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53·(끝)·에필로그]태동·성장·위기에 그룹 내면까지 살펴… 펜은 멈췄지만 견제의 시선은 풀지않아

한국전쟁 직후 한국 경제가 일어서는 과정에서 '재벌'이라고 불리는 기업 집단이 등장했다. 1960년대 이후 공업화를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는 재벌이 양산돼 한국경제의 주축으로 성장했다.하지만 이면에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 이른 시일 내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는 특정 재벌 기업에 특혜를 주면서 육성했기 때문이다.이에 경인일보는 152편에 걸쳐 '이한구의 한국재벌사'를 통해 재벌그룹의 태동부터 성장, 위기, 소멸, 작금에 이르기까지 면밀히 들여다봤다.지금은 다소 생소한 경방삼양그룹, 화신그룹, 태창그룹, 삼호방직, 대한유화, 대한그룹, 한국생사그룹 등 한국의 근대 초창기 재벌사부터 삼성, 현대, LG, SK, 롯데까지 현재 대표 재벌그룹의 내면도 살펴봤다.그 결과 재벌들은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주역이기도 했지만, 끝없는 외형 부풀리기 끝에 한국 경제를 휘청이게 한 주범이라는 사실도 재입증했다.심지어 대마불사(大馬不死, 바둑을 둘 때 대마는 쉽게 죽지 아니하고 필경 살 길이 생겨난다는 뜻) 신화에 도취된 재벌 기업들이 정경유착과 차입경영을 통해 외형을 부풀리고 우리 경제가 재벌 중심으로 고착화된 점도 드러냈다. 재벌 그룹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사를 통해 확인한 셈이다.역사는 반복된다. 경인일보의 '이한구의 한국재벌사'는 '롯데-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한 롯데'를 끝으로 게재를 중단하지만 국내 재벌그룹에 대한 견제는 놓지 않을 방침이다.그동안 '이한구의 한국재벌사'에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한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2020-03-30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52]롯데-24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

檢수사·경제민주화 영향호텔롯데 상장서 급선회계열사 투자부문만 '합병'순환출자 고리 대폭 개선케미칼 매입 '안정성' 확보신동빈 체제 출발의 첫 과제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이었다. 난마처럼 얽힌 순환출자 해소와 '일본 기업' 논란을 종식시키는 것이 시급해 당초에는 일본계 주주비율 99%인 호텔롯데를 2017년 내에 상장시켜 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할 예정이었으나 검찰과 특검 수사로 2017년 상장이 곤란해지면서 지주회사 설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 롯데지주 설립또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 경제민주화 분위기가 거세질 수도 있어 이에 대비한 사전 포석이기도 했다.첫 작업은 2017년 4월 26일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4사가 이사회를 동시에 개최한 것이다. 각 사를 투자회사와 기존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투자회사들만 합병하기로 의결했다. 4사는 계열사 지분을 교차 보유하고 있어 지주회사를 설립하면 얽히고설킨 순환출자 고리 상당부분이 해소될 예정이다. 순환고리 수는 롯데쇼핑 63개, 롯데제과 54개 등이었다.사전작업을 거쳐 2017년 10월 12일 롯데제과를 모체로 한 롯데지주(주)를 설립했다. 주요 계열사인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를 각각 투자와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한 후 롯데제과 투자부문을 중심으로 합병해 지주회사로 전환한 것이다. 2018년 2월 롯데지알에스, 한국후지필름, 롯데로지스틱스, 롯데상사, 대홍기획, 롯데아이티테크와 2차 합병을 했다.롯데지주는 자본금 4조8천800억원, 자산 6조3천500억원에 42개 자회사(해외 포함 138곳)를 품었다.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는 13개로 대폭 축소됐다. 그러나 이는 1차적인 단계로 중간지주회사에 불과하며, 추후 호텔롯데와의 합병을 통해야만 제대로 된 지주회사가 될 수 있다. 일본 롯데그룹이 지분 99%를 장악 중인 호텔롯데를 상장시켜 롯데지주에 합병하기로 했다. >> 지배구조의 완성2018년 9월 신동빈 회장은 롯데지주의 보통주 10.5%와 우선주 2.3% 지분을 확보했다. 한국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27.2%, 롯데재단 5.0%, 신동빈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 4.5% 등을 합치면 신동빈의 우호지분은 51.7%이다. 반면에 신동주 SDJ 회장은 합병에 반대하며 4사 지분을 대부분 매각한 탓에 그의 롯데지주 지분은 0.3%에 불과해 롯데 내부에서는 "경영권 분쟁은 끝났다"고 평가했다. 2016년 10월 신동빈 회장이 경영혁신방안을 제시한지 꼭 1년만이다.2018년 10월 10일 롯데지주는 2조2천300억 원을 투입해서 호텔롯데가 보유한 롯데케미칼 지분과 롯데물산 지분을 시간외 대량매매로 매입해서 롯데케미칼의 지분을 23.24%로 높였다. 롯데물산과 호텔롯데가 각각 최대주주와 2대 주주인 롯데케미칼은 그룹의 핵심적 현금창출원이다. 롯데지주는 롯데케미칼을 자회사로 두면서 한국 롯데그룹의 안정성이 높아졌다. 롯데지주는 보유하던 롯데건설 지분을 롯데케미칼에 넘김에 따라 '롯데지주 → 롯데케미칼 → 롯데건설'의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2017년 10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롯데지주 출범 기념식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다. /롯데그룹 제공

2020-03-23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51]롯데-23 신동빈 시대 오픈

창업 반세기 총94개 계열사100층↑ 국내 최대 빌딩꿈이명박 靑 입성 후 현실로자산총액 5년만에 2배 껑충신격호 마감 경영혁신 시동롯데그룹은 지난 2017년 4월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에서 임직원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창업 반세기의 계속기업 롯데그룹은 2016년 기준 식품 12업체, 유통 14업체, 금융 11업체, 관광·서비스 39업체, 화학·건설 18업체 등 총 94개 계열사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12만5천명, 해외 5만8천명 등 총 18만여 명의 임직원들이 92조원의 매출을 올려 국내 재벌 서열 부동의 5위에 올랐다.>> 롯데월드타워 전면개장특히 123층의 롯데월드타워 전면 개장에 맞춰 행사를 진행했는데 이 빌딩 높이는 국내 최고이자 세계 5위이다. 롯데그룹이 1987년 12월 12일에 매수한 송파구 신천동29번지 일대의 땅 8만7천183㎡에 세워진 것이다.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는 이 땅에 100층이 넘는 국내 최대의 빌딩을 짓기로 하고 노태우 정부에 줄을 댔지만 실패했다.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허가받기에 매진했지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한결같이 손사래를 쳤다. 잠실지역의 교통혼잡 문제와 인근 성남비행장(서울공항)의 항공안전 때문이었다. 신격호 창업주의 오랜 숙원은 2008년에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청와대에 입성한 이명박 정부에 의해 해소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인 2006년 2월에 제2롯데월드 건설계획안을 최종 승인했지만 공군의 완강한 반대로 지지부진하던 터였다.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4월 28일 청와대의 '투자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합동회의'에서 제2롯데월드 계획에 우려를 표시한 이상희 국방부장관에게 "날짜를 정해놓고 그때까지 해결할 수 있도록 검토하라"고 다그쳤다. 이 대통령은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을 경질하는 무리수를 둬가며 2009년에 제2롯데월드 건설계획을 최종 승인했다. 그 과정에서 용적률과 건폐율도 상향조정돼 층수가 당초 112층에서 123층으로 높아졌다.>> 이명박정부와 밀착 최고롯데그룹은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 46개였던 계열사수가 79개로 증가했다. 자산총액도 49조2천억원에서 95조8천억원으로 이명박정부 5년 만에 2배로 증가했다. 롯데그룹의 이명박 정권 밀착도는 역대 최고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이를 물려 받은 신동빈 회장은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과 사회공헌을 통한 동반성장 등의 '뉴 비전'을 발표했다. 투명경영과 핵심역량 강화, 가치경영, 현장경영도 강조했는데 2016년 10월에 발표한 경영혁신안을 구체화한 것으로 신격호 창업주의 경영스타일과는 차별화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 보다 내실을 취한다'는 신격호 창업주의 '거화취실(去華就實)' 경영철학과 확실히 대비된다. 전문가들은 신격호 창업주의 경영 마감 및 신동빈 시대 개막의 신호탄으로 평가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2017년 4월 3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롯데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새로운 50년을 향한 희망의 불빛을 상징하는 '뉴롯데 램프'를 점등했다. /연합뉴스

2020-03-16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50]롯데-22 최순실 게이트 연루(하)

월드타워점 선정서 탈락부당한 평가 사업권 잃어2017년 2분기 매출 적자호텔 상장은 무기한 연기美액시올 인수 끝내 무산'일해(日海)'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로 당초 재단은 1983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발사건의 유족을 지원하고, 스포츠 유망주 육성을 목적으로 발족했다. 자금은 삼성·현대·대우·선경·국제 등 기업들이 출연했다.1986년 사업목적을 국가의 안전보장과 평화통일을 위한 정책연구와 인재 양성 등으로 확대하면서 일해재단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1984년부터 5년간 조성된 598억원의 대부분이 재벌을 통해 조성됐고, 이 과정에서 강제성 증언이 나왔다. 일해재단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관세청 심사 연이은 좌초연매출 12조원의 국내 면세점시장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여서 면세점 인가 자체가 대박으로 치부됐다. 2015년 7월 '제1차 면세점대전'에서 관세청은 서울시내 대기업 면세점으로 HDC신라와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를 선정하면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SK네트웍스의 서울 워커힐호텔 면세점을 탈락시켰다. 롯데는 절치부심 끝에 2015년 11월 '2차 대전' 심사에 기대를 걸었지만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대신 경험이 전무한 두산그룹에 특허권이 넘어갔다. 3천억 원이 넘는 투자에다 1천300여 임직원이 20년 넘게 공들인 월드타워점의 폐점을 의미했다.2017년 7월 11일 감사원에 따르면 관세청은 2015년 7월과 11월 각각 이뤄진 면세점 사업자 1차와 2차 선정 과정에서 계량평가 점수를 고의로 조작했다. 1차 선정에서 호텔롯데가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에 밀려 신규사업장이 되지 못했고, 2차 선정에서는 롯데월드타워점이 두산에 밀려 재승인 받지 못했다. 2016년 4월 3차 면세점 선정 과정도 문제가 됐다. 당시 관세청은 서울 시내면세점 4개를 추가 설치하면서 매장당 적정 외국인 구매 고객 수, 매장 면적 등의 기초자료를 왜곡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가 정량평가 항목에서 앞서고도 부당한 평가를 받아 월드타워점의 사업권을 잃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롯데가 지난해 초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 출연했다가 돌려받은 일이 이때 상실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사업권을 되찾으려고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신동빈 구속 '화살 받이'부동의 국내 1위 롯데면세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만신창이가 됐다. 2017년 3월부터 시작된 중국의 사드보복은 설상가상이어서 롯데면세점은 2017년 2분기(4~6월)에 298억원 적자를 냈다. 사스가 발생한 2003년 이후 14년만의 첫 매출 감소였다. 호텔롯데의 상장도 무기한 연기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15년 8월 형제의 난 이후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호텔롯데의 상장을 공언했었다. 한국 롯데그룹의 정점에 있는 호텔롯데를 상장해서 현재 99%에 달하는 일본계 기업 지분을 낮추고 한국민에 주식을 팔아 '롯데=일본기업'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일환이었다. 신동빈 회장이 야심차게 추진하던 미국의 PVC(폴리염화비닐)업체 액시올 인수가 무산되는 등 롯데는 한마디로 경영 뇌사상태에 빠졌다. 신동빈 회장의 구속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조기 레임덕 및 2016년 4·13총선 대패책임을 피하고자 롯데를 '화살받이'로 세웠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면세점 특허권을 재승인 받는데 실패해 2016년 6월 26일 문을 닫았던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193일 만인 2017년 1월 6일에 영업을 재개했다. 관세청 서울세관이 특허장을 교부한 직후인 오전 9시30분에 문을 열고 연매출 1조2천억 원 달성을 위한 첫 손님을 맞았다. 폐업 전인 2015년 매출은 약 6천112억 원이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롯데는 지난 2016년 면세점 특허권 만기 도래로 재승인을 위한 경쟁을 치렀지만 탈락해 롯데월드몰(제2롯데월드) 면세점의 문을 닫았다. /연합뉴스

2020-03-09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9]롯데-21 최순실 게이트 연루(상)

특허 취득 관련 도움 정황崔연관 K스포츠재단 설립70억 제공 뇌물공여 혐의"미르재단과 몇개월만에총 900억원 기부금 조성"롯데그룹 창업주 일가가 한번에 법의 심판대에 선 경우는 한국재벌 역사상 최초의 사례였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사실상 '오픈게임'에 불과했다.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보다 혹독한 대가를 받았기 때문이다.지난 2018년 2월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김세윤)는 신동빈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70억 원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을 한 것이다.>> 박근혜 前대통령과 독대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신동빈 회장 사이에 롯데 면세점과 관련한 부정한 청탁이 존재한다"면서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해 노력해 온 수많은 기업들에 허탈감을 줬다. 뇌물 범죄는 공정성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해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으며 정치, 경제 권력을 가진 대통령과 재벌 회장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판시했다.신동빈 회장은 지난 2016년 면세점 신규 특허 취득과 관련해서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최순실이 관련된 K스포츠재단에 체육시설 건립비용 명목으로 70억원을 제공한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됐다. 2016년 6월 10일 롯데 비자금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 수사 직전에 롯데그룹이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기부한 출연금 70억 원을 돌려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잠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특허 탈락으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자 신동빈 회장이 박 대통령과의 독대자리에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특허 재취득을 묵시적으로 청탁했고 그 대가로 뇌물 70억원을 K스포츠에 기부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K스포츠재단의 정확한 명칭은 '재단법인 케이스포츠'로 주사무소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언주로114길 15-5이고 체육을 통한 국민행복과 국가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했다. 이 재단은 2016년 1월 12일 설립허가 신청을 하자 바로 다음 날 허가가 났는데,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초스피드로 법인설립 허가를 내 준 사례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두 곳뿐이었다.2016년 10월에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터졌는데, K스포츠재단에 대한 각종 의혹들은 한달여 전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다. 2016년 8월 선데이저널에서 청와대와 미르, K스포츠재단의 유착관계를 취재한 기사를 내보냈다. 두 재단과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 간에 관련이 깊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 청와대 유착의혹 폭로K스포츠로부터 독점적으로 자금 지원을 받은 '더블루K' 라는 회사는 재단 설립 하루 전인 2016년 1월 12일에 세워졌는데, 검찰 조사결과 이 회사의 실소유주가 최순실로 밝혀졌다.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과 오래 전부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인사로 최태민 목사의 5녀로 확인됐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설립 몇 개월 만에 각각 486억, 380억 등 약 900억 원에 이르는 기부금을 조성했다"고 폭로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도 "2015년 10월에 설립된 미르재단과 2016년 1월에 설립된 K스포츠재단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 후 활동을 위한 제2의 일해재단이라는 그간의 의혹"이 있다며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직접 유수의 대기업들로부터 최소 800억 원이 넘는 거액의 출연금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2018년 2월 13일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뇌물공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 받아 법정구속됐다. /연합뉴스

2020-03-02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8]롯데-20 경영비리로 단죄(하)

신동주 ·서미경 모녀에급여 명목 508억 부당지급 일감 몰아주기 778억 손실유상증자 계열사참여 수법471억 배임 혐의 10년 구형검찰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징역 10년에 벌금 1천억원을 구형했다. 최고경영 책임자인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그룹에서 일한 적이 없는 신동주 SDJ 회장 및 1972년 제1회 '미스롯데' 출신의 서미경 모녀에게 508억원을 급여명목으로 부당하게 지급했다는 것이다. 서미경과 신영자 이사장 등에 일감 몰아주기로 회사에 778억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점도 적시했다. >> 모든 책임 아버지에 전가또한 부실기업인 롯데피에스넷의 ATM기 구매과정에서 롯데알미늄을 중간업체로 끼워 넣었으며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에 계열사들을 참여시키는 수법으로 471억원의 배임 혐의를 추가했다. 검찰은 신동빈 회장에 대해 "책임을 모두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전가하고 있고 직접적 이익은 신영자 이사장 등이 취했다고 주장하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 경영권을 강화하는 등 막대한 이득 얻었다"고 주장했다.신동주 회장에게는 부당급여 391억원 수령 혐의로 징역 5년에 벌금 125억원을, 신영자 이사장과 서미경에게는 각각 징역 7년에 벌금 220억원, 1천200억원을 구형했다. 신영자 이사장에게는 면세점과 백화점 입점 업체들로부터 30억원대의 로비를 받은 혐의와 본인이 실질적으로 운영해온 유통업체의 회삿돈 40억여원을 세 딸의 급여 명목으로 빼돌린 혐의 등을 적용했다. 채정병 롯데카드 대표, 황각교 롯데그룹 경영혁신실장, 소진세 롯데그룹 사회공헌위원장,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 등에도 각각 징역 5년을 구형했다.전문가들은 최근 일감 몰아주기가 친족분리 기업에서 벌어지는 사례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친족분리란 삼성그룹과 신세계, 한솔그룹처럼 기업대표나 최대주주가 친인척이지만 다른 대기업집단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친족분리된 소규모 기업들은 대기업집단에 소속되었을 때 받는 60여 가지 규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친족기업들이 그룹에서 분리신청을 하면 상호 주식보유비율이 상장사 3%, 비상장사 15% 이하이고 임원겸임이 없으면 분리를 허가해 주는데, 문제는 친족분리 후 모그룹에서 일감을 받을 경우 현행법상 규제가 불가하다는 점이다. 1999년 공정거래법의 친족분리 기업요건에서 모기업에 거래의존 정도가 높으면 분리를 불허하는 조항을 삭제한 탓이다.>> 가족 대부분 법의 심판롯데에서는 2005년에 롯데관광개발, 롯데관광, 동화면세점, 용산역세권개발 등이 친족분리됐는데 롯데관광 김기병 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넷째 여동생인 신정희의 남편이다. 2007년에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넷째 남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 롯데우유를 계열 분리했고 대선주조, 대선건설, 푸르밀 등이 관계회사이다. 2011년에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녀 신영자 이사장은 BNF통상, BNF피에스씨, BNF패션앤컬쳐, 유니엘 등을 친족 분리했다. 화장품(SKⅡ)과 신발(토스) 등 뷰티, 패션 브랜드의 면세점 및 백화점 입점과 공급 대행을 하며 수수료를 받는 BNF통상은 신영자 이사장의 장남 장재영이 지분 100% 소유한 업체이다. 2015년 매출 438억원, 영업이익 21억 원인데 회사 매출의 대부분이 롯데 계열사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롯데시네마 매점사업 운영업체인 유원실업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사실상 부인인 서미경이 최대주주(57.8%)로 알려졌지만 친족분리 대상은 아니다. 서미경과 신격호 총괄회장은 사실혼 관계일 뿐 법적 부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횡령, 배임, 탈세 등 경영비리' 1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감상동)는 신동빈 회장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배임 등 혐의 중 일부만 유죄로 판단해서 징역 1년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롯데피에스넷 관련 471억원대 특경법상 배임혐의는 '경영상 판단'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으며 롯데시네마 매점운영 관련 배임 혐의도 손해액 산출 곤란을 이유로 형법상 배임죄만 인정했다. 신동빈 회장이 2016년 10월 재판에 넘겨진 이래 429일만이다.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해서는 배임 혐의 일부와 횡령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과 벌금 35억원이 선고됐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구속을 면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같은 해 8월 31일에 법원으로부터 성년후견을 받은 상태였다. 신동주 회장은 특경법상 횡령혐의 공범으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공짜 급여 수령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신영자 이사장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면세점로비관련 20억원 수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며 서미경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장녀 신영자, 신동주·동빈 형제, 사실혼 관계의 서미경 등 가족 대부분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창업주일가가 한꺼번에 법의 심판대에 선 경우는 한국재벌 역사상 최초의 사례였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지난 2017년 12월 22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횡령·배임·탈세' 등 롯데가 경영비리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2020-02-24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7]롯데-19 경영비리로 단죄(상)

서울지검, 오너일가등 수사이인원 前부회장 극단선택이후부터 '횡령·배임' 겨냥"범행 지시 형사처벌 불가피"'95세 노인에 중형' 말 많아롯데 창업 68년 역사에서 최대의 시련은 2016년 6월 10일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검사·조재빈)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손영배)의 집중조사를 받으면서부터였다. 서울지검 수사진 200여명은 이날 오전 8시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서울 중구 롯데그룹 정책본부 사무실, 롯데호텔·롯데쇼핑·롯데홈쇼핑 등 핵심계열사 7곳, 신격호 총괄회장의 집무실인 롯데호텔 34층 및 평창동 자택, 주요 임원들 자택까지 모두 압수수색했다. 오너일가가 비자금 수백억원을 조성하고 3천억원대의 횡령·배임까지 저질렀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4개월여 동안 역대 최대 규모인 320여명의 검찰 인력이 500여명의 롯데 임직원들을 수사했다.>> 檢, 역대최대 320명 투입검찰은 2016년 초부터 대대적 수사를 준비했다. 롯데는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인허가와 부산 롯데월드 부지 불법 용도변경, 맥주사업 진출 등과 관련해 특혜의혹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롯데홈쇼핑은 납품업체 금품 수수비리로 사상 초유의 황금시간대 방송금지 처분을 받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롯데카드는 2천600만 개인 고객 정보 유출 사고로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총수일가의 부정부패 의혹도 끊이지 않는 데다 롯데그룹의 일본 국적(國籍) 논란은 설상가상이었다. 아들들은 경영권분쟁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고령의 부친까지 끌어들여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롯데 오너일가 스스로 매를 벌은 것이다.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더이상 진전이 없었다. 롯데그룹의 제2인자인 이인원 전 정책본부 부회장이 2016년 8월 26일 목숨을 스스로 끊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부회장이 자살한 당일 9시30분까지 이 부회장을 횡령·배임 등의 피의자 신분으로 출두를 요구한 상황이었다. 이인원 부회장은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 수장으로 총수일가와 계열사 경영까지 총괄하는 위치에 있어 검찰의 기대가 컸지만 결국 드러난 것은 이 부회장의 차 안에서 발견된 자필유서의 "롯데그룹에는 비자금은 없다"가 전부였다.>> 결심공판서 10년 구형이후부터 검찰의 칼끝은 롯데그룹 오너일가의 배임 및 횡령을 겨냥했다. 항간에서는 이인원 자살로 암초를 만난 검찰이 수사 무게를 비자금에서 탈세 쪽으로 바꾼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롯데그룹 주변에서는 창업주 친인척들이 임원으로 등재돼 거액의 급료를 챙기고 수익성 높은 사업이나 매장을 독차지해 폭리를 취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2017년 11월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김상동) 심리로 열린 신격호 총괄회장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징역 10년에 벌금 3천억원의 중형을 구형했다.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등 일가에 부당 급여 508억원을 지급하고, 셋째 부인 서미경과 신영자 전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에게 롯데시네마 사업권을 몰아줘 회사에 778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6.2%를 신영자와 서미경 모녀에 불법 증여하면서 증여세 858억원을 납부하지 않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도 추가했다.검찰은 "신격호 총괄회장은 범행을 최초 결심하고 지시했다는 점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함께 주범의 지위에 있어 연령과 건강상태를 고려하더라도 엄정한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95세 고령의 치매 노인에게 징역 10년의 중형을 구형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2017년 11월 검찰은 경영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롯데의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해 징역 10년에 벌금 3천억원을 구형했다. /연합뉴스

2020-02-17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6]롯데-18 형제의 난(하)

그룹 "신동주가 부친 이용"장남 "정신또렷 승계지목"차남 "판단력 문제" 실토법원 '한정후견' 공식 결정日국적 논란 '적잖은 내상'롯데그룹의 '형제의 난'은 2014년 12월말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시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 계열사의 모든 직위에서 해임된 데 대한 반격으로 분석된다.하지만 신 총괄회장의 지시는 하루 만에 뒤집혔다.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이사회를 열어 신격호 총괄회장의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을 해임해버린 것이다. 롯데홀딩스는 광윤사와 종업원지주회, 롯데홀딩스 이사들이 주식을 각각 3분의 1씩 가지고 있는데 이중 3분의 2는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임원직 유지에 부정적이었다. 광윤사는 한일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28.1%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다.>> 신격호 건강문제 제기이 와중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문제가 불거졌다. 2015년 7월 28일 롯데그룹의 공식입장은 "총괄회장은 건강하다"였는데 이후 "고령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입장을 바꿨다. 롯데그룹에서는 신동주 회장 등이 고령으로 건강상태가 안 좋은 부친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동주 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정신이 또렷하다. 정상적 판단에 의해 자기를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 후계자로 지목했다"고 주장하자 신동빈 회장은 그동안 부친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었다고 실토했다. 형제 간에 상대방의 총괄회장 집무실 출입을 막거나 CCTV 감시 논란을 빚는 등 충돌이 극한으로 치닫자 2015년 12월 18일 신격호의 넷째 여동생인 신정숙( 김기병 롯데관광 회장의 부인)씨는 서울가정법원에 "신격호는 독자적으로 판단할 상황 아니"라며 성년후견인 지정을 신청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정상적 판단유무를 법으로 확인하려는 것이다. 성년후견제도란 치매 등 정신적 제약이 있는 피(被)후견인의 재산뿐 아니라 거주지 이동 등 일상생활과 관련해 최대한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고자 2013년 7월에 도입한 제도다. 2016년 3월 9일 법원은 신동주 회장이 요청한 서울대병원을 정신감정기관으로 정해 신격호 총괄회장은 2016년 4월말까지 서울대병원에 입원해서 2주 정도 검사를 받기로 됐다. 법원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정신이 온전하다고 판단하면 신동주 회장이 유리하고 반대면 신동빈 회장이 유리할 터였다. >> 성년후견인 지정 신청2016년 8월 31일 심리를 맡은 서울가정법원(가사20단독 김성우 판사)은 "자녀들 사이에 신상보호 및 재산관리, 회사 경영권 등을 둘러싸고 극심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어 한쪽에 후견업무를 맡기면 분쟁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한정후견' 결정을 내렸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법원이 공식 확인한 것이다. 한편 신동주 회장은 "부당하게 이사직에서 해임됐으니 8억8천만원 상당을 배상하라"며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호텔롯데 등은 2015년 9월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신동주 회장을 이사직에서 해임한 바 있다. 이에 신동주 회장은 같은 해 10월 "(동생인) 신동빈 회장이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해임을 당했다"며 "8억7천9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던 것이다. 1, 2심 재판부는 모두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의 손을 들어줬는데 2019년 5월 30일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회사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없다"며 신동주 회장 측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세는 동생인 신동빈 회장 쪽으로 기울고 있다. 5년여에 걸친 롯데 '형제의 난'이 마무리단계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은둔의 경영자'로 세간에 별로 노출되지 않았던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이상설과 한국 롯데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롯데홀딩스가 일본국적의 기업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데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주 회장, 신동빈 회장의 국적논란이 야기되면서 롯데는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롯데그룹 사장단은 2015년 8월 4일 긴급 사장단 회의를 마치고 성명을 발표하면서 "롯데그룹을 이끌어갈 리더로 오랫동안 경영능력을 검증받고 성과를 보여준 신동빈 회장이 적임자임에 의견을 함께하고 지지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20-02-10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5]롯데-17 형제의 난(상)

신동주, 이사회 반대 외면IT벤처 10억엔 투자 '실패'신동빈, 중국사업 적자에해명불구 '격노' 접근 차단롯데홀딩스 이사직 '해임'롯데그룹도 국내 재벌승계의 고질병인 '형제의 난'을 피하지 못했는데 신격호 총괄회장이 2013년 12월 소공동 호텔롯데 집무실에서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받은 게 발단이었다.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1살 아래인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이의 경영권 갈등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2014년 12월말 신격호 총괄회장이 장남을 롯데홀딩스 이사직은 물론 일본 롯데 계열사의 모든 직위에서 해임하면서부터였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1996년부터 장남 신동주 회장에게는 일본 롯데그룹을, 신동빈 회장에게는 한국 롯데그룹을 각각 경영케 해서 그 역량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후계자 경쟁을 시켰다.>> 크게 화 난 신격호롯데그룹은 "신동주 회장이 일본롯데 실적 부진에 책임을 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롯데 관계자는 "신동주 회장이 개인적 친분 있는 인사가 대표인 IT서비스 개발 벤처회사에 이사회 반대를 무릅쓰고 투자를 했고 이사회가 정했던 투자금액의 상한선도 어겼다. 10억엔을 투자했으나 성과가 없어 감사까지 했으며 총괄회장에 보고했다. 신동주 회장은 개인판단으로 수차례 투자를 꾀하다 이사회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신동주 회장은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이 내가 IT회사에 투자한 일을 아버지에게 이상하게 보고하면서 오해가 생겼다. 아버지가 바로 와서 설명하라고 했는데 내가 일 때문에 바로 가지 못하자 화가 나셨다. 오랫동안 아버지를 설득해서 오해를 풀었다. 그래서 총괄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신동빈 회장의 해임을 지시한 것"이라고 언급했다.신격호 총괄회장은 신동빈 회장이 추진하는 중국 사업에서 무려 1조원의 적자가 발생했다는 첩보를 접수했다. 2014년 해외매출 11조원의 30%를 중국의 롯데백화점 5곳과 롯데마트 120곳에서 올렸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2015년 7월초에 신동빈 회장을 불러 "왜 중국 사업 적자보고를 안 했느냐. 왜 그렇게 많은 적자를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신동빈 회장은 "지금까지 중국 사업에 대해 계속 보고를 드렸고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신격호 총괄회장은 "나는 보고를 들은 적 없다"며 크게 화를 냈다. 이후부터 신동빈 회장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총괄회장 집무실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했다.>> 장학재단 운영 의혹신동주 회장과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신동빈 회장의 측근인 이인원 그룹 부회장 등 롯데그룹 고위임원들의 집무실 출입도 막았다. 중국 사업 적자 사실은 신동주 회장과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이 부친에게 여러 차례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장학재단은 1983년에 신격호 총괄회장과 롯데 계열사가 재산을 출연해서 만든 공익재단으로 롯데 계열사의 주식과 현금 등 1천662억원으로 장학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핵심 계열사 지분을 골고루 가지고 있어 롯데그룹이 장학재단을 '미니 지주사'처럼 운영한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2015년 7월 15일 일본 롯데홀딩스는 이사회를 열어 신동빈 회장을 롯데홀딩스의 대표이사 및 부회장으로 선출함은 물론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그룹 계열사 사장단회의를 주재하자 신격호 총괄회장이 또다시 격분했다. 같은 달 18일 신격호 총괄회장은 신동빈 회장의 일본 롯데그룹 이사 해임을 지시했지만 신동빈 회장 측에서 이를 무시하자 신격호 총괄회장은 "내가 직접 가서 말하겠다"며 신동주 회장과 신영자 이사장 등 남매를 대동하고 일본에 건너가서 2015년 7월27일 신동빈의 롯데홀딩스 이사직을 해임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사진 왼쪽)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 침통한 표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2020-02-03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4]롯데-16 M&A통한 사업다각화

2002년 외식업체 TGI 시작제과업체 (주)기린도 매입유통·중화학건설·금융 등78개 계열사 기업집단 7위한국롯데 매출, 일본 '압도'모기업인 식품제조 부문의 성장도 여전했다. 2002년 5월 호텔 롯데와 롯데쇼핑이 공동으로 외식 사업체인 TGI프라이데이스의 지분 70%를 501억원에 인수한 이후 2008년 8월에는 롯데제과가 벨기에 초콜릿 회사 길리안을 1천700억원에 인수했다. 2009년 10월에는 중견 제과업체인 (주)기린을 799억원에 인수해서 제과업의 지평을 넓혔다.음료 부문의 확장도 주목거리였다. 롯데칠성음료가 2009년 1월에 두산주류BG(현 롯데주류)를 5천30억원에 인수했으며 같은 해 3월에는 경쟁업체인 해태음료의 안성공장마저 300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롯데칠성 두산주류 인수안성과 충남 천안, 강원 평창에 3개 공장을 운영하는 업계 3위의 해태음료는 2000년 6월 해태그룹에서 분리돼 일본 히카리인쇄그룹(지분율 51%), 아사히맥주(20%), 롯데호텔(19%), 미쓰이상사(5%), 광고회사 덴츠(5%) 등 5개사가 공동으로 참여한 컨소시엄에 매각됐는데 그 와중에 롯데가 안성공장을 인수한 것이다. 아사히맥주는 2004년에 히카리그룹과 덴츠의 해태음료의 지분 21%를 인수해 국내 음료 시장에 참여, 선두주자인 롯데를 견제하고 나선 상황이었다. 후발업체인 롯데는 풍부한 자금력으로 선발기업들에 대한 M&A를 통해 식품업계의 패자로 거듭났으나 유통부문의 성장에는 크게 못 미친다.2012년에는 롯데의 숙원이었던 맥주 제조업에 도전했다. 2011년 2월 신동빈 회장의 "음료에서부터 주류 전 부문에 걸친 풀 라인업을 갖추라"는 지시가 신호탄이었다. 롯데는 생수에서부터 탄산, 주스, 차 음료, 소주(처음처럼), 위스키(스카치블루) 등을 생산하지만 맥주는 생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3조5천억원 규모의 국내 맥주 시장은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가 점유율 1% 차이로 양분하고 있었다. 롯데가 사업파트너인 일본 아사히맥주로부터 제조, 기술 측면의 지원을 받는다면 승산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2009년 1월 6일 롯데칠성과 두산은 두산주류BG(군산공장)를 5천30억원에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3주간의 실사작업을 거쳐 2월 중에 매각대금을 정산하기로 했다. 2011년 10월 롯데주류비지를 흡수합병하고 통합법인 롯데칠성음료(주)로 출범했다. 롯데칠성은 2013년 1월에 충주시와 투자협약을 체결하고 충주 산업단지에 33만, 연산 5억 리터 규모의 맥주 공장 건설에 착수하는 한편 같은 해 3월 8일에는 국세청으로부터 맥주 제조업 허가를 받았다.>> 자산총액 77조대 약진롯데그룹은 2011년 8월 현재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햄, 롯데리아 등 식품 부문 13개 계열사와 유통관광부문의 롯데호텔, 롯데백화점, 세븐일레븐 등 20곳과 중화학건설부문의 호남석유화학, 롯데건설, 롯데기공 등 6곳, 금융 및 서비스부문의 롯데카드, 롯데손해보험, 롯데정보통신 등 8곳 등 총 78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자산총액 77조3천억원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7위로 성장했다. 공기업을 제외한 순수 민간 기업집단만 고려하면 재계서열 5위이다.삼성, 현대, LG 등 기성 재벌들은 1970년대를 정점으로 다각화작업이 다소 둔화된다. SK그룹도 1990년대부터 계열사수 불리기 속도가 떨어졌다. 대신 기존에 진출한 사업부문의 몸집 키우기를 통해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롯데는 1967년 창업 이래 2000년대까지 끊임없는 인수합병을 통해 다각화 작업을 전개했다. 1997년 외환위기로 대부분 재벌들의 성장세가 크게 둔화했음에도 롯데는 반대로 약진을 거듭했다. 2011년 신동빈의 회장취임 이후 롯데하이마트, 롯데랜털, 뉴욕펠리스호텔, 삼성그룹 화학부문 4건은 인수대금만 1조원 이상이었다. 그 결과 한국과 일본 롯데 간의 외형도 크게 벌어졌는데 2015년 매출액의 경우 한국 롯데그룹은 81조원인데 비해 일본 롯데그룹은 3조원이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롯데그룹은 2011년 신동빈의 회장 취임 이후 자금력을 앞세워 롯데하이마트, 롯데랜털 등을 인수했다. 사진은 2013년 카자흐스탄 '라하트(Rakhat)'를 인수하는 모습. /롯데그룹 제공

2020-01-27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3]롯데-15 금융부문 약진

2003년 롯데카드 발급 시작콜센터 서비스 첫 KS 인증재무상태 악화된 대한화재지분 57%를 3526억에 인수'금융 인프라 확보' 잰걸음여타 재벌들에 비해 금융업 진출이 늦었던 롯데는 2000년대 들어 금융부문을 강화했다. 2002년 9월에는 롯데쇼핑 등이 동양카드를 1천300억원에 인수해서 롯데카드로 상호를 변경했다. 동양그룹은 1995년 9월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의 국내 영업권 양수도 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10월에 동양카드를 설립했다. 1998년 1월에는 동일 계열의 동양할부금융(주)와 합병했으나 동양그룹은 외환위기에 따른 자금난 타개 차원에서 동양카드를 롯데에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롯데百 카드사업 흡수2003년 12월에는 롯데쇼핑(주)의 롯데백화점 카드사업을 흡수해서 롯데카드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2008년 9월 업계 최초로 콜센터 서비스 부문 KS인증을 획득했고 같은 해 9월 전자금융거래서비스 국제표준인증(ISO27001)을 획득했다. 2015년 1월 롯데멤버스 사업부문을 롯데멤버스(주)로 분할, 이전시켰으며 2018년에는 테크콤 파이낸스(TechcomFinance)를 인수했다.2007년 12월에는 호텔롯데, 롯데역사, 대홍기획, 부산롯데호텔 등 롯데컨소시엄이 허재호 대주그룹 회장과 대한시멘트, 대한페이퍼텍이 보유한 대한화재(롯데손해보험)의 지분 57%를 3천526억원에 인수했다. 호텔롯데(27.72%), 롯데역사(22.67%), 대홍기획(4.62%), 부산롯데호텔(1.97%) 등이 대한화재 지분을 나눠 가졌다. 대한화재는 대주그룹 계열 손해보험사로 2006년 9월말 현재 자기자본 1천221억원, 자본금은 421억원이었다.1946년에 설립된 대한화재는 동양화재, 삼성화재 등과 함께 국내 손해보험시장을 견인하는 리더기업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좌초위기에 직면했다가 2001년 12월에 공적자금 380억원을 수혈받으면서 대한시멘트에 420억원에 매각됐다. 당시 대한시멘트는 인수조건으로 2001년 200억원, 2002년 100억원, 2003년 100억원 등을 증자하기로 약속했으나 한 번도 이행하지 않았다. 덕분에 대한화재의 지급여력비율은 공적자금 투입시 105%에서 2002년 6월에는 92%로 떨어지고 그해 1분기에는 60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재무상태가 다시 악화됐다.1995년에 설립된 자본금 60억원의 대한시멘트는 호남 연고 대주건설(허재호)의 자회사였다. 동사는 대한화재의 지분 75%를 인수한 2001년 12월28일 당일에 대한화재의 주식 42억8천만원 어치를 팔아치웠을 뿐 아니라 2002년 1월25일에는 또다시 177억원 어치의 주식을 처분한 결과 대한화재에 대한 대한시멘트의 지분율은 31.4%로 감소했다. 결과적으로 대한화재에는 총 48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는데 당시 정치권을 중심으로 특혜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ATM기 공급도 앞장2008년 10월2일에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운영업체 KI뱅크(현 롯데정보통신)을 인수해서 정보통신부문을 강화했다. 롯데정보통신과 롯데닷컴이 KI뱅크 지분을 각각 23.02%씩 총 25억원에 인수했다. 자본금 29억원의 KI뱅크는 전자금융 솔루션 업체인 'KIB넷'의 ATM사업 자회사로 백화점, 고속도로 휴게소, 터미널 등 총 500여대의 ATM을 운영하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에 ATM기를 공급해 고객 편의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금융사업에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롯데그룹이 금융 사업 관련 인프라를 확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추정됐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롯데는 2000년대 들어 금융부문을 강화했는데, 그 일환으로 동양카드를 인수해서 롯데카드로 상호를 변경했다. /롯데그룹 제공

2020-01-20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2]롯데-14 국내 최대의 석유화학

몸집 2배 현대유화 2003년 인수합병 글로벌경영 토대매출 1조대 KP케미칼 포함말레이 타이탄까지 M&A2017년 영업익 2조9276억2003년 6월 호남석유화학이 자기보다 몸집이 2배 이상인 현대석유화학(대산유화)을 6천억원에 인수했다. 현대그룹 계열의 현대석유화학은 충남 대산읍 대죽리 753번지에 연산 35만t의 프로필렌, 부타디엔, 스티렌모노머, 에틸렌글리콜 등을 생산하는 대단위 석유화학콤비나트로 1991년 10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막대한 건설비 투자에다 공급과잉에 따른 매출부진으로 고전하던 중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뒤 1998년 12월말에는 채무액이 무려 3조2천억원에 이르렀다.>> '그룹 핵심' 롯데 케미칼현대그룹은 외환위기로 인한 유동성 애로로 고전 중이었는데 세계석유화학 경기가 최악인 것은 설상가상이었다.2001년 7월 12일 6천221억원의 유동성 긴급지원을 조건으로 대주주인 현대중공업(49.87%), 현대건설(11.63%), 현대종합상사(6.95%) 등이 출자지분에 대한 완전감자에 동의함에 따라 현대유화가 매물로 나왔다. 현대유화는 2000년 매출 2조2천156억원에 3천78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터에 2001년 1/4분기에만 372억원의 경상손실을 입은 상황이었으나 채권단의 긴급수혈로 부채총액은 2조6천억원으로 축소됐다.채권단은 덴마크 석유화학회사인 보레알레스와 LG화학 그리고 롯데의 호남석유화학 등과 매각협상을 벌였다. 이후 채권단은 현대석화를 LG화학과 호남석유화학에 분할 매각하기로 하고, LG화학이 현대석화 1단지를, 호남석유가 2단지를 각각 인수했는데 신규설비로서 효율성이 더 좋은 2공장을 인수한 호남석유가 선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대유화의 자산가치는 스티렌모노머(SM) 부문을 제외해도 2조8천억원으로 롯데는 대어를 낚았다.롯데는 석유화학을 그룹의 주력사업으로 확정하고 2004년 11월에 호남석유화학이 KP케미칼의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으로부터 KP케미칼의 지분(53.8%) 및 경영권을 8천135억원에 인수했다. KP케미칼은 2001년 말 고합에서 유화 부문을 분리해 재상장된 기업으로 PTA(고순도텔레프레탈산 연산 10만t), PX(연산 70만t), 페트병용 수지(연산 40만t) 등을 생산해 2003년에는 매출 1조1천152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규모가 1조4천억원 안팎이던 매출 2조3천억원대의 현대유화를 LG화학과 공동으로 인수한 데 이어 KP케미칼까지 인수, 호남석유화학은 매출 3조6천억원대의 초대형 유화업체로 부상했다. 2003년 기준 36개 롯데 계열사 중 1위인 롯데백화점(7조3천억원)에 이어 2위에 해당한다.>> LG화학과 어깨나란히2000년대 중반 이후 글로벌경영에 역점을 둔 호남석유화학은 2010년 7월 말레이시아 최대의 석유화학업체인 타이탄케미칼을 인수했다. 타이탄케미칼은 말레이시아 산화프로필렌(PO) 시장의 40%, 인도네시아 폴리에틸렌(PE) 시장의 30%를 점유하는 등 16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해 동남아 시장에서 강력한 사업기반을 구축했다. 납사 및 LPG크래커 72만t을 보유한 것은 물론 말레이시아 조호바루공장이 HDPE/LDPE(56만5천t), OCU(11만5천t), PP(48만t), BD(10만t), 아로마틱(20만t)을, 인도네시아 메락공장이 HDPE/LDPE(45만t)의 공급능력을 갖췄다.그러나 타이탄케미칼 인수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타이탄은 말레이시아의 1호 통합 석유화학업체로 말레이시아정부 소속 투자기관인 PNB(Permodalan Nasional Berhad)와 대만계 미국 석유화학회사 Westlake와의 합작법인이 걸림돌이었다. Westlake가 타이탄 매각에 미온적이었다. 타이탄이 말레이시아 상위 30위권의 대형 상장사라는 점도 난관이었는데, 타이탄 매각작업이 노출될 경우 주주 및 임직원의 동요를 염려한 지배주주들은 호남석유화학의 정밀실사작업에 소극적이었다. 호남석유화학은 비공개 상황에서 인수작업을 진행했다. 2010년 3월 호남석유화학은 타이탄케미칼에 최종 매각의사를 타진하는 한편 그해 6월 실사를 개시했다. 2010년 7월 16일 타이탄케미칼의 대주주인 챠오그룹 및 말레이시아정부의 국가펀드 PNB와 타이탄케미칼 인수를 위한 주식 양수도 계약을 했다. 호남석유화학은 타이탄케미칼 주식 73%를 인수하고 말레이시아 증권거래법의 규정에 맞춰 27%의 잔여지분은 주식시장에서 공개매수해 그 해 11월 9일 인수절차를 완료했다. 당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인수·합병 중 최대인 1조5천억원 규모의 M&A를 성사시킨 것이다.롯데케미칼(호남석유화학)은 롯데그룹 4개 사업부문의 하나인 화학부문의 핵심기업이다.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비롯 프로필렌, 부타티엔 등을 올레핀 제품과 벤젠, 톨루엔, 자일렌 등의 아로마틱 제품 및 이를 원료로 한 합성수지, 합성원료, 합성고무 등을 생산하는 석유화학 전문기업이다. 롯데첨단소재, 롯데정밀화학, 롯데엠알씨, 롯데케미칼타이탄, 롯데BP화학, 한덕화학, 엔스엔폴, 삼박엘에프티, 케피켐텍, 데크항공, 롯데미쓰이화학 등 수많은 화학계열 자회사를 거느린 중간지주회사이기도 하다. 롯데는 2015년 10월 삼성그룹에서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삼성SDI 케미칼부문 등을 인수해서 2016년에 롯데정밀화학, 롯데BP화학, 롯데첨단소재로 상호를 변경했다.롯데케미칼은 2017년 매출액 15조8천745억원에 영업이익 2조9천276억원을 실현해서 창사 이래 최대의 실적을 기록하며 업계 1위인 LG화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롯데케미칼은 지난 2003년 현대석유화학을 인수하면서 국내 최대 석유화학의 입지를 다졌다. 사진은 당시 현대석유화학 대산공장 전경. /롯데케미칼 제공

2020-01-13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1]롯데-13 유통사업 해외확대

국내 시장 성장 한계 확인2007년 러·중 백화점 오픈2008년엔 인니 마트 진출2010년 산둥 TV쇼핑 인수호찌민 백화점 M&A 성공적 롯데는 2000년대에 유통부문 해외 확대에도 공을 들여 2007년 9월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 최초로 백화점을 오픈했으며 같은 해 8월에는 국내 업체 최초로 중국 베이징에 백화점을 개설했다. 러시아와 중국에서 백화점 사업을 추진한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시장의 성장한계가 점차 확인된 탓이다.국내 백화점 업계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롯데가 점유 중임에도 전체 23곳 중 이익을 내는 점포는 서울 명동 본점과 잠실점, 부산점 등 4곳에 불과한 것이다.>> 대륙 창고형 할인점 공략롯데쇼핑은 슈퍼마켓 내지 창고형 할인점의 해외진출에도 박차를 가했는데 신호탄은 2008년 5월에 중국 마크로(Makro)에서 마트 19곳을 1천615억원에 인수했다. 2009년 12월에는 중국 타임즈(Times)로부터 마트 57점포와 슈퍼 11곳을 7천300억원에 넘겨받았다. 2008년 11월에는 인도네시아 마크로로부터 마트 19점포를 3천900억원에 매입해서 새로운 구매력으로 부상 중인 아시아 신흥공업국에 대한 진출을 개시했다. 신세계 이마트가 국내에서 유통 1위 자리를 끊임없이 위협 중인 데다 이마트가 선수를 쳐서 중국 공략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점도 롯데 유통부문의 해외진출을 자극했다.2010년에는 산둥 럭키파이 TV쇼핑(Shandong Luckypai TV Shopping)을 인수했다. 롯데는 조세회피지역에 페이퍼컴퍼니 롯데홈쇼핑코(Lotte Home Shopping Co, 이하 LHSC)를 설립해 럭키파이 리미티드(Lucky Pai Limited, 이하 럭키파이)를 1천900억원에 인수했다. 인수대금 중 1천200억원이 웃돈(영업권)이었다. 당초 럭키파이는 홈쇼핑 회사로 알려졌지만 정확히는 산둥 럭키파이 등 15개 회사 지분을 보유한 중간 지주회사다. 산둥 럭키파이 외에도 윈난 마일러 TV쇼핑 미디어(Yunnan Maile TV Shopping Media Co), 충칭 유지아(Chongqing Yujia Co) 등의 홈쇼핑 회사 지분을 49%씩 보유하고 있다. 롯데가 1천900억원을 투입해 럭키파이를 인수했지만 산둥·윈난·충칭 지역 3개 홈쇼핑 회사 지분의 절반을 확보하지 못한 셈이다.>> 中 홈쇼핑社 인수 난항롯데가 중국 홈쇼핑 회사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해 방관하는 동안에 산둥 럭키파이는 매출이 급감했고, 충칭 유지아는 2013~2015년 3년간 총 280억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 롯데홈쇼핑은 중국 홈쇼핑으로부터 납품 대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5억~6억원 씩 총 31억원의 상품을 산둥 럭키파이에 팔았지만, 납품대금을 현금으로 받지 못했다. 현금 대신 받은 채권은 지난 5년간 32억원 넘게 쌓여있다. 그 와중에서 롯데홈쇼핑은 밑 빠진 독에 물을 계속 붓고 있다. 업계에서는 "롯데가 중국에서 사기를 당했다"는 말까지 나왔다.2014년에는 베트남 호찌민시의 백화점인 다이어몬드 플라자의 주식 50%를 인수해서 2015년부터 운영하고 있다.이 빌딩은 지하층을 포함해 총 22층이며 2000년 8월부터 영업을 시작했으며 자본금은 6천만달러이다. 인수금액은 확인되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잘된 M&A로 평가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롯데는 2000년대부터 유통부문의 해외 확대에도 공을 들였다. 영국 아르테니우스를 비롯해 말레이시아 타이탄 케미칼, 중국 럭키파이 인수 등 해외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롯데그룹 제공

2020-01-06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0]롯데-12 2012년 '하이마트' 인수

국내 M&A시장 '대어' 꼽혀유진그룹·선종구 매각 합의2018년 현재 전국 463개 매장14개 물류·11개 서비스센터전용 자재터미널 1개 운영롯데는 2012년에는 국내 M&A 시장의 대어로 꼽히던 최대 가전제품 양판점인 하이마트를 인수했다. 하이마트는 대우그룹의 위장계열사에서 출발했는데 당시 정부는 제조업체가 자사에서 생산한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한 때문이었다. 대우는 1974년에 대우전자를 설립해서 카스테레오를 수출하다가 1983년에는 '무지개 세탁기'로 유명세를 탄 대한전선의 가전부문을 인수하면서 선발주자인 LG전자, 삼성전자와 국내 가전 시장 트로이카를 형성했다.>> 롯데쇼핑이 넘겨 받아김우중 당시 회장은 대우제품은 물론이고 국내외의 모든 전자제품도 함께 취급하기를 희망했다. 1987년 6월 대우 임직원 등의 명의로 국내 최초의 종합전자 유통업체인 한국신용유통을 설립했다. 1989년에는 일본의 생활가전 및 컴퓨터 주변기기업체인 조신(Joshin)전기와 기술제휴를 해서 용산 전자랜드 1층에 '하이마트' 1호점을 오픈했다.1999년 대우그룹 해체 후 김우중 회장이 해외로 도피하면서 당시 대우전자 선종구 판매총괄본부장이 차명주식 전부를 자신 명의로 매매계약서를 작성하는 한편 한국신용유통을 대우전자의 국내 판매조직과 통합해서 1999년 12월에 하이마트로 상호를 변경하고 종업원지주회사로 바꿨다. 같은 해에 하이마트는 전국 200여개 직영점과 전국 1일 배송시스템을 구축했다. 2000년 7월에는 새로 인터넷 쇼핑몰(www.e-himart.co.kr)을 오픈하는 등 영업을 강화해서 연매출 1조2천억원을 돌파했다. 2003년 5월 전국 직영 서비스센터를 가동했고, 같은 해 9월에는 하이마트로지텍(주)를 설립했다. 2004년 5월 전자유통업계 최초로 IP기반의 CTI 콜센터를 열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팔린 상품에 대한 정보를 판매와 동시에 기록해서 판매정보를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체계인 POS시스템을 도입했다. 2007년 7월 모바일 사업(휴대폰 유통)을 시작했다.>> 8년 연속 '브랜드 1위'2007년 사모 펀드 어피니티파트너스에 지분 일부가 넘어간 뒤 하이마트홀딩스를 합병했고, 몇 달 뒤 유진그룹에 넘어가 유진그룹이 1대 주주, 선종구가 2대 주주가 됐다가 2008년에 유진하이마트홀딩스를 합병했다.2009년 3월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의 전자전문점 4년 연속 1위 브랜드로 선정됐다. 2010년 12월 전자제품전문점으로는 최초로 매출 3조원을 돌파했으며 2011년 6월에는 한국거래소에 상장했다.그 와중에서 최대주주인 유진그룹과 선종구 2대 주주 간에 갈등이 불거져 양측이 함께 주식을 롯데에 매각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소유 및 경영권이 롯데로 넘어갔다. 2012년 10월 롯데쇼핑이 하이마트를 인수하고, 회사명을 롯데하이마트(주)로 바꾸었다. 2013년 3월 한국산업의 브랜드파워(K-BPI)에서 전자전문점 부문 8년 연속 1위에 선정됐다. 2018년 현재 전국에 463개 매장, 14개소 물류센터, 11개소 서비스센터 및 서비스전용 물류센터인 자재터미널 1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롯데는 2012년 국내 M&A 최대 가전제품 양판점인 하이마트를 인수하는 성과를 올렸다. /롯데하이마트 제공

2019-12-30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9]롯데-11 2세 경영으로 전환

신격호의 '황제 경영' 탈피전문경영인 체제 전환 선언10년간 10조투입 35개 인수투자액 1조 이상 4곳 달해2015년엔 재계 5위로 상승국내의 최대 재벌들은 대체로 창업1, 2세대에 의해 완성됐다. 적수공권의 창업자들이 탁월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모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후 창업2, 3세들은 이를 기반으로 적극적인 다각화를 통해 몸집을 부풀렸다. 급속히 외형을 확대한 나머지 재무구조가 취약해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개방화 확대에 따른 외생변수는 더욱 치명적이어서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재무구조가 취약한 2세 경영의 민간기업들이 특히 직격탄을 맞았다.롯데그룹은 신격호 창업주가 1946년 일본에서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또한 1967년 한국에서 롯데제과를 설립한 이래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단독경영으로 일관했다. >> 2011년 그룹회장 취임그는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는데 첫째는 1942년생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다. 신영자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31세 때인 1973년 롯데호텔 이사로 경영진에 참여했지만 주변적 존재였다. 막내딸 신유미는 1972년 제1회 '미스롯데' 출신의 서미경의 소생으로 아직은 약관이어서 대권수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신격호와 둘째 부인인 시게미쓰 하츠코와의 사이에 태어난 장남 신동주와 차남 신동빈이 유력한 총수 승계후보자였다.1954년생인 신동주는 일본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1990년에 일본 롯데그룹 이사로 인연을 맺은 뒤 2003년에는 한국의 롯데쇼핑 이사를 역임했으며 2015년부터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한·일 롯데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광윤사 대표이사이다.신동주보다 한 살 아래인 신동빈은 1977년에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MBA를 이수한 후 1981년부터 8년간 일본 노무라증권에 근무하다가 형인 신동주보다 2년 빠른 1988년에 일본 롯데상사 이사로 경영에 참여했다. 1990년에 호남석유화학(롯데케미칼) 상무로 자리를 옮기면서 한국 롯데에 발을 디뎠다. 1997년 롯데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으며 2004년 10월에는 한국 롯데그룹의 중심적 존재인 호텔롯데의 정책본부장에 취임했다. 2011년 2월 신격호가 총괄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한발 물러나면서 신동빈이 롯데그룹의 회장에 취임했다. 신동빈은 2018년말에 단행한 임원인사로 세대교체를 마무리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신동빈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손가락 경영'으로 대표되는 황제경영에서 탈피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신동빈은 예절을 중시하며 인간미 넘치는 성격으로 알려졌다. 임직원들 간에 신망도 두텁다.>> 국내외 M&A 본격작업신동빈이 2004년 정책본부장이 되면서 롯데의 국내외 M&A 작업이 두드러진다. 2014년까지 10년 동안 인수한 기업수 35개에 인수금액만 10조원으로 매년 평균 3.5개씩 인수한 셈이다. 인수금액이 1조원 넘는 곳만 하이마트, GS리테일의 백화점과 대형마트, 말레이시아 타이탄, KT렌탈 등 4곳이며 대한화재와 두산주류DB(롯데주류)도 굵직한 인수사례로 꼽힌다. 이 중 22개(63%)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2008~2010년에 인수했는데 신동빈의 평소 지론은 '배팅은 불황에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2014년 9월 일본 오릭스와 함께 국내 물류 2~3위인 현대로지스틱스 지분을 인수하고 2015년 2월 11일에는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사업권 입찰에서 6조4천200억원을 질러 호텔신라를 제치고 가장 많은 사업권을 획득했으며 2015년 2월 18일에는 국내 1위 렌터카 업체인 KT렌탈(옛 금호렌터카) 본 입찰에서 경쟁사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약 1조원을 써내 최종 승리했다.그 결과 롯데그룹의 계열사 수는 2004년 36곳의 재계순위 7위에서 2015년에는 74개의 재계 5위로 상승했으며 매출액은 2004년 23조원에서 2015년 83조원으로 3.6배나 신장됐다. 롯데그룹은 유통과 화학이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데 롯데는 인수합병으로 외형을 키운 대표사례로 평가된다.최근 롯데의 몸집 불리기 1등 공신은 신동빈 회장인데 그의 M&A의 특징은 미래 산업에 대한 선제투자와 해외진출이다. KT렌탈 인수가 대표적으로 신동빈은 카렌털과 카셰어링 사업이 큰 흐름인 공유경제와 맞아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이다.항간에는 "신동빈 회장이 소극적이고 정적인 컬러가 강했던 롯데그룹의 DNA를 공격적이고 진취적으로 바꿔놓고 있다"는 평가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1997년 롯데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한 신동빈은 2004년 10월 호텔롯데의 정책본부장에 취임한 뒤 2011년 2월 신격호가 총괄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롯데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사진은 지난 11월 롯데백화점 강남점에서 진행된 '더콘란샵' 오프닝 행사에 참석한 신동빈(오른쪽 2번째) 회장. /연합뉴스

2019-12-23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8]롯데-10 국내 최대의 유통재벌

2002년 미도파백화점 인수한화마트·스토어24개 매입우리홈쇼핑 지분 53.03%도2010년초반 유통부문 강화'세븐일레븐'으로 업계총괄2000년대 이후의 다각화는 그간에 벌여 놓은 사업의 외연적 확대였는데 첫째, 유통사업 확장으로써 시작은 2002년 7월에 롯데쇼핑이 경쟁업체인 미도파백화점을 5천420억원에 대농그룹으로부터 인수한 것이다. 미도파백화점은 일제 하인 1938년 일본인들이 설립한 정자옥(丁字屋) 명동점으로 출발한 신세계백화점과 함께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백화점 중 하나다. 1945년 해방 후에는 귀속재산화해서 경영진이 자주 바뀌었다가 1969년 5월에 대농그룹 창업자인 박용학이 무역협회 지분 40%를 2억원에 인수해 상호를 미도파백화점으로 변경했다. 이후 미도파는 신세계, 화신, 신신백화점과 함께 서울 장안의 대표 백화점으로 성장, 재계순위 34위인 대농그룹의 주요 계열사로 자리매김했다. >> 전국 5400개 매장 운영대농은 지방의 주요 도시에 지점을 확대하는 등 외형적 확장에 주력했으나 그 과정에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1996년 결산에서 2천931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외화내빈의 처지로 전락했다.신동방그룹이 미도파백화점에 대한 경영권을 노린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면서 미도파의 주가는 1996년 말 1만2천원에서 1997년 3월 초 4만5천원까지 급등했다. 전경련 회장단이 미도파에 대해 광범위한 공동지원을 약속하자 그동안 꾸준히 주식을 매수해 왔던 성원건설이 보유지분을 모두 미도파에 매각하면서 적대적 M&A는 미도파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무리하게 자금을 조달하다가 미도파는 부도가 나서 롯데쇼핑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롯데쇼핑은 2003년 11월에 한화그룹 계열의 한화마트와 스토어 24개 점포를 1천700억원에 인수했으며 2006년 8월에는 당시 뜨는 업종인 홈쇼핑에 진출하고자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의 지분 53.03%를 4천667억원에 인수했다. (주)우리홈쇼핑은 2001년 5월 29일 (주)아이즈비전, (주)경방, (주)행남자기 등의 공동출자로 설립됐고 같은 해 9월 인터넷 쇼핑몰 우리닷컴(woori.com)을 오픈했다. 2003년에는 스카이라이프 위성방송 사업을 개시했으며 2005년 1월에는 대만과의 합작법인인 TV홈쇼핑 방송을 개국했다.롯데쇼핑 유통사업부문인 롯데슈퍼는 2007년 3월 호남지역에서 16개 점포를 운영 중인 빅마트의 점포 14개를 800억원에 인수했다. 빅마트는 2006년에 1천200억원의 매출을 올린 호남지역의 다크호스였는데 당시 롯데슈퍼는 수도권과 충청권 중심으로 53개 점포를 운영 중이어서 영호남 지역 공략을 통한 업계 1위인 GS슈퍼마켓(점포수 85곳)을 따라잡은 것이 지상 과제였다. 또한 롯데슈퍼는 롯데그룹 유통부문에서 가장 실적이 저조한 터여서 빅마트 인수가 롯데슈퍼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2001년 4개 점포로 시작한 롯데마트는 2006년까지 매년 적자행진 중이었다. 한편 2007년 10월에는 슈퍼마켓 5개를 운영하고 있는 나이스마트를, 2010년 2월에는 GS리테일로부터 백화점 3곳과 마트 14곳을 각각 인수했다.>> 프랜차이즈시장 주도2010년 1월에는 롯데면세점이 애경그룹 계열의 AK면세점을 2천800억원에, 같은 해 2월에는 롯데쇼핑이 GS리테일의 백화점·마트 부문을 1조3천억원에 각각 인수해서 기존의 유통부문을 크게 강화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는 부문은 편의점사업의 급성장이었다.국내 프랜차이즈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편의점과 제과점, 피자전문점, 치킨점 등이 모두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기반을 닦았다. 24시간 전천후로 영업하는 편의점의 성장이 특히 괄목했다. 국내에 편의점이 새로 선보인 것은 1980년대 초부터이나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해외 유명 브랜드와의 제휴를 통해 선진적인 경영기법으로 무장한 새로운 편의점들이 등장했는데 1989년 5월 세븐일레븐 1호점(올림픽선수촌점)을 시작으로 1991년까지 훼미리마트, LG25(현 GS25), 바이더웨이, 미니스톱 등의 브렌드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300여 개의 매장을 전개했다.편의점은 종래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구멍가게에 레스토랑 및 중소형 매장 등을 겨냥한 판매시점관리(POS, Point of Sales) 네트워크를 설치해 리테일세일 혁명을 초래했다. 유통업계의 선두주자인 롯데는 1994년에 세븐일레븐을 인수해서 코리아세븐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편의점사업을 총괄케 했다. 코리아세븐은 2010년 1월에 업계 4위인 바이더웨이를 2천740억원에 인수해서 전국에 무려 5천400개의 매장을 전개한 결과 연매출액 2조원대의 국내 최대 편의점업체로 성장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롯데는 유통사업을 확장하면서 재벌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롯데는 1994년 세븐일레븐을 인수해서 코리아세븐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편의점 사업을 총괄했고, 1998년에는 롯데마트를 설립했다. /롯데그룹 제공

2019-12-16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7]롯데-9 유통 중심의 다각화

잠실 롯데월드 백화점 매출업계 전체매출액 30% 차지신문사 인수·편의점업 진출컴퓨터·정보통신사등 설립2000년 인천공항면세점 오픈롯데제과가 국내 제과업계의 정상에 올라선 것은 1979~1980년이었다. 1945년 해방 이래 국내 제과업계를 석권하던 해태제과와 동양제과와의 경쟁에서 롯데는 1980년 매출액 1천억원을 달성해 업계 수위에 랭크됐다. '86아시안 게임'과 '88서울올림픽' 제과공급업체로 지정되는 등 1986년에는 매출액 2천억원을 돌파했다.신격호의 사업다각화 노력은 1980년대 들어 더욱 적극화됐다. 1980년에는 식품저장을 목적으로 롯데냉동(주)를 설립하고 사진감광제 메이커인 한국후지필름(주)를 인수했다. 한국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에는 (주)롯데자이언츠를 출범시켰으며 광고대행업체인 (주)대홍기획과 롯데물산도 설립했다. 1985년 2월에는 옛 산업은행 부지에 35층의 롯데백화점 신관을 착공해 1988년에 개관했다.>> 1980년대 적극 다각화또 11월 12일에는 서울 잠실의 대지 2만3천평에 호텔, 백화점, 쇼핑몰, 스포츠센터 등을 아우르는 롯데월드를 오픈한 결과 1991년에는 롯데백화점 매출이 1조5천억원을 기록, 업계 전체매출액의 30%를 점할 정도로 도약했다.1984년 5월에는 (주)호텔롯데부산을 설립하고 그해 11월에 부산 서면의 옛 부산상고 부지 1만7천60평을 348억원에 사들여 이 자리에 지상 41층, 지하 5층 규모에 900여객실을 갖춘 '호텔롯데 부산'과 롯데백화점 부산점을 1996년 12월 오픈했다. 1986년에는 국내 최초 민자역사이자 지하 5층, 지상 8층, 연건평 2만6천평의 서울 영등포역사 운영을 목적으로 (주)롯데역사를 설립했는데 당시 특혜시비가 불거졌다.잠실의 제2롯데월드도 주목받았다. 이 땅은 1979년에 율산그룹이 부도로 도산하면서 (주)한양의 소유였는데 1981년 '88올림픽' 서울 유치가 확정되면서 전두환 정부는 잠실지구에 대규모 관광위락시설 건설을 계획하고 이 부지를 롯데에 넘겼다. 1987년 5월에 롯데는 공공자산인 석촌호수(서호) 개발권마저 확보했다. 또 1987년 12월 12일에 롯데월드 맞은편 송파구 신천동 29번지 일대의 서울시 소유 채비지 2만6천평도 불하받았다. 당시 입찰에는 롯데만 참가했는데 매입 가격은 시가의 절반인 819억원이었다. 신격호가 낙찰 한 달 전인 11월에 청와대에서 전두환 대통령을 독대한 바 있다. 훗날 전두환 비자금수사에서 신격호는 이때 50억원을 직접 건넸다. 전두환 대통령이 롯데에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한겨레신문', 2016.6.25.)1990년대에는 비관련 다각화에도 주력해 1990년 5월에는 부산지역 유수의 지방 일간 신문인 국제신문을 인수했으며 1994년 10월에는 (주)코리아세븐을 인수해서 편의점사업에도 진출했다. 1995년 11월에는 부산할부금융을 설립해 새로 금융업에 진출했을 뿐 아니라 1996년 10월에는 롯데리아와 일본 미쓰이물산이 합자해서 자본금 15억원의 롯데로지스틱을 설립했다. 계열사들의 물류비 절감과 유통부문 경쟁력을 강화할 목적이었다.>> 1990년대 '비관련' 확대1996년 12월에는 전산 용역 및 컴퓨터와 컴퓨터 주변기기의 도소매·소프트웨어 개발을 목적으로 롯데텔레콤(현 롯데정보통신)을 설립했다. 1998년 1월 정보통신부에 등록하고 별정통신사업을 시작했으며 1999년에는 롯데제과(주), 롯데호텔, (주)롯데리아의 정보시스템을, 2000년 인천국제공항 1, 2청사 면세점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같은 해 한국후지필름(주),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롯데칠성의 정보전략계획(ISP)과 업무 프로세스 재설계(BPR)를 완료했다. 2001년 전자세금계산서 공인인증 서비스를 시작하고 롯데쇼핑의 재무 및 구매시스템을 구축했다. 2002년 부설 정보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2004년 12월 롯데전자(주)와 합병하면서 자본금을 42억원으로 증자했다. 2007년 롯데그룹의 통합정보센터를 열고 신통합시스템과 롯데쇼핑 재해복구시스템(DR)을 구축했다.2017년 11월 1일을 기점으로 기업분할을 실시했다. 물적 분할을 통해 투자부문은 롯데아이티테크(주)로 신설되고 사업부문은 기존 롯데정보통신(주)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해 존속 법인으로 남았다. 분할 후 투자부문은 자회사 관리, 신규사업 투자 등을 펼치고, 사업부문은 IT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1997년 7월에는 세계적 아케이드게임 개발 및 운영업체인 일본의 (주)세가 엔터프라이즈와 50대 50 합작으로 자본금 110억원의 (주)롯데세가를 설립했다. 일본의 (주)롯데는 1990년에 일본 제과업계 최정상 기업으로 성장해서 일본 200대 기업에 진입했을 뿐만 아니라 22개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 집단화 했다. 신격호가 일본에서 쌓은 재력과 신용으로 30여년간 30억여 달러를 투입해서 완성한 한국의 롯데그룹은 1997년 현재 계열사수 29개사, 종업원수 3만5천여명에 매출액 9조원으로 국내 10위에 랭크됐는데 그룹 총매출액의 60% 이상을 서비스업종에서 벌어들이는 등 전형적인 부동산 및 유통전문 그룹이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롯데의 사업다각화는 1980년대 들어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특히 한국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에는 (주)롯데자이언츠를 출범시켜 국내 프로야구 발전에도 기여했다. /롯데 제공

2019-12-09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6]롯데-8 롯데그룹 형성·(하)

막강 자본·질좋은 상품 제공선진화 마케팅 전략등 주효1979년 특급 호텔롯데 신축백화점·패스트푸드업 진출식품·유통등 복합기업 형성롯데제과는 1970년대 급속히 다각화했다. 1970년 10월 껌과 과자 포장에 필요한 은박지 생산을 위해 동방알미늄을 인수해 롯데알미늄으로 개명하고 1973년 11월에는 공해방지 시설업체인 롯데기공과 오디오 생산업체인 롯데파이오니아를 각각 설립했다. 1974년 1월에는 사무기기 메이커인 롯데산업과 11월에는 그룹의 무역창구인 롯데상사를 설립했다. 또한 그해 4월에는 국내 최대의 청량음료 메이커인 칠성사이다를 인수, 롯데칠성음료로 개명했다. 1978년 1월에는 한일향료(현 롯데식품)를 설립했으며 2월에는 삼강하드 아이스크림을 인수해 롯데삼강으로 변경했다. 4월에는 롯데햄우유를 설립했다. 후발주자인 롯데제과는 막강한 자본과 질 좋은 상품 제공, 선진화한 마케팅 등으로 단기간에 업계 정상에 올랐다.>> 롯데제과 '업계 정상'한편 이 무렵 롯데는 종래와는 전혀 다른 신사업에 진출했다. 1973년부터 시작된 관광진흥정책에 따라 서울을 중심으로 호텔신라 등 국제수준의 매머드 관광호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1970년 11월 13일 신격호는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박정희는 신격호에게 서울의 요지인 소공동의 반도호텔을 불하해 줄 테니 국제규모의 호텔을 지어 경영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날벼락 같은 이야기에 해답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석했던 이후락 주일대사가 쿡쿡 찌르면서 '이 자리에서는 예라고 대답만 하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도리 없이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경제발전으로 관광수요가 증가할 것이 예상되는 데다 정권차원에서 밀어주겠다는 데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아사히신문' 1988.6.5) 이날 청와대 면담은 제과업체 롯데가 호텔과 유통재벌로 탈바꿈하는 출발점이었다. 1974년 6월 금싸라기 땅인 반도호텔 매각작업에 롯데만 단독 응찰해 41억9천800만원에 낙찰받았으며 박정권의 지원으로 반도호텔 옆의 국립도서관도 확보했다. 근처의 아서원 소유권도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의 지원을 받아 손쉽게 넘겨받을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지상 38층 지하 3층의 객실 1천20실의 특급호텔인 호텔 롯데를 신축, 1979년 10월에 완공했다. 1978년 9월 마산의 크리스탈 관광호텔을 인수, 롯데크리스탈호텔로 명명했다.1978년에 평화건설을 인수, 롯데건설로 변경했는데 중동건설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그 와중에서 롯데의 유통업 진출도 성사됐다."롯데는 당초 신축 중인 롯데호텔 옆에 9층짜리 부속건물을 짓겠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막상 건물이 올라가면서 25층으로 계획이 바뀌었다. 용도도 처음에는 투숙객을 위한 쇼핑공간(1, 2층)이었지만 완공을 앞두고는 '백화점(1~7층)과 임대사무실'로 변했다. 당시는 도심 인구집중 억제정책이 강력히 실시되던 때여서 대규모 백화점은 허가될 수 없었다. 하지만 허락하고 싶어 하는 박정희의 의중을 읽은 서울시 한 공무원이 명칭을 '쇼핑센터'로 바꾸는 꾀를 냈다. 박정희는 궁정동 안가에서 숨지기 몇 시간 전인 1979년 10월 26일 오후 '롯데쇼핑센터'를 재가했다."('마천루' 롯데의 성장동력은 권력이었다, '한겨레신문', 토요판, 2016.6.25)>> 새로운 사업 진출1979년 11월에는 호텔롯데 옆에 국내 최대규모의 롯데백화점을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10월에는 국내 최초의 패스트푸드 체인업체인 롯데리아도 설립했다. 전두환 정부도 박정희 정권만큼 롯데의 뒤봐주기에 적극적이었다. 1979년 '12·12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국보위는 소공동 산업은행 부지를 롯데에 넘겨주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롯데는 이 땅에 주차장이 아니라 호텔 신관을 건축해서 호텔객실과 백화점 면적을 대폭 확대했다. 시내 중심가에 명물인 롯데타운이 생겨났다. 롯데그룹 성장을 견인하는 삼두마차인 제과, 호텔, 쇼핑체제를 완성한 것이다.롯데는 이 무렵에 중화학공업에도 진출했다. 1970년대 말의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국영 한국종합화학의 자회사인 호남에칠렌과 여수석유화학 그리고 한국 정부와 일본 미쓰이물산이 50대 50 비율로 합자한 호남석유화학이 주도하고 있었다. 호남석유화학은 에칠렌(연산 35만t)을 베이스로 폴리에칠렌, 폴리프로핀 등의 석유화학제품의 대규모 공장을 전남 여천공단에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정부는 석유화학공업 민영화 정책의 하나로 이 회사의 정부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정부 지분 불하를 놓고 롯데와 현대그룹이 경쟁했으나 롯데가 1979년 1월에 정부 지분 40%를 160억원에 매입했다. 1997년 3월 롯데는 일본 미쓰이그룹이 보유 중이던 이 회사의 지분 33%중 23%를 마저 인수해서 이 회사의 최대주주가 됐다.한국롯데는 1967년에 창업한 지 10여년만에 기업 인수 및 설립 등을 통해 식품, 호텔, 유통, 건설, 전자, 관광, 중화학분야에서 다각화를 통해 복합기업군을 형성함으로써 1970년대 말에는 10대 재벌에 진입했다. 롯데그룹은 식품, 유통, 서비스업 등 자본회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업종을 중심축으로 해서 복합기업집단을 완성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롯데는 1970년대부터 다각화를 시작했다. 1973년 롯데 호텔을 설립했으며 1974년에는 칠성한미음료를 인수해 롯데칠성음료로 개명했다. 사진은 롯데 호텔 설립 당시의 모습. /롯데 제공

2019-12-02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5]롯데-7 롯데그룹 형성·(상)

자본금 3천만원·사원 500명중견기업 '롯데제과' 설립인연깊은 유창순 회장 추대공장2개 가동… 갈월동 '껌'양평동, 빵·비스킷등 생산대부분의 국내 재벌들은 창업에서부터 대규모 기업집단을 형성할 때까지 국내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한 토착 자본이다. 그러나 롯데는 창업주 신격호가 일본에서 맨주먹으로 창업해 그곳에서 형성한 부와 경영기법을 국내에 도입해서 재벌을 형성한 독특한 이력의 기업집단이다. 또한 롯데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 각각 사업기반을 구축한 유일무이한 그룹이기도 하다.롯데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1965년 12월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부터였다. 1945년 8·15해방과 함께 단절된 한국과 일본과의 국교정상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나라는 미국이었다.>> 신격호의 모국 투자소련과 중국 중심의 동북아지역 공산화 확대의 저지 대안으로 미국은 한·미·일 3각 안보체제 구축을 구상했다. 미국은 이를 실행하고자 한일 관계의 정상화를 집요하게 종용했다.1961년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일 국교 정상화 의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는데 특히 국내에선 기업인들이 국교 정상화를 강하게 요구했다. 1960년 4·19혁명과 1961년 5·16쿠데타와 함께 부정축재자로 지목된 기업가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한국경제협의회(전경련 전신)가 중심이었다. 당시 정부는 경제 개발에 소요되는 막대한 외화 확보에 혈안이 됐었는데 대안으로 일본 자본을 국내에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이후부터 국내에 일본 자본의 진출이 격증했다.신격호의 모국 투자는 1965년 12월 한일 국교정상화와 함께 진행됐다.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신격호에게 한국의 기간산업에 투자해줄 것을 종용했다. 신격호는 내심 고국에서 제철사업을 구상해 일본 가와사키제철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사업계획서를 한국 정부에 제출했으나 당시 박정희 정부는 제철업 국영화 논리를 폄으로써 신격호의 제철업 구상은 수포로 돌아갔다.신격호의 모국 투자는 제과업으로 결정됐다. 1965년 전후에 일본의 롯데는 제과업으로 이미 소비자들로부터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신격호는 형제들 간에 골육상쟁을 겪었는데 배경은 다음과 같다.신격호의 바로 밑 동생인 철호는 1959년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주식회사 롯데'와 롯데화학공업을 설립하고 둘째 아우 춘호를 끌어들여 껌과 캔디, 비스킷, 빵 등을 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6년 신격호가 모국에서의 사업 발판을 마련할 목적으로 기존의 (주)롯데와 롯데공업을 정리하려하자 동생들이 크게 반발했다. >> 형제들간 갈등 심화주식 지분문제로 신철호가 신격호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등 형제간의 갈등이 첨예화됐다. 그 결과 신철호는 캔디와 비스킷 부문을 분리해서 새로 메론제과를 설립했으며 춘호는 라면제조업체인 롯데공업을 차려 각각 분가했으나 신격호가 '롯데'란 상호 사용을 불허하는 바람에 (주)농심으로 변경했다.1967년 4월 3일 신격호는 국내의 (주)롯데와 롯데화학공업사를 해산하고 새로 자본금 3천만원의 롯데제과(주)를 설립했다. 기능직 사원 350명과 일반직 사원 150명 등 500여명의 중견기업으로 출발했는데 신격호는 사장을, 넷째 동생 준호는 기획실장으로 제조와 영업을 총괄했다. 롯데제과 회장에는 유창순(劉彰順, 1918~2010)을 추대했는데 그는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평양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 입사해서 1951년에는 도쿄지점장으로 부임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신격호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유창순은 이후 한국은행 총재, 상공부 장관, 경제기획원 장관 등을 역임하면서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전략수립에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1982년에는 국무총리에 취임했다.롯데제과는 제1, 2공장 등 2개의 공장을 보유했는데 갈월동의 제1 공장에선 껌을, 양평동의 제2 공장에선 빵과 비스킷, 캔디, 캐러멜 등을 생산했다. 당시 국내 제과업계는 동양제과, 해태제과 등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다. 해태제과는 1945년 10월에 민후식, 신덕발, 박병규, 한달성 등 4명이 서울 용산구 남영동 131의 귀속기업인 영강제과를 공동으로 인수해서 키운 기업이다. 동양제과는 이북출신의 기업인 이양구가 서울 용산구 문배동 30-10의 귀속기업을 1956년 7월에 인수해서 키운 것이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신격호 명예회장은 1967년 4월 새로 자본금 3천만원으로 롯데제과(주)를 설립했다. /롯데제과 제공

2019-11-25 이한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4]롯데-6 대재벌로의 도약

기시 노부스케 前수상 매개프로야구단 오리온스 인수現 총리대신 아베의 외조부1960년대 초 첫 만남 추정국교정상화 이후 위상 짐작1968년에는 나가다 마사이치(永田雅一)가 운영하던 일본 프로야구단 다이마이(大每)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 마린스)를 인수했다. 모기업인 다이에이가 경영위기 상태였는데 1957~1960년 일본 수상을 역임한 일본 정계 우파 본류의 거물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의 매개로 신격호의 소유로 넘어온 것이다. 기시는 1920년에 도쿄제국대학 법학과 졸업과 동시에 일본 농상무성의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후 1939년 3월에는 만주국 총무청 차장으로 승진해서 만주국 '산업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했다.>> 일본 정계 거물과 인연1941년에 귀국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에는 도조 히데키(1884~1948) 내각의 상공대신에 취임했다. 1945년 일본 패전 후에는 연합군 측에 의해 A급 전범이 되었으나 기소되지 않고 석방된 후 정계에 진출해서 총리대신이 됐다.기시의 형인 사토 이치로는 일본해군 중장 출신이고 1974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토 에이사쿠(1901~1975)는 기시의 친동생이었다. 기시의 본래 성씨는 사토였다. 도쿄제국대학 출신의 에이사쿠는 형인 기시의 도움으로 일본 정계에 입문해서 1964년부터 1972년 9월까지 7년 8개월간 재임한 일본 최장수 총리이기도 하다. 또한 기시는 일본 최장수 외무장관을 역임한 아베신타로(1924~1991)의 장인으로 일본의 현 총리대신 아베 신조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한일 국교 정상화 적극 찬성혈혈단신의 식민지 백성인 신격호가 자신보다 무려 26세나 많은 기시 노부스케와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는 미스터리이다. 1990년대 말에 신격호는 "나와 기시 선생과는 30년 동안이나 알고 지냈다"고 고백한 터여서 기시와 신격호와의 첫 만남 시기는 대략 1960년대 초반쯤으로 추정된다.('신격호의 비밀', 175쪽) 고립무원의 이방인인 신격호가 일본 최고의 권력자 기시 노부스케와 인연이 닿았다는 것은 롯데의 승승장구를 짐작하고도 남는다.신격호는 한국인으로는 유창순 전 국무총리,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 박용학 전 무역협회장, 이승윤 전 부총리 등과 친분을 유지했다. 그는 한일 국교 정상화를 적극 찬성했을 뿐만 아니라 후일 박정희 개발독재의 유력한 지지자이기도 했다. 신격호는 한일회담 대표나 주일 한국 대사가 도쿄에 부임하면 개인 소유의 가루이자와 별장을 사용하도록 했다. 1965년 12월 18일 오전 10시 반한국의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두 나라의 국교정상화를 최종 매듭짓는 기본조약 및 협정에 의한 비준서가 교환됐다. 당시 일본의 총리대신은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인 사토 에이사쿠로 그는 박정희와 '한일협정'을 체결하고 국교를 수립했다. 한일회담 성사에 막후에서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신격호의 일본과 한국에서의 향후 위상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롯데는 지난 1968년 나가다 마사이치가 운영하던 일본 프로야구단 다이마이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 마린스)를 인수하는 등 대재벌로의 도약을 노렸다. /연합뉴스

2019-11-18 이한구
1 2 3 4 5 6 7 8

경인일보 채널

  • 강원일보
  • 경남신문
  • 광주일보
  • 대전일보
  • 매일신문
  • 부산일보
  • 전북일보
  • 제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