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꽃

 

[시인의 꽃]원추리

비록 하루밖에 못 사는 꽃을 피우지만, 원추리는 높다란 꽃대 위에 예니레쯤 꽃을 매달 줄 안다. 예닐곱 개의 봉오리들을 하루씩 차례로 피우기 때문이다.누구도 그 꽃이 하루살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윤효(1956~)인간에게 하루는 오늘이라는 삶을 연장시킬 수 있는 시간적인 길이다. 영속되는 수많은 하루 중에서 일부를 살다가는 우리는, 그 속에서 저마다 가치 있는 그러한 유의미한 꽃을 피우길 바란다. 이것은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며 세계와의 상호적 의미화 작용에서 발화하는데, 이러한 유의미한 꽃의 개화시기는 사실상 정해져 있지 않다. 요컨대 누군가는 단 하루 만에 완성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생을 다 할 때까지도 완성하지 못하고 끝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결과적인 차원에서 백년을 살더라도 그것을 달성하지 못한 자는 하루를 살다간 자보다 못할 수도 있는 것. 7월경 꽃을 피우는 원추리는 잎 사이에서 길게 나온 꽃대 끝에 6~8송이가 피어나지만 하루가 지나면 시들어버린다. '비록 하루밖에 못 사는 꽃을 피우지만' 원추리에게는 하루가 전체이고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이번 생과 다음 생에 대한 자신의 역할을 다한 셈이 되는 것. 숱한 날을 하루같이 살고 있는 당신의 오늘은 '하루만의 아름다움'이라는 꽃말을 가진 원추리같이 인생이란 '높다란 꽃대 위에 예니레쯤 꽃을 매달고' 있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10-26 권성훈

[시인의 꽃]꽃다발

축하해잘해봐이 소리가 비난으로 들리지 않을 때 //누군가 꽃다발을 묶을 때천천히 풀 때아무도 비명을 지르거나 울지 않을 때 //그랬다 해도 내가 듣지 못할 때나는 길을 걸었다철저히 보호되는 구역이었고 짐승들 다니라고 조성해 놓은 길이었다김이듬(1969~)당신도 그렇듯이, 누군가의 삶을 하나로 놓인 길이라고 했을 때 인정받아야 하며 존중받아야 한다. 하나의 길은 모든 길로 통하며 모든 길은 하나의 길에서 출발한다는 명제를 보라. 하나의 길은 없다. 길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시작과 끝에 놓여진 모든 생이 길인 바, 자신이 가지 않았다고 그 길이, 길이 아닐 순 없다. 게다가 지금 가지 않았더라도 예측할 수 조차 없이 언젠가 당신의 길이 될 수 있는 것, 우리는 하나의 길이 끝나는 곳에서 무수히 많은 길에서 길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지 않은가. 누군가 '꽃다발'을 받고 있다면 그 꽃은 그동안 자신을 꺾어온 잘려나간 고통스러웠던 길이 선사하는 결실인 바, 비난하거나 욕되게 하지 말라. '축하해'주고 '잘해봐'라고 해야 하는 것, 그러한 당신도 삶이란 길을 위해 반복적으로 '묶고 풀고' 있는 것처럼. 매일 걷는 우리는 걷는 사람들을 위해 그 길을 '철저히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한 번도 가지 못한 오늘이라는 덤불을 헤치며 사는 '짐승'의 발톱을 가진 당신도 '행복 한 다발'을 진심으로 서로 나눌 수 있게 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10-19 권성훈

[시인의 꽃]꽃이 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꽃이 진 후에꽃이 진 후의 일들을 나 이제 겪어야 하네달콤하고 수상쩍은 냄새가 났던 봄밤봄날 누워서꽃이 피는 소릴 들으며,머리를 빗고 일어나 나가보면 천지에꽃들 이미 다 져버린 뒤바람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를 가지게 되었네꽃이 진 후에조용미(1962~)누군가에게 사랑은 시작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끝에서 발견되고 안타까움으로 연장된다. 마치 사실이 끝난 곳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처럼, 불완전했던 사랑을 가슴에 간직하며 못 다한 그리움의 진흙으로 구멍 뚫린 마음을 바르고.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꽃이 진 후에'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삶이 끝난 후에 사랑의 무게를 알 수 있듯이, 사랑이란 서로의 무게를 견디는 것, 스스로 그 무게를 져버린 적이 있는 당신은 지나온 시간보다 지나갈 시간 앞에서 많은 안타까움으로 남았을 법하다. 어느 '봄밤 달콤하고 수상쩍은 냄새가 난다'면 바로 그러한 시간이 피어 올린 것. 그것은 '꽃들 이미 다 져버린 뒤'에 오는 화안으로 바람보다 먼저 온 '한 잎의 답장'처럼 바람에 날리고. 사랑을 할 때는 눈이 멀고 사랑이 끝난 뒤에는 귀가 멀어 버린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겠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10-12 권성훈

[시인의 꽃]이팝꽃 그늘

일하다가 잠깐 그늘에 / 땀에 젖은 수건 같은 / 이팝꽃이 무더기로 피었다.김이 나는 쌀밥 같이 / 하얗게 피어오른 이팝꽃은 / 풀냄새도 나고 누룽지 냄새도 나고 / 엄마의 젖 냄새도 난다.이팝꽃은 내 생일날 아침 / 엄마가 일껏 지은 고봉의 쌀밥이다./어서 먹어라. 어서, / 어매는 배부르다. 생각 없다.산그늘에 내리는 뻐꾸기 울음 같은 꽃, / 웃음 속에 고인 /눈물 같은 꽃,권달웅(1944~)해마다 그 자리에서 피는 꽃들이 다 같아 보일지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되며 그것이 고도의 보편성을 가질 때 상징이 되는 법. 그렇게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는 꽃이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평생토록 지지 않는 표상으로 남아있다면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 속에서 소환된 것. 5~6월에 개화하는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이팝나무처럼 '이팝꽃이 무더기로 김이 나는 쌀밥 같이' 보일 때, 더 이상 이팝꽃은 이팝나무가 피어올린 꽃이 아니다. 거기서 가난했던 유년시절 '풀 냄새'와 '누룽지 냄새' 그리고 '엄마의 젖 냄새'가 향수처럼 '하얗게 피어오른' 것이니. 얼마나 행복한가. '이팝꽃은 내 생일날 아침 엄마가 일껏 지은 고봉의 쌀밥'이 되어 "어서 먹어라. 어서"라고, "어매는 배부르다. 생각 없다"고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역할을 했기에, 자식은 고봉 같은 무덤가를 지키고 있지 않던가. 그때마다 저기 먼 '산그늘에 내리는 뻐꾸기 울음 같은 꽃'을 상징적으로 아는 당신도 '웃음 속에 고인 눈물 같은 꽃'을 역설적으로 흘리고는 하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10-05 권성훈

[시인의 꽃]노랑제비꽃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숲이 통째로 필요하다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지구는 통째로 노랑제비꽃 화분이다반칠환(1964~)흔히 팬지라고 불리는 노랑제비꽃은 4~5월에 개화하며 꽃말은 '수줍은 사랑'이다. 이 꽃은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 식물로서 들판이나 야산에 서식하는데 오랑캐꽃이라고도 한다. 이유는 옛날에 제비꽃이 필 무렵 식량을 구하기 위해 오랑캐들이 쳐들어 왔다고 해서, 앙증맞고 예쁜 모양과 다르게 붙어진 이름이다. 풀숲에서 수줍게 꽃대를 올린 노랑제비꽃은 연약해 보이지만 이 꽃 '하나가 피기 위해' 거기에 맞는 흙과 햇살 그리고 공기와 물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자연에서 존재하는 것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구성되며 하나라도 버릴 것이 없다. 작은 것은 작은 대로, 큰 것은 큰 것대로의 의미를 가지며 그것들은 서로 얽히고설키어 교환되며 숲을, 지구를, 우주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또 그것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인공적으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순환되는 것.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냥 생겨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며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를 가지며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 자연은 고유한 부분들을 모아 놓은, 이른바 '통째'로 있는 것들의 집합소로서 모두를 자행하게 하는 '우주의 화분'이다. 거기서 한줄기 연약한 목숨 줄을 달고 있는 당신도 생명의 소중함을 알아야 할지니.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9-28 권성훈

[시인의 꽃]꽃

전란이 나면 내 마음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서로가 포탄의 말을 쏘아대면 저 꽃 어디에 소용이 될까 발돋움하는 사랑의 마음들은 얼마나 아플 것이며 그래서 칼과 총이 거리를 지나가면 폭격기가 하늘을 천둥치면 누더기 달을 허공에 두고 우리 꽃과 마음은 죽으리.고형렬(1954~)순수한 의미에서 공생은 자연의 신비 중에 하나로 먹고 먹이는, 이른바 먹이사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체를 반복적으로 요구하며 그로 인해 생명을 연장한다는 점에서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생성에 필요조건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배고픈 사람에게 꽃이 채소로 보일 뿐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이지만 그 스스로 동물성을 내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동물적 본능으로부터 육식성은 활성화 되고, 인간의 위대함은 파기되며 동물과 인간의 차이 역시 상실된다. 먼저 꽃을 꽃이라는 아름다움으로 보기 위해서는 정서적 반응과 동시에 미적 감각을 동반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무엇을 추구하는가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가치다. 따라서 매 순간 자연이 베풀어주는 세계라는 축제의 현장에서 오랫동안 공생하기 위해, 순리에 반하는 전쟁이라는 파괴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는 것. 오로지 그것만이 그 모든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작게는 '서로가 포탄의 말을 쏘아대'는 것에서 '사랑의 마음'을 가질 때 '우리 꽃과 마음'도 언제까지나 살아 있지 않겠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9-21 권성훈

[시인의 꽃]나도수정초

변방의 음습한 땅 근본도 모르는 꽃함부로 잎 핀 것들 이름을 호명할 때평생을 햇볕 그리며사는 한을 아느냐불구의 생 견디는 외눈박이 유령의 꽃몸과 맘 둘 데 없어 알몸을 내보인 채화두를 안고 서 있는고행의 뜻 묻지 말라한 뼘의 자존 강한 오만한 요정의 꽃텃새들 이야기 속 남은 봄 다 보내고마침내 적멸을 위해산 하나를 흔들었다오종문(1960~)누구에게나 이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겨나고 명명된다. 그 무엇도 아닌 것이 그 무엇이라는 이름을 가지는 순간 수많은 것들 속에서 하나로 지칭되며 그것으로 정체성을 가진다.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가 이름을 가지게 되면서 존재의 고유성은 그것에 예속되며 분별 되는 것. 이것은 보석같이 반짝이며 눈을 뜬 아기에게 부모님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아갈 채비를 해 주는 것. 음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 '나도수정초'는 고운 이름과 같은 꽃을 4~5월에 피어 올린다. 수정과 같이 맑고 깨끗한 이 꽃은 양지에 나가지 못하고 '평생을 햇볕 그리며' 살아가는 운명을 지녔다. 세상에 나가지 못하는 나도수정초는 '숲 속의 요정'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불구의 생 견디는 외눈박이 유령의 꽃'으로 '몸과 맘 둘 데 없어 알몸을 내보인 채' 눈을 감고 명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도 '한 뼘의 자존 강한' 크기로 '화두를 안고서 고행'을 하는 것처럼 피어나 '마음 산 하나'를 발견하게 해 준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9-14 권성훈

[시인의 꽃]목련나무 빨랫줄

누추한 속옷 내걸린 목련나무 빨랫줄꽃이 어느 시간 속을 이동해 사라지는 것처럼축축해진 옷을 입은 사람의 시간도 말라 간다빨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받아먹는야생 고양이 한 마리의 시간도.박서영(1968~2018)모든 존재는 시간 속에 시작되어 시간으로 나아가며 시간에서 끝난다. 살아있다는 것은 저마다 공간에서 지금 시간을 공유하는 것인 바, 거기에 머물지 못하는 존재는 살아있지 않은 것이 된다. 겨울을 견뎌온 목련나무가 피어 올린 한 송이 꽃처럼 꽃이 피고 지는, 봄이라는 짧은 시간에 걸쳐있는 것. 가지 끝에서 언제 떨어질 줄 모르는 위태로운 모습으로 중심을 잡고 있는, 순결을 상징하는 목련꽃을 보라. 매일같이 빨아 입지만 더럽혀지기 쉬운 '누추한 속옷'같은 인생이 '어느 시간 속을 이동해 사라지는 것처럼' 그렇게 육신이라는 '축축한 옷을' 잠시 입고 있을 뿐. 어쩌면 산다는 것은 속옷을 하루하루 말리듯이, 삶이라는 수분이 빠져나가는 시간과 죽음이 자라는 속도가 비례하는 것. 또한 '사람의 시간'은 목마른 '야생 고양이'가 '빨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라도 받아먹으려고 치욕을 구부려가며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목련꽃같이 치장을 하고 아침을 여는 당신도 세상이라는 어느 골목 낭떠러지를 붙잡고 살고 있지 않던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9-07 권성훈

[시인의 꽃]히스테리아

캔버스를 뚫고 나온 해바라기가 발목을 휘감기 시작한다//밖에서 문을 닫아거는 소리가 났다개들이 시끄럽게 짖어댔고온 방을 뒤덮을 만큼 거대해진 해바라기가입을 벌린 채 나를 내려다본다//나를 어디로 실어가려는 것입니까 이 방은누구의 몸속에서 출렁이는 기억입니까//화염을 뚝뚝 흘리면서 녹고 있는//나는 얼음처럼눈동자가 갈라지는 소리를 들었다//눈앞에는 텅 빈 캔버스가 있다안희연(1986~)8~9월에 개화하는 해바라기는 태양처럼 뜨거운 열정이 담긴 영혼의 꽃으로 동경과 숭배, 신앙과 의지 등의 꽃말이 있다. 이처럼 사람마다 마음이라는 캔버스에 그리는 해바라기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동경하는 것이 된다. 또한 의지와 맞물려 스스로 비추는 거울같이 자신 내부를 향해 작동되기도. 그러나 내가 비추는 것이 비춰지는 것에 비하여 클 경우 마찰이 생기면서 갈등이 빚어지게 되는 것. 말하자면 내가 소망하는 것이 나를 초과하여 나타날 때 '얼음처럼' 현실적 균열이 생기며 '눈동자가 갈라지는' 심리적 분리로 나아간다. 그것은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의 '캔버스를 뚫고 나온 해바라기가 발목을' 잡는 가위눌림과 같이. "온 방을 뒤덮을 만큼 거대해진 해바라기가 입을 벌린 채 나를 내려다본다" 이때 제어할 수 없는 자신의 '몸속에서' 있는 나는 누구인가. 그건 '텅 빈 캔버스'에 나만의 방식대로 만들어낸 것이지만, 반대로 숭배해온 '욕망의 재단'에 바쳐진 자신이라는 것.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8-31 권성훈

[시인의 꽃]유혈목이의 책장

당신은 풀잎 위에 누워 돌을 떨어뜨리고 있었어요 나는 당신 귀밑머리에 매달린 하얀 박쥐들을 떼어냈고요 우리의 책은 폭설을 쏟아내고 있었지요 마른 혀도 꽃이 될 수 있을까요 그때 바람이 입 속으로 들어왔어요 당신은 은어 떼 헤엄치는 수박 향기로 반짝였지요 당신이 흘러든 풀섶에서 유혈목이가 기어 나와 내 품을 파고들었어요 책장엔 진달래꽃 피어났고요 알몸을 포갠 우리는 따뜻한 무덤이 되어갔지요이병철(1984~)사실상 한 권의 책은 저자가 발견한 그 무엇을 나름대로의 형식으로 기록한 것에 불과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운명적인 저자와의 만남은 독자를 통해 읽혀지고 자각되며 새롭게 태어난다는 관점에서 재현되는 에센스의 발견이며 사건이다. 책장에 그러한 책이 쌓여갔다는 것은 매번 다시 태어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책의 미혹에 언제든지 빠져들게 하는 증거물인 것. 그러한 사유에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혈목이의 책장'에는 당신을 인식의 풀잎 위에 눕혀 놓고, 생각을 떨어뜨리며, 기억을 떼어낸 지난날들. 여기에 다른 인식을 쏟아내며 주입하고 있는, 이른바 미지수의 n차 감염인 것. 마치 그것을 '따뜻한 무덤'이라고 믿는 당신에게 꽃뱀의 '마른 혀'가 '언어의 풀섶'에서 당신의 가슴을 노리듯이. 그러나 없어도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있는 것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듯이 그러한 '대지의 책장엔' 알면 알수록 당신의 봄을 기다려온 '진달래꽃'이 만발해 있지 않던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8-24 권성훈

[시인의 꽃]개당귀

웃지 마라아무데나 들이대는 족속이 아니다오지 중의 오지지리산 칠선계곡 쯤이 아니면문패를 걸지 않는다뭐라. 날 두고 개당귀라 했느냐당귀와 비스무리 해서라 했느냐내 이명(異名)은 지리강활,좀 어려우냐몸 말려 너희 병질 치유에쓰여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내 생이 바뀌겠느냐내 본시 시푸른 족속, 풀일 뿐이니그 입 다물라김추인(1947~)미나릿과로 8~9월에 꽃을 피우는 개당귀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졌다. 산지 깊은 곳에 서식하는 개당귀는 자신의 재미난 이름과 달리 독초로 식용인 참당귀와 모양이 '비스무리 해서' 개당귀라고 부른다. 자줏꽃을 피우는 참당귀와 다르게 흰색꽃을 피우는 개당귀는 키가 커서 무려 1m 정도에 이르며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지면 마치 접시안테나처럼 수십여 개의 꽃차례가 달린다.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된 독초라고 해서 '지리강활'이라고도 하는, 이 식물은 '아무데나 들이대는 족속이 아니기'에 '오지 중의 오지 지리산 칠선계곡 쯤이 아니면 문패를 걸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같이 개당귀와 같이 독을 품고 사는 사람들도 자신이 피워 올린 세계를 숨기고 사람의 숲속에서 살고 있지 않던가. 때로는 세상을 향해 '쓰여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 내 생이 바뀌겠느냐'라고 자존감 아닌 자존감만이 살아가는 존재 이유로 증거하면서….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8-10 권성훈

[시인의 꽃]엉겅퀴 꽃

화포는 쏟아놓은 깊은 암청색이다풀숲은 아우성인 두터운 암녹색이다그 품에 자줏빛 물감 한 방울 찍혀있다온몸의 면역세포가 상처로 달려오듯이뜨거운 여름날이 요동치며 몰려오는내 안에 지워지지 않는 너는 핏자국이다김일연(1955~)누군가에게 '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기적인 것 같지만 '도덕적 실체'를 드러내는 일이다. 그것은 강렬하고 뜨거운 사랑이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가시와 같다는 사실을 아는 자의 배려와도 같은 것. 말하자면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가진 엉겅퀴처럼 상처를 받기 싫어서가 아니라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 6월에서 8월 사이에 개화하는 엉겅퀴는 온 몸에 난 억센 털 때문에 만지면 가시가 박히는데, 이것은 자기보존을 추구하기 위한 오랜 존재방식으로 아직도 '그 품에 자줏빛 물감 한 방울'의 슬픔이 지워지지 않고 '온몸의 면역세포가 상처로' 피어있다는 사실은 그 누군가를 또 다시 받아들일 자신이 없는 깊은 멍자국인 것이다. 그러한 당신도 어느 '뜨거운 여름날이 요동치며 몰려오는' 사랑에 일순간 눈을 감고 떠보니 '내 안에 지워지지 않는' 그대라는 '핏자국'같이, 문득 바람이 불 때마다 마음의 숲을 흔들며 언뜻 보이질 않던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8-03 권성훈

[시인의 꽃]내 비록 외로와도

가을 화단은 너무 눈부셔서 싫어.샐비어도 피고 홍국화도 피어노을빛을 깝북 죽여 버렸어.화단에 물을 주던 내 임은 가고 없지만.살아야지, 보랏빛으로 내 비록 외로와도.박정만(1946~1988)환경으로부터 자극을 받는 존재는 색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산다. 색채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대표적으로 봄엔 노란색으로, 여름엔 녹색으로, 가을엔 붉은색으로, 겨울엔 흰색으로 지각된다. 이러한 자연물이 주는 색채에서 영감을 얻은 인간은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옷 이미지를 통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오늘 어떤 옷을 입을까?'하는 일상적인 생각은 오늘의 날씨와 기분 그리고 사회적 환경 등이 함의 된 것. 따라서 옷을 입는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나아가 세계에게 색채로서 답하는 것. 여름부터 가을까지 빨간색 꽃이 이삭처럼 달리는 '샐비어'나 깊어가는 가을 날 붉은 국화로 알려진 '홍국화'도 마찬가지. 눈부신 가을을 피보다 붉은 색채로 태우고 있는 것이다. 당신 마음의 '가을 화단'에도 '불타는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샐비어'가 있고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을 가진 '홍국화'가 있지 않던가. 누군가 떠나보낸 '추억의 화단'에 물을 주듯이 그러한 고독한 당신도 "살아야지, 보랏빛으로 내 비록 외로와도" 돌아보기 쉬운 것이 '이별의 색채'라고 했던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7-27 권성훈

[시인의 꽃]하늘공원 야고

난지도 새 이름 하늘공원에만발한 억새풀 사이 걷다 듣는다.귀에 익은 종소리, 물 건너 제주에서 듣던 그 종소리,바람 불 때마다 딱 한번만 들려주는 소리,무자년 분홍 종소리 예서 듣는다부끄럼에 상기한 볼, 아니란다.억새 뿌리에 몸을 감춘 채살아야, 살아남아야 했던 이유 있었단다.잎사귀 같은 서방 산으로 가 소식 끊기고돌배기 딸년의 울음소리 데리고 찾아 나선 길,어디서 시커먼 그림자 서넛이휘릭 바람을 타고 지나칠 때아이의 울음 그러 막으며 억새밭에 납작하게 엎드린 목숨,이제나 저저나 수군거리는 소리 잦아들까.변종태(1963~)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기생하며 살아간다. 자신도 모르게 기생하면서도 기생 당하는 것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면서. 여기서 기생하는 것은 기생의 시간에, 기생당하는 것은 숙주의 시간에 의존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혼자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인생도 이러한 기생의 삶이 연속되지 않는 이상, 삶 또한 지속할 수 없는 것. 제주도 억새풀에 서식하는 '야고'의 꽃은 둥근 달걀모양을 하고 마치 작은 종처럼 피어난다. 이러한 '야고'가 서울 '난지도 새 이름 하늘공원에 만발한 억새풀 사이'에서 "물 건너 제주에서 듣던 그 종소리"를 내고 있다. 그것도 "바람 불 때마다 딱 한번만 들려주는" 환상의 소리를 통해 새로운 기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그렇지만 미안한 듯 '부끄럼에 상기한 볼을 억새 뿌리에' 비비면서 야고는 버티고 있는 것이다. 거기 '억새밭' 같은 세상 속에서 '납작하게 엎드린 당신의 목숨'이 보이는가. 그렇다면 "살아야, 살아남아야 했던 이유"도 둥글게 굽어진 당신의 등 뒤에 있지 않던가./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7-06 권성훈

[시인의 꽃]얼음새꽃

아직 잔설 그득한 겨울 골짜기 다시금 삭풍 불고 나무들 울다꽁꽁 얼었던 샛강도 누군가 그리워 바닥부터 조금씩 물길을 열어 흐르고눈과 얼음의 틈새를 뚫고 가장 먼저 밀어 올리는 생명의 경이 차디찬 계절의 끝을 온몸으로 지탱하는 가녀린 새순마침내 노오란 꽃망울 머금어 터뜨리는 겨울 샛강, 절벽, 골짜기 바위틈의 들꽃, 들꽃들 저만치서 홀로 환하게 빛나는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아니 너다곽효환(1967~ )땅에서는 하늘을 그리워하고, 하늘에서는 땅을 그리워하기에 더 멀리 더 높이 나는 새들도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 저 높이 있는 '잔설 그득한 겨울 골짜기'의 '꽁꽁 얼었던 샛강도 누군가 그리워'하면서 봄이 되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지 않던가. 그것은 '눈과 얼음의 틈새를 뚫고' 바닥을 보인 겨울이 녹으면서 새의 날개 짓처럼 펼쳐지며 물길을 열어주면서 시작되는 것. 또한 우리는 '가장 먼저 밀어 올리는 생명의 경이'를 땅에서 하늘을 향해 '차디찬 계절의 끝을 온몸으로 지탱하는 가녀린 새순'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힘센 존재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존재가 강한 것을 '노오란 꽃망울 머금어 터뜨리는' 꽃의 비상에서 지각할 수 있다. 저만치 '겨울 샛강에서, 절벽에서, 골짜기 바위틈에서 피어있는 들꽃들'은 연약해 보이지만 사바의 세계 속에서 살아남은 존재가 환하게 보내오는 '화엄의 시그널'이 아닐 수 없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6-29 권성훈

[시인의 꽃]포텐셜 에너지-꽃씨

꽃의 임종 후봉인된 유언이 되어 대지에 심어진검은 혀무한히 날고 있다 그것은지상과 천상,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둥근 문모든 물(物)과 빛시간과 어둠이 점으로 응집된광대한 우주 함기석(1966~)무구한 역사 속에서 이름을 남긴 자들은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한다. 이러한 죽은 사람의 '검은 혀'는 시간을 거슬러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무한히 날아다니며' 어떠한 에너지를 공급해준다. 몸도 없고 실체도 없는 것이 생성해 내는 힘으로부터 결여를 보충하는 것이야말로 신화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여기서 영웅 신화가 탄생되는 지점이 아니겠는가. '포텐셜 에너지'의 원리에서 강철공이 땅에 떨어져 있을 때보다 땅 위로 올려질 때 더 큰 위치 에너지를 가지는 것처럼. 죽음으로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지상과 천상,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지금 시들어 떨어지는 민들레꽃을 보라. 살아 있을 땐 한 송이지만 그 하나의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 수천, 수만 송이로 변환된 꽃들은 '모든 물(物)과 빛'과 '시간과 어둠이 점으로 응집된' 세계의 '광대한 우주'를 말 많은 세상에 말없이 보여주고 있지 않던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6-22 권성훈

[시인의 꽃]꽃잎에게 나는

떨어지는 꽃잎에게 / 나는 두 번째라네 / 깊은 그늘에 숨어싱그러운 눈짓을 바라보았지놀라워라 햇살이 물방울처럼 돋아 / 길을 만드네숲의 안쪽에서 그녀만이 온전히 주인이 숲에선 상상조차 그녀에게 헌납되었지그녀는 속삭임, 그녀는 무도회, / 잊혀지는 저녁과 귀기울임이 숲은 그녀의 것 / 꽃잎에게 두 번째는 없지망설이지 않고 사라지는 저것에게 /나는 두 번째여서 우두커니 선채로 어두워지네 / 그리고, 모든 게 눈 앞이지떨어지는 동안, 내내 / 꽃잎은 세상의 모든 것에 앞서네노춘기 (1973~)최고의 자리는 어느 순간 바뀌지만 처음의 자리는 바뀔 수 없는 것. 언제나 최고는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위태로우나, 최초는 언제나 처음으로 굳게 기억되고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의미를 찾는다면 두 번째부터는 큰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순서가 아무리 늘어나도 다음만을 이어나가며 처음과는 점점 차별화되고 멀어진다. 미처 찾아내지 못했거나 아직 알려지지 아니한 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최초의 새로움을 더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누구나 매일 같이 어제의 누구도 가보지 못한 '깊은 그늘에 숨어' 있는 오늘이라는 '싱그러운 하루'를 처음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보아라 어제 '잊혀지는 저녁'을 지나 오늘 아침 '햇살이 물방울처럼 돋아 길을' 만들고 있지 않던가. 우리도 꽃잎처럼 '두 번째는' 없는, 목숨을 매달고 살면서 '우두커니 선채로 어두워지'는 저녁을 맞이하고 있다. 모든 떨어지는 것이 있다면 '떨어지는 동안, 내내' 생각해 보라. 그것은 처음으로 갈 수 없기에 처음으로 길을 멀리 떠나는 것이니./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6-15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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