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9)펜데레츠키를 추모하다]'한국 교향곡' 쓴 폴란드 음악 대통령

현악기 52가지 '음향작곡' 유명1992년 내한 KBS 교향악단 지휘 1960년 27세의 폴란드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1933~2020)는 쉰두 개의 현악기로 연주되는 '8분37초'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불길한 트레몰로(음이나 화음을 빨리 규칙적으로 되풀이하는 주법)로 시작해 음산한 비행음, 원자폭탄 투하 직후의 섬광을 그려내는 듯한 강렬한 음향, 악기의 몸통을 때리면서 나오는 부산스런 소음 등을 8분여 동안 표출했다. 4분의 1음으로 나뉜 음들을 악기들이 한꺼번에 내는 불협화음을 통해 지옥 같은 광경과 핵폭풍이 휩쓸고 간 후의 처연한 적막감 등을 표출한 거였다.펜데레츠키는 곧바로 작품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제목을 '52인의 현악 주자를 위한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哀歌)'로 정정했다. 우리에겐 광복을 안긴 사건이었지만, 인류 전체로 봤을 때 원자폭탄 투하로 전쟁의 종결을 알린 비인간적인 측면을 부각한 작품이었다. '음향작곡(Klangkomposition)'의 대표격인 이 작품은 20세기에 쓰인 가장 위대한 음악으로도 거론된다.펜데레츠키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고향인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지병으로 86년의 생을 마감했다.'폴란드의 음악 대통령'으로도 불린 펜데레츠키는 모더니즘 음악 작곡가 중에서는 드물게 대중적 인기도 누렸다. 강렬한 주제들을 음악으로 구현했기 때문이었다. '애가'를 비롯해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아픔을 다룬 '누가 수난곡' 등 사회성 짙은 작품들로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1970년대 이후 '음향작곡' 어법을 버린 펜데레츠키는 낭만적 색채를 지닌 작품을 쓰면서 "아방가르드(avant-garde)를 배신했다"는 비판도 받았다.동유럽 공산주의가 붕괴하고 이들 국가와 우리나라가 수교하면서 펜데레츠키와 우리의 인연도 시작됐다. 1991년 우리 문화부는 펜데레츠키에게 광복의 의미를 담은 작품을 부탁했다. 이 세계적 작곡가가 일본을 위한 곡('애가')을 만들었다면 당연히 한국을 위한 곡도 써야 한다고 여겼던 거였다. 펜데레츠키는 우리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 모티브를 반복적으로 쓴 교향곡 5번 '한국'을 작곡했다. 펜데레츠키는 KBS 교향악단을 지휘해 1992년 8월 14일 자신의 '한국 교향곡'을 초연했다.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국권을 잃었던 역사를 공유해서인지 한국에 깊은 애정을 가졌던 펜데레츠키는 2005년 서울대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해 10월에도 내한해 '누가 수난곡'의 한국 초연을 계획했으나 건강이 나빠지면서 무산된 바 있다. 결국 거장은 일어서지 못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20-04-02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8)차이콥스키의 죽음]거장을 죽인 콜레라, 혹은 동성애 혐오

코로나 19의 확산세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에 전염병을 소재로 한 책과 영화가 새롭게 조명되고, 많은 칼럼에선 전염병 관련 옛이야기를 소환하고 있다.음악계에도 전염병 관련 이야기가 여럿 있다. 19세기의 콜레라는 '근대적' 질병이었다. 런던을 비롯한 유럽 도시들의 팽창 속도와 비교해 상하수도 시설이 따라주지 못했고, 오염된 물을 마신 사람들이 콜레라에 걸렸다.무역이 발달하고 교통망이 확대되면서 2차, 3차 감염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1820년 전후, 1800년대 유럽에선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콜레라가 유행했다.당시 콜레라로 죽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 '러시아 낭만주의'를 완성한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를 꼽는다.1893년 2월, 교향곡 6번 '비창'의 작곡을 시작한 차이콥스키는 그해 9월에 작품을 완성했다. 10월 지휘대에 올라 이 작품을 초연한 차이콥스키는 9일 후 세상을 떠났다. 러시아 황실에선 차이콥스키가 죽기 며칠 전 식당에서 끓이지 않은 물을 마시고서 콜레라에 걸렸으며, 끝내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차이콥스키가 타계하고 12일 뒤 개최된 두 번째 '비창'의 공연에서 청중은 꺼지듯 사라지는 작품의 마지막 음형과 함께 작곡가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함께 눈물지었다. 작곡가의 염세적 세계관과 개인적 슬픔이 집약된 '비창'을 사람들은 '자살 교향곡'이라고도 불렀다. 이와 함께 대작곡가의 죽음에 의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특히 지인들은 콜레라로 죽었다고 하면서도 소독이나 검역이 없었던 점을 의심했다. 차이콥스키의 시신 앞에 6만명에 이르는 참배객이 다녀갔지만 제지하지 않았다는 거였다.차이콥스키에겐 비밀이 있었다. 그는 당시 윤리기준에서 용납될 수 없었던 동성애자였다. 동성애 성향을 감추기 위해 여 제자와 결혼을 하지만, 며칠 만에 집에서 뛰쳐나왔다. 여러 차례 정신과 치료도 받았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차이콥스키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법률학교를 나왔으며, 법무부 서기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음악에 전념했는데, 비밀을 알아챈 법률학교 동료들은 소규모 '동문 청문회'까지 열어 자살을 종용했다. 이를 받아들인 차이콥스키가 콜레라와 비슷한 증상을 내는 독극물인 비소를 먹고 사망했다는 설이 오늘날에는 설득력을 얻는다. 이게 맞는다면, 차이콥스키의 경우는 자살이면서 타살인 기묘한 죽음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20-03-26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7)윤이상]아시아 최초 유럽 음악계 인정받은 작곡가

간첩으로 몰린 동백림 사건 겪어정치·사회적 표현 150여편 남겨 윤이상(1917~1995)은 아시아 출신으로는 유럽 음악계의 인정을 받은 첫 작곡가였다. 그는 서양 모더니즘 음악기법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적 이미지를 구현한 최초의 인물이었다.해방 이후 부산과 통영에서 음악교사로 있었던 윤이상은 1957년 유럽으로 떠났다. 1966년 독일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에서 초연된 대편성 관현악을 위한 '예악(Reak·禮樂)'은 윤이상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줬다. 윤이상은 1960년대 들어서 펜데레츠키와 리게티 등이 추구한 음향작곡(Klangkomposition) 기법을 바탕으로 하되 우리 전통음악에서 유래한 여러 요소들, 즉 미분음과 비브라토(농현), 장식음 등이 가미된 독특한 음향 세계를 선보이며 서양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1967년엔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을 겪었다. 박정희 정권은 1963년 북한에 다녀온 윤이상을 간첩으로 지목해 강제로 데려왔다. 북한에서 옛 친구를 만나고, 평남 강서군의 강서대묘에 있는 고구려의 사신도를 보고 돌아온 윤이상에게 징역 10년이 최종 선고됐다. 윤이상은 옥중에서도 작곡을 이어갔다. 사신도를 보고 받은 영감을 실내악곡 '영상(Images)'에 담아냈다. 1968년 탄생한 이 작품에서 플루트, 오보에, 바이올린, 첼로는 하나이자 넷으로 어우러지며 다채롭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작곡가는 후일에 "고구려 무덤을 지키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어둠 속에서 강렬한 색채로 빛났고, 넷이면서 동시에 하나로 어우러져 있었다"고 회상했다.세계 음악계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2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윤이상은 이후 정치·사회적 경험들을 명확한 음악 언어로 구사했다. 윤이상은 1972년 뮌헨올림픽 개막 축하작이었던 오페라 '심청'을 비롯해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교향시 '광주여 영원하라',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분신한 사람들의 넋을 추모한 '화염에 휩싸인 천사와 에필로그', 북한국립교향악단이 초연한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등 15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낸 작곡가 이건용(73)은 윤이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윤이상은 큰 인물이다. 그래서 전체를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어떤 사람은 통일운동가로서의 그를 얘기하고, 어떤 사람은 작곡가로서의 그를 얘기한다. 또 다른 사람은 현대작곡가인 그를, 다른 사람은 민족음악가인 그를 주목한다. 그의 대강을 짐작하기 위해서는 여러 관심이 모여서 하나의 큰 전체를 이룰 때에야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는 크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20-03-19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6)음악의 성인(聖人)]"브루크너 음악에는 신이 살아있다"

교향곡 3번 말러 기립박수 일화거대 성당·장대한 우주 연상시켜 음악사에서 '3B'는 성이 B로 시작하는 작곡가 바흐와 베토벤, 브람스 등 3인을 지칭한다. 베토벤과 말러 사이의 가장 중요한 교향곡 작곡가로 평가되는 안톤 브루크너(1824~1896)를 브람스 대신 포함하기도 한다.오스트리아 린츠 인근의 안스펠덴에서 태어난 브루크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어린 시절 그는 부모님과 성 플로리안 성당에 종종 갔다. 높이 솟은 탑과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바로크 건축양식의 성당과 웅장한 오르간(1771년에 제작된 이 명품 오르간은 현재 '브루크너 오르간'으로 불린다)은 어린 브루크너에게 종교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13세에 이 성당의 성가대원이 되었고, 24세에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는 등 성 플로리안 성당에서 보낸 17년은 브루크너 음악의 근간이 형성된 시기였다. 31세에 빈 음악원 교수였던 지몬 제히터를 찾아가 6년 동안 작곡을 배운 후 나름의 스타일을 갖춘 첫 작품('미사 D단조')을 40세에 발표했다. 슈만과 바그너, 브람스 등의 첫 걸작이 20대에 나온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늦었다.44세에 '교향곡 1번'을 발표한 브루크너는 5년 후인 1873년엔 '교향곡 3번'을 완성해 바그너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거대한 규모와 곡의 난해함으로 인해 당대 오케스트라들은 연주를 거부했다. 1877년에 이르러서야 작곡가가 직접 빈 필하모닉을 지휘해 초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공연장의 청중은 하나둘 빠져나갔고, 연주가 끝났을 땐 20여명 만이 남았다고 한다. 굴욕의 순간에 17세의 청년 음악도였던 말러가 기립 박수로 작곡가에게 존경을 표시한 일화는 유명하다.1884년 '교향곡 7번'으로 대성공을 거둔 브루크너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 중 하나로 평가받는 '8번'을 완성했으며, 이어지는 걸작인 '교향곡 9번'의 마지막 악장을 끝내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거대한 성당과 장대한 우주를 연상시키는 악상과 숭고한 아다지오 악장, 압도적인 피날레 악장 등을 갖춘 그의 음악은 꾸준히 음악애호가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말러의 제자이자 20세기 위대한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생전에 "말러는 신을 찾기 위해 계속 방황한 반면 브루크너는 이미 찾았다. 그의 음악에는 신이 살아 있다"고 평가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20-02-27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5)세상에서 제일 긴 클래식]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4일동안 16시간 연주

영화 '반지의 제왕' 모티브 음악극에릭 사티 '벡사시옹' 13시간 걸려 세상에서 가장 긴 음악은? 19세기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극(Musikdrama)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이하 '반지')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가 되었다. 총 연주시간은 16시간(휴식시간 제외)이나 된다. 이 작품은 전야(前夜·'라인의 황금')와 3일간의 본편('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구성됐다. 평균 4시간에 이르는 작품들이 4일 동안 펼쳐지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제전에서 상연했던 3부작의 '그리스 비극'을 모델로 했다. 그러나 프롤로그 격인 '라인의 황금'에서 이미 구체적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4부작으로 봐도 무방하다. 단일 음악으로는 13시간 동안 연주해야 하는 에릭 사티의 전위적 작품인 '벡사시옹(Vexations)'도 무척 길다.바그너는 총체 예술 작품(Gesamtkunstwerk)을 표방하며 음악과 연극, 이야기가 하나로 결합된 예술인 '음악극'을 창안했다. '음악에 봉사하는 연극적 요소'를 갖춘 기존의 오페라와 차별화를 꾀한 거였다.바그너 음악극의 정수인 '반지'는 작곡가가 직접 대본을 쓰고 작곡을 하는 데 26년이 걸렸다. 또한 바이에른의 소도시 바이로이트에 자신의 음악극 상연에 적당한 극장을 건립한 바그너는 1876년 극장 개관 기념작으로 '반지'를 초연했다. '반지'는 북유럽의 신화와 게르만족의 전설을 혼합해 만들어졌다. 저주받은 반지가 저주에서 풀리기까지의 40여년 동안의 과정과 반지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극은 16명의 주역을 포함해 3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바그너는 16시간에 이르는 복잡한 이야기를 관객에 쉽게 전달하기 위해 몇 가지 장치를 마련했다.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합창단)는 전지적인 관점에서 극의 전사(前事)를 설명하고 무대 배경을 제시하며, 주인공을 비난·설득·독려했다. 바그너는 이 역할을 오케스트라에 부여했다. 이를 '유도동기'(Leitmotiv)라고 한다. '반지'에는 100여 개에 달하는 유도동기가 사용됐는데,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음악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사건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고, 상황들을 연계해서 감상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았다. 이러한 장치들은 세상에서 가장 긴 음악을 질서와 구심력을 갖춘 가장 정돈된 작품으로 만들었다.20세기의 거장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는 생전에 "나는 13~16세에 바그너의 작품 전부를 암보(暗譜)로 연주할 수 있었다"면서 "바그너는 초인이며, 그에게 필적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셰익스피어뿐"이라고 말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20-02-20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4)악마의 트릴]꿈에서 영혼과 맞바꾼 '악마의 연주'

'서거 250주기' 주세페 타르티니바이올린 소나타 에피소드 유명 올해 음악계의 시선은 탄생 250주년인 베토벤에게 쏠려 있다. 바이올린 연주자 중 일부는 올해 서거 250주기를 맞는 후기 바로크 시기의 작곡가이자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주세페 타르티니(1692~1770·이탈리아)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준비 중이다.개관 3년 차를 맞는 아트센터 인천 또한 3월부터 본격적인 시즌을 시작하는 가운데 베토벤 탄생 250주년, 타르티니 서거 250주기을 기념한 공연을 주요 자리에 배치했다. 오는 4월부터 12월까지 격월로 매주 마지막 토요일 오후에 '해설이 있는 음악회 토요 스테이지'를 통해 두 작곡가를 조명할 예정이다. 특히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는 베토벤과 타르티니를 주제로 한 공연과 강연, 토크 콘서트를 갖는다.타르티니는 비발디와 함께 바로크 시기 2대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힌다. 뛰어난 음악 이론가이기도 했던 타르티니는 작곡가로서 수백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소나타를 남겼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곡이 '바이올린 소나타 G단조, 악마의 트릴'이다. 이 작품에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1713년 어느 날 밤, 꿈속에서 타르티니는 악마를 만났다. 악마는 타르티니의 영혼을 사는 대신 모든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고, 타르티니가 바이올린을 건네자 악마는 황홀할 정도의 트릴(떤꾸밈음이라고도 하며, 악보에 쓰인 음과 그 2도 위의 음의 빠른 연속적인 반복으로 이루어짐)이 있는 아름다운 곡을 연주했다. 잠에서 깬 타르티니는 기억을 더듬어 악마가 연주한 선율을 악보에 기록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악마의 트릴'이다. 작품 발표 후 타르티니의 왼손가락이 여섯 개였기 때문에, '악마의 트릴'을 연주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타르티니의 초인적인 기교와 작품의 탄생 일화가 만나 생겨난 가십으로 치부할 수 있다.이 같은 가십은 비르투오소(virtuoso) 연주자들에 종종 따라 붙었다. 바이올리니스트와 악마의 연관 관계의 대표격은 타르티니의 후배인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받는 파가니니는 2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린다. 파가니니의 예술과 사랑을 다룬 영화의 제목 또한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2013년)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20-02-13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3)모더니즘 Ⅱ]극한의 객관성으로 진화한 '음렬음악'

전쟁후 쇤베르크 미학 강화…향후 음색음악은 음결합 치중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음악계도 폐허로 만들었다. 나치는 유대인 음악가들을 탄압했으며, 자신들의 정책에 부응하는 음악만을 인정했다. 실험적이거나 사회주의적 이념을 표방한 작품은 탄압 대상이었다. 1945년 전쟁 후 작곡가들의 관심은 나치 독재로 인해 중단된 음악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으로 쏠렸다. 계승 대상은 여럿이었지만, 주된 흐름은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음렬음악)이었다. 독일 다름슈타트는 이러한 흐름의 진원지였다. 1951년 다름슈타트의 현대음악연구소 여름 강좌에서 음렬음악의 대표주자였던 피에르 불레즈는 '쇤베르크는 죽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강연을 했다. 쇤베르크의 작곡사상과 단절을 공표하는 강연이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절이라기보다는 "음악을 통해 '진실'을 일깨워야 한다"는 쇤베르크의 미학을 한층 강화한 것이었다. 쇤베르크의 음렬이 음의 높고 낮음만을 계열화했다면, 불레즈를 비롯한 음렬음악 작곡가들은 음의 길이와 강약, 음을 두드리는 방식(어택), 음렬을 택하는 순서까지 계열화해 작곡했다. 이를 통해 작곡가의 감성이나 주관이 요즘 말로 단 '1'도 끼어들 수 없는 '극한의 객관성'으로 무장된 음악을 창안했다. 그 결과물들은 혼란스럽고 우연한 소리의 집합으로 다가온다. 이를 통해, 전쟁 후 혼란한 시대상과 그러한 환경에 놓인 개개인의 상황을 일깨운다. 불레즈의 '구조들 Ⅰa'는 이 같은 시도의 첫 작품이자 대표작이다.1960년대 나타나는 '음색(音色)음악'은 음의 다양한 결합을 통해 전체적인 효과(음렬음악은 한 음 한 음에 집중)에 치중한 음악이었다. 폴란드 태생의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는 27세에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를 발표했다. 우리에겐 광복을 안긴 사건이었지만, 인류 전체로 봤을 때 원자폭탄 투하로 전쟁의 종결을 알린 비인간적인 사건을 소재로 택한 작품이었다. 52개의 현악기로 9분 동안 연주되는 이 작품에선 피아노 건반을 손바닥으로 치는 소리보다 더한 불협화음을 낸다. 반음을 다시 반으로 쪼개 4분의 1음으로 나뉜 음들을 악기들이 한꺼번에 소리내기 때문이다. 작품은 사이렌 소리, 음산한 비행음, 원자폭탄 투하 직후의 섬광을 그려내는 듯한 강렬한 음향, 사람들의 울부짖음, 악기의 몸통을 때리면서 야기되는 부산스런 소음 등으로 채워져 있다. 이 작품은 리게티의 '대기'와 함께 음색음악의 대표작이며, 윤이상의 음악과 함께 모더니즘 음악의 후반부를 찬란히 장식하는 작품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20-02-06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2)모더니즘Ⅰ]불협화음 내세운 '12음 기법의 탄생'

쇤베르크, 상투적 조성음악 거부진실 추구위해 불안·긴장 등 표현 "독일 음악이 앞으로 200년의 주도권을 확보했다."20세기 초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조성(調聲) 음악을 대체할 '12음 기법'을 창안하고 나서 이같이 말했다. 서양음악사에서 바흐의 '평균율'로 주도권을 쥐었던 독일 음악이 자신의 12음 기법으로 인해, 다시 서양음악의 근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찬 발언이었다. 열두 개의 반음으로 만든 음렬(音列)을 근거로 한 작곡법인 '12음 기법'은 조성과 무관할 수 있으며, 악곡을 통일시키는 선율적 근거도 얻을 수 있었다. 쇤베르크는 왜 조성과 결별을 택했을까?1900년을 전후한 오스트리아 빈에는 쇤베르크와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을 중심으로 한 '제2 빈 악파'(제1 빈 악파는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와 '빈 왈츠'가 공존했다. 자신의 음악세계를 추구한 작곡가와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려는 작곡가로 나뉜 것이다. 왈츠와 희가극인 오페레타를 작곡한 음악가들과 달리 쇤베르크와 그를 따르는 작곡가들은 소수의 사람만이 이해해 주는 작업을 해 나갔다. 기존의 상투적인(조성) 어법으로 만들어진 음악을 거부한 쇤베르크는 조성에 의존하지 않고 음악을 구축할 원리를 찾아냈다. '12음 기법'이 조성을 대체하면서 이전까지 사용할 수 없었던, 불협화음들이 작품 전면에 나타났다.쇤베르크의 음악적 표현은 이전 시기 작곡가들이 즐겨 택했던 사랑과 기쁨, 슬픔이 아니었다. '기대, Op 17'(1908년)이나 '달에 홀린 피에로, Op 21'(1912년)에서 보듯 불협화음을 통한 불안, 긴장, 두려움, 내적 갈등, 충동 등이었다. 당시 쇤베르크는 "예술은 장식이어선 안 된다. '진실(Wahrheit)'이어야 한다"라는 유명한 논제를 남겼다.음악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보다는 '진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과 사회학, 미학 등 광범위한 연구활동을 한 20세기 독일의 사상가 테오도르 W. 아도르노 또한 "청중의 귀에 달콤하게 들리는 선율은 자체의 비판력을 상실한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불협화음은 유희·순응적 태도를 부정함으로써 '진실'에 다가서게 한다"는 견해를 더했다. 쇤베르크로부터 시작되는 모더니즘 음악들은 클래식 좀 듣는다는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작품으로 꼽힌다. 작곡가의 초기작으로, 조성과 결별하기 전 작품인 '정화된 밤, Op 4'(1899년)로 친숙해져 보자. 이어서 투철한 작가 의식을 앞세워 정신적 가치를 추구한 위대한 산물들을 접하면 좋을 듯싶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20-01-30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1)영화와 음악]클래식 가장 잘 활용한 '스탠리 큐브릭'

대표 작품 '스페이스 오디세이'라이브 시네마 콘서트 이어져 배경 음악과 음향 효과 없는 영화와 드라마는 상상할 수도 없다. 집이나 공공장소 등에서 음량을 최대한 줄이고 시청해 본 적이 있는가.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는 그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3D와 가상현실(VR) 등 현란한 시각 효과 속에서도 이와 어우러지는 음악은 한결같은 품위로 우리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한다.스탠리 큐브릭이 연출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는 클래식 음악이 가장 효과적으로 쓰인 영화로 꼽힌다. 영화는 클래식과 영상의 이상적인 결합을 통해 대담하면서도 완벽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이 성과에 힘입어 영화의 '라이브 시네마 콘서트'가 제작돼 2010년 런던에서 초연되기도 했다. 이 콘서트는 세계 30여 도시에서 선을 보였다.우리나라에선 2017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국립합창단이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했다. 콘서트는 2시간40분여 동안 진행되는 영화 전편을 상영하면서 대사와 음향은 그대로 들려주고, 음악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연주하는 형태로 진행됐다.영화의 오프닝 장면에서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주는 영화팬과 음악팬 모두에게 강력한 충격과 함께 신선한 감동을 준다.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50여 종의 유인원 중 하나가 동물의 뼈를 몽둥이(무기)로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순간이 슬로모션으로 처리될 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도입이 흘러나온다.영화와 같은 제목의 원작 소설(아서 C 클라크 작)은 치밀한 과학적 지식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해부했다. 우주공간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상황은 일종의 윤회사상으로 풀어냈다.이에 비춰 볼 때 큐브릭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설파한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의 테마를 영화와 연결하려 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영화의 주제곡으로 선택된 음악에 대한 필연성도 부여된다. 큐브릭은 이 영화에서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외에도 리게티의 '대기'와 '레퀴엠', 하차투리안의 발레 음악 '가이누',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등을 사용했다.음악의 자극(에너지)을 자신의 영상 연출에 반영한 큐브릭은 음악과 완벽히 결합한 걸작을 만들어 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20-01-16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0)왈츠]80회째 오스트리아 새해를 여는 '흥'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 장식정치서 국민 관심 돌리던 역할 올해 첫날도 어김없이 오스트리아 빈은 왈츠의 열기로 휩싸였다. 누구나 알고 공감하면서 즐길 수 있는 대표 클래식 이벤트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PO) 신년 음악회'가 지난 1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빈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열렸다. 레퍼토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2세, 요제프 슈트라우스 등이 작곡한 왈츠와 폴카 등으로 구성됐다. 지휘는 라트비아 출신의 안드리스 넬슨스가 맡았다. 41세의 넬슨스는 보스턴 심포니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세계 최정상급의 지휘자이다. 우리나라에선 같은 날 오후 7시 전국의 메가박스 상영관에서 생중계됐다.'WPO 신년 음악회'의 시초는 1939년 12월 31일 정오에 열린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회'이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클레멘스 클라우스가 지휘하는 WPO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작품들로 레퍼토리를 꾸몄다. 오페레타 '박쥐' 서곡을 비롯해 '아침의 꽃잎', '황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등의 왈츠로 구성됐다. 이듬해에도 송년 음악회로 개최된 이 음악회는 이튿날인 1941년 1월 1일 오전에 같은 프로그램으로 공연됐다. 이때부터 'WPO 신년 음악회'로 자리잡았다. 해마다 첫 날에 거르지 않고 개최된 '신년 음악회'는 올해로 80회째를 맞았다.'신년 음악회'는 빈의 전통에 기반한 왈츠의 흥겨운 멜로디를 새해 선물로 선사해 더 많은 음악팬과 가까워지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의 고난 속에서 국민에게 음악을 통한 위안을 주고 복잡해진 정치 문제로부터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빈의 왈츠는 이전에도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800년을 전후해 유럽을 지배했던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유독 오스트리아에는 폭넓게 전파되지 못했다. 왈츠의 매력에 빠져 무도회장을 찾으며 분위기에 취해 있는 국민으로 인해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이뤄졌던 왕정 타도 물결이 오스트리아는 비켜갔다는 것이다.이젠 이런 역사를 기억하며 '신년 음악회'를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수억 명의 음악팬들은 세계로 전송되는 고화질 화면을 통해 음악적 볼거리와 들을거리를 취하고 있다. 올해 '신년 음악회'에선 공연 전과 휴식 시간 등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100주년'과 '베토벤 탄생 250주년'에 맞춘 홍보 영상이 상영됐다. 클래식 음악의 열기가 1년 내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20-01-02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9)합창교향곡]인류애 메시지 담아낸 클래식 대명사

청력 잃은 베토벤 초연무대 지휘말러 등 후대 작곡가들에 영향도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과 9번 '합창'은 클래식의 대명사격이다. 초연 이후 약 2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청자들을 매료시키는 메인 테마가 강렬하다. 5번에서 운명을 극복한 성취는 마지막 교향곡 9번에서 혼돈과 반목을 극복한 인류애의 메시지로 승화한다.청력을 완전히 잃은 베토벤은 자신의 지휘로 1824년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교향곡 9번을 대중 앞에 선보였다.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베토벤은 지휘자로 참여한 앞선 공연들에서 연주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아닌지에 신경을 쓰다가 머뭇거리기 일쑤였고 이는 커다란 혼란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주위에선 지휘를 만류했지만, 베토벤은 9번의 초연 무대에 오르겠다는 결심을 꺾지 않았다. 그로 인해, 포디엄(지휘대)엔 베토벤이 서지만, 단원들은 무대 한쪽에 숨어있는 또 한 사람의 지휘자 미하엘 움라우프의 지시에 따라 연주를 했다. 당시 초연에 참여했던 한 합창단원은 "베토벤이 연주에 맞춰 악보를 읽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한 악장이 끝났는데도 페이지를 계속 넘겼다"고 증언하는 등 베토벤의 지휘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연주회는 성공적이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은 새로운 교향곡의 출현에 놀라움과 경외감을 느꼈다.작곡가의 창조적 열정과 비감에 찬 우수의 세계가 표출되는 1악장, 비감에 찬 세계를 헤쳐나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저지되는 2악장, 세상의 조화를 그린 3악장에 이어 4악장에선 앞서 제시된 세계와 장애가 회상처럼 지나간 후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와 어우러지는 음악으로 새로운 사회를 그려낸다. 이 작품으로 인해 '교향곡'은 인류애를 노래하는 거대한 표현 수단으로서의 자격을 갖췄다. 이는 교향곡을 통해 하나의 우주를 구현하려 한 말러 등 후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줬다. 메시지의 강렬함으로 인해 교향곡 9번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에 연주되는 등 정치적 목적이 결부된 이벤트에도 자주 선을 보였다. 또한 유럽의 일부 지역과 아시아의 우리나라와 일본에선 송년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로도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요엘 레비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은 네 명의 독창진과 130명 규모의 연합합창단과 함께 27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이 작품을 연주한다.교향곡 9번으로 올해를 마무리하고,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는 2020년엔 보다 다양한 그의 작품들과 친해져 보는 건 어떨까.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2-26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8)어빙 벌린]"노래는 대중의 기호에 맞춰야"

'화이트 크리스마스' 작곡 유명악보 문맹 불구 1500여곡 남겨 크리스마스에 부르는 성탄 축하곡을 의미하는 캐럴 중 가장 유명한 곡은 뭘까. 20세 이상 성인은 주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꼽지 않을까.'화이트 크리스마스'는 화려한 춤과 노래들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영화 '홀리데이 인'(1942)의 주제가로 선을 보였다. 이 영화의 모든 삽입곡은 올해로 타계 30주년을 맞은 어빙 벌린(1888~1989)이 작곡했다. 벌린은 그 해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러시아계 유대인(본명은 이스라엘 발린)인 벌린은 4세에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에서 살다가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노래(1천500여곡)를 남겼다. 1910년 첫 발표곡인 '업 앤 다운 브로드웨이'에 이어 이듬해 '알렉산더스 랙타임밴드'로 대성공을 거둔 벌린은 가요와 무대·영화음악 등 대중음악의 거의 모든 장르에 손을 댔다. 그는 청중의 요구에 자신의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바꿀 줄 알았다.8세에 아버지를 여읜 벌린은 거리에서 신문을 팔고 카페 웨이터로 일했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벌린의 음악수업은 혼자 카페 창고의 낡은 피아노를 친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피아노는 거의 검은 건반만 사용하는 올림 바장조 곡만 연주할 수 있었고, 평생 악보를 읽고 쓸 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벌린의 노래를 대필했던 사람들은 "벌린은 노래의 선율선은 물론 화성까지 완벽히 완성해 대필을 맡겼고, 어떤 때는 반주 성부까지 스스로 만들어 편곡의 여지조차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벌린은 '노래는 대중의 기호에 맞춰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1920년의 한 인터뷰에서 좋은 노래의 조건으로 ▲평균 정도의 음역에 맞출 것 ▲남자도 여자도 다 부를 수 있을 것 ▲가사가 매끄러울 것 ▲가슴에서 우러나올 것 ▲사상과 말과 음악이 독창적일 것 ▲쉬울 것 등을 꼽았다. 이 같은 조건을 갖춘 그의 노래는 청중에게 열광 대신 휴식을 제공했다. 스트라빈스키는 벌린을 천재라고 불렀다. 1988년 카네기홀에서 열린 벌린의 100세 기념 연회에는 아이작 스턴(바이올린)과 레너드 번스타인(지휘·작곡), 마릴린 혼(소프라노) 등 대가들이 참석해 축하했다.벌린의 '갓 블레스 아메리카'는 미국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불릴 것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2-19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7)발레 음악]'오페라 일부' 20세기에 독립작품으로

차이콥스키 등 러 작곡가 완성 오페라극장 시스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발레단이다. 오늘날 오페라 공연이 잠시 쉴 무렵엔 발레 공연이 무대를 채운다. 오페라의 한 부분이었던 발레가 독립 작품으로 대접받게 된 데에는 완성도를 높인 발레 음악이 큰 역할을 했다.19세기에 나온 로맨틱 발레 작품인 '라 실피드', '지젤', '코펠리아', '돈키호테' 등도 음악만을 따로 떼어서 놓고 본다면 이들도 대단한 작품이라고 평가하긴 어렵다. '지젤'을 작곡한 아당의 제자로, '코펠리아'를 작곡한 들리브가 차이콥스키의 출현을 예감케 했다는 정도의 평가는 가능하다. '걸작 발레 음악'이라는 표현은 러시아 고전 발레를 완성한 차이콥스키에 이르러서야 쓰이기 시작했다. '걸작 발레 음악'은 차이콥스키를 뒤따르는 러시아 작곡가들인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 하차투리안 등의 20세기 작품으로 이어졌다.로맨틱 발레는 19세기 후반 들어 유럽에서 점점 인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예외였다. 이러한 상황이 차이콥스키가 발레 음악을 작곡하는 데 영향을 줬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함께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 음악으로 불리는 '호두까기 인형'은 작곡가가 세상을 뜨기 1년 전인 1892년 완성됐다. 19세기 초 E.T.A 호프만이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왕'을 썼으며, 이를 뒤마가 '호두까기 인형 이야기'로 각색했다. 안무가 프티파는 발레 대본으로 재각색했으며, 여기에 차이콥스키가 음악을 입힌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린이를 위한 공연으로 자리잡은 이 작품은 동화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음악으로 누구에게나 깊은 인상을 남긴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수많은 안무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고전적 버전에서부터 팝아트적인 버전, 성인용의 에로틱한 버전, 어린이용의 3D 애니메이션 버전까지 다양하다. 12일 국내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검색하니 13일과 14일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질 유니버설 발레단의 공연 외에 이달 전국 각지의 공연장을 장식할 20여 개의 '호두까기 인형' 포스터가 떴다. 크리스마스와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음악과 무대의 향연(호두까기 인형)을 공연장에서 보면서 고전의 가치와 동심을 떠올려 보는 것도 색다른 연말 보내기로 훌륭한 프로그램일 듯하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2-12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6)'명지휘자' 마리스 얀손스]무명 악단, 세계적 오케스트라로 키워

최근 복귀 불구 지병으로 '타계'러시아 음악위주 연주관행 탈피세계적인 명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지난 1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자택에서 심장질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76세.얀손스는 1996년 오슬로에서 지휘 도중 심장발작으로 쓰러진 뒤에도 지휘봉을 놓지 않은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수술 후에도 심장 이상설은 끊이지 않았다. 올해 여름부터 연주 활동을 줄이고 치료에 전념했으며, 지난달 복귀해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SO)과 미국 카네기홀 공연을 소화하기도 했다.얀손스는 1943년 소비에트 연방인 라트비아 리가에서 지휘자 아르비드 얀손스와 유대계 성악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 므라빈스키의 보조 지휘자가 되면서 레닌그라드로 이주한 얀손스는 레닌그라드 음악원 지휘과를 수석 졸업했다.1971년 카라얀 지휘 콩쿠르에서 입상한 얀손스는 그해 므라빈스키의 조수로 레닌그라드 필과 인연을 맺었다. 1979년 오슬로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한 얀손스는 무명 악단을 일약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키웠다. 40세의 얀손스와 오슬로 필이 내놓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전집 음반(샨도스)은 지금까지도 명반으로 칭송받고 있다. 피츠버그 교향악단을 거쳐 2003년 BRSO의 음악감독에 부임한 얀손스는 2004년부터 네덜란드의 명문 로열 콘세르트허바우(RCO)의 음악감독으로도 2015년까지 재임했다. RCO와 BRSO는 2008년 영국 음악지 '그라모폰'이 발표한 세계 오케스트라 순위 1위와 6위를 각각 차지했다.20세기 중반 소련 지휘계의 양대 산맥은 므라빈스키와 콘드라신이었다. 뒤를 스베틀라노프와 로제스트벤스키가 이었다. 그다음 세대가 얀손스와 게르기예프로 꼽힌다.소련 음악계에 만연했던 러시아 음악 위주의 연주관행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도 얀손스였다. 특히 라트비아인임을 강조한 얀손스는 비러시아적인 매우 세련된 면모를 선보였다. 얀손스는 러시아 레퍼토리를 비롯해 하이든에서 버르토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격조 있는 연주를 들려준 위대한 지휘자였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2-05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5)여성 지휘자]1860년대 오스트리아서 금녀의 벽 깨져

뉴욕필은 1938년 브리코가 최초개봉 영화 '더 컨덕터' 실제 인물 역사상 첫 여성 지휘자는 1860년대 오스트리아 빈에서 '루트비히 모렐리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의 마리 구르너였다. 구르너의 지휘자 임명은 당시 요제프 슈트라우스가 '여성 해방 폴카'를 작곡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영국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메리 웜은 1887년 베를린 필하모닉을 직접 고용해 서곡을 연주했다. 그 뒤로 극소수의 재능 있는 여성 지휘자들이 베를린 필하모닉의 포디엄(지휘대)에 섰다. 1930년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지휘를 전공한 첫 미국인(네덜란드계)이었던 안토니아 브리코는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코스로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했다. 브리코는 1938년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하며 이 오케스트라를 이끈 역사상 첫 여성 지휘자로도 기록됐다. 이달 중순 개봉한 영화 '더 컨덕터'는 브리코의 음악 인생을 다룬 영화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보스턴 심포니도 1938년 여성에게 지휘대를 개방했다.하지만 20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여성 지휘자들은 여성 단원으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오케스트라는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통념 때문이었다. '뉴욕 타임스'의 유명 음악평론가 헤럴드 숀버그는 저서 '위대한 지휘자들'(1967년)에서 "여성 지휘자가 무대에 서면 언제 업비트(지휘봉을 위로 올리는 동작으로 음악의 개시를 의미)가 시작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속치마가 보이기 시작하는 게 바로 그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같으면 성차별적 발언이라고 온 여성계가 들고 일어나고도 남았을 표현이다.그렇다면 오케스트라가 처음으로 여성 단원을 받아들인 것은 언제일까. 1913년 영국 퀸즈 홀 오케스트라가 효시이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1930년), 보스턴 심포니(1941년), 뉴욕 필하모닉(1966년)이 차례로 여성 단원을 받아들였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1983년 첫 여성 단원을 발탁했으며, 빈 필하모닉은 1997년 여성 단체와 오스트리아 의회의 압력으로 여성 단원(하피스트)을 받아들였다. 빈 필하모닉은 2005년 11월 12일 빈 무지크페라인잘에서의 연주회를 호주 출신의 여성 지휘자 사이먼 영에게 맡기며 금녀(禁女)의 장벽을 허물었다.최근 들어 오케스트라에 여성 단원이 크게 늘면서 여성 지휘자들의 등장도 잦아지고 있다. 이제 오케스트라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통념은 깨졌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1-28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4)오페라극장]연출·오케스트라·행정 등 시스템 포함

음악감독·연주 실력·역사 등 기준시드니 오페라하우스 톱10 못들어오페라하우스라고도 하는 오페라극장은 무대가 넓고 천장이 높으며 무대 전면에 오케스트라 피트(Pit)가 있다. 전속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가수, 발레단 등도 두고 있다. 오페라극장의 개념은 건물만이 아닌 새로운 연출의 오페라 무대를 만들어서 선보일 수 있는 시스템까지를 포함한다.일례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공연한다고 할 때,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무대를 만들기 위해 극장의 예술감독이 연출자를 초대하고 가수와 무대·의상 미술가, 안무가, 무용수 등을 섭외해서 극장에 전속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부지휘자, 합창단, 가수 등과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가들이 협력해 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포함하는 것이 오페라극장인 것이다. 유럽의 유명한 오페라극장에서 새 연출작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전 세계의 오페라 팬들이 객석을 가득 채우는 것은 극장의 내적 시스템을 잘 갖췄기 때문이다.내친김에 세계 10대 오페라극장을 꼽아보자. 선정 기준은 어느 정도 수준의 연출가들이 참여했으며 극장 소속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기량은 어느 정도인가, 음악감독이나 지휘자는 누구인가, 어떤 가수들이 초청받아 무대에 서는가, 1년에 몇 편의 작품(다양한 레퍼토리)을 무대에 올리는가, 역사는 얼마나 깊은가 등이다. 빈 국립 오페라, 베를린 국립 오페라, 뮌헨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파리 국립 오페라(가르니에 & 바스티유), 런던 로열 코벤트가든 오페라, 밀라노 스칼라 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취리히 국립 오페라, 프라하 국립 오페라,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등을 꼽을 수 있다.잘 알려진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위에서 언급한 극장들에 비하면 그 수준이 크게 미치지 못한다. 건축적 측면에서 세계문화유산(UNESCO)에 선정됐으며, 시드니의 랜드마크로 유명할 뿐이다.지난 16일로 개관 1주년을 맞은 아트센터 인천(ACI)은 콘서트홀 바로 옆에 2단계로 오페라극장 건립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계획 단계부터 지금까지 ACI측은 롤 모델로 공공연하게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꼽아 왔다. 건축적 아름다움과 함께 새로운 프로덕션을 만들어서 올릴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춘 ACI 오페라극장을 기대한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1-21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3)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시인이자 음악가' 최초의 오페라 소재

1600년 페리 작곡 '에우리디체' 등1980년대까지 다양한 작품 탄생 오르페우스(이탈리아어로는 오르페오, 프랑스어로는 오르페)는 그리스신화 속의 가장 유명한 시인이자 음악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현악기의 일종인 리라를 특히 잘 다뤘는데, 그가 리라를 타며 노래를 부르면 인간은 물론 동물들과 나무, 돌덩이까지 감미로운 그 소리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신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체가 뱀에 물려 죽자 저승까지 내려가 음악으로 저승의 신들을 감동시킨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다시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지상의 빛을 보기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지키지 못해 결국 아내를 데려오지 못하고 슬픔에 잠겨 지내다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서양음악사에서 오르페우스 신화는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 신화는 특히 오페라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최초의 오페라가 오르페우스를 소재로 하는 등 오르페우스는 초기 오페라의 대명사 격이었다. 오페라는 15세기 말 이탈리아의 예술가와 귀족들의 '공부 모임'에서 태어났다. 피렌체의 '카메라타'라는 모임에서 고대 그리스 연극을 복원하기 위한 실험을 했고, 오페라를 만들어낸 거였다. 페리는 1597년 '다프네'에 이어 1600년 '에우리디체'를 작곡했다. '다프네'가 악보 없이 기록으로만 전하기 때문에 페리의 '에우리디체'가 최초의 오페라로 불린다. 2년 후 카치니가 '에우리디체'를 작곡했으며, 바로크 시기를 여는 작품인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가 1607년 탄생했다. 18세기 초기, 바로크 오페라는 기교와 과장이 지나쳐 차츰 '음악을 괴물로 만들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 뒤 '개혁 오페라'로 평가받는 글루크의 작품이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1762년)이다. 이후에도 오르페우스 신화는 작곡가의 영감을 자극했다. 베를리오즈는 글루크의 원작을 수정 보완해 '오르페'를 내놓았다. 리스트는 자신이 창안한 '교향시'의 형태로 '오르페우스'를 그려냈으며, 오펜바흐는 유명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를 썼다. 20세기 들어서는 스트라빈스키가 발레 음악 '오르페우스'를 작곡했으며, 1986년에 완성된 버트위슬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의 가면'에 이르기까지 오르페우스는 다양한 음악으로 환생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1-07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2)신약(新約)]'위대한 유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초·중·후기 구분 32개로 구성낭만주의 거쳐 절대적 영향력19세기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구약성서에,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를 신약성서에 비유하며 두 작품에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지난 주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다뤘다. 이번에는 피아노 음악사에서 가장 거대하면서도 위대한 유산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에 관해 이야기다. 18세기 중반 바로크의 황혼이 찾아 들고, 독일에서는 새롭게 탄생한 건반악기인 피아노를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의 '소나타 형식'이 발전했다. '소나타 형식'의 체계를 확립한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걸출한 피아노 소나타들을 남겼다. 이어서 등장한 베토벤은 두 작곡가의 유산을 자양분으로 삼아 더욱 심화시켰다.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는 시기에 따라 초·중·후기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초기 소나타로 불리는 1~15번에선 선배 작곡가들의 영향이 나타난다. 고전적 테두리를 유지하지만, 서서히 확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어지는 중기 소나타(16~27번)는 청력의 감퇴와 실연 등에 의해 절망했던 베토벤의 당시 심경을 대변하는 작품들과 절망을 이겨내고 승리를 거두는 인간(예술가)을 그려낸 작품들로 양분돼 나타난다. 후기 소나타(28~32번)는 베토벤의 작품 번호 101~111로 이어지는 만년의 작품들이다. 특히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상실해 대화 노트에만 의존한 시기였던 1818년 완성된 '29번'(함머클라비어)은 연주 시간만 40분 넘게 걸리는 대작으로, 피아노의 한계를 넘어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마지막 '32번'은 모든 시도와 그 결과물들을 응축시켜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이렇듯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는 작곡가의 치열한 삶의 궤적을 적절히 보여주고 있다. 베토벤은 고전주의 소나타의 조화와 균형미에 당대 '질풍노도' 양식의 격렬한 감정 표현을 한 데 아우른 자신만의 소우주를 만들어 냈던 거였다.당시 유럽 전역의 음악가들은 베토벤의 소나타를 배우기 위해 독일로 모여들었다. 독일의 소나타를 교육받지 못한 음악가들은 19세기 음악 주류에 합류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처럼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는 19세기 낭만주의를 거쳐 현재까지도 음악가와 청중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0-31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1)구약(舊約)]'영혼의 샤워'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바흐, 넓은 전조로 표현력 확대연습곡이지만 최고 예술적 깊이 19세기 위대한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구약성서에,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를 신약성서에 비유하며 두 작곡가의 작품에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현재까지도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에 수록된 48곡의 진가를 가장 잘 드러낸 비유로 평가받는다.건반악기의 조율 체계는 수십 가지에 이르며 서로 보완하며 발전해 왔다. '평균율'은 현재 보편적으로 쓰이는 조율체계이다. 한 옥타브를 열두 음으로 나눠 한 단은 반음, 두 단은 온음으로 놓은 평균율 조율법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으로 서양 음악사에 굳게 자리매김했다.클라비어(Klavier)는 건반이 달린 현악기를 통칭한다. 건반 위에서 만들 수 있는 24개 조성(열두 음의 장·단 음정)을 가지고, 한 조성당 전주곡과 푸가를 쌍으로 묶어 연습곡 형태로 완성한 작품이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다. 첫 스물네 곡을 묶은 제1권은 1722년, 제2권은 1744년에 완성됐다.연습곡이라고는 하나 그 예술성과 깊이는 음악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경지에 있다. 바흐가 생존했던 바로크 시기에는 '가온음률'이 조율 체계로 통용됐다. 바흐 자신도 가온음률을 지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폭 넓은 전조(轉調)를 통해 표현력 확대에 용이한 평균율을 활용해 명곡을 만들어냈다. 당시로선 새로운 시도였다. 바흐의 진보적 측면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바흐(Bach)의 이름에서 착안해 "'개울'(Bach)이 아닌 '대양'(Meer)이었다"고 한 베토벤의 경탄도 이 작품에서 기인했다. 다음 달 13일 아트센터 인천에서 카펠라 안드레아 바르카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의 협주곡을 들려줄 세계 최정상의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는 해외 매체와 인터뷰에서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에 관한 견해를 이렇게 밝힌 바 있다."모차르트와 베토벤, 쇼팽, 슈만, 버르토크 등이 그랬듯이 나도 매일 이 곡집을 연주합니다. 두 개나 네 개, 여섯 개 정도의 전주곡과 푸가를 매일 다른 걸로 치죠. 하루를 시작하기에 너무나 좋은 방법이에요. 음악적으로 너무나 순수해서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샤워 후의 느낌을 받을 정도입니다. 치고 나면 손가락의 움직임이 부드러워지고 마치 춤을 추고 난 것처럼 살아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껴집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0-24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0)왜색 용어]'라 트라비아타'를 '춘희' 해석 일제잔재

'마탄의 사수'도 日 자의적 표현組曲은 '모음곡'으로 표기 적당 지난 여름,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아 있는 일제잔재 청산운동을 일으키는 촉매가 되기도 했다. 클래식 분야에도 일제 잔재는 여전하다. 오랜 기간 습관적으로 쓰면서 굳어졌지만 꼭 청산해야 한다.베르디의 오페라 제목인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길을 잃은 여인' 혹은 '방황하는 여인'을 뜻한다. 그런데 한동안 우리나라에선 '춘희'로 불렸다. 이 오페라는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꽃 여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일본에선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원작 소설 제목을 일본어로 번역해 '스바기히메(椿姬·춘희)'로 썼고, 우리도 일본식 표현(한자)을 그대로 받아들인 거였다. 더욱이 춘(椿) 자는 우리와 중국식 한자에선 동백나무가 아닌 참죽나무를 뜻한다. 엉뚱한 말이 되어버린 거다. '춘희'라고 써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풀어서 쓰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현지 언어(이탈리아)의 발음을 살려 표기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아닐까 한다.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의 막을 연 베버의 '마탄(魔彈)의 사수(射手)' 또한 일본에서 써온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다. 독일 전설에 기반한 이 오페라의 독일어 원제는 'Der Freischutz'로, 공개 사격대회의 사수를 뜻한다. 일본에선 계몽적 이념을 내세운 이 오페라의 내용을 보다 친숙하게 표현하기 위해 극에 나오는 백발백중의 '마법 탄환'을 제목에 가미한 것으로 생각한다. '라 트라비아타'의 경우처럼 원제목인 '프라이쉬츠'로 쓸 수 있다.오펜바흐의 유명 오페레타 제목('천국과 지옥') 또한 일제의 잔재다. 원제는 '지옥의 오르페우스'이다.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와 함께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했지만, 오펜바흐는 자신의 극에 천국과 지옥을 설정했다. 그 때문에 일본에서 자국어로 옮기면서 '천국과 지옥'으로 변형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지옥의 오르페우스'가 올바른 표현이다.다양한 음악들을 모아서 만든 작품을 지칭하는 '조곡(組曲)' 또한 '스위트(Suite)'를 일본식으로 번역·표기한 것이다. 우리는 '모음곡'으로 표기하면 알맞다. 조곡이라고 하면 '애도하는 음악'을 떠올릴 수 있는데, 평소 모음곡으로 쓰면 그와 같은 걱정은 붙들어 맬 수 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0-17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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