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정책 브레인·30년 지기' 이한주 경기연구원 원장

그는 늘 그의 곁에 있었다. 때로는 한 발짝 뒤에 서 있었고, 때로는 몇 발짝 앞에서 그를 이끌었다. 그럼에도 비교적 베일에 싸여있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정책 브레인'으로 불리는 이한주 경기연구원 원장 이야기다.이 원장과 이 지사는 30년 지기다. 실용주의·공정이 핵심인 이 지사의 정책 철학을 마련해준 멘토였고 성남시장일 때도, 도지사에 당선됐을 때도 시·도정의 큰 그림을 그리는 설계 총책임자였다. 곁에 머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치열하게 달렸다. 경제학자로서 이론을 현실에 접목하는데 부단한 노력을 쏟았고,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번듯한 학교를 만들기 위한 각종 학내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상대적으로 이 지사의 멘토, 정책 브레인으로만 조명됐던 이 원장의 이야기를 19일 오전 그의 집무실에서 좀 더 자세히 들어봤다. 법정 다툼 속 기로에 서 있는 이 지사, 그리고 그가 총괄하는 경기연구원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李지사·성남과 인연은 어떻게배무기 은사 권유로 경원대서 교수직'철거민' 모습 경제학도에 자못 '충격'"실질적 도움주자" 시민운동서 알게돼# 호헌철폐 교수 성명 1호, 중심에 서 있던 젊은 교수6·10 민주항쟁은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 조치에서부터 불붙었다. 직선제로의 개헌이 좌초될 위기 속 전국 대학교수들은 일제히 시국 성명을 발표했다. 첫 번째 성명은 설립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성남시의 작은 대학에서 나왔다. 중심에는 당시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던 젊은 교수가 있었다. 이 원장이었다.나무 냄새가 좋아 목수를 하고 싶던 소년은 서울대학교에 진학 후 경제학도가 됐다. 지금의 가천대와 연을 맺은 것도 당시 은사였던 배무기 전 울산대학교 총장 때문이었다. 이 원장은 "제게는 아버지 같은 분인데, 그분 밑에서 오래 있었다. 어느 날 그분이 경원대에 가서 강연을 하고 오라더라. 어딘지도 모르는데, 아버지 같은 분이 말씀하시니까 무턱대고 갔다"며 "당시는 학원 자주화 운동이 굉장히 세게 일어났을 때였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더라도, 스스로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나. 선배들이 별로 없었던 학교니까, 그런 상황 속에서 학생들과 부딪히면서 다양한 내용을 강연했다. 그러다 교수협의회를 만들었고 부정입학 등 학내 문제에 맞섰다. 사표를 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반평생을 가천대에 몸담은 이유이기도 하다. "시작부터 함께 했으니 학교에 대한 애정이 깊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말한 이 원장은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바르게 크는 것인데, 그런 측면에서 퇴직할 때는 '그래도 웬만큼 알아주는' 대학에서 퇴직하고 싶다"고 웃었다.가천대에 가면서 성남을 처음 알게 됐다. 가천대 뒷산에 선 그의 눈에 비친 성남은 마치 거대한 인삼밭 같았다. 아스팔트루핑 지붕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철거민들의 집. 이론 속에 있던 경제학도에겐 자못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시민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다. "관념·이념에 머무를 게 아닌, 실질적인 삶에 도움이 될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던 그는 기독교 학생운동을 했던 경험을 토대로 당시 이해학 목사가 중심이 됐던 시민운동에 동참하게 됐다. 막 변호사가 된 청년 이재명과 본격적으로 연을 맺은 것도 그 무렵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그의 제자들이 연행될 때쯤, 이 지사는 전속 변호사처럼 관심을 기울여줬다. 열악한 성남을 그래도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시민운동도 함께 이어갔다.■1년 2개월째 맡아온 경기연구원적응 좀 됐지만 갈수록 책임감 무거워져'한국 축소판' 저출산·규제등 과제 많아민주주의 발전·도민 삶의질 향상 고민도# 이재명, 그리고 경기연구원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며 함께 걸어온 이 지사와 이 원장 모두 서로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성남시장에 취임하자마자 시행한 모라토리움 선언, '이재명표' 3대 무상복지로 일컬어지는 무상교복·청년배당·산후조리 지원 등이 이 원장의 손을 거쳤다. 이 지사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후에도 공동 인수위원장을 맡아 도정 청사진을 그렸고, 아예 도 싱크탱크인 경기연구원 원장을 맡았다.지난해 9월부터 1년하고도 2개월째 연구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1년간의 소회를 묻자 "지금은 적응이 좀 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책임감이 무거워진다"고 답했다. "선거 기간 중에 공약도 만들고 실제로 경기도를 들여다보기도 했는데, 가면 갈수록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구조 자체가 31개 지역의 부족 연맹체인데, 저출산 문제도 심하고 규제·난개발 문제도 그대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도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가야 하는 과제도 있다. 기관 내부적으로는 인력도 충원해야 하고 노사 관계도 풀어야 한다. 할 일이 많다"고 토로(?)했다.수장인 이 지사의 운명과 맞물린 도정이 올해 안에 정상화됐으면 하는 바람도 내비쳤다. 이 원장은 "이 지사가 두 번째로 시장을 할 때는 오랜 기간 근무한 공무원들이 정책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일선에서 오랜 기간 시민들과 호흡해온 공무원들이 내놓는 정책들은 정말 실현가능성이 높다. 결국 정책은 일종의 예술이라, 방향이 맞다고만 해서 좋은 정책이 아니다. 결국 좋은 정책은 실현되는 정책"이라며 "도는 이 지사가 송사에 자꾸 흔들리니까 공무원들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아직까지 공무원들의 오랜 경험이 담긴 정책들이 생각만큼은 많지 않다. 빨리 정상화돼야 하는데, 올해 안에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날 인터뷰 직전 14명의 시·도지사들이 이 지사의 무죄를 탄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날에는 변호사들이 2심 판결의 부당함을 호소했고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도 탄원에 동참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사실 정치인에 대한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꾸려진 것은 한명숙 전 총리 이후 처음"이라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탄원에 참여했다. 물론 엄벌에 처해 달라는 진정도 많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시민사회, 그리고 정치권 전반에서 포용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고 평했다.그러면서 "결국 총선이든, 대선이든 다 떠나서 경기도에서 실적을 못 쌓으면 무슨 소용이겠나. 아마 이 지사는 도에서 실적을 못 내면 스스로 아무 것도 안 한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건 곧 그의 이야기이기도 할 터다.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이한주 원장은?▲ 1956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경제학 박사▲ 가천대학교 글로벌경제학과 교수▲ 2017 ~ 2018년 가천대학교 특임부총장▲ 2018년 ~ 경기연구원 원장▲ 2018년 새로운경기위원회 공동위원장▲ 2017년 대통령직속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장▲ 2017 ~ 2018년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경제분과위원장▲ 2019년 ~ 예금보험위원회 위원※ 다니엘 라벤토스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번역19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정책 브레인'으로 잘 알려진 이한주 경기연구원 원장이 집무실에서 이 지사와의 인연과 경기도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9-11-19 강기정

[인터뷰… 공감]인천 출신 첫 '전국항운노조연맹' 수장 선출된 최두영 인천항운노조 위원장

#'부산' 제치고 당선 9월 취임했는데IMF때도 물동량 늘었는데 최근 '정체'영광스럽지만 어려운 상황 어깨 무거워#인천항 물동량 감소 심각… 대안은일자리 창출 효과 큰 벌크화물 유치 필요중고차 수출 '남항 클러스터' 조성 시급#'내항 재개발 사업' 속도 조절론'성공모델' 獨 하펜시티 항만 운영 '공존'1·8부두엔 주거시설 2~7부두 기능 유지를우리나라 노동운동은 항만에서 처음 시작됐다. 1898년 함흥 성진부두 노동조합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항만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일제에 저항했다. 해방 이후인 1949년 3월 항운노동조합의 모태인 대한노총 전국항만자유노동조합연맹이 출범했다. 이후 7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명칭은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으로 바뀌었고, 항만뿐만 아니라 철도·연안·농수산시장·정기화물·창고 등 국내 물류산업 종사자 2만5천여 명이 참여하는 거대 노조가 됐다. 노조의 모습은 크게 변화했으나, 지난 70년 동안 전국항운노조연맹 위원장은 부산 지역에서 도맡아 왔다. 전체 연맹 조합원 중 부산항운노동조합 조합원이 3분의 1에 달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전국항운노조연맹 위원장에 도전하기도 어려웠다.올해 9월 열린 전국항운노조연맹 대의원대회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인천 출신이 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인천항운노동조합 최두영(55) 위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최 위원장은 "인천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전국연맹 위원장에 오른 것을 매우 영광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물류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취임했기 때문에 어깨가 매우 무겁다"고 했다. 이어 "선발투수가 아닌 구원투수로 투입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노조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했다.최 위원장은 "우리나라 항만이 역사상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하며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올 들어 3분기까지 국내 전체 항만 물동량은 12억1천525만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중 벌크 화물 물동량은 7억8천770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0.4% 감소했다. 그는 "IMF 경제 위기 시절에도 항만 물동량은 꾸준히 늘었는데, 최근에는 거의 정체돼 있다"며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수출입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지면 항만이 맨 처음 직격탄을 맞는다"고 설명했다.최 위원장은 해양수산부와 항만공사 등이 컨테이너뿐만 아니라 벌크 화물 유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벌크 화물은 하역 과정이나 재가공 과정에서 여러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국내 산업과의 시너지 효과도 매우 크다"며 "그럼에도 인천항만공사를 포함한 여러 항만 관리 기관에서는 컨테이너 화물을 더 중요시하고, 벌크는 등한시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벌크에서 컨테이너로 화물 운반 형태가 바뀌고 있지만, 벌크 화물 유지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인천항의 물동량 감소세는 심각한 수준이다. 올 1~9월 인천항 물동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1억2천122만t)보다 5.5% 줄어든 1억1천464만t으로 집계됐다. 2014년 1~9월 1억1천581만t을 처리한 이후 5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올 들어 인천항 물동량이 많이 줄어든 이유는 벌크 물동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9.8%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벌크 물동량이 줄면서 항운노조원의 일자리가 감소하거나 임금이 큰 폭으로 줄었다고 최 위원장은 설명했다.최 위원장은 "벌크 물동량 감소를 막으려면 인천 남항 '중고 자동차 물류 클러스터'를 이른 시일 안에 조성하고, 인천 '내항 재개발' 사업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자기 생각을 밝혔다.중고차는 인천항의 주요 벌크 화물이다. 인천항에서 수출되는 중고 자동차는 전국 중고차 물동량의 80%에 달한다. 인천시와 인천항만공사는 인천항의 중고차 수출 물량을 유지하기 위해 2025년까지 인천 남항 인근에 중고차 물류 클러스터를 만들 계획이다. 옛 송도유원지 일대에 자리 잡은 중고차 수출 업체들을 이곳(중고차 물류 클러스터)으로 이전시키겠다는 게 인천시와 인천항만공사의 생각이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최 위원장은 "중고차 물류 단지는 공해를 유발하는 혐오 시설이 아니다. 선진국 사례를 살펴보면 얼마든지 깨끗하게 운영될 수 있다"며 "인천시 등은 이러한 점을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는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인천의 중고차 물류 클러스터 조성이 지연되는 사이 전북 군산과 경기도 평택, 울산 등에서는 중고차 수출단지 조성사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자동차 운반선은 중고차와 신차를 함께 싣기 위해 인천항에 기항하는 것"이라며 "중고차 수출 물량을 다른 지역에 빼앗기면 인천항의 신차 물동량도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내항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선, 주민과 개방을 합의한 내항 1·8부두는 재개발을 진행하더라도 항만 기능이 유지되는 2~7부두는 계속 운영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해수부와 인천시는 내항 8개 부두를 5개 구역으로 나눠 재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인천 항만업계에선 내항 재개발로 항만 기능이 사라지면 인천지역 산업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항·북항·신항 등이 잇달아 개장하면서 내항의 물동량이 감소했지만, 곡물·사료 부원료·원당·자동차 등의 화물은 내항을 통해 하역되고 있다. 대체 부두 마련 없이 내항에서의 화물 하역이 중단되면, 이들 화물을 활용하는 공장들이 인천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높다.최 위원장은 "최근 항만 재개발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독일 하펜시티를 방문해 보니 재개발과 항만 운영이 공존하는 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며 "내항 1·8부두에 아파트 등 주거시설을 짓더라도 하펜시티를 참고해 항만 관련 민원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쓰고 입주시키는 등 공존 방안을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최 위원장은 1990년부터 인천항운노동조합에서 일했다. 그는 "솔직히 당시 대졸 노동자 임금보다 항운노조원의 월급이 2~3배 정도 높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항운노조에 들어왔다. 그때는 전국항운노조연맹 위원장까지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물동량이 감소하는 데다, 항만 자동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어 항운노조원이 그 여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항운노조를 대표한다는 책임감으로 (조합원들과 함께)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최두영 위원장은?▲ 1964년 인천 출생▲ 1981년 인천고 졸업, 1991년 중앙대 경제학과 졸업▲ 1990년 인천항운노동조합 가입▲ 1999년 전국항운노조연맹 쟁의부장▲ 2013년 인천항운노조 부위원장▲ 2019년 5월 인천항운노조 위원장 당선▲ 2019년 9월 전국항운노조연맹 위원장 취임전국항운노조연맹 최두영 위원장은 "위기에 빠진 물류산업의 구원투수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19-11-12 김주엽

[인터뷰… 공감]어우러짐&나눔 실천하는 남양주 천년고찰 '봉선사 새 주지' 초격 스님

20대 사미승으로 머물러 추억서려… 30여년만에 고향온 듯 감회 새로워지난달 취임법회때 화환 대신 '지역 쌀' 받아 소외이웃에 전달 '상생'청소년쉼터등 운영 '함께 행복한 세상' 꿈꿔… 교회찾아 '화합' 행보도스님들 '청빈·봉사 삶' 펼칠 수 있게 노후대책등 수행환경 보장하고파가을이 깊어가는 봉선사에는 스님들의 빗자루에 모여진 낙엽들이 연신 바스락 소리를 냈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소실돼 여러 차례 중건되기는 했지만, 광릉숲에서 이어지는 고즈넉한 풍광과 잘 어우러진 절의 분위기는 천년고찰(969년 창건)의 면모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남양주와 포천 등 경기북부 지역에 84개 말사를 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조선 시대 승과시가 치러졌던 곳. 전국의 승려와 신도들을 대상으로 교학 진흥의 중추기관 역할을 해온 교종본찰 봉선사의 새 주지로 임명돼 지난달 25일 취임법회를 연 초격스님은 1987년 바로 이 곳에서 사미계를 받을 만큼 봉선사와 인연이 깊다.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듯 부처님의 인연에 따라 되돌아 온 것일까, 파릇파릇하던 20대 사미승은 30여 년만에 명실상부 '큰스님'으로 돌아왔다. 휴대전화 컬러링에 가수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이 흘러 나오는 사람, 천일기도에 묵언까지 병행하면서 성탄절에는 교회와 성당을 찾아 축하인사를 하는 승려, 삼성을 상대로 문화재 반환을 이끌어내며 '문화재 제자리 찾기'운동의 첫 불을 지폈던 행동가 초격스님을 봉선사 경내에서 만났다. "봉선사는 젊은 나이에 뛰놀던 곳입니다. 청년의 나이로 큰스님을 시봉했죠. 연꽃이 피고 지는 연못과 그 곳의 자라 한 마리까지 곳곳에 추억이 서려 있습니다. 속세로 치자면, 서울로 공부하러 갔다가 나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온 셈인가요, 감회가 새롭습니다."30여년만에 돌아온 절은 놀랍게 발전했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사찰 곳곳이 잘 정비되고 신도와 관광객도 크게 늘었지만,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일주문처럼 봉선사는 예나 지금이나 대중들에게 여전히 열려 있는 공간이다. 절에 문화재가 즐비하지만 입장료는 물론, 그 흔한 주차비도 받지 않는다. 신도든 비신도든 점심때 절을 찾은 사람은 누구나 무료로 절밥을 먹을 수 있다. "누구든지 편하게 찾아와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힐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종교의 역할이자 존재 이유 아닐까요."이런 열린 마음은 스님이 각별히 강조하는 '종교간 화합'으로 이어진다. 초격 스님은 관내 기관장과 정치인들을 만날때면 그가 비록 불심이 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특정 종교를 내세우지 마라'고 엄중하게 당부한다. 지도자가 내 종교만 두둔하고 남의 종교를 멀리하면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스님이 성탄절에 교회와 성당을 찾아 축하하고, 목사와 신부가 부처님 오신날에 절에 와 함께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야 신도들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미쳐 사회 화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조계종 제25 교구장으로서의 여러 포부도 '화합'과 맥을 같이 한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스님들에게 기본적인 노후대책을 보장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종교인의 복지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수행 환경이 보장돼 있지 않는데 어떻게 청빈한 마음으로 사회와 신도들에게 봉사할 수 있겠어요. 열심히 수행해 그 결과를 이웃에게 베풀고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슨 건물을 세울지, 어떤 문화 축제를 기획할지도 중요하지만, 선원에서 수행하는 스님들과 학림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에게 복지기금과 장학금·노후 생활비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스님은 지난달 25일 열린 주지 진산식에서 축하 화환 대신 '자비의 쌀'을 모아 20㎏ 들이 1천 포대를 남양주시에 전달했다. 행사 때 쌀을 기부받아 나누는 것이 이젠 그리 드문 풍경도 아니지만, 스님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 '기왕이면 북부지역 쌀을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작지만 지역 사회와의 상생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배려도 포함됐다. 남양주시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된 쌀에는 '증 봉선사' 대신 기부자 개개인의 이름이 새겨졌다. 입장료도 주차 요금도 받지 않고 무료 점심 공양까지 시행한다는 얘기에, 문득 큰 절의 '살림살이'가 팍팍하지 않겠느냐 물었더니 스님은 "마음으로 나누면 마음으로 모아진다"는 답을 내놓았다. 나눔에 대한 '복(福)'은 나눔을 실천한 사람의 몫이고, 누군가 그 복을 가로채지 않는다는 게 일반화 돼야 기부와 나눔이 선순환된다는 논리였다. 여기에 '평등공양 차등보시'란 말을 보탰다. 밥은 공평하게 나눠먹고, 베푸는 것은 능력에 따라 차등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자기의 나눔이 투명하게 쓰인다는 믿음이 있으면 나눔은 샘솟듯 계속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초격스님은 현등사 주지이던 지난 2006년 삼성문화재단이 소유하고 있던 '현등사 사리구'에 대한 반환운동 과정에서 조계종 실행위원장을 맡았다. 조계종이 법원에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패소한 터였지만 스님은 '낮에는 협박, 밤에는 읍소'를 이어가며 결국 삼성의 대승적 결단을 이끌어냈다. 사리를 '문화재'로 본 삼성과 '성보'라 믿은 스님과의 줄다리기는 힘겨운 노력끝에 삼성이 사리를 영구기증하는 형식으로 매듭지어졌다.스님에게 휴대전화를 걸면 익숙한 대중가요 '그대 사랑하는 나는 행복한 사람, 잊혀질 때 잊혀진대도~' 노래가 흘러 나온다. "스님이 남들이 갖는 것을 갖지 못하고, 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결코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고관대작이라고 한들 집을 몇 십 채 씩 갖고 있겠어요. 하지만 스님들은 전국 명산 곳곳의 절이 다 내 집이고, 나물 반찬 한 개만 있어도 진수성찬이니 진정한 자유인이고, 모든 걸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그런 이유에서 일까. 스님은 봉선사를 '가고 싶은 곳', '가면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절'로 만드는데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한다. 봉선사가 남양주 노인복지관을 포함해 어린이집, 청소년쉼터, 가정폭력을 겪는 아이들을 위한 보호소 등을 운영하는 것도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스님의 소망과 무관치 않다. 절에 기도를 하러 간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불주사' 맞은 통증도 잊을 만큼 한달음에 산을 올랐다가 불심에 이끌려 아예 절집 생활을 시작한 초등학교 5학년 어린 아이. 이제 경기북부의 대표 사찰 주지가 된 초격 스님은 절의 문턱을 낮추고 국민들과 종교가 함께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을 불가에서의 또다른 소명으로 여기는 듯 했다. 글/강보한기자 kbh@kyeongin.com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초격 스님은?▲ 1987년 운경스님 계사로 사미계▲ 1994년 중앙승가대학 졸업▲ 1998년 청하 스님 계사로 구족계▲ 1998~1999년 불교방송 '살며 생각하며' 생방송 진행▲ 2012년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수료▲ 2002년~현재 제 13~17대 중앙종회의원▲ 현등사 주지, 보광사 주지, 한국문화연수원장, 사단법인 해피월드 이사장, 아산 윤정사 회주, 불교신문 사장, 총무원장, 종책특보단장, 중앙종회 수석부의장 역임지난달 25일 경기북부의 대표 사찰 봉선사의 새 주지로 임명되면서 20대 청년시절 큰스님을 시봉했던 곳으로 30여년 만에 다시 돌아온 초격 스님은 취재진에게 봉선사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며 "신도든 비신도든 언제든 찾을 수 있도록 절의 문턱을 낮추는 데에 소명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지난달 25일 경기북부의 대표 사찰 봉선사의 새 주지로 임명되면서 20대 청년시절 큰스님을 시봉했던 곳으로 30여년 만에 다시 돌아온 초격 스님은 취재진에게 봉선사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며 "신도든 비신도든 언제든 찾을 수 있도록 절의 문턱을 낮추는 데에 소명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지난달 25일 경기북부의 대표 사찰 봉선사의 새 주지로 임명되면서 20대 청년시절 큰스님을 시봉했던 곳으로 30여년 만에 다시 돌아온 초격 스님은 취재진에게 봉선사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며 "신도든 비신도든 언제든 찾을 수 있도록 절의 문턱을 낮추는 데에 소명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지난달 25일 경기북부의 대표 사찰 봉선사의 새 주지로 임명되면서 20대 청년시절 큰스님을 시봉했던 곳으로 30여년 만에 다시 돌아온 초격 스님은 취재진에게 봉선사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며 "신도든 비신도든 언제든 찾을 수 있도록 절의 문턱을 낮추는 데에 소명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지난달 25일 경기북부의 대표 사찰 봉선사의 새 주지로 임명되면서 20대 청년시절 큰스님을 시봉했던 곳으로 30여년 만에 다시 돌아온 초격 스님은 취재진에게 봉선사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며 "신도든 비신도든 언제든 찾을 수 있도록 절의 문턱을 낮추는 데에 소명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지난달 25일 경기북부의 대표 사찰 봉선사의 새 주지로 임명되면서 20대 청년시절 큰스님을 시봉했던 곳으로 30여년 만에 다시 돌아온 초격 스님은 취재진에게 봉선사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며 "신도든 비신도든 언제든 찾을 수 있도록 절의 문턱을 낮추는 데에 소명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2019-11-05 강보한

[인터뷰… 공감]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대 이사장 지선 스님

#한국 민주사 100년 소회는'영원히 지향해야 할 이상' 섣부른 자부심 경계과거엔 이데올로기 미래엔 종교가 '방해 요소'#진보 서초동-보수 광화문 '대립 상황'헤게모니 쟁탈전 불과 둘다 민주화에 도움안돼욕망 버려야… 헌신하지 않는 사회 장래 어두워#교단 반대 무릅쓰고 헌신수행 목적은 나만 깨닫는 것이 아닌 세속 구제가르침은 '현실적인 모순' 극복하기 위해 필요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지선 스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100년사를 아우르는'민주·인권·평화 박람회'를 29일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개최했다. 한 달 동안 열리는 이번 박람회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전시, 포럼 등을 통해 대한민국 민주주의 100년사를 조망한다.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지난 26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6대 이사장 지선스님이 방장으로 있는 백양사를 찾았다.단풍을 기다려온 상추객들이 벌써부터 산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미소를 머금고 여유롭게 거니는 사람들의 표정을 눈에 담고, 지선 스님에게 한국 민주사 100년을 맞이하는 감회를 들었다.지선 스님은 1980~9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대표적인 종교계 인사다. 1987년 6·10 민주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 공동대표를 맡은 그는 성공회 서울대성당 종탑에 올라 민주화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렸다. 같은 해 구속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초를 당했다. 30여년이 지난 지난해 비민주, 비인권의 상징물인 대공분실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변모했다. 2022년 정식 개관을 목표로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콘텐츠 개발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지선스님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이사장이 돼 이런 변화를 지켜봤다. # "민주화 운동은 인류가 영원히 지향해야 할 이상입니다."100년의 민주주의 역사를 아우르는 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때, 지선 스님은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섣부른 자부심을 경계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건 사·오십 년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란 말은 대한제국이 생길 때부터 나왔고, 북한의 나라 이름에도 민주주의란 말이 들어간다. 수백 년 전에 민주주의가 시작됐다는 서구사회에서도 비민주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민주화 운동은 인류가 영원히 지향해야 할 이상임을 강조했다. 모든 사람이 역사와 사회의식에 각성해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한편, 민주화를 방해하는 것들에 끊임없이 반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존재로서 자유와 인권을 누리고 살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그는 말했다. 민주화를 방해하는 요소로는 이데올로기와 종교를 지목했다. 지선스님은 "과거에는 이데올로기가 민주화의 걸림돌이 됐다.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양극화해 민주주의를 묵살했다. 지금은 다극화를 거쳐서 다시 양극화로 가려는 것이 미국이나 중국의 생각이라고 본다. 그들은 양극화의 주의주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또 미래에 이보다 더 문제가 될 것은 종교다. 미래에는 종교가 더욱 끈질기게 민주화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광화문 집회에서 헌금을 모금하는 사례가 있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들은 과거 파시스트 정권 때는 거리로 나오지 않았다. 만약 지금 부당한 계엄령이 발포된다면 그들이 광화문을 나올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민주화의 형식을 흉내 내며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시민사회의 민주화 운동과 정치권력과 종교세력은 계속해서 부딪힐 것"이라며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각성한 시민들의 지속적인 민주화 운동"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민주주의 국가가 아닙니다."지선스님은 민주화란 '남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고 지배하지 않고, 자유와 평등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민주화에는 진보도 보수도 없고 완성도 없다. 진보세력은 서초동에서, 보수세력은 광화문에서 대립하는 상황을 두고 지선스님은 "주의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한 어느 쪽도 민주화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보수와 진보의 공통점은 애국애민"이라며 "우리나라는 독립운동할 때까지는 보수가 있었지만, 이승만 이후로 보수가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이승만 집권 당시 상당수의 일본 잔재 세력이 살아남았다. 애국애민과 정반대의 행보였다"고 말했다. 또한 "진보 역시 자기 고집을 버리지 못해 민주주의와 멀어지고 있다. 그들은 결국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평했다.촛불혁명으로 정권을 교체한 경험을 통해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성숙했다고 평가하거나 혹은 '완성'을 거론하지만 지선스님은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고 싶다면 우선 나쁜 습관을 버리라고 조언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미루지 말고, 내가 더 갖고 싶은 욕망, 내가 더 잘 되고 싶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이들의 희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확장했는데, 그 수혜자들이 중산층이 되고 돈이 생기니 정치에 관심을 갖고 권력에 욕심을 부린다.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이다. 가진 자와 아는 자가 헌신하지 않는 사회는 장래가 어둡다. 한편으로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존논리가 강하니 각성이 힘들다. 그래서 민주화는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꾸준히 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모든 것은 현실과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지선스님이 민주화운동에 자신을 내던진 유신독재 시절, 천주교와 개신교가 반유신투쟁에 나설 때 불교는 침묵하고 있었다. 16살에 출가해 나와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고 자기 구제를 위한 수행에 정진하던 지선스님은 교단의 반대를 무릅쓰고 민주화 운동을 시작했다. 외롭고 고달픈 시간이었다. 함께하는 사람들 덕분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승려로서 그는 개인 수행과 중생구제가 동시에 가능할 수가 있는가, 개인 구원과 사회구원을 한 사람의 몸으로 이룰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해야 했다. 그는 "답을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한용운 스님이나 계시면 찾아가서 물어봤을 텐데, 아무도 없으니 외로웠다. 다행스럽게도 승가대와 동국대 젊은 스님들이 열심히 함께 해줘서 외로움을 이겨내고 답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구한 답은 자비에 있었다. 지선 스님은 "수행의 목적은 세속을 구제하는 데 있다. 나만 깨닫는 것이 수행의 목적이 아니다. 수행자는 결국 현실 참여를 해야 한다. 초월적인 논리나 가르침은 현실적인 모순, 업보와 정면으로 맞닥뜨려서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회피하는 것은 초월이 아니다. 모든 것은 현실과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 현실참여를 하지 않고 수행만 하면 종교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지선스님은 어느덧 민주화 100년의 역사를 헤아리고, 촛불 혁명을 이루어낸 우리 사회가 앞으로 '모든 것을 넘어선 아름다움'의 의미를 깨닫고 추구해 나가기를 희망했다. 그는 "달라진 사회 현실에 따라 민주화운동도 변화하며 계속돼야 한다"며 "올해를 기념하고자 한다면 비본질적인 것,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착각하고 나만을 위한 주장을 고집하는 행동을 멈추고, 모든 생명이 나와 똑같이 공존공생하며 아름답게 사는 것을 추구하는 시작점으로 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글/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지선 스님은?▲ 백양사 승가대학교 졸업(1970년)▲ 전남 영광 불갑사 주지(1972년)▲ 제주 관음사 주지(1976년)▲ 대학생 불교연합회 결성(1980년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6·10국민대회' 주도하다 구속(1987년)▲ 전남 장성 고불총림 백양사 주지(1994년)▲ (사)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제2대 이사장(2007~2010년)▲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2014년~)1980~9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대표적인 종교계 인사인 지선 스님은 "민주화 운동은 인류가 영원히 지향해야 할 이상"이라며 "민주화에는 진보도 보수도 없고 완성도 없다. 남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고 지배하지 않고, 자유와 평등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민주화다"라고 강조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2019-10-29 민정주

[인터뷰… 공감]옛 추억 상기시킨 '신포동 포크음악축제' 주역 인천 출신 디스크자키 김유철씨

일하다 건강 나빠져 요양 음악다방 매일 찾으니 DJ 제의받아 '유명세'1980년대 디스코텍에 밀리며 음반기획사行… 대박·손해 '우여곡절'인천 돌아와 '비틀즈' 운영 신청곡 들려주며 가슴 따뜻한 여행 이어가가을 저녁 인천 중구 신포동에 포크 음악 바람이 일었다. 1960~1980년대 젊은 세대에 큰 영향을 끼친 포크 음악을 주제로 한 '제1회 신포동 포크 음악축제'가 지난 12일과 13일 저녁 신포시장 인근 문화의 거리에서 펼쳐진 것이다. 인천 출신 가수 백영규씨가 기획과 연출을 맡은 이 축제는 거리를 가득 메워준 지역 주민과 음악팬들의 큰 호응 속에 막을 내렸다. 성공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1980년대 '음악다방'을 무대에 소환한 점이 성공의 요소 중 하나였다. '음악다방'이 관객들의 옛 추억을 상기시켰고, 그만큼 호응도 컸던 것이다.그 중심에는 1970~1980년대 인천을 주름잡던 디스크자키(DJ) 김유철(62)씨가 있었다. 축제의 오프닝을 맡은 김유철씨는 무대에 재현된 DJ 박스 속에서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멘트와 가수 소개로 관객들을 미소짓게 했다. 특히 옛 인기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도끼빗 DJ(준이 오빠)로 출연했던 인천 출신 배우 윤철형씨가 김씨의 후배 DJ로 출연해 무대 위 DJ 박스 안에서 나누는 대화는 옛 DJ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어 팝페라그룹 엘루체의 리더가 김씨를 찾아와 새로 나온 음반을 건네며 꼭 좀 소개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도 수십년 전 모습이었다. 이에 김씨는 축제 무대에서 엘루체가 부를 'Perhaps Love'를 멋들어지게 소개하면서 관객들을 음악의 세계로 안내했다.김씨에게 30여년 전 우리 대중 문화에 영향을 끼친 DJ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지난 21일 오후 김씨가 운영하는 인천문화예술회관 인근 뮤직카페 '비틀즈'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4년째 '비틀즈'를 운영하고 있는 김씨는 벽을 가득 메운 9천여장의 LP판들 앞에서 옛 DJ 방식으로 그날의 날씨를 언급하고, 곡 해설을 하면서 손님들의 신청곡을 들려주고 있다.그는 "아날로그 감성을 원하는 분들에겐 LP판으로, 깨끗한 음질을 원하는 분들에겐 컴퓨터 파일화 되어 있는 곡을 틀어주고 있다"면서 "멘트는 그날그날 옛 뮤지션들의 기념할 만한 일이 있었는지를 챙기고, 당일 날씨 등을 토대로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연평도에서 태어난 김씨는 인천기계공고에 입학하면서 뭍으로 올라와 생활했다. 고3 때 울산현대조선소로 취업 나갔다가 용접 때 발생한 가스를 많이 마신 관계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인천으로 돌아왔다."당시 회사에서 취업 중 장기요양으로 처리를 해준 덕분에 학교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선배들과 어울려 동인천의 음악다방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어요. 하루 종일 음악만 들었던 거죠. 그런 모습을 눈여겨본 석다방의 DJ 선배들이 제의를 해왔고, 그렇게 새끼DJ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하지만, 마이크는 잡아볼 수 없었고, 6개월 동안 LP판만 정리하고 음악실 청소만 했어요. 그러다가 차츰 마이크를 잡을 기회가 생겼는데, 그때의 감격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죠."이후 꽤 잘나가는 DJ가 된 그는 돈도 많이 벌었다. 유림다방, 석화다방, 2001음악다방, 혜성음악다방, 심지음악감상실, 대동분식 등은 그가 DJ로 활동했던 곳이다. "일했던 다방에 손님들이 몰리면서 단박에 유명세를 탔죠. 여성팬들의 열광적인 선물 공세가 이어졌고요. 노래 한 곡을 신청하기 위해, 정성껏 그리고 오려 붙인 신청엽서들이 날마다 쏟아졌죠. 유명 가수들조차 새 음반이 나오면 제일 먼저 전국의 유명 음악다방을 돌며 직접 곡을 선보이곤 했어요. 음악다방에서 먼저 입소문을 타야 방송순위진입이 가능했을 정도였죠. 당시에는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통로가 음악다방이 거의 유일했거든요. 물정 모르던 젊은 혈기에 기고만장하기도 했었죠."1983년 심지음악감상실을 직접 인수한 김씨는 에피소드 음악감상실로 간판을 바꿔달고 경영했는데, 1년 만에 후배에게 넘기고 말았다. 1980년대 들어서 디스코텍이 생겨나면서 음악다방은 하나둘 카페로 바뀌었다. DJ들도 디스코텍으로 자리를 옮기던 상황이었다. 김씨는 여의도에 있는 음반기획사로 자리를 옮겼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박식함은 음반제작자로 인정 받기에도 충분했다. 1985년 인천 출신 그룹 '솔개 트리오'의 앨범 제작을 시작으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지정곡인 윤항기의 '웰컴 투 코리아', 1987년 도시의 아이들의 '달빛 창가에서'를 제작했다."'달빛 창가에서'는 대박 났죠. 인천 출신 작곡가 김창남이 박일서 형과 함께 '도시의 아이들'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대박을 친 거죠. 덩달아 저 역시 잘 나갔어요. 하지만, 세상일은 한치 앞도 모르는 거더군요. 1989년 PD들이 유흥업소에서 접대 받은 게 기사화되면서 인기 기획사를 대상으로 수사에 들어갔고, 회사는 문을 닫아야 했죠. 1990년 솔개트리오를 재결성해 3집 앨범을 제작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어요."이후 김 사장은 영화에 지분 투자했다가 손해를 봤으며, 2000년이 지나고 인천으로 돌아와 학익동에 규모가 제법 큰 음악카페를 냈다가 다시 손해를 봤다. 2016년 3월 '비틀즈'를 열었다."이 공간은 음악 좋아하는 제가 혼자 운영할 수 있는 규모에요. 요리 부분은 아내가 도와주고 있고요. 단골들이 꽤 되기 때문에 좋은 음악과 함께 즐겁게 비틀즈를 운영하고 있죠.""세월이 많이 흘렀고 세상은 변했지만, 처음 나를 품어줬던 음악들은 지금도 그대로"라는 김씨의 바람은 음악에 재능이 있고, 즐기는 사람들의 무대를 만들어서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이 공간 한 편에 작은 무대가 있는데, 밴드가 공연하기에는 다소 좁아요. 밴드가 설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 이 곳보다 조금 더 큰 곳에서 가슴 따뜻한 음악여행을 이어갔으면 합니다."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DJ 김유철은?부모님이 한국전쟁으로 인해 황해도 연백에서 피란와 정착한 연평도에서 태어났으며, 인천기계공고에 입학해 뭍 생활을 시작했다. 고교 졸업한 1975년부터 본격적으로 DJ 생활을 시작, 당시 동인천 지역의 유림다방, 석화다방, 2001음악다방, 혜성음악다방, 심지음악감상실, 대동분식 등에서 DJ로 활동했다. 1984년 음반 제작자로 변신해 이듬해 '솔개 트리오'의 앨범제작을 시작으로 1986년 윤항기의 '웰컴 투 코리아', 1987년 도시의 아이들의 '달빛 창가에서' 앨범을 제작했다. 1998년 한국포크송연합회 상근 홍보이사를 2년 동안 했으며, 2016년부터 음악카페 비틀즈를 운영하고 있다.1970~1980년대 음악다방 최전성기 시절에 DJ로 활동했던 김유철씨는 LP판처럼 돌고 도는 인생 속에 인천으로 복귀해 음악카페 '비틀즈'를 운영하면서 DJ로 활동하고 있다. 외부 활동도 하고 있는데, 오는 26일 청라 호수공원 플라워 아일랜드 일대에서 열리는 '정서진 원 아일랜드 뮤직 피크닉'에서도 DJ로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만난다.

2019-10-22 김영준

[인터뷰… 공감]1970년대 한국 여성노동운동의 산실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최연봉씨

국내 최초 女지부장 선출된 곳… 입사후 근기법 배우며 노조 알게돼출퇴근 시간 지키기·식사시간 30분 확보등 근로조건 개선위해 투쟁사측 똥물 투척등 탄압에 맞서 알몸시위·단식농성 항의 124명 쫓겨나40년이 지났어도 '노조활동 방해 책임' 국가배상소송 여전히 싸움중인천 여성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활동해 온 인천여성노동자회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인천여성노동자회는 1970~80년대 활발하게 펼쳐졌던 인천 여성노동운동을 주춧돌 삼아 창립했다. 인천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를 다룰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사람들이 있다.바로 1970년대 동일방직 인천공장의 여성노동자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은 사측의 노조 무력화 시도와 기관의 탄압에 맞섰다. 이들이 있어 동일방직 인천공장은 1970년대 한국 여성노동운동의 산실이라고 불렸다.동일방직 해고노동자인 최연봉(64)씨가 인천여성노동자회 30주년을 맞아 지난 14일 열린 여성노동자 토크콘서트에서 1970년대 대표로 나와 당시 여성노동자들의 치열한 삶을 이야기했다. 14일 부평아트센터에서 최연봉씨를 만나 동일방직 해고노동자의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봤다.최연봉씨는 1970년대 동일방직 인천공장에서 일하며 사측의 노조 탄압에 맞서 싸우던 여성노동자 중 한 명이다. 당시 동일방직 노조에서 총무차장으로도 활동하며 여성노동자의 권익 증진을 위해 앞장섰다. 전북 김제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최연봉씨는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가정형편 등 문제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는 못했다. 배움에 대한 미련이 있었던 그는 일하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큰언니가 살고 있던 인천으로 올라왔다. 화수동의 솜공장에서 2년간 일하던 최연봉씨는 1975년 언니 지인의 소개로 동일방직에 입사했다. 당시 동일방직은 1972년 우리나라 최초로 노조 여성지부장이 선출된 이후 노조의 요구로 여성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 등이 이뤄지고 있었다. 최연봉씨는 입사 후 3개월이 지나 인천 도시산업선교회에서 근로기준법 공부를 하게 되면서 노조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고향 친구가 산업선교회에서 한문, 영어, 꽃꽂이 등 이것저것 가르쳐준다고 해서 바로 따라갔다"며 "입사하면 자동으로 노조에 가입된다는 것을 알고 나서 노조 사무실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최연봉씨는 노조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노동자가 누려야 하는 권리를 찾기 위해서였다.최연봉씨는 직포과에서 천을 짜는 일을 했는데, 그의 부서에는 식사시간이 거의 없었다. 조장이 5분 안에 밥을 먹고 오라고 하고 늦게 오면 눈치 주는 식이었다. 자신이 맡은 기계를 청소하기 위해 항상 1시간 일찍 출근해야 했고, 일이 끝나도 실이 끊어져 있으면 다시 이어놓고 나와야 했다. 그는 출퇴근 시간 지키기, 식사시간 30분 확보를 위해 투쟁했다. 노동조합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사측은 근로조건 개선의 목소리를 높이는 노조를 와해하기 시작했다. 1976년 이영숙 노조지부장이 경찰에 연행된 틈을 타 회사 측 방침에 따르는 대의원만 모여 대의원대회를 열고, 기숙사 문을 잠그는 등 여성노동자들의 출입을 막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 여성조합원들은 노동조합 사무실 앞 잔디에서 농성을 진행했고, 농성을 해산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에 저항하기 위해 '알몸시위'를 벌였다. 최연봉씨도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최연봉씨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방패를 들고 서 있는 경찰들이 다가올 때마다 들렸던 군화발 소리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면서도 "노조가 없어지면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간부들을 지키기 위해 버티고 있었는데 동료 중 누군가 '옷을 벗으면 경찰이 못 건드린다더라'고 했고 그 말을 들은 여성 노동자들은 수치심을 느낄 생각도 없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연봉씨도 옷을 벗으려던 순간 직포과 담임이 그를 현장에서 데리고 나갔다. 이를 뿌리치고 농성 현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나 있었다. 연행되지 않은 최연봉씨와 조합원들은 농성장에 남아있는 옷가지를 들고 동부경찰서로 곧장 달려가 동료들을 내보내라고 항의했다. 그 날 저녁 연행된 동료들이 풀려놨는데 서로 얼싸안고 울었다고 했다.'알몸시위' 이후 조직을 추스르고 있을 때 또 한 번의 사건이 일어났다. 새로운 노조 집행부가 구성된 후 대의원선거가 열린 1978년 2월 당시 선거관리위원이었던 최연봉씨는 선거 준비를 마치고 노조 사무실에서 조합원에게 투표용지를 나눠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투표가 시작되는 오전 6시가 다 될 무렵 남성노동자 3명이 고무장갑을 낀 손에 양동이를 들고 노조 사무실로 들어왔다. 남성노동자들은 양동이에 들어있는 무언가를 사무실 책상과 바닥 곳곳에 뿌리기 시작했다. 이물질이 머리와 옷에도 튀었다. 뒤늦게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를 맡고 나서야 이물질이 분뇨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기가 막혀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동일방직 노동조합 똥물투척사건'이었다.'동일방직 노동조합 똥물투척사건' 이후에도 사측의 탄압은 계속됐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상황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여성 조합원들은 그해 3월 10일 장충체육관에서 개최한 노동절 행사에서 항의 시위를 하기로 했다. 최연봉씨도 준비한 플래카드를 들고 동료들과 장충체육관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가려던 순간 한 남성이 그를 붙잡더니 "어디서 왔느냐"며 기다리라고 했다. 잘못하면 붙잡혀 있겠다는 생각에 그는 남성이 방심한 틈을 타 행사장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놀란 가슴은 진정될 틈 없이 두근두근 뛰었다. 행사가 시작하고 최연봉씨와 여성 조합원들은 플래카드를 꺼내고 "동일방직 문제 해결하라", "똥을 먹고 살 수 없다"고 외쳤다. 이 외침은 이후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들이 만든 희곡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에서도 재현돼 이를 지켜본 모두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장충체육관 항의시위 이후 명동성당에 들어가 단식 시위 등 농성을 진행하던 중 사측은 여성노동자 124명을 해고했다. 최연봉씨도 이 중 한 명이었다. 최연봉씨를 비롯한 해고노동자들은 산업선교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해고·복직 투쟁을 했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도 최연봉씨 등은 동일방직 노조 활동 방해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하는 등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최연봉씨를 비롯한 해고노동자가 떠난 자리에는 여전히 그들이 사용하던 기숙사 등 건축물이 남아있다. 동일방직 인천공장의 가동이 멈추면서 기숙사 건물 등은 현재 방치돼 있다. 최연봉씨는 동일방직 기숙사 등 건축물이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곳으로 활용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인간답게 살고 싶었고, 이를 위해서는 노조가 필요하니까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것이 노동운동이 됐다"며 "우리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공간이 노동사 도서관·박물관 등으로 재탄생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최연봉씨는 "해고를 당했어도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어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20대 초반 봄날에 해고돼 시간이 흘러 60이 넘은 나이에도 동일방직 해고자라고 이야기하는 상황이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며 "동일방직에 복직해 단 하루라도 일하고 떳떳하게 사표를 내고 떠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라고 했다.글/김태양기자 ksun@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최연봉씨는?▲ 1955년 전북 김제 출생▲ 1975년 동일방직 입사 (前 동일방직 노동조합 총무차장)▲ 1978년 동일방직 해고 (해고·복직투쟁 전개)▲ 1987년 인천노동자복지협의회 운영위원장▲ 1999년~2005년 녹색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장▲ 2010년 인천미추홀자원봉사센터 소장동일방직 해고노동자 최연봉씨가 "동일방직에 복직해 단 하루라도 일하고 떳떳하게 사표를 내고 떠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2019-10-15 김태양

[인터뷰… 공감]경기실내악축제 예술감독 맡은 첼리스트 송영훈

#제안을 승낙하게 된 배경은20대 중반부터 세계 각국 축제 많이 다녀직접 무대 꾸며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중점을 두고 준비한 것이 있다면낯선 장르인 만큼 쉬운 곡들로 프로 구성계속 접하다 보면 매력을 느낄 수 있을것#지역 축제 아쉬움도 느꼈다는데너무 쉽게 생겼다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최고의 연주로 오래도록 이어지게 할 것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하고,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인데 첼리스트 송영훈은 한 분야에서만 37년을 활동했다. 그가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음악이 주는 가르침과 새로운 매력 때문이다. 송영훈은 "첼로를 아무리 오래 했어도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연주를 선물하기 위해 지금도 학생의 자세로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시간을 거슬러 보면 그의 길다면 긴 음악 사랑은 이미 어린 나이부터 예고됐다.그는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서울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 무대를 통해 클래식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는데 당시 그는 어린 연주자임에도 불구 당찬 연주를 선보이며 국내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세계 최고의 줄리어드 예비학교를 거쳐 줄리아드 음대, 영국 왕립 노던 음악원, 시벨리우스 아카데미까지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으며 연주실력을 쌓아왔다.이런 음악 내공을 바탕으로 그는 세계 무대로 발을 넓혀 활약했다. 솔로이스트로서 잉글리쉬 체임버 오케스트라, 뉴욕 체임버 오케스트라,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 세계적인 연주자로 거듭났다. 또 클래식의 매력을 대중에게 전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라디오 DJ로 활동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 라디오 진행을 다시 맡아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첼로를 연습하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알아가고 있다. 첼로를 통해 보람, 뿌듯함, 곡에 대한 수 많은 감정을 알아간다. 음악과 예술은 끝이 없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무한한 매력이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다양한 음악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주자, 라디오 DJ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는 그가 이번에는 예술감독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올해부터 '경기실내악축제'의 연출을 맡고, 10월 한 달 동안 경기도 곳곳에서 실내악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송영훈은 "20대 중반부터 세계 각국의 실내악 축제를 많이 다녔다. 해외 곳곳에는 이런 축제가 많이 펼쳐지고 있다. 20년 동안 이런 축제들을 다니면서 한 가지 꿈이 생겼다. 언젠가 축제를 직접 기획하고, 실내악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초청해 무대를 꾸며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예술감독 제안이 들어왔을 때 기쁜 마음으로 승낙을 했다. 좋은 마음이 크지만 한 편으로는 책임감과 부담감도 가지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사실, 실내악 장르는 클래식 보다 더 낯선 장르다. 실내악은 솔로이스트 2명 이상인 소규모 팀이 공연을 펼치는 것을 말하는데, 서로 다른 색을 가진 연주자가 서로 양보하고, 맞추는 과정이 필요해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어려운 장르로 꼽힌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 실내악 공연을 접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런 어려운 장르를 끌고 가야 하는 만큼 부담도 크다. 그는 "이전 축제와 차별점을 두기보다 관객의 눈높이에 맞춘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려운 곡들이 아닌 관객들이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쉬운 곡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이어 "국내 관객에게 오케스트라 공연, 독주회 등은 익숙하지만, 실내악을 알고 즐기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국내에 실내악 공연이 많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장르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어려운 곡들로 구성하면 더욱 다가가기 어렵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어 관객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곡들을 준비했다"고 덧붙였다.아울러 "어려운 책은 시작은 힘들지만 넘기다 보면 읽게 된다. 이런 책들은 두고두고 보게 되고,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받게 된다. 실내악에도 그런 깊이와 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시작은 어렵겠지만, 접하다 보면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점을 알게 되면 다음 번에도 자연스럽게 축제를 찾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처음 예술감독을 맡은 만큼 어려움도 있었다. 우선 경기도 지역에서 발생한 아프리카 돼지열병 확산으로 발생 지역의 공연이 취소돼 장소가 변경되면서 한 차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또 악기만 연주 하던 때와 달리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모두 반영해야 하기에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고 했다. 송영훈은 "왜 이 커다란 축제의 감독을 맡고 싶었는지, 왜 실내악 공연을 좋아하는지 내 자신에게 되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결론은 함께할 수 있어 괜찮다는 것이었다. 실내악은 덜 외롭다는 장점이 있다. 모두 함께할 때, 같은 메시지를 주고받고 음악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마음을 되새겼더니 문제를 풀고, 해결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고 전했다. 다양한 해외 축제를 접해 온 그는 이번 축제를 준비하면서 지역 축제에 대한 아쉬운 점도 있었다고 말했다. 수십 년 진행되는 외국 축제와 달리 국내에서는 많은 축제가 꾸준히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제 막 시작하는 '경기실내악축제'가 오랫동안 지속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항상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무대를 선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이런 축제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지만 너무나 쉽게 생겼다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축제는 규모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많은 사람을 위해 진행되는 축제가 있어야 한다. 경기실내악축제는 이제 겨우 5회째를 맞는 축제다. 이 축제가 오래 이어지기 위해서는 흥행도 중요하지만 최고의 연주로 관객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영향을 받은 축제는 분명 다시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렇게 되면 축제는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30여년 오롯이 한 길만 걸어 왔기에 지칠 법도 한데 그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송영훈은 "9월부터 가을 시즌이 시작되면서 연주회 투어를 다니고 있다. 또 앞으로 남은 실내악 축제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라디오 진행도 다시 맡게 되면서 DJ로서 활동도 이어갈 예정이다. 축제가 끝나면 겨울부터는 음악제들을 준비할 계획이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고 감동을 주는 연주를 많은 관객에게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글/강효선기자 khs77@kyeongin.com연주자, 라디오 DJ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는 첼리스트 송영훈이 '경기실내악축제'의 연출을 맡아 예술감독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경기도문화의전당 제공

2019-10-08 강효선

[인터뷰… 공감]'중앙정치 핵심' 꼽히는 전해철 국회 예결위 간사

#2020년도 513조 '슈퍼예산' 어떻게일본 수출규제 대응·경제 활력 되살리기 '집중 투자'GTX-A·미군공여지 지원등 합리적 요구 반영 노력정부가 총 513조5천억원에 달하는 '슈퍼 예산'을 편성하고 국회의 심의를 받고 있다. 세계 경기 둔화와 일본 수출 규제 등으로 내년도 우리 경제에 그늘이 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확장적 재정운용에 나선 것이다. 경기도에서도 국비 확보에 사활을 걸고 각종 현안 사업이 국가 예산안에 포함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다.지난달 국회 예결위 간사를 맡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해철(안산 상록갑) 의원은 "광역 예산뿐 아니라 각 기초단위에서 꼭 필요한 사업들도 의견을 들어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친문의 핵심인사이자, 이해찬 대표의 특보단장을 맡아 중앙 정치에서 핵심 중의 핵심으로 꼽히면서도 신안산선 개통과 같은 지역 현안을 꼼꼼히 살피기로 유명한 전해철 의원에게서 내년도 정부의 구상과 경기도의 현안, 그리고 내년도 제21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2020년도를 미리 본다.■ 예산으로 본 2020년 대한민국전해철 의원은 최근 수차례의 고사 끝에 국회 예결위 간사직을 수락했다. 민주당은 이번 예결위가 총선을 앞두고 특히 중요한 시점인 만큼 당내 사정을 잘 알고 추진력이 강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전 의원에 대한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꼭 총선이 아니더라도 이번 예결위는 정부의 '슈퍼예산'을 다룬다는 점에서 예년보다도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본예산 대비 9.3% 증가한 513조5천억원 규모의 2020년 예산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예산안을 들여다보면 미래 먹거리가 될 신산업 육성 예산과 미래성장 동력 중심으로 국가 R&D 예산을 대폭 확대하는 등 '혁신성장 속도 내기'에 역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전 의원은 "일본의 수출 규제와 경제 보복 조치에 맞서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뒷받침하는데 올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2조1천억원을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며 "경제 활력을 되살리기 위한 지원도 대폭 확대했다. 무역금융과 투자 활성화 정책자금을 통해 기업에 힘을 보태고 제조업 등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예산도 대폭 늘렸다"고 설명했다.하지만 이와 관련해 국가채무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 의원은 "일각에서 재정 건전성 악화를 걱정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재정 건전성은 외국에 비해 양호한 상황"이라며 "정부의 체력이 강해진 만큼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실제 올해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38.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과 비교해보면 일본(214.6%)의 5분의 1 수준, 프랑스(110.0%)와 영국(108.6%), 미국(99.2%) 등 주요 선진국보다도 낮은 수준이라는 설명이다.한편, 정부 예산에 담길 경기도 현안 사업에 대해서도 밝혔다. 전 의원은 "24일 예정된 예산정책협의회에서 도의 핵심사업에 대해 논의하고 꼭 필요한 예산에 대해 협의할 것"이라며 "주요 사업 등에 대해서는 미리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경기도 현안 사업으로 지난 8월 착공에 들어간 '신안산선 토지보상비'와 '수도권 제2순환 고속도로 공사비',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노선',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 지역 지원' 등을 꼽았다.전 의원은 "각 지역의 다양한 요구를 모두 다 수용할 수는 없겠지만, 예결위 간사로서 합리적인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심의과정에서 최대한 반영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신안산선 개통'답보사업' 끈질긴 추진 국내 첫 BTO-rs방식 도입·착공주민과 약속지켜… 서남부권 교통·경제 파급효과 '기대'■ '신안산선 개통' 그리고 경기도전해철 의원은 중앙과 지역을 오가면서 어느 하나 소홀하게 다루지 않고 강한 추진력을 보이고 있다. 실제 주요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도 여러 지역의 현안을 두루 해결해온 그는 인터뷰에서 신안산선에 대해 유독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의 철학인 '신뢰의 정치'를 실현한 사례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 의원은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지난 2012년부터 지역의 최대 현안인 신안산선 착공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노선 외에 아무 것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2019년 착공을 주민들에게 약속했다.전 의원은 "신안산선은 2003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시작으로 무려 십수 년 이상 답보상태였다. 2010년 12월에야 Y자 구간으로 국토교통부 기본계획이 고시됐지만, 정부 내에서 조차 입장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며 "가장 먼저 예산안에 민자사업으로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하도록 부대 의견을 달았고, 그 결과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총 사업비 3조3천400억원에 달하는 신안산선이 쉽게 될 리는 없었다. 매 고비마다 전 의원은 주민들과 약속한 2019년 착공을 위해 뛰고 또 뛰었다.효용이 낮으면서도 높은 비용이 들어가는 여의도~서울역 구간을 생략하는 대신 안산에 호수·한양대역 등 2개 역을 신설하는 방안을 제안해 사업성을 끌어올렸고 예비타당성 조사에 안산시 사동 89·90블록 개발사업으로 발생할 교통수요를 미리 포함 시키면서 강하게 밀어붙였다.아울러 신안산선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BTO-rs 방식이 도입된 것도 전 의원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정부와 민간이 사업의 투자위험을 분담하는 BTO-rs는 민간 투자비의 일부에 대해 정부가 위험을 분담해 사업수익률과 이용요금을 낮출 수 있지만, 전례가 없어 전 의원이 직접 뛰며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고 수차례의 토론회 끝에 성사시킨 것이다.전 의원은 "신안산선이 개통되면 수도권 서남부지역 주민의 교통편의는 물론, 경기테크노파크, 갈대습지, 80-90블럭 개발, 반월·시화 국가산단, MTV 등과 연계한 교통인프라 개선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등 직간접적인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이어 "착공만은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한 단계 한 단계 마다 사업과 관계돼있다면 찾아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며 "착공에 들어간 만큼 앞으로 큰 고비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개통까지 남은 과정과 사업 진행이 차질 없도록 필요한 역할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을 역임한 전 의원은 누구보다 도가 안고 있는 숙제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만큼, 신안산선 추진과정에서 보여준 '신뢰의 정치'로 산적한 도의 현안을 챙기겠다고 약속했다.#21대 국회의원 선거이미 '투명한 공천' 규정·절차 확정 당내 분란 여지없어선거구제 개편 변수… 민생정책으로 국민선택 받을 것■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내년 4월 총선이라는 초대형 정치 이벤트가 열린다. 이미 지역 곳곳에서는 물 밑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전해철 의원은 친문 핵심이자, 이해찬 대표의 특보단장을 맡고 있어 내년 총선에서의 역할이 기대를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 상황은 특정 계파가 있는 상황이 아니고, 모두 정부 성공을 위해 함께하고 있다"며 "특보단장을 맡은 가장 큰 이유 역시 이해찬 당 대표 체제의 성공과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당이 화합하고 단일 대오로 나서야 한다는 의미에서 수락했다"고 설명했다.인터뷰에서 전 의원은 내년 총선 결과에 큰 기대를 내비쳤다. 그는 "총선 승리를 위해 제도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 시스템을 수립할 필요가 있는데 선거일 1년 전 관련 규정과 절차를 확정한 만큼 당내 분란이 생길 여지가 없다"며 "당연하지만 정당이 가야할 길이 '정책선거'인 만큼 민생 정책을 제시해 국민의 선택을 받겠다"고 말했다.다만 선거구제 개편을 최대 변수로 내다봤다. 전 의원은 "법사위에 넘겨진 선거법 개정안이 적용되면 앞으로 특정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며 "결국 당의 경쟁력을 키우고 국민들께 감동과 신뢰를 주면서 지지자들을 통합하는 과정이 총선 승리로 가는 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마지막으로 전 의원은 내년 3선 도전을 앞두고, "정당과 정책 중심의 책임정치,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문화 실현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전 의원은 "지난 2007년 참여정부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출마를 결심했을 때부터 노무현 정신과 참여정부의 철학인 정당정치, 의회정치가 뿌리 내리게 해서 대한민국을 잘되게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정당이 잘 서 갈등을 해소하고 정치가 효용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 이를 위해 어떠한 역할도 하겠다"고 강조했다.글/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전해철 의원은?▲ 2019년 8월~제20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간사)▲ 2019년 7월~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특보단장▲ 2016년 8월~2017년 6월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2016년 8월~2018년 1월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위원장▲ 2016년 5월~제20대 국회의원 (안산시상록구갑/더불어민주당)▲ 2012년 5월~2016년 5월 제19대 국회의원 (안산시상록구갑/민주통합당)▲ 2007년12월~2012년 5월 법무법인 해마루 대표변호사▲ 2006년 5월~2007년 12월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2020년도 '슈퍼예산'관련 국회 예결위 간사를 맡고 있는 전해철 의원은 "광역 예산뿐 아니라 각 기초단위에서 꼭 필요한 사업들도 의견을 들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전해철 의원실 제공

2019-10-01 김성주

[인터뷰… 공감]국내외 악재 속 '기업대변 발벗은' 추연옥 초대 경기중소기업회장

적자 회사를 1년만에 '흑자로' 덜 자고 덜 먹고 고생해 기업 힘든 점 잘 알아전국 4곳중 1곳 경기도에 둥지 '中企특화지역'불구 정부·지자체 관심 부족노란우산공제 지원 강원도의 20% 불과등 '상대적 박탈감 문제' 해결 절실이미 완성된 대기업 주어진 일만 하고 정년 불안… 청년들 중소기업 도전을"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지금의 어려움을 해소해야 합니다. '안돼', '못해'같은 부정적인 마음을 버리고 경기도 내 중소기업이 합심한다면 희망의 날은 꼭 올 겁니다."초대 경기중소기업회장으로 취임한 추연옥 회장은 미·중 무역전쟁, 일본의 수출규제 등 국내외적으로 산재해 있는 악재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내 중소기업들에 이같이 당부했다. 추 회장은 1981년 합성수지 제조사 영광산업을 인수한 이후 지난 10여 년간 지역상공회의소 운영위원, 중기협동조합 이사 등 지역 기반의 경영활동을 통해 2013년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인천경기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취임해 현재까지 경인지역 합성수지 관련 중소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중소기업중앙회는 2007년 도입해 운영해 온 지역 회장제를 지난 3월 지역중소기업회장제로 개편했다. 선출 과정이나 자격 등은 이전과 동일하지만 명칭을 변경함으로써 지역 중소기업계의 대표성을 강화하고 오피니언 리더로서 역할을 확대하기 위함이다.도내 중소기업 대표 역할을 맡고 있는 추 회장도 과거에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1972년부터 건설사 등에서 일하던 추 회장은 1981년 사우디아라비아로 해외파견을 나갔다 국내로 귀국한 이후 매형이 운영하던 영광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추 회장은 경찰로 근무하다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싶다는 마음에 영광산업을 차린 매형이 사업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설득 끝에 영광산업을 본인이 운영하기 시작했다.회사를 살릴 방안을 고민하던 추 회장은 해외 에서는 쇼핑팩 사용이 보편화 됐는데, 국내에는 쇼핑팩을 사용하는 곳이 없다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쇼핑팩 제작 기계를 1대 들여왔다. 또 돈 안 되는 사업은 과감히 포기했다.결국 만년 적자를 기록하던 영광산업은 추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맡은 지 1년여 만에 흑자를 기록하는 쾌거를 올렸다.추 회장은 "수익이 나지 않는 상태에서 회사를 인수해 제대로 된 회사를 만드는 데까지 크나 큰 노력이 필요했다"며 "당시 매출을 올리기 위해 영업도 뛰고 해서 하루에 3~4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하루에 2끼만 먹기도 했다"고 회상했다.힘겹게 중소기업을 운영해왔던 그였기에 지금 도내 중소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른 건실한 중소기업 대표 중에서 추 회장이 만장일치로 경기중소기업회장으로 선택된 것도 이 같은 이유다.추 회장은 현재 중소기업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의 가장 큰 이유를 사회적 인식으로 꼽았다.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고 모두가 대기업, 공무원을 선호하고 있는 현상이 대표적인 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만년 인력난을 겪고 이는 회사의 성장을 더디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추 회장의 설명이다.또 그는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인상도 중소기업의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제도가 중소기업의 부담을 더욱 키우고 결국에는 생산성 하락이라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협력사에 책임을 전가해 비용을 보전할 수 있지만 '을'의 위치에 있는 중소기업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그 부담을 떠안게 된다.추 회장은 "물론 대기업에 다니면 높은 연봉과 좋은 복지를 누릴 수 있지만, 정년도 불안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며 "반면 중소기업은 개인의 능력만 제대로 발휘하면 장기간 근속할 수 있고 회사 내에서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어 자유도 높은 편"이라고 주장했다.이어 "모든 중소기업 대표들이 직원의 급여를 올려주고 근무환경을 개선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직원보다 적은 월급을 가져가고 누구보다 어렵게 사는 대표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추 회장은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선 새로운 것을 추진하기보다는 현재 풀지 못한 숙제를 하루빨리 해결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현재 추 회장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안은 단순히 도내 중소기업 대부분이 겪고 있는 지역 차별이다.노란우산공제의 경우 올해 누적 가입자 155만5천366명(올해 7월 기준) 중 도내 가입자는 25.4% 수준인 39만5천66명에 달한다. 하지만 지급 예정 지원금액은 월 1만원으로 강원도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노란우산공제는 소기업과 소상공인이 매월 일정액을 적립해 폐업, 질병, 사망, 퇴임, 노령시 생활안정과 사업 재기를 도모할 수 있도록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퇴직금 마련 제도다.이 때문에 노란우산공제에 가입한 도내 기업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또 중소기업 업종의 입장을 대변하는 협동조합의 지원금도 지역 차별을 겪고 있다.도내에는 업종별로 중소기업 협동조합이 108개, 회원사가 7천900여개, 회원이 6만9천명이라고 한다. 협동조합은 소속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하나로 취합해 정부 또는 지자체에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또 도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공동마케팅, 상표개발 등에 사용하고 있는데 이 지원금액이 2017년 5억원에서 2018년 3억원으로 줄어들어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른 지역들이 지원금을 동결 또는 인상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추 회장은 "경기도는 전국 중소기업 4곳 중 1곳이 자리 잡고 있는 명실상부 중소기업 특화 지역이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실정"이라며 "현재 중소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끝으로 추 회장은 "우리 시대에는 뭔가를 꼭 스스로 이뤄내겠다는 각오와 신념 있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패기와 도전정신이 부족한 것 같다"며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것도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이미 완성된 업체에 취직해 특별할 것 없는 일을 하기보다는 내가 회사를 키워보겠다는 사명감으로 중소기업에서 일해보길 권한다"고 했다.이어 도내 중소기업 대표들에게는 "분명 현재는 과거에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어렵고 힘든 시기지만 우리는 항상 위기를 잘 극복해 왔다"며 "이번 또한 잘 헤쳐나가 향후 뒤돌아 보면 그런 시절도 있었지 하는 추억으로 삼게 될 것이며, 중소기업들이 더욱 발전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하는 계기로 삼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글/이준석기자 ljs@kyeongin.com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추연옥 회장은?▲ 1971년 재능고등학교 졸업▲ 1981년 영광산업 대표▲ 1997년 인천경기프라스틱협동조합 이사▲ 2001년 한국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 대의원▲ 2005년 주안부평국가산업공단협의회 운영위원▲ 2006년 인천상공회의소 남구경영자문협의회 운영위원▲ 2008년 재능고등학교 총동문회장▲ 2010년 남구 학산문화원 이사▲ 2019년 경기중소기업회장지난 4월 경기중소기업회장으로 취임한 추연옥 회장이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인력난등 도내 중소기업이 직면한 국내외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9-09-24 이준석

[인터뷰… 공감]첫 회부터 올해 19회까지 '인천바로알기종주단' 이끄는 이동열 단장

동료들과 청량산~마니산 도보여행 계기 2000년 청소년 종주 본격화초기 예산난에 비 오면 물바다 '열악' 한때 중단… 시민 관심에 재개참여자들 성인돼 찾아오면 '멘토'로 활용 학생과 소통 '선순환' 이어져"청소년들이 인천 곳곳을 걸으며 인천이 고향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지난달, 60여명의 인천지역 중·고등학생들이 6박 7일간 서해5도인 백령도와 대청도를 두 발로 누볐다. 무더운 여름 이들이 걸은 거리는 100㎞가 넘는다. 이들은 인천바로알기종주단 단원들이다. 이름 그대로 '인천을 바로 알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은 매년 여름 100㎞가 넘는 인천지역 곳곳을 걷는다. 올해로 19회를 맞았다. 지금까지 종주단을 거쳐간 학생만 약 2천명. 이동열(64) 인천바로알기종주단장은 1회 때부터 이들과 모든 여정을 함께 하며 종주단을 직접 이끌고 있다.■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의 시작이동열 단장이 처음 종주단을 시작한 건 1999년이다. 21세기의 시작을 앞둔 이 단장은 2000년의 시작을 강화도 마니산 정상에서 맞고자 했다.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자는 마음에서였다. 이 단장은 차량이 아니라 도보를 택했다. 마니산을 목표로 14명의 동료들과 함께 연수구 청량산부터 걷기 시작했다. 청량산~남동구 만월산~부평구 원적산~계양구 계양산~강화대교를 거쳐 3박 4일의 종주 끝에 2000년 1월 1일 마니산 참성단에 올랐다. 이 여정이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의 시작이 됐다. 이동열 단장은 "처음부터 종주단을 만들 목적은 아니었지만, 계속 걸으면서 인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요즘 청소년들은 인천에 살더라도 주로 사는 지역에 대해서만 알게 되는데, 이들에게 인천의 여러 길을 보여주고 인천에 대해 알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이 단장은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청소년들을 모집해 인천 종주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100명이 넘는 참여 인원이 몰리는 등 관심이 뜨거웠다.하지만 종주단을 매년 이끄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부족한 예산으로 100여 명의 인원을 이끌기에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안전 등의 문제가 우려됐다. 종주는 2003년 한 차례 중단됐다. 이때 이동열 단장은 단원들로부터 '왜 올해는 종주를 하지 않느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를 듣고 시민들의 관심을 실감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이듬해부터 다시 종주를 시작했고, 종주는 지금까지 매년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까지 인천 종주가 진행되지 않은 해는 2003년이 유일하다. 2006년부터는 인천시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동열 단장은 "초기에는 예산이 넉넉지 않다 보니 맨바닥에 은박지만 깔고 자기도 하고, 비가 오면 물바다가 되기도 하는 등 안전에 대한 위험이 컸다"면서도 "처음부터 함께 했던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건 종주를 이어가는 것뿐이라는 생각에서 다시 종주를 시작했다"고 했다.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의 참가 대상은 중·고등학생이지만, 종주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성인이 된 뒤에도 종주에 참가하고 싶어 했다. 2009년, 이 단장은 이들을 참가자들의 '멘토'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경험을 활용하고 참가자들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이 멘토링 체제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동열 단장은 "초기에는 산악회 동료들과 함께 종주단을 이끌었는데, 아무래도 세대 차이가 있다 보니 학생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종주에 참여했던 학생들을 활용하니 '극기훈련'이 아닌 '여행'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참가자가 다시 멘토로 종주에 참여하는 선순환이 시작됐다"고 했다.내년은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이 20회를 맞는다. 종주 10회를 맞아 20여명의 대원들과 네팔 히말라야 랑탕 지역을 찾아 해발 약 5천800m의 '나야캉가봉'을 올랐던 것처럼 20회 역시 특별한 종주를 계획하고 있다. '걸어서 평양까지'라는 주제의 북한 종주다.통일 주역들 교류 '강화~개성~평양 여정' 변수 많지만 꾸준히 추진현지 환경 지키며 역내 소비 '공정여행' 가치 살린 섬 활성화도 필요■ '걸어서 평양까지' 20회 맞아 특별한 북한 종주 기획현재 인천시 평화도시조성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이동열 단장은 인천과 북한 남포, 평양을 잇는 특별한 종주를 구상하고 있다. 통일의 주역으로 나설 남·북 청년들이 상호 교류를 통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종주를 통해 지속적인 교류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남·북 관계의 상황이나 정부의 협조 등 변수가 많지만, 이동열 단장은 내년 여름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목표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단장은 "오래전부터 '걸어서 평양의 빵 공장까지 걸어가 보면 어떨까'라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었다"며 "북한에는 청년 단체가 많다고 하는데, 남·북 청년들이 고려의 역사가 숨 쉬는 강화에서 시작해 개성 왕건릉을 거쳐 평양의 단군릉까지 이어지는 육로를 함께 걷는 화합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이 단장은 구체적인 계획도 마련했다. 29세 미만의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약 50명 규모의 남·북 종주단을 구성하게 된다. 강화 고려궁지를 시작으로 개성공업지구, 개성 시내, 평양 등을 거쳐 인천으로 다시 돌아오는 게 그의 구상이다. 북한 남포와 평양을 잇는 '청년영웅도로'를 남·북 청년들이 함께 걷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모든 여정은 도보를 기본으로 하며, 출입국 사무소 등 필요 지역은 차량으로 이동한다.청년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계획했다. 북한 지역의 공원, 광장 등에서 우리나라의 풍물 문화나 K-POP 등 다양한 합동 문화 공연을 펼치는 방안을 기획하고 있다. 남·북 화합의 모습을 그리겠다는 취지다. 또 강화 고려궁지의 흙을 개성 왕건릉에 묻고, 강화 참성단의 흙을 평양 단군릉에 묻는 등 통일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퍼포먼스도 펼칠 계획이다. 약 13일간 총 222㎞의 인천, 북한 지역을 함께 걷게 된다. 이동열 단장은 "북한 종주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단원들이 남·북 화합에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종주를 계기로 향후에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평양 수학여행, 백두산 답사단 등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섬을 지키는 파수꾼이동열 단장은 인천 섬에 대한 관심도 크다. 현재 인천 섬 연구 단체인 (사)황해섬네트워크의 이사장 겸 공동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이와 함께 인천시 도서발전자문위원회 위원직도 맡고 있다.이 단장은 '공정여행'의 가치를 살려 인천 섬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여행은 현지의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현지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여행 개념이다. 승선비 외의 소비는 모두 섬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 섬 활성화를 위해 각 섬의 시장과 경매장 문화를 다시 살리고, 사라져 가는 나루터, 포구에 대한 연구 작업을 진행하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이동열 단장은 "20년 동안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을 큰 탈 없이 이끌 수 있게 도와준 여러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학생들에게 인천을 바로 알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이어 "섬 원주민과 여행객이 서로 소통, 존중하며 지속 가능한 섬 발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데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글/공승배기자 ksb@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이동열 단장은?▲ 1955년 경기 시흥 출생▲ 인천고등학교, 인하대학교 항공공학과 졸업▲ 인천바로알기종주단 대표▲ (사)황해섬네트워크 이사장 겸 공동대표▲ 인천시 평화도시조성위원▲ 인천시 도서발전자문위원▲ (전) 인천 승마협회 이사▲ (전) 한국산악회 인천지부 부회장▲ (전) 인천시 배드민턴협회 감사▲ (전) 대한산악연맹 인천지부 부회장인천지역 학생들이 인천 곳곳을 누비는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이 내년 20회를 맞는다. 이동열(64) 단장은 1회부터 지금까지 종주단을 이끌고 있다. 이동열 단장이 올해 종주를 진행한 서해5도 코스를 가리키고 있다.

2019-09-17 공승배

[인터뷰… 공감]수원 '화성연구회' 김충영 이사장

신분·성별 구분 통념깨고 궁중·민간연희 함께 진행 '이례적'정리의궤등 기록 철저 고증… 올해 재현행사 완성도 높여예산탓에 '실제 장소' 낙남헌 아닌 화서문서 공연 '아쉬움'"낙성연이 가진 무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원형 보존이 필요합니다"올해로 축조 223주년을 맞은 수원화성을 연구하기 위한 자발적 시민모임인 '화성연구회'김충영 이사장은 낙성연에 대해 "수원화성 준공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잔치"라고 설명했다. 1796년(정조 20) 10월 16일 화성행궁 낙남헌에서는 수원화성 준공을 축하하기 위해 잔치가 열렸다.'낙성연'이다. 시연은 지난 2010년 처음으로 이뤄졌다. 정조대왕 탄신 258주기를 기념한 그해 11월 수원 화성행궁 내 낙남헌에서 시민과 외국인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화성 축성 기념 낙성연(落成宴)'이 최초로 선보였다.낙성연은 정조대왕이 1796년 10월16일 당시 국왕을 중심으로 신분과 성별이 구분되는 잔치가 일반적이었던 사회적 통념을 깨고, 백성 모두가 함께 어울리도록 지시해 개최된 최초의 시민축제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시연된 낙성연은 구체적인 문헌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화성성역의궤'에 '낙성연도'라는 그림과 전문가들의 고증을 토대로 최대한 당시 상황과 가깝게 재현됐다.올해 열리는 제56회 수원화성문화제(10월3일부터 6일까지) 전야제 행사로 10월 2일에 화서문 일원에서 재현되는 낙성연은 지난 2016년 7월 한글본 정리의궤 권 39 성역도(화성성역의궤)가 발견되면서 철저한 고증을 통해 완성도를 높였다.낙성연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화성연구회 김 이사장은 "낙성연은 정조대왕이 특별 지시해 마련한 잔치로 완성도가 더욱 높아졌다"며 "정조대왕이 특별 지시해 궁중행사로는 이례적으로 축성에 참여한 감독관과 기술자 및 일용노동자와 일반 백성에 이르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낙성잔치를 즐겼다는데 의미가 있고 그 행사를 보게될 것"이라고 말했다.특히 그는 " 화성행궁 보계 위에서는 축성에 참여한 관료들과 경기도 내 수령들을 위한 궁중연희가 펼쳐졌고, 보계 아래에서는 축성 기술자 및 민간인들을 위한 민간연희가 열렸는데 채붕을 이용한 산대놀이가 연행되었다"고 부연 설명했다.실제 낙성연을 주관하는 화성연구회에서는 화성성역의궤, 채색본 낙성연도, 한글본 정리의궤 기록을 철저히 비교 분석해 고증·재현해 냈다.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있다. 과거 이뤄졌던 낙성연을 원형 그대도 재현하기 위해서는 화성행궁 내 '낙남헌'에서 행사가 진행돼야 하지만, 예산 문제로 올해는 화서문에서 열린다. 김 이사장은 "낙성연은 무형문화재로서도 손색없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낙성연이 가진 정체성을 고민해야 한다"며 "이 정도 수준으로 낙성연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가장 기초적인 장소 선정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 이사장은 '트렌드'라는 단어로 낙성연이 가진 여느 축제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낙성연은 하나의 공간에서 궁중연희와 민간연희 공연을 함께 선보이고 있어 상하동락(上下同樂)의 애민정신을 구현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며 "민주주의·인권 등 가치가 중요시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낙성연은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글/김영래·배재흥기자 yrk@kyeongin.com#수원화성 '낙성연' 관련자료■ 화성성역의궤 '채붕을 설치했다(設綵棚)'는 내용과 흑백 낙성연도 그림 등이 있다.보계 위는 포구락, 쌍무고, 연화대무 등 궁중정재 연행을, 보계 아래는 채붕을 이용한 민간연희 연행(사자춤, 호랑이춤, 만석승무, 취발이춤)등이 실렸다.■ 한글본 정리의궤 권39 성역도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본(2016년 7월 발견)으로 한글본 정리의궤 총 4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789년부터의 '현륭원 원행', '원행을묘정리의궤', '화성성역의궤'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한글 필사본으로 현재 13책이 존재한다. 한글본 정리의궤 권39 성역도의 채색본 1권(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본)이 있다.한신대학교 김준혁 교수가 발견한 채색본 낙성연도 그림을 바탕으로 2016년 9월 수원문화재단에서 '수원화성 낙성연' 공연이 재현됐다.■ 한글본 정리의궤 권48화성연구회 한정규 회원은 한글본 정리의궤 권39 성역도의 채색본 낙성연도 그림과 한글본 정리의궤 권48의 수원화성 낙성연 절차를 고증하고 '수원화성 낙성연'을 복원해 공연(2018년 10월 4일 제55회 수원화성문화제 전야행사)을 재현했다. /화성연구회 제공화성 축조 223주년을 맞아 10월 2일 수원 화서문에서 낙성연 재현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화성연구회 김충영 이사장이 실제 잔치가 열렸던 화성행궁 낙남헌에서 낙성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화성연구회' 김충영 이사장과 회원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낙성연의 민간연희 장면. /화성연구회 제공화성연구회 주관·수원문화재단과 경인일보 후원으로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린 제54회 수원 화성문화제 전야제 '낙성연' 공연. /경인일보DB'화성성역의궤'. /수원시 제공

2019-09-10 김영래·배재흥

[인터뷰… 공감]인천 노동자자주관리기업 키친아트 전신, 치열했던 투쟁의 역사 '경동산업' 노동자들

열악한 근로조건 '악명' 사측 구사대로 노동자 습격구속된 동료 돕는다 '해고' 농성·분신으로 이어져고통스런 기억 안 떠나… 30년간 거르지 않고 추모부도후 재탄생 '키친아트' 개인 아닌 모두의 것돼야1980년대는 한국 현대사에서 굵직굵직한 일이 많았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열렸고, 전국을 휩쓴 민주화운동 영향으로 헌법이 개정돼 대통령선거는 직선제로 바뀌었다. 경동산업 노동자들에게 이 시기는 아픔으로 다가온다. 1985년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투쟁이 있었고, 1987년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동쟁의가 있었다. 이때 수십 명이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다. 30년 전 오늘인 1989년 9월4일엔 회사 측의 부당한 징계 방침에 항의하며 노동자들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이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故 강현중·김종하 열사다.경동산업은 1960년 서울 구로구에 설립된 국내 최초 양식기 제조기업이다. 냄비와 프라이팬 등 주방용품을 생산했다. 1983년 인천 서구 가좌동에 제2공장을 설립했다. 1980년대 경동산업은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직원들이 과로로 쓰러져 숨지기도 하고, 분신으로 목숨을 잃는 사고까지 있었다. 30년이 지났지만, 당시 경동산업 노동자들은 당시 목숨을 잃은 열사를 추모하고 있다. 최근 경동산업의 후신인 인천 서구 가좌동 (주)키친아트 정문에서는 3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 앞서 1980년대 '경동산업 투쟁'의 치열한 현장에 있었던 노동자들을 만났다. 강현중·김종하 열사의 동지들이다.김학철(62)씨는 1987년 해고를 당했다. 당시 경동산업은 저임금과 추가 근로 등으로 악명이 높았다. 자녀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공장에 나온 여성 근로자들이 과로로 쓰러지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임금인상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김학철씨는 이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4월21일 해고됐다. 이후 김학철씨는 출근 투쟁을 벌이며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을 독려했다. 경동산업 노동자들은 노동쟁의 중인 다른 사업장과 연대하기도 했다. 8월에는 파업을 진행했다. 보름간 이어진 파업 투쟁에서 경동산업 노동자들은 냄비를 두드리며 농성을 진행했다. 당시 인천 주안5·6공단 일대가 경동산업 노동자들의 냄비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고 한다. 임금 인상을 얻어내는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사측과 갈등이 다시 불거졌다. 노조가 폭력을 행사한 관리자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는데, 사측이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회사 측은 구사대(노동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사측에서 고용한 사람)를 이용해 노동자들을 구타했다. '머리에 노란띠를 두르지 않으면 불순세력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퍼졌고, 노란띠를 두른 200여 명의 구사대가 당시 노동자 사무실을 습격했다. 이때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이들 중 다수가 구속됐다. 이를 '노란띠 사건'이라 불렀다. 김학철씨는 해고자 신분이었기 때문에 구속은 피했다.김학철씨는 "노란띠 사건으로 구속된 노동자들을 뒷바라지했다"며 "해직자였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계속 이러한 활동을 했고 89년에 있었던 투쟁에서는 출근길 교통정리와 청소를 담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87년에 노란띠 사건이 발생하지 않고 제대로 된 민주노조가 세워졌다면, 89년의 비극은 없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그동안 김학철씨는 노동 열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했다. '민족민주열사 추모단체 연대회의', '국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그는 "현재는 몸이 안 좋아 이전과 같은 활동을 하기 힘들어졌다"며 "2012년부터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에는 그동안의 경험과 아픔 등이 배어 있다"고 했다.안중준(56)씨는 1989년 9월4일 강현중·김종하 열사가 분신했을 때 함께 있었다. 강현중 열사가 회장으로 있던 사내 모임 '디딤돌'의 총무로 활동했다. 디딤돌은 일일주점을 열고 풍물패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당시 회사 측은 디딤돌 간부인 강현중 열사와 안중준씨 등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추후 밝혀진 해고 이유는 디딤돌이 '해고자와 어울린다', '불법 티켓을 팔았다' 등이었다. 디딤돌 회원 등은 회사 측의 부당한 징계에 항의하는 농성을 진행했고, 결국 분신으로 이어졌다. 4명이 화상을 입었고, 1명이 할복했다. 회사 측 강의신 노무이사도 화상을 입어 목숨을 잃었다. 분신으로 인해 안중준씨도 전신에 큰 화상을 입었다.이때 사고는 당시 언론에도 크게 보도되는 등 주목을 받았다. 경인일보는 1989년 9월5일자 신문에서 '농성근로자 5명 분신소동'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으며, 같은 날 '친목회 조직 징계가 도화선'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사건 배경 등을 알렸다.안중준씨는 "당시 사고를 막기 위해 화기 같은 것을 수거했지만, 안타까운 사고가 났다"며 "조금만 더 치밀했으면 이길 수 있는 싸움이었다. 우리 동지들의 희생도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안중준씨는 사고 이후 자살 방조 등의 혐의로 3년간 복역했다. 그는 "동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통스럽게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3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추모 사업을 개최하는 동지들에게 감사하다"며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다.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편안한 삶을 살 수 없었다"고 했다.경동산업 노동자들은 1989년 사고 이후 매년 묘소를 참배하며 열사들을 추모했다. 올해는 30주기를 맞아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하는 행사를 진행했다.이종화(56)씨는 경동산업 후신인 키친아트에서 일하고 있다. 이종화씨도 1989년 9월4일 분신 현장에 있었고,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그도 '디딤돌'에서 활동했다. 그는 자살 방조 등의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았다.2명이 목숨을 잃은 '9·4 투쟁'에서 4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종화씨 등은 1994년 '경동산업 해고노동자 복직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농성을 진행했다. 4개월에 걸친 농성 끝에 복직이 이뤄졌다.하지만 경동산업은 점차 사세가 기울면서 2000년 부도를 맞았고, 2001년 키친아트로 재탄생했다. 키친아트는 '공동소유, 공동책임, 공동분배'를 사훈으로 내건 노동자자주관리기업이다.이종화씨는 "해고와 복직을 반복했지만, 이 기간을 모두 합하면 30여 년을 경동산업과 키친아트에서 일했다"며 "사훈처럼 공동소유, 공동책임, 공동분배가 이뤄지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회사는 어느 한 개인이 아니라 직원 등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1980년대 경동산업에서 투쟁했던 이들이 (주)키친아트에 설치된 '경동산업 노동자 추모비' 앞에서 故 강현중·김종하 열사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영식, 안중준, 이종화, 김학철씨.

2019-09-03 정운

[인터뷰… 공감]취임 1년 '새로운 해법' 제시 나선 문진영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

'기술·보상·정보 미스매치'가 문제의 본질… 교육·청년사업등으로 풀어이론·실천 통합 '연구기능 강화' 효율성 향상·정책 사각지대 해소 '기대'유관기관 4곳 통합·출범 '노하우 발전·시너지 효과' 더 나은 서비스 제공정부와 자치단체의 부단한 노력에도 일자리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있다. 청년 일자리 문제에서부터 경력단절여성 등의 재취업 문제, 최근에는 베이비부머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부각되기 시작한 '4060 신중년 문제'까지 되레 다양한 형태로 일자리 문제가 분화하는 양상이다. 날로 그 심각성을 더해가는 듯한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최전선에 나선 경기도일자리재단 문진영 대표이사가 취임 1년을 맞았다. 도일자리재단 역시 3년 차로 아직 출범 초기 단계지만, 학자 출신인 문진영 대표는 숱한 연구를 통해 도출한 비전과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조직 안정화에서부터 여러 모습을 하고 있는 일자리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문진영 대표는 '일자리가 단순히 생활의 방도가 아니라 사회와 소통하는 창구이자, 자신의 발전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철학을 갖고, 일자리 문제 해결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나섰다.# 일자리문제, 이제는 다른 해법을 제시할 때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나섰고, 경기도 역시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일자리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문진영 대표는 "일자리 문제는 정책적 의지나 방법을 통해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사회 복지 문제의 경우에는 행정력을 동원하면 비교적 결과가 직선적으로 나오지만, 일자리 부분은 그렇지 못하다"고 설명했다.그는 "우리 사회의 경제 체질이 전반적으로 강화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게 일자리인데, 경제구조 자체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책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한계를 마주한 것"이라고 진단했다.문진영 대표는 일자리 문제의 본질은 3가지 미스매치가 주요한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재단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선 '기술(숙련)의 미스매치'는 기술학교나 새일센터 등을 통해 해결하고, '보상의 미스매치'는 일하는 청년사업과 같은 보상을 늘려주는 방식이다. 또 '정보의 미스매치'는 일자리 포털 '잡아바'를 고도화해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문진영 대표는 "경기도가 운영하던 일자리 유관기관 4곳이 하나로 뭉쳐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며 "재단 출범 이전부터 이어온 재단의 자산을 꾸준히 이어간다면 일자리 문제 해결의 모델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진영 호의 일자리 해법, '공익적 일자리'노동시장정책 전문가인 문진영 대표가 제시하는 일자리 문제 해결 방안 중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은 '공익적 일자리'다. 소득 양극화와 저성장에 따른 고용불안, 지역적·사회적 격차가 확대되는 등 구조적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공익적 일자리를 만들어 '사회적 부문 강화'와 '일자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이다. 올해 초 신설된 '공익적 일자리팀'이 그 동력을 맡고 있다. 문진영 대표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굉장히 필요하지만, 수익성이 따라오지 못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회적 일자리를 통해 일자리 문제의 해법을 찾고 있다"며 "공익적 일자리팀을 통해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보상이 가능한 사회적 일자리 직업군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과제에 도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이미 영국이나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튼튼한 지역사회의 역량을 활용해 공익에 도움을 주면서도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문진영 대표는 "선진국의 경우 공익적 일자리의 역사가 깊어 배워야 할 점이 많다"며 "우리나라도 지금은 초기 단계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어느 정도 안정화되고 있어 재단이 앞장서 일자리 문제 해결의 지향점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이를 위해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를 가꾸는 일까지 활동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사회적 경제 성장지원을 통한 일자리창출 사업'은 사회적 경제 기업을 단순히 일자리 창출의 동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경영과 재정 측면까지 아우르는 패키지 형태로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0년 이상의 경력과 전문 자격을 갖춘 신중년층 컨선턴트가 참여해 중장년 계층의 사회공헌형 일자리 창출에 나서고 있다. 이밖에 온라인 판촉마케팅 지원과 노동자 작업환경 개선 등을 통해 건강한 일자리 환경을 가꾸고 있다.# 일자리 문제 해결의 나침반, '연구기능 강화'일자리 사업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진단은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또 '일자리 창출'이라는 거대한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 일자리 문제 해결을 재촉하면서 퇴고(推敲)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을 찾기 보다는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따라가기 급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문진영 대표는 취임 당시부터 연구 기능 강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도일자리재단은 일자리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지만, 이론과 실천이 통합되는 연구기능을 강화해 효율적인 길을 열어가겠다는 각오인 것이다.문진영 대표는 "연구기능 강화에 앞서 숙려 과정을 밟고 있다"며 "최근의 인사에서도 사업부서와 연구부서 간 인적 교류를 염두에 뒀다"고 설명했다.사업부서와 연구부서 간 역할이 분담돼있어 각자가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데, 순환 배치를 통해 각자의 주된 영역을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또 연구팀을 연구본부로 확대하는 방안이 대표 개인의 목표가 아닌 조직의 체력이자, 조직 구성원의 비전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끊임없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문진영 대표는 "정책연구팀을 정책연구센터로 승격시켜 연구기능을 강화한다면 세부적인 일자리 현황을 정확하게 볼 수 있고 혹시 놓치고 있는 사각지대 일자리 사업을 추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책 전달체계를 비롯한 다양한 일자리 문제 해결 방안이 나올 것이라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했다.# 출범 3년, 새로운 일자리 문제 해결 DNA 이식경기도일자리재단은 경기도가 운영하는 일자리 관련 유관기관이 결합하면서 출범했다. 재단 출범 초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일하는 청년 시리즈'는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이라는 하나의 DNA를, 여성능력개발센터부터 이어온 경력단절 여성 재취업 등 여성일자리 문제 해결의 DNA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문진영 대표가 새로 이식한 재단의 DNA는 '4060 신중년' 일자리 문제 해결 능력이다.문진영 대표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를 하기 시작하면서 신중년 일자리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며 "청년들은 사회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동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신중년의 경우 각자 걸어온 삶이 다르기 때문에 더 다양한 방식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금전적인 동기보다는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 신중년이 있고, 전혀 다른 일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신중년, 당장의 취업이 급한 신중년 등 특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10이면 10가지의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문진영 대표는 "재단이 갖고 있는 소중한 DNA가 많이 있다. 그간의 자산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신중년 일자리 문제 해결의 모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마지막으로 문진영 대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리가 일자리라고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재단의 존재 이유"라며 "아직 연구센터 신설과 잡아바 앱 서비스 고도화 등 과제는 남아있지만, 재단이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 고용의 미스매치를 줄이고 도민들에게 더 나은 일자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글/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문진영 대표이사는?▲ 1962년생▲ 1985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 ▲ 1988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졸업▲ 1989~1994 영국 헐 대학교(University of Hull) 사회정책학 박사■주요 경력▲ 1998~ 서강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6~2007 대통령 자문 양극화민생대책위원회 위원 ▲ 2013~2014 사회복지정책학회 회장 ▲ 2018~ 제2대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문진영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가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재단의 존재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경기도일자리재단 제공

2019-08-27 김성주

[인터뷰… 공감]인니 국립박물관서 '한국의 DMZ 평화생명의 땅'展 가진 인천 출신 최병관 사진가

#'케이-포토' 신조어 만든 화제의 전시회하루 1천명 방문 현지 예술감성 남달라 눈물도사람 감동시키는 '만국 공통 시각언어' 재확인 인도네시아(수도·자카르타)는 세계 4위의 인구와 방대한 영토를 보유했다. 약 430년 동안 네덜란드의 식민지를 거쳐 1945년 독립을 이루었다. 아세안(ASEAN)의 수장국인 인도네시아는 일본의 최대 규모 차관 공여국이기도 하다. 일본은 인도네시아 투자에 적극적이며,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발생 이후 자동차, 부품 산업을 중심으로 대인도네시아 투자 확대를 꾀하고 있다. 때문에, 인도네시아 도로는 일본 차들이 점령했으며, 공산품도 일본산이 많다. 그에 반해 우리 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은 더딘 상황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케이-팝(K-POP)' 등 문화로 인도네시아에 다가서고 있다.인천 출신 사진가이며, 'DMZ(비무장지대) 작가'로도 유명한 최병관(69)의 사진전 '한국의 DMZ 평화생명의 땅'이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20일까지 자카르타 중심부에 있는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서 개최됐다. 문화체육관광부, 해외홍보문화원, 인도네시아 교육문화부가 주최하고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대사관, 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이 주관한 전시회에는 작가의 대표작인 '평화의 꽃을 피워주세요'와 '자유의 다리', '노송의 침묵' 등 주제에 맞춰 엄선된 작품과 신작을 포함해 75점의 사진이 출품돼 관람객과 만났다.전시 기간 하루 평균 1천명의 관람객이 다녀갔으며, 현지 언론 매체 10여 곳에서 작가 인터뷰를 했다. 또한, 재인도네시아 미국문화원은 현지 대학생 300명을 초청해 작가와 토크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처럼 전시회는 인도네시아에 '케이-포토(PHOTO)'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등 다양한 화제를 뿌렸다.이번 전시회의 큰 성공은 오는 9월 9~13일 자카르타에 있는 '주 아세안 대한민국 대표부'의 초대전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아세안 10개국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전시회가 이어지는 것이다.수십 년째 매일 거르지 않는 출사(出寫)와 함께 주 아세안 대표부 전시 준비로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는 최병관 작가를 지난 19일 인천 소래포구 인근 작업실에서 만났다. 전시회가 막을 내린 지 한 달 정도 지났지만, 작가의 마음엔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받은 감상들이 잊히지 않는 듯했다."지금까지 해외와 국내 통틀어 45회에 달하는 개인전을 가졌지만, 이번처럼 큰 울림을 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관람객들은 작품 하나하나 열심히 봐 주셨어요.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예술 감성이 남다르다는 걸 느꼈죠. 현대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모습이랄까요. 국립박물관이다 보니 입장료가 있는데도 하루에 1천 명 정도가 입장해 그중 70% 정도는 사인을 받아 갔고, 60% 정도는 기념 촬영을 요구했어요. 하루에 5~6명 정도는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셨습니다. "그는 시각 언어로 정의되는 사진이 이번 전시회를 통해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고도 했다."전시회를 통해 '사진 예술은 세계 공통 시각 언어'라는 걸 느꼈습니다. 사람을 감동시키고 기쁨과 슬픔 등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게 사진임을 재차 확인한 거죠. 사진 한 컷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느낌을 전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글을 읽지 않는 요즘 세대의 모습과 교차하면서 사진의 힘과 역할을 다시 생각했습니다."최 작가의 집안은 15대째 인천 소래에서 살고 있다. 그는 어머니의 모습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고향을 남기기 위해 32세에 독학으로 공부 후 사진가의 길을 걷고 있다. "어머니가 45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제가 7남매 중 막내였는데, 어머니는 홀로 7남매를 번듯하게 키워내셨죠. 사진을 시작한 후 어머니의 삶과 고향을 집중적으로 찍으면서 '향토사진가'로 불렸죠. 20~30년 전에 찍은 갯벌이나 포구, 염전은 대부분 개발이 돼서 사라지고 없어요. 2002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상복을 벗고 마지막 가시는 길의 '효도'라고 생각하고 찍었어요."#포토샵 같은 보정 안하는 걸로 '유명'그럴 이유없어… '자연 그대로' 모습 담기 노력끊임없는 실험·독학으로 '나만의 구도·색' 탄생'사진가 최병관'은 포토샵 같은 보정을 전혀 안 하는 걸로 유명하다. 평소 그는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카메라 딱 한대만 가지고 다닌다."하늘에서 빛이 내려와서 자연과 부딪칠 때 생기는 빛깔을 사진가가 만든 구도와 색으로 사진이 탄생합니다. 끊임없이 실험하고 연구해서 나온 작품입니다. 정식 교육을 받았다면 이렇게 저만의 사진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거예요."그는 소래에서 태어나고 자란 게 사진가로서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고향에 대한 애착이 컸어요. 바다가 가까워서 사진 찍기 좋아요. 영흥도와 대부도, 영종도도 쉽게 갈 수 있는 등 지리적으로 좋고요." 최 작가는 2004년 일본 도쿄사진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가졌으며, 2010년 뉴욕 UN본부에서 'DMZ'를 주제로 사진전을 개최했다. 지난해 2월에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기념 전시회를 강릉에서 여는 등 이번 인도네시아 전시회까지 45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시인으로도 등단(1994년)한 그는 지금까지 26권의 사진집, 4권의 포토에세이, 3권의 포토시집을 출간했다."1991년 '내가 살아온 인천' 전시부터 조금씩 제 작품이 알려졌어요. 1995년 육군사관학교 개교 50주년 기념 '오래 머물고 싶은 화랑대'를 거쳐 민간인 최초로 DMZ에 들어가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서쪽 말도부터 동쪽 해금강까지 249㎞를 3회 왕복하며 찍은 DMZ 사진들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요."#한번 더 DMZ에 가서 사진 촬영을 한다면남쪽에서 북쪽 바라보고 찍은 '절반'의 작품들북쪽으로 들어가 온전히 이어지는 작업 하고파작가에게 한번 더 DMZ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는다면 무엇을 담고 싶을지에 대해 물었다."제가 찍은 사진은 DMZ 남방한계선 통문을 통해 들어가서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찍은 것들이에요. 절반만 찍은 것이죠. 또 간다면 북쪽으로 들어가서 남쪽을 찍고 싶어요. 그래야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죠. DMZ가 이어지는 그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지금도 작품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면 새벽이나 한밤중, 눈이 오거나 비바람이 불어도 카메라를 들고 나간다는 최 작가가 찍은 사진 분량은 컷으로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전체 저작권료로 따지면 1천억원대로 추정된다. 최 작가는 이 같은 방대한 자료들이 인천시민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수년 전 경기도와 강원도의 접경지역에 있는 지자체에서 제 사진 자료들로 DMZ 자료관을 만들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하지만 고사했습니다. 고향인 인천에도 강화와 교동 등 접경지역이 있는데, 타지로 가는 게 내키지 않았죠. 제가 살아 있을 때 인천시나 지자체 등에서 의지를 갖고 추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최병관 사진가는?사진가이며 시인이다. 국외에선 미국 뉴욕 UN본부, 하와이시립미술관, 일본 도쿄사진미술관, 아오모리현 핫코다마루미술관,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 독일 베를린 등에서 15회의 초대 개인전을 여는 등 국내외에서 45회 사진전을 개최했다. 26권의 사진집, 4권의 포토에세이, 3권의 포토시집을 출간했다. 그중 '휴전선155마일 450일간의 일기'와 '어머니의 실크로드'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었으며 어린이 책 '울지 마 꽃들아'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됐다. 대통령표창, 외교통상부장관상, 인천광역시문화상(미술부문), 인천환경인대상, 디엠지문화대상 등을 받았다.최병관 작가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유서 깊은 국립박물관 전시를 역사에 남을 만한 전시로 준비했고,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현대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맑은 미소와 열광적인 관람 문화로 호응해 주었다"고 말했다.최병관 작가가 슬라이드 필름에 담긴 DMZ 사진을 보면서 촬영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2019-08-20 김영준

[인터뷰… 공감] '학병 출신 마지막 광복군' 100세 김유길 선생

1919년 태어나… 일본군 탈출 충칭 임시정부 향해 '6천리 장정길'美OSS와 연일 고강도 훈련 소화… '뜻밖의 日 항복' 생생히 기억'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군가 후렴 노병의 인생역정 담아가깝고도 먼 이웃나라인 일본과의 관계가 최악의 국면을 맞은 요즘이다. 갈등을 넘어 이제는 경제전쟁으로까지 치닫는 양상은 과거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와 맞물려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교과서나 책을 통해, 또 어른들의 입을 통해 과거 일제시대의 참상을 간접 경험한 젊은 세대 역시 최근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막연했던 반감을 직접적인 분노로 전환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기에 잊어선 안 된다는 교훈은 현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통렬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일제강점기를 몸소 겪은 이들은 작금의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3·1만세운동이 열린 1919년에 태어나 독립운동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한국광복군 출신 김유길(100) 선생을 만나기 위해 제74주년 광복절을 일주일 앞둔 지난 8일 군포시 당동에 위치한 그의 집을 찾았다.# 학병 출신 마지막 광복군선생과의 만남을 앞두고 과거 타 매체 인터뷰 영상을 비롯해 각종 역사적 문헌과 기록 등 자료 수집에 매진하며 질문을 구상했다. 그는 일제시대 강제로 중국 내 일본군 부대에 끌려갔지만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해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도착, 이후 한국광복군에 편성돼 독립운동에 매진한 학병(學兵) 출신 중 한 명이다. 고(故) 장준하·김준엽 선생 등이 그처럼 일본군을 탈출해 6천리 장정길을 함께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대표적인 인물이다. 과거 장준하기념사업회의 장정 프로그램 참가할 기회가 있어 학병들의 6천리 장정길을 따라가 본 적이 있었기에, 학병 출신 광복군으로는 유일한 생존자인 선생과의 만남은 큰 기대감을 갖게 했다.하지만 그는 과거와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올해 나이 만 100세. 평소 건강관리를 잘한 덕분에 지금까지도 별다른 지병 없이 건강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세월의 무게감까지 견뎌낼 순 없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점보다, 한 세기를 살아온 그의 머릿속에 저장된 수많은 장면들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점이 안타까웠다. 선생의 기억과 함께 과거 우리 역사의 일부 또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준비한 질문을 쏟아내고 답변을 듣는 식의 인터뷰는 어려웠다. 펜과 수첩을 내려놓고 의자를 바짝 당겨 선생 가까이에 앉았다. 그리고 마치 할아버지에게 옛날이야기를 전해 듣듯 천천히 조금씩 대화를 시도했다. 대면 직후 20여분간 굳게 닫혀 있던 그의 입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충칭을 찾아가는 게 목적이었어"오랜 침묵을 깬 그의 첫 마디였다. 선생은 일본의 학도지원병이라는 명목 아래 강제징집 대상에 포함돼 1944년 1월 중국 내 일본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5개월만인 6월 30일 같은 부대 소속 김영호와 함께 탈출을 감행했다. 당시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가서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난다는 일념으로, 그는 목숨을 걸고 광활한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6천리 대장정에 뛰어들었다. 그는 "돈이 없고 먹질 못해서 (충칭까지 가는 게)보통 일이 아니었다"며 힘들었던 당시를 회상했다.한국광복군 출신 윤광빈 선생이 지난해 타계한 데 이어 지난 2월 김우전 선생마저 유명을 달리했다. 선생과 같은 학병 출신의 광복군으로 과거 생사의 갈림길을 함께한 동지이자 전우였던 이들이 이젠 모두 그의 곁을 떠났다. 그들을 떠올리며 선생은 상념에 젖은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얼굴 표정만으로 복잡한 심경을 대신 전했다. 그리고는 다시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그는 "일본을 절대 그냥 보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 우리 힘으로 일본을 때려서 사죄를 받아내고 내쫓아야 했기 때문에 우리가 힘을 길러야 했지"라며 광복군에 합류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당시엔 목숨을 내놓겠다는 생각뿐이었어. 나라를 위해선 그럴 수밖에"라며 "독립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그저 물 흘러가듯이… 삶 자체가 그냥 독립운동이었던 것 같아"라고 털어놨다. 후회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김 선생은 "후회한 적 없어. 나라를 위하는 방향으로 일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죽어도 여한이 없어"라고 말했다.# "완전한 독립을 바랐는데…"광복군은 미국과 연합한 한반도 침투작전을 통해 일본을 몰아낼 계획이었다. 선생은 광복군 제2지대에 편성돼 미 전략정보국(OSS)과 함께 연일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했다.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에 가물가물했던 그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그는 "미국 전략국이랑 같이 특수 훈련을 받는데, 따따띠디 따다 띠띠따… 이렇게 신호가 와. 그러면 그게 ABC가 되는 거거든. 그 암호를 번역하는 일을 했었어"라며 "매일 열심히 훈련을 받는데, 어느 날 갑자기 OSS 요원들이 떠들더라고.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일본이 항복을 했다는 거야. 무조건 항복이라고…"라고 말했다. 선생은 당시 미군과 영어로 대화를 나눈 그 문장 그대로 또렷이 기억해냈다. 하지만 이내 "우리 힘으로 내쫓지 못했으니까 완전한 독립이 아닌 것 같아서… 영 시원치가 않았지"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해방 이후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땅에 돌아온 그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1남 3녀의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생사의 갈림길을 전전하던 중국에서의 험난했던 인생에 지쳤던 걸까. 선생은 평범한 삶을 살았다. 일반 회사에 다녔고, 자신의 특기인 영어를 살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한국독립유공자협회의 창설을 위해 노력했지만, 직책은 맡지 않았다. 선생의 아내는 나서기를 꺼려 하는 그의 조용한 성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혼한 뒤로도 한동안 남편이 과거에 독립운동을 했던 사실조차 몰랐다는 게 아내의 말이다.하지만 선생은 결국 자신이 몸담았던 광복군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한국광복회 부회장을 3번, 한국광복군동지회 회장을 2번 역임하며 애국지사라는 사명감을 토대로 광복군의 의의를 되짚고 위상을 회복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는 국내외 각종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광복군 관련 특강을 펼치며 먼저 떠난 동지들을 대신해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는 "독립을 위해 노력했지만 그렇게 많은 일을 하진 못했어. 노력만 한다고 다 애국지사는 아니니까 좀 쑥스럽고 미안하기도 해"라며 겸연쩍어했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2시간 넘게 이어진 그와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나라'였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 땐 진짜 나라를 생각하며 살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한다는 게 뭔지, 어떻게 하는 게 나라를 진짜 위하는 길인지 이런 생각은 크게 안 하는 것 같아"라며 "하기야 우린 전쟁 시절을 살았고 지금은 평화 시대니까 그렇겠지만, 그래도 나라가 소중하다는 건 절대 잊어선 안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 사람들은 확실히 약삭빠른 면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일본 사람들이 나쁜 건 아냐"라며 "다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선 분명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특히 정치가 석연치 않아"라고 전했다. 이어 "오로지 자국민들만 잘 살게 하기 위해서 자기네만 옳다고 하니까. 사과를 할 줄 몰라. 일본이라는 나라는 사과나 반성이 없어. 그래서 나쁜 거야"라고 힘줘 말했다.과거 여러 방송 인터뷰에서 팔동작을 곁들이며 우렁찬 목소리로 독립군가를 부르던 그의 모습은 이제 더는 보기 어렵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군가 한 소절을 요청해 봤다. 그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후렴구에 한정되긴 했지만 그 부분만큼은 온전한 가사로 불렀다. 군인의 패기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가사를 떠올리기 위해 또 음을 정확히 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노병의 모습에는 한 시대의 역사와 함께해 온 그의 인생역정이 고스란히 배어있었다.선생은 이날 독립군가 후렴구를 서너 차례 반복해 불렀다. 그는 오래전부터 술에 취할 때면 항상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끝까지 부른 건 몇 번 되지 않는다. 노래 도중 흐르는 눈물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날 인터뷰에서 선생은 노래를 부르는 중에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글·사진/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김유길 선생은?▲ 1919년 평안남도 평원 출생 ▲일본 오이타 고등상업학교 졸업 ▲ 1944년 1월 강제 징집으로 일본군 입대 5개월 뒤 탈출 ▲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 도착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 편성 ▲ 한국광복군 제2지대 소속 한미연합 한반도 침투작전 훈련 수료 ▲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수여 ▲ 한국광복회 부회장, 한국광복군동지회 회장 역임 ■한국광복군은?1940년 9월 17일 백범 김구 등의 주도 아래 중국 충칭에서 창설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식 군대다.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민족의 독립을 위한 항일무력투쟁을 목적으로 조직됐으며, 중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던 청년들과 일본군을 탈출한 학병들이 합류해 일제강점기 무장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미국 전략정보국과 합작해 국내 진공작전을 계획했지만 일본의 항복으로 무산됐다. 1946년 5월 16일 해체했다.지난 2014년 5월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열린 한국광복군 제2지대 표지석 제막식에 당시 한국광복회 부회장이었던 김유길 선생이 참석했다. 김 선생은 과거 제2지대에 편성돼 한미연합 국내 진공작전에 대비한 훈련을 진행했다. /김유길 선생 측 제공일제강점기 학병 출신 마지막 한국광복군 김유길 선생이 지난 1979년 과거 광복군 동지들과 함께 집필한 '장정 6천리-한광반 학병 33인의 항일투쟁기' 책자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1944년 10월 27일 한광반(한국광복군 훈련반) 충칭 출발 기념 사진. /김유길 선생 측 제공

2019-08-13 황성규

[인터뷰… 공감]국민훈장 모란장 받은 조상범 법사랑위원 인천지역연합회 회장

여름철 해변 '청소년 탈선' 안타까워 옛 범죄예방위원 가입해 20년 가까이 활동출소자 주인공인 '플라타너스' 결혼식 주례… "과거 들추지 말라" 70여쌍 화촉AG 7만 서포터스 조직·연평도 포격 모금·市재정위기 극복 서명등 뚜렷한 족적고향 옹진서 민선 군수 지낸 친형 조건호·지용택 이사장 신념등 많은 영향 받아조상범(72) 법무부 법사랑위원 인천지역연합회 회장은 매년 가을에 열리는 '플라타너스'라는 이름의 합동결혼식에 주례로 나선다. 올해 있을 결혼식까지 포함하면 9년째다. 법사랑위원 인천연합회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인천지부가 주최하는 플라타너스 결혼식은 죄를 짓고 복역했다가 출소한 이가 주인공이다. 전과가 있어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그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이 겹쳐 결혼식조차 올리지 못한 부부를 위해 매년 조상범 법사랑위원 인천연합회장이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화촉을 밝혀준 부부만 70여쌍이다. 조 회장이 이들 부부에게 주례사를 통해 매번 "과거를 들추지 말라"는 말을 강조한다. 조 회장은 "(전과가 있는) 남편의 흠결을 웨딩드레스로 살포시 덮어준 아내를 절실하고 애틋하게 생각하라고 남편에게 이야기한다"며 "아내에게는 내 남편과 남의 남편을 비교하지 말고, 주변 시선을 인식하지 말고, 당신들의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라는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조 회장은 주례를 섰던 부부들에게 조언자 역할을 하면서 결혼식 때 했던 "가정생활이 어려울 때는 연락하라"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조 회장은 2001년 6월 법사랑위원(구 범죄예방위원)으로 위촉돼 2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다. 2011년부터는 법사랑 인천연합회 회장을 맡아 플라타너스 결혼식처럼 민·관이 협력하거나 법사랑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범죄예방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법사랑 인천연합회 위원은 현재 25개 지구에서 4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 소년 선도활동', '보호관찰 대상자 지도·감독', '법무보호 복지사업' 등 전국 법사랑위원이 수행하는 기본적인 활동뿐 아니라 '여름철 해변 청소년 선도 봉사활동', '청소년 범죄예방 유해지역 순찰', '학교폭력 예방 참여연극제', '청소년 장학사업' 등 지역 특색에 맞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인천지역은 전국 법사랑 연합회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조 회장이 가장 애착을 보이는 사업은 올해로 4회째를 맞는 '학교폭력 예방 참여연극제'다. 조 회장은 "전국에서 유일한 학교폭력 예방 참여연극제는 청소년이 배우이자 관객이 되고,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하면서 격의 없는 소통의 장으로 점점 성장하고 있다"며 "교실에서 학교폭력 예방 강의를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청소년 범죄예방사업은 조상범 회장이 법사랑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옹진군 북도면의 섬 출신인 그는 여름철 해변에서의 청소년 탈선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는 것이 항상 안타까웠다. 조 회장은 "인천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이기 때문에 과거부터 여름철만 되면 청소년들이 몰렸고, 이들이 범죄에 노출된 경우를 많이 봤다"며 "부모의 입장에서 휴양지에서만이라도 청소년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싶어 옛 범죄예방위원 중구·옹진군지구협의회에 가입했다"고 말했다.조상범 회장은 이처럼 20년 가까이 인천지역 범죄예방활동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19일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전수받았다. 훈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조 회장에게 전달했다. 조 회장은 "과분에 넘치는 훈장을 받게 되니 영광스러우면서도 조금 더 혼신을 다해 봉사했었어야 하는 아쉬움에 부끄럽기도 하다"며 "더욱 열심히 지역사회에 봉사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소감을 말했다.조 회장은 인천지역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선봉에 서서 힘을 보탰다. 그가 사단법인 인천사랑운동 시민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었던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7만여명 규모의 시민 서포터스를 조직해 '국경 없는 응원전'을 펼친 활동이 대표적이다. 인천시민 서포터스들은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선수단을 물론 스포츠 약소국 선수들이 참가하는 경기까지 찾아가 관중석을 메웠다.협의회가 서포터스 운영을 위해 인천시로부터 지원받은 예산 30억원 중 16원을 반납해 지역사회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인천시는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 조 회장은 "북한 선수들 응원은 경비·경호상 문제로 경기가 시작하기 1~2시간 전에 서포터즈들이 입장해야 했는데, 불평 없이 김밥을 먹으면서 기다렸다가 북한 선수들에게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준 시민들이 참 고마웠다"며 "자국 응원단이 없었던 스포츠 약소국 선수들도 인천시민 서포터즈들에게 많은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때는 인천시 새마을회와 새얼문화재단을 중심으로 모금활동을 벌여 40일 만에 약 42억원을 모았다. 포격 피해로 육지로 나와 찜질방에서 지내야 했던 연평도 주민들에게 가구당 500만원씩 숙식비를 지원할 수 있었다. 당시 조상범 회장은 인천시 새마을회 회장이었다. 2012년 펼친 '인천시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200만 서명운동'의 중심에도 조 회장이 있었다.조 회장은 인생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인물로 그의 친형이자 민선 1·2·3기 옹진군수를 지낸 조건호 전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과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을 꼽았다. 조 회장은 "형님인 조건호 회장은 관선으로 경기도 부천시장을 지내다 초대 지방선거 때 모두가 부천시장에 출마할 줄 알았는데, 인구가 2만명도 채 되지 않던 옹진군수로 출마했다"며 "마지막은 고향의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던 그 신념을 배웠다"고 했다. 또 조 회장은 "지용택 이사장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조언을 구하고, 항상 답을 찾게 해준다"며 "두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조상범 회장에게 인천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거창한 얘기를 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겸손하게 사양하면서도 이 한마디를 강조했다."다른 지역 사람들을 만나면 인천사람들이 인천 얘기를 많이 한다고는 하는데, 자기가 사는 고향에 흉이 되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타지에 가서도 인천을 자랑하고, 타지 사람이 인천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얘기를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늘 그 점이 아쉽다. 인천사람 누구나 인천을 자랑하고, 전국에 사는 누구나 인천을 부러워하는 그런 도시로 시민 모두와 함께 만들어 나가고 싶다."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조상범 회장은?▲ 1947년 인천 옹진군 북도면 시도 출생▲ 1966년 인천 송도고 졸업▲ 1970년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73~1991년 경기도청 근무▲ 1992~현재 인성개발(주) 회장▲ 2009~2012년 인천지방경찰청 행정발전위원회 위원장▲ 2009~2012년 인천시 새마을회 회장▲ 2010 한양대 인천지역 총동문회장▲ 2011~2014년 인천사랑운동 시민협의회 회장▲ 2011~현재 법무부 법사랑위원 인천지역연합회 회장▲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성공 개최 기원 범시민추진위원회 시민위원장▲ 2014~현재 인천시 새마을회 명예회장▲ 2014~현재 인천사랑회 회장조상범 법무부 법사랑위원 인천지역연합회 회장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천사람 누구나 인천을 자랑하고, 전국에 사는 누구나 인천을 부러워하는 그런 도시로 시민 모두와 함께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2019-08-06 박경호

[인터뷰… 공감]한국건강관리협회 경기도지부 이끌고 있는 정혜인 본부장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데경기도, 대구·인천 이어 암 발견율 3위 올라작년 30여만명 찾았는데 463명 확진자 나와#어떤 검사에 중점을 두고 있나고혈압·당뇨병등 여러 '생활습관병' 살피고국가 암 검진 다양한 프로그램과 상담 진행1964년 창립한 한국건강관리협회는 국민의 건강증진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보건의료 봉사를 수행하고 있다. 건강관리협회는 또 우리 사회의 건강 형평성 제고에 기여 하고자 소외계층 대상 건강검진 및 자원봉사활동, 개발도상국 건강증진사업 지원 등 국내·외를 포괄하는 공익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특히 전국 16개 시도지부 중 하나인 경기도지부의 경우 건강증진의원의 중심 역할을 맡아 건강검진사업과 보건교육 및 건강증진사업, 건강증진 활동을 위한 전문연구활동, 국제교류 및 국제보건의료 공익사업 등을 앞장서 추진하고 있는데 사업 최일선에는 정혜인(59) 경기도지부 본부장이 있다. 정 본부장은 건강증진서비스와 관련한 협회 차원의 사업을 이끄는 동시에 국가 담배규제 실무자문단 서비스분과위원, 보건복지부 비만 사업 공모 심사위원, 경기도 통합건강증진사업지원단 건강증진협의체 위원 등 다양한 대내외 자문위원 등도 함께 맡아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그의 이 같은 노력 덕분(?)에 건강관리협회 경기도지부는 암 발견 잘하는 검진센터로 불리고 있다. 경기도지부에만 현재 소화기내과, 외과,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영상의학과, 진단의학과, 치과 등 20명의 전문의를 포함 총 200여명의 해당 분야 전문 인력이 질병 예방을 위한 조기검진 시스템을 구축하고 다양한 건강검진과 상담을 실시하고 있다.정 본부장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5년간의 전국 암 발견자의 수는 총 2만2천여명이고, 매년 평균 4천400여명의 암 환자가 신규 발견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대구와 인천에 이어 3위로 높은 암 발견율을 보이고 있다"며 "이에 경기도지부는 모든 검진의 기본이 되는 각종 암과 고혈압, 당뇨병 등 여러 생활습관병을 검진하는 기본종합검진과 더불어 국가 암 검진 등 다양한 검진 프로그램을 실시해 조기 암 발견율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만 총 30여만명의 고객이 경기도지부를 이용했다. 이 기간 431명의 암 확진자가 발견됐다. 그는 나이와 성별에 따른 맞춤형 건강검진도 중점 추진하고 있다.10대는 기초검사, 소변검사, 잠복 결핵검사 등 청소년기에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의 체크를 위한 항목들로 구성된 특화 검진을 실시하고, 20~30대는 심전도 혈액검사 49종, 성병 상복부 초음파 등 예비부부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40~50대는 남성 및 여성 활력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정 본부장은 "나이 대에 따라 신체 건강도가 다른 만큼 건강검진 역시 연령에 맞춰 실시해야 한다. 다만 개인의 병력이나 가족력에 따라서 필요한 검사가 다를 수 있다"며 "이럴 경우 미처 암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경기도지부는 맞춤형 건강예측 유전자 검진 프로그램으로 이 같은 문제점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작년 신청사 이전 후 달라진 점은단일센터 道 최대규모… 우수인력·장비 갖춰각종 예방접종·건강 검진등 '메디체크' 제공#보건교육·사회공헌도 앞장서고 있는데'올바른 건강정보' 자료 만들어 도민에 배포헌혈캠페인·소외계층 건강진료등 확대 추진그는 신청사 이전에 맞춰 정확한 검진을 위한 우수한 의료 인력과 첨단장비를 갖추고 다양한 맞춤 건강증진서비스 '메디체크'를 제공하고 있다. 경기도지부가 제공하는 '메디체크'는 각종 예방접종, 국가 암 검진 및 공단 건강검진, 종합검진, 해외동포 검진, 예비부부 검진, 교육청 주관 학생 검진 등이다. 경기도지부는 지난해 신청사로 이전했다. 단일 검진센터로는 경기도 최대 규모다. 이런 가운데 그는 성별에 따른 특화 검진에 주력하고 있다.남성 활력 건강검진 프로그램으로는 전립선 초음파, 소변검사, 혈액검사 37종, 상복부 초음파, 골밀도 검사 등 남성 갱년기 건강관리를 위한 특화검진을, 여성 활력 건강검진 프로그램으로는 난포자극호르몬, 항체호르몬, 자궁경부암, 액상자궁세포, 인유두종바이러스, 질 초음파, 유방촬영, 유방초음파 등 여성암검사 및 중년기 여성에게 발생하기 쉬운 질환의 조기발견과 여성호르몬 검사 강화로 여성 갱년기의 건강관리를 위한 특화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그는 이 외에도 보건교육 및 건강증진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이를 위해 그는 올바른 건강정보 제공을 위한 보건교육 및 관련 자료를 개발해 경기도민에게 배포 하는가 하면 건강 캠페인·공개강좌 개최, 건강생활실천상담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건강한 오늘과 희망찬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질병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를 통한 건강수명 120세를 달성하기 위해 위와 같은 사업을 지속 전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아울러 건강검진 및 건강증진사업의 신뢰성 제고와 과학적 근거 창출을 위한 전문 학술 연구에도 앞장서고 있다는 그는 "건강검진 결과 분석을 통한 건강증진지표 생산과 건강검진 체계 및 질 향상 연구, 건강증진프로그램 개발 및 운용, 건강생활실천자료 개발 등 다양한 건강증진 연구를 기반으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건강증진서비스 제공 환경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면서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국민건강의 질도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지부의 사회공헌사업과 국제교류·국제보건의료 공익사업 추진 등에서도 최일선에 나서고 있는 정 본부장은 "직원 및 건협 사랑어머니 봉사단과 함께 사랑의 밥차, 지방자치단체 김장봉사활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실시 하고 있다"며 "이 외에도 '1사1촌 자매결연' 농촌일손 돕기 봉사활동 및 농산물 구입, 지방자치단체, 복지시설 성금 및 물품 후원, 헌혈 캠페인 등과 백혈병 환우를 위한 헌혈증서 기부 캠페인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어 "경기도지부는 더 나아가 헌혈캠페인, 소외계층대상으로 사회공헌 건강검진, 각종 봉사활동, 사회 공헌 성금전달 및 물품후원 등 사회공헌사업을 확대 실시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국제교류·국제보건의료 공익사업을 위해서 그는 "앞선 경험과 기술로 세계 곳곳에 참사랑을 전하는 한국건강관리협회는 유엔(UN)의 지속 가능한 개발목표의 실현 및 인류 건강증진을 위해 개발 도상 국가 어린이와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질병 퇴치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등 국제보건의료 공익사업을 통한 인도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며 "또한 해외 유수 보건의료 기관과의 학술교류 및 기술전수를 통해 글로벌 의료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선진 보건의료서비스에도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건강관리협회는 검진기관 국내 최초 세계보건기구(WHO) 건강증진병원(HPH, Health Promoting Hospitals & Health Services) 공식 회원기관"이라고 밝힌 그는 "이에 걸맞은 수준 높은 건강증진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다양한 건강증진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특히 건강 위험군을 대상으로 질병예방활동과 제5군 감염병 예방사업을 지원하는 법정단체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이를 위해 한국건강관리협회는 전국의 대학병원 등 600여개의 병·의원과 협약진료 및 치료 연계를 맺어 검진전문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최근 잘못된 생활습관과 스트레스, 사회 환경의 악화 등으로 현대인들의 만성질환이 늘고 있다. 우리 국민의 3대 주요 사망 원인인 암과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은 대부분 증세가 나타날 때까지 상당히 기간이 걸리고, 또 자각 증세가 나타났을 때에는 이미 완치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는 격언이 있는 만큼 건강에 적신호가 오기 전에 미리미리 조기검진을 하고 올바른 생활습관으로 건강을 지켜나가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글/김종찬기자 chani@kyeongin.com■정혜인 본부장은 ?▲ 1960년 12월 출생 ▲ 1986년 한국건강관리협회 입사▲ 2012년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졸업▲ 2013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2013년 한국건강관리협회 홍보교육본부 부본부장▲ 2014년 이화여대 건강과 의료 고위자 과정 수료▲ 2015년 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지부 본부장▲ 2017년 한국건강관리협회 경기지부 본부장▲ 2001년 보건복지부장관(표창장) ▲ 2004년 서울특별시장(표창장)▲ 2008년 국방부장관(표창장) ▲ 2012년 대통령실장(표창장)정혜인 한국건강관리협회 경기도지부 본부장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건강에 적신호가 오기 전에 미리미리 조기검진을 하고 올바른 생활습관으로 건강을 지켜나가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건강관리협회 경기도지부 제공

2019-07-30 김종찬

[인터뷰… 공감]'새 도약 준비' 취임 100일 맞은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경제권 구현을 줄곧 강조했는데관문 역할을 넘어 세계 네트워크 활용제조·물류 등 '수요 창출형' 기능 필요#어떻게 추진할 계획인가혁신 기업 유치위한 규제 프리존 필요정주여건 개선등 국토부·인천과 협치공항은 '관문' 역할을 한다. 외국으로 여행이나 출장 등을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 중 하나다. 인천국제공항은 우리나라 대표 공항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높은 서비스 수준을 자랑한다. 지난해 인천공항을 이용한 국제여객은 6천767만명에 달한다. 전 세계 공항 중 다섯 번째로 국제여객이 많다.인천공항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단순한 관문 역할을 넘어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하려는 것이다.인천국제공항공사 구본환(58) 사장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지난 4월16일 취임했으니 이달 24일이 딱 100일째 되는 날이다. 그는 취임 이후 줄곧 '인천공항경제권' 조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천공항이 단순한 관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관련 비즈니스와 첨단산업의 허브가 돼야 한다고 했다. 물류·관광 등 공항과 연계된 산업을 아우르는 경제권 조성은 우리나라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란 기대감도 나타냈다."국토교통부 항공정책관으로 있을 때 중국의 사드 보복이 있었습니다. 피해 상황 등을 확인하기 위해 지방공항을 돌아다녔는데, 여객 감소로 피해가 컸습니다. 수요에 대응하는 것이 아닌 '수요 창출형'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정립한 개념이 '공항경제권'입니다."구본환 사장은 "공항경제권은 전 세계와 가장 빠르게 연결되는 속도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제조·항공정비·물류·관광의 거점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를 '직접경제권', 송도국제도시·검단신도시·강화도·김포 등을 '배후경제권'으로 구분해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공항경제권 구현을 위해 '규제 완화'와 '협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인천공항에 혁신적인 기업을 유치할 수 있도록 '규제 프리존'을 도입해야 합니다. 글로벌 기업이 자국에서 사업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정도의 언어·교통·주거 환경을 조성하고 세금 감면 등 전면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세계적인 공항경제권을 조성해야 합니다."정주 여건 개선, 규제 완화 등 이러한 일들은 인천공항공사 혼자만의 노력으로 절대 이뤄질 수 없다. 구본환 사장은 "국토부를 비롯한 중앙부처와 인천시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실현할 수 있다"며 "공항경제권은 인천공항의 위상을 높이면서 대한민국의 신성장 동력 역할을 할 것이다. 인천의 도시 인프라 확충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항공정비단지(MRO)에 대해서는 '공항경제권'의 중요한 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인천공항공사는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인근에 100만㎡ 규모의 MRO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그는 "인천공항은 하루 1천여 편의 항공기가 운항하지만, MRO 산업은 아직 미약한 상황"이라며 "인천공항이 항공기를 정비·수리하는 공항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외국 MRO 기업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취임식 때 말한 '초격차 공항' 이란기술·서비스 혁신으로 차별성 더해다른 공항 못 따라오게 경쟁력 강화#지방세법 시행령 개정 우려했는데종부세·재산세 800억 정도 늘어날 듯정부, 허브공항 가진 특수성 고려해야구본환 사장은 취임식 때 '초격차 공항'을 강조했다. 기술·서비스 혁신을 통해 다른 공항들이 따라올 수 없도록 차별성과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되겠다는 것이다."인천공항이 4단계 건설사업을 완료하는 2023년에는 연간 1억명의 여객 처리 능력을 보유하게 됩니다. 이는 베이징공항과 유사한 규모입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기술을 빠르게 도입해 공항 운영을 혁신하고, 변화하는 여객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나갈 계획입니다."구본환 사장은 '지능형 공항 운영 체계'를 개발해 공항 운영의 패러다임을 선도할 것"이라며 "여객들에게 다른 공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인천공항만의 경험과 가치를 선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인천공항은 인천 영종도에 있다. 인천공항의 성장은 인천 발전으로, 인천의 발전은 인천공항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다. 구본환 사장은 "인천시와 함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천공항공사는 2022년까지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1천억원 투자, 일자리 5만개 창출, 사회적기업 100개 육성 등을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국내 최대 수준의 사회공헌 사업을 통해 인천과 동반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인천공항은 제1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사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12일 인천공항을 방문해 공공기관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주문했다. 인천공항 노사는 2017년 정규직 전환 대상과 인원, 처우 개선 재원 등 큰 틀에 대해 합의했다. 현재 세부 사항을 협의하고 있다.구본환 사장은 "올해에는 세부 채용 절차와 정년 등에 대해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충분한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며 "정부의 가이드라인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공공기관 정규직화 정책의 모범적인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정규직 전환을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구본환 사장은 행정안전부가 추진 중인 지방세법 시행령 개정 작업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지방세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인천공항공사는 국제업무지구·유수지·공항신도시·물류단지 등이 분리과세 대상에서 제외되고 종부세와 재산세가 800억원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외국 기업을 유치하고, 여객과 항공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인천공항공사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지방세법 시행령 개정안은 인천공항의 경쟁력을 약화하고, 국민·항공사·입주기업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또 "(정부는) 어려운 국내 경제 여건과 인접국과의 치열한 허브공항 경쟁 상황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구본환 사장은 취임 후 인천공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립했다. 최근에는 미래사업추진실을 미래사업본부로, 공항연구소를 공항산업기술연구원으로 확대하는 등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조직 개편을 완료했다. 그는 "이번 조직 개편의 핵심 키워드는 '미래'"라며 "인천공항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원과 논의를 거쳐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고 했다.구본환 사장은 인천공항에서 진행하는 공사 등에 대한 발주 제도를 개편했다.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평가위원단과 평가위원 점수를 공개하도록 개선한 것이다. 그는 "세계 일류 공항이 되기 위해서는 공정성과 투명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공개', '참여', '토론'이라는 원칙을 토대로 조직 개편 단행과 발주 제도 개선을 추진했다"고 했다.구본환 사장은 "인천공항공사는 글로벌 공항기업으로 도약하느냐 주저앉느냐의 갈림길에 있다"며 "인천이 글로벌 교역과 생산의 중심이자 공항경제권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구본환 사장은?▲ 1960년 전북 전주 출생 ▲ 1979년 전북 전주고 졸업▲ 1983년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 1989년 제33회 행정고시 합격▲ 1991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 석사▲ 1997년 영국 버밍엄대 대학원 지역정책학 석사▲ 2013년 한양대 대학원 교통계획학 박사▲ 2003년 6월~2004년 3월 건설교통부 국제항공과 과장▲ 2011년 7월~2011년 12월 국토해양부 서울지방항공청장▲ 2011년 12월~2013년 4월 국토교통부 철도정책관▲ 2017년 9월~2018년 7월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 2019년 4월~ 현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구 사장은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송도, 강화, 검단, 김포 등을 아우르는 공항경제권을 구성할 것이다. 이는 물류·제조·첨단산업·관광 허브를 조성하는 것으로, 인천공항의 역할을 확장하고 대한민국의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9-07-23 정운

[인터뷰… 공감]최영식 (사)판교테크노밸리 1조 클럽 협회 초대 회장

"미국에 최첨단의 실리콘밸리가 있다면 한국에는 판교 테크노밸리가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지난 2월 국내 최초로 (사)판교테크노밸리 1조 클럽 협회(이하 1조 클럽, 홈페이지 http://potca.org/) 초대 수장을 맡은 최영식(쉬프트정보통신(주) 대표이사) 회장의 포부다. 1조 클럽은 뛰어난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지닌 중소기업 120개사가 모인 곳으로 7년간 판교테크노밸리를 대표하는 모임으로 운영해오다 올해 초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정식으로 사단법인을 인가받았다. 1조 클럽의 설립 목적은 회원사가 상장할 경우 '유니콘 기업'(시가총액 1조 원)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며 투자와 육성을 통해 스타트업을 글로벌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최 회장은 1조 클럽을 맡기 전 고민도 많았다. 그는 "'쉬프트정보통신을 운영하기도 힘든데 과연 내가 1조 클럽 회장을 맡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고민도 많이 했다"면서 "하지만 그동안 회원사들과 함께하면서 용기를 얻었고,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초대 회장을 맡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아직 초기 단계에 있지만 최 회장은 1조 클럽 활성화와 기반을 다지기 위해 회원사들과 고민하고 있다. 그는 "현재 미국, 중국, 베트남 등 전 세계 주요 국가 기업에 특화된 지역 정보나 기술력 등을 공유하고 각 기업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상호 지원하고 있다"며 "각 회원사가 기부금을 모아 다음 세대를 이어갈 스타트업을 후원하고 판교테크노밸리 활성화를 위한 각종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1조 클럽은 매월 정회원이 정기 모임을 하고, 매 분기에는 회원사 전체가 참여해 포럼 등을 개최해 상생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향후 경쟁사가 될지도 모르는 기업에 노하우를 공유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최 회장은 무료 봉사와 다를 바 없는 행위를 스스럼없이 해내고 있다. 자신의 사비를 털어 1조 클럽 사무실을 마련하고 타 회원사보다 더 많은 출연금을 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기부 행위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 회장은 1조 클럽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선 수지타산을 고려하지 않는다. 자사의 발전만이 아닌 1조 클럽 가입사의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선 그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최 회장은 "판교테크노밸리는 1천500여 기업이 모여 있는 국내 IT업계의 요충지로,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며 "다만 마케팅, 국제 정보 수집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추진해야 할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판교테크노밸리 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교두보 역할을 1조 클럽이 맡게 될 것"이라며 "우선 기부금을 내는 정회원 기업을 늘려 정기 모임을 확대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1조 클럽의 정회원 기업은 현재 120여개 기업 중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48개다. 정회원사를 100여개로 늘려 모임 및 활동을 확대해 1조 클럽의 역량을 갖춰 나간다는 것이 최 회장의 목표다.최 회장은 올해도 어김없이 바쁜 한 해를 보낸다. 그는 ICT 인공지능 LED 예술 조명 사업을 추가해 본격적인 시장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그동안 이탈리아가 아시아 시장을 선점해 왔지만, 기술력과 원가 경쟁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에 맞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력이다. 특히 2020년까지 정부가 공공 웹사이트의 플러그인을 없앤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액티브 엑스 기반 개발툴을 HTLM5 웹 표준 환경으로 손쉽게 바꿔주는 '제나 컨버터'의 수요도 상당할 전망이다. 또 코스닥 상장이라는 숙제도 남아있다. 1조 클럽의 회장으로서 가입사에 모범을 보이기 위해선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했던 코스닥 상장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최 회장은 "상장은 해외시장에서 서비스 성장을 가속화 하는 수단이며, 질적 성장을 꾀하려는 조치"라면서 "올해 더욱 발 빠르게 움직여 쉬프트정보통신의 성장과 1조 클럽의 발전 모두를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최 회장은 '국내 최초 녹색기술 인증 소프트웨어 기업 대표', '국내 최초 WAS 기반 토인비(TOinB) UI 솔루션 및 멀티 플랫폼 '제나'(XENA) 개발' 등 유독 '처음'을 뜻하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지난 1992년 쉬프트정보통신을 설립한 그는 웹 애플리케이션 서버, GUI 컴포넌트 기반 웹 개발 툴 및 운영 플랫폼을 포함해 다양한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공공 기관과 건설, 금융, 의료, 제조, 유통 등 다양한 기업에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며 업체를 키워나갔다. 이런 노력으로 쉬프트정보통신은 웹 UI 솔루션 업계에서 유일하게 원천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됐고, 창립 이후 꾸준히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게 됐다.특히 쉬프트정보통신을 이야기할 때 녹색기술 인증을 빼놓을 수 없다. 최 회장은 "녹색기술을 적용한 제품은 속도와 처리 능력이 타사 대비 10배 가까이 빠르다. 대량의 데이터 처리 속도가 향상됐지만 대기 시간은 감소해 사용자의 업무처리 시간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업무에 들이는 시간은 물론 전기료까지 절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WEB UI SW 기업이 녹색기술 인증과 녹색기술제품 인증 및 녹색 전문기업 인증을 획득한 사례는 쉬프트정보통신이 세계 최초"라고 밝혔다.2018년 초 정부가 녹색기술 인증 제품에 대한 지원책을 법제화하면서 쉬프트정보통신의 그린 IT 구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2014년 개발하기 시작해 2016년부터 판매된 'SHIFT GREEN OFF(PC-OFF 기능과 인사·근태 유연 근무·연동 및 구형을 할 수 있는 통합 솔루션)' 제품도 정부의 주 52시간 근로시간 감독과 맞물려 판로가 순탄하게 개척됐다.최 회장은 국내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쉬프트정보통신은 2016년 중국 청화자광유니그룹과 중국 과학기술원에 HTML5 기반 통합 관리 시스템을 설치하는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또 중국 과학기술단지의 임대 및 분양 관리를 체계화한 패키지 솔루션을 제공하고, 이를 청화자광유니그룹 내 100여개 계열사와 북대청조그룹, 중국 국가과기원 3천여곳에 공급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향후 중국 내 공공기관, 국영 그룹, 일반기업, 교육기관, 병원 등을 대상으로 판매에 나설 예정이다. 최 대표는 이를 통해 매달 수십억원의 사용료를 거둬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많은 기업이 중국 시장에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대부분이 실패한 만큼 쉬프트정보통신의 성공 사례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최 회장은 "물꼬를 트기 위해 무턱대고 중국에 갔을 때만 해도 기관 관계자를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며 "사전에 중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다가갔다면 좀 더 쉽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판교테크노밸리 내 기업은 글로벌 기업과 비교했을 때 전혀 뒤떨어지지 않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고생했던 것처럼 국가의 문화, 기업 정보 등에서 부족한 면을 보이고 있다"며 "이런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만든 것이 1조 클럽이다. 다양한 정보와 경험의 공유를 통해 모든 회원사가 전 세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대담/신창윤부장 shincy21@kyeongin.com글/이준석기자 ljs@kyeongin.com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최영식 회장은?▲ 1961년 전라남도 진도군 출생▲ 2000년 벤처기업대상 중기특위위원장상 수상▲ 2005년 정보통신부 주관 '신SW 상품대상' 선정▲ 2012년 중소기업분야 대한민국 신지식인상 대상▲ 2014년 창조경영인 대상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표창▲ 2019년 (사)판교테크노밸리 1조클럽협회 초대 회장 취임최영식 (사)판교테크노밸리 1조 클럽 협회 초대 회장이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판교테크노밸리 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교두보 역할을 1조 클럽이 맡게 될 것"이라며 포부를 밝히고 있다.

2019-07-16 이준석

[인터뷰… 공감]청년 주거 대책 '반값 원룸' 손잡은 이길여 가천대 총장-은수미 성남시장

#이길여 총장대학주변 방세 너무 비싸다는 학생들의 하소연 많이 들어반값 원룸의 사업 취지 듣고 100% 공감… 고민 없이 참여굳건한 마음가짐 중요…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 꾸길#은수미 시장성남시 소재 대학들과 의견 조율했을때 가천대만 동행 의사'국내 대학 첫 인공지능 학부' AI 성지 성남시장으로서 환영청년 세대들이 어려움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다미래 세대인 청년 문제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기회의 사다리 박탈·지나친 경쟁·일자리·결혼에서부터 주거 등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기만 한 청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중에서도 '청년 주거' 문제는 기본적인 의·식·주의 문제이기에 정부는 물론 각 지자체가 앞다퉈 대책을 내놓고 있다. '반값 원룸'은 대학교와 지자체가 손잡은 청년 주거 대책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경기도에서는 처음, 전국에서는 두 번째로 시도되는 '반값 원룸'은 은수미 성남시장,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과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의기투합해 지난 6월 18일 성남시청 9층 상황실에서 가진 '지역 상생형 대학생 반값 원룸 사업 추진에 관한 업무 협약식'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반값 원룸'을 빚어낸 이길여 가천대 총장과 은수미 성남시장의 희망은 '청년 대학생들이 경제적 부담을 덜어 학교생활에 전념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소박한 두 사람의 희망은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도 대출받아 생활하는 팍팍한 청년 대학생들에게는 '카이로스'(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가 될 수도 있다.이길여 총장과 은수미 시장에게 '반값 원룸'의 얼개와 배경, 의미 등을 들어봤다. 또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계 인사, 경기도 유일의 여성 단체장이 되기까지 쉽지 않은 청춘을 건너온 두 사람에게 청년 이야기도 청해 봤다. 인터뷰는 서면을 통해 공통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반값 원룸에 대해 은수미 시장은 "성남시·가천대·LH 간 상생협약 체결로, LH는 집주인에게 집수리비 및 보증금 대출을 지원하고 성남시·가천대는 입주대학생에게 월세를 일부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반값 원룸'을 소개했다. 이어 "대학생들은 부담해야 하는 월세 중 20만원을 대학교와 성남시로부터 지원받게 되고 대학교는 기숙사 추가 건립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되며 주택소유자는 안정적인 장기 임대수익을 보장받게 된다"고 밝혔다.은 시장은 그러면서 "성남시 소재 대학들과 의견을 조율했을 때 가천대만 함께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면서 "덧붙여 가천대가 국내 대학 최초로 AI(인공지능)학부를 신설하는 것에 대해 AI의 성지인 성남시장으로서 환영한다"고 말했다.이길여 총장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학비 부담 외에 대학 '주변 방세가 너무 비싸다'고 하소연을 많이 한다. 학생들의 주거 문제는 항상 하는 걱정 중 하나여서 은수미 시장의 반값 원룸 사업 취지를 듣고 100% 공감했다"며 "학생들이 다른 걱정 없이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고민 없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가천대는 총 2천여명을 기숙사에 수용할 수 있다. 가천대는 특히 대학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지방학생들의 입학비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며 "전국의 2천여개 고등학교 학생이 지난해 입시에서 가천대를 지원했다. 이른바 전국구 대학이 된 것이다. 여기에 외국인 학생들의 입학도 늘어나 기숙사에 들어가기가 만만치 않다.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곧 제3 기숙사를 지어 더 많은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이 총장은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숙사 추가 신축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 반값 원룸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면서 "주거난 해소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이 총장은 "대학생들을 위한 이번 '반값 원룸'은 은수미 시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은수미 시장은 사회적 약자인 청년들에 대한 큰 관심을 쏟고 있으며 다양한 복지정책을 펴고 있다. 청년이 희망이라는 모토처럼 성남시와 우리 대학, LH가 함께 힘을 모은 이번 협약을 통해 우리의 젊은이들이 주거로 인한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게 됐다"고 말했다. # 청년에 대해 이길여 총장은 "병원을 운영하면서 어떻게 하면 환자들을 더 잘 고치고 덜 아프게 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했다"며 "그래서 서른두 살의 나이에 미국 유학을 갔고, 마흔셋에 일본 유학을 갔다. 나이 들어 시작한 본격적인 의학 공부는 참으로 힘들었다. 그러나 힘들게 배운 선진 의술은 의사로서 나의 능력을 튼튼히 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가끔 옛일을 생각해 본다. 학교 가기가 힘들다거나 전쟁 핑계를 대며 공부를 소홀히 하고, 친구와 아버지의 죽음에서 진한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면 과연 의사가 될 수 있었을까 싶을 때가 많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의사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이 간절했기에 수많은 시련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되돌아봤다.이 총장은 "사람들은 저마다 꿈이 있다. 그러나 꿈을 현실로 이루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꿈을 절실히 원하지 않거나, 자신이 그 꿈을 이룰 자신이 없다고 믿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 버리면, 자신의 꿈과 현실의 간격은 더욱 멀어지고 만다. 중요한 것은 어떤 좌절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 젊은이들을 만날 때마다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어라, 간절히 꿈꾸고 뜨겁게 도전하라'고 말하곤 한다. 지금 어렵게 살더라도 가슴에 뜨거운 열정과 꿈을 간직하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꼭 꿈을 실현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은수미 시장은 "자기 내부에 있는 힘을 믿으라"면서 "대책 없이 낙관적인 말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변화란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좌절하지 않길 바란다. 희망이 사라지면 포기하게 된다"고 말했다.은 시장은 "청년 세대들이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믿는다"며 "청년들이 마음껏 꿈을 꾸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다. 여러분 세대의 시대가 활짝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인생에 있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글/김순기기자 ksg2011@kyeongin.com■이길여 총장은?▲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일본 니혼대학교 의학부 의학박사 ▲1982년 사단법인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1991년 재단법인 가천문화재단, 가천박물관 설립 ▲1992년 사회복지법인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 설립(현 이사장) ▲1993년 사단법인 가천미추홀청소년봉사단 설립(현 총재) ▲1995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창회 회장(5회 연임) ▲2002년 가천길재단 회장(현) ▲2003년 의사협회 '한국의학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2007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이사장 ▲2008년 카이스트 명예 이학박사 ▲2008년 의료법인 길의료재단 설립자 및 명예이사장(현) ▲2011년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2011년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초대 이사 ▲2012년 가천대학교 초대 총장(현) ▲2014년 경인지역 대학총장협의회 회장■은수미 시장은?▲미림여자고등학교 졸업·서울대학교 사회학 박사 ▲2005년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2008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동정책 자문위원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 위원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2012년 국회 복지노동포럼 연구책임의원·환경노동위원회 위원 ▲2013년 제19대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2014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국민안전혁신특별위원회 위원 ▲2015년 더불어민주당 제4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2016년 더불어민주당 성남중원구 지역위원장·경기도당 여성위원회 위원장 ▲2017년 대통령비서실 여성가족비서관 ▲2018년 성남시장(현) ▲저서-날아라 노동(2012)·여성의 일, 새로고침(2014) 등 다수■'반값 원룸'이란?성남시와 가천대는 가천대 학생이 월세 40만원(보증금 1000만원)의 원룸을 본인 부담금 20만원에 거주할 수 있게 각각 10만원씩 지원한다. 거주할 원룸은 성남시가 참여 주택을 모집하거나 대학생이 직접 대상 원룸을 물색하는 방식으로 정한다. LH는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해 학생에게 보증금 1000만원을 연 1%로 대출하고, 거주할 원룸의 집수리를 지원한다.경기도에서는 처음, 전국에서는 두 번째로 시도되는 청년 주거 대책 '반값 원룸' 추진에 합의한 은수미 성남시장(사진 왼쪽)과 이길여 가천대 총장. /가천대 제공/성남시 제공

2019-07-09 김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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