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꽃

 

[시인의 꽃]난蘭

이쯤에서 그만 하직下直하고 싶다. //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 나머지 허락 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 // 여유 있는 하직은 // 얼마나 아름다우랴. // 한 포기 난蘭을 기르듯 //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 조용히 살아나고, // 가지를 뻗고, // 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 //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 아아 // 먼 곳에서 그윽이 향기를 // 머금고 싶다.박목월(1915~1978)인간의 욕심은 있는 것과 있어야 할 것 사이에서 생긴다.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있는 것 이상,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욕심은 부피를 채워간다. 가령 욕심은 없음에서 있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있음에서 더 있음으로의 충족되지 않는, 탐함이라고 할 수 있다. 욕망이라는 두 글자에 서식하는 욕구와 요구에 관한 양상과 대상은, 지구적이라고 할 만큼 다양하다. 그것은 충족 가능한 생물학적인 기질과 다르게 충족될 수 없는 주체와 주체 사이, 구성원과 구성원의 상호 관계를 매체로 진화하는데, 거기에는 갈등과 분쟁, 불화와 분열 등이 등식처럼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 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하는, 것은 물욕과 작별하는 것이며, 욕망에 하직을 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유가 생기는 그 사이 난초와 같이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히 살아나는' 것은 정신이며, 그 정신은 가지를 뻗고 '스스로 꽃망울'의 고귀함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윽이 향기'를 머금고 있는 난초꽃은 분명 무욕이 피워 올린 없음에서 있는 꽃이 아닐 수 없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2-18 권성훈

[시인의 꽃]낙화

돌돌돌 가랑잎을 밀치고어느덧 실개울이 흐르기 시작한 뒷골짝에 멧비둘기 종일을 구구구 울고 동백꽃 피 뱉고 떨어지는 뜨락 // 창을 열면 우윳빛 구름 하나 떠 있는 항구에선 언제라도 네가 올 수 있는 뱃고동이 오늘도 아니 오더라고 / 목이 찢어지게 알려오노니 //오라 어서 오라 행길을 가도 훈훈한 바람결이 꼬옥 향긋한 네 살결 냄새가 나는구나 네 머리칼이 얼굴을 간질이는구나 //오라 어서 오라 나의 기다림도 정녕 한이 있겠거니 그때사 네가 온들 빈 창밖엔 멧비둘기만 구구구 울고 뜰에는 나의 뱉고 간 피의 낙화!유치환(1908~1967)겨울은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그 기세를 몰고 오지만 그럴수록 봄은 조금씩 겨울을 파고들고 있다.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겨울과 오려고 하는 봄은 숙명적으로 가고 오지만 그 사이 무엇이 있는가. 겨울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인연처럼 묶여 있다가 '돌돌돌 가랑잎을 밀치고 실개울이 흐르기' 시작할 때 즈음 낙화하는 "동백꽃 피 뱉고 떨어지는 뜨락"처럼 목매는 기다림이 있는 것. 이제 곧 '훈훈한 바람결'에서 '향긋한 네 살결 냄새'에서 '간질이는 네 머리칼'에서 그리움이 봄바람에 실려 올 것이다. 그러나 항구의 뱃고동이 목이 찢어지게 우는 것은,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늘도 아니 오더라고" 애절하고 서글픈 사연들 때문이다. 낙화한 동백꽃은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오라 어서 오라" 애타게 부르다가 '피' 토한 붉은 '그리움의 언어'인 것처럼.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2-11 권성훈

[시인의 꽃]매梅 수선水仙 난蘭

영하 십오 도의 대한大寒도 다 지내고잦았던 눈도 어제부터 다 녹이고뜰 앞의 매화 봉오리도 볼록볼록 하고나한잠 자고 나면 꿈만 시설스러웠다이 늙은 몸에도 이게 벌써 봄 아닌가일깨어 손주와 함께 뛰고 놀고 하였다한 분盆 수선은 농주를 지고 있고여러 난과 혜蕙는 잎새만 퍼런데호올로 병을 기울여 국화주를 마셨다이병기(1891~1968)대한은 '큰 추위'라는 뜻으로 24절기 중 마지막 절기이며 음력 12월 섣달에 들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절후다. 그러나 소한을 지나 대한이 일 년 가운데 가장 춥다고 한 것은, 절기가 중국에서 온 기준인바, 사실상 우리나라에서는 소한 무렵이 더 춥다."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라는 속담처럼 '영하 십오 도의 대한도 다 지내고 잦았던 눈도 어제부터 다 녹이고'있는 뜰 앞을 살펴보면 볼록볼록 움트는 것. 영원히 겨울 속으로 묻혀 버릴 것 같은 시간을 지나 "늙은 몸에도 이게 벌써 봄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밖에는 봄을 먼저 알리는 '매화' '수선화'가, 안에는 잎 새만 시퍼런 '난'도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시인은 벌써 다시 올 봄을 위해 국화주를 마시며 벌그레한 생각의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1-21 권성훈

[시인의 꽃]겨울 까마귀

영혼의 새. // 매우 뛰어난 너와 / 깊이 겪어 본 너는/ 또 다른, // 참으로 아름다운 것과 / 호올로 남는 것은 / 가까워질 수도 있는, / 언어는 본래 //침묵으로부터 고귀하게 탄생한, //열매는 / 꽃이었던, //너와 네 조상들의 빛깔을 두르고, //내가 십이월의 빈 들에 가늘게 서면, / 나의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 굳은 책임에 뿌리박힌 / 나의 나뭇가지에 호올로 앉아, //저무는 하늘이라도 하늘이라도 / 멀뚱거리다가, / 벽에 부딪쳐 / 아, 네 영혼의 흙벽이라도 덤북 물고 있는 소리로, / 까아욱ㅡ / 깍ㅡ //김현승(1913~1975)인간은 홀로 남았을 때 비로소 깨닫는 것이 있다. 꽃밭에서 꽃은 제각기 무리들 속에 파묻혀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 고유한 존재를 식별하지 못하듯, 인간도 우리를 벗어났을 때 나를 바라보게 된다. 우리 안에서는 "매우 뛰어난 너와/깊이 겪어 본 너는/또 다른" 것들로 가득 차 있는데, 가령 그것은 서로의 다른 언어가 얽히고설키어 있지만 홀로 된 침묵은 본질을 찾아가는 고귀한 탄생이라는 것. '열매'가 원래 '꽃'이었다는 단순한 사실도 '십이월의 빈 들녘'을 바라보듯이 '나의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멀뚱거리며 '저무는 하늘'을 고독과 마주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열매 역시 이제 시작하는 1월의 꽃을 피웠기에 다시 비상할 수 있는 것. 침묵을 깨며 날아가는 까마귀의 '까아욱ㅡ' '깍ㅡ' 울음은 오랜 고독이 내는 짧지만 긴 영혼의 소리가 깃들어 있다. 이른바 한 송이 꽃으로 핀 그 언어에는 지난했던 수많은 '언어의 열매'가 맺혀있다는 것.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1-14 권성훈

[시인의 꽃]나의 노래는

나의 노래는 / 라일락꽃과 그 꽃잎에 사운대는 / 바람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너의 타는 눈망울과 / 그 뜨거운 가슴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저어 빨간 장미의 산호빛 웃음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항상 별같이 살고파하는 네 마음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흰 나리꽃이 가쁘도록 내쉬는 짙은 향기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꽃잎이 서로 부딪치며 이뤄지는 죄 없는 입맞춤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소쩍새 미치게 우는 어둔 밤엘랑 아예 찾지 말라.//나의 노래는 / 태양의 꽃가루 쏟아지는 7월 바다의 푸르른 수평선에 있다.신석정(1907~1974)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노래가 숨어 있다. 길을 가다가 문득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한 소절 노래는, 무의미한 소리가 아니라 내면의 유의미한 언어다.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상황과 만났을 때 돌출되는, 나오는 '나의 노래'는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예측 불과하게 작동된다. 봄날 길을 걷다가 라일락꽃과 그 꽃잎에 살랑거리는 바람 속에서, 누군가의 타는 눈망울과 그 뜨거운 가슴 속에서, 빨간 장미의 산호빛 웃음 속에서, 나의 노래를 만난다. 때로는 별같이 살고파하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흰 나리꽃이 가쁘도록 내쉬는 짙은 향기 속에서, 꽃잎이 서로 부딪치듯 일어나는 사랑처럼 죄 없는 입맞춤 속에서도 터져 나오는 노래는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기쁨의 노래' 인 것. 그러나 소쩍새 미치게 우는 그러한 밤, 나의 노래는 "아예 찾지 말라"라는 것은, 밖에서 안으로 부르는 '슬픔의 노래'로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나의 노래는 시들지 않는 "태양의 꽃가루 쏟아지는 7월 바다의 푸르른 수평선"위에 떠있는 청춘과 같이.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2-24 권성훈

[시인의 꽃]마음의 꽃

오늘을 넘어선 가리지 마라! / 슬픔이든, 기쁨이든, 무엇이든, / 오는 때를 보려는 미리의 근심도 //아, 침묵을 품은 사람아, 목을 열어라, / 우리는 아무래도 가고는 말 나그넬러라, / 젊음의 어둔 온천에 입을 적셔라. //춤 추어라, 오늘만의 젖가슴에서, / 사람아, 앞뒤를 헤매지 말고 / 짓태워 버려라! / 끄슬려 버려라! / 오늘의 생명은 오늘의 끝까지만 //아, 밤이 어두워오도다! / 사람은 헛것일러라, / 때는 지나가다, / 울음의 먼 길 모르는 사이로 //우리의 가슴 복판에 숨어 사는 / 열푸른 마음의 꽃아 피어 버리라. / 우리는 오늘을 지리며, 먼 길 가는 나그넬러라. //이상화(1901~1943)저무는 한해는, 오늘이라는 하루가 쌓여 있게 한 것이니. 뒤돌아 보면 무엇이 남아있는가. 타다만 불씨조차 없는 지난날들은 지나가라고 있는 것. 오늘을 잘 살지 못한 죄만 검게 그을린 재처럼 마음 한곳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을 넘어선 가리지 마라!"라는 전언은 내일이 아닌 오늘만을 위한 오늘에 "슬픔이든, 기쁨이든, 무엇이든" 성실하게 보내야 한다는 것. 오늘은 오늘로서 '오는 때' 없이 끝이 나듯, 우리는 하루를 사는 나그네 일 수밖에 없다. 오늘이라는 하루를 누구도 먼저 와 본 사실이 없기에. 또한 오늘은 언제나 늙지 않는 젊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오늘만의 젖가슴에서' 근심일랑 "짓태워 버려라! 끄슬려 버려라!" "오늘의 생명은" 길지 못하여 "오늘의 끝까지만" 있기에. "우리의 가슴 복판에 숨어 사는" 열정이 있는 자여! '지금' 거기서 "마음의 꽃"을 피워라. 우린 모두 내일을 모르는 나그네인 것을.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2-17 권성훈

[시인의 꽃]앉은뱅이꽃

앉은뱅이꽃이 피었다작년 피었던 그 자리에또 피었다 // 진한 보랏빛그러나 주위의 푸르름에 밀려기를 펴지 못하는 풀꽃 // 이름은 왜 하필 앉은뱅이냐그렇게 물어도 아무 말 않고작게 웅크린 앉은뱅이꽃 // 사나흘 지나면 져버릴 것이다그래 그래 지지말고덧없는 소멸그것이 꿈이다꿈이란 꿈 다 꾸어버리고이제는 없는 그 꿈작년 그대로 또 피었다이형기(1933~2005)'지지 않는 꽃'이 있던가. 꽃은 짧게 피었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값지고 아름답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한한 시간 앞에서 유한성을 인정하면서도, 저마다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욕망하며 살아간다. 영원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한 자연과 우주의 원형일 뿐, 그 안에 기거하는 사물들은 한낮 꿈을 꾸는 꽃처럼 시들어가는 것. "작년 피었던 그 자리에 또 피었다"가는 '앉은뱅이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년에 피었던 꽃이 아니듯,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 역시 그대로인 공간에 사람만 매번 바뀌는 이치와 같은 것. '작게 웅크린 앉은뱅이꽃'과 같이 '사나흘 지나면 져버릴 것'을 망각한 채,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인 양 욕망이 이끄는 대로 소유하려고 한다. '덧없는 소멸'로의 끝은 '그것이 꿈'으로 귀결되지만 지금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망에의 질주를 멈출 수 없다. "꿈이란 꿈 다 꾸어버리고 이제는 없는 그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또 꿈을 꾸며 일상으로 나아간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2-10 권성훈

[시인의 꽃]박두진 '꽃'

이는 먼 / 해와 달의 속삭임 /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 엇갈림의 핏방울.꺼질 듯 / 보드라운 /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靜寂. 펼치면 일렁이는 / 사랑의 / 호심湖心아. 박두진(1916~1998)시는 문자―언어로서 시인의 관념을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시의식이 언어라는 사물의 표피를 입고, 생각의 추상이 기호의 구상으로 전환된 것. 일테면 '사랑'이라는 말 자체로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기에 누구나 공감하는 '꽃'으로 표상하고 있다. 저마다 다양한 사랑의 체험에 의해 사랑의 온도로 정서의 결에 배태되어 있는 바,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 중 하나가 '꽃의 은유'다. 이 시의 각 연 끝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과의 이별을 말할 때 어느 누구에게는 '속삭임'과 같은 '비밀한 울음'으로 혼자만이 견뎌왔던 기억에 남아있고, '어느 날' 인가 '아픈 피 흘림' 또는 '엇갈림의 핏방울'처럼 육신이 찢어지는 상처로 기록되어 있으며, '황홀한 한 떨기'를 피워낸 '아름다운 정적'을 통해 조화롭고 균형 있는 미적인 시간으로도 관철된다. 이처럼 한결같이 잊을 수 없는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사랑을, 감각적으로 전해 주는 것이 꽃이다. 우리의 무의식을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湖心아." 당신의 마음속 호수 깊은 곳에 고요하게 잠들어 있던 '첫사랑'의 추억이 춥고 바람 부는, 겨울이면 '꺼질 듯 보드라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듯. 시들은 당신 사랑의 은유도 같은 이치다./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2-03 권성훈

[시인의 꽃]절대신앙

당신의 불꽃으로나의 눈송이가 뛰어듭니다.당신의 불꽃은나의 눈송이를자취도 없이 품어 줍니다.김현승(1913~1975)첫눈이 하늘을 덮었다. 눈앞에서 첫눈은 아쉽게도 하얗게 녹아 까마득하게 사라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뭇가지에 소복이 내려앉으며 눈꽃을 피운다. 한편 눈꽃과 대조적인 불꽃은 불에서 일어나는 강렬한 불꽃으로 서로 물과 불이 가지는 속성으로부터 미학성을 지녔다. 이른바 꽃은 식물의 번식 기관에서 발화되는 것이지만, 눈꽃과 불꽃의 경우 물과 불이라는 원소에 대한 아름답고 화려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시는 '눈송이'라는 시적 주체가 불꽃을 태우고 있는 대상에 동화되는 상황을 통해 물에서 불로 전이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절정에 있는 "당신의 불꽃으로/나의 눈송이가/뛰어"들어가면 불에서 산화된 나도, 불꽃을 피게 되는 바, 이때 물화는 경지에 오른 불의 전도성에 의한 것. 간절한 마음이 온몸을 다해 '몸꽃'을 피웠을 때, '몸'은 사라지고 '자취도 없이 품어'주는 '꽃'만 남게 된다. 향기에 취한 대상 또한 그 순간 꽃이 되고 마는데, 얼마나 마음을 태우고 곡진해져야 '몸꽃'을 피게 할 수 있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1-26 권성훈

[시인의 꽃]박태기 꽃

충혈인지 어혈인지 그쪽으로 자꾸 깊게 물들고 있다 진자주다 한번 되게 그대에게 부딪쳤을 뿐인데 온몸 다닥다닥 꽃 벌기 직전이다 어쩌려고 이러나 등짬을 당겨보지만 돌아서지 않는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갈 때까지 갈 모양이다 다닥다닥 서둔다 어느 문전이라도 걸 벌써 다 알고 있는 눈치다 박태기 꽃 맺힌 걸 다닥다닥 바라다보며 이 봄이 위태위태하다 한번 되게 살구나무가 부딪친 것 만개滿開로 본 것이 엊그제인데 맘먹고 박태기 꽃 마지막을 서둔다 이 늦봄 꿈속의 꿈까지 꾸어 몸 밖의 몸을 보려한다 박태기꽃 진자주 정진규(1939~2017)인간에게 삶과 죽음이 공존하듯이, 한그루 나무에 사계절이 들어있다. 늦가을이 되면 칼집처럼 생긴 꼬투리가 달려서 '칼집나무'라고도 불리는, 박태기나무는 4월부터 '진자주' 색으로 개화한다. 꽃이 밥알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박태기라고 하며, 일부 지방에서는 '밥티나무'라고 불린다. 이 나무는 봄이 되면 '충혈인지 어혈인지' '온몸 다닥다닥 꽃'이 먼저 잎이 피기 전에 7∼8개에서 20∼30개씩 한 군데 모여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우정'이라는 꽃말과 같이 서로 '꿈쩍도 하지 않고 달라붙어 다닥다닥 바라보며' 여기저기에서 출현하는 '위태위태한 봄'의 끝에서 '맘먹고' 피어나듯 봄을 알린다. 마치 "이 늦봄 꿈속의 꿈"을 꾸듯이, 꿈이 '몸 밖에 몸'으로 피는 것같이, 박태기 꽃은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뚫고 나온다. 그것도 진하고 진한 '진자주' 빛깔로 사계를 견뎌온 '세월의 표피'를 몸 밖으로 꿈을 표출하듯이 수놓는, 봄이 그리워지는 11월의 찬바람 끝에 서 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1-19 권성훈

[시인의 꽃]들국화

산등선 외따른데,애기 들국화바람도 없는데괜히 몸을 뒤누인다.가을은다시 올 테지.다시 올까?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지금처럼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천상병(1930~1993)늦은 11월까지 꽃을 피우는 들국화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국화과 식물을 두루 일컫는 보통명사다. 산과 들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절초, 쑥부쟁이, 감국, 산국 등과 같이, 가을에 등장하는 이러한 꽃을 들국화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식물마다 꽃말이 다른데, 구절초는 가을 여인, 쑥부쟁이는 기다림과 그리움, 감국은 가을의 향기, 산국은 순수한 사랑 등 다양하다. 국화과 식물들의 특징으로 작고 가녀린 형체를 떠올릴 수 있는데, 화자는 이름 모를, 이 꽃을 '애기 들국화'라고 하는 것. 이 시는 산등선 외딴곳에 얼굴을 내민 '애기 들국화'와 시선을 마주치면서 시상이 확장되고 있는 점이다. 어느 늦은 가을날 "바람도 없는데" 몸을 눕히는 연약한 들국화를 보면 언젠가 저렇게 홀로 시들어 갈 인생과 겹쳐져 '나'와 '들국화'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심상. 그것은 우리의 내면에 깃든 '애기 들국화'와 동화되어 안쓰러운 마음이 절로 생기게 되는 것이다. 잠시 생명에의 기쁨을 주고 가는 들국화에게서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을 달래듯이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작고 적은 것들 속에서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을 크고 많은 것들로 바꾸어 보라. 당신의 향기로움은 "다시 올 테지"라고 처음 만난 타인일지라도 그 영혼 속에 남아 기다림을 간직하게 되리니.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1-12 권성훈

[시인의 꽃]따알리아

가을 볕 째앵 하게내려 쪼이는 잔디밭.//함빡 피여난 따알리아.한낮에 함빡 핀 따알리아.//시약시야, 네 살빛도익을 대로 익었구나.//젖가슴과 부끄럼성이익을 대로 익었구나.//시약시야, 순하디순하여다오.암사심처럼 뛰여 다녀 보아라.//물오리 떠돌아다니는힌 못물 같은 하늘 밑에,//함빡 피여나온 따알리아.피다 못해 터저 나오는 따알리아정지용(1905~?)국화과 여러해살이 풀인 다알리아(Dahlia) 꽃은 멕시코가 원산지로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A. Dahl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7~11월 사이 개화하는 이 꽃에 얽힌 전설이 전해진다.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구하던 중 한 여자 미라를 발견했는데, 그 손에 꽃 한송이가 있었고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그 꽃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꽃씨가 되어 떨어졌다. 이를 영국으로 가져와 모종을 했더니 싹이 자라서 꽃이 피었는데, 이 꽃을 재배했던 식물학자 '다알'의 이름을 따서 '다알리아'라고 호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한창 '가을 볕 째앵 하게/내려 쪼이는 잔디밭'에 "함빡 피여난 따알리아"를 보면 살갗이 익을대로 익은 '색시 젖가슴'처럼 부끄러움도 없이 자태를 드러낸다. '순하디 순한 암사슴'같이 '연못가에 함빡 핀' 물오른 이 꽃의 꽃말은 화려, 우아, 감사 등으로 사람들 입가에서도 피어난다. 누군가에게 화려함으로, 우아함으로, 감사함으로 "피다 못해 터져 나오는" 다알리아를 보면 나는 어떠한 꽃으로 피어나 있는가, 자문하게 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0-29 권성훈

[시인의 꽃]밤은 영양이 풍부하다

무르익은/과실의 밀도密度와 같이/밤의 내부는 달도록 고요하다.//잠든 내 어린것들의 숨소리는/작은 벌레와 같이/이 고요 속에 파묻히고,//별들은 나와/자연自然의 구조에/질서 있게 못을 박는다.//한 시대 안에는 밤과 같이 해체解體나 분석分析에는차라리 무디고 어두운 시인들이 산다. 그리하여 토의의 시간이 끝나는 곳에서밤은 상상으로 저들의 나래를 이끌어 준다.//꽃들은 떨어져 열매 속에/그 화려한 자태를 감추듯……//그리하여 시간으로 하여금새벽을 향하여 이 풍성한 밤의 껍질을 서서히 탈피케 할 줄을 안다.김현승(1913~1975)봄에 떨어진 꽃들은 깊어져 가을에 열매를 수확한다. '달도록 고요한' 그 열매의 내부는 밤과 같이 무르익고 밤과 같이 어둡다. 이때 밤은 '과실'이며 동시에 '어둠'으로서 시의식을 통해 배태된 양가적 상징물이 된다. 그러기에 밤은 밤이면서 밤이 아니지만 둘 다 "자연自然의 구조에/질서 있게 못을 박는" 거스르지 못하는 자연의 이치로서 전적으로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에 달려있다. 이것은 구조학의 해체 또는 논리학의 분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시인의 '무디고 어두운' 밤의 시간으로서 '상상으로 저들의 나래를 이끌어' 비로소 밤은 밤으로서 관통하며 밤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꽃들은 떨어져 열매 속에" 보이지 않지만 숨겨진 "그 화려한 자태를" 감각할 수 있는 자만이, 이 가을 "풍성한 밤의 껍질을" 밤바다 벗기며 모든 사물이 비롯된 '새벽을 향하여' 근원에로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0-22 권성훈

[시인의 꽃]꽃들, 바람을 가지고 논다

꽃들, 줄기에 꼼짝 못하게 매달렸어도바람들을 잘도 가지고 논다.//아빠꽃 엄마꽃 형꽃 누나꽃 따라/아기꽃 동생꽃 쌍둥이꽃바람들을 잘도 가지고 논다.//바다에서 파도를 일으키며 놀던 바람도산속에서 바윗덩이를 토닥이며 놀던 바람도공중에서 날짐승을 날게 하던 바람도//꽃들 앞에선 오금을 쓰지 못한다./꽃들 앞에선 그 형체까지를 잃는다.//팔다리 몸통 줄기에 붙들렸어도그 자태만으로 바람의 팔다리를 묶으며그 향기만으로 바람의 형체를 지우며//잘도 가지고 논다.잘도 달래며 논다.조태일(1941~1999)오래 기억되는 시일수록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런 시는 기존의 상식을 깨뜨리고 고정된 의미를 변화시켜 새롭게 만든다. 우리가 아는 한, '바람'은 불어오는 것이며, 바람을 맞이하는 사물의 움직임을 통해 그것의 방향과 세기를 감지한다. 그런데 이미 구축된 바람에 관한 인식을 "꽃들, 줄기에 꼼짝 못하게 매달렸어도/바람들을 잘도 가지고 논다."라고 함으로써 우리는 바람을 낯설게 보게 되는 것. 이제 바람이 주체가 아니라, 꽃이 주체가 되는바, 바람이 꽃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꽃이 바람을 움직이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바다' '산속' '공중'을 가지고 놀던 거대한 바람이라는 존재는 '꽃들 앞에선 오금을 쓰지'못하고 '그 형체까지를 잃어버리는 것' 시는 바로 이러한 역발상을 통해 사람들의 '팔다리 몸통 줄기에' 붙어 있는 고착된 생각을 해체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는 기호의 "그 자태만으로" 의미의 "그 향기만으로" 언어가 시작된 이래 변함없이 우리를 "잘도 가지고 논다./잘도 달래며 논다."라고 할 수 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0-01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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