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톡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끝]세련되지 못한 권력: '보통사람'

그는 발가벗겨진 채 의자에 앉아 있다. 두 손은 뒤로 결박되어 있고 온몸에 상처투성이다. 그가 갇혀 있는 곳이 '남산'이라 불리는 곳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고문의 흔적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를 취조하는 검사는 대학 후배이다. 법 집행을 강조하며 그가 묻는다. 북으로부터 지령을 받은 게 언제부터냐고. 그는 조작의 가능성을 예상했음에도 막상 어이가 없다. 자조와 조롱이 섞인 탄성을 내지른다. "에이, 세련된 걸로 해주지!"김봉한 감독의 '보통사람'은 1987년 민주화 운동 직전 한국사회의 풍경을 담는다. 평범한 경찰에서 안기부의 일을 대신 처리해주며 권력의 단맛을 보는 성진(손현주)과 권력의 범죄조작을 파헤치다가 안기부의 표적이 되는 추기자(김상호)의 엇갈린 행로는 엄혹한 독재정권이 뒤틀어버린 보통사람의 운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는 손현주와 김상호의 탁월한 연기와 매력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보통사람'이 지닌 의미를 과도하게 강조함으로써 끝내야 할 지점을 놓치고 만 듯하다. 다소 지루하게 늘어지는 후반의 사설은 의미의 확장과 서사의 집중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 채 허둥댄다.영화 '보통사람'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오히려 익숙하고 촌스러운 권력의 행태이다. 규남(장혁)이 범죄조작을 위해 성진에게 준 자료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일례이다. 논리나 절차는 무시되고 폭력과 권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것은 강력할지는 몰라도 규남이 성진에게 준 서류처럼 어색하기 이를 데 없고, 그 어색함을 메우기 위해 다시 폭력이 요청된다. 비논리와 폭력의 익숙한 반복은 '간첩 조작'이라는 뻔한 결과를 낳는다. 권력의 하수인들은 뼛속까지 엘리트주의에 젖어 있으면서도 그 영민한 두뇌로 상투성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추기자의 탄식은 이와 같은 촌스러움의 순환에 대한 지적이자 조롱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란 폭력이 아니라 말의 정치이며 논리와 설득을 통한 세련화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그 촌스러움을 목격하고 있다. 그러니 질문해 볼 일이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흘러야 우리는 추기자의 탄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이대연 영화평론가

2017-03-29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비정규직이라는 맥거핀: '비정규직 특수요원'

십오년이나 취업 전선에서 헤매다가 서른다섯이 되어서야 간신히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여자가 있다. 취득한 자격증만 스물두 개이고 열정도 남다른데 국가고시에 번번이 낙방했다. 다 늦은 나이에 '국가안보국'이라는 정부기관에 취업하지만 인터넷 서핑이나 댓글을 다는 게 일이다. 성미가 불 같아 입만 열면 욕이 튀어나오는 여자도 있다. 그녀는 수사능력이 탁월한 경찰이지만 걸쭉한 육두문자가 아우라처럼 그녀를 둘러싼다. 이 두 여성이 범죄조직의 소탕을 위해 힘을 합친다. 김덕수 감독의 '비정규직 특수요원'은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정부의 무능, 보이스피싱과 같은 사회문제를 웃음의 소재로 삼아 세태를 풍자한다. 어쩌면 이 시대에 걸맞은 코미디 영화인지 모른다. 충무로에서 흔치 않은 여성 투톱 영화라는 점도 고무적이다. 그러나 사회적 이슈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내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첩보물로서의 긴장감은 떨어지고 에피소드 간의 관계도 긴밀하지 못하다. 이야기는 산만하고 로맨스는 거칠다.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특수요원'이라는 정직한 제목에서 보이는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의식은 정형화 된 인물 설정과 웃음에 대한 강박 탓에 마치 맥거핀처럼 느껴진다.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서스펜스를 이끌어내는 어떤 요소에 불과해 보인다. 코미디이든 정극이든 사회적 문제를 다루면서 시선의 깊이를 잃어버린 채 단순히 하나의 효과로만 간주할 때 영화는 아무것도 담지 못하게 된다. 그 무의미성이 반복되면 관객은 피곤하고 지친다. 비정규직이라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사회의 중요한 화두인 비정규직 문제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야기의 재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표피적으로 사용되고 소비될 때 그것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은 희석되고 풍자는 퇴색한다. '비정규직 특수요원'이 주는 웃음이 공허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이대연 영화평론가

2017-03-22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잃어버린 것을 되돌아보는 시간: '싱글라이더'

깎아지른 벼랑이다. 그 아래로 파도가 넘실거린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타스마니아'라는 섬의 해안절벽 끝에 그가 서있다. 한때 잘 나가는 증권회사 지점장이었으나 지금은 도로가 끝났음을 알리는 표지판을 넘어 이곳에 있다. 그는 상부의 지시로 고객들에게 부실채권을 판매했고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다가 뺨까지 맞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었다. 극단적 상황에서 아내와 아이가 있는 호주로 훌쩍 떠난 여행은 되돌아보지 못했던 가족과 삶에 대한 성찰로 그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호주의 낯선 해식의 끝에 서있을 뿐이다.'싱글라이더'는 과묵하다. 말없이 아내 수진(공효진)의 일상을 맴도는 재훈(이병헌)을 뒤쫓는 카메라는 시종 차분하고 담담하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무덤덤함을 채우는 것은 호주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러나 여행자는 이국의 풍광에 녹아들지 못한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다. 좌절로 인한 상심 때문도 아니다. 결국 잃고 말 것들을 얻기 위해 그가 버려야 했던 것들 때문이다. 아내와 아이의 일상 속에 그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고, 호주가 아니라 한국이라 하여도 그의 삶은 겉도는 이방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번 돈을 환전사기로 모두 빼앗긴 지나를 통해 재훈은 자신이 고객들에게서 빼앗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새벽 다섯 시에 버스를 타보면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말 다 개소리"라며 울먹이는 지나의 말은 이 잔잔한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의 진폭을 크게 만든다. 광고 감독 출신인 이주영 감독의 영상은 수려하고 질감이 부드럽다.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도 돋보인다. 그러나 후반의 반전은 서사적인 측면에서나 영화적 효과라는 측면에서나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듯하다. 반전에 대한 강박 때문에 중간 중간 흐름이 튀는 것도 흠이다. 감정의 결을 쌓아올리는 것만으로도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급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일상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 번 쯤 삶을 관조하는 시간을 갖게 만드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이대연 영화평론가

2017-03-16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불안에 대한 보고서: '해빙'

그곳은 한 때 연쇄살인 사건의 아이콘이었다. 개발의 열풍으로 골프장과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드넓은 논과 밭 어딘가에는 미제로 남은 사건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곳으로 한 사내가 흘러든다. 그는 강남에 개업을 했다 실패한 후 이곳에 페이 닥터로 취직했다. 버스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졸고 있는 그의 꿈은 깊은 무의식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무의식의 심연에서 공포와 불안이 위태롭게 찰랑인다. 이수연 감독의 '해빙'은 불안에 대한 영화다. 동시에 과거의 어두운 기억과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공존하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교차점에 승훈(조진웅)이 존재한다. 실패한 개업의인 그는 강남이라는, 들끓는 욕망의 용광로에 흡수되지 못하고 탈락한 폐기물 같은 존재이다. 욕망이 좌절된 그의 허약한 내면을 잠식해 들어오는 것은 불안과 공포이다. 수면내시경 중에 정노인의 잠꼬대 같은 고백을 듣는 순간, 정육식당 주방에서 바닥에 구르는 머리를 보는 순간 불안은 고개를 쳐들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이 도시로 들어오며 차창에 기대 꾼 꿈속에서부터 불안은 이미 그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도시는 끝내 해결되지 못한 연쇄살인사건의 얼룩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해지고 컴컴해지면 마을에선 누가 없어져도 아무도 몰랐던" 시절의 전근대적 야만의 기억과 신축 아파트로 상징되는 근대적 자본의 욕망이 교차할 때 발생하는 스파크 같은 것인지 모른다. '해빙'의 사운드는 과잉되고 편집은 불연속적이다. 꿈과 현실이 혼재하고 불안은 해소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승훈이라는 인물의 내면적 불안에 초점을 맞춘 이 불균질은 교묘하게 엮이며 관객을 승훈이 겪는 불안 속으로 끌어들인다. 해소가 지연되면서 지속된 불안과 긴장에 다소 지치기도 하지만, 후반의 반전을 보고난 뒤에야 이전 장면에 대한 반추와 복기를 통해 맞춰진 퍼즐은 승훈이라는 문제적 개인의 내면을 벗어나 일상에 깃든 이기심과 욕망, 불신을 폭로한다. "겨울은 아주 춥고 얼음은 아주 두꺼웠다"는 정노인의 말처럼 우리는 엄혹한 현실의 발판 위에서 음습한 내면을 깊숙이 감춘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이대연 영화평론가

2017-03-08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다시 들여다보기가 필요한 이유: '재심'

익산의 한 도로에서 택시기사가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2000년 8월의 일이다. 일명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의 목격자였던 한 소년은 피의자가 되어 10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강압에 의한 자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SBS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는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 이 사건을 방영했다. 무려 십 년도 더 지난 후였다. 그리고 지금 동일 사건을 극화한 영화 '재심'이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다. 재판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한다면, 재심은 '다시' 면밀히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들여다본다는 것은 질문하기이다. 재판에서의 질문은 법조항을 기준으로 한다. 죄가 있는가, 없는가? 죄가 있다면, 혹은 없다면 왜 그러하고 양형은 어떤 법조문을 근거로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다시 들여다보기에서 방점은 '다시'에 찍힌다. 기왕의 들여다봄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마땅히 반영되어야 할 어떤 진실이 배제되었거나, 은폐되어 드러나지 않았을 경우 그럴 것이다. 경찰의 구타와 강압을 못 이겨 한 자백이 소년을 범죄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2016년 1월 재심에서 장성한 소년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지나간 사건을 다시 들여다봤을 때는 분명 법정 안에서의 진실에 대한 질문이었다. '재심'은 영화의 다시 들여다보기가 어떤 진실을 향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영화는 법정 스릴러의 치밀하고 치열한 공방전이나 통쾌한 승리를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는 피해자들의 고통과 슬픔을 잡아내면서 질문을 법정 밖으로 끌고 나온다. 그 끔찍한 기억과 표정 속에서 타락한 권력에 대해 묻게 만든다. 2000년과 2017년은 이 지점에서 만난다. 그리고 이 질문을 통해 '다시'라는 말이 아직, 혹은 여전히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김태윤 감독의 전작은 삼성 백혈병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또 하나의 약속'이었다. 자본은 여전히 탐욕스럽고, 권력은 여전히 타락했다. 그것이 법정뿐만 아니라 언론과 영화의 다시 들여다보기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이대연 영화평론가

2017-03-01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수다와 침묵이 만나는 순간: '문영'

골목 안이 소란스럽다. 술 취한 여자가 울며불며 소리친다. 남자의 당혹과 짜증이 그녀를 밀쳐낼수록 여자의 악다구니는 더욱 거세진다. 누군가 그 모습을 캠코더에 담는다. 아직 앳된 소녀다. 말 없이 캠코더에 세상을 담는다. 과묵해서가 아니다. 주정뱅이 아버지를 피해 잠근 방문처럼 그녀의 입술에 걸린 빗장이 말들을 가두었다. 세상은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캠코더에 의해서 소녀의 마음속에 고인다. 골목의 소란스러움이 소녀의 캠코더에 담긴다. 여자의 고함과 악다구니가 소녀의 고요함을 만난다. 마치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듯이. 김소연 감독의 '문영'은 짧고 담백하다. 말을 못한다는 장애와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세상에 대한 경계와 분노를 가슴에 품은 소녀 문영과 밝고 솔직하지만 나름의 상처와 혼란을 지닌 희수의 이야기는 기승전결의 명확한 구조보다는 그들이 마음을 나누는 순간의 포착이 아름답고 따뜻한 영화다. 영화는 퀴어적인 결말로 흘러가지만 그것이 영화 전체의 정서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단순히 성장담이나 퀴어라는 말로 이 영화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것은 문영이 세상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그녀는 언어가 아니라 캠코더에 세상을 담아낸다. 화면은 자주 흔들리고 어지럽다. 그러나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그녀의 대사일 것이다. 혼란과 상처에 지쳐 옹송크린 마음이 관객들을 향해 내뱉는 말일지 모른다. 캠코더의 거친 영상이 다소 평면적인 이 영화에 질감을 부여하는 이유일 것이다. 문영 역의 김태리가 보여주는 맑고도 서늘한 눈빛은 그녀가 단순히 운 좋은 신데렐라가 아님을 말해준다. '아가씨'의 숙희 이전에 맡은 첫 주연작이기에 그녀의 연기가 보여주는 잔잔한 긴장감과 폭발력은 배우 김태리에 대한 신뢰감을 더욱 높인다. 어떤 사람은 김태리라는 배우에게서 '아가씨'의 관능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다면 아마도 그녀의 앙다문 입술과 신경질적으로 수화를 내뱉는 섬세한 손을 먼저 떠올리게 될지 모른다. 정현 역시 수다스럽고 마냥 밝은 듯하지만 속에 상처를 안고 있는 희수를 능청스럽게 소화해낸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이대연 영화평론가

2017-02-15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어설프지만 새로운 공조:'공조'

흥정이 순조롭지 않다. 초조한 듯 의자 팔걸이에 손가락을 튕기다가 콜라를 들이킨다. 그는 언제나 이맛이 그리웠다. 자본주의 콜라의 맛. 공화국을 위해 충성했지만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고, 공화국이라는 정치체제와 권력구조의 부조리를 인식하지만 개선의 여지 같은 것은 없어 보인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배신뿐이었는지 모른다. '마이 리틀 히어로'를 통해 다문화 시대의 인간적 교감을 담아냈던 김성훈 감독의 '공조'는 훈훈하다. 남한과 북한의 형사들이 범인을 잡기 위해 협력한다는 설정은 한반도의 특수한 정치적 환경이라는 태생적 난점을 형사 버디 장르로 흡수한다. 그간 분단 소재의 영화들은 정치·군사적 적대성과 민족적 당위성 사이의 긴장감으로 인해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지나치게 무겁거나 지나치게 가벼웠다. 그 속에서 웃음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남남북녀'(2003)처럼 가벼운 로멘틱 코미디에 기대거나 '웰컴 투 동막골'(2005)처럼 판타지로 치환하는 것이 최선처럼 보였다. 그런 면에서 서로 적대적이던 두 인물이 수사 과정을 통해 서로 교감하고 인간적 신뢰를 회복하는 형사 버디 장르의 차용은 신선하다. 물론 어설픈 인물설정과 허술한 구성이 오래간만의 신선함을 반감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 형사 임철령(현빈)은 밋밋하고, 남한 형사 강진태는 유해진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별 특징이 없는 인물이다. 무리한 상황전개나 억지스러운 결말도 흠이다. 그런 가운데 차기성(김주혁)이라는 캐릭터는 독특하다. 생존을 위해 버둥거리거나 공화국에 충성하는 소극적 캐릭터가 아니라 배신과 국제범죄를 통해 과감히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북한 사람의 캐릭터로 일찍이 본 적이 없다. '태풍'(2005)의 씬(장동건)이 유사하지만 그는 욕망보다는 원한과 복수심에 가득 찬 인물이었다. 빠르기보다는 묵직하고 화려하기보다는 명료한 액션 또한 영화적 재미를 더한다. '공조'에는 처절한 탈출이나 결의에 찬 충성, 비장한 복수나 날카로운 비판 같은 것은 없다. 임철령의 복수는 장르적 클리셰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소 엉성해 보이는 이 영화가 어쩌면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일반적 인식을 더 정확히 대변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이대연 영화평론가

2017-02-08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왕을 위한 학습서 : '더 킹'

현란한 조명이 그를 비추고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주목한다. 향락이 그를 위해 준비됐고 위엄이 그의 곁에 머문다. 그가 신참을 위해 역사 강의를 한다. 우리 역사에서 권력을 놓치고 잘 된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친일파는 재벌과 장차관을 하는 반면, 독립군은 쥐꼬리만한 연금으로 연명한다고. 그러니 촌스럽게 자존심이니 정의니 하는 거 버리자고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틀린 말 하나 없다. 신참이 감동한다. 역사 앞에서 인상쓰지 말자. 역사 앞에서 환하게 웃자.'연애의 목적'과 '우아한 세계', '관상'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의 '더 킹'은 역사를 이야기한다. 군사독재 이후 소위 87년 체제라 불리는 민주화 30년간의 현대사를 정치검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놓는다. 권력에 줄을 대고 그 옆에 서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인물들에게 '민주'란 한낱 구호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패스할 만큼 영민한 그들이 공부한 역사 교과서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오독을 나무라기에는 우리의 역사적 현실이 남루하기 그지없다. 영화 속 한강식 검사는 권력의 옆에서 그들을 대신해 칼을 휘두르며 보잘 것 없는 권력의 부스러기들을 만끽한다. 그리고 범죄조직 들개파의 두목 김흥식은 한강식 옆에서 그를 대신해 주먹을 휘두르며 밤의 권력을 누린다. 그리고 또 그의 발밑에서 배를 채우는 들개들. 권력의 하청 구조이며, 정치검사에 대한 조롱이다. '더 킹'은 이 견고한 고리를 끊는 길은, 남루한 역사를 리셋하는 길은 '왕'을 바꾸는 도리밖에는 없다고 말한다. 왕이란 대통령이나 힘 있는 정치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권재민이라는 원칙에 입각한다. 그래서 영화는 관객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봐야 된다. 언제 속임수를 쓰는지, 언제 딴짓을 하는지. 한시도 긴장을 풀면 안된다. 그러지 않으면 백발백중 당한다."30년이라는 긴 시간을 압축하다 보니 내레이션과 파노라마의 비중이 높아져 영화적 재미가 감소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현명한 왕이 되기 위해서는 한번쯤 봐야 할 교과서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이대연 영화평론가

2017-02-01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진실을 향한 질문: '두 개의 문'

거대한 포클레인이 건물의 한쪽 벽을 부순다. 시멘트가 모래처럼 부스러지고 두꺼운 철근이 힘없이 휘어진다. 마치 완강한 공권력에 의해 진압당한 철거민들 같다. 머잖아 건물은 사라질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밝혀지지 않은 채로.2009년 1월 19일 용산 재개발 지역 남일당 건물에서 망루를 짓고 권리금 등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던 철거민 시위대를 경찰특공대가 진압했다. 소위 용산참사로 불리는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건'이다. 사법부의 재판은 의혹으로 가득하고 청와대는 '홍보지침'을 통해 국민들의 관심을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으로 돌리려 했다. 그리고 영화는 이 사건에 대해 질문을 제기해 왔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소수의견'(2013)은 법정신에 대해, '공동정범'(2016)은 망루에서 살아돌아온 이들의 만남을 통해 국가폭력의 실체에 다가선다. 그리고 김일란 감독과 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2011)은 경찰진술과 증거 동영상을 바탕으로 용산참사의 재판 과정을 재구성한다. '두 개의 문'은 20일 당일 있었던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 한다. 그러나 단지 사건을 재구성하려는 목적은 아니다. 철거민들의 시위가 폭력적이었는지, 화재는 왜 일어났는지, 경찰은 누가 죽였는지, 하는 것들은 사건의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국가의 태도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하나의 질문을 향해 다가선다. 설사 철거민들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국가의 태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김일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검투를 하던 노예가 죽었다면 그를 죽인 자는 상대 검투사인가 콜로세움을 지은 로마인인가?', '두 개의 문'은 흔히 말하는 실체적 진실을 밝힌다기보다는 올바른 질문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진실은 사건의 재구성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이대연 영화평론가

2017-01-18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누적된 상처의 파열음: '여교사'

운동장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전교생이 창가로 몰려들어 구경하지만 그런 걸 걱정할 여유가 없다. 그녀를 굽어보는 상대는 예쁘고 발랄한 동료교사다. 대학 후배이기도 한 그녀는 너그럽고 선량한 데다가 학교 이사장 아버지를 둔 정교사다. 세상물정 모르는 듯한 천진난만함은 단점이 되지 않는다. 단지 그녀가 젊고 어리다는 사실을 말해줄 뿐이다. 멋진 약혼자가 있고 덤으로 귀여운 애인까지, 무엇 하나 계약직 교사인 자신과 비교할만한 것이 없다. 애초부터 결론은 이렇게 정해져 있었는지 모른다. 금수저와 흑수저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장편 데뷔작 '거인'을 통해 십대 청소년층에까지 파고든 한국사회의 경제적 모순을 포착했던 김태용 감독이 '여교사'에서는 학교를 배경으로 계급과 욕망의 관계에 대한 미묘한 역학에 대해 탐색한다. 남성 중심 롤리타콤플렉스에 대한 통념적 성 역할의 전환, 정규직 교사와 계약직 교사들의 차별에 대한 묘사, 그리고 효주(김하늘)라는 캐릭터가 갖는 심리적 위태로움이 전반부의 서스펜스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다음 차례인 효주를 밀치고 정교사로 발령받아온 이사장의 딸 혜영(유인영)에 대한 질투와 분노는 무용특기생 재하까지 얽히며 감정까지도 소유하고 지배하는 금수저를 향한 복수로 치닫는다. 우연히 목격한 혜영과 재하의 부적절한 관계를 승리의 카드라 믿지만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은 더욱 처절하다. '여교사'는 효주와 혜영의 관계를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하기보다는 상처가 누적된 피부가 작은 상처에도 터지고 마는 파열의 과정을 섬세하게 따라가려 한다. 그러나 후반부 혜영에 대한 효주의 복수는 다소 급작스럽고 신경질적으로 보인다. 줄곧 응시해왔던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폭넓은 의식을 체제에 대한 저항과 탈주로 밀어붙이지 못하고 개인의 문제로 치환시킴으로써 단순한 치정극의 협소한 틀로 회귀하는 듯해 아쉽다. 그러나 "시시한 강자와 시시한 약자의 싸움"이라는 '송곳'의 한구절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럴듯한 전복의 제스처가 아니라 개인을 향한 시시한 복수일지 모른다는 씁쓸한 여운이 엔딩 크레디트보다 길게 남는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이대연 영화평론가

2017-01-11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얼음처럼 차가운 미로 : '졸업반'

사각의 캔버스 안에 커다란 동그라미가 있다. 동그라미는 미로다. 위쪽과 아래쪽에 각기 동그라미 안으로 통하는 구멍이 있다. 그 사이를 열리고 닫힌 길들이 어지럽게 가득하다. 그녀는 닫힌 길들을 찾아 연필로 검게 칠한다. 검은 길들이 늘어나더니 종국에는 하나의 길만 남는다. 그녀가 출구를 찾는 방법이며, 목표를 향해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제작과 각본을, '발광하는 현대사'의 홍덕표 감독이 연출을 맡은 성인용 애니메이션 '졸업반'은 사각의 틀에 갇힌 동그란 미로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이라는 캔버스 안에서 목표를 위해, 혹은 사랑을 위해 각자 자신만의 미로 속에서 헉헉대는 청춘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동그라미와 삼각형으로 표상되는 마음 맞추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위선으로 가득한 세상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무엇이 됐든 간에 이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무척 힘겹다. 작품이 저급해서가 아니다. 각본은 탄력 있고 균형이 잡혀 있다. 연출의 시선은 깊고 작화는 매끄럽다. 다만 '졸업반'이 우리 내면의 어떤 취약한 지점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고급 술집에 나가는 여대생이라는, 불편하지만 새롭지 않은 소재가 그녀를 짝사랑하는 만화적 상상력과 만나는 순간 파열이 시작된다. 질투는 단지 화장을 지우는 비누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순수함이 지워지자 욕망이 드러나고, 선량함이 걷히자 위선이 나타난다. 의지는 부도덕하고 배려는 거래에 불과하다. 사랑은 은폐된 욕망이고 믿음은 배신의 다른 이름이다. 그게 우리의 민낯이다. 모두가 각자의 막힌 길들을 지워나갈 뿐이다. '졸업반'은 그렇게 선과 악, 도덕과 부도덕이라는 이분법의 선 바깥으로 공을 던져 버린다. 그리스 신화의 다이달로스는 괴수 미노타우루스를 가두기 위해 미로를 만들지만 자신이 갇히고, 이카루스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함께 미로를 탈출하지만 태양에 너무 가까이 올라간 탓에 밀랍이 녹아 추락하고 만다. 아리아드네는 괴수를 물리치러 가는 테세우스를 위해 실타래를 준비해 주지만 배신당한다. '졸업반'은 연상호 감독의 절망적 세계관과 성을 매개로 관계의 맥락을 탐색해온 홍덕표 감독의 풍자가 만들어낸 미로가 얼음처럼 차갑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ver.com)이대연 영화평론가

2017-01-04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영화적 클리셰와 현실의 클리셰: '마스터'

체육관 좌석이 빼곡하다. 그들은 회원이다. 곧 저축은행을 인수할 네트워크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들이며, 고수익을 꿈꾸는 소시민들이다. 그들 한가운데서 사내가 연설한다. 그는 세련되지만 진솔하다. 사람들은 그가 흘리는 눈물에 감동하고, 그가 보이는 자신감에 환호한다. 약속받은 미래가 이미 도래한 듯하다. 누구도 그가 잠적하리라 예상하지 못한다. 함성과 함께 마비된 이성이 출렁인다.'천공의 눈'(Eye In The Sky, 2007)을 리메이크한 '감시자들'로 주목을 받은 조의석 감독이 이병헌과 강동원이라는 화려한 캐스팅을 앞세워 복귀했다. 희대의 사기꾼 진회장, 그리고 그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김재명과 박장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액션은 화려하고 두뇌싸움은 치밀하다. 그러나 진회장의 캐릭터는 과시적이고, 김재명은 평면적이다. 세 인물을 배려한 군더더기 덕에 러닝타임이 늘어지는 것도 흠이다. 게다가 현실이 픽션을 넘어선 시대에 진회장의 범죄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이놈들 선을 넘었어. 나라고 못 할 거 같아?"라는 김재명의 외침이 픽션을 앞서가는 현실을 뒤쫓는 영화의 자조적 탄식처럼 들리는 것은 뉴스가 드라마보다 재미있는 시대의 비극일 것이다. 진회장이 운하를 미끼로 6조를 들먹이고 2조를 은닉할 때 우리는 이미 써버린 22조와 독일 어딘가에 잇다는 10조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의 말미 체포 직전 진회장은 "어디다 전화를 해야 하는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통화를 시도한다. 이미 그는 많은 사람들과 통화를 해왔다. 그의 수하는 물론이고 변호사와 법조계 인사, 고위 관료들이 그의 통화 대상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진회장 사기의 중심에는 돈이 아니라 전화기가 있었다. '원 네트워크'라는 기업명은 어쩌면 한 사람을 위해 움직이는 인적 네트워크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장르적 클리셰를 현실의 클리셰가 대체해 버린 시대에 '마스터'는 너무 늦게 온 듯하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이대연 영화평론가

2016-12-28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사라진 여성들의 연대: '미씽: 사라진 여자'

그녀는 중국에서 왔다. 한국말도 서투르지만 사정이 급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벅찼다. 이웃 보모 아주머니의 조카라고 하니 믿어도 좋을 거라 여겼다. 그녀를 소개받은 날, 엄마의 품에서도 울며 보채던 아이는 그녀의 노랫가락에 금세 잠이 들었다. 그녀 역시 아이를 소중히 여겼기에 점차 신뢰가 갔다. 그런데 그녀가 사라졌다. 아이와 함께. 아이를 찾기 위한 필사적 노력은 타인의 상처를 더듬으며 여성으로서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여정으로 이어진다.'미씽: 사라진 여자'는 모성에 대한 이야기다. 탐정·추리물의 장르적 외피를 입은 영화는 어린 다은의 실종으로부터 시작한다. 아이를 찾기 위해서는 보모 한매를 찾아야 한다. 이렇게 영화는 다은의 실종을 징검다리 삼아 한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러나 그녀를 추적하며 지선이 확인하는 것은 아이의 행방이 아니라 한매가 겪은 비극적 삶의 흔적들이다. 그것은 결혼이주민 여성과 워킹맘이라는 개인과 상황의 특수성을 넘어 모든 여성에게 동일한 매커니즘으로 적용되는 차별이며 폭력이다. 애초에 충돌하는 듯이 보였던 한매와 지선의 모성은 공감이라는 과정을 거쳐 연대로 이어진다. 결국 '사라진 여자'라는 부제는 한매 한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은폐되고 왜곡된 채 세상의 뒤편으로 사라져야만 했던 여성의 삶 자체였던 것이다.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여성 투 톱을 전면에 내세워 여성의 삶을 복권시키고자 한 시도에 찬사를 보낸다. 그런데 이들에게 시어머니란 여전히 적대적 존재인 듯하다. 시어머니는 모성과 여성의 또 다른 이름이라기보다는 단지 남편의 어머니일 뿐이며, 끔직하고 집요하며 폭력적인 중성적 존재로 그려진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입장까지도 뛰어넘는 그녀들의 연대에 시어머니들은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것일까? 아마도 현실의 흔한 사례들에 대한 전형적 묘사겠지만, 그들까지도 끌어안는 깊이 있는 기획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이대연 영화평론가

2016-12-14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세월호와 좀비

좀비는 흔히 뱀파이어와 비교되지만 사실 그 원형은 아이티의 토속 종교인 부두교에 있다. 그들은 악의적인 주술로 가사상태에서 깨어나 불투명한 의식을 지닌 채 혹독하게 착취당하는 농장노예에 불과하다. 영화에 처음으로 좀비가 등장하는 것은 할페린 감독의 <화이트 좀비>(1932)지만 대중적인 장르로 재탄생한 것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을 통해서였다. 장르서사라는 것이 대개 당대 사회를 투영하게 되는데 좀비영화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공포의 대상을 포착해 보여준다. 예를 들자면 '화이트 좀비'에서는 흑인 해방에 대한 백인들의 공포를,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는 핵무기와 냉전에 대한 두려움을 함축하고 잇다. 그런데 좀비에게는 보다 근원적인 두려움의 속성이 있다. 그것은 시체이면서 움직이고 돌아다닌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시체'인 것이다. 무덤에 있어야 할 죽음의 얼굴을 목격하는 순간 과거 지인과 친지들의 죽음과 미래 나의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일상은 낯선 두려움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이러한 좀비의 근원적 공포는 2000년대 이후 재난서사와 만나며 새롭게 재탄생한다. 이를테면 최근 '부산행'에서 보여준 것처럼 좀비는 살아있는 사람을 공격하고 감염시키는 위험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탐욕스러운 권력과 금권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결국 좀비란 사회적 모순에 대한 분노와 불안의 표출인 것이다. 불경스럽게도, 엄청난 숫자와 느릿느릿 걷는 외관의 유사함 때문에, 광화문에 운집한 군중들에게서 좀비를 떠올렸을 때, 그것은 촛불시민을 비아냥거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위에 오버랩 된 죽음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당연하게도 어떤 죽음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 죽음은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정권과 기업이 만들어낸 재난서사에 의해 희생된 세월호의 죽음이었다. 거리를 흘러가는 190만 개의 촛불이 190만 개의 세월호처럼 보였다. 그 위로 거대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촛불시민을 내려다본다. 진도 앞바다 명량에서 대군에 맞서 승리하고도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간 배 한 척을 구하지 못한 장군의 뜨거운 눈물이 촛농이 되어 떨어지는 듯했다. 이 기회에 세월호의 비극에 대한 재조사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이대연 영화평론가

2016-12-07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영화의 독립과 자립: 서울독립영화제 2016

얼굴을 알만한 감독도 배우도 없다. 감독과 배우는 낯설지만 형식의 다양성을 꾀하고 사회적인 감수성을 놓치지 않은 작품들로 충만하다. 올해로 42회를 맞는 '서울독립영화제' 얘기다. 1일 열리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9일간의 여정에 돌입하는 '서울독립영화제 2016'은 1천여 편의 응모작 중 30여 편의 작품을 선정하여 상영한다. 상영관도 늘어났다. 기존 상영관인 CGV아트하우스 압구정 3개관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가 더해져 행사 공간도 총 5개관 규모로 확대됐다. 서울독립영화제는 독립 영화계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영화들을 아우르고 재조명하는 경쟁 독립 영화제로 1975년 한국 청소년 영화제로 출발해 한 해 동안 만들어진 독립 영화와 독립 영화계 전체를 결산하는 행사가 되었다. 흔히 '인디영화'라고도 하는 독립영화는 이윤 확보를 목표로 하는 상업영화와는 달리 창작자의 의도가 우선시되는 영화이다. 따라서 주제나 형식, 제작방식 등에서 차별화된다. 결국 '독립'이란 자본과 배급망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독립영화 제작사와 배급사는 오히려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할수록 손해를 보는 처지이다. 문광부나 영진위 지원의 현행 지원시스템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전엔 외부의 압력으로부터의 독립과 거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독립보다는 자립을 모색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우리사회에서는 영화뿐 아니라 각종 예술 장르에서도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는 것이 늘 중요하게 여겨진다. 정부정책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더욱 심하다. 독립영화가 새로운 가치를 고민하고 참신한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독립영화제 2016이 이러한 고민의 한가운데서 새로운 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이대연 영화평론가

2016-11-30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대종상과 권력의 수직계열화

누군가는 신랑신부도 하객도 없이 날짜만 잡은 결혼식이라고 비아냥거리고, 누군가는 '대충상'이라고 조롱한다. 대종상을 두고 하는 말들이다. 매년 11월에 개최하던 대종상이 올해는 11월이 끝나가도록 감감무소식이더니 난데없이 다음달 27일 세종대학교에서 시상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수상자도 참석자도 미정이다. 개최 여부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김구회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장이 세종대학교 측에 '대관을 취소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는 소식도 들린다. 대종상은 '예년과 다름 없이' 내부갈등 중이다.주최측의 미숙한 진행으로 상당수 수상자들이 불참했던 지난해 대종상에서는 '국제시장'이 작품상을 비롯해 10관왕을 차지했다. 2014년에는 '명량'이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작품상 수상작인 '광해: 왕이 된 남자'는 15개 부분을 싹쓸이하여 대기업의 독과점과 횡포에 대한 비난이 일었다. 요컨대 대종상 역사의 중심에는 어떤 식으로든 CJ엔터테인먼트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얼마 전 이미경 부회장의 사퇴가 정치권력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영화 '광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권력에 밉보였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후 제작된 '명량'이나 '국제시장'은 이른바 애국영화이다. 한 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횡을 휘두르고, 두 편은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썼다는 추측이 가능하다.지난해에는 '국제시장', '암살', '베테랑' 세 편의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재벌3세의 횡포에 맞선 경찰을 그린 '베테랑'은 공교롭게도 대종상에서는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수상하지 못했다. 독립군의 활약과 친일파에 대한 응징을 그린 '암살'은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여우주연상 하나만을 수상했을 뿐이다. 두 편 모두 '국제시장'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보기 힘든 작품들이다. 상식을 벗어나는 결과들은 대종상이 권력의 수직계열화에 편입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정치권력에 순종하고 한편으로는 금권을 휘두르는 것이 기업의 속성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대종상 50년의 전통과 권위가 이권과 금권, 정치권력의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이대연 영화평론가

2016-11-23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지속적이고 평화적인 저항

백만의 시민이 광화문에 모였다. 그 자체로 상처 입은 역사적 자의식의 치유였고, 한없이 낮아진 정치적 자존감의 회복이었다. 4·19 혁명과 6월 항쟁에 이은 또 하나의 시민 저항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전과는 다르다. 폭력 사태도 유혈 충돌도 없다. 백만 개의 촛불과 백만 개의 개성과 백만 개의 욕망이 모여 보여준 질서의식은 놀랍고 기이하고 강박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마음 속에는 조심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피어난다. 이것으로 충분한가? 단지 모였다 흩어지는 것만으로도 가능한가?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으로 유명한 롤랑조페 감독의 '미션'은 서구중심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윤리에 대한 여러 질문들을 던진다. 노예상이었지만 회심해 수도사가 된 로드리고와 예수회 신부인 가브리엘을 한데 묶어준 것은 과라니족이라는 남아메리카 오지의 작은 부족이다. 그곳은 선교지이자 지상의 낙원이었으며, 기독교 신앙을 실천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서구 열강의 침략 앞에서 그들은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린다. 로드리고는 자신의 전투 기술을 이용해 무력으로 저항하고, 가브리엘은 평화적 시위에 나선다. 그들은 모두 죽는다. 죽음 앞에서 로드리고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십자가를 선두로 성가를 부르며 행진하는 가브리엘의 평화적 행렬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총탄과 포탄의 세례였다.백만 시민의 결집 이후로 미국의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의 TED 강연이 화제다. 최근 백여년 간의 시민 저항을 연구한 그녀는 폭력적 저항 이후 발생한 쿠데타 등 비민주적·폭력적 보수 회귀 현상을 지적한다. 그리고 국민의 3.5%가 지속적이고 평화적으로 저항했을 때 정권 이양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가브리엘의 선택에 한 표를 던지는 듯하다. 로드리고와 가브리엘의 방식 중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속적이고 평화적인 저항이라는 그녀의 주장에 찍힌 또 하나의 방점인 '지속성'에 주목하게 된다. '레 미제라블'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혁명은 일회적이지 않다. 그리고 시민의 의지가 관철되지 않는 한 백만 시민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이대연 영화평론가

2016-11-16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부끄러움이라는 화두

화려한 공연도 없고 방송 생중계가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떠들썩한 축하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언론사들의 카메라 플래시만이 바쁘게 터지며 시야를 어지럽힌다. (사)한국영화평론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영평상의 분위기는 시종 차분하고,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평론가들의 심사평과 수상자들의 소감이 단조롭게 이어진다. 지난 8일 개최된 영평상 시상식도 여느때와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계에서 주목하는 이유는 이권이나 흥행과 무관하게 오로지 작품성으로만 평가하는 평론가들의 공정성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는 대종상이 여러 시비에 휘말려 개최 자체가 불투명해지면서 영평상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공교롭게도 올해의 수상작들은 현대인의 부조리한 내면의 풍경에 집중하기보다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무게를 둔 작품이 많았다. '동주'와 '밀정'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강압적이고 황폐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고뇌를 그린 작품이고 '비밀은 없다'는 부도덕한 정치인의 가정이 붕괴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런가 하면 '부산행'은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은유적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내부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권력집단의 은밀한 커넥션을 고발한다. 예술이 시대의 거울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현상은 지금의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일반 민중들의 시선을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은 감성과 주관으로 이루어지지만은 않는다. 당대를 바라보는 예민하고 냉정한 시선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대중예술로서의 영화는 더욱 그렇다.이준익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는 '동주'의 대사를 인용하였고, 한 평론가는 '부산행'의 심사평을 전하며 "한 사람 때문에 전국민이 좀비가 되게 생겼다"고 했다. 이 말들은 단지 한두 사건에 대한 촌평은 아닐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 좀비가 득세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예술가와 평론가의 시선을 대변하는 말인 것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염치이고 수오지심이다. 부산행 열차라는 공포 가득한 각자도생의 사지에서 부끄러움이라는 가치는 우리가 곱씹어야 할 화두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이대연 영화평론가

2016-11-09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미숙한 왕의 진실: '왕의 남자'

조선시대 난군(亂君) 연산의 삶은 여러 차례 영화로 리메이크됐다. 숱한 기행과 극적인 삶의 궤적이 영화 제작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관객의 호기심을 건드렸을 것이다. 그중 신상옥 감독의 1962년작 '연산군'과 임권택 감독의 1987년작 '연산일기'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천만 관객이라는 흥행 기록을 세운 이준익 감독의 2005년 작 '왕의 남자'가 있다. '왕의 남자'가 앞의 영화들과 다른 점은 광대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의 시선으로 연산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들은 왕을 풍자하다가 환관 처선의 눈에 띄어 궁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장생과 공길은 왕을 본다. 공길과 장생이 본 연산은 조금씩 다르다. 장생이 본 왕은 광기에 휩싸여 사사로운 복수에 권력을 이용하는 폭군이고, 공길이 본 왕은 내면의 결핍과 상실감으로 위로받기를 원하는 나약한 인간이다. 그들의 시선은 분열되어 있다. 그 사실을 잘 파악하고 이용하는 사람이 장녹수이다. 치마 속을 파고드는 연산을 '우리 애기'라고 부르며 "젖 줄까, 술 줄까"를 질문할 때 젖과 술은 각기 공길과 장생의 시선을 대변하면서 이 둘이 결국 하나임을 말해준다. 젖이 술이 되고 술이 젖이 될 때 왕은 혼군(昏君)이 된다. 우연히 궁에 들어간 민초의 시선으로 권력을 바라보는 이야기 구조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와 동일하다. 삶의 결이 다른 두 인물 연산과 광해는 공교롭게도 모두 폐위되었다. 그러나 영화는 각기 다른 지점에서 끝을 맺는다. 연산은 폐위되지만 광해는 위기를 벗어나고 폐위는 지연된다. 차이는 진실에 있다. 어떤 진실은 시선에 결박당하고 어떤 진실은 거짓마저도 진실을 드러내는 거울로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의 말미에 연산은 반정으로 폐위된다. 그는 군약신강(君弱臣强)의 나라 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왕이었다. 그러나 젖과 술이라는 그의 진실은 민중의 시선을 감당하기에는 어리고 미숙했다. 왕이라는 자리에 어린아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은 아마 현재에도 유효할 것이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이대연 영화평론가

2016-11-02 경인일보

[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단단한 것들의 싸움: '자백'

어떤 이는 잊고 싶어 한다. 너무 끔찍하고 가슴이 아파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망각에 대한 의지는 그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그가 말한다. "한국은 나쁜 나라입니다." 어떤 이는 기억을 부인한다. 자신이 지시한 일이 없고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기억은 부정되어야 한다.망각은 그의 권력에 붙은 7꼬리표 같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의 기억은 작은 묘비가 전부이다. 묘비에 적힌 생년월일과 이름은 그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묘비는 그의 기억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는 죽었다. 기억은 침묵으로 남는다. 카메라가 그들의 침묵과 망각을 응시한다. 최승호의 '자백'은 단단하다.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으로부터 출발하는 사십여 개월간의 기록은 숱한 부정과 부인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검사와 국정원 직원, 비서실장과 국정원장에 이르기까지 질문은 대상을 가리지 않지만 돌아오는 것은 얼굴을 가린 서류봉투와 우산, 카메라를 가리는 손과 침묵, 거친 말들과 고장난 기계처럼 반복재생되는 말들 뿐이다. 힘으로 타인의 기억을 조작하고 왜곡하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기억마저도 조작한 듯하다. 그러나 감독은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질문은 돌과 같다. 단순하고 세련되지도 못하지만 단단하다. 그 단단함이 카메라를 지탱하는 힘일 것이다. 단단한 것이 감독의 질문만은 아니다. 영화는 법원의 전경을 자주 비춘다. 진실을 규명하는 법정이 주요 배경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유가려 씨의 심문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오빠 유우성이 간첩임을 진술한다. 목소리는 떨리고 긴장되어 있다. 그녀의 기억은 오랜 기간에 걸친 협박과 회유로 조작된 것이다. 증인뿐 아니라 증거로 제출된 사진과 문서들 역시 위조된 것이다. 재판은 온갖 거짓 기록들의 향연이 된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간첩조작사건의 희생양이 되었다. 거대하고 단단한 법원에서. 법원의 전경이 비춰질 때마다 머릿속에 오버랩되는 영상이 있다. 국정원 합동심문센터에서 자살한 한준식 씨의 묘비이다. 비석에 적힌 한종수는 그의 이름이 아니다. 생년월일도 틀리다. 거짓과 조작은 한 개인의 죽음 앞에도 단단하게 버티고 있다. '자백'은 단단한 것들이 충돌하며 불꽃을 만든다. 그것은 아마도 역사의 불꽃일 것이다. /이대연 영화평론가(dupss@nate.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이대연 영화평론가

2016-10-26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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