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교 칼럼

 

[강은교 칼럼]거미 훔쳐보기

유리창의 거미 그동안 왜 못 봤나거미줄에 걸려 아마도 죽어갔을작은것들의 많고 많은 죽음들피를 덮고 무수한 외침 덮은채시간은 흘러 아직도 모르고 화만망각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도조그마한 우리집 거실 중앙에 놓인 식탁겸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앞 유리창 바깥면에 거미 한 마리가 유유히 매달려 있는 것을 갑자기 발견한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오래 전부터 거기 있었던 듯 하다. 그런데 한 번도 거기 거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그걸 쳐다보면서도 쳐다보지 않았었다고나 할까? 지금 그 녀석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우리집은 자그맣지만, 나혼자 살기에 아주 적당한 넓이를 가졌지만, 앞유리창만은 아프리카의 숲에 세운 어떤 커다란 호텔의 창보다도 '멋있다'. 나의 유리창은 일출부터 시작해서 달, 새벽녘의 금성, 구름… 그런 것에 활짝 열려있다. 우리 동네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있는 비탈길은 마치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차들이 힘들게 기어오르는 모습이 보이고 창의 한 옆구리엔 신기루같이, 특히 황혼이면 분홍색으로 소복히 '산 바구니'에 담겨있는 먼 동네의 아파트들도 보인다. 유리창 앞에 펼쳐진 능선은 열두개이고 지난 12월 동지에는 정확히 능선 중앙에 솟은 산 정상에서 해가 떠 올랐다. 물론 여느해처럼 1월이 된 오늘은 다시 해가 그 능선을 걸어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이 식탁에서는 바로 그런 해의 기미가 가장 잘 보이기 때문에, 새벽 무렵 여기 멍하니 앉아있곤 한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얼른 창 앞으로 달려가려고. 그런데 오늘은 놀랍게도 거미를 발견한 것이다.오랫동안 만지지 않았던 카메라를 황급히 꺼내들고 거미 앞으로 간다. 해가 떠오르려는지 거미가 비쳐보이는 하늘은 주홍색과 회색, 분홍색 등이 어우러져 마치 커다란 추상화 캔버스같다. 아마 정육점에 내걸린 고기를 놀랍게 포착한 추상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캔버스가 저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도 베이컨같은 이미지 하나 건질지도 몰라, 베이컨보다 내가 나을지도 몰라, 호기스럽게 셔터를 누른다. 의자를 끌어다 놓고 그 위에 올라가 찍기도 하고, 발끝을 들고 찍기도 하고 누워서 찍기도 하고…, 혼자 난리를 친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그 녀석이 가만히 다리를 오므리는 것이 카메라의 눈에 들어왔다. 아무 것도 없는 빈 공중에 걸려있는 듯하던 그 녀석의 주변 허공에 누군가 낙서를 해놓은듯한 무수한 금들이 지저분하게 보인다. 금들의 마디마디에 검은 점들도 보인다. 무엇인가가 그 금, 아니 거미줄에 걸려 죽은 흔적일까…. 해가 구름 위로 올라가고 나서야 나는 '거미 훔쳐보기'를 그만두고 다시 나의 식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저 녀석을 왜 그동안 못 보았을까, 왜 보면서 못 보았을까, 하고. 저 녀석이 하늘에 매달려 끊임없이 다리를 오무렸다, 폈다, 밑으로 내려왔다 올라갔다 하는, 그 분주한 삶과의 사투를 왜 몰랐을까고. 왜 거기 깨끗한 허공과 구름만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소설가 김승옥은 그의 출세작이며 몇 편 안되는 그의 소설중의 하나인 '무진기행'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이번에 자네가 전무가 되는 건 틀림없는 거구, 그러니 자네 한 일주일 동안 시골에 내려가서 긴장을 풀고 푹 쉬었다가 오게. 전무님이 되면 책임이 더 무거워질 테니 말야" 아내와 장인 영감은 자신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퍽 영리한 권유를 내게 한 셈이었다… 버스는 무진읍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얼마전 나는 김승옥의 그 소설을 동생집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가져왔다. 우리의 20대가 그려진 그 아름다운, 그러나 안개투성이인 무진, 자본 산업화가 마악 심각해지던 시절의 몇 모습들, 대학 졸업장이 금박종이 이던 그런 시절, 와이셔츠 입은 사람들을 무조건 우러러보던 시절의 몇 모습들, 돈많은 아내의 능력으로 출세할 모양인 주인공의 무기력한 몇 모습들…. 금수저 은수저의 원조들, 갑질의 원조들, 왜 이런 것들을 잊고 있었는가. 왜 우리는 그렇게 빨리 잊어버리는가. 그 무수한 싸움과 절망들을, 젊은이들이 선봉에 섰던 '횃불'의 성공들이 이미 있었음을 우리는 왜 잊고 있는가. 아, 저 거미가 저렇게 유리창 한 구석에 매달려 있는 것을, 왜 그동안 보지 못했는가, 거미줄에 걸려 아마도 죽어갔을 날파리보다도 작은 것들의 무수한 죽음도. 하긴 시간은 피를 덮고 무수한 외침을 덮고 흘러가지. 그걸 아직도 모르고 화를 내다니, 망각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도./강은교 시인강은교 시인

2017-01-09 강은교

[강은교 칼럼]집, 골목 그리고 광장

골목의 자유 꿈꿀 수 있는 광장다음 세대의 출렁임과일어섬이 들어있는 불빛거기엔 무수한 꿈의 불이 켜질 것오로라 같은 빛이 집 가는길을,집의 자유로 가는 길 밝혀 줄 것나는 골목을 좋아한다. 골목에는 참 많은 것이 들어있다. 비록 싸구려라 할지라도 내 안의 걸음이 골골이 새겨져 있는 구두, 혹은 운동화의 흙먼지들이 들어있으며 골목 밖에 대한 설렘이 들어있으며, 큰 길에의 희망이 들어있다. 저녁에 그리로 돌아와 보자. 설사 막다른 골목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 날의 종착역에 도착한 안도감으로 당신 집의, 또는 당신 방의 문을 열게 할 것이다. 아뜩하게 높은 아파트의 23층 혹은 43층이 당신의 집이라 할지라도 아파트가 서있는 가파른 골목으로 들어설 때면 안전한 곳에 당도했다는 안도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골목은 당신의 집이며 당신의 방이다. 거기 당도하면 당신은 얼른 벗어버릴 것이다. 낮에 입었던, 낯선 이들의 눈길이 무수히 묻어있는 딱딱한 옷들을. 당신의 맨살이 마음대로 숨쉴 수 있는 펑퍼짐한 옷을 입고 맨발로 걸어다닐 것이다. 헐렁한 슬리퍼를 신을 것이다. 아무렇게나 머리칼을 흐뜨릴 것이다. 그뿐일까. 모든 골목은 큰 길에의 희망을 품고 있다. 모든 골목은 큰 길로 이어진다. 그리로 가는 중에는 차들이 엉켜있기 쉬운 회전로터리를 빠져나가야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버스 정류장을 먼지를 뒤집어쓰며 지나가야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오늘은 또 누가 내 팔에 매달려 지하로 지하로 내려갈 것인가'하는 생각에 골똘히 잠겨 가끔씩 푸르르 떨기까지 하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지하철 역도 있을 것이지만. 그러다 아마 지하철 입구는 광장으로 이어지기도 할 것이다. 당신의 골목보다 더 많은 골목이 광장엔 모여들고 있을 것이다. 광장은 수많은 골목이 한데 모여 만드는 땅의 바다 같은 곳이다. 그러기에 광장엔 모든 삶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쉬는 계단도 있을 것이다. 아까 집을 나오는 골목을 걸으면서 만났던, 키큰 시다나무가 늦가을 또는 초겨울 황금빛으로 물든 잎을 맨 몸에 달고 가상이에 묵묵히 서 있는 곳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 밑에 앉을 것이다. 거기 앉아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 오늘 광장은 그런 의미에서 꿈인지도 모른다. 집을 꿈꾸는, 모든 자유로운 방을 꿈꾸는, 아무렇게나 질질 끌어도 괜찮은 슬리퍼를 신거나, 유행이 한참 지난 신발이나 옛날 검정고무신을 신장 한구석에서 끌어내 뒤꿈치를 꺾어 신어도 아무도 웃지 않을 자유를 주는 집의 꿈일 것이다.마다가스카르 정글에는 연록빛 녹빛의 날개를 속에 감추고 있는 극락조가 있다고 한다. 짝짓기 철이 오면 수컷은 암컷을 유인하기 위하여 날개 펼치기를 한다. 물론 덤불을 편편하게 정리한 작은 집을 마련하고, 정성스레 소제까지 한다. 그런데 그 장소는 키큰 정글의 나무 사이로 빛이 비쳐들어오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 그래야 극락조는 날개를 몸속 깊은 곳에서 꺼내 마치 빛나는 오로라처럼 넓게 펼쳐 출렁이며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글의 곳곳에서 비슷한 광경이 벌어진다. 그래서 정글은 오로라같이 녹색으로 빛나는 날개들로 밤을 밝힌다. 그러면 그 불에 끌려 암컷들은 서서히 노래부르며 다가온다. 집이 깨끗한지, 바닥이 가지런한지, 어떤 날개가 가장 빛나는지 살피며 멈칫멈칫. 그러면 그날의 빛 정글엔 다음 세대가 출렁이며 일어서는 것이다.광장으로 가라, 골목의 자유를 꿈꿀 수 있는, 다음 세대가 일어서는 광장으로 가라. 가장 가까운 것에 가장 큰 것이 눕는다. 집의 그리운 불을 켜라. 그건 아마 가장 작은 촛불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다음 세대의 출렁임과 일어섬이 들어있는 불빛일 것이다.우리들의 광장, 무수한 골목이 강물처럼 모여들어 이루어진 아름다운 광장, 거기에는 무수한 꿈의 불이 켜질 것이다. 오로라같은 빛이 집으로 가는 길을, 집의 자유로 가는 길을 밝힐 것이다. 오늘 당신이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는 환한 광장의 불빛이 당신의 집 문을 비추고 있다. 당신은 문을 연다. 돌아옴을 위하여 매일 우리로 하여금 골목을 떠나게 하는 꿈의 침대가 누워있는 광장을 연다. 맨살, 맨발의 자유를 위하여, 허식이 없는 자유를 위하여, 가장 따뜻한 꿈을 위하여. '썩은 끈 잘라버리고/그대 자유로운, 오, 영혼이여'하고 외치는 휘트먼의 시구처럼 자유의 커튼이 펄럭이는 당신 집 속의 광장을./강은교 시인강은교 시인

2016-12-05 강은교

[강은교 칼럼]멘델스존의 가계부와 가마우지

멘델스존은 부유했음에도 불구스타킹 한 켤레 값도 꼼꼼히 기록나랏돈으로 수백억 빌딩들 소유돈세탁 여부 수사 '기막힌 소식''사회적 약자' 가마우지 풀어고기잡는 '어부 주인' 용서 안된다책장 정리를 하다가 한구석 다른 책들에 수줍게 끼어 서 있는 공책 같은 책 하나를 발견했다. 겉장이 뜯어져 나가 있었다. 뭘까, 의아하게 생각하며 첫 장을 넘기니 아뿔싸, 깨알만 한 글씨들이 꼭꼭 눌러 쓰여진 첫 페이지가 나타났다. 잉크가 번져 잘 읽은 수 없는 글씨들은 고등어 한 마리, 꽁치 세 마리 , 마른멸치, 배추, 무 1개, 파 한단… 심지어는 접착제, 자, 칼, 풀한 개라는 글씨들이 쓰여 있었다. 총계도 있었고 메모란에는 "은행에 갈 것" 이라고도 쓰여있었다. 택시 한 번이라는 글씨도 쓰여있고, 어떤 날은 냉장고-금성이라고 쓴 글씨에 밑줄도 그어 있었다. 영화, 우체국… 그런 글자들도 보였으나 숫자들은 거의 지워져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 연립주택 지하실에 물이 찼던 때문인 것 같았다. 가계부였다. 어떤 여성지 1월호에서 부록으로 만든 듯, 금박 꽃 모양 무늬가 찍힌…. 아, 이렇게 절약했다니 총계 밑에 있는 메모난에는 '좀 더 아낄 것 !'이라고도 쓰여있다.그러고 보니 멘델스존의 가계부가 한때 화제가 되었었다. 멘델스존의 집은 부유했음에도, 그는 당시 귀족 남자들이 신곤 했던 스타킹 한 켤레 값도 적었다는 것이었다(하긴 베토벤도 그 비슷했다지).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쓴 멘델스존의 손가락에서, 베토벤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스타킹 한 켤레의 값.하긴 요즘 뉴스의 얘기를 들으니, 모 씨가 소유주로 되어있는 서울 강남의 빌딩 한 채 값이 300억원이라고 한다. 그런 빌딩이 몇 채 되는지, 아무도 모를 뿐 아니라, 해외에도 호텔 등 빌딩이 몇 채나 있다는 것이다. 그걸 국가에서 예산을 세워 지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도 그 '강남 빌딩', '해외빌딩'의 계단 하나는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유령 소유이긴 하지만. 요즘은 해외의 그 나라에서 돈의 자금세탁 여부를 수사한다는 '기막힌' 소식도 들린다.아무튼 가계부를 그렇게 열심히 썼는데 그런 빌딩의 계단 하나 값도 못 벌었다니…. 나도 참 무능하긴 무능하다.얼마 전 어떤 '역사문학관' 설립, 발기인 모임에 참석하였다. 그 모임은 아무 곳에서도(정부기관은 물론) 지원을 받지 않은 채 '순수히' 시민 모금에 의한 설립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과거에 그런 운동을 한 경험이 많은 한 분이 말씀하셨다. "자발적 시민 모금운동으로 빌딩값을 모은다구요? 3년 걸려서 13억을?, 그런데 13억으로 무얼 하려고요?!"그러면서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시민 모금 운동'은 결국 무산됐다는 말씀이었다.' 이렇게 순진들 하다니, …몇 십억원으로 지금 어떻게 문학관을 지어요? '가마우지라는 슬픈 새의 다큐멘터리가 가끔 TV에 비친다.알다시피 그 방법은 일본 어느 해안 어부들이 주로 쓰는 방법인데, 어부들은 새벽에 가마우지를 줄에 매어서 끌고 바다로 간다. 횃불을 환히 켜고 바다를 비추며 줄을 풀어놓으면 가마우지는 열심히 물고기를 잡는다. 그러면 어부는 줄을 잡아당겨 가마우지의 입을 벌려 손을 목 속으로 깊숙이 집어넣어 물고기를 꺼낸다. 가마우지는 물고기를 뺏기고 꽥꽥거린다. 어부주인은 다시 줄을 풀고 가마우지를 바다로 몰아넣는다. 가마우지는 불 밝힌 바다를 들여다보며 솟구쳐 들어가 물고기를 잡고, 주인은 다시 줄을 잡아당겨 가마우지의 목 속에 손을 집어넣어 물고기를 빼앗고…. 그런 뒤 주인이 던져 준 작은 물고기들을 아침 식사 삼아 배 한구석에서 먹는다. 주인은 그런 가마우지들의 목을 쓰다듬어준다. 가마우지들은 목을 길게 빼서 주인의 손길을 받는다. 어부들은 만선의 기쁨을 안고 검은 바다를 헤치며 돌아온다. 가마우지들도 꽥꽥거리며 줄에 매인 채 돌아온다. 그래서 그 지역에선 가마우지를 몇 마리 소유했는가를 부(富)의 척도로 삼는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가마우지들에게 줄을 맸는가에 따라서, 얼마나 그 새들의 먹이를 목 속 깊이 손을 집어넣고 뺐었는지에 따라서.가마우지들은 그런 '어부 주인'을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 용서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해야 한다. 용서는 바다만이 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그런데, 정말 용서란 무엇일까. 줄을 용인하는 것일까?아, 그 바다 위 약자, 아니 어부와 물고기 사이에서 말하자면 '사회적 약자'인 그 가마우지들.제발 '어부 주인'을 용서 하지말라. 사회적 약자인 가마우지들아!/강은교 시인강은교 시인

2016-10-31 강은교

[강은교 칼럼] 가을, 결혼, 청첩장

크지 않아도 포근한 집명품 아니어도 잘 맞는 편한 옷작은 꿈으로 시작하는 젊은이들씨알과 꽃이 맺는 아름다운 계절'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 하면서걸어가는 이들에게 행복 있기를살기 좋은 집처럼 / 포근한 남편이 되겠습니다. / 몸에 맞는 옷처럼 / 편안한 아내가 되겠습니다. / ……… // ○○○, ○○○의 장남 ○○ / ○○○, ○○○의 장녀 ○○추분도 지났다. 아마 본격적인 가을이 오는 모양이다. 가을이 되면 몇 장쯤 오게 마련인 청첩장, 이번 가을에도 지인으로부터 청첩장이 왔다. 그런데 그 문구가 재미있다. 물론 요즘엔 젊은이답게 개성적인, 두 젊은이가 머리를 맞대고 심사숙고한 끝에 쓴 것이 분명한 청첩의 글이 심심치 않게 보이지만, 모두(冒頭)에 소개한 청첩의 구절은 이 가을에 부는 바람처럼 옷깃을 새삼 여미게 하고 뒤이어 일어서는 많은 생각의 가지를 가을바람에 흔들리게 한다. 과연 결혼이란 뭘까. 이 철없다고만 생각했던, 화려한 아파트만 바라보고 화려한 명품의 옷, 그러한 화려함의 명품 소도구들만 따를 거라고 짐작했던 멋쟁이 젊은이들이 '포근한 집, 편안한 옷'이라는 표현을 쓴 결혼이란…. 흔히 '결혼을 해도 후회할 것이요, 결혼을 안해도 후회할 것'이라는 서양 작가의 말이 금박의 모자를 쓰고 떠도는 이 화려한 세상에서 이렇게 고전적인 그리고 예의 바른, 소박하기까지 한 청첩의 글을 젊은이들이 쓰다니….결혼이란 어찌 보면 '세상에의 굴복'이다. 그래서 온갖 꿈이 생활 속에 내팽개쳐지기 전에 되도록 화려한 결혼식이란 이벤트를 마련하는 것일 거다. 그 이벤트는 그러니까 속임수의 커튼인지도 모른다. 그 커튼을 걷고 나면 마치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이란 단편에 박힌 구절들처럼 가득 안개가 낀 그런 세월 속으로 떠나는 것일거다. 그래서 그 안갯속으로 떠나가는 아들을 향하여, 또는 딸을 향하여 부모는 눈물을 훔치는 것일 거다. 그렇다. 결혼이란 결혼 전에 꾼 꿈에의 굴복이며 도전에의 굴복이며 지성적 가치에의 굴복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닌 도덕에의 굴복이며 교양만으로는 헤쳐나가기 힘든 굴복이다. 그러나 이 청첩장의 젊은이들은 그런 추상적이기만 한, 또는 관념적이기만 한 환상의 면사포를 그 결혼이란 하늘에 드리우지 않을 뿐 아니라, '포근한 남편, 편안한 아내' 그런 확실하고 낮은 토대를 그들의 꿈의 첫 계단에 싣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그들의 나무를 자라게 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그들의 결혼은 굴복이 아니라, 금박의 꿈도 아니라, 그들의 작은 꿈의 긍정인 것이다. 모든 기성의 결혼이 부정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그들의 결혼은 긍정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 언젠가, 어떤 잡지로부터 한 청탁을 받았던 것을 아직도 씁쓸하게 기억한다. 그 청탁서는 '시적인 남편과 시적인 아내'라는 제목이었다. '부연해서 설명 하자면요…', 하면서 그 청탁을 했던 기자가 좀 계면쩍은 듯이 목소리를 잔뜩 가라앉히고 말하던 것을 기억한다. '시적인 환상이 깨졌을 때 어떻게 하세요? 그런 경험을 중심으로 재미있게 써주시면 돼요… 두 분은 시인이시니까… ' 그 질문은 마치 '깨지지 않을 수 없다'는 전제를 강조하면서 시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깨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그 지점에서 시작하고 있었고, 또 거기서 끝나고 있었다. 그러나 '젊음은 아름다운 환상의 꿈을 꾸는 것이다, 그래서 젊음의 꿈은 난해하다. 그러나 젊은 시절에 꾸는 꿈은 나이가 먹으면 곧 깨질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세상의 이치다' 라고 말하는 어른들이야말로 '너무 큰 것만 생각하는, 금박의 높은 대문, 또는 우람한 담을 그 무엇보다 다가가야 할 가치라는 생각을 눈부신 실크 커튼으로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 '크지 않아도 포근한 집, 명품이 아니어도 몸에 잘 맞는 편안한 옷'이라는 그런 작고 구체적인 꿈에서부터 우리의 사회를 길러 나가려 하는 젊은이들, 얼마나 건강한가. 이 아름다운 계절, 씨알과 꽃이, 바람과 햇빛이 결혼하는 이 계절, 리스트의 노래제목처럼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면서 걸어가는 이들에게 행복 있으라./강은교 시인강은교 시인

2016-09-26 강은교

[강은교 칼럼] 빨래너는 여자

한 여자가 삶의 얼룩이비밀스럽게 묻은 빨래를바삭바삭 부서지는 햇볕에말리고 싶어 널고 있다'깨끗한 햇빛마음'으로돌아가는 순간을 보고 싶은 듯 며칠을 벼르다가 오늘에사 빨래를 했다. 그런데 널려고 보니 마땅치가 않다. 햇볕이 사납게 내려쬐는 폭염이라고 야단들인데 말이다. 기껏 그림자 진 베란다에 놓은 빨랫대엔 햇볕은 못쬐더라도 바람이라도 쐬라고 잔뜩 이불이며 요를 펴놓았으니 젖은 빨래를 널 곳이 없는 것이다. 마당이 없으니 그렇지, 나는 중얼거린다. 그러고 보니 나는 결혼해서 집을 떠나온 이후로 아파트에서 산다. 말하자면 일생을 허공에서 사는 모양새다. 인생이라는 것이 허공에서 왔다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니 마땅하다고 자조섞어 생각하긴 하지만, 모처럼 빨래를 한 오늘같은 날엔 마당있는 집이 부럽고 그립다. 그러고 보니 세탁기도 문제다. 아파트에 간단히 들여놓을 수 있으니, 그리고 손이 영 덜 가게 해주니 고마운 물건이기도 하지만, 한 편 생각하면 빨래가 주는 큰 미덕을 세탁기는 빼앗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수돗물을 세차게 틀어놓고 빨래를 세차게 물에 흔들며 헹구는 행위는 스트레스 해소에 아주 좋다는 말을 어느 심리학 교수에게서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해인 수녀시인의 시에도 빨래라는 시가 있지 않은가. '우울한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맑은 물이/ 소리내며 튕겨 울리는/노래를 들으면/마음이 맑아진답니다//…… //기도하기 힘든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저절로 기도가 된답니다//……' <이해인 '빨래를 하십시오' 중에서>그러고 보니 '다라이'에 빨랫거리를 잔뜩 넣고 세차게 흔들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곤 하얗게 부서지는 햇볕 아래 잔뜩 그 빨래를 널었었던 기억도. 산꼭대기 동네였다. 아파트가 아닌, 마당 있는 집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살았던 전셋집이 내가 살았던 집중에 가장 넓었던 집이었던 것 같다. 마침 아기들을 막 키우기 시작했을 때였으므로 하얀 기저귀가 하얗게 부서지는 햇볕 아래에 만국기처럼 휘날리던 그 반듯하던 마당! 기저귀들이 마르는 소리가 '바작바작'하고 들리던 속깊은 마당!언제부턴가 도시의 괜찮은 고층아파트에선 빨래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빨래에야말로 인간의 내면 깊숙이 들어 있는 그 무엇. 삶의 지극히 개인적인 비밀, 얼룩…… 그런 것이 묻어 있음을 생활형태의 진보와 함께 사람들은 깨달은 것인가. 그래서 그것을 세상에 내미는 일이 새삼스럽게도 몹시 부끄러워진 것인가. 얼마 전 여행한 크로아티아의 드보르브닉엔 빨래널린 골목, 창이 아주 많았다. 아드리아해에 면한 옛 성곽에서 내려다보니, 빨간 지붕들 사이로 빨래들이 햇볕을 쬐며 마구 휘날리고 있었다. 같이 간 사진작가는 그 풍경을 찍느라고 바빴다. 하긴 이국의 그곳도 서민들이 빨래의 비밀스런 얼룩을 부끄러울 새도 없이 마구 내보이고 있는 곳이리라.나의 시 중에도 '빨래너는 여자'라는 시가 있음이 생각난다. 바다에 면한 부산의 감천길을 가면서 본 어떤 옥상 풍경. 한 여자가 삶의 얼룩이 비밀스럽게 묻은 빨래를 널고 있었다. 그 여자는 삶의 무용을 하듯이 발끝을 한껏 세우고 빨래의 주름을 펴고 있었다. '햇빛이 바리움처럼 쏟아지는 한낮, 한 여자가 빨래를 널고 있다, 그 여자는 위험스레 지붕 끝을 걷고 있다, 런닝 셔츠를 탁탁 털어 허공에 쓰윽 문대기도 한다. 여기서 보니 허공과 그 여자는 무척 가까워 보인다, 그 여자의 일생이 달려와 거기 담요 옆에 펄럭인다, 그 여자가 웃는다, 그 여자의 웃음 이 허공을 건너 햇빛을 건너 빨래통에 담겨 있는 우리의 살에 스며든다…… '<필자의 시 '빨래너는 여자' 중에서>아마 그래서 오래된 '길'이라는 영화에선 마지막 장면을 빨래너는 장면으로 했는가 싶다. 그리고 그렇다면 빗토리오 데시카라는 감독,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빨래와 삶의 비밀스런 얼룩, 하얗게 마르는 그 순수를 잘 보아낸 감독이니 말이다.아무튼 오늘 바삭바삭 부서지는 햇볕 아래 빨래를 널고 싶다. 내 삶의 얼룩을 햇볕에 말리고 싶다. 얼룩이 모두 사라져 '깨끗한 햇빛마음'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을 보고 싶다./강은교 시인강은교 시인

2016-08-22 강은교

[강은교 칼럼] 볼록어항론

빌린 고급승용차 놓고 사진 찍어여러 직함 넣은 명함 보이면'거대한' 사람이라고 모두 믿어마치 크게 보이는 붕어의아름다운 흰 지느러미처럼…실상은 작디 작은 모습인데아름다운 것들을 꼽아본다. 어느 먼 해안의 아침 햇무리에 반짝이는 이국적인 호텔, 열대의 빨간 꽃들이 가득하던, 그 향기가 진동하던 남미의 어느 나라, 아름다운 동해안의 바위섬, 새벽에 바라보던 그곳의 아침 햇무리, 멀리서 온, 음악소리가 울리는 크리스마스 카드, 그러다 왜 나는 먼 것들만 아름답게 생각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본다. '너의 앞에 아름다운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유리병 가득 담긴 저 매실의 연초록빛 몸매, 그 택시기사, 오갈 데 없는 장애인 여자를 사랑하는, 그 여자에게 무엇인가 사갈 때 무엇보다 즐겁다는 택시 운전사, 신부님댁의 작은 문 위에 늘어진 능소화, 수련이 가득 핀 그 연못, 빨간 열매 꽃을 단 먼나무, 황혼에 가슴을 잔뜩 오므리고 오두마니 서 있던 버스 정거장, 노오란, 노오란 콩나물, 누구의 머리인가를 가리다가 찢어져 버린 우산, 환히 불이 켜져 있는 손전등, 그러다 나는 나의 주변을 보기 시작한다. 늘 내가 무엇인가를 써주기를 기다리는 종이들, 켜주기를 기다리는 컴퓨터, 알람시계, 저녁이면 나의 지붕을 향해 날아드는 새, 아마 거기 둥지가 있는 모양이지, 나의 벽, 나의 마루, 그러다 거실 탁자 위에 놓인 볼록 어항을 바라본다. 한 마리는 죽어버리고 두 마리의 붕어가 열심히 물을 헤치고 있다. 그것들은 마치 물에 길이라도 있는 듯이 물 속을 날아다닌다. 그렇게 확신 있게 헤엄칠 수가 있을까. 붕어는 정말 크게 보인다. 하얀 지느러미가 면사포같이 길게 끌린다. 오물오물 물을 두드려보는 듯한 주둥이도 볼록 유리에 비쳐 아름답게 확대 되더니 뒤쪽으로 돌아가자 아주 작아진다. 붕어는 커질 때는 마치 거인국에서 오기라도 한 듯, 거대해진다. 또는 장자의 물고기 곤(鯤)이 변하여 된 삼천리 날개새 붕(鵬)새?/ 北冥有魚. 其名爲鯤. 不知其千里也 化而爲鳥,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之雲, 是鳥也, 海運則將徒於南冥. 南冥者. 天池也 (북녘바다에 물고기가 있다.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몇천리나 되는 지 모른다. 변해서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이라 한다. 붕의 등넓이는 몇천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힘차게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 가득히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기운이 움직여 대풍이 일 때 남쪽 바다로 날아가려 한다. 남쪽 바다란 곧 천지이다) /장자를 생각타가 나는 나를 볼록 어항에 넣어본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나는 나를 너무 볼록어항에 자주 넣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나는 누구인가 앞에서 글을 아주 잘 쓰는 듯이 굴었을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나를 과시했을 것이다, 특히 학생들 앞에서는 얼마나 잘난 척했을까. 그 어떤 광고에서처럼 '너희들이 이런 걸 알아?' 하는 것으로 보였겠지. 다행히도 가끔이었지만, 강연 할 때는 얼마나 많이 아는 척, 확신에 차서 말했을까? 유명한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서 나도 모르게 누구인가에게 심한 무안을 주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무시했을 것이다…' 아, 그것들을 어쩌나… 하다가 뉴스를 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거금의 횡령, 사기, 뇌물, 말대꾸한다고, 무시한다고 일어난 살인사건, 자기 자동차를 추월했다고 일어난 보복성 교통사고, 그런데, 오늘은 참 재미있는 기사가 있다. '그 관료'가 일을 잘 처리해줄 줄 미리 짐작하고 수억원을 주었으나 그는 결국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뇌물을 준 사람은 물론 분이 나서 고소했고 검찰은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모두 사건의 속을 조사해보면 지나친 자기 과시에서 비롯된 것들임이 분명해진다. 언젠가 나는 하숙하는 '고급하숙' 이층집 앞에 렌트한 고급 승용차(연식이 아주 오래되었던 것 같다)를 세워놓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는 그 사진을 대여섯 개도 넘는 직함을 나열한 명함과 함께 고객이 될 사람 앞에 내놓는다고 한다. 그러면 모두 믿는다고 한다. 순간 그는 '거대한' 사람이 된다. 마치 어느 순간 크게 보이는 붕어의 아름다운 흰 지느러미처럼. 그 아름다운 커단 지느러미가 그 붕어의 본 지느러미의 모습은 아닌데 말이다. 그것의 물을 갈아줄 때 그것은 얼마나 작디 작은가, 그것이 본모습인 것을./강은교 시인강은교 시인

2016-07-19 강은교

[강은교 칼럼] '자서전'小考

어떤 돈 많은 사람들은'남이 쓴 자서전'을 출간해화려하게 출판기념회를 연다20년전이나 지금도 투명하게 쓸배짱있는 사람들은 없고여전히 무서워하고 있는 것일까한 친구가 부탁이 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인생을 적은 글을 손주들에게 남기고 싶어서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는데, 나보고 읽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서전하니까, 언젠가의 대화가 떠오른다. '동서양의 자서전 비교연구'라는 논문을 쓰게 되어 자서전을 읽고 있는데, 한국 작가의 것은 찾기가 힘들다며, 나에게 묻던 한 선생님의 말이었다. 그때, "왜 그럴까요? 서양은 그렇지 않은데…"하고 묻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글쎄요, 조선조의 유교문화 때문일까요?", "그보다 투명하게 자기를 내보이는 것이 습관이 안되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네 그래요, 작금의 일들을 보면 우리 사회의 투명성은 아직 멀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군요", "그러고 보니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시도 별로 없군요. 오히려 1930년대의 시인들인 윤동주, 서정주의 시에 좋은 자화상의 시가 있네요."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무서워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도로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서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내가 그리워집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자화상>서정주의 유명한 시집 화사집도 자화상으로 시작되죠.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스물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 란다.//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이마 우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자화상, 서정주>'특히 서정주의 자화상은 자기 자리의 인식에 아주 투철한 그런 자기 성찰의 시죠. 그런데 이들은 모두 일제 강점기에 쓰여진 시라는 공통점이 있네요.오히려 지금 그런 이상, 자기 성찰, 윤동주의 순결성, 투명성같은 덕목들은 없어진 모양예요." 하긴 자기를 그린다는 것, 서민은 그렇지도 않겠지만, '남들을 밟고' 사회의 윗부분으로 올라간 이들의 투명한 자서전을 보기란 이 시대에 지난한 일이리라. "그래요, 요즘 뉴스를 볼라치면 정의도 도덕성도 투명성도 다 사라졌다는 자괴감마저 들어요. 전화 한 통에 몇 억이 왔다갔다 하고, 엉터리 인증서를 국가가 주어서 위험한 화학제품들을 팔고, 내가 입을 열면 여러사람이 다칠걸, 하는 말이 연극 대사가 아닌 사회,, 그러다 보니 금전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자서전'이 없는, 또는 자서전이 무서운 사회, 하긴 이말은 좀 바꿔야 겠다. 어떤 돈많은 사람들은 '남이 쓴 자서전'을 출간하고, 화환이 주욱 늘어선 화려한 출판 기념회를 열고 있으니까. 아,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20년 전과 거의 비슷한 대화를 자서전을 쓰려한다는 친구와 지금 또 펼치는 걸 보니…. 20년 전에도 투명한 자서전을 쓸 뱃장있는 사람들은 없었고, 지금도 없다는 이야기일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자서전을 무서워 하고 있는 것인가?/강은교 시인강은교 시인

2016-06-13 강은교

[강은교 칼럼]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우리말·외래어가 줄임말과자투리말로 정신없이 범벅되어스마트폰 '문자 메시지'는단군이래 최초로 전 국민을작문 공부하게 만들었지만덕분에 잃어버린 말 너무 많아요즘은 '글쓰기'가 두렵다. 나도 모르게 '자투리'말이 튀어나오고, 본래의 단어 뜻이 잘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스마트 폰의 '문자 메시지'는 단군 이래 최초로 전국을 작문교실로 만들고 전국민으로 하여금 작문을 공부하게 하고 있지만, 덕분에 잃어버린 말들이 너무 많게 되었다. 놀이터에서 만난 초등학교 다니는 한 아이가 '생파'에 간다고 한다. 생파가 무어냐고 하니까 생일파티라고 한다. '생선'을 가지고 간다고 한다. 생일선물이란다, 우리말과 외래어가 정신없이 줄임말·자투리말로 범벅이 되어 있다. 어떤 말들은 영어인지, 우리말인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어린이날, 내가 저녁을 산다니까 손녀가 "올작에 가고 싶어요"한다. "'올작'이 뭐니? 어디니?"하니까 레스토랑 이름, 올리브-장작이란다. 그 레스토랑의 특징은 이름대로 화덕에 굽는 이태리 피자라고 딸이 설명한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이 앉어 소주를 마신다 /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싸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눈은 푹푹 나리고 /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 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 /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백석의 유명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다.스마트 폰을 열면 나오는 이 시를 새삼 이 귀중한 자리에 인용하는 이유는 아름다운 우리말, 그러나 '외국어같은'울림을 주는 사투리 때문이다. 특히 2련 7행의 '마가리'. '마가리'란 뭘까, 외국어 지명인가? 그런데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장승욱씨의 '우리말 도사리'를 보니, '마가리'란 집의 종류 중에서 움집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장승욱 씨는 '도사리'에 참 많은 말들을 모아놓았다. 스마트 폰 덕분에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우리말사전도 슬그머니 없어져 버린 요즈음, 그의 '도사리'는 가끔 아주 '어이없는 말 이해'에서 나를 구해주곤 한다. 그에 의하면 집의 이름도 많기도 하다. '도끼집(연장을 제대로 안쓰고 도끼 같은 것으로 거칠게 건목쳐서 지은 집)', '말집(쌀을 되는 말처럼 모양 없게 지은 오막살이집)', '까대기(담이나 벽에 임시로 붙여서 지은 가건물)'. '움파리(움을 파서 만든 움막)', '마가리'도 움막처럼 비바람이나 겨우 막을 수 있도록 간단하게 꾸민집, 심마니들이 쓰는 산막(누게). 이렇게 알고 나니 이 시행의 아름다운 이미지는 더 밝게 드러난다. '마치 배가 고픈 듯이 울고 있는' 깊은 산골의 가난한 움집, 고독하고 가난하지만, 나타샤와 있으면 전혀 그렇지 않은 곳, 이상향! 이 참에 또 백석의 시 하나를 더 볼까.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 산너머 마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즘생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오는 집 / 닭 개 즘생을 못놓는 / 멧도야지와 이웃사춘을 지나는 집 <'가즈랑집' 중에서>이 시에서 '가즈랑집'은 어떤 집일까? '쇠메'는? '깽제미' 소리는 어떤 소리의 비유? 아무튼 시대가 갈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1930년대 백석의 시다. 외래어들에, 자투리말들에 어이없이 눌리고 있는 우리의 말이 새삼 눈부신, 깊은 울림을 얻는다. 눈부신, 깊은 의미가 따라온다. '생파'에 '생선'을 가지고 가는 이 시대에도./강은교 시인강은교 시인

2016-05-09 강은교

[강은교 칼럼] 좀 어리숙하기 또는 천천히 걷기 프로그램

너무 똑똑한 알파고의 가슴은장자의 '텅빈 방' 같은 동양식 가치또는 순진하고 평범한 사람들의'텅빈 방에 햇빛이 꽂힌다'는 것에대해선 어떻게 반응할까?세계인 사는법도 이미 입력됐나?알파고와 바둑기사와의 대결 생중계를 보면서 '알파고는 굿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굿은 일종의 '가난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잔치'라고 흔히 말하는데, 참 괜찮은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거기엔 형식상 굿의 주인이 그 동네 사람들의 점괘를 봐주는 장면이 삽입된다. 점의 내용이란 별것 아니다. 아들이 대학에 붙겠는가, 셋째가 시름시름 앓는 데 언제 낫겠는지, 이번 사업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남편의 바람이 잦아들까… 이런 것들이다. 인간이 원하는 것들이란, 결국 이런 것이라는 듯이, 사람들은 부끄럽지만 상당히 절박하게 질문한다. 무당은 신에게 그 질문을 들고 간다. 무당이 심각한 얼굴로 신에게 묻는 동안엔 북소리, 장구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말하자면 '조용하게 있고 싶은 신'을 귀찮게,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의 '아양'인 셈이다. 무당은 그 신의 대답을 질문한 사람에게 들려준다. 그러면 그 사람은 대답을 얻어 속 시원한 얼굴로 마른 북어의 그 재빛 '아가리'에 꼬깃꼬깃한 돈을 활짝 펴서 물려준다. '다음 사람… 아아아, 춘천댁, 요즘 어떠우…' 무당은 목쉰 소리로 신을 찾아온 아낙네를 즐겁게 부른다. 신이 춘천댁의 굽은 어깨를 흔든다. 춘천댁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러나 기대에 차서 원하는 바를 이야기한다. '지금 이사해도 될까요? ' '조금 있다가 찬바람이 불면 이사해!' 무당은 단호하게 말한다.한때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유행했던 서양 평론가, 벤야민의 에세이에는 참 재미있는 구절이 있다. 하긴 장자가 벌써 썼던 문구이다. '국도는 직접 걸어가는가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그 위를 날아가는가에 따라 다른 위력을 보여준다.'이 귀중한 지면에 이런 별것 아닌 문장을 인용하는 이유는 알파고의 생중계를 보면서 알파고에겐 이 '천천히 걷기'의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미 알파고에겐 동양 현자들의 느리게 걷는 프로그램들도 입력되어 있다? 그런게 없을 것 같애? 하는 구글의 말이 들려오는 것 같다. 마치 신의 말처럼.아니면 이런 프로그램은 어떨까. 좀 어리숙하기 프로그램. 어떤 나라를 가보니, 거기선 서로 대통령을 하지 않겠다고 한단다. 국회의원들이 있는 의사당 건물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폐교를 수리해놓은 것 같고 대통령이 사는 집은 거기 흔하디흔한 이층집이다. 그래도 마당에 깃발은 날리고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대통령이란 직업이 '사이드 잡'이란 점이다. 다른 생계 일을 하면서 대통령 일을 봉사 삼아 한다는 것이다. 마치 신동엽의 시에 나오는 '자전거타는 대통령처럼'.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그 중립국에선.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하긴 시이니 물론 그렇겠지만 시집을 읽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 그러고 보니 오래전 나도 '시집'은 정치인들이 읽어야 한다고, 혼자 기염을 토하면서, 그때 출간되었던 새 시집을 당시의 대통령께 보냈었던 일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고 그 철없는 용기가 놀랍고도 부끄럽기만 하다. 물론 '응답'은 없었다. 하긴 그 시집을 비서진들이 보고 폭발물 걱정을 하던 끝에 대통령께는 전하지도 않은 채 휴지통으로 던졌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어리숙한 나'의 정말 어리숙한 만용이었다.너무 똑똑한 서양식 가치의 극치인 알파고의 가슴은 장자의 '텅빈 방' 같은 동양식 가치, 또는 '좀 어리숙한, 평범한' 사람들의 가치 '텅빈 방에 햇빛이 꽂힌다'는 식의 가치에 대해선 어떻게 반응할까. 아니, 그것에게 '텅빈 방'의 프로그램은 있을까. 아니, 세계의 모든 사는 법에 대한 프로그램이 이미 되어 있다고?/강은교 시인강은교 시인

2016-04-04 강은교

[강은교 칼럼] 여기가 참 아름답다

차를 타고 지나갈땐 못보던언덕길의 수많은 것들과지하철속 스마트폰 삼매경 풍경빽빽한 엘리베이터안 유모차엄마의 언성·아이의 환한 웃음…사소한 사람들의 이곳이 아름답다언덕길을 내려간다.언덕길에는 차를 타고 지나갈 땐 못 보던 것들이 많이 있다. 아직도, 저런 곳이 있었나 싶은, 빨간색과 파란색이 줄 쳐진 이발소 표시의 등이 인상적인 이용원, 길가 공터에 고개를 쳐든 가느다란 파 들, 언뜻 바다를 생각나게 하는 어떤 집 담에 붙은 조약돌들, 아버지 어머니 며느리가 총출동 되어 닭백숙 쟁반을 나르던 식당이 '우다다 미술학원'이란 노란 페인트 글씨를 유리창에 써붙이고 생뚱맞게 우산꽂이를 앞에 세우고 서 있다. 유리창에 가득 붙어 나풀거리는 글씨들, 무지개빛 우산을 타고 금방이라도 하늘을 날 것 같다. 못 보던 꽃들도 있다. 길 한켠에 부끄러운 듯 서 있는, 구청에서 조성한 것이 분명한 바위들 사이에 팔이 가는 매화, 키도 작은 복수초 꽃잎. 차들이 마구 지나다니는 이런 길에서 꽃잎을 펼치다니, 참 용감하기도 한 꽃들, 세사람의 발레리나가 발을 곧추세우고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무용학원과 떡들이 가득 놓여져 있는 떡집(오늘 떡들은 화사한 빵에 밀려나는 자신들의 처지를 아는지, 판자로 얼기설기 만든 가판대에 추레하게까지 보이며 앉아 있다)을 지나, 버스 종점을 지나, 노래없는 시대의 노래방을 지나, 팥칼국수 집을 지나, 늘 나에게 과일이 가득 매달린 열대의 어느 숲을 생각하게 하는 과일가게를 지나, 마네킹들이 몸매를 자랑하며 눈웃음치고 있는 아웃도어 매장을 지나, 김밥집을 지나, 민들레 내과라는 간판을 허공중에 뾰족이 세우고 있는 의원, 노란 민들레 허리를 떠올리며 역의 계단을 내려간다.마침 지하철이 온다. 천천히 서는 지하철 안이 환히 들여다보인다. 빈자리가 몇 개 있다. 아 저기 앉아야지,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지하철 안으로 부지런히 들어간다.그러나 발 빠른 어떤 청년이 나를 밀치듯 털썩 앉는다. 나는 머쓱해져 지하철의 손잡이를 잡는다. 청년은 눈을 내리깔고 주섬주섬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이윽고 열차가 떠나고 곳곳에 재빠르게 자리를 차지한 젊은이들이 모두 눈을 내리깔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앞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편한 사람이 혹시 있는지 주변을 살피는 사람은 물론 없다. 모두 스마트 폰을 들여다본다. 열차가 서자 얼른 일어나, 재빠르게 승강장에 내리는 사람들,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사람들에 밀려 넘어질 뻔하다가 겨우 에스컬레이터의 난간을 붙든다. 위로 올라간다. 어떤 빌딩, 유리문을 민다. 너무 무겁다. 미처 들어가기도 전에 앞사람은 문을 확 던지듯 밀치고 나간다. 유리창에 잠시 내 코가 박힌다.누구인가 내 발을 밟는다. 오히려 그가 나를 꼬나본다. 아래위로 훑어보기까지 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안합니다"하고 고개를 꾸벅 숙인다.사람들로 빽빽한 어떤 엘리베이터의 안, 사람들은 앞사람의 머리꼭지를 보며 엉덩이가 서로 닿을 듯 서 있다. 갑자기 한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중을 찢는다. 또 한 여자의 비명 같은 목소리. 두 목소리는 싸우기 시작한다. 모두 깜짝 놀란다. 유모차에 탄 어린아이가 빽빽 울기 시작한다. 두 여자는 싸운다. 그중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젊은이답게 더 힘 있고 날카롭다. "왜 유모차를 밀쳐요! 다시 한 번 유모차에 손을 대면 경찰에 신고할 거얘요." 경찰에 신고한다는 소리에 엘리베이터 안은 이상한 정적이 감돈다. 모두 뭔가 잘못한 듯이 고개를 떨군다. 엘리베이터는 5층에 멈춘다. "내가 누군지 알아? 뭐 이런 것들이 있어!" 그 여자가 유모차를 당당하게 밀고 문을 나간다. 모두 유모차에 몸이 닿을세라 이리저리 몸을 옹크린다. 그때다. 빽빽 울던 아이가 뒤를 돌아본다. 아이는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환히 웃고 있다. 눈부신 웃음, 환희의 눈동자란 저런 것인가! 엘리베이터 안이 포근해진다. 사람들은 모두 안도한다. 사소한, 참으로 사소한 사람들의 여기, 여기가 갑자기 아름다워진다./강은교 시인강은교 시인

2016-02-29 강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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