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꽃

 

[시인의 꽃]꽃

꽃은 누가 죽어가는 시간에 피어나는 것일까, 그 사람이 힘없이 손짓하던 부름을 말하지 못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여, 피어나는 것일까. //꽃이 피는 시간에 그 주위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또 무엇일까, 꽃 가장이를 예감처럼 돌다가 사라지는 빛은…//아, 꽃은 결국 무슨 뜻으로 저리도 선명한 빛깔로 내게 다가오는가. 이수익 (1942)한 사람이 태어나면 별 하나가 생기고, 그 사람이 죽으면 그 별도 같이 소멸한다고 할 때 우리는 저마다 별 하나씩을 가졌다. 하늘에서 빛나는 별은 멀어서 모두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모습처럼 빛나는 정도도, 크기도, 생김새도 다르다. 이처럼 하늘에 자신의 삶과 같이 하는 것이 '하늘의 별'이라면 반대로 '땅의 꽃'은 누가 태어날 때 시들고 '누가 죽어가는 시간에/피어나는' 것이다. 사람의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저 별과 달리, 이 꽃은 죽은 자가 '말하지 못한 하고 싶은 말을' 전수하기 위해서 피어나는 것. 그래서 '꽃이 피는 시간에' '그 주위'를 맴도는 '바람'과 '꽃 가장이'를 비추는 '빛'은 그렇게 죽어간 영혼이 마지막 머물다 가는 자리인 것, 꽃이 '저리도 선명한 빛깔로 내게 다가오는' 것은 차마 돌아가지 못한 가운데 생애 마지막 아름다움을 남기고 떠나고 싶어 하는 '망자의 말'인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1-13 권성훈

[시인의 꽃]꽃향기

내 무거운 짐들이 꽃으로 피어날 수 있으면 좋겠네버리고 싶었으나 결코 버려지지 않는결국은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고 온아무리 버려도 뒤따라와 내 등 뒤에 걸터앉아 비시시 웃고 있는버리면 버릴수록 더욱더 무거워져 나를 비틀거리게 하는비틀거림은 비틀거릴수록 더욱더 늘어나 나를 짓눌러버리는내 평생의 짐들이 이제는 꽃으로 피어나그래도 길가에 꽃향기 가득했으면 좋겠네정호승(1950~)오늘은 그동안 살아온 삶이 하루 동안 펼쳐지는 날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 누구도 살아보지 못한 날인 것처럼 새해 속에 함의 된 365일이라는 시간 또한 아무도 살아보지 못한 평등한 날로 존재한다. 그러나 각자 살아온 세월만큼 다르게 축적된 시간을 나이라고 하는데, 이 시간은 "버리고 싶었으나 결코 버려지지 않는" 것이다. 이제 한 살 더 먹은 당신도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고 온" 그것은 육체의 무게에 부가된 '내 무거운 짐들이' 어깨를 누르며, 숨통을 조이고 있듯이. 말하자면 "아무리 버려도 뒤따라와 내 등 뒤에 걸터앉아 비시시 웃고 있는/버리면 버릴수록 더욱더 무거워져 나를 비틀거리게 하는/비틀거림은 비틀거릴수록 더욱더 늘어나 나를 짓눌러버리는" 순간을 살고 있지 않던가. 무거워지려면 채워야 하고 가벼워지려면 버려야 하느니, 그렇다면 더 가지려고 하는 욕망이라는 '평생의 짐'을 나눌 때 "내 평생의 짐들이 이제는 꽃으로 피어나" '평생의 짐들이' 평생의 꽃밭이 되어 '그래도 길가에 꽃향기 가득'하게 진동할 수 있으리.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1-06 권성훈

[시인의 꽃]국화꽃 그늘을 빌려

국화꽃 그늘을 빌려살다 갔구나 가을은젖은 눈으로 며칠을 살다가갔구나국화꽃 무늬로 언첫 살얼음또한 그러한 삶들있거늘눈썹달이거나 혹은그 뒤에 숨긴 내어여쁜 애인들이거나모든 너나 나나의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살다가 가는 것들있거늘 장석남(1965~)당신만 빠져있는 세계는 의미가 없듯이 당신만 있는 세계도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모두가 개별적인 존재이지만 공동체를 통해 함께 할 때 존재자로서 자신의 삶을 검증받는다. 이렇게 우리가 속한 사회는 갈등과 분열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 삶의 의지를 지원받고 생명을 연장하면서 하루하루 희망을 공급받는다. 따라서 나는 우리라는 '그늘을 빌려 살얼음판' 같은 세계에서 어제의 절망과 내일의 희망 사이에 '있거늘'. 이 그늘은 같이 있으므로, 있는 것들이 생성해내는 '또한 그러한 삶들'이 있는 동안 피어 올리는 '있거늘'로서 떠나거나 벗어나지 않는 상태의 '서로의 그늘'을 표상한다. 이것은 "모든/너나 나나의/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살다가 가는 것들" 바로 '있거늘'은 오늘을 그토록 살기 원했던 어제 '국화꽃 그늘을 빌려 살다'가 간 어느 '영혼의 자리'기도 하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2-30 권성훈

[시인의 꽃]수화

손끝에서 피어나는 저 꽃의 말들을좀처럼 읽을 수 없다//허공에 뱉은 말들팔랑팔랑운명을 거부하는 말의 꽃들//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금방 사라지고 말 꽃의 날개들//말을 다 뱉어내고도 꽃섬 가득흩날리는 꽃잎들//손끝에서 사라지는 그리움의 말들배영옥(1966~2018)소리나 시각으로 나타내는 말은 사고의 표현 수단으로써 소통으로 완성된다. 말은 그 뜻이 통하면 소멸되지만 말의 자리에 의미만 남아 저마다 기억 속에 저장되는 것. 그렇지만 우리는 수많은 말 때문에 오히려 말 속에 갇혀 이른바 말의 감옥에서 거주하며 사물들이 내는 고유한 표현들을 모르면서 살아간다. 말없이 말을 하고 있는 수화 속에서 "손끝에서 피어나는 저 꽃의 말들을" 보라. 두 개의 손과 열 개의 손가락이 피어 올린 말의 꽃은, 말이 되지 않는 말로 말을 하고 있지 않던가. '허공에 뱉은 말들이 팔랑팔랑' 날아다니다가 상대방의 가슴 속에 내려앉는 말의 꽃잎들, 꽃의 말들.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금방 사라지고 말 꽃의 날개들"을 보면 "말을 다 뱉어내고도" 다하지 못한 공허한 말의 한계를 실감할 수밖에 없다. 지난날 "손끝에서 사라지는 그리움의 말들" 속에서 '꽃섬 가득' 채울 수 없었던 기억의 '흩날리는 꽃잎들의 말'을 주워 담을 수만 있다면.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2-23 권성훈

[시인의 꽃]달맞이꽃

어머니 저어기 마중 나와 계시다뼈마디 마디 끝마다 불 밝히시고굶주린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어둠 속에 나와 계시다//날마다 나를 설거지하시다늙은 손 굽은 등으로마지막 남은 힘으로 등불 켜시고저 풍전등화의 골목에 나와 계시다//여름 구석에서 가을을 장만하는 풀벌레소리벌써 애간장을 녹이는데//나는 가을이 되면 누구나 한번쯤 하는이별하는 사랑 하나도 이루지 못한 덜 떨어진 놈인데//내 슬픈 길을 밝혀주려어머니 저어기 홀로 나와 계시다김왕노(1957~) 우리는 무엇인가를 자주 떠올릴 때 주로 눈에 비쳤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보단 멀리 있는 것을, 부족하지만 채울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른바 돌아올 수 없는 결핍을 말한다. 생애 처음 당신이 보았던 사람, 당신을 그렇게 지켜주었던 어머니 죽음은 고인 시간 속 흐린 잔상을 통해 각인되고 다시 부활하며 영원히 완성되어 나타난다. 어머니라는 이름 앞에 성장이 멈춘 기억은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가진 7월에 개화하는 2년생 '달맞이꽃'처럼. 삶에서 죽음에의 삶이 시작되는 당신에게 '어머니 저어기 마중 나와 계시'기도 하고, '날마다 나를 설거지하시'듯 씻어주기도 하고, '뼈마디 마디 끝마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등불 켜시고' 계시지 않던가. 그렇다면 당신을 위해 눈물 흘리시던 어머니는 연하고 물기 많은 초본식물같이 어두운 삶의 길목에서 '내 슬픈 길을 밝혀주려 저어기 홀로 나와' 피어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2-16 권성훈

[시인의 꽃]수선화에게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가끔은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정호성(1950~)12월에서 3월 사이에 꽃을 피우는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애(自己愛)'다. 이 자기애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라는 청년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어느 날 나르키소스가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의 아름다움에 반해 빠져 죽은 물속에서 수선화가 피었고, 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정신분석학적 용어가 여기에서 생겨났다. 이러한 슬픔을 가진 연약한 수선화는 이 시에서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과 동화되어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말을 남긴다. 행여나 인생이라는 바람 앞에서 언제 쓰러질 줄 모르는 우리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고 충고한다. 또한 나를 보고 있는 나로부터 나르시시즘의 눈을 존재하는 대상들에게 돌리면 '너를 보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는 바,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는 것은 바로 독신에서 오는 것, 존재의 외로움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서 시냇물을 지나 강과 바다를 만나듯이 '산그림자도 저녁이 되면 마을로 내려오는' 이유 또한 '외로움 때문이다.' 보라, 당신이 혼자라고 느낄 때 심장의 '종소리도 외로워서' 가슴 속에서 당신 안으로 파고들면서 숨죽여 울려 퍼질 때가 있지 않던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2-02 권성훈

[시인의 꽃]꽃잎 한 장

꽃잎 한 장 수면에 떨어져작은 파문이 일고 있다 //파문이 물별을 만들고 있다 //꽃잎이 없다면파문이 없다면 //아름다운 물별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꽃잎 한 장 받는 것은가슴에 파문이 이는 일 //몸에 물별이 뜨는 일공광규(1960~)새로운 언어를 구축하는 시인은 만물들에게 그 본질에 맞는 이름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호명한다. 여기서 '물별'은 사물 그 자체의 드러냄을 의미하는 것으로 새롭게 발견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사물에 새로운 언어를 주입한 것, "꽃잎 한 장 수면에 떨어져/작은 파문이 일고" 있는 사물의 이미지를 '물별'이라는 시어로 교환하며 교감하게 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꽃잎의 작은 파문'은 드러나 왔으나, 그 장면을 '물별'로 명명하는 순간 언어적 '파문이 물별을 만들고' 물별은 현존재로서 그 실체성을 가진다. 이렇듯 '꽃잎이 없다면' 파문도 없을 것이며, '파문이 없다면' 꽃잎도 없는 것처럼 서로가 아무런 의미망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한편의 '아름다운 물별을 볼 수'있다는 것은, 파문이 이는 '꽃잎'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어준다는 점에서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의 이름을 누군가가 부를 때 그 입술에서 떨리는 것 또한 '꽃잎 한 장 받는 것'일지니, '가슴에 파문이 이는 일'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그리움에 잦아드는 이름일수록 '몸에 물별이 뜨는 일'로 당신의 가슴에서 파문이 인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1-25 권성훈

[시인의 꽃]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오죽했으면 죽음을 원했으랴네 피고름 흘러내린 자리에서꽃들 연이어 피어난다네 가족 피눈물 흘러내린 자리에서꽃들 진한 향기를 퍼뜨린다조금만 더 아프면 오늘이 간단 말인가조금만 더 참으면 내일이 온단 말인가그 자리에서 네가 아픔 참고 있었기에산 것들 저렇듯 낱낱이진저리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이승하(1960~)속된 것에서 성화되는 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같이 성스러움이 서려있다. 세속적인 고통이 클수록 그것에 비례하는 아픔은 성스럽게 변한다. 고통이 극한에 다다른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비극은 미적으로 전환되는데, 이른바 삶을 뚫고 나오는 죽음은 승화된 꽃으로 표상된다. 여기서 꽃은 고통이 피워낸 아픔의 다른 말로서 "오죽했으면 죽음을 원했으랴" 죽음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이럴 때 꽃은 공감을 통해 "네 피고름 흘러내린 자리에서/꽃들 연이어 피어"나는 연쇄적 반응으로 파급력을 지닌다. '꽃들 진한 향기'는 속된 세상을 향해 진동하는 '피눈물'로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도 피어나 오랫동안 기억된다. 거기에는 참을 수 없는 아픔이 고통의 나날을 지탱하고 있었기에 "진저리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감각하게 해준다. 따라서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는 것은 죽어서 부활하는 정신이, 속된 육신만 '산 것들'에게 '저렇듯 낱낱이' 보여주는 '성화의 말씀'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1-11 권성훈

[시인의 꽃]낙화를 읽는 저녁

여고행 버스 안에서 훅 끼친 그 냄새 초경 꿈도 아닌데 몸이 왜 저릿한지 쓸쓸히 되짚어보는 꽃들의 비린 행장行狀 ―그때마다 핏자국쯤 웃으면서 치웠거나 ―패 하나 못 잡은 채 피박이나 썼거나 ―문 닫은 가을 절간에 빈 달만 드높거나 달의 운행 따위 따질 일도 이제 없고 후끈한 열꽃이나 열적게 씻는 녘을 폐閉와 완完, 아슬한 행간 낭화들만 난만해라정수자 (1957~)사람도 꽃과 같아서 하나의 뿌리에서 피고 나면 지고 마는 법. 한 몸에서 달이 차고 기울듯이 한번 시작된 삶은 끝을 향해 가는 것을. 그렇다고 질 것을 대비해서 피어 있음에 소홀히 말고, 진다고 해서 피어 있음을 부러워 않음은. 피는 꽃은 지는 꽃을 모르지만 지는 꽃은 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문득 '몸이 왜 저릿한지'도 그 몸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훅 끼친 그 냄새'를 기억하는 것. 당신의 시간을 '쓸쓸히 되짚어보면' 여기서 와서 다른―저기로 가는 것이 아닌 여기서 가까운―여기로 착석하는 것으로써 '낙화를 읽는 저녁'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후끈한 열꽃이나 열적게 씻는 녘"에서 '열꽃'으로 '온전한 열림'은 '완전한 닫힘'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이 가을 열매 맺지 않고 '아슬한 행간' 떨어지는 꽃이라면 그것으로 무결함은 화려함 속으로.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0-28 권성훈

[시인의 꽃]지는 꽃

춥고 가난스런 / 바람 손을 놓고한 잎 한 잎 / 어제의 / 꽃잎이 떨어진다.진실한 빛깔로 타던 / 그 하늘은 / 지금 침묵.한 모금 물 / 찾던 눈 감기고 / 너무나 조용한 지상무수히 내려 쌓이는 / 멀어져 간 전설은고독이 띄우는 / 아픈 / 웃음의 음성이었다.김제현(1939~)넉넉하지 못한 상태를 일컫는 '가난'은 이미 가득 차 있는 '부유'로서 헤아릴 수 없는 물질적 순수함이 있다. 거기에는 있던 것이 없는 부재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결핍에 대한 지난한 여정도 겹쳐진다. 가령 추위에 '바람 손을 놓고' 떨어지는 '꽃잎'을 보면 없음에서 있음으로 와서, 있음에서 없음으로 가는 끝에서 다시 만나는 처음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서 '한 잎 한 잎' 일궈낸 '어제의' 수많은 날들도 꽃처럼 화사하게 피었다가 허무하게 가는 것이니. 그 순간만큼은 '진실한 빛깔로 타던' 하늘이 있지 않았겠는가. 따라서 '지금 침묵'하면서 '지는 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눈 감기고 너무나 조용한 지상'의 본질을 조응하게 만든다. '춥고 가난스런' 이 가을 '고독이 띄우는 지는 꽃'처럼 '무수히 내려 쌓이는' 이야기는 '멀어져 간 전설'로 남는 것.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0-21 권성훈

[시인의 꽃]은자의 꽃

안개 일으키는 산바람구름 띄운 하늘 저어가다이슬 맺힌 눈물꽃흔들리는 한해살이풀어디선가 누구를 향해피는 줄도 모르고은은한 산자락내려앉은 그림자 드리우고평생 한구석을 지키며이름짓지 않는 사람이 실문 닫고한 칸 어둠 속에서 내다보는 세상살이은자의 꽃최동호(1948~)세상의 모든 명예와 물욕을 내려놓은 사람은 어떠한가. 그 사람은 더 이상 욕망을 충족시키지 않으며, 좀처럼 욕심을 가동시키지 않는다. 이같이 탐욕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사는 그런 사람을 은인(隱人)이라고 한다. '은자의 꽃' 역시 은인이 흐트러짐 없이 피워낸 '무위의 꽃'으로서 실재 꽃이 아닌 속물적인 본성을 버린 '마음 꽃'이다. 그것은 사람의 숲에서 '이슬 맺힌 눈물꽃'으로 고독하게, 은둔자의 '흔들리는 한해살이풀'처럼 '어디선가 누구를 향해 피는 줄도' 모르게 피어있다. 요컨대 '은은한 산자락'에서 어느 누구의 관습 없이 '내려앉은 그림자 드리우고' 그렇게 '평생 한구석을 지키며' 서 있다. 또한 '이름'도 없이 귀를 닫은 '실문'처럼 있기에 '은자의 꽃'은 복잡한 '세상살이' 가운데 '한 칸 어둠 속에서'도 세계를 볼 수 있으며, 허공 속에서 허공을 감각할 수 있는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0-07 권성훈

[시인의 꽃]꽃

너는 어디든 나는 빛나고 있다녹슨 자물쇠 무겁게 걸어둔너의 깊은 데서 등불을 켜는 사람너는 슬픔 속속들이 파묻힌숨긴 눈물까지를 환히 보고 있는나의 이 아픔가슴, 가슴의 샛길을 날며 노래하는 종지리퍼덕이는 날개의 깃털을 쓰다듬는 나의 이 기쁨하늘 채광 어리운 푸섶의 이슬같이너의 어디든 내 눈물은 반짝이고 있다. 유안진(1941~)쓸쓸한 가슴에서도 빛나는 사람이 있다. 슬픔을 눈물로 간직한 그 사람은 자신만이 간직한 애절한 그리움의 빛깔로서 깊은 곳에서 더 밝아진다.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둠 속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한 줄기 빛으로 눈을 감고도 찾을 수 있는. 어디서나 발화되는 그 빛은 '녹슨 자물쇠 무겁게 걸어둔' 상태에서도 '등불을 켜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나는 숨길 수 없는 '슬픔 속속들이 파묻힌' 시간을 가지고, '숨긴 눈물까지를 환히 보고 있는'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렇다고 '나의 이 아픔'을 누군가가 알 수 없는 법. 때로는 '가슴, 가슴의 샛길을 날며 노래하는' 새가 되어, 그렇게 '퍼덕이는 날개의 깃털을 쓰다듬는 나의 이 기쁨'으로 날아와, '이슬같이' 반짝이다 눈물처럼 떨어지고 마는, 당신의 사랑은 시들지 않는 꽃이 되어 아픈 가슴만큼 빛나고 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9-23 권성훈

[시인의 꽃]들꽃

이름을 가진 것이이름 없는 것이 되어이름 없어야 할 것이이름을 가진 것이 되어길가에 나와 앉았다.꼭 살아야 할 까닭도목숨에 딸린 애련 같은 거 하나 없이하늘을 바라보다가물들이다가바람에 살을 부비다가외롭다가잠시 이승에 댕겼다가 꺼진반딧불처럼고개를 떨군다.뉘엿뉘엿 지는 세월 속으로만.이근배(1940~)이름이 없다는 것은 하나의 이름에 묶여있지 않다는 말이다. 사물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는 이름은 한번 붙어진 이상 그 이름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법. 야생에 핀 들꽃은 온실에서 자라는 꽃들이 가지지 못한 몸짓으로 피어나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는 자유를 가졌다. 보통명사 들꽃은 고유한 이름이 없기에 고유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이름을 가진 것이/'이름 없는 것이 되어/이름 없어야 할 것이/이름을 가진 것이 되어 길가에 나와'있지 않던가. 거기서 이름 없는 것들이 이름 있는 것들을 보면서 '꼭 살아야 할 까닭도 목숨에 딸린 애련 같은 거 하나 없이'도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준다. 이른바 이름 있는 당신을 향해 '하늘을 바라보다가/물들이다가/바람에 살을 부비다가/외롭다가' 그렇게 반짝 생을 마감하는 '반딧불처럼' 들꽃은 없는 이름으로, 있는 이름을 소리 없이 가르쳐 주며 '고개를 떨군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 마다 자신을 흔들며 '뉘엿뉘엿 지는 세월 속으로만' 걸어가고 있지 않던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9-16 권성훈

[시인의 꽃]민들레 꽃씨

날아가 닿는 곳 어디든 거기가 너의 주소다조심 많은 봄이 어머니처럼 빗어준 단발머리를 하고푸른 강물을 건너는 들판의 막내둥이 꽃이여너의 생일은 순금의 오전너의 본적은 햇빛 많은 초록 풀밭이다달려가도 잡을 수 없던 어린 날의 희망열다섯 처음 써 본 연서 같은 꽃이여너의 영혼 앞에서 누가 짐짓 슬픔을 말할 수 있느냐고요함과 부드러움이 세상을 이기는 힘인 것을지향도 목표도 없이 떠나는 너는보오얀 몸빛, 버선 신은 한국 여인의 모시 적삼 같은 꽃이여너는 이 지상의 가장 깨끗한 영혼공중을 날아가도 몸이 음표인땅 위의 가장 아름다운 소녀들 이기철 (1943~)욕망에도 무게와 부피가 있던가. 채울수록 무거워지고 부피를 더해가는 짐처럼 욕망은 채울수록 들어차면서 늘어난다. 가중되는 무게와 커가는 부피를 통해 욕망은 욕구를 키우면서 자신마저 그 안에 전복시키고 만다. 그러면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끝없이 부유하는 물질 앞에서 빈번히 무릎을 꿇으며 고유한 자신의 정체성마저 상실해 버린다. 반면 가벼움은 무거움으로 측정할 수 없는 무게를 가졌다. 채울수록 무거워지는 욕망을 '버림'으로 벼리는 것같이 가벼움은 무거움을 버리고 민들레 꽃씨처럼 날개 없는 날개를 달 수 있다. "고요함과 부드러움이 세상을 이기는 힘인 것을" 아는 민들레 꽃씨는 '날아가 닿는 곳 어디든 거기가 너의 주소'가 생기는 것처럼. 봄에 개화하여 '몸이 음표인' 꽃씨를 남기는 민들레의 꽃말이 '행복'인 것은, 비로소 '깨끗한 영혼'으로 가벼워져 얻게 된 '비움의 자유'를 이르는 말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9-09 권성훈

[시인의 꽃]해바라기

구름을 넘는구나 / 빗방울을 뚫는구나따라 도는 / 꽃 / 읽는 해 가던 / 같이 가던 / 길을 / 앓아 / 동행이냐 장마에 / 꽃잎 더 / 노래지는 / 해바라기야함민복 (1962~)해가 움직이는 대로 고개를 움직인다는 해바라기는 8~9월에 개화하고, 꽃말은 숭배와 기다림이다. 하나만을 바라보고 그리워하다가 시들어 말라가는 해바라기는 하늘 먼 곳을 향해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배반과 변절로 얼룩져 있는 우리 사회를 보면 해바라기에게서 숭고미를 느끼게 된다. 해바라기의 절대적인 바라봄은 해를 가리고 있는 '구름' 너머로 비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빗방울'을 맞으며 온 얼굴을 허공에 매달고 있다. 하늘에서 돌고 도는 태양은 자신을 '따라 도는 꽃'을 아는지 그렇게 해바라기를 저녁이 될 때까지 마주 보고. 비록 그 거리는 가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있지만 그러한 해바라기의 마음을 하루 종일 와닿으며 읽고 있는 해. 해바라기와 해는 서로 '같이 가던 길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서로 비추면서 가는, 말하자면 '동행'과도 같은 것. 당신도 이러한 동행 하나 있다면 어렵고 힘든 세상의 장마에 가려져 있더라도 '장마에 꽃잎 더 노래지'듯이 서로가 서로에게 노랗게 닳아 닮아갈 수 있으련만.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9-02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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