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의 '고서산책'

 

[조성면의 '고서산책']고서로 우리의 현재를 톺아보다

중동은 조선 중심의 中·日 지칭현채가 발췌 번역 '청일전쟁 기록'121년 전의 역사적 고서지만한반도 지정학적 위상 지금도 같아軍전략 평화중심 동아시아로 넓혀야고서의 효용은 무엇인가. 사료적·골동적 가치 이외에도 심미적 만족감을 줄 수 있다. 또 비대면 시대 코로나 블루와 무료함을 달래는 방편이 된다. TV·혼술·산책도 있지만 고서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SNS나 전자책의 편리성을 부인할 수 없지만, 고서점이나 도서관의 서가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책과 직접 만나 책장을 들출 때 영감이 솟고 새로운 차원의 사고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십년 전쯤 단골 고서점에 방문했다가 귀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중동전기(中東戰紀)'라고 제목만 알던 책이었다. 책에 대한 내력을 대충 알고 있었지만 짧은 순간 엉뚱한 생각들이 명멸했다. 흔히 중동이라면 아랍지역인데, 이런 책을 광무 3년(1899)에 황성신문사에서 펴낼 리는 없고, 그러면 중동이란 말은 무엇인가.유럽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한·중·일이 동쪽의 맨 끝 곧 극동이라면, 아랍은 가운데 있는 동쪽 국가들 곧 중동이 된다. 그러니 아랍 국가들을 중동이라 하는 관행은 유럽 중심적인 말이다. 우리 입장에서 중동은 중간에 있는 서양, 곧 중서(中西)에 해당한다. '중동전기'도 이와 유사한데, 중국을 기준으로 보면 일본은 극동(極東)이요, 조선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중동(中東)이 된다. 또는 동쪽 끝의 나라 즉 일본(東)과 중국(中)의 전쟁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말이 낯설어 의미론적 생소함은 있지만, 우리식으로 말하면 '중동전기'는 한국에서 벌어진 중국-일본 간의 전쟁에 대한 기록, 곧 청일전쟁(1894~1895)의 전모와 경과를 정리한 책이다.'중동전기'는 상하 2권으로 애국계몽기의 사학자 현채가 '중동전기본말'을 발췌, 번역한 책이다. '중동전기본말'은 미국의 선교사 임락지(林樂知, 본명 Young J. Allen)가 중국의 재야학자인 채이강과 공동으로 번역, 저술한 책으로 1897년 상해 광학회에서 출판되었다. 청일전쟁의 본말과 관련 외교문서 등이 집대성돼 있는데, 바다를 통한 방어, 즉 해방(海防)의 중요성을 강조한 장패륜과 일본의 부상과 조선의 상황을 동환(東患)이라고 표현한 이홍장의 상소에서 중국의 고민과 우려가 무엇이었는지 읽을 수 있다.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을 중국에서는 왜국에 맞서 조선을 도운 전쟁, 곧 항왜원조전(抗倭援朝戰)이라 하는데, 302년 만에 또 다시 일본과 전쟁에 직면한 중국은 한반도를 일본의 공세를 막아내는 완충지대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청일전쟁은 동학농민운동(갑오농민전쟁)을 핑계로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격돌한 청과 일본 간의 전쟁이다. 서해의 풍도·안성·평양 등을 거쳐 여순에 이르는 광범한 지역에서 접전을 벌였으며, 전투 결과, 중국의 북양함대는 궤멸하고 이를 계기로 일본은 제국주의적 확장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 1900년 당시 고종폐위운동을 벌이다 감옥에 수감돼 있던 청년 이승만은 '중동전기'를 '청일전기'란 이름으로 번역, 1917년 하와이에서 출판했다.'중동전기'는 121년 전의 역사적 기록물이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은 전혀 달라진 바 없다. 항상 우리의 발목을 붙드는 분단체제도 그렇고, 격화하는 미-중 패권 경쟁에, 개헌과 재무장의 길을 노리는 일본 등 국제관계는 시계 제로다. 한반도를 염두에 둔 우리 군사전략의 중심을 이제는 동아시아 지역 전체를 고려한 적극적 평화전략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시민운동과 문화운동도 시야를 넓혀 동아시아 차원으로 확장하는 한반도발(發) 평화담론의 구축을 향해 나가야 한다. '중동전기'는 남의 나라 일을 타인이 기록한 케케묵은 고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적 기록물이며 과거를 통해 지금의 우리를 비춰보고 톺아보는 좋은 참고자료요, 거울이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

2020-09-13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개조냐 개벽이냐' 춘원 이광수의 '조선의 현재와 장래'

1920년대 '민족개조론' 수록 평론집국가간 우승 열패 이론적 정당화통찰 불구 일제압정 외면 논란 여지반대노선 '개벽'은 동학사상 핵심어변성룡 주창 지금과 비교 허언아냐한때 한국근대문학과 근대사상을 두 개의 패러다임이라는 대립적 구도로 파악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 착상은 그럴 듯하나 분화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또 압축고도성장을 거듭한 우리의 실상과 들어맞지 않아 브레인스토밍 단계에서 바로 중단했다. 그때 고민했던 내용이 작가와 근대사의 인물들을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근대화론과 전통론, 도시파와 전원파 등으로 구도를 나누고 묶어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동경대전연의'(1975)와 춘원 이광수의 '조선의 현재와 장래'(1923)를 보다가 문득 여기에 '개벽파(開闢派)'와 '개조파(改造派)'를 추가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춘원의 '조선의 현재와 장래'(1923)는 고서 시장에서도 희귀본으로 통하는 귀중본인데 고균 김옥균의 글씨와 함께 천운으로 헐한 가격에 소장하게 된 필자의 애장서(품)의 하나다. '조선의 현재와 장래'는 출간된 지 백년에 육박할 뿐만 아니라 1920년대 조선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광수의 문제적 논문 '민족개조론'이 수록된 평론집이다. 춘원 말고도 개조론을 펴거나 동조한 논객들도 적지 않아 일부 개화파 인물들, 독립운동가에 친일파 인사들까지 두루 섞여 있다. 물론 이들을 무조건 개조파라는 단일 범주로 묶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개벽파도 사정이 다르지 않는데, 동학·증산교·원불교 등의 신종교와 동아시아고전을 추종하는 재야지식인들, 또 이를 따르던 민중들이 모두 여기에 들어간다. 개조론의 대표주자인 춘원의 '민족개조론'은 도산 안창호의 개조론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미묘하게 노선과 결이 다르다. 도산의 개조론과 달리 그의 주장은 여전히 친일시비에 휘말려 있다. '민족개조론'은 '개벽'지에 1922년 3월부터 5월까지 연재된 논문으로 자연계의 약육강식과 국가 간의 우승열패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변종 사회진화론이라 할 수 있으며 후일 이광수의 적극적 친일과 변절로 인해 대표적인 친일 논설로 비판받는 글이다. "민족개조론은 민족성개조라는 뜻이외다"로 시작하는 춘원의 이 논설은 특유의 번득이는 통찰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압정을 외면한 채 투쟁과 저항이 아닌 우리 자신의 반성과 자성을 촉구하고 있으며, 식민지라는 역사적 불행과 민족적 위기의 원인을 일제가 아닌 우리들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다. 또 민족이라는 것 자체를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로 곧 정치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근대의 발명품이자 허구로 보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관점에서 보면 민족성 자체가 이미 실체 없는 추상적 관념인데 과연 이를 개조의 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개조론의 반대편에 선 노선은 바로 개벽이다. 개벽은 천개지벽(天開地闢)의 줄임말로 중국의 고문헌인 '삼황기'에 처음 등장하며 동학사상의 핵심으로 증산교와 원불교 등의 신종교에 지대한 영향력을 주면서 절망의 시대에 고통 받는 민중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복음이었다. 개조론은 제도권 지식인들이 주도하던 세련된 이론이었으나 우리를 자괴감에 빠뜨렸고 우리에게 어변성룡(魚變成龍)의 대운이 열렸다고 하는 개벽론은 궁벽한 초야에 거처하던 재야지식인과 종교 천재들이 주창한 교의였으나 과거의 우리와 오늘날의 우리를 비교해보면 그것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무엇이든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 누가 더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는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숱한 쟁점과 논란들, 그리고 그럴듯한 정치적 주장들도 세월이 가면 결국 진실이 드러나게 마련이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

2020-07-26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횡보 염상섭, 생활과 삶을 이야기하다

한국 문학의 큰별 유작만 467편마지막 작품집 '일대의 유업'은열여섯편 단편소설 수록미소 분할·좌우 대립 등 격변기소시민 고된 삶, 요즘의 삶과 '상통'지천명을 지나 이순을 향해 가는 나이지만 삶은 여전히 불가해하다. 모든 게 허망한 것 같아도 포기할 수 없으며, 감사와 은혜로 가득하면서도 온갖 역경과 쪼금의 즐거움이 뒤엉켜 있는 리얼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온갖 시비이해와 소음들로 가득하나 아무런 의미가 없는(signifying nothing) 백치들의 이야기요,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맥베스의 절규가 그저 연극의 대사로만 여겨지지 않는다.여기 삶의 이야기, 리얼한 생활의 이야기가 있다. 횡보 염상섭(1897~1963)의 마지막 작품집 '일대의 유업'(1960)이 그렇다. 짧은 '춘향전 전시'를 끝내고 서가를 정리하다 조우한 '일대의 유업'(1960)을 펴들고 잠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염상섭은 한국문학의 큰 별이다. 그가 없는 한국문학, 한국소설은 상상하기 어렵다. 걸작 '만세전'(1922)이나 '삼대'(1931)를 비롯해서 그가 남긴 작품만 해도 467편을 헤아린다. 스물여섯 편의 장편소설, 오십 편의 단편소설은 그의 문학적 열정과 작가로서의 역량이 어떠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극심한 좌우의 이념대립 속에서 양주동과 함께 절충파를 이끌었던 횡보의 문학이념과 작가정신이 잘 드러난 작품이 '이합'(1948)과 '재회'(1948)다. '이합'의 주인공 장한이 보기에는 소련군이나 미군 모두 일본과 다를 바 없는 새로운 점령군이었으며, "어딜 가나 별 수 있나"하는 장탄식에서 거대한 세계사의 흐름 앞에 무기력한 지식인의 절망과 작가의 속내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김구의 노선을 지지했고, 보도연맹에도 가입하는 등의 고초를 겪었으면서도 문학의 자율성과 작가정신을 굳게 지켜나갔다.'일대의 유업'은 모두 열여섯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된 작품집인데, 표제작 '일대의 유업'과 '두 파산'이 눈에 띈다. '일대의 유업'은 연작소설로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가 된 지주부댁-기현 어머니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남편 지주부가 남긴 집 한 채와 아들 둘에 의지하면서 하숙도 치고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간다. 우연히 김선생이라는 젊은 남자가 하숙하게 되고, 기현 어머니는 그에게 묘한 연정을 느낀다. 여기서 소설은 얼핏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나 작품의 실상은 젊은 과수댁의 생존기요, 생활의 이야기다. 평생 한약사로 일하던 남편이 남긴 집 한 채가 '일대의 유업'이 되는 이야기에서 문득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값에 신음하는 현대인들의 삶이 어른거린다. 어쩌면 평생 갚아나가야 하는 아파트 대출금이 흡사 현대판 환곡(換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두 파산'은 해방공간기의 세태와 생활의 단면을 그린 작품으로 정례 모친과 김옥임, 그리고 교장이라 불리는 사채업자와의 경제적 갈등을 다룬다. 두 개의 파산은 학창시절 셰익스피어· 입센·엘렌 케이 등의 원서를 끼고 다니던 문학소녀 옥임이 친구인 정례 모친에게까지 가혹하게 빚 독촉을 할 정도로 타락한 그녀의 정신적 파산을, 놀고 있는 남편을 대신해 빚을 얻어 문구점을 얻었다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빚의 굴레에 갇혀버린 정례 모친의 생활의 파산을 의미한다. 횡보는 두 여성의 삶을 통해서 미소분할과 좌우대립 등의 격변기 시절 생활고에 시달리는 동시대 소시민들의 고된 삶을 그려내고 있다.인생을 산다는 건 옛 사람이나 우리에게나 만만치 않은 일이다. 삶의 무게를 견뎌낼 정신의 체력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마음이 쉴 수 있는 내적 망명처도 있어야 한다. 선인들의 사상과 체취를 느끼며 예스런 장정과 디자인을 완상(玩賞)하는 고서수집도 하나의 방편은 될 것이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

2020-06-14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한국 최초의 번역본 '자본론'

잘 읽히지 않으면서도 근대 인류사회 가장 큰 영향력국내 다섯 차례나 번역돼더 좋은 사회를 위한영감·성찰 기회 제공해줘고전의 또 다른 면모는 안 읽었거나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오히려 안 읽었거나 읽히지 않았기에 고전으로 살아남아 끝없이 읽기의 욕망을 부추기면서 독서 대상으로서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칼 하인리히 마르크스(1818~1883)의 '자본론'(1867)도 안 읽히는 고전의 하나다. 독서는커녕 소지하는 것 자체를 불온시하는 무시무시한 이념적 억압과 자기검열로 인해 또는 그 난해함으로 '자본론'은 읽히지 않으면서도 정작 근대 인류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금단의 사과였다. 근·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책이면서도 읽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놀랍다.나 역시 읽어야지 하면서 '자본론'의 언저리와 문턱만을 오가던 '자본론'의 '양기치 소년'이었다. 대학생 때 미야카와 미노루(宮川實)의 '자본론'의 대중적 해설판인 '경제원론'(1985)과 나오자마자 금서가 된 '자본론 해설'(1986) 복사본을 일독해본 게 전부다. 이듬해 1987년 도서출판 이론과실천에서 나온 '자본론 1-1'의 일부를 들춰본 걸 평생의 위안으로 삼고 있었는바, 상품과 잉여가치 창출의 비밀을 밝히고 있는 확대 재생산 도식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그냥 외워버렸던 기억은 지금도 새롭다.한국에서 '자본론'(Das Kapital을 '자본론'이라 번역하는 것은 일본식이라 하여 요즘은 '자본'으로 번역하기도 한다)이 처음으로 번역된 것은 1947년이다. 1993년 제대하고 박사과정에 갓 입학했을 무렵 청계천의 어느 헌책방에서 1947년에 나온 서울출판사 초판본을 구입했다.'자본론'은 1867년에 제1권이 출판된 뒤 마르크스의 사후 엥겔스에 의해 제2권이 1885년에, 제3권은 1894년에 나왔다. 서울출판사 판본은 최영철·전석담·허동의 공역으로 역자들은 일본의 개조사판과 독일의 아도라츠키판 등을 저본으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자본론'은 모두 3권(카우츠키의 잉여가치론까지 포함하면 4권)인데, 내가 입수한 것은 서울출판사본 제1권, 2권뿐인지라 이제까지 낙질본을 산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장시복 교수의 논문(2016)을 보고 서울출판사본이 완역본이 아니라 2권만 번역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국내에서 '자본론'은 모두 다섯 차례 번역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울출판사(1947)·이론과실천사(1987)·비봉출판사(김수행, 1989~1992)·백의(1989)·길(강신준, 2010) 등이 그것이다. 그러면 잘 읽히지도 않고, 소지하고 있는 것조차 금기시됐던 이 책이 판을 거듭해서 출판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우리 사회가 이제 그 어떤 책이라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개방되어 있고 자유롭다는 뜻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자본론'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밝힌 역작이긴 하나 산업자본주의 시대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19세기 서적이고 또 요즘처럼 플랫폼 노동·AI·로봇 등 노동이 추상화하고 기술이 고도화한 시대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 더 좋은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끝없는 영감과 반성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직장인이 되다 보니 신문과 소설책 한 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는 처지라 한동안 더 '자본론'의 양치기 소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문득 독서하는 삶을 보장해주기 위해 국민을 대상으로 리딩 위크(reading week) 같은 휴일을 법제화하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

2020-05-10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부국원 월보'에 대하여

농업중심지 수원에 1907년 창업한 종묘사 잡지서울 소공로 지점… 종자·묘목취급철도·우편을 통해 영업'고서의 역사적기억' 사료 가치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보통의 날들"이라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문장이다. 나이가 드니 백 가지 좋은 일보다 한 가지 나쁜 일이 없는 것이 더 좋고 좋은 일이 생기는 것보다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편이 백 번 천 번 낫다. 코로나19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삶과 일상이 정지되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려움이 크다. 불평불만이 많았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또 인류가 한 가족으로 살아야 하는 지구촌 시대에는 나만, 우리나라만 괜찮으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절감한다. 이럴 때 고서 타령이 조금 한가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답답한 일상에 작은 위로와 잠깐의 기분전환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개인 소장 자료를 이용한 소규모 전시 준비를 하느라 서가를 뒤지다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작은 팸플릿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조선농림원예요람'이라는 '부국원 월보(富國園月報)' 제35권 6호인데 발행일자는 1942년 6월 10일이다. 부국원(富國園)은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동명의 종묘회사 건물로 2017년 국가등록문화재 제698호로 지정되었으며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에 위치해 있다. 이 근대건축물은 식민지 수탈정책과 긴밀히 연결돼 있는 슬픈 역사적 기억물, 이른바 그리프 투어리즘(Grief Tourism)의 대상이겠으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길 수 있는 장소로서 유의미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부침과 역사적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기념물로서 그 가치도 크다. 부국원의 존재는 1923년에 출판된 사카이 마사노스케의 '수원'이라는 책을 통해서도 확인되니 최소 백년의 역사를 지닌 건축물이다. 해방 후 1950년대에는 수원법원과 검찰 임시청사로 활용됐고 나중에는 수원시 교육지원청, 공화당 청사, 수원예총 사무실로도 사용됐다. 종자·종묘·비료 등 농업과 관련된 주식회사 부국원이 수원에 들어선 것은 수원의 역사와 긴밀히 호응한다. 수원은 개혁의 상징도시, 요컨대 조선후기 국가의 역량과 정조의 정치 철학이 집중된 신도시요, 농업의 중심지였다. 미국이 농업 국가이듯(미국은 첨단 군수산업과 금융 중심의 국가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거대 농업국가이다) 수원도 농업의 중심도시였다. 정조 시대에 조성된 관개시설로 축만제와 만석거가 있으며 대유평과 서둔이란 이름이 이를 뒷받침한다. 통감부 시대인 1906년 권업모범장이 들어섰고 1962년 농촌진흥청이 설립됐으니 수원은 가히 한국 농업의 메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농촌진흥청이 완주로 이전하면서 그 의미가 많이 약화하였지만 수도권의 균형발전과 지역 정체성 유지를 위해 그 역사성을 잘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 '부국원 월보'를 살펴보니 창업연대가 35년 전 그러니까 1907년인 것으로 소개돼 있다. 이로 미루어 부국원이 권업시험장의 설립과 함께 그 역사가 시작된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정해 볼 수 있다. 본사는 경기도 수원읍 궁정 93번지 지금의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30번지에 있었으며 지점은 경성부 명치정 22정목으로 현재 서울시 중구 소공로에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각종의 종자와 묘목 등을 취급했으며 철도와 우편을 통한 영업을 전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서는 역사적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며 소장자의 안목과 태도에 따라 쓰임새와 팔자가 달라질 수 있다. 탐구심과 진정성이 없으면 고가의 고서도 그냥 낡은 책이요, 반대로 아무리 허접한 작은 책자라도 쓰임에 따라 귀중한 역사적 자원이 될 수 있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

2020-03-22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춘향전, 그 후

국민 고전답게 판본과 이본 다양춘향이 정실부인 된다는게 판타지첩실이 된다는 결말이 더 현실적차상찬의 '해동염사'는 한 술 더떠'천하의 추녀에 관기의 딸' 주장도고서는 구하기도 힘들고 비싸며 관리도 만만치 않다. 곰팡내도 많이 나고, 부부 사이도 안 좋아질 수 있다. 디지털 시대를 역주행하는 구닥다리 취미다. 그렇다고 고서 수집벽(蒐集癖)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공식 기록이나 연구로 파악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고 작품해석에도 큰 도움이 된다. 최근 서가를 뒤적이다 다시 '춘향전'을 꺼내 읽게 됐다. 그러다 문득 '춘향전'의 주인공 춘향의 일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춘향전'은 국민적 고전답게 다양한 판본과 이본들이 존재하는데, 1917년 동창서옥(東昌書屋)에서 나온 '현토 한문춘향전'은 판소리계 한글소설과 전혀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현토춘향전'은 식자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답게 유교적 윤리의식과 도덕률에 철저하다. '춘향전'을 신분제에 대한 민중적 저항의 서사가 아니라 일부종사를 위해 목숨을 거는 열녀의 이야기로 탈바꿈시켜놓은 데다가 춘향은 수절의 대가로 이몽룡의 첩실이 된다. 한글 '춘향전'의 발랄함과 민중적 염원을 뒤로하고 아주 현실적이며 유교적인 방식으로 마무리된다. 어쩌면 엄혹한 신분제 사회에서 춘향이 정실부인이 된다는 것이 판타지이고, 첩실로 들어간다는 결말이 오히려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춘향이 작품 속의 가공인물이지만, 그 성격에 결혼생활은 순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콩깍지가 씌운 상태에서 분비되는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과 테스토스테론 등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면, 열정의 감정은 어느새 권태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바뀌게 된다. 뇌과학에서는 열정적 사랑의 유통기간을 호르몬이 분비되는 3년으로 보는데, 재결합 이후 이몽룡의 사랑도 예전 같지 않아질 테고 또 출신의 한계로 발생하는 문화적·계급적 차이에 따른 갈등으로 부부사이(?)가 원만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시인이자 잡지 편집자였던 청오 차상찬(1887~1946)의 '해동염사'(海東艶事, 1937)는 한 술 더 떠 춘향이를 아예 만고의 박색(薄色)에 관기의 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국의 여성사를 다룬 야사인 '해동염사'에 따르면, 춘향은 미녀가 아니라 "코는 지리병 같고 눈은 비탈에 돌아가는 도야지 눈 같고 머리는 몽당 빗자루 같고 목은 자라목 같고 몸집은 절구통 만한 데다가 그중에 마마를 몹시 한 탓으로 얽고 찍어매고 하여 박춘재(朴春載)의 곰보타령에 나오는 곰보 모양으로" 천하에 둘도 없는 추녀였다는 것이다. 그 박색 춘향이가 모친의 기지로 이몽룡과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은 뒤 그만 상사병이 도져 자결하여 원귀가 되었고, 그를 이몽룡이 해원(解冤)을 해주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이라는 것이다. 하루에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고 사는 게 우리지만, 정작 작품이 끝나면 사고도 함께 멈춰 버린다. 전후좌우의 맥락과 상하를 살피지 않고 텍스트가 만든 세계의 테두리에 그대로 갇혀 버리는 것이다. 사고의 프리퀄과 시퀄이 없는 것이다. 이따금 고전적 명작과 고서를 뒤적이는 것은 경직된 사고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또 삶의 고독과 피로를 치유하는데 제격이다. 부부관계가 예전 같지 않으며 자식들도 훌훌 다 떠나고, 사는 게 바빠 친구마저 만나지 못하는 갱년기 중년의 고독을 달래기 위해서는 TV나 음주 말고도 미쳐 지낼만한 한두 개의 취미가 있어야 한다. 행복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즐기는 것이라는 시인 조지훈(1920~1968)의 말대로 고서의 세계에 빠져 지내는 것도 삶의 고독과 인생의 무게를 견뎌내는 일책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

2020-02-02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한글을 널리 대중화하다… '한글공부'

1930년대 획기적 문맹률 낮춘문자 보급 '브나로드운동'1933년 동아일보 발행 소책자'문맹타파가' 등 담은 대중교재'학생계몽대용'이란 부제 수록한글은 기적의 언어요, 동아시아 사상과 인문정신의 총화다. 에스페란토 같은 현대 인공어를 제외하고 창제자, 반포일, 글자의 원리가 모두 밝혀져 있는 거의 유일한 언어가 한글이다. '한글'은 반포일 기준으로 환산하면 573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한글이란 이름이 부여된 것은 1910년으로 백세 상수(上壽)를 넘겼다. 이전에는 '훈민정음', '언문' 등으로 불렸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말 그대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또는 '바른 소리를 백성에게 가르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음'이란 말은 우리글, 우리말에 대한 분명한 자주의식의 표현이지만 당시 중구난방으로 통일돼 있지 않은 한자음을 바르게 표기하기 위한 목적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일각에서의 지적대로 '훈민' 곧 '백성을 가르친다'는 말을 '애민정신'으로 또는 백성을 시혜의 대상을 보는 제왕적 관점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해석은 자유지만 한글이 디지털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잘 어울리는 과학적 언어이며 나라와 민족의 근간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중요성과 가치가 큰 만큼 '한글'은 깊은 사연과 많은 일화를 갖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이용준과 국문학자 김태준을 거쳐 간송 전형필에게 전해졌음은 잘 알려져 있다. 간송이 천태산인 김태준이 생각했던 예상가의 10배, 당시 기와집 열 채가 넘는 거액을 치르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구입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백년여 동안 '훈민정음'은 백성들을 잘 '훈민'하지 못했다. 1930년대 당시 농민들의 문맹률이 무려 90%에 이를 정도였다. 이 문맹률을 획기적으로 낮춘 민족계몽운동, 문자보급운동이 바로 '브나로드운동'이다. 브나로드운동은 억압적 차르 체제에 도전하기 위한 러시아 지식인들의 운동, 말 그대로 '민중 속으로 뛰어들자'는 다소 이상주의적인 19세기 농업사회주의(agrarian socialism) 운동이었다. 우리의 브나로드운동은 1931년~34년 사이 동아일보사 주도도 문맹퇴치를 위한 대대적인 농촌계몽운동, 문자보급운동으로 전개됐다. 브나로드운동은 일제의 탄압으로 '신간회'가 해체되는 등 민족운동이 침체된 시기에 등장한 거대한 운동이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동아일보사의 경영난 즉, 저조한 신문판매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독자 배가 운동이었다는 측면도 있다. 투르게네프의 '처녀지'(1877)와 심훈의 '상록수'(1935) 등이 각국의 브나로드운동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다. '한글공부'는 1933년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문자보급운동 교재로 20여 쪽의 소책자다. 한글 자모에 '문맹타파가', '속담', '지리', '역사' 등을 담은 대중교육 교재로 표지에 '학생계몽대용(學生啓蒙隊用)'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저작자는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환산 이윤재(桓山, 1888~1943)다. 환산이란 호는 환웅(桓雄)의 후예라는 뜻이며, 그는 옥고와 생활고 속에서도 '성웅 이순신'(1931), '문예독본'(1932), 유고작인 '표준한글사전'(1954)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문예독본'은 해방 직후부터 한동안 고등교육기관의 문학교재로 사용됐다. '한글공부'와 유사한 '한글원본'이 국가의 등록문화재 484-1호, 484-2호로 지정돼 있다. 필자는 사본으로 추정되는 '한글공부'(동아일보사 간, 1933년 8월)를 소장하고 있다. 헌책방, 고서점을 꽤 오랫동안 드나들었는데, 그 긴 세월 동안 처음 본 책이었다. 환호작약하며 십년 전 당일 밤늦게까지 이 소책자를 쓰다듬고 만지며 행복해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9-12-08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영원한 국민적 고전, '춘향전'

300년간 민족소설… 이본만 120종 민중-양반의식 갈등하면서도 '화합'각계각층 즐기는 '국민 통합성' 가치이슈마다 진영 간 대결 우려되는 때우리는 이미 '춘향전'으로 하나였다한국사람 치고 '춘향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300년간 우리를 울리고 웃긴 대표소설이요, 연희예술이었기 때문이다. 민족의 고전답게 이본만 120종이 넘는다. 경판본·완판본·안성본 등 방각본소설을 비롯해서 필사본에 한문소설, 한시도 있고, 근대에는 이해조(1912)·최남선(1913)·이광수(1927) 등 내로라하는 문인들도 앞다퉈 '춘향전'을 펴냈다. '춘향전'은 국민 고전의 범주를 넘어 문학 한류의 원조였다. 나카라이 도스이가 '계림정화'(鷄林情話, 1882)란 이름으로 일본에서 연재한 것을 시작으로 대만의 리이타오(1906), 후일 경성제대 교수가 된 다카하시 도오루의 번역본(1910)에 베트남에서도 1910년 '춘향전'이 번역된 것이다. '춘향전'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진출했는데,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1814~1913)가 로니(J.-H. Rosny)와 함께 공역, 1892년에 나온 불어판 '춘향전' 즉 '향기로운 봄(Printemps parfume)'이 대표적이다. 그런가 하면 1936년 러시아의 한 발레단이 '사랑의 시련'이란 이름으로 '춘향전'을 공연한 바 있다. 번안에 가까운 작품들이었지만, 자녀들의 성윤리 교육에 관심이 높았던 유럽 귀족들과 상류사회에서 '춘향전'이 큰 주목을 받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홍종우는 경기도 안산 출신으로 1866년 도일하여 인쇄소 식자공으로 일하고 휘호 등을 팔아 여비를 마련한 다음, 1890년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그가 왜 '춘향전' 번역에 참여했는지 또 개화파였다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면서 돌연 보수적인 위정척사파로 변신하여 상해의 동화양행에서 김옥균을 암살한 것인지도 궁금하다. 당시 김옥균은 이와다 슈사쿠(岩田周作)란 일본 이름을 쓰고 있었다. '춘향전'은 국민소설의 원조였지만 계급과 지역에 따라 달리 소비되기도 했다. 서울에서 출판된 경판본과 여기에서 파생된 '남원고사'는 춘향의 신분이 기생임을 내세우는 남성중심주의와 유교이데올로기에 충실하다. 반면 전주에서 출판된 완판본 '춘향전'으로는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가 유명한데, 춘향이 양반가의 서녀임을 강조하면서 한양으로 떠나는 이도령에게 발악하는 등 매우 적극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또 완판본에는 "수원 숙소하고 대황교, 떡전거리(병점), 진개울, 중미, 진위읍에 중화하고" 등처럼 이몽룡의 암행 경로에 수원·병점·진위 정도만 등장하나 다른 이본에는 "오봉산 바라보고 지지대 올라서서 참나무정 얼른 지나, 교구정 돌아들어 장안문 들이 달아 팔달문 내달아, 상류천, 하류천, 진개울, 떡전거리, 중밋, 음의, 진위" 등 의왕·수원·병점·오산에 이르는 경로가 상세하게 등장하여 특히 흥미를 끈다. 다양한 이본 존재가 말하듯 '춘향전'을 둘러싼 평가도 제각각인데 춘향의 항거를 신분사회에 대한 도전이자 저항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한편, 이몽룡에 대한 순정과 정절이데올로기에 대한 순종도 있어 저항의 문학으로 보는 데 무리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한문본을 보면 춘향이 이도령의 첩실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등 유교이념에 대한 강박도 보인다. 그런데 '춘향전'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민중의식과 양반의식이 만나 양자가 서로 갈등하면서도 화합하고 각계각층이 즐기는 이 국민적 통합성이야말로 '춘향전'의 현재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검찰개혁 등 이슈 때마다 반복되는 진영 간의 대결이 우려스럽다. 이럴 때 모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줄 '춘향전' 같은 국민적 고전이 몇 개 더 있으면 어떨까 싶다. 필자의 소장본은 '현토 한문 춘향전'(1917)과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 등인데, 아쉽게 완판본은 첫 장과 뒷부분 4장이 없는 낙질본이다. 이 아쉬움이 국민통합과 화합으로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모두 '춘향전'의 애독자다. 우리는 이미 '춘향전'으로 하나였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9-10-20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전설의 한국SF만화 '라이파이'

B급 문학으로 간주하던 시대어린이만 '열광' 어른들은 '금지'사회를 바꾸고 세상 변화시키는엉뚱한 막내들의 상상력 도전50~60년대 하위문화의 유쾌한 반란세상을 바꾸는 것은 모범생이 아니라 비범한 말썽쟁이나 막내들이다. 장남 · 장녀는 강한 책임감으로 보수파 모범생이 많이 나오고, 장남과 막내 사이에 낀 둘째는 살아남기 위해 존재감을 과시하는 일을 많이 벌이거나 사교술에 능란하며, 막내 가운데서 반항아와 혁명가들이 많이 나온다는 믿거나 말거나 통계가 있다. 집안에서는 막내라고 귀여움을 독차지하다가 사회에 나와서는 집안에서 받던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하여 자연 불평불만이 많아진 막내가 결국 기존의 판을 뒤집는 혁명가가 된다는 것이다. 유교와 숭문주의 전통이 강한 한국문화에서 SF는 담론의 관심 밖에 있었던 '둘째'였고, 만화는 논의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문화적 '막내'였다. 그러니 SF만화는 더 말할 나위 없었다. 담론의 주변을 떠돌던 SF만화가 지금 고서시장에서는 한적(韓籍)들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김산호 화백의 SF만화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1959~1962)는 아직 완질본을 확인하지 못한 극희귀본이다. '라이파이'는 몇 살 터울의 선배들에게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그러나 웬일인지 그 옛날에도 실물은 없고 전설로만 떠돌던 만화였다. 십수 년 전 서울대역 근방의 헌책방에서 마침내 그 전설과 조우했다. 2003년 부천만화정보센터에서 영인한 양장본 초판 '라이파이'였다. 언제 나왔는지도 모르게 나왔다 금세 절판되어 귀중본이 된 책인지라 주인장이 15만원을 불렀다. 당시 대학 시간강사 신분이었던 터라 당연히 입수해야 하는 자료임에도 한참 동안 실존적 고민(?)을 거듭하다 무리해서 가까스로 구입했다. 그 '라이파이'를 강의 자료로 잠깐 사용하고 잊고 있었다가 우연히 김산호 선생을 자택 만몽재(卍夢齋)를 방문하여 '인인화락'(수원문화재단刊, 2014년 겨울호)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 영인 양장본에 라이파이 캐릭터 그림과 함께 저자 친필 사인까지 받았다. 고서를 접하다 보니 가끔은 이렇게 뜻하지 않은 행운과 영광을 누리는 경우도 생긴다. 지금이야 '라이파이'가 한국SF만화의 전설로 대접받고 있지만, SF는 한국문화사에서 푸대접은 고사하고 아예 무대접이었다. 약관의 청년 김산호가 SF만화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았을 때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도서출판 남훈사의 부엉이 시리즈로 '라이파이'가 출간되자마자 대박을 쳤다. 종래에는 출판사 직원이 갈비 반 짝을 사들고 집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라이파이' 신간이 나오는 날에는 만화가게 앞에 수십 수백 명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당시 공무원 사무관 월급이 4천~5천원일 때 '라이파이' 한 편당 무려 50만원 넘게 벌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광의 순간은 짧았다.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김산호는 전격적으로 남산의 중앙정보부로 연행돼 심한 고초를 겪는다. 혐의점은 1958년 데뷔작 '황혼에 빛난 별'의 별이 김일성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또 '라이파이'에 어째서 인공기와 같은 별이 들어간 이유가 무엇인가 등의 황당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작가 김산호는 창작의 자유를 찾아 훌쩍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서도 김산호의 활약은 대단했다. 마블, DC와 함께 빅3 코믹스였던 찰튼 코믹스와 손잡고 '샤이안 키드(Cheynne Kid)' 등 600여권의 단행본을 발표했다. 한국SF만화의 효시가 어떤 작품인지 단정하기 어려우나 현재까지는 1952년 일신사에 나온 최상권의 3권짜리 딱지본 만화 '헨델박사'가 가장 앞선다. SF만화는 SF를 B급 문학으로 간주하던 시대에 나온 만화라서 어린이 독자만 열광하고 어른들은 금지하는 정크요, 하위문화(subculture)였다.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엉뚱한 막내들의 기발한 상상력과 금기를 깨는 도전이었다. '라이파이'는 5~60년대 문화판의 질서를 뒤집은 막내요, 하위문화가 벌인 유쾌한 반란이었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9-09-01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전통과 근대 사이의 과도적 한자 학습서 '통학경편'

1916년 참사 황응두가 펴낸 아동용천문·지축·신체등 13부로 나누고해당 한자 4구로 제시한 교재1244자 한글자석 일본어 발음 추가전통·근대사이 과도기적 교과서언제쯤이던가. 퇴근 후 습관처럼 단골서점에 들렀는데 낡고 허름한 한적(漢籍) 한 권이 눈에 띄었다. '통학경편(通學徑編)'이라고 '천자문' 같은 한자 학습서였다. 그러고 보니 풋내기 대학원생 시절 인사동 골목에서 칠서(七書)들, '박통사 언해' 등과 섞여 있는 것을 얼핏 본 적이 있는 흔한 책이었다. 그때는 심드렁하게 지나쳤는데 어느새 구경하기 어려운 희귀본이 돼서 20~30년 만에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니 울컥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판권도 없고 책 상태가 험해서 1만원에 내놓기는 했는데, 이미 예약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체념하고 돌아왔지만 머리에 남았다. 고서는 주머니 사정도 받쳐줘야 하지만, 부지런해야 하고 타이밍도 중요하다. 하루 이틀 전에만 먼저 갔어도 수집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그냥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단념한 채 며칠 뒤에 같은 서점을 찾았는데 '통학경편'이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게 아닌가. 예약만 하고 고객이 아직 구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약자는 나도 잘 아는 분이어서 서점에 양해를 구하고 잠깐 책을 빌려보고 며칠 만에 돌려줬다.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예약자가 한 달 넘어 두 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기에 결국 단돈 1만원에 '통학경편'을 소장하게 되는 큰 행운을 누리게 됐다. '통학경편'은 1916년 신녕군 참사(參事) 황응두(黃應斗)가 펴낸 아동용 한자 학습서인데, 필자의 소장본은 1921년에 중간된 목판본이다. 참사라는 벼슬은 토관직(土官職)으로 지역 양반에 주는 정9품의 말직이었다. 저자 황응두가 누구인지 아직까지 자세하게 알려진 바 없다. '통학경편' 초판본이 간행된 시기는 1916년이고, 발행처는 경북 영천의 혜연서루이며, 판매소는 대구에 총판을 둔 영흥서림이다. '천자문'은 대표적 한자교재로 4언 고시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룻밤 사이에 이 글을 짓고 그만 저자 주흥사의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려 백수문(白首文)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반면 '통학경편'은 '천자문' 같은 한자 학습서지만, 물목명칭(物目名稱)을 천문·지축·신체·인륜·음식·의복 등 13부로 나누고 해당 한자를 4구로 제시한 보다 근대화한 교재이다. 가령 인륜부에는 군사부모(君師父母) 형제숙질(兄弟叔姪) 등 가족과 관련된 단어들이, 곤충부에는 승문조슬(蠅蚊蚤슬)처럼 파리·모기·벼룩·이 등 해충 관련 한자들까지 제시돼 있어 무척 흥미진진하다. '통학경편'은 모두 1천244자의 한자가 새김 혹은 훈으로 불리는 한글 자석(字釋)에 일본어 가나 발음까지 추가돼 있다. 앞부분에는 한글자모와 가타카나가 제시되는 등 시대상이 반영된 학습서이며, 한자 교육은 물론 계몽과 훈몽서(訓蒙書)의 기능도 갖고 있다. 그런데 교재가 집필, 발행된 때가 1916년, 1921년으로 일제강점기였기에 한자에 일본어 발음이 포함돼 있어 흥미롭기는 하나 한편으로 뒷맛이 씁쓸하다. 알다시피 교과서는 그 시대 그 나라의 이념과 교육철학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며, 시대상을 반영하는 역사의 나이테와도 같은 것이다. '통학경편'은 전통교육이 근대교육으로 재편되던 시기에 발행된 학습서로서 근대화한 '천자문' 또는 전통시대와 근대 사이에 위치한 과도기적 한자 교과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근대 사회의 한자, 근대 시기의 일본어, 그리고 현재의 영어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등장하는 중요 언어가 험난했던 우리 민족사를 반영하는 것 같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책 한 권에도 이렇게 깊은 사연과 역사가 깃들어 있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9-07-14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정암집(靜菴集)'과 조광조의 개혁정신

사익 취한적 없고 외압 유혹 견제오로지 정의로운 사회 실현 혼신개혁은 철저한 도덕성으로 추진사람 해치는게 아니라 살려야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케 해올해는 정암 조광조(1482~1519) 선생이 서세(逝世)한 지 오백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인격적 기준'이었고, '개혁의 상징'이었다. 선생의 서세 오백주년을 맞이하여 모처럼 '정암집'을 꺼내 들었다. 조선시대 '정암집'은 세 차례에 걸쳐 간행됐다. 1681년 남원에서, 1685년 대구에서, 그리고 고종 29년째인 1892년에는 능주에서 학포 양팽손(1480~1545) 선생의 후손 양정환과 그의 아들 양회연의 주도로 중간됐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석판본도 나왔으나 현재 널리 유통되는 판본은 1892년 임진본(壬辰本)이다. 임진본의 서지 상황은 이렇다. 총 5권 14권 4책에, 크기는 가로 29㎝×세로 19㎝, 10행 18자에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가 있다. 옛날 고서들은 중앙 부분을 접어 제본하는데, 중앙의 접힌 부분인 판심(版心)에 물고기 꼬리 모양의 장식을 한 것이 바로 어미이다.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란 판심 위아래의 물고기 꼬리 장식이 판심의 중심부를 향해 있으며, 어미 속에 2개짜리 꽃잎 장식이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필자가 소장한 임진본은 4권짜리로 편집된 것인데 공교롭게도 미수 허목(1595~1682)이 쓴 서문과 퇴계 이황(1501~1570)과 치재 홍인우(1515~1554)가 찬술(撰述)한 행장, 소재 노수신(1515~1590)이 지은 신도비명 등의 글이 빠져 있다. 단순한 낙질본인지 당색과 가풍에 따른 의도적 재편집본인지는 더 따져봐야겠다. 만일 후자라면 '정암집'이 당색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매우 흥미롭고, 또 많이 아쉽다. 요즘 우리 사회가 적폐청산과 개혁 드라이브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적폐청산과 패스트트랙을 핑계로 당리당략을 챙기려는 극한대립과 막말정치를 지켜보면서 문득 한국사상사에서 영원한 개혁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정암이 떠올랐다. 정암이 사화의 광풍 속에서 유배지인 전남 화순 능주에서 사약을 받고 서세한 지 오백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개혁정치에 대해서는 여전히 평가가 엇갈린다. 조선을 도덕적 이상국가로 만들기 위한 올곧은 실천으로 보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조선의 적폐청산을 위한 그의 비타협적 개혁을,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성공하지 못한 사림정치로 보기도 한다. 조선시대 내내 정암 같은 개혁은 유례가 없었다. 그는 개혁정치를 통해 털끝만큼의 사익을 취한 적이 없었다. 또 현실정치에 몸을 담았던 4년 동안 어떠한 외압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정의로운 도덕적 이상사회 실현을 위해 혼신을 다했다. 그러나 끝내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기득권 세력의 탄핵을 받아 사사, 엽지화(葉之禍)를 입었다. 정암은 '소학'과 '근사록'을 연마하여 문리를 얻고 유교의 정수에 이르렀는데, 스승 한훤당 김굉필(1454~1504)처럼 '소학'을 매우 중시했다. 중종조는 조선의 유교화가 본격화한 시기이자 '소학'의 시대였다. 중종 13년(1518년) 국가에서 '소학'을 1천300부나 인쇄하여 대소 신료 ·종친·지방관아 등에 무료로 배포하였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 근대 이전에 책은 판매나 상거래 대상이 아니라 나눔과 공유의 대상이었다. 이렇듯 옛날 책은 대개 판매가 아니라 나눠주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정암처럼 인품과 도덕성과 정당성을 갖춘 현인(賢人)의 개혁도 큰 참화를 입었거늘 나는 그대로인 채 남더러 바뀌라 하고 세상을 바꾸기란 더더욱 불가능하다. 개혁은 단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도덕성과 사회적 동의의 바탕 위에서 점진적으로 꾸준하게 추진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사람을 해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개혁이 되어야 한다. '정암집'은 개혁이 얼마나 무섭고 어려운 일인지 다시 숙고하게 하는 살아있는 고전이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9-05-26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천 년 전의 인생노래, 우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

'음풍농주' 자유분방한 삶 예찬 詩'하이얌 시편' 저항감 없는 이유는 인생무상 읊조리며 풍류 즐겼던두목 같은 만당시에 익숙했기 때문가끔 허무주의·무상철학 느껴볼만지갑 속의 돈을 헤아리면서도 밤하늘의 별을 동경하는 게 우리 인생이다. 세상에서 살아가자니 돈 버는데 몰두할 수밖에 없겠으나 돈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기에 더 힘들다. 돈을 벌지 않을 수도, 돈만 벌며 살 수도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럴 때는 시 쓰고 술 마시는 음풍농주(吟風弄酒)가 제격이라 주장하는 천 년 전 페르시아의 시집이 있다. 한국에서 오머 하이얌, 오마르 하이얌, 또는 우마르 하이얌으로 읽히거나 적는 우마르 하이얌(Omar Khayyam, 1048~1123)의 4행 시집 '루바이야트'가 그것이다. '루바이야트(RUBAIYAT)'는 4행시를 뜻하는 페르시아어 '루바이'의 복수형이다. 대단히 금욕적이고 엄격할 것 같은 이슬람 사회에서 일천 년 전에 술과 인생무상과 자유분방한 삶을 예찬하는 시집이 나왔다는 것이 놀랍다. '루바이야트'는 1859년 영국 시인 에드워드 피츠제럴드(1809~1883)가 영역하여 비로소 서구 세계에도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한국 T. S. 엘리엇 학회장'을 역임한 김병옥 교수가 1973년 민음사에서 펴낸 초판본이 최초다. 이후 이상옥(1975), 김주영(1995), 권소향(2012) 등 다양한 번역본이 나왔으나 크기가 한 뼘도 안 되나 사막의 모래 빛깔로 장정한 1973년 김병옥 본에 왠지 더 애착이 간다. '루바이야트'를 남긴 우마르 하이얌은 시인이자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였다. 그의 생부가 천막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였기에 '천막을 만든다'는 뜻의 하이얌이 성(姓)이 됐다.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직업을 성으로 삼는(혹은 부여하는) 언어관습은 세계적 현상이다. 가령 빵 굽는다는 뜻의 베이커(Baker), 방앗간 주인 밀러(Miller), 대장장이 스미스(Smith) 등이 그렇다. 이름은 그렇다 쳐도 개성적이고 도발적인 언어로 인생무상과 허무를 찬미하는 하이얌의 노래를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은 것인가.허무와 무상을 백안시하는 태도는 세월의 불가역성 앞에서 인생무상이라는 삶의 진실과 대면하기 싫은 회피심리 때문이거나 또는 이 같은 허무적멸 사상이 개인의 인생과 공동체 사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윤리적 공리가 판단의 최종심급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삶이란 고작해야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은 존재라는 '야고보'의 말씀이나 모든 게 "꿈, 환영, 물거품, 그림자와 같다"는 '금강경'의 일구는 쇼펜하우어적 염세주의를 찬미하려는 게 아니라 삶과 삼라만상의 본질이 이러하니 부질없는 욕망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라는 종교적 부정의 변증법이다. 하이얌의 시편들이 우리에게 저항감 없이 쉽게 읽히는 까닭은 두목(803~852)이나 두보(712~770) 같은 만당시(晩唐詩)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럴 것이다. 인생무상을 읊조리며 평생 풍류남아로 살았던 두목은 기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 항상 기생들이 던져준 귤이 수레 가득 채워질 정도라 귤만거(橘滿車)란 별명으로 불렸다. 장편 대하소설을 써내려가도 모자랄 파란곡절 많은 인생사를, 말과 글이 짧은 우리를 대신하여 촌철살인 같은 짧은 시편들에 잘 녹여 내는 두목의 공감주술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페르시아의 두목, 이슬람의 두보라 할 하이얌도 이에 못지않은 절창을 쏟아냈다. "어떤 이는 이 세상이 즐겁다 하고/ 어떤 이는 저 세상이 복되다 하나/ 나는 오늘만 있을 뿐 내일은 부질없다/ 먼 북소리는 듣기만 좋을 뿐"이라는 12번 루바이라든지 "아귀다툼의 인간사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애태워 왔나/ 모두가 쓰고도 슬픈 열매인 것을/ 차라리 한 잔 술만 못한 것을"이라 한 39번 루바이는 무상철학의 극치인데, 오히려 그의 이 허무주의가 삶에 지친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만 따지는 물신주의와 가파른 경쟁으로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가끔은 이러한 허무주의와 무상의 철학을 보감으로 삼아 음풍농주하며 음풍농서(吟風弄書)하는 시적 삶을 누려볼 일이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9-03-31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3·1운동 백주년에 꺼내 보는 '삼일운동 비사(秘史)'

3·1운동이 백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비폭력 평화운동이며, 백성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만방에 알린 민주공화정신이 백 살이 된 것이다. 3·1운동을 두고 이념적 지향이 뚜렷하지 않은데다가 조직화되지 못했고, 쌀값 폭등에 대한 민중적 분노의 표출이기도 하며, 때마침 국장일(고종인산일)이었기에 대규모 군중집회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냉정한 지적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3·1운동은 이런 비판들을 상쇄하고도 남는 세계사적 사건으로 임시정부 수립의 근거였으며, 헌법 전문을 장식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기도 하다. 그 3·1운동이 백주년을 맞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백(百)은 완전수요, 완성의 동의어다. 백일기도·백화점·백과사전·백발백중 등에서 보듯 백은 '모든 것', '완전함' 등과 관련이 있다. 백의 순우리말은 '온'인데, 모두를 뜻하는 '온통', '온갖'도 여기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3·1운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은 이병헌의 '삼일운동비사'(1959)와 홍성원의 대하소설 '먼동'(1992), 그리고 횡보 염상섭의 대표작 '만세전'(1922)이다. '만세전'은 아내의 부고를 받아든 동경유학생 이인화의 귀국 과정과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을 그린 중편소설이다. '만세전(萬歲前)'이라는 제목이 말하듯 시간적 배경은 만세 이전의 시기 곧 3·1운동 이전의 시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분단극복이라는 민족적 과제와 이상사회 건설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3·1운동의 정신은 여전히 미완의 상태 곧 '만세전'의 상황에 머물러 있다. 오암 이병헌(1896~1976)의 '삼일운동비사'(이하 '비사')는 3·1운동 연구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는 저서이다. 1천17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비사'를 쓴 이병헌은 경기도 진위군 권관리, 즉 현재의 평택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민도는 유학자였음에도 일찍 동학에 입도했다. 부친의 영향으로 오암도 동학에 투신했으며, 의암 손병희의 각별한 신임을 받으면서 천도교 수원 지부를 창설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평택에서 태어나 서울을 오가며 주로 수원에서 활약한 애국지사, 이를테면 평택시민과 수원시민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경기의 문화인물이며 국가유공자다. 오암의 '비사'는 '독립선언서'를 비롯하여 49인의 애국지사들에 대한 취조서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지역별로 정리해놓고 있다. '비사'에 따르면, 경기도의 만세운동은 수원군 23건과 인천부 4건 등을 포함 모두 119차례에 걸쳐 전개됐다. 요즘처럼 빅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실증적으로 자료를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더러 부분적인 오류나 신뢰하기 어려운 기록도 있기는 하다. 가령 '비사'에는 3월 1일 수원 방화수류정(용두각)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아쉽게도 일제 측 자료와 『매일신보』 기사 등 어디에서도 당일 수원에서 만세운동이 있었다는 기록이나 정황 증거를 확인할 수 없다. 연구에서 정확성과 실증은 양보할 수 없는 대원칙이다. 오암의 '비사'는 정확성과 실증에 방점을 찍고 있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비사'는 실증을 압도하는 정신에 가치가 있다. 해방된 조국에서도 여전히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정부를 비롯해서 그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았던 3·1운동에 대해 고군분투하며 이를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해주려 했던 오암의 고귀한 정신과 혼신의 글쓰기가 바로 그것이다. 팔만대장경이 마음 심(心)자 하나를 이길 수 없듯 때로는 한 개인의 정성과 정신이 국가와 사회 전체를 앞지를 수 있다. 백년을 맞이하는 3·1운동이 살아있는 정신이요 우리의 역사적 과제로 남아있는 한 '비사'는 재야사학이 아니라 '정사(正史)'이며, 흘러간 '고서'가 아니라 동시대성을 갖는 엄연한 역사서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9-02-10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식민지 조선을 관광(觀光)하다 ― '조선명승시선'

20여 쪽에 달하는 서문에운양 김윤식 기념 휘호와 낙관한일병탄 투표 '不可不可' 적어일제, 부득이한 찬성 해석운양의 진짜 뜻 '절대 반대'고서를 오래 접하다 보면 '촉'―곧 지책지감(知冊之鑑) 같은 것이 생긴다. 보는 순간 그냥 감이 오는 것이다. 나루시마 사기무라(成島鷺村)의 '조선명승시선(1915)'도 그런 책이다. 조선의 명승지 1천723곳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한국의 한시를 덧붙인 관광문학 앤솔로지 또는 시선집을 겸한 관광안내서다. 물론 이는 정복자 일본인을 위해 제국의 시선으로 조선의 명승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지금부터 십수 년 전 수도권의 한 헌책방에 들렀다 한 뼘 크기의 작은 책자를 보자 바로 '촉'이 왔다. 일본어로 된 책이니 '돈'은 되지 않겠지만, 자료적 가치가 있어 '물건'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 특유의 꼼꼼한 정리에 경탄하면서 일본인의 손으로 정리한 책으로 우리 문화자원을 공부해야 한다는 기묘한 열패감 속에서 아주 헐한 가격에 책을 구입했다. 물건답게 인천 6곳, 수원 32곳 등 경기도 지역의 명승지 284곳과 전국의 명승지들이 잘 정리돼 있었고, 20여 쪽에 달하는 서문에는 뜻밖에 운양 김윤식(1835~1922)의 기념 휘호와 낙관도 들어가 있었다. 운양은 누구인가. 그는 대한제국기의 문신이며 온건개화 노선인 동도서기론자였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 환재 박규수에게 학문을 배웠다. 친일 행보를 보였으나 1919년 총독부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고, 학교설립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족운동을 전개하다 작위를 박탈당하는 등 양심과 기개를 보여준 참회귀족이었다. 운양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경술국치 직전 대한제국의 중신들이 모여 한일병탄의 가부(可不)를 묻는 투표를 했다. 모든 중신들이 '가'에 표를 던졌으나 운양만은 불가불가(不可不可)라고 적었다. 논란 끝에 일제는 이를 불가불(不可不) 가(可) 곧 부득이한 찬성으로 해석했으나 후일 운양은 '불가불 가'가 아니라 자신의 입장은 절대반대인 '불가' '불가'였노라 말했다. 대세가 기울고 나라가 망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언어적 기지를 발휘하고 겸하여 대한제국 문신으로서의 자존심도 지키는 보신의 마키아벨리즘을 보여준 것이다. 오늘날 우리 정치 현실에서 과연 운양 같은 고품격의 정치수사를 구사하는 정치인을 만나볼 수 있을까. 운양의 마키아벨리즘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조선명승시선'에 운양은 기방풍아(箕邦風雅)란 글을 남긴다. 은연중에 우리는 일본의 식민이 아니라 기자의 나라 후손이라는 유학자의 꼬장꼬장한 자존과 의식세계를 드러낸 것이다. 더 압권인 것은 휘호의 말미에 음각인(陰刻印) 양각인(陽刻印)의 순으로 찍는 낙관의 순서를 뒤바꿔 양각을 먼저 찍고 음각을 나중에 찍는 방식으로 일본에 대한 못마땅함과 비틀린 심사를 표현했다. 이를 우연한 실수로 보기는 어렵다. 대한제국 말기를 대표하는 문신이며, 숱한 글을 써왔을 운양이 공식적인 글에 서예 하는 사람이면 초보자도 다 아는 이 기초상식을 몰랐을 리 없기 때문이다. '조선명승시선'을 구입한 이유는 1905년부터 1915년까지 10년간 조선의 산천을 누비고 2천여 곳의 명승지를 유람하고 1천723곳의 자연자원과 인문자원을 모두 기록으로 남긴 나루시마의 장인정신에 반해서가 아니다. 또 수원·인천 등 경기도 지역의 문화유산과 관광자원을 탐구하고, 지역학을 연구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료여서만도 아니다. 우리가 식민지로 떨어졌으나 기자의 나라이며, 힘으로는 졌으나 정신으로는 굴복하지 않았다는 문신의 자존이 행간 속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고서가 오래되고 희귀하다고 해서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다. 지난날의 옛 책을 통해서 선인들의 정신과 대화하고 그들이 남긴 메시지를 읽으며 시공을 뛰어넘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고서수집이 갖는 또 다른 재미이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8-12-16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넘버원 애장서, '문학의 논리'

임화의 빼어난 평론집으로우리 문단·정치·비평이론사를좌우 종횡으로 연결하는사통팔달의 문화 허브이자문학사의 보고라 할 수 있다고서 시장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장르는 시집이다. 다음이 소설이요, 평론집은 그다음이다. 이 같은 가격의 하이어라키를 수긍하기 어렵지만, 현실은 그렇다. 그렇다고 평론집들이 시장에서 다 죽을 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임화의 '문학의 논리'(1940)나 최재서의 '문학과 지성'(1938)은 시집 못지않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임화의 '문학의 논리'는 한국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임화는 한국근대비평사의 '별'이자 한국문학연구자들이 넘어야 할 '벽'이다. 임화는 누구인가. 그는 불꽃같은 삶을 산 문학인이었다. 시집 '현해탄'(1938)을 남긴 시인이자 탁월한 외모로 네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주연을 맡기도 했던 '조선의 발렌티노'였다. 또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 대한 평론을 비롯해서 모두 18편의 영화비평을 남긴 전방위적 문학평론가였고, 카프 서기장을 역임했으며, 해방공간에서 '조선문학가동맹'의 창설을 주도한 진보문학운동의 이론가요 지도자였다. 월북해서 남로당계 문인으로 활동하다 '미제 스파이 혐의'로 북한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인 마츠모토 세이쵸는 임화의 이 비극적인 삶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 '북의 시인'(1962)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연구들을 보면, 임화가 부당한 마녀사냥식 재판에 항거한 것으로 나와 있다. 군사재판을 받던 도중 안경알을 깨서 오른팔 동맥을 끊어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53년 8월 6일 사형 판결을 받기는 했으나 실제로 사형이 집행된 것은 1956년이었다는 새로운 주장도 있다. '문학의 논리'는 지금 봐도 여러모로 문제적인 평론집이다. 빼어난 논리와 평론가적 안목도 돋보이지만, 루카치 · 발자크 · 프리체 등 서구의 유명작가와 이론가들의 저작들이 인용되거나 활용되고 있으며 여기에 문화인류학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등 지금 봐도 놀라운 첨단의 평론집이었다. 임화의 공식학력은 보성고보 4학년 중퇴가 전부이나 카프 초기를 주도했던 회월 박영희와 '무산자사'의 리더 이북만의 각별한 뒷받침이 있었다. '조선소설사'로 유명한 김태준, 역사철학자 신남철, 영문학도였던 시인 임학수 등 경성제국대학 출신 학자들은 물론 당시 문단의 거목이었던 월탄 박종화와도 깊은 교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지적 배경이 필시 그를 최고의 평론가로 키워냈을 것이다. 얼마 전 '화봉문고'의 고서 경매에 연속해서 출품됐던 2권의 '문학의 논리'가 잠시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임화가 자신의 평론집에 서명하여 회월과 월탄에게 선물했던 책이 각각 두 달의 시차를 두고 경매시장에 나왔던 것이다. 인천근대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문학의 논리'는 임화가 시인 임학수에게 증정한 서명본이라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임화의 문단 인맥과 교류의 양상을 말해주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문학의 논리' 초판본은 1940년 최남주가 사주로 있던 학예사에서 출판됐다. 사주는 최남주이나 운영은 임화가 도맡았다. 평론집 표지 디자인과 장정은 근원 김용준의 솜씨다. 근원 김용준은 화가이자 미술사가로서 유명할 뿐 아니라 '근원수필'이라는 베스트셀러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문학의 논리'는 빼어난 평론집일 뿐 아니라 우리 문단사와 정치사와 비평이론사를 좌우 종횡으로 연결하는 사통팔달의 문화 허브이자 우리 문화사의 안팎을 연결하는 문학사의 보고라 할 수 있다. 1986년 초가을 무렵 처음으로 임화의 평론들을 접하고 난 뒤 '문학의 논리'는 필자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서슬 퍼런 겨울공화국 시대 그 이름조차 금기였던 상황이었는지라 복사본과 영인본만으로도 마냥 행복해하다가 30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에 원본 소장의 꿈을 이룬 필자의 넘버원 애장서가 바로 임화의 '문학의 논리'이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8-10-28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삼국유사'의 역사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유사'는 보각국사 일연(1206~1289) 시대 고려본이 아니라 1512년 경주부윤 이계복이 펴낸정덕본 또는 중종임신본이다우리는 이야기들에 둘러싸여 산다. 일상적 대화에서 소설·역사·뉴스·영화·게임·드라마 등 찬찬히 돌아보면 우리의 삶은 온통 이야기들이다. 이야기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유발 하라리(1976~)도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 전역에 퍼져나가면서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야기를 가지지 못한 민족은 존속할 수 없다. 신화 · 전설 · 민담은 이야기의 조상이며, 민족적 정체성의 근간을 이룬다. '삼국유사'는 이야기의 보물창고요, 역사며, 민족문화의 밑바탕이다. 우리가 신화와 이야기에 관한 한 남부럽지 않은 민족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삼국유사'(이하 '유사') 덕택이다. 단군신화와 가락국기에 김유신 · 만파식적 · 선덕여왕 등 '유사'는 가히 국민적 스토리들이요, 문학과 사상과 역사를 포괄하는 종합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조동일 교수는 '삼국사기'를 정사로 중시하고 '유사'를 야사로 보는 관점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유사'를 '대안사서'로 부르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유사'는 보각국사 일연(1206~1289) 시대의 고려본이 아니라 1512년 경주부윤이었던 이계복이 펴낸 정덕본(正德本) 또는 중종임신본(中宗壬申本)이다. 임신본보다 앞선 판본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 연대를 확인할 수 없고 임신본보다 시기가 앞서면 관행상 고판본이라 통칭한다. '유사'의 완질본은 서울대 규장각, 고려대 도서관, 덴리대 도서관 소장본 등을 꼽을 수 있다. 덴리대 소장본은 순암 안정복(1721~1791)의 수택본으로 1916년 이마니시가 입수했고, 다시 이를 덴리대학이 소장하게 된 것이다. 그 밖의 낙질본 혹은 영본으로 육당 최남선(1890~1957)이 가지고 있던 고려대학 소장 광문회본과 연세대학이 소장한 파른 손보기(1922~2010)의 파른본 등을 꼽을 수 있다. 해방 후 '유사'의 최초 번역본은 1946년 사서연역회가 임신본을 저본으로 하여 고려문화사에서 펴낸 판본이다. 사서연역회는 김춘동 · 이가원 · 이민수 · 홍기문 등 당대 최고 지성들의 모임이었다. 사서연역회의 국역 이후, '유사'의 번역은 백가쟁명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종열(1954), 이병도(원문병역주 삼국유사, 1956), 이재호(1967), 이민수(1975), 권상로 역해본(1978), 성은구 역주본(1981) 등이 대표적이다. 북한에서 나온 '유사'의 번역본으로는 리상호 역주본(1960)이 있다. 이는 1999년 도서출판 까치에 의해 국내에서도 출판된 바 있다. 북한판 '유사' 번역본은 철저한 한글전용 원칙과 대중친화용 원칙을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단군신화의 풍백(風伯) · 우사(雨師) · 운사(雲師)를 각각 바람 맡은 어른 · 비 맡은 어른 · 구름 맡은 어른으로, 심지어 만파식적(萬波息笛) 같은 고유명사마저 '거센 물결 잠재우는 젓대'로 번역하는 등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한국의 문화원형인 '삼국유사'는 막상 독서용이나 참고자료로 이용하려 하면 지나치게 많거나 지나치게 없으며, 너무 알려져서 읽었다 착각하고 아예 안 읽는 '말로만 고전'으로 남아있는 게 아닌가 하여 매우 안타깝다. 몇 해 전 단골 고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서가에 꽂혀있는 사서연역회의 '삼국유사'를 한참 망설이다 구입했다. 당연히 사야 할 책이었건만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고민하다 결국 골랐던 다른 책들을 포기하고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꼭 사야 할 고서라면 망설임 없이 즉시 구입해야 한다. 삶도 책도 그 순간이 지나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일기일회(一期一會)가 아니던가./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

2018-09-02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전국의 주요 고서점들

대형서점·인터넷서점 공세…시민 무관심에 고서점 고사 위기책바보들 충정만으론 지탱 어려워헌책방도 문화라는 인식전환과유관기관들의 정책적 지원 절실책에 미쳐 사는 바보들―곧 간서치(看書痴)들이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 자기 집 서재와 헌책방이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전철도 책바보들에게는 최적화한 독서 공간이다. 적당하게 흔들려주는 전철 안에서, 졸거나 스마트폰 외에는 딱히 할 일도 없는 시간 동안의 책읽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집중을 요하는 고도의 독서를 하고자 할 때 전철 독서를 적극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기실 독서는 자기만족을 위한 도락이면서 동시에 자기완성과 세상을 위한 실천이기도 하다. "한 선비가 책을 읽으면 혜택이 사해에 미치며 그 공이 만세에 드리운다(一士讀書 澤及四海 功垂萬歲)"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의 독서론은 독서에 숨겨진 참의미를 일깨워주는 경책 같은 선언이다. 그러나 팍팍하고 고단한 인생살이와 세상의 시비 다툼 속에서 살다 보면 연암 유의 경세적 독서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책 보고 헌책방 순례하는 일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지금은 괜찮은 인터넷 고서점들이 많아서 온라인 순례도 가능해졌지만, 그래도 직접 책방을 찾아다니는 즐거움에 비할 바 못된다. 전국 도처에 유서 깊은 헌책방 또는 고서점들이 있다. 우선 인사동 고서점의 명맥을 잇고 있는 통문관과 승문각 그리고 화봉문고와 동양문고가 대표적이다. 또 부산 보수동 거리의 헌책방들을 비롯해서 삼례의 호산방, 인천의 아벨서점, 신촌의 공씨책방, 수원이 자랑할 만한 남문서점과 오복서점, 화성시 팔탄면의 고구마, 천안의 갈매나무 서점과 뿌리서점, 대구의 합동서점과 월계서점 등은 책바보들이 즐겨 찾는 탐방처다. 이 밖에도 방방곡곡에 좋은 서점들이 즐비하나 일일이 소개하는 것이 요령부득이라 생략한다.최근에 다녀온 서점 중에서는 오산의 명물 아사달 서점이 머리에 남는다. 오산역에서 북쪽으로 5~10분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중원 사거리 지하차도 옆에 자리한 작은 서점인데 눈대중으로 따져 10만 권은 돼 보이는 헌책들이 빼꼭히 쌓인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전공자나 수집가들에게는 양에 차지 않을지 몰라도 인정이 넘치는 곳이다. 모든 책 가격이 거의 다 1천원이라 저 돈을 받고 어떻게 서점이 유지될까 염려될 정도로 값이 헐하다. 책을 팔기보다는 책을 나누는 곳에 가까울 만큼 헐한 책값도 놀랍지만, 이영열 사장님의 인품이 보살이다. 책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책을 나누는 것이다. 노모를 모시며 의정부에서 오산을 오가는 효성과 노고를 십수 년째 다하면서 찾아오는 손님마다 드링크를 나눠주고, 여러 권을 사면 1천원짜리 책값에서 가격을 더 빼준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일이 따로 있다. 주인장의 풍부한 독서량도 그렇지만, 그는 엄연한 현역 작가―장르문학 전문가다. 단편소설 '어느 세기의 대마술사 이야기'(1996)로 등단하여 최근에는 장편소설 '나는 김구다: 치하포 1896, 청년 김구'(2017)를 발표했다. 백범의 재해석, 재조명이 흥미롭다. 책은 그 나라, 그 민족의 수준과 역량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또 문화의 중핵이다. 180여 개의 고서점이 밀집해 있는 도쿄의 '간다 고서점가', 베이징의 유리창(琉璃倉)거리, 옥스퍼드 · 피렌체 · 마드리드 · 파리 등 대도시에 산재해 있는 유럽의 고서점들과 그곳에서 취급되는 고서들은 그 나라의 문화역량과 도서문화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얼마 전 서울의 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 공씨책방이 높은 임대료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신촌을 떠나 성수동으로 이전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들의 공세 그리고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지금 우리의 고서점들은 고사의 위기를 겪고 있다. 책바보들의 높은 충성도 만으로는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다. 고서는 물론 헌책방도 하나의 문화라는 사회적 인식 전환과 함께 유관기관들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

2018-07-15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고서 수집의 도(道)

물유각주(物有各主)라고모든 물건에는 다 주인이 있는 법실력·운 따르는 수집가 되기위해선열심히 공부도 해야 하지만인성과 끈기도 갖춰야 한다책은 정신문화의 보고이다. 인류문명과 사상의 발전도 책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오래된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중요하고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 속에는 인류의 역사와 사유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의 원재료가 되는 종이 곧 페이퍼는 나일강변에 자생하던 종이 대용품 파피루스(papyrus)에서 나온 말이다. 그 파피루스를 이어 붙여 두루마리로 만든 책을 '비블로스'라고 하는데, 성경을 가리키는 '바이블'이 여기서 나왔다. '청사(靑史)에 길이 남는다'는 말도 대나무책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죽간은 대나무를 세로로 자른 다음 불에 쬐어 말리고 여기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끈이나 가죽으로 이어 만든 귀중한 물품이었다. 그 귀한 죽간에 기록된다는 것은 미증유의 업적이나 위인을 의미하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종이와 인쇄술이 등장하기 이전 중세 유럽에서 책을 만드는 주재료는 양피지였다. 당시 성경책 한 권을 만드는데 무려 200마리 이상의 양가죽을 필요로 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책에 기록되는 것은 동시대와 동시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들일 수밖에 없다. 신성로마제국시대 수도원을 배경으로 삼은 움베르토 에코의 세계적인 걸작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을 보면 수많은 수도사들이 미로처럼 복잡한 도서관에서 필사하고 책을 만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유명한 대형 수도원일수록 책을 필사하고 제작하는 공간인 '스크립토리움' 곧 필사실을 갖추고 있었다. 이처럼 책은 특별한 권위와 위상을 가진 보물이었던 것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책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 유역의 원시림의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귀한 책들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지구의 귀한 자원을 투입해서 만든 책들이 냉혹한 시장의 논리와 독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 폐기물로 처리되거나 중고시장과 헌책방으로 쏟아져 나온다. 우리처럼 고서점과 헌책방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수집가나 독서와 책에 미친 간서치(看書癡)들이야말로 정신자원 재활용업자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자원 재활용업자들이 책을 고르고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첫째는 유명한 작품이나 저작물, 둘째는 절판본이나 희귀본, 셋째는 지명도가 높은 저자의 책, 넷째는 귀한 자료로 재조명될만한 책, 다섯째는 책의 상태이다. 책 상태는 상품 가치를 좌우할 수 있는 만큼 중요하다. 표지·책등·판권(간기)·내용 등이 온전히 남아 있는 책과 초판본인 경우에 더 귀한 대우를 받는다. 물론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아주 희귀한 경우라면 초판, 재판이나 책 상태를 따질 것이 없다. 그밖에 저자의 친필 서명이 들어가 있으면 몸값이 더 높아진다. 또 외국서적보다는 국내서적이, 한적본의 경우에는 대개 필사본보다는 목판본이, 목판본보다는 활자본이 더 비싸다. 헌책방에서 고서는 "까만 거"라는 은어로 통칭된다. "까만 거"를 살 때 투자가치가 있거나 필요하다면 일단 따지지 말고 사 두는 편이 좋다. 좋은 책과 자료가 항상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구하는 책이 있다면 에둘러 말하지 말고 솔직하고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편이 좋다. 지금은 인터넷이 보편화하고 고서에도 대략적인 가격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옛날처럼 저렴한 가격에 눈먼 책을 사는 시대는 지나갔다. 물유각주(物有各主)라고 모든 물건에는 다 주인이 있는 법이며, 실력 있고 운이 따르는 수집가(주인)가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도 해야 하지만 인성과 끈기도 갖추어야 한다. 교산 허균(1569~1618), 육당 최남선(1890~1957) 등 같은 대시인이자 학자들도 역대급 수집가들이었으며, 국어학자였던 방종현(1905~1952) 교수는 고서 수집을 위해 아예 헌책방을 차릴 정도였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고서 수집에도 지극한 정성이 필요하며, 도(道)가 있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

2018-05-27 조성면

[조성면의 '고서산책']고서 수집의 '즐고움'

학자 진계유(陳繼儒) 말대로 독서와 고서 수집은 "아무리 오랫동안 계속해도 싫증나지 않는 일"로서 헤어 나오기 싫은 즐거운 일이다.옛날 학자들의 꿈은 자기 책을 내는 것과 장서를 갖추는 일이었다. 책(冊)은 죽간이나 나무 등을 실이나 가죽으로 꿰맨 것을 형상화한 글자이고, 책을 뜻하는 불어 리브르(livre)는 권위 있는 고전을 지칭하거나 금화의 단위로 쓰일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던 단어였다. 그런 만큼 유럽에서 중세와 근대 초까지만 해도 책은 귀족들의 품위와 교양의 상징이었다. 한국은 책을 아끼고 숭상하던 책의 나라였다. 1970년대 들어 한국은 전집류 같은 월부 책들이 호황을 누렸다. 보릿고개를 넘기고 고도성장을 거듭하자 너 나 할 것 없이 거실의 벽면을 책으로 채우는 것이 대유행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서점과 인터넷과 공공 도서관이 책으로 차고 넘치건만, 독서의 열기는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 책이 흔해지고 독서량은 늘었으나 독서가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독서 인구는 줄어들었다. SNS나 웹 검색을 통해서 고전과 베스트셀러에 대해 얻은 인스턴스 지식이 진중한 진짜 독서를 대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공위성이 높이 뜰수록 문화의 수준은 떨어진다는 말대로 출판부수가 늘어나면 날수록 읽는 사람만 읽고 독서 인구는 적어지는 독서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 같다. 독자가 떠난 빈터를 '엄지족'과 '스몸비'들이 차지하고 있다. 시대환경이나 시장 여건에 따라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외곽으로 흘러나오는 책들이 바로 중고도서와 고서 시장을 형성한다. 주머니가 가벼웠던 문학청년기와 대학원생 시절 우리 동기들의 일과는 도서관을 드나들며 시간 날 때마다 헌책방들을 순례하는 일이었다. 시장 밖으로 밀려난 헌책방의 책더미들 속에서 우리는 전공서적이나 논문과 강의를 통해서 얻을 수 없는 살아있는 지식과 귀중한 절판본을 염가에 만나는 기쁨을 누렸으며, 옛 책을 통해서 그 시대의 지적 흐름과 문화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면 옛 책과 재고도서와 고서의 차이는 무엇인가. 고서연구회의 정의에 따르면, 고서는 1959년 이전에 출판된 책들을 말한다. 반면 재고는 팔리지 못하고 창고에 쌓여있던 책을, 옛 책은 과거에 나온 오래된 책을 지칭하는 편의상의 용어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인류역사에서 책이 등장하자 숱한 독서가와 장서가들 그리고 일화들이 생겨났다. 가령 명대 주대소(朱大韶)라는 애서가는 책사랑이 지나쳐 고서와 자신의 애첩(愛妾)을 주저 없이 바꾸는 엽기적이고 황당한 선택을 했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독서가 사고의 힘과 언어능력을 길러주고 글쓰기의 자양분이 되며 지식과 정보를 얻고 큰 기쁨을 준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나만의 고서 컬렉션을 갖는 것도 독서 못지않은 보람과 기쁨이 있다. 그러면 고서 수집을 위해서는 어떤 요령, 어떤 비법이 있는가. 수집에도 오계명이 있다. 첫째는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 둘째는 분명한 목표의식과 방향, 셋째는 자문을 받을 만할 멘토 혹은 신뢰할만한 단골 고서점의 확보, 넷째는 필요한 경우의 망설임 없는 투자, 다섯째는 지극한 정성이다. 여기에 더해 적절한 행운과 재수도 따라줘야 한다. 물론 수집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시간과 경제적 소모가 분명하고, 퀴퀴한 냄새를 맡고 책 먼지를 먹는 일을 피할 수 없으며 집안의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단점이 있다. 또 수집가들치고 부부관계가 원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그래도 명대의 학자 진계유(陳繼儒) 말대로 독서와 고서 수집은 "아무리 오랫동안 계속해도 싫증나지 않는 일"로서 헤어 나오기 싫은 즐거운 일이다. 폐일언하면, 독서와 고서 수집은 즐겁지만 고통도 뒤따르는 괴로운 즐거움―곧 '즐고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삶의 풍요를 위해 한번 가져볼만한 취미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

2018-04-08 조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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