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

 

[풍경이 있는 에세이]황진이가 넘지 못한 준령

성거산 은둔삶 사는 '서경덕' 찾아가교태에도 요지부동하자 존경·흠모그가 세상 떠나자 詩 한편 남긴다'…주야에 흐르니 옛 물 있을소냐인걸도 물 같아 가고 아니 오노메라'황진이는 이매창과 함께 조선시대의 빼어난 기녀 시인이다. 그녀는 박연폭포, 서경덕과 더불어 송도삼절로도 유명하다. 절세가인이며 문장가인 그녀는 많은 일화를 남겼다. 여러 사람이 황진이에 대한 기록을 전하고 있지만 조선 중기의 문장가이며 정치가인 이덕형이 지은 '송도기이'에 황진이의 이야기가 출생부터 명기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소상하게 실려 있다. 그 기록에 '황진이가 창류이기는 했지만 성질이 고결하여 번화하고 화려한 것을 일삼지 않았다. 그리하여 비록 관청의 연회라도 다만 빗질과 세수만 하고 나갈 뿐, 옷도 바꾸어 입지 않았다'고 그녀의 사람됨을 칭송하고 있다. 임제(1549~1587)는 당대 필명을 날리던 시인이며 문신이었다. 1583년 평안도 도사가 되어 임지로 가던 중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 추모의 시를 썼다. '송도의 명기 황진이의 무덤을 보고 이 노래를 지어 조문하다'라는 제목의 시는 널리 알려진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다. 임제는 이 추모 시로 파직을 당하고 세상을 떠돌며 시를 읊었다.황진이의 남성 편력은 화려했다. 당시 생불이라 일컫던 지족선사를 파계시켜 '십년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라는 경구를 만들기도 했다. 왕족 벽계수의 콧날을 꺾기 위해 지은 시도 있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 마라/일도창해 허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명월이 만공산 허니 쉬어간들 어떠리'가 그것이다. 벽계수도 그녀에게 무릎을 꿇었다. 명창 이사종과는 6년간 약정하고 함께 살기도 했다. 대제학과 판서를 지낸 소세양은 '황진이라도 한 달이면 족하다. 하루도 더 머물지 않겠다. 단 하루라도 더 머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호언장담했으나 한 달 지나고도 며칠을 더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넘지 못한 준령이 있었다. 화담 서경덕(1489~1546)이었다. 그는 스스로 깨달아 얻은 학문적 독립성으로 일관한 삶을 살았다. 그는 어지러운 세상, 관직에 나가지 않고 처사의 길을 걸었다. 조광조가 거듭 조정에 나올 것을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학문적 정통성과 권위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얻은 이치였고 만물의 이치를 궁리하는 것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하여 매일 들에 나가 나물을 뜯어야 했다. 그러나 돌아온 바구니에는 나물이 적었다. 어머니가 이유를 물었다. "나물을 뜯다가 새끼 새가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첫날은 땅에서 한 치 정도 날다가 다음 날은 두 치, 그 다음 날은 세 치 정도 날다가 점차 하늘을 날아다니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날마다 새끼 새가 조금씩 더 날게 되는 것을 지켜보며 그 이치를 깊이 생각해보았지만 터득하기 어려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세채(1631~1695)의 '남계집'에 기록된 일화다.서경덕이 송도 부근 성거산에 은둔하여 은자의 삶을 살고 있을 때 황진이가 찾아갔다. 황진이의 교태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인 서경덕을 황진이는 존경하고 흠모하게 되었다. 서경덕 또한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마음이 어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만중운산에 어느 임 오리마는/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그인가 하노라'를 읽노라면 임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을 알 수 있다. 황진이의 연모도 이에 못지않게 절절하다. '내 언제 무신하여 임을 속였기에/월침삼경에 올 뜻이 전혀 없나요/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에는 원망과 사랑이 넘친다.서경덕은 1546년 5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제자들이 임종을 지키며 그에게 물었다. '스승님, 지금 심경이 어떠하십니까?' 그가 대답했다. '삶과 죽음의 이치를 깨달은 지 이미 오래이니 내 지금 마음이 편하구나'.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황진이는 시 한 편을 남긴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인걸도 물과 같아서 가고 아니 오노메라'./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20-10-22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가을이 춥다

마스크 몇번 쓰다보니 어느새 가을몇계절 사라져 지난 겨울 일도 생생설레는 소식이든 촌스러운 조화든따뜻한 소식 가지고 날아왔으면…먼저 떠난 사람들 잘 지내길 바라고말괄량이 삐삐는 고아였다. 엄마는 삐삐를 낳다가 죽었고, 선장이었던 아빠는 항해 중 폭풍우를 만나 물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삐삐는 아빠가 죽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아빠는 수영을 잘해 식인종이 사는 섬까지 헤엄쳐 갔고, 그 섬의 왕이 되었다고 믿었다. 당장 아빠를 만날 수는 없지만 아빠의 생애는 식인종 섬에서 계속되고 있을 거라 삐삐는 믿어서 아주 많이 불행하지는 않았다.종종 나는 삐삐 같은 생각을 한다. 죽어서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 그들은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에서 다른 삶을 여전히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언제나 용감했던 삐삐의 아빠가 식인종 섬에서 왕이 되었듯, 그림을 그리던 이는 푸른 초원이 펼쳐진 고갯마루에서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수를 잘 놓던 이는 요정들이 실을 잣는 나라에서 꼼꼼하게 실을 고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 것을 할 때가 있다.계절이 차가워지다 보니 마음이 차져서 그런 것인가. 마음이 차지다 보니 그리운 이들이 절로 떠올라 그런 것인가. 지난 겨울 들었던, 아주 차가운 부고 하나가 떠올랐다, 새삼. 참 이상한 부고였다."주말쯤 A의 부고가 전해질 거야."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전화를 받은 건 화요일이었기 때문이다. 화요일에 전화를 걸어 주말쯤 A의 부고를 전할 예정이라고 말하는 친구라니. 무슨 소리냐는 내 말에 친구가 찬찬히 대답했다. A는 갑작스럽게 뇌사 판정을 받았고 그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서울로 오는 중이라고 했다. 장기기증에 대한 의논이 끝나면 사망선고를 내리고 장례를 치를 예정이라고. 나는 혹시 주말로 예정된 장례가 조문객들이 편하게 들르도록 한 배려일까 봐 손가락 끝까지 차디 차졌다. 그래, 참 차가운 시간이었다.어느 시절 지겹도록 만나며 A의 노래를 듣고 연주를 들었다. 마지막 통화에선 그가 소리를 빽 질렀다. "야, 우리가 이렇게 안 보고 살아도 되냐, 인마!" 그래서 몇 번이나 공허한 약속만 했다. "미안해, 미안해. 우리 정말 시간 잡자. 이렇게 안 보고 살면 안 되지." 빈말이라는 것을 둘 다 알아서 우리는 내내 즐거웠던 옛 얘기만 들춰냈다. 그러고도 좋았다. 세상 모든 이별이란 것이 갑작스러운 것이라지만 그 부고는 여태도 갑작스럽다. A는 수영을 잘할 테니 이 아득하고 야속한 공간을 헤엄치다 마음에 꼭 드는 섬을 만나 자리를 잡을 것이다. 바다도 잘 보이고 구름도 잘 보이는 해안가 언덕에 편안히 앉아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칠 수 있기를, A의 옛 친구 우리는 그의 장례식장에서 기도했다. 먼 길 잘 떠나. 잘 가, A.보송보송한 조끼를 입혔는데도 여섯 살 아이는 이제 가을이 춥다고 했다. 다이소 매장에 들러 이것저것 집어 드는데, 아이가 말도 안 되게 화사한 벚꽃 조화를 두 손 가득 들었다. "엄마, 나 이거 사고 싶어." 나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무리 조화라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 가을에 벚꽃이라니. 다음에, 다음에…. 내려놓으려는데 아이가 고집을 부렸다. "이거 내 방에 놓아두면 행복할 것 같애. 따뜻한 봄 같잖아. 안 추울 것 같애." 그 말에 그만 3천원짜리 조화 두 뭉치를 사고 말았다. 행복해질 것 같다는데, 겨우 6천원에 따뜻해질 것도 같다는데. 집에 들른 친구가 벚꽃 조화를 보고 촌스럽다며 타박을 했지만 나는 그냥 머리를 긁적이고 말았다. "요즘 너무 이르게 추워서…." 마스크 몇 번 쓰다 보니 그만 가을이 와버렸다. 몇 계절이 뭉텅 사라져버려 지난겨울의 일도 이리 생생하다. 설레는 소식이든 촌스러운 조화든 따뜻한 소식 가지고 날아왔으면 좋겠다. 우리를 먼저 떠난 사람들도 어디서건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고./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20-10-15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배롱꽃 피는 9월의 병산서원

국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서원'병산풍경 7폭 병풍에 담은 '만대루'창밖 어룽대는 목백일홍의 정갈함선비 학문 정진하는 '사학당' 역할세계적인 古건축물로 자부심 느껴병산서원 300m, 오래 참았던 말이 터질 것 같다. 숲을 따라 비포장도로를 20여분 오르내리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며 안내원이 수신호를 보낸다. 전화번호를 적고 손소독제를 바르고 열 체크를 마친 후에야 서원 가는 길을 터준다. 그 아름다운 길 위로 강바람이 살랑거리고 햇살은 천지사방으로 빛나는데 내 아무리 고단하기로 걸어야 할 거리가 고작 300m라니, 얼마나 오래 묻어두었던 길인데 단 5분으로 끝내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길 위에서 나는 아이가 되어 혀를 굴릴 때마다 입안에 든 사탕이 녹는 게 아까워 입을 꼭 다물고 오래 그 달달함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었을까.신도 모르는 첩첩산중에 숨어있는, 가다가 길을 잃고 주저앉아 맘껏 울거나 헤매도 좋을 그런 길을 만나고 싶었다. 맘껏 울고 싶었지만 그 길에 들어서면 내가 왜 그곳에 왔는지 까맣게 잊게 되는 그런 길이 그리웠다. 하지만 매번 잃고자 했던 길은 어쩌면 그리 환하게 잘도 찾아지는지. 지금 나는 낙동강물이 화산자락을 휘감아 도는 병산서원 가는 길 위에 있다. 다녀간 지 한 달도 채 안되는 데,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배롱꽃 만발한 꿈결 같은 서원을 앞에 놓고 낙동강 금빛 모래톱에 발을 담그고 서원의 기와지붕을 말없이 바라보는 마음이라니. 눈을 멀게 할 것만 같은 잘 익은 구월 열여드레 햇살, 서원 망루에 내려앉은 빛을 조금만 더 참았다 보고픈 욕심을 인내로 이렇게 저울질해보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소원하던 그곳에 닿을 때도 좋지만 닿기 직전에 현실 반 꿈 반의 경계점은 얼마나 소스라치게 아름다운가. 병산서원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이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고 확고하다.서원을, 감히 누가 생각 없이 불쑥 여염집 드나드는 방물장수처럼 들락거리는가. 저 단체손님들, 속삭이지 못하면 목소리라도 나직했으면 좋겠다. 여기가 어디라고 왁자하게 웃고 떠들고 장마당 휩쓸듯 휘리릭 둘러보고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떠나는지, 서원을 먹고 마시는 관광지쯤으로 생각했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인가. 성소까지는 아니라도 서원은 그런 난삽한 곳이 아니다. 서원은 지식이 많은 사람도 더 많은 공부와 정진으로 깨우침을 얻고 맑은 사람은 더 맑기를 소원하며 어렵사리 찾는 도량이니 제발 다음부턴 그러지 말라고 간곡히 한마디 해주고 싶긴 했다.오래된 건물을 보며 늘 위로를 받는 부분은 사찰이든 궁이든 서원이든 우리 조상들은 아무리 작은 건물이라도 최선을 다해 그들의 철학과 심상을 반영하고 그 건물의 분위기와 용도에 어울리는 이름(당호)을 짓는다는 것이다. 병산서원의 중심은 역시 만대루다. 만대루는 7칸 긴 누마루로 낙동강 흰 백사장과 병산 풍경을 7폭 병풍에 담아내는 최고의 건축물로 꼽는다. 두보의 '백제성루'라는 시에 '취병의만대,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만하니'라는 시에서 따온 이름이라니 선조들의 풍류가 얼마나 여유롭고 멋스러운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층은 막돌기단, 덤벙주초, 휘어진 굵은 기둥이, 위층은 잘 다듬은 둥근 기둥, 우물마루, 계자난간은 물론 서원의 주변 경관은 '성리학자들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자연과 인간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는 천인합일사상이 반영되어 자연과 인공이 더불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기숙사로 썼다는 동재와 서재에서 나를 매혹시킨 것은 작은 창이다. 9월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듯 창밖으로 어룽대는 목백일홍 가지는 한지창이 주는 단아하고 정갈한 분위기에 과함도 모자람도 없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그뿐이랴, 뒤편으로 돌아 오르면 진사청으로 이어지는 진사청문도 단아하다.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늙은 배롱나무의 관능적인 몸매와 만개한 배롱꽃은 몇 세기를 건너온 듯 그에 비하면 내 감탄사는 여전히 초라할 뿐이다. 아, 서원 입구 복례문 뒤로 자그마한 연못 광영지에 몸을 던진 꽃잎들은 어쩌자고 저리 붉은 것인지. 서원 공간에 영혼을 빼앗기고 피 같은 붉은 배롱꽃에 마음 빼앗기는 이 가없고 황송하기 그지없는 내 생의 9월 하루가 서원에서 저무는 호사를 누리다니, 딱히 역사나 유학에 관심이 없어도 알겠지만 서원은 조선의 선비들이 학문에 정진하는 사학당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서원이 있지만 병산서원은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내 짧은 식견으로도 한국건축사는 물론 세계적인 고건축물로 자부심을 가질만하다./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20-10-08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영어로 쓴 책을 아마존에서 팔아보기

책 등록 생각보다 수월 도전해볼 만애플·아마존에 올려 잘 팔리길 기대'불후의 명작, 대박' 상상을 해본다세계인 볼수 있는것만으로도 충분글 쓰는건 독자향한 짝사랑의 연서오늘은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담을 말할까 한다. 영어로 책을 써서 애플과 아마존에서 파는 이야기이다. 영어로 글을 쓰기도 어렵고 아마존에 책을 등록하는 것도 복잡한 일일 거라 지레 겁을 먹는 분이 있을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는 않지만 예상보다는 수월한 일이라는 것, 그래서 용기만 있다면 누구나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전문 학자나 작가가 아닌 일반인이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이미지를 만들어 책으로 펴내는 걸 자주 본다. 내 경험을 전하며 이분들께 마당을 넓혀 세계로 문을 열어보시라고 제안하는 바이다.이번에 내가 낸 책은 시집이다. 영어로 두 번째 책이고, 두 권 다 아마존과 애플 북스에 등록되어 있다. 누구든 해당 서점 사이트에 가서 바로 책을 구매할 수 있다. 더구나 둘 다 전자책이기에 책이 배송되길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이 구매 후 바로 열어볼 수 있다. 전자책은 종이책과 비교해 편리한 점이 많다. 배송도 필요 없거니와 많은 책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 도서관 전부를 담을 만큼의 책이라도 스마트폰 하나에 다 넣어두고 언제든 꺼내 읽을 수 있다. 종이책에 비하면 책값도 저렴한 편이다. 요즘은 전자책 뷰어들이 오디오 리딩 기능까지 지원해 읽는 대신 듣기만 할 수도 있다.물론 전자책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종이 질감을 느낄 수 없고, 예쁘게 디자인된 장정을 만져볼 수 없다. 전자책 레이아웃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 작은 스크린으로 가독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연필로 밑줄 그으며 메모할 수 없고, 중간쯤 읽다 얼마나 남았나 뒤를 훌훌 넘겨보는 재미도 없다. 이런 아날로그적 단점 때문에 전자책이 종이책을 한순간에 대신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아무튼 애플과 아마존에서 책을 팔기 위해서는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이 훨씬 간편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전자책은 복잡하고 값비싼 물류 과정을 건너뛰게 해줌으로써 개인 작가가 책을 만들어 파는 것을 용이하게 해준다.나는 캐나다인 친구와 6개월 정도 번역작업을 진행했다. 번역은 아무래도 힘들고 지루한 일. 그러니 주변에서 좋은 번역자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 잘 찾아보면 의외로 많다. 우리말로 썼던 시 40편을 영어로 옮기고 나서 나는 이것을 'ePub'이라는 전자책 포맷으로 만들었다. 번역에 비하면 전자책 제작은 쉬운 편. 'html'과 'CSS'를 기초로 약간의 코딩만 익히면 누구나 만들 수 있을 듯하다. 이미 잘 만들어 놓은 템플릿을 이용해도 된다. 그 작업이 일반 도서 디자인 작업보다 훨씬 쉽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구나 그걸 종이에 찍느라 인쇄소를 오가고 나무펄프를 낭비할 일도 없다.책이 완성되면 아마존과 애플 북스에 책을 등록할 차례. 내 경험으로 아마존에는 개인이 직접 도서를 올리기는 좀 어렵고, 출판사를 거치는 게 좋을 것 같다. 책을 팔 경우 그 수익과 세금을 정산할 곳이 명확해야 하기에 요구되는 절차가 약간 까다롭다. 무료 책을 등록할 수는 없고, 최소 1달러 이상의 책값을 정해야 한다. 애플 북스의 경우는 북스토어가 개설된 나라의 출판사만 가능한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쉽게도 북스토어가 없는데, 대신 책을 무료로 배포할 경우 돈을 정산할 필요가 없으니 개인이 직접 책을 올릴 수 있다. 나는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어 아마존에는 출판사 명의로, 애플 북스에는 개인 이름으로 책을 등록했다.책을 애플과 아마존에 올렸으니 이제 잘 팔기만 하면 된다. 잘 팔리겠지. 내 시가 불후의 명작이니, 한 백만 부쯤 팔려서 대박이 났다는 소문이 돌 거야. 그러면 한 권에 1달러짜리 책으로 무려 백만 달러나 벌겠군. 그럼 우리 돈으로 10억원이 넘네…. 이런 상상을 해본다. 물론 겨우 백 부도 안 팔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 책을 세계인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놓아두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답을 받았다 여긴다. 책을 쓰는 건 이름 모를 독자를 향해 짝사랑의 연서를 쓰는 것, 책을 내는 것은 그 연서를 미래로 배달하는 것일 터이니 말이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20-09-24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제3의 공간

재택근무·주거환경 취약 확산되며집과 직장 틈새 메워주는 장소 관심호캉스 등 '상업적 실험' 부쩍 늘어언택트시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공공영역 더 많은 변화 요구받을것며칠 전, 처음 가보는 동네를 방문했다가 천변을 걸었다. 돈을 내지 않아도 앉을 수 있는 의자, 마스크를 낀 아이들이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 돗자리를 펼 수 있는 넉넉한 나무 그늘이 펼쳐졌다. 여전히 경로 불명의 코로나19 감염자가 많고, 추석과 독감 유행의 시즌이 다가오고 있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요즘이지만 가을바람을 느끼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천변을 걷고 나니 잠시나마 숨통이 트인다. 기능과 목적이 명확한 공간이 아니라 특정 기능 없이 그야말로 '비어 있는 공간'의 힘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과 교수는 "과거 주택의 마당처럼 사람 키보다 높은, 기능 없이 비어 있는 공간이 우리에게 생각할 여유를 준다"고 했다. "3m 이상 높이의 천장이 있는 공간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연구 결과 2.4m, 2.7m, 3m의 천장이 있는 공간에서 시험을 치르게 했는데 3m 천장고에서 시험을 친 학생이 낮은 천장고의 학생보다 창의적 문제를 2배나 더 많이 풀었다는 것이다. 높은 천장이 있는 공간이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셈이다.천변에서 돌아오는 길, 2.5단계 시기에 자리를 모두 치워 놓았던 카페에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있는 풍경이 보인다. 너무 평범하고 당연하다고 느꼈던 일상이 사라졌던 덕인지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을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 사실 "카페는 커피를 미끼 상품으로 내걸고 일정 시간 공간을 빌려주는 업종, 즉 초단기 부동산임대업에 가깝다"는 박해천 동양대 교수의 지적처럼 카페들은 '공간을 파는 곳'으로 변화한 지 오래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가 이어지는 기간 동안 "안전한 집에 머물러 달라"고 했던 정부의 당부를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던 많은 사람들이 카페를 피난처로 삼았던 이유이기도 하다.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제3의 공간'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된다. 집은 제1의 공간, 직장 또는 학교는 제2의 공간, 집도 직장도 아닌 중간지대를 제3의 공간이라고 명명하는데, 이 공간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집과 직장을 제외한 나만의 공간 혹은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는 편안하고 비공식적인 공공장소를 의미한다. 재택근무 확산과 주거환경이 취약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집과 직장의 틈새를 메워주는 제3의 공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일하는 방식이 다양화되면서 전통적 의미의 오피스가 없어질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창의력을 높일 수 있도록 잘 설계된 공간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가능한 일들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오프라인 경험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호캉스(호텔과 바캉스의 합성어)'처럼 휴식에 집중하기 위해 편의 시설과 놀이시설이 갖춰진 호텔이라는 공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작은 동네 책방들이 많아지는 현상이 이를 뒷받침한다. 고객이 마음껏 쉴 수 있도록 한다는 콘셉트로 제3의 공간을 구현해내는 상업 공간들의 실험이 부쩍 늘어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커피가 아니라 공간을 판다'는 콘셉트를 내세워 온 스타벅스는 식물원 혹은 캠핑장 등 새로운 공간과 협업하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기후 위기와 바이러스가 실제 위협으로 다가오는 지금,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의 질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며, 온라인의 편리함이 대체할 수 없는 공간의 경험이야말로 오프라인의 강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그 장소에 가야만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을 제공하거나 공간을 재해석해 다른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숙제가 오프라인 공간들의 새로운 숙제다. 커피 한 잔도 배달시켜 먹을 정도로 '접촉에서 접속으로' 바뀌고 있는 언택트(Untact) 시대, 상업 공간의 변신만큼이나 공공 공간 역시 더 많은 변화를 요구받게 될 것이다. 집, 회사, 제3의 공간까지 어느 곳 하나 안전하게 머무를 공간이 없는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제3의 공간'에 대한 공공 영역의 더 많은 상상과 실천을 기대한다./정지은 문화평론가정지은 문화평론가

2020-09-17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기녀 일타홍의 눈물겨운 헌신

심희수 집에 기거하며 극진히 섬겨학문 게을리하자 모친에 하직인사 장원급제하면 돌아오겠다고 약속 훗날 금산군수 부임케해 행복한 삶병들어 짐 될까 자진하기전 詩 남겨 한 인간이 방탕한 생활과 나태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각성과 도전으로 바로 세워 성공적인 생을 이루게 한 기녀가 있다. 그녀는 금산 출신의 일타홍이다. 한양에서 기녀생활을 하며 젊은 양반자제들의 방탕한 술자리에 자주 불려 나갔다. 그녀의 나이 열일곱쯤, 어느 주석에서 용모 수려한 젊은이를 만난다. 그가 심희수다. 심희수도 여러 기녀들을 보았지만 미모가 빼어난 일타홍에게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녀는 심희수를 밖으로 불러내어 그 날 밤에 댁으로 찾아뵙겠다고 약속했다. 일타홍은 심희수의 용모에서 범상치 않은 장래를 보았던 것이다.심희수(1548~1622)는 과거급제 다음 여러 관직을 섭렵한 후 좌찬성을 거쳐 우의정이 되었으며 청백리에 뽑히기도 했다. 1606년 그는 좌의정에 올랐다. 그의 성공가도 뒤에는 그날 밤의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열다섯이던 심희수는 설레는 마음으로 일타홍을 기다렸다. 날이 저물자 그녀가 대문을 들어섰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서 그녀는 안방으로 건너갔다. 일타홍은 심희수의 모친에게 큰절을 올리고 찾아뵙게 된 연유를 말했다.금산에서 온 일타홍이라는 기생이며 오늘 낮 어느 연회장에서 도련님의 관상을 뵙게 되었는데 장차 큰 인물이 되실 상이었다는 것과 비록 비천한 기생이나 힘을 다해 도련님을 학문의 길로 나가게 해드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과거급제하면 미련 없이 떠나겠다는 것과 한 집에서 기거를 하더라도 정분을 나누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심희수 모친은 자식이 방탕한 생활로 속을 끓이던 터였고 그녀의 눈빛에 진심이 담겨 있어 기꺼이 허락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심희수는 공부에는 뜻이 없었다. 나이 들며 친구들과 기방에서 술 마시고 놀기에 바빴던 것이다. 어머니의 훈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이튿날부터 심희수의 태도가 달라졌다. 마음을 바로 잡고 학문에 정진했다. 일타홍은 모아둔 패물을 팔아 가족을 부양했다. 심희수의 결심은 자주 흔들려 밖으로 나돌기가 여러 번이었으나 그때마다 그녀의 설득으로 책을 펴들었다. 혼기에 이른 심희수에게 노극신의 딸을 정실부인으로 맞이하게 하고 극진하게 섬겼다.다시 심희수의 학문하는 태도가 불성실해지는 모습을 본 일타홍은 심희수의 모친에게 떠나겠다고 하직 인사를 했다. 놀란 모친이 극구 말렸으나 그 길만이 도련님을 돌아오게 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떠나며, 도련님이 다시 마음을 잡아 학문에 매진하시어 장원급제하면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거나하게 취해서 귀가한 심희수는 일타홍이 집을 떠나며 남긴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후 그는 모든 친구들과의 교류를 끊고 공부에만 열중해서 23세인 1570년 진사시험에, 1572년 문과시험에 합격했다.일타홍에게는 두 편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읊은 '장마'와 그녀의 절명시 '달을 보며'가 그것이다. '열흘 긴 장마 개일 기색 없는데/고향 그리워 꿈결에 달려갔다 놀라 깨이네./옛 동네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길은 먼 천리/솟은 난간에 팔 괴고 가만히 고향 가는 길 헤아려보네'가 고향 금산을 향한 회한이 서린 시다. 절명시 '달을 보며'는 '맑고 고요한 초승달 또렷하기도 한데/한 줄기 달빛은 천년만년 푸르렀겠지/넓디넓은 세상에 오늘 밤 달을 보며/백년의 즐거움과 슬픔 느끼는 이 몇이나 될까'라는 가슴 아픈 시다. 심희수를 설득하여 고향 금산군수로 부임케 하고 나서 부모님을 뵙고 몇 달을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녀는 병이 깊어 낭군의 짐이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진하기 전에 쓴, 지극한 슬픔의 시다.심희수는 일타홍의 시신을 싣고 한양으로 향했다. 그녀를 실은 배가 금강을 건널 때 비가 내렸다. 그 때의 심정을 만장시 '이별의 눈물'로 쓰며 그는 오열했다. '한 떨기 연꽃 상여수레에 실려 있는데/향기로운 영혼은 어딜 가려 머뭇거리나./금강 봄비에 붉은 명정 젖어드니/아마도 고운 우리 님 이별 눈물인가 보다'로 끝맺는 시는 읽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20-09-10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돋보기가 싫어요

우연히 전자책 내리 몇권 읽게 돼책장 넘긴답시고 손가락에 침 발라신기하게도 글씨크기 맘대로 조절훗날 1인용 안락의자에 등 파묻고 아이패드로 책 읽는 할머니 될테지우리 집에서 제일 값비싼 물건을 말하라면 내 작업방에 있는 책장이다. 몇 권인지 세어본 적 없는 책들은 날이 갈수록 더 쌓여가서 4, 5년에 한 번씩 책장을 바꾸어도 늘 선반이 휘어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나는 지리산에서 7년을 말렸다는 두툼한 편백나무를 구했고 가구 제작자는 그걸로 책장을 만들어 주었다. 책장을 지탱하기 위해 황동으로 지지대를 만들었고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내 팔뚝 길이만 한 나사를 박아 벽에 고정했다. 제작자는 공사 전 카톡 채팅창에 미리 견적을 써 주었는데 어리바리한 나는 황동 견적은 미처 못 보고 책장 제작 견적만 보고 수락을 한 거였다. 책장을 다 설치하고 나서야 전체 견적을 보고 나는 기절할 뻔했다. 그런 사연으로 우리 집의 가장 고가 물건은 편백나무 책장이 되었다.요즘은 미니멀리즘이 대세라는데 나는 트렌드 따라 흉내라도 좀 내 보고 싶어도 이고 지고 살아야 하는 책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전자책 안 봐요?" 사람들이 물으면 "무슨. 책은 종이 넘기는 맛인데." 그렇게 대답하는 촌스러운 사람이었다.그러다 우연히 전자책을 내리 몇 권 읽게 되었다. 아이패드를 사용해서 읽는데, 나는 책장을 넘긴답시고 자꾸 손가락에 침을 발랐다. 그러고는 혼자 웃었다. 촌스러워도 보통 촌스러운 게 아니군. 그런데 그만 내가 전자책에 홀랑 빠지고 말았다. 어처구니없게도 이유는, 노안 때문이었다.몇 년 전 선배 작가가 그런 말을 했다."난 이제 낭독회 초대받는 것도 거절해.""왜요?""작가가 자기 책 낭독하면서 돋보기 주섬주섬 꺼내는 거 너무 웃기잖아."사실 좀 놀랐는데 나보다 한 살밖에 많지 않은 선배가 뭘 돋보기까지 필요한 정도인가, 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겐 노안 따위는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스마트폰 보는 일이 힘들어지고 폰트가 유난히 작은 책을 펼치면 비명부터 나왔다. 급기야 안경원엘 들렀는데 노안 초기라는 안경사의 말에 "초기죠? 초기 맞죠? 아직 중기까지는 아닌 거죠?" 그런 소리만 하고 돌아왔다. 가방 속에 돋보기를 넣어 가지고 다니는 여자가 되기에는 아직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참, 그게 뭐라고.그러다가 전자책을 보게 되었는데 맙소사, 이 신기한 전자책은 글씨 크기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거였다. 이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어느 출판사에서는 노안 독자를 위해 큰글자 책을 낸다지만 나는 그런 책을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전자책은 책장에 꽂아두지도 않는 것, 내가 글씨를 크게 해서 본들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런 신세계를 이제 알게 되어서 나는 약이 오를 지경이었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이젠 전자책으로 먼저 고른다. 없으면 말고. 전자책 정기구독 서비스도 신청했다. "엄마, 또 카톡해?" 태블릿을 들고 있는 내게 딸아이가 물으면 "엄마 책 읽거든!"하고 으스댄다. 나는 훗날 1인용 안락의자에 등을 깊이 파묻고 앉아 아이패드로 책을 읽는 할머니가 되겠지. 그러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늙어도 예쁜 할머니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딸아이가 또 마음을 찌른다. "엄마는 염색해서 머리가 까만 거라면서?" 나는 화들짝 놀랐다. 염색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는데 어떻게 알았지? "아빠가 그랬어. 엄마도 흰머리 있는데 염색해서 안 보이는 거라고." 아니, 뭘 그런 걸 일러주나 몰라. 젊은 엄마인 척한 적은 없지만 굳이 네 엄마 나이 들었단다, 자랑할 일은 아니어서 몰래몰래 했는데.냉동만두 포장지에 쓰인 조리법이 안 보여서 친구 앞에서 신경질을 부렸더니 친구가 심드렁하게 팁을 하나 알려준다."폰으로 사진 찍어. 그다음에 손가락으로 확대해서 보면 되잖아."세상에나, 나는 그렇게 리빙포인트를 하나 습득한다. 돋보기가 없어도 나이 안 든 척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손가락으로 사진을 쓱쓱 확대하면서 신이 나서 웃었다./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20-09-03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삼호정(三湖停)과 두암초당(斗巖草堂)

옥천조씨 삼형제들의 우애 간직한배롱나무 둘러싸인 고풍스런 정자선인들 풍류 즐기던 사랑방같은곳선운사쪽 이동하자 고즈넉한 초당고고한 선비의길 눈앞에 보이는듯전북 고창시내 모처에서 1박을 하고 더위부터 피하자는 심산으로 일찍 숙소를 나와 선운사로 향했다. 송창식의 목소리로 '선운사'와 '푸르른 날'을 들으며 미당을 생각했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랫말 아니 시편들. 전날 장거리 운전의 피로는 야간에 모양성(고창읍성) 둘레길 산책으로 누적되었지만 아침이 되자 8할은 회복되지 않았나 싶다. 시내를 벗어나 얼마 못 가 자동차를 급정지하고 말았다. 아!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유혹하는 저놈의 붉은 배롱나무꽃, 아니 이번에는 배롱나무에 둘러싸인 고풍스러운 정자 삼호정이 걸음을 붙든다.차에서 내려 절정에 닿은 배롱꽃을 이리저리 카메라에 담고 흙담을 돌아 삼호정 안으로 들어가는데 정자 안의 사각 문으로 비치는 화사하다 못해 찬란한 배롱꽃이 오래된 무채색 건물과 어우러져 얼마나 멋스러운지, 나는 소리 없는 탄성을 질렀고 내 두 발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예기치 못한 이런 곳에 이토록 간결하고 고풍스러운 정자라니 무엇보다 주변에 불을 지른 듯 둘러싸고 있는 배롱꽃은 그 어떤 상상을 보탠다 해도 연중 지금이 정자가 가장 돋보일 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른 아침 오롯이 홀로 그 정자에 든 우연한 행운이 남의 일처럼 실감이 나질 않았다.그동안 선운사를 들고난 것이 한 두 번은 아닌데 누가 내 눈을 가려 이걸 보지 못하게 했을까. 왜 이제야 내 마음에 들어온 걸까. 동쪽 툇마루에 걸터앉아 주변의 붉은 꽃들을 보고 있자니 뭔가 비현실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전지전능한 구글에 '삼호정'이 대체 무얼 하는 곳인지 물으니 눈앞에 인천강 지류인 주진천이 흐르는 곳에 자리한 삼호정(전북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 덕천동)은 옥천조씨 삼형제(인호(仁湖), 석호(石湖) 덕호(德湖))가 형제의 우애는 물론 이웃과의 교류와 다양한 학문을 논하기 위해 지은 정자라 알려준다. 그러니까 삼호정은 그들 삼형제의 세 호(湖)를 따서 지은 이름이었던 것.1827년에 건축된 삼호정은 멀리서 벗들이 찾아오면 제각기 지은 시들을 읊으며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지금도 정자 천장에는 그때 당시 읊었던 시와 훗날 후손들이 조상을 칭송하는 시를 지은 현판이 걸려있는데 보존은 양호한 편이다. 그 시편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어도 이 정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을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한 예로 1865년 지현 성교수는 삼호정기(三湖亭記)에서 "삼호의 어진 이가 또 호수와 정자의 아름다움을 겸하였으니 나의 글이 그 착함을 보여주기 부족하고 나의 시가 그 아름다움을 다하기에 부족하므로 부끄럽구나!"라고 했다. 삼호정 현재의 현판을 쓴 송태회(宋泰會)의 시에서 그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좋겠다.선인들에게 마을 앞 정자의 역할은 바로 이런 것이리라. 학문이든 술이든 함께 즐기고 나누는 사랑방 같은 곳. 한나절 정자에 머물며 매미 소리에 취해 놀다가도 좋으련만 시간에 등 떠밀려 아쉬움을 간직한 채 삼호정을 나서는 걸음이 개운치 않다. 삼호정 뒤편엔 '덕천사'라는 절이 있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선운사를 향해 5분 정도 달렸을까. 오른편으로 큰 바위산 아래 작은 정자가 눈에 들어와 다시 급정거를 했다. 아산초등학교 뒤 거대 암석 중턱에 지어진 두 평 남짓한 두암초당(斗巖草堂) 때문이다. 두암초당은 하서 김인후에게 가르침을 받고 퇴계 이황과 교류하였던 호암 변성온과 그의 아우 변성진 형제가 만년에 머물렀던 곳으로 세월이 흘러 훼손이 심하자 후손들이 중건을 하였으나 다시 건물은 무너지고 지금의 정자는 1954년에 지은 것이란다. 초당으로 드는 문이 잠겨있어 초당까지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저 높고 외진 초당에서 세상을 굽어보는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만으로 선비의 길은 정말 외로웠겠구나 싶다. 지금 나는 선운사를 향해 가고 있다. 삼호정과 두암초당, 피안인 듯 차안인 이 정자마루에 신발끈을 풀고 올라가 미치도록 아름다운 사랑, 화양연화처럼 붉은 배롱나무꽃을 바라보던 짧은 그 찰나를 내 어찌 잊을 수 있으랴./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20-08-27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참아야 하는 독서의 가벼움

신문·책 대신 스마트폰 보는 시대콘텐츠 변화이자 독서의 진화 의미텍스트는 매우 짧고 대부분 이미지훨씬 많은 지식으로 멀리까지 도달형태 달라졌다고 내용 바뀌지 않아이십여 년 전만 해도 전철을 타면 많은 이들이 신문이나 책을 읽었다.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 신문을 접고 또 접는 묘기를 발휘하곤 했다. 으레 손잡이 선반에는 다른 이가 보고 난 신문이 얹혀 있어, 읽을거리가 없는 사람들은 거기에 눈독을 들이기도 했다. 요즘도 전철에서 대부분 사람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읽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그들 손에 들려 있는 것이 신문이나 책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라는 것. 너나없이 그 조그만 스크린에 머리를 박고 참으로 집요하게 읽고 있다. 간혹 창밖을 본다거나 옆자리 승객을 둘러본다거나 하지도 않고, 가는 내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에 빠진 것일까.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시·소설 같은 문학 서적을 읽지 않는다. 더구나 무겁고 골 아픈 과학책이나 철학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 시대의 독자들이 소비하는 것은 스마트폰으로만 가능한 디지털 텍스트들, 그러니까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 카카오톡·텔레그램 같은 메신저, 유튜브·틱톡 같은 멀티미디어 등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아날로그 문자로부터 디지털 텍스트로의 완벽한 이행은, 단순히 읽을거리가 바뀌었다는 수준을 넘어, 근본적인 콘텐츠의 변화이며 독서의 진화를 뜻한다. 다시 말해 패러다임의 혁명, 또는 읽는 방식의 전환이다.어떤 이는 이런 읽기를 깊이가 없다고 비판한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니 요즘 사람들은 가볍고 좁다고 지적한다. 분명히 그런 면도 있다. 그러나 시각을 바꾸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텍스트의 양식이 바뀐 것이지, 텍스트가 담고 있는 내용이 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는 대단히 깊은 사유를 담은 담론들도 많다. 유튜브의 전파력은 어떤 아날로그 언론보다도 크다. 다만 편차가 고르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이런 '세속화'의 과정은 이제 거대한 물결이 되어 대세를 바꿀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저 깔보고 비판한다고 강물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이 대목에서 스마트 기기가 전해주는 디지털 텍스트의 두 가지 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첫째, SNS의 텍스트는 매우 짧다는 것. 지금 우리의 삶이 유동적이며 단편적이라는 인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액체시대'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된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의 짧은 메시지는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이 없다. 어차피 지나가서 다시 오지 않을 것이므로 일종의 배설이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텍스트 대부분이 이미지라는 것. 글자를 읽는 것은 매우 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그림과 동영상은 즉각적이고 구체적이다. 비록 수동적 수용이긴 하지만, 이미 독자들은 일방적 수용만으로도 이전 세대가 누리던 것보다 훨씬 풍성한 지식으로 멀리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유튜브나 틱톡이 만들어주는 레디메이드 세계로의 접근은 비용도 적게 들고 재미도 있다. 하나의 화면이 끝나자마자 다른 화면이 튀어나오니 이해나 선택의 고민도 필요 없다. 아직도 종이책이 최고라고 우기거나 틱톡 같은 15초짜리 영상을 우습게 여기신다면, 당신은 보수적인 사람이다. 인간다운 삶은 이미지로 구현할 수 없다고, 몸과 몸이 부딪는 실재의 세계에서만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하신다면, 당신은 시대의 진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다. 디지털은 가상을 넘어 아날로그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새로운 미디어 텍스트가 황무지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비친다면 지금 당신의 삶이 바로 그 황무지 위에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가벼운 독서는 전혀 가볍지 않다.시대가 아무리 바뀐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뭔가를 읽으며 그 텍스트 속에 그려진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 웃음과 눈물을 소비하게 될 것이다. 그런 원형적 주제는 너무나 오래되고 익숙한 것, 과거의 시나 소설이 그려왔던 것, 공자나 예수가 가르치려 했던 것, 철학자와 역사학자들이 찾아내려 했던 것들이다. 독서의 형태가 달라졌다고 내용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니 슬퍼할 필요 없다. 삶은 늘 현재형으로 진행하며, 그 방향은 언제나 아래로, 즉 '세속화'로 향한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20-08-20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고양이는 정말 귀여워."

다운로드수 100만 넘긴 인기 게임고양이 돌보고 나만의 마을도 가꿔'초품아·숲세권'도 부담없이 거주은행, 대출 대신 멸치 수확 도와줘현실세계는 고양이 마을과 정반대요즘 게임 하나에 푹 빠져있다. 플레이어가 고양이 집사가 되어 다양한 고양이를 돌보고 자신만의 마을을 만들어 나가는 모바일 게임 '고양이는 정말 귀여워' 다. 화면을 탭하는 간단한 방식인데 "야옹" 소리와 실제 고양이와 유사한 행동 등으로 귀엽다는 입소문을 타서 다운로드 수가 100만을 넘을 정도로 인기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 방치형 게임으로도 불린다. 밥을 주고 쓰다듬어주고 숨은 고양이를 찾고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60마리와 놀아주다보면 시간이 꽤 잘 간다. 다양한 고양이를 키우는 랜선 집사로 사는 것도 재미지만 무엇보다 나만의 마을을 조금씩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이 쏠쏠하다.1인 개발자가 혼자 메일 답장과 홍보, 개발을 모두 하느라 시간날 때 업데이트한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언제부터인가 개발자가 바쁜지 고양이 레벨은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고 정체 상태다. 처음에는 짝짓기가 불가능했는데, 업데이트 이후 짝짓기가 가능해져 아기 고양이들도 10마리나 탄생했다. 이름을 바꿀 수 없는 성묘와 달리 아기 고양이들은 플레이어가 직접 이름을 지어줄 수 있어 매력적이다. 더 마음에 드는 건 고양이 중에도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하는 싱글 고양이들도 있다는 점이다. 짝짓기를 하라고 했더니 "혼자가 더 좋다"고 하는 고양이가 나오는 게임이라니! 게다가 열 마리밖에 없는 아기 고양이들은 마을 곳곳으로 놀러갈 수 있어서 장소를 바꿔가며 마음껏 놀게 해줄 수 있다.새로운 고양이가 나올 때마다 특색있는 행동을 볼 수 있는 재미도 남다르다. 일이 남아도 칼퇴하고 공원에서 멍 때리는 회사원 고양이 나비, 도넛 가게에서 가운데 구멍을 내는 핵심을 맡고 있는 고양이 만두, 낮잠자기 과목을 맡고 있는 애옹학교 선생님 미미, 책보다 책냄새를 좋아해서 도서관을 찾지만 책냄새를 맡으면 잠이 드는 고양이 찰떡이, 수영을 배우고 싶은데 부끄러워서 분수대 근처만 기웃거리는 고양이 꾸꾸까지….일반, 레어, 에픽으로 고양이가 나눠져 있지만 모든 고양이는 60레벨까지 업그레이드할 수 있으며 레벨이 올라가면 행동에 따른 보상을 좀 더 받는 것뿐 차이가 크지 않다. 에픽 고양이의 집이라고 해서 집값이 비싼 것도 아니다. 지하철이나 교통망이 필요 없는 작은 마을이기에 각종 편의시설은 내 마음대로 배치 가능하다. 애옹호프, 야옹도서관, 꾹꾹병원, 냥이문고 등은 물론이고 학교, 텃밭, 공원, 캠핑장, 치킨집, 노천온천, 과일가게, 편의점, 영화관, 미술관에 천문대까지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는 이 마을은 심지어 숲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요즘 부동산 시장 용어로 하면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에 '숲세권(숲이나 산이 인접한 주거지역)'에 각종 편의시설 '슬세권(슬리퍼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의 주거권역)'이다. 이 정도 환경이면 인간 세계에서는 아주 비싼 동네지만 고양이 마을은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딱 하나 있는 야옹은행은 대출 업무를 취급하지 않고, 멸치 수확을 빨리할 수 있게 도와주거나 새로운 고양이를 데려올 수 있는 풀을 내어주는 인심 좋은 곳이다.게임 밖 현실세계는 고양이 마을과 정반대다. 주식이 폭등하고 금값은 떨어지는 한편, 소득은 그대로인데 집값은 계속 오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긴 장마와 폭우가 휩쓸고 가더니 폭염이 찾아오고, 전세계를 뒤덮은 역병의 기세는 여전하다.평소 게임을 거의 하지 않는 내가 요즘 이 게임을 매일 열심히 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게임 속에서만큼은 미래가 예측 가능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멸치가 몇 마리쯤 수확될지 알 수 있고, 모레쯤이면 건물에 쓰레기통을 추가로 놓을 수 있다고 계획을 세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꾸민 건물 앞에 벌렁 누워 햇볕을 쬐거나 단잠에 빠진 고양이들로 가득한 게임 속 마을을 거닐며 마음의 평화를 찾아본다. 그렇게라도 마음을 달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것 같은 요즘이기에…. 무엇 하나 확실한 것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채로 시간이 훌쩍 지나간 2020년, 하반기에는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집사 레벨 올리기에 도전해봐야겠다./정지은 문화평론가정지은 문화평론가

2020-08-13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지재 강담운의 붉은 마음

김해의 기녀… 시문으로 이름 날려스무살시절 문인화가 차산 배전 만나서로의 예술세계 흠모 '뜨거운 사랑'차산은 10년간 과거 보러 서울 오가지재의 그리움은 세월 갈수록 깊어져김해의 기녀로는 거문고의 명인이었던 옥섬섬과 시문으로 이름을 날린 지재 강담운이 있다. 옥섬섬은 고려시대 감찰대부를 거쳐 문하평리를 지낸 야은 전녹생(1318~1375)으로부터 '김해기녀 섬섬에게 주다'라는 연시를 받는다. '신선이 노닌 바닷가 산은 일곱 점으로 푸르고/거문고 속엔 흰 달이 한 바퀴 밝았네/세간에 옥섬섬의 솜씨가 없다면/뉘라서 능히 태고의 정을 탈 수 있으랴'라는 시에는 섬섬에게 보내는 애틋한 마음이 읽힌다.지재 강담운(1863~1907)은 평양에서 기녀의 딸로 태어나 여덟 살 때 김해로 옮겨와서 김해 관아의 기적에 오른 것을, 그녀가 남긴 시편을 통해 알 수 있다. '옛날을 추억하며'라는 시에서 '옛날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네/유영의 봄에 나고 자랐지/여덟 살에 어머니를 따라/ 배를 타고 남쪽 나루를 건넜네/분성객관에 잘못 떨어져/구란에 이 몸 맡겼네'에서 유영은 평안도의 병영을 이르는 말이고 분성은 김해이며 구란은 기녀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분성객관에 잘못 떨어졌다고 한 것으로 보아 최종 목적지가 김해가 아닐 수도 있었다.열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천애고아가 된 그녀는 스무 살 전후해서 김해의 뛰어난 문인화가인 차산 배전(1843~1899)을 만나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 서로의 예술세계를 흠모하던 두 사람은 당나라 시인 가도의 시구 '지재차산중(只在此山中)이 산중에 있기야 하겠지만'에서 강담운은 지재를 호로 삼으며 세상 끝날까지 배전이라는 산중에 살겠다고 언약했고 배전은 차산을 호로 삼으며 세상 끝날까지 강담운을 품으며 살겠다고 언약했던 것이다.차산은 문인화로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지만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양반이었다. 사랑이 불타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차산은 한양으로 과거를 치러 올라갔다. 지재는 '과거 보러가는 차산 낭군을 보내며 강가에서 이별을 읊네'라는 시를 짓는다. '봄바람이 역랑을 일으켜/푸른 강가에 말을 세웠네/먼 이별될까 근심 마시고/힘써 청운의 뜻 이루소서/몸 마른 건 원래 병 때문이니/그립다고 감히 임을 원망하리오/난꽃과 사향 귀한 줄 모르겠으니/계수나무 향기 물들기 바라옵니다'로 끝맺는 시에서 몸 마른 것은 그리움 때문이 아니라 병이 있었던 연유니 근심 마시고 계수나무 월계관을 쓰고 오시라는 염원이 절절한 시다.그러나 차산은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거의 10여년이나 계속 한다. 과거급제는 그 시대에도 녹록지 않았던 것이다. 지재의 그리움은 세월이 갈수록 깊고 아팠다. 그리움은 죽음에 이르는 병인 것을 알고 있던 지재는 병을 이기기 위해 여러 편의 연시를 남긴다. '서울로 가는 사람과 이별하며'라는 시에는 차산이 헤어지며 주고 간 귤 하나를 손에 끼는 반지인 듯 아낀다는 문장으로 가슴이 저린다. '시월 강남에 비 내리니/북쪽엔 눈 내리리라/북쪽에서 눈 만나시거든/비속에서 그리워하는 저를 생각 하소서/떠날 때 주신 귤 하나 /손의 반지인 듯 아낍니다/양주로 오시게 되면/돌아오시는 날, 만 개를 드리오리라' 음력 시월이면 양력으로 11월이다. 남쪽에 비오면 북쪽에서는 눈이 내릴 텐데 혹 눈 만나시면 빗속에서 하염없이 임을 그리워하는 지재를 생각해 달라는 시문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차산이 만 개의 귤을 받으려면 과거에 급제하는 길 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재의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가이없다. 그 붉은 마음을 '봄꿈'에서 읽을 수 있다. '수정 주렴 밖 해 기울고/길게 늘어진 버들 푸른 난간 덮었네/가지 위 꾀꼬리 울음 상관하지 말고/그대 찾아 꿈에 장안에 이르렀네'.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어 꿈에 장안을 찾아간 지재다.차산은 과거급제를 포기하고 김해로 돌아온다. 그는 그림에 나머지 생을 바쳤다. 차산은 술을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차산 낭군이 술 취함을 조롱함'이라는 시는 미소를 짓게 한다. '비취 주렴의 향기와 호박 비녀/옥가락지 산호패물 값이 얼마인데/훔쳐다가 어느 집에 맡기고 술 마셨는지/철쭉꽃 앞에서 잔뜩 취하셨네요'. 유쾌한 시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20-08-06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엄마, 정말 괜찮은 거예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시국맞벌이 여동생네 두아이 맡은 엄마밥·공부 챙기랴 종일 실랑이 진빠져"모두가 못할짓" 한계 다다른 푸념나중에 이 시기를 어떻게 기억할까요사이 엄마는 밤 아홉 시만 되어도 잠이 든다. 잠 없는 분이라 열한 시쯤, 아니면 그 넘어라도 종종 내게 전화를 걸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는데 지금은 그럴 일이 없다.맞벌이 여동생네 아이들 둘을 보느라 진이 빠져 그렇다. 초등 3학년과 5학년. 사실 작년만 하더라도 아버지가 더 바빴다. 아이들의 등하교부터 요일별 학원 라이딩을 아버지가 도맡았기 때문이다.70대 중반이면 운전면허를 반납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며 걱정하는 이들도 많지만 나만 하더라도 아버지의 운전 실력을 아직은 걱정하지 않는다. 공고 자동차과 출신인 아버지는 33년 한 직장에서 근속하면서도 아주 오랫동안 운전학원 강사로 투잡을 뛰었던 사람이다. 아직도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장난감이 자동차인 줄로만 아는 분이다. 그런 분이 벌써 반 년이 넘도록 꼼짝없이 집에 묶여 있다. 아이들이 학교도, 학원도 가지 않는 데다 풀렸다 말았다 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아버지의 집 밖 출입은 애초에 금지당했다.며칠 전에는 이가 욱신거려 치과에 가려 했지만 엄마가 버럭 소리를 쳤단다."갔다가, 코로나라도 걸려오면 애들은? 애들은 어쩌라고요? 애들 엄마랑 애들 아빠 회사는?" 아버지는 아픈 이를 타이레놀로 겨우겨우 달랬단다. "야, 지금 얻다 대고 느이 아버지 걱정이야? 제일 죽을 맛인 사람은 나야! 이 나이에 내가 애들 둘이랑 느이 아버지까지 셋을 밥해 먹이느라 골병이 들어!"온라인 개학으로 큰 녀석은 아버지 컴퓨터를 차지했고 엄마의 스마트폰은 둘째 녀석 차지가 되었다더니, 엄마와 아버지가 불편할까 봐 아이들 각각에게 태블릿을 사주었단다. 그랬더니 이제는 하루종일 태블릿을 들고 게임만 하려드는 손주들을 말리느라 엄마와 아버지의 일이 더 늘었다. 손주들 사진으로 범벅이던 가족 단체 카톡방은 알 수 없는 암호로 가득하다.'엄마, 영어학원 온라인 클래스 비번은 4kjsi89uu예요', '엄마, 온라인 알림장 캡처해서 보낼 테니 확인 좀 해줘요'.여동생은 하루에도 몇 번씩 메시지를 적어놓지만 엄마가 과연 저걸 다 알아듣고 다 처리할 수 있을까, 멀리 사는 나는 머리통만 긁적일 뿐이다. 도대체 이 시국은 대한민국의 할머니들을 다 말려죽일 셈인가. 엄마, 정말 괜찮아요?그쯤 되는 실정이니 여섯 살 아이랑 온종일 방구석을 뒹구는 나 따위는 팔자 편한 처지라고 되레 욕이나 먹을 것 같아 입을 다물고 만다. 아이는 7개월 만에 드디어 유치원에 나가기 시작했지만 2주도 안 되어 방학을 맞고 말았다. 맙소사. 정말 모두가 못할 짓이다.식구들 밥 먹이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중한 줄 알고 살던 엄마도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다."야, 무슨 애가 밥을 그렇게 많이 먹냐? 나는 참말로 기가 차서. 밥상 치우고 뒤돌아서면 또 배가 고프대. 그래서 고구마 삶아주면 두 개, 세 개, 홀랑 집어먹고는 또 뭐 먹을 거 없냬. 하이고, 애들 엄마가 인터넷으로 장을 봐서 우리 집으로 보내는데 뭘 산처럼 우리 집에 쌓아놔도 이틀이면 하나도 없어. 정말이야, 농담이 아니라니까." 그러면 스피커폰으로 듣고 있던 아버지가 슬그머니 끼어든다. "나는 귤 한 개도 못 집어먹는다. 애들 먹을 거 없다고. 난 생선도 한 점 못 집어먹어. 진짜야."우리는 나중에 이 시기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어머, 정말 돌이켜보니 믿을 수 없어. 우리 어떻게 그렇게 집에 콩 처박혀 살 수 있었을까. 그러면서 까르르 웃게 될까. 지금이야 놀이터 뽀얗게 덮은 미세먼지 보며 한숨이나 쉬고 있는 처지지만./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20-07-30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불타의 그림자가 서린 불영사

대웅보전 떠받들고 있는 돌거북고찰 위엄 보여주는 듯 '믿음직'삼층석탑 등 불교건축물의 전형꽃과 열매가 함께 달린 석류나무삶과 죽음 또한 다르지 않다는 듯먼 곳 마다 안고 달려가면 어느 아름다운 영혼 하나 버선발로 달려나와 반겨줄 듯한 사찰 불영사(佛影寺), 대체 얼마 만에 이 길을 가는 것인지. 때가 때이니만큼 계절은 어느새 한여름을 치닫고 있으니, 폭염을 피해 사람들은 강으로 바다로 달려가기 바쁘지만 나는 여전히 숲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봄부터 나를 부르는 절이 있었으니 경북 울진 불영계곡에 자리한 이름하여 불타의 그림자가 서린 불영사다. 불영사는 강원도 최남단 나의 고향 원덕과 그리 멀지 않은 경북 울진에 자리한 절이어서 초등학교 때 석류굴과 함께 수학여행을 다녀온 곳이지만, 성년이 되어 고향을 떠나온 후엔 숲에 매료되어 금강송을 찾아 서너 번 갔던 사찰이다.이런 저런 인연이 있었지만 내가 특별히 불영사를 기억하는 이유는 딸만 내리 셋을 낳고 끝내 아들을 두지 못한 채 마흔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내 어머니 이춘란(李春蘭)의 영을 모신 절이라 불영사에 갈 때마다 곱디 고왔던 어머니의 품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일주문 곁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으면 약 1㎞ 내리막과 오르막을 번갈아 걸어야 한다. 어렸을 적엔 이 길이 정말 멀고 험했는데, 주변에 송림이 좋아선지 계곡과 명상의 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넓은 분지에 자리를 잡은 요사채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요사체 앞 채마밭에는 호박 가지 고추 등의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풀 하나 없이 어찌나 깔끔하게 잘 가꿔놓았는지 역시 비구니 사찰은 다르구나 했다. 내가 절을 찾아간 그날은 어느 망자의 천도제를 지내는 행사가 있어 그동안 나름 사찰기행을 한다고 했으나 이렇게 많은 스님을 한 자리에서 뵙는 건 처음인데 역시 절이 절다우려면 스님이 계셔야 하는 게 맞다.대웅보전을 향해 걷다보니 왼편(바깥)으로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고 그 옆 불영지에는 잠자는 연꽃이라는 별명을 가진 흰 수련과 노랑 어리연이 행자를 반긴다. 법영루에서 불영지를 바라보는 풍경은 그만이다. 불영지를 지나 나는 내 어머니 사모하는 마음으로 아담한 건물 대웅보전 앞에 섰다. 법당 안을 들여다보니 부처님 뒤편의 화려한 불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법당을 둘러보고 한낮의 폭염을 피해 설법전 돌계단에 앉아 단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삼층석탑 뒤로 대웅보전을 떠받들고 있는 듬직한 두 기의 돌거북은 고찰의 위엄을 보여주는 듯 믿음직스럽다.이 사찰은 불교건축물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당우 하나하나가 저마다 개성 있고 아름답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은 보물을 꼽으라면 역시 대웅보전 앞에 자리한 삼층석탑을 최우선에 둘 것이다.날씨는 더웠지만 사찰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맛이 지극하고 의미가 깊다. 마음 같아선 설법전 돌계단에 앉아 염불소리를 들으며 석탑을 한나절 바라보거나 법당 안에 모신 불화를 찬찬히 감상하고도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시간도 분위기도 아니다. 의상전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석류나무에 꽃과 열매가 함께 달린 걸 봤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불영사는 여느 사찰처럼 임진왜란 등 나라에 환난이 있을 때마다 불에 타 여러 번 증·개축한 기록을 갖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730호인 응진전을 비롯해 극락전, 대웅보전, 명부전, 조사전, 칠성각, 범종각, 산신각, 황화당, 설선당, 응향각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인 불영사삼층석탑을 비롯하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2호인 불영사부도, 대웅전 축대 밑에 석귀, 배례석, 불영사사적비 등이 있다.사찰을 나와 바다를 보겠다고 왕피천을 따라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으로 향한다. 망양정 주변의 어촌마을은 예전과 다른 변화를 보였지만 동해는 여전히 푸르고 힘이 넘쳤다. 망양정을 건너에 두고 강과 바다가 만나는 경계점에 차를 세우고 왕피천 하류를 살핀다. 불영계곡에서 흘러들어 왕피천을 경유, 동해로 합수하는 이곳, 건너 모래밭에선 많은 갈매기들이 자유롭게 시간을 즐기고 있다. 저들에게도 내게도 저녁은 차별 없이 올 것이다./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20-07-23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몸이 없는 영혼은 거짓이다

고흐 작품 컴퓨터 집어넣고 프린트진품과 닮았다고 해도 인정할수 없어 창작품은 '작업' 거쳐야 비로소 완성악단 지휘나 대하소설 집필도…훌륭한 예술 연마 이시대도 같다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지만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그 제목을 '사랑의 예술'이라 번역한 적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사랑에 빠진다'고 말하는 바처럼 사랑은 그렇게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능동적인 행위이며,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기술'이기에 다양한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사랑하기(loving)'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천적 연마가 필요한 '기술'이라는 것이다.그건 그렇고, 왜 'art'라는 한 단어에 '기술'과 '예술'의 두 뜻이 동시에 들어가게 된 걸까. 둘은 별개일까 아니면 겹칠까. 원래 하나인데 영어와 한국어의 틈에서 빚어진 오해일까. 이와 관련해 최근에 예술과 기술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볼 만한 흥미로운 사건이 하나 있었다. 예전에 유명 가수였던 어떤 이가 언제부터인가 화가로 변신해 성공했고, 그림을 상당히 비싼 값에 팔았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가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만 내고 실제 '작업'은 일당을 받는 대리 작가에게 시켰다는 것이다. 이 그림을 그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약 4년의 법정 다툼 끝에 대법원은 결국 작가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작가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조수가 작품을 만드는 것은 현대 예술의 관행"이라고 변명했다. 이 주장을 지지하는 이론가들도 꽤 있어, 소위 '개념예술'을 근거로 제시하곤 한다. 유명한 예로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의 경우, 잘 알다시피 기성 제품인 변기를 갤러리로 가져와 전시했을 뿐이다. 요즘 최고가를 달리는 작가 제프 쿤스의 '풍선 개' 같은 경우는, 우리 눈에는 그저 시중에서 파는 아이들 장난감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현대의 많은 설치미술은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특정한 장소에 그냥 가져다 놓는 것으로 작품을 '재생산'함으로써 완성한다. 이런 예는 끝이 없다.이런 게 예술이라면 개나 소나 다 예술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예술이란 정말 무엇일까? 참 난감한 질문이다. 나는 이 질문을 "작가란 무엇인가?"로 바꾸면 답이 조금 수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대상을 해석하는 자이며, 동시에 그것을 수용자에게 구체적 형태로 전달하는 주체이다. 이러한 정의는 예술의 형식이 달라진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체가 개입하지 않은 생산품은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반 고흐의 작품을 코드화하여 컴퓨터에 집어넣고 프로그램으로 변형한 뒤 프린트한 것을, 겉보기에 아무리 고흐의 진품과 닮았다고 해도, 고흐의 작품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과 같다.주체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몸'이라는 특권과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창작품은 아이디어뿐 아니라 몸을 통한 '작업'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머리에 든 개념만으로는 감상자가 수용할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는다. 예컨대, 베토벤의 '비창'을 희극적으로 해석할 기막힌 발상이 떠올랐다 해도, 실제 악기로 재현하지 않는 한 음악이라 할 수 없다. 한국 근현대 백 년의 공간에서 3대에 걸친 수난사를 머리에 짜냈다 해서, 그게 저절로 스무 권짜리 대하소설이 되지 않는다. 악단을 지휘하려면 긴 시간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하고, 대하소설을 쓰려면 책상에 쭈그리고 앉아 수십만 글자를 써야 한다.앞의 '개념미술'도 오브제를 '옮기고 조정하고 배치할' 때, 즉 주체가 개입할 때 비로소 작품이 된다. 내 생각으론, 그 전직 가수가 가게에서 사 온 화투를 직접 캔버스에 붙이는 방식으로 작업했더라면 나름 새로운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몸과 분리된 예술이란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 앞서 'art'가 예술인지 기술인지 헛갈렸다지만, 사실 둘은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이다. '완당전집'에 보면 "칠십 평생에 벼루 열 개를 구멍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닳게 했다"는 구절이 있다. 훌륭한 예술은 이런 수련과 연마를 거쳐야 나오는 법, 지금 이 시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20-07-16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밥 좀 사주죠"

마음에 남은 드라마 女주인공 대사대기업 부장·파견직 직원의 '우정'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음 보여줘누군가에 '선한 영향력' 줄수있다면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인생'이다"밥 좀 사주죠."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대사다. 여자 주인공 지안(아이유 분)이 남자 주인공 동훈(이선균 분)에게 말 그대로 툭, 던지는 짧은 대사. 명대사가 유난히 많은 것으로 유명한 이 드라마 속 대사 중에서 마음에 가장 오래 남았던 말이기도 하다.대기업 부장인 동훈은 처음 함께 밥을 먹으면서 파견직인 지안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게 된다. 두 주인공들만 밥을 먹는 건 아니다. 드라마는 상당 부분을 할애해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밥상을 차리고 치우며 밥이나 술을 먹자고 권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조기축구회가 활발하고 동네만의 건배사가 따로 있는 동훈의 동네 사람들, 매일같이 만나는 삼형제들은 만나면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신다. 밥 한 번 먹기도 쉽지 않은 데면데면한 사이이던 둘은 서로의 상처를 내보이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치유하고 치유받아가면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는 사이가 되어간다. 남녀간이지만 사랑은 아니다. 연민이나 동정도 아니고, 뭐라고 규정할 수 없지만 친구보다 가까운 관계로 발전하는 느낌이다. 그렇게 동훈은 계약직도 아닌 파견직 직원인 지안에게 신경써준 최초의 사람이 되고, 외롭고 힘들기만 하던 지안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그렇게 두 사람은 만남을 이어간다. 끈끈하다고 할 수 없는 사이지만, 감정의 농도는 꽤 진하다. 두 사람의 첫 건배, 서로를 마주보고 짓던 첫 웃음, 늘 우울하기만 했던 지안의 첫 미소는 그래서 감동적이었다. 거창한 자리도 아니고 그저 동네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나눴을 뿐인데 두 사람은 그 순간 정말 편안하고 좋아 보였다. 이성간의 사랑이 아니어도 그렇게 좋을 수 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참 다양할 수 있구나 싶은 장면이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누군가는 어떤 식으로든 마음에 남게 된다. "어디서 어떻게 만나든 너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동훈의 마음이 좋아보였던 것은 이런 말을 하고 헤어지기 쉽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 인생이 네 인생보다 낫지 않고, 너 불쌍해서 사주는 거 아니고 고마워서 사주는 거야"라고 말하는 부장이라니, 판타지에 가깝지 않은가? 처음에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드라마를 보다 보니 적어도 이 드라마 속에서만큼은 충분히 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지안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동네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와서 도와주고 자리를 함께해주며 말없이 지안을 위로하는 모습도 그랬다. 코로나19로 조문조차 조심스러운 요즘이라 더 좋아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사업 실패로 돈 없이 사는 동훈의 큰형은 화환 하나 없던 썰렁한 빈소에 모아둔 비상금을 탈탈 털어 화환을 채운다. 비용 대비 효율성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행위다. 어차피 화환은 장례식에만 필요하고 가져갈 수도 없는데 그 하루 이틀을 위해 저 돈을 쓴다고? 게다가 지안은 내가 도움을 주면 줬지 나에게 뭘 해줄만한 사람도 아니다. 천만원이라는 거금을 쓰고도 "내 생에 가장 의미있는 돈을 쓰게 해줘서 고맙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이라니! '동네도 망가진 것 같고 사람들도 다 망가진 거 같은데 전혀 불행해보이지 않는' 동훈의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망해도 괜찮은 거구나,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마지막회, 서로의 길을 가게 된 동훈과 지안은 정말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눈다. 동훈은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를 묻고 지안은 말 그대로 편안하게 웃는다. 단 한 사람의 관심과 애정이, 누군가의 인생을 전혀 다르게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제서야 이름대로 편안함(安)에 이른(至) 지안을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은 고작 3개월 한 회사에서 일한 것뿐이니 상사라고 하기도 애매한, 뭐라 규정할 수 없는 관계에 가깝다. 하지만 오래 함께했다고 좋은 것이 아니며, 짧더라도 긴 여운으로 남아있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10년 후든 20년 후든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아는 척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가는 것, "밥 좀 사주죠"라고 이야기하거나 나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면 좋겠지만 꼭 누군가와 인연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드라마 속 동훈처럼, 누군가의 인생에 '선한 영향력'을 보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인생은 꽤 괜찮은 인생일 테니까./정지은 문화평론가정지은 문화평론가

2020-07-09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죽향의 짧은 만남 긴 이별

대동강 연관정에서 처음만난 김립아버지 소식에 함께 찾아나섰지만이미 세상떠난이 거처서 대성통곡평양으로 돌아와 강나루에 이르러울먹이며 남긴 詩한수 이후 못만나지금쯤 대동강은 짙은 녹색으로 물들어 유유히 흘러갈 것이다. 대동강에는 시인과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부벽루나 을밀대, 연관정 같은 명소가 줄지어 있다. 연관정은 절벽 위에 날아갈 듯 솟아 있는 정자다. 성종 때 평안감사 허굉이 지은 것으로 규모가 크고 건축미가 뛰어난 것이 특색이다.연관정에서 굽어보는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신비한 은종을 감추고 있다는 백은탄이 건너다 보이고 능라도가 대동강을 가른다. 대동강에는 수많은 놀잇배가 떠 있었을 것이다. 여러 시인들이 대동강에 와서 사랑과 이별을 강물에 얹어 노래했다. 대동강은 사랑 앓는 시인들의 영원한 은유였던 것이다. 조의겸은 '사월이라 첫 여름 꽃은 이미 져버리고/주렴 바깥 훈풍에 제비가 날아드네/언덕 위 푸른 풀에 강물도 푸르니/이즈음 어느 누가 헤어지고 애태울꼬'라고 노래했다.김립(병연, 삿갓 1807~1863)은 '깎아지른 절벽 위엔 높은 문이 서 있고/만경창파 대동강엔 푸른 물결 굽이치네/지나가는 봄 나그네 말술에 취했는데/천만 가지 수양버들 십리 강촌에 늘어졌구나/외로운 따오기 노을빛 끼고 날아들고/짝지은 갈매기 눈발처럼 휘나르네/물결 위에 정자 있고 정자 위에 내가 있어/초저녁에 앉았는데 밤이 깊자 달이 뜨네'라고 연관정을 노래했다.진달래 만개한 봄이었다. 연관정 옆에서 퇴기 10여 명이 화전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던 김립은 고소한 기름 냄새에 발길을 멈추었다. 화전 몇 장과 술 몇 잔을 얻어먹고 일어서려는데, 그를 알아본 퇴기들이 자작시를 내밀었다. 시답지 않은 시를 훑어보던 중, 눈에 확 띄는 시 한편을 읽게 되었다. 죽향의 시 '강촌의 저녁 풍경'이었다. '실버들 천만 가지 문 앞에 휘늘어져/구름인양 눈을 가려 마을을 볼 수 없네/목동의 피리 소리 그윽이 들리는데/보슬비 내리는 강촌에 날이 저무네.'로 끝나는 시였다. 이 시의 화답시가 앞의 김립의 시인데 그걸 아는 사람은 죽향 뿐이었다. 죽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퇴기라고는 하지만 서른을 막 넘긴, 곱고 순수해서 매력 있는 여인이었다.죽향은 이튿날 김립이 머물고 있는 영명사로 찾아왔다. 그녀는 이미 영명사 주지 벽암대사가 불가에 입문시키고 일영이라는 법명을 준 불자였다. 그녀는 80이 넘은 아버지, 예동철 옹을 찾아야 한다며 눈물을 지었다. 김립이 아는 인물이었다. 예 옹은 평양서 50리쯤 떨어진 중화고을 성인주막에 살았었다.그 밤 김립은 죽향의 집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고 날이 밝자 죽향을 앞세워 중화고을로 향했다. 김립은 걸음을 옮기며 즉흥시를 읊었다. '봄은 갔는데 늙으신 몸 어떠하실까/방에 앉아 나들이도 안 하셨다니/두견새야 뭐가 그리워 애타게 우느냐/울음소리에 못다 핀 꽃 떨어질세라'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시를 감상하고 있던 죽향은 아버지를 위해 부르는 노래라는 걸 알고 서러운 마음을 담아 시 한 편을 읊는다. '간절히 그리운 임은 산속에 계시건만/소식 모르는지 너무도 오래였어요/오늘은 오솔길 밟으며 찾아오건만/석양에 사립문 닫힌 집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녀는 시를 읊고 나서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불길한 예감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찾아간 성인주막에는 예 옹의 지방이 놓여있을 뿐,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죽향은 대성통곡을 했다. 김립은 그녀를 부축하고 평양으로 돌아왔다. 대동강 나루에 이르러 죽향은 김립에게 "언제 또 뵈올 수 있을는지요, 꼭 다시 뵈옵고 모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울먹이며 시 한 수를 남긴다. '대동강에서 정든 님과 헤어지는데/천만가닥 실버들도 잡아매지 못하네요/눈물 어린 눈으로 눈물 젖은 눈 바라보니/님도 애가 타시는가 나도 애가 끊깁니다' 김립은 차마 죽향의 눈빛을 바로 보지 못하고 화답시를 읊는다. '꾀꼴새는 버드나무 숲에서 울어 대고/나는 누각에 기대어 풀밭만 바라보노라/그대 보내고 나 홀로 언덕에 남으면/달이 질 때 설움을 어이 달래리' 김립은 목이 메어 더는 노래하지 못한다. 그 후 죽향은 김립을 만나지 못했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20-07-02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아무도 증명해주진 못하겠지만

옛 애인과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정말 여전해" 이건 무슨 소리람?지금도 난 골뱅이소면 비비지 않아매일 강남까지 출근시켰다니…15년도 더 지난 이야기에 웃음꽃15년도 지난 일이다. 그러니 가물가물한 것이 당연한가? 나는 어렸고 자신만만했으며 낙천적이고 또 예의발랐다. 아마도 겁나는 일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우아한 취미를 가진 여자가 되고 싶어서 예쁜 접시를 모으는 여자가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요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접시를 사봐야 수납장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일 뿐 내 집에 드나드는 손님들이 그 접시들을 볼 일도, 나조차도 그걸 볼 일이 없었다. 그래서 시시했다. 방향을 바꾸었다. 목공소에 전화를 걸었고 머그잔 진열장을 주문했다. 접시야 수납장 신세지만 머그잔 정도라면 손님들 보기 예쁘라고 거실 한편에 쭉 진열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 달에 한 개씩 예쁜 머그잔을 골랐다. 내 삼십대 초반은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었다.얼마 전, 15년도 전에 만났던 옛 애인과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이제 나이를 먹어 불편할 것도 없이, 무람없이 어깨를 치며 인사했다. 생맥주가 날라졌고 치킨과 골뱅이소면이 테이블마다 놓였다. 그는 젓가락을 들어 골뱅이무침과 국수를 비비다가 나를 보았다."여전해. 정말 여전해." 내가 물었다. "뭐가?", "내가 열 번을 비비면 네가 한 번은 비벼야지. 정말 한 번을 안 비벼. 맨날 옆에서 웃고만 있어.", "내가?" 나는 까르르 웃었다. 농담인 줄 알았다. 나는 예의바른 사람이란 말야. 그랬을 리 없어. 아마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또 말한다. "말도 마. 기억나? 아침마다 일산에서 강남까지 너 출근시키느라 나는 매일 지각한 거?" 이건 또 무슨 소리람?광화문에 살던 15년 전의 나는 일산으로 집을 옮겼다. 김치냉장고와 도마 살균기가 딸린 오피스텔이 퍽 마음에 들었고 길쭉한 아일랜드 식탁 앞에 빨갛고 검은 긴 다리 의자를 들여놓으며 혼자 헤벌쭉 웃었다. 그런데 곧 일이 닥쳤다. 강남역에 위치한 회사로 옮기게 된 것이었다. 강남역이라니. 꼬박꼬박 왕복 네 시간씩을 길거리에 뿌리고 다니게 된 것이었다. 기가 막혔지만 어쩔 수 없었고 나는 매일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녹초가 되고 말았다. 가끔, 아주 가끔 그가 출근길에 나를 태워 합정역에다 몇 번 떨구어준 적은 있었는데. 그게 다인데."뭐라고? 합정역에 너를 몇 번 떨구어줬다고? 그것도 가끔?" 그는 기겁을 했다. "힘들다고 매일 징징거려서 나는 아침마다 너희 집에 들렀다고. 너를 강남역까지 태워다주고 그다음에 출근을 했다고! 너 그때 우리 회사가 어디였는지는 기억나? 마포였어! 마포! 나는 매일 지각이었어!" 그 말에 주변 사람들이 와아, 웃음을 터트렸지만 나만 웃지 못했다. 아닌데. 그런 기억이 없는데. 아……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던 것 같기는 해. 그런데, 설마 일산에서 강남역까지 매일 데려다줬을 리가! 그는 약이 올라 팔짝팔짝 뛰었다. "8개월이었다고. 자그마치 8개월 동안 그 짓을 했다고!" 8개월이라는 말을 듣자 나도 긴가민가해졌다. 내가 일산에서 강남역까지 출퇴근을 한 기간이 진짜 8개월이었기 때문이었다.8개월 만에 나는 일산 집을 내놓고 강남역으로 이사를 했다. 도어 투 도어,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서 딱 5분이었다. 그러고는 얼마 안 가 그와는 헤어졌다. 15년도 더 지나 이제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웃었다. 골뱅이소면을 단 한 번도 비비지 않았다던 나, 지각일 걸 빤히 알면서도 기어이 강남역까지 데려다주게 만들었다던 나, 새로 한 머리와 새로 산 지갑을 알아봐주지 않는다고 며칠을 토라졌다던 나. 그 기억이 낯설고도 재미나 나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예의바르지 않았나 봐. 나는 소면 속에 파묻힌 골뱅이 살을 골라먹으며 생각했다. 우아하게 접시를 모으는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실패했고 머그잔 콜렉터라도 되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그 많은 칸을 반도 채우지 못하고 진열장은 내다버렸다. 머그잔은 한 달에 두어 개씩 깨뜨려 급기야 이젠 없다. 자신만만했다던 그 삼십대 초반, 나는 정말 자신만만했을까? 사랑은 했었을까? 아무도 증언해주지 못할 과거의 시간들. 하지만 이러한들 저러한들 아무 상관없이 그저 우습기만 한 걸 보니 내가 낙천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듯./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20-06-25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내장사, 피안으로 이끄는 독경소리

백제 무왕때 전북 정읍에 창건 사찰단풍나무 108그루 자리한 숲길 유명대웅보전 앞 통나무의자 잠시 빌려목탁·독경소리 아름다운 진언 위안내마음에 새긴 또하나의 장소된 셈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마치 어머니의 품 안에서 듣던 결 고운 자장가처럼 피안으로 인도하는 듯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독경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숨을 죽이고 침을 꼴깍 삼키면서 소리에 젖어들었다. 독경은 대웅보전이 가까워질수록 귀를 뚫고 마음으로 들어가 영혼까지 전달되는 듯 차고 맑다. 일정한 리듬으로 반복되는 목탁소리와 독경 소리, 스님의 목소리엔 음의 고저나 리듬에 기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무심한 듯 단정하게 반복되는 나무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아미타'라는 부처님과 '관세음'이라는 보살은 인간을 위해 가장 많은 헌신을 하신 분으로 '아미타' 부처님의 상이 '아미타불'이고, '관세음' 보살님의 상이 '관세음보살'이다). 그것도 녹음된 소리가 아니라 바로 눈앞의 법당 안에서 라이브로 들려주는 스님이 계시니 사찰을 찾아간 보람은 물론 여간 위안이 되는 게 아니었다.이 평온하고 아름다운 게송을 나는 얼마 만에 들어보는 것일까. 물론 내장사는 비구니 사찰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대웅보전 법당에서 독경을 읊는 목소리는 앳되고 어려 아직 변성기를 거치지 않는 듯 아무리 들어도 비구인지 비구니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내가 지금껏 들어온 어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도 저렇게 음의 고저를 초월하진 않았다. 그것은 마치 무(無)와 공(空)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했다면 상상이 되시려나.우리에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한다는 의미)이 있다면 티베트 같은 불국토에선 어딜 가나 흘러나오는 옴마니 받메훔(온 우주에 지혜와 자비가 충만하여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그대로 실현되라는 의미)이 있다. 진언이란, 참 자아에 이르는 의미도 중요하겠으나 같은 음절로 감정의 흔들림 없이 반복적인 소리를 내거나 들음으로써 속가의 중생들이 무아(無我)에 이를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내장사는 단풍나무 숲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입구 멀찍이 차를 세우고 단풍나무가 도열해 있는 숲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단풍이라고 반드시 붉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아기가 손가락을 활짝 편 모양의 단풍나무 이파리는 연두에서 초록으로 건너가는 6월도 사랑스러움으로 치자면 가을 단풍 못지않다. 한참을 걸어 대웅보전 앞마당 늙은 단풍나무 밑에 서니 누군가 손으로 깎아 공양한 못난이 통나무 의자 4개가 나를 반긴다. 그 중 하나를 잠시 빌린 것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의 아름다운 진언을 듣기 위해서였으니, 폭염을 잊을 만큼 아름다운 독경을 한 시간 이상 듣고도 질리지 않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래서 진언일까. 주변 산세나 풍광에 비해 사찰은 그다지 웅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어쩌면 내 마음을 움직인 것도 바로 그 점인데 뜻밖에 아름다운 진언을 듣게 됨으로써 내장사는 전날 방문한 선운사와 내소사를 잠시 잊을 만큼 내 마음에 새긴 또 하나의 사찰이 된 셈이다.전북 정읍에 소재한 내장사는 호남의 으뜸 산으로 알려진 내장산의 정기를 받아 백제 무왕 때 창건된 사찰이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찰이 그러하듯 한국전쟁 때 전소되어 예전의 그 화려함을 대할 순 없지만 108그루의 단풍나무가 자리하는 단풍나무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그 길이 피안으로 가는 길임을 알게 된다. 일주문에서 사찰 뒤 서래봉까지의 비경은 언제 봐도 스케일부터 다르다. 중생의 번뇌와 성찰을 상징하는 숲도 아름답지만 이 사찰의 묘미는 사계절이 모두 특색이 있고 아름답다는 것. 일주문에서 북쪽으로 약수터를 지나 산길을 오르면 과거 벽련암지가 있던 곳이 옛 내장사의 자리라 한다. 산중의 산 내장산 내장사 경내에 남아있는 정혜루기에 의하면 남원의 지리산 등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의 하나로 손꼽힌다. 폭포가 있고 깊은 계곡과 비자림, 굴거리나무군락지 등 천연기념물을 포함해 아름다운 숲은 물론 숲의 주를 이루는 단풍나무의 유명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20-06-18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언택트'와 '비접촉'

엉터리영어 알면서도 만든 'untact' 일종의 '스노비즘' 아닐까 의심 '비대면' 보다 '비접촉'이 낫다언어는 이데올로기 담는 그릇일단 만들어지면 고치기 어려워우리 희망과 달리 코로나19 사태가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다. 겨울에 시작한 전염병이 온 봄을 지나 여름으로 접어든 지금도 기세가 여전하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잘 대처하여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저개발 국가에서는 계속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오늘 뉴스를 들으니 인도에서는 매일 일만 명이나 되는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 불행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더욱더 안타깝다. 아마도 백신이 나와 손쉽게 치료할 날이 와야 좀 가라앉지 않을까 염려된다.불과 반년 만에 이 세상은 아주 많이 달라졌다. 어떤 이는 "이제 인류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극단적으로 짚기도 한다.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 중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 핵심은, 지금까지 사람 사이의 소통과 접촉이 미덕이라 믿었던 믿음을 반대 방향으로 틀어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즉 얼굴을 대고 만나는 접촉이 이제는 불편한 것이 되었다. 물론 소통과 연결은 여전히 필요하기에 접촉하지 않고도 만나는 방법들을 열심히 찾고 있다. 접촉 없이 물건을 사고, 접촉 없이 직장을 다니고, 접촉 없이 사랑하는 것, 이런 트렌드가 이제 우리 일상을 지배하게 되었다.이 비접촉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분석하고 진단하고 있다. 그 핵심 키워드로 '언택트'라는 용어가 급부상하였는데, 오늘은 바로 이 용어의 타당성에 대해 한번 따져보고 싶다. 짐작하다시피 '언택트'는 접촉을 뜻하는 '콘택트(contact)'에 부정접두사 'un-'을 붙인 것, 즉 'uncontact'를 축약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untact'는 물론 'uncontact'라는 단어조차 사전에 나오지 않는, 말하자면 '콩글리시'라는 사실이다. 자료를 조사해보니 '언택트'는 2017년에 김난도 교수가 중심이 된 '트렌드코리아연구팀'이 만든 신조어이며, 그들 자신도 이게 엉터리 영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언택트'에 해당하는 정확한 영어는, 명사로는 'non-contact'와 접촉이 전혀 없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zero contact'라는 표현을 쓰고, 형용사로는 'contactless'라 쓴다. 이 지점에서 고민거리가 생겨난다. '언택트'가 짧고 강렬한 느낌이 들지만, 꼭 영어를 그것도 잘못된 영어를 일부러 만들어 써야 하나? 나는 언어 국수주의자도 아니고 근본주의자도 아니지만, 이런 식의 '창의적' 조어에는 찬성하고 싶지 않다. 한국에서만 통하는 영어는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니다. 영어 비슷하게 만들면 좀 멋있어 보일지 모른다는, 일종의 '스노비즘(snobbism)'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근래 우리 언론에서는 '언택트'에 해당하는 '비대면'이라는 말도 사용하고 있다. '비대면'이 어떤 뜻인지는 알겠는데, 문제는 '얼굴'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사람 사이의 접촉으로 한정될 수가 있다. 근래 연결이 필요 없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의 '비대면적' 삶을 도와주고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에 저장된 앱으로 신용카드 스캔 없이 돈을 지불할 수 있다. 이것을 '비대면 결제'라고 하면 이상하다. 또 영어의 'contactless'에 해당하는 형용사적 서술어로 '비대면적이다'라고 하면 상당히 어색한 표현이 된다. 사람과 도구에 모두 사용 가능하고, 문맥의 연결이 편하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비대면'보다는 '비접촉'이 낫다고 본다. '대면'보다 '접촉'이 우리에게 친근하고 활용성이 너그럽다.물론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분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언어는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담는 그릇이어서 일단 만들어지면 고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잘못이 발견되면 빨리 수정해야 한다. 잘 알다시피 '핸드폰'은 보편화한 콩글리시, 이제와서 우리말 '휴대전화'로만 부르자거나, 정확한 영어인 '셀룰러폰'으로 쓰자고 해봐야 소용없다.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한번 거꾸로 걸려 익숙해진 그림은 되돌려 걸어 놓아도 바른 그림이 되지 않는다. 단지 외래어 용어만이 아니다. 모든 제도와 법과 관습도 잘못 굳어지기 전에 곧바로 돌려놔야 한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20-06-11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슬기로운 주거생활을 위하여

집에 머물라는 정부의 안전 조치주거여건 열악 가구엔 삶의 위협대면 서비스 비중 높은 저소득층일자리 잃기 쉬워 퇴거위기 노출1인 가구 일반적 형태로 인정해야마스크가 얼굴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요즘, 우연히 '코로나 시대, 사회적 거리두기 가능 여부에 따른 주거 상황 양극화 경로'라는 표를 접했는데 상황이 꽤 심각한 수준이다.국토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한 경우에는 재택근무를 통해 소득 유지가 가능하고, 안전과 워라밸이 유지되면서 주거 면적 수요가 증가한다. 감염병 위기 상황이 '슬기로운 주거 생활'을 가능케 하는 역설이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재택근무를 할 수 없어 소득이 감소하고 임대료를 체납하다가 퇴거 위기에 내몰려 노숙에까지 이르게 된다. 극단적인 비교일 수 있지만, 비대면이 대세가 되고 있는 시대에도 양극화는 어김없이, 오히려 심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재택 근무를 잠시나마 경험해본 결과 집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막상 TV를 보고 쉬는 공간이던 거실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업무를 하려니 영 일하는 맛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출퇴근을 하지 않고도 집에서 상당 부분의 업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꽤 괜찮은 조건에 속했다. 혼자 사는 동료는 집에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재택근무 기간 동안 부모님 집으로 거주지를 옮겨야 했다. 장기간 재택근무를 경험한 20대 직장인은 "처음에는 좋아서 신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빨리 회사에 나오고 싶었다"면서 "좁은 원룸에 하루 종일 혼자 앉아있으려니 힘들고 지치는 것은 물론이고, 어느 순간부터 집이 답답하고 힘들어졌다"는 재택근무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이 직장인의 하소연은 재택 근무를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일 수 있지만, 적절한 휴식과 이완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의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남의 집에 놀러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 생길 정도로 누군가에게 집은 취향의 전시장이자 재충전의 공간이지만 주거 환경이 취약한 많은 사람들에게 집은 편안한 쉼터가 아니라 오히려 더 위험하고 힘든 공간이다. "자기 집에 머물라"는 정부 조치가 주거 여건이 열악한 가구에게는 안전의 확보가 아닌 삶의 위협으로 작용하기도 한다.지금과 같은 감염병 상시 위기 상황에서 1인 가구의 위험성과 취약성은 더 가중된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었다고 하지만 불안정 직업군에 더 많이 종사하고, 최저 주거기준 가구가 많은 1인 가구일수록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대면 서비스가 필수적인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은 저소득 임차가구일수록 일자리를 잃기 쉽기 때문에 소득 하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이는 임대료 체불과 연체로 인한 퇴거 위기에 노출된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 유행 시기에도 기저질환자 외에 주거 과밀가구, 주거 기준 미달 가구, 공공임대주택 거주자가 고위험군이었다고 하지 않는가.국토연구원 조사 결과 직업군, 점유형태, 보증금 규모를 고려할 때 6개월 내에 주거 위기에 노출될 1인 가구의 규모는 41만6천 가구에 달한다. 특히 1인 가구의 거의 절반이 보증부 월세 또는 순수 월세 거주자인 것을 감안하면 위험도는 더 높아진다. 임대료 동결 및 납부 유예, 임대료 연체에 따른 퇴거 금지, 연체 가구 추적 및 긴급 임대료 지원, 공과금 납부 유예 및 기본 서비스 지속 공급, 공공임대주택의 사회안전망 기능 강화 등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1인 가구를 일반적인 가구 형태로 인정하는 발상의 전환이 시작일 것이다.'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한 집단과 불가능한 집단 간의 괴리가 발생하고 더 커지는 요즘, 이것이 주거 정책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실 주거 정책은 보건 정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주거 정책의 혁신적 변화는 콜레라 발병 등 위생, 보건상의 위험과 직접 관련이 있어 왔다. 당장 역대급 폭염이 예고된 이번 여름, 무더위 쉼터 등 공공 영역에서 최소한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공간들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 감염병의 발병을 주거 정책을 진일보시키는 계기로, 모든 이가 '슬기로운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때다./정지은 문화평론가정지은 문화평론가

2020-06-04 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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