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신공

 

[경인신공]마을공동체 중심 교육 재편… 인천 '교육혁신지구' 뜬다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삶과 배움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학교는 남들보다 많은 지식과 정보를 소유해 다른 사람과의 지식 경쟁에서 이기는 일을 당연히 여기고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인간을 길러낸다. 배움이란 것이 내가 속한 사회의 문제점을 개선하지 못하고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키기만 한다면 그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마을 공동체란 무엇인가』중)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교육 과정을 재편하는 인천시교육청의 교육 혁신 지구 사업이 호응을 얻어 확산되는 양상이다. 2015년 인천 남구에서 시작된 교육혁신지구는 올해 중구, 부평구, 계양구로 확대돼 오는 9월부터 본격 운영된다. 인천의 10개 군·구 중 절반가량이 교육 혁신 지구 조성을 위해 인천시교육청과 손잡고 나섰다.교육 혁신 지구 사업의 시작점인 인천 남구의 비전은 '가고 싶은 학교,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다. 남구는 교육지원센터를 구축해 '마을 자원'을 발굴·관리하고, 진로 체험 교육을 진행했다. 이른바 '남구 온마을 교육 공동체'를 통해 학생·학부모·교사와 지역 공동체가 함께 만드는 책임 교육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남구 교육 혁신 지구 사업 참여 학교 아이들은 학교 밖 교육 과정에 익숙해졌다. 독서 교육 프로그램을 예로 들면, 교육 장소가 학교 도서관에서 동네 도서관까지 확대됐다. 학교 밖 도서관의 사서가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교문 밖 도서관에 찾아가 책을 읽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됐다.학생 자치 활동도 활발해졌다. 교사가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동아리를 만드는 일이 많아졌고, 시교육청과 남구는 이들 동아리에 활동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이밖에 시교육청과 남구는 민·관 거버넌스를 올해 구축했고, 교육청과 학교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도 함께 참여하는 참여형 혁신 지구를 지향하고 있다.남구의 교육 혁신 지구 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다른 기초자치단체의 참여가 올해 늘었다. 시교육청은 지난 3월 중구, 부평구, 계양구를 교육 혁신 지구로 추가 지정해 발표했다. 이어 5월 교육 혁신 지구 업무 협약을 맺었고 이들 3개 지역에서의 교육 혁신 지구 사업이 다음 달부터 본격화된다.교육 혁신 지구는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계양구를 예로 들면 마을·지역 연계 토론 교육 특성화 사업을 추진한다. '계양산 생태 체험', '숲 읽어주는 부모님', '계양의 교통 시설 탐방',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직업 알기', '부평 향교를 찾아서', '어울림 토론 기법 익히기' 등이 계획돼 있다. 마을의 환경, 공공 시설 자원 등을 활용해 아이들이 다양한 교육 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으로 다른 지역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교육 혁신 지구를 운영한다.인천의 교육 혁신 지구 사업의 공통점은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와 '지역 공동체 의식 회복'이다. 교육 혁신 지구 사업을 처음 시작한 남구의 사업 추진 목적 중 하나는 '구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학령 인구 자녀를 둔 부모들이 동네를 떠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민들이 하나둘씩 마을을 떠나면서 '교육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한 장치의 하나로 온마을공동체를 꾸려갔다. 올해 신규로 교육 혁신 지구 사업에 참여한 중구, 부평구, 계양구 역시 구도심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는 점에서 남구와 사정이 비슷하다.교육 혁신 지구 사업은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탐색하고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인천시남부교육지원청 이상훈 장학사는 "학교뿐 아니라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품어내고 키워내는 것, 그런 공감대를 확산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아이들이 떠나지 않고 '좋은 학교'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교육 혁신 지구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지난 2015년 3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경인신공(경인일보로 신나게 공부하기)'이 막을 내립니다. 2년 5개월 간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 고장의 역사', '영화와 시사 속 영어', '논술카페', '창의융합교실' 등의 코너를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익한 이야기를 전해왔습니다. 그동안 경인신공을 알차게 꾸며준 교과 선생님들과, 아낌없는 사랑을 보내 준 독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다음 주부터는 '경기꿈의대학' 강좌 소개와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새롭게 태어난 교육면으로 찾아올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17-08-28 김명래

[경인신공]놀면서 배우는 창의융합교실-미술과 수학을 접목한 화가 '에셔'

수학자들과 협업 대칭·반복의 미 담아자신만의 독특한 '무한공간' 예술 개척사람들은 미술과 수학은 별개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하다. 미술은 창의적인 것이고, 수학은 논리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 수학과 미술은 연관성이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미술과 수학의 접점은 무척이나 많다. 단적인 예로 풍경화나 인물화를 그릴 때 초점이나, 상점에 붙어있는 포스터의 인물이 어느 방향에서든 나를 계속 쳐다보는 것 같이 느끼는 것도 수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수학과 미술의 만남을 보여줬던 인물들 중에서 독보적인 인물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이하 M.C. 에셔)다. 외래어 표기법에 의해 M.C. 에스허르로 적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에셔로 표기하고자 한다. 그는 지난 1898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판화가다. 에셔는 초기에는 풍경화를 주로 그리는 화가였다. 그러다가 1922년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의 여러 무늬에 매료돼 그 뒤로는 여러 패턴이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그렸던 패턴은 수학적 용어로는 테셀레이션이라는 것으로, 일정한 도형(모양)으로 평면을 빈틈없이 채우는 것을 말한다. 우리말로 쪽매맞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테셀레이션은 한 가지의 도형을 이용해 평면을 채울 경우, 빈틈 없이 채울 수 있는 도형은 삼각형·사각형·육각형 3가지 경우만 가능하다. 이유는 각 도형이 만나서 평면을 채우기 위해서는 도형이 모여서 360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삼각형, 사각형, 육각형만이 360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셀레이션을 한 가지 도형이 아니고 여러 가지의 도형의 조합으로 만든다면 그것보다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이것들을 같은 유형끼리 묶으면 17가지의 벽지 무늬로 구분할 수 있다. 이 17가지의 벽지 무늬를 모두 볼 수 있는 곳이 알함브라 궁전이다.에셔는 알함브라 궁전에서 수학적인 대칭과 반복에 빠져들었고 자신만의 테셀레이션을 만들었으며, 1954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ICM)에 참석했던 수학자들은 여러 학술행사에 관심을 갖기보다 에셔의 그림을 보고 많은 관심과 감명을 받는다. 그 중에서도 수학자 콕세터는 자신의 논문에 수학적 증명과 함께 에셔의 그림을 소개했고, 그것을 에셔에게 보냈다. 에셔는 콕세터의 논문을 보고 그동안 자기가 고민했던 한정된 공간에 무한을 표현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됐고, 그 이후로는 단순한 테셀레이션에서 무한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에 콕세터는 에셔의 그림을 자신의 책에서 계속적으로 소개했고, 그것을 본 가드너에 의해 여러 곳에 소개되면서 에셔의 그림과 에셔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또 한 수학자인 펜로즈는 에셔의 그림인 <상대성>을 보고 감명을 받아 자신만의 불가능한 도형을 만들고자 노력했고, 불가능한 도형인 펜로즈 삼각형을 만들게 된다. 그는 펜로즈 삼각형에 대해 논문으로 써서 학술지에 발표했고, 이를 본 에셔는 불가능한 도형들이나 연속된 길인 뫼비우스 띠와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이후에도 이들은 서로 교류를 통해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켜 나갔다.에셔는 어려서부터 수학, 과학을 어려워하며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학적 대칭과 반복을 표현했고, 여러 수학자와의 협업을 통해 자신의 그림을 발전시켰다.수학을 배우는 이유가 연산을 익히고 계산하는 것 이상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방법을 배운다고 생각해 에셔처럼 자신의 생활 영역에 수학을 접목한다면, 수학의 가치가 생활의 여러 분야와 만나 더욱 가치 있는 학문이 되리라 본다. /김주창 한백초 교사※위 창의융합교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7-08-28 경인일보

[경인신공]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안성 칠장사의 전설·역사

불도 귀의한 도적들 '일곱 나한' 거듭나조선시대 인목대비 원찰로 왕실과 인연안성시 죽산면 칠현산(七賢山) 자락에 칠장사가 있습니다. 이 사찰이 선덕여왕 또는 진덕여왕 때 창건됐다고는 하지만 이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칠장사와 관련된 역사는 고려 시대에 죽산 출신인 혜소국사(972~1054)가 현종5년(1014) 중건한 이후에야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칠장사의 알려진 역사는 혜소국사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지요. 속명이 이정현(李鼎賢)인 혜소국사는 9세에 승려의 길로 들어섰으며, 성종 15년(996)에 승과에 급제해 덕종 때는 교종(敎宗)의 가장 높은 지위인 승통(僧統)이 됐고, 문종 3년(1049)에는 왕사(王師)로 임명됐습니다. 그는 문종 8년(1054) 연로해 고향인 죽산의 칠장사로 돌아와 그 해 11월 좌선한 채 입적했습니다. 문종은 그를 칠장사의 남쪽 기슭에 장사지내도록 하고, 혜소(慧炤)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칠장사에는 혜소국사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지금의 칠현산은 원래 아미산(蛾眉山) 또는 칠현산(漆賢山)으로 불렸으며, 일곱 명의 도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일곱 도적 중의 한 명이 칠장사의 샘가에 왔다가 금으로 된 바가지를 발견하고 얼른 품에 감춰 산채로 가서 동료들에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도적들도 각각 금바가지를 갖고 왔다고 하면서 이를 꺼내 보였는데, 모두 쪽바가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도적들은 이 모두가 혜소국사의 신통력에 의한 것임을 알고 서로 논의해 그의 제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이후 열심히 불도를 닦아 일곱 명 모두 나한의 경지까지 이르렀습니다. 혜소국사가 일곱 명의 악인을 교화한 이후로 漆賢山(칠현산)을 七賢山(칠현산)으로, 漆長寺(칠장사)는 七長寺(칠장사)로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일곱 나한은 칠장사가 쇠락하는 앞날을 내다보며 안타까워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고 돌로 된 형상만 남자, 마을 사람들이 돌나한을 고이 모셨다고 합니다. 이후 사람들은 나한전에 유과, 사탕 등 그다지 값나가지 않는 예물을 올리며 빌었고, 나한은 어려운 사람들의 소원을 잘 들어줬다고 합니다. 나한전은 서민들의 삶이 팍팍할 때마다 위로받을 수 있는 피난처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칠장사 내의 나한전에는 지금도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의 일곱 나한이 모셔져 있습니다.혜소국사가 도적들을 교화시킨 이야기는 이후 소설 임꺽정의 이야기로 되살아납니다. 홍명희는 실제 있었던 명종 때의 도적 임꺽정과 전설로 전해지는 칠장사의 도적을 연결했습니다. 임꺽정과 그의 부하들이 스승으로 모신 갖바치가 병해대사가 돼 안성의 칠장사에 기거하게 된다는 벽초 홍명희의 소설의 내용이 그것입니다. 또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는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는 길에 칠장사에서 묵으며 유과를 올리고 정성을 들이자 꿈에 나한이 나타나 과거 시험 문제를 알려줘 과거에 합격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칠장사가 서민들의 삶과 밀접한 사찰만은 아닙니다. 고려 때 불교를 숭상했던 정책과는 달리 조선에서는 숭유억불 정책을 고수했던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불교 승려들의 도성 출입까지 통제했을 정도였지요.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는 왕실과 사대부 집안의 원찰이 돼 그들의 후원을 받기도 합니다. 칠장사는 선조의 왕비 인목대비가 원찰로 삼은 절이었습니다. 인목대비는 인조반정 후 광해군 때 어린나이로 죽임을 당한 영창대군과 아버지인 김제남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칠장사를 이따금 찾았고, 자신의 어려운 심정을 시(詩)로 표현한 친필 족자를 이곳에 남겨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강화도에서 죽임을 당해 남한산성 아래로 이장했던 영창대군의 묘가, 성남시가 개발되면서 1971년 일죽면 고은리로 다시 이장됐던 것은 이러한 칠장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칠장사는 그 안에 담긴 전설과 역사적 사실 외에도 주목할 만한 유물들이 많이 전해지는 사찰입니다. 무더위가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칠장사에 가서 전설과 역사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장연환 효명고 교사※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칠장사 전경. /효명고 제공

2017-08-28 경인일보

[경인신공]'놀면서 자라고 꿈꾸는 어린이!' 인천시교육청 '놀자학교' 운영

"모든 어린이는 놀면서 자라고 꿈꿀 때 행복하다."인천시교육청은 올 상반기부터 초등학교 10곳에서 '놀며 자라는 행복학교'를 운영, 지원하고 있다. 이른바 '놀자 학교'는 지난 2015년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가 제정한 '어린이 놀이 헌장'을 실천하는 교육 기관으로 점심 시간, 중간 휴식 시간 등을 활용해 다양한 놀이 활동을 벌이고 있다.아파트 밀집 지역에 있는 인천미산초는 교정에 놀이마당 3곳을 지정해 운영한다. 주차장 자리에 '앞마당'을 펼쳐 비석치기, 사방치기 등 전통 협동 놀이터로 만들었다. 여기에 공감한 학부모들의 도움으로 교직원들은 인근 아파트 단지 주차장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운동장 '큰마당'에는 게임형 기본 교구를 비치했고, 건물 뒤편의 공간을 '뒷마당'으로 꾸며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 수 있게 했다. 인천미산초는 지난 2015년부터 학습 공동체 '놀이 연구회' 활동을 시작했고, 지난 해 놀이 자료집('즐겁게 놀며, 크게 자라는 우리')을 발간해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인천삼성초 놀자 학교는 '행복한 숲놀이', '즐거운 운동장 놀이', '생각하는 쉼터놀이'로 구성돼 있다. 숲에서 친구들과 해먹을 만들고, 숲 그네를 타고, 나무에 올라간다.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트램펄린을 즐기거나 샌드백을 때린다. 쉼터 놀이터로 '움막 체험', '숲속 도서관', '정자 쉼터'가 활용된다.시교육청 놀자 학교는 교육 과정 연계형, 놀자 마당 주관형으로 분류된다. 교육 과정 연계형으로 가좌초, 경원초, 귤현초, 미산초, 산곡북초, 새말초, 석남초, 송림초 등이 운영 중이고 놀자 마당 주관형은 삼성초, 동수초가 지정돼 있다.놀자 학교 외에도 놀이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도 적지 않다. 인천신광초는 '중간 놀이' 시간을 운영한다. 1·2교시가 끝나고 30분 동안 친구들과 함께 노는 시간이다. 교실 안에서 보드 게임을 하거나 운동장에 나와 공을 차고 줄넘기를 한다. 이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은 다른 휴식 시간을 조금씩 줄이기로 '선택'했다. 교사는 '시간 약속'을 강조하고, 중간 놀이 시간 중 다툼이 있을 때 '또래 조정관 학생'이 조정에 나선다. 인천신월초 역시 중간 놀이 시간 10분을 활용해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등의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놀이교육의 일환으로 시교육청은 영종도에 있는 인천교육과학연구원 유휴 부지에 생태환경 놀이 공간 조성 사업을 진행 중이다. 유치원, 초등학생들이 가족과 함께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된다.시교육청의 놀이 교육은 지난 2015년 5월 어린이 날을 맞아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가 제정한 '어린이 놀이 헌장'의 후속 조치다. 당시 교육감들이 발표한 10대 공동 정책에 따라 시교육청은 '어린이 놀 권리 보장을 위한 놀이시간 확보', '어린이 생태 환경 놀이터 조성', '놀이 교육 교사 동아리 운영', '놀이 교육 장학 자료 개발', '학부모 놀이 교육 지원', '놀이 문화 조성을 위한 교사 연수' 정책을 수립했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2017-08-21 김명래

[경인신공]놀면서 배우는 창의융합교실-'과학의 생활화!' 과학자 김용관 선생

조선총독부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 '기술' 중요성 눈떠학회·전문지 창간등 '과학강국 조선' 힘쓴 독립운동가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5인의 독립운동가를 호명했다. 의열단원으로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선생, 간도참변 취재 중 실종된 동아일보 기자 장덕준 선생, 무장독립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독립군 결사대 단원이었던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과학자 김용관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5인의 독립운동가 중 김용관 선생은 대한민국 최초로 과학과 발명의 중요성을 강조, 과학발명 대중화 운동에 힘을 기울였던 과학자였으며 '과학'과 '발명'이란 무기로 또 다른 '독립투쟁'을 했던 분이다. 일제강점기의 일본은 조선인에 대한 과학기술 교육을 철저하게 통제해 조선인 고급 과학기술자가 배출되지 못하도록 했으며 그 결과 조선인 의사, 변호사는 있었으나 조선인 과학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1904년 일제가 통감부를 개설하면서 조선인에 대한 우민화(愚民化)와 점진적인 동화(同化)정책을 목표로 삼아 대한제국의 6년제 '소학교령'을 폐지하고 '보통학교령'을 공포해 수업을 4년으로 단축, 우리나라 학생들을 자신들에게 복종하도록 교육하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 대한제국이 설립한 '관립 상공학교'를 단순한 기능만을 익히도록 교육하는 '공업전습소'로 격하하기도 했다. 또한 총독부는 1938년 이전까지 대학에 이공계 학과를 두지 못하도록 했으며 관련학과로의 유학도 어렵도록 헸다.김용관 선생은 1897년 서울에서 태어나 1918년 경성공업전문학교를 졸업, 조선총독부 장학생에 선발돼 동경 구라마에고등공업학교에서 요업(비금속광물을 이용한 화학공업의 한부분)과를 졸업했다. 일본 유학중 일본의 빠른 성장이 발명과학의 대중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1924년 경성공업전문학교 동기였던 현득영, 박길룡 등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발명학회'를 설립해 발명과학대중화 운동에 앞장섰다. 다양한 신문과 잡지를 통해 과학과 발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연재하고 1933년 6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발명 전문지인 '과학조선'을 창간하기도 했다.또 1934년 2월 28일에는 김용관 선생의 주도로 31명의 사회 저명인사들이 서울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진화론으로 널리 알려진 찰스 다윈(1809~1882)의 서거일인 4월 19일을 과학데이로 정했다. 과학대중화를 위해서는 과학데이와 같은 적극적인 행사가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함께한 것이다. 제1회 과학데이를 맞이해 김용관 선생은 라디오에 출연해 과학지식 보급에 대하여 설명했으며 대중과학강연, 과학관, 영등포방직공장, 중앙시험소, 중앙전화국 등의 단체견학, 과학활동사진 상영 등의 행사도 진행했다. 이듬해 제2회 과학데이는 깃발을 앞세운 54대의 자동차와 군악대가 서울 시내를 행진하며 '과학의 노래'를 연주하는 등 규모가 더욱 커져 전국적으로 성대하게 치러졌다.'생활의 과학화! 과학의 생활화!', '다같이 손잡고 과학조선을 건설하기 위해 분기하자!'는 그의 구호는 잠시나마 꽃을 피우는 듯 했으나 1938년 5회 과학데이를 추진하다가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조선총독부에 의해 체포돼 과학행사도 중단되고 말았다. 과학으로 우리 민족을 굳건히 세우려 했던 김용관 선생. 암으로 1967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오래도록 기억돼야 할 것이다. /안달 효덕초 교사※위 창의융합교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7-08-21 경인일보

[경인신공]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한 한규설의 묘

1905년 11월 '외교권 강탈' 늑약 끝까지 맞서끌려나와 감금돼… 묘 고양 향토문화재 지정8월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치욕적인 날과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후 나라를 되찾은 광복을 기념하는 날이 달력에 함께 표시되는 달입니다. 각각 1910년과 1945년의 일이었지요. '경술국치'라고 불리는 1910년의 국권 강탈 전에 이미 대한제국의 통치권은 일제의 손에 넘어 간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답니다. 1905년에 일제의 강압으로 체결된 을사늑약 이후 일제의 내정 간섭이 심해졌기 때문이지요.오늘은 국권침탈 과정과 관계있는 유적지를 찾아 나서려 합니다.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덕수궁 중명전,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옛 통감 관저 터는 모두 서울 시내에 있는데 관련된 유적지가 경기지역에 있을까요? 비록 조약이 체결된 장소는 아니지만 경기도 고양시 원흥동의 야트막한 산자락에는 체결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답니다. 일본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을사늑약 체결에 끝까지 반대했다고 알려진 인물인 한규설의 묘가 바로 그 곳입니다. 고양시 지정 향토문화재 제 25호로 지정되어 있지요.1904년에 러·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한일의정서(1904.02.23.)와 제1차 한일협약(1904.8.22.)을 체결해 대한제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답니다. 그 이듬해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미국, 영국, 러시아와 각각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27.), 제2차 영일동맹(1905. 8.12.), 포츠머스 조약(1905.9.5.)을 체결해 대한제국에서의 일본의 영향력 행사에 대한 승인까지 받아냈답니다. 그 여세를 몰아 일제는 그 해 11월에 이토 히로부미를 전권대사로 파견, 을사늑약 체결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고종 황제의 완강한 거부로 조약 체결 진행이 여의치 않자 11월 17일 저녁에는 자신들의 군대를 동원한 가운데 대신들을 덕수궁 중명전으로 불러들였답니다. 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기 위함이었지요. 이토 히로부미 외에 협상에 참여한 사람은 주한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 참정대신 한규설,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었답니다. 밤늦도록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협상 직전의 어전 회의에서도 체결 반대를 결의했던 대신들이 하나 둘씩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답니다. 무력을 앞세운 일제의 강압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 와중에 이 묘의 주인인 한규설을 비롯한 민영기, 이하영 등 세 명의 대신들이 체결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답니다. 한규설은 끌려나와 마루방에 감금되기까지 했지요. 이후 협상은 새벽까지 이어졌고 결국 새벽 2시께, 고종 황제의 전권 위임장도 받지 않았던 외부대신 박제순이 조약문에 인장을 찍고 말았답니다. 강제로 '늑약'이 체결된 것이지요.<제2조 한국 정부는 금후에 일본을 중개로 하여 경유하지 않으면 국제적 성질을 띤 어떠한 조약의 체결이나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제3조 일본 정부는 그 대표자로서 한국 황제 아래 1명의 통감을 두고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게 한다.>일제는 이 늑약문을 근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내정을 간섭했습니다. 하지만 을사늑약은 국제법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는 조약이었답니다. 조약 이름도 명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종 황제의 비준 절차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을사늑약을 체결한 일제는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하기 전까지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 그리고 경찰권과 사법권의 박탈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대한제국을 점점 더 무력하게 만들었답니다. 경술 국치일을 앞둔 8월의 끝자락, 한규설의 묘를 돌아보며 을사 늑약 체결에 맞섰던 인물들의 기개와 국권 강탈 사건을 치욕으로 여겨 울분을 토했던 선조들의 심정을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효중 부흥고 교사※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한규설 묘비. /부흥고 제공

2017-08-21 경인일보

[경인신공]놀면서 배우는 창의융합교실-밤하늘 보며 논리적 상상력을 키우자

대부분의 별자리, 육안으로 볼 수 있어아이들과 꾸준히 관측만해도 '큰 영감'지난 주말, 페르세우스 유성우가 쏟아졌다. 3대 유성우 중 하나인 페르세우스 유성우는 시간당 100여개의 별똥별을 밤하늘에 수 놓으며, 우주를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아낌없이 제공했다. 어떤 이는 망원경으로 유성우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여름 밤하늘 아래서 유성우를 기다리며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에 얽힌 이야기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상상의 세계로 떠났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는 유성우와 우주, 별에 대해 과학적으로 무언가를 탐구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유성우를 볼 수 있길 소망하며 밤 하늘을 바라보는 긴 시간 동안 신화 속 주인공도 될 수 있고 아인슈타인도 될 수 있었다.우주를 탐구하는 과학적 학문은 크게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으로 나뉜다. 천문학은 별과 행성, 우주를 관측, 관찰하는 것이고 천체물리학은 우주의 현상과 생성 원리에 대해 물리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주를 바라보고 그 원리와 현상을 밝혀내고자 부단히 노력했으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주는 다양한 신화와 소설, 시와 음악 나아가 영화 속에서 인류 상상력의 결과물로 그려져 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물론이고 세계 각 지역의 문명에는 우주에 대한 신화가 있으며 수많은 소설가들은 우주와 별을 소재로 글을 써왔다. 시인들과 음악가들은 아름답고 경이로운 장대한 우주에서 영감을 받아 글과 선율로 노래했으며 근래에는 영화가 우주에 대한 상상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겸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는 '교향곡은 세계를, 우주를 담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렇듯 인간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그 어떤 현상보다도 강하게 자극하고 영감을 준다는 점에서 우주는 인문학과 과학이 유쾌하고 흥미롭게 융합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영역이다.청소년기 학생들이 우주를 바라보며 원리를 탐구할 수 있는 경험을 갖는다면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사고력이 융합된 논리적 상상력을 신장시킬 수 있다. 또한 우주의 장대함과 경이로움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은 존재에 대한 진지한 사유의 기회를 제공해 삶의 방향과 방법, 태도와 가치관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우주를 바라보며 어떻게 논리적 상상력을 키울 수 있을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별자리를 꾸준히 관측해본 적이 있는가? 거의 대부분의 별자리는 육안으로 관찰이 가능한데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에 꾸준하게 별자리를 관측하는 활동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이 우주를 통해 논리적 상상력을 키우는 데 충분하다. 이를 통해 우주로부터 인문학적 영감을 얻을 수 있으며 천구의 일주 운동과 항성의 겉보기 등급, 지구로부터의 거리, 우주의 탄생과 확장, 항성과 은하 및 다양한 우주 관련 과학 지식에 대한 수많은 내용을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서 흥미롭게 배울 수 있다. 매일 매일 인문학과 과학의 빅뱅이 우리 머리 위에 펼쳐지고 있다. 오늘 밤, 백조자리의 알파별 데네브를 찾아보자. 1천600년 전에 출발해 빛의 속도로 우리에게 날아온 데네브의 별빛을 머리와 가슴에 담아보자. /이세기 삼죽초 교사※위 창의융합교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7-08-14 경인일보

[경인신공]학생 독창성 인정하면서 '협력'도 중시해야

물리학 교수 "과정 즐길 수 있어야"철학 박사 '한계 경험' 끈질김 강조실패 통한 새아이디어 모색등 제시창의 융합형 인재 육성에 대한 학교 현장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교육부의 '2017년 업무 계획' 핵심도 '창의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연구 혁신'이었다. 강의식·암기식 수업을 토론·실습 등 참여형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 역시 '4차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기회를 얻기 위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창의 융합형 인재의 정의는 무엇이고, 이런 학생들을 육성하기 위해 교실 수업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 사례의 하나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창의 융합형 인재를 기르기 위한 수업 혁신 전략 12가지'란 제목으로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연구·정책 브리프)를 소개한다. 이 보고서는 같은 기관이 전년도 발행한 '창의 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수업 혁신 지원 방안'을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사회·경제, 인문학, 과학, 예술, 미디어, 기업 분야 전문가 11명을 심층 면담한 결과물인 것이 특징이다.보고서는 창의 융합형 인재를 '모든 것을 잘하는 아이'로 규정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특출난 인재상'을 요구할 수 없다. 보고서는 "누적된 전문성과 감성적인 이해 능력, 상상력을 지녔으며, 전체를 보는 관점으로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보고 이질적인 요소들과 소통하여 결합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류의 생활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창의 융합형 인재를 정의하고 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창의성을 기반으로 이질적인 것들을 하나로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규정짓고 있다.이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물리학 전공 대학교수는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교사는 어떻게든 이해시키려 하지만, 결국은 학생 스스로가 집에 가서 그날 교사가 한 얘기를 떠올리고, 이해가 안 되면 또 책을 보고, 다른 책을 보든지 영화를 보든지 하다가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를 찾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있다. 사회·경제 분야 전문가는 "고민을 교사가 하면 안 된다. 학생들이 문제를 찾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인데 지금 그걸 잊고 있다"고 말했다. '끈질김'도 창의 융합형 인재의 필수 요소로 지목됐다. 한 철학 박사는 "한계 상황을 경험해야 넘을 수 있다. 계속해서 자기가 도약하는 것의 한계를 경험해야 한다"고 했다.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소통의 경험이 중요하다. 한 기업인은 "어떤 프로젝트를 가지고 팀을 이뤄 자기 친구들끼리 아니면 학교를 벗어나 공동 조직에서 지속적으로 의사소통을 해나가는 것, 그 과정에서 어떤 불만이 나오고, 무엇에서 행복을 느끼는지를 경험해봐야 한다"고 했다.창의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수업 전략은 곧 소통 전략이기도 하다. 개인의 독창성, 창의성을 최대한 인정하면서 실패의 경험도 축적시켜 주고, 다른 이들과 협력하면서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을 부각하는 수업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주장한다.보고서는 '발상의 전환', '인지적 훈련', '동기 부여', '배움에 임하는 자세' 등 4가지 부문에서 창의 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한 수업 전략 12가지를 도출했다. '배운 지식들을 삶에 적용해볼 수 있는 기회',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친구들의 정보를 공유하고 공유된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새롭게 조직화하는 경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 '실패한 것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는 기회 제공'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시했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2017-08-14 김명래

[경인신공]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수원화성 '공심돈(空心墩)'

'중국의 것' 장점 확인하고 받아들여바깥 동정 살피면서 화살·총탄 발사독창적 형태·조형미, 주변과도 '조화'수원화성은 1997년에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인정받았습니다. 이것은 화성을 연구하고 잘 복원해 보존 관리한 많은 학자, 행정관리, 문화재 전문가들이 있어서 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화성의 역사적인 가치와 미적인 아름다움이 세계 최고이기도 하고요. 화성에는 모두 48개의 다양한 성곽시설이 있는데, 그중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수원화성에만 있는 독특한 시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공심돈(空心墩)'입니다. 공심돈은 '가운데가 비어있는 높게 지은 성곽시설'이라는 뜻으로,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에 좋고 강력한 화기를 설치해 적을 공격하기에 알맞은 지점에 만들었습니다. 화성에는 3개의 공심돈이 있는데 서북공심돈은 화서문 바로 옆에 만들어 비교적 적의 공격에 약한 부분인 화서문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만들고, 동북공심돈은 밖의 높은 자연지형(지금의 동공원)으로 인해 취약한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만들었어요. 남공심돈 역시 남수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벽 중에 적이 잘 보이는 곳에 만들었는데 남수문의 취약점을 보완하려고 만든 듯합니다. 지난해 화성축성 22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 전시회 때, 1907년의 독일인 헤르만 산더(1868~1945)가 찍은 사진을 통해 설계도만 확인되던 남공심돈을 비롯한 7개 시설물의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공심돈은 중국의 성곽시설인데 우리가 처음으로 그 장점을 확인하고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병서인 『성서(城書)』에는 공심돈을 "벽돌로 3면에 섬돌을 쌓고 그 가운데를 비워 둔다. 가운데를 2층으로 구분해 널빤지로 누(樓)를 만들고 나무사다리를 이용해 위아래에 공안을 많이 뚫어서 바깥의 동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불랑기나 백자총 등을 발사해도 적으로서는 화살이나 총탄이 어느 곳에서부터 날아오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답니다.그런데 가운데가 비도록 시설을 만들려면 '벽돌'이라는 재료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마침 수원화성은 우리나라 처음으로 벽돌을 규격화해서 곳곳에 사용했기에 공심돈이라는 방어력이 탁월한 시설을 만들 수 있게 됐지요. 실제 컴퓨터로 공심돈에 설치된 무기인 불랑기(서양식 청동제 화포)나 백자총(화약으로 탄환을 쏘던 총)을 발사하는 모의실험을 해보니 방어력이 대단했어요. 적의 공격은 숨어서 피할 수 있고, 공심돈 내부에 숨긴 화기를 발사해 접근하는 적을 공격하니 적이 두려워할 만했어요.공심돈 모양은 독특하기도 하지만 주위 풍경에도 잘 어울린답니다. 서북공심돈은 1796년(정조 20년) 3월 10일에 완공했다고 하는데, 축조 당시의 완전한 모양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독창적인 형태와 조형미로 인해 바로 옆에 있는 화서문과 잘 어울립니다. 석재와 전돌, 목조를 기능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치성의 석재 쌓기 기법과 상부의 공심돈의 전돌 축조기법, 현안과 총안, 전안 등의 중요한 시설 등 독창적인 건축형태와 조형미를 갖추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에서는 2011년 3월 3일, 서북공심돈만 따로 보물 제1710호로 지정해 그 가치를 인정하고 철저하게 보존 관리하고 있습니다.정조는 1797년 1월 29일 화성을 순행했는데, 화서문(華西門)을 지나 서북공심돈에 이르러 신하들에게 "공심돈은 우리나라의 성제(城制)에서는 처음 있는 것이다. 여러 신하들은 마음껏 구경하라"고 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습니다.또 다른 공심돈인 동북공심돈은 군사적 요충지에 만들었고 형태가 독특해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커다란 둥근 원의 모습으로 내부는 소라처럼 생긴 나선형의 벽돌 계단을 통해서 꼭대기에 오르게 돼 있어 일명 '소라각'이라고도 불립니다. 최상층에 올라서면 화성 전체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동북공심돈은 중국 요동에 있는 계성의 평돈(平墩)을 모범으로 해 내외의 두 겹으로 벽돌을 쌓아서 만들었다 하는데, 평돈이 있는 계성은 중국을 오가는 우리나라 사신들이 다니는 길목이므로 그 모습이 사신들을 통해서 국내에 알려진 것이라 짐작됩니다. 미복원된 시설인 남공심돈은 남암문에서 팔달문 쪽으로 성곽이 직각으로 꺾이는 지점에 있으며, 남수문 방면의 방어를 위해 설치한 것으로 건축구조가 서북공심돈과 비슷합니다. 언젠가는 나머지 미복원 시설과 함께 완벽하게 복원된 남공심돈을 볼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김찬수 동원고 교사※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밖에서 본 서북공심돈. /동원고 제공

2017-08-14 경인일보

[경인신공]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마을, 땟골

안산시 선부2동 '까레이치' 동포 1만명 거주150년전 만주·연해주에서 조국 독립에 헌신스탈린 강제이주·소련 붕괴 이후 차별 '아픔'안산시 선부2동에는 땟골 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모곡'이라고 불렸는데, '모'는 1년생 풀인 '띠'를 말하고, '모초'라고도 하며 벼과의 다년초로 보통 '삘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띠가 많이 나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띠골'로 불리다가 전해 내려오면서 '땟골'로 변화된 것입니다.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 이곳에 '까레이치'라고 불리는 '고려인' 들이 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약 1만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살아온 삶의 여정을 살펴보면 정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 조선의 국운이 기울어 갈 즈음 삶의 희망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해 갑니다. 특히 연해주로 이주해 간 사람들은 그 곳에서 나름대로 동포사회를 만들며 힘들게 살아갔습니다. 이후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고국을 떠나 사는 것이 힘겨울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아픈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독립 운동가를 키워냈습니다.그런데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지금부터 80년 전인 1937년 당시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 정책이 강행되면서, 이들은 멀고도 먼 이주를 하게 됩니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약 18만 명이 추위와 배고픔, 병과 싸워가며 들판에 버려지듯 강제이주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고, 하루하루 힘겹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겨우겨우 삶을 유지하며 동포 사회를 만들었고, 고려인으로서 전통을 잊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련이 붕괴되면서 과거 소련의 지배를 받던 나라들이 독립하면서 또 한번의 시련이 닥쳐옵니다. 독립한 나라에서는 과거 지배자인 러시아를 지우기 위해, 러시아어 대신에 자국어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과거 소련 시절에 이주해 온 고려인들에 대해 차별을 하기 시작합니다. 또다시 살기 어려워진 이들은 그래도 고국에 돌아가면 형편이 나아질까 기대를 갖고 한국으로 왔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해외 동포에 대한 차별이었습니다. 과거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나서고(홍범도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분들의 후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것 같습니다.고려인 3세와 4세는 러시아어는 익숙한 반면 한국어는 어렵습니다. 이들이 한국에 살기 힘든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언어입니다. 다음으로 일자리입니다. 하루하루 단순 노동일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과거에 그랬듯이 함께 모여 살며 고려인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삶이 힘들지만 그래도 한국이 좋다고 합니다. 이제 같은 한국인으로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일제강점기라는 혹독한 시련기에 도움을 주신 분들의 후손들이 이제 고국에 편히 정착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할 때라고 봅니다.지금 땟골에 가면 러시아어로 된 식당과 점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국적인 풍경이라고 바라볼 수도 있지만, 그 속에 힘겹게 살아가는 고려인들의 아픔이 있는 것이 오늘날 땟골의 현실입니다. 먼 훗날 이 땟골은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카자흐스탄의 우슈토베 처럼 고려인들이 살았던 곳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과거만 역사가 아닙니다. 지금 현재도 바로 역사가 되기 때문에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올바르게 현재를 살아가야 합니다. /신대광 원일중 수석교사※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안산시 선부2동 땟골 전경. /원일중 제공

2017-08-07 경인일보

[경인신공]놀면서 배우는 창의융합교실-AI와 우리의 미래

무인자동차·챗봇·알파고 등 상상력이 현실로국내직업 12.5% 대체 2025년 70.6%까지 전망최근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와 전기자동차 회사인 테슬라의 CEO이자 아이언맨의 실제모델이기도 한 앨론 머스크(Elon Musk)의 AI에 대한 설전이 화제다. AI는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의 약자로 인간의 지각, 추론, 학습능력 등을 컴퓨터 기술로 구현해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이야기 한다.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AI에 대해 앨론 머스크는 인공지능에 의한 위험을 경고하고 있으며 최근 '미국 주지사협의회'에 참석해서도 "로봇이 우리보다 모든 부분에서 더 앞서나갈 것이며 인공지능은 인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이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이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앨론 머스크의 이야기는 온라인상에서 수많은 논란을 가져왔으며 이와 관련해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은 인공지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인공지능 때문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라며 머스크를 비난했다.인공지능 산업은 최근 급속히 성장해 새로운 산업혁명을 이끌어 갈 미래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금융, 의료, 제조업 등 여러 산업 분야에는 물론 사회, 문화적으로도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인간이 해야 할 일중 많은 부분을 기계가 대체해 우리의 생활은 더욱 편리해질 것이다. 사람이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달리는 무인자동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챗봇, 인간과의 바둑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알파고 등 상상만 했던 일들이 이제는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과연 AI는 인간에게 행복이 될 것인가? 불행이 될 것인가? 참으로 어렵고 재미있는 문제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발표한 '인공지능, 로봇의 일자리 대체 가능성 조사'에 따르면 2025년에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기술 수준이 사람의 직업능력의 상당 부분을 대신할 정도로 높아질 것이며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전체 직업 종사자의 12.5%가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됐다. 이 비율이 2020년에는 41.3%, 2025년에는 70.6%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미국 최대의 온라인 공개강좌 사이트며 스탠퍼드와 프린스턴 등 세계 명문대 교수들의 정규 강의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코세라(Coursera)의 창업자인 앤드로 응(Andrew Ng)은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앞으로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사람들은 그것이 나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이미 미국의 제조업계에서는 2000년부터 10년간 560만개의 업종이 소멸했으며 소멸한 업종의 85%가 IT혁신에 의한 것이었다. 앞으로 로봇과 AI에게 인류의 일자리는 더 많이 빼앗기게 될 것이다. 현재 로봇과 AI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보다 더욱 큰 문제는 로봇과 AI가 우리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다른 능력을 갖춰야 한다. 영어 단어, 수학 공식을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 서로 소통하고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펼쳐나가는 인간 본연의 힘을 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안달 효덕초 교사※위 창의융합교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7-08-07 경인일보

[경인신공]경기지역 개인과외, 시간제한 생긴다

경기지역 개인과외 시간이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제한된다.경기도교육청은 7일 이 같은 내용의 '경기도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과 시행규칙 일부 개정규칙을 공포했다.이에 따라 개인과외 교습자의 교습시간이 학원과 같은 오전 5시∼오후 10시로 제한되며 위반 때는 1차 시정 명정, 2차 7일간 교습 정지, 3차 중지 등의 행정 처분이 내려진다.그동안 경기지역은 개인교습 시간제한은 없었다. 이와 함께 개인과외 교습자가 자신의 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 이를 알리는 표지판을 부착하고 교습비와 환불 등에 대한 내용을 보기 쉬운 곳에 게시해야 한다.특히 조례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아동복지법에 명시된 '아동학대 행위'가 확인된 경우 1회 적발로 등록이 말소된다.도 교육청은 한 달간 개정된 조례와 시행규칙을 홍보한 뒤 다음 달 7일부터 시행할 계획이다.도 교육청 관계자는 "이번 조례와 시행규칙 개정으로 학원(교습소·개인과외교습자) 운영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사교육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한편 도교육청은 9~11일 고양 가정형 Wee센터와 수원 가정형 Wee센터에서 '2017 학교폭력 피해 학생을 위한 캠프'를 연다. 중·고교생 30여 명이 참여하며, 고양 가정형 Wee센터에서는 남학생 대상 '너는 특별하단다'를 주제로, 수원 가정형 Wee센터에서는 여학생 대상 '스마일 어게인'을 주제로 한 캠프를 운영한다.여학생은 도형 심리 집단 상담, 영화 치료, 만화 창작, 푸드 세러피, 화성행궁 산책, 북아트, 편지쓰기 등을 하고, 남학생은 힐링 레크리에이션, MBTI 집단상담, 도전 골든벨, 수상 놀이, 마술쇼, 자존감 향상 프로그램, 자연체험 등을 한다. /신선미기자 ssunmi@kyeongin.com

2017-08-07 신선미

[경인신공]학교 공동교육 '꿈두레' 학생들 미래 날개 펴기

인천시교육청이 학교 간 공동 교육 과정인 학생부종합전형 확대로 다양한 교과 이수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학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시교육청은 올 2학기부터 '꿈두레'를 확대하기로 했다. 시교육청은 학교 간 다양한 교과목 개설로 학생의 교육 과정 선택권을 강화하고, 교육 과정의 특성화·다양화를 유도하는 목적으로 지난 2015년부터 꿈두레를 운영 중이다. 시교육청의 꿈두레는 '거점형'과 '밴드형'으로 구성돼 있다. 특정 학교가 개설한 교과목을 다른 학교 학생들이 듣는 과정이 거점형이고, 가까운 2개 학교가 협력 수업을 벌이는 것이 밴드형이다. 2015년 거점 학교를 중심으로 예체능, 인문, 과학, 어학 분야의 과목에서 수업을 학생 200명에게 개방했다.올 상반기 기준 꿈두레 참여 학교는 31개. 로봇 기초, 한국 조리, 제과·제빵, 논술 구술 면접을 비롯해 예체능 심화 과목을 운영 중이다. 한 학기당 2단위 이상 과목을 편성하고, 학급당 수강생은 15명을 넘지 않는다. 방과후, 주말을 이용해 교육이 진행 되고, 꿈두레 참여 학생의 교육 활동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다.학생 생활 지도도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참가 학생이 특별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 담당 교사에게 통보되고, 무단 결석 3회 이상일 경우 공동 교육 과정에서 배제된다. 또 꿈두레 담당 교사의 지시에 불응하는 등 학습 분위기를 방해한다고 판단되면 꿈두레 교육에서 즉시 제외되고, 재신청도 불가능하다.꿈두레는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참여 학생 수만 해도 사업 시행 초기 200명에서 올 상반기 1천415명으로 7배가량 급증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다양한 교과 이수의 중요성이 부각됐지만 교원 수, 소수 인원 시청, 학교 시설 여건 등으로 한계가 있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설한 공동 교육 과정에 참여 학교들의 노력이 더해져 참여 학생이 늘었다"고 분석했다.올해 꿈두레 공동 교육 과정은 프로그램의 다양화로 학생들이 고루 참여하고 있다. 거점형으로 '국제 관계와 국제 기구'(대인고), '사회 과학 방법론'(송도고), '경제 경영 수학'(신송고), '로봇 제작'(인천기계공고), '연기'(인천대건고), '소설 창작 입문'(인천상정고), '스페인어'(인천신현고), '시 창작 입문'(강화고), '소설 창작 입문'(부평고) 등 70여개 교육 과정이 운영됐다. 밴드형 꿈두레 교육 과정에 선인고, 인화여고가 참여해 '발명 특허 기초', '생활 속 수학적 사고', '기초 통계학', '진로와 기업가 정신',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 계획서' 등을 운영 중이다.꿈두레는 교육 기회 확대의 효과도 내고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레슨을 받을 사정이 안돼 예술 대학 입학을 포기했던 학생이 고등학교 2학년 때 관련 수업을 듣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합격한 사례가 있다. 꿈두레를 통해 자신의 꿈을 구체화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또 고급 수학 등 관심 분야의 심화 과정 이수를 통해 진로에 관한 이해도를 높이는 학생들도 많다.시교육청은 올 2학기에 꿈두레 참여 과목을 늘려 선택의 폭을 넓히기로 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간 공동 교육 과정을 계속 확대하는 동시에 '온라인 기반 공동 교육 과정'도 시행할 계획"이라며 "온라인 공동 교육 시스템이 도입되면 거리상 문제로 참여가 어려웠던 섬 지역, 농산어촌 지역 학생도 이 과정을 이수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2017-08-07 김명래

[경인신공]놀면서 배우는 창의융합교실-수학 규칙으로 찾아낸 음계

1/2배 땐 1옥타브·2/3배 땐 완전 5도 ↑높은음에서 한계… 평균율 반영해 극복세상 사는 희노애락을 표현하고, 사람의 감정과 분위기를 공유하며 삶을 풍성하게 하는 음악. 음악에 따라 달라지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자연의 일부인 우리는 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악보 속 음계에 따라 음악은 밝은 분위기의 곡이 되기도 하고 슬픈 곡조가 되기도 한다. 음계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유명한 음악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음계를 만든 사람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유명한, 바로 수학자 피타고라스다. 피타고라스는 그리스의 철학자면서 수학자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한 피타고라스 학파라는 종교적 성격을 띤 단체의 교주이기도 했다.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모두 수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은 모든 것은 근원, 2는 여성, 3은 남성, 4는 조화 및 사원소(땅, 공기, 불, 물), 10은 1+2+3+4이기에 아주 심오한 숫자라고 생각했다. 또 수의 약수의 합을 보고 완전수, 결핍수, 과잉수를 판단했고 두 수의 약수의 관계를 비교해 우정수, 부부수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피타고라스 학파의 믿음은 확고한 것이었다. 하지만 수를 분수로 표현되는 유리수에 한정해서 생각했다는 문제가 있었다. 어느 날 피타고라스의 제자인 히파소스가 분수로 표현되지 않는 소수, 즉 무리수의 존재를 이야기했고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은 그를 지중해 바다에 밀어 살해할 정도였다. 이런 피타고라스가 어떻게 음계를 발견한 것일까. 피타고라스는 어느 날 대장간 앞을 지나가게 됐다. 이때 대장장이들이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너무나 듣기 좋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현의 길이를 다르게 하면서 자신이 들었던 소리를 만들고자 했다. 주어진 현의 길이를 1/2배하면 원래 음보다 완전 8도(한 옥타브) 높은 음이 되고, 2/3배하면 완전 5도 높은 음을 얻게 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이 두 원리를 가지고 피타고라스 음계를 만들었다.우리도 이 방법을 이용한다면 피타고라스가 했던 것처럼 악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현행 초등 교과서 <6학년 2학기 6.여러 가지 문제> 단원의 '팬파이프를 만들 수 있어요'에서 피타고라스의 방식으로 팬파이프(팬플룻)를 만드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집에서 빨대를 이용해 빨대 길이를 다르게 하고 한쪽의 구멍을 테이프나 고무찰흙으로 막아주면 손쉽게 팬플룻을 만들 수 있다. 이 때 쓰이는 빨대의 구멍이 슬러시용 빨대나 낚시할 때 사용하는 찌통같이 큰 것일 수록 실제 악기와 비슷한 것을 만들 수 있다.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음계는 피타고라스 음계는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피타고라스는 모든 세상이 유리수(분수)로만 이뤄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피타고라스 음계에도 큰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피타고라스 콤마라는 문제점으로 음을 높이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조금씩 음의 차이(간격)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음계는 '평균율'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피타고라스 음계가 유리수(분수)를 기초로 했다면, 평균율은 무리수를 기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피타고라스 음계의 단점인 피타고라스 콤마를 극복할 수 있다.우리는 자칫 수학이란 계산만 하는 지루하고 딱딱한 학문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갈릴레오의 이야기처럼 '자연은 수학이란 언어로 쓰여진 거대한 하나의 책'이다. /김주창 한백초 교사※위 창의융합교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7-07-31 경인일보

[경인신공]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1728년 무신 난 '이인좌의 난'

지방 반란군 힘 합치지 못하고 진압당해진주 소씨·원주 원씨 등 가담 가문 몰락광산 김씨 비롯한 노론, 권력·터전 차지1728년(영조 4년) 무신 난은 일명 '이인좌의 난'이라고도 합니다. 이 난은 중앙과 지방의 관료들과 재지사족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조선 최대의 전국적 모반사건입니다. 난(亂)을 주도한 것은 서울·경기지역의 소론 과격파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일대의 남인과 북인, 변산의 화적 등 매우 광범위했습니다. 반란에 가담한 가문 중에는 반남 박씨, 북인계의 명문 가문들, 진주 이씨, 창녕 조씨, 성삼문과 황희의 후손들처럼 명문(名門)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이들은 영조의 세제책봉과 경종독살설, 영조의 출생의혹을 내세워 영조와 노론정권의 정통성을 문제 삼고 소현세자의 증손 밀풍군 탄으로 왕을 교체하려 했습니다.무신 난은 1728년 3월 15일부터 24일까지 전개됐습니다. 반란세력은 서울에서 세(勢)를 규합하고 지방에서 기병(起兵)하며 서울에서 내응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거사는 예정대로 전개되지 못했습니다. 지방의 여러 세력들은 손발이 맞지 않았으며, 거병을 하려 해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막히거나 지연됐습니다. 당황한 이인좌를 비롯한 경기·호서지역의 반란군은 3월 12일 양성과 괴산에서 비밀회합을 가져 이인좌를 도원수, 정세윤을 부원수로 추대하고 우선 진위, 양성 일대에서 군사를 모아 훈련한 뒤 삼남의 길목 청주성을 점령해 세를 규합한 다음 한양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계획에 따라 3월 13일에는 평택시 소사1동 소사평에서 훈련을 마쳤으며, 3월 15일에는 청주성을 점령했습니다.이인좌의 경기·호서반란군이 청주성을 점령하자 태인현감 박필현 등 호남반란군, 정희량과 조성좌의 영남반란군도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호남에서는 반란을 눈치 챈 관찰사의 조처로 봉기가 실패했으며, 나주에서는 나주 나씨 세력의 거병도 실패했습니다. 사정은 영남지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남지역에서는 3월 20일 정희량, 이웅좌, 조성좌 등이 영남반란군을 이끌고 거병했지만 관군의 저항에 부딪쳐 추풍령을 넘지 못했고, 북상계획도 관군의 방어와 호남창의군의 저항에 막혔습니다. 상황이 비관적으로 변하자 이인좌군은 호서지역 재지사족들의 호응을 기반으로 도성(都城)공격을 위해 진천과 죽산을 거쳐 안성까지 진격했습니다.정부가 용인에 거주했던 전 영의정 최규서의 고변으로 반란소식을 접했습니다. 영의정 이광좌를 비롯한 소론 온건파 정부는 서둘러 민심을 안정시키고 병조판서 오명항을 '사로도순무사'로 삼아 정병 2천으로 반란을 진압토록 했습니다. 발 빠른 대응은 소론과격파와 거리를 두고 온건파만이라도 지켜 소론의 공멸을 막으려는 결단으로 이해됩니다. 출병한 오명항의 토벌군은 3월 23일 안성 금광면과 삼죽면 전투에서 승리했고 여세를 몰아 3월 24일의 죽산전투에서 대승을 거뒀습니다. 정부의 발 빠른 대응으로 3월 25일에는 평안병사 이사성이 붙잡혔으며 3월 27일에는 이인좌가 잡혀 참수됐습니다. 조정은 정범(正犯)이 가장 흉참스럽다고 판단한 62명을 노적하고 642명을 역적으로 지목했습니다.이 사건으로 중앙에서는 소론과격파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약화됐습니다. 한동안 영남 남인세력의 정계진출이 막혔고 노론의 일당전제화가 심화됐습니다. 반란은 평택지역 양반사족층도 양분시켰습니다. 반란에 적극 가담한 덕암산 남쪽의 진주 소씨, 원주 원씨, 전주 이씨, 안동 권씨, 원주 김씨는 몰락하거나 피해를 입었고 후손들도 출세길이 막혔습니다. 반면 반란을 진압한 평택시 진위면 무봉산 일대의 경주 이씨,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해주 오씨, 원곡면 지문리 해주 최씨는 명가의 위세를 지키며 승승장구했습니다. 반란의 중심세력으로 지목당해 가문이 몰락한 진주 소씨의 터전에는 광산김씨와 같은 집권 노론세력이 터를 잡았습니다. 오늘날 평택지역의 대표가문들은 당시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거나 재빠른 수습으로 피해를 최소화한 가문들입니다. 평택지역 지배세력의 재편이 무신 난으로 일어났습니다. /김해규 한광중 교사※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무신 난으로 적몰된 평택시 지산동 진주 소씨 참판공파 묘역 . /한광중 제공

2017-07-31 경인일보

[경인신공]이성희의 독서정담-아는 만큼, 보이는 만큼 내딛는 발걸음

유홍준 '화인열전' 평전 형식으로 삶·예술세계 조명몇 해 전 혜원 신윤복이 남자인가 여자인가를 놓고 논란을 빚었던 적이 있다. 신윤복과 김홍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에서 신윤복을 남장 여자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신윤복은 그의 명성과 작품에 비해 관련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여자로 둔갑한 것이다. 역사학계 일부에서 남장여자의 설정은 지나친 역사왜곡이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주입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신윤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묻는 질문이 많이 올라오기도 했다. 신윤복에 대한 관심은 다시 영화로 이어졌다. 논란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사람들이 조선시대의 화가에 대해서, 그들의 작품과 예술가로서의 삶의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김명국, 윤두서, 조영석, 심사정, 이인상, 최북, 정선, 김홍도. 이 여덟 명 중에 학교나 방송, 책 또는 그 외의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미술사를 전공하지 않은 보통의 일반 사람들은 기껏 많아야 두세 명 정도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들 여덟 명의 공통점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인들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고흐나 피카소, 고갱, 미켈란젤로는 알아도 우리 조상들의 정서나 생활상을 그려낸 화가들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 채 지내고 있다. 유홍준의 『화인열전 1·2』은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한 자기반성이 낳은 우리시대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다.유홍준의 '화인열전'은 조선시대 환쟁이라 불리며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조선시대 화인들의 삶과 예술세계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신필이라 불렸을 정도로 천재성을 지녔지만 신분차별의 벽을 넘지 못했던 김명국, 기존의 신선이나 선비를 주제로 한 그림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농민을 주제로 한 그림인 '속화'를 개척한 시대의 지식인 윤두서의 이야기가 있다. 유홍준이 '조선적인 인물화는 조선 300년 역사 속에 관아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평할 만큼 탁월한 그림솜씨를 지녔으나 선비의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그림 그리는 것을 삼갔던 조영석, 어려운 환경에서 고독과 가난을 예술로 승화시켜 주옥같은 명작들을 남긴 심사정, 가장 조선적인 불세출의 화가 김홍도 등 유홍준이 짜임새 있게 엮어가는 화인들의 이야기는 자못 흥미롭다. 유홍준의 '화인열전'은 화가의 일생을 연대기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평전의 형식을 빌려 그들의 예술정신과 인생관을 비교적 쉬운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 책 속 가득히 실린 300여장의 컬러 도판을 통해 조선시대 회화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 또한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주면 거의 모든 학교가 방학에 들어간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는 것이다. 방학이 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늘 지내는 곳에서 벗어나 북적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쉬고 싶어진다. 그리 멀리 갈 필요가 없이 우리네 주변으로 눈을 돌렸으면 한다. 번잡한 일상을 잠시 뒤로 미루고 예술의 향취에 빠져 보자. 가족, 또는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 가까운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시회를 관람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사전에 관련 책을 읽고 가면 더욱 좋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라는 말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만큼 발걸음을 내딛었으면 한다. 그 때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인천시교육청 장학관※위 독서정담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7-07-24 경인일보

[경인신공]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죽주산성에서 몽골군 물리친 송문주 장군

사방 포위속 역습 감행 적 퇴각시켜지역민 사당 세워 매년 음력9월 제향고려 고종 5년(1218) 몽골군이 거란족 토벌을 명분으로 국경을 넘어왔다. 거란족이 저항했던 서경 동북의 강동성은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에 의해 고종 6년(1219) 2월 함락됐다. 이후 몽골 사신 저고여가 피살되는 고종 11년(1224)까지 고려와 몽골의 불안한 관계가 이어졌다. 이 시기에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몽골이 주변 지역을 차례로 침공했으며, 고려에 많은 공물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가령 고종 8년(1221)의 경우 수달피 1만 장, 고급 비단 3천 필, 종이 10만 장을 포함해 고려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양의 물품을 요구했다.저고여가 피살되고 7년이 지난 고종 18년 몽골의 침략이 시작됐다. 몽골은 저고여의 피살을 침략의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실상은 징기스칸 사망(1227년) 후 황위를 계승한 태종 오고타이칸의 동아시아 정복전쟁 정책이 연장선이었다. 몽골의 고려 침략은 6차례에 걸쳐 이어졌고, 집권세력인 최씨 무신 정권은 1차 침략 후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백성들을 산성이나 섬으로 들여보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정면 대응하기에는 고려의 군사력이 약하다는 현실적인 측면도 감안된 방식이었다.강화도 천도 후 2차 침략이 있었으나 처인성 전투에서 몽골 장수 살리타이가 전사하자 퇴각했다. 살리타이의 전사로 퇴각한 이듬해 몽골은 금의 수도를 함락시켰다. 그 다음 해 금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킨 몽골은 고려에 대한 3차 침략을 계획했다. 3차 침략은 고종 22년(1235)부터 26년(1239)에 이르기까지 5년에 걸쳐 계속됐다. 고려 정부는 3차 침략 시기인 고종 23년(1236)에 산성방호별감(山城防護別監)을 몽골군이 지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 파견했다. 방호별감은 산성으로 피난한 백성들을 통제하면서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현재의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죽주산성에는 송문주 장군이 방호별감으로 파견됐다. 죽주산성은 경상도, 충청도로 이어지는 주요 길목일 뿐만 아니라 한강과 서해안으로 통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가 되므로 몽골군이 반드시 지날 수밖에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몽골군이 죽주에 도달한 것은 송문주가 죽주에 파견된 직후인 고종 23년 8월 말 경이었다. 몽골군이 처음으로 죽주산성에 이르러서는 먼저 항복을 권유했다. 그러자 성 안의 병사들이 출동해 이들을 쫓았다. 그러자 사방을 포위하고 포(砲)를 쏘며 성과 문을 무너뜨리려 했다. 사방의 성문이 떨어지고 부서졌으나, 성중에서도 포(砲)로써 역습해 몽골 군사가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몽골 병이 또 사람의 기름을 짚에 붓고 불을 붙여서 공격했다. 성중의 군사들이 일시에 성문을 열고 돌격하니 몽골 병의 죽은 자 헤아릴 수 없었다. 몽골 병이 갖은 방법을 다해 공격한 지 15일간이나 지났으나 결국 함락하지 못하고 성을 공격하던 기구들을 소각하고 퇴각했다. 송문주는 몽골의 1차 침입 때 치러진 귀주성 전투에 참전했다. 몽골군은 1231년 9월부터 12월까지 4차례에 걸쳐 귀주성을 끈질기게 공격했으나, 죽주 출신인 박서 장군은 군민(군민(軍民))들을 지휘해 치열하게 싸운 끝에 몽골군을 물리쳤다. 송문주는 귀주에 있을 때부터 몽골군이 성(城)을 공격하는 전술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적의 계획을 예측 못하는 것이 없었다.죽주산성 내에는 송문주 장군 사당이 세워졌다. 조선 정조 때 좌의정을 지낸 번암 채제공이 지은 '송장군묘비명'에는 사당이 5~600년 전에 세워졌다고 했다. 그의 사후부터 지역민들이 감사하는 그의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이 지역 사람들이 '송장군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있다.'면서 '모든 죽주 사람들이 송장군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송문주 장군의 생몰년대는 전해지지 않지만, 지금까지도 매년 음력 9월 9일에 면민들이 합심해 제향을 올리며 그의 공을 기리고 있다. /장연환 효명고 교사※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죽주산성 입구 /효명고 제공

2017-07-24 경인일보

[경인신공]놀면서 배우는 창의융합교실-박물관에서 신나는 여름방학

국립과천과학관·물향기수목원 등 알찬 교육공간학생들이 너무나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한 달이 넘는 여름방학을 좀더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행떠나기, 부족한 공부하기, 친지 방문하기 등 여러 가지 알찬 계획들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특별한 계획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가까운 박물관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과천시에 위치하고 있는 '국립과천과학관'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력을 확인함과 동시에 청소년들의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유발시켜 과학과 과학자로의 꿈을 이끌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단순한 전시물보다는 체험과 활동의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으로 기초과학·첨단기술·전통과학·천문관측·자연사·생태분야 등 700여개의 과학전시물과 전시물연계교육, 과학이슈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물에 대한 모든 것이 있는 '물테마 박물관'은 군포시 수도사업소 안에 위치하고 있다. 실내와 야외에서 물과 관련된 전시물과 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돼있으며 물과 관련된 전시물, 퀴즈나 간단한 체험이 가능한 시설, 물과 관련된 교육자료들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야외에 마련된 '물체험마당'에는 빗물이 고인 깊이로 강우량을 측정하는 '측우기', 물을 이용해 시간을 알아보는 물시계인 '자격루', 물을 퍼내는 기구인 '무자위', 논에 물을 대는 기구인 '용두레' 등 우리 조상들이 물을 이용한 발명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수원시에 위치하고 있는 경기도과학교육원 과학전시관은 실내과학전시실과 야외전시물, 동물사, 들꽃 학습원 등으로 구성돼있다. 실내전시실 1층에는 유아의 눈높이에 맞춘 유아과학전시실이, 3층 과학전시실에는 물리·화학과 관련된 전시물과 체험시설이, 4층 과학전시실에는 생물과 관련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물과 나무와 인간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2006년 개원한 오산 물향기수목원은 예로부터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라 해 붙여진 수청동(水淸洞)이란 지명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물과 관련한 습지생태원, 수생식물원, 호습성 식물원, 한국의 소나무원, 단풍나무원, 유실수원, 중부지역 자생원 등 19가지 주제의 식물원으로 구성돼있으며 주요 건축물로는 물방울 온실, 산림전시관, 난대·양치식물원 등이 있다. 보유식물은 가시연꽃, 미선나무 등 총 1천700여종이며 전체적으로 경사가 완만해 유모차나 휠체어로도 산책하기 좋다.인천광역시의 '인천어린이과학관'은 국내 최초의 어린이 전문 과학관이며 과학에 대한 탐구심 함양과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증진을 위해 2011년 개관했다. 최신 과학기술분야 전시물들이 인지발달단계를 고려해 체험식으로 구성돼있으며 놀이체험을 통해 과학을 접하고 과학에 대한 꿈을 만드는 창의적 과학교육 공간이다. 이 밖에도 손쉽게 우리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 다양한 주제와 테마의 박물관을 찾아 방문할 수 있다. 덥고 습한 날씨로 인해 약간의 게으름을 피운다면 자칫 황금같은 여름방학을 무의미하게 보낼 수 있으므로 철저한 방학계획으로 알찬 여름방학을 보내보자. /안달 효덕초 교사※위 창의융합교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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