다. 그와 우호적으로 지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에'라는 생각을 해봤을 때, 그가 만약 여자였고 만약 지금이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배워왔던 과거의 어느 시간대라면, 나와 그는 본처와 후실쯤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생각을 지워내기라도 하듯 재빨리 집을 나온다. 나는 가끔 내가 일했던 관광호텔 자리에 가 본다. 결혼을 하면서 일부러 피해 다니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호텔 건너편에 차를 세우고 내가 일했던 자리를 더듬어 보곤 한다. 그렇지만 도무지 내가 있던 곳이 가늠이 안 된다. 그 자리에 들어선 특급호텔은 어쩐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만 같다. 교통경찰이 지휘봉을 들고 다가와 얼른 차를 빼라는 시늉을 한다. 나는 미안하다는 수신호를 보내고 백화점으로 향한다. 명품 매장에서는 나를 알아보는 직원이 많다. 결혼 전 남편과 함께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너무 주눅이 들어서 괜히 얼굴이 상기되고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왠지 사람들이 네가 올 곳이 못돼,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상냥하게 웃는 직원이 나를 비웃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곳이 가장 편하고 좋다. 깨끗하고 안락한 것에 대한 적응은 빠르고 쉬웠다. 누군가가 내 어깨를 친다. 머플러를 사고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나오는 매장 앞에서였다. "얘, 정말 몰라보겠다. 네 소식은 들었어."난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증말 반갑다. 나 여기 백화점에서 하는 교양 강좌 들어. 너도 나와라."난 그냥 가벼운 미소만 짓는다. 그녀가 수다스럽게 말을 늘어놓는다."넌 참 눈에 안 띄는 애였는데, 신랑은 엄청 잘 만난 것 같더라. 여자 팔자는 그저 남편 능력에 달려 있다니까. 우리 요 옆 호텔 커피숍에라도 갈까."난 그녀에게 선약이 있다,고 하곤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건네며 머플러야, 했다. 그녀가 얼른 쇼핑백을 받았다."어머, 네가 필요해서 산 걸텐데, 내가 이래도 되나. 허긴 넌 이런 거 많지. 암튼 고마워. 여튼 언제 우리 한 번 꼭 만나자. 응?"대학을 졸업하고 호텔에 다니는 동안 난 사람들과 약속을 정하고 만난 적이 없다. 밤근무가 많아 사람들과 시간이 맞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다지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아파트 현관에서 깔끔한 정복을 입은 아파트 경비의 인사에 가벼운 목례를 한 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는 짧은 순간, 계기판에서 바뀌는 숫자를 올려다보다 문득 그가 집에 있을까 없을까를 점쳐 본다. 육개월이 넘도록 함께 살아왔지만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그의 겉모습이 전부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의 몸은 단단하다. 마른 체격 때문에 조금 왜소해 보이는 듯하지만, 러닝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러닝머신을 하는 그의 몸은 무척 탄력 있어 보인다. 내가 그의 몸을 본 것은 우연이었다. 한 달쯤 되었을까.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신상품으로 나온 페라가모 구두를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다 막 택시를 타는 그를 보았다. 급히 차를 돌려 그의 뒤를 밟았다. 그는 새로 생긴 휘트니스 센터 안으로 사라졌다.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잠시 후 러닝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은 그가 이층 통유리 앞에 나타났다. 그리곤 밖을 바라보며 러닝머신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척 생기 있고 빛나 보였다. 그 후 나는 가끔 그의 모습을 고의로 훔쳐보곤 했다. 어느 때는 남편과 함께 나란히 뛰기도 했다. 그럴 때면 사이좋은 삼촌과 조카쯤으로 보였다. 그의 생활은 그다지 규칙적이지 않다. 남편이 출장을 가고 난 후 집에 함께 있는 때면 식사를 할 때 외에는 방 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의 식사를 차려 놓고 노크를 할 뿐이다. 그가 조용히 식사를 마치는 동안 나는 혼자 방안에 앉아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본다. 그가 식기세척기 안에 그릇을 넣고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귀로 살필 뿐이다. 나는 그가 하는 일을 모른다. 그렇다고 궁금하지도 않다. 그가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어느 때는 그의 귀가가 늦어지기도 한다. 그런 때 방으로 들어가는 그의 옆얼굴은 멀리 어딘가를 다녀온 사람의 피곤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지나치게 운동을 해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그는 정말 남편을 사랑하는 것일까. 그저 남편의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들의 사랑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언젠가 남편과 헤어질 것이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미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처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연다. 열렸습니다, 하는 여자의 기계음 소리가 들린다. 신발을 벗으려는데 그가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다 내게 웃음을 짓는다. 돌아서는 그의 발걸음이 가볍고 경쾌해 보인다. 남편이 없는 집에 그와 단둘이 있다는 것이 오늘은 조금 어색하고 신경이 쓰인다. 며칠 전의 작은 소동 때문일까. 남편과 그는 그날 이후로 잘 지내는 것 같다.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이면 남편은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남편과의 형식적인 전화가 끝나자 남편 방의 전화벨이 울린다. 남편에게 온 전화일 것이다. 그는 그동안 집밖을 나간 적이 없다. 액자를 떼고 그를 훔쳐보기도 했지만 그는 책을 읽거나 서류 같은 것을 뒤적일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거실 소파에 앉아 남편이 즐겨 읽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막 펼쳐들 때였다. 주위에 켜놓은 촛불로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해 놓은 인도 여인의 사진이 일렁거렸다. 방에서 나온 그가 텔레비전 앞에 바싹 다가앉아 전원을 켠다. 그가 남편이 없는 이 집의 거실에 나와 텔레비전을 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나는 하마터면 무릎에 올려놓았던 잡지를 떨어뜨릴 뻔했다. 어쩌면 그가 나와 있다는 사실보다 늘 정적뿐인 거실에서 작지만 소곤거리듯 들리는 텔레비전 소리가 아주 낯선 곳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마음속에 작은 동요가 일어난 것 같다.나는 이내 평정을 되찾고 그가 없는 듯 잡지를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단지 유령일 뿐이다. 눈에 검은 물안경 같은 것을 쓴 아이들이 팬티만 입은 채로, 커튼을 쳐놓은 어두운 실내에서 강한 자외선을 쐬고 있다. 침묵을 깬 것은 그였다. 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요. 거실에서 텔레비전 앞에 바싹 다가앉아 있던 그가 크리넥스 티슈를 뽑듯 심상하게 묻는다. 몇 마디 말이 잠시 그와 나 사이의 짧은 거리로 가볍게 너풀거린다. 잠깐이지만, 그와 내가 지금껏 몇 마디나 나눠봤나 헤아려본다.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죠. 시큰둥한 내 대답에 그가 재빨리 말한다. 여긴 집이라는 느낌이 안 들어요. 그가 내가 넘기는 책장을 슬쩍 넘겨다본다. 음 나도 그 기사 봤어요, 햇빛에 든 비타민은 아이들의 뼈를 튼튼하게 한다고 하던 걸요. 그가 무엇이 우스운지 소년처럼 덧니를 드러내고 웃는다. 당신한테도 햇빛 비타민이 필요한지도 몰라요. 오늘은 함께 저녁을 먹고 싶어요. 어쩌면 그는 그리 조용한 남자가 아닌지도 모른다. 자신의 감정에 늘 솔직하고 농담을 잘하는 유쾌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밥을 먹을 때 나는 식탁에 항상 세 사람의 밥을 차려놓았지만,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는 않았었다. 제사상 한 귀퉁이에 저승사자 밥을 놓듯, 남편과 내가 먹는 밥상에 그저 수저나 하나 더 놓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함께 밥을 먹자니 정말 농담 같은 얘기다. 가을 햇살이 물고기 비늘처럼 유난히 번뜩인다.그가 차린 저녁 식사 앞에 앉으며 나는 그리 마음이 편치 못하다. 꽤 깔끔하게 만든 오므라이스는 맛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여긴 별로 집 냄새가 안나요. 그가 식기세척기에 접시를 넣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한다. 모델하우스에서 사는 기분이에요. 그가 나를 돌아본다. 당신의 모습을 봤어요. 대체 어떤 모습을 봤다는 것인지 언뜻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 사람과 함께 매일 밤 당신 방을 봤죠, 섹스를 끝내고 나면 우린 늘 당신 방안을 들여다봤어요, 당신은 늘 당신의 가슴을 만지더군요. 마치 남편의 방을 훔쳐보는 것을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부드럽게 만지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터뜨릴 듯이 손가락에 힘을 주더군요. 그가 커피메이커에서 커피를 따르곤 내 앞에 앉는다. 이상하지요, 당신의 모습을 봐야만 우린 잠들 수 있었어요, 당신 역시 그렇다는 걸 알아요. 난 소리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그에게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다. 지금 대체 그가 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을 뿐이었다. 전 내일 여기 없을 거예요, 그 사람은 당신이 내 아이를 낳길 원하지만 그건 그저 완벽한 가정의 모습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요. 지금 나한테 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지요, 내가 남편에게서 떠나길 원하나요. 그가 잠시 사이를 두더니 난 내일 여기 없을 거예요, 한다. 새벽까지 잠을 못자고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는 정말 집에 없었다. 남편은 그가 떠난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담담해 보였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겨울이 되었다는 것을 빼고는 우리는 여전히 다정하고 완벽한 이상적인 부부였다. 텔레비전을 켜자 아름다운 숲의 모습이 나타난다. 따사로운 햇살에 호수가 반짝거린다.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 그곳엔 따사로운 햇살과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자란 자작나무가 있습니다. 핀란드 자작나무의 선물'이라는 멘트와 함께 호수에 뛰어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잡힌다. 서양여자가 얘야 껌 씹고 자는 거 잊지 마라, 자일리톨 껌 씹고 자야지, 하면서 약병처럼 생긴 플라스틱 통에서 알약 같은 껌을 꺼내 잠옷을 입은 아이 둘에게 하나씩 먹이는 광고의 후속편인 것 같았다. 그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보았던 광고였다. 그때 참 이상한 광고라는 생각을 했었다. 자기 전에 껌을 씹으라니. 문득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는 그에게 묻기라도 하듯 되뇌어 본다. 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 어쩌면 그는 핀란드에 갔는지도 모른다.오늘은 남편의 새 파트너가 오는 날이다. 남편과 새 파트너를 위해 대형할인점에서 장을 봤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파트 입구에 들어가려는데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난다. 돌아보니 한 여자가 놀이터를 향해 아이를 부르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여자 아이 하나가 그네를 타고 있다. 아이는 어느새 그네에서 풀쩍 뛰어내려 제 엄마에게 뛰어 간다. 아무런 미련 없이. 그네가 흔들리고 있다. 놀이터 모래 바닥에는 수많은 발자국들이 찍혀 있다. 나는 시소 앞에 비닐봉투를 내려놓는다. 이제 그네는 흔들리지 않는다.그네 앞에 쪼그려 앉는다. 뒷걸음질치며 모래 위에 찍힌 발자국들을 손으로 지우기 시작한다. 온몸에 땀이 흐른다. 어느새 내 등은 시소에 닿는다. 내가 뒷걸음질쳐온 거리만큼 양손이 닿은 거리는 어떤 발자국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몸을 돌려 그네까지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한다. 문득 고개를 드니 시소 옆에 발자국이 하나 남아 있다. 내가 몸을 돌릴 때 생긴 미처 지우지 못한 내 발자국이다. 구멍이다.그가 떠나고 난 후 나는 남편의 방에서 나를 엿보는 구멍을 찾아냈다. 어쩌면 그것은 시어머니가 남기고 간 흔적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부러 없애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아직 아이를 낳는 일을 실행하지 않고 있다. 정말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늘이 잔뜩 무겁게 내려앉아있다. 어쩌면 눈이 올지도 모른다. 온다면, 첫눈이 될 것이다. ■ 소설부문 당선소감 / 이연희"믿어지지않는 당선 전화… 사람냄새나는 글 쓰고파"당선 연락을 받은 날, 일 때문에 부산 광안리 바다 곁에 있었다. 호텔 창밖으로 펼쳐진 광안대교가 막 조명을 밝힌 직후였다. 전화를 끊고도 실감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생각난 듯 창문을 열었다. 창밖에 몰려와 있던 바다 바람이 시위하듯 몰려 들어왔다. 나는 한동안 누구에게도 전화를 할 염도 내지 못했다. 내게는 인연이 없는 일인가보다고 체념하듯 잊고 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 내게 생겼다. 당선이라니!나는 늘 포기가 빠르다. 그런데 포기를 그리 잘 하면서도 그놈의 미련이라는 것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가 보다. 그래서 12월이면 늘 마음이 헛헛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엄마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조금 있다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엄마가 그러는데 누나 뭐가 됐다며? 그제야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래, 뭐가 됐구나. 고등학교 때만 해도 글 쓴답시고 분위기 잡는 애들이 가장 밥맛없었다. 그런 내가 문예창작과를 간 일 자체가 억지 춘향으로 맺은 인연이었다. 졸업만 하자고 남들보다 늦게 들어간 학교였다. 그런데 소설 쓰는 일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고 누군가 내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일이 제법 기뻤다.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지난여름 인도에 다녀왔다. 나는 지저분한 것도 싫어하고 복잡한 것과도 친하지 못하다. 한 마디로 나는 까칠한 사람이다. 열 시간이 넘도록 쿨렁쿨렁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다시는 이런 곳에 오나 봐라 하기도 했고 마지막 날은 인도의 병원 신세까지 졌다. 그런데 지금 왜 하필 그곳이 생각날까. 함께 간 글 쓰는 후배들은 밤새 글 쓰는 일에 대하여 침을 튀기며 이야기 하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나는 여행을 하고 싶었을 뿐이고 이왕이면 패키지여행보다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자유롭게 하는 여행을 바랐을 뿐이었다. 그들의 열정에 나는 잠시 주눅 들었다. 인도는 내게 길 위에서 길을 만난 곳이다. 수많은 길 위에 또 다른 길이 있는 곳.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그러하듯 그곳엔 끝없는 길이 있을 뿐이었다. 만약 내가 이 일을 계기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저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면서도 겁 많은 내가 뛰어들고 싶어 한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다. 소설과 귀한 인연을 맺게 해주신 박철우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큰 인사를 드린다.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을 것 같다.- 약력1972년 서울 생서일대학 문예창작과 졸업서일문학상, 태전문학상, 조선문학 대학문학상 소설 당선■ 소설부문 심사평 / 성석제·박범신"과감하고 담대한 글 전개… 풍속의 세부가 살아있어"한 해를 결산하는 동시에 새해의 출발점에 놓이는 신춘문예, 그 중에서도 소설 부문 투고작은 우리 사회의 풍속을 고스란히 반영하게 마련이다. 가족 해체, 경제위기 속에 소외된 사람들, 노인들의 병고와 생활고에 대한 연민 등 다양한 제재의 투고작 가운데 당선작 후보로 논의된 작품은 다섯편이었다.'푸른 이마'는 발달장애아를 자식으로 둔 여성의 생활이 그려진 작품으로 안정된 문장이 강점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고투와 몸부림이 읽는 사람의 공감을 자아내지 못 하고 개인적인 범주에 머물고 만다는 게 문제였다. '고추 농사'는 오늘날의 고민 많은 아버지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는 소설인데 비슷한 기성 작품들과 구별될 만한 개성이 읽히지 않았다. '코끼리 약국에서 만나자'는 소설 속 인물들의 대사가 생생하고 좀체 쓰지 않는 우리말을 찾아내고 쓰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소설의 전개가 불안하고 말하려는 골자가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반품'은 약점이 별로 없는 작품이다. 비정규직의 힘든 생활과 반품으로 돌아오는 상품을 대비해 가며 삶의 거친 주름과 살결을 조명해내고 있는 점이 호감을 준다. 관찰자의 시각이 날카롭고 의미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작품이 세계의 한 부분을 생생하게 재생해내고 있을 뿐,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데까지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당선작인 '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는 과감하고 담대하다. 묘사는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경쾌하다.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새로운 건 아니지만 부부와 남편의 남자 애인이 한 집에서 동거하는 풍경을 불편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풍속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써진 듯한, 자기 완결성이 높은 작품을 읽고 나서 '그래서?'라고 그 다음에 대해 묻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거기에 대한 대답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 또한 오늘의 풍속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어질 또 다른 작품으로 독자에게 응답할 것으로 기대한다.

2009-01-01 경인일보

시 심사평 / 장석주·최두석

'경제'라는 말의 위력에 비해 '양심'이라는 말의 힘은 너무도 미약해 보이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다. 경제가 아량을 베풀어 셋방이라도 살게 해줘야 양심이 깃들 곳이 있게 된 세상이다. 하지만 경제는 아무리 먹고 마셔도 배고픈 신화 속의 괴물처럼 만족을 모른다. 그 괴물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미약하나마 양심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시다운 시의 징표 가운데 하나는 얼마나 시에 양심이 살아 있느냐이다. 시 쓰기 자체가 살아가는 의미 찾기와 깊이 연관되는 것이라면 그 의미 찾기의 진실성 여부가 양심의 문제로 나타난다. 그것이 돈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돈벌이와 무관하게 시를 읽고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땅에 시가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고 신춘문예의 수많은 투고작 또한 희망의 한 모습이다. 모두 200여 명의 투고자 가운데 마지막까지 검토의 대상이 된 시를 보낸 이는 이문 신지영 심명수 김기훈 김소연씨 등이다. 이문의 '리딩 로드'는 발랄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언어구사가 돋보였는데 시상의 초점이 잘 모이지 않는 것이 흠이었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이야?'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주제 구현에 좀더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신지영의 '열섬'은 시적 형상을 구축하는 저력이 배어 있는 시이다. 하지만 투고작 세 편만으로는 시인으로서의 역량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심명수의 '내 책상 위의 포도 한 알 구를 때'는 상상 자체가 신선하고 재미있는 시이다. 사소한 소재로도 얼마든지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함께 투고한 시들이 이 시를 받쳐주지 못하였다. 김기훈의 '월세 방 있습니다'는 가난에 찌들지 않고 그것을 일종의 동화적 상상력으로 날려버리는 시이다. 무거움에 대해 가벼움으로 대응하는 발상이 신선한 시이다. 한편 김소연의 '꽃신'과 '비'도 가난한 삶의 체험을 우려낸 시인데 소박한 언어 속에 속 깊은 마음이 녹아들어 있다. 마지막 두 사람의 시에 심사에 임한 두 사람은 오래 눈길을 주었는데 결국 '소박한 언어 속의 속 깊은 마음'으로 저울추가 기울었다. 잔뜩 화장한 시가 유행하는 풍조에 견주어 중요한 미덕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빈다.

2008-01-01 경인일보

시 당선자 / 김소연

달이 밝고 자연 경관이 빼어난 곳에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았다. 처음으로 오래도록 집을 떠나 자연과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출발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글을 쓰기 위한 것이 되었다. 집을 떠나지 못하고 도심 속에 있을 때는 내 삶의 힘든 것만 보였다. 그래서 시도 힘들었다. 하지만 자연은 나에게 삶을 다르게 바라보는 법을 깨우쳐 주었다. 석 달 가까이 자연의 신비한 기운을 받으며 낮에는 산길을 걷고, 밤이면 달빛에 젖으며 밤이 새도록 만물의 창조주께 내 살 속 깊은 곳에서 곪고 부르튼 상처들을 들춰 보였다. 사람에게는 보일 수 없는 은밀한 것들조차도 자연의 침묵과 그 신비로움 앞에서는 아무것도 감출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에게 주어진 형벌 같은 이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까지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으로부터 들려오는 시의 소리는 삶이 너무 아프기 때문에 시를 쓸 수밖에 없는 그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나에게 시인의 정신과 삶을 일깨워 준 스승의 가르침을 되새겨 본다. "눈을 뜬 사람은 반딧불만 보아도 '빛난다'고 할 수 있지만, 눈을 뜨지 못한 자는 태양이 떠도 '어둡다'고 한다. 그러니 너는 눈을 뜨라"고 했다. 눈을 떠야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고, 그 생활 속에서 시가 온다는 것을, 시의 흐름에는 나의 생활의 흐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깊은 시는 내가 삶 속에서 그물을 깊이 던져 그것을 있는 힘을 다해 건져 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끝까지 열심히 할 것이다. 조금 더 수고를 하고 조금 더 애를 쓰면서. 마지막 최고까지 몸부림을 치며 정말 그만두고 싶은 순간에도 목숨을 내걸고 조금 더 올라가고 올라가면 더 엄청난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끝끝내 내 앞에 쌓아 놓은 종이가 바닥이 날 때까지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그렇게 시를 쓸 것이다. 고기를 몰아야 이미 쳐 놓은 그물망에 고기가 걸리듯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고달픈 인생이 시를 쓰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그물망에 몰았을 때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커다란 기쁨이 걸려들었다. 그리하여 나에게 삶에 대한 위로와 더불어 커다란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어린 감사를 드린다. 또한, 나의 소망되시는 하나님과 내가 시를 쓸 수 있도록 늘 사랑으로 가르쳐 주신 나의 스승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약 력 1973년 7월 7일 생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현재는 프리랜서로 출판사에서 교정 일을 맡고 있음

2008-01-01 경인일보

단편소설 심사평 / 공선옥·배명희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장연자의 '불청객', 리홍사의 '내 사랑 타워크레인', 이종태의 '마디', 홍명진의 '터틀넥스웨터', 모두 네 편이었다. '불청객'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는 은행원 남편이 불시에 집에 들러 점심을 먹으면서 굳게 잠긴 안방문과 가슴이 살짝 비치는 옷을 입은 아내를 의심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백주 대낮에 굳게 잠긴 안방문을 끝내 열어보지 못한 채 남편은 때마침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데리고 황급히 집을 나온다. 자신이 한때 바람을 피운 내연녀의 가정을 깬 경험이 있는 남편의 심리와 파괴에 대한 욕망과 그것을 절제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이중적인 모습이 잘 드러난 좋은 작품이었다. '내 사랑 타워크레인'은 고아원에서 자란 남자가 어릴 적에 헤어진 쌍둥이 누이를 찾는 이야기다. 공중에 높이 뜬 타워크레인 안에서 할 일이란 쌍안경으로 다른 사람의 거실을 훔쳐보거나 라디오를 듣는 일밖에 없는 타워크레인 기사의 생활을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재치 있게 꾸리는 솜씨가 돋보였다. 그러나 주제에 맞물리지 못하는 타워크레인에 대한 묘사가 많았고, 주인공의 과거가 너무 많은 분량을 차지하여 단편으로서의 균형을 깨트렸다. '마디'는 시신의 얼굴을 화장해주는 직업을 가진 여자의 이야기다. 특이한 소재를 치밀한 묘사로 차분하게 서술해 나간 작품이다. 주인공은 교통사고를 당해 패션디자이너의 길을 포기하고 장례지도사를 택한다. 현재 여자가 황폐한 내면을 갖게 된 원인이 진부하게 묘사되어 단편으로서의 세련미가 떨어졌다. 여자는 알고 지내던 남자의 화장을 마치면서 자신에게서 빠져나간 삶의 의미를 깨닫는데, 깨달음의 빌미를 준 남자의 생애 또한 평면적이라 아쉬웠다. 당선작으로 뽑힌 '터틀넥스웨터'는 안정된 문장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장애를 가진 여자의 원초적 욕망을 외면하지 않고, 인간의 외로움과 소외감을 감싸안으려는 따뜻한 작가의 시선이 돋보였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2008-01-01 경인일보

단편소설 당선자 / 홍명진

몇 년 전 소설 창작 공부를 해보겠다고 중앙대 예술대학원에 원서를 냈었다. 구두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복도에서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면서 몹시 떨었던 생각이 난다. 예제로 문학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소설을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등등의 질문이 나와 있었다. 소신껏 대답하면 된다고 앞서 시험을 보고 나온 이들이 귀띔을 해주었지만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까마득하기만 했다. 그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질문에 나는 무엇이라 답해야 하는가, 아니 그것을 한 번이라도 깊이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가. 소신은커녕 이제껏 나름대로 문학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오고 있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휘발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말을 조리 있게, 체계적으로 할 줄 아는 재주도 없다. 마주 앉은 사람과 똑바로 눈 맞추는 것도 버거워하는 타입이다. 그때 나의 시험관은 신상웅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소설의 '소'자도 문학의 '문'자도 일절 내비치지 않았다. 편안하게 웃으시면서 떨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지원 양식에 표기된 자료를 보시고 그쪽(내 태생지)은 바다가 참 아름다운데, 그 중에서도 바다를 끼고 달리는 7번 국도가 아름답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거기에 나는 웃는 얼굴로 답변을 했던가, 경직된 얼굴을 했었던가? 면접관 앞을 물러나면서 "아, 나는 떨어졌구나!" 생각했다. 결국 내겐 아무것도 묻지 않으신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아무 말 없음'이 내게 주어진 하나의 화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2년 동안의 과정을 수료하고 난 뒤에도 그 '아무 말 없음'이 늘 나를 괴롭혔다. 네 속으로 더 깊이 내려가라는 말처럼 생각되기도 했고, 삶을 똑바로 직시하라는 말처럼 생각되기도 했고, 때로 나의 심리적인 상태와 방황의 시간들 속에서 그것은 전방위로 나를 둘러싸고 놓아주질 않았었다.이제 당선 소식을 들었다고 해서 그 답이 명쾌해졌을 리 없음을 안다. 어쩌면 더욱 다양하고 잔혹하게 나를 괴롭힐지도 모를 일이다. 그 속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 기꺼이 나를 던져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멋진 당선 소감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만큼 나는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리라. 얼떨떨한 기분으로 당선소감을 쓰자니 손끝이 아직도 떨린다. 함께 창작 공부를 하는 마음으로 내 작품에 질책과 더불어 용기를 주었던 이들의 애정에 감사드린다. 열심히 해보라고 사랑으로 응원해준 남편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약 력1967년 경북 영덕 출생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수료전태일 문학상 소설부문 최우수상 수상

2008-01-01 경인일보

[2008 경인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작] 터틀넥 스웨터(홍명진)

가게 출입문에 달아놓은 풍경이 요란하게 울린다. 맑은 쇳소리에 느긋하게 풀어졌던 여자의 감각이 조급하게 오므라든다. 수은주의 온도가 갑자기 내려간 날이면 풍경소리는 더 쟁쟁하고 여운도 오래간다. 여자는 몇 모금 빨지도 못한 담배를 서둘러 비벼 끈다. 치약을 짜놓은 칫솔을 입에 물고 하수저장고의 스위치를 꽂는다. 위이잉 모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소용돌이가 일며 물살이 뒤엉킨다. 여자는 몸을 숙여 깊고 어두운 하수저장고 속을 들여다보며 양치질을 한다. 굵은 플라스틱 파이프가 잠겨 있는 물은 검다. 물을 많이 쓰지 않는 겨울철에는 사흘에 한 번씩만 돌려도 하수저장고의 물이 넘칠 일은 없다. 물이 다 빨려 들어갈 때까지 여자는 윗몸을 숙인 채 칫솔질을 멈추지 않는다. 저장고 바닥에 고여 놓은 벽돌의 한쪽 귀퉁이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여자는 모터의 전기 코드를 뽑는다. "안에 있는 거야?" 까칠한 백양클리닝의 목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으이 추워!" 깃털을 털듯 진저리를 쳐대는 철물점 여자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 스완뜨개방을 들락거리는 고정 멤버들이다. 철물점은 딸의 스웨터를 짜고 있는 중이다. 남편이 설비 일을 나갈 때는 여자가 가게를 보지만 일이 없어 남편이 가게를 보는 요즘, 철물점은 스웨터를 핑계로 거의 뜨개방에서 낮 시간을 보낸다. 덩치가 좋고 수수한 성격에다 입성이 대충인 철물점과는 달리 백양클리닝은 시장통 사람들이 알아주는 멋쟁이다. 남편은 허구한 날 빨랫더미에 파묻혀 허리 펼 짬이 없는데 여자는 세탁소 일엔 아예 관여하지 않는다. 백양클리닝은 반짝이가 살짝 박힌 진보라색 슬러브사에 같은 색상의 순모를 섞어 사각 숄을 짜고 있다. 꼬임이 많고 털이 긴 슬러브사는 무늬 없이 겉뜨기와 안뜨기만 한 단씩 섞어 짜도 그 자체로 포근하고 풍성해 보인다. 실의 색상을 고를 때도 까탈을 부리며 이것저것 집적거리더니 성격마저 진득하질 못해서 숄이 언제 완성될지는 알 수가 없다. 무슨 얘기들을 나누는지 늘 삐걱거리던 두 여자의 힐힐거리는 웃음소리가 제법 길다. 어지러운 웃음소리는 하수 파이프 속으로 빨려들던 소용돌이처럼 여자의 몸을 휘감는다.여자는 입을 헹구고 세면실 벽에 가로로 길게 누운 거울을 들여다본다. 요사이 부쩍 밤잠을 설친 탓인지 조막만한 얼굴은 부스스하고 등의 혹은 더 도드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해가 짧은 겨울철에 여자의 얼굴은 거의 창백하게 가라앉아 있다. 사계절 내내 바깥출입이 드문 편이지만 유독 겨울이면 더하다. 겨울이 닥치면 여자의 몸은 유리그릇처럼 투명해져서 제 몸을 이루고 있는 연약한 뼈마디들이 툭툭 불거지는 것만 같다. 구루병은 일종의 비타민D와 일조량의 부족 때문에 일어난다고 배웠다. 태양광선 일수가 많은 지역이나 생선을 많이 먹는 북극 사람들은 꼽추가 드물다는 걸, 더구나 꼽추는 유전병이 아니라는 걸 구루병을 배울 때 들었던가. 그때 여자는 의식적으로 햇볕을 쬐기 위해 애썼다.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가 수업을 받을 때면 혼자 교실 뒤편의 햇볕이 고인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서서 입을 커다랗게 벌리곤 했다. 여자의 손을 꼭 잡고 유독 습하고 그늘진 곳만 골라 걷던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몸집이 작고 가냘팠던 어머니는 손만은 사내처럼 거칠었다. 손마디 곳곳에 굳은살이 딱딱하게 집혔다. 쇠골무를 끼고 바느질을 하는데도 그랬다. 혼수 이불을 꿰매는 돗바늘에 눌린 자국들이 골무의 크기만큼 굳은살을 만들었다. 바느질품을 팔며 생계를 이었던 어머니는 한밤에도 여자의 머리맡에 앉아 바느질거리를 붙잡고 있었다. 햇빛을 못 보기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곧은 몸을 가지고 살았지만 병신자식보다 더 등을 구부린 채 살아온 사람이 어머니였다."뭐하느라 안에서 그렇게 꿈적대?" 여자가 가게 마룻방으로 들어서자 뜨개질거리를 펼쳐놓던 백양클리닝이 기다렸다는 듯 여자의 시선을 붙든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입이 근질거려 못 참겠다는 표정이다. 여자는 엉덩이 자국이 난 방석을 끌어다 앉는다. 무릎덮개로 무릎을 감싸고 밀쳐두었던 뜨개질감을 잡는다. 철물점은 벌써 전기장판이 깔린 바닥에 질펀하게 앉아 재게 손을 놀리고 있다. 어두운 계열의 그레이와 엷은 보라가 층을 지어 염색된 날염 혼방사를 7㎜짜리 대바늘로 꽈배기 무늬를 넣고 있는 앞판은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다. 백양클리닝처럼 호들갑스럽지 않은 철물점도 뭔가를 은근히 참고 있는 듯 얼굴에 웃음기가 남아 있다."내 참, 어이가 없어서. 글쎄, 우리가 오다보니까 천왕사가 유리문에 딱 붙어서 요렇게 안을 들여다보고 있잖아. 채신머리없이 그게 무슨 짓이야. 지나가는 사람들 눈도 있는데."백양클리닝은 앉은 자세에서 엉덩이를 쑥 빼고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어 흉내까지 낸다."덩치에 안 어울리게 남세스럽긴 하지. 그래도 뭐 무슨 볼일이 있어 그랬겠지."철물점의 대수롭지 않은 말투에 백양클리닝이 발끈한다."볼일은 무슨. 저번 언젠가도 그러고 있는 걸 내가 봤는데. 스완이 기분 나쁠까봐 말은 안 했지만 아니, 사내가 뜨개질방에 볼일이 있을 게 뭐야. 그렇잖아도 갈고리 같은 그 눈만 마주쳐도 어깨가 뻣뻣한 게 기분이 나쁜데. 스완은 이상한 낌새 못 챘어?"별 뜻 없음을 가장한 그 물음 속엔 단순하지 않은 호기심과 의구심이 깔려 있다. 점집 홀아비와 뜨개방의 꼽추 여자. 근거 없는 추문은 애드벌룬처럼 사람들 사이를 둥둥 떠다닐 것이다. 여자는 대꾸 없이 뜨개바늘만 놀린다. 생수남자의 키를 눈대중으로 가늠해 게이지를 냈지만 뒤판이 완성되고 앞판의 모양새가 얼추 잡혔을 땐 그의 몸을 만져본 것처럼 실감이 왔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 저녁 전에는 조끼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는 마음속에 묻어둔 생각이 겉으로 드러날까봐 애써 태연한 척 백양클리닝의 궁금증을 피해간다. 말꼬리를 잡히면 돌고 도는 말의 타래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수다스러운 여자들의 입을 통해 주인인 천왕사 남자의 필리핀인 아내가 한 달 만에 도망을 쳐버렸다는 것도 알았다. 놀란 토끼처럼 눈이 똥그랗고 얼굴이 기름칠을 먹인 것처럼 까맣게 윤기가 났다던 어린 그 여자를 문밖출입조차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제 터도 못 닦는 주제에 무슨 점쟁이냐고 대놓고 힐난하는 소리 역시 여자들의 입을 통해서 들었다. 들어오는 가게마다 수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장사를 접었다고 했다.재래시장 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이 가게는 목이 좋지 않았다. 시장 중앙통의 사거리를 중심으로 온갖 상점들과 난전이 북적대는 위쪽과는 달리 아래쪽으로는 살림집들이 섞이면서 풀이 죽어 있었다. 여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건강원이 들어 있었다. 유리문에는 개소주? 흑염소? 생사탕? 각종 과일즙을 저렴한 가격에 내려준다는 선팅지가 미처 떼어내지 못한 채 붙어 있었고, 시멘트 바닥엔 석유물이 든 듯 거무스름한 얼룩이 져 있었다. 세제를 잔뜩 묻힌 철수세미로 바닥을 닦아내는 동안에도 과즙과 뒤섞인 들큼한 냄새가 나는 듯해 여자는 바닥을 문질러 닦고 또 닦았다. 가겟방 뒤로 낮게 턱이 져 있던 곳은 여자가 들어오면서 미닫이문을 달아 살림방으로 꾸몄다. 옷장과 침대를 놓자 꽉 찬 그 방은 애초에 비품이나 물건들을 쟁여두고 창고처럼 쓰던 곳이었다. 그 안쪽으로 개수대가 놓인 부엌 겸 좁다란 세면실이 있고 뒤쪽 깊숙한 구석에 하수저장고가 있었다. 배수관이 시장통 안으로 흐르는 하수관으로 바로 연결이 되지 않아 모터를 설치해서 물을 빼낸다. 처음 이 가게를 보러 왔을 때 여자는 미궁처럼 검게 뚫려 있는 하수저장고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절망적이고 음침한 기운이 몰려 있는 하수저장고가 마치 여자가 등에 지고 있는 혹처럼 여겨졌다. "천왕사가 스완을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어. 정말 이상한 낌새 못 챘어?"백양클리닝의 말에 여자는 핏기 가신 창백한 얼굴로 웃고 말 뿐 돌돌 말린 실꾸리에서 실을 풀어내 왼손 검지에 걸고 재게 뜨개바늘을 놀린다."고깝게 생각하지 마. 누가 스완이 그렇데? 천왕사가 좀 음충맞아야지. 사내란 그저 점쟁이 할아비가 아니라 천왕신이라도 다 똑같은 거야."백양클리닝의 푸른 눈썹 문신이 갈매기 모양으로 휘어졌다 내려오며 슬쩍 여자의 온몸을 훑듯 스쳐간다. 말 따로 마음 따로, 때로 사람의 마음이란 체에 까불리는 겨와 같다. 학교 때 친구들도 하나같이 그랬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돌아서면서 슬쩍슬쩍 곁눈질로 여자의 등을 쳐다보곤 했다.소문은 어디까지 갔을까? 주인남자가 황토색 개량한복 위에 올겨울 들어서부터 껴입고 다니는 회색 스웨터가 여자의 솜씨라는 것쯤은 눈치챘을 것이다. 해묵은 작품이었다. 톡톡한 순모사로 앞섶을 갈라서 싸개단추를 달고 양쪽에 넉넉한 주머니를 넣었다. 친정아버지 생신 날 드릴 선물이라며 날짜를 맞춰 달라고 다짐까지 두며 재촉하더니 스웨터를 부탁했던 손님은 이사하는 날까지 나타나지도 않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 여자가 포장지에 싼 스웨터를 들고 천왕사로 올라간 건 계약서를 쓸 때 올라가 본 후로는 처음이었다. 다소 요란스럽다 싶게 차려놓은 암자의 불당 같은 내부는 출입구부터 연등이 치렁치렁 걸려 있었다. 키가 작은 여자의 머리에는 닿지 않았지만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숙여야만 할 것 같았다. 전세금이 모자라 차액을 월세로 물기로 하고 들어왔는데 몇 달째 주인남자는 여자가 준비한 월세를 받지 않았다. 검은 올리브색으로 옻칠이 된 탁자를 앞에 놓고 평상다리를 하고 앉은 주인남자 앞에 포장지 꾸러미를 내려놓으면서 여자는 얇은 속이 비치는 것 같아 손이 부끄러웠다. 주인남자는 언제 보아도 표정이 없었다. 울긋불긋한 단청으로 도배된 전면 벽의 험상궂은 탱화 속 신상을 떠다놓은 듯한 얼굴이었다. 주인남자는 여자가 밀어놓은 포장지 꾸러미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팔자에 자식이 아주 없는 게 아니야. 접신이라도 된 듯 덩치와는 다르게 앵앵거리는 주인남자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부처님 손바닥이란 말이 왜 있겠어. 미물 같은 인간들은 지 처지도 모르고 팔자소관을 거스르려고 날뛰지만 엥, 빌어! 빌어서라도 팔자에 있는 떡 부스러기라면 받아먹어야지. 여자는 까닭 없이 목덜미가 뜨거워지고 귓불이 붉어졌다. 마치 제 속에 품은 갈망과 생의 속살을 들켜버린 것처럼. 엉덩이가 푼더분하게 처진 바지저고리에 걸쳐진 스웨터 양쪽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등뼈를 늘인 짐승처럼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았을 주인남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좀처럼 얼굴을 부딪치지 않지만 어쩌다 뒷마당 한쪽 구석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올 때 이층 난간에 서 있는 그와 눈이 마주칠 때도 있었다. 먼저는 무안한 감에 눈을 피하지만 황급히 부엌 쪽문을 통해 가게 안으로 들어올 때는 뒤가 당기는 느낌에 번번이 몸이 허청거렸다. 하수저장고를 들여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도 이층 계단을 밟는 주인남자의 둔탁한 발소리가 들리면 여자는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그럴 때면 여자 외에는 드나드는 사람이 없는 부엌 쪽문의 잠금 고리를 새삼 확인하곤 한다."구절양장 같은 사람 속을 들어가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알아. 하여간 사람들이 천왕사를 찾아오는 걸 보면 아주 알조는 아닌가 봐."코를 쑥 빠뜨리고 뜨개질에 열중이던 철물점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올해 쉰인 철물점은 얼마 전에 첫 손녀를 보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딸이 아이를 낳았다고 쉬쉬하는 눈치더니 백일 지난 손녀딸을 데리고 뜨개방에 나와서는 아까워서 어쩔 줄 몰라 쪽쪽 빨았다. 여자는 보드라운 강보에 싸인 아기를 품에 안아 보았다. 오물거리는 입과 말랑거리는 코, 흑체리 같은 홍채가 여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기의 순두부 같은 살갗에 볼을 비빌 때 한 번도 무언가를 품어보지 못한 여자의 자궁에 더운 물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철물점은 딸의 인연에 낀 액운을 아기가 덮었다는 천왕사 말을 믿는 눈치였다. "사위자리가 영 마음에 안 들었어. 뭘 먹고 살는지, 철없는 것들이 저질러놓은 일이니 어쩔 수 없긴 했는데, 애 낳고 사위가 정신을 좀 차리는 것 같아. 이젠 직장도 잡았어.""그거야 뭐 점쟁이 아니라도 할 소리구만. 자식이 눈앞에서 꼬물거리는데 아무리 철없는 애비라도 그렇지. 지들 둘만 있을 때랑 똑같겠어?"백양클리닝이 입을 삐죽대며 받아친다."그래도 뭐가 보이니까 큰소리를 치지. 아닌 말로 점쟁이는 귀신과 노는 사람인데, 아무렴. 요기 찻길 맞은편에 식당하다 이불가게 낸 여편네는 아주 천왕사에 엎어져 사는데 하나 틀린 것 없이 딱딱 맞춘다던데 뭐.""그랬겠지. 갖다 바친 게 얼만데." 백양클리닝은 여전히 못마땅한 듯 비죽거린다."조상 중에 객사한 사람이 많아 비렁뱅이들이 달려든다고 먹는 장사는 안 된다잖아. 몇 번씩 간판을 갈아치우던 그놈의 식당 엎고 이불가게 차려서는 제법 장사가 되잖아. 천왕사가 그런 거 하나는 아주 용하게 본다는데."철물점은 백양클리닝의 심사가 꼬일수록 능청스레 말을 늘인다."거기가 어디 식당 자리야? 주변이 죄다 옷가겐데. 지나가던 삼척동자도 다 알겠다."백양클리닝은 사사건건 철물점 말에 어깃장을 놓는다. 수세에 몰리면 백양클리닝의 까칠한 목소리는 말끝이 딱딱 부러진다. 여자는 온수기 앞에서 커피를 탄다. 종이컵에 인스턴트커피 믹스를 하나씩 넣고 더운 물을 뽑는다. 18리터들이 푸른 물통의 수위는 거의 바닥이다. 여자는 온수기에 붙어 있는 아쿠아 유통 스티커를 들여다본다. 생수남자의 휴대폰 번호가 상호 밑에 적혀 있다. 남자는 언제든 전화만 하면 달려올 것이다. 생수통을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냉온수 기기에 물통을 꽂아주고, 빈 통을 내가면서도 여자의 눈을 한 번도 바로 쳐다본 적이 없다. 마치 여자의 등에 솟은 혹에 눈이 닿을까봐 무안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럴 때면 여자는 투박하고 넓적한 그 남자의 손이 자신의 등에 닿는 감촉은 어떤 느낌일까 터무니없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여자의 등을 쓸어준 사람은 오로지 어머니밖엔 없었다. 어머니의 손이 등을 쓸 때마다 가시가 박힌 듯한 등뼈에 따뜻한 온기가 돌아 여자의 온몸이 부드러워지곤 했다. 사람들은 감히 여자의 만곡이 심한 등을 만져볼 생각 같은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자는 늘 외로웠다. 좀 모자라긴 해도 그저 사람 심성 하나만 착하면 아무것도 난 바라지 않는다. 내가 널 치우지 못하고 가면 어쩌누…. 어머니의 소원은 그 한 가지였다. 만약 어머니가 생수남자의 선한 눈을 봤더라면 어머니 눈에 꼭 차지 않았을까. 행복한 하루 되세요. 물통을 올려주고 돌아서면서 남자는 한 번도 그 말을 빠뜨린 적이 없다. 어눌하고 더듬거리는 말투였지만 여자에겐 그 말이 따뜻하고 정겹게만 들렸다. 나이 마흔 넘은 노총각이래. 요새 장가 못 간 총각들이 얼마나 수두룩한데. 괜히 딴 나라까지 가서 여자들을 데려오겠어. 이사를 왔을 때 생수집을 연결해주며 철물점 여자가 귀띔한 말이다. "하여튼 난 여기 와서 마시는 커피가 젤 맛있어. 이거 한 잔 안 마시면 하루 종일 체기가 안 내려가는 것 같아서 원."철물점 말에 백양클리닝은 못 들은 척 홀짝홀짝 커피를 마시면서 여자에게 묻는다."이건 또 남자 조끼 같은데?"백양클리닝은 여자가 뜨고 있는 조끼를 끌어다가 손으로 비벼대면서 눈을 빛낸다."스완은 뜨개질 솜씨는 타고났어. 뭐든 시작만 하면 뚝딱 만들어내잖아. 우리 나이 때들은 어려서부터 뜨개질도 숱하게 했는데, 난 좀이 쑤셔서 못 하겠더라고. 주문받은 거야?"그 말에 대답은 않고 여자는 희미하게 웃을 뿐이다. 뜨개질거리를 잡고 있으면 마음속의 번민이 가라앉듯 한순간 몸이 고요해지면서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하지만 이 조끼를 처음 잡았을 때부터 여자는 가슴이 덤벙거려 자주 코를 빠뜨리고 허황되게 마음이 달뜨곤 했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여자도 알 수가 없다."군청색에 벌집무늬가 도도록하게 살아나니까 궁상맞을 것 같은 색깔이 처지지 않고 좋아 보이네. 나도 얇은 바늘로 좀 얌전하게 떠서 그 무늴 넣을 걸 그랬나."철물점도 뜨개질하던 손을 멈추고 백양클리닝이 만지고 있는 조끼를 건너다본다. "난 저 마네킹이 걸치고 있는 스웨터만 보면 탐나더라. 맘 같아서야 하나 해입고 싶지만 내 솜씨론 어림도 없고, 이거 끝내면 볼레로나 짜서 입어야지. 요샌 그게 유행이라며?"백양클리닝의 말에 여자는 마네킹이 걸치고 있는 스웨터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순모와 폴리에스테르 합성사로 진분홍과 감색, 회색과 아이보리, 자주색을 섞어 그러데이션 기법을 살린 터틀넥스웨터는 170센티미터의 가늘고 긴 몸매를 가진 마네킹에게 더할 수 없이 어울린다. 완성된 터틀넥스웨터를 마네킹에게 입힐 때는 알 수 없는 흥분으로 여자의 손끝이 떨렸었다. 그런 몸으로 태어나지 못한 게 안타까웠던 적은 있었지만 마흔이 다 되도록 여자는 옷에 대한 욕심을 부려본 적은 없었다. 올이 굵은 실로 두툼한 풀오버나 망토를 떠서 걸친 게 전부였지만 마네킹을 쳐다볼 때마다 여자의 눈은 아득해지곤 한다.뜨개질하던 손놀림이 자기도 모르게 느려진 여자는 가게 앞을 지나가다 되돌아와 선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뜨개 모자를 푹 뒤집어쓴 턱이 뾰족하고 깡마른 여자의 얼굴이 낯익은 듯하다. 젊은 여자는 마네킹이 걸친 터틀넥스웨터를 쳐다보고 있다. 옷이 마음에 들면 들어와 가격을 물어보는 이도 있지만 대개는 눈독만 들이다 그냥 가기 십상이다. 한낮의 짧은 햇살을 받고 선 여자의 얼굴이 희다 못해 푸르게 보인다. 여기저기에 걸어놓은 자잘한 뜨개 소품에서 피어나는 미세한 보풀 같은 먼지가 가게 안을 파고든 햇살에 실려 마네킹의 어깨위에 내려앉는다. 문밖의 젊은 여자는 한참만에야 문을 열고 들어선다.가게 안으로 들어선 젊은 여자가 마네킹이 걸치고 있는 터틀넥스웨터를 가리키며 가격을 묻자 백양클리닝과 철물점이 더 호기심을 보인다."정해진 가격은 없어요. 사신다면 실값하고 수공비 조금 더 얹어 받는 건데…."여자는 천천히 뜨개바늘을 놀리며 손님을 쳐다본다."그러니까 얼마냐고 묻잖아."철물점이 말끝을 흐리는 여자에게 다그치듯 묻는다."칠만 원은 받아야 해요.""그것 받아서 되겠어. 내 숄만 해도 실값이 그만큼은 들어가는데."여자의 말에 백양클리닝이 손님 눈치를 보며 입바른 소리로 거든다. 손님은 옷이 마음에 드는지 마네킹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다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이며 가게 문을 열고 나간다. 손님이 그냥 나가버리자 철물점과 백양클리닝이 더 실망하는 눈치다. 꼭 팔아야겠다고 뜬 것도 아니어서 임자가 있다면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고 마냥 마네킹이 걸치고 있어도 상관없는 일이다. 벌써 점심 차릴 때가 되었다며 철물점이 뜨개질거리를 챙겨 일어나자 백양클리닝도 싱겁게 따라 일어선다. 동네 여자들이 몰리는 날은 하루 종일 들락거리는 사람들로 뜨개방이 북적이고 오늘처럼 한가한 날은 철물점이나 백양클리닝도 심심한 풍경에 마음을 못 붙이고 일찍 자리를 떠버리기도 한다. 짤랑거리는 풍경소리가 어지럽게 흩어지고 나자 써늘한 한기와 함께 여자의 가슴에서 썰물이라도 빠져나간 듯 쓸쓸함이 묻어난다. 하긴 백양클리닝이나 철물점 여자가 아니라면 늦은 오후가 될 때까지 손님 하나 들지 않는 날도 있다. 여자는 언제나 혼자 있는 일에 익숙하다. 뜨개실을 사면 뜨개질을 가르쳐준다는 쪽지를 문 앞에 붙여 놓았지만 진득하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 뜨개질을 배우는 사람도 거의 없는 편이다. 겨울 한철을 보고 하는 장사지만 갈수록 손뜨개 수요는 줄어들고 있다. 가게 목이 나빠서만은 아니라는 걸 여자도 알고 있다. 여름에는 유리장식장 속의 묵은 뜨개실들을 한쪽으로 치우고 헤어핀이나 액세서리 같은 걸 들여놓아볼 생각이지만 뜨개방을 걷을 생각은 없다.여자는 짜고 있던 조끼를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가 부엌문 옆에 세워진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고 전기밥솥에서 밥을 푼다. 입 안이 껄끄럽다. 아침부터 커피 외에는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다. 식욕이 동하지 않는데도 여자는 개수대 위에 반찬그릇을 올려놓고 밥그릇을 한쪽 손에 든 채 마른 밥을 한 술씩 떠 넣는다. 혼자 먹는 밥만큼 서러운 건 없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은연사 대웅전에 모셔놓은 어머니의 기일이 내일이다. 세상없어도 여자는 그 날 하루만은 문을 닫아걸고 이른 아침 집을 나선다. 두어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도심 속의 절간이지만 여자는 거기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다. 김치 조각 몇 개로 마른 밥 반 공기를 겨우 비운 여자는 설거지거리를 개수통에 몰아넣고 하수저장고 곁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여자는 조금씩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때로 유일한 위안이 된다. 하수저장고 위로 난 철제 계단을 딛는 발자국 소리가 공명통처럼 여자의 머리 위에서 텅텅 울린다. 발자국 소리에 여자는 몸을 더욱 쪼그리고 앉는다. 손님인가? 먼 곳에서 알음알음으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은 거개가 여자들이다. 뒤로 돌아앉은 천왕사의 출입문을 찾지 못해 뜨개방에 들어와 천왕사가 어디냐고 묻는 여자들도 간혹 있다. 담뱃불을 끈 여자는 세면실 바닥의 수챗구멍 근처에서 오줌을 눈다. 날이 추워진 뒤로는 바깥에 딸린 화장실은 대변을 보는 일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도 기온이 더 떨어져 화장실 수도꼭지가 얼어붙으면 물을 퍼 날라야 할 형편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여자는 한 번도 바깥엘 나가보지 않았다.가게로 나온 여자는 둥굴레 티백을 머그컵에 담아 온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는다. 컵 7부까지 물이 차자 물이 쫄쫄거린다. 정기적으로 물이 오는 날은 내일인데, 하루 상간으로 물이 떨어진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일은 가게문을 닫아야 한다. 여자는 뜨개질거리를 끌어당기며 시계를 쳐다본다. 서너 시간 후면 조끼는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뜨거운 둥굴레차 한 모금을 머금자 생수남자의 몸에서 나던 은근하게 무른 짚 냄새가 나는 듯하다. 겨울이 닥쳐왔는데도 남자의 옷차림은 허술했다. 여름내 반소매 티셔츠에 주머니가 주렁주렁한 망사조끼를 걸치고 다니던 것을 벗고 팔목이 긴 셔츠 위에 아쿠아유통 마크가 새겨진 푸른색 작업복을 걸치긴 했지만 홑겹의 작업복은 소매 깃이 날깃날깃했다. 때로 빈 물통을 들고 나간 남자가 문밖에 세워둔 트럭에 휙 올라타 시동을 걸 때는 여자의 몸도 딸려 갈 듯 떨렸다. 트럭의 조수석에 앉아 하루 종일 남자를 따라다니며 사람 사는 세상의 복잡한 길들을 달려보고 싶었다. 매일 배달을 다녀요? 예. 거래처가 많아요. 수금은 잘 되나요? 아니요. 그것 때문에 사장님한테 자주 꾸중 들어요. 여기처럼 또박또박 주는 데가 많지 않아요. 남자는 여자의 오죽잖은 궁금증에도 친절하게 대답했다. 우린 먹어봤자 겨우 얼마밖에 안 되는데…. 여자가 미안한 듯 웃었다. 아, 아닙니다. 끊지만 말고 계속 먹어주세요. 제법 길게 대화를 나눌 때 그는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면서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졌다. 그러다 문을 열고 나갈 때면 문밖에서 자신감이 실린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남자의 목소리가 풍경소리보다 긴 여운을 남기며 되살아난다. 그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다는 주제넘은 생각은 여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지만 남자의 조끼 단이 한 올 한 올 더해질 때면 여자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어릴 때는 어머니가 늘 뜨개옷을 해서 입혔다. 거친 나일론사로 뜬 노란색의 단추 달린 스웨터는 소매 깃에 누런 콧물이 묻어 빤질빤질했다. 스웨터의 팔목이 짧아지자 어머니는 실을 풀어 조끼를 짜 주었다. 바느질하는 어머니 옆에서 여자도 뜨개질을 했다. 어머니가 쓰던 대바늘로 보풀이 피거나 자투리로 남은 실을 가지고 머리띠나 짧은 목도리 따위를 떴다. 코를 빠뜨려 전전긍긍하고 있으면 곁눈질로 건너다보던 어머니가 잃어버린 코를 찾아 주었다. 우리 딸 뜨개질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 바느질로 먹고 살 팔잔가? 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여자는 제 손으로 조끼를 짜 입었다. 가사시간에 뜨개질 실기가 들어 있을 때면 생전 여자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던 친구들이 몰려들어 수업 시간에 한 것을 묻곤 했다. 겨우 메리야스뜨기나 고무뜨기로 목도리를 뜰 수준밖에 안 되는 아이들은 선생이 내는 실기 숙제를 여자에게 부탁해오기도 했다. 여자는 친구들이 부탁을 해오면 거절할 줄 몰랐다. 생전 남에게 부탁 같은 걸 받아본 적이 없는 여자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해줄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꼭 실기 점수를 만점 맞아야 1등을 놓치지 않는다고 부탁한 친구의 장갑 한 켤레를 밤새 뜨기도 했다. 여자는 마법에 걸린 엘리자를 생각했다. 밤마다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 쐐기풀을 뜯어 백조가 되어버린 열한 명의 오빠를 위해 옷을 짜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화형장으로 끌려가는 그 순간까지 입을 꾹 다문 채 손가락이 찢어지고 피가 맺히도록 쐐기 옷을 짜야 했던 공주처럼 여자는 재게 뜨개바늘을 놀렸다. 여자는 차라리 자신이 사악한 마녀의 주문에 걸린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무심한 여자의 손놀림이 기계적으로 빨라진다. 손님이 들어와 가게 안을 둘러보거나 실을 고를 때도 여자는 뜨개바늘을 놓지 않는다. 손님이 수십 가지나 되는 실들을 뒤적거리며 색을 정하지 못해 망설이고 있을 때 여자는 조바심이 난다. 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보고 카탈로그를 펼쳐주거나 쌓인 실들 사이에서 색을 찾지 못할 때는 실 조각을 달아 스카치테이프로 색상을 분류해둔 견본을 내민다. 옷으로 짜였을 때와 색감의 차이는 의외로 다를 수 있다는 걸 여자는 강조한다. 조끼를 짠다며 오십 그램씩 여섯 뭉치가 들어 있는 1파운드짜리 감색 세트를 골라간 손님은 아마 뜨다가 다시 찾아올 것이다. 성인용 조끼 한 벌을 짜는 데는 그보다 두어 뭉치의 실이 더 들어간다. 떠보고 실이 모자라면 다시 오겠다고 손님은 고집스레 말했다. 실은 같은 색상이라도 삶는 염색 솥이 다르면 미미하지만 이색(異色)이 나온다. 여자는 뜨개질거리가 정해지면 아예 실을 모개로 구입하라고 충고한다. 같은 번호의 색상을 구할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손님이 두엇 다녀가고 나자 문밖 풍경이 흐릿해지며 가게 안의 불빛이 도드라진다. 철물점과 백양클리닝은 오늘 다시 안 올 모양이다. 다 뜬 앞판을 뒤판과 돗바늘로 잇고 목둘레와 진동둘레를 마감한다. 여자는 완성된 조끼를 바닥에 펼쳐놓고 흡족한 듯 바라본다. 작업복 잠바 속에 받쳐 입으면 톡톡한 것이 보온성이 뛰어날 것이다. 여자는 온수기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보며 전화번호를 누른다. 물이 떨어졌어요. 오늘 올 수 있죠? 별다른 말이 아닌데도 머릿속에 떠도는 그 말을 생각하자 가슴이 울렁거린다. 신호가 오래 울리도록 전화는 연결되지 않는다. 무슨 일일까. 보통 두서너 번 신호음이 가면 대뜸 안녕하세요, 아쿠아 생숩니다,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여기 뜨개방인데요, 여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남자는 아, 안녕하세요, 어눌한 목소리로 이내 여자를 알아차리곤 했다. 통화 연결이 안 되니 메시지를 남기겠냐는 기계음을 듣고서야 여자는 송수화기를 내려놓는다.드문드문 오가는 사람들이 통유리 상자 안에 든 인형을 바라보듯 여자를 흘끔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이내 걸음을 빨리하며 사라진다. 어둠이 내려앉는 이 짧은 일몰의 시간에 존재감을 잃어버리면 여자는 마음이 겉돌고 몸이 떠서 아귀가 맞지 않는 문처럼 덜컥거린다. 여자는 눈을 끔뻑거리며 문 밖에 둔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다시 한 번 전화를 해볼까 망설이고 있는데 백양클리닝이 지나가며 이쪽을 유심히 쳐다본다. 롱 코트에 숄더백을 멘 차림새가 심상치 않다. 어깨 품이 조붓해 옷맵시가 나이답지 않게 예쁜 백양클리닝은 나 어때? 하는 표정으로 여자에게 손을 살짝 흔들어 보이고는 사라진다. 백양클리닝에게 남자가 있다는 은근한 소문이 진짜일까? 짐작할 수 없는 일들은 종종 이율배반적인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백양클리닝이 여자와 천왕사와의 관계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처럼.여자는 조끼를 개켜 한쪽에 밀어둔다. 손에서 뜨개바늘을 놓으면 여자는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 같다. 늘 무언가를 뜨고 있었고, 뜨는 행위를 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뜰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존재감을 주었다. 더구나 이 조끼를 잡은 순간부터 여자는 몇 배의 존재감으로 차오르는 충만감을 맛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듯한 결락감이 몰려온다. 망연해 있던 여자는 출입문에 달아놓은 풍경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낮에 터틀넥스웨터의 값을 물어보고 간 젊은 여자다. 손님은 주저 없이 마네킹이 걸치고 있는 스웨터를 가리키며 입어 봐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여자가 건네준 스웨터를 들고 손님은 전신 거울 뒤의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마네킹의 사이즈와 거의 흡사한 손님의 몸에 옷은 맞춘 듯이 품이 알맞다. 팔등신의 곧고 긴 몸매, 더군다나 두 번 접힌 목 부분이 손님의 군살 하나 없는 긴 목 아래로 차분히 퍼지며 터틀넥스웨터의 포인트가 제대로 살아난다. 손님이 옷값을 계산하고 나간 뒤 여자는 알몸으로 서 있는 마네킹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놓는다. 자신의 몸이 벌거벗고 있는 마네킹마냥 춥고 아리다. 그리 넓지 않은 가게 안이 텅 빈 듯 허전하다. 여자는 하수저장고가 있는 세면실로 들어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담뱃불을 붙인다. 오전에 한 차례 물을 뺀 하수저장고는 검게 팬 구덩이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물이 찬다면 여자의 몸을 삼키고도 남을 깊이다. 여자는 담뱃불을 끄며 부르르 진저리를 치듯 몸을 떤다.가게로 나오자 주인 남자가 스웨터의 양쪽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어정쩡하게 서 있다. 좁은 가게 안을 훑어보던 남자의 눈은 열없이 비어 있는 여자의 눈을 스치듯 훑는다. 간혹 가위눌리는 꿈을 꿀 때처럼 여자의 몸이 오그라든다. 누군가 부엌 쪽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여자의 머리맡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다. 깨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자는 점점 더 깊이 꿈의 타래 속으로 말려든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는다. 어느새 쪼여들었던 여자의 샅이 터진 토마토처럼 벌어지고 불거진 혹이 곧은 뼈로 펴져 바닥에 납작하게 눌린다. 자신을 내리누르는 완력이 주인남자인가 싶어 베일을 벗길라치면 이내 생수남자의 실루엣과 뒤섞여 헝클어진 실꾸리로 변한다. 꿈은 번번이 캄캄한 하수저장고의 검은 물처럼 차올랐다가 깨고 나면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말짱하게 비어버린다. 스웨터 하나 도톰하니 짤 수 있나? 경망스러운 어린애 같던 주인남자의 목소리는 더없이 평범한 중년남자의 점잖은 목소리로 돌아와 있다. 이젠 스웨터를 벗고는 못 살겠네. 주인남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양쪽 주머니가 축 늘어진 주인남자의 회색 스웨터는 벌써 몇 해나 입은 것처럼 후줄근해 보인다. 여자가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벨 소리에 주인남자의 눈이 여자의 도드라진 이마에 붙박인다. 그는 마치 눈으로 소리를 듣고 있는 귀머거리 같은 표정이다. 여자는 천천히 수화기를 든다. 안녕하세요, 전화번호가 들어와 있어서 전화 드렸는데요. 잘못한 것이 있는 아이처럼 생수남자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없다. 물이 떨어져서요. 생수남자는 여자의 목소리를 알아채지 못한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생수 배달을 그만뒀습니다. 여자는 뜨개방인데요, 라는 말을 목젖까지 밀어 올렸다가 삼킨다. 대리점 전화번호를 가르쳐 드릴까요? 더듬거리는 생수남자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여자가 전화를 끊고 났을 때 주인남자는 가고 없다. 풍경이 흔들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귀가 먹었던가. 유리문에 검은 콜타르가 엉긴 듯 밖은 농밀하게 들이찬 어둠뿐이다. 여자는 뜨개실을 고르고 뜨개바늘을 고른다. 5㎜짜리 바늘을 집었다가 다시 4㎜짜리 바늘을 집어 든다. 시작코를 거는데 머릿속이 멍해진다. 머릿속에 밑그림이 없는 뜨개질은 매듭이 없는 바느질과 같다. 하다못해 목도리조차도 첫코를 거는 그 순간부터 마음이 정해져야만 진행이 가능하다. 주인남자의 게이지를 가늠하며 코를 잡아가다가 알몸으로 구석에 서 있는 마네킹을 쳐다본다. 손님이 한둘 더 들기도 할 시간인데 출입문에 달린 풍경은 얌전하다. 여자는 코를 잡던 실을 풀어버리고 마네킹의 사이즈를 가늠하며 다시 첫코를 건다. 잡아가던 코의 수를 놓쳐 고개를 들자 몸을 말듯 웅크리고 앉아 있는 꼽추여자의 모습이 가게 유리문에 오롯이 도드라진다. 그 모습에 여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2008-01-01 경인일보

시 심사평 / 김정환·도종환

시를 쓰는 우리도 늘 경계에 서 있다.그 경계에 서서 "하루 종일 위태롭게 뒤뚱거리며" 산다. 연못가에서 소금쟁이를 바라보다가 시의 화자가 느꼈던 그 경계의 아슬함과 위태로움은 시에도, 시를 쓰는 삶에도 역시 매일 찾아온다. "잠영도 승천도 하지 못한 채" 우리는 가라앉을 수도 날아오를 수도 없는 진퇴유곡의 경계에 갇혀 살아야 한다.그러나 그 고해(苦海)를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응시하면서 건너가는 일, 그게 우리의 선택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소금쟁이를 맛보다'는 밀도 높게 형상화 하고 있다. 미세한 현상을 놓치지 않는 감각적인 눈이 있고 그것을 깊이 있는 삶의 철학으로 끌고 갈 줄 아는 힘이 있다. 시적 긴장이 살아 있고 시의 내면이 꽉 차 있다. 심사위원들이 당선작으로 합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울러 언어에 의존하고 싶은 유혹에 끌려가기보다는 '호랑이가 없다'와 같은 시에서처럼 삶에서 우러난 시가 좋은 시라는 믿음을 견지하면 좋겠다.'바닷가에 서서','곰국'과 같은 시들도 충분히 당선작이 될 만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야영'도 삶과 언어가 육화되어 있는 탄탄한 작품이었다. 다만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이 이런 작품과 같은 완성도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포클레인','바다는','종착역에 대한 세 개의 레토릭'등도 모두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이번에 선정되지 않은 것이 더 좋은 시를 쓰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2007-01-01 경인일보

시 당선자 / 한창석

어떤 음성도 수신되지 않는 묵음과 잡음뿐인 라디오를 붙잡고 상심해도 그는 당신의 때가 이르기 전에는 응답하시지 않는다. 내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고 맘을 놓아야 당신의 꿈을 나를 도구삼아 이루심을 믿는다. 하나님이 열어 주시지 않으면 호리병에 다시 나를 가두고 네 번째 천년을 기다리려고 했다. 가나안에 다다를 수만 있다면 광야의 시간은 셈하지 않겠다고 기도했다. 그 때 당선 소식을 들었다. 필마단기로 시와 씨름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눈이 젖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 그 분들이 당신의 살을 남김없이 발라내어 나를 먹이신 것을 잘 안다. 당연한 일인 양 받아먹어 온 부끄러움에 목이 메인다. 송하춘 선생님! 내게는 너무도 푸르고 넓은 바다인 그 분의 품에서 나는 영혼의 뼈마디까지 틀어 퍼덕이고 싶었다. 나의 헤엄으로 선생님께 작은 미소라도 드릴 수 있기를 바란 것은 이미 너무 오래된 소원이었다. 정진규 선생님, 최동호 선생님과 김인환 선생님, 이남호 선생님께서도 나의 서툰 헤엄을 지켜보아 주실 것이다. 떠나온 모천의 이상우 선생님, 박범신 선생님, 김석환 선생님, 이재명 선생님, 고운기 선생님을 뵙고 떠나온 나날들만큼 이마를 땅에 대고 아가미를 벌름거려야 할 일이다. 연두부 같은 오빠를 응원해준 동생 정화와 승덕이에게도 언제나 고맙다. 깜깜한 지난 외로움이 달콤했다고 위증하지만 사실 무수한 멀미들은 맵고 썼다. 고비마다 산호섬이 되어 준 소중한 동무들, 대학원 식구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옹알이에 귀 기울여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시시한 시, 시들시들한 시, 급기야 허연 배를 위로하고 떠오르는 시체가 되지 않고 늘 등 푸른 시를 쓰겠다고, 아니 등 푸른 삶을 살겠다고 약속드린다. 끝으로, 귀한 지면을 통해 시인의 삶을 다짐하게 해 주신 경인일보사에 감사드린다. 약력1975년 서울생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고려대학교 국문과 박사 수료

2007-01-01 경인일보

단편소설 심사평 / 백시종·이순원

소설은 글쓴이의 특별한 체험을 오직 사실에 바탕으로 하여 적어나가는 수기와도 다르고, 또 허구에만 지나치게 의존하여 현실적 설득력을 잃어서도 안된다. 허구적 바탕 위에 현실적이고도 보편적인 설득력을 얻을 때 감동과 울림이 있다.'안개별'(홍신영)은 우리가 살아가는 한 시대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그러나 선배와 이모부의 죽음이 한 실에 꿰어지지 않고 작품 안에서 서로 따로 노는 느낌이다.'그 화려하고 참혹한 빛'(허윤실)은 우선 안정된 문장이 눈길을 끈다. 여자는 소아암으로 아이를 잃고, 어린 시절 언니에 대해 가졌던 살의를 떠올린다. 아무리 인과응보적 심정이라 하더라도 삽화도 억지스럽고 연결 자체도 억지스럽다.'옥상'(김태우)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의 입장에서 자살의 유혹과 심리를 그리고 있다. 작품 끝까지 긴장감이 배어난다. 그러나 최근 소설 소재로 너무 익숙하고, 부분부분의 상황 또한 과장되어 있어 제외시켰다.그렇게 보자면 당선작으로 뽑은 '곡비'(조여일) 역시 흠이 없는 게 아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남의 죽음에 가서 곡을 해주던 '곡비'였다는 설정부터가 현재 우리 삶의 시간으로 볼 때 다소 억지스럽다. 그럼에도 문장과 완성도에서 가장 앞서고, 죽음을 통한 한과의 화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무리없이 그려낸 이 작가의 역량을 더 크게 보기로 했다. 부디 정진바란다.

2007-01-01 경인일보

단편소설 당선자 / 조여일

배꽃 같은 내 어머니는 꼽추 춤을 잘 췄다. 속치마 위에 저고리만 입고 그 속에 베개나 옷가지를 넣어 곱사등이가 되었다.사람들은 어머니를 보며 배꼽 빠지게 웃었지만 어린 나는 그런 어머니가 밉고 싫었다.어머니를 미워했던 마음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슴에 똬리처럼 틀고 앉아 있는 어머니를 한 올 한 올 풀어내고 싶다. 이제 희수를 바라보는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제 출발해도 된다는 인정을 받은 거라 생각하고 좋은 작품을 쓰기위해 노력하겠다.삶의 기울기를 문학에 두게 한 채길순 교수님과 문예창작과 교수님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드리고 힘들 때 버팀목이 되어 준 남편과 딸, 문우들, 글쓰기의 영감을 준 그분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바다가 보고 싶다.동해였다. 해안선을 따라 달렸다. 쪽을 삼킨 바다는 날 희롱했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숨이 차 한 박자 쉬고 내게 오려는 듯. 바다와 나는 밀고 당기면서 신경전을 벌였다. 신경전을 벌이는 순간순간이 내게는 시작이고 끝이었다. 나는 바다가 아예 멀어질까봐 조바심을 냈다.바다가 보고 싶다.내가 불리하더라도 해안선을 따라 나는 바다와 질펀하게 신경전을 벌이고 싶다.약력1965년 충남 천안 입장 출생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07-01-01 경인일보

[단편소설 당선작] 곡비(哭婢) - 조여일

엄니는 등에 울음통을 짊어졌다. 보리쌀 한 되에 울고 동전 몇 닢에도 울었다. 엄니가 우는 날은 배가 불렀다. 그래도 나는 '저 놈의 울음 통!' 하면서 잠든 엄니의 등을 발로 차고 도망갔다. 외할머니가 감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아버지가 술에 취해 물에 빠져 죽었다. 엄니는 울지 않았다. 사람들은 엄니를 독한 꼽추라고 했다. 아침부터 비는 간간이 흩뿌린다. 일기예보에는 없던 비다. 묵은 솜 같은 구름은 서로 엉겨있다. 마음이 편편찮다. 일을 끝내놓고 왔더라면 이렇듯 불편하지는 않을 터다. 그가 백중굿에 쓸 깃발을 만들고 그 뜻을 알리는 문구를 먹물로 쓰라고 했다. 그러나 흰색 천으로 깃발만 간신히 만들고 문구는 넣지 못했다. 굿판의 의도를 한 눈에 알 수 있게 쓰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틀을 신중하게 생각했지만 마땅한 문구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흰색 무명천을 길게 마름하고 시침질해서 대나무에 달아놓기만 했다.자동차 바퀴가 미끄러질 것만 같아 두 손으로 운전대를 꽉 잡는다. 어깨가 뻐근하고 눈도 아프다. 등을 움죽거려 허리를 곧추세운다.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위해 속도를 늦춘다. 철책선 너머에 깎아지른 산을 덧씌운 그물망이 보인다. 그물망 밑으로 불규칙한 바위와 간신히 살아남은 것 같은 풀과 아주 작은 묘목들이 눈에 띈다. 장애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한 묘목은 선이 가늘고 볼품없이 휘었다."늦어도 모레 아침까진 와야 한다."어제 아침, 스님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의 넋을 보듬어 줘야 되지 않겠냐는 말씀을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착잡했다. 생전의 어머니에게 살가운 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애틋하게 그립지도 않았다. 이제 와서 스님의 뜻에 따라 어머니 넋을 보듬기엔 서먹하고 낯 뜨거운 일이다. 그러나 스님 말씀을 나몰라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불가의 음력 7월 15일은 우란분절이라 하여 1년 중 가장 좋은 날이다. 지옥문이 열리는 날이라 조상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원하고 영가(靈駕)를 천도한다. 이 날은 스님들의 하안거가 끝나는 날이고 백중일이기도 하다.스님은 백중날 지옥의 문이 열리매 내 정성이 그 곳에 닿아 어머니 넋을 보듬어 천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어머니에 대한 그런 정성이 내게 있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고인이 됐지만 이쯤에서 낙타처럼 짐 진 어머니의 실체에 대한 혐오와 어머니의 존재를 강하게 부정했던 어린 날의 면구스러움을 사죄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스님은 어머니의 영가에게 입힐 한지로 된 해탈복과 이승과 저승 간의 고해 바다를 건널 때 타고 갈 배를 내가 만들길 바랐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천도 제를 지낼 수 없다고 하자 스님은 그것만 만들어 놓으면 백중날 제를 지내고 영가를 태워서 천도하는 일은 당신이 알아서 하겠노라며 완고한 자세를 보였다. 1㎞전방에 휴게소가 있다.그림자처럼 키가 훌쩍한 그는 겨드랑이가 보이도록 왼팔을 크게 벌려 장구의 궁편을 채로 벌처럼 톡 쏠 때 학 같았다. 그러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분무기로 뿌려 놓은 것처럼 안개 같은 푸른 땀이 이마를 덮곤 했다. 대가 없는 강습을 열정적으로 하는 그가 참 신기했다. 풍물패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직업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풍물은 그저 일상생활의 피로나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강습을 하는 건 그의 직업이 쇠잡이인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풍물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처럼 하고자 하는 일에 미쳐야 산다면 나는 설 미쳤다.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모든 것이 무모하게만 생각됐을 그 때, 구청 담벼락에 붙어 있는 풍물 굿의 포스터를 보았다. 상쇠가 채상을 돌리면서 꽹과리를 치는 아주 역동적인 모습이었다. '백중굿'이라고 인쇄된 포스터를 그 자리에 붙박고 한참 쳐다보았다. 그가 속해있는 풍물패와 그의 이름이 선명히 박혀 있었다. 그가 머리에 쓰고 있는 채상과 이름 끝 자를 번갈아 보면서 어쩌면 그는 풍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끝 자가 빙빙 돌고 있는 채상과 모양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깃털로 장식된 채상의 부들은 움직임으로 제 모습을 표현하는 것처럼 그의 이름 끝 자도 출렁이며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그는 움직임으로 자신의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이름과 채상의 묘한 조화! 그는 한번이라도 그런 생각을 해 봤을까.며칠 후 나는 그가 있는 풍물패 '공간'으로 갔다. 반 지하의 계단 밑에서 잠시 망설이다 가슴을 내밀어 숨을 쉬고 두어 번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확실치 않은 남자의 저음을 듣곤 조심스레 문을 당겼는데 삐드득하는 예상치 못한 소리에 얼마나 놀랐던지. 포스터의 역동적인 모습과는 달리 실제의 그는 고요하고 정제된 느낌이었다. 그게 벌써 일 년 전 일이다.흩뿌리던 빗줄기가 어느새 굵다. 앞 차와의 간격이 좁혀진다. 부분적인 정체 구간이다. 차창이 뿌옇게 흐려온다. 티슈로 닦아내도 그때 뿐, 다시 시야를 방해한다. 차창을 조금 연다. 비스듬히 내리는 비가 잘게 튀어 얼굴을 적신다. 간헐적으로 움직이는 윈도 와이퍼 사이로 앞차가 보인다. 뒷좌석 등받이 위쪽에 장식용 강아지 한 쌍이 놓여있다. 점박이다. 강아지의 목은 쉼 없이 달랑거린다. 상체를 앞으로 당겨 강아지를 맥없이 바라본다.어머니의 키는 내 가슴께 닿았다. 갓 돌이 지난 어머니를 여덟 살 난 외삼촌이 등에 업고 감나무를 올라가는데 느슨해진 포대기 밑으로 어머니가 쑥 빠졌다. 떨어지면서 다친 허리가 그대로 굳어 곱사등이가 되었다. 하체에 비해 넓은 어깨는 근육이 잘 늘어나지 않아서 목을 움직일 때마다 따라 움직였다. 그래서 옆이나 뒤를 흘기듯 보았다."북이 '궁'을 잡아먹기 때문에 '따'가 중요한 거야."열채를 잡은 내 오른손에 자꾸만 힘이 들어가자 그는 힘을 빼라며 소리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손과 손목과 팔과 그리고 어깨에 힘을 빼고 쳐야만 옳게 소리가 나온다고, 그러려면 많은 연습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며 입귀에 버캐가 끼도록 설명할 때 그의 눈은 반짝 빛이 나면서 물이 차오른 미루나무 같았다. 그가 내는 예리하고 선명한 소리들은 30평 쯤 되는 지하공간을 에워 싼 올록볼록한 흡음재에 부딪혀 사방을 맴돌다 천장과 벽에 찰싹 달라붙었다. 하다못해 채상이나 고깔에도 그 소리는 배었다. 이중으로 되어 있는 '공간'의 문을 열면 언제나 그를 닮은 소리들이 나를 통과하곤 했다.어머니는 종종 나를 스님이 계신 절로 보냈다. 절 아래는 동네가 여럿 있었고 생명이 태어나기도 했지만 죽기도 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죽음을 품었으리라. 초상은 봄철에 많이 났다. 겨우내 혼신을 소진하고 명줄을 놓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스님께 보냈는데 어머니가 내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까닭임을 어림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동네 어귀를 벗어나면 큰 둑이 있었다. 둑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모두 논이었고 반대쪽은 가뭄을 대비해 물을 가둬놓은 저수지였다. 아이들은 둑 위에서 놀다 지치면 어른들 몰래 저수지에서 멱을 감았고 간혹 물에 빠져 죽었다. 꼭 사람이 죽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어른들은 지박령 때문이라고 했다. 죽은 영혼이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가 아이들을 꼬여 데려가는 거라고. 아버지도 그랬을까?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읜 내게 스님은 아버지였다. 어머니에 대한 불평과 악담을 어린 입술로 오물거릴라 치면 스님은 내 손목을 잡고 극락보전 뒤쪽으로 가곤했다. 그 곳엔 점재된 수많은 동백나무가 완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동백은 산골의 봄추위에도 붉은 꽃을 피웠는데 마치 앙살궂은 나를 꾸짖는 것만 같았다. 산길을 따라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빽빽한 나무숲이 있었다. 그 앞에 나를 세우고 검지로 나무들 틈에 위태롭게 서 있는 비쩍 마른 소나무를 가리켰다. 소나무의 허리는 다른 나무에 비해 턱없이 짧고 비틀렸다."얘야, 환경이 같다고 해서 나무가 똑같이 자랄 수는 없단다. 저 나무도 땅에 뿌리를 내렸을 때는 다른 나무들과 같았단다. 그러나 웃자란 가지에 가려 바람도 덜 맞고 하늘도 제대로 볼 수가 없어 저렇게 된 거란다. 저게 제 탓이겠느냐. 저 나무를 불쌍히 생각해야 한다."스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소나무를 보는 스님의 축축한 눈빛에서 어머니를 가엾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어린 마음에도 느꼈을 뿐. 그러나 스님의 말씀이나 어머니의 처지를 이해하기엔 내 나이가 턱 없이 부족했다. 그저 웃자란 나무들처럼 빨리 커서 지긋지긋한 동네를 벗어나길 간절히 바랐을 뿐이다.국도로 접어든다. 비는 질기게 내린다. 자동차가 갑자기 절룩이며 흙물이 튄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놀란다. 도로가 패어 물이 고여 있었던 모양이다. 빗속의 이정표를 본다. 13이란 숫자가 보인다. 그만 자동차를 시내로 돌린다. 꼬박 여섯 시간을 운전한 탓에 몹시 피곤하다. 지금 스님께 간들 어머니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만 들을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어머니 얘기는 피하고 싶다. 모텔을 찾았으나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30여분을 돌았을까. 다시 제 자리다. 시내가 협소하고 신축한 건물보다는 오래된 건물이 많고 허름하다. 찬찬히 다시 둘러본다. 간신히 하루 여숙 할 곳을 찾는다. 보초병처럼 길게 서 있는 간판의 낡은 빛이 비에 푹 젖은 지푸라기처럼 힘이 없다. 차를 주차 시키고 가방을 챙긴다. 비가 정수리로 떨어진다. 손바닥으로 정수리를 가리며 여관 추녀 밑을 큰 걸음으로 간다. 까맣게 코팅된 여관 유리문에 빨간색으로 오려붙인 장수장, 공기가 들어갔는지 ㅇ자가 조금 떠 있다. 출입문을 열자 사각의 작은 창이 열린다. 주인여자의 얼굴이 창에 꽉 찬다. 영정사진 같다. 방을 하나 달라는 말에 여자는 굼뜨게 일어나 문을 열고 나온다.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여자가 앞장선다. 자연스레 여자의 뒤통수에 눈이 간다. 파마를 한 머리카락은 심하게 눌려있다. 가을철에 배추를 따내고 남은 밑동 같다. 108호 앞에 여자는 멈춘다. 열쇠를 내게 건네주고 휭 하니 가버린다. 그런대로 방은 깨끗하다. 너 댓 평 되는 방에 낡은 가구와 TV가 놓여있다. 가방을 문갑 위에 올려놓고 커튼의 귀퉁이를 들어 밖을 내다 볼 때 여자가 다시 온다. 일회용 칫솔과 수건, 생수가 든 작은 페트병을 놓고 간다."올라가는 건 떨어지기 위해서야."두 달 넘게 오금질을 해도 나아지는 기미가 없자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잡아 줄 테니 해봐."헤실바실하다가 나는 못 이기는 척 일어섰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상체에 힘을 빼야 해. 내 상체를 봐."그의 상체는 해파리 같았다. 하체만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선반은 오금질이 기본이라고 그가 말했다. 오금질을 잘 해야만 가락이 제대로 나온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가락의 배가 달라져서 장구가락이 제 각각이라고.투욱 투욱 투욱.무릎을 조금 굽히고 왼발과 오른발의 뒤꿈치를 번갈아 들어 올렸다 떨어뜨렸다. 발이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몸은 위로 올라갔다가 떨어졌다."호흡으로 원을 만들어야 해, 결국은 모든 게 호흡이야."오금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저리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의 태도가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었다."올라가는 건 떨어지기 위해서라고 했지? 잘 떨어지기 위해선 올라가서 참았다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거야."투욱 투욱 투욱.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의 하얀색 면 티셔츠도 내 겨자 색 스웨터도 땀에 범벅이 됐다. 사람들이 들어와서 손을 잡고 있는 우리를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꾸만 그의 손을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내 손을 채듯 흔들었다. "힘을 빼라니까!"그의 설명대로 나는 발꿈치를 들어서 참아 본다고 한껏 참았다가 떨어졌지만 어찌된 일인지 잘 안됐다."끈기 있게 오랜 시간을 두고 연습해야 해. 풍물은 시간이 켜켜로 쌓여야 되는 거야. 그게 공력이거든."땀에 전 내가 안 돼 보였는지 노력만 한다면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며 그는 하얗게 웃었고 내 가슴은 텅 빈 것 같았다.가슴팍에 항상 고여 있어 퍼 올리기만 했던 감성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신념조차 흔들리는 나는 정말이지 그에게 묻고 싶었다. 정말로 참았다 떨어지면 잘 떨어질 수 있는 거냐고. 정말로 올라가는 건 떨어지기 위해서냐고.딱 한번 어머니가 우는 걸 봤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후 큰 부잣집 최 씨 할머니가 죽었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땐 어머니는 집에 없었고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허기진 나는 무작정 그 집으로 갔다. 대문이 활짝 열린 집안은 불을 밝혀 훤했다. 너른 앞마당엔 멍석위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거나 소반을 든 여자들이 음식상 사이를 바쁘게 오고 갔다. 마루에는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제청 앞에 허리를 꺾고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 짧고 낮게 통곡하라! 말했고 아이고 아이고 하는 선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선소리에 이어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일제히 마른 울음을 울었다. 저고리 섶을 허리까지 내려 입은 어머니를 나는 금세 알아봤다. 어머니는 몸을 틀고 손 갈퀴로 마룻바닥을 긁어가며 울었다. 어머니의 곡소리에 상을 당한 사람들과 문상을 온 사람들은 눈물을 찔끔거렸다. 어머니를 저토록 울게 하는 건 무엇일까?등에처럼 찰싹 달라붙은 낙타 등일까. 나를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만든 것, 어머니를 지독히 미워하게 만든 저것일까. 이상하게 그 순간만은 어머니가 밉지 않고 오히려 어머니의 곡소리에 콧등이 알싸하더니 울음이 올라왔다. 영악하게도 나는 가늘게 눈을 뜨고 어룽거리는 눈물 저쪽으로 어머니를 보고 있었다. 순간, 동그랗게 몸을 말고 우는 어머니가 벌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겁에 질렸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배고픔도 잊은 채 조막손으로 부잣집 문설주를 잡고 목청껏 울었다.갈증이 난다. 여자가 두고 간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 남은 물을 키 작은 냉장고에 넣는다. 옷을 벗고 화장실 문을 연다. 바닥에 깔린 타일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고 샤워부스는 금이 갔다. 밸브를 연다. 제법 물살이 세다. 나는 오랫동안 비누질을 한다. 닫혀있던 피부가 서서히 열리는 것 같다."겐지겐 가락이 빠르게 올라가는 건 넘어가기 위해서야."백중 굿을 앞두고 달팽이처럼 돌돌 말아 진을 치는 연습을 할 때 겐지겐 가락이 늘어지자 그는 미간에 주름을 세웠다."겐지겐은 점점 빨라지면서 달아올라야 해. 그래야만 다음 가락으로 넘어 갈 수 있거든."정말 빨라지는 건 넘어가기 위해서일까? 그래서 그는 밤과 낮의 구분 없이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미친 듯 쇠를 두들기는 걸까. 그는 불안해 보였다. 무엇이 그를 그렇듯 불안하게 만든 걸까."나는 샌드위치야."연습이 끝나자 숨을 고르면서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는 그의 얼굴은 마른모래 같았다."밑에서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고 위에서는 실력이 뛰어난 선배들이 버티고 있거든."오로지 풍물이 좋아 외길을 산 선배들이 제 기술을 전수한다는 건 목숨 반쪽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반면 요즘 젊은이들은 몸이 유연해서 기술을 익히는 속도가 아주 빨라 위기감마저 든다고. 방심했다간 되레 역공을 받기 일쑤라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나이를 먹는다는 게 왜 서러운 건지 이제야 알겠어."땀이 식자 무릎을 펴고 일어서면서 갈라진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의 모습도 그의 말도 무척 쓸쓸했다. 나는 대체 무엇일까? 무엇을 쓰고자 하는 걸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돌아오는 건 허탈감 뿐, 어쩌면 나는 신기루를 쫓는 건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그 곳에 내가 원하는 무엇이 있을 것만 같았다. 대체 무엇일까.밤새 비는 그쳐있다. 버스터미널 안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빈 속을 채운다. 캔 커피를 사들고 운전석에 앉는다. 큰 길로 빠져나와 어제 봐 두었던 13번 국도를 확인한다. 이제 저 숫자를 따라가야 한다. 그 끝에 스님과 어머니가 있다.산골의 봄은 언제나 더디게 왔다. 그래서 한겨울보다 추웠다. 조금씩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고 스님은 추위나 가시거든 가라고 내 손목을 꽉 잡았다. 어머니는 나를 등지고 모로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누워 있을 것이다. 나는 스님이 손아귀의 힘을 풀 때까지 기다리다 스스로 손목을 빼고 이십 리 길을 걸어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의 맨 뒤 칸에 앉아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텅 빈 그 곳에 눈발이 사뭇 사방으로 날리고 있었다. 봄눈치곤 꽤 굵었다. 겁도 없이 무작정 집을 나올 수 있었던 용기는 어머니에 대한 미움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스무 살에 어머니를 버리듯 집을 떠나 타지로 돌았다. 그러다 무슨 마음에선지 어머니를 다시 찾게 되었다. 9년만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집에 없었다. 절로 올라갔다. 어머니가 거기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경내를 한 바퀴 휘 돌아도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고 나를 본 스님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내 어깨를 후려쳤다."어미 잡아먹은 년!"스님은 내 어깨를 몇 번 더 내리쳤다. 이상하게 아프지도 않았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독한 것!"나를 기다리다 지친 어머니는 스님이 계신 절의 공양주가 되었다. 그 곳에서 짧은 여생을 마쳤다.비포장도로다. 길이 양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오른쪽으로 길을 잡는다. 팔월의 산천은 막 잡아 올린 등 푸른 물고기처럼 싱싱하게 파닥인다. 스님이 계신 절의 윤곽이 보인다. 규모가 크지 않아 공양주를 비롯해 스님 몇 분만 수도 중이다. 지금은 하안거 기간이라 스님들이 모두 참선 수행 중일 것이다. 불안할 정도로 가슴이 뛴다. 절 입구에 자동차가 여러 대 주차되어 있다. 한쪽 공간으로 차를 세우고 일주문을 들어선다. 어머니가 세상을 뜬 후 두 번째로 들어서는 문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머니도 스님도 잊고 살고 싶었다.경내엔 관광객이 대여섯 명 정도 있을 뿐 조용하다. 극락보전으로 들어선다. 진한 향냄새와 촛불 냄새가 온 몸 가득 들어온다. 내 기억 속에 살아 있었던 건 어머니의 냄새보다 향냄새였다. 숨을 훅 들이쉬며 부처님을 우러러 합장을 하는데 갑자기 속에서 무엇인가 울컥 올라온다. 눈물이 마구 쏟아진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작적으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나는 부처님 전에 납작 엎드린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나는 몹시 놀라고 당황스럽다. 잠시 후 평상심을 찾은 나는 세월에 밀려 마모가 된 벽화를 둘러보고 극락보전을 나온다. 스님과 자주 가던 숲으로 간다.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가 들린다. 소나무를 본다. 허리 휜 소나무가 외롭고 슬퍼 보인다. 그 동안 많이 자란 것은 아니었으나 예전처럼 볼품없어 보이진 않는다. 다른 나무에 가려 바람도 빛도 제대로 받지 못한 소나무다. 나는 뱀의 등허리 같은 기둥을 어루만진다. 잎의 길이도 다른 나무에 비해 짧다. 나무틈새로 뻗은 가지 끝의 잎이 어머니의 귀밑머리처럼 퇴색되어 있다. 나는 그 잎을 조심스레 뗀다. 쉽게 떨어진다. 어머니는 긴 머리를 말아 올려 조막만한 쪽을 졌다. 조막만한 머리에 버드나무로 만든 비녀를 꽂았다. 옛날엔 죽은 여자에게 버드나무로 만든 비녀를 꽂아주었다고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어머니는 살고 싶지 않았던 걸까."왔느냐?"스님이다. 군데군데 검버섯이 핀 안면에 환한 웃음을 짓는다."암, 와야지. 그래야지."나는 스님께 합장한다. 스님을 따라 방으로 들어간다. 방안 가득 차 향이 배어 있다. 차를 준비하는 스님의 장삼자락을 보면서 문득 어머니의 흰 저고리를 생각한다. 뜨거운 찻물에 차 잎을 띄워 내 앞으로 민다. 어깨를 짓누르는 침묵이 잠시 감돈다. 찻잔의 바닥이 보이고서야 스님은 내 눈을 본다. 깊고 우묵한 눈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눈빛이다. 나는 민망해서 고개를 숙인다."사람은 본디, 목표가 없으면 삶의 의욕을 잃는 법이다. 어미는 네가 삶의 목표였다. 네가 그렇게 가버리고 눈에 띄게 말라갔다. 곱은 등이 더 곱아 보였으니까. 목표가 없어졌으니 살아갈 아무런 의미도 이유도 없었겠지. 모든 것이 부질없었을 게다. 네가 얼마만큼의 세월을 겪어내야 어미 속을 알까 모르겠다만……어미를 불쌍하게 생각해야 한다."자꾸만 울음이 올라와 나는 끝내 스님의 장삼자락에 얼굴을 묻는다. 스님은 손바닥으로 내 등을 문지른다. 온기가 가슴까지 전해진다."어미를 보듬어라. 그래야 네게 한이 없을 게다. 애써 한을 만들지 마라."어머니를 꼽추로 만든 원죄로 끝내 불가에 입적한 외삼촌을 어머니도 한을 만들지 않기 위해 보듬었을까. 평생을 어머니를 위해 부처님 전에 향을 피우고 자신의 잘못을 벌하듯 목탁을 두드린 외삼촌의 말소리가 그렁그렁하다. 한참을 울게 내버려 둔 스님은 내가 진정이 되자 먹을 갈라 이른다. 스님의 말씀에 따라 나는 무릎을 꿇고 먹을 간다. 먹을 가는 동안 마음이 평온하고 경건해진다. 스님은 영가천도에 쓰일 경문을 붓으로 한지에 쓰라 이르곤 자리를 뜬다. 붓을 잡은 손이 가늘게 떨린다. 나는 거의 하루를 준비물을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하룻밤 묵고가라는 스님의 말씀을 뒤로 하고 일주문을 나선다. 스님은 더 이상 잡지 않는다."네 어미의 영가는 백중날 내가 잘 천도할 테니 걱정 말아라. 내생에는 좋은 모습으로 태어나길 너도 빌어라. 이제 네 어미도 한을 풀 게다. 부디 몸조심 하고 어미가 그립거든 오너라."스님은 어서 가라고 손사래를 한다. 공양주가 가면서 먹으라고 은박지에 누룽지를 싸서 준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하고 차에 오른다. 산사에 저녁이내가 끼기 시작한다. 나는 굳이 뒤를 보지 않는다. 아침에 왔던 길인데 새롭다는 생각이 든다. 가속페달을 힘껏 밟으면서 깃발에 넣을 문구를 진원(眞願)이라고 생각한다.백중일은 머슴들을 위한 날이다. 모내기를 끝내고 추수를 앞둔 머슴들의 노고에 양반들이 떡과 술을 장만해서 하루 동안 가무를 즐기며 쉬게 했는데 그것이 풍속이 되었다. 백중 굿에 참여 하지 않겠다는 나를 그는 나무랐다. 하지만 절에 다녀온 후 장구를 치는 일이 시들해졌다. 그래서 구경만 하기로 했다.나는 버스를 타고 놀이마당으로 향한다. 한바탕 풍물을 치기엔 무척 더운 날씨다. 멀리 태평소 소리가 들린다. 곧 굿이 시작될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백중 굿을 보기 위해 모여 있다. 천막 안에서는 '공간'사람들이 관중들에게 대접할 떡과 막걸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들과 인사를 나눈 나는 흰옷에 검정 더그레를 덧입고 그 위에 삼색 띠를 맨 그를 본다. 악기를 메고 고깔을 쓴 사람들이 그에게 시선을 모은다.째째챙드디어 그의 쇠가 선소리를 낸다. 그의 선소리를 따라 장구와 북과 징이 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아! 태초에 누가 저 소리를 만들어 냈을까! 덤덤한 마음도 톡톡 건드려 흔들어 놓는 저 소리. 시작인가 싶으면 끝이고 끝인가 싶으면 시작인 알 수 없는 오묘한 소리에 관중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호성을 지른다. 염천의 풍물소리는 깊고 넓게 파장이 일고 산속 곳곳에 피어 있을 꽃들도 놀라서 떨어질 것만 같다.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사뿐하게 뛰면서 관중들을 희롱한다.눈을 감는다. 그의 쇠 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귀로 듣는다. 차츰 팔뚝에 소름이 돋으면서 마음이 열리고 몸이 달뜨면서 점점 신명이 난다. 그렇게 제 소리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결국 슬퍼진다. 그래서 목을 놓아 울고 싶어진다. 한바탕 울고 나면 가슴에 쌓인 모든 회한이 녹아내릴 것만 같다. 그를 본다. 관중들의 환호에 그의 얼굴도 화색이 돌면서 달아오른다. 쇠 소리가 공명을 일으키는 순간이다. 풍물은 악을 치는 사람도 악을 듣는 사람도 정화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판 굿을 끝낸 그에게 '공간'사람이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라준다. 종이컵을 들고 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온다. 머리꼭지에 수돗물을 틀어놓은 것처럼 그의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른다."풍물을 겉으로 봤을 땐 무척 쉬워 보였어. 그래서 손끝으로 살짝 건드려봤지. 그런데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도무지 알 수 없겠더군. 모래펄 같았어." 그는 손바닥으로 땀을 훑어 내린다."사람들 얼굴을 봐, 저마다 시름이 있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있을 거야. 저 사람들이 풍물소리를 들으면서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그 응어리를 풀어 낼 수 있다면 난 더 바랄 게 없어."그는 입술에 묻은 막걸리를 더그레 자락에 닦고 저만치 물러난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관중들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전에 없는 만족함과 한없는 덧없음이 또렷이 엇갈린다. 그새 어둠이 온다. 더운 날씨를 감안해서 오후 늦게 시작한 탓도 있겠지만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한 까닭이다.백중 굿의 일정도 막바지다. 백여 개의 청죽을 포개어 세운 달집을 관중들이 쓴 소원지를 끼운 새끼줄로 꽁꽁 묶어 누군가 석유를 뿌려 점화한다. 달집은 순식간에 활활 타올랐고 깃발도 흔들린다. 풍물소리는 절정으로 치닫고, 사람들은 소원지에 쓴 소원보다 더 많은 소원들을 빌 것이다.탁탁 소리를 내며 타고 남은 재가 하늘로 솟는다. 내 소원도 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갈까? 어머니가 나를 위해 벌레처럼 몸을 말고 울었다면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소설을 쓰고 싶은 걸까? 어머니, 그토록 혐오하고 존재를 부정했던 어머니인가? 내 속에 설움으로 남아 있는 어머니를 한 올 한 올 풀어내고 싶은 걸까.그의 쇠 소리가 지옥의 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째챙째챙째챙째챙나는 오줌이 마렵다. 그의 휘모리 가락만 들으면 자꾸만 오줌이 마렵다.

2007-01-01 경인일보

[시 심사평/신경림·고형렬]

 예심을 통과한 서른 명의 시를 다시 선고하여 심사한 결과 본심위원은 심은섭씨의 '해발 680m의 굴뚝새'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심은섭씨의 작품은 죽음을 안으로 조용히 끌어들이면서 서정적 상관물에 대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여 생사의 슬픔을 대칭적으로 이미지화하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까지 최종 경합한 장인수씨의 '쪽방 인현동 일 번지' 한창석씨의 '로드 킬' 김명옥씨의 '날마다 황선에 선다'도 수준작이다. 하지만 죽음을 과장되게 표현하고 상투적으로 터치함으로써 시적 진실이 훼손된 부분이 지적되었다. 문명 비판적으로 죽음을 선취하고 삶을 직시하려는 의표가 과한 나머지 시적 성취도는 오히려 떨어졌다. 우리 삶 깊숙이 스며든 죽음의 냄새도 사회적 미학적 거리를 유지할 때만이 시의 의상을 걸칠 수 있다. 당선작은 상당한 수준을 보여준 심미적 작품이다. 죽음의 종결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하고 기억하는 ‘새’와 화자의 복화술은 이 처녀시를 돋보이게 했다. 시 형상이 서정적 자아에게 바라는 요구는 불립문자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 있는 바, 생이 불가피하게 성찰해야 하는 떠도는 자의 비애를 이 시는 건드리고 있다. 특히 산 번지와 도시의 우편번호, 살아있는 자와 죽은 굴뚝새로 매개되는 서사 구조의 소통은 아름답다. 당선자는 이 작품에 구속되지 말고 더 깊은 시세계를 펼쳐 시의 자유를 누리기 바란다.

2006-01-02 경인일보

[당선소감] 시 부문-심 은 섭

 목 매 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 - 詩 종은 울지 않으면 종이다 종은 울지 않으면 종이 아니다 종은 울면 종이다 종은 울면 종이 아니다 부재중인 수신함에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전화 한 통으로 문학의 종이 되려고 한다 나에게 문학 속의 시(詩)는 목 매 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가 되었다 신춘문예 당선의 소식을 듣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고인돌처럼 오래도록 서서 침묵했다 종이 될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을 생각했다 산에 사는 산죽(山竹)이 떠올랐다 속을 더 비워야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길 거라고, 사시사철 푸름을 잃지 말자고, 작은 키라도 더 낮추자는 깨달음이 없어 한 번도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지 못해 대쪽이라고, 이것이 문학의 종이 되려는 해답의 근본이며 해답의 결과이며 해답의 이유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놓으려던 붓을 잡아야겠다 소외 받는 달동네 사람들의 반장이 되어 언어를 잃어버리고 사는 그들의 의미를 써야겠다 영육간에서 방황하는 어휘들을 불러 모으고 다듬어야겠다 지금까지 시의 의미를 부여해주신 이언빈 선생님, 시를 경작하는데 필요한 도구 사용방법을 알려주신 '시와 세계' 발행인 겸 주간이시며 대관령 시인학교를 운영하시는 송준영 선생님, 곁에서 만날 때 마다 격려해주신 김학주 시인께 이 지면을 빌려 감사 드리며 나와 시와의 싸움에서 늘 중립적 입장을 지켜오며 감나무 까치 밥처럼 외톨의 나날이었던 권기순 아내에게도 감사 드린다. 끝으로 문학의 성찬을 마련하고 초대하여 주신 경인일보와 단단하지 못한 작품에 당선이라는 영광을 안겨주신 두 분의 심사위원께 독한 다짐을 바치며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약력〉 심은섭 강릉 출생 2004년 시 전문지 월간 '심상'신인상 민족작가회의 강원도지부 회원 한국 가톨릭 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강릉시지부 감사

2006-01-02 경인일보

[당선소감] 소설 부문-전 윤 희

 나는 한 청년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야구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갸름한 얼굴에 창백할 만큼 하얀 피부. 스물 셋, 어린 나이에 그는 의료사고로 실명하였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1박 2일 교회 세미나에서였다. 그 세미나의 이름은 ‘인카운터’였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의미였다. 두 명의 건장한 청년이 늘 그의 양 팔을 붙들고 그가 어디를 가든지 동행했다. 분명 그는 지독한 슬픔을 안고 그곳에 왔을 것이다. 세미나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를 또 보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감겨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천상의 미소였다. 주위를 둘러보면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이 없다. 미워해서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데도, 어쩌면 너무 사랑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내가 쓴 글이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주진 못하겠지만, 순간일지라도 그 청년의 얼굴에 머금었던 환한 미소를 짓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참 행복할 것이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소설쓰기의 기초부터 가르쳐주신 구효서 선생님과 정찬 선생님, 너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다는 말씀으로 나를 위로하셨던 안혜성 선배님, 재능을 물려주신 아버지, 희생으로 키워주신 어머니, 사랑하는 자매들과 가장 고맙고 소중한 사람, 남편에게 감사드린다. 겨울 햇살이 나른한 오후에 당선 전화를 받았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나의 손은 부끄럽게도 빈손이었다. 지금부터 조금씩 채워가겠다. 전윤희 학력:성심여자대학교(현 가톨릭대학교) 영문과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영문과 졸업 주소:고양시 일산구 마두동 정발마을 건영빌라 303-303

2006-01-02 경인일보

[시 당선작] 해발 680m의 굴뚝새 (심은섭)

 해발 680m의 굴뚝새 -심은섭 면사무소에서 4㎞ 더 지나 우편번호 233-872에 살던 굴뚝새는 사내 굴뚝새를 산 14번지에 묻어 두고 경적소리와 높은 빌딩들이 난무하는 우편번호 100-866 69층 아랫목에서 무-말랭이가 되어 간다 우체국에서 지어준 100-866의 우편번호를 문패에 문신처럼 새겨놓고 살지만 산 14번지 바람소리 전해줄 우편배달부의 발길이 끊어져버린 지가 오래다 몇 날을 견딜 수 있는 수분이 얼마 남지도 않은 해발 680m에 살던 굴뚝새를 굴뚝새의 굴뚝새들이 바라보며 쌀독에 파랑주의보가 내려 호미자루를 놓지 못하던 날들과 냉수에 간장을 섞어 헛배 채우며 새우잠 자던 날도 미납된 등록금 영수증 머리맡에 두고 밤새워 신열을 내던 일들을 떠올린다. 절구공이에 짓이겨진 그녀의 가슴에는 슬픈 보석 몇 개 박혀 있다 두어 개의 천둥소리 하얀 달 몇 개와 서너 개의 태풍 그리고 몇 밤에 내린 무서리에 말라진 몸, 더 말려야 천국의 층계 만이라도 가볍게 오르려는 듯 남아 있는 그들의 짐이 가벼워진다는 것도 안다 점점 더 멀어진 눈과 눈 사이의 간격 문 밖까지 나온 기침소리가 폐경을 맞는다 우편번호 없는 묘비를 들고 오후 내내 창 밖에서 서성이던 검은 도포를 입은 바람이 조등(弔燈)을 든 굴뚝새들의 포효를 뿌리치며 반송되지 않을 정량(定量)의 화석을 목관 속에 편히 눕힌다

2006-01-02 경인일보

[단편소설 당선작] 아버지의 집 (전윤희)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죽으면서 내게 유산을 남겼다고 했다. 이복동생이라는 젊은 남자가 나를 찾아와 말했다. 키가 180센티미터는 족히 됨직한 그는 입 언저리가 내 아들과 닮아있었다. 그는 나보다 열 살 가량 어려 보였다. 벽을 훤하게 튼 유리창이 투명한 카페에서였다. 유월 햇살의 세밀한 결까지 다 보일 듯했다. 한 무더기의 햇살이 그 남자의 얼굴에서 부서졌고 그 위에 다시 햇살이 쏟아졌다. 스피커에선 비틀스의 ‘헤이 쥬드’가 들렸다. 헤이, 쥬드. 그다지 나쁘게 생각하지 마. 슬픈 노래를 좋은 노래로 만들어보자구……. 여느 때 같으면 흥얼거렸을 익숙한 곡이다. 하지만 지독히도 어색한 시간이었다. 그는 오렌지 주스가 들어있는 유리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면서 내게 좀 미안하긴 하지만, 알고 보면 자신이 미안해 할 일은 아니라는 듯한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밝은 하늘색 셔츠를 입고 있었음에도 그의 까칠한 얼굴은 초췌했다. 가평에 있어요. 아버지가 재혼하시기 전이라니까 아마 아실 텐데요. 젊은 남자가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말했다. 나는 가물가물하다는 표정으로 응답했다. 실제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가평에 아버지가 땅을 샀었나?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 땅에 집을 지었다고? 나는 한동안 혼자 골똘했다. 저도 한 번도 못 가봤어요. 그가 창가 쪽으로 눈을 돌리며 흘리듯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무슨 성역이라도 되는 양, 그 곳엔 늘 혼자 가셨죠. 그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성역처럼 지켜 온 가평 집을 내게 물려준다고 해서 기분이 언짢은 것일까? 그가 내다보는 창 너머로 연초록의 신록이 눈부셨다. 카페가 면한 공원에는 몇 무리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그들만의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펄럭이는 스커트 속의 두 다리에 힘을 팍팍 줘가며 부지런히 페달을 밟는 여자 애들. 미니 자동차를 하나 빌려서는 서로 타겠다고 밀쳐대는 어린 남매. 벤치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들. 밖은 한없이 경쾌해보였다. 오직 그와 내가 자리한 탁자 위의 공기만 지구만큼 무거웠다. 이번엔 내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의 눈치를 흘깃거리고 있었다. 이상할 만큼 그 남자에 대해 나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먼 타인 같았다. 그와 나 사이엔 분명 아버지의 유전자가 나눠져 있을 텐데, 나는 조금의 친밀감도 조금의 질투심도 느끼지 않았다. 아마도 내 속에 흐르던 아버지의 피가 다 말라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남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남편에게 먼저 말해야 하나 망설였다. 그가 내놓은 은빛 열쇠꾸러미와 주소가 적힌 종이가 난감했다. 양평 이모 집에 살고 있는 엄마에게 알리는 것은 미루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두 노인네가 손바닥만한 텃밭을 메며 모자랄 것도 없고 남는 것도 없다는 듯 이루어낸 척박한 평화를 굳이 깨뜨릴 필요는 없었다. 결국 행선지도 정하지 못한 채 내 앞에 정차한 택시에 올랐다. 삼성동이요, 아니 사당동이요, 아니 삼성……. 어딜 가냐고 운전사가 두 번째 물을 때 그의 목소리에는 피곤과 신경질이 뒤섞여있었다. 나는 무안한 듯 과천이요, 하고 대답하곤 입을 다물었다. 여느 때 같으면 남편과 점심을 먹으며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이번은 그럴만한 문제 같지가 않았다. 아버지는 나 자신에게도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그에게 불쑥 들이밀 수는 없었다. 묵직한 열쇠꾸러미와 낯선 주소와 함께. 영주의 작업실은 과천 정부종합청사 근처,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근처 어느 오래된 건물 지하에 있었다. 어둡고 눅눅한 계단을 내려가다가 나는 시커먼 물체가 휙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손가락만한 생쥐였다. 소름이 살갗에 파르르 일었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면서 속이 메스꺼웠다. 집으로 곧바로 가지 않은 것을 잠시 후회했다. 하지만 무난한 집안에서 별 탈 없이 자란 남편보단 가난하고 난폭한 부모 밑에서 어두운 유년을 보낸 영주가 이럴 땐 더 가까웠다. 그러니까 너를 버린 아버지가 너한테 집을 남겨주고 죽었단 말이지? 횡설수설 비슷하게 그 남자를 만났던 일을 찔끔찔끔 흘렸는데 영주는 단칼로 자르듯 한마디로 정리했다. 나는 나를 버렸다는 말에 거부감을 느꼈다. 마치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간단하네. 팔아버려! 그녀의 ‘팔아버려’는 너무도 쉽고 힘이 넘쳤다. 팔아서 너 먹고 싶은 거 사먹고 진우 먹고 싶은 거 사주고 다 써버려.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냐? 본래 영주는 거침이 없었다.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영주는 그리던 만화를 계속 그렸고 나는 주전자에 물을 받아 브루스타에서 끓여냈다. 부글부글 물 끓는 소리가 내 몸속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탁자 위에 널브러져있는 커피 믹스로 두 잔의 커피를 만들었다. 영주가 일하고 있는 책상 가까이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의자 끄는 소리가 날카롭게 신경을 긁어댔다. 안 그래도 바지주머니에 넣어 둔 열쇠꾸러미

2006-01-02 경인일보

[단편소설 심사평/김 지 연·최 인 석]

 마지막까지 책상에 남은 작품은 다섯이었다. 그 가운데 이현수의 '고풍을 찾아서'는 관념적인 문장, 부정확한 어휘 같은 것들 때문에, 은승완의 '금서 클럽'은 어색한 비유와 주제가 모호하다는 점 때문에 비교적 일찍 제외되었다. 문장은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온전치 못한 문장으로 온전한 소설이 쓰여질 수는 없다. 황시운의 '사마귀'는 문장도 단정하고 묘사력도 좋으나 인물 관계가 다소 상투적이고 억지스럽다는 지적이 있었다. 인물 관계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요소가 아닌가. 박숙희 '개복숭아 나무'는 안정적인 문장으로 소녀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미순이와의 관계를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호감을 주었다. 특히 소녀와 미순이 사이의 관계가 재미있었다.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에 관한 흥미롭기도 하고 매력적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고통스럽기도 한 탐색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마지막 선택에서 제외되었다. 전윤희의 '아버지의 집'은 크게 새롭다 할 것은 없으나, 먼저 침착하고 단정한 문장이 작가에 대하여 신뢰를 품게 했고, 적절히 자리잡은 매력적인 비유가 호감을 주었다. 재혼으로 일찍 헤어져 임종할 기회도 없었던 아버지, 그후 돌연 나타난 이복동생 남매들, 아버지가 남긴 작은 유산을 싸고 벌어지는 갈등을 과장 없이 잔잔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묘사나 이야기 전개가 실감나고 흥미로웠다. 심사위원들은 큰 어려움 없이 '아버지의 집'을 당선작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소설은 문장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지만 거기 담기는 것은 단순한 문장이나 이야기 이상의 것, 즉 작가의 생각이다. 문장이나 이야기의 새로움도 중요하겠으나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작가의 생각, 그 생각의 새로움일 것이다. 정진하기를 기대한다.

2006-01-02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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