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

 

[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12(끝)]# 자연, #그 안에서 자라는 아이들- 세계의 아이들

툰드라·북유럽인·잉카원주민 등 바람소리 맞으며 스스로 견디게… 혹한 길들이기히말라야에선 백일 안된 아기 마당서 오일 마사지·가족들 외출후 '정화의식' 치러자립심과 이기심을 혼동 독불장군 아쉬움·나보다 우리가 우선인 사회를 꿈꾸며…*보다 건강한 아이를 위한 육아툰드라 지역에 사는 유목민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그 혹한 속에서도 대지의 신께 아기의 영혼을 의탁한다는 의식을 치르고 하루에 한번 아기를 강보에 싸서 밖으로 나가 대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어떤 어려움(기후 조건)에 부딪히더라도 두려움 없이 헤쳐나가라는 의미란다. 북유럽인들 역시 한겨울에 아기가 태어나도 요람에 눕혀 늦은 밤까지 정원 나무 밑에 아기를 두는 것이 일상이란다. 아기도 자연의 일부여서 자연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라 거기에 맞게 단련하는 거라고, 자연에서 지혜를 얻고 건강을 지키며 그 아기가 자라 걸음마를 배울 땐 수없이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나도록 격려하고 기다리며 어른이 도와주는 일은 없단다.우리 조상의 시원이라는 바이칼이나 북몽골에서 순록을 키우며 사는 차탕족도 그랬고, 안데스 골짜기에서 알파카를 키우며 사는 잉카원주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깥기온이 영하 40도로 뚝 떨어져도 아기가 태어나면 산모 곁에만 두지 않고 매일 일정시간 밖에서 햇빛을 받게 하고 바람소리, 풀잎 흔들리는 소리 같은 자연과 교감을 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란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만난 출생 20일 된 아기는 털옷을 겹겹이 입고 있었다. 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데 털옷이라니 아무리 신생아라도 너무 덥지 않을까 싶었는데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프리카의 뜨거운 기후에 적응시키지 않으면 수많은 풍토병과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킬 수가 없게 되니 그럴 수밖에 없단다. 그야말로 이열치열인 셈이다.히말라야에선 백일이 채 안된 아기를 햇살 좋은 낮 마당에 발가벗겨 놓고 오일마사지를 해주는 건 기본이다. 저녁이 되면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그 앞에서 벗긴 아기를 따듯이 데운 겨자오일로 마사지를 해준다. 오일을 눈과 귀에도 몇 방울 넣어주는데 아기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곤히 잠이 들곤 했다. 외출에서 돌아온 가족들은 아기에게 나쁜 기운이 전염되지 않도록 손발을 불에 쬐는 정화의식을 치른다. 그건 아기도 마찬가지인데 물을 맘대로 쓸수 없는 고산지역에서 아기에게 면역을 키워주는 좋은 방법이라고.어느 날은 젊은 엄마가 출생한 지 이틀 밖에 안된 아기를 강보에 싼 채 밖으로 나와 일광욕을 하기에 너무 빠르지 않을까 했지만 히말라야 눈(雪)의 신께 아기를 맡기고 자라는 동안 거친 자연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매일 조금씩 길들이는 통과의례라고 했다.종교적 의미도 있겠지만 그들은 하나 같이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보다는 자연과 교감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고, 반드시 치러야할 과정이라 믿는 반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지나친 보호를 자처한다. 혼자 걸을 수 있음에도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줘야 하고 행여 다치기라도 하면 모두 내 탓이라 자책한다. 밥은 혼자 먹을 수 있어도 떠넣어 준다. 밥을 거부하면 백미터 달리기를 해서라도 쫓아가 기어이 입에 넣어준다. 그렇게 키우다 보니 우리 아이들에게 밥은 태어나서 어른을 이길 수 있는 첫번째 무기가 된다. 세상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 단 하나의 장난감도 가져보지 못한 아이와 먹을 것이 없어 영양실조나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다. 학교라면 문턱도 넘어보지 못한 아이와 평생을 화장실이 없는 집에서 사는 아이들과 태어나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죽어가는 아이들도 수없이 많다. 경험을 이길 자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들의 모든 아이는 가족이나 자연이라는 공동 그룹의 일원이 아니라 독불장군으로 키운다. 모험을 피해 오로지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 그 아이들이 자라 모두가 일등이 되고 행복한 성년으로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요즘은 자연을 모르고 대가족이라는 소중한 공동체 삶을 뒤로하고 물질과 자신이 우선인 우리 아이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어른은 아이와 평생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행여 상처받고 마음 상할 세라 최고의 것을 제공하며 강하게 키우지 못한다. 자립심과 이기심을 혼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대자연을 외면하지 않고 나보다는 우리가 우선인 사회를 꿈꾸어본다. 아이보다 더 분명한 미래는 없을 테니까.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사진/김인자 시인 제공사진/김인자 시인 제공사진/김인자 시인 제공사진/김인자 시인 제공사진/김인자 시인 제공사진/김인자 시인 제공사진/김인자 시인 제공사진/김인자 시인 제공사진/김인자 시인 제공

2017-12-18 경인일보

[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11]# 원숭이가 먹으니 # 우리도 먹어요 -잠비아 편

빅토리아폭포가 있는 워터프런트 마을엔 국립공원 출장요원이 아이들 상대로 '야생동물 안전교육'길 위에 노인과 손자 앞에 '남몰래 적선' 직구 날리는 할머니 "이거 자네거지?"… 허기라도 달래길*팜트리잠베지 강으로 이어지는 빅토리아폭포가 있는 마을 워터프런트. 저녁 무렵 숙소를 벗어나 마을로 들어서자 숲 입구에 아이들이 떼로 모여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하다. 국립공원 쪽에서 나온 코끼리 떼가 늘 비슷한 시간에 마을 앞을 지나 빅토리아 폭포 방향으로 일제히 움직인다며 조금 기다리면 코끼리 떼를 볼 수 있을 거란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들과 흙장난을 하며 곧 나타날 코끼리 떼를 기다렸다. 시간이 되자 20마리 쯤 되는 코끼리들이 등장하더니 마을 근처 아카시아 잎과 나뭇가지를 모조리 훑으며 작은 숲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내가 머무는 캠프촌이나 동물원 경계지역도 예외 없이 전기울타리가 쳐져있었는데 모두 야생동물들로부터 사람이나 집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늘 보는 코끼리일 텐데 아이들은 코끼리 떼가 나타나자 즐거워하면서도 줄행랑치기에 바쁘다. 워낙 힘이 좋고 덩치가 큰 짐승이니 가까이 가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하기야 어느 보고서를 보면 아프리카에선 동물에게 밟히거나 채여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으니.다음 날 오후 마을에 나가보니 3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팜트리 그늘 아래에서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국립공원에서 출장 나온 안전요원이란다. 워터프런트 마을이 동물들이 다니는 통로여서 평소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그런 교육은 주기적으로 필요하다며 아이들을 모아놓고 안전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교육이 끝나길 기다려 그와 몇 가지 일문일답을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그의 이름은 '쿠완다 반다'로 깡마르고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신뢰가 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야생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마을이어서 이런 교육이 평소 얼마나 필요한지 잘 설명해주는 듯했다.이곳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매우 자연적이며 단조롭다.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가 있었지만, 대부분 20m는 되는 팜트리에 돌팔매로 팜열매를 따는데, 모든 아이들이 돌던지기 명수여서 한 아이가 10개의 돌을 던졌다면 8개쯤 열매에 맞는 명중률은 놀라웠다. 팜트리에 달려있는 열매 팜은 식용기름(팜유)이나 약용으로 쓰이기도 하나 아프리카에선 겨울철 과일이 부족할 때 주로 원숭이들의 밥이 된다고 하는데, 열심히 돌을 던져 팜 열매를 따면 원숭이와 같은 방법으로 아이들도 먹는다. 먹어보니 약간 단맛이 있긴 했지만 돌처럼 단단하고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이 텁텁했다. 그런 팜 열매를 워터프런트 아이들은 누구나 따먹는다. "얘들아, 팜 열매는 원숭이 밥인데 왜 너희들이 먹어?" 돌아온 답은 간단하다. "원숭이가 먹으니 우리도 먹어요!"다. 이렇게 현명하고 명쾌한 답이 또 있으랴.나는 내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야생의 세계에서 약육강식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가 먹는 것을 그들이 먹고 그들이 먹는 것을 우리가 먹는다면 인간과 동물에게 다른 급을 매기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법칙 아닌가싶다. 그들에겐 원숭이와 사람이 구별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배가 고파서라기 보다 놀거리가 없는 심심한 아이들이 저녁 무렵 매일 같은 시간에 지나가는 코끼리 떼를 마중하거나 그 높은 팜트리에 돌팔매질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이거 자네 거야?캄보디아 앙코르 사원 안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적이 있다. 왜 그랬을까. 의외의 반응이었다. 한 여자를 도와주고 싶었는데 그녀는 돈을 보자 무작정 손사래를 쳤다. 알고 보니 정신이 좀 이상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사람들이 없을 때 그의 어린 딸의 손에 몰래 돈을 쥐어주곤 도망치듯 돌아섰다. 그런데 이번엔 빅토리아 폭포 상가 화장실 앞에서 나이 든 할머니가 손자와 나란히 앉아 여행자들의 적선을 기다렸다. 다가앉아 말을 붙여봤지만 할머니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할머니 앞에는 빈 그릇 두 개가 놓여있었다. 나는 손자에게 관심을 보이다가 작은 지갑을 할머니 곁에 살짝 떨어트려놓고 자리를 일어섰다. 몇 발자국을 걷는데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가 불러 돌아보니 "이거 자네 거지?"하고 지갑을 흔들며 물었을 때 모르는 일이라며 사인을 해보였다. 나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간식비를 줄이고 하룻밤 숙박비 정도를 그 안에 넣었는데, 그 정도면 할머니와 손자가 한동안 허기를 달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남은 여행은 한결 가벼울 것만 같았다.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사탕 하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하는 아이들이다. /김인자 시인 제공가장 멋진 포즈를 부탁했더니 이렇게 삐딱하게 서서 나를 웃게 했다. /김인자 시인 제공사바나 벌판에 외로이 서있는 아카시아 나무에 매달아 놓은 건 벌통이다. /김인자 시인 제공굴렁쇠 하나면 마을 아이들을 사로잡고도 남는다. /김인자 시인 제공팜 열매를 맛있게 먹고 있는 소년. /김인자 시인 제공팜 열매. /김인자 시인 제공두 아이와 버스를 기다리는 여인. /김인자 시인 제공호숫가에서 수줍은 듯 시선을 피하는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누군가의 적선을 기다리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와 손자. /김인자 시인 제공

2017-12-11 경인일보

[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10]# 오래된 # 미래를 가다- 라다크 편

바위절벽에 붙은 마을·청보리 물결·공차는 아이들 '설레는 이상향'별보다 더 예쁜 눈을 가진 천막집 계집아이들 아른거려 밤새 뒤척여검불처럼 가벼운 막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처럼 백팩을 푼다…*라다크 아이들 바위 절벽에 간신히 몸을 붙들고 있는 마을엔 청보리가 물결을 이루고 아이들이 좁다란 골목에서 공을 찰 때마다 뽀얀 먼지가 폴폴 날렸다.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곰빠(사원)엔 룽다(풍마)가 펄럭이고, 붉은 승복을 입은 뺨이 발갛게 튼 어린 스님들은 동네 아이들의 공놀이를 부러운 듯 구경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공이 아득한 벼랑 아래로 떨어질 판인데 정작 축구를 하는 아이들은 아무 걱정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아이들 표정이 어쩜 저토록 밝을까? 대체 저곳은 어딜까? 지상에 저런 피안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아니면 가상세계? 그 아름다운 광고 한 편은 내게 사건(?)이었다. 단지 모기업의 짧은 광고 하나로 마음이 술렁이기 시작했으니, 어쩌면 그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이상향을 눈으로 확인하는 시작의 신호였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라다크 땅 라마유르, 나는 그 마을을 수배하기 시작했고 2년 후 배낭을 꾸려 그곳을 찾아 떠났다.라마유르를 거쳐 찾아간 마을 알치(Alchi)는 라다크(Ladakh) 중심도시 레(Leh. 3천505m)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인더스강을 끼고 있는 고원의 아름다운 마을이다. 특히 알치 곰빠(사원. Alchi Gompa)의 벽화는 라다크 지역에서도 불화(카슈미르 양식의 벽화)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내가 방문했던 시기 7월 말은 1년에 50여일 열린다는 육로가 열린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사방이 모래와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온통 황량하지만 강가에 미루나무가 서있고 보리밭이 물결치는, 주변에서 초록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사원을 둘러싼 마을 어귀에는 당나귀가 보리타작을 하고 내가 묵은 게스트하우스 주변엔 노란 살구가 유혹의 손길을 뻗었다. 도착 다음 날 여행자들은 가까운 계곡으로 트레킹을 떠나고 나는 인더스 강을 끼고 서쪽 마을로 가보기로 했다. 약 1시간 쯤 걸었을까. 천막 하나가 보였고, 아이들이 그 앞에서 놀고 있기에 지나가는 남자에게 물으니 아이들 아버진 일을 찾아 다른 마을로 가고 아이들만 있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을 보는 순간 다음 마을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잊고 말았다. 수줍어서 눈도 못 맞추던 아이들이 사는 천막 안은 얇은 이불과 옷가지 몇 개, 냄비 두어개에 먹다 남은 한 됫박 정도의 짬바(보릿가루)가 전부였는데 가을까지는 거기서 그렇게 산다고 했다. 나의 모성은 어디서부터 나를 길들여 왔을까. 처음엔 낯선 내게 두려움과 경계심을 보이던 아이들은 사람이 그리웠는지 금세 친해졌고 우린 돌멩이 몇 개로 공기놀이와 소꿉놀이를 했다. 점심에 먹을까 싶어 챙겨간 샌드위치와 비스킷과 물은 순식간에 동이나 버렸다. 사연이 없을 리 만무하지만 아빠는 있고 엄마는 없다는 고만고만한 계집아이 넷, 이 조가비 같고 나팔꽃 같은 조무래기들에게 세상 전부인 엄마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척박한 땅에서도 아이들은 모두 맨발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왜? 라고 묻는 건 고문일 것 같아 나는 발가벗은 아이를 강가로 데려가 씻기고 안아주며 놀다 다음 날 다시 오겠노라 차례로 손가락을 걸고 헤어졌다. 그날은 전날과 비슷한 시간에 숙소를 나섰다. 고도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올랐다. 태양이 내리쪼이는 황량한 고원사막을 홀로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저 멀리 까만 점들이 나를 향해 오고 있는 게 아닌가. 신발을 신어도 뜨거운데 그 조그만 아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맨발로 나를 마중 나오다니, 멀리서 나를 확인한 아이들은 줄레! 줄레!(안녕하세요!) 고함을 지르며 손을 흔들었고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반가움과 슬픔이 교차했다. 나는 검불처럼 가벼운 막내를 안고 나머지 아이들을 앞세워 그늘이 있는 천막집으로 되돌아갔다. 돈을 벌어 먹을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처럼 나는 백팩을 풀었다. 빵과 사탕과 음료 앞에서 아이들은 손뼉을 쳤다. 그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멀리 마중을 나와 있었고 다 다음 날도 그랬다. 슬픔이나 외로움을 알기에 아이들은 너무 어렸고, 갓 돌 지난 막내에게 나는 유독 마음이 쓰였다. 저 어린 아이들끼리 서로 껴안고 추위를 녹이며 잠자고 먹고 며칠에 한 번 천막집으로 돌아온다는 아이들의 아버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살구나무 아래 주먹만한 별이 쏟아지는 평상에 누우면 밤마다 별보다 더 예쁜 눈을 가진 천막집 아이들이 아른거려 몸을 뒤척였다. 그런 날은 아이들을 만나러 가기 전 알치사원에 들러 잠시 기도를 드리곤 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그렇게 살아야 하고 나는 돌아가야 할 여행자가 아니던가.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더는 올 수 없다는 걸 눈치챘는지 그날은 아이들 표정도 어두웠다. 막내는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 큰 아이의 표정은 '우린 아줌마가 좋은데 이제 내 동생들은 더이상 과자 같은 건 먹을 수 없는 건가요?'라고 묻는 듯했다. 나는 얄팍한 연민을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고, 진짜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리 외롭고 춥고 배고프더라도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말 따윈 하지 않았다. 잠시지만 온 몸으로 아이들에게 엄마가 되어준 것으로 족했다. 나는 지난 내 여행 중 가장 아쉬웠던 이별로 그날 아이들과 고원 한가운데서 점으로 사라지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 또한 시간이 가면 아이들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잊을 것이다. 그 여름 그들에게 산타클로스가 다녀갔다는 사실을, 그 산타는 황색피부를 가진 아줌마였다는 것까지도.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풀 한 포기 볼 수 없는 황량한 고원 라다크 고장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남기환 제공마을 꼭대기에 사원이 있는 라마유르 마을. /남기환 제공/김인자 시인 제공곰빠(사원)에 가면 이렇게 어린 나이에 출가한 스님들을 만날 수 있다. /남기환 제공근처에서 유일하게 파란 보리밭이 있는 라마유르 마을. /김인자 시인 제공마을 가가호호를 돌며 자잘한 생필품을 파는 박물장수 가족들. /김인자 시인 제공미루나무와 살구나무가 많은 불화로 유명한 사원이 있는 알치 마을. /김인자 시인 제공계획된 여행스케줄을 취소하고 천막에 사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필자. /김인자 시인 제공카메라를 들자 수줍다며 깔깔대다가 그만 바닥에 누워버린 귀여운 현지 할머니들과 필자. /김인자 시인 제공

2017-12-04 경인일보

[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9]# 사랑이 아니면 # 무엇으로- 탄자니아 편

내곁으로 다가온 예닐곱살 계집아이 "뭘 달라는 것이겠지…"털린 줄 알았던 바지주머니에서 나온 붉디붉은 부겐빌레아 꽃잎 "이런~"인도양 '노예의 섬' 잔지바르에서 만난 다리가 불편한 소년비루한 구걸이 아닌 당당한 흥정 "예스, 아임 해피" 긴 여운*붉은 꽃잎으로 남은 마사이 아이구슬목걸이에 나풀거리는 꽃무늬 블라우스를 보면 계집아이가 분명한데, 마을 남자들이 막대기를 들고 겅중겅중 하늘로 뛰어오르며 마사이 춤을 추고 돌아간 후였다. 안개처럼 허공을 채운 사바나의 흙먼지 속에서 꿈인 듯 생시인 듯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진원을 찾아가니 예닐곱 살쯤 된 계집아이다. 그 노래, 마사이 동요였는지 연가였는지 모르지만 들릴 듯 말 듯 내 귀를 파고들던 가늘고 여린 휘파람 소리. 다음 날, 도무지 낯선 여행자들의 호기심 따윈 상관없어 보이는 아이가 슬며시 내 곁으로 다가왔다. 뒤로 감춘 오른손에 신경이 쓰였다. '보나마나 뭘 달라는 것이겠지' 나는 특별히 이 아이에게 마음을 쓰지 못한 채 몇몇 여행자들 속으로 묻혀갔고 그런 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아이가 종종걸음으로 쫓아오자 뭔가를 눈치챘는지 다른 아이들도 우르르 따라왔다. 대기해 있던 차에 오르는 순간 다급해진 아이가 내 바지주머니에 뭔가 슬쩍 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짓이야!" 주머니가 비어있다는 걸 안 나는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쏘아보았고 아이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나를 피했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 바지를 벗는데 흰 침대시트 위로 뭔가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이런! 붉디붉은 부겐빌레아 꽃잎이었다. 왈칵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그날 밤 나는 아이의 진심을 몰라준 내가 너무 미워 이불 속에서 조금 길게 울었다.*당신 뜻대로탄자니아, 다르 에스 살렘에서 대형페리로 3시간쯤 달려 인도양 서쪽에 위치한 노예의 섬 잔지바르에 도착한 날은 하늘이 거짓말처럼 파랬다. 배에서 내리자 마중이라도 나온 듯 꽃을 든 무슬림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많은 사람 속에서 소년과 눈이 마주친 건 우연이었을까. 이때다 싶은지 흰 치아를 드러내고 꽃을 흔들며 다가오는 소년은 다리가 불편했고 예상대로 꽃을 내밀었다. 묻지 않아도 안다. 그 섬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것이고, 그 의미로 꽃을 사라는 것이겠지. 나는 방금 도착해 숙소를 찾는 일이 우선이라 꽃을 살 여유가 없다는 걸 소년이 모를 리 없지만 그는 미소로 일관했고 집요하게 설득했다. 쉬어가려고 좁은 골목에 배낭을 내려놓자 이때다 싶은지 소년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는 끝내 꽃값을 묻지 않았다. 물어보나 마나다. 꽃값은 'as you like it(당신 뜻대로)'일 것이다.소년은 나 같은 여행자가 가장 관대해지는 날이 새로운 여행지의 도착 첫날과 마지막 날이란 걸 알고 있었던 걸까. 넓은 나뭇잎으로 작은 꽃송이를 감싸듯한 꽃은 신부의 부케를 연상하게 했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숲을 헤치며 꽃잎을 모아 꽃다발을 만들었을 소년,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시들 꽃이지만 주인을 만나면 가족들에게 웃음이 되는 꽃, 그러니까 소년에겐 꿈이 되고 희망이 되는 꽃, 더위를 식히며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에도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 지를 소년은 잊지 않았다. "이 꽃 예쁘죠? 그러니까 팔아주세요. 난 이 꽃을 팔아야 해요. 네? 네?" 숨넘어가는 소년의 설득에 마지못해 협상을 시작했다."꽃은 필요 없어, 네 미소만 살게" 어이가 없다는 듯 소년이 협상을 제시했다. "그럼 꽃을 사면 미소는 덤으로 줄게요. 어때요? 괜찮죠? 그렇죠?" 어라, 이 녀석이,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가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 협상카드에 눈빛으로 거래사인을 마쳤다. 그리고 토닥토닥 어깨를 도닥여주며 평탄치 만은 않을 소년의 앞날을 격려해주었다. 신은 실수하지 않는다지만 소년의 다리는 신의 실수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소년이 믿음직스러웠던 건 보통 아이라면 불편한 다리를 탓하며 집이나 지켰을 텐데 비루한 구걸이 아니라 당당하고 적극적인 태도며 무엇보다 밝은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만큼 치른 대가가 꽃값인지 미소 값인지는 알 수 없으나 꽃이든 미소든 어느 것 하나는 그저 얻은 것 같아 무거운 배낭도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받은 돈을 동그랗게 말아 쥐고 멀어져가던 소년이 입을 귀에 걸고 손을 흔들 때 물었다. "아 유 해피?" "예스, 예스, 아임 해피" 예스를 반복하던 소년의 대답이 긴 여운을 남겼다. 잠시 후 소년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후 크리스털 같은 그의 웃음소리가 배낭에 올려둔 꽃다발 주변을 맴도는 환청을 들었던 것도 같다. 집을 떠난 지 여러 날, 나는 그 머나먼 아프리카 섬에서 두고 온 내 아이를 그리워하며 꽃다발 하나로 가뿐한 신고식을 마쳤다. 탄자니아는 내가 꿈꾸는 다양한 보물을 가진 나라다. 다음 코스가 바로 킬리만자로 산과 동물들의 천국 세렝게티 초원이라는 걸 상상하면 벌써 가슴이 뛴다. 나는 내가 꿈꾸던 야생의 삶을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내며 생생한 관찰을 하게 될 것이다. 수많은 누떼와 얼룩말, 사자, 치타, 코끼리가 나를 반겨줄 것이다.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마사이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잔지바르 섬에서 내게 꽃을 판 무슬림 소년. /김인자 시인 제공잔지바르(인도양)의 어부들./김인자 시인 제공탄자니아의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전통복장을 한 '모란'이라고 칭하는 마사이 전사. /김인자 시인 제공세렝게티 초원의 얼룩말들. /김인자 시인 제공마사이 마을 부족들이 모두 나와 여행자 앞에서 전통춤을 추고 난 후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김인자 시인 제공백인 여행자들 무릎에 앉아서 놀고 있는 마사이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내 주머니에 부겐빌레아 꽃잎을 넣고 간 마사이 소녀가 휘파람을 불고 있다. /김인자 시인 제공세렝게티 초원의 코끼리. /김인자 시인 제공

2017-11-27 경인일보

[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8]# 나는 # 조종사가 될 거야 - 네팔 히말라야 편

산골 담푸스 아랫마을, 호기심 가득하던 아이는 알코올중독 아버지와 지독한 가난에 지쳐우리에게 부러움의 대상인 '최고봉 히말라야' 그들에겐 높이만큼 힘겹고 척박한 삶의 무대6년만에 '사진첩' 들고 다시 찾은 그곳엔 버드나무같던 처녀가 뚱보아줌마가 되어 있었다어떤 이에겐 생애 첫 사진이라는 것, 자신의 과거를 볼 수있는 영혼의 거울로 믿는다는 것…*먼질 비슈어커르마"먼훗날 나는 조종사가 될 거야.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날아오를 거야."EBS <세계의 아이들> '눈의 아이 하늘을 꿈꾸다'를 통해 본 히말라야 언저리에 사는 먼질 비슈어커르마(14)의 일상을 시청한 후, 네팔로 날아가 먼질을 만나기 전까지는 조그만 개구쟁이를 상상했는데 이젠 제법 청년의 티를 내며 거짓말처럼 내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표정이 어둡고 다소 반항적으로 보이는 먼질(나는 먼질이 젊은 날의 제임스 딘을 닮았다고 생각했다)은 히말라야 산골마을에 살며 파일럿을 꿈꾸는 소년이다.이른 아침, 안나푸르나 산군이 눈앞에 펼쳐지는 담푸스 아랫마을로 먼질을 찾아 나섰다. '힐레'가는 날 전해줄 게 있어 '페디'에서 먼질의 엄마와 함께 본 후 나흘만이었다. 아이답지 않게 온통 우수로 가득한 표정의 먼질을 만났을 때 문제를 직감했지만 나는 말을 아꼈다. 먼질은 비행기를 보고 자신도 언젠가는 조종사가 되어 하늘을 날 거라고 나무로 깎은 모형비행기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계곡을 내달리던 TV속 호기심 가득한 그 아이가 아니었다.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말이 없었고 즉답을 피했다. 먼질은 도시로 간 누이를 제외하고 세 명의 어린 동생과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엄마가 함께 살았다. 길에서 만나 오두막으로 안내하던 먼질의 아버진 취해있었고, 가족들은 집에 없었다. 집은 비가 새는 두어평도 안 되는 곳에 침대 하나가 전부였는데 아무리 그럴 듯한 상상을 해도 저 좁고 누추한 공간이 다섯 가족의 보금자리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화를 원했지만 아침부터 술에 절어 있어 그와의 대화는 불가능했다.먼질의 아버지와 헤어져 돌아오던 마을 언덕에서 나머지 가족을 만났다. 비가 내린 지난밤도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아이들과 밖에서 밤을 보냈다는 먼질의 엄마, 어떤 이야기에도 그들은 웃지 않았다. 설산의 특권을 누리고 사는 그들의 재산목록 1호가 낙천성이라는 걸 생각하면 의외의 모습이다. 파일럿이 되려면 학교에도 가야하고 열심히 공부해야하지만 하루하루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는 먼질에게 파일럿은 꿈일 뿐이라고 비웃는 듯했다. 세상에는 도움이 절실한 아이들이 많지만 개인사거나 문화적인 차이로 방관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데 도무지 어떤 빛도 보이지 않는 먼질의 현재가 그래보였다.나는 TV에서 본 먼질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먼질, 파일럿이 되겠다는 꿈은 아직 유효하니?" 먼질이 나를 쳐다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 속엔 '그럼요, 꼭 그렇게 되고 말 거예요. 아니 되고 싶어요'가 담겨있었다. 먼질을 웃게 할 순 없을까. 이제 그 여행은 끝났지만 다음에 보다 좋은 모습으로 만나기 위한 내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지상의 최고봉 히말라야를 부러워하지만 히말라야 높이만큼 힘겹고 척박하게 사는 그들의 고단한 삶은 생각하지 못한다. 이건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도 내가 사람여행을 포기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6년만의 반가운 재회여행을 오래 하다 보니 여러 번 방문하게 되는 나라가 있는데 내겐 비교적 접근성이 용이한 뉴질랜드, 호주, 인도, 네팔 등이 그에 속한다. 그중 네팔은 조금 특별한 경우다. 6년 만에 담푸스 마을을 다시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보니 전에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묵은 사진첩을 열어 서른 컷의 사진을 골라 확대 현상 코팅까지 마치고 보니 다양한 연령대는 물론 가족사진, 단체사진, 독사진도 있다.안나푸르나 산군들을 가까이에서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는 위치도 그렇거니와 전통을 이어가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전형적인 히말라야마을이어서 그랬는지 나는 담푸스 마을이 푸근하고 좋았다. 며칠 지내는 동안 날마다 아이들과 가가호호 방문하며 밥과 차를 얻어먹고 일손이 바쁠 땐 뺨이 붉은 아기를 돌봐주며 사진을 찍어주던 그 계절은 소가 묵은 밭을 갈고 유채꽃과 복사꽃이 피는 봄이었다. 담푸스에 도착 다음 날 숙소 가까운 곳부터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과 하나둘 재회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수배하는 건 사진만으로 충분했다. 6년의 시간, 사진 속 누구는 세상을 떴고 누구는 외화벌이를 갔다하고 또 누구는 도회지로 갔단다. 버드나무 같은 처녀는 뚱보아줌마가 되고 걸음마를 하던 아가는 학생이 되어있었다. 부재한 사람은 가족에게 전달했고 가족들은 그 사진으로 없는 가족의 그리움을 대신했다. 한 명씩 찾을 때마다 자신도 몰라보게 변한 아이들 웃음으로 마을은 시끌벅적했고 사람들은 예전 모습을 보려고 줄을 섰다. 사진의 위력 때문인지 처음 본 사람들도 모델을 자청했고, 셔터를 누를 때마다 언제 다시 올 거냐는 질문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다시 가는 곳이 있는가하면, 세상은 넓고 가야할 곳은 많으니 특별한 연이 없다면 재방문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들이 자처했다고 해도 사진을 찍다보면 찍은 사진을 인화해주고 가면 좋겠단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그러고보니 지난 여행 때 준비한 이들의 사진은 평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은 듯했다. 오지라면 카메라나 사진관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어서 현실적으로 외부사람이 아니면 어렵고, 그 밖에도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우리에겐 흔한 일이지만 어떤 이에겐 내가 찍어준 사진이 생애 첫 사진이라는 것, 그리고 사진이야말로 자신의 과거를 볼 수 있는 영혼의 거울로 믿기 때문인 듯.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던 먼질 비슈어커르마(14).먼질이 사는 담푸스 마을에서 담은 안나푸르나 산군. 그리고 마을 사람들. /김인자 시인 제공안나푸르나 트레킹 하면서 만난 히말라야의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먼질이 사는 담푸스 마을에서 담은 안나푸르나 산군. 그리고 마을 사람들. /김인자 시인 제공손을 모아 '나마스떼'로 인사하는 히말라야 아이. /김인자 시인 제공

2017-11-20 경인일보

[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7]# 세계에서 # 가장 독특한 # 화장술- 미얀마 편

건조기후서 자란 나무 갈아 제조 자외선 차단·잡티 예방… 아이·젊은 남자도 애용인도차이나 지역서도 유일·지방 여행 가는 곳마다 "뺨·코·이마에 한번 발라볼래?"2500개 이상 파고다가 있는 '올드 바간' 경전의 가르침 '진정한 善은 용서 구하는 일'*타나카(Thanakha)미얀마 남자 누구나 입는 일상복이 '론지(통치마)'라면,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여자들 얼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 천연화장품 타나카(Thanakha)다. 색상은 흰색에 가까운 노란색이 주를 이룬다. 미얀마를 여행하다보면 십중팔구는 타나카를 바를 만큼 대중적인 화장법이다. 나무이름에서 따온 타나카는 주로 미얀마 중북부의 건조한 기후에서 자라는 것으로 알려지고, 북쪽 쉐보(Shwebo)지역의 것을 최고로 꼽으며 잎은 식용으로도 쓰인다. 여자와 어린 아이들이 주로 애용하며 화장품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의약품으로써의 효과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이는 자외선을 차단해주고 피부에 트러블을 없애주며 잡티나 얼룩 같은 것을 막아주는데 탁월한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알수 없으나 인도차이나지역에서도 유일하게 미얀마에서만 볼 수 있는 화장법이어서 이를 처음 대하는 여행자라면 호기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재료는 기념품점이나 일반가게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만드는 방법도 비교적 간단하다. 가운데가 약간 들어간 둥근 석판에 물 서너 방울 떨어트린 후 토막을 낸 타나카 나무를 벼루에 물을 붓고 먹으로 갈듯 걸쭉하게 갈아내면 된다. 이때 좋은 글씨를 위해 먹의 농도를 조절하듯 타나카도 같은 원리다. 다소 번거롭기는 해도 나무를 곱게 갈아 젤처럼 걸쭉해진 타나카를 만드는데 필요한 시간은 2~3분이면 족하다. 타나카는 천연화장품인 만큼 보관이 쉽지 않아 필요할 때마다 만들어 써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대부분 즉석에서 갈아 쓰지만 바쁜 도시 여자들은 직접 만들지 않고 여러 타입(액체, 고체, 파우더)으로 개발된 상품을 선호하는데 그중 젤 타입이 가장 인기가 좋다.지방을 여행하다보면 이를 만드는 석판과 재료가 없는 집이 없어 가는 곳마다 "너도 한번 발라볼래?"라고 권하는 바람에 몇 번 발라봤는데 걸쭉한 입자가 피부에 그대로 나타나며 화장품이 뺨에 닿은 느낌은 상쾌하다. 다만 건조되는 과정에서 피부가 조금 당기는 느낌이 있으며 그 액체가 완전히 마를 때까지는 화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손을 대면 안 된다. 타나카는 여자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어린아이나 실외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들도 많이 하는데 보통은 두 뺨과 코와 이마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바른다. 그러나 미모에 관심이 많은 처녀들은 나뭇잎이나 꽃잎 모양의 무늬를 새기며 그야말로 온갖 방법으로 타나카화장을 즐긴다. 아이들이 거리 자판에서 타나카 재료를 파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으며, 파고다와 함께 타나카를 제외하고 미얀마를 이해하긴 어렵다. *올드 바간그들의 불심은 어디서 온 걸까. 약 2천500개 이상의 파고다가 있다는 불국정토 올드 바간의 풍경은 여행자를 고대 도시로 안내한다. 40도를 웃도는 폭염, 사원 앞에서 만난 아기가 걸음을 붙든다. 아이 엄마는 맨발에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두꺼운 스웨터 차림새는 남루했다. 여자가 안고 있는 아기는 벌써 몇 시간째 고요히 눈을 감은 채 굳게 입술을 다물고 있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구걸을 하지도 않았고 표정에서 삶의 고단함과 배고픔을 읽었을 뿐, 집을 나올 때 아기에게 타나카를 발라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카메라를 들어 찍어도 되냐 물으니 별 반응이 없다. 사진을 찍게 되면 대가를 지불할 생각이었기에 눈으로 양해를 구하고 당당히 셔터를 눌렀다. 아니 그 반대다. 이 경우 그녀에게 그냥 적선이 아니라 당당히 돈을 받아도 된다는 걸 인식시켜주고 싶어서 찍은 의도된 사진이었다. 나는 여행지에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현금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아이들에겐 학용품, 신발, 혹은 먹을거리로 대신하는데 이들 앞에선 그냥 지갑이 열렸다. 허기보다 더 절실한 고통이 어딨을까. 거두절미 어떤 설명도 변명 따위도 필요치 않았다. 진정한 선은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구하는 일이라고 어느 경전은 적고 있지 않던가. 10불짜리 기념품을 단 5불에 사는 것도 좋겠지만 등가죽에 붙은 아이의 배를 볼록 나오게 하고, 조건 없이 누군가의 하루치 양식이 되어주는 것이야말로 여행을 여행답게 하는 일이 아니던가. 이 대책 없는 연민이 잘못이라면 나는 죄인 중에도 상 죄인이다. 아무리 혹독한 훈련으로도 잘 안 되는 것이 있다면 역시 국경과 인종을 초월, 아이를 보듬는 일이다.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세상에서 가장 오래된(250년) 만달레이 우베인 다리의 노을. /김인자 시인 제공타나카를 바른 미얀마 소녀의 얼굴. /김인자 시인 제공가게에서 파는 타나카 재료들. /김인자 시인 제공한 소녀에게 필자의 얼굴을 맡겼더니 이렇게 해 주었다. /김인자 시인 제공인레호수에서 배를 저어 학교에 가는 아이. /김인자 시인 제공아침과 저녁 무렵의 올드 바간 전경. /김인자 시인 제공인레호수 플로팅 마켓에서 만난 소녀. /김인자 시인 제공탁발을 하러 나온 어린 스님들. /김인자 시인 제공

2017-11-13 경인일보

[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6]# 할례를 # 아시나요? -아프리카 편

의식 과정 고통 상상초월… 부작용으로 생명 잃기도지구상 어린여성 1억5천명 이상 가혹한 시련의 상처9살때 할례 치른 13살 소녀의 닥쳐올 미래에 먹먹함어머니, 아내, 누이, 딸을 보라 무슨 죄가 있는가…*우물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 말라위 칸데비치 마을 겁에 질려 죽을힘으로 견뎌냈을 13살 곤도웨이의 그 맑고 깊은 우물 주술사의 무딘 사금파리로 집도 되었을 뜯다만 수제비반죽처럼 씹다만 껌처럼 일그러져 있던 어린 소녀의 측은한 할례 소녀의 우물에서 피어나던 시든 과일향기 처음 본 여행자에게 치마를 걷고 속살을 보이며 우렐레 우레헤~ 우렐레 우레헤~ 춤추고 노래 부르던 철없는 곤도웨이 그날, 바람 부는 호숫가에서 내가 본 잊히지 않는 작은 우물 하나 송두리째 일그러진 한 소녀의 그것 *대체 누가 저 여린 꽃잎에게 몹쓸 짓을많은 사람들이 무지한 행위 여성할례를 무슬림 법으로 알고 있지만, 이슬람 경전인 코란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근래에는 할례가 종교나 전통이 아니라 여성의 성적쾌락을 용납할 수 없다는 남자(수컷)들의 성적 환타지에 근거한 권력의 악습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여자의 성기는 원래 불결하고 음탕하여 뿌리째 도려내 그 죄를 막아야 한다고 믿어왔다는 것, 이것은 우리 모두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슬픈 일이다. 순결한 처녀를 상징하기 위해 초경 전 주술사에 의해 여자에게 가장 민감한 신체의 일부(음경)을 도려내고 봉한 다음 성년이 되면 오직 남편의 손에 의해서만이 그것을 다시 풀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할례의식, 그 과정에서 어린 여아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가혹하며 더러는 수술 부작용으로 적지 않은 생명이 사망에 이르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할례를 당하는 본인은 물론 그를 낳고 기른 어머니조차 할례거부에 대한 의사 결정권이 없는 것이 오늘날 아프리카 여자들의 현실이다. 이집트와 케냐 등에서 할례를 금지하는 법률이 공표되었다고는 하지만 늘 법보다 먼저인 어둠 저편에서 행해지는 무지막지한 악습, 아직도 지구상에는 어린 여성 인구 1억5천명 이상이 이 가혹한 시련의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누구라도 기본상식만 알면 여성할례가 얼마나 끔찍한 행위인지 인식하는 건 어렵지 않다. 비단 내가 여자거나 두 딸을 둔 엄마라서가 아니라,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언젠가는 남자들의 전쟁터가 될 일그러지고 찢긴 한 계집아이의 아랫도리를 확인하는 일은 실로 안쓰러움을 넘어 서글펐고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누구에겐가 모를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 내가 만난 곤도웨이(13)는 9살이 되던 해 할례를 치른 내 눈으로 직접 본 첫 번째 소녀였다. 대체 누가 어린 소녀에게 이런 짓을 한 건지. 나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슬픈 눈빛과 수줍은 미소를 가진 곤도웨이를 잊지 못한다. 손발을 헤나로 장식하고 반죽처럼 일그러진 아랫도리를 감추지도 않고 카사바 밭가에서 친구들과 온몸을 흔들며 춤추던 그 철없는 아이의 눈빛과 닥쳐올 미래를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할례 반대자다. 종교, 율법, 문화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 법은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은 여성들의 의식전환도 필요하지만, 스스로 짐승이 되기를 마다않는 일부 남자들의 성지배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신에 비유하는 당신의 어머니와 현자에 비유하는 당신의 아내와 동지에 비유하는 당신의 누이동생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여쁜 당신의 딸을 생각해 보라. 여자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저 채송화 같은 아이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 말이다.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집시의 피가 흐를 것 같은 붉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유독 마음을 끌었다. /김인자 시인 제공사진을 너무 찍고 싶어 부겐빌레아 꽃나무 앞에서 빌린 원피스를 입고 포즈를 취한 소녀. /김인자 시인 제공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나 9살에 할례를 치렀다는 13살 소녀 곤도웨이. /김인자 시인 제공단지 카메라가 무섭다는 이유로 두 자매의 표정은 내가 아프리카에서 본 아이들 중에 가장 어두웠다. /김인자 시인 제공

2017-11-06 경인일보

[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5]# 아이들은 # 죄가 없다 -인도편

기차역 샌드위치 팔던 청년 "상한 빵이 어때서?"… 군침 흘리는 아이들에겐 먹고 탈 나도 사치하우라역 10살 소년에 배낭 맡기고 "아차!"… 안도감·죄책감 뒤로 "밀, 의심한거 정말 미안해"*하우라 꽃시장그늘이 있으면 빛이 있겠지. 세상의 금잔화를 다 모아놓은 듯한 하우라 꽃시장에선 행복만을 떠올렸다. 지상에 인도인보다 꽃을 좋아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인도에선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듯 사람이 꽃이고 꽃이 사람이다. 신을 위해서라면 가난을 팔아서라도 기어이 꽃을 산다. 인도에서는 꽃이 신(神)이다.*인도의 가난샌드위치 한 조각을 들고 인도의 어느 오후를 추억하고 있다. 기온은 40℃에 육박했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우기였으며 무갈사라이 역에서였다. 하우라역을 출발한 기차가 인도 최북단 역 쉼라까지는 20시간 이상 남았고 나는 배가 고팠다. 안내방송도 없이 기차는 섰고, 사람들은 우루루 차 밖으로 나가 먹을거리를 사느라 분주했다. 이때다 싶어 나도 기차에서 내렸는데 눈에 들어온 건 청년이 파는 샌드위치였다.나는 샌드위치 두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바깥바람을 조금 쐬고 자리로 돌아와 포장을 열자 확 달려드는 곰팡이 냄새. 알록달록해야할 속이 짙은 녹색을 띠고 있었다. 후다닥 기차에서 내려 빵장수를 찾아갔다. 상한 빵을 팔면 어쩌냐고 환불을 요구했지만 청년은 딴청을 피며 '이 빵이 어때서?' 하는 표정으로 시간을 끌었다. 주변에는 금세 아이들이 몰려와 까만 눈망울을 굴렸다.기차는 출발신호를 알리는데 빵장수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해 억울했지만 어쩌랴, 문제의 샌드위치를 빵장수가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던지려던 바로 그때, 한 소년이 풋볼선수가 공중으로 날아 공을 낚아채듯 몸을 날려 내 손에 든 샌드위치를 빼앗아 바람처럼 달아났다. 어떻게 손을 써볼 수도 달려가 빼앗을 수도 없는 아주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른들의 무책임으로 생긴 그들의 가난,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 기차가 곧 떠나리라는 걸 빵장수가 알고 있듯 아이들은 누가 그 빵을 사든 자신들에게 돌아오리란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빵을 포기함으로써 한 아이는 먹을거리를 얻었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어쩔 것인가. 그 빵을 먹고 탈이라도 난다면 하는 생각조차도 그 순간만큼은 사치였다. 다만 침을 삼키며 놓친 빵을 아쉬워하던 아이들을 보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던 감정들, 그날 이후 한동안 나는 샌드위치를 멀리했다. 샌드위치만 보면 그때의 눈망울이 떠오르고 곰팡이 냄새가 솔솔나는 그 칙칙하고 습했던 인도기차역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나무그늘에 앉아 커피를 곁들여 샌드위치를 먹고 있다. 이거 다 인도가 그립고 여행 가고 싶은 가을바람의 유혹 때문이다. *밀, 미안해나 홀로 여행자의 애로점 중 하나는 볼일이 급하거나 물 한 병이 필요해도 큰 배낭을 내 몸처럼 지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28시간의 기차여행을 마치고 하우라역에 도착한 나는 사람들이 우르르 역을 빠져나간 뒤 머리를 식힐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고 화장실이 급했다. 때마침 빈병을 줍는 아이들이 대여섯 있었는데 그 무리에서 제일 작은 아이는 10살쯤 된 소년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기차가 떠난 철로에서 빈병을 줍거나 내 주변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거나 10루피를 외치기 바쁜데 녀석은 달랐다. 이 방면에 초보인 것이 분명했다. "왜요? 도움이 필요한가요?" 녀석의 눈빛이 내 시선을 관통했다."이름이?" ..."밀이에요, 밀," "밀, 나 화장실이 급한데 배낭 좀 봐줄래?"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급했던 터라 밀에게 배낭을 맡기고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시원하게 일을 보고 일어나려던 그때 내 뒤통수를 내리치던 생각, 아차,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그곳이 인도라는 걸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허겁지겁 배낭이 있던 곳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 머릿속은 배낭과 밀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그림으로 가득 채워졌다. 불안은 급물살을 탔지만, 상상이 기우이기를 바라는 맘도 그 못지않았다. 많은 인파를 헤치고 역사 기둥을 돌아서자 저만치 밀이 해맑은 미소로 손을 흔들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때 나를 엄습하던 안도감과 죄책감, 내 배낭을 지키느라 빈병 줍는 시간을 빼앗겼지만 불평은커녕 행복한 미소를 넘치도록 안겨주던 밀. 밀과 나는 서로 공평한 존재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린 서로 생각이 달랐던 것, 이제야 고백하지만 나는 서둘러 밀과 밀의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고 돌아서는데 낯이 화끈거려 미칠 것만 같았다. "밀, 착한 널 의심한 거 정말정말 미안해!"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하우라 새벽 꽃시장의 이모저모(저 모든 꽃은 신에게 바쳐질 제물들이다). /김인자 시인 제공하우라 새벽 꽃시장의 이모저모(저 모든 꽃은 신에게 바쳐질 제물들이다). /김인자 시인 제공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칸첸중가 산이 보이는 다질링 마을의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인도의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인도의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인도의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다질링 마을의 아이. /김인자 시인 제공내 가방을 지켜준 소년 밀. /김인자 시인 제공신이 아닌 게 없는 나라 인도, 인도에선 낙타에게도 꽃장식을 한다. 낙타를 타고 즐거워하는 인도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

2017-10-30 경인일보

[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4]# 춤추는 # 사하라의 노마드들 -모로코 편

모래산 오르다 허리 다쳐 베두인 가족 천막에 불시착 '나를 위한 즉석 파티'사막의 바람을 몸에 두르고 팔짝팔짝… 불행·슬픔 따위 단어가 있을까?페스의 무두공장 열다섯 안팎 소년들 사진 찍어 달라며 '헤이, 헤이!'아이들에 새겨진 주홍글씨·감독의 야비한 눈빛… 구토 유발 '잔인한 현실'*무두공장의 아이들그날은 사막투어를 마친 메르조가에서 지프로 9시간을 달려 페스에 도착했고, 신시가지보다는 성 안쪽 메디나 구시가지에 숙소를 정한 건 중세 분위기에 젖어보고 싶어서였다. 며칠 씻지 못한 한을 풀기라도 하듯 짐을 부려 놓고 나는 욕실로 들어가 한바탕 물과 씨름을 했다. 사막에서 따라온 황색모래와 먼지들이 물에 씻겨 욕조바닥에 쌓였다가 하수구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무거운 머리와 고단했던 몸은 여행 첫날처럼 맑아져 새로운 힘이 서서히 몸으로 깃드는 것을 느꼈다. 이 얼마나 고마운 회복인가. 다음 날 나는 그렇게 보고 싶었던 무두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이가 열다섯 안팎 되어 보이는 너댓 명의 아이들이 '헤이, 헤이!' 서로 사진을 찍어달라며 부르기에 기다리면 차례가 올 거라고 말해 주었다. 바로 앞에서 허리가 굽은 노인이 파란 통 속의 가죽을 문지르고 꺼내는 작업을 지켜보느라 아이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힘든 무두질을 하기엔 터무니없이 늙은 노파였다. 딱 한 번 노인과 눈이 마주쳐서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노인은 무표정하게 통속으로 얼굴을 처박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의 굽은 등이 내 가슴을 무너지게 만들었고 튼튼한 내 하체를 후들거리게 했다. 노인을 보고 돌아서자 그때서야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세상에서 내가 경험한 악취 중 가장 지독한 악취가 무두공장의 악취라는 걸 나는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구덩이(피트 pit)에 색깔별로 가죽을 옮겨 담고 일일이 손으로 분리하고 발로 밟는다. 한 번 무두공장에 발을 들여놓으면 평생 나갈 수 없다던 야비한 눈빛을 가진 감독에게 은근 부아가 치밀었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눈을 부릅뜬 현실이 아니던가. 인도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시체를 태우거나 청소 일을 하는 사람을 불가촉천민이라지만, 페스 테너리(무두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은 성년이 되기도 전 불가촉천민 그 이하의 신분을 주홍글씨처럼 새기며 산다고 한다.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린가. 아이들은 감독의 눈에 들면 하루 1달러 정도를 받는다는데 주로 여행자들이 사진을 찍으며 주는 팁조차도 감독이 착복하고 일부가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고 했다. 대체 누가 저 아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악취가 심한 무두공장으로 등을 떠밀었을까. 나는 테너리에서 아이들과 이야기 하느라 온갖 짐승의 살갗이 썩는 악취에 1시간 정도 노출되었을 뿐인데 몸이 이상증세를 보였다. 머리가 아프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 놋쇠 키로 문을 열고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변기에 얼굴을 박고 토하기 시작했다. 거무튀튀한 가래 같은 건더기들이 창자를 훑고 나와 변기 속 하수구로 흘러갔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내 몸의 구멍을 통해 빠져나온 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겨를이 내겐 없었다. 세 번째 무두공장을 찾아간 후였다. *어린왕자가 있는 사막해질 무렵 나는 노을을 등에 업고 무함마드가 이끄는 낙타를 타고 사하라사막 깊숙이 들어갔다. 지상에 오직 하늘과 모래 뿐인 사하라에 서보는 것, 오랜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여행자를 위한 천막 숙소에는 베두인가족이 손님을 맞고 있었는데 그 중 넷은 아이였다. 그날 밤 나는 황홀경을 주체할 수 없어 모래산을 오르다 허리가 삐끗하는 바람에 불시착한 어린왕자처럼 사막에 주저앉고 말았다.다음날 함께 밤을 보낸 여행자들은 이른 아침 서둘러 호숫가 캠프로 돌아가고 나는 태양을 피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천막 그늘에 앉아 있었다. 한낮 온도계 눈금이 60℃에 접근하자 드디어 사막다운 사막에 혼자가 되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빈 모래사막에 둥둥둥 북이 울렸다. 아픈 내가 우울해 보였는지 천막청소를 하러온 그녀가 일을 멈추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즉석에서 벌어진 파티였다. 작은 아이가 엄마를 따라 몸을 움직이며 두 팔을 벌려 내 주위를 빙빙 돌고, 둘째 아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익숙한 몸짓으로 북을 두드렸다. 입을 가리고 호호호 웃던 큰 딸은 설거지를 하다말고 끼어들고, 어린왕자를 연상하게 하는 막내는 하늘에 닿을 듯 겅중겅중 뛰며 기분이 좋아보였다. 저 노마드들에게 '불행' '우울' '슬픔' 따위의 단어가 있기나 할까 싶은 아침, 그들의 웃음소리가 맑은 하늘에 퍼지고, 아이들은 사막의 바람을 몸에 두르고 팔짝팔짝 뛰고 굴렀다. 흩어져 있던 고양이가족들이 모여들고 염소와 노새도 춤판을 기웃거렸다. 어디선가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렸다. 어느새 그들을 따라 나도 신바람이 나서 손뼉으로 추임새를 넣다가 아픈 허리를 부여안고 배꼽이 빠져라 웃고 있을 때 수줍어서 도무지 곁을 주지 않던 막내도 드디어 내 품에 안겨왔다. 까만 볼이 홍당무가 된 녀석의 뺨을 살며시 보듬어 주었다. 평화로웠다. 여기서 더 무엇을 바라랴!/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사하라 사막 풍경. /김인자 시인 제공수많은 구덩이가 있는 무두공장 풍경. /김인자 시인 제공지독한 악취가 나는 구덩이(피트). /김인자 시인 제공힘든 일을 하면서도 그들은 늘 웃는다. 하루치 빵을 위해 1달러를 위해. /김인자 시인 제공무두장이 노인. /김인자 시인 제공온가족이 춤을 추자 작은 아이가 천막 안에서 북을 가지고 나와 두드렸다. /김인자 시인 제공페스 골목 풍경. /김인자 시인 제공사하라 사막 가는 길, 여행자들을 위한 현지 아이들의 즉석 연주. /김인자 시인 제공가축들에게 남은 음식을 주는 베두인 소녀. /김인자 시인 제공

2017-10-23 경인일보

[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3]# 5백원으로 살 수 있는 # 여행자의 행복 - 베트남 편

있지도 않은 모자 팔겠다는 고집뒤에 12살 가장 '하잉'의 간절한 삶의 무게… "미안해, 정말 미안해"베트남 도시 벗어나면 소수민족 '그들만의 의상' 입어… 흐몽족·자오족·후라족 모인 장마당 전통의상 파티장 온듯뺨이 노을처럼 발그레한 계집아이들은 남루한 옷차림에 더러는 맨발이다. 직접 산으로 들로 헤매며 꺾어 만든 꽃다발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밥도 되고 학교도 되고 연필도 된다고. 물론 대부분의 여행자에겐 귀찮은 존재들이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기쁨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아는 이는 안다.*꽃 사세요!"꽃 사세요!" 이처럼 정다운 말이 또 있을까. 아침나절, 짙은 안개 사이로 계단식 논이 그림처럼 펼쳐진 복사꽃 만발한 산길을 홀로 걷고 싶었지만 잊을 만하면 고갯마루에서 몽족 아이들이 나타나 말을 걸어왔다. 여행자들을 쫓아다니며 시들기 전에 꽃을 팔아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꽃을 사들고 숙소에 도착할 때쯤이면 반쯤 시들어 병에 꽂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상태가 되지만 다음날 산책에서 돌아올 때면 늘 비슷한 꽃이 내 손에 들려져 있곤 했다. 나는 아이가 시든 꽃을 버리고 하루 장사를 망쳐 실망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걸 바라볼 용기가 없었던 게 아니라 매일 아침 내가 내 자신에게 꽃을 바치는 작은 의식이 축복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많은 나라 오지 아이들로부터 나는 꽃을 선물로 받아왔다. 거기엔 무언의 조건이 붙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럴 때마다 대부분 사탕이나 볼펜 하나로도 흡족해했다. 사파 아이들의 그 꽃값은 우리 돈 5백원 정도, 흥정을 잘하면 단돈 백원으로도 살 수 있고 반대로 천원을 줄 수도 있지만 나는 저들이 정한 5백원이라는 금액이 적정액이라 믿는다. 사파에서의 날들뿐 아니라 아침마다 단돈 5백원이면 살 수 있는 행복이 세상 도처에 있다는 것을 여행자가 아니었으면 나는 몰랐을 거다. 여행이 행복한 이유다.*해줄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구나사파에서 며칠을 보내고 박하로 이동했다. 꽃몽족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박하는 제법 큰 마을이지만 오토바이로 한나절을 가야 하는 '꼭리'와 '깐꺼우'는 베트남 북부에서도 오지 중 오지다. 도착 첫날 한 소녀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여행자들에게 작은 주머니를 파는 수줍음 많은 아이였다. 아이가 내게 주머니를 내밀며 1달러를 외쳤을 때 나는 거절했고 다른 아이가 들고 있는 모자에 눈길을 주었다. 그 아이가 곁으로 다가와 조용히 거래를 청했다. "내 모자를 팔아주세요. 네?" "무슨 소리야, 넌 주머니만 있잖아." "지금은 모자가 없지만 내일은 저것보다 예쁜 모자를 가져올 수 있어요." 나는 아이의 눈빛이 하도 간절 하길래 그럼 내일 한 번 모자를 보자고 했다. 다음날 아이는 같은 시간에 박하시장을 떠돌며 물건을 팔고 있었다. 우린 또 눈이 마주쳤지만 아이는 다시 내일은 꼭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뭔가 속는 기분이 들었지만 아이의 눈빛을 외면할 수가 없어 장난삼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다음 날은 떠날 예정인 터라 그날 오후 나는 걸어서 옆 마을로 산책을 나갔다. 그 마을에서 가장 작고 초라한 움막 앞에 난장에서 있지도 않은 모자를 팔아달라던 소녀가 서있었다. 넷이나 되는 동생들과 함께. 묻지 않아도 그곳이 아이의 집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이의 안내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섰을 때의 실내풍경을 잊지 못한다. 왜소증인 아이의 엄마가 어둑한 실내에서 열심히 모자에 손수를 놓고 있는 게 아닌가. 엄마는 몽족과 흐몽족 전통의상과 가방과 모자를 짜고 그것이 완성되면 아이가 나가서 팔아 생계를 잇고 있었던 것이다. 장마당에서 내가 모자에 관심을 보이자 엄마에게 부탁해 재봉질을 하고 손수를 놓기 시작했다는 모자가 거의 완성을 보였다. 그때서야 나는 아이가 있지도 않은 모자를 팔아 달라 간청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는 친구들처럼 학교에도 갈 수 없는 12살 소녀 가장이었던 것. 그때서야 궁금해졌다. "이름이 뭐니?" "하잉, 하잉이에요." 이렇게 예쁜 이름이 있었구나. 너무 늦게 이름을 물어봐 얼마나 미안했는지. 나는 하잉이 엄마가 모자를 마무리할 때까지 곁에서 실밥을 잘라주며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내가 자리를 일어날까봐 그랬는지 아이는 내 눈치를 살피며 차 한 잔을 끓여주었다.나는 아이의 마음씀씀이가 기특해 등을 토닥이며 "하잉,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해 줘서 고맙구나. 내가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라고 입속말로 속삭였다. 그날 나는 블랙 몽족이 입는 재킷과 가방과 모자와 지갑을 부르는 가격, 딱 그만큼을 더 얹어 사고 말았다. 모처럼 내 배낭은 무게를 더했지만 그때 산 모자는 친구에게 선물로 주고 재킷과 가방은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다. 몽족 재킷을 입고 거울을 보면 하잉의 얼굴이 떠오른다. 많이 자랐을 것이고 여전히 가장노릇을 하고 있을 하잉. *소수민족 '그들만의 의상'베트남 하면 아오자이가 연상되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소수민족은 각기 다른 그들만의 의상을 입는다. 검은색 계통의 의상을 고집하는 블랙 몽족을 비롯해 흐몽족(화몽족), 자오족, 자이족, 후라족, 타이족들이 각기 그들만의 문화를 고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의상으로 어느 부족인지를 안다고 한다. 장마당은 마치 전통의상 파티장 같다.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소수민족 어린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사파시장에서 만난 기념품 파는 소녀 하잉.박하 장에 나온 흐몽족 여인들.여행자들을 상대로 야생화를 파는 블랙 몽족 소녀들(사파).베트남 오지마을.사파거리에서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깐꺼우 시장 사람들.

2017-10-16 경인일보

[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2]#신은 #빈 콜라병을 #누구에게 주기를 원하실까-남미 페루편

쿠스코 근교 피삭 가는 길에 양치기 소년들과 유쾌한 잉카식 공기놀이 '추억'이색적 난장 풍경에 흥분해 엎어진 나를 보고 킬킬대는 아이들… 장마당은 금세 웃음바다로마추픽추 구불구불 산길 관광버스가 돌때마다 각 나라말로 '굿바이!' 외치는 소리, 머지않아 사라지겠지…우리는 처리 곤란한 쓰레기로 취급하는 빈병인데 그들은 오로지 그 병 하나를 얻기 위해 추운 산길을 슬리퍼 차림으로 서너 시간을 걸어 그곳까지 온다고. 그럼에도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고 나중에 물어보니 빈병 하나면 사탕 5개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굿바이 소년에게 준 빈 콜라병 마추픽추의 거점 마을 아구아깔리엔떼에 숙박을 정하고 3일 동안 마추픽추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4일은 잉카트레일을 추위와 고소를 적응하며 발이 아프도록 걸었다. 잠은 게스트하우스와 텐트를 번갈아 가며 해결했지만 식사는 요리사가 동행해 주었다. 하루는 저 멀리 야마가 풀을 뜯고 있는 민가가 없는 외딴 길을 걷고 있는데 고개 마루에서 페루(잉카)의 전통의상 숄과 폰쵸(판초)를 입고 전통언어인 케추아어를 쓰는 소년 몇이 우리 일행을 따라오며 환영인사로 말을 걸어왔다. 그때 각기 다른 나라 여행자 5명이 팀을 이루어 걷고 있었는데 소년은 나를 보더니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때 가이드의 설명이 없었으면 그들이 그 전설의 굿바이 소년이라는 걸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마추픽추로 오르내리는 험로에서 그들을 보지 못해 섭섭했는데 잉카트레일에서 그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생각해 보면 그 또한 행운이다.소년들은 여행자들이 음료수를 마시고 난 후 버리는 빈병을 얻기 위해 그곳을 지킨단다. 물론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어서 나는 이미 몇 소년 중 누구에게 빈 병을 줄 것인지를 마음으로 정한 후였다. 나는 콜라를 반 쯤 마시고 가장 어린 꼬마에게 병을 건넸다. 녀석은 '그라시아스(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새처럼 날아 순식간에 저만치 사라져갔다. 다음 날은 다른 아이들이 산마루에 나타났다. 우리는 처리 곤란한 쓰레기로 취급하는 빈병인데 그들은 오로지 그 병 하나를 얻기 위해 추운 산길을 슬리퍼 차림으로 서너 시간을 걸어 그곳까지 온다고. 그럼에도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고 나중에 물어보니 빈병 하나면 사탕 5개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빈병을 주기 위해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콜라나 환타를 자주 사게 되었고 반드시 반은 남겨 아이들에게 돌려주곤 했다. 그건 오로지 빈 병 하나를 얻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그들의 미소를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피삭 장날나는 다시 기차를 타고 아구아깔리엔떼를 출발, 산페드로를 거쳐 잉카의 옛 수도 쿠스코로 돌아와 짐을 풀었다. 고도가 높아 이틀은 빛이 잘 드는 게스트하우스에 시체처럼 누워 창밖으로 종달새처럼 지저귀는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려도 마른 빵을 뜯거나 코카차를 마시며 꼼짝 않고 침대를 지켜야만 했다. 사흘 후 기운을 차려 나는 쿠스코 근교 고대 유적지가 있는 피삭가는 길에 양치기 소년들을 만나 그들의 께냐(안데스 피리)소리도 듣고 잉카식 공기놀이를 하며 한나절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우루밤바 계곡에서 상승기류를 타고 콘도르가 솟구쳐 오르는 산 중턱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마침 그날은 피삭의 장날이었다. 장마당은 마법처럼 흥미로웠다. 모자에 멋진 생화로 장식을 하고 붉은 숄을 걸친 잉카의 여인과 아이들, 그들이 감자와 울긋불긋한 채소를 이고지고 와 난장에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풍경은 충분히 이색적이었다. 나는 마음이 살짝 흥분되어 장마당을 돌아보다가 발아래 보퉁이에 걸려 감자바구니 위로 보기 좋게 엎어지고 말았다. 뒤에서 그걸 지켜보던 아이들이 킬킬대는 소리가 귀를 간질이고 장마당은 금세 나로 인해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때 한 아이가 다가와 바닥에 엎드려 있던 내게 손을 내밀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난 그 작고 따듯한 손을 잊지 못한다. *마추픽추오랫동안 세계 7대 불가사의 자리를 지켜왔고,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으며 잉카인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써 '공중도시' 혹은 '읽어버린 도시'라 칭하는 마추픽추는 페루 안데스 산맥에 위치해 있으며 형성 시기는 1460년~1470년대로 추정된다. '늙은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마추픽추는 잉카인들이 스페인의 침략을 피해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산정에 도시를 건설하고 복수할 기회를 기다렸지만 16세기 어느 날 그들은 마을을 불태우고 깊은 산 속으로 사라졌다. 항간에는 괴질로 전멸했다는 설도 있으나 왜 더 깊은 산속으로 사라졌는지,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모두 어디로 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 *굿바이 소년잉카인의 후손으로 마추픽추를 돌아보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내려오면 돌계단으로 된 지름길(좁은 돌계단)을 달려 내려와 차가 돌 때마다 각 나라말로 '굿바이!'를 외쳐주고 팁을 받는 소년들이지만. 지금은 국가에서 이미지 쇄신을 위해 방학 때 한시적으로만 이 일을 하도록 허락하여 예전처럼 늘 만날 수는 없다. 마추픽추가 그러하듯 굿바이 소년도 머지않아 전설이 될 거라니 왠지 아쉬움이 크다.*잉카트레일천 년 아니 그 이전부터 있었다는 잉카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36㎞를 3박4일 동안 걷는 코스인데, 여행상품을 이용하면 전문 가이드와 포터가 동행하여 길안내, 숙식, 짐 등을 해결해준다. 그러나 말 그대로 트레킹인 만큼 4천m가 넘는 험한 고지대를 본인의 두 발로 직접 걸어야 하므로 고소증과 추위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모자에 생화 장식으로 한껏 멋을 부리고 피삭 장에 온 아이. /김인자 시인 제공빈병을 기다리던 굿바이 소년. /김인자 시인 제공잉카 여인과 아기. /김인자 시인 제공양치기 소년들. /김인자 시인 제공피삭 장에서 만난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이렇게 어린 소녀가 기념품을 파는 경우는 흔하다. /김인자 시인 제공유적지에서 1달러를 외치던 아이. /김인자 시인 제공위 쪽에서 바라본 신비의 공중도시 마추픽추 전경. /김인자 시인 제공안데스 고원의 양치기 소년. /김인자 시인 제공잉카의 전통복장을 입고 유적지에서 여행자를 상대로 물건을 파는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

2017-10-09 경인일보

[경인일보 창간 72주년 특별기획]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 프롤로그

아이들 위한 여행 아직도 진행형나눔으로 보답받는 미소의 '가치'밥이 곧 경전, 삶 그 자체 깨달아배낭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90년대 초, 나 역시 경험자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인도로 갔다. 최악의 그림을 예상했지만 다음 날 새벽, 오물이 널린 올드 델리 골목에서 어른과 아이가 섞여 잠든 모습을 보며 지상에 지옥이 있음을 확인했달까. 겨우 인도에 도착한 지 몇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 집을 나서기 전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은 까맣게 잊고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길에서 노인이 끓여주는 짜이(밀크 티)를 마시며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얼마 후 이성을 되찾았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아이들이 따라다니며 외치는 '아임 헝그리'는 피할 수가 없었다. 사흘을 올드 델리에서 보내고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순례니 기도니 내가 품고 있던 그럴 듯한 화두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때 언뜻 생각했던 것이 몸이든 영혼이든 자유로워야 하는 게 여행이지만 혹여 목적이 있어야 한다면 '아이들을 위한 여행을 하자'였고, 여행생활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그것은 진행형이다. 한때 내 꿈은 세상 배고픈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나누는 것이었다. 허기를 참지 못해 음식을 훔치고 약탈하고 심지어 시체 주머니를 뒤져가면서 동전을 찾는 아이들에게 도둑이라는 이름을 씌우는 것은 부당하다. 첫 인도 여행에서 내가 거리의 아이들에게 나눈 밥은 200인분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 시간들이 얼마나 보람되었는지,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거리의 아이들이 밥접시를 들고 나를 향해 날려주는 미소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깨닫게 되었으니까. 내가 첫 인도 여행에서 배운 건 '밥이 곧 경전이고, 삶 그 자체라는 것, 현실에서 내가 느끼는 우울감이나 욕망은 과한 잉여 때문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 일을 계기로 나의 밥 나누기는 조용히 세계오지로 뻗어나갔고 히말라야 아이들과 아프리카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여행을 통한 이 시도는 언제까지 인간의 일을 신에게 맡길 수만은 없다는 것이었고, 이번 연재의 초점을 '세계의 아이들'로 맞춘 것도 그런 이유다. 모처럼 경인일보 독자들께 인사를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내가 아니고 우리일 때 풍요로워지는 지구별-천사들의 얼굴에서 행복을 만나요 아이들이 속삭여요. "어른들이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해 질 수 있어요." 우리는 이 아이들과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나요. 왜 우리는 잊었을까요. 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세요. 한 아이가 눈부시게 바스라지는 햇살 같은 웃음을 세상에 뿌리고 있는 것을. 우리 품에서 웃고 있는 아이처럼. 지금 우리 아이의 웃음이 바람처럼 날아가 저 건너 아이들의 얼굴을 간지럽히고 있을지도 몰라요. 이제 귀 기울여 보아요. 이 아이들의 가녀린 숨소리를, 그 희망의 노래를. 그래요. 이 아이들이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에요. 무언가를 손에 쥐어주지 않아도 돼요. 따뜻한 당신의 마음이 중요해요. 우리는 그렇게 마음을 나누는 '동행'이에요. 글/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사진/김인자 시인

2017-09-28 경인일보

[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 세상의 아이들·1]#누가 #누구를 #용서하나요-아프리카 말라위편

아프리카 말라위 아말리카 시골학교, "마담, 용서해 주세요. 이 아이는 돈을 훔치고자 했던 게 아니라 꽃무늬가 그려진 예쁜 주머니(지갑)가 너무 갖고 싶었다네요."여행자라면 바보가 되는것도, 상심을 행복으로 바꾸는 것도 이렇게 간단하다.내가 아프리카에서 배운 건 낙천성이다. 태어나 한 번도 신발을 신어본 적 없고 벌거벗은 몸으로 빵을 구걸하면서도 아이들은 우울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주면 좋겠지만 주지 않아도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어요'아니면 '당신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어요'다.처음 보는 여행자에게 악수를 청하고 볼록 튀어나온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거나 신나는 노래로 환영인사를 한다. '하쿠나 마타타, 하쿠나 마타타'그들이 늘 흥겹고 즐거우니 여행자인 내가 불편할 일이 없다. 함께 놀고 함께 먹고 함께 손잡고 가는 것, 인류가 하나라는 걸 자각하는 것, 여행은 그런 것이 아닐까.■#누가 #누구를 #용서하나요*하쿠나 마타타(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아프리카 말라위 아말리카, 시골학교에 듣도 보도 못한 동양인 여자가 나타났다면 학교 전체가 술렁이고도 남을 일이다. 그걸 익히 아는 나는 학교를 방문할 땐 되도록 수업을 방해하지 않으려 신경을 쓰는데, 그날은 쉬는 시간이라 여느 때처럼 순식간에 아이들이 나를 에워쌌고 팔을 뻗으면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매달리곤 했다. 수십 명 아이들 속에 둘러싸여 있을 때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가리키며 날더러 뭐라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런데 친구의 지목을 받은 아이 눈빛이 금세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아 '뭐지?' 하며 다가가자 한 손을 뒤로 감추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아닌가. 주변 아이들 시선이 일제히 그 아이를 향했고,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뒤로 감춘 아이의 손에 신경이 쓰였다. "어디 볼까?" 놀란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며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게 내밀었다. "이게 왜 네 손에 있는 거지?" 알고 보니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내 조끼 주머니에 있던 잔돈 지갑을 슬쩍한 모양인데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는 지갑이 사라졌는지 자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조금 후 선생님이 등장했을 때 일이 커질까봐 노심초사 했으나 그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아이들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선생님이 내 손에 든 천지갑을 가리키며 하는 말, "마담, 용서해 주세요. 이 아이는 돈을 훔치고자 했던 게 아니라 꽃무늬가 그려진 예쁜 주머니(지갑)가 너무 갖고 싶었다네요."용서라니, 누가 누구를 용서한단 말인가, 훔친 자보다 잃은 자의 죄가 더 크다는 말은 맞다(그 아이는 훔친다는 개념조차 몰랐을 지도 모른다). 일이 크게 벌어질까봐 걱정했으나 지혜로우신 선생님은 다행히 내 앞에서 아이를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조금 후 분위기가 수습되자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가고 나는 운동장에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아이를 다시 만났다. "아깐 놀랐지? 미안해, 놀라게 해서, 난 괜찮아, 그러니까 이거 받아." 원래 주인이 아이였던 것처럼 현금을 빼고 꽃무늬 천지갑에 사탕 세 알을 넣어 아이에게 돌려주었을 때, 주변 또래 친구들이 한껏 부러운 눈초리로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내 가방에 있던 사탕봉지는 금세 동이나 버렸고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아이의 얼굴엔 햇살 같은 미소가 번졌다. 나는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를 토닥이며 안아주고는 천천히 팔을 풀었다. 조금 자란 까칠한 머리카락이 내 가슴을 찔러왔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이가 까만 비닐봉지(책가방을 대신한)를 품에 안고 반대방향으로 멀어져 가며 내게 조가비 같은 손을 흔드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붉은 흙먼지를 피우며 신작로를 가로 질러 갔다. 그날 밤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나 따라 해봐요 이렇게"떠돌다 보니 여행도 일상 같아 정주자의 안락과 유랑자의 비애가 서로 닮았다는 걸 조금은 알 것 같다"는 메시지를 받던 날, "늑대가 온다고 소리칠 때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되지 않을까요?" 어느 광고카피가 생각난 건 왜일까. 30시간이 넘는 버스여행을 마치고 겨우 도착한 마을에서의 첫 밤. 온몸을 모기에 뜯기고 다리의 상처는 어느새 덧나버렸다. 나는 말라리아가 걱정되었고, 이 몸으로 얼마나 여행을 지속할 수 있을까 회의감으로 치를 떨던 날, 설상가상 길에서 손지갑을 잃어버렸다. 어디에 맘을 기대야 할지 난감했다. 나는 희미하게 깜빡거리는 잔량의 에너지를 속수무책 바라봐야만 했다. 하늘은 비를 뿌렸고. 좁은 골목을 얼마나 서성거렸을까. 마음 어둡고 몸 무거운 그때 짠하고 나타난 동네 개구쟁이들."무엇이 걱정인가요? 나 따라 해봐요. 이렇게!" 어이가 없어 피식 웃어버렸고 웃는 사이 걱정은 사라져 버렸다. 여행자라면 바보가 되는 것도 상심을 행복으로 바꾸는 것도 이렇게 간단하다. 아프리카 말라위에서/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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