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생각한다

 

[인권을 생각한다·5]시인 손 세실리아

시 캬마석가구공단 뒤켠 쪽방촌 어귀엔 무슨무슨 마트라는 한글 상호 하단에 괄호 열고 닫고 siekya라 써넣은 상점이 있다 전자사전은 물론이거니와 네이버 지식iN에도 올라있지 않은 국적 불명의 이 영단어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신산한 삶이 배어있다는데말하긴 뭣하지만 이 새끼 저 새끼 망할 놈의 새끼… 할 때의 영문표기란다 가게 주인의 상투적인 말투를 야, 이봐, Hi쯤으로 지레짐작해 제 딴엔 멋진 한국식 인사라며 고용주와 가게 주인에게 시캬 시캬하다가 혼쭐났다는 일화는 한 편의 빼어난 블랙코미디다 샬롬의 집에 초대받아 시를 낭송했다 손가락 세 개를 공장 마당에 묻고 방글라데시로 추방당한 씨플루에게 폐암 말기로 고국에 돌아가히말라야 끝자락에 묻힌 네팔인 람에게 열세 번의 구조 요청을 묵살당한 채 혜화동 길거리에서얼어죽은 조선족 김원섭 씨에게 사죄하고자섰다 시인으로서가 아닌 코리안 시캬로 섰다△ 작가노트= 지난 가을, 마석성생가구공단에서 이주노동자들과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빨리빨리 일해" "꾀병부리지 마" "엄살부리지 마" "저리 꺼져" "X새끼"를 배운다는 속설이 정설로 입증되는 순간이기도 했다.부끄럽고 숙연했지만 사과하지 않았다. 그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이런 기도를 했다. 오늘 나와 마주한 이들의 상처를 몇 마디 값싼 말로 위로케 마시고, 훗날 시로 빚게 하소서. 할 수만 있거든 이들의 땀과 눈물 닦아줄 무명 손수건 같은 시를 짓게 하소서.△약력=시인.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사람의문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기차를 놓치다'가 있다.

2006-12-17 경인일보

[인권을 생각한다·4 소설가 윤성희]물어야 할 것과 묻지 말아야 할 것

소설가 윤성희전학을 온 아이가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고향을 벗어난 적이 없는 나는 전학을 온 아이만 보면 가슴이 설레곤 했다. 어디서 왔을까? 그곳의 바람은 어떨까? 거기도 이곳처럼 지루하고 심심할까? 그렇게 궁금한 것들이 넘치게 되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다가가, 넌 어디서 왔니? 하고 묻곤 했다. 그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먼 곳에서 왔다고 했다. 우리나라 남쪽에 있는 섬에서. 그러면 그냥 그 섬에 대해서만 물었어야 했는데, 내 질문은 지나치게 많았다.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에는 부모님이 무얼 하는지 물었다. 부모님은 안 계신다고 했다. 2주일이 지났을 무렵에는 그 아이가 살고 있는 어떤 시설에 대해 물었다. 그곳은 어떤 곳이니? 그 아이는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자꾸 묻고 물었다. 거기 아이들은 어떤 사람인지, 밥은 어떻게 먹는지, 도시락은 누가 싸주는지, 설거지는 누가 하는지 등등…. 나는 그게 그 아이에게 상처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때 오로지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란, 훗날 나도 그런 곳에 가서 살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 미리 잘 알아두어야지, 뭐, 이런 것들이었다. 그런 걸 알게 된 것이 영어단어 하나를 더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니들 모르지. 거기도 보온밥통이 있어. 거기도 이층침대가 있어. 거기도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어.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그 아이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 이렇게 부탁했다. "이제 그만 물어봤으면 좋겠어."그때 바로 사과를 했어야 했는데,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냥 그 아이와 나는 멀어졌다. 사과를 하지 못한 나는 가끔 꿈에서도 그 아이를 만난다. 이제 그만 물어봐. 이제 그만 물어봐. 이런 말을 수십 번 들은 후에야 잠에서 깬다. 어떤 이들은 그 꿈을 악몽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꿈을 좋아한다. 아, 그렇구나. 꿈속에서도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해보면, 세상엔 묻지 말아야 할 것들도 많다. 질문을 자주 하는 아이가 큰 인물이 된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그럴 때 질문이라는 건, 하늘은 왜 파란가요? 하는 질문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질문들은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채 어른이 되면 이런 질문들만 궁금해지게 된다. 저 사람은 왜 취직을 못할까? 저들 부부는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 왜 저 아이의 얼굴에는 저런 상처가 나 있을까? 저 사람은 언제부터 걷지 못하게 되었을까? 세상엔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은 곧 이 세상에는 그 사람들 각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가 셀 수도 없이 많이 상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살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제 제발 이웃집 현관문을 열고 들여다보는 일은 그만 했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없으면 어떻고, 아버지가 둘이면 어떻고, 아버지가 어느 날 어머니로 바뀌면 어떤가. 무기로 공격하지 않는 공격들은 더 상처가 깊다. 왜냐하면 다친 곳을 쉽게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료를 하기가 쉽지 않다. 물어야 할 것들과 묻지 말아야 할 것들의 경계를 잘 아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걸 왜 알아야 하냐고?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걸 알게 되면 내 삶이 훨씬 행복해진다고. 묻지 말아야 할 것들은 결국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출 테니까. 그러면 편견에 사로잡힌 나를 늘 일깨워줄 테니까.▲작가약력= 1973년 수원 출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데뷔.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이 있음.

2006-12-12 경인일보

[인권을 생각한다·3]시인 우대식

금 팔 찌면사무소 앞 제과점아이들과 팥빙수를 먹는데열대 외국인 노동자 한 사람이 유리창 밖에털썩 주저 앉는다새로 산 믹서기 한 대를 앞에 놓고 롯데 마트계산서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땀이 흐르는 손목에 낀 금빛 싸구려 팔찌가 촌스럽게 빛났다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뚜껑을 여는 순간한 여인과 두 아이의 사진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그는 아버지였다한 시간에 한 대씩 지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그는 오렌지를 갈아 아이들에게 주었을 것이다얼음을 갈아 아이들과 맛있는 팥빙수를 먹었을 것이다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열대의 야자수 나무에 코드를 꽂고 그는 수도 없이 믹서기를 돌렸을 것이다그의 팔찌가 순연의 금빛을 띠었다▲작가노트=내 어린 날 아버지는 사우디 아라비아라는 먼 나라로 돈을 벌러 떠나셨다. 모래 바람이 부는 사막에서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찍은 사진을 보내오던 얼굴이 검던 낙타 한 마리, 그 분이 내 아버지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이국의 노새 한 마리, 그도 아버지였다. 그 앞에 어떤 연민도 우습다. 아버지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보내온 이국적인 믹서기 한 대를 30년이 지나 다시 만났다. 싱싱싱 믹서기를 돌려라. ▲약력=1965년 강원도 원주 생. 1999년 '현대시학'등단.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산문집 '죽은 시인들의 사회'

2006-12-10 경인일보

[경인일보·경기민예총 권을 생각한다·2]'보이지 않는 인권의 적'

[2] 소설가 이재웅 나는 고등학교에 나가 소설을 가르친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는 소설을 잘 쓰는 친구가 몇 명 있다. 나는 칭찬에 인색한 편이어서, 그것을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제법일세 하고 있다. 그런데, 소설을 쓰는데 있어, 이 친구들의 작은 문제점 중 하나는 자신감 부족이다. 내가 소설을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는 내가 소설을 잘 가르치지 못하는 탓도 있고, 또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갖게되는 자의식도 포함되어 있지만, 또다른 요인도 영향을 미친다. 일테면, 학교 성적이 그것이다. 이 친구들은 학교 성적이 썩 좋지않고, 그래서 학교 성적이 좋지않은 자신이 소설을 잘 쓰는 것이 가능한가하고 묻곤 하는 것이다.나는 이 친구들에게 학교 성적과 소설의 창작 역량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단 인문학에 대한 성실함 정도는 필요하다고 말하곤 하지만, 이 친구들이 썩 깊이 받아들이는 눈치는 아니다. 이 친구들은 여전히 학교 성적이 나쁜 것은 곧 자신들이 지적 열등생이라는 증거며, 더 나아가 학교 성적이 부진한 그들은 내가 말하는 인문학에 대한 성실도 역시 낮다고 스스로 자책하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말하지는 않지만 느낄 수는 있다.이쯤되면 나 역시 조용히 입을 다물고 만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학교 성적이 나쁜 그들에게 그것은 위로 이상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 역시 어떤 면에서는 그들과 비슷한 경험을 해왔다.고백하면, 나는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성적이 썩 좋은 녀석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문에 지금 제자들과 똑같은 고민을 했었다. 더 고백하면, 나를 가르쳤고, 또 내가 글쟁이가 목표인 것을 알았던 한 선생은 “너처럼 국어 성적 나쁜 녀석이 무슨 글쟁이냐?”하고 수모도 주었더랬다. 그때 나는 화가 난다기보다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나 또한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요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무던히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겪었던 자괴감과 수치심을 십년이 넘은 지금의 내 제자들도 똑같이 겪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 환경이 변하지 않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등수를 매기는 성적표도 사라졌고, 확실히 성적에 따른 매타작도 전보다는 덜해졌고, 또 성적에 따라 인격이나 꿈까지 재단하는 무지막지한 선생도 얼마만큼은(?) 사라졌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것들이 사라졌다고 해서 나를 힘겹게 했고, 또 내 제자들을 힘겹게하는 억압까지 사라졌는가하고 물으면, 그것은 잘 모르겠다.어느 신문 기사를 보니, 한국이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고 한다. 한국인 사망원인 중 암과 뇌출혈 질환, 심장질환 다음으로 자살이 그 뒤를 잇는다는 것이다. 한 해에 자살로 죽는 숫자가 1만명이 넘는다. 더 나아가, 30대는 자살로 죽는 사람 수가 암이나 기타 질환으로 죽는 사람 수보다 많다. 이제 전쟁도 없고, 민주화도 많이 이뤘고, 경제적 부도 세계 10위권 안팎에서 맴도는 나라가 그렇다.암울했던 시절 왕왕 들려오던 인권유린이라는 말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통해 인권을 애초에 포기해버리는 숫자는 훨씬 많아졌다. 왜 그럴까?루마니아의 한 교육자는 우리는 모두 인권을 가지고 태어났다. 문제는 그것을 기억해내는 것이다라고 했다 한다. 혹, 우리는 성적표와 매가 사라졌다고해서 우리가 정말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언제나 그렇지만, 눈 앞의 작은 적과 싸우는 것은 쉽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적과 싸우는 것은 힘들다. 인권을 지키는 일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약력=1974년 전북 정읍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1년 실천문학으로 데뷔, 장편소설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 등.

2006-12-05 경인일보

[경인일보·경기민예총 인권을 생각한다·1] 억압된 일상 되새기고 소수자 인권상 느끼고

 경인일보사는 오는 23일부터 29일까지 경기도문화의전당 대전시장에서 열리는 `일상의 억압과 소수자의 인권' 展을 앞두고 경기민예총(지회장·김영기)과 함께 `인권을 생각한다'란 주제로 릴레이 기고를 3주간(총 6회) 진행한다. 경인지역 거주 작가들의 시와 에세이를 통해 우리안의 억압적 일상을 성찰하는 한편, 이주노동자, 장애인, 새터민, 국제결혼가정 자녀 등 우리 사회 소수자의 인권상황을 돌아본다.〈편집자주〉성혼(成婚)한국 청년과 베트남 처녀가공장에서 마음 맞아서장가가고 시집와서젊은 부부가 되었다시아버지가 자유수호전쟁에 참전하여죽기 살기로 싸우다 병든 걸며느리는 모르고장인이 인민해방전쟁에 참전하여죽기 살기로 싸우다 병든 걸사위는 모른다젊은 부부만처가에서 혼례식 한 번시가에서 혼례식 한 번오고가며 두 번 올리며연신 싱글벙글했다병든 바깥사돈들끼리상견례하지 않았지만저마다 속으론청춘 남녀가 공장다니는 처지된 건자기들이 전쟁한 탓도 있다면서사위 며느리에겐 입 다물었다 ●작가노트=적도 아니면서 적이 되어 전쟁을 한 아버지 세대의 질곡을 치유해 버리는 자식 세대의 결혼이 수시로 목격된다. 거창한 명제같은 것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베트남 처녀와 한국 청년의 성혼은 소중한 후손의 운명을 경건하게 잇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아버지들의 불행을 자신들의 행복으로 전환시키고 이 땅에서 새로운 모계 혈통의 선조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하종오(시인)=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사월에서 오월로', `반대쪽 천국', `지옥처럼 낯선', `님 시집' 외 다수.

2006-12-04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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