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

 

[풍경이 있는 에세이]텀블러라는 작은 실천

플라스틱 대체 친환경제품 '인기'쓰레기 줄인 사례 공유 캠페인도소비자 의식 바뀌자 기업들 응답개개인 달라지면 큰 변화 만들어 당신의 작은 실천 미리 응원한다외부 미팅이 두 건 있는 쌀쌀한 겨울날이었다. 후배와 함께 첫 미팅 사무실에 도착하자 상대방이 차를 권한다. 종이컵과 함께 내민 티백을 살펴보던 후배가 텀블러를 꺼내며 "저는 여기에 마시겠다"며 양해를 구한다. 후배가 환경에 관심이 많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텀블러를 갖고 다니며 쓴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어쩌면 어색할 수 있는 외부 미팅 자리에서도 스스럼없이 쓰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상대방도 "요즘 이런 분들 많은데, 역시 젊은 세대답게 멋있다"며 화답한다. 자신도 일회용 컵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고 고백하면서…. 다음 미팅 장소인 커피전문점에서는 텀블러 할인을 받았다. 그 미팅에서 만난 분도 텀블러를 챙겨다니는 후배를 칭찬하며 "자신도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겠다"고 웃었고, 미팅은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됐다. 늘 그렇게 텀블러를 갖고 다니는지 묻자 후배는 개인적으로 외출할 때도 갖고 다닌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점심 먹으러 갈 때 주머니 같은 걸 챙겨나가는 걸 봤던 기억이 난다.몇 번 갖고 다니다 선반에 고이 모셔져 있는 내 텀블러처럼, 바쁜 일상에서 환경적 실천을 의식하거나 생각하면서 행동하지 않으면 몸은 편한 걸 찾게 마련이고, 편하게 쓰다 보면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그나마 장바구니를 챙겨서 갖고 다니는 것이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소소한 실천이다. 쓰지 않을 때는 착착 접어 주머니나 가방 한구석에 넣어두고, 쓸 일이 생길 때마다 꺼내 쓰는데 꽤 유용하고 편하다. 그에 비하면 플라스틱 쓰레기가 잔뜩 나오는 배달 음식을 줄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냉장고 속 남은 재료 활용하기, 손수건 이용하기, 플라스틱 빨대 사용하지 않기 등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실천할 수 있다.전문가들은 '쓰레기 0'을 위해 실천해야 할 '5R'로 필요 없는 물건을 거절하고(Refuse), 쓰는 양은 줄이며(Reduce), 일회용 대신 여러번 쓸 수 있는 제품을 사고(Reuse), 재사용이 불가능하면 재활용으로 분류하며(Recycle), 나머지 썩는 제품은 매립한다(Rot)를 꼽는다.전 세계에서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업체 1위로 꼽히는 코카콜라는 최근 페트병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종이병을 개발했다. 한해 300만t의 플라스틱을 배출해 '세계 최대 오염원'이라고 불리고 있는 오명을 벗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주류 회사들도 유리병과 비닐 라벨지를 줄이기 위해 종이병을 개발 중이며, 유리나 플라스틱 용기 대신 종이 패키지 화장품을 출시한 회사도 등장했다. 매번 플라스틱 용기를 교체해야 하는 액체 대신 고체로 만들어져 쓰레기 발생량을 줄일 수 있는 '샴푸바'와 '설거지바'도 인기다. 다양한 리필 상품과 무포장 제품을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 숍 '알맹상점' 등과 같은 가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SNS에서는 밀레니얼(MZ) 세대를 중심으로 일상에서 쓰레기 발생을 줄인 자신만의 사례를 공유하는 캠페인 '제로웨이스트 챌린지'가 한창이다. 플라스틱 용기를 줄이는 환경 캠페인으로 용기를 내서 시장이나 음식점에 직접 용기를 들고 가 플라스틱 포장이나 비닐 없이 용기에 물건을 담아오는 '#용기내 챌린지'도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소비자가 다회용기를 직접 들고 가기 때문에 불필요한 일회용품 낭비를 줄일 수 있을뿐더러 위생적이다. 이런 캠페인과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에 빠르게 응답 중인 한국 기업들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밀봉된 캔을 덮은 뚜껑은 불필요한 플라스틱 쓰레기"라는 소비자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CJ는 스팸의 노란 플라스틱 뚜껑을 없앴고, 매일유업은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빨대 반납 운동'에 화답해 우유팩에서 빨대를 제거한 제품을 내놓았다. 애초에 재활용되지 않는 제품을 생산하지 않도록 기업의 변화를 요구한 소비자에게 기업이 적극적으로 응답한 셈이다.한 사람이라도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 그 한 사람을 보고 또 한 사람이 바뀌는 것, 작은 것일지라도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가 모여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터다. 이 글을 읽고 시작할지도 모를 당신의 작은 실천을 미리 응원한다./정지은 문화평론가정지은 문화평론가

2021-03-04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박신의 선녀였던 홍장

강릉 기녀중 시문 출중 미모 빼어나박신, 달콤했던 시간 보낸후 한양行그녀는 연시쓰며 1년 되도록 기다려드디어 그는 그녀를 한양으로 불러박신에겐 홍장은 영원한 선녀였다박신(1362~1444)은 고려의 공민왕 11년에 태어나 조선조 세종 26년에 세상을 떴다. 포은 정몽주의 문하생으로 수학했다. 그는 고려가 망하기 7년 전인 1385년 23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과 형조정랑을 지냈다. 조선조 개국 후에는 강원안찰사와 대사성, 그리고 이조판서를 지냈으니 고려와 조선의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그는 청렴하고 공정해서 칭송이 높았다.그의 오랜 동지인 조운흘(1332~1404)은 나이는 박신보다 많았지만 서로 흉금을 털어놓는 사이였다. 조운흘이 강릉부사로 와 있을 때 박신이 강원안찰사로 가게 되었다. 두 사람이 조촐한 주안상을 앞에 놓고 회포를 푸는 자리에 천하일색 홍장이 함께 했다.박신은 홍장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았고 홍장 역시 박신의 인품과 격조 있는 언행에 마음이 갔다. 홍장은 강릉고을 기녀 200여명 중 시문과 기예가 출중하고 자태가 아름답기로 이름이 나 있었다. 두 사람은 격하게 끌려서 깊은 인연을 맺었다. 꿈같은 며칠이 지나 박신은 공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박신은 매일 홍장을 꿈꿨다. 그녀의 미소와 시문, 자태 고운 춤사위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미칠 것 같은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강릉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박신은 먼저 관아로 조운흘을 찾아갔다.돌아온 박신에게 친구인 부사가 청천벽력 같은 말을 전했다. 홍장이 오매불망 박신을 기다리다 병이 들어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것이었다. 박신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홍장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그도 몸져누워 앓았다.조운흘은 박신과 홍장의 극적인 만남을 위한 계책을 홍장에게 말하고는 그녀를 선녀처럼 아름다운 치장을 하게 했다. 그리고는 화려한 화선, 꽃으로 꾸민 배를 준비시켰다. 늙은 아전을 한 사람 뽑아 의관을 갖추고 도포를 입혔다. 당당한 모습이 마치 신선 같아 보였다. 홍장을 실은 화선 위에 다음과 같은 시를 걸어두었다.'신라 성대의 늙은 화랑 노닌 곳이니/천년의 풍류 오히려 잊지 않았다네/듣기로는 귀하신 분께서 경포에 노닌다고 하나/배에는 차마 홍장을 싣지 못했네'.조운흘은 병석의 박신을 찾아가 그를 위로하고 회유하여 경포대로 나섰다. 경포에서 술을 마시면 다섯 개의 달이 뜬다고 박신을 설득한 것이다. 한송정은 시인 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주안상이 차려지고 밤안개 사이로 달빛이 그윽하게 경포에 내렸다. 안개를 휘저으며 화선 한 척이 경포를 유유히 밀고 왔다. 배가 가까이 오자 배에 타고 있는 신선과 선녀가 보이기 시작했다.박신은 경포에 밤안개가 내리면 신선과 선녀가 내려온다는 부사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다 걸려 있는 시문을 보고는 벌떡 일어나 배를 향해 달려 내려갔다. '배에는 차마 홍장을 싣지 못했네'라는 구절을 읽고는 선녀가 홍장인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친구 조운흘의 연출인 것을 안 박신은 우정이 밉고도 고마웠다.달콤하고 뜨거운 몇 달을 강릉에서 홍장과 보낸 박신은 한양으로 떠났다. 떠나며 남긴 시가 '젊어 소임을 받아 관동을 안찰하였는데/경포에서 놀던 일이 꿈속에 드는구나/대 아래 목란배를 다시 띄우고 싶지만/홍장이 쇠잔한 늙은이라 비웃을까 저어하네'에는 홍장에 대한 애틋함이 서려 있다.한양으로 간 박신은 거의 1년이 다 가도록 연락이 없었다. 홍장은 절개를 지키며 박신을 기다렸다. 홍장은 박신에게 연시를 썼다. '울며 잡은 소매를랑 떨치고 가지 마소/풀빛 긴 제방에 해도 다 저물었네/객창에 등심지 돋우고 새워보면 알리라!' 기다림의 외로움을 당신이 어찌 알 것인가 하는 원망이 엿보인다.그래도 소식이 없었다. 그녀는 또 한 수를 짓는다. '한송정 달 밝은 밤 경포대에 물결 잔데/ 신의 있는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건마는/어이타 우리 왕손은 가고 오지 않는가?' 원망을 넘어 좌절이 느껴진다. 그러나 박신은 약속을 지켜 그녀를 한양으로 불러올렸다. 박신에게 홍장은 영원한 선녀였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21-02-25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내 응접실에 놀러 올래?

하얗고 큰 오븐 수십 년 쓰고 싶어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고매일 같은 집안의 일상이 시시하다친구 단톡방선 만날 날 잡아보지만마지막엔 "코로나 잠잠해지면 보자"오래전 호주에서 지낼 때 친구가 세 들어 살던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집주인은 키가 작고 뚱뚱한 이탈리아 할머니였다. 그 집에는 정말 예쁜 응접실이 있었다. 세월 묵은 사진들을 벽에 걸고, 낡고 해졌지만 고풍스러운 의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동그란 테이블. 예쁜 찻잔들은 이가 빠졌고 벽에는 꽃무늬 벽지가 발라져 있었다. 그 집의 바닥은 걸을 때마다 삐거덕삐거덕 소리가 낡은 마룻바닥이었는데 딱 응접실에만 술 달린 카펫이 깔려 있었다.응접실은 절대 출입금지구역이었다. 할머니도 마른걸레를 쥐고 청소를 할 때나 드나들었을 뿐, 그곳은 추억을 저장하는 용도 이외로 사용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먼지를 피워서는 안 되는 곳. 훗날 나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을 번역했는데, 거기에도 이런 응접실이 나온다. 앤은 다이애나를 티파티에 초대한 뒤 응접실로 데려가고 싶어하지만 마릴라는 단박에 거절이다. "너희한텐 거실이 딱이야. 응접실은 절대 안 돼!"라고 말이다. 마릴라가 응접실에 모시는 손님이란 오직 목사님뿐. 나는 그 이탈리아 할머니네 응접실 입구에 서서 그곳을 한참 쳐다보았다. 아, 나에게도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그런 생각을 그날 처음 했더랬다. 이탈리아 할머니에게는 응접실 외에도 끔찍하게 아끼던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주방에 놓인 가스오븐이었다. 딱 봐도 수십 년은 된 듯한 하얀 오븐이었다. 어찌나 행주질을 했는지 땟자국, 물자국 하나 없이 맨들맨들했다. 오븐을 닳게 한 거라곤 행주질밖에 없는 듯한 물건이었다. 친구가 투덜거렸다. "내가 불에 뭘 얹기만 하면 뒤에 서서 아주 뚫어져라 노려본다? 국물이라도 흘릴까 봐 그러는 거지. 내가 부엌에서 얼마나 긴장하는지 알아?"나는 그 오븐이 그렇게나 부러웠다. 마르고 닳도록 닦아내며 아낄 수 있는 물건이란 얼마나 예쁠까. 나도 하얗고 커다란 오븐을 하나 사서 그렇게 수십 년을 쓰고 싶었다. 누가 건드릴라치면 으르렁, 사나운 눈을 하고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무섭게 굴고 싶었다.코로나 시국이 끝도 없이 길어지면서 밖에 나가는 일이 극도로 줄었다. 아이가 지난 일 년 동안 어린이집에 간 건 다 합쳐봐야 두 달도 되지 않는다. 예쁜 카페에 가지도 않고 백화점 아이쇼핑도 하지 않으니 눈호강 할 일이 없다. 매일 집밥을 먹고 매일 같은 소파에 앉고 매일 같은 커튼을 열고 닫으니 사는 일이 시시하다. 그래서 공연히 베갯잇을 새로 사고, 아이 놀이 텐트를 바꾸고 카펫을 바꾼다. 예쁜 옷을 사도 입고 나갈 일이 없으니 아이와 내 파자마만 인터넷 쇼핑으로 고르고 실내용 슬리퍼를 살 뿐이다. 급기야 소파도 바꾸고 싶어졌다. 이탈리아 할머니네 응접실처럼 여기저기 꽃무늬 벽지를 새로 바르고 폭신하고 고풍스러운 의자를 들여놓을까? 이탈리아 할머니네 오븐처럼 하얗고 커다란 오븐을 새로 살까? 모서리가 둥글둥글 귀여운 오븐은 대체 어디에서 파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 집 소파는 산 지 고작 5년밖에 되지 않았고 이 집은 지은 지 4년인 신축 아파트라 도배지 얼룩도 하나 없이 말끔하다. 물론 광파오븐도 집들이 기념으로 산 거라 아직 말짱하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새로 들이지 못할 것이다. 수세미에 베이킹소다를 잔뜩 묻혀 광파오븐 속 묵은 때나 벗겨내는 오후가 되겠지. 새 응접실을 만들고 친구를 초대하고 싶은 마음은 또 마음 한편으로 묵혀야겠지.친구들은 단톡방에 모여 "이젠 정말 얼굴 좀 봐야겠어. 이렇게는 못 살겠어. 사람이 그리워 죽을 것 같아!" 외치며 만날 날을 잡아보지만 아이들이 어린이집도 학교도 가지 않아 시간을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겨우겨우 시간을 맞춰본다 싶으면 누군가 한마디한다. "그런데, 5인 이상 집합금지 안 풀렸잖아." 그래, 다 알고 있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코로나 좀 잠잠해지면 보자"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렇다면 커튼을 바꿔볼까? 우리 집 말고, 밖에 있는 기분을 좀 느낄 수 있도록, 회색 커튼 떼어내고 붉고 푸른 커튼을 달아볼까? 내 지루한 표정을 읽은 아이가 종알거린다. "그럼 엄마 방이랑 내 방이랑 바꿔볼까? 우리 집이 완전히 달라질 것 같아." 그만 푸푸 웃고 만다. 미안, 그건 곤란해. 품이 너무 많이 들거든./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21-02-18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

아침엔 평화, 저녁엔 자비로운 미소빛이 비추는 방향따라 다르게 보여중앙 여래입상 눈뜨고 웃어 매력적반가사유상, 얼굴 들고 왼쪽을 향해어색하기보다 되레 '신선한 생동감'겨울이 시작되면서 여행을 멈추고 집을 지켰더니 발바닥에 가시가 돋고 몸이 답답하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산이면 어떻고 바다면 어떠랴. 그래, 가자 서산 마애삼존불, 누구는 봄에 가면 좋다하고 누구는 만추에 가면 최고라지만 바위부처를 만나러 가는데 계절 따위가 무슨 대수랴.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고 단풍이 들면 단풍드는 대로 좋을 것이니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보겠다는데 누가 말리랴, 하여 불쑥 떠났다. 서산으로.가야산 계곡 바위 절벽 하단에 불심 깊은 어느 장인이 바위를 깎고 다듬어 그 속에 숨어있는 부처를 찾아 세상에 알린 것은 백제시대다. 그런 연유로 '백제의 미소'로 불리기도 하는 서산 마애삼존불은 환하게 웃고 있는 여래입상,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고 있는 반가사유상, 두 손으로 보주를 감싸고 서 있는 보살상이 나란히 있다 하여 삼존불이라 칭한다. 이 여래삼존불은 천연 바위절벽의 동쪽 밑에 조각할 부분을 다듬고 그 위에 여래상은 고부조로, 좌우협시보살은 저부조로 조각하였는데 삼존 전체는 중앙 여래상 두광의 끝을 중심으로 큰 삼각형 구도를 이루고 있다.안내표지판 하단을 보면 "이들 불상의 미소는 빛이 비추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아침엔 밝고 평화로운 미소를, 저녁에는 자비로운 미소를 볼 수 있다. 동동남 30도, 동짓날 해뜨는 방향으로 서 있어 빛을 풍부하게 받고, 마애불이 새겨진 돌은 80도로 기울어져 정면으로 비바람이 들이치지 않아 미학적 우수성은 물론 과학적인 치밀함에도 감탄을 자아낸다"고 적고 있다.이곳 마애삼존불입상(백제 7세기 전반, 국보 84호, 높이 280㎝)은 그 시대 불상들이 대부분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머금고 있다면 이곳 중앙 여래입상은 눈을 뜨고 호쾌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끝이 납작한 코는 양쪽으로 벌어져 폭이 좁아 높은 코를 보여주는 당시의 불상과는 대조적이다. 넓은 어깨를 타고 통견 대의가 U자형의 큰 호를 넓은 간격으로 그리며 내려오고, 한쪽 끝자락은 왼쪽 팔목에 걸쳤으나 너무 짧아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왼쪽의 반가사유상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오른팔을 반가한 무릎에 괴고 손을 오른쪽 뺨에 살짝 댄 전형적인 반가사유 자세다. 얼굴의 밝은 미소는 보는 이도 따라 웃을 만큼 매력이 넘친다. 목에 세로로 두 줄의 근육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것은 얼굴의 미소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 장식은 화려한 꽃으로 삼면보관을 씌웠다. 반가사유의 자세를 취할 경우 신체 구조상 머리는 팔을 괸 오른쪽으로 숙여야만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은 오른쪽으로 살짝 고개를 숙이는 형태를 취하나 이 상은 얼굴을 들어 그 반대쪽을 향하고 있어 신체 구조가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어색하기보다 오히려 신선한 생동감을 준다는 것은 아이러니다.주차장에서 내려 삼존불이 있는 곳까지는 직선으로 불과 백여미터 남짓하나 눈으로 길이 미끄러워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마애삼존불까지 올라가려면 노약자는 특히 동절기엔 보호자 동행 없이는 힘들 듯하다. 불이문을 지나 마애삼존불이 자리를 잡은 곳은 험한 바위절벽 아래인데 이 불상 정면에 서서 보면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은 바위 틈새에 소나무와 신갈나무가 자라고 있는 걸로 보아 저 바위의 조각은 나무 뿌리가 뻗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틈일 수도 있겠다. 안내소 뒤쪽 가파른 돌길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산신각으로 이어지는데 산신각에서 내려다보는 마애삼존불은 천상에서 아득한 발아래 현세를 보는 듯 아찔하다.내가 있는 곳이 땅이면 그분은 저 위에 계시고, 내가 있는 곳이 산꼭대기면 그분은 아득한 발아래 계시나니, 문제가 있다면 마음 두는 곳, 그가 낮으니 내가 높으니 왈가왈부하는 건 옳지 않다. 위아래를 가려 급을 정하는 것은 인간뿐, 자리가 어디든 가려 앉지 않는 그분, 그래서 부처일 것이다./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21-02-04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2021년 어느 날, 미용실에서

간만에 자른 머리 덕에 기분 새뜻전혀 경험 못해 본 세상 미용사와알수 없는 이야기 너무한 탓인지둘은 동시에 입을 다물어 버렸다올해는 바랐던 소망 꼭 실현 되길쑥대머리 봉두난발로 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집을 나섰다. 미용실은 지난해 가고 올해는 처음이다. 그래봤자 두 달 만의 방문인데 미용사가 유난히 반갑게 인사하며 맞는다. 퍼머넌트나 비싼 관리도 안 받고 달랑 커트만 하는 손님이라 단골이라기도 멋쩍고 안면이나 겨우 튼 처지인데, 평소에 말수 적고 과묵했던 이가 웬일인가 싶다."주말이라 예약이 많아서 못할 줄 알았는데요."동네에서 나름 '가성비' 좋은 미용실이라 주말에는 예약할 엄두를 못 내곤 했는데 토요일 오후에도 매장 안이 휑하다."요즘 계속 이래요. 코로나 때문에…."마스크를 쓴 채로 조심스럽게 나누는 대화 사이로 한숨이 섞인다."그래도 머리는 깎아야 하지 않아요? 미용실은 그나마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미용사 생활 이십여년 만에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는 원장 겸 미용사는 매출이 20~30%가량 줄었다고 고백한다. 그나마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운영해온 터라 단골이 많아 타격을 덜 받은 편이란다. 능란한 가위 놀림에 함부로 자란 머리카락이 서걱서걱 잘려나간다."손님들이 커트 말고 퍼머넌트나 염색 등은 거의 안 하시니까요."이미용의 의미는 일차적으로 청결과 위생이지만 예의와 치장의 목적도 크다. 그러니까 머리를 자르고 꾸미는 일이야말로 개인적 활동을 넘어선 사회적 행위인 셈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이 괴이한 역병의 창궐로 세상이 멈추고 모든 집합 활동이 축소되거나 취소되었다. 나 역시 얼굴의 절반을 마스크로 가리고 눈만 빼꼼 내놓은 채 움직이다 보니 지난 일년 동안 화장이라는 걸 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특히 마스크 속에 숨은 입술에 립 제품을 바른 적은 거의 없다. 새 옷을 살 일도 없었고 특별히 머리를 만지고 손질할 필요도 없었다. 미용실, 화장품 가게, 옷 가게, 그리고 그들에게 재료를 납품하는 회사들이 모두 고객을 잃은 것이다."게다가 학생들도 학교를 안 가고 재택 수업을 받으니, 커트 손님조차 거의 없어요."아차, 학교의 비대면 수업까지 미용실 영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직장인들도 머리를 새로 하면 눈치가 보인대요. 웬만하면 외부와의 접촉면을 줄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요."윙윙, 드라이어 바람에 잘린 머리카락이 흩어져 날린다. 나 또한 작년에 수업과 강연, 행사의 취소를 숱하게 겪었고, 그 결과 수입도 크게 축났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외출과 소비가 줄어들어 겨우겨우 수입과 지출을 엇셈한 덕분이다. 지난해는 견뎠지만 올해는 또 어떻게 견딜지, 고정 지출이 따로 없는 나야 그렇다 쳐도 매장이며 직원들을 거느린 원장은 걱정이 태산일 수밖에 없다.세상이 멈춘 후에야 그동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세상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사람들끼리 만나면서 돌아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자원을 소비하고 탄소를 배출하기도 하지만, 사람들끼리 만나 어울리면서 서로 서로를 먹여 살리고 있었던 게다. 그리고 그 부대낌으로 사랑하고 미워하는 에너지를 만들어내어 가없는 시간을 흘려보냈던 게다.멈추어버린 세상, 멈추어버린 사람들의 관계와 멈추어버린 감정과 마음. 생계의 위협과 관계의 정체는 개개인을 고립시키고 절망에 빠뜨린다. 아무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없어 함부로 뻗치며 자란 머리카락이 우울한 얼굴을 덮는다."그래도, 점차 좋아지겠죠."미용사는 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듯 중얼거린다."그럼요. 그래야죠."간만에 자른 머리 덕분에 목덜미가 시원하다. 기분도 짐짓 새뜻해져서 나도 목청을 돋워 대답한다. 그리고 미용사와 나는 동시에 입을 다문다. 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살아내면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탓이다. 하지만 부디, 미용실에서 바랐던 작은 소망이 올해는 꼭 실현되기를./김별아 소설가김별아 소설가

2021-01-28 김별아

[풍경이 있는 에세이]어느 전직 댄스 가수에게 보내는 충고

13분 요약영상 담긴 '세가지 주장' 입국 자체 목적 아니라 돈 벌 속셈現 정부 헐뜯자 유튜브 수익 증가'가짜 분노'의 '진짜 목적' 아닌가'우파코인' 단물 빤다면 못 헤어나와열흘 전쯤 페이스북에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대가 유튜브 채널에서 큰 펀치를 한 방 날렸다고요. 좋은 소식은 금세 묻히고 나쁜 소식만 빠르게 퍼지듯 나도 호기심에 끌려 들어가 봤습니다. 친절하게도 긴 얘기를 13분짜리로 요약한 동영상이 있더군요. 그대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내용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습니다. 뒤에 태극기와 성조기 스크린을 배치하고 녹음 상태도 선명한 거로 보아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습디다. 요약본을 다시 요약한다면 그대의 주장은 세 가지로 보입니다. 첫째, 나는 병역기피자가 아니다. 둘째, 입국 금지하는 건 불법이다. 셋째,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좌파와 싸울 것이다. 너무 줄여 섭섭한가요?병역기피자가 아니라는 첫 주장은 좀 더 따져봐야 하나, 일단 접습니다. 두 번째 주장, 만약 우리나라에서 특별한 사유 없이 외국인 입국을 막는다면 아마 해당 국가로부터 심각한 외교 문제를 일으킬 겁니다. 실제로 그대는 작년에 대법원에서 엘에이 한국총영사관을 상대로 낸 '비자발급거부 처분소송'에서 승소했더군요. 귀하는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는 이유에 "아이에게 한국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는데 이 점에서 참 의문입니다. 미국인이 우리나라로 자녀와 여행을 하고 싶다면 특별한 비자 필요 없이 3개월까지 머물 수 있지 않나요? 아하, 그대가 원하는 건 바로 'F4 비자'. 즉 입국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다시 연예계 활동을 해서 돈을 벌겠다는 속셈이로군요.만약 한국에서 댄스 가수로 활동을 재개한다면 호응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20년 전처럼 팬들이 줄을 설지, 그대 말대로 '계란을 맞고' 외면당할지. 자, 이 지점에서 좀 솔직해집시다. 그대는 근래 중국에서 드라마 출연으로 인기도 끌고 돈도 꽤 벌었다고 하더군요. 미국법에 의하면 세금을 50% 내야 하죠. 그런데 한국에서 경제활동으로 세금을 내면 25%, 게다가 '한미 이중과세 방지협정'으로 한국에서의 납세자료만 있으면 미국에서는 무거운 세금을 피할 수 있다지요. 이거 참 합법적이고 매력적인 유혹이 아닐까요? 물론 속셈이 뭔지는 그대가 더 잘 알겠지만요.동영상 끝에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결기에 찬 분노를 보여 놀랐습니다. 지금 한국 정부를 좌파 독재라고 비난하면서요. 우선 묻고 싶네요, 그대는 단 한 번이라도 대한민국에서 진짜 독재에 맞서 싸워본 적이 있나요?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등 용어를 쓰던데 이건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것이고 이것이 곧 극보수주의, 나아가 기독교 복음주의로 연계된다는 것은 알고 있나요? 그대 주장은 한 미국 가수의 외침이 아니라, 한국 수구 정치가들의 억지처럼 들립디다. 비슷한 소리를 하는 목사들도 꽤 있고.다시 좀 솔직해집시다. 나는 그대가 다른 목적이 있다고 의심합니다. 유튜브에서 현 정부를 헐뜯기 시작하자 구독자가 갑자기 8만명 이상 늘었고, 채널 수익도 하루 450만원 이상으로 올랐다지요. '수퍼챗'을 통해 직접 받는 후원금은 또 얼마나 될지 궁금하네요. 그러니까 그대 목소리가 커질수록 돈도 더 많이 쌓이는 것 같더군요. 달콤한 말 몇 마디 던져주면 돈이 펑펑 불어나는데 어찌 영혼인들 못 팔겠습니까? 땅 짚고 헤엄치듯 편하게 돈 버는 것, 이것이 그대 가짜 분노의 진짜 목적이 아닌가요?유튜브 채널을 훑어보니 거의 총기사격이나 근육운동 등 영상이던데 그런 거 지금 한국에서는 잘 못합니다. 코로나19로 체육시설은 거의 문을 닫았고 더구나 실탄 사격할 곳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미국에 사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 죽어도 한국에 와서 가수로 활동하고 싶다면, 한가지 비법이 있긴 있습니다. 먼저 미국에서 열심히 노력해 성공하세요.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레 홍보해보세요. 그러면 마음씨 여린 우리는 그대를 용서하고 환영해줄 겁니다. 지금 수구세력의 '우파코인'에 중독되어 단물만 빨아먹고 있다면 다시는 그 구렁에서 헤어나지 못할 겁니다. 아, 이런 충고가 다 부질없지 싶기도 하군요, 슬프게도./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21-01-21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내일의 문화예술'

연초 '뭘 보러갈까' 설렘 기약없고새해는 하루하루 무심히 흘러만 가역병 지나면 공연·영화 맘껏 볼것예술가들 힘든 시간 절망하지 말고내일의 작품위해 힘 내기를 바란다새로운 동네에 놀러 갔다가 작은 극장에 들렀다. 골목 안쪽 도서관 지하에 위치한 극장은 텅 비어 있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만들었던 소품과 무대 세트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을 뿐,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공연장 안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이용자를 잃어버린 도서관 역시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공연장 안을 걸어 다니면서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공연을 보는 장면을 상상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마스크 안쓴 사람들이 모여 있는 풍경도, 공연장이 꽉 찬 풍경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나와서 생각해보니 도서관에도, 영화관에도 가지 못한 지 오래다. 가끔이나마 도서관에 가서 책을 욕심껏 빌려오던 나날들이 그리워졌다. 자주 가던 영화관은 무료 관람권에 팝콘 쿠폰까지 갖고 있었는데도 미루다 보니 결국 가지 못하고 쿠폰의 유효기한이 지나버렸다.그나마 일상에서 가까운 공간들도 이 정도니 공연장은 더하다. 공연 시간을 맞추느라 서두르던 저녁이 대체 언제쯤이었는지 기억도 안 날 지경이다. 온라인 공연을 대신 보면 되지 않느냐고? 사실 지난 일 년 동안 온라인 공연을 꽤 많이 봤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편했다. VIP석에 앉은 것처럼 공연자의 생생한 표정을 잡아내는 카메라, 딴 짓을 할 수도 있고 심지어 뭘 먹으면서 볼 수 있는 내 집에서의 쾌적한 관람 경험은 매력적이었다. 실시간으로 질문하고 답변하는 댓글 창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너무 많은 온라인 콘텐츠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시들해졌다. 사실 온라인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서는 오프라인보다 훨씬 더 많은 공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이미 높아져 버린 관객들의 눈은 점점 더 화려하고 거대한 볼거리를 찾게 되지만 모든 공연이 그 눈높이를 맞출 수 없는 노릇이다.게다가 온라인 공연을 아무리 많이 봐도 실제 가서 보는 공연에서 느낄 수 있는 충족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공연 자체의 감동이 희미해진 것은 물론이고, 공연 앞뒤의 일상적인 시간들이 무엇보다 그립다. 가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 당일의 날씨, 함께 본 사람, 자리를 안내하는 하우스 매니저들의 목소리, 표를 찾고 프로그램 북을 사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에야 비로소 착석할 수 있는 공연장의 내 자리에 앉았을 때의 안도감, 공연 시작 전의 안내방송 멘트, 함께하는 관객들의 분위기, 공연장 특유의 냄새, 배우의 실수, 자리에 따라 아주 잘 보이거나 아예 안 보이는 어떤 시야들에 대한 기억, 휴식 시간에 재빨리 줄을 서서 마시던 커피의 맛까지…. 공연을 보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음을,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관객인 나조차 이럴진 데, 객석 대신 카메라를 바라보며 무대에 서야 했던 예술가들에게 2020년은 너무 낯선 해였을 것이다. 어쩌다 카메라가 텅 빈 객석을 비출 때면 보고 있는 내가 다 민망해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곤 했다. 뮤지션 오지은은 '공연이 멈춘 코로나 시대, 음악인의 삶을 말하다'라는 글에서 "이 직업은 비상상황이 오면 제일 먼저 중단당하는 직업"이라며 "코로나가 끝나면 공룡만 살아남을지도 모르겠구나"라고 토로했다.영국에서는 #SAVETHEAETS라는 해시태그가 돌고 미국에서는 공연장을 지키기 위해 #SAVE OUR STAGES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조용하다. 브이홀, 에반스라운지 등 민간 공연장들이 하나둘씩 폐업하고 있다는 데 정부지원이 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고 공공시설의 공연장은 문을 닫고 있을 뿐이다.연초에 좋아하는 공연장의 패키지들을 살펴보면서 '뭘 보러 갈까' 고르던 설렘은 여전히 기약할 수 없고 새해는 하루하루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아직 끝을 알 수 없는 역병이 지나가고 나면 무엇보다 공연을, 영화를, 전시를 마음껏 보러 가고 싶다. 사진작가 이모젠 커닝햄은 "내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바로 내일 찍을 사진 중에 하나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했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올해에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예술가들이 절망하지 않고 바로 내일의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기를, 그 계속할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길 바란다./정지은 문화평론가정지은 문화평론가

2021-01-14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율곡의 연인 유지

어려서 조실부모 총명한 12세 관기9년후 재회 오랜 연모의 마음 지녀쇠약해진 율곡 걱정 밤중에 찾기도그는 고마움에 밤늦도록 정담 나눠그녀 위해 '유지사' 시문 유품 남겨율곡 이이(1536~1584)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대학자다. 아버지 이원수와 어머니 신사임당의 4남3녀 중 3남으로 외가인 강릉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외가인 강릉에서 지냈으며 6세가 되어서야 어머니를 따라 한양으로 왔다. 그는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해 신동으로 불렸다. 그러나 16세 때 신사임당이 세상을 뜨고 서모로 하여 가정의 불화가 잦아지자 19세에 금강산에 입산했다. 승려 생활로 1년을 보내다 환속해서 다시 성리학에 열중하게 된다.율곡은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으로 합격했다. 대과에 급제한 1564년 정6품으로 관직에 나선 후 여러 직을 거쳐 1583년 병조판서가 되어 선조에게 '시무육조'를 지어 바치고 '십만양병설' 등의 개혁을 주장하기도 했다.그는 1574년 39세에 황해도 관찰사가 되었다. 임지인 해주 관아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저녁상을 받는데 어린 동기가 따라 들어왔다. 그녀의 이름이 유지였다. 어려서 선비인 부친과 양가집 여인이었던 모친을 잃고 기적에 오른 관기로 열두 살이었다.율곡은 총명한 유지를 귀여워해서 따뜻하게 대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가르쳤다. 율곡이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간 후에도 어린 기녀 유지는 율곡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9년이 흘렀다. 율곡에게 유지라는 어린 기생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율곡이 중국 사신을 영접하는 원접사로 평양으로 가는 길에 해주 관아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날 밤에 그의 침소로 유지가 찾아왔다. 그녀에게는 하늘이 내린 재회의 기회였다. 그녀는 몰라보게 성숙했고 아름다웠다. 연모의 마음을 오래도록 지니고 있던 그녀는 그 밤 율곡을 모시려 했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율곡을 더 깊이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언제 다시 만나자는 기약 없이 두 사람은 헤어졌다.이듬해 병약했던 율곡은 요양을 위해서 황주에 있는 누님 집에 가는 길에 해주에 들렀다. 연련이던 유지와 밤 깊도록 술잔을 나누며 그리움을 달랬지만 그녀를 품지는 않았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율곡은 황주에서 돌아와 해주 근처의 강마을에 머물며 요양을 하고 있었다. 유지는 쇠약해 보였던 율곡이 걱정되어 몇 밤을 뒤척이다 밤중에 밤고지로 율곡을 찾아갔다. 율곡이 별세하기 서너 달 전의 일이었다.율곡은 사랑하는 여인이 찾아와 준 것이 고맙고 병든 몸이 원망스러웠다. 가까스로 그녀와 밤 이슥토록 정담을 나누었다. 율곡은 이 밤이 가면 다시는 유지를 볼 수 없을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힘겹게 붓을 들었다. 그녀를 위해 문장을 쓰고 시를 지어 유품으로 남겼다. 제목이 따로 없어서 '유지사'로 불리는 시문이다.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아아! 황해도에 사람 하나/맑은 기운 모아 선녀 자질 타고 났네/생각이며 자태 곱기도 해라/얼굴이랑 말소리도 맑구나//지난 세월 그 얼마였던가/슬프다 인생의 무성한 푸르름이여/나는 몸이 늙어 여색을 버려야겠네/세상 욕정 다해도 마음은 식은 재 같으니//저 아름다운 여인이여/사랑의 눈길을 돌리는가/황주 땅에 수레 달릴 때/길은 굽이굽이 멀고 더디구나//마음을 거두어 근원을 맑히고/밝은 근본으로 돌아가리라/내생이 있단 말 빈말이 아니라면/죽어 저 부용성에서 너를 만나리'.그리고 다시 세 수를 더 써내려갔다.'이쁘게도 태어났네 선녀로구나/10년을 서로 알아 익숙한 모습/이 몸인들 목석 같기야 하겠냐마는/병들고 늙었기로 사절한다네//헤어지며 정인처럼 서러워하지만/서로 만나 얼굴이나 친했을 따름이네/다시 태어나면 네 뜻대로 따라가련만/병든 이라 세상 정욕은 이미 재 같구나//길가에 버린 꽃 아깝고 말고/운영처럼 배항을 언제 만날까/둘이 같이 신선될 수 없는 일이라/떠나며 시나 써주니 미안하구나// 1583년 9월28일, 병든 늙은이 율곡이 밤고지 강마을에서 쓰다'.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며 쓴 눈물겨운 시문이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21-01-07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러다간 신발 신을 일 없어질지도일주일에 두번 노트북앞에서 수업 열심히 사 모은 건 마스크 뿐인데바깥 출입 안해 마스크도 그대로집안정리에 유난히 애를 쓰게 돼코로나19로 아이 어린이집이 휴원이라 해도 내 할 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온종일 내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아이를 겨우 떼어내며 식탁에 둔 노트북을 눈으로만 흘금거린다. 잠시라도 짬이 나면 의자에 앉아보려 하지만 10분을 지속하기 어렵다. 여섯 살 아이도 심심함이 한계치에 도달했다. 그러니 매일 할머니에게 영상통화를 예닐곱 번은 한다."할머니가 S전자 주식을 5만6천원에 샀는데, 그게 8만원이 됐어. 장난감 뭐 사줄까?", "주식이 뭔데요?", "그런 게 있어." 뭐라도 한 줄 써보려고 식탁에 앉았다가 둘의 통화가 하도 기막혀 내가 끼어들었다. "애한테 지금 뭐라는 거야?" 엄마가 까르르 웃는다. "야! 내가 할 말이 얼마나 없으면 이러겠냐? 얘가 하루에 나한테 전화를 몇 번이나 거는 줄 알기나 해?" 하기는 귀엽다는 말도, 밥 잘 먹으라는 말도, 한두 번이지. 손녀에게 할 말이 동난 할머니도 죽을 지경인 거다. 아무리 그래도 주식 이야기라니. 대충 전화를 끊게 하니 아이는 이제 큰이모, 작은이모에게 또 줄줄이 전화를 건다.하도 조심하라고들 하니 마트도 놀이터도 나가지 않는다. 밤이 되어 아파트 단지가 고요해지고서야 잠깐 킥보드 끌고 산책을 나갔는데 요 며칠은 미세먼지 농도가 너무 심해져 그나마도 하지 못했다. 정말 이러다간 신발 신을 일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세상을 사는 방식이 다 바뀌었다. 모든 강연은 이제 온라인으로 바뀌어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줌 프로그램을 켜고 노트북 앞에서 수업을 한다. 강의하는 나도, 배우는 분들도 어색해 하지 않는다. 차비 들이고 시간 들여 오가지 않는 일이 훨씬 효율적으로 느껴져, 코로나 시국이 다 끝나도 아마 나는 계속 이 방식을 고수하게 될 것 같다. 수업이 끝나도 우리는 노트북을 끄지 않고 각자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와 두런두런 뒷이야기들을 나누며 바나나를 까먹고 오징어를 씹는다. 그래서 어떤 수업은 아예 늦은 밤으로 미루었다. "수업하는데 자꾸 누가 방해하는 것도 싫고, 끝나고 이렇게 맥주 한 잔씩 하는 게 더 좋은데요?" 우리는 모두 동의했다.지난 1년 동안 립스틱을 한 번도 사지 않았고, 외투는 두어 벌 샀지만 입을 일이 없어 곧 후회했다. 구두를 선물 받았지만 정말 딱 세 번 신었다. 삼겹살은 절대 집에서 구워 먹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그런 규칙 따위 이제는 없다. 삼겹살은 물론이고 깐쇼새우까지도 이제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열심히 사 모은 건 마스크뿐인데, 신규 확진자가 1천명을 넘은 이후로는 바깥출입을 아예 하지 않아 마스크도 그대로다. 경조사 잘 챙긴다는 말을 칭찬으로 알고 살았지만 다 전생 같은 이야기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집안 정리에 유난히 애를 쓰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여섯 살 아이까지도 장난감을 늘어놓다가 화들짝 놀라 내 눈치를 본다. 그 때문에 우리 집은 아이 있는 집 같지 않게 반들반들하다.코로나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1년 사이 우리는 변하고 변해, 못 만나고 사는 삶을 슬퍼하게 될 것 같지 않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삶을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개발하고 내어놓아서, 사실 나는 지금도 불편한 것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허전하고 쓸쓸한 기분 따위야 곧 익숙해질 테고, 우리는 정말 전생을 더듬듯 굳이 밖으로 나돌던 오지랖 넓던 시절을 웃으며 이야기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어느새 다 잊고, 어느 먼 옛날 비행기를 타고 여름섬과 겨울나라를 떠돌던 날들을 전설처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오늘 새벽에는 정말이지 소리라도 빽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발, 미세먼지만이라도 좀 꺼져 줘!" 어젯밤 만든 생선조림 냄새가 제대로 빠지지 않은 것 같아 창문을 열고 싶었지만 스마트폰의 미세먼지 앱에는 악마 모양 이모티콘과 함께 '상당히 나쁨'이라는 글자가 써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참겠는데, 이게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은 정말이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20-12-31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우리나라 최초 서원, 소수서원(紹修書院)

하늘·산·구름·강물이 둘러싼 명당이황이 '소수'사액 받게했다고 전해입구 생단·오른편 죽계조망 경렴정외문에 들면 서원 중심 명륜당 위용당시 원생의 심신 배려 흔적 곳곳에오랜만에 다시 방문하는 소수서원, 어림잡아 30년은 되었지 싶다. 전에는 친구와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렵게 찾아갔으나 지금은 도로망이 잘 발달되어 일단 안동시에 진입하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이 서원은 국도에 인접해 있어 어느 서원보다 접근이 용이하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서원이라면 세속과는 떨어져 있어야 할 것만 같은데, 그것도 우리나라 최초 서원이니 본래 취지와는 조금 거리감이 없지 않으나 이 또한 사람의 주거지 확장으로 사통팔달 길이 열리고 도시화 되는 과정, 즉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이니 누굴 탓할 일은 아닌 듯하다.서원에 도착하면 안내소 지나 바로 이어지는 매표소를 통과하면 양쪽으로 우람하고 기품있는 소나무 숲이 행자를 반긴다. 언제 봐도 듬직하고 우리네 양반 같은 소나무들은 기개를 잃지 않고 한결같이 그 자리를 푸르게 지키는 모습이 조선 선비를 연상시킨다. 나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을 방문했더라도 아무 생각없이 서원 안으로 발을 들여놓을 순 없는 일이다. 그만큼 이곳 소나무 숲은 서원의 역사를 대변하듯 위용과 그 규모를 충분히 짐작하게 하고도 남는다.서원을 건립할 당시 군수였던 주세붕은 하늘과 산, 구름과 강물이 골짜기 가득한 명당을 찾아 이곳에 백운동서원을 세웠고, 이황은 백운동서원이 소수서원으로 사액을 받게 하였다고 한다. 소수서원 입구에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수문장처럼 서 있는데 바로 그 지점을 기점으로 지면이 한 단 높아져, 서원 경내외를 구별하도록 되어 있다. 서원 출입문인 사주문(四柱門)으로 통하는 길 왼쪽으로는 성생단(省牲壇)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죽계천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건축한 정자 경렴정(景濂亭)이 있다.서원 배치도를 보면 입구 생단, 오른편으로 죽계를 조망할 수 있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정자 '경렴정'이고, 외문을 들어서면 이 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축물 '명륜당'이 서원의 위엄과 무게감을 더한다. 다음으로 직방채·일신채·상서각·문성공묘·전사청·영정각·학구재·지락재·고직사 유물관, 그 뒤 별채로 사료전시관·충효교육관이 있다. 서원의 건물과 뜰을 둘러보고 오른편 후문을 나와 죽계천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경자바위를 지나 아름다운 정자 취한대가 기다린다. 누구라도 발을 담그고 여행의 피로를 풀고 싶은 시냇가, 취한대 앞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천이 바로 죽계천이다.개인적으로 소수서원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건물이 있다면 바로 경렴정과 취한대 두 개의 정자다. 경렴정은 원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곳이고, 취한대는 퇴계가 풍기군수로 있을 당시 이곳에 송백과 죽을 심어 취한대(翠寒臺)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추측컨대 이곳에 이토록 아름다운 풍수가 있으니 퇴계도 죽계를 보고 시 몇 수 읊지 않았을 리 없다. 그곳을 찾아온 학자들에게 학업은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그만큼 중요하였기에 그 정도의 여유는 누려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어 이곳에 정자를 짓고 원생들 마음이 메마르지 않도록 배려한 흔적이 서원 곳곳에 배어있는 듯했다.취한대에서 한숨 돌리고 유난히 고운 색깔의 물봉선의 배웅을 받으며 징검다리를 건너 서원 입구로 되돌아와 숲을 걷는데 썩어 문드러진 고사목 위에 자리를 잡은 달개비꽃을 보고 나는 이런 시를 생각했던 것 같다.'구르고 구르다 보면 내 짧은 팔다리가 네 옆구리를 툭 치기도 하겠지, 나비가 되어 어찌어찌 날다 보면 내 손이 네 머리카락을 낚아챌 수 있을지도 몰라. 왜 무엇 때문에 손을 놓아버렸는지, 그 연정 못잊어 죽어 선 채로 몇 백년은 족히 기다렸을, 지금은 형체마저 뭉그러진 서원을 지키는 고사목에 깃든 채 갓 피어난 달개비꽃, 연두색 이끼 카펫을 혼수로 마련한 고사목과 분홍달개비가 나무 끝에 새 살림을 차리고 아이까지 낳았으니, 실로 아름다운 재회고 동거가 아닐 수 없다. 저 꿈 같은 만남, 알아도 모른 척 해야겠다. 전생에 못다 이룬 사랑, 이생에는 소수서원 문지기로 환생해 아무도 모르는 저 아득한 높이에서 꿈인 듯 삶을 잇는 저들'./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20-12-17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트럼피즘'은 사라지지 않는다

타인 괴롭혀 이익 얻는 막무가내식트럼프, 물러나도 본능 안 바뀔 듯기득권은 사회시스템서 생겨난 것'책임 분산'으로 오류 수정 더 쉬워그것이 개혁이며 지도자 역할 중요미국 대선이 결국 바이든의 승리로 끝났다. 트럼프가 아직도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있지만 판세가 바뀔 것 같진 않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마지막까지 온갖 몽니를 부리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의 이런 비이성적 행태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자신과 가족을 둘러싼 비리 수사를 차단하기 위한 꼼수라거나, 공화당 내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술수라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정말 진 걸까. 그는 이번 선거에서 46.8%인 7천422만표를 얻었는데, 이는 역대 어느 공화당 대선주자보다 더 많이 득표한 것이다. 바이든의 51.3%와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아니다. 그에게 표를 던진 사람이 국민의 절반에 가깝고, 그들은 아직도 여전히 트럼프를 추종하고 있다.문제의 중요성은 이들 트럼프 지지자가 그의 막말과 억지와 몰상식에 이미 익숙해 있으며 이번 코로나 대응에서 보여준 무능력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투표했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우리는 흔히 진실과 사실을 혼동하곤 한다. 트럼프의 비상식적인 언행은 사실이지만 옳고 그름과는 무관하게 그가 유권자 자신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느냐 아니냐 만이 오로지 진실이고 중요하다. 객관적 사실과 달리 진실은 너무나 주관적이다. 개가 아무리 심하게 다른 사람에게 짖는다고 해도, 주인의 입장에선 자신을 지켜준다면 옳다는 생각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판단이 그러하고, 트럼프도 이를 잘 알고 서로 이용해왔던 셈이다.이런 생각, 즉 '비합리적 언행으로 타인을 괴롭히고 자신의 이익을 얻는 것'을 소위 '트럼피즘'이라는 이름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우리말로 하면 '막무가내'가 이에 해당할까. 이런 트럼피즘은 비단 미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지난 정권에서 대통령이란 사람이 '혼이 비정상적인' 한 개인에게 휘둘려 나라를 망친 걸 우리는 슬픈 눈으로 봐야 했다. 그런데 거기에 추종했던 자들과 기생하며 양분을 빨아먹던 세력이 아직도 과거의 영화를 잊지 못하고 어떻게든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발악을 하고 있다. 지금 사사건건 촛불 민주주의가 나가는 길에 발목을 잡고 있다.트럼피즘을 우리나라 검찰사태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의 검찰은 세계 어디에서도 전례가 없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전직 대통령까지도 죽일 수 있다고 자랑스레 떠벌리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하지 않는 파렴치함을 보여준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국민의 눈이 밝아지고 수준도 높아졌는데, 이들은 아직도 국민을 업신여겨도 되는 존재쯤으로 치부하는 것 같다. 이런 몰상식과 비양심이 바로 '트럼피즘'이다. 트럼프 추종자가 여전히 많듯, 검찰 세력에 동조하는 정치가나 언론이 많은 것도 서로 엇비슷하다. 비록 트럼프가 패배를 인정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 해도 트럼피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가 가진 부에 대한 부러움과 자기 이익을 우선으로 삼는 에고이즘은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검찰총장 한 사람이 바뀐다 해도 소위 뿌리 깊은 '검찰중심주의'가 일시에 제거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검찰에 의해 다져진 수십 년 적폐가 하루아침에 눈 녹듯 사라질 리 없고, 지금 보듯 참으로 집요하게 저항하리라는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반성하는 동물이 아니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기 위해선 도덕적 각성이 있어야 가능하다.개인이 바꾸기 힘들다면,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바꾸고 시스템을 고치는 것이 훨씬 빠른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기득권은 사회 시스템으로 생겨난 것이기에 사회적 책임의 분산을 통해 오류를 수정하기가 훨씬 쉬울 것으로 보인다. 이게 바로 개혁이며 바로 이 대목에서 한 사회의 지도자와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 선거에서 트럼프의 패배에 결정타를 먹인 건 일부 양심적인 공화당원과 정의로운 언론 덕분이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기득권 내부에서 바른 걸 선택할 용기가 있는 사람, 그리고 사실을 사실대로 전달할 언론, 이들이 나올 차례가 되었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20-12-10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어른이 되면

어떤 기준으로 봐도 어른이라는데왜 나 자신은 아직도 낯선 것일까잘 모르는게 많고 판단도 아리송미운사람 더 밉고 화가 더 많아져모든 걸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줄어캠린이(캠핑+어린이), 요린이(요리+어린이), 등린이(등산+어린이), 주린이(주식+어린이)…. 요즘 다양한 단어에 어린이를 합성해서 만든 신조어 '○린이'가 자주 보인다. 흔히 '초보'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어린이라는 존재를 서툴고 미성숙한 존재로 여기는 표현이기도 하다. 막상 어린이들은 쓰지 않는 말일 텐데, 요즘 어른(?)들은 왜 자기 자신을 자꾸 '어린이'라고 칭하는 것일까?'○린이'는 쓰지 않아야 할 단어이고 불편한 표현이지만, 어쩌면 이 신조어의 유행은 자신의 행동과 선택에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어른으로서의 무게가 버거운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나는 '○린이'니까 특정 영역은 몰라도 되고, 그러니까 알려달라고 사뭇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아주 관대한 해석과 함께 고 허수경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내가 나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시장에 가서도 어머니의 지갑에서 나오는 돈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몰라도 되는 그런 시절. 어린이는 그저 사람들을 구경하고 시장의 풍경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맡기만 하면 되니까….수능을 마친 고등학생들처럼, 대학에 입학하면서 이제 뭐든지 할 수 있는 어른이라고 느끼던 스무살은 졸업 후 어른이 아니라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 월급을 받으면서도 얼떨떨했던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처음 생각했던 건 차를 사고 내 차에 앉아서 운전했던 날이었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차를 느끼면서 혼자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쳐 먼 곳으로 왕복해 다녀왔을 때, 뭔가 하나의 큰 산을 넘은 것 같았다. 드디어 진정한 어른이 된 것 같아서 누구라도 붙잡고 자랑하고 싶었던 그날의 긴장과 설렘을 아직도 기억한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와 또 다른, 어엿한 한 사람의 어른이 된 느낌에 신나면서도 이상했던 기분이었지만 그런 작은 성취를 마음껏 자랑해도 될 나이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결혼을 하고 나면 그야말로 "자, 이제 어른인 걸까" 싶었는데 여전히 어른이 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이로도, 서류상으로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그 어떤 기준으로 봐도 나는 이제 어른이라는데, 왜 나 자신은 아직도 내가 어른이라는 것이 낯선 것일까? 어른이 되면 더 나아지는 줄 알았고, 뭐든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잘 모르겠는 것 투성이다. 옳고 그름이 명확하지 않아서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아리송하고, 미운 사람은 더 밉고, 관용과 용서보다 화가 더 많아진다. 모르는데 모른다고 할 수 없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든다.나이만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니, 어른에도 단계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봐주지 마라.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던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의 일갈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그럽고 현명한 어른이란 정말 없는 것일까?"비 오던 어느 날에/ 안주도 없이 막걸리를 마셨어/ 어머나,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어른이 된 것 같잖아/ 그 후로 이제 나는 빈 잔 하나로/ 쓰린 술도 마실 수 있고/ 짧지 않은 여행도 가방 한 개면/ 충분하게 되었어/ 한 벌의 외투로도 몇 년쯤은/ 불편 없이 잘 지내고/ 내 이름 석 자도 분명 말하고./ 먼 곳도 혼자 잘 가고/ 어른이 되려면은 영화 몇 편쯤/ 찍는 건 줄 알았었는데/ 시간은 결코 멈추지를 않더니/ 나도 어른이라고 불리네/ 정말로 나는 어른이 된 건가." 퇴근길에 접한 노래 한 곡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정밀아의 신규 앨범 '청파소타나'에 수록된 노래 '어른'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쓰여진 노래 가사와 담담한 멜로디를 듣고 있자니 정말로 나는 어른이 된 건가 싶으면서도 쓸쓸해진다.정밀아의 노래처럼 "진짜 이렇게 살면 되나" 싶어지는 요즘, "마음이 이리저리 구르는 밤, 기분이 좀 신기한 밤"에 한 글자씩 글을 써본다. "괜찮은 것 같기는 하여서 그냥 이대로 살아갈 마음"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노래 속 주인공처럼 나도 '손바닥만 한 부침개 하나 부쳐먹으며' 노래를 듣는 것으로, 아직 서투른 어른의 저녁을 계획해본다./정지은 문화평론가정지은 문화평론가

2020-12-03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퇴계와 두향과 매화

백매화 매개로 사랑 나눈 두 사람퇴계, 풍기군수 자리로 가게 되자밤 깊도록 침묵속 이별주만 나눠두향은 말없이 떨며 붓만 적시고둘은 그 밤이 영원한 이별이었다퇴계 이황(1501~1570)은 성리학의 대가다. 그는 19세에 주자의 '성리대전'을 읽고 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쁨이 솟아나고 눈이 열렸다'고 고백했다. 타고난 성품이 순수하고 학식이 뛰어났던 그는 늘 성현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여 뜻을 맑게 지녔으며 행실을 독실하게 했다.퇴계는 오랫동안 고시 낭인의 생활을 거친 후 34세가 된 1534년 과거시험 문과 초시에서 2등으로 급제했다. 43세까지 종3품 성균관 대사성까지 올랐지만 정치적 파당과 정쟁에 휘말리면서 자의와 타의로 귀향과 귀경을 반복하게 된다. 집권세력의 전횡으로 국사가 날로 어지러워지자, 병을 핑계로 경상도 예안 지방으로 낙향했다.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배우는 사람의 큰 병이다. 천하의 의리에 끝이 없는데, 어찌 자기만 옳고 남은 그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 퇴계의 생각이었다.퇴계는 21세에 허씨부인과 결혼했지만 둘째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사별한 뒤 3년째가 되던 해, 예안에 귀양 와 있던 권질이 그를 불러 '집안의 참극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여식이 있는데, 자네가 아니면 내 딸을 맡아줄 사람이 없네'라며 간곡하게 부탁했다. 퇴계는 정신질환이 있는 권질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권씨부인은 퇴계가 47세 때 아이를 낳다 죽는다.그는 1548년 외직인 단양군수로 부임한다. 그의 나이 48세 되던 해 정월이었다. 연회에서 관기 두향을 만난다. 두향은 시서와 거문고에 능했고 매화를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시와 매화가 대화에 올랐다. 퇴계도 매화를 몹시 좋아하고 사랑했다. 그에게 매화를 읊은 시가 여러 편인 것은 그 때문이다. 퇴계는 대학자이면서 시문에 능한 시인이었다.퇴계는 자신의 매화 시편을 두향에게 읊어주었다. '뜰을 거니니 달이 나를 따라오네/매화 언저리 몇 번이나 돌았던고/밤 깊도록 앉아 일어나길 잊었더니/꽃향기 옷 가득 스미고 그림자 몸에 가득하네'. 그날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지만 그뿐이었다. 퇴계에게는 두 번째 부인과 사별한 지 2년이 지난 때였다. 더구나 둘째 아들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 퇴계는 시름 깊은 밤을 보내고 있었다.슬픔과 비탄과 상심으로 홀로 시를 쓰고 글을 읽는 퇴계를 두향은 사모하게 되었다. 두향은 정표로 여러 가지 선물을 퇴계에게 보냈으나 매번 물리쳤다. 그녀는 매화를 좋아하는 퇴계를 위해 여러 지방에 수소문해서 희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백매화를 구해서 보냈다. 귀하다는 백매화를 받은 퇴계는 '매화야 못 받을 것 없지'하며 동헌 뜰에 심고 정성껏 가꾸고 즐겼다.그 일이 있은 후 퇴계는 두향의 재능을 가상히 여겨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매화를 매개로 두 사람의 정은 깊어지고 마침내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길지 않았다. 단양군수 재직 9개월 만에 퇴계가 풍기군수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이 소식은 두향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뜨거운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두향에게 이별은 견디기 힘든 아픔이고 충격이었다. 두 사람은 이별주를 앞에 놓고 밤이 깊도록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무겁고 긴 침묵이었다. 만 가지 감정이 복받치는 침묵이기도 했다. 두향은 말없이 먹을 갈아 떨리는 붓을 적셨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어느덧 술 다 하고 님 마저 가는구나/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한 동안 두향의 어깨가 출렁였다. 퇴계는 그녀의 어깨를 조용히 안았다. 그 밤의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가 70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서신 왕래가 있어 1552년에 퇴계가 보낸 시를 두향은 거문고 가락에 실어 그리움을 달랬다.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마주하고/빈 방 안에 초연히 앉았노라/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 다시 보니/거문고 줄 끊겼다 한탄하지 않으리'. 두향은 기적에서 이름을 지우고 퇴계와 자주 찾았던 강선대에 초막을 짓고 은둔 생활을 했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20-11-26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맥주와 다람쥐와 치약에 관하여

뜻밖의 작은 선물·어릴적 짝사랑 등우리는 사소한 일로 위로를 받는다이런것을 비웃는 사람도 많겠지만다정한 시선을 소환, 그들도 위로다서로를 안아 줄 시간은 넉넉하니까우리는 사실 사소한 것들에 위로받는다.한 며칠, 힘들다고 생각했다. 속엣말을 잘 털어놓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얼굴에 드러나긴 한 모양이었다. 새벽녘까지 잠들지 못하다가, 그래도 다음 날 할 일이 있으니 침대로 가야지, 했다. 그러고 보니 현관문에 걸린 우유 가방에서 우유를 꺼내오지 않은 일이 생각났다. 날이 차니 우유가 상하지는 않았을 거야. 주섬주섬 현관문을 열었다. 초록 박스 하나가 현관문 앞에 놓여 있었다. 맥주 박스였다. 이게 뭐야? 이런 게 왜 우리 집 앞에? 박스 윗면에 볼펜으로 휘갈겨 쓴 글씨가 있었다. '쓸쓸할 땐 혼맥이 최고죠'. 후배였다. 20여분 거리를 굳이 운전해 와서 가져다 둔 거였다. 나는 속도 없이 웃었다. 그러고는 무거운 박스를 끙끙 들고 들어와 두 병을 마셨다. 마시면서 메시지를 보냈다. '캔으로 사지, 병은 버리기도 어렵단 말야'. 고맙다는 말을 하기 쑥스러워 그랬다는 걸 알아주기 바라면서.내가 다녔던 중학교 건물은 계단의 높이가 잘잘했다. 한 칸 한 칸 높지 않았다는 말이다. 키 작은 말라깽이였던 나는 4층에 있던 우리 반 교실까지 잘도 뛰어다녔는데, 한 번에 세 칸씩, 기분이 좋은 날엔 한 번에 네 칸씩도 오를 수 있었다. 내가 짝사랑했던 선생님은 그렇게 뛰는 내 등 뒤에서 "참말 다람쥐 같네!" 그런 말을 자주 했다.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훗날 나는 친구에게 다람쥐 같다고 말을 했던 선생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가 참말 다람쥐 같았고, 참말 행복했다고. 그 생각만 하면 참말 마음이 좋아진다고. 이후 친구는 일 년에 한 번, 이 년에 한 번쯤 드물게 전화를 걸어온다. 살다 보면 다 그렇다. 자주 연락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대신 전화를 걸어 무턱대고 "요 다람쥐야!" 소리친다. 그럴 때면 거짓말처럼, 농담처럼 기뻐진다. 2교시 마친 쉬는 시간에 매점까지 달려 딸기우유와 보름달 빵을 무사히 사올 수 있을까가 생애 최고의 고민이었던 열다섯 살 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 짝사랑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남색 세일러복 스커트의 주름을 탁탁 털던 그 시절이 된 것만 같아 마냥 행복해진다. 그리고 모든 일이 괜찮아진다. 친구는 그런 나를 알아서 "요 다람쥐야!"하고 소리치는 거다. 피곤할 때면 잇몸에서 피가 난다. 저녁이면 여섯 살 딸이랑 양치질을 같이 하는데, 세면대에 치약 거품을 페! 뱉을 때 핏물이 섞이면 꼬마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다. "속상해. 엄마 입에서 피가 나서 난 정말 속상해." 양치질할 때 잇몸에서 피가 나는 일 정도야 나에게 별일 아니었는데, 꼬마가 속상해하니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아 잇몸질환용 치약을 약국에서 샀다. "엄마는 왜 치약을 마트에서 안 사고 약국에서 사?" 묻는 꼬마에게 피가 안 나게 해주는 치약이라 설명을 해주기는 했다. 비타민제를 사려고 들른 약국에서 카드를 긋고 있는데, 돌아보니 꼬마가 목에 멘 제 지갑을 열고 있었다. 지갑은 언제 들고나온 거야? 나도 몰랐다. 핑크퐁 분홍 지갑 안에는 할머니가 올 때마다 준 천 원짜리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걸 왜 꺼내? 비타민은 엄마가 카드로 결제했는데?" 꼬마는 나 말고 약사에게 말했다. "잇몸에서 피 안 나는 치약 주세요. 우리 엄마 거 다 썼어요." 약사는 웃었고, 주책맞은 늦둥이 엄마인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얼른 뒤돌아섰다. 그런 걸 들키면 너무 촌스러우니까 말이다. 별것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도 다 위로다. 온통 위로다. 집 앞에 맥주를 몰래 두고 간 후배도 위로지만, 맥주도 위로다. 요 다람쥐야! 불러주는 친구도 위로지만 짝사랑 선생님도 위로다. 엄마의 잇몸질환 치약을 사주는 딸도 위로지만 치약도 위로다. 가벼운 위로가 넘치는 세상이라 비웃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안다. 위로 타령 지겹다고, 위로 따위 말고 시스템을 바꾸어 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내가 왜 몰라. 그들도 위로다. 나를 향했던 다정한 시선들을 소환하며 괜찮아, 괜찮아, 그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잖아, 나를 달래는 것도 위로인걸. 이렇게 글로 쓰며 그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 내가 돌려줄 수 있는 작고 낮은 감사 인사라는 것을 그들이 몰라도 괜찮다. 밤은 길고, 우리가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넉넉하니까./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20-11-19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선비정신의 근간 도산서원(陶山書院)

퇴계, 생전에 짓고 제자들 마무리3칸 규모로 작고 독특한 설계구조소박한 건물이지만 선비정신 가득낙동강으로 경관 물흐르듯 연결돼자연과 합일 성리학적 자연관 표현안동을 중심으로 시작한 서원순례, 8·9월에 목백일홍꽃이 낙동강을 물들여 정신이 혼미해지는 병산서원을 먼저 방문한 것은 조급한 마음이 저지른 실수였다. 그렇다고 도산서원을 포기한다면 그건 더 큰 실수가 될 것 같아 계획한 동선 그대로 마지막 코스에 도산서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병산서원에서 내 눈은 이미 꽃물로 붉게 젖어 있었으므로 지금의 도산서원이 어떨지 옛 기억을 되살려 생각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매표를 마치고 안동호를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걸어 서원 입구에 도착하자 조금 전까지 눈을 혼란하게 했던 꽃세상은 이미 다른 계절을 건넌 듯 사라지고 옆으로 길게 누운 거목 두 그루가 세월의 흔적을 일러준다. 안동지역에서 봐야할 서원을 추천하라하면 나는 제일 먼저 소수서원을 보고 도산서원을 거쳐 병산서원을 봤으면 싶다. 소수서원은 자동차로 접근이 용이한 반면 도산서원은 안동호를 끼고 달리는 숲길이 위로를 준다. 병산서원이나 소수서원에 비하면 도산서원은 전체 건물규모도 작고 뜰까지 협소해 카메라에 그 아름다운 도산서당 건물 하나도 제대로 담을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건물이 작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앞마당 가득 저리 큰 안동호를 품었으니 여기서 크다 작다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이곳 도산서원의 건물들은 어느 것 하나 도드라짐 없이 짜임새가 있고 소박하지만 절대 위엄을 잃지 않는 그 시대 선비정신이 어느 곳보다 잘 반영된 곳이 아닌가 싶다.배롱꽃사태로 눈을 멀게 했던 병산서원이 색(色)적이었다면 도산서원은 전체적으로 컬러가 있기 전 흑백의 시대로 되돌아간 듯 냉정하고 차분한 인상이다. 서원이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처소였으니 자신은 물론 제자를 위해서라도 화려한 색을 누르고 묵향이 피어나는 고요한 흑백 분위기를 퇴계는 원하지 않았을까.도산서원(陶山書院)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선비인 퇴계 이황이 생전에 지은 건물과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건립된 서원이다. 지금의 서원은 퇴계가 생전에 성리학을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과 사후에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산서원 영역'으로 분리되지만, 서원의 정문인 진도문(進道門)도 서원의 배치나 건물 크기를 배려해선지 소박하다. 서원으로 들기 전 '열정'이라는 작은 우물에 얼굴을 비춰보고 진도문을 통과해 오르던 길을 되돌아보면 낙동강 물줄기를 가둔 안동호가 시야 가득 펼쳐진다. 서원은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보면 된다. 이 서원에서 퇴계가 직접 설계하고 지어 특별히 애착을 가졌다는 건물은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로 알려지고 있다.도산서당은 여느 서원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설계구조를 가진 3칸 규모의 작은 건물이다. 서쪽 1칸은 골방이 딸린 부엌, 중앙 1칸은 퇴계가 거처하던 완락재(玩樂齋), 동쪽의 대청 1칸은 정사각형 형식의 마루 암서헌(巖棲軒)이다. 건물을 남으로 향하게 한 것은 예를 행할 때 편리성을 생각했으며, '재(齋)'를 서쪽에 두고 '헌(軒)'을 동쪽에 둔 것은 나무와 꽃이 있는 뜰과 마주보게 하려는 배려라고.퇴계는 서당의 동쪽 마당가에 작은 연못을 파 연(蓮)을 심어 '정우당'이라 이름하고, 동쪽엔 몽천이란 샘을 만들었다. 샘 위의 산기슭에는 평평한 단을 쌓아 암서헌과 마주보게 하고, 그 위에 매화, 대나무, 소나무 등을 심어 '절우사'라 불렀다. 암서헌 대청에서 정우당, 절우사를 지나 낙동강으로 경관이 물 흐르듯 연결되게 한 것은 자연과 합일하려는 퇴계의 성리학적 자연관을 잘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조영하기 훨씬 전부터 학문을 하며 제자들을 가르칠 건물을 지어왔으며 마흔여섯 되던 1546년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 본격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20-11-12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선택적 정의, 그리고 이기적 분노

간첩조작 사건등 검찰 왜 침묵하나부족한 의사 늘리는데 왜 반대하나통제·연민없는 권력·분노 악 낳을뿐'계약금 대신 스태프 월급인상 요청''아이유' 검사·의사보다 훨씬 훌륭이전 칼럼에서 밝힌 바이지만, 필자는 34년간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공립학교라서 4~5년마다 근무지를 옮겨 모두 10여 학교를 거쳤다. 그중에는 서울의 'SKY 대학'에 합격생을 많이 내는 소위 '명문'도 있었는데, 그때 교사로서 느꼈던 좌절감은 아직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학생들은 치열한 경쟁에 익숙해 있으며, 학부모들은 자기 자녀의 합격을 위해서는 종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도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컨설턴트에 더 의존하곤 했다. 학교에서도 당연하다는 듯 입시와 먼 교육과정은 모두 무시했다.한해 고3 학생이 대략 50만명 나온다고 할 때 겨우 1%만이 소위 '명문대'에 갈 수 있다. 너무나도 당연히 나머지 99%는 가지 못한다. 그런데 모든 고등학교가 그 1%에 교육의 초점을 맞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낙오할 수밖에 없는 99%를 루저로 만드는 슬픈 일을 수십 년째 반복하고 있다. 한편, 공부 잘하는 상위권 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예외 없이 검사나 의사가 되는 것이다. 개별 취향이나 소질은 중요한 척도가 아닌 듯하다. 하지만 검사나 의사가 되려면 그 1% 중에서 다시 1%만 가능하니,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목표를 위해 젊음을 소진하는 것이다.피나는 노력으로 좁은 문을 통과해 검사나 의사가 되었다고 해보자. 그들이 얻는 성취와 행복이 그에 비례할까. 권력과 돈이 따라오면 된 거 아니냐고, 요즘 세상에 그게 최고 아니냐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시험문제 풀이만 해온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훨씬 중요한 가치를 놓치곤 한다. 시험이라는 굴레 밖의 큰 세계에 대해 전혀 무지해진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 봉사를 해보지도 못하고, 문학과 철학이 건네는 삶의 질문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동료와 팀워크를 이뤄 프로젝트를 진행해보지도 못한 채 성장기를 다 지나간다. 돈과 권력을 얻는 대신 영혼이 빈곤한 메피스토펠레스의 후예가 된다.요즘 검사들의 '커밍아웃'과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거부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누구라도 국가정책의 잘못을 비판할 수 있다. 더구나 검찰과 의사는 손에 무서운 칼을 든 집단이기에 누구보다 큰 소리를 낼 수 있고, 시위 몇 번으로 모든 언론이 주목해주니 자기주장을 알리기도 쉽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검사들은 예전 같으면 없는 범죄도 만들 수 있고, 있는 범죄도 덮어 무마시키는 묘기를 부릴 수 있었는데, 이제 그러지 말라니 화가 치밀 것이다. 의사들은 환경이 낙후된 시골을 버리고 살기 편한 서울로 몰려가 돈 잘 벌고 있는데, 자신이 비운 시골에 새 의사가 들어가면 밥그릇을 조금이라도 떼어줘야 할 터이니 배가 아플 것이다. 국민들은 묻고 있다. 검찰은 예전 간첩을 조작한 사건에 대해, 조직 내부 범죄에 대해, 전직 대통령의 왜곡된 수사에 대해 왜 침묵하나. 누군가는 일가족을 이 잡듯 뒤지면서 또 누군가의 혐의에는 왜 한없이 관대한가. 또 의사에게 묻는다. 의사 수가 절대 부족한 걸 인정하면서 왜 의사 수를 늘리는 데 반대하는가. 공부 잘하는 의대생에게 묻는다. 지방대 표창장엔 거세게 항의하면서 교육부 감사에서 드러난 '명문대'의 비리에는 왜 침묵하는가. 왜 이렇게 검사의 정의는 선택적이며, 왜 의사의 분노는 그토록 이기적인가. 통제가 없는 권력과 연민이 없는 분노는 악을 낳을 뿐이다. 요즘 잘 나가는 가수 아이유, 그를 직접 가르친 선생님이 전하는 이야기이다. 고1 수업 시간에 있던 대화란다. "아이유야, 나중에 대학에 꼭 가서 대학 문화도 경험해봤으면 좋겠다." "선생님, 전 가수 할 거라서 대학은 의미 없어요. 생각이 바뀌면 도전해 볼게요." 이후 그는 진짜 유명한 가수가 되었다. 그녀가 얼마 전에 소속사와 재계약을 하게 되었을 때, '계약금 대신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40여명 스태프의 확실한 고용 보장과 월급 인상'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녀의 학력은 여전히 고졸, 하지만 나는 그가 지금의 검사나 의사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는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20-11-05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낯선 틈 만들어보기 프로젝트

벌써 11월, 예상치못한 감염병 습격불확실성 일상 전무후무했던 한 해아쉬운마음에 '100일 작은실천' 시작해보니 우연한 발견 연속 삶이 풍요나쁜짓만 아니면 무엇이라도 좋아내일 모레면 11월이다. 2020년이 딱 두 달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해가 통째로 사라진 것 같다"는 사람들의 말처럼, 불확실성과 가보지 못한 길로 가득한 전무후무한 한 해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염병의 습격에 나를 비롯한 개인들의 일상도 달라졌다. 물론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없던 의지가 생기는 건 아니어서 연초에 호기롭게 시작한 영어 공부는 여전히 초기 상태에 머물러 있고, 어쩌면 이번에는 열심히 할 뻔했던 운동은 코로나19 핑계와 함께 개점휴업 상태다.한 달쯤 전, 2020년이 이렇게 가버리는 것이 아쉬워 온라인에서 발견한 '100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신의 습관이 되다'는 이 프로젝트는 아주 다양하다. 별자리 외우기, 하루에 한 문장 필사하기, 매일 만보 걷기,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 마시기… 자기계발부터 운동, 마음 챙김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들 중 내가 선택한 프로젝트는 간단하다. 100일 동안 매일 1개의 질문 또는 제안을 받고 응답하는 것이다. 인증시간은 매일 오전 1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로 실천보증금 만원을 내야 참여할 수 있는 유료 프로젝트다. 보증금은 100일 인증을 성공하면 환급된다. 물론 '100개의 질문, 100번의 생각'이란 프로젝트명처럼 매일 다른 질문에 대답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겠다고 쉽게 생각한 측면도 있다.그러나 내 생각은 아주 큰 오산이었다. 33일 동안 내 인증률은 63%.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것치고는 꽤 자주 빠진 셈이다. 프로젝트 단체카톡방에 매일 다른 질문이 올라오고 참여자들이 돌아가며 치어리더가 된다. 사랑하는 도시, 첫 직장, 당신이 면접관이라면 하고 싶은 질문, 나의 일상, 내가 행복한 순간, 추석 보름달 인증 등 소소하지만 작은 질문에 답하다 보면 생각 여행을 떠날 수 있다.계속하다 보니 요령도 생겼다. 그날의 질문을 읽었을 때 바로 하는 것이다. '다음에 해야지' 넘기는 순간 하루는 흘러가버린다. 전철을 기다리면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잠깐 틈을 내서 생각해보고 짧은 글을 완성해 인증 도장을 받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전국 각지에서 참여하는 사람들이 올리는 동네 사진 구경도, 내 단톡방에서 볼 수 없던 다양한 이모티콘의 세계는 덤이다.100일 프로젝트 완주는 이미 실패했지만 실망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덕에 나만의 작은 프로젝트, '낯선 틈 만들어보기'를 따로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 글을 쓰면서 배경음악으로 뭘 틀어놓을까 고민하는 것이 그렇다. 평소라면 주저없이 '선호하는 곡' 리스트를 눌렀겠지만, 이제는 좀 더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로 애플 뮤직에 있는지도 몰랐던 '말라알람어 음악'이라는 신기한 카테고리를 찾았다. '말라알람어'는 인도의 공식 언어 22개 중 하나로 남부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라는데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보지 못한 나라, 인도 어딘가에 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어차피 당분간 비행기 타고 외국에 가지 못할 테니 마즈리히, 바예나토, 세르타네주 등 처음 들어보는 세계 음악의 세계로 떠나보는 것이다. 하루에 하나씩, 어딘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곳에서 온 음악들을 듣다 보면 올해도 지나갈 테고, 코로나19가 사그라들면 이 음악들을 들으러 현지에 가보고 싶다.지금도 늦지 않았다. 두 달 남은 2020년을 이대로 보내기 전에 자신만의 작은 프로젝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프로젝트라고 해서 꼭 매일매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낯선 동네 가 보기, 안 먹어본 음식 먹어보기, 무작위로 음악 들어보기, 고속도로 대신 국도로 운전해보기, 버스나 전철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어 가보기, 넷플릭스에서 무작위로 골라 보기… 나쁜 짓만 아니라면 그 무엇이라도 시도해볼 수 있다. 그냥 조금 낯설게 지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삶은 우연한 발견의 연속이고 그런 발견이 많아질수록, 그 사람의 삶은 조금 더 풍성해질 것이다. 10월30일, 오늘부터 일상에 낯선 틈을 만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코로나19와 마스크로 가득한 2020년의 기억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정지은 문화평론가정지은 문화평론가

2020-10-29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황진이가 넘지 못한 준령

성거산 은둔삶 사는 '서경덕' 찾아가교태에도 요지부동하자 존경·흠모그가 세상 떠나자 詩 한편 남긴다'…주야에 흐르니 옛 물 있을소냐인걸도 물 같아 가고 아니 오노메라'황진이는 이매창과 함께 조선시대의 빼어난 기녀 시인이다. 그녀는 박연폭포, 서경덕과 더불어 송도삼절로도 유명하다. 절세가인이며 문장가인 그녀는 많은 일화를 남겼다. 여러 사람이 황진이에 대한 기록을 전하고 있지만 조선 중기의 문장가이며 정치가인 이덕형이 지은 '송도기이'에 황진이의 이야기가 출생부터 명기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소상하게 실려 있다. 그 기록에 '황진이가 창류이기는 했지만 성질이 고결하여 번화하고 화려한 것을 일삼지 않았다. 그리하여 비록 관청의 연회라도 다만 빗질과 세수만 하고 나갈 뿐, 옷도 바꾸어 입지 않았다'고 그녀의 사람됨을 칭송하고 있다. 임제(1549~1587)는 당대 필명을 날리던 시인이며 문신이었다. 1583년 평안도 도사가 되어 임지로 가던 중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 추모의 시를 썼다. '송도의 명기 황진이의 무덤을 보고 이 노래를 지어 조문하다'라는 제목의 시는 널리 알려진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다. 임제는 이 추모 시로 파직을 당하고 세상을 떠돌며 시를 읊었다.황진이의 남성 편력은 화려했다. 당시 생불이라 일컫던 지족선사를 파계시켜 '십년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라는 경구를 만들기도 했다. 왕족 벽계수의 콧날을 꺾기 위해 지은 시도 있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 마라/일도창해 허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명월이 만공산 허니 쉬어간들 어떠리'가 그것이다. 벽계수도 그녀에게 무릎을 꿇었다. 명창 이사종과는 6년간 약정하고 함께 살기도 했다. 대제학과 판서를 지낸 소세양은 '황진이라도 한 달이면 족하다. 하루도 더 머물지 않겠다. 단 하루라도 더 머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호언장담했으나 한 달 지나고도 며칠을 더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넘지 못한 준령이 있었다. 화담 서경덕(1489~1546)이었다. 그는 스스로 깨달아 얻은 학문적 독립성으로 일관한 삶을 살았다. 그는 어지러운 세상, 관직에 나가지 않고 처사의 길을 걸었다. 조광조가 거듭 조정에 나올 것을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학문적 정통성과 권위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얻은 이치였고 만물의 이치를 궁리하는 것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하여 매일 들에 나가 나물을 뜯어야 했다. 그러나 돌아온 바구니에는 나물이 적었다. 어머니가 이유를 물었다. "나물을 뜯다가 새끼 새가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첫날은 땅에서 한 치 정도 날다가 다음 날은 두 치, 그 다음 날은 세 치 정도 날다가 점차 하늘을 날아다니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날마다 새끼 새가 조금씩 더 날게 되는 것을 지켜보며 그 이치를 깊이 생각해보았지만 터득하기 어려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세채(1631~1695)의 '남계집'에 기록된 일화다.서경덕이 송도 부근 성거산에 은둔하여 은자의 삶을 살고 있을 때 황진이가 찾아갔다. 황진이의 교태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인 서경덕을 황진이는 존경하고 흠모하게 되었다. 서경덕 또한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마음이 어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만중운산에 어느 임 오리마는/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그인가 하노라'를 읽노라면 임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을 알 수 있다. 황진이의 연모도 이에 못지않게 절절하다. '내 언제 무신하여 임을 속였기에/월침삼경에 올 뜻이 전혀 없나요/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에는 원망과 사랑이 넘친다.서경덕은 1546년 5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제자들이 임종을 지키며 그에게 물었다. '스승님, 지금 심경이 어떠하십니까?' 그가 대답했다. '삶과 죽음의 이치를 깨달은 지 이미 오래이니 내 지금 마음이 편하구나'.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황진이는 시 한 편을 남긴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인걸도 물과 같아서 가고 아니 오노메라'./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20-10-22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가을이 춥다

마스크 몇번 쓰다보니 어느새 가을몇계절 사라져 지난 겨울 일도 생생설레는 소식이든 촌스러운 조화든따뜻한 소식 가지고 날아왔으면…먼저 떠난 사람들 잘 지내길 바라고말괄량이 삐삐는 고아였다. 엄마는 삐삐를 낳다가 죽었고, 선장이었던 아빠는 항해 중 폭풍우를 만나 물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삐삐는 아빠가 죽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아빠는 수영을 잘해 식인종이 사는 섬까지 헤엄쳐 갔고, 그 섬의 왕이 되었다고 믿었다. 당장 아빠를 만날 수는 없지만 아빠의 생애는 식인종 섬에서 계속되고 있을 거라 삐삐는 믿어서 아주 많이 불행하지는 않았다.종종 나는 삐삐 같은 생각을 한다. 죽어서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 그들은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에서 다른 삶을 여전히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언제나 용감했던 삐삐의 아빠가 식인종 섬에서 왕이 되었듯, 그림을 그리던 이는 푸른 초원이 펼쳐진 고갯마루에서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수를 잘 놓던 이는 요정들이 실을 잣는 나라에서 꼼꼼하게 실을 고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 것을 할 때가 있다.계절이 차가워지다 보니 마음이 차져서 그런 것인가. 마음이 차지다 보니 그리운 이들이 절로 떠올라 그런 것인가. 지난 겨울 들었던, 아주 차가운 부고 하나가 떠올랐다, 새삼. 참 이상한 부고였다."주말쯤 A의 부고가 전해질 거야."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전화를 받은 건 화요일이었기 때문이다. 화요일에 전화를 걸어 주말쯤 A의 부고를 전할 예정이라고 말하는 친구라니. 무슨 소리냐는 내 말에 친구가 찬찬히 대답했다. A는 갑작스럽게 뇌사 판정을 받았고 그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서울로 오는 중이라고 했다. 장기기증에 대한 의논이 끝나면 사망선고를 내리고 장례를 치를 예정이라고. 나는 혹시 주말로 예정된 장례가 조문객들이 편하게 들르도록 한 배려일까 봐 손가락 끝까지 차디 차졌다. 그래, 참 차가운 시간이었다.어느 시절 지겹도록 만나며 A의 노래를 듣고 연주를 들었다. 마지막 통화에선 그가 소리를 빽 질렀다. "야, 우리가 이렇게 안 보고 살아도 되냐, 인마!" 그래서 몇 번이나 공허한 약속만 했다. "미안해, 미안해. 우리 정말 시간 잡자. 이렇게 안 보고 살면 안 되지." 빈말이라는 것을 둘 다 알아서 우리는 내내 즐거웠던 옛 얘기만 들춰냈다. 그러고도 좋았다. 세상 모든 이별이란 것이 갑작스러운 것이라지만 그 부고는 여태도 갑작스럽다. A는 수영을 잘할 테니 이 아득하고 야속한 공간을 헤엄치다 마음에 꼭 드는 섬을 만나 자리를 잡을 것이다. 바다도 잘 보이고 구름도 잘 보이는 해안가 언덕에 편안히 앉아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칠 수 있기를, A의 옛 친구 우리는 그의 장례식장에서 기도했다. 먼 길 잘 떠나. 잘 가, A.보송보송한 조끼를 입혔는데도 여섯 살 아이는 이제 가을이 춥다고 했다. 다이소 매장에 들러 이것저것 집어 드는데, 아이가 말도 안 되게 화사한 벚꽃 조화를 두 손 가득 들었다. "엄마, 나 이거 사고 싶어." 나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무리 조화라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 가을에 벚꽃이라니. 다음에, 다음에…. 내려놓으려는데 아이가 고집을 부렸다. "이거 내 방에 놓아두면 행복할 것 같애. 따뜻한 봄 같잖아. 안 추울 것 같애." 그 말에 그만 3천원짜리 조화 두 뭉치를 사고 말았다. 행복해질 것 같다는데, 겨우 6천원에 따뜻해질 것도 같다는데. 집에 들른 친구가 벚꽃 조화를 보고 촌스럽다며 타박을 했지만 나는 그냥 머리를 긁적이고 말았다. "요즘 너무 이르게 추워서…." 마스크 몇 번 쓰다 보니 그만 가을이 와버렸다. 몇 계절이 뭉텅 사라져버려 지난겨울의 일도 이리 생생하다. 설레는 소식이든 촌스러운 조화든 따뜻한 소식 가지고 날아왔으면 좋겠다. 우리를 먼저 떠난 사람들도 어디서건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고./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20-10-15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배롱꽃 피는 9월의 병산서원

국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서원'병산풍경 7폭 병풍에 담은 '만대루'창밖 어룽대는 목백일홍의 정갈함선비 학문 정진하는 '사학당' 역할세계적인 古건축물로 자부심 느껴병산서원 300m, 오래 참았던 말이 터질 것 같다. 숲을 따라 비포장도로를 20여분 오르내리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며 안내원이 수신호를 보낸다. 전화번호를 적고 손소독제를 바르고 열 체크를 마친 후에야 서원 가는 길을 터준다. 그 아름다운 길 위로 강바람이 살랑거리고 햇살은 천지사방으로 빛나는데 내 아무리 고단하기로 걸어야 할 거리가 고작 300m라니, 얼마나 오래 묻어두었던 길인데 단 5분으로 끝내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길 위에서 나는 아이가 되어 혀를 굴릴 때마다 입안에 든 사탕이 녹는 게 아까워 입을 꼭 다물고 오래 그 달달함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었을까.신도 모르는 첩첩산중에 숨어있는, 가다가 길을 잃고 주저앉아 맘껏 울거나 헤매도 좋을 그런 길을 만나고 싶었다. 맘껏 울고 싶었지만 그 길에 들어서면 내가 왜 그곳에 왔는지 까맣게 잊게 되는 그런 길이 그리웠다. 하지만 매번 잃고자 했던 길은 어쩌면 그리 환하게 잘도 찾아지는지. 지금 나는 낙동강물이 화산자락을 휘감아 도는 병산서원 가는 길 위에 있다. 다녀간 지 한 달도 채 안되는 데,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배롱꽃 만발한 꿈결 같은 서원을 앞에 놓고 낙동강 금빛 모래톱에 발을 담그고 서원의 기와지붕을 말없이 바라보는 마음이라니. 눈을 멀게 할 것만 같은 잘 익은 구월 열여드레 햇살, 서원 망루에 내려앉은 빛을 조금만 더 참았다 보고픈 욕심을 인내로 이렇게 저울질해보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소원하던 그곳에 닿을 때도 좋지만 닿기 직전에 현실 반 꿈 반의 경계점은 얼마나 소스라치게 아름다운가. 병산서원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이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고 확고하다.서원을, 감히 누가 생각 없이 불쑥 여염집 드나드는 방물장수처럼 들락거리는가. 저 단체손님들, 속삭이지 못하면 목소리라도 나직했으면 좋겠다. 여기가 어디라고 왁자하게 웃고 떠들고 장마당 휩쓸듯 휘리릭 둘러보고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떠나는지, 서원을 먹고 마시는 관광지쯤으로 생각했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인가. 성소까지는 아니라도 서원은 그런 난삽한 곳이 아니다. 서원은 지식이 많은 사람도 더 많은 공부와 정진으로 깨우침을 얻고 맑은 사람은 더 맑기를 소원하며 어렵사리 찾는 도량이니 제발 다음부턴 그러지 말라고 간곡히 한마디 해주고 싶긴 했다.오래된 건물을 보며 늘 위로를 받는 부분은 사찰이든 궁이든 서원이든 우리 조상들은 아무리 작은 건물이라도 최선을 다해 그들의 철학과 심상을 반영하고 그 건물의 분위기와 용도에 어울리는 이름(당호)을 짓는다는 것이다. 병산서원의 중심은 역시 만대루다. 만대루는 7칸 긴 누마루로 낙동강 흰 백사장과 병산 풍경을 7폭 병풍에 담아내는 최고의 건축물로 꼽는다. 두보의 '백제성루'라는 시에 '취병의만대,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만하니'라는 시에서 따온 이름이라니 선조들의 풍류가 얼마나 여유롭고 멋스러운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층은 막돌기단, 덤벙주초, 휘어진 굵은 기둥이, 위층은 잘 다듬은 둥근 기둥, 우물마루, 계자난간은 물론 서원의 주변 경관은 '성리학자들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자연과 인간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는 천인합일사상이 반영되어 자연과 인공이 더불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기숙사로 썼다는 동재와 서재에서 나를 매혹시킨 것은 작은 창이다. 9월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듯 창밖으로 어룽대는 목백일홍 가지는 한지창이 주는 단아하고 정갈한 분위기에 과함도 모자람도 없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그뿐이랴, 뒤편으로 돌아 오르면 진사청으로 이어지는 진사청문도 단아하다.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늙은 배롱나무의 관능적인 몸매와 만개한 배롱꽃은 몇 세기를 건너온 듯 그에 비하면 내 감탄사는 여전히 초라할 뿐이다. 아, 서원 입구 복례문 뒤로 자그마한 연못 광영지에 몸을 던진 꽃잎들은 어쩌자고 저리 붉은 것인지. 서원 공간에 영혼을 빼앗기고 피 같은 붉은 배롱꽃에 마음 빼앗기는 이 가없고 황송하기 그지없는 내 생의 9월 하루가 서원에서 저무는 호사를 누리다니, 딱히 역사나 유학에 관심이 없어도 알겠지만 서원은 조선의 선비들이 학문에 정진하는 사학당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서원이 있지만 병산서원은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내 짧은 식견으로도 한국건축사는 물론 세계적인 고건축물로 자부심을 가질만하다./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20-10-08 김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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