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근 칼럼

 

[전호근 칼럼]아침에 도를 듣고자 하면

바라던 일 이루면 여한 없다던 공자윤봉길, 문자 그대로 목숨 바쳐 거사논어 어떻게 읽었는지 알 수 있어 선서문 말미 적힌 국호 '대한민국'그가 지키려 했던 나라 명명백백논어를 읽다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는 대목에 이르러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매사에 중용을 따르는 공자가 어찌하여 '죽어도 좋다'는 과격한 말을 했을까? 설마하니 도를 듣고 나면 죽어야 한단 말인가? 목숨 바칠 만한 도가 과연 있기나 한 걸까? 공자는 나이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고 하니 그때 도를 들었다고 할 법한데 왜 죽지 않고 73세(혹은 74세)까지 살았을까?별의별 의심이 꼬리를 물어 생각이 길어졌지만 이 말을 꼭 죽겠다는 결연한 각오가 아니라 간절히 바라던 일을 이루고 나면 더 이상 여한이 없겠다는 일상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예컨대 나도 한때는 십삼경을 모두 풀이하고 나면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물론 그때도 정말 죽을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이렇게 기억의 한 구석으로 밀려났던 논어의 이 대목이 다시 염두에 놓인 건, 언젠가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장부가 한번 집을 나서면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음)'이라고 적힌 글씨를 보았을 때였다. 처음에는 어떤 허풍쟁이가 저런 허튼소리를 했는가 싶어 아연했다가 종내 그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글을 남긴 사람이 매헌 윤봉길이었고 그의 삶이 과연 저 말과 부합했기 때문이다. '조문도 석사가의'를 문자 그대로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아, 그렇구나. 죽기를 기약하지 않고는 도를 들을 수 없는 것이로구나. 그렇다면 저녁에 죽고자 함은 아침에 도를 듣기 위해서구나. 이 사람은 논어를 제대로 읽었구나. 논어에 이르길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삶을 구하기 위해 인(仁)을 해치는 일은 없고 자신을 죽여 인을 이룬다 하지 않았던가.그는 1930년 3월 6일 고향 예산을 떠나 중국 상해로 망명했는데 2년 뒤 일제가 상해를 침략하자 고향의 동생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집을 떠날 때 각오한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의 결심을 이번에 실행한다. 너에게 부탁하니 부모님을 공양하라. 효가 나라사랑의 근본이다."마침내 1932년 4월 29일, 일제가 전승 축하행사를 열고 있던 상해 홍구공원에 간 그는 일본군 장교들이 모여 있던 단상 위로 폭탄을 투척했다. 이 의거로 일본군 대장 시라카와는 폭사하고 노무라 중장은 실명, 우에다 중장은 다리가 절단되는 등 다수의 일인들이 죽거나 다쳤다.거사 후 체포된 윤봉길은 한 달이 채 안 된 5월 25일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12월 19일 가나자와 육군 형무소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그의 나이 25세였다. 일제는 그의 시신을 공동묘지로 가는 길목에 매장하여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게 함으로써 끝까지 저열한 보복으로 그를 모독했다. 그의 시신은 광복 이후 고국으로 옮겨져 현재는 효창공원에 안장되어 있다.짧은 삶을 살았던 윤봉길은 논어를 풀이하거나 번역한 적이 없지만 그의 삶을 보면 그가 논어를 어떻게 읽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논어를 읽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어떤 자는 논어를 읽고 나라를 팔아먹는다. 논어는 읽는 사람의 그릇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것이다.p.s. 다음은 윤 의사가 거사에 나서기 전 작성한 선서문의 내용이다."나는 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서하나이다. 대한민국 14년 4월 26일 선서인 윤봉길 한인애국단 앞"말미에 분명히 적혀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에서 그가 지키려 했던 나라가 대한민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48년 이전에는 대한민국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눈을 씻고 살펴야 할 것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9-09 전호근

[전호근 칼럼]오지 않은 학생들의 이야기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결석한 학생열외자·꼴찌들의 이야기에 가까워내가 궁금한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모든 것을 던져 이룬 일등의 성취사람들 삶을 보려하지는 않아…지난 학기 학교 축제 기간 중 강의에 출석하는 학생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강의를 듣기 위해 한결같이 출석하는 성실한 학생들을 바라보고 정성을 다해 강의했지만 나오지 않은 학생들에게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왜 결석했을까? 나는 강의 들으러 온 학생들이 왜 왔는지는 궁금하지 않았지만 결석한 학생들의 사정은 무척 궁금했다. 학생들이 강의에 출석하는 이유는 거개가 같을 테지만 결석한 이유는 다 다를 것이었기 때문이다.축제가 끝난 뒤 나는 지난 시간 출석하지 않았던 학생들에게 무슨 재미난 일이 있어서 강의에 나오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다.한 학생은 신종 독감에 걸렸는데 친구들에게 옮길까 봐 안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이 학생은 친구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이타적인 이유로 결석한 것이다. 거룩한 학생이다.또 다른 학생은 학과대표로 뽑혀 축구 시합에 나가느라 강의에 오지 못했다고 했다. 시합에 이겼느냐고 물었더니 아깝게 졌다고 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축구에 인저리 타임이 있는 것처럼 내 강의에도 인저리 타임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뛰라고 이야기했다.또 한 학생은 게임을 하느라 밤을 새워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아주 솔직한 학생이다. 자신에게 불리함에도 진실을 밝힌 학생에게 칭찬을 해주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또 어떤 학생은 미리 나에게 사정을 알리고 허락을 구했다. 학교에서 개교 7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있어 티켓을 신청했는데 운 좋게 당첨되었단다. 무슨 공연인지 물어보았더니 무려 프랑스 오리지널팀을 초청하는 레미제라블 뮤지컬이란다. 나라도 강의 빼먹고 갈 것이라고 이야기해줬다.또 병무청 신체검사를 받느라 참석하지 못한 학생도 있었다. 국가의 정당한 부름에 따른 이런 학생은 국가가 보호해야 할 것이다.결석하지 않고 강의실에 온 학생 중에는 지난밤 학과 주점에서 과음한 탓에 강의시간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잔 학생도 있었다. 내 강의가 얼마나 듣고 싶었으면 저런 몸을 이끌고 강의실까지 찾아왔을까 싶어 감동받았다. 내가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실은 이런 학생들 때문이다.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결석한 학생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일등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열외자, 꼴찌들의 이야기에 가깝다. 하지만 내가 그들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세상 사람들은 일등 이야기를 열심히 퍼나르지만 일등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뻔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축구 황제로 불렸던 에우제비오는 "모든 경기를 마지막 경기라 생각하고…", 히딩크 감독은 "나는 아직도 승리에 배가 고파서…" 죽어라 뛰었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 미국육상대회에서 마지막 순간 결승선을 향해 몸을 던져 일등을 차지한 허들 선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김연아 선수의 발이나 이상화 선수의 발이나 모두 상처투성이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던져 이룬 일등의 성취는 영광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 해도 재미는 별로 없다. 사람들이 삶을 보려 하지 않고 일등으로 귀결된 경쟁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꼴찌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이야기가 다 달라서다. 프로야구 원년 팀 중 만년 꼴찌였던 '삼미 슈퍼스타즈'만이 유일하게 소설로 쓰인 까닭도 다르지 않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치기 힘든 공을 치기 위해 밤새 배트를 휘두르고 잡기 힘든 공을 잡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일등들은 죽었다 깨나도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그러니 말이다. 일등들은 꼴찌들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들은 단지 당신들처럼 모든 것을 던지지 않았을 뿐이다. 당신들이 던져버린 것들 중에, 그리고 그들이 던지지 않은 것 중에, 혹 던지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지 어찌 알겠는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7-29 전호근

[전호근 칼럼]아버지의 아버지생각

커다란 고무신 물끄러미 바라보며할아버지 그리워하던 아버지 얼굴그후로 기억에서나마 만날수 있어공광규 시인 '소주병' 뜻밖에 읽고초라해진 나의 부친 초상과 같았다"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가 읽던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은 손때(手澤)가 남아있기 때문이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쓰던 그릇을 쓰지 못하는 것은 입때(口澤)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유학의 고전 '예기'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왜 아버지의 경우에는 '책'이고 어머니의 경우에는 하필 '그릇'을 예로 들었는지 다소 유감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문제를 따지는 일은 다른 기회로 미루기로 하자. 어쨌거나 이 말은 지금 곁에 없는 어떤 사람을 추억하는 데 평소 그가 애용하던 사물이 때로 긴요한 역할을 한다는 작은 진실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나에게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사물이 있다. 나는 중학교 시절 이후로 지금껏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이곳에서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어릴 때부터 집을 떠나 서울에서 홀로 생활했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버지가 서울에 오신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학교에서 학부모 면담이라도 하게 되면 아버지가 올라와서 선생님을 만나곤 했고 그런 경우는 일 년에 한두 번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아버지는 생전에 서울 땅을 밟아본 적이 별로 없었다.아무튼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적 진학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아버지가 서울에 왔을 때의 일이다. 둘이서 시장 길을 지나고 있었는데, 문득 아버지가 보이지 않기에 뒤돌아보았더니 아버지는 어느 가게 앞에 우두커니 서 계셨다. 뭘 보시나 했더니 아버지의 눈길은 신발 가게에 진열된 커다란 고무신에 멈춰 있었다. 그리곤 혼자 말처럼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저 고무신을 사다 드릴텐데…" 하셨다.어촌의 농사꾼이었던 할아버지는 발이 유난히 컸다. 그 때문에 꼭 맞는 신을 구할 수 없어서 고무신 뒤축을 가위로 잘라서 신고 다니기 일쑤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장이 들어서는 날이면 큰 고무신을 찾아 돌아다니곤 했지만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이라 할아버지의 발에 맞는 고무신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환한 얼굴로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날 운 좋게 "맞으면 신고 가세요!"라는 문구가 써져 있는 신발가게에서 사이즈가 큰 고무신을 구한 것이다. 그날 아버지의 밝은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리고 서울 시장 길에서 커다란 고무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당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얼굴 또한 잊지 못한다. 그 이후로 나는 고무신만 보면 기억에서나마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고무신을 흔히 보지 못하게 되면서 그런 일도 조금씩 줄어들었다.그런데 얼마 전 어느 도서관에 강의하러 갔다가 뜻밖에 거기서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앞에 시 바구니가 걸려 있었는데, 반가운 마음으로 한 개를 꺼내 펼쳐보았더니 거기에 공광규 시인의 '소주병'이라는 시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옮겨본다.'술병은 잔에다 /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 속을 비워간다 /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 길거리나 /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 문 밖에서 /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 나가보니 /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 빈 소주병이었다'.시의 제목은 '소주병'이지만 실은 아버지를 그리는 노래다. 시인이 그린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비우고 또 비운 나머지 마침내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처럼 초라해지고 만 내 아버지의 초상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공광규 시인이 부럽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소주병은 고무신과는 달리 아직은 흔히 볼 수 있어서 자주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을 테니 부럽다. 또한 도처에서 아버지를 만나니 그 마음이 애달픈 순간도 무시로 닥칠 터이다. 그것은 부러운 일인지 아닌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6-17 전호근

[전호근 칼럼]어벤져스와 초원의 집

예나 지금이나 '히어로물'에 열광원더우먼등 에피소드는 기억 안나가족이야기 다룬 '초원의 집' 인상공동체의 평화, 영웅의 헌신 아닌가난한 사람 협력으로 지켰기때문마블 스튜디오에서 만든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6일 한국 관객 수 천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번 작품은 동명의 시리즈뿐 아니라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할 전망이란다. 영화의 줄거리는 기존의 히어로물과 별 차이가 없다.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하여 아이언맨, 토르, 헐크, 호크아이, 블랙 위도우 등 이른바 슈퍼히어로들이 한 팀이 되어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는, 매번 같은 이야기다.예나 지금이나 히어로물에 열광하는 이유는 늘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그만큼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들 개인의 능력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곤경에 처했을 때 어디선가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영웅이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다만 전에는 탁월한 히어로 한 명이면 너끈히 지구를 지킬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만큼 악의 무리도 힘이 커져서 한 명으로는 턱도 없다. 이른바 드림팀을 이뤄서 단체로 달라붙어야 간신히 이기는 지경이 된 것이다.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이런 종류의 드라마를 자주 보았는데 중학생 무렵에는 '육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원더우먼' 등 주로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매주 빼놓지 않을 정도로 즐겨 보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단 한 개의 에피소드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매번 지구를 구하는 식상한 이야기가 반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반면 당시 미국 드라마 중 서부 개척시대의 가족이야기를 다룬 초원의 집은 그다지 자주 보지 않았는데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몇 개 있다. 그중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이야기를 소개한다.어느 날 주인공 소녀의 아버지가 거부였던 먼 친척으로부터 상속을 받게 되자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하던 마을에 심상찮은 변화가 일어난다. 아버지는 졸지에 유명인사가 되어 가는 곳마다 극진한 대우를 받는가 하면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관계가 소원했던 사람들까지도 그와 친하게 지내며 호감을 사려고 애를 쓴다.시간이 흐르면서 마을 사람들은 이런저런 금전적 어려움을 하소연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마을의 목사까지 교회에 피아노가 있으면 좋겠다고 은근히 기부를 부탁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럴 때마다 주인공 아버지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고 마을 사람들은 좋은 이웃을 두었다고 흡족해한다.꿈은 거기까지였다. 먼 친척은 거부이기는 했으나 부채가 상속액보다 많아서 막상 상속을 받고 보니 주인공 아버지가 도리어 채무를 변제해야 할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결국 친척이 살던 동부에서 변호사 일행이 찾아와 주인공 아버지에게 친척의 채무 변제를 요구하며 집과 토지와 가재도구 일체를 경매 처분하겠다고 통고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곳에서 주인공 아버지의 재산이 하나 둘 경매에 부쳐지는데…. 물건이 경매에 나올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1센트!'를 불렀고 더 높은 금액을 부르는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모든 물건이 차례차례 1센트씩에 팔려나간다. 책상도 1센트, 집도 1센트, 농토도 1센트….동부에서 온 일행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고 주인공 아버지는 완전히 파산했다. 부자가 되는 꿈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는가 싶었을 때 반전이 일어난다. 마을 사람들이 낙찰받았던 모든 물건을 주인공 아버지에게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마을은 다시 평화를 되찾고 주인공 소녀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웃는 엔딩 신이 이어진다.수십 년이 지난 이 이야기를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까닭은, 공동체의 평화는 부자의 지갑이나 영웅과 드림팀의 헌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돕는 데서 지켜진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마지막 대사가 궁금한 건 나도 어쩔 수 없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5-06 전호근

[전호근 칼럼]늦게 도착한 시집

석달 지나 발견한 '파일명 서정시'쉽게 꺼낼 수 없는 두려운 말 가득표현하지 못하고 소리·가락 이룬 것 파일서 해방돼 시어 만끽하고 싶어그러기엔 다물어야 할 입 너무 많다며칠 전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경기도 용인)에 갔다가 어지럽게 뒤섞인 행정실 우편물 더미 속에서 나희덕 시인이 보내온 시집 《파일명 서정시》를 발견했다. 겉봉의 우체국 소인에는 분명히 '2018.11.23'이라 찍혀 있는데 대관절 어찌하여 석 달도 더 지난 지금, 계절마저 바뀐 뒤에야 내게 왔단 말인가. 게다가 적힌 주소는 서울 회기동인데 어디를 떠돌다가 이곳으로 배달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태 전 시인의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달, 2017)를 읽으며 사소한 일상에서 커다란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글에 감탄했던 나는 이번에도 비슷한 기대감을 품은 채로 시집을 펼쳤다가 그만 아픈 데를 찔린 병자처럼 지금껏 움찔거리고 있다.나는 시인이 이전에 펴낸 또 다른 서정 시집을 여러 권 가지고 있다. 서정시라는 말에 어울릴 만큼 하나같이 아름다운 시어들로 가득한 시집들이다. 하지만 이번 시집에는 쉽사리 입에서 꺼낼 수 없는 두려운 말들로 가득하다. 후기에는 시인의 고백이 이렇게 적혀 있다."이빨과 발톱이 삶을 할퀴고 지나갔다 / 내 안에서도 이빨과 발톱을 지닌 말들이 돋아났다 / 이 피 흘리는 말들을 어찌할 것인가 / 시는 나의 닻이고 돛이고 덫이다 / 시인이 된 지 삼십년 만에야 이 고백을 하게 된다"닻과 돛과 덫. 세 단어의 받침에 웅크린 'ㅊ'이 마치 가시처럼 보였다. 과연 시에는 상처 자국이 선연하다. 그래, 가시가 여기저기 걸려서 오는 길이 이렇게 험하고 더디었구나. 닻은 내리고 돛은 올리고 덫은 걸리는 것이다. 시인은 어쩌면 돛을 올려 다다르거나 닻을 내리고 잠시 머무는 장소를 찾으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읽히는 시(<기슭에 다다른 당신은>, <여기서는 잠시>)가 드문드문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든 덫에 걸려 몸부림 친 흔적이 역력하다. 덫은 땅 위(<이 도시의 트럭들>)와 땅 아래(<혈거인간>), 바다 속(<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과 바다 밖(<난파된 교실>), 심지어 하늘(<새를 심다>)에도 촘촘히 펼쳐져 있다. 시인이 그간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디어 왔는지 느껴져 책장을 넘기는 손이 무겁다. 시에는 지난 몇 해 동안 시인이 무엇을 보았는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 비극적인 2014년 4월 16일 이후 시인은 이렇게 썼다."(...)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 유리창을 탕, 탕 두드리는 손들, /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난파된 교실>의 마지막 단락)"아마도 이 시는 시인이 걸린 덫 중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 흔적일 테다. 이 외침 때문에 시인은 지난 정권 시절 세 곳의 기관으로부터 불온한 자로 지목당하여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아이들의 절규를 대신한 이런 시가 불온하게 여겨졌다면 그런 마음이야말로 정말 불온한 것 아닌가?남송의 철학자 주희는 '시란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남은 것들이 모여 소리와 가락을 이룬 것'이라 했다. 그러니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어야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주희의 이 말에 따르면 시는 말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말이 끝나는 지점에서, 말이 멈추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없는 이는 시를 쓸 수 없다. 나희덕 시인의 이 시는 차마 말로 옮길 수 없는, 가슴 아픈 진실을 적어낸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시인은 또 다른 덫에 걸려 괴로워할 수밖에 없고 그 말할 수 없는 상처가 다시 시가 되어 이렇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덫에 걸려 괴로워하지 않았다면 이 시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덫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독자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나는 언젠가 예전에 그랬듯 시인이 닻을 내린 곳에서 저녁이 오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새벽녘 능선 위에 쉬고 있는 상현달에서 신의 모습을 보고 싶다(<상현(上弦)>). 그래서 파일에서 해방되어 반짝이는 시어들을 만끽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다물어야 할 입들이 너무 많다. 어둠이 너무 짙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3-25 전호근

[전호근 칼럼]베르메르와 쉼보르스카와 희망

그림속 '우유를 따르는 여인' 만큼사회 노동자들이 하는 일 매우 중요연간 1천여명 작업장에서 죽어가기계로 인해 일터에서 목숨잃는 한 우리에겐 희망을 가질 자격 없다2012년 세상을 떠난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네덜란드 레이크스 미술관에 간 적이 있다. 시인이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작품을 감상했는지 알 수 없지만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 '우유를 따르는 여인' 앞에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만은 확실하다.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기 때문이다.레이크스 미술관의 이 여인이 / 세심하게 화폭에 옮겨진 고요와 집중 속에서 / 단지에서 그릇으로 / 하루 또 하루 우유를 따르는 한 /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다(베르메르, 최성은 옮김)시인은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고요와 집중을 읽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림의 장소는 하녀가 일하는 주방이다. 비록 테이블 위에 놓인 빵에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고 있지만 그림의 작업장이 고요하거나 따뜻할 리 없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 놓여 있는 발난로를 보더라도, 장식이라곤 없는 벽을 보아도 그곳은 춥고 지저분하며 시끄러운 곳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시인은 그림 속의 풍경에서 우유가 쪼르르 흘러나오는 소리를 또렷이 들었을 것이다. 그림 속의 여인이 따르는 우유와 테이블 위에 놓인 빵은 아마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닐 게다. 그럼에도 하얗고 가느다란 우유 줄기에서 그녀의 집중이 분명히 보인다. 그것은 누군가를 공양하기 위한 그녀의 정성이자 세상을 지탱하는 숭고한 힘이다.그러기에 시인은 저 여인이 "하루 또 하루 우유를 따르는 한 /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다"고 받아 적은 것일 테다.아름다운 그림 한 폭과 그에 맞춤한 아름다운 시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이 이야기를 지배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니까 저 여인에게 이 일이 이토록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니까 너는 평생 우유나 따르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순식간에 성자는 노예가 되고 숭고는 마취제가 되고 만다.그림 속의 여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가 하는 일, 이를테면 택배기사나 편의점 점원이 하는 일은 그림의 여인이 하는 일만큼이나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으로 떠받쳐지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들 노동자를 대하면 어떤 서사가 만들어질까? 그러니까 당신들이 하는 일이 고객에게 그토록 중요하니 물량을 맞추기 위해 밤새도록 배달하고 손님이 없어도 자리에 앉지 말고 일하라고 요구한다면?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어난 김용균씨의 죽음은 바로 그런 자본주의적 서사의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결말이다. 고용노동부의 확인에 따르면 사고로 작업 중지 명령이 내려진 이후에도 주변의 컨베이어 벨트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한다. 우리는 그런 희생 아래 만들어진 전기를 쓰면서 따뜻하게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비단 김용균씨의 비극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에 따르면 연간 1천여 명의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죽어가고 있다. 올해에 들어서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숨지고, 자동문을 설치하던 노동자가 문틈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끼이고 깔리고 떨어져 목숨을 잃는 것이 이 나라 노동자의 처지인 것이다.일하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는데도 계속 돌아가야 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있다면 그것은 악마의 맷돌이다. 그런 세상 어디에도 숭고는 없다. 이것이 내가 이 아름다운 그림과 시를 마냥 편안한 마음으로 보거나 읽지 못한 이유다. 일터에서 죽어가는 노동자가 있는 한, 기계로 인해 목숨을 잃는 노동자가 있는 한 우리에겐 희망을 가질 자격이 없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2-11 전호근

[전호근 칼럼]편지

3년전 수강생 졸업 앞두고 보낸 안부훌쩍 성장한 향기로운 소식 읽으며 송나라 주돈이의 '애련설' 생각했다1학년 학생들 마지막 시험후 인사그 모습 사랑스럽고 대견해 보였다3년 전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 졸업을 앞두고 편지를 보내왔다. 종종 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지만 이처럼 훌쩍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혼자 읽기 아까워 이곳에 나눈다.안녕하세요 교수님. 저는 2015년 1학기에 경희대에서 교수님의 고전읽기 강의를 수강했던 연극영화학과 학생입니다. 저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으며 학교생활을 돌아보던 중 제게 가장 큰 인상으로 남은 분이라 이렇게 안부 차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성실하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 학생이라 아마 절 기억하지는 못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난이 깊은 풀숲에 있어 찾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그것이 향기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는 공자의 말을 자신의 사유로 풀어내는 것이 기말 시험이었습니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저는 신동엽 시인의 '오렌지'를 말머리에 쓰고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글로 썼습니다. 또 제가 예술을 하는 것과 여성인 자신을 인정하기 위해, 나의 향기를 긍정하기 위해 누군가의 코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사실 저는 유학을 비롯한 한국철학에 흥미가 없던 학생이었고 당시 교수님의 수업도 학점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강했습니다. 한국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왠지 보수적이고 정체되어 있을 것 같다는 편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그토록 중시하는 '인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답변을 유학 고전강의에서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교수님은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두 개의 팔과 다리가 존재하고, 말을 할 수 있으며, 남성과 여성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등 그런 다수의 보편성에 기대는 분류가 아니라 스스로 누군지 알고 그 정체성에 충실한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강의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공감과 위안 그리고 충격을 받았고 그 학기 교수님과 함께 한 시간에 대해 두고두고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 매우 비관적이고 모든 학문의 역사와 인간 사회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어떤 강의를 듣고 감동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오만하고 자의식이 과잉된 일이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작업하는 모든 창작물과 세상에 쌓여있는 인류의 산물이 헛되게 느껴져 의욕을 잃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세월에 구애받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이 다른 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누군지 탐구하면서 스스로 점점 더 견고해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의 강의가 누군가에겐 과거를 읽는 일이 어떻게 미래의 가치로 연결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람과 사람이 만든 것들에 환멸을 느낄 때 교수님의 강의가 주셨던 희망을 떠올리는 것처럼요. 교수님처럼 꾸준히 기억하고 기록하고 한 곳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건강한 겨울 보내시고 오래도록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OOO 올림.나는 이 향기로운 편지를 읽으면서 송나라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을 생각했다. 그는 연꽃을 칭송한 글에서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 맑아진다는 말(香遠益淸)을 남겼는데 나는 이 표현이 그저 문학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이 학생의 편지를 받은 뒤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편지를 받은 다음 날 일어났다. 그날은 내가 가르치는 1학년 학생들이 마지막 시험을 치른 날이었다. 답안을 쓴 뒤 인사하고 나가는 한 명 한 명이 전에 없이 사랑스럽고 대견해 보여 나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지가 학생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 자체를 변화시킨 것이다.앞으로 나는 모든 학생들을 이 학생을 대하듯 만날 것이다. 그러니 이 편지의 향기는 후배들에게도 전해져 멀리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향기는 홀로 있어도 가두어지지 않는 법이다. 학생의 바람처럼 나는 오래도록 행복할 것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12-24 전호근

[전호근 칼럼]빛이 된 두 사람

참형 당한 동학 1대 교주 '최제우'제자 최시형이 후천개벽 시점 묻자"때가 있으니 마음 급히 하지 말라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연히…"그의 말은 절망의 시대 비추는 '빛'1864년 3월 10일, 경상도 대구의 관덕정 뜰에서 동학의 1대 교주 수운 최제우가 참형에 처해졌다. 사도를 일으켜 정도를 어지럽혔다는 좌도난정(左道亂正)의 죄목이었다. 그의 나이 41세, 동학을 창도한 지 3년 만이었다. 그는 죽기 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등불이 물 위에 밝았으니 의심이 없고(燈明水上無嫌隙) 기둥이 마른 것 같지만 아직 힘이 남아 있다(柱似枯形有餘力)."최제우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제자 최시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861년 여름이었는데, 이후 최제우는 최시형의 득도를 인정하고 1863년 7월 23일에 그에게 해월(海月)이라는 도호를 내린 바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등불이 물 위에 밝았다"는 말은 바로 바다 위에 떠오른 달 '해월(海月)'을 가리키는 비유다.최제우가 최시형에게 도를 전수하게 된 데는 깊은 내력이 있다. 최제우가 관의 지목을 피해 전라도 남원으로 피신했다가 몰래 경주로 돌아와 은신하고 있던 1862년 봄의 일이다. 스승의 종적을 알 수 없게 된 최시형이 스승을 그리워하며 수행하던 중, 반 종지의 기름으로 스무하루 동안 밤을 새우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그는 그때의 체험을 이렇게 이야기했다."임술년(1862) 정월이었다. 여러 달 동안 밤이 새도록 등불을 켰기 때문에 기름이 반 종지밖에 남지 않았다. 다시 스무하루 동안 밤새움을 했는데도 기름이 닳지 않았다. 이로써 마음에 '자연의 이치'가 있음을 알아차렸다."이렇게 마음에 있는 '자연의 이치'를 터득한 그는 누가 일러주지 않았는데도 스승이 있는 곳을 알고 찾아가게 된다. 최제우는 그가 찾아오자 깜짝 놀랐다. 당시 최제우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있는 곳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은 그가 아직 전라도 어딘가에 피신하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최시형의 체험을 기록한 이 일화는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시 두 사람의 눈에 비친 세상은 참혹했다. 거듭된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은 무너졌고 아무리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끼니를 잇기 어려웠으며 나쁜 병이 퍼져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시대였다. 빛이 없는 시대에는 스스로 빛이 되는 수밖에 없다. 순도는 그렇게 예정된 것이다. 기름 없는 등잔에서 빛을 보았다는 것은 어둠의 시대에 자신의 몸을 살라 스스로 빛이 되겠다는 결심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리라. 최시형은 스스로 빛이 되었기에 어둠 속에서도 스승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이로써 최시형의 득도를 알아차린 최제우는 자신이 오래지 않아 체포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고 1863년 8월 14일 최시형에게 도통을 전수하여 동학교도를 이끌게 한 뒤 11월에 관에 체포되어 이듬해 순도하였다. 당시 그에게 직접 도를 전수받은 제자들 대부분이 함께 죽거나 유배형에 처해졌기 때문에 동학은 거의 끊어질 뻔했지만 그의 마지막 말처럼 최시형이 남아 있었기에 동학은 이어질 수 있었다. 스승을 이어 이후 35년간 동학을 이끌던 최시형은 1898년 4월 5일 밤 강원도 원주에서 관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5월 30일 그는 스승과 같은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6월 2일 단성사 뒤편 당시 육군법원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나이 72세, 동학에 입교한 지 38년 만의 순도였다.일찍이 그는 후천개벽의 시점을 묻는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때는 그때가 있으니 마음을 급히 하지 말라.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오리니. 만국 병마가 우리나라 땅에 왔다가 물러가는 때이니라."스승이 그를 남겨 후천개벽의 시대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 또한 스승의 말을 세상에 전함으로써 절망의 시대를 비추는 빛이 되고자 하였다. 마치 기름 없는 등잔이 어둔 방을 비추듯./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11-12 전호근

[전호근 칼럼]위대한 패배

1907~1910년 일제강점기 의병들맨몸으로 일본군 신식무기에 맞서이길 수 없는 전쟁 치른 이유는억압하고 핍박하던 못난 나라도자유로운 삶 위해 지켜야했기 때문"다 죽는구나. 다 죽어."드라마를 보던 아내가 길게 탄식을 내뱉는다. 무슨 드라마인가 물었더니 한말 의병과 관련된 이야기를 배경에 깔고 있는 '미스터 션샤인'이라며 줄거리를 간단하게 이야기해준다. 이야기를 들은 나는 이 드라마가 의병운동의 실상을 제대로 그려냈구나 싶었다. 동학 농민 전쟁부터 시작해 한말의 의병 운동은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1년여 전 나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개최한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장일순의 평화사상을 주제로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함께 학술대회에 참여했던 동학연구자인 원광대 박맹수 교수는 '전봉준의 평화사상'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나는 박교수의 발표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전쟁이라고 생각했던 전봉준의 무장투쟁이 실제로는 일방적인 피학살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박교수가 발굴한 자료에 따르면 전봉준의 지휘에 따른 농민군은 전쟁 내내 철저하게 불살생(不殺生)의 원칙을 지켰다. 전봉준이 내린 군령의 첫 번째 조항에는 적을 마주할 때 병기의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기는 것을 으뜸가는 공훈으로 삼는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또 어쩔 수 없이 싸우더라도 결코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을 최고로 친다는 내용과 함께 행군하는 곳마다 절대 백성들의 물건을 해하지 말라는 명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무지 군령이라고 볼 수 없는 내용이다.실제 동학농민군을 시종일관 비판적인 입장에서 기술했던 매천 황현의 '오하기문'에 따르더라도 1차 동학 농민혁명당시 농민군은 민폐를 전혀 끼치지 않은 반면, 서울에서 파견된 홍계훈의 경군은 막대한 민폐를 끼쳤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도쿄아사히 신문', '시사신보' 등 일본측 신문에도 일본 상인 가운데 농민군에게 피해를 입은 상인은 단 한 명도 없었으며, '조선잡기'에는 동학농민군의 규율을 두고 '문명적'이라고 기술하기도 했다.그날 뒤풀이 자리에서 박교수는 1894년 12월에 있었던 일본군과 동학농민군 간의 갑오농민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 희생자 한 명당 동학농민군 희생자는 3만 명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동학농민혁명은 처참한 자기희생일지언정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동학농민혁명뿐 아니라 일제의 강점을 전후한 시기에 활동한 의병도 마찬가지였다. 1907년부터 나라가 병탄되던 1910년에 이르기까지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지만 그들 대부분은 일제의 진압에 무자비하게 학살되었다. 초기 독립운동 기록을 살펴보면 의병 70여 명을 일본군 헌병 세 명이 출동하여 몰살시키는 식이다. 의병들의 무기는 몽둥이, 낫, 도끼, 화승총 따위였고 일본군은 신식 무기를 갖추고 있었으니 상대가 될 수 없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일제 강점 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영규의 '강화학 최후의 광경'을 읽어보면 정원하와 이건승을 비롯한 양명학자들은 만주로 가 독립운동에 참여하지만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손자병법에 따르면 전쟁은 이길 수 있을 때만 하는 것인데 동학농민군이나 이후의 의병과 독립군들은 모두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한 것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더욱이 그들이 지키려던 나라는 그들을 억압하고 핍박하던 못난 나라 아닌가? 그들은 그들의 가난한 무기와 움켜쥔 주먹으로 외세와 부패한 권력을 몰아내고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1907년 의병활동을 취재하기 위해 조선에 온 영국의 기자 매켄지는 당시 항일 의병을 이끌던 젊은 의병 지휘관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싸우다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노예로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게 낫다."그들은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라도 나서야 하며 자유로운 삶을 위해 못난 나라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내가 드라마의 마지막 편을 보면서 대사를 따라 중얼거린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불꽃으로 살다가 가겠다, 이게 나의 세계다.혹 이 나라를 침략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들처럼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나설 수 있을 것인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10-01 전호근

[전호근 칼럼]어느 가족이 본 '어느 가족'

'혈연 아닌 서로 필요해서 산다'는영화속 다섯명의 주인공들마지막 장면에서는 서로를 위해자신이 가장 소중한 것을 준다내가 본 '유일한' 가족 영화였다며칠 전 가족과 함께 집 근처 영화관을 찾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을 보기 위해서다. 당초 식구 넷이 다 같이 편안하게 즐길 만한 영화로는 적당치 않을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염려가 없지 않았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지만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기에는 적잖이 불편한 장면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가족 모두 어엿한 성인인데다 의견 일치가 쉽지 않은 우리 가족의 특성상, 모처럼 같이 영화를 보기로 한 드문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가족 간 의견 일치가 어떻게 쉽지 않은지 궁금해하실 분이 계실 것 같아 잠시 옆길로 새자면, 우리 가족은 좋아하는 음식도 각기 다르고, 독서나 음악 취향도 모두 다르며 세대 차이도 꽤 심각한 편이다. 무엇보다 밥상머리 대화에서 다른 사람 이야기는 잘 듣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끝까지 해대는 통에 번번이 논쟁이 일어나 서로 얼굴 붉히기가 십상이다.이처럼 모래알 같은 가족이 한 명의 반대도 없이 '어느 가족'을 보는 데 찬성했으니 영화를 보기도 전에 고레에다 감독의 위대함에 고개가 숙여졌다.'어느 가족'은 원제가 '만비키 가족(万引き家族)'이다. '만비키'는 물건을 사는 척하면서 훔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원제를 우리말로 옮기면 '좀도둑 가족' 정도가 된다. 제목만 놓고 보면 가족 영화가 아니라 오히려 가족파괴 영화라 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직업으로 간주할 수 없는 도둑들의 이야기가 어찌 가족 영화일 수 있단 말인가.게다가 주인공들 중 사회가 용인하는 정상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가족 구성원 중 남편 역할을 하는 오사무는 아이를 시켜 가게의 물건을 훔치게 하고 때로 자동차의 창문을 부수고 직접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아내 역할을 하는 노부요는 세탁소에서 일하지만 세탁물에 잘못 딸려온 고객의 물건을 수시로 훔친다. 딸 역할을 하는 아키는 유사 성행위 업소에서 일하며 돈을 번다. 할머니 하츠에는 전 남편이 남겨준 연금으로 생활하지만 생전의 남편과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아들 역인 쇼타는 책가방을 메고 다니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으며 책가방 안에는 책 대신 훔친 물건이 들어있다. 새로 가족의 일원이 된 유리는 오빠인 쇼타를 따라 가게에서 물건 훔치는 법을 배운다.이들은 혈연 유대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에 따라 함께 살게 된 것일 뿐이다. 할머니는 돌봄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은 할머니의 연금에 의지하여 생활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함께 모여 살게 된 이유는 가출이나 버려짐 또는 유괴의 결과일 뿐이다. 그러니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이들을 가족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이 세상 사람들이 '내다 버린' 가족의 가치를 가장 잘 지키고 있다면?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할머니 하츠에가 죽자 두 부부는 연금을 계속 타기 위해 할머니의 시신을 몰래 땅속에 파묻는다. 나중에 경찰이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추궁하자 노부요는, 자신들은 '버린 것'이 아니라 '주운 것'이라며 버린 사람은 따로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관객에게 그대로 꽂힌다. 내가 바로 노부요가 말하는 그 '버린 사람'은 아닌가.주인공들이 함께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 깊다. 그들은 불꽃은 보지 못하고 지붕 너머로 폭죽 소리만 들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느 가족보다 더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 장면은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할머니가 해변에서 놀고 있는 다섯 명의 가족을 바라보며 입술만 움직여 말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물론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쇼타가 입술을 움직이는 장면과 함께, 들리지 않아도 들을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영화의 막바지에서 두 부부는 자신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쇼타에게 내어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아들로 여겼던 쇼타 그 자신이다. 노부요는 쇼타에게 친부모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알려준다. 그리고 오사무는 자신의 본명과 똑같은 이름을 지어준 아들 쇼타에게 이렇게 말한다."아빠는 이제 아저씨로 돌아갈게."주인공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준 것이다.'어느 가족'은 '훌륭한' 가족 영화가 아니라 내가 본 '유일한' 가족 영화였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8-13 전호근

[전호근 칼럼]정성껏 물을 주면

모든 교육과정 대입위한 수단 간주연령대별 익혀야 할것들 팽개쳐 둬싹 자라기는 커녕 더 말라가기만사회구조 바뀌지 않는한 파행 지속유일한 방법은 학생들 변화시켜야송나라의 어떤 사람이 곡식 싹이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을 답답하게 여긴 나머지 조금씩 뽑아 올려주었다. 그는 집에 돌아가서 가족에게 곡식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아들이 깜짝 놀라 뛰어가 보니 싹은 이미 말라죽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수 있는지 묻는 제자에게 맹자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로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른바 알묘조장(알苗助長, 싹을 뽑아 자라는 것을 도와줌)의 고사로 '맹자'에 나온다. 호연지기는 한 사람이 올바른 행동을 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도덕적 끈기와 유사한 것으로 플라톤이 이야기한 용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한 철학자답게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것이 양심(良心)이다. 하지만 양심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은 이해관계에 얽히면 쉽사리 양심을 저버리고 이익을 취하기 일쑤다. 양심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연지기는 이런 양심을 떠받치는 힘이다. 그러므로 호연지기를 기르지 않으면 양심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올바른 행위를 할 수도 없게 된다.맹자가 예로 든 알묘조장의 뜻은 이렇다.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곡식 싹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세상 사람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속성으로 기르다보니 호연지기가 길러지기는커녕 도리어 말라죽고 말았다는 얘기이다. 맹자는 이어 세상에 조장하지 않는 이가 드물다고 탄식했다.지금 이 나라의 교육자나 학부모 중에도 아이들의 싹을 뽑아 올리는 조장(助長)을 하지 않는 이가 드물다. 모든 교육과정이 대학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어 연령대별로 꼭 익혀야 할 것은 팽개쳐 두고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한 학습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조장도 이런 조장이 없다. 그러니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 대부분이 말라죽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대학도 조장에 나서긴 마찬가지다. 방학 중에 진행되는 이른바 계절 학기는 한 학기 16주 동안 진행되는 강좌를 15일로 압축한 단기속성과정이다. 대학의 당국자들은 전체 강의시간만 같으면 기간과 상관없이 동일한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특히 인문교양 과목의 경우 졸업할 때까지 4년간 기다린다 해도 효과를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한 사람이 전 생애에 걸쳐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인문교양 과목은 당장의 이익과는 상관없는 내용을 가르치기 때문에 전공보다 훨씬 긴 호흡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학 당국은 인문교양을 비롯한 다수의 학과목을 속성과정으로 개설하고 있다.이러다 보니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 또한 싹이 자라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말라가기만 한다. 당연히 학생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학 당국의 잘못으로 돌릴 수만도 없다. 교육을 기능인 양성 정도로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파행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만든 오래된 주범들은 교육부 관료들과 기업, 언론으로 보이지만 그들도 구조의 일부일 뿐 권력과 자본의 당사자가 아니다. 그러니 도무지 그런 구조를 바꿀 방법이 없어 보인다. 학교 당국자가 교육의 근본 취지에 따라 학교를 운영하려면 당장 언론의 대학평가를 거부해야 하고 교육부의 지원을 포기해야 하며 학생 수가 줄어드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 학교의 어느 관계자도 그런 모험을 할 생각이 없고 그럴 만한 용기도 없다.이런 현실을 느낄 때마다 대학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하지만 결국 학생들 때문에 떠나지 못한다. 내가 바라는 건 결국 학생들을 통해서 이룰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유일한 방법이다.오래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을 보다가 마태수난곡이 나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끝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옛날 어느 수도사가 말라죽은 나무에 정성껏 물을 주었더니 마침내 죽은 나무에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내가 만나는 학생들도 정성껏 물을 주면 정말 수도사의 나무처럼 꽃을 피울까?정성껏 물을 주면, 정성껏 물을 주면…./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7-02 전호근

[전호근 칼럼]시인(詩人)을 존경한다

시는 갑자기 찾아오는게 아니라시인으로 사는자에게만 다가오는것겨울과 강·나무와 풀 늘 말 걸지만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두 귀가 순해진 시인뿐이다언젠가 나를 소개하는 글 끄트머리에 "가난한 시인을 존경한다"고 쓴 적이 있다. 그 무렵 '책 읽는 사회 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시 낭송회에 참석하기 위해 동숭동에 있는 일석기념관에 갔다가 이모 시인을 만났다. 그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 손을 덥석 붙잡으며 "가난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왜 자신을 멀리하는지 비로소 알았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슬쩍 넘어갔지만 아무래도 내 글이 부담을 준 것만 같아 지금까지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이 남아 있다.나는 늘 시인이 부러웠다. 나도 시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깜냥으로는 어떻게 해야 시를 쓸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시를 많이 읽다 보면 마침내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백석과 윤동주, 김수영과 기형도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칠레의 시인 네루다도 시에서 이야기하길, 어느 날 시가 내게로 왔다며,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대시인조차 시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셈이니 그저 난감하기만 했다.그러다가 문학평론가 도정일 선생의 글을 읽고 난 뒤 어떻게 해야 시를 쓸 수 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도정일 선생은 시인이 세상을 향해 뭔가 보여주고 싶을 때, 이를테면 나무라든가 구름, 당나귀 같은 것을 보여주고 싶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그냥 한 사람의 시인으로 사는 것이라 했다.('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문학동네) 요컨대 시인으로 살면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가, 수필가, 화가는 '가'이되 시를 쓰는 사람만큼은 '시인'이다. 그가 갖고 있는 재주가 아니라 그냥 온전히 존재 자체가 시인 사람, 시인이라서.방법을 알았지만 또 다른 어려움에 부딪쳤다. 시인으로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시인이 아닌 나로서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어느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접하곤 시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게 되었다.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한국에서 소득 가장 낮은 직업 2위는 수녀, 1위는?'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기사를 읽지 않고도 답이 무엇인지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를 열어 보았더니 가장 가난한 직업은 시인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소득별 직업 순위 정보를 포함한 '2016 한국의 직업정보'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직업은 시인으로 한 해 평균소득이 542만 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5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돈으로 한 달을 사는 일, 하루 세끼 챙겨 먹기에도 벅찬 수입으로, 겨울에는 춥게 여름에는 덥게 사는 것이다. 기사를 읽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끝내 시를 쓰지 못하리라는 것을.그날 지리산에서 올라온 박남준 시인은 '마음의 북극성'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꼭 그만큼씩 울음을 채워주던 강물이 말라갔다 / 젊은 날의 나침반이었던 내 마음의 북극성만이 아니다 / 간밤에 미처 들여놓지 못한 앞강이 / 꽁꽁 얼기도 했다 / 강의 결빙이 햇살에 닿으며 안개 또는 김발로 명명되고 / 가물거리는 아지랑이를 만든다 / 아~아지랑이 / 어쩌면 치미는 슬픔 같은 먼 봄날의 아지랑이 / 이렇게나마 겨우 늙었다 / 강을 건너온 시간이 누군가의 언덕이 되기도 한다 / 두 귀가 순해질 차례다'두 귀가 순해진다는 시구는 공자의 '이순(耳順)'에서 따온 말일 테지만 이 구절을 읽고 나는 비로소 시인으로 살면 시를 쓰게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그렇다. 귀가 순해진다는 것은 나무들이 말을 하고 시냇물이 소리를 내며 언 강이 녹으며 봄날의 아지랑이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나는 또 네루다가 시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며,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 뜻도 알았다. 시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시인으로 사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다. 겨울과 강, 나무와 풀은 늘 말을 걸어오지만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귀가 순해진 사람, 시인뿐이다. 시인만이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시인을 존경한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5-21 전호근

[전호근 칼럼]빵과 물, 시인과 도둑

우리 아이들의 학교생활안전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선교내 출입통제 강화하거나경찰관 배치하는게 아니라빵과 물 나누는 따뜻한 마음 필요얼마 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인질극이 일어났었다. 많은 이들이 가슴을 졸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인질로 잡혔던 아이는 무사히 풀려났고 용의자도 검거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의 현명한 대응이 눈길을 끌었다. 사건을 보도한 기사를 읽어보았더니 경찰관은 용의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에게 빵과 물을 건넸다. 이어서 용의자더러 아이에게도 빵과 물을 나누어주라고 청한 다음 틈을 노려 검거에 성공했다고 한다.인질극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아이가 안전하게 가족의 품에 돌아가기만을 빌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아이뿐 아니라 용의자 또한 무사히 검거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나에게는 경찰이 건넸다는 빵과 물이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무슨 숭고한 물건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 빵과 물은 인질극이라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에게도, 인질로 잡힌 아이에게도 건네져야 할 신성한 무엇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빵과 물은 예사 물건이 아니다. 용의자는 주림과 갈증을 해소하는 빵과 물을 건네받고, 또 그것을 아이에게 건네면서 순간이나마 마음이 느슨해졌을 것이다. 아이도 긴장과 공포와 갈증에서 잠깐 한숨 돌리는 순간이 되었을 테니, 둘 사이에 오간 팽팽했던 시간의 틈새가 극적인 해결을 가져왔으리라.그러다가 나는 만약 용의자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누군가 그에게 빵과 물을 건넸다면 인질극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현실이 아닌 허구이지만,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에게 누군가 빵과 물을 건넸다면 어땠을까. 그가 빵을 훔쳐 감옥에 갈 일도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며칠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이 내 머릿 속에서 잊힐 무렵 마침 50주기를 맞이하여 새로 출판된 '김수영 전집(이영준 엮음·민음사)'을 펼쳤다가 저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김수영의 산문 '양계 변명'을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북동에서 마포 서강 강변으로 이사해 살던 김수영은 생활고를 줄여볼 요량으로 닭을 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도둑이 들었다. 가난한 시인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만 내가 더 놀랐던 것은 시인과 도둑의 첫 대화가 존댓말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이거 보세요, 이런 야밤에…" 대화의 첫 마디에 따라 이후의 상황이 얼마나 크게 달라지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도둑 또한 존댓말로 "백번 죽여주십쇼, 잘못했습니다!" 하고 용서를 빌었다. 이어서 시인은 도둑에게 집이 어딘지 물었고 도둑은 우이동이라 답했다. 우이동 사는 사람이 왜 이리로 왔느냐고 물으니 도둑은 그 이유는 자신도 모르며 여기서 잘 수 없는지 되물어왔다. 시인은 그가 취한 척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여보, 술 취한 척하지 말고 어서 가시오." 했더니 도둑은 두서너 발자국 걸어 나가다가 뒤를 돌아보며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하고 물었다고 한다.기막히게도 철조망을 넘어온 도둑이 어디로 나가야 하느냐고 물은 것이다. 시인은 도둑의 이 마지막 물음이 끝내 잊히지 않고 귀에 선하다고 했다. 도둑의 말을 단순히 문이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으로 이해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철조망을 넘어온 도둑이 다시 철조망을 넘는다면 그뿐이지만, 나가는 문을 물어 그리로 나간다면 적어도 다시 도둑질을 하러 가는 길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디로 가야 살아나갈 길이 있을 것인가. 결국 시인은 자신이 닭을 키우는 것도 도둑이 철조망을 넘어온 이유와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하며 자신과 도둑의 처지를 바꾸어 말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어 스스로 도둑이 되어 이렇게 말한다."백번 죽여주십쇼, 백번 죽여주십쇼,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김수영의 짧은 글 '양계 변명'은 이렇게 갈 곳 없는 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하는 자의 물음으로 끝난다. 이 물음에 어떻게 답할지는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나에게는 시인의 도둑과 이번 사건의 용의자가 같은 인물로 겹쳐 보였다. 어디로 나가느냐고 묻는 도둑이 더 이상 도둑일 수 없는 것처럼, 인질에게 빵과 물을 건네는 인질범은 더 이상 인질범으로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p.s. 우리의 아이들이 참으로 안전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은 출입통제를 강화하거나 학교에 경찰관을 배치하는 일이 아니라 빵과 물을 나누는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용의자는 아이를 붙잡으며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4-09 전호근

[전호근 칼럼]이름 이야기

고전 구절 인용 작명하는 이유는동아시아의 오랜 지적 전통을복원하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내가 되살리고 싶은 것은오랫동안 지켜온 삶의 문법이고 그중 하나가 이름에 담겨 있다가끔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이름을 짓는 방식은 작명가들이 짓는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주로 고전 구절을 따서 이름을 짓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동아시아의 오랜 지적 전통을 복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통의 복원이라니까 오해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권력으로서의 전통은 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되살리고 싶은 것은 우리의 지식인들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삶의 문법이다. 그중 하나가 이름에 담겨 있다.옛사람들은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명나라 말기의 학자 방학점(方學漸)은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방이지(方以知)'라는 구절을 따서 손자의 이름을 지었다. 올바른 도리를 지켜 지혜로워진다는 이름 덕택인지 방이지(方以智)는 고금과 동서의 지(知)를 망라하는 대지식인이 되었다. 그 자신의 이름인 학점(學漸)도 주역의 점(漸)괘에서 착안한 것으로 삼대가 주역학자였던 집안다운 이름 짓기라 하겠다.방학점의 선배격인 명나라 중기의 유학자 담약수(湛若水)의 이름은 장자의 군자지교담약수(君子之交淡若水)에서 따온 것으로 '담(淡)'을 자신의 성(姓)인 '담(湛)'으로 바꾼 것일 뿐이다.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맑다는 뜻인데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18세기 조선의 인물 중에는 멋진 이름을 가진 이가 많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건 다산 정약용이다. 그의 이름 '약용(若鏞)'은 서경에 나오는 말이다. 다만 '약용(若鏞)'이라는 표현 그대로는 안 나오고 '약금(若金)'으로 찾아야 나온다. 서경 열명편에는 은나라의 고종이 부열을 등용하면서 "만약 쇠붙이일 것 같으면 너로 하여금 숫돌이 되게 하리라(若金 用汝作礪)"고 했는데 여기서 '만약 쇠붙이라면'이라는 뜻인 '약금(若金)'을 취한 것이다. 다산의 아버지는 이에 착안하여 아들형제의 이름에 모두 쇠금(金)자를 넣어서 '약전(若銓)', '약용(若鏞)' 등으로 지었다. 세상을 바로 잡는 저울(銓)이 되고 세상을 울리는 큰 종(鏞)이 되어 사람들을 깨우치라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이름이 좋아서인지 두 사람은 모두 이름값을 했다.'청장관전서'를 남긴 이덕무(李德懋)의 이름도 서경에서 따온 것이다. 서경 중훼지고에는 탕임금의 공덕을 들면서 '덕이 훌륭한 사람에게는 관직을 주어서 덕에 힘쓰게 했다'는 덕무무관(德懋懋官)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덕무의 이름은 덕무(德懋)이고 자는 무관(懋官)이다. 합치면 덕무무관(德懋懋官), 서경의 글귀와 똑같다.'북학의'를 지은 박제가(朴齊家)의 이름은 제가(齊家), 자는 수기(修其)였다. '제가'는 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제가이고, '수기(修其)'는 수기(修己) 또는 수신(修身)과 같은 의미로 재수기신(在修其身)에 따온 이름이니 자와 이름을 모두 대학에서 취한 것이다. 이 두 사람 또한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하지만 이름이 좋다고 반드시 이름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현대 신유학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던 양수명(梁漱溟)의 아버지는 이름이 제(濟)였고 자가 거천(巨川)이었다. 이 또한 서경 열명편에서 "만약 큰물을 건널 것 같으면 너로 하여금 배와 노가 되게 하리라(若濟巨川 用汝作舟楫)"고 한 대목 중 큰물을 건넌다는 뜻인 '제거천(濟巨川)'에서 따온 것이다. 양제의 아버지는 아들이 큰물을 건너는데 쓰이는 훌륭한 재목이 되라는 마음을 담아 이렇게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제는 청나라가 망하자 서세동점의 큰물을 건너지 못하고 적수담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벌써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나는 아들의 아명을 '웅비(熊비)'라고 지었다. 본명을 짓는 것은 할아버지의 몫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명을 지었는데, 곰 웅(熊)자와 곰 비(비)자를 썼다. 웅비(熊비)는 시경의 시 사간(斯干)에 "곰 꿈을 꾸는 것은 사내아이를 낳을 조짐이다(維熊維비 男子之祥)"라고 한 데서 따온 것이다. 아들아이를 낳기 전 아내가 태몽으로 곰 꿈을 꿨기 때문이다. 시경의 구절대로 태몽을 꾼 셈이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2-26 전호근

[전호근 칼럼]맛에 관하여

나는 주사부나 김정희가 느낀그 맛이 어떻다고 말할 순 없지만가족들과 모여 먹는 일이야말로가장 큰 즐거움이란 걸 알 것 같다언젠가 내가 만든 요리 함께 먹으면그땐 맛이 뭔지 말할 수 있을듯언제부턴가 우리 식구 중에서 나만 빼고, 그러니까 아내와 딸, 아들 녀석까지 TV에서 먹는 걸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나오면 넋 놓고 본다. 얼마 전엔 어느 먹방에 유명 요리사 고든 램지가 나왔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나는 식구들의 그런 모습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일쑤였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먹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먹는 걸 보고 즐긴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먹는 모습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일을 기꺼이 감내하는 출연자들은 더 이상해 보였다. 나라면 밥 먹을 때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면 밥이 잘 넘어가지 않을 것만 같아서다.그러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방송을 보고 즐겼는지 생각해보았다. 지금은 거의 보지 않지만 나도 한 때는 스포츠 경기 중계방송을 즐겨 보았다. 야구나 축구 경기는 무척 즐겨 보는 편이었고 가끔은 권투나 이종 격투기를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주로 보았던 셈이다. 으레 치고 박고 싸우거나 승자의 환호와 패자의 눈물이 있는 그런 일들을 보고 즐겼던 것이다.반면 먹방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즐거워하며 음식을 나눠먹는 평화로운 모습이 이어질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득 먹방 보는 식구들이 이상한 게 아니라 그걸 이상하게 바라보는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오래 전 이야기지만 '음식남녀'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요리사인 주사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입맛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스스로 그런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가족들 또한 그의 요리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 요리사 온씨가 그의 고충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이야기한다."베토벤이 좋은 소리는 귀에 있지 않다고 말한 것처럼 좋은 입맛도 입에만 있는 것이 아니야."얼마 후 온씨는 건강을 잃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일하던 주방으로 돌아와 숨을 거둔다. 동료를 잃고 슬픔에 잠긴 주인공은 자신의 요리를 먹는 가족들의 표정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 결과 그는 가족들이 말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요리가 이미 제 맛을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후 그는 평소 마시던 고산차 대신 물을 마신다. 평생 그토록 좋아하던 차맛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입맛을 잃어버린 것이다.이제 주변에서 그가 요리한 음식을 먹으면서 감탄하는 사람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손녀 뻘인 이웃집 어린이 산산은 그의 음식을 언제나 맛있게 먹어주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매일 같이 여러 가지 음식을 요리한 다음 그것을 들고 학교로 가서 산산에게 준다. 아이들은 그가 만든 음식에 환호했고 이후 그는 다른 아이들의 음식까지 만들어서 학교를 드나들기 시작한다. 산산이 집에서 가지고 온 도시락을 대신 먹던 주인공은 조금씩 깨달아 가기 시작한다. 동료 온씨가 맛은 음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던 뜻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딸이 차려준 음식을 먹으며 주인공은 마침내 입맛을 되찾았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찾은 맛은 어떤 맛이었을까?그러고 보니 추사 김정희도 죽기 두 달 전 이런 대련을 썼다.'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최고의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요, 가장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 라는 뜻이다. 이 글귀대로라면 가장 맛있는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따위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김정희의 속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당시 그의 나이가 일흔 한 살이었으니 그의 미각 또한 주사부 만큼이나 온전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여태껏 변변한 요리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주사부나 김정희가 느낀 그 맛이 어떠했을지 감히 말할 수 없다. 다만 가족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함께 음식을 먹는 일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즐거움이라는 뜻만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언젠가 내가 만든 요리를 식구들과 함께 먹는 날이 오면, 그 때는 나도 맛이 무엇인지 비로소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1-22 전호근

[전호근 칼럼]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길속에서 할머니 구한 세 청년그들은 맹자의 가르침 처럼이성이나 다른 능력에 주목 않고아무 생각없이 갑작스런 마음에서인간 본성 선함을 이끌어냈던 것그 용기 존경·감사의 마음 전한다지난 한 주 동안은 유난히 화재 사고가 많았던 모양이다. 며칠 전 TV로 뉴스를 보다가 강원도 춘천시 약사동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 소식을 접했다. 뉴스에 따르면 70대 노부부와 손자가 사는 집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할아버지와 손자는 곧바로 밖으로 대피했지만 휠체어를 타고 있어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손자가 주변에 도움을 청하자 마침 근처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있던 청년 셋이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 휠체어에 앉아 있던 할머니를 구해 나왔다는 것이다.방송사의 카메라 앞에 선 청년 중 한 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안에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할머니를 구해 밖으로 나왔습니다."뉴스를 보고 있던 나에게는 청년이 인터뷰에서 한 말 중 '생각할 겨를도 없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인상 깊게 다가왔다. 맹자가 말한 '출척측은지심( 척慽惻隱之心)'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기 때문이다.일찍이 맹자는 어린 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는 '유자입정(孺子入井)'의 사례를 가정하면서 그런 일을 목도하게 되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출척측은지심( 척惻隱之心)'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여기서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은 그가 주장하는 성선설의 중요한 근거이기도 하다.그는 측은지심을 필두로 악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가리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두고 인간의 선한 본성을 확인할 수 있는 네 가지 마음이라는 뜻에서 사단(四端)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어서 사람이 사지(四肢)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누구나 이 네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만약 이 네 가지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이야기했다. 맹자에 따르면 이런 마음은 배워서 아는 것도 아니고 깊이 생각해서 아는 것도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나오는 양지(良知)요 양심이기 때문이다.맹자가 사단(四端)의 으뜸으로 강조한 측은지심은 흔히 연민이나 동정심 정도로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측은(惻隱)의 '측(惻)'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뜻이고 '은(隱)'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측은지심은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고 헤아리는 마음이라 하겠다.그런데 맹자는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데는 '출척( 척)'이라는 전제가 있다고 말한다. '출척( 척)'은 갑작스러운 상황을 당해 '깜짝 놀라는 마음'이다. 맹자는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 까닭은 아이의 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웃 사람의 칭찬을 바라서도 아니며, 구해주지 않았다는 비난이 두려워서도 아니라고 이야기했다.아이의 부모나 이웃의 칭찬이나 비난을 '생각하지 않는 가운데' 갑자기 일어나는 마음이 '출척( 척)'이라 본 것이다.맹자의 이야기는 참으로 설득력이 있다. 그는 인간이 가진 이성이나 다른 능력에 주목하지 않고 오히려 아무런 생각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마음에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확신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만약 위급한 상황에 처한 어떤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곧바로 행동하지 않고 이것저것 길게 생각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아마도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위험을 두려워 해 소방관이 오기를 기다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난을 염려하여 구조를 주저할 수도 있을 것이며, 행동의 결과에 따른 이로움이나 불리함을 따져보기도 하지 않을까. 그러는 사이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는 영영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이런 이유로 나는 불길 속에서 할머니를 구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발휘한 청년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지면으로나마 먹던 밥알을 토해내고 이웃의 귀중한 생명을 구해낸 세 명의 청년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12-18 전호근

[전호근 칼럼]일한 사람이 쉴 수 있는 세상

한국노동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OECD평균보다 1.7개월 더 많고독일보다 무려 넉달이나 더 일해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한다이젠 우리도 부의 분배만 아니라쉼의 분배에도 많은 관심 가져야중국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한 사람인 묵자는 수레를 만드는 기술 노동자였다. 당시 그를 비롯한 기술자들은 수차와 호미 등 새로운 농기구를 만들어 물질적 풍요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당시의 지배자들은 기술이나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의 노고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들의 삶은 여전히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기술자 집단의 우두머리였던 묵자는 기술과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우려 했다. 그는 인간이 인간인 이유를 노동하는 데서 찾았다."사람은 본디 날짐승이나 길짐승과는 다른 존재다. 짐승들은 깃이나 털을 그대로 옷으로 삼고 물이나 풀을 그대로 먹을거리로 삼지만, 사람은 이들과 달라 노동하는 자는 살아나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자는 살아나갈 수 없다."그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깃이나 털을 그대로 옷으로 삼고 물과 풀을 그대로 먹는 짐승들과는 달리 노동을 통해 자연을 넘어서는 존재다. 되돌려 말하자면, 그에게 일하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가 말하는 정의란 것도 다른 철학자들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그려진다. 그는 남의 것을 훔친 자를 부도덕하다고 비판하지만 그보다 스스로 노동하지 않고 남의 노동을 훔친 행위, 곧 남의 노동을 착취하는 행위야말로 가장 부도덕한 행위라고 비판했다.따라서 그는 그런 노동 착취행위가 가장 큰 규모로 일어나는 침략 전쟁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부당한 폭력이라고 지적한다. 전쟁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사회적 불의라고 규정했던 건 그에게는 당연한 결론이었다. 실제로 그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집단을 구성하여 침략자에게 조직적으로 저항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시대를 대혼란의 시대로 보았지만 혼란을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달랐다. 당시의 혼란을 묵자는 이렇게 정리했다."백성에게는 세 가지 걱정이 있다. 굶주린 자가 먹지 못하는 것, 추위에 떠는 자가 입지 못하는 것, 수고롭게 일한 자가 쉬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야말로 백성들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이 말에서 그의 철학이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백성, 수고롭게 일한 자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자뿐 아니라 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 일하는 자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천 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에 비추어 보아도 묵자의 이야기는 여전히 돌아볼 만한 점이 없지 않다.말할 것도 없이 현대의 한국인들은 고대의 춘추전국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이들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다지 행복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높은 자살률과 낮은 국민 행복도를 보면 한국인의 삶은 대체로 우울해 보인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최근의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우울은 무슨 실존적인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데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OECD에서 발표한 '2017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6년 한국 노동자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 노동자는 OECD 평균보다 1.7개월을 더 일하며,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짧은 독일과 비교하면 무려 넉 달을 더 일한다. 이러니 한국 노동자들은 한 마디로 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하는 이들인 셈이다. 어떤 이들은 노동생산성이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 노동자들의 자질이 독일 노동자보다 넉 달을 더 일해야 할 정도로 떨어진다는 말인가?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많이 일하면 생산성도 따라서 올라간다는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반증으로 이해하고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할 것이다.2천 년 전의 묵자가 일한 자는 쉬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그의 시대적 요청에 명징하게 답한 것처럼 이제 한국 사회도 부의 분배만 아니라 쉼의 분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수고롭게 일한 모든 이들이 마음 놓고 넉넉히 쉴 수 있는 날이 이제는 와야 하지 않을까. 2천 몇 백 년은 너무 오랜 기다림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11-13 전호근

[전호근 칼럼]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커피믹스 따로 팔 수는 있지만탄 커피 돈 받을 수 없다는 할머니돈으로 못 살것 없는 지금의 세상진심어린 친절 감동이기에값어치로 환산할 수 없는 환대거래할 수 없는 가치 지녀내가 한창 골목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던 시절 이야기다. 2009년 어느 가을날에 나는 카메라를 챙긴 다음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서울의 후암동 골목길을 찾았다.용산고등학교를 지나 남산으로 통하는 소월길에 이르기까지 꼬불꼬불 이어지는 후암동 골목길은 갈래가 꽤나 복잡해서 다 돌아보는 데 반나절 가까이 걸린다. 그날은 빛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러 차례 골목길을 오르내리면서 마음에 드는 컷을 많이 건졌다.부지런히 돌아다니던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골목길에는 커피숍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소월길 못미처 용산초등학교 언저리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찾았다. 우리는 전에 다른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믹스커피를 타달라고 해서 마실 요량으로 구멍가게로 들어갔다.안에는 여든이 훨씬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믹스커피를 타 주실 수 있겠느냐고 여쭙자 할머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전자를 꺼내 불에 올렸다.가게는 아주 작았다. 둘러보니 진열된 물건들도 유행 지난 과자가 대부분이었고 양도 많지 않았다. 가게 입구에 설치된 평상에는 커다란 호박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가게로 연결된 좁다란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울퉁불퉁 파손된 곳이 많았다.이윽고 주전자 안의 물이 끓기 시작했고, 잠시 후 우리는 할머니가 타주신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많이 걸었던 터라 그런지 커피가 유난히 맛있었다. 천천히 커피를 다 마시고 난 뒤 우리는 할머니에게 얼마를 드려야할지 여쭈었다.그런데 할머니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놀란 우리는 그러시면 안 된다고 말하며 돈을 꺼내 드리려고 했으나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 돈을 절대 받을 수 없으니 그냥 가라고 하셨다.할머니 말씀은 커피믹스를 따로 팔 수는 있어도 손님에게 커피를 타주고서 돈을 받을 수는 없다고 하신다. 그리고는 "우리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고 하셨다.우리는 할 수 없이 건강하시라고 인사드리고 가게를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나는 커피를 마실 때면 종종 까닭 모를 감동과 함께 그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렸다. 커피를 따로 팔 수는 있지만 손님에게 커피를 타주면서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그 할머니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돈으로 못 살 건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지금 세상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 또한 대개가 거래의 다른 이름이기 십상이다. 거래에는 손님과 주인이라는 고유한 관계는 사라지고 소비자와 판매자라는 무미건조한 관계만 남는다. 소비자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물건을 사고 판매자 또한 물건을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도 물건을 사용할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가격에 맞춰 상품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애덤 스미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맛있는 빵을 원한다면 빵집 주인의 자비심에 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의 이기심에 호소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인 세상이다.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방법은 무엇이든 교환할 수 있는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미 오래 전에 뿌리 내린 자유 시장의 거래 원칙이다. 물건만이 아니다. 돈의 힘은 더없이 편리하고 강력해서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는 한 우리는 어디서나 한껏 친절한 응대를 살 수 있다.하지만 그날 나는 커피를 타주는 할머니의 환대를 돈으로 살 수 없었다. 진심어린 친절이기에 거래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사랑은 사랑으로만 교환할 수 있고 우정은 우정으로만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까닭 모를 감동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환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얼마 전 일이 있어 후암동에 들렀다가 할머니 가게가 있던 곳을 찾았지만 이미 그곳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가게가 있던 골목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가려고 그곳을 떠나 지하철역에 이를 때까지 내 귀에는 계속 할머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10-09 전호근

[전호근 칼럼]마음을 실어 쓴 글 '목민심서'

흉년에 도적질한 자 죽이기보다그 사정을 알고 불쌍히 여기고가난해 자식 낳아도 못 거두면길러줘 백성의 부모노릇 해야이땅의 목민관 정치인·행정가등다산의 마음 조금이라도 가졌는지글자 수로 500만 자가 넘는 다산 정약용의 방대한 저작 중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고전에 대한 탁견으로 가득한 '논어고금주'도 아니요, 혁명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탕론'도 아니며, 두 아들에게 보내는 애끓는 심정의 편지글도 아니라 바로 행정실무지침서인 '목민심서'다.목민심서는 지방 수령이 부임(赴任)에서 해관(解官)에 이르기까지 지켜야 할 덕목과 지침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실무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지방행정학 개론이나 원론 쯤 되는 책이다. 그런데 그런 행정실무지침서를 읽고 감동하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요즘의 그런 책들은 대개 영혼이 빠져 있는 글들로 채워져 있기에 하는 말이다.다산의 목민심서는 그렇지 않다. 읽고 있으면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는 것처럼 마음이 움직인다. 어느 대목에서는 불에 덴 것처럼 깜짝 놀라기도 하고, 때론 백성을 사랑하는 다산의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먹먹해지거나 눈시울이 촉촉해진다.다산은 먼저 목민관의 존재 이유를 물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목민관은 왜 있는가? 오직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다. 이 명제는 절대적이다. 수천 년 이어져 온 유학의 역사에서 이보다 위에 있는 가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실무에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해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자라면, 그런 자는 목민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다산은 "다른 벼슬은 구해도 되지만 목민관의 자리는 구해서는 안 된다" 고 이야기한다. 오직 백성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진정성을 가진 자만이 목민관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다산의 진정성은 역설적으로 그가 폐족의 신분이었기에 확인된다. 역모로 처벌받은 그는 절대 목민관이 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산은 목민하고자 하는 마음만은 끝내 저버릴 수 없었다. 이 책의 이름이 심서(心書)가 된 까닭은 다산이 그런 마음을 실어 쓴 글이기 때문이다.다산의 마음이 보이는 대목을 몇 군데 들어보자.해마다 망종(芒種)날이 되면 백성을 구휼하는 일에 수고했던 이들을 모아 잔치를 베푼다. 다산은 그 의미와 시행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이 잔치는 큰일을 끝내고 나서 수고한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지 기쁜 일이 있어서가 아니므로 그저 한잔 술과 한 접시 고기로 수고한 이들을 대접하는데 그쳐야 한다. 죽은 자가 셀 수 없이 많고 산 자도 병에 걸려 신음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때에 어떻게 즐긴단 말인가. 큰 흉년 뒤에 수령이 잔치를 베풀면 백성들이 장구소리와 노랫소리를 듣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고 성낸 눈으로 질시하니,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춰서는 절대 안 된다. 수령이 조금이라도 반성하고 깨달은 바가 있다면 어찌 이런 짓을 하겠는가?"흉년에 범죄를 저지른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흉년에 도적질한 자는 그 다음해에는 대개 양민이 된다. 이로 보건대 그들을 죽이는 것은 애석한 일이니 그 사정을 알고 불쌍히 여겨야 한다. 맹자가 '흉년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사나워지고 풍년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순해지는 것은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라고 했으니, 어찌 이들을 반역의 무리들과 견주어 같다고 할 것인가. 그런 자들은 유배시켰다가 풍년을 기다려 풀어주는 것이 좋다."세금 징수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봄에 곤궁한 백성을 구제하는 일은 마치 자식을 대하듯 하고, 가을에 세금 거두는 일은 마치 원수를 대하듯 해야 한다."백성 중에 자식을 버리는 일이 있을 때 수령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백성들이 가난하여 자식을 낳아도 잘 거두지 못한다. 흉년이 들면 자식 내버리기를 물건 버리듯 하니, 거두고 길러주어 백성의 부모노릇을 해야 한다."다산은 자신의 글이 세상에 반드시 전해지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백년을 기다려도 좋다는 뜻으로 호를 사암(俟菴)이라고 한 적도 있다. 이제 다산이 세상을 떠난 지 181년이 지났다. 지금 이 땅의 목민관이 된 정치인, 행정가, 법관, 선생들은 다산의 마음을 만분의 일이라도 가지고 있는가. 다산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8-28 전호근

[전호근 칼럼]여름에 그린 겨울 풍경, 세한도(歲寒圖)

그림에 담긴 단아함과 굳건함은추사 도도하고 강건한 성품 아닌유배 당할 수밖에 없었던 '풍파'즉 세한의 계절 이긴 '불멸의 정신'그 표현이 푸른 소나무·잣나무·집긴 시간 극복한 숭고미 '고스란히'얼마 전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틈을 내 대정리에 있는 추사 김정희 유배지에 들렀다. 기념관에 들어서자 맨 먼저 추사의 세한도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 길에 올랐던 해는 1840년이었고 세한도는 유배된 지 5년이 되던 해에 그린 작품으로 추사와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우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걸작이다.1844년 바람이 많이 불던 어느 여름 날, 육지에서 보내 온 거질의 책이 추사에게 전해졌다. 제자 이상적이 만 리 밖 북경에서 여러 해를 두고 구해서 보내준 귀중한 책이다. 추사가 제주에 유배 온 지 어언 다섯 해, 한 때 생사를 같이하던 벗들도 이젠 소식조차 없던 터였다. 추사는 고마운 마음에 갈라진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발문을 썼다. 조선 문인화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세한도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얼핏 보면 세한도에는 제대로 그려진 사물이 없다. 단지 네 그루의 나무와 집 한 채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게다가 먹도 충분치 않고 붓도 부실한지 여기 저기 갈라진 붓 자국이, 화인(畵人)이 마주한 힘겨운 삶을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무슨 나무인지 분명하게 알아보기 힘든 왼 쪽의 나무 두 그루, 그리고 세부 묘사가 전혀 없는 집을 보면 기우뚱하기도 하고 대칭이 맞지 않아 허술하기도 하여 도대체가 사물을 제대로 관찰하고 그린 것 같지 않다. 마치 앞으로 더 가필해서 완성해야 할 그림이거나 아예 그리다가 흥취가 사라져 붓을 던져버린 그림을 보는 것 같다.이처럼 세한도의 풍경은 참으로 볼품이 없다. 그러나 바로 이 볼품없음이야말로 세한도가 담고 있는 '세한의 풍경'이다. 세한도는 어떤 면에서든 풍요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 벼루 열 개에 구멍을 내고 붓 천 자루를 닳게 했던 추사의 필력으로 한 글자를 쓰기도 어려운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 황폐의 끝에서 탄생한 작품이 세한도다.세한도가 명작인 이유는 바로 이 그림 한 장에 그가 추구한 불멸의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추사는 이른바 '문자향(文字香)'을 강조했다. 따라서 추사의 그림을 감상할 때는 단지 눈으로 보이는 '그림'에서만이 아니라 문자의 향(香)이라 할 수 있는 '정신'을 보아야 한다. 다행히 추사는 그림과 함께 그림을 그리게 된 까닭을 발문에 자세히 써 놓았는데 그 발문을 통해 우리는 수 천 년 전부터 세한의 시련을 극복해 온 오래된 이야기와 마주할 수 있다.'세한'은 날씨가 추워졌다는 뜻으로 본디 공자가 "날씨가 추워진 뒤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모든 나무가 다 시들어버린 혹한의 계절에 소나무와 잣나무만은 여전히 푸름을 간직하고 있다. 공자는 이를 칭찬했다. 그런데 추사는 이렇게 묻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이나 날씨가 추워진 뒤나 똑 같은 소나무요 잣나무인데, 왜 공자는 유독 날씨가 추워진 뒤의 소나무와 잣나무만을 칭찬했단 말인가?그리곤 스스로 이렇게 대답한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비로소 그 굳센 뜻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 이 굳센 뜻이야말로 추사가 추구한 불멸의 정신이었다. 지금 창 밖에 부는 세찬 바람도 저 멀리 달아나게 할 정신, 그 정신이 이 세한도에 있는 것이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지에서 감내해야 했던 세한의 계절은 곤궁이고 누추며 고독이었다.세한도에 담긴 단아하고 굳건한 정신은 단지 추사의 도도하고 강건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유배당할 수밖에 없었던 세상의 풍파, 즉 세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세한의 계절을 이기고 난 이후에 생겨난 것이 흔들림 없는 '불멸의 정신'이다. 그 정신이 표현된 것이 세한 이후에도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 그리고 퇴락한 집이다. 이렇게 보면, 추사의 세한도에는 세한의 계절을 모두 거치면서도 그 시간을 이겨내고 극복한 숭고미가 담겨 있다 할 것이다.우리의 삶에 추위가 온다는 것은 시련이다. 그러나 그 시련의 계절에 삶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무더위의 한가운데에서 잠시 세한도를 그려보았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7-24 전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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