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

 

[풍경이 있는 에세이]작가의 사회적 책임은 어디까지?

정치적 입장 분명한 작가의비정치적 작품 미학적 가치 갖는가반대로 정치적 내용 썼다는 이유로 도덕적 비판 또는 지지할 수 있나그 범위 모든 공인에 적용해야 할듯지난달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올가 토카르축과 페터 한트케가 발표되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우선 토카르축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생소해, 내 독서의 범위가 참 좁았다는 당혹스러움이 먼저 다가왔다. 나중에 그의 이력과 작품을 보면서, 내 시야를 더 키워야겠다고 크게 반성했다. 하지만 한트케의 경우는 좀 달랐다. 그는 이미 여러 권의 저서가 우리 말로 번역되어 있고, 희곡도 대학로 등에서 이미 공연되었기에, 내겐 익숙한 작가였다. '언어의 천재'라는 별명이 붙은 뛰어난 작가.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노벨 문학상이라니!!!페터 한트케는 매혹적인 작품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기에 더욱,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다. 1995년 세르비아에 의해 저질러진 보스니아 대학살을 부인하고, '그건 보스니아 무슬림의 자작극'이라고 왜곡했으며, 제노사이드 범죄자이자 '발칸의 도살자'라 불린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의 장례식에 참석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종청소'를 옹호했던 것이다. 2014년 극작가에게 주는 '국제입센상'을 수상했을 때에도 그에겐 비난이 쏟아졌다. 더구나 2014년 그는 "노벨상 수상자를 그릇된 문학의 규범"으로 만든다며 노벨상 폐지를 주장한 바도 있다. 그런데 이번 자신의 수상에 대해서는 "스웨덴 아카데미가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렸다"라고 평가했다.그의 수상에 대해 많은 이들이 우려했다. 슬로베니아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한트케에게 노벨상을 줄 것이 아니라, 줄리언 어산지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비극의 현장을 목격한 바 있는 수전 손탁은 그를 "언급할 필요도 없는 작가"라 평했다. 1999년 한트케가 노벨상 후보에 올랐을 때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그의 제노사이드 옹호를 비판해 "올해의 국제적 멍청이"라 부른 적도 있다. 국제인권위원회는 "역사적 진실을 폄훼하는 작가에게 상을 주다니 말문이 막힌다"고 논평했다. 이런 비난이 일자 스웨덴 아카데미는 "수상자 결정에 정치적 관점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노벨상에는 이와 비슷한 논란이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2010년 수상자 바르가스 요사도 우익 정치가를 지지해 비난을 받았다. 우익 지지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좌익 정치지도자에 대한 지지도 문제를 일으켰다. 마르케스는 쿠바의 지도자 카스트로를 지지했으며, 사르트르와 네루다는 소련의 스탈린을 지지한 바가 있다. 노벨상을 받을만했으나 받지 못한 보르헤스의 경우는, 그 이유가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군부독재를 지지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노벨상처럼 큰 상이 아니라도 정치적 스탠스 때문에 비난을 받거나 거꾸로 칭찬을 받는 예술가들의 예는 흔하다. 이렇듯 작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예술작품과 정치는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이를 보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닿게 된다. 정치적 입장이 분명한 작가의 비정치적 작품은 미학적 가치를 갖는가? 그 반대로 정치적 내용을 담은 작품을 썼다는 이유로, 그 작가를 도덕적으로 비판 혹은 지지할 수 있는가? 더 범위를 넓혀 같은 방식의 질문이 예술가, 더 나아가 연예인, 운동선수, 교육자, 종교인, 공무원 등 공적 영역을 담당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으리라 본다. 예를 들면, 히틀러가 그린 그림은 예술적 가치가 있는가? 친일 작품을 쓴 서정주를 용서할 수 있는가? 피카소는 여성 편력이 심했다는데, 그렇다면 그는 위대한 화가인가 난봉꾼인가?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멜 깁슨의 반유대주의는 널리 알려진 사실, 그렇다면 그의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나? 마이클 잭슨은 근래 소아성애자임이 밝혀졌는데, 그럼 그의 노래를 이제 버려야 하나? 태극기 집회에서 어떤 목사가 '청와대로 진격하자'라고 했다는데, 그를 여전히 종교지도자라 할 수 있는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물론 나는 나름의 답을 갖고 있지만, 지금은 독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께서 먼저 깊이 고민해보시길 바란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19-11-14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서로 있는 그대로 받아주며 즐기는단점 많은 곰돌이 푸 친구들그들 우정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힘들때 이들의 세상 걱정없는 대화읽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진다뉴스를 끊은 지 꽤 됐다. 명색이 신문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적절한 방법은 아니지만 '뉴스'로 다뤄지는 소식들에 들썩이는 마음을 주체할 길 없어 고민 끝에 한시적으로 선택한 방법이다. 사실 뉴스보다 먼저 끊은 건 SNS다. 하루라도 업데이트되는 소식들을 못 보면 마음이 불안했는데 막상 끊고 나니 또 아무렇지도 않았기에 두 번째 선택으로 뉴스를 보지 않게 된 것이다. 안 보고 모르면 마음이라도 편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이 또한 효과가 괜찮다. 가장 놀라운 것은 꼭 알아야 할 것처럼 챙겨보던 그 모든 소식들을 몰라도 일상에 별다른 지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뉴스를 비롯한 각종 소식들에서 자유로워진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너무 소식을 모르다 보니 자칫하면 이 귀여운 곰돌이와 유쾌한 친구들을 만나지 못할 뻔했기 때문이다. 바로 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곰돌이 푸(Winnie the Pooh : Exploring a Classic)' 전시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인 꼬마 크리스토퍼 로빈과 이 꼬마의 둘도 없는 친구인 곰돌이 푸가 주인공이다. 물론 꼭 이 전시를 봐야 하는 건 아니지만, 디즈니 만화에서 빨간 티셔츠를 입히고 노란 곰으로 캐릭터화되기 이전, 보송보송한 털 인형에 가까운 원형의 푸우를 만날 수 있는 기회라 놓치기 아까웠다. 바로 지금, 매일매일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날인 푸에게는 다양한 모험을 떠나는 친구들이 있다. 소심한 피글렛, 항상 우울한 당나귀 이요르, 에너지 넘치는 호랑이 티거, 허세 가득한 부엉이 아울, 간섭대장 래빗까지…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아 보이는 친구들이지만 이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오늘은 무슨 신나는 일이 생길까?"라니! "그냥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들을 수 없는 모든 것에 귀를 기울이고, 생각을 비우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 이런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이 철학적인 곰은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는 꿀단지를 껴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준다. 노는 것조차 딱히 뭘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푸와 친구들이 하는 '푸스틱(poohsticks)'놀이가 그렇다. 다리 위에서 동시에 나뭇가지를 떨어뜨린 뒤 다리 반대편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강물을 따라 가장 먼저 흘러내려오는 나뭇가지의 주인이 이기는 놀이다. 푸가 자신의 앞발에 튕겨져 강물로 떨어진 솔방울이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모습을 보다가 발명한 게임이라고 한다. 강물이 너무 느리게 흐르는 바람에 다리 난간에 붙어 서서 한참을 멍하니 내려다봐야 할 때도 있지만, 로빈과 푸에게는 즐거운 놀이 중 하나다. 사실 실제 해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놀이일 수도 있고 뭔가를 하기보다는 기다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는 놀이지만, 이 둘에게는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실제 동화의 배경이 된 영국 하트필드에서는 일 년에 한번, 푸스틱스 시합이 공식적으로 열린다고 하는데 그때만큼은 어른들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 동화 속 세계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그것밖에 할 게 없는 바로 그때 '모험'이 시작되고 소년과 곰이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정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우린 평생 친구지? 그렇지?"라는 물음에 "그보다 더 오래!"라고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려워진 나는, 이들의 우정이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아름다워 보이는 이들의 우정이 동화이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책을 덮으며 싱긋 웃고 만다. 로빈과 푸, 친구들이 나누는 우정이 '왜 나에게는 없을까' 고민하며 우울해하는 대신, 힘들 때 이들의 순진무구하고 세상 걱정 없는 대화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원작 책을 처음으로 읽으면서 뭔가에 쫓기듯 분주하던 마음과 들끓는 욕망을 슬그머니 내려놓아 본다.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기란 쉽지 않지만, 이 동글동글한 곰돌이 푸와 함께라면 좀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다./정지은 문화평론가정지은 문화평론가

2019-11-07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죽서의 애절한 시편들

10세때 지은 '창밖에서 우는 저 새는…두견화는 피었는지' 서정 넘쳐서기보의 첩실로 님 향한 그리움병약함으로 애잔한 시 짓기 낙 삼아늘 홀로 지내는 고적함 잘 드러내가을밤 깊어진다. 밤 깊어지며 생각이 깊어지는 건 계절 때문이리라. 찬바람이 인다. 별빛이 흔들린다. 열엿새 달빛이 유난히 밝고 시리다. 밝은 달빛으로 검은 하늘이 푸르게 보인다.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다려야 할 것 같은 고즈넉함이 사위를 흐른다. 귀뚜라미 울음이 울컥 숲을 토해놓는다. 이런 밤을 죽서는 수없이 보냈을 것이다. 밤 지새 눈물지으며 조용한 사립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을 것이고, 오지 않는 님을 기다려 가슴이 타들어 갔을 것이다.박죽서(1817~1851)는 원주 출신의 시인이다. 원주는 여류들의 문향이었다. 금원과 경춘이 원주 출신의 시인이다. 그녀가 남긴 주옥같은 시편을 생각하면 고향 마을이 원주 어디인지 전해지지 않은 것이 못내 안타깝다.박죽서는 부사 서기보(1785~1871)의 첩실로 들어간 이후 길지 않은 생애를 병약함으로 보내며 시를 짓는 일을 평생의 낙으로 삼았다. 그녀는 첩실이어서 늘 남편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 오지 않는 님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슬프도록 애잔한 가락으로 많은 시편을 흐른다. 그녀는 병 깊은 몸으로 애달픔과 기다림의 십몇 년을 보내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부터 시문이 뛰어나 십세시를 짓기도 했던 그녀는 첩실이거나 기녀였던 여류시인 금원, 운초, 경산, 경춘과 어울렸다. 모두 빼어난 시인들이었다. 그녀들은 용산에 있었던 삼호정에서 '삼호정시사'라는 동인을 만들어 시를 짓고 거문고를 뜯으며 수심을 달랬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그녀의 유고를 모아 '죽서시집'을 엮은 사람이 남편 서기보의 재종 돈보다. 166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돈보의 서문과 문우 금원의 발문이 뒤에 수록되어 있다. 남편 서기보는 시문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관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서돈보는 '죽서시집' 서문에서 '혼자 있을 때는 단정하고 침중하고 그윽하여 마치 사색하는 듯하였다'고 적고 있다. 죽서의 사람됨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발문을 남긴 금원은 한마을에서 나고 자란 벗이었다. 금원은 '아! 이 책은 죽서가 지은 것이다. 책을 대하니 그 사람을 보는 것 같구나. 반짝이는 눈과 붉은 뺨이 은은하게 책장 사이에 어려 비쳐 있으니 아! 아름답구나'라고 죽서의 부재를 가슴 아파한다. 그녀가 10세 때 지었다는 시에서 '창밖에서 우는 저 새는/어느 산에서 자고 왔는고/아마도 산속의 일 알겠지/두견화는 피었는지'라고 노래한다. 왕유의 시를 차운했다고는 하지만 어린 소녀의 시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서정이 넘친다. 늘 홀로 있는 고적함이 잘 드러난 시가 '감회에 젖어서'다. '비낀 해 서산에 지고 달 동쪽에서 떠오르자/홀로 등불 앞에 누우니 온갖 일 공허하네/천지에 밤 들자 모두 적막해졌는데/어찌하리 이 마음속 번뇌를'에 이르면 그녀의 외로움이 뼈에 사무친다. 그녀의 그리움의 원형은 고향일 것이다. '고향을 그리며'에서 '난간에 홀로 기대니 시름 더욱 끝없는데/북풍에 눈 날리며 날이 저문다/멀리 구름 밖에서 들려오는 몇 마디 기러기 소리/동쪽 바라보니 고향은 하늘 서쪽'이라고 읊었지만 주로 한양에서 생활하던 죽서였으므로 원주는 남쪽이어야 맞을 것이지만, 서쪽이라야 울림이 있다.그녀는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병을 얻고서'라는 시에서 '병 들고나자 한번 웃는 일도 드물어/꿈 속에서 생각만 오락가락/이 몸이 만약 새가 된다면/잠시도 헤어지지 않고 님 찾아 날아가리'라고 노래해 병든 몸이 님에게 얼마나 몹쓸 일인지 자책하는 것으로 읽히는 문장이 '잠시도 헤어지지 않고 님 찾아 날아가리'다. '병 앓고 나서'라는 시에서는 '앓고 나니 살구꽃 피는 봄 시절도 지나/마음은 흔들흔들 매지 않은 배와 같네/……/거울 속 파리한 모습 도리어 슬플뿐/스물 세 해 긴긴 세월 한 일이 무엇인고/절반은 바느질로 절반은 시를 써 없앴다네'라고 노래한 것으로 보아 병이 얼마나 오래고 깊었는지 짐작케 한다. 안타깝고 애처로운 일생이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19-10-31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가장 보통의 결혼식

평소 절친한 선배 시인 늦은 장가축가도 훌륭한 이벤트도 없었지만양가 부모님께 쓴 편지 읽어가는데별다른것도 아닌데 순간순간 울컥그 시간이 너무 짧은듯해 아쉬움만결혼식에 대해서라면 기대를 버린 지 오래다. 알다시피 '결혼'보다는 '식'에 방점이 찍힌 탓에 예의 인사치레만 남곤 한다. 신랑 신부도 고되겠지만, 하객 입장에서도 제법 벅찬 노동이다. 얼른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몇 장의 청첩장이 날아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이런저런 일정을 떠올려 스킵 할 방도를 궁리했다. 귀한 주말 시간을 할애한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라서 여러 가지를 재게 된다. 관계의 정도를 가늠한 뒤 더도 덜도 아닌, 욕먹지 않을 만큼으로 신중히 책정한 축의금을 누군가에게 부탁하고는 일찌감치 업무에서 해방되는 편을 택한다. (결국, 그 결혼식의 주인공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욕을 피할 수는 없겠으나) 축하의 마음만은 진심임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어쩌다 마지못해 결혼식에 참석한 날에는 엇비슷한 복장을 하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정신을 놓게 된다. 얼굴 도장 찍기에 여념이 없지만, 정작 나를 초대한 신랑 신부와는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한 채 떠밀리다시피 멀어진다. 신랑 신부 옆에 엉거주춤 서서 다급히 찍은 사진이라도 한 장 건진다면 그나마 다행. 식이 시작되면 보는 둥 마는 둥 가장자리에 섰다가 주례사가 끝나기도 전에 냉큼 식당으로 가 뷔페를 몇 접시 퍼먹고 돌아오면 마침내 일을 끝냈다, 하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일순간 밀려드는 회의를 막을 길이 없다. 씁쓸하지만 한국에서의 결혼식이란 으레 그런 것이니까. 다른 뭔가를 기대해선 곤란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결심한다. 아, 결혼식이란 이름의 저 서글픈 부조리극을 나는 결코 연출하지 않으리. 행여 결혼을 한대도 결혼식만은 절대 사양. 그런 나는 얼마 전 조금 다른 경험을 했다. 토요일 낮에 있은 보통의 결혼식에서였다. 지방 소도시의 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나와 일행은 새벽같이 모여 신랑 신부가 마련한 전세버스에 올랐다. 세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작고 오래된 예식장. 여느 결혼식과 다른 점이라곤 딱히 없어 보였다. 신랑 신부와 눈 맞춤에 가까운 짧은 인사를 나눈 다음 축의금을 내고 식권을 받고, 시끌시끌한 식장에 들어 식을 지켜본 뒤 사진을 찍고 뷔페가 있는 식당으로 총총총. 그간 익히 해왔던 방식 그대로 하객으로서의 업무를 얌전히 수행했다. 그러나 분명 달랐다. 그 결혼식의 신랑은 평소 절친한 선배 시인으로, 그의 늦은 장가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내 일처럼 기뻤다. 결혼식 일정을 체크하며 다이어리에 크게 별표를 그려두었는데, 그걸 보며 괜히 혼자 들뜨곤 했다. 그래서 틈이 날 때마다 신혼집이나 신혼여행 등에 대해 꼬치꼬치 묻기도 하고. 결혼식 전날 나는 선배에게 엽서를 썼다. 쑥스러워 건네지도 못할 마음을. 좋은 선배, 좋은 시인이기에 앞서 좋은 남편이 되면 좋겠다고. 선배는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쭈뼛거리다 결국 축의금 봉투에 감추듯 넣어 전한 엽서는 분주한 그에게 제대로 닿지 못했을 것이다.축가도 그럴듯한 이벤트도 없었다. 다만 신랑이 양가 부모님께 쓴 편지를 읽었고, 그 과정은 지극히 단출하고 소박했다. 별다를 것도 없는데 순간순간 울컥한 뭔가가 밀려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재빨리 감정을 가다듬곤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평소 가까이 지내는 몇몇 또한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물론 객석의 대다수는 언제나 그렇듯 부산하고 어수선했지만. 예식은 사십여 분 만에 끝이 났고, 어쩐지 그 시간이 너무 짧은 게 아닌가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나는 알았다. 결혼식이란 얼마나 숭고한 의식인가. 유의미한 절차인가. 돌아오는 버스에 앉아 여태껏 기계적으로 다닌 여러 결혼식들을 곰곰 되짚어봤다. 그래, 인정해야 한다. 문제는 결혼식이 아니었던 것이다./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9-10-24 박소란

[풍경이 있는 에세이]마흔에도 예쁘다

늘 바빴고 늘 허둥거리며 살았고이젠 '하루치 더 늙었겠지' 무심 속맞은 나의 마흔,얼마전 만난 후배는좀 더 열심히·신나고·즐겁게인생을 정리한 '건강 삶'… 응원마흔을 앞두었던 겨울, 나는 하도 우울하고 쓸쓸해서 친구들에게 투정을 옴팡 부렸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동갑내기가 아니어서, 한 명은 마흔세 살을 앞두고 있었고 한 명은 서른일곱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 사십 대가 된 친구는 심드렁한 얼굴로 "별것도 아닌 걸로 우울해하긴"이라며 중얼거렸고 아직 삼십 대인 친구는 "나도 마흔이 되면 저러겠지"하며 나를 동정했다. 시간을 막을 도리가 없으니 나는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마흔 살을 맞고야 말았다. 얼마 전 후배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녀는 내게 반짝 손을 흔들며 즐거운 얼굴로 말했다."언니! 제가 벌써 마흔 살이 된 거 알고 계세요?"나는 까르르 웃고 말았다. 천방지축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전 세계를 헤집고 여행을 다니던 스무 살짜리가 어느새 마흔이 되었다고? 서점에서 만난 우리는 종이냄새가 물씬 퍼지는 서가를 돌아다니며 늦은 안부를 나누었다. 여전히 그녀는 건강해 보였다. 오래 걸어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여유가 표정에 묻어나서 그런 것이었을 테다. "여행, 할 만큼 했고 직장, 다닐 만큼 다녔고요. 세상에 제가 농사도 지어봤어요. 시골에 땅을 사서요. 신기하지 않아요?" 농사꾼인 적이 있었다는 건 아무래도 믿기지 않았다. 얼굴은 영 서울내기 깍쟁이 스타일인 데다 하늘하늘한 시폰 드레스 차림으로 긴 머리 휘날리며 나온 이 녀석에게 농사라니. 그녀가 보여준 사진 속 농사꾼은 분명 그녀가 맞았다. 목에 두른 수건과 헐렁한 작업 바지마저도 그녀가 입으니 꽤나 힙해 보였달까. 뭐든 즐겁게 했구나, 이 녀석은. 그러니 이렇게 예쁜 마흔 살로 자랐겠지.손님이 드문 맥주집에 앉아 그녀가 주섬주섬 꺼낸 건 원고 뭉치였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이렇게라도 내 인생을 정리해봐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쓴 원고예요. 언니가 한번 읽어봐 주세요."그러니까 마흔 살에, 마흔 살을 돌아보며 가만가만 써내려간 에세이 원고 뭉치였다. 나는 천천히 맥주를 마시며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이 안에 이 녀석의 지난 삶이 오롯이 담겼겠구나, 하면서 말이다.마흔 살을 앞두고 투정을 부린 것 외에 나는 다른 기억이 잘 없다. 물론 삼십 대와 마찬가지로 늘 바빴고 늘 허둥거렸고 어느 때엔 별 이유도 없이 자신만만하기도 했다. 연애를 하기도 했고 소설도 썼고 변함없이 책을 출간하고 번역을 했다. 달라진 건 없었다. 눈가 주름이 더 늘었을까 걱정하며 거울을 들여다보는 횟수가 늘었지만 그 습관도 곧 사라졌다. 주름 따위에 신경을 계속 쓰다간 스트레스 때문에 더 늙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이제는 '하루치 더 늙었겠지, 뭐' 하는 정도로 무심하게 넘길 수 있다. 원고 속 후배의 삶은 참 예뻤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을 조금 더 신나게 하기 위해서 영어를 배웠고 친구들과 파티를 더 즐겁게 하기 위해 요리를 익혔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보이차를 즐겼다. 덕분에 영어 관련 일을 하고 있고 요리강좌도 열고 보이차 살롱도 열었다. 그리고 자신이 키운 것들로 배를 채워보고 싶어서 농사도 지었던 거다. 여간 찬연한 청춘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마흔 살이 하도 예뻐 원고를 덮은 후 말을 꺼냈다."넌…… 마흔에도 예쁘다."이번에는 후배가 까르르 웃었다. "정말 마흔에도 예쁠까요?"얼마 후 그녀가 전화를 걸어왔다. 에세이집 제목을 '마흔에도 예쁘다'로 하고 싶다고. 언제쯤 출간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부디 잘 만들어서 세상의 모든 마흔 살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19-10-17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금산사 미륵전

혼자 깨닫고 즐거워한다는 '독락'그렇게 위로하는 말 찾았던것 같다이 고요하고 깊고 단순한 여백에 한가로이 머무르지 못하는 아쉬움그래, 또 오리라… 다시 오리라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모악산(母岳山) 아래 터를 잡은 사찰 금산사는 첫 방문이다. 지금껏 본 국내 사찰들을 떠올려보면 거기도 거기 같고 여기도 거기 같은 곳이 많아 전에 다녀왔는지 아닌지 불분명한 곳이 있었다면 금산사는 처음부터 가보지 못한 사찰이란 확신이 들어 이번 남도 여행 마지막 코스로 계획을 잡았다.많은 이들이 금산사는 벚꽃 피는 봄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지만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벚꽃보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배롱나무꽃은 주로 남도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름꽃이라 이것만으로도 남도 여행의 이유는 충분했다. 선운사, 내소사, 백양사, 내장사를 거쳐 금산사를 향하는 오후 내내 비가 내려 길을 더디게 했다. 그래도 이번 여행에 마지막 코스이니 우산을 쓰고라도 돌아볼 작정으로 매표를 하고 들어가니 입구에 '견훤성문'이라는 현판이 기다린다. 다행히 비는 가늘어지고 사찰은 한산했다. 그날만 그런지 절 앞까지 차가 들어가도록 허락해주었다. 당연히 걸으면서 즐겨야 하지만 비 때문에 지체되는 바람에 문 닫을 시간을 걱정했는데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정형화된 산지 가람의 틀을 깨고 비교적 완만한 곳에 자리를 잡은 금산사의 첫인상은 웅장하지만 차분하다. 그것은 미륵보살을 모시는 미륵도량이 한몫 했을 것이다. 사찰 마당으로 들어서면 차분하게 물러나 앉은 정면에 단정한 대적광전 건물을 마주하게 되는 자리가 금산사의 중심공간이다. 대적광전은 정면 7칸 건물로 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며 최근에 신축한 건물이어서 오른편 미륵전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나는 되도록 멀리서 대적광전과 미륵전을 감상하고 싶어 세 그루 배롱나무가 한가로이 절마당에서 붉은 꽃을 피우고 선 고목 뒤로 나앉아 고즈넉한 사찰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었다.미륵전은 기대가 컸으므로 마지막에 보기로 하고 천천히 사찰을 돌아본다. 대적광전을 마주하고 사찰의 가람배치도를 살피니 한 평 땅이라도 요사체를 지어 신도를 끌어오기 바쁜 여느 사찰과 비교하면 이렇게 단순하고 큰 여백을 지켜온 금산사가 새삼 대단해 보이는 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금산사 마당의 넓고 아름다운 여백에 반했다는 말을 여기서 굳이 아끼고 싶지 않다. 한참 동안 대적광전과 너른 마당을 서성거리다 뒤편 작은 법당을 둘러보는데 법당의 아름다운 문살과 흰배롱나무 꽃과 산수국이 어찌나 내 마음을 홀리는지.그러나 서둘러야 한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문 닫을 시간이 가깝다는 걸 알고 방등계단을 올라서자 피안과 차안의 경계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곳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보물 제26호 종형사리탑과 보물 제26호인 단아한 오층석탑이 있다. 방등계단은 부처님 계율을 내리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몇 개의 석상이 있고 적멸보궁은 뒤편으로 살짝 몸을 숨기는 형국이다. 방등계단 위는 그리 넓지는 않으나 모든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꼭 필요한 부분만 살린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고 보니 사찰 중심에 저리 큰 공간(여백)을 남겨두기 위해 건물을 얼마나 절제하려 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방등계단 반대편으로 내려와 미륵전으로 향한다. 금산사 가람배치를 보면 중심건물은 대적광전이지만 큰 의미로 미륵전은 금산사의 상징이며 본당이라 할 수 있다. 미륵전은 국보 제62호로 거대한 3층 목조건물이다. 이곳은 금산사 대가람의 연륜과 풍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곳으로 위엄이 느껴지며 두 팔로도 모자라는 거목을 기둥으로 세워 건물을 받들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내부는 층을 나누지 않는 통층으로 높이 12m의 거대 미륵불과 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미륵전 1층은 대자보전, 2층은 용화지회, 3층은 미륵전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이들 모두 미륵불을 의미한다.부처님 거대 입상은 촬영금지라 아쉬워하던 차에 스님이 미륵전 문을 닫기까지 한다. 내가 마지막 방문자다.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혼자 깨닫고 즐거워한다는 독락, 나는 그렇게 나를 위로하는 말을 찾았던 것 같다. 이 고요하고 깊고 단순한 여백에 한가로이 머무르지 못하는 아쉬움이라니, 바닥을 붉게 물들이는 배롱나무 아래 한참을 서있었더니 오금이 저리고 두 발이 땅에 붙어버릴 것만 같다. 그래, 또 오리라. 다시 오리라./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19-10-10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우리나라 사람이나 외국인이나모두 불친절·친절한건 아니지만분명한 것은 여유·배려 베푼다면삶이 더 편안해져… 그러기 위해선'나부터 먼저' 타인에 너그러워져야지금 이 글을 아이슬란드에서 쓰고 있다. 창밖엔 비가 퍼붓는다. 여행자에게 날씨는 여행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이번 주 내내 비가 온다니 짜증이 난다. 짜증과 화를 낸다고 비가 멈출 것도 아닌데, 그냥 나 자신을 향한 상처일 뿐인데 말이다. 어쩔 수 없을 땐 즐기라 했는데, 그냥 넘기기가 쉽지 않다. 대상이 없는 짜증과 화는 우리 삶을 갉아먹는 좀벌레 같은 것,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자주 화를 내는 건 아닌지.좀 지난 일이지만 우리 집에서 이런 일을 겪었다. 욕실을 새로 리모델링하고 두 달이 안 돼 샤워기 머리가 부러졌다. 수리를 신청했더니 기사가 왔다. 이거 조심해 써야 해요. 플라스틱이니까 막 떨어뜨리고 두드리면 부서지잖아요. 짜증이 나지만 꾹 참는다는 말투다. 나 역시 약간 화가 났지만, 일부러 힘을 준 적도 없는데 이렇게 두 달 만에 부러지면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녜요. 그 기사가 한 걸음 더 나간다. 이번엔 무료로 해주지만 다음에 또 부르면 유상처리할 거예요.또 이런 일도 있었다. 샌들 뒤 끈 고무밴드가 늘어나 수선을 신청했다. 열흘 만에 다 고쳤으니 찾아가라는 문자가 왔다. 그런데 고친 게 좀 이상했다. 밴드를 새것으로 교체한 게 아니라, 늘어난 걸 절반으로 잘라붙여 놓았다. 나는 좀 어이없어서, 양쪽이 안 맞네요, 여긴 늘어나질 않아요. 점원 얼굴색이 바뀌며, 짧게 잘라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줬잖아요. 짜증이 나지만 참는다는 말투다. 나는 주눅이 들어, 그래도 탄력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죠. 점원이 신경질적으로, 그럼 다시 보낼 테니 길이가 줄어들어도 몰라요.두 경우 모두 꽤 이름난 기업 제품이었는데,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이와는 아주 대조적인 두 사례를 들려드리고 싶다. 지금 아이슬란드로 오기 전에 나는 노르웨이와 페로제도를 보름간 여행했다.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사람들이 매우 느긋하고 여유가 있다고 느끼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특히 북구의 사람들이 겉으로는 무표정하고 무뚝뚝해 접근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걸 경험한 예이다. 페로 토르샤븐의 한 민박집에서 나흘을 묵었다. 내 숙소는 일층이고 주인은 이층에 살았는데, 집이 청결하고 시설이 잘 갖추어져 고급 호텔보다 만족스러웠다. 그러던 중 내 카메라 삼각대의 나사가 느슨해져 사용이 매우 불편하게 되었다. 삼각대 나사는 육각형 드라이버로만 죌 수가 있는 특이한 구조라서 주변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주인에게 도움의 메일을 보냈다. 그는 주말 동안 가족 여행을 떠나 지금 집에 없다고, 하지만 기다려보라는 답을 보내왔다. 잠시 후 이웃집 낯선 아저씨가 내 문을 두드리더니, 뭐 도움이 필요한 게 없느냐, 묻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감동했다. 그 친절한 사람들 덕에 나는 삼각대도 고치고, 여분의 육각형 드라이버까지 하나 얻어 여행 내내 잘 사용하고 있다.아이슬란드의 한 마트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이다. 저녁나절 손님이 꽤 붐비고 있었고, 온통 아이슬란드 언어로 쓰여 있는 매장에서 나는 달걀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실패했다. 그때 물건을 가득 싣고 와 선반에 바삐 정리하던 직원을 발견하고, 달걀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 젊은 직원은 일과를 마칠 때라 조금 지쳐 보였다. 나도 조금 미안해졌다. 그런데 그녀는 불러줘 고맙다는 듯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하던 일을 멈추고 꽤 큰 매장을 이리저리 돌아 나를 안내했다. 그 순간 나는 많이 미안해졌고, 그만큼 많이 행복해졌다. 다시 보니 그녀가 아주 많이 예쁜 것 같았다.물론 우리나라 사람이 모두 불친절하다는 말은 아니다. 더욱이 모든 외국인이 우리보다 친절하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여유와 배려를 통해 우리 사는 곳이 더 넓어지고 편안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 세상을 향한 사회 시스템도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우선 '나부터 먼저' 타자에게 너그러워져야 하지 않을까. 짜증은 짜증으로 돌아오고, 화는 화로 돌아올 뿐이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19-10-03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일잘러'와 '일못러' 사이

휴게소 예능 '맛남의 광장' 보니…백종원 누구보다 많이 주문량 소화자신만만하던 양세형은 '우왕좌왕''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 믿음 취해 덜 중요한 일에 정성 쏟는게 아닌지추석 연휴, '맛남의 광장'이라는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백종원이 지역 특산품을 이용한 신메뉴를 개발해 휴게소에서 장사하는 내용이었다. 메뉴는 충북 영동의 특산물을 이용한 영표(영동표고)국밥과 덮밥, 촉촉한 복숭아 파이, 튀긴 마약옥수수였다. 모두 매력적인 메뉴들이었지만 방송을 보는 내내 출연자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가 더 눈에 들어왔다.4명의 출연자 중 으뜸은 역시 백종원이었다. 누구보다 많은 주문량을 거뜬히 소화해냈고, 일을 많이 해 본 사람 특유의 여유롭지만 꼼꼼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손님들에게 영동 특산물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의 미션을 잊지 않고 다른 출연자들의 일까지 살피면서 현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일처리 방식은 신뢰감을 더했다. 의외였던 출연자는 양세형이었다. 백종원의 수제자를 자처하며 누구보다 자신만만하던 양세형은 쉴 새 없이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하자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당장의 주문 처리조차 힘든 상황이 되었는데도 잘못된 확신으로 일을 처리해서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든다. 주문이 밀리자 선호출 후 국밥을 담아주는 센스를 발휘해 여유롭게 상황을 돌파한 백종원과 달리 양세형의 주문은 밀리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호출 기계가 고장난 돌발상황까지 겹쳤는데도 양세형은 밥을 퍼서 밥공기에 담고 덮밥 그릇에 옮기면서 '밥 푸는' 과정에 시간을 과도하게 쓰는 것도 모자라, 고명으로 올라가는 계란을 정확히 반 토막 내는 등 중요하지 않은 과정에 집중하면서 정성을 들인다. 양세형이 '절대 대충 하지 않는다'란 신념으로 엉뚱한 데에 공을 들이는 사이 주문은 밀리고, 늦게 나오는 덮밥에 사람들의 불만도 쌓여간다.처음에 백종원이 알려준 방법 그대로, 너무 정석대로 한 것이 양세형의 실수였는데 사실 이 정도 실수는 초보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수저와 젓가락을 챙겨주고, 밥 양을 밥공기에 맞춰 계량해주고, 달걀을 반으로 정확히 갈라 올려주다니 나는 아주 잘 하고 있어"란 생각과 태도가 문제였다. 전형적인 '일못러(일을 못하는 사람)'의 착각이라 할 수 있겠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손님에게는 수저를 누가 챙기느냐보다 음식이 빨리 나오는 게 훨씬 중요한데, 양세형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뿐더러 자신의 선한 의도에 스스로 취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실제 일하다 보면 양세형처럼 어떤 상황에서 '선함' 혹은 '옮음'을 선택해 문제가 있는데도 자신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못러'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들의 문제는 그 '선함'의 기준이 보편적이거나 상식적이지 않다는 데에 있다. '일못러'들은 '선하게,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는 나 자신'에 도취해, 자신의 일과 일처리 방식에 문제가 없다고 확신한다. 문제가 발생한다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리더의 잘못이거나 전체 구조의 문제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심지어 '상황이 어려워도 열심히 일하는 나'는 힘들다고 푸념하며, 자신의 주장을 받아주지 않는 사람을 원망하기까지 한다. 결국 개선은커녕 상황이 더 나빠지는 '착각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데, 이미 주변 사람들조차 떠나버린 후다.'사람이 힘들지 일이 힘든 것이 아니다'란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하는 일을 힘들게 만드는 것 역시 사람이다. '맛남의 광장' 방송 속에서는 백종원이라는 시대의 '일잘러'가 상황을 파악하고 사람의 문제로 일이 커지지 않게 수습해 성공적으로 일이 마무리됐지만 현실에서는 일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 일 그 자체인지, 본인 자신인지, 타인인지, 어떤 상황 때문인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다.그동안 나는 백종원과 양세형 중 누구처럼 일해 왔을까? '일잘러(일을 잘 하는 사람)'라는 확신으로 일해 왔는데 요즘 들어 부쩍 내가 '일못러'는 아닌지 혼란스럽다. 누구도 답을 내려줄 수는 없는 이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요즘, '이 정도면 잘 하고 있다'는 나만의 믿음에 취해 버스를 놓칠까 속 타는 손님은 안중에도 없이 계란을 예쁘게 자르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온 정성을 쏟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볼 따름이다./정지은 문화평론가정지은 문화평론가

2019-09-26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송강과 진옥의 화답시

광해군 세자책봉 진언 '강계 유배'깊은 밤 취흥 도도해지자 '즉흥시' 조용히 듣고있던 진옥 수줍게 화답적소생활 청산 기쁨속 이별의 고통詩 '송별'로 아픈마음 가슴에 새겨기녀 진옥은 오로지 송강 생각뿐이었다. 어떤 여흥의 자리에 불려나가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던 것은 송강이 정신적인 주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송강의 시문을 거문고에 실어 노래하는 것으로 모련(慕戀)과 그리움을 달래며 10년이었다. 송강이 왕의 진노로 강계에 유배되어 힘겨운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말을 풍문으로 듣고 그를 찾아 나선 것이 달포 전이었다. 전라도 남원에서 평안도 강계까지 삼천리 길을 걸어서 마침내 그의 적소에 이르러 위리안치의 초막을 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계곡을 찾아가 목욕재계 후, 가지고 온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는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송강을 위해 술과 안주를 장만하고 거문고를 손에 들고 그의 적소를 찾았다. 밤중에 죄인의 적소를 찾은 그녀를 송강은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송강에게 큰절을 올렸다.송강 정철(1536-1593)은 풍운의 정객으로 정적에게 가혹했던 가사문학의 대가다. 송강의 나이 48세에 전라감사로 남원에 내려갔을 때 자미라는 어린 기생의 머리를 올려준 일이 있었다. 시문에 재능을 보이는 그녀를 가까이 불러 거문고를 뜯게 하거나 자신이 쓴 시를 읊게 했었다. 머리를 올려주었다고는 해도 너무 어린 기생이어서 송강은 그녀를 고이 지켜주었고 그녀는 그런 송강의 인간적인 배려에 감동 받아 평생의 지아비로 생각하게 되었다. 자미라는 기녀의 이름을 강아라고 바꾼 것도 송강의 '강'을 빌어쓰는 것으로 송강의 여자임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송강은 일 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한양으로 자리를 옮겨가게 되었을 때 '자미화를 읊다'라는 시를 강아에게 준다.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펴/그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라/거리에 가득한 사람들 모두 네 모습 사랑하리라'라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남원을 떠났던 것이다. 강아는 그 후 진옥이라는 이름으로 남원 일대에서 춤과 노래와 거문고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송강은 56세 때 광해군의 세자책봉을 진언하다 선조의 노여움을 사 강계로 유배를 갔다. 유배를 떠날 때 선조로부터 '대신으로서 주색에 빠져 있으니 나랏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노골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던 송강이다. 그의 유배와 낙향은 관동별곡, 사미인곡, 성산별곡, 속미인곡 등 불후의 가사문학을 남기게 했다. 유배지의 밤은 깊어가고 취흥 도도해지자 송강은 진옥에게 화답시를 제안한다. 진옥은 말없이 거문고의 현을 고른다. 송강이 먼저 즉흥시를 읊는다. '옥이 옥이라커늘 반옥만 너겼떠니/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적실하다/내게 살송곳 잇던니 뚜러 볼가 하노라'. 조용히 듣고 있던 진옥이 거문고 낮은 현을 고르더니 수줍게 화답시를 읊는다.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만 녀겨떠니/이제야 보아하니 정철일시 분명하다/내게 골풀무 잇던니 뇌겨 볼가 하노라'. 지그시 눈을 감고 듣고 있던 송강이 필경, 와락 진옥을 끌어안았을 것이다. 그녀는 이미 스물대여섯의 아리따운 여인이었다. 그 밤이 얼마나 짧았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송강첩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진옥의 시가 이 화답시다. 그 후 강계의 유배생활은 송강에게 새로운 활력과 재기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강계의 초막에서 송강이 풀려난 것은 임진왜란 때문이다. 선조 25년 5월의 일이었다. 송강이 왕명을 받아 전라와 충청지방의 도체찰사로 나가게 되었을 때 진옥은 매우 기뻤으나 한편으로는 두렵고 불안했다. 송강 역시 적소의 생활을 청산하는 기쁨 속에서도 진옥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마음 아팠을 것이다.진옥은 송강을 환송하는 자리에서 그녀의 시라고 알려진 이옥봉의 '송별'을 읊어 이별의 아픔을 가슴에 새긴다. '오늘 밤도 이별하는 사람 하 많겠지요/슬프다 밝은 달빛만 물 위에 지네/애닯다 이 밤 그대는 어디서 자나/나그네 창가엔 외로운 기러기 울음뿐이네'. 진옥은 그 후 강계를 떠나 여승이 되었다고 전한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19-09-19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새 옷

제법 화려하고 특이한 '로브 카디건'내 취향 아니었지만 고민끝에 구입외출때 걸치면 영락없이 눈길끌어친구들도 예상대로 '깔깔'대는 반응옷으로 웃는 분위기에 흐뭇함 느껴옷 얘기를 좀 해야겠다. 지난 여름 나는 특이하게 생긴 옷을 하나 샀다. 주로는 휴양지에서 입는 로브 카디건으로, 노란색 바탕에 파랑·보라·주황의 갖은 꽃잎이 그려진, 마구 그려진 제법 화려한 아이템이다. 평소 패션에 민감하고 과감한 스타일링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사실 유별날 것도 없는 수준이겠으나 내게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인터넷 쇼핑으로 이 옷을 샀다.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클릭했다가 패셔니스타로 유명한 한 연예인이 입고 나온 것을 보고 "우앗!" 하고 반해버린 뒤, 간단한 서칭을 통해 브랜드와 제품명을 확인하고는 쇼핑몰까지 곧바로 직행했다. 그러나 막상 주문 버튼을 누를 엄두는 잘 나지 않았는데, 과연 입을 수 있을까? 이걸 입고 어딜 가지? 같은 고민들이 줄줄이 늘어섰기 때문이다. 일터에도, 학교에도, 어디에도 입고 가기에 뭣한 옷이랄까. 고향집에 입고 내려갔다간 아버지를 흠칫 긴장하게 만들 게 분명한 그런 옷. 아닌 게 아니라 이 옷은 평소의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딱히 취향이라고 한다면, 검정을 중심으로 회색이나 남색 같은 채도 낮은 색상의 옷을 나는 선호하는 편이다. 덕분에 옷장은 대개 어두컴컴하다. 디자인도 단순한 게 좋다. 내겐 그런 옷들이 어울리니까, 라기보다 언젠가부터 그런 색, 그런 디자인이 안정적으로 다가왔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불편한 자리에 나설 때마다 나는 더욱 그런 옷들을 찾아 입곤 했는데, 그 옷들이 나를 조금은 진정시켜주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누구의 눈에도 거슬리지 않는 옷. 어느 곳 어느 때나 무난히 어울리는 옷. 일종의 보호색이라 해야 할까. 그러니 갑작스레 화려한 옷에 눈이 간 것도 신기한 일이다. 나는 잠시 익숙지 않은 고민에 빠졌다. 내게 이런 옷이 어울리기나 할까? 이걸 입은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럽진 않을까? 나를 본 사람들은 놀라겠지. 그리고 놀리겠지. 속으로 좀 비웃을지도 몰라. 유별난 취향의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할지도. 갖가지 걱정은 옷을 입는 내내 나 자신을 쭈뼛거리게 만들 것이다. 이쯤 되면 옷이 아니라 웬수로구나. 옷을 입기 전부터 이미 피곤해진 꼴이라니. 이런 스스로가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다 나는 옷 하나 입는 데에도 이토록 많은 걸 재는 어른이 되어버렸나. 그만두고 싶었다. 아, 지긋지긋해, 남들 눈 의식하는 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일부러라도 나는 꼭 이 옷을 사야만 하겠다,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문제의 옷은 며칠 뒤 택배 상자에 싸여 무사히 내 앞에 놓였다. 한동안은 역시 잘 입게 되지 않았다. 어쩌다 가까운 곳으로 외출을 할 때 슬쩍 걸치고 나가면 길거리의 사람들이 한두 번은 꼭 돌아보았다. 너무 대놓고 쳐다볼 때는 당황스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점차 익숙해진다고 해야 할지. 무뎌진다고 해야 할지. 그러려니, 적응이 되었다. 어느새 나는 도서관에 갈 때도, 슈퍼에 갈 때도 이 옷을 입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옷을 나풀거리며 책을 고르고 장을 보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체로 엇비슷한 옷들을 입고 있었고, 어딘가 튄다 싶은 옷을 입은 이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친구들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너 요새 무슨 바람이 분 거야?", "그 옷은 뭐임? 대체 어디서 주운 거?" 놀리고 싶어 안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 아주 가끔은 "오, 예쁘다! 완전 내 취향" 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얼마 전 편한 사람들 몇이 모인 술자리에서는 내 이 특별한 옷을 돌려 입어보는 희한한 의식이 행해졌다. 물론 벌칙 같은 것이었으나…. 옷을 입은 지인들을 보며 "아, 이런 느낌이군" 새삼 깨닫게 되었다. 웃기다, 정말 웃겨. 그 각각의 모습이, 옷 하나로 달라지는 우리의 분위기가 재미있었다. 취기 때문인지, 알 수 없는 흐뭇함마저 느꼈다. 그래서 결론은, 사길 잘했다는 것. 입길 잘했다는 것. 뭐 어쨌든 웃으면 좋은 거니까./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9-09-05 박소란

[풍경이 있는 에세이]새벽이 전하는 이야기들

잠투정 아기 달래는 엄마의 목소리할아버지 혈액순환 허벅지 때리기친정엄마와 낯선 할머니 벤치대화그래서 가엾고 곤한 냄새가 난다…창문 닫고 자야할 가을 다가와 다행아파트 2층에 산다. 그건 무엇을 뜻하냐면, 여름이 조금 괴롭다는 건데 다른 이유가 아니라 더운 밤 창문을 열어놓고 자려면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마치 담을 사이에 두고 나와 둘이 소곤거리는 것인양 가까이 들린다는 것이다. 안 자겠다고 떼쓰는 우리 집 아기를 겨우 재우고 나면 창밖에선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너 정말 이러기야? 지금이 몇 시야? 진짜 안 잘 거야?" 내다보지 않아도 안다. 우리 집 아기만큼이나 안 자고 떼쓰는 아기를 어르려 밖에 데리고 나온 엄마의 목소리다. "제발 자자. 좀 자자. 엄마도 졸리다고." 아기를 업은 채 아파트 화단 근처를 살살 걷는 그 엄마는 자신의 목소리가 우리 집에 그렇게 스며들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을 터라 급기야 소리를 지르고야 만다. "제발! 자라고! 엄마도 좀 살자고!" 그럼 아기는? 당연히 운다. 우리 집 아기도 깬다. 아기 좀 재우고 영화나 한 편, 소설이나 한 권…… 그건 꿈에서나 일어날 일이었다. 단지 내에 몇 개 없는 예쁜 벤치는 왜 하필 우리 집 아기방 아래에 놓였는지. 정말이지 여름은 괴로웠다.며칠 전 새벽녘에 잠을 깼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것을 보다 잠이 들어서 처음에는 나를 깨운 것이 빗소리인 줄 알았다. 찰박, 찰박…… 잠시 후에 또 찰박. 어딘가서 물이 떨어지는 건가. 발코니 문을 열어두었는데 어딘가로 물이 새고 있나. 개수대 수도를 덜 잠갔나. 찰박찰박 소리는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언뜻 내다본 창밖에는 이미 환한 새벽빛이 올라 있었고 비는 그친 후였다. 주방 수도꼭지도 잘 잠겨 있고 발코니도 멀쩡했다.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가 씻어낸 여름의 새벽 풍경은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더워도, 밤중 소음이 있어도 여름만큼 예쁜 계절이 또 어디 있을까. 이렇게 예쁜 초록을 또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소음의 근원지는 찾지 못한 채 창문을 닫으려던 찰나, 다시 찰박 소리가 들려왔다. 벤치였다.놀랍게도 할아버지 한 분이었다. 반바지를 입고 이른 산책을 나온 어르신이 벤치에 앉아 허벅지를 찰박찰박 때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나는 한참을 쳐다보았다. 물안개가 나직하게 내려앉은 화단 옆 벤치에 앉아 반바지 자락을 허벅지 끝까지 끌어올리고 허벅지를 소리 나게 때리고 있다니. 한참 만에야 그건 그냥, 혈액순환을 위한 할아버지 나름의 운동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마침 젖은 바람도 서늘해 나는 창문을 닫고 침대에 도로 누웠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그 광경이 쉬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몇 달 전 친정엄마는 우리 집에 다니러 왔다가 새벽녘 혼자 산책을 나섰다. TV라도 틀면 곤히 자는 딸네 식구들 깨울 것이 빤하니 아무도 몰래 조용히 나선 것이었다. 아침에 잠을 깨 엄마가 없다는 것을 알고 창문을 열어보니 벤치에 웬 낯선 할머니 한 분과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엄마, 들어와요!" 내 말에 손만 흔들어 보이고는 한참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는 여전히 모르는 할머니와 벤치에 앉아있었다. 아침을 먹자고, 몇 번을 조른 후에야 들어온 엄마가 가만가만 이야기를 해주었다."아들네서 살다가 며느리랑 사이가 안 좋아져서 딸네로 옮겼대. 근데 딸네랑도 안 좋아서 아들이랑 딸이 돈을 보태 여기다 전세를 얻어줬나 봐. 옛날에야 할아버지랑 살았겠지. 그러다 혼자되니까 아들네로 딸네로 돌다가 결국 혼자 사는 거지. 외롭대. 여긴 젊은 부부들만 살아서 노인네들도 없다고, 나랑 조금만 더 놀다 가자, 조금만 더 있다 가자, 그래서 붙잡혀 있었지." 나는 공연히 조금 찡해져서 "그럼 아침 드시고 가라 그러지." 그랬더니 엄마가 웃었다. "뭘, 처음 보는 노인네인데. 아이고, 자식들한테 좀 애살 있게 잘하지, 늙었다고 잔소리나 풀풀하고 그러면 누가 좋아한다고." 새벽은 많은 이야기를 한다. 잠 못 이룬 사람들이 먼저 걷고, 바쁜 사람들이 먼저 걸으며 속엣말을 훌훌 아무 데나 떨어뜨린다. 그래서 새벽엔 가엾고 곤한 냄새가 난다. 나는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당기며 이제 곧 창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자야 할 가을이 부쩍 다가와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19-08-29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나만 아는 내소사 만다라

봉래루 서까래에 박힌 작은 문양꽃 모양의 '부처님 눈' 연상케 해잊었던 것 확인하려니 마음 들떠위엄 갖춘 대웅전 기둥·문살무늬벽·천장의 불화 넋 빼앗기기 충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차고 넘치는 것을 덜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는 과정, 즉 수행이 필요하다. 아무리 시대가 복잡하고 바쁘게 살기를 강요한다 해도 위기를 느낄 때 속도를 늦추거나 멈출 수 있는 의지를 심어줄 정신적 멘토는 필요하다. 그동안 몰라서 못한 것이 아니라 알고 있지만 잊고 실천하지 못한 것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와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 딱히 종교적 색채를 띠지 않더라도 부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어느 사찰이든 사찰의 중심이 되는 대웅전(대웅보전)의 경우 내부는 물론 외부도 그 명성에 걸맞은 단청을 하고 있지만, 내소사가 딱히 좋았던 건 처음부터 건물에 아예 단청을 입히지 않거나 단청을 했더라도 은은하고 자연스러워서 볼 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착해진다는 것이다. 오래전 처음 내소사를 방문했을 때 부처님은 뒷전이고 나는 사찰을 둘러싸고 있는 시간의 결을 그대로 간직한, 마치 수묵화 같은 건축물(요사채를 비롯한 해우소까지도)들에 살짝 혼을 빼앗겼던 것 같다.능가산 자락에 위치한 내소사는 사천왕문을 지나 대웅보전으로 들기 위해선 봉래루를 통과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오래전 그 봉래루 건물을 받들고 있는 서까래에서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나무 속에 박힌 작은 문양, 까맣게 잊고 있던 그것을 기억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완벽한 꽃모양과 부처님의 눈을 연상하게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여름, 내소사에 도착하는 순간 무언가에 홀린 듯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에 걸음을 재촉하게 되었는데, 지금껏 아무도 그에 대해 말하지 않을 만큼 어쩌면 사소하기 그지없는 자연문양 만다라(우주 법계의 온갖 덕을 망라한 진수를 그림으로 나타낸 불화) 하나가 때로 나 같은 사람에겐 특별한 의미가 된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나는 까맣게 잊고 있던 그것을 어서 확인해보고 싶어 차에 시동을 끄는 순간부터 달뜨기 시작했다.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아니면 단순한 내 기억의 오류인지. 봉래루를 천천히 돌면서 내 머리 높이만큼에 있었던 그날의 기억을 찾는 데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안다고 믿고 싶었던 그 만다라를 다시 찾았을 때 느낀 야릇한 희열감이란, 고작 한 뼘 정도 크기에 중요한 부분도 아니고 건물 귀퉁이에 무심한 듯 자리를 잡은 꽃문양과 부처님의 눈. 나무의 결에 시간이 더하여져 마치 부질없는 살은 풍장 되고 남은 뼈만 압축한 듯한 저 작은 경전 아니 만다라, 두 개의 나무토막을 연결하기 위해 박았을 굵은 대못. 나는 그 못 때문에 마음이 좀 불편했지만 금세 그것을 찾아냈다는 안도감에 빠져들었고 한참 후 마음을 다듬은 뒤에는 사진으로 저장하는 걸 잊지 않았다. 다시 방문한다면 그때는 만다라가 어디에 있었더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제 보아도 내소사는 위엄과 기품을 갖춘 대웅보전 기둥과 아름다운 문살무늬, 기와지붕이 담고 있는 수려한 라인은 우리 사찰의 건축미를 유감없이 보여준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봉래루를 통과하면 정면에 사찰의 중심이 되는 대웅보전이 있고, 왼편으로는 무설당, 오른편으론 설선당이 마주 보고 있는 배치는 물론 이 간결하고 단아한 건축물들은 언제봐도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첨언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웅보전의 벽과 천장을 장식한 불화는 불화대로 조금만 공부하고 보면 넋을 놓고 보기에 충분하다. 현대인의 일상이 모던과 최첨단 문명에 길들어 있다면 오래된 사찰은 부처님의 말씀을 상기시켜 일상에서 잊기 쉬운 시간의 가르침을 되살려주는 동시에 속도에 편승하지 않고 순하게 흘러가도록 원초적 시간을 회복시켜준달까. 하여, 많은 사람들이 종교관과 상관없이 사찰을 찾는 이유는 대개의 사찰이 깊은 산자락 울창한 산림 속에 있어 환경 그 자체가 도량이기도 하거니와 숲을 이루는 나무의 수령이 곧 사찰의 역사가 된다는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하여 입을 닫되 귀는 열고 자신의 두 발로 걸어 산사를 향해 들고나는 과정이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힐링이고 대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행다운 여행이 아닐까 싶다. 짧은 출가지만 인공적인 빛과 소음과 속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고즈넉한 사찰기행이 필요한 이유다./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19-08-22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쓸모없는 것들의 쓸모

시·소설 없어도 사는데 불편 없고자본주의 속도에 어울리지도 않아하지만 '없는 것을 있게' 해주기도'탈중심의 낭비' 향유 해주는 것이문학 포함한 모든 예술의 역할 믿어지난 주말 안성의 한적한 시골 펜션에 한 무리의 시인들이 모였다. 연령대가 다양한 글쟁이들 틈에 끼어 나도 하룻밤을 지새웠다. 이 '문학캠프'는 올해로 20년이나 되는 역사와 수십 명 회원을 가진 꽤 큰 문학회의 모임이었다. 세상에 시인이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일반인들은 작가들이 어떻게 노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여타의 친목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더구나 이 모임은 한 식구처럼 친해진 회원들만의 만남이니 아주 편하고 느긋한 분위기였다. 별도 프로그램 없이 그냥 밥 먹고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이야기 나누는 게 전부였다.산자락에 위치한 펜션에 밤이 되자 무수한 별들이 쏟아지고 여름 끝자락의 반딧불이 몇 마리가 더운 밤공기를 식혀주었다. 시간이 깊어져도 사람들 대화는 끊이질 않았다. 시인들은 가슴에 무슨 말을 저리 많이 담아두고 있을까? 언어를 도구로 삼아 끝없이 표현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한 일인가? 그들의 말속에는 농담과 진담이 섞이고, 종종 고백과 한탄이 섞이고, 때론 위로와 비난이 섞여 속살이 불분명해졌다. 밤의 언어가 쓸리고 밀리는 걸 느끼며, 나는 자신에게 '문학이 이 시대에도 유효한가'라고 물어보았다. 아주 오래된 질문이며 여전히 답이 없는 질문이었다.여기 낯익은 답이 하나 있다.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학은 역설적이게도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김현) 이 주장은 이후 다양하게 변주되며 문학의 기능과 가치를 논할 때 자주 인용되곤 한다. 사실 문학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소설이나 시가 없어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에 큰 지장이 없다. 공기와 물처럼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겨우 한 끼 밥이나 더위를 식혀줄 한 줄기 바람도 되지 않는다.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에서 가시가 돋는다"(안중근)고 했지만, 지금은 많은 이가 시나 소설을 읽지 않는다. 그래도 잘 산다.문학이 없어도 우리 사는 데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요즘 작품의 수준이 우리 독자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의혹이 들기도 한다. 하여튼 지금의 문학은 근대사회가 요구하는 '합리적 목적'을 지향하지 않는다. 즉 언어 낭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 자본주의의 속도전에도 어울리지 않아 표준화된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 시집을 예로 든다면, 한 시인이 짧게는 3년, 길게는 십여 년 이상 써서 모아야 겨우 책 한 권을 낸다.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집이 잘 팔리거나, 심오한 진리를 담아 세상의 물정을 환히 밝혀주지도 않는 것 같다. 무슨 말인지 모를 난해한 말을 독백인 듯 뱉고 있다.하지만 참 기이하다 할까, 우리의 염려와 달리 문학은 오래 유지되어 왔고, 꽤 먼 미래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 문학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길이 될 듯싶다. 모든 답은 이미 질문 속에 들어 있다고 한다. 나는 바로 '쓸모없음'에 눈 뜨게 해주는 것, 즉 '목적하지 않은 사이'를 발견하게 해주는 것, '없는 것을 있게' 해주는 것이 문학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 '탈중심의 낭비'를 향유하게 해주는 것이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의 역할이라 믿는다. 그렇다고 문학이 즐거움만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소설이나 시는, 편히 사는 우리의 삶에 시비를 걸고, 소중하다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 지적한다. 전혀 생소한 삶을 던져 읽는 이를 불편하게 하고 당혹스럽게 만든다. 달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좋은 문학작품은 우리가 당연하다 여겼던 것에 균열을 내며 낯선 새로움을 제시해주는 작품일 것이다. 게다가 독자가 자신의 삶을 비춰보고 의심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물론 읽는 자는 쓴 자의 권위로부터 반드시 독립해야 하는 게 우선이지만.자,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당신, 오늘은 낯설고 난해하고 지독한 시집 한 권에 도전해보시는 게 어떨지./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19-08-15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기녀시인 운초(雲楚)의 탑시(塔詩)

미모·재능 탁월한 평안도 성천 기생유명 시인이자 선비인 김이양 만나스승·연인관계로 왕성한 창작활동서울 돌아간 후 소식없자 쓴 시'부용상사곡' 임향한 마음 구구절절성천의 기생 운초 김부용은 송도의 황진이, 부안의 이매창과 더불어 3대 기녀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녀의 생몰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820년쯤 나서 1869년쯤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기녀시인으로는 드물게 '운초집'이라는 문집이 있고 주옥같은 한시 300여 편을 남겼다. 남긴 시에는 그녀가 평안북도 성천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출신이 비천하지 않았는데 어떤 연유로 기녀가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는 타고난 미모와 천부적인 재능으로 열여섯 살에 가무는 물론 시문에까지 능한 성천의 명기가 되어 있었다.성천부사 환영연회에 불려나간 운초는 부사가 보여주는, 평양감사로 와있던 연천 김이양의 서신 속에 자신이 지었던 시편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이 서신을 계기로 그녀는 평양으로 연천을 만나러 가게 된다. 성천부사가 평양감사에게 인사를 가는데 동행하자는 것이었다. 어려서 지은 자신의 시를 적어보낸,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며 지체 높은 대감을 만나게 된 것이다. 연천 김이양(1755~1845)은 77세로 홍안백발의 노익장을 과시하는 고고한 선비이자 인자한 할아버지였다. 연천은 운초를 기생으로 대하지 않고 시인으로 맞았다. 그녀는 연천과 능라도며 부벽루며 모란봉이며 을밀대를 두루 돌면서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꿈같은 며칠을 보냈다. 성천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초는 자진해서 연천을 모시고 살고 싶다고 진언했다. 연천은 이미 상처한 지 3년이나 지난 때여서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운초에게 연천은 시를 논하는 문우이며 시를 깨우치는 스승이자 후견인이었다. 연천으로 하여 기적에서 빠진 운초는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신혼의 달콤한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달 후 연천은 호조판서가 되어 서울로 돌아갔다. 석 달이 지나도록 연천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운초는 애간장이 타들어갔다. 그때 쓴 시가 '부용상사곡'이라는 탑시다. 글자의 배열을 탑처럼 쌓는 것이어서 시에 문리가 튼 시인만이 쓸 수 있는 형식이었다. '이별하니/그립습니다/길은 멀고 편지는 더딥니다/생각은 거기 있고 몸은 여기 있습니다/비단수건은 눈물에 젖었건만 가까이 모실 날은 기약이 아득합니다//……//은장도 들어 약한 창자 끊어버리기는 어려운 일 아니오나 비단신 끌며 먼 하늘 바라보니 마음에는 의심도 많이 떠오릅니다//……//연약한 아녀자가 슬픔을 머금고 황천객이 되어 외로운 혼이 달 아래서 길이 울며 따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로 끝맺는 탑시는 구구절절이 그리움의 노래다. 헤어져 있는 동안에 미친 듯 쓴 오언절구가 많다. '봄바람은 화창하게 불어오는데/서산에는 또 하루해가 저무는구나/오늘도 임 소식은 끝내 없건만/그래도 아쉬워 문을 닫지 못하네'에는 임을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연천은 운초의 마음을 헤아려 '운초에게 주다'라는 시를 쓴다. '왕년에 오강 땅에서 인연 맺었고/금년에 또 해서 물가에 함께 있노라/나와의 만남 늦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니/번소도 끝끝내 백낙천을 못 떠났소/술 따르는 얌전함이 세속 상대보다 어질고/시에 대한 소견은 당나라 때 못지 않네/고요한 밤 책상에 기대 읊는 소리 맑고 밝아/시경 빈풍 칠월편을 낭랑히 외고 있네'는 아마도 평양감사 시절에 운초와 함께 했던 기억을 상기시키려 했던 작품으로 읽힌다. 운초와 연천이 남산 기슭의 녹천장에서 함께 한 15년은 두 사람에게 시에 대한 열정과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하게 해준 찬란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연천이 감기를 앓다 세상을 떠난 것이 그의 나이 91세였다. 운초는 '연천의 죽음을 곡하며'라는 조시로 영혼을 위로한다. '풍류와 기개는 산수의 주인이시고/경술과 문장은 재상이 될 재목이셨지/십오년 살아오다가 오늘 눈물 흘리니/높고 넓은 덕 한 번 끊어지면 누가 다시 이으랴'에는 떠난 시인에 대한 지극한 존경과 사랑이 넘친다. 아름다운 삶이었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19-08-01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기차를 타고

커다란 창 가득한 하늘·산·시골집무자극 콘텐츠에 어느새 피로 '싹'버스에는 없는 운치 마음 '몽글몽글'도착 앞둔 기분이란 또다른 소중함떠나지 않았다면 못 느꼈을 '원점'요사이 부쩍 기차 탈 일이 많아졌다. 대전도 가고, 광주도 가고, 대구도 간다. 대구에서 다시 마산도 가고. 주로는 일 때문이다. 잦은 지방 출장의 고충을 아는 지인들은 "힘들겠다" 염려하지만 어쩐지 나는 이런 상황이 나쁘지 않다. 낯선 도시나 장거리가 주는 심리적 부담도, 몇 시간 동안 꼼짝없이 한 좌석에 앉아 이동해야 하는 불편도 제법 참을 만하다. 조금 과장하자면 요즘따라 괜히 기차 타는 일이 즐겁다.기차 타는 즐거움은 물론 역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차를 기다리는 일에서부터. 나는 발차 시간보다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앞서 역에 도착하기를 선호하는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여유를 좀 부려보는 게 좋다. 역사 내 상점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거나 비교적 한산한 식당이나 커피숍을 찾아 밥을 먹는다거나, 차를 마신다거나. 또, 구석 자리에 앉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넋 놓고 구경한다거나. 일찌감치 승강장에 나가 들고나는 기차 소리를 듣는다거나. 엊그제는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함민복 시인의 시 '서울역 그 식당') 같은 구절을 떠올리며 사람들로 꽉 찬 롯데리아에서 버거를 먹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알 수 없는 설렘과 막막함, 그리움을 느꼈다. 꼭 먼 곳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 여행자처럼. 그러나 너무 깊은 감상에 빠져선 곤란하다. 십오 분 전, 승강장 번호를 체크할 것. 대체로는 KTX를 타지만 시간이 좀 남을 땐 일부러 무궁화호를 탄다. KTX보다 어딘가 더 '기차스러운' 무궁화호. 바랜 빛깔의 시트나 커튼에 정감이 깃들어 있다. (저렴한 요금도 마음에 쏙 든다.) 무엇보다 내게는 KTX보다 무궁화호에 얽힌 추억이 많다. 특히 대학 시절 나는 정기적으로 무궁화호를 타고 마산 본가와 서울을 오갔다. 명절이면 현장 예매로 어렵게 구한 티켓을 쥐고 아주 뿌듯해하며 열차를 탔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 무렵 나는 늘 고단했는데, 열차에 오르기만 하면 금세 잠에 빠졌다. 장장 다섯 시간 반 동안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마산에서 내리지 못하고 종착역인 진주까지 갈 뻔한 적도 여러 번이다. 문득 눈을 뜨고 혼비백산하며 황급히 문을 나서던 기억. 기차에 올라 비로소 창밖을 내다보며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건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한동안 기차를 이용할 일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인지 어쩌다 갖는 기차 안에서의 시간이 특별하게 여겨졌다. 커다란 창 가득 펼쳐진 하늘과 산과 밭과 아기자기한 시골집들. 맑고 푸른 모든 것들. 유튜브에서 고르고 고르던 '무자극 콘텐츠'가 바로 여기 있었구나, 피로가 다 가시는 것 같았다. 바깥에 시선을 빼앗긴 채로 한참을 멍하니 있다 보면 누군가 슬며시 다가와 비타민 음료를 한 병 건네기도 했다. 일행과 좌석을 바꿔줘 고맙다는 뜻. 확실히 버스에는 없는 어떤 운치가 기차에는 있는 것이다!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문득, 계절이 바뀔 때쯤에는 진짜 기차여행을 해야겠다는 결심. 미국에서 공부하는 오랜 친구 E가 돌아오면 함께 바다열차를 타야지. 동해안 해안선을 배경으로 달리는 바다열차는 좌석이 아예 바깥을 향해 있다니, 지친 E에게 작은 선물이 될 것이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보면 금세 "우리 열차는 지금 종착역인 서울역에 도착"을 알렸다. 도착을 앞둔 기분이란 또 얼마나 소중한지. 기차 타는 즐거움의 백미는 다름 아닌 이것인지도 모른다. 서울역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가는 밤의 열차. 따스한 불이 켜진 승강장. 사람들은 열차가 멈추기도 전에 출구 근처에 길게 줄을 선다.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면 서둘러 내려 집으로 총총총 걸어가려고. 순간 노곤한 몸을 감싸는 어떤 안도, 안락. 잠시였으나, 떠나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감정. 원점, 다행히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9-07-25 박소란

[풍경이 있는 에세이]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재혼가정 많은데 계모는 아직 '악역'이 무슨 시대착오적 노래란 말인가고민중인 4살아이 엄마 후배 말하길"새로운 시선 동화는 새엄마 구박해도왕자님이 있어 괜찮다네요"… 맙소사다섯 살 된 아이는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생각나는 대로 한 곡씩 불러주는데, 곧잘 따라 한다. 곰 세 마리 겨우겨우 서툰 발음으로 부르던 시절이 이미 옛날 같다. 매일 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불러줄 노래도 다 동이 났다. 무슨 노랠 해주지. 문득 생각이 났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시작하자마자 선곡에 실패했다는 걸 깨달았다. 가사가 좋지 않다. 하지만 아이는 '신데렐라'가 나오자마자 눈이 동그래졌다. 핑크드레스를 입고 파란 머리띠를 하고 반짝이는 유리구두를 신은 그 신데렐라! 다른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별수 없이 끝까지 불러주었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노래란 말인가. 재혼가정이 수두룩한 시절이다. 하지만 동화 속 계모는 아직 악역이다. 친구는 여중생 딸을 가진 남자와 결혼을 했다가 곧 헤어졌다. 견딜 수가 없었단다. "여중생 딸을 내가 행여 구박이라도 할까봐 내 눈치를 계속 보더라고. 시댁 식구들이 다 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해. 하루 종일 감시를 받는 기분이었어."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구박은커녕 친해질 수도 없었다고 했다. 아무 짓도 하지 않고서도 못된 계모가 된 것 같아 친구는 결혼생활을 끝냈다. 아이는 아직 신데렐라가 그저 예쁜 공주님인 줄 알고 있다. 계모가 뭔지, 구박이 뭔지 모른다. 그냥 따라 부른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신데렐라는 어려서……' 하고 노래를 불렀다. 아이는 이제 백설공주도 읽게 될 것이고 선녀와 나무꾼도 읽게 될 것이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를 구박한 계모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고 뿔 달린 도깨비만큼이나 새엄마를 두려워하게 되겠지. 선녀의 날개옷을 숨겨 아내로 삼아버린 나무꾼이 범죄자인 줄도 모르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을 배운 뒤엔 스토킹 범죄자를 두고 의지가 강력한 자로 오해할는지도 모른다. 콩쥐는 예쁘고 팥쥐는 못생겨서, 못생긴 소녀는 못된 소녀라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별걱정을 다 하네. 니들도 어릴 때 다 그거 읽고 컸어."친정엄마는 나에게 유난을 떤다며 한소리 하지만 별걱정을 다 하는 게 아니다. 그걸 읽고 자란 내가 그 동화들이 이상하다는 걸 깨닫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리고 아직 여전한 그 편견을 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데. 3년 동안 따라다닌 여자를 이제 그만 포기해야겠다는 노총각 친구의 말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너도나도 말을 보탰다. "무슨 소리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어! 포기하지 마. 언젠간 네 마음을 알아줄 거야." 그 분위기에 기겁을 했다. "하지 마, 하지 마! 그거 스토킹이야. 범죄야." 부추기던 친구들이 무안해했다.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그냥 위로해 주자고 하는 말인데 뭘 그렇게 유난을 떨어?" 그런 식의 위로는 하지 말란 말이다. 그건 듣기만 해도 불쾌하고 두려운 일이다. 어린이집에서 친구가 자꾸 괴롭힌다고 하소연하는 아이를 두고 상대 아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애가 널 진짜 좋아하나 봐. 네가 예쁘고 좋아서 그런 거야. 정말 미안해. 조심시킬게." 네 살 아이를 키우는 후배도 나와 똑같은 고민 중이었다. 어쩌다 신데렐라 노래를 불러주고 말았단다. "동화를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쓴 오디오북이 있다고 해서 신데렐라를 틀어줬어요. 결말이 뭔지 아세요? 새엄마가 구박해도 괜찮아, 신데렐라에겐 왕자님이 있으니까. 이거였어요." 아이고, 맙소사. 왕자님이 있어서 괜찮다니. 이 노릇을 어쩌나./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19-07-18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해인사와 팔만대장경

천년세월 변함없이 지켜온 경판들오랜 침묵 전하는 메시지 크고 장엄고작 한나절에 불가사의한 말씀들다 새긴다는것은 허무맹랑한 욕심눈과 마음으로 차곡차곡 담아본다집을 나선 지 나흘째, 가야산 자락으로 들어선다. 계곡의 물소리는 짐승의 포효처럼 우렁차다. 다행히 바람은 알맞게 살랑거리고 햇살은 대지를 뜨겁게 달군다. 얼마 만에 찾아가는 해인사인가. 거두절미 천년의 시간을 견뎌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판으로 알려진 팔만대장경(불교경전을 종합적으로 모아 기록한 기록물)이 예전 그대로 잘 있는지 보고 싶었다. 해인사 가람 배치도를 보면 일주문, 봉황문, 해탈문, 구광루를 지나 정중탑과 대적광전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면 네모 모양의 장경판전이 기다린다. 그 뒤로 수미정상탑이니 영락없이 부처님께서 대장경판을 머리에 이고 있는 셈, 여기서 북쪽 건물은 법보전 남쪽 건물은 수다라전이다. 해인사가 자리한 지형은 떠가는 배의 형국이라 돛대바위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겨 근자에 다시 세운 탑이 단아하기 이를 데 없는 8각 7층 석탑이다.해인사라면 그 무엇을 봐도 대장경을 보는 것이라 했던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약 20분쯤 오르막을 걸어 일주문을 통과 대적광전을 지나 가장 뒤쪽에 자리한 장경판전 앞에 서자 가슴이 설렌다. 아침나절이라 햇살이 서고 안쪽으로 길게 들어서고 나무 칸막이 사이로 천년의 시간을 변함없이 지켜온 경판들, 보일락 말락 하는 오랜 침묵의 시간들이 내게 전하는 메시지는 크고 장엄했다. 생각해 보라. 우리 조상들은 후세를 위해 목판본을 만들고 이걸 지키기 위해 얼마나 동분서주했겠는가. 경판이 보관된 법보전에는 스님 한 분이 나지막이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읊고 계셨다. 사람들은 흐르는 물처럼 잠시 왔다가 서둘러 돌아가기 바쁘지만 나는 쉬이 자리를 뜰 수 없다. 천년의 시간과 불가사의하다는 말씀들을 나 같은 범인이 고작 한나절에 새긴다는 건 얼마나 허무맹랑한 욕심이겠는가. 허나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저 경판들, 손으로 쓰다듬을 수 없으니 눈으로 마음으로 더듬고 또 더듬을 수밖에, 그리고 차곡차곡 심연 깊이 눌러 담아 두는 도리밖에.해인사를 감싸고 있는 주변의 숲은 우람하고 계곡의 노거수들은 푸르다 못해 검다. 이 좋은 자리에 대장경을 모시고 유구한 세월을 견디고 있는 저 부처님의 살 같은 말씀들, 불자가 아니어도 사람인 우리가 새기며 살아야 할 말씀들은 얼마나 차고 넘치던가.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많을 것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판 팔만대장경은 1962년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경판은 8만1천258판이다. 8만여 판에 8만4천 번뇌에 해당하는 법문이 실려 있어 팔만대장경이라 이른다. 1237년(고종 24)부터 16년간에 걸쳐 고려에 침입한 몽골군의 격퇴를 발원((發願)하여 대장도감과 분사도감을 두어 만든 것이라고. 경판고 안에 5층의 판가를 설치하여 보관하고 있으며, 판가는 천지현황 등의 천자문 순서로 함의 호수를 정하여 분류배치하고, 권차와 정수의 순으로 가장하였다고 한다.경판의 크기는 세로 24㎝ 내외, 가로 69.6㎝ 내외, 두께 2.6∼3.9㎝로 양 끝에 나무를 끼어 판목의 균제를 지니게 하였고, 네 모서리에는 구리판을 붙이고, 전면에는 얇게 칠을 하였다. 판목으로 산벚나무, 돌배나무, 자작나무, 소나무, 후박나무 등의 목재를 썼고, 무게는 3∼4㎏가량으로 현재까지 보존 상태는 양호하며, 천지의 계선만 있고, 각 행의 계선은 없이 한쪽 길이 1.8㎜의 글자가 23행, 각 행에 14자씩 새겨져 있는데, 그 글씨가 늠름하고 정교하여 고려시대 판각의 우수함을 보여주고 있다고한다.처음엔 강화 서문(江華西門) 밖 대장경판고에 두었고, 그 후 강화의 선원사(禪源寺)로 옮겼다가 1398년(태조 7)에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19-07-11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누가 나에게 돌을 던지나

'인간의 존엄성' 훼손하는 범죄우리 사회에선 이상하게도 관대도덕 붕괴시키는 죄 침묵하거나무조건 용서는 오염 증폭시킬 뿐잘못 대가 따라야 건강사회 유지얼마 전 '뉴욕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캉화 렌(Kanghua Ren)이라는 한 중국계 유튜버가 치약이 든 과자를 노숙자에게 주고 골탕을 먹였으며 이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린 죄로 바르셀로나 법원에 의해 징역 15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그는 피해자에게 2만2천300유로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향후 5년간 유튜브를 비롯한 모든 SNS 계정을 폐쇄하라는 명령도 받았다. 그가 지은 죄목은 소위 '도덕적 정직성'을 저해하였다는 것이었다. 이 용어는 'moral integrity'를 우리말로 옮긴 것인데, '정직성'이라고 하면 개념이 선명하지 않은 느낌이어서, 오늘은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영어 'integrity'는 우리말로 '정직, 청렴, 성실' 등은 물론 '완전무결, 나뉘지 않은 전체' 등으로 옮길 수 있는 단어이다. 외연과 내포가 동일한 속성을 지녀 하나인 상태, 즉 겉과 속이 한결같은 사람을 일러 'integrity'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법률이나 철학에서 쓰는 공식 용어가 있겠으나, 나는 이를 '항상성'이라고 이해하면 어떨까 싶다. 즉 'moral integrity'는 '변하지 않는 도덕성'인데, 조금 의역을 하자면 '(변치 않는) 기본적 (인간으로서의) 존재가치'랄 수 있다. 그러니까 그 유튜버는 노숙자의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았다는 이유로 벌을 받은 것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은 아무리 누추하고 가난한 사람이라 해도 결코 유린당해서는 안될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법원의 판결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다소 지나친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모 여성 연예인의 기사에 "꽃뱀도 시집만 잘 가면 땡이로구나"라는 댓글로 모욕한 사람에게 벌금 100만원을 부과했다고 한다. 또 재작년 세상을 분노하게 했던 '땅콩회항' 사건에서 대법원은 놀랍게도 '항로변경'에 대해선 무죄를, '폭언폭행'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판결했다. 이는 아무런 처벌 없이 면죄부를 준 것과 다름없다. 그 외 많은 살인과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도 법원은 심신미약, 혹은 우발적 범행인지 여부에 따라 정말 '관대한' 벌을 내리기 일쑤이다. 이런 식이라면 그 스페인 유튜버는 아마도 '훈계'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까.여기에서 나는 법적 판결과 '도덕적 정직성' 사이의 괴리감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법은 대의기관인 국회가 만든다고 말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도덕을 어기는 법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지점에서 '도덕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나아가 '도덕은 개인의 판단인가, 아니면 한 사회의 공동 이데올로기인가'라는 오래된 문제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철학자는 도덕의 주관적 측면과 객관적 측면을 고려하고, 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모든 개인의 생각이 서로 같지 않다는 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 없는 사회는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답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지만, 개인의 일이든 사회적 문제이든 모든 사건(events)은 관계망을 가진 주체에 의해 발생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무시하는 단일 가치관에 모든 개인 주체를 강제로 꿰맞추려 애쓰면서도, 그 개인 주체의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당하는 범죄에 대해서만은 이상하리만큼 관대하다. 도덕을 무너뜨리는 죄에 대해 침묵하거나 무조건 용서하는 것은 오염을 증폭시킬 뿐이다. 우리도 스페인처럼 노숙자를 놀렸다면 15개월의 징역형을, 또 독일에서 준비 중인 법(NetzDG)에서처럼 SNS에서 거짓 혐오 뉴스를 걸러내지 않는다면 그 사업자에게 최고 500만유로의 벌금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잘못에 대해 돌을 던짐으로써 주체와 타자가 함께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 이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유지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겉으로 시끄럽기만 할 뿐, 속으로는 끝까지 책임을 물으려고 하지 않는다. 분명한 잘못에 돌을 던지지 않는다면 결국 그 돌은 나 자신에게로 날아올 것이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19-07-04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기녀 설죽의 만시와 석전

노비였던 '설죽' 스스로 한문 익혀한시 167수나 남긴 빼어난 문장가詩 품격 황진이·허난설헌과 '비견' 송강 정철 수제자로 유명한 '석전'둘의 만남은 모두 시인이었기 때문설죽(雪竹)이 석전(石田) 성로(成輅)를 처음 만난 것은 봉화 유곡의 청암정 주연자리에서였다. 취흥이 도도해지자 사대부들은 설죽에게 석전의 만시를 지어 눈시울을 적시게 하면 석전을 모시도록 천거하겠다고 제안했다. 젊어 아내를 잃은 석전은 홀아비로 30여년을 살고 있었다. 설죽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만시를 지어 읊었다. '서호정 초당문은 닫혀서 적막한데/주인 잃은 봄 누각엔 벽도향만 흐르네/청산 어느 곳에 호걸의 뼈 묻혔는지/오직 강물만 말없이 흘러가네' 숙연하게 듣고 있던 좌중의 여러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 이 만시의 인연으로 설죽은 석전의 비첩이 되었다. 만시는 그녀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설죽은 봉화의 사대부, 석천(石泉) 권래(權來)의 시중을 드는 노비였다. 노비의 신분이었던 설죽이 어떻게 학문을 할 수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노비였음에도 15세가 될 때쯤 신분을 숨기고 명산대천을 떠돌며 사대부들과 교유했던 것을, 그녀가 남긴 시편으로 알 수 있다. 석전(1550~1615)은 송강 정철의 수제자로 꽤 알려진 당대의 시인이었다. 스승 정철의 잦은 유배를 보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던 석전은 상처 후 한강의 서호 부근에 서호정이라는 우거를 마련하고 술과 시로 세월을 보냈다. 오랜만에 봉화를 찾아 사대부들과 술자리를 가졌던 석전은, 설죽과의 첫 만남이 자신의 죽음을 노래한 만시여서 운명적인 조우였다. 설죽은 망설임 없이 석전을 따라 한양으로 올라와 10여년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설죽은 생몰연대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십대 후반에 석전을 만나 이십대 후반에 홀로 남았을 것이다. 노비와 사대부의 만남이었지만 사십년 가까운 나이 차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 모두 시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설죽은 스스로 한문을 익힌 문장가로, 그녀가 남긴 한시는 모두 167수나 된다. 그녀의 시는 빼어난 서정과 품격을 보여 황진이와 허난설헌에 비견된다.그녀는 석전을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사랑했다. '잠령은 안개와 노을의 주인이고/석전은 시의 주인이네/서로 만나 취하는 줄도 모르는데/양화진엔 달이 지네'라고 읊은 시가 '봉화 성석전'이다. 석전이 시의 주인이라 노래한 것은 최고의 시인이라는 의미다. 석전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쓴 시가 '님 떠난 후'다. 하강의 이미지가 시편을 압도하지만 서정 넘치는 시다. '낭군님 떠나간 뒤 소식이 끊어져/봄날 청루에 홀로 잠드네/촛불 꺼진 창에서 끝없이 우는데/두견새 울고 배꽃에 달이 지네'는 지극한 슬픔의 노래다. 우는 그녀를 따라 두견도 울고 배꽃에 달이 지면, 배꽃도 달도 따라 우는 것이리라. '비단 휘장'이라는 시편 또한 그녀의 외로움을 노래한다. '비단 휘장 닫아걸고 중문도 닫으니/모시적삼 소매에 눈물 흔적 보이네/옥굴레 금안장 임은 어디 계신지/삼경에 흐르는 눈물 감당할 수 없네.'로 마음이 아려온다. 석전과의 추억을 읊은 시가 '서호의 석전을 기억하며'다. '십년 동안 석전과 한가로이 벗하여 놀며/양자강 머리에서 취하여 몇 번이나 머물렀던가/임 떠난 뒤 오늘 홀로 찾아오니/옛 물가엔 마름꽃 향기만 가득하네'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녀의 사무치는 외로움은 서러운 춤사위가 되고 애절한 노랫가락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가 몇 해나 석전 없는 서호정에 머물렀는지는 알 수 없다. 서호정을 떠나 호서지방의 관기로 일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여러 시편이 문헌에 남아 있다.석전이 드러내놓고 설죽을 노래한 시편은 전해지지 않으나 '고운 사람'이라는 시는 설죽에게 헌정되었을 시다. '돈대에 이슬이 막 내려 가을빛 서렸기에/흥이 일어 생선과 채소 안주에 술을 찾았네./고운 여인이 붉은 단풍잎을 손에 들고 와/시골 늙은이 취한 얼굴 같다 웃으며 말하네.' 서호정 뒤로 나즈막한 돈대가 있었다. 그렇다면 붉은 단풍잎을 들고 와 시골 늙은이 취한 얼굴 같다며 웃는 고운 여인은 설죽임에 틀림없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19-06-20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꽃

목 잘리는 순간 삶을 떠난 '꽃다발'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며 숨거둬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릴땐 '비참'꽃을 보고 지나치지않고 걸음 멈춰찬찬한 눈길주는 사람이 나는 좋다 꽃을 선물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일이나 각종 기념일에, 혹은 입학식이나 졸업식, 시상식 같은 경사에 꽃을 들고 나타나는 사람들. 축하합니다! 기쁜 일에는 으레 꽃이 빠지지 않는 법이니까. 물론, 별다른 이슈가 없는 날에도 꽃은 곧잘 선물이 된다. 연인이나 가족끼리 꽃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전하는 일. 내가 얼마나 너를 좋아하는지, 얼마나 너를 웃게 하고 싶은지. 실제로 꽃을 받아든 대부분은 웃는다. 소소하지만 풍족한 기쁨을 느낀다. 활짝 핀 꽃도 꽃이지만, 그걸 건네는 이의 뜻을 알기 때문에. 고맙습니다. 이토록 예쁜 걸 주시다니. 온 안면 근육을 동원해 감사를 표시한 뒤 꽃을 안고 돌아설 때면 어쩐지 사랑받는 사람이 된 기분. 버스를 기다리다가, 또는 상점에서 물건값을 치르다가 "어머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하고 누군가 알은체라도 하면 또 한 번 웃게 된다. 꽃이란 바로 그런 것. 그러나 꽃이라는 선물이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사정 때문이겠지만, 꽃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다. 나 또한 이 그룹에 속한다. 나는 정말이지 꽃 선물만은 사양하고 싶다. 선물을 두고 이런저런 불평을 한다기보다, 세상에 하고많은 선물이 있다면 나는 되도록 그것이 식물이나 동물은 아니길 바란다. 하물며 목이 댕강 잘린 채 죽어가는 것이라면….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꽃은, 그러니까 꽃다발은 지금 막 삶을 떠난 존재다. 얼마 전의 일이다. 지방의 한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학생 대표가 연단에 선 내게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이런 융숭한 대접이라니! 그걸 받아들고 어색하게 웃던 나는 이내 고민에 휩싸였다. 자, 이제 이 꽃을 어떻게 해야 하나. 여느 때의 나라면, 앉은 자리에 슬쩍 두고 가거나 꽃을 선호할 만한 일행에게 "가질래요?" 하고 줘버렸을 것이다. 선물한 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러나 이런 경우는 애매하다. 구색에 가까운 것이라 해도 어린 학생들의 정성을 생각하면, 좀처럼 요령을 부릴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집까지 그 꽃을 품에 안고 왔다.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는 내내, 행여 잎이라도 상할까 움직임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마치 로봇과도 같은 자세로 말이다. 진짜 문제는 이다음부터. 집에 돌아온 나는 외투도 벗지 않은 채로 화병을 꺼내고 잽싸게 꽃다발의 포장을 풀었다. 그렇게 색색의 꽃들을 잘 간추려 병에 꽂고 나면 도리가 없다.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꽃들이 완전히 시들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침마다 화병의 물을 갈아주는 것뿐. 이때의 나는 중병으로 몸져누운 이의 병상을 지키는 무력한 보호자의 심정이 된다. (과장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몸이 쇠하고 안색이 어두워지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온 집안을 감도는 악취. 썩은 몸 주변을 날아다니는 벌레들. 그런 것들을 애써 모른 체하며 나는 전전긍긍한다. 차라리 어서 빨리 숨을 거두기를, 하고 바라는 한편 막상 임종의 순간이 닥치면 현실을 부정하며 어떤 기적을 갈구하듯 미련하게 군다. 그러다 보면 마지막은 더 난감해진다. 종량제 봉투에 마구잡이로 구겨 넣은 꽃을 쓰레기장에 내동댕이치는 일을 나는 해야만 하는데, 그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너무 별스러운가. 그런 것도 같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별스러운 사람이 수두룩하다. 말간 얼굴 뒤에 아픔을 감추고 살거나 삶의 가장 환한 순간에 끝을 생각하는 사람들. 꽃을 보며 새삼 아름다움의 이면을 떠올린다. 너무 쉽게 꽃을 선물하지 말 것. 하지만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조차 알 수 없는 내 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을 지나치는 사람이 아니라 꽃 곁에 걸음을 멈추는 사람, 찬찬한 눈길로 그 꽃을 들여다보는 사람을 내가 좋아하고 있다는 것./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9-06-13 박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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