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창간특집

 

[경인일보 창간70기획 다음]경제특구 확장 비전

입주사 중 지역 기업은 44%… 2단계·3단계 개발은 시작 못해파주 물류단지 추진·인천 바다중심 벨트 통해 수출통로 구상北 외자 유치 제도적 기반 마련… 정부 ‘통일 대박’ 기조 탄력남북 접경지역의 경제적 교류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개성공단이다. 개성공단 첫 제품인 일명 ‘통일냄비’를 생산하고 지난 해 12월로 10년을 맞은 개성공단.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0년 간 남측은 32억6천만달러 규모의 내수 진작 효과를, 북측은 3억8천만 달러의 외화 수입을 거뒀다. 남북 교역의 99% 이상이 개성 공단을 통한다. 개성공단은 앞으로 확장 가능성이 큰 남북 경협 공간이다. 전체 개발 면적(66.1㎢) 중 남북 경협 기반을 구축하는 1단계 공장구역 3.3㎢(5%)만 개발이 이뤄졌다. 2단계(세계적 수출 기지 육성) 8.3㎢, 3단계(동북아 거점 개발) 18.2㎢, 주거·관광지 개발 36.4㎢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개성공단은 경기·인천 지역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파주에서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을 지원할 ‘물류단지’ 조성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개성공단 입주사 124곳 중 51곳(44%)이 경기·인천 기업이다. 개성공단의 확장이 경기·인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경기도는 남북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과 연계한 통일 경제특구지정을 정부에 건의하고 있다. 경기 서북부와 인천 일부 지역에 개성공단과 연계된 통일 경제특구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인천시는 개성공단과 해주를 연결하는 남북 경제특구조성 계획을 갖고 있다. 바다를 중심으로 남북의 경제협력벨트를 조성하는 내용이다.경기·인천은 개성공단의 성공을 기반으로 이 같은 경제특구구상을 계획했다. 또 이 구상이 개성공단의 한계를 극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경기·인천은 지리적 이점을 내세워 개성공단의 배후단지를 경기 서북부, 강화 등에 조성하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이 곳을 통해 개성공단의 제품을 남쪽에서 조립해 수출 통로를 개척하는 등 개성공단의 국제화를 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들 경제특구는 통일 이후 북에서 남으로 이동하는 노동력을 흡수하는 ‘완충 지대’로서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경기도와 인천시는 이 같은 통일·남북 경제특구구상이 실현될 대내외적 여건이 성숙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13년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하고 대외경제성을 출범시키는 등 중앙·지방급 경제개발구의 외자 유치에 대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통일 대박’으로 상징되는 박근혜 정부의 통일 정책도 경제 특구 지정에 유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경기도와 인천시는 전망하고 있다.경기·인천의 경제 특구 구상이 실현되려면 행정·재정적 지원을 규정한 입법이 선행돼야 한다. 19대 국회에서 황진하 의원, 윤후덕 의원, 김영우 의원, 김현미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법안 6건이 계류 중이다. 이들 법안은 ‘통일 경제 특구’, ‘평화 경제 특별 구역’, ‘남북 교류 특별 구역’, ‘평화 통일 경제 특별 구역’ 등으로 갈라져 있지만 대부분이 ‘남북 경제공동체 조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기연구원 최용환 연구위원은 최근 ‘경기도의 통일경제특별구역 유치 방안 및 효과’란 정책연구 보고서에서 “특구 추진 원칙과 방향성에 대해 관련 지자체들과 국회의 공감대 형성이 이뤄져야 한다”며 “경기·인천 등 접경지역 지자체들이 남북 교류 활성화를 통한 경제 특구 추진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파주 도라산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개성공단. /경인일보 DB, 자료제공=통일부오오엔육육닷컴의의류공장. /경인일보DB지난 1월 경기북부청 상황실에서 열린 개성공업지구 의료지원 협약 체결식. /경기도 제공

2015-10-06 김명래

[경인일보 창간70기획 다음]경기도의 미래산업

도내 삼성·LG등 집결 정보통신기술 제조업 전국 46% 점유 강점벤처밸리 ‘무한성장 가능성’… 분당중심 의료기기 클러스터 육성수도권 먹거리 생산 ‘지리적 유리’ 빅데이터 기반 스마트팜 ‘유망’지난 40년간 전국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을 거듭해 전국경제성장(GDP) 32.4%, 지역총생산(GRDP) 20%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 최대 광역단체인 경기도는 언제나 고민이다. 미래를 위한 준비와 투자를 계속해야 1천250만명 경기도민의 삶의 질 향상과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미래 먹거리 찾기에 한순간도 쉴 틈이 없다. 경기도는 수십 수백조원의 경제 가치를 창출하는 첨단 산업의 메카로 지금도 변화를 멈추지 않고 있다.■ 창조경제의 기반 ICT산업 육성경기도에는 삼성, SK, LG, 기아자동차, 쌍용차 등 국내 주요 수출품의 공장이 집결돼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정보통신기술) 제조업 부문이 전국 점유율 46.1%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출도 지난 7월 기준 91억달러를 기록해 울산·충남·경남·서울을 제치고 1위다. 경기도는 강점인 ICT산업 발전의 여세를 그대로 몰아 미래 산업에도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이미 삼성과 SK, LG 등 국내 굴지 대기업의 투자도 이끌어 냈다. 삼성은 평택 고덕 산업단지에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인 최소 100조원대 투자를 밝혔고, 평택에도 15조원을 추가로 투입한다. SK도 이천 하이닉스에 50조원을, LG도 5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경기도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또한 ICT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융합기술이나 사업도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 창출의 핵심적인 요소로 거론되고 있는 만큼, 경기도는 업종이 다른 중소기업이 서로 다른 경영과 기술 등을 결합해 신기술·신제품·신서비스를 개발하는 혁신형 기업을 육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몇몇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폭을 넓히기 위해 ICT융합형 육성 등 지역 산업구조 다변화 전략을 추진하고 차세대 성장산업을 발굴 육성해 벤처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정책도 마련하고 있다.■ 차세대 경제를 이끌 벤처 우리나라 IT 산업의 맥박이 뛰는 곳은 다름 아닌 경기도다. 새로 조성된 판교신도시에는 미래의 국가 경쟁력을 책임질 IT 및 생명공학, 문화산업기술 관련 기업 1천여 곳과 연구소, 벤처기업들이 한데 모여 차세대 성장 동력을 담은 벤처밸리로 성장하고 있다. 5년 만에 매출 69조원을 기록했지만, 아직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한축으로 꼽힌다. 전체기업의 86%인 857개가 중소기업이라는 점도 상생발전의 모델로 거론된다. 이에 경기도는 판교를 미래 산업으로 떠오른 빅데이터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빅포럼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제2의 판교테크노밸리 만들기에 한창이다. 이외에 제2 판교가 완성되면 분당-판교가 이어져 스마트 에너지·헬스케어·미디어가 융합된 미래 최고 유망사업인 IoT 생태계가 경기도에 마련될 전망이다. ■ 첨단 농업과 의료기기 클러스터 육성수도권의 먹거리를 담당하는 대형 생산지이자 소비지인 경기도는 농업을 발전시키기 가장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경기도는 소비자와 가깝고 첨단 기술이 집약된 수도권의 이점을 살려 농업 발전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먼저 경기도는 빅데이터에 기반한 농작물 재배기술과 ICT기술이 접목된 첨단 시설을 통해 노동력을 절감하면서 생산력과 품질을 높이는 첨단 농업단지인 ‘스마트팜 육성’을 농업 발전의 1차 목표로 세웠다. 경기도는 미래 성장 동력 분야로 의료기기 클러스터 육성도 검토 중이다. 이미 분당을 중심으로 서울대병원과 차병원 등 대형 병원이 모여 있어 의료기기 클러스터를 육성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평이다. 의료기기산업은 현재 우리나라 글로벌 경쟁력이 약한 분야이면서도 전자, 기계, 의술이 접목된 융합산업으로 해외에서는 이미 지자체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추세다.경기도의 발전을 위해서는 서비스업 활성화와 제도적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경기도는 전체 산업의 노동생산성에서 제조업은 우수하지만, 서비스업은 사실상 전국 16개 시도에서 13위를 기록하는 등 매우 낮다. 더불어 입지 규제와 환경 규제를 합리적 수준으로 완화해 기업 투자를 촉진 시키고 일자리 창출이 수반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황준성기자 yayajoon@kyeongin.com자동차 처리 5년 연속 1위를 달성한 평택 자동차수출입부두 /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SK하이닉스 이천 본사 M14 D램 팹(FAB) 구축현장.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세계 최초로 로봇시술을 통한 휜다리 교정수술 을 진행하는 이춘택병원 의료진. /이춘택병원 제공강화군농업기술센터에서 잔류농약을 분석하고 있다. /강화군 제공

2015-10-06 황준성

[경인일보 창간70기획 다음]인천의 미래산업

카지노복합리조트 수만개 일자리·타산업 연계 ‘경제효과 ↑’정부 사업후보지 9곳중 6곳 포함… 10여개 업체 공모 ‘관심’‘송도 바이오프론트’ 셀트리온등 입주 신약개발 앞선 경쟁력인천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산업으로는 서비스 분야와 바이오·첨단 분야가 눈에 띈다. 공항·항만을 끼고 있는 유리한 입지여건, 송도국제도시 내 바이오, 영종지구 내 서비스·관광 등 정부와 지자체의 ‘집적화’ 전략은 이들 산업군 육성이 기대되는 이유다. 이들 산업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고, 전후방 산업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산업군과 차별화된다. 이들 산업군 육성은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선도적이라는 점에서 경쟁력 확보도 기대된다.■ 서비스 산업 ‘핵심’, 복합리조트서비스 분야에서는 카지노복합리조트가 핵심이 되는 사업으로 꼽힌다. 수만개 일자리 창출 등 막대한 경제효과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 대한 연관 효과가 크기 때문.현재 인천에서 추진되고 있는 복합리조트로는 인천 영종도 미단시티 내에서 추진되는 LOCZ코리아의 사업과 인천공항 국제업무단지(IBC I) 내 파라다이스세가사미의 사업이 있다. 2017년까지 1조9천억원을 들여 특급호텔 등을 포함한 카지노 복합리조트를 짓는 파라다이스세가사미의 복합리조트는 이미 지난해 11월 착공식을 가졌다. 1단계 사업에 8천억원(총 사업비 2조3천억원)을 투입하는 LOCZ코리아의 복합리조트는 내년 초 착공을 앞두고 있다.또한 최근 정부는 전국 9개 카지노복합리조트 사업 후보지를 선정했는데, 이 중 6곳이 인천이다. 이들 지역을 대상으로 올해 하반기 정부의 사업계획 제안요청(RFP) 공모에 참여할 투자 의향 업체는 10여곳에 달한다. 영종도 미단시티를 대상으로는 홍콩 재벌 그룹 초우타이푹(CTF), 중국 부동산 기업 신화련, 미국 복합리조트 컨설팅 업체인 GGAM(세계카지노자산관리)과 중국 랑룬(朗潤·LONG RUNN)그룹의 합작법인인 GGAM랑룬, 마카오 임페리얼퍼시픽, 싱가포르의 오시아인터내셔널 등이 있다.인천국제공항 국제업무단지(IBC II)를 대상으로는 미국 동부의 카지노업체 모히건 선(Mohegan Sun), 한국관광공사 자회사로 국내에서 외국인전용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는 GKL(그랜드코리아레저)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필리핀 최대 카지노복합리조트 업체인 블룸베리 리조트사 한국법인 쏠레어 코리아(주)는 복합리조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이미 무의·실미도 토지를 매입한 상태다. 을왕리 해수욕장 주변을 대상으로 (주)오션뷰가, 송도 9공구 국제여객터미널 부지를 대상으로는 초우타이푹과 밍티엔컨소시엄이 투자 의향을 갖고 있다. 이 중 2~3곳이 추가로 인천에서 복합리조트 사업을 추진하면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천시에서는 복합리조트 이외에도 최근 인천관광공사를 다시 부활시키는 등 관광산업 육성에 나섰다. 이에따라 연관 산업간 시너지 효과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바이오 메카, 인천 송도인천 송도국제도시는 바이오 의약 산업 중심지로 육성되고 있다. 이미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국내외 굴지의 바이오 기업이 입주를 마친 송도는 바이오 기업·바이오 학과·지원 시설 등이 서로 연계되는 ‘바이오프론트’가 구축되고 있다. 송도 4·5공구 92만5천762㎡ 면적의 ‘송도 바이오프론트’는 점차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송도에 입주한 바이오 기업의 성장도 눈에 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내년 1분기 세계 최대 수준인 15만ℓ 규모 2공장 가동을 시작한다. 같은 규모의 3공장은 올해 착공 목표로 검토 중이며, 2020년까지 4공장을 추가로 건설해 40만ℓ 이상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생산능력·매출·이익 규모에서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분야 세계 1위를 달성한다는 목표다.송도는 바이오시밀러 개발 등 R&D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최근 설립 3년 반만에 첫 번째 바이오시밀러 품목 허가를 받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엔브렐 바이오시밀러 ‘브랜시스50밀리그램프리필드시린지(이하 브랜시스)’에 대한 품목 허가를 했다.식약처가 품목 허가한 국내 개발 바이오시밀러는 대부분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기업이 개발한 것이다. 현재까지 모두 4개 품목이 허가됐는데, 이 중 3개 제품이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기업이 개발한 것이다. 특히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추가 바이오시밀러 품목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브랜시스는 지난해 12월 유럽에 품목 허가를 신청해 내년 상반기 허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SB2도 유럽과 국내 품목 허가 신청을 완료했고,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이다. 셀트리온은 남미시장 등 공략에도 나섰고, 차세대 파이프라인 신약 제품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영종도 미단시티 내에서 추진되고 있는 카지노복합리조트 사업 모형도. /경인일보 DB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바이오기업 ‘셀트리온’의 연구실 모습. /경인일보 DB삼성바이오로직스.

2015-10-06 홍현기

[경인일보 창간70기획 그때]인터뷰|소진광 가천대학교 대외부총장

“판교창조경제밸리(제2판교테크노밸리)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확한 목표설정과 공공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가천대학교 소진광(사진) 대외부총장(행정학과)은 판교테크노밸리가 추진되기 이전인 1996년 12월 연구 ‘성남시 산업구조 조정방향과 경제활동기반 강화방안’을 통해 판교테크노밸리 조성에 불씨를 당겼다. 소 부총장은 “단순하게 2+2=4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허황된 것”이라며 “지금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5~7이, 그 이상이 될 수 있고 2, 3에 머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음식점이 잘된다고 규모만 키웠다가 망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소 부총장은 “지금의 성공은 미래를 면밀하게 예측하고 준비한 성과”라면서도 “조성될 판교창조경제밸리가 판교테크노밸리의 전후방효과를 거둘 것인지, 다음 형태의 산업으로 연장시킬 수 있는 역량을 부여할 것인지 등을 두고 뚜렷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판교가 조성되는 과정에서 이미 시대가 변화했다”며 “판교테크노밸리와 같은 방식의 접근은 피해야한다”고 덧붙였다.특히 판교창조경제밸리의 성공적인 조성을 위해 공공의 역할을 강조했다. 소 부총장은 “눈 앞에 약속된 이득만을 챙기기 위해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당장의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결단이, 미래에 열릴 기회를 노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또 “구조와 기능이 잘 맞물릴 수 있도록 미래를 설계해야 현재의 판교테크노밸리, 그 이상의 성공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제언했다. 성남/김규식·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2015-10-06 김성주·김규식

[경인일보 창간70기획 지금]경기도, 한류에서 길을 찾다

절반 가까이 한국 드라마·K-pop·예능 콘텐츠 등 보고 방문道, 수원화성·남이섬·DMZ ‘역사·안보 테마’로 관광객 손짓정부, 기획·공연·재투자 선순환 ‘랜드마크’ 고양 등 3곳 둥지메르스 사태로 주춤했던 중국인 관광객(유커)들이 다시 대한민국을 찾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유커는 600만 명에 이르며, 이들이 쓴 돈은 14조 원에 달한다. 유커들은 예전의 전통적인 소비 패턴에서 벗어나 한국의 새로운 문화에 눈을 돌리고 있다. 과거 서울 명동이나 동대문 등지에서 쇼핑을 즐기는 패턴이 일상적이었다면, 이제는 문화의식의 성장에 따라 역사 유적지나 안보 현장을 둘러보고자 하는 층이 늘었다. 이에 경기도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밑바탕에는 ‘한류(韓流)’가 자리 잡고 있다.#뿌리 내린 경기도 한류유커들이 여행지로 대한민국을 선택하는 데는 ‘한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관광공사 상하이지사가 최근 6개월간 한국을 방문한 유커 1천 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절반가량인 46.4%가 한국 방문의 계기로 ‘한류’를 꼽았다. 이들은 TV나 인터넷을 통해 접한 한국 드라마·K-pop·예능 프로그램 등의 콘텐츠와 한류스타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이처럼 한류는 국내 관광분야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며 내수시장의 하나의 거대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경기도는 특히 ‘역사’와 ‘안보’라는 두 가지 콘텐츠를 앞세워 한류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은 유커들은 조선시대 성곽 건축의 꽃이라 불리는 수원화성을 많이 찾는다. 팔달산에서 연무대까지 가는 화성열차는 수원화성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어 인기다.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로 유명한 화성행궁도 많은 이들로 북적이며, 역사 투어를 마친 관광객들은 수원갈비를 먹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한다.경기도의 특수성이 잘 반영된 안보 관광도 성황이다. 관광객들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분단국가’의 현실을 간접 체험해보고자 비무장지대(DMZ)와 북방한계선(NLL) 등을 찾고 있다. DMZ·통일전망대·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제3땅굴 등을 둘러보는 코스에는 관광객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며, 최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일대에서는 각종 공연과 전시도 활발하게 진행돼 관광객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경기도, 한류의 둥지를 짓다경기도에는 한류 콘텐츠를 생산하고, 또 소비할 수 있는 대규모 관광문화단지가 곳곳에 조성될 계획이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안정적인 문화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비중을 높였다. 문화분야에 배정된 예산만 6조 6천억 원에 달한다. 다른 분야에 비해 절대 액수가 크진 않지만, 지난해 대비 7.5%가 증액돼 가장 큰 증가폭을 보인다. 특히 정부는 내년부터 해외 관광객을 상대로 한류 확산의 본거지 역할을 할 ‘랜드마크’ 세 곳을 조성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한류시장을 공략하고자 랜드마크를 구축, 기획·제작에서 공연·재투자로 이어지는 문화산업의 선순환 체계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내년에 투입되는 신규 예산만 1천319억 원에 이른다.랜드마크 세 곳 중 가장 최우선적으로 손꼽히는 곳이 바로 고양시에 들어서는 ‘K-컬처밸리(K-Culture Valley)’다. 오는 2017년 완공 예정이며, 한류 융·복합 미디어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쇼핑과 숙박까지 가능한 한국형 첨단 문화콤플렉스로 조성된다. 경기도는 지난달 6일 고양 킨텍스와 호수공원 일대 3.94㎢를 관광특구로 지정하기도 했다. 관광특구 내 킨텍스, 호수공원, 아쿠아플라넷 등은 지난해 55만4천여명의 외국인 유료입장객이 찾는 등 매년 방문객이 증가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파주·연천 등이 접해 있어 한류·안보 관광의 접목도 가능해질 전망이다.광명 KTX역 일대 7만4천여㎡ 부지에도 한류미디어타워가 들어서 방송제작지원센터와 영상미디어 콘텐츠 관련 제작업체, 협회 회원사 등이 입주할 예정이다. 국내 드라마·방송 제작 관련 중심지로 거듭날 뿐 아니라 인근의 이케아·코스트코·롯데 프리미엄아울렛 등과 함께 관광객 유치에도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돼 또 다른 한류열풍을 일으킬 전망이다. 경기관광공사 관계자는 “경기도는 역사와 안보를 토대로 관광객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가 풍부해 한류의 중심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밝혔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수원 화성행궁을 찾은 관광객들이 우리 전통무술 무예24기 시범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경인일보 DB임진각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정조대왕 어가행렬 /경인일보 DB

2015-10-06 황성규

[경인일보 창간70기획 지금]지표로 본 경기 경제·2

광역시별 전국대비 GRDP 비중 4.6%, 부산·울산이어 세 번째인구수등 거의 모든 지표 대구에 앞서 ‘국내 3대도시’ 자리매김제조업 생산 전국 4.2%… 인천공항·인천항 ‘동북아 물류 선도’인천의 연간 수출액이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300억달러를 넘어섰다.한국무역협회 인천지역본부가 올해 초 펴낸 ‘2014년 인천 수출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유가 하락과 엔저, 세계 경기 둔화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2014년 인천 수출은 전년 보다 10% 증가한 300억2천900만달러를 기록했다. 2004년 100억달러 시대를 연 인천 수출은 2007년 200억달러에 이어 7년 만에 300억달러에 도달한 것이다.300억2천900만달러를 올린 인천 수출은 당해 17개 시·도(광역자치단체) 중 8위에 자리했다. 6대 광역시 중에선 전체 2위에 오른 울산(924억달러)에 이어 두 번째이다. 특히 인천의 전년 대비 2014년 수출액 증가률 10%는 1~8위 시·도 중 가장 높은 수치이다.#GRDP로 본 인천 경제GRDP(Gross Regional Domestic Product)는 지역내총생산으로, 시·도 단위별 생산액, 물가 등 기초통계를 바탕으로 일정 기간동안 해당지역의 총생산액을 추계하는 시·도 단위의 종합경제지표이다.통계청은 1985년부터 GRDP를 작성했다. 그 해 인천의 GRDP는 4조1천695억2천600만원이었다. 10년 후인 1995년 22조8천373억6천300만원으로 5배 넘게 뛰었다. 또 다시 10년 후인 2005년 인천의 GRDP는 44조1천636억8천300만원으로 집계됐다. 10년 전에 비해 2배 가까이 올랐다. 가장 최근 집계 수치인 2013년 인천의 GRDP는 64조6천541억8천만원이었다.2013년 GRDP에서 인천 경제성장률은 전년(62조2천78억7천700만원) 대비 2.4%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인 2.7%보다 낮았지만, 울산(2.4%)과 부산(1.4%), 대전(1.4%) 등 타 광역시에 비해 비슷하거나 양호했다.광역시별 전국대비 GRDP 비중으로 보면 인천이 4.6%를 차지해 부산(4.9), 울산(4.7)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인천의 1인당 GRDP는 전국(2만5천487달러)에 미치지 못 하는 2만510달러였다. 6대 광역시 중에선 울산(5만3천460달러)에 이어 2위였다.GRDP와 인천의 거의 모든 지표가 대구를 앞질렀다. 대구의 2013년 GRDP는 44조8천억원으로 인천과 20조원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인구 또한 지난 6월 기준으로 인천은 291만여명으로 대구(249만여명)를 42만여명 차로 앞서있다. 서울과 부산에 이어 인천이 국내 3대 도시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이 밖에도 인천의 전체 산업의 전국대비 비중은 2013년 기준으로 사업체 4.8%(17만7천990개/전국 367만6천876개), 종사자 4.7%(89만5천657명/전국 1천917만3천474명), 생산액 4.5%(64조6천779억3천400만원/전국 1천427조3천6억5천400만원)를 차지했다.업종별 비중에서는 인천 제조업 종사자가 전국대비 6.0%로 광역시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인천 제조업 생산액은 전국 4.2% 비중인 16조8천602억원를 기록했다.#인천의 산업 인프라인천은 공항과 항만을 앞세워 동북아 물류를 선도하고 있다.인천국제공항은 지난 4월 발표된 ‘2014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1위를 차지했다. 10년 연속 1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인천공항은 2012년 기준으로 세계 국제화물운송 2위, 세계 국제여객운송 9위에 올라있다. 취항 항공사 수는 89개사, 취항 도시 수는 194곳이다. 2013년 기준으로 여객은 연간 4천100만명을, 화물은 250만톤을 처리하고 있다.인천항은 2013년 12월 처음으로 연간 컨테이너 처리 물동량 200만TEU를 넘겼다. 연간 물동량의 규모는 2012년 기준으로 2만1천400만t이다.인천신항은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화물들이 육상 운송료를 추가하면서 부산이나 광양에서 수출입되는 물류 왜곡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6월 부분 개장했다.인천신항의 개장과 동시에 인천과 미주 항로를 연결하는 글로벌 선사 협의체인 G6의 대형 선박이 기항하며, 내년 초 인천신항이 전면 개장하면 인천항은 남항의 컨테이너 부두와 함께 환황해권 컨테이너 거점 항만으로 도약할 전망이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인천항은 2013년 12월 처음으로 연간 컨테이너 처리 물동량 200만TEU를 넘겼다. 신항이 전면 개장하면 남항의 컨테이너 부두와 함께 환황해권 컨테이너 거점 항만으로 도약할 전망이다. /경인일보DB

2015-10-06 김영준

[경인일보 창간70기획 그때]개항서 국제도시까지 ‘인천항 70년’·2

인천내항 1·8부두 항만 재개발… 주민들 위한 친수공간 업그레이드송도 9공구 해상 국제여객부두·터미널 건설 ‘크루즈 거점항’ 부푼꿈IPA, 쇼핑·관광·리조트 결합 ‘골든 하버’ 프로젝트 청사진 본격화도화물을 처리하는 무역항 중심의 인천항이 사람들이 모이는 항만으로 조성된다. 오는 2025년까지 인천항은 ‘글로벌 물류·관광 플랫폼(Platform of Global Logistics&Tourism)’으로 변모할 예정이다.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한·중 카페리를 비롯해 크루즈가 인천항에 모이면서 화물과 더불어 사람들이 인천항에 북적일 전망이다. 특히 인천항은 새 국제여객터미널과 복합지원용지 개발 사업을 통해 크루즈 거점항으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인천내항 1·8부두 재개발인천 시민들은 바다를 끼고 살면서도 항만과 군사적인 보안 문제 등으로 인해 제대로 바다를 접할 수 없었다. 수십 년 간 국가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인천항 인근의 주민들은 바다를 주민들에게 돌려달라는 청원을 국회에 제출하게 된다. 이에 해양수산부는 지난 2013년 5월 “8부두를 시민의 친수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2015년 6월부터 항만기능을 폐쇄하고, 단계적으로 시민에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와 인천시, 인천항만공사 등은 항만을 재개발하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간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3월 관광 기능과 도시재생사업을 골자로 한 ‘인천항 내항 1·8부두 항만재개발 사업계획’을 고시한다.정부는 지난 6월 인천내항 8부두의 부두운영사와의 부두임대계약을 마치고, 부두 폐쇄와 개방 절차를 밟고 있다. 인천내항은 8부두 일부를 시작으로 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친수공간으로 점차 변모하고 있다.#여객이 찾는 인천항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한·중 카페리 이용객들을 비롯 크루즈 관광객들이 인천항에 모이면서 화물과 더불어 사람들이 인천항에 북적일 전망이다. 인천과 중국을 오가는 카페리는 10개 항로에서 매년 100만여 명의 여객을 실어 나르고 있다. 인천항의 크루즈 기항도 크게 늘어 올 해 66회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크루즈는 오는 2016년 140회로 2배 이상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카페리를 이용해 오는 2020년 160만 명, 2030년 220만 명이 인천항으로 입항할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항의 크루즈 관광객도 2030년에는 64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한 번에 수천 명의 여객을 태울 수 있는 크루즈를 중심으로 인천항은 동북아시아의 해양관광지로 발돋움할 전망이다. 정부와 인천항만공사는 인천 송도 9공구 서쪽 해상에 인천항 새 국제여객부두와 터미널 건설사업을 진행 중이다. 인천항만공사(IPA)는 사업비 5천805억원 가운데 정부로부터 1천400억원을 지원받았다. 오는 2018년 개장을 목표로 15만t급 크루즈 선석 1개와 5만t급 카페리 선석 1개, 3만t급 카페리 선석 6개 등 8개 선석이 건설 중이다. 인천항에 새 국제여객부두와 터미널이 개발되면 단순 기항지에 지나지 않았던 인천항이 해양관광의 중심 항만으로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쇼핑, 관광, 리조트 등이 어우러진 ‘골든하버’IPA는 ‘골든하버’라는 콘셉트로 새 국제여객터미널 배후부지 개발 사업에 나서고 있다. 석양에 붉게 물든 인천 서해 바다의 매력적인 풍광을 담아 이름을 붙인 골든하버 프로젝트는 크루즈, 카페리 등을 이용해 인천항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을 위한 쇼핑, 레저, 휴양, 친수공간 등을 갖춘 새로운 복합관광단지의 개념이다. IPA는 이 프로젝트를 1, 2단계의 사업으로 나눠 진행하고 있다. 각각의 부지는 2016년 상반기와 2017 하반기부터 민간 투자자들에게 공급될 예정이다.IPA는 ‘골든하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 인천항을 전 세계인이 오고 싶어 하는 동북아의 대표적 해양관광항만으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IPA는 최근 미국의 부동산개발 전문회사인 비즈포스트 그룹의 비즈포스트코리아와 인천남항 새 국제여객터미널 배후 사업지에 1조 원 가량의 자금을 투자하는 MOU를 맺기도 했다. /신상윤기자 ssy@kyeongin.com인천항이 화물을 처리하는 무역항 중심에서 ‘글로벌 물류·관광 플랫폼’으로 발전해 나간다. 인천항은 ‘골든하버’ 프로젝트를 통해 송도9공구 해상에 크루즈 전용부두를 갖춘 국제여객부두와 터미널을 만들고 ‘크루즈 거점항’으로의 부푼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사진은 인천신항으로 입항한 크루즈 퀀텀 오브 더 시즈호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내리고 있는 모습이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인천신항에 입항한 크루즈 보이저 오브 더 시즈호.인천항 ‘골든하버’ 개발사업 조감도. /인천항만공사 제공

2015-10-06 신상윤

[경인일보 창간70기획 그때]경인일보 특종이 바꾼 세상

北 지능·고도화된 공격 항공기·여객선 등 혼란 단독 보도무기시스템 개발 착수 국제사회 북한규탄 공론화 성과도지역신문사 최초로 국가안보 사안 한국기자상 수상 쾌거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매년 반복되고 있는 남과 북의 긴장관계. 서해5도와 강화도를 끼고 있는 인천은 ‘한반도의 화약고’라 불릴 만큼 남·북 대치 상황의 한복판에 있는 도시다.지난 2012년 4월 인천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북한의 또 다른 도발이 있었다. 경인일보가 단독 취재 보도해 44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북한의 GPS 전파 교란 공격’이 바로 그것이다.북한은 2012년 4월부터 열흘 넘게 우리나라에 대한 전파 교란 공격을 감행했다. 1차 목표는 인천공항을 오가는 민간 여객기들, 열흘 넘게 진행된 전파 교란 공격으로 인천에서 뜨고 내리는 총 600여대의 항공기 GPS가 먹통이 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서해상을 오가는 어선과 군함, 여객선에서도 GPS가 다운돼 우리 어선이 방향을 잃고 월북할 뻔한 아찔한 상황도 연출됐다. 당시 국내 언론 뿐만 아니라 미국의 폭스사와 ABC 뉴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 산케이신문 등 외신들도 북한의 전파 공격을 다루며 경인일보의 보도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경인일보의 전파교란 공격 단독 보도는 눈에 보이는 도발 뿐만 아니라 보다 지능화되고 고도화된 북한의 보이지 않는 공격에 대응해야 한다는 정부 안보정책 변화를 이끌어 냈다. 정부는 경인일보 보도 이후 GPS 전파 교란의 발신지로 북한을 지목, 북한에 공식 항의하고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등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또 전파교란을 북한의 도발로 규정하고 한·중 정상회의의 의제로도 채택했다. 이와 함께 항공기 GPS전파 교란 피해를 막기 위한 자동경보시스템 구축 마련에 나섰고 군(軍)도 전파교란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북한 GPS 전파 교란의 심각성을 사회에 공론화하고 중국 등 주변국들까지 가세해 북한을 규탄하게 하는 성과를 경인일보가 이끌어낸 것이다.중앙 언론이 아닌 지역 신문사에서 국가안보에 관한 사안을 다뤄 한국기자상을 받은 것은 경인일보가 유일하다. 취재 당시 관계 부처 공무원들은 “별거 아니다. GPS 문제는 금방 해결될 것이다”라는 식의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여기서 취재가 중단 됐더라면 경인일보의 GPS 전파교란 특종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회의 문제점을 끝까지 파헤치고 대안까지 제시하는 경인일보 기자들의 이런 특종 정신은 지난 1995년 ‘인천 북구청 세무비리 보도’로 첫 한국기자상 대상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그래픽/성옥희기자·아이클릭아트GPS(위성위치정보시스템) 수신 불능이 1차 원인으로 확인된 ‘인천 송도국제도시 무인헬기 추락 사고’.(2012년 보도) /경인일보 DB

2015-10-06 김명호

[경인일보 창간70기획 그때]씨랜드 화재, 그 후

안전불감 등 사고원인 가감없이 지적소방로 확보등 정부 규정강화 이끌어12년만에 재방문 불법보도 철거 유도지난 1999년 6월 30일 0시 30분,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 363의 1내 수련원 수영장 바로 앞에 위치한 3층짜리 컨테이너 건물에서 불이나 잠을 자고 있던 유치원생 2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이 세간에 ‘씨랜드 화재’로 알려진 참사다. 현장 확인이 생략된 형식적 관리감독·컨테이너 박스 형태의 취약한 건물구조·비상벨조차 작동되지 않았던 허술한 소방설비·가장 가까운 소방서가 30㎞ 거리에 있었던 현장 접근의 어려움까지, 우리사회의 안전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인재’였다.경인일보는 씨랜드 화재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타 언론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비극의 원인을 분석했다. 참사 직후부터 이어진 보도에서, 현장확인이 생략된 해이한 허가절차와 샌드위치패널로 마감된 부실건물,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화재감지기, 비포장인데다 도로 폭이 좁아 소방차량의 진입이 어려웠던 점까지 결국 씨랜드 화재가 우리의 안전 불감증이 빚은 참사라는 점을 가감없이 지적했다. 특히 당시 정부 차원의 섣부른 규제완화 방침에 따라 소방법·건축법·청소년 기본법 등 규제의 잣대가 느슨해진 것을 참사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이같은 경인일보 보도 이후 정부는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소방법을 강화해 청소년 수련시설에 소화기는 물론 소화전과 스프링클러를 필수 설치하게 하고 건축허가 전 공무원의 현장검증 절차를 의무화했다. 또 건축법을 개정해 수련원의 내장시설을 불이 붙어도 연소되지 않는 불·난연재로 마감하도록 하고 4m 이상 진입로를 확보하도록 규정했다.경인일보는 참사로부터 12년이 지난 2011년 8월 17일 또다시 사고장소를 찾았다. 화재참사 현장 주변에 펜션과 방갈로, 음식점 등 수련원풍 불법시설이 또 다시 조성됐다는 사실을 확인, ‘씨랜드 주변 시설…화성시, 알고도 묵인?’ 기사를 집중 보도했다. 재발할수 있었던 참사의 위험성을 알린 것으로 보도 이후 화성시는 해당 시설에 대한 철거명령을 내렸고 보도 보름 만에 참사 현장의 불법시설물은 모두 철거됐다.4년이 흐른 지난 4일 오후 2시께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를 다시 찾았다. 철조망으로 막혀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공터와 우거진 풀숲 사이로 덩그러니 남겨진 수영장만이 끔찍한 비극의 장소였음을 알려줬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2015-10-06 신지영

[경인일보 창간70기획]'독자의 목소리' 경인일보 100년 지표를 세우다

경인일보가 창간 70주년을 맞아 지난 1일 오후 2시 경인일보 사옥 6층 연회장에서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2시간여동안 진행된 토크 콘서트에는 오랜 기간 경인일보를 지켜본 각계의 ‘대표 독자’ 6명이 초청됐다. 국회의원 출신으로 경기방송 ‘세상을 연다. 박찬숙입니다’의 박찬숙(70) 앵커가 사회를 맡았다. (가나다 순으로) 권혁성(44)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신원철(75) 인천노인인력개발센터 회장, 이재창(78) 전 경기도지사, 정광태(60) 영토지킴이 독도사랑회 명예회장, 조혜정(62) 수원시 종합형스포츠클럽 총괄매니저가 토크 콘서트 자리에 앉았다.창간 70주년 토크 콘서트는 경인일보가 독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새로운 100년의 지표로 삼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토크 콘서트에 나온 인사들은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경인일보의 모습을 가감 없이 전했고, 경인일보 임직원들은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경인일보 독자로서 각계 인사들은 격려와 함께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오랜 독자들의 충고는 준엄했고 울림도 깊었다. 문화·체육계 인사들이 전한 아쉬움은 ‘발로 뛰는 기자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학계 인사의 지적은 기록자로서 정책 감시자로서 경인일보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사회자는 토크 콘서트 말미에 “우리를 따뜻하게 하고 보는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신문”을 주문했다.경인일보 70년은 경인지역 현대사의 거울이기도 하다. 광복 이후 주체적인 언로 확보의 수단에서 1도 1사 시절 유일한 지역 언론, 언론 자유화를 거쳐 현재 뉴미디어 시대의 지역 언론으로 경인일보가 서 있다. 독자와 시민이 없었다면 경인일보의 70년도 불가능했다. ‘읽을 가치가 있는 신문’을 말한 이날 토크 콘서트 현장의 목소리는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경인일보를 원하는 독자의 요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지난 1일 오후 경인일보 사옥 6층 연회장에서 열린 경인일보 창간 70주년 토크 콘서트 에서 각계의 대표독자 6명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종택 임열수기자 jongtaek@kyeongin.com

2015-10-06 김명래

[경인일보 창간70기획 지금]인천, 한·중 문화교류 거점으로

유커 8천명 집결 한류콘서트 등 대형이벤트로 韓中 상생 앞장中 문화계 인사 초청·한복패션쇼… ‘장기적인 우호관계’ 물꼬사진작가협 등 순수 예술도 매년 양국 교류전 “인천이 최적지”인천이 한·중 문화교류의 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류를 위시한 대중문화 교류 행사에서 민간 차원의 예술교류까지 인천에서 다양한 문화교류 이벤트가 활발하게 펼쳐지는 등 인천의 가치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대형 이벤트로 중국과 교류 나선 인천지난달 11~13일 인천 서구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는 3일 동안 ‘한류문화축제 더 케이 페스티벌(The K Festival 2015)’이 열렸다.한국을 대표하는 정상급 스타 40팀이 무대에서 펼치는 화려한 춤과 노래에 5만여 관객들은 눈과 귀를 뺏겼다. 이 행사에는 중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중국 문화계를 대표하는 주요 인사들도 대거 초청됐다. 중국을 대표하는 민간 대외문화창구인 중국국제문화전파중심 주요 관계자와 중국 최초의 모델 전문학교인 다롄모델예술학교 학생, 중국 신장성 우루무치 가무단 대표 등 모두 주요 중국 문화계 인사들이었다.이번 행사는 단순한 중국 관광객을 겨냥한 ‘한류콘서트’가 아니라 인천과 중국의 문화·교류 행사로 치러진 것이다.한국 가수들의 공연에 앞서서는 중국 다롄모델예술학교 학생 40여명이 한복을 입고 패션쇼를 펼쳐 큰 환호를 받는 등 단순한 콘서트가 아니라 인천과 중국의 문화정책 주요 결정자들과 문화계 인사들이 만나는 교류의 장(場)이 된 것이다.이번 행사의 실무를 맡아 진행한 인천관광공사 도시마케팅본부 홍정수 과장은 “섬을 제외하면 자연 경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천에서는 경쟁력 있는 문화·콘텐츠의 중요성이 더 높다”면서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한국의 것만을 뽐내려는 문화 상품으로는 ‘혐한류’ 등의 역효과가 난다는 보고가 많이 있었다. 장기적 문화교류 차원에서의 첫 시도였다”고 말했다.그는 “일본 관광객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 과거 부산이 일본을 향하는 관문도시로 문화·관광 교류의 중심이 되었던 만큼, 앞으로 인천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며 “인천이 한·중 문화교류의 중심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민간 순수 예술교류도 활발인천시가 대중문화를 앞세워 한·중 문화교류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미술·사진 등 순수 예술분야에서의 민간 교류도 지역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한국사진작가협회 인천시지회는 지난달 12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한·중 국제교류 사진교류전’을 개최했다.올해로 23년째 열리는 이 행사는 중국 톈진 사진작가협회와 교류전을 진행하고 있다. 짝수해에는 한국 인천에서, 홀수해에는 중국 톈진에서 열리는 이 교류전에는 해마다 양 도시가 각각 50작품씩 출품해 전시가 이뤄진다.이들은 교류전뿐 아니라 각 나라의 중요 출사지를 찾아가 함께 촬영 대회를 열고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의 교류 활동으로 신선한 예술적 자극을 받고 있다.한국사진작가협회 인천시지회 조선일 사무국장은 “톈진과 인천은 지역적으로 가깝고 항구도시라는 공통점도 있어 친밀도가 무척 높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며 “정치·경제적 이해 관계없이 사진이라는 언어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인천미술협회는 오는 24일 중국 지난시에서 중국 산둥성의 미술가협회 회원과 교류전을 가질 예정이다. 인천 미협은 10여년째 매년 정기적으로 국제교류전을 이어오고 있다. 인천미협은 단순한 작품 교류 전시는 올해로 마지막으로 하고, 그동안의 한·중 교류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실질적인 문화교류 행사를 추진할 계획이다.인천미협 이관수 사무국장은 “한·중 문화교류에 인천만큼 적합한 도시가 없다는 것이 인천과 중국 작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라며 “인천시가 한·중 문화예술 교류의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민간 교류 확대를 위한 행·재정적 지원도 준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더 케이 페스티벌 행사장에 마련된 중국문화체험 부스를 찾은 어린이 관람객. /인천관광공사 제공한류문화축제 더 케이 페스티벌 현장. /경인일보DB다롄모델예술학교 학생들의 한복 패션쇼. /인천관광공사 제공한국사진작가협회 인천지회와 중국 톈진사진작가협회가 함께 여는 2015년 23회 한·중 국제사진교류전 행사 오프닝. /인천사진작가협 제공

2015-10-06 김성호

[경인일보 창간70기획·신&구 통하다] 소통으로 세대를 관통 ‘우리는 동시대인’

갈등 심각한데 관리 안되는 ‘악순환’직간접 경제적비용 최대 246조 추산타협없는 정치와 벼랑 끝에 선 노사압축성장에 불법과 편법 관행이 되고사회적 약자들의 희생도 커져만 갔다해방과 함께한 ‘70년’ 소명의식 갖고5개분야 원로와 신예 대화의 장 열어다시한번 소통을 고민해보고자 한다우리 사회가 ‘소통’을 강조해온 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은 여전히 심각하다. 분야에 상관없이 구원(舊怨)과 신원(新怨)이 우리 사회 전분야에서 유령처럼 출몰하면서 역사와 이념과 문화에 장벽을 세우고 사람과 지역과 세대를 흩어놓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우리의 공감대는 박약해지고 공감각은 무뎌지고 있다. 갈등이 수렴되고 대안을 찾는 선순환을 보이는 사회는 발전한다. 반대로 갈등이 그 자체로 주체가 되어 아메바형 증식을 반복하는 악순환에 빠진 사회는 답보하거나 후퇴한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갈등 수준을 보면 우리는 갈등의 악순환국이다. 조사대상 24개국 중 사회갈등지수가 5위인데 비해, 사회적 갈등 관리지수는 34개국 중 27위였다. 갈등은 심각한데 관리는 안되고 있다는 지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갈등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을 최소 82조원에서 최대 246조원으로 추산하고, 갈등해소에 지불하는 비용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27%에 달한다고 밝혔다. 또 한국의 갈등지수가 10% 하락하면 1인당 GDP가 1.9∼5.4% 증가하고, 사회갈등지수가 OECD 평균 수준(0.44)으로 개선되면 1인당 GDP가 7∼21% 증가하는 효과를 볼수 있다고도 했다.천문학적 경제손실 말고도 갈등이 국가와 국민에게 초래하는 무형의 손실도 엄청나다. 해방공간의 혼란 중에 어물쩍 넘어간 친일청산 문제는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의 정체성 논란을 야기하는 중이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경제적 양극화를 자양분 삼아 총체적 갈등을 양산한다. 정치는 타협없이 대립하고, 노사는 벼랑끝까지 버티고, 환경과 건설은 양립하지 못한다. 남남갈등은 북한의 주요 비대칭전략무기가 된지 오래다.압축성장도 갈등의 씨앗을 남겼다. 국가가 성장제일주의를 추구하는 동안 사회적 안전판인 법이 훼손되고 상식이 파괴됐다. 불법, 편법, 몰상식이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관행으로 굳어지면서 사회적 약자들이 감수해야 할 희생이 컸고, 그들의 농축된 분노는 분신자살 등 극단적 방식으로 표출됐다.경인일보는 창간 70주년을 맞아 다시 ‘소통’을 고민한다. 광복을 모태로 태어난 수도권지역 최고, 최대 언론으로서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수렴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소통의 매개’라는 소명의식이 창간 70주년에 즈음해 더욱 또렷해져서다. 창간 기획 ‘신&구 통하다’의 바탕에는 이런 소명의식이 깔려있다. 5개분야의 원로와 신예가 만나 서로의 시선과 말과 생각을 나눴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대와 세대는 서로 공존에 꼭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했다. 이들이 신, 구를 떠나 동시대인임을 확인하기까지 필요했던 것은 그저 ‘만남’ 뿐이었다.경인일보는 해방공간에서 솟아나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 오롯이 동행했다. 70년 걸어온 세월의 무게 만큼 현재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갈등을 치유할 책임을 느낀다. 그래서 다시 세대와 세대, 이념과 이념, 지역과 지역, 분야와 분야, 강자와 약자를 소통시키는 매체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2015-10-06 황성규

[경인일보 창간70기획 그때]경인일보 기사로 본 한국현대사(1960~1980년대)·2

71년 특수범 24명 인천서 버스 탈취후 군·경과 충돌 ‘실미도 사건’87년 잇단 강간살해 ‘화성 현지르포’ 첫 보도등 기사 ‘사료적 가치’88년 10대 피의자 경찰 고문수사 사망 심층취재 통해 억울함 밝혀#월요일 오후를 뒤흔든 공포의 6시간1971년 8월 24일자 3면은 ‘실미도 사건’을 다뤘다. 기사를 보면 무장 난동 특수범 24명은 23일 낮 12시20분께 인천 남구 옥련동 송도해변 채석장을 통해 육지로 침투했다. 70대 행상에게 1천200원짜리 떡 한 소쿠리를 2천원에 사먹은 뒤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했다. 노량진에서 군인·경찰과 충돌한 특수범들이 자신들이 타고 있던 버스 안에 수류탄을 터트리면서 사건이 종결됐다. 사고 발생 뒤 대간첩대책본부는 ‘무장공비 침투’로 발표했다가 다시 ‘특수범이 무장 탈출한 것’이라고 정정했다.#쥐로 모피를 만들어 수출<해외로 수출되는 쥐 모피(毛皮)>(1972년 2월 5일자)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시흥군 과천면 문원리 한국모피공업의 얘기다. 쥐로 만든 모피를 일본 등지에 수출해 화제가 된 회사다. 모피 하나를 만드는 데 쥐 540마리가 필요했다. 밍크보다 촉감이 부드럽고 털이 매끈하면서도 잘 빠지지 않는 것이 장점이라고 신문은 소개했다. 또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부여 매년 연중 행사로 쥐잡기 운동을 벌여오던 쥐의 모피가 외화 획득을 위한 국제 시장에 진출했다”고 평가했다.#아파트 시대 개막주거 형태가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변화하는 흐름을 포착한 기사는 1978년 4월18일자에 <인천 수원에 아파트 붐>으로 게재됐다. 인천에서는 9개 건설사가 37개동 1천564세대를 건설 중이었고, 수원에서는 3천100세대 아파트 건설이 추진되고 있었다. 당시 인천 아파트의 3.3㎡당 분양가는 30만~50만원이었다. 분양 아파트의 면적은 14평에서 35평까지 다양했고, 부유층을 타깃으로 고급화된 단지도 등장하기 시작했다.#인천, 경기도에서 분리1981년 7월1일자 1면 머리기사는 <인천직할시 오늘 개청>이었다. 경기도는 인천의 독립을 축하하면서도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경기도 본예산 1천729억원 중 인천시가 611억원을 담당할 정도로 경제적 기여도가 컸기 때문이다. 신문은 같은 날 3면에 <갈대밭 포구 열어 98년…웅비의 새장 열어>란 제목의 전면 기사를 내보내 인천시 독립의 의미와 전망을 짚었다.#63년만에 나온 일제 민간인 학살 유해 1982년 9월 25일 화성군 향남면 도이리에서 ‘제암리 학살 사건 유해’가 발굴됐다. 1919년 4월15일 일제가 주민 29명을 제암리교회에 감금한 뒤 불에 태워 학살한 유골이었다. 신문은 이번 발굴을 계기로 <항일의 민족혼을 찾아>라는 기획을 시작했다. 1편에서 제암리 사건을 다뤘는데 “공포와 위협 앞에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은 마구 쏘아대는 흉탄과 타오르는 불길에 육신을 잃는 생죽음을 당했지만 독립을 위한 그들의 영혼은 결코 잿더미에 묻히지 않았다”라고 썼다.#영구미제로 남은 화성 연쇄살인 첫 보도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국내 첫 보도로 신문은 1987년 1월16일자에 <낯선 사람 나타나면 경계>란 제목으로 ‘연쇄 강간살인사건 태안·정남 현지 르포’를 실었다. 기사는 “해가 지면서 마을이 어둠 속에 묻히기 시작하면 온 마을이 이웃과의 단절 상태에 빠져 오가는 이 없이 쥐죽은 듯 고요할 뿐이다”, “이웃간의 대화마저 줄어 삭막한 마을로 변했으며 낯선 사람이나 젊은이를 보면 혹시 범인이 아닌가 하는 경계 때문에 주민들끼리의 의심 등 불신마저 일어나고 있다”고 적었다.#경찰의 무리한 수사, 10대 고문 사망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있고 1년이 지난 1988년 1월 수원에서 ‘명노열 군 고문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명군은 여고생 강간 살인 사건 피의자로 경찰에 연행된 후 가혹 행위로 뇌사 상태에 빠진 뒤 곧 숨을 거뒀다. 신문은 심층 취재를 통해 경찰의 고문이 명군의 사망 원인이 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명군이 강간 살인 피의자가 아닌 단순 절도 용의자였다는 사실을 알렸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①1988년 경인일보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국내 첫 보도했다. 사건현장검증 사진. ②주거 형태가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변화하는 흐름을 포착한 1978년 4월18일자 인천 수원에 아파트 붐 기사 사진. ③1919년 4월15일 일제가 주민 29명을 제암리교회에 감금한 뒤 불에 태워 학살한 유골이 1982년 발견됐다. ④1981년 7월1일 개청된 인천직할시청. /경인일보 DB1988년 수원서 열린 명노열 군 고문수사사망 규탄집회. /경인일보 DB

2015-10-06 김명래

[경인일보 창간70기획 그때]경인일보 제호 변천사

‘독자중심주의’ 표방 향토지 1945년 인천기반 대중일보 ‘원뿌리’73년 경기매일·연합신문·경기일보 3개지 ‘경기신문’으로 통합81년 인천직할시 분리 ‘경인일보’ 변경… 쉼없는 ‘수도권 특화보도’경인일보 제호(題號)는 1982년 3월1일자로 경기신문에서 변경돼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경인일보의 ‘경(京)’은 경기도를, ‘인(仁)’은 인천시를 뜻한다. 제호 그대로 풀어보면 경기와 인천지역을 취재 권역으로 삼고 날마다 독자에게 뉴스를 전달하는 신문이다. 경인일보는 1982년 2월26일자 사고(社告)를 통해 제호 변경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수도권 지역이라는 특수성과 경기도와 인천직할시를 대상으로 취재망을 펴야 하는 현실성이 있고 보면 이번 제호를 바꾸어야 하는 이유의 한 가닥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뜻에서 앞으로 펼쳐질 경인일보는 경기도가 기호(畿湖)의 본적지로 역사의 맥락에서 개발을 구도해 보는 민족사의 지침이 제시돼야 하겠으며 인천직할시는 개항 100년에 접어든 국제도시로 세기사(世紀史)적인 문화와 경제를 현실로 수렴하면서 전향적인 미래상을 발진(發進)하는 새로운 인천상(仁川像)으로 부각 시켜나가는데 제작의 초점을 두어야 하겠습니다.제호 변경의 표면적 이유는 1981년 7월1일 이뤄진 인천시의 직할시(현 광역시) 승격에 있다. 무엇보다 경기도에 속해 있던 인천시가 광역시로 분리되면서, 그에 따른 신문 제호의 변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도에서 분리되고 1년도 안 돼 제호를 바꿔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인천과 같은 시기 경상북도에서 분리된 대구시에 있는 대구매일신문(현 매일신문)은 왜 경인일보와 같은 방식으로 신문 이름을 변경하지 않았을까. 앞서 인용한 제호 변경 사고에 나왔듯이 ‘수도권의 특수성’을 살펴야 한다. 인천은 경기도청 소재지인 수원과 함께 경인지역의 중심 도시였다. 인천은 일찍이 근대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수원과 그 일대는 1960~1970년대 급격한 인구 유입과 함께 대대적인 개발이 진행 중이었다. 인천과 수원(경기)은 도시의 궤적과 미래상이 달랐고, 문화적 차이도 클 수밖에 없었다. 수도권의 이러한 특성을 반영해 경인일보는 1980년대 타 지역 신문과 달리 제호에 경기, 인천을 모두 표기했다. 인천, 경기지역에서 각각 독자적인 보도·제작 시스템을 가동하면서도 ‘수도권 주민’으로서 인천·경기의 통합을 도모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경인일보는 1945년 창간 이후 늘 향토지(鄕土誌)를 표방했다. 수도권 각 지역의 소식을 신속하게 취재·보도했다. 또 해방 후 1980년대까지는 계몽지로서, 문화 창달 기관으로서의 기능도 담당했다. 경인일보의 전신으로 1973년 9월 출범한 경기신문은 ‘경기도의 성장’ 과정에서 애향심 고취를 목적으로 했다. 신문은 창간 사설에서 “경기신문이 직면한 보다 다급한 문제 중의 하나는 350만 경기도민에게 애향심을 주입하고 환기시키는 일이라고 본다. 고향은 있되 향토가 없는 무적자들에게 자기를 길러준 향토의 고마움과 영예로움을 갖도록 이끌어주는 일이 그것이다”고 적었다. 경기신문을 이룬 3개 뿌리인 경기매일신문, 연합신문(인천신문), 경기일보는 모두 인천에 본사를 둔 일간지였다. 1960년대 이들 3개 일간지는 자사를 홍보하는 광고에서 ‘경기도민 대변지’ 등과 같은 문구를 썼다. 인천에 본거지를 두고 있지만 인천뿐 아니라 경기도 전역의 독자를 대상으로 신문을 제작한 것이다. 이들 신문이 통합된 경기신문은 도청사가 있는 수원에 본사를 두고, 도 전역에 주재 기자를 보냈다. 인천은 지사(支社), 분실(分室) 아닌 분사(分社)체계로 구축, 독립적인 취재 기능을 갖게 했다.경인일보의 원뿌리인 대중일보(1945년)의 제호는 취재·배포 권역이 아닌 ‘지향성’을 담았다.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은 신문 이름이었다. 제호의 ‘대중’은 ‘독자 중심 주의’를 표방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중일보는 인천을 기반으로 ‘서울 뉴스’와 ‘국제 정세’를 보도했다. 지역을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했다. 해방공간의 신문 독자들은 대중일보라는 여과지를 거친 뉴스를 읽으며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했다.경인일보 70년의 제호 변천 과정을 최근부터 거꾸로 훑었다. 경인일보와 대중일보 사이, 해방 후 수도권 지역 신문의 변화상이 놓여 있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해방의 환희, 분단의 아픔, 펜대 꺾인 기자의 분노, 문화 창달자로서의 자부심, 계도지를 자임한 당당함, 신문 사전 검열의 굴욕, 지역 발전 동반자로서 힘찬 발걸음, 고발자로서의 결기, 생존을 위한 언론사의 이율배반, 기록자로서의 결연함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대중일보에서 시작한 경인일보는 아직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인 역사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경인일보 제호(題號)는 1982년 3월1일자로 경기신문에서 변경돼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경인일보의 경(京) 은 경기도를, 인(仁) 은 인천시를 뜻한다. 제호그대로 풀어보면 경기와 인천지역을 취재 권역으로 삼고 날마다 독자에게 뉴스를 전달하는 신문이다. 경인일보는 1982년 2월26일자 사고(社告)를 통해 제호 변경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15-10-06 김명래

[경인일보 창간70기획 다음]차세대 IT산업의 요람 ‘판교창조경제밸리’

국토부, 43만㎡ 규모 판교창조경제밸리 2018년 추가조성창조·성장·벤처·혁신기업·글로벌·소통교류 등 6개 공간750개 기업 입주·4만여 신규 고용창출 국가경쟁력 ‘엔진’판교테크노밸리의 성공적인 조성과 기업의 활발한 활동으로 인해 판교창조경제밸리(제2판교테크노밸리)에도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판교테크노밸리 북쪽 성남시 금토동 일대의 도로공사 이전부지와 그린벨트 해제용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용지 등을 활용해 약 43만㎡ 규모의 판교창조경제밸리를 조성하기로 했다.판교창조경제밸리는 창조공간(기업지원허브)과 성장공간(기업성장지원센터), 벤처공간(벤처캠퍼스), 혁신기업공간(혁신타운), 글로벌공간(글로벌 비즈 센터), 소통교류공간(I-스퀘어) 등 크게 6개 공간으로 조성된다.앞서 그린벨트지역인 판교창조경제밸리 서쪽 단지는 IT와 문화 콘텐츠, 서비스 등 3대 신산업 육성을 위한 복합 산업공간으로 개발하며 공공연구기관과 기업연구소를 위한 전용용지로도 공급한다는 청사진이 발표됐다. 도로공사·KOICA 부지가 있는 동쪽 단지는 호텔, 컨벤션센터, 창업기업 지원을 위한 기업지원 허브 등이 들어설 ‘혁신교류공간’으로 조성된다.부족했던 오피스텔과 레지던스 등 도심형 주거시설을 확충하고 교육·문화·복지시설을 유치하는 등 주거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계획도 마련됐다.박근혜 대통령도 “판교는 중소벤처의 글로벌 진출 ‘베이스캠프’가 돼 스타트업기업들의 해외시장 개척을 안내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이와 함께 도로망과 버스노선 등도 개선해 서울 강남과 창조경제밸리까지 20분에 연결한다는 계획이어서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들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판교창조경제밸리가 조성되면 300개 창업기업에 300개 성장기업, 150개 혁신기업 등 약 750개 기업이 입주하고 4만여명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성남시와 벤처기업협회, 한국여성벤처협회, 이노비즈협회, 전자부품연구원, 코스닥협회 등은 성남 창조산업 육성협의체를 결성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각 기관별 최적화된 기술을 개발하고 교육연수 사업 개발을 운영하기로 했다. 또 청년실업 해소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상호 협력, 사회공헌사업 등에 참여하는 등의 지원을 펼치기로 했다.판교창조경제밸리가 완성된 이후에는 판교테크노밸리와 함께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 성남시의 기존 성남산업단지, 수원시의 광교테크노밸리 등과 함께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판교창조경제밸리의 조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지만 이 새로운 공간에서 펼쳐질 미래가 대한민국의 신성장동력이자,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성남/김규식·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판교테크노밸리의 성공적 조성에 힘입어 정부가 판교테크노밸리 북쪽에 판교창조경제밸리(제2판교테크노밸리)를 조성하기로 했다. 사진은 판교테크노밸리의 정오 모습. /경기도 제공·아이클릭아트

2015-10-06 김성주·김규식

[경인일보 창간70기획 다음]미래성장동력 경기도

한국의 IT요람 판교TV·새 성공신화 제2판교TV연구개발·인력양성 기반갖춘 수원광교테크노밸리道, 지자체 최초 과기원 설립… 과학기술 발전 노력경기도는 지난 2010년 5월 전국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도내 과학기술을 총괄하는 지원기관인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이하 경기과기원)’을 설립했다. 경기과기원은 도내 과학기술 정책 및 전략 수립,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지원, 첨단연구개발 사업수행, 산학연 혁신 클러스터 구축, 과학문화 확산 업무 등을 전담하며 도내 과학기술 발전과 기술혁신을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특히 경기도 첨단기술의 메카이자 기술혁신역량의 양축을 담당하고 있는 광교·판교테크노밸리를 기반으로 창조혁신 클러스터 생태계를 조성하고 기술력 확보로 중소기업 R&D지원, 개방형 연구체제 활성화에 앞장 서고 있다.이런 경기도의 노력 덕분에 탄생한 ‘판교테크노밸리(이하 판교TV)’는 현재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성공적인 혁신 클러스터 모델로 손꼽히고 있다. 지난 2004년 출발한 뒤 현재 진행형인 판교TV는 선택적 기업 유치와 기업 간 소통 활성화, 창의적 문화 공유가 성공적으로 이어지면서 내로라 하는 기업들이 몰려 들었고 이제는 국내 ICT(정보통신기술)산업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물론 국내외 관계자들의 벤치마킹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판교TV는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출범과 함께 본격 조성되기 시작했다. 경기도와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은 판교를 ICT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아무 것도 없던 곳에 건물을 세우고 기업을 모아 청년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갔다. 이런 노력 덕분에 판교TV에는 현재 1천여개의 기업에서 7만여명의 인력들이 일하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매출은 70조원에 달할 정도로 판교TV를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혁신 클러스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했다. 첨단기술 육성을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와 판교 신도시의 자족기능 강화를 목적으로 출발한 판교TV.이제는 정부도 제2판교TV(창조경제밸리) 추가조성 계획을 확정, 기존 판교TV와 제2판교TV는 이제 세계적인 혁신 클러스터 단지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제2판교TV에는 총 750여개의 벤처기업들이 2018년까지 입주할 예정이다. 정부는 제2판교TV를 기존 판교TV와 함께 1천600여개의 첨단 기업이 집적되고 10만여명의 인력이 근무하는 첨단 클러스터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상태다.이처럼 판교TV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혁신클러스터로 자리매김하면서 경기도는 또 다른 첨단연구단지 조성사업 계획을 밝히게 된다. 도는 지난 7월 경기 서부지역의 성장을 이끌 첨단연구단지 조성사업계획을 발표했다. 경부축에 비해 첨단연구기능이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성장 잠재력이 높은 서부지역의 미래 산업을 이끌 첨단 산업의 거점 육성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도가 밝힌 첨단연구단지 조성사업구역은 광명·시흥 공공주택지구 해제지역 내로, 개발면적 66만여㎡, 총 9천4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도는 이 지역을 판교와 같은 첨단연구단지로 조성하기 위해 주거용지를 원천 배제하고 국내·외 첨단기업들의 연구·업무시설뿐만 아니라 종사자들을 위한 휴식·문화·엔터테인먼트 시설 등이 복합 된 공간으로 조성키로 했다. 또한 연구단지 설계단계부터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 차세대 지능형 전력망 시설인 스마트그리드(Smart Grid)와 사물인터넷(IoT) 등을 도입할 방침이다. 이밖에 판교TV와 차별화 할 수 있는 자동차부품, 기계, 화학, 지능형 로봇 관련 R&D기능을 도입하고 컨설팅, 금융 등 창업·기업지원 서비스와 근로자 교육 및 교류 공간도 마련하기로 했다.도는 이번 첨단연구단지 조성으로 직접적인 고용유발 4천600명, 생산유발 약 6천400억원, 부가가치 유발 약 2천800억원 정도가 발생, 침체된 지역경제에 큰 활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첨단연구단지 개발이 완료되면 약 900개사의 입주가 가능하며 7만명의 고용유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밖에 경기도가 조성한 수원 광교테크노밸리에는 차세대융합기술원, 한국나노기술원,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경기과학기술진흥원, 경기R&D센터 등이 입주 한 상태다. 서울과 30㎞,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이 인근에 위치한 첨단산업단지로서 최적의 지리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광교테크노밸리 내에는 유수 기업과 외국투자기업 200여개가 입주해 있으며 주변에 성균관대, 아주대, 경희대 등 연구개발 및 인력양성 기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판교TV(제1·2판교TV)와 광교테크노밸리, 그리고 광명·시흥 첨단연구단지는 경기도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의 미래성장을 이끄는 동력으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신태기자 sintae@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2015-10-06 김신태

[경인일보 창간70기획 다음]한국 IT산업의 요람 ‘판교테크노밸리’

황무지였던 판교테크노밸리, 대한민국 ICT 중심지로 ‘탈바꿈’현재 1천여 입주기업·근로자 7만여명·매출 총합만 70조에 달해첨단기술·문화 어우러진 ‘젊은이들의 놀이터’ 新경영문화 리드성남 남단녹지로 지정돼 성남시에서도 가장 늦게까지 개발되지 않았던 땅, 판교가 판교테크노밸리의 조성으로 개발도상국은 물론 첨단 산업의 주도권을 쥐려는 선진국에서까지도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판교테크노밸리는 이미 세계 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명실상부한 IT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각종 아이디어와 상품 등은 각 산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 같은 성과는 2004년 판교테크노밸리 조성이 추진되던 시기부터 계산하더라도 불과 10년만에 이룬 성과인만큼 21세기의 새로운 성공신화가 됐다. 하지만 그 신화는 아직 진행형이며 미래형이다.판교테크노밸리는 10년전까지만해도 아무 것도 없는 땅이었다. 하지만 현재(2015년 7월 기준) 1천여개 기업이 입주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직원만 7만여명에 매출 총합이 70조원에 달하는 대한민국 ICT산업의 메카가 됐다.이 곳에는 IT관련 업체가 64%를 차지하고 있으며 BT(생명공학기술)관련 업체가 10%, CT(문화기술)관련 업체가 9%, NT(나노기술)가 1%로 그 뒤를 잇고 있다. 게다가 기업규모로 보면 중소기업이 86%, 중견기업이 10%, 대기업이 4% 순으로 젊고 역동적인 산업구조를 형성하고 있다.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직원들의 연령대를 봤을 때도 20대~30대 비중이 약 76%에 달하고 30대의 경우에는 52%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월등히 높다.이들은 판교테크노밸리를 혁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산실로 만들어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고, 실현된 아이디어를 마중물 삼아 다시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구조가 만들어졌다.판교테크노밸리의 잠재적인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아울러 판교테크노밸리는 이 곳을 종합 관리·지원할 수 있는 전담조직이 형성돼 있고 활발한 산학협력 네트워크가 구축돼 자체적인 발전 시스템을 갖췄다는 점에서 전망이 밝다. 곧 준공될 예정인 산학연R&D센터, ‘스타트업아카데미’는 벤처와 스타트업(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설립초기 창업기업) 생태계 조성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스타트업 프로그램만 가지면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펼친다는 것, 스타트업 아카데미가 정착되면 판교테크노밸리에는 더욱 창의적인 인재가 모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해갈 것으로 기대된다.판교테크노밸리는 ‘산업의 첨단’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성공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대한민국의 기업문화도 판교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판교테크노밸리가 클러스터를 넘어 새로운 경영문화를 선도하는 것은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청년층이 주를 이루다보니 문화적 요소가 더해져 혁신을 이끌어내고 있다.평소 접하기 어려운 문화생활의 기회를 입주기업의 직원들이 직접 만들거나 사내 동아리가 직접 무대를 꾸며 점심 시간 판교테크노밸리의 광장을 오가는 다른 기업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특히 일부 기업들의 독특한 경영문화가 소문이 나면 기업순환모임을 통해 직접 체감한 효과를 서로 소개하면서 기업문화도 발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개인 책상이 없는 기업이나 호텔뷔페식 구내식당, 사우나가 있는 기업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저마다의 특별한 기업문화를 선보이고 있지만 결국엔 모두 직원을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창의적 아이디어와 소통을 강화한 기업들은 성과로 기업문화 혁신의 결과를 돌려받고 있다.판교테크노밸리는 단순히 기업이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일하는 일터를 넘어 첨단기술과 문화가 만나 판교만의 경영화로 이어지면서 첨단 ICT와 혁신적인 기업문화가 어우러진 한국판 실리콘밸리가 되고 있다. 판교테크노밸리는 현재 마련한 기반을 발판삼아 실력있는 젊은이들의 놀이터에서 최고 실력을 갖춘 젊은이들이 세계로 나가기 위해 경쟁을 펼치는 경연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성남/김규식·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명실상부한 IT 메카로 자리매김한 판교테크노밸리. (왼쪽부터) 판교 테크노밸리의 정오, 야경, 일출 광경. /경기도 제공항공에서 바라본 판교테크노밸리.데미투 함바사(가운데) 에티오피아 장관이 지난 2월 판교테크노밸리 공공지원센터 내 창의디바이스랩에서 3D프린팅으로 제작한 심장모형을 보고 있다.

2015-10-06 김성주·김규식

[경인일보 창간70기획 지금]지표로 본 경인경제

1인당 국민소득, 광복 이후 70여년간 400배 가까이↑경기도, 사업체수 1위·인구 1위 등 고속성장 일등공신인천, 수출 전진기지 인천항 활용… 세계화 선봉 중책‘1953년 67달러, 2014년 2만5천931달러’.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의 변화다. 광복 이후 70여년간 무려 400배 가까이 증가하는 등 우리는 말 그대로 ‘초고속 성장’을 이뤄냈다.그 중심에는 경기도와 인천이 있었다.경기도는 인구수 1위, 사업체수 1위, 인구성장률 1위, 수출 1위 등 각종 경제지표에서 ‘1위 타이틀’을 거머쥐며 한국 경제의 성장에 기여했다. 현재 경기도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314조원으로, 우리나라 총생산 규모의 자그마치 21.9%를 차지하고 있다. 경기도를 바짝 뒤쫓는 경남(100조원)보다 무려 200조원 이상이나 앞서있다. 특히 전국 대비 경기도 GRDP의 비중도 지난 1985년 13.8%에서 1995년 17.4%, 2005년 19.5%, 2012년 19.7%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최근 2년 연속 수출 1천억달러를 달성시켰다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곳도 경기도다.도의 수출실적은 지난해 1천117억달러, 2013년에도 1천20억달러를 기록하면서 2년 연속 ‘수출 1천억달러 달성’이라는 쾌거를 이뤘다.여기에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기준 수출규모 1위’라는 타이틀 역시 2년 연속 지키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주요 IT품목의 수출이 전체 수출의 상승세를 견인하면서 도는 ‘수출 웅도’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인천의 경우 인천항을 빼놓을 수 없다. 인천항은 광복 이후 군수물자 등을 취급하면서 눈에 띄게 성장했다. 이후 산업화와 함께 수출 전진기지로 활용되며 경제 성장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왔다.지난 2013년 12월에는 개항 이래 처음으로 연간 컨테이너 처리 물동량 200만TEU를 넘기는 기록을 달성했다. 1974년 인천 내항에 대한민국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부두가 개장한 지 39년, 2005년 100만TEU를 돌파한 지 8년, 200만TEU 도전에 나선 지 4년 만이다.인천항 컨테이너 물동량은 지난 2005년 100만TEU를 돌파한 뒤 증가세를 이어갔지만 2010년 190만2천TEU, 2011년 199만7천TEU, 2012년 198만1천TEU 등 200만TEU의 벽을 쉽사리 넘지 못했다. 하지만 200만TEU 돌파를 이루면서 인천항은 명실상부하게 글로벌 항만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특히 앞으로 환황해권의 주요 항만이자 중심 거점항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인천신항까지 전면 개장하면 인천항은 남항의 컨테이너 부두와 함께 환황해권 컨테이너 거점 항만으로 도약할 전망이다.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제조업의 성장’이다. 경기·인천지역의 제조업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각종 지표에서 양호한 실적을 기록해 주목받은 바 있다.지난 2010년 경기도의 종사자 10인 이상인 제조업 사업체 수는 2만1천662개로 전년(2만50개)보다 1천612개(8.0%)가 증가했고 종사자 수도 72만4천명에서 78만9천명으로 6만5천명(9.0%)이 늘었다.또한 전체 출하액은 234조8천억원에서 289조2천억원(23.2%)으로, 주요 생산비(인건비 제외)는 139조4천320억원에서 177조670억원(27.0%)으로, 부가가치는 95조8천950억원에서 114조3천830억원으로 각각 증가했다.인천시도 같은 기간 제조업 사업체 및 종사자 수가 4천281개, 15만6천명에서 4천653개(8.7%), 16만7천명(6.8%)으로 늘었고 전체 출하액도 7조7천300억원(15.0%)이 증가한 40조5천760억원으로 집계됐다.주요 생산비는 35조2천560억원에서 40조5천760억원으로 높아졌고 부가가치도 2조7천590억원(16.9%)이 늘어난 19조770억원에 달했다.이같은 경인지역 제조업의 성장은 지역의 대표적 주력산업인 자동차, 전자부품, 기계, 금속가공 등 수출환경이 개선되면서 경쟁력이 높아져 전체 제조업을 이끌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2010년 기준으로 사업체 및 종사자, 주요 생산비, 부가가치 등 지표의 증가분 가운데 이들 산업이 60~90%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경제전문가들은 “경기도와 인천은 광복 이후 70년간 전국 평균을 웃도는 역동적인 성장을 이어왔다”고 평가했다. /신선미기자 ssunmi@kyeongin.com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2015-10-06 신선미

[경인일보 창간70기획 그때]근대화를 이끈 토종기업들·1

SK그룹 뿌리인 ‘선경 직물’ 광복·한국전 거쳐 수원서 주식회사 설립1967년 문 연 팔달로 전진상회, 한국대표 종자기업 ‘농우바이오’ 성장글로벌기업 삼성전자·SK하이닉스… 전자·반도체 분야 리더로 우뚝한국 경제는 지난 1945년 광복 이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1960년대 후반까지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자리 걸음만 반복했다. 이후 ‘잘살아보자’는 기치 아래 경제 개발에 매진해 온 결과 단기간 내 최빈국 대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인 경기도에 향토 기업들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다.# SK그룹의 발상지재계 서열 4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SK그룹의 발상지가 바로 수원이다. 당시 상호는 ‘선경직물(鮮京織物)’. 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청운의 꿈이 서려있는 곳이다.고 최종건 회장은 18세의 나이로 조선 선만주단과 일본 교토직물이 합작한 선경직물에 입사했다. 최 회장에게 직접적인 경영의 기회가 찾아온 건 1945년 광복 이후다. 한-일 합작사인 선경직물은 미군정의 관리를 받다가 정부 수립 이후 국가에 귀속됐다.이후 한국전쟁이 터졌고 당시 최 회장은 잿더미였던 공장 부지와 귀속 재산을 매수, 직기 15대를 두고 ‘선경직물 주식회사’를 설립했다.이것이 SK그룹의 시작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파고를 넘어 기어코 자신의 직물회사를 설립한 최 회장의 집념이 빛을 발했다.그는 1960년대 섬유산업에 주력, 1962년 인견직물을 해외로 수출했고, 이어 선경잔디공업(1965년), 선경화섬(1966년), 선경산업(1962년)을 설립하며 사세를 넓혀나갔다.선경직물로부터 시작된 SK그룹은 정유, 화학, 이동통신사업까지 사업 영토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종자산업의 근원지(주)농우바이오는 수원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으로서 국내 종자산업을 이끌어 왔다. 40년 이상 수원과 함께 성장한 농우바이오는 고품질 채소 종자를 연구개발해 700여종의 다양한 채소종자를 국내는 물론 해외에 개발 보급하고 있다.지난 1967년 수원 팔달로에서 전진상회로 시작한 농우바이오는 이후 1981년 삼화육종회사를 인수해 농우종묘사로 탈바꿈했다.1990년대 후반 국내 종묘업계에는 인수합병 바람이 불었다. 이때 대부분의 국내 종묘기업들이 다국적 기업에 인수됐다.농우바이오에도 1천억원이라는 규모의 인수제의가 들어왔지만 경영진은 ‘종자수호’를 내세우며 이를 거절했다.세계적인 종묘회사로 거듭나고 있는 농우바이오는 종묘 연구에서 개발, 생산, 유통을 모두 집적화시킨 대규모 종합단지 건립을 전략사업으로 추진할 방침으로 국내 종자산업의 대들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자산업의 메카경기도는 오늘날의 삼성그룹을 이야기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곳이다. ‘초일류 글로벌 기업’ 삼성의 모든 것이 사실상 경기도의 틀 안에서 태동했다. 1968년 10월 수원시 매탄동에 본격적인 사업장 건설에 돌입하고 이듬해인 1969년 1월13일 삼성전자공업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오늘날의 전자왕국 삼성은 시작됐다. 호암 고 이병철 회장은 1968년 6월12일 일본 아사히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전자산업 진출을 공식 선언한다. 물론 당시엔 일본 산요전자의 협력을 받아 TV를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조립했다. 삼성의 전자사업은 1983년 2월 반도체 산업의 진출로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했다. 이후 반도체 설비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삼성의 반도체 사업을 단숨에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한해 매출 150조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반도체 산업의 전초기지 이천시 소재 SK하이닉스는 경기도 동부지역의 첨단산업을 이끄는 또 하나의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이닉스 반도체에는 기적 같은 부활의 신화가 있다. 하이닉스 반도체의 뿌리는 현대전자다. 지난 1999년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흡수 합병해 세계 최대 D램 생산 기업으로 출발했다.하지만 2001년 세계 반도체 경기 불황이 닥치면서 무려 15조원의 천문학적인 부채를 떠안고 한 순간에 무너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 9개월 후 바로 그 하이닉스는 기적처럼 다시 일어섰다.힘겨웠던 기업회생 절차를 거친 하이닉스는 SK텔레콤이 2011년 11월 하이닉스 반도체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고 이듬해 3월 26일 SK하이닉스로 새로 태어났다.지난달 SK그룹은 반도체 분야에 46조 원을 투자키로 하는 등 공격 경영을 통해 반도체 시장 패권을 노리는 동시에 국가 경제에 일조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성철기자 lee@kyeongin.com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 'M14' /SK하이닉스 제공1950년대 선경직물 생산공장.삼성전자 1997년 기흥사업장 제8라인 준공식.

2015-10-06 이성철

[경인일보 창간70기획 그때] 인천 - 경인일보 탯줄

일제 패망후 인천 대표문인들 의기투합 ‘대중일보’로 지역소통 시작인천신보·기호일보… 1960년대 경기매일·연합신문·경기일보 ‘3강’군사정권 언론 통폐합 아픔 딛고 ‘인천·경기 대표 정론지’로 거듭나경인일보는 해방 직후 인천지역 첫 신문인 ‘대중일보’(大衆日報)로 태어나 수도권 언론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인천은 경인일보가 태어난 곳이고, 지금껏 살아온 터전이다.물론 긍정적인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군사 정부의 언론 통폐합 정책을 감내해야 했고, 유신 정권에 날카로운 칼끝을 겨누지 못했다. 검열하는 정권에 맞서지 못한 채 억눌려 있었던 시기도 있었다. 이 역시 경인일보 70년에 새겨진 역사다. 이런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경인일보는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랜 시간의 무게는 성장의 자양분이다.대중일보는 창간사에서 “오직 불편부당의 진정한 언론의 사명을 다할 것을 만천하 독자에게 공약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의 경인일보로 이어지는 맥박은 지금도 쉼 없이 뛰고 있다.#해방. 그리고 대중일보대중일보는 해방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945년 10월 7일 ‘창간호’를 발간했다. 인천엔 일제강점기의 신문 제작·보급 인프라가 남아있었다. 자본력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 일제가 패망한 뒤 ‘주체적 언로’를 확보하고자 했던 ‘개항장 지식인’들도 많았다. 신문을 만들 인적·물적 기반이 그만큼 탄탄했다.대중일보는 의사 고주철이 창간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사학자인 고유섭의 숙부다. 개항기 인천의 의사들은 본업뿐만 아니라 언론,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창간 이사장 송수안은 일제시대 때 일본어 신문 조선시보, 매일신보 인천지사장을 맡았던 인물로, 신문의 역할과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창간 공무국장 이종윤은 일본 도쿄고등공예학교 인쇄과를 나와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서 근무한 뒤 1927년부터 선영사라는 이름의 인쇄소를 운영했다. 편집국장 엄흥섭을 비롯해 김도인, 진종혁, 김차영, 손계언, 이원창 등 편집국 기자들도 당대 이름을 날리던 문인이 많았다.#창간 초기 보도 성향의 변화대중일보는 창간 초기 좌익적 이념 성향을 보인다. 창간호에 대표적 좌파 시인 임화의 시를 축시로 받아 실을 정도였다. 편집국장 엄흥섭은 당시 좌익 문학인들의 모임인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 회원으로도 활동한 인물이다. 대중일보의 이런 좌익적 이념 성향은 오랜 기간 지속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미·소 신탁통치 논란 과정에서 대중일보의 보도는 ‘반대 유지’로 당시 우익계 신문으로 평가받는 동아일보와 유사했다. 1946년 1월 엄흥섭과 대중일보 소속 기자 일부가 퇴사하는데, 대중일보의 논조 문제 때문이었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편집국장 엄흥섭 등 대중일보 퇴직기자를 주축으로 같은 해 3월 인천신문이 만들어지는데, 인천신문은 지나친 좌익 논조로 창간 초기 필화사건을 겪기도 했다.인천신문이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한때 노골적으로 좌경화해 그와는 반대 논진을 펴고 있는 대중일보와 대결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졌다고 1973년에 나온 ‘인천시사’는 기술하고 있다. 대중일보에 누가 근무하느냐에 따라 신문의 논조가 좌우를 오간 것이다. 당시 언론의 좌경화와 진보주의적 색채를 견제하던 미군정(美軍政)의 언론정책 등 정치적 환경도 대중일보 성향 변화에 요인이 됐다는 평가가 있다.#군사정권의 강압, 3사통합대중일보는 이후 인천신보(1950년 9월), 기호일보(1957년 7월), 경기매일신문(1960년 7월)으로 여러 차례 이름을 바꿨다. 경기매일신문은 1960년대 인천신문(1960년 창간), 경기일보(1966년 창간) 등과 3강 체제를 유지했다.경기매일신문은 ‘만년 야당지로서의 지조와 기개’를 중시하고, 인천신문은 지역 문화 창달의 역할에 치중했다고 한다.창간사에서 ‘의견 형성력’을 강조했던 경기일보는 의제 설정 능력을 중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신문은 당시 경기도 중심도시였던 인천에 본사를 뒀는데, 도내 전역으로 신문망 확대를 추진했다. 경기도 주요 도시에 지사망 시스템도 갖췄다. 1960년대 후반 서울에 있던 경기도청이 수원으로 이전하자, 인천·경기지역 언론 지형에 지각변동이 생겼다. 경기연합일보로 제호를 바꾼 인천신문은 1969년 수원 교동으로 본사를 옮기고 제호를 연합신문으로 바꿨다.군사 정권의 강압적 언론 통합 조치로 ‘3강’ 경기매일신문, 경기일보, 연합신문은 통합돼 1973년 9월 1일 경기신문으로 출발한다.본사 소재지는 수원이었다. 경기매일신문 발행인이었던 송수안(대중일보 창간 이사장)은 통합에 끝까지 반대했지만 군사 정권의 압력은 컸다. 당시 인천을 비롯해 전국에서 신문은 11개에 달했다. 경기신문은 1면 제호 바로 밑에 ‘본보는…(중략)… 자율적으로 통합한 신문입니다’란 문구를 한동안 내보내며 갑작스러운 통합으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던 독자들에게 ‘자율통합’임을 애써 부각했다.#아픔 속에도 놓치지 않았던 인천경기신문 편집국은 경기매일신문, 경기일보, 연합신문 출신 기자들이 섞여 구성됐다. 경기일보 편집부국장 출신인 조창환이 경기신문 초대 편집국장을 맡았고, 편집부국장도 경기일보 출신 기자가 맡게 됐다. 편집 방향은 통합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당시 일했던 기자들의 중론이다.인천은 서울지사나 의정부지사보다 격이 높은 ‘분사(分社)’ 형태로 운영됐다.경기신문 인천분사 기자 수는 총 15명으로, 경기매일신문 출신 4명, 경기일보 출신 5명, 연합신문 출신 6명이었다. 이는 경기신문 본사의 기자(데스크 포함) 12명보다 많은 숫자였다. 경기매일신문 편집국장이었던 김형희가 인천분사 편집책임자를 맡았다.3사 통합 이후 언론계에 남은 이들이 있었지만, 떠나야 했던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1972~1973년 전국언론인방명록을 보면 최소한 100명 이상이 직장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인천을 기록하는 경기신문 기자들은 쉬지 않았다. 당시 정치적·사회적 아픔 속에서도 신문의 비판 기능을 잃지 않았다. 밤낮없이 일하는 소방관, 간호사, 경찰관 등을 취재한 ‘심야의 역군’ 시리즈를 비롯해 인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을 보도했다. 1973년 9월 1일부터 1979년 12월 31일까지 경기신문에 소개된 인천 기사는 약 2만 3천 건에 이른다.#경인일보의 뿌리는 인천경기신문은 1982년 3월 경인일보로 제호를 바꿨다.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나온 자연스러운 조치였다. 신군부의 ‘1도 1사’ 정책은 1987년 언론기본법 폐기로 끝이 난다.언론 자유화 이후 경기일보, 인천신문(현 인천일보), 기호신문(현 기호일보) 등이 창간됐다.‘한국 신문 100년 연표’는 인천에서 창간된 대중일보에서 인천신보, 기호일보, 경기매일신문, 경기신문으로 이어지는 경인일보의 흐름을 명시하고 있다.이 연표는 한국 언론계에서 ‘영원한 사회부장’으로 추앙받는 고(故) 오소백 기자의 대표작 ‘기자가 되려면’에 수록돼 있다.경인일보의 뿌리는 인천에 있다. 인천에서 창간한 대중일보를 시작으로, 역사의 곡절을 거치면서 70년간 꾸준히 성장했다. 그리고 경인일보는 뿌리 인천과 함께 호흡하면서 변함없이 더욱 성장할 것이다. /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아이클릭아트1970년대 경기신문은 ‘지역성 강화’에 주력했다. 인천을 비롯한 경기도 전역의 소식을 고루 전하면서, 역사와 인물을 발굴해 기록하는 일에도 힘썼다. 사진은 경기신문이 1977년 초 발간된 ‘한국신문연감’에 낸 광고사진.한국 언론계에서 ‘영원한 사회부장’으로 추앙받는 오소백(1921~2008) 기자의 대표작 ‘기자가 되려면’(개정·증보 12판)에 수록된 ‘한국 신문 100년 연표’의 ‘경기매일신문’과 ‘대중일보’ 설명란.

2015-10-06 이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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