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꽃

 

[시인의 꽃]꽃나무

벌판 한복판에 꽃나무 하나가 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 하나도 없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으로 꽃을 피워가지고 섰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수없소. 나는 막 달아났소 한 꽃나무를 위하여 그러는 것처럼 나는 참 그런 이상스러운 흉내를 내었소.이상(1910~1937)사회 전체나 모든 인류를 특정할 때, 거시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세계다. 세계는 너무나 크고 방대해서 그 깊이와 넓이의 정도를 감지하지 못하여 추상적으로 생겨난 테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영역을 수사적으로 말할 때 '벌판'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세상이라는 '벌판한복판'에 사는 것이며, 언젠가 비, 바람 속에서 소멸될지 모르는 연약한 '꽃나무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이 고독한 근원에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듯이, 자신을 닮은 꽃나무(사람)가 많더라도 당신을 대리할 수 있는 "꽃나무가하나도없소"라고 성찰하게 된다. 벌판 한 복판에 버려진 인생은 스스로 짊어질 수밖에 없는, 가시밭길 속에 피어난 '꽃나무 십자가'인바, 자신을 위하여 '열심으로 생각'하고 '열심으로 꽃을 피워가지고' 산다. 그러나 나라는 '꽃나무'가 타자라는 '꽃나무'에게 다가가면 갈수록 그 '꽃나무는' 당신이 '생각하는 꽃나무'가 아니기에 멀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사는 살벌한 벌판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생각은, 달리 말하자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중심축'이 세계라는 점에서 이제 "이상스러운 흉내" 보다는 당신의 빛깔과 향기에 맞는 고유한 꽃을 피우시길.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9-17 권성훈

[시인의 꽃]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김춘수(1922~2004)'누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서로의 관계맺음을 표상하는 것처럼 이름이 잦아드는 것은, 그 만큼 관계맺음에서 멀어진다는 것. 안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인바, 기억 속에 당신의 이름을 꺼내어 호명함으로써 '내가' 여기 '그에게' 살아 있음을 승인받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사실상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행위로서 자아는 타자의 생각 속에 이름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마치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아무것도 아니며 길가에 지나는 사람들같이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것같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유의미한 그 무엇인가 된다. 당신은 이름 속에 들어있고, 이름은 당신이라는 기억으로 타자에게 전치되는 것이기에, 당신의 그 이름은 누군가에게 당신이 가진 '빛깔과 향기'로서 살아있다. 그렇지만 꽃과 같이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피어 올려야 하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9-10 권성훈

[시인의 꽃]풀꽃과 더불어

아파트 베란다/난초가 죽고 난 화분에 잡초가 제풀에 돋아서/흰 고물 같은 꽃을 피웠다.//저 미미한 풀 한 포기가영원 속의 이 시간을 차지하여무한 속의 이 공간을 차지하여한 떨기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생각하면 할수록/신기하기 그지없다.//하기사 나란 존재가 역시영원 속의 이 공간을 차지하며/무한 속의 이 공간을 차지하며저 풀꽃과 마주한다는 사실도/생각하면 생각할수록/오묘하기 그지없다.//곰곰 그 일들을 생각하다 나는/그만 나란 존재에서 벗어나그 풀꽃과 더불어//영원과 무한의 한 표현으로/영원과 무한의 한 부분으로영원과 무한의 한 사랑으로//이제 여기 존재한다.구상(1919~2004)존재하는 것들의 존재방식을 환원한다면 시―공간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나'란 누군가 있었던 자리에 잠시 머물렀다 돌아가기에 '지금―여기'는 살아있음을 알리는 표상이 된다. '난초가 죽고 난 화분'에서 또 다른 '잡초가 제풀에 돋아'나듯이, "나란 존재가 역시" '영원 속의 이 시간'과 '무한 속의 이 공간'을 임차하고 '흰 고물 같은 꽃'을 피워 올리고 있는 것. 그러나 쓸모없이 보이는 '풀꽃'도 누군가에게는 기쁨과 희망으로서 쓸데 있게 다가가듯이, 자아를 찾는 것도 이처럼 유의미한 원리로 작동된다. 길가에 홀로 핀 풀꽃을 마주하고 생각이 생각 속으로 이어질 때 '그만 나란 존재에서 벗어나' 나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풀꽃'만 남게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영원과 무한 사이'에서 살아있음을 증명할 '한 표현'이 있다면 '한 부분'을 인정하고 '한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쓸모 있는 척하는, 당신도 '이제 여기' 진정으로 존재하게 되리니./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9-03 권성훈

[시인의 꽃]꽃그늘에서

눈물은 속으로 숨고웃음 겉으로 피라우거진 꽃송이 아래조촐히 굴르는 산골 물소리……바람 소리 곳고리 소리어지러이 덧덮인 꽃잎새 꽃낭구꽃다움 아래로말없이 흐르는 물아하 그것은내 마음의 가장 큰 설움이러라하잔한 두어 줄 글 이것이어찌타 내 청춘의 모두가 되노조지훈(1920~1968)빛을 가린 물체 뒷면에 생긴 검은 그늘인 그림자(shadow)를 심리학에서는 은폐되고 억압되어 있는 또 하나의 인격체로 말한다. 이른바 '눈물은 속으로 숨고'있지만 겉으로는 '웃음'으로, '우거진 꽃송이 아래' 지나가는 '물소리'로, '꽃다움 아래로' '말없이 흐르는 물'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림자는 겉과 속의 이중성 또는 양면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꽃그늘'은 꽃의 그림자가 아니라 아무리 아름다운 꽃일지라도 그것에는 억압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송이 꽃도 그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어지러이 덧덮인' 시간을 관통하며 왔는지, 구구절절 알 순 없지만 짐작할 뿐. 마치 당신 "마음의 가장 큰 설움"이 그러하듯, 그것을 '두어 줄 글'을 통해 전할 수 없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빛나는 만큼 빠르게 지나간 '청춘'을 보면 '꽃그늘' 드리워져 있지 않던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8-27 권성훈

[시인의 꽃]채송화

불볕이 호도독호독내려쬐는 담머리에한올기 채송화발돋움하고 서서드높은 하늘을 우러러빨가장히 피었다.조운(1900~?)한 여름 양지바른 곳에서 피는 채송화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담벼락이나 산책로에 낮은 자세로 알록달록 수놓는 이 꽃은 볼수록 앙증맞으며, "불볕이 호도독호독" 지나가는 더위 "내려쬐는 담머리에" 고개를 내민 채송화를 눈높이에 맞춰보며 삐죽삐죽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이에 천진난만과 순진 그리고 가련함이라는 꽃말을 가진 채송화에 얽힌 페르시아 전설이 전해온다. 페르시아에 사치스러운 여왕이 있었는데, 이 여왕은 보석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백성들에게 세금도 보석으로 내라고 할 정도였다. 어느 날 한 노인이 수많은 보석이 담긴 12개의 상자를 가지고 여왕을 찾아와서, 이 보석 하나가 페르시아 백성 한 사람의 몫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왕은 상자 안의 보석을 모두 차지하기로 했고, 노인이 보석 하나를 줄 때마다 백성 한 사람씩 사라져 마지막 하나만 남게 된다. 이미 나라에는 백성이 한 명도 없었음에도 여왕은 망설임 없이 남은 보석을 가지려고 상자를 집어 드는 순간 보석과 상자가 터지면서 여왕도 함께 사라졌고, 보석들의 파편들이 떨어져 채송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채송화는 욕심의 굴레 속에 있는 우리에게 "드높은 하늘을 우러러" 살아갈 것을 "빨가장히" 전언하고 있는 줄 모른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8-20 권성훈

[시인의 꽃]꽃덤불

태양(太陽)을 의논(議論)하는 거룩한 이야기는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달빛이 흡사 비오듯 쏟아지는 밤에도우리는 헐어진 성(城)터를 헤매이면서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오는 봄엔 분수(噴水)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보리라.신석정(1907~1974)날이 아무리 뜨거워도 이와 같이 뜨겁게 달아오른 날이 있었겠는가. 일제강점기 35년 억압과 수탈의 폭염 속에서 '민족의 태양'을 다시 찾은 날 '그 어느 언덕'에서나 '거룩한 꽃덤불'로 피고. '그러는 동안'에 자신이 자신을, 서로가 서로를 '잃어버린' '떠나버린' '팔아버린' 수많은 것들을 생각하면, 왜 8월이 "분수(噴水)처럼 쏟아지는 태양" 볕에 그을려 있는지 알 것도 같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가'에서 평화와 자유 평등의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오롯한 태양'을 저마다 모시고, 이 강산을 푸르게 해야 할 책무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반만년 역사의 꽃씨' 속에서 나온 '꽃덤불'이기 때문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8-13 권성훈

[시인의 꽃]시들지 않는 꽃

미美는 언제나영혼의 겨울인 눈앞에 있다.산다는 것은 보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안 보는 사람에게 꽃은 없는 것.박희진(1931~2015)우리가 아는 아름다움은 조화와 균형 속에 보여지는 우아미를 말하지만 사실상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미학에서 미란 조화와 갈등으로 빚어지는 '있어야 할 것'과 '있는 것'의 양상으로서 여러 형태의 미적 아름다움을 말한다. 물론 미적인 것을 발견하는 사람마다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까지 다르게 인식하는데, 바로 아는 것만큼 미적인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같은 현상과 사물을 관찰하더라도 미적인 것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은 직감적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내적으로 무던히 미학의 세계를 궁구할 때, 그 전에 알지 못했던 미적 가치를 판독하게 된다. 미적 깊이가 더할수록 거기에서 파생되는 미감은 심오해지게 마련이며, 자신이 성장해가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따라서 '미美는 언제나' 존재하는 것 속에 놓여 있으나 '영혼의 거울인 눈'이 있어야 볼 수 있는 것. "산다는 것은 보는 기술을 배우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만 봤으면서 모두 본 것 같이 살고 있지 않은가. 오늘도 하나만 아는 것이 다 모르는 것과 진배없음을 모르는, 게으른 당신에게 "안 보는 사람에게 꽃은 없는 것"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달궈진 여름만큼 뜨겁게 성찰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8-06 권성훈

[시인의 꽃]꽃 1

그는 웃고 있다. 개인 하늘에 그의 미소는 잔잔한 물살을 이룬다. 그 물살의 무늬 위에 나는 나를 가만히 띄워본다. 그러나 나는 이미 한 마리의 황黃나비는 아니다. 물살을 흔들며 바닥으로 바닥으로 나는 가라 앉는다.한나절, 나는 그의 언덕에서 울고 있는데, 태연히 눈을 감고 그는 다만 웃고 있다.김춘수(1922~2004)하나의 형상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수많은 상상을 자극한다. 형상이 체험한 것의 실체성이라면, 상상은 유사성에서 오는 심상으로서 이미지가 된다. 이 이미지는 상상을 통해 가공된 것이지만 원본인 형상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비 개인 강가에 일렁이는 물결의 파장이 한 송이 꽃잎이 피어나는 것 같이. 동그랗고 작은 물결이 점점 크게 번져가는 형상 속에서 꽃을 상상하고 꽃 이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 물살의 무늬 위에 나는 나를 가만히 띄워'보는 것은 '꽃무늬' 같은 물속에 비친 나의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황黃나비'와도 같이 "물살을 흔들며 바닥으로 바닥으로 나는 가라 앉는다"는 것이다. 상상이라는 '그의 언덕에서' 상상은 '태연히 눈을 감고' 더 많이 '울고' '웃는' 이미지를 불러온다. 김춘수는 여기서 '나'라는 의미의 형상(존재)을 지웠을 때, 수많은 이미지(의미)를 만나게 되는 것을 '무의미시'라고 명명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7-30 권성훈

[시인의 꽃]해바라기

나는 갈랫길에 선한 송이 해바라기아침이 오면숙였던 고개를 들고새해를바라보면서지난밤 사연을 호소하리라나는 밤을 보내는한 송이 해바라기눈물로 얼굴을 씻고멀리 바라본다태양이 나의 태양이산 너머에서 돋아오네이은상(1903~1982)어쩌면 살아있다는 것은 하루의 태양을 맞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뜨고 지는 태양 사이로 규칙적인 '한 송이 해바라기'처럼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태엽'에 맞춰져 돌아가고 있다. 누구나 '태양의 시간'이 풀리는 순간 '아침이 오면 숙였던' 고개를 들지 못하고, 새로운 해를 볼 수 없다. 현존재의 시간은 삶과 죽음이라는 '갈랫길에 선' 위태로운 일상의 연속인 줄 모른다. 따라서 '해'와 '바라기'의 합성어인 해바라기와 같이 인생도 해가 없이는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존재 증명을 하지 못하는 것. 7월부터 개화하는 해바라기의 꽃말 '당신을 바라봅니다'처럼 우리는 그를 맞이하기 위해 '밤을 보내는 한 송이 해바라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태양이 뜨는 것을 밤새 기다려 '눈물로 얼굴을 씻고 멀리 바라'보는 것을 두려 말라. 날마다 '태양이' 그것도 '나의 태양이' 이렇게 '산 너머에서 돋아'나는 것을, 기뻐하고 또 기뻐하라.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7-23 권성훈

[시인의 꽃]봉선화

비 오자 장독대에 봉선화 반만 벌어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손톱에 꽃물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 주던하얀 손 가락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나. 김상옥(1920~2004)봉숭아라고도 불리는 봉선화는 4~5월에 씨를 뿌리면 6월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 이 꽃은 우리 민족과 친숙한 꽃으로 대대로 손톱을 물들이는데 사용해 왔다. 붉게 물들인 손톱이 그 해 첫눈 오기 전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순정을 표상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봉선화에 관한 '세세한 사연'들을 모두 펼칠 수는 없지만 저마다 '손톱에 꽃물들이던 그날 생각' 하나쯤 있을 것이다. "하얀 손 가락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이 사라질까 두려웠던 기억들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봉선화의 꽃말과 같은 순애보가 아닐 수 없다. 비록 한여름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 주던' 꽃물은 지워지고 없지만 봉선화 피는 6월이 되면 그 생각 속에서 당신의 첫사랑도 '힘줄'같이 선명하게 살아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6-25 권성훈

[시인의 꽃]꽃 단상(斷想)

꽃은 영감 속에 피며마음을 따라다닌다사람이 외로우면사람과 한방에 같이 살면서 외롭고사람이 슬프면사람과 같이 가면서 슬프다이런 꽃은 꽃 속에 꽃이 있고사랑이 있고 하늘이 있지만그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도 않고누구에게나 그 속을 좀처럼 보이지도 않는다김광섭(1905~1977)우리 마음속에 자신을 닮은 꽃나무 한그루씩 있다. 그 꽃은 누구에게나 피어 있는, 피어나고 있는, 언제 필줄 모르는, 사람마다 다른 모양과 빛깔과 향기를 가졌다. 그렇지만 그 꽃의 봉오리가 가슴 속에 있어서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꽃은 영감 속에 피며/마음을 따라다닌다". 이처럼 마음을 떠나서 살 수 없는 '마음 꽃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외로울 때 같이 외롭고, 슬플 때 함께 슬퍼한다는 것을 탐미할 수 있다. 외롭고 슬픈 이들에게 꽃이 된다는 것 또한 이와 다르지 않겠는가. 그런 당신이라는 "꽃은 꽃 속에 꽃이 있고" 꽃 밖으로 몸을 내민 '꽃 중의 꽃'이 되며 '사랑'과 '하늘'을 품고 있다. 그럴수록 "그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도 않고/누구에게나 그 속을 좀처럼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게 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6-18 권성훈

[시인의 꽃]꽃과 천사

아주 아득했다//꽃과 천사가한마을에 살았다//사랑이 구름 같은 꽃은'사랑'이란 말을 하게 되었고//눈물이 많은 천사는파도처럼 울다가눈물이란 말을 못 찾고 말았다//그때부터말하는 꽃은 천사가 되고말을 못하는 천사는꽃이 되었다황금찬(1918~2017)신화는 있을 법한 이야기를 있는 것처럼 보여준다는 점에서 있었던 사실보다 더 초극적이다. 이것은 모든 만물의 기원을 마치 있었던 것처럼 찾아주기도 하면서 인류 보편적인 심상을 발견하는 원형으로서 작동된다. 또한 현실에서 '있어야 할 것'과 '있는 것'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있어야 할 것'을 통해 '있는 것'을 수정하는 형태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이 시처럼 아주 아득한 옛날 한마을에 꽃과 천사가 살았는데, "말하는 꽃은 천사가 되고/말을 못하는 천사는/꽃이"되었다. 꽃은 '사랑'이란 말을 찾았지만, 천사는 '눈물'이란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꽃이 된 천사는 또다시 '사랑'이라는 말을 찾거나, 누군가 찾아주어야 한다. 그래서 말 못하는 꽃을 위해 '꽃말'이라는 것이 생겨나지 않았겠는가. 꽃의 특징을 중심으로 국가나 민족, 시대에 따라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꽃말이 생겨난 것처럼, 우리 주변에 말 못하는 누군가의 말을 찾아주는 것은 신화를 창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6-04 권성훈

[시인의 꽃]할미꽃

이른 봄 양지 밭에 나물캐던 울 어머니곱다시 다듬어도 검은 머리 희시더니이제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서러움도 잠드시고이 봄 다 가도록 기다림에 지친 삶을삼삼히 눈 감으면 떠오르는 임의 모습그 모정 잊었던 날의 아 허리 굽은 꽃이여하늘 아래 손을 모아 씨앗처럼 받은 가난긴긴 날 배고픈들 그게 무슨 죄입니까적막산 돌아온 봄을 고개 숙는 할미꽃조오현(1932~2018)인간에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죽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이가 들고 있다는 것으로, 늙어가고 있다는 현상을 통해 노년으로 죽음에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만 감지될 뿐. 산과 들판의 양지쪽에서 자라는 할미꽃은 흰 털로 덮인 열매의 덩어리가 꼬부라진 할머니의 하얀 머리카락 같아서 그와 같은 이름이 생겼다. "이른 봄 양지 밭에 나물캐던 울 어머니"의 젊음도 "곱다시 다듬어도 검은 머리 희시더니" 결국 사랑의 배신, 슬픈 추억이라는 꽃말을 가진 할미꽃같이 삶은 죽음을 배신하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서러움도 잠드시고"야 만다. 불가와 세속을 넘나드는 '그 모정'으로 '가난'한 자를 보살피며 허리가 굽어 가며 운명하신 조오현 스님도 "이 봄 다 가도록 기다림에 지친 삶"에 "삼삼히 눈 감으면 떠오르는 임의 모습"이 되지 않았던가. 한동안 그가 보여준 적막산 속에서 우리는 또 얼마나 헤매야 할까.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5-28 권성훈

[시인의 꽃]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찬란한 슬픔의 봄을김영랑 (1903~1950)5월에 개화하는 크고 화려한 모란꽃은 부귀와 명예를 상징하며, '꽃 중의 왕'이라고 하여 '화중지왕(花中之王)'으로도 불린다. 누구에게나 모란꽃처럼 불꽃으로 타올랐던 화려한 날들이 있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그 환희의 순간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과 허탈감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 이 시는 봄날 뒤에 찾아오는 안타까움을 모란꽃에 비유하면서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에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겨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을 맞이하는 정경을 그리고 있다. '여윈 봄'을 있게 한, '오월 어느 날'의 지금쯤 '떨어져 누운 꽃잎'들이 시들어가는 현장에서 우리는 기쁨이 클수록 슬픔도 비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모란이 피기까지"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 마음에 떨어진 꽃잎은 '찬란한 슬픔의 봄'이 되고, 슬픔도 찬란할 수 있다는 '언어적 모순'을 통해 '실제적 진실'에 가닿게 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5-21 권성훈

[시인의 꽃]민들레꽃

요란하지 않아서 좋다화려하지 않아서 마음이 놓인다평범해서 정이 간다평범하고 요란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서평안하다//민들레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씨가 머무는 곳에서강하게 강인하게 피어난다//피어나서요란하지 않아서 좋다화려하지 않아서 좋다수줍어하며 수줍어하며나를 안아 주어 편안하다//민들레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씨가 머무는 곳에서강하게 강인하게 피어난다조병화(1921~2003)아무도 가꾸지 않아도 어느 곳에서나 자리 잡고 사철 꽃을 피우는 민들레 꽃. 솜뭉치 같은 열매 뭉치에 200여개의 씨앗을 품고 있다가, 바람 불면 허공을 날아 어디든지 간다. 산과 들판이 아니더라도 틈을 보인 땅과 햇빛 있는 곳에 정착하여 불평 없이 저 홀로 서식한다. 작고 초라해 보이는 가난한 사람같이 '민들레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 주변에 '씨가 머무는 곳에서' 자리를 내어주지 않아도 '강하게 강인하게 피어난다' 아무것도 없기에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이 식물의 꽃말은 행복이다. 이 행복은 "요란하지 않아서 좋다 화려하지 않아서 마음이 놓인다 평범해서 정이 간다 평범하고 요란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서 평안하다" 그렇지 아니한가. '수줍어하며 수줍어하며' 한 없이 '나를 안아 주어 편안'한 '민들레 사람'이 당신 곁에 있거나, 저 멀리서 '민들레 홀씨'되어 당도하고 있으니, 외로워 말라.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5-14 권성훈

[시인의 꽃]해당화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 합니다.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더니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 그려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 하고 물었습니다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한용운(1879~1944)장미과에 속하는 해당화는 무려 높이가 1.5m되고, 꽃은 지름 6∼9㎝로 5월에 홍자색으로 개화한다. 봄의 끝에서 피어난 해당화는 그 크기와 빛깔만큼 양귀비꽃처럼 매혹적인 향기가 난다. 그리움, 원망, 미인의 잠결이라는 꽃말을 가진 이 꽃은 오지 않는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다 붉게 피어나는 것이다.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라는 기다림과 그 뒤에 "야속한 봄바람"에 떨어질 때 까지 오지 않는 사랑에 대한 원망이 뒤섞여 있다. 시들어가는 사랑을 생각하며 시든 여인의 입술과 같은 꽃잎에 '너는 언제 피었니'라는 물음은 뒤돌아 갈 수 없는 연정을 아프게 물들게 한다.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되지만 셋도, 둘도 될 수 없는 혼자만의 '독백의 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5-07 권성훈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