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자카르타AG 여자 복싱 '대한민국 사상 첫 금메달' 오연지 (인천시청)

아시안 게임 매 경기마다 간절함금메달 아직도 실감 안나 얼떨떨인천AG·리우올림픽 선발전 좌절잇단 판정논란 '국내 최강자' 울분짧은 방황후 다시 오뚝이처럼 재기최대 고비 4강 北 최혜송 꺾고 영광11월 세계선수권·2년뒤 도쿄올림픽아시아 넘어 세계정상 '두주먹 불끈'"지금 이 순간, 흘리는 땀방울도 값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죠. 올림픽 金메달이 제 인생의 전부가 아니란 것을."올림픽 금메달만 바라보고 샌드백을 두드렸다. 선수촌에서도 연습벌레로 통했다. 그의 스승은 "훈련량으로 치면, 전 세계에서 이 녀석만큼 열심히 하는 선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국내에는 적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꿈꿔오던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한 그는 상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방황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어느날 불현듯이 떠오른 생각. '올림픽 금메달이 전부는 아니잖아. 난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훈련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한국 여자복싱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도전한 그는 상대를 향해 마음껏 두 주먹을 날렸다. 치열한 혈투 끝에 마지막 3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그의 손을 심판이 번쩍 들어 올렸다. 정적을 뚫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시아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한국 여자복싱이 새 역사를 썼다. 오연지(28·인천시청)는 이달 초 막을 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여자복싱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복싱 남녀 대표팀을 통틀어 유일한 메달이다.소감부터 물었다. 마음고생이 컸던 것일까. 오연지는 한참 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부담이 컸어요. 한 경기, 한 경기 간절한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사실, 아시안게임 무대에 섰다는 것 자체도 실감이 안 났죠. 아직도 얼떨떨해요."오연지는 국내 대회를 평정했다. 가장 대표적인 전국체육대회에서 여자복싱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2011년 우승을 차지한 이후 지난해까지 7연패의 대기록을 세웠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라이트급(60㎏) 여성 복서들이 모이는 이 대회에서 한 차례도 금메달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그의 주먹은 아시아에서도 통했다. 2015년과 2017년에 아시아복싱연맹(ASBC)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여자복싱 사상 최초로 2연패를 일궈냈다. 한국 여자복싱의 역사가 오연지의 주먹에 의해 쓰이고 있는 셈이다.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연지는 이달 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자카르타 국제 전시장(JIEXPO)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복싱 라이트급(60㎏) 결승에서 태국의 슈다포른 시손디에게 4-1(29-27 28-28 27-29 27-29 28-28) 판정승을 거두며, 한국 여자복싱 사상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오연지는 참아왔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그 눈물의 의미를 스승인 김원찬 인천시청 복싱팀 감독은 잘 안다. 김 감독은 오연지의 어깨를 두드려줬다.이 자리에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오연지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해당 체급 국내 최강자답게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석연찮은 판정으로 패하며 울분을 삼켰다. 몸 담고 있는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었기에 더욱 간절했던 그였다. 당시 오연지의 세컨드였던 김태규 인천시청 코치는 링에 올라가 항의하다가 최종 5년 자격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올림픽 출전이란 오랜 꿈도 바로 눈앞에서 놓쳤다. 오연지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선발대회 8강전에서 또다시 석연찮은 판정으로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다. 그야말로 시련의 연속이었다."힘든 순간들을 잘 견뎌왔던 것 같아요. 특히 (리우) 올림픽은 정말 간절했거든요. 좌절도 했죠. 저의 오랜 꿈이었으니까…. 올림픽 출전을 위해 준비했던 시간을 떠올려봤는데, 금메달이 전부는 아니더라고요. 제가 흘린 땀이 더욱 값진 것이었어요."오연지는 이를 악물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물론 이번 아시안게임은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매 경기가 결승전이나 다름없었다. 대진표를 확인한 김 감독도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 16강(베트남 류띠듀엔), 8강(중국 양원루), 준결승(북한 최혜송)은 물론, 결승까지 오연지가 상대한 선수들은 모두 우승 후보들이었다.최대 고비는 북한 최혜송과의 4강전이었다. 그는 지난해 러시아에서 열린 국제 복싱대회에서 양원루를 3-2로 제압하고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였다. 오연지와 최혜송은 당시 대회에서 서로의 경기를 지켜보며 이번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왔다.오연지는 전북 군산이 고향이다. 1988·1992년 올림픽 국가대표 출신인 외삼촌(전진철)이 운영하는 복싱 체육관에 놀러 갔다가 복싱과 인연을 맺었다.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오연지는 부모님(오광열, 전진순)의 만류를 무릅쓰고 군산상고에서 본격적으로 복싱을 시작해 현재에 이르렀다.오연지에게 복싱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도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오연지의 머릿속은 벌써 올해 11월 세계선수권에 이어 2년 뒤인 2020년 도쿄 올림픽을 향해 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정상으로 가는 길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오연지가 한국 여자복싱 역사에 또 다른 획을 긋는 상상을 하니 은근히 마음이 들뜬다.글/임승재기자 is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오연지 선수는?▲ 전북 군산 출생(1990년)▲ 군산상업고등학교, 호원대학교 졸업▲ 전국체육대회 7연패(2011~2017년)▲ 아시아복싱연맹(ASBC) 아시아선수권 2연패(2015·2017년)▲ 2018 자카르타-팔렘방 AG 金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한국 여자복싱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한 오연지 선수가 18일 오후 인천시 남동체육관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목표로 훈련을 하고 있다.지난 1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터내셔널 엑스포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복싱 라이트급(60㎏) 결승에서 한국 오연지가 태국 선수를 상대로 경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오연지가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09-18 임승재

[인터뷰… 공감]'정류장 시인' 선희석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재난종합지휘센터 소방위

광교호수 바라보며 느낀 애환… 수원시 정류장 인문학글판 입상글쓰기 배운적 없지만 현장 '트라우마' 속앓이 소방관 돕고자 시작2년간 커뮤니티에 '힐링 아침 편지'… 기념일 직접 손으로 써 전달문체부 기념수기·공무원 문예대전 등 수상… 라디오 DJ 되기 새꿈인명을 구조하고 화재를 진압하던 한 소방관의 손끝에서 묻어난 가슴 찡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속에 맴도는 생각을 정리하던 그는 소방관 동료들, 더 나아가 시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글쟁이'가 되려 한다. 선희석(53)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재난종합지휘센터 상황4팀 소방위의 별명은 '정류장 시인'이다. 지난 2015년 수원시에서 주최한 하반기 버스정류장 인문학글판 창작시 공모에서 '광교호수에서'라는 시로 입상한 뒤 광교신도시 신대저수지 부근 하동의 한 버스정류장에 시를 게시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어떤 별명보다 정류장 시인이라는 별명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시민들이 오가는 거리에서 자신이 광교 호수를 바라보며 느낀 애환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수원팔경 돌아서니 호수에 드리운 님의 얼굴 곱구나 / 해를 삼킨 광교호수 어둠마저 풋풋하여라 / 살랑대는 미풍에 님의 숨결 아득할 때 / 백리길 마다 않고 달려온 발걸음은 어느새 새털구름 / 내마음 들킬까봐 나도 몰래 빠져드는 광교호수'수원역 로터리 식당 '백구옥'의 둘째 아들로 수원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광교 호수는 아름다운 공간만은 아니다.광교 호수를 원천 저수지라고 부르던 시절인 1995년 7월 송탄소방서내에서 지방소방사로 공직을 시작한 그는 2000년 12월 수원남부소방서로 발령받았다. 근무 한지 얼마 안돼 당시 한 식당으로 이용되던 원천 저수지 수상 건물에서 큰불이 났다.선 소방위는 방화복을 착용하고 무거운 장비를 들고 동료들과 함께 화마(火魔)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눈 앞에서 목조 다리가 무너져 동료 대원이 사라졌다. 선 소방위는 머리 위로 불타는 건물이 있었고 발을 짚은 목조 다리는 위태로웠지만, 동료의 산소탱크를 붙잡아 물속에서 끄집어냈다. 소방관으로 살아가면서 몇 차례 죽음의 공포를 맞닥뜨렸지만, 그 당시만큼 두려웠던 적은 없었다고 그는 회상한다.소방관들은 재난 현장에서 말 그대로 '생고생'을 한다. 몸도 많이 다치지만, 마음의 병을 치유하지 못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선 소방위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동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펜을 잡았다.그는 "원천저수지의 일 말고도 화재 현장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꼼짝없이 갇혀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 죽음의 공포를 수도 없이 느끼며 삶을 이어가는 동료들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적기 시작했지요"라고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그는 단 한 번도 전문적으로 글쓰기를 배워본 적은 없다. 외모도 시와는 거리가 멀다. 당근색 소방대원 옷을 입은 그에게 '시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목이 굵고 피부가 거뭇거뭇하게 그을린, 운동을 좋아할 것만 같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의 사나이 풍모다.그는 청소년기 태권도 선수로 활동하다 부상으로 꿈을 접었다. 학업을 마치고 특전사 중사로 전역한 뒤에는 택시도 몰고 가스 배달을 하다가 경기도 소방공무원 구조 특채(1995년 7월)로 임용됐다. 고등학교 시절 백일장에서 글을 써 입상을 하며 국어 선생님이 용기를 불어 넣어준 기억이 그를 다시 창작의 길로 인도했다.2년 전부터 수원소방서 온라인 커뮤니티에 동료들을 위로하기 위한 '힐링 아침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결혼기념일이나 자녀 돌을 맞은 후배들에게 손글씨로 편지를 써 선물하려고도 펜을 잡는다. 함께 근무하는 모든 동료들의 소중한 날, 자신의 편지를 쥐어 주는 것이 퇴직 전 목표다."글을 적으면서 가장 감사한 순간은 무대에 올라 상을 받았던 것보다는 동료들이 과거에 선물한 손편지를 꺼내 보이며 '제 아들 첫 생일날, 주임님이 주셨던 편지 이렇게 아직도 갖고 있어요'라는 후배의 한마디를 들었을 때예요."꾸준한 글쓰기로 연마한 실력은 전국 단위 공모전에서의 수상으로 인정받았다. 지난 6월 문재인 정부 출범 1주년 기념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기념 수기 공모전에서 '시간의 벽을 넘어서'라는 작품으로 최우수상을 받았고, 2016년에는 제19회 공무원 문예대전 시 부문 은상을 받았다.수기 공모전에 출품한 '시간의 벽을 넘어서'에는 공직 생활을 하면서 갖게 된 나라에 대한 봉사정신과 주변 동료, 가족들에 대한 마음을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공무원 문예대전에서는 '옥자'라는 제목의 시를 출품했다.가족을 먼저 떠나보내고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아픔도 선 소방위에겐 집필 욕구를 강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남매를 남기고 아내가 먼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야를 막론하고 근무해야 하는 소방관이었기 때문에 여동생에게 어린 남매를 맡기고 근처에 혼자 살아야 했다."아들과 가까이 산 지 얼마 안 됐어요. 제 자식들과 한 건물 오피스텔에 각자 방을 얻어서 이제야 붙어서 지내고 있는데, 떨어져 있을 때 몰랐던 부(父)정이 제 안에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아버지의 손길이 필요할 때 더 함께 해야 했다는 후회도 하고 있습니다."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수원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민 기자로 활동하며 숨겨진 수원의 명소들을 함께 찾아다니고 사진과 글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화성행궁, 행궁동 벽화골목, 일월공원 등 수원의 가볼 만한 명소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글로 전달하는 기쁨을 넘어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다가가 시 읽어주는 라디오 DJ가 되는 것이 그의 새 꿈이다.지난해 6월 선 소방위는 수원시가 주최하고 한국성우협회와 KBS성우극회가 주관하는 '제18회 시와 음악이 있는 밤' 공모전에 당선돼 수원 야외음악당에서 자신이 쓴 시를 낭독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의 격려가 그에게 새로운 목표를 갖게 한 동력이 됐고, 조직 내에서 아침마다 좋은 글을 읽어 주는 방송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제 글과 목소리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한 기쁨이 없을 거예요. 앞으로도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시로 표현해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퇴직 후에는 작은 카페를 운영하며 해왔던 일들을 정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그의 소망이 이뤄지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글·사진/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선희석 소방위는?선희석 소방위는 1995년 7월 경기도 소방공무원 구조 특채로 임용돼 송탄소방서, 수원남부소방서, 수원중부소방서 등에서 근무. 1998년 수해복구지원 유공 경기도지사 표창, 2014년 11월 제52주년 소방의 날 유공 수원시장 표창. 문재인 정부 출범 1주년 기념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기념 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 수상. 직원 커뮤니티에 글을 쓰기 시작. 최근 손글씨를 배워 편지를 써 전달. 새 정부 출범 1년 동안 개인적으로 변화된 삶의 무게와 고민을 '시간의 벽을 넘어서'라는 작품을 통해 담아냈다. 2016년 제19회 공무원 문예대전 시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경기도재난안전본부 재난종합지휘센터 상황 4팀 소속으로 왕성한 시·수필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선희석 소방위가 자신이 근무하는 자리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9-11 손성배

이정미 정의당 대표 "약자 대변·인천발전에 최선"

송도서 워터프런트 집회 방문 등환경·교육 지역구 현안 파고들어주 52시간이 도입된 후 정치판에도 바뀐 것이 있다. 오전 8시 30분께 진행하던 각 당 지도부 회의나 의원 총회 등 회의 일정이 1시간가량 늦춰졌다. 이런 변화를 이끈 건 이정미(52) 정의당 대표다. 출입 기자들의 근로 시간 단축을 위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정의당이 시작하니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등 다른 당에서도 안 따라갈 수가 없었다.그런데 정작 이정미 대표는 퇴근은커녕 끼니를 거를 때도 허다하다고 한다. 비례대표 의원, 당 대표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도 버거운 판에 인천을 오가며 지역구 현안을 속속들이 챙기기 때문이다. 경인일보와의 인터뷰가 있던 지난 1일에도 인터뷰 시간 직전까지 송도 워터프런트 재심사 요구 집회 현장을 방문하고 왔다고 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이정미 대표는 이마에 맺힌 땀을 채 닦기도 전에 집회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이정미 대표는 "송도 워터프런트 재심사 요구는 단순히 수변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것 이상으로, 송도 주민들의 누적된 억울함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것"이라며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계획된 사업은 무산된 채 악취, 학교·인프라 부족 등의 문제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발에 치우쳐 정작 소홀히 여겨졌던 사람, 환경, 교육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비례대표 의원인 이정미 대표가 인천 송도에 지역사무소를 개소한 지 1년 하고 2개월이 조금 넘었다. 그는 송도의 3대 현안인 6·8공구의 학교·도로 등 인프라 부족 문제, 원인 불명의 악취 문제, 송도 워터프런트 조성 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 교육부에서 직접 보고를 받았는데 6·8공구의 경우 학교 신설 재심사로 2개 학교만 신설된다 하더라도 평균 급당 인원이 67명이라 반드시 4개교가 신설돼야 한다"며 "가장 심각한 악취 문제는 원인 파악이 우선이라 악취 포집기를 추가 설치하는 데 노력했다"고 말했다.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정치인' 중 한 명이기도 한 이정미 대표는 지역구 의원보다 더 열심히 지역 현안에 파고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정미 대표는 "약자를 대변하는 정의당의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앞으로도 인천의 발전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2018-09-04 윤설아

[인터뷰… 공감]인천에서 자란 정치인, 이정미 정의당 대표

#사무실 연 송도, 무엇이 과제인가6·8공구 인프라·악취문제 등 심각개발과정 주민피해 함께 해결해야#국비확보 의원 간담회 제외 논란유정복 시장때도 참여, 한국당 반대지역의원 협력해야… 자리 약속받아#선거구 획정 등 정치개혁 방향은다당제 민의 반영되는 국회구성 사활과도하게 높은 교섭단체 문턱 낮춰야#문재인 정부의 정책 어떻게 보나남북관계·적폐청산은 잘하고 있지만소득주도 성장·경제 민주화 속도내야이번 주 일요일, 그러니까 오는 9일은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가 서거한 지 49일째 되는 날이다. 49재 풍습이 널리 퍼져 있는 우리에게는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진보 정치계의 한 축이자 정의당에서 큰 자리를 차지했던 노 의원의 서거는 정의당에 '날벼락'과 같은 사건이었다. 민주평화당과 어렵게 구성한 공동교섭단체 지위도 잃었다. 그런데 이후 정의당의 반격이 심상찮다. 한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에서는 노 전 의원 서거 이후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지지율을 넘어섰다. 4만 명이었던 당원 수는 5만 명으로, 몇 주 새 1만 명이 늘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제1야당으로 도약하기 위한 당 안팎의 관심이 뜨거워진 요즘이다. 그 중심에 이정미 당 대표가 있다.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노회찬 전 대표의 서거는 정의당에게는 타격이 큰 사건이었지만 이후 정의당에 보내준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는 슬픔에 빠져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당은 앞으로 나아가 달라, 정의당을 사랑해달라'는 노회찬 전 대표의 뜻을 따라 계속해서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당장 닥친 과제는 선거 개혁이다. 내년 4월까지 국회의원 선거구를 확정하려면 공직선거법상 10월에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 이정미 대표는 "민의를 반영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혁은 시대의 흐름이고, 여기에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물론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이 모두 동의하고 있는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며 "다당제 민주주의에서 여러 민의가 반영될 수 있는 국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 개혁에 사활을 걸겠다"고 했다. 국회의원 특수활동비 폐지에 이은 각종 정치 개혁에도 힘쓸 예정이다. 그는 "국회의원 특활비는 물론 모든 공직 분야에서의 특활비를 없애 국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또한 이번 교섭단체 박탈로 절실히 느낀 만큼 교섭단체 문턱이 과도하게 높은 점도 개혁해 나갈 것"이라고 꼬집었다.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잘하고 있는 점'과 '잘못하고 있는 점'을 분명하게 나눴다. 이정미 대표는 "남북관계, 이전 정부의 적폐청산은 잘하고 있지만 경제 정책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 년간 재벌 위주의 경제 패러다임이 한계에 부딪혔는데 계속 여기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 소득주도 성장, 경제 민주화 정책에 지금보다 속도를 내야 하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살려 '을과 을의 싸움'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진보 정치인 이정미 대표가 지난 2016년 정의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처음 입성한 후 지역사무소로 둥지를 튼 곳은 '부자동네'로 이름난 인천 송도국제도시, 바로 '연수구 을' 지역이었다. 인천이야 유년시절 자라온 동네이자 노동운동을 시작한 본거지라 치더라도, 연수구는 크게 연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게다가 송도는 인천에서는 가장 잘 사는 사람들이 모인 '인천의 강남'으로 꼽혀 주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온 정의당과는 그 이미지부터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이정미 대표는 "처음에 이곳을 택했을 때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도시로 가지 그랬냐', '왜 송도로 갔냐'고 하는 말들이 많았지만 송도 주민도 노동자들이 있고,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있고 악취 등 환경 문제가 어느 지역보다 중요해 정의당이 추구하는 목표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6·8공구의 경우 올해부터 입주인데 도로며 학교며 어떤 인프라도 없어 안전 문제도 우려되는 데다가 아이들이 '콩나물시루'에서 공부하게 생겼다. 밤에 송도 악취는 어느 때는 너무 심해서 토할 지경이고, 가스 냄새로 안전까지 우려된다. 그간 행정에서 이런 것들을 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도시만 발전시키려 했기 때문에 이제 이 과제를 모두 해결해나가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러한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이정미 대표는 최근 국비 확보를 위한 인천 국회의원 정책 간담회에서 제외되는 이른바 '이정미 패싱' 논란도 있었다. 이정미 대표는 "유정복 시장 때도 참여했던 자리인데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참가하지 못했다"며 "인천에 의원이 한 명 더 생긴 거라고 생각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인천 시민에게 더 좋은 일인데 배제한 것에 대해 거칠게 유감을 표했으며 앞으로는 함께 자리할 수 있도록 약속을 받은 상태"라고 말했다.이정미 대표는 "인천은 인천공항, 인천항이 있으며 물류도시, 국제도시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높이는 데에는 여야가 힘을 합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송도는 아직도 많은 개발계획이 수립되고 진행되는 곳인데 이런 개발로 인해 주민들이 겪게 될 피해도 함께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이정미 대표는 부산에서 태어나자마자 바로 인천 미추홀구에 올라와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는 부산에서 부모님과 같이 지냈지만 중학교 때부터 다시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박문여중과 인성여고를 나왔다. 최루탄 냄새가 진동하던 때 한국외대에 입학해 2년 만에 중퇴하고 노동 운동에 뛰어들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부평공단의 한 구두약 공장이었다. 이때부터 공단 노동 현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며 본격적인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이정미 대표는 "2003년 권영길 민주노동당 당 대표 시절 중앙당에 당시 고위 당직자 30% 여성 할당제로 당시에는 굉장히 진보적인 당규로 중앙당에 처음 가게 됐는데 그때 사무총장이던 노회찬 전 대표를 만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고 말했다. 두 차례 낙선에 이어 지난 2016년 비례대표로 당선됐고, 지난해 당 대표로 선출됐다.이정미 대표는 "많은 유권자들이 정의당이 옳은 얘기는 한다면서도 힘이 없는 정당이지 않느냐며 선거 때 최종적 선택에서 배제하고 있다. 지난 지방 선거가 이를 잘 보여줬다"며 "이제는 다당제로 가고 있는 만큼 정의당에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 정권 교체로 인한 변화가 현실화되는 과정을 잘 추진해 나가고 견제할 수 있는 정당이 바로 정의당임을 잊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글/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지역사무소 '정치카페테라스'에서 "이제는 다당제로 가고 있는 만큼 정의당에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 정권 교체로 인한 변화가 현실화되는 과정을 잘 추진해 나가고 견제할 수 있는 정당이 바로 정의당임을 잊지 말아달라"고 밝히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9-04 윤설아

[인터뷰… 공감]'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순수를 노래한 가수 예민

젊은 시절 천재적인 재능… 박선주 데뷔곡 '귀로' 등 만들고 1·2집 내며 유명세성공 뒤로하고 미국서 공부… 2001년부터 자비 들여 122개 분교 음악회 대장정대중음악계 떠나 2007년부터 뮤뮤스쿨 운영, 아이들 '영감' 일깨우는 예술 교육아무 의미 없는 한적한 곳에서, 작은 과수원 가꾸며 곡도 쓰고 책도 읽고 싶어단출한 차림으로 활짝 웃으며 그는 나타났다. 요즘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치즈 만들기에 몰두해 있다고 소개했다. 밥 먹고 차 마시며 이어지는 대화 속에 굳이 자신을 꾸미려 하지 않았고, 카메라 의식 없이 이따금 편안하게 담배도 피워물었다. 언론 인터뷰에 좀처럼 응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는 "자연스럽게 잊히는 게 좋고, 잊혀도 상관없다"고 했다. 예민이라는 가수는 몰라도 자신의 음악은 끊임없이 새로운 연을 맺으며 살아움직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2008년, 20여 년의 음악인생을 집대성한 앨범 '오퍼스'를 내고 가수활동을 접은 지 꼭 10년이 된 예민(52)은 "그냥 그때의 나는 그때의 나일 뿐이다. 한창 음악 활동할 때라든지 또 분교음악회 다닐 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동일인인가 싶다"고 말했다.당사자는 수긍하지 않지만, 예민은 젊은 시절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故김광석의 모교인 서울 대광고를 졸업한 그는 대학에 갓 진학한 1980년대 중후반부터 박선주의 데뷔곡인 '귀로', 여행스케치의 '난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어' 등을 만들고 하수빈의 데뷔앨범을 프로듀싱했다. 스스로는 '아에이오우', '서울역'이 수록된 1집과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 '꽃이 바람에게 전하는 말'이 수록된 2집을 발표해 유명해졌다. 전부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룬 것들이다. 이 시기 그의 서정적이고 아릿한 음악은 1980~90년대를 살아간 이들의 정서에 한 부분을 차지한다.예민의 음악은 자전적인 감성이 배어 있다. 노랫말에 실존 명칭이나 구체적인 연도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의 음악에 가장 영향을 끼친 인물은 아버지다. 국민들이 애창하는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는 아버지 페인트공장이 있던 경기도 의왕의 유년기를 배경으로 한다."아버지와 나눈 이야기, 아버지와의 생활공간과 주변 모든 게 내 생각이나 음악, 사람을 대하는 마음을 만들어줬어요. 안양역에서 시외버스 갈아타고 내려서도 20분을 걸어 들어가는, 그 당시 의왕은 서울에서 두 시간이 넘는 거리였어요. 공장 근처에 밭이 한 200평 정도 있는 조그만 농가주택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1년에 대여섯 번씩 그 집의 색깔을 바꾸셨어요. 분홍색 초콜릿색 빨간색, 주말에 둘이 같이 칠하곤 했죠. 아버지는 직업화가도 아닌데 회화작품을 200여 점이나 남기고 항상 음악을 들려주시기도 했어요. 정원도 예쁘게 가꾸셔서 꽃 이름도 많이 알았고요. 일찍부터 자연과 예술을 가까이 접하게 해주신 게 저에게 컸어요.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에 묘사한 풍광은 거의 그 동네 얘기예요."2집 발매 직후 예민은 대중적인 성공을 뒤로하고 돌연 미국으로 떠나 공부했다. '키요라', '세발 자전거와 바둑이'가 수록된 3집과 '마술피리', '기억 속에, 그 애가 있었네'가 수록된 4집 등 귀국 후 그의 음악은 자연의 품에서 삶을 관조하고 있었다. 계속 음악활동을 하는가 싶더니 그는 갑자기 또 기타 하나 메고 1년 여정의 분교음악회를 기획했다. 자비를 들여 2001년 9월부터 1년 동안 오산 삼미분교에서 도서벽지까지 전국 122개 분교, 7만여㎞를 순례하는 대장정이었다."음악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나를 분교로 데려간 것 같아요. 나한테 있어 음악은 무엇일까. 주어진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 노래를 부르던 게 일반적인 형식이었는데 과연 음악이 인간을 그렇게 만났을까? 어떤 틀에 갇혀서 그것만이 음악이고 옳은 표현이라며 살아왔던 건 아닐까? 내 노래가 항상 내 입을 쫓아다녔다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1년 동안 내 노래가 어울리는 곳, 내 노래가 불렸을 때 행복해하는 공간으로 찾아간 것이죠."첫 분교음악회에서 노래를 불러주자 아이들은 전혀 집중을 못 하고 떠들어댔다. 심지어 노래를 하고 있는 그에게 "옥수수 드시라"며 말을 건넸다. 일방적으로 음악을 들려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실정에 맞춰 접근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였다.이후부터는 음악회를 하기에 앞서 정성스럽게 식탁보를 깔고 둘러앉아 아이들에게 코코아를 대접하며 대화를 나눴다. 아이들을 성숙한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아이들의 꿈을 키워 줘야 한다는 그의 뜻에 동참해 아나운서 이금희, 피아니스트 박종훈 등 문화예술인들도 힘을 보탰다. 분교음악회에서 잠깐 마주한 두세 시간의 기억을 곱게 간직한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여전히 이메일로 안부를 전해온다."최근에야 문화사각지대라는 말이 실감 나지 않을 텐데, 당시는 연예인이 문화소외지역을 찾아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분교를 섭외하려 들면 '애들 몇 명 데리고 무슨 음악회?'라는 반응이었고 당연히 무대랄 것도 없었죠."교사와 주민들에게 일일이 상황을 설명해 가며 분교음악회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수많은 언론에서 관심을 가졌고, 찾아가는 문화예술프로그램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분교음악회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CF 섭외까지 들어오던 때 그는 다시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별안간 이유 없이 떠나서 머물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라크와의 전쟁이 벌어진 날 미국의 거리는 여느 때처럼 사람들이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전날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거예요. 아, 이게 전쟁이 난 나라인가? 저쪽에서는 포탄이 터지고 공포에 휩싸여 있다는 걸 이들이 알까? 그런 괴리감이 들어 인도로 무작정 넘어갔다가 열병을 두 번 앓고 겨우 살아났죠."목숨 잃을 뻔한 경험을 하고 2000년대 중반 귀국한 예민은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작곡에 착수해 2008년 '연리지', '빛나호' 등이 수록된 마지막 앨범을 발표한다. 80대 고령의 할머니가 부른 이 앨범의 타이틀곡 '나의 할머니, 그녀의 첫사랑'에는 그의 음악과 인생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혹자는 산골 소녀가 나이 들어 부른 노래 같다고도 했고, 예민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는 호평이 따랐다."저는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해 본 게 총 세 번이에요. 제 음악이 홍보라는 매개로 사람들과 인위적인 연을 맺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먼 훗날 호흡과 성량이 희미해졌을 때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를 불러보고 싶다는 바람은 있었는데, 음악을 재개하게 된다면 미련 없이 뒤돌아보지 않기 위해 정리한 게 마지막 앨범입니다."대중음악계를 떠난 예민은 2007년부터 음악인류학·고고학·음악교육학에 근간을 둔 아동 대상 문화교육프로그램 '뮤뮤스쿨'(Museum & Music School)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제3세계 악기를 두드리고 만지고 냄새 맡게 한다. 아이들은 악기의 소리가 아닌 두꺼비 소리와 비 오는 소리,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체험이 끝나면 저마다 원하는 재료로 세상 하나뿐인 악기를 창작하고 연주회를 열어 '내 악기만큼은 세계에서 내가 제일 잘 알고 내가 제일 잘 연주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얻는다.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의뢰로 올해 초 평창문화올림픽에서 '1학교 1국가 문화교류' 프로젝트를 감독했던 예민은 "영감을 통해 동기가 생기고 그 동기를 실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경험, 그리고 피아노교본을 보며 예술이 아닌 손가락기술을 습득하는 경험 중 어느 방향으로 아이들을 이끌어야 할지 고민은 어른들의 몫"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다음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 의미 없는 한적한 곳에서 작은 과수원 가꾸며 곡도 쓰고 책도 읽고 싶다"며 미소 띤 채 먼 곳을 응시했다.글/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사진/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예민은?▲1966년 서울 출생▲2003년 美코니시예술대학 현대음악작곡 전공▲1990년 1집 '아에이오우'▲1992년 2집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1997년 3집 '노스탤지어'▲2001년 4집 '나의 나무'▲2008년 5집 '오퍼스'▲2003년 '분교음악회 숲이 된 122개의 추억'(샘터) 발간▲2007년 (주)아티움오퍼스 설립▲2018년 평창문화올림픽 '1학교 1국가 문화교류' 축제형프로그램 총괄기획예민은 머리가 아닌, 손과 땀방울이 기억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치즈만들기다. 주위에서는 "더 큰 일을 할 수 있으면서 왜 소박한 꿈만 꾸느냐"고 의아해 하지만, 그는 "의미 있는 일에는 크고 작은 게 없다"고 말한다. 사진/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사진/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아티움오퍼스 제공문화소외지역을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음악회'에 대해 공감대가 전혀 없던 시절, 예민은 의문부호를 먼저 내미는 마을 주민과 교사들을 설득하고서야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었다. /아티움오퍼스 제공

2018-08-28 김우성

[인터뷰… 공감]신한용 (사)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

정부 결정 하루만에 추방, 31개월째 폐쇄… 그야말로 재앙'평화수역 합의' 계기로 진출, 남북관계 개선 자부심 생겨북한인력 단번에 우수성 느껴… 임금·물류비 절감도 강점남북·북미 정상회담후 후속조치 없어… 희망고문 끝내야"폭염에 타들어 가는 농작물처럼 우리 속도 새카맣게 타들어 갑니다." 신한용(58) (사)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당장 내일이라도 들어가 가동할 수 있을 것만 같던 개성공단 운영 시점을 아직도 기약할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이같이 말했다. 신 회장은 차갑기만 했던 남북관계가 올해 초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급속히 풀리고 4·27 남북정상회담, 6·12 북미정상회담 등이 연이어 열리면서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희망을 키우게 됐다. 하지만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구체적인 후속 조치는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심지어 개성공단 시설 점검 등을 위한 기업인들의 방북 승인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 후 충남 예산에 따로 공장을 마련했지만, 운영은 어렵기만 하다. 신 회장은 "북한 핵 문제로 남북 경협에 대해 언급조차 금기시되던 상황에서 남북·북미정상회담 등이 진행되면서 개성공단 재가동에 희망과 기대를 걸었지만, 회담 이후 뚜렷한 후속 조치가 이뤄진 게 없다"고 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 경협을 언급한 부분에 다시 희망을 갖게 됐지만,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며 "재가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합당한 보상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내부에서 나온다"고 했다.개성공단 전면 폐쇄가 결정된 건 31개월 전이다.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신 회장은 개성공단 폐쇄를 통보받은 '그날'의 상황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던 신 회장이 통일부로부터 "가급적 많은 공단 업체 관계자들과 함께 좀 모여달라"는 연락을 받은 건 2016년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전달 북한의 핵실험이 있어 개성공단 운영이 중단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던 시기였다. 신 회장은 2010년 천안함 사건, 북한의 연평도 포격 등에 따른 위기 상황에서도 개성공단의 명맥이 유지된 만큼, 공단이 폐쇄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명절인 만큼 덕담을 주고받는 자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30명 정도의 회원사 관계자와 함께 들어선 약속 장소엔 통일부 장관 등을 비롯해 경제부처 차관 등 관료들이 나와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들은 신 회장의 예상을 벗어나는 얘기를 꺼냈다. 한 관료가 "오늘 오후 5시부로 개성공단을 닫는다"고 했다. 공단 폐쇄까지 2시간 30분 정도를 앞둔 시점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정부 관계자들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 피해가 없도록 맞춤형으로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북한과 협상해서 공단 내 물건을 빼 올 수 있도록 3일의 시간을 주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딱 하루가 지나고 북한이 모두 추방해 버렸다. 신 회장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며 "그렇게 군사작전 하듯 결정된 개성공단 폐쇄 조치가 지금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했다.신 회장은 개성공단에서 어망 제조업체를 운영했었다. 2007년 남북 정상 간 서해 공동어로수역 지정과 평화수역화 합의가 개성공단 진출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인천과 중국을 오가며 어망공장을 15년 정도 운영했던 신 회장은 서해 공동어로수역에서 사용할 그물을 개성공단에서 만들면 사업적 측면뿐만 아니라 남북문제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남북 관계 개선에 자신이, 그리고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이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점점 커졌다. 통일에 가까이 가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도 생겼다.신 회장은 "처음엔 돈을 벌려고 개성공단에 갔던 것도 사실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며 "개성공단을 더욱 놓지 못하는 건 이런 생각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원사는 120여 개에 달한다. 슈퍼나 세탁소 등 영업기업은 80여 개, 개성공단에 원부자재를 공급하는 협력업체는 5천여 개나 된다. 개성공단의 하루하루를 함께 일구던 이들이다.신 회장은 개성공단 공장에서 200명 정도의 북한 근로자와 함께 일했다. 계획경제에 익숙한 북한 근로자가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불만을 나타내는 사장들도 있었다. 중국에서 공장 운영 경험이 있는 신 회장은 북한 근로자들의 우수성을 단번에 느꼈다고 했다. 시장경제에 익숙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높은 이해도를 보였다. 납기가 급하게 잡힐 경우, 이를 맞춰줄 테니 수당 등을 더 달라는 식으로 역제안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서로의 삶에 조금씩 영향을 미치고, 또는 영향을 받으며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된 것이다. 신 회장은 "개성공단은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통일 학습장 역할을 했다고 본다"며 "매일매일이 통일이 이뤄지는 작은 공간이었다"고 했다. 개성공단은 비교적 저렴한 인건비에, 오전에 원부자재를 공급하면 오후에 우리나라 유통시설에서 판매할 수 있는 등 물류비 면에서도 강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말이 통한다'는 건 해외 공장 운영 과정에선 느낄 수 없는 가장 큰 장점이었다. 신 회장은 "70년 가까이 남북이 찢어져서 살았지만, 그래도 한 동포"라며 "생각에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걸 극복하니 나중엔 눈빛만 봐도 알겠더라"고 했다.신 회장은 가진 것 없는 중소기업들의 자산을 찾기 위해, 또 남북 관계 개선에 기업들이 디딤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소명을 다하기 위해 개성공단을 반드시 재가동해야 한다고 했다. 신 회장은 제2, 제3의 개성공단이 지속해서 확산되면 그것이야말로 통일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멈춰 있는 개성공단을 다시 활기차게 가동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신 회장은 "우리가 살아서 개성공단에 들어가야, 우리를 보고 후발 기업들이 제2, 제3의 개성공단에 입주해 역할을 다하지 않겠느냐"며 "우리가 개성공단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힘을 합쳐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제재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우리가 하루빨리 개성공단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한다"고 했다. 글/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신한용 회장은?▲1960년 충남 태안 출생▲1988년 인하대 졸업▲1993년 중국 어망공장 운영▲1995년 신한물산(주) 설립▲2003년~ 현재 인하대 초빙교수▲2004년 인하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학위 취득▲2007년 개성신한물산(주) 설립▲2011년 신한물산(주), 인천시 비전기업 지정▲2014년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 및 기획분과위원장▲2017년~ 현재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신한용 (사)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이 "우리가 개성공단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힘을 합쳐 국제사회의 제재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우리가 하루빨리 개성공단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8-21 이현준

[인터뷰… 공감]'경인지역 첫 폐 이식 성공' 함석진 아주대병원 교수

사례 늘어나면 정부 지원 확대, 더 많은 사람에 기회 '선순환'신뢰 영향 끼치는 초기성적, 수술팀 2년 넘게 치밀하게 준비팀 워크·병원 차원 지원·윤리적 문제 얽혀… 리더십 강해야상태 나쁜 장기 활용 세계적인 추세… '기초 의학연구' 관심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면도도 못했고…, 머리도 정돈하지 못했는데…." 말끝을 흐리며 그의 시선이 살짝 거울로 향했다. 그러더니 이내 체념한 듯 웃으며 인터뷰를 시작하자고 말했다. "늘 이 모습이니, 이대로 가죠." 아주대병원 함석진 교수와의 인터뷰는 퇴근 시간 무렵에야 겨우 이루어졌다.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환자를 만났고 입원환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함 교수는 폐를 전문으로 하는 흉부외과 의사다. 그는 올해 들어 2차례의 '폐이식' 수술을 성공했다. 폐이식 수술을 할 수 있는 국내 병원은 9곳 뿐이다. 하지만 상당수가 서울에 위치한 종합병원이고, 지역에선 시행할 수 있는 곳이 부산대병원 정도였다. 아주대병원에서 함 교수팀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신장, 간은 이식이 낯설지 않지만, 폐는 생소하게 느낄 것이다. "폐는 다른 장기에 비해 기증자도 별로 없어 수술이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어요. 아직 우리 법에는 뇌사자의 폐만 기증할 수 있어서인데, 보통 뇌사상태에 빠지는 환자들이 낙상, 교통사고, 뇌출혈 등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한 것이에요. 특히 폐는 충격에 굉장히 약한데, 사고가 났을 때 폐가 부딪히면 금방 멍들고 상처가 납니다. 또 우리 장기 중에서 유일하게 외부 공기가 들어오는 곳이라 오염될 확률도 높구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이식이 활성화 되지 않았죠."하지만 폐 이식은 점점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미세먼지와 같은 대기오염의 심화에 직격탄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폐'라서다. 특히 폐가 딱딱하게 굳는 병, 특발성 폐섬유증 환자들은 폐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 오직 그것 밖에 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2차례 수술을 받은 환자들도 모두 특발성 폐섬유증이었어요. 특발성 폐섬유증은 폐가 굳는데, 왜 굳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입니다. 원인을 모르니 효과 있는 치료약도, 치료법도 없어요. 오직 폐이식 수술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첫 번째 환자의 경우 산소호흡기를 달고 화장실 정도는 혼자 갈 수 있는 상태였지만, 두 번째 환자는 한 달 가까이 중환자실에 누워만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했어요."함 교수는 올해 만난 두 환자의 케이스가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폐 이식의 목적은 기본적으로는 생명연장에 기반하지만, '삶의 질' 문제도 절대 간과할 수 없습니다. 첫 환자의 경우 산소호흡기를 달았지만 아주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한 사람이었어요. 이 정도 상태만 돼도 수술을 받으면 일상생활이 가능해집니다. 이건 그 환자의 '삶의 질'이 달라지는 거예요. 폐섬유증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거예요. 산소호흡기 없이 숨쉬고 싶다는 것. 제가 만난 환자 중에 유치원 다니는 아이를 둔 젊은 엄마가 있었는데, 이 엄마의 소원은 아이 소풍 도시락을 만들어주고 남편한테 따뜻한 아침밥 한번 차려주는 겁니다. 이 환자들 대부분이 하루를 살더라도 이식을 받겠다는 거예요. 수술이 성공하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거든요."하지만 우리 법은 꽤 엄격하게 폐 이식 수술을 제한하고 있다. 2년 이내 사망할 것으로 보이는 위중한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수술 기회를 준다. "지금 당장 위중한 환자들이 수술을 받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삶의 질' 차원에서 폐 이식 수술을 바라본다면, 살고는 있지만 자유롭게 숨쉬지 못하고 고통받는 많은 환자들에게 폭넓게 기회가 가야 된다고 보구요. 또 그래야 성공케이스가 늘어나 정부나 병원에서 지원을 확대할 것이고, 더 많은 환자들이 새 삶의 기회를 얻는 선순환이 가능해집니다."아주대병원에서 폐 이식 수술을 연달아 성공하면서 제대로 숨쉬지 못해 고통받던 경인지역 환자들이 굳이 서울에 나가지 않더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렇게 되기까지 함 교수를 비롯한 수술팀은 2년여 동안 철저하게 준비했다. "폐 이식 수술을 처음 하는 병원은 초기 성적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신뢰의 문제거든요. 이번에 수술한 두 번째 환자의 경우도 적당한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은 채 3~4주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수술을 해도 될지 두려움이 앞섰어요. 다행히 환자가 생존의지도 강하고 기증자의 폐 상태가 좋아 성공했죠. 여러모로 운이 좋아 초기 성적이 잘 나온 편입니다. 또 폐이식 수술은 팀워크가 탄탄해야 해요. 저희 팀이 2년 넘는 시간 동안 다른 병원도 다니며 사례 연구도 많이 했고 실전을 위해 다양한 연습도 병행했어요. 무엇보다 병원 전체의 종합적인 지원이 정말 중요합니다. 모든 과의 의료적 지원은 물론이고 이식 수술은 아주 예민하게 윤리적 문제도 연관돼 있기 때문에 하다못해 정신과까지 동원됩니다. 예를 들면 이식한 환자가 수술을 하고 나서 새 삶을 얻었는데 정신적 문제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 다른 이의 삶의 기회도 뺏는 겁니다. 실제로 이런 경우도 꽤 있구요. 여러 조건과 상황이 잘 맞아야 하기 때문에 지역병원에서는 리더가 강한 의지를 갖지 못하면 하기 힘든 게 현실이죠."생명과 직결된 일. 말로 다 설명 못 할 무게의 책임감이 그의 말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그는 어쩌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짊어졌을까. "흉부외과라는 곳이 드라마틱해요. 정말로 생과 사를 오가는 곳이거든요. 정말 '드라마틱'해서 드라마의 소재로 많이 활용되는 겁니다. 그 중에서도 이식받은 환자들의 변화가 가장 드라마틱합니다. 이대로 생이 끝날 것 같던 환자들이 이식을 받고 좋아지는 모습, 다시 사회에 나가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저는 그것이 참 극적으로 느껴졌어요. 흉부외과 의사로 살아온 지 19년째인데, 아직도 수술 하기 전에는 혹시 실패할까 두렵고 긴장되지만, 결과가 좋아 환자들이 건강하게 사는 것을 보면 보람을 가장 많이 느낍니다."문득 흉부외과와 같이 고난도의 수술을 하는 과에 지원하는 의사가 없다는 세간의 소식이 떠오른다. "정말 그렇습니다. 지금 흉부외과 의사가 배출되는 양이 1년에 20명 정도 뿐이에요. 향후 2~3년 내로 전성기 시절의 선생님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구요. 벌써 서울은 물론이고 지역의 병원들은 흉부외과 의사 인력난에 시달립니다. 모든 과가 다 중요해요. 하지만 흉부외과는 정말 생과 사의 한 가운데서 사람을 살리는 곳이거든요. 흉부외과 의사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처럼 말하지만, 너무 힘든 것 티 내지 말자고 합니다. 진짜 제가 레지던트이던 시절에는 1주일 내내 집에 못 가고 병원에 묶여 있었는데 정말로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법으로도 못하게 돼 있고 주중에 집에도 가고, 주말에도 좀 쉽니다(웃음). 아마 육체적, 정신적 문제도 있지만 전문의로 나왔을 때 진로가 제한된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 오는 경제적 문제도 클 거예요. 하지만 흉부외과의 장점은 생명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넓고 깊게 공부하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서든 도움이 될 겁니다."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물었다. "폐 이식과 관련된 기초연구를 많이 해보고 싶습니다. 캐나다나 미국, 유럽 등에서는 안 좋은 상태의 폐를 향상시켜 환자에게 이식하는 방식을 활발하게 연구하고 시행 중입니다. 앞으로 폐와 관련된 질환은 늘어날 겁니다. 우리도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는 기초 의학연구를 게을리해선 안돼요." 인터뷰를 마치고 진료실을 나오자 북적였던 병원 진료실 곳곳에 불이 꺼져 있었다. 이제 퇴근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환자들 한번 더 보러 간다"고 서둘러 돌아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안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글/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함석진 교수는?▲ 1973년 부산 출생▲ 1992년 부산 충렬고 졸업▲ 1999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2004년 흉부외과 전문의 취득▲ 2007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의학석사 ▲ 2016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의학박사▲ University of Pittsburgh Medical Center, 흉부외과 Research Fellow▲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흉부외과 조교수▲ 現 아주대학교의과대학 흉부외과 부교수경인지역에서 폐이식 수술에 처음으로 성공한 함석진 아주대병원 교수가 "이식이 활성화 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폐와 관련된 질환은 늘어날 예정이어서 폐 이식과 관련된 기초연구를 많이 해보고 싶다"며 포부를 밝히고 있다.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2018-08-14 공지영

[인터뷰… 공감]부임 한 달 맞은 '생활체육 분야 총괄' 김교흥 대한체육회 부회장

#임기내 목표는엘리트에 치우친 '남북 훈풍' 확산빠듯한 운영 예산 증액 방안 강구종목 지도자 육성·생계 대책 모색#생활체육 활성화 대책은공동체 문화로 각 지역발전에 영향주민 참여 사업 공모 등 적극 지원인프라 확충 기관들과 꾸준히 협력대한체육회(KSOC·Korean Sport & Olympic Committee)는 지난 2016년 3월 국민생활체육회와 통합 이후 '스포츠로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학교체육과 전문체육, 생활체육의 벽을 허물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그동안 산하 가맹경기단체와 시·도 체육회 등에서 통합과 관련한 잡음도 있었지만, 장기적 체육 발전의 관점에서 추진되고 있다.최근 대한체육회는 정관 개정을 통해 생활체육 분야를 총괄하는 부회장 자리를 만들었다. 과거 국민생활체육회 존립 당시 국민생활체육회장 역할을 하는 자리로 보면 된다. 이 자리에는 인천을 기반으로 정치·행정 분야에서 고르게 역량을 보여준 김교흥 전 국회 사무총장이 선임됐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김 전 사무총장을 추천한데 이어, 지난달 초에 열린 이사회를 통과하면서 최종 선임된 것이다.이로써 지난해 초에 꾸려진 대한체육회 부회장단은 김성조 한체대 총장과 최문순 강원도지사,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김영채 전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에 김교흥 부회장까지 5인으로 구성됐다.대한체육회 부회장(비상근)의 임기는 4년이지만, 올해 합류한 김 부회장은 3년 간의 잔여 임기를 기존 회장단과 함께 소화하게 된다.부임 한 달 정도 지난 6일 김 부회장을 인천 서구 심곡동의 인천도시경영연구원에서 만났다. 2008년 설립된 사단법인 인천도시경영연구원은 인천의 발전과 미래 도시형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김 부회장은 인천도시경영연구원 이사장으로 10년째 활동 중이며, 회원은 150여명에 이른다. 김 부회장은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서구갑 지역위원장으로 복귀하는 등 지역에서의 활동도 강화하고 있다.그는 "지역에서의 활동과 함께 대한체육회 부회장으로서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서울에 가서 현안을 듣고 회의를 갖고 있다"고 근황에 대해 설명했다.곧바로 대한체육회의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어느 하나가 아니라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것도 스포츠였습니다. 대한체육회의 원활한 운영과 함께 체육 활성화가 저의 소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 달 가까이 대한체육회의 업무를 파악하면서 느낀 부분은 예산이 빠듯하다는 점입니다. 스포츠토토 기금의 일부로 150여명이 일하는 대한체육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시적이라도 스포츠토토의 지원 비율을 높이는 방법과 함께 독일에서도 운영되고 있듯이 생활체육 회원제를 강화해 동호인들에게 한 달에 이·삼천원이라도 회비를 걷는 방법을 통해 운영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생활체육은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요인인 만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일부 예산을 지원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생활체육을 활성화 시키고 국내 체육의 저변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김 부회장은 인천광역시 정무부시장에 재임하면서 지역 체육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원책을 냈으며, 국회 사무총장 재임 시에도 대한체육회의 체육 진흥을 위한 예산과 법안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인천 서구 지역의 동호인 야구팀과 배드민턴팀의 구단주도 역임했다. 비록 대한체육회 부회장에 부임한 지 1개월 정도 밖에 안됐지만, 답변에선 오랜 시간 체육 지원과 발전에 대해 고민했음을 알 수 있었다.김 부회장은 대한체육회의 건강한 운영과 함께 생활체육의 활성화는 임기 내 반드시 이루고 싶다고 했다."체육은 공동체 문화입니다. 공동체 삶의 가치 실현을 통해 건강한 지역 문화를 만들 수 있어요. 이처럼 생활체육이 발전하면 그 지역의 공동체 문화도 발전하게 됩니다. 지역 발전에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아지는 것이기도 하고요. 이를 통해 지역 정체성도 확립되고, 지역 발전도 꾀할 수 있기 때문에 생활체육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김 부회장과 대한체육회는 전국 각 지역을 대상으로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한 공모 사업을 벌이고 있다. 공모에 선정되면 대한체육회에서 각 시·군·구에 일정 금액을 지원하게 된다. 김 부회장은 "인천의 생활 체육인들도 공모에 많이 응했으면 좋겠다"면서 "준비되어 있고 결격 사유가 없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또한, 김 부회장은 임기 동안 관심을 갖고 추진할 부분으로 생활체육 남북 교류와 체육지도자들의 확충 등을 꼽았다."현재 남북 체육교류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종목 위주의 전문 체육 분야에서만 이뤄지고 있습니다만, 진정한 남북 체육교류는 생활체육에 있다고 봅니다. 씨름 등 민속 경기를 비롯해 동호인들이 많이 구성된 종목들 위주로 생활체육 동호인 차원의 교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생활체육 발전을 위해선 동호인들을 가르칠 지도자들이 필요합니다. 지도자들의 교육도 필요하고요. 인천 서구에만 10여명의 생활체육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지난해 국회에 있을 때 체육지도자교육센터 예산도 3억원을 세웠습니다. 현재 어느 지역에 설치할지 실사를 하고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다 과학적인 생활체육이 될 수 있게 하고, 지도자들도 생활이 될 수 있게끔 지원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이 밖에도 김 부회장은 대한체육회와 함께 중앙 정부, 시·도, 지자체 등과 꾸준히 협력해 생활체육인들이 운동할 수 있는 공간도 늘려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그는 "제대로 된 지역 공동체라면 손을 뻗으면 도서관에 책이 잡히고 발을 뻗으면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면서 "생활체육인들이 제대로 운동하기 위한 공간이 부족한데, 여러 기관과 협력해서 공간을 만들 것이다. 인프라가 확충되면 저변도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오는 18일에 개막하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선수단장은 대한체육회 부회장인 김성조 한체대 총장이 맡았다. 생활체육을 총괄하는 김교흥 부회장은 선수단 격려 차원으로만 대회장을 찾을 예정이다.끝으로 김 부회장은 "우리 선수들이 폭염 속에서도 마무리 훈련에 집중하고 있는데, 국민의 뜨거운 성원이 선수들에게 힘이 될 것"이라면서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우리 스포츠가 한층 발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고, 저도 임기 동안 국민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김교흥 부회장은?▲ 경기도 여주 출생(1960년)▲ 인천대, 인천대 대학원 졸업▲ 前 중소기업연구원장 ▲ 前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초빙교수 ▲ 제17대 국회의원 ▲ 前 인천광역시 정무부시장▲ 前 국회의장 비서실장 ▲ 前 국회 사무총장김교흥 대한체육회 부회장은 "그동안 해온 체육 발전과 지원에 대한 고민과 함께 인천시민들이 힘을 모아줘서 막중한 소임을 맡게 된 것으로 안다"며 "대한체육회의 건강한 운영과 생활체육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8-07 김영준

[인터뷰… 공감]'女고용 앞장' 김나연·장예원 미나리 빵집 공동대표

여성으로서 가정·일 병행 가능한 분야 찾다 창업 도전수원남문시장 옛모습·미나리의 효능 착안해 제품개발개성있는 브랜드·담백한 맛 '이마트 스타상품'에 선정경단녀 출신 제빵사 등 어머니 직원 채용 확대 노력도"더 많은 여성이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중·장년층들도 하기 힘든 창업을 청년들이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요즘처럼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든 시기에 청년들이 창업을 한다는 것은 더욱 힘들다. 하지만 창업을 통해 인생 설계를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수원 영동시장 청년몰 '28청춘'에 입점해 있는 '미나리 빵집'이다. 이곳은 문을 연 지 1년여밖에 지나지 않은 새내기 점포지만 수원을 넘어 전국에서도 사랑받는 빵집으로 성장하고 있다. 창업 시장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민 김나연(28), 장예원(34) 공동대표는 미나리 빵집을 통해 지역 상생과 여성 고용 활성화를 꿈꾸고 있는 당찬 사업가들이다.미나리 빵집의 시작은 지난 2016년 수원시가족여성회관의 제과제빵 기능사 자격증 수업에서 시작됐다. 두 아이의 엄마인 장 대표는 당시 다니던 디자인 회사를 그만두고 여성들이 가정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 하고 있었다. 그때 생각해 낸 아이템이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는 '빵'이었다.장 대표는 "당시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가정일을 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고 지역 여성과 함께하는 일을 모색하고 있었다"며 "법인 설립과 시스템은 있지만 시간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차에 (김)나연이를 알게 됐고 서로를 잘 보완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사회학을 전공했던 김 대표도 취업 준비를 하던 중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차에 평소 좋아했던 빵과 관련한 창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김 대표는 "창업을 고민하던 차에 예원 언니를 만나게 됐고 언니가 청년몰 입점을 제안했다"며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에서 걱정도 많이 하셨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창업을하게 됐다"고 소개했다.두 대표는 과거 수원 남문시장 주변이 미나리 밭이었다는 것과 미나리가 물을 정화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활용해 천연 미나리 효소를 이용한 발효 빵을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 가게 이름도 미나리 빵집이다. 미나리 빵집은 독특한 브랜드와 담백한 맛으로 손님들을 끌었고 맛집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미나리 빵집은 지난해 이마트가 개최한 '이마트 스타상품 개발 프로젝트'에서 우수 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에 신세계백화점 의정부점과 명동본점, 영등포점에서 팝업스토어 입점이라는 새로운 경험도 하게 됐다. 특히 의정부점에선 함께 행사에 참여했던 업체 중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하는 등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김 대표는 "이마트 스타상품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며 "수원뿐만 아니라 전국에 네트워크가 생겼고 백화점이라는 새로운 판매 공간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새로운 도전은 미나리 빵집이 성장하는데 원동력이 되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 판매하고 있는 품목은 11종류인데 처음 문을 연 지난해보다 3개 품목이 늘어난 것이다. 실제 지난 6월 신세계 백화점 영등포점에서 열린 팝업스토어 매장에서는 미나리 효소 반죽으로 만든 쌀 러스크가 첫선을 보이기도 했다. 김 대표는 "지금 손님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메뉴들은 처음 개발한 것과는 다른 것"이라며 "(메뉴를) 바꿔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수시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메뉴 개발 외에도 이들은 소상공인 협동조합 형식의 새로운 가게를 수원 교동에서 준비하고 있다. 영동시장 청년몰에서 함께하고 있는 '시나브로 카레'와 뜻을 모아 새로운 레시피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장 대표는 "함박스테이크 전문점을 내기 위해 준비 중이다"며 "수원 교동은 인쇄 거리로 유명한 곳이라 책과 연관해 독립출판서점과 식당을 함께 만드는 모델을 만들어보려고 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시나브로 카레 친구들은 요리와 SNS에 능하고 미나리 빵집은 브랜드와 네트워크 활용을 잘하고 있는 만큼 함께 모였을 때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생각했다"며 "임대료도 저렴하고 상권이 발달하지 않은 곳을 찾았고 청년 상인들이 들어가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두 공동 대표는 처음 목표였던 지역 여성들의 고용 창출은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나리 빵집은 두 대표를 비롯해 2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경력 단절 여성이다.장 대표는 "실력이나 준비했던 것에 비해 관심을 많이 받으면서 의외로 매출이 올라가는 경험을 하게 됐다"며 "경력 단절 여성을 고용할 수 있었는데 우리에게는 상징적인 분"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 여성은 두 아이의 엄마로 과거 유명한 제과점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었지만,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이었다"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을 하고 계시고 육아 등 보육 편의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김 대표도 "백화점에 납품하는 시기가 생겼을 때 인력이 부족할 경우가 생기는데 그때에는 일을 배우신 어머니들께 빵 제조 등을 부탁하려고 한다"며 "고용이 늘 수 있도록 꾸준하게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더운 날씨 탓에 미나리 빵집에도 어려움이 찾아왔지만 두 대표는 당당히 위기 극복에 나선다는 각오다.창업 과정에서 닥친 위기로 지금을 꼽은 김 대표는 "더운 날씨 탓에 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줄어 매출도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다"며 "주변에 물어봐도 '여름 비수기는 버티는 것'이라고 했다"며 미소를 지었다.장 대표 역시도 "빵은 다른 품목에 비해 더운 여름에 더 안 팔리는 경향이 크다"며 "길게는 3∼4년 정도 해봐야 장사의 흐름을 알 수 있다고 하지만 다음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을 이겨 나가겠다"고 답했다.글·사진/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미나리 빵집 제공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수원 영동시장 청년몰 '미나리 빵집'은?▲ 2017년 7월수원 영동시장 청년몰 '28청춘' 미나리 빵집 개점▲ 2017년 9월이마트 스타상품 프로젝트 선정▲ 2017년 11월스타트업 페스티벌 전통시장 청년상인 먹거리촌 참가▲ 2018년 3월신세계백화점 의정부점 명동 본점 판매행사 실시▲ 2018년 6월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 판매행사 실시수원 영동시장 청년몰 미나리빵집이 신제품 개발과 우수 상품 선정 등 청년 창업의 꿈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은 미나리빵집 김나연(오른쪽), 장예원 공동대표가 매장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

2018-07-31 이원근

[인터뷰… 공감]'노동운동가 출신 1호 한국폴리텍대 이사장' 이석행 이사장

이석행 한국폴리텍대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취임한 뒤 올초부터 지난 6월까지 전국 35개 캠퍼스와 3개 부설기관을 방문해 직원과 학생들을 만나 '현장 목소리'를 들었다. 역대 폴리텍대 이사장들이 보통 2년 동안 했던 일을 5개월 만에 마쳤다. 그가 민주노총 7대 위원장이 되고 나서 전국 2천500여개 사업장을 돌았던 2007년의 '대장정'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폴리텍대는 취임 후 이석행 이사장의 활동을 대장정으로 표현했다. 그의 집무실 회의 탁자에 놓인 A4용지 크기의 달력에 일정이 빽빽했다. 대장정 이후에도 일정표를 비우지 않았다. 사람을 만났고, 현장에 다녔다. 한국폴리텍대에서 관료, 교수가 아닌 노동 운동가 출신이 이사장이 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이사장이 되고 접견실 사방에 놓인 화분을 치우고 그 자리에 전국의 폴리텍대 학생들이 만든 '작품'을 전시한 것은 작은 변화의 하나였다. '프레스 전동 장치 모형', '반도체 칩 제조 공정 기술', '무인 항공기 3D 모델링' 등이 접견실을 가득 채웠다. 공장 노동자 출신의 이사장은 모든 작품의 기능에 대해 막힘 없이 설명했다. 그는 자신을 "폴리텍대의 주인인 교직원, 고객인 학생을 책임지러 온 노동자"라고 소개했다. '노동자 이사장' 이석행과의 인터뷰는 지난 13일 오전 인천노동복지합동청사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서 진행됐다.-폴리텍대는 미화·경비 직종 파견직 근로자 671명을 지난 6월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비교적 긴 시간 노사협의회를 거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규모 정규직 전환, 어떻게 추진하셨습니까."제가 이사장으로 오기 전부터 폴리텍대 노조가 추진 중인 사안이었습니다. 일자리를 책임지고 있는 공공기관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2010년 당시 송영길 인천시장 노동특보로 있으면서 지하철 청소 노동자 등 많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이뤘고, 이 모델이 모범사례가 돼 광주광역시, 전남 진주시 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모델을 여기에 접목시켰습니다. 정규직 전환할 때 노동자 의견을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35개 캠퍼스에서 순회 설명회를 열었고, 직무별 용역 노동자 대표단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노사협의회를 구성해 오랜 시간 토론해 급여·정년 문제에서 합의안을 도출했습니다. 지금 이분들을 '용역직'이 아니라 '대학운영직'으로 분류했습니다. 내 직장이라는 소속감이 있어야 최고의 서비스가 나옵니다."-노동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직업교육훈련기관인 폴리텍대 이사장이 되셨습니다. 기대도 크고, 비판 여론도 있습니다.(이석행 이사장은 지난 2010년 11월 당시 송영길 인천시장 노동특보로 위촉돼 활동했고, 2012년 3월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정치할 때는 당 안에서 노동자들 목소리를 반영하는 데 힘썼습니다. 지금은 폴리텍대가 내 전부입니다. 직업 교육은 노동 인력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결국 그 자체가 노동 운동입니다. 물론 제가 나중에 나가서 노동 운동을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접었습니다. 그래도 '노동자적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폴리텍대 직업교육은 50년 이상의 역사로 교직원들 노하우가 놀랄 정도입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까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국정 과제가 떨어지면 거기에 다 매몰돼 어느 누구도 '아니다'라는 소리를 못했던 것 같습니다. 폴리텍대는 폴리텍 안에서만 경쟁했습니다. 1등에서 38등까지 순위를 매겼습니다. 폴리텍대의 강점은 서로 융합하는 데 있습니다. 38개 캠퍼스와 기관이 서로 공통 분모를 공유해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폴리텍대 산하 기관은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그 역량을 측정할 계획입니다."-이사장께서는 고학력 미취업자 실업 문제 해소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대학 졸업하고 우리 학교 오는 학생이 전체의 45%입니다. 입학생 절반가량이 대학 졸업 후 리턴해서 오는 겁니다. 취업이 안 되니까요. 그런 인력을 데려다가 용접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이테크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고학력 청년 구직자를 대상으로 한 이 과정의 정원이 올해 545명인데 이를 2022년까지 945명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또 4차 산업혁명 학과로 현재 빅데이터, 핀테크 등 9개 과정을 운영 중입니다. 학과 개편을 통해 앞으로 5년간 매년 3개씩 모두 15개 학과를 신설할 것입니다. 이 외에도 '베이비부머 과정', '여성 재취업 과정', '신중년 특화 과정'을 확대하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이사장께서는 더불어민주당 전국 노동위원장을 맡아 집권 여당의 노동 부문 정책을 총괄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전체의 노동 정책뿐 아니라 인천시의 노동 정책도 잘 알고 계십니다. 노동 부문에서 인천시가 꼭 풀어야 할 숙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인천에 노동회관이 없습니다. 광역시 중 노동회관이 없는 도시는 인천 뿐입니다. 일자리 정보, 직업 향상 정보, 빅데이터 시스템을 갖춰 노동자 누구든 미래를 컨택할 수 있는 노동회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 인천에 중소기업이 많은데 중기 재직자 자녀를 위한 장학재단도 필요합니다. 중소기업에 10~20년 근무한 장기 재직자 자녀의 학자금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어야 합니다."이석행 이사장은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고, 구속 수감 중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유년 시절 단거리 육상 선수 출신인 그는 체육교사가 되고 싶어 인천대 체육학과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사무차장 시절인 1990년대 초반 그는 인천 계산동에 정착했다. 지난해 9월 간석동으로 이사했다. 운전기사가 있지만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사람들 표정도 보고, 글도 쓰는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또 서울에 거주하는 운전기사가 출퇴근 업무로 힘들어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했다. 그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는 폴리텍대에서 일하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했다.글/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이석행 이사장은? ▲ 1958년 충남 청양군 출생▲ 1978년 전북기계공고 졸업, 진주 대동중공업 입사▲ 1984년 대동중공업 노동조합 위원장▲ 1991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사무차장▲ 1995년 전국자동차산업연맹 부위원장▲ 1996년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 2004년 민주노총 사무총장▲ 2007년 민주노총 위원장▲ 2010년 인천대 체육학과 입학(2014년 졸업)▲ 2010년 (주)우경일렉텍 기술고문▲ 2014년 재단법인 피플 상임고문▲ 2016년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위원장▲ 2017년 12월 ~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이석행 한국폴리텍 대학 이사장이 17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구산동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하고 있다. 이석행 이사장은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운전기사가 출퇴근 업무로 힘들어하지 않으며 사람들 표정도 보고, 글 쓰는 시간도 생긴다"고 말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7-24 김명래

[인터뷰… 공감]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박상욱 서울대 교수

#경기도 투자 현황과 타 지역 사정은몇백억 쓴다지만 정부 20조에 비하면 미미부산서 움직임 보여… 도는 지금도 늦은 편#투자 늘리는 방식과 방향은정부기관 아닌 '융기원' 있다는 것 큰 장점하천 문제 등 민원해결 역할부터 접근해야#융기원은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아주대·가천대 등 대학과 기관 엮어 허브화담당 조직과 자문기구 등 행정체계도 필요한국과학기술원(KIST)이 설립된 1966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125달러에 불과했다. 가난이 지배하던 이 시절 KIST를 설립하면서 이 땅에 비로소 R&D(연구개발)라는 개념이 도입됐다. 유형의 제품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무형의 기술이 필요하고, 이 기술을 배양하는 토대가 바로 R&D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당장의 배고픔을 면하기도 힘든 시기에 뿌린 R&D라는 씨앗은 추후 수십 년 간 한국이 과학 강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이제 한국은 '지방분권' 이 화두가 된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과학계에서는 R&D는 국가의 사무라는 낡은 개념을 버리고, 지역에서 R&D에 직접 투자하는 '연구개발 지방분권'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4차 산업혁명 전진기지'를 자처한 경기도의 R&D 예산이 전체 예산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이재명 시대를 맞은 경기도에도 보다 확대된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와 맞물려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이기도 한 박상욱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박 교수는 인터뷰 내내 "이제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지역이 나설 때"라며 경기도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과연 지역에서 연구개발을 주도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꼭 그래야 하는지' 수차례 반문을 던졌지만, 그는 그때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지역의 R&D 투자 현황을 알고 싶다."비단 경기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R&D가 중앙에 집중됐다. 단체장도 여러 번 바꿔봤고, 정치 분야에서는 지방자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반면, 울산의 석유 산업이나 창원의 조선소를 비롯해 경기도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같은 것들은 중앙정부가 관장하는 분야라는 생각이 강하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R&D를 중앙정부에서 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독일의 국책연구기관인 '프라운 호퍼 연구소'도 예산을 지역에서 받는다. 일본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한국에서 지역의 활동이 대단히 미미하다. 지역 R&D라고 하는 것이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경기도 뿐 아니라 다른 지역도 사정이 비슷한가"전국적으로 지역으로 보면 (R&D 투자를 하는 곳이)전혀 없다고 봐도 된다. 도비나 광역시 예산으로 하는 데가 거의 없다. 경기도도 경제과학진흥원에서 몇 백억 단위로 한다고 하는데 대중들이 듣기에는 큰 돈일지 몰라도 경기도 스케일에서는 큰 돈이 아니다. 정부의 R&D 지출이 매년 20조원에 육박하는데, 국내 총생산의 4분의 1을 경기도가 담당하기 때문에 5조 정도는 경기도에서 쓰는 게 맞다. 첨단 제조업이 집중된 경기도에서 수백 억을 쓴다는 것은 미비한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그 몇 백억의 투자도 도내 중소기업에 대한 보조금적인 성격이라 진정한 R&D라고 보기 힘들다. 최근 부산 같은 곳에서 부산과학기술평가원을 설립하는 등 움직임이 있긴 하다. 경기도는 산업 기반을 다 갖추고 있어 지금 투자를 시작해도 늦은 것이다."-구체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다. 경기도에서 R&D 투자를 늘리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중앙정부에 연구관리전문기관이 14개가 있고, 실제로 연구관리기능을 하는 기관만 100여개가 있다고 말한다. 서울은 비슷한 기관을 만드는 중이고 경기도는 차세대융합기술과학원을 가지고 있다. 융기원에는 번듯한 하드웨어가 세팅돼 있다. 랩(연구실)이 있고, 실제 박사들이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연구소가 셋업(준비)된 것은 경기도 입장에서는 넝쿨째 들어온 복이다. 정부가 60년대 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원(KIST)을 설립한 이후에야 어떻게 연구비를 지원할지 고민하면서 R&D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연구하는 기관이 있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원하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손발을 얻었다는 뜻이다. 이 점은 다른 지자체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대전에 연구기관이 많다지만 대부분 정부 출연 기관으로, 지역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의지는 없다. 융기원은 경기도의 것이다. 경기도의 연구개발 체계의 비전이 있는 셈이다. 이 기관을 육성하면 지역 경제 활성화를 통해 먹거리나 살림살이도 중앙으로부터 독립성을 가질 수 있다."-R&D라는 것이 도민들에게 직접 와 닿지 않는 주제다. 갑자기 지원 규모를 늘리면 심각한 경우, 세금을 낭비한다는 비판도 있을 것 같다."과학기술 연구개발이 도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 것은 쉽지 않다. 조금 생소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시민을 위한 과학이라는 개념이 있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과학이다. 간단한 예로, 경기도 하천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정화를 했으면 좋겠는데 중앙에 있는 기관에 의뢰할 수도 있지만, 가까운 지역 연구기관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면 된다. 도민의 생활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소·중견기업의 기술적 애로를 해결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연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융기원은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까."융기원 하나로는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네트워크의 '허브' 같은 역할을 삼아야 한다. 융기원을 매개로 도내 대학 연구기관을 엮을 수 있다. 융기원을 서울대의 캠퍼스 개념이 아니라 아주대·가천대·경기대 등 우수한 도내 이공계 대학들과 연계해서 연구소 중심으로 갈 수 있다. 행정 체계도 중요하다. 연구관리기관이 있다면 경기도청 안에 과학기술을 담당할 최소한의 조직이 있어야 한다. 중앙에는 R&D를 산업통상자원부나 보건복지부, 심지어 국방부에서도 담당한다. 경기도가 일국의 축소판이라면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국 정도는 있어야 한다. 연구를 진흥하고, 기술을 사업화하는 양 루트를 통해 성과를 확산시킬 수 있다. 정부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있는 것처럼 정책 자문을 하는 동시에 과학기술 예산 심의를 지원하는 기능도 필요하다. 도지사 옆에 자문기구를 설치해야 한다."-이런 설명을 들어도 '과연 지역이 R&D 투자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경기도가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중앙정부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데 케파(능력)가 될까라는 질문이 당연히 나올 수 있다. 공개석상에서도 강조하는 것이지만, 경기도는 인구로 보나 GRDP(지역내총생산)로 보나 유럽의 웬만한 강소국가보다 크다. 핀란드, 이스라엘, 싱가포르보다 크다. 경기도가 작아서 R&D를 안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많은 권한이나 리소스를 지방으로 분배하는 것으로 방향이 잡혀 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일을 하다보면 중앙부처에서 지역 R&D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손뼉이 맞부딪칠 준비가 돼 있는 상태다. 지역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인터뷰 말미 박 교수는 R&D가 경제와 산업의 근간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그는 "R&D 지원 자체가 법적으로 대기업에는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투자다. 당장 R&D 투자를 늘린다고 경기도의 성장률이 급등하지는 않을 것이다. 성과를 보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고, 그것이 연구개발 투자의 성과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도 어렵다. 다만, 과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민선 7기에서 경기도 R&D의 체계를 갖출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글/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박상욱 교수는?▲ 1972년 서울 출생 ▲ 1991년 서울대학교 입학(1995년 졸업) ▲ 2004년 서울대 이학 박사 / 2009년 영국 서섹스대 정책학(과학기술정책) 박사 ▲ 2012년 숭실대 교수 ▲ 2018년 서울대 교수 ▲ 2012~2014년, 2018년 기획재정부 공공기관경영평가위원 ▲ 2016~2017년 행정자치부 정부3.0·열린혁신 평가위원 ▲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 산업통상자원부·교육부 소관 기타공공기관 경영평가위원 ▲ 교육부·과학기술부 자체평가위원 ▲ 미래창조과학부 임무중심형 기관평가위원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으로 재임하는 박상욱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이제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지역이 나설 때"라며 경기도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2018-07-17 신지영

[인터뷰… 공감]'인천 해안선 종주 프로젝트'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인천은 바다의 도시인데, 정작 바다로 가는 길은 닫혀 있다. 서해안의 너른 갯벌을 만날 수 있는 길목마다 항만과 발전소가 차지했고, 철조망이 가로막았다.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은 "그럼 도대체 인천 내륙의 해안선 가운데 시민들이 걸을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되는가"라는 문제 의식을 갖고 인천의 해안선을 따라 직접 걸어보기로 했다. 김포와의 경계 지점인 서구 해안도로(세어도 선착장)에서 출발해 청라 매립지~북항~만석부두~연안부두~송도매립지~소래포구를 따라 걷는 '해안선 종주' 프로젝트다. 지난 6월부터 2~3주에 한 번씩 각계 전문가와 함께 구간별로 걸으며 문제점과 현황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지난 6일 서구 포스코에너지~북항~동구 현대제철 종주 구간에서 만난 장정구 위원장은 "지도만 펼쳐 놓고 봐서는 알 수 없는 현장 상황을 직접 확인해 바다를 시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취지로 해안선 종주를 계획했다"며 "최종 목표는 해안선 개방"이라고 설명했다.최근 인천시와 국립민속박물관이 공동 발간한 2018 인천시 민속조사 보고서 '인천의 간척과 도시개발'을 보면 인천의 10개 군·구 중 바다와 접하지 않은 부평구와 계양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매립으로 조성된 땅을 갖고 있다. 특히 중구와 연수구, 서구는 전체 행정구역 면적 대비 매립지 비율이 50% 이상을 차지한다.바다를 메워 만든 매립지에는 각종 시설물이 들어섰다. 산업단지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공항이 매립지 중심을 차지했고, 해안가를 따라 각종 항만 시설, LNG복합발전소, 소각장, 하수종말처리장, 쓰레기 매립장이 줄줄이 세워졌다. 시민들은 매립지에 세워진 고층 빌딩에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것으로 인천이 해양도시라는 걸 실감할 뿐이다. 이날 해안선 종주도 사실 말이 해안선이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보안구역 철조망에 가로막혀 해안선 언저리만 걸을 수 있었다.장정구 위원장은 "항만과 발전소 등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시설의 존재를 아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시설 틈바구니에서도 시민들에게 개방할 수 있는 공간은 분명 존재한다는 점을 찾아낼 것"이라며 "중요시설이라 보안과 군사적 문제로 개방이 어렵다는 대답이 당연히 예상되지만, 현장을 둘러보다 보면 분명 해결책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군부대 철책은 걷어낼 방법을 찾고, 시설은 개방할 부분을 찾아 개방하고, 접근성을 높일 방법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장정구 위원장은 해안선 개방에 그치지 않고 매립으로 사라져 버린 과거의 해안선을 복원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 어떤 섬이 있었고, 어떤 해양 동식물이 자랐고, 어떤 문화가 있었는지 잊히지 않도록 기록으로 남겨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장 위원장은 "지금 인천의 매립지에 새로 생긴 지명이 '에메랄드'나 '사파이어' 같은 국적 불명의 이름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다"며 "서구 율도나 목섬 등 매립된 섬이 언제 없어졌고, 어디에 있었는지 후대의 시민들도 알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강원도 인제군 두메산골 출신의 장 위원장은 대학생 때만 해도 해양도시 인천에서 환경 운동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1999년 서울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원 진학을 하려다 돈이나 벌어볼 요량으로 선배를 따라 학원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영등포와 부평 등지에서 수학을 가르치면서 제법 돈벌이도 쏠쏠했다. 2001년부터는 직접 학원을 차려 원장님 소리를 들으며 바쁘게 살았지만, 2004년 학원을 접고 돌연 녹색연합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됐다.장정구 위원장은 "매일 새벽 2~3시에 끝나고 주말까지 보충 수업이 이어져 내 생활이 없어지자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른 길을 찾아보게 됐다"며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 시민단체 붐이 일어나면서 환경 분야에 관심을 가져 몇몇 환경단체에 후원을 하기도 했는데, 마침 혼자 사는 계양구 오피스텔 바로 옆에 후원하던 녹색연합 사무실이 있어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갔다"고 말했다.이때부터 그는 계양산 골프장 반대 시민운동, 경인운하 공대위, 굴업도 골프장 반대 시민운동 등 굵직굵직한 인천 환경 현안마다 주역으로 등장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롯데가 추진하던 계양산 골프장 건설을 취소시킨 일이다.장 위원장은 "산골짜기에서 서울대 입학했을 때 아버지께서 돼지 한 마리 잡아서 마을 잔치를 할 정도로 좋아하셨는데 갑자기 환경운동가를 한다고 하니까 밥벌이는 되냐며 걱정을 많이 하셨다"며 "그러다 계양산 골프장 사업을 취소시킨 것을 보시고는 아들이 하는 일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셨다"고 말했다.장정구 위원장은 최근 영종도 갯벌에 버려진 불법 칠게잡이 어구 더미를 수거해 중구청 앞마당에 쏟아붓는 퍼포먼스를 펼쳤다가 중구청으로부터 과태료 50만원 처분을 받아 인천 환경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중구청은 이 퍼포먼스가 폐기물 무단투기라고 판단했지만, 논란이 일자 뒤늦게 과태료 부과 취소를 결정하고 지난 9일 인천녹색연합에 이를 통보했다.장 위원장은 "PVC 파이프에 구멍을 뚫어 갯벌에 던져 놓으면 칠게가 들어갔다 빠져나오지 못해 잡히는 방식인데 이 불법 어구는 갯벌 생태계 파괴의 1등 주범이지만 중구는 손을 놓고 있다"며 "중구청이 해야 할 폐기물 처리 사무를 오히려 환경단체가 대신한 것이고, 사전에 퍼포먼스를 하겠다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는데 무단투기로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불법 어구 철거에 들어간 장비 대여료, 운반비, 인건비 등 비용을 꼼꼼히 계산해 오히려 중구청에 구상권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했다.이처럼 장정구 위원장이 추구하는 환경 운동 방식은 '현장'과 '데이터'다. 현장 상황도 모르면서 책상머리에 앉아서 환경보호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그의 뚝심이 이번 해안선 종주를 이끌어냈다. 또 정확한 수치를 기록해 놓고 데이터를 매년 축적해야 현장에서 보고 느낀 점에 대한 대안과 올바른 정책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장정구 위원장은 "과거 한남정맥 S자 녹지축과 섬 탐사, 하천 조사까지 모두 현장에 나가 데이터를 축적했고, 기록을 남겨 인천시 정책에도 사용될 수 있도록 했다"며 "이렇게 걸었던 길은 나중에 중요한 발걸음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동안 산, 하천, 섬을 다녔고, 이제 하나 남은 해안선 조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한 권으로 묶인 책으로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장정구 정책위원장은▲ 1972년 강원도 인제 출생▲ 1999년 서울대 농생물학과(응용곤충전공) 졸업▲ 2004년 인천녹색연합 활동가▲ 2007~2014년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운영위원장▲ 국방부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단 자문위원▲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생태환경분과위원장▲ 전)계양산 시민 자연공원 추진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전)부평미군기지 인천시민 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전)경인운하 백지화 수도권 공동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이 지난 6일 오후 인천시 동구 현대제철 인근에 설치된 철책선을 살펴보며 "군부대 철책은 걷어낼 방법을 찾고, 시설은 개방할 부분을 찾아, 접근성을 높일 방법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장정구 위원장과 활동가들이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남청라 IC 구간에서 주변 환경 현황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7-10 김민재

[인터뷰… 공감]정성호 경기도지사 인수위원회 부위원장

李 지사와 사법연수원 동기 '공정한 사회 꿈' 30년 함께 해국가안보 희생 道 북부 정책적 배려 '평화부지사' 체제 검토文 대통령 국정목표 맞춰 소통, 국회·지방의원과 협력 중요국회 사개특위 위원장 활동, 수사권 조정 논의 부족 아쉬움경기도에 '이재명 시대'가 시작되면서 함께 주목받는 인사가 있다. 양주시를 지역구로 둔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칭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30년동안 인연을 이어오며 속내를 털어놓는 거의 유일한 도내 국회의원이다. 그 자신도 민주당엔 '험지'로 분류돼온 경기 동·북부지역에서 3선을 한 의원이다. 국회 안팎에선 '부지런한 신사'로, 소리없이 강한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경기도지사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새로운 경기도의 청사진을 그리는 정 의원을 지난 2일 인수위가 운영되고 있는 수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서 만났다.#정성호와 이재명정 의원이 정치에 입문한 것은 20년 전인 1999년이다. 새천년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해 2000년 총선에서 동두천·양주지역 국회의원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4년 뒤 재도전에 성공, 국회에 입성했다. 접경지역으로 보수성향이 유달리 강했던 양주·동두천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은 정 의원이 처음이었다.정치인으로서의 삶을 결심했던 것은 대학생 때였다. 신군부가 집권했던 법학도였을 때는 대학교에서, 사법연수원생이었던 6월 항쟁 때는 거리에서 '정의'를 외쳤다. 변호사 개업 이후에도 민변 회원으로 경기북부지역 시국사건 변론을 맡았다. 올바른 사회를 부르짖었지만, 변화는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답을 정치에서 찾았다. 그는 "제가 나고 자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며 활동했던 경기북부는 그때도 지금도 낙후됐고 소외된 지역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은 국민의 기본권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던 때다. 변화가 필요했다"고 말했다.이재명 지사를 만난 것은 6월 항쟁이 있던 1987년이다. 사법연수원 동기로서 30년 질긴 인연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연수원생들이 열댓명 모여 공부모임 '노동법연구회'를 만들었는데, 그 안에서 이 지사를 만났다. 인권변호사 정성호도, 이재명도 '노동법연구회'에서 탄생했다. 이재명 지사를 정치인의 길로 이끄는 데 한 몫을 한 것도 정 의원이었다. 사법연수원 시절 이재명 지사를 "공부를 열심히 하던 모범생"으로 회고한 정 의원은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계속 인연을 맺었는데 제가 정치를 조금 더 일찍 시작했다 보니 이재명 지사가 정치 입문을 고민할 때 함께 의논을 했다. 정치권에선 가장 오래 인연을 맺은 것 같다"고 밝혔다."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는 정 의원과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게 평생의 꿈"이라는 이 지사가 정치 선·후배로서, 동지로서 나란히 걸어온 것은 필연일 터. 이번 도지사 선거기간 네거티브 공세 등으로 누구보다 힘들어한 이 지사를 위로한 것도 정 의원이었다. 어느 정도 연락을 주고받느냐는 질문에 그는 "필요하면 전화도 가끔 하고, 문자도 가끔 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답하면서도 "이 지사는 강한 사람이지만 선거 막판에는 힘들어했다. 누가 뭐래도 당선되니까… 그게 시대의 흐름이고 민심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더 여유 있고 편안하게 하라고 이야기를 했다"며 이 지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그에게 30년 동안 이 지사와 싸운 적은 없냐는 질문을 던지니 "저는 안 싸운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정치하면서 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늘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편이다. 대신 이 지사에겐 너무 성질내지 말고 차분하게 하라는 쓴소리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30년간 지켜본 이재명은 어떤 정치인인지 묻자 정 의원은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를 알고, 그 가치를 비전으로 만들 역량이 있고, 그 역량을 실천으로 구체화하는 추진력과 결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답했다.#새로운 경기도새로운 도지사가 취임한 것 외에도 경기도는 안팎으로 많은 변화에 직면해 있다. 특히 남북이 평화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기도, 그 중에서도 북부지역이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것으로 점쳐진다. 새로운 경기도의 청사진을 그리는 인수위 부위원장으로서, 경기 동·북부 지역의 중진 의원으로서 정 의원은 남북 평화 무드 속 경기도의 역할이 중요함을 거듭 강조했다.그는 "그동안 경기도는 남북교류협력, 평화정책을 구체화할 수 있는 조직 등이 미미했다. 또 전임 도지사들이 경기북부에 대한 지원, 정책적 배려를 이야기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크게 진행되는 게 없었다. 예를 들면 서울만 해도 국가가 지원해서 용산 미군 공여지 개발이 이뤄지는데, 더 재정여건이 열악한 동두천·연천·파주 이런 곳의 미군공여지는 지자체에서 개발하라고 한다. '공정'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국가 안보, 수도권 주민들의 깨끗한 물을 위해 희생했는데 돌아오는 게 없지 않나. 거기에서 오는 소외감, 박탈감은 굉장히 크다"고 진단하며 "특별하게 희생한 지역에는 특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또 평화체제에 발맞춰 대응 방안, 정책을 실현할 조직을 구체화해야 한다. 현재 '평화부지사' 체제를 검토하고 있는데 북부지역의 소외된 곳들에 대해 책임을 지고, 평화체제에서 역할을 다해야 할 부분들을 중점적으로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그 과정에서 도와 도의회, 민주당 국회의원들과의 협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인수위에 참여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도와의 협력체계를 보다 공고히 하는 데 역할을 하겠다는 점도 시사했다. 정 의원은 "도지사가 민주당 소속이고 도의회의 다수당 역시 민주당이다. 도내 국회의원 역시 민주당 소속이 더 많다. 국회·지방의원들과 도지사와의 원활한 협력이 중요할 텐데, 인수위에 참여한 의원들의 역할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싶다"며 "도지사가 '이재명표 사업'들을 하려고 하면 예산 확보 등에서 국회의원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기초단체장은 성과를 내면 되는데, 도지사는 대통령의 국정 목표에 맞춰서 정치권과 소통해야 하고 국회·도의회와의 관계도 두루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새로운 경기도를 만드는 데 안팎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정 의원이지만, 최근까지는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장으로 활동해왔다. 위원회 운영의 상당기간이 지방선거 기간과 맞물려 있었던 데다 국회가 파행을 반복하며 난항을 겪었던 점에 대해 그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 의원은 "사개특위에서 결과를 내길 기대했던 국민들께는 죄송하고 적극적으로 못했다고 비판하면 달게 받겠지만, 검경수사권 조정 등에 대한 정부 안조차 없었던 데다 지방선거 국면이라 여러모로 어려웠다"며 "최근 정부 안이 나온 만큼 오히려 지금쯤이 사개특위를 운영할 적기라고 생각하는데, 아쉬운 점이 많다"고 털어놨다.인터뷰가 이뤄진 2일은 당초 이재명 지사가 의정부 경기도청 북부청사에서 도지사 취임식을 열기로 했던 날이었다. 그러나 제7호 태풍 쁘라삐룬의 북상으로 이 지사는 임명식을 전격 취소한 채 태풍 대응 상황을 점검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제일 먼저 취임식을 취소했는데 잘 하지 않았나요?"라고 물은 정 의원은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게 지도자의 역할 아닌가. 큰 재난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빨리 판단하고 적극 대처하는 모습이, 첫 출발로서 보기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격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 경기도의 역할은 점점 커질 것이고 이제 막 발을 뗀 이재명 지사 역시 많은 일을 하게 될 터다. 그의 동반자로서, 경기북부의 미래를 이끌 또 다른 주축으로서 정성호 의원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새로운 경기도를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정성호 경기도지사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이 남북평화 무드속에 경기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2018-07-03 강기정

[인터뷰… 공감]민선 6기 임기 마치는 인천 '마지막 남구청장' 박우섭

혼자 살수 없는 세상두 개 주고 한 개 받는다는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착한 사람이 잘 살려면모두가 착해져야…인천 남구가 7월 1일부터 '미추홀구(區)'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한다. 방위를 뜻하는 '남(南)'이라는 이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인천의 역사와 정체성이 깃든 인천의 옛 이름 '미추홀'로 명칭이 바뀌는 것이다. 박우섭(63) 구청장은 남구의 마지막 구청장으로 남게 됐다. 이임식 없이 오는 29일 그동안 함께 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30일인 토요일에 마지막 퇴근을 한다. 박 구청장은 "새로운 출발의 터전을 닦아 놓은 마지막 남구청장이 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퇴임 소감을 밝혔다. 그는 "수인선과 인천도시철도 2호선이 개통됐고, 옛 인천대 주변과 동양화학 부지를 활용한 개발 사업도 잘 진행돼 지역이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조성되는 등 재임 중 주민들이 크게 느낄 만한 변화가 많았다"며 "이러한 남구의 마지막 구청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1968년 남구 개청이래 남구에서 일한 구청장 18명 가운데 마지막 구청장인 그는 민선 3·5·6대 남구청장을 지냈다.최근 지방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그를 적잖이 속상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세간의 화제가 된 '이부망천' 이야기 속에 바로 남구가 언급된 것이다. 박 구청장은 "망해서 살기 어려워지면 가는 도시에 인천 남구가 지목돼 안타까웠다"며 "주민 모두에게 힘이 되어주고, 어려운 분들이 와서 희망을 갖고 무언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하는 곳이 바로 남구"라고 했다.구청장 퇴임을 앞둔 소회로 그는 "며칠 남지 않은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거추장스러운 구청장직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일과 만난다는 설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새로운 것이 주는 설렘 때문에 많은 일을 저질러왔다"고 했다.퇴임 이후 6개월 치 일정이 그의 머리 속에 벌써 빼곡히 차 있다. 7월 1~3일은 강원도 인제에 있는 한국DMZ평화생명동산에 미리 다녀온다. 4~5일에는 부산의 지인과의 만남이, 5~6일 충북 영동에서 열리는 교육이, 7일에는 '좋은 사람들과 산행' 일정이 잡혀 있다. 이어 10일부터 9박10일 일정으로 시베리아를 다녀올 예정이다. 귀국한 뒤 인제 한국DMZ평화생명동산에 8월 말까지 머무르며 공부한다. 9~10월은 철원의 한 사찰에서 머무르고, 11~12월에는 지리산에서 도를 닦고 있다는 친구와 만날 예정이다.그는 재임 기간 남구에 일어난 변화 가운데에서도 시민회관과 주안역과 석바위 사거리에 횡단보도가 들어선 것을 가장 의미있는 변화로 꼽았다. 그는 "횡단보도를 만드는 것이 어려워서도 아니고 돈이 들어서도 아니고 결국 시민의식의 변화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며 "운전하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참고, 장사하는 사람들 장사가 안되는 불이익을 참으면서도 횡단보도를 만드는 것이 '더 좋은 일이고, 바른 일이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의 의식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고 했다.아쉬움도 있었다. 그는 착한 사람들이 잘사는 남구를 만들겠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종종 "착한 사람이 잘사는 곳을 만들겠다면서 우리를 못살게 구느냐"는 민원인을 만나기도 했다. 주로 행정 문제나, 건축관련 민원에 관한 일이었다. 그는 "그러한 부분까지 사실 완전히 해소해드렸어야 하는데, 그걸 못해 드려 죄송한 마음이 든다"며 "착한 사람들이 잘살려면 모두가 착해져야 한다. 사회는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고, 만들어진 법은 잘 지키려는 사회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새로 오는 구청장께서 고민해야 할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그는 지난해 구청장 불출마를 선언했다. 퇴임 이후에는 '평화생명' 운동에 몸담겠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계획을 수정했다. 그는 "이 시대 마지막 풀어야 할 과제가 남북한의 평화와 화해, 종전선언, 북미수교, 한반도 비핵화 등 이런 것들로 생각하고 이것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지금 문재인 대통령께서 너무나 잘하고 계셔서 굳이 나까지 할 필요는 없겠다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대신 남북한을 철도로 연결하고 나아가 시베리아와 유럽까지 연결하는 운동에 매진할 생각이다.미추홀구의 신임 구청장에 대한 남구 마지막 구청장의 조언은 '자신감'이었다. 그는 "사람이 바뀌면 새롭게 해야 한다"며 "당선자 본인 뜻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다만 현실과 타협을 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지혜로워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자기의 뜻을 펼치려면 공무원들의 동의나 지지도 있어야 하고 주민들의 지지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정치라고 했다.그는 "정치인은 이상만 가져도 되지만 행정가는 이상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능력도 가져야 한다"며 "후임 구청장이 잘하실 거라 믿는다"고 했다. 남구 주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기며 지혜로운 시민이 돼 달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그는 "나만큼 사랑받은 구청장도 없을 거라"며 "일할 기회를 주신 남구 주민에게 무엇보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그가 인천 남구에 정착해 정치한 기간이 20여 년이 넘는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많은 주민들이 동의하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많은 지지를 보내주시고, 지금도 격려하고 응원해주시는 게 큰 힘이다"며 "내 모든 것을 다 바쳐도 구민들이 주신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지 못할 정도로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다"고 했다."지혜로운 미추홀구민이 되어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결코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두 개 주고 한 개 받는다'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셨으면 좋겠다"며 "모든 구민들이 다 같이 그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신뢰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신뢰사회를 만드는 조건으로 "잘못을 한 사람을 확실하게 벌해야 하고 잘못된 것을 벌할 때는 함께 나서주는 것도 필요하다"며 "서로 오래도록 접촉하고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그렇게 살아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박우섭 구청장은▲ 1955년 충남 예산 출생▲ 1966년 충남 당진 초등학교 졸업▲ 1972년 서울 용산고등학교 졸업▲ 1972년 서울대학교 입학(1994년 졸업)▲ 19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1988~1990년 민주화운동 청년연합의장▲ 1991~1992년 민주당 부대변인▲ 2002~2006년 민선 3기 남구청장▲ 2008년 국회의장 비서실장▲ 2010~2018년 민선 5·6기 남구청장오는 7월 1일 미추홀구로 명칭을 바꾸면서 마지막 남구청장으로 기록되는 박우섭 남구청장이 "나만큼 사랑받은 구청장도 없을 것"이라며 "일할 기회를 주신 남구 주민에게 무엇보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6-26 김성호

[인터뷰… 공감]김경성 (사)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

中 전지훈련장 지원 계기, 10년 이상 교류대회 개최 등 北 축구발전 노력 결실남북 대치상황속 유소년들 우정… 북측 신뢰 33만㎡ 부지 무상이용 허가 받아남북·북미 정상회담 기회로 정치개입 뛰어넘어 '스포츠 기본조약' 체결 됐으면남북이 15년 만에 평양과 서울에서 통일 농구 경기를 연다. 또 오는 8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남북이 공동으로 참가하는 등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공동 입장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에 이어 남북체육 교류가 결실을 맺고 있다. 남북 체육 교류는 그동안 군사적 대치와 냉전 속에서도 풀뿌리처럼 이어왔다. 물론 남북 체육 교류의 중심은 김경성(59) (사)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그는 한해 5차례 이상 북한을 방문하면서 남북한 체육 교류를 지켜온 인물이다. 김 이사장은 '북한 사람', '외곬의 사업가' 등 애칭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이사장은 남북 공식 채널이 무너지고 정치적 해법도 없는 가운데에서도 축구 교류를 이어왔고, 지난 2015년에는 최전방 서부전선인 연천 지역에서 포탄을 주고받는 등 남북 관계가 악화 일로를 맞고 있는 가운데 평양에서 국제 유소년축구대회를 열기도 했다.김 이사장은 "당시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은 평양 축구대회를 가로막지 못했다. 축구공이 총과 칼보다 먼저였다"면서 "지난 10여년간 남북 축구 교류를 이어오면서 희망과 좌절을 경험했다.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말했다.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역사적인 남북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단일팀이 꾸려졌고, 북한의 참가는 '평화올림픽'의 업적을 만들었다. 또 평화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됐다. 4월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6월에는 북미정상회담까지 탄탄대로였다.그럼에도 김 이사장은 불안감을 내비쳤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앞으로 이산가족이 상봉하고, 경제협력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북 스포츠 기본 조약 체결이 먼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거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더라도 남북이 스포츠로 교류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스포츠 교류만큼 정치가 개입되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지난 1970년대 동서독은 스포츠 기본조약을 체결했고, 그 결과 스포츠 교류만큼은 냉전 속에서도 명맥을 이어왔기 때문이다.#김 이사장은 어떻게 남북 교류를 해왔을까. 그는 1990년대 보험업에 뛰어들었고, 금융보험서비스 업체를 직접 운영하면서 신촌로터리 빌딩까지 보유할 정도로 일취월장했다. 그러나 김 이사장을 축구계로 불러들인 것은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였다. 한일월드컵 때 한 정당의 월드컵 홍보 단장을 맡은 그는 이후 고향에 세워진 포천축구센터 이사장을 맡았다. 전지훈련이 필요하다는 코치진의 제안에 중국 윈난성 쿤밍을 현지답사한 김 이사장은 이후 중국의 담배제조 업체인 '훙타스포츠클럽'의 축구장을 임차해 각국 축구팀의 전지훈련을 유치했다.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그는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최종예선에 참가한 북한 대표팀과의 만남이 대북사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중국 윈난성 축구협회 명예 주석직을 맡았던 김 이사장은 2005년 이란, 일본, 바레인과 2006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맞서게 된 북한 대표팀에 전지훈련 지원 의사를 제안했다. 그는 "북한 관계자가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 남한 출신임을 알고 잠시 꺼렸지만 이내 나의 진심에 수긍했다"면서 "이후 북한의 청소년 축구와 탁구, 마라톤 등 다른 종목까지 지원의 폭을 넓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2006년 5월 북한을 대표하는 4·25체육단과 해방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이 '남북체육교류계약'을 맺었다. 이는 북한이 나를 신뢰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김 이사장을 북한 정부가 신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김 이사장이 북한 축구 발전에 큰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 U-20 여자대표팀 아시아 최초 월드컵 우승(2006년), U-17 여자대표팀 월드컵 우승(2008년), AFC U-19 챔피언십 우승·남자대표팀 남아공 월드컵 출전(이상 2010년), 동아시안컵 여자축구 우승(2013년) 등 북한 선수들의 쿤밍 전지훈련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김 이사장은 "민간 차원의 대북 교류는 정부 승인하에 이뤄진다"며 "남북 체육 교류는 민간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정치는 절차가 복잡하고, 정권이 바뀌면 책임까지 지게 돼 소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남북한은 지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2009년 북한 2차 핵실험, 2010년 천안함 사건 등 크고 작은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는 2006~2018년 6월까지 12년 동안 남북한에서 12차례, 중국에서 8차례 등 축구교류 사업을 계속했다.그는 "2007년 북한 청소년대표팀의 남한 전지훈련을 이뤄냈고, 2011년부터 중국의 쿤밍과 하이난, 광저우에서 인천평화컵 국제유소년대회를 개최했다"면서 "2014년부터는 개성공단 폐쇄로 가동이 중단된 평양의 축구화 공장을 중국 단둥으로 옮겼고, 제품명인 '아리'를 바탕으로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대회'를 연천과 북한의 평양, 중국의 쿤밍에서 차례로 개최했다"고 밝혔다.특히 2015년 8월21일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제2회 아리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는 남북 갈등 상황 속에서도 축구를 통한 남북 유소년들의 우정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당시 휴전선에서 북한의 목함지뢰가 폭발했고 8월20일에는 남한의 대북 확성기 가동을 이유로 남북 양쪽에서 포격이 벌어지는 등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김 이사장은 "당시 정부에서 선수단을 철수시키라고 연락받았지만, 남북 양쪽 모두를 설득해 대회를 치렀다. 21일 경기도 대표팀과 중국 유소년팀, 강원도 대표팀과 우즈베키스탄 유소년팀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고 밝혔다.김 이사장은 평양에서도 인기가 높다. 북한은 2007년 한국에서 열린 U-17 청소년월드컵 조추첨식에 북한의 공동단장 자격으로 김 이사장이 직접 추첨하도록 했고, 평양 능라도에 '김경성 체육인 초대소'(호텔)를 짓기도 했다. 게다가 평양에 33만578㎡(약 10만평) 땅을 50년 무상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기도 했다.이런 북한의 신뢰와 인적 네트워크는 김 이사장의 역할에 힘을 실어주었다. 김 이사장은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남북 체육 교류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나를 도와준 많은 (남북)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김 이사장은 북한 프로축구 선수가 국내 K-리그에서 뛰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는 "남북 축구의 프로축구 팀들이 정기 교류전을 펼치고 북한 선수를 남한 프로팀에 입단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북한의 축구리그는 1~3부로 돼 있는데 1부인 갑급 연맹전에는 4·25팀, 소백수팀, 기관차팀 등 12개 팀이 소속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과 대만처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 체육을 통해 정치적 문제가 해소되고 나아가 통일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경인일보DB■김경성 이사장은▲1959년, 포천▲경기대학교 한반도전략문제연구소 부소장▲통일부 통일교육위원▲고양시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체육위원회 위원장▲경기도청 균형발전기획실 통일기반조성담당관▲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수상▲DMZ평화상▲천지인상 평화통일인상#저서▲'불굴의 아리랑'(북스타)▲'포화 속에 핀 평화의 꽃, 벽을 넘어서'(북스타)지난 2006년부터 정치적 대립을 떠나 남북 축구 교류를 추진하는 등 체육 교류의 명맥을 이어온 (사)남북체육교류협회 김경성 이사장.평양 능라도에 위치한 '김경성 체육인 초대소' 모습. /남북체육교류협회 제공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치고 입국하고 있는 경기도 선수들의 모습.지난 2015년 8월 남북 갈등 속에서도 열린 제2회 아리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 평양 개막전 모습

2018-06-19 신창윤

[인터뷰… 공감]데뷔 40주년·12년 장수 DJ, 인천 가수 백영규

'백가마' 진정성 있게 다가가… 공연 음악다방 콘셉트도 방송하며 영감준비 없는 큰 성공 결국 다 잃더라… 그래도 꾸준히 작업 정규앨범 15장전주만 1분 '감춰진 고독' 가장 애착, 이런 곡 써봤기에 친숙한 곡 만들어감성 사라지면 어떻게 살지… 음악하며 얻은 감성 지키는 것이 삶의 목표1978년 혼성 듀오 물레방아로 데뷔해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가수 백영규(66)는 지난달 19일과 20일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백다방 콘서트'를 가졌다. 백영규는 이번 공연에서 1970~1980년대 대표적 청춘 문화의 상징인 음악다방을 콘셉트로 내세웠다. 이틀 연속 460여석의 공연장을 메운 관객들은 백영규의 음악 인생 40년을 축하하며 공연 내내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공연 당일 백영규의 노래 13곡과 백영규가 작곡해 다른 가수가 부른 13곡이 함께 실린 데뷔 40주년 기념 앨범(2CD)이 출시돼 의미를 더했다. '순이 생각'부터 '잊지는 말아야지', '슬픈 계절에 만나요'로 연이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백영규는 지난해 낸 '술 한 잔'까지 정규앨범 15장과 싱글앨범 5장을 냈다. 또한 박정수가 부른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 등을 작곡하는 등 한국저작권협회에 등재된 발표곡이 210곡에 이른다. 현재도 싱어송라이터이자 라디오 방송 DJ로 활동 중이다. 12년째 경인방송(FM 90.7MHz)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이하 백가마)을 진행하고 있는 백영규를 지난 11일 방송 진행에 앞서 만났다.지난달 열린 40주년 기념 공연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눴다."중장년층의 음악팬들이 공연을 선택해서 볼 게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준비한 게 적중한 거죠. 추억을 송환하는 무기 중에 여러가지가 있는데 음악과 함께 음악다방이 제대로 역할을 했습니다. 웃고 우는 관객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백영규는 음악다방 콘셉트를 방송 DJ로 활동하면서 얻었다고 했다. 백가마를 공연장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매주 수요일 백가마에선 음악다방 코너를 마련해 놓았어요. 팝송을 틀어주는 최장수 코너인데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과거 동인천역 인근에 있었던 음악다방으로서 상징성이 짙은 별다방을 공연 제목으로 정할까 하다가 청취자들이 정해준 제 이름이 들어간 '백다방 콘서트'로 정했죠."12년 동안의 방송 진행의 힘은 '청취자와 음악적 공감'에서 비롯됐다고 했다."방송을 통해 청취자들을 많이 만나죠. 단순한 청취자가 아닌 저와 공감하는 가족 같은 사람들이에요. 저를 백가마의 촌장으로 불러주시니 촌장처럼 행동해야 돼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 야누스가 되어선 청취자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고 봐요. 진정성 있게 다가서야 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방송은 저를 채찍질하는 스승처럼 느껴져요. 음악적으로도 과거 주변에서 '백영규는 너무 자기 음악만 한다'는 평을 들었는데, 방송이 저를 바꾸게 해줬어요. 방송을 통해 자신이 성숙해짐을 느끼면 큰 소득이죠. 나가라고 할 때까지 방송할 겁니다(웃음)."자연스레 음악으로 화제를 옮겼다. 백영규는 쉬지 않고 신곡을 발표 중이다. 최근 들어 올해 발표할 곡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 편곡자와 만남의 자리도 자주 갖고 있다."곡을 잘 쓰려고 하지는 않아요. 그때 그때 느끼는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려고 하죠. 제가 쓴 곡들을 통해 지난 40년의 음악 인생을 돌아보게 돼요. 곡을 쓸 때 고뇌하게 되는데 저는 그런 시간까지 즐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설레죠. 앞으로 또 어떤 곡을 쓸지."몇몇 가수들을 제외하고 1970~1980년대 왕성하게 활동했던 다수의 가수들이 잠시 동안 활동 중단 후 음반을 내고 후속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히트곡을 통해 얻은 유명세를 회복하지 못하면서 겪는 스트레스에 당시 상황(아날로그 시기) 만을 생각하다 보니 지속성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저는 준비 없이 큰 성공을 얻었어요. 다들 히트곡을 내기 전에 힘든 준비 과정을 겪는데, 저는 나오자마자 고생 없이 얻었죠. 그러다 보니 다 잃게 되더라고요. 음악적 부분에서 저를 가이드 해줄 사람이 부재하다 보니 내 기준이 앞서게 된 부분도 있었죠. 그래도 저는 곡을 만들고 음반을 내는 게 습관화 되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 소리창조라는 음반 제작사를 만든 적이 있는데, '나이 50~60세에 이르렀을 때 누가 내 음반을 내주겠냐'는 고민에서 비롯됐죠. 히트 시키진 않았지만 내 흔적으로 여기고 지속적으로 음반을 낸 게 제 힘이라고 생각해요."백영규가 가장 애착을 갖는 곡은 2007년 내놓은 13집 'As First'에 수록된 '감춰진 고독'이다. 백가마의 시그널 곡이기도 한 '감춰진 고독'은 가수 백영규를 잘 설명하는 곡이라고 한다. 도입부 1분 5초가 반주로 시작하는 4분 26초짜리 곡이다."전주만 1분이어서 방송에서 틀기 힘든 곡이죠(웃음). 프로그레시브에 록까지 가미된 이 곡이 발표됐을 때, '백영규가 현실을 너무 외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쨌든 이와 같은 곡도 쓰고 불러봤기 때문에 대중과 친숙한 곡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우 어렵겠지만, 음악성도 있고 대중적이기도 한 음악을 만드는 게 요즘 화두예요."내친김에 음악과 삶의 목표에 대해 질문했다."음악적 목표는 계속 창작하는 거죠. 지금도 막 쓰고 싶고요. 거기서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생각들을 짚어보고 감성을 지킨다는 것은 삶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감성이 사라지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죠. 결국 제게 음악과 삶의 목표는 연관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더욱 겸손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 부분도 지켜나갈 것입니다."인터뷰 말미, 질문은 안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그는 "백영규와 백가마의 팬이 나뉜다"면서 "'슬픈 계절에 만나요'가 발표된 1980년 오빠와 형으로 불러준 팬들이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응원해주시고 있다. 팬들을 위해서라도 더욱 좋은 노래를 만들고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오는 22일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와 삼익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의 릴레이 페스티벌 '명가의 품격-백영규' 공연이 서울 지하철 7호선 학동역 인근 엠팟(삼익악기 빌딩 3층)에서 개최될 예정이다.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가수 백영규는경기도 양평 태생인 그는 초교 5학년 때 인천으로 이주해 동산중·고교와 한국외대(이태리어학과)를 졸업했다.1978년 '순이 생각'으로 가요계에 데뷔했으며 1980년 MBC 10대 가수상 신인상을 받았다. 2016년 올해의 인천인상 문화예술 대상과 자랑스런 동산인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인방송에서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을 12년째 진행하고 있으며 대중문화예술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올해로 가수 데뷔 40주년을 맞았으며 12년째 방송 DJ로 활동 중인 백영규는 "곡을 만들고 부른 흔적들이 결국 40년 음악 인생이 됐다"며 "방송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당대 음악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부분도 가수로서나 인간으로서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줬다"고 돌아봤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6-12 김영준

[인터뷰… 공감]'시흥시장 3선 임기만료 앞둔' 김윤식 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 회장

"자치분권은 지역의 주민에게 권한을 돌려주는 것이다." 3선 시장으로 시장 임기 만료를 앞둔 김윤식 시흥시장(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 회장)의 자치분권 철학이다. 김 시장은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자치분권을 강력하게 추진해온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김 시장은 차기 지방정부에 "이제는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지방정부에서 주민에게로 자치권을 돌려줘야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민선4~6기까지 3선 시장을 지낸 그가 추구해온 '자치분권'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들어봤다.-자치분권을 정의한다면."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중앙정부에 과도한 권한과 역할이 집중돼 있다. 지방은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울 만큼 권한의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제는 지방으로의 권한을 이양하고 지방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반영하는 자치분권이 절실하다. 시민이 주인으로서 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때 진정한 자치분권을 실현할 수 있다. 주민 스스로 자신이 사는 지역의 문제를 찾아내 해결방안을 마련하고, 지방정부는 시민이 제대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하는 것 그것이 자치분권이라고 생각한다."-분권시장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소개하고 싶은 대표정책은."시흥시가 2011년부터 시작한 '시흥아카데미'다. 시흥 아카데미는 시정 철학인 '생명', '참여', '분권'을 기치로 시민사회와 공유·공감하고 학습하면서, 이를 통해 양성된 시민 리더들이 지역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성과를 내면서 지방자치와 분권의 플랫폼으로서 시민사회와의 협치를 보여주는 새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역동적인 시민사회 환경 속에서 공동체의 고민과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행정력과 시민사회의 협치는 반드시 필요했다. 시민과 전문가, 공무원이 학습을 통해 지역 현안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정책을 제안하여 토론과 합의를 거쳐 실행으로까지 연결시키는 진정한 협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마련된 것이 바로 시흥아카데미이다. 시흥아카데미는 공동체에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시흥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생명학교'를 운영했다. 시민들은 도심 속 녹색 공간을 조성하여 함께 땅을 일구는 등 습득한 지식을 시민사회에 다시 환원하며 공동체 회복을 위해 스스로 움직였다. 또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구성하여 지역자원의 장·단점을 활용한 자치경영을 구현했으며 이를 통해 시민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창조경제를 선도하는 비전도 보여 주었다. 시민의 시각으로 설계하고, 시민을 위한 도시를 만들어가는 '참여학교'도 운영되었다. 시민들은 이를 통해 우리 마을을 이루는 주체로서 학습한 재능을 기부하고, 도시문화 가치 창출을 위한 연구모임을 결성해 활동하는 등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시민을 상대로한 교육 쉽지 않았을텐데."그래서 '분권학교'를 만들었다. 시민과 공무원, 전문가가 함께 지역을 위한 정책을 연구하는 초석을 마련해 시 정부는 '시민의 집'이 되어 지방자치를 통한 지역의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위해 고민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통해 지역사회의 변화 리더로서 활동했다. 그 결과 시흥아카데미는 지난 4년 동안 36개 학교를 통해 1천여명이 넘는 시민 리더를 양성했다. 시민 리더들은 학습에 그치지 않고 자발적으로 9개의 시민연구모임과 동아리, 3개의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시정의 파트너로서 지역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다. 학습을 통해 축적된 다양한 지식을 아카데미 홈페이지에 재능기부 형식으로 지식 영상을 만들어 공유·개방한 결과 현재 19만명이 넘는 시청자 수를 기록하면서 대내외적으로 많이 알려졌다. 시민이 지역 현안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시정의 주체로서 지역의 고민을 함께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시 정부와 시민의 어우러짐은 자치역량을 높이고, 주민자치의 토대를 다지는데 밑거름이 됐다."-차기 지방정부 리더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함께 나누고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 '공유(共有)' 그 것을 이야기 하고 싶다. 물품에서부터 음식, 공간, 정보, 서비스까지 유형, 무형의 자산을 특정 개인이 소유하지 않고, 서로 빌려주고 빌려 함께 소비하는 현상이 일상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세계적인 지식 공유 콘퍼런스 '테드'(TED), 대학가를 중심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자동차 공유 서비스 '쏘카'(SOCAR),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Airbnb), 다수가 한집에서 살면서 거실, 화장실 등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Share House). 이들 모두는 공유경제라는 이름으로 우리 삶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이제 '공유'하지 않고서는 살아가기가 어려워진 것이다."-추천하고 싶은 정책이 있다면."시흥시 역시 다양한 사업에 공유 개념을 적용하며 공유문화를 확산해 왔다. 지난 2015년 카셰어링 업체인 그린카와 협약을 맺고 자동차 공유를 선도적으로 시작했다. 2016년 3월에는 시흥시 공유 촉진 조례 제정을 통해 제도적 기반까지 마련했다. 자동차와 더불어 자전거 공유 시스템도 구축했다. 오이도와 월곶역, 정왕역 등 8곳에 설치한 대여소에서는 시민들이 하루 평균 100여 대의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고 상반기에만 1만8천여 대의 공공자전거가 시 전역을 누볐다. 대야어린이도서관과 희망장난감도서관은 연령별 장난감을 공유하고, 또래 아이들이 모이면서 육아 정보도 나누고 있다. 관내 고등학교에서 우산을 공유하는 서비스는 주민이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해 직접 제안한 사업으로 공유에 대한 청소년들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자원이 공유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특히 공유 문화 확산에 가장 크게 기여 하는 것은 바로 '공간'이었다. 시흥시는 '공간바라지'라는 이름으로 공유공간 시스템을 개설하고 안 쓰는 자원과 그 자원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연결해주는 정책을 펼쳐왔다. 시청, 주민자치센터, 평생학습센터, 중앙도서관 등 공공시설을 강의실 및 모임터로 사용할 수 있었다. 마을의 카페와 작은 공방에서는 조리나 물품제작 등 창작 활동이 가능하다. 관내 경기장과 공원은 시민의 다양한 체육 활동을 위해 열려있고 학교, 교회 등 공공시설 주차장도 무료 개방됐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을 시민이 주체적으로 진행했다는 점이다. 한 예로 장곡중학교에서는 토론과 협의에 따른 공유공간 개설부터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까지 학생들이 직접 체험한 여정을 사회적 경제 단원의 교과과정에 담았다. 학생들은 사회적 경제를 비롯해 공유공간, 마을 공동체, 학교 민주주의, 협업의 가치들을 온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이처럼 공유는 공공의 이익이다. 무형의 정보든 유형의 공간이든 공유가 많아질수록 시민의 삶의 질은 높아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지방정부 간에도 '공유'를 위한 적극적인 연대와 협력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글·사진/심재호·김영래기자 yrk@kyeongin.com■김윤식 회장은1992.05~1995.05 제정구 국회의원 비서1995~1998 제4대 경기도의회 의원 2009~ 현재 시흥시장2016~ 현재 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 회장2016.7~현재 경기도시장군수협의회 회장김윤식 시흥시장이 "이제는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지방정부에서 주민들에게로 자치권을 돌려줘야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자치분권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시흥시가 주최한 '자치분권 순회강연'에 방송인 김제동씨가 시민의 눈높이에서 자치분권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시흥시 제공자치분권개헌을 위한 김윤식 시흥시장의 버스킹 장면. /시흥시 제공

2018-05-29 심재호·김영래

[인터뷰… 공감]윤종기 도로교통공단 이사장

전남 고흥에서 나고 자란 소년은 '제복'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경찰의 길에 들어섰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던 시절, 경찰 조직도 예외는 아니었다.'현실의 벽'을 마주한 20대 경찰 간부는 "내 주변부터 바꿔나가자"고 다짐했고, 그렇게 경찰서장이 됐다. 이때부터 '전 직원과 밥 한 끼 먹는다'는 계획을 실천했다. 경찰의 별인 경무관이 됐고, 경찰청장 다음으로 높은 계급인 치안정감까지 올랐다. 권위적이지 않고 소탈했다. "경찰은 동료들에게 존중받는 것을 느낄 때,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존중 문화 확산'이 조직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이라고 얘기했다. 2015년 12월 경찰 인사에서 그의 명단은 제외됐다. 33년간 입은 제복을 벗어야 했다. 그 누구 보다 일 욕심이 컸다. 여러 사람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야당에 입당하면서 견마지로(犬馬之勞)의 자세를 견지하겠다고 했다. 첫 도전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총선 결과 37%의 득표율을 얻었다. 2위로 낙선했다. 정치 신인이 '험지'에서 거둔 성과는 초라하지 않았다.'교통 전문가'였던 그는 지난 2월 도로교통 안전 종합 전문 공공기관의 수장이 됐다. 윤종기 도로교통공단 이사장을 지난 3일 강원도 원주혁신도시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도로교통공단 이사장이 되면서 '제1 목표'로 삼은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도로상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 교통사고 사망자는 감소세입니다. 작년 한 해 4천185명이 숨졌는데, 1980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입니다.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2022년까지 2017년 대비 절반으로 줄이는 게 목표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교통사고 빅데이터를 활용할 생각입니다. 전문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교통사고 자료를 분석해 특정 시간대와 지점의 사고 발생 확률을 뽑아내고, 교통방송 등을 통해 운전자들에게 수시로 안내하고 경각심을 줄 것입니다. 도로 상 운전 문화와 시민 의식 개선은 장기적 과제입니다. 얼마 전 전문가에게 들은 말인데, 자동차 문화는 '마차 문화'가 돼야 합니다. 자동차 힘을 마력으로 표시하는 것은, 마차가 자동차의 전신이기 때문입니다. 마차 문화는 사람이 오면 멈추는, 보행자 중심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가마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대감이 딱 올라타 있으면 종 4명이 가마를 듭니다. 가마 앞 사람들은 비켜줘야 할 대상입니다. 운전대를 잡으면 자기 중심이 되니 앞에 다른 차가 끼어들면 화가 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우선인 마차 문화를 확산하는 게 중요합니다."-2015년 12월 경찰을 떠날 때 아쉬움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경찰 33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당시 경찰을 그만두게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경찰 조직에 아쉬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충북경찰청 차장이던 2011년 제주 강정 마을 시위에 대응하는 태스크포스(TF) 단장으로 제주경찰청에 파견된 시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 때 강정마을은 큰 위기였습니다. 제가 그 위기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압박감도 컸습니다. 해군 등이 낸 '공사 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고, 그 결과에 따라 해군은 경찰에 '시위대를 공사장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경찰은 TF 단장으로 저를 차출했습니다. 그게 족쇄가 돼 (총선에 출마했을 때) 시민단체가 저를 비난했죠."-왜 강정마을 TF 단장으로 가게 된 것입니까."다른 사람들 가라는 데 안 가니까. (제일 말 잘 듣는) 제가 가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가서 보니까 해군 기지에 반대하는 주민들도 많이 다치고, 경찰관도 고립돼 다치고 상황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가라는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최소한의 희생으로 임무를 수행하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당시 일에 대해 후회가 없고, 정당하게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치안정감으로 승격된 초대 인천경찰청장을 맡으셨습니다. 어떠셨습니다."청장에 부임해 돌아다녀보니 부평, 동인천, 주안역 앞에 건널목이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곳은 노인 교통 사고가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40년 전부터 (횡단보도를) 그으려고 했는데 지하상가 분들이 반대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횡단보도가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국회의원들도 전화 와서 "긋지 마라"고 압박했습니다. 그 때마다 "의원님들 천표 얻으려다가 2만표 잃게 된다", "어린이와 노약자가 다치고 숨지는 데 나는 해야겠다"고 답했습니다. 민원을 걱정하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기 싫은데, 청장이 이상한 놈이 왔다.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어서 어쩔 수 없다"라고 답하라고."-경찰에서 떠나고 3개월 만에 민주당에 입당했습니다. 정치에 입문한 계기가 있습니까."정치할 생각 전혀 없었습니다. 그 때 여러 사람이 정계 입문을 권했는데, 그 분들의 일관된 주장이 제 승부욕을 이끌었습니다. "경찰에서 못할 일, 정치를 하면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도로교통공단 이사장으로 임기를 막 시작했습니다. 자율주행차 연구에 관심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 임기 중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자율주행차 TF가 아닌 조직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자율주행차에 대해 교통안전공단이 연구하고 있는데, 기계적인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과연 도로에서 돌발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있는지, 실제 도로에서 안전하게 주행이 가능한지 등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려고 합니다. 실제 현장에서 자율주행차를 탈 때 법적 운전 주체는 누구고, 운전자와 AI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등도 연구 대상입니다. 올해 말까지 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윤 이사장은 "나의 리더십은 밥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단 이사장에 부임한 뒤에도 모든 직원들과 식사하며 대화하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 존중 문화는 그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다. "모든 업무는 자발성이 필요합니다. 내 상사, 동료, 부하가 날 존중해 준다고 믿을 때 자기 주도적 업무 수행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인정받고 있다', '배려 받고 있다'고 느낄 때 긍정의 에너지가 나온다고 믿습니다."글/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윤종기 도로교통공단 이사장이 "모든 업무는 자발성이 필요합니다. 내 상사, 동료, 부하가 날 존중해 준다고 믿을 때 자기 주도적 업무 수행이 가능합니다. '인정받고 있다', '배려 받고 있다'고 느낄 때 긍정의 에너지가 나온다고 저는 믿습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5-22 김명래

[인터뷰… 공감]'중기·소상공인 대변인' 박주봉 중소기업 옴부즈만

30년 경험 경영자 출신, 취임후 손 놓아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지원… 활동 전념문제 해결 시간 오래 걸릴 때 안타까워명함 '차관급' 넣어 부처에 무게감 전해공무원-기업인, 더 효율적 소통방법 고민질의응답 방식 아닌 '토론식' 현안 간담회최저임금 상승·근로단축에 어려움 호소권고권 적극 활용, 현장도 관심 가졌으면최근 서울 서초구 지방공기업평가원에서 열린 '중소기업 옴부즈만' 주최 기업 현안 간담회 현장. 이날 간담회엔 기업이 애로사항을 제기하면 옴부즈만이 답변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분임 토론 형식이 처음 도입됐다. 중소기업 관련 협회·단체 관계자, 기업인 등 간담회 참여자들은 조마다 공무원 등이 2~3명씩 참여한 분임별 토론에서 단순 질의응답을 넘어선 심도 있는 정책 토론을 할 수 있었다. 올해 2월 박주봉(61) 4대 중소기업 옴부즈만의 취임 후 나타난 변화다. 기업과의 소통을 더욱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다.박주봉 옴부즈만은 '현장'을 강조한다. 중소기업이 많은 수도권은 물론 대전과 광주·전남, 제주까지 직접 발로 뛰면서 기업 현장의 어려움을 귀로 듣고 있다. 현장에선 기업정책의 문제를 직접 확인하고 개선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30년 가까이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인 출신이기 때문에 현장의 중요성을 더욱 잘 알고 있다. 올해 간담회를 비롯한 현장방문을 100차례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불합리한 규제와 애로를 상시적·체계적으로 정비하는 '중소기업 옴부즈만'이 그의 취임을 계기로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중소기업 옴부즈만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박주봉 옴부즈만을 지난 4일 인천 중구에 위치한 대주·KC 사옥에서 만났다. 대주·KC는 박주봉 옴부즈만이 설립해 약 30년 동안 운영해 온 회사로 철강, 화학, 물류, 자동차·항공, 건설·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박주봉 옴부즈만은 "오랜만에 이곳(대주·KC 사옥)을 찾았다"고 했다. 옴부즈만 취임 후 회사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중소기업 옴부즈만에 지원했다"며 "정부하고도 그렇게 약속했고, 옴부즈만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규제 개선을 요구하는 기업들을 직접 찾아 문제점을 확인하고 개선 방안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표정에선 옴부즈만으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읽을 수 있었다.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중소기업의 고충을 처리하고 중소기업 관련 규제와 애로사항 개선을 정부에 건의하는 역할을 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추천과 규제개혁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무총리가 위촉하는 차관급 직책이다. 임기는 3년이고 1회 연임할 수 있다.박주봉 옴부즈만은 "중소기업 옴부즈만이 생긴 지 10년 정도 됐지만, 아직 옴부즈만이 어떤 건지 잘 모르는 기업들이 많다"며 "중소기업의 애로사항과 불합리한 규제를 들어주고 개선 방안을 찾는 '중소기업 대변인'을 우리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관련 제도가 도입된 2009년 7월 이후 기업 규제와 애로사항 1만8천120여건을 처리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현장에선 아직 옴부즈만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합리적이고 파급효과가 큰 규제 개선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옴부즈만 권고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라며 "기업인들도 옴부즈만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기업을 직접 설립하고 경영해 온 기업인 출신이 중소기업 옴부즈만을 맡은 건 그가 처음이다. 그동안은 학계 출신 인사들이 맡았다. 박주봉 옴부즈만은 "이론보다는 현장 경험을 가진 사람이 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더 많이, 더 빨리 처리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며 "현장 중심의 규제 개선을 이뤄야 한다는 정부 방침도 뒷받침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책임감도 크다. 그는 "중소기업과 정부를 연결하는 가교가 돼 정부의 불합리한 규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인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정부가 미처 생각지 못한 정책 사각지대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옴부즈만 취임 후 2개월여 동안 현장에서 만난 중소기업인들은 구인난과 판로 확보의 어려움은 물론,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방의 한 업체는 단순노무를 하는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최저임금이 적용되면서 인건비 증가로 공장 운영에 어려움이 커졌다며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다른 업체는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면, 해외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근로자와 외국인 근로자 간 근로시간 격차가 발생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청와대와 국무총리실 라인을 통해 중소기업의 애로·건의사항을 보고하고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 장·차관들을 만날 때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당장 해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박주봉 옴부즈만은 "문재인 대통령께서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국가를 만들겠다고 공약했고 정부가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부로 격상시키면서 정부에 대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기대가 커졌지만, 정부가 그 기대를 쫓아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이어 "내가 들어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항이 현장에 많지만, 개선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때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며 "관계 부처 당국자들이 개선에 속도를 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그가 '차관급'이라는 직급을 명함에 넣은 것도 중소기업 옴부즈만의 요구를 부처 관계자들이 무게감을 느끼며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기업체 수의 99%를 차지하고, 고용의 88%를 책임지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이 세계적인 일류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은 중소기업들의 기술력에 있다. 튼튼하고 건강한 중소기업이 국가 경제 발전의 초석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중소기업의 목소리에 정부가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박주봉 옴부즈만은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소금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며 "임기가 끝난 뒤에 '중소기업의 생존과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글/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박주봉 중소기업 옴부즈만은?▲1957년 전남 장흥 출생 ▲용문고, 한세대 졸업▲1989년 대주개발(주) 설립▲1999~ 2002년 대주중공업(주) 대표이사▲2001년~ 現 케이씨(주) 회장▲2004년~ 現 한국철강구조물협동조합 이사장▲2011년~ 現 인천상공회의소 부회장▲2017년~ 現 동북아평화경제협회 회장▲2018년~ 現 한국무역협회 부회장▲2010년 금탑산업훈장▲2013·2014년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 표창▲2014·2015년 행복한 중기경영대상 대상박주봉 중소기업 옴부즈만이 "임기가 끝난 뒤에 '중소기업의 생존과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5-15 이현준

[인터뷰… 공감]함진규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의장 '6·13선거 필승 공약'

"지방선거는 정권의 중간 평가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집권 경험이 많은 우리가 현 정부에서 생각하지 못한 분야의 공약을 많이 내놓으면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유한국당 지방선거 공약을 담당하는 함진규 정책위의장은 8일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6·13 지방선거의 경기도 판세를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인기에 연연해 장기 계획을 못 세우고 있는 현 정권의 실정을 잘 파고들면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전망했다. 사상 유례없는 탄핵 정국을 초래해 정권을 내준 아픔 속에 남북 정상회담으로 평화무드까지 조성되면서 정부·여당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분위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반도체' 이후 먹거리를 만들 경제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동력을 찾고 있고, 그런 공약을 앞세워 민심을 돌리겠다는 게 그의 최대 선거 전략이다. 일자리 만드는 데 옹색하게 국민 세금 투입하지 않을 것이며, 규제를 완화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집권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이다. 주로 블록체인과 드론, 첨단 의료 산업 등 현 정부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4차산업을 선제적으로 내놓겠다고 강조했다. 한국당의 '험지'인 경기도 시흥(갑)에서 내리 2차례 당선돼 요직을 맡아왔고, 이번에는 6·13 전국 지방선거공약개발단장을 맡았다. 그를 통해 한국당의 선거 전략을 들어봤다.-경기지역 선거 승리를 위해 어떤 어젠다를 제시할 계획인가."이번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 집중하고 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 진정성을 갖고 지역 발전과 주민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참 일꾼'과 중앙정치의 과장된 여론과 높은 대통령 여론조사 지지율에 기대어 정치적 포퓰리즘만 일삼는 '정치꾼'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낼 계획이다. 특히 경기도지사 선거는 지방행정의 계속성과 연속성을 가지고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보고 지역 주민들께 한 번 더 일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할 예정이다."-경기도 주요 정책 공약은."수도권은 만성적인 교통난에 시달리면서, 출퇴근에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다. 시간을 단축시키고 시민들에게 빠르고 편리하면서도 안전한 교통서비스를 제공하는 '교통복지' 공약을 많이 낼 계획이다. 특히 재선 경기도지사 출신의 관록을 지닌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와 경기 김포 지역구 의원을 지낸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 등 모두 경기도와 인연이 깊고, 세 후보 모두 수도권 교통난 해결에 집중하고 있다. 이 세 분이 모두 당선된다면 가히 '수도권 교통혁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최상의 복지 정책으로 보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이에 대응하는 산업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신성장 거점을 만들고, 청년들이 마음껏 꿈꾸고 일을 통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도록 성남 판교, 고양 일산 등 15곳에 '혁신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 일자리 30만 개를 창출할 수 있는 공약이다."-전국 동시 지방선거의 승리를 견인할 정책 공약은."요즘 최악의 청년실업률에서 보듯이 '일자리'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서민에게 고통만 안겨주는 현 정부에 맞서 서민과 중산층, 노동자를 살리는 정책 공약을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고, 지진·화재 등 각종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정책도 마련하고 있고, 지역경제를 살리고 지방재정을 강화하기 위한 지방자치 공약도 다수 포함될 것이다."-남북정상회담의 평가와 앞으로의 과제는."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한 간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북핵 폐기'는 공동선언문 맨 마지막 세 문장으로 반영되었을 뿐, '북핵 폐기'의 본질은 흐지부지돼 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한 이후에나 추진되어야 할 보상 수단을 북한이 원한다고 해서 선뜻 내주는 것은 지금까지 견지해온 국제사회의 비핵화 노력을 무력화시키는 일이다. 정부는 '완전한 북핵 폐기'를 달성할 때까지 대북제재를 절대 완화해서는 안 된다. 굳건한 한미동맹에 근거해 긴밀한 대북공조가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나가야 할 것이다."-경기북부 접경지역 발전을 위한 대책과 계획은."한국당은 낙후된 접경지역에 대해 남북정상회담 전부터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왔다. 경기 북부와 인천 서해 5도는 지정학적 특성상 그동안 수많은 제약을 받아왔는데 달리 생각하면 통일 이후에는 가장 경쟁력 있는 지역이 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접경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기본적으로 교통망 확충이 시급하다. 경기 북부권(양주~동두천~연천)을 잇는 고속도로와 수도권 제2 순환고속도로, 경기 북부의 5대 핵심도로 건설을 통해 사통팔달의 여건을 만들 필요가 있다. 또한 접경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DMZ 안보·관광특구를 조성하고 임진각·평화누리를 통합 개발하는 등 경기 북부지역을 '평화 공간'으로 조성해나갈 계획이다."-도 출신 정책위의장으로서 가장 공을 들여온 정책이 있다면."경기 지역의 제일 큰 현안을 꼽으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수도권 규제 완화'일 것이다. 수도권에 가장 많은 자원을 과도한 규제로 옭아매면서 지방을 발전시키고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은 형식적 균형을 위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소탐대실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수도권 규제만 개선해도 11조원 이상의 경제 유발 효과와 16만 명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 이제 제정된 지 30년을 넘는 '수도권 정비계획' 같은 구시대적 발상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고, 그래서 수도권 과밀화 억제로 대표되는 정책 방향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할 때이다."-끝으로 정책선거를 이끌어 갈 복안은."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앙 정치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어떻고 개헌이 어떻고 말이 굉장히 많지만, 지방선거는 결국 먹고 사는 문제로 귀결될 것으로 본다. 정부·여당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다고 하나, 실제 민생현장의 분위기나 느낌은 많이 다르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우리 동네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할 '일꾼'을 뽑는 선거로 이끌어 나가면서 시도공약개발단을 풀가동해 지역별 맞춤형 공약을 많이 개발해 내면서 적극적인 선거를 주도해 나갈 계획이다." 글/정의종기자 jej@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함진규 의장은▲ 1959년 경기도 시흥 출생▲ 1989년 고려대 법학과졸▲ 2002ㆍ2006~2008년 경기도의회 의원(한나라당)▲ 2012~현재 제19대, 20대 국회의원(시흥시甲 자유한국당)▲ 2012·2013ㆍ2014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2014년 새누리당 대변인▲ 2014~2015년 자유한국당 경기도당 위원장▲ 2014~2015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2014~2015년 국회 남북관계 및 교류협력발전특별위원회 위원▲ 2015~2016년 새누리당 원내부대표▲ 2017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홍보본부장▲ 2017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현)▲ 2017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2017년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의장(현)▲ 2018년 6·13전국지방선거공약개발단장(현)함진규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요즘 "청년실업률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며 서민에게 고통만 안겨주는 현 정부에 맞서 "서민과 중산층, 노동자를 살리는 정책 공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2018-05-08 정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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