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

 

[풍경이 있는 에세이]메리골드와 칠장사의 가을

사찰의 고요함과 어울리지 않게정열적으로 마당 가득한 서양꽃아무리 매혹적으로 다가와도오래전 스승과 경내 거닐며 나눴던 엄숙하고 따듯한 순간 어찌 잊으랴문을 나서자 바람이 내 손을 잡아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매번 그토록 그리워하는 칠장사(七長寺)는 가을에만 가게 되는지, 칠장사로 가는 길목엔 지친 초록이 누렇게 바래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산도 들판도 고개를 숙인 벼도 황금색을 띠고 가을꽃들은 또 얼마나 형형색색 찬란한지.국도를 따라 칠장사를 찾아가는 길인데 닿고 보니 팜랜드다. 이참에 꽃구경이나 하고 갈까 하여 농장 안으로 들어서니 사방천지가 코스모스와 메리골드(금잔화)다. 신이 좋아하는 꽃이라 그런가, 메리골드는 늘 저토록 정열적이어서 마치 플라멩코를 추는 무희를 연상하게 한다. 메리골드의 꽃말은 '가엾은 애정', '이별의 슬픔',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는데 내가 보기엔 모두가 붉어 치정 같기만 하다. 계절이 계절이니 만큼 편지도 쓰고 싶고 꽃 앞에서 그대에게 다 주고 싶었는데 빈손이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 허탈감이 밀려온다. 팜랜드에서 꽃구경 맘껏 하고 구불구불한 국도를 따라 칠장사로 향한다. 지난해도 딱 이맘때 나는 이 길을 따라 칠장사에 갔고 발길 닿는 곳마다 코스모스와 금잔화가 나를 반겼다. 코스모스가 인간이 좋아하는 꽃이라면 금잔화는 신이 좋아하는 꽃일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인도를 여행한 후에 생겨난 믿음이다. 인도에선 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메리골드를 꼽는다. 가난뱅이나 부자나 꽃을 바치는 나라, 그들은 아침마다 신전에 나가 기도를 드릴 때 자신이 먹을 빵보다 꽃을 먼저 사고 그 꽃을 신에게 바친다. 나의 기쁨보다는 당신을 기쁘게 하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기도가 되고 소망이 되는 그들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칠현산자락 경사면에 자리를 잡은 고찰 칠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로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초기 혜소국사가 현재의 비각 자리 백련암에서 수도할 때 찾아왔던 7명의 악인을 교화시켜 도를 깨달았다 하여 칠현이 되었고 그리하여 칠현산이다.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1014년 이 절을 크게 중창, 그 후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재 당우로는 대웅전, 원통전, 명부전, 응향각, 천왕문,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으며 웅장한 규모, 우아한 조각과 채색미가 돋보인다. 천왕문 내의 소조사천왕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다. 이 밖에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인목대비의 친필 족자를 비롯하여 당간지주와 많은 부도군이 있다. 이 중 족자는 인목대비가 이 절에 와서 수양할 때 쓴 친필로 전해진다. 또한, 절 입구에 있는 14기의 부도와 절 뒤편의 많은 부도탑 철당간지주 등은 이 절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부속 암자로 명적암, 극락암, 백련암이 있다. 가을 오후,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칠장사는 고요에 묻히기 시작한다. 지금은 지상에 아니 계시는 스승님께서 나를 칠장사로 안내한 어느 청춘의 가을 오후는 오늘처럼 하늘이 높고 파랬다. 그날 대웅전 앞에서 내게 주신 말씀 역시 삶과 문학(詩)에 대한 것이었는데, 사랑이든 문학이든 아름답게 미칠 수 있어야 한다 하셨다. 하면 나는 스승님의 말씀대로 미친 듯 살았던가. 아니었던가. 아이들 단체 소풍으로 소란했던 팜랜드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칠장사 경내를 느리게 걷다 보니 비로소 이곳이 내 자린가 싶은 안온함이 밀려들었다. 해는 사라졌지만 사찰의 고요와 그 고요와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마당 가득한 서양 꽃 메리골드, 훗날 안성의 이 가을을 떠올리면 메리골드가 먼저 생각날 것만 같다. 그러나 메리골드가 아무리 매혹적이어도 오래전 스승과 경내를 거닐며 나눈 그 엄숙하고 따듯한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가을이라는 또 한 번의 축제, 스승은 떠나고 메리골드 가득한 고찰에 잠시 불시착한 나만이 지상의 피안을 걷고 또 걷는 늦은 오후./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18-09-20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학교야, 지금 뭐하니?

지금 교육문제 참담하게 망가져입시제도만 고친다고 해결 안돼학교 시스템 변하기 위해서는먼저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학생들 필요한게 뭔지 고민할 때얼마 전 인터넷에 떠도는 동영상 하나를 보다 경악했다. 어느 고등학교 교실인 듯한데, 학생 서너 명이 빗자루로 선생님의 팔을 때리고 머리에 손찌검하는 장면이었다. 수업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고, 선생님은 무기력하게 피하기만 했다. 주변 여러 학생이 웃으며 방관하거나 즐기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그 교실에 있던 어떤 학생이 휴대폰으로 몰래 촬영한 것이 유출된 듯했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하다 못해, 정말 참담한 심정을 거둘 수 없었다. 이 글을 쓰려고 다시 자료를 검색해보니 TV에서도 이미 뉴스로 다루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시청하여 인지하고 있을 듯하다. 어쩌다 우리 학교가, 나아가 우리 교육이 이렇게 망가졌는가?지난번 중폭의 개각이 있었을 때 교육부 장관이 교체되었다. 이유야 여럿이겠지만 대학입시제도 개선에서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새 교육부 장관이 전임 장관과 다른 특별한 입시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지금 교육의 문제는 입시제도만을 고친다고 해결될 수가 없게 꼬여 있다. 학교는 시대의 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학부모는 '내 아이만을 위한' 교육을 원하고, 사회는 계급분화를 더욱 심화시키며 교육을 무력화시키고, 학생들은 흥미 없는 공부에 지쳐 꿈을 잃고 있다. 너무나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 묘수가 없는 게 솔직한 실상이다. 사회 전체가 확 바뀌지 않는 한 이 늪을 빠져나갈 길이 없어 보인다.나는 34년간 중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났다. 학교 선생 외에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교사로서의 삶을 돌이켜보면 그다지 자부심을 느끼지 못한다. 나 스스로 주어진 틀에 갇혀 학생들을 그 틀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만 했을 뿐, 학생 하나하나가 꿈을 마음껏 펼쳐 나가도록 도와주지 못했던 것 같다. 늘 성적을 강조했고 좋은 대학에 보내는 걸 목표로 삼았다. 아니, 학생과 학부모가 그런 것을 원해서 거기에 부응했다고, 변명처럼 말할 수도 있겠다. 일류 대학이 인간 삶의 궁극적인 질문과 해답도 아니고, 가치와 행복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했다. 이렇게 우리 모두 공범이 되어 수십 년을 지내왔고, 지금 교육은 참담하게 망가졌다.달포 전쯤 런던에 갔다 영국의 공립학교에 다니는 조카를 만났다. 우리 학교와 시스템이 너무나 달라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여러 차이 중에 영국의 학교는 매우 중요한 것 하나를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 조카에 의하면 학교의 규율이 매우 엄격하여, 예를 들어 선생님과 학생이 문에서 만났을 때, 학생이 문을 열고 선생님이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기초 예절을 어기면 엄격한 벌을 받는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2002년 영국에선 중학교부터 '시민교육'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과목의 주제는 "시민의 사회·도덕적 책임감, 지역사회 참여하기, 언론의 중요성, 학교·지방·국가·세계 차원에서 민주주의와 다양성, 나의 권리와 책임, 다문화 이해하기, 인권이 왜 중요한가?, 선거는 언제 어떻게 참여하며 선거 캠페인은 어떻게 조직되나?, 국회는 어떻게 작동하고 정부는 어떻게 예산을 지출하나?, 오늘날 세계평화 유지는 왜 어려운가?" 등등이다. 한 눈으로 봐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타인과 사회를 위한 공헌을 목표로 한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즉 '함께 살기'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학교 시스템이 변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나, 참으로 요원한 일이다. 그래도 새 교육부 장관은 입시제도만 주물럭거리지 말고, 교육의 근본을 다시 점검해주면 좋겠다. 지금 일선 학교에서 우선시하는 국·영·수가 가볍다는 말이 아니라, 정말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지금의 학생은 곧 미래 사회의 주인공이 된다. 지금 학생을 잘 가르치지 못하면 그 미래는 망한 사회가 된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18-09-13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광역버스 탑승기

인천~강남 노선 최대 60㎞ 육박퇴근길 승객·기사들 '녹초'경인고속도로 일반화 됐다지만통행료 변함없고 막히는건 여전'고단한 현실' 개선방법 찾아봐야얼마 전 소리 소문 없이 버스노선 2개가 사라졌다. 올 3월 개통한 인천~광명역을 오가는 광역버스다. 지난달 인천에서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 업체들이 운행 전면 중단을 선언하면서 일파만파 논란이 커졌던 것과는 영 딴판이다. 승객 수가 적어서라고 하지만 KTX 접근성이 떨어지는 인천에서 운영한 지 겨우 반년 만에 해당 노선이 사라지다니 씁쓸할 따름이다. 인천 사람이라면 서울을 오가는 빨간색 광역버스를 한 번쯤은 타 봤을 것이다. 이제는 거의 탈 일이 없지만 빨간색 버스를 볼 때마다 힘든 기억이 저절로 떠오르는 것까진 어쩔 수 없다. 광역버스는 창문을 열 수 없어 환기가 어렵고 뒷문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일단 고속도로에 진입하면 내릴 수도 없으니 비행기 이코노미석 통로에서 목적지까지 꼼짝없이 서서 가야 하는 형벌을 받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자리가 있어서 앉으면 다행이지만 종점에서 타지 않는 이상 퇴근 시간 이후 인천 가는 광역버스에 자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늦은 밤, 서 있는 사람들로 통로까지 꽉 찬 광역버스들이 내달리는 경인고속도로에서 다른 버스의 승객들을 바라보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오곤 했다. 하얗게 빛나는 버스 조명 아래 피곤에 지친 흔들리는 얼굴들, 이름도 모르는 타인들에 대한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그런 감상도 잠시, 서서 갈 자리조차 마땅치 않아 차를 몇 번 보내고 나면 일단 탄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자리에 용케 앉은 사람들은 열이면 열, 무표정하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거나 이미 곤한 잠에 빠져들어 있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아가씨든 아저씨든 가리지 않는다. 입을 반쯤 벌리고 곯아떨어졌거나,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흔들어가며 졸고 있거나, 새근새근 숨소리를 낼 정도로 잠들어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대중교통에서 그렇게 곤히 자는 사람을 한꺼번에 보기도 쉽지 않은데 퇴근길 광역버스에서는 꽤 흔한 풍경이다. 한 번 타면 가는 거리가 길고, 전철과 달리 언제 어디서 차가 막힐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불콰한 얼굴로 술 냄새를 풍기며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고 있는 아저씨 옆이라도 '제발 한 자리만 났으면…' 간절하게 빌게 되는 것이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광역버스에서의 일상이다. 광역버스의 특성상 출퇴근과 막차 시간대에만 승객이 몰리는데, 이 시간이 가장 차가 많이 막히는 시간이라 배차 간격을 좁힌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실제로 전현우 철도연구자에 따르면 일산, 분당 등 1기 신도시를 오가는 광역버스의 운행거리는 25~ 30km인데 비해 인천 노선은 남인천이 40km, 송도는 50km에 달하고, 강남을 오가는 노선은 외곽순환을 우회하느라 60km에 육박한다고까지 한다. 한 번 타면 기본 1시간 반에서 2시간을 훌쩍 넘기다 보니, '대전보다 먼 인천'이란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한번 운전대를 잡으면 최소 4시간을 달려야 하는 기사분들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막히는 퇴근길 내내 서서 이리저리 흔들리다 녹초가 되어 내릴 때면 하루 종일 기점에서 종점까지 왕복하는 기사분들은 어떻게 견딜까 싶다. 실제로 왕복 2시간이 기본인 노선을 운행하다 보면 기사들이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교통 체증이 만성화된 경인고속도로에는 요금소만 있을 뿐 휴게소도 화장실도 졸음쉼터도 없다. 몇 년 전, 한동안 저녁마다 자동차로 서울에서 인천을 왔다갔다 한 적이 있었다. 늦은 밤에 운전하다가 졸립기라도 하면 대책이 없어 아찔했던 순간이 꽤 여러 번이었다. 경인고속도로가 일반화됐다지만 통행료는 그대로 내면서 속도 제한 구간만 많아지고 시도때도없이 막히는 건 여전하니 이용자 입장에서는 뭐가 좋아졌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나야 어쩌다 한 번이었지만 매일 이 답답한 길을 왕복해야 하는 운전기사들과 피로에 지친 채 몸을 맡겨야 하는 승객들의 일상은 생각만 해도 우울할 따름이다. 광역버스 폐선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아직 완전히 해결됐다고 보긴 어렵다. 선택의 여지 없이 이 버스를 탈 수밖에 없는 1천400만명의 승객을 생각한다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고단하기만 한 광역버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볼 때다./정지은 문화평론가·인천문화재단 과장정지은 문화평론가·인천문화재단 과장

2018-09-06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백석과 통영과 난

北 오지중 오지 '양강도 삼수군'에서37년간 유배생활로 生 마감한 '백석'문학은 문학으로 존재할때 '향기'이데올로기 도구되면 생명 다한것'관평의 양'이란 산문 그래서 슬퍼여름의 끝 날이다. 폭염과 폭우로 여름이 갔다. 낮 최고 기온이 38도를 오르내릴 때 통영을 찾았다. 아름다운 도시가 폭염에 녹아내리고 있었다.'명정샘'이라는 푯말을 따라 우회전했지만 막다른 골목이었다. 샘이 있을만한 곳이 아니었다. 황당해하고 있는데 시민이 다가와 펜스 왼쪽을 가리킨다. 아, 그곳이 명정샘이었다. 도로에서 5m쯤 아래, 사각형의 모습으로 나란히 열려 있는 두 개의 샘이 보였다. 명정샘 건너 편에 충렬사도 보였다. 명정샘과 충렬사 사이에 도로가 나 있지만 도시화 이전에는 '명정골'이라는 한적한 마을이었다.1930년대, 이곳 명정골에 난(蘭)이라는 아리따운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 처녀를 백석은 산문 '편지'에서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 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였습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백석(1912-1996)이 통영을 처음 찾은 것은 1935년 6월인 듯 하다. 친구 허준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그는 결혼식장에서 동료 기자 신현중에게 소개 받은, 당시 이화여고 학생이던 난(박경련)에게 첫눈에 반한다. 허준의 통영 신행길에 친구들과 동행한 것은 오로지 난을 만날 수 있겠다 하는 열망 때문이었지만 이루지 못했다. 그 이듬해 1월에 다시 통영을 찾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 명정샘에 혹 그녀가 나와 물을 깃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종일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았지만 허사였다. 그는 충렬사 돌계단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그녀를 기다리며 쓴 시가 '통영'이다. 같은 제목의 시가 3편 있지만 첫 번째 '통영'은 난을 만나기 전의 작품이다. 두 번째 '통영'이 난을 노래한 시편이다.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는데/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샘이 있는 마을인데/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평안도서 오신 듯 한데 동백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로 끝맺는 시 속에 그녀에 대한 사랑과 초조함이 잘 드러나 있다.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계절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라던 불안감은 현실로 이루어진다. 백석은 3월에 다시 통영을 찾았지만 난을 만나지는 못한다. 이때 난의 외사촌오빠인 서병직을 만나 위로를 받으며 통영의 곳곳을 동행했다. 이날을 읊은 시가 '통영-남행시초2'로 서병직에게 헌정된 시다. '통영장 낫대들었다//갓 한닢 쓰고 건시 한 접 사고 홍공단 댕기 한감 끊고 술 한 병 받어들고//화륜선 만저보려 선창 갔다//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 앞에/문둥이 품바타령 듣다가//열이레 달이 올라서/나룻배 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 서병직 씨에게'로 된 시에는 난의 이미지는 없다. 난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백석은 1987년 월북작가 해금조치 이후 전집이 출간되어 민족 시인이 되었지만 북한에서의 생활은 고난이었다. 그가 말년을 보낸 양강도 삼수군은 예부터 오지 중의 오지이며 유배지였다. 1959년 당성이 약한 인민들을 지방 생산현장에 보내는 '붉은 편지 사건'을 계기로 백석은 삼수군 관평리 국영협동농장으로 쫓겨나 양치기로 연명했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그의 유배 생활은 37년이나 되었다. 문학은 문학으로 존재할 때 향기를 지닌다. 문학이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도구로 쓰이게 되면 생명을 다 하는 것이다. 백석이 유배지에서 쓴 '관평의 양'이라는 산문은 그래서 슬프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18-08-30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낯설고 험한 일상 속에서

태국 여행중 알게된 현지 남성 '톰'짧은 만남이후 이어진 메신저 대화 "믿지 말고 조심해!"·"재밌어?"…관광주의점 알려주며 소감 묻기도지금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유난했던 이 계절의 한때를 나는 태국에서 보냈다. 떠나기 전 한동안은 매사에 "몰라요, 몰라, 일단 태국 다녀와서" 하며 지냈다. 어려운 일을 미루는 데 여행은 생각보다 좋은 구실이 되었다. 중요한 게 태국은 아니었지만. 지난한 일상을 되풀이해야 하는 이 도시가 아닌 다른 어딘가가 간절했을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태국에서의 시간은 제법 괜찮았다. 열흘 동안 대체로 혼자 걷고 혼자 보고 혼자 먹었다. 그 시간이 묘한 자유를 주었다. 자유는 때때로 불편했으나, 뜻밖의 여러 가지를 느끼게 했다. 7월의 치앙마이는 우기였다. 뜨거운 볕이 내리쬐다가도 급작스레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그럴 때마다 가까운 식당이나 커피숍으로 뛰어들어가 알 수 없는 이름의 메뉴를 주문해두고는 한참을 앉아 바깥 구경을 했다. 호사가 따로 없다는 생각. 비가 그치면 시장에 들러 먹기 좋게 썰어놓은 과일을 사들고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길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친절해 눈이라도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쩌다 길을 물으면 꽤 먼 거리를 걸어 목적지까지 직접 데려다 주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쉽게 느끼지 못한 정감. 고마운 한편 괜히 어색해 손사래를 치는 일이 잦았다. 톰을 만난 건 나흘째 되던 날 저녁. 타패게이트 뒤편 시끌벅적한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있을 때였다. "코리안?" 누군가 불쑥 말을 걸었다. 압도적인 중국인 관광객들 틈에 끼인 탓에 나를 향해 "니하오"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났기 때문인지 그의 기척이 조금은 반가웠다. 내 또래 태국인 남성 톰은 한국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덕분에 밤이 깊도록 우리의 엉성한 수다는 계속되었는데, 한류 열풍이나 아이돌 같은 가벼운 주제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서로의 전공과 직업, 그리고 이곳과 그곳에서의 서로 같거나 다른 생활로까지 뻗어갔다. 방콕에 있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톰은 몇 년 전 고향인 치앙마이로 돌아와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말 끝에 나는 "근데 태국인들은 술을 잘 안 마시나 봐. 한국인들은 술 정말 좋아하는데"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설핏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사람 사는 건 어디든 다 비슷하지." 그리고 덧붙였다. "넌 태국인들이 일하는 모습만 봤을 테니까." 과연. 이튿날, 그가 일러준 대로, 시티맵에는 없는 올드타운 바깥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술에 얼큰히 취해 비틀대는 현지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톰과 나는 이후로도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이어갔다. "오늘 오후엔 잠시 부악 핫 공원에 들렀어. 그냥 평범한 동네 공원이라는 네 말과는 달리 아주 근사한 곳이더라." "그래? 근데 혹시 거기서 어떤 서양 남자를 만나지 않았어?" "아니, 왜? 누군데?" "요즘 거기서 네덜란드인 하나가 끈질기게 구걸을 해. 아시아 여성들만을 상대로. 돈이 떨어졌는지, 일 년 넘게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있어." 여행자를 가장한 그런 부랑자가 치앙마이엔 아주 많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조심해"라고 덧붙였다. "여기도 나쁜 사람이 많아." 그럴 것이다. 어디나 그렇듯이. 그는 어쩌면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잊지 마, 보기 좋게 꾸며진 것들 뒤에 진짜 삶이 있어. 애써 외면하던 진실을 알아버린 기분이었지만, 톰으로 인해 나는 잠시나마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가 된 것 같았다.며칠 후, 치앙마이를 떠나 방콕으로 향했다. 자신이 아는 방콕의 숨은 맛집과 명소를 세심히 알려주던 톰은 또다시 "조심해. 친절하다고 무조건 믿어선 안 돼" 말했다. 카오산로드의 밤은 서울의 밤만큼 번화했고, 그럴 때마다 아주 잠깐씩 서울의 집을, 사람들을 떠올렸다. 친구가 "재밌어?" 문자를 보내왔을 땐 "글쎄, 슬슬 돌아가고 싶네" 답하기도 했다. 불과 열흘 만에. 톰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언젠가 한국에 놀러와" 했을 때 "응, 가고 싶어. 그렇지만 먼저 돈을 모아야지. 그리고 집을 마련한 다음에……" 라고 말하던 톰. 입버릇처럼 조심해, 조심해, 하던 톰은 조심히 잘 지내고 있을지. 나날이 낯설고 험한 이 일상 속에서./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8-08-23 박소란

[풍경이 있는 에세이]우리들의 장래희망

육아·살림에 바쁜 아이엄마들소설가 되고싶은 마음 한결 같아뒤풀이는 꿈도 못꾸는 그녀들에겐소설이 뭐라고, 그게 뭐라고…그래도 마음 설레는 '짠한 희망'나는 한때 소설 쓰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었다. 신춘문예에 내는 족족 떨어지기만 하던 시절에 그랬다. 이대로는 영영 소설가가 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렇다면 소설 쓰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소설 쓰는 남자를 영영 뒷바라지하며 사는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소설가가 된 이후로도 그랬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 매일매일 소설 이야기를 하고 서로가 쓴 소설을 가장 먼저 읽어주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네가 곱게 커서 인생을 하나도 모르는구나! 소설 쓰는 두 사람이 같이 살면 굶어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진정 모르는 거야?"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의 소망을 비아냥거렸다. 그런 비아냥에 흔들린 것은 아니었지만 사랑에 빠질 만큼 괜찮은 소설가를 만나지 못해 나는 그 소망을 접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즐겁고 짠하다. 요즘은 단편소설 쓰는 창작클래스를 열고 있는데 직장인들이 주로 오는 저녁 클래스와는 달리 오전 11시부터 두 시간씩 하는 낮 클래스는 대부분 아이엄마들이다. 그러니까 아이를 딱 어린이집에 보낸 시간이다. 두 시간 수업이라고는 해도 대부분 수업은 두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고 오가는 길까지 생각하면 네다섯 시간이다. 하원 시간에 맞춰 종종걸음으로 집에 돌아가 보면 청소도 못해놓고 나온 집은 엉망이고 후다닥 간식도 준비해야 하고. 여름이 되자 결석생들이 생겨났다. 방학이 문제였다. 지난주에는 Y가 양해를 구해왔다. "죄송해요. 학원 방학인데 달리 아이를 보낼 데가 없어요. 혼자 있기는 싫다 하고요."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데려오세요! Y는 6학년 얌전한 딸아이를 데려오며 행여 폐를 끼칠까 냉장고 속 과일이며 간식거리를 몽땅 꺼내왔다. 아이는 엄마 곁에 앉아 논술 숙제를 했고 우리는 Y가 챙겨온 귤을 까먹으며 일주일 동안 묵혀놨던 소설 이야기를 떠들었다. 이번 주엔 H가 또 미안해한다. "아직도 유치원 방학이 끝나질 않아요. 맡길 데도 없고요." 여섯 살 아들을 데려올 수야 없으니 꼼짝없이 H는 결석을 할 것이었다. M은 유일한 미혼이지만 너그럽다. "우리 키즈카페 가서 수업할까요? 전 조카 빌려서라도 데려가고 싶은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지만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맥이 풀린 아이엄마들의 토로가 이어졌다. Y가 말했다. "지난번 우리 딸은 수업 같이 와보고는 좋았나 봐요. 엄마가 이렇게 공부를 하는구나, 싶기도 했고 엄마랑 공유하는 비밀이 생긴 기분인가 봐요." 누군가 또 말했다. "아, 수영장 같은데 아이들 다 풀어놓고 우린 맥주 한 잔씩 마시면서 수업했으면!" 나도 보태었다. "아이들 데려오는 클래스 만들어서 수강료 두 배로 올릴까 봐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지만 모두들 신이 나 꺅꺅거렸다. 아이를 맡아줄 곳만 있다면 그깟 소설 하루에 한 편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6주 동안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 것이 클래스의 목표지만 그녀들은 한 주에 소설 초고를 완성하고 그 다음 주면 완성본을 털었다. 하도 기가 막혀 내가 투덜거렸다. "아니, 무슨 소설을 이렇게 전투적으로 열심히 써요? 좀 살살 가요." 하지만 그녀들은 바빴다. 육아를 도와주는 시어머니가 언제 파업을 할지 몰랐고 아이의 학원 스케줄이 꼬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언제 이 클래스를 그만둬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한 엄마는 소설 클래스 듣는 일을 남편과 시댁에게 비밀에 부쳤다. 한가한 취미생활이나 하고 있다는 눈치를 받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주워들은 건데요, K 작가는 등단 전에 아이를 들쳐업고 소설 클래스 뒤풀이 자리를 따라다녔대요. 알짜배기 이야긴 다 뒤풀이에서 나온다고." P가 말했다.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겠는 나는, 수업 시간 내내 최선을 다해 작가들의 뒷담화를 풀어주었다. 얼결에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작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이들 하원 시간을 맞추느라 뒤풀이 같은 건 꿈꿀 수도 없는 우리들을 위한 내 사소한 배려였다 해두자. 소설이 뭐라고. 그게 뭐라고. 그래도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레는, 꽁꽁 숨겨둔 우리들의 즐겁고 짠한 장래희망./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18-08-16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걷기 예찬, 영축산 통도사

시간의 결 고스란히 전하는 고찰서마음속 평정심 찾아주는 숲 발걸음두 발로 걷기 멈출땐 내 삶도 정지감정이입 배제 생명순환 지켜볼뿐속도·방향 동시 탐하는건 어리석어부산 해운대에서 며칠을 보내고 귀경길에 찾아간 곳이 양산 통도사다. 사찰 분위기는 여전히 차분하고 고즈넉했다. 21세기 최첨단 문명을 누리는 우리에게 시간의 결을 고스란히 전하는 고찰의 무게감은 모든 것을 초월한 듯 담담하다. 특히 도로에서 사찰로 이어지는 들머리 소나무 숲은 가히 조선소나무의 미적 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주어 절로 걸음이 가볍다.한국 3대 사찰 중 하나로 불상을 모시지 않는 대신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통도사는 대웅전, 대광명전, 영산전, 극락보전 등 12개의 법당과 보광전, 감로당 외 6방과 비각, 천왕문, 불이문, 일주문, 범종각 등 65동 580여 칸에 달하는 대규모 사찰이다. 이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두 차례에 걸쳐 재건축하였으며 대광명전을 제외하면 모두 근세의 건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소속암자가 13개나 된다고 하니 사찰의 규모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목탁소리에 묻혀 한나절 경내를 둘러보고 영축산 자락으로 들었다. 비 갠 후라 풀냄새가 진하다. 계절과 더불어 초록이 깊어지니 계곡의 물소리도 깊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기억장치에 오류가 생겼는지 눈에 보이는 꽃보다 향기로 느끼는 꽃이 더 강하게 각인되는 이유가 뭘까. 본시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은 없는 것이라 했지만 꽃이 좋은 건 감출 수 없는 인간의 간사한 마음이라 해두겠다. 복잡한 생각들을 끝내 내려놓지 못한 채 그것이 조금씩 정리되고 그러다 마음의 평정심 즉 무심이 찾아들 때 떠오른 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숲에서의 걷기가 아니었던가. 오래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롱라를 넘어 신성의 불국정토 묵디나트에서 바라본 메마른 풍경, 산 하나만 넘으면 있을 불국정토 무스탕과 황량하기 그지없는 오래된 미래 라다크 땅을 어찌 잊으랴. 얼마 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을 읽으면서 내면의 성찰과 걷기라는 인문학적 연관성을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던가."당신의 내면으로 가는 문을 다시 열어 보라. 걷는 것은 자신을 열어 놓는 것이다. 우리 발에는 뿌리가 없다. 보행은 가없는 넓은 도서관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걷기는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며 주위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즐기고 음미하는 것이다. 침묵은 어떤 저울의 균형 같은…."브르통의 인상 깊은 제언은 몸과 내면과 실존과 언어라는 단어를 길항으로 퍽이나 오래 내 정신의 버팀목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삶의 정지는 숨이 멎는 순간이 아니라, 두 발로 걷기를 멈추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두 발이 오래 묶여 있었으므로 행여 내 발이 땅을 겁내지 않을까 두렵긴 하나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남았으니 게으름은 거두어야겠다. 수많은 것이 존재하는 지구에 우리가 마음을 나누고 익숙해져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어쩌면 영원에 기댄 자연이라면, 거의 모든 존재감을 영영 알아채지 못한 채 인생이 끝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내가 숲에 들 때마다 느끼는 그 작은 변화들에 대한 알아차림도 어쩌면 아는 게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다만 감정 이입을 최대한 배제하고 조용히 생명의 순환을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힐 뿐. 어려움을 넘어서는 건 쉬운 곳에 닿으려는 열망이라 했다. 외로움을 넘어서려면 외로움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자연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지만 감추는 법도 없다. 작아도 부끄럽지 않고 커도 자랑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속도와 방향을 동시에 탐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수치스럽고 두렵다. 이 실수투성이인 내가 용서받을 수 있을까. 갈망이나 의심이 없는 사람은 퇴보한 사람이라 했다. 나는 누구든 만나고 돌아서는 순간 외롭고 애틋한 게 아니라 헤어지기 직전이 가장 절망적으로 애틋한데 통도사도 그랬다.통도사 일주문 돌기둥에 새겨진 글이다. 方袍圓頂常要淸規(방포원정상요청규) 異性同居必須和睦(이성동거필수화목)' 삭발염의한 수행자들은 늘 청규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서로 성격이 다른 대중이 모여 사는 데는 반드시 화합하고 우애롭게 지내야 한다는 뜻이란다. 그러므로 그대와 나와 우리는 다르지만 하나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18-08-09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기록을 두려워하는 자들

자신의 범죄·치부 감추려고공공 기록 함부로 삭제한 것은범죄자임을 고백하는 것과 같아역사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그 흔적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나역사를 돌이켜보면 권력자들이 기록을 없애려고 애쓴 사례는 흔히 확인할 수 있다. 진시황이 자신을 비판하는 유가의 책을 모두 불사르고, 유생 400여명을 구덩이에 생매장한 이른바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은 아주 유명한 일이다. 우리나라 세종대왕 시절에 있었던 일도 널리 회자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을 만큼 방대하고 자세한 기록인데,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사관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모두 적으니 왕으로서는 매우 불편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국왕이 되기 위해 친형제들을 죽였고 왕이 된 이후에도 권력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을 죽였기에, 이에 대한 사관들 평가가 궁금해 '태종실록'을 보려고 했다. 그러자 영의정 황희가 나서서 이렇게 진언했다. "불가합니다. 만약 실록을 보았다는 게 후손에게 전해지면, 후대의 임금도 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두려워서 어찌 당대 기록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명백한 잘못을 바른 일처럼 꾸밀 것이고, 단점도 장점처럼 교묘히 바꾸게 될 것입니다. 그런 기록이 남는다면 누가 실록을 믿겠습니까." 결국, 세종은 황희 말을 듣고 열람을 포기한다.역사라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기록은 물론, 사회 구성원 특히 공적으로 생산된 모든 기록을 토대로 성립된다. 그러므로 공공기관이나 그런 직무를 맡은 사람이 만든 기록은 사유물이 아니라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다. 대통령이 만든 서류를 대통령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없앨 수 없고, 국회의원이 만든 법안이나 의정활동 내용을 함부로 덮으려 하면 안 된다. 법관이 판결을 위해 만든 자료는 비록 재판이 끝나고 시효가 지났다고 해서 지워버리면 안 된다. 그 모든 것은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재산이며 역사이기 때문이다. 지난날 우리는 대통령 기록물을 무단 반출했다는 이유로 전직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결국 죽음을 맞는 엄청난 비극을 함께 본 바가 있다. 그런데도 이후 이런 일이 그치지 않고 계속 거듭되는 슬픈 현실에 분노를 느낀다. 크든 작든 모든 공공의 기록은 함부로 폐기하거나 감춰서는 안 되는 것이다.얼마 전 행정안전부의 국가기록원 감사 결과, '제헌헌법' 초고 등 국가 주요기록물의 관리가 엉망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등과 관련한 중요한 기록이 그것을 추진한 당시 대통령과 관련자에 의해 무단 폐기되었다는 소식도 듣는다. 더구나 자신들에게 불리할 수 있는 수많은 기록을 무단 반출해 은닉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촛불혁명에 의해 해임된 정권은 다음 대통령에게 인수인계할 자료가 거의 없으며, 매우 의심스럽게도 전자기록물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 또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사건이 하나 있으니, 양심과 정의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대법원에서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전 대법원장의 혐의를 수사해야 하는 순간에 그의 컴퓨터가 '디가우징' 되었다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럴싸한 말로 포장했지만 '디가우징'은 간단히 '불법삭제'했다는 뜻이다.기록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범죄나 치부를 감추려고 그런 짓을 한다. 기록을 지우려 했다는 것은 역으로 자신이 범죄자임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기록의 내용과 관계없이 공공재를 파괴하였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잘못을 덮기 위함이 아니면 기록을 지울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하지만 범죄자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역사는 지우개로 연필낙서 지우듯 쉬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진시황이 얼마나 독재자였는지, 조선의 태종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였는지 잘 안다. 전직 대통령들이 지우려 한 기록에도 그들의 범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다 보인다. 더구나 지금은 디지털 시대, 디가우징으로 하드디스크를 지운다 해도 그 흔적은 언젠가 다시 살아나 돌아올 것이다. 꼭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미 그들의 죄는 이 사회와 국민이 다 알고 있으며,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분명히 깨닫고 있을 것이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18-08-02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나이 먹는건 두렵지않아' 가사처럼 나도 제대로된 삶을 살며 늙는다면 자신만의 모습으로 당당한 삶 추구빨간머리앤 조세핀·마릴라 떠올라갈대같은 내가 진정 닮고싶은 어른덥다. 이제 너무 많이 들어서 덥다고 말하기조차 지친다. 이런 추세라면 지구의 온도가 점점 더 올라가고 기후변화에 따라 2100년쯤에는 인간은 물론이고 동·식물의 생존 자체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래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 더 이상 나빠질 것 없어 보이는 현재가 사실은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되면 나도 모르게 우울해진다. 이렇게 덥고 지치는 올 여름, 잠시나마 날 위로해주는 노래가 있다. 바로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란 노래다. 이 노래는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 최근에는 같은 제목의 책도 나왔다. 이 다큐멘터리는 장혜영 감독이 18년간 시설에서 살던 중증 발달장애인 동생 혜정씨를 사회로 데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일 년여의 시간을 담았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사는 일상은 '위대하지도, 불쌍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다만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제주도에 간 자매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우쿨렐레를 튕기면서 부르던 이 노래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얼렁뚱땅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데 마음이 평화로워진다고나 할까.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죽임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굶어 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나이를 먹는 건 두렵지 않아/상냥함을 잃어가는 것이 두려울 뿐/모두가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 감독이 직접 작사, 작곡한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이 덥고 힘든 여름도 어느새 지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내가 할머니가 되려면 아직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만, 2018년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솔직히 걱정되기도 한다. 과연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싶어서. 상냥함을 잃지 않고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지 않으면서 몸은 할머니가 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할머니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더욱 자신이 없다. 그래서 요즘 들어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란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언제 어른이 될지 몰라 혼란스러운 건 나만은 아니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얼마 전에 김민정 시인이 "마흔이 넘으면 저절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내 마음은 중고등학생 시절과 달라진 게 없다"고 고백했는데,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현실에는 닮고 싶은 어른이 별로 없지만 미국 드라마 '빨간머리 앤'에는 내가 닮고 싶은, 무사히 할머니가 된 어른들이 많이 나온다. 앤을 키우고 있는 마릴라와 앤의 절친 다이애나의 조세핀 고모할머니가 바로 그렇다. 조세핀 할머니는 상당한 재력의 소유자로 대저택에서 고용인을 거느리고 우아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동성 친구와 법적 혼인을 할 수 없었지만 먼저 떠나보낸 그녀와의 시간을 사랑하는 당당한 할머니다. 괴팍해 보이던 조세핀 할머니는 누구보다 열린 마음의 소유자로 앤과 친구가 되고 "다른 사람이 아닌 너 자신의 모습으로 살라"는 소중한 조언을 건넨다.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면서도 받는 사람이 구차해지지 않게 만드는 진정한 어른이기도 하다. 가난하지만 멋진 할머니이긴 마릴라도 만만치 않다. 마릴라는 아픈 어머니를 간호하고 동생을 돌보기 위해 결혼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사람들의 편견에 시달리지만 자신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인 마릴라가 고아 소녀 앤을 만나 보여주는 변화는 '삶의 대부분을 변화 없이 산 사람'이 얼마나 많이 달라질 수 있는지, 그럼으로써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또 다른 어른의 모습이기도 하다.아직도 이런저런 유혹과 감정에 흔들리며 살아가는 나로서는 부럽고 닮고 싶은 어른이다. 나는 과연 어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먼 훗날 혐오가 넘치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남아 무사히 할머니가 된다면 "우리가 좋아한 그 가게에 앉아/오늘 처음 이 별에 온 외계인들처럼 웃을 거야"라는 노래 가사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웃고 싶다./정지은 문화평론가·인천문화재단 과장정지은 문화평론가·인천문화재단 과장

2018-07-26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지훈과 승무와 호수

금광호수, 태양광발전소로 수난마을사람들 "천혜의 위안" 반대지사적인 시인 조지훈은 일깨운다'지조'란 순일한 정신 지키는 신념눈물겨운 정성·고귀한 투쟁이라고용주사의 여름 낙조는 장엄하다. 서산을 붉게 물들이며 쿵 소리를 내는 듯 내려 박히는 붉은 해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폭염이 계속되는 날씨니 내일도 저 낙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사체의 벽이 붉게 물들어 있다. 절을 드나드는 불자들의 표정도 붉게 물들어 숭고하게 보인다. 깨달음의 비장미로 읽어도 좋을 듯하다. 불자들만 드나드는 것은 아니다. 널리 알려진 절이라서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지훈이 용주사에서 큰 재(齋)가 열려 승무와 불교 전래음악이 펼쳐진다는 소식을 듣고 화성의 용주사를 찾은 것은 1939년 가을쯤 일 것이다. 밤 깊어 펼쳐진 승무, 숨 막히게 아름다운 선과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와 오동잎 위에 놓인 달빛과 하이얀 고깔과 펼치는 듯 멈추어 서는 순간의 버슴새가 그를 황홀경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감나무 밑에 오래 서 있었다. 승무를 시로 쓰리라. 그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열아홉은 온 세상이 찬란한 나이였다.조지훈(1920~1968)은 쉬이 승무를 시로 옮기지 못했다. 한 줄 구상도 못하고 괴로움에 싸여 있다가 스무 살 되던 해 여름, 미술전람회에 갔다가 김은호의 '승무도'를 보고 비로소 첫행을 쓸 수 있었다. 그러고도 몇 달, '승무'는 파리한 채 멈춰 있었다. 10월에 구왕궁 아악부에서 '영상회상'을 감상하고 얻은 이미지로 '승무'를 완성하게 되었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파르라니 깎은 머리/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두 볼에 흐르는 빛이/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빈 대(臺)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로 수많은 독자의 가슴에 새겨진 '승무'는 용주사 입구에 시비로 세워져 있다. 청록파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목월과는 서로 시를 헌정하는 돈독한 관계를 보였지만 두진과는 전해오는 일화가 없다. 혹 '호수'라는 그의 시가 안성 금광호반에서 집필하던 두진을 방문하고 쓴 것이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보지만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장독대 위로 흰 달 솟고/새빨간 봉선화 이우는 밤//작은 호수로 가는 길에/호이호이 휘파람 날려 보다//머리칼 하얀 옷고름/바람이 가져가고//사슴이 처럼 향긋한/그림자 따라//산밑 주막에서//막걸리를 마신다'로 맺는 '호수'는 여름 밤, 호수로 가는 길에 옷고름을 바람에 날리며 가는 사람의 향긋한 몸내를 따라가 산밑 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신다는 목가적인 풍경을 노래한 시다. 그렇다. 호수는 목가적인 풍광이고 낭만적인 공간이다. 호수가 요즘 수난이다. 호수에 태양광발전소를 세운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호수를 천혜의 위안으로 삼고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이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박두진의 둘레길이 조성된 금광호수도 예외는 아니다.조지훈은 지사적인 시인이다. 1960년에 발표된 지조론에서 지조의 사회적 가치를 논하며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서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을 무릅쓸 각오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고 설파하고 있다. 그는 친일파가 해방이 되자 친미파로 변신하는 것에 혐오감을 드러냈고 이승만 정권 말기, 학생의 의분을 촉구하며 대학생이 혁명의 선두에 설 것을 요구했다. '오늘의 대학생은 무엇을 자임하는가? 학문에의 침잠을 방패 삼아 이 참혹한 민족적 현실에 눈감으려는 경향은 없는가? 오늘의 대학생은 무엇을 자임하여야 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우리는 민족의 지사, 구국의 투사로서 자임할 시기가 왔다.'라고 외치던 그였다.그는 '지조란 것은 순일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라고 우리들을 일깨운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18-07-19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커피숍에서 만나요

평일 오후 외곽의 고요한 커피숍다양한 혼자들과 '따로 또 같이'어느날 우연히 아는사람 마주쳐옆테이블과 짧은 눈인사 나누는 일어쩌면 나는 그런 일 바라고 있는듯어디서 글을 쓰세요? 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는 평소 집에 틀어박혀 있길 즐기지만, 중요한 작업이나 마감을 앞둔 때, 오늘은 기필코 무언가를 좀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날에는 커피숍으로 간다. 커피숍에 앉아 글을 쓸 때 어쩐지 안정감을 느낀다. 집에서는 장시간 집중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 아마도 딴짓하고 참견할 거리가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커피숍이 좋다고는 해도 물론 아무 커피숍이나 다 괜찮은 것은 아니다. 내 경우 몇 가지 요건이 있다. 적당히 한적할 것. 고요한 사이사이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적당히 섞여들 것. 조명은 적당히 은은한 밝기를 유지할 것. 적당한 볼륨의 재즈가 흐를 것. 또 간간이 바깥을 내다보며 한눈을 팔 수 있을 정도의 적당히 널찍한 창이 하나쯤 있을 것. 이처럼 '적당한' 요건이 갖춰진 커피숍에 앉아 달달한 커피를 주문해 두고 시를 생각하는 일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작지만 가장 확실한 행복이기도 하다. 다행히 나는 이런 커피숍을 한두 곳쯤 알고 있고, 그중 한 곳은 집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다. 요즘의 나는 바깥에 나가 일을 하지 않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 커피숍에서 보낸다.나 자신의 생활이 이렇다 보니, 노트북 앞에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커피숍에 앉아 있는 이들의 모습이 내게는 낯설지 않다. 어쩌다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에 24시 커피숍에 들를 때면, 그 시간에도 빈 테이블을 찾기 힘들 만큼 사람들로 빼곡한 광경에 세상에나, 이 많은 사람들이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조금 놀라기도 하지만 이내 묘한 안도감에 젖고는 한다. 마감에 쫓기는 이가 나 하나만은 아니구나. 그렇구나.이런 나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 즉 '카공족'으로 분류될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카일족'이라 해야겠지만. 카공족이든 카일족이든 물론 약간의 에티켓은 필요하다. '카공충'이 되는 건 아무래도 곤란하니까. 평소보다 좀 더 길게 머문다 싶은 날엔 음료나 디저트를 추가로 주문하는 센스를 발휘하는 것. 나의 소중한 아지트가 매출 부진 같은 황망한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것을 원치 않으므로.단골 커피숍에 대한 이 같은 각별함은 나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업무 형태가 유사한 동료 작가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얼마 전 한 작가와 만나 수다를 떨다 잠시 커피숍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는 거의 매일 오전 커피숍으로 출근하는 매우 성실한 '카일족'이다. 조용하고 쾌적한 집을 두고 굳이 커피숍으로 향하는 이유를 묻자, 조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백색소음이나 무제한 와이파이 같은 편의적 차원과는 다른. 그는 말했다. "외롭지 않으니까." 커피숍에서라면 외로움을 조금 덜 수 있다는 이야기. 여러 타인들 틈에서 혼자라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는. 함께라는 그 묘한 느낌이 공허한 일상을 견딜 수 있게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가볍게 덧붙였다. "다들 같은 마음 아닐까?"그 물음이 묘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커피숍 라이프를 새삼 돌아보게 했다. 나는 왜 커피숍으로 향하는 것일까. 행여 아는 사람과 마주치지는 않을까, 내가 하는 잡다한 일을 옆 테이블에서 훔쳐보지는 않을까, 구석으로만 파고드는 내게도 실은 외로움이라는 마음이 숨어 있었을까. 그 마음이 나를 집 밖으로 이끌었을까. 그러자 늘 같다고 여기던 커피숍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짐작하듯, 나는 지금도 집 앞 커피숍에 나와 이 글을 쓴다. 평일 오후 외곽의 커피숍은 고요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휴대폰을 붙잡고 놓지 않는 사람. 누군가는 잡지를 뒤적이고, 누군가는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노트북을 들여다본다. 그 옆의 누군가는 꾸벅꾸벅 존다. 개중에는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얼굴도 섞여 있다. 이들은 대체로 모두 혼자다. 커피머신 곁에 앉아 숨을 돌리는 아르바이트생도, 그의 오늘치 피곤을 가늠해보는 나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 이토록 다양한 혼자들과 함께. 따로 또 같이.어느 날 문득 이곳 커피숍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 옆 테이블과 짧은 눈인사를 나누는 일. 어쩌면 그런 일을 나는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8-07-12 박소란

[풍경이 있는 에세이]밥 한 공기만 주세요

이웃집 아기엄마 밥 한공기 얻어가며주고 간 토마토와 팬케이크잔뜩 얻어먹고 미안한 마음에"차 마시러 놀러오세요" 빈말만어릴적 아랫목 아버지 밥통 아련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아기엄마가 초인종을 눌렀다.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이라곤 가스검침원과 택배기사 정도라 의아한 얼굴로 문을 열었더니 뜻밖에도 "저기, 죄송한데 밥 한 공기만 얻어갈 수 있나요?" 한다. 하도 오랜만에 듣는 소리라 나는 그만 웃음이 터질 뻔했다.2분도 안 걸리는 곳에 편의점이 있으니 햇반 한 개 사오면 그만일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토마토를 담은 봉지와 팬케이크 접시를 들고 있었다. 공깃밥 한 개와 바꾸기에는 아무래도 저울이 맞지 않는 일이었다. 얼른 밥 한 공기를 퍼서 내미는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팬케이크 먹고 싶대서 구워줬더니 싫다지 뭐예요. 밥 달라고 칭얼대서요." 보온밥통에서 이미 네댓 시간은 지난 데다 콩 한 줌 섞지 않은 말간 맨밥이라 미안했지만 나는 열 개도 넘는 토마토와 팬케이크 접시를 냉큼 받았다. 곰과 토끼가 그려진 아기 밥그릇을 들고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계단을 총총총 뛰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자니, 밥도 필요하지 않으면서 공연히 나를 웃겨주려고 이렇게 나타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첫 우리 집은 1978년, 그러니까 내가 다섯 살이던 시절이다. 엄마로서는 첫 내집 마련을 했던 때다. 커다랗고 빨간 고무대야를 내어놓고 세 딸들이 참방참방 물놀이를 해도 거뜬할 만큼 마당이 넓었고 아버지가 박아둔 장대를 타고 포도넝쿨이 잘도 자라던 집이었다. "넓기는. 야, 그 집이 마당 빼고 딱 여덟 평짜리였어." 엄마는 내 기억을 비웃었다. 그렇게 넓었던 집이 여덟 평짜리였다니. 다섯 살 내가 골목을 뛰어다니다 저물녘이 되어 돌아오면 안방 아랫목에는 지난밤 덮고 잤던 이불들이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싸늘해진 발을 이불 속으로 디밀면 언제나 발끝에 만져지던 스테인리스 밥통. 아니, 어쩌면 양은밥통이었을까. 삼교대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버지가 30분 안에 밥상을 받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엄마는 밥상 차리는 일에 골몰했다. 성실한 아버지는 퇴근길 술 한 잔을 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딱딱 제시간에 돌아왔고 엄마는 날래게도 밥상을 차려냈다. 그리고 이불 속에서 밥통을 꺼내 공기에 덜었다. 열두 평으로 넓혀 이사를 갔던 두 번째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이불 속 발끝에 따끈한 밥통이 차였다. 나지막한 옥상도 있고 마당 수돗가 옆으로는 사랑채에 세든 신혼부부가 배짱 좋게 들여놓은 칠면조도 두 마리나 있던 집이었다. "밥상 들여가요!" 엄마가 소리를 치면 아버지가 몸을 일으켜 밥상을 반짝 들고 들어왔고 세 딸들은 제가 먼저 이불 속 밥통을 꺼내겠다고 실랑이를 했다. 그렇게 동그랗게 앉아 밥을 풀 때면 누군가 마루문을 열었다. 골목 열두 집 중 어느 집은 꼭 밥 한 공기씩 부족했다. "우리 엄마가 밥 한 공기만 달래요." 하는 꼬맹이던가 "밥 한 그릇 줄 거 남았나?" 물으며 찐 고구마 한 양푼을 내어놓는 동네 아줌마였다. 나도 대접 하나 들고 밥을 빌리러 이집 저집 다닌 적이 많았다. 아줌마들은 주걱에 붙은 밥알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떼어주었다.그런 일은 스무 살이 넘어서도 계속되었다.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난 후 종종 고향 집엘 들르면 나는 마루에 게으르게 누워 책을 읽거나 엄마와 밀린 수다를 나누었는데, 그럴 때면 앞집 아줌마나 옆집 아줌마가 우리 집 대문을 빵 차고 아무렇게나 들어왔다. "이집 둘째 왔다면서?" 오랜만에 온 이웃집 둘째 딸을 위해서 뭇국이나 가자미구이, 오징어 부침개 등을 가져다주던 그녀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아 인사를 하고선 아줌마들이 건네는 음식들을 받아먹었다. 그렇게 자랐다.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여서, "저 집 막내가 서울서 왔잖아. 애들 데리고." 그러면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챙기곤 했다. 참 별것도 아닌 것들. 고사리 무친 것과 냉잇국, 그런 것들 말이다. 토마토와 팬케이크를 잔뜩 얻어먹어 미안한 마음에 나도 냉장고를 한참 노려보았지만 가져다줄 것이 마땅찮았다. 어쩌나 어쩌나 하고 있는데 아기엄마가 빈 밥그릇을 들고 왔다. 줄 것이 없어 나는 머리통을 긁적였다. 그래서 그냥 빈말. "다음에 차 마시러 놀러 오세요" 시시하게도 그런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 말았다./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18-07-05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두물머리, 정약용의 초당 여유당(與猶堂)

집은 거주자의 정신을 담는다좋은 집은 자연·사람을 함께 품고손수 지었다면 공간마다 이유 합당 남한강변 자락 '단출한 다산생가'청빈한 삶·범접 못할 여백의 기운집은 거주자의 영혼을 반영하고 정신을 담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집주인의 의견을 적극 반영, 손수 건축한 집이라면 공간마다 합당한 이유가 존재하는 건 당연하다. 좋은 집이란 주변의 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미적 감각도 중요하지만 자연과 사람을 동시에 안아주는 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의 경우 얼마나 군더더기 없이 합리적인 공간 배치 유무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숨기고 감출 수납공간이 많을수록 집은 제 기능에서 멀어질 확률이 높다. 특히 한옥이라면 집과 마당을 하나의 연결된 공간으로 이어 건물을 돋우지 않는 것도 좋을 듯싶다. 그런 관점에서 집의 역할은 잡다한 것(잉여)들을 수납하는 공간만이 아니라 너무 크지도 아주 작지도 않게 가족 개개인의 개성과 프라이버시를 우선으로 배려해야 할 듯싶다. 어떤 사람에게 집은 잠이나 자는 곳이지만, 가사노동이 전부인 주부일 경우 평생 모든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어서 특별한 할애를 하는 게 맞지 싶다. 그만큼 집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어떤 일에 종사하느냐에 따라 그 기능을 달리한다고 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집의 한 부분은 빈 공간(작은 방 하나라도)으로 두는 것이다. 식구 중 누구라도 여백이나 공백이 필요한 이를 위한 쉼터로서의 공간,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옛집 즉 한옥이 갖는 구조가 아닌가 싶다. 두물머리 근처 남한강변 자락에 이생의 집과 저 생의 집이 나란히 함께 있는 곳, 수많은 연구와 집필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 업적을 남긴 다산의 생가를 방문했다. 어느 계절에 들러도 하늘을 찌를 듯한 느티나무 아래 단출한 한옥의 멋이 그대로 느껴지는 곳, 그곳이라면 조급할 일이 없다. 요즘은 관광차 들르는 사람으로 붐비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공간마다 실학자로서의 청빈한 삶과 쉬이 범접할 수 없는 여백과 어디에 자리를 잡고 앉아도 방해받지 않고 연구와 집필에 몰두할 수 있을 것 같은 집이 바로 다산의 초당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집필실의 당호도 그의 호를 따 여유당(與猶堂)일까. 구우(久雨) 窮居罕人事 궁벽하게 사노라니 사람 보기 드물고 恒日廢衣冠 항상 의관도 걸치지 않고 있네. 敗屋香娘墜 낡은 집엔 향랑각시 떨어져 기어가고, 荒畦腐婢殘 황폐한 들판엔 팥꽃이 남아있네. 睡因多病減 병이 많으니 따라서 잠마저 적어지고, 秋賴著書寬 글짓는 일로써 수심을 달래보네. 久雨何須苦 비 오래 온다 해서 어찌 괴로워만 할 것인가 晴時也自歎 날 맑아도 또 혼자 탄식할 것을. 초당의 생가를 둘러보며 잠시 그 한옥이 부럽기도 하였으나 새삼 외롭고 고독했을 한 선비의 일생이 영화를 보듯 눈에 그려져 짠한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굳이 그 이유를 찾는다면 초당의 '구우(久雨)'라는 시가 답이다. 늙은 버드나무 아래에서 땀을 식히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바람 한 점 없는 뙤약볕에 숨이 막힌다. 양수리에서 여주로 되돌아오는 동안 강변으로 끝없이 펼쳐진 패랭이와 망초꽃들. 중간에 차를 세우고 꽃무리 곁으로 다가가 두 팔과 손으로 쓰담쓰담해주었다. 다산이 별 볼 일 없는 관료들 눈에 들려고 평생을 학문에 정진한 것이 아니듯, 이 꽃들도 나 같은 인간 따위의 눈에 들려고 저리 열심히 핀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꽃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 갓 태어난 첫딸처럼 사랑스럽다. 남한강가에서의 일박이 꿈결처럼 흘러갔다./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18-06-28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소확행'이 불편하다

용어 매우 억지스러운 한자 조합'나만의 작은 행복'이라 썼으면…현재에 지속안돼 '확실한' 행복 아냐책임회피 기회주의적 발상될까 걱정'작지만 큰 행복 찾아보길' 권해요즘 소위 '소확행(小確幸)'이 유행이다. 이제 꽤 낯익게 된 이 용어를 잠시만 되새겨 보자. 이 말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벌써 삼십여 년 전, 한 수필에서 사용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서랍 안에 곱게 정돈된 팬티를 본다든지, 갓 구운 빵의 향기를 맡으며 기분 좋게 뜯어 먹는 등 일상에서 얻는 사소한 기쁨을 일컫는 말이다. 커피를 직접 로스팅하고 혼합해서 나만의 맛을 찾는 것, 오래된 엘피판에서 추억의 노래를 발견해 거듭거듭 듣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경우이다.글자 그대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이 개념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2010년대 들어 주목을 받는다. 신자유주의 이후 엄청난 경쟁과 스트레스에 지친 젊은 세대가 사회의 주류로 편입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이전의 기성세대는 미래를 위해 열심히 저축하고, 나를 희생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20~30대들에게 이런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3포세대 혹은 5포세대라고 불리는 지금의 젊은이들은 수십 번 구직 원서를 내도 취직이 안 되며, 어렵게 직장을 잡았다 해도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 더구나 저축해서 집을 산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이다. 미래가 사라졌다.그래서 훗날의 희망을 포기하는 대신 그 자리를 현재의 즐거움으로 채우고자 한다.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들은 정치·역사 같은 거대담론에 관심이 없고, 그저 '나만의 작은' 행복을 갖는 것으로 만족한다. 빈부격차와 계급 간 불평등이 더 심화되고 있고, 이것이 삶을 짓누르는 근본 원인이라는 걸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다. 어차피 그들의 힘으로 그건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런 '진지한' 문제에 관심을 보이다간 같은 세대로부터 '진지빤다'고 배척만 받을 것이 분명하다.그렇다면 '소확행'은 그들이 자연스레 선택한 것이 아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삶의 스타일인 셈이다. 바로 이 점에서 모순과 갈등이 일어난다. 아끼고 아껴 훗날 집을 사느니 해마다 모은 돈으로 해외여행을 떠난다든지, 남들과는 다른 빈티지 청바지를 끊임없이 사 모으는 행위를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행복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시적이며 불확실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나'를 벗어나 '타자'와 만나는 공간에서, 그리고 '지금'보다 조금 더 '확장된 시간' 속에서, 이런 행복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여기에 '소확행'의 불행이 도사리고 있다.나는 '소확행'이 불편한 이유를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 이 용어가 매우 억지스러운 한자어 조합이라는 것, 차라리 그냥 '나만의 작은 행복'이라고 풀어쓰면 좋겠다. 둘째, 그야말로 이 '작은' 행복이 현재라는 시간에 매몰되는 한 지속되지 않으며, 더구나 그것은 타자화될 수 없어 '확실한' 행복이 아니라는 점이다. 식후에 담배 한 개비를 피우는 게 어떤 사람에겐 행복이지만, 다른 사람에겐 고통이 될 수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기회주의적 발상으로 귀결될까 걱정이다. 셋째, 이 '작은' 행복이 한 사람의, 또는 한 사회의 궁극적 목표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행복은 개인이 혼자 만드는 것보다 '유동하는' 공동체가 함께 이룰 때 훨씬 크고 오래간다.'소확행'과 더불어 요즘 주목받는 것에 덴마크의 '휘게(hygge)', 스웨덴의 '라곰(lagom)', 프랑스의 '오캄(au calme)', 미국의 '킨포크(kinfork)' 등이 있는데, 대체로 미니멀리즘을 강조하는 생활 스타일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법정 스님이 말한 '무소유'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각 개념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 '라곰'과 '오캄'과 '무소유'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균형 잡힌 절제와 편안함을 강조하는 데 비하여, 휘게와 킨포크는 공동체적 차원에서 소박하고 여유로운 삶을 추구하고자 한다. 나는 '소확행'보다는 '라곰'의 균형과 '휘게'의 타자성이 조화를 이루는, 그런 작지만 '큰' 행복을 찾아보길 권하고 싶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18-06-21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여름 친구 삼총사

아이스크림·빙수·아이스 음료…금색맛과 파란색맛 번갈아 맛보는오랜만에 먹은 추억의 아이스크림이참에 쌍쌍바도 도전 분리 성공땐월드컵 한국팀의 괜찮은 성적 기대"빙수야 팥빙수야~ 사랑해 사랑해/빙수야 팥빙수야~ 녹지 마 녹지 마" 윤종신의 노래 '팥빙수'다. 팥빙수를 만드는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한 가사와 단순한 멜로디는 들을 때마다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라디오에서 팥빙수 노래가 자주 흘러나오는 걸 보니 여름이 왔음을 실감한다. 직장 주변은 '스세권(스타벅스+역세권)'은 아니지만 '여름 메뉴 삼총사'인 아이스크림, 빙수, 아이스 음료를 즐기기엔 꽤 좋은 환경이다. 주말이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는 팥빙수의 명소가 지척이고,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아이스크림 체인과 700원짜리 콘을 파는 패스트푸드 체인에 아이스크림 세일을 자주 하는 동네 마트도 있다. 차이나타운으로 가면 짜장맛이 나지 않는 짜장 빙수와 구수한 한국말은 덤인 '쫀득쫀득' 터키 아이스크림까지 맛볼 수 있다. 주인장의 개성이 넘치는 카페들도 많아서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부터 아.쏙.바.(아이스크림 쏙 바닐라라떼), 아포카토까지 차가운 음료의 선택 폭도 넓다. 더운 여름,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데에 적당히 달고 시원한 음료만 한 해결사가 또 있을까?회사 근처에서는 물론이고 전국 어디에서나 편하고 당연하게 차가운 각종 먹을거리들을 접하다가 해외에 나가보면 한국처럼 얼음이 흔한 나라가 꽤 드물다는 걸 깨닫게 된다. 집집마다 얼음 정수기가 있고 산 정상에서조차 꽁꽁 얼린 생수를 쉽게 살 수 있는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많은 나라에서 얼음은 결코 흔한 아이템이 아니다. 당장 유럽에는 한국에서 그렇게 흔한 '아.아.'가 메뉴에도 없는 곳이 태반이다. 맥도날드에서조차 아이스 커피를 주문했다가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한다. 음료를 시킬 때 "아이스를 달라"고 부탁하면 대체 그걸 왜 달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재차 물어보는 종업원을 만나게 되고, 마지못해 내온 컵에 담긴 얼음은 뜨거운 커피에 넣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니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얼음 친화적'인 나라 한국이지만,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려면 빙수와 아이스크림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은 동남아도 아니면서 사시사철 '빙수'를 주력 메뉴로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점포가 500여 개에 육박하는 나라다. 그뿐인가? 골라 먹는 재미를 표방하는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 점포는 1천200여 개에 달한다. 31개의 맛을 골라 먹을 수 있다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처음 갔던 날, 용돈을 아껴 처음 사 먹었던 아이스크림은 1천700원이었다. 아이스크림치고는 너무 비쌌지만, 그만큼 맛있어서 한 스푼을 먹을 때마다 최대한 오래 아껴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때 그 아이스크림은 이제 3천500원으로 2배 이상 올랐다. 이제는 아이스크림 한 개 사 먹는데 큰 결심을 할 필요도 없고, 굳이 아껴먹지 않아도 되지만 먹을 때마다 어렸을 때 그 아이스크림 한 개를 사 먹기 위해 돈을 모으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한 번이라도 먹어봤던 아이스크림 외에는 통 손이 가질 않으니 입맛이 가장 보수적이라는 어르신들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래서일까? 요즘 장수 아이스크림이 우유·젤리·사탕 등으로 바뀌어 나오거나 단종됐던 제품을 재출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복고풍' 아이스크림의 인기가 대단하다니 사람들의 취향은 어쩌면 꽤 비슷한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돌아온 추억의 아이스크림 '엑설런트'를 오랜만에 먹어봤다. 두 가지 맛을 따로따로 사지 않고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오리지널 버전이다. 뭐니뭐니해도 이 아이스크림의 포인트는 금색맛(프렌치 바나나)과 파란색맛(오리지널 바나나)의 포장지를 벗겨내고 다른 맛을 하나씩 번갈아 가며 맛보는 데에 있다. 기왕 추억의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한 김에 오늘 밤에는 쌍쌍바에 도전해볼 참이다. 힘 조절을 잘 해서 쌍쌍바를 깔끔하게 두 개로 분리해내는 순간의 희열은 어른이 되어서도 포기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니까. 쌍쌍바 분리에 성공하면, 오늘 개막하는 월드컵에서 한국팀 성적이 괜찮을 거라는 미신 같은 기대도 살짝 품어본다.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한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등 올해 여름은 '역대급'이 될 것이라는 예보다. 생각만 해도 시원한 '여름 나기 삼총사'와 함께 다가오는 여름을 준비해보면 어떨까?/정지은 문화평론가·인천문화재단 과장정지은 문화평론가·인천문화재단 과장

2018-06-14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메아리가 있는 절명의 노래

조광조 詩엔 그의 정치관 묻어있다쉽지 않은 '정치개혁' 성공하려면미래지향 철학·역사의식 확고하고수구파의 전복도 물리쳐야 한다무엇보다 백성의 마음 얻는게 중요그날은 잿빛 하늘이 깊게 내려앉아 있었다. 금세 눈발이 흩날릴 것 같았다. 혹한으로 침실의 물이 얼어 있었다. 이곳으로 유배되어 온 지 한 달, 조광조(1482~1519)는 매일 사립 앞으로 이어진 아스라한 길을 내다보았다. 세한 속에 앙상한 미루나무 그림자가 길게 누워 있을 뿐 아무도 길을 나서지 않았다. 사람 없는 길은 공허했다. 그는 빈 길을 내다보며 자신을 신뢰하고 총애하며 정치개혁을 밀고 가던 임금이니 곧 유배를 거두워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악몽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수없이 중얼거렸지만 꿈은 아니었다. 매운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자 군마를 앞세운 일행이 언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났다. 귀양지를 찾은 지우들에게 강의를 하던 그는 황급히 일행을 맞았다. 의금부 도사 유엄이었다. 유배지로 의금부 도사가 왔다는 것은 필경 사사의 명을 전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마당으로 내려섰다.중종 14년 12월 20일,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 외진 집 마당에 무릎 꿇고 조광조는 중종의 전교를 받들었다. 그는 사사의 명을 읽고 물었다. '사사의 명만 있고 사사의 글은 없소이까?' 유엄은 작은 쪽지를 내보였다. '내가 명색이 대부의 반열에 있다가 죽게 되었는데 쪽지 한 장이 무엇인가?'라며 유업을 쳐다보았다고 중종실록은 적는다. 덧붙여 임금은 모르는 일인데 자신을 미워하는 이들이 중간에서 마음대로 만든 일이 아닌가? 의심했기 때문이라고 실록은 해설하고 있다.그가 미워하던 심정이 이조판서에 올랐고 그를 지키려 했던 영의정 정광필이 중추부영사로 좌천되고 그와 극렬히 대립하던 남곤이 좌의정에 올라 실권을 장악했다는 말을 유엄에게서 들은 조광조는 '그렇다면 내 죽음은 틀림없소'라며 마지막 생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무거운 걸음을 옮겨 방으로 들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나이 서른여덟, 지난 4년 간 격렬했던 정치개혁의 숨가쁜 날들이 스쳐갔다. 중종 10년 문과에 급제해 종6품 사간원 정원으로 관계에 나간 후 1년 만에 종3품 홍문관 전한에, 1년 후에 정3품 홍문관 부재학에, 같은 해 종2품 승정원 동부승지에, 두 달 후에 동지성균판사에, 네 달 후에 정2품 사헌부 대사헌으로 승승장구했던 날들이었다. 그의 가슴은 절명의 순간에 더 떨렸다. 피 끓는 심정을 담아 절명시 한 편을 써내려 갔다.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했고/나라 걱정하기를 집안 근심처럼 했다/밝은 해 아래 세상 굽어보사/내 단심과 충정 밝디 밝게 비춰주소서' 그는 자신의 절명시를 다시 한 번 천천히 읊조렸다. 분하고 원통했다. 그의 죽음으로 사림파의 개혁정치는 막을 내렸다. 시대를 앞서간 사림파의 몰락을 율곡은 '오직 한 가지 애석한 것은 조광조가 출세한 것이 너무 일러서 경세치용의 학문이 아직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충현도 많았으나 이름나기를 좋아하는 자도 섞이어서 의논하는 것이 너무 날카롭고 일하는 것도 점진적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조광조는 여러 편의 경세시를 남겼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자기를 다스리는 마음과 나라를 경영하는, 치국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인생은 본래 스스로 고요한 것/맑고 바른 것 그것이 진리이네/조용히 향기로운 적성을 기르나니/어찌 풀과 사람이 다르겠는가?'처럼 인생이란 스스로 맑고 고요한 정관의 경계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다른 시를 읽으면 그의 정치관이 드러난다. '오직 저 양근군은/깊이 도리원을 감추웠네/누가 능히 나를 따라/서로 더불어 건곤을 단련할까?'에서 도리원은 이상향의 근원이다. 도학이 추구하는 근본이치는 무릉도원과 같은 이상향으로 모든 것이 저절로 다스려지는 세계라고 노래한다. 정치개혁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미래지향의 정치철학과 역사의식이 확고해야 하고 수구파의 전복을 물리쳐야 한다. 무엇보다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경세의 진리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18-06-07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우리, 선량한 사람들

아주 선한 얼굴로 비윤리적이고비사회적 행동 일삼는 이기주의우리가 저지른 크고 작은 폭력들"제발 그러지마"·"아프게 하지마"소리쳐 막지 못한채 나는 멀어졌다길을 걸으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있다. 흡연구역이나, 하다못해 길 한 곳에 멈춰 피우지 않고 담배에 불을 붙인 채로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 비교적 널찍한 인도에서라면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피하기라도 할 텐데, 좁은 골목에서 그런 이들을 맞닥뜨릴 때면 꼼짝없이 애꿎은 담배 냄새를 맡아내야 한다. 그럴 때 '나'는 노약자나 임산부일지도 모른다. 호흡기 질환을 앓는 중환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사정 따위 헤아려질 리 만무하다. 담배를 손에 든 이의 걸음은 지극히 태평하고, 뒤에서 발을 동동거리는 이는 손으로 입과 코를 막으며 간신히 숨을 고르는 수밖에 없다. 흡연을, 나의 아버지를 비롯한 흡연자들을 나는 존중하지만 이런 경우 존중이란 말은 아무래도 너무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 '거리 흡연자'의 심리란 대체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보곤 한다. 지나치게 무신경한 나머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행위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오로지 자신의 기호에만 몰두해 타인에게 끼치는 불편이나 어려움에 대해서는 도무지 신경 쓸 여력이 없거나. 혹은 나의 작은 기쁨을 위해 타인은 언제든 희생을 감내해도 된다고 믿거나. 내가 좋아하는 기호품을 타인 역시 좋아할 것이 분명하므로, 그로 인한 유해함마저 기꺼이 공유해야 마땅하다고 여기거나. (그렇지 않다면 이토록 당당할 수 있을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남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 나 또한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함부로 자위하거나. 대체 어느 쪽일까? 알 수 없다. 언젠가 한 번은 "저기요!" 불러 세워 진지하게 묻고 싶다. 물론, 어느 쪽이든 유쾌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이지만. 거리에서의 흡연이란 껌이나 침을 뱉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일 수 있겠다, 고 최근 나는 생각했다. 얼마 전의 일이다. 집으로 접어드는 골목에서 한 남성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 또! 낯설지 않은 풍경이군, 잽싸게 앞질러 가려는데 그가 서둘러 일행을 앞으로 슬쩍 밀어 보냈다. 흡사 에스코트를 하는 모양으로. 일행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와 어린 딸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얼마나 해로운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그 해를 타인에게는 끼쳐도 무방하지만 자신의 소중한 가족에게는 결코 끼치지 않겠다는 철두철미한 마음.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으며, 비윤리적·비사회적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는 가족 이기주의, 또는 집단 이기주의에 다름 아닐 테지만, 지금 여기서 그 같은 이야기를 꺼내려는 건 아니다. 앞선 그 순간, 내가 본 것은 한 사람의 선량한 얼굴이었다. 선량하기 그지없는 이의 표정과 말투, 태도. 그는 얼마나 자상한 남편인가. 듬직한 아버지인가. 순간 나는 소름이 돋았다.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단정한 원피스를 차려입은 그의 어린 딸은 저만치 앞서가며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씩 걸음을 늦추는 아버지를. 아버지의 손에서 희뿌옇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어쩌면 그 뒤편 연기를 고스란히 맡고 선 낯모르는 이들을. 그때 뇌리 속에선 전혀 다른 장면 하나가 오버랩 되었다. 학교 앞 문구점 평상에 사이좋게 둘러앉은 아이들. 이제 막 재미난 게임을 시작했다는 듯 킬킬거리며 머리를 맞댄 그 곁을 무심코 지나치며 나는 보았다. 그 애들의 손아귀에서 세차게 몸을 떠는 한 마리 잠자리. 날개가 찢어발겨진 잠자리가 거기 있었다. 설렘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 애들은 대체 무엇을 했나. 그리고 그 애들은 어째서 저토록 무구한가. 무감한가. 타자의 고통 앞에. 정말 모르는 것일까. 모른 체하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그 애들은 학교로 돌아가 좋은 학생이 되겠지. 좋은 자식이, 좋은 부모가 될 것이다. 되었다고 믿을 것이다. 아주 선량한 얼굴로. 우리가 저지른 크고 작은 폭력들은 실은 겉으로는 아주 선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렇고 그런, 아주 선량한 사람들인지도. 하지 마, 제발 그러지 마. 그렇게 아프게 하지 마. 결국, 그 애들을 소리쳐 막지 못한 채로 나는 유유히 멀어졌다. 아주 선량한 얼굴로./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8-05-31 박소란

[풍경이 있는 에세이]툇골 풍경

선생님께 K선배 부음 전하려던건그가 품었던 열망 아무도 몰라줄까봐조금이나마 증언해주고 싶었기 때문내가 선생님을 쓸쓸하게 했겠지만보퉁이 내려놓은 것처럼 후련했다선생님이 사는 마을의 이름은 툇골이었다. 그렇게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본 것이 얼마 만인가 싶었다. 어쩌면 처음인지도 몰랐다. 짙은 초록과 푸른 초록, 덜 푸른 초록과 연한 초록이 차게 흐르는 개울물 곁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마을이었다. 그 숲 안에 동그마니 앉은 선생님의 집. 그리고 선생님이 손수 지은 조그만 오두막이 곁에 딸려 있었다. 대학 은사님을 뵈러 간 길이었다. 이십 년 만이었다. "선생님, K선배 기억하세요?" 아쉽게도 선생님은 이십 여 년 전 기억의 문짝을 다 열어젖히지 못했다. "글쎄다. 가물가물한 걸." "예전에요, 선생님이 K선배를 불러다 놓고 그러셨어요. 너는 정말 소설가가 될 거다. 그것도 이 소설로. 정말 멋진 소설을 썼구나, 너는." K선배나 나나 문예창작학과의 순진한 소설가 지망생들이었다. 그날 K선배는 하도 기분이 좋아 바짝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지도 못했다. "그래서, K는 어떻게 지내니? 소설가가 됐고?" 나는 K의 소식을 전했다. 사실 그러려고 툇골까지 간 거였다. 2년 전쯤 나는 낯선 여인의 전화를 받았다. K의 누나였다. "K의 부음을 전하려고요. 동생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보는데, 들어본 이름이 그쪽 뿐이었어요." K와 나는 1년에 한 번, 2년에 한 번쯤 만났다. 그냥 잊고 살 법도 했는데 그는 소설을 마음에서 도무지 놓지 못했다. 그는 스카우트 제안이 차고 넘치는 웹 기획자였고, 유능한 자유기고가였다. 음악에 문외한인 나였지만 그가 잡지에 쓴 음악 칼럼에 홀랑 빠져 칼럼 속 음악이라면 뭐든 사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청춘의 대부분 동안 소설을 쓰지 못해 안달복달했고 걸핏하면 좁은 방 안에 처박혔다. "딱 1년만 소설만 쓸래. 다른 거 다 접고." 그럴 때 K는 삼겹살집이나 꼬치구이집에 앉아 이십여 년 전 선생님이 건넨 칭찬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나는 삼겹살을 뒤집거나 꼬치구이의 은행알을 빼먹으며 그런 K를 한 번도 말린 적이 없었다. 아직 우리는 젊으니 그런 1년이 자주 와도 괜찮다고, 청춘을 자만했다. K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 죽었다. 소설이 쓰이지 않아 죽을 만큼 고독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그가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 젊은 남자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아프면 죽기까지 하는 거야?" 친구들에게 K의 부음을 전하며 나는 그렇게 엉뚱한 소리만 했다. 툇골 선생님의 서재는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수천 권의 책들에선 오래된 종이 냄새가 풍겼고 연통을 단 난로가 있었다. 오두막에는 손님들을 위한 침대도 두 개가 있었다. 그 위에 깨끗하게 개어진 이불들. 새침데기 흰 거위 세 마리가 마당을 돌아다녔고 고양이 두 마리도 게으르게 지붕을 타고 넘었다. 노랗게 흐드러진 봄꽃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K한테, 여기에 좀 와서 지내다 가라 그럴 걸 그랬구나. 그랬다면, 여기 산 냄새 맡고 물소리 들으며 산다는 것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인생에 길이 여러 갈래라는 것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힘겹겠지만 다른 종류의 확신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을." 정말 그랬을 텐데. K라면 이곳을 정말 좋아했을 텐데. 그의 고독을 짐작하지 못했던 시간이 몹시도 미안했다. 그가 보지 못하고 떠난 툇골의 풍경이 하나같이 아까웠다. "나는 그리 좋은 선생이 아니었나 보구나. 좋은 선생이었다면 K가 나를 찾아왔을 텐데 말이지. 많이 미안하네." 내가 K의 소식을 선생님에게 전하려고 했던 건 그를 조금이나마 증언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K가 그렇게 오래 마음에 품고 있었던 열망을 아무도 몰라줄까봐, 늘 K의 열망 속에 존재했던 선생님조차 모를까 봐서였다. 내 이야기가 선생님을 쓸쓸하게 만들었겠지만 나는 보퉁이 하나 내려놓은 것처럼 아주 약간 후련해졌다./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18-05-24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애월(涯月), 물가의 달빛이라니

파도가 애월아 하고 목을 놓으니밤이 이슥토록 자리를 뜰 수 없다누가 이토록 애끓는 이름을 지어열일곱 춘정처럼 내 맘 흔드는지애닯고 서러워라…제주로 가는 여정은 마취에서 깨어나는 순간처럼 아스라했다. 섬의 모든 것들이 그리웠지만 마침 그날은 만월을 볼 수 있는 음력 보름이라 일출봉에서, 용머리 해안에서, 중산간도로 오름에서 마주친 달 생각이 간절했다. 그리고 어딜 가도 피할 수 없는 바람, 그 바람의 주소지, 그러고 보니 나는 절대의 바람을 목말라했나 보다. 내가 온몸으로 감각하는 모든 것, 두발로 걷고 두 눈으로 보고 두 손으로 어루만지는 것, 내가 그분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배가 아니던가. 노란 유채꽃이 다녀간 자리마다 연분홍 갯무꽃이 절정이다. 바다는 언제나 새파랗고 풀들은 일제히 초록물결을 이루며 바람과 동거하는 곳, 사랑한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몸이 망가지더라도 두려워말고 서로에게 물들고 물들이며 으스러지도록 안고 보듬어 끝내는 하나로 합일하는 것. 분별이 비판을 목적하지 않고, 칭송이 맹목적인 편 가름에 있지 않다면 사실 그대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얼마나 소중한가. 분명한 건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탈출은 의미가 없듯 사랑이야말로 세상에 몇 안 되는 제도가 통제할 수 없는 본능이라는 것.제주의 서쪽, 바다 가운데서 그 위용을 뽐내는 풍력발전기를 따라 애월 해안도로를 달린다. 갯바위에 가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길가에 서있는 여러 대의 오토바이바이가 눈에 들어왔다. 왜 나는 매번 그런 것들이 궁금한지. 오토바이는 저 홀로 부동으로 서있는데 대체 오토바이의 주인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차를 세우고 숨비소리를 따라 해안으로 내려서자 비로소 파도를 헤치고 물질하는 해녀들이 보인다, 오토바이는 그들이 육지를 이동할 때 쓰는 교통수단이라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휴우~ 물 밖으로 나와 참았던 호흡을 길게 뱉을 때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절박한 아우성으로 들리는지. 뭍에서도 강하고 바다에서도 강한 그들은 본시 어머니와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그 섬에 살도록 최적화된 존재는 아닐까. 여자였으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르지만 어머니라서 가능했을 제주의 해녀들. 여전히 바람은 불고 해까지 기울어 문득 내 인생도 뭔가에 떠밀려 지금 이곳에 서있는 지도 모른단 생각.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있을 때 바다를 등진 해녀들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총총히 사라지고 등대에 불이 깜빡거리자 기다렸다는 듯 두둥실 달이 떠오르는 애월. 그러니 가보자 하고 달려간 곳이 애월이었다. 저 푸른 바다 굽잇길 돌면 무엇이 기다리는지 조금, 조금만 더 가보자 손을 끌었던 건 바람이었다.전생에 어느 양반가문의 첩실 이름 같은 애월정신줄 살짝 놓은 늙은 작부의 이름 같은 애월물질이 싫다며 타관을 떠도는 해녀 딸 같은 그 이름 애월뭇 사내들이 바다에 몸을 던진 곳그들을 따라 바다로 간 지어미는 또 얼마나 될까.때 늦은 유채꽃 향기가 어둠의 행간을 서성거린다.그리움 따윈 까맣게 잊고 싶었으나 파도가 애월아 애월아 하고 목을 놓으니밤이 이슥토록 자리를 뜰 수가 없다.뭍으로 가는 막배를 고의적으로 놓치고 갈 곳 없는 나는 방파제에 주저앉아 저 물가를 찰방거리며 노니는 달빛 끌어안고 애원하고픈 마음에 속이 탄다.대체 누가 이토록 애끓는 이름을 지어 열일곱 춘정처럼 내 맘 흔들어 설레게 하는지애닯고 서러워라.애월(涯月)이 물가의 달빛이라니/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18-05-17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자유'라는 환상

기득권 세력 권력으로 얻은 이익그로인해 피해 본 약자에 나눔 거부내가 편하게 살려고 다른사람 권리침범할 자유는 누구에게도 없는것공공의 선 가치 아래서만 자유 가능얼마 전 판문점 '도보다리' 위에서 남북 정상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은 아마 우리 역사에서 가장 멋진 명장면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TV에선 두 분의 말씀은 들리지 않고 그저 새소리만 가득하다. 어떤 조류학자에 의하면 거기엔 청딱따구리, 쇠박새, 곤줄박이, 박새, 직박구리, 흰배지빠귀 등 텃새와 산솔새, 되지빠귀 등 철새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가 못 들은 이야기를 그 새들은 모두 들었을지 모르겠다. 우린 그저 진짜 봄이로구나, 느낄 뿐이었다.그러나 우리 사는 세상이 모두 이렇게 환하지만은 않다. 지난 3월 초 서울교육청이 강서지역에 세우려던 특수학교 설립 공청회가 지역주민의 반대로 파행을 겪었다. 장애인 학생의 부모가 무릎을 꿇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많은 공분을 샀고, 교육청에선 계획대로 강행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서울을 비롯한 지방 여러 대학에서 기숙사를 지으려 시도하다 지역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갈팡질팡하고 있다. 고려대, 세명대, 경북대 등이 요즘 갈등의 주인공이다. 학교 주변 원룸 임대업자들은 평균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50만원을 받는데, 학생들이 기숙사를 이용할 경우 보증금 없이 월 20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고 한다.비슷한 사례로 이런 것도 있다. 얼마 전에 국방부에서 장병의 위수지역을 폐지하려고 했다 접경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계획을 접었다. 요즘은 교통과 통신 여건이 크게 발달해 위수지역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한데, 오로지 지역 주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장병의 권리를 박탈해 버렸다. 또 강원랜드 부정채용 사건도 어이없기로는 최고 수준이다. 청탁으로 취업을 했다 퇴출당한 226명이 노조를 등에 업고 '선의의 피해'를 주장하며 행정소송 등의 법정 투쟁을 벌일 거라고 한다. 그 '피해자'들이 그들로 인해 취업의 기회를 박탈당한 진짜 피해자의 고통을 상상이나 해보았을까? 이에 실소를 넘어 분노를 느낀다.특수학교에 가지 못하는 어린이들, 싼 숙소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대학생, 위수지역이라는 감옥에 갇혀 푸대접을 받는 장병, 든든한 배경이 없어 취업전선에서 쫓겨난 청년에게는, 판문점을 비추던 그 봄빛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이 경우의 공통점은 기득권 세력이 그 권력으로 얻은 이익을,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약자에게 조금도 나누길 거부한다는 것이다. 약자에 대한 '갑질'을 넘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타자를 착취할 수 있다는 사고를 바탕에 둔 것이어서 매우 심각하다. 여기엔 어떤 변명도 우리의 분노와 공포를 가라앉게 해주기엔 부족해 보인다.그런데 그런 '갑질'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만연해 있다는 걸 금세 알게 된다. 가해자는 특별한 별종의 인간이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며 바로 나 자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만나면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고 기분 좋게 술 한 잔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악마가 되어 있었던 것일까?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나? 아니, 우리 자신이 이미 무서운 악마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내 안에 들어 있는 악을 들여다볼 눈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나?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 이런 대사가 있다. "우리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가 다시 새겨야 할 근본 조건은 '자유'라는 환상을 깨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편하게 살기 위해 타자의 권리를 침범할 자유는 누구에게도 없다. 자유는 타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자유로 제한되어야 한다. 자유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한계 내에서의 자유, 즉 공공의 선이라는 가치 아래에서만 가능한 자유이어야 한다. 즉 타인에게 고통을 강요할 자유란 없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한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새소리와 함께 봄날이 가고 있다. 이 봄빛이 세상을 더 골고루 비추길 바라본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18-05-10 정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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