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101·끝]산책을 마치다

산책이 끝났다. 연재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순식간에 이년의 시간이 지났다. 세월은 빠르고 무상은 신속하다. 그래도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이라는 말대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이고, 끝이 있으면 다른 시작이 있을 것이니 특별한 미련을 갖지 않으련다. 막상 발문(跋文)을 쓰노라니 오만가지 생각이 일었다 사라진다. 무엇이 됐든 마무리는 항상 중요하다.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를 특히 잘해야 한다.'장르문학 산책'을 시작하며 염두에 둔 원칙들이 있었다. 간결하게 쓴다, 대중적이되 유의미한 작품과 현상을 다룬다, 장르문학을 인문학의 맥락에서 살펴본다 등이다. 연재는 정리와 재해석에 중점을 두었다. 인하대학에서 십수년 동안 강의해왔던 '대중문학의 이해'를 토대로 하되, 예전에 발표한 평론과 논문 그리고 다른 주요 성과들을 널리 살펴보려했다.장르문학은 오랫동안 담론의 '밖'에 있었다. 한순간도 독자들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건만 그는 문학의 외부로, 비평담론의 타자로 방치되어 왔던 것이다. 독자들은 열광하고 담론은 침묵하는 기이한 분열을 당연하게 여겼고,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장르문학 산책'은 이에 대한 물음이며 답변을 찾아들어가는 '안'으로의 여행이었다. 읽고 또 읽어봐도 늘 그게 그거인 부지기수의 작품들을 쏟아내도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담론의 밖에서 떠돌던 하위장르들에게도 언어를 주고, 그것들이 지닌 인문학적 가치들을 발굴하고자 했다. 의도는 그러했으나 요령부득이었음에 대해 양해의 말씀을 드린다. 언론매체에서 2년이 넘은 긴 시간 동안 매주 지면을 할애하여 장르문학을 본격적으로 다룬 사례는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 아니 세계의 어느 매체에서도 시도된 바 없다. 아마도 경인일보가 유일무이한,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귀한 지면을 허락해주신 경인일보사와 그동안 '장르문학 산책'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8-01-09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100]한강을 읽자

한강(1970~)은 한국문학의 셀럽(celeb)이다. 2016년 맨부커상에 이어 2107년 말라파르테상 수상 등 현재 한강은 자타공인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작가, 한국문학의 오랜 비원을 풀어줄 작가로 꼽힌다. 신경숙 이후, 한국문학의 빈자리를 거뜬히 메우며 나라 안팎에서 한참 주목받고 있다. 문학이 언어의 모험에만 탐닉하거나 거대서사가 부재하는 사사로운 이야기들 속에 빠진 상황에서 그는 한국적인 소재의 이야기를 다루돼 세계의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으로 문학의 위엄을 지켜나가는 작가라 할 수 있다. 생명윤리와 육식의 길항이라는 필연적 딜레마 속에서 아예 식물되기로 나가는 '채식주의자(2007)' 영혜의 이야기와 국가폭력에 희생된 이들의 고통과 슬픔과 분노를 활자로 호명하여 진혼의 무대를 설판한 '소년이 온다(2014)' 등이 그러하다. '소년이 온다'는 마음속에 품고 있었을지 모를 5월 광주에 대한 광주 출신 작가의 부채의식에서 나온 것 또는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위한 해원의 진혼가라 할 수 있다. 작품은 일곱 마당으로 구성돼 있다. 각 장마다 주인공을 달리하는 복수의 주체들이 등장하여 진술하는 증언(고발)의 플롯을 보여준다. 이는 5월 광주라는 디스토피아를 경험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잔혹했던 한국현대사를 생생하게 복원하고, 희생자들을 보듬기 위해서이다. 가령 친구 정대의 죽음을 보고 상무관에서 희생자들의 시신을 관리하는 중학생 동호, 혼이 되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애타게 누나 정미를 찾는 정대, 동호와 시신을 관리하던 출판사 직원 은숙의 한없는 자책과 시련, 고문이 남긴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김진수, 40대의 중년이 된 선주의 후일담, 동호 어머니가 들려주는 동호 이야기, 그리고 동호네에게 광주의 집을 팔았던 집주인 딸인 내가 소설가가 되어 5·18을 소재로 소설을 쓰기 위해 옛집을 찾아오는 이야기들이 그러하다. '소년이 온다'는 5월의 광주를 다루되, 광주를 넘어 국가폭력과 시민저항(희생)이라는 세계사적 보편성으로 나가고 있을뿐더러 동호를 '너'라 지칭하는 이인칭 시점과 화법의 다변화라는 미적 실험을 시도하고 있음에도 주목해 봐야 한다. 미셸 뷔토르의 '변형(1957)' 같은 작품이 이인칭에 도전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론적으로는 자기가 자기 이야기를 하면 일인칭이요, 타인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하면 이인칭이 된다. 그러나 이인칭 화자는 자기 체험이나 자기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서술한다는 점에서 일인칭 화자와 본질적 차이가 없다. 모험을 위한 글쓰기가 아닌 글쓰기의 모험이라는 미적 도전과 묵묵히 자기이념을 실천하는 이와 같은 사고실험과 작가주의는 장르문학의 작가들도 꼭 유념해볼 대목이다. 한강을, 읽어보자.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8-01-02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99]장르문학과 문학적 기억

문학-예술은 기억과 어떤 관계를 갖는가. 문학-예술 모두 기억의 아들과 딸이다. 또 기억은 존재의 집이며, 정체성의 바탕이기도 하다. 프루스트(1872~1922)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도 한 모금의 홍차와 한 조각의 마를렌에서 비롯된 기억들이 만들어낸 소설이다. 김영하(1968~)의 '살인자의 기억법'(2013)은 장르문학 못지않은 무지막지한 가독성으로 우리의 삶과 정체성이 다 시간과 기억의 구성물임을 확인시켜준다. 기억이란 무엇인가. 다양한 경험과 정보들을 저장했다 회상하고 활용하는 정신적 기능이자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인생의 징검다리다. 우리의 정체성은 자신에 대한 기억과 타자의 기억에 의해 구성된다. 그렇다고 모든 기억이 다 중요하고 정직하며 진실한 것은 아니다. 기억은 매우 충격적이었거나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유리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저장하기에 사실과 다를 수 있다. 어쩌면 국경일이나 역사서도 민족주의와 국가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문화정치적 기억의 가공물들일 수도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 김병수의 이야기다. 치매 노인이 된 전직 연쇄살인범 김병수는 또 다른 연쇄살인범 박주태의 마수로부터 자신의 딸 은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시간은 박주태와 망각의 편이다. 기억과 단어가 속절없이 사라져가고, 이야기는 치매 노인의 의식을 통해서 서술된다. 서사는 긴박하나 안타깝게도 그의 진술을 신뢰하기는 어렵다. 치매에 걸린 독거노인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이기 때문이다. 서사는 치매노인의 의식의 흐름과 그의 메모에 의존한 채 조각나 있으며, 진실은 깊은 미궁에 빠져 있다. 답답하고 불편하나 독자는 김병수의 의식과 진술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치매 노인의 망상이었다는 반전은 새삼 문학과 삶과 진실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진실들은 과연 진실한가. 기억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의식과 정체성은 자명한 것인가. 얼핏 추리-범죄 문학을 연상케 하는 '살인자의 기억법'은 영화 '주홍글씨'의 원작인 김영하의 단편소설 '사진관 옆 살인사건'(2001)으로 인해 그닥 낯설지 않다. 정유정의 '7년의 밤'(2011), '종의 기원'(2016) 등에서 보듯 이제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가 와해되고 그냥 문학으로 수렴되는 큰 흐름을 목격하게 된다. 문학은 버려지고 방치된 잉여의 기억들을 예술의 이름으로 긁어모으고 축조한 문학적 기억이라는 변학수 교수와 어떤 평가든 특정한 관점에서만 가능하므로 총체적이고 절대적 관점은 없다는 박이문 교수의 글을 보면서 문득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이라는 이항대립의 구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12-26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98]참을 수 있는 소설의 가벼움

하루키(1949~)의 소설은 라이트모티프처럼 반복되는 특유의 지표들이 있다. 삼십대 중반으로 설정된 남성 주인공들,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인물들, 뜨거운 정사, 감각적인 문체, 예술에 대한 열망, 그리고 신비로운 요소 혹은 존재의 존재 등이 그러하다. '기사단장 죽이기'(2017) 역시 이 패턴을 반복한다. 우아한 고독과 매력적인 문장들과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들로 두터운 팬덤을 구축하고는 있으나 읽고 나면 어딘가 모르게 공허한 뒷맛까지 여전하다. '색채 없는'이란 뜻을 지닌 멘시키 와타루(免色涉)란 작중인물의 이름처럼,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흐릿한 이미지로만 부유하는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를 타는 중년 남자'처럼, 또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무형의 이데아"인 스피릿추얼처럼 그냥 무채색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2013) 같은 또 하나의 무채색 이야기다. 초상화 전문작가인 '나'는 결혼 6년 만에 아내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고 그 길로 집을 나와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대학 친구의 주선으로 그의 아버지이자 유명 화가인 아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오다와라의 빈집에서 살게 된다. 잠시의 "외딴섬처럼 고독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흐른 뒤 '나'는 괴이하고 신비로운 사건에 휘말린다. 오페라 '돈 조바니'를 아스카 시대의 일본화로 재해석한 아마다 도모히코의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의 발견, 한밤중에 들려오는 방울소리, 멘시키의 초상화 그리기, 멘시키의 딸로 추정되는 아키가와 마리에의 초상화 작업과 그녀의 난데없는 실종, 메타포라고 불리는 초자연적 존재를 따라 경험하게 되는 시공을 초월한 공간 여행, 아내 유즈와의 재결합 등까지 흥미진진한,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을 형성하지 못하고 그저 다채로운 사건과 이야기가 뷔페처럼 나열된다. 무명의 초상화 작가의 예술적 정체성 찾기에 이혼이라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힐링 여행이 이야기의 근간을 이루며, 난징 대학살과 루거차오 사건, 빈 유학중 안슐루스(독일과 오스트리아 합병)에 저항하다 본국으로 추방된 아마다 도모히코의 이야기 등 세계대전에 제국으로 참여한 일본의 역사적 경험이 끼어들어 있는 점이 조금 특이하다. 하루키 자신이 명명한 "캔버스 참선", 즉 텅 빈 캔버스 앞에서 무념무상의 상태로 앉아 있다 번뇌 망상뿐 아니라 최소한 정치의식마저 방기해버린 격이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문장들과 깊은 성찰, 그리고 편폭 넓은 다양한 예술적 인유들은 하루키 소설 읽기 특유의 즐거움은 살아있으나 무엇이라 할 수 없는 무형의 이데아의 등장처럼 '기사단장 죽이기'는 소설(novel)을 '小說'로 만들어버린 소설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12-19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97]'강변부인', 욕망의 덧없음과 강렬함

김승옥(1941~)의 '강변부인'(1977)은 연애소설 아닌 연애소설, 통속소설 아닌 통속소설로 읽힌다. 정비석의 '자유부인'(1954) 등과 함께 부인들의 일탈과 외출을 다루고 있는 경(輕)장편이다. "소설은 질문의 형식"이라는 지론 때문이었을까? 소설은 온통 외도와 일탈로 점철되지만, 결말도 말하고자 하는 바도 모두 무진의 안개처럼 지극히 모호하다. 본격소설도 통속소설도 그렇다고 에로소설도 아닌, 정체성이 없거나 아예 특정한 정체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불편한 작품인 것이다. 소설은 주인공 민희의 정사로 과감하게 시작된다. 그리고 자신이 투숙한 모델 옆방에서 이루어지는 남편 이영준의 외도를 인지하게 된다. 그녀는 외도를 부부간에 서로 감춰둔 십 퍼센트의 놀이에 지나지 않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왔으나 매춘부에게 다양한 성적 취향을 발휘하는 남편에 대해 분노와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 막장부부의 외도는 강의원 집 신축기념 파티를 계기로 절정에 오른다. 민희는 파티 도중 강의원 부인 남 여사의 외도를 목격하게 된다. 남 여사는 인기가수 윤하와 벌이는 자신의 외도를 덮기 위해 자신의 조카 최영일을 시켜 민희를 겁탈하게 한다. 민희는 이런 상황을 즐기고, 이들의 비밀스런 행각은 더욱 가속화된다. 예정된 수순대로 그녀의 밀회는 남편에게 발각되고, "이혼은 얼마든지 당해도 좋으니 제발 대면하자고 하지 말고 이대로 돌아가줬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민희는 남편과 애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언쟁과 감정의 한복판 속에 갇혀버린다. 남편과 애인이라는 "병신과 악당" 사이에서 또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민희는 "평생토록 이 남자 앞에서는 죄인으로서 얻어맞고 지내야 한다면……"이라는 알 수 없는 결심을 하며 모호하게 작품이 끝난다. 민희가 품은 "단 한 가지 생각"이 이혼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듯 작품의 지향과 의미는 해석의 언저리를 부유한다. 사랑 없는 욕망의 덧없음을 말하는 것인지, 결혼제도에 대한 회의의 표현인지 고도성장 시대의 이면과 유한계급들의 타락상을 고발하는 것인지 작가는 침묵하고 스토리는 그저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다만 감수성의 혁명가, 문체미학의 기적이라는 세간의 찬사대로 에로소설이되 속되지 않고, 속되지 않되 통속적인 기묘한 형식실험 속에서 문학의 통속성과 대중성이 속성인지 장르의 문제인지를 다시 고민하게 만든다. 나아가 덧없되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함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부질없는 욕망들에 대해 성찰할 시간을 준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12-12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96]장르문학과 문학의 위상 혹은 위기

언어를 떠난 문학은 없다. 언어는 존재의 집(das Hous des Seins), 역설의 집이다. 문학은 서사와 시적 진실을 언어를 통해 재현하려는 순간 곧 언어의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장벽을 언어로 극복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버린다. 또 문학의 가치는 (독자의)감동과 (전문가의)평가로 결정되므로 작가는 항상 새로운 서사 형식을 창안해야 하는 악순환과도 대결해야 한다. 가라타니 고진(1941~)이 말하는 '근대문학의 종언'은 단지 19세기적 문학이념과 문학관의 사망 선언이었지만, 디지털기기의 총아인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상황은 문학을 존재의 위기 속으로 몰아세운다. 근대의 문학은 공동체의 역사를 노래하는 제의 또는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언어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로 비약한다. "새로운 중산층과 상류층에게 특별한 가치관을 제공하고" "공평무사한 이해를 가르치며" "국가적 자존감을 제공하는" "강력한 국민적 기능"을 가진 '상상의 공동체'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이자 "더이상 사회통합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종교를 대체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반면 비서구 지역에서는 식민화라는 서세동점 앞에서 민족정신과 민족어를 지키는 저항의 수단이었으며, 민중에게 자신들의 비참한 조건을 자각하게 하는 이념의 매개물이었고, 언로가 막히고 국가의 폭력이 횡행하는 검열의 압제 속에서는 은폐된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사회적 교사요, 역사서였다.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현대사회에서 문학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영화의 서사와 영상이 문학의 서사와 재현 능력을 압도하며, 소설이 전해주던 이야기와 재미는 스마트폰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장르문학은 이제 영화나 게임을 위한 원천콘텐츠로 떨어졌고, 독자들은 이제 '읽지' 않고 '보며' '넘기지' 않고 '화면을 밀며', '쓰지' 않고 '두드리거나' '친'다. 쓰거나 읽지 않는 新문맹의 시대가 온 것이다. 문학은 독자의 머리 위에서 내려와 "고독한 읽기"를 통한 성찰과 삶과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지거나 언어적 한계에 도전함으로써 언어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언어예술의 보루로,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소수 활자중독자들의 지적 허영을 위무하면서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화제의 베스트셀러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2016)은 여성의 삶과 수난을 주제화한 문제작이나 30대 여성독자 옆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대의 이야기로, 작은 '속삭임'으로 존재한다. 문학은 그런 세대성과 언어를 탐구하는 언어예술로 보통의 문학들을 능가하는, 상상을 넘어서는 상상력으로 또 새로운 생각의 창조자로서라도 거듭 나야 한다. 이곳이 지금 장르문학이 살아야 할 현실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12-05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95]문장부호와 장르문학

나폴레옹의 탄압을 피해 망명 중이던 빅토르 위고(1802~1885)가 출판사에 보낸 물음표(?) 한 개와 출판사가 답신으로 보낸 느낌표(!)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서신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이 잘 팔리느냐에 대한 위고의 물음에 잘 팔린다 답변한 출판사의 재치문답이었다. SNS가 일상화하면서 문자가 아니라 이모티콘이나 부호로 대체하여 소통하는 방식이 널리 자리 잡았다. 문학/장르문학의 차이와 특성도 문장부호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추리소설의 신기원을 연 김내성(1909~1957)은 '탐정소설의 본질적 요건'(1936)이란 짧은 논문을 통해서 '탐정소설의 본질은 '엉?'하고 놀라는 마음과 '헉!'하고 놀라는 마음이며, '으음!'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심리적 작용'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퍼즐을 제시하는 도입부가 물음표(?)로 시작된다면, 조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밝혀지는 범인의 트릭과 탐정의 명쾌한 해명은 느낌표(!)로, 그리고 미스터리의 해결(demystification)과 대단원(denouement)은 통쾌한 마침표(.)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루카치(1885~1971) '소설의 이론'(1914/15)은 근대문학예술을 신이 떠나고 총체성이 붕괴된 시대 시작된 문제적 개인의 여정, 곧 숨겨진 총체성을 형상화하고 복원하려는 역사철학적 시도로 본다. 신화시대는 자아와 세계가 조화를 이루는 행복한 시대이다. 서사시 시대에는 자아가 모험을 해야 할지언정 위험과 고통에 빠지지는 않으며 결국 문제가 해결된다는 확신이 존재하는 조금 덜 행복한 시대의 예술이다. 근대소설은 신으로부터 버림받고 영혼과 작품, 내면성과 모험이 서로 일치하지도 않으며, "길은 시작되었는데 여행은 완결된 형식"이다. 즉 물음표(?)에서 시작하여 물음표(?)로 끝나버리는 시대의 예술인 것이다. 더구나 "새로이 도래할 세계를 알리는 조짐은 너무나도 희미하다"며 "그 희망마저 메마르고 비생산적인 힘에 의해 언제라도 쉽사리 파괴될 수 있는 운명에 처해 있다"고 했다. 반면 장르문학은 길이 시작되자마자 여행이 끝나버린 시대, 억지로 모험과 여행을 만들어내고 세계와 자아의 조화를 꿈꾸는 만들어진 서사시―가짜 서사시다. 그럼에도 조화와 희망을 만들어내고 유토피아를 꿈꾼다는 것은 역사철학적 조건상 본격문학과 근대의 문학예술이 도달할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려는 소중하고도 억지스런 시도다. 물음표(?)에서 시작되나 기어코 행복한 끝내기(!)로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스즈키 슌류(1870~1966)의 말대로 한겨울의 폭설 속에서도 새 생명이 움트고 따뜻한 봄날에는 오이를 먹을 수 있다. 루카치는 이를 간과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11-28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94]생각의 기원, 베르베르의 '뇌'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위대한 생각들이 없었다면 신도, 종교도, 예술도, 문명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cogito)로 보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탁견이었다. 그런데 숭산 선사(1927~2004)의 방할(棒喝)처럼 내가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생각 이전에는 무엇이 있는가. 생각을 포함한 모든 정신 현상이 뇌의 기능이며, 속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뇌론(唯腦論)을 펴는 작가가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1961~)의 '뇌'(2001)가 그러하다. '뇌'는 의학-미스터리로 분류할 수 있는 높은 대중성을 지닌 베스트셀러지만, 아직 그 진면목이 온전하게 평가되지 못한 저평가된 최우량주다. 그는 '개미', '파피용', '제3인류' 등 장르문학의 형식을 이용하여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묵직한 주제의식을 담아내는 재능을 지닌 천재 작가다. '최후의 비밀(L'Ultime Secret)'이라는 원제 그대로 그의 '뇌'는 인생 문제와 문명론의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방안과 고민의 실마리가 담긴 놀라운 소설이다.소설은 인공지능 딥 블루를 꺾고, 세계 체스 챔피언이 된 신경정신의학자 사뮈엘 핀처의 의문사를 추적하는 미스터리다. 과학부 기자 뤼크레스 넴로드와 전직 수사관 이지도르 카첸버그의 조사 이야기에, 인간의 뇌가 지닌 비밀을 풀기 위한 뇌과학의 오디세이아를 펼치는 사뮈엘 핀처와 교통사고로 뇌줄기(腦幹)가 손상되어 LIS상태(식물인간)에 빠진 마르탱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된다. 범죄의 이야기와 조사의 이야기라는 두 트랙을 통해 서사가 전개되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핀처의 사인은 일급 모델 나타샤와의 정사 도중 "사랑에 치여 죽은" 복상사로 처리되나 실상은 대뇌 속의 쾌감 중추인정중전뇌관속(正中前腦管束, median forebrain bundle)에 전극 이식 수술을 받은 뒤 마르탱의 과도한 자극을 받아 사망한 것으로 밝혀진다. 인류의 문명과 관념과 삶의 비밀을 풀 열쇠를 쥐고 있는 '최후의 비밀' 곧 '뇌'를 통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아니, 말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작가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궁극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제도와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더 효율적이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궁극의 방법, 인류문명의 완성을 위한 최종혁명(5차혁명)이라는 것이 아닐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쉽고 간단하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일―바로 우리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다. "생각을 바꾸지 않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여주인공 뤼크레스 넴로드의 외침이야말로 어쩌면 소설 '뇌' 속에 감춰진, 궁극의 비밀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11-21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93]매트릭스, 시오니즘, 그리고 금강경

인생은 흔히 꿈에 비유된다. 세계와 존재의 실상을 환영이자 물거품으로 보는 '금강경'도 그러하고,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고사도 그러하며, 월창 김대현(?~1870)의 '술몽쇄언'(1884)도 그러하다. 앤디&래리 워쇼스키 형제(혹은 남매)의 '매트릭스'(1999) 또한 그러하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미래사회. 평범한 회사원이자 해커인 네오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항상 데카르트적 회의를 품고 살아간다. 이내 그는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인간들이 매트릭스라는 거대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만든 환각 속에서 살고 있으며, 기계들을 위한 생체 건전지로 사용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한다. 인간이 기계의 동력원으로 사육, 이용되고 있다는 발상은 다분히 만화적이지만 '매트릭스'가 제기하는 철학적인 물음들과 스토리와 경이로운 비주얼은 영화사의 걸작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환영이었다니. 영화에서는 인간들의 구원자로 묘사되는 네오와 기계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는 인간들의 마지막 거주지인 시온마저 인공지능에 의해 계획된 플랜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러나 영화의 반전보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의 삶과 현실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땀 흘리며 살아왔건만 인생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공(emptiness)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그토록 치열했던 과거는 어디에 있는가. 이 글을 읽기 시작했던 방금 전의 순간들은 어디에 있는가. 과거는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속절없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영화 '매트릭스' 속의 매트릭스만 환영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현실과 삶 그 자체가 매트릭스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불교적인가. 아마 우연의 일치였을 것이다. 영화는 철저하게 성서적인 관습을 따르고 있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묵시록적 세계가 우선 그러하다. 또 네오를 진실의 세계로 인도하는 모피어스는 세례 요한에, 오라클은 선지자 이사야에, 인간 반란군의 배신자인 사이퍼는 유다에, 트리니티는 예수를 사랑했던 여인 마리아에 근사(近似)하며, 심지어 트리니티는 '삼위일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성서적인 것만도 아니다. 윌리엄 깁슨의 '코드명 J'(원제는 단편소설 'Johnny Mnemonic', 1981)와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1995) 같은 사이버펑크들, 오우삼의 '영웅본색'(1986) 등의 홍콩 느와르 영화를 모두 포괄하고 통섭한 B급대중문화의 집약체요, 패러디이기 때문이다. '매트릭스'는 B급 사이버 펑크 속에서 피어난 우연한 걸작이며, 인공지능 시대를 넘어 마음혁명과 정신적 각성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역대급 영화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11-14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92]히가시노 게이고의 휴먼 스토리들

아무래도 현대추리소설사에 히가시노 게이고(1958~)란 이름을 한줄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제각기 빛나던 역대급 걸작들처럼 그의 작품은 이제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 소설을 넘어 새로운 유형의 추리소설로 호평 받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형 추리소설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얼굴을 한 추리소설―바로 감동적 휴먼 추리소설을 말한다. 그의 소설은 우선 쉽고, 잘 읽힌다. 기괴하고 엽기적인 스토리에 복잡한 트릭으로 독자들을 들볶지 않는다. 편안하고 감동적이다. 1985년 '방과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이래 지금까지 66편이 넘는 장편소설·작품집을 발표했다. 일 년에 두 권 이상의 작품을 쓴 것이다. 히가시노의 추리소설은 가가 교이치로 형사가 등장하는 '가가 시리즈'와 천재물리학자로 테이도(帝都) 대학 물리학과 조교수 유가와 마나부가 등장하는 '갈릴레오 시리즈'로 대별된다. 여기에 '덴카이치 다이고로 시리즈' 등이 뒤를 잇는다. 그의 작품은 대다수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졌다. 마치 스티븐 킹의 작품을 '읽지' 않고 '보게' 되는 것처럼 히가시노 소설은 매체를 넘나드는 압도적 대중성을 보여준다. '용의자 X의 헌신'(2005)은 유가와 교수와 그의 대학동문으로 수학 천재로 통하는 이시가미 데츠야의 지적 대결이 벌어진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 도미가시 신지를 살해한 옆집여자 하나오카 야스코를 위해 자신의 천재적 두뇌를 사용하는 이시가미의 헌신이 핵심이다. 야스코의 살인을 은폐하고, 그녀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하는 상황을 만들어나가는 트릭들, 이시가미의 시체 바꿔치기 같은 트릭이 절묘하다. 기하학문제인 줄 알았는데, 함수문제였다는 위장술, 사람들의 눈길 속이는 이른바 "그릇된 방향(misdirection)을 지시하는 트릭"이 절묘하다. '기린의 날개'(2011)는 적당하게 통속적이며 적당하게 감동적인 휴먼 추리소설이다. 살해당한 아버지 아오야기 다케아키에 대한 아들 유토의 화해가 감동적이며, 청운의 꿈을 안고 도쿄로 올라온 야시마와 가오리 두 청춘남녀의 순수한 사랑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애환 그리고 아오야기와 야시마에 대한 누명을 풀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헌신하는 가가 교이치로 형사의 수사와 추리가 볼만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2012)은 우연히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든 어설픈 삼인조 절도범 청년들이 시공간이 뒤틀려버린 이곳에서 32년의 시간을 오가며 사람들의 상담역을 해주고, 그들의 엉뚱한 조언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상황이 재미있다. 모든 사건과 스토리들이 환광원이라는 보육원 출신의 사람들과 연결되는 과정을 그린 인간적인 타임 슬립물이다. 장르문학이든 본격문학이든 좋은 작품은 반드시 읽히고 또 살아남는 법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11-07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91]죽음과 예술철학과 장르문학

장르문학의 또 다른 본질은 죽음의 예술이라는 점이다. 추리소설은 살인과 죽음 같은 범죄가 필요하다. 심지어 추리소설/범죄소설을 정치경제학의 맥락에서 다룬 에르네스트 만델의 저서 제목은 '즐거운 살인(delightful murder)'이다. 무협소설은 어떤가. 수많은 죽음이 있고, 살인이 발생한다. 공포문학은 한 술 더 떠 끔찍한 죽음을 묘사하고, 독자들은 이 피의 사육제를 즐긴다.'감정이입'의 개념을 창안한 빌헬름 보링거(1881~1965)는 예술을 양식사가 아닌 심리학으로 다룬다. 그는 예술이 추구하는 정신세계와 종교의 초월주의 모두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이기려는/잊으려는 인간들의 행위로 본다. 불안이 고딕예술을 창조하고 구원에 대한 염원을 담아냈듯 예술의 근원을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려는 불안 심리의 발명품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예술에 내재한 감정이입의 충동은 아름다움에서 미적 만족을 찾음으로써 죽음을 이겨내려는 긍정의 감정이고, 추상충동은 심리적 불안으로 인해 삶의 조화가 깨진 상황에서 발생하는 고도의 정신활동 곧 부정적 감정이입이다. 감정이입은 대개 모방의 구상예술로, 추상충동은 고도의 추상예술로 표출된다. 예술사와 종교사 모두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의 불안과 권태를 이기려는/잊으려는 공통점을 갖는다.놀이를 인간의 본성이자 문화의 원천으로 본 요한 호이징가(1872~1945)의 입론도 따져보면 죽음과 관련이 있다. 스포츠 관람·장르문학 읽기·놀이는 재미와 즐거움으로 공포와 불안 등을 잊기 위한 행위이며, 이때의 재미와 즐거움은 결과의 '불확실성'과 플롯의 '긴장'에서 생겨난다. 장르문학 역시 죽음과 불안과 무료를 달래려는 대중예술로서 이야기들이 다 '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속아주는 독자들의 '불신의 자발적 중지'로 성립된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의 불안 및 권태를 박진감 넘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몰입하고 망각 하게 하는것이 장르문학의 또 다른 본질이다. 그런데 재미와 흥미를 만들어내는 장르 규칙을 완성하자마자 그 규칙이 하나의 절대적인 질서로 돌변하는 순간 장르문학이 탄생된다. 죽음 이후에 영생과 영원한 안식이 있다는 기독교와 죽음 이후 자신의 마음가짐과 업에 따라 윤회한다는 불교의 교리들 나아가 감정이입·몰입·흥미 등의 심미적 체험을 추구하는 문학-예술과 장르문학 모두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삶의 무료를 달래기 위한 정신의 발명품들이다. 누구나 죽음의 순간을 맞는다. 정답은 없으나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와 자기철학은 행복한 삶을 위한 대전제다. 죽음은 인생과 장르문학의 영원한 테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10-31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90]장르문학과 문화연구

장르문학 비평과 연구는 많은 부분을 현대 문화연구에 빚지고 있다. 문화연구란 무엇인가. 그것은 두 갈래의 이론적 전통을 가진다. 프랑스에서 발원한 문화인류학과 구조주의, 또 급진적 잡지였던 '뉴 리즈너'와 '대학과 레프트 리뷰'를 통합한 '뉴 레프트 리뷰' 출신의 영국 신좌파들이다. 1964년 리처드 호가트가 버밍엄대학 영문학과 부설로 설립한 '현대문화연구소(CCCS)가 문화주의 문화연구와 문화비평의 발상지다. 영국의 문화비평은 마르크스주의를 모체로 다양한 이론들을 자기화하고, 효율성과 전문성을 내세워 인문학을 마구 분할해버린 분과학문 체계에 대해 저항하는 학제적 태도를 보여준다. 또 주류 엘리트들에 의해 배척되고 오해되어왔던 노동계급의 문화와 만화·드라마·영화·통속소설 등의 대중문화를 통해 문화적 저항과 문화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추구한다. 문화연구(비평)는 여러 겹의 '긴장'과 '길항' 관계 속에 있다. 가령 문화연구와 문화연구의 본질적 차이와 상호관계에 대한 혼란, 장르문학 등 대중문화에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열망과 자칫 그러한 열망이 도리어 급속도로 상품화한 자본의 문화논리에 역이용당할 가능성, 문학연구에서 비롯한 문화연구가 문학연구를 약화시키고 집어삼켜버리는 역전 현상, 그리고 문화를 저항적으로 연구하는 문화연구가 저항적 행동이며 실천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을 저항이며 실천이라고 오해하는 착시 현상 등등의 것들이다. 문학이론(비평)의 본질은 작품에 대한 평가와 해석, 작품해석을 명분으로 연구자(비평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일, 또 문학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학연구방법론과 문학이론의 역사는 문학작품 읽기 방법에 대한 고민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문화연구는 이같은 문학연구의 고민과 성과를 문화적 대상으로 확장하여 적용한 것이다. 당연히 문화연구도 문학을 주요 대상으로 다루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 현상과 장르를 문학텍스트처럼 읽어내고자 한다. 문화연구는 문화텍스트를 통해서 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를 보다 정확히 읽어내고 이해하고자 하며, 제도권 담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대중문화·장르문학·하위문화의 의미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고급문화와 동등한 문화현상으로 다룬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10-24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89]김내성의 '청춘극장'

평론가 조연현은 '청춘극장'을 "침식(寢食)을 잊게 하는 소설"이라 했다. 조연현(1920∼1981)이 누구인가. 그는 주요 문인들이 대거 납·월북하고 타계한 상황에서 김동리와 함께 한국문단을 좌우하던 최대 주주였다. 당대의 문학권력이었던 조연현이 이렇게 말할 정도였으니, 한국전쟁 통임에도 하늘을 찔렀던 '청춘극장'의 높은 인기를 미루어 알 수 있다. '청춘극장'은 '태양신문'(한국일보의 전신)에 1949년 5월 1일부터 1952년 5월(마감일 미상)까지 꼭 3년간 연재됐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청운사(1949)·육영사(1953) 등 8곳이 넘는 출판사에서 5권 분량으로 출간되었으며, 무려 15만질이 팔려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성기 감독(1959), 강대진 감독(1967) 등에 의해 두 차례 영화화됐고, 당대의 여배우였던 김지미, 윤정희가 주연을 맡아 열연했다. 윤정희는 신인배우공모를 통해 주연을 맡아 이 영화 단 한 편으로 스타덤에 올랐으니 '청춘극장'의 대중문화사적 위상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청춘극장'은 한마디로 극장소설이었다. 청춘들의 고뇌, 복잡한 애정관계, 신파적 스토리, 자유연애, 서사의 남성성, 독립운동, 추리소설적 구성, 자동차 추격전, 식민지시기를 배경으로 경성과 북경과 동경 등 동아시아 전역을 무대로 펼쳐지는 특유의 '크로노프'로 대중들을 사로잡은, 대중문학의 거의 모든 것이었다. 주인공 백영민은 독립지사의 딸로 조혼한 아내 허운옥과 신여성 오유경 사이에서 심각하게 갈등하며,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여 변호사가 됐다 학병으로 끌려가는 고초를 겪다 끝내 아내 오유경의 무덤 앞에서 극약을 먹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평양출신에, 와세다대학 법학과 유학에, 조혼한 아내와 결별하고 재혼한 경력 등 백영민은 작가 김내성의 이력과 거의 일치한다. 백영민의 절친인 장일수는 강건한 독립운동가로, 또 백영민을 흠모하는 기생 박춘섬을 연모하는 신성호는 작가의 길을 걷는다. '청춘극장'은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상당히 많이 개입돼 있는 소설이다. 여기에 조선 여성의 수난을 대변하는 허운옥의 시련과 헌신, 당돌한 신여성의 자유연애를 표상하는 오유경, 백정 출신으로 친일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입신출세를 꿈꾸는 최달근, 친일 자산가로서 복잡한 면모를 지닌 오유경의 아버지 오창윤, 팜므파탈과(科) 여성 스파이 나미에, 백영민의 중학교 스승이자 교관인 야스다 등 대중문학의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한 기법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식민지와 분단과 전쟁에 지친 대중들을 위한 문학이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청춘극장'은 제 할일 다 한 빛나는 소설이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10-17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88]풍수지리와 대중소설

풍수사상이 한국문화에 끼친 영향은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역성혁명·건축물·장묘문화·대중문학 등 다양한 영역에 두루 걸쳐 있다.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준말로 전(前)근대시대의 자연철학이며 공간학이다. 감여학, 상지학이라고도 하는데, 전한(前漢)시대의 '청오경'과 동진(東晋)시대 곽박의 '장경'(일명 '금낭경')에서 기본골격이 완성된다. 왕건·묘청·이성계·홍경래 등 역사적 인물들도 풍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풍수는 항상적 정쟁의 대상이었고, 심지어 조선시대 송사사건의 8할은 묘터를 둘러싼 산송(山訟)들이었다. 좋은 땅을 찾고 땅과 자연의 힘을 빌려 태평성세와 삶의 영화를 누리려는 동아시아인들의 이 지력신앙(地力信仰)은 문학작품들 속에서도 약여하다. 김동리 '황토기', 송기숙 '자랏골의 비가', 이문구 '관촌수필', 이청준 '선학동 나그네', 최명희 '혼불' 등 한국소설사를 빛낸 작품들 속에서도 풍수사상은 생생약동 살아있다. 풍수지리를 소재로 한 대중문학도 상당하다. 이 가운데서 독자들의 호응을 얻어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들도 있다. 비소설로써 손석우의 '터'(1993)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또 강영수의 '소설 풍수비기'·김광제의 '명당과 풍수'·김종록의 '소설 풍수'·유현종의 '사설 정감록' 등이 중장년 남성독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현대소설이 20~30대의 젊은 여성들과 10~20대 청·소년 독자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젠더와 세대를 넘어 중장년 남성을 중심으로 한 '풍수소설'의 인기는 참으로 독특하고 이색적인 현상이다. 소설은 젊은 여성과 청년들을 위한 예술이다. 40대 이상 중장년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역사소설이나 정치소설, '삼국지'나 '대망' 같은 동양고전과 기업소설들이다. 유현종의 '사설 정감록'은 '조선일보'에 654회에 걸쳐 연재(1989.1.1~1990.12.30)된 역사소설로 이같은 특성을 고루 갖춘 작품이다. '사설 정감록'은 민중 신앙이라고 해도 좋을 '정감록'과 풍수사상을 바탕으로 정조 초기 최고의 실력자였던 홍국영의 부침을 그린 대중소설이다. 거듭되는 가족사적 비극과 낙척불우한 삶을 살던 홍국영이 무명이라는 선승이자 풍수사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묘를 명당인 '천풍혈'에 쓴 다음, 승승장구하여 고립무원의 정조를 탁월한 기지로 조력하며 정치력을 발휘하다 일순간에 몰락하는 이야기다. 소설은 대중들의 정치개혁의 열망에 반한 3당 합당과 민자당의 출범으로 야기된 1990년대 대중들의 정치허무주의를 반영한 작품으로 기복신앙과 상업화 나아가 생태주의와 대안 인문지리학으로서의 어렴풋한 가능성을 보여준 '또 하나의' 대중소설이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10-10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87]백백교와 박태원의 '금은탑'

종교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종교를 위해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전쟁·살인·테러·부녀자 약취·금품강탈·가정파탄 등 천인공노할 범죄를 종교가 앞장서 자행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국에서도 옴진리교 못지않은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백백교(白白敎) 얘기다. 백백교는 동학교도였던 전정운이 창종한 백도교에서 갈려나온 유사종교다. 교주 전용해는 무려 60여명의 부녀자들을 첩으로 두었으며, '헌성금'이란 미명하에 신도들의 재산을 강탈했고, 1929년부터 1937년까지 109회에 걸쳐 341명의 신도들을 살해하는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다. 대홍수로 곧 세상의 종말이 오며, 백백교를 믿어야 산다고 선전했다. 미래에 대한 전망과 현실변혁의 대안이 없는 식민치하에서 종교를 통해서 위안을 받고 또 새로운 희망을 얻고자 한 민중적 바람과 공포를 악용한 것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의 작가 박태원(1910~1986)이 조선사회를 충격과 경악에 빠뜨린 백백교 사건을 소재로 실화소설 '금은탑'을 발표한다. 소설은 1938년 4월7일부터 1939년 2월14일까지 총 219회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됐다. 연재 당시의 원제는 '우맹(愚氓)'이었다. '금은탑'은 '우맹'을 개작한 작품으로, 1949년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작품의 초점인물은 교주 대원님의 아들 김학수다. 모든 이들에게 호감을 끄는 호남형 인물이지만, 아버지 전용호(그는 아들 학수를 폐인이 된 김윤경 호적에 아들로 올려놓고 자신도 김윤경이라는 가명을 쓴다)의 죄악 앞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다 출가사문의 길을 걷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주동적 인물 최건영은 누이를 교주의 첩으로 바치고 재산을 강탈당하자 복수의 일념으로 교주 일당과 격투를 벌인다. 실존인물 유곤룡이 최건영의 모델이다. 교주의 첩이 되어버린 아내 장봉자를 찾아다니다 불귀의 객이 되는 맹서방과 장봉자 남매는 백백교에 속아 인생을 탕진하는 어리석은 백성, 곧 '우맹'의 상징이다. '금은탑'은 예술성보다는 사건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에 있는 사건을 거의 실시간으로 소설화한 매우 이채로운 팩션(faction)형 대중소설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1959년 캔사스주에서 일가족 네 명을 살해한 이른바 '클러터 사건'을 소설로 옮김으로써 팩션의 효시가 된 트루먼 캐포티의 '냉혈한'(In Cold Blood, 1965)보다 무려 한 세대나 앞서는 특이한 작품이 바로 '금은탑'이다. 또 박용구의 '계룡산'(1964), 이문현의 '백백교'(1989) 등 백백교를 다룬 대중소설들의 선례가 된 실험소설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둘만하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9-26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86]그리고 최고의 추리소설이 되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1939)는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1890~1976)의 대표작이다. 원제는 '열 개의 검둥이 인형'이었으나 인종 차별의 소지가 있다 하여 미국에서는 '열 개의 인디언 인형'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해리포터 시리즈' 제1부작 '마법사의 돌'이 영국에서는 'Sorcerer's Stone'(1997)으로, 미국에서는 'Philosopher's Stone'으로 다르게 출판되는 사례에서 보듯 영국과 미국에서는 동일한 작품이 다른 제목으로 출판되는 경우가 있다. 같은 영어권 국가지만, 엄연히 다른 국가이고 세금 문제로 인해 제목을 달리 한다는 설이 있다. 워그레이브 판사·여교사 베라 클레이슨·롬바드 대위·에밀리 브렌트·매카서 장군·의사 암스트롱·앤소니 마스턴·사립탐정 블로어 등 여덟 명이 U.N.오언(Owen)이란 미지의 인물로부터 의문의 초청장을 받는다. U.N.오언을 붙여 읽으면 'unknown' 즉 '정체불명의'란 뜻이 된다. 하인으로 고용된 로저스 부부를 포함한 열 명의 사람들이 폭풍으로 고립된 인디언 섬에서 동요의 가사에 따라 차례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들은 모두 법률의 범위 밖에서 법률이 처벌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 가령 의사 암스트롱은 술에 취한 채 수술하다 메리 클리스를 죽이는 의료사고를 일으켰고, 워그레이브는 죄 없는 에드워드 세튼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으며, 매카서 장군은 부인의 정부였던 아서 리치몬드를 사지(死地)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폭풍으로 인해 거대한 밀실이 되어버린 고립된 인디언 섬에서 동요처럼 사람들이 극도의 공포와 분노 속에서 죽어가고, 또 거실의 인디언 인형도 한 사람이 죽을 때마다 하나씩 사라진다.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경계하다 죽음을 맞이하며, 최후의 생존자인 베라 클레이슨마저 필립 롬바드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자살함으로써 열 명의 사람들이 모두 죽어버리는 참극이 벌어진다. 완전범죄 그 자체이며, 살인의 예술이 완벽하게 구현되는 것이다. 범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어떻게 이런 초(超)논리적 범죄가 가능하단 말인가. 논리와 추론이 닿지 못하는 끔찍한 미스터리를 보고 메인 경감은 영구 미제로 결론을 내린다. 살인사건이 있다면 당연히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가 있게 마련이다. 작품 속에서 사립탐정 블로어는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하며 사건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가고 주도하는 이는 오히려 워그레이브 판사이다. 완벽한 사회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광기에 사로 집힌 자의 이 치밀한 예술적 범죄는 희생자 중 한 사람의 고백서로 전모가 드러난다. 역설을 잘 이해하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원작의 반전도 절묘하지만, 르네 클레르 감독 영화(1945)의 반전과 재해석도 출중하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9-19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85]만주(滿洲), 대중소설이 되다

위만주국(僞滿洲國)과 선통제 아이신기로 푸이(1906~1967)가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은 베르톨루치(1940~)의 영화 '마지막 황제'(1987) 때문이었다. 마지막 황제 푸이는 그 삶 자체가 한 편의 소설이었다. 우선 만3세의 나이로 등극했다 강제로 퇴위된다. 망명객의 신분에서 유사-국가 만주국의 황제에 등극하는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다시 전범으로 몰려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다 식물원 정원사로 생을 마감하는 반전과 몰락의 드라마를 쓴다. 그런 마지막 황제 푸이를 그린 한국소설이 있다. 바로 조흔파(1918~1980)의 '만주국'(1969)이다. 조흔파는 평양시 염전리에서 태어나 광성중학교를 거쳐 1943년 센슈대학 신학과를 졸업했다. 경성방송국 아나운서 등 방송계에서 활동하면서 집필한 방송소설 '대한백년사'와 학교소설 '얄개전'(1954)으로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만주국'은 실록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월간중앙'에 1969년 8월부터 1970년 11월까지 16회에 걸쳐 연재됐다. '만주국'은 1957년 푸이가 '무순전범관리소'에서 자신의 죄상을 고백하는 '내 죄악의 전반생'을 토대로 소설화된 것이다. 푸이의 반성문은 1964년 '나의 전반생(我的前半生)'이란 이름의 자서전으로 북경과 홍콩에서 출판된다. '만주국'은 '나의 전반생'에 항간의 일화와 비화들을 덧붙이고 재구성한 '소설', 곧 정치소설이자 실록소설이며 대중소설이었다. 그래서인지 푸이가 승용차 트렁크로 기어들어가 탈출하는 장면, 일본군 사병에게 모욕당하는 얘기, 마적들에 대한 비화, 일왕(日王)의 항복 선언 직후 오스카 와일드의 시를 인용하며 자살한 수상 고노에 후미마로, 구두닦이가 된 전 육군 소장 구와오리 기츠시로 등 대중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가십거리용 비하인드 스토리들로 가득하다.만주는 우리에게도 뜨거운 관심의 공간이다. 만주는 한국고대사의 현장이자 강역이었다. 또 박정희 시대의 근대화 정책과 만주국의 정책이 겹치는 부분이 꽤 많다. 병영국가 만주국과 유신시대의 제4공화국, 관동군의 만주경제개발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아마가스 마사히코가 만든 만주의 국책영화들과 반공영화들, 위생검사와 국가기념일 제정 등 만주군관학교 및 만주 건국대학 출신자들이 주도한 주요 정책들이 그러하다. '만주국'을 비롯한 염상섭·이태준·안수길·허준·김만선 등의 '만주문학'들도 그렇고 임권택의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와 신상옥의 '무숙자'(1968)를 비롯하여 정창화·김묵·최경섭 등의 만주 소재 대중적 영화들은 만주가 우리의 역사적·문화적 테마임을 일깨워준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9-12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84]북한식 대중문학 '꽃 파는 처녀'

북한에도 대중문학이 있을까. 있다. 있되, 다르다. '꽃 파는 처녀'가 그렇다. '꽃 파는 처녀'는 북한에서 불후의 고전적 명작으로 통하는 작품이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란 김일성과 김정일의 창작 혹은 지도로 만들어진 혁명예술을 통칭하는 북한식 문학예술의 한 범주다. '꽃 파는 처녀'는 김일성의 지도로 1930년 만주 오가자 지역에서 초연됐다고 한다. 1972년 영화화되어 같은 11월 체코 카를로비바리에서 개최된 제18회 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았고, 2012년 12월에는 단일 가극으로 1천500회 공연을 돌파했다. 1977년 4·15창작단에 의해 장편소설로 각색(?)됐다. 영화의 주연을 맡았던 인민배우 홍영희가 북한의 지폐 도안으로 채택될 만큼 북한문학의 대표주자이다.'꽃 파는 처녀'는 혁명가극·영화·소설·동화 등으로 만들어진 주체예술의 모범이자 정전(正典)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념을 걷어내고 스토리 자체와 이야기 구조를 따져보면 신파극과 대중소설에 가깝다. 작품은 꽃분이와 동생 순희 그리고 어머니와 오빠 철용 등 일가족을 중심으로 한 배지주 부부와의 계급적 갈등과 투쟁을 중핵으로 삼고 있는바, 병든 몸으로 배지주집에서 종살이하는 어머니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꽃을 팔러나간 꽃분이와 당사주를 봐주는 노인의 대화가 비근한 예다. 꽃분이의 사정을 듣고 난 노인이 "그러니 아버지는 머슴 살다 돌아가시구, 오빠는 감옥소에 잡혀 가구 어머니마저 병들어 앓고 계시는데 어린 동생은 눈까지 멀었단 말이냐? 허참 세상에!"라며 장탄식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노인은 꽃분이의 수난을 다시 독자들에게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일반 독자(청중)의 반응과 감정을 유도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꽃 파는 처녀'는 주요 플롯이나 모티프 등을 볼 때 오스트리아의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의 단편소설 '눈 먼 제로니모와 그의 형'(1900)과 강한 유사성과 상호텍스트성을 보여준다. 슈니츨러의 소설은 1938년 2월 유치진의 번역으로 16회에 걸쳐 공연됐으며, 1954년 10월 소설가 안수길이 학생잡지 '학원'에 번역한 바 있고, 1959년 김진성이 독한대역문고로 펴낸 바 있다. '꽃 파는 처녀'를 통속 대중소설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으나 뚜렷한 선악 이분법·감정의 과잉·우연의 남발과 비약 등 신파극과 대중소설적 성격이 분명한 것은 사실이다. 대중계몽을 위한 이념형의 작품은 필연적으로 강한 대중성을 추구한다. 이처럼 대중소설, 장르문학은 정치적 색채가 강한 선전, 선동형의 작품에서도 핵심적 요소로 채택, 활용될 만큼 문학예술의 중핵을 이룬다. 북한의 '꽃 파는 처녀'가 이를 입증한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9-05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83]통속소설과 불교-교양소설 사이 '만다라'

'만다라'는 김성동 문학의 시작이자 끝이다. '종교신문'에 당선된 '목탁조'(1975)가 원작이다. 이 소설로 불교계가 발칵 뒤집혔다. 환속한 다음, 1978년 '목탁조'를 경장편(輕長篇) '만다라'로 개작, 한국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집'(1989), '길'(1994) 등과 함께 삼부작으로 꼽히며, 수행자의 고뇌와 방황 그리고 구도의 의미에 대해 진중한 질문을 던진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만다라'는 한국소설사의 문제작으로 남을 불교-교양소설(Bildungsroman)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헤르만 헤세(1977~1962)의 '수레바퀴 아래에서'(1906), 잭 케루악(1922~1961)의 '길 위에서'(1957) 및 '다르마의 행려'(1960) 등과 강한 상동성(相同性)이 발견된다. '수레바퀴 아래에서'는 젊은 날 자살기도 등의 방황을 거듭했던 헤세의 자전적 요소가 반영된 청년문학이다. 모범생 한스 기벤트라트가 반항적이고 개성이 뚜렷한 헤르만 하일러를 만나면서 억압적인 학교교육과 사회풍토에 깊은 회의를 품고 방황하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비극적 성장소설 혹은 교양소설이다. 주인공 법운은 불행한 가족사와 현대사의 비극을 뒤로 하고 출가한 모범적 선수행자, 선방 수좌(首座)이다. 아버지는 좌익 혐의로 한국전쟁 당시 처형되고, 녹의청상이 된 어머니마저 가출하자 출세간(出世間)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병 속의 새'라는 화두를 품고 구도 수행에 전념하던 중 파계승 지산을 만난다. 거침없는 운수행각과 독설을 날리는 지산의 자유분방함에 매료된 법운은 그와 도반이 되어 함께 떠돈다. 법운은 한스 기벤트라트에, 지산은 헤르만 하일러에 비견된다. 양자 공히 소년을 성인의 세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있는 것이다. 무당집의 불사에 가서 불상에 점안을 하고 양식을 얻어 암자로 돌아오던 길 지산은 만취 상태에서 활불 자세로 동사한다. 지산을 다비하고 법운 역시 지산처럼 사창가에서 이층을 쌓고 파계한 다음 세상 속으로 뛰어든다. 마침내 사회 속으로 입사(入社)한 것이다. 이념의 문제·비극적인 현대사·개인의 구원 등 굵직한 주제를 다루지만, 감정의 과잉과 신파적 스토리 그리고 타락과 방황 등 '만다라'의 소재와 서사 자체는 매우 통속적이다. 근대소설의 한 흐름을 이루는 성장소설/교양소설은 현실 변혁의 전망을 상실한 좌절의 시기에 자신의 정체성과 내면의 풍요라도 이루어보자는 부르주아적 개인주의와 교양주의라는 근원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형식이나 '만다라'는 새로운 삶의 전망과 총체성을 찾는 문제적 개인의 출출세간적(出出世間的) 몸부림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꽤 문제적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8-29 경인일보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82]'인간시장' 정의에 대한 통속적 물음

의협소설은 사회적 불의(不義) 속에서 태어난다. 국가폭력과 일상화한 부정과 부패에 대한 대중들의 환멸과 분노가 무협소설·의적소설 같은 의협소설 읽기의 욕망을 추동하기 때문이다. 저항을 조직화하지 못한 경우, 정의에 대한 갈망은 상상과 공상 같은 즉물적 방식으로 해결되기 십상이다. 저항과 전망을 창안해내지 못한 대중이 생각의 세계 속에서 저항과 정의의 실현을 상상하는 것이다. 정의를 학문적 화두로 삼아 평생을 바친 정치철학자 존 롤즈(1921~2002)는 정의의 일차적 주제를 '권리와 의무를 배분하고 사회협동체로부터 생긴 이익의 분배를 정하는 방식'에서 찾는다. 불의와 차별을 평등의 원리로 해결할 수 있겠으나 인간의 이기심과 성과에 대한 보상을 침해할 수 있기에 그는 민주주의적 평등과 차등의 원칙의 공조를 주장한다. 그리고 차등의 원칙에 따른 피해는 '사회의 최소 수혜자들의 기대치를 향상시키는' 복지제도나 공정한 기회의 균등을 통해 해결하자고 제안한다. 정의는 1981년 제5공화국 시대와 2016년 '최순실 게이트'에서 '촛불혁명'과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최대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김홍신(1947~)의 '인간시장'(1981)은 1980년대 대중들의 정의에 대한 갈망을 자극하고 위무해준 밀리언셀러였다. '인간시장'은 원래 1981년 '주간한국'에 '스물 두살의 자서전'이란 제목으로 연재된 옴니버스 소설이다. 주인공 장총찬은 스승 무초스님에게 전수받은 뛰어난 무술실력과 표창으로 무장하고 사회 도처에 만연한 비리와 탈법의 현장을 누비고 다니며 어둠의 세력을 응징하고 정의를 실천한다. 그는 초인적인 무술실력을 지닌 정의의 사도이나 애인 다혜 앞에만 서면 순한 양이 되는 순정남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그가 해결하는 문제들은 소매치기·인신매매·퇴폐이발소·사이비교단(하나님 주식회사)·사학비리·엉터리 무당 등처럼 사소하고 지엽말단적인 사건들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각종 불의와 작은 적폐들은 스토리의 전개를 위한 동력이자 폭력의 서사를 창안하기 위한 '인간시장'의 도덕적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존 롤즈의 '정의론'의 정치철학을 자기화한 문재인 대통령의 감동적 취임사는 아직도 우리사회가 '인간시장'이라는 대중소설이 제기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진행형의 과제임을 일깨워준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2017-08-22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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