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14)쇼스타코비치 '레닌그라드']포화속에서 탄생한 '교향악적 레퀴엠'

전쟁 3부작 첫번째 80분짜리 대곡시민 150만명 사망한 포위전 다뤄"내 교향곡은 대부분이 묘비다." 러시아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1906~1975)가 죽기 직전에 남긴 말이다.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 혁명을 어린 시절에 겪었고, 제2차 세계대전도 지켜봤다. 예술가의 창작물에 관여했던 옛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발표하는 작품에 따라 '영웅' 음악가로 대접받으며 훈장을 받지만 이내 '반동'으로 낙인 찍혀 죽을 고비도 수차례 넘겼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고스란히 교향곡에 녹여냈다. 그로 인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들은 전쟁이나 혁명을 소재로 한 것들이 많다. 이들 작품에는 민중의 피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는 서양 전쟁사에서 가장 길고 파괴적인 포위전으로 꼽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포위전' 속에서 탄생했다.1941년 6월 히틀러 정권은 소비에트를 침공했다. 이들은 9월 레닌그라드의 마지막 육상 통로(보급로)를 차단했다. 이후 1943년 1월까지 2년 반 동안 이어진 포위전에서 레닌그라드 시민 250만명 중 150만명이 폭격과 굶주림, 질병으로 죽었다.이곳에서 나고 자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포화가 빗발치는 절망 속에서 일곱 번째 교향곡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쇼스타코비치의 작곡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환호했다고 한다. 스탈린 또한 이 작품이 소비에트의 붉은 군대에 힘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6개월 정도의 작곡 기간을 거쳐 1941년 말에 완성된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는 쇼스타코비치의 '전쟁 3부작' 중 첫 번째로, 연주시간이 80여분에 달하는 대곡이다.1942년 3월, 작품의 초연 이후 소비에트 당국은 쇼스타코비치를 반나치 투쟁의 선봉으로 치켜세웠다. 작품이 워낙 서사적이며 영웅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에게 쏟아진 찬사를 마냥 반기지는 않았을 것 같다.1악장의 거친 행진곡으로 표출되는 '침략' 에피소드는 초연 이후 한동안 독일군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작곡가 사후에 출판된 한 전기는 이러한 인식을 불식했다.쇼스타코비치는 전기에서 "7번 교향곡은 나치에게 포위된 레닌그라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스탈린에 의해 이미 파괴되고 히틀러가 그저 마지막에 거들었던 그 레닌그라드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이 작품은 전쟁과 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위한 '교향악적 레퀴엠'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6-13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13)봄의 제전]'극한 리듬' 20C 모더니즘 불멸의 이정표

스트라빈스키의 '3대 발레 음악'불규칙한 박자 호불호 갈린 '혁신'"나는 미쳐 버렸다/ 질서가 광기에 무너지고 있었다/ 지휘자에게 린치를 가하라!/ 드럼의 목을 잘라라!/ 금관악기를 도륙내라!/ 현악기를 피에 적셔라!/ 플루트의 목을 졸라라!/ 스트라빈스키의 봄이/ 성스러운 봄의, 무자비한 영화와 고통을 거느리며 도래하나니" 106년 전 이맘때(1913년 5월 29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열린 '봄의 제전' 초연에 다녀온 영국의 전위 시인 지크프리드 새순은 공연장에서 받은 충격을 시로 표현했다.새순뿐만이 아니라 당시 공연장에 있던 청중은 이해할 수 없는 극한의 리듬과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오케스트라 음향에 큰 충격을 받았다. 바슬라프 니진스키의 안무 또한 이전까지 러시아 발레가 보여주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야만적 줄거리와 음악에 어우러지는 무용도 관객들을 자극했다. 공연 시작 후 객석에서는 "이따위 공연 집어치워"라는 고함과 야유가 터져 나왔다. 이에 "거 좀 조용히 합시다"라는 다른 쪽의 항의가 이어지면서, 두 파로 나뉜 관객 간에 욕설과 주먹다짐이 오갔다고 한다. 그래도 공연은 이어졌고, 출동한 경찰도 어찌할지 몰라서 지켜만 봤다는 '봄의 제전' 초연은 공연 역사상 가장 큰 스캔들로 기록됐다.'봄의 제전'은 '불새'(1910년)와 '페트루슈카'(1911년)를 잇는 러시아 태생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1882~1971)의 3대 발레 음악으로 꼽힌다. 곡의 구상은 1910년 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불새'의 작곡을 거의 마무리할 무렵 작곡자의 공상에서 시작됐다. 스트라빈스키는 공상 속에서 그려본 이교도의 엄숙한 의식을 무용 음악으로 형상화하겠다고 생각했다. 작곡자는 봄의 신을 예찬하기 위해 살아있는 젊은 여인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떠올렸다. 늙은 현자를 중심으로 둘러앉은 이교도들은 제물로 간택된 여인의 춤(죽음에 이르는 의식)을 지켜본다는 내용이다.'봄의 제전'이 이전 음악과 가장 크게 대비되는 부분은 리듬이다. 이전 음악들에서의 리듬은 맥박처럼 일정하고 정확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박자는 따라갈 수 없이 불규칙하다. 반복되는 리듬이 없어서 듣는 이들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초연 이후에야 이 같은 부분을 알아차렸던지, 1914년에 감행된 두 번째 공연(발레 없이 연주회만으로 진행)은 청중의 환호와 열광의 도가니 속에 막을 내렸다.'봄의 제전'은 20세기 모더니즘 음악으로서 불멸의 이정표를 세웠다. 당시의 대단한 '혁신'은 이제 위대한 '고전'이 되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6-06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12)런던 빅 파이브와 토머스 비첨]'후계자 포기' 유산으로 만든 오케스트라

음악 독학, 런던필·로열필 창단5곳중 4곳과 연관 열정 쏟아내영국 런던에는 세계적인 축구 클럽들이 여럿 있다. 축구 클럽만큼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들이 런던을 기반으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중 오랜 역사와 함께 뛰어난 연주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오케스트라 5곳을 '런던 빅 파이브'라 한다. BBC 교향악단은 1930년 라디오 방송을 위해 창단했다. 초대 상임지휘자 에이드리언 볼트가 20년 동안 오케스트라의 기반을 다지고, 발전시켰다. 영국 최고의 음악 축제인 프롬스(Proms·Promenade Concerts)의 메인 오케스트라로도 유명하다.1932년 토머스 비첨(1879~1961)은 런던 필하모닉을 만들었다. 비첨의 아버지는 다국적 제약회사로 유명한 글락소 스미스클라인의 전신인 비첨즈 필스의 사장이었으며, 음악 애호가였다. 일찌감치 비첨은 아버지를 이을 후계자로 낙점받았다. 하지만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한 비첨은 비범한 해석을 무대에서 펼쳐 보이며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다.런던 교향악단은 빅 파이브 중에서도 최고라고 자부한다. 1904년 창단한 런던 교향악단은 초기에 비첨을 비롯해 독일 지휘자들과 무대에 올랐다. 197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참가한 최초의 영국 오케스트라이기도 하다.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음반회사에서 녹음을 위해 만든 단체다. 음반사 EMI는 전쟁 후 미국에서 돌아온 비첨과 함께 단원을 보강해 1945년 이 단체를 설립했다. 비첨에 이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베를린 필로 가기 전까지 많은 음반을 냈으며, 1955년 오토 클렘페러가 부임하면서 오케스트라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1946년 창단한 로열 필하모닉의 설립자도 비첨이다. 노년으로 접어든 비첨은 이 오케스트라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비첨의 타계 후 상임지휘자로 부임한 루돌프 캠페와 로열 필은 1972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담은 음반(데카)을 내놓으면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졌다.비첨은 런던 빅 파이브 중 BBC 교향악단을 빼고 4대 오케스트라와 연관된 인물이었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런던 필과 로열 필을 창단하고 운영하는 데 바친 비첨은 말년에는 가진 재산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비첨은 경제적으로는 빈손으로 떠났지만 전 세계 음악애호가들이 아직도 찾는 음악적 성과를 영원히 남겼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5-23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11)20세기 '음악 황제']베를린 필의 전설 '지휘자 카라얀'

단원투표로 선출 많은 음반 남겨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감독 겸임며칠 전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이 상위권에 오른 적이 있다. 지난 주말 방송된 한 토크쇼 프로그램에 출연한 소프라노 조수미가 카라얀과의 인연을 소개한 여파였다. 방송을 봤거나 방송 리뷰 영상이나 기사를 본 네티즌들이 올해로 타계 20주기를 맞은 '세기의 거장'을 소환했다.'오페라는 이탈리아, 기악은 독일'이라고 한다. 1882년 창단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기악의 나라=독일'의 등식을 현재까지 증명하고 있는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이다. 베를린 필은 한스 폰 뷜로-아르투르 니키쉬-빌헬름 푸르트벵글러에 이어 1955년 단원 투표를 통해 제4대 상임 지휘자로 카라얀을 선정했다. 1945년 푸르트벵글러가 나치 동조죄로 구금되자 30대 초반의 루마니아 출신 지휘자 세르지우 첼리비다케가 자리를 메웠다. 2년 후 푸르트벵글러가 석방된 뒤에도 두 사람은 함께 베를린 필을 지휘했다. 첼리비다케는 평소 "음반은 깡통에 담긴 콜라와 같다"며 레코딩을 거부했다.1954년 푸르트벵글러가 사망하고 1년 후 진행된 차기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 선정 투표에서 단원들은 첼리비다케가 아닌 카라얀을 택했다.오케스트라(단원)의 주요 수입원인 레코딩을 하지 않았으며, 완벽주의적 성향을 앞세워 리허설 때 막말도 서슴지 않았던 첼리비다케 대신 카라얀을 택한 것이다.카라얀은 베를린 필 입성 후 이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음악감독 자리도 얻었다. 이 음악제의 메인 오케스트라는 빈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빈 필하모닉)였다. 베를린 필과 빈 필이라는 양대 산맥을 거느리게 된 카라얀은 타계까지 33년 동안 양쪽의 지위를 적절히 활용했다. 그의 눈에 들어야 베를린 필과 협연할 수 있었으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그에게 '황제', '제왕'의 칭호가 따라붙게 된 연유다.그는 음반뿐만 아니라 영상물을 촬영하는 데에도 관심을 쏟았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레코딩(영상 포함)은 1천여 종에 달하며, 전 세계에서 1억3천만 장이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음반은 팔려나가고 있다. 1989년 카라얀이 타계하자 그의 뒤를 이을 베를린 필의 지휘자로 여러 인물이 거론됐다. 세계 음악계의 관심 속에, 베를린 필의 제5대 상임 지휘자로 이탈리아 출신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부임했다. 이후 베를린 필의 지휘봉은 사이먼 래틀(영국)을 거쳐 키릴 페트렌코(러시아)로 이어지고 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5-16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10)베토벤 콤플렉스 Ⅱ]21년이나 걸린 브람스의 교향곡

'거인의 발걸음 소리' 같은 부담'베토벤의 제10번' 작품 평가도독일 함부르크 태생의 작곡가 브람스(1833~1897)는 22세였던 1855년 스승인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브람스는 슈만에게 편지를 보냈다. '만프레드 서곡'의 감동과 그로 인해 생겨난 자신의 교향곡 작곡 의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브람스는 곧바로 작곡에 착수했다. 하지만 7년 뒤인 1862년에야 겨우 1악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미 '헝가리 춤곡'과 '피아노 소나타' 등을 발표하며 소위 '잘 나가는 젊은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다진 브람스였지만, 자신의 첫 교향곡의 구상과 설계 모두 극도로 신중했다. 선배 작곡가인 베토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평소 존경하는 베토벤의 아홉 개 교향곡에 비견되는 작품을 쓰겠다고 다짐하던 브람스였지만 이게 오히려 엄청난 부담감으로 작동했다. 브람스는 말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거인의 발걸음 소리"라고.1악장 완성 후 12년 동안 중단된 브람스의 교향곡 작곡은 1874년에 재개됐다. 2~4악장을 1년여 만에 완성한 후 1악장도 대폭 손질해 완성한 해가 1876년이었다. 착상에서 완성까지 21년이나 걸렸다.브람스 '교향곡 1번' 1악장은 화산 분화구의 용암처럼 모든 것이 녹아 응축된 폭발 직전의 상태를 보여준다. 주제의 구성은 멜로디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짧은 편린의 연속이다. 평화와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 운명을 거스르는 투쟁 등이 대비되며 전개되는 악상은 에너지가 넘친다. 2악장은 1악장의 긴장을 완화 시켜주는 아름다운 사색의 악장이다. 3악장에선 단조롭고 목가적인 평화 속에 스며드는 희망의 빛을 통해 마지막 악장을 예견케 한다. 마침내 모든 기대와 희망을 모아놓은 마지막 악장. 먹구름을 뚫고 비치는 햇살과 같은 호른의 찬란한 울림이 곡 전반을 휘감고 있던 어두운 기운을 걷어내며, 악장의 중반 이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마지막 악장에 필적하는 희망의 선율이 흘러넘친다.19세기의 명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이 작품을 "'불멸의 9개'에 이어지는 '베토벤의 제10번 교향곡'"이라고 일컬었다.'어둠에서 빛으로'의 주제, 형식과 스케일의 강조로 인해, 혹자는 "지나치게 베토벤을 의식한 나머지 브람스다움이 덜 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중함과 엄숙함, 논리적 전개에 더해진 브람스만의 우수는 작곡가 특유의 인상을 잘 드러낸다. 브람스는 이후 3개의 교향곡을 더 작곡했다.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베토벤 이후 가장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 브람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5-09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9)환상교향곡]사랑과 죽음 묘사, 첫 내러티브 교향곡

베를리오즈 경험 담아낸 출세작비극적 내용처럼 10년만에 이혼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1803~1869)의 출세작 '환상교향곡'이 1830년 파리에서 초연됐다. '환상교향곡'의 초연은 한 시대를 풍미한 음악 전통(고전주의)을 대체하는 새로운 사조(낭만주의)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었다.1824년 발표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이후 가장 놀라운 작품으로 꼽히는 '환상교향곡'에서 베를리오즈는 예술가의 사랑과 죽음을 묘사했다. 그가 사용한 전대미문의 다채로운 관현악법과 교향곡에 처음으로 시도한 내러티브(이야기) 구조는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의대생의 길을 걷다가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했으며, 끝내 의사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20대 중반 파리음악원에 입학한 베를리오즈는 유럽 최고의 배우로 주가를 올리던 해리에트 스미드슨을 짝사랑하게 되었다. 런던 셰익스피어 극단의 파리공연을 본 베를리오즈가 무대에 선 스미드슨에 반한 것이다.20대 청년의 어설픈 구애는 결국 실패했고, 베를리오즈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5악장으로 구성된 '환상교향곡'을 작곡했다. 작품은 주체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그린 1악장을 시작으로, 무도회에서 다시 마주친 그녀(2악장), 마음을 달래려 산책에 나섰으나 그녀의 모습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3악장으로 중반부까지 구성됐다. 4악장에선 환각에 빠져 그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사형당하며, 5악장은 마녀였던 그녀가 자신의 죽음을 조장한 것이며 비웃는다는 내용이다.'환상교향곡'의 완성을 앞두고 베를리오즈의 인생에 반전이 일어났다. 프랑스 정부가 유망한 젊은 음악가에게 수여하는 '로마 대상'의 1830년 수상자로 베를리오즈를 선정한 것이다. 네 번의 도전 끝에 선정된 베를리오즈는 5년 동안 3천프랑의 장학금을 받고 이탈리아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장학생이 됐다. '환상교향곡'의 초연 이후 작곡가로서 인정받은 베를리오즈는 우여곡절 끝에 스미드슨과 1833년 결혼에 성공했다. 하지만 10년 만에 이혼하고 말았다. 작품 속에서 죽여버린 사람과 끝까지 사랑하기는 힘들었을까?'환상교향곡'은 독보적인 명연주가 남아 있는 작품이다. 프랑스의 지휘자 샤를 뮌시가 보스턴 교향악단을 이끌고 녹음한 음반(1954년·RCA)은 스테레오 도입기에 탄생했다. 60여년이 흘렀지만 지금 들어도 사운드의 매력은 여전하다.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연한 곡 해석이 돋보인다. 이 낭만주의 교향곡의 걸작을 경험해 보자.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5-02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8)우주를 항해하는 바흐·베토벤]'교향곡 선율'로 외계인과 교류 시도

탐사선에 실린 골든 레코드판브란덴부르크 협주곡등 수록1977년 8월과 9월, 미국은 무인 우주 탐사선 보이저 1·2호를 발사했다. 35년 후인 2012년 보이저 1호가 태양계와 다른 항성계 사이의 공간을 의미하는 성간우주(인터스텔라)에 들어섰다. 2호는 6년 터울을 두고 지난해 성간우주로 진입했다.탐사선에는 지름 30㎝ 크기의 구리 레코드판에 수 억년을 버틸 수 있도록 금박 코팅을 한 '골든 레코드'가 실렸다. 골든 레코드는 언젠가 외계인들이 보이저 1·2호와 접촉할 경우 그들에게 지구인의 존재를 알리고, 우호적 교류를 제안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우리 인사말인 "안녕하세요"를 포함한 55개 언어로 된 인사말과 클래식, 지구(자연)의 소리, 민속 음악 등을 3장의 레코드에 실었다. 레코드는 재생장치와 함께 알루미늄 케이스에 담았다. 또한 이 탐사선이 어디에서 왔고, 재생 방법을 설명하는 문구도 달았다.골든 레코드에 가장 많은 곡을 올린 이는 바흐이다. '평균율 클라비어 2권의 C장조 전주곡과 푸가'(피아노·글렌 굴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1악장'(지휘·칼 리히터/뮌헨 바흐 오케스트라),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의 가보트와 론도 악장'(바이올린·아르투르 그뤼미오)까지 3곡이 바흐의 작품이다. 베토벤의 것은 2곡이 수록됐다. '교향곡 5번, 운명 중 1악장'(지휘·오토 클렘페러/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현악4중주 13번 중 카바티나 악장'(부다페스트 현악4중주단) 등이다. 수록된 작품의 연주 시간으로 따지면 베토벤 것이 가장 길다.두 작곡가 외에 모차르트의 음악으로는 오페라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아리아'(소프라노·에다 모져/지휘·볼프강 자발리쉬/바이에른 슈타츠오퍼)가 실렸으며, 20세기 대표로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봄의 제전 중 '희생의 춤'(작곡가 자신이 지휘하는 컬럼비아 교향악단)이 수록됐다.골든 레코드를 기획한 사람은 20세기 천문학자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1934~1996)이다. 세이건과 팀원들이 고심 속에 선정했을 수록곡들은 우리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명곡들이다. 지구의 대표 작곡가들의 음악이 우주 공간을 항해하고 있다. 지구에 사는 우리는 외계인보다 클래식과 친해질 수 있는 더 유리한 여건에 있다. 클래식을 모를지라도 외계인보다는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4-25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7)결혼행진곡]1858년 영국서 시작된 '딴딴 따단~'

입장 바그너·퇴장 멘델스존 작품反유대주의자·유대인 '아이러니'대부분의 결혼식에서 신부는 '딴 딴 따단~'의 음악에 맞춰 입장한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중 '혼례의 합창'이다. 우아하면서도 절제된 느낌을 준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발걸음과 어우러지면서 식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장면을 제공한다. 반면 예식을 마치고 신랑과 신부가 함께 행진할 때 울려 퍼지는 음악은 멘델스존의 극 부수음악 '한여름 밤의 꿈' 중 '결혼행진곡'이다. 트럼펫의 팡파르가 가미된 화려한 이 음악은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복하는 하객들의 박수와 함께 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데 제격이다.흔히들 '결혼행진곡'으로 통칭하는 두 음악이 언제부터 실제 결혼식에 쓰였을까. 시작은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공주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즈는 1858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3세와 결혼하면서 바그너의 곡을 입장할 때, 멘델스존의 곡을 퇴장할 때 연주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후 많은 상류층 여성들이 선망의 대상이었던 황실 결혼식을 따라 하게 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빅토리아 공주는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결혼을 소재로 했지만, 성격이 상반된 두 곡을 입장과 퇴장에 알맞게 배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바그너의 '결혼행진곡'은 1850년 초연된 오페라 '로엔그린'의 3막 첫 번째 합창곡이다. 3막 전주곡을 통해 결혼식 직전의 축제 현장을 표현해내며, 전주곡의 종료 없이 이어서 '혼례의 합창'이 연주된다. 결혼식 후 비극으로 끝나는 연인의 운명을 암시하듯이 다소 어두우면서 성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아름답지만, 마냥 밝지도 않으며 너무 가볍지도 않다.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은 1843년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극의 부수음악으로 작곡됐다. 부수음악은 요즘으로 치면 드라마나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결혼행진곡'은 5막에서 연주된다. 연인이 여러 사건에 휘말리는 우여곡절 끝에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해피엔딩에 맞추어 웅장하면서 밝고 희망차다.멘델스존은 바그너보다 네 살 위였다. 바그너가 중기 작품인 '로엔그린'을 작곡했을 때 멘델스존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유대인이었던 멘델스존과 유대인을 혐오한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힌 반(反)유대주의자였던 바그너, 사상이나 작풍(作風) 등 모든 면에서 상반된 두 작곡가의 작품이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식에서 어우러진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4-18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6)빨강머리 사제의 '사계']음악으로 시각효과 구현한 비발디

병원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작곡같은 선율 지적속 '표현력 최고'비발디의 '사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으로 꼽힌다. 172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탄생했다. '사계'는 협주곡집 '화성과 창의의 시도, Op 8'(전체 12곡)의 1번부터 4번까지이다. '사계'를 듣고 있노라면 봄에 피어나는 신록과 새들의 노래, 여름의 무더위와 그것을 식혀주는 소나기, 가을의 풍성한 들판, 겨울의 매서운 눈보라와 집 안 난롯가에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누는 농부들의 모습 등이 풍경처럼 지나간다. 이처럼 비발디가 음악으로 구현해 낸 시각적인 효과는 오늘날 영화에서 컴퓨터그래픽(CG)을 통해 만들어내는 획기적인 장면만큼이나 당대에는 크나큰 충격을 줬을 게 분명하다. '사계' 중 '봄'을 보자. 우리처럼 4계절이 뚜렷한 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봄 풍경을 담아냈다. 음악이 시작되면 새들의 지저귐이 메아리치는데, 바이올린으로 구현한 새의 지저귐과 메아리는 당시 상상하지 못한 표현이었다. 화창한 날에 이어 갑자기 내리는 봄비와 꽃샘추위 등 '봄의 변덕'은 또 어떤가. 현악기만으로 어찌 그렇게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그 자체로 대단한 발명이다.비발디는 15세였던 1693년 가톨릭 사제가 되고자 마음 먹었으며 10년 후 사제가 되었다. 하지만 천식으로 인해 미사를 집전할 수 없었다. 머리털이 붉었던 비발디에게 '미사를 올리지 않는 빨강 머리의 사제'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이다. 이때부터 비발디는 부모를 잃은 소녀들을 위한 베네치아 자선 병원 부속 학교에서 성직자이자 음악교사로 20여 년 일하면서 학생들을 위해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때 비발디가 가르친 학생들의 합주력이 프랑스 베르사유 왕립악단을 능가할 정도였다고 한다.하지만 20세기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하나의 선율로) 똑같은 협주곡을 수백 곡 쓴 사람"이라고 비발디를 평가절하했다. 스트라빈스키의 말처럼 비발디는 선율의 창의력 면에서는 뛰어나지 않았지만 그 당시 작곡가들과 비교했을 때 화성과 다이내믹, 표현력 면에서 최고의 성과를 일궈냈다.비발디가 이 같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장인들의 악기 개량과 제작 기술이 있다. 현재까지도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바이올린 제작자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가 대표적이다. 비발디는 이들이 제작한 훌륭한 악기에 걸맞은 표현력을 창안하는 것으로 답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4-11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5)베토벤 콤플렉스]작곡가들에게 벽이 돼버린 '운명'

요즘 말로 빅히트 교향곡 5·9번같은 번호 쓸때 후배들 부담으로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은 이 세상의 교향곡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작곡자 자신이 곡의 주제를 설명하면서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고 말한 게 '운명 교향곡'으로 불린 이유이다. 청중을 압도하는 힘은 유기적인 통일성과 리듬의 추진력에서 나온다. 인간의 운명에 맞선 사투와 그 극복 과정을 30분 정도의 작품 속에 빈틈없이 녹여냈다. 그 구성과 집중력이 놀라울 정도다. '5번'에서의 성취는 '9번 합창'으로 이어져 혼돈과 반목을 넘어 인류애의 메시지로 승화한다.문제는 베토벤 이후 교향곡을 작곡하는 이들에게 5번과 9번은 거대한 벽(콤플렉스)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후배 작곡가들은 교향곡 5번과 9번을 작곡할 때 베토벤의 위대한 두 작품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5번과 9번을 작곡할 때면 어김없이 베토벤의 그것에 필적할 만한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9번 교향곡의 저주'라는 징크스도 있는데 이 또한 베토벤의 9번에 맞먹는 역작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다가 작곡가가 타계하면서 붙여졌다고 할 수도 있다.차이콥스키와 말러, 쇼스타코비치는 자신들의 '5번 교향곡'에서 베토벤의 '5번'에 완벽하게 동조하면서도 자신의 음악적 어법으로 소화한 작품을 내놓았다. 전체적 구성 또한 베토벤의 것과 똑같이 '암흑에서 광명으로'이며, 위풍당당한 결말로 마무리된다.차이콥스키는 5번 교향곡을 작곡하다가 새벽에 식은땀을 흘리며 몇 번씩이나 잠에서 깼다고 한다. '베토벤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형식이나 악상이 더 자유로우며 비극적인 6번과 비교했을 때 '운명 교향곡'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5번을 작곡했을 것이란 유추는 충분히 가능하다.말러의 5번은 '운명 교향곡'의 동기음과 유사한 리듬의 트럼펫 팡파르로 시작한다. 마침 인천시립교향악단(지휘·이병욱)이 5일 오후 8시 아트센터 인천에서 말러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후기 낭만주의 시기의 위대한 5번을 직접 듣고 느낄 절호의 기회이자 맘속으로 베토벤의 5번 운명과도 비교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4-04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요건]강약·지속성 활용 '피아노로 노래하기'

기계적 이해 갖춰야 곡표현 훌륭지메르만 악기 가져와 연주 화제 지난 26일 저녁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에서 열린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피아노 독주회가 음악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폴란드 출신으로, 197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당시 18세)인 지메르만은 16년 만에 성사된 내한 독주회에서 브람스의 소나타와 함께 자신의 주 레퍼토리 중 하나인 쇼팽의 스케르초를 연주했다. 그는 자신의 악기를 가지고 다닐 정도로 음색에 예민하다. 이번 송도 연주를 위해 그랜드 피아노를 비행기로 실어왔다. 아트센터 인천에 모인 2천여 청중은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한껏 매료됐다.'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요건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작품(악보) 이해와 해석이 우선이다. 연주 기교와 작품의 구성력도 있어야 한다. 이를 완벽히 소화한다면 A급 연주자이다. 더 높은 단계가 있다. '피아노로 노래하기'다. 피아노의 기계적 이해가 필수다. 이를 작품의 성격에 맞춰 합당하게 활용해야 한다. 한 음을 낼 때 피아니스트가 의도할 수 있는 부분은 소리의 강약과 지속성이다. 대가들은 자신만의 노래를 통해 편안하고도 쉽게 원작을 들려준다.학생 시절 지메르만은 폴란드의 물류 체계가 원활하지 않아서 피아노 부품의 제작·수리를 직접 했다고 한다. 피아노의 구조와 소재 관련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2003년 첫 내한 독주회 때도 자신의 피아노를 가져왔던 지메르만은 2006년 미국 카네기홀 연주를 위해 JFK공항을 통해 입국할 때, 그의 피아노가 폭발물로 의심받아 크게 망가지는 사고를 겪었다. 이후에는 아예 피아노를 분해한 뒤 현지에서 조립하기도 했다.이처럼 피아노의 기계적 이해까지 갖춘 지메르만은 인천의 음악팬들 앞에서 자신만의 노래를 들려줬다. 브람스 '소나타 3번'에서 1악장 1주제의 제시나 2악장에서 절정을 구축하고 노래하는 솜씨는 명불허전으로 평가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쇼팽 '스케르초'에선 복잡다단한 선율선을 명확하게 부각시키며 작품의 매력을 흠뻑 뿜어냈다. 청중의 커튼콜에 앙코르로 연주한 바세비츠의 '피아노 소나타 2번' 2악장 또한 백미였다. 페달을 적절히 활용하고 포르티시모에서 풍부하고 아름다운 톤을 유지할 수 있는 연주자는 강한 소리와 함께 '자신만의 노래'를 들려줄 수 있다는 점을 지메르만이 보여줬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3-28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클래식에도 아홉수가?]베토벤으로 시작된 '9번 교향곡의 저주'

슈베르트·브루크너·말러 등많은 작곡가 '9'로 생애 마감우리나라 사람들만 아홉수에 몸을 사리는 게 아니다. 서양의 클래식계에도 이 아홉수 징크스는 지독했다. '9번 교향곡의 저주'로까지 불린다. 그 시작은 베토벤이었다. 거장 베토벤이 9개의 교향곡을 쓰고 타계한 거였다. 그 뒤로 이상하게도 많은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쓰기만 하면 더 이상을 작곡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슈베르트는 '미완성 교향곡'을 포함해 9개의 교향곡을 남겼으며, 브루크너는 0번부터 8번까지 9곡의 완성된 교향곡과 미완성인 9번을 남겼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도 9번까지다. 말러 역시 9번 교향곡까지 완성했다. 10번은 시도는 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이 밖에 글라주노프(9번 미완성)와 본 윌리엄스도 10번 교향곡에 진입하지 못했다. 작곡가 쇤베르크는 "'9번 교향곡의 저주'를 강하게 믿어서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인물은 말러"라고 했다. 말러는 교향곡 9번을 쓰면 이내 죽을 것으로 믿었고, 8번 교향곡 작곡 후 실질적으로 교향곡과 다름없는 작품을 내놓지만, 이 작품에 번호(9번)를 달지 않고 '대지의 노래'라고 표제만 붙였다. 징크스를 벗어났다고 생각할 만큼 시간이 흐른 뒤 곡을 완성해 교향곡 9번을 붙였다. 그런데 말러 역시 징크스를 피하지 못했는지 10번을 쓰다가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드보르자크의 경우는 '9번 교향곡의 저주'에 억지로 꿰맞춰졌다. '신세계 교향곡'으로도 불리는 교향곡 9번은 원래 교향곡 5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드보르자크가 숨을 거둔 뒤 초기에 썼던 4개의 교향곡이 새로 발견되면서 마지막에 썼던 5번이 9번으로 바뀐 거다.쇼스타코비치는 '9번 교향곡의 저주'를 보기 좋게 깨버렸다. 스탈린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마침 9번 교향곡을 쓸 순서에 도달한 쇼스타코비치에게 자신을 찬양하는 합창과 독창이 포함된 교향곡을 쓰도록 압력을 넣었다.쇼스타코비치가 그 직전에 작곡한 7번과 8번 교향곡은 연주 시간이 70~80여분에 달하는 거대 편성의 작품이었다. 여기에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의 경우처럼 가수들의 노래가 어우러지는 작품을 쓰도록 스탈린은 강요했다. 스탈린에 반대하는 건 목숨을 내놔야 하는 것이었지만, 쇼스타코비치는 기악으로만 구성된 소박한 연주 시간 25분 내외의 '교향곡 9번'을 선보였다. 스탈린은 크게 분노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위대한 작곡가를 숙청할 수는 없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후 6곡의 교향곡을 더 작곡했고, 그는 모두 15개의 교향곡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3-21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2)연주자는 악보를 외워야 할까]첫 '암보' 타이틀 빼앗긴 클라라

당시 '잘난 척하는 여자' 비난뉘앙스·레퍼토리 한계 우려리사이틀이나 협연 때 독주자가 악보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페라에서 악보를 들고 노래하는 것도 상상할 수가 없다. 처음으로 악보 없이 연주(암보·暗譜)한 이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잘난 척하는 여자"라는 비난만 들어야 했다.그만큼 새로운 시도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아니면 여성이었기 때문에 괜한 낙인을 찍었는지도 모를 일이기는 하다.첫 암보 연주자 타이틀은 19세기 위대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프란츠 리스트(1811~1886)가 차지했다. 1841년 하반기부터 이듬해 초반까지 베를린에서 50여 곡을 외워서 연주했다. 잘난 척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첫 암보 연주자로 이름을 올리지 못한 여성은 슈만의 아내 클라라 슈만(1819~1896)이었다.클라라는 1837년 베를린에서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암보로 연주했다. 지금 같으면 남녀차별이라고 온 여성계가 들고 일어났을 터이다. 지휘자들도 악보 없이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한스 폰 뷜로(1830~1894)는 1872년부터 진행된 미국 순회공연에서 139회의 공연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악보를 보지 않았다. 1865년 뮌헨에서는 4시간에 달하는 바그너의 음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초연할 때도 악보를 치워버렸다. 암보 연주는 점차 진지한 음악 행위로 여겨졌다. 그러나 악보에 적힌 악상 기호와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우려도 있었다. 실제로 레퍼토리가 좁아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3~1989)는 나이가 든 뒤로 집에서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악보를 보면서 연주했지만, 공개 연주회에선 악보를 외운 몇 안 되는 레퍼토리만을 고집했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1915~1997)는 1970년대 후반부터 암보 연주를 포기했다. 청력과 음감이 떨어져 가끔 조를 옮겨 연주하는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다. 그는 악보를 보면서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게 낫다고 충고했다.지휘자 에르네스트 앙세르메(1883~1969)는 "악보 없이 지휘하다 보면 작곡가의 의도에서 벗어나기 쉽고 지휘를 한낱 구경거리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3-14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1)2월 29일생 伊 로시니]4년에 한번 나이 먹은 '천재형 작곡가'

10대부터 활동 '오텔로' 등 명성역동적 선율로 베토벤 인기 압도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표적 작곡가 로시니(1792~1868)는 2월과 3월 사이, 어느 쪽에도 끼이지 못하는 바람에 생일을 제대로 못 챙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2월 29일에 태어났다. 4년에 한 번밖에는 생일상을 받을 수 없었다. 일흔둘이 되었을 때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음악비평가인 한슬리크(1825~1904)가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보기좋다고 말하자 로시니는 "뭐, 놀랄 것도 없지 않소. 난 며칠 전에 열여덟 번째 생일을 맞았었소"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생일로만 치면 나이가 4분의 1로 줄어드는 거였다. 로시니는 천재형 작곡가였다. 불과 12세 때 작곡한 '현을 위한 소나타'(전 6곡)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로시니는 게으름을 피우다가도 쉽게 작곡하는 체질이었다. '데메트리오와 폴리비오', '탄크레디',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등은 10대에 작곡한 오페라들이다. 그 뒤로도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지는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세비야의 이발사'와 '오텔로'가 대표적이다. 로시니는 37세였던 1829년에 그의 마지막 오페라 '윌리엄 텔'의 파리 공연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오페라의 서곡은 콘서트에서 독자적으로 자주 연주되는데, 로시니의 음악성을 체감하기에 제격이다. 그는 자신의 39번째 오페라였던 '윌리엄 텔'을 끝으로 특별한 이유 없이 30여 년 동안 작곡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70세가 넘어 미사곡과 피아노 소품 등을 작곡했다.로시니는 인기 순위에서 베토벤(1770~1827)을 압도했다. 청중은 진지한 베토벤의 음악보다는 역동적이면서도 밝은 선율을 선사하는 로시니에 더욱 열광했다.낙천적인 성격이었으며 부(富)도 축적한 로시니였지만, 금요일과 13이란 숫자 앞에선 한없이 작아졌다고 한다. 13일의 금요일엔 침대에서 꼼짝도 안 할 정도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은 마침 1868년 11월 13일, 금요일이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체부장※ 독자 여러분! 경인일보가 매주 금요일 '클래식'을 배달해 드립니다. 작곡가의 인생과 명곡에 얽힌 뒷이야기, 연주자들이 남긴 흥미로운 일화 등 다양한 내용으로 꾸밉니다.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클래식, 이제 편하게 즐기시기 바랍니다.

2019-03-07 김영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