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하위지언: 무엇을 말을 아는 것이라 하는가?

관상에는 觀象과 觀相이 있다. 관상(觀象)이란 단어는 주역에서 나온 것으로 괘상(卦象)이나 물상(物象)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태극기에도 들어있는 건괘(乾卦)는 그 상이 양획으로만 구성되어 강건한 상이고, 양으로만 순일하기 때문에 천상(天象)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이에 비해 관상(觀相)은 주로 사람의 외형이나 내면의 특성을 빈부나 귀천이나 심성 등과 관련하여 정의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관상 중에 가장 보기 힘든 것이 심상(心相)이란 것은 누구나 하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은 알기 어렵다. 오죽하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을까?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알기는 어렵지만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심상(心相)을 보는 법에 대해서 가장 정확히 이야기한 책이 바로 논어와 맹자이다.맹자는 선생님의 최대장점이 무엇이냐는 제자의 당돌한 질문에 기(氣)와 언(言) 두 방면을 말하였다. 이른바 호연지기(浩然之氣)와 지언(知言)이라는 맹자의 최대 화두이다. 제자가 묻는다. 무엇을 말을 아는 것이라 합니까? 이 대목에서 지언(知言)은 직역하면 '말을 안다'란 뜻인데 단순히 언어능력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말씀 언(言)을 파자(破字)하면 입(口)밖에 나온 굳어진 마음( )이다. 굳어진 마음을 풀어보면 그 말이 나온 출처인 마음을 알 수 있는데 맹자는 그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누군가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을 따라들어가 그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맹자의 관상법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중시한다. 맹자는 사람들의 4가지 심리를 반영하는 말을 편벽된 말, 방탕한 말, 부정한 말, 도피하는 말로 정의하였다. 잘 살펴볼 일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7-17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행이현원: 가까운 곳에서의 행동이 먼 곳에서 보인다

한 5년 전 어느 날 필자의 딸이 스마트폰을 옆으로 세워놓고 보며 찰흙 같은 것을 주물럭거린다. 스마트폰 동영상에서는 손으로 찰흙을 만지면서 뭐라고 간혹 설명도 한다. 딸에게 그게 뭐냐고 물어보니 액괴라고 한다. 액괴가 뭐냐고 하니 액체괴물이라나! 만져보니 촉감이 나쁘진 않았는데 어느 날은 또 슬라임이라고도 한다. 그렇게 동영상을 보고 따라하더니만 어느 날부터는 자기도 제작해서 유튜브에 올려놓는다. 정보의 전달방식이 신문 등의 종이에서 인터넷사이트로 옮기더니 이젠 확실히 불특정 개인간 채널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1인', '개인'이 핵심어로 급부상한 시대가 된 것이다.주역에 중부(中孚)괘가 있다. 중부(中孚)괘에는 어미와 새끼 간의 자연스럽고 진실한 감응과 공명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어미 학이 새끼를 찾아 울면 새끼 학이 그 소리를 듣고 화답하는 학명자화(鶴鳴子和)의 장면이다. 공자는 이 장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설을 펼쳐놓았다. "사람이 자기 방에 있으면서 착한 말을 하면 천리 밖에서도 그 말에 호응하고 착하지 못한 말을 하면 천리 밖에서도 그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는 행동도 가까운 곳에서 했을 따름인데 천리 밖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니 더욱 언행을 조심하지 않으랴!" 마치 삼천년 전에 지금 시대를 예견이라도 한 것 같은 말씀이다. 현대는 마음만 먹으면 내가 방안에서 한 말과 행동이 지구 반대편에 실시간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나타나는 시대이다. 그러나 효과적인 파급력에 비례해서 되 담을 수 없는 위험도도 증가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에 대해 언행의 신중함이 제기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7-10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수신위본: 몸을 닦는 것이 근본이다

동양에서 본말에 관한 체계를 세워놓은 고전이 대학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살면서 가장 근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대학에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몸을 닦는 것을 근본적인 일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동양의 고전에서 보통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곤 한다. 대학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마음의 근본적 지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마음이 떠난 몸은 시신과 같아서 일체의 인식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별도로 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마음을 바로 다스리는 일이 정심(正心)이라면 몸을 바로 다스리는 일이 수신(修身)이다. 마음과 몸은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의 작용은 몸에 의지하고 몸의 작용은 마음에 의존한다. 아무리 마음이 근본이 된다 하더라도 그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몸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천자에서 서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신이 근본이라고 한 것이다. 꿈을 꿔보면 알 수 있듯이 꿈속에서는 여러 가지 일을 수동적으로 겪을 뿐 고의성이나 주재성이 없다. 이른바 몽신(夢身)의 부자유함을 미루어보면 육신을 떠난 영혼으로서의 업신(業身)의 부자유(不自由)에 대해 짐작해볼 수 있다. 존재론적으로는 마음이 우주의 근본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실천적 차원에서는 몸이 근본이라 할 수 있다.대학에서 몸이 근본이라 한 것은 단순히 100세 건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주적 자아라 여기는 마음도 몸이 없이는 닦을 수 없기에 하는 말로 볼 수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7-03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아구유질: 나의 짝이 질병을 지니고 있다

정치의 범주를 아홉 가지로 정리해놓은 서경의 홍범구주에 보면 일왈식(一曰食)이라 하였다. 정치의 가장 우선순위는 백성이 먹고사는 문제라는 것이다. 백성은 밥을 먹고 산다. 주역에 솥을 상징하는 화풍정(火風鼎)괘가 있다. 정(鼎)은 솥으로 솥은 밥을 하는 도구이다. 밥을 할 때 솥단지를 걸고 그 안에 물과 쌀을 넣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바람도 들여 익힌다. 끝까지 잘 익히면 타지도 설지도 않은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서두르면 때로 설익거나 타버린 밥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솥을 상징하는 정괘는 정치하는 원리를 말해준다. 한 쪽으로 치우치면 타거나 설어서 먹을 만한 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좌우의 한쪽으로 치우쳐 백성의 민생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정괘에서 밥을 하는 과정에 아구유질(我仇有疾)이라는 표현이 있다. 밥을 하는 과정을 보면 맨 처음 솥의 묵은 찌꺼기를 버리고 새로운 음식재료를 넣는다. 이를 정치로 말하면 지난 정권의 잔재를 털고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를 상징한다. 그다음 중요한 게 있는데 쌀과 물을 솥에 부었는데 그것이 아래로 흘러버리거나 새어나가면 모든 게 허사이다. 밥이 되려면 아래가 아닌 위를 지향하여 수북하게 올라가야 한다. 이를 정치로 말하면 아래의 친한 짝에 얽매여 국민의 민생을 위한 정치를 망각하면 그 정치는 허사란 의미이다. 부자는 유친(有親)이지만 군신은 유의(有義)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내각은 국민의 민생을 위해 의(義)를 따져야지 친소(親疏)를 위주로 하여 아래에 친한 짝들에게 자꾸 가면 마치 밥솥의 쌀과 물이 아래로 새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특히 권력을 잡은 정치인들이 조심해야 할 상황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6-26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양두구육: 양의 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판다

양두구육은 겉으로 좋은 것을 내세우지만 속은 변변치 않은 경우 흔히 쓰이는 말이다. 양의 머리를 매달아 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의 현양두매구육(縣羊頭賣狗肉)의 약자이다. 상점의 간판에는 전시용으로 좋은 물건을 걸어놓고는 실제로는 값싼 물건을 판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영공은 예쁜 여자에게 남자의 옷을 입혀 남장을 시키고는 즐기는 변태적인 취미를 지니고 있었다. 궁궐 안의 이런 행태가 바깥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제나라의 거리에는 남장한 미인들의 숫자가 날로 늘어났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임금은 천한 것들이 감히 자기를 따라 한다고 불쾌하게 여겨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한번 번진 풍조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옆에서 안자가 그 까닭을 말해준다. "임금께서는 예쁜 여자에게 남장을 시키시면서 밖으로 백성들에게는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십니다. 이것은 소머리를 문에다 걸고 말고기를 안에서 파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궁궐 안에서 먼저 금지령을 내리면 밖에서도 백성들이 감히 따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소머리와 말고기로 종류가 바뀌어 표현되었지만 내내 맥락은 같은 이야기이다. 영공이 금지령을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아 제나라 전체에 남장여인이 사라졌다. 현대에는 홍보가 과대한 시대라 이른바 짝퉁의 문제를 조심해야 하는데 양두구육의 맥락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6-19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몽잡이저: 교육은 섞이어 있는 나타남이다

산에서 샘물이 흘러 나와 계곡으로 내리고 계곡에서 내를 지나 강물을 이루고 강을 거쳐 바다에 이른다. 맨 처음 산속에서 물줄기가 나와 샘을 이룬 상을 주역에서 산수몽괘(山水蒙卦)라 한다. 몽괘는 샘물이 처음에는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몰라 앞길이 막막해 발걸음이 멈추어있는 상이다. 그러나 그대로 멈춰있으면 영영 바다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마니 과감하게 흘러가야 한다. 이렇듯 과감하게 흘러가야 하는데 앞길이 어둡고, 앞길은 어두운데 과감히 진행은 해야하는 상황이 몽괘의 정황이다. 잘못 흐르면 강물을 타지 못하고 새어나가 버릴 수 있는 상황이다. 고인들은 이 몽괘를 보고 교육을 떠올렸다. 어린 아이가 세상에 나와 아무것도 모르는데 향후 성장해나가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면 이성이 계발되지 않아 천치로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러니 이것저것 배워야 한다.그래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교재 등에 가르친다는 의미를 강조해서 훈몽(訓蒙)이라 하고, 열어준다는 의미를 강조해서 계몽(啓蒙)이라 하고, 엄하게 회초리를 든다는 의미로 격몽(擊蒙)이라 부르기도 한 것이다. 이런 몽괘에 대해서 뒤죽박죽 섞인 가운데 하나하나 구분되고 분별되는 이성적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섞임이란 혼돈의 상태처럼 분별심이 없는 것이다. 분별심이 없다가 하나하나 세상 물정을 알아가는 과정을 잡이저(雜而著)라 하였다.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을 교육할 때 참고할 만한 말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6-12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대기만성: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

얼마 전 지인을 만났는데 이야기 도중 필자에게 대기만성의 의미에 대해 견해를 피력하였다. 대기만성을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 대신 큰 그릇은 늦게 채워진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인이 살아본 바에 의하면 사람의 그릇은 그 크기와 양이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도 흔히 이야기하는 소재이자 주제인 그릇에 대해 생각해보았다.노자에 대기만성이 등장하는 대목의 맥락은 대방무우(大方無隅)식의 논리 흐름이다. 논리적으로 풀면 '큰 A는 a가 없다'는 논리이다. A에는 반드시 a가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논리인데 노자는 a를 초탈한 A를 찬탄하고 있다. 방(方)이란 사방의 네모로 반드시 모퉁이나 귀퉁이에 해당하는 우(隅)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노자는 인간의 시청에 근거한 논리나 정의에 얽매이지 말고 사물을 볼 것을 권유한다. 그 결과 사방의 모퉁이가 없는 네모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리 없는 음악이나 형태 없는 형상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기만성은 '이루어지지 않는 그릇'으로 보아야 한다. 한편 논어에 보면 공자는 자공에게 제사에 쓰이는 그릇인 호련(瑚璉)으로 평가하는 대목이 나온다. 또한 역사적으로 위대한 책사로 알려진 관중에 대해 '관중지기소재(管仲之器小哉)'라 하여 그의 그릇이 작다고 말씀한 대목도 보인다. 그러므로 공자는 그 사람마다 정해진 국량이 있다고 여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기(大器)를 논어의 용례처럼 해석하면 이미 정해진 큰 그릇이며 노자처럼 해석하면 좀처럼 완성할 수 없는 그릇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둘의 의미로 해석하지 않고 큰 도자기를 만들려면 시간이 더디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6-05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얼비자천: 재앙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다

주역점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할 것 없이 유래가 심원하다. 중국이나 한국도 고대부터 국가의 중대사가 있으면 반드시 점을 치는 관리를 두고 점을 쳐서 결정했다. 공자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춘추에 관한 해설전인 춘추좌씨전에 당시 각국의 제후들이 대사를 점친 주역점 기록만 해도 20여 가지 넘게 나온다. 그중 한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晉)나라 헌공(獻公)이 딸 백희(伯姬)를 진(秦)나라에 시집보내려고 주역점을 치니 귀매(歸妹· )괘의 상육효를 얻었다. 그 효사에 여자의 광주리에 과실이 없고 남자가 양을 찔러도 피가 나오지 않아 이로울 바가 없다고 하였다. 그 효사를 보고 점을 담당한 관리가 도와줄 사람이 없고 결국 전쟁이 나는데 자신의 나라가 패할 것이고 왕자도 언덕에서 죽을 것이라고 풀이한다. 백희는 진나라 헌공의 부인인 제강이 낳은 맏딸인데 점친 관리의 말대로 일이 벌어지자 후일 혜공(惠公)은 자신의 아버지인 헌공이 선택을 잘못했다고 원망하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점관의 점(占)풀이를 따라서 시집보내지 않았다면 자신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원망한 것이다. 그러자 한간(韓簡)이 그 점을 따랐더라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을 것이라고 하며 시경의 "사람들이 받는 재앙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초한 것이다"라는 내용의 구절을 인용하여 깨우쳐준다. 현실에서 점을 응용할 때 해당되는 사람의 덕량이 전제되지 않으면 점은 그 사람에서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시의 점술도 인간의 덕량을 전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5-29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지소선후: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안다

바둑을 두어보면 절실히 느끼는 주제가 수순(手順)이다. 바둑돌을 동일한 여러 지점에 놓더라도 그 순서를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따라 대마가 죽기도 하고 미생마가 살아나기도 한다. 나중에 둘 돌을 먼저 두어도 문제고 먼저 둘 돌을 나중에 두어도 문제다. 곡성이란 영화의 한 장면 대사처럼 '뭣이 중헌디?'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른바 우선순위의 문제는 반상에서 놓아지는 흑백의 돌이 가는 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길에서 부딪히는 문제이다. 대학이란 고전에서는 이에 관해 사물(事物)의 틀을 가지고 생각해보라고 알려주고 있다. 사물에서 물(物)은 물건이고 사(事)는 일이다. 철학적 차원에서 보면 물건은 존재에 해당하고 일은 작용에 해당하니 존재와 작용의 문제이다. 대학에서는 모든 존재를 나무로 표현하여 공간적 의미를 대표하였고 모든 작용을 나무의 작용으로 표현하여 시간적 의미를 대표하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무에는 뿌리와 가지가 있고(物有本末) 그 작용에는 마침과 시작함이 있으니(事有終始) 이런 틀을 가지고 파악하다 보면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 것인지 알게 되는데(知所先後) 그때가 돼서야 도(道)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則近道矣)."나무를 보면 땅속에 묻힌 부분이 있고 밖으로 드러난 부분이 있는데 묻힌 부분이 근본으로 먼저이고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오히려 지엽적인 것으로 나중이다. 날이 풀려 봄이 오면 나무에서 싹이 나니 먼저이고 추워져서 겨울이 오면 나무의 정기가 뿌리로 돌아가니 나중이다. 그러나 이건 전체적이고 기본적인 선후일 뿐이고 진정한 선후는 그때마다 달라진다. 봄철의 나무는 꽃을 피우는 것이 중하고 가을철의 나무는 열매를 맺는 것이 중하다. 선후를 안다는 것은 고인들이 강조한 시중(時中)의 도리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착착 들어맞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대학이란 고전에서는 그와 관련해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나는 지금 어느 철에 무슨 나무일까?"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5-22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인기아취: 남이 버릴 때 나는 취한다

재화를 늘리는 것을 화식(貨殖)이라 하는데 화식을 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놓은 책이 사마천이 지은 '사기' 가운데 들어있는 '화식열전'이다. 중국 고대 상인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세 사람을 3대 상성(商聖)이라 하여 범려와 백규와 호광용을 꼽는다. 인기아취는 이 중에 백규가 한 말로 전해진다. 백규는 BC 4세기 무렵 사람인데 부자가 되기 위한 네 가지 덕목을 강조하고 있다. 백규는 상인이 큰 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지(智), 용(勇), 인(仁), 강(强)의 네 가지를 구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제시된 네 가지 덕목은 도덕적 차원이라기보다는 부를 성취하기 위한 실용적 차원의 자격이나 능력에 가깝다. 백규가 말하는 지혜란 물가 등의 시세변화에 통달하는 것을 말한다. 용기는 결단할 수 있는 힘을 뜻한다. 어짊은 남을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라 남들이 버릴 때 취하고 남들이 취할 때 줄 수 있는 넉넉함이나 여유를 말한다. 이 인(仁)의 덕목에서 인기아취가 등장한다. 그리고 굳셈은 기회를 포착하는 힘을 말한다. 백규는 늘 물가의 시세를 살피길 좋아했다. 그 해 풍년이 들면 싼값에 곡식을 사들이는 대신 실이나 옷감을 팔아넘기고 흉년이 들면 그 반대로 했다. 역학으로 점쳐서 태음(太陰)이 어느 궁에 있는지를 따져서 풍년과 흉년을 예측하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태음이 卯나 酉에 있으면 그 이듬해 흉년이 들고 태음이 子나 午에 있으면 그 이듬해에 큰 가뭄이 든다고 하는 식으로 예측하였다. 백규는 이런 방법을 써서 내년 두 배씩 부를 축적하였다고 한다. 백규가 말하는 仁의 여유는 매우 간단하다. 비가 많이 내릴 때 공짜로 물을 담아두었다가 비가 내리지 않을 때 저수를 방류하여 비싼 값에 물을 내주는 이치이다. 문제는 언제 비가 많이 올지 적게 올지의 시세예측과 그 시세에 대응하는 인간의 심리운용이다. 그래서 시세파악의 지혜와 결단하는 용기, 거기에 더해 기회를 낚아채는 굳센 의지를 말한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5-15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불치하문: 자기보다 못한 이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공문자란 사람은 무엇 때문에 문(文)이라고 부릅니까?" 여기에서 공문자(孔文子)는 위(衛)나라의 대부 공어(孔어)의 시호(諡號)이다. 시호는 보통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의 공적이나 덕행 등을 따져서 정해지는데 문(文)이 들어간 것은 단계가 높은 시호이다. 당나라 현종이 공자의 존호를 문선왕(文宣王)으로 추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공어는 친구의 아내를 탐했다고 알려질 정도로 욕심이 많은 인물이었는데 문(文)이라는 시호를 받았기에 자공이 물은 것이다. 공자가 이에 말씀하셨다. "그는 민첩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를 문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하문(下問)의 하(下)는 자기보다 못하다는 뜻이지만 구체적으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새길 수 있다. 단순히 나이가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이가 자기보다 어려도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면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학식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인생의 길을 찾는데 학식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기가 배운 학식의 틀에 갇혀 그 밖의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또 자기보다 덕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읽을 수도 있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자기가 월등한 점을 제쳐두고 자기가 부족한 그 무엇을 상대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면 상대에게 그것을 물어보는 것이 하문(下問)이라 할 수 있다. 배움을 물음을 통해 완성되기에 학문(學問)이라 하듯이 하문을 부끄럽게 여길 일이 아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5-08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빈자일등: 가난한 사람의 한 등불

도시인들의 마음이 청산홍록(靑山紅綠) 속의 사찰을 향할 것 같은 시절이다. 불교 경전에 보면 사위국이 자주 등장하는데 사위국은 갠지스강 유역의 코살라국의 수도이다. 그곳을 무대로 만들어진 난타라는 이름을 가진 한 가난한 여인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사위국의 왕을 비롯한 부자들이 석가모니와 제자들에게 공양을 하는 것을 보고 그 여인이 한탄을 하였다. 스스로 가난하게 태어나서 가진 게 없어 공양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실정을 슬퍼하였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구걸을 한 결과 동전 한 푼을 얻었다. 그 돈을 가지고 기름을 파는 가게에 가서 기름을 사려 하니 주인이 용도를 물어본다. 그러자 그 여인은 자신이 품고 있는 생각을 기름 가게 주인에게 다 말하였다. 딱하게 여긴 주인이 한 푼만 받고 많은 기름을 주었다. 여인은 그 기름을 가지고 가서 드디어 등불을 만들었다. 난타라는 여인은 등불을 만들어 석가모니가 계신 곳으로 가서 많은 등불 속에 자신의 등불도 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등불은 다 꺼져도 난타가 바친 등불만 새벽까지 꺼지지 않고 밝게 타고 있었다.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꺼지지 않자 석가가 난타의 정성을 알고 비구니로 받아들였다. 여기에서 부자만등(富者萬燈)보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 수량으로만 보면 거부가 공양한 등 만 개가 가난한 사람이 공양한 등 한 개보다 만 배이지만 정성으로 보면 빈자일등이 만 배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5-01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환과고독: 홀아비·과부·고아·독거노인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네 부류

전국시기 맹자는 공자를 계승하여 인의를 강조한 사상가이다. 유학은 정치사상과 관련하여 본래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민본사상을 가지고 있다. 백성이 근본이고 근간임을 주장하면서도 그들을 다스리는 현명한 지도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이른바 갓난아이를 돌보는 부모에 비견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으로 공평하게 대하듯이 임금도 백성에 대해 그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모가 잘난 자식보다는 부족한 자식에 대해 애를 끓이며 걱정하고 보호하듯이 하기 때문에 그런 부류에 해당하는 백성을 적시하였다. 맹자에 보면 늙어서 아내가 없는 이(老而無妻)를 홀아비(鰥)라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이(老而無夫)를 과부(寡)라 하고, 늙어서 자식이 없는 이(老而無子)를 독거노인(獨)이라 하고, 어린데 부모가 없는 이(幼而無父)를 고아(孤)라 한다. 이 네 부류는 궁박한 지경에 처해있는 백성으로 호소할 데가 없는 이들로 임금이 보살펴야 할 대상으로 적시하고 있다. 전통가족 구조에 있어서는 가족 간의 상부상조가 기본적으로 전제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의 구성원 가운데 어느 하나가 부족하면 그 자체가 상부상조나 의지처가 없어져 살아가기 힘들게 된다. 이런 처지에 속한 사람들을 일차적으로 나라에서 돌봐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통적인 가족구조가 해체되어감에 따라 구조적 차원에서만 보자면 개념을 다시 정의해야 할 판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일인가족이 급증하고 자식은 낳지 않으면서 반대로 이혼율은 증가 추세에 있기 때문에 늙어서 자식 없는 경우는 말할 것 없고 남편이나 아내가 없는 경우도 주위를 둘러보면 일상적이다. 다만 환과의 경우도 살다가 짝을 잃어버려 힘들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어린데 부모가 없는 경우나 늙어서 자식이 없는 이도 힘들고 외로우니 시대의 변화를 감안해보더라도 국가가 복지차원에서 보장해 주어야 하는 대상이다. 특히 환과고독 가운데 고독(孤獨)은 현대에도 여전히 고독하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4-24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종즉유시: 마치면 곧 시작함이 있다

여기저기 환하게 울긋불긋 피어 있는 꽃에 마음이 설렌다. 한편으로는 생기를 느끼고 한편으로는 무상함을 느껴서일까? 지금은 생기를 전해주는 저 꽃들도 곧 순간의 영화를 뒤로하고 저버리겠지. 그러나 꽃은 저버려도 내년 봄이 되면 또 찾아올 거라는 기약이 있다. 꽃이 피고 지며 영락을 반복하는 현상에서 고인들은 영원을 기약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꽃이 피어있는 채로 영원을 기약하는 것이 아니라 영락을 반복하듯이 생멸을 반복하면서 영원을 기약하는 것이다.주역의 항괘는 항구함을 유지하는 도리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있는데 그곳에서 '사시도 변화를 통해 오래도록 유지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변화란 다름 아닌 반복적인 변화이다. 꽃도 그렇고 사계절도 그렇듯이 반복적인 변화야말로 항구함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모든 생명체가 이런 항구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반복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체의 특징이 대사와 복제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대사의 핵심은 외부와의 에너지 교류이고 복제란 자신의 형태를 존속하고자 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개나리꽃은 내년에도 올해 본 모습을 유지한 채 피었다 질 것이다. 사람도 생명체 가운데 하나라는 면에서 보면 마찬가지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죽고 사는 생사는 20만년 전에 출현한 인류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피었다 곧 질 꽃을 보고 주역의 '마치면 곧 다시 시작한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4-17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돌여래여: 갑자기 찾아온다

서경에 실려 있는 고대 정치의 아홉 가지 범주인 홍범구주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첫 번째가 오행인데 그 오행 가운데 첫 번째가 물이고 그 다음이 불이다. 왜 정치를 하는 범주에 물이니 불이니 하는 물질들이 들어갔을까? 흔히 정치를 생각하면 시민 권력 투표 의회 행정 사법 등의 제도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정치의 가장 기본이 백성임을 생각해보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두말할 것 없이 사람들의 삶, 민생이다. 우리는 물이 없이 살 수 없고 불이 없이도 살 수 없다. 물과 불이 없이는 인간이 도저히 살 수가 없으니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정치범주에 물과 불이 기본으로 들어간 것은 이런 이유뿐만이 아니다. 물과 불은 우리의 생명줄도 되지만 우리의 재산과 목숨을 빼앗아가기도 한다. 전하는 기록에 고대 우임금이 홍수를 당해 큰 피해를 입게 되자 물에 대해서 전격적으로 인식을 달리하여 관찰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물뿐 아니라 불과 나무와 흙 등 이른바 오행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정치의 도리를 깨달아 후세에 전한 것이 홍범구주라 한다. 이 기록에 불에 관한 내용도 등장하는데 불은 기본적으로 위로 타오르는 성질인 염상(炎上)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주역에서는 불은 이괘(離卦)에 해당한다. 불은 어디엔가 붙으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불이 붙어 타오르는 다양한 모습 가운데 돌연히 찾아온다는 돌여래여(突如來如)라는 표현도 있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과학문명이 초고도로 발전한 시대라지만 물과 불이 인류에 주는 파괴력은 여전하기 때문에 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조심하며 체계적으로 예방하는 것만이 수마나 화마를 줄이는 상책일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4-10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무방무체: 일정한 방위도 없고 몸체도 없다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몸은 여러모로 시공간적 용량에 한계가 있다. 키가 아무리 커도 하늘까지는 닿지 못하고 식성이 아무리 좋아봤자 바다의 물을 다 마시진 못한다. 사람뿐 아니라 여타의 생명체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드넓은 이 지구도 정해진 시한이 있으니 마찬가지이다. 어찌 보면 한량없다는 우주의 몸체도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윤회를 반복하면서 생멸을 한다 하니 마찬가지이다. 작은 개인이든 큰 우주든 간에 일체가 일음일양의 무상한 변화를 겪으니 이것을 주역에서 '일체는 고정된 몸체가 없고 작용하는 고정된 방위도 없다'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어찌 보면 무상하고 허망하기도 한 이 표현을 한번 굴려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바닷물에 포말(泡沫)이 일면 포말의 몸체는 바다 전체에 비교해보면 극소의 몸체라 할 수 있다. 또 포말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작용을 보면 늘 일어나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늘 사라지기만 하는 것도 아닌 찰나의 무상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바다 전체를 생각해볼 때 그런 현상은 동일한 몸체가 빚어내는 작용이다. 포말의 몸체에 국한하여 그 생멸의 작용을 생각해본다면 이보다 더 왜소하고 허무할 수가 없을 것이지만 바다 전체가 내 몸이라고 생각해본다면 포말의 기멸상은 그저 당연한 변화작용일 뿐이다. 우리는 바다와 같은 본래의 몸체는 꿈에도 보지 못하고 늘 기멸하는 포말 같은 몸체에만 집착하여 아상을 구축하며 살기 때문에 이런 진실을 보기 어렵다. 주역에서는 그래서 역(易)은 고정된 몸체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작용 또한 고정된 방위가 없다고 하였다. 양으로 나타나면 남자의 몸이고 음으로 작용하면 밤일 뿐 남녀 주야의 상은 고착된 것이 없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4-03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혹읍혹가 : 울기도 하다가 노래도 부른다

사람 관계에서 믿음만큼 중요한 덕목이 또 있을까? 서로를 믿는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믿음과 관련해서는 대부분 상호신뢰나 상호불신의 양상을 보인다. 간혹 나는 상대를 믿지만 상대가 나를 불신하는 경우도 있지만 믿으면 서로 믿고 불신하면 서로 불신한다는 뜻이다. 주역에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꽤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중부(中孚)라는 괘가 있다. 괘상이 말하고자 하는 도리는 비움과 실질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마음을 비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나를 비운다는 것은 상호소통을 통한 신뢰를 구축함에 있어 욕심을 내세우지 말라는 뜻이다. 내가 욕심을 부리는 만큼 상대도 욕심을 부리게 되니 그러면 신뢰의 기반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서로 비움의 문제가 어느 정도 전제되어야만 그 다음 실질적인 부분을 논할 수 있다고 하였다. 믿음에는 실질이 뒤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하늘을 걸어 올라갈 수 있다고 믿어본들 허황된 믿음일 뿐 실질이 따르지 않는다.상호 신뢰관계에 있어 먼저 서로의 마음을 비우고 실질을 추구하라는 당부이다. 이것이 정반대로 전개되면 상호 욕심을 꽉 채운 채 헛된 일만 따라오게 되니 욕심을 부릴 땐 이루어질 것 같아 웃으며 노래하지만 허사로 돌아가니 눈물을 흘리며 울게 된다. 신뢰에 관해 마치 미친 사람의 모양처럼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을 혹읍혹가(或泣或歌)라 표현하였다. 복잡하면서 속도감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겪기 쉬운 일상이니 지나친 욕심을 내려놓고 허황된 믿음도 버려야 할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3-27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집지실도: 집착하면 법도를 잃는다

내가 사물을 인식할 때 이미 나에게 익숙해진 방식으로 경험된 인식을 가지고 한다. 그리고 경험된 인식은 반드시 언어를 수반한다.멍하니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양과 개념을 가지고 바라본다는 뜻이다. 이른바 명상(名相)을 초월해서 인식한다는 것은 일상의 인간 삶에서는 불가능하다. 무엇인가를 보고 듣는다는 것은 바로 무엇에 대한 모양과 개념을 업그레이드해서 재확인하는 과정이다. 어릴 때 개에게 물려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도 개를 보면 무섭다고 인식한다. 그러므로 한 번 주입된 인식은 잘 바뀌지 않는다. 바뀌기보다는 오히려 공고해진다. 예부터 내려오는 말에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것도 이런 이치이다.그런데 이전에 갖고 있었던 어떤 모양이나 개념에 익숙해지는 경향은 자칫 집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사물에 대해 판단할 때 사물도 변화하고 나도 변화한다는 변화의 가능성을 도외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역의 이치를 벗어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의 주식에 투자할 때 그 회사에 대한 처음의 정보나 경제적 개념에 집착하게 되면 그 이후의 회사 흐름에 둔탁해질 수 있다. 회사는 조직이기 때문에 흥망성쇠를 겪으며 변화한다. 변화하고 있는 실제를 보지 못하면 그 자체가 투자자에게 손해로 다가온다. 나에게 인식된 어느 한 상태를 고정시켜 너무 집착하면 중도를 잃고 그렇게 되면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3-20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제출호진: 임금이 동방에서 출현한다

아직 아침저녁으로 남아있는 한기는 있지만 그렇게 추웠던 날이 가고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 왔음을 실감한다. 봄의 상징인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마음도 하나 둘 열리는 느낌인데 제출호진(帝出乎震)이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동양에서 지리를 볼 때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나침반이 패철인데 지남철이기 때문에 '쇠'라고도 부른다. 이 지남철은 말 그대로 남향을 가리키는 쇠이다. 이 지남철을 가지고 방위를 보고 길흉을 따진다. 지남철에 정해진 방위의 원리는 주역이라는 고전에서 유래한다. 주역에서 유래한 방위를 보는 방법은 남방(南方)을 정면으로 향해 서있을 때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랬을 때 동서남북 사방만 따지자면 남방이 앞의 이괘(離卦)이고 북방이 뒤의 감괘(坎卦)이다. 동방이 왼쪽의 진괘(震卦)이고 서방이 오른쪽의 태괘(兌卦)이다. 동서남북의 사방은 각자 지니고 있는 개성이 있으며 동시에 시간적 의미도 포함한다. 동방을 예로 들면 해가 떠오르는 방위이지만 시간으로 보면 하루 중 해가 떠오르는 아침에 해당하고 한 해로는 생명의 싹을 지표에 내는 봄에 해당한다. 예로부터 해는 임금의 상징이기 때문에 임금이 동방에서 출현한다는 말은 해가 동쪽에서 떠오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제출호진(帝出乎震)이라 하였으니 동방은 해가 떠오르는 곳이고 해가 떠오름에 따라 만물이 소생해 나오는 때라는 의미를 함축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 말을 한 때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성군이 출현한다는 비사( 辭)로도 사용했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진단(震檀)이라 하는데 震은 중국의 낙양에서 볼 때 동쪽을 뜻하고, 檀은 우리나라의 시조인 단군을 뜻하는 말이다. 굳이 비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봄을 맞아 누구에게나 잠재해있는 태양처럼 밝은 상제(上帝)의 마음과 힘이 출현하기를 바라본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3-13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근묵자흑: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

최근 연달아 어두운 먼지가 창공을 뒤덮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흙먼지로 둘러싸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이 곧 닥칠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자는 동안 목이 불편하더니 집에서 나올 때도 마찬가지이다. 취약한 아이들이나 노인들 그리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겐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방송을 들어보니 전문가들에게 원인과 처방을 요구하지만 딱히 속 시원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원인은 중국의 문제가 크고 국내에서도 원인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이다. 해결책으로는 하나같이 중국은 거시적이고 우리나라가 아니니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정답이라고들 한다.그러나 중국의 산업화와 그로 인한 화석연료 사용에 따라 그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른바 어쩔 수 없는 지정학적 근묵자흑이다. 중국에 가까운 나라이고 매년 중국에서 기류가 봄철이면 우리나라를 향해 유입된다. 사람이 달에도 가고 화성에도 가는 기술력을 자랑하면서도 당면한 기후변화에는 쩔쩔매고 있다. 사람의 기술력이 위대해지는 반면 상대적으로 사람의 인문학적 정신력은 기술의 뒤꽁무니를 따라가기 바쁘다. 지금까지의 과거는 어쩔 수 없다 치고 향후 기술력의 방향을 기후변화에도 집중하면 어떨까? 우주를 항해하는 기술력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데 사용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면서도 동시에 당장 필요한 인공강우 등의 기술에 적극적으로 힘을 써야 한다. 중국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문제의 원인에 대한 인식과 개선책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주어진 근묵자흑이기 때문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3-06 철산 최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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