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⑥오산 할머니집]80년 노포, 소머리 설렁탕의 깊은 맛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무쇠솥에 구멍이 나기까지 손끝마저 아린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몸을 녹일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백년가게는 80년 역사를 간직한 '오산 할머니집'이라는 노포입니다. 메뉴는 소머리 설렁탕과 수육, 단 2가지로 단출합니다. 메뉴판부터 주인장이 가진 음식 맛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식당입니다. 이 식당의 역사를 설명하려면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 이전까지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요정이었다고 하는데요. 현재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4대 박명희 사장의 시증조모께서 해방 이후부터 가게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식당 운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국이 시국이었던지라, 영업 초기에는 별도 메뉴가 없었다고 하네요. 있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거나, 손님들이 해달라는 음식을 만들어 판매했다고 합니다. 소머리 설렁탕과 수육을 판매하기 시작한 건 37년 전쯤부터 입니다. 37년 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이었으면, 이 시간 동안 고기와 육수를 끓이는 무쇠솥에 구멍이 나 바꾼 솥도 여러 개라고 하네요. 세월의 힘은 무쇠도 뚫는가 봅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대를 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원래 남편이 맡아서 했는데, 남편이 하니까 자동으로 하게 되더라고요. 10년 전쯤 남편이 세상을 뜨면서부터는 혼자 식당을 운영했어요. 옆에서 어른들이 도와주니까 할 수 있었겠죠.(웃음)"(박명희)3년 전부터는 둘째 아들인 김상겸 사장이 다음 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어요. 어머니께서 '젊은 나이니까 사회생활을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에 저희 할머니도 몸이 안 좋으셨는데, 어머니께서 식당 운영에 뒷바라지까지 하시니까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들어와서 일을 해보겠다'고 말씀 드렸죠."(김상겸)밖에서 볼 때는 전통을 이어가려는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이들 모자에게도 남모를 고충이 있습니다. 식당 운영이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박명희 사장은 아들에게 가게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들인 김상겸 사장 역시 '할 거 없으면 가게 물려 받으면 된다'는 식의 주위 시선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솔직히 쉽지 않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도 나이가 많지 않다 보니까 한 자리에 묶여 있는 게 답답할 때가 있죠. 장사라는 게 쉬는 날이 없고 아침 일찍 나와 밤 늦게 퇴근하는 게 일상인데, 그렇게 쉽게 얘기하는 사람 보면 화가 날 때도 있어요."(김상겸)#손님도 대를 잇는다오래된 가게는 주인만 대를 잇는 게 아닙니다. 손님도 대를 이어 단골이 되기도 하는데요. 특히, 오산 할머니집은 같은 자리에서 단골 손님 위주로 오랫동안 장사를 해오다 보니, 주인과 손님과의 관계가 남다르기 그지없습니다. 엄마 등에 업혀 오던 아이가 지금은 자기 아이를 업고 오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 가게만의 매력입니다. "나이 드신 할아버님인데, 서울 잠실에서 전철 타고 오산역에 내려서 식당까지 걸어오는 분이 있어요. 오셔서 설렁탕 한 그릇이랑 막걸리 한 잔 하고 가시는데, 이 분은 항상 오시면 옛날 이야기를 들려 줘요. 단골 손님 중에 철강회사 대표 분도 있는데, 이 분은 매번 고급 외제차를 타고 와서 설렁탕에 소주 한 잔 하고 돌아가세요. 기억에 남는 손님들이 정말 많죠."(박명희)오산 할머니집은 다른 유명한 노포 만큼 손님이 많은 곳은 아닙니다. 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 메뉴를 다양화하거나, 자리를 옮길 생각도 없다고 하네요. 이 역시 잊지 않고 가게를 찾는 단골 손님들을 생각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저희 생활 유지할 만큼 계속 장사를 해왔어요. 돈을 많이 벌어서 가게 규모를 지금보다 키우고 싶은 생각은 딱히 없어요.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이 동네보다 (장사하기) 좋은 동네로 옮겨서 했겠죠. 저희 생각해서 꾸준히 오는 분들을 위해 한 자리를 계속 지키고 싶어요."(김상겸)오랜 역사만큼이나 가게를 설명하는 수식어도 늘고 있습니다. '백년가게' 뿐만 아니라 '줄 서는 식당', '대물림 가게'까지 칭호가 하나 둘씩 늘 때마다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한 것도 소홀하게 한 건 없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죠. 애들한테도 더 열심히 하라고 자주 이야기하고 그러죠."(박명희)"그냥 그런거 있잖아요. 항상 그곳에 가면 거기에 있는 곳. 그런 가게가 되고 싶어요. 오래 전에 오셨다가도 '그 집 참 좋았는데' 하며 찾으면 그 자리에 있는 가게. 그렇게 남고 싶습니다."(김상겸)#비법 없는 비법오래 장사를 한 식당이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법한 맛의 '비법'. 오산 할머니집은 그런 특별한 비법이 없다고 합니다. 이 집의 소머리 설렁탕엔 인위적인 조미료가 전혀 가미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로지 고기와 뼈로 진한 육수를 만듭니다. 비법이라고 한다면 소머리를 손질하고 씻어내는 방법입니다. 소는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라 냄새가 나는데, 이 냄새를 잡기 위한 세심한 손질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또한, 식당에서 사용하는 모든 재료는 소 머리부터 깍두기에 사용되는 무와 양념까지 모두 국산입니다.오산 할머니집은 설렁탕이나 수육을 주문하면 토렴 방식으로 음식을 데워 손님상에 내놓습니다. 토렴은 '음식에 더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가 따라내어 덥히는 것'으로 가스 불이 흔하지 않았을 때 음식을 데우는 전통 방식입니다. 설렁탕은 넉넉한 고기와 함께 국수가 말아져 나옵니다. 진하면서도 부드러운 국물 맛이 인상적입니다. 기호에 맞게 소금간을 하면 됩니다. 수육은 설렁탕에 들어간 고기와 유사하면서도 보다 쫄깃한 고기의 식감을 즐길 수 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안줏거리가 될 것입니다. 김치와 깍두기, 부추김치 등 김치 맛은 짭짤하면서도 식감이 제대로 살아있습니다. 오산 할머니집처럼 한결같은 맛을 지키며 장사를 할 자신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비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합니다. 오산 할머니집 맛의 비법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산 할머니집 주소: 오산시 오산로300번길 3. 영업시간: 오전 10시 ~ 저녁 9시(오후 3시 ~ 오후 5시 브레이크타임/매주 일요일 휴무). 메뉴: 소고기 설렁탕 보통 1만원, 특 1만2천원. 소머리 수육 3만5천원, 반 접시 1만8천원.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오산 할머니집 소머리 설렁탕/디지털콘텐츠팀오산 할머니집 박명희 4대 사장/디지털콘텐츠팀오산 할머니집 김상겸 5대 사장/디지털콘텐츠팀(왼쪽부터) 오산 할머니집 1~4대 사장/디지털콘텐츠팀오산할머니집 수육/디지털콘텐츠팀

2021-02-18 배재흥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⑤성남 우드아트가구]나무의 멋, '고가구'에 빠지다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일흔,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가구의 주재료는 오동나무·편백나무·소나무 등의 원목입니다. 일반 가구와 달리 시트지를 붙이거나 별다른 가공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무가 가진 결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여기에 봉황(다복), 거북이(장수), 박쥐(다산) 등 저마다의 의미를 가진 문양이 새겨집니다. 고가구를 집안에 들여놓음으로써 좋은 기운을 받는다는 기분까지 즐길 수 있는 것이지요.성남시 수진동의 '우드아트가구'는 고가구 전문점입니다. 부부 사이인 이종근·권영숙 대표는 이 자리에서만 25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 영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일반 가구만 취급했다고 합니다. 고가구를 하나·둘씩 매장에 들여놓았는데, 손님들의 반응이 일반 가구를 판매할 때보다 훨씬 좋았다고 하네요."일반 가구를 10년 정도 쓰다 보면 가구에 껍데기가 일어나고, 바퀴가 빠지는 등 수리할 일이 생겨요. 10년 간 판매한 가구들을 모두 수리하려고 하니 어렵더라고요. 오랜 기간 가구를 쓰다 보니 고장 난 것인데, 가구점이 나쁘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어요."(권영숙)이종근 대표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일찍부터 자개장을 만드는 기술을 배운 나전칠기 전문가입니다. 가구점을 하기 전에는 자개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나전칠기 전문가', '일흔을 넘긴 나이', '25년의 가구점 운영 경력'을 가진 그는 지금도 새로운 걸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어요. 왜냐 하면 옛날처럼 매장을 방문해야 물건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고, 스마트폰으로 세계 물건을 다 보면서 비교할 수 있잖아요. 이거는(고가구는) 옛날과 지금의 중간 지점을 잘 찾느냐에 따라 장수를 할 수도 있고 전멸을 할 수도 있어요. 전시회를 찾아다니면서 공부를 안 하면 이것도 지탱하기 힘들죠."(이종근)#진심으로 쌓은 신뢰이들 부부가 25년간 한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가구점을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손님과 쌓은 '신뢰'가 있습니다. 양질의 가구를 판매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들은 진심을 다한 서비스로 손님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가구 배송과 설치를 주로 맡아 하는 이 대표는 가구 배송을 가면 먼저 걸레부터 찾는다고 합니다. 배송 중 가구에 묻은 먼지는 물론 가구를 놓을 자리까지 손수 닦기 위함입니다."가구를 설치한 집에 고쳐야 할 물건이 보이면 말 없이 그냥 해줘요. 그 분들은 마음 속으로 고마움을 느끼나 보더라고요. 그런 손님들이 꼭 필요하지 않더라도 고맙다고 매장을 찾아와 팔아줄 때가 있어요. 좌우지간 성의껏 해줄 수 있는 데 까지 하는거죠."(이종근)고가구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비싼 편입니다. 손님 입장에서 하나를 사더라도 더 신중할 수밖에 없죠. 판매하는 사람은 감정노동을 하는 것이다 보니 힘에 부칠 때가 있습니다. 권영숙 대표는 본인이 힘들지언정 손님들을 응대할 때는 항상 웃는 모습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 걸려온 전화를 목소리 톤을 높여 받는 그입니다. "제품을 사간 사람이 좋다고 하면 우리 기분도 좋죠. 어떤 손님은 우리 가구를 집에 놓으니 부자가 된 기분이라고 하고, 한 끼를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할머니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좀 더 신경 써서 맞춰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해요."(권영숙)25년 전 인근에서 이들 부부와 함께 장사를 시작한 가게가 10곳이라면 지금 남은 곳은 1~2곳 정도입니다. 이들 부부는 '저희가 잘해서가 아니라 (손님들이) 예쁘게 봐줘서'라며 자신을 낮추었습니다.백년가게 선정에 대한 소감을 묻자 '책임감'이란 답변이 돌아옵니다. "뿌듯한 반면 책임감도 느껴요. 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어요. 거짓 없이 열심히 또 진실한 마음으로 하는 것 이상의 답은 없다고 생각해요."(이종근)"저희 믿고 오시는 손님들에게 조금 더 성의를 보여드리고 자상하게 많이 하고 싶어요. 잘해주고 싶어요. 감사합니다."(권영숙)#고가구 구매·관리 tip고가구를 살 때는 색상과 짜임새를 눈여겨 보라고 합니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색상을 고른 뒤 가구가 섬세하게 짜 맞춰져 있는지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마감처리 상태를 확인하면 아주 좋은 물건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하네요. 가구에 새겨진 문양의 의미를 따져보는 것도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고가구는 원목을 주재료로 하기 때문에 물걸레로 닦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가구가 뿌예지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마른 걸레를 이용하길 바랍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견과류 기름과 벼를 이용해 닦는 것입니다. 기름기가 있다 보니 닦으면 윤이 나고 고가구를 길들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우드아트가구 주소: 성남시 수정구 제일로 154. 영업시간: 오전 9시~저녁 9시(명절 휴무). 고가구 맞춤 제작도 가능합니다./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매장 앞에 선 이종근, 권영숙 대표. 이들 부부는 이 자리에서만 25년 동안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다./디지털콘텐츠팀이들 부부는 진심이 담긴 서비스로 손님들과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고 한다./디지털콘텐츠팀우드아트가구점에서 판매 중인 고가구. 가구에 새겨진 문양에는 저마다의 의미가 담겨 있다./디지털콘텐츠팀

2021-02-04 배재흥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④인천 흐르는물]LP와 커피, 낭만이 흐르는 곳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낭만이 흐르는 곳바삐 돌아가는 세상의 뒤꽁무니를 쫓다 보면 왠지 모를 공허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경주마' 같은 삶의 피로감이겠죠. 오늘은 메마른 현실에 지친 이들을 위해 낭만이 가득한 공간을 소개합니다. 특히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잠시나마 숨통이 트이는 장소가 될 것 같습니다. 인천시 중구 신포동은 지금이야 구도심으로 불리지만 인천항 개항 이후 최대 상권을 이룬 곳입니다. 하지만 신포동 일대 개항장지구는 인천 내륙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주요 공공시설이 이전하고 인천항 내항의 항만기능이 점차 줄어든 1990년대부터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이곳에 안원섭 대표가 1989년부터 30년 넘게 운영 중인 LP카페 '흐르는 물'이 있습니다. 가게의 상호는 정희성 시인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 나오는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호와 얽힌 에피소드가 재밌습니다. "원래 상호는 시 구절을 인용해 '흐르는 것이 어찌 물뿐이랴'였어요. 그렇게 몇 년 하고 있는데, 공무원들이 와서 이름 좀 바꿔 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당시 우리 가게에 예술을 하거나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많이 왔는데, 관에서 볼 땐 상호가 문제였던 거죠. 그래서 '흐르는 물'이라고 줄인 거예요."음악을 좋아하던 29살 청년이 문을 연 이 공간은 지역 예술인들의 아지트가 됐습니다. 시와 소설을 쓰는 사람, 미술을 하는 사람, 대중가요 또는 악기를 하는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가게를 찾았습니다. 젊음을 함께 불태운 손님들이 이제는 자식들을 데리고 이곳을 찾는다고 하니, 정말 오랜 기간 가게를 일궈온 겁니다. 요즘은 '뉴트로' 열풍이 불면서 젊은 사람들이 LP를 직접 가져와 틀어달라고 하는 요청도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원래 독일 바우하우스로 유학을 가서 건축미학을 공부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독일이 통일된 거예요. 당시 독일에 살고 있던 누나가 '지금은 혼란하니 독일에 오는 걸 보류해 달라'고 해서 결국 못 가게 됐죠. 그러다 지금 집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하면서 어느새 여기까지 온 거예요." #등대지기를 꿈꾼 소년시와 음악을 좋아했던 안 대표의 어릴 적 꿈은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도 아닌 '등대지기'였습니다. 그는 '어두운 밤바다에 세찬 파도를 뚫고 오는 배들한테 불빛 하나 내려주는' 등대지기가 정말 좋았다고 합니다. 실제 등대지기를 뽑는 시험에 응시하려고까지 했으나, 기계 조작을 잘 해야 한다는 말에 포기했다고 하네요. 대신 지금은 손님들에게 '물지기'로 불립니다. '흐르는 물을 지키는 물지기', 어찌 보면 어릴 적 꿈을 이룬 셈입니다. "개항장지구에 어둠이 내렸을 때 손님이 오든 안 오든 간판 불을 켜고 이곳을 지키고 있으니 등대지기와 비슷한 점이 있는 거죠. 이런 걸 보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교급이 아닌 나만의 행복."흐르는 물은 음악을 듣는 곳이지만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은 아닙니다. 안 대표가 소장하거나 손님들이 가져온 LP 또는 CD로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이죠. 물론 그가 소장한 LP만 5천장 가량이니 웬만한 노래는 들을 수 있습니다. 그는 LP의 음은 녹음할 때부터 '사람의 감정을 안 다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앞으로도 흐르는 물에서 음원으로 노래를 듣는 일은 없을 듯 합니다."요즘은 음원으로 편리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저희 가게는 못 틀어드리는 음악도 있어요. 손님들이 틀어달라는 노래의 95% 정도는 바로바로 나와요. 제가 모르는 음반을 얘기하면 '잠깐 기다려 달라'하고 찾아본 뒤 없으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죠. 그래서 배우는 음악도 많아요. 나이, 성별, 직업별로 음악의 깊이, 넓이가 다 다르거든요."#따뜻한 공간, 따뜻한 사람흐르는 물이 위치한 신포동의 매력이 뭐냐고 묻자 답변이 쉴새 없이 쏟아집니다. 천진난만한 그의 모습에서 이 지역을 사랑하는 그의 진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동네에 대한 애정은 가게를 꾸준히 이어나가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40~60대를 지나가고 있는 인천 사람들은 이 동네에 와서 영화를 봤고, 쓴 소주 한잔을 마셨고, 레스토랑에 가서 경양식 돈가스를 먹었어요. 대한서림에서 책을 사고, 하다못해 나이트클럽을 가도 이 동네로 왔죠. 개항이 되면서 예술이든 음악이든 춤이든 커피든 모든 게 이쪽으로 들어왔어요. 가장 좋은 건 엄마 품처럼 어렸을 때 추억이 거의 변함 없다는 거예요. 신도시에 가면 편리하긴 하지만 왠지 내 옷이 아닌 것 같은데, 차를 타고 이곳으로 돌아오면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죠."백년가게로 선정된 건 그의 인생에 큰 자부심이자, 초심을 돌아보게 하는 자극이 됐습니다."선정 소식을 듣고 집사람하고 함께 울었어요. 물질적 혜택이 많진 않지만 지난 세월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참 기뻤죠. 가게를 운영하면서 짜증이 나는 일이 왜 없겠어요. 백년가게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가게 운영을 하려고 해요."안 대표는 손님들이 마음 편히 음악을 들으며 차 한잔,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이 하루빨리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흐르는 물이 '외갓집'같은 곳으로 기억됐으면 해요. 우연히 방문했어도, 가끔 갔어도, 오랜만에 갔어도 그 사람이 있어서 따뜻한 곳."*흐르는 물 주소: 인천시 중구 신포로 31. 영업시간: 오후 6시~새벽 1시(일요일 휴무). 연락처: 032-762-0076. 커피와 음료, 맥주 등을 주문할 수 있습니다. 흐르는 물은 인천대중음악전문공연장협회 소속 클럽으로, '홍대 라이브 클럽 데이'와 같은 다양한 문화 공연도 열립니다.흐르는 물 안원섭 대표./디지털콘텐츠팀인천에 많은 눈이 내린날, 흐르는 물 외관 전경. 안 대표가 가게 앞에 쌓인 눈을 쓸고 있다./디지털콘텐츠팀.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흐르는 물 내부 모습./디지털콘텐츠팀흐르는 물에서 밴드 공연이 열리고 있다./안원섭 대표 제공

2021-01-21 배재흥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③수원 진천생고기]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 그리운 날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제2의 고향' 수원서 문 연 고깃집코로나19는 '삶의 맛'을 무척 단조롭게 만들었습니다.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서 기쁨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분노와 슬픔만이 남은 듯합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처럼 고된 하루를 위로해줄 일상의 소소한 행복조차 욕심이 되어버린 요즘입니다.이번에 소개할 가게는 지난 1991년 수원시 장안구 거북시장 안에 문을 연 '진천 생고기'입니다. 온전히 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에게 지난 30년 세월 동안 '삼겹살에 소주 한잔'의 즐거움을 제공한 곳입니다. 진천 생고기는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가게입니다. 진천(충북) 출신 진수진 대표와 부산이 고향인 그의 아내 김은순 대표가 '제2의 고향' 수원에서 고깃집을 연지도 어느덧 30년이 넘었습니다. 이 곳이 개업 초기에 좀 더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참 재밌습니다. 주변에 장사가 아주 잘 되는 고깃집이 있었는데, 손님들이 넘쳐나다 보니 한 발 늦은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근처 진천 생고기로 유입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지 그런 운으로만 30년 넘게 가게를 이어갈 순 없었겠지요. 주어진 기회를 잡기 위한 부부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신선한 고기를 갖다가 손님이 보는 곳에서 직접 썰어줍니다. 고기 가지고 장난치지 않음을 보여주고 신뢰를 주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네요."(진수진)"고기든 채소든 재료를 속이지 않고 좋은 걸 쓰니까 손님들이 알아준다고 생각해요. 반찬도 매장에서 파는 걸 쓰는 경우가 있는데, 저희는 직접 손으로 하니까 아직 가게를 이어나갈 수 있는 불씨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아요."(김은순)#부부가 '제2의 인생'을 사는 까닭이들 부부의 첫인상은 '금슬이 참 좋아 보인다'였습니다. 차분한 성품의 진 대표와 밝은 에너지를 가진 김 대표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오랜 기간 가게를 일궈왔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역경의 순간은 찾아왔습니다. 같은 고향 사람임을 내세우면서 접근한 사람에게 큰 돈을 사기당한 것입니다. 1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데다, 언제 받을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어 답답할 노릇입니다. 어린 자식들의 고생까지 얹어진 돈이라는 생각에 더욱 억울함을 느꼈습니다. 어린 딸을 근처 슈퍼에 맡기거나 가게 한편에 눕혀놓고 장사를 하면서 힘들게 모은 돈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들 부부는 두 손을 꼭 잡고 칠흑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습니다. "우리가 남들 놀 때, 그러지도 못하고 죽으나 사나 가게에 매달리면서 번 돈인데, 이런 큰돈을 날렸을 때는 말도 못했죠. 그래도 애들이 있고, 아내와 같이 어려움을 겪고 견뎌냈어요."(진수진)"둘이 손을 꼭 잡았어요. 죽어가는 목숨에다 투자해 살아나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거라고. 젊으니까 다시 살 수 있다고."(김은순)#매일 아침 가게 문을 열게 하는 힘진천 생고기를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손님들은 이들 부부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가게의 문을 열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은순 대표의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경기도청 공무원들은 진천 생고기의 주요 고객층입니다. 공직에 있을 때 자주 방문하다, 퇴임 이후 옛 생각이 나서 이곳을 찾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 중에는 '폐암'에 걸린 아픈 몸을 이끌고 아내와 함께 찾아온 손님도 있었습니다. "'옛날에 진천집에서 먹던 고기 맛이 생각나서 왔다'고 하는데, 가슴이 엄청 뭉클했어요. 가게를 이쯤에서 접어야 하나 라는 고민이 드는 시점이었는데, 그 분을 보니까 잊지 않고 찾아주신다는 게 너무 감사했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장사를 해야 할 거 같아요."(김은순)물론 헤쳐 가야 할 어려움도 많습니다. 거북시장의 유동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엎친 데 덮친다고 코로나 여파로 매출이 3분의 2가량 감소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백년가게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은 이들 부부에게 새로운 자극이자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조금 인내를 갖고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더라고요. 장모님께서 늘 하신 말씀이 '진 서방 밥이나 먹고 살겠나'였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뭐가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변함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신선한 고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보답하겠습니다."(진수진)"모두가 대박을 원하는데, 대박보다 평범함 속에 일상의 소소한 행복도 좋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성공에 비중을 크게 두면 정작 소중한 것을 잃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앞으로도 정직하게 이 자리를 지키려고 해요."(김은순)*진천 생고기 위치: 수원시 장안구 정조로934번길 25. 메뉴: 육회, 안창살, 등심, 차돌박이, 갈매기살, 항정살, 삼겹살 등(소고기·돼지고기 국내산).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수원시 장안구 거북시장 안에 위치한 진천 생고기. 사진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진수진, 김은순 부부./디지털 콘텐츠팀.손님에게 신선한 고기를 제공한다는 자부심을 가진 진수진 대표./디지털 콘텐츠팀.기억에 남는 손님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힌 김은순 대표./디지털 콘텐츠팀.진천생고기 상차림/디지털 콘텐츠팀.

2021-01-07 배재흥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②군포 재궁태권도장]태권도장을 지키기 위해 경비원이 되다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마약은 끊어도, 태권도는 못 끊는다여러분은 '태권도'하면 어떤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 여럿과 함께 태권도장으로 향했던 어린 시절 모습이 선명합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종목에 출전한 문대성 선수가 상대 선수를 멋진 뒤돌려차기로 제압한 장면도 기억 한편에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 태권도를 소환해 보려고 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28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남 재궁태권도장(군포) 총관장입니다.이영남 관장이 태권도를 시작한 계기는 유년시절 남들보다 작은 '키' 때문이었습니다. 보통의 부모들이 그렇듯 이 관장의 아버지도 자식의 성장이 또래보다 더딘 걸 염려해 아들을 태권도장에 보낸 것이었죠. 부모의 손에 이끌려 시작한 것이지만, 그는 금세 태권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취미 생활 정도로 여긴 태권도가 어느새 그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고, '태권도의 길'을 가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태권도를 시작한 뒤로는 몸집이 큰 사람들을 상대해도 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이 단련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니까 말 그대로 배짱이 아주 대단해졌죠."그토록 사랑한 태권도였지만 한때나마 스스로 도복을 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과거 태권도 관련 단체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했다가 승단 심사 등에서 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무도인으로서 그의 자존심을 짓밟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했던가요? 다시 도복을 입을 수밖에 없던 그였습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태권도는 마약 이상이라고 볼 수 있죠. 마약은 끊을 수 있지만, 태권도는 못 끊으니까요."#낮에는 태권도 관장, 밤에는 경비원이 관장의 태권도 사랑은 말 그대로 흘러넘칩니다. 그를 보며 느낀 감정은 일종의 '부러움'이었습니다. 자신의 직업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의 모습에 저절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애정만으로 도장을 지켜나갈 순 없습니다. 28년 된 도장을 운영하는 그가 밤에는 강남의 한 빌딩에 경비원으로 취업해 밤샌 근무를 하는 이유입니다.그의 도장에는 이요한 지도관장과 이다해 수석사범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이 관장의 아들, 딸입니다. 2대가 함께 힘을 모아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관원이 대폭 줄면서 둘의 인건비도 감당하기 벅찬 상황입니다. "태권도 가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뒷받침해야 합니다. 제가 체육학 박사이고 한 체육관의 총관장이지만 경비원으로 일하며 땀 흘리는 게 전혀 부끄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이게 저의 태권도 정신이자, 철학입니다."백년가게 선정은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국민추천 방식으로 백년가게가 된 재궁태권도장은 한 자리에서 28년 간 도장을 운영한 점과 앞으로도 도장을 이어나갈 가능성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여러 풍파 속에서도 꿋꿋이 도장을 지켜 온 이 관장의 노력이 빛을 본 것입니다. "자기가 중소기업 도와주는 쪽 직원이라고 하면서 전화로 백년가게 이야기를 하길래 처음에는 보이스 피싱인 줄 알았어요. (웃음) 주변의 도움을 받아 백년가게로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한 길을 걸어오길 잘했구나!', 뿌듯함을 느낀 순간이었죠."#한옥 도장에서 대통령 배출을 꿈꾸다대를 이어 도장을 이어나가는 것은 그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아들과 딸이 모두 태권도를 업으로 삼고 있고, 곧 사위가 될 사람도 태권도인입니다. 말 그대로 '태권도 집안'인 셈이죠.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겠다'는 자식들과 이견(?)이 좀 있지만 손주들이 태권도를 했으면 하는 기대까지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봅니다. "욕심인 건 알지만 손주도 다른 운동 말고 꼭 태권도를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웃음) IMF 등 많은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백절불굴'의 자세로 도장을 지켜왔습니다. 제 자식과 후손들이 이 도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틀 정도는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이 관장의 최종 목표는 한옥 도장을 짓는 것입니다. 당장 건물을 짓지는 못하겠지만 군포와 안산 경계지점에 이미 부지도 사놓았습니다. '올바른 정신과 건강한 신체 수련'을 강조한 그는 이 공간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국기(國技)인 태권도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소임입니다. "많은 후배들이 자신의 꿈과 이상을 불태울 수 있는 멋진 도장을 짓는 게 남은 인생의 중요한 계획입니다. 제가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를 길러냈듯이 제 자식들은 실력과 인성을 갖춘 훌륭한 지도자가 돼 대통령까지 배출하는 도장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재궁태권도장 위치: 군포시 산본로 296-1 401호.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재궁태권도장 이영남 총관장. 도복을 입은지 벌써 45년이란 오랜 지났지만 그의 태권도 사랑과 열정은 초심 모습 그대로 인듯 했다. 2020.12.24 /디지털콘텐츠팀백년가게로 선정된 재궁태권도장./이영남 총관장 제공재궁태권도장의 이영남총관장과 이요한 지도관장(왼쪽), 이다해 수석사범이 품새를 선보이고 있다. 세 사람은 가족이다. 2020.12.24 /디지털콘텐츠팀

2020-12-24 배재흥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①안산 할리바버샵]사람 몸에 칼을 댄다는 책임감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안산시 '할리바버샵'에 가다경인지역에는 총 119곳(경기도 85곳, 인천 34곳)의 백년가게가 있습니다. 이곳의 대표들은 자기 업종의 전문성을 가지고 최소 20년 이상 가게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장인'입니다. 이 중 어떤 장인을 첫 번째로 소개해야 할지, 가게 선정 과정부터 큰 난관이었습니다. 그러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한 '바버숍'이 백년가게로 선정돼 있는 걸 발견하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것의 향기가 나는 백년가게와 현대적인 느낌의 바버숍은 왠지 어울리지 않아서였죠. 이곳의 대표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손에 쥔 빗과 가위를 놓지 않고 있는 신태민 이용기능장입니다. 그는 이용사 자격증 취득 시험의 감독관을 맡고 있을 정도로 이용업계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치면 심사위원 격인 셈이죠. 이런 그도 바버숍 매장을 열기 위해 지원자의 입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술과 연륜은 있다고 하나, 최신 이용 트렌드는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느지막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신 기능장의 고생길이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이발소를 운영하다 새롭게 트렌드를 접목시켜 바버숍 문을 연 건 5~6년 전 일이에요. 매장 운영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가서 교육을 받았죠. 집에 도착하면 새벽 3~4시가 됐어요. 그렇게 7~8년 정도를 했죠. 기존 매장을 운영하면서 평소 해오던 틀에서 벗어나려고 아이템 구상을 많이 했어요. 솔직히 저희 가족, 지인분들을 상대로 연습을 많이 했죠. (웃음)"*바버숍이란?- 남성의 머리카락을 깎고 구레나룻과 수염을 다듬는 이발소를 현대적으로 브랜딩한 가게.(출처: 박문각) #가위를 든 자부심그가 바버숍을 운영하면서부터는 소위 진상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일반 이발소를 운영할 때는 무턱대고 반말을 하는 손님부터 술을 마시고 와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이었답니다."저도 사람이다 보니까 일반 이발소를 할 때는 고객님들과 말다툼한 적도 있죠. 작은 인테리어부터 제 나름대로 갖춰야 할 것들을 갖추고 바버숍을 운영하다 보니 매장의 품위도 많이 올라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예전처럼 막무가내인 고객님들은 요즘은 별로 없어요."개인적으로 바버숍이든 이발소든, 미용실이든 머리카락을 자르러 가서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용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용사와 미용사는 가위 혹은 면도칼 등 날카로운 물건을 사람들의 얼굴에 직접 대는 직업군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부심 또한 대단합니다. "자격증 체계로만 놓고 보면 사람 몸에다 칼을 대는 직종은 우리 업종과 외과의사 밖에 없어요.(웃음) 여태까지 이 일을 먼저 했던 선배들이 후배를 육성할 때 그런 마음으로 가르쳤어요. 지금은 제가 후배들에게 직업에 대한 애착이나 장인 정신 하다못해 프로 정신을 가질 수 있게끔 지도를 하고 있죠."#백년가게 그리고 책임감 신 기능장은 자기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백년가게 선정을 꼽았습니다. 이용기능장이 됐을 때, 기능대회에서 최고 기능인으로 선정됐을 때와 비슷한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실 백년가게 선정은 그의 계획에 없던 일입니다. 업력 30년 기준을 채우지 못하다 보니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죠. 이런 그가 바버숍으로는 처음으로 백년가게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추천제 덕분이었습니다. 평소 그를 좋게 본 지인이 직접 그를 추천한 것이었죠. "제가 기능공부 할 때부터 알고 있던 고객님인데, 내색은 안 하셔도 그 분인 것 같아요. 저를 그렇게까지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분 밖에 없거든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백년가게로 선정된 가게들은 정부의 각종 행·재정적 지원을 받게 됩니다. 더불어 여러 소상공인들의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뒤따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신 기능장에게는 업계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는 중압감도 큽니다. "우리 업을 해도 성공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어요.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지면서 이용업종이 활성화 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요. 이용업이나 바버숍 관련 매뉴얼을 전수해 나가는 상황을 만들어 나가야죠. 미래가 보이고 희망이 보이는 직업군이 될 수 있게끔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바버숍 이용 tip지저분한 머리카락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미용실을 찾는 기자에게 바버숍 경험은 '생경' 그 자체였습니다. 매번 기성복을 입다, 맞춤복을 사러 간 느낌이랄까요? 특히, 얼굴의 잔털 하나하나까지 관리해 주는 면도 서비스를 받고 난 뒤에는 '시원함' 그 이상의 기분을 느꼈습니다.신 기능장의 추천은 국가에서 준하는 인증이나 거기에 걸맞은 기능장,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전문 매장을 찾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취향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후회하지는 않을 거랍니다. 바버숍이 남성 전용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여성분들도 이용 가능합니다. 정기적으로 면도 서비스를 받는 여성분들이 꽤 된다고 하네요. 안산 '할리바버샵' 위치: 안산시 상록구 충장로 432 홈플러스 안산점 2층. 영업시간: 10:00~21:00(명절 당일 휴무).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매장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신태민 기능장. /디지털 콘텐츠팀신태민 기능장의 가위에 몸을 맞긴 기자./디지털 콘텐츠팀백년가게 마크./중기부 제공.신태민 기능장의 면도 서비스를 받고 있는 기자. 베일까 걱정했던 것도 잠시, 이내 편안함에 빠져들면서 비몽사몽을 오가는 행복을 맛봤다./디지털 콘텐츠팀

2020-12-10 배재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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