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음악살롱

 

[윤중강의 음악살롱]불협화음은 결코 '협화음'이 될 수 없다

악보는 많은 음표로 구성돼 있다. 음표가 둘 이상 모여서 화음을 이룬다. 어울리는 것이 협화음, 안 어울리는 것은 불협화음이다. 그렇다면 불협화음은 협화음이 될 수 있을까? 작곡에 능한 사람일수록, '불협화음'을 '협화음'처럼 만드는 게 가능하다. 중간에 어떤 다른 음을 집어넣어서, 불협화음을 협화음처럼 들리게 만든다. 이건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 사이에, 이 둘을 잘 이해해주는 제 3자가 개입하는 것과 같다. 연주를 통해서도, 불협화음을 협화음처럼 들리게 할 수 있다. 협화음은 더욱 강하게 드러나게 하고, 불협화음은 약하게 처리를 하면 조화롭게 들릴 수 있다. 어울리는 관계를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거다. 그런데 명백한 것은, 이렇게 불협화음을 협화음처럼 애써서 만든다손 치더라도, 단지 그렇게 들릴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 안에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 내재돼 있다는 건 바뀔 수 없다. 불협화음은 결코 협화음이 되지 않고, 협화음이 불협화음으로 바뀌는 일은 거의 없다. 단지 그걸 표면상으로 완화시킬 뿐이다. 음표를 사람으로 바꿔보자. 사람 사이에도, 어울리기 쉬운 관계와 어울리기 어려운 관계가 있다. 협화음처럼 좋은 관계는,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그리 된다. 반면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어울리게 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안타까운 건, 그렇게 한다손 치더라도, 그게 진심으로 어울리는 게 아니라 표면상 그렇게 보일뿐이란 사실! 나는 오십이 될 때까지, 사람과 틀어져지는 것을 무척 경계했다.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해주길 바랐다. 내가 누구에게나 '협화음'이 되길 바랐다. 이건 불가능하다. 이것만큼 세상에 어리석은 일은 없다. 우리들은 모두 음표다. 나와 어울리는 음표가 있는가 하면, 나와 어울리기 힘든 음표가 있다. 이걸 인정해야 한다. 세상에는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고,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다. 당신은 신이 아니다. 당신은 인간이다. 당신에게는 희로애락의 코드가 있다. 이런 코드와 맞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게 중요하다. 당신과 맞지 않는 사람들과는 만나지 않는 게 현명하다. 그들과의 부딪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앞선 작곡가 혹은 연주가처럼 말이다. 둘 사이에 어떤 또 다른 사람을 두거나, 충돌의 횟수와 정도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당신의 인생은 길어야 백년이다. 당신이 오십을 넘겼다면 더욱 협화음과 불협화음의 진리에 순응해야 한다. 불협화음을 알면서도 협화음으로 만들고자 하는 건,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는 것' 이상으로 어리석다. 당신과 좋은 사람들을 좀 더 융숭하게 대하는 게 중요하다. 그럴 때 당신들의 협화음은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7-02-26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상 보다 소감

제 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이 있었다(1월 16일,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받을 만한 작품과 사람이 받았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이나 관계자들이 거의 동의하리라. 시상식을 지켜보면서 한국 뮤지컬계의 두 축인 라이선스뮤지컬과 창작뮤지컬에서 모두 긍정적인 기대를 갖게 한다. 한국뮤지컬어워즈대상은 라이선스뮤지컬 '스위니 토드'가 받았다. 5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작품이 공연되고 흥행에 성공할 것을 예상하긴 어려웠다. 이 작품은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다소 거친 이분법이나 그간 즉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프랭크 와일드혼에 익숙한 한국의 뮤지컬팬이 음악적인 깊이와 숨겨진 재미가 내재한 스티븐 손드하임 뮤지컬의 매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변화다. 아울러 라이선스뮤지컬에서 번역과 가창, 주요 배역의 캐스트와 열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해준다. 이 작품은 라이선스뮤지컬만을 놓고 볼 때, 완연한 대상감이다. 2016뮤지컬작품상은 창작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받았다. 최소의 공간에서 최소의 인원으로, 피아노 한 대만으로 값진 정서와 음악을 만들어낸다. 이 또한 다소 거친 생각이나, 대학로의 소극장 뮤지컬은 대개 '지금, 이 순간'만을 즐기게 하는 경향이 많다. 이 작품은 달랐다. 사유의 깊이가 느껴진다. 기존의 대한민국뮤지컬의 작곡 관행을 따르지 않는다. 소극장 뮤지컬에서 얼마만큼 '고품격' 감동을 줄 수 있는 상향치를 가늠하게 해주었다.이번 시상식이 빛난 건, 뮤지컬시상식에 참석한 배우들의 '참모습'이다. 시상자와 수상자의 멘트에 가식은 없었다. 시상을 하러나온 송용진 배우의 슈트에 경건하게 달린 노란 리본도 잊지 않으리라. 수상자의 소감은 모두 재미있거나, 의미있었다. 그 말 속의 가치가 귀중했다. 사회를 맡은 이건명 배우의 어색한 위트도 매력적이다. 그가 객석에 앉은 뮤지컬계의 스타들에게 물었다. '지금 생각하는 뮤지컬 넘버는 무엇이냐?' 조승우는 '맨 오브 라만차'였다. "들어라 썩을 대로 썩은 세상아 죄악으로 가득하구나. 들어라 비겁하고 악한 자들아. 너희들 세상은 끝났다."한국의 뮤지컬배우에겐 든든한 팬덤이 있다. 그들의 영향력은 크다. 이번 시상식에서 들었던 많은 뮤지컬배우의 얘기는 저마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뮤지컬배우들이 공연을 통해서 즐거움과 위로를 주는 존재를 넘어서서, 한국사회가 더 좋게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믿음도 생겨난다. 뮤지컬이란 장르는 흥행에 의해 좌우되고 그 내용은 허구라지만, 대한민국뮤지컬계의 인력들은 이렇게 그 안에서 세상을 향한 진한 메시지를 읽어내고, 숭고한 가치를 전달하려 한다. 그러고 보니 '맨 오브 라만차'뿐만 아니라, '스위니 토드'란 작품에 큰 관심을 갖게 되는 것도, 작금 대한민국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구나! "똑똑한 놈 모두 우릴 속이려하죠. 난 당신께 진실만을 말할 거예요. 항상."/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7-01-22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대통령이여! 여민락을 들어라!

박근혜 대통령은 여민락(與民樂)을 알까? 들은 적은 있을까?조선의 성군 세종이 만든 음악이 여민락이다.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세종이지만, 음악에서 또한 그러했다. 세종은 직접 작곡도 했다. 세종이 막대기로 땅을 짚어가면서, 박자를 맞춰가며 작곡을 했다. 실록에 이런 사실이 기록돼 있다. (세종 31년, 1449년 12월) 세종은 이렇게 음률(音律)에 밝았다. 지금의 우리는 음악(音樂)이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음률(音律)이라고 했다. 소리를 통해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 음악이라면, 음률은 다르다. 법률(法律)이란 말이 있듯이, 률(律)이라는 것은 조화와 질서를 뜻한다. 세상을 바르게 이끌어 가는 데 있어서, 소리(음률)가 얼마만큼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광화문광장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졌다. 텔레비전에서 촛불집회 현장을 중계하는 영상에는 수많은 시민과 함께 세종대왕의 동상을 보게 된다. 청와대의 박 대통령은 물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겠지?세종의 주변에는 우의정 맹사성과 같은 대신이 있었다. 세종은 그들에게 나라의 공식적인 의식에서 아악(중국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개탄하기도 했다. 조선사람은 살아서 조선음악을 듣는데, 죽어서는 중국음악을 듣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향악(조선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세종에게도 궁금증이 있었다. 실록과 사초가 어떻게 적혀지는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세종은 보고 싶어 했으나, 청백리 맹사성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조선의 여민락(與民樂)은 하나가 아니다. 세종에 의해서 창제된 여민락은 여러 곡의 파생곡을 만들어냈다. '하나의' 좋은 음악이 '또 다른' 좋은 음악을 만든 셈이다. 이런 것을 '선한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종이란 임금뿐만 아니라, 또 다른 그 누구도 여민락을 만들어낸 셈이다.여민락은 거슬러 올라가면, 맹자의 정치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무릇 임금이란 존재는 '백성과 더불어서, 즐거움을 함께해야 한다'는 정치철학이다. 여민동락과 여민락은 모두 왕정시대의 산물이다. 민주시대가 아니었다. 시대적 한계가 분명하다. 당시의 임금과 백성의 관계는 어땠을까? "왕이 백성에게 고통을 주며 자기만 즐긴다면 백성들은 반발한다. 하지만 백성들이 잘 살 수 있게 만든다면, 왕이 즐기는 것을 함께 기뻐하겠다." 그게 당시 백성들의 생각이다. 백성들을 잘살게 해준다면, 왕이 개인적으로 어떻게 살든지 무관한 거다.동양의 정치가들은 백성들의 삶을 '음악'을 통해서 확인하기도 했다. 백성들이 지금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에 귀를 기울였다. 난세지음(亂世之音)과 망국지음(亡國之音)을 경계했다.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질 때, 올바른 음악이 세상에 번진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반대로, 올바른 음악이 올바른 세상을 만든다고 믿었다. 이게 바로 저 유명한 치세지음(治世之音)이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12-25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성대의 태평소

천성대는 젊은 피리연주가다. 에스닉 팝그룹 '락(RA;AK)'에서 활동한다. 이 그룹은 '민속음악(에스닉)에 뿌리를 둔 대중음악(팝)'을 지향한다. '태평성대'는 '락'의 대표곡! '어진 임금이 잘 다스리어 태평한 세상을 태평성대(太平聖代)라고 부른다. 락의 콘서트에선 의미가 추가된다. "'태평'소를 부는 천'성대'"라고 해서도 '태평성대'다. 락(RA;AK)의 콘서트에선, '락(Rock)처럼 힘이 넘쳐나는 락(樂)'을 경험한다. 멤버의 기량이 모두 출중하지만, 천성대의 태평소는 특히 신명나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악기는 왜 태평소(太平簫)일까? 평화의 피리란 뜻이지 않은가! 오래전 이순신장군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태평소소리를 들었다. 안타깝게도 그 시절도 난세(亂世)였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한산섬 달 밝은 밤에'를 잘 안다. 광화문에 가면 이순신 동상이 있고, 이순신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충무공이 지은 한시를, 노산 이은상 선생이 시조로 풀어냈다. 시조의 종장은 이렇다.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茄)는 남의 애를 끊나니'. 호가(胡茄)는 바로 '태평소'다. 한시의 원문은 일성강적갱첨수(一聲羌笛更添愁). 원문에선 강적(羌笛)으로 되어 있다. 강적도 '오랑캐의 피리'란 뜻이다. 그런데 강(羌)이란 한자에는, '아!'하는 '탄식'과 함께, '굳세다'는 의미도 있다. 어쩜 예나 이제나 같을까? 강적, 곧 태평소 소리엔 나라를 걱정하는 깊은 탄식과 나라를 바로잡으려는 굳은 의지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존재한다. 만약 이순신이 살아있어 지금 이 나라를 보면 뭐라 할까? 지금 이 땅에서 퍼지는 또 다른 호가(胡가)의 애끓는 절규와 강적(羌笛)에 담긴 굳건한 의지를 헤아리고 있을까? '광화문'하면 생각하는 전통노래가 있다. '진국명산'이다. 조선의 지식층이 사랑했던 가곡(歌曲)이다.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가곡의 '편수대엽'이란 곡조에 맞춰서 부르는 '진국명산'이다. "진국명산(鎭國名山) 만장봉(萬丈峰)이 청천삭출(靑天削出) 금부용(金芙容)이라" 광화문에서 바라본 사면경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인재가 앞으로 계속 나올 조선은 그러하기에 국태민안(國泰民安)할 것이라는 희망의 노래다. 이 노래는 감격군은(感激君恩)으로 마무리 짓는다. 왕조 사회에서 성군(聖君)에 대한 감사와, 임금이 계속 성군이길 바라는 심정을 헤아리게 된다. "이랴도 태평성대(太平聖代), 저랴도 성대(聖代)로다 / 요지일월(堯之日月)이요, 순지건곤(舜之乾坤)이로다 / 우리도 태평성대(太平聖代)니 놀고 놀려 하노라" 가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태평가'. 일명 '태평성대'다. 동양의 이상사회를 이끌었던 요임금과 순임금이 등장한다. 이상적인 통치자는 이렇게 오래된 노래에만 존재할까? 태평성대와 국태민안을 바라는 민초가 떠오른다. 저 악기를 태평소(太平簫)라고 이름하고, 평화의 시대를 바라면서 이 악기를 힘내서 불렀던 이 땅의 민중의 모습을 상상한다.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에서 양희은이 '아침이슬' '상록수'를 불렀다. 그 자리에 있던 천성대도 이 노래를 들었겠지. 광화문으로 향하는 그의 가방엔 '태평소'가 있다. '아침이슬'이 울려 퍼지는 그 곳에서, 성대는 마음으로 태평소를 불었을 거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태평소를 부는 연주가들도 모두 한 마음일 거다. 태평소의 강하고 찬란한 기운이 이 땅 곳곳에 퍼지길 바라노라! 곧 성대(盛代)한 세상이 되어서, 성대(盛大)한 태평소가락을 들으면,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노라!/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11-27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한국의 밥딜런 '들'

2016년,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가수로선 처음이다. 문학마니아에게는 의외겠지만, 나와 같은 입장에선 두 손을 번쩍 들면서 기뻐한다. 1970년대, 밥 딜런이 한국가수에게 끼친 영향은 크다. 그의 명곡 '블로윙 인 더 윈드'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과 같은 제목으로, 한국의 많은 포크가수가 번안해서 불렀다."'한국의 밥 딜런'은 누구일까?"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소식과 함께, 새삼 이런 질문을 접하게 된다. 저마다 좋아하는 가수를 한국의 밥 딜런으로 꼽는다. 오래전부터, 자타공히 '한국의 밥 딜런'이라고 불린 가수는 '담배'를 부른 서유석이다. 1970년대의 3대 저항 포크가수로서 김민기, 한대수, 서유석을 꼽고 있다. 이렇게 세 사람을 꼽는 건 신중해야 한다. 한국의 초기 포크가수와 그들의 저항적 노래를 얘기할 때 양병집을 빼놓을 수 없다.당시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치는 남녀가수들이 초기에는 밥 딜런과 조안 바에즈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그런 노래 속에서 '미국 포크'에서 '한국민요'의 관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한국적 포크음악에서 투코리언즈의 '벽오동 심은 뜻은'은 큰 의미가 있다. 이 노래는 시조와 민요 등 한국적인 노래말과 함께 한국적인 곡조가 돋보인다. 투코리언즈의 한명이 바로 김도향이었다. 다양한 음악을 거친 김도향은 1990년대 '월이 아리랑', '여보게 저승갈 때 무얼 가지고 가나(거문고 반주)' 등의 곡을 내놓았다.1970년대 초반의 포크음악으로서 김민기의 '밤뱃놀이', '가뭄', 양병집의 '타박네', 서유석 '진주난봉가' 등은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가수 마다 한 두곡에 불과했던 한국적인 포크음악은 송창식을 통해서 보다 더 한국적인 색깔이 짙은 음악으로 자리하게 된다. 송창식의 '에이야홍 술래잡이' '밀양머슴아리랑' '돌돌이와 석순이' 등을 들으면 그가 한국적인 음악을 두루 섭렵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김정호가 있다. 김정호의 '님'은 마치 남도민요(南道民謠)를 듣는 느낌이고, 그의 목소리는 마치 국악기 '아쟁'과 무척 닮았음을 느끼게 된다.한국적인 가요의 맥락을 살필 때, 가장 중요시하게 다룰 가수는 정태춘이다. 그의 '고향집 가세'를 들어보면 안다. 정태춘을 통해서 완벽하게 미국적인 포크음악은 자취를 감추고 한국적인 민요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음악이 정착되었음을 확인한다. 그의 '고향집 가세'는 피리와 소리북을 통해서 반주한다. 정태춘의 노래 가사와 곡조는 그 시절의 밥 딜런에게 뒤지지 않거나 때론 능가한다.'한국의 밥 딜런'은 어느 특정한 한 사람에게 국한하기 어렵다. 미국의 밥 딜런이 했던 역할은 한국의 대중음악에선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통해서 찾아낼 수 있다. 최근 밥 딜런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그저 '한국의 밥 딜런 찾기'에 국한되지 않길 바란다. 이보다는 한국적인 포크음악의 맥락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기여해 주길 바란다. 한국에도 여러 면에서 훌륭한 밥 딜런'들'이 존재하고 있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10-30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 블랙스트링, 세계음악의 돌파구

블랙 스트링(Black String)의 음반이 나왔다. 독일에서 나왔다. 한국그룹이다. 세계적인 재즈레이블 ACT가 그들을 선택했다. 아시아 뮤지션이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블랙스트링은 즉흥음악 앙상블이다. 재즈로 볼 수 있고, 월드뮤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장르적 경계를 허물면서, 독특한 자기 세계를 지향하는 즉흥음악 앙상블'이라고 보는 게 가장 맞다. 이런 블랙스트링을 한국의 음악계는 얼마큼 주목하고 있을까? 블랙스트링의 음반을 어떻게 평가할까? 지구촌 곳곳에 존재하는 재즈와 월드뮤직의 마니아들만큼이나, 한국에서도 그들의 음악이 주목을 받게 될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 음악의 가치를 우리가 모른다! 우리 뮤지션의 실력을 우리가 외면한다! 블랙스트링은 한국의 전통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다. 블랙스트링이란 말 자체가 거문고(玄琴)를 뜻한다. 거문고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이 땅에만 존재한 악기다. 악기의 형태도 독특하고, 악기를 소리 내는 방식도 독특하다. 세계의 민족음악학자는 그래서 더욱 주목한다. 하지만 거문고는 한 때 국악에서도 홀대 받는 악기였다. 관현악에서 소외되기도 했고, 심지어 얼마지나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악기라고 했다. 블랙스트링의 리더이자 거문고의 명인 허윤정은 달랐다. '한계가 특성'이라는 자세로, 거문고만이 낼 수 있는 연주력의 최대치를 끄집어냈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거문고와 허윤정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블랙스트링은 허윤정을 중심으로 이이람(대금, 단소, 양금), 오정수(기타)의 세 명으로 출발했고, 황민왕(소리, 아쟁)이 참여하면서, 한국음악의 소재를 보다 넓혔다.새 음반의 여러 곡 중에서 한 트랙만을 선택하라면, 'Growth Ring'이다. 생장륜(生長輪) 또는 나이테로 풀이된다. 이 제목은 한국음악 자체의 그간의 성장처럼 보이기도 하고, 블랙스트링의 음악적 행보를 말해주는 것 같다. 주목과 방관을 반복해오면서 안으로 단단해지고, 온기와 냉기를 거치면서 스스로의 활로를 모색하는, 토종적인 한국음악의 숙명처럼 숭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블랙스트링의 음악이 견고하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이 곡은 한국 전통음악의 세 장르인 정악, 탈춤, 민요가 순차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음악을 보다 더 심층적으로 살피면서, 이 셋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기존의 국악적 시각에서 보면 다른 음악이겠지만, 블랙스트링의 입장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한 뿌리의 음악이다. 다소 과장을 허용한다면, 이렇게 진행하는 연주가 마치 선녀의 옷은 꿰맨 자국이 없다는 천의무봉(天衣無縫)처럼 이어진다. 이번에 나온 블랙스트링의 음반 'Mask Dance'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이들은 국악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국악의 대중화'를 외치는 그룹이 아니다. 그렇다고 재즈레이블에서 나왔다고 해서 '재즈로의 투항'도 아니다. 블랙스트링은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연주력을 바탕으로 한 음악이다. "이 시대의 국악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장 합당할까?"라는 질문으로 풀어낸 음악이다. 이런 화두로 풀어낸 블랙스트링의 음악은, 기존의 음악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경계했고, 새로운 음악을 만든답시고 저지르는 '섣부른 실험'도 배제했다. 이런 자세로 만들어진 블랙스트링의 음악은, 한국적 시각으로 보면 우리음악의 '현재형'이 되고, 재즈나 월드뮤직의 시장에서 보면 그간 들어보지 못한 '핫한' 음악이다. 블랙스트링은 이렇게 '한국음악의 자존심'을 세웠고, '세계음악의 돌파구'가 되었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10-02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 시간의 종말

'시간의 종말'은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1992)의 작품이다. 포로수용소에서 작곡됐다. 독일이 침공하기 일주일 전, 메시앙은 프랑스군에 입대를 했고 포로가 된다. 1941년 1월 15일, 살을 에는 수용소에서 이 작품이 초연됐다.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를 다룰 수 있는 포로 세 명과 함께, 메시앙이 피아노를 연주했다. 이 작품의 온전한 제목은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다. 다큐멘터리 영화 '시간의 종말'(김대현 감독)은, 이런 메시앙의 음악에서 제목을 가져왔고, 메시앙의 음악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은 모두 여덟 개의 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메시앙의 이런 음악에서 한 부분씩을 가져와서, 모든 악장을 영화속에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메시앙은 이 작품을 쓸 때, 먼저 4악장 '간주곡'부터 썼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앞의 1악장부터 3장을 채워나갔다. 이렇게 네 개의 장을 완성한 후에, 뒤의 네 개의 악장을 순차적으로 써 내려간 거다. 이 작품은 8개의 악장을 각각 의미가 있다. 특히 1악장 '수정체의 예배'부터 7악장 '시간의 종말을 고하는 천사들을 위한 무지개의 착란'까지는, 우리의 보편적 삶의 일주일과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까지가, 우리네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8악장은 '예수의 영원성에의 송가'이다. 이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메시앙의 작품에 거의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정서가 있다. 자연 속에서의 새소리다. 이 작품에선, 제 3악장 '새들의 심연'이 그렇다. 메시앙에 있어서, 현실 속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이자 인간이 신에게 근접하면서 연결되는 매개가 '새소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에서 이런 메시앙의 음악은 양성원이 활동하는 트리오 '오원'과 클라리네티스트 채재일이 연주를 한다. 올해 초 첼리스트 양성원과 영화감독 김대현은 프랑스를 방문했다. 오래전 한국에 와서 순교한 프랑스 신부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영화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올해로 병인박해(병인순교) 150주년이 된다. 한국의 가톨릭 전파에 있어서 파리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Societe des Missions Etrangeres de Paris)의 역할은 중요했다. 다큐멘터리영화 '시간의 종말'은 이렇게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면서, 가톨릭과 박해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성찰하게 한다. 다큐멘터리영화 속 풍경은, 성스럽고, 슬프고, 아름답다. 영화가 중반쯤 되니, 눈물이 저절로 흐른다. 사실 박해란 것이 곧 처형이 아닌가! 칼을 휘두르는 망나니가 사람의 목을 베는 거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장면을 매우 절제하고 있다. 영화는 참 따뜻하다. 메시앙의 작품은 이른바 '현대음악'이고, 난해한 음악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간의 종말'의 8개의 악장의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다큐멘터리영화 속에 잘 담아내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 종교적 심성을 아우르고 있다. 영화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가톨릭이라는 종교적인 입장에선 물론이겠지만, 비(非) 종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도 이 영화에 내재된 철학적 사유는 전달된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09-04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 송창식과 함춘호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 여우樂페스티벌의 슬로건이다. 올해로 일곱 번째가 되는 '여우락'은 그간 국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축제였다. 전통성과 실험성이 적절하게 공존하는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해서 한국음악의 새로운 성과를 공감하는 축제다. 올해는 달랐다.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가 대거 참여했다. 성과도 달랐다. 국악에 대한 이해와 활용은 천차만별이었다. 타 장르의 아티스트 중 송창식과 함춘호가 빛났다. 일반적인 음악으로 봤을 때도 그렇고 특별하게 국악으로 봤을 때도 그렇다. 그들은 국악기를 전혀 사용치 않았다. 오직 기타 두 대가 존재했다. 여기에 송창식의 노래가 합쳐졌다. 이렇게 두 사람이 만들어낸 노래는 과거의 포크송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70년대의 포크음악은 이 시대의 새로운 민요 혹은 민속음악처럼 다가왔다. K-POP을 들으면서, 세련된 편곡을 바탕으로 한 가창력과 칼군무에 놀랐다. 하지만 늘 '이게 과연 우리음악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대중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우리음악'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송창식과 함춘호가 하나의 답을 해주고 있었다. 송창식은 국악의 호흡에 익숙했고 함춘호는 보컬의 호흡에 익숙했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이 과거의 포크송을 국악적인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한국적인 호흡이 존재했다. 국악 특유의 미학인 '죄고 품', 곧 긴장과 이완의 묘미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음악'이라 부를 수 있었다. 함춘호의 기타는 달랐다. 요즘 25현가야금보다도 더 국악적이었다. 새로 창작된 국악곡에서 25현가야금이 화성을 채우려는데 급급하기도 하다. 함춘호라는 기타의 고수(高手)는 마치 노래의 고수(鼓手)와 같았다. 그의 기타는 선율이자 장단이었다. 그는 송창식의 노래에 내재된 리듬(호흡)을 찾아냈고 소리꾼의 호흡과 노래를 잘 따라갔다. 아주 이상적인 고수(鼓手) 의 역할을 했다.국악계에서, 또 여우락페스티벌에서, 이런 송창식의 1970년대의 가요를, 국악기가 중심이 된 보다 더 한국적인 음악으로 만들면 어떨까? 송창식이 부른 '피리부는 사나이'에서의 피리가 꼭 국악기를 의미하는 건 아닐거다. 관악기의 통칭일 수 있다. 피리를 통해서 풍류 하는 즐거움을 얘기하고 있다. 이런 노래에 진짜 피리가 등장하면 어떨까? 진솔하고 또 농염하게, 이 노래가 갖는 가치를 깊게 해 줄 거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70년대의 포크음악이 이 땅의 민속음악으로 뿌리를 내리게 될 거다. 여우락엔 단골 레퍼토리가 있다. 국악기로 듣는 영화음악콘서트도 좋았고, 클래식이나 재즈분야의 탁월한 뮤지션과의 콜라보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런 것의 대부분은 바로 현장에 신기하고 놀라면서 끝난다. 이렇게 탄생된 음악 중 지속적으로 계속 듣게 되는 음악이 얼마인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08-07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 국악×재즈= 월드뮤직

음악은 '허세'다. 조금은 그렇다. 한국에서, 60년대와 70년대는 클래식이 그랬다. 80년대와 90년대는 재즈가 그랬다. 이런 음악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지적 허영심을 만족하는 기재가 되었다. 물론 모두 그랬다는 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국악이 어쩌면 '허세'인지 모른다. 자신이 국악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더라도, 무릇 음악인이라면 국악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는 심리가 있다. 클래식과 현대음악, 재즈와 월드뮤직을 한다는 음악인들이, 국악을 소재로 해서 쓴 작품은 꽤 많다. 그러나 양과 질은 결코 비례하지 못했다. 신현필이라는 재즈 색소포니스트가 있다. 그를 재즈에 국한할 수 없다. 그간 경험하고, 지금 지향하는 음악이 재즈라고 할 순 없기에 그렇다. 지난해 '대중음악인을 위한 국악작곡 아카데미'(국립국악원)를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 발표된 곡 중에서 신현필의 곡은 유일하게 피아노를 사용하지 않았다. 피아노만큼 만만한(?) 악기가 또 어디있으랴? 이 악기 하나로 재즈적 화성을 모두 커버할 수 있지 않은가? 그의 작품은 또한 국악연주가들이 땀을 삐질 흘리면서 연주하게 만들었다. 국악적인 곡이 아니라서 그랬을까? 그 반대다. 국악적 리듬(2분박과 3분박)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신선하게 접근했다. 비유컨대, 2차방정식을 잘 푸는 학생에게 이제 3차방정식의 문제를 내 준 셈이랄까? "국악은 어떻게 월드뮤직이 될 수 있을까?" 나와 같은 사람들에겐 평생의 숙제다. 나는 월드뮤직을 이리 정의한다. "지역음악의 특수성과 세계음악의 보편성이 잘 융합된 음악이다." 국악연주자와 타 분야 음악인들이 만날수록, 특수성과 보편성이 조화로울 수 있다. 신현필에게서 그런 씨앗을 발견한다. 'Hauzikhas Connection'이란 음반에는 '한오백년'이 실렸다. 그가 프로듀서를 하고, 색소폰으로 연주했다. 인도음악가와 함께 작업을 했다. 사랑기(인도현악기)와 타블라(인도 타악기)가 등장한다. 재즈를 전공한 이들이, 자국의 민속음악을 이용해서, 월드뮤직을 지향하고 있다.국악이 월드뮤직이 되기 위해선, 어떠 해야 하나? 장르적 '허세'를 넘어선, 작품적 '전력'이 요구된다. 신현필과 같은 젊은 음악가들에게, 한국적 월드뮤직의 내일을 기대해본다. 신현필은 그 유명한 버클리음대 출신이다. 한국유학생이 많기로 유명하다. 버클리음대출신의 한국음악가들이 재즈에만 국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학교 출신의 교수가 많은 한국의 대학에서, '실용음악=재즈'라는 등호관계도 없어졌으면 좋겠다. 실용음악과가 참으로 많은 대한민국에서, 이제부터 다양한 한국음악을 만들어내는 전초적 기지가 되길 바란다. 여우락(여기 우리음악이 있다) 페스티벌 개막공연(2016. 7. 8.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신현필의 색소폰은 당당했다. 이생강(대금)과 신관웅(피아노)과 함께 연주하는 신현필의 색소폰에서, 한국적 월드뮤직의 가능성을 본다. 두 거장에 대한 한없는 존경심과 함께, 익숙해진 오래된 음악에, 신선하게 '젊은 피'가 수혈되고 있었다. 그가 그동안 한국음악에 대한 이해를 깊게 했기에 저런 연주가 가능했을 거다. 신현필을 통해서 '국악 × 재즈 = 월드뮤직'이란 등식이 현실화 될 날을 기대한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07-10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 잠비나이와 포스트국악(Post-gugak)

영국음반레이블 벨라유니온(bella union)에서 잠비나이(JAMBINAI) 음반이 전 세계에서 동시 발매된다. 한국음악의 세계음반시장 진출과 관련한 커다란 성과다. 그간 한국정부의 노력으로, k-pop이 세계에 널리 알려진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외국음반사가 한국 아이돌의 k-pop을 음반으로 출시하려 하진 않는다. 잠비나이는 음악 외적인 어떤 도움도 없이, 오직 그들의 음악만으로 서구음반시장에 진출했다! 이런 사실은 k-pop의 해외공연과 관련 홍보성 뉴스보다도, 대한민국에서 훨씬 비중 있게 다뤄야 하지 않을까? 잠비나이는 국악기를 기본으로 한다. 피리(이일우), 해금(김보미), 거문고(심운용)의 트리오밴드다. 그들의 음악의 가치는 무엇인가? 잠비나이를 장르로 얘기하자면, '포스트록(Post-rock)'이다. 그간 한국에서 록그룹의 연주에 태평소와 같은 강렬한 메탈사운드가 합쳐진 적도 있었다. 언뜻 생각하면, 잠비나이가 다루는 세 개의 악기는 록에 전혀 적합한 악기가 아니다. 잠비나이는 세 악기 간의 시너지효과를 만들어내면서, 독특한 그들만의 사운드를 만들었다. 이런 것이 전 세계의 록팬을 열광시켰다. 한국의 민속악기가 록음악의 하나의 돌파구를 제시한 셈이다. 잠비나이는 결코 퓨전국악이 아니다. 2000년대부터 시작한 퓨전국악의 성과를 크게 인정한다. 재즈와 만나고, 힙합을 만나면서, 국악 혹은 국악기를 알렸다. 이런 퓨전국악은 불특정다수가 좋아하는 대중성에 연연하는 면이 강하다. 잠비나이는 다르다. 잠비나이뿐 아니다. 현재 해외 유명페스티벌에서 크게 부각되고 있는 숨'su:m'과 거문고팩토리는 다르다. 거슬러 올라가면, 공명이 있다. 이들의 음악을 이제 더 이상 퓨전국악의 범주에 넣지 않길 바란다. 왜냐? 이들은 기존의 퓨전국악팀들이 지향했던 '국악의 대중화'를 생각지 않는다. 더불어 그들의 음악을 '국악'이라고 불리는 것도 때론 불편해 할지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음악을 하는 거다. 그 수단으로서 국악기가 존재하는 거다. 그렇다면 잠비나이와 같은 음악을 뭐라 해야할까? 포스트 국악(Post-gugak)이라고 불러야 한다. 잠비나이를 해외에서 민속음악에 기반한 포스트록이라고 인정하는 것처럼, 이들의 음악에는 기존의 음악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전향적 자세가 돋보인다. 기존의 퓨전국악에서처럼, 서구의 장르를 경외하거나, 서양악기를 모방하려는 방식과는 크게 거리감이 있다. 무엇보다도 국악기를 새롭게 다루려는 의지와 성과가 있다. 이들은 전통적 연주를 마스터했지만, 여기에 연연하지 않는 거다. 위의 단체들이 가장 중시하는 건, 구성원들과의 음악적 시너지다. 더불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과 가능한 차별화되길 원한다. 그들만의 음악적 정체성을 중시한다. 잠비나이를 비롯한 앞에서 열거한 팀들의 이런 특성이 여러 장르의 음악을 두루 거친 외국의 청중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요인이다. 관객에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국악을 뛰어넘으려는 의지와 성과가 그들의 음악에서 발견된다. 그들의 음악을 포스트국악(Post-gugak)이라 하게 될 때, 그들은 국악이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의 장르로 구축되면서, 한국음악 혹은 한국악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 및 실험이 앞으로 더욱더 자유스럽게 가속적 성장을 할 수 있다. 공명, 거문고팩토리, 숨, 잠비나이는 그간 정부 차원의 큰 도움 없이, 세계음악시장을 개척해서 그들만의 입지를 굳혔다. 이렇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들은 모두 자생적 수익구조를 만들기에 고민하고 있단다. 무척 안타깝다. 대한민국정부가 장기적 안목으로 한국음악의 세계진출을 염두에 둔다면, 이제 이런 '포스트 국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06-12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 '한국재즈 100년사'(박성건 지음)

재즈는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한국' 재즈라고 하면 달라진다. 잘 모르거나, 크게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재즈의 역사에 관해 체계적인 정리가 이뤄지지 못한 탓도 있다. 한국재즈와 관련해서 얘기할 때도, 몇 명의 특정인물과 몇 개의 특정장소에 치우쳤다. 이런 아쉬움을 해소해 줄 책 한권이 나왔다. '한국재즈 100년사'란 종이책이다. 저자 박성건이 대단하다. 그간의 재즈와 관련한 신문과 잡지를 섭렵했다. 그의 눈에는 신문기사뿐 아니라, 신문광고까지도 소중했다. 재즈와 관련된 인물들과 만나면서, 거기서 한국재즈를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얻어낸 것 같다. '한국재즈 100년사'는 그의 이런 열정과 노력의 결과물이다. 재즈애호가들은 이 책을 통해서 한국재즈의 시공(時空)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이 책은 이 땅에서 재즈를 위해 애썼던 많은 인물들을 불러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장르가 대중에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개인이나 국가가 후견인(patron)이 돼 줘야한다. 조선의 재즈에선, 백명곤이 그런 역할을 했음을 알려준다. 1930년대, 조선의 음악은 매우 다양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역할을 했던 인물이 김해송(1911~1950)과 손목인(1913~1999)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음악인을 능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크게 인정을 받은 두 음악인들의 활약에 관해 소상히 알게 해준다. 1960년대 이후의 재즈는 어떠했을까? '카바레'란 말을 언급하는 것이 편치 않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동화카바레의 김광수악단과 은성카바레의 엄토미악단을 통해 한국의 재즈음악이 점차 전문성을 획득했음을, 이 책은 당당하게 밝힌다. 호텔의 나이트클럽과 함께, 한 때 인기절정이었던 한일회관과 뉴욕회관이 실상 재즈음악의 소통 공간으로서 역할을 했음을 알려준다. 당시 국도극장에서 공연했던 극장식 쇼가 결국은 재즈음악이 밑바탕에 깔려 있음도 확인하게 해준다.한 때 재즈라는 음악은 정치적으로 불온(不穩)한 것이었고, 재즈의 소통공간은 사회적으로 불륜(不倫)의 온상처럼 취급했다. 그러나 정작 이런 공간이 있었기에, 한국재즈사에 있어서 특별히 언급되어야 할 불후(不朽)의 명곡들이 탄생됐음을 얘기한다."그 많던 재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개의 극단적인 마음이 든다. 과거 재즈뮤지션들의 무한한 열정에 대한 감동을 한다. 반면 대한민국의 재즈현실에 대한 회의적인 의문이다. 지금도 재즈를 좋아한다는 게 마치 자유스런 영혼의 소유자처럼 치장된다. 한국의 재즈페스티벌은 연중행사로 정착돼서 열광하는 사람들이 미어터진다.하지만 정작 재즈가 진솔하게 소통 할 공간의 실상은 어떠한가? 서울 홍대주변의 '문 글로우'는 이미 문을 닫았다. 인천과 경기지역에서 전통을 자랑하는 재즈클럽 '버텀라인'은 어떠한가? 한국의 재즈뮤지션은 이 공간에서 연주하는 걸 큰 기쁨으로 여긴다. 이 재즈클럽의 건물은 백년 된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말하자면 '근대문화유산'이다. 이 땅에서 시작한지 백년이 되가는 재즈도, '근대문화유산'이다. 한 곳에서 33년을 버텨온(!) 버텀라인을 보면서, 한국재즈에 관한 극단적인 두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허상과 실제 사이의 괴리감이다.재즈애호가가 '비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 열광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재즈에 관한 다큐 '브라보 재즈라이프'(2010)에는 더욱 경의를 표하길 바란다. '한국재즈 100년사'가 이 땅의 음악인의 필독서가 되길 바란다. 거기에 한국역사가 있고, 한국재즈가 있기에 그렇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05-15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 해어화를 봐야 하는 이유

'해어화'는 잘 만든 영화다. 권번(기생학교)에 소속된 두 여자와 가요 작곡가임을 숨기고 사는 또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들 세 사람의 개인사를 시대사와 잘 엮었다. 어린 소율(한효주)과 연희(천우희)는 예기(藝妓)가 되어 평생 함께 하자고 다짐한다. 둘은 모두 가수 이난영(차지연)을 좋아한다. 영화 속 유일한 실존인물이다. 이난영의 대표곡 '목포의 눈물'(차지연 노래)과 함께, '봄아가씨'도 들을 수 있다. 이난영의 숨은 명곡이다. 앳된 목소리가 봄아가씨의 설레는 마음을 잘 그려낸다. 영화에선 가수가 된 연희와 관객으로 온 소율과 함께 부른다. 연희와 소율, 두 사람은 노래를 사랑하지만, 각자 느낌이 다르다. 연희는 가요에 맞고, 소율은 정가(正歌)에 맞다. 조선시대 지식층이 좋아했던 고상한 노래가 정가다. 권번의 정가선생을 어머니(장영남)로 둔 김윤호(유연석)는 정가보다는 가요를 좋아한다. 그는 최치림이라는 예명으로 가요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 속 유연석이란 배우가 대단하다. 연기도 잘 하지만, 연주를 잘 한다. 음악을 다룬 여러 영화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를 하는 장면은 때론 어색하다. 그 분야 전문가의 눈엔 더 그렇다. 유연석은 달랐다. 피아노를 치고, 작곡을 하는 장면에 진정성이 배어있다. '이 시대의 아리랑'을 만들고 싶은 윤호가, 그런 노래를 불러줄 수 있는 파트너가 연희라는 걸 알았을 때의 연기에 깊이가 있다. 배우의 표정이 아니라, 작곡가의 심정이다. 그는 영화에서 분노하듯 아리랑을 연주한다. 출정하는 일본 군인이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윤호는 피아노 앞에서 아리랑을 연주한다. 아주 짧지만, 꽤 강렬하다. '해어화'는 가요와 정가를 같은 비중으로 다룬다. 소율은 애인도 빼앗기고, 노래도 빼앗겼다. 무엇보다도 자신도 부르고 싶은 '조선의 마음'을 부르지 못해서 자학한다. 사랑이라는 거짓말에게 속았다고 생각하는 소율은 윤호에게 '사랑, 거짓말'이란 정가를 들려준다. 이 노래는 여성이 부르는 정가로, '계면조 평거'의 노래말이다. 윤호는 소율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진정 소율이 잘 부를 수 있는 가요를 작곡한다. 같은 제목의 노래로, 정가의 창법을 잘 살리면서도, 대중적 감성이 살아있는 노래다. 세월이 흘러서, 일제에 의해 금지곡이 된 '조선의 마음' 음반이 발굴된다. 아울러 '사랑, 거짓말'도 가요담당 피디에 의해 발견된다. "그 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요?" 자신의 노래 '사랑, 거짓말'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 가요담당 피디 앞에서, 노년이 된 소율은 그리 말한다. 세상엔 일단 자신에게 맞는 음악이 있는 듯하다. 소율은 정가에 맞는 발성와 감성, 연희는 가요에 맞는 발성과 감성을 지녔다. 그래서 소율이 연희가 될 수 없고, 연희가 소율이 될 수 없었다. 영화는 이렇게 '가요'과 '정가'를 함께 생각하면서, 서로 다름을 얘기하는 것 같다. 그러나 결국 장르와 무방하게, 진실이 담긴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킴을 역설한다. 주변에서 한 장르에 대해서 깊이 있게 잘 아는 음악전문가를 본다. 그런데 때론 이런 사람 중에는, 타 장르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도 낮게 보는 편견도 발견한다. 그들도 언젠가 그리 말하게 될까? "그 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요?" 가요와 정가는 참 다른 노래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 다른 노래를 참 아름답게 감싸고 있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참 볼 만한 영화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04-17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 작곡과 표절

표절은 범죄다. 작년, 문학에서 논란이 거셌다. 올해, 연극도 의혹이 제기됐다. 소설과 공연에 침투한 표절을 놔둬선 안 된다. 음악은 어떤가? 여기도 그렇다.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뿐이다. 표절의 근절을 위해, 평론가가 나서야 하나? 제대로 밝혀내고 싶으나, 들이는 시간이 아깝다.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피곤하다. 당사자가 누구보다 더 잘 알지 않을까? 음악에서 표절을 막기 위해, 우선 작곡과 편곡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우선 이것만큼은 꼭 지켜져야 한다. 국악에서 특히 더 그럴 필요가 있다. 편곡을 치자면 용인할 수 있어도, 작곡으로 봤을 땐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곡들이 많다. 작곡과 편곡은 다르다.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작곡이 일단 더 창의적이다. 아주 엄밀하게 구분되는 건 아니지만, 작곡은 예술적 작업이요, 편곡은 기술적인 작업이다. 한 예로, '아리랑'을 가져와서 그 선율을 거의 사용하고 있는 곡을 들겠다. 아리랑의 리듬을 좀 달리하고 악기편성을 좀 달리했을 뿐이다. 이건 누가 봐도 편곡이다. 그럼에도 북클릿과 리플렛에 버젓이 '작곡'이라고 적는다. 이건 불량한 표절행위다. "작곡인가? 편곡인가" 작곡가 저마다의 자기검열이 요구된다. 편곡의 가치와 편곡적인 능력을 간과하는 건 아니다. 작곡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거고, 편곡은 유에서 유로 변화시키는 거다. 전통음악은 앞선 시대의 산물이다. 이후 세대가 공유할 자산이다. 국악은 그간 '전통의 계승'이라는 차원에서, 타 분야에 비해서 모방과 표절에 너그러웠다. 기존 음악을 도용한 작품도, 기존 작품을 모방한 작품도, 국악의 외연을 넓히는 범주에서 포용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 된다. '이 작품은 전통에 충실했다' 작곡가 자신의 이런 해설을 본다. 어떤 곡은 실제 듣고 나서,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이 작품은 전통을 모방(표절)했을 뿐, 작곡가 개인의 창의성은 부족하다.'문학에 편역(編譯)이 있는 것처럼, 음악에 편작(編作)이 있을 수 있다. 새롭게 만들어진 편작엔 그 담당자의 구성력과 창작성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100% 자기 작품이라 하지 않는다. 그럴 순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편곡의 수준은 아니라고 해도, 일부 작곡가의 구성력과 창작성이 들어갔다고 해서 '작곡'이라 말하긴 어렵다. '편작'이라 해야 맞다. 비유컨대, '가시리'를 전통으로 삼아서, '진달래꽃'과 같은 작품을 만들어내자. 실제 결과물은 '가시리 2' 정도인 걸 가지고, 대단한 걸 작곡한 양 합리화 말아라.국악계가 더욱더 건강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선, 앞으로 작곡과 편곡은 엄밀하게 구분이 돼야 한다. 한편 기성 작곡가의 자기복제적인 작풍이 근절돼야 한다.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나'가 고민 없이 재탕한다. 신세대가 들어갈 자리를 구세대가 그렇게 하고 있다면, 이건 큰 죄악이다.음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의 심성을 아름답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양심에서 걸리는 작품은 더 큰 문제다. 지구상에 완전 새로운 것은 없다고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했을 때, 창작과 모방의 경계와 원전(原典)과 표절의 구분은, 당사자가 더 잘 안다. 창작자의 자기검열, 양심선언, 고해성사를 기대한다. 이젠 표절을 그냥 바라볼 순 없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03-20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 있을땐 다름을 걱정하고, 떠나선 같음을 경계하라!

지금 우리는 누굴 기억하나? 전통예술의 명인 중에서, 생전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은 기억하니? 꼭 그렇지 않다. 제자가 많은 인물이, 사후에 존경 받는다. 스승을 추앙함으로써, 제자가 더불어 존중받는다는 심리가 깔려있다. 탓할 순 없다. 전통예술과 관련해서, 제자가 없거나 적은 인물은 어떤가? 그 분들 중에 전통예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 꽤 많다. 우선 떠오르는 인물이 이충선(1901~1989)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서울올림픽까지, 이 분은 현장에서 피리를 불었다. 그의 피리시나위가 있었기에, 1980년대 피리산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아쉽게도 요즘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자가 없는 스승'이 그러하다면, '스승 없는 제자'는 어떤가? 스승의 총애를 받지 않거나, 문하에서 나온 제자는 어떤가? 비슷한 처지다. 스승의 문하를 떠난 제자들은 문제가 있는가? 스승의 문하에 남아있는 동년배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거나, 인격이 부족한가? 아니다. 그 반대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성악연구회'가 있었다. 판소리와 산조, 민요와 병창의 명인들의 집합소였다. 여기서 이들에 의해 전통예술의 공연과 교육이 이뤄졌다. 그 때는 어땠나? 한 젊은이가 동시에 여러 스승에게 두루 학습했다. 그 시대의 불명예는 '사진소리'였다. 스승의 그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거다. 스승은 제자에게 가르치고, 제자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발전시키길 원했다. 이런 명인들의 이런 명언이 있다. "스승의 문하에서 배울 땐 스승과 다름을 걱정하고, 문하를 떠났을 땐 스승과 같음을 경계하라!" 전통예술도 예술이다. 예술가의 주관성과 창의성을 중시한다. 그럼에도 다른 장르에 비해서 이런 의식이 실제적으로 부족하다. 국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과거 전통예술이 소멸할 위기에 처했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명인명창들의 기록이 남아있고, 스승과 같아지길 바라는 제자도 많다. 적어도 20대와 30대는 다른 길을 택해야만, 국악이 더욱 풍성해진다. 현실은 어떤가? 그들을 지도한 대학교수가 연주회에 와서, 자신과 같게 연주하지 않는다고 분장실에서 제자를 타박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지금의 시대야말로, 더욱 '사진소리'를 경계해야 한다! 아티스트로서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중요하다. 지금 국악계는 그 어떤 때보다 '스승 없는 제자'가 필요하다. 스승의 문하에서 전통예술을 올곧게 이어가려는 젊은이를 뭐라는 게 아니다. 국악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요구된다. 공옥진(1931~2010)을 떠올린다. 부친이 판소리명창이다. 그의 문하에서 학습했지만, 자신의 공연형태를 만들어냈다. 공옥진의 1인 창무극(唱舞劇)이다. 어느 장소에서나 자신을 중심으로 공연할 수 있는 형태다. 이와 비슷한 인물로 무용가 조원경(1929~2005)이 있다. 한국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구미에 한국전통무용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전통을 재현하기보다 자기화했고, 1인 무용공연의 방식을 택했다. 일찍이 전통에 창의성을 더한 인물이다. 국악계가 말로만 청출어람을 얘기하지 않길 바란다. 젊은 음악가들이 자신의 예술 주체자로서 힘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더욱 필요하다. 내일의 국악과 미래의 전통이 거기에 있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02-21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 이난영 탄생 100주년

일본방송의 어디선가, 오늘도 미조라 히바리(1937~1989)를 얘기할 거다. 엔카(演歌)의 여왕으로 추앙받는 그녀는, 사후에도 줄곧 관심의 대상이다. 일본에 미조라 히바리가 있다면, 한국엔 이난영(1916~ 1965)이 있다. 아니다! 어찌 조선가희(朝鮮歌姬) 이난영을 미조라 히바리 정도에 비하리오. 이난영은 훨씬 더 높다. 이난영 하면 ‘목포의 눈물’(1935)을 떠올릴 거다. 더 안다면 ‘다방의 푸른 꿈’(1939)을 얘기한다. 일제강점기의 트로트의 대표곡을 부른 가수이자, 블루스의 원조 격인 노래를 이난영이 부른 게 많다. 그녀는 실제 일제강점기의 유행 장르인 가요, 민요, 만요, 재즈를 두루 넘나들었다. 앳된 목소리로 부른 ‘아리랑’과 ‘신아리랑’, 한 편의 드라마가 연상되는 ‘담배집 처녀’와 ‘알아달라우요’, 남편 김해송과 함께 부른 ‘명랑한 젊은날’, ‘올팡갈팡’을 들어보라. 조선의 여가수 중에서, 이렇게 음악적인 스펙트럼이 넓은 가수는 이후에도 드물다. 샹송의 여왕 에디트 피아프(1915~ 1963)와 이난영 사이에는 평행이론이 존재한다. 둘 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 그녀들의 이름이 모두 타인이 붙여준 예명이다. 버거운 현실을 잊게 해준 이름이었다. 모두 탁월한 음악성으로 전성기를 누리면서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결코 인생이 행복하지 않았다. 에디트 피아프의 주변에 이브 몽탕이 있었다면, 이난영에겐 남인수란 가수가 있었다. 남편 김해송이 한국전쟁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그에게 의지하면서 살았다.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에디트 피아프나 이난영이나 가수가 본업이었으나, 연기에도 출중했다. 카르멘이 아닌, 남자 역할 돈호세를 할 수 있는 여배우였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의 삶은 불우했지만, 많은 사람에게 행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다는 점이다. 에디트 피아프와 이난영의 노래를 다시 부른 사람은 많지만, 그녀들을 뛰어넘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에디트 피아프가 태어난 이듬해 이난영이 태어났고, 에디트 피아프가 타계한 이듬해에 이난영이 세상을 떠났다. 파리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서 거행된 장례식엔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던 것처럼, 집회가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에도 이난영이 떠나는 영결식에 많은 시민이 애도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두 여가수의 평행이론을 인정하는가? 지금의 우리는 프랑스의 에디트 피아프처럼 한국의 이난영을 더욱 주목해야 한다. 프랑스사람이 에디트 피아프를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가 이난영을 제대로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때 그 시절, 우리에게 이런 명가수가 있었다. 이난영은 진정 ‘격이 다른’ 노래를 불렀다. 탄생 100주년을 맞는 2016년, 이난영에 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전쟁 당시, 이난영은 남편 김해송(1911~1950)을 떠나보내고 김시스터즈를 길러낸 인물이기도 하다. 에드설리반쇼에 출연해서 딸들인 김시스터즈와 함께 아리랑을 가사로 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에 관해선 다큐멘터리 ‘다방의 푸른 꿈’(김대현 감독, 2015)에 잘 담겨있다.2016년, 경향각지에서 이난영을 기리는 콘텐츠가 만들어지길 희망한다. 영화, 연극, 가요, 국악분야에서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난영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다. 에디트 피아프와 미조라 히바리가 각기 그 나라에서 어떤 존재인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01-03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 응답하라 1988 & 이선희와 정서용

시대는 가도, 노래는 남는다. 응답하라 1988(응팔) 시청자라면, 더욱 공감하리라. 드라마를 통해, 대중가요를 만난다. 가요를 유행가라고 부르듯, 그 시대에 유행했던 노래를 만난다. 응팔의 가요가, 그런데 아쉽다. ‘너무’ 많다. 많으면, 좋다고? 아니다. 장년에겐 좋을 수 있다. 노래를 읊조리며, 기억 속의 내가 등장하니까. 응팔의 가요가, 신세대에게도 그럴까? 아니라고 본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시대의 문맥 속에서, 진정성을 획득해야 한다. 재미로 보는 드라마에서, 내가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걸까? ‘레트로마니아’란 책이 있다. 영국의 음악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가 지은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표지엔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란 부제와 같은 문장이 보인다. 이 책과 연관지어서, 한국의 음악평론가 최유준은 이리 말한다. “디지털 음악 아카이브는 현재라는 평면 위에 과거의 음악을 뒤섞는다. 디지털 세대는 이 점에서 복고가 일상화된 세대다.” 복고는 이미 일상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이 그대로 증명한다. 한국인은 이미 레트로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아쉽다. 복고가, 복고 이상이 되지 못한다. 응팔에선 그 시대에 먹었던 음료와 과자도 등장하고, 전자제품과 승용차도 등장한다. 전자는 다시 소비될 가능성이 있지만, 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응팔에 등장하는 가요가 전자가 되어야 한다. 비유컨대,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그 시대의 노래가 이 시대의 노래로 잘 ‘번역’되어야 한다. 평생을 번역에 몰두한 불문학자 김화영 선생은 이리 말한다. “번역이란, 가장 오래된 것과 가장 싱싱한 것과의 만남이다.” 황현산 선생은 ‘어린 왕자’를 네 번이나 고쳐 번역했다. 그의 후기에선 번역에 있어서 ‘무리하게’는 부정적으로, ‘엄숙하게’는 긍정적인 단어로 사용된다. 내용을 자연스럽게 알리기 위해서 ‘무리하게’번역을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아울러 ‘어린왕자’의 번역은 궁극적으로 ‘때때로 ‘엄숙하게’ 말할 줄 아는 어린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응팔이 ‘1988년이란 오래된 시대에 관한 2015년의 싱싱한 번역’이길 바란다. 드라마 속의 보라(류혜영)와 관련된 노래를 짚어보자. 운동권 학생으로 분한 그녀가 감옥에 간 선배의 것으로 추측되는 승용차 안에서 카세트테이프 ‘동지가’는 어떤까? 그 시절, 이 노래를 부른 꽃다지가 지금 듣는다면 어떨까? 보라와 선우(고경표)라는 연상연하 커플로 연애를 시작했을 때, 배경음악인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1990)는 왜 선곡을 했을까? 그렇다면 응팔의 바람직한 선곡방향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선희와 정서용의 공존이다. 단일화는 함정이다. 그 시대에 이선희콘서트가 있었고, ‘나 항상 그대를’이 히트했다는 걸 더 이상 강조하지 말라. 다양화가 필요하다. 그 때 신촌블루스가 생겨났고, 그런 젊은이들에 의해서 한국적인 블루스음악이 태동했음을 알려라. 드라마 ‘응팔’에서 보라는 닭장차에 끌려가다 파주란 낯선 곳에 떨어진다. 선우에게 연락을 취한다. 늦은 밤 둘이 만날 때, 신촌블루스(정서용)의 ‘아쉬움’이 배경음악이다. 한 시대의 메이저와 마이너를 공존하면서, 시대의 가치와 노래의 효용성이 더욱 돋보이는 ‘응팔’을 기대한다. 응팔이 제발 계속 가요톱텐, 별이빛나는밤에, 토토즐에만 연연하지 않길 바란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5-12-06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 지휘는 있어야 하나?

“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은, 왜 지휘자를 잘 안 쳐다봐요?” “보게 되면, 오히려 틀리기 때문이야.” 관현악단의 단원이라면, 지휘로 인한 곤혹스러운 경험이 있다. 국악관현악단에 지휘자는 꼭 있어야 할까? 서양의 오케스트라는 필수적이다. 서구고전음악이 작곡의 역사라면, 한국전통음악은 연주의 역사다. 모두 창작이 존재하지만, 그의 주체와 방식이 다르다. 국악은 그간 연주자들에 의한 창작적 전통을 중시했다. 국악관현악단은 어떻게 더 생생한 연주를 통해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국악관현악단의 단원들이 주체가 되면 가능하다. 지금처럼 지휘의 ‘통제’ 아래서 음악을 만드는 방식을 지양하면 가능하다. 비유컨대, 서구의 오케스트라가 과거 전근대적 연극의 제작방식이라면, 국악관현악단은 배우가 주체가 되는 현대적 방식이라 하겠다. 연출이 있지만 지시하기보다는 유도하는 ‘공동창작’의 형태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연주에서, 단원들이 만들어낸 관현악 형태의 산조가 이를 증명한다. 지휘자의 통제를 받은 곡과는 사뭇 달랐다. 음악적 생기와 활력이 객석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누군가는 단순한 악곡만이 지휘 없이 가능하다고 반문할지 모른다. 이건 편견이다. 국악관현악단에서 파트간의 호흡이 맞는다면, 오히려 이렇게 해서 만들어내는 음악을 들으면서 청중들은 더 큰 감동을 받는다. 국악관현악을 서구 오케스트라로만 바라보는 관습적 편견에서 벗어나자. 지휘봉의 통제를 따르는 국악관현악을 비(非) 전통적이고, 전(前) 근대적으로 단정 짓진 않겠다. 국악관현악단의 기존 레퍼토리를 제대로 모두 살려내고, 더 나가 국악관현악단의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낼 사람은 누구인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지휘자에게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서양음악을 전공한 지휘자들이 영입되면 해결될까? 음악적인 정교함은 상승될지라도, 한국을 대표할 국악관현악 형태를 만들어내리라는 보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지금 국악관현악단은 상임지휘자가 있다. 상임지휘자가 예술감독을 겸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악단의 경우, 지속해서 음악적인 성장을 이루는 모범적인 사례를 들 수 있는가? 오히려 예술감독과 지휘자가 분리된 체제에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지금 국악관현악단과 관련해서, 가장 간과하는 것은 ‘단원’이다. 국악관현악단의 중심체는 ‘단원’이다. 그들이 국악관현악단의 성장동력이다. 그들에 의해서 바로 각 악단마다 음악적인 ‘색깔’이 만들어진다. 과연 지금까지 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가 악단의 음악적인 색깔을 만들어냈을까?작금의 국악관현악단은 몇몇 지휘자들에 의한 ‘순환보직’이라고 말하면 성날까? 그간 국공립단체 지휘자들의 면면을 살피면 누구든 인정한다. 당장 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를 없애야 하고,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한국음악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당대적 상황을 인식한다면, 국악관현악단에서 지휘를 ‘제어’할 방법을 점진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국악관현악단의 연주에서, 지휘가 존재하지 않아도 가능한 작품을 지속해서 계발해야 한다. 어렵지 않다. 서구오케스트라의 고정된 비교에서 벗어난다면, 다양한 가능성과 실행방법이 보인다. 국악관현악단의 주체는 악기의 생명력을 살려내는 연주가(단원)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5-11-08 윤중강

[윤중강의 음악살롱] 파리를 울린, 아저씨의 아리랑

파리의 스산한 가을에, 한국이 단풍처럼 물들고 있다. 한불수교 130주년을 앞두고, 국립국악원이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콘텐츠 마다 색깔이 분명하지만, 프랑스의 언론은 특히 세 명의 여인을 주목했다. 김금화(굿), 안숙선(판소리)은 이미 기립박수를 받았다. 요즘말로 ‘격한’ 반응이다. 또 한 명의 여인이 프랑스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바로 무용가 안은미. 파리의 곳곳에서 ‘EUN-ME AHN’이 적힌 포스터나 배너를 만난다. 파리의 가을바람에서, 그것도 덩달아 춤을 추는 듯하다. 안은미의 춤 공연은 분명 아름다운 이변이다. 한달도 넘게 공연이 되는데, 모두 다 매진이다. 안은미의 춤에는 해학이 있다. 객석에서 과묵하기로 유명한 파리지앵도, 안은미의 춤공연을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한다. 이번 파리 가을축제에선, 안은미의 댄스 3부작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사심없는 댄스(Dancing Teen Teen), 조상님을 위한 댄스(Dancing Grandmothers)에 이어서,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댄스(Dancing Middle-Aged Men)까지 선보였다. 대한민국의 12명 아저씨들이 파리로 향했다. 여기 아저씨들은 대한민국에서 반듯한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아저씨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아저씨들에게도 저마다 내재된 끼가 있다. 이번 공연에선 아저씨들은 저마다 솔로로 춤춘다. ‘예비군가’에 맞춰서 교통정리하듯 춤을 추는 대기업과장님(이승엽)이 있다. ‘한잔의 추억’에 맞춰서, 거나하게 취해 객기를 부리듯 춤추는 대학교수(오동석)도 있다. 노가리 안주가 유명한 호프집을 경영하는 아저씨(성성열)는, 로맨틱한 색소폰에 맞춰 춤을 추다가, 객석을 향해 장미꽃을 던진다. 은행에 근무하는 아저씨(정연우)는 마치 음주 댄스 같다. 눈은 이미 벌게 있고, 추다가 계속 넘어진다. 나름대로 슬랩스틱을 설정한 거다. 아저씨들의 배경음악은 색소폰(안승구)으로, 프랑스 샹송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트로트와 7080노래를 넘나든다. ‘한옥의 현대화’를 외치면서 스스로 ‘동네목수’라 칭하는 아저씨(조전환)는 시종일관 ‘대패춤’만을 출 뿐이다. 그런데 이런 대패질의 완급을 통해서, 큰 나무 대패질과 작은 나무 대패질의 다름도 묘하게 전해진다. 한옥을 짓는 공간에서의 대패질을 통해서, 소나무 향도 또 흙내음도 전해졌다면 과장일까? 12번째 아저씨는 바로 나(윤중강)다. 나는 일어서서 ‘아리랑’하고 크게 외쳤다. 색소폰이 느리게 연주하는 아리랑 속에서는, 우리가 대한민국 ‘아저씨’임을 또 크게 외친다. 한국의 전통춤사위를 제 나름대로 응용해서 춤을 추다가 - 어쩌면 발광을 하다가 - 쓰러진다. 이때, 또 다른 아저씨 이희문(경기민요)이 전통적인 발성으로 아리랑을 부른다. 이 전통아리랑은 락 비트의 빠르고 경쾌한 아리랑으로 변한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공연장 천장에서 물을 내리는 장치를 한 거다. 아저씨들의 노래방 애창곡으로 이어진다. 막춤을 추는 아저씨들이 이리 말하는 것 같다. “예술이 별거냐? 춤이 별거냐?” “한국에서 놀던 가락, 파리에서 못 놀쏘냐!” 비는 점차 거세지고, 음악이 꺼져도, 조명이 꺼져도, 아저씨들은 계속 춤을 춘다. 이 때 내리는 빗물이 마치 눈물 같다면, 아저씨의 센티멘탈일까? 대한민국 아저씨들은 거기서 그렇게 놀았다. 조명이 다시 들어오니, 객석의 파리지앵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10. 2 ~ 3. 예술문화의 집, Maison des Arts et de la Culture) (*)/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5-10-11 윤중강

추석 & 만요

“‘엉터리대학생’이 가장 좋아요.” 근대가요를 여러 곡 들려주는 자리에서, 인피니트를 좋아한다는 여중생이 반응한다. 재밌는 가사와 경쾌한 곡조에 끌렸단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연애와 당구에 빠진 대학생을 꼬집는 노래다. 후렴구는 힙합곡 샘플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서라 이 사람아 정신 좀 차려라 응’. ‘엉터리 대학생’은 만요(漫謠)다. ‘코믹 송’이다. 1930년대, 이 땅에서 유행했던 장르다. 일제강점기의 근대가요를 나누면, ‘트로트와 재즈’, ‘신민요와 만요’ 이렇게 네 장르다. 전자의 둘은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반면 후자는 그렇지 못하다. 1930년대에 유행한 신민요라는 ‘근대문화유산’을 어떻게 잘 포용해야 할까, 지금의 국악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건 ‘만요’다. 일제강점기에 어두운 노래만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저들의 탄압과 무관하게, ‘코믹송’의 전통을 만들어냈다. ‘개고기 주사’에선 일제하의 하급관리를 우회적으로 비난했고, ‘모던기생점고’에선 기생의 왜색화(倭色化)를 풍자했다. 다행스러운 건 ‘오빠는 풍각쟁이’라는 1930년대 만요의 대표곡이, 한 영화를 통해서 널리 알려지면서 계속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만요곡도 알려질 기회가 있다면, 만요라는 장르가 새롭게 정착할 수 있다. 만요는 풍자와 해학을 통해서 웃음을 준다. 궁극적으로 세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한다. 다큐멘터리영화 ‘다방의 푸른 꿈’(김대현 연출)이 주목받고 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 걸 그룹 해외진출 1호인 ‘김시스터즈’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그녀들의 아버지가 김해송(1911~1950), 어머니가 이난영(1916~1965)이다. 김해송은 한국대중음악사에서 첫손에 꼽혀야 할 천재다. 일제강점기에 유행한 네 장르에 모두 출중했다. 연락선은 떠난다(트로트), 다방의 푸른 꿈(재즈), 천리춘색(신민요), 오빠는 풍각쟁이(만요)가 모두 그 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이난영 또한 ‘목포의 눈물’만으로 기억할 가수는 아니다. 여러 장르에 두루 능했다. 당시 김시스터즈가 라스베이거스에서 크게 인기를 끈 원인은 뭘까? 첫째, 장르를 불문한 뛰어난 가창력, 둘째 가야금에서 마림바까지 동서양악기를 다룰 수 있는 연주력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게 있다. 김시스터즈 노래에는 ‘코믹’이 있다. 아버지인 김해송이 만들고 부른 노래의 유전인자가 그녀들에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만요를 부활시켜야 한다. 어쩌면 이 땅의 요즘 사람에게 더욱 필요한 노래가 만요가 아닐까? 곧 추석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절인 추석에 우리는 어떤 노래를 듣는가? 추석에 신민요와 함께, 만요를 들었으면 좋겠다. 어린이날 = 동요, 연말 = 메시아, 이런 음악과 관련한 등식이 있는 것처럼, ‘추석 = 만요’라는 등식이 생기길 바란다. 만요에는 온 가족이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서 함께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음악적 DNA가 있다. 만요의 음반으로 ‘풍각쟁이 은진’으로 통하는 최은진, 소극장뮤지컬로 공연도 했던 박준면과 하림이 참여한 ‘천년살롱’을 추천한다. 이 외에 필자도 관계한 ‘조선천재 김해송’의 음반이 있다. 이 음반을 만든 ‘만요컴퍼니’는 1930년대의 음악문화를 오늘에 꽃피려는 그룹이다. ‘노들강변 봄버들 실실 늘어진 가지에다가’. 일제강점기의 신민요다. 이 노래는 민요를 전문적으로 부르는 명창의 노래가 되었다. 이 노래를 듣고서, 한 중학생이 “명절 때 마트에서 들었던 노래”라고 반응한다. 곧 추석이다. 명절 때 대형 마트에서 ‘만요’가 들렸으면 좋겠다. 경쾌한 가사와 곡조가, 명절의 기쁨을 배가시킨다. 이런 분위기라면, 매출도 증가하지 않을까? “추석엔 만요다.”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5-09-06 윤중강

명우의 유모레스크

명우는 독립군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 소속이다. 1933년 어느 휴일, 대원들은 휴식을 취한다. 누구는 목욕하고, 누구는 빨래를 한다. 명우는 뭘 했을까? 멜빵바지를 입고, 바이올린을 켠다.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 선율이다.이건, 영화 ‘암살’의 한 장면이다. 명우(허지원)가 오늘날 살았다면 어땠을까? 선한 인상으로 직장 내에서 인기가 많을 것 같다. 휴일이면 동호인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자신의 또 하나의 꿈을 펼칠 것 같다. 그가 연주하는 ‘유모레스크’는 그 원래 이름처럼 즐거움이 가득할 것 같다. 명우는 불행히도 그만 총에 맞고, 칼에 찔린다. 명우를 그리 만든 사람은 누군가? 그의 상관이다. 경무국 대장이지만, 실제는 일제의 밀정인 염석진(이정재)의 총칼로 그리 되었다.안옥윤(전지현)은 독립군이다. 진정한 독립군이다. 최고의 저격수다. 그런 그녀에게도 바람이 있다. 암살의 임무를 띠고 경성에 오지만, 그녀는 경성에서 하고 싶은 게 또 있다. 책에서 읽은 커피의 맛을 제대로 보고 싶고, 자신도 한번쯤 연애를 해보고 싶어 한다. 그녀가 말한다. “만주에 있는 우리 동포들은, 지붕에서 비가 새고, 벽이 무너져도 고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조국은 반드시 독립이 되고, 그러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기에 그렇다.영화 ‘암살’에는 속사포(조진웅)도 있다. 그는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다. 평화로운 세상을 살았으면, 속사포는 테니스 선수가 되었을지 모른다. 안옥윤과 속사포는 조선주둔사령관을 암살하기 위해 경성에 온다. 명치정(명동)의 카페 ‘아네모네’에서, 그들은 춤추는 사람들을 본다. “음악 들은지 참 오래됐네. 내 인생이 참 빡빡해” 속사포가 그리 말한다. 거기서 잠시 그들은 암살을 수행해야 할 독립군이 아니었다. 속사포도, 안옥윤도, 거기서 잠시 함께 춤춘다. 데카당스(Decadence)한 낭만을 아주 잠시 경험한다.“우리 잊으면 안 돼.” 영화 ‘암살’의 마지막 대사다. 영화는 그들이 춤추는 장면을 느리게 다시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장면에 영감(오달수)의 대사가 겹쳐진다. 영감은 결코 독립군과 엮이길 원치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독립군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죽음을 맞게 된다.“우리 잊으면 안 돼.” 누구에게 무엇을 잊지 말라는 얘긴가? 이건 영화 속에서 하는 말이지만, 궁극적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는 말이다. 최동훈 감독이 영화 ‘암살’을 만든 이유가, 이 한 문장으로 집약된다.지금은 1933년이 아니다. 지금 이 땅에선 노래와 춤이 넘치고도 넘쳐난다. 그래서일까? 그것의 귀함을 모른다. 때론 거기서 떠나고 싶기도 하다. 영화 ‘암살’에는 ‘유모레스크’가 한 번 더 나온다. 반민특위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나온 염석진이 서울거리를 활보한다. 이때, 서울의 어느 한 작은 레코드가게에서 이 선율이 다시 흐른다. 이제 어디선가 유모레스크를 떠올리면, 명우라는 존재가 겹쳐질 것 같다. 마음에 독립을 품고 평생을 산 그들이 생각날 것 같다. 조국독립이 불투명했던 1933년을 살았던 그들이다.광복 70주년이다. 이 땅에 음악도 넘쳐나고, 또 영화도 넘쳐난다. 그중에서 우리가 잊으면 안 될 것은 무얼까? 이 땅엔 어떤 음악이 있고, 어떤 영화가 있는가? 우리가 잊으면 안 될 사람은 누구이며, 잊으면 안 될 역사는 무엇인가? 1933년 어느 날, 바이올린으로 유모레스크를 연주했던 명우가, 지금 이 땅에서 평화로이 살고있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묻고 있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5-08-09 윤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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