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전대통령 서거

 

경찰, 盧전대통령 서거경위 현장검증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경위를 수사 중인 경남경찰청은 2일 오전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김해 봉하마을 뒷산에서 현장 검증을 벌였다. 현장 검증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전문가와 법의학교수, 경호관 등 모두 30여명이 참석했다. 유족측에서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경수 비서관이 나와 전 과정을 지켜봤다. 현장검증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일 시간대별로 노 전 대통령과 수행했던 이모 경호관 등 경호관 3명 등의 행적을 하나씩 짚어가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경찰은 이날 오전 5시 35분 노 전 대통령이 등산을 가기 위해 사저 경호동에 인터폰으로 연락한 시점부터 출발, 등산로를 따라 산행한 이동경로, 부엉이 바위에서 경호관과 나눈 대화, 경호관을 심부름 보내는 장면, 바위 아래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뒤 병원으로 옮겨지는 전 과정을 이 경호관의 설명에 따라 하나하나 재연했다.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이 지난 달 23일 오전 5시47분께 사저를 출발해 봉화산을 등반하던 중 7부 능선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한 뒤 오전 6시51분께 바위 아래에서 발견됐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은 당초 이날 이 경호관이 부엉이바위에서 `정토원 선(진규) 법사가 있는지 보고 오라'는 노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정토원에 갔다 돌아온 뒤 사라진 노 전 대통령을 찾기 위해 산속을 헤맸던 이동 경로도 파악했다. 경찰은 이 경호관이 부엉이바위에서 정토원까지 왕복한 시간이 3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 일부 의문이 제기된 점을 고려해 이 경호관을 대신해 현장 경찰관에게 재연을 시킨 결과 2분43초가 걸리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특히 이 경호관이 바위 아래에서 쓰러진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하기까지 과정을 상세히 재연하도록 해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확인했다. 경찰은 당일 이 경호관과 함께 근무했던 신모, 또 다른 이모 경호관이 이 경호관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노 전 대통령을 찾아 다니거나 병원으로 이송하는 등의 행적도 통화기록, CCTV 화면 등과 일치하는지 다시 확인했다. 이날 모자와 마스크를 쓴 이 경호관은 묵묵히 당시 상황을 재연하다 "부엉이 바위에서 정토원을 오가며 노 전 대통령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미칠 지경이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또 노 전 대통령을 발견했던 부엉이 바위 아래에 도착하자 소리 내 울다 털썩 주저앉아 한동안 넋이 나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별다른 질문없이 재연과정을 지켜보던 문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한 장소에서는 이 경호관 등에게 발견경위 등을 조목조목 묻기도 했다. 경찰은 현장 검증을 비롯해 서거 이후 지금까지 경호관들을 조사해 확보한 진술과 유가족 질의서 답변, 전날 부엉이 바위에서 발견한 섬유흔에 대한 국과수 감식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서거 경위 수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2009-06-02 연합뉴스

경호관 진술 '오락가락'… 盧 발견시각 또 달라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 아래에서 발견된 시각이 또다시 바뀌었다.경남경찰청 이노구 수사과장은 1일 "이모 경호관이 노 전대통령을 발견한 시각은 오전 6시51분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이는 경찰이 지난달 27일 수사결과 발표 때 밝혔던 오전 6시45분보다 6분이나 늦은 것이다.이 과장은 "서거 당일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이 경호관이 오전 6시52분께 다급한 목소리로 '빨리 차를 대라'며 경호동에 있던 신모 경호관과 통화한 점으로 미뤄 이같이 추정된다"고 설명했다.경찰은 지난 달 29일에는 이 경호관이 6시45분에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하고 6시47분에 신모 경호관에게 휴대폰으로 연락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또 노 전 대통령이 경호동에 인터폰으로 연락한 시각도 경찰의 당초 발표보다 10분이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바뀌었다.이처럼 노 전 대통령의 서거당일 행적에 관한 경찰의 수사내용이 발표 때마다 달라지면서 "과연 어떤 것이 제대로 된 것이냐"는 의문과 더불어 부실수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을 수행한 이 경호관이 경황이 없어 정확한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데다 자신의 불이익을 우려해 자리를 비웠던 시간을 자꾸만 축소하고 번복하는 바람에 발표 내용이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부엉이바위에서 현장감식을 한 데 이어 2일 오전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법의학 관계자, 경호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당일 이동경로를 따라 현장검증을 실시할 예정이다.

2009-06-01 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 발견시각 또 달라져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 아래에서 발견된 시각 등 서거 당일 행적이 경찰발표 때마다 달라지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경남경찰청 이노구 수사과장은 1일 수사중간 브리핑을 통해 "이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한 시각은 오전 6시51분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경찰이 지난달 27일 수사결과 발표 때 밝혔던 오전 6시45분보다 6분이나 늦은 것이다. 이 과장은 "서거 당일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이 경호관이 오전 6시52분께 다급한 목소리로 `빨리 차를 대라'며 경호동에 있던 신모 경호관과 통화한 점으로 미뤄 이같이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지난 달 29일에는 이 경호관이 6시45분에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하고 6시47분에 신 모 경호관에게 휴대폰으로 연락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노 전 대통령이 경호동에 인터폰으로 연락한 시각도 경찰의 당초 발표보다 10분이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 과장은 "사저 주변 CCTV 등을 분석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은 오전 5시35분께 `산책갈게요'라며 경호동에 인터폰을 했고, 이 경호관은 3분 뒤 사저 앞에서 기다렸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달 27일에는 노 전 대통령이 오전 5시44분에 사저 내 컴퓨터에 유서를 최종저장한 뒤 5시45분께 인터폰으로 경호동에 연락했고 47분에 산으로 출발했다고 경찰은 발표했다. 경찰이 수정한 시각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오전 5시26분에 유서를 작성해 1차 저장한 뒤 35분에경호동에 인터폰으로 연락한 상태에서 다시 수정해 44분에 최종 저장했다는 말이 된다. 경찰은 또 지난 달 24일에는 "사저 경비초소의 전경이 오전 6시20분께 부엉이 바위 정상에 노 전 대통령과 경호관이 서 있는 것을 봤다고 했다"고 밝혔다가 이날은 전경의 목격 시각을 6시10분께로 수정하 했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의 서거당일 행적에 관한 경찰의 수사내용이 발표 때마다 달라지면서 "과연 어떤 것이 제대로 된 것이냐"는 의문과 더불어 부실수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경호관은 서거당일 오후에 3차례나 서거경위에 대해 경호처에 허위보고를 했고 노 전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고 수색에 나섰던 신 모 경호관은 이 경호관의 진술이 허위임을 알고도 제대로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경찰은 밝혔다. 그러나 사저 경호팀이 조직적으로 이 문제를 은폐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고 경찰은 덧붙였다. 경찰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을 수행한 이 경호관이 경황이 없어 정확한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데다 자신의 불이익을 우려해 자리를 비웠던 시간을 자꾸만 축소하고 번복하는 바람에 발표 내용이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부엉이바위에서 현장감식을 한 데 이어 2일 오전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법의학 관계자, 경호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당일 이동경로를 따라 현장검증을 실시할 예정이다.

2009-06-01 연합뉴스

영결식 끝나도..봉하마을 조문인파 '북적'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난 이후 처음 맞는 휴일인 31일 봉하마을과 봉화산 정토원은 끝없이 찾아오는 조문 인파로 북적거렸다. 이날 오전 일찍부터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는 수만 명의 조문객이 찾아왔다. 영결식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찾아오는 조문객을 위해 철거하지 않은 마을회관 앞 분향소에는 200~300m씩 늘어선 조문객들이 30분~1시간을 기다려 한 번에 50~100명씩 조문을 하는 열기가 이어졌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사진과 영상물 등이 전시 상영되는 노사모 자원봉사지원센터에도 가족단위의 조문객이 방문해 서거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모습이었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뙤약볕이 내리쬐는데도 조문객들은 주차문제 등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봉하마을 진입로에서부터 2㎞를 걸어왔으며 마을 입구와 광장 주변에 있는 만장과 현수막, 추모글 등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했다. 특히 많은 조문객이 유골이 안치된 봉화산 정토원을 찾고 있어 노 전 대통령 사저 입구부터 봉화산으로 통하는 등산로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정토원 법당인 수광전에는 분향을 하려는 행렬이 100m 이상 이어졌고 이날 오전에만 1만명에 육박하는 조문객이 다녀간 것으로 정토원측은 추정했다. 정토원에 오르는 사람 중 상당수는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바위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으나 부엉이바위로 통하는 길목에는 모두 경찰의 출입통제선이 처져 있어 접근은 허용되지 않았다. 일부 조문객은 부엉이바위를 카메라에 담거나 부엉이바위로 통하는 작은 다리에 국화와 불붙인 담배를 놓고 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행적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명복을 비는 모습이었다. 선진규 정토원장은 "앞으로 49재까지는 노 전 대통령이 이야기하지 못한 것을 국민이 대신해서 하는 애도의 기간"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극락왕생하기를 다 함께 기원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명복을 비는 것이 남은 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조문 열기와 달리 노 전 대통령의 사저는 별다른 출입자 없이 조용하고 차분했다.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정연 씨 등 유족들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노 전 대통령측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권 여사 등 유족들은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편안히 쉴 수 있도록 남은 장례절차를 잘 마무리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조문객을 맞이하는데 바쁜 일손을 보탰던 봉하마을 주민도 지난 일주일간 미뤄온 모내기 준비 등을 하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2009-05-31 연합뉴스

촛불 1만개 밝힌 정토원에 안치

예정보다 한참 늦은 30일 오전 1시40분에야 고향 봉화마을로 돌아온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노란 카펫을 따라 1만여개의 촛불이 기다리고 있던 봉화산 정토원으로 옮겨져 안치됐다. 정토원은 노 전 대통령의 부모님, 장인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다. 노란 카펫 깔리고 촛불 1만개 켜져0...목탁소리, 스님들의 염불소리와 함께 정토원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은 하얀 국화꽃과 노란 풍선을 양손에 쥔 봉하마을 주민, 조문객들의 애도 속에 노사모 회원들이 깔아놓은 노란색 카펫을 따라 정토원의 법당인 수광전(壽光殿)으로 천천히 입장했다.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위패를 들고 맨 앞에 섰고 태극기로 감싼 유골함을 맨 아들 건호씨와 권양숙 여사, 딸 정연씨, 건평씨 등 유족들, 문재인 전 비서실장,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명숙 전 총리 등이 뒤를 따랐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정토원에 도착하기 몇시간 전부터 정토원 곳곳에서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으며 유골함이 도착할 무렵에는 1만여개로 늘어난 가운데 '상록수'와 '사랑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가 울려퍼졌다. 일부 조문객들은 수광전 아래에 있는 '호미 든 관음상' 앞에 수백개의 촛불로 `편안히 잠드소서'라는 글귀를 만들기도 했다. 안치식 1시간 가량 거행0...안치식은 유족과 참여정부 인사 등만 참석한 가운데 수광전에서 약 1시간여동안 진행됐다. 의식은 세상 떠난 사람을 화장한 뒤 혼을 집으로 모시는 의식인 반혼제(返魂祭)로 시작돼 1시간 가량 엄숙하게 진행됐다. 반혼제는 망자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정중계(淨衆戒) 독송- 불법의 문을 여는 개문계(開門戒)-삼보계(三寶戒) 독송에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위패와 유골함은 수광전 오른쪽 벽에 마련된 영단(靈壇)에 모시는 순으로 진행됐다. 반혼제가 끝난 뒤 49재의 첫번째 제사인 초재가 거행됐다. 안치식 인터넷으로 생중계0...노 전 대통령의 유골 안치식은 정토원 홈페이지(www.bonghwasan.org)를 통해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이날 오후부터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는 극락왕생을 빌거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며 곧 찾아뵙겠다는 네티즌들의 글이 이어졌다. 정토원 원장인 선진규 법사는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정토원에 안치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접속이 폭주해 지난 28일에는 일시적으로 다운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여사님 힘네세요, 건강하세요"0...1시간여에 걸친 안치식을 끝내고 수광전 앞마당에 권양숙 여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노사모 회원들과 시민들은 "여사님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라고 외쳤다. 아들 건호씨,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명숙 전 총리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안치식에 참가한 조문객 등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건호씨는 한마디 해달라는 거듭된 요청에 "어머니를 대신해 지금 여기있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짧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안치식은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좋아하고 자주 불렀던 '상록수'를 시민들과 노사모 회원들이 합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국민장 종료, 자율분향 전환0...7일장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일정이 30일 0시를 기해 끝남에 따라 봉하마을은 자율분향 체제로 전환했다. 노 전 대통령 장의위원회는 29일 자정을 앞두고 마을방송을 통해 "자정을 기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일정은 공식 종료되고 이후부터는 자율분향으로 전환한다"고 안내하고 조문객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2009-05-30 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 유골 봉화산 정토원 안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이 30일 새벽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의 사저 뒤편 봉화산 정토원에 안치됐다. 29일 오후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당초 예정보다 4시간40분 가량 늦은 30일 오전 1시 40분께 정토원에 도착했으며 마을주민과 조문객 등 2천여명이 마을 입구에서부터 맞이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정토원의 법당인 수광전(壽光殿)에 안치됐다.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 씨, 권양숙 여사 등 유족과 참여정부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안치식은 고인의 혼을 집으로 모시는 의식인 '반혼제(返魂祭)'를 시작으로 1시간 정도 거행됐다. 태극기로 감싼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은 수광전 오른쪽 벽에 있는 '영단(靈壇. 위패를 두는 제단)'에 모셔졌다. 반혼제에 이어 유족과 스님, 장의위원회 운영위원 등이 49재의 첫번째 제사인 초재를 올렸다. 수광전에는 노 전 대통령의 부모와 장인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49재를 마치고 비석이 세워지는 등 묘역 조성사업이 끝나는대로 사저 부근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날 정토원에는 노사모 등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정토원 입구와 수광전으로 오르는 계단에 1만여개의 촛불을 밝혔으며 수광전에 오르는 계단 입구에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 색 카펫이 깔렸다. 안치식을 마친 권 여사, 건호.정연 씨 등 유족과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한명숙 공동위원장,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정토원에 모인 주민과 조문객 등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건호 씨는 안치식을 마친 뒤 수광전에 나와 "어머니를 대신해 지금 여기있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명숙 공동위원장은 "차가운 새벽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노 전 대통령이 가는 길을 편안하게 해줘 감사하다"며 "노 전 대통령 뜻에 따라 우리 할일 다하고 서로 손잡고 노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자"고 말했다. 앞서 29일 오후 7시께 봉하마을 광장에서는 진도 씻김굿 보존회가 국가지정 중요 무형문화재 72호인 씻김굿을 하며 노 전 대통령의 영혼을 달랬다.

2009-05-30 연합뉴스

서울광장 추모행사 심야까지 이어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29일 서울 도심에서는 밤 늦게까지 고인을 애도하는 시민들의 추모행사가 계속됐다. 서울광장 노제(路祭) 당시 18만명(경찰추산, 주최측 추산은 40만∼50만명)에 이르렀던 추모 인파는 3만여명이 남대문-서울역-삼각지까지 운구 행렬을 따라가고 나머지 대다수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크게 줄었다. 하지만 오후 11시 현재 1만여명의 시민들은 서울광장과 한화빌딩부터 프레스센터까지 이르는 왕복 11차선 도로를 떠나지 않고 자유발언과 노래부르기 등으로 추모 분위기를 이어갔다. 현장에서는 촛불을 켠 상태에서 삼삼오오 모여앉아 고인을 추억하는 대화를 나누거나 기타를 치며 민중가요를 부르는 모습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일부 시민들은 프레스센터 앞에서 광화문 방면 진입을 막는 경찰과 대치했으나 특별한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특히 일부에서는 30일 오후 노동ㆍ사회ㆍ대학생 단체의 반정부 집회가 현장에서 예정돼 있는 만큼 "서울광장을 지키자"는 주장도 나와 이날 추모행사가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계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노 전 대통령의 영정에 분향과 헌화를 하는 시민들의 발길도 심야까지 이어졌다. 경찰은 전.의경 200개 중대 1만4천여명을 서울광장을 중심으로 도심 곳곳에 배치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2009-05-30 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 유골 봉화산 정토원 도착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이 30일 오전 1시40분께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의 사저 뒤편 봉화산 정토원에 도착했다. 29일 오후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당초 예정보다 4시간40분 늦게 정토원에 도착했으며 마을주민과 지지자 등 수천명이 마을 입구에서부터 고인을 맞이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정토원의 법당인 수광전(壽光殿)에 안치된다. 안치식은 아들 건호씨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정연 씨 등 유족과 참여정부 인사, 마을주민, 노사모 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안치식은 고인의 혼을 집으로 불러들일 때 지내는 불교의식인 '반혼제(返魂祭)'를 시작으로 1시간 정도 거행될 예정이다. 태극기로 감싼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은 수광전 오른쪽 벽에 마련된 영혼의 위패를 두는 '영단(靈壇)'에 안치되며 유족과 스님, 장의위원회 운영위원 등이 49재의 첫번째 제사인 초재를 올린다. 부모님의 위패와 함께 정토원에 모셔진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49재를 마치고 비석이 세워지는 등 묘역 조성사업이 끝나는대로 안장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정토원에는 노사모 등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정토원 입구와 수광전으로 오르는 계단에 1만여개의 촛불을 밝혔으며 수광전에 오르는 계단 입구에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 색 카펫이 깔렸다.

2009-05-30 연합뉴스

美 "北 장거리미사일 발사 움직임"

북한의 미사일 발사장에서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차량 움직임을 미국 위성사진이 포착했다고 AFP통신이 29일 보도했다. 통신은 익명을 요구한 두 명의 국방부 관리들을 인용해 이 차량 움직임은 북한이 지난달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기 이전의 움직임과 유사하다고 전했다. 이들 관리는 더 이상의 상세한 내용은 전하지 않은 채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장과 다른 민감한 시설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북한의 영변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에서 증기 등이 감지되지는 않고 있지만 이 시설을 재가동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AP통신도 장거리 미사일 발사대로 사용된 장소에서 활동 증가의 징후가 있다고 미 정부 관계자들이 말했다고 전했다. 이와 별도로 폭스뉴스는 미 정보당국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주요 군사시설에서 "다소 우려스러운" 활동을 감지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의 연구개발(R&D) 복합 단지인 산음동에서 차량과 인력 이동 등을 포함한 지원 활동이 감지됐다면서 이런 활동은 과거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에 앞서 관측됐던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산음동이 발사 기지가 아니지만 북한이 어떤 목적으로든 철로로 미사일 탄두를 이동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이날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동해상으로 지대공 단거리 미사일 한 발을 추가로 발사, 핵실험 후 지금까지 총 6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은 또 이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더 이상의 도발을 해 오는 경우 그에 대처한 우리의 더 이상의 자위적 조치가 불가피해 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9-05-30 연합뉴스

유골 임시 안치될 정토원

2009-05-30 사진공동취재단

故 노 전 대통령 향후 추모행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이 29일 사저 옆 봉화산 정토원에 임시로 안치된 이후의 추모행사는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29일 고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을 임시로 안치한 뒤 당분간은 특별한 행사는 갖지 않기로 했다. 장의위원회는 장례를 지른 지 3일째 되는 날에 거행하는 제례의식인 삼우제도 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장지와 비석 문제 등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삼우제는 별다른 행사없이 유족 등이 정토원에서 고인에게 절을 올리는 정도로 간소하게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오는 7월10일에 있을 49재는 비교적 성대하게 개최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옆 야산 등지에 공원형태의 묘역과 비석이 건립된다면 정토원에 임시로 안치된 노 전 대통령의 유골 안장식이 열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안장식에는 유족과 참여정부 참모, 노사모 등 지지자, 마을주민 등이 대거 참석해 노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장의위원회는 고인을 기리는 비석건립이 늦어질 경우에는 노 전 대통령의 생일인 9월24일(음력 8월6일)에 비석을 제막할 계획이어서 49재가 간소하게 진행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49재 이후에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100일과 1주기 등에 맞춘 추모행사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장의위원회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의위원회 관계자는 "특별한 추모행사를 하지 않을 방침이지만 국민장 이후에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마을회관 등에 임시 추모시설을 운영하고, 장례기간에 사용된 리본이나 벽보, 사진 등 노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모든 물품을 수거해 기념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9-05-30 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 화장식, 애도 속에 엄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화장식이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하동 수원시연화장에서 유족과 추도객들의 오열과 애도 속에 엄수됐다. 화장식은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족과 참여정부 당시의 청와대 참모, 전직 각료, 노사모 회원, 시민 등 7천여명(경찰 추산)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구, 분향의식, 종교의식, 화장, 유해수습 및 분골, 유골반환의 순으로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서울에서 영결식과 노제를 마친 운구행렬은 경부고속도로 수원요금소와 국도 42호선을 거쳐 예정보다 3시간 이상 늦은 오후 6시7분께 연화장에 도착했다. 화장식은 국방부 의장대 11명이 태극기에 덮인 노 전 대통령의 관을 운구차에서 내려 승화원(화장장) 내 분향실 앞으로 옮기면서 시작됐다. 이어 영정과 유족은 승화원 밖에 마련된 분향소로 이동해 간단한 분향의식을 올렸다. 8호 분향실에서 짧은 고별의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관은 승화원 내 8번 화장로로 이동했고 권 여사와 정연씨 등 유족들은 분향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화장로에 입관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오열했다.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승화원 밖 합동분향소에서는 불교, 기독교, 원불교, 천주교 순으로 종교의식이 진행됐으며 이어 한명숙.이해찬 전 총리,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강기갑 민노당 대표, 김진표 의원, 손학규 전 경기지사, 유시민 전 장관 등이 분향했다. 1시간여 화장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냉각, 수습, 분골 과정을 거친 다음 유족들이 마련한 향나무 유골함에 담겨 오후 8시55분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로 떠났다. 이날 화장식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일반인 화장이 중단된 상태에서 치러졌다. 승화원 밖 분향소의 제단 위에는 대형 근조 현수막이 내걸렸고 추모객들을 위한 대형 야외 스크린도 설치됐으며, 연화장 진입로와 승화원 밖에는 애도의 뜻이 담긴 수만 개의 노란색 풍선과 리본, 추도 현수막이 내걸렸다. 경찰은 연화장 입구 700m 지점에 1천500대분의 임시 주차장을 설치했지만 화장식이 시작하기도 전에 꽉 차자 진입로 3㎞ 전방부터 차량 진입을 통제했다. 민주당 경기도당 측은 "종이 모자와 스카프 2만여 개를 준비했는데 2시간만에 모두 나갔다"고 밝혔다.

2009-05-29 연합뉴스

수원 연화장 현장 이모저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가 도착한 오후6시10분께 수원 연화장 승화원(화장장)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가족과 친지들의 눈물겨운 헌화가 이어졌다.노 전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는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술 한잔을 올려, 보는 이의 눈시울을 붉게 했고 권 여사가 기어코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자 추모객들 사이에선 오열이 터져나왔다.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한명숙 장례위원장, 민주당 정세균 대표, 민노당 강기갑 대표 등 정치권 현직 인사들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 문성근씨, 김부선씨 등 동반자들의 헌화가 속속 이어졌다.모두들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함께 해온 정치 세월처럼 고인의 가는 길까지도 함께 했다. 추모객들도 1시간 30분에 걸친 화장절차 동안 고인이 즐겨부르던 '사랑으로'와 '상록수'를 함께 부르고,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생전 고인의 모습을 보고 박수를 보내며 고인을 애도했다. 화장이 끝나고 냉각절차를 거친 운구를 분골 후 유골함을 수습하는 입회 절차는 건호씨가 직접 했다.○…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과정에서 드러난 '경호 실패'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질 않고 있는 가운데 이를 의식한 듯 29일 오후 수원시 연화장 화장 과정에서는 대통령실 경호처의 경호 활동이 대폭 강화돼 눈길을 끌었다.경호처는 당초 노 전 대통령 사저 경호팀 20여명 외 경호처 본진 경호 인력 수십여명도 서울 경복궁 영결식장으로 투입한데 이어 수원시 연화장으로도 별도의 지원팀을 편성, 이날 오전부터 내려보냈다. 10여명의 경호원들과 파견 경찰관으로 편성된 이들 지원팀은 노 전 대통령의 운구 도착에 앞서 주요 지점의 검측 활동 및 경찰과의 경비·경호 인력 배치 등을 펼쳤고, 화장 이후엔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씨 등 가족·유족은 물론 분골·포장된 유골의 봉하마을행도 지근거리에서 경호했다.내근팀에서 근무하다 이날 긴급 투입됐다는 한 경호원은 "경호 실패 논란은 일단 조사를 통해 밝혀질 내용"이라며 극도로 말을 아끼면서도 "고인이 된 전 대통령 및 내년초까지 경호 대상인 가족·유족들의 원활한 국민장 참여를 위해 지원팀의 수원행이 결정됐다"고 투입 배경을 설명했다.○…시민들의 뜨거운 애도 속에 29일 오후 6시10분부터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유해의 수원시 연화장 화장 절차가 진행된 가운데 일부 시민들이 유족 및 김해 봉하마을 주민들에 막말을 쏟아내 주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이들 시민은 권양숙 여사와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 아들 건호씨 등이 차례로 분향소로 입장할 당시 '유족과 친지 봉하마을 주민들이 서 있는 바람에 분향 과정이 잘 안 보인다'는 이유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어 논란을 빚었다. 일부는 "검은색 양복 입었다고 다냐", "당신들 보러 온 것 아니니까 어서 앉아라", "우리가 더 일찍 왔는데 왜 늦게 온 사람들을 앞에 세우냐"며 고함을 지르기도 했고, 또 다른 행렬은 승화원(화장장) 앞 경찰의 폴리스라인까지 막무가내로 밀고 넘어들어와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이를 지켜 본 한 시민은 "노 전 대통령이 원했던 모습은 저런 게 아닐 텐데, 노 전 대통령을 사랑한다고 외치면서도 왜 저런 행동들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남을 원망하지 말고, 화합할 것'을 주문한 고인의 깊은 뜻을 받드는 길만이 진정한 추모가 될 것"이라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2009-05-29 갈태웅·최해민

수원 연화장 현장 화보

2009-05-29 사진공동취재단

화장식 3시간 지연..추모인파 계속 늘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가 지연되면서 화장식은 당초 예정보다 3시간 이상 늦은 29일 오후 6시7분께 시작됐다. 그러나 화장지인 경기도 수원 연화장을 찾는 인파는 예정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계속 불어나 화장이 시작될 때는 8천여 명(경찰 추산)으로 늘어났다. 민주당 경기도당 관계자는 "웃는 얼굴 그림에 '내마음 속의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햇빛가리개 겸용 종이 모자를 2만개 정도 준비했는데 오후 4시30분께 동이 났다"고 말했다. 추모객 가운데 1천여명은 운구차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 연화장 옆 산비탈로 올라가 초록색이던 경사면을 노랗게 물들였다. 연화장 측이 "산비탈에서 뱀이 나온다"고 경고방송을 하자 엄숙한 애도 분위기 속에 가벼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추모객들은 영결식이 늦어지는데도 대형 스크린 차량을 통해 추모영상을 보면서 차분히 운구행렬를 기다렸다. 7개월된 아들과 함께 연화장을 찾았다는 임혜진(32.여수원시 원천동) 씨는 "예정된 시간보다 많이 늦어졌지만 용산에서 (운구차량을) 막아선 사람들 마음도 이해된다"며 "힘들지도 불편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수원시 정자동에서 아들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온 70대 할머니 김은예 씨는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드리려고 왔다.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수원시 시설관리공단 측은 연화장 안팎에 음수대를 설치하고 생수 20ℓ들이 30통, 커피 1만4천명분, 녹차 2천400명분을 준비했으나 오후 5시께 완전히 떨어져 비슷한 물량을 추가 주문했으며, 공단 직원과 수원시 공무원, 부녀회원 등 300여 명이 장례를 도왔다.

2009-05-29 연합뉴스

작별을 고하는 노 前 대통령, 오열속 화장식 진행

 "상처도, 고통도, 마음의 짐도 모두 다 잊고, 편히 가세요. 편히 쉬세요" 태극기가 감싸안은 대통령의 관이 승화원 8번 화장로로 서서히 들어가는 장면이 대형 스크린으로 방영되는 순간, 수원시 연화장 일대는 탄식이, 울음이 이어졌다. '사랑합니다'를 외치던 시민들, '노무현'을 부르짖던 노사모 회원들, '권 여사님, 힘내세요'를 기원하던 김해 봉하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쏟아낸 흐느낌 속에 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과 작별을 고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를 실은 차량행렬은 당초 예정시간보다 무려 3시간이 넘어선 오후 6시10분께야 수원 IC를 거쳐 5㎞ 진입로를 따라 연화장으로 겨우 진입할 수 있었다. 앞서 서울 경복궁 영결식장 앞에서부터 오열하는 시민들 행렬이 끊임없이 밀려들면서 오후 5시50분에야 서울 궁내동 IC를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 오후 4시30분,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지기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측근들이 연화장으로 속속 합류했지만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늦어진 장례식에도 추모 열기는 연화장이 소재한 하동 일원을 고스란히 뒤덮었다. 이날 오전부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려 인산인해를 이룬 시민들은 분향소 일원은 물론 좀 더 가까이서 운구라도 보려고 연화장 서쪽 언덕에 올라가 노란 리본을 흔드는가 하면 노란색 종이로 비행기를 만들어 날렸다. 노란색 종이모자에다 노란색 추모리본까지 가히 노란색 물결이었다. 장순애(58·여·수원시 영통동)씨는 "비통하고 원통하다. 원망하지 말라셨지만 가슴이 찢어질 뿐"이라며 "딴 세상 사람인줄만 알았던 대통령이 나와 같은 보통 사람이란 걸 깨닫게 해 주셨던 분, 이제 정말 딴 세상 사람이 됐다"며 연신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화로의 화염은 70여분간 지속됐다. "아이고", "얼마나 뜨거우실까"라는 울먹임이 장내를 메아리쳤고, 목 놓아 오열하던 한 켠에선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나왔다.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봉녕사 스님들을 중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비는 다비식, 기독교 추도예배 등 4가지 종교단체 장례 절차가 시민들의 엄숙한 참여속에 진행됐다. 고인의 유해는 냉각, 수습을 거쳐 당초 계획에는 없었던 분골 및 포장에 이르기까지 30분간의 절차를 마친 뒤 어린 시절의 추억, 노년의 아쉬움이 깃들어있는 봉하마을로 먼 길을 떠났다.

2009-05-29 갈태웅·최해민

盧전대통령 영결식·노제 이모저모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가 서거 이레만인 29일 엄숙한 분위기 속에 치러졌다.노제가 열린 서울광장에는 18만여명(경찰 추산)의 인파가 몰렸지만 큰 혼란이나 불상사 없이 행사가 평온하게 진행됐다.= 서울, 노란색으로 물들다 =0..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가 치러진 29일 서울 시내는 온통 그의 상징색인 노란색으로 물들었다.시청 앞 광장과 서울역 등에 모인 시민 수십만명은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노란 종이모자와 노란 풍선을 들었고, 노란 스카프를 목이나 팔뚝에 감은 이도 있었다.청계광장과 도로 주변 가로수에는 노란 풍선띠가 걸렸고, 운구행렬 주변에서는 노란 종이비행기가 날기도 했다.= 운구행렬 주변 경찰들 '제자리 앉아' =0..노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으로 향하던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광화문 사거리에 접어들자 주변을 지키던 경찰 병력이 일제히 자리에 앉아 눈길을 끌었다.시민들이 운구 행렬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하지만, 경찰은 시민들이 행렬 주변으로 앞다퉈 몰려들자 곧 다시 일어나 인간띠를 형성해 더 이상의 접근을 막았다.= 무더운 날씨에 실신·탈진 속출 =0..노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 일대에는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로 탈진하는 시민들이 속출했다.소방방재센터는 이날 오후 1시30분께 시청 앞 광장에서 조모(24.여)씨가 탈진하는 등 이날 오후 3시 현재까지 15명이 실신하거나 탈진 증세를 보였다고 밝혔다.센터는 이들 가운데 5명을 병원으로 옮기고 1명은 귀가시켰지만, 나머지 9명은 증세가 가벼워 현장조치만 했다고 덧붙였다.= 운구행렬 속 민주당 의원들 '곤욕' =0..노 전 대통령의 유족과 함께 운구행렬을 뒤따르던 민주당 의원들은 "대통령이 돌아가실 때까지 뭘 했냐"는 시민들의 원망과 질타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행렬이 노제가 치러진 서울광장을 벗어나는 동안 주변 시민들은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박영선 의원 등에게 "노 대통령 살아계실 때는 봉화마을 한번 안 가보더니 죽고 나서야 따라다니느냐"며 잇따라 언성을 높였다.= 뒷정리는 확실히…. 시민정신 과시 =0..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을 따라 시민들이 빠져나간 도로 위는 깔고 앉았던 신문과 종이 모자, 버려진 유인물 등이 그대로 남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어디선가 마대와 대형 비닐봉지를 구해 자발적으로 청소함으로써 성숙한 시민정신을 과시했다.권영삼(29)씨는 "오늘 행사가 그렇게 좋은 일도 아닌데 지저분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해 주변에서 봉투를 구해 와 쓰레기를 치웠다"고 말했다.= "또 봉쇄냐" 시민ㆍ경찰 충돌 =0..노 전 대통령의 노제가 치러진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경찰 버스가 이동하자 시민들이 행사장 봉쇄를 시도하는 것으로 판단해 경찰과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이날 오후 3시30분께 경찰 버스 4대가 서울프라자호텔 맞은 편 서울광장 가장자리에 주차를 시도하자 시민들은 얼린 물통 등을 던지며 "또 봉쇄하느냐?"고 고성을 질렀다.이 과정에서 경찰버스 1대와 경찰 지휘차량 1대의 창문과 백미러 등이 파손됐다.경찰은 문제의 버스를 인권위원회 옆길로 철수시켰지만, 일부 격분한 시민들이 뒤를 쫓으면서 주변에서 시민과 경찰이 한동안 대치하기도 했다.경찰 관계자는 "서울광장 주변에 차 벽을 치려고 한 것은 아니고 경찰버스를 단순히 옮기려다 시민들이 오해한 것이다"고 해명했다.

2009-05-2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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