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웹툰 연재' 가천대 길병원 오영준씨

"모두 힘들지만 함께 극복하기를"29일까지 본관 지하1층서 전시회"한바탕 태풍이 지나가고 어느덧 고요를 찾은 코로나19 음압 격리실. 간호사의 방호복 안은 그간 사투 속에서 흘린 땀이 식어서 흡수도 안되는 이상하고도 오묘한 진득함으로 그득하다. 간호사는 자신이 뱉은 과호흡을 다시 들이킨다. 잠시 맞이하는 평화 속에서 녹초가 되어 태풍이 지나간 창밖을 보며…."<웹툰 '간호사 이야기' 재구성>코로나19 격리 병실에서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는 가천대길병원 간호사들의 일상을 웹툰으로 연재해 화제를 모은 페이스북 페이지 '간호사 이야기'. 그림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의료 현장의 최일선에 있는 가천대길병원의 오영준(34) 간호사였다. 한 장의 그림이 전해주는 진한 감동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고, 외신에도 그의 사연이 '한국의 영웅들'로 소개되며 화제가 됐다.8년 차 간호사인 그는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다가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돕는 '헬퍼'로 일하고 있다. 미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하다가 간호사에 도전을 한 그는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태블릿PC에 일상을 그림일기로 남기기 시작했다.이 웹툰은 다른 간호사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지만,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대중들에게도 큰 위안이 됐다. 우리 의료진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그의 웹툰을 통해 확인했다.코로나19가 확산하는 만큼 이들의 땀이 더 필요하다. '덕분에'라는 말만큼이나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고,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시민이 더 고맙다는 그다. 오영준 간호사는 "웹툰이 화제가 되는 만큼 지금 상황에서 엄청난 역할을 하는 우리 간호사에 대한 이미지가 더 긍정적으로 전해졌으면 좋겠다"며 "모두가 힘들지만, 함께 노력해서 극복하기를 바란다"고 했다.오영준 간호사의 웹툰 '간호사 이야기'의 주요 그림은 가천대 길병원 본관 지하 1층 편의시설 앞에 전시됐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희망 그림 전시회'라는 이름의 그림전은 이달 29일까지 진행된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가천대 길병원에 근무하는 오영준 간호사가 그린 일러스트. /오영준 간호사 페이스북 제공가천대 길병원 오영준 간호사가 페이스북에 연재 중인 웹툰 '간호사 이야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취재진이 사진 촬영을 위해 잠깐만 마스크를 벗어달라고 요청했으나 &quot;병원 내부라서 절대 안된다&quot;고 거절했다.

2020-09-15 김민재

[인터뷰… 공감]웹툰 '간호사 이야기' 연재하는 오영준 가천대 길병원 간호사

# 나이팅게일에 꽂힌 미술학도군대서 "사람 고쳐주는 사람되자" 결심중환자실 고된생활 적응후 전자펜 잡아동양화 묘미 살려… LA타임스 주목도# 음압병실 자원… 깊어지는 고민메르스 경험 축적 땀범벅 방호복 익숙내년까지 예측할 수 없는 장기전 양상감염병 확산 예방 '거리두기' 신신당부코로나19 음압병실에서 사투를 벌이는 간호사의 일상을 웹툰으로 연재해 최근 화제를 모은 가천대 길병원 오영준(34) 간호사.그의 그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코로나19와 맞서 싸우는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웹툰이 연재되는 페이스북 '간호사 이야기' 페이지를 하나씩 넘길 때면 중증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려면 얼마나 많은 의료진의 땀이 필요한지 엿볼 수 있다.방호복으로 땀 범벅이 돼 하루에 2~3번 샤워를 하느라 머리카락 말릴 시간도 없는 동료 여성 간호사들이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근무를 하는 모습과 외부와 차단된 음압병실에서 유리창을 칠판 삼아 좌우 반전 글자로 대화를 나누는 의료진의 고충 등은 현장에서만 나올 수 있는 그림이다. 당장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목욕 용품과 휴대전화 충전기부터 챙겨달라는 환자. 택배는 기본에 배달 음식까지 병실에 넣어달라는 환자·보호자. 그리고 이들과 실랑이하는 병동의 간호사들. 의료진의 현실이 그대로 녹아든 간호사 이야기는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공감을 얻으며 '좋아요' 6만6천건의 인기 페이지가 됐다. 바다 건너 미국 LA타임스에까지 그의 그림이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대구 출신의 오영준 간호사는 화가를 꿈꾸던 미술학도였다. 한국화를 전공하다가 군에 입대에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중 간호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군대에서 미술의 길을 계속 갈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점점 확신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릴 적 읽었던 나이팅게일 위인전이 머릿속을 휙 하고 지나갔어요. 사람을 고쳐주는 사람이 되자. 그리고 간호대로 편입해 이 길에 접어들었습니다."국가고시에 합격하고 2013년 가천대 길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어렵다고 정평이 난 중환자실에 배정됐다. 주·야간 3교대 생활에 적응하며 타향 생활에 점점 익숙해 질 때쯤 잠시 잊고 있었던 그림이 생각났다."워낙 어렸을 때부터 해왔기 때문에 그림은 취미로 계속 하고 있었는데 직업에 적응을 할 무렵인 3년 차 때부터 여유가 생기면서 어떻게든 그림이라는 재능을 써먹어 보자고 생각을 했어요. 내가 매일 경험하는 곳이 병원이니까 병원을 무대로 한 일상 웹툰을 그려보기로 했죠."일종의 그림일기처럼 그려보자고 생각해 종이와 붓 대신 태블릿PC에 전자펜으로 그림을 그려 나갔다. 아무래도 직장이 무대이다 보니까 익명으로 시작했는데 여기저기 그림이 공유되다 보니 금방 정체가 드러나고 말았다."직장 생활을 그리다 보니 상급자 뒷담화도 그리게 되고, 내부 현실에 대한 비판도 제기하다 보니까 이름을 드러내고 활동하기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 이유로 잠시 웹툰을 쉬기도 했죠."그는 지난 2015년 국내에 발생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가천대 길병원 격리 병동에 자원해 근무했다. 지금은 코로나19 중증 환자치료 병동에서 '헬퍼' 역할을 하고 있다."메르스 당시만 해도 신종 감염병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기여서 의료 인력조차 불안해하던 때였어요. 우리 병원에도 음압병실이 필요한데 의료진 역시 필요했죠. 대부분 여성에, 결혼해 자녀가 있는 분들이 많아 혼자 사는 남성인 제가 자원하기로 했죠. 그때는 지금처럼 방호복도 제대로 못 갖추고, 수술 가운에 모자 하나 쓰고 투입됐던 것 같아요."그는 올해 초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역시 의료진에 자원했다. 처음에는 수도권에 피해가 적었지만, 3월부터 대구 신천지 관련 확진자가 넘쳐나 대구·경북 의료체계가 한계에 달하면서 중증 환자가 인천으로도 오기 시작했다."일반 폐렴 환자는 일정 기간 경과를 두고 진행되는데 대구에서 오신 한 어르신이 하루 만에 중증으로 악화한 상황을 보고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예감했죠. 그래도 메르스 때 경험이 축적돼 방호복을 입고 벗는 것은 좀 익숙해졌어요. 중환자실에 있다 보니 중증 환자가 발생할 경우 순발력 있게 대처할 수 있었어요."그가 의료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부분은 그림으로 남았다. 그림 하나가 주는 전달력은 열 마디 말과 글보다 파급이 컸고, 더 많은 공감을 얻었다."동료 간호사들을 보면 내가 예전에 했던 고민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경우도 있었고, 나 역시 공감을 하다 보니 당시 상황을 사진으로 찍어두거나 머리 속에 담아뒀다가 집에 와서 그림으로 표현했어요. 의학 드라마를 보면 의사들이 주목되고 간호사는 주변 사람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포장하고 싶다는 생각도 강했죠."그림은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1시간이면 완성된다.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주로 선으로 표현하는데 크로키(빠른 시간에 그리는 스케치) 기법을 많이 사용한다. 다만 의료장비 등 기계나 인물을 묘사해야 하는 그림은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한다. 외신들이 주목하는 이유도 선과 여백이 조화를 이루는 그의 동양화기법 때문이다.그는 웹툰 작가가 아닌 평범한 간호사로서 일상이 돼버린 코로나19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뉴스로만 아는 게 아니라 직접 현장에 투입된 당사자인 터라 느끼는 점이 남다를 터다. 그는 가천대길병원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한 번도 마스크를 내리지 않았다. 인터뷰용 사진을 찍기 위해 잠깐 마스크를 벗어달라고 정중히 요청했으나 "병원 안에서 간호사복을 입은 사람이 어떻게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느냐"며 완강히 거절했다."코로나 19는 단기간에 끝나는 게 아니라 장기전으로 이어지는 분위기고, 내년 또 내후년까지 어떻게 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봐요. 국민들은 지쳐가고 있고 경제·사회 전 분야에 코로나19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게 됐어요. '코로나 블루'라고 하는 우울증도 문제고요. 어떻게든 더 이상 확산하지 않도록 시민들이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에 더 힘써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더 건강해지고 밝아진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글/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오영준 간호사는?대구에서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미대에 입학해 한국화를 전공했지만, 군 제대 후 "새로운 승부를 걸어보자"고 결심해 가천대 간호학과에 편입했다. '혼자 사는 남자'라는 이유로 격무 부서인 중환자실에 반강제로 끌려가다시피 했지만, 적성에 맞았는지 어느덧 8년 차에 접어들었다. 미술학도의 본성을 감추지 못하고 2015년부터 페이스북에 웹툰 '간호사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가천대 길병원 오영준 간호사가 페이스북에 연재 중인 웹툰 '간호사 이야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취재진이 사진 촬영을 위해 잠깐만 마스크를 벗어달라고 요청했으나 "병원 내부라서 절대 안된다"고 거절했다.가천대길병원 오영준 간호사가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방호복을 입고 있다. 방호복을 벗으면 땀에 흠뻑 젖고, 감염 우려 때문에 하루에 두세번 샤워를 해야 한다고 한다.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가천대 길병원 간호사들의 일상. /오영준 간호사 페이스북 제공음압 텐트에 실려 후송된 환자를 안전하게 격리 병실로 이동해야 하고, 겹겹의 방호복을 입고 주사를 놓을 환자의 핏줄을 찾는 것도 간호사들의 몫이다. /오영준 간호사 페이스북 제공하루에 2~3번 샤워를 해야 하는데 머리를 말릴 시간도 없어 아무렇게나 수건을 두른 채 일을 하고 있다. /오영준 간호사 페이스북 제공코로나19 환자에게 사용하고 남은 의료 폐기물을 처리하는 고되고 위험한 일도 간호사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영준 간호사 페이스북 제공

2020-09-15 김민재

[인터뷰… 공감]'혁신과 변화의 바람' 성기창 국립한국복지대학교 신임 총장

개교와 함께 유니버설 건축과교수 임용 '한배'… 대학 장단점 꿰뚫어장애·비장애 신입생 함께 프로젝트 '1주일 OT학기제' 공감대 형성2000년대부터 온라인 교육과정 구축… 속기사·수화통역사 동시 지원국내 유일의 장애인 고등교육기관인 평택시 소재 국립한국복지대학교 수장에 새로운 인물이 등극하며 대학 발전을 위한 '콴툼 점프'가 시작됐다.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들이 한데 어우러져 통합사회형 인재를 양성하는 한국복지대에 새로운 혁신과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을 성기창 신임총장이 지난 달 7일 취임했기 때문이다.성 총장은 취임사를 통해 "공정과 투명, 합리를 3대 운영방침으로 장애인 고등교육기관으로서 한국복지대의 설립 목적과 사명 및 비전을 잊지 않고 교내 구성원 모두가 신뢰와 공감, 협력으로 함께 하는 대학과 대학다운 대학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포부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그의 교육철학을 대학 운영에 어떤 방식으로 접목해 비약적인 대학 발전을 이끌어 낼지 그 '청사진'을 들어봤다."장애인 통합교육으로 진정한 사회통합을 목표로 한 본교의 개교이념은 교수 임용 당시 저의 가치관과 전공인 무장애건축(장애인을 고려한 건축 환경의 창출) 그리고 유니버설디자인 관점에서 저를 매혹시켰다. 교육을 통한 '좋은 세상'의 꿈을 갖게 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성 총장이 첫 운을 뗀 이 말 속엔 한국복지대에 대한 그만의 특별한 애착이 느껴졌다.그도 그럴 것이 성 총장은 한국복지대가 개교한 지난 2002년 유니버설건축과 교수로 임용돼 한 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으로 한국복지대의 역사와 자신의 삶이 그 궤를 같이한다. 그러기에 성 총장은 지난 수십 년 간 이어져 온 복잡한 한국복지대 변천사를 한눈에 꿰뚫고 있으며 누구보다 한국복지대의 장단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성 총장은 한국복지대의 장단점에 대해 막힘 없이 쏟아냈다.그는 "우리 대학의 장점은 작은 규모의 대학이기에 할 수 있는 학생맞춤형 교육환경이 조성돼 있다는 것이다.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10명 내외다. 이 때문에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질 높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거기에 국립대 중 최저 수준의 등록금과 다양한 장학금 및 복지제도 등은 모든 학생이 경제적 걱정 없이 배울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특히 교육부에서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장애대학생 교육복지실태평가에서는 5회 연속 전국 최우수대학으로 평가받았다"고 말했다.이어 한국복지대의 단점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설명했다.그는 "우리 대학의 단점은 앞서 언급했듯이 타 대학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학생 정원과 개설 학과 수로 고등교육기관으로서는 규모의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영세한 규모의 전문대학체제로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특히 변화와 발전의 원천인 연구개발 역량이 축적되지 못하는 전문대학체제로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응하는 장애인 전문인력이나 지원인력 양성에서 많은 애로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성 총장은 이 같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한경대와의 통합'을 해법으로 제시했다."우리 대학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학 운영체제의 개편방안으로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은 인근 도시인 안성에 소재한 '국립 한경대와의 통합'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두 대학의 통합은 성사 직전 단계까지 와 있다. 통합이 성사된 이후 새로운 교육 시스템이 구축되면 우리 한국복지대는 명실공히 국내 장애인 고등교육의 메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성 총장은 껄끄러운 두 대학 통합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당위성을 설파하며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 나갔다."두 대학의 정원을 합쳐도 1천354명으로 타 대학에 비해 규모가 작다. 경기도가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거주 인구가 가장 많은 점을 감안하면 경기도민들에게는 매우 불합리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경기도를 대표하는 수준 높은 국립대학이 없는 현실에서 두 대학의 통합은 공적 고등교육 서비스 체계를 수립한다는 당위성 측면에서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사실 두 대학이 통합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성 총장이다. 통합이 성사되면 성 총장은 부총장으로 직위가 내려간다.하지만 한국복지대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성 총장은 개인의 영달이 아닌 대학 발전을 선택했다. 이 때문에 성 총장의 용단에 두 대학 구성원 모두가 갈채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성 총장은 타 대학에 비해 장애인 학생 수 비율이 높은 현실을 감안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들 간의 조화로운 교육과정에도 엄마와 같은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었다."우리 대학은 모든 신입생들에게 '자기탐색과 소통:오락실 가자'라는 교과목을 통해 장애·비장애 학생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 수업을 1주일간 오리엔테이션 학기제로 운영함으로써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같은 교육 과정을 통해 우리 대학 학생들은 서로의 차이를 고려한 대학생활을 하게 돼 자연스럽게 '통합사회형 인재'로 거듭난다"고 설명했다.또한 성 총장은 2000년대부터 메르스와 코로나19 등 각종 전염병 창궐로 비대면 수업이 이뤄지는 비상사태에서 위기를 기회로 삼고자 한국복지대만의 특별한 온라인 교육 과정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그는 "우리 대학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체계적인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애인 학생들이 있기에 타 대학들에 비해 비대면 수업이 일상 생활화돼 있음은 물론 이러한 시스템도 이미 구축돼 있다. 온라인으로 학생들의 성적과 진도, 출석 등을 관리해 주는 시스템을 활용해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화상수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속기사와 수화통역사 등이 동시에 강의를 지원해줘 재학생들이 대면과 비대면 수업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모두 만족스럽게 강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마지막으로 성 총장은 "현 시대 입학자원 학령기 학생들의 현저한 감소와 코로나19 사태로 입시홍보의 전면적 제한은 신생대학인 우리에게는 엄청난 위기다. 이런 문제를 단시간에 해결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걸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공감대를 함께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우선 순위에 따라 실질적으로 균형 및 합리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최적의 해법과 실천방안을 함께 모색해 나가야 한다"며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신뢰와 공감을 토대로 합심의 노력을 강조하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글/민웅기기자 muk@kyeongin.com, 사진/한국복지대학교 제공■ 성기창 총장은?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개인적 삶의 지향은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한결같은 마음을 뜻'하는 '희망(希望)의 일로(一路)'. 교육철학은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서 보다 나은 사회 만들기.1985년 건국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교에서 건축공학과 설계분야 공학박사를 취득했다.2002년 한국복지대 개교와 함께 유니버설건축과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학내에서 유니버설디자인센터장과 산업기술연구소장, 교수협의회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대외적으로는 서울시와 평택시, 성남시, 고양시 등에서 도시디자인위원회 및 건축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현재도 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 심의위원,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부회장 등의 신분으로 자신이 가진 재능을 뽐내고 있다.■ 국립한국복지대는?평택에 위치한 국립한국복지대학교는 장애인 고등교육 및 통합교육을 위해 지난 2002년에 설립된 국내 유일의 특수목적 국립전문대로 현재 인문사회·공학·예체능·자연과학 등 4개 계열 14개 학과에 장애인 학생 255명과 비장애인 학생 409명 등 총 664명의 학생이 재학 중인 강소대학이다.한국복지대는 장애인 특수 목적 대학답게 장애학생들로만 구성된 공공행정과, 장애상담심리과, 장애인레저스포츠학과가 있다.특히 한국복지대는 장애와 비장애 학생들이 함께 재학 중인 학교인 만큼 서로 다름과 차이를 인정함과 동시에 차별 없이 배우고 익히는 통합사회형 인재양성 교육 등을 통해 명실상부한 국내 유일의 장애인 고등교육 거점 대학으로 전국에 정평이 나 있다.성기창 한국복지대학교 총장은 취임과 함께 내걸은 기치인 '대학다운 대학, 함께하는 대학'이라는 문구가 담긴 정흥균 유니버설디자인과 교수로부터 선물 받은 액자 앞에서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한국복지대학교 제공성기창 한국복지대학교 총장은 "영세한 전문대학체제로서는 변화·발전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한경대와의 통합은 공적 고등교육 서비스 체계를 수립한다는 당위성 측면에서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0-09-08 민웅기

[인터뷰… 공감]'제2대 회장 연임' 임남례 인천 W아너소사이어티 클럽 회장

여성CEO협회장 역임… "가난 탓 배움 포기 안돼" 장학금 기부 공들여인천 아너소사이어티클럽 143명중 여성은 24명뿐… 회원 확대 급선무코로나19로 가정·기업 경제활동 위축 "위기일수록 나눔 도시 위상을"'나눔의 기쁨은 행복의 또 다른 이름,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2015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클럽'의 65번째 인천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50년 가까이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임남례 인천 W(여성)아너소사이어티 클럽 회장의 좌우명이다. 2018년 출범한 인천 W아너소사이어티 클럽의 초대 회장으로 부임해 2년 임기를 마친 그는 제2대 회장에 연임하며 지난 6월부터 새 임기를 시작했다.동양주택과 하림(河林)한정식을 운영하고 있는 임남례 회장은 한국여성CEO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명예회장으로 재임 중인 인천지역의 대표적 여성 리더다. 또한 스페셜올림픽코리아 고문 등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을 비롯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각종 장학금과 정보화 지원사업, 화재 복구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 기부하며 지역사회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임 회장이 생각하는 '나눔'은 무얼까. 인천 미추홀구 주안1동 행정복지센터 인근에 있는 하림한정식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대전에서 태어난 임 회장은 결혼하면서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경제 활동을 하며 나눔을 실천하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자신이 학창시절 겪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갑자기 가정형편이 어려워졌어요. 유년과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람이 내게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상상을 했던 적이 있었죠. 그 때문에 내 삶에 작은 여유가 생기면 나눔을 실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평소 장학금 관련 기부를 많이 하고 있는 임 회장의 첫 나눔 또한 장학금이었다. 그는 "내가 자랄 때 가난 탓으로 배움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더는 가난 때문에 배움을 포기하는 학생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임 회장에게 '나눔의 의미'를 묻자, "나눔은 잘 사는 것"이라고 답했다."얼마 전에 본 방송에서 어느 강사가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고, 잘 사는 사람은 좋은 추억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는 말에 깊은 공감을 했어요. 저는 부자는 아니에요. 다만 1970년대 초부터 인천에서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잘 사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품고 있어요. 살면서 보니, 부자라고 해서 그들이 모두 나눔을 실천하는 것도 아니고, 적게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서 나눔을 실천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그 도움으로 많은 사람이 행복에 좀 더 가까워지는 모습을 통해 나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고, 그런 실천이 내 삶에 큰 추억으로 남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그는 이어서 '특권층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한 우리나라의 기부 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어린이들이 가정이나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소액 기부교육을 받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작은 나눔을 실천하면서 느끼는 행복감을 어려서부터 경험한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기부가 꼭 돈이 많은 사람만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바꿀 수 있을 거예요. 이러한 작은 경험이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인식을 키워줄 것입니다."화제를 바꿔서 얼마 전 새 임기를 시작한 인천 W아너소사이어티 클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1일 현재 인천 아너소사이어티 클럽 회원은 143명이며, 그중 24명(17%)이 여성이다. 남성의 비율과 차이가 크다. 하지만 여성 회원들은 가족과 지인,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에 나눔문화 확산의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면에서 중요하다고 평가받는다. 우리 사회가 임 회장의 활동에 관심을 두고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코로나19로 인해 시기적으로 어려움이 많아요. 그로 인해, 나눔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더욱 많아지고 있고요. 아무래도 인천 W아너소사이어티 클럽의 회원 확대가 급선무라고 생각됩니다. 지역 여성경제인들이 나눔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끌 계획이에요. 그동안 넓혀온 인적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폭넓은 행보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현재 여성경제인들의 여건은 과거와 비교하면 많이 좋아지고 향상됐다. 임 회장은 여성경제인들이 일과 가정의 양립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기는 하나, 여성 특유의 자상함과 친숙함을 무기로 대인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을 살린다면 얼마든지 큰 기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봤다."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크고 작은 갈등들을 많이 겪게 되는데, 여성들에겐 어머니와 같은 포용력으로 갈등들을 해결하고 회복시키는 큰 장점이 있어요. 1대1로 만나서 대화로 못 풀 것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같은 장점을 충분히 활용한다면, 여성경제인들의 리더로서의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임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외형적으로 발전하는 인천의 위상에 걸맞게 나눔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에게 고향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인천에서 나눔을 실천하고, 나눔문화를 퍼뜨리겠다는 것이다."코로나19로 인해 각 가정과 기업의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어려움이 커졌습니다. 인천 아너소사이어티 클럽의 회원 가입 또한 줄어들고 있어서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일수록 우리 시민은 나눔의 정신을 살려 위기를 극복해 왔습니다. 이번 위기도 십시일반의 정신을 살려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눔으로 이번 위기를 극복한다면 '국제도시 인천'에 걸맞은 '나눔도시 인천'으로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임남례 회장은?1951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1969년 인천에서 결혼 후 건설업을 하던 남편의 사업을 이어서 충남 천안에서 주택사업을 시작했다. 음식 솜씨가 좋다는 주변의 권유로 1999년 하림한정식을 오픈, 운영 중이다. 제4대 한국여성CEO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인천 W아너소사이어티클럽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천상공회의소 23대 의원, 인천경영포럼 부회장, 스페셜올림픽코리아 고문으로도 활동 중이다. 슬하에 2녀를 두었는데, 2018년에 열린 제37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부문 대상을 수상한 봄날 이상연 작가의 모친이기도 하다.임남례 회장이 좌우명인 '나눔의 기쁨은 행복의 또 다른 이름,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문구가 담긴 문인화 작품을 가리키고 있다. 임 회장은 "부자로 사는 것보다 베풀며 잘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2020-09-01 김영준

[인터뷰… 공감]49년전 '광주대단지사건' 폭동의 굴레 벗나… 세상에 알린 윤흥길 작가

여중생 어두운 얼굴 통해 실마리 포착교편 내려놓은후 집필 착수당사자에 감정 이입거리두기 과정 권기용 등 캐릭터 입체성 높여도시빈민운동 주목·교과서에도"시민 문제의식 과거 병폐 반복 막아"어떤 역사는 현재가 된다. 1977년 윤흥길(79)의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이하 '아홉 켤레')로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른바 '광주대단지사건'이 그렇다.최근 성남시가 시 생성의 결정적 계기가 된 광주대단지사건을 재조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면서 성남 지역 예술가들이 '아홉 켤레'를 소재로 뮤지컬과 미술작품 등을 속속 내놓고 있다.윤 작가는 "폭동으로 일축되던 광주대단지사건이 49년 만에 재조명되다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라고 말했다.광주대단지사건은 지난 1971년 8월 10일 성남시 수정·중원구(당시 광주군 중부면)에서 일어난 강제 이주 반대 집회다.박정희 정부의 졸속 행정에 반발한 주민 수만 명이 대규모 집회를 벌여 정부 입장의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당시 언론은 '정부의 강압적 행정'이란 본질을 누락하고 '단순 폭동'으로만 규정했다.작가는 이 사건의 최초 기록자다. 그는 "흔히들 내가 사건에 직접 참여했다고 생각하지만 나 또한 언론 보도로 사건을 처음 접했다"고 털어놨다.지인의 소개로 1973년 성남 숭신여자중·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것을 계기로 사건의 실마리를 포착했다. 그는 당시 담임을 맡았던 여중생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것을 보고 이 지역에 뭔가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그러나 사건 조사는 그리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는 "성남 현지인 위주였던 여중생들은 외지인 위주였던 여고생들에 비해 유달리 어둡고 소심했다. 2년간 가정 방문 등을 하며 그들에게 그림자가 드리운 이유를 알려 했지만 모두 나를 경계한 나머지 묵묵부답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답답해 하던 그에게 어느 날 행운이 찾아왔다. 예비군훈련장에서 광주대단지사건 당사자를 우연히 만난 것이다.이후 작가는 이 청년과 술자리를 가지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사건의 전모를 듣게 된다. 그는 교편을 내려놓고 소설 '아홉 켤레' 집필에 착수해 1977년 세상에 내놓는다. 전업 작가로서 첫 작품이었다.윤 작가는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활동으로 정보기관에 연행되는 등 시대적 상황이 엄중해도 자기 검열에 빠지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그는 사건이 큰 문제임을 직감했지만 소설 외의 수단으로 사건을 폭로하는 건 작가의 본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대신 사건 당사자를 만나 보고 들은 것을 리얼리즘 소설로 정교하게 가공했다.피해자들의 빈곤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소설에서 극도로 사실적으로 표현된다. 뒤집어진 트럭에서 참외가 진흙탕에 대거 굴러떨어지는데 시위에 참여한 주민들이 벌떼처럼 달려가 참외를 주워 먹는 장면이 그것이다.특히 소설은 순박한 시민이었던 권기용이 왜 폭동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밝히는 대목에서 광주대단지사건의 전말을 서술하며 역사를 기록하는 역할까지 수행해 낸다.윤 작가는 "성남에 거주하는 동안 만난 모든 사람이 '아홉 켤레'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을 지워 줬다"고 설명했다.또 작가는 작품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인물을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데 중점을 뒀다.소설에서 광주대단지사건 피해자 권기용을 지켜보며 그의 변화를 독자에게 전달해주는 인물인 '오 선생'이 지성인이라 자부하지만 속물근성에 가득 찬 캐릭터로 설정된 건 이 때문이다.아내의 병환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권씨가 이웃 오 선생을 상대로 강도짓을 저지르며 내뱉는 명대사 "이래 봬도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도 철저한 구상 끝에 만들어졌다.그는 "당사자에게 감정을 이입했다가 거리 두는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며 "그래야만 작품이 의도했던 바를 정확히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작가의 의도는 적중해 '아홉 켤레'는 입소문을 타고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손학규, 김문수 등 유력 정치인이 광주대단지사건을 계기로 도시빈민운동에 투신해 정치에 입문했다.소설은 작품성도 인정받아 출간 당해 작가에게 한국문학작가상을 안겼고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그러나 49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지난 2016년 성남시가 '광주대단지사건 실태조사 및 성남시민 명예회복에 관한 조례안'을 상정했지만 상위법과 상충한다는 이유로 시의회에서 부결됐다.이후 성남시는 지자체 소관 안에서 광주대단지사건을 재조사할 수 있도록 조례안을 대폭 수정해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사건의 본질을 재규정해 연내 광주대단지사건에 새 이름을 붙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윤 작가는 "병은 드러내야 치유된다"며 "아픈 역사의 진실을 밝혀 반면교사로 삼아서 성남시가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소설은 최근 예술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동시대성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 성남지역 예술가들은 광주대단지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이돈순 작가는 '분리된 도시의 삶-광주대단지사건으로부터'전에서 청바지를 입은 하반신 인체 모형 22개가 무릎 꿇거나 못 박힌 모습을 연출해 당시 시위 현장에서 구속된 시민 22명의 아픔을 되살려냈다.극단 '성남93'은 '아홉 켤레'를 기반으로 만든 뮤지컬 '황무지'에서 노래와 연기로 광주대단지사건 현장을 재현한다.윤 작가는 이에 대해 "정부가 국민을 오도하는 건 49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감시자 역할을 톡톡히 하는 시민들에게서 희망을 본다"며 "문제의식이 있는 시민들 덕분에 과거의 병폐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작가는 요즘 신간 '문신' 마지막 권 집필에 여념이 없다. 젊은 남성이 징집돼 전쟁터에 나갈 때 몸에 문신을 새겨 시신이라도 고향에 묻히길 바라는 부병자자(赴兵刺字) 풍습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윤 작가는 "앞으로도 역사를 바탕으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업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글/이여진기자 aftershock@kyeongin.com, 사진/성남시·성남문화재단·문학동네 제공·경인일보DB■ 윤흥길 작가는?▲ 1942년 전라북도 정읍 출생 ▲ 1964년 춘포국민학교 교사, 숭신여자중·고등학교 교사 ▲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회색 면류관의 계절'로 등단 ▲ 1973년 원광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 1977년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로 제4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 1983년 '완장'으로 제28회 현대문학상 수상▲ 1983년 '꿈꾸는 자의 나성'으로 제15회 한국창작문학상 수상 ▲ 1995년 '낫'으로 제12회 요산문학상 수상 ▲ 2000년 '산불'로 제6회 21세기문학상 수상 ▲ 2004년 '소라단 가는 길'로 제12회 대산문학상 수상 ▲ 2010년 '소라단 가는 길'로 제14회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신' 등으로 제10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 5인 선정(수상자는 다음 달 17일 결정)성남시가 최근 도시 생성의 결정적 계기가 된 광주대단지사건을 재조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면서 사건을 최초 기록한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작가 윤흥길이 새삼 재조명받고 있다.1970년대 사건 당시 광주대단지 관련 언론 보도.1970년 당시 광주대단지.광주대단지사건 당시 구속된 시민 22명의 아픔을 하반신 인체 모형으로 표현한 이돈순 작가 작품.

2020-08-25 이여진

[인터뷰… 공감]'인천 구도심에 활기 불어넣는' 권은숙 생활문화공간 달이네 대표

배다리 벗어나 옛 수봉공원 밑자락에 창작실험실 '예술가와 공유'무인형태 가게… 로봇 대체 아니라 주인장 더 많은 손길 '친근함 선사'혼자가 아닌 작가들 교류·소통 일반인 이웃에 소재 얻을 수도 있어'활짝 열린 셔터' 동네어르신들 반겨… 4층 건물 '문화빌라' 조성 포부사람 대신 고양이가 서점을 지키는 무인 책방, 극장·공방·타로 점집 등으로 매일매일 모습을 바꿔 문을 여는 가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은 이들의 문화공간, 여행객을 위한 안내소….구도심인 인천 동구 배다리에는 이런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배다리에 활기를 불어넣는 활동을 10년 넘게 이어온 이는 본명 대신 '청산별곡'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진 문화기획자 권은숙(54)씨다. 그런 그가 딱 1년 전인 지난해 배다리를 벗어나 또 다른 구도심 미추홀구 옛 수봉공원 밑자락에 창작자들을 위한 공간인 '창작실험실 수봉정류장'의 문을 열고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다. 수봉정류장은 창작자와 생활예술가들이 모여서 각자의 작업을 공유하는 '창작 실험실'이자 놀이터다. 수봉정류장에서 그를 만나 지난 1년을 포함한 그동안의 활동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권씨는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책방이나 창작자들이 맘 편히 작업할 수 있는 창작공간 등 동네마다 각자 다른 개성이 있는 문화공간이 들어섰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아기자기한 문화공간이 문을 열 수 있도록 싹을 틔우는 데 작은 역할이나마 하고 싶다"고 말했다. -2009년부터 시작된 배다리에서의 지난 10여년의 활동을 소개하면"'문화공간 달이네'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문화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인천에서 성장했고 인천을 떠나 환경단체 활동가로 활동하며 지역의 이슈를 따라다니며 지방을 돌았다. 그러다 부모님 건강 때문에 다시 인천에서 활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인천에 정착해 처음 시작한 것이 2009년 8월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 차도 마시고 책도 볼 수 있는 공간인 '나비날다 책 쉼터'였다. 환경·인권·평화분야의 아끼던 책들과 기증받은 책을 공간에 함께 뒀다. 그런데 손님들이 그 책들을 팔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래서 쉼터가 아닌 책을 파는 책방을 직접 열게 됐다. 2012년 1월 시작한 '나비날다 책방'이다. 이후 지금의 조흥상회 건물로 옮겼다. 이 근대건축물에 남겨진 물건을 모아 생활사전시관 공간도 따로 열었다. 책방을 하다 보니 헌책방 골목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여행객이 많아졌다. 그래서 문을 연 것이 2013년 3월 '배다리 안내소'였다. 2014년 12월에는 조흥상회에 딸린 창고 건물을 활용하기 위해 매일매일 공간의 모습을 바꾸는 상점 '요일가게 다(多) 괜찮아'라는 공간을 차렸다."-자랑할 만한 일을 꼽으라면 어떤 것이 있나"욕심을 부리지 않은 것을 꼽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꾸준히 지치지 않고 해온 것 같다. 도중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직접 붙잡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성실하게 끌고 온 것이 지금까지 버틴 힘이라고 생각한다. 천천히 급하지 않게 그때그때 할 일을 찾아 해오다 보니 필요에 따라 공간 모습을 바꿔온 것이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의 형태를 제안하는 분도 있는데, 이 같은 가변성과 자율성을 존중받고 싶어서 고려하지 않고 있다. 무인형태의 운영 방식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 뿌듯하다. 사람이 지키지 않아도 공간이 유지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대부분 공간이 운영자가 필요 없는 무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사람의 빈자리를 로봇이나 컴퓨터가 대체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주인장의 손길이 더 많이 가는 방식이어서 무인 상점이 오히려 손님에게 친근함을 준 것 같다. 배다리에 다른 무인책방이 들어서기도 했다. 날마다 다른 '요일가게'의 경우는 거의 원조 격이다. 지금 전국에 16곳의 비슷한 개념의 가게가 활동 중이다. 이러한 공간 운영 경험들이 지금의 수봉정류장까지 이어지고 있다."-창작실험실 수봉정류장은 어떤 곳이며 수봉공원 인근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지난 10여 년 간 배다리에서 주로 활동을 하면서도 잠을 자는 집만큼은 지금 있는 수봉공원 밑자락인 숭의동에 두고 있었다. 활동하려면 지역에 대해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기회를 엿봤다. 창작실험실 수봉정류장은 말 그대로 창작자들이 이것저것 마음 편하게 시도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1층 75㎡ 공간을 6명의 작가가 나눠쓰고 있다. 기성 시인부터 시각예술가, 뜨개·공예 등 생활 창작자 등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창작은 새로운 것이다. 뭔가 새로운 걸 하기 전에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생긴다. 작업실 비용도 부담되고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하게 된다. 작가 여럿이 임대료를 십시일반 부담해 임대료 부담을 줄였다. 두려움 없이 무언가를 해보고 안되면 또 다른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공간을 쓰는 작가들과 함께 교류하며 서로 창작의욕을 자극받기도 한다. 일반인과 작가의 경계가 크지 않다. 작가들이 창작의 소재나 에너지를 일반인에게서 얻기도 하고, 일반인은 이웃처럼 어울리며 배우고 서로 그런 것들이 좋다."-이곳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가"동네 주민들이 많이 좋아하신다. 구도심 특성상 어르신이 특히 많은데 쓰임이 없어 오래도록 셔터가 내려진 채로 있던 1년 전보다 좋다고 하신다. '수봉'이라는 이름을 쓴 것도 좋아하신다. 아무래도 공간을 예쁘게 가꾸면서 쓰다 보니 그러신 것 같다. 들어오기 불편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벤치도 마련했고 지금은 많은 분이 안으로 들어와 얘기도 하고 작품도 구입한다. 한번은 이 근처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연락을 받지 않으신다고 서울에 있는 자녀에게서 확인 좀 해달라고 연락이 온 경우도 있었다. 동네 분들이 책이나 가구를 기증해 주기도 한다. 여기 공간을 채운 물건중 새로 사온 것이 거의 없다. 화분도 작가들이 잘 키울 것 같다며 동네 어르신이 주신 거다. 조만간 주민들이 기증한 물건을 모아 시장도 열 계획이다. 지난 1년간 전시를 하기도 하고 작가를 초청해 저자와의 만남의 행사를 하기도 했다. 글쓰기 수업과 번역수업이 진행됐고 생태철학 강의는 진행 중이다. 빵을 만드는 재능을 가진 작가가 주도해 꽈배기를 만들어 파는 행사도 치렀다. 동네 주민들은 지금도 꽈배기 얘기를 많이 하신다. 미추홀구와 '수봉산 둘레 마실길'을 함께 만들기로 했는데, 작가들이 참여하는 동네 탐방도 진행했다."-수봉정류장이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하나"지금 4층짜리 건물인데, 1층을 작가들이 쓰고 2층은 공방 겸 작업실로, 3~4층은 거주공간, 옥상을 텃밭 등으로 꾸며 창작자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고 마음껏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문화빌라'로 꾸미고 싶다. 수봉정류장을 거점으로 이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끼리 무언가를 기획하고 저마다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만들고 동네의 골목문화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이 같은 문화공간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수봉정류장이 그 싹을 틔웠으면 한다. 이런 활동이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 개인의 재능이 여러 사람과 연결되며 더 크게 발휘되고 집단을 이루고 공동체가 되고 더 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수봉정류장이 역할을 하고 싶다."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권은숙 대표는?▲ 1966년 출생, 인천에서 성장 ▲ 생활문화공간 달이네 대표 ▲ 무인책방 나비날다책방 운영자 ▲ 문화다양성 플리마켓 '만국시장' 운영자 ▲ 공유공간 요일가게 '다 괜찮아' 기획자 ▲ 창작실험실 수봉정류장 기획자인천 구도심 배다리에 문화 공간을 만들어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는 활동을 10년 넘게 이어온 문화기획자 '청산별곡' 권은숙 대표가 미추홀구로 영역을 넓혀 수봉공원 인근에 '창작실험실 수봉정류장' 문을 열고 1년을 맞았다.

2020-08-18 김성호

[인터뷰… 공감]'회사수익 기부 올인 핸들링' 장경훈 마중물대리 대표

160개 중기에 후불제서비스10년간 못받은 외상대 50만원 안돼'고정급 월급사장' 이용금액 12% 적립지금까지 2억7천만원 선행작년부터 '성인 된 보육원 청소년'사회적응 프로그램 아낌없는 지원초창기 연합회 영업방해 극복 '독종'하루 고객 6만명 '행복한 상상'2011년 가을, 중소기업에 대리운전 '외상영업(?)'으로 후불제를 시작할 때 이 회사 통장에는 단돈 26만원이 있었다. 다음 달 월세 낼 여력도 없는, 달랑 4명이 운영하는 사무실은 10년이 지나 1년에 6천만원을 기부하는 회사로 거듭났다. 수익 전부를 기부하는 회사, 수익률은 0%지만 기부율은 100%인 대리운전 회사가 있다. 화성에 기반을 둔 '마중물대리'다. 마중물대리의 장경훈 대표는 160개 중소기업에 대리운전 서비스를 후불제로 제공한다. 한 달 간 쓰고 싶은 만큼 대리운전을 쓰고, 월말에 사용금액을 입금하면 되는 식이다. 연간 외상거래가 5억원이나 되는데, 지난 10년 간 받지 못한 외상대는 다 합쳐 50만원에 불과하다.장 대표는 "사람들은 큰 데(대기업)랑 거래해야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니에요. 작은 데는 갑질을 안합니다. 중소기업은 대부분 을이에요. 중소기업은 아무도 다른 데서 외상을 안줘요. 도망간다고 생각해서. 을인 중소기업은 접대해야 할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대리비를 현금으로 줍니다. 현금이라 법인 비용으로 계산이 안되니까 결국 대표가 사비로 주는 수밖에 없어요. 마중물대리는 대리운전 사용한 것에 대해 세금계산서를 다 발행해 주고, 적립된 돈으로 기부하고, 기부 영수증까지 챙겨줍니다. 그러면 법인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어서 그분들(중소기업)에게 도움이 돼요"라고 설명했다.통상 대리운전회사는 이용금액의 10%를 적립해 일정 금액이 되면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자주 이용하라는 취지다. 그런데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다. 취기에 여러 대리운전 회사를 번갈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한 곳을 꾸준히 이용한다고 해도 이런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는 경우는 드물어서다.마중물대리는 이용금액의 12%를 적립하고, 이 돈을 모아 기부금으로 쓴다. 장경훈 대표도 다달이 300만원 급여를 받는다. 회사가 커져도 돈을 취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월급 사장을 택했다. 수익을 남기지 않고 모두 기부하는 게 마중물 대리의 사업 모델인데, 지금까지 이렇게 기부한 금액이 2억7천만원 가량으로 올 연말까지 누적 3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회사의 기부처도 다양하다. 지역사회인 오산, 화성에 기부하는가 하면 미혼모·보호종료 청소년·여성출소자·장애인영화제 등에도 기부한다.그는 "지난해부터 보육원 보호종료 청소년에게 기부를 하고 있어요. 성인이 되면 보육원을 나와야 하는데, 후원에다 국가가 지원하는 것을 다 합쳐도 1천800만원 정도 쥐고 나오는 아이들이 얼마면 그 돈을 다 쓸 것 같습니까. 6개월, 1년 안에 다 끝나요. 그거 다 쓰고 그 다음에는 굉장히 험한 곳으로 갑니다. 그런 일을 막으려고 사회적응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기관이 있는데 지난해 우연히 그곳을 알게 됐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거기 1년치 사회적응 프로그램 예산이 2천500만원이라고 합디다. 그걸로 무슨 일을 하겠어요. 기관에다 1년 안에 1천800만원 모아서 주겠다고 버티라고 했어요. 그래서 6월에 1천800만원을 줬죠. 내년에는 최소 2천만원, 많으면 3천만원까지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돈은 어떻게든 만들거예요"라고 말했다.마중물대리를 이용하는 하루 200명 가량의 손님들이 바로 이 기부금을 만든다. 인터뷰 내내 장 대표는 '기부 중독자'처럼 보였다. 그의 꿈은 '1577'이나 '카카오T대리'처럼 사업체를 키워 더 많은 기부를 펼치는 것이다."1577 정도 규모가 되면 300만원씩 만명 이상한테 장학금을 줄 수 있어요. 카카오대리를 이용하는 사람이 하루 6만명이라고 하는데, 종종 우리 회사에 그만큼 손님이 온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면 더 많은 곳에 기부도 할 수 있고, 북한도 도울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죠. 큰 회사를 만들어 주주한테 배당하지 않고, 사주가 가지지 않고 다 사회로 환원하는 거예요. 그게 세상을 바꾸는 길 아닐까요?" 장 대표의 말이다.그도 한 때 대리운전 기사였다. 경북 칠곡에서 출생한 장 대표는 생애 대부분 운수업과 연을 맺었다. 지입차 기사, 트레일러, 택시, 탁송업. 안 해본 운송이 없을 정도였다. 노무사 시험 준비를 할 정도로 노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어느 조직에서나 '바른 말 하는 눈엣가시'가 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주먹구구식 계산과 '퉁치기'가 만연한 운수 관련 회사들이 그를 곱게 볼 리 없었다. 그러다 50대 중반이 넘어 막다른 골목처럼 다다른 곳이 바로 대리운전 기사였다.기회는 우연처럼, 또 어쩌면 필연처럼 찾아왔다. 병점에서 40대 초반처럼 보이는 (상대적으로) 젊은 손님을 태우게 된 것이다. 장 대표는 "병점에서 오산으로 가는데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 되잖아요. 제가 대리운전 회사를 해보고 싶은데, 수익 전부를 기부하겠다는 얘기를 했어요. 세금계산서에 기부금 영수증도 주면 손님도 좋고, 기부해서 사회도 좋고. 그런데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한탄을 좀 했죠"라고 말했다.기적 같은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듣더니만 손님이 잠깐 아파트 정문 앞에 차를 세워보시라는 거예요. 대뜸 '얼마가 필요하시냐'고 묻기에 '5천만원쯤 있으면 될 것 같다'고 했더니 '제가 빌려 드릴게요' 하더라구요. 차를 세우고 1시간 50분을 얘기했는데, 그때 운전하며 따라오다가 저를 싣고 가려고 아내가 차를 타고 뒤따라 왔었거든요. '저기 뒤에 아내가 있다'고 하니까 '그럼 같이 얘기하자'고 해서 편의점에서 500원짜리 커피 마시면서 더 얘기를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500만원을 입금해 주더라구요. 돈이 필요하면 내일이라도 언제든 말하라길래, 잠도 안자고 바로 다음 달 법무사 찾아가 법인등기를 냈습니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이렇게 만난 40대 투자자가 내준 5천만원이 이 회사의 마중물이 됐다. 기부 중독자 대표에다 단 몇 시간 만에 초면인 대리기사에게 수 천만원을 주기로 결정한 투자자, 이런 몽상가들이 만든 회사가 마중물대리였다.꿈은 컸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그런 상황은 여전하다. 장 대표는 "이런 사업 모델을 들고 나오니까 대리기사연합회에서 배차를 안 시키는 식으로 영업을 방해했습니다. 그 소송만 2년 반을 했고 결국 이겼어요. 대리업계에서 '저놈 독종이다' 이렇게 소문이 났죠. 사업 아이템이 좋으니까 처음엔 1~2년만 하면 금방 회사가 커질 줄 알았죠. 그런데 아닙디다. 지금도 이것저것 다 떼고 회사 운영하다보면 적자예요. 이번엔 어디에 기부할까. 번 걸 어디에 나눠줄까 그 고민하는 게 행복해서 계속 하는 거죠"라고 했다.마중물대리는 그 흔한 전단지 영업도 하지 않는 회사다. 그저 선한 마음으로 기부하다 보면 저절로 회사가 크리라고 생각하는 순수한 회사이기도 하다. 인터뷰 중 그는 "지금 12% 적립해 기부하는데, 회사가 잘 되면 14~15%까지도 가능할 것 같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눈만 뜨면 어디에 기부할지 찾고, 어떻게 하면 더 기부할지를 고민하는 장 대표를 보면서 '선한 독종'이 성장시킬 마중물대리의 모습이 궁금해졌다.대담/조영상 경제부장 donald@kyeongin.com, 글/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기부율 100%, 수익률 0%인 '마중물대리'를 이끄는 장경훈 대표. 대리기사 출신인 장 대표가 설립한 마중물대리는 12%의 적립금을 전액 기부금으로 활용한다. 4명으로 시작한 작은 회사가 지난 10년 간 기부한 액수만 2억7천만원으로 올해만 6천만원을 기부할 예정이다. 지난 10일 경인일보 사옥에서 인터뷰하는 장 대표.

2020-08-11 신지영

[인터뷰… 공감]'인천항 사이즈업 반평생 헌신' 남흥우 前 인천항을 사랑하는 800인 모임 회장

# 인천항 성장에 중추적 역할2005년 터무니없는 컨물동량 예측 재조사 요구대형선박 입출항 신항 '증심' 밀고나가 목표달성2017년 年300만TEU 돌파 "관계자 힘합쳐 성과"# 외형적 성장속 부족한 내실'코로나 악재' 空 컨테이너 비율 예년보다 늘어울며겨자먹기식 운송 '하역사·선사 수익 악화'제조업 발전 필요… 철도·도로사업 차질 없어야인천 송도국제도시와 영종도를 잇는 인천대교 설계가 한창이던 2004년. 인천항만업계 관계자들은 인천대교 주경간 너비를 기존 설계인 700m에서 더 넓히는 시민운동을 펼쳤다. 인천대교 주경간 너비가 700m로 확정되면, 인천항에 입출항하는 1천5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급 이상 화물선의 교차 통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 인천항을 가장 많이 찾는 컨테이너선이 3천~5천TEU급인 점을 고려하면 인천대교 주경간 너비가 700m보다 넓어야 했다. 주경간 너비가 좁을 경우 인천항은 국제항만이 아닌 부산항에 종속된 지역항만으로 전락할 수 있었다.당시 인천항만업계 관계자들과 시민사회는 '인천대교(제2연륙교) 주경간 폭 확대 범시민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명 운동을 진행하는 등 대정부 투쟁을 벌여 인천대교 주경간 너비를 700m에서 800m로 늘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이후 범시민대책위원회는 공부하는 인천항 CEO 모임인 '인천항을 사랑하는 800인 모임'(이하 인사 800)의 토대가 됐다. 인사 800은 2006년 설립 이후 햇수로 약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덧 인천항만업계를 대표하는 단체가 됐다. 그 중심에는 남흥우(68) 전 인사 800 회장이 있었다.인사 800 결성을 주도하고, 회장을 맡아 모임을 이끌어 온 남 전 회장은 지난달 인천복합운송협회 양창훈 회장에게 바통을 넘겼다. 남 전 회장은 "3~4년 전부터 새로운 인물이 인사 800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기회가 됐다"며 "젊은 사람이 회장으로 취임했기 때문에 인사 800은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인천 출신인 그는 1982년 고려해운(주) 인천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인천항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그는 "1970년대에 연안부두를 중심으로 인천항 물류단지가 만들어졌고, 인천 주안과 부평에는 산업단지가 들어섰다"며 "당시 인천항을 찾은 외국 선원들이 '인천항이 한국 최고의 항만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기대감이 컸다"고 회상했다. 이어 "안타깝게도 인천항은 애초 기대보다 성장하지 못했다"며 "이러한 마음이 인사 800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인사 800의 기초가 된 인천대교(제2연륙교) 주경간 폭 확대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할 때도 인천항은 성장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인천대교 주경간 너비가 700m로 결정되면 대형 선박 입출항이 어려워져 인천 신항개발 사업이 무산될 수 있었다. 인천항만업계 관계자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주경간 너비 확장에 힘을 보탰다. 남 전 회장은 "인천대교 주경간 폭을 확장하기 위한 연구용역 비용으로 8천만원이 필요했다"며 "내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선주협회 인천지구협의회에서 모아야 했던 800만원을 80명이 10만원씩 마련해보자는 취지에서 '인천항을 사랑하는 80인 모임'을 만들었고, 이는 인사 800의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인사 80은 애초 목표 금액인 800만원보다 많은 1천200만원을 모금했고,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인사 800으로 명칭을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남 전 회장과 인사 800 회원들은 현재 인천항의 모습을 만드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2005년 해양수산부가 '2011년 인천항의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 예측치'를 5년 전 추정치보다 92만TEU 줄여서 발표하자 남 전 회장은 인천항만업계와 함께 재조사를 요구했고, 인천항 예측 물동량이 수정되면서 인천 신항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인천항은 신항 개항으로 2017년 국내에서 두 번째로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 300만TEU를 돌파했다.인사 800은 2012년부터 2년여 동안 대형 컨테이너선 입출항을 위한 인천 신항 증심(수심 14→16m) 사업을 줄기차게 주장했고 목표를 이뤄냈다. 현재 인천항에 기항하는 컨테이너선 중 최대 규모는 1만TEU급이다. 증심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대형 컨테이너선의 입출항이 불가능했다. 남 전 회장은 "인천항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인천항만업계 모든 관계자가 힘을 합쳐 성과를 낼 수 있었다"며 "인천항만업계가 노력해 구축한 인프라는 인천항 성장에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자평했다.인사 800에서 진행하는 세미나도 인천항만업계 종사자들이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게 남 전 회장의 생각이다. 인사 800은 매년 6차례 정도 인천항 현안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또 매년 1차례 국내 다른 항만을 방문해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매년 월미산 정상에서 용왕제를 개최하며 인천항만업계 화합의 자리도 만들고 있다. 남 전 회장은 "인천항은 하역사와 선사, 항만 근로자, 창고업계 등 45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운영되는 곳"이라며 "선사부터 예선, 도선사, 하역 근로자, 줄잡이, 통선, 창고, 포워더 등 각 영역 종사자들이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야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각 업계가 서로 다른 정보를 갖고 있어서 인천항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어려웠다"며 "인사 800의 세미나는 모든 업계가 한데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협업할 부분에 대해 논의하는 소통 창구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남 전 회장은 "인천항은 외형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아직 내실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 영향에도 올 상반기 인천항 컨테이너 물동량은 부산항·광양항 등 국내 주요 항만 중 유일하게 전년 동기 대비 늘었지만, 전체 컨테이너 중 공(空) 컨테이너 비율이 예년보다 높아져 하역사와 선사들의 수익은 나빠졌다. 석유와 유연탄, 가스를 제외한 순수 벌크 화물 물동량은 몇 년째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다. 남 전 회장은 "벌크 원자재 화물을 인천항으로 수입한 뒤, 인천에서 재가공해 다시 컨테이너에 실어 수출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항만산업의 부가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며 "지금은 인천 지역 제조업이 부진한 탓에 소비재 화물이 컨테이너에 담겨 수입되고, 선사들은 수출 물량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비용만 받고 수출 컨테이너를 운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천시와 인천항만공사 등 항만 관계 기관이 인천 제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물동량도 늘어날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선 인천 신항 철도 인입선과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안산 구간 착공 등 인프라 구축 사업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동안 가장 앞에서 인사 800을 이끌었던 남 전 회장은 이제 한 발 뒤에서 후배들을 응원하는 입장이 됐다. 그는 "인천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 시장인 중국과 가깝고 인천공항과 인접해 있어서 발전 가능성이 높은 항만"이라며 "반평생을 함께 한 인천항이 앞으로 더욱 큰 역할을 하길 바란다. 인천항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후배들의 뒤에서 힘이 닿는 데까지 도움을 주겠다"고 밝혔다. 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남흥우 전 회장은?▲ 1952년 인천 출생▲ 1971년 인천고 졸업, 1976년 한국해양대 기관과 졸업▲ 2001~2015년 (사)한국선주협회 인천지구협의회 위원장▲ 2004년 제2연륙교(인천대교) 주경간 폭 확대 범시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 2006~2020년 인천항을 사랑하는 800인 모임 회장▲ 2012~2015년 천경해운(주) 인천지역본부장▲ 2014~2019년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2015년~ (주)천경 경인지역본부장'인천항을 사랑하는 800인 모임'을 약 15년간 이끌어온 남흥우 전 회장이 지난 3일 자신의 사무실에 걸려 있는 인천항 지도를 보며 크고 작았던 지난 일들을 말하며 웃고 있다.

2020-08-04 김주엽

[인터뷰… 공감]'갓 서른, 기본소득당 유일 금배지' 용혜인 국회의원

"의석수로 정해진 힘의 공간" 소수정당 당대표 국회출입증 받기도 힘들어법안 동의 일일이 동료의원실 찾아 설명… 정책·정무·당무 모두 혼자 해내안산서 학창시절 '남일 아닌 세월호' 진상 규명 주도… '정치 길' 입문남은 임기 1400일… 기본소득 도입시기 등 구체적 로드맵 완성이 목표국회의원회관 541호는 그의 방이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내걸린 방에 들어가자 앳된 얼굴의 그가 있었다. 그도 그럴듯이 만으로 갓 서른, 평균 나이가 55세에 달하는 21대 국회의원 300명 중 뒤에서 세번째로 젊다.용혜인 의원은 기본소득당 소속의 유일한 국회의원이다. 4·15 총선을 통해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선된 지 이제 100일, 541호에서 용 의원을 만났다. 소수정당의 여성 청년 국회의원이 바라본 '여의도 정치'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코로나19 사태 속 차기 대선 어젠다로 부상하기 전부터 기본소득제 실현을 내건 그였기에 묻고 싶은 점이 많았다. 답변엔 망설임이 없었고 목소리엔 힘이 실려있었다.#사회문제에 목소리 내던 대학생, 국회의원이 되다당선된 지는 100일, 임기가 시작된 지는 60일 정도 됐다. 새내기 정치인이지만 용 의원은 여러 초선 의원들, 나아가 300명의 의원들 중에서도 단연 특별하다. 가장 주목받는 정책인 기본소득제를 내건 정당의 대표였으며(지금은 원내대표) 해당 정당의 유일한 의원이다. 여성이고 또 청년이다. 그의 눈에 비친 국회가 어땠는지 물으니 "힘의 논리가 강력한 공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모든 것은 다 의석수 순으로 배분된다. 자리 배치뿐 아니라 무언가를 결정하고 운영하는 것까지. 또 매우 템포가 빠른 곳이다. 하루이틀새 새로운 의제가 등장하고, 그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게 국회에 대한 용 의원의 첫 인상이다.모든 것이 의석수 순으로 정해지는 힘의 공간에서 소수정당 소속인 그에겐 많은 점이 벅차다. "당 대표가 국회에 출입하는 것, 출입증을 받아 내는 것조차 어렵다. 의사일정을 결정하는 논의에도 참여할 수 없다. 본회의가 언제 열리는지는 오히려 언론을 통해 더 빨리 알게 된다"고 토로한 용 의원은 "법안도 10명의 동의를 받아야 발의할 수 있는데, 다른 당에선 의원들 단체 카톡방에 올리면 10분 안에 동의할 의원이 모인다고 한다. 저희는 사서함에 넣거나 의원실을 찾아가서 일일이 취지를 설명한 다음 동의를 부탁해야 한다. 혼자니까 더 많이 일해야 하고 더 많은 시간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정책과 정무, 당무를 혼자 모두 하고 있으니까. 딱 두 명만 더 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의정활동을 분주하게 해온 만큼 국회의원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용 의원은 "밖에서는 의원들이 편하게 놀고 먹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돼보니 국회의원이 조금이라도 욕심이 있으면 굉장히 바쁘고 업무가 엄청나다. 지금도 손도 못 대는 일들이 많다. 밖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전 용 의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가만히 있으라' 운동을 주도해 전국적인 이목을 끌었다. 안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에게 세월호 참사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초·중·고를 모두 안산에서 나왔다. 그 당시 단원고는 교복이 예뻐서 친구들이 굉장히 가고 싶어 했던 학교였다. 사촌 동생의 가장 친한 언니도, 엄마 친구의 조카도 단원고 2학년생이었다. 결코 남 일이 아니었다"고 회상한 용 의원은 "당시 국민 전체가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너무 무겁지는 않더라도, 뭐라도 하지 않으면 위험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번 요구하는 것으로 그치면 비슷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또다시 수습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사회를 바꿔야 또다시 '요구'하지 않을 수 있다. '이윤보다 인간이 먼저'라는 명제를 실현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정치의 길을 걷게 된 이유다.#'인간이 먼저' 답은 기본소득'이윤보다 인간이 먼저'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돈 때문에 죽지 않고 비참해지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고민 끝에 찾은 답이 기본소득이라고 했다. 기본소득제를 실현하기 위한 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 소속으로 국회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예상보다 기본소득제가 전국으로 의제화되는 시기는 빠르게 찾아왔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용 의원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모든 게 다 변해야 하는 시기에 직면했다.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도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게 됐다. 그동안 사회를 뒤흔든 경제위기가 금융부문에서 시작됐다면 지금은 사람들의 호주머니에서부터 시작됐다. 개별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책이 아닌 사람들 개개인의 수요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하면서 "긴급재난지원금은 일시적이었지만 온 국민들에게 국가로부터 현금을 받는다는 경험을 하게 해줬고 그게 괜찮다는 것을 체감하게 했다. 여야 할 것 없이 결국 다음 대선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는 문제인데, 기본소득이라는 말만 무성할 뿐 구체적이고 책임 있는 제안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기본소득당의 구상안을 말했다. 매달 60만원을 지급하는 게 핵심이다. "올해 기준으로 1인 가구 생계급여가 52만8천원 정도인데,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만들어주는 버팀목이라면 그 정도 수준에서 시작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60만원이라는 금액을 정했다"는 게 용 의원의 설명이다. 재원에 대해선 기존에 선별적으로 지급되던 생계급여, 기초노령연금 등에 청년 기본소득 예산 등을 통합하는 안과 함께 소득공제, 세액공제를 손보는 방안도 언급했다. 모든 소득의 15%를 기금으로 마련하는 '소득 기여금'과 토지 보유세, 탄소세 도입 등도 거론했다. 탄소세와 맞물린 탄소배당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사실 21대 국회의원으로서 용 의원이 당초 세웠던 목표는 기본소득제 논의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었다. 누구도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로 당초 세웠던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서 다음 발을 떼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용 의원은 "대선을 거쳐 다음 총선 전까지 구체적 실현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는 게 현실적인 목표가 될 것 같다"면서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좀 더 진지하게 기본소득제 실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관련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용 의원은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한국 사회에서 어떤 기본소득이 가능한지, 도입 시기와 금액 규모는 어떻게 할 것인지,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할 것인지 보다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많은 국민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하는데 그 논의의 장을 열어가는 게 국회의원, 정당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초선 국회의원으로서 걸어온 60일, 그리고 남은 1천400일. 그 길 끝에 용 의원이 꿈꾸는 '이윤보다 인간이 먼저'인 세상의 문이 기본소득제라는 열쇠로 열려있을까. 젊은 정치인의 단단함에 희망을 느꼈다.글/강기정·남국성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김도우 pizza@kyeongin.com■ 용혜인 의원은?▲ 1990년, 부천 출생▲ 경희대학교 졸업▲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 제안자▲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 위원▲ 기본소득당 전 상임대표, 현 원내대표등원 60일차를 맞은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국회에 대해 "국회의원이 조금이라도 욕심이 있으면 굉장히 바쁘고 업무가 엄청나다. 하루이틀새 새로운 의제가 등장하고 대책을 내놔야하는, 템포가 매우 빠른 곳"이라고 언급했다. 국회의사당 앞에 선 용 의원의 모습.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2020-07-28 강기정·남국성

[인터뷰… 공감]국내항공산업의 미래를 말하는 김연명 항공안전기술원장

국내 전 기종 보잉·에어버스가 제조… 수리땐 美·유럽기관 인증이 필요中 '드론굴기' 부정적… 촬영·분석 등 활용기술 중요 '국내기업 경쟁력'국내 첫 인천 인증센터 "앵커시설될 것"… 외국 연구개발 교류창구도국토부 민관협의체 간사 맡아… 도심항공교통 2025년 상용화에 매진우리나라는 '항공운송' 산업 분야에서 대한항공 등 국적 항공사가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항공기·부품 제작이나 항공 '정비·수리·분해조립'(MRO) 부문의 성과는 미미하다. 항공기는 수입하고, 항공기를 구성하는 수십만 개 부품 중 국산은 거의 없다. 항공 MRO 부문 역시 정부와 인천시 등이 '활성화'를 외치지만 아직 성과가 크지 않다.김연명 항공안전기술원장은 '제작', '운송', 'MRO' 등이 어우러진 항공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한 열쇠로 '인증'을 꼽았다.항공안전기술원의 전신은 2013년 설립된 재단법인 항공안전기술센터다. 이듬해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항공안전기술원이 설립됐다. 인천 청라국제도시에 있는 항공안전기술원은 민간 항공기, 공항, 항행 시설 등에 대한 안전성·성능 등을 시험하고 인증하는 업무를 한다. 항공 안전에 영향을 주는 결함을 분석하고, 첨단 항공 기술 개발 및 표준화 등을 수행하고 있다.김연명 원장은 "우리나라 민간 항공 산업의 'A to Z'는 인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항공기 부품 인증은 항공기 제작과 MRO 등 국내 항공 산업 활성화와 해외 진출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했다. 국내 항공 산업은 군수용(軍需用)에 치우쳐 있다. 우리나라는 수리온 등 군수용으로 사용하는 항공기를 자체 제작하고 있지만, 이 기술이 민간 항공 분야로 이전되지 못하고 있다. 민간 항공기를 제작하고, 이 항공기를 활용하기 위해선 '국제 인증' 획득이 필수다. 민간 항공기는 자국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를 다니기 때문이다. 현재 민간 항공 분야 인증은 미국 연방항공국(FAA·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과 유럽 항공안전청(EASA·European Aviation Safety Agency)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 두 기관의 인증을 받은 항공기만 전 세계 항공을 누빌 수 있다. 항공기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도 마찬가지다.김연명 원장은 "(우리나라는) 그동안 항공기 인증을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며 "항공 산업 발전을 위해선 미국이나 유럽과 협의하면서 우리나라의 인증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컵홀더'를 예로 들었다. 여객기 좌석마다 있는 컵홀더의 가격은 약 200달러다. 겉으로 보기엔 시중 상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인증을 받으면 가격이 10배 이상 뛴다고 한다.그는 "우리나라 기업은 국내 인증을 획득한 후 국가 간 협정 등을 통해 글로벌 항공 산업에 진출할 수 있어야 한다. 항공기 제작과 부품 제조, MRO도 마찬가지"라며 "국내 모든 민간 항공기는 보잉과 에어버스가 제조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수리·정비하기 위해선 미국·유럽 기관의 인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항공안전기술원은 민간 항공기 인증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했다.'인천'은 국내 항공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할 것이라고 김연명 원장은 전망했다. 항공 산업을 구성하는 제작·운송·MRO는 항공기가 많이 뜨고 내리는 공항을 중심으로 산업군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인천은 인천국제공항뿐 아니라 김포국제공항과도 가깝다는 이점이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인천시도 항공 MRO 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그는 "인천공항공사가 항공 MRO 사업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이 개정되면 인천의 MRO 산업은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인천공항공사가 항공 MRO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사업시행자가 될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에는 국내 최초 '드론인증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드론은 민간 항공기를 중심으로 한 항공 산업과 달리 아직 '블루오션'이라는 게 김연명 원장 설명이다. 인천에 건립되는 드론인증센터는 우리나라가 세계 드론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중국이 드론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 분이 많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중국이 레저용 기체 부문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가고 있지만, 드론을 활용하는 측면에서는 중국이 앞서나간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기체 제작뿐 아니라, 드론을 활용해 촬영하고 분석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이 분야는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드론 인증' 부문은 아직 세계적으로 표준이 없다. 김연명 원장은 "외국에도 드론인증센터와 같은 시설·기관이 많지 않다"며 "우리 드론인증센터는 선제적으로 드론 관련 인증 체계를 갖추고, 관련 데이터를 확보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쌓이면 우리의 인증 체계가 글로벌 인증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김연명 원장은 드론인증센터가 드론 산업의 앵커 시설이 될 것이라고 했다. 드론 관련 기업·기관을 집적하고, 외국과 연구개발·교육 등을 교류하는 창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PAV(Personal Air Vehicle·개인비행체)는 드론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규모가 민간 항공기보다 작지만 드론보다 크다. 아직 국내에서 상업화되지 않았다. 정부는 PAV를 토대로 한 UAM(도심항공교통·Urban Air Mobility)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UAM은 개발·제조·판매·인프라 구축·서비스 등 PAV를 교통수단으로 활용하는 체계를 말한다.국토교통부와 항공안전기술원, 인천시와 서울시, 인천공항공사 등 40여 개 관계 중앙부처·지자체·기관·기업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 'UAM Team Korea'가 발족했다. 항공안전기술원은 간사를 맡고 있다. 정부는 2025년부터 UAM을 상용화한다는 로드맵을 가지고 있다. 인천공항~여의도 노선을 시범 운항한다는 계획이다. 김연명 원장은 "UAM은 상용화까지 많은 과제가 있다"며 "안전 기준 등을 확인해야 하고, 도심에서 운항하기 때문에 보안·환경·프라이버시 등 많은 문제를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아직은 생소할 수 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UAM이 운영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항공안전기술원은 UAM 개발과 상용화를 위해 정부·산업계를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항공안전기술원이 인천 청라국제도시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연명 원장은 "관계 법령과 정부 방침을 원칙적으로 준수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면서도 "인천은 인천공항·김포공항과 인접해 있어 항공사와 항공 정비 산업체들이 집중돼 있다. 인천을 벗어나면 업무 연계성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인천은 드론 산업 육성의 핵심 지역이며, 드론 산업 클러스터 조성도 추진 중이다. 항공안전기술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 정부가 혁신 성장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장애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김연명 원장은 "인천에 있는 공공기관으로서 지역 발전을 위해, 국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며 "국내 항공 산업을 육성하고, 이것이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는 길을 고민할 것이다. 이를 위한 소통은 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김연명 원장은?- 학력·경력▲ 인하대학교 산업공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통 전공, 교통계획학 석사▲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Univ. of Maryland at College Park) 교통공학 박사▲ 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자문위원(2004~2007)▲ 전 한국교통연구원 항공연구본부장(2018)▲ 공군정책발전자문위원(2018.4~현재)▲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심의위원(2016~현재)- 주요 연구▲ 인천공항 마스터플랜 연구(2007)▲ 필리핀 클라크공항 마스터플랜 연구(2008)▲ 제4차 공항 개발 중장기 종합계획 연구(2010)▲ 제1·2차 항공보안기본계획(2011, 2016)지난 20일 인천 청라국제도시에 있는 항공안전기술원에서 만난 김연명 원장은 "항공 인증은 항공기·부품 제조, 운송, MRO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중요한 열쇠다. 항공안전기술원은 항공 인증 역량을 강화해 이들 산업이 서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0-07-21 정운

[인터뷰… 공감]'지역 경제 진단' 책으로 풀어낸 김하운 인천시 경제특보

韓銀·신보재단·인하대 강의 경험… 지역 특성 맞게 정리한 자료 많지 않아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초점·이해하기 쉽게 쓰려다 보니 용어 반복 설명창업 성공담 모아 차기작 '망하지마라' 함께하는인천사람들과 준비 들어가한국은행 인천본부장 출신의 김하운 인천시 경제특보가 '인천사람도 다시보는 인천경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인천경제를 다룬 책을 펴냈다. 국제 경제나 우리나라 전체적인 경제에 관한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면 지역 경제를 다룬 책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인천경제를 깊이 들여다보면서도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어서 지역사회에서도 관심이 많다. 인천사람 못지않게 인천에 대한 애정이 많은 김 특보는 본인을 그저 '취미'로 지역경제에 관심 있는 '아마추어' 경제연구자로 소개한다. 직업이 아닌 '취미'로서, 순수한 애호가 차원에서 '인천경제'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애정이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지난 8일 인천시청 앞 광장에서 김 특보를 만나 책 얘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인천경제를 다룬 책을 쓰게 된 계기는.인천경제에 관한 책이 없어서다. 인천뿐 아니라 우리나라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17개 시·도가 있고 지방자치제도는 7기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구조와 특성이 다른 각 지역경제를 쉽게 알 수 있도록 정리한 자료는 많지 않았다. 한국은행 인천본부, 인천신용보증재단, 인하대, 인천 사회적 은행인 (사)함께하는 인천사람들 사회적은행에서 일하면서 인천 경제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분류하고 논리를 덧대며 책을 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오다 기회를 봤다. 10년이 훨씬 넘도록 인천경제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을 하거나 강의를 하면서도 인천경제에 관한 참고자료가 많지 않아 아쉬웠고, 일반인이 전공이나 학력에 구애받지 않고 이해할 만한 자료는 더욱 찾기 어려웠다.# '인천사람도 다시 보는 인천경제 이야기'라는 제목에 대해.내 마음대로 정한 제목이 아니다. 처음에 인천문화재단이 출판 제의를 했을 때 '인천사람도 잘 모르는 인천경제'라는 제목으로 갖고 왔더라. 그런데 도저히 그렇게 못하겠더라. 내가 인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아닌데 '인천사람도 모르는…'이라는 식의 제목은 쓸 수 없겠더라 '인천경제'라는 말조차 쓰지 않으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인천의 살림살이' 정도로 쓰자고 했다. 하지만 내가 반대했다. 책을 쓰는 이유는 분명했다. '지역경제론'에 관한 책이다. 사실상 지역경제와 관련해 처음 나오는 책인데, 연구자들이나 검색하려면 '인천경제'라는 키워드를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또 오래도록 볼 수 있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근데 경제 분야 책이 오래 볼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 '숫자'들이 다 바뀌는데 어떻게 하나 그렇다면 '다시 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래도록 두고 볼 수 있는 책인가.그렇다. 그래서 인천의 '특성'을 담으려 했다. 특성은 변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인천의 특성을 쓰려 했다. 반대로 '특징'은 밖으로 드러나서 보이는 성질이니 굳이 책으로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한꺼풀 벗겨 보아야 하는 특성은 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이 두고두고 봐야 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인천의 특성을 설명하고 고민하고 풀어야 할 장기적 과제를 제시했다. 과거보다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경제 용어를 나름의 방식으로 쉽게 설명하려 애쓴 이유도, 두고두고 생각할 수 있는 많은 표나 그래프 등을 담은 이유도 다 그런 것이다. 또 앞으로 지역경제론을 연구하거나 책을 쓸 사람들이 계속 이어가는 얘기를 할 수 있었으면 하고 의도한 부분도 있다. 팔리지 않을 책을 어떻게 하면 계속 볼 수 있는 책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세운 나름의 전략이다.# 어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책을 썼나.쉽게 말해 인천에서 방귀 좀 뀐다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천에 영향력이 있고 인천을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좀 알고 경제 전반을 보면서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천의 지도자, 정책을 다루는 공무원, 광역·기초의원 등 정치인들, 그리고 학자들, 가능하다면 공부하는 대학교 학생들과 나름의 인천 정책이나 방향을 정해야 하는 현업에 있는 기업인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썼다. 쉽게 쓰려다 보니 중언부언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책 전체를 보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읽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앞에 설명한 얘기 또 하고 용어도 반복해 의미를 설명하고 친절해지려 했다. 읽다 보면 '내가 인천을 잘 아는 사람이구나'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하고 싶었다. 거의 세뇌하는 수준으로 반복했다.#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인천의 인구가 늘어나는데 왜 경제는 성장하지 않는가'라는 고민을 하길 바랐다. 한 사람당 버는 돈이 줄어서 그런 거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어디에 있겠나 싶었다. 버는 것이 줄어든 이유는 단순화하면 '실력'이 떨어지고 '장비'가 없기 때문인데, '장비'는 투자를 늘려야 하는 문제고 '실력'은 쌓아나가야 하는 문제다. '장비'는 생산설비, '실력'은 1인당 생산성을 뜻한다. 기계를 들여놓고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건데 고민하고 해결하자는 바람이다. 앞으로 인천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대비해야 한다고 봤다. 인천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얘기다. 도시의 인구 흡인력이 높아야 하는데, 지금 흡인력으로 본다면 타시도와 비교해 경쟁에서 지고 있다. 이웃 경기도로 몰려가고 있다. "왜 준비를 안 하나"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또 독자들이 불편한 현실을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필요성을 느껴야 변한다. 그러자면 무언가를 알아야 하고 바꾸려는 행동이 뒤따르고, 행동해야 습관이 되고 나서야 상태가 변한다. 그래서 내가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수년 전부터 '역외소비'의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제는 '역외소비'의 소득유출 문제를 내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어지간한 사람은 모두가 인지한다. 독자가 문제를 인식하고 바꾸려 행동하고 습관이 되고 그러길 바라는 마음이다. 계속 이야기하면 고쳐지더라.# 구상하고 있는 다음 책은.(사)함께하는인천사람들(이하 함인사)에서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을 모아서 그 경험을 다음 창업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책 제목은 '망하지 마라' 정도로 생각 중인데, 이게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500명이 어떻게 성공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정리를 해서 실패를 하지 않도록 교훈을 주는 것이다. 우리 함인사 식구들하고 같이 작업하고 글을 내가 직접 쓰는 방식으로 하는 식으로 구상하고 있다. 그 사람들의 경험을 모은다면 의미가 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상점 주변의 상권분석이나 그런 전문적인 내용도 포함할 계획이다.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 yong@kyeongin.com■ 김하운 특보는?▲ 1954년 서울 출생▲ 서울안산초/광희중/서울고/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한국은행 인천본부 부본부장(1급)(2005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2008년)▲ 한국은행 인천본부장(2010년)▲ 인하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2011년)▲ (사)함께하는 인천사람들 대표이사(2012년)▲ 인천신용보증재단 이사장(2014년)▲ (주)선광 사외이사(2016년)▲ 인천시 경제특보(2018년)김하운 인천시 경제특보가 '인천사람도 다시보는 인천경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인천의 경제 사정을 다룬 책을 펴냈다. 김 특보는 "인천에 영향력이 있고 인천을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인천 경제를 알고, 경제 전반을 보면서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책을 썼다"고 말했다.

2020-07-14 김성호

[인터뷰… 공감]'나이 잊은 열정, 비즈니스 라운딩' 이동준 GA코리아 회장

성실·신뢰로 '수출 불모지' 중동 누벼일하는 시간도 모자라 주말비행기 이용골프사업 눈돌려 1억 투자로 560억 수익유망주 발굴 경인일보대회 타이틀후원첨단 스마트단지 '용인아트투어랜드' 올인새로운 미래분야 임원들과 성균관대行'뜨거운 열정, 나이는 없다', '꿈 기회는 있다. 정년은 80대다'.이동준 (주)GA코리아 회장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이 회장에게 있어 인생은 '열정'으로 통한다. 그는 80세의 나이에도 '꿈이 있는 한 나이는 없다'는 신념으로 젊은이 못지 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매일 현장을 돌며 골프 대중화와 골프 발전을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이 회장을 지난 4일 용인 골드CC 클럽하우스에서 만나봤다.# 골프 대중화의 선구자매주 토요일이면 아침 일찍 골드CC를 찾는 이 회장은 평상시 복장으로 새벽부터 골프장을 돌아봤다고 한다. 50여년전 직장을 그만두고 맨손으로 시작해 GA코리아 국내 골프·레저산업을 선도하는 국내 최대의 기업으로 키워냈지만, 아직도 일에 대해선 목말라 있는 그다.이 회장은 "나를 두고 '열정'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사실 '성실과 신뢰'가 나에게는 더 친숙하다"며 "70년대 수출이 취약했던 시절 중동을 누빌 수 있었던 것은 '꼬리 미스터리(Korea Mr.Lee)'로 통용되는 신용 때문에 가능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당시 내가 전 세계를 많이 다닌 우리나라 사람 중 10명 안에 들 것"이라며 "일하는 시간도 모자라 주말을 이용해 다녔다. 지금도 몸에 배서 새벽 5시면 사무실에 도착한다"고 덧붙였다.GA코리아는 오는 20~21일 'GA코리아배 경인일보전국중·고학생골프대회'의 타이틀 후원을 맡았다. 사실 이 회장은 우리나라 골프 대중화와 후배 양성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이 회장은 "당시 한참 수출하던 시기에 배가 없어서 더 많은 물량을 보내지 못한 적이 많았다. 1980년대 일본 선박회사를 인수하려고 모든 작업을 마쳤지만 선박사업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아 지금의 골드코리아 사업지에 골프 비즈니스를 하기로 했다"며 "1982년 부지를 매입한 뒤 인허가를 내면서 본격 골프사업에 뛰어들었고 1986년 정식 오픈하게 됐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당시 1억원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1986년 560억원의 결과를 이뤄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그는 "골프장 사업을 35년간 쉼 없이 진행한 것은 우리 미래의 대들보인 유망주 육성사업과 지원이 중요했기 때문"이라며 "골프 및 스포츠에 관계된 단체나 선수에게 지원을 집중적으로 해왔다. 국내 메이저 타이틀인 한국프로골프(KPGA) 선수권과 한국여자오픈 등의 대회를 주최해 우수 선수를 발굴해왔다"고 전했다. 이어 "그 결과 LPGA를 석권한 선수를 배출했고 샌디에이고 골프스쿨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운영했는데 1기생이 바로 김형성"이라고 말했다.# 열정의 인생사이 회장의 인생사는 파란만장했다. 그는 "당시 대기업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았는데 베트남 파병군에게 식품을 공급하는 식품회사에 다녔다. 어느 날 선배 사무실에 놀러 갔더니 '10년 후 사장을 하겠느냐, 아니면 회사 임원이 되겠느냐'고 했을 때 사장을 택했다"며 "그때 '책상 하나로 사업을 시작해 보라'해서 신의 직장을 버리고 이 길을 걷게 됐다"고 회상했다.이 회장이 일궈 온 GA코리아는 1969년 창업한 이래 수출업에 주력해왔고 1980년도부터 관광과 유통단지 개발로 연간 1천만명 이상의 내장객을 유치함과 동시에 국내 최고의 복합리조트단지 내 첨단 과학기술을 접목해 자연 속에 주거와 테크노밸리를 겸한 첨단스마트시티를 건설해 오고 있다. 이 회장은 "70대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형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2008년부터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 일대 40만㎡와 주변 500만㎡에 산업과 관광, 주거가 공존하는 '용인아트투어랜드'를 추진해 왔다"며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같은 첨단산업과 주거가 합쳐진 미래형 스마트시티를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강조했다.'용인아트투어랜드'는 단지 내 대형 호텔과 문화공연시설, 세계음식문화거리, 체험과학관 등 가족형 테마시설은 물론 첨단산업, R&D연구센터, AI연구센터 등 산업과 레저, 주거가 공존하는 친환경 웰빙 첨단산업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곳은 지난해 말 롯데 프리미엄아울렛 기흥점과 이케아 스웨덴 가구 전문점이 개점하면서 첫 단계를 마무리했다. 기존 상업형 아울렛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휴식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주변의 골드·코리아CC의 친환경 콘셉트와 같이 자연을 담은 놀이터로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이 회장은 "자연환경과 문화생활을 접목한 용인아트투어랜드에는 대형 토이백화점, 키즈용품점, 스포츠용품 등 종합 전문점이 들어서고 세계적인 자동차업체와 영화관 입주를 협상하고 있다"며 "카이스트와 성균관대학교, 한국생산성본부, 용인시와 제휴해 상상이 현실화되는 과학체험관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GA코리아는 첨단과학단지를 위해 단지 내 스마트시티 실현을 위한 인재양성 및 창업센터와 글로벌 첨단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성균관대와 공동으로 'KINGO-GA 드림캠프'와 창업 창작센터를 운영해 39세 이하의 예비 창업자를 위한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이 회장은 "'용인아트투어랜드'가 마무리되면 1만5천여명의 고용창출과 2조원이 넘는 경제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국내 단일 규모 연간 1천만명이 다녀간 곳은 없다. 이는 롯데월드와 에버랜드도 넘지 못했다"고 피력했다.# 만학도의 목표그는 이 같은 꿈을 이루기 위해 회사 임원 5명과 성균관대 미래도시융합공학과 박사과정도 시작했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이 회장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보고 무모하다고 했지만 그의 열정에서 시작된 꿈은 누구도 막지 못했다. 그는 "사실 우리 때는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 못해 배우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회와 조건이 좋다. 나이 80을 넘어 새로운 미래 분야를 배운다는 것은 설렘 그 자체"라며 "'꿈이 있는 한 기회는 있고 나이는 없다'는 신념을 갖고 박사학위에 도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 회장이 바라는 꿈의 랜드는 무얼까. 그는 "요즘은 100세 시대다. 60세를 넘어 이제는 80세를 넘어서까지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본인이 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철저한 건강관리이고 둘째는 계속 배우고 도전해야 한다"며 "단지 내 스포츠과학대학원을 유치하는 이유도 60세가 넘은 많은 사람이 꿈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이 회장은 "골프문화와 경기는 1400년도 스코틀랜드에서 시작해 미국을 거쳐 대한민국 시대가 되고 있다"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주최하는 대회만 4개나 된다. 이미 골프의 중심축이 대한민국으로 이동하는 만큼 그에 맞는 문화와 시설 그리고 품격까지 준비해야 한다"고 피력했다.이에 발맞춰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골드CC에 반려동물과 캠핑, 실내·외수영장, 놀이시설 등을 즐길 수 있는 펫리조트를 조성하기도 했다.골드CC에 자리잡은 펫리조트는 실내·외수영장과 목욕시설 등을 구비했다. 사회적 책임 공헌 활동도 열정이 넘친다. 이 회장은 북한결핵어린이돕기 범국민 운동본부 기부, 북한 어린이 분유보내기운동 지원, 지역을 위해 1천억원 규모의 SOC 사업인 강화초지대교 건설에도 민자방식으로 참여했다. 이밖에 연세대 건축기금 기부, 강화후원회 장학금 지원, 예체능 특기생 및 노약자·소년소녀가장 후원, 태국 오지학교 운동장 건설 기부 등도 했다.끝으로 이 회장은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청년들이 직장에 대한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청년들이 창업이나 전문분야 CEO가 되기 위해선 대기업에서 부분적인 경험을 쌓기보다 중견기업에서 다양한 일을 체험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며 "청년들에게 미지의 분야에 도전할 기회와 장소를 제공해 주고 싶다"고 밝혔다.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GA코리아 제공■이동준 회장은?#학력▲1940년 강화군 강화읍 출생 ▲강화중·서울 경동고·연세대 경영MBA 졸업 ▲서울대 AMP, 연세대, 고려대, 단국대 문화예술, 서울대 EC과정·행정대·환경대, 서울과학대학원 등 최고위 과정 수료 ▲성균관대학원 미래도시 박사과정 재학 중#경력▲1969년 유성물산 창업, 1978년 1억달러 수출실적 ▲기흥관광개발, 뉴경기관광, 강호개발(주), (주)GA코리아, Golf R&D 연구소 등 국내·외 10개 기업설립 총괄회장#상훈▲은탑산업훈장, 동탑산업훈장, 철탑산업훈장, 1억불 수출탑, 산업포장 ▲2010 수출신용대상 ▲2015 올해의 CEO대상, 미래창조 경영대상 ▲2018 제4회 한국 경제를 빛낸 인물 ▲2018 미래건축문화대상 수상80세의 나이에도 '꿈이 있는 한 나이는 없다'는 신념으로 젊은이 못지 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동준 (주)GA코리아 회장이 골드CC 클럽하우스에서 '열정'을 외치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이동준 회장이 '용인아트투어랜드' 개발을 놓고 임직원 회의(사진 왼쪽)와 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2020-07-07 신창윤

[인터뷰… 공감]'경기동북부 유일 대학병원 수장' 박태철 의정부성모병원장

출입구 '키오스크' 5대 설치동선파악용 CCTV 154대 추가상황실, 접촉자 구분 시스템영리만 추구하지 않아'북부지역 대표' 역할 충실의료·의학발전 선도할 것확진자 발생… 한달 문 닫아2800여명 조사·고강도 방역보름만에 '감염병' 몰아내"위기를 기회로 삼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먼저 대비하는 의정부성모병원이 되겠습니다."지난 4월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은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인 '코로나19'라는 큰 암초를 만났다. 8층 병동 환자를 시작으로 또 다른 환자와 간병인, 병원 직원, 의료진까지 19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한 달 동안 병원이 폐쇄되는 위기를 겪었다.공백도 잠시, 의정부성모병원은 빈틈없는 방역체계로 무장하고 다시 문을 열었다. 코로나19란 전례 없는 질병이 몰고 온 혼란에서도 의정부성모병원은 경기동북부 유일 대학병원으로서 막중한 책임과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박태철(65) 원장이 있다. 박 원장으로부터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를 겪은 소회와 병원이 가진 앞으로의 비전을 들어봤다.의정부성모병원이 겪은 집단 감염 사태에 대해 박 원장은 "개인적으로는 대학병원장 간담회 참석으로(함께 참석했던 분당제생병원장이 확진) 자가격리됐다가, 돌아오자마자 병원 사태가 터졌다. 어안이 벙벙하고 정신이 없었다"며 운을 뗐다. 그는 "신속히 후속 조치에 나서면서 관계기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코로나19 사태에 있어 질병관리본부가 대처를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과거 메르스 등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방역 대응 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것 같다"면서 "경기도와 의정부시 등 지자체가 빠르게 대처에 나서고, 시민들도 잘 협조해 주셔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병원 내 감염자가 발생했을 당시 의정부성모병원은 지역사회 전파를 막기 위해 즉시 선제적인 폐쇄를 결정하고 입원환자 보호와 전사적인 고강도 방역활동에 나섰다. 교직원 및 환자, 보호자, 간병인 등 내·외부 관련자 2천800여명에 대한 코로나19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원내 감염방지 지침과 프로세스를 정비했다. 전면적인 방역작업도 병행했다. 매일 병원 전 구역을 소독하고 청소한 결과 보름 만에 병원 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몰아낼 수 있었다.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한 2차례의 병원 전 구역 코로나19 바이러스 배양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것이다.코로나19 사태 후 변화를 묻는 질문에 박 원장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병원의 모습은 많이 다르고, 앞으로는 더 달라질 것"이라며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 병원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의료체계와 병원진료 시스템이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례로 병원 진료실과 검사실 앞 의자에서 환자들이 줄줄이 기다렸던 것이 과거의 병원 풍경이었다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스마트 시스템 등으로 환자의 밀집도를 낮추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진료를 볼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들을 적극 고안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의정부성모병원은 집단 감염 이후 병원 내·외부에 다양한 감염 방지 장치를 도입했다. 가장 먼저 병원 출입구에 출입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키오스크 5대를 설치하고, 통제 요원을 배치해 호흡기 증상이나 발열, 기침 등이 있는지 문진을 실시한 후 환자의 원내진입을 허용하고 있다. 또 병원 전체 감염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내원객 방문 시 동선을 파악할 수 있는 CCTV 154대를 추가로 설치했다. 현재는 보안 상황실에서 병원 전 구역의 환자 이동 경로 및 접촉자를 구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비한 상태다.박 원장은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정부와 지자체가 보완할 부분은 없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지금까지도 잘해왔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정부와 지자체, 병원 간 유기적 협력관계를 좀 더 체계적으로 정비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관계기관이 빠르게 상황을 인식하고 효율적으로 분업과 협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는다면 비상상황에 더욱 빠르고 적절한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며 "예를 들어 우리 병원의 예처럼 집단 감염이 발생했을 때 소방, 보건소, 행정, 대형병원, 중소병원 등 다양한 주체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면 시민 불편과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한편, 불가피하게 실시했던 병원 폐쇄는 경기북부에서 의정부성모병원이 갖고 있는 비중과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됐다. 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신생아집중치료지역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의정부성모병원의 진료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면서 많은 환자들이 서울까지 이동하거나 진료를 늦춰야만 했기 때문이다. 특히 외상환자와 응급환자, 중증도 높은 질환의 환자들이 많은 불편을 겪으면서, 의정부성모병원의 공백이 지역 사회의 현안으로 거론될 정도였다.박 원장은 "위기를 겪으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걸어온 63년의 역사가 매우 중요함을 알게 됐다"며 "앞으로도 교직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해 위기에 대처하고 환자들을 치료하겠다는 다짐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엔 코로나19 같은 질병 외에도 다양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면서 "그때마다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경기북부 대표 의료기관으로서 역할에 충실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박 원장은 가톨릭이 가진 인류애적 가치를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그는 "병원 운영에 있어 영리만을 따지진 않겠다. 급변하는 의료 환경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가톨릭 영성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지역 주민의 건강을 돌보고 의료사업과 의학발전을 선도해 나가겠다"면서 "지역 내 의료봉사와 해외 의료사업도 지속하면서 모두의 건강 증진과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병원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글/이종우·김도란기자 ljw@kyeongin.com 사진/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박태철 병원장은?▲천주교 세례명 이냐시오▲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졸업▲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원 산부인과학 석사·박사▲의정부성모병원 산부인과 임상과장▲동북부 수도권 부인종양연구회 회장▲2017년 9월 의정부성모병원 병원장 취임박태철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장이 경인일보와 인터뷰에서 지난 4월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를 겪은 소회와 병원이 갖고 있는 비전을 밝히고 있다.지난 4월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내부를 방역직원들이 소독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제공

2020-06-30 이종우·김도란

[인터뷰… 공감]'K4리그 돌풍' FC남동 초대 사령탑 김정재

방출·TV예능 부상 하차·사회복무요원만 11명 훈련 조율도 어려워4승1패 신생팀답지 않은 질주"어려울때 대비" 긴장 끈 놓지않아선수들 영양 보충 특별당부첫패 안긴 포천과 리매치 '축구화 질끈"이제 시작입니다."올해 K4리그에 도전한 신생팀 인천 남동구민축구단(이하 FC남동)이 시즌 초반부터 거센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창단 이후 첫 공식 경기인 지난달 16일 홈 개막전에서 전력이 만만치 않은 파주시민축구단을 상대로 완승(2-0)을 거둔 FC남동은 1주일 뒤인 23일 서울중랑축구단과의 원정경기에서도 '소나기 골'(4-1)을 터뜨리며 시즌 2연승을 달렸다. 이후 충주시민축구단(1-0), 이천시민축구단(3-1)을 차례로 꺾으면서 리그 개막전을 포함해 4전 전승을 거두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K4리그의 '복병'으로 떠오른 FC남동은 지난 20일 홈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포천시민축구단과 공방전 끝에 시즌 첫 패배(2-4)를 당하며 연승 행진을 마감했다.FC남동의 개막전 승리 이후 기자는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정재 감독을 몇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김 감독은 "그날(개막전) 경황이 없었다"면서 홈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부터 전했다. 코로나19 여파로 FC남동의 홈 개막전은 무관중 경기로 치러졌다. 그런데도 남동구민을 비롯한 인천의 많은 축구팬이 경기장을 찾아와 관중석 밖에서 열성적으로 응원했다. 김 감독은 "놀라웠다. FC남동의 창단 첫 공식 경기에 관심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눈으로 확인하니 가슴이 벅찼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승리의 주역인 선수들에게도 "경기 전 약속했던 것을 잘 지켜줬다. 다들 고생하면서 많이 노력했던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며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선수들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개막전 승리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승리의 쾌감을 만끽했다. 불타오르는 열정이 느껴졌고, 더욱 단합하려는 모습에 감독으로서 뿌듯하고 '잘만 하면 뭔가 되겠구나'하는 기대감이 생겼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이어 "개막전 승리로 선수와 코칭 스태프, 그리고 구단 프런트가 더욱 신뢰하게 된 점이 피부로 느껴진다"고 덧붙였다.FC남동 선수들은 승리한 경기는 물론, 최근 패배한 경기에서도 주장 '문준호'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김 감독은 1997년 천안 일화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해 K리그 통산 139경기에 출전한 수비수 출신이다. 그는 2004년 시즌 후 은퇴한 뒤 인천 유나이티드 코치와 팀 산하 유소년 클럽(U-15) 감독, 대구FC U-18 감독 등을 역임했다.2003년 창단한 인천 유나이티드의 창단 멤버로 합류하면서 인천과 인연을 맺은 그는 "아무래도 신생팀은 주위의 관심과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데 그런 분위기가 선수단에 잘못 스며들면 거품이 생기게 마련"이라며 "경기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팬과의 거리가 생기고 선수들의 사기에도 지장을 주게 된다. 시행착오를 얼마나 빠르게 줄이느냐가 성공의 열쇠"라고 강조했다.올 시즌 스타트를 잘 끊은 김 감독이 경계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선수들이 잘 따라와 주고 있다"면서도 "평소 선수들에게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희로애락이 있게 마련이니 어려울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자주 주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FC남동은 젊은 유망주들이 주축으로 뛰고 있다. 주장 문준호는 지난해 화성FC 소속으로 K3리그 어드밴스 우승을 이끌며 MVP(최우수선수)에 이름을 올린 선수다. 그는 2015년 용인대 재학시절 주장으로 참가한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준우승과 U리그 왕중왕전 우승을 이끈 재목이다. 지난 시즌 양평FC의 K3리그 준우승 주역인 권지성, 오성진, 유동규도 FC남동에 둥지를 틀었다. 골문은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 송영민이 지키고 있다. 2014년 미얀마에서 열린 AFC U-19 챔피언십에서 국가대표 골키퍼로 활약한 그는 대구FC를 거쳐 일본 J리그를 경험하기도 했다.김 감독은 올 시즌 목표로 선수들의 성장을 가장 먼저 꼽는다. FC남동에는 어려서부터 꿈꿔 오던 프로무대(K리그1·2)의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했거나, 어렵게 입단했던 소속팀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방출의 아픔을 겪은 선수들이 많다. 김 감독은 "너무도 일찍 축구 인생의 쓴맛을 본 후배들에게 도전의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오성진의 경우 과거 KBS에서 방영된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이란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선수단을 지도한 안정환과 이을용 두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유망주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발목 부상으로 팀에서 하차하는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유동규 등도 프로팀에서 관심을 보였던 선수들이다.FC남동은 숨은 진주를 발굴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공개 테스트 등을 거쳐 총 37명을 선발했다. 이 가운데 국방의 의무를 지기 위해 낮에는 사회복무요원 등으로 일하고 퇴근 후에는 훈련장을 찾는 선수들도 11명이나 된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팀의 주축으로 뛰고 있다. 그렇다 보니 팀 훈련이나 연습 경기 일정을 조율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김 감독은 "이 친구들은 군 복무를 하며 선수 생명을 이어갈 큰 기회를 얻은 셈"이라며 "K4리그의 존재 이유이자, K4리그가 앞으로도 계속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김 감독은 일과를 마치고 밤늦게까지 훈련하는 선수들에게 특별히 당부하는 것이 있다. 바로 영양보충이다. 그는 "운동하는 선수들은 먹는 것이 중요하다"며 "젊고 혼자 생활하기도 해서 그런지 그냥 자거나 라면으로 대충 허기를 때운다고 한다. 그러면 몸이 망가지고 선수 생명이 짧아지니 먹는 것에 신경을 쓰라고 당부한다"고 귀띔했다.FC남동의 시즌 초반 돌풍이 계속될지 홈 팬들의 관심이 높다. 김 감독은 "이 팀이 만들어지기까지 구청 공무원, 구단 프런트, 후원가, 축구협회 관계자 등 여러분들의 노력이 있었다"며 "아직 어린 선수들에게 꿈을 향한 도전의 기회를 주셨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오는 27일 포천종합운동장에서 있을 포천과의 설욕전을 준비하고 있는 FC남동의 김 감독과 선수들은 오늘도 축구화 끈을 질끈 동여맸다. 글 /임승재기자 isj@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 김정재 감독은?FC남동의 초대 사령탑인 김정재 감독은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 출신 수비수이다. 그는 1997년 천안 일화 입단을 통해 프로무대에 선 뒤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은퇴하기까지 K리그 통산 139경기에 뛰었다. 김 감독은 프로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낸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코치(2005~2007년)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2008~2009년 인천 유나이티드 15세 이하(U-15) 클럽 감독을 지낸 그는 대구FC U-18 감독(2012~2014년)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5년엔 인천 낫소FC U-15의 지휘봉을 잡기도 했다. 그는 올해 K4리그에 도전한 신생팀 FC남동의 사령탑으로 지난해 10월 부임했다.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김정재 FC남동 감독은 "경기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팬과의 거리가 생기고 선수들의 사기에도 지장을 주게 된다. 시행착오를 얼마나 빠르게 줄이느냐가 성공의 열쇠"이라고 말했다.

2020-06-23 임승재

[인터뷰… 공감]'소방의 별' 달고 퇴임하는 서은석 고양소방서장

밤샘 진화현장 노점상의 절규 '사명감에 불씨'… 한국형 소방호스 전개기 개발현장 대응 강조 지휘관 양성 제도적 장치 필요… 전술 교범 '소방내전' 출간도"젊음 믿고 산 과거와 전혀 다른 길 설렘반 걱정반" 묵혀둔 색소폰 이제 꺼낼 때"소방업무는 지휘관이 되면 혼자서 결정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옵니다. 이때 믿음이 있다면 흔들리지 않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결과든 종교적 소명의식이든 반드시 필요합니다."오는 30일 고양소방서 근무를 마지막으로 소방공직을 떠나는 서은석 고양소방서장(소방준감)을 최근 만났다. 소방의 별을 달고 현장에서 명예롭게 퇴임하는 서 서장에게는 소방공무원으로서 최고의 명예로운 선물인 셈이다.그는 소방의 길을 걸으며 늘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공직자가 임지를 떠날 때는 양손에 들 수 있는 보따리 두 개면 족하다"란 말씀을 되새겼다. 서 서장은 "이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결실을 맺고,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라는 의미로 이해하며 일해왔다.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 왔다는 것에 후회가 없는지 되돌아보고 있다"고 회상한다.서 서장은 1987년 1월1일 부천소방서 관창수 보조로 소방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로 요즘도 취업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하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취업 여건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인문계 분야 출신으로 시험공부를 하듯이 소방법을 공부해 보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듯했다.하지만 그는 "1988년 1월 말 부천 자유시장에서 발생한 야간 화재현장에서 밤샘 진화작업 후 노점 좌판 피해자들이 안타깝게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소방'이란 것을 깨닫게 됐다. 이후 진짜 소방관이 됐다"고 말한다.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 서장은 효율적인 전술을 위해 '한국형 소방호스 전개기'를 개발해 협소한 장소에서 1초라도 빠르게 화재를 진압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고, 이후 난항을 겪었던 현장에서 효과적인 진화활동이 가능하게 됐다.이후 그는 1996년 내무부 소방국 구조구급과 구급주임이란 직책으로 근무지를 중앙부처로 옮긴다.그는 언젠가는 소방본부나 소방학교 등 중앙행정을 익히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모든 것이 부족했다. 하지만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고 도전하려는 의지를 반영해 일했고 2003년 소방령 승진과 함께 경기도로 복귀했다.2006년 7월 경기북부에 경기도 북부소방재난본부가 개청됐고 2011년 12월 소방정으로 승진하면서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연천소방서장으로 발령받아 지역 재난 안전 책임자로의 소임을 시작했다.이후 일산소방서장으로 3년 근무(2013년 6월17일∼2016년 6월30일)하고 양주소방서장(2016년 7월1일∼2018년 12월31일), 의정부소방서장(2018년 1월1일∼3월29일) 등을 거쳐 2018년 소방준감으로 승진해 용인소방서장(2018년 3월30일~ 2019년 6월28일)을 역임한 뒤 지난해 7월 고양소방서장으로 부임했다.서 서장은 지난 1988년 결혼, 1년 후 첫 아이가 태어났다. 첫아이를 보고 온전한 분신을 얻었다는 것에 가장 큰 행복감을 느꼈다는 그는 이후 직장에서 승진할 때와 추진하는 업무에서 좋은 성과를 냈을 때 등을 일하면서 행복했던 순간들로 떠올린다.서 서장은 "이제 소방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힘과 패기의 젊음을 믿고 살아왔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에 대한 설렘과 다소의 막연함이 걱정되기도 한다"고 심정을 전했다.그는 "내무부 시절인 1997년 8월 대한항공 801편이 괌 산에 추락했을 당시 사망자 국내 운송지원과 2014년 5월 일산소방서장 시절 발생한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현장 대응, 그리고 사고 후 약 3개월간 이어진 사법기관의 소방업무 관련 고강도 조사로 많은 어려움이 컸다"고 되돌아봤다.서 서장은 소방을 떠나며 "재난사고 현장은 날로 현장대응의 중요성이 강조된다"며 "일정기간 현장지휘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는 지휘관 양성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그는 "소방업무의 수혜대상이 내 가족이란 생각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한다면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적으로 케이 팝(K-pop) 열풍과 한국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 머지않아 소방분야도 전 세계적으로 전파될 시점이 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라"고 강조한다.그는 "지난 33년 반 동안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고자 앞만 보고 달려왔다. 모든 것을 희생하며 늘 함께 해준 가족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이어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란 말이 있다. 시작할 즈음에는 남은 기간을 계산해 긴 기간으로 생각하고 누구나 기간이 정해진 인생이란 것을 잊고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정해진 남은 시간에 얽매이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일과 가정 모두를 다 잘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부부가 모두 일하는 시대이니 변화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러면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행복한 가정을 이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피력했다.서 서장은 퇴임을 기념해 국내·외 사례를 분석해 지휘관이 현장에 맞는 전술을 적용할 수 있도록 고안한 교범인 '소방내전'출판기념회를 직원들과 함께 했다. 이 교범은 서 서장이 현장에서 익힌 신속한 화재진압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해 지난해 9월 TF팀을 만들어 국내 및 해외까지의 화재 사례를 비교한 책이다. 소방차량 부서 방법과 고시원 등 장소별 화재 특징, 화재진압 방안 등 효율적으로 소방차량을 배치하고 신속하게 소방호스를 이용해 현장 접근하는 '한국형 현장대응 전술'을 모두 망라했다.서 서장은 "개인적으로 몇 년 전에 준비해 둔 색소폰이 있다. 그런데 아직 한 번도 불어보지 못했다"며 "시간도 없었거니와 아무 장소에서나 불 수 있는 악기가 아니기에 지금껏 보관만 해오고 있다. 열심히 배워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김환기기자 khk@kyeongin.com 사진/김환기기자 khk@kyeongin.com·고양소방서 제공■ 서은석 서장은?▲ 1960년 2월 3일생 ▲ 목포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1987년 1월 1일 부천소방서 ▲ 1996년 내무부 소방국 구조구급과 ▲ 2006년 7월 경기도제2소방본부 예방홍보담당 ▲ 2010년 7월 경기도제2소방본부 예산장비담당 ▲ 2011년 12월 연천소방서장(지방소방정) ▲ 2013년 6월 일산소방서장 ▲ 2016년 7월 양주소방서장 ▲ 2018년 1월 의정부소방서장 ▲ 2018년 3월 용인소방서장(지방소방준감) ▲ 2019년 7월 제19대 고양소방서장(지방소방준감)서은석 고양소방서장은 "많은 일을 하겠다는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주춧돌 하나 놓는다는 자세로 하나씩 하나씩 이뤄 놓는다면 머지않아 훌륭한 건물이 되고 큰 기틀이 마련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2020-06-16 김환기

[인터뷰… 공감]'부드러운 카리스마' 취임 100일… 박해심 아주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첨단의학연구원 산하조직들 '한우물' 게이츠재단 지원받아 빅데이터 플랫폼 연구 환자 비용부담 줄이고 국가 경쟁력 강화 '소신' 고령화시대 협업모델 '신경' 알레르기 원인중 하나 세계 첫 규명 '본업 충실' "임상 진료 접목 의료의 질 향상""꾸준한 연구만이 강한 병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지난 2월 학교법인 대우학원은 제14대 아주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에 박해심(62) 교수를 선임했다. '천식 분야 세계적 의학자'로 명성을 떨친 박해심 원장은 알레르기 관련 국제 학술 잡지에 400여편 이상 주저자로 논문을 발표하는 등 한국 의료계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이런 박 원장이 지난 8일 원장 취임 100일을 맞았다.지난 4일 아주대의료원장실에서 만난 박 원장은 부드러우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쳐났다. 그의 얼굴에는 당당함이 묻어났고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 속에 의연함이 엿보였다. 의료원장에 임명된 뒤 지난 3개월간 그는 의료원 안팎을 돌아보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특히 주위에선 아주대의료원 최초의 여성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이라고 밝혔지만, 박 원장은 손사래를 치며 "그저 평범한 원장으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했다.박 원장은 3월 부임하자마자 코로나19 확산으로 병원 내 어려움이 많았지만 신념을 갖고 헤쳐나갔다. 그는 "코로나19로 삶이 팍팍해지고 행동반경도 줄었지만,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희생과 의료진의 헌신으로 코로나19 세계 대유행에도 잘 버텨온 것 같다"면서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가야 할 길은 멀다.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하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아주대의료원은 개원 이후 연구분야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1994년 개원 당시 국내 대부분의 병원이 '연구'보다 '환자 진료'에 주력했지만 아주대의료원은 남달랐다. 박 원장은 "당시 미국 등 선진국에선 연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진단법과 치료법, 신약 등을 개발해 고수익을 창출하는 성공적인 사례를 인지하고 있었다"면서 "아주대의료원은 1996년 2월 국내 최초로 의료 원내 의과대학과 동급 기관으로 '의과학연구소'를 개소하는 등 연구개발에 주력했다"고 설명했다.그 결과 아주대의료원은 2015년 BK21+, MRC, SRC 그리고 연구중심병원 등 4개의 대형 국책과제를 동시에 수주해 연구분야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고, 전국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전임교원 1인당 교외연구비 실적이 2016년 2위, 2019년 4위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그럼에도 박 원장은 질적 향상을 꾸준히 주문한다. 그는 "많은 교수님들에게 연구에 더욱 매진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면서 "의학기술의 발전은 많은 연구에서 나온다. 특히 요즘에는 4차 산업의 핵심인 바이오헬스기술을 빅데이터화 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아주대병원은 지난 2013년 4월 보건복지부 지정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됐다. 연구중심병원은 학교가 아닌 병원 내부적으로 지속가능한 연구지원 시스템과 연구 역량을 구비하고 산·학·연과 개방형 융합연구 인프라를 구축해 글로벌 수준의 보건의료 산업화 성과를 창출하고자 마련한 것이다. 아주대병원은 2013년에 최초 선정된 이후 2016년 재지정, 2019년 3차 지정을 받았다.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의료정보학과 박래웅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인 분산형 바이오헬스 빅데이터 사업단장으로 국내 63여개 의료기관의 임상 빅데이터 표준화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2013년 오딧세이(OHDSI, 전세계 200개 이상 기관이 참여하는 비영리 국제 연구 컨소시엄) 창립 멤버로 현재까지 300회 이상의 국내외 강연 및 국제 공동연구에 참여하는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빅데이터 분야 전문가다.박 원장은 "아주대의료원은 지난 2004년 8월 아주대 의대에 국내 최초로 의료정보학교실을 개설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전자의무기록(EMR),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처방전전달시스템(OCS) 등 도입 논의가 시작될 뿐 의료IT 개념조차 생소했었다"면서 "박래웅 교수는 연구원 2~3명으로 시작해 현재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성장했다. 공통데이터모델(CDM)과 관련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 설명했다.특히 아주대의료원은 올해 3월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과 국제 공동 연구협약을 맺고 연구비를 지원받아 대구·경북지역 소재 2개 종합병원의 코로나19 임상검사 데이터를 공통데이터모델 기반 의료빅데이터 플랫폼을 제공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아주대의료원은 이러한 연구분야를 체계적이고 효율적 지원을 위해 2015년 기구조직에 부속병원, 의과대학·간호대학 등과 더불어 '첨단의학연구원'을 신설했다. 박 원장은 "'연구분야'의 중요성에 걸맞게 연구센터와 연구단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초, 임상연구 및 중개연구를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독립된 연구 전담기관이 필요했기 때문에 신설된 것"이라며 "현재 첨단의학연구원 산하에 14개의 연구센터, 9개의 임상과학융합연구단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초와 임상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아주대의료원의 연구비 수주액은 2010년 284억원에서 2019년 520억원으로, 창업실적은 같은 기간 0건에서 11건으로, MOU 실적은 1건에서 16건으로, 특허출원은 39건에서 114건으로, 기술이전 계약 실적은 3건에서 10여 건으로 늘었다. 또 SCI급 연구논문은 332건에서 548건으로 증가했다. 박 원장은 알레르기 분야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의료원장을 맡은 뒤 1주 진료를 3회에서 2회로 줄이면서 일부 환자들을 제자들에게 맡겼다. 박 원장은 환자뿐 아니라 전국의 의사들로부터도 신뢰를 받는 학자다. 세계 학회에서 인정받기도 하지만 큰 학회뿐 아니라 작은 간담회에 초청받아 강연할 때에도 전력을 다해서 준비하는 철저함 때문이다.박 원장은 "진료와 연구가 좋아서 열심히 했을 뿐인데 다행히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고 이를 국내·외에서 인정해 주는 것 같다"며 "임상진료 결과를 연구로 이어가고 그 연구를 다시 임상에 접목하는 과정을 통해 의료의 질 향상을 이뤄왔다"고 말했다. 사실 박 원장은 난치성 천식의 조기 진단법, 생체지표 및 조기진단법 개발, 면역조절제 개발 등의 우수한 연구성과를 발표했고 아스피린, 항생제 등 약물 알레르기와 직업성 천식에 대한 주요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또 환삼덩굴 꽃가루가 천식 및 알레르기 비염의 중요한 원인임을 세계 최초로 밝혀내고 면역치료제를 개발했다.아주대의료원은 해외교류 및 봉사활동에도 집중하고 있다. 박 원장은 "2006년 중국 용정시 인민병원과의 교류를 시작으로 중국·베트남·카자흐스탄·일본·러시아 5개국 35개 기관과 국제협약을 체결하고 있다"면서 "특히 2019년에는 중국 하얼빈시 지야윤병원으로부터 아주대학교병원의 브랜드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사용료를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아주대의료원은 개원초부터 소외당하고 의료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해 왔다. 지난 2004년 의료원 10주년을 맞아 '의료봉사활동'을 '사회공헌활동'으로 전환해 봉사 대상과 범위를 더욱 넓혔다"며 "코로나19로 인해 현재 잠시 중단하고 있지만 아주대의료원 봉사동아리는 매월 1회 외국인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신우회는 이주민 근로자를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박 원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ICT가 의학분야에서도 큰 화두가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빅데이터, 모바일, 웨어러블 분야 등이 크게 발전해 왔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ICT와의 융합 의료기술 개발의 급속한 발전과 변화가 예상된다"며 "대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활성화되면서 입원기간을 최대한 줄이고, 병원에서 환자들을 효율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이전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새로운 의료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고령화 사회 대비 항노화, 재생, 재활 등의 의료기술의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올해 1월엔 아주대학교 요양병원이 문을 열었다. 아주대병원은 급성 중증 환자를 치료하고, 아주대학교 요양병원은 아급성기 중증환자의 전문재활치료를 시행 후 지역사회 요양병원으로 전환해 만성케어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고령화 시대의 이상적인 협업 모델을 새롭게 구축할 것"이라고 피력했다.박 원장은 "아주대의료원은 이제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질적 성장에 집중하는 것"이라며 "진료의 질적 향상을 통해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 시스템의 재정비로 환자에게 보다 편안한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연구가 국가 보건의료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고 병원의 주 수입원이 되는 세계 최고의 병원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메이오클리닉이나 존스홉킨스병원처럼 아주대의료원도 연구를 통한 질적 성장을 통해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하고자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 개선, 의료비 비용 절감 등 실질적으로 환자가 혜택을 받고 지역사회 및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박해심 원장은?▲1958년 출생 ▲연세대 의대 졸업·석사·박사, 영국 사우스햄프턴 대학 박사 후 연구원 ▲연세의대 알레르기내과 연구 ▲아주의대 알레르기 내과 주임교수 ▲아주대의료원 연구지원실장·첨단의학연구원장 ▲EBS 알레르기 명의로 선정 ▲아주대학병원 '천식 및 알레르기' 임상 융합연구단장 ▲세계알레르기학회 학술위원장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회장취임 100일을 맞은 박해심 아주대학교 의료원장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덕분에 챌린지' 응원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2020-06-09 신창윤

[인터뷰… 공감]'오랜 경험과 첨단 의술로 성장' 40년 맞은 이춘택병원 윤성환 원장

초정밀수술 1만4천회 '세계 최다' 업그레이드된 로봇 상용화 '허가' 앞둬모든 입원실에 보호자 없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도입 '코로나 원천 봉쇄'20년 연구 내공 바탕 국내외 학회 논문활동… 무료시술 지원 사회공헌도"건강한 관절을 책임지는 가족같은 병원이 되겠습니다."수원뿐만 아니라 경기도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정형외과 전문 병원인 이춘택병원. 1981년 개원 이래 국내 최초로 초정밀 로봇 인공관절 수술을 도입하는 등 도민의 관절 건강을 40년 가까이 지켜오고 있다. 이런 이춘택병원이 40년을 맞아 새로운 도약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윤성환 병원장이 있다.지난 1일 이춘택병원 진료실에서 만난 윤 병원장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도민들에게 건강과 희망, 용기를 주기 위해 늘 미소를 달고 산다. 그는 "1981년 7월 개원 이래 이춘택병원이 경기도민과 수원시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아왔다"면서 "가족 같은 마음과 친절한 의료 서비스로 계속 정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이춘택병원은 초정밀 로봇 인공관절 수술을 도입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로봇수술 건수를 자랑한다. 2005년 의료 업계 최초로 '로봇관절연구소'를 설립해 국산화 초정밀 로봇 인공관절 수술의 기반을 다졌다. 윤 병원장은 "로봇 기술은 첨단 산업과 의술의 접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수술 전 컴퓨터단층촬영(CT)을 통한 3차원 입체영상을 컴퓨터에 제공한 뒤 환자의 뼈 모양과 상태를 고려한 최적의 절골위치, 교정각 등을 찾아 수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임플란트 크기와 위치각도 방향에 맞도록 로봇팔이 오차 없이 정확하게 뼈를 깎은 후 인공 관절을 삽입하게 된다"고 덧붙였다.이춘택병원은 현재 업그레이드된 초정밀 로봇의 상용화를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앞두고 있다. 임상 시험을 통해 이미 입증된 로봇 기술을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윤 병원장은 "현재 1만4천여 차례 로봇인공관절 수술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술을 한 것도 중요하지만, 수술 케이스에 대한 임상 데이터를 모두 갖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이춘택병원은 올해 코로나19 여파에도 병실을 개조해 5~7층 모든 입원실에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실현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중요한 사안이 됐다.윤 병원장은 "5월부터 보호자가 없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모든 층으로 확대 실시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보호자 없는 병실이 외부의 감염원 유입을 최대한 줄여 환자 안전을 지키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결정하게 됐다"며 "앞으로 감염관리실의 역할을 강화해 신종 감염병에 대한 대응시스템을 잘 갖춰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춘택병원은 정형외과를 세분화해 최적화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형외과에는 ▲척추관절센터 ▲스포츠 외상 및 관절경 센터 ▲로봇인공관절 수술 및 골절센터 등을 운영한다. 이춘택병원이 진료를 세분화하게 된 이유는 최근 다양한 유형의 관절 손상 인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교통사고 및 낙상 환자 등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젊은 층에서 스포츠 활동을 통한 관절 손상 환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이런 이유로 이춘택병원은 10명의 정형외과 전문의가 항시 진료를 대기한다. 윤 병원장은 "우리 병원은 분야별로 심도 있는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전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며 "로봇인공관절 센터 및 골절센터는 로봇을 이용한 인공관절 수술 분야와 고관절 인공관절 수술, 인공관절 재치환술, 골절, 골다공증 등에 대한 진료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또 "스포츠 외상 및 관절경센터는 스포츠와 레저활동의 증가로 외상으로 인한 관절 손상 인구가 증가해 전문 진료를 하고 있다"며 "세부적으로 어깨나 팔꿈치, 무릎, 발목관절 질환과 무지외반증 등 족부 질환도 진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 병원장은 "척추관절센터의 경우 목, 허리통증, 디스크나 척추 협착증 등 척추 질환에 대한 수술적, 비수술적 치료를 시행한다"면서도 "이외에도 내과중점센터 소화기 질환에 대한 내시경적 치료 및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대사성 질환을 전문 진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이춘택병원은 매년 꾸준하게 국내·외 학회에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미국 정형외과학회에 연구 자료가 채택돼 발표되기도 했다. 또 컴퓨터 수술학회는 대한정형외과 학회뿐 아니라 아시아, 세계적인 학회에서도 활발하게 연구논문을 발표한다. 윤 병원장은 "컴퓨터 수술학회는 컴퓨터와 로봇을 이용한 정형외과 수술 분야의 학회로 IT 강국인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로봇을 대표하는 병원으로 지난 20여년 간의 연구 성과에 대해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다"고 밝혔다.이춘택병원은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하다. 윤 병원장은 "2005년 8월부터 전국의 저소득층을 위해 인공관절 무료시술을 지원해 현재 599명에 혜택을 드렸다. 병원과 지자체, 삼성전기와 협약해 전국의 의료급여 1종 대상자 중 인공관절 수술이 필요한 분들께 무료로 수술을 해드리고 있다"고 피력했다. 또 "노인의료나눔재단 공식후원병원으로 저소득층 노인분들께 무료 인공관절 수술을 지원하며 다양한 사회공헌사업을 통해 건강한 삶을 찾아드리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 병원장은 도내에서 유일하게 '3회 연속 관절전문병원'과 '2회 연속 의료기관 인증' 등 국내 다른 전문병원과의 차별성에 대해 "81년 개원해서 이만큼 성장했는데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것이 가장 큰 차별성이자 장점일 것"이라면서 "그런 의미에서 병원은 실력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한다. 연륜의 깊이만큼 치료에 대한 경험이 풍부해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다. 아프면 바로 이춘택병원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3대째 찾아주시는 환자분들이 많은 만큼 늘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일하겠다"고 밝혔다.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이춘택병원 제공■ 윤성환 원장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석사▲ 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전 원주의료원 정형외과 과장▲ 이화의대 한국인공관절 센터 전임의 수료▲ 세계 최초 로봇 무릎 인공관절 반치환술 성공▲ 로봇 인공관절 수술 1만 차례 돌파▲ 세계 최초 로봇 이용한 휜다리 교정술 성공▲ 제2대 의료법인 장산의료재단 이춘택병원 병원장 취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분석심사 선도사업 전문심사위원윤성환 이춘택병원장이 무릎 관절에 대해 설명하면서 "아프면 바로 '이춘택병원'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3대째 찾아주시는 환자분을 위해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윤성환 병원장이 초정밀 로봇 인공관절 수술을 하고 있다.

2020-06-02 신창윤

[인터뷰… 공감]"후회 없는, 행복한 정치인" 은퇴 선언한 문희상 국회의장

# 선거·사법개혁 마찰… 21대의 길은시대정신은 못 거슬러 승복하는게 맞아삼권분립 확립·입법 중점 '국회가 할일'# 지역 연고 약한 인사들 득세지역 대표성 고려 비중 50%이상 돼야정당 '낙점' 선거운동 필요 없어질 수도# 고개 숙인 보수 향한 조언극단으로 치달으면 국민 지지 받지못해한땐 자유 수호 왕보수… 평등과 조화를"이제 제가 나고 자라서 뼈를 묻을 고향, 의정부로 돌아갈 시간입니다."경기도를 넘어 대한민국 정치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문희상 국회의장이 29일을 끝으로 국회를 떠난다. 2년 전 '민생을 꽃피우는 국회의 계절'을 강조하며 의장직에 올랐던 그가 정치를 떠나 고향으로 향하려 한다. 문 의장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단했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이라며 "텃밭 10평과 꽃밭 10평이 꾸려진 40평짜리 단층집, 햇볕 드는 집에서 노후를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평생을 '정치'라는 길 위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문 의장. 새로운 인생의 출발은 언제나 그랬듯, 의정부에서 시작한다.고향 '의정부'는 그가 실의에 빠져있을 때마다 따스한 손을 내밀어 준 곳이다. 6선의 국회의원에 오르기까지 두 번의 낙선과 수많은 위기의 순간이 있었지만, 시민들의 변함없는 사랑의 손길은 그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이는 제1~2대 국회의장을 지낸 신익희(1948~1954) 의장 이후 무려 70여년만에 경기도 출신 민주진영 국회의장을 배출한 원동력이 됐다.그가 스스로의 정치 인생을 '후회 없는, 행복한 정치인'이었다고 단언하는 이유다.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과 함께 정계 은퇴를 선언한 문 의장을 만나 경기도 정치와 언론이 나아갈 방향 등을 들어봤다.-국회는 지난해 선거제도·사법개혁을 놓고 극심한 마찰을 빚었다. 20대 국회에 대한 평가와 21대 국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시대정신이라는 건 도도하게 흘러서 아무도 거스를 수 없다. 결국은 다 승복하게 돼 있다. 이미 겪은 파도는 이유가 있어서 오지 쓸데 없이 오지 않는다. 그 또한 방향이다.21대 국회라고 해서 특별한 사명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기본, 의회주의의 기본을 생각할 때다. 의회주의를 떠나서 다른 것을 하면 안된다는 뜻이다.특히 거리에 올라서 시위하고, 이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수십 년에 한번 오는 혁명적 상황, 즉 국민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제도가 썩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하는 행위다. 이런 가두 민주주의는 이미 역사의 저 편에 있다. 20대 국회에서 (보수 야당이) 그걸 써먹으니까 4·15 총선에서 심판받은 것이다. 국민은 냉정하다. 입법을 하지 않는 국회가, 일하지 않는 국회가 어떻게 국민에게 신뢰받겠나. 맨날 싸움만 하다가, 오히려 저쪽에서 (입법)한 거니까 안하겠다고 하는 이런 구조 속에서는 아무 것도 안된다. 삼권분립을 지키면서 입법에 중점을 두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국회가 할 일이다."-지난 총선 공천은 지역 연고가 약한 인사들이 많다는 아쉬움을 남겼는데."(공천은)기능적, 분야별로 입법을 하는 국가적 기능에만 치우치기 보다는 지역 대표성도 상당히 고려돼야 한다. 그 비중이 50% 이상 돼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하면 어느 당을 찍을지 이미 정하게 되고, 선거운동도 필요가 없어진다. 이게 통신이나 SNS 등의 확산으로 새 풍속이 생긴 건지, 아니면 시대의 사조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선거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이게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는 더 두고 봐야겠고, 전문가들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선배 정치인으로서 총선에서 패배한 보수에 대해 애정 어린 충고를 한다면. "(총선에서)보수가 죽은 것 같지만, 나는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수는 어느 시대에서건 30%의 지지율을 가져갔다. 보수가 죽은 게 아니라 보수를 지탱하는 세력이 지리멸렬한 것이다. 보수는 지금 정신 차려야 다시 일어설 수 있고 그 에너지는 수도권에서 얻어야 한다고 본다. 수도권은 아무래도 30% 보수, 30% 진보가 확실하다. 40%의 중도가 판단해서 보수 편을 들면 보수가 집권하는 것이다. 극단적이어서는 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보수는 이번을 전화위복으로 삼아 일어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지도부들이 희생하고, 의회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보수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세상을 가치로 크게 나누면 두 가지다. 하나는 자유로, 이를 최고로 발현하는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세상이다. 그게 보수라면 나는 왕 보수다. 애초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려고 정치를 시작했다. 그때는 가장 기본적인 비판의 자유가 억압받고, 권위주의와 군부독재가 판쳤다. 당시 야당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그러나 가장 빠른 시간에 근대화된 것도, 민주화된 것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 속에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골고루 잘사는 세상에 대한 꿈도 커졌다. 이게 평등이고, 이게 진보라면 나는 또 왕 진보다. 골고루 잘사는 세상,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이상은 누구든지 있다.정치는 이 둘을 조화해야 한다. 두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동물정치가 된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발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죽기 살기로 덤비고, 국회는 그 현장이 된다. 그리되면 모두가 폭삭 망한다. 여당이 과반 석을 이뤘다고 희희낙락 하다간 둘 다 망한다는 게 바로 그 얘기다."-경기도의 정치와 언론의 역할론에 대한 생각은."기본적으로 모든 동물은 귀소 본능이 있고, 자기가 자라고 나서 거기에 사는 것에 대한 애착이 있다. 지역주의는 안되지만, 애향심은 돋보여야 한다. 애향심이 없는 사람은 애국심이 없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지역주의는 자기네만 다 해먹겠다는 거다. 이른바 계파 패권주의로, 이건 안될 일이다. 그래서 평생에 걸쳐 반대해 왔다.그러나 제 몫도 못 찾는 지역의 대표라면 그것은 할 일을 안 하는 거다. 그것을 누가 해주길 기다리면 안되고, 주체적으로 키워야 한다. 문제를 크게 보고, 수도권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발상 자체가 수도권 중심주의다. 베이징, 런던, 워싱턴 등 다 수도권을 재개발해서 지식이 집적된 게 수도권에 많은 것이다. 물류비용도 훨씬 적게 들고, 국가 경쟁력을 생각해서 다른 나라와 싸워 이기려면 수도권의 자원을 100% 활용하는 쪽으로 해야 국가가 발전하는 것이다. 전 세계가 그렇게 돼 가고 있다.지역신문의 역할도 크다. 글(기사)을 쓸 때, 애향심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경기도 출신 의원들, 여야 가릴 것 없이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게 기본에 깔려야 비판을 해도 의미가 있다."대담/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 jej@kyeongin.com 글·사진/이성철·김연태기자 kyt@kyeongin.com■ 문희상 의장은?▲ 1945년 경기도 의정부시 출생▲ 14·16·17·18·19·20대 국회의원▲ 2003년 2월 ~ 2004년 2월 제26대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2008년 7월 ~ 2010년 5월 제18대 국회 부의장▲ 2014년 9월 ~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2018년 7월 ~ 현재 제20대 국회 후반기 의장문희상 국회의장이 최근 경인일보와의 간담회를 통해 막 내리는 20대 국회와 새로 시작하는 21대 국회에 앞서, 후배 정치인에 대한 당부와 지역 언론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문희상 의장과의 간담회에는 배상록 경인일보 대표이사 사장과 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 이기우 국회의장 비서실장, 한민수 국회 대변인 등이 배석했다.

2020-05-26 이성철·김연태

[인터뷰… 공감]'고졸데뷔 2연속 선발승' 계보 잇는 kt 소형준

명투수 따라하며 '폼 완성'… 황금사자기·청룡기·한일전 '승리 주역'선배 김민 첫 등판경기 긴장감 풀어줘… 타자들 약점 투심으로 공략"매회가 결승전" 18세 배짱投… 조심스럽게 신인왕 욕심 드러내기도'KBO리그에 대형 투수가 등장했다. 요즘 프로야구에 이런 투수가 있었다니'.최근 프로야구 KBO리그 중계를 본 팬들의 반응이다. 국내 프로야구 KBO리그가 코로나19로 뒤늦게 개막했다. 물론 미국 메이저리그나 일본 리그보다 먼저 개막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그래도 각 팀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은 제 역할을 해내며 팀 승리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선수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선수가 있다. 주인공은 바로 수원 kt wiz의 새내기 투수 소형준이다.그는 2001년 9월 16일생으로 현재 만 18세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쟁쟁한 실력을 갖춘 프로 세계에서 시즌 초반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 현재 두 차례 선발 등판했는데 벌써 소형준의 기록이 한국 야구사에 기념비적으로 남고 있다.소형준은 지난 8일 생애 첫 선발 등판한 프로 데뷔전에서 첫 승을 거뒀다. 그것도 명문구단 두산 베어스 타자들을 상대로 거둔 값진 승리였다. 당시 소형준은 5이닝 동안 5피안타 2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막았다. 최고 시속 151㎞의 직구와 140㎞대 투심패스트볼, 120㎞대까지 구속을 낮춘 커브 등이 절묘하게 섞이면서 KBO리그 최정상급 두산 타선을 요리했다. 게다가 개막 3연전에서 롯데 자이언츠에 모두 패했던 kt에게 시즌 첫 승을 안기기도 했다.소형준의 활약은 KBO리그에도 의미 있는 기록을 만들었다. 소형준은 김태형(롯데·1991년), 김진우(KIA 타이거즈·2002년), 류현진(한화 이글스·2006년), 임지섭(LG 트윈스·2014년), 하영민(넥센 히어로즈·2014년), 양창섭(삼성 라이온즈·2018년), 김민(kt·2018년)에 이어 8번째로 데뷔전에서 선발승을 거둔 고졸 신인 투수가 됐다. 게다가 kt는 KBO리그 최초로 김민에 이어 개막전 선발승을 챙긴 고졸 신인 2명을 배출하기도 했다.소형준은 선발 첫 출전에 대해 "선발을 앞두고 긴장감보다 걱정이 더 밀려왔다. 과연 '내 공이 프로에서 통할까'라는 의심을 계속했다"면서도 "1회에는 직구 제구가 되지 않아 걱정했는데 (1회 오재일, 김재환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실점한 뒤에 마음을 비우고 던진 것이 좋은 비결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프로 무대 첫 선발승이 이렇게 의미가 있는 줄은 몰랐다"면서도 "제 앞에 기록을 세운 선배가 김민 형으로 알고 있다. '긴장하지 말고 네 공만 던지고 오라. 긴장하지 말라'고 말해줬다"고 당시 승리의 소회를 전했다. 아마추어와 프로 무대에서의 다른 점에 대해 소형준은 "두 경기를 했지만 프로는 다른 점이 많다. 대다수 타자들이 실투를 놓치지 않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던져야 했다"며 "현재는 포수 선배들이 많이 도와주지만 타자에 대한 공부도 더 많이 해야 한다. 초반 초구 스트라이크 비중을 높여 불리한 카운트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등 상대 팀에 대한 파악도 더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새내기 소형준의 거침없는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역대 4번째로 데뷔전 이래 2연속 선발승을 거둔 투수가 된 것이다.그는 지난 15일 두 번째 선발 등판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6과3분의1이닝 동안 5실점(2자책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이날은 소형준의 데뷔 첫 퀄리티스타트였다. 무엇보다도 소형준은 김진우(2002년), 류현진(2006년)에 이어 데뷔전 포함 2연속 선발승을 거둔 역대 3번째 고졸 신인의 주인공도 됐다.그는 류현진과 비교하자 "류현진 선배님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류현진 선배님이 신인 때 자신 있게 던졌듯 나도 그렇게 던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주위에서 너무 높게 평가해주시는 것 같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지만 부담감도 있다. 그러나 기대에 걸맞은 성장을 보여드리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소형준은 떡잎부터 남달랐다.5세 때 아버지 소철영 씨와 함께 캐치볼을 하며 야구를 접한 그는 의정부 리틀야구단에 들어간 뒤 구리 인창중을 거쳐 수원 유신고 최우수 선수로 급성장했다. 소형준의 장점은 타고난 승부 근성과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긍정적인 마인드다. 야구를 하면서 늘 배우는 것을 좋아했고 특히 유명한 투수들의 구질을 따라 하면서 변화구와 직구의 스피드를 끌어올리기도 했다.특히 소형준은 지난해 유신고 시절 황금사자기에 이어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까지 창단 후 최초로 2개 대회 우승을 석권한 주역이었다. 1년간 2개 대회를 모두 석권한 고교는 지난 2016년 서울 덕수고와 유신고가 유일하다.또 소형준은 지난해 한국 청소년 야구 대표팀 시절 '숙적' 일본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동메달을 따내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당시 소형준은 6회까지 일본 타선을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등 6과3분의2이닝동안 7피안타 2실점 호투로 에이스 칭호에 걸맞은 피칭을 했다.소형준의 무기는 정확한 제구력과 다양한 구질이다. 직구를 비롯 투심패스트볼,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 등 다양한 구질의 공을 던진다. 직구와 커브의 속도 차이도 커서 타자들이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그는 "연패 중에 선발 등판해 승리를 거뒀다. 선배들이 편하게 하라고 말씀해주셔서 부담 없이 임했고,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서 "타자들이 가장 어려워한다는 느낌을 받아 투심을 많이 던지게 됐다"고 강조했다.소형준은 신인왕 목표에 대해 "당연히 신인이라면 신인왕을 하고 싶긴 하다. 하지만 신인왕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닌 만큼 매 경기 부상당하지 말고 노력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고 힘주어 말했다.올해 승수 목표에 대해 그는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렵겠지만 10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상대 타선에 대한 연구를 더 철저히 하고 매회 결승전이라는 생각으로 던져 반드시 목표를 이루겠다"고 덧붙였다.소형준은 KBO리그 역대 개인 통산 다승 3위(152승)에 오른 이강철 kt 감독이 일찌감치 선발로 내정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갖췄다. 이 감독은 "삼진을 잡을 수 있는 결정구만 하나 만들면 정말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다"면서 "내가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신력이 좋은 선수"라고 칭찬했다.이 감독도 해태 타이거즈 대졸 신인이던 1989년 4월 13일 광주 삼성전에 선발 등판해 승리를 챙겼다. 31년 전 기록이, 제자 소형준 덕에 2020년 5월에 회자했다.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경인일보DB·kt wiz 제공수원 kt wiz의 새내기 투수 소형준은 올해 두 차례 선발 투수로 등판해 2연속 선발승을 거두는 등 맹활약 하고 있다.유신고 재학 시절 황금사자기 MVP에 선정된 소형준.

2020-05-19 신창윤

[인터뷰… 공감]'이순신을 찾아서' 펴낸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

단재는 중세 벗어나 '임금 아닌 국가에 충성' 근대적 영웅상으로 소환조카 이분 이충무공행록이 '최초 위인전기'… 박태원의 역주로 빛 보게 돼신분 아닌 재능·노력으로 일어서… 코로나·남북문제 등 '주체 역할 메시지'역사 속 영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본디 모습은 사라지고 왜곡된 채 위정자들의 통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과 의미가 더해지거나 감해져 시대가 원하는 전혀 다른 인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우리나라 위인의 표본으로 꼽히는 이순신(李舜臣·1545~1598)도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에는 국민국가 건설의 영웅으로 들어 올려져 박정희 독재 정권의 명분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민족 해방의 상징으로 소환되기도 했다.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위인으로 꼽히는 이순신. 과연 우리가 아는 이순신의 모습은 참일까 거짓일까. 국내 근·현대문학 분야의 석학으로 평가받는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최근 '이순신을 찾아서'를 펴냈다. 이 책은 중세의 영웅 이순신을 처음으로 근대로 불러들여 국민적 영웅으로 해석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1936)의 '수군제일위인 이순신(水軍第一偉人 李舜臣·1908)'과 구보(丘甫) 박태원(朴泰遠·1909~1986)이 번역하고 주를 단 '이충무공행록(李忠武公行錄·1948)'을 중심으로, 이광수에서 김훈까지 이순신을 다룬 작가들의 소설에 관한 짧은 논평을 달았다.지난 11일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는 최원식 교수의 연구실인 '동이서옥(同異書屋)'에서 그를 만났다. 2015년 퇴직 후 개인 연구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동이서옥을 최원식 교수는 자신의 '놀이터'라고 소개했다. 최원식 교수는 조선후기 실학자 안정복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제도·유교경전 등에 관하여 수록한 책인 '잡동산이(雜同散異)'의 동 자와 이 자를 따서 연구실 이름인 동이서옥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연구실 이름대로 근·현대 문학이 그의 전공 분야지만 최 교수는 그 경계를 넘나들며 왕성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최원식 교수는 "2017년부터 이순신에 대한 본격적인 집필 작업을 시작했는데 국한문혼용체로 된 단재의 이순신(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역주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 눈을 다칠 정도였다"며 "독자들이 제 글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우리가 모르고 있던 이순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원식 교수와의 일문일답.■ 중세에 갇혀 있던 이순신을 근대로 소환한 단재의 이순신(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이 주는 의미단재가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세상에 내놓기 전까지 이순신의 충(忠)은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하는 중세적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중세의 이순신을 근대로 소환한 게 바로 단재다. 단재는 임금이 아닌 국가와 백성에게 충성하는 근대적 '영웅'의 상을 이순신에게서 끄집어냈다. 이순신을 국민적 영웅으로 만든 것인데 단재의 작품은 이후로 이어지는 충무공 숭배의 원점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재가 대한매일신보에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연재한 시기가 1908년이다. 국권이 풍전등화에 달린 시기에 단재는 이 책을 통해 백성 하나하나가 '제2의 이순신'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충무를 불세출의 영웅으로 기리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영웅이 돼 국난을 이겨내는 것, 국민 영웅을 대망한 것이다. 중세에 갇혀 있던 이순신이 단재에 의해 근대의 이순신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 근대 이순신 위인 전기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구보의 이순신(이충무공행록)은 어떤가구보 박태원은 단재 이후 최고의 이순신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구보는 해방 직후부터 이순신전을 여러 번 연재했는데 1948년 서울에서 출판한 이충무공행록이 의미가 크다. 이 책은 이순신의 조카 이분(李芬·1566~1619년)이 지은 행록(行錄)을 번역하고 주석을 단 것이다. 이분의 행록은 이순신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위인전기다. 이후 모든 이순신전의 시초라 할 수 있는데 구보의 이충무공행록은 번역 문장과 주석이 모두 훌륭하다. 구보의 번역 이후로도 이분의 행록은 여러 번역본이 나왔지만 구보를 넘는 본을 보지 못했다. 이순신 최초의 위인전을 근대의 전으로 빛을 보게 한 이가 바로 구보 박태원이 역주한 이충무공행록이라 할 수 있다.■ 국난 위기 속에서 이순신을 호출하는 이유는단재의 이순신이 1908년, 구보의 이순신은 1948년 세상에 나왔다. 1908년은 국권이 일본으로 넘어가기 직전이다. 1948년 해방 공간은 분단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한반도를 덮치는 어수선한 시기였다. 모두 국난의 시기로 볼 수 있다. 이런 시기에 이순신이 공통적으로 호출됐다. 이순신은 일생이 완벽한 사람이다. 처음부터 출세의 길을 걸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사람이다. 근대적 시각에서 보면 신분이 아니라 재능과 노력으로 일어선 인물이다. 또 이순신은 백성과 함께 7년 전쟁(임진왜란)을 이긴 영웅이기도 하다. 좌수영 안에서 백성들과 밥과 술을 같이 먹으며 해전에 있어 중요한 물길, 물때 등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고 한다. 결국 국난은 백성들이 힘을 합쳐 이겨내야 한다. 어느 개인이 나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백성 모두가 영웅이 돼야 한다. 이런 근대적 시각에서 볼 때 이순신을 통해 전할 수 있는 메시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시점에서도 코로나19와 같은 당면한 위기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남북 화해의 과제도 결국 국민들이 주체가 돼 해결해야 하는 문제 아닌가.■ '이순신을 찾아서'가 독자들에게 주는 의미는이순신의 본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단재의 이순신과 구보의 이순신은 그 의미가 큰데도 그동안 망각돼 왔던 게 사실이다. 단재는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연재한 후 망명했고, 구보의 경우 이충무공행록을 펴낸 후 월북한다. 그동안 제대로 된 조명 작업이 이뤄지지 못했던 이유다. 이들의 빈자리를 춘원 이광수의 '이순신'이나 노산 이은상의 '성웅 이순신' 등과 같은 왜곡된 이미지의 이순신이 차지하게 된다. 이 중에서도 노산 이은상의 이순신은 박정희 개발 독재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동상이 세워진 것도 바로 이때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이순신을 찾아서 떠나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으면 한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이순신이 아닌, 이순신의 본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 글/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최원식 교수는?1949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와 영남대를 거쳐 1982년 인하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2015년 퇴임했다. 현재는 인하대 명예교수로 있다.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으로 등단하여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민족문학사연구소 공동대표, 인천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저서로 민족문학의 논리, 문학의 귀환, 문학과 진보, 한국근대문학사론,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등이 있다. 대산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등을 수상했다.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인 동이서옥에서 최근 펴낸 '이순신을 찾아서'를 설명하고 있다.

2020-05-12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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