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人

 

[스토리 人]축구 왕중왕전 우승 주승진 매탄고 감독

실력파 제자 개성 강하고 느슨해'성적보다 사회성' 프로배출 목표8강전 필승 의지 보람 많이 느껴개인적 꿈은 유소년 총괄 전문가"실력도 중요하지만, 사회성 있는 선수로 키우고 싶습니다."2016년을 뜨겁게 보낸 축구 사령탑은 바로 주승진 매탄고 감독일 것이다. 그는 지난 11월 19일~12월 4일까지 영광 스포티움에서 열린 2016 대교눈높이 후반기 전국 고등부 축구리그 왕중왕전에서 수원 삼성 U-18 팀인 매탄고를 우승으로 이끌면서 명장 반열에 이름을 당당히 올렸다. 주 감독은 2003년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해 2010년 은퇴 후 수원 삼성 유스팀을 맡으면서 탄탄한 지도력을 보여주고 있다.주 감독을 지난 27일 화성 수원 삼성 클럽하우스에서 만나봤다. 당시 우승 소감에 대해 묻자 주 감독은 "선수들이 시즌 후반기이기도 하고 입시가 끝나는 시기라 집중력이 떨어지고 동기부여도 잘 안되는 시기인데 선수단 미팅에서 이 부분을 설명하고 개선해 나가면서 경기력이 좋아졌다"며 "3학년 학생들도 20%가 참여했고 2학년들도 선배들을 보면서 열심히 뛰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주 감독의 코칭 스타일은 무엇일까. 그는 "성적보다도 선수들이 성장해서 프로선수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며 "눈앞의 성적보다는 내용 있는 축구를 하길 원하고 프로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이 되게끔 지도하고자 한다"면서 "경험도 생기고 하면서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포지션 별로 세분화해서 선수들이 집중력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 감독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이다. 선수들이 사회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경기중 상대 선수에게 차였을 때 함께 항의하는 선수가 있고 그렇지 않은 선수가 있다. 예의있는 선수를 길러내는 것이 학생 선수들에게는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또 지도자 생활 중 가장 생각나는 경기로는 왕중왕전 8강전에서 현대고와 만났을 때를 꼽았다. 그는 "선수들이 그라운드 안에서 이기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고 보람도 많이 느꼈다"며 "강하게 할 때는 강하게 지도하지만, 그렇다고 강압적이지 않다. 강제적인 모습은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묻고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안되면 뭐가 안되는지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고 자신의 축구 철학을 얘기했다.또 주 감독은 "성적이 나면서 매탄고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는 "매탄고가 수원의 유스팀이고 전국에서 잘하는 선수들이 모여 있다 보니 다른 학원팀들보다도 개성도 강하고 느슨한 것도 있었다"며 "다른 지도자분께 '버릇없다'는 얘기도 들었다.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 선수들에게 낮은 자세로 성실히 임하자고 주문했고 선수들도 나를 믿고 잘 따라와 줬다"고 말했다. 매탄고에는 박상혁 등 20세 이하 대표팀에 발탁됐던 선수들도 있다. 이에 주 감독은 "대표팀 합류는 경쟁자이기도 하면서 다른 팀 선수들의 장점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선수들이 발전하는데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그의 최종 목표는 유소년들을 총괄하는 디렉터(총감독)가 되는 것이다. 주 감독은 "유소년 축구 지도자로 있다 보니 이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를 원한다. 매뉴얼을 만들고 기술, 심리적 부분 등 세세한 것까지 총괄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눈앞의 실력보다는 인성을 갖추고 사회성을 길러야 한다"는 매탄고 주승진 감독이 훈련에 앞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2016 대교눈높이 후반기 전국 고등 축구리그 왕중왕전에서 우승한 수원 매탄고. /수원 삼성 제공

2016-12-29 이원근

[스토리 人] 세계농아육상선수권 '파란' 청각장애 이무용

불가리아서 400·800m 동메달… 세계무대 화려한 데뷔우여곡절 끝에 참가 월등한 기량 탓에 장애 의심받기도엘리트 대회 위주 출전하다 고양시청 입단 후 욕심생겨"내년 '데플림픽' 메달 목표… 사회적 인식 바꾸고 싶어""이제는 데플림픽(4년마다 개최되는 청각 장애인을 위한 올림픽과 같은 국제 경기 대회)에 도전하고 싶습니다."지난달 27일부터 2일까지 불가리아 스타라자고자에서 열린 제3회 세계농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며 세계를 놀라게 한 이무용(고양시청). 그는 400m와 800m에서 나란히 동메달을 획득하며 이번 대회에 혜성처럼 나타난 '깜짝 스타'였다. 대회에 첫 출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무용은 400m 결승에서 48.27의 기록을 세웠다. 이는 1위를 차지한 수젠 야신(터기)과 불과 0.025초 차이 밖에는 나지 않는 기록이다. 사실 이무용은 장애인 대회보다는 엘리트 육상 대회에서 이름을 찾기 쉽다. 그는 올 시즌 제70회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800m 우승자이자 2016 고성통일전국실업육상경기대회 1천600m 계주 은메달리스트다. 또 각종 육상 대회에서 입상을 놓치지 않고 있다.그런 그가 세계 농아인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지난 5일 고양시 장미란체육관에서 만난 이무용은 인터뷰 도중 이 같은 질문에 "지난해 고양시청에 오면서부터 운동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청각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시키고 싶었다"고 답했다.어릴적 부터 청각장애를 갖고 있었던 이무용은 군포 산본중 재학 시절 코치 선생님의 권유로 육상을 처음 접했다. 산본중을 거쳐 수원 유신고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육상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됐다. 그는 "중학교 때는 사실 하기 싫었던 마음이 컸는데 당시 코치님이 많이 마음을 붙잡아 주셨다"며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내가 노력한 만큼 기록도 단축되는 것에 뿌듯했다"고 당시를 뒤돌아봤다. 학창 시절 이무용은 운동을 배우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장애에 대한 불편함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싫었다. 그런 생각은 고양시청에 입단하기 전까지 줄곧 이어졌다. 그런데 김용환 감독이 이끄는 고양시청에서 훈련하면서 이무용은 육상에 대한 욕심이 더욱 커지게 됐고 대회 출전의 동기가 됐다. 운동선수라면 한 번 꿈꾸게 되는 세계 무대 출전과 사회에서 느꼈던 청각 장애인에 대한 불편한 시선도 함께 극복하고 싶은 열망이 강해졌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아인 대회에는 출전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고양시청에서 운동하게 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중거리 종목에선 내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한다"며 "은퇴하기 전 세계 대회에서 메달을 따고 싶었고 꼭 올림픽은 아니더라도 세계 무대에서 기량을 검증받고 싶었다. 내가 메달을 따게 된다면 다른 청각 장애인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렇게 도전한 대회가 제3회 세계농아육상선수권대회였다.대회에 출전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복지 카드 발급 시기가 대회 신청 엔트리 제출 기한보다 늦어져 김 감독이 직접 조직위원회에 사정을 설명했고, 마침내 대회 출전 허가를 받았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선 조직위에 예비 참가 엔트리를 제출해야 하는데, 엔트리에 등록되기 위해선 대한장애인체육회에 선수 등록이 있어야 했다. 대한농아인연맹의 행정적인 지원과 아울러 고양시의 출전비 지원과 같은 전폭적인 지지도 함께 어우러지지 않았다면 대회에 출전은 어려웠다. 또 이무용의 기량이 월등하다 보니 대회 기간 중 타국 선수들이 장애를 의심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에 김 감독이 공식적으로 항의해 대회 관계자로부터 사과를 받아 내기도 했다.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이무용은 "데플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농아인들의 스포츠축제인 데플림픽은 올림픽, 패럴림픽과 함께 세계 3대 올림픽으로 꼽히는 대회다. 그는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감독님과 고양시를 비롯한 많은 분께 큰 빚을 졌다"며 "내년 7월 터키에서 열리는 데플림픽에서 꼭 메달을 딸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고 했다.김 감독은 이무용에 대해 "진지하고 열정적이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꼭 물어봐야 하는 스타일이다. 항상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가장 큰 장점"이라고 소개하면서 "지금 태릉에서는 리우올림픽에 맞춰 리우 체제로 가고 있지만 (이)무용이는 터키 체제로 준비하자고 했다. 원없이, 후회없이 운동하고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일련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청각장애 육상 선수 이무용 프로필▲ 1989년 군포 산본 출생▲ 군포 산본중·수원 유신고·성균관대 졸업▲ 2011년 제92회 전국체전 2관왕(800m,1천600m 계주)▲ 2012~2013년 제93~94회 전국체전 1천600m 계주 금메달▲ 2015년 고성통일전국실업육상경기대회 400m 우승▲ 2015년 한중일친선육상경기대회 800m 준우승▲ 2015년 제27회 전국실업단대항육상경기대회 800m 금메달■데플림픽(Deaflympics)데플림픽은 4년마다 개최되는 청각 장애인을 위한 올림픽과 같은 국제경기대회로서 스포츠를 통한 심신을 단련하고 세계농아간의 친목도모와 유대 강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지난달 27일부터 2일까지 불가리아 스타라자고자에서 열린 제3회 세계농아육상선수권대회 800m 시상식에서 메달리스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이무용(오른쪽). /고양시청 제공

2016-07-07 이원근

[스토리 人] 신현무 수원시장애인태권도협회장

수봉재활원서 매주 金 재능기부제자 10명 1단 승단 값진 수확도"점점 나아지는 모습 보며 보람""사회 생활의 질서를 배우게 됩니다."수원시장애인태권도협회 신현무 회장은 매주 금요일 수원 수봉재활원 장애인들을 위해 태권도 재능 기부를 실시한다.지난 2012년부터 장애인들에게 태권도를 지도하는 신 회장은 이곳에서 10여 명의 장애인들을 선수로 육성해왔다.그의 노력은 곧 결실을 봤다. 신 회장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장애인들에게 품새와 겨루기를 가르치면서 2013년에는 10명의 학생들이 1단 승단에 합격하는 감격을 맛봤다. 또 이들은 최근 폐막한 2016년도 경기도장애인태권도협회장배 어울림한마당대회에서 종합 2위를 거두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신 회장이 수봉재활원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게 된 이유는 봉사할 지도자가 없어서였다.그는 "2011년 말 수봉재활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태권도를 지도할 자원봉사자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이듬해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면서 "처음에는 지적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이 배우는데 힘들어 했지만, 반복 훈련을 통해 점점 나아지는 것을 느끼고 보람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수봉재활원은 서명옥 원장을 비롯 27명의 교사와 남녀 38명의 지적장애인이 함께 하고 있다"면서 "박종애, 이정민 교사를 주축으로 국기인 태권도를 교육 프로그램으로 선택해 열심히 수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신 회장은 "태권도는 장애인들에게 좋은 스포츠라고 생각한다"며 "상대를 배려하고 자신과의 인내를 극복하는 게 태권도다. 장애인들은 태권도를 통해 사회 생활의 질서와 규범을 배우게 된다"고 전했다.한편, 신 회장은 용인대를 졸업하고 상지대에서 호르몬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 국립경찰대와 한경대에서 외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12년 농아인아시안게임·2015년 세계장애인태권도대회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해왔다. /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신현무 수원시장애인태권도협회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수봉재활원 장애인 태권도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수원시장애인태권도협회 제공

2016-06-23 신창윤

[스토리 人] 인천 유일 실업구단 해체전 마지막 감독 김삼수

사업실패·교통사고 연이은 쓴잔재활로 눈돌려 자격증 8개 따내리틀·사회인구단에 해설가 활약'역사 속으로 사라진 실업야구 감독을 아시나요'.지난 2003년 2월, 인천 유일의 제일유리공업(주) 실업야구단. 당시 마지막 남은 실업야구단이 해체되면서 한국 아마야구의 명맥은 끊어지게 된다.우리나라 실업야구단은 지난 1982년 프로야구가 창설되기 전까지 성인 야구를 대표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1947년 한성실업야구연맹이 모체가 돼 1959년 8월 실업연맹이 탄생했고, 이듬해 대한야구협회의 승인을 받아 성인 야구를 이끌어왔다. 포스틸, 상무, 한전 등에서 실업야구단을 운영하며 국내 야구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지난 1952년 유리가공 제조업체로 출발한 제일유리공업(주)는 1992년 야구단을 창단, 사원들을 결집하는 한편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며 국내 야구 활성화에도 기여해왔다.그렇다면 제일유리공업(주) 실업야구단의 마지막 감독은 누구였을까. 바로 김삼수(52·인천 올바른한의원 재활상담 및 원무부장) 감독이다.그는 당시 마지막 남은 인천 유일의 제일유리공업(주) 실업야구단을 이끌었고, 실업야구 해체 후 사업에 진출했으나, 실패하며 위기를 맞았다. 그런 김 감독은 2010년 군산 군장대 대학 감독을 제의받았다. 김 감독은 "당시 대학야구 감독 제의를 허락한 후 후배 양성에 힘썼지만, 그해 9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큰 수술을 2차례 받고 9개월여 동안 투병생활을 했다"면서 "죽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다시 살아야겠다. 야구를 한 정신으로 다시 재기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야구 대신 재활 쪽에 관심을 가졌다. 김 감독은 "'운동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방법이 없을까'라는 생각에 운동처방사 1급과 스포츠 마사지 자격증 등을 획득하게 됐다"면서 "현재 병원과 관련된 자격증을 8개나 갖고 있다"고 밝혔다.김 감독은 스포츠 재활센터에 근무하면서 다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물론 리틀야구단과 사회인야구단을 창단하고, 인터넷 방송 아이스포츠 TV 야구해설가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김 감독은 "스포츠 재활을 하면서 후배 양성까지 생각해 봤다. 이에 2013년 용인시 기흥구리틀야구단을 창단했고, 현재는 사회인야구 이스바리그 하늘꿈(스카이드림) 3부팀 총단장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요즘 김 감독은 야구의 또 다른 매력에 흠뻑 빠졌다. 다리가 불편함에도 금~일요일에는 리틀야구·사회인야구에서 활동하고 해설가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김 감독은 초등학교의 어려운 선수에게 필요한 야구용품 지원도 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어렸을 때는 어렵게 운동했다. 이제는 후배 양성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야구 재능기부로 보답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사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김삼수 감독 제공

2016-03-30 신창윤

[스토리 人] 1부 무대 이끈 수원FC 공격수 김한원

마지막 경기 자신감으로 승리내년 시즌 마음가짐부터 달라“김한원이라는 이름을 기억해 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2부리그) 소속으로 승격에 성공하며 내년 시즌 클래식(1부리그) 무대에 오른 수원FC는 2003년 창단돼 내셔널리그를 시작으로 K리그 챌린지와 클래식을 모두 경험한 팀이 됐다.수원FC가 올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점은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체력과 조직력이 잘 갖춰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원FC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내셔널리그부터 현재의 수원FC까지 역사를 함께 했던 선수들이 바로 주인공이다. 이 가운데 공수에서 맹활약한 김한원(34)도 있었다. 김한원은 지난 2004년 수원시청 축구단에 입단한 뒤 클래식 인천 유나이티드와 전북 현대 등에서 뛰었으며 2009년 수원FC로 다시 복귀한 선수다.김한원을 6일 만나봤다. 김한원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승강 플레이오프의 분수령이 된 부산 아이파크 전을 꼽았다. 그는 “올 시즌 매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부산과의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이 아닐까 싶다”며 “10분 정도 투입돼 경기를 뛰었는데 운동장 안에서 시즌을 마무리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고 회상했다.팀 내 고참인 김한원은 올해 선수들을 잘 다독이며 팀을 이끌었다. 그는 “후배들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주려고 노력했다”며 “나쁜 소리를 하면 감정만 쌓인다. 조언과 격려 같은 말을 하니 선수들도 잘 따랐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선수들이 모두 하나가 됐기 때문에 클래식까지 올라오게 됐다. 조금씩 경기를 치르면서 분위기가 점점 좋아졌다”면서 “선수들 모두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부산과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내년 시즌을 준비하면서 김한원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마음가짐이었다. 그는 “챌린지와 클래식은 분명한 실력 차가 있지만 어떻게 경기를 준비하느냐에 따라, 자기가 스스로 몸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승패가 달라진다”며 “클래식에 올라가는 만큼 겨울 동안 준비를 잘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그는 최종 목표에 대해 “운동을 오래 했지만 조용히 사라지는 선수들이 많다. 팬들이 수원FC 김한원이라는 이름을 기억해 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2015-12-07 이원근

[스토리 人] 경기도 장애인 수영 이끄는 이영규 감독

초등학교 시절에 수영 배우며 인연수중 재활운동사 거치며 선수 지도장애시설 부족·대관문제 해결 절실“생활 체육으로 저변 확대 나설 것”“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할 수 있는 통합 프로그램이 잘 만들어져 장애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수영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경기도 장애인 수영을 이끌고 있는 이영규 감독. 그는 안양시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생활건강지원팀장으로 있으면서 경기도 장애인 수영 발전을 위해 힘써 왔다. 도내 장애인 수영 인구는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수 천명이 도내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안양시수리장애인복지관만 따져봐도 200∼300여명의 장애인들이 생활체육으로 수영을 배우고 있으며, 약 150명의 선수들이 선수 등록을 하고 전문 선수로 활동 중이다. 내년 경기도 장애인수영은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다. 경기도장애인수영연맹을 만들기 위한 준비 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도내 장애인수영연맹이 만들어지면 수영을 배우고 즐기는 장애인들의 복지 혜택도 함께 늘어날 전망이다.지난 2일 만난 이 감독은 “현재 대한장애인수영연맹의 승인을 받은 상태며 도장애인체육회의 인준 절차만 남아있다. 연맹은 회장과 임원진, 전무이사와 사무국장 등 총 21명으로 구성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또 그는 “연맹을 만드는데 있어 31개 시·군의 입장을 조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며 “연맹이 만들어지면 선수들과 지도자들의 입장을 도장애인체육회에 잘 전달할 수 있게 되고 선수들을 위한 지원이나 복지 혜택도 조금이나마 증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이 감독이 수영과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시절부터다. 그는 선수의 길이 아닌 장애인 재활 쪽의 길을 선택, 수중 재활 운동사로 일하고 있다. 2007년에는 경기도장애인학생체육대회 수영 감독으로, 2012년부터는 장애인체육대회 수영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 이 감독은 “2011년 장애학생체육대회에서 조기성과 김세진 학생이 7관왕에 올랐던 적이 있다”며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 친구들을 처음 봤을 때 가능성이 있어 보여 모든 종목에 다 참가시켰다. 훈련과 대회 일정 등 본인들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는데 그것들을 모두 소화하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고 되돌아봤다. 지난해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던 조기성은 올해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고, 김세진도 장애인 수영 국가대표로서 현재까지도 꾸준하게 활약하고 있다.이 감독은 엘리트 선수를 지도하고 있지만 생활체육으로서의 장애인 수영 저변확대에도 집중한다. 장애인들이 수영을 하는데 있어 어려움은 역시 대관 문제다. 이 감독은 “중증 장애 아이들 같은 경우 수영장에서 운동하다 보면 비장애인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또 휠체어, 샤워장 등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는 “요즘에는 장애인복지관 내 수영장 시설을 함께 두는 경우가 많다. 안양, 수원, 고양, 성남 등에선 장애인 복지관 내 수영장이 설치돼 많은 장애인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생활체육이 잘 돼 있어야 엘리트 체육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는 다 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다 같이 할 수 있는 수영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통합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장애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수영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수영을 배우는 장애 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이영규(오른쪽) 감독. /이영규 감독 제공수중 재활 운동사이기도 한 이영규 감독이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수영 프로그램을 지도하고 있다. /이영규 감독 제공

2015-12-03 이원근

[스토리 人] ‘2015 추석 한라장사’ 등극 수원시청 씨름단 이주용

초교 4학년 짝꿍 권유로 시작 최저등급 안 될 정도 몸 약해 6학년 소년체전때 체력향상 이후 수많은 우승 강자 우뚝 “내년 설 대회 1등이 새 목표” “씨름이라는 종목이 잘 될 때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이길 수 있지만, 반면 잘되지 않을 때는 넘기는 방법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년 설 장사 씨름대회에서도 우승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지난 27일 경북 상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5 추석장사씨름대회에서 1년 3개월 만에 한라장사에 등극한 이주용(32·수원시청)의 일성이다. 이주용은 “우승을 차지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 끝까지 믿어주신 감독님과 코치님, 수원시청 관계자 분들께 감사하다”면서 “올해 마지막 시합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수원시청 씨름단은 1998년 창단된 이래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빼놓지 않을 만큼 국내 씨름계의 명문팀이다. 하지만 올해에는 이상하게도 장사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이주용은 “올해 선수단이 1품(2등)만 하고 장사 타이틀이 없어 마음고생이 심했었다”면서 “이전 경기였던 금강급 결승에서도 문형석이 2-0으로 이기고 있다가 역전패를 당해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심적 부담감을 안고 결승에 올라 만난 상대도 오랜 라이벌이자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김기태(현대 코끼리)였다. 쉽지 않은 승부였지만 이주용은 침착하게 상대를 제압하며 수원시청 선수단에 우승을 안겼다. 이주용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수원 권선초에서 처음 씨름 선수를 시작했다. 이주용은 “학교에 씨름부가 있었는데 유니폼도 멋있어 보여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면서 “어느 날 코치님이 스카우트를 하기 위해 학교를 돌아다닐 때 짝꿍의 권유로 씨름부에 나가게 됐다”고 전했다. 씨름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주용은 당시 체중이 최저 등급인 경장급(40㎏)에도 못 미치는 34㎏였을 정도로 몸이 약했다. 그는 “4~5학년 동안 입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해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6학년 때 소년체전을 준비하면서 정신력과 체력이 많이 좋아졌다. 소년체전에서 생애 처음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주용은 이후 많은 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전국에 알렸고 2012년에는 대한씨름협회 우수선수상을 받기도 하는 등 씨름의 최강자로 우뚝 섰다. 이주용은 씨름에 대해 “씨름이라는 종목이 잘 될 때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이길 수 있지만, 반면 잘되지 않을 때는 넘기는 방법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설명하면서 “경기가 잘 풀릴 때 내 뜻대로 경기를 주도해 나가는 재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다. 이주용은 “대회에서 성적이 좋을 때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경기 장면을 보곤 하는데 이긴 장면이 나올 때는 아이들이 다시 돌려보자며 조른다”면서 “내가 좋은 성적을 냈을 때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내가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이 자리를 빌려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주용의 목표는 이제 내년에 열리는 설 장사 씨름 대회다. 이주용은 “내년 대회에서 올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면서 “팀의 최고참으로 후배들을 다독이고 감독님, 코치님이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1998년 창단된 이래 명성을 이어온 수원시청 씨름단의 간판스타 이주용이 2015 추석장사씨름대회에서 1년3개월 만에 한라장사에 등극한 뒤 포효하고 있다. /대한씨름협회 제공

2015-09-30 이원근

[스토리 人] ‘체전 3연패 도전장’ 최만석 경기도 파크골프 선수

‘공원 + 골프’ 장점 합성한 신개념체육 평소에도 운동 즐겨 지인 권유로 입문 “올해까지는 선수… 저변 확대 나설 것” “올해 전국장애인체전에서 국내 처음으로 종목우승 3연패 도전하겠다.” 최만석(55·경기도장애인골프협회)은 도내 파크골프 종목에서 알아주는 실력파다. 지난 전국장애인체전에선 개인·단체전에서 모두 우승하며 2관왕에 올라 도의 파크골프 종목우승 2연패를 이끌기도 했다. 3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체전을 대비해 부천이나 부산 등 여러 대회에 나가 실전 훈련을 하고 있다”면서 “이번 전국장애인체전에선 종목우승 3연패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파크골프는 공원(Park)과 골프(Golf)의 합성어로 공원의 개념에 골프라는 종목을 합쳐 누구나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스포츠다. 1983년 일본 홋카이도 마쿠베츠에서 처음으로 생겨났으며 이후 한국으로 전해졌다. 1998년 진주에 처음으로 파크골프장이 지어졌고, 2004년엔 서울 여의도에 정식규격의 파크골프장이 만들어졌다. 현재 도에는 고양·동탄·양평 등에 파크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도장애인골프협회에는 600여명의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다. 최만석은 “2009년 협회가 발족하면서 지인의 추천으로 파크골프를 시작하게 됐다”면서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어려운 점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그는 “파크골프는 장애인·비장애인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넘어지더라도 부상이 없고 풀밭을 걸어 다니면서 건강도 챙길 수 있다”면서 “한번 경기를 하면 1만보에서 1만5천보 정도를 걸을 수 있으니까 운동량도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놓치지 않는 비결에 대해 최만석은 “평소 운동을 좋아한다는 점도 한 몫을 하지만 열심히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차분함을 유지해야만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최만석은 “파크골프는 일반 골프 경기보다도 차분하게 경기에 임해야 한다. 경기에서 OB와 같은 실수를 했다고 해서 흥분을 하게 되면 결코 좋은 점수가 나올 수 없다”고 전했다. 남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최근 별내동에 새로 지어진 파크골프장을 입찰을 통해 위탁받았다. 최만석은 “선수활동은 올해까지만 할 계획이다. 이제는 선수활동을 넘어 도 파크골프가 지금보다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저변 확대에도 나설 생각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기도에는 작은 파크골프장이 지어지고 있지만 31개 시·군 곳곳에 설치돼 있지는 못해 골프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재가 장애인들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좀 더 많은 곳에 골프장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2015-09-03 이원근

[스토리 人] ‘중장거리 스피드 스케이팅 간판’ 박도영

중1때 고등부 기록달성 두각동계AG등 국내외대회 석권무릎부상 작년 ‘재활 구슬땀’올 동두천시청 입단 맹훈련“개인기록 경신·올림픽 목표”“부상이 있었던 만큼 올해엔 개인기록 갱신에 노력하겠다.”‘한국 중장거리 스피드 스케이팅 간판’ 박도영(23·동두천시청)에게 2013년은 ‘부상’이라는 단어밖에 없었다. 2013년 겨울, 훈련 도중 스케이트 날에 왼쪽 무릎이 심하게 부딪치는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이다. 박도영은 “12월 말 수술한 후 1년 정도를 치료와 재활에 매달렸다”면서 “그 때 부상으로 2014년 시즌을 치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고 밝혔다.박도영은 양주 은봉초 5학년 시절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신었다. 당시 학교에서 가장 키가 컸었다는 박도영은 학교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다”면서 “처음엔 스케이트를 잘 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6학년 시절 ‘1년만 더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훈련했다”고 전했다.그 노력의 결실은 양주 백석중에 입학해 시즌 첫 대회인 공인 기록대회에서 나타났다. 중학교 1학년 임에도 고등부 기록을 세우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박도영은 “아직도 그 때가 생각난다. 메달이 없는 대회였지만 신참이 고등부 언니들 만큼 기록을 내니까 다들 놀라워 하더라”며 당시를 돌아봤다.이후 박도영은 각종 대회에서 메달을 따내며 스케이트 유망주로 떠올랐다. 지난 2008년엔 전국남녀 종목별 빙상선수권·스프린트 빙상선수권 3천m에서 시즌 2관왕을 거머쥐었고 2009년엔 제40회 경기도체육상 경기부문에서 우수상을 타기도 했다. 2011년 전국남녀 종합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 여자 3천m에서도 정상에 올랐다.국제 대회에서의 경력 또한 화려했다. 지난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여자 스피드 팀추월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2013년 트렌티노 동계유니버시아드 스피드스케이팅 5천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양주 덕정고와 한체대를 거친 박도영은 올해 동두천시청에 입단해 처음 직장인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박도영은 “대학을 졸업하고 동두천시청에서 가장 먼저 제의가 왔고 동두천시청에 입단하게 됐다”면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훈련할 수 있다는 점과 인원은 많지 않지만 선·후배 간에 단합이 잘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전했다. 또 그는 “이제 직업인으로서 스케이트를 타게 되니 대학 시절과는 느낌이 남다르다”고 덧붙였다.박도영의 올해 목표는 자신의 개인 기록을 넘어서는 것이다. “1년 가량을 쉬었기 때문에 개인 기록을 넘어서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면서 “1천500m에선 2분03초, 3천m에선 4분16초의 기록을 넘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또 멀리는 2018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꼭 개인종목 메달을 따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박도영은 훈련이 끝나면 영어를 배우기 위해 훈련장 근처 영어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노력파다. 그는 “국제대회에 나가면 외국 선수들, 코치들과의 대화가 부족해 아쉬웠다. 또 인터뷰 요청도 영어가 부족해서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그런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공부를 하고 있다”며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그는 또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게 됐을 때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과 그들의 응원소리에 집중이 안될 정도였다”면서 “세계 대회와 국내 대회는 확실히 경기장을 찾는 관중 수에서 차이가 난다. 한국에선 선수 부모님과 동료 선수들만이 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쉽다. 빙상종목 활성화를 위해 더 열심히 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지난 시즌 부상으로 재활에 힘썼던 한국 여자 장거리 스피드 스케이팅의 간판 박도영이 올 시즌 부활을 다짐하고 있다. /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2015-07-22 이원근

[스토리 人] ‘국내 최강 ’ 100m 육상 기대주 강다슬

올초 대학졸업 인천시청서 실업무대 첫 시즌169㎝ 긴 팔·다리 역주 순발력·유연함 ‘강점’4월 실업선수권 우승 “이제 한국新” 당찬 도전‘육상의 꽃’ 100m에서 국내 최강의 실력을 자랑하는 ‘미녀 스프린터’ 강다슬(23)이 인천에 둥지를 틀었다.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한국 여자 육상의 기대주인 강다슬이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하고 ‘인천시청 육상팀’에서 실업무대 첫 시즌을 보내고 있다.아니나 다를까. 역시 강다슬이었다. 실업팀 선수로 처음 뛴 대회에서 보란 듯이 100m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지난 4월 예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19회 전국실업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11초98을 기록, 여일반부 정상에 오른 것이었다.“실업팀에 와서 처음 1위를 한 거여서 정말 기뻐요. 컨디션 점검차 부담 없이 뛰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어요.”국내 여자 단거리 선수로는 제법 큰 키인 169㎝의 강다슬은 “신체 조건이 타고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긴 팔과 다리로 ‘착착’ 치고 나가는 그의 역주 장면은 진짜 시원시원하다. 문학주경기장에서 만난 강다슬은 “장점을 꼽으라면 스타트에서 중간 지점까지 가속도를 내는 순발력과 뛰는 동작의 유연함”이라며 “최근 부족한 근력을 강화하는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강다슬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반을 대표해 달리기 시합을 나갔다가 육상부 코치의 눈에 띄게 돼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듬해 전국의 육상 꿈나무들이 참가한 대회에서 육상 입문 1년 만에 4학년부 1위를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중학교 3학년 때는 국가대표로 발탁되기까지 했다.“그때는 너무 어려서 얼떨떨했어요. 태릉선수촌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때였으니까요. 한 달만 생활하고 돌아오면 된다는 코치 선생님의 이야기만 믿고 갔다가 거기에서 1년이나 살았어요.”(웃음)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태극마크. 애지중지 키운 딸이 힘들게 운동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부모님도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강다슬은 그때가 “가장 큰 고비였다”고 했다. 엄격한 규율 속에서 마음을 나눌 또래도 없이 고된 선수촌 생활을 견뎌야 했고, 매스컴의 뜨거운 관심 또한 중학생 어린 소녀에겐 너무나 부담스러운 것이었다.그래도 가장 먼저 100m 결승선 테이프를 끊을 때의 그 짜릿한 맛에 운동을 그만둘 수 없었다고 했다. 강다슬은 경기도 양주의 덕계고와 충남대로 진학하면서 전국체전 등 각종 대회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하며 한국 여자 단거리 기대주로 우뚝 섰다.인천과는 이렇다 할 인연이 없었던 그가 첫 실업무대를 밟으며 인천시청 육상팀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 축구로 치면 유명한 선수들이 모여있는 ‘레알 마드리드’ 같은 팀이에요. 훌륭한 선배들이 많은 인천시청에 들어올 수 있게 돼 정말 뿌듯해요. 제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곳도 인천시청이고요.”요즘 한국 육상 여자 단거리에는 쟁쟁한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대표 주자인 강다슬마저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목표했던 100m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나마 결실이라면 강다슬이 대표팀 동료 김민지(제주도청)·이선애(안동시청)·정한솔(김포시청)과 함께 뛴 여자 400m 계주 결승에서 44초60으로 한국기록(45초43)을 0.72초 앞당겼다는 점이다.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어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어요.”여자 100m 한국신기록은 1984년 이영숙이 세운 ‘11초49’. 강다슬은 “올 시즌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는 것이 목표”라며 “그 다음은 꼭 한번 한국신기록을 새로 써보고 싶다”고 당찬 각오를 밝혔다.우진규 인천시청 육상팀 감독은 “잠재력이 큰 선수”라며 “신체조건이 타고나 부족한 지구력 등을 보완한다면 국내에 다슬이를 따라올 선수는 없을 것이다”고 자신했다. /임승재기자 isj@kyeongin.com ·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5-06-03 임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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