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지역 경제 진단' 책으로 풀어낸 김하운 인천시 경제특보

韓銀·신보재단·인하대 강의 경험… 지역 특성 맞게 정리한 자료 많지 않아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초점·이해하기 쉽게 쓰려다 보니 용어 반복 설명창업 성공담 모아 차기작 '망하지마라' 함께하는인천사람들과 준비 들어가한국은행 인천본부장 출신의 김하운 인천시 경제특보가 '인천사람도 다시보는 인천경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인천경제를 다룬 책을 펴냈다. 국제 경제나 우리나라 전체적인 경제에 관한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면 지역 경제를 다룬 책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인천경제를 깊이 들여다보면서도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어서 지역사회에서도 관심이 많다. 인천사람 못지않게 인천에 대한 애정이 많은 김 특보는 본인을 그저 '취미'로 지역경제에 관심 있는 '아마추어' 경제연구자로 소개한다. 직업이 아닌 '취미'로서, 순수한 애호가 차원에서 '인천경제'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애정이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지난 8일 인천시청 앞 광장에서 김 특보를 만나 책 얘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인천경제를 다룬 책을 쓰게 된 계기는.인천경제에 관한 책이 없어서다. 인천뿐 아니라 우리나라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17개 시·도가 있고 지방자치제도는 7기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구조와 특성이 다른 각 지역경제를 쉽게 알 수 있도록 정리한 자료는 많지 않았다. 한국은행 인천본부, 인천신용보증재단, 인하대, 인천 사회적 은행인 (사)함께하는 인천사람들 사회적은행에서 일하면서 인천 경제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분류하고 논리를 덧대며 책을 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오다 기회를 봤다. 10년이 훨씬 넘도록 인천경제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을 하거나 강의를 하면서도 인천경제에 관한 참고자료가 많지 않아 아쉬웠고, 일반인이 전공이나 학력에 구애받지 않고 이해할 만한 자료는 더욱 찾기 어려웠다.# '인천사람도 다시 보는 인천경제 이야기'라는 제목에 대해.내 마음대로 정한 제목이 아니다. 처음에 인천문화재단이 출판 제의를 했을 때 '인천사람도 잘 모르는 인천경제'라는 제목으로 갖고 왔더라. 그런데 도저히 그렇게 못하겠더라. 내가 인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아닌데 '인천사람도 모르는…'이라는 식의 제목은 쓸 수 없겠더라 '인천경제'라는 말조차 쓰지 않으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인천의 살림살이' 정도로 쓰자고 했다. 하지만 내가 반대했다. 책을 쓰는 이유는 분명했다. '지역경제론'에 관한 책이다. 사실상 지역경제와 관련해 처음 나오는 책인데, 연구자들이나 검색하려면 '인천경제'라는 키워드를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또 오래도록 볼 수 있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근데 경제 분야 책이 오래 볼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 '숫자'들이 다 바뀌는데 어떻게 하나 그렇다면 '다시 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래도록 두고 볼 수 있는 책인가.그렇다. 그래서 인천의 '특성'을 담으려 했다. 특성은 변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인천의 특성을 쓰려 했다. 반대로 '특징'은 밖으로 드러나서 보이는 성질이니 굳이 책으로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한꺼풀 벗겨 보아야 하는 특성은 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이 두고두고 봐야 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인천의 특성을 설명하고 고민하고 풀어야 할 장기적 과제를 제시했다. 과거보다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경제 용어를 나름의 방식으로 쉽게 설명하려 애쓴 이유도, 두고두고 생각할 수 있는 많은 표나 그래프 등을 담은 이유도 다 그런 것이다. 또 앞으로 지역경제론을 연구하거나 책을 쓸 사람들이 계속 이어가는 얘기를 할 수 있었으면 하고 의도한 부분도 있다. 팔리지 않을 책을 어떻게 하면 계속 볼 수 있는 책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세운 나름의 전략이다.# 어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책을 썼나.쉽게 말해 인천에서 방귀 좀 뀐다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천에 영향력이 있고 인천을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좀 알고 경제 전반을 보면서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천의 지도자, 정책을 다루는 공무원, 광역·기초의원 등 정치인들, 그리고 학자들, 가능하다면 공부하는 대학교 학생들과 나름의 인천 정책이나 방향을 정해야 하는 현업에 있는 기업인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썼다. 쉽게 쓰려다 보니 중언부언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책 전체를 보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읽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앞에 설명한 얘기 또 하고 용어도 반복해 의미를 설명하고 친절해지려 했다. 읽다 보면 '내가 인천을 잘 아는 사람이구나'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하고 싶었다. 거의 세뇌하는 수준으로 반복했다.#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인천의 인구가 늘어나는데 왜 경제는 성장하지 않는가'라는 고민을 하길 바랐다. 한 사람당 버는 돈이 줄어서 그런 거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어디에 있겠나 싶었다. 버는 것이 줄어든 이유는 단순화하면 '실력'이 떨어지고 '장비'가 없기 때문인데, '장비'는 투자를 늘려야 하는 문제고 '실력'은 쌓아나가야 하는 문제다. '장비'는 생산설비, '실력'은 1인당 생산성을 뜻한다. 기계를 들여놓고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건데 고민하고 해결하자는 바람이다. 앞으로 인천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대비해야 한다고 봤다. 인천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얘기다. 도시의 인구 흡인력이 높아야 하는데, 지금 흡인력으로 본다면 타시도와 비교해 경쟁에서 지고 있다. 이웃 경기도로 몰려가고 있다. "왜 준비를 안 하나"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또 독자들이 불편한 현실을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필요성을 느껴야 변한다. 그러자면 무언가를 알아야 하고 바꾸려는 행동이 뒤따르고, 행동해야 습관이 되고 나서야 상태가 변한다. 그래서 내가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수년 전부터 '역외소비'의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제는 '역외소비'의 소득유출 문제를 내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어지간한 사람은 모두가 인지한다. 독자가 문제를 인식하고 바꾸려 행동하고 습관이 되고 그러길 바라는 마음이다. 계속 이야기하면 고쳐지더라.# 구상하고 있는 다음 책은.(사)함께하는인천사람들(이하 함인사)에서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을 모아서 그 경험을 다음 창업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책 제목은 '망하지 마라' 정도로 생각 중인데, 이게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500명이 어떻게 성공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정리를 해서 실패를 하지 않도록 교훈을 주는 것이다. 우리 함인사 식구들하고 같이 작업하고 글을 내가 직접 쓰는 방식으로 하는 식으로 구상하고 있다. 그 사람들의 경험을 모은다면 의미가 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상점 주변의 상권분석이나 그런 전문적인 내용도 포함할 계획이다.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 yong@kyeongin.com■ 김하운 특보는?▲ 1954년 서울 출생▲ 서울안산초/광희중/서울고/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한국은행 인천본부 부본부장(1급)(2005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2008년)▲ 한국은행 인천본부장(2010년)▲ 인하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2011년)▲ (사)함께하는 인천사람들 대표이사(2012년)▲ 인천신용보증재단 이사장(2014년)▲ (주)선광 사외이사(2016년)▲ 인천시 경제특보(2018년)김하운 인천시 경제특보가 '인천사람도 다시보는 인천경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인천의 경제 사정을 다룬 책을 펴냈다. 김 특보는 "인천에 영향력이 있고 인천을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인천 경제를 알고, 경제 전반을 보면서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책을 썼다"고 말했다.

2020-07-14 김성호

[인터뷰… 공감]'나이 잊은 열정, 비즈니스 라운딩' 이동준 GA코리아 회장

성실·신뢰로 '수출 불모지' 중동 누벼일하는 시간도 모자라 주말비행기 이용골프사업 눈돌려 1억 투자로 560억 수익유망주 발굴 경인일보대회 타이틀후원첨단 스마트단지 '용인아트투어랜드' 올인새로운 미래분야 임원들과 성균관대行'뜨거운 열정, 나이는 없다', '꿈 기회는 있다. 정년은 80대다'.이동준 (주)GA코리아 회장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이 회장에게 있어 인생은 '열정'으로 통한다. 그는 80세의 나이에도 '꿈이 있는 한 나이는 없다'는 신념으로 젊은이 못지 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매일 현장을 돌며 골프 대중화와 골프 발전을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이 회장을 지난 4일 용인 골드CC 클럽하우스에서 만나봤다.# 골프 대중화의 선구자매주 토요일이면 아침 일찍 골드CC를 찾는 이 회장은 평상시 복장으로 새벽부터 골프장을 돌아봤다고 한다. 50여년전 직장을 그만두고 맨손으로 시작해 GA코리아 국내 골프·레저산업을 선도하는 국내 최대의 기업으로 키워냈지만, 아직도 일에 대해선 목말라 있는 그다.이 회장은 "나를 두고 '열정'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사실 '성실과 신뢰'가 나에게는 더 친숙하다"며 "70년대 수출이 취약했던 시절 중동을 누빌 수 있었던 것은 '꼬리 미스터리(Korea Mr.Lee)'로 통용되는 신용 때문에 가능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당시 내가 전 세계를 많이 다닌 우리나라 사람 중 10명 안에 들 것"이라며 "일하는 시간도 모자라 주말을 이용해 다녔다. 지금도 몸에 배서 새벽 5시면 사무실에 도착한다"고 덧붙였다.GA코리아는 오는 20~21일 'GA코리아배 경인일보전국중·고학생골프대회'의 타이틀 후원을 맡았다. 사실 이 회장은 우리나라 골프 대중화와 후배 양성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이 회장은 "당시 한참 수출하던 시기에 배가 없어서 더 많은 물량을 보내지 못한 적이 많았다. 1980년대 일본 선박회사를 인수하려고 모든 작업을 마쳤지만 선박사업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아 지금의 골드코리아 사업지에 골프 비즈니스를 하기로 했다"며 "1982년 부지를 매입한 뒤 인허가를 내면서 본격 골프사업에 뛰어들었고 1986년 정식 오픈하게 됐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당시 1억원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1986년 560억원의 결과를 이뤄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그는 "골프장 사업을 35년간 쉼 없이 진행한 것은 우리 미래의 대들보인 유망주 육성사업과 지원이 중요했기 때문"이라며 "골프 및 스포츠에 관계된 단체나 선수에게 지원을 집중적으로 해왔다. 국내 메이저 타이틀인 한국프로골프(KPGA) 선수권과 한국여자오픈 등의 대회를 주최해 우수 선수를 발굴해왔다"고 전했다. 이어 "그 결과 LPGA를 석권한 선수를 배출했고 샌디에이고 골프스쿨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운영했는데 1기생이 바로 김형성"이라고 말했다.# 열정의 인생사이 회장의 인생사는 파란만장했다. 그는 "당시 대기업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았는데 베트남 파병군에게 식품을 공급하는 식품회사에 다녔다. 어느 날 선배 사무실에 놀러 갔더니 '10년 후 사장을 하겠느냐, 아니면 회사 임원이 되겠느냐'고 했을 때 사장을 택했다"며 "그때 '책상 하나로 사업을 시작해 보라'해서 신의 직장을 버리고 이 길을 걷게 됐다"고 회상했다.이 회장이 일궈 온 GA코리아는 1969년 창업한 이래 수출업에 주력해왔고 1980년도부터 관광과 유통단지 개발로 연간 1천만명 이상의 내장객을 유치함과 동시에 국내 최고의 복합리조트단지 내 첨단 과학기술을 접목해 자연 속에 주거와 테크노밸리를 겸한 첨단스마트시티를 건설해 오고 있다. 이 회장은 "70대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형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2008년부터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 일대 40만㎡와 주변 500만㎡에 산업과 관광, 주거가 공존하는 '용인아트투어랜드'를 추진해 왔다"며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같은 첨단산업과 주거가 합쳐진 미래형 스마트시티를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강조했다.'용인아트투어랜드'는 단지 내 대형 호텔과 문화공연시설, 세계음식문화거리, 체험과학관 등 가족형 테마시설은 물론 첨단산업, R&D연구센터, AI연구센터 등 산업과 레저, 주거가 공존하는 친환경 웰빙 첨단산업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곳은 지난해 말 롯데 프리미엄아울렛 기흥점과 이케아 스웨덴 가구 전문점이 개점하면서 첫 단계를 마무리했다. 기존 상업형 아울렛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휴식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주변의 골드·코리아CC의 친환경 콘셉트와 같이 자연을 담은 놀이터로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이 회장은 "자연환경과 문화생활을 접목한 용인아트투어랜드에는 대형 토이백화점, 키즈용품점, 스포츠용품 등 종합 전문점이 들어서고 세계적인 자동차업체와 영화관 입주를 협상하고 있다"며 "카이스트와 성균관대학교, 한국생산성본부, 용인시와 제휴해 상상이 현실화되는 과학체험관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GA코리아는 첨단과학단지를 위해 단지 내 스마트시티 실현을 위한 인재양성 및 창업센터와 글로벌 첨단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성균관대와 공동으로 'KINGO-GA 드림캠프'와 창업 창작센터를 운영해 39세 이하의 예비 창업자를 위한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이 회장은 "'용인아트투어랜드'가 마무리되면 1만5천여명의 고용창출과 2조원이 넘는 경제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국내 단일 규모 연간 1천만명이 다녀간 곳은 없다. 이는 롯데월드와 에버랜드도 넘지 못했다"고 피력했다.# 만학도의 목표그는 이 같은 꿈을 이루기 위해 회사 임원 5명과 성균관대 미래도시융합공학과 박사과정도 시작했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이 회장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보고 무모하다고 했지만 그의 열정에서 시작된 꿈은 누구도 막지 못했다. 그는 "사실 우리 때는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 못해 배우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회와 조건이 좋다. 나이 80을 넘어 새로운 미래 분야를 배운다는 것은 설렘 그 자체"라며 "'꿈이 있는 한 기회는 있고 나이는 없다'는 신념을 갖고 박사학위에 도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 회장이 바라는 꿈의 랜드는 무얼까. 그는 "요즘은 100세 시대다. 60세를 넘어 이제는 80세를 넘어서까지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본인이 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철저한 건강관리이고 둘째는 계속 배우고 도전해야 한다"며 "단지 내 스포츠과학대학원을 유치하는 이유도 60세가 넘은 많은 사람이 꿈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이 회장은 "골프문화와 경기는 1400년도 스코틀랜드에서 시작해 미국을 거쳐 대한민국 시대가 되고 있다"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주최하는 대회만 4개나 된다. 이미 골프의 중심축이 대한민국으로 이동하는 만큼 그에 맞는 문화와 시설 그리고 품격까지 준비해야 한다"고 피력했다.이에 발맞춰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골드CC에 반려동물과 캠핑, 실내·외수영장, 놀이시설 등을 즐길 수 있는 펫리조트를 조성하기도 했다.골드CC에 자리잡은 펫리조트는 실내·외수영장과 목욕시설 등을 구비했다. 사회적 책임 공헌 활동도 열정이 넘친다. 이 회장은 북한결핵어린이돕기 범국민 운동본부 기부, 북한 어린이 분유보내기운동 지원, 지역을 위해 1천억원 규모의 SOC 사업인 강화초지대교 건설에도 민자방식으로 참여했다. 이밖에 연세대 건축기금 기부, 강화후원회 장학금 지원, 예체능 특기생 및 노약자·소년소녀가장 후원, 태국 오지학교 운동장 건설 기부 등도 했다.끝으로 이 회장은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청년들이 직장에 대한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청년들이 창업이나 전문분야 CEO가 되기 위해선 대기업에서 부분적인 경험을 쌓기보다 중견기업에서 다양한 일을 체험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며 "청년들에게 미지의 분야에 도전할 기회와 장소를 제공해 주고 싶다"고 밝혔다.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GA코리아 제공■이동준 회장은?#학력▲1940년 강화군 강화읍 출생 ▲강화중·서울 경동고·연세대 경영MBA 졸업 ▲서울대 AMP, 연세대, 고려대, 단국대 문화예술, 서울대 EC과정·행정대·환경대, 서울과학대학원 등 최고위 과정 수료 ▲성균관대학원 미래도시 박사과정 재학 중#경력▲1969년 유성물산 창업, 1978년 1억달러 수출실적 ▲기흥관광개발, 뉴경기관광, 강호개발(주), (주)GA코리아, Golf R&D 연구소 등 국내·외 10개 기업설립 총괄회장#상훈▲은탑산업훈장, 동탑산업훈장, 철탑산업훈장, 1억불 수출탑, 산업포장 ▲2010 수출신용대상 ▲2015 올해의 CEO대상, 미래창조 경영대상 ▲2018 제4회 한국 경제를 빛낸 인물 ▲2018 미래건축문화대상 수상80세의 나이에도 '꿈이 있는 한 나이는 없다'는 신념으로 젊은이 못지 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동준 (주)GA코리아 회장이 골드CC 클럽하우스에서 '열정'을 외치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이동준 회장이 '용인아트투어랜드' 개발을 놓고 임직원 회의(사진 왼쪽)와 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2020-07-07 신창윤

[인터뷰… 공감]'경기동북부 유일 대학병원 수장' 박태철 의정부성모병원장

출입구 '키오스크' 5대 설치동선파악용 CCTV 154대 추가상황실, 접촉자 구분 시스템영리만 추구하지 않아'북부지역 대표' 역할 충실의료·의학발전 선도할 것확진자 발생… 한달 문 닫아2800여명 조사·고강도 방역보름만에 '감염병' 몰아내"위기를 기회로 삼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먼저 대비하는 의정부성모병원이 되겠습니다."지난 4월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은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인 '코로나19'라는 큰 암초를 만났다. 8층 병동 환자를 시작으로 또 다른 환자와 간병인, 병원 직원, 의료진까지 19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한 달 동안 병원이 폐쇄되는 위기를 겪었다.공백도 잠시, 의정부성모병원은 빈틈없는 방역체계로 무장하고 다시 문을 열었다. 코로나19란 전례 없는 질병이 몰고 온 혼란에서도 의정부성모병원은 경기동북부 유일 대학병원으로서 막중한 책임과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박태철(65) 원장이 있다. 박 원장으로부터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를 겪은 소회와 병원이 가진 앞으로의 비전을 들어봤다.의정부성모병원이 겪은 집단 감염 사태에 대해 박 원장은 "개인적으로는 대학병원장 간담회 참석으로(함께 참석했던 분당제생병원장이 확진) 자가격리됐다가, 돌아오자마자 병원 사태가 터졌다. 어안이 벙벙하고 정신이 없었다"며 운을 뗐다. 그는 "신속히 후속 조치에 나서면서 관계기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코로나19 사태에 있어 질병관리본부가 대처를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과거 메르스 등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방역 대응 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것 같다"면서 "경기도와 의정부시 등 지자체가 빠르게 대처에 나서고, 시민들도 잘 협조해 주셔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병원 내 감염자가 발생했을 당시 의정부성모병원은 지역사회 전파를 막기 위해 즉시 선제적인 폐쇄를 결정하고 입원환자 보호와 전사적인 고강도 방역활동에 나섰다. 교직원 및 환자, 보호자, 간병인 등 내·외부 관련자 2천800여명에 대한 코로나19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원내 감염방지 지침과 프로세스를 정비했다. 전면적인 방역작업도 병행했다. 매일 병원 전 구역을 소독하고 청소한 결과 보름 만에 병원 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몰아낼 수 있었다.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한 2차례의 병원 전 구역 코로나19 바이러스 배양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것이다.코로나19 사태 후 변화를 묻는 질문에 박 원장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병원의 모습은 많이 다르고, 앞으로는 더 달라질 것"이라며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 병원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의료체계와 병원진료 시스템이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례로 병원 진료실과 검사실 앞 의자에서 환자들이 줄줄이 기다렸던 것이 과거의 병원 풍경이었다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스마트 시스템 등으로 환자의 밀집도를 낮추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진료를 볼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들을 적극 고안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의정부성모병원은 집단 감염 이후 병원 내·외부에 다양한 감염 방지 장치를 도입했다. 가장 먼저 병원 출입구에 출입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키오스크 5대를 설치하고, 통제 요원을 배치해 호흡기 증상이나 발열, 기침 등이 있는지 문진을 실시한 후 환자의 원내진입을 허용하고 있다. 또 병원 전체 감염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내원객 방문 시 동선을 파악할 수 있는 CCTV 154대를 추가로 설치했다. 현재는 보안 상황실에서 병원 전 구역의 환자 이동 경로 및 접촉자를 구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비한 상태다.박 원장은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정부와 지자체가 보완할 부분은 없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지금까지도 잘해왔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정부와 지자체, 병원 간 유기적 협력관계를 좀 더 체계적으로 정비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관계기관이 빠르게 상황을 인식하고 효율적으로 분업과 협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는다면 비상상황에 더욱 빠르고 적절한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며 "예를 들어 우리 병원의 예처럼 집단 감염이 발생했을 때 소방, 보건소, 행정, 대형병원, 중소병원 등 다양한 주체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면 시민 불편과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한편, 불가피하게 실시했던 병원 폐쇄는 경기북부에서 의정부성모병원이 갖고 있는 비중과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됐다. 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신생아집중치료지역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의정부성모병원의 진료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면서 많은 환자들이 서울까지 이동하거나 진료를 늦춰야만 했기 때문이다. 특히 외상환자와 응급환자, 중증도 높은 질환의 환자들이 많은 불편을 겪으면서, 의정부성모병원의 공백이 지역 사회의 현안으로 거론될 정도였다.박 원장은 "위기를 겪으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걸어온 63년의 역사가 매우 중요함을 알게 됐다"며 "앞으로도 교직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해 위기에 대처하고 환자들을 치료하겠다는 다짐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엔 코로나19 같은 질병 외에도 다양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면서 "그때마다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경기북부 대표 의료기관으로서 역할에 충실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박 원장은 가톨릭이 가진 인류애적 가치를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그는 "병원 운영에 있어 영리만을 따지진 않겠다. 급변하는 의료 환경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가톨릭 영성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지역 주민의 건강을 돌보고 의료사업과 의학발전을 선도해 나가겠다"면서 "지역 내 의료봉사와 해외 의료사업도 지속하면서 모두의 건강 증진과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병원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글/이종우·김도란기자 ljw@kyeongin.com 사진/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박태철 병원장은?▲천주교 세례명 이냐시오▲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졸업▲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원 산부인과학 석사·박사▲의정부성모병원 산부인과 임상과장▲동북부 수도권 부인종양연구회 회장▲2017년 9월 의정부성모병원 병원장 취임박태철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장이 경인일보와 인터뷰에서 지난 4월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를 겪은 소회와 병원이 갖고 있는 비전을 밝히고 있다.지난 4월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내부를 방역직원들이 소독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제공

2020-06-30 이종우·김도란

[인터뷰… 공감]'K4리그 돌풍' FC남동 초대 사령탑 김정재

방출·TV예능 부상 하차·사회복무요원만 11명 훈련 조율도 어려워4승1패 신생팀답지 않은 질주"어려울때 대비" 긴장 끈 놓지않아선수들 영양 보충 특별당부첫패 안긴 포천과 리매치 '축구화 질끈"이제 시작입니다."올해 K4리그에 도전한 신생팀 인천 남동구민축구단(이하 FC남동)이 시즌 초반부터 거센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창단 이후 첫 공식 경기인 지난달 16일 홈 개막전에서 전력이 만만치 않은 파주시민축구단을 상대로 완승(2-0)을 거둔 FC남동은 1주일 뒤인 23일 서울중랑축구단과의 원정경기에서도 '소나기 골'(4-1)을 터뜨리며 시즌 2연승을 달렸다. 이후 충주시민축구단(1-0), 이천시민축구단(3-1)을 차례로 꺾으면서 리그 개막전을 포함해 4전 전승을 거두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K4리그의 '복병'으로 떠오른 FC남동은 지난 20일 홈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포천시민축구단과 공방전 끝에 시즌 첫 패배(2-4)를 당하며 연승 행진을 마감했다.FC남동의 개막전 승리 이후 기자는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정재 감독을 몇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김 감독은 "그날(개막전) 경황이 없었다"면서 홈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부터 전했다. 코로나19 여파로 FC남동의 홈 개막전은 무관중 경기로 치러졌다. 그런데도 남동구민을 비롯한 인천의 많은 축구팬이 경기장을 찾아와 관중석 밖에서 열성적으로 응원했다. 김 감독은 "놀라웠다. FC남동의 창단 첫 공식 경기에 관심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눈으로 확인하니 가슴이 벅찼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승리의 주역인 선수들에게도 "경기 전 약속했던 것을 잘 지켜줬다. 다들 고생하면서 많이 노력했던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며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선수들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개막전 승리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승리의 쾌감을 만끽했다. 불타오르는 열정이 느껴졌고, 더욱 단합하려는 모습에 감독으로서 뿌듯하고 '잘만 하면 뭔가 되겠구나'하는 기대감이 생겼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이어 "개막전 승리로 선수와 코칭 스태프, 그리고 구단 프런트가 더욱 신뢰하게 된 점이 피부로 느껴진다"고 덧붙였다.FC남동 선수들은 승리한 경기는 물론, 최근 패배한 경기에서도 주장 '문준호'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김 감독은 1997년 천안 일화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해 K리그 통산 139경기에 출전한 수비수 출신이다. 그는 2004년 시즌 후 은퇴한 뒤 인천 유나이티드 코치와 팀 산하 유소년 클럽(U-15) 감독, 대구FC U-18 감독 등을 역임했다.2003년 창단한 인천 유나이티드의 창단 멤버로 합류하면서 인천과 인연을 맺은 그는 "아무래도 신생팀은 주위의 관심과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데 그런 분위기가 선수단에 잘못 스며들면 거품이 생기게 마련"이라며 "경기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팬과의 거리가 생기고 선수들의 사기에도 지장을 주게 된다. 시행착오를 얼마나 빠르게 줄이느냐가 성공의 열쇠"라고 강조했다.올 시즌 스타트를 잘 끊은 김 감독이 경계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선수들이 잘 따라와 주고 있다"면서도 "평소 선수들에게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희로애락이 있게 마련이니 어려울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자주 주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FC남동은 젊은 유망주들이 주축으로 뛰고 있다. 주장 문준호는 지난해 화성FC 소속으로 K3리그 어드밴스 우승을 이끌며 MVP(최우수선수)에 이름을 올린 선수다. 그는 2015년 용인대 재학시절 주장으로 참가한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준우승과 U리그 왕중왕전 우승을 이끈 재목이다. 지난 시즌 양평FC의 K3리그 준우승 주역인 권지성, 오성진, 유동규도 FC남동에 둥지를 틀었다. 골문은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 송영민이 지키고 있다. 2014년 미얀마에서 열린 AFC U-19 챔피언십에서 국가대표 골키퍼로 활약한 그는 대구FC를 거쳐 일본 J리그를 경험하기도 했다.김 감독은 올 시즌 목표로 선수들의 성장을 가장 먼저 꼽는다. FC남동에는 어려서부터 꿈꿔 오던 프로무대(K리그1·2)의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했거나, 어렵게 입단했던 소속팀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방출의 아픔을 겪은 선수들이 많다. 김 감독은 "너무도 일찍 축구 인생의 쓴맛을 본 후배들에게 도전의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오성진의 경우 과거 KBS에서 방영된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이란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선수단을 지도한 안정환과 이을용 두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유망주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발목 부상으로 팀에서 하차하는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유동규 등도 프로팀에서 관심을 보였던 선수들이다.FC남동은 숨은 진주를 발굴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공개 테스트 등을 거쳐 총 37명을 선발했다. 이 가운데 국방의 의무를 지기 위해 낮에는 사회복무요원 등으로 일하고 퇴근 후에는 훈련장을 찾는 선수들도 11명이나 된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팀의 주축으로 뛰고 있다. 그렇다 보니 팀 훈련이나 연습 경기 일정을 조율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김 감독은 "이 친구들은 군 복무를 하며 선수 생명을 이어갈 큰 기회를 얻은 셈"이라며 "K4리그의 존재 이유이자, K4리그가 앞으로도 계속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김 감독은 일과를 마치고 밤늦게까지 훈련하는 선수들에게 특별히 당부하는 것이 있다. 바로 영양보충이다. 그는 "운동하는 선수들은 먹는 것이 중요하다"며 "젊고 혼자 생활하기도 해서 그런지 그냥 자거나 라면으로 대충 허기를 때운다고 한다. 그러면 몸이 망가지고 선수 생명이 짧아지니 먹는 것에 신경을 쓰라고 당부한다"고 귀띔했다.FC남동의 시즌 초반 돌풍이 계속될지 홈 팬들의 관심이 높다. 김 감독은 "이 팀이 만들어지기까지 구청 공무원, 구단 프런트, 후원가, 축구협회 관계자 등 여러분들의 노력이 있었다"며 "아직 어린 선수들에게 꿈을 향한 도전의 기회를 주셨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오는 27일 포천종합운동장에서 있을 포천과의 설욕전을 준비하고 있는 FC남동의 김 감독과 선수들은 오늘도 축구화 끈을 질끈 동여맸다. 글 /임승재기자 isj@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 김정재 감독은?FC남동의 초대 사령탑인 김정재 감독은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 출신 수비수이다. 그는 1997년 천안 일화 입단을 통해 프로무대에 선 뒤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은퇴하기까지 K리그 통산 139경기에 뛰었다. 김 감독은 프로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낸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코치(2005~2007년)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2008~2009년 인천 유나이티드 15세 이하(U-15) 클럽 감독을 지낸 그는 대구FC U-18 감독(2012~2014년)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5년엔 인천 낫소FC U-15의 지휘봉을 잡기도 했다. 그는 올해 K4리그에 도전한 신생팀 FC남동의 사령탑으로 지난해 10월 부임했다.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김정재 FC남동 감독은 "경기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팬과의 거리가 생기고 선수들의 사기에도 지장을 주게 된다. 시행착오를 얼마나 빠르게 줄이느냐가 성공의 열쇠"이라고 말했다.

2020-06-23 임승재

[인터뷰… 공감]'소방의 별' 달고 퇴임하는 서은석 고양소방서장

밤샘 진화현장 노점상의 절규 '사명감에 불씨'… 한국형 소방호스 전개기 개발현장 대응 강조 지휘관 양성 제도적 장치 필요… 전술 교범 '소방내전' 출간도"젊음 믿고 산 과거와 전혀 다른 길 설렘반 걱정반" 묵혀둔 색소폰 이제 꺼낼 때"소방업무는 지휘관이 되면 혼자서 결정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옵니다. 이때 믿음이 있다면 흔들리지 않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결과든 종교적 소명의식이든 반드시 필요합니다."오는 30일 고양소방서 근무를 마지막으로 소방공직을 떠나는 서은석 고양소방서장(소방준감)을 최근 만났다. 소방의 별을 달고 현장에서 명예롭게 퇴임하는 서 서장에게는 소방공무원으로서 최고의 명예로운 선물인 셈이다.그는 소방의 길을 걸으며 늘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공직자가 임지를 떠날 때는 양손에 들 수 있는 보따리 두 개면 족하다"란 말씀을 되새겼다. 서 서장은 "이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결실을 맺고,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라는 의미로 이해하며 일해왔다.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 왔다는 것에 후회가 없는지 되돌아보고 있다"고 회상한다.서 서장은 1987년 1월1일 부천소방서 관창수 보조로 소방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로 요즘도 취업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하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취업 여건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인문계 분야 출신으로 시험공부를 하듯이 소방법을 공부해 보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듯했다.하지만 그는 "1988년 1월 말 부천 자유시장에서 발생한 야간 화재현장에서 밤샘 진화작업 후 노점 좌판 피해자들이 안타깝게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소방'이란 것을 깨닫게 됐다. 이후 진짜 소방관이 됐다"고 말한다.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 서장은 효율적인 전술을 위해 '한국형 소방호스 전개기'를 개발해 협소한 장소에서 1초라도 빠르게 화재를 진압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고, 이후 난항을 겪었던 현장에서 효과적인 진화활동이 가능하게 됐다.이후 그는 1996년 내무부 소방국 구조구급과 구급주임이란 직책으로 근무지를 중앙부처로 옮긴다.그는 언젠가는 소방본부나 소방학교 등 중앙행정을 익히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모든 것이 부족했다. 하지만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고 도전하려는 의지를 반영해 일했고 2003년 소방령 승진과 함께 경기도로 복귀했다.2006년 7월 경기북부에 경기도 북부소방재난본부가 개청됐고 2011년 12월 소방정으로 승진하면서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연천소방서장으로 발령받아 지역 재난 안전 책임자로의 소임을 시작했다.이후 일산소방서장으로 3년 근무(2013년 6월17일∼2016년 6월30일)하고 양주소방서장(2016년 7월1일∼2018년 12월31일), 의정부소방서장(2018년 1월1일∼3월29일) 등을 거쳐 2018년 소방준감으로 승진해 용인소방서장(2018년 3월30일~ 2019년 6월28일)을 역임한 뒤 지난해 7월 고양소방서장으로 부임했다.서 서장은 지난 1988년 결혼, 1년 후 첫 아이가 태어났다. 첫아이를 보고 온전한 분신을 얻었다는 것에 가장 큰 행복감을 느꼈다는 그는 이후 직장에서 승진할 때와 추진하는 업무에서 좋은 성과를 냈을 때 등을 일하면서 행복했던 순간들로 떠올린다.서 서장은 "이제 소방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힘과 패기의 젊음을 믿고 살아왔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에 대한 설렘과 다소의 막연함이 걱정되기도 한다"고 심정을 전했다.그는 "내무부 시절인 1997년 8월 대한항공 801편이 괌 산에 추락했을 당시 사망자 국내 운송지원과 2014년 5월 일산소방서장 시절 발생한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현장 대응, 그리고 사고 후 약 3개월간 이어진 사법기관의 소방업무 관련 고강도 조사로 많은 어려움이 컸다"고 되돌아봤다.서 서장은 소방을 떠나며 "재난사고 현장은 날로 현장대응의 중요성이 강조된다"며 "일정기간 현장지휘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는 지휘관 양성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그는 "소방업무의 수혜대상이 내 가족이란 생각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한다면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적으로 케이 팝(K-pop) 열풍과 한국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 머지않아 소방분야도 전 세계적으로 전파될 시점이 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라"고 강조한다.그는 "지난 33년 반 동안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고자 앞만 보고 달려왔다. 모든 것을 희생하며 늘 함께 해준 가족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이어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란 말이 있다. 시작할 즈음에는 남은 기간을 계산해 긴 기간으로 생각하고 누구나 기간이 정해진 인생이란 것을 잊고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정해진 남은 시간에 얽매이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일과 가정 모두를 다 잘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부부가 모두 일하는 시대이니 변화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러면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행복한 가정을 이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피력했다.서 서장은 퇴임을 기념해 국내·외 사례를 분석해 지휘관이 현장에 맞는 전술을 적용할 수 있도록 고안한 교범인 '소방내전'출판기념회를 직원들과 함께 했다. 이 교범은 서 서장이 현장에서 익힌 신속한 화재진압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해 지난해 9월 TF팀을 만들어 국내 및 해외까지의 화재 사례를 비교한 책이다. 소방차량 부서 방법과 고시원 등 장소별 화재 특징, 화재진압 방안 등 효율적으로 소방차량을 배치하고 신속하게 소방호스를 이용해 현장 접근하는 '한국형 현장대응 전술'을 모두 망라했다.서 서장은 "개인적으로 몇 년 전에 준비해 둔 색소폰이 있다. 그런데 아직 한 번도 불어보지 못했다"며 "시간도 없었거니와 아무 장소에서나 불 수 있는 악기가 아니기에 지금껏 보관만 해오고 있다. 열심히 배워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김환기기자 khk@kyeongin.com 사진/김환기기자 khk@kyeongin.com·고양소방서 제공■ 서은석 서장은?▲ 1960년 2월 3일생 ▲ 목포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1987년 1월 1일 부천소방서 ▲ 1996년 내무부 소방국 구조구급과 ▲ 2006년 7월 경기도제2소방본부 예방홍보담당 ▲ 2010년 7월 경기도제2소방본부 예산장비담당 ▲ 2011년 12월 연천소방서장(지방소방정) ▲ 2013년 6월 일산소방서장 ▲ 2016년 7월 양주소방서장 ▲ 2018년 1월 의정부소방서장 ▲ 2018년 3월 용인소방서장(지방소방준감) ▲ 2019년 7월 제19대 고양소방서장(지방소방준감)서은석 고양소방서장은 "많은 일을 하겠다는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주춧돌 하나 놓는다는 자세로 하나씩 하나씩 이뤄 놓는다면 머지않아 훌륭한 건물이 되고 큰 기틀이 마련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2020-06-16 김환기

[인터뷰… 공감]'부드러운 카리스마' 취임 100일… 박해심 아주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첨단의학연구원 산하조직들 '한우물' 게이츠재단 지원받아 빅데이터 플랫폼 연구 환자 비용부담 줄이고 국가 경쟁력 강화 '소신' 고령화시대 협업모델 '신경' 알레르기 원인중 하나 세계 첫 규명 '본업 충실' "임상 진료 접목 의료의 질 향상""꾸준한 연구만이 강한 병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지난 2월 학교법인 대우학원은 제14대 아주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에 박해심(62) 교수를 선임했다. '천식 분야 세계적 의학자'로 명성을 떨친 박해심 원장은 알레르기 관련 국제 학술 잡지에 400여편 이상 주저자로 논문을 발표하는 등 한국 의료계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이런 박 원장이 지난 8일 원장 취임 100일을 맞았다.지난 4일 아주대의료원장실에서 만난 박 원장은 부드러우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쳐났다. 그의 얼굴에는 당당함이 묻어났고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 속에 의연함이 엿보였다. 의료원장에 임명된 뒤 지난 3개월간 그는 의료원 안팎을 돌아보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특히 주위에선 아주대의료원 최초의 여성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이라고 밝혔지만, 박 원장은 손사래를 치며 "그저 평범한 원장으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했다.박 원장은 3월 부임하자마자 코로나19 확산으로 병원 내 어려움이 많았지만 신념을 갖고 헤쳐나갔다. 그는 "코로나19로 삶이 팍팍해지고 행동반경도 줄었지만,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희생과 의료진의 헌신으로 코로나19 세계 대유행에도 잘 버텨온 것 같다"면서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가야 할 길은 멀다.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하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아주대의료원은 개원 이후 연구분야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1994년 개원 당시 국내 대부분의 병원이 '연구'보다 '환자 진료'에 주력했지만 아주대의료원은 남달랐다. 박 원장은 "당시 미국 등 선진국에선 연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진단법과 치료법, 신약 등을 개발해 고수익을 창출하는 성공적인 사례를 인지하고 있었다"면서 "아주대의료원은 1996년 2월 국내 최초로 의료 원내 의과대학과 동급 기관으로 '의과학연구소'를 개소하는 등 연구개발에 주력했다"고 설명했다.그 결과 아주대의료원은 2015년 BK21+, MRC, SRC 그리고 연구중심병원 등 4개의 대형 국책과제를 동시에 수주해 연구분야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고, 전국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전임교원 1인당 교외연구비 실적이 2016년 2위, 2019년 4위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그럼에도 박 원장은 질적 향상을 꾸준히 주문한다. 그는 "많은 교수님들에게 연구에 더욱 매진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면서 "의학기술의 발전은 많은 연구에서 나온다. 특히 요즘에는 4차 산업의 핵심인 바이오헬스기술을 빅데이터화 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아주대병원은 지난 2013년 4월 보건복지부 지정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됐다. 연구중심병원은 학교가 아닌 병원 내부적으로 지속가능한 연구지원 시스템과 연구 역량을 구비하고 산·학·연과 개방형 융합연구 인프라를 구축해 글로벌 수준의 보건의료 산업화 성과를 창출하고자 마련한 것이다. 아주대병원은 2013년에 최초 선정된 이후 2016년 재지정, 2019년 3차 지정을 받았다.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의료정보학과 박래웅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인 분산형 바이오헬스 빅데이터 사업단장으로 국내 63여개 의료기관의 임상 빅데이터 표준화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2013년 오딧세이(OHDSI, 전세계 200개 이상 기관이 참여하는 비영리 국제 연구 컨소시엄) 창립 멤버로 현재까지 300회 이상의 국내외 강연 및 국제 공동연구에 참여하는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빅데이터 분야 전문가다.박 원장은 "아주대의료원은 지난 2004년 8월 아주대 의대에 국내 최초로 의료정보학교실을 개설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전자의무기록(EMR),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처방전전달시스템(OCS) 등 도입 논의가 시작될 뿐 의료IT 개념조차 생소했었다"면서 "박래웅 교수는 연구원 2~3명으로 시작해 현재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성장했다. 공통데이터모델(CDM)과 관련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 설명했다.특히 아주대의료원은 올해 3월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과 국제 공동 연구협약을 맺고 연구비를 지원받아 대구·경북지역 소재 2개 종합병원의 코로나19 임상검사 데이터를 공통데이터모델 기반 의료빅데이터 플랫폼을 제공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아주대의료원은 이러한 연구분야를 체계적이고 효율적 지원을 위해 2015년 기구조직에 부속병원, 의과대학·간호대학 등과 더불어 '첨단의학연구원'을 신설했다. 박 원장은 "'연구분야'의 중요성에 걸맞게 연구센터와 연구단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초, 임상연구 및 중개연구를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독립된 연구 전담기관이 필요했기 때문에 신설된 것"이라며 "현재 첨단의학연구원 산하에 14개의 연구센터, 9개의 임상과학융합연구단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초와 임상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아주대의료원의 연구비 수주액은 2010년 284억원에서 2019년 520억원으로, 창업실적은 같은 기간 0건에서 11건으로, MOU 실적은 1건에서 16건으로, 특허출원은 39건에서 114건으로, 기술이전 계약 실적은 3건에서 10여 건으로 늘었다. 또 SCI급 연구논문은 332건에서 548건으로 증가했다. 박 원장은 알레르기 분야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의료원장을 맡은 뒤 1주 진료를 3회에서 2회로 줄이면서 일부 환자들을 제자들에게 맡겼다. 박 원장은 환자뿐 아니라 전국의 의사들로부터도 신뢰를 받는 학자다. 세계 학회에서 인정받기도 하지만 큰 학회뿐 아니라 작은 간담회에 초청받아 강연할 때에도 전력을 다해서 준비하는 철저함 때문이다.박 원장은 "진료와 연구가 좋아서 열심히 했을 뿐인데 다행히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고 이를 국내·외에서 인정해 주는 것 같다"며 "임상진료 결과를 연구로 이어가고 그 연구를 다시 임상에 접목하는 과정을 통해 의료의 질 향상을 이뤄왔다"고 말했다. 사실 박 원장은 난치성 천식의 조기 진단법, 생체지표 및 조기진단법 개발, 면역조절제 개발 등의 우수한 연구성과를 발표했고 아스피린, 항생제 등 약물 알레르기와 직업성 천식에 대한 주요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또 환삼덩굴 꽃가루가 천식 및 알레르기 비염의 중요한 원인임을 세계 최초로 밝혀내고 면역치료제를 개발했다.아주대의료원은 해외교류 및 봉사활동에도 집중하고 있다. 박 원장은 "2006년 중국 용정시 인민병원과의 교류를 시작으로 중국·베트남·카자흐스탄·일본·러시아 5개국 35개 기관과 국제협약을 체결하고 있다"면서 "특히 2019년에는 중국 하얼빈시 지야윤병원으로부터 아주대학교병원의 브랜드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사용료를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아주대의료원은 개원초부터 소외당하고 의료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해 왔다. 지난 2004년 의료원 10주년을 맞아 '의료봉사활동'을 '사회공헌활동'으로 전환해 봉사 대상과 범위를 더욱 넓혔다"며 "코로나19로 인해 현재 잠시 중단하고 있지만 아주대의료원 봉사동아리는 매월 1회 외국인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신우회는 이주민 근로자를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박 원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ICT가 의학분야에서도 큰 화두가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빅데이터, 모바일, 웨어러블 분야 등이 크게 발전해 왔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ICT와의 융합 의료기술 개발의 급속한 발전과 변화가 예상된다"며 "대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활성화되면서 입원기간을 최대한 줄이고, 병원에서 환자들을 효율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이전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새로운 의료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고령화 사회 대비 항노화, 재생, 재활 등의 의료기술의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올해 1월엔 아주대학교 요양병원이 문을 열었다. 아주대병원은 급성 중증 환자를 치료하고, 아주대학교 요양병원은 아급성기 중증환자의 전문재활치료를 시행 후 지역사회 요양병원으로 전환해 만성케어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고령화 시대의 이상적인 협업 모델을 새롭게 구축할 것"이라고 피력했다.박 원장은 "아주대의료원은 이제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질적 성장에 집중하는 것"이라며 "진료의 질적 향상을 통해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 시스템의 재정비로 환자에게 보다 편안한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연구가 국가 보건의료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고 병원의 주 수입원이 되는 세계 최고의 병원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메이오클리닉이나 존스홉킨스병원처럼 아주대의료원도 연구를 통한 질적 성장을 통해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하고자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 개선, 의료비 비용 절감 등 실질적으로 환자가 혜택을 받고 지역사회 및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박해심 원장은?▲1958년 출생 ▲연세대 의대 졸업·석사·박사, 영국 사우스햄프턴 대학 박사 후 연구원 ▲연세의대 알레르기내과 연구 ▲아주의대 알레르기 내과 주임교수 ▲아주대의료원 연구지원실장·첨단의학연구원장 ▲EBS 알레르기 명의로 선정 ▲아주대학병원 '천식 및 알레르기' 임상 융합연구단장 ▲세계알레르기학회 학술위원장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회장취임 100일을 맞은 박해심 아주대학교 의료원장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덕분에 챌린지' 응원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2020-06-09 신창윤

[인터뷰… 공감]'오랜 경험과 첨단 의술로 성장' 40년 맞은 이춘택병원 윤성환 원장

초정밀수술 1만4천회 '세계 최다' 업그레이드된 로봇 상용화 '허가' 앞둬모든 입원실에 보호자 없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도입 '코로나 원천 봉쇄'20년 연구 내공 바탕 국내외 학회 논문활동… 무료시술 지원 사회공헌도"건강한 관절을 책임지는 가족같은 병원이 되겠습니다."수원뿐만 아니라 경기도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정형외과 전문 병원인 이춘택병원. 1981년 개원 이래 국내 최초로 초정밀 로봇 인공관절 수술을 도입하는 등 도민의 관절 건강을 40년 가까이 지켜오고 있다. 이런 이춘택병원이 40년을 맞아 새로운 도약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윤성환 병원장이 있다.지난 1일 이춘택병원 진료실에서 만난 윤 병원장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도민들에게 건강과 희망, 용기를 주기 위해 늘 미소를 달고 산다. 그는 "1981년 7월 개원 이래 이춘택병원이 경기도민과 수원시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아왔다"면서 "가족 같은 마음과 친절한 의료 서비스로 계속 정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이춘택병원은 초정밀 로봇 인공관절 수술을 도입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로봇수술 건수를 자랑한다. 2005년 의료 업계 최초로 '로봇관절연구소'를 설립해 국산화 초정밀 로봇 인공관절 수술의 기반을 다졌다. 윤 병원장은 "로봇 기술은 첨단 산업과 의술의 접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수술 전 컴퓨터단층촬영(CT)을 통한 3차원 입체영상을 컴퓨터에 제공한 뒤 환자의 뼈 모양과 상태를 고려한 최적의 절골위치, 교정각 등을 찾아 수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임플란트 크기와 위치각도 방향에 맞도록 로봇팔이 오차 없이 정확하게 뼈를 깎은 후 인공 관절을 삽입하게 된다"고 덧붙였다.이춘택병원은 현재 업그레이드된 초정밀 로봇의 상용화를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앞두고 있다. 임상 시험을 통해 이미 입증된 로봇 기술을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윤 병원장은 "현재 1만4천여 차례 로봇인공관절 수술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술을 한 것도 중요하지만, 수술 케이스에 대한 임상 데이터를 모두 갖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이춘택병원은 올해 코로나19 여파에도 병실을 개조해 5~7층 모든 입원실에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실현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중요한 사안이 됐다.윤 병원장은 "5월부터 보호자가 없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모든 층으로 확대 실시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보호자 없는 병실이 외부의 감염원 유입을 최대한 줄여 환자 안전을 지키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결정하게 됐다"며 "앞으로 감염관리실의 역할을 강화해 신종 감염병에 대한 대응시스템을 잘 갖춰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춘택병원은 정형외과를 세분화해 최적화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형외과에는 ▲척추관절센터 ▲스포츠 외상 및 관절경 센터 ▲로봇인공관절 수술 및 골절센터 등을 운영한다. 이춘택병원이 진료를 세분화하게 된 이유는 최근 다양한 유형의 관절 손상 인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교통사고 및 낙상 환자 등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젊은 층에서 스포츠 활동을 통한 관절 손상 환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이런 이유로 이춘택병원은 10명의 정형외과 전문의가 항시 진료를 대기한다. 윤 병원장은 "우리 병원은 분야별로 심도 있는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전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며 "로봇인공관절 센터 및 골절센터는 로봇을 이용한 인공관절 수술 분야와 고관절 인공관절 수술, 인공관절 재치환술, 골절, 골다공증 등에 대한 진료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또 "스포츠 외상 및 관절경센터는 스포츠와 레저활동의 증가로 외상으로 인한 관절 손상 인구가 증가해 전문 진료를 하고 있다"며 "세부적으로 어깨나 팔꿈치, 무릎, 발목관절 질환과 무지외반증 등 족부 질환도 진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 병원장은 "척추관절센터의 경우 목, 허리통증, 디스크나 척추 협착증 등 척추 질환에 대한 수술적, 비수술적 치료를 시행한다"면서도 "이외에도 내과중점센터 소화기 질환에 대한 내시경적 치료 및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대사성 질환을 전문 진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이춘택병원은 매년 꾸준하게 국내·외 학회에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미국 정형외과학회에 연구 자료가 채택돼 발표되기도 했다. 또 컴퓨터 수술학회는 대한정형외과 학회뿐 아니라 아시아, 세계적인 학회에서도 활발하게 연구논문을 발표한다. 윤 병원장은 "컴퓨터 수술학회는 컴퓨터와 로봇을 이용한 정형외과 수술 분야의 학회로 IT 강국인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로봇을 대표하는 병원으로 지난 20여년 간의 연구 성과에 대해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다"고 밝혔다.이춘택병원은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하다. 윤 병원장은 "2005년 8월부터 전국의 저소득층을 위해 인공관절 무료시술을 지원해 현재 599명에 혜택을 드렸다. 병원과 지자체, 삼성전기와 협약해 전국의 의료급여 1종 대상자 중 인공관절 수술이 필요한 분들께 무료로 수술을 해드리고 있다"고 피력했다. 또 "노인의료나눔재단 공식후원병원으로 저소득층 노인분들께 무료 인공관절 수술을 지원하며 다양한 사회공헌사업을 통해 건강한 삶을 찾아드리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 병원장은 도내에서 유일하게 '3회 연속 관절전문병원'과 '2회 연속 의료기관 인증' 등 국내 다른 전문병원과의 차별성에 대해 "81년 개원해서 이만큼 성장했는데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것이 가장 큰 차별성이자 장점일 것"이라면서 "그런 의미에서 병원은 실력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한다. 연륜의 깊이만큼 치료에 대한 경험이 풍부해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다. 아프면 바로 이춘택병원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3대째 찾아주시는 환자분들이 많은 만큼 늘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일하겠다"고 밝혔다.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이춘택병원 제공■ 윤성환 원장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석사▲ 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전 원주의료원 정형외과 과장▲ 이화의대 한국인공관절 센터 전임의 수료▲ 세계 최초 로봇 무릎 인공관절 반치환술 성공▲ 로봇 인공관절 수술 1만 차례 돌파▲ 세계 최초 로봇 이용한 휜다리 교정술 성공▲ 제2대 의료법인 장산의료재단 이춘택병원 병원장 취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분석심사 선도사업 전문심사위원윤성환 이춘택병원장이 무릎 관절에 대해 설명하면서 "아프면 바로 '이춘택병원'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3대째 찾아주시는 환자분을 위해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윤성환 병원장이 초정밀 로봇 인공관절 수술을 하고 있다.

2020-06-02 신창윤

[인터뷰… 공감]"후회 없는, 행복한 정치인" 은퇴 선언한 문희상 국회의장

# 선거·사법개혁 마찰… 21대의 길은시대정신은 못 거슬러 승복하는게 맞아삼권분립 확립·입법 중점 '국회가 할일'# 지역 연고 약한 인사들 득세지역 대표성 고려 비중 50%이상 돼야정당 '낙점' 선거운동 필요 없어질 수도# 고개 숙인 보수 향한 조언극단으로 치달으면 국민 지지 받지못해한땐 자유 수호 왕보수… 평등과 조화를"이제 제가 나고 자라서 뼈를 묻을 고향, 의정부로 돌아갈 시간입니다."경기도를 넘어 대한민국 정치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문희상 국회의장이 29일을 끝으로 국회를 떠난다. 2년 전 '민생을 꽃피우는 국회의 계절'을 강조하며 의장직에 올랐던 그가 정치를 떠나 고향으로 향하려 한다. 문 의장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단했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이라며 "텃밭 10평과 꽃밭 10평이 꾸려진 40평짜리 단층집, 햇볕 드는 집에서 노후를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평생을 '정치'라는 길 위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문 의장. 새로운 인생의 출발은 언제나 그랬듯, 의정부에서 시작한다.고향 '의정부'는 그가 실의에 빠져있을 때마다 따스한 손을 내밀어 준 곳이다. 6선의 국회의원에 오르기까지 두 번의 낙선과 수많은 위기의 순간이 있었지만, 시민들의 변함없는 사랑의 손길은 그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이는 제1~2대 국회의장을 지낸 신익희(1948~1954) 의장 이후 무려 70여년만에 경기도 출신 민주진영 국회의장을 배출한 원동력이 됐다.그가 스스로의 정치 인생을 '후회 없는, 행복한 정치인'이었다고 단언하는 이유다.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과 함께 정계 은퇴를 선언한 문 의장을 만나 경기도 정치와 언론이 나아갈 방향 등을 들어봤다.-국회는 지난해 선거제도·사법개혁을 놓고 극심한 마찰을 빚었다. 20대 국회에 대한 평가와 21대 국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시대정신이라는 건 도도하게 흘러서 아무도 거스를 수 없다. 결국은 다 승복하게 돼 있다. 이미 겪은 파도는 이유가 있어서 오지 쓸데 없이 오지 않는다. 그 또한 방향이다.21대 국회라고 해서 특별한 사명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기본, 의회주의의 기본을 생각할 때다. 의회주의를 떠나서 다른 것을 하면 안된다는 뜻이다.특히 거리에 올라서 시위하고, 이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수십 년에 한번 오는 혁명적 상황, 즉 국민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제도가 썩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하는 행위다. 이런 가두 민주주의는 이미 역사의 저 편에 있다. 20대 국회에서 (보수 야당이) 그걸 써먹으니까 4·15 총선에서 심판받은 것이다. 국민은 냉정하다. 입법을 하지 않는 국회가, 일하지 않는 국회가 어떻게 국민에게 신뢰받겠나. 맨날 싸움만 하다가, 오히려 저쪽에서 (입법)한 거니까 안하겠다고 하는 이런 구조 속에서는 아무 것도 안된다. 삼권분립을 지키면서 입법에 중점을 두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국회가 할 일이다."-지난 총선 공천은 지역 연고가 약한 인사들이 많다는 아쉬움을 남겼는데."(공천은)기능적, 분야별로 입법을 하는 국가적 기능에만 치우치기 보다는 지역 대표성도 상당히 고려돼야 한다. 그 비중이 50% 이상 돼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하면 어느 당을 찍을지 이미 정하게 되고, 선거운동도 필요가 없어진다. 이게 통신이나 SNS 등의 확산으로 새 풍속이 생긴 건지, 아니면 시대의 사조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선거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이게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는 더 두고 봐야겠고, 전문가들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선배 정치인으로서 총선에서 패배한 보수에 대해 애정 어린 충고를 한다면. "(총선에서)보수가 죽은 것 같지만, 나는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수는 어느 시대에서건 30%의 지지율을 가져갔다. 보수가 죽은 게 아니라 보수를 지탱하는 세력이 지리멸렬한 것이다. 보수는 지금 정신 차려야 다시 일어설 수 있고 그 에너지는 수도권에서 얻어야 한다고 본다. 수도권은 아무래도 30% 보수, 30% 진보가 확실하다. 40%의 중도가 판단해서 보수 편을 들면 보수가 집권하는 것이다. 극단적이어서는 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보수는 이번을 전화위복으로 삼아 일어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지도부들이 희생하고, 의회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보수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세상을 가치로 크게 나누면 두 가지다. 하나는 자유로, 이를 최고로 발현하는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세상이다. 그게 보수라면 나는 왕 보수다. 애초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려고 정치를 시작했다. 그때는 가장 기본적인 비판의 자유가 억압받고, 권위주의와 군부독재가 판쳤다. 당시 야당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그러나 가장 빠른 시간에 근대화된 것도, 민주화된 것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 속에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골고루 잘사는 세상에 대한 꿈도 커졌다. 이게 평등이고, 이게 진보라면 나는 또 왕 진보다. 골고루 잘사는 세상,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이상은 누구든지 있다.정치는 이 둘을 조화해야 한다. 두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동물정치가 된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발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죽기 살기로 덤비고, 국회는 그 현장이 된다. 그리되면 모두가 폭삭 망한다. 여당이 과반 석을 이뤘다고 희희낙락 하다간 둘 다 망한다는 게 바로 그 얘기다."-경기도의 정치와 언론의 역할론에 대한 생각은."기본적으로 모든 동물은 귀소 본능이 있고, 자기가 자라고 나서 거기에 사는 것에 대한 애착이 있다. 지역주의는 안되지만, 애향심은 돋보여야 한다. 애향심이 없는 사람은 애국심이 없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지역주의는 자기네만 다 해먹겠다는 거다. 이른바 계파 패권주의로, 이건 안될 일이다. 그래서 평생에 걸쳐 반대해 왔다.그러나 제 몫도 못 찾는 지역의 대표라면 그것은 할 일을 안 하는 거다. 그것을 누가 해주길 기다리면 안되고, 주체적으로 키워야 한다. 문제를 크게 보고, 수도권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발상 자체가 수도권 중심주의다. 베이징, 런던, 워싱턴 등 다 수도권을 재개발해서 지식이 집적된 게 수도권에 많은 것이다. 물류비용도 훨씬 적게 들고, 국가 경쟁력을 생각해서 다른 나라와 싸워 이기려면 수도권의 자원을 100% 활용하는 쪽으로 해야 국가가 발전하는 것이다. 전 세계가 그렇게 돼 가고 있다.지역신문의 역할도 크다. 글(기사)을 쓸 때, 애향심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경기도 출신 의원들, 여야 가릴 것 없이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게 기본에 깔려야 비판을 해도 의미가 있다."대담/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 jej@kyeongin.com 글·사진/이성철·김연태기자 kyt@kyeongin.com■ 문희상 의장은?▲ 1945년 경기도 의정부시 출생▲ 14·16·17·18·19·20대 국회의원▲ 2003년 2월 ~ 2004년 2월 제26대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2008년 7월 ~ 2010년 5월 제18대 국회 부의장▲ 2014년 9월 ~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2018년 7월 ~ 현재 제20대 국회 후반기 의장문희상 국회의장이 최근 경인일보와의 간담회를 통해 막 내리는 20대 국회와 새로 시작하는 21대 국회에 앞서, 후배 정치인에 대한 당부와 지역 언론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문희상 의장과의 간담회에는 배상록 경인일보 대표이사 사장과 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 이기우 국회의장 비서실장, 한민수 국회 대변인 등이 배석했다.

2020-05-26 이성철·김연태

[인터뷰… 공감]'고졸데뷔 2연속 선발승' 계보 잇는 kt 소형준

명투수 따라하며 '폼 완성'… 황금사자기·청룡기·한일전 '승리 주역'선배 김민 첫 등판경기 긴장감 풀어줘… 타자들 약점 투심으로 공략"매회가 결승전" 18세 배짱投… 조심스럽게 신인왕 욕심 드러내기도'KBO리그에 대형 투수가 등장했다. 요즘 프로야구에 이런 투수가 있었다니'.최근 프로야구 KBO리그 중계를 본 팬들의 반응이다. 국내 프로야구 KBO리그가 코로나19로 뒤늦게 개막했다. 물론 미국 메이저리그나 일본 리그보다 먼저 개막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그래도 각 팀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은 제 역할을 해내며 팀 승리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선수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선수가 있다. 주인공은 바로 수원 kt wiz의 새내기 투수 소형준이다.그는 2001년 9월 16일생으로 현재 만 18세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쟁쟁한 실력을 갖춘 프로 세계에서 시즌 초반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 현재 두 차례 선발 등판했는데 벌써 소형준의 기록이 한국 야구사에 기념비적으로 남고 있다.소형준은 지난 8일 생애 첫 선발 등판한 프로 데뷔전에서 첫 승을 거뒀다. 그것도 명문구단 두산 베어스 타자들을 상대로 거둔 값진 승리였다. 당시 소형준은 5이닝 동안 5피안타 2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막았다. 최고 시속 151㎞의 직구와 140㎞대 투심패스트볼, 120㎞대까지 구속을 낮춘 커브 등이 절묘하게 섞이면서 KBO리그 최정상급 두산 타선을 요리했다. 게다가 개막 3연전에서 롯데 자이언츠에 모두 패했던 kt에게 시즌 첫 승을 안기기도 했다.소형준의 활약은 KBO리그에도 의미 있는 기록을 만들었다. 소형준은 김태형(롯데·1991년), 김진우(KIA 타이거즈·2002년), 류현진(한화 이글스·2006년), 임지섭(LG 트윈스·2014년), 하영민(넥센 히어로즈·2014년), 양창섭(삼성 라이온즈·2018년), 김민(kt·2018년)에 이어 8번째로 데뷔전에서 선발승을 거둔 고졸 신인 투수가 됐다. 게다가 kt는 KBO리그 최초로 김민에 이어 개막전 선발승을 챙긴 고졸 신인 2명을 배출하기도 했다.소형준은 선발 첫 출전에 대해 "선발을 앞두고 긴장감보다 걱정이 더 밀려왔다. 과연 '내 공이 프로에서 통할까'라는 의심을 계속했다"면서도 "1회에는 직구 제구가 되지 않아 걱정했는데 (1회 오재일, 김재환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실점한 뒤에 마음을 비우고 던진 것이 좋은 비결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프로 무대 첫 선발승이 이렇게 의미가 있는 줄은 몰랐다"면서도 "제 앞에 기록을 세운 선배가 김민 형으로 알고 있다. '긴장하지 말고 네 공만 던지고 오라. 긴장하지 말라'고 말해줬다"고 당시 승리의 소회를 전했다. 아마추어와 프로 무대에서의 다른 점에 대해 소형준은 "두 경기를 했지만 프로는 다른 점이 많다. 대다수 타자들이 실투를 놓치지 않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던져야 했다"며 "현재는 포수 선배들이 많이 도와주지만 타자에 대한 공부도 더 많이 해야 한다. 초반 초구 스트라이크 비중을 높여 불리한 카운트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등 상대 팀에 대한 파악도 더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새내기 소형준의 거침없는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역대 4번째로 데뷔전 이래 2연속 선발승을 거둔 투수가 된 것이다.그는 지난 15일 두 번째 선발 등판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6과3분의1이닝 동안 5실점(2자책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이날은 소형준의 데뷔 첫 퀄리티스타트였다. 무엇보다도 소형준은 김진우(2002년), 류현진(2006년)에 이어 데뷔전 포함 2연속 선발승을 거둔 역대 3번째 고졸 신인의 주인공도 됐다.그는 류현진과 비교하자 "류현진 선배님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류현진 선배님이 신인 때 자신 있게 던졌듯 나도 그렇게 던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주위에서 너무 높게 평가해주시는 것 같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지만 부담감도 있다. 그러나 기대에 걸맞은 성장을 보여드리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소형준은 떡잎부터 남달랐다.5세 때 아버지 소철영 씨와 함께 캐치볼을 하며 야구를 접한 그는 의정부 리틀야구단에 들어간 뒤 구리 인창중을 거쳐 수원 유신고 최우수 선수로 급성장했다. 소형준의 장점은 타고난 승부 근성과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긍정적인 마인드다. 야구를 하면서 늘 배우는 것을 좋아했고 특히 유명한 투수들의 구질을 따라 하면서 변화구와 직구의 스피드를 끌어올리기도 했다.특히 소형준은 지난해 유신고 시절 황금사자기에 이어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까지 창단 후 최초로 2개 대회 우승을 석권한 주역이었다. 1년간 2개 대회를 모두 석권한 고교는 지난 2016년 서울 덕수고와 유신고가 유일하다.또 소형준은 지난해 한국 청소년 야구 대표팀 시절 '숙적' 일본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동메달을 따내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당시 소형준은 6회까지 일본 타선을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등 6과3분의2이닝동안 7피안타 2실점 호투로 에이스 칭호에 걸맞은 피칭을 했다.소형준의 무기는 정확한 제구력과 다양한 구질이다. 직구를 비롯 투심패스트볼,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 등 다양한 구질의 공을 던진다. 직구와 커브의 속도 차이도 커서 타자들이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그는 "연패 중에 선발 등판해 승리를 거뒀다. 선배들이 편하게 하라고 말씀해주셔서 부담 없이 임했고,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서 "타자들이 가장 어려워한다는 느낌을 받아 투심을 많이 던지게 됐다"고 강조했다.소형준은 신인왕 목표에 대해 "당연히 신인이라면 신인왕을 하고 싶긴 하다. 하지만 신인왕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닌 만큼 매 경기 부상당하지 말고 노력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고 힘주어 말했다.올해 승수 목표에 대해 그는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렵겠지만 10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상대 타선에 대한 연구를 더 철저히 하고 매회 결승전이라는 생각으로 던져 반드시 목표를 이루겠다"고 덧붙였다.소형준은 KBO리그 역대 개인 통산 다승 3위(152승)에 오른 이강철 kt 감독이 일찌감치 선발로 내정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갖췄다. 이 감독은 "삼진을 잡을 수 있는 결정구만 하나 만들면 정말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다"면서 "내가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신력이 좋은 선수"라고 칭찬했다.이 감독도 해태 타이거즈 대졸 신인이던 1989년 4월 13일 광주 삼성전에 선발 등판해 승리를 챙겼다. 31년 전 기록이, 제자 소형준 덕에 2020년 5월에 회자했다.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경인일보DB·kt wiz 제공수원 kt wiz의 새내기 투수 소형준은 올해 두 차례 선발 투수로 등판해 2연속 선발승을 거두는 등 맹활약 하고 있다.유신고 재학 시절 황금사자기 MVP에 선정된 소형준.

2020-05-19 신창윤

[인터뷰… 공감]'이순신을 찾아서' 펴낸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

단재는 중세 벗어나 '임금 아닌 국가에 충성' 근대적 영웅상으로 소환조카 이분 이충무공행록이 '최초 위인전기'… 박태원의 역주로 빛 보게 돼신분 아닌 재능·노력으로 일어서… 코로나·남북문제 등 '주체 역할 메시지'역사 속 영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본디 모습은 사라지고 왜곡된 채 위정자들의 통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과 의미가 더해지거나 감해져 시대가 원하는 전혀 다른 인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우리나라 위인의 표본으로 꼽히는 이순신(李舜臣·1545~1598)도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에는 국민국가 건설의 영웅으로 들어 올려져 박정희 독재 정권의 명분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민족 해방의 상징으로 소환되기도 했다.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위인으로 꼽히는 이순신. 과연 우리가 아는 이순신의 모습은 참일까 거짓일까. 국내 근·현대문학 분야의 석학으로 평가받는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최근 '이순신을 찾아서'를 펴냈다. 이 책은 중세의 영웅 이순신을 처음으로 근대로 불러들여 국민적 영웅으로 해석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1936)의 '수군제일위인 이순신(水軍第一偉人 李舜臣·1908)'과 구보(丘甫) 박태원(朴泰遠·1909~1986)이 번역하고 주를 단 '이충무공행록(李忠武公行錄·1948)'을 중심으로, 이광수에서 김훈까지 이순신을 다룬 작가들의 소설에 관한 짧은 논평을 달았다.지난 11일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는 최원식 교수의 연구실인 '동이서옥(同異書屋)'에서 그를 만났다. 2015년 퇴직 후 개인 연구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동이서옥을 최원식 교수는 자신의 '놀이터'라고 소개했다. 최원식 교수는 조선후기 실학자 안정복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제도·유교경전 등에 관하여 수록한 책인 '잡동산이(雜同散異)'의 동 자와 이 자를 따서 연구실 이름인 동이서옥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연구실 이름대로 근·현대 문학이 그의 전공 분야지만 최 교수는 그 경계를 넘나들며 왕성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최원식 교수는 "2017년부터 이순신에 대한 본격적인 집필 작업을 시작했는데 국한문혼용체로 된 단재의 이순신(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역주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 눈을 다칠 정도였다"며 "독자들이 제 글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우리가 모르고 있던 이순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원식 교수와의 일문일답.■ 중세에 갇혀 있던 이순신을 근대로 소환한 단재의 이순신(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이 주는 의미단재가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세상에 내놓기 전까지 이순신의 충(忠)은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하는 중세적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중세의 이순신을 근대로 소환한 게 바로 단재다. 단재는 임금이 아닌 국가와 백성에게 충성하는 근대적 '영웅'의 상을 이순신에게서 끄집어냈다. 이순신을 국민적 영웅으로 만든 것인데 단재의 작품은 이후로 이어지는 충무공 숭배의 원점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재가 대한매일신보에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연재한 시기가 1908년이다. 국권이 풍전등화에 달린 시기에 단재는 이 책을 통해 백성 하나하나가 '제2의 이순신'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충무를 불세출의 영웅으로 기리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영웅이 돼 국난을 이겨내는 것, 국민 영웅을 대망한 것이다. 중세에 갇혀 있던 이순신이 단재에 의해 근대의 이순신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 근대 이순신 위인 전기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구보의 이순신(이충무공행록)은 어떤가구보 박태원은 단재 이후 최고의 이순신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구보는 해방 직후부터 이순신전을 여러 번 연재했는데 1948년 서울에서 출판한 이충무공행록이 의미가 크다. 이 책은 이순신의 조카 이분(李芬·1566~1619년)이 지은 행록(行錄)을 번역하고 주석을 단 것이다. 이분의 행록은 이순신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위인전기다. 이후 모든 이순신전의 시초라 할 수 있는데 구보의 이충무공행록은 번역 문장과 주석이 모두 훌륭하다. 구보의 번역 이후로도 이분의 행록은 여러 번역본이 나왔지만 구보를 넘는 본을 보지 못했다. 이순신 최초의 위인전을 근대의 전으로 빛을 보게 한 이가 바로 구보 박태원이 역주한 이충무공행록이라 할 수 있다.■ 국난 위기 속에서 이순신을 호출하는 이유는단재의 이순신이 1908년, 구보의 이순신은 1948년 세상에 나왔다. 1908년은 국권이 일본으로 넘어가기 직전이다. 1948년 해방 공간은 분단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한반도를 덮치는 어수선한 시기였다. 모두 국난의 시기로 볼 수 있다. 이런 시기에 이순신이 공통적으로 호출됐다. 이순신은 일생이 완벽한 사람이다. 처음부터 출세의 길을 걸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사람이다. 근대적 시각에서 보면 신분이 아니라 재능과 노력으로 일어선 인물이다. 또 이순신은 백성과 함께 7년 전쟁(임진왜란)을 이긴 영웅이기도 하다. 좌수영 안에서 백성들과 밥과 술을 같이 먹으며 해전에 있어 중요한 물길, 물때 등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고 한다. 결국 국난은 백성들이 힘을 합쳐 이겨내야 한다. 어느 개인이 나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백성 모두가 영웅이 돼야 한다. 이런 근대적 시각에서 볼 때 이순신을 통해 전할 수 있는 메시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시점에서도 코로나19와 같은 당면한 위기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남북 화해의 과제도 결국 국민들이 주체가 돼 해결해야 하는 문제 아닌가.■ '이순신을 찾아서'가 독자들에게 주는 의미는이순신의 본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단재의 이순신과 구보의 이순신은 그 의미가 큰데도 그동안 망각돼 왔던 게 사실이다. 단재는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연재한 후 망명했고, 구보의 경우 이충무공행록을 펴낸 후 월북한다. 그동안 제대로 된 조명 작업이 이뤄지지 못했던 이유다. 이들의 빈자리를 춘원 이광수의 '이순신'이나 노산 이은상의 '성웅 이순신' 등과 같은 왜곡된 이미지의 이순신이 차지하게 된다. 이 중에서도 노산 이은상의 이순신은 박정희 개발 독재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동상이 세워진 것도 바로 이때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이순신을 찾아서 떠나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으면 한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이순신이 아닌, 이순신의 본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 글/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최원식 교수는?1949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와 영남대를 거쳐 1982년 인하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2015년 퇴임했다. 현재는 인하대 명예교수로 있다.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으로 등단하여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민족문학사연구소 공동대표, 인천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저서로 민족문학의 논리, 문학의 귀환, 문학과 진보, 한국근대문학사론,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등이 있다. 대산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등을 수상했다.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인 동이서옥에서 최근 펴낸 '이순신을 찾아서'를 설명하고 있다.

2020-05-12 김명호

[인터뷰… 공감]'이순신을 찾아서' 펴낸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

근·현대 문학평론계 최고 권위자"충무공 본 모습 찬찬히 살펴보길"이순신(李舜臣·1545~1598)이 나라와 백성에 충성한 국민적 영웅으로 숭배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근대 이전의 이순신은 임금에게 충성하는 신하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러한 이순신을 민족의 영웅으로 근대적 시각에서 처음 호출한 이가 바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1936)다. 한국 근·현대 문학 평론계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단재의 이순신론을 다시 밝혀낸 '이순신을 찾아서'를 펴냈다.인천 출신으로 한국 근·현대 문학 비평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최원식 교수가 단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단재의 '조선혁명선언'을 읽은 후부터다. 1974년이다. 50년이 다 되어간다.최원식 교수는 이 책을 읽고 단재에 감전되었다고 표현한다. 그는 또 그때 국문학도로서 단재 연구에 일각의 기여라도 하겠다는 일념을 세웠다. 그가 애국계몽기 단재 저작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수군제일위인 이순신(水軍第一偉人 李舜臣·1908)'을 역주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때다.'이순신을 찾아서'는 중세의 영웅 이순신을 처음으로 근대로 불러들여 국민적 영웅으로 해석한 단재 신채호의 '수군제일위인 이순신'과 구보(丘甫) 박태원(朴泰遠·1909~1986)이 번역하고 주를 단 '이충무공행록(李忠武公行錄·1948)'을 중심으로, 이광수에서 김훈까지 이순신을 다룬 작가들의 소설에 관한 짧은 논평을 달았다.이와 함께 최 교수는 단재의 '수군제일위인 이순신' 이후 다른 책들을 검토해 이순신 이야기의 변모를 통시적(通時的)으로 살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1928~1939), 환산 이윤재의 '성웅 이순신'(1931), 춘원 이광수의 '이순신'(1931~1932), 노산 이은상의 '성웅 이순신'(1969), 김지하의 '구리 이순신'(1971), 김훈의 '칼의 노래'(2001) 등 9편의 작품을 출간 시기를 기준으로 다뤘다.특히 최원식 교수는 그간 제대로 된 원전 비평을 거치지 못했던 단재 신채호의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국내 최초로 제대로 역주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한매일신보에 국한문혼용체로 연재됐던 단재의 이순신 원문을 번역하는 데 수년을 할애했다. 최원식 교수의 손에서 단재 이순신의 정본이 나온 셈이다. 최원식 교수는 "중세에 갇혀 있던 이순신을 근대로 소환한 최초의 작품이 단재의 이순신"이라며 "그동안 이 작품이 망각돼 빛을 보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독자들이 이순신의 본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인 동이서옥에서 최근 펴낸 '이순신 찾아서'를 설명하고 있다.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2020-05-12 김명호

[인터뷰… 공감]'그알'선 범죄분석, 대학선 취업 조력… 이수정 경기대 교수

코로나 '집콕생활' 신고 원천봉쇄… 프랑스는 약국서 도움 요청양형 감경사유 '수학공식 대입'… 파괴된 삶 응보적 목적 달성못해성착취영상 삭제 아낌없는 국가 지원·피해자 신변보호 입법 필요오랜 대학원 운영 '취업 책임감' 일자리센터장·인재개발처장 맡아공중파 시사프로그램에 거의 매주 빠지지 않고 출연해 '그알 교수님'이라는 애칭이 붙은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양학부(범죄심리학) 교수.진지한 표정으로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짚은 이 교수는 최근 그간의 행보와 관련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경기대 인재개발처장에 부임했다.이 교수를 석사학위 지도교수로 모신 경기남부권 경찰관들 사이에선 이미 이 교수가 대학일자리센터장으로서 학생들의 취업을 돕는 일을 해 가정과 지역, 사회의 행복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와 대한민국에 충격을 안긴 텔레그램 성착취 영상물 거래·공유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도 가정의 달인 5월이 왔다. 그알 교수님의 그것이 알고 싶다. 이 교수에게 코로나19 전후의 가정폭력범죄, n번방 사건 전후의 디지털 성범죄와 여성들의 삶, 학생 취업 전선에 뛰어든 사연을 들었다.- 가정의 달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강력·폭력 사건이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가정 내에 머무르고 있다. 경찰청은 최근 가정폭력 신고가 줄었다고 발표하며 좋은 성과로 내세웠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가정폭력이 심화되고 있다.신고를 할 수 있는 경로를 다양하게 열자는 게 전 세계적인 추세다. 외국은 가정폭력이 증가할 것을 대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가정폭력은 반의사불벌죄라서 존속폭행을 당하는 경우에도 부모가 의지가 없으면 사건화가 안 되고 배우자에 의한 폭행도 피해자가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생각이 있으면 사건화가 안 된다. 가정 내에서의 피해자는 보호 받기가 어려운 방식이다.코로나로 인해 가정폭력은 심화됐는데, 집 바깥에 나가지를 못하니까 신고의 절차가 원천봉쇄된다. 극단적인 결말을 초래하는 사건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정 내 폭력을 묵히지 않고 제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신고 절차를 보장해야 한다.프랑스는 약국에 마스크를 사러 갈 때에 약사를 통해서 가정폭력 신고를 할 수 있는 경로를 열어놓았다. 이처럼 극단적 통로를 마련하지 않는 이상 가정폭력 사건은 발굴되기보다 은폐될 가능성이 높다."- 여성들에게 n번방 사건 전후의 삶이 같을 수 없다. 사회가 피해자들을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조두순 사건 전후로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다. 특히 아동성폭력을 바라보는 사회적 관점이 180도 뒤집혔다. 그러나 오프라인 성범죄에 국한됐다. 온라인에서도 아동성범죄는 끊이지 않았지만, 부각되는 분명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았다. 포르노그라피의 연장선상에서 아동 성착취물을 주고 받고, 사고 팔았던 것이다.n번방 사건이 등장하면서 아동 성착취물이 포르노그라피가 아니라는 인식 변화가 있었고 온라인 아동성착취물에 대해 엄벌해야 하며 신상공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유례 없이 조주빈이라는 사람의 신상이 공개됐다. 이번 사건이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 흐름을 현저히 바꾸고 있다고 볼 수 있다.기존 양형 기준에 가장 큰 문제는 감경 사유다. 미결수들이 형량 협상을 위한 전략처럼 반성문을 썼다. 초범이라는 점, 피해자와의 합의 등은 수학 공식처럼 감경 사유로 받아들여지는 부수적 문제가 있었다. 피해자가 도저히 삶으로 회귀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는데, 그 피해에 반해 형벌은 응보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영란 양형위원장이 중심이 돼 양형 인자에 대해 새롭게 발굴하는 노력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은 유례 없는 사건이다 보니 신속히 이뤄지고 있다. 기존에도 피해자 지원 체제가 있었지만, 충분했는지가 관건이다. 오프라인 성범죄는 사건화가 되면 더 이상 피해가 진행되지 않는데 디지털 성범죄는 계속해서 온라인 상에서 피해가 이어진다.지속적으로 감시, 감독을 하면서 성착취 영상물을 삭제하는 데 국가가 비용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주민등록번호도 새롭게 발급하기로 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신변 보호를 위한 긴급 지원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입법이 필요해 보인다."- 학생 일자리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지도 학생이었던 경찰관에게 들었다. 대학일자리센터장에 이어 인재개발처장을 맡게 된 계기는."자녀도 20~30대를 보냈다. 젊은이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힘들어하는지 너무나 잘 안다. 십수년간 대학원을 운영하다보니 대학원생이 학부를 졸업하고 취업이 되면 대학원까지 굳이 오지 않을텐데 대학원에 와서 또 취업이 되지 않으면 결국 교육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어떻게든 학생들 취업을 시키려고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인재개발처장을 맡게 됐다. 취업이 개인의 행복이나 가정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고 있다. 학생들이 졸업해서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물리적으로는 처장을 맡을 입장이 안 된다. 정신이 없다. 학교에서 순전히 취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는 이유 때문에 처장을 맡겼다. 기업체에서 코로나 때문에 채용 공고를 지연하고 공무원 시험 일정도 밀렸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고용노동부의 일자리센터 과제를 5년째 하고 있다. 정부 지원금으로 수원캠퍼스에 8명, 서울캠퍼스에 2명의 컨설턴트를 채용해 학과 교육 이외에 비교과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면대면 컨설팅이 어려워 37회 정도 온라인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했다."이 교수는 대학일자리센터 한 켠에 마련한 실시간 온라인 취업 교육장에서 직접 시연을 해보이기도 했다. 오는 19일에는 '여대생을 위한 리더십 특강'을 통해 2시간 동안 학생들과 대화 형식으로 개인적인 경험담을 들려주기로 했다. 글/손성배·남국성기자 son@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이수정 교수는?▲ 1964년 2월19일 생▲ 연세대 심리학과·동대학원 사회심리학과 박사▲ 아이오와주립대 대학원 사회심리학과·심리측정 박사과정 수료▲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전문위원▲ 대검찰청 성폭력대책위원회 위원▲ 경기대 양성평등문화원장▲ 경기대 대학일자리센터장▲ 경기대 인재개발처장▲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 영국 BBC 선정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100인 리더십 부문경기대학교 인재개발처장실에서 이수정 경기대 교수가 코로나19 전후 사회 변화와 텔레그램 성착취물 거래·공유 'n번방 사건', 학생 취업 교육 실시간 라이브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20-05-05 손성배·남국성

[인터뷰… 공감]'전국 사찰 코로나 치유 기도'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

감염예방 법회 중단 이어 봉축 행사 한달 연기 '전례없는 결단'의료인·공무원 무료 템플스테이… 문화재 관람료 정부 지원을지도자 덕목은 '중생과 함께 하려는 노력, 다름 인정하고 화합'4월 30일은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지 2천564년이 되는 '부처님 오신날'이다. 불과 1년 전만 뒤돌아보면 부처님의 탄신을 축하하는 연등의 물결이 깊은 산사에서부터 도심에까지 화려하게 수를 놓았다. 각 사찰마다 봉축법요식 준비가 한창인데다 수많은 불자(佛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고자 법회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비상사태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예년과 달리 봉축행사를 거행할 수 없게 돼버렸다.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조계종을 비롯한 한국불교 30개 주요 종단이 참여하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원행 스님) 소속 1만5천여개 사찰은 결국 봉축행사를 5월 30일로 한 달 연기하기로 뜻을 모았다. 1천700년 한국불교 역사상 전례없는 일이다. 부처님오신날부터 한 달 간 전국의 모든 사찰에서는 '코로나19 극복과 치유를 위한 기도'에 들어간다.전국 9개 주요 지역신문사가 가입된 한국지방신문협회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대한불교의 최대 종단인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과 대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국민의 안전을 위해 종교의 이익을 내려놓기로 대승적 결단을 내린 배경에 대해 원행 스님으로부터 직접 들어봤다.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만난 원행 스님은 "한국 불교계는 다른 종교단체보다도 선제적으로 코로나19 감염예방과 확산방지를 위해 각 사찰의 법회와 기도를 중단했다"며 "특히 부처님오신날 봉축법회 한 달 연기라는 사상 초유의 힘든 결정을 내렸다"고 운을 뗐다.그러면서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국가적 위기상황이고, 또 이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께서 감당하고 짊어져야 할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종교의 존재 이유라는 생각에서다"면서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길이다"고 말했다.이어 "올해는 운이 좋게도 윤달 4월이 있어 5월 30일도 음력 4월 초파일이다"며 "국민과 함께 아픔을 치유하고 극복하는데 매진하려는 우리의 마음과 맞아 떨어진 거 같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환하게 웃었다.원행 스님은 종교집회를 통한 코로나19 확산 위험을 언급하면서 "우리 불교 역시 비대면 법회 등 새로운 종교활동 영역을 준비해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종단 내부에서도 코로나19에 따른 시대 변화에 대한 성찰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종교활동 영역의 개척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와 공론의 장을 마련해 나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한국불교의 핵심은 '호국불교'라는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있다. 우리 역사 속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해 온 진정한 종교로 평가받는 이유다.코로나19라는 거대한 재앙이 닥친 이번에도 불교는 먼저 자발적으로 산문을 폐쇄하고 법회를 연기하는 등 다른 종교에 비해 발 빠른 대응을 보이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우선시 여기는 모습에 국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원행 스님은 "조계종은 코로나로 인한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인 국민들에게 위안과 휴식의 시간을 제공할 계획으로, 현재 코로나19 관련 업무에 종사했던 의료인과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전국 16개 사찰에서 '토닥토닥 템플스테이'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종식과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코로나19로 희생되신 분들을 위한 기도정진도 지속적으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속에서 과연 종교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원행 스님은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의한 불안함으로 공포에 떨고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내느냐가 중요하고 바로 지금 종교가 어떻게 사람들을 보듬어 안을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인드라망'의 세계라고 부른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서로 연결돼 있는 그물과 같다. 그렇기에 오늘 지구촌을 위협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오직 인간만의 이익을 위해 뭇 생명들을 위협하고, 개인의 탐욕에 물들어 이웃을 멀리하고 공동체를 훼손해 왔던 우리 모두의 삶과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우리는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고 모든 생명들이 함께 공존하며 조화롭게 그리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일상과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이런 방향을 만들어 가는 것이 종교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강조했다.원행 스님은 총무원장으로서 종단의 모든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전국 사찰의 재정적 어려움에 대해서도 토로했다.그는 "각 사찰은 보물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위한 지원이 부족하다. 불자들이나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기다 보니 사찰에서 빚을 내서 관리인들의 월급을 줘야 하는 입장이다"며 "사찰에서 문화재를 관리하고 보호하는 그분들도 말하자면 직장인이고,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이 크다 보니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이와 함께 사찰이 입장객들로부터 징수하는 문화재 관람료에 대한 논란과 관련, 정부의 적극적인 조정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지난 2007년 정부가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했지만 일부 사찰이 문화재 관람료를 계속해서 징수하자 등산객들의 불만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원행 스님은 "종단이 소유한 문화재와 주변 사찰림 관리를 위해 문화재 관람료 징수는 문화재보호법을 근거로 한 정당한 행위인데 사찰을 거쳐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은 문화재를 관람하지 않는데도 비용을 왜 지불해야 하냐고 항의해 마찰을 빚고 있다"며 "사찰이 수백년 간 문화재를 지켜온 헌신과 노력에 대해 인정해주길 바란다. 앞으로 문화재를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끝으로 갈등과 분열이 빈번한 동시에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한 현대사회에서 불교 지도자의 역할과 지향해야 할 리더십이 무엇인지 물었다.원행 스님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으로, 중생(국민)들과 늘 함께 하려는 노력과 나의 주장만을 내세우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며 화합을 도모하려는 모습이 바로 불교 지도자들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라고 강조했다.한편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가 열리는 5월 30일에는 조계사 대웅전과 전국 사찰에서 봉축 법요식 및 국민의 안전과 국난극복을 위한 기도정진 법회와 함께 총무원장 원행스님의 대국민 메시지 및 희생자 애도, 환자를 위한 기도, 불자들의 서원을 담은 발원문이 발표될 예정이다.한신협 공동기획/이성철기자 lee@kyeongin.com 사진/한신협 공동취재단■원행 스님은?▲1973년 법주사에서 혜정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85년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1994~2005년 제11·12·13대 중앙종회의원 ▲2011~2012년 교구본사주지협의회 회장 ▲2014~2018년 중앙승가대학교 총장 ▲제36대 조계종 총무원장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대표의장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최근 코로나19 확산 우려 속에 국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을 한달 연기키로 한 결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조계종 홈페이지 제공

2020-04-28 이성철

[인터뷰… 공감]안산 단원을 '맨땅에 헤딩'… '이슈 메이커' 김남국 당선자

당이 전략공천 선택… 3선 중진 상대 이겨야 한다는 목표 뚜렷'성인 팟캐' 논란 검찰수사 줄악재… 유세중 '붕어빵' 응원 큰 힘검찰개혁·민생문제 해결 장기 과제… 공부 급선무 독서실행 계획코로나19 사태 속 치러진 4·15총선의 막이 내렸다. 소방관, 운동선수 등 다양한 이력을 앞세운 후보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너나 할 것 없이 힘겨운 당내 경쟁, 상대 후보와의 진흙탕 싸움 등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다툼을 치열하게 벌였다. 최대 표밭인 경기도에서도 241명이 도전했고 이 중 평균 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59명만이 금배지의 주인공이 됐다.이들 중 한 명인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국회의원 당선자는 선거 첫 도전 만에 안산 단원을에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82년생의 젊은 변호사는 선거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조국 내전', '팟캐스트 논란' 등 숱한 이슈로 전 국민의 눈길을 끌었다. 이슈 메이커였던 그는 선거 기간 오히려 말을 아꼈고, "솔직히 지역을 잘 모르지만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바치겠다"는 약속처럼 묵묵히 단원구 곳곳을 다녔다. 인터뷰도 어렵사리 성사됐다. "많은 분들이 당선되면 기쁘지 않겠냐고 묻는데 기쁜 건 잠깐이었던 것 같다"는 그는 "민생을 챙기는 정치를 하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선생님 꿈꾸던 청년 변호사, 여의도로 가기까지김 당선자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학교다. 그의 모교라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찍은 사진을 10년 동안 해놨을 정도로 학교라는 곳을 좋아했다"는 그는 "원래 꿈은 선생님이었다. 정치를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잠깐 정치에 관심을 가졌기도 했지만, 내가 있을 곳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는 그는 2012년 변호사가 되면서부터 줄곧 각종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참여연대에서 일했고 박근혜 정부 당시 민주당의 국정농단 진상조사단 등에도 참여했었다. 문재인 정부 집권 후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 검찰 개혁 방안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 그가 전 국민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해온 그는 조국 사태의 면면을 기록하기 위한 '조국 백서' 필진으로도 이름을 올렸다.김 당선자는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민생 문제, 검찰 개혁 등 여러 현안과 관련해 많은 부분을 시민사회단체, 국회의원들과 일하며 바꾸려고 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제도적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바꾸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개별적 사안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사회를 더 나은 쪽으로 바꾸는 데 도전하자는 생각에 발을 들이게 됐다"고 밝혔다.출사표를 던지는 과정부터 녹록지 않았다. 당초 염두에 뒀던 곳은 민주당 금태섭 의원의 지역구였던 서울 강서갑이었다. 금 의원이 조 전 장관의 임명을 반대했었던 터라 당내 '조국 대전'이라는 논란마저 일었다. 잡음이 커지자 당은 결국 그를 안산 단원을에 공천했다. '낙하산 후보' 논란이 뒤따랐다. 왜 안산 단원을이었는지 묻자 김 당선자는 "당초 청년 후보 전략 공천 지구로 묶여있었다. 당이 여러 전략적 선택을 한 결과"라면서 "우선 3선의 중진 의원을 이겨야 한다는 목표가 뚜렷했다. 또 과거 반월·시화공단을 배경으로 성장하는 도시였던 안산이 지금은 성남, 용인, 화성 등에 비해 주춤한 부분이 있다. 다시 한 번 활력 넘치는 곳으로 만들자는 측면에서 청년을 전략공천한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낯선 곳에서 시작하는 첫 선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 선거 막판 성인 팟캐스트 출연 논란에 총선 당일에는 그에 따른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는 점마저 종일 보도됐다. '악재'가 이어진 와중에 극적으로 승리를 거머쥔 그는 "도움을 요청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김 당선자는 "체력적으로 힘든 건 없었다. 그런데 선거라고 하는 건 후보 혼자서 절대 할 수가 없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치러야 하는데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 선거를 치르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게 엄청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유세 도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김 당선자는 "어떤 분께서 막 뛰어오셔서 바통을 넘기듯이 뭔가 주려고 하시는데 보니까 붕어빵이더라. 차가 빨리 가서 받진 못했지만 그런 응원들이 정말 큰 힘이 됐다"고 회고했다.■ 복권을 사지 않아도 되는 사회당선을 확신한 순간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 뭐였는지 물으니 "국민들의 선택이 무겁고, 무섭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김 당선자는 "저를 선택한 이유가 제가 잘났거나 상대 후보보다 뛰어나서 그랬겠나. 제가 청년이고 정치신인이니까 그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에 대처하고 있는데 더 잘하라는 의미가 컸을 것"이라며 "기대한 바를 충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기대를 넘어서서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우여곡절을 거쳐 안산단원을 후보가 되자마자 그는 단원구 주민이 됐다. 지난 20일 안산 사무실에서 만난 김 당선자에게 "지금은 서울에서 안산으로 왔다갔다하는 거냐"고 묻자 "저, 저기 뒤 아파트에 살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실제 와보니 안산은 정말 좋은 곳"이라는 김 당선자에게 이유를 물으니 "일단 맛집이 많다. 이 사무실이 있는 건물만 해도 맛집이 여러 곳 있다"며 웃었다. "선거기간 공원을 다녀보니 여의도 벚꽃 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살기 좋은 도시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그런데 정주여건만 좋아서는 안 되고 좋은 일자리가 있는,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아침부터 날이 흐리다 결국 비가 내렸던 일요일, 그는 지역 산악회 모임에 있었다. "주말 내내 당선 인사 다니느라 바빴다"는 김 당선자는 "만나는 분들 마다 '당선되니 기쁘냐' '소감 한번 말해봐라'고 하시는데 사실 당선되고 둘째 날부터는 숨이 턱턱 막혔다"고 털어놨다. 일단 공부를 해야겠다고 했다. "근처에 보니 24시 독서실이 있던데 1일권이 1만원이더라. 현안과 관련된 책을 좀 많이 읽고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을 공부하는 게 급선무인 것 같다"고 말했다.그러면서 "많은 분들이 검찰 개혁에 대해 (제 역할을) 기대해주시는데 21대 국회가 반드시 풀어가야 할 과제인 것은 맞다. 그런데 장기적 목표는 검찰 개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게 원래 목표"라고 말했다. "저는 솔직히 변호사가 되면 제 인생의 모든 문제가 풀릴 줄 알았다. 그런데 직업을 갖는 것만으로는 해결되는 게 아무 것도 없더라. 변호사 되고도 2년 동안은 원룸에서 살았다"는 그는 "학생 때는 복권을 사는 걸 이해 못 했는데 직업을 가져보니 왜 로또를 맞고 싶어하는지 알겠더라. 주거비나 의료비, 양육비 등 숨만 쉬어도 들어가는 돈들이 조금만 덜 들어가는 구조라고 한다면, 성실하게 일하면 미래가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욕을 먹더라도 할 일은 제대로 하는, 일 잘하는 국회의원이 돼서 '복권을 사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게 이제 막 '직업 정치인'이 된 37세 청년의 꿈이다.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김남국 당선자는?▲1982년 광주광역시 출생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 ▲(전) 더불어민주당 법률위원회 자문위원·부위원장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공수처 수사권 조정 TF팀 위원지난 20일 안산 단원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남국 안산단원을 국회의원 당선자가 "정치에 갓 입문한 청년 정치인으로서 국회, 정치 개혁을 통해 '일하는 국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2020-04-21 강기정

[인터뷰… 공감]'뚜벅뚜벅 국내 길 개척하는' 조용주 변호사

강화~고성 420㎞ '통일길' 25㎞씩 나눠 … 지인들과 동행2학년 남해안 '희망길' 계획·3학년엔 산티아고 등 해외로인천고법은 주민에 당연한 권리… 유치 운동 적극 나서'순례(巡禮)'의 사전적 의미는 신앙행위의 일환으로 종교상의 성지(聖地)나 영장(靈場)을 찾아다니면서 참배하는 여행을 뜻한다. 근래엔 종교적 의미를 떠나서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방문함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맛집 순례' 등 여행 대신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다. 순례의 의미를 인생에 비유해볼 수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순례의 길이고 우리는 그 길을 걷는 순례자인 것으로 말이다. 이처럼 순례는 현대인들에게 밀접한 개념이 되었다.조용주(49) 변호사(법무법인 안다 대표변호사)는 인천 법조계에서 '판사 출신 변호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판사생활 10년 만에 갑갑한 생활의 연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법복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인생을 택했다. 이후 변호사로 14년째 활동하고 있는 그는 최근 관심사를 더했다. 순례길 학교의 교장을 꿈꾸는 조 변호사는 국내 순례길을 개척하고 있다. 구체적 행동으로도 옮긴 것이다. 그 첫 번째가 통일 순례길이다. 인천 강화도 평화전망대부터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420㎞ 구간이다.조 변호사는 지난해 여름 통일 순례길 답사를 시작했다. 순례길 학교의 진척도와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 13일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는 '법무법인 안다' 사무실을 찾았다. 근황부터 물었다. 조 변호사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재판이 열리지 않으니, 변호사 일도 없는 상황"이라며 "좀 쉬면서 유튜브와 블로그에 최신 자료들을 올리고 좋아하는 걷기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질문은 걷기로 이어졌다. 조 변호사는 여러 날 걸으면서 장소의 역사성과 의미를 배울 수 있는 순례길 학교를 1년 전께 생각했단다. 올해 안 개교를 위해 준비 중이다."변호사 생활을 10년 이상 하다 보면 반복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로 인해, 변호사들은 운동이나 정치, 사업 등 다른 분야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올해로 14년째 변호사 일을 하고 있는 저는 평소 좋아하는 걷기를 떠올렸어요. 단순한 걷기가 아닌 의미를 찾는 걸음 말이죠. 그래서 나만의 새로운 순례길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이르렀고요. 일반적으로 순례길 하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올리는데, 우리에게도 의미 있고 풍광 좋은 길이 많습니다. 굳이 스페인까지 가지 않더라도, 오랜 시간 걸으면서 깨달음과 성찰, 힐링을 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조 변호사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휴전선과 DMZ 근처를 떠올렸다. 강화에서 고성까지 휴전선을 따라 420㎞ 정도를 걷기로 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인천지역 문화계를 비롯해 각계 인사 10여명과 함께 주말을 활용해 걷기 시작했다."통일 순례길로 이름 붙였어요. 이 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평화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길과 지역에 얽힌 스토리텔링도 순례에 의미를 더할 것으로 여겨지고요. 지금까지 1회에 25㎞씩, 12회 정도 걸었어요. 1박2일 일정으로도 걸어보고요. 현재 연천군까지 갔습니다. 걸으면서 자동차를 타고선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광경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경기북부지역 하면 흔히들 군부대를 떠올리는데, 역사적 유적지도 많고 이야깃거리도 많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겨울철에 걸었을 때 본 풍경이 그 정도인데, 요즘 걸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봄에 강원도 철원부터 열심히 걷고 탐사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로 멈춰선 상황이어서 아쉽습니다."조 변호사는 두 번째 순례길도 구상 중이다. 통일 순례길이 서에서 동으로 이어진다면, 두 번째 순례길은 동에서 서로 이어지는 희망 순례길이다. 이 길은 부산에서 목포까지 남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다."남해안에 이순신 장군이 연전연승한 전적지가 30여곳 있다고 해요. 이곳을 길로 연결해서 모두 답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에요. 이를 통해 삶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이들이 희망 순례길을 걸으며 절대적 열세 속에서도 승리한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배우고, 다시 희망을 찾길 바랍니다. 한 번에 길을 완보해도 좋지만 구간을 나눠서 걸어도 되고, 우리나라 순례길은 국내 거주자라면 누구나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조 변호사는 향후 순례길 학교에서 통일 순례길(1학년)과 희망 순례길(2학년)에 이어 유네스코에 선정된 순례길인 산티아고와 일본 구마노고도 길 등 해외 순례길을 3학년 과정으로 두는 것도 생각 중이다."3년 과정을 마치면 수료증을 수여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고령화 인구가 느는 상황에서 국내 순례길은 은퇴 이후 방황하는 많은 분들에게 삶의 활력과 희망을 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관광산업에도 일조할 거고요. 올해 안으로 순례길 학교가 개교하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분들이 오실 건데, 많은 분들과 함께 각 구간의 길의 의미를 알아가는 콘텐츠를 구성할 계획입니다. 특히 순례길 학교는 별도 입학금 없이 교통비와 식비 등 실비 정도만 내면 되기 때문에 금전적으로도 크게 부담되는 여가 활동은 아닐 겁니다."화제를 바꿨다. 조 변호사는 최근 들어 인천고등법원 설립에 앞장서며 지역 미디어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현재 인천지방변호사협회 인천고등법원 추진 부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송현초교 입학 후 동산중·고교까지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조 변호사는 인천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서울 남부지법 판사로 있다가 그만두고 서울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지만, 3년 만에 인천으로 사무실을 옮겼어요. 인천 사무실은 올해로 10년 됐네요. 현재 서울 서초동에도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어요. 학창시절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어요. 그로 인해, 대학 입학 전까지 만석동, 화수동, 송현동, 송림동, 십정동, 만수동까지 옮겨 다녀야 했죠. 인천시와 학교동문 선배님들께서 어려울 때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정기적으로 인천 8개 구 노인복지관과 장애인복지관에 쌀을 기탁하는 것과 인천고법 유치 운동도 제가 받은 것에 대한 보답 차원인 거죠."조 변호사는 인천고법 유치는 인천과 부천 등 주민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인데, 누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나아가 인천고법은 지역의 아이덴티티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피력했다. "1990년대부터 인천이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걸 느꼈어요. 인천의 인구는 늘었지만, 관심과 애정은 떨어지는 것 같아서 아쉬웠죠. 요즘 인천고법 유치 운동에 대한 지역 내 확장성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인천고법이 지역의 아이덴티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치 성적 좋은 프로야구팀을 통해 그 지역 주민들이 자부심을 갖는 것처럼요. 올해 총선이 치러지고, 새롭게 국회의원이 구성되면 인천고법 유치를 위한 입법을 해야 하는데, 지역 국회의원은 물론 시 정부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정부와 대법원에 고법 유치를 호소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권리지만, 스스로 찾아야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에요.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면 인천고법 유치 활동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조용주 변호사는?▲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사법연수원 26기 수료 ▲ 대전지방법원, 대전지법 천안지원, 인천지방법원,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 역임 ▲ 법무법인 안다 대표변호사로, 인천과 서울에 사무실 운영 ▲ 대한변협 인가 부동산법·조세법 전문변호사,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위원, 인천세무서 납세자보호위원회 위원, 부천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인천지방변호사협회 인천고등법원 추진 부위원장 ▲ 대한변호사협회 도산법제도개선특별위원회 위원과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위원, 인천지방변호사회 공익심사활동위원 등 역임.조용주 변호사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다. 순례길 학교 교장 외에도 그는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하고, 강화도에 아담한 미술관도 짓고 싶고, 조용주 도서관도 만들고 싶다"면서 "또한, 은퇴한 이후 직접 커피를 볶고 힘든 이웃들에게 손수 커피를 내려주면서 법률 상담을 해주는 동네 할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2020-04-14 김영준

[인터뷰… 공감]'코로나 위기 경제 백신' 재난기본소득 설파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전국 첫 실현' 경기도 지원제도 의미지방정부는 화폐발행권 없고 예산상 제약李지사 성남시장 시절 정책 프로젝트 맡아'최소 예산으로 최대 수혜' 지속가능 모델#취약계층·영세 소상공인 선별 집행 비판하위 20%에 500만원 주면 80%가 세금부담소득격차 불과 100만원 '상하역전' 부작용도중산층에 소비여력 나도록 국가가 나서야전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재난에 가까운 경제 위기가 닥쳐왔다. 일자리와 소득의 붕괴로 국민들의 생계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빠져들자,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경기도는 도민 1인당 10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했다. 시·군에서 추가적으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면 그것도 함께 받는다. 경기도의 제안을 도내 여러 지자체에서 수용했다. 경기도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논의돼 온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상황을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은 남다른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강 이사장은 일찍이 지난 2009년 기본소득네트워크를 창립, 제도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국내 대표적인 기본소득론자다. 강 이사장이 주장해온 '1인당 30만원'은 일시적이나마 코로나 변수로 실현됐다. 강 이사장은 이 같은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 시행에 의미가 깊다고 했다. 그는 "전국적으로 가정에 현금을 지원하는 거의 첫 사례이고, 경우에 따라 작은 액수가 될지라도 경기도민 전체가 받는다"며 "작동하는 원리를 도민들이 알게 되면 머지않아 전 국민이 모두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이사장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성남시장 재임 시절부터 인연이 있다. 성남시 '청년배당'이 시행되기 2년 전에 이 정책의 기본원리 및 실행방향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맡았다. 강 이사장은 "이재명 지사가 먼저 발 벗고 나서줘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2015년 6월,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에서 "보편적 복지 확대를 목표로 하는 성남시에서 기본소득이 실제적인 어젠다가 될 수 있는지 모색 중"이라며 청년배당 정책을 알렸다.강 이사장은 이어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은 이 지사가 성남에서 활동하며 나온 결실이다. 성남시장 재임 당시 제안을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었다. 기존에 없던 정책이었기에 유권자 반응이 불확실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용감하게 받아들였다"며 "성남시민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이재명 지사가)경기도민 전체를 대상으로 해도 반응이 좋겠다는 확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이사장은 기본소득이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와 결합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지방정부는 화폐발행권이 없고 예산상 제약이 있기 때문에 전체 지역주민이 아닌 대개 특정 연령대 등을 한정해 기본소득을 집행한다. 그러면 수혜자가 적어지고 지지를 얻기도 힘들다"며 "이때 지역화폐를 사용하면 지역 내 소상공인에게 도움이 돼 간접적인 수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최소한의 예산으로 최대의 수혜자를 만드는 게 기본소득의 기본적 원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했다.강 이사장은 그러면서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게 원칙이지만, 최소의 예산으로 최대의 수혜자를 만들어야 '지속가능한 정책'이 된다"며 "그런 점에서 지역화폐와 기본소득의 결합이 선택됐다"고 덧붙였다.이런 강 이사장의 설명은 지난해 5월 28일 수원역에서 열린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락(樂) 페스티벌에서 한 이 지사의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당시 이 지사는 지역화폐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이유로 "공정한 세상을 위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 다수가 골고루 혜택을 누리자는 취지"라며 "받은 돈을 골목에 쓰고, 영세 자영업자에 도움이 되는 같이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경기도 지역화폐는 연매출 10억원 이상 매장에서는 사용할 수 없도록 해, 영세 자영업자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최대의 수혜자'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기본소득에 찬성 입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국민에게 줄 게 아니라 더 어려운 사람, 영세 소상공인, 기업 등 적절한 곳에 선별해 집행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강 이사장은 이에 대해 "선별 집행은 증세거부감과 소득역전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고 반박했다. 이를테면 하위 20%에게 500만원씩을 주면 나중에 나머지 80%가 그 돈을 갚는 세금부담을 떠안는다는 것이다. 원래 하위 20%는 세금도 적게 부담한다.강 이사장은 "이처럼 일부에게 조세부담을 가하는 방식의 복지는 지속하기 어려운 모델"이라며 "재난기본소득을 애초 3개월로 예상했다가 상황이 장기화돼 6개월을 집행한다고 가정하면 조세부담을 떠안은 나머지 80%의 반발이 폭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강 이사장은 아울러 '소득역전'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하위 20%와 80%의 경계선에 있는 이들의 소득격차는 100만원 이하다. 세금으로 소득을 역전하면 정의 원칙에도 어긋나고 사람들이 분노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단기적으로 보면 하위계층에 몰아주는 게 유리할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여러 문제를 발생시켜 경제를 살리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논리다.강 이사장은 모든 사람에게 지역화폐로 기본소득을 지급했을 때의 효과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설명했다. 강 이사장에 따르면 올해 10조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할 경우 이를 받는 사람의 소득이 10조원 늘고, 소상공인 매출도 10조원이 늘고, 소비는 계속 순환되면서 소비승수가 2를 넘겨 3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10조원을 정부가 기본소득 형태로 사용하면 GDP 증가액은 20조원 이상이 된다. 소득증가분은 한해에 끝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발생한다. 물건이 팔리고, 공장이 돌고, 임금을 주고, 다시 소비를 하는 식으로 계속 이어진다.강 이사장은 "기본소득이 감염병 재난상황에서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코로나19에 대한 대처가 상반된 미국과 우리나라의 상황을 놓고 비교했다. 설명에 따르면 미국은 방역이 잘 이뤄지지 않아 경제를 막아서라도 방역을 했다. 그러면 소비를 할 수 없다. 우리나라 방역은 경제적 장애물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하고 있다. 안전한 소비를 계속 할 수 있도록 열어놓는 것인데, 이는 경제성장을 어느 정도 유지하려는 목적이다. 강 이사장은 "자칫하면 미국처럼 경제활동을 하기 힘든 사회가 된다. 일상이 돌아가야 한다. 경제가 덜 나빠지면서 방역에 성공해야 한다. 대한민국 방역모델에 맞게 소비는 정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게 중국, 미국과 다른 우리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강 이사장은 '불안하니 돈을 줘도 경제에 소용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아닌 미국식 방역모델이라고 봤다. 그는 "현재 중산층의 소득이 없어지고 있다. 소비가 더 줄어들면 초기 방역에 성공한 효과를 더는 누릴 수 없다. 중산층에 소비여력이 나도록 국가가 나서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강 이사장은 한국 모델에 맞게, 적절하고 필수적이며 안전한 소비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안전한 소비라는 말에 대해 그는 "해외 유입자가 아닌 직장에서 3주간 만나는 사람과 밥 먹는 건 괜찮은 일이다. 지역화폐를 전체 도민이 받으면, 매일 만나는 식구끼리 동네식당에서 외식하는 안전한 소비도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2%와 마이너스 1%에서 각각 회복하는 상황은 큰 차이다. 이는 기본소득이 장기적 재정건전성을 얻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인터뷰 말미에 강 이사장은 "한국은 가난한 사람에게만 복지를 주고 중산층은 안줘도 된다는 의식이 너무 강하다"며 보편복지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경계했다. 그는 "경기도민 사이에 기본소득은 '중산층을 위한 복지'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고, 나아가 증세와 복지 확대에 힘이 실렸으면 한다"며 "나에게 이익이 되는 정치인에게 투표하면 장기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완화되고, 살림살이도 나아지고, 정치도 더 잘 작동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그런 효과를 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글/강보한기자 kbh@kyeongin.com 사진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강남훈 이사장은?▲ 1979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동대학원 석·박사 취득▲ 1985년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부임 ▲ 1988년 민교협 사무처장 ▲ 2009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창립 참여 ▲ 2011년 제6대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 ▲ 2013년 한신대학교 경제학과장 ▲ 2015년 성남시 청년배당정책 연구용역 ▲ 2018년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 위원장 ▲ 2019년 '기본소득의 경제학' 출간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이 31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0-04-07 강보한

[인터뷰… 공감]'여풍당당' 이경자 대한노인회 연수구지회장

결혼 7년만에 다시 생업전선… 양계농장 거쳐 김치공장 대성공정치인 남편 뒷바라지·사업 파산 도미노·암 투병생활 '고난 연속'67세때 방통대 입학·딸 대신 박사학위 도전… "마음 늙어선 안돼"우리나라의 만 65세 이상 노령인구는 81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5.6%에 달한다. 노후생활의 핵심적인 커뮤니티인 경로당 운영은 대한노인회 산하 전국 244개 시·군·구 지회가 맡는다. 노인들의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경로당은 전국에 6만5천여곳인데, 요즘 경로당을 가보면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그동안 노인회 여성지회장은 전국에서 6명뿐일 정도로 드물다.인천에서는 이경자(77) 대한노인회 연수구지회장이 최초의 여성 노인회장으로 최근 당선돼 4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전국 7번째 여성 노인회장이다. 인천 연수구에 있는 경로당 158곳의 살림살이를 살림꾼의 손길로 야무지게 매만진다는 포부다. 여성 노인회장이 가꿀 경로당의 모습은 지금과는 어떻게 다를지 지역사회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이경자 회장은 한때 성공한 사업가였고, 현재는 박사학위과정을 밟고 있는 만학도다. 지역사회에서 손꼽히는 여걸(女傑)이다. 그 인생살이도 무척이나 굴곡이 많다. 학창시절 육상선수였던 이경자 회장은 인생을 '110m 허들경기'에 비유하곤 한다. 그는 "110살까지 살기로 작정하고 허들처럼 10개의 장애물 넘기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며 "지금은 장애물 9개쯤 넘은 것 같다"고 말했다.이경자 회장은 1943년 인천 연수구 동춘동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때 동춘동은 송도유원지를 낀 바닷가였다. 이 회장이 태어날 당시는 동네에 10가구밖에 살지 않았고, 아버지는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지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기간 송도유원지 옆에 있는 교실 4개짜리 송도초등학교에 다녔는데, 동네에서 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이경자 회장뿐이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6·25때라서 동네와 주변 고아원 남자아이들이 얼마나 짓궂은지 학교 가는 여자아이를 너무 괴롭혔다"며 "그걸 피하려고 초등학교 1학년 때 문학초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청량산을 넘고 들판을 걸어 통학해야 했다"고 회상했다.이경자 회장이 살던 동춘동은 가난했다. 전기도, 버스도 없었고 농사 지을 땅이 없는 피란민들은 조개를 잡아 생계를 이었다. 그래도 부모가 공부한다는 딸을 말리지 않았다. 1956년 현 중구 답동에 있던 박문중학교에 들어갔다. '꼬마열차'라 불린 옛 수인선 협궤열차가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씩 학교와 동네를 오갔다. 이 회장은 "꼬마열차를 놓치면 몇 시간을 걸어서 집에 와야 했고 수녀원에서 잘 때도 많았다"며 "매일 성당에서 우리 동네 전기 들어오고 버스 들어오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정도로 동네가 깡촌이었다"고 했다.동인천에 있던 인천여자고등학교에서는 육상선수로 활약했다. 멀고 힘든 학업을 포기하려 할 때 수학 선생님의 권유가 있었다고 한다. 옛 인천공설운동장(현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인천지역 고교연합대회에 인천여고 대표선수로 나서 달리기, 높이뛰기, 멀리뛰기, 허들 등 4종목을 뛰었다. 이경자 회장은 "올드 미스인 수학 선생님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도망가고 싶다고 했더니 나를 애관극장으로 데려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여줬는데,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는 여주인공 스칼렛의 말에 감격해 마음을 다잡았다"며 "어릴 적부터 산으로 뛰어다닌 실력으로 대회 성적도 좋았다"고 말했다.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송도유원지 직원으로 취직하려 했는데 "순경 백조차도 없어서 떨어졌다"고 한다. 이경자 회장은 "그땐 은행 예금 많은 집 딸은 은행에 취직하고 그런 시절인데, 농사짓는 우리 집은 백 하나 없어 취직도 어려웠다"고 했다. 그래서 열아홉에 동생 셋을 데리고 중구 인현동에 방을 잡아 장사하면서 동생들을 학교에 보냈다. 옛 시장관사(현 인천시 역사자료관) 주변 부잣집들을 돌면서 이른바 '양키장사'를 했다. 이 회장은 "아침에 홍예문 쪽 양색시 집에서 미군 지프가 떠나면 양색시를 찾아가 양키물건 좀 PX에서 사다 달라고 부탁해 물건을 뗐다"며 "화장품이나 속치마처럼 한국에 없는 미군 PX 물품들이 인천 부잣집 사모님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고 말했다.스무살 때인 1963년 양키장사 고객으로 만난 부인으로부터 "딸을 이화여대에 입학시키고 싶다"며 이경자 회장이 서울로 데려가 숙식을 책임지는 가정교사를 해달라고 제안을 받아 취직했다. 인천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에서 양키장사도 계속했다. 이 회장은 "구두 신고 명동거리를 휘저으며 멋지게 사는데, 24살에 혼인을 정했으니 집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며 "초등학교만 나온 남편과 결혼해 동춘동에서 다시 농사를 짓는 시절을 보내야 했다"고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결혼한 지 7년만인 1974년 이경자 회장은 다시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농사를 짓다가 운수업으로 바꾼 남편의 사업이 실패했고, 셋째 딸이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 달걀장사를 하면서 닭 500마리를 직접 키우기 시작했다. 몇 년 후 1만마리까지 늘렸다. 그리고 나서 1978년 연수동에 김치공장을 차렸는데, 주변에서는 "누가 김치를 사서 먹느냐"며 "이경자가 미쳤다"고 수군댔다고 한다. 하지만 젊은 시절부터 장사를 했던 사업가 기질 때문인지 이경자 회장의 김치공장은 '대성공'이었다. 그는 "선창산업 정해수 회장님이 내가 트럭에 애들을 태우고 다니면서 납품하는 것을 보고 안타깝다면서 판로를 뚫어줬다"며 "선창산업, 대한제분, 동일방직 같은 공장 41곳에 김치를 납품했다"고 말했다.사업은 탄탄대로로 뻗어 나갔다. 김치공장뿐 아니라 목재소와 가구공장, 홍익웨딩홀, 연수주유소, 여성병원, 산후조리원, 찜질방 등을 차리면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이 회장은 "돈을 너무 많이 벌게 되니까 연수구에 없는 걸 하나씩 차렸다"며 "주유소는 삼화고속 버스들을 유치하느라 대형 탱크 3개를 지하에 박아넣었다"고 말했다. 이경자 회장의 남편은 정유택(1943~2013) 전 인천시의회 의원이다. 제2대, 제3대 인천시의원을 지냈다. 정치인 남편 뒷바라지도 이경자 회장의 몫이었다. 이 회장은 "남편이 40대부터 몸이 좋질 않아서 내가 일선에서 뛰어야 했다"며 "남편은 어려운 사람을 보면 호주머니에 있는 걸 전부 도와주고 집에 돌아올 정도로 사람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1997년 외환위기(IMF 사태)가 이경자 회장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그해 사업이 차례로 무너지고 이듬해 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했다. 암세포가 목 주변까지 전이돼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2000년에는 남편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목소리를 회복하기 위해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스피치 수업을 받았다. 그렇게 10년 넘는 세월을 암흑같이 보냈다. 아프고 나니 문득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이경자 회장이 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해 늦깎이 대학생이 된 때는 그의 나이 67세. 새벽 공부 끝에 6년 반 만에 방통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인하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본격적으로 노후생활의 인생설계와 경력단절여성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석사 학위를 따낸 후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융합사업경영학 박사 학위에 도전하고 있다. 이 회장은 "홍익대 미대를 나온 딸이 2016년 50세에 세상을 떴는데, 평소 내가 딸에게 박사 학위 받으라고 그렇게도 보챘다"며 "딸 대신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박사까지 도전하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학업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틈틈이 백세생애설계사, 평생교육사, 노인지도교육사, 심리상담사 등 노인관련 자격증도 취득했다. 2014년부터는 연수구 노인대학 학장을 맡아 노인교육에 힘을 쏟았다.이젠 지칠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이경자 회장은 "30년 넘게 오전 2시에 일어나서 새벽시장을 봤고, 안 해본 일이 없다"며 "박사 과정이건 노인회장이건 그간 살면서 부닥친 풍파에 비하면 어렵다고 생각할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경자 회장은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는 노인들에게 "마음이 늙어선 안 된다"며 "여성들도 남은 인생은 공부에 도전하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젊은이들에게 이경자 회장은 "경험이 살리는 것"이라며 "겨울을 나야 새싹이 돋듯 젊었을 때 고생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조언했다.노인회 연수구지회장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할 일이 산더미라고 한다. 인천에 없는 노인회관을 처음으로 연수구에 마련해야 하고, 처음으로 경로당 회장들에게 활동비를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 이경자 회장의 말대로 인생이 110m 허들경기라면, 그는 아직 결승점까지 30%나 더 뛸 일이 남았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이경자 지회장은?▲ 1943년 인천 출생 ▲ 인천여자고등학교 졸 ▲ 방송통신대 교육학 학사 ▲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 석사 ▲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경영학 박사 과정 ▲ 연수구노인대학 학장 ▲ 홍익농장·미성김치·홍익목재·홍익부페웨딩홀·홍익개발·홍익산후조리원·연수주유소·홍익찜질방 전 대표 ▲ 평생교육사 2급·사회복지사 2급·심리상담사·한국생애설계사대한노인회 인천 연수구지회 사무실이 있는 인천 연수구 노인복지관 앞에서 만난 이경자 지회장이 자신의 인생살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20-03-31 박경호

[인터뷰… 공감]추억의 '불청객 시리즈'… 40년째 창작활동하는 고행석 화백

월세 2천원짜리 단칸방 신혼살림… 가난해서 부자얘기 잘 못 풀어늦은 나이 데뷔… 딸들과 약속했던 '통닭' 작품속 단골소재로 활용전국 대본소 휩쓸었지만… 일본만화 개방 영향 쇠퇴·스토리 고갈도날카로운 눈매 캐릭터로 선회 웹툰 공략… 왕성한 작품활동 이어가80년대 동네 어귀에는 어김없이 만화가게가 있었다. 한 작품에 수십 권씩 하는 만화책이 천장까지 가득 차 있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그곳은 상상의 놀이터였다. '공부를 언제 하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이걸 언제 다 읽지'에 대한 고민만 있었다. 만화가게와 오락실 다니는 친구와 어울리지 말라는 엄마들의 성화는 아이들의 문화 욕구를 막을 수 없었다.한 달이 멀다 하고 작품을 쏟아내던 대본소 시스템에서 불청객시리즈의 고행석(73) 화백은 '공포의 외인구단' 이현세, '신의 아들' 박봉성(작고) 화백과 함께 3대 작가로 통했다. 이현세의 '오혜성', 박봉성의 '최강타', 고행석의 주인공 '구영탄'은 연예인과 다를 바 없는 인기를 누렸다. 꺼벙한 눈에 왜소한 체구인 영탄이는 볼품없었다. 늘 가난했고 배가 고팠다. 행동거지도 엉뚱해서 어떤 작품은 실수만 연발하다가 끝나기도 했다. 당시 청소년들은 그런 영탄이에게 감정을 이입했다.소년 고행석은 엉뚱했다. 다들 대통령이나 의사, 과학자 등을 장래희망으로 적어내던 여수서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만화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왜 하필 만화가가 되려느냐고 선생님이 묻자 그는 "돈을 많이 번답니다"라고 답해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탐탁지 않아 했다. 목재판매업을 하던 선친은 고등학생이던 그에게 방과 후 목재상 일을 보게 했다. 가업을 자연스럽게 물려받게 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손님이 없을 때가 그림 그리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군 복무를 마친 그는 스물여섯 살에 무작정 최경 선생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대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문하생에 입문해 허드렛일을 감내하는 걸 고려하면 늦은 나이였다. 화실은 김포공항 뒤쪽 서울 강서구 오쇠동 무허가촌에 있었다. 문하생 생활 몇 달 후에는 고향에 있던 애인을 불러 월세 2천원짜리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고 화백은 "방 하나, 부엌 하나 있는 집이었는데 내 작품에 이런 방이 많이 등장하는 건 다 그 시절 얘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작품에서 부자들 얘기를 잘 못 풀었어. 워낙 가난하게 살았으니까"라고 읊조리듯 기억을 더듬었다.최 선생 문하생으로 1년이 조금 지났을 때 '두통이' 시리즈로 명성이 높은 박기준 선생 화실로 옮겼다. '독고탁' 고(故) 이상무 화백 등이 거쳐 간 곳이었다. 강서구 단칸방과 퇴계로 대한극장 인근 화실을 오가는 동안 데뷔는 기약이 없었으나 두 딸을 보며 출퇴근하는 게 행복이었다. 오랜 수련 끝에 1981년 데뷔 기회가 왔다. 사회적인 나이 개념이 훨씬 빨랐던 때라 데뷔작가로는 매우 늦은 시기였다. 두 달간 밤잠을 설쳐 작업해 '아빠 아빠 우리 아빠'를 완성했다. 출판사에 판매만 되면 대본소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 고 화백은 "원고를 들고 출판사로 향하던 날 배웅하는 딸들에게 '아빠가 이거 팔아 통닭 사올게'라고 약속했더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나이가 발목을 잡았다. 출판사 사장은 "실력 있는 사람들은 다 젊어서 데뷔하는데 이런 나이에 데뷔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핀잔을 줬다. 출판사에서 거절당해 빈손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참새처럼 기다리던 딸들을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훗날 통닭은 그의 작품에 단골 소품이 됐다.순탄치 않은 데뷔 얼마 후 그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표현한 고통이 덮쳤다. 버거씨병이라 불리는 폐색성 혈전혈관염이 발병한 것이다. 피가 안 통해 손끝과 발끝이 서서히 썩어들어갔다. 말할 수 없는 통증이 예고 없이 발현돼 비명을 질러댔다. 처음에는 하루 한두 번 통증이 오더니 빈도가 늘고 시간도 길어졌다. 약을 찾아 전국을 다녀도 소용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경쇠약까지 얻었다. 대학병원에서는 무릎 위까지 절단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하루는 병상에 누워있는데 교수가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고 무릎에 선을 그으며 제자들에게 설명만 하기에 그 길로 병원에서 나와버렸다.그렇게 3년을 고생하던 중 신문 하단의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글씨로 '말초혈관장애에 좋은 약'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현재는 없어진 제약회사의 은행잎 성분 약을 먹자 씻은 듯이 통증이 사라졌다. 고 화백은 "그때 마흔 살까지 사는 게 소원이었기 때문에 나이 60이 됐을 때 굉장히 기뻤다. 딸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어떻게든 버텼던 것 같다"며 안도했다.병마를 딛고 일어선 고 화백은 1984년 '요절복통 불청객'을 내놓으며 전성기의 서막을 연다. 구영탄과 그의 영원한 연인 박은하를 내세운 독보적인 캐릭터와 불청객 브랜드는 전국 1만6천여개 대본소를 휩쓸었다. 고 화백이 열아홉 살 설정으로 탄생시킨 영탄이는 잘난 척을 해도 바보처럼 잘난 척해서 전혀 잘나 보이지가 않았다. 너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가난한 와중에도 비관하는 법이 없었다. 사랑하는 은하를 위기에서 구해내고 홀연히 사라졌다가 그녀의 결혼식 기념사진에서 목격되고, 은하의 집 앞 전신주 위에 올라가 통신선을 절단해서는 혼자만 그녀를 바라보며 통화하는 등 돈키호테같은 매력도 있었다. 고 화백은 "내 만화를 보고 돌아서서 사람들의 마음이 행복해지길 원했다"며 "목숨을 끊으려고 갈등하는 사람도 영탄이를 보면 '에이 그냥 대충 살지 뭐'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탄이는 스포츠에도 능했다. '해와 달'(축구), '폭풍 열차'(복싱), '전설의 야구왕' 등 간판 작품도 스포츠를 소재로 했고, 88서울올림픽 직전 발표한 '스포츠 가족'에서는 아예 만능 천재스포츠맨으로 그려졌다. 고 화백은 꾸준히 스포츠 규칙을 공부하고 선수 심리상태를 알기 위해 스파링까지 했다.공장식 대본소 시스템은 1990년대 중후반 일본만화의 개방과 맞물려 급격히 쇠퇴한다. 다작에 따른 스토리 고갈도 심각했다. 국내에 대본소 작가가 스물두 명 남았을 때 '고행석'의 판매 순위는 21위까지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모 작가가 영탄이의 눈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해당 작가가 꺼벙한 눈의 대명사가 된 게 불청객 시리즈 소멸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이후 그는 날카로운 눈매로 선회한 액션 위주의 '악질' 시리즈를 다수 선보이며 작품활동을 이어갔고, 요즘은 웹툰에 진출하기 위해 캐릭터를 개발하고 있다. 고 화백은 "항상 여유 없이 쫓기듯 일을 하다 보니 세월이 갔다"며 수줍게 웃었다.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면서 고 화백의 과거 대표작이 빽빽하게 채워진 진열대를 보니 대본소에서 신작을 마주했을 때의 벅참이 다시금 올라왔다. 불청객시리즈를 이불 옆에 쌓아두고 정신없이 정주행하던 아이들은 중년이 되어 고단한 일터로, 가정으로, 아득한 세월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 옛날 불청객을 이제 더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중요치 않다. 영탄이는 지금도 빛바랜 어느 골목 귀퉁이에서 꺼벙한 눈을 들이밀고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기 때문이다.글·사진/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고행석 화백은?▲1948년 전남 광양 출생 ▲1973년 최경 선생 문하생 ▲1974년 박기준 선생 문하생▲1981년 데뷔작 '아빠 아빠 우리 아빠' ▲1984년 '요절 복통 불청객' ▲1985년 '해와 달'▲1986년 '폭설속의 불청객' ▲1988년 '굴뚝새' ▲1988년 '스포츠 가족' ▲1989년 '폭풍 열차'▲1992년 '전설의 야구왕' ▲1993년 '마법사의 아들 코리'(애니메이션화) ▲2000년 '악질'구영탄은 고행석 화백이 독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다. 불청객시리즈에 나오는 나머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은 초창기 화실 식구들을 모델로 했다. 고 화백은 "영탄이의 연인 은하는 왈가닥이고 거칠면서도 솔직하고 맹한 캐릭터를 만들어보고자 했고, 여동생 친구 이름을 그냥 갖다 썼다"면서 웃음을 터뜨렸다.개발중인 웹툰 캐릭터

2020-03-24 김우성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술원장, "인천시의 對중국 교류 확대… 코로나 사태이후 기회올 것"

최근 인천시의 중국 자매우호도시들이 인천에 잇따라 보건용 마스크 등 구호물품을 보내오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전국적 현상이기도 하다.국내 최대 중국연구기관인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소속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사드 사태' 이후 경색된 한중관계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사드 이전으로 회복할 수 있는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 16일 오후 만난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은 "중국 정치체계상 중앙에서의 정책 전환이 없다면 지방정부가 대대적으로 지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치영 원장은 또 "관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코로나19가 확산한 유럽 등 서구 진출이 막히고, 중국의 '소프트 파워'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국 입장에서는 다시 한국 등 주변 국가와의 관계 개선이 필요해졌다고 본다"고 진단했다.중국과 가까운 인천이 코로나19 이후 대(對)중국 교류를 대대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도 전망했다. 조형진 중국학술원 부원장은 "인천시는 한중 FTA 지방협력도시로 지정된 웨이하이시와 가장 교류가 활발한데, 인천 입장에서는 웨이하이가 더 작고 한국 의존도가 높아 손해를 보는 측면이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한중관계가 개선되는 시기가 온다면 인천시도 지리적 이점을 살려 산둥성, 동북3성(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까지 영향력을 발휘할 계기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2020-03-17 박경호

[인터뷰… 공감]안치영 인천대 중국학술원장 '코로나19 後'를 말하다

세계경제 '치명타' 美·유럽과 관계 한계 직면 주변국과 해빙 필요중앙정부 '입김' 대대적 방호물품 지원 '한중 사드 경색' 변곡점'해양 실크로드'에 밀접한 인천… '일대일로 프로젝트' 연구 중요'코로나19'(COVID-19)로 명명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에 이르러 전 세계로 확산하는 중이다. 사회시스템이 마비되고 있는 국가가 속출하고 세계 경제는 요동치고 있다. 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과 가까운 대한민국도 8천명이 넘는 확진 환자가 나오면서 모든 국가적 역량을 코로나19 대응으로 집중하는 상황이다.코로나19 이전과 이후 국제 정세는 완전히 달라진다. 하지만 코로나19 최대 발병지인 중국의 대내외적 변화와 미국·유럽의 확산 추세, 그에 따라 한국이 어떠한 영향을 받을지는 팬데믹이 지속하는 현재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한중관계는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중국정치 전문가인 안치영 국립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장에게 '코로나19와 한중관계'에 관해 물었다. 인천대 중국학술원은 박사 학위를 소지한 전임 인력만 11명으로 국내 중국학 관련 연구기관 중 가장 많은 전문가가 있다. 안치영 원장은 이달 제3대 원장으로 취임해 중국학술원을 새롭게 꾸려 나가고 있다. 인터뷰는 국내 코로나19 확진 환자수가 8천236명을 기록한 지난 16일 오후 2시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인천대 중국학술원 원장실에서 진행했다. 조형진 중국학술원 부원장이 동석해 중간중간 부연했다. 인터뷰 내용은 당시 코로나19 상황이 기준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시진핑 체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나.최근 중국에서 이전과는 다른 정치형태가 보인다. 공식적으로는 지난달 중순께 중국 공산당 이론지인 '구시'(求是)에 시진핑 주석이 올해 1월 말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한 발언록이 실렸는데, 이처럼 빠르게 발언록이 나오는 경우가 없었다.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중국 지도부 내부에서도 여러 이견이나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으로 추론할 수 있다. 중국 인터넷에서도 민감한 용어는 문자를 바꾸거나 다른 코드를 넣는 방식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 권력이 집중화된 시진핑 체제가 코로나19를 초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실책이 있었다. 권력의 과도한 집중으로 인해 중앙정부와 우한시 같은 지방 사이 의사소통 자체가 원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중국 내부에서도 나온다. 또 다른 측면을 보면, 중국에 급속도로 번진 코로나19를 지금의 집중된 권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할 수 있다. 거의 불가능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국의 일반 인민들도 그런 부분은 인정하고 있다고 본다. 중국의 집중화된 권력은 코로나19 사태에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발 코로나19가 국제 정세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상황이 장기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데, 변화하는 상황에 적합한 예측은 불가능할 것 같다. 초기에는 코로나19가 중국과 한국에 아주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으로 생각했다. 장기적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으나, 중국은 현재 기준으로 일정 정도 수습되는 것으로 보이고, 한국도 관리가 가능한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다만, 일본은 전혀 어떠한 상황인지 알 수 없고.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은 관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할 때 세계 경제에서 어떠한 국가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하면 코로나19 초기인 1월과 2월에 생각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결론이 날 수도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충격이 동아시아보다 훨씬 클 개연성이 있다. 지금은 모든 예측 자체가 무용한 상황이긴 하다.이와 관련, 인터뷰에 동석한 조형진 부원장은 "애초 중국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측에서 오히려 유럽이 가진 약점이 드러나고 있는데, 위기상황에서 소비 진작과 인프라 촉진 등으로 국내적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중국이나 한국이 더 익숙하다"며 "하지만 중국이 미국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한 '일대일로( 一帶一路) 프로젝트'나 유럽과의 관계 개선 등은 코로나19로 인해 막힐 것"이라고 부연해 설명했다.-코로나19 이후 한중관계는 어떠한 변화가 있을까.시진핑 체제 이후 '중국의 부상'을 추진하다가, 코로나19 이후에 중국의 대외적인 영향이 약화하는 과정이 있었다. 중국 입장에서는 특히 서구와의 관계가 한계에 부딪힌 시점에서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빠르게 개선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 게 아닌가 추론한다. 한중관계는 1992년 수교 이후 '마늘파동'(2000년), '동북공정' 등 몇 차례 굴절을 겪었다. 가장 큰 전환점은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였다. 지금 상황에서 과도한 추측일 수도 있으나, 코로나19가 사드 이후 경색된 한중관계의 국면을 중국 입장에서는 다시 전환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지난달 말부터 중국의 한국에 대한 태도가 전면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 내 중국에 관한 비판적 여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관련 방호물자를 대대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코로나19 초기 한국이 중국에 지원했던 규모보다 훨씬 더 큰 보상을 하고 있다. 중국 웨이하이는 인천시가 보낸 마스크 2만장을 20만장으로 되돌려 보냈다. 중국 동포들까지 대구에 현금과 물품을 지원하는 등 여러 층위에서 중국의 대(對)한국 지원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의 시스템에서 중앙차원의 한국에 대한 정책 방향 전환이 있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국부적인 게 아니라 전면적으로 코로나19 관련 한국에 대한 협력적인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어떠한 입장을 가져야 하나.시진핑의 일본 방문은 연기됐지만, 한국 방문은 조건만 가능하다면 진행할 수도 있다. 여기서 조건은 정치적 조건이 아니라 코로나19 관련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는 상황이라고 본다. 한국 입장에서는 외교적 전략의 수정이 필요한 게 아니다. 현 한국정부는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를 모두 우호적으로 가져간다는 게 원칙이다. 중국은 사드 문제로 인한 제약을 지금까지 풀고 나오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한중관계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는데, 중국이 바뀌면 한중관계가 개선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항만·공항을 낀 관문으로서 인천은 중국과 밀접하다. 앞으로 인천대 중국학술원의 역할은.대외적으로는 한중관계에서 인천이 중요하고, 인천에서는 인천대의 역할이 중요하고, 그 속의 중국학술원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대가 많다. 그러한 기대에 부합할 만큼의 충분한 활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반성이 조금 필요하다. 2014년 설립 이후 50권 가까이 책을 냈으나, 형식적이고 양적인 성과를 특화할 질적인 성과로 전환해야 할 시기다. 조동성 인천대 총장이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관련 연구가 중요하다. 인천은 항구도시이자 해양도시인데, 일대일로가 중국의 실크로드 가운데서도 '해양 실크로드'에 밀접한 인천의 특성을 결합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동아시아 해양도시 간 협력하고 연계한 연구와 실질적인 협력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중국학과 관련해서 정치·경제 등 현재의 문제가 주요하게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중국을 이해하는 주요한 키워드는 '역사'와 '전통'이다. 시진핑 체제 들어서 특히 더욱 강조되고 있다. 중국학술원이 가진 중요한 뿌리는 중국의 역사·문화·전통에 관한 연구인데, 이를 현재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해 이해할 것인가도 특화할 수 있는 영역이다. 최근 들어 상당히 중요해진 이슈 중 하나가 한국·중국·일본의 '상호 혐오'다. 이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한·중·일의 평화와 발전이 불가능한 장애에 부딪힐 수 있다. 앞으로 한중일 협력의 기초로 중요한 영역이 될 것이다. 물론 무척 어려운 연구과제이고 논란도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안치영 원장은?1965년생으로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신대학교 학술원 전임연구원을 거쳐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인천대 중국학술원 중국자료센터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중국 민간 조직 정책문건'(학고방·2015), '덩샤오핑 시대의 탄생: 중국의 역사재평가와 개혁'(창비·2013), '중국의 민주주의: 공산당의 당내민주 연구'(나남·2011) 등이 있다.3월초부터 임기를 시작한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은 "중국 관련 인천이 가진 여러 관계와 역할 속에서 인천대 중국학술원이 공헌할 수 있는 조직으로 변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20-03-17 박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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