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칼럼

 

[이영재 칼럼]백종원이 어때서

거대與 야당몫 법사위 꿰차며 협치 와르르원구성 난항 국회 공전 이유는 윤석열 제거와중에 김종인 '대선후보 백종원' 발언 시끌경제 알고 유머까지 겸비… 안될 이유가 ?거대여당 민주당이 원 구성을 끝내면 당론 1호 법안으로 '일하는 국회법'을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 웃음이 나왔다. 법안이야 뚝딱 통과시키겠지만, 이를 지키기가 쉽지 않아 보여서다. 176명이라는 거대여당, 여기에 친여 성향 의석수까지 포함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굳이 법안까지 만들며 요란을 떨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주당은 유례없이 단독개원을 한 후, 야당 몫이던 국회 법사위원장 자리를 빼앗으며 스스로 '협치'를 무너뜨렸다. 그로 인해 원 구성은 난항을 겪고, 국회는 개점 휴업상태가 됐다.민주당이 체면도 내팽개친 채 법사위원장을 가져간 이유도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거기엔 윤석열 검찰 총장과 공수처가 있었다. 윤 총장 쳐내려는 민주당의 집착은 의원들의 언행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5선 의원인 당 최고위원부터 초선의원까지 합창하듯 윤 총장에게 조롱과 비난을 쏟아부었다. 그럴수록 '윤석열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는 걸 뒤늦게 깨달은 이해찬 당 대표의 만류가 있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눈치 빠른 국민들이 이를 알아차렸고, 여기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 총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나서면서 '윤석열 제거작전'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그런데, 윤 총장이 집중포화를 받던 지난주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느닷없이 "(대선후보로) 백종원 씨 같은 분은 어때요?"라고 말을 꺼내 정치판을 뒤집어 놓았다. 통합당 초선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차기 대선을 논하며 백종원의 이름이 거론된 것이다. 김 위원장이 백종원을 꼭 짚어 대통령 후보라고 한 발언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너무나 커서 일반인이거나 또는 백종원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가진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될 수도 있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언론은 백종원으로 낙점된 양, 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언론은 '유명인으로 대선을 치르겠다는 발상'이라며 대체로 비판 일색이었다. 통합당의 한 중진 의원은 "김 위원장이 정치를 희화화한다"며 뜬금없이 비판하고 나서기도 했다.하지만 흥미로운 건 백종원과 관련된 기사보다 거기에 달린 댓글이었다. 비판적인 댓글도 있었지만, 우호적인 댓글도 만만치 않았다. 비록 '골목식당'이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장사가 안되는 집에 찾아가 레시피부터 경영 기법까지 일일이 알려주고, 제대로 장사를 하는지 꼼꼼하게 사후관리 해주는 백종원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에게 대통령의 자질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헌신적이고 진실하게 소통하는 마인드로 나라를 이끈다면 국민 고생은 시키지 않을 것이란 댓글도 눈에 띄었다. 이 문제로 정치판이 시끄러워지자 김 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선)주자가 되려면 자기 비전을 제시하고 뛰어 나와야 한다. 프랑스의 마크롱처럼. 그런데 아직 그런 게 잘 안 보인다. 백종원을 얘기한 것은 그런 유형의 대선 후보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의 시선을 자기 몸에 받을 수 있도록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한발 뒤로 뺐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해명에도 백종원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모이면 백종원 얘기였다.이를 보면서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이 떠올랐다. 정치에 꿈이 있던 레이건은 무명의 단역 배우에 불과했다. 미남도, 특출나게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할리우드에는 레이건보다 잘난 배우가 쌔고 쌨다. 굳이 내세운다면 뛰어난 유머감각 정도였다. 그가 정계에 뛰어들었을 때, 많은 이들이 비웃거나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그러나 그는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됐고, 두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로 인해 '보수의 가치'가 화려하게 꽃을 피웠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레이거노믹스'는 무너진 미국 경제를 살려냈다. 소련과의 군비경쟁에서 승리하면서 냉전 시대를 종식한 것도 레이건이었다.인기로 따진다면 레이건은 지금의 백종원과는 비교도 안 된다. 그런데 왜 백종원은 대통령 후보가 되면 안 되는 걸까. 경제를 알고, 유머도 있고, 인상도 후덕하고, 고향도 충청도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국민에게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남발하고,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닳고 닳은 정치인은 대통령 후보가 되고, 백종원이 안되는 이유는 뭔가. 백종원이 어때서. 백종원은 절대 될 수 없다고 하는 이들에게 꼭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러면 "윤석열 씨 같은 분 어떠세요?"/이영재 주필이영재 주필

2020-06-29 이영재

[이영재 칼럼]'공정' '정의' '통합' '화해'라는 단어들

文 대통령 취임사 역대 최고라고 생각한다문장마다 감동 '특권·반칙없는…'에선 열광취임 3주년… 총선 압승·60% 지지율 불구과거와 다른 연설·상황… 약속은 지켜지길역대 대통령 취임사 중 최고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꼽는다. 문장 하나하나가 살아 숨을 쉬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글에서 풍기는 진정성은 가슴을 파랗게 적실 정도로 신선하다. 어쩌면 이런 좋은 말만 골랐는지 감동 그 자체다. 가슴에서 우러러 나온, 고뇌하는 대통령의 취임사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는 대목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59%의 국민도 받들어 모시며 국정에 매진하겠다는 대통령의 넓은 포용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문 대통령을 뽑지 않았지만, 이 대목에 크게 감동했다는 이들이 꽤 많다. 취임식 날 저녁, "문구 하나하나에 진정성이 느껴져 감동한 나머지 취임사 읽고 밤새 펑펑 울었다"는 친구의 SNS 메시지를 받은 기억이 난다.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고 또 읽는다. 내 경우도 그렇다. 읽을 때마다 감동이 화수분처럼 솟는다. 술 한잔 걸치면 감동은 배가된다. 고통과 회한으로 점철된 40년 정치사를 관통했기 때문인지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는 대목에서는 감정이 격해지곤 했다. 해방 이후 반세기 넘게 벌였던 국민 간의 갈등은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몰면서 삿대질하고, 주먹질하고 심지어 뒤엉켜 싸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갈등의 종지부를 찍고 '통합과 화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니 이 말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뿐만이 아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습니다'는 대목도 빼놓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학연, 지연, 혈연은 물론 이념에 얽매인 동지애도 끊어내고 능력 위주의 인재 발탁을 하겠다는 말에 국민은 "이제야 진정한 우리의 대통령이 탄생했다!"며 무릎을 쳤다. 거기에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말까지 더했으니 국민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특히 '공정'과 '정의'가 주는 강렬한 임팩트에 가슴은 마구 뛰었다. 앞으로 누가 대권을 잡아도 이는 다시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여기에 마지막 카운터 펀치가 있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국민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 드리겠습니다'에 우리는 모두 '오 마이 갓!'을 외쳤다. 정말 멋진 대통령이었다.지난 5월 10일 문 대통령은 취임 3주년을 맞아 대국민 연설을 했다. 4·15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고, 대통령 지지율 역시 60%를 넘는 시점이라 이 연설에 거는 기대가 컸다. 계층과 이념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고, 일부 특정인들의 특권과 반칙으로 인해 공정과 정의가 훼손되고 있는 조짐이 보여 더욱 그랬다. 아니, 무엇보다 취임사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었던 국민들이 TV 앞에 모였다. 하지만 '통합' '공정' '정의' '화해' '반칙 없는 세상' 이란 단어는 찾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코로나' '일자리' '한국판 뉴딜','5G 방역' 같은 단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의혹이 연일 악취를 풍기며 국민을 경악시키고 있다. 이미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진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수사건에 대한 '재심'논의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정의와 공정이 무시되고, 반칙과 특권이 스멀스멀 살아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정의연 사태를 두고 청와대와 집권당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에서 불행하게도 '제2의 조국사태'가 읽힌다.언제나 가슴 뛰게 했던 취임사를 다시 꺼내 읽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는 대목에서는 까닭 모를 화가 치민다. 코로나 19로 만신창이가 된 지금, 또다시 조국사태처럼 분열과 갈등이 온다면 정말 슬픈 일이다. 취임사를 빛나게 했던 단어들을 찾아 다시 꿰매어,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건 오직 문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이영재 주필이영재 주필

2020-05-25 이영재

[이영재 칼럼]진보와 보수의 저녁 식사

총선끝난 3일째 상가에서 친구들을 만났다공교롭게도 '보수·중도·진보' 2명씩인 6명정치얘기 사절 묵계깨고 주고받는 비판 속결론은 '초유의 이상선거' 동의… 잘 하겠지4·15 총선이 끝난 지 3일째 되던 날, 상가(喪家)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코로나 사태로 모두 뜸했는데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한 명, 두 명씩 모여 어느새 여섯 명이 되었다. 첫날이라 한가했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는 몰라도, 집 식구가 몇 명인지는 잘 아는 어린 시절 친구들이었다. 물론 정치적 성향도 잘 알고 있었다. 공교롭게 진보 2명 보수 2명 중도 2명이었다. 수다가 여자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아는 남자들의 번개 저녁 식사가 그렇게 시작됐다.처음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고인의 연세가 94세였다는 상주의 말에 모두 놀랐다. 우리는 점점 늘어나는 인간 수명과 고령화 시대의 노후대책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이 때부터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여차 여차해 재난 기본소득에 이르면서 보수 1이 선거를 앞두고 실시한 그 진정성에 의심을 표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진보 2가 그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추세라고 답했다. 미국이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러자 보수 2가 선거를 앞두고 돈을 퍼붓는 것은 금권선거와 뭐가 다르냐고 끼어들었다. 그러자 진보 1은 "하여튼 보수들 생각은 늘 저래"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이때 중도 1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판은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언젠가, 태극기 집회에 갔다 왔다고 말 한 보수 1과 태극기 집회를 극도로 혐오하는 진보 2가 승강이를 벌인 후, 정치 얘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 사이의 일종의 '묵계'였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술이 한 잔씩 돌아가자 보수 1이 진보 1·2를 보면서 "그래서 좋아"하고 다시 운을 뗐다. 이번 총선에서 180석을 가져갔으니 기분이 좋으냐는 뜻이었다. 조금의 비아냥이 섞여 있었지만, 진보 2가 의외의 말을 했다. "우리도 놀랐어. 180석이 뭐야." 표정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보수 2가 그걸 고깝게 받아들였다. "2중대까지 포함하면 190석이야, 어리버리한 보수 몇 명 끌어들이면 개헌도 가능하지."중도 1은 분위기가 과열된다 싶으면 열심히 술을 따랐다. 덕분에 분위기가 진정됐다. 하지만 이번 4·15 총선이 사상 유례없는 이상한 선거였다는 데는 모두 동의했다. 막판까지 논란을 일으킨 미래 통합당의 한심한 공천에 대해서는 보수 1·2 진보 1·2 중도 1·2 모두 혀를 끌끌 찼다. 이런 정당에 과연 미래를 맡길 수 있느냐고 진보 1이 또다시 목소리를 높이려고 하자, 진보 2가 더는 말하지 말라고 그를 툭툭 쳤다. 그건 보수 1· 2가 할 얘기지 진보 1이 참견할 건 아니라는 것이다. 일종의 배려였을 것이다. 비례대표 연동제라는 근본도 없는 제도가 만든, 3번부터 시작하는 48.1㎝의 투표용지에 대해서는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진보 1은 벌써 노안이 와서 지지 정당에 기표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그때 중도 2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정치 얘기가 제일 재밌기는 해. 근데 지금 하는 거 보니 21대 국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봐.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선거를 치렀니. 표 구걸 하려고 선거 때만 저랬지, 막상 의원 금배지만 달면 사람이 바뀌잖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거대 여당체제라는 것도 실은 두려워. 또 2년 후에는 대통령 선거도 있잖아. 대통령 권한이 무지막지하게 센 나라라 아마 그 자리 차지하려는 싸움이 볼만할 거야. 그런 면에서 민주당의 앞길도 탄탄대로는 아니라고 봐. 여론조사에서 늘 1위를 차지하는 이낙연과 친 문 세력의 갈등이 커져 어쩌면 당이 깨질지도 모르지."우리는 중도 2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우리의 저녁 식사는 그렇게 끝났다. 결론은 중도 1이 내렸다. "아무렴. 건강이 최고야. 술 조금만 먹고, 나라 걱정 적당히 하고 건강 잘 챙기길 바래. 나라야 잘난 정치인들이 알아서 지져 먹고 볶아먹으며 잘 끌고 나가겠지. 진보 1. 너 대학 다닐 때 백골단으로 데모 막았잖아. 그리고 보수 2. 기억 안 나? 시청 앞에서 데모하다 누가 던졌는지 머리에 돌을 맞아 피나고 생난리 피운 거. 그런데 어떻게 성향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어. 하긴 우리나라에 진보 보수가 어딨겠니. 이제 앞으로 만나면 우리 정치 얘기는 그만하기. 이제 정치는 여기서 끝!"/이영재 주필이영재 주필

2020-04-27 이영재

[이영재 칼럼]그래도 봄은 온다

이번주도 역시… 약국에 마스크는 동났다줄서기 대란은 정부의 무능과 직결된 사례대통령은 '中전달·생산 충분' 허세끝 '송구'하늘 도왔나 진정세… 성숙대응 국민만 빛나역시 허탕이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도 약국을 찾았지만, 마스크는 없었다. 늦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약사는 "지금 이 시각에 와서 무슨 마스크를 찾으슈"라는 표정을 지었다. 약사와 나는 서로 얼굴을 보며 픽 웃고 말았지만, 왠지 뭔가 손해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 약국에도 마스크는 이미 모두 동난 상태였다. 약국 안까지 들어올 필요 없다며 입구에 '공적 마스크 매진'이라고 친절하게 써 붙인, 잔뜩 때가 묻은 A4 용지는 한 귀퉁이가 떨어져 바람에 펄럭였다. 그 몰골이 찢어진 우리의 자존심처럼 보였다.이번 코로나 19사태로 우리 국민의 자존심에 많은 상처가 났다. 그중 정부의 무능과 직결되는 중국인 입국 문제와 마스크 대란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기에 정부 고위관리의 실언이 더해져 국민의 자존심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중국에서 들어온 관광객이 감염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중국을 다녀온 우리 국민이 감염원으로 작동한 경우가 더 많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중국이 우리에게 각별히 감사해야 한다."(추미애 법무부 장관) "스스로 방역 능력이 없는 나라들은 입국 금지라는 투박한 조치를 하고 있다."(강경화 외교부 장관)그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 전화를 걸어 "중국의 아픔은 우리의 아픔"이라고 한 것은 정말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국민은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누구의 대통령인가. 그 후 중국은 마치 폐렴의 진원지가 우리나라인 듯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지난 19일 자국민에게 한국 등 10여 국에 당분간 여행 금지를 권고했다. 사실상 한국으로의 여행을 금지한 것이다. 전 세계 189개국을 무비자로 갈 수 있었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여권은 이제 중국에서조차 천대받는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이때 많은 국민은 '삼전도의 굴욕'을 떠올렸다.마스크 문제도 그렇다. 마스크 두 장을 사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서면서 느껴야 했던 그 참담함을, 줄을 서보지 않은 정부 고위관리들은 잘 모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종료된 후 가장 먼저 할 것은 마스크 대란 국정 조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중에 마스크가 사라졌는데 당시 왜 총리실에서 "정부는 마스크 200만 개를 중국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허세를 부렸는지 반드시 규명해야 할 것이다. 그 후 어떤 보고를 받았기에 문 대통령이 "마스크는 수요를 감당하기 충분한 생산 능력이 있다"고 말했는지, 그 충분한 생산능력이 어떤 마술을 부렸기에 다음 날부터 전국적으로 '줄서기 대란'이 일어났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날 이후 사태가 험악해지자 "수요만큼 충분히 공급할 수 없다면 현실을 알리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라"는 문 대통령의 말이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문 대통령은 "마스크를 신속하고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국민들에게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19사태가 터진 후 대통령의 첫 공식 '사과'가 아닌 첫 공식 '송구'였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늘 그렇지만 우리 국민의 저력은 위기상황에서 빛난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가 자화자찬만 늘어놓고 있을 때, 우리 국민이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은 감동 그 자체였다.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했다. 마스크를 사려고 긴 줄이 생겼지만, 새치기는 없었다. 사재기는 더더욱 찾아볼 수도 없었다. 확진자와 생이별을 하는 기막힌 현실에서도 가족들은 속으로 눈물을 삼킬 뿐, 당국의 대응지침에 잘 따랐다. 이 기간 대구시민들이 보여준 품격과 의료진들의 눈물겨운 희생정신은 '코로나 의병'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이런 국민이 사는 나라다.주말에 조선 시대 역병을 다룬 좀비물 '킹덤 2'를 보았다. 주인공인 의녀 서비가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면 이 모든 악몽이 끝날 것"이란 말이 가슴을 쳤다. 나에겐 이 말이 코로나 19로 무너진 자존심으로 힘들어 하면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로 들렸다. 하늘이 도왔는지 코로나 19도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여전히 어렵지만, 우리는 모두 이겨내고 우리가 있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봄이 오고 있다. 이 악몽도 곧 끝날 것이다./이영재 주필이영재 주필

2020-03-23 이영재

[이영재 칼럼]지도자의 리더십은 위기에서 빛난다

'9.11 테러' 수습한 줄리아니 前 뉴욕시장항암제 먹어가며 안간힘… 전 세계 '감동'첫 단추 잘못 끼운 코로나 사태 악화일로정치 논리 싹 빼고 국민 생명부터 살려야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107대 뉴욕시장을 지낸 루돌프 줄리아니에게 2001년은 시장 임기 마지막 해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대충 시간을 보내도 그를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재임 중 뉴욕의 범죄조직을 소탕해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범죄율을 가장 많이 감소시킨 시장으로 이미 등재된 그였다. 한밤중 뉴욕 지하철을 자유롭게 탈 수 있게 된 것도, 한때 우범지역이었던 타임스퀘어가 전 세계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것도 그의 덕분이었다. 그것만으로 그의 업적은 충분했다.9월 11일 아침. 뉴욕의 쌍둥이빌딩이 뉴욕시민들의 눈앞에서 무너졌다. 뉴욕 시민들이 공포에 휩싸인 순간, 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온통 먼지를 뒤집어쓴 줄리아니 시장이었다. 그는 제일 먼저 뉴욕지역 방송사를 통해 사고 상황을 시민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했다. 우왕좌왕하는 시민들에게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덧붙였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시간별로 기자회견을 계속하면서 공포에 휩싸인 시민들이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그렇게 시민 곁에 있었다. 뉴욕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줄리아니가 지금 암 투병 중이었고, 항암제까지 먹어가며 아픈 몸을 이끌고 사태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임기 마지막 해, 온 힘을 다해 사태수습을 하려는 그의 모습은 뉴욕을 넘어, 미국 아니 전 세계에 감동을 줬다.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사태를 수습하는 줄리아니를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위기 상황에서 솔선해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지도자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코로나 19가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발생 한 달 만에 사망자와 확진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대구 경북지역을 넘어서 이젠 전국적으로 확산해 "머지않아 종식될 것. 일상으로 돌아가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무색하게 했다. 희망사항인 '종식'이 '증식'이 돼버린 꼴이 된 것이다. "중국은 이웃"이라는 등 감상적인 대응이 화를 불렀다. 그래서 우리는 궁금하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어려움은 우리의 어려움"이란 시진핑의 전화를 받았는가.시작부터 잘못됐다. 마스크 300만장을 중국에 보낸다고 할 때 너무 나간다 싶었다. 집에 마스크 한 장 준비하지 못하고 있던 우리 국민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마침내 마스크 대란이 터지면서 정부가 우왕좌왕할 때, 뭔가 잘못돼 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때라도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걸 알았으면 얼른 중단하고 다시 꿰어야 한다. 그걸 모르고 끝까지 가면 마지막 단추는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법이다. 단추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사람이 잘못이다. 지금이 꼭 그런 꼴이다. 국민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또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기생충' 제작진을 청와대에 불러 짜파구리를 먹으며 파안대소하는 대통령 부부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 그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청와대가 무슨 생각으로 그 사진을 공개했는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불행히도 사진이 공개된 그 날부터, 코로나 19는 불꽃처럼 타올랐다. 사진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국민의 마음을 깊게 베었다. 5년 전 메르스 사태를 경험했던 우리였기에 아픔은 더 크다. 화도 난다. 국가적 재난도 지나고 나면 쉽게 잊는 한국인 집단 망각의 악습이 재현된 것 같아서 더 그렇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이제는 지금의 아픔을 또 잊어서는 안 된다.줄리아니는 대통령도 아닌 그저 시장에 불과했다. 사태를 수습하면서 공화당, 민주당 편을 가르지도 않았다. 모든 사람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 지금 우리에겐 그런 지도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 지도자가 꼭 대통령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질병관리본부장이 될 수도 있고, 자치 단체장이 될 수도 있고, 이름없는 어느 의사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정치적인 논리는 싹 빼야 한다. 제 잘났다고 떠드는 정치인들은 이제 모두 입을 다물길 바란다. 국민의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다.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공포도 극에 달하고 있다. 지금은 국민 생명을 살리는 게 먼저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절체절명 위기 상황에서 빛난다./이영재 주필이영재 주필

2020-02-24 이영재

[이영재 칼럼]벼랑 끝에 선 민주주의

설 밥상에 올라온 '조국사태'·'윤석열의 검찰'생각 다르면 언쟁 '두개의 국민'으로 갈려분열된 사회보다 더 무서운건 무너진 법치靑, 하명수사 거부 등 민주주의 근간 부정법치가 훼손되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꺼내 보는 책이 있다. 벌써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렛 교수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다. 지난해 조국 사태 때 많은 언론인과 학자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할 때마다 인용됐던 그 책이다. 2018년 12월 국내 초판이 나올 때만 해도 이렇게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몰랐다. 이들은 '포퓰리즘과 손을 잡는 정치인과 정당' '경쟁자를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는 정치인'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 '의회를 패싱하고 행정명령을 남발하는 대통령' '국가기관을 여당인사로 채우고 비판적 언론을 명예훼손 소송으로 입을 막는 권력' 등을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는 구체적 신호로 제시한다. 명쾌하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놀랍다. 민주주의 위기가 세계적인 현상이라지만 우리 상황과 너무도 닮아서다.연휴 기간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특히 이런 대목이 눈에 띈다. '독재정권은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 독재자는 헌법과 선거 시스템, 그리고 다양한 제도를 바꿈으로써 저항세력을 약화하고, 경쟁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운동장을 기울인다.' 4+1 협의체를 앞세워 공수처법과 선거법을 통과시키고, 무소처럼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현 정권의 모습이 겹쳐진다. 하지만 이들은 처방도 제시한다.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막기 위해선 확고한 3권분립, 여기에 언론의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두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된 후, 전통의 미국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절박감에서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과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구분해 "토마토를 던지는 사람을 보거든 두들겨 패라. 소송비용은 내가 책임지겠다"면서 노골적으로 폭력을 선동했다. 입으로는 '국민'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만 쳐다보았다.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은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쓰레기통"이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그가 그럴수록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열광했고, 이제 그들을 등에 업고 트럼프는 재선을 노리고 있다. 설 연휴가 끝났다. 이번 설 밥상에 올라온 주제는 예상대로 '조국 사태'와 '윤석열의 검찰'이었지만, 더 우울한 징후는 서로 정치적 견해가 다른 두 부류로 확연하게 나뉘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조국사태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추석 때보다 더 심해졌다. 지난해 광화문과 서초동의 광장 정치를 보면서 이 역시 민주주의이고,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족, 친지, 친구 간 서로 생각이 다르면 아예 입을 꽉 다물었고, 대화가 이뤄져도 두 마디 이상 말하면 언쟁이 커지며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생겼다. 이미 우리 사회는 '두 개의 국민'으로 나뉜 것이다.'두 개의 국민'이란 말을 처음 쓴 건 19세기 영국 총리 벤저민 디즈레일리였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심각한 빈부 격차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계층 간 갈등도 심했다. 이를 보고 개탄한 디즈데일리는 "영국은 '두 개의 국민'(two nations)으로 분열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통합 정책의 하나로 집권 6년 동안 공중위생과 노동조건을 개선하였고 국민교육법을 제정하였으며 선거권을 확대했다. 만일 디즈데일리가 자신을 지지한 한 쪽 국민만 바라보고 개혁정책을 펼쳤다면 '해가 지지 않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의 이름 앞에 '명재상'이란 칭호를 붙여주는 건 분열된 국민을 하나로 만든 그의 타고난 지도력 때문이다.하지만 '두 개의 국민'으로 분열된 우리 사회보다 더 무서운 건, 무너진 법치다. 청와대 하명수사,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청와대가 거부했던 게 그 대표적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를 청와대가 대놓고 부정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벼랑 끝에 서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광이다.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 스스로 '활자 중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고백할 정도다. 휴가 때는 매일 한 권씩 읽는다고 한다. 문 대통령에게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일독을 권한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20-01-27 이영재

[이영재 칼럼]2019년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친 것들

조국사태·한일관계등 주류 이룬 10대 뉴스유난히 많았던 '가족의 비극' 도 다시 봐야국민·기업에 걷은 세금 선심쓰듯 뿌리는데한 가정 속절없이 무너진 이유 설명해줘야2019년 10대 뉴스가 일제히 발표됐다. 언론사의 성향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국사태, 지소미아 파기로 인한 한일관계, 부동산값 폭등, 청와대 하명수사 등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뉴스에 빠져 무심코 지나친 게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 하나의 유형으로 고착돼버린 '가족의 비극'이 그것이다. 2019년은 생활고에 견디다 못한 일가족의 극단적 선택이 유난히 많았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이미 선진국에서 '살해 후 자살'로 명칭 되는 '가족 동반 자살'이 올해는 유난히 많았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개인의 극단적인 선택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일가족이 함께 생을 마감하는건 흔치 않은 경우다. 통상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빈곤층이 늘어나면 자살 등의 극단적인 선택도 증가한다는 것은 이미 통계에서 밝혀졌다. 문제는 이들이 판단력이 없는 어린 자식들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점이다. 비록 부모일지언정 자식의 삶과 죽음에 관여하고 더구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갈 권리는 없다. 극단적 선택을 앞둔 그 시간, 그 공간을 상상해 보자. 아이들은 곧 있을 자기 죽음을 눈치채고 있을까. 평소와는 다르게 안절부절못하는 부모의 이상한 행동을 보면서 아이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부모의 뜻이라면"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러는 살려달라고 저항하는 아이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올해 이런 비극이 너무 많았다.1월 24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에서 40대 부부와 딸(18)과 아들(10)의 극단적 선택을 시작으로 공식적으로만 전국적으로 20여 건이 발생했다. 그중 3월에만 4건, 10월에 4건, 11월에 3건이 발생했다. 모두 기막힌 사연을 갖고 있지만, 그중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시흥의 한 농로에 세워 둔 렌터카 안에서 젊은 부부와 아들(4), 딸(2) 등 4명이 숨진 사건이다. 그날은 5월 5일 어린이날이었고, 부부는 35세 동갑내기였다. 이틀 후엔 시흥시 정왕동에서 C 씨(48) 부부와 아들(15), 딸(12) 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또 있다. 국회에서 초유의 막장 드라마가 열리던 그 날, 대구에서 40대 초반 부부와 중학생 아들, 초등생 딸 등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온 세상에 하나님의 축복이 내린다는 크리스마스 성탄절 이틀 전이었다. 하지만 축복은 이 집만 피해갔다. 자영업을 하던 가장이 몇 년 전 부도가 난 뒤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이들은 기초 생활수급자도 아니었다. 이들의 집 앞에도 은행과 대부업체 등에서 보낸 독촉장과 세금 미납 고지서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우왕좌왕하며 이들이 눈물의 밤을 보냈을 이틀 전, 문재인 대통령은 근로 장려금과 자녀장려금 지급 등 현금을 뿌리는 복지행정을 잘한 우수 일선 세무서 24곳에 피자 400판을 돌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민과 기업으로부터 걷어 들인 막대한 세금을 정부가 선심 쓰듯 마구 뿌려대는데도 한 가정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이유를, 나는 누군가가 설명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이 너무 기구하다. 국회의장인 어떤 아버지는 자식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기 위해 500조원이 넘는 국회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야당이 제출한 수정안에 대한 토론을 외면한 채 의사봉을 마구 휘둘렀다는 의심을 받고 있고, 생활고에 견디다 못한 어느 부모는 어린 자식들을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 의장이 그날 통과시킨 예산안 중 아동수당·기초연금 등 현금 살포성 복지지출 예산은 54조원이었다.12월 마지막 날에 쓰는 글이다. 보통 이런 날의 칼럼은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며… '로 시작되는 '송구영신'의 글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지금 그런 말을 나눌 기분이 전혀 아니다. 우리는 1년 내내 캄캄한 방안에 갇혀 있었다. 하루속히 출구를 찾아 이 어두운 방에서 나가야 하는데 도무지 출구를 찾을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 출구를 찾으려고 이 어두운 방을 더듬거리며 모든 시간을 허비했는지도 모른다. 내년 경제는 더 암울하다고 한다. 빈곤은 더 심해질 것이다. 우리는 넘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 출구가 있기는 한 걸까./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12-30 이영재

[이영재 칼럼]나의 시대는 끝났다

김동길 교수의 '3김 낚시론' 떠오르는 요즘민주 '586'·한국당 '3선' 퇴진론 '내홍' 때문모두 고민하는척 하지만 진정성 보이지않아정부에서도 호기롭게 떠나려는 사람 안보여1985년 4월로 기억된다. 연세대 김동길 교수가 한 일간지에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씨에게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가 낚시나 해라"며 퇴진을 주장하는 '3김 낚시론'을 기고했다. 세 사람이 싸우다가 '서울의 봄'을 허망하게 날려 보냈고, 앞으로도 후보 단일화를 이루기도 어려울 테니 이제 정치판을 기웃거리지 말고 낚시나 가라는 것이었다. 좋은 낚시터도 알아봐 주겠다고 덧붙였다.이 글은 뜨거운 찬반논쟁을 불렀다. 서정적 제목과는 달리 내용이 당시 한국 정치를 호령하는 3김에 직격탄을 날렸기에 더욱 그랬다. 민주화의 열망이 뜨거웠던 시절이었다.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화를 이루는데 이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때였다. 그런데 "정치의 판도가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는 이때에 이들 세 김씨의 재등장을 바라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 김씨의 시대는 이미 갔습니다"라고 했으니 시끄러운 건 당연했다.김 교수는 3김 퇴진을 주장하면서 하버드 대학 네이던 퓨지 총장의 예를 들었다. 60년대 미국의 대학은 월남전을 반대하는 시위가 잇따르면서 학내가 큰 혼란에 빠졌다. 하버드대학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경찰 투입을 두고 교수들 간의 의견이 둘로 나뉘었다. 하지만 퓨지 총장은 일부 교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학내에 불러들여 학내 데모를 진압하고 학교를 정상화시킨 후 임기 2년을 남기고 퇴진을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과 맞서 반대 의견을 내세웠던 법과대학의 젊은 교수를 후임 총장으로 지명했다. 그때 퓨지 총장이 떠나면서 발표한 성명문 제목이 그 유명한 '나의 시대는 끝났다'였다. 김 교수는 3김에게 필요한 건 퓨지 총장 같은 결단이라고 주장했다.80년의 봄 3김이 분열하지 않고 단일화를 이뤘다면 전두환 군부독재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광주의 아픔도 없었다. 그러나 3김은 '단일화'라는 국민의 뜨거운 염원을 무시한 채 권력욕으로 분열하면서 군부 출현의 빌미를 주었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 뼈아픈 실책으로 기록되고 있다. 김 교수가 3김 퇴진론을 거론한 것도 그 일과 무관하지 않다. 김 교수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다.김 교수의 칼럼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기수는 이제 40대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들에게 길을 열어 주고 기회를 주기 위해서 동교동파니 상도동파니 하는 따위의 낱말도 더 이상 듣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리고 두 김씨가, 가능하면 세 김씨가 '우리는 간다'는 내용의 성명서나 하나 발표하고 이 나라의 어느 시골로 낙향한다면 얼마나 멋진 정경이 되겠습니까. 산 좋고 물 좋아 은퇴하여 낚시질하기 꼭 알맞은 곳을 소개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양 김씨여, 세 김 씨여, 아직 빛이 있는 동안에 서울을 떠나세요. 어서 떠나세요. 어둡기 전에, 어서." 이 글로 논란이 커지자 김 교수는 유신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절필을 선언했다. 그러나 김 교수의 글은 그냥 뜬금없이 나온 게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도 3김을 잘 알고 있던 김 교수는 어떤 상황이 와도 이들은 절대 단일화를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로부터 3년 후 6·29선언으로 이 땅에 민주화가 찾아온 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3김은 결국 단일화를 하지 못하고 노태우에게 정권을 넘겨주었다. 당시 김 교수의 칼럼을 읽은 3김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건 1971년 '40대 기수론'을 주창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66세(1993년), 김대중 대통령은 4번 출마해 72세(1997년)에 대권을 잡았다는 것이다.문득, 김 교수의 '3김 낚시론'이 떠오른 것은 요즘 정치판에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화두로 떠오른 '물갈이론' 때문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586 정치인들의 퇴진으로, 야당인 한국당은 3선 중진 퇴진론으로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이들 모두 고민하는 척하지만, 이는 겉으로만 보이는 것일 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늘 이런 식이다. 어찌 됐건 사상 최악의 20대 국회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어디에도 제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다. 생각 같아서는 모두 물갈이를 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나의 시대는 끝났다"고 호기롭게 말하는 퓨지 총장 같은 이가 없으니 이제 우리라도 이렇게 말해주자. "너희 시대는 끝났다. 가라! 낚시."/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11-25 이영재

[이영재 칼럼]다시 읽는 대통령의 취임사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조국 사태로 명문장서 조롱의 상징으로이제 남은 2년 6개월은 '대통령의 시간'잘못된 결정 있었다면 수정하는게 의무며칠 후면(1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5년의 반환점을 지나게 된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예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라며 희망찬 취임사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집권기 반이 지난 것이다. "아직도 반이 남았다"고 하는 국민도 더러 있을 것이고, "벌써 반이 지났나"라며 시간의 빠름에 새삼 놀라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이제 언론은 반환점을 돌고 있는 문 대통령의 2년 6개월에 대해 많은 논평을 쏟아낼 것이다. 전임 박근혜 정권은 '불통'으로 일관하다 몰락했다. 그것을 지켜본 2년 6개월 전 문 대통령은 '불통'이 아닌 '소통'의 길을 가겠다는 구호로 집권했다. 마치 전 정권의 실정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민심의 출렁임과 경고를 엄중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꺼내 읽은 것도 그래서다. 취임사는 구구절절 명문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는 말할 것도 없고,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라며 소통을 강조한 부분에서는 지난 취임사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다.그러나 문 대통령은 취임사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라고 했지만, 공허한 구호였다. 언론을 멀리한다며 전임 대통령을 그토록 비판했으면서도, 정작 문 대통령의 공식 기자회견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물론 반대 진영이나 야당 인사들을 만나 의견을 구하지도 않았다."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약속했지만, 조국사태로 국론은 찢어지고, 갈리고, 분열되며 '조국 지지'와 '조국 반대' 집회가 대규모 세 대결 양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광장 정치를 뜨겁게 달궜다. 그래서 민심과 동떨어진 문 대통령의 인식과 발언은 여러 번 논란이 됐다.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오른 적도 있었다. 문 대통령 취임사 내용 중 백미는 단연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일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대통령의 취임사가 있었지만, 집권기간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을 이렇게 시적 문장으로 아름답고 명쾌하게 적시한 취임사는 없었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의 자녀 입학 과정이 드러나면서 '공정 사회'에서 살고 싶었던 20대는 좌절했고, '정의 사회'에 살고 싶었던 국민은 분노해 이 시적 문장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조롱하는 상징의 문장이 되었다. 2017년 5월 10일 취임사를 읽던 문 대통령은 2년 6개월 후, 우리 사회가 이렇게 분열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입만 열면 촛불 혁명으로 태어나 공정, 평등, 정의로 가득 차있을 것 같은 대한민국이 2년 6개월 만에 이렇게 처참하게 부서질 줄도 몰랐을 것이다. 취임사 중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이 지켜졌을 뿐,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가 "그럼 이건 나라냐"라는 푸념으로 되돌아올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반환점을 돌면 후회는 많아지고 시간은 더 빠르게 지나간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이 내려올 땐 보이네'라는 시처럼, 확실해 보였던 정책도 "그때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던가"라는 후회가 남는 경우가 많다. 이제 남은 2년 6개월은 '대통령의 시간'이다. 그것도 레임덕이 없을 경우를 가정해서다. 잘못된 결정이 있었다면 남은 시간에 이를 수정해야 한다. 그건 용기가 아니라 대통령의 의무다. 판단 착오를 인정하기 싫다고 외면할 경우,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아직도 임기가 반이 남았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10-28 이영재

[이영재 칼럼]쇼는 중단되어야 한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 용의자등 초특급 뉴스각종 의혹 터져나오는 조국사태에 맥 못 춰2007년 '변양균·신정아 스캔들'과 데자뷰국론 갈리고 정치 천박한 민낯… 결말 뻔해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했을 때만 해도 놀랍지도 않았다. 예견됐기 때문이다. 그 후 각종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아열대 저기압이 시간이 흐를수록 초속 50m의 초강력 태풍으로 변해 그 기세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LG 디스플레이가 5년 이상 기능직의 희망퇴직을 한다는 뉴스도, 공적자금 8천억 원이 투입된 한국GM이 파업을 결의했다는 뉴스도 조국 뉴스를 이기지 못한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용의자 신원이 밝혀졌다는 초특급 뉴스가 터졌지만, 이 역시 조국 앞에선 맥을 못 추고 있다. 조국이 모든 뉴스를 먹어 치워서다.기시감이란 게 있다. 데자뷰. 프랑스어로 '이미 보았다'는 뜻으로 처음 당하는 사건인데 언젠가 한 번 경험한 느낌이 드는 것을 말한다. 이번 조국 사태가 그렇다. 우리의 기억을 2007년 9월로 되돌려 보자. 당시 우리 사회는 변양균과 신정아 스캔들로 온통 벌집 쑤셔 놓은 듯 어수선했다. 청와대 권력 3위 변양균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과 미모의 큐레이터와의 스캔들. 검찰 수사 결과 변 실장은 신 씨와 '예일대 선·후배 사이'라는 인연을 계기로 수년 전부터 잘 아는 사이로, 사적인 편지를 주고받는 '보통 이상의 사이'로 드러났다. 권력의 힘이 작용해 학위 증명서 등 필수 서류조차 없이 동국대 교수에 임용되고 광주 비엔날레 감독에 선임됐다. 동국대에 대한 예산 특혜지원 의혹, 정부 부처의 미술품 적극 구매 배경 등 각종 비호 의혹도 쏟아졌다. 여기에 관음증을 자극하는 낯뜨거운 기사 폭주로 국민은 넋을 잃었다.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 데 있었다. "깜도 안 되는 의혹이 춤추고 있다"며 언론 보도를 비난했다. 시중에선 3명만 모이면 "대통령이 뭔가 단단히 씌웠다"며 수군거렸다. 그러던 9월 11일. 노 대통령은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대통령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전날 사표를 수리한 변양균의 얘기가 나오자 한숨까지 내쉬었다. 노 대통령은 "제가 참 난감하게 되었다. 제 입장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참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렇게 말씀드려야겠다"며 입을 열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그 믿음이 무너졌을 때 그것이 얼마나 난감한 일인지는 여러분들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한마디로 "나도 속았다"였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측근을 잘못 관리한 책임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하는 게 도리지만, 이날 노 대통령은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참담한 모습을 당시 비서실장이던 문 대통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는 것이다.지난 9일 문 대통령은 자녀 입시 관련, 웅동학원, 가족 사모펀드 등 쏟아지는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 자리에서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으면 나쁜 선례가 된다"고도 말해 국민을 놀라게 했다. 지난 18일 '국경없는기자회' 사무총장과 만나서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 간의 증오와 혐오, 빠르게 확산하는 가짜뉴스나 허위정보들이 공정한 언론을 해치고 있다"며 언론에 유감을 표시했다. 노 대통령이 끝까지 변양균 실장을 믿었듯, 문 대통령 역시 조국 장관을 끝까지 믿겠다는 의지로 읽혔다.우리는 매일 희한한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다. 어제는 현역 법무부 장관 자택을 검찰이 압수 수색하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했다. 그런데도 조국 장관은 "너희는 떠들어라. 나는 내 길을 간다"는 태도다. 지난주에는 젊은 검사와의 대화도 가졌다. 조국 장관의 멘틀에 놀랄 지경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국격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치명상을 입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과정에서 국론은 갈라졌고, 우리 정치의 천박한 수준과 민낯도 그대로 드러났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여기에 "한번은 비극으로 그 다음번은 희극으로"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이번 조국 사태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는 너무도 뻔하다. 그러기 전에 이런 무의미한 쇼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이제 문 대통령의 결단만 남았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9-23 이영재

[이영재 칼럼]그때는 몰랐다

주변국 사이 갈팡질팡, 구한말과 겹쳐 보여조·청·일·러서 한·미·일·북·중·러로 늘고북한이 핵보유국, 그때보다 복잡하고 험악또 잘못 선택한다면 후세 무능한 조상으로 그때는 몰랐다. 역사는 무조건 외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역사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무조건 외우는 거다." '미친개'란 별명을 갖고 있던 국사 선생님도 박달나무를 허공에 휘두르며 그때 그렇게 말했었다. "백제멸망 660 정말 슬픈데 /고구려도 망했다 668/ 발해건국 699에 번영하다가/ 멸망이 웬 말이냐 926." '연대 강박증'에 시달리던 우리는 윤극영의 동요 '반달'을 개사한 이런 노래도 불렀다. 하긴 당시 시험문제의 수준도 이랬다. '다음 사건을 시대순으로 옳게 나열한 것은 ?'. 그래서 '미친개'가 무조건 외우라고 했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역사는 외우는 게 아니라 이해해야 한다는 걸. '한국사 연표'를 직접 만드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도 후에 알았다. 기존의 연표를 대충 눈으로 읽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다. 내 손으로 연표를 작성하되 여유가 있어 세계사 연표까지 함께하면 금상첨화다. 국사와 세계사를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이른바 '일타쌍피'. 가령 '고구려가 낙랑군을 점령한 313년 그해, 콘스탄티누스가 밀라노칙령을 공포해 기독교를 공인하고, 백제를 번성케 한 근초고왕이 죽던 해(375년)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이런 식이다. 눈을 감으면 뭔가가 그려진다.그때는 몰랐다. 역사는 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발원지에서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흐름만 알면 역사공부는 끝난 거다. 그래서 연표가 중요하다. 이탈리아 메디치가의 번영으로 피렌체의 르네상스 문화가 절정을 구가하던 1453년, 동방의 조그만 나라 조선에서는 수양대군이 친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권력이 뭐라고, 그걸 잡기 위해 쇠몽둥이로 무자비하게 정적을 제거하고 '피의 축제'를 벌이며 마침내 조카의 목숨까지 빼앗은 그때, 먼 나라에선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간중심의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었다. 가슴이 뭉클하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연표 때문에 가능한 상상이다.하지만 이런 연표도 근대사에 이르면 혼란을 맞게 된다. 우리 근대사가 썩 유쾌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정말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건이 수없이 일어나서다. 1866년 병인양요,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시작으로 신미양요(1871), 운요호 사건(1875), 강화도조약(1876), 임오군란·제물포조약(1882), 갑신정변(1884), 동학운동·청일전쟁 (1894), 을미사변 (1895), 아관파천(1896), 대한제국선포(1897), 을사조약·가쓰라 태프트 밀약 (1905), 한일합병(1910)까지 매년 매월 국운을 뒤흔든 사건이 일어났다.무엇하나 뺄 거 없이 '조선'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가 감당하기에는 엄청난 사건들이었다. 연표만 가지고는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이 사건들이 계산된 듯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근대사 교육은 중립적인 시각을 가진 누군가의 설명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미친개'는 어설픈 민족주의자였다. 청나라,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의 움직임은 생략한 채 우리 입장만 가르치려고 했으니 불쌍한 '조선'이 왜 백척간두에 놓였는지 어린 학생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최근 우리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가 마치 구한말 같다고 한다. 헷갈리던 근대사를 다시 공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소리까지 들릴 정도다. 주변국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가련한 모습이 구한 말과 겹쳐 보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조·청 ·일 ·러 4개국에서 한·미·일·북·중·러 6개국으로 늘어난 것도 그렇고, 한반도가 두 쪽으로 갈라졌으며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란 사실 때문에 상황은 그때보다 복잡하고 훨씬 더 험악하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E. H.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비록 반복되는 역사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지만 답은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 알았으니 무능했던 우리의 조상들이 택하지 않은 길로 가면 된다. 만일 이번에 또 길을 잘못 선택한다면, 우리는 후세에게 130년 전 조상보다 더 무능한 조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다시 그 길 앞에 선 대한민국. 슬프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7-29 이영재

[이영재 칼럼]6·25 아침에

해마다 이날 슬픈 이야기 주고 받았는데언제부턴가 의미가 점점 빛 바래'잊혀진 전쟁'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오늘은 '호국영령 이야기' 귀 기울이는 날해마다 이날이 되면 우리는 슬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주로 듣는 편이었다. 이제는 잊을 만한 한 평안도 사투리가 '방언'처럼 쏟아져 나왔다. 너무 생생해서 그 아비규환의 현장이 또 눈앞에 펼쳐졌다. 묘하다. 달달 외울 정도로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 속이 멍해지는 느낌을 받으니 말이다. "죽지 못해 살아남았다"로 이야기는 끝났다.밥상머리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며 자랐던 아이는 이제 제 자식에게 아버지한테서 들었던 그 날의 슬픈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최첨단 아이맥스 돌비 서라운드로 영화를 감상하는 신세대 아이에게, 그것도 전해 들은 전쟁 이야기가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지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입을 다문다고 해서 주저리주저리 얽힌 그 숱한 사연을 담은 비극의 가족사와 남북 분단사를 두부 모처럼 잘라내지는 못할 것이다.그해 6월의 마지막 일요일은 너무도 평온했다고 한다. 딸기를 씹는 것 같은 싱싱한 6월. 투명한 6월의 태양이 비치는 강물은 해조처럼 싱싱하게 흔들렸고, 붉은 장미처럼 생명의 열정이 만방에 꽃을 피운 6월이었다. 살살 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때로 소낙비를 몰고 오기도 하다가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햇빛을 뿌리기도 했다. 해방을 성취한 젊은이의 터질 것 같은 마음은 춘향이가 그네를 타듯이 한없이 펄럭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 새벽, 화단에 핀 붉은 장미가, 딸기를 담은 투명한 유리컵이, 어린이들이 타던 그네가 있던 놀이터의 평화가 순식간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미국에선 6·25전쟁을 '역사의 고아'라고도 부른다. 3년 1개월 2일 동안 연인원 178만9천명의 미군이 참전해 3만6천여명이 전사했으나 역사적인 평가에서 철저하게 외면을 받고 있어서다. 승전도, 패전도 아닌 '정전'으로 끝났기 때문에 그렇다는 의견도 있다. 분명한 건 미국은 6·25전쟁에 대한 준비도, 의지도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공원의 비문에는 '미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라의 자유를 위해 달려갔던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글귀를 적어 놓아 찾는 이를 숙연하게 만든다.우리 역시 언제부턴가 6·25 전쟁의 의미가 점점 빛이 바래고 있다. '한국전쟁'이라 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심지어 '내전'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재작년에 이어 지난 6일 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6·25전쟁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현충원에 잠든 대부분 영령이 6·25 전쟁 전사자들인데도 말이다. 오슬로를 방문해 행한 포럼 연설에서는 "독립 후 '한국 전쟁'을 겪고서도, 7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이라 했고, 스톡홀름 의회연설에서는 "반만년 역사에서 남북은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한 적이 없다"며 북의 남침으로 발발한 6· 25전쟁을 외면했다. 하지만 국군 전사자 13만명, 부상자 45만명, 10만명이 넘는 전쟁고아와 1천만명의 남북 이산가족이 발생한 6 ·25전쟁을, 그 아픈 역사를 하루아침에 지워버릴 수는 없다. 가족사처럼, 역사도 지운다고 말끔하게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지우려다 남은 흔적이 더 흉하고 더 오래가는 법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6·25전쟁을 외면하고,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로 시작되는 '6·25 노래'가 더는 우리 사회에서 불리지 않는다면, 6·25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6·25 아침이다. 이어령은 '시간에 세우는 기념비'라는 글에서 "아, 6·25! 오수(午睡)를 거부하라"며 "6월 25일은 검은 구름과 천둥소리에 우리의 어린 것들이 피를 흘렸던 기억, 우리의 사랑이 어떻게 찢기는가를 듣는 것"이라고 적었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6·25의 의미를 되새기고, 나라 위해 목숨 바친 호국영령들의 그 슬픈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그런 날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6-24 이영재

[이영재 칼럼]책을 정리하며

창간~종간호 모은 월간지 '뿌리 깊은 나무'발행인 온기 그대로 과거로 되돌아간 느낌10년 넘은 책꽂이, 반은 책·반은 먼지란 말"지금 우리는 그런 먼지 속에서 살고 있다"책을 정리할 일이 생겼다. 문학청년의 패기는 모두 사라지고, 이사를 해도 이제 더는 책을 안고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책을 빼면 먼지가 풀풀 날았다. 하얀 목장갑이 금세 까매졌다. 딱히 정해진 날까지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책은 두 겹으로 꽂혀있다. 한 권을 빼면 그 뒤에 늙어서 더는 힘을 쓰지 못하는 병사처럼 빛바랜 책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뿌리 깊은 나무'가 보였다. 70년 중·후반을 풍미했던 월간지다. 가슴속에 바람이 싸하게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책 정리고 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서슬 퍼렇던 시절, 수원 교동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창간호부터 종간호까지 사서 모은 잡지다. 어렵사리 결호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발품을 판 덕분에 단 한 권의 결호 없이 온전히 모았다. 권당 200원에서 500원 값을 치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른 어느 책보다 '뿌리 깊은 나무'에 애정이 넘치는 것도 그래서다. 창간호를 읽다 보니 이래저래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1976년 3월에 창간된 한글 전용 잡지 '뿌리 깊은 나무'에는 '문화'의 힘을 앞세워 긴급조치를 발동한 독재에 항거하는 발행인 한창기의 온기가 그대로 녹아있다. 쌀을 한 움큼 쥐고 있는 손을 표지 사진으로 사용한 창간호는 기존의 잡지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43년 전 쓰인 한창기의 창간사는 이랬다. "우리가 '잘사는' 일은 헐벗음과 굶주림에서 뿐만이 아니라 억울함과 무서움에서도 벗어나는 일입니다. 안정을 지키면서 변화를 맞을 슬기를 주는 저력 - 그것은 곧 문화입니다." 잡지는 신군부가 들어선 1980년 8월 폐간될 때까지 모두 53권이 발행됐다.80년대 초 수원역 지하상가 입구에는 '니꼴라'라는 서점이 있었다. 군사정권으로부터 판매금지된 책들은 이곳에서 구했다. 그때 사서 본 책들이 둘째 줄에서 먼지를 꼬박 뒤집어쓴 채 숨을 죽이며 있었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신동엽의 '금강'을 비롯해 헝가리 공산당 인민위원이었던 게오르그 루카치의 저서들도 있었다. 당시에는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혀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에 저촉된 책들이다. 무엇에 홀렸던 것일까. 그때는 이런 책들을 밤새 탐독했다. 책 안에 '민주화로 가는 길'이 있는 줄 알았다. 다시 들춰보니 쓴웃음이 나왔다. 책마다 밑줄이 쳐있고, 뭐라고 썼는지 판독조차 하기 어려운 메모들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80년대 우리는 '민주화의 열망'속에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책 속에 있으니 80년대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낡은 책에서 매운 최루탄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최루탄 터지는 소리가, 그것을 피하려고 이리저리 달리는 친구들의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많은 사람이 그때의 기억을 지웠고, 이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한때는 집안에 김소월 윤동주 시집 한 권 정도는 갖고 있었다. 이제 그런 시대도 지났다. "요즘 무슨 책 읽어?"라고 묻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아직 그 시대를 잊지 못하고 그때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꼰대'라고 손가락질을 받는지도 모르고 '자신들이 곧 정의'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고민은 이 책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였다. 기증하려고 했지만, 도서관마다 난색을 보였다. 그러잖아도 있는 책들을 폐기해야 하는 처지라 더는 기증을 받지 못한다고 도서관 측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렇다고 분리수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물상에 넘기는 방법도 있지만, 이미 그런 경험을 한 친구는 "그거 사람이 할 짓이 못되더라. 어렸을 적 어른들이 집에서 키운 백구를 정이 붙을 만하니 개장수에 넘겼잖아. 그때 그 백구의 슬픈 눈빛을 봤지? 꼭 그 기분이야 "라고 말했다. 물론 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다시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뽀얀 먼지가 방안 가득 피어올랐다. "10년이 넘으면 책꽂이도 반은 책이고 반은 먼지"라고 했던 친구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먼지 속에서 살고 있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5-27 이영재

[이영재 칼럼]판문점 회담 1년,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

4·27 판문점선언후 두차례 이산가족 만남계속 이어졌다면 트럼프 설득 쉬웠을지도실향민들 아픔 달래준 이미자 데뷔 60주년부모님 모시고 콘서트라도 다녀와야 할듯음정도 박자도 가사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맞는 게 없었다. 그래도 이 노래가 그 노래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눈물로 보냅니다' 라는 가사만은 그런대로 또렷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창밖에는 꽃잎들이 바람에 따라 이리로 저리로 휘날리고 있었다. 그 바람에 따라 이제 90인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는 대한민국 가수 중 이미자를 최고의 가수라고 생각한다. 조용필과 나훈아가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남자가수고, 그들 역시 이미자에게는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양보할 것이다.골목길로 들어서면서 전봇대가 있는 여섯 번째 집에서 일하던 식모는 온종일 이미자 노래만 불렀다. 그 노래가 어린 우리에게도 얼마나 구슬프게 들리던지 하굣길에 그 집 앞에서 담을 타고 넘어오는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한참 동안 들었다. 이미자의 목소리에는 고향 생각을, 그곳에 두고 온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다. 지나가다 그녀의 노래를 듣던 다 큰 어른들도 눈물을 훔치곤 했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이 그 집 앞에 모여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일본 놈들이 많은 돈을 주고 이미자의 목소리만 샀대. 죽으면 목 해부해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하겠다는 거야. 왜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지 말이야." 이미자가 들었다면 경을 칠 일이지만, 그때는 그 말이 진짜인 줄 알았다. 그만큼 이미자의 목소리는 일본도 부러워할 정도로 최고였다."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 앞에서 어머니는 숨도 제대로 쉬지도 못했어. 아버지가 소리 한번 지르면 저 구석에서 마치 죽은 쥐처럼 말 한마디 못했지. 왜 그렇게 사셨는지. 그런 어머니랑 16살에 헤어졌다. 나오면서 사진 한 장 못 갖고 나왔어. 금방 돌아갈 줄 알았거든. 이 노래가 어머니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노래는 다시 시작됐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 물론 가사도 음정도 박자도 모두 무시됐다. 그래도 노래를 듣는 우리는 단 한 번 본적 없는 할머니의 얼굴을 수없이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패티 김이나 주현미, 아니 요즘 뜬다는 홍자도 이 노래를 이미자만큼 아리게 부르지는 못할 것이다. 뜬금없이 이미자 얘기를 꺼낸 것은 며칠 전 노래 다섯 곡을 새로 배웠다는 실향민 1세대 아버지가 차 안에서 부른 '여자의 일생' 때문이다. 이 노래 말고도 다른 노래도 배웠다는데 그날 아버지는 '여자의 일생'만 부르고 또 불렀다.다음 주면 판문점 회담 1주년이다.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이 발표한 '4·27 판문점 선언'에는 5번 문항에 분명 이런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 '남과 북은 민족 분단으로 발생 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남북 적십자회담을 개최하여 이산가족·친척상봉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오는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 선언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지난해 8월 20일부터 22일, 24일부터 26일까지 두 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에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의 만남은 없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철도 회담은 귀가 아프도록 들었지만, 그 이후 서울이건 평양이건 더 이상의 '이산가족 상봉'은 없었다. '여자의 일생'을 듣던 그날 문득, "만일 우리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몇 번 더 추진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시키는데도 더 수월했을지 모른다. 그 역시 계속되는 이산가족 상봉을 거부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생존한 실향민 1세대도 손에 꼽을 정도다. 억세게 운이 좋은 몇 명은 이미 가족 상봉의 꿈을 이뤘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의 생사 확인조차 못 한 채, 이미자 노래를 벗 삼아 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공교롭게 올해는 이미자가 데뷔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올해도 이산가족 상봉은 틀렸으니, 부모님을 모시고 이미자 60주년 콘서트만이라도 다녀올 생각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4-22 이영재

[이영재 칼럼]그래도 인사 청문회는 계속되어야 한다

여·야 바뀌어도 출연진만 다르고 변함없어청와대 '7대비리 배제' 내놓고도 의혹 나와인식 바뀌지 않는 한 무용론 끊임없이 제기그래도 큰 꿈 그리는 '누군가'가 있을지도천막 안에는 사람들이 쭈그리고 앉아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불이 하나둘씩 꺼지면 장내는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곧 영화가 시작될 것이다. 뿌연 먼지를 가르며, 영사기에서 뿜어지는 강렬한 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일순간 적막이 흐른다. 초라한 하얀 천 위에서는 온갖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긴박한 순간마다 여기저기서 관객의 탄식이 터져 나온다. 개봉관과 재개봉관을 모두 거치고 마침내 여기까지 온 필름에는 시종 비가 내렸다. 그래도 좋았다. 모두 분위기에 취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윤복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김승호의 '마부'도 아마 그 천막극장에서 보았을 것이다. 마침내 영화가 끝나고 천막이 걷어지면 사람들은 뿔뿔이 밤길 속으로 사라졌다. 조금 전 사람들이 모여 웃고 울었던 공간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공터는 순식간에 텅 비었다. 그 허전함이란. 급조된 영화관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예외 없이 모두 TV 앞에 모였다. 이제 곧 장관 인사청문회가 시작될 것이다. TV 카메라 조명이 강렬한 빛을 발하며 카메라에 빨간 불이 켜지면 드라마가 시작된다. 물론 줄거리는 뻔하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의혹투성이인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TV 앞에 모인 건 이번만은 뭔가 다르겠지 하는 한 가닥 희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작심한 듯, 또 맥빠진 질문에 뻔한 답을 쏟아낸다. 2000년부터 우리는 TV를 통해 많은 인사청문회를 보았다. 달라진 것은 출연진뿐, 예외 없이 위장전입, 논문표절, 투기의혹, 이중국적 등은 변함없는 주요 레퍼토리였다. 여·야가 뒤바뀌어도 늘 그 타령이었다. 정쟁의 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늘 수많은 의혹이 있었지만, 면피성 답변만을 듣고 결국은 통과의례이거나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청문회는 막을 내렸다. 그들이 떠난 텅 빈자리 역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적막만 남았다. 그 허전함이란. 그때마다 '청문회무용론'이 제기됐다.청문회가 늘 이런 식으로 시작하고 끝나자 지난해 청와대는 획기적인 안을 내놨다. '고위 공직 후보자 임용 7대 비리 배제 원칙'기준안이 그것이다. 위장전입, 불법 재산증식, 논문표절 등 7개 조항에 위반되면 아예 공직에 나서지 못하게 한 것이다. 국민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렇지! 역시 촛불 정부는 달라도 무언가 다르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인사청문회에서도 후보자의 위장 전입, 논문 표절, 탈세 의혹 등이 제기됐다. 7대 원칙이 무색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실망한 국민을 달래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그럼에도 청와대는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청문회 무용론'에 불을 지폈다. 그렇게 해서 임명한 장관의 수가 벌써 10명이 넘는다. 지난 1월에는 자유한국당이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의 전력을 문제 삼아 반발하며 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하자 청문회도 없이 그를 위원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일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청문회 때 많이 시달린 분들이 오히려 일을 더 잘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해 국민을 놀라게 했다.인사청문회는 해당 공직에 걸맞은 능력을 가리는 건 물론 임명권자가 발견하지 못한 비리 등의 결격사유가 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지자는 데 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공직 임명 통과의례 정도로 보는 청와대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청문회 무용론'은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다. 이번 청문회에 나온 7명 후보자 역시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청와대는 이들을 장관으로 임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이런 청문회는 없었다'는 비난이 쏟아지겠지만, 그래도 청문회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밤하늘의 별이 보이는 초라한 천막극장에서 낡은 영화를 보며 '누군가'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꿈을 버리지 않았듯이, 이런 한심하고 터무니없는 청문회를 보면서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하는 큰 꿈을 그리는 단 한 명의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3-25 이영재

[이영재 칼럼]3·1운동 100주년 그리고 미당 서정주

'친일' vs '천재시인'… 극과 극 갈리는 평부천 상동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서 퇴출시비 놔둔채 '친일 시를 쓴 시인' 표시했다면'변절 목도' 교육효과 클수도… 철거 아쉽다여기 서정주의 '동천(冬天)'이란 시가 있다. 짧은 시니 전편을 인용한다.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국어선생님은 교과서에 게재된 '국화 옆에서'와 함께 교과서에 없는 이 시를 해설해 주었다. 그러면서 "서정주가 아니면 절대 쓸 수 없는 시"라며 "미당은 100년에 한 번도 나올 수 없는, 두보와 견줘도 손색없는 시인"이라고 말했다. 40년 전이다.칼날 같은 바람이 부는 매서운 겨울. 들판엔 눈이 쌓여 있고, 연처럼 하늘에 걸려 있는 초승달. 어느 한자도 넣을 수도, 뺄 수도 없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시어(詩語). 마치 겨울 풍경을 찍은 한 장의 사진 같다. 그래서 처연하다. 그날 선생님의 이 시에 대한 해석은 대충 이렇다. "일체의 설명적 요소를 배제하고 고도의 압축과 상징으로 이루어진 상징시다. 짧은 시 형식과 상징이라는 표현 기법을 통해 강렬한 언어 긴장을 이루며 인간 본질의 탐구라는 무거운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정제된 미의식을 드러낸다".하지만 서정주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오직 시만 가지고 논할 때 그의 이름 앞에는 '살아 있는 한국 시사(詩史)' '시선(詩仙)'이라는 찬사가 붙지만, 친일·친 독재 전력에 이르면 그의 이름은 '다츠시로 시즈오'가 되고, 전두환 생일에 축시를 쓴 파렴치한 시인이 된다. '꽃'의 시인 김춘수는 "미당의 시로 그의 처신을 덮어버릴 수는 없다. 미당의 처신으로 그의 시를 폄하할 수도 없다. 처신은 처신이고 시는 시다."라는 말로 그의 이런 전력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때문에 시인의 고향에서조차 미당을 내놓고 자랑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비극의 역사가 만들어낸 또 다른 비극인 셈이다.부천에서 미당 서정주가 퇴출당했다. 부천시 상동 상도중학교 뒤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 세워져 있던 그의 시비 '동천'이 지난 13일에, '국화 옆에서'가 어제 철거된 것이다. 미당의 시비는 지난 2008년 상동 주민자치위원회가 부천문화사업과 연계해 '시와 꽃이 있는 거리'를 조성할 때 세워졌다. 이곳에는 노천명의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와 주요한의 '샘물이 혼자서'가 있었지만 모두 친일 논란 끝에 철거됐다.2015년 서정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우린 문단엔 미당 재평가 바람이 불기도 했었다. 그의 시를 아끼는 후학들이 '미당 서정주 전집' 20권을 완간하기도 했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먹히는 듯했다. 하지만 3·1 운동 100주년의 거센 바람 앞에서는 천하의 미당도 버티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시비철거가 결정되자 부천시의 정치권, 시민사회 등에서는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크게 환영하고 있다고 한다. 정재현 시의회 행정복지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친일 잔재를 없애는 것은 민중에게 서러운 삶을 안긴 엉터리 지도자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며칠 후면 3·1 운동 100주년이 된다. 여기저기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3·1 운동의 명칭을 '3·1혁명'으로 변경하자는 말이 집권당 대표 입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물론 친일 시인을 쫓아내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을 나무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역사 바로 세우기'를 목적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어버리자 우리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때는 흉물스런 조선총독부 건물만 철거되면 일제 잔재가 모두 사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건물을 그냥 두고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가르쳤다면 효과가 더 컸을 것이란 자성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철거만이 능사는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미당의 시비도 마찬가지다. 시비는 그냥 놔두고 그 옆에 '친일 시를 쓴 시인' 정도로 작은 표시를 해 두었으면 어땠을까. 우리 언어를 한 단계 승화시킨 시를 쓴 '천재시인의 변절'을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교육 효과는 더 클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당 시비 철거소식이 못내 아쉬운 것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2-25 이영재

[이영재 칼럼]가지 않은 길

'불안한 평화 지속' 한번도 경험 못한것들북한 '핵 동결'에 사실상 美가 '보유 인정'새로운 경험할까봐 두려운게 솔직한 심정안보는 한번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읽어주는 50세 중반의 국어 선생님 목소리는 진지했다. '어린 너희가 뭘 알겠어?'라는 표정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얼마나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야 하는지 지금 너희는 잘 모를 것이다. 많게는 서너 번, 적게는 수백 번 결단의 순간과 맞닥뜨리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가 숲 속을 걷다가 만나는 두 길을 모두 갈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의 앞에 펼쳐지는 여러 갈래 길을 동시에 갈 수는 없다. 갈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기꾼이다.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건 없다. 어차피 그게 인생이니까." 시도 좋았지만, 책도 없이 시 전문을 한 자의 틀림도 없이 외운 선생님을 우리는 신뢰했다. 어린 나이에 선생님의 그 말이 왜 그렇게 쓸쓸하게 들렸는지 그때는 몰랐다.그날 교실 분위기가 무거웠던 건 시의 첫째 연과 마지막 연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1990년대는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가 높았다. '몰래카메라' '브레인 서바이버' '양심 냉장고' '러브 하우스'도 그랬지만 개그맨 이휘재의 '인생극장'은 내 맘대로 내용과 결론을 바꾸는 지금의 '인터렉티브 영화' 콘셉트로 인기를 끌었다. 매번 선택의 갈림길에 서고, 그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각기 다르게 전개되는, 특히 "그래! 결심했어"란 유행어도 남긴 인기코너였다. 그 '인생극장'을 보면서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났다. 선생님의 말처럼 그동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다. 문과가 아닌 이과를 택했다면, 그때 공부보다 운동권 학생이 되었다면, 이 직장이 아니라 저 직장을 택했다면, 이 사람이 아니라 저 사람을 만났다면 등등 '그때 저 길로 갔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 봤을 것이다.'가지 않은 길'이 다시 떠오른 건 3년 전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들으면서였다. 그리고 요즘은 매일 문 대통령의 말처럼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경험하고 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매일 벌어지는 검경의 압수수색은 논외로 치더라도 대법원장의 구속, 눈만 뜨면 나타나는 미세먼지, 일자리정책 앞에서 탄식하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은 물론, 대통령이 국민연금에 주주권행사를 직접 지시하거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발표하는 것도, 투기의 의혹 국회의원이 오히려 국민들을 향해 큰소리 치는 것도 생애 첫 경험이다. 이웃 일본과 최악의 관계도 새로운 경험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은 걸리겠지만, 우리가 제정신을 차리고 왔던 길로 다시 가서 다른 길을 택한다면 해결되는 것들이다.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적인 것들에 있다. 지난해 남북 정상 간 세 번의 회담, 그 과정에서 도출된 9·19 남북 군사 합의서로 인해 발생한 '불안한 평화의 지속'도 실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조만간 북한의 핵 동결이라는, 사실상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새로운 경험을 할까 두려운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앞엣것들과 다르게 안보가 한번 무너지면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때 국어 선생님은 이런 말도 했었다. "분명한 건 어느 한 길을 택할 경우, 다른 길을 택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인생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무서운 건 택한 그 길이 꽃길인지 아니면 가시밭길인지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담보로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1-28 이영재

[이영재 칼럼]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자의든 타의든 1년 내내 남북관계에 빠져경제는 장관 바뀔 정도로 최악의 길 걸어와나라 존망위기 몰린 '저출산 문제'도 심각늦었지만 청와대·정부의 '현실 직시' 다행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사람마다 각자 다르다. '먹방'을 틀어놓고 끊임없이 먹어대는 사람도 있고 격렬한 운동으로 터질 것 같은 압박을 달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도 많다. 하정우 같은 배우는 하염없이 걸으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나의 경우, 단연 공포영화 시청하기다. 영화를 보는 동안 공포에 쫄다보면, 스트레스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공포지수가 높을수록 효과는 배가된다. 최근 나홍진의 '곡성'을 봤다.역시 그는 천재였다. 무서웠다. 다시 봐도 정말 무서웠다.공포에 이리저리 쫓기다가 그 '장면'에 멈췄다. 아니 '장면'이 아니라 그 '대사'에서 멈췄다. 이 영화가 개봉되던 2016년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그 대사 말이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이 대사에서 가슴이 콱 막혔다.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그냥 살아왔다는 자책감이 들어서다. 갑자기 눈물도 핑 돌았다. 공포영화를 보면서도 이런 깨달음을 주는 나홍진은 정말 천재다. 2006년 영화 '타짜'의 정 마담이 "이거 왜 이래,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외쳐댄 이후, 영화 대사 한 줄이 이토록 유행한 적이 없었다. 유행어는 시대의 산물이다. 2016년 9월 1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정기국회 개원사에 사드 반대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언급하자 새누리당이 크게 반발했다. 이를 이유로 새누리당이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격앙하며 이렇게 말했다. "새누리당이 민생을 정말 죽이려 하는 것인가. 지금 '뭣이 중헌디'라고 묻고 싶다." 자의든 타의든 1년 내내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남북관계 하나에 빠져 지냈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김여정 김영철이 찾아온 이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6월 싱가포르 북미회담, 9월 문재인 대통령 평양방문으로 우리의 관심사는 온통 남북문제뿐이었다.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최근 2~3주 동안 김정은의 서울 답방 여부를 두고 벌인 해프닝은 끔찍했다. 한 해를 결산해야 할 중요한 시기를 우리는 그렇게 보냈다. 그런데 결론은 "연내 답방 어렵다"였다. 그럼에도 그의 답방이 왜 불발됐는지 청와대도 정부도 언론도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올해 우리 경제는 장관이 바뀔 정도로 끔찍했다. 고용률, 실업률 등 고용 관련 주요 지표들이 고용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악의 길을 걸었다. 길거리에 널린 빈 가게,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인력시장, 역대 최대인 실업급여 수급자. 52조원을 쏟아부은 일자리 예산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런데도 내년엔 경제가 더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또 있다. '저출산' 문제다. 이야말로 '냄비 속의 개구리'다. 지금은 고통스럽지도, 아프지도, 물론 무섭지도 않다. 정말 그런 날이 올지 지금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초'를 붙여야 할 정도로 저출산 문제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몰렸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 즉 여성 1인이 평생 낳는 아기가 0.95명으로 떨어졌다. 인구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 2.1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68명)을 크게 밑돈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닌가. 최근 12년간 저출산 대책에 120조원 이상 재정을 투입한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우리가 북한에 홀려 있는 사이 이렇게 수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2018년이 보름도 남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도 어느새 50% 이하로 떨어졌다. 취임 후 최저치다. 이제 사람들 입에서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라는 말이 흘러 나오고 있다. 이제야 모두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있는 모양이다. 처음이란 게 놀랍지만 어쨌든, 어제 문 대통령이 현 정부 들어 '첫' 확대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을 필요한 경우 보완조치 하라"고 지시했다. 늦은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제라도 청와대와 정부가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은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12-17 이영재

[이영재 칼럼]겨울이 오고 있다

경제상황 1년간 나빠질 것이란 전망 '53%'실업자·노사분규 증가 예상도 '50%' 넘어청와대의 '현실과 동떨어진' 잇단 발언들내부 의사결정 과정 심각한 문제있다는 의미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드라마 광팬이었다. 그 바쁜 시간에 언제 시간을 내 드라마를 보는지 궁금할 정도다. 지금도 '오바마와 미드' '오바마가 좋아하는 미드 추천'이란 제목으로 그가 좋아했던 드라마 목록이 돌아다니고 있다. 워싱턴 정가 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하우스 오브 카드', 이슬람 테러를 다룬 '홈랜드'는 오바마가 좋아했던 드라마들이다.특히 '왕좌의 게임'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로 꼽힌다. 제작사인 HBO에 방영도 하지 않은 시즌 6을 미리 보여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당시 제작사는 "그는 자유세계의 '리더'이기 때문에 미리 보여줬다. 물론 내용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했던 일화가 있다. '왕좌의 게임'이 오바마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것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이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 탓이 크다. '왕좌의 게임'은 가상의 세계인 웨스테로스 대륙의 연맹 국가 칠 왕국을 무대로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가문들의 치열한 권력 다툼을 그렸다. 명대사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는 왕국의 북부를 다스렸던 주인공 스타크 가문의 가훈이기도 하지만, 왕권 다툼을 하는 가문 모두에게 북쪽 방벽 너머 '죽음과 겨울을 몰고 오는 백귀(白鬼)'의 공격에 대비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비록 드라마이지만, 마치 우리 인류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들린다.오바마는 언젠가 "책과 드라마를 통해 현실 정치에서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드라마 시청이 단지 '시간 때우기 용'이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 오바마는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워싱턴 정가의 이면을, '왕좌의 게임'을 통해 국가 간 패권 다툼을 넘어서 인간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위기를 헤쳐나갈 지혜를 배웠다. 요즘 드라마가 얼마나 현실에 근접하는지 지난해 미국 대선에 개입했던 러시아 '댓글 공장' 요원들이 '하우스 오브 카드'로 미국 정치를 배웠다 해서 화제가 됐다. 우리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드라마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왕좌의 게임'처럼 실제 '겨울이 오고 있다'는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정치, 사회, 남북문제는 제쳐 두고라도 우선 경제만이라도 보자. 생산, 투자, 소비 등 핵심 경기지표들이 일제히 내림세를 보이면서 앞날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우리의 경제상황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이른바 한국 경제위기의 '10년 주기설'을 지적하고 있을 정도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외 경제 전문기관들은 한국 경제가 2%대 성장률이 굳어지는 추세적 경기하강에 진입했다는 경고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밖으로는 미·중 무역전쟁 후유증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세계 경제를 엄습하고 있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경제 상황이 앞으로 1년 동안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53%)이 좋아질 것이라는 예측(16%)보다 훨씬 높았다. 앞으로 1년간 실업자가 늘고 노사분쟁이 증가할 것이라는 견해가 50%를 넘었다.문제는 청와대의 안일한 현실 인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자동차는 생산이 다시 증가하고, 조선 분야도 세계 1위를 탈환했다"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처럼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우리의 자동차업계가 벼랑 끝 위기 상황인데도 이런 발언이 나와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에도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며 현실과 다른 발언을 했다. 또한 최근 한 세미나에서 청와대 비서관은 "위기라고 하면서 개혁의 싹을 미리 자르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는 발언으로 참석자들을 당황케 했다. 이는 청와대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다 1997년 IMF 한 달 전까지 "우리 경제는 괜찮다"고 말한 김영삼 대통령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요즘 유난히 드라마를 보며 현실을 인식한다는 오바마가 생각 나는것도 그런 이유다. 굳이 '왕좌의 게임' 대사를 다시 들추지 않더라도 모든 지표를 보면 진짜 겨울이 오고 있다. '왕좌의 게임' 결말을 모르듯, 얼마나 혹독하고 추운 겨울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는 겨울을 대비해야 하는데 주위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게 더 무섭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11-26 이영재

[이영재 칼럼]나폴레옹과 모니퇴르

동서고금 막론 권력자들 비판적 뉴스 경계당정, 1인미디어 '가짜뉴스 진원지'로 판단국가가 나서 손 보려한다면 부작용은 더 커표현의 자유등 민주주의 기본가치 훼손때문프랑스혁명 직후 분위기를 작가 앙드레 모루아는 '밀고가 시민의 의무였고, 단두대는 미덕의 제단이었다'며 한 줄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혁명은 많은 피를 불렀다.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 그 틈을 이용해 권력을 장악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그 지긋지긋한 피를 더 흘려서는 민심을 얻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언론이었다. 언론을 장악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언론과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쿠데타 직전에 73개였던 파리의 신문사가 1800년에는 13개만 남았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1805년 그는 비밀경찰 책임자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내 이익에 반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인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1811년 신문은 4개만 남았다. 모두 친나폴레옹계 신문이었다. 정부의 실정(失政)은 물론 국민의 피폐한 삶은 한 글자도 보도되지 않았다. '모니퇴르'도 그중 하나였다.모니퇴르는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시민들 편에 섰던 신문이다. 덕분에 혁명 후 프랑스 최고 언론의 위치에 섰다. 시민들은 모니퇴르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자 그의 편에 섰다. 나폴레옹이 권력을 잃고 엘바 섬으로 유배된 후에는 부르봉 왕조에 붙어 나폴레옹을 공격했다. 그러던 중 1815년 3월 1일.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했다.이 소식을 모니퇴르가 모를 리 없었다. 나폴레옹이 파리로 입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일. 그 기간 모니퇴르의 1면 헤드라인은 수없이 바뀌었다. '식인귀, 소굴에서 탈출 - 호랑이, 카르프에 나타나다-괴물, 그레노블에 야영-폭군, 벌써 리옹에 진입-찬탈자, 수도 100㎞에 출현-보나파르트, 북으로 진격 중 -나폴레옹, 내일 파리 도착 예정-나폴레옹 황제, 퐁텐블로 궁에 도착하시다-어제 황제 폐하께옵서 충성스런 신하들을 대동하시고 퇼드리 궁전에 납시었다.' 언론의 변절을 지적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은 비판적인 뉴스의 확대를 경계한다. 권력을 위태롭게 한다고 믿어서다. 나폴레옹은 언론과 전쟁을 치르면서 "적대적인 신문 4개가 총검 1천개보다 더 무섭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나폴레옹은 파리에 입성한 후 모니퇴르를 정부 기관지로 만들었다.후세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이 언론을 탄압하지 않았다면 프랑스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거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언론이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견제했다면 대륙 봉쇄령이나 스페인 전쟁, 러시아 침공은 수정됐을 것이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은 그의 권력은 더 오래갔을 거란 얘기다. 언론 탄압은 나폴레옹의 최대 실수였다. 나폴레옹도 파리의 신문들이 어용이란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그들의 기사를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정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외국에선 어떻게 평가되는지 궁금해 영국 신문들을 밀수해서 읽었다.당·정이 1인 미디어를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보고 규제하려는 모양이다. 지난 2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에 대해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사회의 공적으로, 사회 불신과 혼란을 야기하는 공동체 파괴범이며 민주주의 교란범"이라고 비판한 이후, 법무부와 민주당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법무부는 '가짜뉴스 엄정대처'라는 보도자료를 돌리고, 민주당 가짜뉴스대책특위도 전문가를 불러 토론회를 하는 등 가짜뉴스 근절에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그런데 걱정이다. 박정희 정권때부터 여러 번 독재 권력을 지켜본 입장에서 지금의 상황이 마치 과거로 회귀한 느낌이 들어서다. '유언비어'나 '괴담'이 아닌, 정말 가짜뉴스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 부작용은 분명 클 것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나서서 손을 보려 한다면 그 부작용은 더 크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민주주의 기본 가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1인 미디어를 규제함으로써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모니퇴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뇌 과학자 이반 로버트슨은 '승자의 뇌'에서 "진정한 승자는 자신의 자아가 늘 위험하고 사나운 개라는 사실을 알고, 권력이란 무거운 짐을 잘 사용하기 위해 그 개를 멀찍이 떼어놓는다"고 적었다. 지금 딱 어울리는 말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2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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