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첫 회부터 올해 19회까지 '인천바로알기종주단' 이끄는 이동열 단장

동료들과 청량산~마니산 도보여행 계기 2000년 청소년 종주 본격화초기 예산난에 비 오면 물바다 '열악' 한때 중단… 시민 관심에 재개참여자들 성인돼 찾아오면 '멘토'로 활용 학생과 소통 '선순환' 이어져"청소년들이 인천 곳곳을 걸으며 인천이 고향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지난달, 60여명의 인천지역 중·고등학생들이 6박 7일간 서해5도인 백령도와 대청도를 두 발로 누볐다. 무더운 여름 이들이 걸은 거리는 100㎞가 넘는다. 이들은 인천바로알기종주단 단원들이다. 이름 그대로 '인천을 바로 알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은 매년 여름 100㎞가 넘는 인천지역 곳곳을 걷는다. 올해로 19회를 맞았다. 지금까지 종주단을 거쳐간 학생만 약 2천명. 이동열(64) 인천바로알기종주단장은 1회 때부터 이들과 모든 여정을 함께 하며 종주단을 직접 이끌고 있다.■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의 시작이동열 단장이 처음 종주단을 시작한 건 1999년이다. 21세기의 시작을 앞둔 이 단장은 2000년의 시작을 강화도 마니산 정상에서 맞고자 했다.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자는 마음에서였다. 이 단장은 차량이 아니라 도보를 택했다. 마니산을 목표로 14명의 동료들과 함께 연수구 청량산부터 걷기 시작했다. 청량산~남동구 만월산~부평구 원적산~계양구 계양산~강화대교를 거쳐 3박 4일의 종주 끝에 2000년 1월 1일 마니산 참성단에 올랐다. 이 여정이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의 시작이 됐다. 이동열 단장은 "처음부터 종주단을 만들 목적은 아니었지만, 계속 걸으면서 인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요즘 청소년들은 인천에 살더라도 주로 사는 지역에 대해서만 알게 되는데, 이들에게 인천의 여러 길을 보여주고 인천에 대해 알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이 단장은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청소년들을 모집해 인천 종주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100명이 넘는 참여 인원이 몰리는 등 관심이 뜨거웠다.하지만 종주단을 매년 이끄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부족한 예산으로 100여 명의 인원을 이끌기에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안전 등의 문제가 우려됐다. 종주는 2003년 한 차례 중단됐다. 이때 이동열 단장은 단원들로부터 '왜 올해는 종주를 하지 않느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를 듣고 시민들의 관심을 실감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이듬해부터 다시 종주를 시작했고, 종주는 지금까지 매년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까지 인천 종주가 진행되지 않은 해는 2003년이 유일하다. 2006년부터는 인천시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동열 단장은 "초기에는 예산이 넉넉지 않다 보니 맨바닥에 은박지만 깔고 자기도 하고, 비가 오면 물바다가 되기도 하는 등 안전에 대한 위험이 컸다"면서도 "처음부터 함께 했던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건 종주를 이어가는 것뿐이라는 생각에서 다시 종주를 시작했다"고 했다.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의 참가 대상은 중·고등학생이지만, 종주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성인이 된 뒤에도 종주에 참가하고 싶어 했다. 2009년, 이 단장은 이들을 참가자들의 '멘토'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경험을 활용하고 참가자들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이 멘토링 체제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동열 단장은 "초기에는 산악회 동료들과 함께 종주단을 이끌었는데, 아무래도 세대 차이가 있다 보니 학생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종주에 참여했던 학생들을 활용하니 '극기훈련'이 아닌 '여행'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참가자가 다시 멘토로 종주에 참여하는 선순환이 시작됐다"고 했다.내년은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이 20회를 맞는다. 종주 10회를 맞아 20여명의 대원들과 네팔 히말라야 랑탕 지역을 찾아 해발 약 5천800m의 '나야캉가봉'을 올랐던 것처럼 20회 역시 특별한 종주를 계획하고 있다. '걸어서 평양까지'라는 주제의 북한 종주다.통일 주역들 교류 '강화~개성~평양 여정' 변수 많지만 꾸준히 추진현지 환경 지키며 역내 소비 '공정여행' 가치 살린 섬 활성화도 필요■ '걸어서 평양까지' 20회 맞아 특별한 북한 종주 기획현재 인천시 평화도시조성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이동열 단장은 인천과 북한 남포, 평양을 잇는 특별한 종주를 구상하고 있다. 통일의 주역으로 나설 남·북 청년들이 상호 교류를 통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종주를 통해 지속적인 교류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남·북 관계의 상황이나 정부의 협조 등 변수가 많지만, 이동열 단장은 내년 여름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목표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단장은 "오래전부터 '걸어서 평양의 빵 공장까지 걸어가 보면 어떨까'라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었다"며 "북한에는 청년 단체가 많다고 하는데, 남·북 청년들이 고려의 역사가 숨 쉬는 강화에서 시작해 개성 왕건릉을 거쳐 평양의 단군릉까지 이어지는 육로를 함께 걷는 화합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이 단장은 구체적인 계획도 마련했다. 29세 미만의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약 50명 규모의 남·북 종주단을 구성하게 된다. 강화 고려궁지를 시작으로 개성공업지구, 개성 시내, 평양 등을 거쳐 인천으로 다시 돌아오는 게 그의 구상이다. 북한 남포와 평양을 잇는 '청년영웅도로'를 남·북 청년들이 함께 걷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모든 여정은 도보를 기본으로 하며, 출입국 사무소 등 필요 지역은 차량으로 이동한다.청년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계획했다. 북한 지역의 공원, 광장 등에서 우리나라의 풍물 문화나 K-POP 등 다양한 합동 문화 공연을 펼치는 방안을 기획하고 있다. 남·북 화합의 모습을 그리겠다는 취지다. 또 강화 고려궁지의 흙을 개성 왕건릉에 묻고, 강화 참성단의 흙을 평양 단군릉에 묻는 등 통일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퍼포먼스도 펼칠 계획이다. 약 13일간 총 222㎞의 인천, 북한 지역을 함께 걷게 된다. 이동열 단장은 "북한 종주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단원들이 남·북 화합에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종주를 계기로 향후에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평양 수학여행, 백두산 답사단 등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섬을 지키는 파수꾼이동열 단장은 인천 섬에 대한 관심도 크다. 현재 인천 섬 연구 단체인 (사)황해섬네트워크의 이사장 겸 공동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이와 함께 인천시 도서발전자문위원회 위원직도 맡고 있다.이 단장은 '공정여행'의 가치를 살려 인천 섬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여행은 현지의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현지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여행 개념이다. 승선비 외의 소비는 모두 섬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 섬 활성화를 위해 각 섬의 시장과 경매장 문화를 다시 살리고, 사라져 가는 나루터, 포구에 대한 연구 작업을 진행하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이동열 단장은 "20년 동안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을 큰 탈 없이 이끌 수 있게 도와준 여러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학생들에게 인천을 바로 알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이어 "섬 원주민과 여행객이 서로 소통, 존중하며 지속 가능한 섬 발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데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글/공승배기자 ksb@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이동열 단장은?▲ 1955년 경기 시흥 출생▲ 인천고등학교, 인하대학교 항공공학과 졸업▲ 인천바로알기종주단 대표▲ (사)황해섬네트워크 이사장 겸 공동대표▲ 인천시 평화도시조성위원▲ 인천시 도서발전자문위원▲ (전) 인천 승마협회 이사▲ (전) 한국산악회 인천지부 부회장▲ (전) 인천시 배드민턴협회 감사▲ (전) 대한산악연맹 인천지부 부회장인천지역 학생들이 인천 곳곳을 누비는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이 내년 20회를 맞는다. 이동열(64) 단장은 1회부터 지금까지 종주단을 이끌고 있다. 이동열 단장이 올해 종주를 진행한 서해5도 코스를 가리키고 있다.

2019-09-17 공승배

[인터뷰… 공감]수원 '화성연구회' 김충영 이사장

신분·성별 구분 통념깨고 궁중·민간연희 함께 진행 '이례적'정리의궤등 기록 철저 고증… 올해 재현행사 완성도 높여예산탓에 '실제 장소' 낙남헌 아닌 화서문서 공연 '아쉬움'"낙성연이 가진 무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원형 보존이 필요합니다"올해로 축조 223주년을 맞은 수원화성을 연구하기 위한 자발적 시민모임인 '화성연구회'김충영 이사장은 낙성연에 대해 "수원화성 준공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잔치"라고 설명했다. 1796년(정조 20) 10월 16일 화성행궁 낙남헌에서는 수원화성 준공을 축하하기 위해 잔치가 열렸다.'낙성연'이다. 시연은 지난 2010년 처음으로 이뤄졌다. 정조대왕 탄신 258주기를 기념한 그해 11월 수원 화성행궁 내 낙남헌에서 시민과 외국인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화성 축성 기념 낙성연(落成宴)'이 최초로 선보였다.낙성연은 정조대왕이 1796년 10월16일 당시 국왕을 중심으로 신분과 성별이 구분되는 잔치가 일반적이었던 사회적 통념을 깨고, 백성 모두가 함께 어울리도록 지시해 개최된 최초의 시민축제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시연된 낙성연은 구체적인 문헌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화성성역의궤'에 '낙성연도'라는 그림과 전문가들의 고증을 토대로 최대한 당시 상황과 가깝게 재현됐다.올해 열리는 제56회 수원화성문화제(10월3일부터 6일까지) 전야제 행사로 10월 2일에 화서문 일원에서 재현되는 낙성연은 지난 2016년 7월 한글본 정리의궤 권 39 성역도(화성성역의궤)가 발견되면서 철저한 고증을 통해 완성도를 높였다.낙성연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화성연구회 김 이사장은 "낙성연은 정조대왕이 특별 지시해 마련한 잔치로 완성도가 더욱 높아졌다"며 "정조대왕이 특별 지시해 궁중행사로는 이례적으로 축성에 참여한 감독관과 기술자 및 일용노동자와 일반 백성에 이르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낙성잔치를 즐겼다는데 의미가 있고 그 행사를 보게될 것"이라고 말했다.특히 그는 " 화성행궁 보계 위에서는 축성에 참여한 관료들과 경기도 내 수령들을 위한 궁중연희가 펼쳐졌고, 보계 아래에서는 축성 기술자 및 민간인들을 위한 민간연희가 열렸는데 채붕을 이용한 산대놀이가 연행되었다"고 부연 설명했다.실제 낙성연을 주관하는 화성연구회에서는 화성성역의궤, 채색본 낙성연도, 한글본 정리의궤 기록을 철저히 비교 분석해 고증·재현해 냈다.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있다. 과거 이뤄졌던 낙성연을 원형 그대도 재현하기 위해서는 화성행궁 내 '낙남헌'에서 행사가 진행돼야 하지만, 예산 문제로 올해는 화서문에서 열린다. 김 이사장은 "낙성연은 무형문화재로서도 손색없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낙성연이 가진 정체성을 고민해야 한다"며 "이 정도 수준으로 낙성연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가장 기초적인 장소 선정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 이사장은 '트렌드'라는 단어로 낙성연이 가진 여느 축제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낙성연은 하나의 공간에서 궁중연희와 민간연희 공연을 함께 선보이고 있어 상하동락(上下同樂)의 애민정신을 구현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며 "민주주의·인권 등 가치가 중요시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낙성연은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글/김영래·배재흥기자 yrk@kyeongin.com#수원화성 '낙성연' 관련자료■ 화성성역의궤 '채붕을 설치했다(設綵棚)'는 내용과 흑백 낙성연도 그림 등이 있다.보계 위는 포구락, 쌍무고, 연화대무 등 궁중정재 연행을, 보계 아래는 채붕을 이용한 민간연희 연행(사자춤, 호랑이춤, 만석승무, 취발이춤)등이 실렸다.■ 한글본 정리의궤 권39 성역도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본(2016년 7월 발견)으로 한글본 정리의궤 총 4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789년부터의 '현륭원 원행', '원행을묘정리의궤', '화성성역의궤'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한글 필사본으로 현재 13책이 존재한다. 한글본 정리의궤 권39 성역도의 채색본 1권(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본)이 있다.한신대학교 김준혁 교수가 발견한 채색본 낙성연도 그림을 바탕으로 2016년 9월 수원문화재단에서 '수원화성 낙성연' 공연이 재현됐다.■ 한글본 정리의궤 권48화성연구회 한정규 회원은 한글본 정리의궤 권39 성역도의 채색본 낙성연도 그림과 한글본 정리의궤 권48의 수원화성 낙성연 절차를 고증하고 '수원화성 낙성연'을 복원해 공연(2018년 10월 4일 제55회 수원화성문화제 전야행사)을 재현했다. /화성연구회 제공화성 축조 223주년을 맞아 10월 2일 수원 화서문에서 낙성연 재현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화성연구회 김충영 이사장이 실제 잔치가 열렸던 화성행궁 낙남헌에서 낙성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화성연구회' 김충영 이사장과 회원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낙성연의 민간연희 장면. /화성연구회 제공화성연구회 주관·수원문화재단과 경인일보 후원으로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린 제54회 수원 화성문화제 전야제 '낙성연' 공연. /경인일보DB'화성성역의궤'. /수원시 제공

2019-09-10 김영래·배재흥

[인터뷰… 공감]인천 노동자자주관리기업 키친아트 전신, 치열했던 투쟁의 역사 '경동산업' 노동자들

열악한 근로조건 '악명' 사측 구사대로 노동자 습격구속된 동료 돕는다 '해고' 농성·분신으로 이어져고통스런 기억 안 떠나… 30년간 거르지 않고 추모부도후 재탄생 '키친아트' 개인 아닌 모두의 것돼야1980년대는 한국 현대사에서 굵직굵직한 일이 많았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열렸고, 전국을 휩쓴 민주화운동 영향으로 헌법이 개정돼 대통령선거는 직선제로 바뀌었다. 경동산업 노동자들에게 이 시기는 아픔으로 다가온다. 1985년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투쟁이 있었고, 1987년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동쟁의가 있었다. 이때 수십 명이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다. 30년 전 오늘인 1989년 9월4일엔 회사 측의 부당한 징계 방침에 항의하며 노동자들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이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故 강현중·김종하 열사다.경동산업은 1960년 서울 구로구에 설립된 국내 최초 양식기 제조기업이다. 냄비와 프라이팬 등 주방용품을 생산했다. 1983년 인천 서구 가좌동에 제2공장을 설립했다. 1980년대 경동산업은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직원들이 과로로 쓰러져 숨지기도 하고, 분신으로 목숨을 잃는 사고까지 있었다. 30년이 지났지만, 당시 경동산업 노동자들은 당시 목숨을 잃은 열사를 추모하고 있다. 최근 경동산업의 후신인 인천 서구 가좌동 (주)키친아트 정문에서는 3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 앞서 1980년대 '경동산업 투쟁'의 치열한 현장에 있었던 노동자들을 만났다. 강현중·김종하 열사의 동지들이다.김학철(62)씨는 1987년 해고를 당했다. 당시 경동산업은 저임금과 추가 근로 등으로 악명이 높았다. 자녀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공장에 나온 여성 근로자들이 과로로 쓰러지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임금인상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김학철씨는 이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4월21일 해고됐다. 이후 김학철씨는 출근 투쟁을 벌이며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을 독려했다. 경동산업 노동자들은 노동쟁의 중인 다른 사업장과 연대하기도 했다. 8월에는 파업을 진행했다. 보름간 이어진 파업 투쟁에서 경동산업 노동자들은 냄비를 두드리며 농성을 진행했다. 당시 인천 주안5·6공단 일대가 경동산업 노동자들의 냄비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고 한다. 임금 인상을 얻어내는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사측과 갈등이 다시 불거졌다. 노조가 폭력을 행사한 관리자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는데, 사측이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회사 측은 구사대(노동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사측에서 고용한 사람)를 이용해 노동자들을 구타했다. '머리에 노란띠를 두르지 않으면 불순세력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퍼졌고, 노란띠를 두른 200여 명의 구사대가 당시 노동자 사무실을 습격했다. 이때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이들 중 다수가 구속됐다. 이를 '노란띠 사건'이라 불렀다. 김학철씨는 해고자 신분이었기 때문에 구속은 피했다.김학철씨는 "노란띠 사건으로 구속된 노동자들을 뒷바라지했다"며 "해직자였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계속 이러한 활동을 했고 89년에 있었던 투쟁에서는 출근길 교통정리와 청소를 담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87년에 노란띠 사건이 발생하지 않고 제대로 된 민주노조가 세워졌다면, 89년의 비극은 없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그동안 김학철씨는 노동 열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했다. '민족민주열사 추모단체 연대회의', '국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그는 "현재는 몸이 안 좋아 이전과 같은 활동을 하기 힘들어졌다"며 "2012년부터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에는 그동안의 경험과 아픔 등이 배어 있다"고 했다.안중준(56)씨는 1989년 9월4일 강현중·김종하 열사가 분신했을 때 함께 있었다. 강현중 열사가 회장으로 있던 사내 모임 '디딤돌'의 총무로 활동했다. 디딤돌은 일일주점을 열고 풍물패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당시 회사 측은 디딤돌 간부인 강현중 열사와 안중준씨 등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추후 밝혀진 해고 이유는 디딤돌이 '해고자와 어울린다', '불법 티켓을 팔았다' 등이었다. 디딤돌 회원 등은 회사 측의 부당한 징계에 항의하는 농성을 진행했고, 결국 분신으로 이어졌다. 4명이 화상을 입었고, 1명이 할복했다. 회사 측 강의신 노무이사도 화상을 입어 목숨을 잃었다. 분신으로 인해 안중준씨도 전신에 큰 화상을 입었다.이때 사고는 당시 언론에도 크게 보도되는 등 주목을 받았다. 경인일보는 1989년 9월5일자 신문에서 '농성근로자 5명 분신소동'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으며, 같은 날 '친목회 조직 징계가 도화선'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사건 배경 등을 알렸다.안중준씨는 "당시 사고를 막기 위해 화기 같은 것을 수거했지만, 안타까운 사고가 났다"며 "조금만 더 치밀했으면 이길 수 있는 싸움이었다. 우리 동지들의 희생도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안중준씨는 사고 이후 자살 방조 등의 혐의로 3년간 복역했다. 그는 "동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통스럽게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3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추모 사업을 개최하는 동지들에게 감사하다"며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다.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편안한 삶을 살 수 없었다"고 했다.경동산업 노동자들은 1989년 사고 이후 매년 묘소를 참배하며 열사들을 추모했다. 올해는 30주기를 맞아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하는 행사를 진행했다.이종화(56)씨는 경동산업 후신인 키친아트에서 일하고 있다. 이종화씨도 1989년 9월4일 분신 현장에 있었고,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그도 '디딤돌'에서 활동했다. 그는 자살 방조 등의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았다.2명이 목숨을 잃은 '9·4 투쟁'에서 4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종화씨 등은 1994년 '경동산업 해고노동자 복직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농성을 진행했다. 4개월에 걸친 농성 끝에 복직이 이뤄졌다.하지만 경동산업은 점차 사세가 기울면서 2000년 부도를 맞았고, 2001년 키친아트로 재탄생했다. 키친아트는 '공동소유, 공동책임, 공동분배'를 사훈으로 내건 노동자자주관리기업이다.이종화씨는 "해고와 복직을 반복했지만, 이 기간을 모두 합하면 30여 년을 경동산업과 키친아트에서 일했다"며 "사훈처럼 공동소유, 공동책임, 공동분배가 이뤄지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회사는 어느 한 개인이 아니라 직원 등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1980년대 경동산업에서 투쟁했던 이들이 (주)키친아트에 설치된 '경동산업 노동자 추모비' 앞에서 故 강현중·김종하 열사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영식, 안중준, 이종화, 김학철씨.

2019-09-03 정운

[인터뷰… 공감]취임 1년 '새로운 해법' 제시 나선 문진영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

'기술·보상·정보 미스매치'가 문제의 본질… 교육·청년사업등으로 풀어이론·실천 통합 '연구기능 강화' 효율성 향상·정책 사각지대 해소 '기대'유관기관 4곳 통합·출범 '노하우 발전·시너지 효과' 더 나은 서비스 제공정부와 자치단체의 부단한 노력에도 일자리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있다. 청년 일자리 문제에서부터 경력단절여성 등의 재취업 문제, 최근에는 베이비부머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부각되기 시작한 '4060 신중년 문제'까지 되레 다양한 형태로 일자리 문제가 분화하는 양상이다. 날로 그 심각성을 더해가는 듯한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최전선에 나선 경기도일자리재단 문진영 대표이사가 취임 1년을 맞았다. 도일자리재단 역시 3년 차로 아직 출범 초기 단계지만, 학자 출신인 문진영 대표는 숱한 연구를 통해 도출한 비전과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조직 안정화에서부터 여러 모습을 하고 있는 일자리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문진영 대표는 '일자리가 단순히 생활의 방도가 아니라 사회와 소통하는 창구이자, 자신의 발전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철학을 갖고, 일자리 문제 해결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나섰다.# 일자리문제, 이제는 다른 해법을 제시할 때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나섰고, 경기도 역시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일자리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문진영 대표는 "일자리 문제는 정책적 의지나 방법을 통해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사회 복지 문제의 경우에는 행정력을 동원하면 비교적 결과가 직선적으로 나오지만, 일자리 부분은 그렇지 못하다"고 설명했다.그는 "우리 사회의 경제 체질이 전반적으로 강화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게 일자리인데, 경제구조 자체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책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한계를 마주한 것"이라고 진단했다.문진영 대표는 일자리 문제의 본질은 3가지 미스매치가 주요한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재단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선 '기술(숙련)의 미스매치'는 기술학교나 새일센터 등을 통해 해결하고, '보상의 미스매치'는 일하는 청년사업과 같은 보상을 늘려주는 방식이다. 또 '정보의 미스매치'는 일자리 포털 '잡아바'를 고도화해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문진영 대표는 "경기도가 운영하던 일자리 유관기관 4곳이 하나로 뭉쳐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며 "재단 출범 이전부터 이어온 재단의 자산을 꾸준히 이어간다면 일자리 문제 해결의 모델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진영 호의 일자리 해법, '공익적 일자리'노동시장정책 전문가인 문진영 대표가 제시하는 일자리 문제 해결 방안 중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은 '공익적 일자리'다. 소득 양극화와 저성장에 따른 고용불안, 지역적·사회적 격차가 확대되는 등 구조적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공익적 일자리를 만들어 '사회적 부문 강화'와 '일자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이다. 올해 초 신설된 '공익적 일자리팀'이 그 동력을 맡고 있다. 문진영 대표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굉장히 필요하지만, 수익성이 따라오지 못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회적 일자리를 통해 일자리 문제의 해법을 찾고 있다"며 "공익적 일자리팀을 통해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보상이 가능한 사회적 일자리 직업군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과제에 도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이미 영국이나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튼튼한 지역사회의 역량을 활용해 공익에 도움을 주면서도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문진영 대표는 "선진국의 경우 공익적 일자리의 역사가 깊어 배워야 할 점이 많다"며 "우리나라도 지금은 초기 단계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어느 정도 안정화되고 있어 재단이 앞장서 일자리 문제 해결의 지향점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이를 위해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를 가꾸는 일까지 활동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사회적 경제 성장지원을 통한 일자리창출 사업'은 사회적 경제 기업을 단순히 일자리 창출의 동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경영과 재정 측면까지 아우르는 패키지 형태로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0년 이상의 경력과 전문 자격을 갖춘 신중년층 컨선턴트가 참여해 중장년 계층의 사회공헌형 일자리 창출에 나서고 있다. 이밖에 온라인 판촉마케팅 지원과 노동자 작업환경 개선 등을 통해 건강한 일자리 환경을 가꾸고 있다.# 일자리 문제 해결의 나침반, '연구기능 강화'일자리 사업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진단은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또 '일자리 창출'이라는 거대한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 일자리 문제 해결을 재촉하면서 퇴고(推敲)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을 찾기 보다는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따라가기 급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문진영 대표는 취임 당시부터 연구 기능 강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도일자리재단은 일자리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지만, 이론과 실천이 통합되는 연구기능을 강화해 효율적인 길을 열어가겠다는 각오인 것이다.문진영 대표는 "연구기능 강화에 앞서 숙려 과정을 밟고 있다"며 "최근의 인사에서도 사업부서와 연구부서 간 인적 교류를 염두에 뒀다"고 설명했다.사업부서와 연구부서 간 역할이 분담돼있어 각자가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데, 순환 배치를 통해 각자의 주된 영역을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또 연구팀을 연구본부로 확대하는 방안이 대표 개인의 목표가 아닌 조직의 체력이자, 조직 구성원의 비전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끊임없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문진영 대표는 "정책연구팀을 정책연구센터로 승격시켜 연구기능을 강화한다면 세부적인 일자리 현황을 정확하게 볼 수 있고 혹시 놓치고 있는 사각지대 일자리 사업을 추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책 전달체계를 비롯한 다양한 일자리 문제 해결 방안이 나올 것이라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했다.# 출범 3년, 새로운 일자리 문제 해결 DNA 이식경기도일자리재단은 경기도가 운영하는 일자리 관련 유관기관이 결합하면서 출범했다. 재단 출범 초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일하는 청년 시리즈'는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이라는 하나의 DNA를, 여성능력개발센터부터 이어온 경력단절 여성 재취업 등 여성일자리 문제 해결의 DNA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문진영 대표가 새로 이식한 재단의 DNA는 '4060 신중년' 일자리 문제 해결 능력이다.문진영 대표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를 하기 시작하면서 신중년 일자리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며 "청년들은 사회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동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신중년의 경우 각자 걸어온 삶이 다르기 때문에 더 다양한 방식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금전적인 동기보다는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 신중년이 있고, 전혀 다른 일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신중년, 당장의 취업이 급한 신중년 등 특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10이면 10가지의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문진영 대표는 "재단이 갖고 있는 소중한 DNA가 많이 있다. 그간의 자산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신중년 일자리 문제 해결의 모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마지막으로 문진영 대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리가 일자리라고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재단의 존재 이유"라며 "아직 연구센터 신설과 잡아바 앱 서비스 고도화 등 과제는 남아있지만, 재단이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 고용의 미스매치를 줄이고 도민들에게 더 나은 일자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글/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문진영 대표이사는?▲ 1962년생▲ 1985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 ▲ 1988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졸업▲ 1989~1994 영국 헐 대학교(University of Hull) 사회정책학 박사■주요 경력▲ 1998~ 서강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6~2007 대통령 자문 양극화민생대책위원회 위원 ▲ 2013~2014 사회복지정책학회 회장 ▲ 2018~ 제2대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문진영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가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재단의 존재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경기도일자리재단 제공

2019-08-27 김성주

[인터뷰… 공감]인니 국립박물관서 '한국의 DMZ 평화생명의 땅'展 가진 인천 출신 최병관 사진가

#'케이-포토' 신조어 만든 화제의 전시회하루 1천명 방문 현지 예술감성 남달라 눈물도사람 감동시키는 '만국 공통 시각언어' 재확인 인도네시아(수도·자카르타)는 세계 4위의 인구와 방대한 영토를 보유했다. 약 430년 동안 네덜란드의 식민지를 거쳐 1945년 독립을 이루었다. 아세안(ASEAN)의 수장국인 인도네시아는 일본의 최대 규모 차관 공여국이기도 하다. 일본은 인도네시아 투자에 적극적이며,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발생 이후 자동차, 부품 산업을 중심으로 대인도네시아 투자 확대를 꾀하고 있다. 때문에, 인도네시아 도로는 일본 차들이 점령했으며, 공산품도 일본산이 많다. 그에 반해 우리 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은 더딘 상황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케이-팝(K-POP)' 등 문화로 인도네시아에 다가서고 있다.인천 출신 사진가이며, 'DMZ(비무장지대) 작가'로도 유명한 최병관(69)의 사진전 '한국의 DMZ 평화생명의 땅'이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20일까지 자카르타 중심부에 있는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서 개최됐다. 문화체육관광부, 해외홍보문화원, 인도네시아 교육문화부가 주최하고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대사관, 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이 주관한 전시회에는 작가의 대표작인 '평화의 꽃을 피워주세요'와 '자유의 다리', '노송의 침묵' 등 주제에 맞춰 엄선된 작품과 신작을 포함해 75점의 사진이 출품돼 관람객과 만났다.전시 기간 하루 평균 1천명의 관람객이 다녀갔으며, 현지 언론 매체 10여 곳에서 작가 인터뷰를 했다. 또한, 재인도네시아 미국문화원은 현지 대학생 300명을 초청해 작가와 토크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처럼 전시회는 인도네시아에 '케이-포토(PHOTO)'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등 다양한 화제를 뿌렸다.이번 전시회의 큰 성공은 오는 9월 9~13일 자카르타에 있는 '주 아세안 대한민국 대표부'의 초대전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아세안 10개국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전시회가 이어지는 것이다.수십 년째 매일 거르지 않는 출사(出寫)와 함께 주 아세안 대표부 전시 준비로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는 최병관 작가를 지난 19일 인천 소래포구 인근 작업실에서 만났다. 전시회가 막을 내린 지 한 달 정도 지났지만, 작가의 마음엔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받은 감상들이 잊히지 않는 듯했다."지금까지 해외와 국내 통틀어 45회에 달하는 개인전을 가졌지만, 이번처럼 큰 울림을 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관람객들은 작품 하나하나 열심히 봐 주셨어요.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예술 감성이 남다르다는 걸 느꼈죠. 현대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모습이랄까요. 국립박물관이다 보니 입장료가 있는데도 하루에 1천 명 정도가 입장해 그중 70% 정도는 사인을 받아 갔고, 60% 정도는 기념 촬영을 요구했어요. 하루에 5~6명 정도는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셨습니다. "그는 시각 언어로 정의되는 사진이 이번 전시회를 통해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고도 했다."전시회를 통해 '사진 예술은 세계 공통 시각 언어'라는 걸 느꼈습니다. 사람을 감동시키고 기쁨과 슬픔 등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게 사진임을 재차 확인한 거죠. 사진 한 컷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느낌을 전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글을 읽지 않는 요즘 세대의 모습과 교차하면서 사진의 힘과 역할을 다시 생각했습니다."최 작가의 집안은 15대째 인천 소래에서 살고 있다. 그는 어머니의 모습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고향을 남기기 위해 32세에 독학으로 공부 후 사진가의 길을 걷고 있다. "어머니가 45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제가 7남매 중 막내였는데, 어머니는 홀로 7남매를 번듯하게 키워내셨죠. 사진을 시작한 후 어머니의 삶과 고향을 집중적으로 찍으면서 '향토사진가'로 불렸죠. 20~30년 전에 찍은 갯벌이나 포구, 염전은 대부분 개발이 돼서 사라지고 없어요. 2002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상복을 벗고 마지막 가시는 길의 '효도'라고 생각하고 찍었어요."#포토샵 같은 보정 안하는 걸로 '유명'그럴 이유없어… '자연 그대로' 모습 담기 노력끊임없는 실험·독학으로 '나만의 구도·색' 탄생'사진가 최병관'은 포토샵 같은 보정을 전혀 안 하는 걸로 유명하다. 평소 그는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카메라 딱 한대만 가지고 다닌다."하늘에서 빛이 내려와서 자연과 부딪칠 때 생기는 빛깔을 사진가가 만든 구도와 색으로 사진이 탄생합니다. 끊임없이 실험하고 연구해서 나온 작품입니다. 정식 교육을 받았다면 이렇게 저만의 사진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거예요."그는 소래에서 태어나고 자란 게 사진가로서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고향에 대한 애착이 컸어요. 바다가 가까워서 사진 찍기 좋아요. 영흥도와 대부도, 영종도도 쉽게 갈 수 있는 등 지리적으로 좋고요." 최 작가는 2004년 일본 도쿄사진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가졌으며, 2010년 뉴욕 UN본부에서 'DMZ'를 주제로 사진전을 개최했다. 지난해 2월에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기념 전시회를 강릉에서 여는 등 이번 인도네시아 전시회까지 45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시인으로도 등단(1994년)한 그는 지금까지 26권의 사진집, 4권의 포토에세이, 3권의 포토시집을 출간했다."1991년 '내가 살아온 인천' 전시부터 조금씩 제 작품이 알려졌어요. 1995년 육군사관학교 개교 50주년 기념 '오래 머물고 싶은 화랑대'를 거쳐 민간인 최초로 DMZ에 들어가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서쪽 말도부터 동쪽 해금강까지 249㎞를 3회 왕복하며 찍은 DMZ 사진들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요."#한번 더 DMZ에 가서 사진 촬영을 한다면남쪽에서 북쪽 바라보고 찍은 '절반'의 작품들북쪽으로 들어가 온전히 이어지는 작업 하고파작가에게 한번 더 DMZ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는다면 무엇을 담고 싶을지에 대해 물었다."제가 찍은 사진은 DMZ 남방한계선 통문을 통해 들어가서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찍은 것들이에요. 절반만 찍은 것이죠. 또 간다면 북쪽으로 들어가서 남쪽을 찍고 싶어요. 그래야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죠. DMZ가 이어지는 그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지금도 작품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면 새벽이나 한밤중, 눈이 오거나 비바람이 불어도 카메라를 들고 나간다는 최 작가가 찍은 사진 분량은 컷으로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전체 저작권료로 따지면 1천억원대로 추정된다. 최 작가는 이 같은 방대한 자료들이 인천시민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수년 전 경기도와 강원도의 접경지역에 있는 지자체에서 제 사진 자료들로 DMZ 자료관을 만들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하지만 고사했습니다. 고향인 인천에도 강화와 교동 등 접경지역이 있는데, 타지로 가는 게 내키지 않았죠. 제가 살아 있을 때 인천시나 지자체 등에서 의지를 갖고 추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최병관 사진가는?사진가이며 시인이다. 국외에선 미국 뉴욕 UN본부, 하와이시립미술관, 일본 도쿄사진미술관, 아오모리현 핫코다마루미술관,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 독일 베를린 등에서 15회의 초대 개인전을 여는 등 국내외에서 45회 사진전을 개최했다. 26권의 사진집, 4권의 포토에세이, 3권의 포토시집을 출간했다. 그중 '휴전선155마일 450일간의 일기'와 '어머니의 실크로드'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었으며 어린이 책 '울지 마 꽃들아'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됐다. 대통령표창, 외교통상부장관상, 인천광역시문화상(미술부문), 인천환경인대상, 디엠지문화대상 등을 받았다.최병관 작가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유서 깊은 국립박물관 전시를 역사에 남을 만한 전시로 준비했고,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현대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맑은 미소와 열광적인 관람 문화로 호응해 주었다"고 말했다.최병관 작가가 슬라이드 필름에 담긴 DMZ 사진을 보면서 촬영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2019-08-20 김영준

[인터뷰… 공감] '학병 출신 마지막 광복군' 100세 김유길 선생

1919년 태어나… 일본군 탈출 충칭 임시정부 향해 '6천리 장정길'美OSS와 연일 고강도 훈련 소화… '뜻밖의 日 항복' 생생히 기억'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군가 후렴 노병의 인생역정 담아가깝고도 먼 이웃나라인 일본과의 관계가 최악의 국면을 맞은 요즘이다. 갈등을 넘어 이제는 경제전쟁으로까지 치닫는 양상은 과거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와 맞물려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교과서나 책을 통해, 또 어른들의 입을 통해 과거 일제시대의 참상을 간접 경험한 젊은 세대 역시 최근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막연했던 반감을 직접적인 분노로 전환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기에 잊어선 안 된다는 교훈은 현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통렬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일제강점기를 몸소 겪은 이들은 작금의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3·1만세운동이 열린 1919년에 태어나 독립운동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한국광복군 출신 김유길(100) 선생을 만나기 위해 제74주년 광복절을 일주일 앞둔 지난 8일 군포시 당동에 위치한 그의 집을 찾았다.# 학병 출신 마지막 광복군선생과의 만남을 앞두고 과거 타 매체 인터뷰 영상을 비롯해 각종 역사적 문헌과 기록 등 자료 수집에 매진하며 질문을 구상했다. 그는 일제시대 강제로 중국 내 일본군 부대에 끌려갔지만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해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도착, 이후 한국광복군에 편성돼 독립운동에 매진한 학병(學兵) 출신 중 한 명이다. 고(故) 장준하·김준엽 선생 등이 그처럼 일본군을 탈출해 6천리 장정길을 함께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대표적인 인물이다. 과거 장준하기념사업회의 장정 프로그램 참가할 기회가 있어 학병들의 6천리 장정길을 따라가 본 적이 있었기에, 학병 출신 광복군으로는 유일한 생존자인 선생과의 만남은 큰 기대감을 갖게 했다.하지만 그는 과거와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올해 나이 만 100세. 평소 건강관리를 잘한 덕분에 지금까지도 별다른 지병 없이 건강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세월의 무게감까지 견뎌낼 순 없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점보다, 한 세기를 살아온 그의 머릿속에 저장된 수많은 장면들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점이 안타까웠다. 선생의 기억과 함께 과거 우리 역사의 일부 또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준비한 질문을 쏟아내고 답변을 듣는 식의 인터뷰는 어려웠다. 펜과 수첩을 내려놓고 의자를 바짝 당겨 선생 가까이에 앉았다. 그리고 마치 할아버지에게 옛날이야기를 전해 듣듯 천천히 조금씩 대화를 시도했다. 대면 직후 20여분간 굳게 닫혀 있던 그의 입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충칭을 찾아가는 게 목적이었어"오랜 침묵을 깬 그의 첫 마디였다. 선생은 일본의 학도지원병이라는 명목 아래 강제징집 대상에 포함돼 1944년 1월 중국 내 일본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5개월만인 6월 30일 같은 부대 소속 김영호와 함께 탈출을 감행했다. 당시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가서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난다는 일념으로, 그는 목숨을 걸고 광활한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6천리 대장정에 뛰어들었다. 그는 "돈이 없고 먹질 못해서 (충칭까지 가는 게)보통 일이 아니었다"며 힘들었던 당시를 회상했다.한국광복군 출신 윤광빈 선생이 지난해 타계한 데 이어 지난 2월 김우전 선생마저 유명을 달리했다. 선생과 같은 학병 출신의 광복군으로 과거 생사의 갈림길을 함께한 동지이자 전우였던 이들이 이젠 모두 그의 곁을 떠났다. 그들을 떠올리며 선생은 상념에 젖은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얼굴 표정만으로 복잡한 심경을 대신 전했다. 그리고는 다시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그는 "일본을 절대 그냥 보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 우리 힘으로 일본을 때려서 사죄를 받아내고 내쫓아야 했기 때문에 우리가 힘을 길러야 했지"라며 광복군에 합류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당시엔 목숨을 내놓겠다는 생각뿐이었어. 나라를 위해선 그럴 수밖에"라며 "독립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그저 물 흘러가듯이… 삶 자체가 그냥 독립운동이었던 것 같아"라고 털어놨다. 후회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김 선생은 "후회한 적 없어. 나라를 위하는 방향으로 일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죽어도 여한이 없어"라고 말했다.# "완전한 독립을 바랐는데…"광복군은 미국과 연합한 한반도 침투작전을 통해 일본을 몰아낼 계획이었다. 선생은 광복군 제2지대에 편성돼 미 전략정보국(OSS)과 함께 연일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했다.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에 가물가물했던 그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그는 "미국 전략국이랑 같이 특수 훈련을 받는데, 따따띠디 따다 띠띠따… 이렇게 신호가 와. 그러면 그게 ABC가 되는 거거든. 그 암호를 번역하는 일을 했었어"라며 "매일 열심히 훈련을 받는데, 어느 날 갑자기 OSS 요원들이 떠들더라고.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일본이 항복을 했다는 거야. 무조건 항복이라고…"라고 말했다. 선생은 당시 미군과 영어로 대화를 나눈 그 문장 그대로 또렷이 기억해냈다. 하지만 이내 "우리 힘으로 내쫓지 못했으니까 완전한 독립이 아닌 것 같아서… 영 시원치가 않았지"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해방 이후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땅에 돌아온 그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1남 3녀의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생사의 갈림길을 전전하던 중국에서의 험난했던 인생에 지쳤던 걸까. 선생은 평범한 삶을 살았다. 일반 회사에 다녔고, 자신의 특기인 영어를 살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한국독립유공자협회의 창설을 위해 노력했지만, 직책은 맡지 않았다. 선생의 아내는 나서기를 꺼려 하는 그의 조용한 성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혼한 뒤로도 한동안 남편이 과거에 독립운동을 했던 사실조차 몰랐다는 게 아내의 말이다.하지만 선생은 결국 자신이 몸담았던 광복군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한국광복회 부회장을 3번, 한국광복군동지회 회장을 2번 역임하며 애국지사라는 사명감을 토대로 광복군의 의의를 되짚고 위상을 회복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는 국내외 각종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광복군 관련 특강을 펼치며 먼저 떠난 동지들을 대신해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는 "독립을 위해 노력했지만 그렇게 많은 일을 하진 못했어. 노력만 한다고 다 애국지사는 아니니까 좀 쑥스럽고 미안하기도 해"라며 겸연쩍어했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2시간 넘게 이어진 그와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나라'였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 땐 진짜 나라를 생각하며 살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한다는 게 뭔지, 어떻게 하는 게 나라를 진짜 위하는 길인지 이런 생각은 크게 안 하는 것 같아"라며 "하기야 우린 전쟁 시절을 살았고 지금은 평화 시대니까 그렇겠지만, 그래도 나라가 소중하다는 건 절대 잊어선 안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 사람들은 확실히 약삭빠른 면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일본 사람들이 나쁜 건 아냐"라며 "다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선 분명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특히 정치가 석연치 않아"라고 전했다. 이어 "오로지 자국민들만 잘 살게 하기 위해서 자기네만 옳다고 하니까. 사과를 할 줄 몰라. 일본이라는 나라는 사과나 반성이 없어. 그래서 나쁜 거야"라고 힘줘 말했다.과거 여러 방송 인터뷰에서 팔동작을 곁들이며 우렁찬 목소리로 독립군가를 부르던 그의 모습은 이제 더는 보기 어렵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군가 한 소절을 요청해 봤다. 그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후렴구에 한정되긴 했지만 그 부분만큼은 온전한 가사로 불렀다. 군인의 패기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가사를 떠올리기 위해 또 음을 정확히 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노병의 모습에는 한 시대의 역사와 함께해 온 그의 인생역정이 고스란히 배어있었다.선생은 이날 독립군가 후렴구를 서너 차례 반복해 불렀다. 그는 오래전부터 술에 취할 때면 항상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끝까지 부른 건 몇 번 되지 않는다. 노래 도중 흐르는 눈물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날 인터뷰에서 선생은 노래를 부르는 중에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글·사진/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김유길 선생은?▲ 1919년 평안남도 평원 출생 ▲일본 오이타 고등상업학교 졸업 ▲ 1944년 1월 강제 징집으로 일본군 입대 5개월 뒤 탈출 ▲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 도착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 편성 ▲ 한국광복군 제2지대 소속 한미연합 한반도 침투작전 훈련 수료 ▲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수여 ▲ 한국광복회 부회장, 한국광복군동지회 회장 역임 ■한국광복군은?1940년 9월 17일 백범 김구 등의 주도 아래 중국 충칭에서 창설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식 군대다.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민족의 독립을 위한 항일무력투쟁을 목적으로 조직됐으며, 중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던 청년들과 일본군을 탈출한 학병들이 합류해 일제강점기 무장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미국 전략정보국과 합작해 국내 진공작전을 계획했지만 일본의 항복으로 무산됐다. 1946년 5월 16일 해체했다.지난 2014년 5월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열린 한국광복군 제2지대 표지석 제막식에 당시 한국광복회 부회장이었던 김유길 선생이 참석했다. 김 선생은 과거 제2지대에 편성돼 한미연합 국내 진공작전에 대비한 훈련을 진행했다. /김유길 선생 측 제공일제강점기 학병 출신 마지막 한국광복군 김유길 선생이 지난 1979년 과거 광복군 동지들과 함께 집필한 '장정 6천리-한광반 학병 33인의 항일투쟁기' 책자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1944년 10월 27일 한광반(한국광복군 훈련반) 충칭 출발 기념 사진. /김유길 선생 측 제공

2019-08-13 황성규

[인터뷰… 공감]국민훈장 모란장 받은 조상범 법사랑위원 인천지역연합회 회장

여름철 해변 '청소년 탈선' 안타까워 옛 범죄예방위원 가입해 20년 가까이 활동출소자 주인공인 '플라타너스' 결혼식 주례… "과거 들추지 말라" 70여쌍 화촉AG 7만 서포터스 조직·연평도 포격 모금·市재정위기 극복 서명등 뚜렷한 족적고향 옹진서 민선 군수 지낸 친형 조건호·지용택 이사장 신념등 많은 영향 받아조상범(72) 법무부 법사랑위원 인천지역연합회 회장은 매년 가을에 열리는 '플라타너스'라는 이름의 합동결혼식에 주례로 나선다. 올해 있을 결혼식까지 포함하면 9년째다. 법사랑위원 인천연합회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인천지부가 주최하는 플라타너스 결혼식은 죄를 짓고 복역했다가 출소한 이가 주인공이다. 전과가 있어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그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이 겹쳐 결혼식조차 올리지 못한 부부를 위해 매년 조상범 법사랑위원 인천연합회장이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화촉을 밝혀준 부부만 70여쌍이다. 조 회장이 이들 부부에게 주례사를 통해 매번 "과거를 들추지 말라"는 말을 강조한다. 조 회장은 "(전과가 있는) 남편의 흠결을 웨딩드레스로 살포시 덮어준 아내를 절실하고 애틋하게 생각하라고 남편에게 이야기한다"며 "아내에게는 내 남편과 남의 남편을 비교하지 말고, 주변 시선을 인식하지 말고, 당신들의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라는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조 회장은 주례를 섰던 부부들에게 조언자 역할을 하면서 결혼식 때 했던 "가정생활이 어려울 때는 연락하라"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조 회장은 2001년 6월 법사랑위원(구 범죄예방위원)으로 위촉돼 2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다. 2011년부터는 법사랑 인천연합회 회장을 맡아 플라타너스 결혼식처럼 민·관이 협력하거나 법사랑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범죄예방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법사랑 인천연합회 위원은 현재 25개 지구에서 4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 소년 선도활동', '보호관찰 대상자 지도·감독', '법무보호 복지사업' 등 전국 법사랑위원이 수행하는 기본적인 활동뿐 아니라 '여름철 해변 청소년 선도 봉사활동', '청소년 범죄예방 유해지역 순찰', '학교폭력 예방 참여연극제', '청소년 장학사업' 등 지역 특색에 맞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인천지역은 전국 법사랑 연합회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조 회장이 가장 애착을 보이는 사업은 올해로 4회째를 맞는 '학교폭력 예방 참여연극제'다. 조 회장은 "전국에서 유일한 학교폭력 예방 참여연극제는 청소년이 배우이자 관객이 되고,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하면서 격의 없는 소통의 장으로 점점 성장하고 있다"며 "교실에서 학교폭력 예방 강의를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청소년 범죄예방사업은 조상범 회장이 법사랑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옹진군 북도면의 섬 출신인 그는 여름철 해변에서의 청소년 탈선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는 것이 항상 안타까웠다. 조 회장은 "인천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이기 때문에 과거부터 여름철만 되면 청소년들이 몰렸고, 이들이 범죄에 노출된 경우를 많이 봤다"며 "부모의 입장에서 휴양지에서만이라도 청소년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싶어 옛 범죄예방위원 중구·옹진군지구협의회에 가입했다"고 말했다.조상범 회장은 이처럼 20년 가까이 인천지역 범죄예방활동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19일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전수받았다. 훈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조 회장에게 전달했다. 조 회장은 "과분에 넘치는 훈장을 받게 되니 영광스러우면서도 조금 더 혼신을 다해 봉사했었어야 하는 아쉬움에 부끄럽기도 하다"며 "더욱 열심히 지역사회에 봉사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소감을 말했다.조 회장은 인천지역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선봉에 서서 힘을 보탰다. 그가 사단법인 인천사랑운동 시민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었던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7만여명 규모의 시민 서포터스를 조직해 '국경 없는 응원전'을 펼친 활동이 대표적이다. 인천시민 서포터스들은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선수단을 물론 스포츠 약소국 선수들이 참가하는 경기까지 찾아가 관중석을 메웠다.협의회가 서포터스 운영을 위해 인천시로부터 지원받은 예산 30억원 중 16원을 반납해 지역사회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인천시는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 조 회장은 "북한 선수들 응원은 경비·경호상 문제로 경기가 시작하기 1~2시간 전에 서포터즈들이 입장해야 했는데, 불평 없이 김밥을 먹으면서 기다렸다가 북한 선수들에게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준 시민들이 참 고마웠다"며 "자국 응원단이 없었던 스포츠 약소국 선수들도 인천시민 서포터즈들에게 많은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때는 인천시 새마을회와 새얼문화재단을 중심으로 모금활동을 벌여 40일 만에 약 42억원을 모았다. 포격 피해로 육지로 나와 찜질방에서 지내야 했던 연평도 주민들에게 가구당 500만원씩 숙식비를 지원할 수 있었다. 당시 조상범 회장은 인천시 새마을회 회장이었다. 2012년 펼친 '인천시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200만 서명운동'의 중심에도 조 회장이 있었다.조 회장은 인생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인물로 그의 친형이자 민선 1·2·3기 옹진군수를 지낸 조건호 전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과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을 꼽았다. 조 회장은 "형님인 조건호 회장은 관선으로 경기도 부천시장을 지내다 초대 지방선거 때 모두가 부천시장에 출마할 줄 알았는데, 인구가 2만명도 채 되지 않던 옹진군수로 출마했다"며 "마지막은 고향의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던 그 신념을 배웠다"고 했다. 또 조 회장은 "지용택 이사장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조언을 구하고, 항상 답을 찾게 해준다"며 "두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조상범 회장에게 인천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거창한 얘기를 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겸손하게 사양하면서도 이 한마디를 강조했다."다른 지역 사람들을 만나면 인천사람들이 인천 얘기를 많이 한다고는 하는데, 자기가 사는 고향에 흉이 되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타지에 가서도 인천을 자랑하고, 타지 사람이 인천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얘기를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늘 그 점이 아쉽다. 인천사람 누구나 인천을 자랑하고, 전국에 사는 누구나 인천을 부러워하는 그런 도시로 시민 모두와 함께 만들어 나가고 싶다."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조상범 회장은?▲ 1947년 인천 옹진군 북도면 시도 출생▲ 1966년 인천 송도고 졸업▲ 1970년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73~1991년 경기도청 근무▲ 1992~현재 인성개발(주) 회장▲ 2009~2012년 인천지방경찰청 행정발전위원회 위원장▲ 2009~2012년 인천시 새마을회 회장▲ 2010 한양대 인천지역 총동문회장▲ 2011~2014년 인천사랑운동 시민협의회 회장▲ 2011~현재 법무부 법사랑위원 인천지역연합회 회장▲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성공 개최 기원 범시민추진위원회 시민위원장▲ 2014~현재 인천시 새마을회 명예회장▲ 2014~현재 인천사랑회 회장조상범 법무부 법사랑위원 인천지역연합회 회장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천사람 누구나 인천을 자랑하고, 전국에 사는 누구나 인천을 부러워하는 그런 도시로 시민 모두와 함께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2019-08-06 박경호

[인터뷰… 공감]한국건강관리협회 경기도지부 이끌고 있는 정혜인 본부장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데경기도, 대구·인천 이어 암 발견율 3위 올라작년 30여만명 찾았는데 463명 확진자 나와#어떤 검사에 중점을 두고 있나고혈압·당뇨병등 여러 '생활습관병' 살피고국가 암 검진 다양한 프로그램과 상담 진행1964년 창립한 한국건강관리협회는 국민의 건강증진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보건의료 봉사를 수행하고 있다. 건강관리협회는 또 우리 사회의 건강 형평성 제고에 기여 하고자 소외계층 대상 건강검진 및 자원봉사활동, 개발도상국 건강증진사업 지원 등 국내·외를 포괄하는 공익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특히 전국 16개 시도지부 중 하나인 경기도지부의 경우 건강증진의원의 중심 역할을 맡아 건강검진사업과 보건교육 및 건강증진사업, 건강증진 활동을 위한 전문연구활동, 국제교류 및 국제보건의료 공익사업 등을 앞장서 추진하고 있는데 사업 최일선에는 정혜인(59) 경기도지부 본부장이 있다. 정 본부장은 건강증진서비스와 관련한 협회 차원의 사업을 이끄는 동시에 국가 담배규제 실무자문단 서비스분과위원, 보건복지부 비만 사업 공모 심사위원, 경기도 통합건강증진사업지원단 건강증진협의체 위원 등 다양한 대내외 자문위원 등도 함께 맡아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그의 이 같은 노력 덕분(?)에 건강관리협회 경기도지부는 암 발견 잘하는 검진센터로 불리고 있다. 경기도지부에만 현재 소화기내과, 외과,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영상의학과, 진단의학과, 치과 등 20명의 전문의를 포함 총 200여명의 해당 분야 전문 인력이 질병 예방을 위한 조기검진 시스템을 구축하고 다양한 건강검진과 상담을 실시하고 있다.정 본부장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5년간의 전국 암 발견자의 수는 총 2만2천여명이고, 매년 평균 4천400여명의 암 환자가 신규 발견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대구와 인천에 이어 3위로 높은 암 발견율을 보이고 있다"며 "이에 경기도지부는 모든 검진의 기본이 되는 각종 암과 고혈압, 당뇨병 등 여러 생활습관병을 검진하는 기본종합검진과 더불어 국가 암 검진 등 다양한 검진 프로그램을 실시해 조기 암 발견율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만 총 30여만명의 고객이 경기도지부를 이용했다. 이 기간 431명의 암 확진자가 발견됐다. 그는 나이와 성별에 따른 맞춤형 건강검진도 중점 추진하고 있다.10대는 기초검사, 소변검사, 잠복 결핵검사 등 청소년기에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의 체크를 위한 항목들로 구성된 특화 검진을 실시하고, 20~30대는 심전도 혈액검사 49종, 성병 상복부 초음파 등 예비부부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40~50대는 남성 및 여성 활력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정 본부장은 "나이 대에 따라 신체 건강도가 다른 만큼 건강검진 역시 연령에 맞춰 실시해야 한다. 다만 개인의 병력이나 가족력에 따라서 필요한 검사가 다를 수 있다"며 "이럴 경우 미처 암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경기도지부는 맞춤형 건강예측 유전자 검진 프로그램으로 이 같은 문제점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작년 신청사 이전 후 달라진 점은단일센터 道 최대규모… 우수인력·장비 갖춰각종 예방접종·건강 검진등 '메디체크' 제공#보건교육·사회공헌도 앞장서고 있는데'올바른 건강정보' 자료 만들어 도민에 배포헌혈캠페인·소외계층 건강진료등 확대 추진그는 신청사 이전에 맞춰 정확한 검진을 위한 우수한 의료 인력과 첨단장비를 갖추고 다양한 맞춤 건강증진서비스 '메디체크'를 제공하고 있다. 경기도지부가 제공하는 '메디체크'는 각종 예방접종, 국가 암 검진 및 공단 건강검진, 종합검진, 해외동포 검진, 예비부부 검진, 교육청 주관 학생 검진 등이다. 경기도지부는 지난해 신청사로 이전했다. 단일 검진센터로는 경기도 최대 규모다. 이런 가운데 그는 성별에 따른 특화 검진에 주력하고 있다.남성 활력 건강검진 프로그램으로는 전립선 초음파, 소변검사, 혈액검사 37종, 상복부 초음파, 골밀도 검사 등 남성 갱년기 건강관리를 위한 특화검진을, 여성 활력 건강검진 프로그램으로는 난포자극호르몬, 항체호르몬, 자궁경부암, 액상자궁세포, 인유두종바이러스, 질 초음파, 유방촬영, 유방초음파 등 여성암검사 및 중년기 여성에게 발생하기 쉬운 질환의 조기발견과 여성호르몬 검사 강화로 여성 갱년기의 건강관리를 위한 특화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그는 이 외에도 보건교육 및 건강증진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이를 위해 그는 올바른 건강정보 제공을 위한 보건교육 및 관련 자료를 개발해 경기도민에게 배포 하는가 하면 건강 캠페인·공개강좌 개최, 건강생활실천상담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건강한 오늘과 희망찬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질병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를 통한 건강수명 120세를 달성하기 위해 위와 같은 사업을 지속 전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아울러 건강검진 및 건강증진사업의 신뢰성 제고와 과학적 근거 창출을 위한 전문 학술 연구에도 앞장서고 있다는 그는 "건강검진 결과 분석을 통한 건강증진지표 생산과 건강검진 체계 및 질 향상 연구, 건강증진프로그램 개발 및 운용, 건강생활실천자료 개발 등 다양한 건강증진 연구를 기반으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건강증진서비스 제공 환경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면서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국민건강의 질도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지부의 사회공헌사업과 국제교류·국제보건의료 공익사업 추진 등에서도 최일선에 나서고 있는 정 본부장은 "직원 및 건협 사랑어머니 봉사단과 함께 사랑의 밥차, 지방자치단체 김장봉사활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실시 하고 있다"며 "이 외에도 '1사1촌 자매결연' 농촌일손 돕기 봉사활동 및 농산물 구입, 지방자치단체, 복지시설 성금 및 물품 후원, 헌혈 캠페인 등과 백혈병 환우를 위한 헌혈증서 기부 캠페인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어 "경기도지부는 더 나아가 헌혈캠페인, 소외계층대상으로 사회공헌 건강검진, 각종 봉사활동, 사회 공헌 성금전달 및 물품후원 등 사회공헌사업을 확대 실시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국제교류·국제보건의료 공익사업을 위해서 그는 "앞선 경험과 기술로 세계 곳곳에 참사랑을 전하는 한국건강관리협회는 유엔(UN)의 지속 가능한 개발목표의 실현 및 인류 건강증진을 위해 개발 도상 국가 어린이와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질병 퇴치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등 국제보건의료 공익사업을 통한 인도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며 "또한 해외 유수 보건의료 기관과의 학술교류 및 기술전수를 통해 글로벌 의료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선진 보건의료서비스에도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건강관리협회는 검진기관 국내 최초 세계보건기구(WHO) 건강증진병원(HPH, Health Promoting Hospitals & Health Services) 공식 회원기관"이라고 밝힌 그는 "이에 걸맞은 수준 높은 건강증진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다양한 건강증진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특히 건강 위험군을 대상으로 질병예방활동과 제5군 감염병 예방사업을 지원하는 법정단체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이를 위해 한국건강관리협회는 전국의 대학병원 등 600여개의 병·의원과 협약진료 및 치료 연계를 맺어 검진전문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최근 잘못된 생활습관과 스트레스, 사회 환경의 악화 등으로 현대인들의 만성질환이 늘고 있다. 우리 국민의 3대 주요 사망 원인인 암과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은 대부분 증세가 나타날 때까지 상당히 기간이 걸리고, 또 자각 증세가 나타났을 때에는 이미 완치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는 격언이 있는 만큼 건강에 적신호가 오기 전에 미리미리 조기검진을 하고 올바른 생활습관으로 건강을 지켜나가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글/김종찬기자 chani@kyeongin.com■정혜인 본부장은 ?▲ 1960년 12월 출생 ▲ 1986년 한국건강관리협회 입사▲ 2012년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졸업▲ 2013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2013년 한국건강관리협회 홍보교육본부 부본부장▲ 2014년 이화여대 건강과 의료 고위자 과정 수료▲ 2015년 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지부 본부장▲ 2017년 한국건강관리협회 경기지부 본부장▲ 2001년 보건복지부장관(표창장) ▲ 2004년 서울특별시장(표창장)▲ 2008년 국방부장관(표창장) ▲ 2012년 대통령실장(표창장)정혜인 한국건강관리협회 경기도지부 본부장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건강에 적신호가 오기 전에 미리미리 조기검진을 하고 올바른 생활습관으로 건강을 지켜나가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건강관리협회 경기도지부 제공

2019-07-30 김종찬

[인터뷰… 공감]'새 도약 준비' 취임 100일 맞은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경제권 구현을 줄곧 강조했는데관문 역할을 넘어 세계 네트워크 활용제조·물류 등 '수요 창출형' 기능 필요#어떻게 추진할 계획인가혁신 기업 유치위한 규제 프리존 필요정주여건 개선등 국토부·인천과 협치공항은 '관문' 역할을 한다. 외국으로 여행이나 출장 등을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 중 하나다. 인천국제공항은 우리나라 대표 공항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높은 서비스 수준을 자랑한다. 지난해 인천공항을 이용한 국제여객은 6천767만명에 달한다. 전 세계 공항 중 다섯 번째로 국제여객이 많다.인천공항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단순한 관문 역할을 넘어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하려는 것이다.인천국제공항공사 구본환(58) 사장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지난 4월16일 취임했으니 이달 24일이 딱 100일째 되는 날이다. 그는 취임 이후 줄곧 '인천공항경제권' 조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천공항이 단순한 관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관련 비즈니스와 첨단산업의 허브가 돼야 한다고 했다. 물류·관광 등 공항과 연계된 산업을 아우르는 경제권 조성은 우리나라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란 기대감도 나타냈다."국토교통부 항공정책관으로 있을 때 중국의 사드 보복이 있었습니다. 피해 상황 등을 확인하기 위해 지방공항을 돌아다녔는데, 여객 감소로 피해가 컸습니다. 수요에 대응하는 것이 아닌 '수요 창출형'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정립한 개념이 '공항경제권'입니다."구본환 사장은 "공항경제권은 전 세계와 가장 빠르게 연결되는 속도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제조·항공정비·물류·관광의 거점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를 '직접경제권', 송도국제도시·검단신도시·강화도·김포 등을 '배후경제권'으로 구분해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공항경제권 구현을 위해 '규제 완화'와 '협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인천공항에 혁신적인 기업을 유치할 수 있도록 '규제 프리존'을 도입해야 합니다. 글로벌 기업이 자국에서 사업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정도의 언어·교통·주거 환경을 조성하고 세금 감면 등 전면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세계적인 공항경제권을 조성해야 합니다."정주 여건 개선, 규제 완화 등 이러한 일들은 인천공항공사 혼자만의 노력으로 절대 이뤄질 수 없다. 구본환 사장은 "국토부를 비롯한 중앙부처와 인천시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실현할 수 있다"며 "공항경제권은 인천공항의 위상을 높이면서 대한민국의 신성장 동력 역할을 할 것이다. 인천의 도시 인프라 확충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항공정비단지(MRO)에 대해서는 '공항경제권'의 중요한 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인천공항공사는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인근에 100만㎡ 규모의 MRO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그는 "인천공항은 하루 1천여 편의 항공기가 운항하지만, MRO 산업은 아직 미약한 상황"이라며 "인천공항이 항공기를 정비·수리하는 공항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외국 MRO 기업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취임식 때 말한 '초격차 공항' 이란기술·서비스 혁신으로 차별성 더해다른 공항 못 따라오게 경쟁력 강화#지방세법 시행령 개정 우려했는데종부세·재산세 800억 정도 늘어날 듯정부, 허브공항 가진 특수성 고려해야구본환 사장은 취임식 때 '초격차 공항'을 강조했다. 기술·서비스 혁신을 통해 다른 공항들이 따라올 수 없도록 차별성과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되겠다는 것이다."인천공항이 4단계 건설사업을 완료하는 2023년에는 연간 1억명의 여객 처리 능력을 보유하게 됩니다. 이는 베이징공항과 유사한 규모입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기술을 빠르게 도입해 공항 운영을 혁신하고, 변화하는 여객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나갈 계획입니다."구본환 사장은 '지능형 공항 운영 체계'를 개발해 공항 운영의 패러다임을 선도할 것"이라며 "여객들에게 다른 공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인천공항만의 경험과 가치를 선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인천공항은 인천 영종도에 있다. 인천공항의 성장은 인천 발전으로, 인천의 발전은 인천공항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다. 구본환 사장은 "인천시와 함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천공항공사는 2022년까지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1천억원 투자, 일자리 5만개 창출, 사회적기업 100개 육성 등을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국내 최대 수준의 사회공헌 사업을 통해 인천과 동반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인천공항은 제1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사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12일 인천공항을 방문해 공공기관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주문했다. 인천공항 노사는 2017년 정규직 전환 대상과 인원, 처우 개선 재원 등 큰 틀에 대해 합의했다. 현재 세부 사항을 협의하고 있다.구본환 사장은 "올해에는 세부 채용 절차와 정년 등에 대해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충분한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며 "정부의 가이드라인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공공기관 정규직화 정책의 모범적인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정규직 전환을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구본환 사장은 행정안전부가 추진 중인 지방세법 시행령 개정 작업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지방세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인천공항공사는 국제업무지구·유수지·공항신도시·물류단지 등이 분리과세 대상에서 제외되고 종부세와 재산세가 800억원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외국 기업을 유치하고, 여객과 항공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인천공항공사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지방세법 시행령 개정안은 인천공항의 경쟁력을 약화하고, 국민·항공사·입주기업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또 "(정부는) 어려운 국내 경제 여건과 인접국과의 치열한 허브공항 경쟁 상황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구본환 사장은 취임 후 인천공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립했다. 최근에는 미래사업추진실을 미래사업본부로, 공항연구소를 공항산업기술연구원으로 확대하는 등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조직 개편을 완료했다. 그는 "이번 조직 개편의 핵심 키워드는 '미래'"라며 "인천공항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원과 논의를 거쳐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고 했다.구본환 사장은 인천공항에서 진행하는 공사 등에 대한 발주 제도를 개편했다.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평가위원단과 평가위원 점수를 공개하도록 개선한 것이다. 그는 "세계 일류 공항이 되기 위해서는 공정성과 투명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공개', '참여', '토론'이라는 원칙을 토대로 조직 개편 단행과 발주 제도 개선을 추진했다"고 했다.구본환 사장은 "인천공항공사는 글로벌 공항기업으로 도약하느냐 주저앉느냐의 갈림길에 있다"며 "인천이 글로벌 교역과 생산의 중심이자 공항경제권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구본환 사장은?▲ 1960년 전북 전주 출생 ▲ 1979년 전북 전주고 졸업▲ 1983년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 1989년 제33회 행정고시 합격▲ 1991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 석사▲ 1997년 영국 버밍엄대 대학원 지역정책학 석사▲ 2013년 한양대 대학원 교통계획학 박사▲ 2003년 6월~2004년 3월 건설교통부 국제항공과 과장▲ 2011년 7월~2011년 12월 국토해양부 서울지방항공청장▲ 2011년 12월~2013년 4월 국토교통부 철도정책관▲ 2017년 9월~2018년 7월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 2019년 4월~ 현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구 사장은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송도, 강화, 검단, 김포 등을 아우르는 공항경제권을 구성할 것이다. 이는 물류·제조·첨단산업·관광 허브를 조성하는 것으로, 인천공항의 역할을 확장하고 대한민국의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9-07-23 정운

[인터뷰… 공감]최영식 (사)판교테크노밸리 1조 클럽 협회 초대 회장

"미국에 최첨단의 실리콘밸리가 있다면 한국에는 판교 테크노밸리가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지난 2월 국내 최초로 (사)판교테크노밸리 1조 클럽 협회(이하 1조 클럽, 홈페이지 http://potca.org/) 초대 수장을 맡은 최영식(쉬프트정보통신(주) 대표이사) 회장의 포부다. 1조 클럽은 뛰어난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지닌 중소기업 120개사가 모인 곳으로 7년간 판교테크노밸리를 대표하는 모임으로 운영해오다 올해 초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정식으로 사단법인을 인가받았다. 1조 클럽의 설립 목적은 회원사가 상장할 경우 '유니콘 기업'(시가총액 1조 원)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며 투자와 육성을 통해 스타트업을 글로벌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최 회장은 1조 클럽을 맡기 전 고민도 많았다. 그는 "'쉬프트정보통신을 운영하기도 힘든데 과연 내가 1조 클럽 회장을 맡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고민도 많이 했다"면서 "하지만 그동안 회원사들과 함께하면서 용기를 얻었고,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초대 회장을 맡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아직 초기 단계에 있지만 최 회장은 1조 클럽 활성화와 기반을 다지기 위해 회원사들과 고민하고 있다. 그는 "현재 미국, 중국, 베트남 등 전 세계 주요 국가 기업에 특화된 지역 정보나 기술력 등을 공유하고 각 기업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상호 지원하고 있다"며 "각 회원사가 기부금을 모아 다음 세대를 이어갈 스타트업을 후원하고 판교테크노밸리 활성화를 위한 각종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1조 클럽은 매월 정회원이 정기 모임을 하고, 매 분기에는 회원사 전체가 참여해 포럼 등을 개최해 상생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향후 경쟁사가 될지도 모르는 기업에 노하우를 공유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최 회장은 무료 봉사와 다를 바 없는 행위를 스스럼없이 해내고 있다. 자신의 사비를 털어 1조 클럽 사무실을 마련하고 타 회원사보다 더 많은 출연금을 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기부 행위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 회장은 1조 클럽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선 수지타산을 고려하지 않는다. 자사의 발전만이 아닌 1조 클럽 가입사의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선 그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최 회장은 "판교테크노밸리는 1천500여 기업이 모여 있는 국내 IT업계의 요충지로,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며 "다만 마케팅, 국제 정보 수집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추진해야 할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판교테크노밸리 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교두보 역할을 1조 클럽이 맡게 될 것"이라며 "우선 기부금을 내는 정회원 기업을 늘려 정기 모임을 확대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1조 클럽의 정회원 기업은 현재 120여개 기업 중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48개다. 정회원사를 100여개로 늘려 모임 및 활동을 확대해 1조 클럽의 역량을 갖춰 나간다는 것이 최 회장의 목표다.최 회장은 올해도 어김없이 바쁜 한 해를 보낸다. 그는 ICT 인공지능 LED 예술 조명 사업을 추가해 본격적인 시장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그동안 이탈리아가 아시아 시장을 선점해 왔지만, 기술력과 원가 경쟁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에 맞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력이다. 특히 2020년까지 정부가 공공 웹사이트의 플러그인을 없앤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액티브 엑스 기반 개발툴을 HTLM5 웹 표준 환경으로 손쉽게 바꿔주는 '제나 컨버터'의 수요도 상당할 전망이다. 또 코스닥 상장이라는 숙제도 남아있다. 1조 클럽의 회장으로서 가입사에 모범을 보이기 위해선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했던 코스닥 상장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최 회장은 "상장은 해외시장에서 서비스 성장을 가속화 하는 수단이며, 질적 성장을 꾀하려는 조치"라면서 "올해 더욱 발 빠르게 움직여 쉬프트정보통신의 성장과 1조 클럽의 발전 모두를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최 회장은 '국내 최초 녹색기술 인증 소프트웨어 기업 대표', '국내 최초 WAS 기반 토인비(TOinB) UI 솔루션 및 멀티 플랫폼 '제나'(XENA) 개발' 등 유독 '처음'을 뜻하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지난 1992년 쉬프트정보통신을 설립한 그는 웹 애플리케이션 서버, GUI 컴포넌트 기반 웹 개발 툴 및 운영 플랫폼을 포함해 다양한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공공 기관과 건설, 금융, 의료, 제조, 유통 등 다양한 기업에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며 업체를 키워나갔다. 이런 노력으로 쉬프트정보통신은 웹 UI 솔루션 업계에서 유일하게 원천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됐고, 창립 이후 꾸준히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게 됐다.특히 쉬프트정보통신을 이야기할 때 녹색기술 인증을 빼놓을 수 없다. 최 회장은 "녹색기술을 적용한 제품은 속도와 처리 능력이 타사 대비 10배 가까이 빠르다. 대량의 데이터 처리 속도가 향상됐지만 대기 시간은 감소해 사용자의 업무처리 시간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업무에 들이는 시간은 물론 전기료까지 절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WEB UI SW 기업이 녹색기술 인증과 녹색기술제품 인증 및 녹색 전문기업 인증을 획득한 사례는 쉬프트정보통신이 세계 최초"라고 밝혔다.2018년 초 정부가 녹색기술 인증 제품에 대한 지원책을 법제화하면서 쉬프트정보통신의 그린 IT 구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2014년 개발하기 시작해 2016년부터 판매된 'SHIFT GREEN OFF(PC-OFF 기능과 인사·근태 유연 근무·연동 및 구형을 할 수 있는 통합 솔루션)' 제품도 정부의 주 52시간 근로시간 감독과 맞물려 판로가 순탄하게 개척됐다.최 회장은 국내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쉬프트정보통신은 2016년 중국 청화자광유니그룹과 중국 과학기술원에 HTML5 기반 통합 관리 시스템을 설치하는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또 중국 과학기술단지의 임대 및 분양 관리를 체계화한 패키지 솔루션을 제공하고, 이를 청화자광유니그룹 내 100여개 계열사와 북대청조그룹, 중국 국가과기원 3천여곳에 공급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향후 중국 내 공공기관, 국영 그룹, 일반기업, 교육기관, 병원 등을 대상으로 판매에 나설 예정이다. 최 대표는 이를 통해 매달 수십억원의 사용료를 거둬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많은 기업이 중국 시장에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대부분이 실패한 만큼 쉬프트정보통신의 성공 사례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최 회장은 "물꼬를 트기 위해 무턱대고 중국에 갔을 때만 해도 기관 관계자를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며 "사전에 중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다가갔다면 좀 더 쉽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판교테크노밸리 내 기업은 글로벌 기업과 비교했을 때 전혀 뒤떨어지지 않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고생했던 것처럼 국가의 문화, 기업 정보 등에서 부족한 면을 보이고 있다"며 "이런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만든 것이 1조 클럽이다. 다양한 정보와 경험의 공유를 통해 모든 회원사가 전 세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대담/신창윤부장 shincy21@kyeongin.com글/이준석기자 ljs@kyeongin.com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최영식 회장은?▲ 1961년 전라남도 진도군 출생▲ 2000년 벤처기업대상 중기특위위원장상 수상▲ 2005년 정보통신부 주관 '신SW 상품대상' 선정▲ 2012년 중소기업분야 대한민국 신지식인상 대상▲ 2014년 창조경영인 대상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표창▲ 2019년 (사)판교테크노밸리 1조클럽협회 초대 회장 취임최영식 (사)판교테크노밸리 1조 클럽 협회 초대 회장이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판교테크노밸리 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교두보 역할을 1조 클럽이 맡게 될 것"이라며 포부를 밝히고 있다.

2019-07-16 이준석

[인터뷰… 공감]청년 주거 대책 '반값 원룸' 손잡은 이길여 가천대 총장-은수미 성남시장

#이길여 총장대학주변 방세 너무 비싸다는 학생들의 하소연 많이 들어반값 원룸의 사업 취지 듣고 100% 공감… 고민 없이 참여굳건한 마음가짐 중요…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 꾸길#은수미 시장성남시 소재 대학들과 의견 조율했을때 가천대만 동행 의사'국내 대학 첫 인공지능 학부' AI 성지 성남시장으로서 환영청년 세대들이 어려움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다미래 세대인 청년 문제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기회의 사다리 박탈·지나친 경쟁·일자리·결혼에서부터 주거 등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기만 한 청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중에서도 '청년 주거' 문제는 기본적인 의·식·주의 문제이기에 정부는 물론 각 지자체가 앞다퉈 대책을 내놓고 있다. '반값 원룸'은 대학교와 지자체가 손잡은 청년 주거 대책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경기도에서는 처음, 전국에서는 두 번째로 시도되는 '반값 원룸'은 은수미 성남시장,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과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의기투합해 지난 6월 18일 성남시청 9층 상황실에서 가진 '지역 상생형 대학생 반값 원룸 사업 추진에 관한 업무 협약식'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반값 원룸'을 빚어낸 이길여 가천대 총장과 은수미 성남시장의 희망은 '청년 대학생들이 경제적 부담을 덜어 학교생활에 전념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소박한 두 사람의 희망은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도 대출받아 생활하는 팍팍한 청년 대학생들에게는 '카이로스'(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가 될 수도 있다.이길여 총장과 은수미 시장에게 '반값 원룸'의 얼개와 배경, 의미 등을 들어봤다. 또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계 인사, 경기도 유일의 여성 단체장이 되기까지 쉽지 않은 청춘을 건너온 두 사람에게 청년 이야기도 청해 봤다. 인터뷰는 서면을 통해 공통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반값 원룸에 대해 은수미 시장은 "성남시·가천대·LH 간 상생협약 체결로, LH는 집주인에게 집수리비 및 보증금 대출을 지원하고 성남시·가천대는 입주대학생에게 월세를 일부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반값 원룸'을 소개했다. 이어 "대학생들은 부담해야 하는 월세 중 20만원을 대학교와 성남시로부터 지원받게 되고 대학교는 기숙사 추가 건립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되며 주택소유자는 안정적인 장기 임대수익을 보장받게 된다"고 밝혔다.은 시장은 그러면서 "성남시 소재 대학들과 의견을 조율했을 때 가천대만 함께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면서 "덧붙여 가천대가 국내 대학 최초로 AI(인공지능)학부를 신설하는 것에 대해 AI의 성지인 성남시장으로서 환영한다"고 말했다.이길여 총장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학비 부담 외에 대학 '주변 방세가 너무 비싸다'고 하소연을 많이 한다. 학생들의 주거 문제는 항상 하는 걱정 중 하나여서 은수미 시장의 반값 원룸 사업 취지를 듣고 100% 공감했다"며 "학생들이 다른 걱정 없이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고민 없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가천대는 총 2천여명을 기숙사에 수용할 수 있다. 가천대는 특히 대학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지방학생들의 입학비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며 "전국의 2천여개 고등학교 학생이 지난해 입시에서 가천대를 지원했다. 이른바 전국구 대학이 된 것이다. 여기에 외국인 학생들의 입학도 늘어나 기숙사에 들어가기가 만만치 않다.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곧 제3 기숙사를 지어 더 많은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이 총장은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숙사 추가 신축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 반값 원룸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면서 "주거난 해소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이 총장은 "대학생들을 위한 이번 '반값 원룸'은 은수미 시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은수미 시장은 사회적 약자인 청년들에 대한 큰 관심을 쏟고 있으며 다양한 복지정책을 펴고 있다. 청년이 희망이라는 모토처럼 성남시와 우리 대학, LH가 함께 힘을 모은 이번 협약을 통해 우리의 젊은이들이 주거로 인한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게 됐다"고 말했다. # 청년에 대해 이길여 총장은 "병원을 운영하면서 어떻게 하면 환자들을 더 잘 고치고 덜 아프게 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했다"며 "그래서 서른두 살의 나이에 미국 유학을 갔고, 마흔셋에 일본 유학을 갔다. 나이 들어 시작한 본격적인 의학 공부는 참으로 힘들었다. 그러나 힘들게 배운 선진 의술은 의사로서 나의 능력을 튼튼히 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가끔 옛일을 생각해 본다. 학교 가기가 힘들다거나 전쟁 핑계를 대며 공부를 소홀히 하고, 친구와 아버지의 죽음에서 진한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면 과연 의사가 될 수 있었을까 싶을 때가 많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의사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이 간절했기에 수많은 시련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되돌아봤다.이 총장은 "사람들은 저마다 꿈이 있다. 그러나 꿈을 현실로 이루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꿈을 절실히 원하지 않거나, 자신이 그 꿈을 이룰 자신이 없다고 믿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 버리면, 자신의 꿈과 현실의 간격은 더욱 멀어지고 만다. 중요한 것은 어떤 좌절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 젊은이들을 만날 때마다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어라, 간절히 꿈꾸고 뜨겁게 도전하라'고 말하곤 한다. 지금 어렵게 살더라도 가슴에 뜨거운 열정과 꿈을 간직하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꼭 꿈을 실현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은수미 시장은 "자기 내부에 있는 힘을 믿으라"면서 "대책 없이 낙관적인 말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변화란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좌절하지 않길 바란다. 희망이 사라지면 포기하게 된다"고 말했다.은 시장은 "청년 세대들이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믿는다"며 "청년들이 마음껏 꿈을 꾸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다. 여러분 세대의 시대가 활짝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인생에 있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글/김순기기자 ksg2011@kyeongin.com■이길여 총장은?▲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일본 니혼대학교 의학부 의학박사 ▲1982년 사단법인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1991년 재단법인 가천문화재단, 가천박물관 설립 ▲1992년 사회복지법인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 설립(현 이사장) ▲1993년 사단법인 가천미추홀청소년봉사단 설립(현 총재) ▲1995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창회 회장(5회 연임) ▲2002년 가천길재단 회장(현) ▲2003년 의사협회 '한국의학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2007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이사장 ▲2008년 카이스트 명예 이학박사 ▲2008년 의료법인 길의료재단 설립자 및 명예이사장(현) ▲2011년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2011년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초대 이사 ▲2012년 가천대학교 초대 총장(현) ▲2014년 경인지역 대학총장협의회 회장■은수미 시장은?▲미림여자고등학교 졸업·서울대학교 사회학 박사 ▲2005년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2008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동정책 자문위원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 위원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2012년 국회 복지노동포럼 연구책임의원·환경노동위원회 위원 ▲2013년 제19대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2014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국민안전혁신특별위원회 위원 ▲2015년 더불어민주당 제4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2016년 더불어민주당 성남중원구 지역위원장·경기도당 여성위원회 위원장 ▲2017년 대통령비서실 여성가족비서관 ▲2018년 성남시장(현) ▲저서-날아라 노동(2012)·여성의 일, 새로고침(2014) 등 다수■'반값 원룸'이란?성남시와 가천대는 가천대 학생이 월세 40만원(보증금 1000만원)의 원룸을 본인 부담금 20만원에 거주할 수 있게 각각 10만원씩 지원한다. 거주할 원룸은 성남시가 참여 주택을 모집하거나 대학생이 직접 대상 원룸을 물색하는 방식으로 정한다. LH는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해 학생에게 보증금 1000만원을 연 1%로 대출하고, 거주할 원룸의 집수리를 지원한다.경기도에서는 처음, 전국에서는 두 번째로 시도되는 청년 주거 대책 '반값 원룸' 추진에 합의한 은수미 성남시장(사진 왼쪽)과 이길여 가천대 총장. /가천대 제공/성남시 제공

2019-07-09 김순기

[인터뷰… 공감]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 중책 맡은 염태영 수원시장

불합리한 사무배분·선심성 복지사업등 지자체 책임 늘고 재정 휘청중앙·광역·기초 정부간 일방적 관계 아닌 '동반적 관계' 설정 중요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 조속히 국회 통과해 '분권 불씨' 되살려야시민 입장 최우선… 앞으로도 '쓴소리' 필요할 땐 아낌없이 하겠다대한민국이 진정한 분권 국가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개척자' 역할을 자처하는 정치인이 있다. 자치분권 길라잡이는커녕 지름길을 알려주는 그 흔한 지도조차 기대하기 힘든 여건 속에 중앙집권 국가를 유지하는 편이 이로운 세력의 방해공작도 만만찮다.그럼에도 이 정치인은 '지방분권의 완성'을 일평생을 관통하는 소임이라고 밝히면서 외골수적인 면모를 보인다. 때로는 자존심을 버려가며 분권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때로는 지방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중앙에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리나 직책이 아닌 분권을 외치는 정치인. 이달부터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 임기를 시작한 염태영 수원시장의 이야기다. 염 시장이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으로 추대된 지 꼭 2주만인 지난달 26일. 수원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염 시장을 만났다. 7월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회장 임기를 앞두고, 그가 품고 있는 여러 생각과 포부를 상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염 시장은 전국 기초지자체 대표로서 자신의 단기적인 역할을 기초 지방정부의 위상 강화로 꼽았다. 염 시장은 "중앙·광역·기초 정부간 기존의 일방적 관계가 아닌 동반자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며 "가장 시급한 임무는 당·정·청과 협력해 기초 지방정부도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해야 하고, 시들해진 지방분권형 개헌의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며 "그래야만 낮고 가까운 곳에서 주민들의 삶을 세심하게 살피고 함께 보듬어 나갈 수 있는 생활정치, 참여정치를 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이를 위해 염 시장은 우선 지방 주도 자치분권 확산 운동을 계획 중이다. 시·도지사협의회와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시·도의회의장협의회, 시·군·구의회의장협의회 등 지방협의체와 지역 주권 강화를 위한 강력한 공조를 이뤄나갈 방침이다.분권을 화두로 말문을 연 염 시장은 여전한 중앙집권적 사고를 이야기하면서부터 얼굴에 답답함이 묻어나기 시작했다.염 시장은 현 자치·재정분권 논의에 대해 "심각한 양극화, 지방소멸, 일자리 위기 등 대한민국이 당면한 여러 문제점은 중앙과 기초정부 간 차별화된 정책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음에도 중앙부처는 중앙집권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중앙과 광역정부의 불합리한 사무배분과 정치권의 선심성 복지사업 입법추진으로 기초정부의 책임만 무한으로 늘어 재정이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그는 구체적인 수치자료까지 열거하면서 제대로 된 분권 논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염 시장은 "정부는 11%에 불과한 지방세율을 2020년까지 21%로 단계적으로 인상키로 했다. 2022년까지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대 3수준으로 개선할 방침"이라며 "하지만, 정부의 방침과는 달리 지방의 재정 상황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부가 지난해 '재정분권 추진방안'을 확정 발표한 내용에는 2022년 지방세 비중을 30%까지 올린다고 하지만, 현재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올해 지방소비세율을 4%p 인상한다는 것 외엔 진전된 내용이 없다. 국세 지방세 구도도 8:2로 여전하다"고 말했다. 염 시장은 또 "중앙과 지방이 아닌, 광역과 기초 간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라며 "현재는 광역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에 기초정부는 그대로 따라야 하는 실정이기 때문에 향후 도비 보조율 등 기준이 담긴 법령을 새롭게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기득권 입장에서 보면 염 시장은 '송곳'과도 같은 인물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기초지자체인 수원시가 상위단체인 정부, 경기도와 마찰을 빚는 일도 더러 생긴다. 지난달 17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문재인 정부에 비수 꽂고 당론 역행하는 염태영 수원시장의 당원권 정지를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해당 청원은 정부와 경기도의 버스정책에 수원시가 몽니를 부려 현 민주당 정권에 나쁜 여론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의도하지 않은 오해를 받게 된 염 시장은 19일 개인 페이스북 계통을 통해 "버스정책에 대해 수원시는 정부 그리고 경기도와 이견을 보이거나 다툰 적이 없다"며 "토론회 참석을 요청한 것을 두고, 정치적 의도로 왜곡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정치의 왜곡된 단면일 뿐"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염 시장은 이 같은 비판여론에 대해 "기존 선입견에서 보면 불편할 수도 있다. 자치분권을 지방의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았고, 주민의 처지에서 그려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지금까지 지방자치를 바라본 중앙집권적 시각은 이제 버리고, 지방과 주민의 입장을 최우선에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쓴소리가 필요할 때는 지금과 같이 아낌없이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도 내비쳤다.이처럼 염 시장의 굳은 심지는 그가 가진 분권에 대한 열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염 시장은 경기도지사 등 자신의 다음 정치 행보를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 떠도는 '소문'에 대해 정중히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민선 7기를 끝으로 3선을 모두 채운 염 시장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차원의 분권 운동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염 시장은 "지금부터 3년 후, 12년 간 시장을 했던 경험으로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시민 차원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해볼 계획"이라며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시민도 많지 않고, 행정·정책 전문가도 소수이기 때문에 나의 경험을 살려 국가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염 시장은 끝으로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당부했다. 염 시장은 "지방자치가 밥 먹여 주나?, 지방분권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는 비아냥을 아직도 가끔 듣는다"며 "그들에게 그동안 지방자치와 분권을 외치지 않았더라면, 과연 수원을 비롯해 전국의 많은 기초 지방정부가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1년이 분수령이 될 텐데, 이 시기는 '내 삶을 바꾸는 자치분권', '수원의 가치를 한 단계 높이는 시기'가 될 것"이라며 "여야의 정쟁이나 특정 정당의 당략으로 자치분권의 골든타임을 놓쳐선 곤란하다. 자치분권이라는 시대정신에 함께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전했다.대담/이재규 사회부장·정리/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염태영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은?▲ 1984년 서울대학교 농화학과 졸업▲ 2004년 수원환경운동센터 공동대표▲ 2005년 대통령비서실 국정과제담당 비서관▲ 2010년~ 수원시장▲ 2017년~전국자치분권개헌추진본부 공동대표▲ 2018년 경기도시장·군수협의회장▲ 2019년~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으로 추대된 염태영 수원시장이 지난달 26일 수원시청 집무실에서 경인일보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염 시장은 기초 지방정부의 위상 강화를 위해선 "당·정·청과 협력해 기초 지방정부도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며 지방자치와 분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9-07-02 이재규·배재흥

[인터뷰… 공감]'사서 고생하는 사서(司書)' 박현주 인천시교육청 화도진도서관 독서문화과장

개관 준비때부터 참여 1999년 정부 공모서 '전국 유일 당선' 큰 역할고문서·사진등 꾸준히 '수집' 각종 연구·전시·출판등에 제공 '뿌듯'34년여 공직생활 '마침표'… 시민들을 위한 도서관 주권운동 펼칠것박현주(58) 인천시교육청 화도진도서관 독서문화과장에게는 '사서 고생하는 사서(司書)'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고생을 사서 한다니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박현주 과장은 이 별명이 싫지 않고 오히려 마음에 든다며 웃는다.박 과장에게 이런 애칭을 붙여 준 것은 다름 아닌 지역 사회였다. 그가 만약 귀를 닫고 도서관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외면하고, 이런저런 귀찮은 일들을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고,발 벗고 나서지도 않았더라면 이런 '바보'같은 별명이 붙지 않았을 것이다.박 과장이 34년 8개월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곧 퇴직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24일 화도진도서관을 찾아가 그를 만났다.박 과장은 인천시교육청 소속 사서직 공무원이다. 1984년 10월 인천중앙도서관에 사서 9급과 '수서담당자'로 발령을 받아 사서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는데, 부평·화도진·서구·주안·연수·계양 등 교육청 소속 7개 도서관에서 순환 근무했다.그 가운데 화도진도서관은 개관 준비부터 참여해 4차례나 근무했는데, 재직기간의 3분의 1을 화도진도서관에 보냈다.화도진도서관은 개항기 향토 역사자료를 갖춘 '향토개항문화자료관'과 상설 전시실인 '향토개항문화전시관'을 갖춘 특화도서관으로 유명하다. 화도진도서관이 특화도서관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며 자리를 잡기까지에는 박 과장의 역할이 컸다.박 과장은 지역 공공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이고 지역 문화계, 역사학계, 시민사회단체 등 지역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뿐이라고 자신의 노력을 애써 축소하지만 그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화도진도서관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화도진도서관은 1999년 문화관광부의 특화도서관 지정 사업 공모에 선정된 것이 지금의 모습을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공모에 당선되는 데는 박 과장의 노력이 주효했다. 그는 공모 기획서에 개항자료 특화 도서관으로서의 비전과 당위성을 잘 설명해 전국 1곳만 선정하는 특화도서관에 선정되는 성과를 얻어냈다.박 과장은 "특화도서관 추진 배경에는 화도진이라는 지명이 가지는 역사성도 한몫 했지만, 무엇보다 당시 시민사회의 공감과 도움이 컸다"고 했다. 이어 "향토자료 수집의 필요성을 알게 됐고, 이를 계기로 도서관이 해야 할 의무라 여기고 관심을 기울이던 경험이 기획서 작성에 큰 역할을 했다"고 했다.공모에 선정되면서, 당시에는 큰 액수인 1억원의 자료구입비를 지원받아 이를 종잣돈으로 자료를 꾸준히 확보해 현재는 고문서·지도·사진·엽서·마이크로 필름 등 비도서 1천600여점과 도서자료 9천500여권을 소장하기에 이르렀다. 지금도 매년 500~1천만원은 향토자료 확보에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는 단순히 자료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많은 곳에 활용되고 있다. 학자들의 연구와 저술, 각종 출판, 전시와 각종 행사, 문화 콘텐츠 제작 등에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료수집 범위를 개항기에서 벗어나 한국전쟁, 조선시대 등으로 점차 확대하고 있다.수집된 자료 가운데에는 일본이 국립국회도서관이 소장한 '조선신보'의 마이크로필름을 입수해 제작한 영인본과 향토역사가 최성연의 '개항과 양관역정'의 원본, 문화재로 등록된 '해관문서', 1904년으로 추정되는 인천항파노라마 등이 있다. 그가 자부심을 갖는 자료들이다.박 과장은 "인천의 각 군·구 기초자치단체가 발행하는 군·구사(史)나, 각종 전시, 박물관 전시 등에 대부분 화도진도서관이 제공한 자료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도시의 기억은 기록으로 유지되고 완성되는데, 기억도 때로는 왜곡될 수 있기에 기록과 자료의 보존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이러한 활동이 공공도서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박 과장은 퇴임 이후 도서관 주권운동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는 시민과 사서, 도서관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인천시공공도서관 연구회'라는 이름의 공공도서관 연구 모임을 준비 중이다. 모임을 통해 도서관 정책과 도서관 환경, 도서관을 시대에 맞게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도서관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다. 그가 모임을 주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모임을 통해서 다 같이 고민하고 함께 공부하며 독서운동도 하는 등 지역의 문제를 모두가 고민하는 시민을 위한 도서관 주권 운동을 펴고 싶다는 뜻에서다.박 과장은 "아직도 도서관 정책이 공급자 위주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데, 도서관 이용자인 시민이 참여할 창구가 없어 아쉽다"며 "문제를 지적하고 싸우는 대립적 관계가 아닌 협력적 관계로 도서관 정책을 제안하고 지원하는 시민 연구모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튜브에 영상이 넘쳐나고 있는 요즘 시대이지만, 결국은 사람을 더 사람답게 만들 수 있는 사유의 계기는 독서를 통해 마련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며 "독서의 가치를 찾고 책을 읽는 환경을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책 집필도 준비 중이다. 공공도서관의 사서로서 도서관 이용자와 교감한 경험과 생각, 또 우리나라 도서관이 지나온 역사 등에 대한 내용을 담아내려고 책 얼개를 구상 중이다.34년 8개월의 공공도서관 사서로서의 생에 종지부를 찍는 박현주 과장. 그의 대학교 후배인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은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그 사람 덕분에 인천의 문화가 더 풍성할 수 있었음을, 그 사람 덕분에 인천의 도서관이 좀 더 윤기를 낼 수 있었음을, 비록 그것을 이용하고, 누리는 사람들은 그 혜택을 누리면서도 미처 알지 못했겠지만, 바로 그 사람 덕분에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누렸음을 나는 기억할 것이다. 퇴임을 앞둔 '누나'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임을 진심으로 믿는다. 누나의 시작을 축하하고,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원한다."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박현주 과장은?▲ 1984년 인천중앙도서관 사서로 첫 발령▲ 2010년 인천개항자료전시관 설치▲ 2010년 최성연 선생 기증자료 도록 '1960년대 인천풍경' 편찬▲ 2011년 제5회 다산대상 청렴봉사상 수상▲ 2017년 화도진도서관 향토개항 소장 도록 편찬▲ 2018년 10월 화도진도서관 개관 30주년 '자료로 본 인천의 근현대' 전시▲ 2019년 1월 한국도서관상 개인상 수상박현주(58) 화도진도서관 독서문화과장이 26일 퇴임식을 끝으로 34년 8개월의 사서 인생에 마침표를 찍는다. 박 과장은 퇴임 이후에도 도서관 주권운동에 몸담을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도서관 2층 향토·개항 문화자료관에서 만난 박현주 과장.화도진도서관 1층에는 도서관이 수집·보존해 온 소장자료를 상설전시하는 향토개항문화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2019-06-25 김성호

[인터뷰… 공감]'대한민국 김치명인·명장 1호' 김순자 한성식품 대표이사

집에서 담근 맛 모르고 자란 젊은 세대 '중국산' 맛에 익숙해질까봐 걱정'손쉽게 만드는' 방법 알려달란 부탁 거절… 하루 이틀만에 만들 수 없어10년 전 미국 전시서 냄새난다고 괄시… 지금은 '한국 김치' 해외서 환영우리 스스로가 김치 귀하게 여기고 정부·언론등 '세계화' 발벗고 나서야"주인에게 사랑받는 강아지는 가정부에게도 사랑받고 집에 온 손님에게도 사랑받습니다. 반면 주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강아지는 모두에게 천대받습니다. 김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조상님들이 귀하게 여긴 김치를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순간 외국인들도 김치를 무시하게 되고 세계화도 불가능해집니다."(주)한성식품을 설립한 김순자 대표이사는 김치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자부심을 아낌없이 뿜어냈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침대에 누워 잠이 드는 순간까지도 김치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심지어 철물점을 지나치다가도 김치를 맛있게 만들 수 있는 공정을 생각한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대한민국 1호 김치 명인이자 명장의 자부심이 드러났다.김 대표는 한국인의 김치를 세계인의 김치로 만들기 위해 지난 30년 인생을 김치에 바친 명실상부한 김치 장인이다.1986년 직원 1명과 (주)한성식품을 설립한 김 대표는 김치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 그리고 손맛으로 금세 회사를 굴지의 식품회사로 키워냈다.이 과정에서 그는 2007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대한민국 김치명인 1호로 선정 받은 뒤 2012년에는 김치명장 1호의 영예까지 안았다. 또 2012년부터 대한민국김치협회 회장을 6년간 맡아 '김치 세계화'에 이바지했다.요즘은 김치를 담가 먹는 집들도 줄고 김치를 담가도 그 양이 확실히 줄었다. 이에 김 대표는 국민들이 점점 전통김치의 맛을 잊어버리진 않을까 걱정했다. 집에서 담근 김치 맛을 모르고 자란 젊은 세대가 혹여 중국산 김치 맛에 익숙해져 김치 종주국이란 말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그는 "각 지방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김치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김치 배우는 사람도 없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김치를 사 먹는다"고 아쉬워하며 "'전통 한국 김치를 어떻게 뿌리 내리느냐, 어떻게 전수하느냐' 고민이 많다"고 하소연했다.젓갈·풀·육수·배즙·양파즙·무즙·조청·벌꿀·새우 가루·표고 가루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만큼의 재료와 정성이 들어간 김치는 계속 전수돼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철학이다.김 대표는 젊은 세대에게 "어렸을 때 시골에 가면 할머니가 해주던 김치 맛이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김치는 항암작용이 뛰어난 건강식품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김치가 짠 음식의 대명사가 됐다. 이에 김 대표는 "우리가 먹는 국의 염도가 평균적으로 2.3%에서 2.6% 수준이지만 시중에서 판매하는 김치 염도는 1.6%에서 1.8% 수준"이라고 말했다. 즉 김치가 짠 음식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한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김 대표의 반응이다. 저염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애꿎은 김치가 표적이 됐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김 대표는 시중에서 파는 김치들은 과거에 비해 점점 싱거워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나트륨 함량이 높은 음식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그는 "10여년전 시중에서 판매한 김치 염도가 2.2% 정도였고 일반 가정집에서 담근 김치 염도는 서울이 2.8%, 부산이 3.6% 수준이었다"면서 "현재 시중에 판매 중인 김치 염도는 1.6%에서 1.8%인데 조금만 짜게 먹는 사람들은 바로 싱겁게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이어 김 대표는 김치가 함유한 성분을 강조하며 김치는 여전히 건강식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치에 풍부하게 담긴 칼륨이 몸에 축적된 나트륨을 배출시킨다는 것이다.그는 "김치에 들어가는 미나리, 파, 무, 배추 등은 칼륨이 풍부해 몸을 정화한다"며 "김치에 들어있는 수십·수백 종의 좋은 유산균들은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김치를 무작정 깎아 내리기보다는 그냥 짜기만 한 음식과 건강한 발효식품과의 차이를 가려내고 연구해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확고한 신념이다.김 대표는 최근 쉽고 간단하게 김치를 담그는 것에 대해 "이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며 "시간과 과정을 무시하고 만드는 김치는 내가 생각하는 전통김치와 거리가 멀다"고 답했다.실제 김 대표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김치를 만드는 시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제작진으로부터 주부들이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김치 만들기를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하지만 김 대표는 과정을 건너뛸 수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에게 시간과 과정을 생략한 김치란 없었다.김 대표는 "원재료가 되는 재료를 소금에 절여 수분을 밖으로 내보내면서 섬유질 관에까지 간이 밴 것을 저온에서 천천히 숙성시켜 유산균들이 나온 게 한 것이 바로 김치"라고 정의 내리면서 "1~2일 자고 난 뒤 완성되는 김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이어 "전통방법을 고집하면 공정이 많아지고 인건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때로는 내가 무식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요즘 맛을 내기 위해 김치에 넣는 화학조미료나 설탕량을 보면 가슴이 떨려서 넣을 수 없다"고 말했다.조미료가 들어간 김치를 만들 바에야 차라리 김치를 팔지 않겠다는 김 대표의 당당함, 내가 먹을 수 없는 김치는 만들지도 팔지도 않겠다는 고집스러움이 엿보였다.국내 김치 산업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김 대표는 감사하게도 외국에서 김치 붐이 일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그러면서 김 대표는 10년 전 미국에서 김치 전시를 할 때만 해도 냄새가 심하게 난다며 괄시받던 시절이 있던 적을 회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 김치'가 왔다며 환영한다는 해외 분위기를 전했다.김 대표는 해외에선 김치가 '건강에 좋다', '미용에 좋다', '다이어트 식품'이라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그는 "중동 아부다비에 있는 여학교에서 김치 체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다"면서 "우리 김치가 입점해 있는 백화점에서 최고 VIP 30명을 대상으로 김치 체험을 시켜줬는데 반응이 뜨거웠다"고 설명했다.점점 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김치가 유독 한국 사람에게 멀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김 대표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김 대표는 정부가 앞장서 김치의 존재 가치를 키우고 세계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언론매체 등 범국민적인 차원에서 김치의 위상을 올린다면 제빵학과가 생기듯 김치 학과의 신설도 환상은 아니라고 단언했다.김 대표는 "김치는 한식의 중심인데 우리가 스스로 김치를 귀히 여겨야 세계인들도 중국산·일본산 김치 대신 한국 김치를 선택할 것"이라며 "온갖 재료들이 다 들어가 있는 건강식품인 김치다. 이런 강점을 언론매체와 정부에서 홍보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대담/신창윤부장 shincy21@kyeongin.com 글·사진/박보근기자 muscle@kyeongin.com■김순자 대표이사는?▲ 1954년 출생 ▲ 1986년 (주) 한성식품 설립▲ 2000년 국무총리 표창 ▲ 2007년 김치명인1호▲ 2011년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진흥심의 위원 ▲ 2012년 김치명장1호▲ 2012년~2018년 대한민국김치협회 회장▲ 2012년 고용노동부 국가기술자격 정책심의 위원▲ 2012년 김순자 명인 김치 테마파크 원장 (김치교육훈련기관 1호)▲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 농산물 수급조절 위원▲ 2017년 금탑산업훈장 수훈김순자 (주)한성식품 대표이사가 "한식의 중심인 전통 김치를 우리 스스로 지켜 나가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김순자 (주)한성식품 대표이사가 전통 김치 담그기를 시연해 보이고 있다.

2019-06-18 박보근

[인터뷰… 공감]'우생순 신화 주역' 굳건히 골대 지키고 있는 오영란

마흔여덟, 조카뻘 후배들과 함께 선수생활 할 수 있는 비결은 '타고난 건강'경기할 땐 '센 언니'로 통하지만 코트 밖에서는 엄마처럼 다정다감한 선배아테네 올림픽, 1등 같은 2등… 메달 받을 땐 울지말자던 감독님 말 생각나'그 나이까지 하느냐' 댓글도 보지만… 버티게 해준 조한준 선생님께 감사"딸아이가 '엄마, 오십 살까지 뛰어 주면 안될까? 내가 기네스북도 찾아볼게'라고 하네요. '얘, 엄마 골병든다'고 했죠." (웃음)'72년생 쥐띠', 우리 나이로 마흔여덟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감동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실제 주인공이 아직도 코트를 누비고 있다. 여자 핸드볼 실업팀 인천시청의 '맏언니'인 골키퍼 오영란이다.지난 10일 오전 문학경기장 체력단련장. 스무 살 넘게 차이가 나는 조카뻘 후배들을 이끌고 훈련 중이던 오영란에게 오랜 선수 생활의 비결부터 물었다. "타고난 건강이 아닐까요"라며 웃음 짓던 오영란은 "운동하는 사람들은 내 나이쯤 되면 연골 통증이 있고 할 텐데, 아무렇지도 않다"며 "그 흔한 부상도 거의 없었고, 당연히 수술이란 것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요즘은 나이가 들어 몸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한다"고 말했다.오영란은 경기장에 들어서면 눈빛부터 달라진다. 게임이 잘 풀리지 않으면 팀 후배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고 거침없이 욕설도 날린다. 상대 팀 선수들도 인천시청 골문을 막아선 대선배 오영란 앞에서 주눅이 들 만하다. '센 언니'로 통하는 오영란은 알고 보면 마음이 여린 사람이다."경기장에선 누구도 봐줄 수가 없죠. 왕년에는 내가 생각해도 좀 무서운 언니였어요.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선 어린 선수들을 더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후배가 잘못해 혼을 내고 나면 혼자서 마음 아파하다가 결국 카톡을 보내서 위로를 해줘요. 혼낼 때는 확실히 혼내야 하는데…."오영란은 '플레잉 코치'로 뛰며 조한준 감독을 도와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 그는 "누구 하나 이유 없이 대들거나 삐뚤어진 적이 없는 착한 선수들"이라며 후배들에게 고마워했다. 그에게 '오엄마'라는 애칭을 붙여준 인천시청 '주장' 신은주는 "엄마처럼 밥 먹는 것 하나까지도 후배들을 꼼꼼히 챙겨주는 선배"라고 한다.인천시청은 얼마 전 막을 내린 2018~2019 SK핸드볼 코리아리그에서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리그 초반만 해도 하위권을 맴돌며 부진했다. 두텁지 않은 선수층에 그나마 주축으로 뛰어야 할 선수들이 연이어 부상을 당한 탓이다. 전열을 가다듬은 인천시청은 선두를 달리던 부산시설공단에 시즌 첫 패배를 안기는 등 강팀들을 연거푸 제압하며 리그 판도를 뒤흔들 복병으로 떠올랐다. 정규리그 막바지에는 매 경기 극적인 명승부로 여자부 최다인 9연승 기록을 세우며 최종 3라운드를 전승으로 마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오랜 맞수인 삼척시청과의 준플레이오프 단판 대결에서 20-23으로 분패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오영란은 "삼척시청 홈 관중의 기세에 눌려 제대로 힘도 못 써보고 아쉽게 졌다"며 "우리 후배들이 여자 핸드볼 명문인 인천시청 소속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대범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오산 성호초등학교 4학년 때 핸드볼을 시작한 오영란은 "원래 초등학교 때 배구를 했다"면서 "어느 날 선배 언니가 나를 때리는 모습을 본 원재옥 핸드볼 감독 선생님이 '너 핸드볼 한번 해볼래?'라고 하길래, 그 언니 앞에서 보란 듯이 '그러겠다'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골키퍼가 하기 싫어서 울기도 많이 울고 일부러 치마를 입고 오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오영란은 이번 시즌에 2011년 리그 출범 이후 통산 1천200회 세이브를 달성했다. 30대 초반인 삼척시청 골키퍼 박미라에 이어 두 번째다. 인천시체육회는 오영란이 리그가 출범하기 한참 전인 1991년부터 실업팀 선수 생활을 시작해 당시부터 쌓아온 세이브가 공식 기록으로 남아있다면, 한국 남녀 핸드볼 선수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대기록이 쓰여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영란은 "역대 두 번째 1천200회 세이브 달성이라고 하길래, 우스갯소리로 '내 잃어버린 20년(세이브)은 누가 보상해 주느냐'고 했다"며 멋쩍어했다.한국 여자핸드볼의 산실 인천은 몇 해 전만 해도 여자 핸드볼 리그를 주름잡던 '챔피언'이었다. 1974년 국내 최초의 여자 핸드볼 실업팀으로 창단한 인천시청은 1990년 2월까지 운영된 뒤 진주햄(1990.3 ~ 1997.7), 제일생명 알리안츠(1997.8 ~ 2004.8), 효명건설(2004.9 ~ 2007.9) 등으로 인천 연고 팀의 명맥을 이어왔다. 효명건설 부도로 해체 위기에 놓인 팀을 인천시체육회가 2007년 잠시 맡았다가 이듬해인 2008년 3월 벽산건설이 이어받았는데, 회사 경영 사정으로 인천시체육회가 2010년 9월부터 다시 팀을 운영했다. 그러다 2014년 1월 인천시청팀이 재창단했다. 최근 유럽 무대로 진출한 국가대표 '에이스' 류은희(전 부산시설공단)를 비롯해 SK슈가글라이더즈의 김온아·김선화 자매 등이 인천시청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우승컵을 독식한 바 있다. 오영란은 "후배들이 팀을 떠났을 때에는 서운한 마음이 컸다"면서도 "그 팀에서 없어선 안 되는 선수로 잘 성장해 기특하다. 그동안에는 서먹서먹했는데, 이번 시즌에는 만나면 등도 두드려주고 격려를 많이 해줬다"고 했다.영화 '우생순'의 실제 주인공으로 오영란을 기억해 주는 이들이 많다. 그는 "아테네 올림픽 때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며 "1등 같은 2등이었다. 당시 대표팀을 이끈 임영철 감독님(현 하남시청 감독)이 우리를 다독이면서 '(은)메달을 받을 때는 눈물을 흘리지 말자'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고 했다. 오영란이 속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세계 최강인 덴마크와 연장전을 2번 뛰고 승부 던지기까지 이어진 128분 혈투를 펼치며 큰 감동을 선사했다.오영란에게 다음 시즌에도 코트에서 만나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며 핸드볼을 시작한 큰 딸(강서희·인화여중1)의 응원에 더욱 용기를 얻게 됐다고 한다."힘든 길이라는 걸 잘 알아서 핸드볼을 시키지 않으려 했어요. 하지만 재능이 있는 아이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었어요. '너희 엄마가 오영란 선수냐'고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저께 '엄마, 오십 살까지 뛰어 주면 안 되느냐'고 묻더군요. 둘째(강동희·정각초3)도 핸드볼에 흥미를 보이고요. 간혹 '후배를 안 키우고 그 나이까지 너만 하느냐'는 인터넷 댓글도 보게 되는데, 딸아이 덕분에 힘을 내게 돼요."오영란은 끝으로 "(조한준) 감독 선생님의 배려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힘이 닿는 데까지 열심히 뛰어 보겠다. 많은 격려 부탁한다"고 각오를 밝혔다.글/임승재기자 is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오영란은?오영란은 오산 성호초등학교 4학년 때 핸드볼을 시작했다. 오산여중과 송원여중, 신갈고를 나온 그는 1991년 부산 대선주조 실업팀에 입단했다. 이어 온양 종근당과 광주시청을 거쳐 아테네 올림픽이 열린 2004년 인천에 연고를 둔 효명건설에 합류했다. 오영란은 2004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을 소재로 한 영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실제 인물이다.그의 배우자인 강일구씨도 남자 핸드볼 국가대표 골키퍼로 활약했다. 강씨는 남자 실업핸드볼 인천도시공사 감독을 역임하는 등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2004년 아테네 올림픽 한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감동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실제 주인공인 인천시청 여자 핸드볼 실업팀의 골키퍼 오영란 선수가 지난 10일 인천 문학경기장 체력단련장에서 바벨을 들어 올리며 근력 강화 운동을 하고 있다.여자 핸드볼 실업팀 인천시청 맏언니인 골키퍼 오영란. /대한핸드볼협회 제공

2019-06-11 임승재

[인터뷰… 공감]광복회 '변화의 바람' 중심에 선 김원웅 신임 회장

광복회가 심상치 않다. 한때 관변단체 정도로 평가받던 광복회가 최근 회장 선거를 기점으로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단순 보훈 단체를 벗어나 대한민국의 정신적 지주역을 자처하겠다는 것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자 3선 국회의원인 김원웅 제21대 광복회장이 있다. '잠자는 광복회의 어깨를 흔들어 깨우겠다'는 구호를 걸고 광복회장에 당선된 김 회장을,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강원도 인제 허준약초학교에서 만났다. 김 회장은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 개정, 친일찬양 금지법 제정, 광복회의 혁신기획실 신설 등 다양한 독립유공자 관련 정책 추진을 예고했다. # 국민에게 존경받는 원로단체로 거듭나겠다."광복회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조직입니다. 국가 정통성의 중심에서 국민에게 존경받는 원로단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혁신을 이뤄내겠습니다."오는 7일 취임식을 앞둔 김원웅(75) 제21대 광복회장의 일성이다.14·16·17대에 걸쳐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 신임 회장은 강한 추진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은 '행동하는 민족주의자'다. 부친 김근수 선생은 조선의열단 출신으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모친 전월선 선생은 여성광복군 출신으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독립운동가 집안의 후손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8천600명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모인 조직이 친일 미화 교과서에 침묵하고, 일제의 조선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총리로 임명하는데 눈치만 보고 있던 때가 있었다"며 "앞으로는 광복회가 국가 방향을 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민의 정신적 가치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김 회장의 취임식은 백범기념관에서 열린다. 보훈 단체 위주로 치러졌던 과거 광복회장 취임식과 달리 김 신임회장의 취임식에는 제주 4·3항쟁, 여순항쟁, 대구항쟁, 4·19, 6월 항쟁, 촛불 항쟁 등 다양한 민주화운동 진영과 시민단체 관계자가 대거 초청됐다. 보훈 단체를 넘어선 새로운 조직을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가 담긴 시도다.그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맞는 광복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회원들의 생각이 선거 결과로 표출된 것 같다"며 "이젠 변화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광복회장직에 임하려 한다"고 말했다.# 친일 청산 제대로 못해 분열·갈등중김 회장은 인터뷰 내내 대한민국과 민족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다만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앞으로 광복회가 앞장서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김 회장은 "분단 이후 친일 세력이 집권한 대한민국이 국민에게 진정한 애국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항상 고민해왔다"며 "우리 민족이 어려울 때 동족을 괴롭히고, 외세에 빌붙어 잘 지낸 사람을 집권세력으로 두고 애국을 말하는 것이 일제 때 '내선일체'와 뭐가 다르냐"고 반문했다.그는 "대한민국을 진정한 애국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국가 민족의 정통성을 담보한, 8천600명 독립운동가 후손이 모인 광복회가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현재 대한민국의 분열과 갈등도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은 데 있다고 진단했다.김 회장은 "제주 4·3, 여순항쟁, 부마사태, 4·19, 5·18 등 역사적 항쟁들은 모두 청산하지 않은 친일세력에 대한 저항사로 해석할 수 있다"며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친일세력들이 민중이나 민초들의 정당한 요구를 탄압하기 위해 빨갱이나 좌파로 몰아간 일들로 점철돼있다"고 지적했다.이어 "이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며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민족주의 세력을 잡기 위해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을 바꿔 만든 것이 지금의 국가보안법"이라고 비판했다.그는 "통합의 절대조건은 친일 청산이고, 친일 청산 없이는 대한민국의 발전은 어렵다"며 "친일에 뿌리를 두고 분단에 기생해 온 기득권 세력의 논리로는 국민을 통합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김 회장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세계 패권이 넘어가는 과도기인 지금이 대한민국 변화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미 간 무역경쟁은 세계 패권을 두고 벌어진 마지막 힘겨루기라고 봐야 한다"며 "이런 국제정세 속에서 어떤 정체성을 가진 체제와 세력이 집권하는가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독립유공자 처우 대폭 개선해야김 회장은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현재 독립유공자의 처우를 대폭 개선하고, 예산과 정책에 있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현재 국가보훈처가 맡은 독립유공자 관련 사무를 국무총리 산하 별도의 조직에서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김 회장은 "현재 국가유공자 안에는 재향군인, 월남전 참전용사, 6·25부상자 등이 모두 포함된다"며 "그러나 독립유공자는 근본부터 다른 국가유공자와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립운동가들은 누가 시켜 민족을 위해 나선 게 아니었다"며 "민족이 처한 위기 앞에서 자발적으로 자기 재산을 팔고, 저항에 나선 독립운동가들을 국방의 의무로 참전한 사람들과 같은 기준에서 보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서도 조지 워싱턴과 같은 독립운동가와 남북전쟁의 희생자는 격을 다르게 본다"며 "대한민국은 국가유공자라는 큰 틀 안에 독립유공자를 포함해놨는데, 이것도 친일 적폐에 해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김 회장은 이를 위해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 유신정권 때 독립유공자에게 불리하게 개정된 연금 지급 관련법을 원상회복하고, 애국지사와 광복회원의 연금 인상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독립운동가를 폄훼하거나 친일 미화를 하면 처벌하는 '친일찬양 금지법' 제정과 민족교육을 위한 연수원 설립 필요성도 강조했다.김 회장은 "독립유공자의 대우 문제는 국가의 기강과 정체성과도 연관된다"면서 "친일파들이 만든 프레임에서 벗어나 국가의 근본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글/이종우·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 사진/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김원웅 광복회장은 "현재 대한민국의 분열과 갈등도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은 데 있다"고 진단하고 "광복회가 국가 정통성의 중심에서 국민에게 존경받는 원로단체로 거듭나겠다"고 각오를 밝히고 있다.김원웅 광복회장이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강원도 인제 허준약초학교에서 수강생을 상대로 강의하고 있다.

2019-06-04 김도란·이종우

[인터뷰… 공감]인천시사편찬위원회 20년째 몸담고 있는 강옥엽 전문위원

#인천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역사학자 활동 중 구인 공고 보고 지원2000년 강덕우 前전문위원과 함께 시작#인천상식문답등 많은 사랑 받았는데각 기관 골든벨, 교재와 같은 역할 담당'한국 최초… 100선' 도 남다른 감정 느껴인천 중구 자유공원 인근 인천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멋스러운 한옥이 자리해 있다. 1900년대 초에 만들어진 일본식 호화 별장터에 1966년 지어진 이 한옥은 인천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인천시역사자료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식 정원과 한옥이 어우러져 아름다우면서도 묘한 정취를 발산하는 인천시역사자료관은 개항장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인천이 간직한 역사가 축적되는 이곳에는 관련 서적·자료들을 비롯해 인천시사(市史)편찬위원회 위원들의 집무실이 갖춰져 있다. 올해로 20년째 인천시사편찬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강옥엽(58) 전문위원을 지난 27일 이곳에서 만났다. 부산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서울에서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역사학자로 활동했던 강 전문위원은 2000년 6월 5년 기간의 전문직 계약 공무원으로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강 전문위원은 "인천으로 오기 전 대학교 시간 강사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일본 외무성의 옛 문서를 해제하는 일을 했었다"면서 "인천에서 시사편찬위원회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가 떴길래 연이 없는 곳이었지만, 어느 곳에서든 역사를 구현할 수 있는 곳이면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오게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원서 접수를 위해 한달음에 인천에 온 그가 첫 번째 응모자였다고 한다. 당시 채용에선 지난해 정년 퇴임한 강덕우 전 전문위원과 함께 2명이 합격했으며, 두 사람이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고 강 전문위원은 돌아봤다."시사편찬위원회는 1965년 구성됐습니다. 해방 후 처음으로 우리 손으로 만든 향토사가 1973년 나왔죠. 시사는 10년 단위로 발간하는데, 이후 2013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편찬됐습니다. 2000년대 나오는 시사들에 제가 관여했죠. 1995년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바뀌고 10개 군·구로 재편되면서 그만큼 들여다볼 게 많아졌습니다. 2002년 시사 편찬 작업을 마무리하고 강덕우 박사님과 함께 조선시대의 한문 자료와 일제시기의 일문 자료, 선교사들의 영문 자료까지 축적했으며, 인천역사문화총서와 기획자료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인천의 산, 지명, 하천 등 테마를 잡아서 낸 인천역사문화총서 시리즈는 현재까지 85종에 달합니다. 2003년 첫 역사 총서를 내고 나니 인천문화재단과 인천대 인천학연구원에서도 총서를 내는 등 지역 문화와 향토사 연구가 보다 깊고도 넓게 이어졌죠."방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2013년 펴낸 인천시사는 사진으로 보는 시사 2권을 포함한 5권으로 꾸며졌으며, 이듬해부터 매해 주제를 정해서 시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린 2014은 인천 체육의 발자취로, 2015년에는 인천의 지명과 지지·지도로 이어졌다. 인천의 건축, 역사문화유산, 문화사적과 역사 터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각각 간행됐다.강 전문위원은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을 본떠 만든 '인천상식문답'과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등 시민들이 좋아하는 책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고 했다. '인천상식문답'은 인천 역사에 대해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만들어졌다."인천 정명(定名) 600년이던 2013년 각 기관과 단체들은 '인천 역사 골든벨'을 개최했는데, 당시 '인천상식문답'은 교재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또한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셔서 책도 거의 다 나간 것으로 알고 있고요."'시민 공감, 역사의 대중화'는 강 전문위원의 모토와 같은 것이다."강덕우 박사님과 함께 일한 초기부터 '역사의 대중화'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대학에 있는 연구자처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로 인해 1년에 6회씩 개최하는 시민 대상 향토사강좌도 16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또한, 시민에게 우리 역사를 알리기 위해 역사자료관 복도를 활용해서 역사 사진 전시회를 열고 일제 강점기 광고로 보는 인천이야기, 사라진 건축물, 10개 군·구 문화유산 소개 등도 했고요. '시민이 공감하지 않는 역사는 의미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좋아해 주셨던 총서 시리즈도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3대 도시' 인천·대구 논쟁 의견은인천 역사, 개항 이후 강조되는 일 많아'개국·왕도의 고장' 알려야겠다고 생각#임기 마친 후 계획은아직 발굴하고 해나가야 할 것들 많아지역에 자긍심 갖도록 연구 계속할 것강 전문위원은 인천이 300만 인구 시대에 들어선 2년 전 즈음에 인터넷 공간에서 인천과 대구 중 어디가 3대 도시인가를 두고 주고받은 네티즌들의 댓글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인구수에서 앞선 인천이 3대 도시가 아니냐는 주장에 대구 사람으로 여겨지는 네티즌이 천년 고도 경주를 인근에 끼고 있는 대구가 3대 도시가 맞다는 견해를 폈고, 논쟁은 거기서 흐지부지 끝났단다."당시 여러 생각을 했죠. 대구 사람으로 보이는 분이 역사로 편 반론에 할 말이 없었던 것이었겠죠. 인천의 역사는 개항 이후 130여년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인천의 개항 이전의 역사를 시민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외부 강의에선 항상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인천의 옛 역사를 이야기하죠. 가령 삼국사기에 미추홀의 시작은 BC 18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대다수 학자들이 그렇게 여기죠. 인천은 20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도시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국조 단군의 유향이 서려 있는 강화도는 고려시대의 왕릉이 온전히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개국과 왕도의 고장'으로서 인천의 정체성이 찾아지는 것이죠."강 전문위원의 계약기간은 오는 6월 9일까지이다. 시사편찬위원회의 전문위원으로서의 임기는 만료되지만, 인천 향토 사학자로서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다."아직도 인천 역사를 발굴하고 해나가야 할 것들이 많다고 여겨집니다. 인천이 어떤 도시이고 왜 중요하며, 이를 통해 시민들이 자긍심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알릴 것입니다. 최근 들어 시민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이 커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연구하는 우리나 후학 모두를 긴장하게 만듭니다. 같은 소재의 글을 쓰더라도 최소한 한두 개의 새로운 사실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도 갖게 만듭니다. 이처럼 깨어있는 시민들께서 자제분들에게도 그러한 의식을 심어줬으면 합니다. '역사는 공기와 같은 것'입니다. 평소에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독도 문제와 동북 공정 등 무슨 일이 생겨야 중요성을 말합니다. 임기는 끝나더라도 역사의 대중화를 위한 활동과 인천 역사를 위한 행보는 이어갈 것입니다."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강옥엽 전문위원은 ?부산에서 태어나 고교시절까지 보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문학박사, 한국사 전공)를 졸업했다.2000년 인천시 역사자료관 시사편찬위원회 전문위원으로 부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6년부터 인천시 인재개발원(공무원교육원) 인천 역사 강의를 하고 있으며, 부평구와 미추홀구 지명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인천광역시사를 비롯해 '문답으로 엮은 인천 역사'(강덕우 공저)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강옥엽 인천시사편찬위원회 전문위원은 지난 2000년 접한 인천의 첫 인상에 대해 "전철을 타면 한 시간 만에 서울에 닿는 곳이지만, 서울이 아닌 지방도시의 느낌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이어서 "시골과도 같은 향토적 특성이 있었는데, 그 향토사를 만들어 온 지역의 여러 연구 자료들을 토대로 지금의 인천역사자료관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2019-05-28 김영준

[인터뷰… 공감]수원연극축제 총연출 임수택 감독

새로운 시도를 할 때는 늘 우려의 시선이 따른다. 그러나 이런 우려를 극복하고 늘 대성황이라는 반전을 안기는 이가 있다. 바로 연출가 임수택의 이야기다. 국내에 처음으로 '거리예술' 장르를 도입한 임 감독은 지난 2003~2014년 12년간 '과천한마당축제' 예술감독을 지내면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연출가로 이름을 알렸다. 축제 연출을 처음 맡았을 당시 유럽을 방문했던 그는 거리에서 자유롭게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를 마당극으로 이뤄지던 '과천한마당축제'에 도입해 장르를 거리극으로 확장했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도 있었지만, 그는 성공적인 축제를 만들었다.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타지에서도 많은 관람객이 방문했고, 반응이 좋자 안산·고양·서울 등지에 거리예술을 표방하는 축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무대를 옮긴 이유는?수원화성도 좋지만 너무 넓어 적절치 않아'경기상상캠퍼스' 아늑하면서 다양한 공간#수준 높은 콘텐츠가 많다고 했는데'생기있는 축제' 만들기 위해 꼬박 1년 고심공간과 작품의 조화·완성도 등 고려해 선별지난해부터는 수원연극축제 총감독을 맡게 된 그는 다시 한 번 '거리예술'의 마법을 시도했다. 사실 기존 수원화성에서 펼쳐지던 행사는 정체성을 찾지 못해 한때 존폐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장소와 장르 변경은 관람객의 발길을 잡는 데 성공했다. 당시에도 도심을 떠난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장르를 전진 배치한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우려의 시선도 있었지만, 대 반전을 이끌어낸 것이다. 축제에는 지난 2017년보다 3~4배 많은 이들이 찾았고, 풍성한 볼거리에 관람객의 반응도 뜨거웠다.그는 "수원연극축제의 이전 무대는 수원화성 행궁광장이었다. 수원의 상징적인 공간인 수원화성은 좋은 무대이긴 하지만, 너무 넓어서 공연예술을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며 "반면 경기상상캠퍼스는 아늑하면서도 다양한 공간이 있어 프로그램을 짜기 수월했다"고 전했다. 임 감독은 올해도 조용하고 한적한 이곳에 선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화려함을 끌고 와 오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화려한 축제의 장을 만든다. 자연 그대로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축제는 말 그대로 '숲속의 파티'다. 지난해에 이어 이곳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축제는 겉은 화려하고 속은 꽉 찬 콘텐츠들로 관람객을 맞는다. 거리에서 펼쳐지는 예술 공연이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임 감독은 식상한 반복이 아닌 생기있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지난 1년을 꼬박 내달렸다. 딱 일주일 전 경기상상캠퍼스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공간과 콘텐츠를 소개하는 그의 모습은 지난밤 꿈을 설명하는 아이처럼 생기가 넘쳤다.그는 "지난해 축제는 선임되고 시간이 많지 않아 공연팀을 섭외하는 과정에 오류가 있었다"며 "하지만 올해 축제는 지난해 축제가 끝난 시점부터 꾸준히 준비를 해 왔기 때문에 콘텐츠 면에서는 지난 축제보다 더 풍성하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올해에는 국내 신작 공연과 이동형 공연을 늘렸다"면서 "행사장을 방문하면 절대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고 강조했다.임 감독의 말처럼 공연 안에 콘텐츠들은 수준이 꽤 높은 편이다. 거리예술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공간'과 작품의 조화뿐만 아니라 배우의 연기, 무대 연출 등 높은 기술적 완성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회적 이슈 반영,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진 전통의 현대화 등을 고루 갖춤 작품을 선별했기 때문이다. 그는 "공간에 맞는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오랜 시간 공들였다. 경기상상캠퍼스는 아늑한 공간이다. 여기에 맞는 콘텐츠를 선별했고, 마치 공간을 위한 작품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짰다"며 "또 사회적 이슈를 반영한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작품 속 예술행위를 통해 관람객에게 일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콘텐츠는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고 설명했다. #일하면서 어렵거나 아쉬웠던 점은?외국은 한 예술감독이 20~25년 연출 맡기도韓, 예산으로 운영하다보니 너무 빨리 바꿔#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극장에서 보는 일반적인 연극에서 벗어나실험적인 '비관습적' 작품 선보이고 싶어좋은 축제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있지만, 가끔 외로운 시간도 찾아온다. 특히 적은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 지자체 축제를 오랜 시간 꾸려왔기에 어려운 점도 분명 있었다. 그는 전문가가 아니어도 축제 운영이 가능하다는 시선과 장기적으로 축제를 바라보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임 감독은 "외국의 경우에는 축제 예술감독의 임기가 보통 5년 정도 되는데, 별다른 문제 없으면 계속 연임을 시킨다. 그러다 보면 한 감독이 축제 연출을 20~25년 맡기도 한다. 축제가 안정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은 반대다. 뭐든 짧은 시간에 바꾼다. 그래서 축제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또, 예산으로 운영하다 보니 무조건 빠른 성과를 보려고 한다. 정착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점이 가장 아쉽고 답답하다"고 토로했다.3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그는 아직도 하고 싶은 새로운 일이 많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그는 "지금까지는 거리 예술에 집중을 해왔는데, 비관습적 연극을 선보이고 싶어요. 관습적 연극은 우리가 극장에서 보는 일반적인 연극이라고 보면 되죠. 비관습적의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관습적인 것을 탈피하고 실험정신을 발휘하는 연극을 말한다"면서 "국내에서는 '다원예술'이라는 말로 비관습적 연극을 선보이고 있는데, 앞으로 이런 실험적인 작품을 관객에게 많이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글/강효선기자 khs77@kyeongin.com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임수택 연출가는?▲ 1956년 전라남도 광주 출생▲ 1975년 경복고등학교 졸업▲ 1983년 2월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교육과 졸업▲ 1999~2004 소극장 일과핵 극장장▲ 2003~2015 과천한마당축제 예술감독▲ 2011~2014 한국거리예술협회 대표▲ 2015~2016 서울문화의 밤 총감독▲ 2016 춘천인형극제 예술감독▲ 2017 ACC광주프린지인터내셔널 총감독▲ 2018~ 수원연극축제 예술감독연출가 임수택 감독이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수원연극축제가 시민들에게 선사할 다양하고 수준 높은 콘텐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오는 24일부터 26일까지 '수원연극축제'가 열리는 수원 서둔동에 위치한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임수택 예술감독이 공간과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수원문화재단 제공

2019-05-21 강효선

[인터뷰… 공감]연임 성공한 김종식 인천항만물류협회장

내항 부두운영사들 다양한 의견 귀기울여… 항운노조 설득 끝에 국내 첫 '통합' 성사어려움 겪고 있는 인천항 '수입 화물 종류 다양화·배후단지 기능 강화' 가 해결 열쇠'항만 구역 개방' 관련 시민 요구 증가… 앞으로 진행될 남북 경제협력에도 대비해야인천항은 수도권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1883년 1월 부산항과 원산항에 이어 세 번째로 개항한 인천항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국가 경제 발전의 견인차 구실을 하는 인천항은 변화의 물결을 맞고 있다. 인천항 화물은 벌크(무더기 짐)에서 컨테이너로 바뀌었으며, 화물의 중심지는 2015년 문을 연 신항으로 옮겨가고 있다. 벌크 화물을 주로 다루는 내항은 항만재개발을 위한 절차를 본격적으로 밟고 있다.인천항 33개 하역업체로 구성된 인천항만물류협회 김종식(59) 회장은 최근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경인일보 인터뷰에서 "인천항 기능을 재배치하는 작업이 일정 부분 마무리되고 있다"며 "새로운 인천항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2016년 8월부터 인천항만물류협회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김종식 회장이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한 사업은 인천 내항의 10개 부두운영사(TOC)를 하나로 합치는 일이었다. 1974년 개장한 내항은 모두 8개 부두로 구성돼 있다. 1997년부터 부두별로 시설 운영권 계약을 맺은 10개의 TOC가 운영됐으나, 벌크 화물 감소로 일감이 급격히 줄면서 이들 TOC는 연간 60억~7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경영 여건이 나빠졌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인천항 벌크 물동량은 큰 폭으로 줄기 시작했다. 하지만 북항이 개장하면서 벌크 화물을 하역하는 시설은 오히려 늘어났다"며 "내항은 10년 전보다 물동량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는 등 위기를 맞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해양수산부는 2014년부터 인천 내항 TOC 통합을 추진했다. 하지만 자사 소유의 사업장을 포기해야 하는 TOC,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항운노조 등 관계 기업·단체와의 입장 차가 커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김종식 회장은 "TOC를 통합하지 않으면 (각 TOC의 경영 악화로) 고용 불안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며 항운노조를 설득했다. 또 TOC들의 다양한 의견을 하나의 목소리로 결집하는 역할을 했다. 그의 노력 끝에 2017년 9월 노사정은 내항 TOC 통합에 합의했고, 이듬해 7월 '인천내항부두운영(주)'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특정 항만의 TOC가 단일 운영사로 합쳐진 국내 첫 사례다. 인천내항부두운영(주) 대표도 맡고 있는 김종식 회장은 "노사정이 서로 조금씩 자신들의 입장을 양보해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며 "(통합) 초기에는 하역 생산성이 하락하는 등 일부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제는 물동량도 예전 수준을 회복하는 등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했다.인천항은 현재 큰 변화의 시기에 직면해 있다. 신항 개장 이후 컨테이너 물동량은 매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으나, 벌크 화물은 몇 년째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은 전년과 비교해 2.4% 늘어난 312만1천367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를 기록했다. 반면, 벌크 물동량은 2017년(1억1천940만7천303t)보다 6.4% 감소한 1억1천181만6천459t으로 집계됐다. 벌크 화물 감소로 인천항 전체 물동량은 2017년보다 1.2% 줄었다. 인천항은 전국 항만 중 유일하게 전년 대비 물동량이 감소한 항만이 됐다. 특히 원유와 석탄, 천연가스 등 전용부두에서 처리되는 화물을 제외한 물동량은 수년째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게 김종식 회장 얘기다.그는 "수도권에 자리 잡고 있던 공장이 지방으로 이전한 데다, 국내 경기 침체로 수도권 산업단지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인천항의) 물동량이 줄었다"며 "위기를 극복하려면 여러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김종식 회장은 인천항으로 수입하는 화물의 종류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인천항은 2천만명이 거주하는 수도권을 배후에 두고 있어서 소비재 화물 수입에 최적화된 항만으로 꼽힌다. 지난해 인천항의 수입 물동량은 1억735만1천130t으로, 전체 화물의 65.7%를 차지했다. 그는 "미국에서 오렌지나 냉동 감자를 들여오는 등 수입 화물을 다양화하면 항로도 늘어날 것"이라며 "항로가 많아지면 이들 국가로 화물을 수출하는 화주들이 인천항을 많이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항만 배후단지 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다. 항만 배후단지에는 화물 보관, 집배송, 조립, 가공 관련 시설은 물론 업무·상업시설 등 항만 활성화에 필수적인 시설이 들어선다. 인천은 남항 배후단지(아암물류1단지)와 북항 배후단지가 있으며, 신항 배후단지와 아암물류2단지 공급도 앞두고 있다. 김종식 회장은 "배후단지가 예전처럼 화물을 일시적으로 보관하거나 소포장해 다시 항만 구역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아닌, 원자재를 가공해 수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냉동·냉장 컨테이너와 전자상거래 화물 등 고부가가치 물동량을 유치하는 시설이 많이 입주해야 한다"고 했다.김종식 회장은 "인천항 하역업체들도 이제 새 시대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올해 1월 해수부가 '인천 내항 재개발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면서 항만 구역 개방에 대한 시민 요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진행될 남북 경제협력에도 대비해야 한다. 인천항은 과거 남북 경협이 진행될 때 북한과의 교역량이 가장 많은 항만이었다.김종식 회장은 "인천항 하역업체들도 인천의 구성원으로서 지역 경제가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인천항이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시민들도 응원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김종식 회장은?▲ 1960년 경북 경주 출생▲ 1978년 경주고등학교 졸업, 1982년 한국해양대학교 항해과 졸업▲ 1982~2001년 조양상선 근무▲ 2001년 (주)동부익스프레스 입사▲ 2003~2005년 (주)동부익스프레스 전남지사 지사장▲ 2005~2007년 (주)동부익스프레스 컨테이너터미널 영업 팀장▲ 2007~2011년 (주)동부익스프레스 부산지사 지사장▲ 2010~2018년 (주)동부익스프레스 인천지사장▲ 2015~2018년 동부인천항만(주) 대표이사▲ 2016년 8월~ 인천항만물류협회 회장▲ 2018년 7월~ 인천내항부두운영(주) 초대 대표이사최근 연임에 성공한 김종식 인천항만물류협회 회장이 "인천항 하역업체들도 인천의 구성원으로서 지역 경제가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인천항이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시민들도 응원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히고 있다.

2019-05-14 김주엽

[인터뷰… 공감]태영호 前 영국주재 북한공사

남북, 정치·사회·경제등 심각한 격차, 통일되면 북한 사람들이 한국 이해하기 힘들 것北 해외 노동자 10만명 달해… 거짓선동으로 주민 자극한다면 신뢰 무너지는 것 한순간제재 심할수록 북한 장마당 활성화… 美, 北 핵기술 이란 이전등 막고자 협상장 나올 것그렇게 애절 할 수 있을까. 말 한마디 한마디에 동포를 생각하는 그의 절규가 녹아 있었다. 태영호(57)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의 최근 행적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태 전 공사는 북송 위기에 처한 10살 여자 어린이를 포함한 탈북자 7명이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 위기에 처하자 "여자 어린이를 살려달라. 몸부림이라도 쳐보자"며 중국 당국에 호소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인 '태영호의 남북동행포럼'에서 북송 위기에 처한 상황을 전하면서 이렇게 안타까워 했다.그는 그의 블로그를 통해 "약 2년 전 탈북해 현재 한국에 거주 중인 아이의 부모가 딸을 포함한 탈북자 7명의 북송 위기 소식이 전해진 직후 자신을 찾아와 딸을 구해달라고 호소했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만일 내 아들이 이 순간 중국 공안에 잡혀 북송될 위기에 처해 있다면 나는 미쳤을 것이다. 10살짜리 딸을 데리고 있는 이 나라의 모든 어머니들이여! 딸을 제발 부모의 품으로 보내달라고 함께 (중국 공안을 향해) 몸부림이라도 쳐보자. 기적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느냐"고 호소했다그는 그들의 목소리가 밤새 귀에 쟁쟁히 울려와 잠을 잘 수가 없다고도 말했다."2016년 여름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 태영호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블로그에는 "제가 한국에 와서 보니 북한에 대해 많은 분야가 잘못 알려져 있고 저 역시 한국에 대해서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 됐다"고 첫 구절을 적었다.이어 "저는 우리의 통일은 남북한의 현실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블로그는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북과 남 사이의 소통의 가교가 되고 싶습니다"며 "저는 이 블로그에서 오직 진실만을 이야기 하려고 하며 혹시 틀린 부분이 있으면 여러분의 기탄 없는 의견을 통해 즉시 수정해 나가겠습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우리 모두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함께 가자는 의미에서 저의 블로그 이름도 남북동행포럼, We go together Forum이라고 지었습니다. 우리 모두 통일을 향해 함께 갑시다 !"고 전했다. 그의 현재 남한의 생활과 북한 주민을 위하는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태 전 공사는 최근 활발한 강연회를 통해 북한의 실상과 현실을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북핵 핵 폐기 전략 등에 대한 실상도 공개하면서 국내외 시민단체의 활발한 활동과 관심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며 남한 국민들의 행동을 독려하고 있다.지난 4월18일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경인일보를 찾아 '미래사회포럼' 제7기 입학식에서 강연을 했다. '북한의 핵 외교와 하노이 정상회담 후 상황전개와 향후 우리의 대응'이란 주제로 한 것인데 잠시 그를 만나 깊은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 와서 첫 느낌은태 전 공사는 한국에 대한 첫 느낌에 대해 "북한에서 생각하는 것 보다 한국이 너무 발전한 것 같다"며 소감을 말했다. 그는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뤄내 북한과 정치시스템, 사회문화, 경제적 수준에서 매우 심하게 격차가 벌어져 있다"며 "다시 말하자면 남한 사람들에 비해 아주 평범한 북한사람들은 통일이 된다면 한국의 여러 방면들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 까 싶다"고 전망했다.그는 또 남북한 간의 다양한 격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선 북한이 한국처럼 주민들을 국가 설립에 최우선 문제로 생각한다면 모든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한국과 북한이 이제는 서로 너무나 다른 정치 구조적인 문제로 상당히 힘들고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태 전 공사는 "한국은 민주주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주민 복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관리하지 못한다면 정권 자체 존립이 힘들게 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정권 존립과 주민 복리는 별개의 문제다"고 진단했다.남한에서의 언어적인 문제도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북한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라든가 언어 소통은 되는데 분단기간이 길다 보니 이해가 잘 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토로했다. 태 전 공사는 "한국에서 TV를 보면 가장 먼저 누구를 잡아가는 것이 주요 뉴스다. 매일 같이 새로운 뉴스가 쏟아져 나온다. 정치권내 좌우 갈등도 뉴스로 나오는데 이런 측면도 북한에서 처음 내려 왔을 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며 길바닥에 자유롭고 편안하게 돌아다니는 모습 조차도 놀라웠다고 전했다.남한에서는 일반적이고 개성과 권리를 많이 주장하는 것과 성소수자, 환경문제 등도 북한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뉴스지만 한국에서 크게 보도되는 것도 신기하다고도 했다.# 미국과 30년 핵게임 패한 적 없던 북한, 처음 실패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 회담을 통해 예견치 않게 북한이 뒤통수를 맞았다고 태 전 공사는 말했다. 지난 30년간 6자회담을 비롯한 미국과의 핵 게임에서 단 한 번도 패한적이 없던 북한이 처음으로 실패 했다는 것이다. 회담 당시 북한은 시종 일관 대북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구했고, 미국은 이것이야 말로 실질적으로 효과를 보고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는 것이다.태 전공사는 대북 제재 효과를 직접 실감한 미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도 제재효과를 더 볼 것으로도 내다봤다. 태 전공사는 "당시 북한의 내부 사정도 만만치 않았다. 3월에는 대단한 합의를 마련할 줄 알았지만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협상 결렬 이후 한 주 동안 어떻게 할 지 고민하던 북한은 태 전 공사의 표현대로 '이실직고'를 했다"며 "북한은 지금은 주민들에게 '거짓말' 자체가 불가능 하다"고 했다.그 이유로 북한의 해외 노동자수가 거의 10만에 달하는 것을 꼽았다. 그들은 해외에서 매일 스마트폰을 통해 한국 뉴스를 접하게 되는데 거짓 선동으로 북한 주민들을 자극 한다면 신뢰가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라고 태 전공사는 판단했다.# 더욱 활발해진 북한 장마당. 한국상품 밀수해 공공연히 팔려태 전 공사에 따르면 얼마전 까지만 해도 북한 장마당 바닥에서 몰래 유통되던 한국산 물건들이 지금은 버젓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지방 행정단위 공안과 규찰대 모두 동원 돼 통제를 하고 있지만 이미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이들 단속 인원들은 장사꾼을 끼고 돈벌이를 하고 있고 미국의 대북 제재가 심할 수 록 장마당이 더욱 활성화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밀수는 필수이며 이 과정은 더 심해지고 있다. 태 전공사는 현재 북한은 자본주의 경제를 위한 시장경제 뿌리내리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현재까지 군수산업에 있던 인원들도 민수쪽으로도 돌아있다고도 전했다. 북한에서 군수 작업을 총괄했던 간부를 민수공업 담당 간부로 앉히고 있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배급 등이 잘 이뤄졌던 군수공장에서 더 이상 업을 할 수 없다는 판단에 민수공업으로 돌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태 전 공사는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에 별 관심 없는 미국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태 전 공사는 밝혔다. 핵으로 미국을 움직여서 한국을 움직이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도 잘라 말했다. 북한의 핵 무기가 미국을 위협하지 않고 현 기술수준에서 진전이 안된다면 미국은 만족해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유대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이스라엘을 위협할 수 있는 중동에 더 큰 관심이 있다는 것이 태 전 공사의 판단이다. 특히, 북한이 핵기술을 이란과 같은 나라에 넘겨주게 된다면 미국에게는 더 큰 위협으로 미국은 이걸 막고자 협상장에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태 전 공사는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대해 입장이 분명하게 엇갈려 있다. 북한은 단계적 합의인 스몰딜을, 미국은 일괄타결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이행은 단계적으로 하지만 포괄적 합의를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태 전 공사는 "하노이 회담시 북한은 영변 핵 시설을 가지고 반대 급부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누구도 말을 안 한 것이 있는데 바로 영변 외의 핵 시설"이라며 "바로 이것을 가지고 앞으로 북한은 협상 카드로 나올 것이다. 금강산과 개성공업지구 재개와 각종 제재 해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고 예측했다.글/조영상·배재흥기자 donald@kyeongin.com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태영호 前 공사는?1962년 북한 평양시 출생1974년 평양외국어학원(중등교육) 영어과 입학1976년 중국 유학1980년 베이징외국어대학 부속중학교 영어과 졸업1984년 평양국제관계대학 졸업1988년 베이징외국어대학 영문학부 졸업1988년 10월~1996년 북한 외무성 유럽국 지도원1996~1998년 덴마크 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1998~2000년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2000~2004년 외무성 유럽국 영국 및 북유럽 담당과 과장2004~2008년 영국주재북한대사관 참사2008~2013년 외무성 유럽국 부국장2013년 4월~2016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2016년 여름 대한민국으로 망명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는 "북한은 핵으로 미국을 움직여서 한국을 움직이려 한다" 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2019-05-07 조영상·배재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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