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길

 

[이야기가 있는 길]'예던길'에서 만난 퇴계와 이육사

많은 위인을 배출한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평가받는다.안동의 대표적인 문화재는 유교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하회마을과 퇴계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도산서원이다.최근에는 퇴계가 안동에 머물며 공부를 하던 곳과 사색을 하던 길을 복원한 '예던길'이 인기를 끌고 있다.예던길은 퇴계가 13살 때 학문을 배우기 위해 집에서부터 숙부 이우가 청량산 중턱에 지은 오산당(현 청량정사)까지 50리 낙동강변을 오르내리던 길이다.예던길은 도산서원을 지나 단천교~농암종택~고산정까지 이어지는 18㎞ 코스와 단천교에서 청량산 전망대를 지나 농암종택까지 3㎞ 코스 등 2가지가 있다.하지만 이번 여행길에서는 예던길을 살짝 벗어나 도산서원을 거쳐 퇴계종택~이육사문학관까지 이르는 길을 선택했다.이육사문학관을 여행의 마지막 장소로 선택한 것은 퇴계의 후손인 이육사의 생애를 돌아보기 위해서다.이황 학문·덕행 기린 도산서원한적한 시골길 이어져있어 운치종택~이육사문학관 이르는 길2~3명 담소 나누며 거닐기 좋아위인 흔적모은 곳 생애자료 풍부# 도산서원과 퇴계종택도산서원은 조선시대 대표 유학자인 퇴계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선조 7년인 서기 1574년에 지어졌다.그렇다고 도산서원이 퇴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에 지어진 것은 아니다.도산서원 안에 위치한 도산서당은 퇴계가 낙향후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을 위해 지은 곳이다. 도산서당은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가 직접 설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도산서원에는 도산서당 외에도 유학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어졌다.도산서원은 퇴계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됐다. 도산서원의 편액은 한석봉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도산서원에 이르는 길은 한적한 시골길을 통해서 이어져 있다. 도산서원 입구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매표소를 지나 낙동강을 옆에 끼고 3분여를 걷다 보면 아름드리 나무와 잘 어우러져 있는 도산서원이 나온다.서원 입구에는 옛 선비들이 학문에 매진하며 이용했던 우물이 나오고 그 곳을 지나면 곧바로 도산서원으로 들어서게 된다. 옛 건물들이 그러하듯 도산서원도 고즈넉한 모습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여기에다 옛 건물 곁에 자리한 오래된 나무들이 도산서원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퇴계종택은 도산서원 뒤에 있는 야트막한 산을 넘으면 나온다.경상북도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된 퇴계종택은 1907년 왜병의 방화로 모두 타버렸다. 현재의 종택은 13대손 하정공(霞汀公) 이충호(李忠鎬)가 1926∼1929년에 지은 것이다.퇴계종택까지 이르는 길은 자연을 벗삼으며 사색을 즐기던 퇴계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오붓한 길이다.# 이육사문학관을 향하는 예던길퇴계종택을 지나면 곧바로 예던길로 들어서게 된다.이곳 퇴계종택부터 이육사문학관에 이르는 길은 왕복 2차선 도로 곁을 걸어야 해 항상 지나가는 차를 신경써야 한다.농암종택 부근의 한적한 오솔길과 같은 코스로 생각하고 찾는다면 실망만 안고 갈 수 있다.그러나 길이 외진 탓에 차량 이동이 많지 않아 2~3명이 한적한 걷기여행을 한다고 생각하고 걷는다면 이야기를 나누며 다정하게 걷기에는 괜찮다.길을 걷다 보면 나타나는 옛 누정들과 사당, 2~3채가 모여 있는 시골집의 풍경은 지루함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또 발의 피로를 풀어 주기 위해 시냇가에 앉아 발을 담가 보는 것도 추천할 수 있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거닐다 보면 이육사문학관이 나온다.우리에게 독립운동가 또는 민족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이육사는 퇴계의 14대 손이다.이육사문학관에서는 이육사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그의 가족사도 알 수 있다.이육사문학관 뒤편에 자리한 이육사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옛집은 문학관을 찾은 사람이면 한번씩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김종화기자

2012-11-08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태안 안면도 해변길 '노을길'

수도권 시민들이 많이 찾는 서해안 관광지 중 한 곳이 안면도다.태안반도 중간에서 남쪽으로 뻗은 남면반도의 끝에 자리잡고 있는 안면도는 안면대교가 설치되면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관광지가 됐다.완만하고 고운 모래가 매력적인 안면도에는 대략 10여개의 해수욕장들이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받을 정도로 아름답고 소중한 생태자원의 서식지이기도 하다.해수욕장을 이야기하면 여름철 휴양지로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안면도는 사철 즐길 것이 많은 곳이다.특히 국립공원관리공단과 태안군이 해안가와 섬 내륙을 잇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를 개발해 인기를 끌고 있다.120여만명 봉사자들 노력 자연복원사고 당시 오가던 길 탐방로 탈바꿈울창한 송림숲·해안사구 경관 수려갯벌 체험·해넘이… 나들이객 '유혹'■ 아픔이 서려 있는 태안 해변길태안 해변길은 아름다움 속에 아픔이 녹아 있는 길이다.2007년 12월 청정한 해변으로 알려진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이 좌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이 사고로 유조선에 실려 있던 총 1만2천547㎘에 이르는 원유가 유출됐다. 유조선에서 유출된 기름띠는 만리포, 천리포, 모항을 거쳐 안면도까지 유입돼 청정한 해안을 오염시켰다. 엄청난 재앙이 덮친 태안을 120여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찾아 매서운 바닷바람 속에서 기름덩이 제거 작업에 참여했다.2007년의 이 사고가 발생해 피해를 본 지역이 바로 안면도 해안이다.사고 직후 수년 동안 유출된 기름으로 인해 태안 앞바다의 생태계가 파괴되기도 했지만 이달 초 방문한 태안 해안 일대는 예전 청정한 모습을 서서히 찾아 가고 있었다.2007년 사고 당시 120여만명이 태안을 살리기 위해 오가던 길은 잘 정비된 탐방로로 탈바꿈 됐다.태안 해변길은 이런 길과 그리고 안면도의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살펴볼 수 있도록 이어져 있는 길인 것이다.■ 노을이 아름다운 태안 해변길 '노을길'태안 해변길은 학암포에서 영목까지 120㎞에 이르는 태안 해안의 아름다운 경관을 살펴볼 수 있는 길이다.해변길에서는 신두리 지역의 곰솔림, 해변, 해안사구를 걸을 수 있고 갯벌과 양식장 및 해넘이 등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태안 해변길의 여러 코스 중 5번째 코스인 노을길은 해안사구와 송림, 안면도의 아름다운 해변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명품 코스다.코스는 노을로 유명한 꽃지해수욕장에서부터 백사장항에 이르는 12㎞다. 성인의 경우 빠른 걸음으로는 2시간 30분, 천천히 쉬면서 걸어도 4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는 적당한 구간이다.노을길은 수려한 경관 외에도 어린이들도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완만한 언덕을 거닐며 백사장을 산책하듯이 걸을 수 있다는 것도 만족스럽다.코스 중간 2번 정도 산 언저리를 오르기도 하지만 딱 봐도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높지 않다.이달초 찾은 노을길은 잔잔한 파도가 백사장을 오가고 있었다.철 지난 해안가라 그런지 관광객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울창한 송림 숲과 해안사구를 지나는 코스에는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도록 목재로 길을 만들어 편안하게 걸을 수 있게 해 주고 있다.꽃지해수욕장과 백사장항 해수욕장 사이에는 4개의 해수욕장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각기 위치는 달라도 고운 모래가 아름답다.그리고 해안사구를 가로지르는 목재데크 사이에는 쉬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여행객들을 위한 벤치가 중간중간 설치되어 있다.철 지난 해수욕장에는 백사장 한쪽을 가득 메운 갈매기들이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글·사진/김종화기자

2012-09-13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짙은 녹음 즐길 수 있는 담양 옛길

30도를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며 나무 그늘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짙은 녹음이 햇살을 가려주어 만들어낸 그늘. 그 아래 나무 의자에 기대고 누워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짙은 녹음을 바라보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광주광역시에서 담양읍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수원에서 담양으로 가려면 호남 교통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광주광역시 광천터미널에서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광주광역시에서 담양까지는 대략 40분 남짓인데, 광주광역시를 벗어나면 이내 시원한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논에는 뜨거운 햇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란 벼가 줄을 맞춰 서 있고, 밭에는 가지가지의 농작물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창밖 풍경을 감상하며 도착한 담양읍내는 시끌벅적하지 않은 한산한 농촌 읍내 풍경이었다.담양은 대나무가 유명한 지역이다. 대나무가 많이 자라서이기도 하지만 생활 속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대나무로 만들어 이용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담양읍내에서 열리는 5일장에는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이용할 수 있는 대나무로 만든 다양한 도구와 물건들을 만나 볼 수 있다.여름이면 나무와 대나무 그늘을 즐길 수 있고, 강변을 걸으며 한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담양이다.■ 담양천 관방제림의 짙은 녹음오랜만에 호젓한 시골길을 걷고 싶은 생각에 관방제림으로 발길을 옮겼다.담양 관방제림이란 담양천변에 조성된 녹지를 말하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수해를 억제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심어져 있는 나무들을 말한다. 담양천변 관방제림에는 수백년된 나무들이 천변 둑을 따라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짙은 나무그늘과 강변에서 불어 오는 서늘한 바람은 한여름 무더위를 피하기 적격이다. 거닐다 지쳤을 때, 또는 풍경을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나무 의자와 넓은 평상은 도보 여행자들의 발길을 가볍게 해 준다.담양천의 깨끗한 물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에 앉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쉬어 보는 것도 좋다.걷기 여행에 익숙지 않은 사람을 위해 관방제림 입구에 자전거 대여점들이 있어 가벼운 자전거 하이킹도 즐길 수 있다. 담양천변의 잘 닦인 시멘트 길과 관방제림의 짙은 녹음을 가로질러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까지 가는 코스는 남녀 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메타세쿼이아 군락이 이색적인 곳이다. 20m가 훌쩍 넘는 거대한 나무가 일렬로 서서 마치 터널을 이루고 있는 이색적인 풍경으로 인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방송 광고의 배경이 되고 있는 곳이다.■ 대나무 숲과 누정이 있는 죽녹원죽녹원은 대나무 숲이 울창한 정원이다.죽녹원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대나무 숲은 아니다. 입구에서 들여다본 죽녹원의 첫 느낌은 짙은 대나무 그늘의 시원함이다. 2003년 31만㎡에 대나무 숲 조성을 시작해 현재는 죽림욕만 즐기는 것이 아닌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죽녹원 산책로는 운수대통길, 죽마고우길, 철학자의 길 등 8가지 주제의 총 4.2㎞로 되어 있다. 죽녹원 산책로를 거니노라면 대숲 사이로 부는 맑은 바람과 '사각사각' 댓잎이 스치는 소리가 정겹게 다가온다. 대숲은 음이온을 많이 내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이온으로 인해 죽림욕을 하는 사람들은 머리와 피가 맑아지고 심신이 안정되면서 저항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죽녹원은 영화와 방송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지난 2004년 8월에 개봉한 영화 알포인트의 대나무 숲 전투 장면을 촬영한 곳이 바로 죽녹원이다. 영화 촬영 후에는 주인공 감우성씨가 자신이 쓰던 철모를 기증해 현재 죽녹원 숲길 알포인트 안내판 위에 걸려 있다. 또한 드라마 일지매와 국민 예능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 '1박2일'도 이 곳에서 촬영했다.대나무숲을 지나면 담양의 대표 누정을 복원해 놓은 죽향문화체험마을이 나온다. 죽향문화체험마을에는 가사문학의 산실 담양의 정자 문화를 대표하는 면앙정, 송강정, 식영정 등의 정자와 소리 전수관인 우송당, 죽로차 제다실, 한옥체험장에서 담양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김종화기자

2012-08-02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가볼만한 농·어촌 체험여행지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여름 휴가는 이상 고온으로 인해 무더운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상상만으로도 기대가 되는 시간이다. 바라만 봐도 시원한 깨끗한 바다, 맑은 물이 한 없이 흐르는 계곡, 녹음이 짙은 숲에서의 산책 등 상상만으로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그러나 휴가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달콤한 휴가에 대한 기대도 크지만 한편으로는 유명 여행지의 바가지 상혼, 터무니 없이 비싸게만 부르는 몰지각한 상인들로 인해 걱정도 크다. 여기에다 자녀를 두고 있는 사람들은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으로 적당한 여행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각종 매체에서 수많은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이 들린다. 하지만 조금만 눈길을 돌리면 화려하진 않지만 저렴하면서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여행지가 있다.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여행, 농·어촌 체험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의 거제시 다대마을경상남도 거제시에 위치한 다대마을은 거제도 유일의 갯벌체험장과 해양레포츠인 수상레저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다대마을 인근의 바람의 언덕, 해금강 등 해양관광자원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어촌체험마을의 프로그램이 소개 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남짓이다. 거제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을 마을로 유치하기 위해 진행된 어촌체험마을 프로그램은 지난해 농림수산식품부와 한국어촌어항협회가 진행한 제6회 우수 어촌체험마을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대마을은 일반적으로 어촌체험마을들이 운영하고 있는 갯벌체험을 비롯해 고무보트 타기 등의 수상레포츠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또 통발, 후릿그물, 홰바리, 개막이 등의 전통어업체험도 다대마을에서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거제다대마을(http://www.dadaeri.co.kr)■ 맛조개 잡기 체험, 서천 월하성마을제6회 우수 어촌체험마을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월하성마을은 수심이 얕은데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 썰물 때는 폭 1㎞가 넘는 갯벌이 드러나는 곳이다. 월하성마을의 갯벌은 고운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 갯벌이라기보다 해수욕장의 모래밭 같다. 그 안에 콩알만한 게들이 잰걸음으로 분주히 다니며 송송 뚫어놓은 작은 구멍들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월하성 마을의 갯벌에서는 국물이 시원한 바지락, 구우면 더욱 맛있는 모시조개, 뽀얀 속살이 쫄깃한 돌조개 등 각양각색의 조개를 직접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서천 갯벌체험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맛조개 잡기다. 호미로 흙을 파낸 뒤 조개를 줍는 것과 달리 송송 뚫린 갯벌 구멍 안에 소금을 뿌리면 맛이 쏙 튀어나온다.월하성마을( http://walhasung.seantour.com)■임실치즈마을과 임실치즈테마파크치즈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치즈마을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이색체험마을이다. 한국치즈의 원조인 임실치즈마을은 지난 2008년 제7회 마을가꾸기경진대회 농림수산식품부장관상, 지난해 제1회대한민국농어촌마을대상과 정보화마을 평가 우수상 등을 수상하며 지역공동체운동의 모범 마을로 알려졌다. 특히 임실치즈마을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치즈마을'이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경운기체험, 낙농체험, 천연비누만들기체험, 피자만들기체험, 퀘소블랑코치즈체험 등 10여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임실치즈마을의 장점은 인근에 위치한 임실치즈테마파크와 임실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섬진강 상류의 깨끗한 계곡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드넓은 초지와 유럽풍의 경관을 배경으로 한 임실치즈테마파크는 치즈 체험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임실치즈마을(http://임실치즈마을.한국/), 임실치즈테마파크(http://www.cheesepark.kr)■전북 부안군 바다를 즐길 수 있는 농촌마을여름철만 되면 많이 소개되는 곳 중 한 곳이 전라북도 부안군이다. 수도권에서 두시간 남짓 걸리는 지리상 이점과 변산반도의 수려한 경관, 변산해수욕장·격포해수욕장·고사포해수욕장의 고운 백사장과 갯벌 등으로 인해 인기를 끌고 있다. 또 백제 천년 고찰 내소사가 위치한 내변산의 아름다운 풍광, 짠내가 물씬 나는 젓갈로 유명한 곰소항 등도 빼놓지 말아야 할 부안의 대표 관광 코스다. 4계절 많은 사람들이 찾는 부안군이지만 전국에서 손꼽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농촌체험마을들이 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우선 첫번째 마을이 진서면에 위치한 운호(雲湖)마을이다. 운호마을은 마을 북쪽에 위치한 운호호수에서 흐르는 맑은 계곡에서 다슬기와 우렁이 등을 손쉽게 채취할 수 있고 마을 앞에 펼쳐진 서해바다에서는 각종 어패류 채취 체험도 할 수 있다. 운호마을에서 운영하고 있는 특화 프로그램은 부안군의 특화상품인 오디따기 체험이다. 울금비누만들기와 울금염색체험은 연중 운영되고 있다. 또 한 곳은 보안면 우동리의 우리밀체험휴양마을이다. 우동리의 특화 프로그램은 매실따기 체험이지만 도자기만들기, 소나무농장체험, 고사리꺾기, 메뚜기 잡기, 뗏목타기 등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이와함께 마을 근교에 위치한 조선시대 대학자 반계 유형원선생 유적지, 선계폭포, 굴바위 등은 함께 즐길 수 있는 볼거리다. 우동리( http://www.woodong.or.kr), 운호마을(http://unho.invil.org)/김종화기자■ TIP / 체험여행 선택 가이드농·어촌 체험 여행하면 시골마을에서 숙실을 해결하며 과실따기, 물고기 잡기, 조개잡기 체험만 생각하기 쉽다. 농·어촌 마을로 지정된 마을들은 마을별로 특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마을별로 숙박과 식사, 주변 관광지까지 소개하고 있는 별도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곳도 많다. 농·어촌 체험 마을 방문을 계획한다면 현재 거주하는 곳과의 거리를 고려해 어떤 체험을 할지 먼저 결정한 다음 적당한 마을을 찾는 것이 좋다.농촌체험 마을의 경우 행정안전부에서 지정한 정보화마을 인빌체험(http://www.inviltour.com/)과 농협에서 운영하는 팜스테이 마을(http://www.farmstay.co.kr/) 사이트를 통해 전국의 다양한 농촌마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어촌체험마을은 한국어촌어항협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어촌체험마을(http://www.seantour.org/)에서 지역별, 프로그램별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꼭 방문하고 싶은 지방자치단체가 있다면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 문화관광정보 사이트를 이용하면 된다. 농림수산식품부와 한국어촌어항협회가 매년 진행하고 있는 우수 어촌체험마을 성공 사례를 찾아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2012-07-13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전북 임실 '섬진강 시인의 길'

치즈 마을로 알려져 있는 임실은 수도권 시민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자연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임실의 대표적인 자연 경관은 청정 지역으로 유명한 섬진강 상류의 원시 자연이 그래도 살아 숨쉬고 있고,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옥정호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원산암마을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의 물줄기는 임실을 거쳐 순창, 남원을 적신 뒤 일반인들에게 섬진강 하면 떠오르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인 구례와 하동을 지나게 된다. 섬진강 물줄기가 흐르는 지역 중 임실은 강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이 원시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또한 섬진강을 멀리서 지켜 보는 게 아닌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임실만이 지니고 있는 매력이다. 옥정호는 아마추어 사진 작가들에게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뽐내는 옥정호지만 한편으로는 아픈 역사를 담고 있기도 하다. 옥정호는 지난 1925년 일본인들이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 진 저수지다. 하지만 1965년 농업용수 공급 뿐 아니라 호남지역의 전력을 제공하기 위해 섬진강 다목적댐 공사가 진행됐다. 이로 인해 운암면의 가옥 300여호와 경지면적 70%가 수몰되는 아픔을 겪었다. 옥정호는 해뜰 무렵 호수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아름다워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한국의 길 100선'에 뽑히기도 했다.그 강에 가고 싶다 -김용택그 강에 가고 싶다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저 홀로 흐르고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멀리 간다인자는 나도,애가 타게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봄이 되어 꽃이 핀다고금방 기뻐 웃을 일도 아니고,가을이 되어 잎이 진다고산에서 눈길을 쉬이 거둘 일도 아니다-중략-그 강에 가고 싶다.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다그 산에 그 강그 강에 가고 싶다.#김용택 시인과 '섬진강 시인의 길'구구절절하게 섬진강과 옥정호를 설명했던 것은 바로 임실 '섬진강 시인의 길'이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섬진강 시인의 길은 짧게는 순창 어치리 장구목에서 진뫼마을까지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긴 트레킹을 원하는 사람들은 섬진강변을 따라 강진터미널까지 걸을 수 있다.강진터미널?터미널이 '강진'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마치 강진군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임실군은 1읍 11면으로 행정구역이 구성되어 있는데 11개 면중 한 곳의 이름이 '강진'이다.보통 시인의 길을 걸을때 많이 걷는 코스는 풍광이 아름답고 한적한 시골마을을 거치는 장구목~구담마을~천담마을~진뫼마을~덕치생태공원으로 이어지는 14㎞를 많이 걷는다.전북지역의 기초지방자치단체들이 명품길을 만들며 보통 '마실길'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지만 임실군은 김용택 시인이 진뫼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데 착안해 '시인의 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김용택 시인의 초기시 대부분은 섬진강을 배경으로 농촌의 삶과 농민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섬진강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을 수 있는 길순창 장구목으로 첫 출발지를 정한 것은 강변 곁의 원시자연을 만끽하며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장구목의 기기묘묘하게 움푹 파인 바위들을 감상하기도 하고 곁에 위치한 출렁다리를 건너보며 동심으로 돌아가 볼 수 있는 기회도 주기 때문이다. 장구목의 바위들은 수만년의 세월동안 강물이 쓰다듬고 어루만져 태어난 작품들이다. 특히 높이 2m, 3m에 무게가 무려 15t이 된다는 요강바위는 아이가 들어가도 될 정도로 깊은 웅덩이가 파여 있다.장구목에서 시작해 조금만 걷다 보면 찔레꽃이 반겨준다. 차량통행이 많지 않아서인지 찔레꽃의 하얀 꽃잎이 햇살에 비쳐 눈부시다.장구목을 지나 순창군 동계면 내룡마을 입구에 있는 징검다리를 이용해 무릎까지 차는 섬진강 상류의 물줄기를 건너면 구담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높지 않은 산 중턱에 자리잡은 구담마을은 봄이면 매화꽃이 만개해 무릉도원에 온 듯 톡톡 터진 매화꽃이 흩날리는 것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마을이다. 구담마을의 숨은 자랑은 여행객들에게 시원한 나무 그늘을 제공해 주는 당산나무에서 바라보는 섬진강 풍경이다. 당산나무에서는 안동 하회마을처럼 섬진강이 내룡마을을 휘돌아가고 있고 강물을 방금전 건너온 징검다리가 한폭의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다.구담마을에서 천담마을을 거쳐 진뫼마을에 이르는 길은 김용택 시인의 시구를 감상하며 섬진강변을 즐기는 길이다. 여름 햇살이 발길을 잡는다면 길 곁에 흐르고 있는 섬진강변에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낼 수 있고, 청정한 섬진강의 1급수에서만 자라는 토종 물고기를 잡고 있는 강태공들을 보며 한가롭게 거닐면 된다.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김용택 시인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진뫼마을이다. 진뫼마을 김용택 시인 생가 입구에는 30여년 전 시인이 직접 심었다는 작은 정자나무가 여행객들을 맞아 준다. 김용택 시인은 이 나무들을 소재로 '푸른나무'란 연작시 5편을 쓰기도 했다. 가끔은 김용택 시인이 이 곳에 내려와 집필도 한다고 하니, 여행을 떠나며 김용택 시인을 만나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글·사진/김종화기자

2012-06-22 김종화

한때는 젊었던 어촌이 말합니다 한없이 빛나던 날 기억해달라고

이른 더위로 인해 바다나 계곡이 그리워진다. 무턱대고 바다로 달려갈 수는 없겠지만 시원한 파란 바다를 떠올리면 무더위도 쉽게 떠나갈 것 같다. 이런 마음을 갖고 서울 청량리역으로 달려가 동해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매번 버스를 이용해서 여행을 떠나곤 했지만 이번 여행길은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기차를 선택했다. 동해시로 가는 기차는 태백산맥을 넘어가며 다양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제천을 지난 후 기차가 산길로 들어서면 산언저리 한쪽에 자리잡은 집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게 5시간30여분을 달리면 묵호역에 도착하게 된다.#묵호등대 오르는 논골담길논골담길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지금, 당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세요.그 속에는 당신이 떠나고 싶은 여행지가 있을 거예요.혹여, 가슴 속에 도망치듯 떠나온 곳이 있다면,지금 서 있는 이곳은 아닌지요?세상으로 난 모든 길 위에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있어요.그 많은 여행자 중 당신이 우연히 이곳에 서 있다면 燈臺로 난 논골담길에서의 당신의 行路는墨湖를 여행하는 순례자의 또다른 희망찾기입니다."논골담길은 시간이 멈춰져 있는 길이다.논골마을은 강원도 동해시 묵호진동을 말한다. 묵호진동은 일제강점기인 1941년 어업전진기지로 묵호항이 개항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당시에는 오징어와 명태를 비롯해 동해안의 풍요로운 어장과 함께 성장했지만 1970년대 동해 인근에 시멘트공장과 무연탄공장이 들어서면서 더욱더 활기찬 모습을 띠었다.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잊혀져가는 달동네에 불과하지만 벽화를 통해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구불구불한 달동네 길가 담장에는 리어카가 그려져 있고, 매화나무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다.동해 최대 어항 중 하나로 꼽혔던 묵호항의 옛 영광을 그리워하는 듯 오징어잡이 배가 묵호 앞바다를 밝히고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과 동해안의 멋진 일출 풍경도 볼 수 있다.또 가파른 경사길을 머리에 짐을 이고 가는 노파와 골목길 귀퉁이에 그려져 있는 조그만 가게의 모습 등 정겨운 풍경들이 담장을 장식하고 있다.#논골마을의 또다른 길 '등대오름길'논골담길이 묵호진동의 옛 추억을 되새기는 길이라면 '등대오름길'은 묵호 앞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보통의 어촌마을이 그렇듯 산비탈에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는 집들로 빼곡하다. 여기에다 주인이 떠난 집들, 그리고 빈 공터와 그 곳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풀꽃들이 그림같은 풍경을 만들어준다.또 묵호 등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묵호항과 동해안 풍경, 동해시 전경 등은 여행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묵호 등대에서 방파제로 이어져 있는 비탈진 길에는 아기자기한 캐릭터 그림들과 바다 정취를 즐길 수 있는 시구들이 지루함을 달래준다. 글·사진/김종화기자

2012-05-25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부산 '갈맷길' 2코스

제주에 올레길, 지리산에 둘레길, 부안에 마실길이 있다면 부산에는 '갈맷길'이 있다.부산은 예부터 산과 바다, 강이 아름다워 '삼포지향(三抱之鄕)'이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번화한 시가지와 여름이면 수많은 피서객들로 활기 넘치는 도시다.갈맷길은 이런 역동적인 이미지가 강한 부산의 생태와 문화, 이야기가 잘 어우러진 트레킹 코스다.'갈맷길'은 부산의 상징인 '갈매기+길'의 합성어로 갈매기의 길이란 뜻이다.이름의 유래만 생각하면 해안과 관련한 길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갈맷길은 낙동강 하구의 아름다운 모습과 부산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산길을 연결해 만들어졌다. 9개 코스 263.8㎞의 갈맷길은 산의 아름다운 경치와 어우러진 해안길, 강변길, 숲길 등 취향에 맞춰 선택해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명품 트레킹 코스로 떠오르고 있는 갈맷길의 9개 코스 중 여름이면 수 많은 인파가 몰리는 해운대해수욕장과 광안리해수욕장을 이어서 거닐 수 있는 갈맷길 2코스를 소개한다.# 아름다운 풍광과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는 길문텐로드~광안리해수욕장~오륙도 유람선선착장으로 이어지는 갈맷길 2코스는 볼수록 정이 있는 해운대의 저녁 달과 백만 피서객으로 발 디딜 틈 없는 국내 최대 해운대해수욕장과 광안리해수욕장으로 이어져 있는 코스다.갈맷길 2코스는 최근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과 더불어 느리게 걷고 천천히 돌아보며 삶의 휴식과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부산의 슬로시티 관광명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부산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갈맷길 이용 만족도 설문조사에서도 2코스는 걸으며 감상할 수 있는 해안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평가받았다.특히 갈맷길 계절별 추천 코스 중 여름에 걷기 좋은 코스로 선정되기도 했다.갈맷길 2코스 외에 갈맷길 계절별 추천코스로는 임랑해수욕장~대변항~문텐로드로 이어진 1코스는 봄에, 성지곡수원지~금정산~북문~상현마을로 이어지는 7코스는 가을에, 상현마을~이곡마을~기장군청으로 이어져 있는 9코스는 겨울에 각각 걷기 좋은 길로 선정됐다.갈맷길 2코스는 아름다운 해안 풍경 외에도 다양한 축제와 문화 행사가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다.대표적인 행사로는 백운포체육공원 일대에서 열리는 오륙도축제와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진행되는 해운대모래축제, 바다축제, 부산비엔날레, 부산세계불꽃축제 등이다.# 해안선 따라 산책하는 갈맷길 2코스갈맷길 2코스는 2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1구간은 문텐로드라고 불리는 해운대 달맞이고개에서 시작해 부산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인 해운대해수욕장을 거쳐 동백섬, 민락교까지 이어지는 5.7㎞구간이다.1구간에서는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에메랄드 빛 바다와 부드러운 모래결, 잘 관리된 아름다운 백사장을 즐길 수 있고 동백공원에서는 울창한 동백나무와 우거진 소나무가 어우러진 오솔길을 산책할 수 있다.해운대해수욕장과 광안대교의 빼어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누리마루 APEC하우스와 영화 속 한 장면 같이 아름다운 요트경기장내 위치한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는 1구간의 대표적인 볼거리 중 하나다.2구간은 민락교~광안리해수욕장~광안대교~이기대~오륙도 유람선선착장으로 이어진 12.6㎞로 대략 4시간 가량 거니는 조금 긴 코스다.2구간은 비교적 긴 코스로 느껴질 수 있지만 빼어난 해안 풍경으로 인해 지루함을 느낄 수 없다.기암절벽과 푸른 녹음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이기대, 가구를 올려 놓은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농바위,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 올망졸망 모인 6개의 섬 오륙도 등이 여행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또 야경이 아름다운 광안리해수욕장과 광안대교도 2구간의 명품 볼거리다. /김종화기자 /취재 협조 :부산시청

2012-04-27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해안 풍경이 아름다운 전북 부안 '위도'

섬 여행의 매력은 아기자기한 해안 풍경과 한적한 어촌 마을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한여름을 피해서 찾은 섬은 더더욱 그렇다.시끌벅적한 피서철 모습은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고 발자국조차 남아 있지 않은 깨끗한 백사장이 여행객을 맞이한다.바닷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어촌 마을은 한가롭다 못해 외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마을과 마을 사이를 잇는 작은 소로에서는 봄을 알리는 듯 따뜻한 바람이 여행객을 반겨 준다.여행 중 해안가와 들판에서 만나는 이름 모를 풀꽃들이 마음을 상쾌하게 해 준다.# 아름다운 풍경속에 숨겨져 있는 사연들이번 여행을 위도로 정한 것은 단순히 풍광만 즐기는 여행이 아닌 아픈 현대사도 함께 돌아보고 싶어서였다.위도는 현대사에 있어서 2번의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던 곳이기 때문이다.첫번째 사건은 위도 '서해 훼리호' 침몰 사건이다. 1993년 10월10일 오전에 발생한 이 사건은 바다 낚시를 즐기려는 사람과 위도의 빼어난 풍광을 즐기기 위한 여행객, 추석에 고향을 찾았다가 뒤늦게 뭍으로 나오는 사람 등 위도에서 격포로 향하던 '서해 훼리호'가 침몰, 292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서해 훼리호'의 정원은 221명이었는데 141명이나 초과한 362명을 태우고 파도가 2~3m로 비교적 높은 악천후 상황에서 무리하게 출항했다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은 위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유치 문제로 위도를 넘어 부안군 전체가 주민간의 갈등이 심화됐던 사건이다.전형적인 농어촌 복합지역이던 부안군은 지역 발전을 위해 방폐장이 유치되어야 한다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나뉘어 2년여간 치열한 갈등을 빚었고 방폐장 유치를 추진하던 부안군수가 내소사라는 천년 고찰에서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통을 지키는 위도 사람들 전라북도 사람들에게 위도는 아름다운 섬으로 알려져 있다. 꼭 전북 사람이 아니라도 섬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위도는 한번쯤 가고 싶은 섬으로 꼽히곤 한다.위도는 전북 부안군 격포항에서부터 서쪽으로 14㎞쯤 떨어져 있는 섬이다. 14㎞라고 해서 육지의 거리로 생각해 가깝다고만 생각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격포항에서 위도 여객선터미널까지 카페리호를 타고 50여분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이달 중순 찾은 위도는 피서철이 아닌 탓에 한적한 느낌이었지만 어촌 마을 풍경은 정감있게 다가왔다. 위도는 고운 모래와 울창한 숲, 기암괴석과 빼어난 해안 풍경 등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하다. 또 위도의 빼어난 자연 경관을 소개할때 빼놓지 말아야할 식물이 있다. 바로 위도 상사화다. 상사화라는 꽃말에는 '잎과 꽃이 평생 만나지 못해서 서로 그리워하는 꽃'이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상사화는 보통 진붉은색을 띠는데 위도에서 피는 상사화는 하얀색 꽃잎을 가지고 있다.허균의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의 율도국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는 곳이 위도이기도 하다.위도는 풍광이 아름다운 섬이라는 것뿐 아니라 전통을 지키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위도에는 마을의 태평과 풍어를 비는 중요무형문화재 82호로 지정된 띠뱃놀이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위도 대리라는 어촌마을에서 보존, 계승하고 있는 띠뱃놀이는 지난 1978년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제1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버스 섬일주와 위도 해수욕장위도의 명물 중 하나를 꼽으라면 섬을 일주하는 버스를 꼽고 싶다.섬 일주래봐야 26㎞ 남짓이지만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섬 구석구석에 위치한 마을들을 찾아가기 쉽다. 마을도 지나지만 대부분은 해변과 산중턱의 해안가를 지나 창밖을 바라보며 즐기기에 좋다. 또 꼭 한 곳에 내리지 않더라도 버스를 타고 섬을 일주하며 풍광을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섬 일주 버스를 타고 만나게 되는 마을들의 이름에 '금(金)자가 들어가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파장금 벌금 논금 미영금 정금 깊은금…. '위도 12금'이라는 금자가 들어간 열두 마을은 죄다 포구다. 섬일주 버스를 몰고 있는 백은기씨는 "위도는 해발 254m의 망월봉에서 바라보는 모습도 아름답고, 섬일주 버스를 타고 마을들의 전설을 들으며 돌아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남해의 다도해처럼 바다에 섬들이 아기자기하게 떠있지는 않지만 청정한 자연과 위도만의 섬 풍경은 여행객들이 삶의 여유를 찾기에 제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종화기자

2012-03-29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전남 여수 '금오도'

전남 여수 항일암에 올라서 남해를 바라보면 수많은 섬들이 조각구름처럼 바다 위에 떠 있다.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자리잡고 있는 여수 앞바다의 수많은 섬들은 먼 발치에서 바라본 풍경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섬 안에 들어서면 섬마을 사람들의 부지런한 삶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풍경이 눈 안에 들어온다. 또 섬 안을 거닐며 남해의 깨끗한 바닷가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여수 섬여행의 매력이다. 이런 매력 속에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면서도 최소 1박2일 이상의 장시간이 필요한 여행이라는 것에 부담을 느끼곤 한다. 이번 여행 길에서는 수도권 시민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무박 2일로도 다녀올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을 다녀왔다.# 거북이 모양을 한 섬 '금오도'여수로 향하며 목적지로 정했던 곳은 금오도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등대와 동백꽃을 보기 위해 거문도로 떠나려고 여수행 기차에 몸을 실었지만, 하늘은 거문도를 허락하지 않았다. 수년 전부터 섬여행을 즐기기 시작하며 가장 장애로 떠오른 것이 날씨였다. 여객터미널에서 만나는 바다는 잔잔해 보이지만 먼 바다는 풍랑이 심해 배가 출항하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여수여객터미널까지 갔지만 파도가 심해 거문도로 가는 발길을 붙잡고 말았다.기차를 타고 5시간 가까이 달려온 상황에서 그냥 발길을 돌리기에는 아쉬웠다.이때 머릿속에 생각난 섬이 금오도였다.금오도라는 이름은 섬에 삼림이 울창해 검게 보였기 때문에 거무섬이라 부르다 한자 표기를 하면서 금오도가 되었다는 설과 금빛 거북을 닮아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옛 지도인 '청구도(靑邱圖)'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거마도(巨磨島)라는 이름으로 적혀 있기도 한데 이 또한 거무섬의 이름을 비슷한 한자로 표기한 경우라고 한다. 어쨌든 현대인들이 금오도라고 부르는 이 섬은 면적 24㎢, 해안선 길이 64.5㎞로 우리나라에서 21번째로 큰 섬이다. # 금오도 가는 뱃길에서 만난 풍경금오도로 가는 뱃길은 여수여객터미널과 돌산 신기항에서 가는 방법 등이 있다.여수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게 되면 지금은 연륙교로 인해 내륙과 연결되어 있는 돌산읍을 따라 50여분간 남쪽으로 항해한 후에야 금오도 함구미선착장을 통해 섬에 들어설 수 있다.여수여객터미널에서 50여분 거리에 있는 금오도지만 돌산 신기항에서 여객선을 타게 되면 10여분이면 금오도 여천선착장에 도착하게 된다.하지만 금오도 슬로길인 비렁길이 함구미선착장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조금 긴 항해이기는 하지만 여수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는 편이 나을 수 있다.여천선착장에서 비렁길이 시작되는 함구미까지 가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여수여객터미널과 신기항에서 금오도로 오고가는 배는 차량을 실어 나르는 카페리여서 굳이 트레킹이 아닌 해안 드라이브를 하기 위해서 섬을 찾는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다.#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해안 트레킹 '비렁길'금오도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여행객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첫 번째는 바다 낚시를 즐기기 위한 강태공들이고, 두 번째는 해안 트레킹을 즐기기 위한 여행객들이라고 한다.사람들이 북적대는 여행에 싫증을 느낀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금오도에는 '비렁길'이라는 해안 기암절벽을 따라 걷는 길이 있다.비렁길의 '비렁'은 절벽의 순우리말 '벼랑'의 전라도 사투리라고 한다.본래 비렁길은 주민들이 땔감을 구하거나 낚시를 하기위해 다니던 길을 최근 트레킹 코스로 개발했다.비렁길은 세 가지 코스로 나뉘어 있는데, 가장 짧은 코스는 함구미선착장에서 용두를 거쳐 두포까지 가는 5㎞ 구간이고, 두 번째는 첫 번째 코스에서 멈추지 않고 두포로 간 후 굴등, 직포까지 가는 8.5㎞ 구간이다.마지막 코스는 두 번째 코스에서 우학선착장까지 도보로 4㎞가량 더 가는 것을 말한다. 비렁길의 매력은 해안 절벽을 바라보며 거닐 수 있다는 점과 동백숲, 갈대밭, 작은 어촌 마을을 감상하며 거닐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어린 아이들도 함께 걸을 수 있을 만큼 힘들지 않은 길이라는 점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찾는 이유다./김종화기자

2012-03-09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제주도 부속도서' 우도의 산책로

우도는 제주도 곁에 위치한 주민 1천500여명 정도가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성산 일출봉에서 마주 보이는 작은 섬 우도는 제주도 동쪽 바다에 평탄하게 자리잡고 있다. 우도라는 이름은 소가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우도는 이름에 붙여져 있는 재미있는 모습보다는 아름다운 바다와 내륙에서는 볼 수 없는 이채로운 풍경들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성산항에서 15분 정도 배를 타고 가면 도착하는 작은 섬 우도, 봄의 향기를 느끼기 위해 다녀왔다. . #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기다리는 섬어느 항구나 갈매기들이 사람들 곁을 떠나지 않는다. 성산항에서 우도행 배를 탔을 때도 갈매기들이 사람이 주는 과자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배 주변을 분주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손에 들고 있는 과자를 다가와 낚아채듯 물고 가는 갈매기들. 여행객들이 주는 음식을 먹기 위해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보며 사람에 길들여져 이제는 자연에서 먹이를 잡는 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어쨌든 먼 발치에서 바라보던 우도가 푸른 바닷물을 가르고 빠르게 다가가고 있었다.봄이면 수많은 방송에서 마을 풍경을 소개하고 있는 유명 여행지 중 한 곳이 우도지만 배에서 내려 처음 마주한 우도는 한적한 섬마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그런 곳이었다.보통 여행지에서 만나는 해산물을 파는 사람들이 호객 행위를 하고 음식점들이 즐비한 모습과는 달리 한산했다.# 돌담길을 따라 거니는 산책 코스우도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제주도에서부터 차를 배로 싣고 와 차량으로 섬 일주를 하는 방법이 있고 항구에서 자전거 또는 스쿠터, ATV, 전동카 중 하나를 빌려 힘들이지 않고 섬을 돌아보는 방법이 있다.우도는 도보 여행에도 적합한 섬이다.손쉽게 하는 우도 도보여행은 올레길 이정표를 따라 거니는 방법이다. 올레길은 차가 많이 다니는 해안도로 대신 내륙의 소박한 돌담길을 사이로 이어져 있다. 또 하나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우도의 풍경을 거니는 방법이다. 마을 주민이 쌓아 놓은 돌담 안의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고, 바다와 맞닿아 있는 곳에 자리한 백사장과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서쪽에 위치한 산호사해수욕장 또는 홍조단괴해빈이라고 불리는 홍조류가 하얀 빛을 발산하는 풍경, 에메랄드 빛 바다를 자랑하는 하고수동해수욕장 등에서 걸음을 멈추고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우도 여행의 묘미다.해발 132m의 우도봉 정상에 올라 푸른 빛깔의 우도 잔디와 하늘,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커피숍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바다이번 여행은 날씨가 그리 좋지 않았다.제주도 여행이 그렇듯 맑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기도 하고, 강한 바닷바람으로 인해 당황하기도 한다. 우도를 방문한 이날도 날씨가 썩 좋지 않았다.우도를 한바퀴 돌아봤을 즈음 갑자기 눈과 비가 섞여 내리기도 하고, 강한 바람으로 인해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하고수동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도 그랬다.우도 여행객들이 반드시 찾는다는 하고수동해수욕장의 해녀상 곁에 다가갔을 때 날씨가 심술을 부렸다.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주변을 살폈을 때 다소 생뚱맞은 간판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하얀색의 건물에 빨간 우체통이 인상적인 '마를린먼로'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카페였다.외부도 하얗고 내부도 하얀, 온통 하얀색으로 꾸며진 카페에서 창을 통해 살며시 들어온 햇살은 내부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카페 한쪽에는 마릴린 먼로의 오래된 사진들이 걸려 있었고 창가 곁에는 작은 인형과 꽃, 액자가 자리하고 있었다.카페 안에서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에메랄드 빛을 뽐내고 있는 바닷가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였다./김종화기자

2012-02-23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강릉서 만나는 선인들의 흔적과 풍광

영동지역의 중심도시인 강릉은 수도권에서 보면 험준한 대관령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대관령에서 내려다 본 강릉은 시원한 바다와 그 곁에 자리한 넓은 해안평야가 인상적이다. 강릉은 대관령을 비롯해 태백산맥이 겨울 매서운 북서풍을 가로막고 있어 영서지역에 비해 포근하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예(濊)나라의 도읍지로 알려졌고 삼국시대에는 동해안 일대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고구려와 신라가 각축을 벌였던 곳이다. 고대부터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 받았던 강릉은 아름다운 풍광으로 선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강릉은 대관령을 비롯한 산악지형의 아름다운 풍광, 주문진과 안목 등의 항만의 분주함과 해안가의 아름다운 풍광, 서민들이 북적되는 전통시장 등 볼거리가 풍부한 지역이다. 특히 경포호 주변의 풍광은 옛 선인들이 누정을 짓고 즐겼을 만큼 아름답다. 아름다운 경치와 옛 선인들의 흔적을 찾아 이달 초 기차를 타고 강릉으로 향했다. # 조선 중기 전통 가옥을 살펴 볼 수 있는 '오죽헌'강릉의 대표적인 인물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 율곡 이이를 꼽을 수 있다.강릉에는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과 율곡이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오래된 가옥인 오죽헌이 남아 있다. 오죽헌은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별당 사랑채로 사용되던 건물이다.오죽헌이라는 이름은 율곡이 공부를 하며 사용한 먹을 대나무 숲에 버려서 대나무가 검게 변해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율곡의 사촌인 권처균의 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권처균은 이 곳을 외할머니인 용인 이씨에게서 물려 받았는데 집 주위에 줄기가 검은 대나무가 많이 자라는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고 정했고 그리고 호를 다시 집 이름에 붙여 오죽헌이 됐다고 한다.이달초 방문한 오죽헌은 마지막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관람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 오죽헌으로 들어서기 위해 자경문으로 들어서자 이내 한 겨울에도 푸르름을 뽐내는 소나무가 인상적으로 나타났다.오죽헌 곁에는 조선 중기 전형적인 양반 가옥이 그대로 복원 되어 있고 고택 서쪽에는 정조가 직접 글을 새겨 놓은 율곡의 격몽요결과 벼루가 보관 되어 있는 어제각과 율곡의 영정을 모신 사당 문성사가 있다.# 선교장과 경포호 주변의 누정들오죽헌 외에도 강릉의 대표적인 문화재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인 선교장과 경포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기 위해 지은 누정들이다. 이들 문화재들은 얼핏 지도를 봐서는 차량을 이용해야만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한적한 교외 풍광을 즐기기를 원하는 여행자라면 도보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오죽헌에서 시작해서 선교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단아한 모습의 해운정을 지나야 한다. 선교장을 둘러 본 후 경포호를 끼고 안목항을 향해서 걷다 보면 경포대를 비롯해 경호정과 상영정, 금란정이 나란히 모여 있고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방해정이라는 전통 가옥 형태를 띤 누정이 위치하고 있다.또 경포호 안에는 월파정이라는 누정이 호수와 함께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고 경포대해수욕장과 경포호 사이 해송 곁에는 석란정과 창랑정이라는 누정이 여행객을 맞아 준다. 선인들은 산수 수려한 곳에 누정을 짓기를 좋아하지만 한 장소에 이렇게 많은 누정이 지어진 경우는 드물다.강릉을 대표하는 문화재인 경포대의 경우 경포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경포대가 건립부터 지금까지 현재 위치에 계속 있어 왔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경포대는 안무사 박숙정이라는 사람이 현 방해정 북쪽에 1326년에 선립했다가 1508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다. 방해정은 삼국시대 고찰인 인월사가 있던 곳에 이봉구라는 사람이 서기 1859년에 지었다.경호정은 강릉지역 주민들이 만든 창회계에서 1927년에 지었고 경포호 안에 자리한 월파정은 1958년 기해생 동갑계원 28명이 건립한 특이한 이력을 간직하고 있다.# 경포호 주변을 재미 있게 즐기는 법경포호는 현재 둘레가 약 4㎞의 호수지만 옛날에는 둘레가 12㎞에 이르는 큰 호수였다. 경포호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경포호와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세상에 전하는 말로 호수는 옛날에 부유한 백성이 살던 곳이라 한다. 하루는 중이 쌀을 구걸하러 왔는데 그 백성이 똥을 퍼주었더니 살던 곳이 갑자기 빠져 내려서 호수로 되고 쌓여 있던 곡식은 모두 자잘한 조개로 화하였다고 한다.'겨울에 찾은 경포호는 여행객들이 많지 않아 북적이지 않아 좋다. 언뜻 날씨가 추워 거닐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수 있지만 강릉은 한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은 포근한 날씨를 보이기 때문에 괜찮다. 특히 경포호 나들이가 매력적인 것은 거닐며 중간중간 쉬는 곳들이 문화재들이라는 점이다. 경포대를 비롯해 다양한 누정, 그리고 중간중간 풍광을 즐기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설물, 한적한 하루를 만끽할 수 있는 갈대와 호수가 어우러져 있는 풍경 등이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여기다 호젓한 커피숍이 많아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안목항까지 곁에 있어 여행객들에게 다양한 즐길거리를 제공해 준다./김종화기자

2012-02-16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전북 진안 '고원길'에서 만난 한적함

그리도 많던 관광객들 없고 도시의 번잡함도 없어…봄 재촉하는 보리 막자란 잡초들이 가슴 파고 들어노령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위치한 전북 진안은 전통적인 시골 마을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익산~포항간 고속도로가 개통돼 접근이 용이해졌으며, 아름답지만 험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는 곳이다. 여러 마을이 해발고도 400m에 위치해 진안은 고원마을이 많은 곳 중 한 곳으로도 꼽힌다.그런 까닭에 진안군 여러 마을들간 교통은 강원도 오지처럼 대중교통이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을 정도로 불편하다.진안은 무주, 장수와 함께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도 유명하고 봄이 되면 벚꽃 가로수길로 유명한 마이산 일대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마이산은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산의 모양이 말의 귀를 닮았다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겨울에 찾은 진안은 관광객들의 북적임도 없었고, 도시의 번잡함도 없었다. 그저 여타 시골 마을과 같이 호젓하다 못해 쓸쓸해 보이는 전통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진안 고원길 가는 길수원에서 진안까지 가는 교통편이 없기에 수원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전주시로 향했다. 3시간가량 버스에 몸을 싣고 전주에 도착해 잠시 한옥마을에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진안 가는 버스를 탔다. 10여년 전 기억으로는 전주에서 진안으로 가며 차멀미를 할 정도로 산길을 돌아돌아 갔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길은 조금 달랐다.새로 열린 익산~포항간 고속도로로 버스가 들어섰고 한적한 편도 2차로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진안이 가까워 오자 진안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도립공원 마이산이 한 눈에 확 들어온다. 사람들은 보통 무주-진안-장수 지역을 묶어 무진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혹자는 무진장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이 지역의 환경적인 공통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첫자를 따서 부른다고 한다.하지만 무진장의 원래 의미는 좀 다르다. 본래 무진장(無盡藏)은 '다함이 없이 굉장히 많음' 또는 불교에서 덕이 넓어 끝이 없어서 닦고 닦아도 다함이 없는 법의(法義)'라는 뜻을 담고 있다. 어쨌든 고원지대인 무진장 지역은 시골 마을들이 모여 있는 작은 군이었다.# 진안 고원길과 시골 마을들진안 고원길은 평균 해발고도 400m의 진안 고원을 잇는 길이다. 총 16개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진안의 여러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있다. 이 길은 산책하듯 거닐며 진안 사람들의 삶과 아름다운 풍광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16개 구간 중 섬진강의 지류를 만나는 2구간 '고개너머 백운마을길'을 걷기로 했다. 보통 평장초등학교에서 10여분 떨어져 있는 영모정에서 시작한다. 영모정은 정면 4칸의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는 조선시대 정자로 너새(돌로 만든 너와)를 사용하여 누정을 지은 것이 특징이다. 영모정과 길을 사이에 두고 효자각이 세워져 있다. 영모정을 지나면 이내 사람 한 명 보기 힘든 시골길로 들어선다. 여름이면 수풀이 우거져 푸르름이 느껴졌을 터이지만 지금은 앙상하게 자리한 나무들이 스산하게만 느껴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거닐다 보면 이내 신전 마을에 도착하고 굳이 발뒤꿈치를 들지 않아도 쉽게 담장 안 시골집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끔은 아무렇게나 자란 잡초와 나무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폐가들도 눈에 들어온다.이곳 사람들에게 배고개라고 불리는 조금 높은 고개로 올라서니 겨울을 무색하게 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산 언덕을 타고 푸른 보리가 봄을 재촉하듯 자리하고 있었고, 지난 가을 추수하다 만 배추들이 추운 바람에도 초록색 잎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풍경 너머로 봄이면 논과 밭으로 물을 대 주는 저수지와 그 뒤로 진안의 명물 마이산이 눈에 들어왔다.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한 눈에 들어오는 이런 풍경들을 보며 은안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제법 등에 땀이 차 있었다.경운기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듯한 작은 길을 따라 거닐다 바람에 기대 춤을 추듯 하늘거리고 있는 갈대가 자라고 있는 계곡 곁에서 시원한 물 한 잔 마시며 은안마을을 눈에 담았다. /김종화기자

2012-02-10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경주 서악서원과 태종무열왕릉

○한 나라 두 역사의 공존지난해 말의 일이다. 유독 경주여행을 좋아하는 기자에게 수년간 인연을 맺어온 경주 신라문화원 진병길 원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안부를 묻던 진 원장은 기자에게 신라문화원에서 심혈을 기울여 운영하고 있는 고택체험 프로그램중 서원에서 생활하는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라고 귀띔해줬다. 신라 천년고도(古都) 경주와 조선시대 유학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서원.언뜻 들어서는 잘 조화가 이뤄지지 않는듯 했다. 조금 당황해하는 기자에게 한번 경주에 내려와서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서악서원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선도산(仙桃山)과 서악서원경주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한국에서 단일 기초지방자치단체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많은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고, 여행중 쉽게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특히 기자는 경주 남산의 수많은 불상과 폐사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의 배경이 되는 명소들을 매년 수차례 방문하곤 한다.경주시내와는 다소 떨어져 있는 선도산도 5년전 자전거 여행을 통해 방문했던 곳이다.해발 390m에 불과한 선도산에는 신라 건국설화와 관련있는 선도산 성모가 신라 개국 이전부터 이곳에 살면서 신라를 지켜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전설에 의하면 선도산 성모는 본래 중국 황제의 딸로 이름을 사소(娑蘇)라 하였는데 일찍이 신선술(神仙術)을 배워 신라에 와 머물렀다. 아버지인 황제(皇帝)가 솔개(독수리) 발에 편지를 매어 딸에게 보냈는데, 그 편지에 이르기를 "이 솔개가 머무는 곳에 집을 삼으라"고 하였다.사소가 그대로 하였더니 솔개가 선도산에 앉았으므로 사소는 그곳의 지선(地仙)이 되었고 산 이름을 서연산(西鳶山)이라 불렀다고 한다.또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는 신라의 명장 김유신의 누이동생인 보희가 왕비가 될 길몽의 장소도 바로 이 선도산이다.선도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뿐 아니라 정상에는 거대한 마애삼존불이 새겨진 암벽이 있고 모전탑인 서악동삼층탑, 진흥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 태종무열왕릉 등 다양한 문화재들이 있다.그리고 서악서원은 선도산 아래에 위치한 작은 서원이다.경상북도기념물 제19호인 서악서원은 조선시대 김유신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이었으나 지방 유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설총과 최치원의 위패도 함께 모시고 있다. 퇴계 이황이 서악정사(西岳精舍)라 이름짓고 직접 글씨를 써 현판을 달았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선도산 아래에 있었지만 임진왜란때 불에 타 1600년(선조 33년) 서원터의 초사(草舍)에 위패를 모셨고 1623년(인조 1년)에 사액서원(賜額書院:조선시대 국왕으로부터 편액(扁額)·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이 됐다.서악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정책을 펼치던 당시에도 없어지지 않고 그 명맥을 유지했다.■ 태종무열왕과 김유신서악서원의 여러 건물 중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고 있는 곳은 유생들이 공부하며 거처하는 시습당(時習堂)과 절차헌(切嗟軒) 등이다.시습당은 누각인 영귀루(詠歸樓)와 마주보고 있는데 그 위에서 서원 맞은 편을 바라보면 경주시대의 넓은 평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처음 신라와 서악서원이 잘 조화가 이뤄지지 않는듯 했었지만 막상 서원에서 모시고 있는 위패의 주인공이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기여한 김유신 장군이라는 것을 듣고서야 비로소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참 재미있는 것은 선도산 자락에 잠들어있는 사람들이 신라의 삼국통일과 관련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서악서원에서 200m 거리에 위치한 태종무열왕릉, 또 그의 아들인 김인문의 묘 등이 바로 그것이다.태종무열왕은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을 이뤄내는 인물이고 김인문은 나당연합군을 구성할 수 있도록 당나라와의 외교를 담당했던 인물이다.서악서원에서 태종무열왕릉으로 가는 길은 작은 마을을 지나게 되어 있는데, 농기계가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시골집 풍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여행객들이 낯설지 않은지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따라 다니기도 한다.한가로운 마을 풍경을 감상하며 10여분 거닐다보면 잘 가꾸어진 태종무열왕릉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취재지원/경주 신라문화원(http://www.silla.or.kr/)/김종화기자

2012-01-26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영동~서울 잇던 유일한 통로 '대관령 옛길'

영동 지역과 영서 지역을 이어주는 대관령(大關嶺)은 해발 832m의 높은 고개다.대관령(大關嶺)은 한자 뜻에서 알 수 있듯이 큰고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강원도 사람들은 대관령을 지대가 험난해 대굴대굴 구른하고 해서 '대굴령'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대관령의 총연장은 13㎞인데 고개의 굽이가 99개소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요즘 같이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대관령이 한반도 남쪽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소개되기도 한다.대관령 옛길은 예부터 영동과 영서지역을 잇는 중요한 길이었지만 1975년 영동고속도로의 개통과 2001년 대관령을 관통하는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이 거닐던 길대관령은 영동고속도로가 개통하기 전 영동지역에서 서울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한 까닭에 대관령 옛길에는 선조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조선시대 강릉에서 배출한 대표적인 유학자인 율곡 이이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이용했던 길도 이 길이고, 신라의 명장 김유신이 무술을 연마한 장소도 이곳으로 알려져 있다.또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친정어머니를 그리며 걸은 길이기도 하고, 송강 정철이 이 길을 거닐며 관동별곡을 쓰기도 했다. 조선시대 풍속화의 대가 김홍도의 대관령 그림도 이 대관령 옛길에서 그렸다.수백년이 지난 지금 대관령 옛길은 사람들의 편리에 의해 개척된 새로운 길로 인해 잊히고 있지만 한적한 여행, 또는 한겨울 눈꽃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인기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대관령을 이야기하면 쉽게 떠오르는 풍경이 양떼 목장의 평화로움이다. 양떼 목장은 봄과 여름에는 푸른 초원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의 풍경이, 가을에는 석양이, 겨울에는 소복이 쌓인 눈이 여행객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대관령의 또 다른 볼거리는 눈꽃이다. 겨울 내내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는 대관령의 기후적인 특징으로 인해 겨우내 내린 눈이 녹지 않아 소복이 쌓여 있다. 여기에다 동해안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타고 날리는 눈이 길가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에 쌓여 있는 모습은 절경이다. 또 대관령에서 내려다보는 강릉 시내와 동해안 풍경은 여행객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대관령 옛길의 다양한 풍경대관령 정상에 위치한 대관령휴게소 주차장은 선자령과 대관령 옛길을 이용하기 위해 찾은 여행객들의 차로 가득 차 있었다. 많은 여행객들이 대관령을 찾는 것은 이상 기온으로 내륙 저지대에서는 눈구경을 쉽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관령 옛길 트레킹은 눈 쌓인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겨울 산행시 사용하는 아이젠과 스패치를 반드시 착용한 후 시작해야 한다.장비를 착용한 후 주차장 맞은편으로 이동해 양떼 목장 방면 길로 들어섰다. 대관령 휴게소를 찾은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풍력발전소가 있는 선자령 방면으로 가는 코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정표를 잘 보고 길에 들어서야 한다. 막상 길에 들어서면 갈림길에서는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어 길을 잃어 버릴 염려는 없다. 양떼 목장을 지나 국사성황당을 지나면 통신탑 부근에서 한떼의 여행객 무리를 만나게 된다.여행객들과 눈인사를 한 후 곧바로 이정표를 따라 내리막길로 들어서니 무릎까지 쌓여 있는 눈밭 사이에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길로 들어선다.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수북이 쌓인 눈 탓에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하며 나무들 사이로 난 작은 길을 한참 거닐면 반정에 도착한다.반정과 옛 주막터 사이에는 경사가 심해 긴장하기도 하지만 길가 중간중간에 설치되어 있는 작은 안내판에 적혀 있는 대관령 옛길과 강릉에 대한 글귀들이 지루하지 않게 한다.주막터에는 'ㄱ'자 형태의 통나무 초가집 한 채가 들어서 있다. 과것길에 오른 선비나 영동과 영서를 오가며 장사를 하던 상인들이 목마름과 배고픔을 달래고, 고단한 몸을 쉬어가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주막터를 지나면 계곡을 따라 거닐게 된다. 계곡 곁에 쌓인 눈과 계곡 물소리가 지친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김종화기자

2012-01-05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미당 서정주의 고향-전북 고창 '질마재길'

서정주는 우리말을 다루는 천부적인 감각이 뛰어난 시인이다. 일본 식민지시대인 1915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난 미당은 2000년 12월 24일 눈을 감는다. 그가 살아온 시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미당은 일본 식민지시대를 거쳐 광복, 6·25, 4·19와 5·16 등을 거쳐 2000년까지 한국사에 있어서 가장 격동적이었던 시대에 살아 왔다. 친일문제, 군부독재와 유신독재 치하에서의 처신 등으로 인해 논란의 중심이 됐던 인물도 미당이다.논란의 중심이 됐던 미당이지만 한국문학사에 있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을 떠나 한국 문학사에서 토속적이고 서정적인 그의 시풍에 영향을 준 질마재로 떠나 그가 거닐던 길을 거닐어 봤다."혼탁했던 시대 이곳의 맑은 기억, 미당 詩세계 큰 의미"# 동생 서정태 시인이 말하는 미당선운리 미당시문학관 곁에는 미당의 동생인 서정태(89) 시인이 거주하고 있다.서정태 시인은 민주일보(民主日報), 대동신문(大東新聞), 삼남일보(三南日報), 전북신문(全北新聞) 등의 기자로 활동했으며 예술부락(藝術部落), 가정신문(家庭新聞) 등에 시를 발표했다. 그후 1949년부터 각 일간신문(日刊新聞) 및 문예(文藝), 백민(白民), 신천지(新天地) 등에 다양한 시를 발표했던 문인이기도 하다. 고창군과 미당시문학관 관계자의 소개로 찾은 서정태 시인은 8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정하게 객지인을 반갑게 맞아 줬다.홀로 지내고 있는 방안으로 손님을 안내한 서정태 시인은 미당이 8살이 되던 해까지 이곳 고창에서 지냈다고 말했다. 서정태 시인은 "미당과 나는 8살 터울인데 한 방을 쓰며 성장했다"며 "선운리에서는 부안군 줄포면에 있던 줄포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살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미당은 천자문을 100일 만에 외울 정도로 지역에서는 신동으로 지냈다"며 "기억력이 좋은 미당이 혼탁했던 시대에 즐거웠던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던 선운리에서의 어린 시절은 미당의 시 세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서정태 시인은 "논란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의 시는 참 아름답다"며 "한국적인 시상을 그린 그의 작품을 그대로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화향기-질마재 신화에서국화 향기 속에는 고향이 깔리네. 아내여 노자 없어 우린 못 가고 아들하고 딸한테 미뤄 당부한 고향의 옛 산천이 깔려 보이네. 국화 향기 속에는 열 두 발 상무. 한국의 멋쟁이 농부라야만 국으로 쑥으로 공짜로라도 하늘에 그만큼한 짱구머리 춤일세. 국화 향기 속에는 미어진 창호지. 그 사이 스며드는 서리 찬 바람. 약도 없이 앓으시는 우리 어머님 약 없이도 나을 거라 누워 계시네. # 미당 서정주와 질마재미당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전라북도 고창 선운리 진마마을이다. '선운리'. 지역명만 생각했을 때 선운리는 선운사라는 백제시대 천년 고찰이 있는 지역으로 생각하기 쉽다.지금의 지형으로는 언뜻 이상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선운리는 옛 선운포구가 있던 곳을 말한다. 미당은 8살이 되던 해 미당이 줄포보통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가족이 부안군 줄포로 이사하기 전까지 살았다.질마재의 '질마'는 소나 말의 안장을 뜻하는 '길마'의 사투리다. 질마재는 양쪽 언덕 사이에 있는 안장 같은 고개를 의미한다. 줄곧 외지에서 성장했던 미당이지만 그의 시 세계에서는 고향인 질마재가 뿌리깊게 자리잡았던 것 같다.미당이 1975년 간행한 자신의 대표적인 시집의 제목을 '질마재'라고 지은 데서 알 수 있다. 이 '질마재'라는 시집에는 미당의 고향 마을 이야기가 담겨 있다.# 국화 향기를 그리며 거닌 질마재길눈이 오는 날 미당의 생가와 그를 추모하는 미당시문학관을 방문하기 전 고창군 선운리 진마마을을 찾았다.한겨울로 들어선 날씨 탓인지 마을 초입에 심어져 있는 국화꽃은 시들어 있었지만 마을사람들이 미당을 얼마나 그리는지는 마을 초입에서부터 미당시문학관, 생가 주변까지 국화를 심어 놓은 것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미당시문학관은 여느 문학관과 달리 시인의 업적을 늘어 놓지 않았다. 찾는 이들이 그의 시 세계를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미당의 문학적인 업적을 늘어 놓기보다는 대표적인 시들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친일 행적으로 비판 받던 일본 식민지시대 당시 일본을 찬양했던 시와 군부독재시절 전두환씨의 생일을 축하하는 시까지 그대로 걸려 있다.질마재로 가기 위해 미당시문학관을 나와서 오른편에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아스팔트길을 10여분 거닐었을 때 이정표가 포근한 황톳길로 안내했고 고즈넉한 숲길을 따라 거닐자 작은 재가 나왔다. 바로 질마재였다.질마재는 예전 포구가 있었을 당시 마을 사람들이 해산물과 소금 봇짐을 지고 정읍이나 장성 장터로 가기 위해 이용하던 길이다. 질마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숲길로 들어서서 30분가량 발걸음을 옮기면 연기저수지의 제방을 따라 강바람을 맞으며 거닐게 된다. 연기저수지 밑에는 작은 마을이 자리하고 있고 그 앞에는 풍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김종화기자취재협조/고창군·미당시문학관※ 경인일보 홈페이지를 통해 다양한 이미지와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11-12-15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 / 시인 묵객들 노닐던 강원 동해시 '무릉계곡'

동양에서 아름다운 명승지를 표현할 때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고 부르곤 한다. 무릉도원의 한자 뜻을 풀어보면 복숭아꽃 피는 아름다운 곳이란 뜻이다. 중국 동진(東晉) 때의 시인 도잠(자는 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유래되어 쓰는 단어다. 중국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옛 선인들도 아름다운 곳을 지칭할 때 '무릉'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부르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강원도 동해시에 위치한 무릉계곡이다. 두타선과 청옥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계곡을 이룬 무릉계곡은 두 산의 험한 지세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다운 곳으로도 꼽힌다.■ 무릉계곡으로 향하는 시골길일반적으로 무릉계곡이라고 하면 두타산 입구 주차장부터 시작해 용추폭포까지를 생각한다. 동해 사람들은 이곳 무릉계곡을 '용오름 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지 사람들에 의하면 계곡 곁에 있는 삼화사 창건 당시 약사삼불 삼형제가 서역에서 이곳으로 용을 타고 왔다는 전설에서 유래됐다고 한다.두타산 정상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용오름 길을 따라 북동 방향으로 흘러내려 동해시의 전천으로 유입되어 동해로 흐른다. 무릉계곡의 하류는 삼화역 부근 쌍용양회 공장 곁의 계곡이기 때문에 이곳부터 시작해야 제대로 거닐었다고 할 수 있다.이번 여행은 바로 이곳부터 시작했다. 동해시에서 시내버스로 삼화역까지 이동한 후 계곡 곁을 따라 거닐었다. 첫 발을 내디딘 후 20여분 정도까지는 평지 길을 걸을 수 있어 편안한 느낌이었지만 이내 언덕길로 들어선다. 갑자기 나타난 언덕으로 인해 힘든 느낌도 들지만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깎은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눈길을 가까운 곳으로 옮기니 시골집 담장 안에 까치밥으로 남겨둔 붉게 물든 감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곁에 가을걷이를 마친 밭이 정겹게 느껴졌다. 발길을 옮기는 길 가까이에는 재잘거리며 흐르는 계곡이 여행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시인 묵객이 즐겨찾던 무릉계곡계곡을 곁에 두고 2시간가량 거닐었을 때 비로소 무릉계곡 초입을 알리는 주차장에 도착했다.무릉계곡 초입도 여느 명승지와 마찬가지로 음식점이 줄을 이어 들어서 있었고 여행객들로 붐볐다. 입장권을 구입한 후 계곡을 따라 낙엽을 밟으며 5분 정도 들어가자 무릉반석이 나타났다. 무릉반석에는 옛 선인들이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글씨로 새겨 놓은 암각서가 남아 있다. 암각서에는 도교 신선사상을 이야기하는 '무릉선원(武陵仙源)', 불교 또는 유교사상을 의미하는 '중대천석(中臺泉石)', 불교사상을 나타내는 '두타동천(頭陀洞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무릉반석 곁에는 삼척 출신의 최인희 시인이 1950년 4월 '문예'지에 발표한 낙조라는 시가 새겨져 있는 시비가 있다.낙조(최인희)소복이 산마루에는 햇빛만 솟아오른 듯이솔들의 푸른빛이 잠자고 있다골을 따라 산길을 더듬어 오르면나와 더불어 벗할 친구 없고묵중이 서서 세월 지키는 느티나무랑운무도 서렸다 녹아진 바위의 아래위로은은히 흔들며 새어오는 범종소리백암이 씻겨가는 시낼랑 뒤로 흘려보내고고개 넘어 낡은 단청산문은 트였는데천년 묵은 기왓장도푸르른채 어둡나니무릉반석을 지나면 월정사의 말사인 삼화사에 도착하게 된다. 삼화사는 신라시대 자장이 흑련대라는 절을 지은 것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삼화사를 지나고 나면 한적한 오솔길이 나타나고 그 길의 끝에는 시원한 물줄기를 자랑하는 쌍폭포와 용추폭포가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동해 까막바위 대게골목무릉계곡 여행을 마치고 동해 묵호항으로 발길을 옮겼다. 동해까지 와서 산만 보고 가는 게 아쉽게 다가와 바다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런 생각이 들어 묵호항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한 후 소원 비는 바위로 알려져 있는 '까막바위'까지 거닐며 바다를 보기로 했다.묵호에서 시작해 까막바위까지 거닐며 예전에 보지 못했던 풍경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영덕의 특산품으로만 알고 있던 대게를 파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까막바위에 도착했을 때 동해에서도 대게 깐풍기로 유명한 '돼지대게(033-534-3722)'라는 음식점을 찾았다. '돼지대게'는 2~3인용 대게 깐풍기(사진), 대게찜, 대게탕으로 구성되어 있는 코스 요리로 유명하다. '돼지대게' 신여원 사장은 "삼척 다음으로 대게가 많이 잡히는 곳이 동해지만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며 "동해지역에서 대게는 새롭게 떠오르는 먹거리"라고 자랑했다./김종화기자

2011-12-01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시인 정지용의 생가 충북 옥천구읍

한국 순수 서정시를 개척한 정지용의 '향수'. '향수'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담고 있다. 향수는 정지용 시인이 자신이 태어났던 농가마을을 생각하며 쓴 시로 알려져 있다. 한국적인 서정문학이 자리 잡히기 전에 발표된 이 작품 속에는 공간적, 청각적, 시각적, 촉각적인 것들을 상상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기법이 활용되고 있다. 그 중 '금빛 게으른 울음'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도란도란 거리는 곳'이라는 표현을 통해 고향을 그리워하던 정지용 시인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늦은 가을 정지용 시인이 자신의 시세계에서 표현했던 그리운 마을, 경북 옥천 구읍으로 여행을 떠나 본다.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중략)흙에서 자란 내마음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는 곳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이하 생략)# 시간이 멈춰져 있는 듯한 아늑한 마을 '옥천'정지용 생가를 방문하기 위해 도착한 옥천역은 한산하다 못해 조금은 허전한 느낌이 들 정도로 조용했다. 보통 역사 앞은 분주한 느낌이 들지만 차량도 그리 많지 않았고 기차를 타기 위해 오가는 사람들도 분주하지 않았다.옥천 구읍으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고 도보로도 가능하다. 급한 여행이 아니라면 옥천읍내 풍경을 즐기기 위해 걸어서 여행을 떠나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옥천읍내에는 1904년에 건립한 옥천성당이 위치해 있어 들러 보는 것도 좋기 때문이다.지금 남아 있는 옥천성당은 1945년 무렵 철근콘크리트 기와집으로 지어졌다. 옥천성당에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5분 정도 거닐면 정지용 시인의 시세계를 조각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조성한 공원이 나온다. 이 공원을 지나고 나면 옥천 구읍으로 들어서게 된다. '옥천 수예점', '옥천 세탁소', '옥천양품점' 등 지역 이름을 딴 가게를 보며 이 곳 사람들이 지역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 정지용이 그리워 하던 옥천구읍옥천 구읍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옥천 구읍은 옥천역이 들어서기 전 옥천 지역의 중심이었던 구도심 지역을 말한다.옥천 구읍 입구로 들어서면 1909년 사립학교로 지어진 죽향초등학교가 나온다. 죽향초등학교에는 1936년 목조건물로 지어진 옛 교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또 학교 한편에는 육영수여사 휘호탑과 정지용 시비, 죽향리사지삼층석탑 등도 자리하고 있다. 죽향초교를 지나면 한눈에도 오래된 집이라고 느껴지는 김기태 고택 , 서예가 김선기씨의 한옥집 등 오래된 한옥들이 눈에 들어온다.특히 여행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간판이다. 정지용 생가로 가기 위해 지나는 거리에 자리한 상점들의 간판은 정지용 시인의 시 구절들을 활용해 이름이 지어졌다.이런저런 간판과 그 주변에 적혀 있는 정지용 시인의 시 구절들을 읽으며 10여분쯤 거닐면 그의 문학세계를 살펴 볼 수 있는 문학관과 생가가 나온다.# 한국 서정시를 개척한 정지용정지용 시인은 1902년 태어나 한국사에 있어서 가장 치욕적이고 어두웠던 시기인 일제식민지 시대 때 문인으로 활발히 활동한다. 그는 고향에서 초등 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중등과정을 이수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귀국한다. 정지용 시인은 휘문고보 재학시절 교내 문예지 창간 작업에 참여하며 활동하기도 했고 도시샤대학 시절에는 '학조' '조선지광' '문예시대' 문예지에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정지용의 시단 활동은 김영랑(金永郞)과 박용철(朴龍喆)을 만나 시문학동인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지용이 첫 시집을 간행하자 그를 모방하는 신인들이 많아 '지용의 에피고넨(아류자)'이 형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가 6·25전쟁 중 실종되며 더 이상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없게 된다. /김종화기자

2011-11-17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사상과 문학이 싹튼 전라남도 강진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로 알려져 있는 강진은 현대문학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영랑 김윤식(1903~1950)의 고향이다.'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시로 잘 알려진 영랑 김윤식은 잘 다듬어진 언어에 감각적인 문구로 순수 서정시를 개척한 인물이다.호남의 부유한 지주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서기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한다.일본에 나라가 넘어가는 것에 분개해 3·1운동 때에는 강진에서 의거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바로 다음해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학원에서 공부하던 중 C.G.로세티, J.키츠 등의 시를 탐독해 서정의 세계를 넓혔다. 하지만 혼란했던 시대에 주권을 빼앗겨 분개했던 그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완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그의 마음속에는 민족 정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기도 했던 것 같다.바로 그런 그의 마음은 다음의 시에서 찾아 볼 수 있다.문허진 성터에 바람이 세나니가을은 쓸쓸한 맛 뿐이구려히끝히끝 산국화 나붓기면서가을은 애닯다 소색이느뇨-문허진 성터(지은이:김영랑)# 민족 애환과 문화의 자부심을 지키고 싶었던 영랑영랑을 다시한번 떠올린 것은 단풍이 막 물들어 갈 무렵이었다.몇년 전인가 우연히 들렀던 영랑 생가 부근에서 무너진 성터를 보며 가슴 아파했던 영랑의 시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무너진 성터와 단풍.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가을 정서에 맞지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이런 생각에서 찾은 영랑 생가는 강진 읍내에서 멀지 않았다.강진종합버스터미널에서 나오자마자 영랑생가 가는 이정표가 보였고 채 2㎞도 가지않아 아담한 담이 예쁜 길 끝에 단풍이 물들어가고 있는 영랑 생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영랑 생가는 영랑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영랑 생가는 이엉을 엮어 올린 초가지붕의 가옥이지만 본채와 사랑채·문간채, 다양한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조경이 아름다운 전통가옥이다.영랑 생가 입구에는 큰 은행나무가 있는데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잎이 여행객들을 반갑게 맞아준다.이 곳에서 영랑은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제야',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아름다운 작품을 남긴다.# 민족 문화의 자부심을 곱씹던 사의재 가는 길영랑 생가에서 멀지않은 곳에는 사의재(四宜齋)라는 다산이 강진에 유배와 첫 4년간 머물렀던 주막이 있다.영랑 생가와 사의재 가는 길은 한적한 시골 골목길이다.가을인 탓에 길가 돌담에는 붉게 물들어가는 덩굴과 노랗게 익어가는 탱자 열매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또 높지 않은 담장 안을 살짝 들여다보면 촌부가 바지런히 관리한듯한 아담한 텃밭과 장독대, 그 뒤로는 먹음직스럽게 열린 감이 풍성한 감나무가 눈길을 끈다. 이런 한적한 길을 30여분간 거닐면 비로소 사의재가 나온다.여행길에서 만난 사의재는 최근 복원한 건물이지만 작은 소품까지 당시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기 위해서 노력한 흔적을 느낄 수 있다.사의재란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이라는 뜻이다. 다산이 지은 '사의재기(四宜齋記)'에는 당시 그가 생각했던 4가지 생각을 적고 있다.생각은 마땅히 맑게하되 맑지 못하면 곧바로 맑게 해야하며용모는 마땅히 엄숙하게 하되 엄숙하지 못하면 곧바로 엄숙해야 한다.말은 마땅히 과묵해야 하며 말이 많으면 곧바로 과묵해야 한다.행동은 마땅히 중후하게 하며 중후하지 않으면 중후하게 하라.다산은 사의재에서 '경세유표(經世遺表)' 등을 집필하고 제자들을 교육했다. 일제식민지시대 유학을 다녀온 후 고향으로 낙향한 영랑은 돌담길을 따라 사의재를 향하며 아마 다산이 유배오며 아파했던 마음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글·사진:김종화기자 ※기사 관련 동영상은 경인일보(www.kyeongin.com) 홈페이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11-11-03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김유정 소설과 만나는 '실레이야기길'

올해 봄 광주광역시로 새로운 여행 연재물 소재를 찾기 위해 무작정 떠난 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 오래된 벗을 만났고 그가 전해 준 한 권의 책. 책의 제목은 최인호 작가의 에세이집 '인연'이었다.인연(因緣). 책 속에서 최인호 작가는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듯 독자들에게 자신이 살아 온 중요한 순간들을 들려 주고 있었다. 그가 들려 준 자신과 인연을 맺어 온 아름다운 순간들 중 한 페이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페이지에는 최인호 작가가 느낀 김유정이라는 한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최인호가 사랑한 김유정을 찾아서김유정의 흔적이 남아 있는 실레마을은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에 위치해 있다. 춘천 외곽에 있는 탓에 자가용을 이용해 접근하기도 편하지만 기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서울 상봉역에서 경춘선을 타고 경기도 동부지역의 한적한 풍광을 즐기며 달렸을 때 한국 최초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은 김유정역에 도착했다. 강촌역과 남춘천역 사이에 위치한 김유정역은 1939년 7월 신남역으로 영업을 시작했고 2004년 12월 1일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됐다.김유정역은 최근 신역사가 들어서 있어 깔끔한 분위기였지만 신역사 옆에는 구역사가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번 여행은 김유정역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김유정역을 나와서 구역사를 둘러본 후 맞은편 샛길로 들어서서 5분 정도 거닐면 김유정 생가가 나온다.김유정 생가에는 그의 문학세계를 살펴 볼 수 있는 문학기념관이 있고 팔각정이 딸려 있는 작은 연못과 조각상, 생가가 옹기종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김유정의 실레마을이 관심을 끄는 것은 꼭 기념관과 생가를 복원해서는 아니다.마을 뒤편에 위치한 금병산 자락에 김유정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생가터 앞에는 김유정이 금병의숙이라는 야학을 열기 전 움막을 짓고 야학을 하던 곳이 나온다. 현재 움막터에는 김유정과 관련한 다양한 행사를 열기 위해 옛 집을 복원하고 무대를 만들어 놨다. 생가에서 나와 이정표를 따라 거닐다 보면 한적한 농촌마을의 담장길과 팽나무가 지켜 주는 정겨운 들판길을 거닐게 된다. 여기에서 금병산 자락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울창한 침엽수가 아름다운 산길로 들어서게 되고 나무로 된 작은 안내판에 '들병이들이 넘어오던 눈웃음길'이라는 팻말이 나타난다.이번 문학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10여분쯤 거니니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로 들어서게 되고 이후 김유정의 대표적인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실레마을과 관련한 장면들을 설명하는 안내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도련님이 이쁜이와 만나던 수작골길', '춘호처가 맨발로 더덕 캐던 비탈길',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 먹은 고갯길' 등.하지만 이런 안내판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풍진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포근함이다. 낙엽진 길을 밟는 느낌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실레이야기 길 비탈진 길에서는 역사 주변에 자리한 마을들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이런 한적한 길을 2시간 남짓 거닐면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최인호가 수필을 통해 소개한 김유정과의 인연책 속에서 최인호는 암 투병 중 가까운 지인과 함께 춘천을 다녀오던 중 '김유정 마을'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그 곳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김유정 생가에서 그가 본 것은 대학생 시절 자신의 감성을 자극했던 김유정의 편지였다.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 있다. 그리고 맹열이다.…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달리 도리를 차리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는 일으키기 어렵겠다.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홍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중략)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해 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두어권 보내 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역하여,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주마. 하거든 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중략)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보겠다.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쏘구리 돈을 잡아 먹는다.돈, 돈, 슬픈 일이다."최인호는 대학생 시절 이 편지를 읽고 며칠간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최인호가 '인연'이라는 수필집에서만 병마와 힘겹게 싸우던 김유정의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월간 샘터에 25년여간이나 연재한 소설 '가족'의 제402회에 김유정의 편지를 인용하며 '그 편지를 읽을 때마다 나는 펑펑 울었다'며 병마와 싸우는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기도 했다. /김종화기자

2011-10-27 김종화

[이야기가 있는 길]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가평 남이섬과 북한강변'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가을이 성큼 다가 왔음을 알려 준다. 하지만 도심의 하루하루는 가을이 왔음을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많다. 가을을 만끽하며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기 위해 가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북한강변 남이섬으로 발길을 옮겨 봤다. 남이섬은 조선 중기 명장 남이 장군의 묘소가 있는 것에서 연유해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원래는 홍수 때에만 섬으로 고립되던 곳이지만 청평댐의 건설로 완전한 섬이 됐다. 이런 연유로 가평에서 유람선을 타고 10여 분간 강을 건너야 남이섬에 들어갈 수 있다. 한류 열풍을 이끈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 장소로 알려지며 연인들의 낭만적인 데이트코스에서 한류 관광의 중심지로 성장한 남이섬. 또 유원지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호젓한 일상을 보내기 위해 북한강변으로 산책을 나섰다.■ 아름다운 상상과 동화가 있는 '나미나라공화국'연인들의 낭만적인 데이트 코스 또는 국내 대표적인 한류 관광지 남이섬.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유람선이 운항하는 가평 나루터에는 '나미나라공화국 입국장'이라는 재미 있는 문구가 있었다. 입국장이라고 쓰여진 곳에서 배를 타고 10여분쯤 강변을 가로질러 갔을 때 남이섬이 나타났다.요즘은 스산한 겨울에도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룬다더니 평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고 있었다.남이섬은 지난 2005년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남이섬세계책나라축제'가 열린 이후 지난 2008년까지 4년 동안 책나라 축제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운전을 할 줄 모르는 뚜벅이 인생인 필자가 여러 여행지 중 불편을 무릅쓰고 굳이 버스를 타고 2시간이 넘는 길을 달려간 이유는 책을 읽어 볼까 해서다.별로 거창한 이유는 아니다. 단지 바쁘다는 이유로 손에서 책을 놓고 있는 거 같아 가을을 맞아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이나 읽어 보자는 단순한 이유였다.낙엽이 떨어지는 호젓한 나무의자에 앉아 책을 들고 있으면 꽤나 운치 있어 보일 것 같았다.■ 자연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남이섬"책을 먹고 마시고 베고 깔고 날리며 책속에서 뒹굴어라…."남이섬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는 한 전시관에서 발견한 문구다.남이섬은 아름다운 자연으로 인해 어린이의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해 주는 곳이었다. 굳이 겨울연가를 촬영한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과 찻집을 찾지 않더라도 섬 곳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옆구리에 끼고 온 책을 자연스럽게 펴서 읽게 만드는 곳이었다.또 하나 귓가에 꼽고 있던 MP3에서 나오는 전자음을 끄고 나무를 간질이거나 잔잔한 강변에 여울지게 하는 바람의 장난기 넘치는 소리를 감상하게 하는 곳이었다.활자에 지친 눈을 숲속에 난 오솔길로 옮겼을 때 중년 부부들이 대화를 나누며 산책하는 모습과 젊은 연인들이 자전거를 타며 깔깔대고 지나는 모습을 보며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산책길에서 만나는 풍경도 아름답다.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과 가을을 상징하는 갈대가 파란 하늘 아래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나무로 아무렇게나 만든 거 같은 헛다리, 은행나무와 잣나무길 등 거닐며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다가온다.마음껏 거닐며 자연을 만끽하고 난 후 길가의 나무 의자와 작은 정자, 잔디밭에서 갖는 휴식은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남이섬의 매력은 이런 여유로운 휴식에 더해 각종 전시실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 드는 아늑한 찻집과 편의시설들은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강변에서 하루를 돌아보는 여유2시간 남짓한 시간을 들여 찾은 가평에서 만끽한 여유로운 하루를 두고 번잡한 도시로 가려니 아쉬웠다. 강변에서 노을진 풍경을 보고 싶은 충동도 일었고, 가로등이 켜진 강가에서 땅거미가 진 강변 풍경도 감상하고 싶었다. 이른 아침 강물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물안개도 보고 싶었다.가을 강변에 대한 환상에 빠진 필자는 남이섬에서 멀지 않은 펜션 중 강가에 위치한 호젓한 곳을 찾았다. 펜션들 대부분이 조경이 예쁘게 꾸며져 있지만 인공적인 조경보다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었다.이런 생각에 강가에 놓여 있는 길을 따라 2시간 정도 거닐어 찾은 곳이 남이섬 강변펜션이다. 좀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펜션 앞 작은 선착장에서는 수상스키나 바나나 보트를 타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고, 넓은 주차장 곁에는 바비큐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준비 되어 있었다.무엇보다 맘에 들었던 것은 강변 산책을 할 수 있는 점과 주인 대신 인사를 하려는 듯 함께 여행객을 맞아 주는 6마리의 고양이 가족이 좋았다. 펜션에 짐을 풀고 강가로 다시 나왔을 때는 달빛이 강물을 비추며 멀리서 찾은 여행객들의 산책을 돕고 있었다.여행객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뒤로하고 선착장에 앉아 강물 흐르는 소리와 달빛이 강물에 부서지는 모습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김종화기자※취재지원 :남이섬 강변펜션(http://www.namisumpension.com)

2011-09-29 김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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