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

 

[풍경이 있는 에세이]말이 없는 사람입니까?

말 많이 하고 나면 며칠간 후유증대체 왜 그런 소리를 했을까 '긍긍'관계지속 행위 피할 도리가 없다상처 입히거나 받지 않는 일 불가능주지도 받지도 않는 일이 최선일까"말이 별로 없으시네요"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내성적인 탓인지, 언젠가부터 나는 으레 말수가 적은 사람, 과묵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전에서 '과묵하다'를 찾아보니 '말이 적고 침착하다'는 제법 고상한 풀이가 나온다. 나쁘지 않은걸,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께름칙한 기분이 드는 건 그 속에 답답하다, 지루하다 같은 뜻도 아울러 담겼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좀처럼 이 과묵을 포기하지 못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나 역시 가끔은 수다쟁이가 된다. 친구가 직장 상사 흉을 볼 때나 먹고사는 일을 염려할 때면 맞장구를 치며 목소리를 높이고 만다. 부러 엉뚱한 얘기를 꺼내 누군가를 웃게 하기도, 의도치 않은 독설을 뱉어 누군가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초면의 누군가를 만날 때는 상대가 너무 어색해하지 않게 실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는데, 이는 물론 어디까지나 직장인으로서 몸에 밴 일종의 제스처다. 상대도 곧잘 눈치채고 마는. 어쩌다 말을 좀 많이 하고 돌아온 날이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게 된다. 후유증이 며칠간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한 말들을 머릿속에 열거하며 대체 왜 그런 소리를 했을까 긍긍하는 것이다. 그저 우스개로 던진 말을 그가 오해하지는 않았을지, 그 말이 그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지 하는 걱정은 나는 왜 겨우 이런 사람인지, 이런 말을 지껄이는 사람인지 하는 자괴감으로까지 이어진다. 하물며 말을 두고 이럴진대 대체 글은 어떻게 쓰는 거죠? 묻는다면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너무나 괴롭다는 말밖에는. 최근 한 선배는 지나는 투로 가볍게 그러나 실은 엄하게 나를 책망했다. "그때 술자리에서 말이야, 네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어. 평소의 너답지 않았달까." 순간 나는 뜨끔했다. 그렇지 않아도 바로 그 '그런 말'이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던 참이었다. 후배의 난해한 패션 센스를 두고 여럿의 장난 어린 놀림이 오가는 가운데 나도 농담 삼아 한 마디 거든다는 게 그만 도를 지나치고 말았다는 생각. 그러나 선배가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하고 말한 순간 나 또한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묘한 화가 치밀기도 했다.그날 그 자리에서 나는 과연 합당하고 품위 있는 말만 들었나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수많은 말들 속에 나 역시 크고 작은 불쾌감을 겪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는 내게 더 심한 말도 했다고! 나도 같이 응수했을 뿐이야. 고작 그 정도 말도 나는 해선 안 되는 거야?"라는 말이 속에서 들끓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어쨌든 나는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엎질러버렸다는 자책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후 한동안은 어느 때보다 입을 굳게 다물고 지낸 것 같다. 관계를 지속하는 한 말을, 말을 하고 듣는 행위를 피할 도리란 없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늘 그렇듯 이런저런 말들이 난무하고, 그 속에는 선의를 빙자한 폭력과 농담을 가장한 힐난이 가득하다. 거기서 빚어진 상처는 뜻 모를 웃음 속에 번번이 묻혀버린다. 집으로 돌아간 뒤 혼자 조용히 꺼내어 들여다볼 뿐. 서글프다. 말이라는 건 지극히 섬세하게 가다듬어져야 마땅할 테지만, 종내 그 100%의 상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말이 있는 한 누구도 상처 입히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말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일, 그런 일이 최선일까. 말을 버리고 사람을 버리는 일. 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런 한편, 이 모든 것과는 별개로 가끔은 정말이지 말을 잃는 순간이 있다. 기꺼이 잊는 순간이. 깊이 애정 하는 사람과 마주할 때인데, 그때는 나도 모르게 입의 존재를 망각하게 된다. 대신 커다래진 귀가 오롯이 남는다. 더, 조금 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하는 일보다 듣는 일에 이 귀한 시간을 써야 한다고, 마음은 끊임없이 속삭이는 것이다./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9-03-21 박소란

[풍경이 있는 에세이]어느 긴 새벽에 대하여

우린 제마음 읽는법 배워본적 없다마흔 넘도록 선택할 땐 손끝 파르르내가 다섯살짜리 키우기 벅찬시대열여덟살 엄마가 갓난아이 키우는데'좋은시절 금방 온다' 헛된꿈도 못꿔집 근처에는 김밥집이 한 곳 있다. 내 손바닥 반만 한 길이로 말아주는 꼬마김밥집인데 메뉴가 수십 가지다. 햄치즈 김밥, 제육 김밥, 낙지 김밥, 게살 김밥 등등 고르는 데에도 머리통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한 줄에 천 원. 두 줄을 주문하면 내 속에 딱 맞았다. 그날 김밥집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한 손님이 막 나가던 길이었고 나는 김밥 진열대 앞에 서서 "아줌마, 불오뎅 김밥 두 줄 주세요." 그러면서 이천 원을 건넸다. 주인아줌마는 약간 골이 나 있었다. "아니, 지가 매운 걸 시켜놓고 맵다고 야단이면 어째?" 나는 좀 뜨끔했는데 생전 먹지도 않던 매운 음식이 당겨 마침 불오뎅 김밥을 주문한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막 나간 그 손님이 매운 걸 먹다 말고 투덜거린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그 조막만 한 김밥들을 절반도 먹지 못했다. 매워도 너무 매웠다. 주인아줌마 눈치가 보여 기를 쓰고 먹어보려 했지만 별 수 없었다. 슬그머니 반 넘어 남긴 접시를 두고 일어서는데 딱 걸렸다. "왜? 매워? 매워서 못 먹겠어?" 나는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배가 불러서요!"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도 그랬다. 늘 가던 콩나물국밥집이었는데 그날도 희한하게 매운 국물이 먹고 싶어서 처음으로 매운 콩나물국밥을 주문했다. 역시나 나는 반도 먹지 못했다. 내가 절절 매니 깍두기를 더 주러 다가왔던 아줌마가 혀를 끌끌 찼다. "그러게 왜 먹지도 못하면서 매운 걸 시킬까나? 그냥 먹던 대로 먹지." 분명 내 입맛이,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인데도 무언가를 주문하면서 실패를 거듭한다. 아기 내복이나 좀 살까 싶어 들어갔던 인터넷쇼핑몰에서 봄 원피스를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기에 나는 열 벌도 넘게 샀다. 백화점에 가면 한 벌도 못 살 값이었다. 옷감이 좀 후지더라도, 디자인이 좀 촌스럽더라도 어차피 아이들은 쑥쑥 자라니 만원 값만 하면 된다 생각한 거였다. 하지만 막상 배송이 된 옷들을 쳐다보자니 한숨이 절로 났다. 정말 딱 만 원짜리들이었다. 이걸 입혀 어딜 데리고 나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 원 값만 하면 된다 해놓고는 이 무슨 변덕이람. 옷장 속에 개어 넣으면서 이 옷들을 정말 입히게나 될까, 싶었다. 매운 걸 시켜서 매운 음식이 나왔고, 만 원짜리 옷을 사서 만 원짜리 옷이 온 걸 나는 어쩌자고 후회하고 있는 걸까. 다 내가 고른 것인데.친구는 새벽녘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의 울음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여고 2학년 딸이 아기를 낳겠다고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딸의 마음은 확고하고 단단해서 더는 어쩌지 못하겠다 말하며 그녀는 펑펑 울었다. 알겠다고, 돕겠다고 말은 했다는데 아직 제 마음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했다. 내 딸은 아직 다섯 살이라 나로서는 상상도 안 갈 일이었다. 친구의 딸이 마음을 이미 다졌다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이를 응원하는 일뿐이었다. "꼭 전해줘. 이모가 응원한다고.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고도 전해줘." 고작 엄마 친구가 응원하는 일이 그 아이의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지만 다른 건 해줄 것이 없어서 나는 그 말만 바보처럼 되풀이했다. 친구가 말했다. "난 마흔도 넘었지만 내 선택을 온전히 믿지 않아. 아직도 내 선택을 내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아. 그런데 그 앤 고작 열여덟 살이야. 그 앤 정말 제 선택을 믿고 있는 걸까? 이왕이면 그 애가 끝까지 제 선택을 스스로 믿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제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는 법, 우리는 그런 것을 배워본 적이 없다. 배워서 될 일이 아니겠지만. 친구의 말처럼 나 역시 마흔도 넘었지만 무언가를 선택할 때마다 손끝이 파르르 떨릴 때가 많다. 살아도, 살아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도 여태 무능한 나를 반성하느라 나는 친구의 전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마흔이 넘은 내가 다섯 살 아이를 키우기도 벅찬 시대인데, 갑자기 천지개벽해 열여덟 살짜리 엄마가 갓난아기를 키우기 좋은 시절이 금방 오리라는 헛된 꿈을 꾸지도 못했다. 새벽은 길었고 친구의 울음도 길었다. 무섭도록 긴 밤이었다./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19-03-14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불국사와 왕릉, 천년의 시간을 걷다

차분하고 아담한 '선덕여왕릉'…다보탑에 비해 군더더기 없고라인이 정갈한게 특징인 '석가탑'보수중 나무 인쇄물중 가장 오래된 '무구 정광 대다라니경' 발견되기도철이 들고 어른이 되면 언제든 한 번은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경주라는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경주는 늘 그리운 곳이고 살아보고 싶은 도시니 매번 부산에 갈 때마다 경주를 떠올리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해운대에서 보내는 며칠 중 하루쯤 시간을 내어 경주에서 숙박을 하고자 했으나 이번에도 불발로 끝났다. 그날, 해운대에서 경주로 가던 날은 바람 때문에 걷기 좋은 날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차에서만 지내다 올 수 없는 일이니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황룡사지에서 들머리 시작점을 찍었다. 황룡사지는 진흥왕에서 선덕여왕까지 신라 전성기 약 100년에 걸쳐 세운 사찰이지만 지금은 허허벌판에 빈터만 남아있다. 황룡사 구층목탑은 높이 80m로 바닥 한 면의 길이가 22m다. 우뚝 솟아 경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았을 목탑은 고려시대 몽고군의 침입으로 전소되기까지 각지에서 많은 스님들이 그 탑을 보기 위해 신라를 찾을 만큼 세계적인 보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경주는 통일신라시대의 4분의 1정도도 채 안 되는 인구가 도시를 지키고 있다니 한때지만 얼마나 번성했는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경주는 천년의 시간을 간직한 고대도시답게 기품 있고 진중해 보인다. 그건 도시 곳곳에 고려시대 유물과 왕릉이 있어서일 텐데 나는 볼 때마다 능의 풍성하고 여유로운 선에 매료되곤 했었다. 무덤과 무덤사이를 걷는 일, 이생과 저 생이 교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바람이 말달리는 황룡사지 빈 들판을 가로질러 선덕여왕릉을 찾아 나섰다.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삼국 통일의 기초를 닦은 선덕여왕 능은 그의 유언에 따라 낭산 꼭대기 울창한 소나무 숲 속에 있다. 안내표지판을 따라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우고 작은 이정표를 놓치지 않고 오르는 길엔 세월의 풍상을 겪은 소나무들의 군무를 보는 듯 멋진 송림이 기다린다. 숲을 따라 낭산에 오르면 거기 하늘의 호위를 받으며 정상 가운데 우아한 품새의 능이 있다. 여왕이라서 그런가. 다른 능에 비해 차분하고 아담해 보인다. 선덕여왕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의 장녀로 태어나 신라 최초 여왕이 되었다. 재위 16년간 분황사와 첨성대, 불교건축의 금자탑이라는 신라 최대인 황룡사 구층목탑을 세우기도 하였다. 또한 뒷날 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와 명장 김유신 같은 영웅호걸을 거느리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데 기초를 닦은 덕망 있는 왕이다. 경주는 신라인의 공동묘지라 불릴 만큼 도처에 왕릉들이 있어 방문자의 걸음을 붙잡는다. 특히 7번 국도를 따라 불국사 방향으로 가다 보면 길 왼쪽 낭산 자락 아래 왕릉들이 줄지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간간이 방문하긴 했어도 여전히 경주에 간다는 건 불국사에 간다는 것이고 불국사에 간다는 건 나이가 몇이든 수학여행 가는 기분을 벗어날 수 없을 듯, 불국사 경내로 들어서서 마당을 한 바퀴 돈 다음 석가탑과 다보탑을 찾아 안으로 들었다. 이 두 탑은 누가 봐도 단순과 복잡, 절제와 화려, 고전과 낭만 등 배치되는 두 개념으로 만든 조형물이다. 불국사 창건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직 이런 시도는 전무후무하다고 하니 당시 시대상을 생각하면 이렇게 반대 개념의 이질적인 작품을 같은 공간에 배치했다는 사실은 이채롭다. 불국사를 찾아간 날은 기온이 영하였고 사찰이 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서인지 사람들은 서둘러 퇴장하고, 홀로 하루의 마지막 햇살이 탑의 난간을 서성대던 그 순간이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다웠는지, 시대를 초월, 많은 불자들의 기도와 정성이 그 탑에 새겨졌다고 생각하니 탑은 그냥 탑이 아닌 듯하다. 다보탑에 비해 석가탑은 도무지 군더더기가 없고 그 라인이 감탄스러울 만큼 정갈한 것이 특징이다. 다보탑과 석가탑이 없는 불국사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이 두 탑은 빼어나게 아름답지만 나는 좀 더 석가탑을 편애하는 듯하다. 그래서 사랑은 하나라고 했을까. 이 두 개의 탑을 보고 있자니 영원한 것도 영원하지 않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국사의 석가탑은 통일 신라의 돌탑으로 다보탑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돌탑이다. 정식 이름은 '불국사 3층 석탑'으로 국보 제21호로 지정, 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무구 정광 대다라니경(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해 놓은 불교 정전)이 발견되었다. 무구 정광 대다라니경은 사람이 나무로 만든 인쇄물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19-03-07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

'피터팬 증후군' 가능성 큰 '어른애'공동체 사회 모두에게 불행 안겨줘어떻게 살아야하는지도 몰라 슬퍼극심한 경쟁 부작용이 낳은 캥거루족세계는 풀기힘든 올가미에 걸려있다얼마 전 'SKY 캐슬'이라는 TV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 입시 만능 교육제도를 비판하며 시청자로부터 폭넓은 공감을 샀던 것 같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그 드라마에서 악역으로 나온 소위 입시전문 '코디'가 드라마 이후 학부모에게 엄청난 관심을 일으켜 학원가에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자괴감을 금할 수 없지만 이게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니, 우리 교육의 앞날이 암담하게 느껴질 뿐이다. 하여튼 그 드라마에서 인상적인 한 장면이 있으니, 의사 강준상(정준호 분)이 극 중 어머니(정애리 분)에게 이렇게 울부짖는 장면이 나온다."어머니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서 학력고사 전국 1등까지 했고, 어머니가 의사 되라고 해서 의대 갔고, 병원장 해보라고 해서 그거 해보려고 기를 쓰다가 내 새끼인 줄 모르고 혜나를 죽였잖아요. 저 이제 어떻게 하냐고요. 지 새끼인 줄도 모르고 죽인 주제에 어떻게 의사 노릇을 하냐고요. 날 이렇게 만든 건 어머니라고요. 지 새끼도 모르고……. 낼모레 쉰이 되는데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도 모르는 놈을 만들었잖아요, 어머니가!" 조금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능력 있고 성공한 한 의사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깨달으며 절규하는 장면이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요즘 우리 주변에서 강준상처럼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을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친 듯 소리를 지르며 갑질을 하는 부잣집 엄마와 딸, 늙은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다 홧김에 살해하는 패륜아 등의 기사를 거의 매일 본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우리 일상에도 이런 사람은 흔하다. 창문을 열고 담배꽁초를 무심히 버리는 운전자, 전철 안에서 핸드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을 종종 본다. 태블릿피시가 조작됐다고 아직도 공공연히 주장하는 자도 있고, 이 말을 SNS에 무책임하게 퍼 나르는 자들도 있다. 이들은 어쩌다 이런 '어른애'가 됐을까. 어른이 되지 못한, 혹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심리상태를 소위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나는 혹시 아닐까 궁금하시다면, 여기 '자가 체크리스트'가 있으니 확인해보기 바란다. (1)하고 싶은 일만 한다. (2)자신의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린다. (3)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4)상대방 기분을 배려하지 않는다. (5)부모님께 철없이 대한다. (6)생각이 다른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7)겉모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8)감정적으로 불안정하다. (9)끈기와 성실성을 찾기 힘들다. (10)단점을 남에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위 항목에서 다섯 개 이상 해당한다면 당신도 피터팬 증후군일 가능성이 크다. 만약 주변의 제삼자에게 객관적으로 평가해 달라 한다면 정확도와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다.'어른애'의 특징은 위 체크리스트에 그대로 다 나와 있다. 대체로 현실 도피적이고,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며, 타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 여럿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 사회에서 이들은 그 자신에게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모두 불행을 안겨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어른'이 된다는 건 참으로 슬프고 위험한 일이다. 이들은 주체가 없으므로 모든 판단의 근거를 밖에서 빌려온다. 사리판단을 할 능력이 없으니 얇은 귀로 남의 흉내만 낸다. 매사 의존적이어서 떼거리로 몰려다닌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쁘게 나오기라도 하면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우긴다. 소위 '어른애'가 요즘 우리나라에만 유행하는 현상은 아닌 듯하다. 일본에서는 취업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마음대로 살려는 사람을 '프리터(freeter)', 중국에서는 빈둥거리며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사람을 '컨라오주( 老族)', 유럽에서는 부모 곁을 떠났다 생활이 힘들다고 부모의 품으로 기어들어오는 자식을 '부메랑키드(boomerang kids)'라 부른다고 한다. 이런 캥거루족은 모두 근래 신자유주의가 극심한 경쟁과 빈부격차라는 부작용을 낳으며 생긴 기현상들이다. 세계는 지금 참으로 풀기 어려운 올가미에 걸려 있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19-02-28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남의 집에 놀러가볼까요

취향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고낯선 이들에 자신공간 보여 주는'남의 집 프로젝트' 해외 확산 붐친구네 놀러가던 '설렘' 느껴지며어느새 '아는 집'되는 마법될 수도'여기 어디쯤인 것 같은데…' 낯선 골목길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군가와 마주쳤다. 누구랄 것도 없이 "혹시 남의 집 오신 건가요?" 묻다 보니 다행히 같은 집을 찾고 있는 게 맞다. 벨을 누르자 주인장이 문을 열어주며 우리 둘을 반긴다. 이날 내가 찾아간 곳은 말 그대로 남의 집에 놀러 가서 낯선 이들과 취향을 나누는 자리인 '남의 집 프로젝트'가 열리는 서울의 모처. 2년여간 프라하에 살면서 프라하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집주인이 주최하는 '남의 집 프라하' 자리였다. 보내준 주소 한 줄만 가지고 낯선 동네, 모르는 사람의 집을 찾아가는 경험도 참 오랜만이다. 토요일 오후 동네 주민 느낌의 편한 복장으로 오라는 팁처럼, 편한 차림으로 모인 5명은 인사를 나누고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집주인 부부의 솜씨로 깔끔하게 단장된 한옥 곳곳에 세계 각국을 돌아다닌 집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소품들이 놓여 있고, 기분 좋은 향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놓고, 프라하에서 직접 찍은 사진과 책들을 앞에 두고 시작된 이야기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쉼 없이 이어졌다. 집주인과 손님 중 한 사람이 서로 비슷한 시기에 프라하에 살고 있었다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같은 사람을 알고 지냈다는 사실까지 발견하게 됐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프란츠 카프카의 관계, 카프카의 대표작인 '변신'과 하루키의 단편소설 '사랑하는 잠자'의 연결고리, '1Q84' 첫 장에 등장하는 체코 이야기까지… 프라하의 매력에 빠져 회사도 그만두고 프라하에서 가이드로 일했던 집주인이 아니었다면 프라하에 갔더라도 미처 알지 못했을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손님들도 개성 넘치긴 마찬가지였다. 한 분은 우연히 가게 된 프라하의 매력에 빠져 책을 집필했고 곧 또 하나의 책을 쓰기 위해 포르투갈로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사온 컵을 알아보고 자기도 갖고 있다고 하시는 분, 1985년 이탈리아 아말피 여행의 추억을 들려주신 분도 있었다. 사실 프라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갔던 자리였다. 2만 원이라는 참가비를 내고 꽤 먼 곳까지 가야 했고, 프라하 맛집을 소개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두 시간을 훌쩍 넘겨 끝난 자리에서 돌아오면서 그날 모임에서 만난 분이 쓴 프라하 여행책을 주문했다. 프라하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이미 다녀온 기분이었고, 이날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괜히 친근하게 느껴졌다.낯선 사람들에게 자신의 공간을 보여주면서 집주인으로서 취향을 나누는 '남의 집 프로젝트'는 자신의 거실에 손님을 초청해 취향이 담긴 소품을 함께 보거나 책을 읽으며 공통된 주제로 대화하는 서비스다. 집 거실을 매개체로 취향을 공유하는 일시적 취향 공동체로 집주인은 적정한 참가자 인원을 한정하고, 마음에 드는 참가자만 골라 초대할 수 있다. 슬램덩크 덕후, 보이차, 각국의 마그넷, 양말 수집가, 고수를 즐겨먹는 사람들 등 주제도 다양하다. 2017년 1월부터 시작한 남의 집 프로젝트를 통해 집을 공개한 집주인은 100여 명, 남의 집에 방문한 손님도 65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일면식도 없는 남을 초대해 대화를 나누려는 집주인이, 비용과 시간을 지불하면서까지 남의 집에 방문하는 손님이 있을까 싶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남의 집이 어떤지 궁금해하면서' 참여하고 있다. 관심사를 공유하는 개인들이 '반짝' 모였다가 흩어지는, 부담 없는 모임 플랫폼인 셈이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어울리고 싶다면 '남의 집 모임'을,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면 집주인의 공간을 음미하며 책을 읽는 '남의 집 서재'를 선택하면 된다. 왔던 사람이 또 다른 집에 놀러 가고, 손님으로 왔던 사람이 집주인이 되기도 하면서 베트남, 싱가포르, 상하이 등 해외까지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해외 주재원의 집을 방문할 수도 있고, 전 세계 동화책을 수집하는 집 주인과 동화를 읽을 수도 있다. 물론 당신의 집을 다른 사람들에게 오픈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니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친구네 놀러 가던 설렘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은 당신이라면, 봄이 오기 전에 남의 집에 놀러 가보면 어떨까?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아도 여행을 떠난 기분을 느낄 수 있을뿐더러, '남의 집'이 '아는 집'이 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니까./정지은 문화평론가정지은 문화평론가

2019-02-21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북한강의 느린 시간을 걷던 최하림 시인

시가 잘 쓰여지지 않을땐 강 찾아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생각한다'세상은 어느 만큼 살았으며,죽은자들과 대면 얼마남지 않아흐르는 시간 붙잡지 않습니다…'입춘 지난 북한강은 물빛이 순하다. 강물은 강안의 높은 산들을 다 담고 있다. 눈으로 들어오는 풍광들이 포실한 느낌이다. 마른 풀들과 언덕의 흙도 부드럽게 감긴다. 봄이 멀지 않은 것이다. 북한강변을 따라 올라가면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문호리에는 '갤러리 서종'이 있다. 이곳은 최하림 시인이 영면 두 달 전에 '최하림 시전집' 출판기념회를 열었던 장소다. 그의 제자들이 마련한 출판기념회는 따뜻하고 소박하고 무겁고 슬픔에 차 있었다. 이미 병 깊었던 시인은 희미하게 웃으며 제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펜을 들 힘이 없어 서명을 못했으니 나갈 때 한 권씩 가지고 가라' 했다. 제자들 몇몇이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어깨를 들먹이는 제자들을 시인은 엷은 미소로 바라볼 뿐이었다. 최하림(1939~2010)시인은 목포에서 나고 자랐다. 20대 초반에 목포의 문청들이었던 김현, 김승옥, 김치수와 함께 '산문시대'라는 동인을 만들어 활동했다. 후에 김현과 김치수는 평론가로, 김승옥은 소설가로, 최하림은 시인으로 독창적인 문학세계를 이루어내 문단의 중요한 작가들로 한국문학사에 기록되었다.1964년, '빈약한 올페의 회상'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그는 사유 깊은 시세계를 선보이며 시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관심을 갖는 시적 대상은 '시간'이었다. 그는 시전집 서문에 '어느 날 나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배후 없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모든 현재가 과거라는 시간의 그림자를 끌고 이동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에게 역사도 삶도 시도 시간에 다름 없었다. 최하림 시인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격동기에 광주를 떠나 있었던 것에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죄의식으로 빚어낸 불후의 시편이 '죽은 자들이여, 너희는 어디 있는가'다.'……바람과/바람의 외침들이/보이지 않는 내 손짓/보이지 않는 내 눈짓/보이지 않는 내 소리짓/을 보고 있다/보이지 않는 내 맘까지/저 배반과 음모까지도 보고 있다/이 도시의 눈들이 내 모든 것을 보고 있다/오오 나를 감시하는 눈들이 보는 저 꽃!/하늘의 상석에 올려진, 아직도/피비린내 나는,/눈부시고 눈부신 꽃/살가죽이 터지고/창자가 기어나오고/신음소리도 죽은,/자정과도 같은,/침묵의 검은 줄기가/가슴을 휩쓸면서/발끝에서 심장으로/정수리로/오오 정수리로……'는 5·18을 노래한 무수한 시편들 속에서 찬연하게 빛난다.그가 문호리로 옮겨오기 전 살았던 영동의 호탄리는 금강 상류였다. 'K와 함께'는 꿈속에서 함께 있었던 친구를 노래하지만 시간의 의미를 묻는 시편으로 읽힌다. '…유독 그 시간이 출렁거린다고 느꼈던 것은/너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갈대밭에 너와 나는 나란히 앉아 있었으되/너는 내 시간에 없었고 나도 네 시간에 없었다/오늘 밤도 강 건너 산 위로 둥글게 달은/떠오를 것이고 상수리도 오를 것이다/나는 유리창 너머로 볼 것이다/나는 김병익에게로 가 너를 꿈에 보았다고/말 할 것이다/아니 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나는 네 그림자가 드리운 미명 속을 갈 것이다/금강물을 따라갈 것이다'에서 시인은 꿈에 본 친구를 김병익에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다 미명 속 금강물을 따라갈 거라고 노래한다. 죽은 친구의 그림자가 드리운 미명의 금강은 불길한 느낌이다.그는 시가 잘 쓰여지지 않는 날은 북한강을 찾았다. 자택에서 걸어서 갈 거리에 북한강은 흐른다. 그는 언제나처럼 바위에 앉아 강물이 철철철 흐르는 모습을 본다. 넘치듯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생각한다. '세상은 어느 만큼 살았으며, 세상 흐름을 얼마쯤 내다볼 줄 아는, 죽은 자들과 대면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나는 흐르는 물을 붙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붙잡으려는 순간에 강물은 혹은 시간은 사라져버리겠지요.'/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19-02-14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길에서 먹는 밥

앉지도 못한채 대충 씹어 삼키는 밥시간없어 때우는 끼니 더욱 초라해먹는 것 만큼은 서럽지 않았으면…늘 고되고 쫓겨 밥때 놓치기 일쑤누구나 편하게 식사했으면 좋겠다요즈음의 내 일터는 집에서 꽤 먼 곳에 있다. 초록버스를 타고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간 다음 그곳에서 2호선을 타고 얼마 뒤 다시 4호선으로 갈아탄다. 그렇게 집에서 일터까지는 꼬박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출퇴근 시간이 '9-6'을 조금 벗어나 있는 덕분에 만원 버스, 만원 지하철의 고초를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만은 실로 큰 행운이다. 그만큼 여유가 생겨서일까. 무심코 지나쳤던 광경들이 드문드문 눈에 들기 시작했다.얼마 전 내 시선을 붙든 것은 붐비는 지하철 승강장 의자에 앉아 혼자 삶은 고구마를 먹는 한 중년 여성의 모습이었다. 자판기와 쓰레기통과 나란히 앉은 그가 엉거주춤 꺼내 든 비닐 팩에는 먹기 좋게 잘린 고구마 몇 개가 담겨 있었고, 한 컵 물도 없이 그는 그걸 묵묵히 집어삼켰다. 오가는 사람들이 그를 수시로 힐끔거렸다. 행인들의 눈에는 천진한 호기심, 아니 어쩌면 뜻 모를 핀잔, 경멸 같은 것이 묻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시선들이 영 편치 않았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반도 채 비우지 못한 비닐 팩을 주섬주섬 챙겨 자리를 떴다. 그 후로 거리 안팎에서 빵이나 떡, 달걀, 김밥 등을 먹는 이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때로는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때로는 지하철 맨 구석에 서거나 버스 맨 뒷자리에 숨듯이 앉아서 조용조용 봉지를 바스락거렸다. 조심조심 냄새를 피웠다. 때로는 멈춘 채가 아니라 걸으며, 어딘가로 바삐 향하는 채로 밥을 먹는 이도 보였다. 분명 밥이었다. 커피나 아이스크림 같은 디저트와는 다른 것. 식사에 가까운 것. 때우는 밥, 허기를 누르기 위한 밥 말이다. 이때의 끼니는 곧잘 초라해진다. 집이나 식당이 아닌 곳에서 밥을 먹는 일은 어쩐지 외롭다. 서럽다.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대충 씹어 넘기는 밥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럴 때면 무언가를 먹는 일이 이토록 치욕스러운 것인가 새삼 되짚게 된다. 길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이 그 사람을 얼마나 궁색하게 만드는지, 물론 먹는 당사자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밥을 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테고. 시간이 부족해서, 혹은 돈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겠지. 그 이유라는 것을 들여다보게 되면 끼니는 더욱 초라해진다.얼마 전 한 사이트 게시판에서 본 글들이 떠오른다. "지하철에서 음식 먹는 것이 민폐라는 걸 잘 알지만, 통학 시간이 거의 한 시간 이상 되니 오가는 중 간단히 아침을 때우게 된다"고 털어놓는 학생이나 "출근 시간 지하철에서 냄새가 덜한 도넛이나 머핀 정도는 먹어도 괜찮을지" 묻는 직장인의 사연들. 이런 이야기에는 뭐라고 대꾸를 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다. 대중교통 내 음식 섭취 민원은 해마다 늘고, 도가 지나칠 정도의 행위로 폐를 끼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으므로. 다만 생각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먹는 일에서만큼은 누구도 외롭거나 서럽지 않으면 좋겠다고. 어색한 자세로 눈치 보며 때우는 밥 대신 편하고 당당한 밥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생활은 늘 그렇듯 고되고 우리는 자주 쫓긴다. 달리다시피 걷는다. 그러는 사이 밥때는 저만치 멀어져 있기 일쑤. "여기서 그런 걸 먹으면 어떡해요!" 호되게 꾸짖는 사람. 냄새가 역한 듯 코를 막는 사람. 지하철 구석에 서서 찬 은박지에 싸인 김밥을 집어먹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조아리며 서둘러 하차하는 사람. 무거운 백팩을 메고서 종종종. 후미진 어딘가로 가서 또 남은 김밥을 급히 삼키겠지. 그가 나선 문 위 포스터는 '음식물 반입 제한'이란 엄중한 경고를 보낸다. '승객 안전 및 피해 예방을 위해 불결·악취 물품이나 음식물의 운송을 제한'한다는 것. 옳다. 반박의 여지가 없다. 그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후의 저 김밥이 오늘 그가 맞은 첫 끼일 것이라는 서글픈 짐작을 잠시 해볼 뿐./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9-02-07 박소란

[풍경이 있는 에세이]1983년의 사진 한 장

강원도 삼척 정라진 방파제 배경육촌·사촌들과 키대로 줄 서 '찰칵'신나게 탔던 외팔이 아저씨 나룻배해 질 무렵 얼굴엔 늘 짠내가 가득풍경 그리운걸 보면 난 '깡촌출신'메시지 알람이 울려 들여다보았더니 동갑내기 사촌이 보내온 사진 한 장이다. 맙소사. 웃음이 터졌다. 1983년의 흐린 겨울 낮, 여섯 명의 꼬마들이 한 줄로 선 오래된 사진. 내 나이 열 살 때다. 강원도 삼척 정라진 방파제에서 육촌들, 사촌들 키대로 쪼로록 줄 서 사진을 찍었던 그날. 나는 그때만 해도 테트라포드를 잘도 뛰어다니던 꼬마였다. 나는 그 여섯 명 꼬마들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머리가 하도 빠져 이젠 아예 민머리로 밀어버린 육촌오빠는 일찌감치 호주 이민을 가 회계사가 되었다. 이민은 생각도 않고 유학길에 오른 것이었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오빠는 아담한 타운하우스 마당에 앉아 "내가 이렇게 살 줄 몰랐는데." 아주 살풋 웃으며 내게 말했는데 그것만도 이미 십오 년 전이다. 육촌언니도 오빠를 따라 호주로 이민을 갔다. 교민들을 상대로 하는 미용실이 잘 된단다. 엄마가 임신했을 때 보약을 먹으면 딸 몸매가 자신처럼 되고 만다며, 보약 먹는 임산부들을 최고로 미워했던 육촌언니는 결혼식 날 고모에게 혼이 났다. "미치겠네, 진짜로. 야, 너는 웨딩드레스를 입으려면 다이어트를 해도 모자랄 판에 혼전임신까지 하면 어떡허니? 니가 제정신이니?" 육촌언니는 그때 만삭이기까지 했다. 언니는 얼마 전 딸의 유치원 졸업사진을 보내왔는데,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나는 그 아이가 선생님인 줄로만 알았다. 백인 아이들 사이에서도 우람한 덩치로 단연 돋보였다. 그러고 보면 꼭 당숙모가 임신 중에 보약을 먹어서 언니 몸매가 그렇게 된 것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우리 언니는 이제야 마음을 다 비웠다. 언니의 큰아들, 그러니까 내 큰조카는 인서울 입시에 실패했다. 요란한 사춘기도 없이 얌전히 공부만 했는데 그냥저냥 한 지방대에 아들을 보내려니 마음이 오래 쓰라렸던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논술학원비가 제일 아깝네. 꽤 많이 썼는데." 언니가 웅얼거리기에 내가 한마디 했다. "그거라도 했으니 대학 간 거 아냐. 미련 버려." 언니가 대답했다. "그 대학, 논술 안 봤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조카는 신이 났다. 하도 놀아 살이 다 빠졌단다. 안 그래도 말라깽이라 외할머니의 걱정이 늘어지는 판에 살이 빠지다니. 전화라도 걸어 좀 작작 놀라고 해야 하나. 동갑내기 사촌은 이 사진을 보내며 내 딸의 옷 사이즈를 물었다. 손으로 직접 만든 옷을 보내주겠단다. 사서 보낸단 말인 줄 알고 "됐거든!" 거절했지만 만든 거라기에 냉큼 주소까지 불렀다. 원피스나 앞치마를 손수 만드는 사람은 봤지만 티셔츠를 직접 만든다니. 엄마가 머리를 하도 잡아당겨 묶어주는 바람에 그날 나는 좀 골이 났었다. 사진 속 까만 반코트와 빨간 부츠, 아직도 생각난다. 포항 대도국민학교 3학년 2반 반장이었던 나는, 나에게 밀려 부반장이 된 남자아이의 심통을 견디느라 열살이 꽤 고되었다. 학급회의 진행도 자기가 하겠다며 고집을 피워대던 그 녀석은 잘 살고 있으려나. 꼬맹이 사촌동생은 키가 어마어마하게 커졌고 마지막으로 본 게 내 딸이 갓난아기였을 때인데, 그때 나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누나, 이제 4년을 뼈 빠지게 키워도 겨우 얘만큼 되는 거야." 그러면서 자기 아들을 가리켰다. 녀석의 네 살 아들은 모두의 혼을 빼놓고 있는 중이었다.우리는 방파제를 뛰어놀다 우리 할머니의 구멍가게로 몰려가 아이스케키 통을 열고 쭈쭈바를 훔쳐먹었고 베지밀도 빼돌렸다. 할머니는 동네 할머니들과 가겟방에 모여앉아 고스톱을 쳤고 아빠는 작은아빠를 따라 부두로 나가 생새우와 오징어를 사왔다. 외팔이 아저씨가 끌어주는 나룻배 삯은 20원이어서 우리는 어른들을 졸라 계속 돈을 타냈다. 정라진에 살고 있는 육촌들과 사촌들은 매일 타는 나룻배를 시시해했지만 언니와 나는 타도 타도 신이 났다. 외팔이 아저씨의 갈고리를 보는 것은 조금 무서웠지만 말이다. 큰엄마는 골뱅이를 솥에 가득 삶았고 엄마는 삶은 옥수수를 식히느라 부채질을 했다. 어느 집에선가 할머니들이 계속 나타나 감자떡을 가져다주고 강냉이죽을 가져다주었다. 하나같이 맛이 없는 것들이어서 나는 생새우만 까먹었다. 파도가 많이 치는 날, 작은아빠네 집 마당에서 놀다 보면 담을 넘어온 파도가 우리의 작은 머리통 위에서 산산이 부서지기도 했다. 그래서 해가 질 무렵이면 우리의 얼굴에서는 늘 짠 내가 났다. 아아, 나는 제대로 깡촌 출신인가 보다. 사진 한 장에 그 풍경이 이토록 그리운 걸 보면./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19-01-31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부석사, 무량수전과 삼층석탑

신라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명찰지형따라 훤히 드러난 능선에 자리깨우침 스스로 찾아보라는듯 무심석탑에 마음 두고 머물고 싶었는데답조차 못 얻은채 걸음만 천근만근서두를 걸 그랬다. 날은 어두워지고 산속 낯선 길 위로 눈발이 유령처럼 흩날린다. 기온은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고 어떻게든 눈을 피해야 하는데 갈수록 산은 높아지고 쌓인 눈만큼 길은 미끄럽다. 사륜구동을 믿어보지만 브레이크에 살짝 발만 올려도 차는 춤을 춘다. 그렇게 크고 작은 고개를 몇 개나 넘었지만 대책이 없다. 이럴 땐 전진하는 수밖에. 첩첩산중이라 차들은 끊기고 휘어진 고개는 쌓인 눈으로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으니 긴장감은 극대화된다. 이럴 때 마음 상태는 짜릿한 공포와 야릇한 희열이 동반되기 마련인데 나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한파주의보에 눈이 쌓인 미끄러운 시골 밤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온몸으로 알았기 때문이다.두 번째 방문하는 부석사는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입장이 가능했다. 어느 해 여름에 갔었고 이번에는 그와 반대인 한겨울이다. 내륙이고 오지이긴 하지만 몇 구간을 제외하면 도처에 고속도로가 연결되어있어 전에 비해 거리와 시간이 단축된 건 사실이다. 소백산 자락에 자리 잡은 부석사(浮石寺)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무량수전이 있고 그 뒤로 3층 석탑, 배흘림기둥, 당간지주, 아미타여래좌상, 석등, 선묘각과 부석, 안양루, 범종각, 원융국사비 등등 국보급 보물이 보관되어있는 고찰이다. 불교에서 산에 사찰을 세우는 걸 두고 '산을 연다'는 의미로 '개산(開山)한다'고 했던가. 대부분의 사찰은 깊은 산속에 숨어있기 마련이지만 부석사는 지형을 따라 사찰건물이 훤히 드러나는 산능선을 따라 길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특성이다. 특히 무량수전 뒤 대형바위와 우람한 거목들은 사찰의 연륜을 말하는 듯하다. 봄여름가을은 숲이 우람해 볼만할 테지만 지금처럼 겨울에 찾아와 다른 계절을 상상하는 것도 여행의 맛이다. 신라의 삼국통일기인 676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는 당나라 종남산 화엄사에서 지엄을 스승으로 모시고 불도를 닦은 의상이 당나라가 신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하고자 돌아온 뒤 여러 해 전국을 다니던 중 마침내 이곳을 수도처로 정했다고 한다. 이름에 걸맞게 부석사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명찰이다. 이는 창건 의지가 분명하고, 그 터와 1천300년을 넘게 지켜온 가람이 종교적 신념을 고스란히 받들어 지금까지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무량수전과 조사당은 고려시대의 건축물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축사에서 시조격에 해당하지만 너무 협소하고 낡아 1916년 해체 수리하였고, 무량수전 서쪽에 있던 취원루를 동쪽으로 옮기면서 취현암이라 부른다. 그 후 전체 사역을 정비하면서 일주문과 천왕문, 승당 등을 신축하였고 근래에는 유물각을 개수 유물전시각으로 새 단장을 했다.특히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기둥 3분의 1높이가 제일 굵고 위는 아래보다 가늘다. 기둥에 배흘림을 두는 것은 구조상의 안정과 착시현상을 교정하기 위한 심미적인 착상에서 나온 기법으로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이미 기둥의 배흘림이 나타나며 부석사 무량수전은 그 시대 대표적 건물로 손꼽힌다)은 눈여겨 볼만하다. 또한 부석사 경내는 9세기 전의 것으로 보이는 대석단을 비롯 아름다운 석물들이 많지만 그 중 무량수전 앞마당의 석등은 절 초입의 당간지주와 함께 미적 감각이 빼어나다. 내가 특별히 마음을 담아 보았던 것은 무량수전 동쪽 산 아래 자리를 잡은 세월의 무게를 못 이겨 각 면과 모서리가 마모된 삼층석탑이다. 석탑을 돌며 무량수전과 첩첩 소백산 능선을 바라보노라니 그때서야 마음이 차분해진다. 스님이 계시면 삼층석탑에 대한 전설 한자락 청하고 싶었으나 무량수전도 문이 닫히고 염불소리도 없는 부석사는 내게 깨우침을 얻고 싶다면 스스로 찾아보라는 듯 무심하기만 하다. 삼층 석탑에 마음 내려놓고 오래 머물고 싶었는데 나는 오늘의 화두에 작은 답조차 얻지 못한 채 절을 나와야만 했다. 갈 길은 먼데 무엇이 그토록 가슴을 짓누르는지 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19-01-24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갈라파고스에 희망은 없다

승차 공유·애플 뮤직·구글 지도든기존 사업자가 자신 이익 유지위해'스타트업' 견제하는것은 배척돼야스스로 새로운 환경 거부함으로써도태될 위험성 키우는 '자해행위'나는 해외여행을 비교적 자주 하는 편이다. 전문 여행작가라기엔 미흡하지만, 여행 결과를 책으로 묶어 작년에 '모로코'와 '발칸' 두 권을 출판했고, 곧 '미얀마'와 '독일'이 나온다.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개별 자유여행이다 보니 많은 걸 준비해야 한다. 가는 나라의 숙소와 교통 정보를 미리 잘 챙겨두어야 한다. 이럴 때 큰 도움을 받는 몇 가지가 있다. 예컨대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현지에서 길 안내는 '구글 지도'를 많이 이용한다. 긴급히 이동할 땐 '우버 택시'를 부르고, 빈 시간에 음악은 '애플뮤직'을 듣는다. 이들은 세계 어디에서든 이용 방법이 같으므로 이방인인 내게 더없이 편리한 도구이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모두 불편하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숙소를 어떻게 구하고, 어떻게 렌터카를 빌려 운전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불가능하기야 않겠지만 매우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에어비앤비'는 도심지역에만 제한적으로 열리고, '구글 지도'는 도저히 쓰지 못할 만큼 서비스가 엉망이며, '우버 택시' 같은 건 아예 없다. '애플뮤직'은 국내계정과 외국계정 사이에 차별을 두어, 미국에서 들을 수 있는 한국 가요를 오히려 한국에선 들을 수 없게 막아놓았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한때 우리는 자신을 'IT 강국'이라 불렀다. 하지만 소위 '4차산업' 시대로 드는 지금, 우리나라는 앞으로 가기는커녕 제자리에 멈춘 듯 보인다. 좀 업신여기던 중국이나 동남아 등이 빠른 걸음으로 질러가고 있으니,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면, 나는 가끔 중국의 '알리익스프레스'라는 인터넷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곤 하는데, 결제 과정이 너무나 간단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물건을 고르고 구매를 클릭하면 한 번에 주문이 끝난다. 또, 작년 말레이시아에 가보니 '그랩'이라는 승차공유 서비스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냥 휴대폰 앱을 통해 클릭 한 번에 차를 부를 수가 있다.얼마 전, 유치원 운영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한유총'의 집단 저항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국민 절대다수가 잘못을 고치라고 분노하지만, 그들은 조직적으로 막아서며 오래 누려온 이익을 절대 놓으려 하지 않는다. '새로운 유치원법'을 주도했던 한 국회의원은 "소수 정예 100명이 일반인 1만 명을 너끈히 감당하는 사태이다. 특정 이익집단의 '진지전'을 당해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는데, 이 말이 실감 난다. 이는 '카카오T'의 카풀 서비스가 택시기사의 집단 반발에 막혀 좌절된 것과 궤를 같이한다.승차공유뿐 아니라 애플뮤직이든 구글 지도든, 기존의 지배적 사업자가 자신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스타트업'을 짓누르는 행태는 철저히 배척되어야 한다.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이들 사업자를 오래 배 불려준 일반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소비자에 대한 배신이며 국민에 대한 도전이다. 나아가 이들 기업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거부함으로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기회를 버리고 스스로 도태될 위험을 키운다는 점에서 일종의 '자해행위'이기도 하다. 변화는 누구에게나 두렵고 힘든 것, 기술의 발전은 사회와 사람을 빠르게 바꾸는데, 이에 맞추지 못해 망한 기업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건 단순히 기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와 국가의 성장-발전-쇠퇴의 과정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한유총은 국민의 0.008%인데도 싸움에서 '판정승'을 거두었고, 택시기사는 국민의 0.2%인데도 불구하고 소비자와 싸움에서 '잠정 승리'를 거머쥔 것 같다. 결국 이런 결말은, 지금 분명 잘못이 있지만, 고치지 말고 그냥 쭉 가자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소비자가 피해를 보든 말든, 이대로 영원히! 4차산업의 문턱에서 사회가 쓰러지든 말든, 이대로 영원히! 그들은 당장은 편안함을 느끼겠지만, 그 뒤 더 큰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는 걸 과연 모르는 걸까. 갈라파고스에 갇혀 있는 한, 희망은 없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19-01-17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나의 동네 친구들

예전엔 가게 주인이 알아보면 불편자주 가다보니 인사 나누는 사이로인천 역외소비율 52.8% '전국 최고'동네로 여기는 사람 많아져야 해결친구 가게 자주 팔아주고 싶을테니김치가 잔뜩 생겼다. 자주 가는 술집 사장님의 특별 서비스다. 김장 담그는 김에 총각김치 좋아하는 게 생각나서 따로 담그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다니 염치 불고하고 넙죽 받아왔다. 아삭아삭한 총각김치에 알맞게 익은 배추김치까지 냉장고가 꽉 찬다. 옛날 어른들이 겨울나기를 준비하면서 쌀과 연탄을 들여놓고 김장까지 하고 나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고 하던데, 쉽게 김치를 사 먹을 수 있는 요즘인데도 사 먹는 김치와 달리 마음이 든든하다. 라면 하나를 끓여 먹을 때도 김치를 두 종류나 놓고 먹을 수 있으니 건강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워낙 김치가 맛있기도 하지만 일부러 생각해서 김치를 더 담가 나눠주신 그 마음 씀씀이 덕분이다. 자주 들르는 식당 사장님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나저나 잘 지내시나? 못 본 지 오래됐음~"이라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다음날 겸사겸사 저녁을 먹으러 갔더니 시킨 메뉴 외에도 김치전이 한 접시 나오고, 밥을 다 먹어가니까 마카롱을 서비스로 주신다. 오랜만에 갔더니 할 이야기도 많다. 주위에 새로 연 가게 때문에 애먹은 이야기며, 어디 식당 주인이 바뀌었다더라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동시에 새로운 동네 소식도 듣게 된다. 회사가 중구로 이사 온 지 벌써 10년, 처음에는 백반집만 가득한 동네 분위기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메뉴판에 없는 술을 특별히 내주는 가게도 있고, 얼굴도장만으로 외상을 할 수 있는 가게도 생겼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예전에는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기는커녕 주인이 아는 척하는 것조차 불편했다. 김애란의 소설 '나는 편의점에 간다' 속 주인공처럼 말이다. 그녀는 물건을 사러 갈 때마다 말을 걸어오는 편의점 사장이 불편해 아예 발길을 끊어버린다. 대신 꼭 필요한 말만 건네는 알바생이 있고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큐마트를 애용한다. 내가 누군가를 만날 때 "같이 온 사람은 누구냐"고 묻는 동네 카페 대신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 하면 그만인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를 애용했던 것처럼….이런 변화에 극적인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동네에 있다 보니 자주 가는 가게가 생겼고 그러다 보니 주인과 자연스럽게 안면을 트고 인사를 나누면서 '아는 사람'이 '동네 친구'가 된 것 뿐이다. 아무리 자주 가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알바생이 바뀌면 그만인 프랜차이즈가 대부분이던 구월동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던 '동네 가게' 인심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정작 사는 동네에서는 알고 지내는 가게 주인 한 명 없지만, 신포동이 '동네'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동네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천 사람들이 인천 밖에서 돈을 쓰는 비율인 역외소비율이 52.8%로 전국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인천에서의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인천e음카드'를 만들고 홍보도 한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관건은 인천을 동네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가까이에 있어서 편하게 자주 들를 수 있고,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동네 친구가 운영하는 가게가 있다면 자주 가서 팔아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꼭 인천에 거주하고 있지 않더라도 인천을 동네라고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더 좋겠다. 중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돈을 쓰고 사람을 만나고 있지만 나처럼 여기서 직장을 다니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은 중구 구민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산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동네'란 무엇인지 여전히 생각해볼 지점이 많다는 이야기다. 인천의 민선 7기 시정 슬로건이 '살고 싶은 도시, 함께 만드는 인천'이라고 한다. 살고 싶은 도시야말로 혼자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꽤 괜찮은 느낌이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의 풍요로움에서 행복을 느낀다"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중요한 것은 맛있는 것을 나눠 먹으며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의 존재라는 주위 어른들의 충고가 새록새록 하다. '오지랖' 대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동네 친구들과 올해는 또 어떤 일상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일단 오늘 저녁에 술과 음식만이 아닌 주인장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네 친구'의 가게에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해야겠다./정지은 문화평론가정지은 문화평론가

2019-01-10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눈물과 정한의 시인 박용래

결혼 1년 안돼 세상 뜬 그리운 누님그에게 세상은 '눈물·정한' 반반씩한국전쟁 이후 정신적 폐허의 시대허무·감각주의 극복 작품세계 영향자연·생명에 대한 연민 '詩 형상화'강경은 금강유역에 자리잡은 소읍이다. 강경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옥녀봉이다. 옥녀봉에서 바라보면 시인이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던 중앙동은 바로 코앞이다. 우람한 느티나무도 갈잎을 다 버리고 홀로 우뚝하다. 시인이 홍래 누님의 등에 업히거나 손을 잡고 올랐던 이곳 옥녀봉을 자주 찾았던 것은 아리고 서러운 기억 때문이다. 홍래 누님은 스물여덟이던가 아홉, 선창에 비 뿌리던 날, 강 건넛마을로 시집을 갔다. 누님은 시집가서 1년도 못돼 세상을 떠났다. 산후 출혈 때문이었다. 아름답고 따뜻했던 누님은 시인의 이상형이었다. 시인은 여기서 금강을 바라보며, 너른 평야를 건너다보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짐작된다.그처럼 눈물 많던 시인이 박용래(1925~1980)다. 그는 강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은행에 취직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퇴사하고 교직의 길로 들어섰다. 1965년, 송악중학교를 사직하고 받은 퇴직금으로 대전 오류동에 마련한 집에서 타계할 때까지 살았다. 대문 옆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어 당호를 청시사(靑枾舍)라 했다. 청시사를 찾았던 시인 묵객들이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 지인들을 맞아 막걸리를 마시면서도 박용래는 울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그의 눈물이었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인간의 손이 안 탄 것,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스스로 오래된 것 등이 그의 눈물샘이었으니 세상의 반은 눈물이고 세상의 반은 정한이었다. 박용래의 작품세계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폐허의 시대에 허무주의와 감각주의를 극복하는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반문명, 반사회, 반현실적인 것들을 시적 기반으로 삼았으며 자연과 생명에 대한 연민을 시로 형상화하는 데 생을 바친 시인이다. '저녁눈'은 그의 시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말굽 밑에 붐비다//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는 각운이 '붐비다'로 풍성하고 분주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그게 저녁 때 오는 펄펄한 눈발 때문이어서 더 붐비고 풍성한 것이다. 내일이면 밀려올 장꾼들을 맞기 위해 분주했던 객주집의 풍경일 수도 있다.삶 속에서 그의 뉘우침은 연보라 오동꽃을 우러러 나타난다. 회고지향의 정서 속에 쓰인 뉘우침의 작품이 '담장'이다. '오동(梧桐)꽃 우러르면 함부로 노(怒)한 일 뉘우쳐진다./잊었던 무덤 생각난다./검정 치마, 흰 저고리, 옆 가르마, 젊어 죽은 홍래(鴻來)누이 생각도 난다/오동꽃 우러르면 담장에 떠는 아슴한 대낮./발등에 지는 더디고 느린 원뢰(遠雷).'를 읽노라면 먼 우렛소리 들리는 듯하고 젊어 죽은 홍래 누이의 검정 치마와 흰 저고리와 옆 가르마가 보이는 듯하고 누이에게 함부로 노했던 일을 뉘우치는 시인의 처연한 모습이 보인다.'구절초' 또한 누이의 이미지로 가득 찬 작품이다.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 먹던 기억/여학생이 부르면 마거리트/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여우가 우는 추분(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는 구절초의 청초한 이미지에 누이의 애닳고도 아련한 기억을 투사한 작품이다. 구절초 매디매디에 나부끼는 누이의 모습은 고향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구절초처럼 그의 기억 어느 곳에나 무더기로 살아 있었을 것이다. 누이의 여름 모자챙에 숨어 있던 꽃이었을 것이고 가을이 오는 길목에 매디매디 눈물로 비친 누이의 꽃이었을 것이다. 가족사는 누구에게나 슬픔이다. 가을의 길목에 피는 구절초처럼./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19-01-03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시작할 수 없다

마음 잡고 희망가져야 한다는 말 대신하루하루 보통의 삶 사는게 중요하고충분하다고 누군가 말해 줬으면…실패후 천천히 일어서려는 것도결국 잘 살아보려고 하는 마음인데캐럴이 흐르는 커피숍에서 이 글을 쓴다. 테이블마다 삼삼오오 모여앉은 사람들은 뭔가 재미난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소리 높여 웃는다. 연말의 알 수 없는 열기는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에도 한동안 계속되는 것 같다. 아침에 본 TV 뉴스 화면에는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이 비췄다.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의 크리스마스는 1월 7일. 각종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된 광장에 선 한 시민은 홍조를 띤 얼굴로 "벌써 새해가 온 것 같아요. 이 설렘을 그대로 안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새해, 새날, 새로운 뭔가를 기대하는 마음. 순수함과 온화함으로 한껏 부푼 날들. 그러나 나는 이런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특별한 목표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아울러 새해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해'라는 말을. 그 말에 담긴 순결하고 간절한 이미지가 불편해서다. 새것, 깨끗한 것, 그러므로 더럽혀지기 쉽고 깨지기 쉬운 것을 생각하는 일은 그 자체로 조금 괴롭다. 올해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취직을 해야지, 담배를 끊어야지 결심하며 생활을 돌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역시 망쳐버렸군, 재빨리 체념함으로써 안정을 되찾는 사람도 있다. 내가 바로 후자다. 새해가 새해로서의 정자세를 유지하려 안간힘 쓰는 것을 나는 좀처럼 견디지 못한다.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밤이면, 나는 주로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한다. 그러니까 가장 사소하고 하찮은 뭔가로 그 시간을 서둘러 보내버린다. 일찌감치 자리 깔고 누워 요란하게 꾸민 '연예대상'이나 '연기대상'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새해 첫날에는 여느 휴일과 다름없이 늦잠을 자고, 점심 무렵 느릿느릿 일어나 인스턴트 몇 가지로 '아점'을 해결한다. 이는 과장이나 꾸밈없이 새날을 시작하는, 아니 새날을 잊는 나만의 요령 같은 것이다. 이렇게 새해에 깃든 강박을 깨부순 뒤에야 비로소 나는 늘 하던 일에, 늘 하던 방식으로 몰두할 수 있다.언제부터 이런 식의 마음을 갖게 되었는가 하면, 잘 모르겠다. 처음부터 새해를 기피(?)한 것은 아닐 텐데. 더듬어보면 한때 나는 새해를 맞는 의식에 제법 적극 동참한 적도 있었다. 스물한 살 되던 해에는 타종 행사를 보기 위해 친구들과 보신각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지금에 와 그때 그 타종 소리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종각역의 넘쳐나는 인파에 밀려 계단에서 신발이 벗겨졌는데 그걸 찾느라 한참 동안 바닥을 기었던 일이 떠오른다. 행사가 끝난 후 쓰레기로 뒤덮인 종로 거리를 걷던 일. 바가지요금 때문에 폴라로이드 사진사와 실랑이를 벌이던 일. 진저리를 치고는 두 번 다시 그런 데는 가지 않았다. 그보다 더 어릴 적에는 용꿈을 꾼 일도 있었다. 새해 첫날 꿈에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오르는 용을 본 뒤 한동안 막연한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후 행운이라 할 만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기억하건대 그해 우리 가족은 도리어 집을 잃고 쫓기듯 먼 도시로 이사를 했다. 이런 일들은 이제 그저 우스꽝스러운 이야깃거리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새해가 뭐 별거냐. 그저 오늘의 내일 아니겠냐"하는 식의 상투적인 말로 끝나고는 한다.때로는 누군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아니라도 괜찮다고. 그런 마음 없이도 그럭저럭 살 수 있다고. 때가 되면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내고, 희망을 불러야 한다는 말 대신. 그냥 보통의 하루하루를 사는 일이 중요하다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렇다면 나도 흔쾌히 대꾸할 것이다. 실은 공허한 꿈, 헛된 약속이 아니라 시시로 도래하는 어떤 실패를 애정한다고. 실패 후에 천천히 일어서는 일을. 결국, 이 또한 잘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임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연말이든 연시든 아랑곳 없이 마감은 마감이다. 앞에 둔 노트북의 빈 한글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본다. 잘 쓰고 싶은 열망. 이런 열망이 가득한 채로는 언제나 그렇듯 단 한 줄도 시작할 수 없는 것이다./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8-12-27 박소란

[풍경이 있는 에세이]할머니와 겅중겅중

아파트서 전철역까지 꼭 15분 거리서둘러 눈길 걷다 할머니에 발밟혀딸네 다녀간다 뒤따르며 이야기꽃뛰어봤자 빙판길 겅중겅중 모양새결국 열차 나란히 앉아 차창밖 감회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선 뒤 전철역 승강장에 서기까지 꼭 15분이 걸린다. 이 계산은 딱 맞아떨어져야만 한다. 전철의 배차시간은 20분이다. 자칫 놓쳤다가는 20분을 날려먹고 만다.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아차, 싶었다. 지난밤 눈이 왔단 걸 깜박했기 때문이었다. 5분쯤 미리 나올 것을. 나는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눈은 대부분 녹았지만 응달진 곳마다 새하얀 빙판이었다.이른 아침, 동네는 조용했다. 할머니 한 분을 급히 앞서가려다 발을 밟혔다. "아이고야, 왜 그렇게 뒤에 바짝 붙었댜? 안 아퍼?" "아뇨, 괜찮습니다."나는 할머니를 앞서 조금 더 속도를 냈다. 뒤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딸네 집에 다녀가는 거여."뒤를 돌아보았다. 나뿐이다. "아이고, 집을 얼매나 잘 지어놨는지 나오기 싫더라고. 마당도 있고 1층은 딸네 부부 살고 2층엔 손자가 살어. 3층에도 또 누가 살어."아파트 단지 곁의 상가주택을 말하는 건가. 대꾸를 하고 싶었지만 나는 늦었다. 네에네에, 잠깐 대답한 후 나는 뛰기 시작했다. 뛰어봐야 빙판길이었으므로 겅중겅중하는 모양새였지만. "보일러를 얼마 안 땠는데도 바닥이 절절 끓어야. 아이고, 좋더만. 인테리어 하는 데에 돈을 엄청 썼대."돌아보니 할머니도 뛰고 있다. 역시 할머니도 겅중겅중. 네에, 나는 웃어 보이고서 다시 뛰었다. "호주머니에서 손 빼! 다치면 어쩔라고 그래. 얼른 손 빼야!"네에, 나는 손을 빼고 뛰었다. 속도를 더 내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나에게 계속 말을 붙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쩌지. 늦었는데. "우리 영감이 수도국에 댕겼어. 그래서 딸들을 다 공부시켰어. 공부도 얼매나 잘했는지 몰라. 그러니까 잘 살지. 집도 절절 끓고. 우리 영감이 그건 잘했지. 공부시킨 거."키가 작은 할머니는 계속 뛴다. 겅중겅중. 등에 매달린 작은 배낭이 흔들리고 눈이 그친 토요일 오전은 그리 춥지 않았다."호주머니서 손 빼라니까!" 언제 또 내가 손을 넣었나. 냉큼 손을 뺐다. 할머니와 나는 길고 하얀 오솔길을 일렬로 뛰고 있었다. (진짜 오솔길이다. 아직 개발이 덜 된 우리 동네는 아파트단지와 전철역이 전부다.) 숨이 턱턱 닿도록 뛰지도 않고 그렇다고 느긋하게 걷지도 않고 겅중겅중. 내 숄더백이 흔들리고 할머니의 배낭이 흔들리고."나는 모란시장으로 가는디." 나는 모란시장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 "모란시장 안 가봐서……" "전철 타믄 금방인가?" "저는 잘……" 계속 이럴 수는 없었다. 나는 전철을 놓칠지도 몰랐다. 눈 딱 감고 속도를 냈다. 할머니가 또 불러세울까봐 호주머니에 손을 뺀 걸 다시 확인하고 빠르게 뛰었다. 이제 횡단보도를 건너면 역이었다.헉헉. 신호등 앞에서 숨을 몰아쉬는데 할머니의 목소리다. "뛰믄 뭘해. 빨간불인데." 빠르게 뛰나 겅중겅중 뛰나 빨간불이었다. 나는 할머니와 나란히 서서 초록불을 기다렸다. "인테리어는 하고 들어갔어?" "아뇨." "왜, 새 집인데 돈 좀 들이지?" "그냥 할 것도 별로 없고……" "전세야?"초록불이 켜졌다. 이번에야말로 뛸 때다. 4분 남았다. 혼자 사라지기 미안해 할머니에게 당부를 했다. "4분 남았거든요. 이거 놓치면 20분 기다려야 해요. 빨리 뛰세요." 이번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얼지 않은 바닥을 골라 디디며 역 앞 주차장을 지나 승강장으로 뛰어들어갔다. 열차가 들어서기 직전이었다. 숨을 몰아쉬며 기다리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패딩점퍼의 모자를 톡톡 건드렸다. "전세 아니믄 인테리어 한 번 싹 해봐. 집이 아주 번쩍번쩍해져."할머니였다. 곧 열차가 도착했고 할머니와 나는 나란히 앉았다. 열차 차창 밖으로 할머니와 내가 뛰어온 오솔길이 고스란히 보였다. 저 긴 길을 우리가 줄 서서 뛰어왔구나. 겅중겅중. 아직 2년밖에 안 된 새 집이라 인테리어 할 일은 없는데. 나는 할머니의 딸네 집 실크벽지 자랑을 들으며 모란시장엘 가려면 어느 역에서 갈아타는지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았다./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18-12-20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등명락가사, 대관령 옛길을 따라

괘방산 자락 중턱에 자리한 사찰평일이라 스님도 불자도 안 보이고목탁소리 없이 고즈넉하기만정동진 해 지는 검푸른 바다 보다가끝내 강릉 커피거리는 찾지 않았다지난 가을은 미세먼지와의 전쟁이었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런 고민에 봉착하게 되었을까. 서울경기를 벗어나 강원산골에 살면서도 미세먼지 걱정을 하게 되다니, 숲으로 산책을 나갈 때만이라도 좋은 공기를 마시고 싶은데 시야가 흐리니 쾌적한 느낌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기어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되지 않으려고 새로운 바람을 찾아 집을 나섰다.대관령 정상 해발 865m의 기념비와 표지석이 있는 자리에 서면 강릉시내와 경포호, 동해가 한눈에 펼쳐진다. 정상에 서서 찬바람에 흠뻑 취해보고 옛길을 따라 대관령고개를 넘는다. 낙차가 심해 구비가 급하고 아기자기한 길을 들자면 이 길만 한 곳도 없으리라. 가는 길에 노송이 아름다운 사찰 보광사로 향하는 표지판이 유혹을 했으나 바다가 그리웠으므로 나는 등명락가사로 향한다.대관령을 내려와 남강릉 IC를 벗어나 다시 동남쪽 우회도로를 진입한다. 푸른 바다를 보니 절로 가슴이 열리고 호흡이 후련해진다. 바닷길로 들어서서 얼마 안 가 휴게소와 연결되어있는 통일공원에 잠시 정차했다. 이 길을 갈 때마다 쉬어가는 곳으로 언덕 위에서 푸른 동해를 관망할 수 있는 이곳은 에메랄드 빛 바다를 조망하기 좋은 첫 번째 유혹의 장소다. 차 한 잔으로 휴식을 취한 후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있을 등명락가사는 강릉의 동남쪽 임해자연휴양림을 지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 산중턱에 포근히 자리를 잡고 있다.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느긋한 경사면을 걸어올라 사찰에 닿으니 뒤로는 괘방산자락이 앞으로는 푸른 동해가 펼쳐져 시야가 트여 날 듯한 기분이다.경포대나 오죽헌은 말할 것도 없지만 강릉 하면 지방 특유의 문화유적이 있는데 객사문, 칠사당, 강릉 향교를 꼽을 수 있다. 객사문은 중앙의 관리가 지방 출장 시 이용하던 숙박시설이며, 칠사당은 관찰사나 원이 백성을 다스리던 관아였고, 강릉 향교는 성균관 입성 전 지방 유학생이 거쳐야 할 일종의 교육기관이었다. 객사문과 칠사당이 남아 있는 용강동과 명주동은 지금도 행정의 중심지이며, 강릉 향교는 명륜고등학교 안에 있다. 다음으론 불교 문화재로 보현사와 굴산사터, 신복사터, 한송사터 같은 사찰 및 절터가 대표적인데, 특히 굴산사터의 당간지주는 국내에 현존하는 당간지주 중 최고다. 그 큰 돌을 거침없이 다룬 솜씨는 볼 때마다 놀랍다. 신복사터, 한송사터에 있는 석탑과 석불좌상은 강릉 지방에서만 볼 수 있다.등명락가사는 괘방산 중턱에 있는 사찰로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절을 짓고 이름을 수다사라 했다. 고려시대에는 등명사가 중창되어 많은 스님들이 수행 정진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 초기에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한양에서 정동에 위치한 등명사는 유생들의 상소에 의하여 폐사되었다고 한다. 그 후 낙가사란 이름으로 암자를 짓고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오늘날 등명락가사가 되었다. 명사 오층석탑이 연화무늬로 장식된 기단 위에 세워져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으며, 또한 수중사리 탑이 바다에 모셔져 있다는 설이 전해져 오기도 한다. 짧은 해 때문인지 평일 오후라 그런지 법당엔 경을 읽는 스님도 절하는 불자도 없고 뜰도 휑하니 비어 있다.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는 있는데 사찰에 목탁소리가 없으니 고즈넉하기보다 허전하기 짝이 없다. 대관령 옛구비를 설레는 마음으로 내려가 그곳에 서면 뭔가 위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스산하고 쓸쓸하기만 할 뿐. 나는 홀로 절마당을 서성거리다 바닷바람에 옷깃을 여미고는 발길을 돌린다. 거기서 남으로 조금만 더 가면 영화 모래시계로 유명한 정동진이다. 정동진은 예전에 친구와 청량리에서 밤새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달리고 달려 새벽에 정동진역에 내려 한 해의 첫 일출을 보던 명소다. 그때의 낭만은 사라지고 없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모래시계를 상상하며 정동진으로 모여든다. 강릉 하면 이제 여행자들은 커피거리를 가장 먼저 떠올리며 맛있는 커피 한 잔을 음미하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먼 길 마다않고 달려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나는 정동진에서 해가 저무는 검푸른 바다를 한동안 바라보다 저녁을 맞았고 끝내 커피거리는 찾아가지 않았다. 대신 초당으로 가 따끈한 순두부로 언 몸을 녹이고 대관령으로 되돌아왔다. 등명락가사도 강릉바다도 모두 그대로 두고./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18-12-13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영어 문항이 불편하다

독해하면 영어 잘할 수 있는 걸까?의사소통력 향상 목표와 거리 멀어배우는 근본 목적 다시 생각해 봐야'수능: 한국에 침묵이 가라앉는 날'BBC기사 '괴상한 시험' 의미심장지난달 치른 수학능력평가의 결과가 학생들에게 통보되었다. 수능이 끝나고 나면 늘 말이 많은데, 올해는 너무 어렵게 출제되어 소위 '불수능'이라 떠드는 걸 들었다. 문제가 조금만 쉬우면 '물수능'이라고, 조금만 어려우면 '불수능'이라고 비난한다. 물과 불의 그 가운데 절묘한 수준을 예측해 문제를 내는 게 과연 가능할까? 아니 그런 가운데 지점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문제 난이도란 상대적이어서 출제자뿐 아니라 수험생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 국제적 공신력을 가진 토익 같은 경우, 전체 수험생의 성적을 상대평가로 재배열하여 점수를 부여한다. 수능에서 등급을 도입한 것도 마찬가지이다.이번에 난도가 높다고 지적받은 영어 문항을 관심 있게 읽어보았다. 학생들이 낯설어하는 과학철학 사고 과정을 다루는 지문이었다. 그런데 어휘가 다소 어렵고 문장이 길어서 그렇지, 문제 자체는 쉬운 것이었다. 나는 영어 선생으로 현장에 있을 때 이런 유형의 문제를 수없이 보았고 또 학생들에게 대처 방법을 가르쳤는데, 아직도 그 유형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출제된다는 데 우선 놀랐다. 더구나 이런 지문을 읽어냈다고 해서, 이게 수험생의 영어 능력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지 사뭇 의심스러웠다. 이걸 독해하면 영어를 잘하는 걸까? 영어교육의 목표는 영어를 이용해 의사소통능력을 향상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내 관점으로는 이 교육 목표와도 거리가 먼 문제 같았다.나는 이 영어 지문을 '구글' 번역기와 '파파고' 앱에 넣고 돌려보았다. 둘 다 번역이 깔끔하지 못하고 의미가 명확하지 않았지만, 대충의 뜻은 파악할 수 있었다. 그걸 독해하려면 아무리 뛰어난 실력의 학생이라 해도 1분 이상 걸릴 터인데, 스마트폰은 단 1초도 안 걸려 해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순식간에 번역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사람이 이 수준에 이르려고 초중고 12년간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여 공부하는 건 너무나 비효율적인 것 같았다. 더구나 기계는 점점 더 빠르고 정확하고 편리하게, 영어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언어를 번역할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젠 영어 교육에 대한 우리 생각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언어 교육은 말을 배우는 것이다. 즉,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단순히 문자가 아니라 그 사회의 문화까지 익히는 것이다. 글자를 읽고 그것을 우리말로 옮기는 게 물론 첫 단추이긴 하지만, 사회적 담론을 이해하지 못하면 언어는 의미를 잃는다. 예를 들어, 위 문항의 지문에 나오는 'refining ignorance'라는 어려운 어휘보다, 지하철을 어디에서는 'metro', 또 어디에서는 'tube'라고 쓰는지 아는 게 급한 것 아닐까? 아프리카계 사람을 우리나라에서는 거리낌 없이 '흑인'이라고 부르지만, 영어권에서 'black people'이라고 썼다간 심히 곤란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걸 배우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영어를 배우면서 셰익스피어나 예이츠의 작품 한두 편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영화 대사를 들으며 문어체와 구어체가 어떻게 다른지 토론해봐야 하지 않을까. 왜 영어가 지금 세계 공용어가 되었는지 그 역사를 조금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이 지점에서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근본 목적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우리나라 수능이 끝난 직후, BBC에서는 '수능: 한국에 침묵이 가라앉는 날'이라는 제목의 의미심장한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그들 눈에 우리 수능은 정말 '괴상한' 시험인 듯했다. 12년간 준비해서 하루에 평가한다고? 항공기 이착륙도 통제하고 증권시장 개장도 늦춘다고? 시험 일정에 맞춰 교회나 절에 가서 부모가 기도한다고? 겨우 2%만 들어가는 SKY에 모든 진학 희망자가 목을 맨다고? 그 대학에 들어가야 겨우 사람대접을 받는다고? 엄청난 스트레스로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에서 압도적 1위라고? 나는 이 기사의 제목이 섬뜩했다. '침묵이 가라앉는 날'에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떠올렸기 때문이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18-12-06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흔한 '구독러'의 일상

뮤직·뉴스레터·제철농산물 꾸러미…온·오프라인 '구독서비스' 즐겨취향맞춤 그림부터 기부까지 '다양''결정장애·귀차니즘' 현대인에 인기소유 욕망과 공유 사이 '갈팡질팡'출근길, 애플 뮤직과 벅스를 번갈아가며 음악을 감상하거나 구독 중인 팟캐스트를 듣는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종이 신문을 뒤적이고 각종 뉴스레터들을 체크한다. 기관 뉴스레터보다 개인들이 보내는 맞춤 뉴스레터들을 좀 더 꼼꼼히 살펴보는 편이다. 시 큐레이션 서비스 앱에서 추천해주는 시를 확인하기도 하고, 월정액 서비스로 이용 중인 전자책 앱에서 신간도 다운받는다. 퇴근 후에는 넷플릭스의 신작 미드와 왓챠플레이에서 추천하는 영화를 틈틈이 즐긴다. 2주에 한 번, 농부들이 직접 보내주는 제철 농산물 정기배송 꾸러미가 오는 날이면 뭐가 왔는지 살펴보는 즐거움도 누렸다. 바로 지난달까지는 쌀 정기 배송 서비스를 통해 두 달에 한 번씩, 지리산에서 수확해 갓 도정한 쌀을 받아먹기도 했다. 이렇게 요즘 나의 일상은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다양한 각종 구독 서비스와 함께 흘러간다. '구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신문이나 잡지, 우유를 먼저 떠올린다면 당신은 확실히 옛날 사람이다. 최근에는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말 다양한 구독 서비스들이 나와 있다. 무늬만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인 내가 이용하지 않는 구독 서비스만 해도 차고 넘친다. 유튜브 프리미엄, TV 공중파 프로그램 서비스 앱, 각종 메모리 제공 앱처럼 실용적인 서비스는 기본이다. 뭐니뭐니해도 요즘 뜨고 있는 구독 서비스는 무엇보다 '개인의 취향 저격'을 노린 종류의 것들이다. 수제 맥주와 안주 세트, 고급 와인, 커피 원두 등의 먹을거리는 물론 옷, 화장품, 향수, 면도기까지도 정기적으로 구독 가능하다. 꽃 배달이나 디자이너가 골라 보내주는 양말을 구독하는 서비스도 있다. 문화생활을 위한 구독 서비스로는 일정한 주기로 그림을 바꿔가며 빌려주는 그림 구독, 동네 서점의 신간 정기 구독, 출판사가 운영하는 북클럽, 취미(하비인더박스)와 덕질(루크 크레이트)을 위한 구독까지 순항 중이다. 사회적 문제를 구독 모델로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칫솔과 치약, 노숙인을 돕는 잡지와 소정의 기부금을 월 1만원에 제공하는 닥터 노아, 3개월마다 미혼모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구독품으로 받으면서 미혼모들의 자활을 돕는 크래프트 링크 등이 그것이다. 구독 서비스는 다양하지만 결국 선택은 고객의 몫이다. 고객들이 구독 서비스를 선택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결정 장애'자들이 많아진 요즘, 돈을 쓸 때조차 귀찮고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건 질색이기 때문에 내 시간을 절약해주는 서비스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배달 앱, 각종 유료 대행 서비스, 모바일 간편 결제 등과 함께 구독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데에는 바로 이런 '귀차니즘'을 대행해준다는 특징이 있다. 발품이나 온라인 손품을 팔지 않아도 보장된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된 셈이다. 맥주는 '비어 마스터', 꽃은 '플로리스트'처럼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추천할 만한 것'을 골라 보내주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이 보장된다. 선택해야 하는 고민은 전문가가 줄여주고, 한 번만 등록해 놓으면 정기 배송으로 번거로운 주문 절차나 매번 결제하는 수고 없이 알아서 결제가 되는 것도 편리하다. 하지만 이런 구독 서비스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바쁠 때에는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돈이 무색할 정도로 이용은커녕 그런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넘어갈 때도 있다. 뭔가를 고르고 선택하기 귀찮아서 이용하는 서비스인데 그마저도 제대로 이용하려면 그만큼의 신경을 써야 하니 이러나저러나 귀찮긴 마찬가지라는 사람들도 있다. 난 아직 구독이 주는 편리함과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에 빠져있지만, 어느 순간 이 모든 구독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간단히 해지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허무해지기도 한다. 당장은 내 것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인터넷이 끊어지는 순간 내 것이 될 수 없는, 아니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는 스트리밍 음원 서비스처럼 말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자동차마저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포르쉐 패스포트)가 등장했다고 하니 '소유'에서 '공유'로의 변화는 거스르기 어려워 보인다. 구독 서비스 덕에 공유 문화가 확장되고 있다는 해석은 아직 좀 과한 측면이 있지만, 최소한의 소유를 추구하는 '미니멀리즘'과 '소유' 대신 '공유'로 넘어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신선한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나 역시 당장은 즐거운 '구독러'로 살고 있지만, 여전히 강렬한 소유에의 욕망과 '공유'라는 대세 사이에서 갈 지(之)자 행보를 당분간은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정지은 문화평론가정지은 문화평론가

2018-11-29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연암 박지원의 통곡

'열하일기'에서 광활한 요동벌판한점 인간의 미미한 존재 깨달음세상 떠난 아내에게 바친 '도망시'신의왕후 능 관리하며 쓴 시 '재거'그의 정신적 궁핍함 담겨 마음 아파미세먼지가 보통이다 하는 날은 초미세먼지가 나쁨이란다. 우리들의 일상이 하늘에 달린 것이다. 그렇더라도 오늘은 면천의 골정지를 다녀와야 한다. 면천군은 본래 백제의 혜군이었다. 통일신라의 경덕왕 때 혜성군으로 개명했다가 조선 태종 13년에 면천군으로 개칭된, 지금의 당진시 면천면 일대의 행정구역이었다. 연암 박지원은 1797년부터 4년간 면천군수로 재직했다. 군수 부임 때 그의 나이 61세였다.연암은 농민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버려진 연못을 보수해 주변의 농경지에 용수를 공급했다. 그때 만든 연못이 '골정지'다. 연못 안에 원형의 인공섬이 있고 인공섬에 '건곤일초정(乾坤一草亭)'이라 칭한 정자가 있다.애민정신이 강했던 연암은 과학영농서인 '과농소초'와 토지개혁서인 '한민명전의'를 저술하다 지치면 골정지의 연꽃을 보며 휴식을 가졌을 것이다. 골정지 연꽃은 색색의 꽃잎이 크고 아름다워 장관을 이루었을 것이다. 정자 뒤쪽으로 향교가 있어 유생들 또한 공부에 지친 몸을 정자에 기대어 쉬며 시문을 읊었을 것이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열하일기'로 널리 알려진 문장가다. 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연을 축하하기 위해 사신으로 가는 삼종형 박명원을 수행하여 황제의 피서지인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 쓴 견문록이 '열하일기'다. 연암이 안의현감으로 재직할 때 정조는 문체를 타락시킨 저서로 '열하일기'를 지목하고 순정한 고문을 지어 올리라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1792년 다시 정조가 문체반정을 명해 연암은 순정문을 지어 임금에게 바쳤다. 연암의 문체는 당대의 현대문으로 양반사회 비판에 거침이 없었으며 사실적이어서 남인 세력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열하일기'에서 감동적인 장면은 아마도 드넓은 요동벌판을 마주하는 순간 '좋은 울음터로다. 한바탕 울어볼만 하구나.'라는 대목일 것이다. '오늘 요동벌판에 이르러 이로부터 산해관 일천이백 리까지의 어간은 사방에 도무지 한 점 산을 볼 수 없고 하늘가와 땅끝이 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 고금에 오고간 비바람만이 이 속에서 창망할 뿐이니, 이 역시 한번 통곡할 만한 자리 아니겠소'라며 울음을 터뜨리는 연암이다.울음은 인간의 칠정 중 슬픔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칠정 모두 지극하면 울음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슬픔, 기쁨, 노여움, 즐거움, 욕심, 미움, 사랑이 극에 달하거나 사무치면 울음이 터지는 것이다. 통곡 후에 오는 카타르시스를 연암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광활한 대지가 주는 감동, 그 가없는 대지에 한 점 인간의 미미한 존재를 깨닫는 순간이었을 것이다.연암은 '열하일기' 외에 '허생전' 등의 소설뿐만 아니라 곡진한 시편을 남겼다. 특히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바치는 도망시(悼亡詩)는 애절함이 가슴을 저민다. '한 침상에서 지내다가 잠시 헤어진 지가 이미 천년이나 된 듯./눈이 다하도록 먼 하늘로 돌아가는 구름 바라보네./하필이면 나중에 오작교 건너서 만나리오./은하수 서쪽 가에 달이 배처럼 떠 있네.' 이 시를 읽노라면 연암이 왜 재혼하지 않고 홀아비로 평생을 살았는지 알 것 같다. 늘 가난했던 살림살이를 견디어낸 아내, 과거시험에 번번이 낙방할 때도 실망하지 않던 아내, 누구를 원망하지 않던 아내를 위해 연암은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이다. 연암은 정조 14년, 경기도 개풍군에 있는 태조비 신의왕후의 능을 관리하는 재릉영(齊陵令)으로 임명되어 이듬해까지 재직했다. 그때 쓴 시가 '재거(齋居)'다. '한두 잔 막걸리로 혼자서 맘 달래노라/백발이 성글성글 탕건 하나 못 이기네/천년 묵은 나무 아래 황량한 집/한 글자 직함 중에도 쓸데없이 많은 능관일레/맡은 일 쥐간처럼 시시해 신경 쓸일 적다만/그래도 계륵처럼 내버리긴 아깝구려'에 이르면 그의 정신적인 궁핍함이 마음 아프다. 오늘의 젊은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당대 식자들의 등용문이며 취업문이었던 것이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18-11-22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이모티콘의 마음

메시지 주고받을 때마다 꼭 사용때로 말보다 선명하고 효과적 전달실제 표정 숨긴채 습관처럼 눌러만사에 지친 우리 기대고 싶은 것대신 감정노동하는 노고 짠해진다나는 이모티콘 애호자다.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마다 한두 개씩은 꼭 사용한다. 즐겨 쓰는 이모티콘은 대체로 이런 모습이다. 입을 헤벌리고 세상 걱정 없이 웃거나 굵직한 눈물을 쏟으며 펑펑 울거나, 두 눈에 커다란 하트를 그리거나 아니면 화를 이기지 못해 입에서 불을 뿜거나 난동을 부리며 상을 엎거나…. 곰곰 생각해보니 평소의 내게는 없다시피 한 표정, 평소의 나는 결코 하지 못할 행동 들이다. 그러나 메신저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문제 될 게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모두는 진짜 내가 아니니까. 진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가짜도 아닌, 그런 묘한 위치에 이모티콘은 존재하는 것 같다.때로 말보다 선명하고, 그럼으로써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지만 사실 이모티콘을 쓰는 일은 그 자체로 재미있다. 앙증맞고 귀여운 이모티콘 캐릭터들은 채팅창 이편과 저편을 두루 웃게 한다. 실제 나는 전혀 유머러스한 사람이 아님에도 몇몇 이모티콘 덕분에 대화를 덜 지루하게 이끌 수도 있다. 일순 우리는 화기애애해진다. 어려운 부탁을 하거나 또 그런 것을 거절할 때도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정말 미안" 뒤에 눈두덩이 퀭한 오리의 얼굴을 붙여둘 수 있으므로. 이따금 "죄송해요 좀 늦을 것 같아요" 하고 엉엉 울면 상대는 "괜찮아요 천천히 오세요" 하며 활짝 웃는다. 순한 동물의 표정을 빌려. 그럴 땐 어쩐지 마음이 놓인다. 만약 이모티콘이 없었다면 관계를 맺고 잇기란, 세상을 살아가기란 훨씬 팍팍했을 것이다. 무뚝뚝한 성격의 내가 장난기 가득한 이모티콘들을 거리낌 없이 늘어놓는 것을 보고는 놀랍다거나 의외라거나 하는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지만, 한편 속내를 금세 간파해버리는 이도 있다. "뭐냐? 또 이모티콘으로 대충!" 예민한 사람은 눈치채곤 한다. 딱히 하고 싶은 말이 없거나 이렇다 할 대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 애써 떠올리기 귀찮을 때,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을 가볍게 그렇지만 상대의 기분을 해치지 않고 모면하고 싶을 때에도 슬그머니 이모티콘을 앞세운다는 것. 한두 개의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예의를 차린다는 것. 그러므로 "대충!" 하는 지적은 좀 뜨끔하다. 그러나 이는 단지 나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메신저 단톡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글보다 이모티콘이 많은 경우가 심심찮다.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이때의 이모티콘이 품은 의미를. 그 속내 따위 아랑곳없이 어피치도, 프로도도 여전히 해맑지만.이 지나친 해맑음 때문일까. 이모티콘 가득한 대화를 주고받다 막상 실체를 대면했을 때, 상대가 조금도 다정하지 않은 사람임을 알아버렸을 때 우리는 적잖이 놀란다. 실망한다. 왜 너는 이모티콘이 아닌가 말이다. 진실은 늘 그렇듯 불편한 것.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저만치 멀찍이 선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본의 아니게 보게 된 것이다. 환한 표정의 이모티콘을 연이어 날리는 그가 실제로는 전혀 웃고 있지 않은 것을. 이모티콘 뒤의 표정이 꼭 이모티콘 같을 수야 없는 법이지만 그 모습이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습관처럼 이모티콘 버튼을 누를 때의 나, 나 자신의 굳은 표정이 연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듯 모두 이모티콘 뒤에 숨어 있구나. 웃을 수 없을 때도 웃는 척, 괜찮지 않을 때도 괜찮은 척. 전혀 좋지 않은 순간에도 '좋아요'를 빼먹지 않듯이. 속엣말을 잔뜩 늘어놓은 뒤 장난이라는 듯 ㅋㅋㅋ를 붙이는 심정과도 같은 것일 테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좀 더 솔직할 수 없나. 진짜가 될 수 없나.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누운 이모티콘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만사 힘든 것이다. 쉬고 싶은 것이다. 기대고 싶은 것이다. 이모티콘에게라도 좀. 어째서 우리는 이토록 지쳤나. 우리를 지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어느 틈에 진심을 드러낼 여력마저 잃고 살게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새삼 우리 참 애쓴다는 생각. 이 와중에도 과장된 'OK'를 그리며 웃고 있을 또 다른 내가 떠오른다. 그나저나, 불철주야 헌신하는 이모티콘을 생각하면 조금 짠하다. 격한 감정노동 뒤에 점차 소실될 이모티콘의 진짜 마음이 걱정스러워진다면, 실없는 소리 말라 핀잔을 듣겠지만. 그렇지만, 이모티콘의 노고는 과연 누가 덜어줄 것인가./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8-11-15 박소란

[풍경이 있는 에세이]잘가요, 아부지

어미가 이번에 강원도 갔다왔지돌아가신지 벌써 65년된 아버지묘지 없애고 화장해 뿌려드렸어슬프지는 않은데 마음이 좀그래산속에 홀로있다 맘껏 노시려나별일은 무슨. 어디 좀 다녀왔지. 어디면? 니가 뭔 상관인데? 와, 늙은 에미 어디서 뭔 일이라도 생겼을까봐? 강원도 갔다 왔어. 니 외삼촌들이랑. 외숙모들도 갔었지. 니 아빠까지 모두 여섯이서. 외할아버지 산소. 제사 아니야. 그런 거 아니고, 오늘 산소 없애고 화장해서 보내드렸어. 니 큰외삼촌이 얼마 전부터 자꾸 얘기를 하더라고. 누나, 나는 이제 자신이 없소. 우리 애들이 크면 즈이 할아버지 산소 찾아가기나 하겠어요. 나는 고마 산소 이제 없애고 화장해서 뼛가루 뿌려드리고 싶네. 자꾸 그러는 거야. 니 큰외삼촌이 몸이 한 번 되게 아프고 나더니 그런 생각이 났나 봐. 낫기야 나아도 사람 마음이 그런 거지. 나 죽으면 이거 누가 챙겨주겠나 싶고. 사실 나야 싫었어. 그래도 우리 아부지 산소인데, 그걸 홀랑 없애면 어쩌나. 자식이 그래도 되나 싶고. 그런데 나야 말을 보탤 수가 있나, 어디. 난 아부지 산소 안 간지 20년도 더 됐다. 다 큰외삼촌, 작은외삼촌이 벌초하고 제사 지내고 했지. 외할머니도 어차피 화장해서 보내드렸으니 외할아버지만 거기 둘 필요도 없는 거고.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해. 그래, 알았다, 니들이 다 알아서 해라. 그동안 수고 많았다. 그랬지. 그래서 삼남매가 오늘 새벽부터 강원도서 만났지. 산이 그렇게 높았나 싶더라. 높고 높은 고뱅이에 산소가 있어. 50만 원에 다 해준대. 인부 둘이 왔더라고. 그래서 큰외삼촌이 10만 원 더 얹어주면서 깨끗하게 잘 해달라 했어. 처음엔 아무리 파도 파도 안 나와. 왜 이러나, 왜 이러나 하는데 가느다란 팔뼈가 나오더니 나중엔 머리뼈가 나오더라고. 아이고, 야야. 65년 됐어. 안 슬퍼.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게. 니 작은외삼촌이 그래서 예순다섯이잖나. 아버지 돌아가시던 해에 태어나서. 내가 열 살이었고. 언제 시간이 그렇게 갔나, 참말로. 산소 자리에서 여만치 걸어 올라가니까 너무너무 이쁜 소나무가 있어. 아이고, 여기 소나무 좀 봐라, 어찌 이리 이쁘나, 했더니 외삼촌들도 다 그래. 정말 잘생긴 소나무라고. 그래서 내가 아부지 여기다 뿌리자, 했더니 큰외삼촌은 좋대. 누나, 그렇게 합시다, 하는데 작은외삼촌이 절대 안 된다잖아. 그게 뿌리는 장소가 다 정해져 있대. 그렇게 막 뿌리는 거 아니고 이것저것 다 따져서 뿌려야 한대. 걘 교회를 안 다니니까 뭘 그런 걸 다 물어보고 댕겨. 그래서 소나무 밑에 못 뿌렸어.으응, 슬플 게 뭐 있나. 난 그 사진 아니었으면 아부지 얼굴도 잘 기억 안 났지. 그 사진, 내가 얘기했지? 저고리 입은 여학생들 줄줄이 서 있고 아부지가 맨 앞줄에 앉았어. 양복 입고. 아부지가 가르치던 여학생들인 기야. 아유, 우리 아부지 이뻤다. 참 이쁜 얼굴이었어. 나나 작은외삼촌은 엄마 닮아서 이래 생겼지만 큰외삼촌은 아부지 닮았잖아. 그래서 걔도 이뻐. 아니야, 너는 그 사진을 못 봤지. 그 사진은 우리 고모네 집에 있어. 내가 가끔씩 놀러 갈 때마다 봐. 니가 봤을 리가 없지. 내가 하도 얘길 하니 넌 그 사진을 니가 본 줄 알았나보다. 글쎄, 나는 그 사진을 왜 그 집에다 두고 가져올 생각을 안 했나. 다음에 가면 달라고 해야겠네.다 끝내고 났는데도 아직 오전이더라고. 그래서 근덕 장에 가서 국밥 한 그릇씩 먹고 바다도 보고 바람도 쐬고 그랬지. 아유, 오랜만에 보니 너무 좋지. 이것들이 둘 다 확 늙어버렸어. 새벽에 봤을 때는 그렇게 화가 나더라고. 이놈의 자식들이 뭘 벌써 이래 늙나. 나 늙는 것도 신경질이 나 죽겠는데 뭐 지들까지 이래 늙나. 그런 생각도 들고. 한참 놀다 왔어. 자고 오긴 뭘 자고 와. 집이 젤 편한데. 어두워지면 운전하기도 이젠 힘들어. 니 아빠도 나이 들어서 이제 밤운전은 하면 안돼. 이모할머니네? 강원도에 이제 이모할머니가 누가 있나? 다 돌아가셨지. 안 돌아가신 분들은 아파 누웠고. 그래,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네. 이모할머니만 일곱인데, 다 강원도 살았는데, 이젠 들를 데도 없네.안 슬프다니까. 우리 아부지 이상순씨, 그 산속에서 혼자 65년을 누웠다가 이제 훌훌 뿌려줬는데, 신나게 놀러 가시는 거지. 아쉬울게 뭐 있나. 그냥, 조오금 마음이 뭐랄까, 모르겠다, 뭐래야 할지, 아무튼 뭔가 조오금 그렇기는 한데, 슬픈 건 아닌 것 같애./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18-11-08 김서령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