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아이가 안전한 세상 만드는 엄마'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울산 계모 사건' 인생의 전환점… 친모에 탄원서 작성 부탁받고 '관심'정인이 사건 맡은 법원과 검찰청에 '근조화환' 입양모 살인죄 적용 목소리신고시 즉시 조사·아동학대살해죄·어린이집 CCTV 의무화 등 변화 앞장초교때부터 교육 강조… '아동은 부모 소유물 아닌 인격체' 인식 개선해야지하실에 한 아이가 있다. 아이는 기름과 옥수수가루로 연명한다. 지하실로 들어오는 빛은 한 줌뿐. 그 누구도 아이에게 친절한 말 한마디 건넬 수 없다. 뉘인 몸을 일으키라는 어른의 발길질이 아이에게 허락된 유일한 스킨십이다. 아이를 돕지 않는 것이 SF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오멜라스에서 살아가는 모두의 행복을 위한 계약 조건이었다.아이의 불행을 직시한 소설 속 사람들의 선택지는 둘로 나뉜다. 오멜라스를 떠나거나 아이를 외면한 채 오멜라스에 남는 것이다. 현실은 소설과 달랐다. 불행한 아동을 그대로 둬선 안 된다며 손을 내민 사람들이 있었다. 국회 간담회 참석차 경남 창원에서 온 공혜정(53)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를 2일 오후에 만났다.■삶을 바꾼 울산 계모 사건두 아이를 둔 평범한 엄마였던 공 대표는 오멜라스를 떠나지 않고 '지하실의 아이'를 주목하게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삶을 바꾼 계기는 2013년 울산 울주군 계모 사건이었다. 피해 아동의 친모와 친분이 있었다. 탄원서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울산 계모 사건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데, 사건을 자세히 알게 되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애초엔 시민 모임으로 시작했다. 모임의 이름은 '하늘로 소풍간 아이를 위한 모임'이었다. 온라인 시민 모임은 학대로 사망한 아이들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까지 아우르는 단체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로 나아갔다.공 대표는 "울산 계모 사건 당시 들었던 의문이 한 번에 죽이면 살인죄로 높게 처벌을 받는데,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끔찍하게 학대한 결과로 아동이 사망하게 되면 치사죄로 처벌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울산 계모에게 법정최고형을 선고하고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끝에 살인죄로 처벌을 받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울산 계모 사건은 애초에 상해치사 사건이었다. 아동의 학대 사망 사건을 다루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 대표는 국회를 찾아가 학대로 사망한 아이들을 위한 법을 만들어달라고 의원들에게 요구했다. 그런데 이미 만들어놓은 법이 있었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었다.회기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공 대표는 멈추지 않았다. 회원들과 함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전화 폭탄 민원을 넣고 1인 시위를 했다. 그 결과 26일 만에 기적처럼 아동학대처벌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공 대표는 "2013년 12월5일 처음 국회를 찾아갔다. 학대 아동을 보호하고 가해자를 엄중히 처벌하자는 법인데, 이 법을 반대하면 의원들이 그야말로 '역적'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결국 '0'순위로 법사위에서 의결했고, 2013년의 마지막 날 오후 10시30분에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했다"고 했다. 활동 초기 이뤄낸 쾌거였다.■'천사가 세상을 떠났다'정인이 사건도 공 대표가 이끄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의 주목을 받게 했다. 협회 회원들의 활동이 사회의 책임을 들불처럼 키웠다.회원들은 정인이 사건의 양부모에 대한 재판을 앞두고 지난 1일 서울남부지법 주변에 근조화환 150개와 바람개비 100개를 설치했다. 화환 리본에는 '정인이의 미소를 빼앗아간 악마들을 살인죄로 처벌하라', '천사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악마가 세상에 남았다' 등의 문구를 담았다.공 대표는 "정인이 사건을 수사기관이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했을 때부터 나서서 살인죄를 적용하라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하면서 검찰청 앞에 근조화환을 설치했다"며 "전 국민적인 관심에 힘입어 검찰과 면담을 한 뒤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청원서를 전해줬다. 이후 정인이 입양모에 대한 살인죄로 죄명을 적용하는 첫 번째 발판이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국회도 반응했다. 아동학대범죄 신고가 있을 때 지자체나 수사기관이 즉시 조사나 수사에 착수할 의무를 부과하는 등 내용을 담은 정인이법이 마련됐다. 여기에 용인 초등생 학대 사망 사건 등 잔혹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이어지자 아동학대살해죄도 신설됐다. 이보다 앞서 협회는 어린이집 CCTV 의무 설치 조항을 담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어린이집 CCTV 설치 이후 수많은 보육기관의 아동학대 사건이 사회에 드러났고,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변화도 이끌어냈다.■부모교육의 의무화공 대표는 아동학대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의미에서 예방활동과 예방교육, 학대피해 아동 지원, 아동학대 대물림 끊기 등 법 제도 개선 운동을 지속 전개할 계획이다.아동학대 가해부모들이 과거 학대 피해자인 경우가 허다하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씻어내지 못한 채 자녀에게 학대를 대물림한다는 것이다. 공 대표는 "체벌을 하고 때려야 아이가 말을 듣는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중에서도 과거 학대 피해를 입은 부모들이 분노 조절을 하지 못해서 학대를 아이에게 대물림한다. 학대 가해 부모도 학대 피해의 기억을 깨고 나와 올바른 부모의 역할모델을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부모에겐 심리치료, 정신상담 등 각 분야의 자격증을 가졌거나 임상 실험 사례가 많은 전문가들이 그림책 테라피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부모교육을 예비군이나 민방위훈련처럼 의무화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공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 부모교육은 건강가정지원센터나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이뤄지는데, 의무나 강제가 아니라서 부모교육에 참석하고자 하는 사람은 원래 좋은 부모고 나쁜 부모는 참석조차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며 "아동양육 수당을 줄 때에 월령별 발달 단계에 따라 부모교육을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지급한다면 부모교육 자체가 일상화돼 학대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부모가 된 이후에 부모교육을 하면 늦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교육과 성평등 교육을 하는 것처럼 이때부터 부모교육을 하고 아동 자신에 대한 인권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 "아동은 결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을 갖춘 존재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아쉬운 '시스템'정인이의 경우 아동학대 신고가 3번 있었지만, 학대 정황을 조기 발굴하기 위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에 등재돼 있지 않았다. 운용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영유아 건강검진과 만 3세에 전수조사에도 사각지대는 여전했다.공 대표는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 경우 불시에 의료진을 대동해 찾아가 대면 확인을 해야 한다"며 "시스템은 있으나 구체적인 매뉴얼이 아쉽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고 말했다.공 대표는 아동학대 범죄자의 신상공개도 찬성하고 있다. 공 대표는 "국민은 국가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고,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세금을 내고 있으며 아동도 역시 국민"이라며 "아동학대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해야 내 아이를 지킬 수 있다"고 했다.용인 초등생 학대 사망 사건의 경우 이모 부부의 자녀 등 2차 피해를 우려해 특정강력범죄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도 의원 전원 반대 의견으로 신상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이에 대해 공 대표는 "강력범죄자들이 비혼자거나 미혼이면 공개해도 되고 아이를 가진 부모라고 해서 공개해선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기준"이라며 "잔인하게 아동을 무시한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공 대표는 마지막으로 "그 어떤 좋은 의도가 있다고 해도 폭언을 하거나 때리는 것은 훈육이 아닌 학대"라며 "아동학대 사건의 양형기준도 현재의 솜방망이 처벌에서 강화하길 바란다"고 했다.글/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국회 앞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아동학대는 체벌을 훈육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발생한다"며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학대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선 부모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1-03-02 손성배

[인터뷰…공감]'40여년 교직생활 마침표' 민중 미술 전념하는 이종구 화백

군부독재 체제속 억압받는 현실 직시 '저항 선택' 작품세계 바탕이 돼고향땅으로 시선 옮겨 '오지리 사람들' 연작… 몰락한 농촌의 현실 투영소중한 아이들 희생 '세월호 참사' 광화문 촛불시위 작품 속 직접 등장도인천 골목 곳곳에 '문화예술의 향기' 묻어났으면 모든 시민 즐길 수 있어야인천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이종구(66) 화백은 우리나라 민중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산업화 속에서 몰락하는 농촌의 실상부터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생전 모습까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역사적 흐름을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화백은 현시대를 기록하는 화가이면서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1980년 인천 동산고등학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고, 2004년 중앙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임용돼 이달 말 퇴직을 앞두기까지 4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화백은 젊은 학생들과 건강한 의식을 공유하고 세대 간 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교사 생활에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이 화백의 퇴임 기념집, '저기 선생님이 걸어 가신다'란 제목에는 학교를 떠나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스승을 응원하는 제자들의 따듯한 마음이 담겼다. 이 화백은 "오랜 기간 있어 온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독립한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있지만, 직책을 모두 내려놓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 세상에 나간다는 생각에 기대감과 설렘도 크다"며 "시원섭섭하다는 게 이런 것 같다"고 웃으며 소회를 밝혔다.이 화백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작품 활동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방학 때도 쉰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 화백은 퇴임 후 "예술가의 삶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 같다"며 "시간적 여유가 생긴 만큼 화가로서 전문성을 기르고 작품 활동도 활발하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이 화백에게 있어 민중 미술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이 화백이 처음 예술활동을 시작한 1980년대는 군부독재 속에서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시기였다. 군부독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지역 곳곳에서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화백은 인천에서 지역 작가들과 연대해 예술로 저항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군부독재 체제 아래서 시민들이 억압받는 현실을 지켜봤다"며 "젊은 혈기에 뜻맞는 작가들과 저항을 선택한 게 지금 민중 미술의 바탕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이 화백은 특히 산업화가 진행되고 농산물 수입 개방이 이뤄지면서 몰락해가는 농촌의 현실에 주목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란 이 화백에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화백은 이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땅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탄생한 게 '오지리 사람들' 연작이다. 이 화백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이 화백은 쌀부대를 캔버스 삼아 고향 땅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 그리고 이웃들의 삶을 그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농민들의 초상화가 아니라 어려운 농촌 현실을 비판적 시각으로 그리고자 노력했다. 담벼락에 붙은 정치 선거 포스터나 수입쌀 상품 포장지 등을 배경으로 농민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지적했다. 이때부터 주변에서는 이 화백을 '농민 화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화백은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의 근간은 농촌이었지만 쌀 수매가 폭락, 농산물 수입 개방 등으로 농부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힘든 세상이 돼버렸다"며 "고향 사람들의 모습을 투영해 소외당하는 우리나라의 모든 농민을 대변하고 싶었다"고 했다.이 화백은 세월호 참사의 기억과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광화문 광장의 촛불 시위 등 역사적 사실을 화폭에 담은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소중한 아이들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다"며 "예술가로서 세상에 잘못된 일이나 모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의 촛불 시위를 그린 작품에는 낯익은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시민들과 함께 서 있는 이 화백 본인의 모습이다. 이 화백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신도 지지하고 연대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이 화백은 예술의 궁극적 목적이 "인간다운 삶, 인간의 가치, 인간의 존중성 등 '휴머니즘'에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인간을 해치는 독재, 분단, 환경 파괴 등을 작품 소재로 삼는 이유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시민 의식, 시민의 권리, 평등한 삶 등에 대해 강조를 많이 했던 것 같다"며 "지금까지의 민주화 과정에서 방관자로 살지 않고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지지하는 등 화가와 교사의 위치에서 함께 싸워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이 화백은 시민 활동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자신이 갖춘 능력을 바탕으로 활동을 펼치면서 지역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어떤 활동을 할지는 구체적으로 정한 것은 없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지역 현안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인천 시민'인 이 화백은 지역 골목 곳곳에 문화예술의 향기가 묻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화백은 "문화예술은 특정 지역에 사는 주민만 누려서는 안 되고, 모든 시민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며 "지역 곳곳에서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화합해 문화예술을 즐기는 환경을 인천시가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했다.그는 "화가의 위치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정치적·사회적 문제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작품으로 증언·기록하는 일을 계속 할 것"이라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 건강한 시민사회가 만들어지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김태양기자 ksun@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이종구 화백은?△ 1954년 충남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으로 유학을 왔다. △ 인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1976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 1980~ 2003년 인천 동산고등학교 교사로, 2004년부터 2021년 2월까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 민중 미술 운동에 참여했고, 지난 40여년 동안 20여차례의 개인전과 500여회의 기획전, 단체전에 출품했다. △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가나미술상, 우현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인천민족미술인협의회 대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인천지회장, 인천문화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다.이종구 화백은 인천 부평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화가와 교사의 역할을 하면서 민주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며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사회 문제를 대변하고 기록·증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021-02-23 김태양

[인터뷰…공감]'10년간 국내외 도움 손길' 유현숙 (사)나눔문화예술협회 이사장

산기대에 '知食라운지' 조성… 멘토링 등 청년 창업 지원에 올인60대 초반 나이에 머슬마니아 피트니스 '도전' 특별상 등 쾌거도사업·건강 시련 극복 심기일전… 라오스 한국명예대사로 활동스타 셰프들과 함께 웰 메이드 도시락 등 복지 사각지대 파고들어"이웃들에게 나눠 준 것보다, 그들이 저에게 준 것이 더 큰 행복이자 미래입니다."유현숙 (사)나눔문화예술협회 이사장은 지난 8일 경인일보 '인터뷰공감' 인터뷰에서 "그들이 환하게 웃으며 '희망이 생긴다'고 말할 때마다 저에겐 행복이고, 살아가는 목표이기도 하다"며 "오히려 감사해야 할 사람은 저 자신"이라고 강조했다.'나눔'(Share)이란 화두는 유 이사장 인생 최대의 관심사다. 용인 동천동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유 이사장은 나눔 전파자가 된데 대해 "'특별히 뭘 나눠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눔 활동을 시작한 게 아니라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는 걸 좋아했던 게 동기가 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겨울 추위에 손이 터진 또래의 아이들에게 내가 입고 있던 털 스웨터를 풀어서 밤새 털장갑을 떠서 나눠 주고는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한테 야단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 뒤 "세월이 흐르면서 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부연했다.또 '남들이 이사장님 대단하다'라고 엄지척 할 때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누가 시키면 하겠나. 그러니까 대단할 것 하나도 없다"라고 겸양했다.유 이사장이 2012년부터 이끌고 있는 (사)나눔문화예술협회는 문화예술활동 및 문화예술교육과 청년 일자리창출 지원사업, 그리고 소외계층을 위한 나눔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오고 있다. 또 해외사업으로 라오스 등을 중심으로 한 저개발국가 교육인프라구축 및 구호활동을 통해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는 공익 법인이기도 하다.(사)나눔문화예술협회는 지난 10여년간 세 분야의 나눔 활동에 주력해 왔다.먼저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 할 미래 인재인 청년 일자리 '나눔'이다. 평소 '실업 해결책은 청년 창업이 답'이라고 소신을 피력해 온 유 이사장은 KT&G(대표·백복인)의 후원을 받아 지난 2018년부터 현재까지 시흥시 소재 한국산업기술대에 한국형 청년창업 지원센터인 '知食라운지'를 개소, 창업에 관심 있는 청년들에게 창업 전반에 걸친 창업지원프로그램을 통해 발굴 및 창업기업육성에 올인하고 있다.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창업지원에 '올인'하게 된 데는 "청년실업으로 자신들의 미래가 없어져서 행복하지 않다는 절망한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그는 설명했다.청년 창업의 가장 큰 걸림돌로 유 이사장은 '창업가의 열정 부족과 절박감 결여'라고 손꼽는다. "창업으로 성공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데 창업자 본인이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 주변에서 다 해주기를 바라기만 한다"고 분석했다.유 이사장은 지난해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한 감정) 만연으로 무기력해져 가는 청년 창업가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60대 초반의 유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2020 맥스큐 머슬마니아 피트니스 한국챔피언' 클래식부문과 시니어부문 도전에 나서 특별상과 시니어부문에서도 입상을 하는 쾌거를 거둬 청년 CEO들에게 '누구든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줘 창업 의지와 열정을 북돋아 주기도 했다.이처럼 유 이사장이 낙담한 청년들에게 재차 도전 의지를 심어주려고 한데는 남다른 아픔을 스스로 이겨내고,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사선을 넘어 현 고지까지 달려온 경험에서 기인한다.지난 2008년 유 이사장에게도 시련기가 찾아왔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사업이 좌초 위기에 봉착했다.엎친데 덮친격으로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안 좋아져 병원을 찾았을때 의사로부터 머리에 혹이 무려 5개 정도나 생겨있고 그중 한 개의 혹은 크기도 크고 시신경을 누르고 있어 실명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또 얼마 안가 극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갔다가 3~4시간에 걸쳐 배에 생긴 혹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부단한 자기 점검과 열정으로 다시 일어섰다.유 이사장은 취업난 등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갖춰야 하는 지식과 스펙은 하나의 직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직업을 기반으로 한 풍부한 인생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사람들과 협업해야 한다"고 인생 선배로서 조언하기도 했다.두 번째는 라오스 등 메콩강 유역의 국가에서 벌이는 국제 구호 나눔 활동이다.2014년부터 라오스 한국명예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유 이사장은 최근까지 라오스 등 저개발국가 교육인프라 구축 및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다.유엔이 정한 최빈국인 라오스에 대한 구호활동은 제주아셈회의(2008년)때 맺은 라오스 부아손 부파반 총리와의 인연으로 시작됐다.(사)나눔문화예술협회는 라오스 오지에 13개 학습 기자재 등을 완비한 학교를 건립했고, 올해 1월부터 안산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을 통해 한국어 교육원 기숙사를 건립 중이다.그뿐만이 아니라 조립식 축구대와 악기 등 음악기자재를 포함한 구호물품을 라오스에 최대한 많이 보내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라오스는 코로나19 확진자가 45명 밖에 안되지만 국경 봉쇄 등 록다운을 시작으로 거리 간 이동이 제한되면서 사실상 경제활동이 올스톱돼 경제 위기 상황"에 있으며 "생필품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음에 따라 지역 병원과 식료품을 파는 가게가 문을 닫는 등 일상생활이 더욱 악화되면서 지역주민들은 물론 아이들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유 이사장은 "성교육을 받아 본적이 없는 라오스 여학생들이 생리가 시작되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몰라 더러운 헝겊 조각을 이용하거나 신문지를 생리대로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생리 기간 동안은 부끄러워 학교를 갈 엄두조차 못 내는 라오스 여학생들을 위해 생리대를 보내주려고 한다"고 소개했다.또 "라오스가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교육이 최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학교를 지어 주는 일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야 한다"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기업들과 뜻있는 독지가들이 후원에 동참해 주길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공공복지 서비스가 미처 도달하지 못하는 틈을 메워주고 있다.유 이사장은 코로나19가 상륙하던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 10여차례에 걸쳐 스타 셰프로 알려진 최현석·여경래·미카엘 등과 함께 '웰 메이드(well-made) 도시락' 캠페인을 펼치며 서울은 물론 수원과 안산, 보령 등 전국 곳곳을 누비며 도시락을 쌌다. 어떤 날은 1천개가 넘는 도시락을 싸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과 장애인가정 등 취약계층에게 사랑의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하며 친한 '이웃'이자 '벗'을 자처했다.이와 함께 지역아동센터에 급식지원사업과 인천 서구에 화재예방을 통한 가정용 소화기 전달, 쌀 나눔행사 등 어려운 이웃들의 손을 잡아 주기 위한 나눔 활동을 계속 펼쳐나가고 있다.끝으로 유 이사장은 "코로나19로 인해 경제, 사회적으로 어려울수록 주변과 어려운 이웃을 더 살피고 베풀어야 할 때인 것 같다"며 "경인일보 독자 여러분들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희망이 돼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글/전상천기자 junsch@kyeongin.com,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유현숙 이사장은?▲ 경기대 대체의학대학원 식품치료 전공 대체의학 박사▲ 원광대 한의학전문대학원 제3의학 전공 한의학 박사▲ (사)나눔문화예술협회 이사장(현)▲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 명예대사(현)▲ 라오스 국가개발 훈장 수여(2015)▲ 국민추천 국민포장 수상(2020) 외 다수 수상유현숙 (사)나눔문화예술협회 이사장은 최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공감' 인터뷰에서 유엔이 선정한 최빈국인 라오스 등에 대한 국제구호 활동에 나서게 된 인연 등을 소개하는 동시에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과 '나눔'으로 더 행복해지는 삶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1-02-16 전상천

[인터뷰…공감]실향민 황영석 할아버지의 '변함없는 새해 소망'

# 국내외 누볐지만 외로웠던 젊은 시절초교 교장 선생님 만나 미군부대에 취직형과 양계장 운영에 전국 양조장서 일해'중동 붐' 일자 바레인·리비아까지 건너가# 아직도 눈 감으면 선한 고향 '연백'대규모 염전에 평야까지 풍요로웠던 곳이산가족 상봉 신청은 한번도 하지않아'北유지 출신 불발' 소문에 생각도 안해디아스포라(Diaspora), 좁게는 유대인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고향을 떠나 흩어진 사람들을 일컫는다. 한반도를 떠났다가 해방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한 고려인과 재일조선인, 교포, 한반도에 정착한 화교, 실향민, 탈북민 등이 있다. 실향민은 분단이 낳은 디아스포라다. 한국전쟁 때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 단산리에서 인천으로 내려온 황영석(86) 할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황 할아버지는 피란 이후 삶의 근거지를 인천으로 두고 경북 포항, 전북 전주, 전남 순천·목포, 중동의 바레인과 리비아까지 안 살아본 데가 없을 정도로 국내외를 누볐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가본 어느 곳보다 가까운 그곳, 고향 땅은 70년 동안 단 한 번도 다시 가지 못했다.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직선거리로 약 3㎞ 떨어진 황해도 연백은 헤엄쳐서도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멀리서나마 고향 땅을 보고 싶은 마음에 교동을 찾아도 산 하나에 딱 가로막혀 보이지 않는다. "저 산만 없었어도…." 할아버지는 탄식할 뿐이다.지난 8일 남동구 간석동 한 카페에서 만난 황 할아버지는 반명함판 크기의 사진 한 장을 지갑에서 꺼내 보여줬다. 할아버지가 중학교 때 사진관에서 찍은 자신의 사진인데, 낡고 물에 젖어 흐릿하다. 고향에서 가져온 것 중 유일하게 남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터졌다."황희 정승을 배출한 장수 황씨 집성촌에 살았는데, 흔히 '유지'라고 불리는 집안이었어요. 6·25사변 전에는 우리 동네가 남한이었고 전쟁이 나면서 북한 인민군이 점령했어요. 부모님이 70세가 넘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 멀리 갈 수 없어서 1951년 1·4후퇴 때도 내려가지 않았는데, 인민군에서 나를 데려가려고 하는 거예요.할머니가 군인들을 지팡이로 때리면서 막아 한 번은 피했지만, 두 번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혼자 집을 나왔어요. 큰 형은 먼저 피란 갔고, 고향에는 할머니와 부모님, 남동생 셋, 여동생 하나가 남아 영영 못 보게 됐습니다."황 할아버지는 연백에서 배를 얻어타 강화군 석모도, 강화도를 거쳐 인천으로 들어왔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현 중구 신흥초등학교에서 신흥로터리로 가는 길목에 연백군 피란민 연락사무소가 있었다고 한다. 먼저 나온 형의 소식조차 모르고 갈 곳이 없던 10대의 황 할아버지는 연락사무소 앞에서 서성이기만 했다. 그러다 연백초등학교에 다닐 때 근무했던 교장 선생님을 연락사무소 앞에서 만났다."연백초등학교는 전교생이 2천500명이나 되는 큰 학교였는데, 조용한 학생이던 나를 교장 선생님이 알아봤어요. 유지 아들이어서 그랬나 봅니다. 교장 선생님이 도원동에 목공소를 차린 고향 사람에게 저를 데려가 줬고, 거기서 지내면서 축항(인천항)에 있는 미군부대에 취직했어요. 수소문 끝에 만난 형님이 시골로 내려가자고 해서 지금의 구월동에 살던 지인 집에서 3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다 전쟁이 끝나고 해병대에 입대했어요."황 할아버지는 포항에 있는 해병대 제1사단 상륙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피란민 출신에 텃세가 심해 상급자와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부대에서 '깡다구'가 세기로 소문이 났지만, 계급사회이다 보니 간부들 입장에선 골칫거리였다. 결국 부대장이 할아버지에게 부대내 매점인 PX(Post Exchange) 운영을 맡겼다. 황 할아버지 입을 빌리자면 당시 부대장이 PX에서 "많이 남겨 먹었다"고 했다. 부대장은 "내가 병까지 팔아야 하겠느냐"며 할아버지에게 빈 병을 넘겨줬고, 그걸 팔아서 할아버지도 쏠쏠히 용돈을 벌었다고 한다. 지금 군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전쟁 직후에는 다들 그렇게 먹고 살아야 했다"고 할아버지는 말했다.제대 후 다시 갈 곳이 없어진 황 할아버지는 인천 구월동으로 돌아와 형과 함께 양계장을 했다. 현 남동경찰서 뒤에 있는 구월아시아드선수촌 아파트 자리에 양계장이 있었다. 그러나 형과 의견이 잘 맞지 않아서 제물포역 인근에 있던 와룡양조장에 취직했다고 한다. 와룡양조장은 인천 일대에서 유통되던 '와룡소주'를 만든 양조장으로 유명했다. "1960년대까지 와룡양조장에서 일하다 전주에 있는 주정 공장으로 일자리를 옮겼어요. 이 시기 국순당을 창업한 배상면씨와도 인연을 맺었습니다. 배상면씨가 술을 빚을 효소를 찾아 당시로는 값비싼 현미경을 들고 전국의 양조장을 돌아다닐 때였어요. 이후 순천에 있는 양조장으로 옮겼다가 목포에 있는 보해양조로 이직했는데, 대우가 좋았죠. 보해양조 창업주 임광행씨가 나를 무척 아꼈던 기억이 납니다."1970년대 '중동 붐'이 일자 황 할아버지는 인천으로 돌아와 지역 물류기업인 영진공사가 진출한 바레인국제공항으로 직장을 옮겼다. 항공기 케이터링(Catering·음식 공급) 분야에서 근무하다 리비아로 건너가 항만 하역 쪽 일을 맡았다고 한다. 그 영향인지 황 할아버지의 아들도 현재 항공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그렇게 황 할아버지는 혈혈단신이나 마찬가지인 처지로 힘겹게 삶을 이어가고 가정을 일궜다.황 할아버지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연백평야가 드넓게 펼쳐진 고향의 풍경이 선하다. 황 할아버지는 '왜정 때' 대규모로 만들어진 염전에 평야까지 여러모로 풍요로웠던 공간으로 고향을 기억하고 있다. 분단이 되지 않았다고 상상한다면, 황 할아버지는 여전히 고향 땅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은 채 가족들과 평화로이 살고 있었을지 모른다.황 할아버지는 이제껏 한 번도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지 않았다. 형이 한차례 신청은 했었는데, 북한에서 유지 출신 월남인 상봉은 잘 받아주지 않는다는 얘기가 돌면서 아예 신청할 생각도 안 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은 물론 남은 형제들의 생사조차 모르고 산다. 지금까지도 20명 이상 꼬박 나오는 연백초등학교 동창회가 가족을 대신해 서로를 위로하고 안부를 물으며 명절을 챙긴다.이들 실향민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통일부의 남북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로 추산한 실향민은 지난해 1월 기준 5만2천465명에서 올해 1월 4만9천154명으로, 1년 사이 3천311명이 세상을 떴다. 같은 기간 실향민이 가장 많은 경기도는 1만5천807명에서 1만4천831명으로 976명 줄었다. 경기, 서울 다음으로 많은 인천시는 4천287명에서 4천1명으로 286명 감소했다. 인천은 곧 4천명대가 무너진다. 남북의 냉각기가 이어지고 있어 이산가족 상봉은 기약이 없다. "명절만 되면 북에 두고 온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요. 지금은 손주까지 봐서 많이 나아졌지만, 피란 내려와 홀로 보낸 젊은 시절은 참 많이 외로웠어요. 지금도 연백 출신 실향민들이 고향과 가까운 강화 교동도에 많이 살고 있습니다. 고향 땅을 밟고 가족을 만날 그 순간을 아직도 기다립니다."황 할아버지는 올해에도 이렇게 새해 소망을 빌었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황영석 할아버지는?1935년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에서 나고 자랐다. 1951년 7월 16살의 나이로 인천으로 피란 와 미군부대, 양계장, 양조장, 중동 지역 공항·항만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분투하며 살았다. 현재는 인천 지역 황해도 연백군민회 일을 맡아 연백 출신 실향민들을 챙기면서 평범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다.황영석 할아버지가 지난 8일 인천 남동구 간석동 한 카페에서 실향민으로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황영석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남은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2021-02-09 박경호

[인터뷰…공감]'코로나시대 종교의 역할' 고명진 (사)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사회 곳곳 어려움 겪고 있지만 언젠가 종식350만 성도와 목회자들 힘낼수있게 도울 것수원중앙침례교회 산하 복지재단 통해 선행영원한 삶 누리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 추구현대사회 소유욕·물질 만능주의에 사로잡혀서로 나누는 것이 사회를 밝게 만들수 있어"코로나19 위기 극복할 수 있습니다. 대표회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지난달 29일 용인 중앙예닮학교에서 만난 고명진(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 목사) (사)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대표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면서도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이는 사랑의 실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고 회장은 "코로나19는 우리 사회를 크게 흔들어 놓았다. 사회는 물론 종교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곳곳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하지만 코로나19도 언젠가는 종식될 것이고 마침내 극복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지난해 11월 고 회장은 제33회 정기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에 추대됐다.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는 31개 시·군에 1만5천 교회가 있으며 성도 수는 약 350만명이다.고 회장은 "코로나19 이후 교회의 역할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면서도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의 대표회장으로서 350만 성도를 위해, 그리고 목회자들이 목회에 힘을 낼 수 있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침례교는 루터의 교회개혁 이후 개신교의 여러 교파들에 비해 비교적 일찍 출현했다. 침례교는 신약의 본질적인 원리를 지키는 교회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원형적인 교회(Primitive Church)로서 신약교회(New Testament Church)의 신앙을 전승하려고 노력해왔다. 침례교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침례를 통해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강조한다.경기도는 17개 광역지자체 기독교 단체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이에 고 회장은 "교회는 신앙공동체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래서 목회자는 세상의 소리에 더 기울이고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요즘처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선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설명했다.코로나19가 발발한 이유 중 하나로 교회의 무분별한 대면 예배를 꼽을 수 있다. 교회도 코로나19의 근원지라는 사회적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물어보자, 고 회장은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은 일부 교회들을 보며 책임을 통감한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선 회장으로서 송구스럽다"면서도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선 교회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도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맞춰 방역을 강화하고 대면예배 대신 비대면 온라인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정부의 지침을 잘 따르겠다"고 피력했다.고 회장은 수원중앙침례교회의 담임목사다. 수원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갖춘 수원중앙침례교회는 산하에 수원중앙복지재단을 통해 장애인을 비롯해 노인, 외국인 등 사회 약자들을 위한 희망을 전파하고 있다.고 회장은 "수원중앙침례교회는 지난 1951년 처음 개척교회로 시작해 1960년부터 2004년까지 담임목사를 맡으신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께서 현재의 교회를 만드셨다"면서 "저는 1976년 수원중앙침례교회에 온 뒤 전도사와 부목사로 활동했다. 2005년 1월1일 담임목사로 부임해 현재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이어 "수원중앙침례교회는 현재 제적 성도 수 약 3만5천명, 코로나19 이전에는 주일에 평균 8천~9천명이 함께 예배했다"고 덧붙였다.또 고 회장은 "수원중앙복지재단에는 직영시설로 수원굿윌스토어, 꿈자리 보금자리를 운영하고 수탁시설로는 버드내노인복지관, 수원외국인복지센터, 수원장애인종합복지관, 광교노인복지관, 수원시광교장애인주간보호시설을 각각 맡고 있다"고 전했다.수원중앙복지재단이 지역 사회에 큰 돌봄을 하게 된 배경에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랐다. 이 재단은 장애인들을 비롯해 다문화 가정, 어르신 등 소외계층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고 회장은 목회 활동 중 가장 주안점에 대해 "예수님의 가치를 알고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이라며 "나누고 베풀어서 교인들뿐만 아니라 비교인들까지 선도하는 것이 목적이다. 교회와 목사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은 영혼구원과 영적 성숙이다"라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교회는 사랑의 실천이기도 하다. 이는 복지를 뜻한다"며 "복지는 차별 없이 함께 누리고 베푸는 것이다. 영원한 삶을 누리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복지재단의 역할이다"라고 말했다.이날 인터뷰를 한 장소인 중앙예닮학교에 대해 그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인가형 대안학교다. 이곳에선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재능을 키워주는 곳"이라며 "학생들은 개인의 자질을 살려 미래의 일꾼으로 성장하게 된다"고 강조했다.또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부모와 자식 간의 괴리감이 매우 크다"면서 "부모의 욕심과 욕망에 학생들이 고통받고 있다. 진정한 교육의 가치는 학생 개개인의 인격과 정신 함양이 중요하다. 무조건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코로나19가 장기화로 접어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블루(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우울증) 또는 코로나 레드(코로나19 장기화로 분노와 스트레스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회장은 "코로나19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역기능도 있지만 순기능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4차 산업이 앞당겨졌다고 볼 수 있다"며 "기업들의 온라인 판매와 교육계의 비대면 온라인 화상 강의, 문화계의 비대면 온라인 공연 등이 바로 순기능일 것"이라고 전했다. 또 그는 "14세기에 유럽에서 번진 페스트(Yersinia Pestis·흑사병)는 약 3년 동안 2천만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을 정도로 심각한 전염병이었다"며 "당시 아무도 돌보지 않는 환자들을 목회자와 신자들이 돌봤다. 바로 흑사병에 교회가 제 역할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회는 급성장하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됐지만 페스트는 수많은 목회자의 목숨도 앗아갔다"면서 "페스트 이후 단기간에 목회자를 양성하면서 그것이 결국 교회의 타락과 몰락으로 이어졌고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됐다"고 말했다.끝으로 고 회장은 경기도민과 교인들에게 "현대 사회는 개인의 소유욕과 물질 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죽으면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부를 축적한다고 걱정이 없을 수는 없다. 다만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서로 베풀고 나눈다면 이 사회가 좀 더 밝게 나아가지 않을까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 되고, 새로운 시대 목회사역에 도움이 되며, 신나고 즐거운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주의 영광을 드러내고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의 우리를 통해서 갈 길을 잃은 이 땅에 불을 밝히고 거룩한 흔적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고명진 회장은?▲ 수도침례신학교 학사 ▲ 성결신학대학원 석사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 ▲ 리버티신학대학원 명예박사 ▲ 기독교한국침례회 중앙교회 담임목사 ▲ (사)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 학교법인 예닮학원 이사장 ▲ 수원중앙복지재단 이사장 ▲ 침례신학대학교 특임교수 ▲ H-net 아카데미 이사장 ▲ 극동방송 이사고명진 (사)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용인 중앙예닮학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위기를 잘 극복하고 목회자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021-02-02 신창윤

[인터뷰…공감]'올시즌 끝으로 마침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함석훈 팀 아나운서

# 원래 직업은 KBS공채 출신 탤런트'허·동·택'과 중앙대 함께 다녔고 평소에도 농구 관심야구장도 아나운서 없던 시절 프로 출범과 함께 마이크'이름 없이 등번호만' 얼굴과 매치 안돼 시행착오도# '내 인생의 모든 것' 즐거운 농구우승경험 없지만 평균관중 2위… '19년째 동고동락'가족같은 팬에 선수·프런트와 유대… '러브콜' 거절무관중 경기에 속상…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 떠올라인천을 연고로 하고 있는 남자 프로 농구단 전자랜드 엘리펀츠에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2007년 프로에 입문해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서만 500경기 이상을 소화한 주장 정영삼 선수와 2009년부터 팀을 이끌고 있는 유도훈 감독, 농구팬 사이에서 이른바 '삼산동 우미관 형님'으로 불리는 삼산월드체육관 경호업체 김광구 대표 등이다. 전자랜드 엘리펀츠 홈 경기장의 장내를 뒤흔드는 목소리도 2003년부터 변하지 않고 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전자랜드 앨리펀츠 함석훈(55) 아나운서다.전자랜드가 올 시즌을 끝으로 프로농구단을 운영하지 않기로 하면서 전자랜드 엘리펀츠란 이름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햇수로 19년째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동고동락한 함 아나운서는 "올 시즌에는 농구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감사합니다'란 말을 많이 전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로 팬들과 함께할 수 없어 매우 안타깝다"며 "화면으로 경기를 접하는 팬들이 체육관의 생생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함 아나운서의 원래 직업은 배우다. KBS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야망의 전설'과 '야인시대' 등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1997년부터 농구장 아나운서란 또 다른 직업을 갖게 됐다. 당시는 프로야구 경기장에도 장내 아나운서가 없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함 아나운서는 "어릴 때부터 농구를 좋아했다. 허재와 김유택, 강동희 선수 등과 같은 시기에 중앙대학교를 다녀서 평소에도 농구에 관심이 많았다"며 "우연한 기회에 전국 대학교 응원대전 사회를 보게 됐는데, 현장에 있는 관계자가 '곧 출범하는 프로농구 장내 아나운서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해 매우 생소한 농구장 아나운서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프로농구 장내 아나운서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함 아나운서도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프로농구 초창기에는 유니폼에 선수 이름 없이 등번호만 적혀 있었다"며 "선수 얼굴과 등번호가 매치되지 않다 보니, 선수들의 플레이를 관중들에게 정확히 알려주기 어려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이때부터 함 아나운서는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관찰해 별명을 붙여주거나 경기 장면을 설명해주는 추임새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그를 대표하는 유행어 '사랑의 3점 슈터 정인교'와 '뜨리 뜨리 뜨리, 뜨리 포인트!'(3점 슛이 성공할 때마다 내뱉는 추임새) 등이다. 함 아나운서는 "현장에 온 관객에게 경기 상황을 임팩트 있게 설명하고 선수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 했던 말들이 많은 농구팬에게 사랑받게 돼 정말 기쁘다"고 웃으며 말했다.전자랜드 엘리펀츠는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우승 경험이 없다. 그럼에도 많은 팬이 경기장을 찾아 열성적인 응원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리그가 중단된 2019~2020시즌 전자랜드 엘리펀츠 경기당 평균 관중은 4천257명으로, 10개 구단 중 2위를 기록했다.함 아나운서는 전자랜드 엘리펀츠 팬들에 대해 "끈끈한 정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수도권 지역이란 특성 때문일지 몰라도 인천 지역 팬들은 창원, 부산, 전주 등 비(非)수도권 팀 관중들만큼 흥이 많거나 열정적이지 않다"면서도 "전자랜드 팬들만의 가족과 같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프로농구 초창기부터 경기장을 찾던 팬들이 많다"며 "혼자 오던 팬들이 결혼해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들을 데리고 경기장에 오는 모습들을 보면 뿌듯한 생각도 든다"고 했다.국내 프로농구에서 가장 인기 많은 아나운서다 보니, 많은 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고 한다. 이를 거절할 수 있었던 것도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팬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함 아나운서는 "플레이오프에서 우리 팀과 대결했던 다른 구단 관계자가 이적 제의를 한 적도 있다"며 "비즈니스적으로 생각하면 더 많은 돈을 주는 팀으로 옮기는 게 맞지만, 삼산월드체육관을 찾아주는 관중들이 눈에 밟혀서 다른 팀으로 가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관중들과 직접 만나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다음 시즌에도 삼산월드체육관에서 만나자는 '무언의 다짐'을 주고받은 것 같다"며 "선수와 사무국, 코치진과도 끈끈한 유대감이 있지만 우리 체육관을 방문하는 수많은 팬 덕분에 19년간 이곳에서 일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지난해 미국 프로농구(NBA)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는 전 세계 스포츠팬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다큐멘터리 제목인 더 라스트 댄스는 시카고 불스가 마지막 우승을 거머쥔 1997~1998시즌을 앞두고 당시 감독이던 필 잭슨이 내건 슬로건이다. 이 시즌 이후 구단이 리빌딩(Rebuilding)을 하기로 결정하자 마이클 조던과 스코티 피펜, 데니스 로드맨을 주축으로 한 선수 구성으로는 마지막 시즌임을 알린 메시지다. 올 시즌을 끝으로 구단 운영을 마무리하는 전자랜드 엘리펀츠도 팬들과 함께 마지막 춤을 추고 있다. 전자랜드 엘리펀츠는 'All of my life(내 인생의 모든 것)'란 슬로건을 내걸고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함 아나운서를 포함한 구단 관계자들도 선수들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함 아나운서는 "올 시즌이 시작하기 전부터 경기장을 찾는 관중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놓자는 마음을 가졌는데, 코로나19로 무관중 경기가 계속돼 속상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전자랜드 엘리펀츠 아나운서로 선수·관중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이 하나씩 생각난다"며 "전자랜드 엘리펀츠란 이름으로 뛰는 마지막 경기까지 팬들이 즐겁게 농구를 관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함석훈 팀 아나운서는?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함석훈 아나운서는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원주 나래 블루버드'로 팀 아나운서를 시작했다. 2003년부터 19년 동안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홈 경기장인 삼산월드체육관을 찾은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함석훈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팀 아나운서는 "'전자랜드 엘리펀츠'라는 이름으로 치르는 마지막 경기까지 팬들이 즐겁게 농구를 관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21-01-26 김주엽

[인터뷰…공감]'전국 두번째 규모' 경기도건축사회 이끄는 정내수 신임 회장

베이비부머세대 건축사들 그때 많은 걸 보고 배워 부와 지식 축적공고 졸업후 실습생 거쳐 '라이선스'… 도면부터 현장까지 섭렵용인 회장 시절 사회공헌활동비 10배로… 재수끝에 경기도회 입성'사람들과 함께 볼수 있는 건축물' 마음가짐 연장선상 활동 강조월 매출이 200만원이 채 안 되는 사업자가 열 명 중 두 명 꼴.(2017년 국정감사) 전문직으로 일컬어지는 '사(士)자 돌림' 직업 중 가장 연봉이 낮은 직업. '건축사'를 수식하는 부정의 말들은 많다. 지난해 2차례 건축사 시험을 통과한 인원은 2천298명(1천306명·992명)으로 2016년 456명의 합격자를 냈던데에 비해 불과 5년 새 5배 이상이 불었다.일감은 늘지 않았는데 배출되는 건축사는 크게 늘었고, 이 때문에 평균 사업소득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건설붐의 혜택을 보며 자리를 잡은 기성세대 건축사와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1인 건축사사무실의 격차는 어느 때보다 크다. 1천800명 회원을 보유한 전국 두 번째 규모의 지역건축사회를 이끌게 된 정내수 경기도건축사회장은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내내 그는 '책임'을 강조했다. 선배 건축사로서의 책임, 구체적으로는 '황금기'를 보낸 선배로서의 책임이었다."지금 막 건축사 시험을 통과한 후배 건축사들에게 무엇인가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새로운 업역을 개척하지 않으면 지금 포화된 시장 속에서 가망이 없어요. 지금까지 안 해 왔지만 충분히 해볼 만한 업역을 찾아서 회원들에게 소개하는 게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배출되는 건축사의 수가 늘며 과다 경쟁이 발생했고, 이는 건축사 1인당 평균 소득이 3천870만원이란 상황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의사와 변호사가 각각 1억원·2억원이 넘는 소득을 거두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최근 열린 대한건축사협회장 선거에서도 이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건축사계의 최대 과제는 회원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신진 건축사'·'1인 건축사'를 지원하는 것이 됐다. 이들이 어떻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인지, 그 과정을 건축사회가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가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정 회장은 신진 건축사와 1인 건축사를 지원하는 것이 협회의 "목표이자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상황은 더 악화될 겁니다. 55세 이상이면서 자리를 잡은 선배 건축사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건축사를 시작한 후배들을 아우르고 융화시키는 게 숙제"라고 했다.건축사가 언제나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정 회장은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부터 아시안게임을 치른 2002년까지를 건축사계의 '최대 호황기'라고 설명했다."88년 서울올림픽부터 전국적으로 건설붐이 일었어요. 그때는 안 되는 건축사 사무실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오픈만 하면 무조건 잘 되던 시절이었어요. 그때 사무실을 하던 사람들은 직업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죠. 나이로 치면 회원 중에서도 50대 중반 이상 세대인데 그 선배 세대 건축사들은 때를 잘 타고 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때 정말 많은 걸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 건축사들은 부는 물론이고 많은 현장을 통해 지식도 축적할 수 있었어요. 사실 지금 라이선스를 따서 문을 여는 건축사들은 운이 없다고도 볼 수 있죠. 안타깝게 생각합니다."현업에 종사하는 40대 중반 이후 나이의 건축사들도 황금기를 맛보지 못했다. 수요(현장)는 정해져 있는데 공급(건축사)이 증가하다 보니 일거리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사실은 정 회장도 건설 붐의 절정에선 살짝 비켜난 사람이다. 공고를 졸업하고 건축계에 발을 들였을 때가 1981년. 용인의 한 건축사사무소에서 실습생으로 일하면서다. 정 회장은 "공고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자연히 건축사 사무소에서 일하게 됐다"고 회상했다.당시 용인에 고작 3곳밖에 없었던 건축사 사무소는 현재 250여곳으로 불어났다. 논과 밭 일색이던 곳이 도시로 상전벽해했고, 건축사 정내수도 이 과정에서 성장한다. "저는 실무로 건축사 라이선스를 딴 사람이죠. 1981년에 들어가서 1991년에 실장이 됐고, 건축사 자격증은 2001년에 땄으니까요. 용인은 장점이 계획부터 시작해서, 말하자면 처음 도면부터 시작해서 (모든 분야를)섭렵할 수 있다는 데 있어요. 다른 지역은 토목을 하는 사람, 구조를 하는 사람이 다 나눠져 있어요. 그런데 용인은 도면 그리는 것부터 현장까지 다 보기 때문에 토털 시스템을 배우기 좋았어요."정 회장은 경기도 회장이 되기 전, 용인 지역 회장을 4년 동안 역임했다. 사회에 첫발을 딛은 것도 용인이었고, 용인에서 건축이라는 꿈을 이뤘기 때문에 자연히 이르게 된 자리였다.경기도건축사회장 선거는 지난 2017년 이후 2번째다. 그는 재수 끝에 회장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도 '후배들을 위해'라는 마음으로 선거를 치렀다고 한다.용인 회장으로 있으며 400만원이었던 사회 공헌 활동 비용은 4천만원으로 10배가 증가했다. 건축사회가 이익집단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이를 통해 매해 김장을 천포기씩 담갔고, 적을 때는 두 채 많게는 여섯 채까지 차상위계층의 집을 고쳤다. 보수 현장에는 건축사들이 직접 땀을 흘리며 작업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연탄을 돌렸고, 장학금도 마련해 사회로 환원했다.정 회장은 "건축사들도 이런 활동을 한다는 것을 지역사회에 알리고 싶어요. 건축사의 근본 마음은 후대에 물려줄, 사람들과 함께 볼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돈만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에요. 사회 공헌 활동도 그런 마음가짐의 연장선에서 펼치는 것이죠"라고 말했다.이어 "이익집단이 아니라 사회와 함께하는 집단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요. 경기도건축사회 산하 23개 지역 협회가 있는데 사회 공헌 비용을 다 합치면 1억원이나 됩니다. 매년 1억원씩 사회에 쓰고 있는데 그런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아쉽습니다. 더 알리고, 더 많이 사회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였다.정 회장은 선거에서 '일하는 회장', '섬기는 회장', 그리고 '매일 출근하는 회장'을 약속했다. 그는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좋은 시절을 보낸 선배로서 후배들이 새로운 업역에 접근하게끔 도움을 돌려주고 싶고, 건설붐이란 사회 현상으로 성공한 만큼 사회에 봉사와 헌신을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갓 고등학교를 졸업해 혈혈단신으로 용인에 발을 내린 정 회장은 물려받은 유산 없이 맨몸으로 성공을 거뒀다. 40년 전 건축사 사무실의 실습생 청년은 이제 경기도건축사회를 이끄는 성공한 건축사가 됐다. 그는 "건축사들이 꿈꾸는 게 자기 집을 자기가 짓는 거거든요. 저는 용인에 제가 지은 집에서 거주합니다. 어찌됐든 나름의 성공을 거둔 셈이죠"라고 말했다.정 회장은 "건축이라는 직업에 돌려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고민합니다. 제가 회장으로 재직하는 3년 동안 많은 변화는 아니겠지만, 변화의 시작 만은 제가 제 손으로 이뤄내고 싶습니다"라고 강조했다.글/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정내수 회장은?▲ 전라북도 익산 출생▲ 이리공업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 건축사사무소 데카 ▲ 경기도건축사회 28대 회장최근 제28대 경기도건축사회 회장으로 취임한 정내수 건축사는 '일하는 회장', '섬기는 회장', 그리고 '매일 출근하는 회장'을 모토로 사회에 막 진출한 후배 건축사가 새로운 업역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21-01-19 신지영

[인터뷰…공감]'한지생각이다(주) 운영' 이미자 인천 6호 공예명장

독학으로 시작… 김포서 활동하다 배다리상가에 공방 '둥지'가구·조명·지갑 등 다양… 전통문양 선호 오랜시간 정성 들여페트병 샹들리에 등 재활용 공예품만으로 전시회 올해 목표'선하고 똑똑한 종이' 강조… 제조공장·체험관 등 산업화 '꿈'한지(韓紙)는 '착한 종이'다. 세월이 갈수록 결이 고와지는 매력이 있는 이 종이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땅에서 자란 닥나무 껍질을 고유의 기법으로 만들기 때문에 나무 근본을 훼손하지 않는다. 과거부터 중국과 일본의 종이보다 우리 종이를 으뜸으로 쳤다고 한다.인천 중구 신포동에서 한지공예 갤러리·공방 '한지생각이다(주)'를 운영하고 있는 이미자 명장은 30년 넘게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고 실용화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 명장은 최근 인천시 공예명장(인천 6호)으로 선정됐다. 그는 "단지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명장이라는 이름까지 얻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우리 전통 한지가 실생활 곳곳에 사용될 수 있도록 확산하는 일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이 명장은 고등학교 시절 취미 삼아 박공예를 하다가 한지의 매력에 빠져 1980년대 후반부터 한지 공예를 독학으로 시작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관련 서적을 사다가 종이를 찢고, 오리고, 붙이는 작업을 스스로 터득해 자신의 것으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처음엔 김포에서 전시회를 열고, 공예 강좌를 운영하면서 유명해졌고, 20여년전부터 인천에 공방을 차리고 공예 활동과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김포에서 작업을 하는데 어느 날 신문에 당시 최기선 인천시장이 배다리 지하상가를 인사동처럼 공예 거리로 만들겠다고 발표를 한 걸 봤어요. 세상 물정 모르던 시절에 뉴스만 믿고 요즘 말처럼 은행 돈을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았다는 뜻)'해서 배다리 상가에 공방을 차렸어요."결과적으로 배다리는 인사동처럼 되진 않았지만 이때부터 이미자 명장은 인천에 자리를 잡고 한지 공예품을 만들었다. 지금 신포동에 공방을 차린 지는 12년 정도가 됐다고 한다.전통 한지는 닥나무 껍질에서 나오는 섬유질을 한지 틀에 띄워 만든다. 섬유 조직이 우물 정(井)자 배열이라 질기고 단단하다. 조선 시대 이규경(李圭景)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고려의 종이는 천하에 이름을 떨쳤는데, 그것은 다른 원료를 쓰지 않고 닥나무만을 썼기 때문이다. 그 종이가 매우 부드럽고 질기며 두꺼워서 중국 사람들은 고치종이라고도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이 명장은 제조공장에서 한지를 받아 고유의 문양을 새기고, 이를 활용해 각종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가구부터 조명, 지갑, 가방, 벽지, 바구니, 인형, 액세서리 등 종류도 다양하다."저는 우리 전통 문양을 좋아해요. 한지에 전통 문양을 새겨 넣고 그걸 가공해 실용품을 만들어요. 종이라서 내구성이 나쁠 것이란 인식이 있지만, 오히려 가죽처럼 질기고 단단해서 손으로 절대 찢어지지 않아요."공예품을 만드는 일은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먼저 문양이 새겨진 동판에 원하는 색깔의 한지를 대고 밀가루 풀을 바른다. 그리고 단단하고 넓은 유화용 붓으로 수백~수천번을 내리친다. 그래야 종이에 풀이 잘 먹어 단단해지고, 문양이 잘 새겨진다. 이 작업을 4~5번 반복해 여러 겹의 한지가 한 몸처럼 붙으면 비로소 공예품에 사용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이 명장은 훈민정음과 도깨비 문양, 전통 기와 문양 등을 주로 활용한다. 한지의 색은 청(靑)·적(赤)·황(黃)·백(白)·흑(黑)의 오방색을 주로 사용한다. 우리 전통 색으로 음양오행 사상을 기초로 한다. 황은 중앙, 청은 동쪽, 백은 서쪽, 적은 남쪽, 흑은 북쪽을 말한다. 나쁜 기운을 막고 좋은 기운을 들이는 의미의 색으로 전통 공예품에 많이 사용된다."가죽은 칼로 그으면 스크래치가 생기지만 풀을 먹인 한지는 흠이 나지 않아요. 그래서 눈으로만 감상하는 예술작품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실생활에 사용되는 소품으로 가공할 수 있는 거에요. 전통 공예품은 오히려 외국인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작품이라 한글 무늬를 선호하고 있어요. 'ㄱ', 'ㄴ', 'ㄷ' 모양으로 만든 브로치도 큰 인기를 끌었어요."그는 '전통'과 '정통'은 다르다고 한다. 전통 한지공예라고 해서 꼭 옛것 그대로의 정통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싫다고 했다. 무형문화재처럼 수백년전 전통 기술을 그대로 보전하고, 남기는 것이 아니라 전통 기법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활용법을 찾아가는 게 더 좋다고 했다.공예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 문제다. 시간과 정성이 투입되는 만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판매가 저조하기 때문이다. 이 명장은 공방에서 차(茶)도 팔고, 갤러리도 여는 등 유인책을 펼쳤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악재를 만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올해 다양한 전시와 판로 개척을 계획하고 있다."올해는 재활용품을 활용한 한지 공예품에 도전해보려고 해요. 공중화장실의 휴지 심처럼 생긴 지관을 활용해 연필꽂이를 만들기도 했고, 페트병을 한지 공예와 접목해 샹들리에 조명을 설치미술처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이런 재활용 공예품만 따로 모아서 전시회를 여는 게 올해 목표에요."그는 한지는 '선하고 똑똑한 종이'라고 했다.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자연에 이롭고, 항균 효과도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도 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지 섬유를 활용한 장판과 벽지, 옷, 양말, 이불이 개발되기도 했다. 그는 한지만을 활용한 체험방을 만들어 한지의 산업화를 이루는 게 꿈이라고 했다."한지 산업은 원주와 전주를 최고로 치는데 인천은 아직 한지 관련 부분은 불모지나 다름없어요.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에 한지를 만들 수 있는 닥나무 숲을 만들고, 바로 옆에 한지 제조공장과 공방, 체험관을 만들어서 인천공항에 내리는 외국인들이 꼭 들렀다가 가는 명소를 만들고 싶은 게 꿈이에요. 경제적 투자가 이뤄져야겠지만 일단 꿈은 크게 가져 보려구요."이 명장은 최근 '제5회 인천시 공예명장' 선정 심사에서 공예명장으로 선정됐다. 3번째 도전 끝에 명장의 영예를 얻었다고 한다. 각 군·구에서 추천한 5명의 후보 중에 이 명장이 공예명장으로 결정됐다. 인천에서는 6번째로 명장의 칭호와 함께 개발 장려금 지급, 국내외 전시회 참가 우선 선정의 기회가 제공된다.이 명장은 "어떤 명예를 얻는다거나 대우를 받으려고 명장이 된 게 아니라 자기만족이 가장 큰 것 같아요.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어도 꾸준하게 한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저는 '개근상'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이 분야가 사양 길에 접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인천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글/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이미자 명장은?▲ 1967년 6월 출생 ▲ (사)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이사 및 인천지부장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 ▲ 전주전통고예전국대전 운영위원 ▲ 한지생각이닥(주) 대표 ▲ 1989~2019년 개인전·초대전 15회, 그룹전 40회 ▲ 1992~2020년 이태원 글로벌빌리지센터 외국인 관광객 한지체험 강의 ▲ 2011년 제14회 인천시 관광기념품공모전 대상 ▲ 2013년 제9회 청주국제공예공모전 입선 ▲ 2015년 소공인 맞춤형 성장지원사업 선정(조선종이 미래를 만나다) ▲ 2016년 제30회 인천공예품대전 대상 ▲ 2021년 인천시 6호 공예명장 선정이미자 한지공예 명장이 인천시 중구 신포동 소재 공방에서 한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 명장은 "한지 공예품이 실생활 곳곳에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이미자 한지공예 명장이 가죽에 한글(훈민정음)문양 한지를 덧대 만든 지갑을 꺼내 보이고 있다. 한지는 가죽보다 단단하고 질겨 오래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2021-01-12 김민재

[인터뷰…공감]'정계은퇴 2년' 前 경기도지사 남경필 빅케어 대표

# 정치와 '확실한 거리두기'33세에 시작… 5선 국회의원 등 거쳐공인으로서 높은 기준에 맞춰 살아와그때나 지금이나 목표는 '행복 찾기'# 스타트업 도전도 '연정'젊은 창업자·전문가와 손잡아 시너지신뢰 활용 기업에 활력 불어넣는 역할창업 고민하는 분들에 '혼자 하지 마라'# 헬스케어 이어 '마음케어' 준비작년 코로나 위험도 자가 평가앱 선봬유저 제공 정보 담아 세밀한 서비스로디지털 백신 개발… 건강한 삶에 도움경기도지사를 퇴임하고 2년여만에 다시 만난 남경필 전 도지사는 정치인의 정장을 벗고 스타트업을 상징하듯 단정한 캐주얼 차림이었다. 단순히 스타일에 변화를 준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삶의 무대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느낌을 줬다. 5선 국회의원이자 전 도지사로서의 답변을 요구받는 질문에는 거리를 두면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빅케어' 대표로서 할 수 있는 대답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남 대표는 "많은 분들이 편안해 보인다고 하신다"며 "33살에 정치를 시작해 50대 중반까지 20년 넘는 시간을 공인으로서 높은 기준에 맞춰 살아왔지만 지금은 기업인이니까 그 기준점이 조금은 낮아져서 아닌가 싶다"고 웃었다.은퇴 선언 이후 정치와는 확실히 거리를 두고 있는 남 대표는 "지난해 총선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설명했더니 별다른 말 없이 돌아가셨다"며 "사람은 가슴이 뛰고 행복한 일을 해야 한다. 지금이 그렇다"고 스타트업 빅케어에 집중하고 있음을 시사했다.남 대표는 그러면서 "정치할 때나 지금이나 목표는 비슷하다"며 "정치할 때 정책을 가지고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해주자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기업을 통해 만들어낸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차이일 뿐"이라고 덧붙였다.#정치 은퇴 선언남 대표는 "'내가 여기(정치)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구나'하는 것을 절감했다"며 "정치가 갈등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해결하고 다른 생각을 혼합하는 게 정치라고 생각했는데 도지사 퇴임 후 정치가 굴러가는 모습을 보니까 내가 생각한 정치와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어 은퇴를 선언했다"고 했다.이어 "연정도 해봤고 개인적으로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기 때문에 정치에 미련이 없다"면서도 "다만, 세상이 이렇게 급격하게 변하고 있어 커다란 파고가 닥쳐오는 시기에 국내 내부적으로 서로 통합되지 못하는 것 같아 시대를 바라보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그가 정치 은퇴를 선언한 뒤 눈을 돌린 것은 스타트업이었다. 도지사 재임 당시에도 스타트업캠퍼스와 경기도주식회사 등과 같은 플랫폼 생태계에 관심을 보였던 그가 직접 회사를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2012년에 경제민주화실천모임 대표를 지내면서 퀵서비스 배송 기사들의 처우문제 해결에 나섰을 때, 정치에 몸담으면서 플랫폼 경제를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라고 눈여겨봤을 때, 스타트업 기업 육성 지원 정책을 시행할 때 등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그를 스타트업 창업의 길로 이끌었다.남 대표는 "정치에서는 이겨야 할 상대가 있지만, 경제에서는 서로 가진 강점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며 "우리 고객 중에는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다. 정치할 때 못한 통합이 경제에서는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연정'의 연속, 스타트업스타트업 대표로 경제계에 뛰어들었지만, 정치인 남경필의 연정은 이어지고 있다. 남 대표는 "젊은 스타트업 창업자와, 또 전문가와 연정을 하고 있다"며 "실리콘밸리에 성공한 기업들도 처음에는 2~3명이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기업을 키워온 것처럼 '신뢰'와 '편의', '전문성'이라는 세 부분이 만나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신뢰·편의·전문성 중에 남 대표가 맡은 부분은 '신뢰'다. 살아오면서 좋은 관계를 맺게 된 많은 사람들과의 신뢰를 활용하고 그간 쌓은 노하우를 활용해 기업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젊은 스타트업 창업자는 서비스에 편의성을 더하고 전문가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해 하나의 서비스를 개발한다.남 대표는 지금 도지사 시절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31살의 젊은 창업자와 함께 빅케어를 이끌어가고 있다. 거기에 사무실 한쪽, 빼곡히 적혀있는 사업 구상안 사이로 등장하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이름은 남 대표가 스타트업에 대해 얼마나 많은 열정을 쏟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남 대표는 "창업을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런데 혼자하지 말아라'이다"라며 "열정과 기술을 읽는 능력을 갖춘 젊은 이들과 협업해서 서로 모자란 것을 채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사람들이 느끼는 욕망과 공포는 비슷하기 때문에 자신을 잘 성찰한다면 좋은 사업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며 "아이디어만 있다면 기술은 이미 나와 있고 투자할 곳을 찾는 자본도 적지 않다"고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했다.#헬스케어 스타트업 '빅케어'남 대표는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이 한창 주가를 올릴 때 그 가능성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기업과 기업을 잇는 플랫폼을 만들어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든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의 빅케어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빅케어는 다가올 시대에는 '헬스케어'가 핵심이 될 것이라는 남 대표의 미래관이 담겼다. 자연환경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슬로건인 'Go Green'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Go Life'로 바뀔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빅케어는 지난해 코로나19 위험도 자가 평가 앱을 선보였다. 건강검진 등으로 개인이 갖고 있는 데이터를 모아 스스로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은 물론, 주변 환경이 얼마나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지에 대해 평가하고 그 결과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빅케어는 세계 25만명 코로나19 환자의 기저질환 데이터를 모으고 지방자치단체가 공개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위치 정보를 얹었다.올해는 '마음케어'를 준비하고 있다. 곧 시범서비스에 들어갈 마음케어는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심신을 달래줄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유저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담아 더욱 세밀한 서비스로 키워간다는 계획이다.남 대표는 "빅케어는 디지털 백신 개발을 추구하고 있다"며 "건강데이터를 가지고 예정된 불행(질병·사망 등)을 막고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이어 "약을 투여하지 않고도 사람들을 건강하게 해주는 플랫폼을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덧붙였다.마지막으로 '기업가가 정치에 도전하는 경우는 많지만 그 반대는 거의 없지 않았냐'는 질문에 남 대표는 "거의 처음 아닐까요? 그러니까 더 성공해야죠"라는 말로 스타트업 대표 남경필이 경제계에서 드러낼 존재감을 예고했다. 글/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남경필 대표는?▲ 2014년 7월~2018년 6월 제34대 경기도지사▲ 2012년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대표▲ 2010년 9월~ 2011년 11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2008년 한나라당 경기도당위원장▲ 1998년 7월~2014년 5월 제15·16·17·18·19대 국회의원남경필 빅케어 대표는 최근 서울 삼성동 그의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비록 정치에서는 은퇴했지만 정치인이었을 때와 스타트업 대표로 있는 지금, 방식은 다르지만 세상을 행복하게 하려는 것과 '연정'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2021-01-05 김성주

[인터뷰…공감]'수인선 꼬마열차' 인천에 기증한 김의광 목인박물관 관장

#25년간 소장한 협궤열차운행중단 소식 듣고 폐기직전 3량 매입사업수완 없어 활용 못했지만 팔지 않아'송도역 복원 테마공원' 딱맞는 타이밍#목인 1200점·석물 800점 소장외국인 친구 보유 한국유물에 문화충격퇴근후 골동품가게서 모아 '박물관 완성'상여 판인형 '우리만의 문화' 연구 준비수인선이 지난 9월 완전히 개통하며, 수도권 남서부를 잇는 광역철도로 재탄생했다. 운행 중단 25년 만에 표준궤도의 복선 전철로 이어진 것이다. 옛 수인선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3월 개통했다. 인천~수원까지 50여㎞에 17개 역이 설치됐으며, 시점에서 종점까지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수인선은 일제의 수탈 목적으로 건설됐다. 소래 등지의 소금을 비롯해 수원~여주 간 철도(수여선)와 연결돼 여주와 이천의 곡창지대에서 나는 쌀을 인천항까지 운반하는 데 이용됐다. 특히 수인선 협궤열차는 궤도 너비가 762㎜에 불과했다. 표준궤도(1천435㎜)의 절반 정도였다. 후일에 꼬마열차 혹은 소철(小鐵) 등의 애칭이 붙었던 이유다.인천과 수원을 오가며 인천시민과 경기도민의 애환을 실어나른 꼬마열차는 1995년 12월 운행을 중단했다. 이후 대전 철도차량정비창에 보관됐다. 이를 김의광 목인박물관 목석원 관장이 3량의 열차를 매입해 충북 진천에 보관했으며, 김 관장의 기증으로 열차는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와 시민 품에 안겼다. 꼬마열차의 객차 1량은 지난달부터 인천시립박물관 우현마당 한편에 자리를 잡고 서 있다. 열차 외부는 항시 볼 수 있으며, 내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 정각에 10분 동안 개방한다. 시립박물관 안내 데스크에 접수하면 개방 시간 동안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다.열차 내부엔 '1969 인천공작창'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다. 1969년 인천 동구 화수동에 있었던 인천공작창에서 제작된 걸로 볼 수 있다. 열차는 나이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인 중장년의 시민들을 추억으로 이끌고 있다. '타임머신'과도 같은 열차를 인천에 기증한 김의광 관장을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목인박물관 목석원에서 만났다. 김 관장은 "마침 오늘 오전에 연수구로 갈 협궤열차 2량의 운반에 대해 서명을 했으며, 내일 보낼 예정"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참고로, 23일 김 관장의 품을 떠난 협궤열차 2량은 화성시에 있는 업체로 이동해 보존처리 과정에 들어갔다. 인천 연수구는 내년 봄께 옛 수인선 송도역 역사의 복원사업을 마무리하고 보존처리를 완료한 열차 2량이 전시된 '문화공원'을 조성할 방침이다.김 관장에게 기증까지의 전말을 들어봤다."협궤열차의 운행이 중단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폐기 직전의 열차 3량을 매입했습니다. 비용이 꽤 나갔어요. 운반비도 만만치 않았죠. 당시 기차나 비행기, 배 카페 등이 유행할 때였고, 매입하면서 이런 부분을 염두에 뒀어요. 그러나 25년 동안 소장하고 있다가 얼마 전 인천에서 이 열차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았고, 아무래도 열차의 원래 고향인 인천에 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지요. 마침 연수구에서 옛 송도역을 복원해 테마공원을 만든다고 하고 시기도 딱 맞았습니다. 적재적소에 적시까지 맞아떨어졌어요. 저보다 인천시민 여러분들이 볼 수 있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그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김 관장이 아니었다면 열차 3량이 25년 동안 온전히 보전됐으며, 인천으로 고스란히 올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곧장 폐기됐거나 엉뚱한 곳으로 팔려갔다면 어떻게 사라질지 모를 일이었다. 유물에 대한 애정과 안목이 깊은 김 관장의 소유가 아니었다면 현재 인천에서 꼬마열차를 보는 건 불가능했을 터였다. 김 관장은 "사업 수완이 없어서 매입한 열차를 활용하지 못했고 팔지도 않았다"고 했지만, 겸손의 대답이라는 건 약 1만㎡ 부지(국유지 포함)에 조성된 목인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이내 알 수 있었다. 현재 실내 전시장에 1천200여점의 목인(木人)과 야외전시장에 석물(石物) 800여점이 전시돼 있다.코로나19로 휴관 중인 박물관을 김 관장과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어린 시절부터 우표를 수집하는 등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어요. 그러다 20대 중반에 외국인 친구 집을 방문했어요. 친구 집에서 우리나라 민속예술품인 반닫이를 봤지요. 한국사람인 저도 잘 모르는 유물을 보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취미로 민속예술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주)태평양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어서 퇴근 후나 주말을 이용해 골동품 가게를 찾았고, 그렇게 모은 게 박물관이 되었네요. 또한, 박물관이 있기까지 곁에서 아내(서혜숙 씨)가 많이 도와주고 응원해 줬습니다."김 관장의 민속예술품 사랑엔 부친인 김일환(1914~2001) 선생의 영향이 컸다. 김일환 선생은 국군 창군의 산파 역할을 했으며,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후 이승만 정부에서 상공부 장관, 내무부 장관,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아버지께선 한국전쟁 당시 한국은행에 보관된 금괴와 경주에 있는 국보 15점, 보물 124점을 미국으로 반출시켜서 전쟁의 피해를 비껴가게 하셨습니다. 전쟁 당시 국방부군수경리국장이셨어요. 반출해 미국으로 옮겨졌던 금괴는 40여년 후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할 때 출자금으로 충당되었고, 국보는 미국 순회전시 후 돌아왔죠. 제2대 국립중앙박물관학회 회장(1984~1987)을 역임하셨고, 영부인이었던 프란체스카 여사에게서 선물로 받은 병풍 그림 '해학반도도'(서울시유형문화재 제420호)를 이화여대박물관에 기증하셨습니다."경인일보 취재에 미리 준비한 듯 인천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상공부 장관으로 일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인천의 한국중공업과 한국유리 등을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월미도와 송도유원지도 갔었고요. 또한, 아내를 대학 1학년 때 만났는데, 당시 서울역 근처에서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를 타고 인천에 가서 데이트를 즐긴 경험도 있어요(웃음). 태평양 돌핀스 야구단 대표이사로 재직(1984~1987) 때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때의 기억도 또렷합니다."박물관을 다 돌아볼 즈음에 김 관장은 상여의 판 인형(목인)에 대한 자료(연구)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상여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예요. 상여의 인형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어른들에겐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우리 민족이 미적으로도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죠. 작지만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보유하고 있다는 부분에 자부심을 느끼며, 앞으로도 우리 문화를 알려갈 것입니다."인터뷰 후 박물관을 나서는 기자에게 김 관장은 "야외 전시장에 자리한 다양한 석물들은 봄이면 7만여 그루의 철쭉꽃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며 "봄에 꼭 놀러 오라"고 했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김 관장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누군가 그런 것(목인)들을 모으지 않았다면 쓰레기통 비슷한 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지 않겠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목인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것'입니다." 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인천시 제공■ 김의광 관장은?△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정외과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 (주)태평양에 입사했으며, 태평양 장업(주) 전무, 태평양 돌핀스 야구단 대표이사, 장원산업(주) 회장을 역임했다. △2004년 직장 생활 마감 후 이듬해에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목인박물관을 열었다. 2018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제23대 대광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재)대광발전재단 이사장, (재)목인문화재단 이사장, (사)한국사립박물관협회 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김의광 목인박물관 관장은 평소 "유물은 적재적소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옛 수인선 열차의 목적지 표지판을 든 김 관장은 "수인선 협궤열차가 이번에 인천으로 간 경우는 적재적소와 함께 적시까지 맞아떨어진 경우이며, 보다 많은 인천시민들께서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2020-12-29 김영준

[인터뷰…공감]'나눔 기쁨' 김경호 택시기사·홍계향 할머니

#'희망나눔캠페인 선행' 김경호 택시기사이왕 하는 거 좀 덜 먹으면 되지 싶어 더 보태샐러리맨 시절 라디오사연 듣고 생활비 지원퇴사후 집안사정이 힘들어 한동안 못하기도능력 닿는대로 여유 되는대로 이발봉사 포부#'지자체에 유산 기부' 홍계향 할머니공장일·야탑역 청소·노점장사 안가리고 다해부잣집 파출부 남은 밥 '수모' 지금도 못 잊어자식에 영감까지 죽고나니 4층 건물 '미련없이'집문서 훔쳐갈까 겁났는데 지금은 안심이 돼어린 시절 주말 저녁마다 까르르 웃음이 터지는 코미디 프로그램 대신 즐겨보던 것은 '사랑의 리퀘스트'였다. 내 또래쯤 된 아이가 아픈 엄마와 어렵게 살아가는 이야기, 지적장애를 가진 아빠가 아이들을 키우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사연으로 방송되면 눈물 콧물 흘리며 집 전화를 들고 TV 앞에 서 있었다. 전화 한 통을 할 때마다 2천원을 기부할 수 있었는데, MC들이 '지금 전화주세요'라고 외칠 때마다 전화를 걸고 또 걸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홀린 듯 몇천원의 전화를 하고 나야 왠지 모를 뿌듯함에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었다.아마도 비슷한 기억들이 있을 테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어릴 때 심심찮게 기부를 실천해왔다. 크리스마스 때 '크리스마스 실'을 사면 결핵 환자를 도울 수 있었고, 가정의 달이 되면 학교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은 일이나, 어떤 때는 집에서 쌀 한 봉지씩을 가져와 근처 노인정이나 보육시설에 가져다주는 활동도 기억에 남는다.그때는 그것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 것을 나누고 돌아설 때 가슴에 남는 풍요로움만 기억에 남을 뿐이다.이렇게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기부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 것을 이웃에게 나눌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었다.그 시절 나눔을 지금도 실천하는 가장 보통의 이웃들이 여기 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지친 연말, 차가워진 구세군 냄비를 따뜻하게 감싸 안은 이웃들의 이야기다.■ 수원 택시기사 김경호씨"아휴, 나 같은 사람이 기삿거리가 되나요?"인터뷰 요청에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김경호(64)씨는 택시운전사다. 개인택시 면허를 취득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뜻깊은 해이지만, 유독 어렵고 힘든 해이기도 했다. 그래도 김씨는 수원 시민의 발이 돼 온 지난 10년을 조금 특별하게 기념하고 싶었다."수원 시민들 덕분에 제가 그래도 10년을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가정도 지키고, 아이들도 잘 키웠잖아요. 그래서 뭔가 보답을 하고 싶었어요."그는 경기사랑의열매 희망나눔캠페인에 100만원을 기부했다. "원래는 연탄 1천장을 사서 기부할까 고민했는데, 연탄이 한 장에 700원밖에 안 하더라고요. 그럼 70만원 뿐인데, 이왕 하는 거 내가 좀 덜 먹으면 되지 싶어서 100만원을 기부했습니다."10년을 기념하는 다른 것들도 많았을 텐데, 어려운 이 시기에 나눔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레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택시운전사로 일하기 전 23년간 삼성전자를 다닌 샐러리맨이었다.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추억은 '나눔'이었다. "회사에서 진행한 봉사활동이지만, 예전엔 수해가 많이 나니까 해마다 수해지역 복구도 나섰고 소년소녀가장 돕는 활동도 꾸준히 했어요. 또 이상하게 소비자 상담이나 서비스센터 같은 부서에서 많이 일했는데, 소비자를 직접 만나기 위해 현장에 가보면 소외된 가정들을 보게 돼요. 그럴 땐 괜히 마음이 안 좋아서 회삿돈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보상해주고 싶어 상사 핀잔 들어가며 더해주곤 했어요."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운전 중 라디오 사연을 듣고 길가에 차를 댄 후 펑펑 울었던 일이다. "엄마가 교통사고가 나서 전신불구가 됐고 6살, 2살 아이들만 남았다는 사연이었어요. 아빠는 엄마 사고 이후 행방불명이 됐고. 그래서 이 엄마가 손가락에 사인펜을 껴서 며칠동안 편지를 써 방송국에 보낸 거죠.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왜냐면 그때 우리 큰 아이가 6살이었거든요."그는 월급을 쪼개 라디오 사연의 가족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탰다. "당시는 나도 사원 시절이라 많이는 못 보내서 그게 늘 마음에 걸렸어요. 아이들 방학 때는 그 가족을 수원으로 초대해 에버랜드도 같이 가고 그랬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연락이 끊겼어요. 지금도 그 아이들이 잘 컸나 보고 싶어요."그때 끝까지 돕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린다는 김씨는 회사를 퇴직한 후 집안 사정이 힘들어 한동안 기부를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먹고 살려고 택시를 시작했는데, 벌이가 처음부터 좋진 않잖아요. 그래도 이제 아이들도 다 자기 삶을 꾸려가고, 조금 용돈도 쓸 수 있을 정도로 저축도 하니까 다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100만원 기부를 시작으로 그는 다시 나눔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꼭 얼마씩 해야지 정한 건 아니에요. 능력 닿는 대로, 여유 되는 대로 진짜 기부를 하고 싶어요. 또 손재주가 있는 편인데, 이발도 배워서 꼭 이발 봉사활동도 가보고 싶고. 내년 나눔계획을 뭘 할까 고민하는 게 즐겁습니다."■ 성남 홍계향 할머니"마음이 편해.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그게 나누는 기쁨이지."홍계향 할머니는 올해 여든여섯이다. 코로나19로 직접 만나는 일을 꺼릴까 걱정했는데, 할머니는 버선발로 마중 나와 우리를 맞았다. 연신 기분이 좋다며 미리 준비해둔 빨간색 방석도 내줬다."안 해본 일이 없지요. 공장도 다니고, 파출부도 나가고, 빌딩계단청소도 하고 야탑 지하철역 청소도 했어요. 노점 장사도 하고, 돈 벌 수 있는 일이면 그냥 안 가리고 다 했어요. 말 못할 일도 많이 겪었지.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게 어느 부잣집에 파출부 일을 하러 갔는데, 자기 다섯 식구 남은 밥 다섯 덩이를 모아서 밥을 주더라고…. 내가 없이 살지만, 참 그때 정말 기분이 그랬어. 밥을 먹지도 않고 그 집을 나왔지."젊은 시절부터 홍 할머니는 쉬지 않고 일했다. 홍 할머니의 지난 역사를 짧게나마 듣고 있자니, 그의 기부가 주는 울림이 크다.할머니는 지금 살고 있는 4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성남시에 기부했다. 유산기부다. "하나 있던 자식도 하늘로 떠나고, 영감까지 죽고 나니 사람들이 묻더라고. 이 집을 어떻게 할거냐고. 나는 배우지도 못했고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밖엔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그저 먹고 살 수 있게 해준 성남시에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집을 기증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2, 3년 전인가, 도둑이 들었는데, 그때 정말 기증하길 잘했다 생각했어. 기증하기 전엔 외출할 때 누가 집문서 가져갈까봐 겁나고 그랬는데, 지금은 안심이 돼."통큰 기부 이후에 할머니는 나눔의 기쁨을 만끽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다.2015년부터 지금까지 연말마다 진행하는 성남 사랑의 온도탑 모금활동에 꾸준히 기부한 일을 묻자 "월세 받은 돈 모았다가 내는 거지, 큰돈도 아니고 말할 것도 못 돼"라고 쑥스러워했다.그러면서 코로나19 때문에 집 앞 성남동복지회관이 문을 닫아 늘 해오던 배식봉사를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동네에 파지 줍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면 마음이 쓰여 점심 먹으려고 아껴둔 돈도 내주곤 한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밖에서 일하느라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먹을텐데…. 그래도 나는 2천원 주면 복지관에서 밥 먹을 수 있어요. 괜찮아."또 새해가 되면 빳빳한 새 돈을 은행서 뽑아 동네 아이들 세뱃돈을 챙기는 일도 할머니의 기쁨이다."꼬마들이 지나가면서 아는 척 해주고 인사도 해주고 하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아. 기부하기 전엔 몰랐는데, 기부하고 나니 아무 걱정이 없고 마음이 더 편안해졌어요. 그리고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인데 주변 사람들이 '저 할머니 좋은 사람'이라고 좋은 말 많이 해주니 그저 감사하기만 해요."인터뷰를 마치고 마주 본 할머니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진짜 어른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글/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사진/김금보·김도우기자 artomate@kyeongin.com개인택시 면허를 취득한 지 10년째 되는 2020년, 100만원이란 기부금을 선뜻 내놓은 김경호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2020.12.22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개인택시 면허를 취득한 지 10년째 되는 2020년, 100만원이란 기부금을 선뜻 내놓은 김경호씨. 2020.12.22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손주가 찾아온 마냥 취재진을 반갑게 맞은 홍계향 할머니가 쑥스러워하며 유산을 기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20.12.22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유산을 기부한 홍계향 할머니. 2020.12.22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2020-12-22 공지영

[인터뷰…공감]'언택트시대 함께사는 세상 고민' 심재선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비대면 이벤트 '119원의 기적 런' 운영… 화재 피해 형제에도 도움경제 불황 반영 '사랑의 온도' 캠페인 기간·목표액 작년보다 줄여인천 아너소사이어티 5호… 취임후 9명 가입·나눔기업 7곳 동참스스로 사업 일궈낸 '90년대생' 고액기부자 회원들에 감명 받아코로나19는 꾸준하게 이어지던 지역사회의 기부문화에까지 전파됐다.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소외된 이웃에게 닥친 매서운 겨울 추위를 시민들의 따스한 손길로 녹이는 '사랑의 온도' 캠페인 모금 기간과 목표액을 줄인 것도 코로나19 여파가 컸다. 장기화한 경기침체에 코로나19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역 취약계층의 겨울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솔직히 말해 당황스러웠습니다."올해 4월1일 취임한 심재선 제10대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이 임기 첫해를 마무리하고 있는 시점에서 밝힌 소회다. 심재선 인천공동모금회장이 전임 제9대 정명환 회장으로부터 모금회를 이끌어 달라고 제안받은 올 초만 해도 코로나19가 지금처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지리라 상상도 못했다.인천 물류업계에 40년 가까이 몸담은 기업인이자, 인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단체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해 지역 네트워크가 탄탄한 심재선 회장은 지역사회 기부문화의 중심축인 인천공동모금회장으로 적임자라 할 수 있다. 2011~2017년 인천공동모금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심 회장은 "회장 제안이 왔을 때 고민됐지만, 나눔문화 확산에 관심이 많고 지역사회 차원에서도 중요해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며 "그런데 취임할 무렵부터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고 경기마저 침체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람을 만나기가 전보다 더욱 어려워진 데다가 모금을 제안하기는 더더욱 힘든 상황이었다고 한다.이른바 '언택트(Untact·비대면) 시대', 모금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인천공동모금회는 지난 10월부터 35일 동안 인천소방본부 등과 비대면 이벤트 기부 프로그램인 '119원의 기적 런(Run)'을 운영했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각자 원하는 장소와 시간을 골라서 마라톤 코스를 뛰어 자신의 기록을 측정해 인증하는 방식인데, 참가비 일부가 인천공동모금회로 전달됐다.인천공동모금회는 119원의 기적 런을 통해 모인 기부금 1억6천200여만원으로 화재 피해 등 곤경에 처한 22가구를 도왔다. 프로그램 주제가 '119원의 기적'인 이유다. 지난 9월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한 용현동 화재 피해 형제의 가정에도 119원의 기적 런 모금액 중 일부가 의료비로 지원됐다.심 회장은 "119원의 기적 런처럼 시민들이 온라인을 통해 쉽고 편리하게 기부하는 게 중요해졌다고 생각하고 모금회 직원들과 다양한 아이디어를 논의하고 있다"며 "비대면 성금 전달식도 새롭게 도입해보려 하고, QR코드 기부 등 간편 결제 방식도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심 회장은 이어 "SNS 등 뉴미디어를 통한 홍보로 시민들과의 소통 범위도 넓히려 한다"고 덧붙였다.올해 겨울에도 어김없이 인천시청 앞 인천애뜰 광장에 지역사회 기부문화를 가늠하는 척도인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졌다. 인천공동모금회는 이달 1일부터 다음 달 31일까지 총 62일 동안 '희망 2021 나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모금 목표액은 67억2천만원으로 사랑의 온도탑은 6천720만원이 모금될 때마다 온도가 1℃씩 올라간다. 목표를 채우면 100℃를 돌파하게 된다.15일 기준 인천 사랑의 온도탑 온도는 20.83℃로 하루 평균 1.4℃씩 오르고 있어 속도가 더딘 편이다. 심 회장은 "올해 사랑의 온도 모금 캠페인은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캠페인 기간도, 모금 목표액도 지난해 모금실적의 85% 수준으로 줄였는데, 인천공동모금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그만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전반적인 상황이 엄중하다는 것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사회적 거리두기로 심 회장은 물론 공동모금회 직원들도 시민들을 직접 만날 수 없고 행사도 진행할 수 없어 캠페인을 알리기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기부자들을 만났다. 심 회장 취임 이후 인천지역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9명이 가입했고, 기업 기부 프로그램인 '나눔명문기업'에 기업 7곳이 동참했다. 올해에는 현재까지 220억원을 도움이 필요한 곳에 배분했다.심 회장은 '90년대생'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인천 아너소사이어티 140호인 황지연(26) 와이비미디어 대표와 141호인 김한길(24) 오늘의운동 대표가 그들이다. 심 회장은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한 20대 청년들을 만나보니 모두 스스로 사업을 일궈낸 사람들이고, 수익의 상당 부분을 기부하는 것이라 놀라웠다"고 말했다.심 회장은 이어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청년들도 아니고 오히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성장했다는데, 그때를 생각하면서 기부를 결심했다고 한다"며 "이번에는 내가 청년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들에게 많이 배웠다"고 강조했다.심 회장은 2011년 인천 아너소사이어티 5호로 가입하면서 인천공동모금회와 인연을 맺었다. 심 회장은 "당시 조건호 전 인천공동모금회장으로부터 권유를 받아 아너소사이어티는 물론 모금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2016년 인천 아너소사이어티 클럽 3대 회장을 맡아 모금회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하나 둘 알게 됐다"고 했다.그는 사회 전반이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갈수록 지역사회가 하나로 뭉쳐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 회장은 "인천은 서울에 인접해서인지 영남이나 호남처럼 시민들의 지역에 대한 애착이 크지는 않은 것 같다"며 "어려울수록 지역이 하나가 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각지대의 이웃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심 회장은 작은 것에서부터 실천하면 기부는 결코 어려운 게 아니라고 했다.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라고 한다. 심 회장은 "모두 힘든 와중에도 수능을 치르기 며칠 전 수험생 어머님이 수험생 이름으로 20만원을 기부하고, 금연을 결심한 후 담뱃값을 모아 매월 정기기부를 통해 저소득층 학생을 지원하고, 어린이집 원생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저금통을 전했다"며 "이렇듯 평범하지만 아름답고 따뜻한 선행이 지역사회에 온기를 불어넣는다"고 했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심재선 회장은?▲1956년 인천 출생 ▲인천 송도고 졸업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공성운수(주) 대표이사 ▲2006~현재 인천상공회의소 부회장 ▲2011 인천아너소사이어티 5호(전국 67호) ▲2011~2017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운영위원·부회장 ▲2020~현재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법무부 법사랑위원 인천지역연합회 부회장 ▲인천화물자동차운송사업협회 이사장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부회장 ▲물류산업진흥재단 이사장 ▲새얼문화재단 이사심재선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이 지난 14일 공동모금회 사무실 내 인천지역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140여명의 핸드프린팅을 전시한 '아너소사이어티 명예의 전당'에서 "어렵고 힘들수록 온정과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어주고 마음을 나누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020-12-15 박경호

[인터뷰…공감]코로나 시대 대학 위기 돌파하는 임영문 대진대학교 총장

능동·진취적 대학생활 그리며 모토 구상 '대학 추진사업 방향타'직원·학생과 소통하고 IT기술자원 총동원해 2학기 운영 안정화베트남에 한국어교육센터 설립… 지역사회와 협력사업 강화도한 기관의 '모토(motto)'가 바뀐다는 건 새로운 변화의 신호로 볼 수 있다. 마치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바뀐 거와 같다. 경기도 접경지에 '캠퍼스 신화'를 쓴 대진대학교가 지금 그렇다. 이 대학은 '뉴 노멀(New Normal)' 시대를 맞아 변화가 감지되고 있으며 얼마 전 9대 총장으로 취임한 임영문 총장이 그 중심에 서 있다.28년 전 고등교육의 불모지 경기 북부지역에 최초로 종합대학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이정표를 세운 대진대에 임 총장은 새로운 시작을 주문했다. 'Let's DJ'. 임 총장이 내건 이 짧은 모토는 새로운 도전에 임하는 구호처럼 들린다. 학교 영문이름의 첫 글자를 따 지은 표어는 'Dream and Joy', 'Discussion and Join', 'Discover Job' 이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말로는 '꿈과 즐거움', '소통과 참여', '자기발견'으로 풀이된다. 이 단어들은 임 총장이 대학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추진할 5대 사업을 상징하기도 한다.임 총장은 "학생들이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대학생활을 하는 모습을 그리며 구상한 것"이라며 "이 모토는 앞으로 대학이 중점을 두고 추진할 사업의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밝혔다.그가 취임한 시기인 올해 7월은 코로나19 위기로 전국의 대학가가 우왕좌왕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비대면 수업에 따른 혼란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취임하자마자 주어진 '미션'과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임 총장은 비대면 수업이면서도 수업의 질을 떨어트리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는 직원,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이끌어냈다. 교수를 대상으로 비대면 수업진행을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교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보통신기술 자원을 총동원한 끝에 2학기 학사운영은 안정화를 찾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 교직원, 관계 기관 등 다양한 구성원과의 소통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임 총장은 "소통과 참여를 통한 문제 해결의 단적인 예가 됐다"며 "이 과정이 자리 잡게 되면 학사운영의 효율성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코로나 사태는 수업뿐 아니라 대학가에 또 다른 그림자를 드리웠다. 사상 최악이 될 것이라는 올해 취업시장은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대진대의 첫 시험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임 총장이 내세운 모토 중 '자기발견(Discover Job)'과 직결되는 문제다.임 총장은 "대진대는 대학일자리센터 한국교육정보원으로부터 3년 연속 최고 등급인 우수 등급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며 "그동안 대학 자체적으로 축적한 취업지원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라고 차분히 설명했다.대진대는 2017년 고용노동부로부터 '대학창조일자리센터' 운영대학으로 선정되면서 내실 있는 취업지원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청년인턴제', '학생경력개발시스템', '재학생 맞춤 취업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임 총장은 "실제 이런 프로그램들이 상당한 취업성과로 이어지고 있으며 단기적 성과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개발된 프로그램이라 올해 취업위기 속에서도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대진대가 이 시점에 새로운 총장을 맞이한 것은 중대한 변화를 겨냥했다고 볼 수 있다. 개교 30주년을 앞두고 그간의 과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발전을 추구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이에 대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은 대학', 즉 학생들이 학교에 대해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학교로 만들고 싶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 중심의 대학이 돼야 하며 이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학교에서 토대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대진대는 2014년부터 해외로 눈을 돌렸다. 해외에 캠퍼스를 설립하거나 유학생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최근 3년간 글로벌 체험교육 형태로 해외에 파견한 학생만 2천200명이 넘는다. 중국에는 캠퍼스(DUCC)를 설립해 매년 400명의 학생이 이곳에 보내지고 졸업 후에는 현지 취업도 하고 있다.임 총장은 "현재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은 서구에서 아시아로 특히 동아시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며 "과거 유학을 떠나던 시대에서 미주, 유럽,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유학생이 오는 시대로 바뀌어 대학교육에도 국제화 역량이 요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진대는 유학생을 위해 베트남에 한국어교육센터를 설립했으며 추가로 베트남 남부에 세종학당 운영을 현재 협의 중"이라며 "남미, 유럽, 아프리카, 중동 국가와도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최근 수도권의 많은 대학이 지역사회와 협력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지자체가 추진하는 공공사업에 참여하거나 위탁 수행하는 경우가 흔해지면서 대학과 지역사회의 협력은 점차 강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서구 많은 전통 대학이 지역사회와 공생하면서 발전해왔듯이 국내 대학들도 이에 주목하고 있다.임 총장 역시 이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대학의 장기발전 전략과 연관 지어 지역사회 협력사업을 구상했다. 대진대는 그동안 경기도와 경기 북부 지자체와 크고 작은 다양한 협력사업을 추진해왔다. 지자체 협약 평생교육사업이나 통일교육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서는 지역의 열악한 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국립의학전문대학원(공공의대)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임 총장은 "공공의대를 유치함으로써 지역간 의료격차를 해소하고 지역의 인구 노령화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진대는 이미 분당제생병원, 동두천제생병원, 고성제생병원 등 기본적인 의과대학 기반을 갖추고 있어 공공의대를 설립하면 경기 북부는 물론 강원 남부의 낙후된 의료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대학의 성공은 결국에 학생의 성공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대학은 학생이 성공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이에 적합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임 총장은 그 비전으로 창의융합 인재를 제시하고 있다. 창의융합 인재는 미래사회를 이끌 창의융합기술을 다룰 수 있는 인재를 말하며 현재 전 세계 대학이 창의융합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매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며 매달리고 있다.임 총장은 "대진대의 비전은 학생 성공 중심의 창의융합 인재양성이며 이를 위해 전체 대학 구성원이 노력할 것"이라며 "이는 작게는 수업의 질 개선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대학 전체가 학생의 입학에서부터 취업 이후까지 함께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글·사진/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 임영문 총장은?▲1989년 연세대학교 이학석사 ▲1996년 알링턴 텍사스대학교(The University of Texas at Arlington) 공학박사 ▲1996년 텍사스주립대학교 병설 ARRI 연구소 연구교수 ▲2008~2011년 국립 강릉원주대학교 산학협력단장 ▲2009~2011년 정보통신산업진흥원 과제 평가위원 ▲2014~2020년 경기대진테크노파크 원장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심의위원(현) ▲산업통상자원부 혁신평가위원(현) ▲중소기업청 과제평가 심사위원(현)임영문 대진대 총장은 "대진대의 비전은 학생 성공 중심의 창의융합 인재양성"이라며 "대학은 학생의 입학에서부터 취업 이후까지 함께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0-12-08 최재훈

[인터뷰…공감]'군집 드론 비행 국내 최고 자부' 김영준 파블로항공 대표

'파일럿 꿈' 특전사로 복무… 드론 SW개발자 5년간 일하다 '독립'초반 비행아트쇼에 초점 '1명이 수십대 컨트롤' 제어기술에 집중정확한 위치정보 '오차 10㎝ 미만'…300대 동시 비행 기술력 갖춰레바논 등 플랫폼 수출·특허 7개 보유… 향후 드론택배·택시 포부지난달 21일 초속 12m가 넘는 강풍을 뚫고 (주)파블로항공의 드론 2대가 육지와 33㎞ 떨어진 인천 옹진군 자월도 해안에 착륙했다. 인천 신항에서 출발한 2대의 드론은 영흥도와 자월도 등을 4바퀴 선회한 뒤 1시간20분 동안 80㎞ 거리를 비행해 자월도에 의약품을 배송하는 데 성공했다. 파블로항공이 1년 전 제주 서귀포~우도에서 세웠던 57㎞ 비행 기록을 자체적으로 경신한 국내 최장거리 '드론 물류 배송'이었다.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인천산학융합원에 본사를 두고 있는 파블로항공은 여러 대의 드론을 한 명이 조작해 동시에 비행하는 '군집(群集) 드론 비행 기술' 분야에서 국내 최고라고 자부한다. 지난달 드론으로 자월도까지 의약품을 실어나를 때에도 군집 드론 비행 기술이 활용됐다. 대부분 업체는 드론 하드웨어를 국내에 수입해 대리점 형태로 판매하는 반면, 파블로항공은 군집 드론 비행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파블로항공 김영준(31) 대표는 "드론을 통한 물류 배송이 활성화하면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 주민들도 1시간 안에 택배를 받고, 아침에 먹고 싶은 육지의 식당 메뉴를 그날 점심으로 즐길 수 있다"며 "파블로항공은 '드론 택배' 상용화에 중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드론 산업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분야로 꼽힌다. 군사 목적으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드론은 2010년대 들어 '어른들의 특별한 장난감'으로 변모했고, 최근에는 산업을 비롯한 더 폭넓은 분야에서 활용될 미래 기술로 인식되고 있다.김 대표가 처음 드론 산업에 뛰어든 시기는 드론이 레저용으로 주로 사용되던 2014년이다. 그는 "항공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특전사 부사관으로 군(軍) 복무를 마쳤는데, 집안 사정으로 군 생활 동안 모아둔 돈을 사용하면서 드론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기 시작했다"며 "항공 산업과 컴퓨터 분야에 어릴 적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이런 영향을 받아 두 가지를 모두 접목한 드론 산업에 빠졌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드론 관련 스타트업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5년 동안 근무한 김 대표는 2018년 8월 파블로항공을 설립했다. 회사를 만들고 김 대표의 첫 목표는 전 세계 최고의 군집 드론 비행 기술을 가진 미국의 '인텔'과 중국의 '이항'을 따라잡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여러 대의 드론이 공중에서 움직이며 조명 등을 활용해 형상을 표현하는 '드론 아트쇼'에 초점을 맞췄다"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드론을 동시에 비행할 수 있을까'에 대해 항상 연구하고 고민했다"고 했다.드론 아트쇼가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여러 대의 드론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정해진 대로 움직여야 한다. 이 때문에 군집 드론 비행을 진행하려면 통신 기술과 위치 정보 시스템, 제어 기술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김 대표는 설명한다. 그는 "드론은 통신이 끊기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항상 이를 유지해야 하고, 정확한 위치에서 비행해야 서로 부딪히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한 명이 수십 대의 드론을 실수 없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제어 기술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파블로항공은 3개의 통신 채널을 마련해 군집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주 채널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채널이 보조해주는 방식이다. 정확한 위치 정보를 확보하고자 오차가 10㎝ 미만인 RTK(Real Time Kinematic) 시스템으로 드론을 운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드론 제어와 관련된 50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를 수정해 군집 비행에 특화된 안정성 체계를 구축했다. 환경적인 변수가 많은 야외에서도 군집 드론을 완벽한 형태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이 같은 노력으로 파블로항공은 회사 설립 2년 4개월 만에 드론 300대를 동시에 비행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 회사로 성장했다. 지난해 3월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드론 규제 샌드박스 박람회에서 파블로항공은 국내 최초로 100대의 드론을 동시에 비행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이런 기술력을 인정받아 지난해에는 레바논과 벨기에, 아르헨티나 등에 군집 드론 비행 플랫폼을 수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300대의 드론을 한 명이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 기업은 한 손에 꼽을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파블로항공은 드론과 관련된 특허 7개를 등록했고, 직원도 3명에서 23명으로 늘었다.국내 최고 수준의 군집 드론 비행 기술을 확보한 파블로항공은 이를 여러 산업에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산불 현장을 드론으로 확인한다고 가정하면 1대가 보는 것보다 여러 대를 함께 비행시켜 산불 피해 면적과 발화지점, 소방 장비 진입로 등을 동시에 살펴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며 "군집 드론 기술을 활용하면 더 정확하고, 이른 시일 안에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드론을 통해 장거리까지 물품을 배달하는 '물류 혁명'도 군집 드론 비행 기술을 통하면 쉽게 할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판단이다. 지난달 국내 최장 비행 거리 배송에 성공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파블로항공은 안전성과 보안성을 강화해 2022년부터 드론을 활용한 물품 배송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그는 "대학에서 사이버 보안 관련 공부를 했고, 관련 연구를 꾸준히 진행했기 때문에 제어 시스템의 안전성과 보안성을 확보하는 것에는 누구보다 자신 있다"며 "드론 택배 시스템을 상용화하면 백령도나 연평도 등 멀리 떨어진 섬 주민들도 육지의 인프라를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앞으로 파블로항공의 경쟁 상대는 아마존이나 UPS, DHL, 구글 윙 등 세계적인 물류 업체들이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김 대표는 더 나아가 드론을 교통수단으로 사용하는 '드론 택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요즘에는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자기가 있는 위치까지 택시를 불러 사용하고 있다"며 "군집 드론을 제어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안전성과 보안성을 조금만 더 강화하면 드론 택시도 조만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파블로항공의 '파블로'는 20세기 최고의 미술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에서 따왔다고 한다. 김 대표는 "드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면 기술력과 창의력을 함께 갖춰야 한다"며 "파블로 피카소처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 문화를 만들고 싶어 이름을 지었다"고 웃으며 말했다.김 대표는 "파블로항공을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 최종 꿈"이라며 "드론 하면 파블로항공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김영준 대표는?▲ 1989년 인천 출생 ▲ 2018년 8월 파블로항공 설립 ▲ 2018년 11월 국내 첫 드론 정비 개론서 '드론정비개론' 출간(공동 저자) ▲ 2019년 4월 인천 항공 유망기업 선정 ▲ 2019년 11월 국내 최초 해상 장거리 물류 드론 57.5㎞ 배송 시연(제주 서귀포~우도) ▲ 2020년 4월 인천시 특화로봇 육성사업 드론 물류 분야 선정 ▲ 2020년 8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 수상(혁신기업) ▲ 2020년 11월 국내 최장 거리 해상 물류 드론 80㎞ 배송 시연(인천항~영흥도·자월도)파블로항공 김영준(31) 대표는 "'군집(群集) 드론 비행 기술'을 활용해 '드론 택배'와 '드론 택시' 등의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며 "파블로항공을 전 세계적인 드론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20.12.1 /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파블로항공 김영준(31) 대표는 "'군집(群集) 드론 비행 기술'을 활용해 '드론 택배'와 '드론 택시' 등의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며 "파블로항공을 전 세계적인 드론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20.12.1 /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2020-12-01 김주엽

[인터뷰…공감]전통유산 지켜온 경기도무형문화재 제28호 김종욱 단청장

13살때 혜각스님 만나 불화 입문… 국보 1호 작업 등 업적코로나 탓 강의 힘들지만 다행히 제자 3~4명 꾸준히 지도단청 작업한 숭례문 전소땐 눈물… 복원 도움 주고자 조언일본기내 소개방송 경험… 우리 정부·기관 인식 변화해야청·적·황·백·흑이 모여 만들어지는 오방색. 불전의 서까래와 기둥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오방색은 처마 밑 무늬의 기품을 더한다. 오방색은 우리 실생활과도 밀접해 있다. 흔히 집에서 사용하는 방석을 비롯해 접시, 그릇 등 실생활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전통유산인 '단청(丹靑)'을 살펴봐도 그 화려함과 색감에 놀란다. 이런 오방색 무늬를 수놓으면서 70년 동안 단청을 지켜온 명장 김종욱(87·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8호) 단청장을 '인터뷰 공감'에 모셔봤다."우리 스스로가 문화재를 지켜야 합니다. 유형문화재도 무형문화재가 만듭니다.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외부인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 단청장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터뷰를 응하지 않으려고 했다. 올해는 강의하지 못할 정도로 힘든 하루를 보냈는데 다행히 경기도 제자 3~4명을 꾸준히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청이라는 것이 워낙 힘들고 밥벌이가 쉽지 않아 배우려는 사람이 많지 않아 걱정이다. 우리의 전통 문화가 사라질까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단청은 목조건물에 여러 가지 빛깔로 무늬를 그려 아름답고 장엄하게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건물에 색을 입히는 작업만 하는 단청장을 '어장(魚杖)'이라 부르고 불화(佛畵·불교의 종교적인 이념을 표현한 그림)까지 그려내는 단청장을 '금어(金魚)'라고 부른다.경기도무형문화재 제28호 장인으로 손꼽히는 김 단청장은 '탱화(幀畵·천이나 종이에 부처, 보살, 성현들을 그려 벽에 거는 것)와 불화, 벽화까지 작업 가능한 국내 유일의 장인이다.김 단청장은 "단청은 서까래나 기둥, 전각을 장식하는 용도뿐 아니라 부식과 습기를 막아 목재를 오래도록 보호하기 위한 기능도 갖고 있다"며 "대개 단청이라 하면 전각에 색을 입히는 정도를 떠올리게 되지만 불화, 벽화, 공예품에 오방색을 그리는 것도 단청에 포함된다. 특히 한국의 단청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단아하고 정제된 색감으로 기품을 더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김 단청장은 주로 잿빛 승복을 입는다. 사념을 없애고 온전히 작품에만 집중하자는 의미다. 그는 "곱고 화려한 색은 작품에만 사용할 뿐 스스로는 치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마음가짐"이라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얼굴은 마치 수행하는 불자의 모양처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그는 요즘 수원시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작업하며 후대 양성에 애를 쓰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상황으로 올해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물론 고령의 장인 입장에선 코로나19 감염을 무시할 수도 없고 이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그렇다면 김 단청장은 어떻게 단청을 접했을까.그는 "올해로 붓을 잡은 지 70년이 됐다. 당시 13세가 되던 때 6·25 전쟁으로 피란을 나온 혜각 스님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는데 혜각 스님을 따라 개성 안화사로 거처를 옮겨 불화에 대해 배우게 됐다"면서 "모두 그렇듯이 그 시절은 힘든 시기였는데 절 생활은 더 힘들었다. 청소는 물론 선배들의 불화 작업실까지 정리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절에서 생활한 지 5년이 되면서 붓을 잡게 됐다. 감회가 새로웠고 뭐든지 그리고 싶은 욕망도 생겼지만 그럴 때마다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오로지 단청에만 집중했다"고 덧붙였다.김 단청장은 어려움 속에서도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경주 불국사 석굴암 입실을 비롯 경복궁 근정전, 덕수궁, 창경궁, 남한산성 수어장대,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통도사, 직지사, 월정사, 국보 1호 숭례문까지 전국 고찰의 단청과 불화 작업으로 전통을 이어왔다.그는 "1988년 숭례문 단청 작업에 참여했는데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2008년 방화로 숭례문이 전소되면서 너무나 아쉬웠다. 정성을 들이고 전통의 맥을 이었는데 한순간에 무너져 눈물이 났다"며 "현재 숭례문 복원 작업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김 단청장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8호 기능보유 장인 단청장으로 1999년 10월에 지정됐다. 당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의 존재감을 세상이 알게 됐고 그를 장인으로 인정했다. 그는 북한 단청도 직접 봤다고 했다. 그는 "문화재보호법 시행과 동시에 경기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뒤 다음 해 북한에서 전시회를 했는데 당시 북한 무형문화재 연구가 역시 단청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며 "북한의 단청 기술력도 뛰어나다"고 강조했다.김 단청장은 작은 바람이 있다. 무형문화재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켜내고 미래 세대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김 단청장은 "한번은 일본 항공사가 운영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기내 안에서 안내 방송을 했다. '한국의 단청 무형문화재 김종욱님이 타고 있습니다'라고 말이다"며 "이처럼 일본은 무형유산에 대한 가치 존중과 인식이 우리와는 분명 달랐다"고 전했다. 그는 "단청을 배우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삶이 여유롭지 못하다"며 "단청을 배우고 장인이 되기 위해선 정부나 관계 기관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이다. 단청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단청을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김 단청장은 "우리 문화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문화는 그 시대를 반영하듯 미래 세대에 우리의 문화를 제대로 전달해줘야 한다"며 "우리가 느끼고 영위하는 현재의 역사와 문화를 후세에 남겨주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가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형유산도 무형문화재가 만드는 것이다. 무형문화재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절대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김종욱 단청장 프로필·주요작품▲1952년 故 혜각스님 입문(1대 제자) ▲1953년 서울 창신동 안양암 사미계 수계수지 ▲1964년 통영 세병관 벽화 ▲1973년 경주안압지, 경주오릉, 분황사, 칠백의총 단청 ▲1977년 김천 직지사 조사전, 천불전, 명월당, 금강문, 일주문 벽화 ▲1978년 경주 불국사, 석굴암 입실, 부여 박물관 단청 ▲1980년 통도사 천왕문 단청 ▲1982년 남한산성 수어장대 단청, 수원 방화수류정 단청, 수원 동문서문 홍예반자 단청 ▲1984년 통도사 사명암 백자동, 취운암 설법전 불교설화벽화, 직지사 단청 및 벽화, 월정사 단청 ▲1985년 통도사 천왕문 불벽, 일주문 산수, 관음전 불벽벽화 ▲1988년 서울 숭례문 단청 ▲1994년 진천보탑사 대웅전 금강, 사천왕 단청 및 벽화, 진천 보탑사 명부전 지옥도, 지장도 벽화 ▲1998년 진천 보탑사 사왕전 극락도 벽화, 용인 와우정사 팔상도 벽화 ▲1999년 10월 28일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8호 단청기능보유자 지정 ▲1999년 ~ 2004년 울산 정관사 대웅전 심우도, 산수, 팔상도, 은중정벽화, 양주 흥국사 백자동, 요사체산수벽화, 대구 동화사 산수벽화, 파계사 원통보전내부 관음시현도 벽화, 청도 운문사 조영당 백자사미금강산유람도벽화 등 ▲2005년 수원 심우선원 개금불사, 수원행궁 신풍루 단청 ▲2006년 수원 심우선원 약사, 관음, 지장탱화불사 ▲2007년 용인 와우정사 고구려 보덕성사 영정 제작 ▲2008년 여수 향일암 탱화불사 ▲2009년~2012년 수원 심우선원 탱화불사, 수원 서문 홍예반자 백용 모사단청, 안양 석남사 대웅전 팔상전벽화, 부천 석왕사 팔상도 산수벽화 등 ▲2013년 양양 낙산사 지장전 지장후불탱화불사70년 동안 오방색을 수놓으며 단청을 지켜온 경기도무형문화재 제 28호인 김종욱 단청장은 단청뿐만 아니라 탱화와 불화, 벽화까지 작업 가능한 국내 유일한 장인이다. 2020.11.20 /김금보기자artomate@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70년 동안 오방색을 수놓으며 단청을 지켜온 경기도무형문화재 제 28호인 김종욱 단청장은 단청뿐만 아니라 탱화와 불화, 벽화까지 작업 가능한 국내 유일한 장인이다. 2020.11.20 /김금보기자artomate@kyeongin.com김종욱 단청장이 작업한 수원 방화수류정. /경인일보DB김종욱 단청장이 제자들과 함께 손 하트를 하고 있다. 2020.11.20 /김금보기자artomate@kyeongin.com

2020-11-24 신창윤

[인터뷰…공감]첫 '봉황대기 품은' 인천고 야구…'덕장' 계기범 감독

# 인천 토박이 야구인태평양 소속 선수 시절 준우승이 전부"특별히 잘하지 못했고 우승 경험 없어"동인천중 이어 모교 모두 우승 진기록전국 제패 원동력 '3학년의 힘' 꼽기도# 독후감 쓰게 하는 감독책상에 선수 훈련일지 담은 공책 빼곡한달에 한번 영화·책 소감 '특별지시'"운동 병행 어렵지만 독서가 삶의 힘"인성에 도움… 강한 정신력도 키워내고교야구는 프로야구와는 다른 고유의 매력이 있다. 별다른 기술을 보기가 어렵고 실수도 잦아 관중들 입장에서는 다소 답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완성된 선수들이 아니기에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 다듬어지지 않은 패기와 열정, 체구와 함께 매년 성장하는 실력 등을 볼 수 있다는 점은 고교야구의 진한 매력이다. 올해 제48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에서 첫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인천고등학교 야구부도 마찬가지였다. 인천고는 봉황대기 이전에 열린 대통령배와 황금사자기 대회에서는 모두 첫 경기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모두가 인천고의 우승을 점치지 못한 상황에서 인천고는 결승까지 단숨에 진출, 서울고를 3대2로 누르며 '보란 듯이' 정상에 올랐다. 인천고의 전국 대회 제패는 2004년 대통령배 이후 16년 만이다.계기범(50) 인천고 야구부 감독은 "(198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은 고교야구가 침체기지만 고교생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열정,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프로야구와는 다른 점이자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라며 "'포기하지 말고 한번 끝까지 가보자'는 정신으로 임해 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인천고가 봉황대기 고교 야구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1979년, 1996년 봉황대기에서 결승에는 올랐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쳤기에 이번 성적은 더 값졌다.계기범 감독은 "3대2로 앞선 순간에 마지막까지도 위험한 상황(9회 말 마지막 수비에서 1사 1·2루)이었는데 노명현 선수의 병살타 수비의 활약이 빛났다. 코로나19로 관중들이 없어 힘이 빠질 법도 했었는데,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들도 끝까지 목청 내 응원하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인천고의 우승 요인은 서울고와의 결승에서 선발 투수로 나섰다가 다시 9회 말 마무리에서 팀 승리를 지킨 윤태현 선수의 역투로 꼽힌다. 2학년인 윤태현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무려 4승을 거두며 내년도 프로팀 지명까지 이미 점쳐지고 있다. 이밖에 한지웅 선수는 우수 투수상, 장규현 선수는 수훈상과 최다안타상을 동시에 받았고, 계기범 감독은 감독상을 수상했다.하지만 계 감독이 꼽는 인천고의 우승 원동력은 '3학년의 힘'이었다. 이번 대회는 시기상 3학년 학생들의 프로팀 지명과 대학 진학이 모두 결정된 탓에 전국적으로 3학년 학생들의 동기 부여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인천고는 프로팀 지명을 받은 선수부터 그렇지 못한 선수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1·2학년과 힘을 모았다고 한다.계 감독은 "프로팀 지명을 받아 몸 관리를 해야 하는 선수들부터, 비록 지명은 받지 못했지만 뛰어난 기량을 가진 김시현·노명현 선수까지 모두 후배들을 독려하며 이끌어준 것이 가장 고맙다"고 말했다.1970년 동구 송림동에서 태어나 지금은 미추홀구 용현동에서 거주 중인 '인천 토박이' 계기범 감독은 초등학교 3학년때 아버지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해 서림초, 동인천중, 인천고등학교, 홍익대를 졸업했다. 1993년~1995년 태평양 돌핀스, 1996년~1997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타자로 활동했다.태평양 소속 선수 시절에는 1994년 100타석 넘게 나와 0.262 타율을 기록하며 태평양을 준우승으로 이끄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이후 1999년 모교인 동인천중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2002년~2013년 감독을 맡았고, 그후 현재까지 모교인 인천고에서 감독을 맡고 있다.계 감독은 동인천중 감독 시절에도 2013년 KBO배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해 출신 모교를 모두 승리로 이끈 '진기록'까지 세웠다.그는 "사실 선수 시절엔 특별히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고 우승도 해보지 못했는데, 모교에서 감독을 하며 우승을 했다"고 웃어 보였다.'모교 지도자'인 계 감독의 '후배 사랑'은 남달랐다.이날 계 감독의 책상은 선수들의 '훈련 일지'가 담긴 공책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하루하루 훈련했던 내용과 배운 점을 직접 손으로 써놓는 소위 일기장이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독후감'이었다. 선수들은 자신의 훈련 내용, 상대 팀 전력 분석뿐만 아니라 책을 읽은 후 느낀 '성실함', '꾸준함', '정직함' 등을 공책에 빽빽이 기록했다. 야구 실력은 물론 선수들의 바른 인성과 강한 정신력을 길러주기 위한 계 감독만의 '특별 지시'다.계 감독은 "매달 하루 좋은 책 한 권이나 좋은 영화 한 편을 보고 소감을 쓰라고 한다. 운동하면서 책을 읽기가 어려운데 독서를 통해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큰 힘을 기르고 경기 시 정신력 관리에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사춘기 무렵의 어린 선수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기 위한 계 감독의 지도 철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계 감독은 "원리원칙을 강조하고 다소 무뚝뚝하다"고 자신을 평가하면서도 "선수들 하고 코치,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해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계기범 감독은 이날 인터뷰에서 프로팀 지명을 받지 못한 3학년 선수들의 이름을 몇 번씩이나 언급하며 염려하기도 했다. 인천고 야구부 3학년 11명 중 프로팀 지명을 받은 선수는 강현구(두산), 장규현(한화), 한재승(NC), 조성현(NC) 4명이며, 나머지는 대학 진학 등을 앞두고 있다.계 감독은 "선수들의 10%만이 프로 선수가 되고 나머지 90%는 야구를 그만둬야 하는 처지에 놓이지만, 10%에 못 들어갔다고 해서 절대 실패자가 아니니 결코 좌절하지 말라고 늘 강조한다"며 "특히 대학에 진학한 우리 선수들은 기량이 충분해 이후에도 더 성장해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앞으로의 꿈'을 묻는 질문에도 계 감독은 "인천고 야구부에 있는 한 우리 아이들이 사회 어느 분야에 진출해서든 멋지게 잘해낼 수 있도록 하는 게 현재 목표이자 꿈"이라고 했다.끝으로 "인천고 야구부 발전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해주시는 조왕규 교장 선생님과 문승귀 부장님, 어려울 때 격려와 응원을 보내준 동문들과 총동창회, 후원회, 또 인고 야구를 사랑해주시는 주위 분들과 우승의 영광을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글/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계기범 감독은?▲ 1970년 동구 송림동 출생 ▲ 서림초, 동인천중, 인천고등학교, 홍익대 졸 ▲ 1993~1995년 태평양 돌핀스 ▲ 1996~1997년 현대 유니콘스 ▲ 1999년 동인천중 코치 활동 시작 ▲ 2002~2013년 동인천중 야구부 감독 ▲ 2013~ 인천고 야구부 감독제48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에서 첫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인천고 야구부 역사를 새롭게 쓴 계기범 감독은 "'포기하지 말고 한번 끝까지 가보자'는 정신으로 임해 우승할 수 있었다"며 "따라와준 선수들과 응원해준 동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계기범 감독이 인천고 운동장에서 훈련 중인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2020-11-17 윤설아

[인터뷰…공감]백년가게 선정 수원 '쓰리에이안경점' 장영식 사장

# 두 동생 등록금 해결하려 장사의 길로공무원 '박봉' 탓… 떡볶이 노점상 '두각'8년간 일해 학자금 해결·종잣돈 1억 모아손님없는 분식가게 '모자부페' 인생 쓴맛"구매력 있는 고객층이 사업 확장에 중요"# '최고의 신용·품질·정확' 소명의식중심성 망막염 안과치료 받다가 '눈이 번쩍'친구 아버지가게서 일 배우고 자격시험 합격막상 가게문 열었지만 손님 지문 닦기 바빠진열대 구조 변경·용접 배워 직접 수리·보수"백년가게는 말 그대로 '작은 가게도 백년 가라'는 뜻 아니에요? 좋은 물건을 팔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백년, 이백년 갈 수 있도록 좋은 가게들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안경점으로는 최초로 경기도에서 '백년가게'로 선정된 수원시 권선구 '쓰리에이안경점' 사장 장영식(66)씨는 인터뷰 내내 안경사들의 소명의식과 손님의 눈을 위하는 마음을 강조했다. 흔하디 흔한 안경점이 백년가게로 선정된 비결이 바로 거기에 있는 듯했다.장씨는 공무원 출신으로 안경사가 된 드문 이력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화성군청·부천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지만 벌이가 좋지 않았다. 9급 공무원 월급이 10만원 남짓이던 시절이다. 그는 두 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다.안 좋은 일로 계약금을 날린 후 1981년 시작한 떡볶이 노점 장사에서 그는 두각을 드러낸다. 가게가 하도 성업해 옷을 팔던 인근 상인들이 모두 업종을 떡볶이로 전환한 나머지 수원 남문백화점과 수원쇼핑 사이에 '떡볶이 골목'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그는 '중고등학생을 대하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8년 동안 일해 동생들의 등록금은 물론 종잣돈 1억원을 모았다.탄탄대로만 걸을 것 같던 장씨에게 또다시 시련이 찾아온다. 노점상 8년간 번 돈으로 1988년 팔달문 옆 남문에 '모자부페'라는 가게를 냈지만 손님이 없었던 것. 당시만 해도 이른바 '먹토'(먹고 토한다)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1천500원에 모든 분식을 맛볼 수 있는 가게는 매력적이긴 해도 사업성이 떨어졌다. 그는 버티고 버티다 3년 만에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옆에서 장사를 하던 동료 사장은 품목을 갈비로 바꿔 지금의 가보정을 만들었다. 구매력 있는 고객층을 확보하는 게 사업 확장에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그는 말했다.이때 새롭게 눈을 돌린 게 안경점이다. 1986년 왼쪽 눈에 '중심성 망막염'(망막 염증으로 시야가 좁아지는 질환)으로 안과 치료를 받았는데 이 때 안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치아는 한 개가 빠져도 살 수 있지만, 단 5분만 감고 있어도 불편한 게 눈'이었다. 마침 친구 아버지가 안경점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3단 책꽂이 만들기 경진대회에 나가서 입선하고, 겨울철 동네 친구들의 썰매도 곧잘 만들어줄 만큼 손재주가 좋기도 했다.그는 친구 아버지 가게에서 안경 기술을 배웠고 1990년 안경사 시험에 응시해 합격한다. 이어 근처 아파트가 분양할 때 상가 건물을 사서 안경점을 차린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인 1994년의 일이다.막상 문을 열고 보니 안경점은 손재주를 과시할 수 있는 통로가 아니었다. 신참 안경점 사장에게 안경을 새로 맞추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손님들은 안경을 사기 전 스무 개도 넘게 써 보고 더러는 안 사기도 했다.안경을 제작하는 것보다도 안경 렌즈에 묻은 지문을 닦고 진열대를 정리하는 게 하루 일과가 됐다. 새 안경을 사기보다 기존 안경을 수리·보수하는 손님이 더 많기도 했다.장씨는 "진열대 구조를 바꿔 손님이 안경을 많이 건드리지 않아도 안경을 고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구상했고, 용접 기술도 배워 안경 수리·보수를 직접 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가게 한 편에는 수리를 기다리고 있는 금속테 안경 백여 개가 쌓여 있었다.이런 노력이 발판이 돼, 누구보다 렌즈를 정교하게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고도의 정밀함이 필요한 누진다초점 렌즈를 장씨는 기계 작업 후 손으로 직접 초점을 보정한다. 이렇게 해야만 안경을 썼을 때 어지러움을 줄이고 편안함이 커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장씨는 아직도 렌즈 초점을 안구 '왼쪽·중앙·오른쪽'의 세 군데에서 측정하는 원칙을 고수한다. 다만 그 원칙을 고집하지 않고 현실에 맞게 고친다. 이론적으로는 초점을 하안검(아랫눈꺼풀)에 맞추는 게 맞지만 장씨는 초점을 그보다 약간 내려 잡는다. 새 안경을 썼을 때 어지러워하는 손님들이 많아서 선택한 길이다. "고객이 어지럽다면 어지러운 것이다"는 것이 장씨의 지론이다. 의사는 아니지만 흰 가운을 입은 전문가답다.중소벤처기업부는 오래된 소상공인을 발굴하고 심사해 '백년가게'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처럼 대를 이어 가업을 승계하는 장인정신이 스민 가게를 만들자는 취지다.올해 서른 한살인 장씨의 아들 재웅씨 역시 안경사 시험을 치러 지난해부터 같이 일하고 있다. 아침마다 아들과 함께 흰 가운을 다려 입고 출근하면서 장씨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밝고 깨끗하게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자'고 다짐한다. 장씨의 다짐을 보여주듯 가게 안엔 '최고의 신용, 최고의 품질, 최고의 정확'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다른 한 편엔 장씨가 직접 모델로 나선 누진다초점렌즈 안경 사진이 붙어 있다. 올해 66세인 장씨가 흰 머리가 날 때마다 빠짐없이 염색을 하며 외모를 단정히 하는 데 철저한 이유도 바로 손님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다.가게 문과 마주하는 안경 진열장 뒷면에는 네임텍 여러 개가 붙어 있다. '꽃기린' '라벤더' 등 가게 안의 화초 이름은 물론 '사시·사위' 등 제법 전문적인 안구 질환 이름도 쓰여 있다. 안경점에 들어와 막상 안경과는 관계 없는 질문을 하는 손님에게도 빠르게 즉각적인 대답을 하기 위한 장씨의 노력이다.장씨가 강조한 '손님을 위하는 마음'은 고객이 어떤 질문을 해도 무안하지 않게 하는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을 위하는 마음과 더불어 장씨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단어는 '소명의식'이었다. 그는 독일의 '마이스터'처럼 안경사들도 장인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다. 장삿속에 빠지지 않고 진정으로 손님들의 눈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 백 년을 이어갈 우리 동네 백년 안경점의 미래가 더 기대된다.글/이여진기자 aftershock@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26년째 수원 권선동에서 시민들의 '눈'이 되어온 쓰리에이안경점이 지난 8월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로 선정됐다. 자신이 직접 제작한 누진다초점렌즈 안경을 들어 보이는 장영식(66) 사장.

2020-11-10 이여진

[인터뷰…공감]'환경운동가 출신' 조강희 한국환경공단 기후대기본부장

# 내년은 배출 거래제 정착하는 시점업체 부담 크지만 유상 할당 10% 대폭 확대돼EU는 탄소 배출많은 제품에 관세 추가 검토친환경 연료 전환·공정 개선한 기업이 '효과'# 탄소 중립, 지자체·시민 역할 중요인천 발전소·항만… '공기질 악화' 민원 급증예산 1조 지자체 정책 참여 안해 대부분 불용市, 공기업과 협업 배출·저감로드맵 마련 필요"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습니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내년도 예산안 제출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3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도 "탄소 중립은 기후 위기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세계가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며 "국가적으로 차분하고 냉철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탄소 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이 상쇄돼 순수 배출량이 '0'인 상태를 뜻한다. 현실적으로 국가 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모두 없앨 수는 없으니, 나무를 심거나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해 배출된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는 것이 탄소 중립의 골자다. 온실가스를 제거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만큼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은 탄소 중립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관리하는 곳은 인천 서구에 있는 한국환경공단 기후대기본부다. 이곳에서 인천 지역 환경운동가로 오랜 기간 활동한 조강희(55) 본부장이 근무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이 직접 탄소 중립을 언급한 것은 모든 국민에게 '이제는 온실가스 배출에서 벗어나자'는 신호를 준 것"이라며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려면 정부와 지자체, 시민들이 힘을 모아 탄소 중립을 위한 절차를 하나씩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조강희 본부장은 탄소 중립을 위한 첫 번째 절차로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을 꼽았다. 이를 위해선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더 확실히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2015년부터 시작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온실가스 배출 사업장을 대상으로 환경부가 연 단위 배출권을 할당하고, 그 사업장의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과 비교해 여분 또는 부족분의 배출권을 거래하는 제도다. 국내 69개 업종 685개 업체는 온실가스 배출권이 있어야 탄소 등을 배출할 수 있다. 이들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우리나라 전체 연간 발생량의 73%에 달한다.조강희 본부장은 "내년은 국내에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완전히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가늠하는 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1차 계획 기간인 2015~2017년까지는 온실가스 배출권을 무상으로 업체에 줬고, 지난해까지는 연간 3%를 유상할당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이 비율이 10%로 대폭 확대될 예정이어서 업체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산업계에선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유상할당 확대를 늦춰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이 자체적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3차 사업이 진행되는 5년 동안 전체 기업이 8조원 정도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각 업체에 할당된 배출권보다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발생하는 업체는 1t당 2만원대에 달하는 배출권을 거래소를 통해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더 큰 비용이 필요한 셈이다. 수출 기업 중에선 '온실가스 배출 거래제로 우리나라 제품 가격이 높아져 수출 경쟁력이 나빠졌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하지만 조강희 본부장은 우리나라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려면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제대로 시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유럽연합(EU)에선 이미 탄소 배출이 많은 수입 제품에 관세를 추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으며, 탄소 중립에 동참하는 국가들도 각 기업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로 친환경 연료로 전환하거나 공정을 개선하는 업체는 탄소 감축을 위한 관세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하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조강희 본부장은 탄소 중립을 위해선 '지자체'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했다.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많지 않다. 인천을 예로 들면 인천은 화력 발전소, 항만, 공항뿐 아니라 대형 제조 사업장이 있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공기가 나쁘다'는 주민들의 민원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사정에도 화력 발전소·항만·공항은 국가 공기업, 대형 공장은 민간 기업에서 관리하고 있어 인천시가 법에서 정한 기준 이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라고 요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게 조강희 본부장의 설명이다.조강희 본부장은 인천시가 권한이 없다고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문제를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인천시가 주도적으로 나서 인천국제공항공사, 인천항만공사, 한국남동·서부발전 등 공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러한 계획에 민간 기업을 참여시켜 대형 사업장에서 내뿜는 온실가스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했다.국가에서 추진하는 온실가스 배출 사업 예산도 인천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가져와야 한다고 조강희 본부장은 지적했다. 조강희 본부장은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해 환경부가 세운 예산이 1조원에 달했는데, 지자체가 사업에 참여하지 않아 대부분 불용 처리된 것을 알고 있다"며 "인천시가 일정 부분 예산을 투입해 정부 사업에 참여한다면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한 정책을 선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이 과정에서 인천 시민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조강희 본부장은 "인천시가 공기업과 민간 기업에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노력하자고 요구해도 큰 비용을 투자해야 하므로 이를 주저할 수 있다"며 "이럴 경우 시민들이 여론을 만들어 공기업과 민간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조강희 본부장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말한다. 그는 "20년 전만 하더라도 '기후 변화'라는 단어를 썼지만, 최근에는 '기후 위기'라고 표현 한다"며 "기후가 바뀌고 있다는 게 아니라 기후 때문에 지구 생태계를 현 상태로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추진한 것이 탄소를 줄여나가자는 취지였다면, '탄소 중립'은 이제 '탈(脫) 탄소'를 진행해야 기후 위기에 대응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했다.조강희 본부장은 "인천 지역 환경운동가 출신으로 인천에 있는 공공기관의 본부장 역할을 하게 됐다"며 "인천시와 적극적으로 협력해 인천 시민들이 쾌적한 공기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한국환경공단 제공■ 조강희 본부장은?▲ 1965년 서울 출생 ▲ 1984년 서울 남강고 졸업 ▲ 1988년 서강대학교 화학과 졸업 ▲ 2003~2012년 인천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 2013~2015년 인천환경공단 본부장 ▲ 2015~2018년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 2019년~현재 한국환경공단 기후대기본부 본부장 ▲ 2019년~현재 한국대기환경학회 부회장 ▲ 2019년~현재 한국기후변화학회 부회장한국환경공단 기후대기본부 조강희 본부장은 "우리나라도 이제 '탈(脫) 탄소' 성장에 진입할 시기"라며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을 위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0-11-03 김주엽

[인터뷰…공감]교수에서 산업현장 해결사로…주영창 차세대융기연구원장

# 교수 생활 20년·원장 취임 6개월학교와 다른 현장 체감 "새로운 언어 배우는 기분""짧게 손만 대고 멈추면 똑같은 문제 다시 생겨나"소·부·장 산업은 '긴 호흡' 필요… 꾸준한 지원 역설# 원천 기술 개발하지만 핵심은 연결연구원이 직접 장비·특허·포트폴리오등 문제 해소화학물질 승인 중기 부담… 누구나 와서 실험 가능경기도 유일 공공 R&D 지원기관으로서 책무 강조지난해 7월 일본은 반도체 관련 소재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 전 세계 생산량의 90%가 일본에서 생산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 그리고 70%가 일본에서 생산되는 에칭가스 등 3가지가 대상이었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등에 영향이 불가피했다. 특히 다수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가 소재한 경기도엔 직격탄이 예상됐다. 도가 3개 품목을 비롯해 대일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을 제조하는 기업 전반에 지원을 결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경기도형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사업의 시작점이었다.재료공학 전문가인 주영창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를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하 융기원) 원장에 선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융기원은 지방자치단체 연구기관 중 기업의 R&D 지원에 특화돼 있는 거의 유일한 기관이다. 그런 융기원이 이른바 소·부·장 국산화 지원을 이끌게 된 가운데 선두엔 재료공학 전문가인 주 원장이 서게 됐다.반년이 지난 지금 국내는 물론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이슈 등에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공분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대한 관심도 한풀 꺾인 상황이다. 소·부·장 개발은 긴 호흡이 필요하지만 모처럼 붙은 불씨가 꺼져버릴까 우려의 목소리가 번지고 있다. 주 원장 역시 인터뷰 내내 꾸준한 지원의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다.#소재·부품·장비, 긴 호흡 필요올해 초까지 그는 서울대 교수였다. 국내 최고로 꼽히는 대학에 20년 넘게 몸담으며 많은 논문을 쓰고 기술을 개발하는데 기여했지만 늘 갈증이 있었다. "결국 기술은 사람을 위해 만드는 것인데 학교엔 그 기술을 직접 쓰는 사람, 현장이 없었다. 괴리감을 많이 느꼈다"던 주 원장은 "원장이 된 지 6개월이 됐는데 당연히 학교와 현장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그런 그가 원장으로 부임한 후 가장 주력해왔던 게 경기도형 소·부·장 국산화 지원 사업이다. 재료공학 전문가인 그가 이곳 원장으로 온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재료공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소재·부품·장비 산업이 유명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온 국민이 '소부장'이라는 말을 쓰게 됐다. 그런 점에선 아베 전 총리에 감사해야 할까"라며 웃은 주 원장은 "반도체도, 자동차도, 가전도 모두 1등인데 왜 그 안에 들어가는 소재·부품·장비는 우리 손으로 만들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나라의 관련 산업 역사가 짧다. 소재·부품 제조 기업 중 세계적으로 가장 큰 기업이 독일의 바스프라는 곳인데 설립한 지 150년 가량 됐다. 우리나라는 그때 조선 시대였다. 그런 역사를 단기간 따라잡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소재나 부품 등은 다른 나라에서 사다 쓰면 됐고 그동안 제품 생산에 문제가 없었으니까 중요성을 크게 인지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이번 수출 규제를 통해 공급 체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것도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점이 가장 뜻깊다"고 말했다.그러면서도 "계기가 생긴 것은 의미가 있지만 짧게 손만 대고 멈추면 똑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것"이라며 "반도체나 자동차 등 완성품은 인력을 투입하면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소·부·장은 긴 호흡으로 끌고 가야 한다. 모처럼 국산화 기회가 생겼는데 '1년이나 됐는데 이것밖에 못 했어?', '아직도 소부장이야?'라고 볼까봐 걱정이 큰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했다.#핵심은 '연결'…과학기술도 '공정'이 중요융기원은 경기도내 17개 기업의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작업을 돕고 있다. 단순히 비용만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문제가 무엇인지 살피는 게 핵심이다. 주 원장은 "원천기술을 개발하기도 하지만 핵심은 연결"이라며 "좋은 소재나 부품을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은 있는데 도중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해 하는 중소기업들이 많다. 그러면 연구원들이 '문제해결사'로서 직접 해당 기업을 찾아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피고 관련 전문가를 연결해주거나 절차를 알아봐 준다"고 설명했다.어떤 장비를 써야 하는지, 소재를 제대로 만든 것인지, 특허는 어떻게 내야 하는지, 대기업에 납품하려면 어떻게 포트폴리오를 작성해야 하는지 등 작은 기업들이 혼자선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주는 것이다. 융기원 차원에서 포럼을 열어 대기업이 지금 필요한 소재나 부품 등이 무엇인지 직접 설명하는 장도 만든다. 중소기업들이 이를 듣고 맞춤형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지난 9월에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포럼에 참석해 앞으로의 디스플레이 개발 구상을 설명했다.27일 개소한 오픈 랩(개방형 실험실)도 경기도형 소부장 국산화 지원의 한 축이다. 다양한 물질을 결합해 소재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각종 실험이 필요하지만 이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전전긍긍했던 중소기업들을 위한 곳이다. 주 원장은 "역량은 있는데 가지고 있는 기본 자원에 차이가 있어 이를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는 게 중소기업의 현실"이라며 "대기업은 장비도, 안전 설비도 갖추고 있는데 작은 회사에선 그렇지 못하다. 안전 문제 때문에 화학물질을 취급하려면 그때마다 일일이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도 중소기업으로선 큰 부담이다. 융기원이 이번에 만든 오픈 랩은 이미 중소기업이 취급하려는 화학물질 다수에 대해 승인을 받았고 안전하게 실험할 수 있는 장비 등도 모두 갖췄다. 누구나 와서 실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결국 '공정'의 가치와 맞물려있다는 게 주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과학기술이 경제를, 세상을 바꾸는 주된 요인이 됐는데 그동안 과학은 특정 우수 집단만이 다루는 것으로 치부돼 왔다. 그렇다 보니 과학기술을 자본력을 가진 소수가 독점하기 쉬운 구조가 됐다"며 "지금은 플랫폼을 가진 소수가 이익을 독점하지 않나. 과학기술 역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인프라, 플랫폼이 중요한 만큼 이를 토대로 얻어진 이익을 특정 소수만이 누린다. 인력과 자금을 오랜 기간 꾸준히 투입해야 하는 소·부·장은 특히 그렇다"고 언급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초고속 성장을 이룬 점도, 소재·부품·장비 원천기술을 가진 일본이 수출규제라는 카드를 꺼내 든 점도 과학기술의 이런 특성과 맞물려 있다는 얘기다.이 때문에 과학에도 공정, 기회의 평등을 구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 원장은 "과학기술 부문에서도 누구나 기회를 공정하게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공공의 힘이 필요하다. 융기원은 그런 공공 차원의 플랫폼을 마련하는 기관이다. '공정'을 앞세운 경기도의 정책 기조와도 맞물려 있다"며 "경기도의 유일한 공공 R&D 지원 기관으로서 융기원이 '과학의 공정'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주영창 원장은?# 학력1965년생1987년 서울대 졸업1995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 MIT 대학원 재료공학 박사# 경력1999년 ~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2017년 2월 ~ 2019년 2월 대학기술산업지원단(UNITEF) 박사2020년 3월 ~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원장# 수상1987년 포스코 철강상2004년 신진학술상2010년 해동학술상2012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공로상2015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 LS-Nikko 학술상주영창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원장은 "지방정부는 더욱 현장과 가깝다. 경기도가 소재·부품·장비 자립화에 나선 이유"라며 경기도 지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사진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현판 앞에 서있는 주 원장./아이클릭아트

2020-10-27 강기정

[인터뷰…공감]카누대회 출전까지 넘보는 이은진 여사의 '무한도전'

운동신경은 평범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호기심손녀와 시작 " 물위서 보는 송도 풍경 아름다워"체험용 카약 성에 안차 시합용 K-1 감독에 부탁강습 3일째 끝끝내 완주 6일째 시원한 물살 갈라안전문제 고려 최대한 감독이 직접 레이스 챙겨올해 대회 신청 놓쳐… 섬투어링 계획 '대리만족'"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여러분, 도전하면 행복해져요. 그리고 물 위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은 더더욱 아름답죠. 도전을 두려워하지 마세요."일흔의 나이를 바라보는 한 인천 할머니의 '카누' 도전기가 주변 생활체육 동호인들 사이에서 화제다.카누 경기에 쓰이는 K-1 카약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라면 열이면 열, 균형을 잡지 못해 물에 풍덩 빠지기 마련이다. 운동 좀 한다는 젊은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배우기가 만만치 않다는 종목이 바로 카누다.지난 13일 찾아간 인천 송도국제도시 카누 훈련센터.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송도 달빛공원에서 송도2교(컨벤시아교) 아래로 걸어 내려가면, 길게 뻗은 하천을 따라 레이스를 펼치는 인천시청 직장운동경기부 소속 카누팀 선수들을 만날 수 있다. 카누 동호인들이 휴일에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화제의 주인공인 이은진(69)씨는 집 근처 공원에 나갔다가 우연히 K-1 카약 강습을 받는 동호인들을 보게 됐다. 평소 다니던 수영장이 코로나19로 문을 닫자 답답한 마음에 바람이라도 쐬려고 자전거를 끌고 송도2교 주변 산책로를 지나던 차였다. 호기심이 생긴 이씨는 재능기부로 카누 동호인들을 가르치고 있던 이에게 다가가 한참 귀를 기울이다 용기를 내서 자신도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국가대표 감독 출신인 강진선 인천시청 카누팀 감독이었다.그 인연으로 이씨는 지난달 초 연수구 카약동우회에 가입해 손녀딸과 함께 초보자를 위한 체험용 카약을 타봤다. 이씨는 "물 위에서 보니까 송도의 풍경이 더욱 멋졌다"며 "타 보지 않은 사람은 이 말의 의미를 절대 모른다"고 말했다.하지만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는 그는 강 감독을 다시 찾아가 시합용 K-1을 배우고 싶다고 졸랐다. 이씨의 부탁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강 감독은 '연세가 있으신데 한두 번 해보다가 힘들어서 그만두시겠지'라는 생각에 못 이기는 척하고 이씨의 부탁을 들어줬다. 이씨는 "하도 조르니까 감독님이 '제가 오늘 포기시켜드리겠다'고 하시더라고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강 감독은 일흔을 앞둔 이씨가 강습 중 혹시 모를 사고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어 일찌감치 그만두게끔 하려고 이런저런 궁리를 했던 거였다.이씨는 예상대로 중심을 잡지 못해 배에 제대로 올라타지도 못하고 숱하게 물에 빠졌다. 하지만 강습 3일째 되던 날 그가 송도1교에서 2교로 이어지는 2.5㎞ 코스를 딱 두 번만 물에 빠지고 끝끝내 완주하자 강 감독은 깜짝 놀랐다. 아이로 치면 걸음마를 뗀 셈이다. 강 감독은 "이 코스에서 K-1을 타고 혼자서 스스로 끝까지 와야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카누 입문 6일째쯤 되던 날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이씨의 레이스가 촬영된 휴대전화 동영상에는 자전거를 타고 쫓아가며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그렇지! 과감하게! 좋아!"라고 외치는 강 감독의 육성이 담겨 있어 웃음을 자아냈다. 누구보다 신이 났던 강 감독이었다. 이씨는 "처음에는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 정도로 넘어지고 빠지면서 고생을 했다. 노력한 끝에 완주해서 정말 행복했다"며 "물 위에서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고 소감을 전했다.'왕 누님'으로 통한다는 이씨의 도전에 체험용 카약을 즐겼던 동우회의 젊은 회원들도 자극을 받았는지 K-1에 속속 도전장을 내고 있다. 이씨는 "도전은 행복을 가져다준다"며 "내 자식도 취미 활동을 함께 못 해주는데, 카누에 도전한 덕분에 이 나이에 젊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게 돼 정말 행복하다. 감독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추석에 아들에게 블로그를 배워 카누 동호인으로서의 행복한 삶을 기록해 나가고 있다.이씨는 자신도 여느 평범한 할머니들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시집 간 딸의 육아를 돕기 위해 예순 즈음에 인천에서 운영해 왔던 학원을 정리하고 스스로 정년을 맞이했다고 한다. 또 스포츠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에 비해 운동신경이 뛰어나다고 스스로 믿는 것도 아니다.이씨는 "코로나19가 돌기 전까지 취미로 인천시(체육회)가 운영하는 수영장 등을 다니던 정도였고, 그런 체육시설들이 모두 문을 닫게 되면서 거의 집에서만 생활했다"며 "아픈 무릎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운동 삼아 집 근처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시대에 내가 즐길 수 있는 취미 활동을 찾다가 카누가 갑자기 눈에 들어온 것 같다. 그전까지는 집 앞에 큰 공원이 있어도, 카누를 타는 사람들이 보여도 관심을 두지 못했다"고 했다.이씨는 요즘 마실 다니듯 송도2교 카누 훈련센터를 찾는다. 그의 기량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강 감독은 안전 문제를 고려해 가능하면 자신이 지켜보는 중에 이씨가 레이스를 펼치도록 하고 있다. 이씨를 여사님으로 부른다는 강 감독은 "젊은이들에게 도전 정신을 몸소 보여준 여사님의 용기와 열정에 크게 감동 받았다"며 "카누 대중화와 저변 확대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이씨는 강 감독을 졸라 내년 전국생활체육카누대회에 출전시켜 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올해 대회는 참가 신청 기간을 놓쳤다고 한다. 최근 동우회 임원들과 홍천에서 카누를 즐기고 온 이씨는 또 한 번의 도전을 앞두고 있어 무척이나 설렌다고 했다. 그는 강 감독이 올해 안에 카누 동호회원들을 이끌고 갈 인천 앞바다 섬 카누 투어링에 함께 가기로 한 것이다. 이씨는 "상상만 해도 신난다"며 활짝 웃었다.글/임승재기자 isj@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인천 송도국제도시 달빛공원에서 걸어갈 수 있는 송도2교(컨벤시아교) 아래 '인천시 카누훈련센터'.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젊은 사람들도 배우기 어렵다는 카누에 도전해 주변 생활체육 동호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이은진(69)씨는 이곳에 매일같이 나와 길게 뻗은 하천에서 물살을 가르며 카누를 즐기고 있다.

2020-10-20 임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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