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영화로 읽는 역사

 

[박신영의 영화로 보는 역사] '아버지의 시장 전장 막장'

"애국이란 태국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지난 1월 6일, 한일위안부피해 협상 타결을 찬성하며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하려는 어버이연합 회원들 앞에 효녀연합의 홍승희 씨는 이렇게 쓰인 손팻말을 들고 섰다. 어버이연합의 한 70대 회원은 홍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전쟁을 알아?" 최근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로 '국제시장'이 있다. 1950년, 흥남 철수 때 부산으로 피란 온 덕수는 아버지 대신 가장이 되어 국제시장에서 일한다. 독일에 광부로, 전쟁 중인 베트남에 근로자로 돈 벌러 간다. 이산가족 찾기 방송 덕분에 피란 통에 잃어버린 여동생은 찾았지만 아버지는 영영 못 만난다. 국제시장의 '꽃분이네' 잡화점을 지키며 덕수는 점점 고집 센 노인이 되어간다. 영화는 덕수의 개인사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보여준다. 부산 국제시장에서뿐만 아니라 독일,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등 진짜 국제 시장에 자신의 몸을 상품으로 팔며 살아온 우리 아버지들의 역사를. 한편, 영화는 덕수의 심리적 문제도 잘 보여준다. 영화 마지막 장면, 가족들에게 따돌림당한다고 느낀 덕수는 방에 들어가 "아버지, 저 정말 힘들었어요"라며 혼자 훌쩍인다. 어느새 영화 속 덕수 노인은 전쟁 당시 어린 소년이 되어 있었다. 그는 아버지 대신 가장이 되어야한다는 과중한 책임감과 등에 업은 여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래서인지 덕수의 가장 노릇은 가족을 위해 자신은 이렇게도 희생했다는 점을 피학적으로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평생 전쟁과 가난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덕수의 마음 속에는 어쩌면 의젓한 어른 대신 시장과 전장과 막장에서 영원히 울고 있는 어린 아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겉모습은 자녀들이나 길거리 젊은이들에게 언성 높이는 고집불통 노인이지만. 현재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집단 트라우마는 전쟁과 가난, 즉 죽음에 대한 공포다. 전쟁이 끝나고 6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는 치유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전쟁과 가난이 고통스러운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집단 트라우마를 치유하기는커녕, 계속 확대 재생산하기를 원하는 세력이 있는 점에 주목해보자. 가장 노릇이 버거운 어린 덕수들의 아버지 부재 상황을 국가라는 더 큰 가부장에 기대게 하는 세력, 국론이 통일된 강하고 큰 국가를 만든다는 미명 아래 정부와 여당 정치인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를 유도하며 다른 목소리는 빨갱이에 종북 세력으로 몰아간 세력 말이다. 그들은 힘들게 살아온 덕수 노인들의 트라우마와 순수한 애국심을 이용해서 이익을 챙기고 있다. 평생 고생하신 우리 어버이들을 다시 막장으로 몰아넣고 있다.덕수의 자녀 세대인 우리는 전쟁을 모른다. 하지만 평생 시장과 전장, 막장에서 고생하신 우리 어버이들을 존경하고 그분들의 트라우마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니 어르신들도 우리 세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 기억해 주셨으면. 심리학자 주디스 허먼은 '국가 또한 트라우마를 재경험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를 기억하고, 애도하며, 속죄해야 한다'라고 명저 '트라우마'에서 말했다. 다시, 효녀 연합의 손팻말을 떠올려 본다. 우리 세대에 새로 발생한 집단 트라우마는 세월호 참사다./박신영 작가박신영 작가

2016-01-17 박신영

[박신영의 영화로 보는 역사] 인간의 본성을 보려면

1940년 여름, 독일군이 프랑스 북부를 점령한다. 파리 근처 소도시 뷔시에도 점령군이 밀려온다. 포고령에 따라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집을 독일군 숙소로 제공해야 한다. 남편을 전쟁터로 보낸 루실이 시어머니와 살고 있는 대저택에는 독일장교 브루노가 묵게 된다. 루실은 브루노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에 귀가, 곧이어 마음이 열린다. 둘은 비밀스런 사랑을 나눈다. 브루노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스윗 프랑세즈’를 작곡한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제목을 오해했다. ‘스윗’은 ‘sweet’이 아니라 ‘조곡’을 의미하는 ‘suite’이라는 것을 모르고, 잘생긴 남자 배우가 등장하는 달콤한 로맨스 영화를 기대하며 극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한 전쟁 배경 로맨스 영화가 아니었다. 다루는 전쟁 자체가 달랐다. 영화는 독일과 프랑스라는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프랑스라는 한 국가 내부의 전쟁을, 독일 침략 이전부터 존재했던 계급 갈등을 주로 보여준다. 지주는 전쟁을 틈타 소작인을 더욱 착취하여 이익을 추구한다. 귀족은 자신의 특권만 보장해준다면 적군에게 협조하고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점령군 본부에 밀고장을 써서 서로를 고발한다. 밀고장 처리가 주 임무인 브루노는 루실에게 밀고장을 보여준다. 그중에는 ‘공산주의자’를 고발하는 것도 있었다. 아니, 반세기전 프랑스에서도 ‘빨갱이’라는 공격이 자행되었다니, 이게 무슨 일일까? 역사적 내력은 이렇다. 1918년, 1차대전 종전 후 프랑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국가에 기여한 바에 대한 보상을 받고자 했다. 특히 그들은 전쟁기간 동안 국가 전쟁 물자를 수주하여 성장한 재벌들에 비판적이었다. 이는 적극적인 노동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중 기념비적 성취는 1936년 6월의 총파업이다. 이로 인해 평균 10% 임금 인상, 주당 40시간 노동제, 노사분쟁 중재와 조정을 위한 기구 설치, 모든 노동자에게 2주간 유급 휴가 부여를 주 내용으로 담은 역사적인 ‘마티뇽 협약’이 체결된다. 프랑스 기업가들은 반동 운동에 나섰다. 대혁명 시기의 망명 귀족들처럼. 그들은 좌익 세력 척결을 외치고,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독일 나치스의 파시스트 운동을 찬양하기까지 했다. 1939년, 2차 대전이 발발했다. 독일은 북부 프랑스를 점령하고 남부 프랑스에 비시 괴뢰 정부를 세웠다. 이때부터 1945년 종전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비애국적이었던 집단은 기업가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독일에 협력하고 그동안 눈엣가시였던 노동운동 참여자들 명단을 나치에 넘겼다. 영화 속 밀고장처럼.영화는 이렇게 전쟁 이전부터 존재했던 프랑스 내부의 모순과 계급 갈등을 고발한다. 즉, 독일군이 점령하기 훨씬 이전부터 프랑스는 전쟁 상태였던 것이다. 단지 전쟁은 그동안 몰랐던 인간과 집단의 본성을 드러내 주었을 뿐. “인간의 본성을 보려면 전쟁을 하면 된다”는 영화 초반부의 대사처럼 말이다. 이 모든 전쟁을 관찰하며 루실은 각성, 성장한다. 지주인 시어머니의 만행을 목격하고 독일군에게 쫓기는 소작인을 숨겨준다. 브루노와의 사랑의 한계도 깨닫는다. 영화 마지막에서 루실은 레지스탕스에 참여하러 파리로 떠난다. 이제 루실은 알아 버린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아아, 영화 속 루실만 그러랴. 우리 역시 올 한 해, 너무도 깊이 인간과 집단의 본성을, 한 국가 내부의 전쟁을 봐 버린 것을./박신영 작가박신영 작가

2015-12-20 박신영

[박신영의 영화로 보는 역사] 가려진 여인상 가려진 역사

영화 ‘위로공단’은 2014년 ‘수출의 여인상’ 제막식 장면에서 시작한다. 감독은 구로공단 50주년 기념으로 세운 여인상이 다시 하얀 포장막으로 가려지게끔 필름을 거꾸로 돌려 버린다. 이어서 영화는 1970년대 청계천 봉제·가발공장, 1978년의 동일방직, 1979년의 YH무역, 1985년의 동맹파업에 참여한 구로공단, 2002년의 기륭전자, 2007년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2011년의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며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증언을 담는다. 세월이 흘렀다. 갓 상경한 소녀들이 공장에 취직하려고 모여들던 가리봉 지역은 가산 디지털단지로 바뀌었지만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노동자가 대우받으며 잘사는 세상은 여전히 오지 않고 있다. 현재 여성노동자들은 기본적인 육체노동에 더해 감정노동에까지 시달리고 있다. 이를 영화는 다산콜센터 상담원과 스튜어디스, 대형 마트 직원의 인터뷰로 보여준다. 한편,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면 빨갱이로 몰려 구타당하던 구로공단의 여공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2014년, 여성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시위하자 무장군인들이 총을 쏘아 진압한다. 캄보디아 프놈펜의 카나디아 공단에 있는 한국 의류 공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영화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구로공단에서 카나디아 공단까지,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자본과 공권력에 맞서 싸운 여성노동자들의 각각 다른 시간과 공간의 기억을 상징적 이미지로 연결하여 주제를 드러낸다. 영화제 아닌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것이 이해가 된다. 특히 인터뷰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수건이나 보자기, 손으로 눈을 가리고 걸어가는 자매가 등장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수출의 여인상’이 가려지는 첫 장면에서 암시하듯, 이들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역사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나의 어머니와 여성 노동자들에게 바칩니다.’ 영화가 끝날 때 화면에 떠오른 자막을 보고 있노라니 착잡한 기분이다. ‘한국 여성들은 의무는 행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한다’‘국가 발전에 기여하지 않으면서 남성들에게 기생해서 혜택만 누리려 한다’라는 일부 여성혐오자들의 주장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인권이란, 천부인권이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존중받고 누릴 수 있는 권리이며 국방이나 납세의 의무 이행과는 아무 상관없다. 게다가 산업기반시설이 없던 과거 우리 경제를 일으킨 주역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한 봉제공장과 가발공장의 여공들이었다. 중공업 현장의 남성 노동자들이 대거 참여한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에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대부분 여성 노동자들이 이끌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물론, 엄연히 역사에 기록된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우리 옆에 계신 우리 어머니 세대들의 살아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왜 이 사실을 모를까.극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 배웠던 국사 교과서를 꺼내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 부분을 찾아 보았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건설 현장과 중공업 공장에서 일하는 남성 노동자들의 사진만 실려 있었다. 어디에도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서술과 사진은 없었다. 아하, 이래서 편향된 역사 교과서로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되나보다. 참고로, 나의 국사교과서는 1982년에 초판 발행된 국정교과서다./박신영 작가박신영 작가

2015-11-22 박신영

[박신영의 영화로 보는 역사] 집안일과 나랏일

사도세자 최후의 8일을 다룬 영화 ‘사도’는 아비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회상을 넘나들며 전개된다. 바탕은 세자빈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록’이다.영조는 숙종의 아들이지만 생모의 출신이 미천했다. 형인 경종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왕이 되었기에 정식 세자 교육을 못 받았다. 경종을 독살하여 왕위를 차지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왕의 자격과 자질을 의심하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 열등감에 시달리던 영조는 아들이 태어나자 일찌감치 세자로 책봉하고 좋은 교육환경을 마련해준다. 그러나 과도한 기대와 사랑은 곧 실망과 증오로 바뀌었다. 자신이 정한 높은 기준에 아들이 못 미쳤기 때문이다. 영화 속 영조는 세자를 야단친다. “이 좋은 환경에서 왜 공부를 안 하니?” 아비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던 아들은 점차 모든 노력이 헛수고란 것을 알게 된다. 마음의 병을 얻어 기행과 살인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한중록’의 무인년(1758년) 이월 이십칠일 기록을 보자. 세자가 “심화가 나면 견디지 못하여 사람을 죽이거나 닭 짐승을 죽이거나 하여야 마음이 낫습니다” 하니 영조가 이유를 묻는다. 세자는 대답한다. “사랑하지 아니하시기에 서럽고 꾸중하시기에 무서워 화가 되어 그러합니다.” 그러나 일국의 세자가 아버지의 인정을 못 받아 화가 난다고 홍길동처럼 가출할 수도 없는 일, 정신병에 걸린 세자는 무덤을 짓고 관 속에 들어간다. 어쩌면 그는 자궁회귀, 재생을 원한 것일까. 이번 생에서는 아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 차라리 죽어 다시 태어나길 바란 것일까. 그러나 아비는 이번에는 아들을 자궁 아닌 뒤주에 넣는다. 탕평론을 내걸었지만 즉위를 도와준 노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영조와 소론 정견을 가진 세자의 대립을 사도 세자 죽음의 원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견해는 혜경궁 홍씨가 의도적으로 부자간 대립과 세자의 정신병을 과장하여 ‘한중록’을 기록했다고 본다. 사도세자 죽음을 주도한 노론 친정 세력과 아들 정조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남편의 죽음을 방조한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서. 그러나 혜경궁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소현세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아들 석철은 세손으로 봉해지기는커녕 귀양간 제주도에서 병사하고, 친정은 몰락하고, 자신은 사약을 받은 세자빈 강씨의 선례가 겨우 120여년 전이었는데. 광해군을 몰아낸 반정공신들 덕분에 즉위했으며 병자호란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인조 역시 자신의 왕으로서의 자격과 자질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다. 청에 인질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강빈이 정치적 경제적 능력을 보이자, 이들이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까 의심했다. 이런 상황은 인조의 소현세자 독살설을 낳았다. 사도세자 이전에 나쁜 선례가 역사에 이미 있었던 셈이다. 영화에서 영조는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고 집안일이다!”라고 외쳤지만 결국 사도세자의 참변은 역사에 ‘임오화변’으로 기록되었다. 역사에 선례를 남긴다는 것은 무섭다. 개인적 열등감과 한 때문에 ‘집안일’과 ‘나랏일’을 구분 못하는 것은 더욱 무섭다. 지금, 새로운 나쁜 예가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즉위 후 아버지인 사도세자 명예 회복 사업을 벌인 정조야 다른 나랏일도 잘했다만./박신영 작가박신영 작가

2015-10-25 박신영

참사인가 학살인가

식인 다큐멘터리를 찍는 미국인 일행이 우크라이나에 도착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과거 대기근 시기, 우크라이나에는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기근 이후 수십 년이 흘러도 살인과 식인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이를 취재하러 온 일행은 사건 생존자와 영매를 만나 숲속 외딴 집으로 간다. 사건 현장인 그 집에서 50명 이상을 살해하고 시신을 먹은 죄로 1994년 사형당한 안드레이 치카틸로의 악령과 대결하게 된다. 잔인한 장면이 계속되다 문득 영화는 끝난다. 실망스러웠다. 영화는 공포 영화답지도 못하고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제대로 다뤄주지도 못했다. 아무리 의미를 찾으려 해도 치카틸로가 대기근 당시 소련 경찰에게 잡아먹힌 형의 유골을 수습해 줄 것을 요구한다는 점 정도다.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홀로도모르(Holodomor)’라고 불린다. ‘굶주림, 배고픔’을 의미하는 ‘홀로도’와 ‘박멸이나 제거’를 의미하는 ‘모르’의 합성어다. 1929~1931년, 구 소련연방의 스탈린은 강제적인 농업집단화 정책을 추진한다. 당시 소련연방에 속했던 우크라이나의 농산물을 수출하여 그 돈으로 경제개발을 꾀한다. 토지를 내놓고 집단농장 건설에 동참할 것을 강요당한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반발, 저항에 나선다. 이에 스탈린은 수확물을 강제 수탈한다. 가족의 식량은 물론 파종할 종자까지 가져갔기에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대기근에 처한다. 소련은 우크라이나 경계에 특별 경비대를 배치하여 식량을 찾아 이동하는 굶주린 사람들을 즉각 총살, 체포한다. 수출할 정도로 충분한 곡물 비축량이 있었는데도 구호하지 않는다. 외국 기자의 우크라이나 여행을 금지시켜 대기근 참사가 세계에 보도되는 것을 막고 외부 식량 지원도 막는다. 기록에 따르면 1932년에서 1933년까지 최저 300만명에서 최대 1천만명에 달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이때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는 3천만명이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는 매년 11월 넷째 토요일을 기근 희생자 추모일로 정하고 국제사회가 홀로도모르를 대기근 참사가 아닌 집단학살로 선포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원래 흑해 북쪽에 위치한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바구니’로 불렸다. 현재에도 밀과 옥수수 수출이 각각 세계 3위일 정도로 비옥한 흑토 곡창지대에서 가뭄이나 홍수 등 기후와 아무 상관없이 이렇게 끔찍한 대규모 기근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연방 제2민족인 우크라이나인의 민족주의 움직임을 경계한 스탈린이 자연스런 민족 숙청을 의도한 결과다. 즉,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참사가 아니라 특정 민족을 대량 학살하는 ‘제노사이드(genocide)’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소련정부의 지속적 개입과 묵인 아래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참사 이후 1991년 소련해체 때까지 기근과 관련된 모든 문서가 비밀서류로 분류되고 공론화가 금지되고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을 반체제인사로 몰아갈 이유가 뭐란 말인가? 영화는 기대 이하였지만, 그래도 덕분에 확실히 알겠다. 애초에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인데 발생하게 두었고,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않았고, 언론은 통제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책임지지 않았고, 실상 조사를 요구하거나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은 반체제 인사로 몰려 처벌받는다. 그렇다면 그 사건은 ‘참사’가 아니고 ‘학살’인 것이라는 것을. /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2015-09-20 박신영

국기 강하식과 상속자들

영화 ‘암살’이 지난 광복절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는 친일파 청산과 일제 잔재 극복이라는 우리 근현대사의 못다 한 과제를 보여준다. 그러기에 경성역에 도착한 암살단 일행이 사이렌이 울리자 일장기에 고개를 숙이는 짧은 장면도 놓칠 수 없다. 정오에 사이렌을 울려 일본군과 일왕을 위한 묵도를 올리게 했던 이 의식은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실시된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 중 하나였다. ‘암살’의 시대 배경인 1933년에는 없었다. 하지만 영화 ‘국제시장’에서 6시 국기강하식 시간이 되자 말다툼 중이던 주인공 부부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1970년대 장면과 연관 지어 보면 생각해볼 점이 많다.국기강하식을 비롯,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 국가가 애국심을 고취한다는 명목하에 국민 개인의 정신과 육체를 통제했던 모든 의식은 일제의 직접적 영향은 아니다. 만주국을 거쳐 온 일제의 영향이다. 일제는 1906년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세우고 철도 수비대를 보낸다. 이 군대는 후에 731부대로 악명 높은 관동군의 모태가 된다. 만주사변을 일으킨 다음 해인 1932년에는 만주국을 세운다. 비록 독립국의 형식을 갖고 만주족인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를 황제로 즉위시키기는 했지만, 만주국은 일제의 괴뢰국이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이후 노골적인 침략과 합병이 국제적 비난을 받게 되자 도입한 새로운 제국주의 지배방식이었다. 곧 만주국은 일제가 벌인 전쟁의 배후기지가 되었다.그러나 기존 지배계급이 없는 신생국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기회의 공간이었다. 1930년대 조선과 일본에는 만주 붐이 일었다. 합 120만명이나 되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만주로 갔다. 만주국에는 50개 민족이 존재했다. 이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려 짧은 시간 내에 국가가 원하는 국민을 만들기 위해 만주국은 다양한 방법을 고안한다. 경직된 국민의례, 집단 체조, 행진, 계몽영화 상영, 표어짓기, 웅변대회, 멸공대회 등등 파시스트적 의식들이 시행된다. 이 방법들은 이후 한국의 근대국가 만들기 과정에 그대로 이식된다. 기회의 땅을 찾아 1940년 만주군관학교에 혈서를 써서 입학한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박정희에 의해서. 박정희의 가장 큰 업적으로 여겨지는 경제개발과 근대화 정책도 만주국의 정책이 모델이다. 만주국의 산업정책을 담당한 인물은 만주의 산업부 차관을 거쳐 1941년부터는 일본의 상공대신이었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였다. 그는 일본 패망 후에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필요에 의해 풀려나 1957년에는 일본 총리가 된다. 그는 박정희와의 만주 인맥으로 한일협정의 물밑 작업을 맡기도 했다.현재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한국의 대통령은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의 딸이다. 국기강하식은 1989년 폐지 되었지만 만주국 유산의 상속자들은 한일 양국에 걸쳐 굳건히 존재한다. 그러고 보니, ‘암살’의 제작진은 ‘국제 시장’의 국기강하식 장면을 보고 애국심에 감동 받았다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진짜 서늘한 감동을 주기 위해 연도 차이는 있지만 일장기 앞 묵도 장면을 일부러 영화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2015-08-23 박신영

울지 말고 일어나 피리를 불어라

어느 외딴 마을에 떠돌이 악사 부자가 들어선다. 마을의 우환인 쥐를 없앨 수 있다는 악사의 말에 촌장은 후한 대가를 약속한다. 악사는 피리 연주와 약초 지식을 이용해 쥐를 없앤다. 사례금이 아까운 촌장은 그를 간첩으로 몰아간다. 마을 사람들도 이에 동조한다. 대가를 받기는 커녕 손가락을 잘리고 아들마저 잃은 악사는 피리를 불며 복수에 나선다.영화 ‘손님’의 기본 내용은 독일 전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다. 이 전설은 정확히 1284년 6월 26일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옛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하멜른시 곳곳에는 이 사건과 관련된 흔적이 남아있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 아이들이 지나갔다고 알려진 골목길은 최근까지 노래와 춤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피리 부는 사나이가 130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이 전설의 전부다. 그런데 이후, 하멜른시에 기근·전염병·전쟁 등 큰 사건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내용이 더해졌다. 시당국으로부터 배신당한 쥐잡이가 복수하기 위해 아이들을 데려갔다는 모티브가 더해진 것은 16세기다. 이 시기 하멜른시는 대홍수와 흑사병·종교전쟁을 겪는다. 도시 하층민들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도시의 지배자들에게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 지배자가 잘못했는데 죄 없는 아이와 가난한 부모들이 피해를 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이들을 데려갔다는 원래의 전설에 시당국으로부터 배신당한 쥐잡이가 복수를 하는 모티브를 추가해서 대리 만족을 꾀했다. 그러나 하멜른시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전설이 변형되는 것을 ‘좌시’하고 있지는 않았다. ‘약자의 복수’보다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쪽으로 전설을 변형시켰다. 사회적 약자인 떠돌이 악사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씌웠다. 현재 우리가 ‘그림 동화’로 알고 있는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는 이 판본이다. 이렇게 보니, 영화 ‘손님’에서 이 전설을 한국적으로 변용시킨 시대배경이 6·25라는 점이 의미심장해 보인다. 전쟁·대형사고·전염병 등 공동체의 위기상황이 생기면 지배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야 한다. 거짓 약속으로 당장의 위기만 넘겨 버릇하거나 공동체의 약자를 희생시키면서 그 참사를 목격한 사람들의 입단속만 하는 것은 지배자의 주 업무가 아니다. 하지만 6·25이후 남북한의 지배자들은 서로의 존재 덕분에 위기를 넘기고 민중들의 입단속에 성공했다. 촌장과 그의 아들은 말한다. “좌시하지 않겠다” “입단속 하란 말이다” “입 좌, 단속 시!” 촌장은 어둠속에서 몰려오는 쥐떼같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침묵을, 암묵적 동의를 강요한다. “살기 위해 지은 죄는 죄가 아니다”며. 이 말의 현대 판본은 “일단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가 아닌가? 그렇다면 크게 보아 우리는 아직도 6·25 전쟁 중이며 고립된 마을에 있는 셈이다. 영화 ‘손님’의 내용이 뻔하고 결말이 끔찍한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먹고사니즘’에 빠져 촌장을 ‘좌시’하고 있다가는 우리의 미래, 우리의 아이들마저 희생된다는 것을. 그러기에 우리는 오히려 손님을 청해야 한다. 제발 울지말고 일어나, 피리를 불어달라고. 죄책감이 쥐떼처럼 몰려와 우리의 비겁한 마음을 물어뜯게 해달라고./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2015-07-26 박신영

중년 아저씨들의 그랜드 투어

영국 배우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실명으로 출연하는 영화다. 1965년생 동갑내기 아저씨 둘은 영국 시인 바이런과 셸리의 200년 전 발자취를 따라 이탈리아를 여행한다. 6일간 바이런이 머물렀던 집, 셸리가 요트사고로 익사한 바다, 셸리를 화장한 해변, 로마에 있는 셸리의 묘지를 방문한다. 그동안 둘은 쉬지않고 먹고 떠들어댄다. 그들이 따라간 바이런의 여행은 ‘그랜드 투어’였다. 그랜드 투어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특히 영국의 상류층에서 유행한 유럽여행이다. 영국의 귀족이나 자본가 등 상류계급은 조기유학과 어학연수, 해외여행을 겸해서 자식을 유럽에 보냈다. 당시 영국은 해상권을 장악하고 식민지를 확대하여 나날이 부강해졌지만 실질적 문화대국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였다. 과거 로마제국 변방의 촌뜨기라는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 영국 상층 계급의 부모는 자식들이 세련된 문화와 유서깊은 역사를 현장에서 배워오길 원했다. 프랑스에서 에티켓을 배우고 이탈리아에서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를 공부하는 것이 기본 코스였다. 2~3년간의 그랜드 투어를 마치고 귀국한 이들은 저서를 남겼다. 에드워드 기번은 1764년 로마를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로마제국 쇠망사’를 썼다. 바이런은 장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를 써서 “자고 일어나보니 유명해졌다.” 한편, 가난한 지식인들은 가정교사 자격으로 그랜드 투어에 동행하여 견문을 넓혔다. ‘리바이어던’의 토마스 홉스,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가 대표적이다. 그랜드 투어는 북유럽에도 유행했다. 그랜드 투어 경험을 알차게 이용한 영국 외 여행객으로는 ‘이탈리아 기행’을 쓴 독일의 괴테, 서유럽의 공장과 박물관, 병원, 조선소 등을 둘러 본 후 서구화 정책을 추진한 러시아의 표트르 1세가 유명하다.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여행을 많이 하는 영국인’이란 표현을 쓸 정도로 그랜드 투어는 영국인들에게 의미깊은 전통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 묘사된 영국 중년 아저씨들의 여행은 전통적인 영국식 그랜드 투어답지 않다. 이들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도 이탈리아를 보고 말하지 않는다. ‘돌체 비타’, ‘대부’등 자신이 보았던 이탈리아 배경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자신들이 아는 배우들의 성대모사를 즐긴다. 앨라니스 모리셋의 반항적 노래인 ‘All I really want’를 크게 들으며 신나게 시작한 여행은 갈수록 무거워진다. 셸리의 죽음을 따라 가고, 폼페이 유적과 묘지를 방문하면서 그들은 죽음을 생각한다. 그들의 머릿속은 현실 문제로 꽉 차 있어서 그랜드 투어에서 새로 보고 듣고 배울 여유가 없다. 그래도 일탈을 꿈꾸며 ‘노팅힐’과 ‘로마의 휴일’의 결말을 비교해 보기도 하지만, 중년의 그들은 이미 바람직한 결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여인과 하룻밤을 보낸 후에는 얼른 가족과 통화해야 마음이 편하다.가진 것과 아는 것이 너무 많은 나이의 여행이란 이런 것일까. 이제 늙은 제국 영국은 그랜드 투어를 할 필요가 없어서일까. 아름다운 풍경도, ‘먹방’도 자주 등장하는데 왜 이리도 영화가 쓸쓸할까. 아마도 나는 아직은 ‘전망 좋은 방’스타일의 이탈리아 여행에 더 끌리는 것 같다./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2015-06-28 박신영

‘니가 가라, 발할라’

‘니가 가라, 발할라’ 안전띠를 매고 봐야 할 것 같은 영화다. 핵전쟁 후 살아남은 인류는 각자 살길을 찾거나 군사집단을 이뤄 한정된 자원을 놓고 싸운다. 임모탄은 물과 기름을 차지한 시티델의 독재자다. 그는 내세를 약속하여 소년병을 자살특공대로, 건강한 아들을 얻기 위해 여인들을 씨받이로 이용한다. 이에 반발한 사령관 퓨리오사는 전투 트럭을 몰고 임모탄의 아내들과 함께 탈출한다. 사막을 떠돌다 수혈용 노예로 잡힌 맥스, 워보이 눅스도 퓨리오사 일행을 돕게 된다. 그들은 임모탄과 워보이들에게 쫓기며 싸우며 120분간 쉼 없이 사막을 질주한다. 영화 속에서 독재자 임모탄은 천국에 가게 된다며 워보이들의 자살공격을 부추긴다. 천국으로 번역된 ‘발할라’는 구전되던 북유럽 서사시를 기록한 ‘에다’에 나오는 오딘 신의 연회장이다. 뜻은 ‘싸우다 죽은 자들의 홀’. 오딘은 그곳에 용맹한 전사자들을 모아 보석과 무기를 상으로 준다. 전사들은 멧돼지 고기를 먹고 꿀술을 마시며 최후의 전투인 라그나뢰크에 대비하여 훈련한다. 바그너 악극 ‘니벨룽의 반지’에 등장하여 유명해진 발퀴리가 전사자들을 이 궁전으로 데려간다. 악극의 원작은 12세기 말에 성립한 게르만 전설 ‘니벨룽의 노래’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독일은 늦게 통일을 이뤘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은 독일인들은 민족의식에 눈을 뜬다. 게르만족의 단결을 고취할 민족 서사시로 ‘니벨룽의 노래’를 발굴한다. 각국의 지배자들은 충성스런 게르만 전사들을 영웅화한다. 1842년, 바이에른 공국은 게르만 위인들의 흉상을 전시한 거대한 신전을 지어 발할라 신전이라 부른다. 독일 청년들은 전사 영웅들을 숭배하며 전쟁터로 간다. 마침내 1871년, 독일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이겨 통일 독일제국을 이룩한다. 그러나 통일 이후에도 독일의 지배자들은 여전히 청년들을 발할라의 문으로 몰고 간다. 발할라의 문은 히틀러 치하에서 가장 활짝 열렸다. 1943년 1월, 독일군 사령관 괴링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니벨룽의 노래’에 등장하는 영웅으로 칭찬했다. 하지만 발할라로 보내진 전사자들은 대개 가난한 계급 출신인 어린 병사들이었다. 나치 독일의 기갑부대 지휘관이었던 요아핌 파이퍼는 전범 재판에서 증언한다. “부하들 대부분이 매우 어리고 광적인 병사들이었다는 것을 노르망디 전투가 끝난 후에야 깨달았다.” 그렇다. 왕, 총통, 지휘관은 먼저 발할라에 가지 않았다.공명심에 들뜨거나 소외된 젊은이를 조종하고 희생시켜 이익을 챙기는 지배자가 있는 집단은 많다. 이슬람국가(IS)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 없다. 임모탄은 곳곳에 있다. 사람들에게 물을 조금 나눠주고는 물에 중독되지 말라고 훈계하는 영화 속 임모탄을 보라. 자신이 속한 집단이 가진 것을 나눌 생각이 없는 지도자는, 현재 이곳의 문제 해결 없이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으라고 가르치는 어른은 다 현실의 임모탄이다. 천국이건 중동이건, 청년들을 다른 곳으로 내모는 이들 임모탄들의 입에 크롬 스프레이 뿌리고 말해주자. 니가 가라, 발할라! 니 먼저 가라, 발할라!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너 없이 시작하고 싶으니./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2015-05-31 박신영

그들 역시 카이사르가 되길 원했기에

원작은 만화 ‘아스테릭스’ 시리즈다. 기원전 50년경 카이사르는 갈리아 정복을 완료한다. 그러나 원작자 르네 고시니와 알베르 우데르조는 로마제국에 끝까지 정복당하지 않은 한 마을을 설정한다. 바로 아스테릭스가 사는 골족 마을! 마법 물약을 마시는 골족 전사들은 천하무적이기 때문이다. 시리즈 18권을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에서 카이사르는 군사적 침략 대신 경제적·문화적 침략을 꾀한다. ‘신들의 전당’이라는 아파트를 골 마을 옆에 지어 로마시민들을 이주시키는 방법으로. 마을 사람들은 서서히 경제적 이익과 화려한 로마 문화에 빠진다. 로마의 아파트로 이사간다. 하지만 곧 정신차리고 골족 전사답게 맞선다. 카이사르는 ‘왔노라, 보았노라, 못 이겼노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영화 전체에는 미국식 문화, 경제 침략에 대한 저항과 비판이 흐른다. 아스테릭스는 프랑스의 자존심으로 통한다. 만화는 물론, 아스테릭스 테마파크, 아스테릭스 햄버거 등 이 만화와 관련된 문화상품 전체가 미국 문화와 대결하고 있다. 골족 전사들의 이름이 ‘-릭스’ 패턴으로 끝나는 것 자체가 제국의 침략에 맞선 갈리아 전사 ‘베르생제토릭스’에 대한 존경을 표시한다. 베르생제토릭스는 기원전 52년의 알레시아 공방전에서 갈리아 연합군을 이끌고 카이사르에 맞서 싸웠다가 생포되었다. 이번 영화에서 마을의 족장이 늘 타고 다니는 방패가 로마인에게 팔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방패는 원래 베르생제토릭스의 유물이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카이사르의 가장 큰 업적은 갈리아 정복이다. 역사가들은 이 정복전쟁이 유럽의 기초를 만들었다고 평한다. 그러나 카이사르와 로마제국 입장에서 갈리아 전쟁사를 보는 것은 승자의 시각에 빠질 우려가 있다. 부당하다. 옛 갈리아지역 대부분과 현재 영토가 겹치는 프랑스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풀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10년간 갈리아 사람 100만명을 죽이고 100만명은 생포했다. 당시 갈리아 총 인구는 1천200만명이었다.19세기 후반, 유럽 각국에 민족주의 열풍이 분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알레시아 전투가 벌어진 오수아 산에 전체 높이가 14m나 되는 거대한 베르생제토릭스 동상을 세운다. 베르생제토릭스는 프랑스의 민족 영웅이 되었다. 프랑스와 경쟁관계에 있던 독일 역시 로마제국에 저항한 민족 영웅을 부활시킨다. 빌헬름 1세는 서기 9년의 바루스 전투에서 로마 3개 군단을 무찌른 게르만 지도자 아르마니우스의 거대 동상을 세운다. 히틀러 시대에 나치 소년단들은 그 동상에 참배했다. 나폴레옹 3세, 빌헬름 1세, 히틀러. 사실 그들이 되고 싶었던 것은 제국에 맞선 영웅이 아니라 제국의 황제, 카이사르였다. 시저(Caesar), 카이저(Kaiser), 차르(Czar) 등 카이사르의 성은 유럽 각국에서 황제란 의미로 쓰인다.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아스테릭스를 프랑스의 자존심이며 미국 자본과 대중문화 침략에 맞서는 영웅으로 해석하는 것은 프랑스 국내용으로 족하다. 현재의 1류 제국을 비판하는 과거 2류 제국의 의미부여를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다. 물론 만화영화는 매우 재미있으니 즐기면 된다./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2015-05-03 박신영

신데렐라는 왜 밤 12시전까지 와야 했을까

이번 ‘신데렐라’는 페로 동화를 바탕으로 한 1950년 작 애니메이션과 달랐다. 그림동화의 신데렐라인 ‘아셴푸틀’을 반영해 친어머니의 유훈을 기억하고 꿋꿋이 사는 신데렐라를 보여주었다. 신데렐라 유형 이야기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다양한 판본으로 약 1천종이 있다. 하지만 디즈니애니메이션 때문에 신데렐라는 왕자의 구원을 기다리는 의존적이고 나약한 여자로 오해받는다.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는 드라마나 영화 속 여주인공을 현대판 신데렐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연 ‘신데렐라’는 여자가 결혼으로 신분 상승하는 것만이 주제일까?‘백마 탄 왕자’가 구해주고 결혼하는 여성들은 누구인가? 백설공주, 잠자는 공주, 왕자와 결혼하기에 문제없는 신분인 공주들이다. 반면 신데렐라는 평민이다. 이번 실사 영화에 잘 나와 있듯, 왕자와 결혼하기 어려운 신분이다. 이런 여성에게 왕자가 관심을 가져 순수한 사랑을 나누다가 결혼에 이를 확률은 거의 없다. 일부일처제를 규정한 기독교의 영향으로 유럽 왕실은 후궁이나 하렘을 두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든 왕실의 남성들이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아내에게 평생 충실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현실적 이익을 따져서 결혼할 여성과 성적 만족을 얻을 여성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러기에 평민 여성이 사냥이나 영토 시찰 중인 ‘백마 탄 왕자’를 만나는 것은 왕자비 아닌 첩이 될 기회를 만난 것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이 사실을 대놓고 기본 설정으로 삼은 현대판 신데렐라 영화다. 아나스타샤는 그레이에게 사랑을 원한다. 성공한 사업가인 그레이는 계약서를 들이민다. 그녀를 방에 가두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학대하려 든다. 옛날 왕자들이 평민 여성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성적 대상으로 여기던 역사적 사실과 다를 바 없다.‘신데렐라’의 요정 대모는 말한다. 밤 12시 전까지 돌아오라고. 이 말의 의미는 뭘까? 가톨릭의 신앙 후견인인 ‘대모(代母)’는 엄마를 대신하는 존재다. 엄마들이 데이트하러 외출하는 딸에게 하는 말은 늘 ‘일찍 들어와라. 몇 시 전까지 들어와라’이다. 밤 12시, 자정을 전후해 날짜는 바뀐다. 그렇다면 자정까지 돌아오라는 요정 대모-엄마의 당부는 왕자와 밤을 보내지 말라, 섣불리 성관계를 갖고 왕자의 첩이 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발레 ‘지젤’에서 농민의 딸 지젤은 사냥 나온 영주의 아들 알베르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알베르트는 지젤에게 자신의 신분을 속인다. 약혼한 공녀가 있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사실을 알게 된 지젤은 충격으로 사망, 독일판 처녀귀신인 빌리가 된다. ‘지젤’은 독일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설화는 기록되지 않은 민중의 역사다. 실재 역사에서 ‘백마 탄 왕자’를 만난 평민 여성의 이야기에는 이런 슬픈 결말이 더 많았을 것이다. 결혼해서 왕자비가 되는 해피엔딩은 불가능했다.하지만 설화를 즐기는 민중들은 신데렐라를 왕자와 결혼시킨다. 하룻밤 성적 노리개로 이용되고 버려지거나 첩살이할 처지에 있는 평민의 딸이 고귀한 왕자비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평민도 왕자와 대등한 존재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한참 왕자가 달아올랐을 때 뿌리치고 가버리는 신데렐라와 아나스타샤는 보여준다. 우리는 너희의 편의를 위해 이용당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신분 재산 권력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그러기에 나는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놀라운 혁명성을 발견하고 늘 감탄한다./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2015-04-05 박신영

인삼대왕고은을 아시나요

조선 정조 19년(1795년), 명탐정 김민은 조수 서필과 함께 불량 은괴 제작과 유통의 배후를 파헤치고 사라진 소녀들을 찾는다. 4년만에 돌아온 <조선 명탐정>은 이번에도 무난한 가족 오락 영화였다. 영화는 기발한 발명품을 이용한 아기자기한 액션과 명콤비의 만담같은 입씨름을 보여준다. 영화 속 은괴는 정은(丁銀)이다. 1609년, 조선과 일본은 기유조약을 맺어 임진왜란 이후 단절된 국교를 회복하고 부산에 왜관을 설치해 무역을 재개한다. 일본은 은에 구리를 첨가하여 만든 은괴(銀塊)인 정은으로 무역대금을 지불한다. 에도 막부는 게이초 정은(慶長丁銀)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정은을 만들었다. 게이초 정은의 중량은 약 161g, 길이는 8.3㎝정도였으나 각 시기에 만들어진 정은마다 무게와 은 함량이 달랐다. 그래서 액면가 그대로 사용하는 오늘날 화폐와 달리 정은은 무게를 달아 사용했다. 17세기 후반, 일본 자국 내에서의 은 수요는 증가한 반면 은광은 쇠퇴해갔다. 이에 막부는 은의 해외수출을 금지하고 대신 구리를 수출했다. 은 부족 현상은 정은의 품질에도 영향을 끼쳤다. 1601년 만든 게이초 정은의 은 함유량은 80%였으나 1695년 만든 겐로쿠 정은은 64%였다. 정은의 은 함량은 갈수록 떨어져갔다. 그러나 막부는 은 수출을 금지하면서도 대마도와 부산 왜관을 통해 조선으로는 계속 은을 대량 수출했다. 조선의 인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막부는 인삼 수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은 함량 80%인 인삼대왕고은(人蔘對往古銀)이라는 특별한 정은까지 만들었다. 이 정은은 일본 국내 유통용이 아니라 오로지 조선의 인삼을 사오기 위한 목적으로 1710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인삼대왕고은 120개로 인삼 한 관을 살 수 있었으며 이런 식으로 일본에서 조선으로 들어온 은은 매년 5.3t에 달했다고 한다. 조선 상인들은 이렇게 부산 왜관에서 인삼을 팔아 받은 일본 은을 중국에 가져갔다. 중국에서는 비싼 값에 은을 팔고 비단 등을 사들여 왔다. 조선은 세계 최대 은 수요국인 중국과 세계 2위의 은 수출국인 일본 사이에서 능동적인 은 중개역할을 했다. 그 증거가 바로 인삼대왕고은이다. 사실, 불량 은괴는 영화에 나온 것처럼 그렇게 일반 백성들의 생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일반 백성들은 쌀과 베, 동전을 화폐로 썼기 때문이다. 대중오락영화에서 뭐 이런 것을 역사왜곡이라고 따질 생각은 없다. 내가 이 영화 속 정은을 보면서 생각한 역사 왜곡은 영화 밖, 세계사 책 속에 있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대항해시대 등 서구 위주로 근대사 서술을 시작하는 역사책에서는 근대 세계의 귀금속 유통과 화폐 체제의 성립도 서구 시각으로만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콜럼버스 이후 아메리카 대륙의 은이 유럽으로 가고, 그 은은 차와 비단 무역을 통해 다시 중국으로 갔으며 이는 아편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서술은 오직 유럽의 적극적 활동만 강조한다. 그러나 근대 초 일본은 멕시코에 이어 세계 2위의 은 수출국이었으며 당시 세계에는 아메리카, 유럽, 중국만이 아니라 일본, 조선, 중국으로 가는 은의 길이 명백히 또 있었다. 바로 그 중심에 인삼대왕고은과 조선의 인삼이 있었다. 이렇듯 세계사적으로 봐도 중요한 은의 흐름에 관련한 문제이기에 우리의 조선 명탐정은 처벌을 각오하고 유배지를 이탈해서까지 불량 은괴 수사에 나섰나 보다. 아, 물론 본질적으로는 후손들의 명절 극장 나들이를 위해서였겠지만./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2015-03-08 박신영

저주는 계속되어야 한다

‘박물관이 살아있다’가 3편으로 끝났다. 이 시리즈는 박물관의 야간 경비원 래리가 밤이면 살아나는 전시물들 덕분에 자신감을 얻고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을 담은 무난한 가족 오락영화였다. 2006년 미국의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시작하여 2009년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거쳐 2014년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까지 보여 주기에 화면에서나마 세계 유명 박물관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의 나라 유물을 가져다 놓은 전시관을 볼 때는 씁쓸하긴 하지만.고대 그리스 여신 뮤즈(Muse) 신전의 보물 창고인 무세이온(museion)에서 유래한 서구의 박물관, 뮤지엄(museum)은 기원전 3세기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무세이온을 거쳐 고대 로마제국과 중세시대에는 유력자들이 수집한 예술품과 도서를 가정에 전시했다가 친지들에게 공개하며 권력을 과시하는 형태가 되었다. 17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왕실, 귀족, 교회의 소장품을 일반 대중에게 교육적 목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예술·역사·미술·과학·기술에 관한 수집품 및 식물원·동물원·수족관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자료·표본 등을 각종 방법으로 보존하고 연구하여, 일반 대중의 교육과 오락을 위하여 공개 전시함을 목적으로 이룩된 항구적 공공시설’이란 국제박물관회의헌장의 박물관 정의에 부합하는 공공시설로서의 근대적 박물관이 탄생한 것이다.이렇게 탄생한 서구의 근대 박물관은 18세기에 이르면 영국 대영 박물관(1753)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1793)처럼 국립 박물관의 형태로 건립되면서 규모가 커진다. 국가나 왕실의 대규모 소장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해 왕궁시설을 이용하거나 박물관 전용 건물을 신축하면서 박물관 건물의 크기나 웅장함이 제국의 위상을 드러낸다는 인식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각 제국의 국립박물관들은 식민지의 문화재를 약탈하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수집하여 거대한 박물관의 내부 전시실을 경쟁적으로 채웠다. 침략한 식민지의 유물을 운반하는 임무는 육군 공병대 군인에게 있었다. 19세기 영국 국립박물관의 요직은 거의 군인들이 차지했다. 유물을 전시하는 방법에서도 제국주의적 시선은 적용되었다. 각각의 유물은 역사적 맥락이나 가치보다 해당 지역의 열등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해설이 붙어 전시되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의 주된 재미는 황금 석판이 가진 마법 덕분에 밤마다 살아나는 밀랍인형들이 일으키는 소동에 있다. 이 황금 석판은 어디에서 왔을까? 역시 이집트에서 약탈해 온 것이다. 이렇듯 모험, 오락 영화에는 서구 제국이 약탈한 보물에 얽힌 마법이나 저주가 많이 등장한다. 1922년 발굴된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유래한 ‘파라오의 저주’가 대표적이다. 발굴 관련자 22명이 사망했다지만, 대부분 발굴 시기보다 한참 늦게 당시 평균 사망 연령보다 고령으로 사망했기에 이들의 사망 원인은 ‘파라오의 저주’가 아니다. 하지만, ‘파라오의 저주’ 운운하는 현상은 매우 바람직하다. 이런 식으로라도 과거 제국주의자 선조들이 약탈해온 유물을 보며 그 후손들이 경각심과 죄책감을 느끼고 과거사를 반성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주는 계속되어야만 한다!/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2015-02-08 박신영

탈출 : 신들과 가부장들

'엑소더스(Exodus)'의 뜻은 '탈출'이다. 기독교 구약성경에서는 모세가 히브리 민족을 이끌고 노예살이하던 애굽, 즉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기록인 '출애굽기(出埃及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엑소더스'는 '홍해의 기적' 이후의 일은 간략히 보여준다. 우상숭배를 하는 동족을 저주하고 십계명 석판을 들고 우뚝 선 모세를 묘사하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이 흥미로웠다. 모세가 '십계'에서처럼 강력한 가부장이자 지도자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역사학자 거다 러너에 따르면 서구사회의 가부장제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고대국가 성립과정에서 기원한다. 그리고 기독교에 의해 공고화된다. 이때 큰 역할을 하는 가부장들은 노아·아브라함·모세다. 이들은 방주를 짓거나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하거나 파라오와 대결한 후 민족을 이끌고 40년간 광야를 헤맨다. 이들 가부장에게 가족이나 부족·민족 성원들은 절대 복종해야만 한다. 신의 중계자인 그들은 신에게서 권력을 받았기 때문이다.현대의 우리가 보기에 이러한 구약시대의 신과 가부장의 모습에는 불합리한 점이 많다. 자신의 피조물을 홍수로 몰살시키려는 신, 아들을 죽여 제물로 바치라는 신, 이집트인이라고 죄없는 아이들을 학살하는 신이라니. 또 그런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가부장들이라니. 그래서 영화 '노아'나 '엑소더스'를 보고 기독교에 반감을 느낀다는 평도 있나 보다. 하지만 이는 기독교의 문제가 아니다. 고대의 신들은 원래 이랬다. 히브리인의 신이건 이집트인의 신이건.영화속에서 모세가 만난 신이 '떼쓰는 아이'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점에 주목해보자. 고대 신화와 종교 경전에 기록된 신들 혹은 영웅들의 투쟁은 선과 악의 대결처럼 그려졌지만 사실은 나의 편과 남의 편의 싸움이었다. 전쟁에서 이긴 부족은 자신들의 신이 다른 부족을 징벌했다고 믿었으며 전후 처리 과정의 하나로 패배한 부족의 신을 하급 신이나 악마로 바꿔 서술했다. 그러기에 고대의 신이란 자신이 속한 집단만이 무조건 옳다고 '떼쓰는 아이'같은 신이다.모든 인류에게 정의와 사랑을 베푸는 신이 아니었다. 보편적인 도덕과 정의·죄에 대한 개념은 기원전 2000년기 후반 정도에야 등장했다. 바로 이 시기가 모세가 활동한 시대다. 학자들 대다수는 모세의 출애굽이 기원전 13세기 경에 일어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집트인에게 재앙을 내리려는 신에게 대드는 종교 지도자 모세, 어린 아들의 시신을 들고 "이게 너희가 믿는 신이냐?"고 울부짖는 파라오 람세스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민족의 해방자 모세, 가족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사명 사이에서 갈등하는 가부장 모세는 인류사적으로 진일보한 인물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만이, 자신만이 옳다고 맹목적으로 믿지 않기에.이렇게 구약 '출애굽기'와도, 반세기 전 영화 '십계'와도 다르게 그려진 이번 영화속 모세의 모습은 아마도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고 가부장제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요즘 시대를 반영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서 진정한 '엑소더스'란 무엇일까. 가난에서 가족을 탈출시킨 가부장을 다룬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갑론을박하는 지금의 우리들은 과연 어떤 엑소더스를, 무엇으로부터의 엑소더스를 꿈꾸고 있는 것일까./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2015-01-11 박신영

기억하는 것도 저항이다

'5일의 마중'은 장이머우 감독과 궁리 배우가 7년만에 함께 만든 영화다. 영화는 수용소에서 도망친 남편 루옌스가 아내 펑완위와 딸 단단을 보러 왔다가 체포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3년 후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루옌스는 무죄로 석방된다. 그러나 펑완위는 그날의 충격으로 인한 기억장애를 앓고 있기에 그토록 그리워하던 남편이 돌아와도 알아보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을 박해하던 펑씨로 착각한다.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알아보도록 지극정성으로 그녀를 보살핀다. 하지만 아내는 오로지 매달 5일이면 기차역에 나가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릴뿐이다. 루옌스가 몇 월인지는 밝히지 않고 5일에 돌아온다고 쓴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간다. 남편은 아내에게 친절한 이웃아저씨가 되었고 아내는 여전히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영화는 아내와 함께 기차역에 가서 자신의 이름을 적은 팻말을 들고 돌아오지 않는 자신을 기다리는 루옌스를 보여주며 끝난다. 눈발 사이로 그의 담담한 얼굴이 비친다.영화의 배경인 문화 대혁명(文化大革命)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벌어졌다. 마오쩌둥이 낡은 문화, 사상, 풍속 파괴를 제창하고 이를 추종한 홍위병 세력이 학교 당국과 교수, 교사를 비판하면서 불붙은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의 죽음과 장칭 등 4인방의 체포로 끝났다. 이 혁명은 명칭처럼 문화운동이 아니었다. 정권쟁탈운동이었다. 대약진운동 실패로 인해 수세에 몰린 마오쩌둥이 새로 주석이 된 류사오치 등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속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루옌스는 프랑스어와 피아노에 능숙한 전직 대학교수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그는 당시 서구 자본주의에 물들었다는 이유로 탄압받고 강제노역장에 보내진 수많은 지식인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자본주의의 첩자, 주구(走狗), 수정주의자로 몰린 사람은 고문 끝에 처형되거나 강제노역장으로 보내졌다. 이 문화대혁명은 사망자 수가 최저 50만명에서 최대 300만명까지 추측될 정도로 끔찍한 참변이어서 중국 당국 스스로도 '건국 이래 가장 중요한 좌절'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사건이다.영화는 문화대혁명의 진행과 루옌스 가족이 겪은 고난에 대해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시대 고발보다 가족애를 강조하는 러브 스토리처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돌아온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고 과거의 아픔에 갇혀 있는 아내에게 이제 그만 과거를 잊고 남은 생애라도 행복하게 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가족애로도 개인의 노력으로도 극복 안 되는 시대의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 이제 다 지났으니 잊으라는 말 역시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과거 국가가 자행한 폭력을 잊을 수 없다. 그녀의 아픔은 그렇게 쉽게 치유될 수 없다. 그러기에 펑완위에게는 영원히 루옌스가 돌아올 수 없다.'망년회'가 잦은 12월이지만,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가 올해 보고 듣고 겪은 모든 폭력을. 기억하는 것도 저항이다./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2014-12-14 박신영

80년전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일

켄 로치 감독의 신작 '지미스 홀'은 실화가 바탕이다. 1930년대 아일랜드의 한 시골마을, 지미 그랄튼은 마을회관을 만들어 지역 공동체 운동을 한다. 가르치고 배우고 토론하고 춤추며 꾸려 나가던 지미스 홀은 곧 지역 보수세력의 공격을 받는다. 신부와 지주들은 회관에 모이는 청년들을 악마에 빨갱이로 몰아간다. 지미는 체포돼 추방당한다. 청년들은 호송차량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행진해 지미를 지지하며 그의 뜻을 계승할 것임을 보여준다.마을회관의 이름은 '피어스-코널리 홀'이다. 지미는 자신의 땅에 세운 회관에 자기 이름이 아니라 부활절 봉기를 이끈 피어스와 코널리의 이름을 붙였다. 부활절 봉기는 1916년 4월 부활절 기간중에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2천여명이 무장 봉기한 사건이다. 패트릭 피어스가 이끈 아일랜드 의용군이 주도했으며 사회주의자 제임스 코널리가 이끈 아일랜드 시민군도 힘을 합쳤다. 영국은 6일만에 봉기를 진압하고 주도자 15명을 처형했다. 이 사건은 아일랜드 민중들을 일깨워 본격적 독립전쟁이 시작되는 도화선이 됐다.2년간의 독립전쟁을 거쳐 1921년, 영·아일랜드 조약으로 아일랜드는 남부 26개 주만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독립했다. 북부의 6개주는 제외했으니 분단국으로 독립하게 된 것이다. 1년 후 조약을 보는 정치적 입장차에 따라 내전이 일어났다. 켄 로치 감독의 대표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형제간의 살육으로 그려진 바로 그 아일랜드 내전이다. 이번 '지미스 홀' 영화 속에서 신부가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말하며 주민화합을 부르짖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독립 전쟁과 내전의 역사에 있다.12세기부터 영국인들은 아일랜드를 침략했다. 종교개혁 이후 영국인들은 영국 국교로 개종하기를 아일랜드에 강요했다. 청교도 혁명을 이끈 크롬웰은 아일랜드를 가혹하게 통치했다. 가톨릭 교도라는 이유로 땅을 빼앗긴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인 지주의 소작농이 돼 가난에 시달렸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때 영국인 지배자들은 아일랜드를 제대로 구제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영국인 구호자는 개종을 해야 죽을 주었다. 그 결과 100만명이 굶어 죽었다. 그래서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은 한편으로는 민족운동이자 가톨릭 신앙수호운동으로, 한편으로는 민족운동이자 계급운동이란 방향으로 전개됐다. 둘은 공동의 적을 뒀지만, 다른 세력이 됐다. 영화 속에서 사회주의자인 지미 그랄튼과 소작인들이 대립하는 쪽이 가톨릭과 지주세력으로 나오는 이유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여하튼, 영화를 보는 내내 80여년 전 외국에서 일어난 일 같지 않아 놀라웠다. 기득권 세력과 다른 의견을 내면 무조건 빨갱이라니! 피식민지배, 내전과 분단 경험은 두고두고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암울한 과거역사 자체만이 아니다. 그 시기에 싸워야만 했던 각각의 적들이 키워준 세력이 어느덧 기득권 세력이 돼 새로운 역사건설을 가로막는 현상까지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2014-11-16 박신영

영웅이 괴물로 변하는 순간

새로운 드라큘라 영화가 나왔다. 이번 영화에는 투르크에 맞서 싸웠던 왈라키아 영주 드라큘라의 역사적 모습이 반영되었다. 드라큘라가 무하마드 2세를 죽이는 장면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지만.드라큘라는 15세기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그는 현재 루마니아에 있던 왈라키아 공국을 다스린 영주 블라드 3세다. 아버지 블라드 2세는 '용 기사단'의 우두머리였다. 루마니아어로 용은 '드라큘(Dracul)'이다. 아들인 블라드 3세는 루마니아어로 '~의 아들'이란 뜻의 'a'를 붙여 드라큘라(Dracula)라고 불렸다. 그런데 서구 문화권에서 용은 악마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 평가하는 입장에 따라 그는 용처럼 용감한 기사일 수도, 사악한 악마일 수도 있다. 현재 드라큘라는 루마니아 역사에서 용감한 민족 영웅으로 평가받는다.그는 어린 시절에 동생과 함께 투르크에 인질로 보내진 후 돌아와 왈라키아 공국의 영주가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의 정복왕 무하마드(메메드) 2세가 왈라키아를 침공했을 때, 드라큘라는 열세에도 불구하고 방어전에 성공했다. 그의 격렬한 항전 덕분에 왈라키아의 지위는 속국에서 자치국이 된다.영화에서 투르크 대군 침략소식을 들은 드라큘라는 마스터 뱀파이어를 찾아간다. 마스터는 말한다. 내 피를 마시면 고국과 가족을 지킬 힘을 얻겠지만 너 역시 괴물이 된다. 단, 3일동안만 피의 유혹을 참아내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물론, 이 장면은 판타지 영화다운 허구다. 그러나 영웅이 괴물로 변하는 순간을 보여주기에 의미심장하다. 흡혈귀는 드라큘라의 내면에 이미 있었다. 드라큘라는 공포 정치로 나라를 다스렸다. 선량한 백성들은 영웅보다 괴물에게 복종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영화에서는 적군에 맞서 나라를 구하고자한 그의 깊은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백성들이 그를 배반하는 것으로 그려졌지만, 사실 드라큘라는 이미 민심을 잃은 상태였다. 전쟁으로 그를 꺾지 못하자, 이후 무하마드 2세는 드라큘라의 동생 라두를 조종하여 왈라키아공국에 내분을 일으킨다. 백성의 신망을 잃은 드라큘라는 도망가게 된다.그렇다. 민심을 잃었는데도 깨끗이 물러서지 못하고 능력 밖의 일을 해결하고자 나설 때, 한때의 영웅은 괴물로 변한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나라를 위하는 자신의 고뇌도 모르고 비방한다고 분노하는 순간, 그의 영혼은 악마와의 게임에서 진다. 남들은 자신을 괴물로 보는데도 자신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영웅은 이미 영웅이 아니다. 독재자다.20세기 들어서, 드라큘라는 부활한다. 흔한 드라큘라 영화 제작자들이 아니라 루마니아를 30년 넘게 지배했던 독재자 차우셰스쿠에 의해서. 그는 민족 영웅 드라큘라의 동상을 여러 군데에 세워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했다. 괴물이 된 영웅은 그런 면에서 불사귀이다./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2014-10-19 박신영

하드리아누스 장벽은 건재하다

'스타더스트(2007)'라는 판타지 영화가 있다. 인간 청년 '트리스탄(찰리 콕스 분)'이 마법의 땅 '스톰홀드'에 떨어진 별(클레어 데인즈 분)을 갖기 위해 금기의 담장을 넘어가 겪는 모험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는 성벽이 등장하는 유럽 민담의 기본 패턴을 잘 보여준다. 그 패턴은 이렇다. 옛날에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한 마을이 있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벽을 넘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성벽 너머에는 괴물과 마녀와 늑대들이 우글거려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날 한 소년이 벽을 넘어가 여러 가지 모험을 하고 성숙한 젊은이가 되어 마을로 돌아온다. 이런 이야기는 왜 생겼을까? 과거 유럽인들은 왜 벽 너머에는 자신들과 다른 존재들이 산다고, 그래서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했을까?현재 유럽에 남아있는 고대 성벽 중에 가장 긴 성벽은 '하드리아누스 방벽'이다. 로마제국은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영국에 '하드리아누스 방벽(Hadrian's Wall)'을, 독일에는 '게르마니아 방벽'을 건설했다. 122~130년 사이에 건설된 하드리아누스 방벽의 동쪽 끝은 뉴캐슬이고 서쪽 끝은 칼라일인데, 총길이 117㎞에 이른다. 이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나누는 경계선과 거의 비슷하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스코틀랜드 지역 원주민인 픽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이 벽을 쌓았다. 용맹했던 픽트족은 이후 스코트족에 동화됐다. 이 스코트족의 이름에서 스코틀랜드가 유래했다.방벽을 건설할 당시 로마인들은 침입자들인 자신들에게 당연히 저항하던 방벽 너머의 원주민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괴물과 같이 미개하고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벽을 건설했던 로마군인들이 철수한 후, 잉글랜드의 지배자가 앵글로 색슨족과 노르만족으로 바뀐 후에도, 벽 바깥에 사는 야만족에 대한 인식은 그대로 남아 후세에 전해졌다. 오랜 세월을 두고 담장 밖 세상에 사는 위험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생겨나 전승됐다.위험한 존재는 벽을 세워 문명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는 편견이 보이는 영화가 또 있다. 닐 마샬 감독의 '둠스데이 : 지구 최후의 날(2008)'이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치명적 바이러스가 발생하자 영국 정부는 철벽을 세워 스코틀랜드 지역을 잉글랜드로부터 완전히 격리한다. 장벽에 접근하는 스코틀랜드인들은 무조건 사살해 버린다. 이 영화는 좀 황당한 SF액션영화이긴 하지만, 도입부의 이러한 설정에서 하드리아누스 장벽의 영향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지난 18일, 영국연방에서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개표 결과 55%로 독립 추진안이 부결됐다. 스코틀랜드는 무력이 아니라 왕실간 결합의 결과로 1707년에 잉글랜드와 합병됐지만 잉글랜드에 대해 역사적으로 오래된 민족 감정을 갖고 있다. 하드리아누스 성벽은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 곳곳에서./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2014-09-21 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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