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꽃

 

[시인의 꽃]산수유

세상에,갓 태어난 아기 울음 그치는가 싶더니무명천 안개 자락에 지리는 배냇똥살얼음 헛디디며 몇 만리를 흘러왔는지반가부좌 엉덩이마다 환하게 피는 봄깨금발로 지나쳐간 내 사랑의 뒤란에 샛노랗게 반짝이는 등불 한 송이 윤향기(1953~)탄생은 인류가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듯이 모든 존재하는 것들도 불변의 이치이긴 마찬가지다. 여기서 사라지고 생겨나는 것들은 서로 유사한 동질성을 지니고 있지만 차별된 것이며 독립된 개체일 뿐. 그것은 봄이 되면 새롭게 탄생하는 생명들의 축제 속에서도 경이롭게 발견되는데, 다 같은 꽃처럼 보이지만 유심히 관찰해보면 꽃 하나 하나의 피어남이 다르듯이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3월에 개화하며 '지속'과 '불변'이라는 꽃말을 가진 산수유 꽃은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 울음'으로 제각기 피어 있다. 그것도 '무명천 안개 자락에 지리는 배냇똥'처럼 바람이 허공에 배설을 한 것같이. 얼어붙은 반가부좌 자세로 참선을 끝낸 겨울이 환하게 봄으로 환생해 있지 않던가. 거기서 사랑을 잃어본 당신도 그 생각 속 뒤란에서 사랑과 유사한 '샛노랗게 반짝이는 등불 한 송이' 그리움을 찾을 수 있는 것.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3-23 권성훈

[시인의 꽃]먼, 분홍

윤이월 매화는 혼자 보기 아까워 없는 그대 불러 같이 보는 꽃생쌀 같은 그대 얼굴에 매화 한 송이 서툰 무늬로 올려놓고 싶었다 손가락 두 마디쯤 자르고 사흘만 같이 살아보고 싶었다혼자 앓아누운 아침 어떻게 살아야 매화에 닿는가 꽃이라는 깊이 꽃이라는 질문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배가 고팠다 매화는 분홍에서 핀다 분홍은 한낮의 소란스러움을 물리친 색 점자처럼 더듬거리다 멈춰서는 색새벽의 짐승처럼 네 발로 당신을 몇 번이나 옮겨 적었다 분홍이 멀다먼, 분홍 서안나(1965~)가끔 자연 속에서도 예상치 못하게 시작되는 것들이 있다. 물론 그것마저도 인간이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이겠지만, 먼저 온다는 것은 빨리 기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 이를테면 기다림보다 앞서 와 오히려 기다려주는 2월에 피는 매화 꽃. 혼자 보기에는 '아까워 없는 그대 불러 같이 보는 꽃'이 아닐까. 원래 매실나무에 '생쌀 같은 그대 얼굴'처럼 피는 매화는 3월에 만개하며 지난한 겨울을 지나온 봄의 표상이다. 이런 매화는 색깔에 따라서 꽃말이 다른데, 백매라고 불리는 흰색은 고결과 기품을, 홍매라고 불리는 붉은 색은 결백과 충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시 분홍을 피워낸 홍매는 '한낮의 소란스러움'을 뒤로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멈추게 하는 '색'이 아닐 수 없다. 매화에게 다가갈수록 허물 많은 우리는 '먼, 분홍'으로부터 시련을 깨끗이 잊고 눈가와 입가가 활짝 개화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3-16 권성훈

[시인의 꽃]산수유꽃

논둑에 앉아 산수유를 바라봅니다얕은 구릉에 무리져 핀 산수유가논바닥 웅덩이에 비칩니다빛이 꽃 그림자에서 피어납니다저쪽에서부터 농부가 황소를 몰고생땅을 갈아엎고 있습니다논바닥 웅덩이가 흔들립니다땅에서 향내가 솟구칩니다소발굽에서 물집 잡힌저 산수유꽃 그늘이런 아침에 당신 생각이 더 간절해집니다산간마을의 봄빛이 저만큼 깊습니다박형준(1966~)우리의 일상은 도처에 위험과 공포에 노출되어 있다. 언제 어떻게 닥칠 줄 모르는 인재와 재해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재난 앞에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그렇지만 일상을 바꿔버린 '사회적 거리' 속에서도 봄은 여지없이 기다려주지 않고 오는 것. 겨울처럼 찬기로 가득 찬 당신의 창 너머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온기를 뻗치면서 피어나는 꽃. 다른 꽃보다 먼저 노란 표정으로 춤을 추듯이 소담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얕은 구릉에 무리져 핀 산수유'를 보라. 비탈진 언덕 너머 비친 '꽃 그림자' 속에서 '농부가 황소'를 몰고 오듯이 고즈넉한 전원의 풍경이 떠오르지 않는가. 땅의 새살을 돋기 위해 '생땅을 갈아엎'어야만하는 자연의 순리를 '땅에서 솟구치는 향내'로 발견하게 한다. '저 산수유꽃 그늘' 아래에서 '봄빛이 저만큼' 깊어갈수록 퍼지는 간절한 그리움이 있다면 분명 '당신 생각'의 땅에 묻어놓은 봄이 움트고 있기 때문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3-09 권성훈

[시인의 꽃]모란

모란은 누구의 상실이기에저리 붉은가//모란의 세계에 든 사람 누구도상처를 말하지 않는다//우울한 얼굴과슬픈 눈매//모란에 가면모란은 없고//모란모란 만개한 눈동자들이 피워올리는뜨거운 눈물만 있다//소리는 없고눈매만 깊은//저 충혈된 헛꽃들!배영옥(1966~2018)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그 대상이 가진, 다른 대상과 구별되는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부터다. 그것은 다른 것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하고도 감각적인 느낌으로 마주치는 순간 그 고고함과 강렬함에 빠져들고 만다. 바로 5월에 화려하게 개화하는 모란처럼. 이 꽃은 '부귀화'라고 불리기도 하며 위엄과 품위가 있어 화중지왕(花中之王)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아픔을 대신하듯 '모란은 누구의 상실이기에 저리 붉은가' 거기에 압도당해 자신의 상처도 동화되는 것. 따라서 '모란의 세계'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상처가 피어나고 있으므로 '상처'도 사라지고 '우울한 얼굴과 슬픈 눈매'도 보이지 않는다. '모란에 가면 모란'이 없는 것은 상처를 가진 주체(나)와 상처로 피어나는 대상(모란)이 새로운 인식을 탄생시키고 있기 때문. 그렇다면 '소리는 없고 눈매만 깊은' 그 '저 충혈된 꽃들'이 '헛꽃'인 이유는, 바라보는 동안 언어를 무화(無化)시키는 힘에서 생겨나는 사유가 아닐 수 없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2-24 권성훈

[시인의 꽃]꿈꽃

내 만난 꽃 중 가장 작은 꽃 냉이꽃과 벼룩이자리꽃이 이웃에 피어 서로 자기가 작다고 속삭인다. 자세히 보면 얼굴들 생글생글 이빠진 꽃잎 하나 없이 하나같이 예쁘다. 동료들 자리 비운 주말 오후 직장 뒷산에 앉아 잠깐 조는 참 누군가 물었다. 너는 무슨 꽃? 잠결에 대답했다. 꿈꽃. 작디작아 외롭지 않을 때는 채 뵈지 않는 (내 이는 몰래 빠집니다) 바로 그대 발치에 핀 꿈꽃. 황동규(1938~) 꿈을 꾸게 하는 잠에게 우리는 빚진 것이 많다. 오래 산다는 것은, 이미 감당하지 못하는 채무가 있다는 것. 잠이라는 빚을 지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그 꿈을 기억하지 못해도 꿈을 꽃 피우는 시간이다. 꿈이 인생의 무게와 부피에 맞는 꽃을 피게 하고 있으니. 눈을 감고 있는 사이 몰래 온 눈처럼 당신을 하얗게 덮고 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지 않던가. 그렇다고 꿈이 작다고 꿈을 꾸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른 봄 '이웃에 피어' 하얀색 꽃을 피우는, '당신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라는 꽃말을 가진 냉이꽃과 '기쁜 소식'이라는 꽃말을 가진 벼룩이자리꽃. 구석자리 어딘가에서 새순을 내고 자라나는 이 작은 것들을 '자세히 보면 얼굴들 생글생글 이빠진 꽃잎 하나 없이 하나같이 예쁘질' 않던가. 슬프고 고단한 인생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당신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로 그대 발치에 핀 꿈꽃'을 볼 수 있으니. 그만큼 행복한 빚이 또 어디 있겠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2-17 권성훈

[시인의 꽃]무화과나무의 꽃

나는 피고 싶다./피어서 누군가의 잎새를 흔들고 싶다. 서산에 해지면/떨며 우는 잔가지 그 아픈 자리에서 푸른 열매를 맺고 싶다 하느님도 모르게//열매 떨어진 꽃대궁에 고인 눈물이/하늘 아래 저 민들레의 뿌리까지 뜨겁게 적신다 적시어서/새순이 툭툭 터져 오르고 슬픔만큼 부풀어 오르던 실안개가/추운 가로수마다 옷을 입히는 밤 우리는 또 얼마만큼 걸어가야/서로의 흰 뿌리에 닿을 수가 있을까 만나면서 흔들리고/흔들린 만큼 잎이 피는 무화과나무야//내가 기도로써 그대 꽃피울 수 없고 그대 또한 기도로써 나를 꽃피울 수 없나니 꽃이면서 꽃이 되지 못한 죄가/아무렴 너희만의 슬픔이겠느냐 피어도 피어도 하느님께 목이 잘리는/꽃, 오늘 내가 나를 꺾어서그대에게 보이네 안 보이는 안 보이는 무화과나무의 꽃을 박라연(1951~)기독교 성경에서도 등장하는 무화과나무는 '꽃이 없는 열매'라는 뜻과 함께 풍요로움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최초의 여자인 이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탐스러울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자기도 따먹고 아담에게도 주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는 구절이 창세기에 있다. "나는 피고 싶다"라고 시작되는 이 꽃은 꽃이 없는 무화과나무의 특징을 살려 '하느님도 모르게' 사랑을 꽃피고 싶은 간절한 인간의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무화과나무처럼 "꽃이면서 꽃이 되지 못한 죄가/아무렴 너희만의 슬픔이겠느냐"하면서 아무에게도 안 보이지만 사랑의 대상에게만 보이는, 그런 사랑을 형상화하고 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2-10 권성훈

[시인의 꽃]나리 나리 개나리

누이여또다시 은비늘 더미를 일으켜 세우며/시간이 빠르게 이동하였다어느 날의 잔잔한 어둠이/이파리 하나 피우지 못한 너의 생애를소리 없이 꺾어갔던 그 투명한/기억을 향하여 봄이 왔다//살아 있는 세월을 나는 모른다/네가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시간들의 얽힌 영토 속에서/한 뼘의 폭풍도 없이 나는 고요했다다만 햇볕이 이글거리는 벌판을/맨발로 산보할 때어김없이 시간은 솟구치며 떨어져/이슬 턴 풀잎새로 엉겅퀴 바늘을/살라주었다//봄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은 묻지 않는다떠다니는 내 기억의 얼음장마다/부르지 않아도 뜨거운 안개가 쌓일 뿐이다잠글 수 없는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아아, 하나의 죽음이 얼마나 큰 죽음들을 거느리는가나리 나리 개나리/네가 두드릴 곳 하나 없는 거리봄은 또다시 접혔던 꽃술을 펴고찬물로 눈을 헹구며 유령처럼 나는 꽃을 꺾는다기형도(1960~1989)죽어서는 절대 올 수 없는 봄은 죽어 있는 가운데에서 온다. 그 죽음은 땅의 기억 속에서 시간을 건너온 무수한 사물들의 몸이 사라져간 것과 사라져가고 있는 것 사이 살아가야하는 생명이 피워 올린 몸짓인 것. '은비늘 더미'는 찬란한 생명의 조각들인 죽음이 퇴적된 흔적으로서 '잔잔한 어둠'이며 더 이상 '피우지 못한 생애'라고 할 수 있다. 개나리는 이러한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 시간들이 '시간들의 얽힌 영토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니. 살아있지 않는 것을 깨우지 않는 봄은 죽어간 것들 속에서 죽어 갈 삶을 위무라도 하듯이, 노란 개나리 형상을 하고, 우리에게 미리 와서 반겨주는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2-03 권성훈

[시인의 꽃]동화목冬花木

옷 한 벌 입지 않은 맨몸으로빈들에 서서 떨고 있는저 엄숙한 침묵,시린 발, 시린 몸, 웅크리고제 몸 비벼 봄을 틔우고 있는저 심지의 환한 불길,내가 가만가만 그에게 다가가살짝 귀 대어 들어 보니벌컥 벌컥 물 마시는 소리,그 뜨거운 생불生佛의 열기확, 내 몸에 불을 당긴다이영춘(1941~)언어의 홍수 속에서 지극히 절제된 언어의 파장으로 정서를 흔들어 놓는 것이야말로 현대시가 구현해야 하는 '서정적 놀라움'이 아닐 수 없다. 일상성 속에서 새롭게 출현한 시는 서정적 자각과 존재에 대한 통찰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으로 기존 질서를 배반하면서 근원적인 존재를 이해하는데 한걸음 더 나가게 만든다. 우리가 부르는 '꽃'은 학습 되어진 것으로서 어떠한 사물에 부여된 획일적인 명사에 지나지 않지만 시인이 찾아내는 사물은 이전의 사물과 다른 형태와 의미로 전환할 때 사물은 꽃과 교환되면서 고유한 꽃이 되며 시가 된다. 이 겨울을 '옷 한 벌 입지 않은 맨몸으로' 버티고 있는 한그루 나무를 이른바 '동화목冬花木'으로 보는 것. 그것은 '빈들에 서서 떨고 있는/저 엄숙한 침묵'이 피워낸 꽃으로 환원시키는 것. 거기에는 '벌컥 벌컥 물 마시는' 나무의 생명성을 들여다보는 것. 따라서 시는 나무의 '시린 발, 시린 몸, 웅크리고/제 몸 비벼 봄을 틔우고 있는/저 심지의 환한 불길'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뜨거운 생불生佛의 열기'로 자신의 '몸에 불을 당기고 있는' 당신도 '한 송이 동화목'과 다르지 않음을 성찰하게 해 준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1-27 권성훈

[시인의 꽃]동백꽃 그리움

떨어져 누운 꽃은나무의 꽃을 보고나무의 꽃은떨어져 누운 꽃을 본다그대는 내가 되어라나는 그대가 되리김초혜(1943~)바닷가에서 서식하는 동백은 1월부터 4월까지 개화하는데, 꽃들이 다 지고 나면 추운 겨울에 붉게 피어난다. 마치 홀로 피는 외로운 사랑처럼. 동백섬으로 잘 알려진 전남 여수 오동도에서 전해오는 동백에 얽힌 전설이 있다. 이 섬에서 단둘이 고기잡이를 하며 먹고 사는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남편이 없는 사이 정체 모를 남자가 숨어 들어와 그녀를 해치려고 달려들었고, 그녀는 남편이 있는 바닷가를 향해 도망가다가 그만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이를 안 남편은 통곡하며 부인의 시신을 잘 묻어두고 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떠났다. 그 뒤 남편이 부인이 보고 싶어 섬에 돌아왔을 때 그녀의 무덤에 한그루 나무가 자라 꽃을 피웠는데, 그것이 바로 동백이다. 이 동백꽃에서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고 해서 동백의 꽃말이 '나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가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영원한 사랑이란 '떨어져 누운 꽃은/나무의 꽃을' 반대로 '나무의 꽃은/떨어져 누운 꽃을' 삶과 죽음을 건너 애절하게 바라보듯이 '그대는 내가' 되고 '나는 그대'가 되어 가슴 깊이 붉게 파고드는 것이 아닐까.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1-20 권성훈

[시인의 꽃]꽃

꽃은 누가 죽어가는 시간에 피어나는 것일까, 그 사람이 힘없이 손짓하던 부름을 말하지 못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여, 피어나는 것일까. //꽃이 피는 시간에 그 주위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또 무엇일까, 꽃 가장이를 예감처럼 돌다가 사라지는 빛은…//아, 꽃은 결국 무슨 뜻으로 저리도 선명한 빛깔로 내게 다가오는가. 이수익 (1942)한 사람이 태어나면 별 하나가 생기고, 그 사람이 죽으면 그 별도 같이 소멸한다고 할 때 우리는 저마다 별 하나씩을 가졌다. 하늘에서 빛나는 별은 멀어서 모두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모습처럼 빛나는 정도도, 크기도, 생김새도 다르다. 이처럼 하늘에 자신의 삶과 같이 하는 것이 '하늘의 별'이라면 반대로 '땅의 꽃'은 누가 태어날 때 시들고 '누가 죽어가는 시간에/피어나는' 것이다. 사람의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저 별과 달리, 이 꽃은 죽은 자가 '말하지 못한 하고 싶은 말을' 전수하기 위해서 피어나는 것. 그래서 '꽃이 피는 시간에' '그 주위'를 맴도는 '바람'과 '꽃 가장이'를 비추는 '빛'은 그렇게 죽어간 영혼이 마지막 머물다 가는 자리인 것, 꽃이 '저리도 선명한 빛깔로 내게 다가오는' 것은 차마 돌아가지 못한 가운데 생애 마지막 아름다움을 남기고 떠나고 싶어 하는 '망자의 말'인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1-13 권성훈

[시인의 꽃]꽃향기

내 무거운 짐들이 꽃으로 피어날 수 있으면 좋겠네버리고 싶었으나 결코 버려지지 않는결국은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고 온아무리 버려도 뒤따라와 내 등 뒤에 걸터앉아 비시시 웃고 있는버리면 버릴수록 더욱더 무거워져 나를 비틀거리게 하는비틀거림은 비틀거릴수록 더욱더 늘어나 나를 짓눌러버리는내 평생의 짐들이 이제는 꽃으로 피어나그래도 길가에 꽃향기 가득했으면 좋겠네정호승(1950~)오늘은 그동안 살아온 삶이 하루 동안 펼쳐지는 날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 누구도 살아보지 못한 날인 것처럼 새해 속에 함의 된 365일이라는 시간 또한 아무도 살아보지 못한 평등한 날로 존재한다. 그러나 각자 살아온 세월만큼 다르게 축적된 시간을 나이라고 하는데, 이 시간은 "버리고 싶었으나 결코 버려지지 않는" 것이다. 이제 한 살 더 먹은 당신도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고 온" 그것은 육체의 무게에 부가된 '내 무거운 짐들이' 어깨를 누르며, 숨통을 조이고 있듯이. 말하자면 "아무리 버려도 뒤따라와 내 등 뒤에 걸터앉아 비시시 웃고 있는/버리면 버릴수록 더욱더 무거워져 나를 비틀거리게 하는/비틀거림은 비틀거릴수록 더욱더 늘어나 나를 짓눌러버리는" 순간을 살고 있지 않던가. 무거워지려면 채워야 하고 가벼워지려면 버려야 하느니, 그렇다면 더 가지려고 하는 욕망이라는 '평생의 짐'을 나눌 때 "내 평생의 짐들이 이제는 꽃으로 피어나" '평생의 짐들이' 평생의 꽃밭이 되어 '그래도 길가에 꽃향기 가득'하게 진동할 수 있으리.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1-06 권성훈

[시인의 꽃]국화꽃 그늘을 빌려

국화꽃 그늘을 빌려살다 갔구나 가을은젖은 눈으로 며칠을 살다가갔구나국화꽃 무늬로 언첫 살얼음또한 그러한 삶들있거늘눈썹달이거나 혹은그 뒤에 숨긴 내어여쁜 애인들이거나모든 너나 나나의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살다가 가는 것들있거늘 장석남(1965~)당신만 빠져있는 세계는 의미가 없듯이 당신만 있는 세계도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모두가 개별적인 존재이지만 공동체를 통해 함께 할 때 존재자로서 자신의 삶을 검증받는다. 이렇게 우리가 속한 사회는 갈등과 분열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 삶의 의지를 지원받고 생명을 연장하면서 하루하루 희망을 공급받는다. 따라서 나는 우리라는 '그늘을 빌려 살얼음판' 같은 세계에서 어제의 절망과 내일의 희망 사이에 '있거늘'. 이 그늘은 같이 있으므로, 있는 것들이 생성해내는 '또한 그러한 삶들'이 있는 동안 피어 올리는 '있거늘'로서 떠나거나 벗어나지 않는 상태의 '서로의 그늘'을 표상한다. 이것은 "모든/너나 나나의/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살다가 가는 것들" 바로 '있거늘'은 오늘을 그토록 살기 원했던 어제 '국화꽃 그늘을 빌려 살다'가 간 어느 '영혼의 자리'기도 하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2-30 권성훈

[시인의 꽃]수화

손끝에서 피어나는 저 꽃의 말들을좀처럼 읽을 수 없다//허공에 뱉은 말들팔랑팔랑운명을 거부하는 말의 꽃들//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금방 사라지고 말 꽃의 날개들//말을 다 뱉어내고도 꽃섬 가득흩날리는 꽃잎들//손끝에서 사라지는 그리움의 말들배영옥(1966~2018)소리나 시각으로 나타내는 말은 사고의 표현 수단으로써 소통으로 완성된다. 말은 그 뜻이 통하면 소멸되지만 말의 자리에 의미만 남아 저마다 기억 속에 저장되는 것. 그렇지만 우리는 수많은 말 때문에 오히려 말 속에 갇혀 이른바 말의 감옥에서 거주하며 사물들이 내는 고유한 표현들을 모르면서 살아간다. 말없이 말을 하고 있는 수화 속에서 "손끝에서 피어나는 저 꽃의 말들을" 보라. 두 개의 손과 열 개의 손가락이 피어 올린 말의 꽃은, 말이 되지 않는 말로 말을 하고 있지 않던가. '허공에 뱉은 말들이 팔랑팔랑' 날아다니다가 상대방의 가슴 속에 내려앉는 말의 꽃잎들, 꽃의 말들.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금방 사라지고 말 꽃의 날개들"을 보면 "말을 다 뱉어내고도" 다하지 못한 공허한 말의 한계를 실감할 수밖에 없다. 지난날 "손끝에서 사라지는 그리움의 말들" 속에서 '꽃섬 가득' 채울 수 없었던 기억의 '흩날리는 꽃잎들의 말'을 주워 담을 수만 있다면.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2-23 권성훈

[시인의 꽃]달맞이꽃

어머니 저어기 마중 나와 계시다뼈마디 마디 끝마다 불 밝히시고굶주린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어둠 속에 나와 계시다//날마다 나를 설거지하시다늙은 손 굽은 등으로마지막 남은 힘으로 등불 켜시고저 풍전등화의 골목에 나와 계시다//여름 구석에서 가을을 장만하는 풀벌레소리벌써 애간장을 녹이는데//나는 가을이 되면 누구나 한번쯤 하는이별하는 사랑 하나도 이루지 못한 덜 떨어진 놈인데//내 슬픈 길을 밝혀주려어머니 저어기 홀로 나와 계시다김왕노(1957~) 우리는 무엇인가를 자주 떠올릴 때 주로 눈에 비쳤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보단 멀리 있는 것을, 부족하지만 채울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른바 돌아올 수 없는 결핍을 말한다. 생애 처음 당신이 보았던 사람, 당신을 그렇게 지켜주었던 어머니 죽음은 고인 시간 속 흐린 잔상을 통해 각인되고 다시 부활하며 영원히 완성되어 나타난다. 어머니라는 이름 앞에 성장이 멈춘 기억은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가진 7월에 개화하는 2년생 '달맞이꽃'처럼. 삶에서 죽음에의 삶이 시작되는 당신에게 '어머니 저어기 마중 나와 계시'기도 하고, '날마다 나를 설거지하시'듯 씻어주기도 하고, '뼈마디 마디 끝마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등불 켜시고' 계시지 않던가. 그렇다면 당신을 위해 눈물 흘리시던 어머니는 연하고 물기 많은 초본식물같이 어두운 삶의 길목에서 '내 슬픈 길을 밝혀주려 저어기 홀로 나와' 피어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2-16 권성훈

[시인의 꽃]수선화에게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가끔은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정호성(1950~)12월에서 3월 사이에 꽃을 피우는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애(自己愛)'다. 이 자기애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라는 청년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어느 날 나르키소스가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의 아름다움에 반해 빠져 죽은 물속에서 수선화가 피었고, 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정신분석학적 용어가 여기에서 생겨났다. 이러한 슬픔을 가진 연약한 수선화는 이 시에서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과 동화되어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말을 남긴다. 행여나 인생이라는 바람 앞에서 언제 쓰러질 줄 모르는 우리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고 충고한다. 또한 나를 보고 있는 나로부터 나르시시즘의 눈을 존재하는 대상들에게 돌리면 '너를 보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는 바,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는 것은 바로 독신에서 오는 것, 존재의 외로움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서 시냇물을 지나 강과 바다를 만나듯이 '산그림자도 저녁이 되면 마을로 내려오는' 이유 또한 '외로움 때문이다.' 보라, 당신이 혼자라고 느낄 때 심장의 '종소리도 외로워서' 가슴 속에서 당신 안으로 파고들면서 숨죽여 울려 퍼질 때가 있지 않던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2-02 권성훈

[시인의 꽃]꽃잎 한 장

꽃잎 한 장 수면에 떨어져작은 파문이 일고 있다 //파문이 물별을 만들고 있다 //꽃잎이 없다면파문이 없다면 //아름다운 물별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꽃잎 한 장 받는 것은가슴에 파문이 이는 일 //몸에 물별이 뜨는 일공광규(1960~)새로운 언어를 구축하는 시인은 만물들에게 그 본질에 맞는 이름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호명한다. 여기서 '물별'은 사물 그 자체의 드러냄을 의미하는 것으로 새롭게 발견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사물에 새로운 언어를 주입한 것, "꽃잎 한 장 수면에 떨어져/작은 파문이 일고" 있는 사물의 이미지를 '물별'이라는 시어로 교환하며 교감하게 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꽃잎의 작은 파문'은 드러나 왔으나, 그 장면을 '물별'로 명명하는 순간 언어적 '파문이 물별을 만들고' 물별은 현존재로서 그 실체성을 가진다. 이렇듯 '꽃잎이 없다면' 파문도 없을 것이며, '파문이 없다면' 꽃잎도 없는 것처럼 서로가 아무런 의미망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한편의 '아름다운 물별을 볼 수'있다는 것은, 파문이 이는 '꽃잎'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어준다는 점에서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의 이름을 누군가가 부를 때 그 입술에서 떨리는 것 또한 '꽃잎 한 장 받는 것'일지니, '가슴에 파문이 이는 일'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그리움에 잦아드는 이름일수록 '몸에 물별이 뜨는 일'로 당신의 가슴에서 파문이 인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1-25 권성훈

[시인의 꽃]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오죽했으면 죽음을 원했으랴네 피고름 흘러내린 자리에서꽃들 연이어 피어난다네 가족 피눈물 흘러내린 자리에서꽃들 진한 향기를 퍼뜨린다조금만 더 아프면 오늘이 간단 말인가조금만 더 참으면 내일이 온단 말인가그 자리에서 네가 아픔 참고 있었기에산 것들 저렇듯 낱낱이진저리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이승하(1960~)속된 것에서 성화되는 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같이 성스러움이 서려있다. 세속적인 고통이 클수록 그것에 비례하는 아픔은 성스럽게 변한다. 고통이 극한에 다다른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비극은 미적으로 전환되는데, 이른바 삶을 뚫고 나오는 죽음은 승화된 꽃으로 표상된다. 여기서 꽃은 고통이 피워낸 아픔의 다른 말로서 "오죽했으면 죽음을 원했으랴" 죽음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이럴 때 꽃은 공감을 통해 "네 피고름 흘러내린 자리에서/꽃들 연이어 피어"나는 연쇄적 반응으로 파급력을 지닌다. '꽃들 진한 향기'는 속된 세상을 향해 진동하는 '피눈물'로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도 피어나 오랫동안 기억된다. 거기에는 참을 수 없는 아픔이 고통의 나날을 지탱하고 있었기에 "진저리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감각하게 해준다. 따라서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는 것은 죽어서 부활하는 정신이, 속된 육신만 '산 것들'에게 '저렇듯 낱낱이' 보여주는 '성화의 말씀'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1-11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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