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습이불찰: 익숙하면서도 살피지 못한다

가족이나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습관은 보기 쉽고 알기 쉽다. 그래서 그에 관한 예측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신이 습관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맹자는 사람들의 이런 경향에 대해 "행동하면서도 분명히 인지하지 못하며 익숙하면서도 살피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습관은 말 그대로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 익숙해져서 관성이 붙은 것이다. 눈에 보이는 행동뿐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도 습관이 있다.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에 행동으로 드러나는 습관의 뿌리는 생각에 있다. 더 넓게 말하면 마음에 있다. 습관이란 마치 물과 같아서 물을 독사가 먹으면 독을 뿜어내고 소가 먹으면 우유를 내놓는 것과 같아서 그것 자체는 중립이다. 익숙하게 길들여지는 원리는 중립이지만 그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를 만든다. 애초부터 좋은 내용만 익숙하게 길들였으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습관은 좋지만 어떤 습관은 좋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성찰(省察)이니 성찰은 반성과 관찰이다. 반성은 성찰의 방향을 자신 내부로 되돌리는 것이고 관찰은 그렇게 되돌려서 제대로 보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비유하면 반성은 방향의 전환이고 관찰은 살피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물건은 방향이 제대로 잡히고 힘이 가해지면 그리로 가게 되어있다. 일상의 습관에 대해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1-14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정위응명: 자기의 바른 자리에서 소명을 완성하라

命의 갑골문의 본래 글자는 명령 령(令)자이다. 명령 령(令)자는 삼각형 모양의 모을 집( )아래에 영어의 p자형태의 병부 절( )로 되어있다. 모을 집( )자는 덮개를 의미한다. 작은 경우는 모자에 해당하고 큰 경우는 사람이 거처하는 건물[궁궐, 대궐, 조정...]을 의미한다. 병부 절( )자는 사람 인(人)자의 변형으로 사람이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명령을 내리는 것인데 그 의미를 확실히 하기 위해 입 구(口)자가 첨가되어 명(命)이 되었다. 명령(命令)의 의미이다. 명령(命令)이란 글자에 들어있는 절( )은 무릎의 마디를 의미하는 마디 절(節)의 의미가 파생되었다. 대나무 마디를 가지고 옛날에는 병부(兵符)를 만들었다. 명(命)자에서 건물 안에서 명령을 내리는 가장 높은 사람을 '임금'으로 보는데 그러면 임금의 명령이 된다. 옛날에 임금이나 명령권자가 명령을 내릴 때 쓰던 도구를 병부(兵符)라고 한다. '병부'는 주로 병력을 동원할 때 쓰던 도구이다. 대나무를 두 조각으로 나누어 만들었다. 조선시대의 경우는 반쪽 나뭇조각은 관찰사나 절도사 등이 보관하고 나머지 반쪽 나무는 궁중에서 보관했다. 군대(軍隊)를 동원(動員)하는 표지(標識)로 쓰이던 동글납작한 나무패로 병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을 때 명령을 내리는 임금이 교서와 함께 한 쪽 나무 조각을 보내면 관찰사나 절도사는 그것을 자기가 보관하고 나머지 반쪽과 맞추어보고 틀림없을 경우 병력을 동원했다. 병부(兵符)는 봉화(烽火)와 더불어 통신(通信)체계의 원형이기도 하다. 우리는 명령(命令), 천명(天命), 생명(生命), 수명(壽命), 성명(性命), 운명(運命) 등등을 이야기한다. 명은 주어지는 면도 있고 그것을 인식하는 면도 있고 그것을 이행하는 면도 있고 변화시키는 면도 있다. 어떤 의미이든 현실에서 각자의 소명을 잘 알고 그것을 완성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천명을 알고 이루는 길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1-07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저양촉번: 숫양이 울타리를 부딪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서로 고육지계(苦肉之計)로 들어섰다. 그 둘 가운데 낀 나라의 경제적 손실과 심리적 불안도 더해간다. 일종의 힘겨루기인데 너무 나가는 것 아닌가 싶다. 주역에서 힘을 쓰는 도리나 상황에 대해 羊을 가지고 말해놓았다. 여기에서의 양은 뿔 달린 염소를 이야기한다. 羊은 겉으로 유순해 보이지만 속에는 강한 힘과 고집스러운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런 양이 자신이 지닌 힘을 과시할 때 벌어지는 상황을 저양촉번(저羊觸藩)이라고 묘사하였다. 숫양이 울타리를 부딪친다는 뜻이다. 양을 키우기 위해 만든 것이 울타리인데 여기에서 울타리는 일종의 한계와 경계를 뜻한다. 양이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사용하게 되면 울타리를 들이받아 부딪치는데 그러다가 뿔이 울타리에 걸려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런 것이 저양촉번(저羊觸藩)이다.주역에서 羊은 태괘(兌卦)에 해당하고 방위로는 서방(西方)에 해당하고 현재 나라로는 서양의 강대국을 상징한다. 대표적으로는 羊자가 들어있는 아름다울 美자인데 美를 파자(破字)하면 대양(大羊)으로 큰 양이다. 나라로는 힘센 대국인 미국(美國)이다. 아무리 경제에 문외한이지만 벌어지는 꼴을 보자니 꼭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 넘어가고 싶은 모양새다. 그러나 보이는 한정된 이 세계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서운 울타리가 존재한다. 그 보이지 않는 울타리는 인과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데 내게서 나간 것은 반드시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백지를 기계로 돌려 무한정의 화폐를 자기들 마음대로 찍어내는 대국이라지만 그런 대국도 이 인과의 섭리를 어기면 멀지 않아 저양촉번(저羊觸藩)의 꼴을 당할 것이다.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동북공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31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소이수신: 몸을 닦기 위한 방법

닦는다는 말은 길을 닦으면 수도(修道)이고 마음을 닦으면 수심(修心)인데 몸을 닦으면 수신(修身)이다. 수신은 몸을 씻는다는 세신(洗身)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수심을 포함한 말이다. 마음이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존재이지만 당장에 존재하는 몸을 이야기하면 한량없는 마음은 그 가운데 갖추어져있다고 볼 수 있다. 심신을 닦아나가는 문제는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 사람마다 가장 중요한 문제다. 또한 사회속의 생활인으로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다. '중용'에서는 몸을 닦아나가는 방법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하나는 호학(好學)이고 하나는 역행(力行)이고 하나는 지치(知恥)이다. 호학(好學)은 배움을 좋아한다는 뜻이고, 역행(力行)은 힘써 실행한다는 뜻이고 지치(知恥)는 부끄러움을 안다는 뜻이다.여기에서의 배움이란 중용의 도리에 관한 배움을 말한다. 어떤 것이 진정 인간으로서 내가 가야 할 길인가? 이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호학(好學)이며 이렇게 되면 지(知)에 가까워진다. 그것을 알고는 힘써 행하는 실행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역행(力行)이다. 알고 나서 실행하려면 자신의 사사로움을 극복해야 하니 역행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인(仁)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이다. 배우고 실천하는 학행(學行)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나태함을 부끄럽게 여기며 자신을 분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태해질 때 부끄러워할 줄 알고 분발시키는 힘은 용기(勇)에 가깝다. 삼달덕(三達德)이라 부르는 지인용(知仁勇) 세 가지는 배우고 행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데서 이루어지니 이것이 몸을 닦기 위한 방법이다. 확충해보면 비단 몸을 닦는데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고 어떤 기술적인 분야에서도 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24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상기자부: 재물과 권력을 잃는다

인생이 나그네란 말이 있다. 나그네란 주인과 달리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존재이다. 그렇게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한 곳에 영원히 상주하질 못한다. 먼 길을 떠나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 여행자의 숙명을 지닌 나그네는 임시적으로 머물 여관과 같은 곳이 있어야 한다. 먼 길을 돌아다니려면 여행경비가 필요한데 옛사람들은 노자(路資)라고 불렀다. 자부(資斧)에서 자(資)는 본래 노자를 뜻하는데 이 노자가 재물의 뜻으로 통용되었다. 또 나그네에게는 초행길이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신변에 위협을 가할 요소들이 산재해있다. 그래서 옛날 나그네 길에 자기 몸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도끼를 지니고 다녔는데 도끼는 육체의 힘을 강력하게 연장하는 효과를 지니기에 권력의 뜻으로 통용되었다. 나그네의 자부(資斧)가 인생 나그네들에게 재물과 권력의 의미인 것이니 사람들의 경제적·정치적 권력을 상징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때로 이런 힘을 얻을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데 주역에서는 그런 힘을 잃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권력을 잃는 이유에 대해서 그 자체에서 답을 제시하고 있다. 권력의 권(權)은 저울질의 뜻으로 시세의 무게를 잘 달아보면서 쓰는 것이다. 시세의 무게를 달아보기 위해서는 저울을 가감도 해보고 위치도 좌우로 변경해보면서 때에 적절한 저울질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면 권(權)을 잃은 것이고 힘만 억지로 지탱하려는 꼴이 된다. 때와 장소가 달라지면 그 방법을 달리해야 그 자부를 잃지 않지 만약 획일적 방법만 고집한다면 잃어버리기 쉽다. 특히 지금처럼 가속도가 붙은 시대에서 국가나 기업의 경제와 정치력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도 그럴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17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수출서물: 여러 인물에서 하늘이 출현한다

하늘은 생명활동이 가능하도록 시간도 베풀어주고 공간도 만들어준다. 그러기에 공자도 하늘은 아무 말 없이 세월을 운행하며 모든 생명을 생육시킨다고 찬탄하면서 자신도 하늘처럼 살고 싶다고 하였다. 주역에서 하늘은 인체의 머리로 비유된다. 형상의 차원에서 볼 때 머리는 인체의 꼭대기에 있으면서 둥근데 하늘도 위에 있으면서 둥글게 인식되어왔다. 그 성격의 차원에서 볼 때 머리에는 우리의 생각을 통솔하는 뇌가 있는데 하늘은 땅과 대비될 때 형이상적으로 규정된다. 그래서 하늘 천자의 옛 글자를 보면 사람의 형상에서 머리를 부각시켜놓았다. 우리나라에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내려왔는데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사람 속에 내재되었다고 여겨지는 하늘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발현시켜 써먹을지에 관한 것이다. 내 속에 있는 하늘만이 진짜라고 우기면서 싸워오고 지금도 싸우는 것이 인간 종교전쟁의 역사임을 돌이켜보면 하늘은 생각하기도 싫은 이름이다. 주역에서는 하늘은 한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평범한 여러 사람들인 서물(庶物)에 내재되어있으니 평범한 여러 사람들에게서 출현해야만 세계에 평화가 온다고 하였다. 어느 한 사람의 구세주가 나타난다 해서 이 세상에 평화는 오지 않는다. 게다가 겉으로만 평화를 말하고 속으로는 싸움을 그치지 않으면서 하늘을 전파하는 행태로는 이 세상에 평화는커녕 재앙만을 재촉할 것이다. 공자는 하늘은 모든 사람 속에 있고 다양하고 평범한 여러 사람 속에서 하늘이 출현할 때만이(首出庶物) 온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올 것이라고(萬國咸寧) 하였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10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각종기류: 각기 그 부류를 따른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처럼 사람들의 모임은 관찰해보면 그 모임에 소속된 사람들끼리 무언가 서로 비슷한 점이 있다. 정치판을 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당과 야당의 행태를 보면 대체로 일정한 사안에 대해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데 끼리끼리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동양의 고전에서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생각을 공유하고 비슷한 행위를 하는 원형을 자연계에서 찾는다. 동물도 물에 모여 사는 물고기들은 비늘이 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은 날개가 있다. 이런 도리를 "솔개는 하늘을 날아다니고(鳶飛戾天) 물고기는 연못에서 헤엄치며 뛰고 있구나(魚躍于淵)!"하고 시로 읊조린다. 중용에서는 이런 도리는 모두 상하의 천지에 근본을 둔 것이라고 보았다. 주역에서는 끼리끼리 모여들고 따르며 감응하는 도리를 여러 가지 차원에서 구분해서 표현하였다. 사람이나 새나 물고기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지만 귀에 들리는 소리를 통해서도 이런 도리는 드러난다. 겨울철 동지(冬至)가 되면 음악에서 황종(黃鐘)이라는 율관이 상응하여 동지의 음률을 낸다. 이것이 해당부류의 소리가 감응하는 동성상응(同聲相應)이란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근저에는 기(氣)의 운동이 있으니 기(氣)의 운동이 상호 감응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에 보고 듣는 현상계의 상호감응도 가능하다. 해당 부류가 기의 차원에서 상호 추구하는 것을 동기상구(同氣相求)라 한다. 본질적인 기(氣)가 다르면 드러나는 소리나 색이 다르고 다른 부류끼리 모여서 활동하니 자연 당파(黨派)가 생긴다. 그러니 당파끼리 매일 앙앙대며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런 건 지나온 역사가 증명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03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명야유성: 천명이지만 본성이 있다

한 일 없이 가을밤에 보름달만 쳐다본 것이 벌써 몇 해인가? 생각이 심각해지니 오늘은 인간의 본질적 주제인 천명과 본성에 대해 소개해본다. 성명(性命)은 동양철학의 핵심주제이며 인간의 본질에 관한 화두이다. 성(性)은 성리(性理)적 의미인데 누구나 지니고 있는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존재로 파악된다. 이에 비해 명(命)은 기수(氣數)적 의미인데 사람마다 다 다르게 타고난 이질적 존재로 파악된다. 성(性)이 일체를 수용하는 자유에 가깝다면 명(命)은 일정한 절도가 있는 구속에 가깝다. 본성은 사람이 얻고자 노력하면 얻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명은 얻고자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종류가 아니다. 그래서 맹자는 천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하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그리 되는 것이 천(天)이고(莫之爲而爲者天也) 이르려 하지 않았는데도 그곳에 이르는 것이 명(命)이다(莫之致而至者命也)." 결국 천명이란 나의 본성과 관계없이 유행하는 비교적 현실적 기수(氣數)의 세계로 드러난다. 공자가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있다."고 하면서 천명(天命)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천명에만 매어서 살 것인가? 맹자는 천명은 따르되 더 중요한 것은 본성을 되찾는 것인데 사람들은 거꾸로 한다고 생각했다. 구해도 얻지 못할 명(命)은 욕심을 내어 구하려 들고 배워서 깨달아 알 수 있는 성(性)은 포기해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인(聖人)들이 천도를 깨닫는 일이 물론 천명(天命)에 가까운 부분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구나 지닌 본성(本性)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일을 천명으로만 돌려 포기하지 말고 힘써 공부하라는 뜻이다. 몽고인들의 시력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타고난 것이 천명인데 본성이라 여겨 나의 시력도 그리되길 바라고 성인의 깨달음은 우리도 지니고 있는 본성에 근거한 것인데 천명으로 여겨 멀리한다는 뜻이다. 성인의 출세도 천명이긴 하나 본질적으로는 우리와 똑같은 본성이 있음에 근거한 것임을 늘 잊지 말고 공부하라는 뜻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9-26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일폭십한: 하루는 햇볕을 쪼이고 열흘은 춥게 한다

추석을 앞두고 올해 농사는 망쳤다는 말을 듣는다. 날씨가 따라주지 않은 탓에 그렇다. 곡식은 싹도 중요하지만 그 싹을 잘 길러야 풍성한 곡식을 수확할 수 있다. 하루 동안은 햇볕이 나다가 열흘 동안 날씨가 쌀쌀해져 따스한 온기가 없으면 곡식이 제대로 생육할 수 없어 결국 죽기 쉽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날씨가 그 지역의 일정한 기후를 따라 일정하게 변화해야만 곡식이 제대로 발육된다. 곡식의 발육에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기후의 일정함이나 항상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맹자는 싹이 아무리 좋아도 일정함이나 항상성이 유지되지 않으면 망치는 것을 사람에게 적용하였다. 그 싹이란 바로 실마리 혹은 단서라고 부르는 것인데 맹자는 이를 사단(四端)이라는 인간이 지닌 마음의 싹으로 말했다. 이른바 싹수가 있는 지도자라도 지속적으로 그 싹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그 싹수는 잘 유지되어 자라나기 힘들다. 맹자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책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보았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책임자의 싹수가 아무리 훌륭해도 아래나 주위의 참모들이 선량하지 않거나 선량하더라도 그 말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여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 싹수는 쓸모가 없다. 자신의 충언을 듣고 실행하다가 열흘은 자신을 멀리하여 그 말을 듣지 않는 임금을 맹자는 이렇게 일폭십한의 비유를 들어 비판했다. 임금만을 지목해 말한 것이 아니다. 공자는 사람의 마음은 잘 잡으면 보존되지만 놓아버리면 없어져 버리니 그 들고남이 정한 때가 없으며 그 방향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도 하루는 자기의 마음을 잘 잡고 있다가 열흘을 놓아버리면 그것이 바로 일폭십한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9-19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수불승화: 물이 불을 이기지 못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이 지닌 도덕적 가치의 우위와 현실적 능력의 우위는 일치하지 않는다. 도덕적 명분과 현실적 능력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하고 갈등하지 않기도 한다. 맹자는 인간은 누구나 양심이 있기 때문에 선악을 구분하고 실천할 수 있는 도덕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이른바 양지양능(良知良能)의 이론이다. 그러나 이건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서로가 목숨을 놓고 싸우는 전쟁에서는 이기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에 선악은 저 아래 묻히기 마련이다. 중국의 전국시대는 어찌 보면 약육강식의 전쟁의 시절이었는데 맹자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도덕적 판단과 실천을 잃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정당함이 부당함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은 비일비재인데 일관성 있게 도덕적 주장을 하려니 도덕과 힘을 대비시켰다. 그래서 『맹자』를 읽다 보면 그런 대비를 자주 보게 된다. 그중 하나의 대비가 물과 불로 나타났다. 물로 불을 끄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원리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원리가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물이 불을 이기지 못한다'고 푸념한다. 다시 말해 양심적인 사람이 비양심적인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푸념한 것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자주 푸념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맹자는 다음과 같이 변명한다. "어짊이 어질지 못함을 이기는 것은 마치 물이 불을 이기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한 잔의 물을 가지고는 한 수레 가득한 나무에 붙은 불을 끄려 하다가 꺼지지 않으면 물이 불을 이기지 못한다고 푸념한다." 맹자에 의하면 여전히 물이 불을 이기는 성질은 변함이 없다. 다만 그 당연한 성질을 사람들이 현실에 구현하지 못해 벌어지는 것뿐이다. 하지만 맹자 말을 뒤집어보면 인간들이 대체로 양심을 회복하는 힘이 강해지지 못하면 불이 물을 이기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9-12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경천지유: 하늘의 달라짐을 공경하라

좋은 일이 잘 보존되면 그 이상 좋을 게 없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히 보존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좋은 일이 점점 좋지 않게 변해간 '시경'에서는 그 주체를 천하의 정치를 들어 경천지유(敬天之 )를 읊었지만 정치뿐이 아니다. 개인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고 세계도 그렇고 지구도 그렇고 태양계도 그렇고 우주도 그렇다. 이렇듯 좋은 것이 좋지 않게 변해갈 때는 그 달라지는 징표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미세한 단계로 나타나 보여주면 그것이 조짐이요 기미이고 현저하게 드러나면 이미 현실로 구현되어버린 것이다. 달라질 조짐이 보이면 두려워하고 공경하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후천(後天)이 되면 세계가 일가(一家)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 선천은 봄여름에 해당하여 발산하는 시절이고 후천은 가을겨울에 해당하여 수렴하는 시절이다. 한곳으로 수렴하니 세계도 일가(一家)로 수렴한다는 것인데 세계일가라는 이 말은 흥하면 같이 흥하고 망하면 같이 망하게 되니 세계 온 나라가 운명공동체가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개인이나 한 나라가 자기만 잘났다고 해서 자기만 잘살아지는 세계가 아니라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선천이 각자도생의 시절이었다면 후천은 공동운명의 시절이다. 이런 천도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모두 쫄딱 망한다는 뜻이다. 아직도 이런 변화를 공경하지 않고 그저 내 나라만 잘살면 된다는 강대국의 리더십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인간만 잘살면 된다는 발상이 북극의 빙하를 녹여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는 지금의 두려운 변화를 보면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인간과 자연도 공동운명이 된 이 마당에 인간끼리의 공동 운로(運路)야 말할게 뭔가!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9-05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일도사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한 방법으로 백성을 부린다

요즈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부의 경제정책을 두고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 어떤 정책이 좋은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얼까? 경제적 전문지식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 말고도 인문학적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는 문제이다. 고전에 도(道)라는 글자가 자주 나온다. 道란 길이다. 이 길은 사람들이 오가며 통행하는 길이다. 사람은 오갈 때 길을 통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길은 당위(當爲)의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이 반드시 행해야 할 그 무엇을 도(道)라고 한다. 길은 서로 연결되어 통해있기 마련이므로 길이 있다면 어디든 목적한 곳에 다다를 수 있다. 그래서 道는 고전에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목적이 정해지면 그에 맞는 방법이 따르기 마련이다. 일도(佚道)에서 일(佚)이 목적이라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이 도(道)이니 일도(佚道)란 '편안하게 해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정도로 새길 수 있다. 사민(使民)은 말 그대로 백성을 사역하는 것이니 각종 부역과 세금을 의미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세금을 올려서 부세(賦稅)하는 것이 바로 사민(使民)이다. 세금을 자꾸 올리면 백성들이 좋아할 리 없다. 그런데 맹자는 편안하게 해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세금을 올리면(佚道使民) 비록 힘들어도 원망하지 않는다(雖勞不怨)고 하였다. 그러므로 정부의 정책은 그 목적과 방법이 일도(佚道)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백성들이 자신들이 힘들어도 수긍을 한다고 보는 것이 맹자의 견해이다. 어떤 정책을 낼 때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말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8-29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풍우최납: 바람과 비에 꺾이고 부러진다

올해 학교수업에서 필자가 한 학기 동안 황제내경 강의를 하였다. 주로 기후와 날씨예측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슈퍼컴퓨터로도 알기 힘들고 귀신도 모른다는 날씨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아마도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할 것이다.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가능성과 당위성의 문제는 다르다. 마치 장사하는 사람이 오늘 손님이 몇이 올지 몰라도 대략 예정해서 물건을 준비해야 하는 것과 같다. 옛사람들은 기계도 없던 시절 이런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을까? 황제내경이란 고전에 보면 그 해 간지(干支)를 활용해 기후를 예측하는 운기론의 방법이 소개되어있다. 2018년은 간지로 무술(戊戌)이다. 우리나라의 늦여름에는 어느 해가 되었든지 후덥지근하기 마련이지만 매해 구체적으로는 서로 다른 기후 현상을 보인다. 우리나라는 늦여름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데 태풍이 오면 피해를 입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황제내경의 운기론에 따르면 태풍이 오고 안 오고를 결정하는 것은 객기(客氣)인데 올해의 늦여름 구간에 찾아오는 객기(客氣)는 바람이다. 그래서 무술(戊戌)년의 늦여름 기후양상을 풍우최납(風雨최拉)이라고 표현해놓았다. 우기(雨期)에 풍기(風氣)가 더해져 나무를 부러뜨리고 가지도 꺾어버리는 양상을 정의한 것이다. 태풍의 피해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8-22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위군자유: 군자다운 선비가 되어라

공자가 제자인 자하(子夏)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군자다운 선비가 되고 소인 같은 선비가 되어서는 안 된다.[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 진정한 선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인데 과연 진정한 선비란 무엇일까? 선비 '유(儒)'자 속에서 찾아본다. 유(儒)는 '수인(需 )'으로 주역 64괘에 들어있는 수괘(需卦- )에서 본래의 깊은 의미를 만날 수 있다. 需卦는 물 기운이 하늘위에 있는 형상으로 하늘위에 물 기운이 형성되어있는데 아직 내리고 있지 않아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상이다. 생물이 비를 기다리며 살기에 수(需)란 일차적으로 '기다림'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모두들 기다리는 사람이 군자다운 선비의 첫 번째 조건이다. 그럼 두 번째 조건은 무엇일까? 역에서 상중하(上中下)의 천지인(天地人)은 상천(上天)과 하지(下地) 중인(中人)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동양에서 오랫동안 천지의 가운데 있는 존재라는 우주적 위상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사람자체가 가운데라는 '중(中)'이란 의미를 지닌다. 도상(圖象)으로 가운데에 위치한다는 쉬운 의미에서 중용, 중심, 근본 등등의 깊은 철학성으로 확충되면서 유학의 중(中)사상은 발전을 거듭해간 것이다. 동양철학의 핵심사상의 중(中)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시대에 맞는 중용을 행하면서 동시에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이 바로 선비[儒]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8-15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삼계화택: 모든 세계가 불난 집과 같다

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류의 문명을 촉발시킨 것이 불의 발명이라지만 요즈음처럼 불이 짜증 나고 무서울까? 기후학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지구는 계속해서 급속하게 가열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더운 여름인데 지구온도의 그래프는 계속해서 우상향(右上向)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집 저집 할 것 없이 다 불이 붙은 것처럼 헉헉대니 삼계화택의 비유가 생각이 난다. 불가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중생이 살고 있는 세계를 삼계(三界)라 하는데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라 구분하기도 한다. 중생은 이 삼계를 윤회하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 삼계가 모두 불이 난 집과 같다. 그래서 삼계가 편안하지 못함이(三界無安) 마치 불난 집과 같다(猶如火宅)고 하였다.불은 중생의 한시도 쉬지 않고 들끓는 번뇌를 비유한 것으로 번뇌가 몸과 마음을 태우며 사는 존재가 삼계의 중생이다. 현실적으로도 지금의 지구환경은 인간의 번뇌에 의해 만들어진 측면이 강하다. 인간의 근본번뇌란 어리석음과 그로부터 발출된 탐심과 진심(瞋心)인데 이 마음에 의해 지금의 지구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역사상 자연주기에 의한 지구 온도의 승강은 있어왔지만 지금의 지구 온도의 상승은 자연주기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현대 문명은 우리에게 화두를 던져주었다. 이미 집에 불은 붙었는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8-08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욕파불능: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 둘 수 없다

어떤 일을 하게 되면 일종의 단계가 있다. 그 일을 시작하는 단계가 있고 해나가는 단계가 있고 완성하는 단계가 있다. 시작과 중간과 마무리의 세 단계로 볼 수 있는데 이 세 가지 단계가 연속성이 있어야만 어떤 일이든 완성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일 중에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안연은 스승인 공자의 경지에 대해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이 있고 뚫어보고자 하나 더욱 견고하다'고 말하였다. 이만하면 자신의 경지가 높아졌다고 생각해서 스승을 쳐다보니 스승의 경지가 이전보다 더욱 높다는 것이고, 어느 정도 경지를 뚫었다고 생각해서 스승을 쳐다보면 그 경지가 더욱 견고하게 느껴지더라는 뜻이다. 이 정도 되면 포기할만한데 안연은 그 때의 심정을 '그만 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해놓았다. 왜 그랬을까?안연은 스승과 같이 되어야겠다는 공부에 대한 진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후대에 주석가들은 이 대목에 대해서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지 않을 수 없고 배고픈 사람이 밥을 찾지 않을 수 없는 지경과 같다고 풀이하기도 하였다. 세상에 어떤 종류의 공부든 하다가 포기하는 것은 진심이 발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목이 마르면 어떻게 물을 찾는 일을 포기할 수 있을까? 공부가 밀쳐내도 떠나가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욕파불능(欲罷不能)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쁜 일은 이렇게 되기 쉽지만 좋은 일은 어렵다. 금연하려 담배를 밀쳐내도 담배가 떠나가지 않듯이 확 뒤집어서 좋은 일을 이렇게 하면 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8-01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성환오칠:5와 7로 고리를 이룬다

1년은 4계절이고 한 계절마다 3달씩 있으니 12달이 돌아간다. 올해도 그렇고 내년도 그러니 계속 반복되는 자연의 절도이다. 자연의 반복되는 절도를 보고는 고인들이 여러 가지 도리를 부쳐서 글로 남기기도 하였다. 인간이 변화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자연의 변화에서 깨달아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춘하추동이라는 4계절의 개념이다. 봄여름이 지나 가을 겨울이 오고 다시 봄여름이 오는 반복적인 자연현상에서 우주적 질서란 반복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노자도 도(道)의 운동은 반복이 핵심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반복은 그저 형식적 흐름이 아니라 그 속에 실질적 변화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변화하는 시간마다 의미를 매겼다. 동양의 고전에서는 봄은 탄생이요 여름은 성장이며 가을은 열매이며 겨울은 감춤이라는 의미를 핵심으로 지닌다. 이 중에 다시 한 번 열매의 계절인 가을로 초점이 모아진다. 봄여름 애써서 경작한 이유는 가을의 수확에 있다는 뜻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 과도기적 시기를 예사롭게 보아 넘기질 않았다. 이래서 생긴 것이 삼복(三伏)의 전통인데 삼복은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과도기에 배치되어 있다. 천부경에서 '5와 7로 고리를 이룬다'는 말을 삼복과 연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음력기준 절기를 12지지로 볼 때 寅月이 1월이니, 5월은 午월이고 未月은 6월이며 申月은 7월이다. 삼복인 음력 6월은 전반부 6달을 마치고 후반부 6달을 시작하는 과도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6월을 중심에 두고 자연 고리가 생기니 그것이 5월과 7월이다. 지금의 염천(炎天) 삼복은 선천을 잘 마치고 후천을 준비하기 위한 과도기인 셈이니 이 더위를 저마다의 후천을 준비하며 잘 넘겨야 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7-25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포관격탁: 관문을 지키고 목탁을 친다

어느 사회든 그 사회가 만든 자리에는 높고 낮음이 있고 그 자리에 상응하는 녹봉에도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다. 보통은 길가는 이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높은 자리와 많은 녹봉을 원한다고 대답할 것인데, 맹자는 높은 자리와 많은 녹봉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생의 목적이라고 보았다. 포관격탁(抱關擊柝)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성어다. 포관(抱關)에서 관(關)은 성문 등의 관문을 말하는데 포관이란 관문을 지키는 사람을 뜻한다. 격탁(擊柝)에서 탁(柝)은 밤에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치는 목탁으로 격탁(擊柝)은 야경꾼을 뜻한다. 둘 다 낮은 직급의 관리로 녹봉도 적은데 이런 일을 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함을 말한다.맹자는 고위직 벼슬을 맡아 조정에 들어가 활동하는데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올바른 정치가 행해짐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또 그것이 행해지지 않을 것 같으면 높은 자리를 사양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였다. 그 대신 생계는 꾸려야 하니 지위도 낮고 녹봉도 적은 자리에 거처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자신의 목적이나 능력과 어울리지 않는 높은 자리에 있으면 반드시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후유증이 생긴다. 정당하고 원대한 목적이 분명하지만 여의치 않을 땐 포관격탁(抱關擊柝)도 한 방법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7-18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일언상방: 말 한마디로 나라를 망하게 한다

말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 마음이 진실하다면 그 말에는 그 마음이 담겨있다. 그러므로 모든 성현들이 말을 중요하게 여겼다. 말은 마음에 담고 있는 말도 있고 입 밖으로 나온 말도 있다. 본질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사회성을 띠기 때문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또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사회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논어에는 그런 대표적인 사람을 임금으로 보았다. 지금으로 치면 국가의 정책을 만드는 일에 결정적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한 번 입 밖으로 의사를 표출하면 그것이 법이 되고 국민의 삶을 결정한다.그런데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말도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말은 결국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말이란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이요 의지요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정공(定公)의 '한 마디 말'에 관한 질문에 마음의 차원에서 대답을 하였다. 임금의 마음에 들어있는 한마디는 나라를 망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하는데 그것은 곧 마음이다. 나라를 흥하게 하는 한마디란 '위군난(爲君難)'이요 나라를 망치는 한마디는 '막여위(莫予違)'이다. 임금 노룻이 어려운 것이라는 뜻의 '위군난(爲君難)'은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이고 내 말에 어기는 자들이 하나도 없다는 뜻의 '막여위(莫予違)'는 나만 생각하는 독재의 마음이다. '막여위(莫予違)'를 품고 정치하면 망하는 지름길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7-11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인심난제: 사람의 마음은 제어하기 어렵다

동물원에는 조련사들이 있다. 하늘을 나는 새나 달리는 짐승이나 심지어 물속에 사는 돌고래와 같은 동물까지 훈련을 시켜서 제어를 한다. 어찌 보면 제어라기보다는 길들인다는 표현이 어울릴 수도 있겠다. 조련사가 아니라도 사람은 살아가면서 어떤 대상을 제어하고 싶은 경우가 있다. 내가 관계하는 상대를 나의 목적대로 움직이게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게 쉽게 되지 않는데 부모와 자식 사이나, 부부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 자식이 이러이러하게 움직여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고 그렇게 하라고 해보았자 그렇게 되질 않는다. 그러고는 자기 목적대로 안 되면 화를 내곤 한다.자기가 아닌 남을 진정한 의미에서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지난한 일이다. 다른 사람은커녕 자기 자신조차 제어하기란 무척 힘들다. 남을 제어한다는 것은 순서상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 있을 때나 생각해볼 일이다. 내가 나를 제어한다는 것은 결국 내 마음을 제어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 그러나 꼭 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사람이 지니고 있는 저마다의 마음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의 출발처이자 해결처이기 때문이다. 제어하기 어려운 마음을 제어하기 위한 시작은 반성이다. 반성은 외부로 향하는 일상적 시선을 거꾸로 확 돌이켜 나를 비추어보는 일이다. 이런 일은 하루에 단 십분이라도 필요하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7-04 철산 최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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