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인천시장 당선자 박남춘 그는 누구인가]법관의 꿈 접고 굽히지 않는 '양심과 원칙' 행정가 길 걷다

중학교 시절 RCY 가입 열성적봉사 시작전두환 정권 수습사무관으로 공직 첫발고시출신 비인기 부처 해운항만청 고집대통령 형 사업권 청와대 압력 소신 지켜해수부 근무 노무현 '장관'과 인연 靑입성행정수도 이전·새만금 등 국정 실무 처리부처 인사교류 '고위공무원단제도' 만들어박남춘 인천시장 당선자는 한국전쟁 때 피란 내려온 실향민의 아들이다. 황해도 출신인 어머니는 과일 장사를 했고, 역시 황해도가 고향인 아버지는 미8군 항만사령부 군무원으로 일했다. 두 분은 인천에서 만나 결혼했다.박남춘 당선자는 인천의 구도심이 된 인천 중구 송월동에서 태어났다. 1959년이었다. 박 당선자의 부모는 교육열이 상당히 높았고 초등학교 시절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송월초등학교 2학년 때 인근에 있는 박문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박문초등학교가 천주교 재단이었기 때문에 박 당선자는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시절부터 천주교를 신앙으로 갖기 시작했다.동구 송림동에 있는 동산중학교 재학 때 그는 하굣길 철길 옆 쪽방촌에 사는 빈민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자신보다 어린 아이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을 본 박 당선자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그는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게 됐고 중학교 2학년 시절 청소년적십자회(RCY)에 가입해 열성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농촌 일손 돕기를 비롯해 주말이면 보육원, 양로원 등을 방문하며 학우들과 봉사활동에 집중했고 경기도 지역 RCY 중등부 회장으로까지 선출됐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한 박 당선자의 이런 봉사활동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국의 인재들이 다 모인다는 제물포고에 입학한 후 그는 하루 4시간씩 자며 학업에 열중했다. 아버지와 담임선생님은 그가 서울대를 가길 원했지만 옳고 그름을 공정하게 가려내 우리 사회에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법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고려대 법대에 입학했다.대학 입학 후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스승이 나타난다. 대학 고시반에서 항상 선두권을 달렸던 그를 눈여겨본 행정학과 백완기 교수가 찾아와 그에게 행정고시로 방향을 바꿀 것을 권유한 것이다.백 교수는 사회 고급 인재들이 간판만 좋아 보이는 사법고시에 몰려드는 세태를 비판하며 박남춘 당선자에게 유능한 행정전문가가 돼 세계를 무대로 역량을 펼쳐 보라고 설득했다. 박 당선자는 백 교수와 헤어진 다음 고시반으로 돌아와 잠시 법전을 덮고 깊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행정가가 이 나라의 국민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때가 곧 올 것"이라는 백 교수의 말이 계속 마음을 흔들었고 결국 그는 20여 년을 간직해 온 법관이 되겠다는 꿈을 접고 마침내 행정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박 당선자는 하루 18시간씩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을 하며 결국 대학 졸업 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그가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때는 막바지에 달한 박정희 유신정권의 폭압으로 정국이 요동을 쳤고 학내 시위도 끊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선배들과 친구들이 교문 앞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 역시 피가 끓었지만 박남춘 당선자는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과 앞으로 어차피 가야 할 길에 대한 확신을 마음속에 다지며 더욱 고시 공부에 열을 올렸다.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1981년 4월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의 길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박 당선자가 대학졸업 후 수습사무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던 때는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던 해였다.박 당선자의 고뇌도 컸다. 대학 입학 당시 고시공부를 하겠다며 선배와 친구들을 시위대에 남겨놓고 도서관으로 달려갔던 그는 전두환 정권하에서 공무원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에 자괴감을 느꼈다. 수습사무관으로서 번듯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은 했지만 그 양복을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솟아올랐다. 박 당선자는 타협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고, 양심과 원칙을 지키면서 엄혹한 시대의 공무원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에 몰두하게 된다.수습사무관을 마친 그는 고시 출신들에게는 비인기 부처였던 해운항만청(현 해양수산부)에 지원했다. 자신이 태어난 항구도시 인천에서 인천의 바다를 관리하는 해운항만청장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항만청 생활을 하면서도 국가안전기획부나 경제기획원 같은 핵심 부처에서 영입을 제안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초지일관 바다와 항만을 관리하는 해운항만청을 고집했고 바다를 향한 그의 꿈을 접지 않았다.'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다(民無信不立).' 박 당선자는 논어에 나오는 이 구절을 공직생활을 거쳐 정치를 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국민의 신뢰를 받으려면 진실해야 하고 원칙과 소신에 따라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전두환 정권 시절 해운항만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엄청난 이권이 달린 부산항 관내 공유수면 매립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당시 공유수면 매립 예정지 가운데 가장 큰 이권이 걸린 곳은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인근 지역으로 당시 땅값이 평당 300만원이 넘을 정도로 개발 이익이 컸다. 매립 사업권을 노리는 곳 중 한 업체가 전두환 대통령의 형인 전기환 씨가 대표로 있는 회사였고, 박 당선자는 원칙과 소신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워 이 업체가 주민들에게 법대로 적절한 보상을 한 뒤 사업을 시행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청와대에서까지 여러 번 전화가 왔지만 법대로 한다는 박 당선자의 원칙을 꺾을 수는 없었다.해운항만청이 해양수산부로 승격되고 2000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해수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박 당선자는 당시 노무현 장관 아래서 해수부 총무과장직을 맡으며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박 당선자가 본 노무현 장관은 겸손하고 성실했으며 소신과 원칙을 가진 공직자였다. 특유의 판단력과 결단력, 추진력으로 관료 조직의 개혁을 추진했던 유능한 장관이었다.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진실이 결국 승리할 것이라 믿는 그의 소신과 원칙이 박 당선자가 살아오면서 지키려 애썼던 그것과 비슷했다.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고 박 당선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전문위원으로 합류했다. 2003년 2월 참여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 기획팀장을 맡았던 이광재 씨로부터 청와대 국정상황실에서 함께 일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고 박남춘 당선자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그는 청와대 국정상황실 정책팀장을 맡으며 화물연대 파업 사태를 비롯해 행정수도 이전, 새만금 사업 등 산적한 국정 과제 해결을 위한 실무를 책임졌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인사수석 비서관 등을 역임하며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배우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고위공무원단 제도(기존의 1~3급 제도를 폐지하고 국장(3급) 이상 고위급 공직자들의 부처간 인사교류와 승진을 행정안전부에서 별도로 관리하는 제도)를 만든 것도 그가 인사수석 시절 이뤄낸 성과 중 하나다.그는 청와대 근무 시절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살자'고 다짐했다.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려면 누구보다도 투명하고 흠결 없는 공직 생활을 해야 하고 어항 속 금붕어처럼 투명하지 못하면 참여정부에 적대적인 당시 야당과 보수언론의 온갖 트집에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청와대를 나온 그는 2012년 고향인 인천에서 19대 총선에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고, 지난 5월 20대 국회의원직을 중도 사퇴한 후 지방선거에 도전, 인천시장에 당선됐다.박남춘 당선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발을 맞춰 '서해평화협력 중심도시 인천' 구현을 제1호 공약으로 제시했다.이밖에 ▲원도심 전담 부시장제 도입, 도시재생 총괄 전담기구 설립 등 원도심-신도심 균형 발전 ▲시장 직속 일자리위원회 신설 등 1조원대 중소기업 육성자금 지원 ▲공동 산후조리원, 방문간호사 산모 케어 등 사람중심 복지 ▲서울지하철 2호선 청라 연결 등 인천∼서울 10분대 시대 개막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박남춘 프로필-1959년 인천 중구 출생-박문초, 동산중, 제물포고 졸업-고려대 법대, 영국 웨일즈대학교 대학원 졸업-전 해양수산부 총무과장-전 국립해양조사원장-전 노무현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전 노무현 정부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19·20대 국회의원-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전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위원장박남춘 당선자의 어린 시절. 유별나게 울음이 많아 '울보 남춘이'라고 불렸다. /경인일보DB·박남춘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제물포고 재학시절 교련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모습. /경인일보DB·박남춘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대학 졸업식 날. 당선자는 고려대 법대 2학년 가을에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경인일보DB·박남춘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박남춘 당선자는 대학졸업 후 공군 소위로 임관했다. 군 복무 시절 아내 최혜경씨와 찍은 사진. /경인일보DB·박남춘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수습 사무관을 함께 지낸 행시24회 동기들. 앞줄 오른쪽이 박남춘 당선자. /경인일보DB·박남춘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박남춘 당선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봉하마을로 내려갔을 때 자주 이곳을 찾아 함께했다. /경인일보DB·박남춘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

2018-06-14 김명호

[경기도교육감 당선자 이재정 그는 누구인가-당선소감]"혁신교육 완성… 공정교육·공평한 학교 실현 최선"

4차산업혁명 교육개혁·교권보호 노력학교자치·미래교육 위해 많은 협조를"경기도형 혁신교육의 완성과 공정한 교육, 공평한 학교 실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이재정 경기교육감 당선자는 13일 저녁 당선이 확정된 후 이같이 밝혔다.다음은 일문일답.-당선소감은."경기도민 여러분과 교육가족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격려와 응원, 질책해주신 모든 분들의 말씀을 잊지 않겠다. 경기도민께 혁신교육의 완성과 공정한 교육, 공평한 학교의 실현, 학교자치와 학교 민주주의의 구현을 약속했다. 이를 실천하고 성과를 내는 것이 저의 사명이다. 모든 학생과 학부모가 혁신교육의 혜택을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앞으로의 계획은."약속을 지키고 성과를 내야 한다. 특히 4차산업혁명을 위한 교육개혁, 남북 평화번영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통일교육과 남북교류협력, 확실한 교권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유권자에게 약속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존 교육청 조직으로 부족할 수 있다.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해서 공약 실행을 위한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경기교육 가족을 위한 당부의 말은."경기혁신교육은 수많은 교사와 교직원, 학생, 학부모의 헌신과 열정으로 성공했다. 이 분들이 주인공이고, 저는 교육감으로서 지켜주고 받쳐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앞으로도 모든 교육가족들이 공교육 혁신, 학교자치, 미래교육을 위해 전력을 다할 거라 믿는다. 다시한번 교육가족 여러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굳건하게 경기교육 가족을 지켜드릴 것임을 약속드린다." /이경진·박연신기자 lkj@kyeongin.com

2018-06-14 이경진·박연신

[경기도교육감 당선자 이재정 그는 누구인가]'9시 등교제' 전격 시행 정착… 학생중심 교육 철학 실천

1944년 충남 입장서 출생 충북 진천서 성장1962년 신명학원 설립 무상중등과정 운영성공회대 설립 헌신 1994년 초대 총장 역임통일부장관 시절 남북관계 전분야 큰 진전학생 스스로 미래설계 위한 꿈의학교 추진다양한 정책 '文정부 국정과제' 기초 삼아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당선자는 1944년 충남 입장에서 출생해 충북 진천에서 성장했다. 진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1956년부터 서울에 유학하여 경기중학교를 거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2년 고향에서 (관인)신명학원을 설립하여 중학교 진학을 못한 학생들을 위한 무상 중등과정교육을 3년간 운영했다. 1965년 뒤늦게 고려대학교에 진학해 문학사 학위를 받고 1972년 대한성공회 사제가 됐다. 반 유신 투쟁에 가담해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민주화와 사회정의 그리고 인권회복을 위한 활동에 헌신했다. 이후 캐나다로 유학한 이재정은 매니토바대학교 대학원, 토론토대학교 트리니티대학 대학원에서 종교학 석사와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8년 귀국했다. 귀국 후 신영복 교수, 조희연 교수 등과 함께 성공회대학교를 세워 가는데 헌신했으며 1994년에는 초대 총장이 됐다. 그는 이 시기에 한국기독교회협의회 통일위원회 위원장도 역임했다. 워싱턴, 토론토, 도쿄 등에서 열린 기독교계의 남북회담에 한국대표로 참가했으며 민간단체인 남북농업발전협력협회의 이사장으로서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했다.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고 초대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았고, 제16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교육위원회 간사로서 교육개혁과 정치개혁에 기여했다. 2004년 노무현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임명돼 2006년까지 평화통일운동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2006년 노무현정부 통일부장관(제33대)으로 임명을 받아 중단되었던 남북장관급 회담을 재개하고,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준비기획단장으로 10·4남북정상선언의 준비와 기획을 총괄했다. 그가 통일부 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남북관계는 모든 기록을 새로 써가며 금강산 관광, 개성관광, 개성공업지구의 활성화와 남북경협의 확대 등 모든 분야에서 큰 진전과 발전을 이룩했다.이후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활동하다가 2014년 민선3기 경기도교육감에 당선됐다. 경기도교육감으로 취임한 직후 학생중심 교육철학을 전면에 내세우고, 학생의 눈으로 학생이 직접 제안한 9시등교제를 전격적으로 시행했다. 그리고 학교 밖 마을학교로 학생들이 취미, 적성, 진로 등을 고민하고 다양한 경험으로 스스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만든 꿈의학교, 꿈의대학 정책들을 추진하여 정착시켰다. 그는 또한 박근혜 정부의 누리과정 부당한 부담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부터 학생과 학교를 지키기 위해 1인 시위를 불사하며 물러섬 없이 싸운 교육감이었다. 이 밖에도 이재정 당선자는 '4·16교육체제'의 수립, 혁신학교 심화발전, 자유학기제 운영확대, 교육협동조합 설립, 진로지원센터 운영 등을 통해 학생중심교육을 실천해 나갔으며 이러한 정책들은 대부분 문재인정부의 교육부문 국정과제의 기초가 되어 대한민국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는 이번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 '혁신교육 3.0', '공정한 교육', '학교자치시대', '미래시대 진로·진학교육'을 표방하며 민선 4기 경기도교육감으로 재당선됐다. /이경진·박연신기자 lkj@kyeongin.com2017년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위원으로 위촉돼 청와대에서 문재인대통령으로부터 위촉장을 받은 경기도교육감 당선자. /이재정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노무현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국무회의 때 故노무현대통령과 얘기를 나누던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당선자. /이재정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2007년 10월 2~4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통일부 장관으로서 참여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당선자. /이재정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

2018-06-14 이경진·박연신

[인천시교육감 당선자 도성훈 그는 누구인가]'해임·해직·복직' 반복… 교직 39년만에 교육수장으로

1960년 충남 천안 산골서 외아들로 태어나인천성헌고(현 인제고) 첫 교사생활 시작재단비리 맞서 학교민주화투쟁 주도 해임1989년 전교조가입 활동 이유 해직되기도2003년·2005년 11·12대 인천지부장 역임동암중 교장 '마을교육 공동체' 결성 노력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당선자의 30여년 교직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교사로서 부임한 첫 학교에서 해임됐다. 복직했지만 다시 해임과 복직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는 첫 학교에서 해임을 당한 지 39년 만에 인천 교육을 이끄는 교육감이 됐다.도성훈 당선자는 1960년 12월 10일 충남 천안시 목천읍 석천리에 있는 작은 산골마을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유년시절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부모님이 궁핍한 산골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원도 공장에 취직했기 때문이다. 10살이 되던 해 부모님이 인천 부평구에 정착하면서 부평남초에 전학했고, 부평동중, 부평고를 졸업했다.부평고를 졸업한 뒤 1979년 중앙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박정희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학내 시위가 빈번했다. 도성훈 당선자는 학생들이 사복 경찰에 맞으면서 잡혀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서지 못하는 '소심한 학생'이었다.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 4학년 여름방학 때 김인숙 여사를 만났다. 1985년 2월 졸업한 직후인 그해 7월 약혼식을, 이듬해 1월 결혼식을 올렸다.도성훈 당선자가 교사가 된 데에는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도 당선자의 조부는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손자에게 일깨워 주기 위해 노력했다. 도 당선자는 누군가의 스승이 되는 것이 보람된 일이라고 느꼈고 대학 때 교직 이수를 하면서 교사의 길을 걷게 됐다.1985년 인천성헌고(현 인제고)에서 첫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 재단비리와 파행적인 학교 운영에 맞서 평교사협의회를 조직했고 초대 회장을 맡아 학교 정상화 투쟁을 진행했다. 도 당선자는 학교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다 해임됐다. 이후 학생, 학부모와 함께 징계 철회 투쟁을 진행했고, 농성 23일 만에 교장과 교감이 교체됐다.도성훈 당선자는 1989년 6월 전교조 인천지부가 결성될 때 주도적 역할을 한 교사 중 한 명이었다. 두 달 뒤인 8월 전교조 가입 활동 등을 이유로 해직당했다. 해직 교사 신분으로 전교조 인천지부 사무국장과 수석부지부장, 국공립중등지회장 등을 맡았다. 전교조 합법화 방침에 따라 1994년 복직해 관교중, 인천여자공고(현 인천뷰티예술고)에서 교사생활을 했다.도 당선자는 2003년과 2005년 두 차례 전교조 인천지부장 선거에 당선되면서 11대, 12대 지부장을 지냈다. 지부장 임기를 마치고 부개고, 동인천고를 거쳐 2016년 인천형 혁신학교인 동암중 교장으로 취임했다. 교장으로 있으면서 학생, 학부모, 교직원, 마을주민이 한마음으로 소통하고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위해 같이 노력하는 '마을 교육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올해 초 인천시교육감 선거에 나서기로 결정했고, 올해 3월엔 인천지역 88개 시민사회단체와 5만여 시민참여단이 참여한 민주진보 촛불교육감 단일후보로 선출됐다. 선거에서 '함께 만드는 공정한 인천교육'을 앞세웠고 인천시교육감으로 당선됐다. 그는 '기회는 균등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평등교육 실현'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며 '혁신미래교육', '안심교육', '소통교육', '평등교육'의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정운기자 jw33@kyeongin.com도성훈 당선자가 이번 선거운동 기간 상가를 방문해 지지를 방문하는 모습. /도성훈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도성훈 당선자의 중학교 입학 기념 사진. /도성훈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도성훈 당선자가 첫 교직생활을 시작한 인천성헌고등학교에서의 활동모습. 그는 평교사협의회를 만들어 학교 정상화 투쟁을 진행했다. /도성훈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도성훈 당선자는 제11·12대 전교조 인천지부장을 맡았다. 그는 전교조 인천지부가 결성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이 때문에 교단을 떠나기도 했다. /도성훈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

2018-06-14 정운

[인천시교육감 당선자 도성훈 그는 누구인가-당선소감]"교육다운 교육·소통하는 학교 원한 시민들의 승리"

'현장공감 대장정' 목소리 반드시 실현초심 잃지 않게 질책해 주신분들께 감사"인천시교육감 선거 승리의 주역은 인천교육의 혁신을 바라는 시민들의 승리입니다."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당선자는 13일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선소감은."인천시교육감 선거 승리의 주역은 인천교육의 혁신을 바라는 시민들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교육다운 교육, 꿈이 있는 교실, 소통하는 학교, 공정하고 정의로운 인천교육' 만들기에 함께 해주신 인천시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다시 한 번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함께 경쟁한 후보들에게도 위로와 감사를 전한다."- 앞으로의 계획은."선거에 출마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학생, 학부모, 교사, 학교 구성원 등 많은 분의 얘기를 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장공감 대장정'이라는 이름으로 인천 곳곳을 다니며 60여 차례의 정책간담회를 가졌다. 발표했던 공약들이 바로 '현장공감 대장정'의 결과물이다. 인천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것, 기본부터 챙기겠다는 약속을 꼭 드린다. 인천시민들께서 저를 선택한 이유는 중단없이 '미래혁신 교육'을 실천하라는 것으로 생각한다. 인천교육을 한 걸음 더 전진시키라는 시민들의 명령이라고 생각한다."- 인천 교육 가족을 위한 당부의 말은."기쁨보다는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펀드와 후원금, 자원봉사로 성원과 지지를 보내주시고, 따끔한 목소리로 초심을 잃지 않게 해주신 인천시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또 저를 민주진보 단일후보로 만들어주고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노동자들과 시민사회에도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2018-06-14 김성호

[화제의 당선자]4번째 맞대결(최대호) 승리… 전국 최연소(조민경) 탄생

최대호, 현직 꺾고 안양시장 탈환정장선, 여의도 포기·공약 지켜내박윤국, 첫 진보정당 출신 포천시장 허인환, 삼수끝 양자대결서 'V자''25세' 조민경, 연수구의회 가 당선'민주당 압승'으로 정리된 선거였지만, 저마다의 전략과 노력으로 유권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보들이 있다.전·현직 시장 간 네 번째 맞대결로 관심을 모은 안양시장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최대호 후보가 시장직 탈환에 성공하며 눈길을 끌었다. 최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자유한국당 이필운 후보를 따돌리고 승리했다. 안양시장직을 건 두 사람의 승부는 2007년 시작됐다. 2007년 안양시장 재선거는 이 후보가 '승', 2010년 지방선거는 최 후보가 '승'으로 각각 1승 1패를 기록했으며 2014년 선거에서 이 후보가 다시 승리했다. 치열한 접전이 예상됐던 이번 선거에서는 최 후보가 승리를 거두며 두 전·현직 시장의 승부는 2승 2패를 기록하게 됐다.평택시장 당선이 유력한 정장선 민주당 후보는 유권자들과의 약속을 지켜내 귀감이 됐다. 정 후보는 3선 국회의원을 지낸 만큼 차기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것 아니냐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고 직접 평택시 공직사회로 들어가 현안사항 등을 해결하겠다며 이번 선거에 나섰다. 네거티브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켜온 점과 현실적인 정책을 내놓은 점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모은 것으로 분석된다.박윤국 민주당 포천시장 당선자는 이 지역 최초의 진보정당 출신 시장이다. 이번 선거에서 박 당선자는 백영현 자유한국당 후보와 이원석 바른미래당 후보를 따돌리면서 일찌감치 당선이 확실시 됐다. 박 당선자는 몸 담았던 자유한국당을 뒤로 하고 올해 초 민주당에 전격 입당하면서 당적을 고려하지 않는 고정 지지층에 민주당 바람까지 등에 업고 포천시 최초로 민주당 시장에 당선됐다는 평이다.인천에서는 민주당 허인환(49) 후보가 세 차례 도전 끝에 동구청에 입성하게 됐다. 30대에 동구청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이후 12년 만에 이룬 쾌거다. 허 후보가 처음 동구청장에 도전한 것은 지난 2006년 열린 제4회 지방선거. 당시 허 후보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한나라당 이화용 전 동구청장에게 패배해 낙선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때 허 후보는 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하며 다시 한 번 동구청장 선거에 도전했지만 야권후보 단일화로 당시 민주노동당 조택상(59) 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두 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허 후보가 다시 한 번 일어서게 된 것은 동구 주민들의 응원과 격려 때문이었다. 허 후보는 인구유출, 열악한 교육환경 등 후퇴하고 있는 동구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동구청장에 입후보했다. 그리고 현직 구청장인 자유한국당 이흥수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승리했다.조민경(25·여) 민주당 인천 연수구의원 가선거구 당선자는 '만 25세 미만 피선거권 제한'을 딱 1살 넘긴 전국 최연소 당선자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때는 인천지역에서 20대 당선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조 당선자는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정치인이 되길 거부했다. '청년'이나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기초의원'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역종합더불어민주당 허인환 동구청장 당선자. /김태양기자 ksun@kyeongin.com전국 최연소 조민경(사진 맨 오른쪽) 인천 연수구의원 당선자. /조민경 당선자 제공

2018-06-14 경인일보

경기도의회 야당 교섭단체 물건너가

#경기도 광역·기초의원민주당, 대부분 지역서 앞서나가무소속·특정정당 연대도 힘들어'나'번 기초의회 대거 입성 예고#인천시 광역·기초의원광역의원 8개 지역 민주당 독주시·구의원도 보수 텃밭서 '선전'한국당 "여론 이정도일 줄이야"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에 이어 광역·기초의원도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다.■경기도=광역의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승리를 휩쓸 것으로 보인다. 14일 0시 현재 한 곳을 제외한 모든 선거구에서 민주당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민주당은 대부분 50~60% 득표율을 보이며 앞서 나가고 있다. 수원, 고양 등 일부 지역에서는 70%가 넘는 득표율을 보이며 2위 후보와 격차를 벌렸다. 반면 유일하게 자유한국당이 앞서고 있는 여주시 제 2선거구의 한국당 후보 득표율은 44%로, 민주당 후보가 30% 후반대 득표율로 뒤쫓고 있다.이변이 없는 한 야당은 도의회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하게 됐다. 도의회 교섭단체 및 위원회 구성·운영 조례에 따르면 12명 이상의 소속 의원을 가진 정당이 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다. 무소속 의원과 특정 정당 의원들이 연대해 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지만 바른미래당, 노동당, 민중당에 당선자가 없어 이마저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기초의원 선거 역시 민주당의 압승으로 진행됐다. 14일 0시 현재 수원·성남 등 도시지역은 물론 연천·포천 등 접경지역, 여주·이천 등 그간 야당세가 강했던 도농복합지역까지 민주당 후보가 대부분 1위를 기록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광역의회에 이어 기초의회까지 민주당의 강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특히 민주당이 선거운동에서 힘을 쏟았던 '나번' 후보의 강세도 나타났다. 실제로 개표 중반인 현재 여주의 경우, 민주당의 나번 후보가 가번 후보보다 지지율이 앞서는 이례적인 현상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나번 후보가 대거 기초의회에 입성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경기도 기초의회 구성에서도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정의당은 고양 등 일부 지역에서 2~3위를 기록했지만 대부분 지역에서 부진했고, 바른미래당의 존재감 역시 미미한 수준이었다.■인천=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당시 열린우리당은 인천 광역의원(인천시의원) 33석 중 고작 1석(비례대표)을 건지는 참패를 기록했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광역의회 37석(비례 4석 포함) 가운데 강화·옹진군을 제외한 8개 지역에서 14일 0시 기준 상대 후보를 앞섰다. 구의원을 뽑는 기초의원 선거 결과도 비슷했다. 자유한국당의 한 시의원 후보는 "우리 당이 어려울 거란 것은 알았다"면서도 "현장 여론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일지 몰랐다"며 한숨을 쉬었다.이번 선거에서 인천 시의원 당선자는 37명, 구의원 당선자는 118명(비례 16명 포함)이 배출된다. 보수 텃밭으로 분류된 중구, 동구, 남구 지역 시의원, 구의원 선거에서도 대부분 민주당이 석권하다시피 했다. /김명래·민정주·신지영기자 problema@kyeongin.com

2018-06-14 김명래·민정주·신지영

서초구청장 개표현황, 이정근 46.2% vs 조은희 48.6%… 접전 계속

6·13 지방선거 서초구청장 개표현황은 조은희 자유한국당 후보와 이정근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접전 양상을 띄고 있다. 14일 새벽 1시 5분 기준, 조은희 후보는 이정근 후보에 1천 여표 가량 앞서고 있다. 2.4%포인트 차이지만, 표차는 974표차로 초박빙양상이다. 현재 민주당은 서울 구청장 자리를 싹쓸이할 것으로 보인다. 자치구별로 보면 민주당은 종로구(김영종), 중구(서양호), 용산구(성장현), 성동구(정원오), 광진구(김선갑), 동대문구(유덕열), 중랑구(류경기), 성북구(이승로), 강북구(박겸수), 도봉구(이동진), 노원구(오승록), 은평구(김미경), 서대문구(문석진), 마포구(유동균), 양천구(김수영), 강서구(노현송), 구로구(이성), 금천구(유성훈), 영등포구(채현일), 동작구(이창우), 관악구(박준희), 서초구(이정근), 강남구(정순균), 송파구(박성수), 강동구(이정훈) 등에서 앞서고 있다. 이 가운데 현직 구청장이 자유한국당 소속이어서 박빙 판세가 예상됐던 중구와 중랑구, 강남구, 송파구 등 4곳 마저 민주당 후보들이 모두 1위를 지키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첫 강남구청장과 배출을 눈앞에 뒀다. 송파구청장도 민선 1, 2기를 제외하고 3기 이후 모두 한국당이 차지해온 자리여서 16년 만의 탈환을 앞두고 있다. 이에 서초구청장 자리에 대해서도 유권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디지털뉴스부서초구청장 개표현황 14일 새벽 1시 5분 기준. /포털사이트 네이버 캡처

2018-06-14 디지털뉴스부

[6·13 선거]위기의 한국당… 혼돈 속으로

지난 1995년 6월 지방선거가 도입된 이후 이처럼 참담한 패배는 없었다. 자유한국당이 17개 광역단체 가운데 대구시장, 경북지사만 건지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전통적인 텃밭인 부산·울산·경남도 모조리 내줬다. 그야말로 'TK(대구·경북) 정당' 수준으로 몰락한 것이다.당장 홍준표 대표의 당 운영 방식에 불만을 토로해온 비홍(비홍준표) 진영 의원들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벌써 일부 당협위원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당의 재건을 열망한다"면서 홍 대표 등 지도부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홍 대표 역시 이번 지방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이르면 14일 오후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는 계획이다. 홍 대표가 사퇴하면 일단은 김성태 원내대표가 대표 권한대행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비상체제'가 당분간 가동되는 것으로, 이 기간 극심한 내홍이 예상된다. 당장 '포스트 홍준표' 체제'를 노리는 차기 주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당권 도전을 선언할 가능성이 크다.이 과정에서 당 전체가 또다시 '친박(친박근혜) 대 비박(비박근혜)'으로 나뉘어 해묵은 계파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다.현재 당권 주자로는 심재철(5선)·나경원·정우택·정진석·주호영(이상 4선)·김용태·안상수(이상 3선) 의원, 이완구 전 국무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또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당선인에게 패한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도 출사표를 던질 수 있다. 당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당분간 당내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면서 "새로운 지도 체제를 세우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밝혔다.그러나 '현역 의원 모두 지방선거 참패에 책임을 지고 전면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2선 후퇴론이 터져 나올 수도 있다. 실제로 현재 거론되는 당권 주자들은 지난 보수정권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당내 한 인사는 "현재 당내 누구도 이번 선거 패배에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경우에는 외부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 불가피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항상 위기의 정당이 내놓는 고정 레퍼토리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처절한 혁신을 하기 위해선 외부에서 구원투수를 영입해야 논리다. 벌써부터 외부 인사로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김병준 전 국민대 교수 등이 거론된다. 이들은 한때 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됐었다. 그러나 황 전 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2인자였다는 점에서, 김병준 전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 지명자였다는 점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하지만 현재 이들 외에 보수 진영을 대표할 수 있는 주자들이 마땅치 않아 구원투수 영입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불거졌던 인물난이 재연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신임 지도부를 선출하는 것보다 당 쇄신 작업이 우선이라는 여론이 우세하다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 한국당의 혁신 작업은 보수대통합과 맞물려 돌아갈 거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특히 이번 선거에서 궤멸 수준으로 뭉개진 보수를 재건하고, 문재인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그리고 보수 진영 시민사회 단체들이 '빅 텐트론'을 기치로 대대적 보수대통합을 추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렇게 되면 보수 야권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의 소용돌이 속에 한국당의 새로운 리더십이 구축될 수도 있으나 이에는 극심한 진통이 뒤따를 전망이다. /연합뉴스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열린 1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TV를 통해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다 당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 13일 밤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 선거상황실에서 취재진이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이 날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는 당사를 찾지 않았다. /연합뉴스자유한국당 재건비상행동 회원들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열린 1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홍준표 대표 등의 사퇴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018-06-14 연합뉴스

경북도지사 이철우, 민주당 바람 차단… '압도적 당선'

경북에서 자유한국당 도지사 후보로 나선 이철우 당선인이 전국적인 더불어민주당 바람을 차단하고 초선 도지사 자리에 올랐다.이 당선인은 한국당 경선에서 3선 연임 제한으로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김관용 도지사 후임 자리를 두고 김광림·박명재 국회의원, 남유진 전 구미시장과 치열한 예선전을 거쳐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역대 선거에서 보수가 절대 강세 지역이어서 선거결과를 낙관하는 분위기였지만 경북·대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한국당이 힘을 쓰지 못하자 경북도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일부 감지됐다.이에 그는 보수층 결집과 부동층 흡수에 전력을 쏟았고 그 결과 민주당 오중기 후보 추격을 여유 있게 뿌리치고 승리했다.이 당선인은 1955년생으로 김천고와 경북대 사범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중학교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상주와 의성에서 5년간 교직 생활을 마친 뒤 현재 국가정보원을 거쳐 2005년 12월 당시 이의근 도지사 '러브 콜'로 경북도 정무부지사에 발탁됐다.이의근 도지사에 이은 현 김관용 도지사 첫 임기 초반까지 2년 2개월 동안 정무부지사를 지냈다.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 대구 달서갑 선거구에 공천신청을 했다가 탈락한 그는 고향 김천에서 당시 한나라당 전략 공천을 받아 승리한 뒤 내리 3선 국회의원에 올랐다.19대 총선에서는 83.5%를 득표해 전국 최고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다.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국회 정보위원장을 지냈고, 2013년 12월에는 영·호남 갈등 해소를 위해 '동서화합포럼'을 만들어 경북 의원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를, 전남 의원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하는 것을 주선했다.또 초선 때부터 '국회 지방 살리기 포럼'을 결성해 전국을 순회하며 지역에 맞는 이른바 '맞춤형 토론회'를 여는 등 지역 대변인 역할을 자처했다.그는 당 사무총장과 최고위원을 지냈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국회에서는 마당발로 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디지털뉴스부13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자유한국당 대구광역시당에서 이철우 경북지사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되면서 꽃목걸이를 걸고 있다. /연합뉴스

2018-06-14 디지털뉴스부

[화제의 당선자]김포시의원 라선거구 민주당 박우식… 삼중고 딛고 인간승리

3위 자리를 놓고 접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김포시의원 라선거구(구래동·운양동·장기본동)에서 안정적인 득표율로 시의회에 입성하게 된 더불어민주당 박우식(43) 당선자는 김포지역 출마자 가운데 '인간승리'의 표본이라 할 인물이다.박우식 당선자는 지난 2015년에야 마산동 신도시에 입주하며 김포와 첫 연을 맺은 탓에 애초 인맥의 열세를 안고 있었다. 또한 선거비용이 넉넉지 않아 선거사무소에 사무장과 회계담당자도 없이 선거사무원도 타 후보의 절반 수준인 5명만 이끌고 뛰어다녔다. 흔한 유세차량을 구할 여력도 없어 스타렉스 차량에 직접 랩핑을 하고 다닌 그는 "발로 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어 기호 '나'번을 배정받는 등의 삼중고 속에 박우식 당선자가 뿌린 명함은 3만장이 넘었고, 선거사무원이 부족해 인쇄소를 직접 오가며 명함과 공보물 등을 받아갔다. 부인 권윤정(39)씨는 무더위에 체중이 확 줄은 남편을 돕기 위해 5살 딸 지유 양을 데리고 와 돌보면서 선거사무소를 지켰다.박우식 당선자는 한국직업방송 '랭킹쇼 잡위클리'에 고정패널로 장기간 출연하고 취업지침서 '취업타파' 등을 펴내는 등 일자리전문가로 활동하다가 시의원에 도전했다.선거 운동 기간 박우식 당선자는 김포시일자리위원회 설치 및 세대별 맞춤형 일자리교육 강화, '김포형 진로로드맵' 운영, 노선버스 재정비 및 제설·먼지제거 차량 증차, 신도시 내 공원 재정비 등의 공약을 앞세워 지역을 누볐다.박우식 당선자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김포시 현안을 해결하고, 남북 화해협력시대에 김포시의 새로운 도약과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시의원이 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김포시 마산동 김포생활체육관 개표장을 찾은 박우식 당선자가 축하전화를 받고 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2018-06-14 김우성

[화제의 당선자]4선 시장 아성 무너뜨린 한대희 군포시장 당선자

더불어민주당 한대희 군포시장 당선자는 4선 시장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민선 7기 군포시장으로 당당히 우뚝 섰다.집권여당의 대세 분위기가 고스란히 선거 결과로 이어졌지만, 한 당선자의 당선이 특별한 이유는 시장을 네 차례나 역임하며 지역 내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구축해온 현직 시장과의 대결에서 압승을 거뒀기 때문이다.당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후보 선정을 위한 당내 경선에 무려 9명의 예비후보가 출사표를 던진 탓에, 한 당선자는 본선보다 어려운 예선을 치러야 했다. 3명의 예비후보로 압축된 뒤에는 그의 대표경력 기재에 관한 타 후보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한 당선자는 뚜벅뚜벅 앞만 보며 걸었고, 치열했던 경선 과정을 거쳐 민주당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본선도 만만치 않았다. 매서운 기세의 자유한국당 최진학 후보는 방심할 수 없는 경계 대상이었으며, 특히 5선에 도전하는 바른미래당 김윤주 후보는 그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이 같은 어려운 승부 속에서도 한 당선자는 '정중동(靜中動)'의 자세로 지역주민들과 스킨십을 늘리는 행보를 이어간 끝에, 결국 군포시민들의 부름을 받아 시장직에 올랐다.한 당선자는 14일 자정께 당선 확정 소식을 접한 뒤 "선거운동 과정에서 많은 시민을 만났다. 모든 만남이 소중했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신 시민들 덕에 힘든 줄 몰랐다"며 "시민들께서 건네주신 말씀 하나하나를 가슴에 새기고, 시민과 함께 군포의 새로운 100년을 열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군포/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더불어민주당 한대희 군포시장 당선자가 14일 자정 당선 확정 소식이 전해진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군포/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더불어민주당 한대희 군포시장 당선자가 14일 자정 당선 확정 소식이 전해진 뒤 자신의 아내, 지역구 김정우·이학영 국회의원과 함께 축하 세리머니를 외치고 있다. 군포/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2018-06-14 황성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