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1)영화와 음악]클래식 가장 잘 활용한 '스탠리 큐브릭'

대표 작품 '스페이스 오디세이'라이브 시네마 콘서트 이어져 배경 음악과 음향 효과 없는 영화와 드라마는 상상할 수도 없다. 집이나 공공장소 등에서 음량을 최대한 줄이고 시청해 본 적이 있는가.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는 그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3D와 가상현실(VR) 등 현란한 시각 효과 속에서도 이와 어우러지는 음악은 한결같은 품위로 우리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한다.스탠리 큐브릭이 연출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는 클래식 음악이 가장 효과적으로 쓰인 영화로 꼽힌다. 영화는 클래식과 영상의 이상적인 결합을 통해 대담하면서도 완벽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이 성과에 힘입어 영화의 '라이브 시네마 콘서트'가 제작돼 2010년 런던에서 초연되기도 했다. 이 콘서트는 세계 30여 도시에서 선을 보였다.우리나라에선 2017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국립합창단이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했다. 콘서트는 2시간40분여 동안 진행되는 영화 전편을 상영하면서 대사와 음향은 그대로 들려주고, 음악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연주하는 형태로 진행됐다.영화의 오프닝 장면에서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주는 영화팬과 음악팬 모두에게 강력한 충격과 함께 신선한 감동을 준다.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50여 종의 유인원 중 하나가 동물의 뼈를 몽둥이(무기)로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순간이 슬로모션으로 처리될 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도입이 흘러나온다.영화와 같은 제목의 원작 소설(아서 C 클라크 작)은 치밀한 과학적 지식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해부했다. 우주공간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상황은 일종의 윤회사상으로 풀어냈다.이에 비춰 볼 때 큐브릭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설파한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의 테마를 영화와 연결하려 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영화의 주제곡으로 선택된 음악에 대한 필연성도 부여된다. 큐브릭은 이 영화에서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외에도 리게티의 '대기'와 '레퀴엠', 하차투리안의 발레 음악 '가이누',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등을 사용했다.음악의 자극(에너지)을 자신의 영상 연출에 반영한 큐브릭은 음악과 완벽히 결합한 걸작을 만들어 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20-01-16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0)왈츠]80회째 오스트리아 새해를 여는 '흥'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 장식정치서 국민 관심 돌리던 역할 올해 첫날도 어김없이 오스트리아 빈은 왈츠의 열기로 휩싸였다. 누구나 알고 공감하면서 즐길 수 있는 대표 클래식 이벤트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PO) 신년 음악회'가 지난 1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빈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열렸다. 레퍼토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2세, 요제프 슈트라우스 등이 작곡한 왈츠와 폴카 등으로 구성됐다. 지휘는 라트비아 출신의 안드리스 넬슨스가 맡았다. 41세의 넬슨스는 보스턴 심포니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세계 최정상급의 지휘자이다. 우리나라에선 같은 날 오후 7시 전국의 메가박스 상영관에서 생중계됐다.'WPO 신년 음악회'의 시초는 1939년 12월 31일 정오에 열린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회'이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클레멘스 클라우스가 지휘하는 WPO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작품들로 레퍼토리를 꾸몄다. 오페레타 '박쥐' 서곡을 비롯해 '아침의 꽃잎', '황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등의 왈츠로 구성됐다. 이듬해에도 송년 음악회로 개최된 이 음악회는 이튿날인 1941년 1월 1일 오전에 같은 프로그램으로 공연됐다. 이때부터 'WPO 신년 음악회'로 자리잡았다. 해마다 첫 날에 거르지 않고 개최된 '신년 음악회'는 올해로 80회째를 맞았다.'신년 음악회'는 빈의 전통에 기반한 왈츠의 흥겨운 멜로디를 새해 선물로 선사해 더 많은 음악팬과 가까워지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의 고난 속에서 국민에게 음악을 통한 위안을 주고 복잡해진 정치 문제로부터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빈의 왈츠는 이전에도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800년을 전후해 유럽을 지배했던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유독 오스트리아에는 폭넓게 전파되지 못했다. 왈츠의 매력에 빠져 무도회장을 찾으며 분위기에 취해 있는 국민으로 인해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이뤄졌던 왕정 타도 물결이 오스트리아는 비켜갔다는 것이다.이젠 이런 역사를 기억하며 '신년 음악회'를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수억 명의 음악팬들은 세계로 전송되는 고화질 화면을 통해 음악적 볼거리와 들을거리를 취하고 있다. 올해 '신년 음악회'에선 공연 전과 휴식 시간 등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100주년'과 '베토벤 탄생 250주년'에 맞춘 홍보 영상이 상영됐다. 클래식 음악의 열기가 1년 내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20-01-02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9)합창교향곡]인류애 메시지 담아낸 클래식 대명사

청력 잃은 베토벤 초연무대 지휘말러 등 후대 작곡가들에 영향도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과 9번 '합창'은 클래식의 대명사격이다. 초연 이후 약 2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청자들을 매료시키는 메인 테마가 강렬하다. 5번에서 운명을 극복한 성취는 마지막 교향곡 9번에서 혼돈과 반목을 극복한 인류애의 메시지로 승화한다.청력을 완전히 잃은 베토벤은 자신의 지휘로 1824년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교향곡 9번을 대중 앞에 선보였다.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베토벤은 지휘자로 참여한 앞선 공연들에서 연주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아닌지에 신경을 쓰다가 머뭇거리기 일쑤였고 이는 커다란 혼란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주위에선 지휘를 만류했지만, 베토벤은 9번의 초연 무대에 오르겠다는 결심을 꺾지 않았다. 그로 인해, 포디엄(지휘대)엔 베토벤이 서지만, 단원들은 무대 한쪽에 숨어있는 또 한 사람의 지휘자 미하엘 움라우프의 지시에 따라 연주를 했다. 당시 초연에 참여했던 한 합창단원은 "베토벤이 연주에 맞춰 악보를 읽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한 악장이 끝났는데도 페이지를 계속 넘겼다"고 증언하는 등 베토벤의 지휘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연주회는 성공적이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은 새로운 교향곡의 출현에 놀라움과 경외감을 느꼈다.작곡가의 창조적 열정과 비감에 찬 우수의 세계가 표출되는 1악장, 비감에 찬 세계를 헤쳐나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저지되는 2악장, 세상의 조화를 그린 3악장에 이어 4악장에선 앞서 제시된 세계와 장애가 회상처럼 지나간 후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와 어우러지는 음악으로 새로운 사회를 그려낸다. 이 작품으로 인해 '교향곡'은 인류애를 노래하는 거대한 표현 수단으로서의 자격을 갖췄다. 이는 교향곡을 통해 하나의 우주를 구현하려 한 말러 등 후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줬다. 메시지의 강렬함으로 인해 교향곡 9번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에 연주되는 등 정치적 목적이 결부된 이벤트에도 자주 선을 보였다. 또한 유럽의 일부 지역과 아시아의 우리나라와 일본에선 송년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로도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요엘 레비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은 네 명의 독창진과 130명 규모의 연합합창단과 함께 27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이 작품을 연주한다.교향곡 9번으로 올해를 마무리하고,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는 2020년엔 보다 다양한 그의 작품들과 친해져 보는 건 어떨까.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2-26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8)어빙 벌린]"노래는 대중의 기호에 맞춰야"

'화이트 크리스마스' 작곡 유명악보 문맹 불구 1500여곡 남겨 크리스마스에 부르는 성탄 축하곡을 의미하는 캐럴 중 가장 유명한 곡은 뭘까. 20세 이상 성인은 주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꼽지 않을까.'화이트 크리스마스'는 화려한 춤과 노래들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영화 '홀리데이 인'(1942)의 주제가로 선을 보였다. 이 영화의 모든 삽입곡은 올해로 타계 30주년을 맞은 어빙 벌린(1888~1989)이 작곡했다. 벌린은 그 해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러시아계 유대인(본명은 이스라엘 발린)인 벌린은 4세에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에서 살다가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노래(1천500여곡)를 남겼다. 1910년 첫 발표곡인 '업 앤 다운 브로드웨이'에 이어 이듬해 '알렉산더스 랙타임밴드'로 대성공을 거둔 벌린은 가요와 무대·영화음악 등 대중음악의 거의 모든 장르에 손을 댔다. 그는 청중의 요구에 자신의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바꿀 줄 알았다.8세에 아버지를 여읜 벌린은 거리에서 신문을 팔고 카페 웨이터로 일했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벌린의 음악수업은 혼자 카페 창고의 낡은 피아노를 친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피아노는 거의 검은 건반만 사용하는 올림 바장조 곡만 연주할 수 있었고, 평생 악보를 읽고 쓸 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벌린의 노래를 대필했던 사람들은 "벌린은 노래의 선율선은 물론 화성까지 완벽히 완성해 대필을 맡겼고, 어떤 때는 반주 성부까지 스스로 만들어 편곡의 여지조차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벌린은 '노래는 대중의 기호에 맞춰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1920년의 한 인터뷰에서 좋은 노래의 조건으로 ▲평균 정도의 음역에 맞출 것 ▲남자도 여자도 다 부를 수 있을 것 ▲가사가 매끄러울 것 ▲가슴에서 우러나올 것 ▲사상과 말과 음악이 독창적일 것 ▲쉬울 것 등을 꼽았다. 이 같은 조건을 갖춘 그의 노래는 청중에게 열광 대신 휴식을 제공했다. 스트라빈스키는 벌린을 천재라고 불렀다. 1988년 카네기홀에서 열린 벌린의 100세 기념 연회에는 아이작 스턴(바이올린)과 레너드 번스타인(지휘·작곡), 마릴린 혼(소프라노) 등 대가들이 참석해 축하했다.벌린의 '갓 블레스 아메리카'는 미국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불릴 것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2-19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7)발레 음악]'오페라 일부' 20세기에 독립작품으로

차이콥스키 등 러 작곡가 완성 오페라극장 시스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발레단이다. 오늘날 오페라 공연이 잠시 쉴 무렵엔 발레 공연이 무대를 채운다. 오페라의 한 부분이었던 발레가 독립 작품으로 대접받게 된 데에는 완성도를 높인 발레 음악이 큰 역할을 했다.19세기에 나온 로맨틱 발레 작품인 '라 실피드', '지젤', '코펠리아', '돈키호테' 등도 음악만을 따로 떼어서 놓고 본다면 이들도 대단한 작품이라고 평가하긴 어렵다. '지젤'을 작곡한 아당의 제자로, '코펠리아'를 작곡한 들리브가 차이콥스키의 출현을 예감케 했다는 정도의 평가는 가능하다. '걸작 발레 음악'이라는 표현은 러시아 고전 발레를 완성한 차이콥스키에 이르러서야 쓰이기 시작했다. '걸작 발레 음악'은 차이콥스키를 뒤따르는 러시아 작곡가들인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 하차투리안 등의 20세기 작품으로 이어졌다.로맨틱 발레는 19세기 후반 들어 유럽에서 점점 인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예외였다. 이러한 상황이 차이콥스키가 발레 음악을 작곡하는 데 영향을 줬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함께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 음악으로 불리는 '호두까기 인형'은 작곡가가 세상을 뜨기 1년 전인 1892년 완성됐다. 19세기 초 E.T.A 호프만이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왕'을 썼으며, 이를 뒤마가 '호두까기 인형 이야기'로 각색했다. 안무가 프티파는 발레 대본으로 재각색했으며, 여기에 차이콥스키가 음악을 입힌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린이를 위한 공연으로 자리잡은 이 작품은 동화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음악으로 누구에게나 깊은 인상을 남긴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수많은 안무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고전적 버전에서부터 팝아트적인 버전, 성인용의 에로틱한 버전, 어린이용의 3D 애니메이션 버전까지 다양하다. 12일 국내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검색하니 13일과 14일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질 유니버설 발레단의 공연 외에 이달 전국 각지의 공연장을 장식할 20여 개의 '호두까기 인형' 포스터가 떴다. 크리스마스와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음악과 무대의 향연(호두까기 인형)을 공연장에서 보면서 고전의 가치와 동심을 떠올려 보는 것도 색다른 연말 보내기로 훌륭한 프로그램일 듯하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2-12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6)'명지휘자' 마리스 얀손스]무명 악단, 세계적 오케스트라로 키워

최근 복귀 불구 지병으로 '타계'러시아 음악위주 연주관행 탈피세계적인 명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지난 1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자택에서 심장질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76세.얀손스는 1996년 오슬로에서 지휘 도중 심장발작으로 쓰러진 뒤에도 지휘봉을 놓지 않은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수술 후에도 심장 이상설은 끊이지 않았다. 올해 여름부터 연주 활동을 줄이고 치료에 전념했으며, 지난달 복귀해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SO)과 미국 카네기홀 공연을 소화하기도 했다.얀손스는 1943년 소비에트 연방인 라트비아 리가에서 지휘자 아르비드 얀손스와 유대계 성악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 므라빈스키의 보조 지휘자가 되면서 레닌그라드로 이주한 얀손스는 레닌그라드 음악원 지휘과를 수석 졸업했다.1971년 카라얀 지휘 콩쿠르에서 입상한 얀손스는 그해 므라빈스키의 조수로 레닌그라드 필과 인연을 맺었다. 1979년 오슬로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한 얀손스는 무명 악단을 일약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키웠다. 40세의 얀손스와 오슬로 필이 내놓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전집 음반(샨도스)은 지금까지도 명반으로 칭송받고 있다. 피츠버그 교향악단을 거쳐 2003년 BRSO의 음악감독에 부임한 얀손스는 2004년부터 네덜란드의 명문 로열 콘세르트허바우(RCO)의 음악감독으로도 2015년까지 재임했다. RCO와 BRSO는 2008년 영국 음악지 '그라모폰'이 발표한 세계 오케스트라 순위 1위와 6위를 각각 차지했다.20세기 중반 소련 지휘계의 양대 산맥은 므라빈스키와 콘드라신이었다. 뒤를 스베틀라노프와 로제스트벤스키가 이었다. 그다음 세대가 얀손스와 게르기예프로 꼽힌다.소련 음악계에 만연했던 러시아 음악 위주의 연주관행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도 얀손스였다. 특히 라트비아인임을 강조한 얀손스는 비러시아적인 매우 세련된 면모를 선보였다. 얀손스는 러시아 레퍼토리를 비롯해 하이든에서 버르토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격조 있는 연주를 들려준 위대한 지휘자였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2-05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5)여성 지휘자]1860년대 오스트리아서 금녀의 벽 깨져

뉴욕필은 1938년 브리코가 최초개봉 영화 '더 컨덕터' 실제 인물 역사상 첫 여성 지휘자는 1860년대 오스트리아 빈에서 '루트비히 모렐리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의 마리 구르너였다. 구르너의 지휘자 임명은 당시 요제프 슈트라우스가 '여성 해방 폴카'를 작곡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영국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메리 웜은 1887년 베를린 필하모닉을 직접 고용해 서곡을 연주했다. 그 뒤로 극소수의 재능 있는 여성 지휘자들이 베를린 필하모닉의 포디엄(지휘대)에 섰다. 1930년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지휘를 전공한 첫 미국인(네덜란드계)이었던 안토니아 브리코는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코스로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했다. 브리코는 1938년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하며 이 오케스트라를 이끈 역사상 첫 여성 지휘자로도 기록됐다. 이달 중순 개봉한 영화 '더 컨덕터'는 브리코의 음악 인생을 다룬 영화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보스턴 심포니도 1938년 여성에게 지휘대를 개방했다.하지만 20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여성 지휘자들은 여성 단원으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오케스트라는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통념 때문이었다. '뉴욕 타임스'의 유명 음악평론가 헤럴드 숀버그는 저서 '위대한 지휘자들'(1967년)에서 "여성 지휘자가 무대에 서면 언제 업비트(지휘봉을 위로 올리는 동작으로 음악의 개시를 의미)가 시작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속치마가 보이기 시작하는 게 바로 그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같으면 성차별적 발언이라고 온 여성계가 들고 일어나고도 남았을 표현이다.그렇다면 오케스트라가 처음으로 여성 단원을 받아들인 것은 언제일까. 1913년 영국 퀸즈 홀 오케스트라가 효시이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1930년), 보스턴 심포니(1941년), 뉴욕 필하모닉(1966년)이 차례로 여성 단원을 받아들였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1983년 첫 여성 단원을 발탁했으며, 빈 필하모닉은 1997년 여성 단체와 오스트리아 의회의 압력으로 여성 단원(하피스트)을 받아들였다. 빈 필하모닉은 2005년 11월 12일 빈 무지크페라인잘에서의 연주회를 호주 출신의 여성 지휘자 사이먼 영에게 맡기며 금녀(禁女)의 장벽을 허물었다.최근 들어 오케스트라에 여성 단원이 크게 늘면서 여성 지휘자들의 등장도 잦아지고 있다. 이제 오케스트라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통념은 깨졌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1-28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4)오페라극장]연출·오케스트라·행정 등 시스템 포함

음악감독·연주 실력·역사 등 기준시드니 오페라하우스 톱10 못들어오페라하우스라고도 하는 오페라극장은 무대가 넓고 천장이 높으며 무대 전면에 오케스트라 피트(Pit)가 있다. 전속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가수, 발레단 등도 두고 있다. 오페라극장의 개념은 건물만이 아닌 새로운 연출의 오페라 무대를 만들어서 선보일 수 있는 시스템까지를 포함한다.일례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공연한다고 할 때,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무대를 만들기 위해 극장의 예술감독이 연출자를 초대하고 가수와 무대·의상 미술가, 안무가, 무용수 등을 섭외해서 극장에 전속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부지휘자, 합창단, 가수 등과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가들이 협력해 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포함하는 것이 오페라극장인 것이다. 유럽의 유명한 오페라극장에서 새 연출작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전 세계의 오페라 팬들이 객석을 가득 채우는 것은 극장의 내적 시스템을 잘 갖췄기 때문이다.내친김에 세계 10대 오페라극장을 꼽아보자. 선정 기준은 어느 정도 수준의 연출가들이 참여했으며 극장 소속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기량은 어느 정도인가, 음악감독이나 지휘자는 누구인가, 어떤 가수들이 초청받아 무대에 서는가, 1년에 몇 편의 작품(다양한 레퍼토리)을 무대에 올리는가, 역사는 얼마나 깊은가 등이다. 빈 국립 오페라, 베를린 국립 오페라, 뮌헨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파리 국립 오페라(가르니에 & 바스티유), 런던 로열 코벤트가든 오페라, 밀라노 스칼라 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취리히 국립 오페라, 프라하 국립 오페라,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등을 꼽을 수 있다.잘 알려진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위에서 언급한 극장들에 비하면 그 수준이 크게 미치지 못한다. 건축적 측면에서 세계문화유산(UNESCO)에 선정됐으며, 시드니의 랜드마크로 유명할 뿐이다.지난 16일로 개관 1주년을 맞은 아트센터 인천(ACI)은 콘서트홀 바로 옆에 2단계로 오페라극장 건립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계획 단계부터 지금까지 ACI측은 롤 모델로 공공연하게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꼽아 왔다. 건축적 아름다움과 함께 새로운 프로덕션을 만들어서 올릴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춘 ACI 오페라극장을 기대한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1-21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3)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시인이자 음악가' 최초의 오페라 소재

1600년 페리 작곡 '에우리디체' 등1980년대까지 다양한 작품 탄생 오르페우스(이탈리아어로는 오르페오, 프랑스어로는 오르페)는 그리스신화 속의 가장 유명한 시인이자 음악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현악기의 일종인 리라를 특히 잘 다뤘는데, 그가 리라를 타며 노래를 부르면 인간은 물론 동물들과 나무, 돌덩이까지 감미로운 그 소리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신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체가 뱀에 물려 죽자 저승까지 내려가 음악으로 저승의 신들을 감동시킨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다시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지상의 빛을 보기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지키지 못해 결국 아내를 데려오지 못하고 슬픔에 잠겨 지내다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서양음악사에서 오르페우스 신화는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 신화는 특히 오페라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최초의 오페라가 오르페우스를 소재로 하는 등 오르페우스는 초기 오페라의 대명사 격이었다. 오페라는 15세기 말 이탈리아의 예술가와 귀족들의 '공부 모임'에서 태어났다. 피렌체의 '카메라타'라는 모임에서 고대 그리스 연극을 복원하기 위한 실험을 했고, 오페라를 만들어낸 거였다. 페리는 1597년 '다프네'에 이어 1600년 '에우리디체'를 작곡했다. '다프네'가 악보 없이 기록으로만 전하기 때문에 페리의 '에우리디체'가 최초의 오페라로 불린다. 2년 후 카치니가 '에우리디체'를 작곡했으며, 바로크 시기를 여는 작품인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가 1607년 탄생했다. 18세기 초기, 바로크 오페라는 기교와 과장이 지나쳐 차츰 '음악을 괴물로 만들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 뒤 '개혁 오페라'로 평가받는 글루크의 작품이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1762년)이다. 이후에도 오르페우스 신화는 작곡가의 영감을 자극했다. 베를리오즈는 글루크의 원작을 수정 보완해 '오르페'를 내놓았다. 리스트는 자신이 창안한 '교향시'의 형태로 '오르페우스'를 그려냈으며, 오펜바흐는 유명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를 썼다. 20세기 들어서는 스트라빈스키가 발레 음악 '오르페우스'를 작곡했으며, 1986년에 완성된 버트위슬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의 가면'에 이르기까지 오르페우스는 다양한 음악으로 환생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1-07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2)신약(新約)]'위대한 유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초·중·후기 구분 32개로 구성낭만주의 거쳐 절대적 영향력19세기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구약성서에,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를 신약성서에 비유하며 두 작품에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지난 주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다뤘다. 이번에는 피아노 음악사에서 가장 거대하면서도 위대한 유산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에 관해 이야기다. 18세기 중반 바로크의 황혼이 찾아 들고, 독일에서는 새롭게 탄생한 건반악기인 피아노를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의 '소나타 형식'이 발전했다. '소나타 형식'의 체계를 확립한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걸출한 피아노 소나타들을 남겼다. 이어서 등장한 베토벤은 두 작곡가의 유산을 자양분으로 삼아 더욱 심화시켰다.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는 시기에 따라 초·중·후기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초기 소나타로 불리는 1~15번에선 선배 작곡가들의 영향이 나타난다. 고전적 테두리를 유지하지만, 서서히 확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어지는 중기 소나타(16~27번)는 청력의 감퇴와 실연 등에 의해 절망했던 베토벤의 당시 심경을 대변하는 작품들과 절망을 이겨내고 승리를 거두는 인간(예술가)을 그려낸 작품들로 양분돼 나타난다. 후기 소나타(28~32번)는 베토벤의 작품 번호 101~111로 이어지는 만년의 작품들이다. 특히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상실해 대화 노트에만 의존한 시기였던 1818년 완성된 '29번'(함머클라비어)은 연주 시간만 40분 넘게 걸리는 대작으로, 피아노의 한계를 넘어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마지막 '32번'은 모든 시도와 그 결과물들을 응축시켜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이렇듯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는 작곡가의 치열한 삶의 궤적을 적절히 보여주고 있다. 베토벤은 고전주의 소나타의 조화와 균형미에 당대 '질풍노도' 양식의 격렬한 감정 표현을 한 데 아우른 자신만의 소우주를 만들어 냈던 거였다.당시 유럽 전역의 음악가들은 베토벤의 소나타를 배우기 위해 독일로 모여들었다. 독일의 소나타를 교육받지 못한 음악가들은 19세기 음악 주류에 합류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처럼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는 19세기 낭만주의를 거쳐 현재까지도 음악가와 청중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0-31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1)구약(舊約)]'영혼의 샤워'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바흐, 넓은 전조로 표현력 확대연습곡이지만 최고 예술적 깊이 19세기 위대한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구약성서에,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를 신약성서에 비유하며 두 작곡가의 작품에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현재까지도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에 수록된 48곡의 진가를 가장 잘 드러낸 비유로 평가받는다.건반악기의 조율 체계는 수십 가지에 이르며 서로 보완하며 발전해 왔다. '평균율'은 현재 보편적으로 쓰이는 조율체계이다. 한 옥타브를 열두 음으로 나눠 한 단은 반음, 두 단은 온음으로 놓은 평균율 조율법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으로 서양 음악사에 굳게 자리매김했다.클라비어(Klavier)는 건반이 달린 현악기를 통칭한다. 건반 위에서 만들 수 있는 24개 조성(열두 음의 장·단 음정)을 가지고, 한 조성당 전주곡과 푸가를 쌍으로 묶어 연습곡 형태로 완성한 작품이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다. 첫 스물네 곡을 묶은 제1권은 1722년, 제2권은 1744년에 완성됐다.연습곡이라고는 하나 그 예술성과 깊이는 음악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경지에 있다. 바흐가 생존했던 바로크 시기에는 '가온음률'이 조율 체계로 통용됐다. 바흐 자신도 가온음률을 지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폭 넓은 전조(轉調)를 통해 표현력 확대에 용이한 평균율을 활용해 명곡을 만들어냈다. 당시로선 새로운 시도였다. 바흐의 진보적 측면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바흐(Bach)의 이름에서 착안해 "'개울'(Bach)이 아닌 '대양'(Meer)이었다"고 한 베토벤의 경탄도 이 작품에서 기인했다. 다음 달 13일 아트센터 인천에서 카펠라 안드레아 바르카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의 협주곡을 들려줄 세계 최정상의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는 해외 매체와 인터뷰에서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에 관한 견해를 이렇게 밝힌 바 있다."모차르트와 베토벤, 쇼팽, 슈만, 버르토크 등이 그랬듯이 나도 매일 이 곡집을 연주합니다. 두 개나 네 개, 여섯 개 정도의 전주곡과 푸가를 매일 다른 걸로 치죠. 하루를 시작하기에 너무나 좋은 방법이에요. 음악적으로 너무나 순수해서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샤워 후의 느낌을 받을 정도입니다. 치고 나면 손가락의 움직임이 부드러워지고 마치 춤을 추고 난 것처럼 살아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껴집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0-24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0)왜색 용어]'라 트라비아타'를 '춘희' 해석 일제잔재

'마탄의 사수'도 日 자의적 표현組曲은 '모음곡'으로 표기 적당 지난 여름,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아 있는 일제잔재 청산운동을 일으키는 촉매가 되기도 했다. 클래식 분야에도 일제 잔재는 여전하다. 오랜 기간 습관적으로 쓰면서 굳어졌지만 꼭 청산해야 한다.베르디의 오페라 제목인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길을 잃은 여인' 혹은 '방황하는 여인'을 뜻한다. 그런데 한동안 우리나라에선 '춘희'로 불렸다. 이 오페라는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꽃 여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일본에선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원작 소설 제목을 일본어로 번역해 '스바기히메(椿姬·춘희)'로 썼고, 우리도 일본식 표현(한자)을 그대로 받아들인 거였다. 더욱이 춘(椿) 자는 우리와 중국식 한자에선 동백나무가 아닌 참죽나무를 뜻한다. 엉뚱한 말이 되어버린 거다. '춘희'라고 써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풀어서 쓰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현지 언어(이탈리아)의 발음을 살려 표기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아닐까 한다.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의 막을 연 베버의 '마탄(魔彈)의 사수(射手)' 또한 일본에서 써온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다. 독일 전설에 기반한 이 오페라의 독일어 원제는 'Der Freischutz'로, 공개 사격대회의 사수를 뜻한다. 일본에선 계몽적 이념을 내세운 이 오페라의 내용을 보다 친숙하게 표현하기 위해 극에 나오는 백발백중의 '마법 탄환'을 제목에 가미한 것으로 생각한다. '라 트라비아타'의 경우처럼 원제목인 '프라이쉬츠'로 쓸 수 있다.오펜바흐의 유명 오페레타 제목('천국과 지옥') 또한 일제의 잔재다. 원제는 '지옥의 오르페우스'이다.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와 함께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했지만, 오펜바흐는 자신의 극에 천국과 지옥을 설정했다. 그 때문에 일본에서 자국어로 옮기면서 '천국과 지옥'으로 변형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지옥의 오르페우스'가 올바른 표현이다.다양한 음악들을 모아서 만든 작품을 지칭하는 '조곡(組曲)' 또한 '스위트(Suite)'를 일본식으로 번역·표기한 것이다. 우리는 '모음곡'으로 표기하면 알맞다. 조곡이라고 하면 '애도하는 음악'을 떠올릴 수 있는데, 평소 모음곡으로 쓰면 그와 같은 걱정은 붙들어 맬 수 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0-17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29)목신(牧神)]말러·드뷔시에 의해 소환된 '목신'

기존 작법 벗어나려던 '세기말'새로운 음악 창조 소재로 활용'목신'은 숲, 사냥, 목축을 관장하는 신이다. 그리스신화 속 판(Pan)과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파우누스(Faunus)를 통칭한다. 농경시대를 거치며 목신을 표현한 문학과 미술작품은 르네상스 이후 계속해서 나왔다. 그에 반해 음악에선 드뷔시(1862~1918)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1894년)과 말러(1860~1911년)의 '교향곡 3번'(1895년) 등 비슷한 시기의 두 작품에서 목신이 등장한다.두 작곡가의 작품관과 세기말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낳은 걸로 볼 수 있다. 서양 음악계에선 바흐 이후 200년 가까이 이어진 기존의 작법에서 발전(확대) 혹은 결별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두 작곡가는 목신을 소재로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고자 했다.말러의 작품을 초·중·후기로 나눌 때, '교향곡 4번'까지를 초기로 본다. 초기 작품 중 정점에 있는 3번 교향곡은 6악장으로 구성됐으며, 연주시간은 100분에 달한다. 각 악장마다 부제를 달고 있는데, 여덟 대의 호른 합주로 시작해 큰북에 맞춰 장송행진곡으로 이어지는 1악장 도입부의 부제가 '목신이 깨어난다'이다. 여기서 목신은 자연을 의인화한 것이며 세계와 우주를 의미한다. "교향곡을 작곡한다는 것은 가능한 모든 기교를 이용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던 말러는 목신을 내세워 파격적 작품을 창조해 냈다.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선 인상주의 미술과 상징주의 시(詩)가 유행했다. 드뷔시는 당대 미술과 시의 경향을 작곡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기존의 작법과는 다른 방식을 택한 드뷔시는 옛 중세 선법과 음계,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처음 본 자바음악 등으로 대체한 새로운 음악을 창안했다. 그의 출세작이자 최초의 인상주의 음악인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그렇게 세상이 나왔다. 드뷔시는 이 작품의 초연 때 곡해설에서 "나는 말라르메의 시('목신의 오후')를 자유롭게 회화로 표현했다. 시 전체를 샅샅이 다룬 것은 아니고 하나의 배경으로 삼아 그 분위기를 그렸다"고 썼다.마침 인천시립교향악단(지휘·이병욱)이 오는 18일 오후 7시 30분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연주한다. 125년 전 출현한 위대한 인상주의 음악을 인천에서 확인할 흔치 않은 기회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0-10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28)타계한 '블랙디바' 제시 노먼]격조있는 소프라노 '오페라의 검은 여왕'

밀라노 라스칼라·런던 코벤트가든 굴지의 무대 섭렵… 인권운동 앞장지난 1일 오전(한국시간) 우리 언론은 AP통신 등을 인용해 '오페라의 검은 여왕', '여자 파바로티'로 불린 미국의 세계적인 소프라노 제시 노먼의 타계 소식을 알렸다. 향년 74세.2015년부터 척수손상을 앓았던 노먼은 합병증인 패혈성 쇼크와 다기관 기능 부전으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1945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에서 태어난 노먼은 어려서 피아노를 배우고, 교회 성가대 활동을 했다. 아프로-아메리칸 성악가의 시조격인 마리아 앤더슨과 흑인 가수로는 처음으로 1961년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 주역을 노래한 레온타인 프라이스 같은 흑인 성악가의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며 꿈을 키웠다. 워싱턴DC에 있는 하워드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노먼은 이후 피바디음악학교와 미시간대학에서 공부했다. 노먼은 대학 졸업 후 유럽으로 건너갔다. 1968년 독일 뮌헨 라디오 방송국이 주최한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노력의 결과를 봤다.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데뷔 무대로, 바그너의 '탄호이저'에서 엘리자베트 역을 맡아 호평받았다. 흑인 가수가 오페라 무대에 서는 것에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그는 탁월한 실력으로 극복했다. 이후 밀라노 라스칼라와 런던 코벤트가든 등 세계 굴지의 오페라 무대들을 섭렵했다.주가를 올리던 1975년 돌연 무대를 떠나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노먼은 1980년 복귀해 한층 성숙하면서도 깊어진 목소리와 연기로 10여년 동안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노먼은 1983년 메트로폴리탄 개관 100주년 기념 공연으로 기획된 베를리오즈의 '트로이 사람들'의 주역으로 초대받았다. 프랑스와 독일 오페라의 드라마틱한 역에 특출했던 노먼은 이 공연을 통해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노먼은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루푸스 환자를 위해 재단을 만들고 집 없는 사람을 위해 후원회를 조직하는 등 흑인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1989년 7월14일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서 열린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식에서 부른 '라 마르세예즈'는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20세기 후반 캐슬린 배틀, 바버라 핸드릭스와 함께 '3대 흑인 소프라노'로 불린 노먼은 오페라 외에도 독일 가곡과 흑인 영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히트곡과 재즈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격조 있는 최고의 노래를 들려준 위대한 가수였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10-03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27)자작자연(自作自演)]비례하지 않는 작곡 실력과 연주 능력

전문 연주자에 못미치는 게 통설라흐마니노프 등 손꼽히는 경우도1900년대 초 레코딩 기술이 크게 발달했다. 그때 활동하고 있던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이나 20세기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연주해 음반으로 남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오래 전 유명 작곡가들의 작품이 그들의 손에 의해 연주된 것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자작자연이란 그리 놀랍고 별스러운 것은 아니다. 지금에서야 전문 연주자와 작곡가 사이에 어느 정도 구분이 생겼지만, 예로부터 많은 음악가가 연주(혹은 지휘)와 작곡을 병행했다. 녹음되지 못했을 뿐이다.바흐는 당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 겸 합창 지휘자였다.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자신의 작품을 연주했다. 쇼팽과 리스트는 생전에 피아니스트로 더 큰 명성을 얻었으며, 이는 라흐마니노프까지 이어졌다. 또한 멘델스존과 말러, R. 슈트라우스는 탁월한 지휘자로 인정받았다.음악은 작곡가 자신이든, 전문 연주가이든 어느 누군가의 연주를 통해 재현된다. 이때 만일 창작자와 연주자가 동일인이라면 작곡 당사자인 만큼 완벽한 형태로 재현해내지 않겠느냐는 점에서 기대하게 된다. 애호가들은 기대와 호기심으로 자작자연 음반을 접했다.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니스트로 자신의 협주곡을 연주하고 R. 슈트라우스가 자신의 교향시를 연주한 음반들은 연주력과 곡 해석 측면에서 하나의 모범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러한 예외를 제외한다면 지금까지 통설은 '자작자연은 보잘 것 없다'는 쪽이다. 비록 자신이 만들어낸 창작물이어서 작품에 대해 가장 잘 알지만, 표현의 치밀함이나 섬세한 조형능력은 트레이닝을 거친 전문 연주자에 미치지 못했다. 충실한 작곡가의 역량과 달리 작품을 연주해 청중의 감동을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최고 지휘자 반열에 오른 인물인 오토 클렘페러, 레너드 번스타인, 피에르 불레즈가 들려주는 자신의 작품들은 듣는 이의 기대에 부합하는 최고의 연주로 꼽힌다. 이 밖에도 스트라빈스키와 코플랜드(이상 지휘), 쇼스타코비치(피아노)가 연주하는 자작들도 '작곡가의 연주가 감상용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선입견을 걷어내게 하는 명곡들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9-26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26)기차]관현악으로 표현한 기관차의 질주

오네게르 '퍼시픽 231' 인상적라이히는 사이렌 등 소음 가미국내 첫 철도인 경인선이 지난 18일로 개통 120주년을 맞았다. 경인선은 1897년부터 노량진~제물포 간 33.2㎞ 구간에 건설됐다. 그 경인선을 달리는 기차는 120년 전인 1899년 9월 18일 오전 9시 첫선을 보였다. '화륜거(火輪車)'로 불린 육중한 모갈(Mogul·거물) 증기기관차가 희뿌연 증기를 내뿜으며 굉음과 함께 노량진을 떠나 제물포로 향했다. 서양 철도의 시원은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에 들어서, 근대 문명과 진보의 상징인 철도를 소재로 한 흥미로운 음악과 에피소드도 많다. 근대 프랑스 음악의 최선봉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6인조(Les Six)' 중 한 명인 작곡가 오네게르(1892~1955)는 1923년 기차의 기계적 소리를 관현악으로 표현한 '퍼시픽 231'을 발표했다. 어려서부터 기차를 좋아한 오네게르는 그 뿌리 깊은 애착을 '퍼시픽 231'로 표출했다. '3개의 교향적 악장' 중 제2곡에 배치된 이 곡은 300t이나 되는 거대한 기관차 '퍼시픽 231'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해 차츰 속도를 높여 질주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기관차의 바퀴 배열에 의한 특유의 리듬, 불협화음을 통한 기계음의 묘사 등 근대적인 작곡 요소로 거대한 기관차를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곡가 라이히(1936~ )는 1988년 현악4중주곡 '서로 다른 기차(Different Trains)'를 작곡했다. 어린 시절 라이히는 LA에 사는 부모를 만나러 가기 위해 뉴욕에서 기차를 탔다. 유대인인 그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만일 자기가 유럽에 있었다면 홀로코스트 기차를 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가정이 전쟁의 공포를 담아낸 섬뜩한 음악인 '서로 다른 기차'를 탄생시켰다. 현악기들의 반복되는 단순한 모티브와 리듬에 사이렌 소리 등 다양한 소음들이 가미됐다.체코의 작곡가 드보르자크(1841~1904)는 기차를 소재로 한 작품은 내놓지 않았지만, '기차 마니아'의 원조로 불린다. 드보르자크는 9세 때 프라하 인근의 완공된 철길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열차를 보았다. 기관차의 육중한 외관, 빠른 속도,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 등은 어린 드보르자크에게 음향적으로 영감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훗날 제자에게 반농담식으로 "기관차를 내가 발명할 수 있었다면, 내가 쓴 교향곡 전부를 포기해도 좋을 텐데"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9-19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25)어린이 눈높이 음악]인물·동물 악기로 묘사 '피터와 늑대'

러 동화 바탕 프로코피예프 작품'청소년을 위한 관현악'과 쌍벽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1891~1953)는 러시아 동화를 바탕으로 직접 쓴 이야기와 어우러지는 음악 '피터와 늑대, Op 67'을 1936년에 완성했다. "어느 날 아침, 호기심 많은 소년 피터는 문을 열고 집 앞의 넓고 푸른 목장으로 나갔습니다. 피터가 처음 만난 친구는 나뭇가지 위에 앉아 지저귀는 작은 새로, 즐겁게 노래하고 있습니다…."내레이터의 해설로 시작하는 '피터와 늑대'는 회색 늑대를 사로잡은 용감한 소년 피터의 이야기를 줄거리로 한다. 프로코피예프는 간결한 문장과 음악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작곡자는 음악을 듣는 어린이들을 위해 등장인물과 동물을 성격에 맞춰 각각의 악기로 묘사했다. 주인공 피터는 현악합주의 울림으로 표현되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화사한 음색의 플루트, 늑대에 잡아먹히는 오리는 근심 어린 모습을 연상시키는 오보에, 고양이는 스타카토(음을 짧게 끊어서 연주하는 기법)로 이어지는 클라리넷, 할아버지는 바순, 늑대는 호른을 중심으로 한 당당한 금관 악기의 울림, 사냥꾼은 행진곡과 함께 나타나며, 총소리는 팀파니에 의해 표현됐다.순수 음악에 흥미를 잃기 쉬운 어린이들을 클래식으로 이끄는 마력을 지닌 '피터와 늑대'는 브리튼(1913~1976)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과 함께 가장 뛰어난 어린이를 위한 음악으로 평가받는다.영국 작곡가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 Op 34'는 1945년 영국 정부가 만든 교육영화 '관현악단의 악기'의 음악으로 작곡됐다. 바로크 시기 영국을 대표했던 작곡가 헨리 퍼셀의 곡에서 모티브로 삼은 이 작품의 부제는 '퍼셀 주제에 의한 변주와 푸가'이다. 주제부 연주에 이어 13곡의 변주곡에서 각각의 악기를 소개하며, 푸가에서 모든 악기가 차례로 등장해 다 함께 연주하며 마무리된다. 악기를 설명하는 해설을 붙여 연주할 수 있도록 했다. 두 작품이 함께 수록된 음반들이 많은데, 특히 동화를 구연하는 '피터와 늑대'의 경우 화제의 인물을 해설자로 등장시켜 음반 판매에서 성공을 노리는 경우가 많았다. 레너드 번스타인과 앙드레 프레빈 등은 지휘와 해설을 같이 했으며, 글램록의 대부 데이비드 보위와 가수 스팅, 소프라노 조수미 등이 해설자로 참여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9-05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24)브람스-차이콥스키]독일음악 3B vs 발레의 최고봉

'브' 모델로 삼고 극복 노력 '차'러시아 교향·협주곡에도 큰 획 브람스(1833~1897)는 바흐, 베토벤과 함께 독일 음악의 '3B'로 꼽힌다. 세 작곡가는 자신들이 자부했던 '위대한 독일 정신'을 담은 최고의 작품들을 선보였다.극장 관현악단의 더블베이스 주자였던 아버지에게서 기초를 배운 브람스는 일찍부터 음악적 재능을 드러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10대 초·중반부터 술집과 식당, 사교장 등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브람스는 17세 때 헝가리의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이를 알게 되었다. 3년 후 둘은 첫 연주 여행을 떠났다. 이때 브람스는 레메니이의 친구인, 헝가리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과 친교를 맺었다. 헝가리 음악과 집시음악의 감수성을 익힌 브람스는 1869년 스물한 개의 '헝가리 춤곡'을 완성했다. 1868년 어머니의 죽음 앞에 바친 대작 '독일 레퀴엠'을 잇는 걸작이 탄생한 것이다. '헝가리 춤곡'은 두 사람이 한 대의 피아노로 연주하도록 작곡됐다. 그중 브람스가 1번과 3번, 10번을 관현악으로 편곡했고, 드보르자크를 비롯해 후대 작곡가들이 나머지 곡에도 오케스트라 버전을 더했다. 에너지 넘치는 헝가리의 민속 선율이 브람스에 의해 불후의 명작으로 다시 태어났다. 브람스는 1876년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으로 불리는 '교향곡 1번'을 작곡했으며 이후 걸작들을 줄줄이 발표했다.차이콥스키(1840~1893)는 어려서부터 음악과 문학에서 재능을 보였다. 페테르부르크의 법률학교에 다녔으며, 졸업 후 법무성에 근무한 차이콥스키는 1862년 공무원 생활을 접고 음악에 전념했다. 브람스 앞에는 바흐와 베토벤을 잇는 독일 음악의 전통이 있었지만, 차이콥스키 앞에는 러시아의 광활한 대지만이 펼쳐져 있었다.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러시아 음악이 새롭게 부상하던 때, 차이콥스키는 러시아와 서유럽의 음악을 유기적으로 결합했다. 차이콥스키를 '러시아 5인조'로 대표되는 국민악파로 분류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5인조'가 외면했던 협주곡들을 통해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연주 영역을 확대했으며, 교향곡을 통해선 낭만주의의 절정을 노래했다.브람스는 변방의 차이콥스키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지만, 차이콥스키는 브람스를 자신의 모델이자 극복 대상으로 삼았다. 차이콥스키는 브람스가 작곡하지 않은 장르인 오페라와 발레 음악에 다가갔다.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3대 발레 음악인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으로 19세기 발레의 최고봉이 되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8-29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23)베르디 vs 바그너]19세기 오페라의 쌍두마차

伊 노래-獨 드라마에 초점 맞춰두 작곡가 작품세계 확연히 달라베르디(1813~1901)는 이탈리아를, 바그너(1813~1883)는 독일을 각각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이다. 19세기 오페라의 쌍두마차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은 탄생 연도와 활동 시기가 일치한다. 그러나 개인적 성격과 취향, 작품세계는 확연히 구별된다.일반적으로 이탈리아 오페라는 노래를 중시한다. 그래서 가수 중심의 오페라로 불린다. 드라마는 노래를 묶어내는 수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독자적인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는 떨어진다. 반면, 문학과 연극의 전통이 강한 독일의 오페라는 드라마의 완성도에 비중을 둔다. 노래만큼이나 기악 부분을 중시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두 작곡가의 작품에 여실히 드러난다. 바그너는 대단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으며, 혁명가였다. 그는 자신의 저서 '미래의 예술작품'(1849년)을 통해 "분리된 예술 장르를 하나의 종합 예술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혁명 예술"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이론을 기반으로 '음악극(Musikdrama)'을 창안했다. 노래가 지배하고 대본은 주로 음악을 위한 윤곽의 역할만 하는 전통적 오페라와 달리 '음악'과 '극'의 일치와 조화를 꾀한 거였다. '음악극'의 면모는 '트리스탄과 이졸데'(1859년)와 '니벨룽의 반지' 4부작(1854~1874년), '파르지팔'(1882년)에서 여실히 드러냈다.베르디는 혁명가가 아니었다. 바그너처럼 멀리 보고 전진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했다. 베르디의 작품을 관통하는 '휴머니즘'은 더욱 깊어졌으며, 극의 완성도도 높아졌다. 수년 전 한 해외 매체는 세계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공연되는 오페라의 순위를 발표했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1853년)가 1위였으며, 비제의 '카르멘'과 푸치니의 '라보엠' 등이 뒤를 이었다. '리골레토'(1851년)와 '아이다'(1871년) 등 베르디의 또 다른 작품도 10위권 안에 들었다. 멜로디의 아름다움과 호소력 짙은 이탈리아 오페라가 더 자주 공연된다는 얘기다.베르디는 생전에 이탈리아 오페라와 독일 오페라의 차이를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둘이 라이벌 관계에 있음을 밝혔다. "독일이 바흐의 아들인 것은 행운이다. 팔레스트리나(16세기 르네상스 최고의 작곡가)의 후예인 우리도 위대한 전통을 갖고 있다. 독일 음악은 교향악적이고 처음부터 구조와 화성에 주목한다. 이탈리아 음악의 핵심은 선율이다. 팔레스트리나의 후손인 우리가 바그너를 모방한다면 음악의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8-22 김영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22)원전(原典)음악]옛 음악 원형 재현 '순수성 되살리기'

바로크 등 '그 시대 악기'로 연주약동하는 템포·사운드 신선 매력"원전음악이 도대체 뭐야?""옛날 악기로 연주하는 거 있잖아. 그것도 다 유행이어서 곳 사라질 거래."2000년대 초반 한 연주회장에서 들었던 옆 청중 일행의 대화다. 옛날 악기로 연주한다는 말은 맞았고, 유행이 사라질 거라는 얘기는 틀렸다. 원전(原典)음악은 1980년대 중반 국내에 소개되었다. 2000년 이후 원전음악 연주단체의 내한 연주회가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완성도가 높은 음반도 수월하게 접할 수 있게 됐다. 국내 자생 연주단체도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유행으로까진 번지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라지지도 않았다.원전음악은 'Authentic Music'을 번역한 것으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고전주의 등 옛 음악을 그 시대의 악기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정격(正格)음악으로도 불린다. 21세기엔 연주에 관한 연구나 해석에 의미를 부여해 '음악'보다는 '연주(Performance)'로 표기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유럽에서 원전연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스톤 다트,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등에 의해 시작됐다. 이어서 존 엘리엇 가디너,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프란스 브뤼헨,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안너 빌스마 등의 노력으로 1980년대 이후 대중화에 성공했다.원전연주가들은 악기와 연주법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근대식 악기로 연주하는 옛 음악이 아닌, 옛 음악 본래의 순수성을 되살리자는 거였다.원전연주가들은 관악기는 키와 밸브가 달리지 않은 19세기 초반 이전의 악기를, 현악기는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금속제 현 대신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를 사용했다. 현대 관점으로 봤을 때 연주법은 더 어렵고 음량은 작아졌다. 또한, 이들은 작곡가가 필사한 악보나 필사본에 가장 가까운 원형을 재현해 연구했다. 이를 통해 연주 속도와 강약, 비브라토(음을 떨어주는 기법) 등도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 부드러우면서도 순수한 소리, 작위적이지 않은 템포에 많은 사람이 매료됐다.원전연주가들의 원본 악보와 음향 탐구는 음악계 전반의 악보 해석과 연주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원전연주가들은 과거의 음악을 미래지향적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선봉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듣는 원전음악은 약동하는 템포 설정에 원전악기들의 신선한 사운드가 어우러져 현대인의 감성에 잘 어울린다. 이들의 연주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파격'(학구적인 악보 연구를 통한) 또한 미래를 지향한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9-08-15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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