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리얼리티

 

[판교 리얼리티-성공, 그 이후]게임콘텐츠특구·AI클러스터… '지속성장 밑그림' 쏟아진다

성남시, 규제완화로 문화축제 활성道, 글로벌 스타트업 허브화등 전략경기남부권TV 동반발전안은 '미흡'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끄는 중심지로 거듭난 판교테크노밸리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청사진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다만 판교의 지속 성장이 경기남부 테크노밸리 전반의 동반 성장을 촉진한다기 보다는 '판교의 더 큰 성공'으로만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판교를 품고 있는 성남시는 지난 6일 이곳을 '게임·콘텐츠 문화특구'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특구가 되면 게임업체들에 적용되는 규제가 완화되는 한편 이곳에서 게임 축제·문화 행사 등을 진행할 때 도로 점용도 가능해진다. 옥외광고물에 대한 제약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판교테크노밸리에 다수 입주한 게임업체들에 활력을 불어넣고, 이곳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야간·주말 상권 공동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다. 3월부터 기본계획을 마련, 6월에 중소벤처기업부에 특구 지정을 신청할 예정이다.경기도에서 판교테크노밸리를 총괄하는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에선 이곳을 AI클러스터로 거듭나게 한다는 방침이다. AI 관련 산업체·연구기관 등을 집약한 공간으로 조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끄는 중심지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히 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와 관련 김기준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판교테크노밸리를 대한민국 최고의 혁신 중심지로, 글로벌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AI 클러스터로 만들어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그에 앞서 경기도는 올해 미국 테크스타스 등 세계적인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 기관·기업)가 판교에 입주하는 것을 계기로 이곳을 국내 스타트업의 세계 시장 진출 허브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기도 했다.총선과 맞물려 판교의 지속 성장을 위한 안이 꾸준히 제시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판교의 성공이 다른 지역 테크노밸리의 동반 성장으로 이어지게끔 하는 방안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모두 판교·광교·안산 등으로 이어지는 첨단연구개발벨트를 조성, 시너지 효과를 창출케 해 경기남부를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혁신 클러스터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각 밸리간 연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진 않고 있다는 얘기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2020-01-16 강기정

[판교 리얼리티·(4·끝)유산]첨단산단 그후… '3기 신도시' 성공의 가늠자

접근성·목적의식·집적효과·재투자 '성공공식''3기' 자족시설용지 판교 8배… 공급과잉 우려"서울 마곡·성남 판교이외 성공사례 거의 없어"올해부터 입주기업 '전매제한' 본격적 해제시세 크게 뛰어 '테크노밸리 생태계' 변수로10년뒤 업종제한도 풀려… '자생' 모색할때# 포스트 판교는 실현될 수 있을까판교의 성공은 신도시의 희망이 됐다. 판교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이후 등장한 신도시들은 하나같이 '자급자족'을 목표로 첨단산업단지를 유치하고자 했고 그 노력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들의 기대만큼 판교 이후 신도시는 '포스트 판교'가 될 수 있을까.제3기 신도시는 남양주, 하남, 인천, 고양, 부천, 과천이다. 판교가 힘겹게 정부와 싸워 '벤처산단용지'를 얻어냈던 과거와 달리, 이제 3기 신도시는 '자족시설용지(벤처기업 집적시설·소프트웨어 연구소·일반업무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한 업무지역)'가 처음부터 계획됐다. 용지 규모만 보더라도 그 기대감이 얼마나 큰지 쉽게 알 수 있다.남양주 왕숙(140만㎡)·하남 교산(92만㎡)·인천 계양(90만㎡)·고양 창릉(135만㎡)·부천 대장(68만㎡) 모두 판교 테크노밸리(66만㎡)보다 넓은 면적의 자족시설용지를 가지고 있다. 과천은 신도시 대상 부지에 자족시설용지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과천 지식정보타운(22만㎡)과 가깝다. 3기 신도시의 자족시설용지를 모두 합한 면적은 525만㎡인데 판교의 8배 가량이다. → 그래프 참조여기에 기존의 광명·시흥테크노밸리(202만㎡), 일산테크노밸리(85만㎡), 구리·남양주테크노밸리(22만㎡), 양주테크노밸리(30만㎡)가 조성 중이고 판교에는 제2테크노밸리(43만㎡)와 제3테크노밸리(58만㎡)가 후속으로 조성 중이다. 이들 테크노밸리를 모두 합하면 여의도 3개를 합친 면적에 달한다. 과연 이들 신도시의 계획대로 자족시설용지 모두에 판교처럼 빽빽하게 규모 있는 기업을 유치할 수 있을까. 3기 신도시의 계획이 확정되기 전부터 의문부호가 제기되는 건 이른바 공급과잉이 우려되기 때문이다.이상후 전 LH부사장은 "첨단산업단지라는 이름으로 수도권에 우후죽순 업무지구가 들어서고 있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LG그룹이 이전한 서울 마곡지구와 성남 판교외엔 (첨단산업단지) 성공사례가 없다. 앞으로도 서울과 인접한 과천지식정보타운 정도만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신도시가 성공하려면지금의 판교는 공식이 존재한다. 첫째, '뛰어난 서울 접근성'이라는 장점이 특출났다. 우리가 만난 판교 기업인과 직장인 대다수가 서울 강남과 가깝다는 것을 최고의 성공비결로 꼽았다. 둘째, 판교는 이 장점을 무기로 '자급자족' 도시 건설의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었다. 특히 경기도와 성남시가 판교 개발의 주체가 됐고, '서울 위성도시'로 밀어붙이는 정부의 도시개발을 막아냈다. 이는 지자체가 당시 산업 수요를 정확히 분석하고 예측했고, 정부에 주도권을 뺏긴 채 진행된 1기 신도시 정책에 대한 뼈 아픈 반성에서 비롯된 결과다.셋째, 산업단지를 분양할 때 다양한 정책을 구사해 '초기 집적효과'를 탄탄하게 다졌다. '업종제한'과 '전매제한'을 통해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투기세력을 강하게 견제했다. 또 대기업에는 적절한 임대정책을, 중소기업에는 컨소시엄 구성을 통해 입주가 가능하도록 문호를 열어주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어우러진 초기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특히 도시개발의 주체가 돼야 할 지자체가 개발정책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자칫 '투기'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는 판교와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인천 테크노파크 1차 산업기술단지의 사례를 보면 반면교사 할 수 있다. 지난 2001년 분양한 인천테크노파크는 15만5천㎡ 부지에 30여개 기업이 입주했다. 대부분이 인근 남동산업단지 소재 기업이 연구소 목적으로 설립한 것이다.조성원가 70% 수준으로 기업에 땅을 공급하며 입주했지만, 클러스터의 핵심인 집적효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는 분양 당시보다 지가가 20배가량 올라 입주기업들이 '재테크'만 성공했다.허동훈 인천연구원 부원장은 "중소기업이 R&D를 위해 찾는 첨단산업단지의 분양면적은 평균 100㎡ 이하인데 이보다 넓은 땅을 싼 가격에 파니까 지가 상승을 기대한 기업들이 들어왔다"고 분석했다. 저렴한 분양가는 서울 소재 기업을 이전시킬 수 있는 미끼인 동시에 첨단산업단지의 정상적인 성장을 막는 '양날의 검'이었던 셈이다. 판교와 함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서울 마곡지구 역시 저렴한 분양가가 성공의 핵심 요인이지만, 적절한 '당근'정책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어우러진 산업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허 부원장은 "판교테크노밸리는 대기업이 단독 건물을 지어 입주하고 여유 공간은 임대했다. 큰 부지를 살 수 없는 작은 규모 기업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부지를 분양받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중소기업이 어우러진 생태계를 갖추게 됐다. 마곡지구도 입주 후 5년 뒤 임대가 허용된다. 여유 공간을 분양하거나 임대할 수 있으니 (기업으로선) 마곡지구에 올 이유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곡지구 주변 지역은 면적당 약 1천900만원이었지만 마곡지구는 면적당 1천50만원에 공급해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이 많았다. 기업이 모이니 지가가 뛰어 지금은 면적당 3천만원 정도 한다.결국 적절한 정책을 통해 지가상승이 예상되는 신도시의 특성을 제대로 활용해야 초기에 많은 기업을 불러모을 수 있고 '집적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허 부원장은 기업이 투자를 펼칠 수 있게 유인책을 펴되 '최종 입주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부원장은 "판교나 마곡처럼 여유공간을 분양하거나 임대할 수 있도록 해주되, 최초에 부지를 분양받은 기업이나 기관이 개발이익을 독식하지 않고 최종적으로 지역에 입주하는 업체에게 혜택을 돌려줘야 한다. 개발초기에 최종 입주자(기업)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면 집적이 집적을 불러 클러스터가 형성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마지막 공식은 개발로 얻은 수익을 다시 판교에 재투자한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판교 테크노밸리 조성사업 공기업 특별회계'를 제정해 판교를 조성하며 분양으로 거둔 수익을 특별회계로 묶고, 특별회계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판교에 재투자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도시 발전의 지속성을 스스로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세출·세입에 따라 판교 특별회계의 자산총계는 유동적이지만 현재 5천억원 내외의 자산이 유지되고 있다. 실제로 판교는 특별회계를 통한 재투자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경기도는 민간기업이 주를 이룬 판교에 특별회계 재원 1천600억원을 투자해 글로벌 R&D센터·공공지원센터(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산학연 R&D센터(스타트업캠퍼스)를 세웠다. 이 건물을 세워 입주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저렴한 임대료의 업무공간을 마련해 스타트업에 제공했다. 이는 한 발 앞서 스타트업 시장을 선점한 셈인데, 그 덕에 판교는 현재 'IT 창업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판교의 것은 판교에게 돌려준다'는 특별회계의 취지는 향후 개발될 신도시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원칙 중 하나다.# 판교는 오늘도 진화한다10년 전매제한이 본격적으로 해제되기 시작하는 2020년은 판교의 현재가 미래에도 지속 발전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해다.과학기술용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마이다스아이티'(MIDAS Information Technology Co., Ltd)는 지난 2010년 4월 3일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SKn 테크노파크에서 판교의 세븐벤처밸리로 사옥을 이전했다. 올해 4월이면 이전 10년을 맞는 마이다스아이티는 성남시 정자동 163으로 둥지를 옮길 예정이다. 정자동 163은 인근에 네이버 사옥이 있고, 길 건너에 두산사옥이 신축 중인 '알짜배기' 땅이다. 2천832㎡ 규모의 이 부지는 시유지였으나 지난 2017년 첨단산업 부지로 마이다스아이티에 매각이 결정됐다.업계는 마이다스아이티의 이전을 판교 테크노밸리 '10년 전매제한' 해제에 따른 '기업 엑소더스'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이다스아이티를 포함해 판교에 가장 먼저 세워진 세븐벤처밸리 입주기업들이 올해부터 전매제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판교의 터줏대감인 엔씨소프트는 2023년, 넥슨은 2024년이 되면 입주 10년을 맞는다. 조성원가인 면적당 1천만원 가량에 분양받은 판교 사무공간이 현재 2배 이상 시세가 뛰어 기업이 매각을 결정할 유인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 판교 테크노밸리 생태계를 뒤흔들 대형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경기도는 내부적으로 전매제한 해제 후 약 10%의 기업이 판교를 떠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문제는 전매제한 해제뿐이 아니다. 앞으로 10년이 더 지나면 IT·BT·CT·NT로 제한한 업종 규제도 추가로 해제된다. 더불어 개발이 추진 중인 제2·3 판교테크노밸리 역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경기도시공사, 경기도, 성남시가 일정 비율 사업지분을 나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가 분양부터 관리까지 도맡았던 판교테크노밸리와 달리 제2·3 판교는 시설의 관리·지원 주체가 제각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일부 시설이 준공돼 기업들이 입주한 제2 판교만 봐도 LH와 도시공사가 동일한 성격의 기업성장센터 2곳을 각각 별도 조성해 운영한다. 이 같은 문제들은 첨단산업단지의 정체성마저 흐릴 수 있다. 결국 초기의 판교를 단단하게 다졌던 규제들이 서서히 풀리면서 이제 진짜 '자생'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판교는 경기도와 성남의 작은 도시를 넘어서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지고 있으며, 세계 IT 기업들과 실력을 겨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판교 리얼리티'의 막을 내리며 다시 찾은 판교는 밤늦도록 기업과 연구소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판교는 오늘도 진화하고 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신지영·김준석기자 사진: 임열수부장·강승호차장·김금보기자 편집: 안광열차장·장주석·연주훈기자 그래픽: 박성현·성옥희차장대한민국의 경제를 책임지며 세계 IT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고군분투중인 판교신도시 테크노밸리단지에 늦은 밤까지 기업들이 밝힌 희망의 불빛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기획취재팀첨단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른 판교 테크노밸리 일대. 판교 개발 이후 대한민국 신도시들은 '포스트 판교'를 꿈꾸고 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2020-01-08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3)실패]화려한 판교의 초라한 밤… '상권 공동화'

판교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출퇴근 시간이 지나면 어둠 속에 갇힌다. 하루 7만명의 직장인이 오가고 10만명의 인구가 거주하지만 밤이 되고 주말이 되면 판교의 상가는 불이 꺼진다.바닥을 치는 매출과 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상인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판교 테크노밸리 인근 상가에는 공실이 넘쳐난다. 판교역이라고 상황이 다른 것은 아니다. 역 주변의 대형 복합쇼핑몰에도 '임대 문의' 전단이 붙은 텅 빈 가게들이 곳곳에 보이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마트가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철수를 결정했다.'상권 공동화' 현상은 곧 판교의 위기다. 상권은 기업환경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다. 기업 구성원들의 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프라가 무너지면 판교를 탄탄하게 지켜 온 기업들의 이탈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2018년 판교 테크노밸리 매출 87조원. 반짝이는 성공에 가려진 판교의 어둠을 들여다봤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 ※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 사진: 임열수부장, 강승호차장, 김금보기자 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평일 저녁과 주말이면 텅 비어버리는 판교 테크노밸리 중심가. /김금보 기자 artomate@kyeongin.com

2020-01-07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3)실패]어둠속 상권

판교역 광장에는 출퇴근 직장인들만 오간다. 판교는 평일 저녁과 주말이 되면 어둠에 잠긴다. 7만명 직장인이 오가고 10만명의 인구가 거주하지만 밤이 되면 상가에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상권 공동화'가 심각하다.주말이던 지난달 21일 저녁 판교테크노밸리 내 U스페이스를 찾아 가보니 10개 가게 중 2곳만 영업 중이었다. 그나마도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건물 1층 카페 2곳만 겨우 문을 열어 놓은 모습이었다. H스퀘어도 상황은 마찬가지. N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식당 주인은 "대부분 너무 장사가 안되고, 평일에도 밤 10시 이후면 아예 손님이 끊긴다. 그래도 장사를 해야 하니까 주말에도 열고 평일에도 새벽 5시까지 영업하지만 매출은 바닥"이라며 "이 곳 식당 상당수가 부동산 중개업소에 가게를 내놨는데 너무 안 빠져서 마지못해 운영하는 곳이 많다. 우리 가게도 중개업소에 내놓은 지 5년이 지났다. 유럽에서는 밤 10시면 문 연 식당이 없다고 하는데 판교가 딱 그런 상황"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김동욱 와이즐리 대표도 "1년 이상 판교에서 사무실을 운영했는데 회식은 고작 2차례밖에 안 했다. 직원들이 회식하자는 이야기가 없어 싫어하는 줄 알았다"면서 "서울 왕십리로 회사를 옮긴 뒤 회식이 부쩍 많아졌다. 판교에선 직원들이 퇴근하기 바빴는데, 이제는 삼삼오오 모여 저녁도 먹고 얘기도 하다 퇴근하는 문화가 생겼다. 회사 주변 상권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평일 저녁과 주말 공동화 현상은 판교를 품고 있는 성남시의 가장 큰 근심거리이기도 하다. 높은 지가와 임대료에 비해 매출이 신통치 않으면서 영세상점부터 대형 상가까지 공실이 늘어나고 있는 것. 전동억 성남시 아시아실리콘밸리 담당관은 "저녁과 주말의 공동화가 판교의 문제다. 판교가 오직 업무타운이 돼 버려 생긴 현상이다. 시도 상권이 붕괴되는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공통된 현상 한 가지를 증언했다. 그나마 유동인구가 있는 판교역 주변 상권만 활성화됐을 뿐, 판교의 나머지 상권은 '붕괴' 직전이라는 것이다. /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강승호차장, 김금보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주말마다 인적이 끊기는 판교 테크노밸리 중심가는 '상권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다. /김금보 기자 artomate@kyeongin.com

2020-01-07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3)실패]신분당선 빨대효과

휴일 외지서 찾아오는 손님 적어공동화 심각… 대기업 점포 이탈직장인, 퇴근후 서울로 빠져나가업무지구로만 활용… 강남과 대조판교 상권은 크게 보아 '판교역'과 '판교 테크노밸리'라는 두 가지 범위로 나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상권 분석 시스템을 활용해 판교 상권을 분석해봤다.판교테크노밸리 중심부인 '카카오 판교오피스'를 중심점으로 반경 700m를 상권으로 설정한 결과, 주말 유동인구는 9.9%(3만8천504명)이고, 주중 유동인구는 90.1%(35만2천286명)로 나타났다. 업무타운인 테크노밸리는 주말과 주중의 유동인구 차이가 극심했다. 판교역을 중심으로 한 상권은 어떨까. 테크노밸리보다는 상황이 나았지만, 판교역 반경 700m 상권도 주말유동인구 비율은 22.7%(18만4천603명)이고 주중은 77.3%(62만8천287명)로 차이는 매우 컸다. 판교에 10만명의 정주 인구가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주말에 일부러 외지에서 판교를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다.판교의 상권 공동화는 '대기업 점포의 이탈'에서도 그 심각성을 느낄 수 있다. 지난달 18일 판교역에 들어선 이마트의 '일렉트로마트'와 '노브랜드' 매장이 철수를 결정했다. 전자기기 전문매장인 일렉트로마트 판교점의 철수는 전국 45개 매장 중 첫 사례다. 게다가 판교역에서 수십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초근접 역세권이다. 인근 P부동산 관계자는 "장사가 안돼 나간 것"이라면서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쓴 일렉트로마트는 1층 매장만 330㎡가 넘었는데 면적당 임대료가 40만원 이상이다. 임대료가 비쌌다"고 설명했다.판교 상권의 붕괴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손쉽게 알 수 있는 이유는 판교를 관통하는 신분당선의 '빨대 효과'다. 서울과 판교의 이동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뚫린 신분당선은 판교 상권 활성화가 아니라 판교 직장인의 강남 상권 이용을 늘리는 효과만 불러왔다는 게 정설이다. 실제로 신분당선 이용 통계를 보면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다. → 그래프 참조지난해 판교가 속한 신분당선 1단계 구간(강남~정자)의 시간대별 이용승객을 조사해 보면, 전체 평일 평균 이용객 22만7천652명 중 출근시간(오전 7~10시) 이용객이 6만3천385명으로 집계돼 전체 시간대의 27.8%를 기록했다. 퇴근시간대(오후 5~8시)도 26.8%(22만7천652명 중 6만1천161명)였다. 결국 평일 출퇴근 시간대 신분당선 이용객이 비슷한 것은 퇴근하면 바로 신분당선을 이용해 판교를 떠난다는 셈이다.게다가 신분당선 1단계의 주말 이용객은 13만4천265명으로, 주중의 58%에 그쳤다. 신분당선은 서울에서 판교를 오가는 출퇴근 용도일 뿐 판교 상권을 이용하기 위해 일부러 이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는 서울의 대표적인 업무지구인 테헤란로와 중심 상업지 강남역을 통과하는 '2호선'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드러난다. 2호선의 주말 이용객(114만6천679명)은 주중(168만3천885명)의 68% 수준으로 신분당선보다 10%p나 높았다.즉, 판교와 강남은 대규모 업무지구와 상업지구가 결합됐다는 공통점을 가졌지만 판교는 오직 업무지구로만 활용될 뿐 상권은 죽었다는 것이 강남과의 큰 차이점이다. /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강승호차장, 김금보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판교역에서 쏟아져 나와 버스로 향하는 직장인들. 출퇴근 시간 판교역 일대는 인파로 붐빈다. /김금보 기자 artomate@kyeongin.com

2020-01-07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3)실패]좌절된 '한국의 롯폰기'

투자자 조급함·결정권 쥐지못한 공공기관난관 맞물려 현재 모습 머물러지붕 덮는 초기계획 비용문제로 취소올해부터 '10년 전매제한' 해제인프라 악화로 기업들 외부이동 우려도판교 상권의 위기는 곧 판교의 위기다. IT산업 기반의 기업하기 좋은 곳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상권이 붕괴되면 곧 생활 인프라가 무너지는 것이고 기업환경도 덩달아 악화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부터 10년 전매제한이 풀리는데, 인프라 악화로 판교 기업들의 외부 이동이 현실화 될 수 있다. 이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두고 '문화'의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개발 당시부터 벤처산단의 업무 효율성에만 매몰된 나머지 사람을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을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이 모여야 상권이 활성화되는데, 문화가 없는 판교는 일하는 시간 외에 사람을 불러모으는 데 실패했다.문화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지점에 '알파돔시티'가 있다. 판교역 알파돔시티는 판교 상권의 중심부에 자리한 5조원 규모의 매머드급 사업이다.알파돔시티는 축구장 16개를 모은 면적(13만7천497㎡)에 4개의 주축 건물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돔)을 덮는 프로젝트였다.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의 4배, 영등포 타임스퀘어의 3배가 넘는 거대한 상업복합시설을 조성해 "강남 상권 수요를 끌어들이겠다"는 목표에서 시작했다.이상후 전 LH 부사장은 "주말이면 강남역 뒷골목에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수도권의 젊은 층이 더 이상 강남을 가지 않고 판교로 모이게 하는 게 알파돔시티의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알파돔시티의 변천사는 판교 상권의 성공과 실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영화 스튜디오와 K-POP 타운과 같은 콘텐츠 외에도 알파돔시티에서 '판교 문화'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는 여럿 있었다. 알파돔시티에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을 유치해 발레 아카데미를 만드는 것, 실크로드가 경유하는 아시아와 유럽 국가를 묶어 나라별 공연을 연중 펼치는 구상이 그런 시도의 일환이었다.만약 발레 아카데미를 유치할 수 있었다면 최근 유아와 성인을 막론하고 열풍처럼 번진 발레 인기에 힘입어 직장인 외 사람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실크로드 국가를 주제로 펼치는 공연은 애초 목표가 관광 목적의 외부인을 끌어들이자는 취지였다.알파돔시티가 꿈꾼 건 '한국의 롯폰기(六本木)'였다. 8개의 대형 건물이 모인 일본 도쿄 최고의 번화가 롯폰기는 '모리그룹'이 주도권을 가지고 개발해 성공했다. 모리그룹이 과반 지분을 보유한 채 명확한 상권 콘셉트를 바탕으로 건물마다 '여성용 명품', '이벤트', '미술', '전망' 등의 콘셉트를 부여해 유기적으로 어울려 상권을 형성하고 조율한다.그 결과 80년대 전까지 도쿄 주변부에 불과했던 롯폰기는 한해 1천500만명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됐다. 반면 알파돔시티 프로젝트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건 의사결정 과정에서 민간과 공공, 어느 한쪽도 주도권을 쥐지 못한 탓이 컸다. 알파돔시티 프로젝트는 LH를 포함한 민관합동 PF(프로젝트 파이낸싱)가 맡았다. 관련 법상 공공기관(LH)의 투자는 20% 이내로 제한됐다. 공공기관의 땅장사를 막겠다는 게 관련 법의 취지다.공공기관은 당장 자금을 회수할 수 없더라도 20~30년을 내다보고 투자할 수 있지만, 민간 투자자들은 빠른 자금 회수가 급선무다. 영화, K-POP, 발레, 연중 공연과 같은 콘텐츠들이 민간 투자자들의 반대 속에 무산되면서 최대한 빨리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이 진행됐고, 결과적으로 알파돔시티를 관통하는 정체성도 흐려졌다.판교역 상권이 구심점 없이 목 좋은 상점을 모아놓는 데만 그치자 '롯폰기'가 아닌 신도시에 흔히 볼 수 있는 중심 상가 정도의 수준으로 전락했다. 최근 흐름은 거대 상권에도 일관된 정체성을 부여하는 게 추세다. 사양길에 접어든 코엑스를 신세계가 인수해 '스타필드'로 일관되게 리모델링하자 상권이 되살아난 것이 대표적인 예다.판교역 상권의 상징인 알파돔시티는 단기 투자회수를 목적으로 한 민간 투자자들의 조급함과 지분 제약으로 결정권을 쥐지 못한 공공기관의 한계가 맞물려 현재 모습에 머물렀다.LH와 대한지방행정공제회 등이 가지고 있던 알파돔시티 건물은 현재 각각 신한알파리츠·미래에셋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다. 모두 4개 건물이 주축인 알파돔시티는 2개 건물이 완성됐고, 2개 건물은 공사가 진행 중이다. 4개 건물 위를 지붕(돔)으로 덮는 애초 계획은 취소됐다. 역시 비용 문제였다. 알파돔시티에는 돔이 없다. 돔 없는 알파돔처럼 가장 성공한 신도시 판교에는 주중·낮에만 붐빌 뿐 밤과 주말엔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판교가 반쪽짜리 성공인 이유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강승호차장, 김금보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판교테크노밸리 한 상가건물 공실에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강남상권 수요를 끌어들이는 거대한 상업복합시설을 목표로 출발한 알파돔시티 사업은 여러 한계에 부딪히면서 여느 중심상가 수준의 상권을 조성하는 데 그쳤다. 사진은 판교역 광장을 중심으로 신축 중인 알파돔시티 2개동 건설현장.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2020-01-07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3)실패]봉준호·이수만 '입성' 무산

판교역 지하 '촬영 스튜디오' 최적지상설공연장서 1년 내내 행사 계획도한계 극복 못하고 '공영주차장' 활용백두산에 이어 한라산이 폭발했다. 한라산 폭발로 패닉에 빠진 대한민국을 묘사한 이 영화는 판교역 아래 꾸려진 지하 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빛과 소음이 차단된 지하 스튜디오에는 늘어선 차량 위로 거대한 해일이 덮치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재현된 해안도로, 백록담을 묘사하기 위한 거대한 수조가 놓였다.밤샘 촬영을 마친 배우들은 판교역 옆에 위치한 호텔로 향했다. 숙소까지 5분이 채 걸리지 않아 부족한 잠을 자기에 판교역 스튜디오는 최상의 접근성을 가졌다. 배우들이 스튜디오를 떠나자 카메라 스태프는 촬영된 필름 원본을 곧장 영상 스태프에게 넘겼다. 스태프는 판교 알파돔시티에 자리 잡은 컴퓨터 그래픽 업체에 영상을 전달했고, 이 업체는 새벽부터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영화와 관련된 컴퓨터 그래픽 업체만 스무 곳이 넘는다. 이들 업체는 모두 판교에 자리 잡고 있다. CG처리가 된 영상은 화면 톤과 사운드를 입힐 수 있도록 바로 옆 건물의 후작업 업체에 맡겨졌다.영화 촬영-그래픽-후작업-편집까지 한 번에 해결 가능한 장소가 바로 판교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지하 스튜디오 위 광장에선 연중 펼쳐지는 K-POP 공연이 한창이었다. 동시에 화려한 조명이 내리쬐는 K-POP 무대 옆에서 '실크로드'를 주제로 한 퍼레이드가 펼쳐졌다.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계획대로 조성됐다면'이란 가정 아래 설정된 허구다.하지만 허구는 충분히 실현 가능했던 일이다. 봉준호 감독이 판교를 찾아온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설국열차(2013)를 성공시킨 봉 감독은 영화계 원로인 이장호 감독과 함께 판교 알파돔시티를 찾았다. 알파돔시티는 판교역을 둘러싸고 조성된 상업복합시설이다. 알파돔시티자산관리(주) 대표이사를 역임한 이상후 전 LH 부사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봉 감독이 찾아와 판교역 지하에 영화 스튜디오를 지어보자고 했어요. 판교는 서울 강남과 가까워 배우들이 오가기도 좋고, 밤샘 촬영하고 근처 호텔에서 투숙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죠. 영화 스튜디오가 들어서면 판교에 CG나 영화 후작업을 하는 업체도 들어올테고, 그러면 판교가 '문화산업'에 강점이 생긴다는 설명이었습니다."봉 감독은 설국열차를 체코 프라하의 '바란도프(Barrandov) 스튜디오'에서 올 로케이션(현지 촬영)으로 찍었다. 얼어붙은 지구를 CG로 표현하기 위해 거대한 스튜디오가 필요했지만, 국내에선 마땅한 장소를 구할 수 없었다.판교역 지하공간은 서울과의 접근성이 뛰어나면서도 빛·소음 차단이 유리하기 때문에 영화 스튜디오의 최적지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또 판교의 IT와 영화산업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보자는 것도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계획은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구상에 그쳤다. 현재 판교역 지하는 별다른 시설 없이 공영주차장으로 활용된다.봉 감독에 앞서 판교를 찾은 유명인이 또 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표다. 이 대표는 2012년 2월 판교역 알파돔시티 기공식에도 참석해 축사까지 했다. 당시 이 대표는 판교에 K-POP 타운을 조성할 계획을 세웠다. 봉 감독이 탐냈던 판교역 지하에 K-POP 상설 공연장을 만들고 SM 기획사를 판교에 입주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SM타운은 판교가 아닌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들어섰고, 이 구상도 백지가 됐다.당시 판교역 지하에 5천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상설 공연장을 갖추고, 1년 내내 한류 공연을 펼치겠다는 구상에 따라 SM을 비롯해 YG, JYP 엔터테인먼트 등 유명 기획사와도 실제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알파돔시티는 3대 기획사에 상설 공연의 대관료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전 부사장은 "종종 (판교에)영화 스튜디오와 K-POP 상설 공연장이 조성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 ※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강승호차장, 김금보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판교 테크노밸리 중심부에서 바라본 일출 모습. 판교를 영화와 K-POP의 성지로 개발하려던 계획이 실행되지 못하면서 판교 테크노밸리는 주말과 저녁에 인적이 끊기는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다. /경인일보DB=경기도 제공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참석해 주목받았던 2012년 판교 알파돔시티 기공식 모습. SM엔터테인먼트는 당시 판교에 K-POP 타운을 조성할 계획을 세웠다. /경인일보DB

2020-01-07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2)기회]대기업 사원도 스타트업 대표도 "판교는 기회의 땅"

판교의 오늘은 곧 미래의 꿈이다. 지난해 12월 한 달간, 판교의 발 디딜 틈 없는 출퇴근 버스에 올라타 몸을 부대끼고 커피를 마시며 틈틈이 대화를 나눈 끝에 얻은 결론이다.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기업의 직장인, 이제 막 방구석을 탈출해 창업에 도전 중인 스타트업 대표 등 우리가 만난 '판교인'은 저마다 이력과 개성이 달랐지만 '판교는 기회의 땅'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자전거를 탄 채 스마트워치를 수시로 확인하며 이동하던 직장인은 "판교엔 구둣방이 없다"고 귀띔했고, 야심차게 판교에서 스타트업을 시작한 창업가는 "서울 강남과 가까워 접근성은 좋지만 교통체증이 심해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여전히 창업하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스타트업의 가능성을 분석하는 한 투자가는 "판교는 기업투자의 선순환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곳"이라며 "대기업 간부가 스타트업에 종잣돈을 투자하다가 발전 가능성을 보고 이직하는 일도 있다"고 희망을 이야기했다.부지런히 발로 뛰며 귀로 듣고 눈으로 본 판교, 판교에는 여전히 희망이 존재했다. /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6일 아침, 판교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줄줄이 버스에 오르는 판교 직장인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2020-01-06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2)기회]판교직장인의 기쁨과 슬픔①

순환 출퇴근 마을버스 602-1B·2B 정류장 22인승에 80여명 태우고 출발 '만원 행렬'■출근전쟁… 602-2B 버스 탑승기지난해 12월 23일 오전 8시30분. 판교역에 도착한 신분당선 출입문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뛰기 시작했다. 함께 달리며 "왜 뛰냐"고 묻자 "마을버스를 타야 된다"는 짤막한 답이 돌아왔다. 뛰는 이들을 쫓아가니 '602-1B·2B번 맞춤형 마을버스' 정류장. 판교역과 판교테크노밸리를 순환하는 출퇴근 버스 노선인데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602-1B번은 만원상태로 떠나는 뒷모습만 바라봐야 했고, 막 도착한 602-2B번 버스는 출입문 계단까지 가득 찬 앞문을 피해 뒤쪽 출입문으로 겨우 몸을 구겨 넣을 수 있었다. 이미 전 정거장(판교역 남편)에서 승객을 34명이나 태우고 온 이 22인승 버스는 기자가 탄 판교역 서편 정류장에서 46명을 더 태우고서야 출발했다. 몸과 몸이 밀착한 버스 안에 뒷사람의 숨소리를 피해 나갈 공간은 없었다.다음 정류장인 'H스퀘어'에서 40명 가까이 내린 뒤에야 간신히 숨통이 트였고, 여러 기업이 입주한 '이노밸리' 앞 정류장에서 20명 넘게 더 내리자 비로소 빈자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버스는 마지막 역인 판교테크노밸리 서북쪽에 있는 '세븐벤처밸리'를 돌아 다시 판교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막 신분당선에서 내린 승객들로 금세 다시 만원이 된다. 쉼 없이 달리는 만원 마을버스의 행렬 속에 판교의 아침이 지나갔다. 구독경제 기반 면도날 렌탈·판매 스타트업 '와이즐리''출퇴근 지옥'에 인력유출 막고자 이사… "돌아오고 싶어"■이탈… 나는 왜 판교를 떠났나 구독경제에 기반한 면도날 렌탈·판매 스타트업 '와이즐리'가 1년 반 만에 판교를 떠난 것도 출퇴근이 화근이었다.와이즐리는 2017년 3월 분당의 한 아파트에서 김동욱 대표와 친동생, 김 대표의 친구 이렇게 셋이서 의기투합해 출발했다. 이들이 방구석을 탈출해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 입성한 건 2018년 3월. 모두 설립한 지 불과 3년여 만에 유망 스타트업으로 주목받았다. 김 대표에게 판교는 '기회의 땅'이었다.창업초기 발판이 돼 준 판교와 작별을 고한 건 지난해 8월이다. 와이즐리는 서울 왕십리로 사무실을 옮겼다. 사업이 탄력을 받으며 직원 수가 18명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서로 뜻만 맞으면 됐던 초창기와 달리 늘어난 직원들의 근무환경과 복지도 고민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 지옥을 겪어야 하는 직원들의 불만이 쌓여갔다. 울며 겨자 먹기로 판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스타트업은 우수한 인재 확보가 생명이다. 인력 유출을 막으려면 직원 복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스타트업이 해줄 수 있는 복지라는 게 출퇴근이라도 여유있게 하는 거다. 테크노밸리 근처엔 직원들이 혼자 살 만한 주거공간도 없어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들의 고생이 컸다. 출퇴근 시간이 '1시간30분'이 넘게 걸리는데, 솔직히 직원들 볼 면목이 없었다."판교역 근처로 사무실을 옮길까 고민도 했지만, 이제 막 자리 잡은 스타트업이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도 못 됐다. "굳이 마을버스를 안 타도 되는 판교역 주변으로 사무실을 알아봤지만 이미 대기업들이 꽉 차 있었고, 그나마 임대료가 비싸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판교의 스타트업 지원은 이제 막 창업을 시작한 초기에만 집중돼 비즈니스 모델이 형성되는 시기의 스타트업이 갈 자리가 없다."실제로 테크노밸리 내에는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등 창업을 시작한 이들에게 공간과 컨설팅, 투자 등을 지원하는 공간이 있지만 '예비·초기 창업(BI·비즈니스 인큐베이터)'에만 집중됐다. 심사를 통해 선발된 스타트업은 대부분 30㎡ 내외 작은 사무실을 임차하는데, 와이즐리와 같이 '3년 이상 창업(포스트 BI)' 기업은 20명 이상 직원이 늘어나면 그만한 공간을 임차하는 일이 쉽지 않다. 김 대표는 "공공에서 지원하는 사무실은 공간이 작다. 일반 오피스를 임차하면 인테리어, 사무집기 등 부수 비용이 부담된다. 서울에는 우리 정도 스타트업들이 입주할 공간이 꽤 있는데 20·30대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인테리어가 완비된 사무실을 빌려준다. 그게 '공유 오피스'"라고 말했다. 초기 창업에서 어엿한 기업의 형태를 갖춰가는 과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가 꿈꾸던 미래 모델인데, 교통과 사무실 임차 등 현실적인 문제가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그럼에도 여전히 김 대표는 판교로 다시 돌아오고 싶다. "판교는 사무실 근처에 산도 있고 공원도 있어 점심시간, 또는 머리가 복잡할 때 산책도 할 수 있다. 쾌적한 근무환경을 모두가 좋아했고 아이디어도 잘 나왔다. 서울과의 접근성이 뛰어난 것도 너무 좋다. 언젠가 판교로 돌아가고 싶다." 김 대표의 소망처럼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판교는 '창업하기 좋은 곳'이다. 공공의 든든한 지원을 바탕으로 서울의 고급 인력들이 판교를 '마지노선'으로 출퇴근하고 있어 매력은 여전하다. 탄성 파우치 용기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이너보틀'의 오세일 대표는 "판교의 장점은 '구룡터널'만 지나면 회사에 올 수 있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그는 "판교는 서울 강남에서 오가기 편하고 안산 등 경기 서부권, 화성 등 경기 남부권으로 이동하기 편하다"며 "스타트업은 인재를 잘 구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판교는 구인이 잘 된다"고 설명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6일 아침, 판교역 앞 버스장류장에 버스들이 줄지어 선 가운데 직장인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6일 아침, 판교역 앞을 출발하는 버스에 직장인들이 빼곡히 탑승해 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대형 IT 기업들이 밀집한 판교 테크노밸리 중심가. 대중교통이 불편해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유동인구가 적다. /강승호기자 ksh@kyeongin.com

2020-01-06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2)기회]판교직장인의 기쁨과 슬픔②

성남시, 지구단위계획으로 제한… 원룸 조성 못해 살 곳 모자란데 업무시설 계속 늘어 '악순환 반복'■오피스 타운… 무서운 집값판교 테크노밸리가 지닌 '옥에 티'는 주거다. '잠만 자는' 베드(Bed) 타운은 겨우 피했다지만 '일만 하는' 오피스(Office)타운 신세는 면치 못한 것이다.5년째 판교에서 근무 중인 박중혁씨는 첫 입사 시기였던 2015년과 지난해 2차례에 걸쳐 원룸 전세를 구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판교테크노밸리 주변에 원룸은 아예 없었고 조금 떨어진 정자역이나 미금역 근처도 오래된 원룸밖에 없었다. 유일한 빌라촌인 백현동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김모식씨의 설명을 들으면 판교테크노밸리의 주거 실태가 쉽게 이해된다. 김씨는 "백현동 카페거리에 있는 상가주택의 투룸 전세가격이 2억5천만~2억7천만원대이고 사실상 투룸만 있지, 원룸은 없다"며 "나머지 테크노밸리 인접지역이나 판교역 주변은 모두 주상복합이나 아파트 단지밖에 없어 최소 79㎡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판교신도시 내 원룸이 있는 상가주택은 전체를 통틀어 백현동의 2개 동이 전부다. 성남시가 지구단위계획으로 점포주택 1개 동당 3가구까지만 평면을 구성하도록 제한하는 바람에 사실상 원룸은 조성되지 못했다. 그나마 20~30대가 선호하는 상가주택의 투룸도 경쟁이 치열해 가격이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가고 그마저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다.좁은 면적의 아파트를 찾는 젊은 부부도 마땅한 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봇들마을 아파트단지 주변 공인중개사 이재순씨는 "판교역과 테크노밸리에서 거리가 좀 떨어져 있는 아파트단지 99㎡의 전세가가 6억6천만원이고 매매가는 11억원"이라며 "판교 직장인들이 집을 보러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판교테크노밸리 주거시설은 모자란 데 업무시설만 늘어나고 있다"며 "판교 부동산 시세는 계속 올라가고 직장인들은 다른 지역을 찾아가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각 잡힌 정장과 구두 대신 후드티·청바지 차림'~님'·'~프로' 직급 관계없는 수평적 호칭 사용■슬리퍼… 그래도 '기회의 땅'판교테크노밸리 직장인들은 다른 오피스타운 사람들과 옷차림이 다르다. H스퀘어 앞 중앙광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각 잡힌 정장과 구두 대신 헐렁한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한겨울인데 슬리퍼를 신은 사람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판교테크노밸리에서 구둣방을 하면 망한다'는 속설이 금방 이해되는 풍경이다.여느 오피스타운이라면 한산해야 할 오전 11시, 카카오가 입주해 있는 H스퀘어 N동의 카페에 들어가니 후드티를 입은 이 회사 직원들로 북적였다. 삼삼오오 회의를 하기도 했고, 혼자 앉아 노트북과 씨름하는 사람도 많았다. 후드티 차림으로 혼자 작업 중이던 '판교인'에게 물어보니 "꼭 사무실에서 일해야 하는 건 아니다. 집중이 안되면 카페로 내려와 일하기도 하고, 사내 카페나 곳곳의 오픈형 회의실에서 자유롭게 회의하고 일한다"고 말했다.카카오뿐만 아니라 판교테크노밸리 내 대부분 기업들은 '~님', '~프로' 등 서로의 직급과 관계없이 동일한 호칭을 쓴다. 주임·대리·과장 등 수직적 직급에서 벗어나야 거리낌 없이 의견을 낼 수 있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의 투자심사 팀장으로 근무하는 박재은 씨는 판교 기업들의 주도적이고 수평적인 문화에 매력을 느껴 5년 넘게 몸 담았던 군수회사에서 나왔다. 박 씨는 "전 직장이 정부사업을 수주한 대로 일을 추진하는 방식이었다면, 스타트업은 어떤 사업을 할지, 어떻게 성과를 올릴지 스스로 결정한다는 게 큰 차이"라며 "여기서 얻어지는 만족감이나 동기부여는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반면 아무리 수평적 기업문화가 자리잡은 판교라고 해도 '한국기업은 어쩔 수 없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조영지(가명)씨는 직급과 관계없이 서로 영어 호칭을 쓰는 카카오 계열사에 근무한다. 조씨의 호칭은 '스칼렛(가명)'이다. 조씨는 "호칭이 통일되면서 직급에 상관없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된 건 맞지만, 실질적인 부분에선 여전히 직급이 우선이다. 회의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순 있지만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사실상 중요한 결정은 윗선으로부터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우리끼리는 구글도 코리아가 붙으면 한국기업이 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미국 구글은 진짜 자유롭지만 구글코리아는 상하관계가 뚜렷한 한국 기업이라는 의미"라며 웃었다.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투자자와 '홈브루 파티'자유로운 분위기속 '연결 다리'… 제2애플 꿈꿔■도전… 오늘도 꿈 좇는다 판교의 저녁은 새로운 도전과 꿈을 실현하는 기회의 장이다.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이면 세계 시가총액 2위 '애플'과 3위 '마이크로소프트'를 꿈꾸는 판교인들이 '홈브루(Homebrew) 파티'에 모인다.홈브루 파티의 주최자는 스타트업 투자자 '액셀러레이터'. 수백억 단위의 투자를 하는 벤처캐피탈(VC)과 달리 액셀러레이터는 5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의 시드(seed) 투자를 전문으로 한다. 아이디어만 가진 스타트업이 규모를 키워가고 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역할이다.소규모 투자라는 특성상 액셀러레이터가 주최하는 홈브루 파티는 일렬로 자리에 앉아 딱딱한 프레젠테이션을 듣는 대신, 피자와 맥주를 먹으며 자유롭고 흥겨운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액셀러레이터 회사 '컴퍼니B'는 지난해 3월부터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7층에서 홈브루 파티를 개최해왔다.모임의 멤버는 '누구나'다. 관심만 있다면 참여할 수 있고 스타트업 대표 등이 5분간 자신의 아이템과 의견을 발표하면 투자자가 질문하고 답변할 수 있다. 여기서 추천된 아이템은 컴퍼니B의 '오피스아워'에서 최종 투자 여부가 결정된다.오피스아워는 컴퍼니B 구성원이 투자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기구다. 액셀러레이터 컴퍼니B는 자체 자본금 투자와 더불어 조합투자 형태로 운영된다. 출자금을 낸 조합원이 자신의 출자금을 투자할지 말지 스스로 결정하는 식이다.컴퍼니B는 개인투자조합 3건을 결성했고 4호와 5호 결성을 준비 중이다. 32개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했고 현재 10억원의 시드투자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컴퍼니B의 자본금을 투입한 '자체투자'와 더불어 개인 투자자(엔젤투자자)로 구성된 '조합 투자'가 진행된다. 조합 투자자들 중에는 다니던 회사를 나와 자신이 투자한 기업 임원으로 이직한 사례도 있다. SK IT 계열사에 15년간 근무하던 김수경(가명)씨는 자신이 초기 투자했던 로봇소프트웨어 플랫폼 업체로 이직해 이사로 일하고 있다. 김씨는 "IT 대기업의 서비스 기획자로 근무했지만 매너리즘에 빠졌다"며 "스타트업에서 이직한 이후 매너리즘이 해소되고 새로운 인생의 계기를 맞게 됐다"고 말했다. 홈브루 파티가 지향하는 이 같은 투자방식은 세계 최고 IT기기 제조업체 '애플'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다. 벤처투자자 마이크 마쿨라가 차고에서 컴퓨터를 만들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의 애플에 투자해 성장 기반을 마련해줬다. 변리사 출신인 엄정한 컴퍼니B 대표의 역할은 조합원 앞에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이다. 판교테크노밸리에서도 얼마든지 한국의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게 엄 대표가 꿈꾸는 홈브루 파티의 결과다. 엄 대표는 "판교는 선데이토즈나 카카오 같은 스타트업들이 국내 최정상 기업으로 성장한 곳이고, 지금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스타트업이 정말 많은 투자처"라며 "하지만 스타트업과 투자자를 이어줄 다리가 부족하고 기업 간 네트워킹이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앞으로 유기적 네트워킹이 더욱 활성화돼 지원이 이뤄진다면 판교에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탄생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스타트업과 같은 벤처기업의 투자 수익률이 부동산 투자 수익률을 넘어설 정도로 벤처 투자 문화가 우리나라에 정착된다면 한국의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탄생하는 건 생각보다 가까울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사무실과 상가의 조명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판교 테크노밸리의 야경. 밤이면 곳곳에서 투자 관련 모임이 이뤄진다. /경인일보DB6일 아침 판교역을 빠져나오는 젊은 직장인들. 정장을 입은 이들은 흔치 않고 대부분 편안한 복장을 하고 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2020-01-06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1)성장]주거·산학연 정책 공백, 그늘은 있었다

#'한국판 베벌리힐스' 꿈꿨지만…건교부·LH, 중·대형 위주 건설… '소형' 설자리 잃어종사자 71% 차지하는 20~30대, 타지역 거주 76.37%#'우수 인력' 절박한 기업들지자체장 '부지개발권' 없어 지역민 필요로 이용 불가임창열 前 도지사 "국토부등 모든 부처 머리 맞대야"도시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도권의 몇 남지 않은 녹지, 온통 배 밭 뿐이던 판교가 자급자족 신도시로의 개발을 선언하며 갖은 역학관계를 헤쳐나간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 수고로움 덕일까. 취재진이 만난 대다수 행정가, 기업인들은 판교가 나름 기대치를 뛰어넘는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특히 숱한 반대와 불안한 전망 속에서 미련할 만큼 고집스럽게 애초의 계획대로 도시를 설계한 것이 큰 밑거름이 됐다는 게 중론이다.하지만 우리는 판교를 한꺼풀 더 깊숙이 들춰 봤고, 그 속살에서 '절반의 성공'이라는 차가운 현실과 마주했다.우선 판교는 주거정책에서 실패했다.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일하지만, 정작 판교에선 살지 못하는 게 이곳을 구성하고 있는 인력들의 현실이다. 2016년 기준, 판교 테크노밸리 종사자 중 20~30대가 71%를 차지한다. 거주지를 조사해보니 전체 종사자 중 76.37%가 성남시를 벗어나 살고 있었다. 경기 남부에서 34.27%가, 서울에서 33.51%, 인천에서 4.40%가 판교에 직장을 두고 있지만 '타지'에 거주했다.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2017년에는 62.98%가, 2018년에는 68.13%가 다른 곳에 살면서 출퇴근을 했다. 판교의 주거정책은 왜 테크노밸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을까. 판교의 주택공급은 건설교통부와 LH가 전담했다. 애초에 판교의 성공을 내다보지 못했던 두 주체가 판교 테크노밸리의 주류를 이끄는 20~30대 젊은 인력들이 살만한 공간을 종합적으로 설계하지 못한 건 필연에 가깝다. 당시 건설교통부와 LH가 세운 판교 주택정책의 목적은 강남의 고급주택 수요를 끌어들이겠다는 데 있었고, 그렇다 보니 '한국의 베벌리힐스'를 표방하며 주택을 설계했다. 그 결과 25~40평형대의 중·대형 주거형태 위주로 건설을 계획했고 젊은 세대가 일과 주거를 병행할 수 있는 18평 이하의 소형 주택은 설 자리가 없었다.판교의 취약점 또 하나, 산업과 연구소는 있지만 학교가 없다. '산학연'이 제대로 운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수 연구개발 인력을 창출하는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구인을 위해 절박하게 뛰어야 한다. 절반의 실패로 평가받는 요인이다.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경기도가 판교를 구상할 땐 서울 및 경기도권 우수 대학의 유치를 통한 산학연이 강조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바탕에 '스탠퍼드 대학'이 있듯 판교도 원활한 인력 수급과 활발한 연구지원을 위해 대학 등 교육기관과의 연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실제로 초기 경기도의 판교 구상안에는 입주 예상 벤처업체 부지로 62만5천여평, 입주희망 기업연구소 부지로 21만6천여평, 수도권 대학의 벤처관련 학과 이전부지로 14만8천여평 등이 담겨있었다. 수도권 10개 공과 및 전문대학원들이 경기도에 공식적으로 입주를 희망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의견은 당시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도 동일해, 벤처기업 신규입주로 30만평, 기존 벤처업체의 이전 또는 확장 수요 17만5천여평, 수도권 대학의 관련학과 및 대학원 이전 부지 15만평 등을 각각 제시했다. 이 같은 현상은 당시의 판교 개발규모가 '20만평'에 머물렀던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국토 개발의 전권이 건설교통부(지금의 국토교통부)에만 집중돼 있어 지역민의 필요에 따른 개발이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법은 상당히 딱딱한 규제로 둘러싸여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계획, 광역도시계획 및 도시·군계획의 관계'를 규정하면서 광역도시계획 및 도시·군 계획은 국가계획에 부합돼야 하며 광역도시계획 또는 도시·군계획의 내용이 국가계획의 내용과 다를 때에는 국가계획의 내용이 우선한다고 정했다. 또 중앙행정기관의 장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면적 이상의 구역 등을 지정하거나 협의하여야 하며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국토교통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판교 개발을 주도했던 임 전 지사도 이 문제를 가장 강하게 꼬집었다. "국토교통부는 '주택공급' '집값 안정'만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다. 반면 지자체장은 주택공급·집값 안정 외에도 일자리, 상권, 문화공간, 교육시설 등 주민의 삶 전반을 고민해야 하는 종합행정을 한다. 이미 제한적인 성격을 가진 조직이 도시 개발의 전권을 쥐고 흔드니, 종합적인 도시가 탄생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법을 바꿔, 지자체 중심으로 국토부, 산자부, 기재부 등 모든 부처가 함께 머리를 맞대는 방식으로 국토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당시 임 전 지사와 함께 판교 개발의 실질적 역할을 담당했던 이재율 전 경기도부지사 (당시 정책기획관)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만약에 원래 계획대로 판교 테크노밸리를 100만평에 지을 수 있었다면, 지금 문제로 돌출되는 주거, 산학연, 주차 등의 다양한 문제가 많은 부분 해소됐을 것"이라며 "(경기도가) 당장의 성과보다 10년을 미리 바라다봤기 때문에 20만평이라도 받아 지금의 판교를 만들 수 있었다. 국토개발은 반드시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도움주신 분들임창열 킨텍스 대표이사,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재율 前 경기도행정1부지사, 이상후 前 LH 부사장,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 오세일 이너보틀 대표, 오보영 이트너스 이사, 엄정한 컴퍼니B 대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성남시, 성남산업진흥원, 판교박물관■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영상 : 강승호기자, 박소연 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판교 테크노밸리 일대 전경. /경인일보DB판교 테크노밸리의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은 대부분이 타지역에서 출퇴근 한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2020-01-05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1)성장]스스로 운명 개척한 판교의 진짜 이야기

대한민국 신도시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본 역사가 없다.필요해서 기획됐고 필요한 것만 지어졌다. 필요한 만큼 의무가 주어졌고 필요가 없으면 버려졌다. 서울을 에워싼 경기도 신도시가 감당해야 할 의무는 특히 더 명확했다. 서울이 토해내는 인구를 받아내는 일. 미친 듯이 치솟는 서울 집값의 완충재, 그 이상 그 이하의 역할은 없었다. 그래서 낮에는 불이 꺼지고 밤에만 불을 밝히는, 소비는 있지만 생산은 없는, 살아있지만 죽은 도시. 대한민국 신도시가 떠안은 숙명은 늘 초라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슬픈 일은 새롭게 만들어진 '신'도시가 새로운 꿈을 품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대로 터를 일궈 온 역사와 전통의 삶이 사라진 자리에 동일한 욕망이 넘실대는 아파트만 대책 없이 넘쳐났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집값이 더 오르기를 기대하는 욕망만 들끓었다. 그런데 판교는 다르다. 지금까지 보아 온 신도시의 풍경과 사뭇 다르다. 매일 아침 판교로 향하는 도로에는 활발한 움직임이 가득하다. 성남·안양·수원·용인 같이 경기도권 주변 도시에서 판교로 모여드는 일도 새롭지만, 서울에서 판교로 줄줄이 '역이동'하는 풍경은 생경하기까지 하다. 아침이면 서울로 빠져나가는 게 신도시의 일반인데, 판교는 거꾸로 아침마다 생기가 넘쳐난다.판교는 꿈을 품었다. 건물마다 매일 희망의 꿈을 좇아 새로 도전하는 것이 빈번하고 좌절하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역동이 넘친다.2018년 기준 판교 매출액 87조5천700억원, 입주기업 수 1천309개, 종사자 수 6만3천50명이라는 우수한 성적표를 굳이 읊지 않더라도 판교는 명실공히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상징되고, 대한민국 IT 산업의 심장으로 우뚝 섰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래서 도시 개발 소식이 들리는 신도시 후보지마다 '제2·제3의 판교'가 되겠다는 구호가 난무하다.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보이는 대로 판교는 성공한 신도시일까. 성공의 속살에 낀 거품은 없을까. 밤낮으로 휘황한 불빛들 아래 가려진 판교의 이면은 무엇일까. 이 물음을 안고 지난 12월, 한 달간 판교에 깊숙이 들어갔다. 과거의 판교를 만들고 지금의 판교를 이끌며 미래의 판교를 꿈꾸는 다양한 이들을 만나 판교의 이야기를 들었다. 판교는 대한민국 신도시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도움주신 분들임창열 킨텍스 대표이사,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재율 前 경기도행정1부지사, 이상후 前 LH 부사장,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 오세일 이너보틀 대표, 오보영 이트너스 이사, 엄정한 컴퍼니B 대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성남시, 성남산업진흥원, 판교박물관■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영상 : 강승호기자, 박소연 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01-05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1)성장]"삼성·현대 다음으로 한국경제 책임 지는 곳"

건교부서 분양 전권받은 道 '세부 계획' 수립업종제한·저렴한 용지 '자급자족 도시' 성공손학규 前 도지사 "첨단 기업들 판교로 모여"강남 집값 수요를 잡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지만, 고급 연구인력이 오가는 첨단지식산업단지로도 판교는 이미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였다.하지만 당시 건설교통부는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수요예측과 달리 산업단지의 분양이 쉽지 않을 거라 판단했고, 슬그머니 경기도에 분양 전권을 떠넘겼다. 자의반 타의반, 경기도가 자연스럽게 판교 테크노밸리의 세부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입주자를 선정하는 등 전체의 기획을 하는데 주도권을 갖게 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결과적으로 판교를 나름 성공작으로 만들게 한 단초가 됐다. 경기도는 첨단지식산업단지에 걸맞게 IT(정보기술), BT(바이오), NT(나노기술), CT(문화산업) 등으로 엄격하게 업종을 제한했다. 대신 이들 기업에 조성원가 수준으로 용지를 값싸게 공급했다. 당시 책정된 토지공급가격은 3.3㎡당 평균 952만원대였는데, 강남 테헤란밸리 땅값에 절반도 안되는 수준에 불과했다. 2001년 기준 테헤란밸리의 임대료가 3.3㎡ 당 1천만원 수준이었던 것을 비교하면 얼마나 저렴하게 기업에 부지를 제공했는지 알 수 있다. 이른바 토지개발로 얻어지는 수익성보다 벤처기업 수요에 초점을 맞춘 것도 주효했다. 이를테면 일반연구와 연구지원용지(공공지원센터, 산학연 R&D센터)를 구분한 건 판교가 첫 사례인데, 연구를 지원하고 협력하는 공공기관과 금융서비스 등이 한 공간에 자리한다는 점은 연구소를 보유한 중견기업들 90% 이상이 판교를 선호한 이유 중 하나였다.경기도는 첨단산업을 이끄는 대·중견기업의 수요를 맞춰주면서 지가 상승으로 차익을 얻으려는 시도는 원천 봉쇄했다. '10년간 전매제한' 제도를 둬 제 3자에게 양도를 제한한 것. 더불어 20년간 판교 테크노밸리의 입주기업 업종을 제한하는 정책도 폈다.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판교테크노밸리는 조기분양과 입주에 성공했다. 이 과정을 주도했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현 바른미래당 대표)는"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들이 많아 당시 경쟁이 치열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부지조성공사가 완료된 후 1차 공급에 삼성테크윈, 넥슨, 안철수연구소, 엔씨소프트 등 내로라하는 국내 첨단산업의 대기업들이 경쟁에 나서 39개 중 29개 용지를 선정했다. 2차 용지엔 LIG넥스원, 차그룹, NHN 등 7개 기업, 3차 공급에선 삼성중공업, 삼양사, 한화 등이 입주했다. 그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당시 경인일보 기사를 통해 살펴보면 "NHN은 1차 공급에서 엔씨소프트와 동일한 필지에 신청했다 보기 좋게 낙방했고 2차에 네오위즈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재도전 결과, 어렵게 입주에 성공했다"고 설명됐다. 초기 판교 테크노밸리의 안정적 출발은 애초 목표였던 '자급자족 산업도시'의 모습을 갖추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판교 테크노밸리는 매년 놀라운 성장세를 선보였다. 판교 테크노밸리 입주기업의 매출액은 2013년 54조원을 시작으로 2014년 69조원, 2015년 70조원, 2016년 77조원, 2017년 79조원, 2018년 87조5천억원으로 급증했다. 손 전 지사는 "솔직히 판교 테크노밸리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것이라고는 당시 생각 못했다. 그만큼 기술을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 기업들의 목마름이 판교로 모였던 것"이라며 "입주 기업을 모집할 때부터 많은 서울 소재 기업들이 판교로 내려오길 원했다. 삼성, 현대 다음으로 한국 경제를 책임지는 것이 판교"라고 추켜세웠다. /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도움주신 분들임창열 킨텍스 대표이사,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재율 前 경기도행정1부지사, 이상후 前 LH 부사장,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 오세일 이너보틀 대표, 오보영 이트너스 이사, 엄정한 컴퍼니B 대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성남시, 성남산업진흥원, 판교박물관■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영상 : 강승호기자, 박소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판교의 심장부 테크노밸리에 자리잡은 첨단 IT기업들. /경인일보DB판교 테크노밸리 일대 야경.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제공경인일보속 판교-(왼쪽부터)2000년 10월 19일, 12월 4일, 2001년 9월 29일, 2003년 8월 15일자 지면.

2020-01-05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1)성장]판교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건교부 vs 경기도'강남의 베드타운 계획' 중앙부처와 조성방향 마찰"양보다 질로 개발" 대통령 직접보고 '승부수' 성공#60만평 vs 10만평건교부, 합의 뒤집고 '주택공급에 중점' 부지 축소道 '첨단산단 요구' 민간단체 가세… 20만평 '타협''판교를 주거단지로 개발하는 것은 우리 경제 도약의 중요한 기회를 일실하는 결과 초래'.2000년 12월 1일, 김대중 대통령이 경기도청을 방문했다. 예정된 도정 업무보고였지만, 대통령 앞에 선 경기도 공무원들의 표정은 자못 비장했다. 판교의 운명을 가를 승부수를 던져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상황을 임창열 전 경기도지사(현 킨텍스 대표이사)는 이렇게 회상했다. "단순히 국가가 주도해서 국토균형발전의 관점에서만 수도권 개발을 바라보면 판교 개발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경기도가 아무리 싸우자고 덤벼도 건설교통부(지금의 국토교통부) 장관이 말을 안 들어주면 끝이다. 법이 그렇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국가니까 도정보고를 이용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방식을 택하면 되겠다 싶었다. 대통령께 직접 설명하면 분명 이 사업의 중요성을 이해할 것이라 확신했다." 판교는 운명을 스스로 개척했다. 판교를 품고 있는 경기도의 고집이 지금의 판교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느 신도시처럼 판교도 한때는 서울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한 베드타운이 될 뻔했다. 서울 강남과 근접한 훌륭한 입지조건을 갖췄고 앞서 개발된 분당신도시의 긍정적 이미지가 강남수요를 잡기에 손색없어서였다. 서울 강남 집값을 잡는 것이 정권의 승패를 결정짓는 상황이었는데, 번듯한 요건을 갖춘 판교를 두고 군침을 흘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국가 국토개발의 전권을 쥐고 있는 건설교통부가 280만평에 이르는 판교 택지개발사업을 '주택공급'에만 주안점을 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였다.그런데 경기도가 제동을 걸었다. 더 이상 수도권에 주민의 90%(2001년 기준)가 서울 등 타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1기 신도시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던 셈이다.그러면서 들고 나온 것이 '첨단벤처산업단지' 개발을 동반한 신도시 건설이었다. 경기도가 꿈꾼 건 '자급자족'이었다. 판교에 벤처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이 곳에서 일하는 IT인력들이 판교에 살면서 회사와 연구소를 오가고, 저녁과 주말에는 상권과 문화를 즐기는 자급자족의 도시가 될 것이라는 게 경기도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건설교통부의 입장은 '반대'였다. 끈질기게 벤처산업단지를 요구하는 경기도와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골이 깊어졌다.경기도정 업무보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수도권에서는 양보다는 질 위주로 개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사실상 경기도의 손을 들어준 뒤 '60만평' 개발로 합의를 해놓고도 건설교통부는 2001년 6월, 별안간 합의를 뒤집고 벤처산업단지 부지를 '10만평'으로 축소 발표해버렸다. 임 전 지사는 "대통령도 건설교통부에 경기도 의견을 무시하지 말고, 수렴해서 결정하라고 메시지를 줬는데 당시 민주당을 등에 업고 건설교통부가 끝까지 반대했다. 대통령 보고 이후 60만평까지 합의가 됐는데 민주당 보고 이후 다시 '주택 공급' 위주로 개발계획이 돌아섰고 10만평으로 확 줄어버렸다"고 회상했다. 당시 경기도와 벤처기업협회 등에서 실시한 수요조사에서는 2005년에 이르면 벤처기업 수가 4만3천여개에 이르고, 860만평 이상의 신규입지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벤처기업협회는 2000년 10월에 기자회견까지 열고 "서울 테헤란로와 양재, 포이동으로 이어지는 벤처밸리는 이미 과포화 상태로 비싼 임대료 등 여러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며 "80년대 이후 수도권 68개 지구 230만명 수용규모의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자족기능 확충을 위한 시설은 한 번도 마련되지 않았다. 판교는 베드타운이 아닌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첨단산업단지가 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더불어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 경기도상공회의소연합회, 경기벤처협회 등 경기도 경제를 주도하는 민간단체들도 언론매체에 판교 벤처단지 조성을 찬성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60만평의 판교벤처단지 조성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것입니다' '판교벤처단지 조성은 경기도지사의 사사로운 건의가 아니라 대통령님과 당대표께 건의드리고 당 및 건설교통부와 공식협의를 거친바 있습니다' '판교벤처단지 20만평에 용적률 200%는 경기도측 요구내용과 전혀 다릅니다' 등 건설교통부의 일방 행보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었다.특히 이들이 낸 '건교부의 판교벤처 불가론에 대한 반박문'에는 흥미로운 내용도 포함됐다. 이들은 "건설교통부가 그동안 경기도 5대 신도시를 개발하면서 1조8천930억원의 이득을 취했다"고 꼬집으며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되며 판교개발로 얻어진 이익은 당연히 판교개발과 관련한 사업에 재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만, 말레이시아 등 경쟁상대국은 지식집적지 조성을 위해 특별법까지 제정해 조세감면,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고 중국의 경우 베이징시 중관촌에 지식집적지 조성을 위해 국가가 28조원을 투입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2001년 9월, 경기도와 건설교통부는 판교벤처용지 개발에 '20만평'을 사용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지금 판교의 성장에 비추어보면 지독히도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경기도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첫 성공사례였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 ■도움주신 분들임창열 킨텍스 대표이사,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재율 前 경기도행정1부지사, 이상후 前 LH 부사장,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 오세일 이너보틀 대표, 오보영 이트너스 이사, 엄정한 컴퍼니B 대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성남시, 성남산업진흥원, 판교박물관■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영상 : 강승호기자, 박소연 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1990년대 후반 개발이 본격화 되기 전 판교일대 전경(왼쪽)과 개발이 시작된 직후 판교 일대 전경. /성남시 제공조성작업이 한창인 판교 테크노밸리 일대 전경. /성남시 제공

2020-01-05 공지영·신지영·김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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