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길의 장터사람들

 

[이수길의 장터사람들·15·끝]양평군 용문장터 곡물장수 김옥순 할머니

28살에 남편과 사별 눈 앞 캄캄'모성애'로 이 악물며 장터지켜우리 농산물만 고집 '양심 판매'60년이라는 세월은 강산이 여섯 번이나 변하고 다듬어진 무수한 시간이고 역사이다. 60년 세월을 한결같이 장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지고 끌고 다니며 장사로 인생역사를 만들었다. 쌀 여덟 말을 머리에 이고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집에서 기차역까지 한 시간 이상을 걸어 다니며 장터로 향하던 시절도 있었다. 자식들과 먹고 살아야 한다는 헝그리 정신으로 모진세월을 이겨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장보따리를 끼고 살았다. 강인한 모성애로 60년의 세월을 극복할 수 있었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그런 위대한 장터의 삶을 살아오신 김옥순(80) 할머니가 용문장터에 계신다. 꽃다운 나이 20살에 혼인해 2남 3녀를 두고 남편은 그녀가 28살에 세상을 떠나는 청천벽력과 같은 날벼락을 맞았다. 어린 자식들과 먹고 살기가 막막하고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자식들과 먹고 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장터의 삶을 이어가야했다. 장사는 시집 와서 1년도 못 되어 시작했지만 남편이 옆에 없으니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러나 자식들이 있었기에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고 장날마다 장돌뱅이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그녀의 삶의 터전이 되었던 곳은 지평장(1일, 6일장), 양평장(3일, 8일장), 용문장(5일, 10일장) 등이다. 김 씨는 겉보리, 기장, 찹쌀, 수수, 수입참깨, 서리태(검은콩), 백태, 쥐눈이콩, 적두, 보리쌀, 율무, 흑미, 강낭콩, 울타리강낭콩, 녹두 등을 주로 팔았다. 그 밖에 제철마다 나오는 대추, 호박, 고추, 깻잎, 마늘, 쪽파, 호박잎, 오이 등도 취급한다. 김 씨는 "속이지 않고 양심적으로 우리 농산물만 팔다보니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온다"고 60년 세월동안의 장사 노하우를 피력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멈추어 서면 전날에 따온 싱싱한 대추 한 개씩을 손에 쥐어 주면서 먹어 보라고 권한다.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니 그들도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온다. 그야말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옛말처럼 화기애애한 장터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김 할머니는 매번 팔 때마다 덤으로 한주먹을 더 주는 따뜻한 마음씨로 단골들을 유지해왔다. 덤으로 더 얹어주는 것은 물건만이 아닌 장터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따뜻한 정이다. 물건 값도 싸게 주고 정도 주는 인심 좋은 김 할머니 주변에는 장날마다 줄을 선다./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2016-10-16 경인일보

[이수길의 장터사람들·14]강화장터 고추장수 베트남 아줌마

11년전에 시집 온 우엔타캄씨소녀가장 모진 세월 경험 덕에논밭 일 거뜬 운명적 농촌생활장날 외에도 전국서 주문 쇄도'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한국으로 시집 왔으니 한국의 예법과 시집의 문화를 따르는게 마땅하다고 말하는 베트남 아줌마 우엔타캄(33·한국이름 전혜영) 씨. 그녀는 22살의 젊은 나이 때 지금 남편의 얼굴을 한 번만 보고도 내 남자라고 생각해 한국으로 시집왔다.처음 밟은 땅은 강화도. 땅도 많고 일도 많은 농촌마을 부잣집이었다. 언어도 문화도 달라 처음에는 시집 식구들과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 강좌를 통해 배우며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11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2남 1녀를 낳고 시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그녀는 가난한 가정형편으로 15살 때부터 소녀 가장 처지에 놓였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없는 상황에서 두 동생을 먹이고 가르쳐야만 했던 그녀의 삶은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식당 설거지 일부터 시작해 소녀 가장으로서 모진 세월을 경험한 그녀이기에 베트남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논밭농사 일도 거뜬히 해낼 수 있었다. 헝그리 정신이 만들어낸 결과다.논농사와 밭작물 등 안 하는 것 없지만 주된 수입원은 고추와 고구마 농사다. 강화의 특산물 노란고구마와 고추는 강화장날(2일/7일)에서 파는 것 이외에도 전국에서 주문이 쇄도한다. 시댁 부모님이 아들 부부에게 논밭을 따로 분리해준 덕에 아예 농사도 따로 짓고 장날에 판매도 별도로 해 수입도 따로따로 챙긴다.부부관계도 주변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 할 만큼 깨가 쏟아진다. 우엔타캄 씨는 "남편과 만나기 전에 꿈속에서 어느 할아버지가 나를 나룻배에 태워 강물로 떠밀어내는 꿈을 꾸었다. 그 후에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한국으로 시집을 오게 되었다"고 웃으며 말했다.우리 사회의 다문화가정은 날로 증가되어 가고 있는 추세다. 농촌사회에 동화돼 살아가며 행복한 다문화가정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시어머니 전명자(74) 씨는 "꿈 해몽을 해보니 베트남 며느리는 우리 집으로 시집올 운명인 것 같았다. 그리고 너무 착하다. 나보다 일도 잘하고 계산도 빠르다. 나도 복이고 며느리도 복이다"며 며느리를 연신 추켜세웠다./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2016-10-09 경인일보

[이수길의 장터사람들·13] 여주장터 농산물장수 박정희 할머니

참외·양파… 채소·과일 다 취급"파는 상인·사는 손님 상부상조"단골에 "충성" 거수경례 웃음꽃5일장 날이면 특별한 볼일이 없어도 자연스레 장터로 발걸음이 향하는 사람들. 살 마음이 없다가도 지나가다 맛있어 보여서, 그냥 지나치면 아쉬울 것 같다는 괜한 마음에 지갑을 여는 사람들.파는 이도 사는 이도 매번 오던 얼굴들이 모여 사고팔고 하는 5일 장터는 정을 주고받고 행복을 나누는 장소다.여주장터의 박정희(82)씨는 "파는 사람도 신세, 사는 사람도 신세"라고 말한다. 53년간 제철 농산물을 전문으로 취급한 장사의 달인이다. 장날이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장터의 삶을 살았다. 박씨가 말하는 '신세'는 상인은 돈을 벌고 손님은 원하는 물건을 얻으니 상부상조한다는 의미다.그래서 '신세'에는 따뜻한 정이 살아 숨 쉰다. 아무 생각 없이 오가다 눈이 마주쳐 가던 길을 멈추고 물건을 사 가는 사람, 장날마다 찾아와 점심을 사주겠다는 사람 등 장터는 정이 넘쳐흐르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특별한 장소다.박씨는 18살에 가난한 남편에게 시집와 낳은 7남매를 장터 장사로 먹여 키웠다. 박 씨는 "가난이라는 두 글자에서 해방되려고 피눈물 나는 고생을 해서 끼니 걱정은 없이 살았지만 자식들을 잘 가르치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잘 살아주고 부모에게도 잘 해주니 고맙다고 한다.주로 취급하는 농산물은 고추, 가지, 콩, 참외, 오이, 토마토, 자두, 살구, 감자, 양파, 조, 콩 등이다. 제철에 나오는 농산물은 가리는 것 없이 모조리 팔고 있다. 장사하러 가던 새벽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한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도 있다.60살 되던 해에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동안에는 한강다리가 끊어지고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는 사고도 방송으로 접했다.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여주장터를 비롯해 이천 장터와 가남 장터에도 보따리를 이고 다니며 먹고 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발버둥 쳤다. 3년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와서는 몸이 불편해 여주장터에서만 장사를 하며 단골손님들과 즐겁게 산다고 한다. 장날마다 보는 손님 중에 박 씨보다 나이가 많은 분에게는 거수경례로 '충성'이라고 인사를 하며 서로의 마음에 위로를 전하고 있다. /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2016-10-02 경인일보

[이수길의 장터사람들·12] 이천장터 곡물장수 김구자 할머니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 '뚝심'장수 비결, 운동·고른 식습관손님 줄어도 '긍정적 삶' 유지대한민국 최고령 곡물장사이자 '천하여장부'로 불리는 장돌뱅이 할머니가 있다. 쌀과 도자기로 유명한 고장 이천 장터에서 곡물을 파는 김구자(89)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89세의 나이로 남정네들도 하기 힘든 곡물장사를 하며 장터에서는 유명인사가 되셨다. 충주에서 태어나 여주로 시집 와 살면서 논밭농사 지으며 아들만 다섯을 낳아 길렀다."나만이 즐기는 운동이 30가지가 있어. 우선은 제 때에 잘 챙겨 먹고 꾸준한 운동으로 힘을 키워야 한다"고 자신만의 건강한 장수비결을 밝히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는데, 갈무리된 뚝심이 범상치 않다. 장터에서 김 씨 할머니는 3가지가 '최고'로 알려져 있다. 첫째는 가장 나이가 많다. 둘째는 가장 장사다. 셋째는 가장 건강하다.김 씨 할머니의 목표는 90세까지 장터에서 곡물 장사를 하는 것이다. 그 목표는 충분히 이루고도 남음이 있고 '100세 목표'로 바꾸어야 할 듯 싶다. 젊었을 때 종횡무진 누비며 다닌 장터는 이천장터, 장호원장터, 양평장터, 홍천장터, 여주장터 등인데 지금은 이천 장터와 여주장터에서만 천하여장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옛날에는 장사가 잘 되었는데 지금은 현상유지 정도다. 장사가 잘 될 때에는 하루에 백만 원까지도 팔았다. 그래서 자식들하고 끼니 거르지 않고 먹고 살 수 있었다. 요즘도 장날이건 아니건 간에 새벽 4시면 눈이 떠지고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꾸준한 운동과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면서 건강에 신경 쓰고 노력을 했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데도 아픈 곳이 없다는 김 씨 할머니야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장사꾼이다.서울을 비롯해서 인근 지역에서 할머니를 찾아와 서리태(검은콩)과 메주콩을 사 가는 단골손님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늙으니 그런 손님들도 멀어지고 떨어지더라고 한다. 그래도 욕심을 버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신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건강 비결인 것 같다. 같이 사는 막내아들이 장날이면 물건을 차로 운반해주어 장사를 쉽게 할 수 있다. 비오고 춥고 더운 날에는 엄마 고생한다고 아들이 안 태워 주는 날도 있는데 가능한 결석하지 않는다. 곡물종류는 30가지인데 그 중에서 중국산 참깨와 중국산 찰기장쌀 두 가지만 수입 산을 팔고 나머지는 순수한 국내산 곡물이다./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2016-09-25 경인일보

[이수길의 장터사람들·11] 안성장터 장터귀신 이문세 씨

옛시절 버스 안내양 "냄새 난다" 구박해헝그리 정신으로 자식들 훌륭하게 키워반려견 바둑이 장터 명물… 노년의 활력1년은 365일. 그것도 모자라 368일을 장터에서 보따리 풀고 앉아 계신 할머니가 안성마춤 장터에 계시다. 장터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으로 오해를 받을 정도라는 장사의 신, 이문세(72) 씨가 이번 주 주인공이다. "아침 7시인 줄 알고 장터에 나왔는데 6시더라"는 이 씨 할머니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충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청주에서 살다가 안성에 정착했다.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며 장터의 삶을 살다보니 44년의 세월이 흘렀다. 장바닥에서 보따리 장사로 벌어들이는 돈을 아끼고 모아 월세 방에서 전세로 옮길 수 있었고 단독주택을 지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장터에서의 기나 긴 인생을 살다보니 "마음을 비우고 살아야 복이 온다. 살면서 과욕은 금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옛날에 장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다니며 버스 타고 이동할 때에는 버스 안내양들에게 보따리에서 냄새 난다고 발로 차이고 치이며 장터로 향하던 시절이 기억에 생생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지금은 밥은 먹고 살고 있으니 그런 일들도 아스라한 추억으로 남았다. 당시에는 치열한 삶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함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평생을 헝그리 정신으로 자식들 가르치며 살았고 그 자식들이 훌륭하게 성장해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산다.엄마에게 전화도 자주하고 걱정해주는 마음이 착한 자식들이다. 장사 그만하고 불편한 관절염 물리치료나 받으며 편안하게 살라고 한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몸은 자연스럽게 장터로 향하고 같은 장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터에 나오면 돈도 벌고 손님들과 정담을 나누는 재미가 약손과 다름없다. 그래서 몸은 힘들어도 장보따리를 끌고 장터에 나온다. 4년 전부터 이 씨 할머니와 함께 장터를 지키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개, 바둑이가 있다. 이젠 바둑이와 정이 들어 장날마다 찾아와 먹을 것을 챙겨주는 손님도 생겼다고 한다. 바둑이가 이 씨 할머니의 지루한 노년의 삶에 생명수처럼 나타나 살아야 할 의미를 부여해주고 그야말로 장터의 명물이 되었다. 사람의 정도 나누고 개의 정도 나눌 수 있는 안성맞춤 장터로 발걸음해 웃음보따리를 짊어지고 오면 어떨까. /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2016-09-18 경인일보

[이수길의 장터사람들·10] 용인장터 농산물 장수 최기정 할머니

새벽밥 먹고 짐 이고 지고 걷고수십년 믿음 거래로 6남매 키워 상추·열무… 제철농산물만 수확손주용돈 줄 생각에 고단함 '싹'고희의 나이로 운전면허시험에 7전 8기의 각오로 응시해 합격한 최기정(80) 할머니. 젊은 사람들도 쉽게 취득할 수 없는 운전면허에서 필기시험에 두 번 떨어진 뒤 세 번째에 2전 3기로 합격하고 실기시험에서도 당당하게 합격해 면허증을 취득한 멋쟁이 할머니다. 실향민인 남편과 중매로 만나 결혼해 슬하에 1남 5녀를 낳고 살았다. 농사를 지으며 밥 먹고 살아가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생필품을 사거나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농산물을 장터에 들고 나가 팔아야만 했다.옛날에 시골 장터로 장사하러 나갈 때에는 장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2시간은 걸어야 했다. 새벽밥을 지어먹고 장날마다 보따리 짐을 머리에 이고 지고 끌고 다니며 장터에 앉아 팔았다. 그렇게 해서 6남매를 먹이고 키우고 가르쳐 지금은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다. 모두가 원하는 일에 종사하며 떳떳하게 잘 산다고 한다.최 씨는 "교육계에 근무하고 있는 막내딸이 엄마에게도 제일 잘한다"며 막내딸 자랑을 빼놓지 않는다. 장날에 나와 있으면 '전화도 자주 해주고 엄마 걱정을 많이 해 준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남편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남편이 십 원짜리 하나도 아끼고 안 쓰며 절약해 알뜰하게 자식들과 함께 열심히 살아준 덕분으로 이만큼이나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최 씨 할머니는 용인장터에서만 장사를 하고 장날(5일, 10일장)이 아닌 날에는 농사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여름에는 상추, 열무, 시금치 등이 잘 팔린다. 계절마다 나오는 농산물을 제철에 수확해서 장날에 들고 나와 파니 신토불이 농산물이다. 오랜 세월 장날마다 나와 앉아 있으니 말동무 할 단골손님도 많고 소식도 주고받는 재미가 쏠쏠하다. 장터에서 버는 돈은 본인의 용돈으로 쓰고 손자 손녀들에게도 용돈을 주는 재미로 피곤함도 모르고 산다고 한다.격동기를 살아오신 80대 이후의 어르신들은 역사의 증인들이다. 그들이 살아온 시대는 언제나 삶에 피곤함이 함께 했다. 그러나 '자식'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는 모든 걸 희생하고 살았고 싫으나 좋으나 그들의 장 보따리 안에는 자식뿐이었다. 최기정 할머니의 마음속 한구석에도 늘 '자식'이 품어져 있다. 그래서 시골 장터에 가면 어머니 품속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듯하다. /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2016-09-11 경인일보

[이수길의 장터사람들·9] 동두천 장터 뻥튀기 장수 이순자씨

오로지 자식위해 힘든일 자처근면·성실 신조로 '대박' 결실단골이 준 음료수 하나에 보람유치원 찾아 봉사활동 적극적5일마다 열리는 시골장터.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장날이면 꽃단장하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신나고 들뜬 마음으로 장터로 향하던 때가 아련하다. 예나 지금이나 5일 장터에서는 먹을거리, 즐길거리, 볼거리 등 장터를 찾는 사람들의 흥미거리가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뻥튀기는 그야말로 시골장터의 명물이다. 뻥튀기 아저씨 주변에 몰려들어 모르는 사람들끼리 장터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매번 호각을 불며 '뻥이요~!'를 외치면 지나가는 사람들은 손을 모아 귀를 막는다.압력에서 탈출한 희부연 김이 한가득 솟고, 강냉이며 튀밥 등 원재료의 10배 쯤 뻥튀겨진 결과물이 망 한가득 쏟아지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먹거리가 귀했던 시절 , 그만한 풍족감이 없었다. 뻥튀기 장수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청각을 모으며 유년의 행복을 소환하는 장터의 감초이다. 그런 각별한 맛과 정을 나눌 수 있게 해주는 '천하여장부'가 동두천 장터에 있다. 뻥튀기로 대박 난 아줌마 이순자(63) 씨가 주인공이다.무쇠로 만든 뻥튀기 기계를 다루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아저씨가 많은데 이 씨는 뻥튀기로 성공한 위대한 엄마다. 그녀는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연천군 전곡에서 자랐고 마석에서 정착해 살면서 지인의 권유로 뻥튀기를 시작했다. 남자도 하기 힘든 뻥튀기 기술을 배워 오로지 자식을 위해 여자의 몸으로 장터를 돌아다니며 뻥튀기 장수로 30년째다. 처음에는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뻥튀기로 대박이 났다. 장날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고 저녁 늦게까지 뻥튀기 작업을 할 때도 있다.이 씨는 "가장 보람된 일은 내가 튀겨준 뻥튀기 맛이 좋아 단골로 한다며 음료수를 사주는 손님을 만날 때"라고 한다. 그동안 열일곱이 넘는 남정네들을 뻥튀기 기사로 고용해봤던 이 씨는 추우나 더우나 새벽 4시에 일어나 장터로 나가 장사준비를 한다. 근면과 성실이 신조라는 이 씨는 장현장터(2, 7일장), 마석장터(3, 8일장), 전곡장터(4, 9일장), 동두천장터(5, 10일장) 등에서 뻥튀기 기계를 돌린다. '젊음이 살아 있을 때 열심히 일하고 노후에는 봉사활동 하면서 살겠다'는 아름다운 희망을 꿈꾸는 그녀는 유치원 뻥튀기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쌓였던 일상의 스트레스를 동두천 장터의 뻥튀기 기계에 넣고 돌려 행복바이러스로 튀겨내 보심도 좋을 듯. /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2016-09-04 경인일보

[이수길의 장터사람들·8] 평택시 송탄장터 붕어빵 장수 김준영씨

암투병으로 먼저 떠난 아내가 해오던 일딸이 이어받고 아들도 도와 전국 입소문장날이면 20~30분 줄 서야 맛 볼 수 있어예나 지금이나 장터에서의 주전부리 하면 '호떡, 순대, 떡볶이, 국화빵, 붕어빵'이 떠오른다. 평택시 송북 장터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않고 맛으로, 추억으로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붕어빵 장수 김준영(72)씨가 있다.그는 30년의 세월을 오로지 장터에서 붕어빵을 만들어 먹고 살았다. 1남 1녀를 두었고, 반평생을 함께 한 아내는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뒤로 했다. 아내가 하던 붕어빵 장사를 딸이 이어받았고 아들도 이를 돕고있어서 김씨네는 온가족이 붕어빵 장수로 유명하다. 장날이 아니어도 송북시장에서 붕어빵을 팔지만, 장날에 김씨네 붕어빵을 먹으려면 20~30분씩 줄을 서야 할 때도 있다.김 씨네 붕어빵은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 알려졌다. 아침 8시 30분부터 장사를 시작하면 반죽이 없어질 때까지는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붕어빵을 구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장날에는 아예 점심 먹을 생각을 안 하고 대신에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신다고 한다. 그나마도 단골손님들이 막걸리를 사다 주면 일하면서 한 잔씩 마시는 게 전부다. 김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도 붕어빵 장수로서 가진 원칙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무리 바빠도, 손님들에게 깨끗한 음식을 대접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그는 "먹는 음식은 청결이 우선이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작업 장갑을 새 것으로 바꿔 끼면서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장인정신으로 30년간 만들어 온 김씨의 붕어빵은 맛도 최고, 청결함도 최고다. 그가 붕어빵을 굽고 있는 기계는 두꺼운 강철로 만들어졌고, 10개를 동시에 구울 수 있다. 그의 아들에게까지 물려줄 만큼 단단하다. 김 씨는 "아들이 가업을 이어받아 반죽도 할 줄 알고 장사도 잘 하고 대견하다"고 한마디 덧붙였다.이 시대에 필요한 직업정신이 바로 장인정신이다. 또한 부모의 업을 이어갈 수 있는 마음가짐은 이 시대에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닌가. 붕어빵 하나로 사람들을 모으고 그 맛으로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장터 사람들. 대한민국 최고의 맛으로 붕어빵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해주는 김준영 씨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2016-08-28 경인일보

[이수길의 장터사람들·7] 파주시 금촌장터 쌀장수 안정숙 씨

경기도 대표 1·6장왕년의 왕성함 간직황해도서 피난 정착장터내 최고 어르신"엄마 삶터 지키려"큰딸이 대물림 나서5일 장터는 시군단위로 같은 지역에서 5일마다 돌아가며 장이 서고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끝에 오는 숫자가 1일과 6일에 걸리는 날짜에 장이 서는 1·6장의 장날은 1일, 6일, 11일, 16일, 21일, 26일이다. 파주시 금촌 장터는 경기도의 대표적인 1·6장이다.금촌 장터는 유서 깊은 장터로 우시장이 포함될 정도로, 5일 장으로서는 규모가 컸다. 파주지역에서는 문산 장터와 함께 금촌 장터가 시골냄새 풍기고 정이 넘치는 왕년의 왕성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장터에서 쌀장사로 뼈가 굳은 할머니가 계시니, 금촌 장터의 주인공으로 선택한 안정숙(81) 씨다.그녀의 고향은 황해도 장단이고 피난 내려와 살다가 금촌 장터에 정착해 살았다. 20살의 꽃다운 나이에 혼인해 2남 1녀를 두었다. 시집와서 부터 쌀장사를 했으니 60년의 세월을 오로지 쌀만 팔며 자식들과 먹고 살았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세월이다. 평생 쌀자루를 들었다 놨다 한 탓에 관절이 많이 상했다. 힘이 빠진 지금은 큰 딸이 싸전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면서 돕고 있다.세월은 흘렀어도 젊어서 부터 단골이었던 손님들이 나이 들어 할머니가 되었어도 지팡이를 짚고 찾아온다. 예전에는 먹고 살 주식인 쌀을 사러 왔지만 지금은 쌀도 살 겸해서 말동무라도 할 생각으로 찾아들 온다. 장날이면 아침 부터 안 씨 할머니의 싸전은 단골손님들이 모여 웃음꽃을 피워내는 사랑방으로 변한다.안 씨 할머니는 "정직하게 살다 보면 사람이 모이고 좋은 인연으로 살아진다"고 인생선배의 금언 한마디를 남긴다. 장날에 지나가는 사람마다 안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안부를 묻기도 할 정도로 금촌 장터에서는 최고 어르신이다.그녀의 뒤를 이어가려고 돕고 있는 딸 이순임(57) 씨도 "우리 엄마는 자식들을 사랑으로 키우셨다. 그래서 자식들이 모두 착하게 컸다.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려고 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엄마 자랑 삼매경에 빠진다. 엄마의 쌀가게를 물려받기로 한 것도 따지고 보면 경제적인 이유 보다 엄마의 평생 삶의 터전을 없앨 수 없다는 마음에서다.부모의 일을 대물림 받아 번성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욕심 버리고 정성껏 엄마의 손님들을 잘 모시고 새로운 장터의 손님을 만들어 보겠다고 당찬 모습을 보여주니 마음이 든든하다. 장사의 장인인 엄마와 그 엄마의 삶터를 지탱하려는 딸내미의 효심이 금촌장터를 더욱 빛내고 있었다./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2016-08-21 경인일보

[이수길의 장터사람들·6] 파주시 문산장터 마늘장수 안영자씨

의성·서산 밭 찾아가 직접 확인26년간 같은 자리서 '손님맞이'철따라 적성産 고추도 효자품목독거노인등 이웃 도우며 '신바람'장날마다 단골손님들은 파주시 문산 장터의 안영자(74·여) 씨를 기다린다. 가는 장터마다 흥을 전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마늘장사 장돌뱅이 안씨는 충남 천안에서 결혼해 살다가 파주 금촌에 정착하며 장터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인력거에 장 보따리를 싣고 다니며 이장 저장을 떠도는 시간을 견디게 한 것은 3남 2녀를 올곧게 키우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장터에서의 삶을 시작하기 전에는 길거리에서 포장마차, 만두 장사, 수박 장사, 과일 장사 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않고 다 했다. 34년이라는 세월을 장사로 먹고 살아오면서 쓴맛과 단맛을 모두 경험했다. 그중 마늘장사는 안씨의 전문분야라고 할 수 있다. 26년간 마늘철마다 같은 장터 같은 자리에서 토종마늘만 취급해 왔다. 철마다 파는 제품을 바꾸지만 마늘과 고추가 생활에 크게 도움을 준 효자종목이다. 마늘은 의성과 서산에서 생산된 것만 취급하고 고추는 적성에서 생산되는 품종만 판매한다. 좋은 마늘을 도매로 매입하기 위해 의성과 서산 마늘밭에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확인한다. 안씨는 "나를 믿고 오랜 세월 단골로 찾아오는 손님들에 대한 예의이고 신뢰이다. 그래서 좋은 품종을 골라 파는 게 손님에 대한 최대한의 보답이다"며 장사의 신조를 말했다. 그녀는 마늘을 팔 때에는 줄기를 잘라내고 개수를 세는데 그 소리에 흥이 담겨있다. 손님들에게도 흥이 그대로 전달되어 좋은 물건도 사고, 행복감도 얻어간다.안씨는 양주 덕정장(2-7일장), 일산장터(3-8일장), 문산장터(4-9일장), 적성장터(5-10일장) 등에서 행복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 마늘 철이 끝나면 고추 철이 오고 고추 철이 끝나고 겨울이 오면 곡물과 견과류를 주로 판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도 '돈 세는 재미가 솔솔'하다는 안 씨의 얼굴은 행복한 미소로 가득했다. 장터 바닥에 돈 통을 의자 삼아 깔고 앉아 장사를 하는 안 씨는 주변에 독거노인을 돕는 일에도 열정적이다. 그동안은 자식들과 먹고 살아 가는데 열정을 썼지만, 지금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살아가는 데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산다. /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2016-08-07 경인일보

[이수길의 장터사람들·5] 김포 양곡장터 전통 떡장수 몽골부부

용인 민속떡집서 기술 배워근면 하나로 단골 손님 유치'한국정착 노하우' 한수배워떡을 먹지 않는 '몽골 사람'이 '한국전통 떡 장사'를 한다. 몽골 사람들은 양고기와 빵을 주식으로 하는 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도 떡을 안 먹는 사람은 있지만 대부분 떡은 잔치를 하거나 모임 때에 많이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그런 떡을 한국인이 아닌 몽골 사람이 만들어 판다.김포시 양곡장터에서 떡집을 하는 간바(47)씨와 토야(47)씨 부부. 1남 2녀를 둔 이들 부부는 다문화 가정이 아닌 순수한 몽골인 가족이다.두 딸은 몽골에서 낳았고 아들은 최근에 늦둥이로 한국에서 낳았다.양곡장터에서 떡 장사로 자리 잡고 살면서 장사도 잘 되고 한국생활도 안정이 되었다.큰 딸은 한국의 국립대에서 국제법을 전공했고 작은 딸은 몽골에서 치과대학에 재학 중이다.두 딸은 모두 결혼해 나름대로 잘 살고 있으며 부부는 떡집을 운영하면서 인연이 된 단골손님들과 행복한 한국생활을 하고 있다.이들은 한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병원에 가서 의사소통이 잘 안 되었을 때"라고 토로했다. 지금은 한국에서 20년이 넘어 불편한 점을 못 느끼고 산다. 남편 간바 씨는 떡 만드는 기술을 용인 민속떡집에서 전수 받았다. 일반적으로 떡을 만드는 기술은 2~3년을 배워야 독립해서 장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간바 씨는 6개월 만에 모든 과정을 습득하고 양곡장터에서 민속떡집을 개업해 한국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해 많은 단골손님을 만들었다.장날이 아닌 날에는 생일 떡이나 잔치 떡 주문이 많이 들어오고 장날에는 만들어 놓은 떡을 많이 사간다. 추석명절에 쌀 열가마니 분량의 송편을 만들어 팔았던 때도 있다. 도우미를 쓰고 싶어도 의사소통이 잘 안 돼 속 편하게 부부 둘이서 만들어 팔았다.이들 부부가 만들어 파는 떡은 모두 20여 가지가 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잘 팔리는 떡은 콩 호박설기, 송편, 시루떡 등이다. 남편은 맛을 봐야 맛있는 떡을 만들 수 있어 먹다보니 이제는 떡보가 되었다. 그는 가래떡에 김을 말아먹는 걸 가장 좋아한다.시골장터에서 한국의 전통 떡을 손맛으로 만들어 내는 몽골부부. 한국 사람도 쉽지 않은 떡 만드는 기술을 단시간에 습득해 헝그리 정신으로 장터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몽골부부에게 한 수 배운다. /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2016-07-31 경인일보

[이수길의 장터사람들·4] 김포장터 생선장수 김정순 할머니

전남에서 태어나 김포 마송에 정착토종닭 잘될땐 하루 100마리 판매"장사꾼은 장터에서 뼈를 묻어야"생선으로 밑천바꿔 여전히 '情'나눠경기도 김포시는 맛좋은 쌀이 나오는 김포평야가 있던 고장인데 지금은 그 넓은 평야에 아파트가 밀집한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옛날의 시골풍경은 사라졌다. 시골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인구는 팽창됐다. 김포 5일장은 인구의 증가로 더 활성화됐다.김포 장터 사람들에게 새로 유입된 신도시 입주민들이 장터를 찾으면서 활기가 살아났으니 이보다 반가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장터는 오랜 세월 부침을 거듭해왔다. 김포장터의 변화무쌍한 세파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살아온 생선장수 김정순(80) 할머니가 오늘의 주인공이다.그녀는 전남 하산마을이라는 오지에서 태어나 23살에 충남 논산으로 시집와 살다가 39살에 김포시 마송에서 장사하면서 정착해 살았다. 마송으로 이주해 살면서 2남3녀와 먹고 살기 위해 닭 장사로 장돌뱅이 생활을 시작했다. 40년 전 시골장터에서 닭 장사는 먹고 살만한 장사였고 하루에 100마리까지 팔리는 날도 있었다. 그야말로 돈방석을 깔고 장사를 할 정도로 팔림새가 좋았다. 30년 넘게 닭 장사로만 김포장터(2·7일장), 마송장터(3·8일장), 하성장터(4·9일장)를 순례하며 닭을 팔았다.김 할머니는 "나는 닭을 팔아 돈을 벌어 자식들과 먹고 살 수 있어 행복했고 손님은 토종닭을 살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한다. 정직한 거래는 할머니의 자부심이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모질고 고된 장터 세월을 살면서 심해진 허리통증과 관절통으로 닭 장사는 접었다. 자식들은 아예 편히 쉬라고 했다. 하지만 "장터에서 뼈가 굵은 장사꾼은 장터에서 뼈를 묻어야 한다"며 장사 밑천을 닭에서 생선으로 바꾸었다.지금은 아들딸과 함께 생선 장사를 하면서 손님들과 안부도 묻고 시원한 냉커피도 주고받으면서 시골 장터에서만 맛볼 수 있는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사신다. 쉰 종류가 넘는 생선이름을 모두 외우는 것은 물론 손님들에게 요리법까지 설명해준다. 큰딸 백금희(52)씨는 "우리 엄마는 자식들에게 '이놈저년'이란 욕 한 번 안 하시고 사랑으로 키우셨다. 그야말로 강하고 위대한 엄마"라며 자랑스러워했다. 80대의 어르신들이 살아오신 세월은 오로지 자식을 위한 일념이었다. 자식을 위해 새벽마다 정안수 떠놓고 두 손 모아 빌며 살아온 세월. 어머니 품속같이 따뜻한 김포 5일장으로 발걸음을 옮겨 마음의 비타민제를 듬뿍 섭취해 보심도 좋을 듯./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2016-07-24 경인일보

[이수길의 장터사람들·3] 고양시 일산장터 쌀장수 부부

일산토박이 2대째 가업장날 한번도 쉰적없어배달 일 힘에 부쳐도장터 전통 후대 남길600년 역사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고양시는 대한민국에서 10번째로 100만 명을 넘는 대도시로 팽창했다. 그런 대도시 안에 인심과 정이 넘치는 5일장이 선다. 바로 일산 5일장(3/8일장). 장날이면 500여 명이 넘는 상인들이 모여 장사를 하고 지역주민들과 희로애락을 공감한다.이번 장터사람들의 주인공은 일산에서 태어나 지금껏 쌀농사 지으며 2대째 쌀장사로 가업을 잇고 있는 남편 박장필(70) 씨와 아내 이종림(70) 씨. 박 씨도 그의 부친도 일산초교 졸업생이고 일산 토박이다. 보릿고개 시절, 쌀은 귀한 작물이었고 아무나, 아무때나 먹을 수 있는 곡식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젠 넘쳐나는 먹을거리 탓인가. 쌀이 천대(?) 받는 시대에 이르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쌀장사를 고집하며 살아온 세월이 44년. 아버지에게 싸전을 물려받았을 때 1천원이던 쌀 1말(8kg) 값이 지금은 2만3천원 한다. 박 씨는 "쌀장사가 잘 될 때는 하루에 30가마도 팔았는데 지금은 그 반도 못 판다"며 "예전에는 쌀장사만으로도 자식들 먹이고 키우고 가르칠 수 있었는데 지금 장사로는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말한다.70~80년대 한창 때와 같은 팔림새는 아니지만 부모님이 하실 때 부터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많아 문을 닫을 수가 없다. 쌀을 사러 나오기도 하지만 말동무라도 할 마음으로 쌀가게를 찾아와 얼굴도 보고 놀다가 가신다. 그래서 장날에는 한번도 쉰 적이 없다.이들 부부가 팔고 있는 곡물은 30여 가지인데 대부분 국내산을 취급한다. 다만 메조, 동부(콩), 녹두, 적두(팥), 참깨, 깐 메밀, 기장(조) 등의 곡물은 수입품이다. 싸전에 밀고 들어 온 값싼 수입곡물을 볼 때 마다 농부였던 박씨 부부의 마음이 편할리 없다. 하지만 그게 시장논리라니 그렇다 여길밖에···.쌀장사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이 배달이다. 엘리베이터가 없고 계단만 있는 곳은 배달이 몇 배로 힘이 더 든다. 박 씨의 부친은 아들 걱정하는 마음으로 오토바이를 배우지 못하게 해 처음엔 쌀 배달을 자전거로만 했다. 90년대에 들어서 겨우 자격증을 취득해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게 됐다.오랜 세월 무거운 곡물자루를 들고 나르고 하는 반복적인 생활로 근육은 빵빵하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가 없듯이 허리와 관절은 통증 가실 날이 없다. 그래도 일산 장터는 오고가는 사람들과 인연이 되어 정을 나누고 먹고 살아온 평생의 삶의 터전이다. "100년의 역사와 전통이 후대까지 전해져 따뜻한 정을 나누고 행복바이러스가 넘치는 일산장터가 됐으면 해." 박 씨 부부의 바람이다. /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

2016-07-18 경인일보

[이수길의 장터사람들·2] 성남 모란장터 팥죽할머니

전국 535곳중 가장 큰 5일장시원한 콩국한입 '엄마 생각'홀몸노인에 공짜 대접 '훈훈'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자리한 535개 5일 장터 중 성남시에 위치한 모란장터는 그 크기로 가장 으뜸이다. 장터에 모이는 상인들만 950여 명이 되고 주말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5일장이다.모란장터에서 고향의 맛과 정이 물씬 담긴 팥죽을 파는 강길레(72·여) 씨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김제에서 태어난 그녀는 24살에 결혼해 1남 2녀를 먹여 살리기 위해 보따리 장사로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보따리 장사로 돌아다닌 장터만 30여 곳이나 되는 그야말로 장사의 신 그 자체다. 잡곡 장사로 시작해 고추장사와 만물장사 등을 거쳐 모란장터에서 팥죽 장사로 정착했다.장날에 그녀의 팥죽을 먹으려고 전국(서울, 인천, 철원, 수원, 용인 등) 각지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500여 명을 넘을 때도 있었다. 그녀가 팔고 있는 음식은 팥죽, 호박죽, 팥 칼국수, 콩국수 등이 주 메뉴이고 특히 팥죽에 손수 만들어 넣은 새알 맛이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강 씨는 모든 손님들에게 따뜻한 말과 표정으로 시골에 계신 어머니와 같은 느낌으로 맞이해준다. 가령 "더운데 시원한 콩국 한 잔 들이키라"면서 주전자에 든 콩국을 종이컵에 따라주는 식이다. 장날마다 찾아와 고향을 생각하면서 팥죽을 먹는 단골손님들은 "강 씨는 독거노인들에게는 돈을 안 받고 공짜로 팥죽을 대접한다"며 "팥죽을 파는 것이 아니라 구수하고 따뜻한 정을 나누고 있다"고 목격담을 전한다.최근 강 씨는 인공연골 수술을 받고 힘든 일을 하지 못해 며느리에게 대물림 결심을 했다. 며느리는 작년 10월부터 수습생으로 일하면서 시어머니가 일러주는 단골손님들과 안면을 트느라 정신이 없다. 장터생활 초년생인 며느리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장터로 나오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의 대답은 이랬다. "그게 힘들면 평생 그렇게 살아온 나를 생각해 봐라. 역지사지로 극복할 수 있을 거야." 간결하지만 인생선배가 풍진 세상을 건너오며 체득한 정답 아닌가.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우리들의 어머니 세대가 살아온 세월을 거울로 삼아 살아간다면 못 할 일이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경기도에서 가장 큰 모란장날에 팥죽 한 사발로 고향의 향수도 느끼고 장인정신으로 살아온 세월도 느끼고 그 세월에 담긴 따뜻한 정도 나눠보면 어떨까./이수길 사진작가팥죽으로 일평생 1남 2녀를 먹여 살린 성남 모란시장 상인 강길레(72.여)씨.이수길 사진작가

2016-07-10 경인일보

[이수길의 장터사람들·1] 강화장터 절구 쳐 만든 인절미 장수 할머니

인천시 유일 '신토불이 5일장'아이 넷 키우고 수억대 빚갚아'옛방식의 떡' 수도권 단골 줄서강화군 강화읍에 서는 5일장은 대한민국 서해 최북단의 시골 맛 물씬 나는 인천광역시의 유일한 5일 장터. 시골 맛 나는 장터는 과연 어떤 곳일까? 어릴 때 엄마 등에 업혀서, 또는 손잡고 다녀봤던 시골 장터의 모습이 아련하다. 천막도 없고 장터에 보따리를 펼쳐놓고 나란히 줄지어 앉아 농산물을 팔고 계시는 어머니들의 모습. 비가 오면 그냥 비닐을 뒤집어 쓰거나 허름한 우산을 받친 채 장사를 해야 하는 그 시절의 장터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음속에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강화장터에는 옛날 모습이 그나마 남아 있다. 장날이면 할머니들이 보따리를 이고 지고 메고 끌고 새벽부터 장터로 집결한다. 그야말로 신토불이 시골 장터다. 그런 장터에 50년간 장사로 자식들 먹이고 키우고 가르치며 남편이 남기고 간 억대 빚까지 청산하신 장한 어머니. 그녀가 바로 황순이(79·가명)씨다.황씨는 19살에 시집와 2남 2녀와 함께 먹고 살기 위해서 양계장, 축산, 논밭농사, 뻥튀기 장사, 식당 등 안 해본 일이 없는 강화도 토박이다. 30년 동안 절구로 내리쳐 만든 떡은 인절미, 백설기, 시루떡 등 종류를 헤아리기도 어렵다.강화장터에서 인절미를 절구로 쳐 옛날 방식으로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김포, 일산, 인천, 서울 등에서 단골손님이 장날(2/7일장)마다 찾아와 줄을 서서 맛을 봤다. 어릴 때 시골집에서 만들어 먹던 인절미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 황 씨 할머니가 만드는 인절미 맛을 보러 찾았다. 그야말로 신토불이 맛과 정 그 자체였다.고향의 어머니 손맛은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그대로 살아 숨 쉰다. 절구 하나로 수억의 빚을 갚았다고 취재 중에 다섯번은 말한 황 씨는 "절구질을 500번 내리쳐야 쫄깃한 인절미 맛을 볼 수 있다"고 힘차게 말했다. 이처럼 시골장터에는 우리의 옛 정서가 살아 있지만 빠른 속도로 그런 정서와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아쉽게도 황 씨도 1년 전부터 장사를 그만두고 장터를 졸업하셨다. 한평생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살아오신 장터의 삶에 대한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5일 장터 장한 어머니상'을 드리고픈 심정이다. 이제 두 다리 쭉 펴시고 편안한 삶을 사셨으면 한다. 우리의 문화이고 저력인 5일 장터. 더 사라지기 전에 장터 문화체험을 통해 삶의 활력소가 되었으면 한다./이수길 사진작가■ 이수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는1980년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졸업/2012년 '장터1 모정의 세월' 사진집 발간/2013년 '장터2 장인정신' 발간/2014년 '장터3 희로애락' 발간/2015년 '장터포토에세이, 문득 삶이 그리운 날에' 발간/경남정보대학교 겸임교수 역임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들어선 5일장에서 절구로 떡을 치고 있는 황순이(79·가명)씨.이수길 사진작가

2016-07-03 경인일보

'이수길의 장터 사람들' 경인일보 연재 시작하는 이수길 작가

어른에게 그동안 잊었던 향수 자극청소년에겐 대한민국 저력인 장인정신,전통적 가치 재인식 기회 되길어려운 살림살이를 자식에게는 대물림하지 않으려, 내가 겪는 고통의 아픔이 가족에겐 전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보따리를 들고 장터에 나선 사람들. 5일장에 얽히고 설킨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의 자화상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와 함께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존재하게 한 장인정신과 헝그리정신도 함께 사그라들고 있다.사라져가는 전통 장터와 장터 사람들의 가치를 기록하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경인일보는 4일 부터 매주 월요일 '이수길의 장터 사람들'을 연재한다. 어른들에게는 향수와 함께 대한민국의 근원과 저력이 어디에 기인하는지를 상기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장터 문화를 접하지 못한 청소년에게는 현재 누리는 안락한 삶의 기저에 숨겨진 전통적 가치를 재인식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자 경남정보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낸 이수길(사진) 작가는 지난 2008년부터 전국의 535개 장터를 돌며 자식을 위해, 손주를 위해 차가운 바닥에 보따리를 펴고 앉은 상인들의 모습을 앵글에 담아왔다. 사진 속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절박함과, 덕담과 덤이 오가는 인심의 넉넉함이 함께 담겨 있다.이 작가는 "5일장에는 부모에 대한 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장터로 나서는 장인정신, 현대의 아파트 문화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정(情)이 가득 담겨있다"며 "연재를 통해 다음 세대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이끄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연재 소감을 밝혔다.그는 지난 2013년부터 전국의 65개 중·고등학교를 돌며 강연을 통해 장터의 소중함을 청소년에게 알리고 있다. 이어 이달부터는 특수학교까지 폭을 넓혀 현재는 연세대학교 재활학교에서 첫 강의를 진행 중이다.이 작가는 "수도권은 인구가 밀집되고 현대화 속도가 더 빠른 만큼 전통 장터의 수도 타 지역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드는 추세"라며 "장터에 대한 국민과 공공의 관심을 더욱 높여 5일장이 주는 소중한 가치를 앞으로도 계속 보존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2016-06-30 권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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