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지임무구: 지극히 임해야 허물이 없다

주역에 임(臨)괘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왕림(枉臨)이다. 왕림은 말 그대로 굽혀서 임한다는 뜻이다. 임한다는 것은 다가가거나 찾아온다는 의미이지만 특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다른 존재에 다가가거나 찾아오는 뜻을 위주로 한다.주역에서 귀천에 관한 변통을 할 때 양귀음천(陽貴陰賤)이라 한다. 이 괘는 양은 귀하고 음은 천한데 귀한 양이 음에게 다가오고 찾아오는 것으로 뜻을 삼았다. 그래서 괘의 생김새도 양효가 아래에 둘이 있고 그 위로 음효가 넷이 있다. 왕림이란 말도 이런 뜻이다. 온도로 보면 양은 따뜻하고 음은 차가운 것인데 따뜻한 물이 아래에 있고 차가운 물이 위에 있으면 따뜻한 물이 위로 올라간다. 이처럼 따뜻한 물이 위로 올라가면서 차가운 물의 성질을 따뜻하게 변화시키는데 이런 것이 바로 임괘의 상징에 담긴 의미이다. 이런 자세로 세상에 임하면 세상을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 임괘에서 나라의 정치를 하는 고위직이나 정무직에 해당하는 효에 '지극히 임해야 허물이 없다'고 하였다. 지극하다는 '至'는 본래 화살이 땅에 떨어진 모습을 형상한 글자이다. 화살을 쏘면 목표지점에 떨어지니 이것이 '이른다'라는 '至'이다. 화살을 쏘았는데 땅에 다다르지 못하면 임한 것이 아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 하는 것이므로 국민의 실정에 다가가고 국민의 고통을 파악하는 것이 바로 지림(至臨)이다. 이래야 지극한 정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건성으로 정치를 한다면 국민에게 다가가거나 이르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지극정성으로 국민의 실정과 고통을 체감하고 다가갈 때 해법이 보이지 자기 자리에서 바라만 보아 가지고는 절대 체감할 수 없을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1-16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이시척촉: 마른 돼지가 뛰고 또 뛴다

민속이나 역학에서 돼지는 용과 미워하는 사이라고 한다. 용이 돼지의 얼굴이 검다고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돼지를 면흑랑(面黑郞)이라고 한다. 또 뱀과는 상충의 관계라 하여 서로 피한다. 돼지는 꿈해몽을 할 때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이에 대해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돼지꿈을 꾸고 꿈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해몽하길 먹을 것이 생기겠다고 하였는데 그날 먹을 것이 생겼다. 다음에 똑같이 돼지꿈을 꾸고 이야기를 하자 이번에는 입을 것이 생긴다고 해몽하였는데 그날 입을 것이 생겼다. 세 번째 또 돼지꿈을 꾸고 이야기를 하자 이번에는 몽둥이찜질을 받겠다고 했는데 그날 몽둥이로 얻어맞았다. 돼지꿈을 꾼 사람이 신기하게 여겨 해몽의 대한 근거를 물었다. 그러자 꿈풀이한 사람이 대답해주었다. 돼지가 처음 꿀꿀 거리면 배고픈가보다 하고 먹을 것을 주고, 다음 또 꿀꿀 거리면 추운가 보다하고 우리 안에 추위를 막을 지푸라기 같은 것을 넣어 준다. 그런데도 다시 또 꿀꿀 거리면 이제는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막대기로 두들겨 팬다는 것이다.주역의 천풍구괘에 돼지이야기가 나온다. 구괘는 만남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처음에 만나는 인연이 중요하니 좋은 인연을 잘 만나야한다는 메시지이다. 만약 좋지 않은 인연을 만나게 되면 향후 일정에 힘들고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생기니 처음 만남을 주의하라는 뜻이다.마치 성질이 급한 마른 돼지가 날뛰며 돌아다니게 되면 처리하기 힘들어지니 좋지 않은 인연과의 만남은 돼지를 쇠말뚝에 단단히 묶어두듯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해 시작할 때 시절인연과 사람인연을 생각해보라는 의미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1-09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견시부도: 진흙을 둘러쓴 돼지를 본다

2019년은 돼지띠의 해이다. 필자가 최근 몇 해 동안 국가 주요기관이나 기업 등에 특강을 가면 마지막 질문 시간에 꼭 나오던 이야기가 남북관계전망을 비롯한 국운이었다. 불과 1, 2년 전만 해도 '이러다 전쟁이라도 나는 거 아니냐?'는 질문도 받았었다. 그때마다 필자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내 한 치 앞길도 모르는 중생이 무슨 국운을 안다고 떠들어댈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었다. 주역은 미래에 관한 학문이기에 사람들은 으레 주역을 공부하면 미래를 훤히 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주역은 그저 우주의 섭리에 알맞게 맞추어 살아가는 법을 제시한 글일 뿐이다. 미래는 우주적 섭리 안에서 펼쳐지지만 그것을 이루는 것은 구체적으로 인과법과 인연법에 의해 결정된다. 봄이 오면 꽃이 피게끔 되어있는 것이 우주적 섭리이다. 그러나 봄이 온다고 모든 땅에 꽃이 피지는 않는다. 그 땅에 뿌려진 씨앗이 있어야 하고 또 그 씨앗이 좋은 환경과 조건을 만나야만 개화가 된다. 사람이 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이론적 설계도만 있다고 기계가 만들어지지 않듯이 실제 구현하는 것은 사람의 행위여부에 달려있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이 힘을 들여도 정밀한 설계도가 있어야만 좋은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미래의 전망이 어느 정도 그려져 있어야만 그 미래를 실현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향후 미래도 마찬가지이다. 주역에 우리나라의 분단 상황을 상징한 괘가 있는데 화택규괘가 그것이다. 규괘(규卦)는 동질성과 이질성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본질적으로 동질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가 이질적으로 변했을 때 다시 동질성을 회복하는 문제를 화두로 다루고 있다. 딱 우리나라의 상황에 해당하기에 그 괘로 우리나라의 미래전망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동질성을 회복하는 마지막 단계에 '진흙을 둘러쓴 돼지를 본다(見豕負塗)'는 말이 있다. 이 비유를 시간으로 치환하면 기해(己亥)이다. 돼지는 지지로 亥(해)이고 흙은 오행상 土(토)에 해당하는데 진흙은 己土(기토)에 해당한다. 기해(己亥)자체가 진흙을 둘러쓴 돼지의 상이기에 오래전부터 2019년은 우리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천시의 도수가 있다고 강의를 해왔다. 그러나 도수는 도수일 뿐 사람이 부합하지 못하면 헛되이 지나갈 뿐이다. 천시가 지리만 못하고 지리가 인화만 못하다고 했듯이 60년 만에 한번 온 천시에 부합하는 여부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1-02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불사주야: 밤낮 그치지 않는다

지구의 밤과 낮은 수많은 세월 동안 되풀이되었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길들여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의 생체주기이다. 인간의 생체주기뿐만 아니라 동물들이 지닌 저마다의 생리적 습성도 밤과 낮이 만들어낸 부분이 크다. 식물도 마찬가지이고 무생물이라 부르는 토석의 성질에도 영향을 주었다. 사람만 생각해보더라도 대부분 밤이 되면 자고 낮에는 활동을 한다. 이렇게 지내온 세월이 아득하다. 그런데 공자는 물의 흐름이 밤낮에 구애받지 않는 현상을 보면서 자주 찬탄하였다. 물의 흐름은 밤이나 낮이나 할 것 없이 계속해서 흐른다. 맹자는 물이 계속 흐를 수 있는 이유는 근원이 있는 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근원이 있는 물은 점진적으로 흘러 결국은 대해에 이르기 때문에 사람도 근본에 대한 인식과 발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자가 물을 찬미한 것도 이런 이유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우리의 의식과 관련해 생각해볼 수도 있다. 우리의 의식은 낮과 밤의 의식이 판연히 다르다. 낮에는 의식이 성성하지만 밤이 되어 잠에 들면 의식적인 주도력을 상실해 버린 채 그동안의 습성에 딸려간다. 꿈이 대표적이다. 깊은 잠에 들면 내가 있는지조차 느끼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불사주야를 밤낮 그치지 않는 본래의 마음자리라는 뜻으로 새겨볼 수도 있다. 인간이 밤낮으로 여일한 그 마음자리를 회복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새롭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공부를 성취한 도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늘 이런 지경을 말씀하신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2-26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심부주법: 마음이 법에 머물지 않는다

불교경전인 금강경에는 우리가 '모양'이라 부르는 한자인 '상(相)'이 자주 등장한다. 상은 우리가 껴안고 살아가는 일체의 경계이다. 검고 희다는 색상과 조용하고 시끄럽다는 성상, 향기나 악취의 향상, 달고 쓴 미상과, 부드럽고 거친 촉상,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등의 법상도 모두 상에 해당 된다. 이처럼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육상은 일상에서 약속된 개념이나 모양으로 통용된다. 이런 약속을 무시하고는 사회활동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그러나 우리의 자유로운 마음차원에서 보자면 이런 약속은 구속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새 소리를 예로 들어본다.우리의 몸에 귀가 있고 몸 밖에 새소리가 나고 그래서 그 소리를 듣는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즉시 그 소리에 대해 판단하는 인식이 싹튼다.그 결과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마음작용이 뒤따른다. 그런 다음에 듣는 새소리는 내 인식을 일정한 방식으로 구속해버리니 이른바 고정관념화되는 것이다.그러나 오늘 듣는 새소리와 내일 듣는 새소리는 소리도 변할 뿐만 아니라 듣는 나 역시 변화한다. 그렇게 보면 일정한 소리나 그 소리를 듣는 일정한 마음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정한 새소리가 있다고 내심 믿고 또 그 소리에 일정하게 반응하는 일정한 '나'를 형성한다. 금강경에서는 이런 집착을 놓아 버려야 참된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2-19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부지소향: 향할 바를 알지 못함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고민이 많을 시기이다. 이 시기에 선택을 잘해야 한다. 필자도 청소년기를 돌이켜보면 후회가 많다.어느 정도 판단력이 있어도 자신에 관한 판단은 늘 어렵다. 더군다나 아직 철이 없을 때니 더욱 그렇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 주위에 상의도 하고 상담도 해본다. 이는 곧 인생의 방향에 관한 문제이다. 방향은 자신의 주관적 욕구나 객관적 환경과 맞물려 돌아간다. 그러므로 어느 방향으로 갈까를 결정함에 있어 먼저 자신의 욕구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그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또한 객관적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소원이 있어도 그것을 이루기 위한 여건이 당장 갖추어지지 않으면 욕구와 환경 간에 괴리가 커져서 틀어질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조금 늦더라도 방향을 제대로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전역에서의 한 걸음이 결국 서울역과 부산역이라는 남북의 종착지로 달라지기 때문이다.또 하나는 방향을 정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고정된 것은 아니고 삶의 과정에서 다른 방향으로 변경할 수 있다. 고인들은 인생의 추구하는 방향을 정함에 있어 늘 두 가지를 고려하라고 하였다. 하나는 현실적으로 운용하는 경제의 문제이고 하나는 자신의 본래성을 돌아보는 마음의 문제이다.맹자는 이를 두고 항산(恒産)과 항심(恒心)으로 표현하였다. 생존과 윤리가 둘 다 건강한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라는 의미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2-12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월래무영: 달이 비추어도 그림자가 없다

16세기 조선시대의 휴정(休靜)선사는 우리에게 서산(西山)대사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무리 뛰어난 도인이라도 모함과 질시는 피할 수 없는 법이다. 무업(無業)이라는 중이 서산대사의 시 등향로봉(登香爐峰)의 내용을 트집 잡아서 역심을 품고 있다고 고발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만국의 도성은 개미집과 같고 천가의 호걸들은 파리와 같구나. 창가 밝은 달은 맑은 허공을 베개 삼고 그칠 줄 모르는 솔바람 소리 가지런하질 않네. 여기에서 임금이 사는 도성(都城)을 개미가 사는 굴에 비유한 것을 트집 잡은 것이다. 이에 대해 선조임금이 대나무 그림을 곁들여 묵죽시를 내렸다. 그 시에 이르길, 잎은 붓끝에서 나왔고 뿌리도 땅에서 나오지 않았네. 달이 비추어도 그림자가 보이질 않고 바람이 불어도 소리가 들리질 않네. [葉自毫端出(엽자호단출)根非地面生(근비지면생)月來無見影(월래무견영)風動不聞聲(풍동불문성)] 그림에 묘사된 대나무의 잎과 뿌리 그리고 달과 바람은 모두 실제가 아닌 그림일 뿐이라는 뜻으로 서산대사의 실제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마음을 그림과 그에 관한 시로 전한 것이다. 신뢰하는 이에게 마음을 전하는 풍류가 느껴진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2-05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강유상역: 강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바뀐다

마른 나무라는 물건이 마찰이라는 조건을 만나면 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나무가 다 타서 없어지면 이내 불은 사라진다. 이처럼 만물은 인연에 의해 모이고 인연에 의해 흩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인연이란 것은 내적 요인과 외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내적 요인을 인(因)이라 한다면 외적 조건은 연(緣)인데 이들이 모여 불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과(果)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흔히 인과(因果)나 인연(因緣)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런 인연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수적인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무아(無我)이다. 무아(無我)란 현상계의 모든 존재나 우리의 내부의식조차도 일정하게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다고 소집(所執)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이런 이치를 우리는 세월의 변화로 읽는다. 주역에서는 이것을 음양의 변화로 이야기한다. 음은 그늘이라 어둡고 양은 볕이라 밝다. 어둠과 밝음은 낮과 밤이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낮과 밤은 태양과 지구가 만들어내는 결과이다. 지구의 자전과 태양의 빛이 인연이 되어 낮과 밤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음양적 인연이고 인과이다. 그러므로 밝음과 어두움 또한 무아(無我)를 필수조건으로 삼는다. 그래서 세상은 어두움이라고 영원히 어두울 수만은 없고 밝음이라고 영원히 밝을 수는 없다. 한 나라나 한 사람의 운명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옛사람들이 권력이 무상하다고 읊은 것이다. 강함이 유약함이 되고 유약함이 강함이 될 수 있는 것이 섭리이다. 그러므로 어두움을 밝음으로 바꾸고 싶다면 첫 번째 할 일이 무아(無我)를 깨닫는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1-28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거일폐백: 하나를 들어 백 가지를 폐기한다

나를 이롭게 한다는 이기주의와 남을 이롭게 한다는 이타주의는 철학이나 윤리의 문제에 속한다. 이 기준을 가지고 나를 살피고 남을 살피기도 한다.맹자는 나만 위하는 마음과 천하를 위하는 마음을 지양하고 그 둘 가운데를 집착하여 택한 마음까지 다 쳐버렸다. 춘추전국 시기 양자는 자기 몸의 터럭 하나를 버리면 천하가 이롭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리하지 않는다. 묵자는 온몸을 희생해서 천하가 이롭게 된다면 기꺼이 그리한다. 맹자가 대비적으로 예를 든 두 인물은 사실 극단적인 경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맹자가 예로 든 것처럼 극단적이지 않다. 그래서 스스로를 그 둘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중용을 지킨다고 스스로 판단할 수도 있다.자막이라는 이가 양자와 묵자의 가운데 지점을 상정하여 일정한 태도로 집착하여 이기와 이타의 중도를 행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맹자는 이에 대해 중간을 정해 잡더라도 권도를 모르고 획일적으로 일정하게 고착되면 이것은 중용이 아니라 획일적인 것이라고 비판한다. 획일적으로 '여기가 가운데이다'라고 고집하게 되면 오히려 그 하나에 집착함으로 인해 다른 모든 것을 보지 못하고 놓쳐버린다는 뜻이다.자기가 믿는 사상이나 철학이나 신념은 확고할수록 좋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고집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시절에 합당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치권의 정책결정이 중요하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1-21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습이불찰: 익숙하면서도 살피지 못한다

가족이나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습관은 보기 쉽고 알기 쉽다. 그래서 그에 관한 예측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신이 습관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맹자는 사람들의 이런 경향에 대해 "행동하면서도 분명히 인지하지 못하며 익숙하면서도 살피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습관은 말 그대로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 익숙해져서 관성이 붙은 것이다. 눈에 보이는 행동뿐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도 습관이 있다.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에 행동으로 드러나는 습관의 뿌리는 생각에 있다. 더 넓게 말하면 마음에 있다. 습관이란 마치 물과 같아서 물을 독사가 먹으면 독을 뿜어내고 소가 먹으면 우유를 내놓는 것과 같아서 그것 자체는 중립이다. 익숙하게 길들여지는 원리는 중립이지만 그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를 만든다. 애초부터 좋은 내용만 익숙하게 길들였으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습관은 좋지만 어떤 습관은 좋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성찰(省察)이니 성찰은 반성과 관찰이다. 반성은 성찰의 방향을 자신 내부로 되돌리는 것이고 관찰은 그렇게 되돌려서 제대로 보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비유하면 반성은 방향의 전환이고 관찰은 살피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물건은 방향이 제대로 잡히고 힘이 가해지면 그리로 가게 되어있다. 일상의 습관에 대해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1-14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정위응명: 자기의 바른 자리에서 소명을 완성하라

命의 갑골문의 본래 글자는 명령 령(令)자이다. 명령 령(令)자는 삼각형 모양의 모을 집( )아래에 영어의 p자형태의 병부 절( )로 되어있다. 모을 집( )자는 덮개를 의미한다. 작은 경우는 모자에 해당하고 큰 경우는 사람이 거처하는 건물[궁궐, 대궐, 조정...]을 의미한다. 병부 절( )자는 사람 인(人)자의 변형으로 사람이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명령을 내리는 것인데 그 의미를 확실히 하기 위해 입 구(口)자가 첨가되어 명(命)이 되었다. 명령(命令)의 의미이다. 명령(命令)이란 글자에 들어있는 절( )은 무릎의 마디를 의미하는 마디 절(節)의 의미가 파생되었다. 대나무 마디를 가지고 옛날에는 병부(兵符)를 만들었다. 명(命)자에서 건물 안에서 명령을 내리는 가장 높은 사람을 '임금'으로 보는데 그러면 임금의 명령이 된다. 옛날에 임금이나 명령권자가 명령을 내릴 때 쓰던 도구를 병부(兵符)라고 한다. '병부'는 주로 병력을 동원할 때 쓰던 도구이다. 대나무를 두 조각으로 나누어 만들었다. 조선시대의 경우는 반쪽 나뭇조각은 관찰사나 절도사 등이 보관하고 나머지 반쪽 나무는 궁중에서 보관했다. 군대(軍隊)를 동원(動員)하는 표지(標識)로 쓰이던 동글납작한 나무패로 병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을 때 명령을 내리는 임금이 교서와 함께 한 쪽 나무 조각을 보내면 관찰사나 절도사는 그것을 자기가 보관하고 나머지 반쪽과 맞추어보고 틀림없을 경우 병력을 동원했다. 병부(兵符)는 봉화(烽火)와 더불어 통신(通信)체계의 원형이기도 하다. 우리는 명령(命令), 천명(天命), 생명(生命), 수명(壽命), 성명(性命), 운명(運命) 등등을 이야기한다. 명은 주어지는 면도 있고 그것을 인식하는 면도 있고 그것을 이행하는 면도 있고 변화시키는 면도 있다. 어떤 의미이든 현실에서 각자의 소명을 잘 알고 그것을 완성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천명을 알고 이루는 길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1-07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저양촉번: 숫양이 울타리를 부딪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서로 고육지계(苦肉之計)로 들어섰다. 그 둘 가운데 낀 나라의 경제적 손실과 심리적 불안도 더해간다. 일종의 힘겨루기인데 너무 나가는 것 아닌가 싶다. 주역에서 힘을 쓰는 도리나 상황에 대해 羊을 가지고 말해놓았다. 여기에서의 양은 뿔 달린 염소를 이야기한다. 羊은 겉으로 유순해 보이지만 속에는 강한 힘과 고집스러운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런 양이 자신이 지닌 힘을 과시할 때 벌어지는 상황을 저양촉번(저羊觸藩)이라고 묘사하였다. 숫양이 울타리를 부딪친다는 뜻이다. 양을 키우기 위해 만든 것이 울타리인데 여기에서 울타리는 일종의 한계와 경계를 뜻한다. 양이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사용하게 되면 울타리를 들이받아 부딪치는데 그러다가 뿔이 울타리에 걸려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런 것이 저양촉번(저羊觸藩)이다.주역에서 羊은 태괘(兌卦)에 해당하고 방위로는 서방(西方)에 해당하고 현재 나라로는 서양의 강대국을 상징한다. 대표적으로는 羊자가 들어있는 아름다울 美자인데 美를 파자(破字)하면 대양(大羊)으로 큰 양이다. 나라로는 힘센 대국인 미국(美國)이다. 아무리 경제에 문외한이지만 벌어지는 꼴을 보자니 꼭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 넘어가고 싶은 모양새다. 그러나 보이는 한정된 이 세계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서운 울타리가 존재한다. 그 보이지 않는 울타리는 인과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데 내게서 나간 것은 반드시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백지를 기계로 돌려 무한정의 화폐를 자기들 마음대로 찍어내는 대국이라지만 그런 대국도 이 인과의 섭리를 어기면 멀지 않아 저양촉번(저羊觸藩)의 꼴을 당할 것이다.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동북공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31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소이수신: 몸을 닦기 위한 방법

닦는다는 말은 길을 닦으면 수도(修道)이고 마음을 닦으면 수심(修心)인데 몸을 닦으면 수신(修身)이다. 수신은 몸을 씻는다는 세신(洗身)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수심을 포함한 말이다. 마음이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존재이지만 당장에 존재하는 몸을 이야기하면 한량없는 마음은 그 가운데 갖추어져있다고 볼 수 있다. 심신을 닦아나가는 문제는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 사람마다 가장 중요한 문제다. 또한 사회속의 생활인으로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다. '중용'에서는 몸을 닦아나가는 방법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하나는 호학(好學)이고 하나는 역행(力行)이고 하나는 지치(知恥)이다. 호학(好學)은 배움을 좋아한다는 뜻이고, 역행(力行)은 힘써 실행한다는 뜻이고 지치(知恥)는 부끄러움을 안다는 뜻이다.여기에서의 배움이란 중용의 도리에 관한 배움을 말한다. 어떤 것이 진정 인간으로서 내가 가야 할 길인가? 이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호학(好學)이며 이렇게 되면 지(知)에 가까워진다. 그것을 알고는 힘써 행하는 실행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역행(力行)이다. 알고 나서 실행하려면 자신의 사사로움을 극복해야 하니 역행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인(仁)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이다. 배우고 실천하는 학행(學行)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나태함을 부끄럽게 여기며 자신을 분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태해질 때 부끄러워할 줄 알고 분발시키는 힘은 용기(勇)에 가깝다. 삼달덕(三達德)이라 부르는 지인용(知仁勇) 세 가지는 배우고 행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데서 이루어지니 이것이 몸을 닦기 위한 방법이다. 확충해보면 비단 몸을 닦는데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고 어떤 기술적인 분야에서도 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24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상기자부: 재물과 권력을 잃는다

인생이 나그네란 말이 있다. 나그네란 주인과 달리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존재이다. 그렇게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한 곳에 영원히 상주하질 못한다. 먼 길을 떠나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 여행자의 숙명을 지닌 나그네는 임시적으로 머물 여관과 같은 곳이 있어야 한다. 먼 길을 돌아다니려면 여행경비가 필요한데 옛사람들은 노자(路資)라고 불렀다. 자부(資斧)에서 자(資)는 본래 노자를 뜻하는데 이 노자가 재물의 뜻으로 통용되었다. 또 나그네에게는 초행길이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신변에 위협을 가할 요소들이 산재해있다. 그래서 옛날 나그네 길에 자기 몸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도끼를 지니고 다녔는데 도끼는 육체의 힘을 강력하게 연장하는 효과를 지니기에 권력의 뜻으로 통용되었다. 나그네의 자부(資斧)가 인생 나그네들에게 재물과 권력의 의미인 것이니 사람들의 경제적·정치적 권력을 상징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때로 이런 힘을 얻을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데 주역에서는 그런 힘을 잃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권력을 잃는 이유에 대해서 그 자체에서 답을 제시하고 있다. 권력의 권(權)은 저울질의 뜻으로 시세의 무게를 잘 달아보면서 쓰는 것이다. 시세의 무게를 달아보기 위해서는 저울을 가감도 해보고 위치도 좌우로 변경해보면서 때에 적절한 저울질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면 권(權)을 잃은 것이고 힘만 억지로 지탱하려는 꼴이 된다. 때와 장소가 달라지면 그 방법을 달리해야 그 자부를 잃지 않지 만약 획일적 방법만 고집한다면 잃어버리기 쉽다. 특히 지금처럼 가속도가 붙은 시대에서 국가나 기업의 경제와 정치력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도 그럴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17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수출서물: 여러 인물에서 하늘이 출현한다

하늘은 생명활동이 가능하도록 시간도 베풀어주고 공간도 만들어준다. 그러기에 공자도 하늘은 아무 말 없이 세월을 운행하며 모든 생명을 생육시킨다고 찬탄하면서 자신도 하늘처럼 살고 싶다고 하였다. 주역에서 하늘은 인체의 머리로 비유된다. 형상의 차원에서 볼 때 머리는 인체의 꼭대기에 있으면서 둥근데 하늘도 위에 있으면서 둥글게 인식되어왔다. 그 성격의 차원에서 볼 때 머리에는 우리의 생각을 통솔하는 뇌가 있는데 하늘은 땅과 대비될 때 형이상적으로 규정된다. 그래서 하늘 천자의 옛 글자를 보면 사람의 형상에서 머리를 부각시켜놓았다. 우리나라에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내려왔는데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사람 속에 내재되었다고 여겨지는 하늘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발현시켜 써먹을지에 관한 것이다. 내 속에 있는 하늘만이 진짜라고 우기면서 싸워오고 지금도 싸우는 것이 인간 종교전쟁의 역사임을 돌이켜보면 하늘은 생각하기도 싫은 이름이다. 주역에서는 하늘은 한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평범한 여러 사람들인 서물(庶物)에 내재되어있으니 평범한 여러 사람들에게서 출현해야만 세계에 평화가 온다고 하였다. 어느 한 사람의 구세주가 나타난다 해서 이 세상에 평화는 오지 않는다. 게다가 겉으로만 평화를 말하고 속으로는 싸움을 그치지 않으면서 하늘을 전파하는 행태로는 이 세상에 평화는커녕 재앙만을 재촉할 것이다. 공자는 하늘은 모든 사람 속에 있고 다양하고 평범한 여러 사람 속에서 하늘이 출현할 때만이(首出庶物) 온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올 것이라고(萬國咸寧) 하였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10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각종기류: 각기 그 부류를 따른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처럼 사람들의 모임은 관찰해보면 그 모임에 소속된 사람들끼리 무언가 서로 비슷한 점이 있다. 정치판을 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당과 야당의 행태를 보면 대체로 일정한 사안에 대해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데 끼리끼리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동양의 고전에서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생각을 공유하고 비슷한 행위를 하는 원형을 자연계에서 찾는다. 동물도 물에 모여 사는 물고기들은 비늘이 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은 날개가 있다. 이런 도리를 "솔개는 하늘을 날아다니고(鳶飛戾天) 물고기는 연못에서 헤엄치며 뛰고 있구나(魚躍于淵)!"하고 시로 읊조린다. 중용에서는 이런 도리는 모두 상하의 천지에 근본을 둔 것이라고 보았다. 주역에서는 끼리끼리 모여들고 따르며 감응하는 도리를 여러 가지 차원에서 구분해서 표현하였다. 사람이나 새나 물고기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지만 귀에 들리는 소리를 통해서도 이런 도리는 드러난다. 겨울철 동지(冬至)가 되면 음악에서 황종(黃鐘)이라는 율관이 상응하여 동지의 음률을 낸다. 이것이 해당부류의 소리가 감응하는 동성상응(同聲相應)이란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근저에는 기(氣)의 운동이 있으니 기(氣)의 운동이 상호 감응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에 보고 듣는 현상계의 상호감응도 가능하다. 해당 부류가 기의 차원에서 상호 추구하는 것을 동기상구(同氣相求)라 한다. 본질적인 기(氣)가 다르면 드러나는 소리나 색이 다르고 다른 부류끼리 모여서 활동하니 자연 당파(黨派)가 생긴다. 그러니 당파끼리 매일 앙앙대며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런 건 지나온 역사가 증명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03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명야유성: 천명이지만 본성이 있다

한 일 없이 가을밤에 보름달만 쳐다본 것이 벌써 몇 해인가? 생각이 심각해지니 오늘은 인간의 본질적 주제인 천명과 본성에 대해 소개해본다. 성명(性命)은 동양철학의 핵심주제이며 인간의 본질에 관한 화두이다. 성(性)은 성리(性理)적 의미인데 누구나 지니고 있는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존재로 파악된다. 이에 비해 명(命)은 기수(氣數)적 의미인데 사람마다 다 다르게 타고난 이질적 존재로 파악된다. 성(性)이 일체를 수용하는 자유에 가깝다면 명(命)은 일정한 절도가 있는 구속에 가깝다. 본성은 사람이 얻고자 노력하면 얻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명은 얻고자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종류가 아니다. 그래서 맹자는 천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하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그리 되는 것이 천(天)이고(莫之爲而爲者天也) 이르려 하지 않았는데도 그곳에 이르는 것이 명(命)이다(莫之致而至者命也)." 결국 천명이란 나의 본성과 관계없이 유행하는 비교적 현실적 기수(氣數)의 세계로 드러난다. 공자가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있다."고 하면서 천명(天命)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천명에만 매어서 살 것인가? 맹자는 천명은 따르되 더 중요한 것은 본성을 되찾는 것인데 사람들은 거꾸로 한다고 생각했다. 구해도 얻지 못할 명(命)은 욕심을 내어 구하려 들고 배워서 깨달아 알 수 있는 성(性)은 포기해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인(聖人)들이 천도를 깨닫는 일이 물론 천명(天命)에 가까운 부분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구나 지닌 본성(本性)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일을 천명으로만 돌려 포기하지 말고 힘써 공부하라는 뜻이다. 몽고인들의 시력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타고난 것이 천명인데 본성이라 여겨 나의 시력도 그리되길 바라고 성인의 깨달음은 우리도 지니고 있는 본성에 근거한 것인데 천명으로 여겨 멀리한다는 뜻이다. 성인의 출세도 천명이긴 하나 본질적으로는 우리와 똑같은 본성이 있음에 근거한 것임을 늘 잊지 말고 공부하라는 뜻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9-26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일폭십한: 하루는 햇볕을 쪼이고 열흘은 춥게 한다

추석을 앞두고 올해 농사는 망쳤다는 말을 듣는다. 날씨가 따라주지 않은 탓에 그렇다. 곡식은 싹도 중요하지만 그 싹을 잘 길러야 풍성한 곡식을 수확할 수 있다. 하루 동안은 햇볕이 나다가 열흘 동안 날씨가 쌀쌀해져 따스한 온기가 없으면 곡식이 제대로 생육할 수 없어 결국 죽기 쉽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날씨가 그 지역의 일정한 기후를 따라 일정하게 변화해야만 곡식이 제대로 발육된다. 곡식의 발육에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기후의 일정함이나 항상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맹자는 싹이 아무리 좋아도 일정함이나 항상성이 유지되지 않으면 망치는 것을 사람에게 적용하였다. 그 싹이란 바로 실마리 혹은 단서라고 부르는 것인데 맹자는 이를 사단(四端)이라는 인간이 지닌 마음의 싹으로 말했다. 이른바 싹수가 있는 지도자라도 지속적으로 그 싹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그 싹수는 잘 유지되어 자라나기 힘들다. 맹자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책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보았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책임자의 싹수가 아무리 훌륭해도 아래나 주위의 참모들이 선량하지 않거나 선량하더라도 그 말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여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 싹수는 쓸모가 없다. 자신의 충언을 듣고 실행하다가 열흘은 자신을 멀리하여 그 말을 듣지 않는 임금을 맹자는 이렇게 일폭십한의 비유를 들어 비판했다. 임금만을 지목해 말한 것이 아니다. 공자는 사람의 마음은 잘 잡으면 보존되지만 놓아버리면 없어져 버리니 그 들고남이 정한 때가 없으며 그 방향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도 하루는 자기의 마음을 잘 잡고 있다가 열흘을 놓아버리면 그것이 바로 일폭십한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9-19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수불승화: 물이 불을 이기지 못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이 지닌 도덕적 가치의 우위와 현실적 능력의 우위는 일치하지 않는다. 도덕적 명분과 현실적 능력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하고 갈등하지 않기도 한다. 맹자는 인간은 누구나 양심이 있기 때문에 선악을 구분하고 실천할 수 있는 도덕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이른바 양지양능(良知良能)의 이론이다. 그러나 이건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서로가 목숨을 놓고 싸우는 전쟁에서는 이기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에 선악은 저 아래 묻히기 마련이다. 중국의 전국시대는 어찌 보면 약육강식의 전쟁의 시절이었는데 맹자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도덕적 판단과 실천을 잃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정당함이 부당함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은 비일비재인데 일관성 있게 도덕적 주장을 하려니 도덕과 힘을 대비시켰다. 그래서 『맹자』를 읽다 보면 그런 대비를 자주 보게 된다. 그중 하나의 대비가 물과 불로 나타났다. 물로 불을 끄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원리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원리가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물이 불을 이기지 못한다'고 푸념한다. 다시 말해 양심적인 사람이 비양심적인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푸념한 것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자주 푸념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맹자는 다음과 같이 변명한다. "어짊이 어질지 못함을 이기는 것은 마치 물이 불을 이기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한 잔의 물을 가지고는 한 수레 가득한 나무에 붙은 불을 끄려 하다가 꺼지지 않으면 물이 불을 이기지 못한다고 푸념한다." 맹자에 의하면 여전히 물이 불을 이기는 성질은 변함이 없다. 다만 그 당연한 성질을 사람들이 현실에 구현하지 못해 벌어지는 것뿐이다. 하지만 맹자 말을 뒤집어보면 인간들이 대체로 양심을 회복하는 힘이 강해지지 못하면 불이 물을 이기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9-12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경천지유: 하늘의 달라짐을 공경하라

좋은 일이 잘 보존되면 그 이상 좋을 게 없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히 보존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좋은 일이 점점 좋지 않게 변해간 '시경'에서는 그 주체를 천하의 정치를 들어 경천지유(敬天之 )를 읊었지만 정치뿐이 아니다. 개인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고 세계도 그렇고 지구도 그렇고 태양계도 그렇고 우주도 그렇다. 이렇듯 좋은 것이 좋지 않게 변해갈 때는 그 달라지는 징표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미세한 단계로 나타나 보여주면 그것이 조짐이요 기미이고 현저하게 드러나면 이미 현실로 구현되어버린 것이다. 달라질 조짐이 보이면 두려워하고 공경하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후천(後天)이 되면 세계가 일가(一家)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 선천은 봄여름에 해당하여 발산하는 시절이고 후천은 가을겨울에 해당하여 수렴하는 시절이다. 한곳으로 수렴하니 세계도 일가(一家)로 수렴한다는 것인데 세계일가라는 이 말은 흥하면 같이 흥하고 망하면 같이 망하게 되니 세계 온 나라가 운명공동체가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개인이나 한 나라가 자기만 잘났다고 해서 자기만 잘살아지는 세계가 아니라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선천이 각자도생의 시절이었다면 후천은 공동운명의 시절이다. 이런 천도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모두 쫄딱 망한다는 뜻이다. 아직도 이런 변화를 공경하지 않고 그저 내 나라만 잘살면 된다는 강대국의 리더십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인간만 잘살면 된다는 발상이 북극의 빙하를 녹여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는 지금의 두려운 변화를 보면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인간과 자연도 공동운명이 된 이 마당에 인간끼리의 공동 운로(運路)야 말할게 뭔가!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9-05 철산 최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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