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명산을 가다

 

[경기도 명산을 가다]수원·용인 광교산

수원천·탄천 발원 '많은 물' 품어40여곳 달하는 약수터·샘터 꿀맛수원8경 '광교적설' 겨울철 백미청결한 화장실 자랑거리 중 하나백두대간 속리산에서 시작된 한남금북정맥이 안성 칠장산에서 한남과 금북으로 갈라지며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까지 이어지는 산맥을 한남정맥(漢南正脈)이라 하는데 이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 광교산이다.수원천의 발원지이자 용인 탄천의 발원지 중 한 곳인 광교산은 흙산으로 많은 물을 품고 있는 산이다. 그래서인지 10개 이상의 관리형 약수터가 있고 작은 샘터 역할을 하는 곳까지 합하면 40여 군데가 넘는다고 한다.#세계적 수준의 화장실문화를 지니고 있는 산= 광교산 산행은 화장실에서 시작하여 화장실에서 끝을 맺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파장동 보건연구원 방향에 위치한 항아리 화장실, 경기대 입구쪽의 반딧불이 화장실, 버스종점에 위치한 다슬기 화장실이 그것들이다.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산행기점으로 삼는 반딧불이 화장실은 시설과 관리가 가장 돋보이는 곳으로 항상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일단 산행을 하려면 저수지 아래에 위치한 공용주차장을 이용한 뒤 화장실 앞에 모여들면서 인원점검을 마친 후 산행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단박에 올라설 수 있는 능선길은 평탄하고 쉬운 길로 솔향기가 가득해 가볍게 산행을 하기 위한 사람에게 안성맞춤이다. 문암골 방향으로 하산하여 원점회귀를 한다해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능선을 따라 계속 걷다보면 어느새 형제봉이다. 전망이 좋은 곳으로 그간에 보지 못했던 바위와 노송이 멋스러움을 더해주기에 휴식을 취하기에 알맞다.#행정구역 다툼이 끊이지 않던 광교산 정상= 팔각정이 있는 비로봉을 지나오면 광교산 정상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능선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친 듯한 느낌을 주는데 행정구역상 용인시의 땅에 정상이 있는 것이다.수원시에서 1992년에 세운 고풍스런 갓모양의 정상석을 2008년도에 용인시에서 행정표기를 지운 채 다시 세운 것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한때는 정상석을 누가 세우느냐를 가지고 다툼이 일기도 하여 서로 부수던 때도 있었던 곳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용인쪽만 바라보게 되어 있으나 날이 맑은 날엔 멀리 여주까지도 불 수 있다.통신탑이 세워진 방향으로 능선길을 따르면 단박에 이를 수 있는 거리에 백운산이 있으며 청계산까지 50여㎞를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능선아래에 있는 절터 약수터는 수원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러봤음직한 곳인데다 가벼운 산행을 추구하는 가족단위의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버스종점에 내린 후 사방댐을 지나 왼편의 등산로로 접어들어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 산길을 따라 한시간여를 가면 산자락의 8부 능선쯤에 위치한 약수터를 만나게 된다.그 옛날 광교산의 89암자 중 하나였던 미학사라는 절이 있던 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많은 눈이 내리던 날 우연히 사찰로 찾아든 나그네가 있었는데 마침 스님들도 끼니를 보전키 어려운 형편이었음에도 남은 쌀을 모아 밥을 지어줬다고 한다.눈이 그치면서 나그네는 홀연히 절을 떠났고 남은 스님들은 굶주림에 힘들어 하고 있을 즈음 하늘에서 쌀자루가 떨어지기에 가서보니 학이 쌀을 물어다 주고 있었다. 이러한 전설 때문에 미학사(美鶴寺)라고 불리기도 하며 쌀 미자가 들어간 '米鶴寺'라고도 한다.공교롭게도 두 이름 모두에서 학이 등장하는데 장수의 상징이면서 고고한 자태의 격이 높은 선비를 비유하기도 한다.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상당히 격이 높은 길지(吉地)에 위치한 곳에서 수원천이 발원하고 있으니 자연스레 수원의 격(格)은 날로 높아져 갈 것이라 한다.#지겟길에서 만난 약수터= 파장시장에서 광교산자락을 타고 넘어가는 길인 '지겟길'은 비교적 평탄한 길을 따르는 한적한 길이다. 광교산을 오르내리는 길 중 가장 편안한 길이기에 쉽게 다가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운동기구들이 있어서 인근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이 길에 한철약수터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1991년도에 전한철씨가 조성했다 하여 '한철약수터'라 불리게 된 것이다. 광교산의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는 신현선(74)씨는 "너른 평야지대에서 바라보는 광교산은 풍요로움의 상징과도 같아.가뭄으로 고생할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물을 내어주고 있다보니 농사지을 때도 걱정 한 번 한 적이 없었거든…"이라며 "약수터가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비가 오면 나오는 마른샘부터 사시사철 물이 나오는 샘까지 산자락 어디든 물을 구할 수가 있었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서 오염돼가고 있다는 게 안타까워…"라고 한다. '광교적설(光敎積雪)'을 '수원8경' 중 으뜸으로 꼽았기에 겨울풍경이 좋은 곳이다.겨울철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만큼 환경에 대한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는데 관리감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성숙한 시민의식과 후대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생각하여 각별히 아껴 잘 보전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송수복 객원기자

2013-12-13 송수복

[경기도 명산을 가다]안양·과천시 관악산

암릉·절벽 혼재 악산 국기봉 서면 과천 한눈에'불의 산' 명성답게 너울대는 단풍 등산객 행렬태조 이성계가 지은 연주암엔 효령대군 '흔적'#과천시경계 종주대를 따라 가을 속으로겨울을 재촉하던 비가 그치고 안개 자욱한 날이다. 과천시경계 종주를 위해 인덕원역에 모여든 이들과 잠시 환담을 나누는 사이 13년째 이 행사를 이끌고 있는 이경수(54) 시의원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이 의원은 "과천시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시민들과 함께 자발적인 행사를 가졌던 것"이라며 애써 자신의 노력을 감추어 둔다.이윽고 20여명의 시민들과 함께 안양시와 과천시가 걸쳐져 있는 인덕원역을 떠나 관악산 자락으로 걸어가며 이야기를 이어간다.비에 젖고 안개에 숨어든 산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새 국토지리원의 삼각점에 이르러 정재성(55) 과천시 향토사 연구원이 평촌신도시 개발의 측거점이 된 곳이라며 설명을 해준다. 안양시방향에서 올라온 등산객들과 합류되며 조금은 소란스러운 길이다.관상약수터에 이르자 전주 이씨 익양군파 종중원들이 시제를 올리고 있다.그러던 중 한 노인이 찾아와 약수터가 위치한 곳은 행정구역상 과천시에 속해 있으나 안양시에서 체육시설물을 설치하고 관리를 하지 않아 늘 쓰레기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다며 하소연을 한다.게다가 종중의 사유지에 별도의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시설물이 들어선 것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지만 시민들이 즐겨 찾기에 별도의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며 약수터를 이용하면서 쓰레기 문제만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한다.#불꽃처럼 타오르는 연주대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붐비는 주말 아침의 관악산은 바위가 마치 관(冠)을 쓰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갓뫼 또는 관악산이라 불렸으며 불꽃같은 모양이어서 화산(火山)이라고도 불렀다며 정재성 연구원이 설명을 해준다.발아래로 시원한 조망이 일품인 국기봉에 서자 과천시 일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안개를 걷어낸 햇살 아래로 가을산으로 파고든 색색의 물결이 일렁인다. 등산객들의 행렬이다.관악산은 불의 산이라 하여 조선의 태조가 경복궁터를 옮길 당시만 하더라도 화기가 궁을 눌러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무학대사의 반대가 심했다 한다.반면 정도전은 한강을 두고 있으니 화기가 건너오지 못할 것이란 주장을 하였는데 태조는 이를 수용하여 경복궁을 건설하였으며 대원군에 이르러 그 정문에 바다의 신으로 상상의 동물인 해태를 조각하여 두었다.합천 가야산 대적광전을 불태우던 매화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그 정상에 소금을 묻는 것과 같은 이치였으리라. 가장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던 연주암에 도착하자 세종대왕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의 영정(경기도 유형문화재 81호)을 모신 효령각을 지나게 되었다.신라 문무왕 시절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관악사라는 절이 지금의 연주암 절터 너머의 골짜기에 있었던 것을 태조 이성계가 신축하였다.그러나 세종대왕의 첫째, 둘째 형인 양녕, 효령대군이 셋째인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태종의 심정을 간파하고 전국을 유랑하다 연주암으로 찾아 들었는데 발아래로 보이는 왕궁에서의 추억과 왕좌에 대한 미련이 자꾸 떠올라 아예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기게 된 것이 지금의 연주암 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연주암이란 이름 또한 이들 왕자들의 마음을 헤아린 세인들이 붙여준 이름으로 고려시대 건축양식의 3층 석탑도 효령대군이 세운 것이다.#정조의 효심이 깃든 삼남의 관문 남태령연주암을 지나 관악사지에 도착하니 많은 등산객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산속에서 너른 평지를 만났으니 더할 나위 없는 쉼터인 셈이다. 일행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남태령으로 향했다.지난 가을이 주었던 강렬한 추억을 찾으러 온 사람들과는 뜻이 달라서였는지 오롯이 걷는 일에만 몰두하였다.가는 곳마다 과천을 알리는 작을 표찰을 나무에 달던 송형섭(과천고 2)군이 학원을 가야하는 관계로 도중에서 하산을 하고 군부대 통제로 인하여 남태령쪽으로의 하산은 포기하고 인근의 용마능선으로 산행을 이어간다.빈 하늘을 지키던 낡은 초소 위에 서서 연주대를 올려다보니 붉은 햇살이 온누리에 스미며 치맛자락 펴듯 퍼져가고 있었다. 12㎞에 이르던 길이 끝나가고 있던 것이다.7시간여를 함께 걸었던 신현희(과천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회장, 54·여)씨가 "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여 과천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갔으면 좋겠다"란 말을 뒤로 하고 헤어지는 길 위로 집으로 향하는 분주한 발걸음이 이어진다. 아무렇게나 뒹굴던 낙엽들 사이로 명랑한 가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너울거리던 단풍도, 먹고 버린 과자봉지처럼 버려진 낙엽도, 만추엔 모두가 정겹던 시간속 존재들이었다. 은빛으로 서걱대던 억새 하나 구경하진 못한 길이었지만 함께 한 이들이 빛나던 시간이었다./송수복 객원기자■산행 TIP25억년의 나이를 지닌 화강암지대로 암릉과 절벽이 혼재되어 있어 다양한 코스를 이용하여 오를 수 있다. 등산로 전반이 바위와 마사토 지대이므로 우천시 산행은 가급적 피하고 등산화를 필수로 신어야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특히 6봉능선과 8봉 능선은 매년 인사사고가 끊이질 않는 구간이므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또한 산행시 등산스틱이 오히려 지장을 줄 수 있는 구간이 많다.

2013-11-07 송수복 객원기자

[경기도 명산을 가다]파주·양주·연천 감악산

임꺽정-6·25 격전의 무대단풍 이어진 길 곳곳 상흔예부터 '경기 오악' 손꼽혀임진강·송악산 닿는 절경하산길 장대한 조망 '황홀'#값진 희생으로 지켜낸 역사버스에서 내려 산행 들머리를 찾아 부대앞으로 다가간다. 문득 위병소에 서있는 초병의 모습에서 내 얼굴이 스쳐갔다. 25년 전에 나 또한 저들과 같은 모습으로 부대를 지키고 있었던 모습이다.얼마 전 6·25 전쟁 관련 역사문화유산 5건이 문화재로 등록된다는 소식을 접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감악산결사대 사당, 노르웨이군 전시병원, 포천 방어벙커, 태극단 합동묘지, 순국경찰관 합동묘지가 그것이다.감악산결사대 사당은 1950년 6월 25일 감악산 설마리 계곡 일대를 중심으로 조직돼 북한군에 저항해 많은 전과를 올린 감악산결사대원 중 순국한 38명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며, 동두천시에 위치한 노르웨이군 전시병원은 6·25전쟁 중 미군 제1군단 예하 각 사단에 대한 의무지원을 하던 곳이며, 포천 방어벙커는 북한군 전차공격에 대비해 국군이 구축한 콘크리트 진지다.고양시에 있는 태극단 합동묘지는 1950년 6월 말 결성된 태극단에서 활발한 유격활동을 전개하다 전사한 전사자의 합동묘역으로 조성된 곳이다. 논산 소재 순국경찰관 합동묘지는 1950년 7월 18일 북한군과의 전투에서 순국한 강경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안장돼 있다.그 중에서도 이곳 감악산 설마리계곡은 한국전쟁 당시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였다.1951년 4월,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해 임진강 방어선을 격파당하여 후퇴한 영국군 글로세스터샤연대 1대대 병력 600여명이 설마계곡 입구의 275고지에서 포위돼 대부분이 포로가 됐다.이때 67명이 포위망을 뚫고 탈출했고 59명이 전사, 526명이 포로가 됐다고 한다. 영국군은 3년간의 포로생활 중 또다시 34명이 사망했다.세계전투사에는 사상 유례가 없었던 영국군의 고립방어전 사례를 '임진강전투'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1986년 마거릿 총리가 방한하였을 때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호젓한 산길에서 만난 이른 단풍산길은 핏빛처럼 붉게 물든 단풍나무 아래를 지나 군데 군데 돌무더기로 참호를 만든 능선을 구불구불 이어간다. 표지판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범바위에 다가가니 작은 바위가 산아래를 굽어보고 있다.이곳까지는 그럭저럭 수월한 길이다.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잠시 내려섰다가 올려치니 송전탑이 코앞이다. 길은 다시 평온함을 유지하며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군유격장 표지판과 함께 길을 가로막은 철조망을 우회하여 가는 길 또한 평온하기 짝이 없는 길이다. 하지만 연이어 나타나는 봉우리들을 오르기 위한 숨고르기에 불과하였을 뿐 산길은 정상으로 가는 길을 그리 호락호락 내주지 않는다.등산로에 설치된 난간을 붙들고 신음소리를 쏟아낼 즈음 540봉 직전에서 양주시와 파주시에서 중복해서 설치한 두 개의 표지판 앞에서 헛웃음만 짓는다.540봉의 바위에 서면 640봉, 임꺽정봉, 장군봉, 감악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론 신암저수지를 가운데 두고 왼쪽부터 도락산, 불곡산, 고령산이 능선을 이루듯 서 있다.이윽고 장군봉으로 오르는 길에서 만난 노송 너머로 원당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나무계단을 통해 올라선 장군봉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조망을 가졌다. 고령산 오른편으로 비학산과 파평산도 보여주는 곳이다.#봉우리마다 보여주는 기막힌 조망의 황홀함양주감악정에 들러 햇빛을 피해 앉았다. 바람의 시원함보다 더 시원하게 펼쳐진 동남쪽의 산줄기들이 시선을 빼앗는다. 북쪽으로부터 종현산, 마차산, 소요산, 국사봉, 왕방산, 해룡산, 칠봉산이 줄지어 나타나니 손가락으로 하나씩 가리키다 지칠 판이다.다시 발걸음을 감악산 정상으로 옮기는데 흑염소 한 마리가 후다닥 도망가기 바쁘다. 이곳에서 방목하였던 때가 있었으니 그 시절에 도망나온 놈의 후손인지 모르겠다.이윽고 도착한 감악산 정상은 축구시합을 하여도 될 만큼 너른 운동장이다. 북쪽으로 추강선생의 시구처럼 용의 포효함처럼 장대하게 흐르는 임진강이 있다.북한땅을 지척에 두고 운무만 없으면 개성의 송악산도 보이는 곳인데 아쉬움을 남긴다. 그리고 이곳엔 의문을 간직한 채 감악산비(紺岳山碑)가 하늘을 배경으로 두고 서 있다.빗돌대왕비, 설인귀비, 몰자비(沒字碑) 혹은 진흥왕순수비(巡狩碑)로도 불리는 비석이다. 1982년 동국대에서 이 비를 조사하였는데 정확한 물증은 없지만 비의 모양, 지정학적 위치, 추정 연대, 비가 서 있는 산 정상 등의 면에서 또 하나의 진흥왕순수비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나 확실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다.가을 하늘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임꺽정봉은 경기 양주 불곡산 인근에서 태어난 임꺽정(林巨正)의 이름이 붙은 봉우리다.물론 불곡산에도 임꺽정봉이 있으나 감악지맥을 타고 다녔을 테니 이곳 감악산에도 붙였을 거란 추측을 해본다.하지만 이 또한 추론일 뿐 뒷받침해 줄 근거가 미약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삼국시대부터 명산으로 알려져 왔으며 개성의 송악산, 서울의 관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오악(五岳)'으로 불리는 산 봉우리에 임꺽정이란 이름이 붙었으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용인에서 관광회사를 운영하는 박정환(46) 대표가 "고통스러운 희망고문을 택하기보단 발버둥쳐도 헤어날 수 없는 세태에 대한 통렬한 반항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는 작금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이 더욱 혼란스러울 따름이다"라며 신암저수지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에 얼굴바위조망 쉼터에 앉아 임꺽정봉을 올려다본다.사람의 얼굴을 닮은 바위가 병풍바위와 더불어 도드라져 보인다. 하늘을 향해 눈썹을 추켜올린 형상이랄까. 한껏 기운을 뿜어 내는 듯한 모습이다.권력자들에겐 골칫거리였으나 백성들이 의적이라 불렀던 임꺽정의 기상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신암사터를 지나 저수지로 내려서니 감악산의 위용이 실로 장대해 보인다. 신(神)을 뜻하는 '감악'이 붙은 까닭일 게다./송수복 객원기자

2013-10-10 송수복 객원기자

[경기도 명산을 가다]양평 유명산(마유산)

조선시대 군마 키우던 곳 1973년 국토종주때 새이름옛 고랭지밭서 날아오르는 패러글라이딩 '세월 변화'하산길 이끄는 계곡… '수도권 제일 휴양림' 손꼽혀유명산이란 이름은 1973년 3월 1일 '엠포르산악회'가 2주 일정으로 진행한 국토종주대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대전을 출발한 제 2차 국토자오선 종단 등반대가 3월 11일 양평으로 진입하면서 862m봉을 지나던 중 산세가 아름답고 계곡이 깊은 이 산의 이름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당시 유일한 여성대원이었던 진유명(晋有明)씨의 이름을 따서 유명산으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그 후 이들의 종주기가 한 일간지에 실리면서 유명산으로 불리게 된 것인데 중종 25년에 간행된 '신동국여지승람'에는 '마유산(馬遊山)'이라 쓰인 기록이 있으니 원래의 이름을 찾아야 할 곳 중에 하나다.마유산과 관련한 어원은 '조선시대 군마를 방목했다'라는 추측이 주를 이뤘다.최근들어 '조선 태종 3년(1401년) 제주감목사 김건용이 양마 6필을 경기도 양근의 마유봉으로 보냈다' 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는데 현재 옥천면 신복리 '마골'과 서종면 '마현'과 '마현산' 등의 지명적 연관성을 들고 있다.이후에 많은 단체들이 제 이름 찾아주기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이미 고착화 돼버린 형국이어서 아쉬움이 남던 차에 '경기레포츠 페스티벌'에서 2012년에 이어 2013년 올해도 유명산이 아닌 '마유산'으로 표기되어 소개가 되고 있으니 점차 제 이름으로 불릴 것으로 기대된다.#해발 530m의 선어치고개한강의 기맥을 넘는 고개인 농다치고개(해발 410m)를 지나자 곧이어 해발고도 530m의 선어치 고개가 나타났다. 함께 하기로 한 (주)정원의 이동협 대표와 일행을 태웠던 버스가 힘겹게 올라선 고갯마루다.선어치(仙於峙)의 옛날 이름은 '서너치고개'였다. 옛날 이 고개는 울창한 수림 때문에 이 고개를 넘다 보면 하늘이 겨우 서너치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데 서너치고개가 한문으로 기재가 된건 일제시대에 우리나라 지형도를 처음으로 만들었던 일본인들에 의해서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중미산과 유명산으로 안내하는 현판이 서있는 곳을 보니 도로 절개지에 내놓은 산길이라 그런지 가파르게 올라서야 할 모양이다. 하지만 가파름도 잠시, 이내 수그러든 부드러운 길이 이어진다.775봉까진 평지와 오르막이 교대로 나타나지만 산길은 험하지 않고 부드러운 편에 속한다. 농다치고개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 지점을 지나면 소구니산(801m)까지는 지척이다.예전에는 소구니산 주변으로도 고랭지 농사를 지어 사방이 훤했다는데 이미 옛이야기가 되었는지 빽빽한 나무가 시야를 가린다.급경사 내리막을 향해 조심스레 발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다가와 있는 삼형제바위는 우회로가 있으나 조망을 즐기려면 바위 정상에 서야 한다.정면으로 유명산 정상, 남동으로 고랭지밭 터, 남으로 동막 왼쪽 계곡과 신복 3리 등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곳이다.#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변한 고랭지채소밭현재의 활공장이 위치한 구릉지대는 1970년대 초 고랭지채소단지 조성 당시에 불을 질러 만든 것이라고 한다.일반적인 채소 외에 피마자를 주로 재배했으나 1986년을 전후하여 농사를 짓지 않게 된 후 지금의 초원으로 변하여 독특한 형태의 산세를 지니게 된 것이다.농사를 짓기 위해 오르내리던 산길을 사륜구동 트럭이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을 태우고 오르내리는 것에서 세월의 변화를 느낀다.한편 삼형제봉을 지나고 나면 산세가 급격히 변화하는데 북동쪽으로의 급사면은 변함이 없으나 남쪽사면으로는 부드러운 산세가 이어지며 억새밭이 형성되었는데 가을철 낭만적인 풍광을 연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다.#수도권 최고의 휴양림을 품고 있는 마유산펑퍼짐한 형태의 정상에 서면 저절로 완만한 남쪽 능선과 용문산으로 시선이 집중된다. 한편으론 더 높은 곳으로 올려다 보는 산이어서 그렇고 또 다른 면에서는 능선을 내려다보는 마음이 편해서다.하지만 산의 명소는 따로 있으니 일명 유명농계(有明弄溪)가 그것이다.어비산과의 사이 계곡엔 뎅소, 박쥐소, 용소, 마당소 등 크고 작은 폭포수 물로 형성된 소(沼)가 10개 넘게 줄줄이 이어져 비경을 이루고 있어서 그 명성에 걸맞게 가평 8경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산의 정상에선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방향으로 향한다.계곡은 날선 옛 모습의 협곡이 아니었다. 많이 유순해지고 다듬어진 느낌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다정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그래서 사람들은 스쳐가기만 할 뿐 여유롭게 하룻밤을 지낼 수가 없다. 그래서 계곡의 끝자락에 휴양림을 조성하여 사람들을 쉬게 할 공간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캠핑이 대세인 요즘 심심치 않게 받게 되는 질문중의 하나가 캠핑장과 관련된 것으로 질문에는 가급적 수도권이어야 하고 시설도 좋아야 한다는 단서가 늘 따라 다닌다.시설 좋고 풍경 좋은 사설캠핑장도 많지만 경기도내에서 접근하기 쉽고 편의시설과 환경이 함께 좋은 곳을 꼽으라면 유명산 자연휴양림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하산 끝자락에 도착한 휴양림의 모습을 본 이동협 대표가 "직원들과 단체로 하룻밤을 지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일 것 같네요"라고 말하자 직원들이 모두 "하루빨리 오고 싶어요"를 외치며 응수를 한다.한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와 규모, 환경 어느 하나 빠질 것 없는 힐링캠프가 여기에 있었다./김종화기자

2013-09-12 김종화

[경기도 명산을 가다]가평·포천 운악산

정상 뒤덮은 운무·우뚝 솟은 암봉어느 계절에 찾아도 아름다운 절경왕건에게 쫓기던 궁예의 결사항전능선에 남은 성곽 흔적은 '전설로' 운악산은 경기지역의 5악(岳)으로 파주 감악산(674.9m), 가평 화악산(1천468.3m), 개성 송악산(488.2m), 서울 관악산(631m)과 함께 경기 5악으로 꼽는다.5악 중 운악산은 기암과 절벽의 향연이 아름다워 경기의 소금강(小金剛)으로 불리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론 가평군 하면과 포천군 화현면에 속해 있다.운악산의 북쪽은 강씨봉, 국망봉으로 이어지고 북동쪽에는 화악산(1천468m), 명지산(1천267m)이 있고 동쪽으로 매봉, 서쪽은 관모봉이 보인다.또한 강씨봉과 청계산을 잇는 한북정맥의 줄기에 속해 있으며 천년고찰 현등사가 자리하고 있어 예로부터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찾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계절별로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서 봄철엔 암봉과 조화로운 진달래가 아름다움을 뽐내며 조계폭포, 무지개(무지치)폭포, 건폭 등 폭포를 품은 계곡이 있어 여름철 산행지로도 사랑을 받는다.가을철엔 수수한 멋을 자랑하는 단풍이 기암과 어우러져 등산객들을 유혹하고 있으니 어느 계절에 찾아와도 그 아름다운 절경에 만족스러운 추억을 안겨주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아담한 계곡에서 만난 웅장한 무지개폭포산행은 운주사에서 시작하였다. 채 끝나지 않은 장마의 사이를 비집고 그나마 맑은 날을 택해 온 것은 다행이 아닐 수가 없었다.전날 내린 비로 인해 운무가 정상을 뒤덮고 등산로 입구에 내려서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높은 습도로 인해 몇 발짝 떼기도 전부터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곧장 무지개폭포를 향해 올랐다.겨울철이면 전국에서 빙벽 등반을 위해 산악인들이 찾는 곳이다. 아늑한 계곡 길에서 만난 150여m에 이르는 커다란 암벽은 실로 그 위용이 대단했다.폭포의 상단부로 다가갈수록 암벽의 위용은 사라지고 장난기 어린 생각이 들 만큼 낮아 보인다. 그 순간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이 실상과 전혀 다른 착각을 깨워준다.질퍽한 등산로를 약 500m 오르자 '대궐터'가 나타난다. 태봉국의 왕 궁예와 관련한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다.왕건에게 쫓긴 궁예가 주변지형을 이용해 천연의 요새를 만들어 660~990여㎡의 자그마한 터에서 심복들과 함께 죽음을 대비하며 왕건에게 맞섰던 곳이다. '대궐터' 왼쪽 아래로 있는 소꼬리 폭포 앞 능선의 성곽 흔적과 오른쪽 방향의 치마바위-신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남아있는 성곽의 흔적은 당시 상황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성곽 흔적이라고 해야 능선상에 돌을 쌓아 놓은 정도이지만 그래도 꽤나 많은 수의 군사가 성곽을 쌓는 데 동원되었을 것이다.녹음 사이로 솟은 암봉의 향연 대궐터를 떠나 정상으로 가는 길은 인공구조물이 안전을 보장해 주고 있는 구간이다. 계단과 로프를 이용해 능선에 이르면 서봉과 동봉을 연달아 만날 수 있다.서봉은 935.5m로 적혀 있고 동봉은 934.8m라 적고 있다. 약 70㎝의 차이를 두고 두 개의 정상석이 서로 다른 뜻으로 서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서봉 정상석은 포천시가 세웠고 동봉 정상석은 가평군이 세웠다 하니, 경계상에 위치한 유명한 산들을 자기 지자체 소속 산으로 하기 위한 치열한 홍보전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한편 동봉(東峰)의 정상석 뒷면에는 이곳 포천 출신인 조선중기에 정승을 지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오언율시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서봉에 비해 비교적 넓은 정상을 가진 동봉에 서면 주변 조망 또한 가히 막힘이 없다.정상 아래 바위턱을 올라서면 대여섯평의 너른 암반이 있는데 궁예가 바둑을 두었다는 곳으로, 주변 조망은 가히 환상적이라 할 수 있다. 간혹 제 잘난 듯 홀로 우뚝 솟은 암봉들을 내려다보다 보니 신선봉이란 이름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다양한 모습의 바윗길을 지나 천년고찰 현등사로…하산길로 정한 하판리로 내려서는 길은 다양한 모습을 지닌 바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심심하지 않은 구간이다. 미륵바위를 지나 병풍바위로 다시 눈썹바위를 지날 때면 가던 걸음이 절로 멈춘다.능선을 따라 그대로만 내려가면 산행은 끝난다. 하지만 천년고찰 현등사를 두고 갈 수 없어 다시 산길을 거슬러 올랐다. 현등사는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된 절이다.이후 폐사되어 있던 것을 고려 희종 6년(1210년)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중건하며 빛을 발하게 되었는데, 꿈에 등불을 자꾸 보게 되어 절 이름을 '현등사'라 했다 한다.우리나라 최초의 적멸보궁이며, 불교인들에겐 경기도 3대 기도 성지(현등사, 강화도 보문사, 관악산 연주암) 중 하나이기도 하다.현등사는 수많은 고승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세종 29년인 1447년에 세종대왕은 현등사에 주석하고 있는 함허대사의 상수제자인 혜각존자 신미(信眉)에 명해 '훈민정음'으로 '석보상절'(언해본)을 편찬했으니 역사적으로도 소중한 곳이 아닐 수 없다.경내를 벗어나 다시 산길로 접어들어 무우폭포와 백년폭포를 연이어 만나며 내려선다. 등골까지 시원한 물줄기가 더위를 느끼지 못할 만큼 서늘하다. 여름철 산행지로 제격인 이유다.다양한 즐길거리와 볼거리가 어우러진 곳이기에 경기명산 중 으뜸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하겠다.글·사진/송수복 객원기자

2013-08-22 송수복 객원기자

[경기도 명산을 가다]가평·양평 어비산

물고기들 한강으로 넘나들던 고개쏟아지는 빗줄기에도 발길 줄이어사우나 온듯한 오르막 끝 '어비계곡'땀방울에 흠뻑 젖은 여행객 붙잡아활엽수 능선길 지나 닿은 정상물안개 핀 남한강 몽환의 절경펑퍼진 산마루 바위·노송 기묘계곡 따라 형성된 沼 풍미 더해#한여름 피서지로 각광 받는 경기명산어비산은 양평군 중원산의 중원계곡으로 또는 용문산의 용문계곡으로 올라서서 한강기맥을 따라 유명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어비산은 어비계곡과 유명산계곡(입구지 계곡)을 두고 있어서 한여름의 더위를 이열치열로 다스리려는 종주 산꾼들에게 부르튼 발의 피로를 덜게 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유명산과 어비산은 유명산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한강기맥과 별도로 유명산 정상에서 유명산계곡 방면 동릉과 어비산 정상에서 서쪽 유명산계곡 방면 남서릉은 북쪽 가평군 설악면 가일리와 남쪽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와 용천리 경계를 이루고 있다.어비산은 예로부터 홍수 때 물고기가 산을 뛰어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산에 얽힌 전설 두 가지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산이 북한강과 남한강 사이에 있어 장마철에 폭우가 쏟아지면 일대가 잠기게 되었는데, 그때 계곡 속에 갇혀 있던 물고기들이 본능적으로 유명산보다 조금 낮은 어비산을 넘어 본류인 한강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어비산(魚飛山)이라 불렀다 한다.또 하나는 옛날 신선이 한강에서 낚시로 고기를 잡아 설악면으로 가기 위해 고개를 넘다가 잠시 쉬고 있었는데, 망태 속에 담겨 있던 고기가 갑자기 뛰어오르면서 유명산 뒤쪽 산에 날아가 떨어졌다고 하여, 어비산이라 부른다는 것이다.또한 유명산과 어비산의 등산 기점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선어치고개는 신선이 앉아 휴식을 취할 때 고기가 갑자기 선선해졌다고 하여 싱싱할 선(鮮), 고기 어(魚), 고개 치(峙) 자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지고 있다.#이른 여름부터 인파로 가득찬 어비계곡오락가락하는 빗줄기 탓에 번잡하지 않은 산행일 것이란 예상은 어비계곡에 도착하는 순간 보기 좋게 빗나갔다.가느다란 빗줄기가 가득한 계곡엔 일찌감치 찾아온 피서객들이 들어차 앉았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등산객들이 앞다투어 어비산을 오르고 있었다.마을회관에 주차를 해두고 천천히 임도를 따라가며 계곡을 구경하며 오르겠다던 다짐은 오간 데 없이 어느새 인파에 휩쓸려 달리듯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은 이미 능선에 이른 후였다.숲에서 풍겨오는 잣나무 솔가지의 향도 젖은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청량함도 잊은 채 오로지 경쟁하듯 오른 것에 대한 후회만 하며 그루터기에 앉았다.어비계곡을 따라 능선으로 오르는 길을 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를 하다 어비산 정상으로 향하던 것을 멈추고 내려서기로 한다. 어비계곡을 끝까지 보고 싶어서였다.차량통행을 금하고 있는 찻길을 따라 40여분을 걸으며 계곡의 이곳 저곳을 기웃거려 본다. 급하지 않은 오르막이라 힘들 것도 없지만 후텁지근한 습도가 습식사우나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이 연방 땀을 배출하게 한다.옥빛의 물색으로 금방이라도 땀에 젖은 몸을 기꺼이 받아주겠노라 불러 주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계곡을 옆에 두고 가야 하는 발걸음이 못내 아쉬워 연거푸 푸른 소(沼)를 바라다본다.폭산이 무겁게 내려앉은 구름에 가리웠다. 용문산의 봉우리들도 구름에 숨은 채 도통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에 쉼 없는 발걸음만 재촉한다.이윽고 도착한 고갯마루에서 약한 바람이나마 땀에 젖은 몸을 훑으며 더위를 식혀주기에 양평 땅을 바라보며 앉았다. 참으로 산이 많은 지역이다.동쪽으로 양자산, 앵자봉, 폭산, 용문산, 백운봉이 지척이고 서쪽으론 유명산, 소구니산, 중미산, 삼태봉이 또 하나의 하늘금을 이루고 있다.#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유명산하늘도 땅도 푸른 물줄기의 남한강도 온통 잿빛이다. 비가 그치면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면서 몽환적인 그림을 만들어 낸다.활엽수가 가득한 능선길 아래로 잣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비계곡 초입에서 어비산 정상으로 바로 오르는 등산로에서 만났던 숲이다.고갯마루에서 어비산 정상까지 40여분이 걸려 도착을 했다. 사방이 나무에 둘러싸여 있어서 볼거리는 전무한 형편이라 오래 있을 이유가 없기에 유명산 방향으로 내리막길을 걷는다.네모진 돌무더기 터에 도착하자 '제2봉화터'란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조망도 한결 나아져서 펑퍼짐한 유명산의 모습이 손 끝에 닿을 듯 다가온다.펑퍼짐한 육산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어비산 능선에는 간간이 기묘한 모양의 바위와 노송의 어우러짐이 눈요기로 충분하고 계곡에서 냉기를 품은 바람이 올라와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갈림길에서 유명산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은 어비계곡과는 다른 양상이다. 협곡을 이루면서 세찬 물줄기가 떨어지며 만들어낸 마당소, 용소, 박쥐소는 더욱 멋들어진 계곡의 풍미를 더하기에 더위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하다.산행은 패러글라이더들이 수놓는 형형색색의 하늘과 임도를 오르내리는 산악자전거들의 행렬을 지나 더위를 피해 계곡으로 찾아든 피서객들이 가득한 곳으로 내려서는 것으로 마쳤다.자연이 주는 무궁한 즐거움에 대해 생각하는 동시에 인간이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케 하는 순간이다.그저 잘 가꾸고 보존하여 후세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기를 기대 하는 것만이 최선이 방법이 아닐까 싶다.글·사진/송수복 객원기자

2013-07-11 송수복 객원기자

[경기도 명산을 가다]김포 문수산

145년전 병인양요 현장 '갑곶나루'얼굴 잃어버린 성곽 복원공사 한창강과 역사가 가로막은 '북녘의 땅'정전 60주년의 해 "등반 의미깊어"한여름 더위에 버금가는 한낮의 기온 탓에산행하기가 부쩍 부담스러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카네기 동문회원들이 김포에 위치한 문수산을 오른다하여 아침 일찌감치 나선 길이다.행사주최측 회원들이 벌써부터 차량들의 진입을 돕기 위해 늘어선 길을 따라 산림욕장 입구까지 진입해 주차를 마치고 나니 경기도 각 지역에서 온 회원들로 등산로가 북적인다."가볍게 오르고 힘 있게 내려가자"며 회원들을 이끄는 경기카네기 수원총동문회 김재준(50) 회장과 발을 맞춘다.진공성형물 전문업체인 '(주)미래컴'이라는 회사의 CEO인 김 회장은 관련업계에선 정평이 나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전혀 관련이 없는 각 분야의 CEO들이 모처럼 시간을 내어 선조들의 옛 발자취를 따라 역사의 한 부분을 더듬어 보자는 의미를 가진 행사"라고 말한다.#병인양요와 갑곶나루 그리고 문수산성문수산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갑곶나루는 정묘호란을 피해 인조가, 병자호란에는 봉림대군과 왕실의 귀족들이 강화로 피신하기 위해 건너던 나루터였다.하지만 1866년도엔 프랑스군이 이곳 갑곶나루로 올라와 문수산성에 불을 지르고 침탈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때 강화도도 침탈하여 외규장각의궤를 약탈하여 갔고 145년이란 세월이 흘러서야 우리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국력의 부흥이 절실하다고 여기는 사건이다.삼림욕장 입구서 산행표지판을 통해 정상까지 1㎞ 정도의 거리를 확인하곤 가볍게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해 보며 숲길로 들어선다. 솔내음 가득한 오붓한 산길이다.초록의 빛깔이 고운 길을 따라 조금씩 오르다 보면 가까운 곳에 산성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성곽을 밟고 지나는 길도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곳이다.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성곽을 바라보다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전반적으로 산성을 곁에 두고 가는 길이다. 햇살이 비치는 산성터에 서면 조망은 좋아지지만 한뼘의 그늘이라도 아쉬운 계절이기에 가급적 산성길을 피하는 것이 좋다.#공사중인 문수산성의 흔적1㎞를 오르면 한남정맥 마지막 구간길인 문수산 주능선에 닿는다. 성곽의 모습도 점차 위용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많이 보강된 형태다.문수산성은 숙종 8년(1882년)에 강화유수 조사석(趙師錫)이 강화를 보호하기 위해 축성하기를 청한 후 12년이 흐른 숙종 20년(1694년)에야 축성을 마쳤다 한다.김포시 월곶면 성동리와 포내리 일원에 위치하여 강화도의 갑곶진(甲串鎭)을 마주보고 있는, 해발 376m의 문수산(文殊山)의 해안지대를 연결한 포곡식의 산성으로 지금은 성곽과 군사시설이 혼재하는 까닭에 말끔하지 못하지만 김포시에서 성곽 복원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서 2015년도에는 복원공사를 마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또한 2016년 이후에는 공해루(拱海樓) 및 서측성곽 등을 복원해 원형에 가까운 역사유적지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갈 것이라 하니 하루 빨리 제 모습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산성의 장대(將臺)가 있던 정상 부근은 아직도 한창 공사중이어서 어수선하다. 정상석은 이미 발아래 풀섶에 뒹구는 사나운 모습이지만 어쩌겠는가. 문화재 복원이 우선이니 그냥 넘어갈 일이다.#북녘땅 바라보고 선 문수산지척의 거리를 강이 가로막고 역사가 가로막았다. 북녘의 땅이 손 끝에 닿을 거리에 있기에 군사적으로도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박무에 가리워져서 뚜렷하진 않지만 저 너머로 개성공단이 있겠지요. 저희 회사도 한때 입주를 염두에 두었지만 일반제조업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특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 회사인지라…"라며 김재준 회장이 북녘을 응시하며 말을 아낀다.이후 여러명의 해병들이 올라와 망원경으로 북쪽을 바라보다 내려간다. 고생하는 후배들을 챙겨준다며 배낭을 뒤적이던 이규재(50) 회장이 나섰다.'(주)드림로지스'라는 운송회사를 운영하는 CEO로 철인경기에 다녀온 후 곧장 산행에 참여할 정도로 카네기 모임에 애착을 갖고 있다고 한다."지금의 우리, 앞으로의 우리를 위해 3년이란 시간을 군대에서 보낸 남자들이면 응당 후배들의 고생을 알고 있기에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심정"이란다.정상 부근을 경기 카네기 회원들과 군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중에 다소 소란스런 무리가 정상에 다가온다. 한무리의 초등학교 학생들이다.나의 시선이 문화유적을 찾아 온 아이들의 모습과 군인을 오가다가 일반 등산객들에게서 멈췄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서로 다른 목적으로 찾아온 문수산에서 같은 생각을 갖고 돌아갈까? 답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두가지에선 같은 방향으로 생각이 고정될 것이다.통진현 읍치 북쪽 6리에 있다고 전해오던 진산, 비아산으로 불리던 문수산(文殊山)에서 동상이몽(同床異夢)을 꾸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의 해이며 호국보훈의 달에 찾은 문수산, 그 특별한 기억에 의미가 새롭다.글·사진/송수복 객원기자

2013-06-13 송수복 객원기자

[경기도 명산을 가다]남양주시 운길산

북한강·남한강 사이좋게 하나되는 두물머리 풍경'정약용의 길' 다산능선 오르자 깊은 하늘문 열려우연히 만난 생강나무꽃 보며 피부로 느끼는 '봄'오월은 마냥 푸르다. 푸르른 하늘과 청초한 풀내음 가득한 논길을 따라 걷다 산길로 접어들어 싱그런 봄을 느끼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다.(주)이노다임의 김형태(44) 대표와 사원들이 함께 오르기로 한 운길산 입구엔 전철역을 통해 쏟아져 나온 인파로 인해 혼잡스럽기가 시골장마당보다 더하다. 서두르지 않고 만난 까닭에 한적하게 걷게 될 것이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셈이다.이미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인파와 산행을 시작하는 등산객들 사이를 비집고 산길로 접어드니 어느새 하늘을 가리는 나무그늘이 벌써부터 따끔거리는 햇살을 막아주고 있다.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화천, 춘천을 거쳐 천리를 흘러 온 북한강물과 대덕산에서 출발하여 영월, 충주를 거친 남한강물이 만나, 하나 되는 두물머리가 발아래로 보이는 운길산은 구름도 넘다 걸친다는 산이지만, 그다지 높지 않은 까닭에 수많은 인파에 휩싸이나 보다.#농사일로 분주한 시골마을을 지나는 길은 언제나 정겹다.부지런한 농부의 손끝에서 파릇한 싹을 틔워낸 농작물이 밭을 메우고 비닐하우스에서 겨울을 이겨낸 딸기가 향긋한 내음으로 손길을 유혹한다.만만하던 뒷동산이 가파르게 올려치는 숲길로 들어섰다. 짤막한 오르막을 오르고나니 벌써부터 땀이 흐른다.수원에서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김 대표가 "산업보안분야 기술사업화를 위해 융합보안 첨단상품 연구개발을 하는 우리의 입장에선 사업과 산을 동일 선상에 놓고 보기는 어려워요"라고 말한다.오르고자 마음만 먹으면 어느 산이건 오를 수가 있지만 사업은 원한다고 갈 수 있는 정상이 아니란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거치고 또 거치면서 성장하는 것이니까 그의 말에 수긍을 할 수밖에….#누군가의 제안으로 부르기 시작한 다산능선(예봉산~운길산)에 다가선 것은 한 시간이 채 되기도 전이었다. 그리곤 바람 한 점 없는 청량한 가을 하늘 같은 하늘이 열렸다.몇 점 되지 않는 구름이 근사하게 두물머리 위로 흘러간다. 마을 뒷산같이 익숙한 산길을 지나 분주한 사람들이 서둘러 지나간 자리에 질펀하게 앉아 도시락을 꺼내어놓자 박새 한 마리가 서둘러 다가온다. 전혀 낯설어하지 않는 듯 점점 가까이 오더니 잘게 부숴놓은 과일 한 조각을 물곤 황급히 떠났다가 돌아온다.수많은 등산객들이 오가는 환경에 적응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고인이 된 구본형 변화경영전문가가 1998년 43세의 나이에 펴냈던 '익숙한 것과의 이별'이란 책을 떠올렸다.법은 고쳐야만 하고 제도는 변해야만 한다며 제지불변(制之不變)을 주장하던 다산(茶山)이 걸었던 길에서 변화와 혁신을 꾀해야 하는 까닭을 김 대표에게 물었다."강구실용(講究實用)과 실사구시(實事求是)로 대표할 수 있는 다산의 철학을 현대에선 설득력을 갖춘 논리적 지식경영, 발상의 전환과 독창적 사고의 확보로 해석해 볼 수 있는데 어느 것 하나 익숙한 것들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찾는 게 아니라 익숙한 가운데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서 "바꾸어 말하면 변례창신(變例創新)이라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한참이나 말없이 걷던 길에서 국윤주 (41·여)연구소장이 생강나무 꽃을 바라보며 "찬바람이 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봄이 이만큼 와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네요.사무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보던 봄을 피부로 느끼고 가는 길이 다산의 길이라 더욱 느낌이 달라요"라며 해맑은 웃음을 짓는다. 봄볕에 한참이나 시달린 끝에 운길산 정상에 섰다.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서 있는 정상석이 사진 포인트다.얼싸안기도 하고 뒷배경에 놓기도 하면서 하릴없이 널따란 땅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하다. 산 아래나 위나 분주하긴 매한가지여서 너나 없는 대열에 동참하여 인증샷을 남발하고 수종사로 가기 위해 거침없는 내리막에 섰다.물병을 손에 든 것 빼곤 산행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듯한 신사복 차림의 여러 명이 내리막 끝에서 올려다본다. 혁신적이라며 김 대표와 마주보고 웃었다.이윽고 내려선 수종사에서 물 한 바가지를 떠 입에 넣곤 변함없이 꼿꼿하게 선 은행나무가 내려다보는 강물을 함께 바라보았다. 마냥 흐르는 강물은 우리에게 순리를 알려주고 있다.그러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시대는 변화가 절실한 시대다. 그 가운데서 변치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 내야만 한다."마누라와 아이만 빼곤 모두 바꾸어야 한다"고 했던 이건희 회장의 혁신과 다산의 개혁이 여운으로 남던 운길산을 통해 운(運)이 억수로 길(吉)한 산으로 모든 사람의 기억에 남길 기대해 본다.글 사진/송수복 객원기자

2013-05-09 송수복 객원기자

[경기도 명산을 가다]가평 연인산

잡념조차 사라지는 오르막5월엔 단아한 철쭉꽃 '장관'못다이룬 연인의 슬픈사랑아홉마지기에 전해진 전설부드러운 흙길끝 용추계곡세찬 물소리가 봄기운 알려산은 물이 없으면 수려하지 않고 (山無水不秀)물은 산이 없으면 맑지 못하다 (水無山不淸)골짜기 골짜기마다 산이 돌아가고 (曲曲山回轉)봉우리 봉우리마다 물이 감아돈다 (峯峯水抱流)-주자 무이구곡시2007년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연인산은 1999년에 붙여진 이름이다. 문헌상 월출봉으로 불렸고 인근 주민들은 우목봉이라 부르던 것을 가평군 지명위원회가 지어준 것이다.봉우리로만 표기되던 것을 이름을 붙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이 됐다. 1천m가 넘는 산으로 경기도에 몇 안되는 고봉에 속한다.전반적으로 육산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가족단위로도 즐겨 찾는 곳이며 간단한 장비로 하룻밤을 보내며 힐링을 하고 가는 등산객들도 자주 찾는다.국내 잣 생산의 70%를 담당하고 있는 가평군에 속해 있어서 산행 중에 솔내음 가득한 숲을 거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철쭉꽃이 장관을 이루는 가평의 연인산은 품이 넓은 산으로 각종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당당하게 높고 넓은 품의 경기 명산품이 넓고 1천m가 넘는 산이다. 당연히 골도 깊고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정상에 오를 수 있기에 섣불리 다가섰다가는 힘든 여정으로 연인 사이가 오히려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하여 간혹 '연인깨기산'으로도 불린다.2시간이 넘는 오르막은 서둘러 가려다가는 쉽게 지치는 요인이 된다. 표고차도 700여m가 넘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오르는 것이 안전산행의 지름길이다.어느 곳에서 산행을 시작하든 간단치 않은 오르막이 초반부터 가쁜 숨을 몰아쉬게 한다. 빼곡한 잣나무 사이로 난 숲길은 오롯이 능선으로 향하고 초반과 달리 둔탁해진 발걸음은 가다 쉬다를 반복해야 능선으로 다가간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솔잎 향기가 온몸으로 퍼져가며 머릿속의 잡념을 재운다.능선이 가까워 오면서 나타나는 오르막은 오로지 오르는 데만 집중하게한다. 백둔리에서 출발해 두어시간이 지나서야 소망능선에 섰다.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구간으로 5월이면 단아한 철쭉꽃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곳이다.#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갑자기 트인 시야에 다른 세계로 들어선 느낌이다. 온세상을 내려다 보는 듯한 착각 속에서 이백의 '산중문답'을 떠올린다.왜 산에 사느냐고 묻는 그 말에 대답 대신 웃는 심정(問餘何意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이리도 넉넉하네 복사꽃 물에 흘러 아득히 가니 인간세상 아니어라 별유천지네(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때이른 꽃타령이라 타박을 받을지언정 이미 다녀간 옛추억에서 연인산의 꽃향기를 잊을 수 없기에 산을 오르는 내내 줄곧 마음에선 만개한 꽃잎들 사이의 길을 걸었다.하트문양의 정상석엔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적혀 있는데 별다른 감흥이 없기에 완만한 내리막을 따라 널따란 공터에 내려섰다. '아홉마지기'란 곳으로 옛이야기 한구절이 전해오는데 내용은 이렇다.옛날 숯을 굽는 청년과 참판댁의 여종이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됐다.결혼을 청한 청년에게 참판은 조 100석을 가져오면 결혼시켜주겠다고 하여 청년은 지금의 연인산 정상 부근의 분지를 발견해 아홉마지기의 밭을 일궈 조 100석을 마련했다.그러나 참판이 그를 역적의 아들로 몰아 포졸들에게 쫓기게 되었고, 실의에 빠진 청년은 아홉마지기 밭에 불을 질러 죽었다. 처녀도 따라 죽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둘의 신발이 놓여진 자리 주변 철쭉과 얼레지는 불타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다.지금은 무인산장과 샘이 있어서 한겨울 종주꾼들과 비박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안식처 역할을 해주고 있으나 한여름엔 수풀에 뒤덮여 볼품 없는 곳으로 전락하고 만다.#높은 산 깊은 골이 만들어낸 용추계곡가평군 일대 산의 특징이라면 능선마다 방화선이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때론 잡풀이 온통 뒤덮고 있기도 하고 그 쓰임새가 목적에 부적합하게 관리가 안되는 모습도 종종 보았는데 연인산에서의 방화선은 여유로운 산책로와 같아서 편하게 걷기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좋다.잣나무와 신갈나무, 구상나무가 번갈아 만들어 내는 숲길이다. 우정봉을 거쳐 우정고개로 이어지는 우정능선의 부드러운 흙길을 걸으며 6갈래의 우정고개에서 임도를 따라 용추계곡의 상류로 다가선다. 원시계곡미가 물씬 풍기는 계곡길에 들어서자 주자의 무이구곡시가 떠오른다. 겨우 7.5㎞ 정도의 계곡이렷다.용추계곡은 그보다 더 긴 10여㎞의 장쾌하고도 멋진 계곡이니 어찌 외면하고 돌아설 수 있을까. 하지만 먼길이다 보니 체력 소모가 많아 힘든 하산길이 될 수 있으므로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계곡의 끝자락에 다다를수록 온 산을 울리는 세찬 물소리에 힘을 얻는다. 목을 축이려 물가로 내려서자 겨울의 시린 기운이 남아 목덜미를 타고 온몸을 휘감는다.봄을 찾아 떠난 연인산에서 마지막 겨울을 훔쳐보고 돌아서는 길이다.글·사진/송수복 객원기자

2013-04-12 송수복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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