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근 칼럼

 

[전호근 칼럼]덕분에

대중교통은 혼잡하고 밀폐된 공간코로나19가 전파되기 좋은 환경뜻밖에도 감염사례가 나오지 않아방역당국 아무리 예방 애쓰더라도 평범한 사람들 노력없이는 불가능지하철을 탔다. 퇴근 시간 무렵이라 꽤나 북적인다. 외신으로 보거나 전해 들은 다른 나라의 텅 빈 지하철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선을 스마트폰에 고정하고 있지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거나 드물게 책을 펼쳐 든 이들도 보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킬 수 없을 정도로 가깝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말이 없다.예전이라면 이런 풍경이 괴기스럽게 보였겠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마스크를 써 표정은 보이지 않고 눈만 보이지만 사람들의 눈빛에서 무언가 간절하게 기다리는 마음이 읽힌다. 아마 나 또한 같은 것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러고 보니 아직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나는 이게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중교통 수단은 대개가 혼잡하고 밀폐되기 쉬운 공간인지라 코로나19가 광범위하게 전파되기 좋은 환경이다. 이렇게 감염 위험이 큰 곳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중교통 수단에서 뜻밖에도 감염 전파 사례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그 까닭을 의료진이나 방역 당국의 노력에서 찾는 것은 합리적이다. 아울러 환경관리 노동자들의 노고 또한 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공간이 있다면 그 또한 누군가 사람들의 손이 닿는 곳을 일일이 닦아내며 소독을 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결국 혼잡한 대중교통 공간에서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는 것은 의료진과 방역 당국의 노력에 더해 환경 노동자들의 노고가 빛을 발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하지만 나는 감염이 일어나지 않은 데에는 이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바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노력이다. 방역 당국이나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아무리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애쓰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예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그러니까 생업을 이어가며 부지런히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은 자신과 이웃 그리고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마스크를 단단히 착용하고 방역 수칙을 잘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웃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많이 모여도 안전한 것이다. 어떤 이는 이른바 깜깜이 감염이 대중교통 수단에서 일어났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고 보면 정작 깜깜한 것은 대중교통 수단이 아니라 감염되고 나서도 자신의 이동 경로를 밝히지 않는 이들의 마음 속이 아닐까.자신은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잘 쓰지도 않고 사람들을 만날 때도 조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신은 감염되지 않는다고 자신하거나 감염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혹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과 달리 치료를 받기 위해 일을 쉬어도 생계에 지장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특별함은 공동체의 안위를 염두에 두지 않는 어리석은 이기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에도 지하철이나 버스로 출퇴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대다수는 생산직이나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임금 노동자들이거나 영세 자영업자들이며 코로나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는 지하철을 탈 때면, 이 속에서 모종의 동맹 의지마저 느낀다. 내가 안전해야 당신이 안전하며, 당신이 안전해야 내가 안전하다는, 그리고 이곳의 안전은 절대 지켜져야 한다는 굳은 동맹 말이다.평범한 시민들의 방역과 관련된 노력은 놀라울 정도다. 마스크를 쓰거나 손을 자주 씻는 생활 수칙은 말할 것도 없고 모임이나 여행을 자제하는가 하면 심지어 명절 귀성마저 삼가고 있다. 우리는 감염 예방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하철에서 본 사람들의 눈빛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눈빛이었다.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렇게 굳건하다면 우리 공동체는 마스크를 벗고 살아가는 일상을 틀림없이 회복할 것이다. 우리 공동체가 다른 곳보다 안전하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버스와 전철 속의 안녕을 지켜나가는, 바로 당신과 나의 덕분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9-21 전호근

[전호근 칼럼]호우부지시절(豪雨不知時節)

때를 모르고 오는 비는 반갑지않다이 비가 그치면 얼마나 피해가 클까고대 동아시아 시대는 재난이 일상국가 부축적도 이들 백성 삶 보듬기지금도 매한가지 공동체 힘 모을때미안하게도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반갑지 않다.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이라.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 했는데 이번 비는 그렇지 않아서 잠 못 이루는 이들의 근심이 깊어가기만 한다. 이 비가 그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가지가 꺾이고 얼마나 많은 논밭이 물에 잠기고 또 얼마나 많은 귀한 생명이 떠내려갈 것인가.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재난은 일상이었다. 때마다 가뭄과 홍수가 일어나고 전염병이 창궐하여 삶을 위협하고 급기야 메뚜기 떼가 날아와 수확을 앞둔 농작물을 먹어치운다. 유학의 경전 '예기'의 기록에 따르면 작은 재난은 3년에 한 번, 큰 재난은 10년에 한 번꼴로 찾아온다고 했다. 그 때문에 나라가 9년 치의 곡식을 비축하지 못하면 부족하다 했고 6년 치의 곡식이 없으면 위급하다 했고 3년 치의 곡식조차 없다면 그런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고 했다. 국가가 부를 축적하는 이유는 재난이 닥쳤을 때 백성의 삶을 보살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재난이 닥치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이다. 유학의 이상 정치를 가리키는 말인 왕도(王道)는 바로 이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을 보살피는 통치원리였다. 맹자가 제나라에 갔을 때 제나라 왕이 왕도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늙어서 아내 없는 것을 '홀아비(鰥)'라 하고, 늙어서 남편 없는 것을 '과부(寡)'라 하고, 늙어서 자식 없는 것을 '홀로 사는 사람(獨)'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 없는 것을 '고아(孤)'라 합니다. 이 네 부류는 천하에서 가장 가난하고 하소연할 곳 없는 사람들인데 이들을 먼저 보살피는 것이 왕도입니다."맹자가 말한 '환과고독(鰥寡孤獨)' 중에서 '환(鰥)'은 본디 물고기를 가리키는 말인데, 홀아비는 근심 때문에 밤에도 눈을 감고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것이 마치 물고기와 같다는 뜻에서 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세 부류, 곧 과부, 홀로 사는 노인, 고아가 편히 잠든다는 뜻은 아니며 이들도 잠 못 이루기는 마찬가지일 테고 오히려 홀아비는 그중 사정이 가장 나은 편일지도 모른다.유학을 국가 통치 이념으로 나라를 세웠던 조선의 경우는 건국 초부터 재난이 닥쳤을 때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맨 먼저 보살피도록 명문화했다. 왕도를 표방했던 태조의 즉위교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홀아비, 과부, 고아, 의지할 곳 없는 노인(鰥寡孤獨)은 왕도 정치를 베풀 때 가장 먼저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니, 마땅히 불쌍히 여겨 돌보아야 할 것이다. 해당 지역의 관청에서는 굶주리고 궁핍한 사람을 구휼하고 부역을 면제해 주도록 하라."태종실록의 기사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백성들을 제생원에 모아들여 돌보게 했다. 의정부에 하교하기를, '환과고독(鰥寡孤獨)과 독질자(篤疾者), 폐질자(廢疾者), 실업(失業)한 백성들이 어찌 얼고 주려서 비명에 죽는 자가 없겠느냐? 내가 매우 불쌍히 여기니 여러 관청의 관리들로 하여금 빠짐없이 거두어 보살피게 하라'고 했다."이 기록에는 맹자가 이야기한 환과고독에 더해 독질자와 폐질자까지 아우르고 있다. 독질자란 불치의 병에 걸린 이들이고 폐질자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국가가 나서서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시되었던 것이다.지금도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이 발달했다지만 재난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어려운 가운데 유례없는 폭우가 쏟아져 온 나라가 최악의 물난리를 겪고 있다. 둑이 터지고 마을이 물에 잠기고 소들이 지붕 위에 올라갔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애통해 하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잃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재난이 닥치면 가장 크게 고통 받는 이들은 언제나 평소 어렵게 살던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이재민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공동체 모두가 힘을 합쳐 그들을 돕는 일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8-10 전호근

[전호근 칼럼]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

美흑인살해 촉발 BLM운동 확산속이들에 맞선 All lives matter시위얼핏 들으면 포괄된 가치의 말이나'발화된 상황' 안맞을땐 조롱의 뜻말은 자격있는 사람이 외칠때 진리지난 5월말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관이 흑인 시민을 무릎으로 눌러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살해당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는 숨지기 직전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을 했고 이후 여러 차례 '엄마'를 불렀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를 찾았던 것이다. 그를 살해한 경찰관은 그 말을 듣고도 "말을 할 수 있다면 괜찮은 건데?"라고 조롱하며 무릎의 힘을 풀지 않았고 결국 조지 플로이드의 숨은 끊어지고 말았다.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를 부르는 사람을 살해한다는 것은 어머니 앞에서 자식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잔인한 일이다. 인간으로서는 차마 저지를 수 없는 이 야만적인 살인사건은 한 시민이 소셜 미디어에 자신이 촬영한 동영상을 공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경찰관이 백인이었고 살해 당한 시민이 흑인이었기에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구호가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한국사회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에 공감하여 BLM(Black lives matter) 해시태그운동에 동참했다.인종 차별 반대 시위가 확산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반대하는 이들은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All lives matter)"는 구호를 외치며 인종 차별 반대 시위에 맞섰다.얼핏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은 아무 문제가 없을뿐더러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보다 오히려 더 나은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의 생명' 안에는 '흑인의 생명'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란 그 말이 발화된 상황과 떼어놓을 수 없다. 어떤 말이 진리에 가깝기 위해서는 그 말이 나오게 된 상황이 그 말과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어떤 혐오도 담고 있지 않지만 지하철 경로석에 붙여두면 경로우대에 대한 조롱으로 읽힐 수 있다.마찬가지로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도 그 자체로는 어떤 혐오도 담고 있지 않지만 그 말을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내뱉을 경우에는 조롱과 경멸의 표현이 된다. 소중하게 여겨야 마땅한 '모두의 생명' 속에 흑인의 생명은 포함시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자들이나 할 수 있는 염치없는 말이다.말은 누구를 향해 하느냐가 중요하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흑인의 생명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과 흑인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구체적 사건에서 발화된 것이며, 백인의 생명은 소중히 여기면서 흑인의 생명은 동등하게 중시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절규하듯 외치는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이미 흑인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향해 외치는 말이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BLM운동이 전세계로 확산되는 가운데 지난 6월14일 영국에서는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이에 반대하는 극우파 시위대가 충돌했는데, 이 과정에서 흑인 시위대에게 맞아 피 흘리던 한 극우파 백인 시위자를 흑인 시위자가 도와서 피신시킨 것이다. 아마도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자신을 쫓던 악랄한 경찰관 자베르의 생명을 구해준 장발장의 모습이 저랬을까싶다. 장자크 루소는 '에밀'에서 이렇게 말했다."당신의 학생이 모든 사람들을, 심지어 인간을 경멸하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도록 가르치라. 그래서 그가 어떠한 계급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계급에 속하도록 만들라. 학생 앞에서는 연민과 동정심을 가지고 인류에 대해 말하며, 결코 경멸을 담지 말라. 인간이여, 결코 인간을 모욕하지 말라."말은 누가 하느냐도 중요하다.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은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을 구한 트라팔가 광장의 흑인이 외칠 때 진리일 수 있다. 오직 그만이 모든 사람을 향해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6-29 전호근

[전호근 칼럼]잊지 말아야 할 것

코로나로 美 일간지 부고 2배 이상인류 진화사상 죽음의 경고도 의미바이러스와 온몸 투쟁 역사에 동참고대 로마 개선행렬 '메멘토 모리'승자와 모든 산자들에 대한 경계로미국의 어느 일간지에 16개면에 달하는 부고(訃告)가 실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들의 수가 많아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라 한다.기사에 실린 해당 신문의 부고면 사진이 또렷하지 않아 내용을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부고면에 이름을 올리는 이들이라면 저명한 인사들은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라면 신문 기사에 이름이 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 부고면에는 부고 당사자의 이름과 사진,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삶이 적혔을 법한 짧은 글들이 빼곡히 배열되어 있었는데 지면을 주의 깊게 살피다가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신문의 부고면은 일종의 묘비명이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이 묘비명에서나마 기록되기 시작한 건 동서양을 통틀어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의 '사생활의 역사'에 따르면 서양의 경우 19세기에 접어들어서야 자기 자신만을 위한 독창적인 이름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개별화된 묘비명이 세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이 점은 이름을 각별히 중시하는 문화전통을 지니고 있는 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해야 세울 수 있는 5천자가 넘은 신도비는 말할 것도 없고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글자를 새기는 묘갈명이나 묘지명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양반 신분 계층이 아니면 꿈도 꿀 수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이 작품에서나마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일러야 패관 문학이 유행하기 시작한 18세기 후반이었으며 묘지명을 새길 수 있게 된 것은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생각해보면 인류는 진화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병원체와 싸우며 삶을 이어왔다. 그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은 어쩌면 그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인지도 모른다.진화의 역사에서 보면 의미 없는 삶이 없듯 의미 없는 죽음도 없다. 그들이 죽음으로써 경고해주었기 때문에 인류가 위험을 인지하고 생존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치료하거나 돌보거나 떠나보내며 인간에게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번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어떤 사람은 살아남았고 어떤 사람은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죽은 이들이 이번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그들이 온몸으로 바이러스와 싸웠다는 사실이다. 그들 또한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기나긴 진화의 역사에 동참한 것이다.고대 로마의 공화정 시절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은 성대한 전차 퍼레이드를 벌이며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 성대한 전차 행렬에서 가장 특이한 존재는 장군의 옆 자리에 앉아 쉴 새 없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를 외치는 한 사람의 노예였다. 모든 사람이 승자의 영광을 구가할 때 그가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을 되뇌는 까닭은, 승자의 영광이란 전쟁터에서 죽은 모든 이의 죽음을 딛고 선 것이며, 장군 당신 또한 언젠가는 죽을 목숨이 분명하니 그들 앞에서 결코 오만하지 말라는 경계였을 것이다.어차피 인간의 삶은 끝이 있는 것이고 보면 우리는 누구나 사망률 100%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메멘토 모리'는 승자의 오만에 대한 경고일 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이에 대한 경계다. 죽음이 저토록 가까이 있는데 마치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인 것처럼 살아간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거니와, 우리 모두 누군가의 삶과 죽음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큼 우리가 왜 서로 연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알려주는 절실한 대답은 없을 것이다.신문의 부고면은 내 이름 또한 언젠가 저곳 한 귀퉁이에 자리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코로나 이후의 삶이 이전과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삶을 생각하기 이전에 나는 기억할 것이다. 반드시 그들의 이름이 부고면에 실려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내 이름이 반드시 빠져야 할 이유 또한 없다는 사실을./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5-18 전호근

[전호근 칼럼]비누 두 장과 118만원

코로나19 발생하자 대구서 '사투' 다큐멘터리 방송 후원품 개봉장면시가보다 배송비큰 비누등장에 떨려암보험 해지해 기부한 지체장애인우리는 '무언가' 넘어서고 있는 것한 달 전 대구 경북지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집단감염이 대규모로 발생하자 온 나라의 의료진과 소방대원, 자원봉사자들이 대구 경북지역으로 달려가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였다. 당시 한 방송사에서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제작하여 방송했다.방송 중에 코로나19 환자를 천안으로 이송하는 소방대원들이 출발 전에 기저귀를 챙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취재기자가 환자용이냐고 묻자 그중 한 대원이 해맑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저희들이 사용하는 겁니다. 감염의 우려가 있어 중간에 주유소를 들러도 보호복을 벗을 수 없기 때문에 기저귀를 차는 겁니다."이어서 간호사들이 잠시 마스크를 벗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카메라에 비쳤다. 콧등에는 다들 밴드를 붙이고 입가에는 마스크 자국이 완연했는데 이마에는 저마다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그들의 주름은 근심의 흔적이 아니라 방호복을 착용한 흔적이다.방송에 따르면 방호복을 입고 움직이면 전신이 금세 땀으로 흠뻑 젖고 고글까지 착용하면 습기가 차서 앞도 잘 보이지 않는데 그렇게 24시간을 3교대로 근무하며 환자를 보살피다보니 코피를 쏟거나 탈진해 쓰러지는 간호사들이 하루에 한 명 꼴로 나온다고 한다.밤샘근무를 마치고 나오는 한 자원봉사자에게 기자가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거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애초 기약 없이 왔습니다."갓 스물이 된 그 청년은 앞으로 소방대원이 되어 인명을 구조하는 일에 함께 하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했다.대구에 답지한 후원물품을 개봉하는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자원봉사자들의 분주한 손놀림을 따라가다가 작은 종이봉투를 비추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달랑 비누 두 장이 들어 있었다. 봉투를 연 사람의 손이 잠시 떨렸고 화면을 보고 있던 내 마음도 따라서 떨렸다.아마 저 비누 두 장의 시가(市價)는 배송 비용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내는 비용이 더 들었을 테니 시장 원리에 따르면 비누를 보낸 것은 보내지 않은 것만 못한 일이 된다. 시장의 정의는 상호이익인데 보낸 사람과 받은 사람 모두의 이익에 마이너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저 비누 두 장이 필요한 사람에게 배달된 것은 시장의 논리를 넘어서는 다른 무언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게 뭔지 지금까지 생각중이지만 분명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3월 2일에는 서울의 한 주민센터에 어느 시민이 찾아와 봉투를 건네며 "대구 코로나19 피해 주민을 위해 써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봉투를 열어보니 현금 118만7천360원과 함께 편지가 들어 있었고 편지에는 "나는 기초수급자로 그동안 나라에서 생계비를 지원받아 생활했다. 대구 코로나19 피해 소식에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 준비했다"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다리가 불편해 지체장애 5급 판정을 받은 시민으로 7년간 유지하던 암보험을 해지하고 그 돈을 주민센터 직원에게 건넨 것이라고 한다.이보다 하루 앞선 3월 1일에는 광주공동체 특별담화문이 발표되었다. 대구 경북지역에 병상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광주가 대구 경북지역의 환자를 받아들여 치료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후 광주에서 치료를 받았던 환자는 전원 완치되어 대구로 돌아갔다.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험지로 달려가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본 의료진과 소방대원들, 생업을 제쳐두고 이웃을 위해 궂은 일을 맡아준 자원봉사자들, 비누 두 장을 기부한 이름 모를 시민의 아름다운 마음, 보험을 해지한 기초생활수급자의 성금 118만원,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이웃을 받아들여 정성껏 치료해 건강을 되찾아준 광주공동체의 아름다운 배려. 이들이야말로 지난 몇 주 간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영웅들이다. 특히 비누 두 장과 118만원의 기부는 도움을 받아야 할 이들이 보내는 도움의 손길일지 모른다. 희망은 늘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굳이 서둘러 나의 울타리를 치고 남의 마스크까지 빼앗아가며 허둥대는 이기적인 사례와 비교하지 않아도, 인간과 공동체의 품위는 어디에서 바닥을 드러내는지 보인다. 희망이 보이는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언가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4-06 전호근

[전호근 칼럼]우한(武漢)과 우정

코로나19로 봉쇄 한 달 지난 '우한''지음' 백아·종자기 우정 자리한 곳인류가 만나보지 못했던 바이러스감염 우려로 인한 '혐오'를 멈추고최선 다해 싸우는 이들을 응원해야나는 2009년 여름에 우한(武漢)에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우한은 내게 중국이 혼돈의 국가라는 인상을 남겼다. 고색창연한 고대의 유적과 현대식 마천루가 마주 보고 있었고 화려한 백화점과 이웃한 곳에 오래된 전통시장이 불을 밝히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한마디로 전통과 현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혼재하는 불가사의한 도시라 하겠지만, 또한 내가 아는 우한은 가장 오래된 우정을 간직한 고장이기도 하다. 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이 깃든 고금대(古琴臺)가 자리한 곳이기 때문이다.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은 동아시아에서 벗에 관한 가장 오래된 이야기다. 백아는 거문고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다. 그가 거문고를 타면 말들이 춤을 출 정도로 아름다운 연주였지만 동시대의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아가 산속에서 홀로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데 나무꾼 종자기가 그곳을 지나다가 그의 연주를 듣게 되었다. 그때 마침 백아는 태산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는데 종자기가 듣고는 "훌륭하구나, 거문고 연주여! 태산처럼 높고 높구나!"라고 했다. 잠시 뒤에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연주하자, 종자기가 또 말하길 "참으로 훌륭한 연주다. 넘실대는 것이 흐르는 물 같구나!"라고 했다. 백아는 비로소 자신의 음악을 알아듣는 벗을 만난 것이다.종자기가 죽었을 때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어버렸다. 이후로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는데 이를 백아절현(伯牙絶絃,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버림)이라고 한다. 백아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거문고 연주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여기까지가 《여씨춘추》에 전해져오는 이야기이고 우한의 고금대는 이 두 사람이 우정을 나눈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두 사람이 처음 만날 때 백아가 연주한 두 곡이 고산곡(高山曲)과 유수곡(流水曲)이다. 이후 이 음악은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인들의 우정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고 이로부터 마음에 꼭 맞는 벗을 가리키는 지음지우(知音之友,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알아듣는 친구)라는 말이 나왔다.그런데 종자기가 죽으면서 두 사람의 우정은 끝났다고 여기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로부터 천여 년 뒤 당나라에 유학한 신라의 최치원은 비 내리는 가을밤에 등불을 밝히고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리워했고, 18세기 조선의 박지원과 이덕무는 만약 벗이 있다면 높은 산(高山)과 흐르는 물(流水)에 자신의 마음을 담겠노라 노래했으며, 김정희와 전기는 그림 속에 두 사람의 우정을 그려 넣었다. 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은 한 시대나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2천년도 더 된 긴 시간을 넘어 이웃나라까지 전해진 것이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이 깃든 유서 깊은 도시 우한이 중국 당국에 의해 봉쇄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우한을 오가던 항공편이 끊어지고, 기차 또한 우한의 주요 역을 무정차 통과하고 있으며 우한 주변에는 검문소가 들어서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넘어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죽는 일까지 일어나면서 우한 시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더욱이 감염을 우려하는 외부의 사람들에게 우한은 마치 바이러스의 온상처럼 여겨져 우한 사람을 혐오하는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감염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로부터 감염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일은 나와 그가 같은 존재라는 생물학적 자기고백이다. 그렇다면 감염된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은 자기혐오와 다른 것이 아니다. 우한 밖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우한 시민들이 두려워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감염의 가능성은 혐오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함께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뿐이다. 우한이 안전해져야 우리가 사는 곳 또한 안전해지기 때문이다.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류가 이제껏 만난 적이 없는 새로운 감기바이러스로 이에 대한 대처는 전 인류의 문제다. 생물 분류상 단일종인 인류의 특성상 한 사람에게 위험한 것은 곧 인류 전체에게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선을 다해 굳게 싸우고 있는 이들을 우정으로 응원하는 일이다. 너를 살려야 나도 사는 것이니 얼마나 절박한 우정인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2-24 전호근

[전호근 칼럼]탕임금의 목욕통

통에 '날마다 자신 새롭게한다'는 뜻'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글귀새겨세상이 변함없이 진부하게 느껴질때자신이 낡은건 아닌지 되돌아보고주관 새롭게하면 객관세계 새로워져동아시아 역사상 최초로 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바꾼 인물은 탕(湯)임금이다. 3600년 전 그는 폭군이었던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桀)을 쳐부수고 상나라를 세워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을까? 그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리를 규합하거나 군대를 양성하여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아니라 놀랍게도 날마다 목욕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일이었다. 그의 목욕통에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유명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를 탕지반명(湯之盤銘, 탕임금의 목욕통에 새겨진 글이라는 뜻)이라 하는데 그 내용이 유학의 고전 '대학'에 전해온다. 완전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평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짧은 문장이지만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고대의 한문은 글자 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뜻을 전달하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조사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주어나 목적어까지 생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문장도 그렇다. '구일신(苟日新)'은 '만약 날마다 새로워진다면'이라고 옮길 수 있는데, 원문 어디에도 주어나 목적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읽으면 누가 무엇을 새롭게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무의미한 동어반복이 되기 십상이다.번역하는 이들은 이런 경우를 만나면 앞뒤의 맥락을 더듬어 주어와 목적어를 찾아 넣어서 문장을 완성한다. '대학'의 앞뒤 문장을 참고하면 이 문장의 주어는 '나'이고 목적어는 '나 자신', 정확하게는 내 안에 있는 '덕(德)'이다. 그러니까 '구일신(苟日新)'은 '만약 내가 나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으로 옮길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하고 나면 이어지는 '일일신(日日新)'의 뜻은 저절로 분명해진다. '일일(日日)'은 하루하루, 그러니까 매일이라는 뜻이다. 결국 이 두 구는 내가 나 자신을 새롭게 하면 나에게 다가오는 나날, 곧 객관 세계가 새로워진다는 뜻이다. 마지막 구 우일신(又日新) 또한 같은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나에게 다가오는 객관 세계가 새로워지는 '일일신(日日新)'이 조건이 되면 새로움을 맞이하는 주체인 나 또한 새로워지는 것이다.탕임금은 왜 이 글을 목욕통에 새겼을까? 목욕은 자신을 새롭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고대인들은 목욕통을 '감(鑑, 거울)'이라 했는데 그 까닭은 목욕통에 물을 가득 채워놓고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는 거울로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탕임금은 목욕할 때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깨끗하게 닦았는지 살펴보기 위해 이 글을 자신의 목욕통에 새겼던 것이다. 날마다 몸을 깨끗하게 닦으면서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하고자 하는 뜻을 새겼으니, 목욕통에 새기기에 이보다 맞춤한 글귀가 있으랴.내가 새롭지 않은 채로 하루를 맞이한다면 내가 맞이하는 세상 역시 새로울 것이 없다. 나날이 새롭지 않다면 내가 맞이하는 나날이 구태의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탕임금의 목욕통에 새겨진 글은 바로 세상이 새롭지 않고 진부하다고 느낄 때, 혹시 정말 진부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 아닌지 돌아보도록 일러준다. 살아가면서 날마다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새롭게 하면 '나날이 새로워진다(日日新)'는 것이 어쩌면 '나날이 좋은 날(日日是好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나 자신, 나의 주관을 새롭게 하면 나에게 다가오는 객관 세계가 새로워지고, 객관 세계가 새로워지니까 내가 또 새로워지는 것이다.이제 문장을 완성해보자."만약 날마다 나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내가 맞이하는 나날이 새로워질 것이고, 나날이 새로워지면 나 자신이 또 새로워질 것이다."세상이 참 지루하고 진부하다고 느껴질 때면 탕임금처럼 자신을 돌아보며 물음을 던져보자. 정말 세상이 진부한 건지, 아니면 내가 진부한 건지. 뻔한 좌우명이라고? 천만에, 혁명을 이룬 이가 날마다 새겼던 글귀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1-13 전호근

[전호근 칼럼]책 도둑

30년전 '논어 완질' 훔쳐갔던 청년새삼 그 일이 떠오른 까닭은얼마전 논어 번역서 탈고하며올바로 읽고 풀이했는지 두려움과그에게 뭘 훔치진 않았나 의심 때문나는 대학원을 다닐 때 양현재(養賢齋)라는 곳에서 조교로 일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금속활자본 고서가 소장되어 있었고 그중에는 7책으로 구성된 논어 완질도 있었다. 그 책과 얽힌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도둑이 들어 논어 완질을 훔쳐간 것이다.그날 아침 출근해서도 도둑이 든 줄 모르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책을 들고 와 이 책이 여기 있던 물건이 맞느냐고 물었다. 나는 비로소 서가의 한 곳이 텅 비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깜짝 놀라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그는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였다. 이야기인즉은 그날 도둑이 이곳에 들어와 책을 훔쳐 가지고 나가다가 경비의 눈에 띄어 붙잡혔다는 것이다. 이어 나에게 경찰서로 가서 참고인 진술을 하고 책을 도로 찾아가라고 했다.밖에 나갔더니 경찰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앞쪽에는 경비 아저씨가 앉고 나는 뒷자리에 앉았는데 뒷좌석에는 이미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옆에 있던 경찰로 보이는 이에게 말을 걸었다."유식한 도둑인가 봅니다. 아니 어떻게 그 책이 귀한지 알아보고…."대꾸가 없어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살피려던 나는 흠칫 말꼬리를 흐렸다. 경찰인 줄 알고 말을 걸었던 그 사내의 손목에 채워진 금속물질이 어두운 차 안에서도 차갑게 반짝거렸던 때문이다.그제야 그의 초라한 행색이 눈에 들어왔다. 피의자는 대략 20대 후반으로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그는 낡은 청바지에 때 묻은 운동화, 항공점퍼 비슷한 윗도리를 걸치고 있었는데 몸에서 다소 불쾌한 냄새도 났다.그는 이미 모든 걸 체념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숨소리마저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전문적인 고문서 도둑 같아 보이지는 않았고 일시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책을 훔치다 잡힌 것으로 보였다. 차를 타고 경찰서까지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도둑이 도둑다워 보이지 않는 데다 그가 나와 비슷한 또래인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에서 공부하며 논어를 읽는데 저 사람은 어쩌다가 학교에 몰래 들어와 논어를 훔치는 사람이 되었을까. 꼬리를 무는 상념 끝에 나는, 성현의 말을 훔치는 나 같은 자나 성현의 글이 적힌 책을 훔치는 그나 피차에 나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침묵 속에 경찰서에 도착한 뒤 나는 담당 형사에게 따로 그 도둑에게 다른 전과가 있는지 물었다. 예상대로 그는 초범이었다.이윽고 조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경찰에게 어제 퇴근한 시간, 그리고 다시 출근한 시간, 또 그가 훔친 책 외에 달리 없어진 물건은 없다고 일러주었고 경비 아저씨도 자기가 목격한 일을 진술했다. 그런 뒤 경찰은 이 책이 권당 얼마나 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대략 3만원 정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당시 그보다 못한 책들이 인사동에서 권당 5만원을 호가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가능하면 금액을 적게 이야기하는 것이 그 도둑이 그나마 처벌을 약하게 받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경비 아저씨가 저렇게 귀한 책이 그리 쌀 리가 있겠느냐며 자꾸 10만원이 넘는 물건이라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약간의 언쟁마저 있었지만 내가 한사코 3만원이라고 주장해서 결국 조서에는 훔친 물건의 액수가 21만원 상당의 책자 7권인 걸로 기록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다였다.그 일이 있기 전에 나는 어느 옛 책에서 선비의 집에 쌀을 훔치러 들어갔던 도둑이 선비가 밤늦게까지 글 읽는 소리를 듣고 훔치기를 단념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감동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그 이야기가 과연 사실인지 의심스러워졌다. 과연 배고픈 도둑의 귀에 선비의 글 읽는 소리가 들어왔을까.30년도 더 된 일이 떠오른 까닭은 얼마 전 논어 번역서를 탈고하면서 내가 그동안 논어를 올바로 읽고 풀이해 왔는지 두려운 마음과 함께 이런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지키던 책을 훔치려 했지만 혹 내가 그의 무엇을 훔쳤던 것은 아닌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12-02 전호근

[전호근 칼럼]그레타 툰베리

영향력 커진 스웨덴의 중학생매주 금요일 학교수업 거부하고의사당 앞에서 홀로 '기후 시위'급기야 선생님까지 함께 피켓들어인류의 미래 감히 빼앗을 수 있나얼마 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조롱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간 보아온 트럼프의 인격을 감안할 때 전혀 놀랄 일이 아니지만 전 세계에서 화석 연료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의 대통령이 어떻게든 의견을 표명해야 할 정도로 툰베리의 영향력이 커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일이다.내가 툰베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지난 학기 '세계와 시민' 교과목을 강의하면서였다. 학생들에게 '세계 시민 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일국 단위의 시민운동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한 다음 그런 한계를 돌파한 사례를 찾다가 툰베리를 알게 된 것이다.툰베리는 스웨덴의 중학생으로 올해 열여섯 살이다. 애초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고 나서 어른들이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기리라 기대했으나 어리석은 어른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걸 금방 깨닫는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한 끝에 그는 매주 금요일 학교 수업을 거부하고 스웨덴 의사당 앞에서 홀로, 기후를 위한 스트라이크를 시작했다.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에 툰베리의 제안을 거절했던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고 급기야 선생님까지 함께 피켓을 들더니 마침내 학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교 측은 자신들의 학생에게 일어날 수업결손을 보충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학생을 돕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다. 나는 정말 놀랐다. 학생이 수업을 거부하고 하는 일에 선생이 참여하고 학교가 따르는 일은 다른 곳에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처음 툰베리가 수업을 받지 않고 피켓을 들겠다고 했을 때 그의 부모와 선생, 다른 어른들 모두 반대하면서 한 말은 이렇다.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고 장래 뛰어난 기상과학자가 되어 기후문제를 해결하라고. 하지만 툰베리는 그들의 거짓말을 믿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이미 세상에 넘칠 정도로 많지만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스스로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른들은 기후 변화를 중지하기 위해 무엇을 중단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제 어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 어른 말을 잘 들을 때가 아니라 아이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에서 보이저 1호가 61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촬영한 지구 화상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했다."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먼지 같은 작은 점,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다. 그런 지구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위기는 한 개인이나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없다. 인류 탄생 이래 처음으로 인류가 모든 차이와 경계를 넘어 실천해야 해결이 가능한 문제에 맞닥뜨린 것이다. 만약 이 위기를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 미래는 없을 것이다.툰베리는 가진 게 없다. 그가 가진 건 그의 미래뿐이다. 그것은 툰베리의 미래일 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이기도 하다. 어떻게 감히 그에게서 미래를 빼앗을 수 있겠는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10-21 전호근

[전호근 칼럼]아침에 도를 듣고자 하면

바라던 일 이루면 여한 없다던 공자윤봉길, 문자 그대로 목숨 바쳐 거사논어 어떻게 읽었는지 알 수 있어 선서문 말미 적힌 국호 '대한민국'그가 지키려 했던 나라 명명백백논어를 읽다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는 대목에 이르러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매사에 중용을 따르는 공자가 어찌하여 '죽어도 좋다'는 과격한 말을 했을까? 설마하니 도를 듣고 나면 죽어야 한단 말인가? 목숨 바칠 만한 도가 과연 있기나 한 걸까? 공자는 나이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고 하니 그때 도를 들었다고 할 법한데 왜 죽지 않고 73세(혹은 74세)까지 살았을까?별의별 의심이 꼬리를 물어 생각이 길어졌지만 이 말을 꼭 죽겠다는 결연한 각오가 아니라 간절히 바라던 일을 이루고 나면 더 이상 여한이 없겠다는 일상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예컨대 나도 한때는 십삼경을 모두 풀이하고 나면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물론 그때도 정말 죽을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이렇게 기억의 한 구석으로 밀려났던 논어의 이 대목이 다시 염두에 놓인 건, 언젠가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장부가 한번 집을 나서면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음)'이라고 적힌 글씨를 보았을 때였다. 처음에는 어떤 허풍쟁이가 저런 허튼소리를 했는가 싶어 아연했다가 종내 그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글을 남긴 사람이 매헌 윤봉길이었고 그의 삶이 과연 저 말과 부합했기 때문이다. '조문도 석사가의'를 문자 그대로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아, 그렇구나. 죽기를 기약하지 않고는 도를 들을 수 없는 것이로구나. 그렇다면 저녁에 죽고자 함은 아침에 도를 듣기 위해서구나. 이 사람은 논어를 제대로 읽었구나. 논어에 이르길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삶을 구하기 위해 인(仁)을 해치는 일은 없고 자신을 죽여 인을 이룬다 하지 않았던가.그는 1930년 3월 6일 고향 예산을 떠나 중국 상해로 망명했는데 2년 뒤 일제가 상해를 침략하자 고향의 동생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집을 떠날 때 각오한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의 결심을 이번에 실행한다. 너에게 부탁하니 부모님을 공양하라. 효가 나라사랑의 근본이다."마침내 1932년 4월 29일, 일제가 전승 축하행사를 열고 있던 상해 홍구공원에 간 그는 일본군 장교들이 모여 있던 단상 위로 폭탄을 투척했다. 이 의거로 일본군 대장 시라카와는 폭사하고 노무라 중장은 실명, 우에다 중장은 다리가 절단되는 등 다수의 일인들이 죽거나 다쳤다.거사 후 체포된 윤봉길은 한 달이 채 안 된 5월 25일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12월 19일 가나자와 육군 형무소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그의 나이 25세였다. 일제는 그의 시신을 공동묘지로 가는 길목에 매장하여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게 함으로써 끝까지 저열한 보복으로 그를 모독했다. 그의 시신은 광복 이후 고국으로 옮겨져 현재는 효창공원에 안장되어 있다.짧은 삶을 살았던 윤봉길은 논어를 풀이하거나 번역한 적이 없지만 그의 삶을 보면 그가 논어를 어떻게 읽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논어를 읽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어떤 자는 논어를 읽고 나라를 팔아먹는다. 논어는 읽는 사람의 그릇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것이다.p.s. 다음은 윤 의사가 거사에 나서기 전 작성한 선서문의 내용이다."나는 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서하나이다. 대한민국 14년 4월 26일 선서인 윤봉길 한인애국단 앞"말미에 분명히 적혀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에서 그가 지키려 했던 나라가 대한민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48년 이전에는 대한민국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눈을 씻고 살펴야 할 것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9-09 전호근

[전호근 칼럼]오지 않은 학생들의 이야기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결석한 학생열외자·꼴찌들의 이야기에 가까워내가 궁금한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모든 것을 던져 이룬 일등의 성취사람들 삶을 보려하지는 않아…지난 학기 학교 축제 기간 중 강의에 출석하는 학생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강의를 듣기 위해 한결같이 출석하는 성실한 학생들을 바라보고 정성을 다해 강의했지만 나오지 않은 학생들에게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왜 결석했을까? 나는 강의 들으러 온 학생들이 왜 왔는지는 궁금하지 않았지만 결석한 학생들의 사정은 무척 궁금했다. 학생들이 강의에 출석하는 이유는 거개가 같을 테지만 결석한 이유는 다 다를 것이었기 때문이다.축제가 끝난 뒤 나는 지난 시간 출석하지 않았던 학생들에게 무슨 재미난 일이 있어서 강의에 나오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다.한 학생은 신종 독감에 걸렸는데 친구들에게 옮길까 봐 안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이 학생은 친구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이타적인 이유로 결석한 것이다. 거룩한 학생이다.또 다른 학생은 학과대표로 뽑혀 축구 시합에 나가느라 강의에 오지 못했다고 했다. 시합에 이겼느냐고 물었더니 아깝게 졌다고 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축구에 인저리 타임이 있는 것처럼 내 강의에도 인저리 타임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뛰라고 이야기했다.또 한 학생은 게임을 하느라 밤을 새워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아주 솔직한 학생이다. 자신에게 불리함에도 진실을 밝힌 학생에게 칭찬을 해주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또 어떤 학생은 미리 나에게 사정을 알리고 허락을 구했다. 학교에서 개교 7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있어 티켓을 신청했는데 운 좋게 당첨되었단다. 무슨 공연인지 물어보았더니 무려 프랑스 오리지널팀을 초청하는 레미제라블 뮤지컬이란다. 나라도 강의 빼먹고 갈 것이라고 이야기해줬다.또 병무청 신체검사를 받느라 참석하지 못한 학생도 있었다. 국가의 정당한 부름에 따른 이런 학생은 국가가 보호해야 할 것이다.결석하지 않고 강의실에 온 학생 중에는 지난밤 학과 주점에서 과음한 탓에 강의시간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잔 학생도 있었다. 내 강의가 얼마나 듣고 싶었으면 저런 몸을 이끌고 강의실까지 찾아왔을까 싶어 감동받았다. 내가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실은 이런 학생들 때문이다.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결석한 학생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일등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열외자, 꼴찌들의 이야기에 가깝다. 하지만 내가 그들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세상 사람들은 일등 이야기를 열심히 퍼나르지만 일등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뻔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축구 황제로 불렸던 에우제비오는 "모든 경기를 마지막 경기라 생각하고…", 히딩크 감독은 "나는 아직도 승리에 배가 고파서…" 죽어라 뛰었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 미국육상대회에서 마지막 순간 결승선을 향해 몸을 던져 일등을 차지한 허들 선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김연아 선수의 발이나 이상화 선수의 발이나 모두 상처투성이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던져 이룬 일등의 성취는 영광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 해도 재미는 별로 없다. 사람들이 삶을 보려 하지 않고 일등으로 귀결된 경쟁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꼴찌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이야기가 다 달라서다. 프로야구 원년 팀 중 만년 꼴찌였던 '삼미 슈퍼스타즈'만이 유일하게 소설로 쓰인 까닭도 다르지 않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치기 힘든 공을 치기 위해 밤새 배트를 휘두르고 잡기 힘든 공을 잡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일등들은 죽었다 깨나도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그러니 말이다. 일등들은 꼴찌들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들은 단지 당신들처럼 모든 것을 던지지 않았을 뿐이다. 당신들이 던져버린 것들 중에, 그리고 그들이 던지지 않은 것 중에, 혹 던지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지 어찌 알겠는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7-29 전호근

[전호근 칼럼]아버지의 아버지생각

커다란 고무신 물끄러미 바라보며할아버지 그리워하던 아버지 얼굴그후로 기억에서나마 만날수 있어공광규 시인 '소주병' 뜻밖에 읽고초라해진 나의 부친 초상과 같았다"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가 읽던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은 손때(手澤)가 남아있기 때문이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쓰던 그릇을 쓰지 못하는 것은 입때(口澤)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유학의 고전 '예기'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왜 아버지의 경우에는 '책'이고 어머니의 경우에는 하필 '그릇'을 예로 들었는지 다소 유감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문제를 따지는 일은 다른 기회로 미루기로 하자. 어쨌거나 이 말은 지금 곁에 없는 어떤 사람을 추억하는 데 평소 그가 애용하던 사물이 때로 긴요한 역할을 한다는 작은 진실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나에게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사물이 있다. 나는 중학교 시절 이후로 지금껏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이곳에서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어릴 때부터 집을 떠나 서울에서 홀로 생활했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버지가 서울에 오신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학교에서 학부모 면담이라도 하게 되면 아버지가 올라와서 선생님을 만나곤 했고 그런 경우는 일 년에 한두 번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아버지는 생전에 서울 땅을 밟아본 적이 별로 없었다.아무튼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적 진학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아버지가 서울에 왔을 때의 일이다. 둘이서 시장 길을 지나고 있었는데, 문득 아버지가 보이지 않기에 뒤돌아보았더니 아버지는 어느 가게 앞에 우두커니 서 계셨다. 뭘 보시나 했더니 아버지의 눈길은 신발 가게에 진열된 커다란 고무신에 멈춰 있었다. 그리곤 혼자 말처럼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저 고무신을 사다 드릴텐데…" 하셨다.어촌의 농사꾼이었던 할아버지는 발이 유난히 컸다. 그 때문에 꼭 맞는 신을 구할 수 없어서 고무신 뒤축을 가위로 잘라서 신고 다니기 일쑤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장이 들어서는 날이면 큰 고무신을 찾아 돌아다니곤 했지만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이라 할아버지의 발에 맞는 고무신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환한 얼굴로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날 운 좋게 "맞으면 신고 가세요!"라는 문구가 써져 있는 신발가게에서 사이즈가 큰 고무신을 구한 것이다. 그날 아버지의 밝은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리고 서울 시장 길에서 커다란 고무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당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얼굴 또한 잊지 못한다. 그 이후로 나는 고무신만 보면 기억에서나마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고무신을 흔히 보지 못하게 되면서 그런 일도 조금씩 줄어들었다.그런데 얼마 전 어느 도서관에 강의하러 갔다가 뜻밖에 거기서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앞에 시 바구니가 걸려 있었는데, 반가운 마음으로 한 개를 꺼내 펼쳐보았더니 거기에 공광규 시인의 '소주병'이라는 시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옮겨본다.'술병은 잔에다 /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 속을 비워간다 /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 길거리나 /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 문 밖에서 /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 나가보니 /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 빈 소주병이었다'.시의 제목은 '소주병'이지만 실은 아버지를 그리는 노래다. 시인이 그린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비우고 또 비운 나머지 마침내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처럼 초라해지고 만 내 아버지의 초상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공광규 시인이 부럽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소주병은 고무신과는 달리 아직은 흔히 볼 수 있어서 자주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을 테니 부럽다. 또한 도처에서 아버지를 만나니 그 마음이 애달픈 순간도 무시로 닥칠 터이다. 그것은 부러운 일인지 아닌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6-17 전호근

[전호근 칼럼]어벤져스와 초원의 집

예나 지금이나 '히어로물'에 열광원더우먼등 에피소드는 기억 안나가족이야기 다룬 '초원의 집' 인상공동체의 평화, 영웅의 헌신 아닌가난한 사람 협력으로 지켰기때문마블 스튜디오에서 만든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6일 한국 관객 수 천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번 작품은 동명의 시리즈뿐 아니라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할 전망이란다. 영화의 줄거리는 기존의 히어로물과 별 차이가 없다.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하여 아이언맨, 토르, 헐크, 호크아이, 블랙 위도우 등 이른바 슈퍼히어로들이 한 팀이 되어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는, 매번 같은 이야기다.예나 지금이나 히어로물에 열광하는 이유는 늘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그만큼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들 개인의 능력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곤경에 처했을 때 어디선가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영웅이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다만 전에는 탁월한 히어로 한 명이면 너끈히 지구를 지킬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만큼 악의 무리도 힘이 커져서 한 명으로는 턱도 없다. 이른바 드림팀을 이뤄서 단체로 달라붙어야 간신히 이기는 지경이 된 것이다.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이런 종류의 드라마를 자주 보았는데 중학생 무렵에는 '육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원더우먼' 등 주로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매주 빼놓지 않을 정도로 즐겨 보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단 한 개의 에피소드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매번 지구를 구하는 식상한 이야기가 반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반면 당시 미국 드라마 중 서부 개척시대의 가족이야기를 다룬 초원의 집은 그다지 자주 보지 않았는데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몇 개 있다. 그중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이야기를 소개한다.어느 날 주인공 소녀의 아버지가 거부였던 먼 친척으로부터 상속을 받게 되자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하던 마을에 심상찮은 변화가 일어난다. 아버지는 졸지에 유명인사가 되어 가는 곳마다 극진한 대우를 받는가 하면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관계가 소원했던 사람들까지도 그와 친하게 지내며 호감을 사려고 애를 쓴다.시간이 흐르면서 마을 사람들은 이런저런 금전적 어려움을 하소연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마을의 목사까지 교회에 피아노가 있으면 좋겠다고 은근히 기부를 부탁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럴 때마다 주인공 아버지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고 마을 사람들은 좋은 이웃을 두었다고 흡족해한다.꿈은 거기까지였다. 먼 친척은 거부이기는 했으나 부채가 상속액보다 많아서 막상 상속을 받고 보니 주인공 아버지가 도리어 채무를 변제해야 할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결국 친척이 살던 동부에서 변호사 일행이 찾아와 주인공 아버지에게 친척의 채무 변제를 요구하며 집과 토지와 가재도구 일체를 경매 처분하겠다고 통고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곳에서 주인공 아버지의 재산이 하나 둘 경매에 부쳐지는데…. 물건이 경매에 나올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1센트!'를 불렀고 더 높은 금액을 부르는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모든 물건이 차례차례 1센트씩에 팔려나간다. 책상도 1센트, 집도 1센트, 농토도 1센트….동부에서 온 일행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고 주인공 아버지는 완전히 파산했다. 부자가 되는 꿈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는가 싶었을 때 반전이 일어난다. 마을 사람들이 낙찰받았던 모든 물건을 주인공 아버지에게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마을은 다시 평화를 되찾고 주인공 소녀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웃는 엔딩 신이 이어진다.수십 년이 지난 이 이야기를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까닭은, 공동체의 평화는 부자의 지갑이나 영웅과 드림팀의 헌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돕는 데서 지켜진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마지막 대사가 궁금한 건 나도 어쩔 수 없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5-06 전호근

[전호근 칼럼]늦게 도착한 시집

석달 지나 발견한 '파일명 서정시'쉽게 꺼낼 수 없는 두려운 말 가득표현하지 못하고 소리·가락 이룬 것 파일서 해방돼 시어 만끽하고 싶어그러기엔 다물어야 할 입 너무 많다며칠 전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경기도 용인)에 갔다가 어지럽게 뒤섞인 행정실 우편물 더미 속에서 나희덕 시인이 보내온 시집 《파일명 서정시》를 발견했다. 겉봉의 우체국 소인에는 분명히 '2018.11.23'이라 찍혀 있는데 대관절 어찌하여 석 달도 더 지난 지금, 계절마저 바뀐 뒤에야 내게 왔단 말인가. 게다가 적힌 주소는 서울 회기동인데 어디를 떠돌다가 이곳으로 배달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태 전 시인의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달, 2017)를 읽으며 사소한 일상에서 커다란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글에 감탄했던 나는 이번에도 비슷한 기대감을 품은 채로 시집을 펼쳤다가 그만 아픈 데를 찔린 병자처럼 지금껏 움찔거리고 있다.나는 시인이 이전에 펴낸 또 다른 서정 시집을 여러 권 가지고 있다. 서정시라는 말에 어울릴 만큼 하나같이 아름다운 시어들로 가득한 시집들이다. 하지만 이번 시집에는 쉽사리 입에서 꺼낼 수 없는 두려운 말들로 가득하다. 후기에는 시인의 고백이 이렇게 적혀 있다."이빨과 발톱이 삶을 할퀴고 지나갔다 / 내 안에서도 이빨과 발톱을 지닌 말들이 돋아났다 / 이 피 흘리는 말들을 어찌할 것인가 / 시는 나의 닻이고 돛이고 덫이다 / 시인이 된 지 삼십년 만에야 이 고백을 하게 된다"닻과 돛과 덫. 세 단어의 받침에 웅크린 'ㅊ'이 마치 가시처럼 보였다. 과연 시에는 상처 자국이 선연하다. 그래, 가시가 여기저기 걸려서 오는 길이 이렇게 험하고 더디었구나. 닻은 내리고 돛은 올리고 덫은 걸리는 것이다. 시인은 어쩌면 돛을 올려 다다르거나 닻을 내리고 잠시 머무는 장소를 찾으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읽히는 시(<기슭에 다다른 당신은>, <여기서는 잠시>)가 드문드문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든 덫에 걸려 몸부림 친 흔적이 역력하다. 덫은 땅 위(<이 도시의 트럭들>)와 땅 아래(<혈거인간>), 바다 속(<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과 바다 밖(<난파된 교실>), 심지어 하늘(<새를 심다>)에도 촘촘히 펼쳐져 있다. 시인이 그간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디어 왔는지 느껴져 책장을 넘기는 손이 무겁다. 시에는 지난 몇 해 동안 시인이 무엇을 보았는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 비극적인 2014년 4월 16일 이후 시인은 이렇게 썼다."(...)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 유리창을 탕, 탕 두드리는 손들, /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난파된 교실>의 마지막 단락)"아마도 이 시는 시인이 걸린 덫 중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 흔적일 테다. 이 외침 때문에 시인은 지난 정권 시절 세 곳의 기관으로부터 불온한 자로 지목당하여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아이들의 절규를 대신한 이런 시가 불온하게 여겨졌다면 그런 마음이야말로 정말 불온한 것 아닌가?남송의 철학자 주희는 '시란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남은 것들이 모여 소리와 가락을 이룬 것'이라 했다. 그러니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어야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주희의 이 말에 따르면 시는 말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말이 끝나는 지점에서, 말이 멈추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없는 이는 시를 쓸 수 없다. 나희덕 시인의 이 시는 차마 말로 옮길 수 없는, 가슴 아픈 진실을 적어낸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시인은 또 다른 덫에 걸려 괴로워할 수밖에 없고 그 말할 수 없는 상처가 다시 시가 되어 이렇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덫에 걸려 괴로워하지 않았다면 이 시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덫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독자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나는 언젠가 예전에 그랬듯 시인이 닻을 내린 곳에서 저녁이 오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새벽녘 능선 위에 쉬고 있는 상현달에서 신의 모습을 보고 싶다(<상현(上弦)>). 그래서 파일에서 해방되어 반짝이는 시어들을 만끽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다물어야 할 입들이 너무 많다. 어둠이 너무 짙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3-25 전호근

[전호근 칼럼]베르메르와 쉼보르스카와 희망

그림속 '우유를 따르는 여인' 만큼사회 노동자들이 하는 일 매우 중요연간 1천여명 작업장에서 죽어가기계로 인해 일터에서 목숨잃는 한 우리에겐 희망을 가질 자격 없다2012년 세상을 떠난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네덜란드 레이크스 미술관에 간 적이 있다. 시인이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작품을 감상했는지 알 수 없지만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 '우유를 따르는 여인' 앞에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만은 확실하다.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기 때문이다.레이크스 미술관의 이 여인이 / 세심하게 화폭에 옮겨진 고요와 집중 속에서 / 단지에서 그릇으로 / 하루 또 하루 우유를 따르는 한 /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다(베르메르, 최성은 옮김)시인은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고요와 집중을 읽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림의 장소는 하녀가 일하는 주방이다. 비록 테이블 위에 놓인 빵에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고 있지만 그림의 작업장이 고요하거나 따뜻할 리 없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 놓여 있는 발난로를 보더라도, 장식이라곤 없는 벽을 보아도 그곳은 춥고 지저분하며 시끄러운 곳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시인은 그림 속의 풍경에서 우유가 쪼르르 흘러나오는 소리를 또렷이 들었을 것이다. 그림 속의 여인이 따르는 우유와 테이블 위에 놓인 빵은 아마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닐 게다. 그럼에도 하얗고 가느다란 우유 줄기에서 그녀의 집중이 분명히 보인다. 그것은 누군가를 공양하기 위한 그녀의 정성이자 세상을 지탱하는 숭고한 힘이다.그러기에 시인은 저 여인이 "하루 또 하루 우유를 따르는 한 /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다"고 받아 적은 것일 테다.아름다운 그림 한 폭과 그에 맞춤한 아름다운 시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이 이야기를 지배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니까 저 여인에게 이 일이 이토록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니까 너는 평생 우유나 따르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순식간에 성자는 노예가 되고 숭고는 마취제가 되고 만다.그림 속의 여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가 하는 일, 이를테면 택배기사나 편의점 점원이 하는 일은 그림의 여인이 하는 일만큼이나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으로 떠받쳐지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들 노동자를 대하면 어떤 서사가 만들어질까? 그러니까 당신들이 하는 일이 고객에게 그토록 중요하니 물량을 맞추기 위해 밤새도록 배달하고 손님이 없어도 자리에 앉지 말고 일하라고 요구한다면?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어난 김용균씨의 죽음은 바로 그런 자본주의적 서사의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결말이다. 고용노동부의 확인에 따르면 사고로 작업 중지 명령이 내려진 이후에도 주변의 컨베이어 벨트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한다. 우리는 그런 희생 아래 만들어진 전기를 쓰면서 따뜻하게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비단 김용균씨의 비극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에 따르면 연간 1천여 명의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죽어가고 있다. 올해에 들어서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숨지고, 자동문을 설치하던 노동자가 문틈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끼이고 깔리고 떨어져 목숨을 잃는 것이 이 나라 노동자의 처지인 것이다.일하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는데도 계속 돌아가야 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있다면 그것은 악마의 맷돌이다. 그런 세상 어디에도 숭고는 없다. 이것이 내가 이 아름다운 그림과 시를 마냥 편안한 마음으로 보거나 읽지 못한 이유다. 일터에서 죽어가는 노동자가 있는 한, 기계로 인해 목숨을 잃는 노동자가 있는 한 우리에겐 희망을 가질 자격이 없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2-11 전호근

[전호근 칼럼]편지

3년전 수강생 졸업 앞두고 보낸 안부훌쩍 성장한 향기로운 소식 읽으며 송나라 주돈이의 '애련설' 생각했다1학년 학생들 마지막 시험후 인사그 모습 사랑스럽고 대견해 보였다3년 전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 졸업을 앞두고 편지를 보내왔다. 종종 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지만 이처럼 훌쩍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혼자 읽기 아까워 이곳에 나눈다.안녕하세요 교수님. 저는 2015년 1학기에 경희대에서 교수님의 고전읽기 강의를 수강했던 연극영화학과 학생입니다. 저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으며 학교생활을 돌아보던 중 제게 가장 큰 인상으로 남은 분이라 이렇게 안부 차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성실하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 학생이라 아마 절 기억하지는 못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난이 깊은 풀숲에 있어 찾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그것이 향기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는 공자의 말을 자신의 사유로 풀어내는 것이 기말 시험이었습니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저는 신동엽 시인의 '오렌지'를 말머리에 쓰고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글로 썼습니다. 또 제가 예술을 하는 것과 여성인 자신을 인정하기 위해, 나의 향기를 긍정하기 위해 누군가의 코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사실 저는 유학을 비롯한 한국철학에 흥미가 없던 학생이었고 당시 교수님의 수업도 학점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강했습니다. 한국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왠지 보수적이고 정체되어 있을 것 같다는 편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그토록 중시하는 '인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답변을 유학 고전강의에서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교수님은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두 개의 팔과 다리가 존재하고, 말을 할 수 있으며, 남성과 여성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등 그런 다수의 보편성에 기대는 분류가 아니라 스스로 누군지 알고 그 정체성에 충실한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강의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공감과 위안 그리고 충격을 받았고 그 학기 교수님과 함께 한 시간에 대해 두고두고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 매우 비관적이고 모든 학문의 역사와 인간 사회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어떤 강의를 듣고 감동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오만하고 자의식이 과잉된 일이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작업하는 모든 창작물과 세상에 쌓여있는 인류의 산물이 헛되게 느껴져 의욕을 잃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세월에 구애받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이 다른 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누군지 탐구하면서 스스로 점점 더 견고해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의 강의가 누군가에겐 과거를 읽는 일이 어떻게 미래의 가치로 연결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람과 사람이 만든 것들에 환멸을 느낄 때 교수님의 강의가 주셨던 희망을 떠올리는 것처럼요. 교수님처럼 꾸준히 기억하고 기록하고 한 곳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건강한 겨울 보내시고 오래도록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OOO 올림.나는 이 향기로운 편지를 읽으면서 송나라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을 생각했다. 그는 연꽃을 칭송한 글에서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 맑아진다는 말(香遠益淸)을 남겼는데 나는 이 표현이 그저 문학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이 학생의 편지를 받은 뒤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편지를 받은 다음 날 일어났다. 그날은 내가 가르치는 1학년 학생들이 마지막 시험을 치른 날이었다. 답안을 쓴 뒤 인사하고 나가는 한 명 한 명이 전에 없이 사랑스럽고 대견해 보여 나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지가 학생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 자체를 변화시킨 것이다.앞으로 나는 모든 학생들을 이 학생을 대하듯 만날 것이다. 그러니 이 편지의 향기는 후배들에게도 전해져 멀리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향기는 홀로 있어도 가두어지지 않는 법이다. 학생의 바람처럼 나는 오래도록 행복할 것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12-24 전호근

[전호근 칼럼]빛이 된 두 사람

참형 당한 동학 1대 교주 '최제우'제자 최시형이 후천개벽 시점 묻자"때가 있으니 마음 급히 하지 말라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연히…"그의 말은 절망의 시대 비추는 '빛'1864년 3월 10일, 경상도 대구의 관덕정 뜰에서 동학의 1대 교주 수운 최제우가 참형에 처해졌다. 사도를 일으켜 정도를 어지럽혔다는 좌도난정(左道亂正)의 죄목이었다. 그의 나이 41세, 동학을 창도한 지 3년 만이었다. 그는 죽기 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등불이 물 위에 밝았으니 의심이 없고(燈明水上無嫌隙) 기둥이 마른 것 같지만 아직 힘이 남아 있다(柱似枯形有餘力)."최제우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제자 최시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861년 여름이었는데, 이후 최제우는 최시형의 득도를 인정하고 1863년 7월 23일에 그에게 해월(海月)이라는 도호를 내린 바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등불이 물 위에 밝았다"는 말은 바로 바다 위에 떠오른 달 '해월(海月)'을 가리키는 비유다.최제우가 최시형에게 도를 전수하게 된 데는 깊은 내력이 있다. 최제우가 관의 지목을 피해 전라도 남원으로 피신했다가 몰래 경주로 돌아와 은신하고 있던 1862년 봄의 일이다. 스승의 종적을 알 수 없게 된 최시형이 스승을 그리워하며 수행하던 중, 반 종지의 기름으로 스무하루 동안 밤을 새우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그는 그때의 체험을 이렇게 이야기했다."임술년(1862) 정월이었다. 여러 달 동안 밤이 새도록 등불을 켰기 때문에 기름이 반 종지밖에 남지 않았다. 다시 스무하루 동안 밤새움을 했는데도 기름이 닳지 않았다. 이로써 마음에 '자연의 이치'가 있음을 알아차렸다."이렇게 마음에 있는 '자연의 이치'를 터득한 그는 누가 일러주지 않았는데도 스승이 있는 곳을 알고 찾아가게 된다. 최제우는 그가 찾아오자 깜짝 놀랐다. 당시 최제우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있는 곳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은 그가 아직 전라도 어딘가에 피신하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최시형의 체험을 기록한 이 일화는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시 두 사람의 눈에 비친 세상은 참혹했다. 거듭된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은 무너졌고 아무리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끼니를 잇기 어려웠으며 나쁜 병이 퍼져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시대였다. 빛이 없는 시대에는 스스로 빛이 되는 수밖에 없다. 순도는 그렇게 예정된 것이다. 기름 없는 등잔에서 빛을 보았다는 것은 어둠의 시대에 자신의 몸을 살라 스스로 빛이 되겠다는 결심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리라. 최시형은 스스로 빛이 되었기에 어둠 속에서도 스승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이로써 최시형의 득도를 알아차린 최제우는 자신이 오래지 않아 체포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고 1863년 8월 14일 최시형에게 도통을 전수하여 동학교도를 이끌게 한 뒤 11월에 관에 체포되어 이듬해 순도하였다. 당시 그에게 직접 도를 전수받은 제자들 대부분이 함께 죽거나 유배형에 처해졌기 때문에 동학은 거의 끊어질 뻔했지만 그의 마지막 말처럼 최시형이 남아 있었기에 동학은 이어질 수 있었다. 스승을 이어 이후 35년간 동학을 이끌던 최시형은 1898년 4월 5일 밤 강원도 원주에서 관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5월 30일 그는 스승과 같은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6월 2일 단성사 뒤편 당시 육군법원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나이 72세, 동학에 입교한 지 38년 만의 순도였다.일찍이 그는 후천개벽의 시점을 묻는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때는 그때가 있으니 마음을 급히 하지 말라.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오리니. 만국 병마가 우리나라 땅에 왔다가 물러가는 때이니라."스승이 그를 남겨 후천개벽의 시대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 또한 스승의 말을 세상에 전함으로써 절망의 시대를 비추는 빛이 되고자 하였다. 마치 기름 없는 등잔이 어둔 방을 비추듯./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11-12 전호근

[전호근 칼럼]위대한 패배

1907~1910년 일제강점기 의병들맨몸으로 일본군 신식무기에 맞서이길 수 없는 전쟁 치른 이유는억압하고 핍박하던 못난 나라도자유로운 삶 위해 지켜야했기 때문"다 죽는구나. 다 죽어."드라마를 보던 아내가 길게 탄식을 내뱉는다. 무슨 드라마인가 물었더니 한말 의병과 관련된 이야기를 배경에 깔고 있는 '미스터 션샤인'이라며 줄거리를 간단하게 이야기해준다. 이야기를 들은 나는 이 드라마가 의병운동의 실상을 제대로 그려냈구나 싶었다. 동학 농민 전쟁부터 시작해 한말의 의병 운동은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1년여 전 나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개최한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장일순의 평화사상을 주제로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함께 학술대회에 참여했던 동학연구자인 원광대 박맹수 교수는 '전봉준의 평화사상'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나는 박교수의 발표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전쟁이라고 생각했던 전봉준의 무장투쟁이 실제로는 일방적인 피학살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박교수가 발굴한 자료에 따르면 전봉준의 지휘에 따른 농민군은 전쟁 내내 철저하게 불살생(不殺生)의 원칙을 지켰다. 전봉준이 내린 군령의 첫 번째 조항에는 적을 마주할 때 병기의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기는 것을 으뜸가는 공훈으로 삼는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또 어쩔 수 없이 싸우더라도 결코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을 최고로 친다는 내용과 함께 행군하는 곳마다 절대 백성들의 물건을 해하지 말라는 명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무지 군령이라고 볼 수 없는 내용이다.실제 동학농민군을 시종일관 비판적인 입장에서 기술했던 매천 황현의 '오하기문'에 따르더라도 1차 동학 농민혁명당시 농민군은 민폐를 전혀 끼치지 않은 반면, 서울에서 파견된 홍계훈의 경군은 막대한 민폐를 끼쳤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도쿄아사히 신문', '시사신보' 등 일본측 신문에도 일본 상인 가운데 농민군에게 피해를 입은 상인은 단 한 명도 없었으며, '조선잡기'에는 동학농민군의 규율을 두고 '문명적'이라고 기술하기도 했다.그날 뒤풀이 자리에서 박교수는 1894년 12월에 있었던 일본군과 동학농민군 간의 갑오농민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 희생자 한 명당 동학농민군 희생자는 3만 명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동학농민혁명은 처참한 자기희생일지언정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동학농민혁명뿐 아니라 일제의 강점을 전후한 시기에 활동한 의병도 마찬가지였다. 1907년부터 나라가 병탄되던 1910년에 이르기까지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지만 그들 대부분은 일제의 진압에 무자비하게 학살되었다. 초기 독립운동 기록을 살펴보면 의병 70여 명을 일본군 헌병 세 명이 출동하여 몰살시키는 식이다. 의병들의 무기는 몽둥이, 낫, 도끼, 화승총 따위였고 일본군은 신식 무기를 갖추고 있었으니 상대가 될 수 없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일제 강점 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영규의 '강화학 최후의 광경'을 읽어보면 정원하와 이건승을 비롯한 양명학자들은 만주로 가 독립운동에 참여하지만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손자병법에 따르면 전쟁은 이길 수 있을 때만 하는 것인데 동학농민군이나 이후의 의병과 독립군들은 모두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한 것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더욱이 그들이 지키려던 나라는 그들을 억압하고 핍박하던 못난 나라 아닌가? 그들은 그들의 가난한 무기와 움켜쥔 주먹으로 외세와 부패한 권력을 몰아내고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1907년 의병활동을 취재하기 위해 조선에 온 영국의 기자 매켄지는 당시 항일 의병을 이끌던 젊은 의병 지휘관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싸우다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노예로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게 낫다."그들은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라도 나서야 하며 자유로운 삶을 위해 못난 나라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내가 드라마의 마지막 편을 보면서 대사를 따라 중얼거린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불꽃으로 살다가 가겠다, 이게 나의 세계다.혹 이 나라를 침략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들처럼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나설 수 있을 것인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10-01 전호근

[전호근 칼럼]어느 가족이 본 '어느 가족'

'혈연 아닌 서로 필요해서 산다'는영화속 다섯명의 주인공들마지막 장면에서는 서로를 위해자신이 가장 소중한 것을 준다내가 본 '유일한' 가족 영화였다며칠 전 가족과 함께 집 근처 영화관을 찾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을 보기 위해서다. 당초 식구 넷이 다 같이 편안하게 즐길 만한 영화로는 적당치 않을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염려가 없지 않았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지만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기에는 적잖이 불편한 장면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가족 모두 어엿한 성인인데다 의견 일치가 쉽지 않은 우리 가족의 특성상, 모처럼 같이 영화를 보기로 한 드문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가족 간 의견 일치가 어떻게 쉽지 않은지 궁금해하실 분이 계실 것 같아 잠시 옆길로 새자면, 우리 가족은 좋아하는 음식도 각기 다르고, 독서나 음악 취향도 모두 다르며 세대 차이도 꽤 심각한 편이다. 무엇보다 밥상머리 대화에서 다른 사람 이야기는 잘 듣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끝까지 해대는 통에 번번이 논쟁이 일어나 서로 얼굴 붉히기가 십상이다.이처럼 모래알 같은 가족이 한 명의 반대도 없이 '어느 가족'을 보는 데 찬성했으니 영화를 보기도 전에 고레에다 감독의 위대함에 고개가 숙여졌다.'어느 가족'은 원제가 '만비키 가족(万引き家族)'이다. '만비키'는 물건을 사는 척하면서 훔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원제를 우리말로 옮기면 '좀도둑 가족' 정도가 된다. 제목만 놓고 보면 가족 영화가 아니라 오히려 가족파괴 영화라 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직업으로 간주할 수 없는 도둑들의 이야기가 어찌 가족 영화일 수 있단 말인가.게다가 주인공들 중 사회가 용인하는 정상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가족 구성원 중 남편 역할을 하는 오사무는 아이를 시켜 가게의 물건을 훔치게 하고 때로 자동차의 창문을 부수고 직접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아내 역할을 하는 노부요는 세탁소에서 일하지만 세탁물에 잘못 딸려온 고객의 물건을 수시로 훔친다. 딸 역할을 하는 아키는 유사 성행위 업소에서 일하며 돈을 번다. 할머니 하츠에는 전 남편이 남겨준 연금으로 생활하지만 생전의 남편과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아들 역인 쇼타는 책가방을 메고 다니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으며 책가방 안에는 책 대신 훔친 물건이 들어있다. 새로 가족의 일원이 된 유리는 오빠인 쇼타를 따라 가게에서 물건 훔치는 법을 배운다.이들은 혈연 유대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에 따라 함께 살게 된 것일 뿐이다. 할머니는 돌봄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은 할머니의 연금에 의지하여 생활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함께 모여 살게 된 이유는 가출이나 버려짐 또는 유괴의 결과일 뿐이다. 그러니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이들을 가족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이 세상 사람들이 '내다 버린' 가족의 가치를 가장 잘 지키고 있다면?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할머니 하츠에가 죽자 두 부부는 연금을 계속 타기 위해 할머니의 시신을 몰래 땅속에 파묻는다. 나중에 경찰이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추궁하자 노부요는, 자신들은 '버린 것'이 아니라 '주운 것'이라며 버린 사람은 따로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관객에게 그대로 꽂힌다. 내가 바로 노부요가 말하는 그 '버린 사람'은 아닌가.주인공들이 함께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 깊다. 그들은 불꽃은 보지 못하고 지붕 너머로 폭죽 소리만 들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느 가족보다 더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 장면은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할머니가 해변에서 놀고 있는 다섯 명의 가족을 바라보며 입술만 움직여 말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물론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쇼타가 입술을 움직이는 장면과 함께, 들리지 않아도 들을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영화의 막바지에서 두 부부는 자신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쇼타에게 내어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아들로 여겼던 쇼타 그 자신이다. 노부요는 쇼타에게 친부모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알려준다. 그리고 오사무는 자신의 본명과 똑같은 이름을 지어준 아들 쇼타에게 이렇게 말한다."아빠는 이제 아저씨로 돌아갈게."주인공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준 것이다.'어느 가족'은 '훌륭한' 가족 영화가 아니라 내가 본 '유일한' 가족 영화였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8-13 전호근

[전호근 칼럼]정성껏 물을 주면

모든 교육과정 대입위한 수단 간주연령대별 익혀야 할것들 팽개쳐 둬싹 자라기는 커녕 더 말라가기만사회구조 바뀌지 않는한 파행 지속유일한 방법은 학생들 변화시켜야송나라의 어떤 사람이 곡식 싹이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을 답답하게 여긴 나머지 조금씩 뽑아 올려주었다. 그는 집에 돌아가서 가족에게 곡식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아들이 깜짝 놀라 뛰어가 보니 싹은 이미 말라죽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수 있는지 묻는 제자에게 맹자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로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른바 알묘조장(알苗助長, 싹을 뽑아 자라는 것을 도와줌)의 고사로 '맹자'에 나온다. 호연지기는 한 사람이 올바른 행동을 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도덕적 끈기와 유사한 것으로 플라톤이 이야기한 용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한 철학자답게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것이 양심(良心)이다. 하지만 양심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은 이해관계에 얽히면 쉽사리 양심을 저버리고 이익을 취하기 일쑤다. 양심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연지기는 이런 양심을 떠받치는 힘이다. 그러므로 호연지기를 기르지 않으면 양심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올바른 행위를 할 수도 없게 된다.맹자가 예로 든 알묘조장의 뜻은 이렇다.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곡식 싹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세상 사람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속성으로 기르다보니 호연지기가 길러지기는커녕 도리어 말라죽고 말았다는 얘기이다. 맹자는 이어 세상에 조장하지 않는 이가 드물다고 탄식했다.지금 이 나라의 교육자나 학부모 중에도 아이들의 싹을 뽑아 올리는 조장(助長)을 하지 않는 이가 드물다. 모든 교육과정이 대학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어 연령대별로 꼭 익혀야 할 것은 팽개쳐 두고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한 학습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조장도 이런 조장이 없다. 그러니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 대부분이 말라죽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대학도 조장에 나서긴 마찬가지다. 방학 중에 진행되는 이른바 계절 학기는 한 학기 16주 동안 진행되는 강좌를 15일로 압축한 단기속성과정이다. 대학의 당국자들은 전체 강의시간만 같으면 기간과 상관없이 동일한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특히 인문교양 과목의 경우 졸업할 때까지 4년간 기다린다 해도 효과를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한 사람이 전 생애에 걸쳐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인문교양 과목은 당장의 이익과는 상관없는 내용을 가르치기 때문에 전공보다 훨씬 긴 호흡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학 당국은 인문교양을 비롯한 다수의 학과목을 속성과정으로 개설하고 있다.이러다 보니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 또한 싹이 자라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말라가기만 한다. 당연히 학생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학 당국의 잘못으로 돌릴 수만도 없다. 교육을 기능인 양성 정도로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파행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만든 오래된 주범들은 교육부 관료들과 기업, 언론으로 보이지만 그들도 구조의 일부일 뿐 권력과 자본의 당사자가 아니다. 그러니 도무지 그런 구조를 바꿀 방법이 없어 보인다. 학교 당국자가 교육의 근본 취지에 따라 학교를 운영하려면 당장 언론의 대학평가를 거부해야 하고 교육부의 지원을 포기해야 하며 학생 수가 줄어드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 학교의 어느 관계자도 그런 모험을 할 생각이 없고 그럴 만한 용기도 없다.이런 현실을 느낄 때마다 대학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하지만 결국 학생들 때문에 떠나지 못한다. 내가 바라는 건 결국 학생들을 통해서 이룰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유일한 방법이다.오래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을 보다가 마태수난곡이 나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끝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옛날 어느 수도사가 말라죽은 나무에 정성껏 물을 주었더니 마침내 죽은 나무에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내가 만나는 학생들도 정성껏 물을 주면 정말 수도사의 나무처럼 꽃을 피울까?정성껏 물을 주면, 정성껏 물을 주면…./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7-02 전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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