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권

고덕~서안성 송전선로, 갈등 넘어 상생으로

한전·삼성전자·원곡면대책위 MOU 체결안성시 불참 '반쪽짜리 타협' 일부 여론도'345kV 고덕~서안성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둘러싼 갈등(1월 24일자 10면 보도)이 해소됐다.한국전력공사와 삼성전자, 안성시 원곡면주민대책위원회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김학용(자유한국당·안성)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345kV 고덕~서안성 송전선로 건설사업 상생협력 및 안성시 원곡면 산하리 지역 송전선로 경과노선도 상생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협약에는 김 의원이 내놓은 중재안인 '임시 가공선로와 지중화 사업 동시 추진', '공사기간이 짧은 임시 가공선로가 2023년 건립되면 송출을 시작하되 2025년 지중화 사업이 완공되면 임시 가공선로는 즉시 철거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총연장 23.86㎞에 달하는 고덕~서안성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사용자 부담원칙'에 따라 삼성전자가 사업비 3천490억원 전액을 부담하고 해당 구간 지중화 건설에 드는 비용 482억원도 삼성전자가 부담하기로 했다.하지만 이 같은 합의에도 일부에서는 송전선로 건설사업 인·허가권을 가진 안성시가 이번 양해각서 체결에 참여하지 않은 점을 들어 '반쪽짜리 타협'이란 여론도 일고 있다. 안성시의 입장은 지금까지 주민들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삼성협력업체 관내 입주와 상수원보호구역 해제' 등의 해결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해당 사업은 한전이 서안성변전소에서 평택 고덕변전소까지 17㎞ 구간에 38~48기의 철탑을 세워 345kV의 고압송전선로를 연결하는 사업이다. 안성/민웅기기자 muk@kyeongin.com12일 서울 국회 김학용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한국전력공사, 삼성전자, 안성시 원곡면주민대책위 관계자들이 '345kV 고덕~서안성 송전선로 건설사업 상생협력 및 안성시 원곡면 산하리 지역 송전선로 경과노선도 상생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김학용 국회의원실 제공

2019-03-12 민웅기

'고덕~서안성 송전선로 건설사업' 지역 갈등 해소…김학용 의원 중재

'345kV 고덕~서안성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둘러싼 갈등(1월 24일자 10면 보도)이 해소됐다.한국전력공사와 삼성전자, 안성시 원곡면주민대책위원회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김학용(자유한국당·안성)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345kV 고덕~서안성 송전선로 건설사업 상생협력 및 안성시 원곡면 산하리 지역 송전선로 경과노선도 상생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협약에는 김 의원이 내놓은 중재안인 '임시 가공선로와 지중화 사업 동시 추진', '공사기간이 짧은 임시 가공선로가 2023년 건립되면 송출을 시작하되 2025년 지중화 사업이 완공되면 임시 가공선로는 즉시 철거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총 연장 23.86㎞에 달하는 고덕~서안성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사용자 부담원칙'에 따라 삼성전자가 사업비 3천490억원 전액을 부담하고 해당 구간 지중화 건설에 드는 비용 482억원도 삼성전자가 부담하기로 했다.김 의원은 "지난해 1월 저의 제안으로 갈등조정협의회가 구성된 뒤 28차례 회의를 거쳤음에도 이견으로, 갈등 장기화가 우려됐다"며 "갈등 장기화로 인한 여러 사회적 비용 발생보다는 일시적인 송전탑 건립·철거를 추진하는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고 국익을 위해 주민과 한전, 삼성이 서로 한발씩 양보해 준 덕분에 해묵은 갈등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하지만 이 같은 합의에도 일부에서는 송전선로 건설사업 인·허가권을 가진 안성시가 이번 양해각서 체결에 참여하지 않은 점을 들어 '반쪽짜리 타협'이란 여론도 일고 있다. 안성시의 입장은 지금까지 주민들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삼성협력업체 관내 입주와 상수원보호구역 해제' 등의 해결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해당 사업은 한전이 서안성변전소에서 평택 고덕변전소까지 17㎞ 구간에 38~48기의 철탑을 세워 345kV의 고압송전선로를 연결하는 사업이다. 안성/민웅기기자 muk@kyeongin.com12일 서울 국회 김학용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김 의원 중재로 한국전력공사, 삼성전자, 안성시 원곡면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345kV 고덕~서안성 송전선로 건설사업 상생협력 및 안성시 원곡면 산하리 지역 송전선로 경과노선도 상생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김학용 국회의원실 제공

2019-03-12 민웅기

[100년 전 그 날, 경인지역 3·1운동의 흔적·(3)]'미륵과 함께한 민중의 힘' 안성

읍내·죽산등 중심 '평화적 시위운동'으로 시작원곡·양성면 연합 '공동투쟁' 전개하면서 격화농민들 뭉쳐 이웃마을까지 원정 '조직·계획적'일제 야만적 발포 자행… 24명 순국·127명 투옥 안성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안성맞춤'이다. '안성맞춤'은 안성의 유기그릇과 가죽꽃신이 유명하여 생겨난 말이다. 안성은 서쪽으로 평택과 동북쪽으로 이천, 용인과 접해있다. 남쪽으로는 천안인 충청북도와 맞닿아 있는 안성은 서울로 가는 교통의 요지이며 군사적 요충지다. 때문에 팔도의 물건들이 모여들고, 좋은 농산물과 수공업 제품들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한때 '안성에 가면 뭐든지 있다'라는 말이 생겨났고 안성장이 유명했다. 안성은 삼남으로 통하는 길목이고 장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수공업도시로서 민란 때마다 안성장의 비중이 컸고, 장날을 이용해 농민군이 자주 결집하던 곳이었다.안성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이 미륵부처들이다. 안성에는 안성시내 아양동의 남녀 미륵과 양성면 대농리의 미륵, 교통의 중심지였던 과거 죽산현 관내 삼죽면의 기솔리 쌍미륵, 그 위 국사봉의 궁예미륵, 그리고 관아터의 동편인 죽산면 매산리의 태평미륵이 있다. 태평미륵은 원래 대평미륵으로 불렸다고 한다. 대평원에 있던 미륵이라는 뜻이다. 미륵불은 민중들이 희망하는 이상세계를 실현해 줄 부처다. 미륵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멸하신 뒤 56억 7천만년이 될 때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미래의 부처다. 석가모니의 교화가 다 끝나고 새로운 '용화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민중들이 희망했던 새로운 세계의 모습은 '자유'와 '평등'의 기쁨으로 가득 찬 평화의 세계이자 유토피아였다. 비록 현실은 고단해도 미래에는 새로운 밝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믿음의 상징이다. 바로 이런 미륵의 세상이 오기를 식민지 아래 어둠 속에서 희망했던 안성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을 일으키며 들고 일어났다.안성군의 3·1운동은 3월말부터 읍내, 죽산, 원곡, 양성 등을 중심으로 평화적인 시위운동으로 시작됐다. 3월 31일에는 안성조합 기생들의 만세운동이 있었다. 안성조합의 기생 일동이 오후 4시경 만세를 부르며 운동을 시작하자, 안성 각처에서 일시에 소통해 군중 천여명의 연합시위가 일어나고 군청과 면사무소, 경찰서에 몰려가 시위했으며, 산상시위도 전개하다가 6시쯤 해산하였다. 이후 오후 7시 30분쯤 만세운동이 다시 시작됐고, 횃불을 들고 3천여명이 시위하자 면장 민영선이 보통학교에 군중들을 모아놓고 회유해 해산시켰다.이 평화적 시위가 공격적인 운동으로 바뀌게 된 것은 4월 1일 원곡면과 양성면이 연합으로 공동투쟁을 전개하면서부터였다. 원곡면과 양성면은 처음에는 각각 별도의 시위를 일으켰으나, 4월 1일 저녁 원곡면사무소 앞에 집결하여 만세를 부르던 원곡면민이 일본 순사주재소가 있는 이웃 양성면으로 쳐들어가 마침 양성면사무소와 주재소를 에워싸고 만세를 부르며 되돌아 나오던 양성면민과 합세하면서 대규모의 농민시위로 발전했다. 2천여 명의 농민들의 함성은 천지를 뒤흔들었고, 시위행렬은 의기충천하여 기세를 올렸다. 시위 농민은 경찰관주재소와 양성우편소에 불을 질렀다. 또한 전선을 끊고, 경부선 철도까지 차단하려 했다. 그리고 양성 읍내에 거주하는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비롯해 일본인 상점을 파괴했다. 뿐만 아니라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호적원부를 꺼내 소각하고 기물을 모두 파괴했다. 또한 면장을 포박하고 면사무소를 불태워 버렸다. 이에 맞서 일본 군경은 야만적인 발포를 자행해 많은 사상자를 냈다. 24명이 순국하고 127명이 투옥되는 사상 최대의 탄압이 벌어졌다. 양성·원곡의 운동은 농민에 의해 주도된 운동으로, 특히 원곡면민들은 한학자로서 동리의 신망을 받던 이유석(李裕奭) 등의 사전 계획과 현장지도에 의해 일제 행정관서와 일본인 거주지가 있는 이웃 마을까지 원정한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운동이었다. 민중들의 원한은 치솟았고, 연대투쟁이 되면서 격화됐던 것이다.일제는 양성·원곡의 3·1운동을 3대 폭력지로 꼽았다.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폭력항쟁지이지만 가장 치열한 만세운동을 일으킨 곳으로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의 만세운동,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의 만세운동과 더불어 3대 실력항쟁이었다. /이동근 수원시 학예연구사안성의 3·1운동과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만세고개 기념비. /이동근 수원시 학예연구사 제공원곡면사무소에 건립된 3.1독립항쟁지비. /이동근 수원시 학예연구사 제공안성시 원곡면 칠곡리 안성 3·1운동기념관에 있는 '원곡·양성 3·1독립항쟁기념탑'. /이동근 수원시 학예연구사 제공3·1운동 3대 실력항쟁지로 꼽히는 안성의 원곡·양성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2001년 개관한 안성 3·1운동기념관. /이동근 수원시 학예연구사 제공

2019-03-11 이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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