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

 

[풍경이 있는 에세이]이모티콘의 마음

메시지 주고받을 때마다 꼭 사용때로 말보다 선명하고 효과적 전달실제 표정 숨긴채 습관처럼 눌러만사에 지친 우리 기대고 싶은 것대신 감정노동하는 노고 짠해진다나는 이모티콘 애호자다.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마다 한두 개씩은 꼭 사용한다. 즐겨 쓰는 이모티콘은 대체로 이런 모습이다. 입을 헤벌리고 세상 걱정 없이 웃거나 굵직한 눈물을 쏟으며 펑펑 울거나, 두 눈에 커다란 하트를 그리거나 아니면 화를 이기지 못해 입에서 불을 뿜거나 난동을 부리며 상을 엎거나…. 곰곰 생각해보니 평소의 내게는 없다시피 한 표정, 평소의 나는 결코 하지 못할 행동 들이다. 그러나 메신저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문제 될 게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모두는 진짜 내가 아니니까. 진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가짜도 아닌, 그런 묘한 위치에 이모티콘은 존재하는 것 같다.때로 말보다 선명하고, 그럼으로써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지만 사실 이모티콘을 쓰는 일은 그 자체로 재미있다. 앙증맞고 귀여운 이모티콘 캐릭터들은 채팅창 이편과 저편을 두루 웃게 한다. 실제 나는 전혀 유머러스한 사람이 아님에도 몇몇 이모티콘 덕분에 대화를 덜 지루하게 이끌 수도 있다. 일순 우리는 화기애애해진다. 어려운 부탁을 하거나 또 그런 것을 거절할 때도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정말 미안" 뒤에 눈두덩이 퀭한 오리의 얼굴을 붙여둘 수 있으므로. 이따금 "죄송해요 좀 늦을 것 같아요" 하고 엉엉 울면 상대는 "괜찮아요 천천히 오세요" 하며 활짝 웃는다. 순한 동물의 표정을 빌려. 그럴 땐 어쩐지 마음이 놓인다. 만약 이모티콘이 없었다면 관계를 맺고 잇기란, 세상을 살아가기란 훨씬 팍팍했을 것이다. 무뚝뚝한 성격의 내가 장난기 가득한 이모티콘들을 거리낌 없이 늘어놓는 것을 보고는 놀랍다거나 의외라거나 하는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지만, 한편 속내를 금세 간파해버리는 이도 있다. "뭐냐? 또 이모티콘으로 대충!" 예민한 사람은 눈치채곤 한다. 딱히 하고 싶은 말이 없거나 이렇다 할 대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 애써 떠올리기 귀찮을 때,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을 가볍게 그렇지만 상대의 기분을 해치지 않고 모면하고 싶을 때에도 슬그머니 이모티콘을 앞세운다는 것. 한두 개의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예의를 차린다는 것. 그러므로 "대충!" 하는 지적은 좀 뜨끔하다. 그러나 이는 단지 나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메신저 단톡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글보다 이모티콘이 많은 경우가 심심찮다.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이때의 이모티콘이 품은 의미를. 그 속내 따위 아랑곳없이 어피치도, 프로도도 여전히 해맑지만.이 지나친 해맑음 때문일까. 이모티콘 가득한 대화를 주고받다 막상 실체를 대면했을 때, 상대가 조금도 다정하지 않은 사람임을 알아버렸을 때 우리는 적잖이 놀란다. 실망한다. 왜 너는 이모티콘이 아닌가 말이다. 진실은 늘 그렇듯 불편한 것.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저만치 멀찍이 선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본의 아니게 보게 된 것이다. 환한 표정의 이모티콘을 연이어 날리는 그가 실제로는 전혀 웃고 있지 않은 것을. 이모티콘 뒤의 표정이 꼭 이모티콘 같을 수야 없는 법이지만 그 모습이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습관처럼 이모티콘 버튼을 누를 때의 나, 나 자신의 굳은 표정이 연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듯 모두 이모티콘 뒤에 숨어 있구나. 웃을 수 없을 때도 웃는 척, 괜찮지 않을 때도 괜찮은 척. 전혀 좋지 않은 순간에도 '좋아요'를 빼먹지 않듯이. 속엣말을 잔뜩 늘어놓은 뒤 장난이라는 듯 ㅋㅋㅋ를 붙이는 심정과도 같은 것일 테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좀 더 솔직할 수 없나. 진짜가 될 수 없나.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누운 이모티콘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만사 힘든 것이다. 쉬고 싶은 것이다. 기대고 싶은 것이다. 이모티콘에게라도 좀. 어째서 우리는 이토록 지쳤나. 우리를 지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어느 틈에 진심을 드러낼 여력마저 잃고 살게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새삼 우리 참 애쓴다는 생각. 이 와중에도 과장된 'OK'를 그리며 웃고 있을 또 다른 내가 떠오른다. 그나저나, 불철주야 헌신하는 이모티콘을 생각하면 조금 짠하다. 격한 감정노동 뒤에 점차 소실될 이모티콘의 진짜 마음이 걱정스러워진다면, 실없는 소리 말라 핀잔을 듣겠지만. 그렇지만, 이모티콘의 노고는 과연 누가 덜어줄 것인가./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8-11-15 박소란

[풍경이 있는 에세이]잘가요, 아부지

어미가 이번에 강원도 갔다왔지돌아가신지 벌써 65년된 아버지묘지 없애고 화장해 뿌려드렸어슬프지는 않은데 마음이 좀그래산속에 홀로있다 맘껏 노시려나별일은 무슨. 어디 좀 다녀왔지. 어디면? 니가 뭔 상관인데? 와, 늙은 에미 어디서 뭔 일이라도 생겼을까봐? 강원도 갔다 왔어. 니 외삼촌들이랑. 외숙모들도 갔었지. 니 아빠까지 모두 여섯이서. 외할아버지 산소. 제사 아니야. 그런 거 아니고, 오늘 산소 없애고 화장해서 보내드렸어. 니 큰외삼촌이 얼마 전부터 자꾸 얘기를 하더라고. 누나, 나는 이제 자신이 없소. 우리 애들이 크면 즈이 할아버지 산소 찾아가기나 하겠어요. 나는 고마 산소 이제 없애고 화장해서 뼛가루 뿌려드리고 싶네. 자꾸 그러는 거야. 니 큰외삼촌이 몸이 한 번 되게 아프고 나더니 그런 생각이 났나 봐. 낫기야 나아도 사람 마음이 그런 거지. 나 죽으면 이거 누가 챙겨주겠나 싶고. 사실 나야 싫었어. 그래도 우리 아부지 산소인데, 그걸 홀랑 없애면 어쩌나. 자식이 그래도 되나 싶고. 그런데 나야 말을 보탤 수가 있나, 어디. 난 아부지 산소 안 간지 20년도 더 됐다. 다 큰외삼촌, 작은외삼촌이 벌초하고 제사 지내고 했지. 외할머니도 어차피 화장해서 보내드렸으니 외할아버지만 거기 둘 필요도 없는 거고.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해. 그래, 알았다, 니들이 다 알아서 해라. 그동안 수고 많았다. 그랬지. 그래서 삼남매가 오늘 새벽부터 강원도서 만났지. 산이 그렇게 높았나 싶더라. 높고 높은 고뱅이에 산소가 있어. 50만 원에 다 해준대. 인부 둘이 왔더라고. 그래서 큰외삼촌이 10만 원 더 얹어주면서 깨끗하게 잘 해달라 했어. 처음엔 아무리 파도 파도 안 나와. 왜 이러나, 왜 이러나 하는데 가느다란 팔뼈가 나오더니 나중엔 머리뼈가 나오더라고. 아이고, 야야. 65년 됐어. 안 슬퍼.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게. 니 작은외삼촌이 그래서 예순다섯이잖나. 아버지 돌아가시던 해에 태어나서. 내가 열 살이었고. 언제 시간이 그렇게 갔나, 참말로. 산소 자리에서 여만치 걸어 올라가니까 너무너무 이쁜 소나무가 있어. 아이고, 여기 소나무 좀 봐라, 어찌 이리 이쁘나, 했더니 외삼촌들도 다 그래. 정말 잘생긴 소나무라고. 그래서 내가 아부지 여기다 뿌리자, 했더니 큰외삼촌은 좋대. 누나, 그렇게 합시다, 하는데 작은외삼촌이 절대 안 된다잖아. 그게 뿌리는 장소가 다 정해져 있대. 그렇게 막 뿌리는 거 아니고 이것저것 다 따져서 뿌려야 한대. 걘 교회를 안 다니니까 뭘 그런 걸 다 물어보고 댕겨. 그래서 소나무 밑에 못 뿌렸어.으응, 슬플 게 뭐 있나. 난 그 사진 아니었으면 아부지 얼굴도 잘 기억 안 났지. 그 사진, 내가 얘기했지? 저고리 입은 여학생들 줄줄이 서 있고 아부지가 맨 앞줄에 앉았어. 양복 입고. 아부지가 가르치던 여학생들인 기야. 아유, 우리 아부지 이뻤다. 참 이쁜 얼굴이었어. 나나 작은외삼촌은 엄마 닮아서 이래 생겼지만 큰외삼촌은 아부지 닮았잖아. 그래서 걔도 이뻐. 아니야, 너는 그 사진을 못 봤지. 그 사진은 우리 고모네 집에 있어. 내가 가끔씩 놀러 갈 때마다 봐. 니가 봤을 리가 없지. 내가 하도 얘길 하니 넌 그 사진을 니가 본 줄 알았나보다. 글쎄, 나는 그 사진을 왜 그 집에다 두고 가져올 생각을 안 했나. 다음에 가면 달라고 해야겠네.다 끝내고 났는데도 아직 오전이더라고. 그래서 근덕 장에 가서 국밥 한 그릇씩 먹고 바다도 보고 바람도 쐬고 그랬지. 아유, 오랜만에 보니 너무 좋지. 이것들이 둘 다 확 늙어버렸어. 새벽에 봤을 때는 그렇게 화가 나더라고. 이놈의 자식들이 뭘 벌써 이래 늙나. 나 늙는 것도 신경질이 나 죽겠는데 뭐 지들까지 이래 늙나. 그런 생각도 들고. 한참 놀다 왔어. 자고 오긴 뭘 자고 와. 집이 젤 편한데. 어두워지면 운전하기도 이젠 힘들어. 니 아빠도 나이 들어서 이제 밤운전은 하면 안돼. 이모할머니네? 강원도에 이제 이모할머니가 누가 있나? 다 돌아가셨지. 안 돌아가신 분들은 아파 누웠고. 그래,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네. 이모할머니만 일곱인데, 다 강원도 살았는데, 이젠 들를 데도 없네.안 슬프다니까. 우리 아부지 이상순씨, 그 산속에서 혼자 65년을 누웠다가 이제 훌훌 뿌려줬는데, 신나게 놀러 가시는 거지. 아쉬울게 뭐 있나. 그냥, 조오금 마음이 뭐랄까, 모르겠다, 뭐래야 할지, 아무튼 뭔가 조오금 그렇기는 한데, 슬픈 건 아닌 것 같애./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18-11-08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용주사와 융건릉 소나무 둘레길

나지막한 능선 이어진 화산 자락두 능을 가운데 둔 솔숲 흙길 산책역사적 의미 부여하지 않더라도생사 잇는 무덤이 주는 휴식같은아득함은 생각 정리하기에 '그만'만추다. 햇살은 여전히 사랑스럽다. 가을은 어느 사막으로부터 왔을까. 계획에 없던 길 위에 서게 하는 이 계절은 대체 어느 국경을 넘어 예까지 온 걸까. 과잉과 결핍 사이 풍성하고 메마른 천 개의 손을 내미는 기다림의 계절, 슬픔을 지나고 나야 비로소 보이는 기쁨들, 단풍을 지나 낙엽과 나와 일대 일이 되어보는 것, 숲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 가을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한다.나는 고작 하루 시간을 할애해 길을 나설 참인데 가까운 수목원 아니면 서쪽으로 일몰을 보러 갈까 하다가 생각난 곳이 용주사와 융건릉. 그래, 이곳이라면. 명품 소나무 숲 융건릉 둘레길을 걸어보고 싶은 유혹이 바람처럼 일었다. 봄에 활엽수들이 몽글몽글 솟아오를 때도 좋지만 오래된 소나무 숲이 주는 안정감은 계절을 초월 그 어떤 숲과도 비교불가인 그만의 특색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걷다 보면 얼마 전까지 나를 따르던 잡다한 생각들은 슬며시 뒤로 물러나고 만다. 보고 싶은 걸 볼 수 있고 듣고 싶은 걸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내게 가을은 텅 빈 허수의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원하는 대상을 만나지 못한 건 너무 빠르거나 아직 때에 이르지 못했다는 뜻이므로 조급해할 일은 아니다.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진여(眞如)라 한다. 그리고 무위(無爲)란 작위(作爲)를 배제하는 것이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노자의 독법의 기본은 무위다. 그러므로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이르는 말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하나의 실천방법이다. 용주사에 들러 나를 따라온 햇살을 등에 업고 법당에 잠시 무릎을 꿇고 앉았다가 고목 끝에 매달린 마지막 단풍과 낯선 곳에 영혼을 두고 오는 일 없기를 바라는 맘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섰다.용주사는 신라시대에 지어진 고찰로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만들면서 이곳을 원찰로 삼아 다시 증축하였다. 정조는 총애하던 단원 김홍도를 보내 용주사를 중창하는 일을 담당하게 하였고 용주사에 남아 있는 김홍도의 손길 중 하나가 '부모은중경'이라는 불교경전을 그림으로 그린 '부모은중경판'이다. 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김홍도는 정조의 명으로 일주일간 기도를 해야 했다고 하니 정조의 효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정조와 사도세자의 불운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어도 내겐 용주사가 주는 소중한 기억 한 자락이 있다. 교과서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조지훈의 '승무'라는 시의 배경이 바로 이 용주사라는 사실을 나의 스승께서 생전에 말씀해 주셨는데 조지훈 시인이 내 시의 스승이던 분의 스승이었다는 점도 내게 의미를 더하곤 했다.요사체가 많아 다소 번다한 용주사를 나와 융건릉을 돌아보는 동안 기다렸다는 듯 숲은 포근히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자연을 통해 설명 불가한 해방감을 느끼곤 하는데 그것이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남쪽엔 백일홍도 코스모스도 지고 없다는데 기쁨이 슬픔이 되고 슬픔이 기쁨에게 말을 걸어오는 이 만추의 아름다운 쓸쓸함은 내가 사라진 후에도 무한 반복으로 이어지겠지.빛이 물러나고 검은 밤이 어떻게 날개를 접고 내려앉는지 몽롱한 의식으로 오래 바라본 날이다. 자연은 소리도 없이 많은 말을 하고 사람은 그것을 경험으로 통역한다고 했던가. 발전은 새로운 도전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결국 자신의 마음을 바꾸려는 의지가 없다면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 아닌가. 도심에선 많은 사람 속에서 외로웠는데 이곳 시골살이는 사람이 없어도 외롭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융건릉은 사도세자와 헌경왕후 혜경궁 홍씨가 합장된 융릉과 정조와 효의황후 김씨가 합장된 건릉이 모여져 붙인 이름이다. 나지막한 능선으로 이어진 화산 자락에 이 두 능을 가운데 둔 융건릉 둘레길은 솔숲 사이로 난 흙길을 산책하듯 걷기에 좋다.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생과 사를 잇는 무덤이 주는 휴식 같은 아득함은 생각을 정리하기에 그만이다. 바람이 쌀쌀해졌다. 우린 곧 겨울이야기를 하겠지./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18-11-01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페르소나의 정치학

일부 정치인 떠드는 말 거짓이란걸과거 발언통해 스스로 증명하는데여전히 가면 쓴채 큰소리 치고있다그들의 진짜 얼굴은 어디에 있을까너무 오래 탈 써서 아예 잃어버렸나잉그마르 베르히만이 1963년에 만든 '페르소나'라는 영화가 있다. 다소 어렵다는 평과 함께 인간의 심리를 철학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인정받는 작품이다.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유명 연극배우 엘리자베트가 '엘렉트라'를 공연하던 중 갑자기 말을 잃고 쓰러져 요양원으로 떠난다. 그녀를 돌보는 간호사 알마는 엘리자베트에게 인간적인 연민과 동정을 느낀다. 하지만 엘리자베트가 알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을 구경거리로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격적 태도로 바뀐다. 엘리자베트 남편이 방문했을 때 알마는 마치 엘리자베트라도 된 듯, 그녀의 말과 행동을 대변하는 이상한 증상을 보인다. 정신을 차린 후에도 알마는 점차 엘리자베트와 비슷해지다 마침내 두 인격이 하나로 겹쳐진다. 끝으로 가면서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데, 두 사람은 자아와 가면 사이에서 오히려 자신을 더 정확하면서도 고통스럽게 볼 수 있게 된다.'페르소나'는 원래 그리스 연극에서 '가면'을 뜻하는 용어로, 근대 심리학에서 '자아 밖의 자아' '가면을 쓴 인격' 등의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화배우나 탤런트가 극 중에서 연기를 하면 그 배우는 자신의 삶이 아닌 극 중 인물의 삶을 살게 되는데, 이것이 말하자면 배우의 페르소나이다. 하지만 페르소나가 영화배우에게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본래의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타자에게 비치고 싶은 또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다른 얼굴'이라는 이름으로 내재해 있다 어느 순간 밖으로 슬그머니 나타난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인 척한다든지, 불우한 처지에도 행복한 듯 포장하는 경우가 있다. 때에 따라선 타인에게 해를 끼칠 목적으로 선한 양의 가면을 쓰는 일도 있다.특히 옛날보다 미디어와 SNS가 생활의 중요 공간이 된 요즘은 이런 형상을 더 흔하게 볼 수 있다. 미디어와 SNS상에서는 상대방과 '진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 페르소나를 마치 나 자신인 것처럼 전면에 내세우기가 간편하다. 일례로 전화, 메일, 메시지 등을 통해 검찰이라고 사칭해 돈을 뜯어내려는, 소위 '피싱'이 요즘 심각하다. 그리 악의적인 것은 아니라 해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자신의 사진을 일명 '뽀샵' 처리해서 실제 모습과 다른 사진을 게재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타인에게 해가 되느냐 아니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둘의 근본적인 작동원리는 같다. 즉 내 얼굴이 아닌 '페르소나'를 내세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위장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진짜 얼굴과 페르소나 사이의 간격이 멀면 멀수록 진실로부터는 멀어진다. 특히 이것이 개인의 영역에서는 문제가 안 되지만, 타자와 어떤 식으로든 소통이 되는 과정에서는 '정치적'인 문제로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정치란 개인과 타자 사이의 권력관계이기 때문이다. 페르소나가 타자의 영역으로 손을 뻗치는 순간, 우리는 두 얼굴을 구별하기 위해 희생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진실과 허구 사이의 거리가 가까우면, 마치 알마가 엘리자베트에게 동정하고 연민을 느끼듯 타자를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그 틈새가 커져 임계점을 넘으면 자연히 알마가 속았다는 걸 알고 분노하듯 우리도 공격하게 된다. 한번 속고 나면 그 실망과 분노는 다시 원래의 얼굴을 보인다 해서 쉬 해소되지 않는다.나는 오늘 우리 사회 각처에서 그런 과잉된 페르소나를 본다. 일부 정치가는 지금 떠드는 말이 거짓이라는 걸 과거 자신의 발언을 통해 스스로 증명하는 데에도, 여전히 가면을 쓴 채 큰소리를 치고 있다. 대기업이 회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당한 수단을 쓴다는 걸 다 알고 있는 데도, 마치 국가 경제를 위해 헌신하는 듯 애국 마케팅을 강조하기도 한다. 적폐세력과 내통해 법질서를 무참히 짓밟아 놓고도 아직도 잘못한 게 없다고 국민을 한참 아랫것인 양 깔보는 자들도 있다. 그들의 진짜 얼굴은 어디에 있을까. 너무 오래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어서 이제 진짜 얼굴을 잊은 건 아닐까. 아예 잃어버린 건 아닐까./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18-10-25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부엉이 브로치와 스몰 토크

뻣뻣한 남편이 작은선물을 사왔다일 아니면 일상대화도 서툰사람이언제부턴가 '말랑말랑' 변화 신기요즘 1인가구 행복도 여성이 으뜸인간관계 '모둠냄비' 대화도 능력귀여운 부엉이 브로치를 선물 받았다. 야외 플리마켓에서 온 이 부엉이는 천과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데 표정이 꽤 귀엽다. 이 부엉이를 사 온 사람은 다름 아닌 남편. 내 것만 사온 것이 아니라 커플 부엉이 두 마리를 사왔다. 단풍색을 닮은 가을 부엉이와 코발트색이 섞인 여름 부엉이 한 쌍이 잘 어울린다. 나도 마켓에서 보고 지나가면서 귀엽다고 생각은 했지만 살 생각은 없었는데 이걸 남편이 사오다니…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사람은 절대 안 변한다고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서는 180도 바뀔 수도 있는 게 사람 아닌가? 사오긴 했는데 막상 옷에 달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귀여운 부엉이 브로치를 내 재킷에 달면서도 킥킥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예전의 남편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손을 잡아끌어서 억지로 구경하면서도 이런 소품에는 전혀 관심 없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변화다. 언제부턴가 '말랑말랑'해진 남편의 변화는 그래서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 반갑다. 모든 사람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미국의 인기 시트콤 '모던 패밀리'에는 아내 글로리아의 말이 맞고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하기 싫어서 아내 덕에 사귄 새로운 친구와 놀러 갈 핑계를 궁리하는 남편 제이가 등장한다. 결국 제이는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단지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거짓말은 물론이고 자신의 감정까지 부정하려고 드는 이 나이 든 남성 캐릭터를 보면서 나는 좀 쓸쓸해졌다. '2018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 연령대에서 여성 1인 가구의 만족도가 남성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하지만 혼자 사는 50대 남성의 만족도는 51%로 20대 남성보다 20%P나 낮았고, 82.7%를 기록한 20대 여성과 비교하면 더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어쩌면 남성들의 낮은 만족도는 "내가 잘못 알았다"는 말을 하지 못했거나 일상 속 '스몰 토크(small talk)'에 서툴러서 그런 건 아닐까? 모든 세대의 1인 가구를 통틀어 남성보다 여성의 행복도가 높게 나온 건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도 쉽게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아줌마스러운' 능력 덕일 테다.'스몰 토크'는 말 그대로 일상의 소소한 대화를 뜻한다. 영화, 스포츠, 출근길, 날씨, 패션 등을 소재로 활용하는 스몰 토크는 중요한 내용은 아닐지 몰라도 무의미한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 여성들이 인간관계를 맺어 나갈 때 대문 앞 화단이 한몫을 한다고 한다. 꼭 화단이 아니더라도 아이, 옷차림, 먹을거리 등 마음만 먹으면 많은 여성들에게 얘깃거리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모두가 타인에게 가볍게 말을 걸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 화분이니 날씨니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일본의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에서 '모둠냄비 이론'을 소개한다. 예를 들면 친구에게 "지금부터 나와 이야기를 하자. 그러기 위해 시간을 달라"고 하면 불안을 느끼고 경계하겠지만 "맛있는 모둠냄비를 먹으러 가지 않을래?"라고 하면 "응, 좋아. 같이 가자"라고 응수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말을 걸 때 가능하다면 무언가 귀여운 것, 맛있는 것이 중간에 끼는 편이 좋다는 팁은 덤이다. 일과 관계가 없으면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많은 남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모둠냄비 이야기를 꺼내서라도 사람들과 '스몰 토크'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바람이 차가워지고 쓸쓸해지기 쉬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가을을 보내면서 나 역시 조금 더 '말랑말랑'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한다. 잠시 고개를 돌려보니 의자에 걸어둔 재킷에 매달린 '가을 부엉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내가 가장 먼저 사람들과 나눴던 말도 바로 이 부엉이 브로치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만의 '모둠 냄비'인 귀여운 부엉이가 불어넣어 준 말랑말랑한 힘과 함께라면 이번 가을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정지은 문화평론가정지은 문화평론가

2018-10-18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청마 유치환과 편지

미망인 이영도에 5천여통 보내며지고지순한 정신적 사랑 나눠아픈 아내에 대한 애정도 지극그의 유약함에서 비롯된 친일문학지조의 중요성을 교훈으로 남겨줘시월의 통영은 아름답다. 하늘은 연옥빛이고 바다는 청옥빛이다. 시내로 들면 길들은 분주해지고 가로수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다. 유치환이 매일 편지를 부치러 찾았던 중앙우체국은 좁은 골목에 있다. 빨간 우체통과 시비 '행복'을 세워놓아 정겹고 친근하다. 청마 유치환(1908. 7. 14~1967. 2. 13)은 생명파 시인으로 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강인한 남성적 어조의 시풍을 지닌 시인으로 '깃발', '생명의 서', '행복'등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그가 1945년 가을부터 1년간 국어교사로 근무했던 통영여자고등학교를 찾았다. 가을 햇살이 하얗게 내려앉은 교정은 휴일이라서 고즈넉했다. 본관 교사는 해방 전부터 있던 건물이어서 긴 복도 끝에서 유치환의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리는듯했다. 이 복도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가사교사인 이영도를 마주쳤을 것이다. 그때마다 이영도는 볼 붉어 빠른 걸음으로 달아났을 것이다. 유치환은 38세의 유부남이었고, 이영도는 어린 딸과 살고 있는 29세의 미망인이었다. 유치환은 이영도에게 편지로 마음을 전했고, 이는 결코 세속적인 사랑이 아니라고 설득했다. 좀체 마음을 열지 않던 이영도가 3년쯤 유치환의 지극한 편지를 받고 나서 정신적인 사랑을 시작할 수 있었다. 1952년에 쓴 편지에서 유치환은 '오늘은 죽을 성 우울했습니다. 바람이 심하고 안개가 자욱한 탓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돌아와 책상에 마주 앉아 뉘우침처럼 느껴지는 것은 진실한 사랑 앞에 얼마나 많은 사회적 제약이 막아서는가 하는 것입니다… 8월 14일 당신의 마'라는 편지에서 두 사람이 얼마나 힘든 사랑을 하고 있었는지 읽힌다. 유치환 사후에 이영도는 5천여 통의 편지 중에서 골라 서간집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 수익금 전부를 사회단체에 기부했다.유치환이 급서한 날은 1967년 2월 14일이다.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야간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다 급행버스에 치여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날 아침 원고지에 남긴 유고시가 그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어 안타깝다. '등성이에 올라 보노라면/내 사는 거리는 아슴한 저편 내 끝에서부터/내 발밑까지 첩첩이 밀려 닥쳐 있고/이쪽으로 한 골짜기 화장장이 있는 그 굴뚝에서/오늘도 차사의 연기 고요히 흐르고 있거니…… 마침내 돌아와 전 같이 잔잔히 잔잔히/한줌 불귀의 흔적 없는 자취로/거두어짐은/아아 얼마나 복된 맑힘이랴'라고 죽음을 예찬한 것이다. 이영도는 유치환과 교류하면서 여러 편의 연시조를 남겼다. '오면 민망하고 아니오면 서글프고/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울여 기다리며/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서로 야윈 가슴 먼 창(窓)만 바라다가/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에서는 애련의 절절함과 처연함이 읽힌다.절절함과 처연함으로 말하면 유치환의 '행복'을 들어야 할 것이다. '…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라//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그리운이여 그러면 안녕/설령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에 이르면 유치환의 지순하고 숭고한 사랑을 느끼게 한다.유치환은 아내에 대한 사랑도 지극했다. '병처'는 그의 지극함이 드러난 시편이다. '아픈가 물으면 가늘게 미소하고/아프면 가만히 눈감는 아내…… 한 떨기 들꽃이 피었다 시들고 지고/한 사람이 살고 병들고 또한 죽어가다/이 앞에서는 전 우주를 다하여도 더욱 무력한가/내 드디어 그대 앓음을 나누지 못하나니'는 앓고 있는 아내를 간병하며 읊은 노래다. 유치환은 친일의 산문과 시편을 남겨 아쉬움을 갖게 한다. 시인이며 교수인 박태일에 의해 밝혀진 그의 친일 문학 작품은 문인의 유약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문인에게 투철한 역사관과 확고한 민족애, 그리고 지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교훈으로 남긴 청마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18-10-11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동네 사람

이사온지 3년, 그간 일 더듬어보면여기저기서 마주쳤던 이웃들서로를 향해 살갑게 말 걸고 있었다난 싫은게 아니라 어색했던 것그래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뿐밤 11시. 막 문을 닫으려는 동네 슈퍼에 들어가 재빨리 참외 한 봉지와 물을 집어 들었다. 계산을 서두르던 그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카운터에 서서 바코드를 찍던 사장님은 말했다. "참외를 엄청 좋아하시나 봐요." "네?" 나는 조금 놀랐다. "아니, 참외를 자주 사 가시길래." 지금껏 슈퍼에서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던가. "여름 내 우리 가게 참외는 혼자 다 드신 것 같아요." 예의 무표정으로, 그러면서 설핏 친근한 말투로 떨이라며 그 잘 익은 참외 한 봉지를 '서비스'로 주었다. 아, 고맙습니다, 하고 문을 나섰지만 이내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분간 슈퍼 앞을 지날 때마다, 참외를 살 때마다 괜히 쭈뼛거리게 될 것 같은 느낌. 몇 달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가끔 들르는 집 앞 커피숍에서였다. 카운터에서 "아메리카노요" 하고 섰을 때 아르바이트생이 말했다. "좀 연하게 드려볼까요? 커피를 매번 남기시길래." 예상치 못한 응대가 나를 긴장하게 했다. 아, 네, 고맙습니다, 했지만 이후 그 커피숍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왜일까. 왜 나는 취향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으로 부리나케 달아난 것일까.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온 건 3년 전이다. 그동안 근처 슈퍼나 커피숍을 꾸준히 드나들었으니 이런 일은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더듬어보면, 그간 식당에서 세탁소 아저씨를, 버스 정류장에서 부동산 아줌마를 마주치고는 했다. 집 뒤편에서 불쑥 나타난 미용실 아저씨는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지나쳐갔다. 내 바뀐 머리 모양을 은근히 곁눈질하면서. 그럴 때마다 나는 애써 눈길을 피하거나 "안녕하… 세요" 얼버무리듯 인사하고는 재빨리 뒷걸음질 쳤다. 낯을 가리는 사람 특유의 자세로. 그러나 단지 낯가림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누군가 알고 있다는 것. 내 입맛을, 취향을, 생활을. 나를. 이것은 좋은 일인가. 괜찮은 일인가. 분명한 건 친절과 선의에 가깝다는 사실. 그러므로 고마워 마땅한 일. 어쩌면 내가 지금 여기에 살고 있음을 드러내는 일. 존재를 증명하는 또 다른 방식이랄까. 그렇다면 이 거북스러움은 뭐지? 나를 잘 아는 한 친구는 말했다. "싫은 게 아니라 어색한 거 아냐?" 그래서 당장은 불편한 것. 누군가를 안다는 건 바로 그 누군가와 생활을 공유하는 일. 도움이나 간섭을 주고 또 받는 일. 이는 어떤 의무와 책임을, 무엇보다 감정을 요하는 일이다. 그에 비해 "얼마예요?"하면 다만 "사천오백 원이요" 답하는 관계는 얼마나 쉬운가. 얼마나 간편한가. 그리고 익숙한가. 너무 오래 입어 이제는 갈아입을 엄두가 나지 않는 옷처럼.골목을 천천히 산책하다 보면, 조금 다른 풍경도 눈에 든다. 이 동네가, 동네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서로를 감지하고 있는지, 서로를 향해 말을 걸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담벼락 곳곳에 붙은 메모들.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나 '강아지 주인 찾습니다', '아기가 자고 있어요. 집 앞 소음과 흡연 자제 부탁드립니다' 같은. 자세히 보면 퍽 내밀하다 싶은 그 이야기들 앞에서 나는 이따금 멈춰 서게 된다. 사람들은 참 살갑기도 하지. 언젠가는 '택배 기사님, 더운 날씨에 항상 수고가 많으십니다. 아이스박스 안에 음료랑 생수 있습니다. 드시고 가세요' 앞에 휴지 조각처럼 뒹구는 영수증을 봤다. 영수증 뒤편에 볼펜으로 급히 휘갈긴 듯한 '늘 감사합니다'. 행여 아이스박스 주인이 그 귀한 메모를 보지 못할까 봐 나는 영수증을 돌로 반듯이 고여두었다. 이런 면면을 상기하면 도시의 익명성이란 언제든 깨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신화처럼 여겨진다. 익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아무개로서, 오늘은 빌라 반상회를 알리는 문자를 받았다. '참석이 어렵겠어요. 죄송합니다.' 나는 이번에도 불참을 알렸다. 그러자 이어 '즐거운 명절 보내셨지요? 밤낮으로 쌀쌀한데 감기 조심하세요^^' 하는 답장이 온다. 싫은 게 아니라 어색한 것. 낯설고 서툰 것. 아직, 아직은. 그래서 잠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뿐. 가을, 여전히 다디단 참외를 먹으며 생각한다./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8-10-04 박소란

[풍경이 있는 에세이]빈 섬

병에 걸린 바이칼사람들 내다버린아무도 살지 않는 초원뿐인 그 곳자신을 두고 가는 가족들에게그들은 어떤 인사를 남겼을까난 그 죽음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랐다. 꼭 사흘 만에 이르쿠츠크엘 도착했다. 다시 다섯 시간 낡은 버스를 타고 간 뒤 두어 시간 배를 더 탄 후에야 바이칼 호수 가운데 알혼 섬에 닿을 수 있었다. 러시아의 예술가들과 만나기로 한 곳이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바이칼 출신 작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또 배를 탔다. 그렇게 다다른 작은 섬의 이름은 이제 잊었다. 배를 댈 만한 선착장이 따로 없어 차가운 호숫물에 첨벙첨벙 발을 담가가며 섬에 내렸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섬. 교회가 있었던 자리에 나무 십자가만 달랑 서 있었다. 그곳은 병에 걸린 바이칼 사람들을 내다 버리던 섬이었다.전염병이 돌거나 치료할 약이 없어 가족들에게 짐만 되는 이가 생길 경우 그들은 그 섬에 환자를 실어날랐다. 아주 오랫동안 그래왔기 때문에 병에 걸린 이들은 그걸 당연하게 여겼단다. 자신을 두고 가는 가족들에게 그들은 어떤 인사를 남겼을까. 나는 바다처럼 막막하게 드넓은 호수를 바라보며 그들의 인사말을 생각했다. 너그러운 인사였을까. 슬픈 인사였을까. 어쩌면 인사도 나누지 못할 만큼 많이 아파 아무 말 할 수 없었을까. 섬에는 키 큰 나무도 없고 그저 초원이었다. 떠나올 때 챙겼던 먹을거리가 떨어지고 나면 그들은 무얼 먹었을까. 어차피 죽을 터이니 그냥 굶었을까. 그들은 초원 아무 데나 누워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의 죽음이 잘 그려지지 않아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작은 섬이라고는 해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걷는 데만 두 시간이 넘었다. 나는 발이 하도 아파 초원에 발랑 드러누웠다. 저만치서 거의 다 삭아버린 십자가가 보였다. 종교도 없으면서 십자가가 보이자 그래도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일행들에게 말했다. 더는 못 걷겠어. 당신들은 한 바퀴 돌고 와. 기다릴 테니. 저편 끝까지 걸어야 물개들을 볼 수 있다며 일행들이 나를 잡아끌었지만 나는 단단하게 버텼다. 아무 데나 꽃이고 아무 데나 간질간질한 풀들이었다. 소가 없으니 소똥도 없었고 하늘은 말도 못하게 예뻤다. 일행들이 돌아올 때까지 그렇게 누워 긴 낮잠이나 자고 싶었다. 지평선을 넘어갔던 일행 중 하나가 나에게 되돌아왔다. 같이 가야 해요. 배가 섬 반대편에 도착한대요. 나는 별 수 없이 일어나 그를 따라갔다.웅성웅성 꽃더미가 모여 있거나 구름이 더께 진 걸 보며 걷자니 그때 죽은 영혼들이 모여 앉은 것만 같았다. 내 눈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어딘가 맑은 물소리를 내며 흐르는 샘도 있겠지. 야윈 손바닥을 펴 누군가는 그 물을 떠 마셨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바이칼 호수에서는 사람이 빠지면 며칠 지나지 않아 시신을 건지는 일을 포기한다고 했다. 호수에는 사람의 뼈와 머리카락까지 다 먹어치우는 작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했다. 죽어도 묻어줄 사람이 없었으니 아픈 그들은 차라리 물에 뛰어들지 않았을까. 죽은 사람이 많지만 무덤은 하나도 없는 곳. 뼛조각도 하나 보이지 않아서 나는 러시아의 작가들이 말해주는 이 섬의 전설이 믿겨지지 않았다. 어쩌면 오랜 세월을 지나며 먼지가 되어 바람에 날렸을까. 저편 끝까지 걸었지만 물개도 없었다. 농담 같은 섬의 전설이었다. 샘물은 끝까지 찾지 못했고 물병은 바닥났다. 키가 작은 통역이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기, 저기… 오늘 파도가 세서 배가 다시 반대편으로…… 바이칼 호수는 호수지만 파도가 쳤다. 바다처럼 말이다. 러시아 작가들과 한국 작가들이 통역을 빙 둘러싼 채로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웃어버렸다. 통역의 얼굴이 발개져버렸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녹초가 되어선 잠이 들었다. 동행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자꾸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녀서 나는 더운데도 모자로 얼굴을 다 가리고 자야 했다. 나중에 그 다큐멘터리가 TV에서 방영되었지만 나는 보지 않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부터 세수도 못하고 온통 엉망인 꼬락서니를 차마 볼 수 없어서였다. 아무도 살지 않던 그 빈 섬, 종종 떠오를 때가 있다.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그 섬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18-09-27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메리골드와 칠장사의 가을

사찰의 고요함과 어울리지 않게정열적으로 마당 가득한 서양꽃아무리 매혹적으로 다가와도오래전 스승과 경내 거닐며 나눴던 엄숙하고 따듯한 순간 어찌 잊으랴문을 나서자 바람이 내 손을 잡아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매번 그토록 그리워하는 칠장사(七長寺)는 가을에만 가게 되는지, 칠장사로 가는 길목엔 지친 초록이 누렇게 바래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산도 들판도 고개를 숙인 벼도 황금색을 띠고 가을꽃들은 또 얼마나 형형색색 찬란한지.국도를 따라 칠장사를 찾아가는 길인데 닿고 보니 팜랜드다. 이참에 꽃구경이나 하고 갈까 하여 농장 안으로 들어서니 사방천지가 코스모스와 메리골드(금잔화)다. 신이 좋아하는 꽃이라 그런가, 메리골드는 늘 저토록 정열적이어서 마치 플라멩코를 추는 무희를 연상하게 한다. 메리골드의 꽃말은 '가엾은 애정', '이별의 슬픔',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는데 내가 보기엔 모두가 붉어 치정 같기만 하다. 계절이 계절이니 만큼 편지도 쓰고 싶고 꽃 앞에서 그대에게 다 주고 싶었는데 빈손이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 허탈감이 밀려온다. 팜랜드에서 꽃구경 맘껏 하고 구불구불한 국도를 따라 칠장사로 향한다. 지난해도 딱 이맘때 나는 이 길을 따라 칠장사에 갔고 발길 닿는 곳마다 코스모스와 금잔화가 나를 반겼다. 코스모스가 인간이 좋아하는 꽃이라면 금잔화는 신이 좋아하는 꽃일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인도를 여행한 후에 생겨난 믿음이다. 인도에선 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메리골드를 꼽는다. 가난뱅이나 부자나 꽃을 바치는 나라, 그들은 아침마다 신전에 나가 기도를 드릴 때 자신이 먹을 빵보다 꽃을 먼저 사고 그 꽃을 신에게 바친다. 나의 기쁨보다는 당신을 기쁘게 하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기도가 되고 소망이 되는 그들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칠현산자락 경사면에 자리를 잡은 고찰 칠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로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초기 혜소국사가 현재의 비각 자리 백련암에서 수도할 때 찾아왔던 7명의 악인을 교화시켜 도를 깨달았다 하여 칠현이 되었고 그리하여 칠현산이다.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1014년 이 절을 크게 중창, 그 후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재 당우로는 대웅전, 원통전, 명부전, 응향각, 천왕문,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으며 웅장한 규모, 우아한 조각과 채색미가 돋보인다. 천왕문 내의 소조사천왕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다. 이 밖에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인목대비의 친필 족자를 비롯하여 당간지주와 많은 부도군이 있다. 이 중 족자는 인목대비가 이 절에 와서 수양할 때 쓴 친필로 전해진다. 또한, 절 입구에 있는 14기의 부도와 절 뒤편의 많은 부도탑 철당간지주 등은 이 절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부속 암자로 명적암, 극락암, 백련암이 있다. 가을 오후,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칠장사는 고요에 묻히기 시작한다. 지금은 지상에 아니 계시는 스승님께서 나를 칠장사로 안내한 어느 청춘의 가을 오후는 오늘처럼 하늘이 높고 파랬다. 그날 대웅전 앞에서 내게 주신 말씀 역시 삶과 문학(詩)에 대한 것이었는데, 사랑이든 문학이든 아름답게 미칠 수 있어야 한다 하셨다. 하면 나는 스승님의 말씀대로 미친 듯 살았던가. 아니었던가. 아이들 단체 소풍으로 소란했던 팜랜드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칠장사 경내를 느리게 걷다 보니 비로소 이곳이 내 자린가 싶은 안온함이 밀려들었다. 해는 사라졌지만 사찰의 고요와 그 고요와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마당 가득한 서양 꽃 메리골드, 훗날 안성의 이 가을을 떠올리면 메리골드가 먼저 생각날 것만 같다. 그러나 메리골드가 아무리 매혹적이어도 오래전 스승과 경내를 거닐며 나눈 그 엄숙하고 따듯한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가을이라는 또 한 번의 축제, 스승은 떠나고 메리골드 가득한 고찰에 잠시 불시착한 나만이 지상의 피안을 걷고 또 걷는 늦은 오후./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18-09-20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학교야, 지금 뭐하니?

지금 교육문제 참담하게 망가져입시제도만 고친다고 해결 안돼학교 시스템 변하기 위해서는먼저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학생들 필요한게 뭔지 고민할 때얼마 전 인터넷에 떠도는 동영상 하나를 보다 경악했다. 어느 고등학교 교실인 듯한데, 학생 서너 명이 빗자루로 선생님의 팔을 때리고 머리에 손찌검하는 장면이었다. 수업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고, 선생님은 무기력하게 피하기만 했다. 주변 여러 학생이 웃으며 방관하거나 즐기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그 교실에 있던 어떤 학생이 휴대폰으로 몰래 촬영한 것이 유출된 듯했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하다 못해, 정말 참담한 심정을 거둘 수 없었다. 이 글을 쓰려고 다시 자료를 검색해보니 TV에서도 이미 뉴스로 다루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시청하여 인지하고 있을 듯하다. 어쩌다 우리 학교가, 나아가 우리 교육이 이렇게 망가졌는가?지난번 중폭의 개각이 있었을 때 교육부 장관이 교체되었다. 이유야 여럿이겠지만 대학입시제도 개선에서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새 교육부 장관이 전임 장관과 다른 특별한 입시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지금 교육의 문제는 입시제도만을 고친다고 해결될 수가 없게 꼬여 있다. 학교는 시대의 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학부모는 '내 아이만을 위한' 교육을 원하고, 사회는 계급분화를 더욱 심화시키며 교육을 무력화시키고, 학생들은 흥미 없는 공부에 지쳐 꿈을 잃고 있다. 너무나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 묘수가 없는 게 솔직한 실상이다. 사회 전체가 확 바뀌지 않는 한 이 늪을 빠져나갈 길이 없어 보인다.나는 34년간 중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났다. 학교 선생 외에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교사로서의 삶을 돌이켜보면 그다지 자부심을 느끼지 못한다. 나 스스로 주어진 틀에 갇혀 학생들을 그 틀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만 했을 뿐, 학생 하나하나가 꿈을 마음껏 펼쳐 나가도록 도와주지 못했던 것 같다. 늘 성적을 강조했고 좋은 대학에 보내는 걸 목표로 삼았다. 아니, 학생과 학부모가 그런 것을 원해서 거기에 부응했다고, 변명처럼 말할 수도 있겠다. 일류 대학이 인간 삶의 궁극적인 질문과 해답도 아니고, 가치와 행복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했다. 이렇게 우리 모두 공범이 되어 수십 년을 지내왔고, 지금 교육은 참담하게 망가졌다.달포 전쯤 런던에 갔다 영국의 공립학교에 다니는 조카를 만났다. 우리 학교와 시스템이 너무나 달라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여러 차이 중에 영국의 학교는 매우 중요한 것 하나를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 조카에 의하면 학교의 규율이 매우 엄격하여, 예를 들어 선생님과 학생이 문에서 만났을 때, 학생이 문을 열고 선생님이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기초 예절을 어기면 엄격한 벌을 받는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2002년 영국에선 중학교부터 '시민교육'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과목의 주제는 "시민의 사회·도덕적 책임감, 지역사회 참여하기, 언론의 중요성, 학교·지방·국가·세계 차원에서 민주주의와 다양성, 나의 권리와 책임, 다문화 이해하기, 인권이 왜 중요한가?, 선거는 언제 어떻게 참여하며 선거 캠페인은 어떻게 조직되나?, 국회는 어떻게 작동하고 정부는 어떻게 예산을 지출하나?, 오늘날 세계평화 유지는 왜 어려운가?" 등등이다. 한 눈으로 봐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타인과 사회를 위한 공헌을 목표로 한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즉 '함께 살기'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학교 시스템이 변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나, 참으로 요원한 일이다. 그래도 새 교육부 장관은 입시제도만 주물럭거리지 말고, 교육의 근본을 다시 점검해주면 좋겠다. 지금 일선 학교에서 우선시하는 국·영·수가 가볍다는 말이 아니라, 정말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지금의 학생은 곧 미래 사회의 주인공이 된다. 지금 학생을 잘 가르치지 못하면 그 미래는 망한 사회가 된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18-09-13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광역버스 탑승기

인천~강남 노선 최대 60㎞ 육박퇴근길 승객·기사들 '녹초'경인고속도로 일반화 됐다지만통행료 변함없고 막히는건 여전'고단한 현실' 개선방법 찾아봐야얼마 전 소리 소문 없이 버스노선 2개가 사라졌다. 올 3월 개통한 인천~광명역을 오가는 광역버스다. 지난달 인천에서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 업체들이 운행 전면 중단을 선언하면서 일파만파 논란이 커졌던 것과는 영 딴판이다. 승객 수가 적어서라고 하지만 KTX 접근성이 떨어지는 인천에서 운영한 지 겨우 반년 만에 해당 노선이 사라지다니 씁쓸할 따름이다. 인천 사람이라면 서울을 오가는 빨간색 광역버스를 한 번쯤은 타 봤을 것이다. 이제는 거의 탈 일이 없지만 빨간색 버스를 볼 때마다 힘든 기억이 저절로 떠오르는 것까진 어쩔 수 없다. 광역버스는 창문을 열 수 없어 환기가 어렵고 뒷문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일단 고속도로에 진입하면 내릴 수도 없으니 비행기 이코노미석 통로에서 목적지까지 꼼짝없이 서서 가야 하는 형벌을 받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자리가 있어서 앉으면 다행이지만 종점에서 타지 않는 이상 퇴근 시간 이후 인천 가는 광역버스에 자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늦은 밤, 서 있는 사람들로 통로까지 꽉 찬 광역버스들이 내달리는 경인고속도로에서 다른 버스의 승객들을 바라보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오곤 했다. 하얗게 빛나는 버스 조명 아래 피곤에 지친 흔들리는 얼굴들, 이름도 모르는 타인들에 대한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그런 감상도 잠시, 서서 갈 자리조차 마땅치 않아 차를 몇 번 보내고 나면 일단 탄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자리에 용케 앉은 사람들은 열이면 열, 무표정하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거나 이미 곤한 잠에 빠져들어 있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아가씨든 아저씨든 가리지 않는다. 입을 반쯤 벌리고 곯아떨어졌거나,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흔들어가며 졸고 있거나, 새근새근 숨소리를 낼 정도로 잠들어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대중교통에서 그렇게 곤히 자는 사람을 한꺼번에 보기도 쉽지 않은데 퇴근길 광역버스에서는 꽤 흔한 풍경이다. 한 번 타면 가는 거리가 길고, 전철과 달리 언제 어디서 차가 막힐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불콰한 얼굴로 술 냄새를 풍기며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고 있는 아저씨 옆이라도 '제발 한 자리만 났으면…' 간절하게 빌게 되는 것이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광역버스에서의 일상이다. 광역버스의 특성상 출퇴근과 막차 시간대에만 승객이 몰리는데, 이 시간이 가장 차가 많이 막히는 시간이라 배차 간격을 좁힌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실제로 전현우 철도연구자에 따르면 일산, 분당 등 1기 신도시를 오가는 광역버스의 운행거리는 25~ 30km인데 비해 인천 노선은 남인천이 40km, 송도는 50km에 달하고, 강남을 오가는 노선은 외곽순환을 우회하느라 60km에 육박한다고까지 한다. 한 번 타면 기본 1시간 반에서 2시간을 훌쩍 넘기다 보니, '대전보다 먼 인천'이란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한번 운전대를 잡으면 최소 4시간을 달려야 하는 기사분들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막히는 퇴근길 내내 서서 이리저리 흔들리다 녹초가 되어 내릴 때면 하루 종일 기점에서 종점까지 왕복하는 기사분들은 어떻게 견딜까 싶다. 실제로 왕복 2시간이 기본인 노선을 운행하다 보면 기사들이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교통 체증이 만성화된 경인고속도로에는 요금소만 있을 뿐 휴게소도 화장실도 졸음쉼터도 없다. 몇 년 전, 한동안 저녁마다 자동차로 서울에서 인천을 왔다갔다 한 적이 있었다. 늦은 밤에 운전하다가 졸립기라도 하면 대책이 없어 아찔했던 순간이 꽤 여러 번이었다. 경인고속도로가 일반화됐다지만 통행료는 그대로 내면서 속도 제한 구간만 많아지고 시도때도없이 막히는 건 여전하니 이용자 입장에서는 뭐가 좋아졌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나야 어쩌다 한 번이었지만 매일 이 답답한 길을 왕복해야 하는 운전기사들과 피로에 지친 채 몸을 맡겨야 하는 승객들의 일상은 생각만 해도 우울할 따름이다. 광역버스 폐선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아직 완전히 해결됐다고 보긴 어렵다. 선택의 여지 없이 이 버스를 탈 수밖에 없는 1천400만명의 승객을 생각한다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고단하기만 한 광역버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볼 때다./정지은 문화평론가·인천문화재단 과장정지은 문화평론가·인천문화재단 과장

2018-09-06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백석과 통영과 난

北 오지중 오지 '양강도 삼수군'에서37년간 유배생활로 生 마감한 '백석'문학은 문학으로 존재할때 '향기'이데올로기 도구되면 생명 다한것'관평의 양'이란 산문 그래서 슬퍼여름의 끝 날이다. 폭염과 폭우로 여름이 갔다. 낮 최고 기온이 38도를 오르내릴 때 통영을 찾았다. 아름다운 도시가 폭염에 녹아내리고 있었다.'명정샘'이라는 푯말을 따라 우회전했지만 막다른 골목이었다. 샘이 있을만한 곳이 아니었다. 황당해하고 있는데 시민이 다가와 펜스 왼쪽을 가리킨다. 아, 그곳이 명정샘이었다. 도로에서 5m쯤 아래, 사각형의 모습으로 나란히 열려 있는 두 개의 샘이 보였다. 명정샘 건너 편에 충렬사도 보였다. 명정샘과 충렬사 사이에 도로가 나 있지만 도시화 이전에는 '명정골'이라는 한적한 마을이었다.1930년대, 이곳 명정골에 난(蘭)이라는 아리따운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 처녀를 백석은 산문 '편지'에서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 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였습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백석(1912-1996)이 통영을 처음 찾은 것은 1935년 6월인 듯 하다. 친구 허준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그는 결혼식장에서 동료 기자 신현중에게 소개 받은, 당시 이화여고 학생이던 난(박경련)에게 첫눈에 반한다. 허준의 통영 신행길에 친구들과 동행한 것은 오로지 난을 만날 수 있겠다 하는 열망 때문이었지만 이루지 못했다. 그 이듬해 1월에 다시 통영을 찾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 명정샘에 혹 그녀가 나와 물을 깃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종일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았지만 허사였다. 그는 충렬사 돌계단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그녀를 기다리며 쓴 시가 '통영'이다. 같은 제목의 시가 3편 있지만 첫 번째 '통영'은 난을 만나기 전의 작품이다. 두 번째 '통영'이 난을 노래한 시편이다.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는데/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샘이 있는 마을인데/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평안도서 오신 듯 한데 동백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로 끝맺는 시 속에 그녀에 대한 사랑과 초조함이 잘 드러나 있다.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계절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라던 불안감은 현실로 이루어진다. 백석은 3월에 다시 통영을 찾았지만 난을 만나지는 못한다. 이때 난의 외사촌오빠인 서병직을 만나 위로를 받으며 통영의 곳곳을 동행했다. 이날을 읊은 시가 '통영-남행시초2'로 서병직에게 헌정된 시다. '통영장 낫대들었다//갓 한닢 쓰고 건시 한 접 사고 홍공단 댕기 한감 끊고 술 한 병 받어들고//화륜선 만저보려 선창 갔다//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 앞에/문둥이 품바타령 듣다가//열이레 달이 올라서/나룻배 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 서병직 씨에게'로 된 시에는 난의 이미지는 없다. 난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백석은 1987년 월북작가 해금조치 이후 전집이 출간되어 민족 시인이 되었지만 북한에서의 생활은 고난이었다. 그가 말년을 보낸 양강도 삼수군은 예부터 오지 중의 오지이며 유배지였다. 1959년 당성이 약한 인민들을 지방 생산현장에 보내는 '붉은 편지 사건'을 계기로 백석은 삼수군 관평리 국영협동농장으로 쫓겨나 양치기로 연명했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그의 유배 생활은 37년이나 되었다. 문학은 문학으로 존재할 때 향기를 지닌다. 문학이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도구로 쓰이게 되면 생명을 다 하는 것이다. 백석이 유배지에서 쓴 '관평의 양'이라는 산문은 그래서 슬프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18-08-30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낯설고 험한 일상 속에서

태국 여행중 알게된 현지 남성 '톰'짧은 만남이후 이어진 메신저 대화 "믿지 말고 조심해!"·"재밌어?"…관광주의점 알려주며 소감 묻기도지금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유난했던 이 계절의 한때를 나는 태국에서 보냈다. 떠나기 전 한동안은 매사에 "몰라요, 몰라, 일단 태국 다녀와서" 하며 지냈다. 어려운 일을 미루는 데 여행은 생각보다 좋은 구실이 되었다. 중요한 게 태국은 아니었지만. 지난한 일상을 되풀이해야 하는 이 도시가 아닌 다른 어딘가가 간절했을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태국에서의 시간은 제법 괜찮았다. 열흘 동안 대체로 혼자 걷고 혼자 보고 혼자 먹었다. 그 시간이 묘한 자유를 주었다. 자유는 때때로 불편했으나, 뜻밖의 여러 가지를 느끼게 했다. 7월의 치앙마이는 우기였다. 뜨거운 볕이 내리쬐다가도 급작스레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그럴 때마다 가까운 식당이나 커피숍으로 뛰어들어가 알 수 없는 이름의 메뉴를 주문해두고는 한참을 앉아 바깥 구경을 했다. 호사가 따로 없다는 생각. 비가 그치면 시장에 들러 먹기 좋게 썰어놓은 과일을 사들고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길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친절해 눈이라도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쩌다 길을 물으면 꽤 먼 거리를 걸어 목적지까지 직접 데려다 주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쉽게 느끼지 못한 정감. 고마운 한편 괜히 어색해 손사래를 치는 일이 잦았다. 톰을 만난 건 나흘째 되던 날 저녁. 타패게이트 뒤편 시끌벅적한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있을 때였다. "코리안?" 누군가 불쑥 말을 걸었다. 압도적인 중국인 관광객들 틈에 끼인 탓에 나를 향해 "니하오"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났기 때문인지 그의 기척이 조금은 반가웠다. 내 또래 태국인 남성 톰은 한국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덕분에 밤이 깊도록 우리의 엉성한 수다는 계속되었는데, 한류 열풍이나 아이돌 같은 가벼운 주제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서로의 전공과 직업, 그리고 이곳과 그곳에서의 서로 같거나 다른 생활로까지 뻗어갔다. 방콕에 있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톰은 몇 년 전 고향인 치앙마이로 돌아와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말 끝에 나는 "근데 태국인들은 술을 잘 안 마시나 봐. 한국인들은 술 정말 좋아하는데"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설핏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사람 사는 건 어디든 다 비슷하지." 그리고 덧붙였다. "넌 태국인들이 일하는 모습만 봤을 테니까." 과연. 이튿날, 그가 일러준 대로, 시티맵에는 없는 올드타운 바깥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술에 얼큰히 취해 비틀대는 현지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톰과 나는 이후로도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이어갔다. "오늘 오후엔 잠시 부악 핫 공원에 들렀어. 그냥 평범한 동네 공원이라는 네 말과는 달리 아주 근사한 곳이더라." "그래? 근데 혹시 거기서 어떤 서양 남자를 만나지 않았어?" "아니, 왜? 누군데?" "요즘 거기서 네덜란드인 하나가 끈질기게 구걸을 해. 아시아 여성들만을 상대로. 돈이 떨어졌는지, 일 년 넘게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있어." 여행자를 가장한 그런 부랑자가 치앙마이엔 아주 많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조심해"라고 덧붙였다. "여기도 나쁜 사람이 많아." 그럴 것이다. 어디나 그렇듯이. 그는 어쩌면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잊지 마, 보기 좋게 꾸며진 것들 뒤에 진짜 삶이 있어. 애써 외면하던 진실을 알아버린 기분이었지만, 톰으로 인해 나는 잠시나마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가 된 것 같았다.며칠 후, 치앙마이를 떠나 방콕으로 향했다. 자신이 아는 방콕의 숨은 맛집과 명소를 세심히 알려주던 톰은 또다시 "조심해. 친절하다고 무조건 믿어선 안 돼" 말했다. 카오산로드의 밤은 서울의 밤만큼 번화했고, 그럴 때마다 아주 잠깐씩 서울의 집을, 사람들을 떠올렸다. 친구가 "재밌어?" 문자를 보내왔을 땐 "글쎄, 슬슬 돌아가고 싶네" 답하기도 했다. 불과 열흘 만에. 톰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언젠가 한국에 놀러와" 했을 때 "응, 가고 싶어. 그렇지만 먼저 돈을 모아야지. 그리고 집을 마련한 다음에……" 라고 말하던 톰. 입버릇처럼 조심해, 조심해, 하던 톰은 조심히 잘 지내고 있을지. 나날이 낯설고 험한 이 일상 속에서./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8-08-23 박소란

[풍경이 있는 에세이]우리들의 장래희망

육아·살림에 바쁜 아이엄마들소설가 되고싶은 마음 한결 같아뒤풀이는 꿈도 못꾸는 그녀들에겐소설이 뭐라고, 그게 뭐라고…그래도 마음 설레는 '짠한 희망'나는 한때 소설 쓰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었다. 신춘문예에 내는 족족 떨어지기만 하던 시절에 그랬다. 이대로는 영영 소설가가 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렇다면 소설 쓰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소설 쓰는 남자를 영영 뒷바라지하며 사는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소설가가 된 이후로도 그랬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 매일매일 소설 이야기를 하고 서로가 쓴 소설을 가장 먼저 읽어주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네가 곱게 커서 인생을 하나도 모르는구나! 소설 쓰는 두 사람이 같이 살면 굶어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진정 모르는 거야?"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의 소망을 비아냥거렸다. 그런 비아냥에 흔들린 것은 아니었지만 사랑에 빠질 만큼 괜찮은 소설가를 만나지 못해 나는 그 소망을 접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즐겁고 짠하다. 요즘은 단편소설 쓰는 창작클래스를 열고 있는데 직장인들이 주로 오는 저녁 클래스와는 달리 오전 11시부터 두 시간씩 하는 낮 클래스는 대부분 아이엄마들이다. 그러니까 아이를 딱 어린이집에 보낸 시간이다. 두 시간 수업이라고는 해도 대부분 수업은 두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고 오가는 길까지 생각하면 네다섯 시간이다. 하원 시간에 맞춰 종종걸음으로 집에 돌아가 보면 청소도 못해놓고 나온 집은 엉망이고 후다닥 간식도 준비해야 하고. 여름이 되자 결석생들이 생겨났다. 방학이 문제였다. 지난주에는 Y가 양해를 구해왔다. "죄송해요. 학원 방학인데 달리 아이를 보낼 데가 없어요. 혼자 있기는 싫다 하고요."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데려오세요! Y는 6학년 얌전한 딸아이를 데려오며 행여 폐를 끼칠까 냉장고 속 과일이며 간식거리를 몽땅 꺼내왔다. 아이는 엄마 곁에 앉아 논술 숙제를 했고 우리는 Y가 챙겨온 귤을 까먹으며 일주일 동안 묵혀놨던 소설 이야기를 떠들었다. 이번 주엔 H가 또 미안해한다. "아직도 유치원 방학이 끝나질 않아요. 맡길 데도 없고요." 여섯 살 아들을 데려올 수야 없으니 꼼짝없이 H는 결석을 할 것이었다. M은 유일한 미혼이지만 너그럽다. "우리 키즈카페 가서 수업할까요? 전 조카 빌려서라도 데려가고 싶은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지만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맥이 풀린 아이엄마들의 토로가 이어졌다. Y가 말했다. "지난번 우리 딸은 수업 같이 와보고는 좋았나 봐요. 엄마가 이렇게 공부를 하는구나, 싶기도 했고 엄마랑 공유하는 비밀이 생긴 기분인가 봐요." 누군가 또 말했다. "아, 수영장 같은데 아이들 다 풀어놓고 우린 맥주 한 잔씩 마시면서 수업했으면!" 나도 보태었다. "아이들 데려오는 클래스 만들어서 수강료 두 배로 올릴까 봐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지만 모두들 신이 나 꺅꺅거렸다. 아이를 맡아줄 곳만 있다면 그깟 소설 하루에 한 편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6주 동안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 것이 클래스의 목표지만 그녀들은 한 주에 소설 초고를 완성하고 그 다음 주면 완성본을 털었다. 하도 기가 막혀 내가 투덜거렸다. "아니, 무슨 소설을 이렇게 전투적으로 열심히 써요? 좀 살살 가요." 하지만 그녀들은 바빴다. 육아를 도와주는 시어머니가 언제 파업을 할지 몰랐고 아이의 학원 스케줄이 꼬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언제 이 클래스를 그만둬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한 엄마는 소설 클래스 듣는 일을 남편과 시댁에게 비밀에 부쳤다. 한가한 취미생활이나 하고 있다는 눈치를 받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주워들은 건데요, K 작가는 등단 전에 아이를 들쳐업고 소설 클래스 뒤풀이 자리를 따라다녔대요. 알짜배기 이야긴 다 뒤풀이에서 나온다고." P가 말했다.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겠는 나는, 수업 시간 내내 최선을 다해 작가들의 뒷담화를 풀어주었다. 얼결에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작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이들 하원 시간을 맞추느라 뒤풀이 같은 건 꿈꿀 수도 없는 우리들을 위한 내 사소한 배려였다 해두자. 소설이 뭐라고. 그게 뭐라고. 그래도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레는, 꽁꽁 숨겨둔 우리들의 즐겁고 짠한 장래희망./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18-08-16 김서령

[풍경이 있는 에세이]걷기 예찬, 영축산 통도사

시간의 결 고스란히 전하는 고찰서마음속 평정심 찾아주는 숲 발걸음두 발로 걷기 멈출땐 내 삶도 정지감정이입 배제 생명순환 지켜볼뿐속도·방향 동시 탐하는건 어리석어부산 해운대에서 며칠을 보내고 귀경길에 찾아간 곳이 양산 통도사다. 사찰 분위기는 여전히 차분하고 고즈넉했다. 21세기 최첨단 문명을 누리는 우리에게 시간의 결을 고스란히 전하는 고찰의 무게감은 모든 것을 초월한 듯 담담하다. 특히 도로에서 사찰로 이어지는 들머리 소나무 숲은 가히 조선소나무의 미적 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주어 절로 걸음이 가볍다.한국 3대 사찰 중 하나로 불상을 모시지 않는 대신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통도사는 대웅전, 대광명전, 영산전, 극락보전 등 12개의 법당과 보광전, 감로당 외 6방과 비각, 천왕문, 불이문, 일주문, 범종각 등 65동 580여 칸에 달하는 대규모 사찰이다. 이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두 차례에 걸쳐 재건축하였으며 대광명전을 제외하면 모두 근세의 건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소속암자가 13개나 된다고 하니 사찰의 규모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목탁소리에 묻혀 한나절 경내를 둘러보고 영축산 자락으로 들었다. 비 갠 후라 풀냄새가 진하다. 계절과 더불어 초록이 깊어지니 계곡의 물소리도 깊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기억장치에 오류가 생겼는지 눈에 보이는 꽃보다 향기로 느끼는 꽃이 더 강하게 각인되는 이유가 뭘까. 본시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은 없는 것이라 했지만 꽃이 좋은 건 감출 수 없는 인간의 간사한 마음이라 해두겠다. 복잡한 생각들을 끝내 내려놓지 못한 채 그것이 조금씩 정리되고 그러다 마음의 평정심 즉 무심이 찾아들 때 떠오른 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숲에서의 걷기가 아니었던가. 오래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롱라를 넘어 신성의 불국정토 묵디나트에서 바라본 메마른 풍경, 산 하나만 넘으면 있을 불국정토 무스탕과 황량하기 그지없는 오래된 미래 라다크 땅을 어찌 잊으랴. 얼마 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을 읽으면서 내면의 성찰과 걷기라는 인문학적 연관성을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던가."당신의 내면으로 가는 문을 다시 열어 보라. 걷는 것은 자신을 열어 놓는 것이다. 우리 발에는 뿌리가 없다. 보행은 가없는 넓은 도서관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걷기는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며 주위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즐기고 음미하는 것이다. 침묵은 어떤 저울의 균형 같은…."브르통의 인상 깊은 제언은 몸과 내면과 실존과 언어라는 단어를 길항으로 퍽이나 오래 내 정신의 버팀목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삶의 정지는 숨이 멎는 순간이 아니라, 두 발로 걷기를 멈추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두 발이 오래 묶여 있었으므로 행여 내 발이 땅을 겁내지 않을까 두렵긴 하나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남았으니 게으름은 거두어야겠다. 수많은 것이 존재하는 지구에 우리가 마음을 나누고 익숙해져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어쩌면 영원에 기댄 자연이라면, 거의 모든 존재감을 영영 알아채지 못한 채 인생이 끝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내가 숲에 들 때마다 느끼는 그 작은 변화들에 대한 알아차림도 어쩌면 아는 게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다만 감정 이입을 최대한 배제하고 조용히 생명의 순환을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힐 뿐. 어려움을 넘어서는 건 쉬운 곳에 닿으려는 열망이라 했다. 외로움을 넘어서려면 외로움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자연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지만 감추는 법도 없다. 작아도 부끄럽지 않고 커도 자랑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속도와 방향을 동시에 탐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수치스럽고 두렵다. 이 실수투성이인 내가 용서받을 수 있을까. 갈망이나 의심이 없는 사람은 퇴보한 사람이라 했다. 나는 누구든 만나고 돌아서는 순간 외롭고 애틋한 게 아니라 헤어지기 직전이 가장 절망적으로 애틋한데 통도사도 그랬다.통도사 일주문 돌기둥에 새겨진 글이다. 方袍圓頂常要淸規(방포원정상요청규) 異性同居必須和睦(이성동거필수화목)' 삭발염의한 수행자들은 늘 청규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서로 성격이 다른 대중이 모여 사는 데는 반드시 화합하고 우애롭게 지내야 한다는 뜻이란다. 그러므로 그대와 나와 우리는 다르지만 하나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2018-08-09 김인자

[풍경이 있는 에세이]기록을 두려워하는 자들

자신의 범죄·치부 감추려고공공 기록 함부로 삭제한 것은범죄자임을 고백하는 것과 같아역사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그 흔적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나역사를 돌이켜보면 권력자들이 기록을 없애려고 애쓴 사례는 흔히 확인할 수 있다. 진시황이 자신을 비판하는 유가의 책을 모두 불사르고, 유생 400여명을 구덩이에 생매장한 이른바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은 아주 유명한 일이다. 우리나라 세종대왕 시절에 있었던 일도 널리 회자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을 만큼 방대하고 자세한 기록인데,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사관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모두 적으니 왕으로서는 매우 불편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국왕이 되기 위해 친형제들을 죽였고 왕이 된 이후에도 권력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을 죽였기에, 이에 대한 사관들 평가가 궁금해 '태종실록'을 보려고 했다. 그러자 영의정 황희가 나서서 이렇게 진언했다. "불가합니다. 만약 실록을 보았다는 게 후손에게 전해지면, 후대의 임금도 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두려워서 어찌 당대 기록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명백한 잘못을 바른 일처럼 꾸밀 것이고, 단점도 장점처럼 교묘히 바꾸게 될 것입니다. 그런 기록이 남는다면 누가 실록을 믿겠습니까." 결국, 세종은 황희 말을 듣고 열람을 포기한다.역사라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기록은 물론, 사회 구성원 특히 공적으로 생산된 모든 기록을 토대로 성립된다. 그러므로 공공기관이나 그런 직무를 맡은 사람이 만든 기록은 사유물이 아니라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다. 대통령이 만든 서류를 대통령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없앨 수 없고, 국회의원이 만든 법안이나 의정활동 내용을 함부로 덮으려 하면 안 된다. 법관이 판결을 위해 만든 자료는 비록 재판이 끝나고 시효가 지났다고 해서 지워버리면 안 된다. 그 모든 것은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재산이며 역사이기 때문이다. 지난날 우리는 대통령 기록물을 무단 반출했다는 이유로 전직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결국 죽음을 맞는 엄청난 비극을 함께 본 바가 있다. 그런데도 이후 이런 일이 그치지 않고 계속 거듭되는 슬픈 현실에 분노를 느낀다. 크든 작든 모든 공공의 기록은 함부로 폐기하거나 감춰서는 안 되는 것이다.얼마 전 행정안전부의 국가기록원 감사 결과, '제헌헌법' 초고 등 국가 주요기록물의 관리가 엉망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등과 관련한 중요한 기록이 그것을 추진한 당시 대통령과 관련자에 의해 무단 폐기되었다는 소식도 듣는다. 더구나 자신들에게 불리할 수 있는 수많은 기록을 무단 반출해 은닉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촛불혁명에 의해 해임된 정권은 다음 대통령에게 인수인계할 자료가 거의 없으며, 매우 의심스럽게도 전자기록물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 또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사건이 하나 있으니, 양심과 정의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대법원에서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전 대법원장의 혐의를 수사해야 하는 순간에 그의 컴퓨터가 '디가우징' 되었다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럴싸한 말로 포장했지만 '디가우징'은 간단히 '불법삭제'했다는 뜻이다.기록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범죄나 치부를 감추려고 그런 짓을 한다. 기록을 지우려 했다는 것은 역으로 자신이 범죄자임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기록의 내용과 관계없이 공공재를 파괴하였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잘못을 덮기 위함이 아니면 기록을 지울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하지만 범죄자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역사는 지우개로 연필낙서 지우듯 쉬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진시황이 얼마나 독재자였는지, 조선의 태종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였는지 잘 안다. 전직 대통령들이 지우려 한 기록에도 그들의 범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다 보인다. 더구나 지금은 디지털 시대, 디가우징으로 하드디스크를 지운다 해도 그 흔적은 언젠가 다시 살아나 돌아올 것이다. 꼭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미 그들의 죄는 이 사회와 국민이 다 알고 있으며,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분명히 깨닫고 있을 것이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18-08-02 정한용

[풍경이 있는 에세이]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나이 먹는건 두렵지않아' 가사처럼 나도 제대로된 삶을 살며 늙는다면 자신만의 모습으로 당당한 삶 추구빨간머리앤 조세핀·마릴라 떠올라갈대같은 내가 진정 닮고싶은 어른덥다. 이제 너무 많이 들어서 덥다고 말하기조차 지친다. 이런 추세라면 지구의 온도가 점점 더 올라가고 기후변화에 따라 2100년쯤에는 인간은 물론이고 동·식물의 생존 자체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래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 더 이상 나빠질 것 없어 보이는 현재가 사실은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되면 나도 모르게 우울해진다. 이렇게 덥고 지치는 올 여름, 잠시나마 날 위로해주는 노래가 있다. 바로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란 노래다. 이 노래는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 최근에는 같은 제목의 책도 나왔다. 이 다큐멘터리는 장혜영 감독이 18년간 시설에서 살던 중증 발달장애인 동생 혜정씨를 사회로 데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일 년여의 시간을 담았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사는 일상은 '위대하지도, 불쌍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다만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제주도에 간 자매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우쿨렐레를 튕기면서 부르던 이 노래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얼렁뚱땅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데 마음이 평화로워진다고나 할까.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죽임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굶어 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나이를 먹는 건 두렵지 않아/상냥함을 잃어가는 것이 두려울 뿐/모두가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 감독이 직접 작사, 작곡한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이 덥고 힘든 여름도 어느새 지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내가 할머니가 되려면 아직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만, 2018년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솔직히 걱정되기도 한다. 과연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싶어서. 상냥함을 잃지 않고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지 않으면서 몸은 할머니가 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할머니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더욱 자신이 없다. 그래서 요즘 들어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란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언제 어른이 될지 몰라 혼란스러운 건 나만은 아니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얼마 전에 김민정 시인이 "마흔이 넘으면 저절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내 마음은 중고등학생 시절과 달라진 게 없다"고 고백했는데,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현실에는 닮고 싶은 어른이 별로 없지만 미국 드라마 '빨간머리 앤'에는 내가 닮고 싶은, 무사히 할머니가 된 어른들이 많이 나온다. 앤을 키우고 있는 마릴라와 앤의 절친 다이애나의 조세핀 고모할머니가 바로 그렇다. 조세핀 할머니는 상당한 재력의 소유자로 대저택에서 고용인을 거느리고 우아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동성 친구와 법적 혼인을 할 수 없었지만 먼저 떠나보낸 그녀와의 시간을 사랑하는 당당한 할머니다. 괴팍해 보이던 조세핀 할머니는 누구보다 열린 마음의 소유자로 앤과 친구가 되고 "다른 사람이 아닌 너 자신의 모습으로 살라"는 소중한 조언을 건넨다.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면서도 받는 사람이 구차해지지 않게 만드는 진정한 어른이기도 하다. 가난하지만 멋진 할머니이긴 마릴라도 만만치 않다. 마릴라는 아픈 어머니를 간호하고 동생을 돌보기 위해 결혼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사람들의 편견에 시달리지만 자신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인 마릴라가 고아 소녀 앤을 만나 보여주는 변화는 '삶의 대부분을 변화 없이 산 사람'이 얼마나 많이 달라질 수 있는지, 그럼으로써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또 다른 어른의 모습이기도 하다.아직도 이런저런 유혹과 감정에 흔들리며 살아가는 나로서는 부럽고 닮고 싶은 어른이다. 나는 과연 어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먼 훗날 혐오가 넘치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남아 무사히 할머니가 된다면 "우리가 좋아한 그 가게에 앉아/오늘 처음 이 별에 온 외계인들처럼 웃을 거야"라는 노래 가사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웃고 싶다./정지은 문화평론가·인천문화재단 과장정지은 문화평론가·인천문화재단 과장

2018-07-26 정지은

[풍경이 있는 에세이]지훈과 승무와 호수

금광호수, 태양광발전소로 수난마을사람들 "천혜의 위안" 반대지사적인 시인 조지훈은 일깨운다'지조'란 순일한 정신 지키는 신념눈물겨운 정성·고귀한 투쟁이라고용주사의 여름 낙조는 장엄하다. 서산을 붉게 물들이며 쿵 소리를 내는 듯 내려 박히는 붉은 해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폭염이 계속되는 날씨니 내일도 저 낙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사체의 벽이 붉게 물들어 있다. 절을 드나드는 불자들의 표정도 붉게 물들어 숭고하게 보인다. 깨달음의 비장미로 읽어도 좋을 듯하다. 불자들만 드나드는 것은 아니다. 널리 알려진 절이라서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지훈이 용주사에서 큰 재(齋)가 열려 승무와 불교 전래음악이 펼쳐진다는 소식을 듣고 화성의 용주사를 찾은 것은 1939년 가을쯤 일 것이다. 밤 깊어 펼쳐진 승무, 숨 막히게 아름다운 선과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와 오동잎 위에 놓인 달빛과 하이얀 고깔과 펼치는 듯 멈추어 서는 순간의 버슴새가 그를 황홀경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감나무 밑에 오래 서 있었다. 승무를 시로 쓰리라. 그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열아홉은 온 세상이 찬란한 나이였다.조지훈(1920~1968)은 쉬이 승무를 시로 옮기지 못했다. 한 줄 구상도 못하고 괴로움에 싸여 있다가 스무 살 되던 해 여름, 미술전람회에 갔다가 김은호의 '승무도'를 보고 비로소 첫행을 쓸 수 있었다. 그러고도 몇 달, '승무'는 파리한 채 멈춰 있었다. 10월에 구왕궁 아악부에서 '영상회상'을 감상하고 얻은 이미지로 '승무'를 완성하게 되었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파르라니 깎은 머리/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두 볼에 흐르는 빛이/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빈 대(臺)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로 수많은 독자의 가슴에 새겨진 '승무'는 용주사 입구에 시비로 세워져 있다. 청록파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목월과는 서로 시를 헌정하는 돈독한 관계를 보였지만 두진과는 전해오는 일화가 없다. 혹 '호수'라는 그의 시가 안성 금광호반에서 집필하던 두진을 방문하고 쓴 것이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보지만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장독대 위로 흰 달 솟고/새빨간 봉선화 이우는 밤//작은 호수로 가는 길에/호이호이 휘파람 날려 보다//머리칼 하얀 옷고름/바람이 가져가고//사슴이 처럼 향긋한/그림자 따라//산밑 주막에서//막걸리를 마신다'로 맺는 '호수'는 여름 밤, 호수로 가는 길에 옷고름을 바람에 날리며 가는 사람의 향긋한 몸내를 따라가 산밑 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신다는 목가적인 풍경을 노래한 시다. 그렇다. 호수는 목가적인 풍광이고 낭만적인 공간이다. 호수가 요즘 수난이다. 호수에 태양광발전소를 세운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호수를 천혜의 위안으로 삼고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이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박두진의 둘레길이 조성된 금광호수도 예외는 아니다.조지훈은 지사적인 시인이다. 1960년에 발표된 지조론에서 지조의 사회적 가치를 논하며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서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을 무릅쓸 각오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고 설파하고 있다. 그는 친일파가 해방이 되자 친미파로 변신하는 것에 혐오감을 드러냈고 이승만 정권 말기, 학생의 의분을 촉구하며 대학생이 혁명의 선두에 설 것을 요구했다. '오늘의 대학생은 무엇을 자임하는가? 학문에의 침잠을 방패 삼아 이 참혹한 민족적 현실에 눈감으려는 경향은 없는가? 오늘의 대학생은 무엇을 자임하여야 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우리는 민족의 지사, 구국의 투사로서 자임할 시기가 왔다.'라고 외치던 그였다.그는 '지조란 것은 순일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라고 우리들을 일깨운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18-07-19 김윤배

[풍경이 있는 에세이]커피숍에서 만나요

평일 오후 외곽의 고요한 커피숍다양한 혼자들과 '따로 또 같이'어느날 우연히 아는사람 마주쳐옆테이블과 짧은 눈인사 나누는 일어쩌면 나는 그런 일 바라고 있는듯어디서 글을 쓰세요? 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는 평소 집에 틀어박혀 있길 즐기지만, 중요한 작업이나 마감을 앞둔 때, 오늘은 기필코 무언가를 좀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날에는 커피숍으로 간다. 커피숍에 앉아 글을 쓸 때 어쩐지 안정감을 느낀다. 집에서는 장시간 집중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 아마도 딴짓하고 참견할 거리가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커피숍이 좋다고는 해도 물론 아무 커피숍이나 다 괜찮은 것은 아니다. 내 경우 몇 가지 요건이 있다. 적당히 한적할 것. 고요한 사이사이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적당히 섞여들 것. 조명은 적당히 은은한 밝기를 유지할 것. 적당한 볼륨의 재즈가 흐를 것. 또 간간이 바깥을 내다보며 한눈을 팔 수 있을 정도의 적당히 널찍한 창이 하나쯤 있을 것. 이처럼 '적당한' 요건이 갖춰진 커피숍에 앉아 달달한 커피를 주문해 두고 시를 생각하는 일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작지만 가장 확실한 행복이기도 하다. 다행히 나는 이런 커피숍을 한두 곳쯤 알고 있고, 그중 한 곳은 집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다. 요즘의 나는 바깥에 나가 일을 하지 않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 커피숍에서 보낸다.나 자신의 생활이 이렇다 보니, 노트북 앞에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커피숍에 앉아 있는 이들의 모습이 내게는 낯설지 않다. 어쩌다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에 24시 커피숍에 들를 때면, 그 시간에도 빈 테이블을 찾기 힘들 만큼 사람들로 빼곡한 광경에 세상에나, 이 많은 사람들이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조금 놀라기도 하지만 이내 묘한 안도감에 젖고는 한다. 마감에 쫓기는 이가 나 하나만은 아니구나. 그렇구나.이런 나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 즉 '카공족'으로 분류될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카일족'이라 해야겠지만. 카공족이든 카일족이든 물론 약간의 에티켓은 필요하다. '카공충'이 되는 건 아무래도 곤란하니까. 평소보다 좀 더 길게 머문다 싶은 날엔 음료나 디저트를 추가로 주문하는 센스를 발휘하는 것. 나의 소중한 아지트가 매출 부진 같은 황망한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것을 원치 않으므로.단골 커피숍에 대한 이 같은 각별함은 나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업무 형태가 유사한 동료 작가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얼마 전 한 작가와 만나 수다를 떨다 잠시 커피숍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는 거의 매일 오전 커피숍으로 출근하는 매우 성실한 '카일족'이다. 조용하고 쾌적한 집을 두고 굳이 커피숍으로 향하는 이유를 묻자, 조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백색소음이나 무제한 와이파이 같은 편의적 차원과는 다른. 그는 말했다. "외롭지 않으니까." 커피숍에서라면 외로움을 조금 덜 수 있다는 이야기. 여러 타인들 틈에서 혼자라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는. 함께라는 그 묘한 느낌이 공허한 일상을 견딜 수 있게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가볍게 덧붙였다. "다들 같은 마음 아닐까?"그 물음이 묘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커피숍 라이프를 새삼 돌아보게 했다. 나는 왜 커피숍으로 향하는 것일까. 행여 아는 사람과 마주치지는 않을까, 내가 하는 잡다한 일을 옆 테이블에서 훔쳐보지는 않을까, 구석으로만 파고드는 내게도 실은 외로움이라는 마음이 숨어 있었을까. 그 마음이 나를 집 밖으로 이끌었을까. 그러자 늘 같다고 여기던 커피숍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짐작하듯, 나는 지금도 집 앞 커피숍에 나와 이 글을 쓴다. 평일 오후 외곽의 커피숍은 고요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휴대폰을 붙잡고 놓지 않는 사람. 누군가는 잡지를 뒤적이고, 누군가는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노트북을 들여다본다. 그 옆의 누군가는 꾸벅꾸벅 존다. 개중에는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얼굴도 섞여 있다. 이들은 대체로 모두 혼자다. 커피머신 곁에 앉아 숨을 돌리는 아르바이트생도, 그의 오늘치 피곤을 가늠해보는 나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 이토록 다양한 혼자들과 함께. 따로 또 같이.어느 날 문득 이곳 커피숍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 옆 테이블과 짧은 눈인사를 나누는 일. 어쩌면 그런 일을 나는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8-07-12 박소란

[풍경이 있는 에세이]밥 한 공기만 주세요

이웃집 아기엄마 밥 한공기 얻어가며주고 간 토마토와 팬케이크잔뜩 얻어먹고 미안한 마음에"차 마시러 놀러오세요" 빈말만어릴적 아랫목 아버지 밥통 아련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아기엄마가 초인종을 눌렀다.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이라곤 가스검침원과 택배기사 정도라 의아한 얼굴로 문을 열었더니 뜻밖에도 "저기, 죄송한데 밥 한 공기만 얻어갈 수 있나요?" 한다. 하도 오랜만에 듣는 소리라 나는 그만 웃음이 터질 뻔했다.2분도 안 걸리는 곳에 편의점이 있으니 햇반 한 개 사오면 그만일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토마토를 담은 봉지와 팬케이크 접시를 들고 있었다. 공깃밥 한 개와 바꾸기에는 아무래도 저울이 맞지 않는 일이었다. 얼른 밥 한 공기를 퍼서 내미는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팬케이크 먹고 싶대서 구워줬더니 싫다지 뭐예요. 밥 달라고 칭얼대서요." 보온밥통에서 이미 네댓 시간은 지난 데다 콩 한 줌 섞지 않은 말간 맨밥이라 미안했지만 나는 열 개도 넘는 토마토와 팬케이크 접시를 냉큼 받았다. 곰과 토끼가 그려진 아기 밥그릇을 들고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계단을 총총총 뛰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자니, 밥도 필요하지 않으면서 공연히 나를 웃겨주려고 이렇게 나타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첫 우리 집은 1978년, 그러니까 내가 다섯 살이던 시절이다. 엄마로서는 첫 내집 마련을 했던 때다. 커다랗고 빨간 고무대야를 내어놓고 세 딸들이 참방참방 물놀이를 해도 거뜬할 만큼 마당이 넓었고 아버지가 박아둔 장대를 타고 포도넝쿨이 잘도 자라던 집이었다. "넓기는. 야, 그 집이 마당 빼고 딱 여덟 평짜리였어." 엄마는 내 기억을 비웃었다. 그렇게 넓었던 집이 여덟 평짜리였다니. 다섯 살 내가 골목을 뛰어다니다 저물녘이 되어 돌아오면 안방 아랫목에는 지난밤 덮고 잤던 이불들이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싸늘해진 발을 이불 속으로 디밀면 언제나 발끝에 만져지던 스테인리스 밥통. 아니, 어쩌면 양은밥통이었을까. 삼교대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버지가 30분 안에 밥상을 받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엄마는 밥상 차리는 일에 골몰했다. 성실한 아버지는 퇴근길 술 한 잔을 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딱딱 제시간에 돌아왔고 엄마는 날래게도 밥상을 차려냈다. 그리고 이불 속에서 밥통을 꺼내 공기에 덜었다. 열두 평으로 넓혀 이사를 갔던 두 번째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이불 속 발끝에 따끈한 밥통이 차였다. 나지막한 옥상도 있고 마당 수돗가 옆으로는 사랑채에 세든 신혼부부가 배짱 좋게 들여놓은 칠면조도 두 마리나 있던 집이었다. "밥상 들여가요!" 엄마가 소리를 치면 아버지가 몸을 일으켜 밥상을 반짝 들고 들어왔고 세 딸들은 제가 먼저 이불 속 밥통을 꺼내겠다고 실랑이를 했다. 그렇게 동그랗게 앉아 밥을 풀 때면 누군가 마루문을 열었다. 골목 열두 집 중 어느 집은 꼭 밥 한 공기씩 부족했다. "우리 엄마가 밥 한 공기만 달래요." 하는 꼬맹이던가 "밥 한 그릇 줄 거 남았나?" 물으며 찐 고구마 한 양푼을 내어놓는 동네 아줌마였다. 나도 대접 하나 들고 밥을 빌리러 이집 저집 다닌 적이 많았다. 아줌마들은 주걱에 붙은 밥알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떼어주었다.그런 일은 스무 살이 넘어서도 계속되었다.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난 후 종종 고향 집엘 들르면 나는 마루에 게으르게 누워 책을 읽거나 엄마와 밀린 수다를 나누었는데, 그럴 때면 앞집 아줌마나 옆집 아줌마가 우리 집 대문을 빵 차고 아무렇게나 들어왔다. "이집 둘째 왔다면서?" 오랜만에 온 이웃집 둘째 딸을 위해서 뭇국이나 가자미구이, 오징어 부침개 등을 가져다주던 그녀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아 인사를 하고선 아줌마들이 건네는 음식들을 받아먹었다. 그렇게 자랐다.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여서, "저 집 막내가 서울서 왔잖아. 애들 데리고." 그러면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챙기곤 했다. 참 별것도 아닌 것들. 고사리 무친 것과 냉잇국, 그런 것들 말이다. 토마토와 팬케이크를 잔뜩 얻어먹어 미안한 마음에 나도 냉장고를 한참 노려보았지만 가져다줄 것이 마땅찮았다. 어쩌나 어쩌나 하고 있는데 아기엄마가 빈 밥그릇을 들고 왔다. 줄 것이 없어 나는 머리통을 긁적였다. 그래서 그냥 빈말. "다음에 차 마시러 놀러 오세요" 시시하게도 그런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 말았다./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18-07-05 김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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