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칼럼

 

[이영재 칼럼]그때는 몰랐다

주변국 사이 갈팡질팡, 구한말과 겹쳐 보여조·청·일·러서 한·미·일·북·중·러로 늘고북한이 핵보유국, 그때보다 복잡하고 험악또 잘못 선택한다면 후세 무능한 조상으로 그때는 몰랐다. 역사는 무조건 외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역사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무조건 외우는 거다." '미친개'란 별명을 갖고 있던 국사 선생님도 박달나무를 허공에 휘두르며 그때 그렇게 말했었다. "백제멸망 660 정말 슬픈데 /고구려도 망했다 668/ 발해건국 699에 번영하다가/ 멸망이 웬 말이냐 926." '연대 강박증'에 시달리던 우리는 윤극영의 동요 '반달'을 개사한 이런 노래도 불렀다. 하긴 당시 시험문제의 수준도 이랬다. '다음 사건을 시대순으로 옳게 나열한 것은 ?'. 그래서 '미친개'가 무조건 외우라고 했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역사는 외우는 게 아니라 이해해야 한다는 걸. '한국사 연표'를 직접 만드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도 후에 알았다. 기존의 연표를 대충 눈으로 읽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다. 내 손으로 연표를 작성하되 여유가 있어 세계사 연표까지 함께하면 금상첨화다. 국사와 세계사를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이른바 '일타쌍피'. 가령 '고구려가 낙랑군을 점령한 313년 그해, 콘스탄티누스가 밀라노칙령을 공포해 기독교를 공인하고, 백제를 번성케 한 근초고왕이 죽던 해(375년)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이런 식이다. 눈을 감으면 뭔가가 그려진다.그때는 몰랐다. 역사는 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발원지에서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흐름만 알면 역사공부는 끝난 거다. 그래서 연표가 중요하다. 이탈리아 메디치가의 번영으로 피렌체의 르네상스 문화가 절정을 구가하던 1453년, 동방의 조그만 나라 조선에서는 수양대군이 친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권력이 뭐라고, 그걸 잡기 위해 쇠몽둥이로 무자비하게 정적을 제거하고 '피의 축제'를 벌이며 마침내 조카의 목숨까지 빼앗은 그때, 먼 나라에선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간중심의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었다. 가슴이 뭉클하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연표 때문에 가능한 상상이다.하지만 이런 연표도 근대사에 이르면 혼란을 맞게 된다. 우리 근대사가 썩 유쾌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정말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건이 수없이 일어나서다. 1866년 병인양요,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시작으로 신미양요(1871), 운요호 사건(1875), 강화도조약(1876), 임오군란·제물포조약(1882), 갑신정변(1884), 동학운동·청일전쟁 (1894), 을미사변 (1895), 아관파천(1896), 대한제국선포(1897), 을사조약·가쓰라 태프트 밀약 (1905), 한일합병(1910)까지 매년 매월 국운을 뒤흔든 사건이 일어났다.무엇하나 뺄 거 없이 '조선'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가 감당하기에는 엄청난 사건들이었다. 연표만 가지고는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이 사건들이 계산된 듯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근대사 교육은 중립적인 시각을 가진 누군가의 설명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미친개'는 어설픈 민족주의자였다. 청나라,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의 움직임은 생략한 채 우리 입장만 가르치려고 했으니 불쌍한 '조선'이 왜 백척간두에 놓였는지 어린 학생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최근 우리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가 마치 구한말 같다고 한다. 헷갈리던 근대사를 다시 공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소리까지 들릴 정도다. 주변국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가련한 모습이 구한 말과 겹쳐 보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조·청 ·일 ·러 4개국에서 한·미·일·북·중·러 6개국으로 늘어난 것도 그렇고, 한반도가 두 쪽으로 갈라졌으며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란 사실 때문에 상황은 그때보다 복잡하고 훨씬 더 험악하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E. H.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비록 반복되는 역사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지만 답은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 알았으니 무능했던 우리의 조상들이 택하지 않은 길로 가면 된다. 만일 이번에 또 길을 잘못 선택한다면, 우리는 후세에게 130년 전 조상보다 더 무능한 조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다시 그 길 앞에 선 대한민국. 슬프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7-29 이영재

[이영재 칼럼]6·25 아침에

해마다 이날 슬픈 이야기 주고 받았는데언제부턴가 의미가 점점 빛 바래'잊혀진 전쟁'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오늘은 '호국영령 이야기' 귀 기울이는 날해마다 이날이 되면 우리는 슬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주로 듣는 편이었다. 이제는 잊을 만한 한 평안도 사투리가 '방언'처럼 쏟아져 나왔다. 너무 생생해서 그 아비규환의 현장이 또 눈앞에 펼쳐졌다. 묘하다. 달달 외울 정도로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 속이 멍해지는 느낌을 받으니 말이다. "죽지 못해 살아남았다"로 이야기는 끝났다.밥상머리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며 자랐던 아이는 이제 제 자식에게 아버지한테서 들었던 그 날의 슬픈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최첨단 아이맥스 돌비 서라운드로 영화를 감상하는 신세대 아이에게, 그것도 전해 들은 전쟁 이야기가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지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입을 다문다고 해서 주저리주저리 얽힌 그 숱한 사연을 담은 비극의 가족사와 남북 분단사를 두부 모처럼 잘라내지는 못할 것이다.그해 6월의 마지막 일요일은 너무도 평온했다고 한다. 딸기를 씹는 것 같은 싱싱한 6월. 투명한 6월의 태양이 비치는 강물은 해조처럼 싱싱하게 흔들렸고, 붉은 장미처럼 생명의 열정이 만방에 꽃을 피운 6월이었다. 살살 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때로 소낙비를 몰고 오기도 하다가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햇빛을 뿌리기도 했다. 해방을 성취한 젊은이의 터질 것 같은 마음은 춘향이가 그네를 타듯이 한없이 펄럭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 새벽, 화단에 핀 붉은 장미가, 딸기를 담은 투명한 유리컵이, 어린이들이 타던 그네가 있던 놀이터의 평화가 순식간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미국에선 6·25전쟁을 '역사의 고아'라고도 부른다. 3년 1개월 2일 동안 연인원 178만9천명의 미군이 참전해 3만6천여명이 전사했으나 역사적인 평가에서 철저하게 외면을 받고 있어서다. 승전도, 패전도 아닌 '정전'으로 끝났기 때문에 그렇다는 의견도 있다. 분명한 건 미국은 6·25전쟁에 대한 준비도, 의지도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공원의 비문에는 '미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라의 자유를 위해 달려갔던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글귀를 적어 놓아 찾는 이를 숙연하게 만든다.우리 역시 언제부턴가 6·25 전쟁의 의미가 점점 빛이 바래고 있다. '한국전쟁'이라 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심지어 '내전'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재작년에 이어 지난 6일 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6·25전쟁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현충원에 잠든 대부분 영령이 6·25 전쟁 전사자들인데도 말이다. 오슬로를 방문해 행한 포럼 연설에서는 "독립 후 '한국 전쟁'을 겪고서도, 7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이라 했고, 스톡홀름 의회연설에서는 "반만년 역사에서 남북은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한 적이 없다"며 북의 남침으로 발발한 6· 25전쟁을 외면했다. 하지만 국군 전사자 13만명, 부상자 45만명, 10만명이 넘는 전쟁고아와 1천만명의 남북 이산가족이 발생한 6 ·25전쟁을, 그 아픈 역사를 하루아침에 지워버릴 수는 없다. 가족사처럼, 역사도 지운다고 말끔하게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지우려다 남은 흔적이 더 흉하고 더 오래가는 법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6·25전쟁을 외면하고,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로 시작되는 '6·25 노래'가 더는 우리 사회에서 불리지 않는다면, 6·25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6·25 아침이다. 이어령은 '시간에 세우는 기념비'라는 글에서 "아, 6·25! 오수(午睡)를 거부하라"며 "6월 25일은 검은 구름과 천둥소리에 우리의 어린 것들이 피를 흘렸던 기억, 우리의 사랑이 어떻게 찢기는가를 듣는 것"이라고 적었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6·25의 의미를 되새기고, 나라 위해 목숨 바친 호국영령들의 그 슬픈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그런 날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6-24 이영재

[이영재 칼럼]책을 정리하며

창간~종간호 모은 월간지 '뿌리 깊은 나무'발행인 온기 그대로 과거로 되돌아간 느낌10년 넘은 책꽂이, 반은 책·반은 먼지란 말"지금 우리는 그런 먼지 속에서 살고 있다"책을 정리할 일이 생겼다. 문학청년의 패기는 모두 사라지고, 이사를 해도 이제 더는 책을 안고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책을 빼면 먼지가 풀풀 날았다. 하얀 목장갑이 금세 까매졌다. 딱히 정해진 날까지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책은 두 겹으로 꽂혀있다. 한 권을 빼면 그 뒤에 늙어서 더는 힘을 쓰지 못하는 병사처럼 빛바랜 책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뿌리 깊은 나무'가 보였다. 70년 중·후반을 풍미했던 월간지다. 가슴속에 바람이 싸하게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책 정리고 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서슬 퍼렇던 시절, 수원 교동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창간호부터 종간호까지 사서 모은 잡지다. 어렵사리 결호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발품을 판 덕분에 단 한 권의 결호 없이 온전히 모았다. 권당 200원에서 500원 값을 치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른 어느 책보다 '뿌리 깊은 나무'에 애정이 넘치는 것도 그래서다. 창간호를 읽다 보니 이래저래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1976년 3월에 창간된 한글 전용 잡지 '뿌리 깊은 나무'에는 '문화'의 힘을 앞세워 긴급조치를 발동한 독재에 항거하는 발행인 한창기의 온기가 그대로 녹아있다. 쌀을 한 움큼 쥐고 있는 손을 표지 사진으로 사용한 창간호는 기존의 잡지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43년 전 쓰인 한창기의 창간사는 이랬다. "우리가 '잘사는' 일은 헐벗음과 굶주림에서 뿐만이 아니라 억울함과 무서움에서도 벗어나는 일입니다. 안정을 지키면서 변화를 맞을 슬기를 주는 저력 - 그것은 곧 문화입니다." 잡지는 신군부가 들어선 1980년 8월 폐간될 때까지 모두 53권이 발행됐다.80년대 초 수원역 지하상가 입구에는 '니꼴라'라는 서점이 있었다. 군사정권으로부터 판매금지된 책들은 이곳에서 구했다. 그때 사서 본 책들이 둘째 줄에서 먼지를 꼬박 뒤집어쓴 채 숨을 죽이며 있었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신동엽의 '금강'을 비롯해 헝가리 공산당 인민위원이었던 게오르그 루카치의 저서들도 있었다. 당시에는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혀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에 저촉된 책들이다. 무엇에 홀렸던 것일까. 그때는 이런 책들을 밤새 탐독했다. 책 안에 '민주화로 가는 길'이 있는 줄 알았다. 다시 들춰보니 쓴웃음이 나왔다. 책마다 밑줄이 쳐있고, 뭐라고 썼는지 판독조차 하기 어려운 메모들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80년대 우리는 '민주화의 열망'속에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책 속에 있으니 80년대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낡은 책에서 매운 최루탄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최루탄 터지는 소리가, 그것을 피하려고 이리저리 달리는 친구들의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많은 사람이 그때의 기억을 지웠고, 이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한때는 집안에 김소월 윤동주 시집 한 권 정도는 갖고 있었다. 이제 그런 시대도 지났다. "요즘 무슨 책 읽어?"라고 묻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아직 그 시대를 잊지 못하고 그때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꼰대'라고 손가락질을 받는지도 모르고 '자신들이 곧 정의'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고민은 이 책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였다. 기증하려고 했지만, 도서관마다 난색을 보였다. 그러잖아도 있는 책들을 폐기해야 하는 처지라 더는 기증을 받지 못한다고 도서관 측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렇다고 분리수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물상에 넘기는 방법도 있지만, 이미 그런 경험을 한 친구는 "그거 사람이 할 짓이 못되더라. 어렸을 적 어른들이 집에서 키운 백구를 정이 붙을 만하니 개장수에 넘겼잖아. 그때 그 백구의 슬픈 눈빛을 봤지? 꼭 그 기분이야 "라고 말했다. 물론 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다시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뽀얀 먼지가 방안 가득 피어올랐다. "10년이 넘으면 책꽂이도 반은 책이고 반은 먼지"라고 했던 친구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먼지 속에서 살고 있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5-27 이영재

[이영재 칼럼]판문점 회담 1년,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

4·27 판문점선언후 두차례 이산가족 만남계속 이어졌다면 트럼프 설득 쉬웠을지도실향민들 아픔 달래준 이미자 데뷔 60주년부모님 모시고 콘서트라도 다녀와야 할듯음정도 박자도 가사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맞는 게 없었다. 그래도 이 노래가 그 노래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눈물로 보냅니다' 라는 가사만은 그런대로 또렷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창밖에는 꽃잎들이 바람에 따라 이리로 저리로 휘날리고 있었다. 그 바람에 따라 이제 90인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는 대한민국 가수 중 이미자를 최고의 가수라고 생각한다. 조용필과 나훈아가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남자가수고, 그들 역시 이미자에게는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양보할 것이다.골목길로 들어서면서 전봇대가 있는 여섯 번째 집에서 일하던 식모는 온종일 이미자 노래만 불렀다. 그 노래가 어린 우리에게도 얼마나 구슬프게 들리던지 하굣길에 그 집 앞에서 담을 타고 넘어오는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한참 동안 들었다. 이미자의 목소리에는 고향 생각을, 그곳에 두고 온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다. 지나가다 그녀의 노래를 듣던 다 큰 어른들도 눈물을 훔치곤 했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이 그 집 앞에 모여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일본 놈들이 많은 돈을 주고 이미자의 목소리만 샀대. 죽으면 목 해부해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하겠다는 거야. 왜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지 말이야." 이미자가 들었다면 경을 칠 일이지만, 그때는 그 말이 진짜인 줄 알았다. 그만큼 이미자의 목소리는 일본도 부러워할 정도로 최고였다."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 앞에서 어머니는 숨도 제대로 쉬지도 못했어. 아버지가 소리 한번 지르면 저 구석에서 마치 죽은 쥐처럼 말 한마디 못했지. 왜 그렇게 사셨는지. 그런 어머니랑 16살에 헤어졌다. 나오면서 사진 한 장 못 갖고 나왔어. 금방 돌아갈 줄 알았거든. 이 노래가 어머니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노래는 다시 시작됐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 물론 가사도 음정도 박자도 모두 무시됐다. 그래도 노래를 듣는 우리는 단 한 번 본적 없는 할머니의 얼굴을 수없이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패티 김이나 주현미, 아니 요즘 뜬다는 홍자도 이 노래를 이미자만큼 아리게 부르지는 못할 것이다. 뜬금없이 이미자 얘기를 꺼낸 것은 며칠 전 노래 다섯 곡을 새로 배웠다는 실향민 1세대 아버지가 차 안에서 부른 '여자의 일생' 때문이다. 이 노래 말고도 다른 노래도 배웠다는데 그날 아버지는 '여자의 일생'만 부르고 또 불렀다.다음 주면 판문점 회담 1주년이다.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이 발표한 '4·27 판문점 선언'에는 5번 문항에 분명 이런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 '남과 북은 민족 분단으로 발생 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남북 적십자회담을 개최하여 이산가족·친척상봉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오는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 선언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지난해 8월 20일부터 22일, 24일부터 26일까지 두 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에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의 만남은 없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철도 회담은 귀가 아프도록 들었지만, 그 이후 서울이건 평양이건 더 이상의 '이산가족 상봉'은 없었다. '여자의 일생'을 듣던 그날 문득, "만일 우리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몇 번 더 추진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시키는데도 더 수월했을지 모른다. 그 역시 계속되는 이산가족 상봉을 거부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생존한 실향민 1세대도 손에 꼽을 정도다. 억세게 운이 좋은 몇 명은 이미 가족 상봉의 꿈을 이뤘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의 생사 확인조차 못 한 채, 이미자 노래를 벗 삼아 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공교롭게 올해는 이미자가 데뷔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올해도 이산가족 상봉은 틀렸으니, 부모님을 모시고 이미자 60주년 콘서트만이라도 다녀올 생각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4-22 이영재

[이영재 칼럼]그래도 인사 청문회는 계속되어야 한다

여·야 바뀌어도 출연진만 다르고 변함없어청와대 '7대비리 배제' 내놓고도 의혹 나와인식 바뀌지 않는 한 무용론 끊임없이 제기그래도 큰 꿈 그리는 '누군가'가 있을지도천막 안에는 사람들이 쭈그리고 앉아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불이 하나둘씩 꺼지면 장내는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곧 영화가 시작될 것이다. 뿌연 먼지를 가르며, 영사기에서 뿜어지는 강렬한 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일순간 적막이 흐른다. 초라한 하얀 천 위에서는 온갖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긴박한 순간마다 여기저기서 관객의 탄식이 터져 나온다. 개봉관과 재개봉관을 모두 거치고 마침내 여기까지 온 필름에는 시종 비가 내렸다. 그래도 좋았다. 모두 분위기에 취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윤복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김승호의 '마부'도 아마 그 천막극장에서 보았을 것이다. 마침내 영화가 끝나고 천막이 걷어지면 사람들은 뿔뿔이 밤길 속으로 사라졌다. 조금 전 사람들이 모여 웃고 울었던 공간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공터는 순식간에 텅 비었다. 그 허전함이란. 급조된 영화관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예외 없이 모두 TV 앞에 모였다. 이제 곧 장관 인사청문회가 시작될 것이다. TV 카메라 조명이 강렬한 빛을 발하며 카메라에 빨간 불이 켜지면 드라마가 시작된다. 물론 줄거리는 뻔하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의혹투성이인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TV 앞에 모인 건 이번만은 뭔가 다르겠지 하는 한 가닥 희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작심한 듯, 또 맥빠진 질문에 뻔한 답을 쏟아낸다. 2000년부터 우리는 TV를 통해 많은 인사청문회를 보았다. 달라진 것은 출연진뿐, 예외 없이 위장전입, 논문표절, 투기의혹, 이중국적 등은 변함없는 주요 레퍼토리였다. 여·야가 뒤바뀌어도 늘 그 타령이었다. 정쟁의 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늘 수많은 의혹이 있었지만, 면피성 답변만을 듣고 결국은 통과의례이거나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청문회는 막을 내렸다. 그들이 떠난 텅 빈자리 역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적막만 남았다. 그 허전함이란. 그때마다 '청문회무용론'이 제기됐다.청문회가 늘 이런 식으로 시작하고 끝나자 지난해 청와대는 획기적인 안을 내놨다. '고위 공직 후보자 임용 7대 비리 배제 원칙'기준안이 그것이다. 위장전입, 불법 재산증식, 논문표절 등 7개 조항에 위반되면 아예 공직에 나서지 못하게 한 것이다. 국민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렇지! 역시 촛불 정부는 달라도 무언가 다르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인사청문회에서도 후보자의 위장 전입, 논문 표절, 탈세 의혹 등이 제기됐다. 7대 원칙이 무색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실망한 국민을 달래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그럼에도 청와대는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청문회 무용론'에 불을 지폈다. 그렇게 해서 임명한 장관의 수가 벌써 10명이 넘는다. 지난 1월에는 자유한국당이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의 전력을 문제 삼아 반발하며 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하자 청문회도 없이 그를 위원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일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청문회 때 많이 시달린 분들이 오히려 일을 더 잘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해 국민을 놀라게 했다.인사청문회는 해당 공직에 걸맞은 능력을 가리는 건 물론 임명권자가 발견하지 못한 비리 등의 결격사유가 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지자는 데 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공직 임명 통과의례 정도로 보는 청와대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청문회 무용론'은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다. 이번 청문회에 나온 7명 후보자 역시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청와대는 이들을 장관으로 임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이런 청문회는 없었다'는 비난이 쏟아지겠지만, 그래도 청문회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밤하늘의 별이 보이는 초라한 천막극장에서 낡은 영화를 보며 '누군가'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꿈을 버리지 않았듯이, 이런 한심하고 터무니없는 청문회를 보면서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하는 큰 꿈을 그리는 단 한 명의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3-25 이영재

[이영재 칼럼]3·1운동 100주년 그리고 미당 서정주

'친일' vs '천재시인'… 극과 극 갈리는 평부천 상동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서 퇴출시비 놔둔채 '친일 시를 쓴 시인' 표시했다면'변절 목도' 교육효과 클수도… 철거 아쉽다여기 서정주의 '동천(冬天)'이란 시가 있다. 짧은 시니 전편을 인용한다.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국어선생님은 교과서에 게재된 '국화 옆에서'와 함께 교과서에 없는 이 시를 해설해 주었다. 그러면서 "서정주가 아니면 절대 쓸 수 없는 시"라며 "미당은 100년에 한 번도 나올 수 없는, 두보와 견줘도 손색없는 시인"이라고 말했다. 40년 전이다.칼날 같은 바람이 부는 매서운 겨울. 들판엔 눈이 쌓여 있고, 연처럼 하늘에 걸려 있는 초승달. 어느 한자도 넣을 수도, 뺄 수도 없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시어(詩語). 마치 겨울 풍경을 찍은 한 장의 사진 같다. 그래서 처연하다. 그날 선생님의 이 시에 대한 해석은 대충 이렇다. "일체의 설명적 요소를 배제하고 고도의 압축과 상징으로 이루어진 상징시다. 짧은 시 형식과 상징이라는 표현 기법을 통해 강렬한 언어 긴장을 이루며 인간 본질의 탐구라는 무거운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정제된 미의식을 드러낸다".하지만 서정주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오직 시만 가지고 논할 때 그의 이름 앞에는 '살아 있는 한국 시사(詩史)' '시선(詩仙)'이라는 찬사가 붙지만, 친일·친 독재 전력에 이르면 그의 이름은 '다츠시로 시즈오'가 되고, 전두환 생일에 축시를 쓴 파렴치한 시인이 된다. '꽃'의 시인 김춘수는 "미당의 시로 그의 처신을 덮어버릴 수는 없다. 미당의 처신으로 그의 시를 폄하할 수도 없다. 처신은 처신이고 시는 시다."라는 말로 그의 이런 전력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때문에 시인의 고향에서조차 미당을 내놓고 자랑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비극의 역사가 만들어낸 또 다른 비극인 셈이다.부천에서 미당 서정주가 퇴출당했다. 부천시 상동 상도중학교 뒤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 세워져 있던 그의 시비 '동천'이 지난 13일에, '국화 옆에서'가 어제 철거된 것이다. 미당의 시비는 지난 2008년 상동 주민자치위원회가 부천문화사업과 연계해 '시와 꽃이 있는 거리'를 조성할 때 세워졌다. 이곳에는 노천명의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와 주요한의 '샘물이 혼자서'가 있었지만 모두 친일 논란 끝에 철거됐다.2015년 서정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우린 문단엔 미당 재평가 바람이 불기도 했었다. 그의 시를 아끼는 후학들이 '미당 서정주 전집' 20권을 완간하기도 했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먹히는 듯했다. 하지만 3·1 운동 100주년의 거센 바람 앞에서는 천하의 미당도 버티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시비철거가 결정되자 부천시의 정치권, 시민사회 등에서는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크게 환영하고 있다고 한다. 정재현 시의회 행정복지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친일 잔재를 없애는 것은 민중에게 서러운 삶을 안긴 엉터리 지도자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며칠 후면 3·1 운동 100주년이 된다. 여기저기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3·1 운동의 명칭을 '3·1혁명'으로 변경하자는 말이 집권당 대표 입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물론 친일 시인을 쫓아내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을 나무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역사 바로 세우기'를 목적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어버리자 우리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때는 흉물스런 조선총독부 건물만 철거되면 일제 잔재가 모두 사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건물을 그냥 두고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가르쳤다면 효과가 더 컸을 것이란 자성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철거만이 능사는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미당의 시비도 마찬가지다. 시비는 그냥 놔두고 그 옆에 '친일 시를 쓴 시인' 정도로 작은 표시를 해 두었으면 어땠을까. 우리 언어를 한 단계 승화시킨 시를 쓴 '천재시인의 변절'을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교육 효과는 더 클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당 시비 철거소식이 못내 아쉬운 것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2-25 이영재

[이영재 칼럼]가지 않은 길

'불안한 평화 지속' 한번도 경험 못한것들북한 '핵 동결'에 사실상 美가 '보유 인정'새로운 경험할까봐 두려운게 솔직한 심정안보는 한번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읽어주는 50세 중반의 국어 선생님 목소리는 진지했다. '어린 너희가 뭘 알겠어?'라는 표정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얼마나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야 하는지 지금 너희는 잘 모를 것이다. 많게는 서너 번, 적게는 수백 번 결단의 순간과 맞닥뜨리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가 숲 속을 걷다가 만나는 두 길을 모두 갈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의 앞에 펼쳐지는 여러 갈래 길을 동시에 갈 수는 없다. 갈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기꾼이다.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건 없다. 어차피 그게 인생이니까." 시도 좋았지만, 책도 없이 시 전문을 한 자의 틀림도 없이 외운 선생님을 우리는 신뢰했다. 어린 나이에 선생님의 그 말이 왜 그렇게 쓸쓸하게 들렸는지 그때는 몰랐다.그날 교실 분위기가 무거웠던 건 시의 첫째 연과 마지막 연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1990년대는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가 높았다. '몰래카메라' '브레인 서바이버' '양심 냉장고' '러브 하우스'도 그랬지만 개그맨 이휘재의 '인생극장'은 내 맘대로 내용과 결론을 바꾸는 지금의 '인터렉티브 영화' 콘셉트로 인기를 끌었다. 매번 선택의 갈림길에 서고, 그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각기 다르게 전개되는, 특히 "그래! 결심했어"란 유행어도 남긴 인기코너였다. 그 '인생극장'을 보면서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났다. 선생님의 말처럼 그동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다. 문과가 아닌 이과를 택했다면, 그때 공부보다 운동권 학생이 되었다면, 이 직장이 아니라 저 직장을 택했다면, 이 사람이 아니라 저 사람을 만났다면 등등 '그때 저 길로 갔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 봤을 것이다.'가지 않은 길'이 다시 떠오른 건 3년 전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들으면서였다. 그리고 요즘은 매일 문 대통령의 말처럼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경험하고 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매일 벌어지는 검경의 압수수색은 논외로 치더라도 대법원장의 구속, 눈만 뜨면 나타나는 미세먼지, 일자리정책 앞에서 탄식하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은 물론, 대통령이 국민연금에 주주권행사를 직접 지시하거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발표하는 것도, 투기의 의혹 국회의원이 오히려 국민들을 향해 큰소리 치는 것도 생애 첫 경험이다. 이웃 일본과 최악의 관계도 새로운 경험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은 걸리겠지만, 우리가 제정신을 차리고 왔던 길로 다시 가서 다른 길을 택한다면 해결되는 것들이다.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적인 것들에 있다. 지난해 남북 정상 간 세 번의 회담, 그 과정에서 도출된 9·19 남북 군사 합의서로 인해 발생한 '불안한 평화의 지속'도 실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조만간 북한의 핵 동결이라는, 사실상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새로운 경험을 할까 두려운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앞엣것들과 다르게 안보가 한번 무너지면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때 국어 선생님은 이런 말도 했었다. "분명한 건 어느 한 길을 택할 경우, 다른 길을 택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인생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무서운 건 택한 그 길이 꽃길인지 아니면 가시밭길인지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담보로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1-28 이영재

[이영재 칼럼]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자의든 타의든 1년 내내 남북관계에 빠져경제는 장관 바뀔 정도로 최악의 길 걸어와나라 존망위기 몰린 '저출산 문제'도 심각늦었지만 청와대·정부의 '현실 직시' 다행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사람마다 각자 다르다. '먹방'을 틀어놓고 끊임없이 먹어대는 사람도 있고 격렬한 운동으로 터질 것 같은 압박을 달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도 많다. 하정우 같은 배우는 하염없이 걸으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나의 경우, 단연 공포영화 시청하기다. 영화를 보는 동안 공포에 쫄다보면, 스트레스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공포지수가 높을수록 효과는 배가된다. 최근 나홍진의 '곡성'을 봤다.역시 그는 천재였다. 무서웠다. 다시 봐도 정말 무서웠다.공포에 이리저리 쫓기다가 그 '장면'에 멈췄다. 아니 '장면'이 아니라 그 '대사'에서 멈췄다. 이 영화가 개봉되던 2016년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그 대사 말이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이 대사에서 가슴이 콱 막혔다.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그냥 살아왔다는 자책감이 들어서다. 갑자기 눈물도 핑 돌았다. 공포영화를 보면서도 이런 깨달음을 주는 나홍진은 정말 천재다. 2006년 영화 '타짜'의 정 마담이 "이거 왜 이래,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외쳐댄 이후, 영화 대사 한 줄이 이토록 유행한 적이 없었다. 유행어는 시대의 산물이다. 2016년 9월 1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정기국회 개원사에 사드 반대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언급하자 새누리당이 크게 반발했다. 이를 이유로 새누리당이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격앙하며 이렇게 말했다. "새누리당이 민생을 정말 죽이려 하는 것인가. 지금 '뭣이 중헌디'라고 묻고 싶다." 자의든 타의든 1년 내내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남북관계 하나에 빠져 지냈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김여정 김영철이 찾아온 이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6월 싱가포르 북미회담, 9월 문재인 대통령 평양방문으로 우리의 관심사는 온통 남북문제뿐이었다.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최근 2~3주 동안 김정은의 서울 답방 여부를 두고 벌인 해프닝은 끔찍했다. 한 해를 결산해야 할 중요한 시기를 우리는 그렇게 보냈다. 그런데 결론은 "연내 답방 어렵다"였다. 그럼에도 그의 답방이 왜 불발됐는지 청와대도 정부도 언론도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올해 우리 경제는 장관이 바뀔 정도로 끔찍했다. 고용률, 실업률 등 고용 관련 주요 지표들이 고용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악의 길을 걸었다. 길거리에 널린 빈 가게,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인력시장, 역대 최대인 실업급여 수급자. 52조원을 쏟아부은 일자리 예산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런데도 내년엔 경제가 더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또 있다. '저출산' 문제다. 이야말로 '냄비 속의 개구리'다. 지금은 고통스럽지도, 아프지도, 물론 무섭지도 않다. 정말 그런 날이 올지 지금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초'를 붙여야 할 정도로 저출산 문제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몰렸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 즉 여성 1인이 평생 낳는 아기가 0.95명으로 떨어졌다. 인구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 2.1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68명)을 크게 밑돈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닌가. 최근 12년간 저출산 대책에 120조원 이상 재정을 투입한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우리가 북한에 홀려 있는 사이 이렇게 수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2018년이 보름도 남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도 어느새 50% 이하로 떨어졌다. 취임 후 최저치다. 이제 사람들 입에서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라는 말이 흘러 나오고 있다. 이제야 모두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있는 모양이다. 처음이란 게 놀랍지만 어쨌든, 어제 문 대통령이 현 정부 들어 '첫' 확대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을 필요한 경우 보완조치 하라"고 지시했다. 늦은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제라도 청와대와 정부가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은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12-17 이영재

[이영재 칼럼]겨울이 오고 있다

경제상황 1년간 나빠질 것이란 전망 '53%'실업자·노사분규 증가 예상도 '50%' 넘어청와대의 '현실과 동떨어진' 잇단 발언들내부 의사결정 과정 심각한 문제있다는 의미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드라마 광팬이었다. 그 바쁜 시간에 언제 시간을 내 드라마를 보는지 궁금할 정도다. 지금도 '오바마와 미드' '오바마가 좋아하는 미드 추천'이란 제목으로 그가 좋아했던 드라마 목록이 돌아다니고 있다. 워싱턴 정가 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하우스 오브 카드', 이슬람 테러를 다룬 '홈랜드'는 오바마가 좋아했던 드라마들이다.특히 '왕좌의 게임'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로 꼽힌다. 제작사인 HBO에 방영도 하지 않은 시즌 6을 미리 보여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당시 제작사는 "그는 자유세계의 '리더'이기 때문에 미리 보여줬다. 물론 내용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했던 일화가 있다. '왕좌의 게임'이 오바마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것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이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 탓이 크다. '왕좌의 게임'은 가상의 세계인 웨스테로스 대륙의 연맹 국가 칠 왕국을 무대로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가문들의 치열한 권력 다툼을 그렸다. 명대사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는 왕국의 북부를 다스렸던 주인공 스타크 가문의 가훈이기도 하지만, 왕권 다툼을 하는 가문 모두에게 북쪽 방벽 너머 '죽음과 겨울을 몰고 오는 백귀(白鬼)'의 공격에 대비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비록 드라마이지만, 마치 우리 인류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들린다.오바마는 언젠가 "책과 드라마를 통해 현실 정치에서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드라마 시청이 단지 '시간 때우기 용'이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 오바마는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워싱턴 정가의 이면을, '왕좌의 게임'을 통해 국가 간 패권 다툼을 넘어서 인간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위기를 헤쳐나갈 지혜를 배웠다. 요즘 드라마가 얼마나 현실에 근접하는지 지난해 미국 대선에 개입했던 러시아 '댓글 공장' 요원들이 '하우스 오브 카드'로 미국 정치를 배웠다 해서 화제가 됐다. 우리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드라마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왕좌의 게임'처럼 실제 '겨울이 오고 있다'는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정치, 사회, 남북문제는 제쳐 두고라도 우선 경제만이라도 보자. 생산, 투자, 소비 등 핵심 경기지표들이 일제히 내림세를 보이면서 앞날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우리의 경제상황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이른바 한국 경제위기의 '10년 주기설'을 지적하고 있을 정도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외 경제 전문기관들은 한국 경제가 2%대 성장률이 굳어지는 추세적 경기하강에 진입했다는 경고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밖으로는 미·중 무역전쟁 후유증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세계 경제를 엄습하고 있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경제 상황이 앞으로 1년 동안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53%)이 좋아질 것이라는 예측(16%)보다 훨씬 높았다. 앞으로 1년간 실업자가 늘고 노사분쟁이 증가할 것이라는 견해가 50%를 넘었다.문제는 청와대의 안일한 현실 인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자동차는 생산이 다시 증가하고, 조선 분야도 세계 1위를 탈환했다"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처럼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우리의 자동차업계가 벼랑 끝 위기 상황인데도 이런 발언이 나와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에도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며 현실과 다른 발언을 했다. 또한 최근 한 세미나에서 청와대 비서관은 "위기라고 하면서 개혁의 싹을 미리 자르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는 발언으로 참석자들을 당황케 했다. 이는 청와대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다 1997년 IMF 한 달 전까지 "우리 경제는 괜찮다"고 말한 김영삼 대통령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요즘 유난히 드라마를 보며 현실을 인식한다는 오바마가 생각 나는것도 그런 이유다. 굳이 '왕좌의 게임' 대사를 다시 들추지 않더라도 모든 지표를 보면 진짜 겨울이 오고 있다. '왕좌의 게임' 결말을 모르듯, 얼마나 혹독하고 추운 겨울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는 겨울을 대비해야 하는데 주위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게 더 무섭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11-26 이영재

[이영재 칼럼]나폴레옹과 모니퇴르

동서고금 막론 권력자들 비판적 뉴스 경계당정, 1인미디어 '가짜뉴스 진원지'로 판단국가가 나서 손 보려한다면 부작용은 더 커표현의 자유등 민주주의 기본가치 훼손때문프랑스혁명 직후 분위기를 작가 앙드레 모루아는 '밀고가 시민의 의무였고, 단두대는 미덕의 제단이었다'며 한 줄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혁명은 많은 피를 불렀다.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 그 틈을 이용해 권력을 장악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그 지긋지긋한 피를 더 흘려서는 민심을 얻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언론이었다. 언론을 장악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언론과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쿠데타 직전에 73개였던 파리의 신문사가 1800년에는 13개만 남았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1805년 그는 비밀경찰 책임자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내 이익에 반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인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1811년 신문은 4개만 남았다. 모두 친나폴레옹계 신문이었다. 정부의 실정(失政)은 물론 국민의 피폐한 삶은 한 글자도 보도되지 않았다. '모니퇴르'도 그중 하나였다.모니퇴르는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시민들 편에 섰던 신문이다. 덕분에 혁명 후 프랑스 최고 언론의 위치에 섰다. 시민들은 모니퇴르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자 그의 편에 섰다. 나폴레옹이 권력을 잃고 엘바 섬으로 유배된 후에는 부르봉 왕조에 붙어 나폴레옹을 공격했다. 그러던 중 1815년 3월 1일.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했다.이 소식을 모니퇴르가 모를 리 없었다. 나폴레옹이 파리로 입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일. 그 기간 모니퇴르의 1면 헤드라인은 수없이 바뀌었다. '식인귀, 소굴에서 탈출 - 호랑이, 카르프에 나타나다-괴물, 그레노블에 야영-폭군, 벌써 리옹에 진입-찬탈자, 수도 100㎞에 출현-보나파르트, 북으로 진격 중 -나폴레옹, 내일 파리 도착 예정-나폴레옹 황제, 퐁텐블로 궁에 도착하시다-어제 황제 폐하께옵서 충성스런 신하들을 대동하시고 퇼드리 궁전에 납시었다.' 언론의 변절을 지적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은 비판적인 뉴스의 확대를 경계한다. 권력을 위태롭게 한다고 믿어서다. 나폴레옹은 언론과 전쟁을 치르면서 "적대적인 신문 4개가 총검 1천개보다 더 무섭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나폴레옹은 파리에 입성한 후 모니퇴르를 정부 기관지로 만들었다.후세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이 언론을 탄압하지 않았다면 프랑스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거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언론이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견제했다면 대륙 봉쇄령이나 스페인 전쟁, 러시아 침공은 수정됐을 것이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은 그의 권력은 더 오래갔을 거란 얘기다. 언론 탄압은 나폴레옹의 최대 실수였다. 나폴레옹도 파리의 신문들이 어용이란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그들의 기사를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정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외국에선 어떻게 평가되는지 궁금해 영국 신문들을 밀수해서 읽었다.당·정이 1인 미디어를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보고 규제하려는 모양이다. 지난 2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에 대해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사회의 공적으로, 사회 불신과 혼란을 야기하는 공동체 파괴범이며 민주주의 교란범"이라고 비판한 이후, 법무부와 민주당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법무부는 '가짜뉴스 엄정대처'라는 보도자료를 돌리고, 민주당 가짜뉴스대책특위도 전문가를 불러 토론회를 하는 등 가짜뉴스 근절에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그런데 걱정이다. 박정희 정권때부터 여러 번 독재 권력을 지켜본 입장에서 지금의 상황이 마치 과거로 회귀한 느낌이 들어서다. '유언비어'나 '괴담'이 아닌, 정말 가짜뉴스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 부작용은 분명 클 것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나서서 손을 보려 한다면 그 부작용은 더 크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민주주의 기본 가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1인 미디어를 규제함으로써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모니퇴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뇌 과학자 이반 로버트슨은 '승자의 뇌'에서 "진정한 승자는 자신의 자아가 늘 위험하고 사나운 개라는 사실을 알고, 권력이란 무거운 짐을 잘 사용하기 위해 그 개를 멀찍이 떼어놓는다"고 적었다. 지금 딱 어울리는 말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2 이영재

[이영재 칼럼]우리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

야구광이며 운동권 출신인 자영업자 A씨"AG로 프로야구 중단 팬들에 예의 아냐정부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대책' 어이없어최저임금 독약 국민들 알면서도 계속 마셔"자영업자 A씨는 요즘 즐겁고 행복한 일이 1도 없다고 한다. 야구광이며 대학 시절 운동권이기도 했던 A씨를 만나 왜 요즘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은지 들어봤다. A씨는 프로야구, 특히 SK 와이번즈의 열렬한 팬이다. 요즘 그를 힘들게 하는 건 '프로야구 일시 중단'이다. A씨는 말한다. "아시안게임 출전으로 프로야구를 통째로 중단하는 게 말이 되느냐. 프로 축구도 하지 않느냐. 지금이 '까라면 까는' 군사독재시대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봉 수십억 원을 받는 선수들이 아시안게임 출전 핑계로 거의 한 달을 통째로 노는 것은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A씨는 주장했다. 야구사랑이 넘치는 미국도 일본도 올림픽 때문에 프로리그를 중단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KBO는 달랐다. 8월 17일부터 9월 3일까지 일정을 중단했다. 그러자 '병역특혜논란'이 나왔다. A씨는 KBO와 구단이 몇몇 선수들의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 의기투합했다고 생각한다. 몇몇 선수는 상무와 경찰청 지원을 미루고 대표팀 자리를 노렸다고 확신하고 있다. 병역 미필자가 애초 7명이었는데 부상선수 교체를 핑계로 9명으로 늘어난 걸 보라는 것이다. A씨는 KBO와 구단이 모종의 야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A씨는 "내가 요즘 즐겁지 않은 건 자영업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씨는 편의점주다. A씨는 지난주 정부가 발표한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대책'을 어이없어했다. "정부가 정책실패 등 계속 헛발질을 해놓고 왜 국민 세금으로 우리를 지원하려고 하느냐. 우리가 거지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린 게 독약이었다. 그런데도 계속 독약을 마시고 있다. 문제는 독약인 줄 알면서도 계속 먹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말이 아팠다. "그 독약을 누가 마시냐. 결국 우리 국민들이 마시는 거다."A씨의 말은 점점 거칠어 졌다. A씨는 문재인 정부에 큰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놓는 정책마다 자영업자들을 힘들게 해 '지지철회'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요즘 A씨는 차라리 월급을 또박또박 받고 52시간 근무로 '저녁이 있는 삶'을 영위하던 직장에 좀 더 있을 걸 그랬다고 후회하고 있다. "정책입안자들이 편의점 체험 1주일만 하면 무엇인 문제인지 금세 알 수 있을 텐데" 라며 A씨는 혀를 끌끌 찼다. A씨는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대학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당시 젊은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A씨도 그 누구보다 민주화를 열망한 학생이었다. 도서관에 처박혀 영어단어나 외우는 그런 학생이 아니었다. 전두환 정권 말기 A씨는 아스팔트 위에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화염병도 제법 던졌다. 건대 사건 때에는 최후까지 남기도 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A씨는 그때, 자신이 '겁많은 데모꾼'이었다고 말했다. 운동권 주변을 맴돌았을 뿐, 그 중심으로 뛰어들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학내 데모의 단골 멤버였지만, 늘 두 번째 줄에 섰다"고 말했다. 야학은 했으나 위장 취업할 용기가 A씨에겐 없었다. "그때 학교(감옥)에 한번 갔다 왔으면 인생이 바뀌었을 텐데. 운명이었는지 이상하게 그런 상황은 나를 피해 갔다." A씨와 얘기하고 있을 때 TV에 운동권 출신 공직자가 나오자 그의 표정은 묘하게 변했고, 혼자 뭐라고 중얼거렸다. TV 소리 때문에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내가 장남만 아니었어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물론 저 소득계층도 더 어렵겠지만, 자영업자 소상공인은 요즘 정말 어렵다. 만일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제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뭘 제대로 하려는지 말하려다가 A씨는 입을 닫아 버렸다. 그때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A씨는 얼른 창밖으로 얼굴을 돌렸다. 나는 A씨에게 말했다. "지금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건 당신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PS: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A씨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우리 야구가 실업팀이 주축인 대만 야구에 졌는데도 기분 나쁘지 않은 경우는 내 평생 이번이 처음입니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7 이영재

[이영재 칼럼]먹방과 비만

보건복지부 '방송규제' 밀어붙이기식 잘못우선 '비만 심각성' 공지후 영향 미쳤는지최소한 통계 자료라도 냈다면 좋았을 것그후 방송사 자체적 제재했다면 더 효과적지난주 보건복지부가 '국가 비만 관리 종합 대책'을 내놓으며 '먹방' 가이드 라인 운운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시청자의 예상치 못한 격렬한 저항에 식겁한 보건복지부는 "진의는 그게 아니었다"며 얼른 발을 뺐다. 그럴 줄 알았다.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모르지만 지금 먹방 인기가 어느 정돈지도 모르는, 정말 세상 물정 캄캄한 공무원임이 분명하다. 며칠 전 종편 예능 프로를 보다 깜짝 놀랐다. '밴쯔'가 출연한 것이다. 밴쯔가 누군가. 인터넷 먹방의 지존. 먹방 콘텐츠만으로 구독자 250만 명을 돌파하고 연간 10억의 수입을 올린다는 슈퍼스타다. 밴쯔는 한 상 가득 쌓인 음식을 깔끔하게 먹어치우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짜장면 10그릇을 13분에 해치웠다. 그의 먹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대리만족하며 열광한다. 그가 마침내 인터넷 방송을 평정하고 종편 방송 고정출연자가 됐다. 우린 이제 곧 지상파에서도 음식을 먹어치우는 밴쯔를 보게 될 것이다. 시청률만 오른다면 무엇이든 하는 방송사들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방을 우려하는 시선도 없진 않다. 먹방에 채널권을 뺏겼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사실 먹방이 많긴 많다. 못 믿겠다면 직접 확인해 보면 안다. 지상파, 종편, 케이블 할 것 없이 예능 프로 중 50% 이상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먹는 것과 연결된다.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다루는 예능은 예외 없이 무언가를 열심히 해먹는다. 냉장고까지 통째로 들고 나와 요리 대결도 벌인다. 심지어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 가서 한 끼 얻어먹는 예능도 있다. 상황이 이러니 국민의 건강, 나아가 비만에 신경을 써야 하는 정부가 폭증하는 먹방에 우려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이 비만이고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천문학적이다. 그러나 먹방이 비만과 어느 정도 인과관계인지 밝혀진 것은 없다. 통계도 없다. 다만 추측만 가능하다. 방송에 맛집이라고 소개되면 도대체 그 많은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다음날부터 식당 앞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방송에서 탄수화물은 적게 먹고 버터와 육류 등 고지방 음식이 건강과 다이어트에 좋다고 소개되면 실제 마트에서 버터 품귀 현상이 일어난다. 2년 전 실제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심지어 삼겹살을 버터에 구워 먹는 삼겹살 버터구이까지 등장해 불티나게 팔렸다. 누군가 맛있게 먹으면 따라 먹게 되고, 좋다는 소문을 들으면 식당으로, 마트로 달려간다. 이게 먹방의 위력이다. 얼마 전 중학교 30명과 함께 '미래의 꿈'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요리사가 되겠다는 학생이 8명으로 단연 1위였다. 의사 변호사가 되겠다는 학생은 1명도 없었다. 이게 쿡방의 위력이다.2013년 4월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뉴욕의 공공장소에서 500㎖ 이상의 탄산음료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뉴욕 시민 3명 중 1명이 심각한 비만이라는 조사 결과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패소 후 블룸버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것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다. 우리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인 비만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자 인간의 수명을 늘리려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저소득층 비만을 매우 심각하게 봤다. 부자는 알아서 살을 뺀다는 것이다. 중독성이 강한 탄산음료에 세금을 높게 매긴다고 해서 이미 맛에 중독된 저소득층의 소비가 크게 줄지 않을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었다. 차라리 공공 장소에서 탄산 음료을 팔지 못하게 하는 게 효과가 있다고 본 것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논리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에 월스트리트 저널은 "대용량 탄산음료가 대중의 건강에 좋은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블룸버그 시장이 제대로 된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먹방 규제도 보건복지부 절차에 무리가 있었다.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우선 비만의 심각성을 공지하고, 먹방이 비만에 영향을 미치는지 최소한 통계 자료라도 제시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 후 정부의 인위적 규제가 아닌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규제하는 방법을 택했다면 훨씬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 '먹방'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국민들도 꽤 많기 때문이다. 모처럼 좋은 기회를 놓쳤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7-30 이영재

[이영재 칼럼]이산가족의 희망고문 또 시작됐다

2015년보다 더 적은 남북 각각 100명이라니여기저기 실망으로 체념 섞인 한숨소리만생사확인 등 北 거부하자 우리측 받아들여추첨 탈락자들 '언제될지 모르는' 비극 맞아이럴 줄 알았다. 그래도 '설마'했다. 이번만큼은 분위기가 달라서다. 문제가 있다면 애매모호한 문구로 가득했던 그 선언문이다. 4월 27일 판문점 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그 선언문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남과 북은 민족 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남북 적십자회담을 개최하여 이산가족·친척상봉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 정도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 다음에 덧붙여진 '오는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였다'가 문제였다. 이게 이산가족 가슴에 뜨거운 '희망'의 불을 지폈다.특히 그날 만찬장에서 남북 정상이 술까지 곁들였다는 보도는 '정말 이번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더구나 그로부터 꼭 한 달 뒤, 젊은이들이 '번개'하듯 남북 정상이 다시 판문점에서 만났을 땐 '모든 이산가족이 상봉할것'이란 생각에 가슴까지 뭉클했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은 실향민 2세대고 이산가족 상봉 경험도 갖고 있지않은가. 누구보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이산가족이면 누구나 1세대인 부모님을 모시고 평양이든 영변이든 함흥이든 마음껏 다녀올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번 역시 일회성 보여주기 행사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지금 이산가족들을 엄습하고 있다. 우선 지난 22일 남북관계자들이 금강산 호텔에서 만나 오는 8월 20~26일 남북 각 100명씩의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행사를 금강산에서 열기로 합의했다는 보도는 귀를 의심케 했다. 처음엔 '1000명'에서 '0'이 하나 빠진 줄 알았다. 5만7천여명의 이산가족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15년 10월 20일 20차 이산가족 상봉 때보다 가족 수가 더 줄었다. 남북 각각 100명이라니. 여기저기서 실망으로 가득 찬 이산가족의 체념 섞인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난 20차 행사의 상봉 확률은 662대 1 이었다. 추첨장에는 머리가 하얗고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추첨 과정을 지켜보다 최종 탈락한 고령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쓸쓸히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컴퓨터를 이용해 500명의 1차 후보자가 선정됐다. 여기서 다시 400명을 탈락시킨다. 최종 경쟁률은 569대 1 이었다. 애초에 탈락한 이산가족도 그렇지만 100명에 들지 못하고 다시 탈락한 실향민에겐 이 과정은 너무도 가혹하다. 그런데 박경서 한적 회장은 어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선정되신 분들은 축하를 드리고, 선정되지 못하신 분들은 다음 기회에 꼭 한을 풀어드리겠다". 이 말은 "이번에 당첨된 분들은 축하한다. 떨어진 분들은 다음 기회에"로 들렸다. 이번 상봉과 관련해 대한적십자사의 변명은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측이 상봉 규모를 남북 각각 200명으로 확대하고 전면적인 이산가족 생사 확인, 이산가족 고향 방문, 상봉 행사 정례화 등을 요구했는데 북한이 거부했다고 한다. 그걸로 끝이다. 그랬으면 우리도 협상을 거부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무엇이 두려웠던지 대한적십자사는 북한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일회성 정치 이벤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한번에 100명씩 1년에 네 번의 상봉이 이뤄질 경우, 생존하는 3만5천960명의 고령이산자의 상봉이 성사되려면 99년이 걸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산가족 고령자가 한 명 두 명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런데도 다음 상봉은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이산가족이 원하는 건 오직 한가지다. 만나게 해 줄 능력이 안되면 생사 확인만이라도 해 달라는 것이다. 북측 가족이 사망했으면 이제 모든 '희망'을 접을 것이고, 다행히 살아 있다면 서신 교환으로 안부만 묻겠다는 것이다. 이게 그렇게도 어려운 부탁인가. 분단의 최대 희생자인 이산가족들의 이 정도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다면 그가 누가 됐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논할 자격이 없다. 상봉 재개로 이산가족의 끔찍한 희망고문도 다시 시작됐다. 이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6-25 이영재

[이영재 칼럼]6·13선거는 끝났다?

여전히 흔들림없는 문대통령·민주당 지지율홍대표의 거친 입·결집력 부재인 한국당'르네상스'라는 큰 대문 연 '메디치'가문처럼내 지역 이끌 인재 발굴하는데 고민해야솔직히 놀랐다. 아무리 여당의 압승이 예상된다 해도 분위기가 이 정도인 줄 몰랐다. 운동장이 기울어져도 한참 기울어졌다. 평창 올림픽부터 판문점 정상 회담 등 남북관계 해빙이 결정적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말고 야당이 일방적으로 당해야 할 만한 딱히 큰 잘못도 없었다. 오히려 야당 측에 유리한 호재도 잇달아 터졌다. 차기 여권의 대권후보 1순위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미투. 김기식 전 금감원장 사태도 현 정권에겐 매우 아팠다. 그리고 드루킹 . 어디 이 뿐인가. 실업률 급증, 재활용 쓰레기 파동, 입시정책 혼란 등 잇따른 정부의 정책 실패는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것들이었다.특히 드루 킹 사건은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제 발등 찍는 걸 모르고 네이버 댓글 수사를 요청하면서 불거진 것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댓글을 단 사람이 민주당원이었고, 그 주모자 입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경수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옛날 같으면 선거의 결과를 뒤집을 만큼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의외로 조용하다. 오히려 특검을 주장한 한국당이 추경예산 통과에 딴죽을 건다며 역풍을 맞는 형국이다. 여전한 문재인 대통령의 70%대 지지율과 흔들림이 없는 50%의 민주당 지지율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요즘 신문사 밥 먹고 있다고 하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질문이 거의 똑같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거 보면 6·13선거에 그렇게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처음 질문을 받았을 때 정말 놀랐다. " 그래도 한국당이 경기도내 기초단체장 한 석은 차지하겠죠?"라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한두 번 받은 게 아니다. 그가 민주당 지지자라면 조롱이고, 한국당 지지자라면 체념의 표현일 것이다. 그래도 질문이 너무 고약하지 않은가. 경기도 31개 시 군중 현재 한국당 소속 지자체장은 15명이다. 반타작만 해도 7석이다. 그런데 5석도 아니고, 달랑 1석? 김무성 전 대표가 친박계 공천에 반발, 공천장 직인을 찍어주지 않고 부산으로 도피했던 이른바 '옥쇄파동'이 일어난 건 2016년 4·13 총선 전이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역사에 기록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두 명의 대통령이 구속됐다. 그날부터 시작된 보수의 균열은 그때보다 오히려 더 악화 된 느낌이다. 단 한 골도 못 넣고 31대0 패배를 걱정할 만큼 사실상 붕괴 수준이다. 6·13선거는 한국당을 심판 하는 선거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됐을 것이다.지금 우파 보수층은 결집이 불가한 모래알 같다. 이 지경이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는 보수야당, 특히 한국당 탓이 크다. 특히 홍준표 대표의 거친 입을 향한 장년층 보수 우파의 원성은 하늘을 찌른다. 아무리 남북 회담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다고 해도, 한때 정권을 잡았던 당이다. 그리고 지금은 제 1 야당이다. 그런데도 70년간 구축된 '냉전의 지축'이 붕괴의 파열음을 내고 있는 중대한 시점에서 '빨갱이론'같은 판에 박힌 비판으로 일관한다면 이를 지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설사 북한과 관련된 홍 대표의 말이 맞다손 쳐도 그의 거친 입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러니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의도적으로 홍 대표와 거리를 두려는 것이다. 이제 홍 대표부터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보수층이 움직인다.중세(中世) 1000년의 종지부를 찍은 건 권력도 종교도 아니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었다. 상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메디치 가문은 주변의 인재를 끌어모아 아낌없는 후원으로 '르네상스'라는 큰 대문을 열어젖혔다. 메디치 가문은 화려한 스펙을 갖춘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재능을 채 드러내지 못한 인재에게 어떻게 영감을 불어 넣어줄 것인가를 늘 고민했다. 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가 아닌, 나와 가족의 삶과 직결된 내 지역을 이끌 단체장을 뽑는 선거다. '선거는 끝났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지금도 늦지 않다. 사심없이 일할 내 지역 인재를 발굴하는, 지금 우리는 메디치 가문처럼, 처절하게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5-21 이영재

[이영재 칼럼]남북정상회담에 부쳐

北 선언, 핵 실험 중지일뿐 포기는 아냐완성된 핵무기 쥐고 테이블에 앉을 수도전세계 생중계 '김정은 쇼 타임' 될까 걱정文대통령 '완전 폐기' 당당하게 주장해야평창 올림픽이 끝난 지 석달도 지나지 않았다. 그 기간 남북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이 일어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실험과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를 거듭한 끝에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 단추가 내 손 안에 있다"며 미국을 협박한 게 지난 연말이다. 주기적으로 터지는 '○월 위기설'로 B-1 등 미국의 전략 자산이 전개돼 한반도의 긴장이 극에 달했던 것도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올림픽 개막식에 김여정이 전격 방문한 후 상황이 급변했다. 우리 특사단이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하고 돌아왔다. 여기에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내정자가 북한을 극비리에 방문해 김정은을 만나기도 했다.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속도가 너무 빨라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이런 속도로 달려가도 되는지, 그러다 갑작스러운 돌발 사태로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이 될지 걱정이 앞선다.그러던 중 지난 토요일 북한이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기습적으로 선언하고 나왔다. 2013년 3월 제시했던 경제·핵 병진 노선을 공식 폐기하는 대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새로운 전략 노선을 내놓은 것이다. 그동안 우리와 미국이 요구한 것은 핵무기를 포함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였다. 하지만 이날 선언으로 시야가 밝아진 게 아니라 오히려 안갯속으로 더 깊이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번 선언은 핵과 ICBM 실험만 중지키로 했을 뿐, 완전한 핵 포기를 언급한 것은 아니다. "핵무기가 완성됐으니 그동안 실험장비들은 이제 모두 폐기한다"로 들릴 뿐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의 지적이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그는 "이번 발표는 핵 실험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지 핵 선제 사용이나 핵기술 이전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아니며, 핵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실험의 중지'일 뿐 '생산의 중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27일 남북 정상 회담에서는 종전 선언으로 평화체제 방안을 논의한다고 한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1991년 제5차 남북 고위급회담 기본합의서에는 '정전 상태의 평화 상태로의 전환'을 명시한 바 있다. 2007년 노무현 김정일의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한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합의는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이 뿐인가. 김정은 체제인 2012년 2·29 합의에서도 핵실험 중단과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에 동의해 놓고 두달도 지나지 않은 4월13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제 북한은 이미 완성했을지도 모를 핵무기를 쥐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과연 우리는 여기에 대적할 협상 카드를 쥐고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모든 것을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해야 한다. 판문점이라는 분단의 현장에서 만난다는 역사적 의미에 너무 함몰돼서도 안된다. 이번 회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고 한다. 자칫 '김정은 쇼 타임'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북한은 2008년 6월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을 전 세계로 송출하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다. 결과는 참담했다. 이번 회담에 온 국민이 기대에 부풀어 있다. 언론도 장밋빛 전망이다. 불안한 정전 체제를 청산하고 남북이 평화롭게 살자는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많은 국민들이 겉과 속이 다른 북한의 전략에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들을 안심시킬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동안 있었던 두 번의 정상회담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문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를 거울삼아 세 번째 정상회담에 임해 주길 바란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4-23 이영재

[이영재 칼럼]대통령 사주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라면아무리 좋은 사주라고 한들비극적으로 될 수 밖에 없어반복되는 역대 대통령 불행처럼나쁜 사주 만들지 않으려면권한 줄이는 헌법개정안 필요등에 업힌 아기를 본 노인이 "아이구, 그 녀석 대통령감일세"라고 하면 옛날 엄마들은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대통령이 된다는 데 싫어할 엄마는 없을 것이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유모차에 애를 태우고 가는데 누군가 "대통령감"이라고 하면 요즘 젊은 엄마들은 눈을 흘기며, 화부터 낸다고 한다. 물론 웃자고 하는 얘기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을 떠올리면 웃음은커녕 우울하다 못해 슬퍼지려고 한다.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이국만리 머나먼 하와이에서 숨을 거뒀다. 지금은 그 누구도 초대 대통령의 유해를 이 땅에 모셔오자는 사람이 없다.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잊힌 인물이 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장 믿었던 부하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과 그의 친구 노태우 대통령은 내란 음모죄를 비롯해 여러 가지 죄목으로 옥고를 치렀을뿐더러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박탈당했다. 그래서 어느 방송에선 그냥 '전두환씨 노태우씨'라고 불리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감옥에 가지는 않았지만 "대통령 시절 정말 행복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감옥에 간 자식 때문에 편하게 눈을 붙이지 못하고 긴 밤을 뒤척여야 했다. 민주화 동지였지만 생전에 둘은 갈등하면서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허공에 육신을 던짐으로써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지금 그들은 모두 감옥에 있다. 그런데 금쪽같은 내 아이가 대통령이 될 상이나 사주를 갖고 있다면 좋아할 부모는 없다. 생각만 해도 끔찍할 지경이다.대한민국 거의 모든 신문이 '오늘의 운세'를 싣는다. 우리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독자 중 기독교 신자도 많을텐데 그런 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날 신문 기사중 '오늘의 운세' 인기는 꽤 높은 편이다. 공표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많이 읽힌다. 맞으면 좋고 틀려도 그만인 심심풀이를 독자들이 정치 사회면 톱기사 보다 더 열심히 찾아 읽는 이유를 단지 '로또'를 사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국민이 원래 그런데 관심이 많다. 신년호 특집이나 큰 선거를 앞두고 출마자 관상과 사주를 경쟁하듯 싣는 것도 이런 '오늘의 운세'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만큼 많이 읽히기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된 후보들의 사주는 여기저기 살이 더 붙어서 '카더라 통신'이라는 바람을 타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흘러다닌다. "OOO 역술인이 그러는데 이번 대통령은 OOO가 된다더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사주뿐인가. 대한민국을 떡 주무르듯이 하는 유력 정치인들이 좋은 집터를 찾아서 집을 옮긴 것이 공공연하게 기사화되기도 한다. 옛날 자료를 찾아서 일일이 대통령의 사주를 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후 모두 용비어천가급 찬사를 남발했지, "나쁜 사주"라고 말한 역술인은 단 한 명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선자들에게 "하늘이 내려준 사주를 타고 났다"고 한 것은 그냥 의례적인 공치사였다는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사주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나쁜 사주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역술인들을 만나 얘길 들어 보면 대통령이 되려면 반드시 좋은 사주를 타고 나야 된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대통령 앞에 늘 붙어다닌 '제왕적'이라는 그것이 대통령의 사주를 꼬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현행 무소불위 제왕적 대통령제라면 아무리 좋은 사주를 받고 태어나 대통령이 된다 한들, 비극적인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현 대통령제의 불합리한 시스템이 비극적 대통령을 만드는 주범이다. 반복되는 전직 대통령의 비극을 더 이상 사주 탓이라 할 수 없다. '대통령 사주'를 나쁜 사주로 만들지 않으려면 대통령 권한을 현실적으로 줄이는 헌법개정안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도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 한 명쯤은 가져도 될 때가 됐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3-27 이영재

[이영재 칼럼]대통령의 유머

국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모든 것 솔선수범한 오바마처럼우리도 누가 대통령이 되든불안하기만 한 국민마음 녹여주고어루만져 줄 지도자 보고 싶은 것이제는 국민들도 웃고 싶으니까최근 감동의 고별사로 우리를 부럽게 했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영화광(狂)이면서 TV 드라마도 무척 좋아한다. 그가 재밌다고 추천한 드라마는 '오바마 드라마'로 묶여 방송사 홍보에도 쓰이고, 실제 큰 인기를 끌었다. '웨스트 윙'이나 '하우스 오브 카드' '뉴스 룸' '홈 랜드' '와이어'는 그가 끔찍이 좋아했던 드라마였다. 영화 스타워즈 광팬이라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지난해 백악관에서의 마지막 송년 기자회견. 마지막이라 그런지 기자들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그러자 오바마는 "전 이만 스타워즈를 보러 가야 합니다"는 말로 기자회견을 끝맺었다. 그가 스타워즈 팬인 것을 알고 있던 기자들은 아무말 못하고 그를 보내 주었다. 나중에 스타워즈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 알려지긴 했지만,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하는 기자도, 국민도 없었다. 유머였으니까.문화탓이기도 하겠지만 미국인들은 유머 감각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보고 있다. 지난 미 대선을 앞두고 미국 abc뉴스와 여론조사업체 SSRS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의 자질로 유머감각이 중요하다는 응답자는 74%에 달했다. 유머감각이 중요하지 않다는 응답자는 고작 7% 뿐이었다. 대통령의 유머를 얘기 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사례가 배우 출신 도널드 레이건이다. 레이건이 1981년 존 헝클리에게 총을 맞았을 때다. 레이건은 걱정하는 아내 낸시에게 이런 유머를 날렸다. "여보! (배우처럼) 총알 피하는 것을 깜빡했어". 병원에 가서는 수술 의사들에게 "여러분이 공화당 지지자였으면 좋겠는데…"라고 조크를 던졌다. 이를 들은 의사는 "지금만은 모두가 공화당원입니다"라고 답했다. 당시에 우리가 받아 주지 못해서 그렇지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의도적이지 않은 말실수로 웃겼다. "공정한 인사를 해서 부패 인사를 척결하겠습니다"를 "공정한 인사를 척결하겠습니다"라고 말하거나 루마니아 독재자의 이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를 잊어버려 회의석상에서 그냥 '차씨'라고 불렀던 김 전 대통령은 그럼에도, 자신의 말실수를 미안해 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재치있게 자신의 실수를 유머로 승화시켰다. 그는 "이래야 분위기가 덜 딱딱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어느 지방선거때였는데 정치적 라이벌 DJ가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자 승부욕이 강했던 그는 다음날 무작정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막상 할 말이 없던 그는 기자들에게 "여러분 그거 아세요? DJ는 나한테 늘 담배를 얻어 피우던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대통령의 일화를 묶은 'YS는 못말려'는 출간 한달만에 무려 35만부가 팔렸다. 반기문 전 유엔총장의 합류로 돌이킬수 없는 대선정국에 들어섰다. 그런데 대권 잠룡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같이 차갑고 무섭다. 전쟁터에 나선 장수들 같다.출사표 곳곳에는 '패배는 곧 죽음'처럼 사생결단을 예고하는 문구들로 가득찼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목숨을 걸고 정권을 바꾸겠다"고 선언했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조국을 위해 몸을 불사를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다크호스 이재명 성남시장은 "반기문 대선 출마? 친일독재부패세력의 꼭두각시, 국민심판 받을 것"이라고 험한 말을 쏟아냈다. 당찬 결기를 보이는 것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거친 말이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크게 마음 상한 국민들에게 순간적으로 기분을 전환시켜줄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정 국민이 원하는 것은 그런게 아니다.웃기기만 잘한다고 훌륭한 대통령이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국민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모든 것을 솔선수범하는 지도자. 오바마는 그런 대통령이었고, 8년동안 천편일률적으로 변하지 않는 오바마에 깊은 신뢰를 보냈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그저 불안하기만 한 국민의 마음을 녹여주고, 다독거리며 어루만져 줄수 있는 그런 대통령의 모습을 우리는 보고싶은 것이다. 그 무기가 '유머'일수도 있고 '정책'일수 있고 '인간성'일수 도 있다. '8년 동안 승진을 못해 섭섭했다'는 오바마의 유머와 그 유머를 지독히 사랑했던 미국인들이 고별연설을 들으면서 '4년 더!' '4년 더!' 외쳤던 의미를 우리 대선 후보들이 진정으로 배웠으면 한다. 이제 우리도 웃고 싶으니까./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7-01-16 이영재

[이영재 칼럼]우리 사회를 떠도는 정경유착이라는 亡靈

정치인들 창피한 손 내밀지 말고기업인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나라 망치는 '망령' 퇴치 못하면국민들 또 촛불들고 광장 나설것재벌총수들 이번 청문회 계기로존경받는 기업문화 만들어 가야강철왕 앤드루 카네기가 일선에서 물러난 건 기업가로 절정기를 맞았던 1901년 , 그의 나이 66세때였다.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감히 2선 퇴진을 요구하는 이도 없었다. 그런데 '퇴진'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젊었을땐 부(富)를 축적하고, 늙어선 그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자신과의 약속때문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재산'과 '체력'과 '시간'을 자선사업에 모두 소진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것이다. 그는 재산을 늘리는 과정에서, 그리고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후에도 '부'라는 것은 개인의 소유는 물론, 가족에게 나눠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카네기는 '부는 신이 자신에게 잠시 맡겨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떠한 역경에 처해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 성격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부에 대한 확고한 철학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절대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 문어발식 경영이란 있을 수 없었다. 오직 철강산업에만 매진했고 그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그런 그를 미국인들은 존경했고 사랑했다.1988년 12월 14일 5공 청문회에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 회장이 출두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일해재단 자금을 전경련이 주도적으로 나서 모금한 사실과 관련해 "정부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하고 모든 것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시류에 따라 돈을 냈다. 1차는 날아갈듯 내고 2차는 이치에 맞아서, 3차는 편하게 살려고 냈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그리고 5년 후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였던 정 회장은 대선에 출마했다. 재계 총수의 역할에만 머무르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재력을 바탕으로 '대권도전'이라는 '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고 패자는 끝없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한국 정치판의 천박한 속성을 너무도 잘알고 있던 그 였지만, 어찌됐건 그의 도전은 결국 실패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국민이 실패한 것이고, 국민의 선택을 받은 YS가 실패한 것이라고 믿었다. 28년이 지난 2016년 12월6일, 5공 청문회에 섰던 삼성, 현대차, SK, LG, 한진, 롯데 총수의 2,3세 경영인 6명이 또다시 '정경유착'을 질타하는 청문회에 섰다. 국민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8년전으로 돌아간 착각에 빠졌다. 모든게 다 변했지만, 고질적인 정경유착은 마치 악마의 주문에 걸린 듯,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정말 비극적인 날이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 후진 국가에서 일어나는 고질적인 정경유착이라는 망령이 여전히 우리사회에 떠돌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슬픔이다. 공분과 의혹을 불러 일으킨 최순실의 국정농단, 이로인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의 원인은 따지고 보면 정경유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28년전 청문회 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었다면 대통령 탄핵이라는 치욕을 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재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위험수위까지 다다른 느낌이다. 이번 촛불시위에서 '재벌 해체' '재벌 총수 구속'이라는 피켓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돈만 된다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마구 먹어대는 재벌들의 '식성'에 대한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또 부의 사회 환원보다, 정치 권력과 손 잡고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나아가 대물림하려는 재벌의 행태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정경유착 망령'이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다. 정경유착의 폐해는 제왕적 대통령제보다 더 심각하다. 정경유착 고리를 끊지 못하면 미래는 여전히 우울할 것이다. 그러니 정치인이 나서라. 은밀하게 또는 당당하게 구걸하듯 손을 벌렸던 정치인들은 그 부끄러운 손을 다시는 내밀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준다고 유혹해도 넘어가선 안된다. 나라를 망치는 그 '망령'을 이번에 추방시키지 못한다면,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서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재벌 총수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국민에게 존경받는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를 좌우명으로 삼았던 카네기의 기업정신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6-12-12 이영재

[이영재 칼럼]그래도 내일의 태양은 떠 오른다

매일 터지는 의혹 국민들 허탈대권 잠룡들 혼란 정국 수습보다부산하게 주판알 튕기는 소리만거리에 나선 민심 등에 업고권력 잡으려는 정치인 주변 가득국민들 지혜롭지만 냉철하기도세살짜리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내일이 언제야?" 엄마가 말했다. "하룻밤만 자고 나면 내일 이란다"다음날,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엄마에게 달려갔다."엄마, 오늘이 내일이야?" 엄마는 "아니 얘가 요즘 왜 이러지?"라며 약간 귀찮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오늘 밤이 지나야 하는 거야. 그리고 그 다음날은 모레, 그 다음날은 글피…." 다음날 아침, 아이는 또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엄마! 오늘이 진짜 내일이지?" 엄마는 이제 더 참을 수 없다는듯이 "아니, 없어! 내일은 없어, 없다구!"라고 소리쳤다.이 말을 들은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중얼거렸다. "아! 내일은 없는거로구나. 우리에게 내일은 없었어." 그러면서 밖으로 뛰어나간 아이는 놀이터에서 모여 놀고 있는 친구들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엄마가 그러는데 우리에겐 내일은 없대. 그러니 오늘 실컷 놀자!"웃자고 한 얘기다. 너무 답답해서 말이다. 토요일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을 보고 있노라니 한숨만 나온다. 그곳에 있던 시위대의 함성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없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말이 섞여 들리는 것 같았다. 이런 분위기라면 정말 내일은 없을 것 같다. 한국사에 제법 굵직한 사건을 모두 겪었던, 50·60대들에게도 이번 사태가 큰 충격이었는데 '헬조선'이 몸에 밴 청춘들의 충격은 더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 국민들은 이를 잘 수습하곤 했다. 10·26도 그렇고 5·18도, 6·10도 그리고 IMF가 터졌던 그날도, 마치 그때 세상이 모두 끝나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잘난 정치인들 때문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이 현명해서다. 무너질 것 같으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그 '유연함' 그게 우리 국민의 저력이다. 위기 때마다 우리 국민은 늘 그랬다.1979년 10월27일 아침. 날씨가 제법 쌀쌀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거리에는 온통 신문지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有故'라는 제목의 호외였다. '유고'라는 생판 처음 본 단어. 사전적 의미는 '특별한 사정이나 사고가 있음'이지만 이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지나가는 어른이 얘기해 줘서 알게 됐다. 장기집권하던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생겼으며, 호외까지 발행했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 박 대통령의 죽음은 충격이었지만 우리는 잘 극복했다.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건, 그렇지 않건 매일 터져 나오는 의혹 때문에 국민들은 배신감과 허탈감, 무력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5%라는 지지율은 여론 조사기법의 신뢰성을 차치하고라도, 이는 박 대통령에게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면 정치권의 목소리가 늘 커지는 법이다. 그래서 정치권이 요동을 친다.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기 보다, '대권'을 잡기 위해 잠룡들이 부산하게 주판알을 튕기는 소리로 요란하다.세상사 별일 다 겪은 50·60대는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을 그리 크게 믿지 않는 편이다. 어렵게 얻어냈던 '80년의 봄'을 정권욕에 불타는 3金 때문에 군인들에게 그냥 내준 꼴이 됐다. 6·29는 정치인이 얻어 낸 성취물이 아니라 국민의 손으로 쟁취한 민주화였다. 그럼에도 전두환의 연장선에 있던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건, 또다시 두 명의 金씨가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IMF때도 고사리 같은 국민의 손가락에서 빼낸 금반지가 나라를 구했지, 그때 정치인들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정국 안정 보다 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더 끌고 가고 싶을 것이다. 벌써 그런 전조(前兆)가 보인다. 거리에 나선 민심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인만 주변에 가득하다. 민심은 내 편이며 차기 정권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국민은 냉철하다. 여권의 지지율이 폭락해도 야권의 지지율이 정체를 보이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정치인이 아니어도 내일의 태양은 또 떠오른다. 세 살짜리 꼬마가 내일이 없다고 소리쳐도, 내일은 소리 없이 왔으니까. 어수선한 난국을 스스로 헤치고 극복해 나가는 우리 국민의 지혜를, 나는 믿는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6-11-07 이영재

[이영재 칼럼] 韓國, 외로운 나라

정치권·국민 여러 갈래 갈라져사람들은 '구한말' 같다고 한다답 찾지 못하면 민족 결말 뻔해냉혹한 국제정세 살아남으려면갈등과 분열 있어선 절대 안돼'별일 있겠어?' 허송세월 하다간…오스트리아 출신 여행가 '에른스트 폰 헤세 바르텍'이 남 북 아메리카 두루 돌아보고 일본을 거쳐 조선 땅을 밟은 것은 1894년 여름이었다. 그는 이미 메이지 유신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 들여 서구화된 일본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상태였다. 그러면서 조선으로 가는 증기선 켄카이마루 선상에서 곧 마주할 '조선'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큰 기대를 걸었던것 같다. 하지만 부산, 제물포를 거쳐 도착한 그는 500년 왕조의 수도라고 하기엔 너무도 초라한 한성의 모습을 목도한다. '집들은 단순하고 황량한 황무지나 다름없다. 땅바닥과 거의 구분이 안되는 납작한 잿빛 오두막의 초가지붕 1만여개가 마치 공동묘지의 회색 봉분처럼 다닥다닥 늘어서 있다. 도로도 없고, 눈에 띄는 건물이나 사원 또는 궁전도 없고,나무와 정원도 없다. 형언할 수 없이 슬프면서도 기묘한 이 광경은 넓게 펼쳐진 도시와 야성적으로 솟아 있는 주변 산들로 인해 조금은 숭고한 인상을 준다.'1894년, 조선은 암울하고 통탄스런 역사적 사건들이 발생한 한 해였다. 2월 일어난 동학 혁명은 진행 중에 있었고 6월 갑오 개혁, 7월 청일 전쟁 그리고 마침내 12월 농민군 지도부 분열로 전봉준의 혁명은 실패했다. 이런 1894년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이 훗날 나라를 빼앗기는 빌미가 되고, 우리의 역사가 '통한과 비극의 역사'로 끊임없이 점철 한다는 것을 그 역시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894년 여름 조선땅을 밟았던 이 파란 눈의 이방인에게도 당시 조선은 촛불앞에 놓인 '불안한 나라', 호시탐탐 노리는 주변국가에 갇혀 있으면서도, 정쟁과 부패에 빠져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한심하지만, 어찌보면 '외로운 나라'로 비쳐졌다. 그래도 그는 모든 낭만적인 여행가들이 그렇듯 열강속에 갇혀 숨도 못쉬는 조선에 대해 나름대로 애틋한 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최악의 야만국가라는 평판을 받고 있는 이 반도국'에 탐관오리들의 학정에 저항해 농민의 난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비겁한 조정은 청나라 군대 파견을 요청하고, 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군대가 들어와 남의 땅에서 전쟁을 치르는 꼴이 그에겐 불쌍하고 측은하게 보였을 것이다. '일본인과 중국인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백성의 반란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넓은 지구상에서 조선만큼 백성이 가난하고 불행한 반면, 지배층은 거짓되고 범죄적인 곳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기행문 '조선 1894년 여름'을 읽으면서 시종 가슴이 먹먹했던 것은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어줍잖은 외교전을 벌이다 나라를 빼앗긴 당시 무능했던 조정과, 사드 배치를 두고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의 처지가 묘하게 겹쳐서다. 더욱이 지금 우리는 두나라 외에도 러시아, 일본, 그리고 북한에 포위되어 있다. 사면초가다. 그러면서도 어쩌지도 못하는 '외로운 나라', 딱 그꼴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더 답답한 것은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여러 갈래로 갈라져 서로가 서로에게 조롱과 야유만 남발하는 '분열'을 보노라면 한숨만 나온다. 1894년 조선은 주인이 없는 나라였다. 먼저 먹는게 임자였다. 있으나 마나 한 무능한 왕은 백성이야 어찌됐건 청나라나 일본 눈치를 보며 의미없는 권력을 유지하는데 급급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을 필두로 맺어진 수많은 조약들은 우리 땅을 먹기 위한 열강들의 야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그들 조약에는 늘 '불평등'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 '불평등 조약'으로 인해 결국 우리는 나라를 빼앗겼다. 그 누구도 우리 편이 돼주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누가 우리 편인가.사람들은 지금 우리의 처지를 이구동성으로 구한말(舊韓末)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그런 말만 하지 말고 우리가 어떻게해야 할지 답을 찾아야 한다. 역사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답습하는 민족의 결말은 뻔하다. 냉혹하기 이를데 없는 국제정치, 그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갈등과 분열이 있어서는 안된다. '별일 있겠어?'라고 허송세월하다간 1894년 조선의 여름이 그랬듯, '외로운 나라'로 살다가 결국 망국(亡國)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6-10-03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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