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공연리뷰]인천시립극단 창작극 프로젝트 '거대한 뿌리'

굴절된 현대사속 김수영의 삶 그려혁명·쿠데타 등 고통의 시절 공감예리한 풍자 탁월 박근형 객원연출이범우 등 배우들 호연에 관객 갈채인천시립극단이 정기적으로 진행 중인 '창작극 프로젝트'의 네 번째 결과물로 관객과 만난 '거대한 뿌리'가 지난 8일 막을 내렸다. 8월 31일부터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시작된 공연의 마지막 무대였다.김수영(1921~1968)이 쓴 시의 제목이기도 한 '거대한 뿌리'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노래한 김 시인의 삶을 그렸다. 인천시립극단은 극작가 겸 연출가인 박근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객원연출로 초빙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창작극을 완성했다. 예리한 현실풍자와 조롱으로 충격을 던지며 한국사회 문제들을 날카롭게 진단해 왔던 박근형 연출과 인천시립극단의 만남은 공연 전부터 연극팬들의 관심을 끌었다.이 작품은 1968년 6월 15일 늦은 밤 교통사고를 당한 시인이 사경을 헤매는 몇 시간 동안을 담았다. 적십자병원 중환자실에 누운 그는 세상을 떠나기 까지 굴곡진 인생을 되돌아본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던 시기와 해방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 시작된 미 군정과 한국전쟁,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경험,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시작된 현대사를 거쳐 마지막까지 그를 붙들고 있던 것은 4·19혁명의 정신이었다. 작품은 시인 김수영의 삶과 예술을 생생하게 압축해 표현했다. 그와 함께 굴절된 대한민국의 현대사도 무대 위에서 흥미롭게 펼쳐졌다.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세대간, 지역간의 진통과 청산되지 못한 그릇된 역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극에서 김수영은 "죽음을 눈 앞에 둔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게 다 부질 없는 세월이었다. 그러나 3·15 부정선거에 맞서 시위를 하던 김주열 학생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마산 앞 바다에 떠오르자 시대와 반역의 세월에 분노하며 울분을 토했던 1960년은 내 인생에 가장 뜨거웠던 인생의 황금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본다.그 후 김수영은 현실과 정치를 직시하는 적극적인 태도로 문학을 바라봤으며, 박정희의 쿠데타로 다시 겨울공화국으로 전락한 세상을 조롱했다. 부정한 시대를 한탄하며 시를 무기 삼아 세상과 맞서지만, 언제나 역부족인 자신을 학대했다.김수영을 연기한 이범우 배우를 비롯해 18인의 인천시립극단 배우들은 20세기 중반의 한국 근현대사의 인물들을 과하지 않은 감정의 흐름 속에서 연기했다. 그로 인해 암울했던 시절, 가난의 시절, 고통의 시절을 겪은 아버지 세대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무대의 막이 내리고, 관객들은 부정한 시대를 한탄하며 시로 세상에 맞섰던 시인의 삶을 일깨워준 배우들에게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인천시립극단의 창작극 '거대한 뿌리'의 한 장면. /인천시립극단 제공

2019-09-09 김영준

[공연리뷰]경기도문화의전당 '2019 단원창작 프로젝트-턴어라운드'

"그날도 아침 8시에 일어나기 힘든 몸 상태였다."한 여인이 대사를 읊으며 무대에 등장한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내레이션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관객들은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그 의미를 이해한다. 여인을 둘러싼 다른 여자들이 일렬로 서서 줄곧 따라다니며, 동작을 만들기 때문이다. 마치 주인공의 심리를 몸으로 묘사하듯이.연극인지 무용인지 구분이 안가는 이 작품은 경기도립무용단의 단원 김혜연이 만든 '상태가 형태'다. 지난 달 30~31일 경기도문화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린 '2019 단원창작 프로젝트-턴어라운드'에서 김용범·이주애 단원도 각각 안무작을 선보였다. 춤언어의 경계를 파괴한 신선한 도전들이었다. '턴어라운드'는 단원에게 안무의 기회를 주었다는 점 외에도, 한국전통춤을 춤언어로 사용하는 무용단에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인 것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몇가지 질문들이 떠올랐다. 무용단원의 본업은 춤을 잘 추는데 있는데, 왜 안무를 했을까. 피아니스트에게 작곡을 맡긴 격이니 무리한 기획은 아니었을까. 답은 한마디로, 아니다. 춤을 만들어본 무용수는 표현에 있어서 그 깊이를 더 한다. 한편 안무가가 직접 춤을 출 줄 안다는 것은 엄청난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아서 단원에게는 꼭 필요한 기회고, 무용단으로서는 꼭 수행해야하는 과제이다. 훌륭한 무용수는 넘쳐나는데, 정작 연출과 제작을 모두 아울러 고민할 줄 아는 안무가가 부족한 우리의 현실속에서 안무가 양성을 위한 필수 프로젝트다. 비록 초연에서 완성작을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미래의 레퍼토리를 개발한다는 차원에서 마음껏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세계적인 안무가의 대부분은 무용수 출신이다. 단원들에게 주어진 작은 일탈이 훗날 커다란 부메랑이 되어 멋지게 돌아올 것이다. /장인주 무용평론가장인주 무용평론가

2019-09-02 장인주

[공연리뷰]독일 드레스덴 필하모닉 인천 콘서트

교향곡등 명쾌한 표현 이끌며 오케스트라 앙상블과 하나된 '마지막 무대''현의 여제' 피셔 현란함·부드러움… 다양한 활 놀림 협연 '커튼콜' 잇따라 독일 남동부의 명문 오케스트라인 드레스덴 필하모닉. 드레스덴 필과 8년을 함께 한 수석 지휘자 미하엘 잔데를링의 고별 무대가 7일 오후 아트센터 인천(ACI) 콘서트홀에서 개최됐다.잔데를링은 이번 공연을 앞두고 "7월 한국 공연을 마지막으로, 20년 동안 쉴 틈 없이 달려온 음악 인생의 휴식기이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과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협연·율리아 피셔)을 선보인 잔데를링과 드레스덴 필은 자신들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산하며 공연장을 찾은 인천의 음악팬들을 열광시켰다. 드레스덴 필은 특유의 중후한 사운드를 뽐냈다. '미완성 교향곡' 1악장 저현의 피아니시모에 의한 개시 이후 1주제의 제시까지 유장한 현의 선율에 기반을 둔 균형감 잡힌 악기군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잔데를링은 적절하게 설정한 템포에 특유의 맨 손 지휘로 표정을 입혔다. 지휘자의 지시에 오케스트라의 반응도 매우 빠르고 정확했다. 이날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기 충분했다.'운명 교향곡' 첫 악장은 빽빽한 악상으로 인해 지휘자의 개성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잔데를링은 유명한 '운명의 동기'에서부터 음의 여운을 최대한 차단했다. 전개부에선 묵직한 저현에 목관의 아기자기한 어우러짐을 통해 곡의 구조를 선명하게 해주었으며, 듣는 재미도 배가시켰다. 2악장에서도 서정성을 강조한 많은 연주들과 거리를 뒀다. 1악장의 변형된 4음 모티브가 3악장의 시작을 알렸다. 지휘자의 뛰어난 음 배분과 크레센도의 가감은 빼어난 오케스트라의 앙상블과 일체됐다. 특히 4악장을 암시하는 금관의 팡파르와 더블 베이스의 정확한 운지는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종지없이 현의 트레몰로로 이어지는 4악장. 금관의 포효와 어우러진 오케스트라는 베토벤의 뜨겁고 힘찬 웅변을 잘 대변했다. 진폭이 큰 연주는 아니어서 다소 밋밋하다고 여긴 청자도 있겠지만, 명쾌한 구성과 표현으로 작품을 구현했다.힐러리 한, 재닌 얀센과 함께 '21세기 현의 여제'로 불리는 율리아 피셔가 인터미션 후 등장했다. 피셔는 적절한 프레이징 속에서 명확한 선율선을 제시하며 청자를 이끌었다. 브람스의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는 독주 악기의 반주 역할을 넘어선다. 이에 맞춰 잔데를링과 드레스덴 필은 적극적으로 작품에 다가섰으며, 알맞은 음색과 음량으로 독주자와 어우러졌다. 피셔는 현란한 기교로 선보인 1악장 카덴차를 비롯해 부드러운 2악장, 격렬한 마지막 악장까지 다양한 음색을 펼쳐 보이며 청중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청중의 커튼콜에 피셔는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을 연주했다. 또 다시 이어지는 커튼콜. 이번엔 깜짝 이벤트가 펼쳐졌다. 잔데를링은 본업이었던 첼리스트로 돌아가서 첼로 수석 자리에 앉았고, 피셔가 포디엄에 올라 브람스 '헝가리 춤곡 5번'을 이끌었다. 퇴장했던 첼로 수석은 앙코르 공연 후 꽃다발을 들고 등장해 수석 지휘자로서 마지막 연주를 한 잔데를링에게 전달했다. 피셔와 잔데를링, 드레스덴 필의 인천 공연은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7일 오후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에서 율리아 피셔(바이올린)와 미하엘 잔데를링(지휘), 드레스덴 필하모닉이 청중의 이어지는 커튼콜에 답례하고 있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2019-07-08 김영준

[공연리뷰]대한민국연극제 참가 극단 십년후의 '냄비'

인천 대표로 경연무대 펼쳐군인·운전사·배우·기자…정치·언론등 다양한 인물들월드컵 보러 주점에 오는데사회 모순·혼란 극복해야만미래가 있음을 에둘러 표현제37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인천 대표로 참가한 극단 십년후의 경연 무대가 16일 오후 4시와 7시30분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졌다.극단 십년후는 올해 연극제 무대에 한국 근대사의 사건들을 모아서 마치 잡탕 찌개처럼 끓여낸 '냄비'(김명화 작, 송용일 연출)를 올렸다. 오후 7시30분 공연에 맞춰 찾은 공연장의 무대는 찌개를 주 메뉴로 하는 주점 '냄비'로 꾸며졌다. 이 곳은 서울에서 1시간 여 정도 거리의 경기도 어느 미군 부대 근처 변두리 술집이다. 원형 식탁 5개와 의자들이 있다. 무대 좌우에는 큰 나무가 있으며, 주점의 뒤 배경에도 여러 그루의 나무가 보인다. 주점의 앞쪽 무대는 어두운 숲을 지나 주점으로 오고 가는 길로 설정됐다. 시간적 배경은 월드컵이 한창인 때이다.등장 인물은 베트남 참전 용사였던 노인과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는 젊은 군인들, 변두리 극장의 연출가와 배우, 문화부 기자, 스파르타 학원 강사와 선거 후보자, 지역구 국회의원의 운전기사와 군수의 측근 등으로 다채롭다.정치, 교육, 언론, 문화 분야를 의미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주점 '냄비'(우리 사회)에서 술을 마시며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주점으로 향하던 여배우는 길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등장인물(혹은 그의 지인)들은 1949년 좌익세력에 대한 통제와 회유를 목적으로 조직된 국민보도연맹,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압사당했던 여중생 2명, 1987년 구로구청 부정선거 항의 점거 농성사건 등과 연관돼 있다.작품은 현재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과 함께 수십 년이 지났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주점에서 나누는 대화로 불러낸다. 이 또한 월드컵이라는 스포츠 이벤트에 묻힐 수 있는 상황이다.작품은 작은 사건들이 모여서 큰 사건으로 마무리되는 구조다. 술을 마시며 월드컵을 보기 위해 주점을 찾았다가 떠든다고 핀잔을 듣고 쫓겨난 젊은 군인 중 한 명은 복수를 한다며 총을 갖고 주점으로 다시 온다. 그는 의도치 않게 한 사람을 죽인 후 자신도 목숨을 끊는다.작품은 묻는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니냐'고. 또한 우리 사회의 모순과 혼란의 극복이 있어야 미래가 있음을 에둘러 표현한다.공연 후 만난 송용일 극단 십년후 대표는 "배우들이 잘 해주어서 경연 무대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면서 "우리 사회상을 들여다 보는 내용이다 보니 작품이 다소 어려울 수 있었는데, 관객들 반응도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16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제37회 대한민국연극제 극단 십년후의 '냄비' 공연 이후 출연자들이 관객의 커튼콜에 답례하고 있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포스터.

2019-06-17 김영준

[공연리뷰]선우예권 첫 전국 리사이틀 투어 '나의 클라라' 수원 공연

노투르노 바장조등 슈만 작품 조명다양한 사랑의 감정 차분히 풀어내브람스 곡에선 '기교·격렬함' 선사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그가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자 객석의 시선은 그의 손가락에 집중됐다. 차분하게 연주되는 그의 음표는 자유롭게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그려냈다.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고, 아픔과 애통함을 그리기도 했다. 흑백의 건반 위, 그의 열 손가락이 그려낸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관객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물했다.지난 18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첫 전국 리사이틀 투어 '나의 클라라'가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열렸다. 이날 선우예권은 앙코르 무대까지 포함한 110분 동안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이며 국내 음악 팬을 사로잡았다. 클라라 슈만을 조명하는 색다른 레퍼토리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는 특유의 차분함으로 곡을 풀어나갔고, 관객들은 힘찬 박수로 화답했다.그는 가장 먼저 클라라 슈만이 1836년에 작곡한 '노투르노 바장조'를 연주했다. 기존 클래식 무대에서 접하기 힘든 클라라 슈만의 곡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관객의 이목이 선우예권의 손에 집중됐다. 그는 악장에 흐르는 슬프고 애절한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손가락으로 섬세한 감정을 그려내며 곡을 이끌어나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괴로움 속에서 작곡가가 담아낸 슬픔에 젖은 멜로디를 깊이 있게 표현했다. 이어 그는 클라라의 남편이었던 로베르트 슈만이 아내에 대한 사랑을 정열적 선율로 표현한 '판타지 다장조'를 연주하며 관객의 귀를 사로잡았다. 대부분 슈만의 작품에는 곡의 아름다움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이를 끄집어내기 힘들다는 평이 있지만, 선우예권은 구조와 형식보다 '사랑'의 감정에 중점을 둔 작곡가의 내면 세계를 섬세하게 읽어내며, 사랑을 갈구하는 아픔과 쓰라림, 애통함을 연주했다. 마지막은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 바단조'였다. 브람스가 슈만과 머물던 1853년 완성한 이 작품은 까다로운 기교와 격렬한 연주가 매력적인 곡이다. 앞서 특별한 강약 없이 연주를 잔잔하게 풀어나갔다면, 이번 무대에서 선우예권은 자신이 가진 기교와 섬세한 감정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본 공연이 끝난 후 이어지는 커튼콜에 그는 정중한 인사로 화답하며 앙코르곡을 4곡이나 선보였다. 슈만과 브람스의 곡이었다. 앙코르곡을 연주한 후에도 계속되는 커튼콜에 그는 관객에게 정중한 인사를 건네며 멋진 무대 매너를 보여줬다. 무대가 끝나고 로비에는 그의 사인을 기다리는 관객들로 가득 찼다. 그는 꽤 오랜 시간 자신의 연주에 매료된 관객들과 함께했다. /강효선기자 khs77@kyeongin.com, 사진/수원문화재단 제공/아이클릭아트

2019-05-19 강효선

[공연리뷰]인천시립교향악단 올해 첫 정기연주회

채재일,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풍부한 선율 매료교향곡 5번 적극적 기조로 다가선 1악장 설득력 얻어거대한 작품 '묘미' 알리려는 이병욱 감독 의도 해석다소 과장되게 전해진 부분도 있지만 '환호' 이끌어내인천시립교향악단(예술감독·이병욱)의 올해 첫 정기연주회가 지난 5일 저녁 아트센터 인천에서 개최됐다.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초에 있었던 인천시립예술단의 합동 공연으로 인해 예년보다 다소 늦어진 인천시향의 이번 연주회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있을 2019 교향악축제 무대를 대비한 것이기도 했다. 이번 공연의 메인인 말러 '교향곡 5번'으로 교향악축제 무대를 장식할 예정이며, 아트센터 인천을 택한 것도 서울 공연을 앞두고 자신들에게 익숙한 문화예술회관이 아닌 다른 무대에서 청중과 만나려는 것이었다.이병욱 감독의 지휘봉이 움직이자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K.622'가 시작됐다. 인천시향의 정돈된 현의 선율이 공연장을 메웠다. 국내 정상급 클라리넷 주자 채재일이 연주하는 1악장 1주제 또한 적절한 타이밍과 리듬으로 구현됐다. 이 감독과 인천시향도 솔리스트를 배려하며 세밀하게 서포트했다. 영화음악에도 삽입돼 유명한 2악장에서 채재일은 클라리넷 최저음의 음역대를 충분히 울리면서 풍부한 뉘앙스로 곡에 다채로운 표정을 부여했다.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주고받는 대화에선 인천시향 목관주자들의 밝은 색채가 곡에 아기자기함을 불어넣기도 했다. 3악장에서도 독주자는 상체에 반동을 주면서 여러 방식으로 노래했다. 높고 낮음의 음역에 따라 음색과 표현 또한 바뀌면서 모차르트 목관 음악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알려줬다. 유명한 트럼펫 솔로에 의한 셋 잇단 음으로 말러의 5번 교향곡이 시작됐다. 이 셋 잇단 음은 '운명 교향곡'의 동기와 박자 면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성격은 다르다. '운명'에선 상당히 도전적이지만, 말러의 경우는 단지 체념적이며 비관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 감독과 인천시향의 시작은 '운명'과 닮아 있었다. 얼마 전부터 해외 지휘자들이 주로 선택하는 '담백한 말러'와는 거리를 둔다고 예고한 셈이다. 알맞음의 정도를 가늠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적극적으로 다가서서 청중에 거대한 작품의 묘미를 알리려는 지휘자의 의도로 읽혔다. 진폭이 큰 연주로 1악장을 이끌었고, 설득력도 있었다.1악장의 기조를 이어간 2악장에서도 이 감독과 인천시향은 1·2주제 간의 대조와 적절한 템포로 작품을 잘 드러냈다. 하지만, 곡 전체 구성을 염두에 둔 접근과 세밀함에선 아쉬웠다. 2악장에는 이상향을 갈구하는 한 인간의 투쟁과 승리의 예감이 담겨있다. 승리는 의지(Wille)의 표명이다. 악장 중반부 지나서도 이어진 인천시향의 적극적 기조는 다소 과장되게 전해졌다. 이 과장됨이 선명한 극적 효과를 낼 수 있는 여지도 있지만, 과한 음량 속에 작품의 실체가 묻히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마지막 악장에서 이뤄질 진정한 승리를 위해 에너지를 좀 배분했으면 좋았을 것이다.3악장에서 역할이 큰 호른 솔로를 위해 연주자를 아예 일으켜 세우고 시작한 이 감독과 인천시향은 작품의 전환점으로서 이 악장을 제대로 짚어냈으며, 숨 가쁘게 달려온 오케스트라가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4악장에선 적절한 약동감이 더해지며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다. 승리의 클라이맥스로 점철되는 마지막 악장까지 종종 과하다고 여겨지면서 균형적 측면에서 아쉬움을 산 부분은 있었지만, 이 감독과 인천시향은 위풍당당한 연주로 인천 음악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있을 2019 교향악축제 무대에서도 이 감독과 인천시향의 선전이 기대된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이병욱 예술감독과 인천시립교향악단 연주 모습. /인천문화예술회관 제공

2019-04-08 김영준

[공연리뷰]경기도립국악단 k-오케스트라 챌린지

전 세계 작곡가에 '창작곡' 공모여섯 곡 전곡 초연, 새로운 도전하와이대 교수의 가야금 협주등韓전통음악 '완성도+특색' 무대도립국악단 '저력 확인'도 성과경기도립국악단은 지난 17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여섯 곡 전곡 초연이라는 자칫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완성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전 세계 작곡가를 대상으로 국악관현악 창작곡 공모를 진행하는 획기적인 아이디로 진행되었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경기도립국악단은 선정된 여섯 곡을 하나씩 차분히 초연했다. 2시간을 초집중 연주를 끝낸 연주 단원들은 발그레한 볼과 흥분된 표정으로 빙그레 웃었고, 함께한 동지들만이 느끼는 행복한 기운이 객석으로도 전해졌다. 힘든 고비는 뿌듯한 성취감을 선사한다는 불변의 이치를 확인했다. 이번 음악회의 성과는 크게 둘이다. 먼저 K-POP, K-드라마가 중심이 되는 소비중심의 한류 열풍이 예술 음악으로, 특히 한국전통음악 관현악 음악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번 사업으로 세계의 작곡가들이 한국전통음악 오케스트라에 관심을 갖고 한국음악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조만간 서양 현대음악계에도 한국음악의 미학과 매력이 소개될 전초전이 되기 때문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초연된 여섯 곡의 음악이 모두 특색이 있어서 좋았던 음악회이다. 하와이대학교 교수인 작곡가 Donald Womack(도널드 워맥)과 Thomas Osborne(토마스 오스본)의 한국음악 사랑은 고스란히 음악 속에 담겨있었다. 토마스 오스본의 거문고 협주곡 '환생'은 거문고를 사랑하는 작곡가의 마음을 담은 곡이다. 논리적인 점층적 구조의 관현악 속에서 넘나드는 거문고 연주자 허익수(추계예대 교수)의 연주가 압권이었다. 한국 사람보다 한국음악에 대한 이해가 높은 해외 작곡가 도널드 워맥의 가야금 협주곡 '무노리(Mu Nori)'는 한국의 무속 장단과 에너지를 극대화한 작품으로, 응집된 장단과 에너지의 폭발을 국악관현악과 가야금으로 실현하였다. 가야금 연주자 정길선의 작고 가녀린 왼손은 다소 과하다 싶게 강한 농현으로 모든 음을 장식하였다. 가야금의 독보적인 매력인 농현을 자신의 작품에서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이 있었다. Song yang(송양)의 중국 고쟁 협주곡 '리플리(Ripple &逸)'는 협연자 Liying Peng의 화려한 테크닉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관현악을 능숙하게 다루는 젊은 작곡가의 노련함에 탄복했다. 한국의 아리랑과 사물놀이, 그리고 산조의 선율과 중국의 민요 가락이 2중으로 교차되어 나타나는 이 음악은 한발 떨어져 관조적으로 해석한 점이 흥미로웠다. 작곡가 라재혁의 '바다는 검고, 파도는 희다'는 마치 현대 미술관의 설치미술과 음악을 만나는 전혀 새로운 음악기법을 보여준 작품이다. 연기와 노래를 전공한 소솔이가 소리와 퍼포먼스로 무대 위에서 국악관현악의 미니멀한 음악과 어우러졌고, 작곡가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공연의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다. 작곡가 송정의 개량 퉁소와 개량대금 협주곡 '종횡'은 함경도 북청사자놀이의 음악과 청성자진한잎 선율로 낯선 현대음악에 익숙함으로 숨통을 트이게 한 곡이다. 협연자 최민의 개량대금은 한국의 대나무 대금을 북한에 보내서 북한의 기술로 여러 개의 건반을 달아 완성된 악기이다. 대금 연주자 유경은의 협연으로 연주된 김대성 작곡의 대금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해원'은 대금연주 기법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음악이다. 이번 경기도립국악단 국제음악작품공모 콘서트는 국제적인 수준의 작품이 발굴되었고, 경기도립국악단의 저력을 확인했다는 점은 의미 있는 성과이다. /음악평론가 현경채지난 17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여섯 곡 전곡 초연이라는 자칫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완성한 경기도립국악단. /경기도국립국악단 제공음악평론가 현경채

2018-11-19 현경채

[공연리뷰]인천시립교향악단 제376회 정기연주회

'민둥산의 하룻밤' 현패시지, 유쾌·긴장감 공존 인상적메인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목관 연주 서정성 잘드러나작품 전체 시점서 선율선 배분·구축 아쉬움으로 남아가을 시즌을 여는 인천시립교향악단(이하 인천시향)의 제376회 정기연주회가 지난 14일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졌다.금노상이 객원 지휘한 이번 연주회의 레퍼토리는 무소륵스키의 '민둥산의 하룻밤'과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Op 43', '교향곡 2번, Op 27' 등 러시아 작품들로 구성됐다.'민둥산의 하룻밤'은 작곡가 사후 림스키-코르사코프가 편곡한 평소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판본으로 연주됐다. 금노상과 인천시향은 피아니시모의 현(String) 패시지에 의한 도입 이후 점진적 크레센도로 구축돼 제시되는 주제까지 적절한 셈여림과 리듬감을 보여줬다. 작품의 특성상 리듬의 진폭이 큰 데, 지휘자는 적극적으로 다가서서 구현했다. 목관 주자들의 적절한 음색 부여도 듣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특히 클라이맥스 형성 직전의 클라리넷과 바순의 유쾌하면서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패시지가 인상적이었다. 쓸쓸한 코다에서 가세하는 트럼펫의 음량이 과도하게 여겨졌지만, 상념을 깨뜨릴 정도는 아니었다.올해로 '민둥산의 하룻밤'의 작곡가 오리지널 버전이 출판된 지 50주년을 맞는다. 이 초고는 작곡가 생전은 물론 사후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사장되어 있었다.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생전에 이 작품의 오리지널 버전 신봉자였다. 이어서 수년 전부터 다니엘 하딩 등 젊은 거장들의 초고 연주 추세가 늘고 있다. 오케스트레이션에 정통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편곡판이 일관성으로 인한 호소력이 짙은 게 사실이지만, 오리지널 버전은 거칠고 투박한 '날 것'으로서 당대를 뛰어넘는 작곡자의 천재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천에서도 자주 연주됐으면 하는 바람이다.연주자이자 교육자로서 국내 정상급 커리어를 쌓고 있는 강충모가 무대에 올랐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에 의해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서주가 연주되고 테마가 제시됐다. 피아노 음색이 오케스트라에 간섭받으면서 평이하게 청자에게 전달됐다.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변주들에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적절한 보폭과 대립 속에서 음악을 주조해 나갔다. 작품의 특징인 화려한 색채와 기교가 잘 드러난 연주였지만, 세밀한 협주적 요소가 발휘되지 못하며 내재한 재치와 유머까지 구현하진 못했다.이날의 메인 프로그램인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은 노래와 춤, 행진곡 등 무수한 유형의 음악 양식이 함유된 이 작품에서도 지휘자는 적극적으로 다가섰다. 작품 전체를 관망하면서 선율선들의 배분과 구축에 관여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괜찮은 접근법이었다. 첫 악장 총주에서 금관은 단단했으며, 팀파니도 매섭게 가세했다. 스케르초 악장의 리듬감도 괜찮았고, 완서악장에선 클라리넷을 비롯한 목관 연주자들의 호연으로 서정성이 잘 드러났다. 마지막 악장의 화려한 클라이맥스에 이어지는 단호한 마무리까지 인천시향은 열연을 선보였다. 이어지는 청중의 커튼콜에 앙코르곡으로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 1번'을 들려줬다.인천시향은 올해 초부터 이번 연주회까지 7명의 각기 다른 지휘자와 다채로운 작품들을 연주해 인천 음악팬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수년 사이에 일신한 모습을 보여준 인천시향이 최근 선임된 이병욱 신임 예술감독과 함께 보여줄 10월 정기연주회가 벌써 기대된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지난 14일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제376회 인천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 직전 리허설 모습. /인천문화예술회관 제공

2018-09-17 김영준

[공연리뷰]독일 '도이치 방송 오케스트라(Deutsche Radio Philharmonie)' 부평아트센터 공연

800석 중형규모 무대 '인키넨의 DRP' 진면모 바로 느껴져'러 바이올린 거장' 레핀 협연 화려한 활 놀림 '완벽한 조화'에그몬트 서곡·브람스 교향곡 특유 음색 표출 '감동' 선사 '중형 극장에서 접한 초대형 음악 경험'.독일 정상급 방송 교향악단 중 하나인 도이치 방송 오케스트라(Deutsche Radio Philharmonie ·이하 DRP)가 지난 29일 저녁 인천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 인천의 음악팬들과 만났다.베토벤 '에그몬트 서곡'과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2번'(협연·바딤 레핀),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선보인 이 날 연주회에서 핀란드 태생의 지휘자 피에타리 인키넨이 이끄는 DRP는 자신들의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더욱이 1천500~2천석에 이르는 대규모 공연장이 아닌 800여석 규모의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 열린 연주회여서 연주단체의 진면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에그몬트 서곡'에서 인키넨과 DRP는 중후한 사운드를 뽐냈다. 유장한 현의 선율에 기반을 둔 균형감 잡힌 악기군에서 표출되는 소리는 작품이 갖는 묵직함과 함께 장대한 서사를 명확히 짚어냈다. 이날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기 충분했다.11세에 비에냐프스키 콩쿠르 우승에 이어 17세 때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던 바딤 레핀은 40대 중반의 '러시아 거장'으로 변모해 인천을 찾았다. '압도적 서정성'을 뽐내는 이 작품에서 레핀은 적절한 프레이징 속에서 명확한 선율선을 제시하며 청자를 이끌었다. 이를 서포트하는 인키넨과 DRP도 알맞은 음색과 음량으로 작품을 주조했다. 느린 악장에 이어 유머러스한 마지막 악장까지 현란한 활 놀림으로 다양한 음색을 펼쳐 보인 레핀의 수연에 DRP 관악군의 색채감, 타악의 적절한 타이밍까지 어우러지며 청중의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이어지는 커튼콜에 레핀은 DRP 현 주자들의 반주(피치카토) 속에 파가니니 '베네치아의 사육제' 중 일부분을 앙코르곡으로 들려줬다.인터미션 후 이어진 브람스 '교향곡 4번'에서 DRP의 장중한 사운드는 본격적으로 표출됐다. 1악장에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세련되면서도 세밀하게 하행하는 3도 음정의 제 1주제를 세공했다. 이를 통해 작품의 형태를 차근차근 구성해 나갔다. DRP의 울림은 브람스에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다만 1악장 절정을 앞두고 서서히 고조되는 부분에서 악구를 다소 짧게 가져가는 바람에 선율선이 끊기는 아쉬움이 있었다. 강박에 지나친 악센트를 부여하는 형태였는데, 극적인 절정을 구현하려는 지휘자의 의도로 읽혔다. 2악장에선 적절한 템포 속에서 미세한 선율의 흐름과 음의 울림을 통해 회한을 잘 표출한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스케르초 풍의 3악장을 지나 이어진 마지막 악장은 바흐의 칸타타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비장한 주제 선율을 제시하고 30회에 걸쳐 변주하는 대위법적으로 높은 수준에 올라있다. 인키넨은 확실한 강약 템포의 설정과 변화로 이 악장을 아기자기하게 주조했다. 여기에 DRP 목관군의 아름다움과 금관군의 힘이 더해져 작품의 뼈대를 확고히 구축해 냈다. 청중의 이어진 갈채에 앙코르로 들려준 브람스 '헝가리 춤곡 5번'과 최영섭 '그리운 금강산' 또한 연주회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 선곡이었다.연주회 후 레핀과 인키넨은 팬 사인회에도 참여했다. 두 연주자는 100여명의 음악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사인을 해주며 또 다른 추억을 선사했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지난 29일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 열린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과 도이치 방송 오케스트라의 협연 모습. /부평구문화재단 제공

2018-05-31 김영준

[공연리뷰]인천시립교향악단 제372회 정기연주회 '슈만'

격렬한 첫마디로 시작한 만프레드 서곡 즉흥적인 열정보다 충실하게 음 구현해리듬감 돋보인 김다솔의 '피아노 협연' 객원지휘자 이병욱과 만족스러운 호흡새의 지저귐같은 목관소리 즐거움 더해 인천시립교향악단(이하 인천시향)은 제372회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을 꽃이 만개한 절기에 맞춰 낭만적이며 매력적인 감성으로 가득한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의 작품으로만 구성했다. 예술감독 자리가 공석인 인천시향은 지난 13일 저녁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이번 연주회에 객원지휘자로 이병욱을 초청했다.'만프레드 서곡 Op 115'의 격렬한 첫 마디에 이어 느린 서주가 펼쳐졌다. 제 1주제가 발전하기까지 이병욱의 손끝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같이한 지휘자와 악단의 관계가 아니어서인지 지휘자는 긴 프레이즈의 악구를 지양했다. 때문에 '즉흥적 열정'보다는 충실하게 한 음 한 음을 구현했다. 청중이 아닌 단원 입장에서 본다면 이 같은 모습은 지휘자가 친절하게 단원들을 이끌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특히 명쾌한 바통 테크닉과 주요 부분에서 반박 정도 예비 박을 두면서 오케스트라의 일치된 모습을 강조하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서곡'임을 감안할 때 다음 프로그램들을 기대하게 만든 연주였다.슈만의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인 'a단조 Op 54'가 김다솔의 협연으로 이어졌다. 이 작품은 슈만 특유의 '환상곡풍의 협주적 완결체'로 평가받는다. 피아노 독주에 오케스트라가 반주하는 당대 협주곡 형태가 아닌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하나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오케스트라는 피아노에 종속되지 않는다. 슈만을 잇는 브람스의 협주곡에서도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진다. 김다솔과 인천시향도 이 부분에 집중했다. 1악장 전개부의 호른과 어우러지는 피아노의 경과구에서 호른의 강세가 다소 강해서 피아노의 음이 다소 묻히는 순간이 있었지만, 탄탄한 목관의 색채를 기반으로 연주가 이어질 수록 오케스트라 전체가 수연을 보여주며 곡을 주조했다.1악장 카덴차에서 여실히 드러났지만, 김다솔의 연주는 정확한 리듬감이 수반된 안정된 테크닉으로 낭만적 선율을 잘 드러내 주었다. 이와 어우러지는 이병욱과 인천시향의 사운드도 만족스러운 것이었다.예열을 마친 이병욱과 인천시향은 이날의 메인 프로그램인 슈만의 '교향곡 1번 Op 38, 봄'에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갔다.말러 음악에 나타나는 삶과 죽음의 이중성(Ambivalence)은 슈만의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조울증을 앓은 슈만은 이 작품에서도 부제로 '봄'을 달았지만 마냥 화창하고 꽃이 만발한 '봄'은 아니다. 1악장의 환희는 서정적 간주에 섞여 이내 희미해지는 등 슈만이 고전적 교향곡 형식으로 발표하기 전에 붙였던 '봄의 시작'으로 고스란히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이병욱과 인천시향은 작품 전체의 흐름인 봄의 시작에서 마지막 전원의 축복까지의 전체를 구축해놓고 세부적으로 묘사해 나가는 형태로 작품을 주조했다.약동하는 봄의 이미지를 안정적 음색으로 그려낸 첫 악장에 이어 느린 악장에서도 쉼 없이 간섭하는 보조 음형들을 통한 흥분을 무난히 표출한 인천시향은 스케르초 악장도 적절한 리듬감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악장의 멀리서 들리는 호른과 새 소리를 연상시키는 목관의 음색도 적절해서 작품을 감상하는 데 즐거움을 더해줬다. 밝고 힘찬 코다로 마무리된 이날 연주에 청중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이병욱과 인천시향은 청중의 어이지는 커튼콜에 그리그의 '두 개의 슬픈 선율 Op 34' 중 두 번째 곡인 '라스트 스프링(Last Spring)'을 들려주며 '봄'의 향연을 마무리 지었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인천시립교향악단 연주 모습. /인천문화예술회관 제공

2018-04-16 김영준

[공연리뷰]이순재·정영숙 주연 연극 '사랑해요 당신'

아내이자 엄마의 변화 가족들 혼란고령화 사회 우리집 이야기 공감대가천대 길병원 제작지원·의학자문지난 16일 오후 3시 서울 동숭동 예그린씨어터 무대에 오른 연극 '사랑해요 당신'은 아내이자 엄마로 40년 넘게 살아온 한 여성이 치매증상을 보이면서 평범한 가정에 찾아온 변화를 그려낸다.이 작품이 인상적이었던 점은 연극을 감상하던 200여명의 관객이 연극 내내 훌쩍이며 눈물을 닦아냈다는 것이다. 평범한 가정에 찾아온 변화를 다룬 이야기에 대부분의 관객들이 눈물로, 어깨를 들썩이는 흐느낌으로 공감한 이유는 뭐였을까?그것은 이순재와 정영숙 등 설명이 필요없는 두 배우의 연기력이 가진 호소력 때문이기도 했고, 또 너무나 고요하고 평범한 가정에 갑자기 불어 닥친 당혹스러운 상황이 만들어내는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했다.그 당혹스러움은 이미 내가 겪었거나, 아니면 지금 겪고 있거나, 내가 곧 겪게될 지도 모를 이야기였다.연극을 보는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남의 집'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집'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이미 오래전에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한국사회에서 이 이야기는 절대로 남의 이야기일 수 없었다.연극 무대가 펼쳐지는 무대 공간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가정집의 모습이다. 이 집에는 교단을 떠나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하루를 보내는 남편(이순재)과, 감정표현에 인색한 남편과 자녀들과의 소통에 힘겨워 하며 우여곡절 끝에 자녀를 출가시킨 아내이자 엄마인 여성(정영숙)이 살아간다.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는 화분에 물을 준 것을 금세 잊어버리고 또 물을 주려 하고, 남편이 장어탕을 사왔다며 밥을 하지 않아도 좋다며 기뻐한 것도 잊은 채 또 된장찌개를 끓이면서 변화가 나타난다. 병은 점점 심해져 자녀를 몰라보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알아보지 못하고 놀라는 지경에 이른다.이 변화를 가장 불편해하는 것은 환자 가족들이다. 아들은 혼자 엄마의 간호를 도맡은 아버지를 향해 어머니를 방치하지 말고 요양원에 보내드리라고 질책하지만, 아버지는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야말로 환자를 방치하는 '고려장'이나 다름없다고 맞서며 또 갈등이 빚어진다.이 모습을 지켜본 관객들이 평범한 일상에 평범하지 않은 일이 생기고 나면 주변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또 당연하게 느껴지던 것이 사라지고 나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됐으리라는 것은 자명해 보였다.특히, 이 작품은 뇌 질환에 큰 관심을 가져온 가천대 길병원이 작품 제작을 지원하고 극 전반에 걸쳐 의학자문을 해 극의 리얼리티를 높였는데, 이러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가천대 길병원이 제작을 지원한 연극 '사랑해요 당신'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동숭동 예그린씨어터에서 공연돼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극단 사조 제공

2017-04-17 김성호

[공연리뷰]강량원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 부임 첫 작품, 연극 '열하일기만보'

강감독 '작품 제작과정 함께' 약속고전평론가 초청 '예습시간' 가져"앞으로 꾸준히 볼 것" 관객 호응"인천시립극단의 차기 작품을 더 기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인천시립극단의 공연을 앞으로 꾸준히 챙겨 볼 생각이다.""연출가 한 사람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한 공연이었다.""이것이 진정 내가 알던 인천시립극단의 배우와 감독이 내놓은 작품이 맞는지 보는 내내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지난 7일부터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린 연극 '열하일기만보'를 지난 12일 관람하고 극장을 빠져나오던 관객들의 반응이다.1년 가까이 공석이던 인천시립극단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강량원 연출가의 첫 공연이 성공적으로 막을 올린 것이다.적어도 이번 공연을 본 관객만큼은 시립극단이 인천문화예술회관 무대에 공연을 올리는 날 다시 극장을 찾아줄 것이 분명했다.'한 번 오면 계속 찾고 싶은 극장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강 예술감독이 인천시민과의 약속을 지켜냈다.그는 취임 초 가진 인터뷰(2016년 12월 21일자 16면 보도)에서 공약을 남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순하고 명료했는데, 그 하나는 관객인 '모든 인천시민'을 제일 먼저 생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공연을 직접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린 관객까지 만족하게 하기는 어렵겠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막상 공연이 시작되고 나니 정작 크게 웃고 손뼉 치며 인상적인 '리액션'을 보냈던 관객은 오히려 나이 어린 친구들이었다.그는 또 공공극단인 시립극단이 만들어내는 모든 작품은 모든 시민을 위한 '공공재'임을 잊지 않겠다며, 공연당일 갑작스레 연극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을 만들고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을 펼쳐 보이고 시민들과 함께하겠다는 약속도 했었다.극단은 지난달 11일 극단 연습실 문을 활짝 열고 고미숙 고전평론가를 초청해 시민들을 위한 인문학특강을 하고 작품을 미리 예습할 시간을 주며 약속을 지켰다.이번 작품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토대로 배삼식 작가가 쓴 희곡을 무대화했다. 작품은 연암이라는 말(馬) 한 마리가 갑자기 인간의 말(言)을 하며 벌어지는 한 마을의 '기이한 이야기'를 그리며 '현실에 얽매이지 말고 떠나라'고 강조했다.시립극단 단원들은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그동안 해 오던 연기 방식을 버리고 신체 행동이 위주가 되는 새로운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체력을 쏟았다고 한다. 강 예술감독 역시 '대학로 관객'을 타깃으로 한 '실험성'을 버리고 평범한 시민들에 집중했다.각자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인천시립극단의 미래가 진심으로 기대된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2017-04-12 김성호

[공연리뷰]인천시립교향악단 제362회 정기연주회

적절한 음 배분, 비극적 요소 표출호른 김홍박과의 '협주'도 인상적포스터 '부르크너' 오기는 옥의 티인천시립교향악단(이하 인천시향)의 제362회 정기연주회가 지난 7일 저녁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렸다.프로그램은 글리에르의 '호른 협주곡 B플랫장조'와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E장조'로 꾸며졌다.경인일보가 인천시향 50주년을 맞아 그 간의 레퍼토리를 분석했던 기사(2016년 6월 2일자 19면 보도)에 따르면, 브루크너의 작품이 인천시향의 메인 레퍼토리로 구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인천시향의 정치용 예술감독은 지난해 부임 이후 R.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를 인천 초연했으며, 올해 브루크너의 교향곡으로 인천의 음악팬들을 맞이한 것이다.이번 연주회는 보다 다채로운 작품들을 접하고 싶어하는 지역 음악팬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줬다. 또한, 고전과 낭만주의 음악 뿐만 아니라 후기 낭만주의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도 인천시향이 안정적으로 연주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자리였다.2015년 오슬로 필하모닉 호른 수석으로 선임된 김홍박이 협연한 글리에르의 협주곡에서 정 감독과 인천시향은 악기 간의 밸런스를 적절하게 유지하며 독주자를 서포트했다. 적절한 타이밍의 제시부에 비해 발전부에서 오케스트라와 미묘하게 오차를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김홍박은 1악장의 카덴차를 비롯해 서정적인 2악장, 리드미컬한 3악장까지 안정적 연주와 음색으로 호른의 매력을 알려줬다. 특히 곡을 리드해 나가는 입장이었음에도, 요소요소에서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지면서 '협주'의 의미를 일깨워준 부분이 인상적이었다.인천시향은 브루크너 교향곡 7번에서 작품의 든든한 기둥이 되고, 주제를 제시하며 작곡가 특유의 색채를 표출하는 금관과 목관의 수연으로 청중을 즐겁게 했다. 정 감독과 인천시향은 1악장에서 안정적 앙상블 속에 작품을 주조했다. 악장 말미 악기군 간에 적절한 음 배분을 통해 구현한 스트레토(Stretto)는 이어질 악장들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2악장 초반 저현에 바그너튜바의 음색이 다소 묻히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악장의 클라이맥스까지의 과정이나 이어진 총주 등 호른과 함께 목관 파트의 적절한 음색이 더해지면서 비극적 요소가 잘 표출됐다. 3악장 스케르초의 뒤집어진(?) 3박자는 연주하기 까다로운 부분인데, 정 감독과 인천시향은 적절한 악센트로 구현했으며, 4악장 코다를 앞두고는 약간 빠른 템포를 통해 극적 고양감을 부여하면서 연주를 끝냈다. 정 감독과 인천시향은 청중의 이어지는 커튼콜에 드뷔시 '달빛'의 관현악 버전을 들려줬다.연주회 후 브루크너 작품의 정점에 올라 있으며, 후기 낭만주의 음악 가운데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교향곡 8번'을 정 감독과 인천시향이 연주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한편, 이번 정기연주회의 '옥에 티'는 연주 외적인 부분에 있었다. 이날 로비에서 판매된 연주회 팸플릿에는 제대로 표기됐지만, 예술회관 외부의 공연 선전용 휘장과 회관 내부의 포스터에는 작곡가의 이름이 '부르크너'로 표기됐다. Bruckner는 후기 낭만주의 시기의 위대한 작곡가이지만, Burckner는 아니다. 연주회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연단체 프런트들은 모든 부분에 세밀하게 신경 써야 한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제362회 정기연주회에서 안정적인 연주력을 발휘한 인천시립교향악단. /인천시립교향악단 제공

2017-04-09 김영준

[공연리뷰]인천 극작가 함세덕의 '닭과 아이들'

올해도 인천의 극작가 함세덕(1915~1950)의 작품과 어김없이 만났다.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좋은 작품을 선보여온 지역극단 떼아뜨르 다락이 인천이 낳은 극작가 함세덕의 연극을 꾸준히 올리겠다는 약속을 3년째 지킨 것이다.떼아뜨르 다락은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2일까지 인천 중구 신포동에 있는 다락소극장에서 함세덕의 연극 '닭과 아이들'을 무대에 올렸다.이 작품은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함세덕의 여러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읍에서 멀리 떨어진 산촌' 마을에서 닭을 키우며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다.'이뿐이'와 오빠 '석이' 그리고 '아버지'와 이웃집 소녀 '옥례', 닭 장사 '덕진', 이웃인 '느티나뭇집 할머니' 등 6명이 등장했다.극단 다락은 이 작품을 1·2차로 나눠 그려 보이기로 했다. 이번 1차 공연의 목표는 '원작 그대로' 대본을 펼치듯 풀어내는 것이 목표였고, 다음 공연에서는 각 인물이 처한 현실과 바람을 더 세밀히 극화시킬 계획이라고 한다.목표 대로 이번 공연은 원작 그대로 그려내는데 충실했다. 무대 조명이 밝아지고 이뿐이가 무대에 설치된 함세덕의 희곡집을 펼치자 일제시대인 1930년 인천 한 산골마을 아이들의 어떤 하루가 펼쳐진다.이 이야기 속 닭은 아이들에게 생계를 이어가게 해주는 소중한 존재이면서도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이쁜이네 가족에게는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달걀을 선물하지만, 때로는 이웃집 할머니네 밭을 망쳐놓아 이뿐이를 곤란에 빠뜨렸다. 닭 장사인 덕진이에게도 유일한 생계수단이지만 무거운 닭장과 매번 닭 값을 가로채는 술 주정꾼 아버지는 부담이다.이뿐이는 자신을 돌봐주지 못하는 아버지를 피해 축항(인천항)으로 떠나려고 결심한 덕진이의 마지막 남은 닭을 사들이는데, 덕진을 응원하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극의 마지막은 부모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떠나는 덕진이를 모든 등장인물이 배웅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어린 덕진의 가출을 응원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지역 연극계의 불황과 침체속에서도 극단 다락은 2015년 '해연', 2016년 '무의도기행'에 이어 이번 '닭과 아이들'까지 벌써 3번째 함세덕의 작품을 무대화하고 있다.인천을 대표하는 이야기 상품으로서의 가능성을 높여가고자 하는 그들의 도전을 응원할 수 밖에 없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2017-04-03 김성호

[공연리뷰]'미디어 퍼포먼스 뮤지컬, 타이거 헌터'

신미양요 다룬 소설 '총의울음' 원작'인천이야기' 알리려 지역단체 제작민중가요풍 선율·퍼포먼스 볼거리"아 슬피운다 강화여. 기억하리 슬픔이여 잊지 못할 총의 울음. 아 그 아픔이여~"(뮤지컬 타이거 헌터, '피의 울음' 가운데)지난 10~12일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린 '미디어 퍼포먼스 뮤지컬, 타이거 헌터'는 '지역의 이야기를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절절히 묻어나는 작품이었다.이 공연은 1871년 인천 강화도 앞바다에서 신식 무기와 군함을 앞세워 개항을 요구하며 들이닥친 미국과 조선이 충돌한 신미양요를 다뤘다. 손상익 작가의 소설 '총의 울음'이 원작이다.결과적으로 대패했지만 당시 강화도에 상륙하려는 미국 군대에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맞서 싸운 조선의 '범포수(호랑이 사냥꾼)'가 있었고, 그들을 잊지 말자는 것이 이번 공연의 메시지였다.강화 상륙에는 성공한 미군이었지만 조선 민초와 범포수의 기개까지 꺾지는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군은 강화도를 철수했다.이 공연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전문 공연단체인 '한울소리'가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모한 '지역브랜드 상설공연' 사업에 선정됨에 따라 지원금을 받아 제작됐다.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박창규 한울소리 대표는 "인천에 이런 숨겨진 얘기들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공연에는 10명의 배우와 4명의 앙상블이 출연했고 우리나라 '민중가요'를 연상케 하는 선율 12곡의 노래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이야기를 끌고 갔다.무대는 사전 제작된 영상으로 대체됐고 장면 사이사이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무용 퍼포먼스가 삽입됐다. '인천의 이야기를 기억하자'는 분명한 주제 아래 연극과 합창, 무용, 영상이 '갈라쇼'처럼 펼쳐졌다.최근 인천시는 외국 관광객에게 지역을 알리는 대표 콘텐츠로 지역과 연관이 불분명한 '넌 버벌 퍼포먼스'를 도입해 해마다 3년 동안 30억원 가까운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참패했다.지역 주민들 조차 외면하는 공연 콘텐츠를 관광객에게 볼거리라고 내세우니 찬밥신세를 면치 못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명분과 실리 모두 얻지 못했다.'볼만한 공연 콘텐츠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 인천시였지만, 볼만한 공연 콘텐츠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번 작품에는 1억원의 지원금이 투입됐다. 3년 동안 인천의 이야기를 담은 30개의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었단 얘기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한울소리 제공

2017-03-13 김성호

[공연리뷰]창작음악극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

창작음악극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을 올해도 만났다. 감동은 여전했다. 올해는 특별히 서울공연으로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관객을 만났다.인천의 부평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문화콘텐츠가 이제 다수에게 감동을 줄 작품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 작품은 부평이 명실상부하게 '음악도시'임을 더욱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부평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꿈'이다. 한국전쟁 직후의 살기 어려웠던 시절, 미군 부대 근처에 살았던 사람들의 얘기다.주인공 용생(정욱진, 박화홍)은 부대 근처의 클럽공연을 보게 되고 기타로 음악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키운다. 그동안 접하지 못한 음악과 만나며 새로운 꿈을 갖게 된다. 주인공 용생의 첫 사랑은 클럽의 여가수로 연상인 연희(이지은)다. 가난한 법대생 용국(안덕용), 간호사를 꿈꾸지만 오빠를 위해 공장에 다니는 용미(이지은), 전쟁에 남편을 잃고 꿋꿋이 살아가는 어머니(이경미)도 있다. 금복(이하린)·은복(김나희) 자매는 부잣집 '식모'로 팔려갈지 모를 운명이지만 언젠가 자신들도 '김시스터즈'가 될 것이라는 꿈에 산다.작품은 이런 등장인물과 함께 당시 매스컴을 통해서 한국사회에 널리 퍼지기 시작한 음악들을 자연스럽게 배치한다. 동시에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노래와 춤이 얼마나 큰 위안과 희망이 되고 있는 지를 알려준다.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 노래는 이른바 '올드팝'이다. 이런 노래들은 바로 삼능(부평)을 중심으로 미8군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에 의해서 한국에 수용됐고 그들의 탁월한 음악성으로 인해 한국 대중음악이 성장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보면 그 시절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K-POP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얘기도 가능해진다. 부평이 한국 대중음악의 중요한 거점이었음을 확실하게 해주고 있다.이 작품에는 그 시절에 불린 '따오기' 등 우리 동요와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 '노란샤스의 사나이' 등의 가요도 들을 수 있다. 특히 배우들의 노래가 수준급으로 음악극에서 음악감독(이경화)의 역할이 얼마나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지를 생각하게 한다.이 작품은 해마다 12월에 보기 딱 좋은 작품이다. 거기엔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다. 힘겨운 시절일수록 음악이라는 것이 삶에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 지를 알려준다. 음악을 통해서 꿈을 꾸는 착한 사람들의 소박한 진정성이 깊게 배어있다.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에서 듣게 되는 'Too Young' (냇킹콜 노래)은 언제나 어디서나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주는 사랑과 꿈의 메시지가 된다. 이 작품을 꼭 보기를 권한다. 당신의 꿈과 사랑이 영원히 유효하다는 걸 당신에게 일러줄 거다./윤중강 음악평론가'당신의 아름다운 시절' 한 장면.윤중강 음악평론가

2016-11-30 윤중강

[공연리뷰] 무의해변서 펼쳐진 함세덕의 '무의도 기행'

인천의 극작가 함세덕의 연극 '무의도 기행'이 지난 13일 오후 이 작품의 배경인 인천 중구 무의도 해변 특설무대에서 열렸다. 바다가 무서워 배를 타지 않으려는 한 소년과 그를 기어코 바다에 내보내려는 못난 어른들 사이의 서사가 밤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졌다.함세덕을 재조명하기 위해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무의도아트센터가 개최한 '제1회 무의도 청년 함세덕 연극 페스티벌'의 둘째 날 공연이었다.손민목(주부 역), 방용원(낙경 역), 이미나(공씨 역), 이병철(주학 역), 조황래(천명 역) 등 10명의 배우가 출연했고 극단 다락의 백재이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무대는 여러모로 악조건에서 준비됐다. 배우와 스태프는 공연 준비 내내 모래 위에서 더위와 체력전을 벌였다. 이상고온으로 조명, 음향 장비마저 오류가 발생해 리허설 없이 연극을 시작해야 했다.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열대야 만큼이나 뜨거웠다. 대중에게 낯선 함세덕의 작품임에도 관객들은 모래바닥 객석에서 1시간30분 동안 작품에 몰입하는 것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화답했다.연극이 끝난 뒤 마련된 함세덕 연구자인 서연호 고려대 명예교수를 초청한 토크 콘서트에서도 관객들은 서 명예교수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질문하며 자리를 지켰다.서연호 교수는 "한 청년의 미래를 가꾸기보다 청년의 삶을 각자의 욕심에 이용하려는 어른들의 모습이, 작품이 발표된 1941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을 정도로 무섭게 닮아있다"며 "인천이 낳은 함세덕을 조명하고 알리는 행사를 계속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2016-08-15 김성호

[공연리뷰] 인천시립교향악단 콘서트 오페라 '마술피리'

인천시립교향악단(이하·인천시향)이 콘서트 오페라 '마술피리'로 방학·휴가·가족 등을 키워드로 내세운 '핫섬머시즌'(7~8월)의 문을 열었다.지난 22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인천시향의 콘서트 오페라 '마술피리'는 이번 여름을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계절로 꾸미겠다는 의도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연주회였다.모차르트가 남긴 마지막 오페라인 마술피리는 이야기는 길고 복잡하지만 요약하면 이렇다. 밤의 여왕의 부탁으로 마술피리를 받아 든 왕자(타미노)가 새잡이(파파게노)와 함께 악당(자라스트로)에게 사로잡힌 밤의 여왕의 딸인 공주(파미나)를 구하러 간다. 알고 보니 악당은 파미나의 아버지로 진짜 악당은 밤의 여왕이었다. 왕자는 결국 밤의 여왕의 세계를 무너트린다.'마술피리'는 모차르트의 다른 오페라와 비교해 남녀노소 누구나 재밌고 쉽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그래선지 이날 어린이 관객들이 많았다.시향의 이번 공연은 연출과 무대미술, 의상, 조명 등이 생략된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꾸며졌다. 6명의 주연 성악가와 12명의 조연이 다역으로 출연했다. 정치용 예술감독의 지휘에 팀파니·첼레스타가 각 1대,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바순·호른·트럼펫이 2대, 트롬본이 3대, 콘트라베이스 4대, 비올라·첼로 6대, 바이올린 18대 등 51명의 연주자가 함께했다.이번 연주회는 정식 오페라가 아닌 약식으로 열렸기 때문에 반쪽짜리 오페라로 끝날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관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출연진들이 노래만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율동과 연기를 곁들이고, 한국어로 대사를 하는 등 오페라의 극적 재미를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주효했다.초교 1, 3학년 자녀와 함께 공연을 봤다는 한 관객은 "시향 공연이 처음이지만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의 재미를 모두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며 "앞으로 온 가족이 시향 팬이 될 것 같다"고 했다.2시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성악가를 서포트하는 인천시향을 보는 것도 색다른 광경이었다. 정치용 예술감독은 "성악가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는 자리에서 긴 시간 집중력을 가지고 연주하는 일이 단원들에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시향이 저력 있는 오케스트라로 성장하는데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인천시립교향악단 제공

2016-07-25 김성호

[공연리뷰] 수원시립공연단 창작뮤지컬 '정조-만천명월주인옹'

왕위에 오른 정조의 첫 일성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였다. 정조는 생전의 아버지의 뜻을 잊지 않고 그가 꿈 꾼 세상을 찾아나섰다. 아버지는 백성은 곧 물이라 했다. 정조는 '물의 근원'을 찾으려 한다.무고한 아비의 죽음을 목격한 정조는 노론으로 토막난 세상에 복수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선악 구도가 분명하게 구성된 가운데 사도세자의 뜻이 사라지지 않고 극을 끌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수의 날이 겨눈 것은 인간의 목숨이 아니다. 아버지의 못 이룬 꿈에 서린 한을 겨눈다. 정조는 물의 근원을 찾아냄으로써 한을 베어낸다. 그의 개혁과 애민의 정치는 세상을 밝혀 차고 어두운 것을 몰아낸다.정조를 소재로 하는 작품은 고통과 비극의 정서를 피해갈 수 없다. 수원시립공연단의 '정조'도 그러하지만 '정조'가 다른 점은 민중과 그들의 꿈이 극을 단단하게 떠받친다는 것이다. 저잣거리에서 펼쳐진 탈춤 한 판은 걸출하다. 해학과 풍자가 어우러진 민중예술의 힘이 생생하게 전해진다.수원시립공연단은 지난해 7월 13일 창단 후 1년 동안 3편의 작품을 선보였다. 앞서 공연한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첫날 객석이 가득찼다. 뮤지컬 정조를 수원을 상징하는 대표공연으로 만들고 싶어한 장용휘 예술감독이 욕심을 부린 태가 난다.공연은 17일까지 수원 SK아트리움에서 열린다.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2016-07-14 민정주

[공연리뷰] 음악극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

추억속 가슴 울리는 이야기회전무대·라이브 음악 눈길올해도 부평아트센터에서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을 만났다.부평은 한국 대중음악이 탄생한 성장 거점이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 이후, 부평의 애스컴(ASCOM) 부대 주변이 무대다.이른바 ‘딴따라 동네’에서 살면서 버거운 현실에서도 꿈을 키우는 사람들의 얘기다. 지난해 평단과 관객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지역에 기반을 둔 콘텐츠 중에서 가장 주목할 작품이었다. 올해는 해누리극장(대극장)에서 관객을 맞았다. 명실상부하게 ‘음악극’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올해는 두 가지 성과를 이뤄냈다. 첫째는, 회전무대의 효과적 활용이다. 무대가 효과적으로 움직이면서, 애스컴 부대 주변과 당시의 클럽을 재현하고 있다.이인애 무대미술가와 권호성 연출가의 치밀한 계산이 돋보인다. 마지막엔 이동 무대를 통해서 모든 세트가 다 사라진다. 탁 트인 무대에서 배우들이 자유스럽게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은 관객에게 시원한 포만감을 가져다준다. 둘째는 라이브음악의 진정성이다. 냇 킹 콜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올드팝을 비롯해, 국내가요 ‘노란샤츠의 사나이’(1961)를 극 중에 만날 수 있다.이경화 음악감독은 1963년 이전의 팝송 중에서, 드라마에 잘 융합하는 노래들을 선곡했다. 이런 곡을 라이브연주로 들을 수 있었다.무대 위의 배우를 통해서 생생하게 전달되는 즐거움이 컸다. 극 속의 밴드 ‘더스트 문’은 김민철(피아노)을 리더로 최형석(색소폰), 문장원(베이스), 홍태훈(트럼펫), 구명일(드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주인공 용생 임하람(기타)의 노래와 함께, 그때 그 시절로 아름답게 안내해준다. 이들 배우의 연주와 연기를 통해서, 앞으로 더욱 알찬 ‘액터 뮤지션’ 음악극으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작품은 여러 면에서 보완과 보강을 통해서 완성도를 높였고 당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애틋한 이야기는 여전히 가슴을 울린다. 글/윤중강 평론가 · 사진/부평구문화재단 제공

2015-12-20 윤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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