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잊힌 군인들 '국민방위군'·(3) 참을 수 없는 불합리]'가해자 장교'는 유공자 되고 '군번없는 민초' 고통속에 묻혔다

두달 교육받고 중대장 '졸속 임관'서류 통해 참전증명… 매월 수당제2국민병, 소집증 없는 '무명군인'생환해도 국방부 인정받기 어려워발생 70년이 흐른 국민방위군 사건은 가해자에게 보상을, 피해자에겐 침묵이란 불합리를 남겼다.지난 2002년 10월 '참전군인 등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비군인'에게도 참전수당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비군인의 참전 사실을 폭넓게 조사했다.이 조사과정에서 만들어진 자료가 '비군인 참전사실 확인서'다. 여기엔 비군인들이 참전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제출한 자술서와 참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가 포함됐다. 3만5천여건의 확인서가 접수됐는데, 이 중 국민방위군 장교들의 확인서가 다수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국민방위군 장교는 우익 청년단체인 대한청년단(청년방위군) 장교 출신이나 국민방위군 사관학교 출신으로 구성됐다. 대한청년단 출신으로 60만명이 넘는 인원을 통솔할 지휘 체계를 갖출 수 없었기 때문에 국민방위군 자체 선발을 통해 장교 임용이 이뤄졌다.이는 고 유정수씨의 일기를 통해서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외출하고 도라와 보니 훈련이 있다고 하는대 합격자는 교육대에서 방위소위를 가임명하고 후에 방위사관학교에 보내 준다는 것이다 나는 시험을 않치르고 말았다 치러야 이 할는지, 않치러야 좋을는지?"(1951년 1월 13일)이란 대목을 통해 국민방위군 장교 자원자를 모집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유씨는 장교에 지원하지 않았다."제일중대장이 나에게 구두시문을 연발하면서 나의 학엄을 묻드니 낮에 어째서 응시않하였느냐고 모라대고 자기내 동반자하고 '아럿다' 소리를 연다라하며 나가 버렸다 영문이를 모르는 나에게는 위협을 받는 것 같애서(나쁜생각이 연상되어) 근심이 되었다. 부지중 몸도 떨었다"(같은 날 일기)고 적었다. 국민방위군 지휘관들에게 장교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추후 유씨는 병사보다 높은 계급이지만 장교에 속하지 않는 선임하사로 임명됐다.선발된 장교 자원은 두달 가량 짧은 교육만 받고 중대장으로 투입됐다. '졸속 임관'이었던 셈이다. 이들에겐 '방위군번'과 '방위사관학교 수료증'이 주어졌다. 이 2가지 문서를 활용해 이들은 참전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고, 곧 매월 수령할 수 있는 참전수당의 대상이 됐다. 보훈처의 국가유공자증 역시 받게 됐다.하지만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돼 고생을 겪은 수많은 민초들은 군번 없는 무명군인 신분이었고, 참전 사실을 인정받지 못한 채 잊혀졌다.진실화해위원회도 2010년 보고서에서 "이들(국민방위군 장교)은 사실상 국민방위군 사건의 가해자라 할 수 있는데… 참전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매우 유리하다. 반면에 제2국민병으로 끌려갔다 사지에서 살아돌아온 대다수는 군번도 없고 소집증도 없고 귀향증도 없는 그야말로 갔다가 왔다는 기억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국방부로부터 참전사실을 인정받기가 매우 어렵다"고 썼다. /김태성·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국민방위군과 관련한 결정적 사료가치가 있는 일기를 기록한 故 유정수씨의 생전 모습 사진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2020-06-16 김태성·신지영

'軍공항 이전 불씨 법안' 화성시 강력 반발

광주군공항 어려움 겪는 지역의원국책사업 가능케하는 개정안 발의市, 국회 동향 파악·반대활동 추진시의회도 특위 중심 적극대응 주문지지부진한 수원 군 공항 이전 사업에 불씨를 살려 줄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6월 10일자 7면 보도)되자, 화성시가 강력 반발하며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해당 개정안이 지방정부의 의견을 축소 시키는 안이어서 지방분권을 표방하는 현 정부 내에서의 법안 통과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게 화성시 분석이지만, 혹시나 모를 상황에 다각적인 반대 운동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16일 화성시와 화성시의회에 따르면 군공항이전대응담당관실은 최근 시의회 수원군공항이전반대특별위원회에 이같은 사항을 보고했다.이용빈(민·광주광산갑) 국회의원 등 15명은 지난 8일 제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군 공항의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이 법안은 국방부가 이전 예정지 주민 반대를 이유로 절차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해소하고자 예비이전후보지 선정기한과 절차를 규정하고, 국가가 직접 이전 주변지역에 대한 지원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담았다.수원 군 공항은 지난 2017년 2월 16일 화성 화옹지구를 예비 이전 후보지로 선정했지만, 이전 추진이 사실상 어려운 상태다. 이전 예정지인 화성시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고, 해당 지자체 동의 없이는 사업이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발의된 법안대로라면 지방정부의 반대에도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이를 끌어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 광주군공항이전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광주지역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복수의 화성시 관계자는 "특별법 개정안 저지를 위해 대외협력사무소와 협의해 국회 동향을 파악하고 우리 지역 국회의원 및 시민단체와 반대활동을 추진해 나가겠다"며 "서철모 시장도 여러 차례 확고한 반대 입장을 천명했고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러면서 "화성 서해안의 생태환경을 지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중요하다. 수원 개발을 위해 화성시에 군 공항 이전을 시도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시의회도 반대특위를 중심으로 강력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미숙 의원은 "(일부개정안은) 지자체의 권한을 축소하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다른 지자체와 공동으로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송선영 의원도 "수원시 한복판에 가서라도 치열하게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집행부에 강력한 의지 천명을 주문했다. 화성/김태성기자 mrkim@kyeongin.com

2020-06-16 김태성

북한, 개성 연락사무소 전격 폭파…청 "강력한 유감"

북한이 16일 오후 판문점 선언의 결실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 폭파했다. 북한이 남한을 '적'으로 규정한 뒤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 것으로, 남북관계가 파국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청와대는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는 한편 북한이 계속 상황을 악화시키면 강력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북한 조선중앙방송과 중앙TV 등은 폭파 2시간여만인 이날 오후 5시 "14시 50분 요란한 폭음과 함께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비참하게 파괴됐다"고 보도했다. 매체들은 "쓰레기들과 이를 묵인한 자들의 죗값을 깨깨(남김없이) 받아내야 한다는 격노한 민심에 부응해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선을 차단해버린 데 이어 우리측 해당 부문은 개성공업지구에 있던 북남공동연락사무소를 완전파괴시키는 조치를 실행했다"고 전했다. 이로써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 따라 그해 9월 개성에 문을 연 연락사무소가 개소 1년 9개월 만에 사라지게 됐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13일 담화에서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며 건물 폭파를 예고한 지 사흘 만에 속전속결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날 남측에서도 개성공단이 위치한 곳에서 폭음 소리와 함께 연기가 목격됐다. 경기 파주시 대성동마을의 한 주민은 "'쾅' 소리에 집이 흔들렸으며, 개성공단 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고 말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대북전단에 대한 남측 정부의 대응을 문제 삼으며 개성공단 완전 철거, 연락사무소 폐쇄, 9·19 군사합의 파기 등을 거론하면서 대남 압박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은 9일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연락채널 단절, 연락사무소 폐쇄 등의 조처를 했다. 북한은 향후 본격적인 대남 군사도발에 나설 것으로 우려된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공개보도 형태로 발표한 보도에서 "북남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들에 군대가 다시 진출하여 전선을 요새화하며 대남 군사적 경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행동 방안을 연구할 데 대한 의견을 접수하였다"고 밝혔다. 북측이 말한 '남북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는 개성과 금강산 일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한이 개성공단 철거에 이어 개성에 군 투입의 수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청와대는 즉각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김유근 NSC 사무처장은 회의 뒤 브리핑에서 북한의 연락사무소 일방 폭파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 뒤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기대를 저버린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북측이 상황을 계속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할 경우 우리는 그에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장인 서호 통일부 차관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의 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에 대해 "남북관계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비상식적이고 있어서는 안 될 행위"라며 "이에 깊은 유감을 표하고 강력히 항의한다"고 밝혔다. 서 차관은 "연락사무소 파괴는 2018년 판문점 선언의 위반이고, 남북연락사무소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의 일방적 파기"라며 "북측은 이번 행동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방부도 입장을 내고 "북한이 군사적 도발행위를 감행한다면 우리 군은 이에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 당국은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군사분계선(MDL) 지역에서 돌발 군사상황에 대비해 대북 감시·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연합뉴스북한이 남북 간 모든 통신연락 채널을 완전히 폐기한다고 밝힌 9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있는 개성공단 일대가 흐릿하게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북한이 16일 오후 2시49분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가 연기에 휩싸여 있다. /연합뉴스북한이 16일 오후 2시49분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독자 제공

2020-06-16 연합뉴스

[잊힌 군인들 '국민방위군'·(2) 그들은 왜 잊혔나]국방장관도 '한통속' 군납비리에 묻힌 참상

국회특위서 '부정행위' 적발 불구'軍지휘체계' 대한청년단 기반 탓단장 출신 신성모 장관 조사 반대횡령액수외 사망·실종 등 못 밝혀60만명 이상의 민간인이 징집돼 수 만 명이 희생 당하는 피해를 발생시킨 국민방위군 사건은 피해 규모와 참상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비극이다. 교과서에도 한 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사건이 묻힌 건, 참상 이후 조사하는 과정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였기 때문이다.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국민방위군 사건이 표면 위로 떠오른 건 1951년 1월 제2대 국회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면서다. 같은 해 3월 한 달 가량 조사를 벌인 국회특별조사위원회가 허위인원 조작, 납품 허위기재, 횡령·상납 등의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다만 당시 신성모 국방장관이 조사를 반대하고 군 헌병대가 축소 수사를 펼치면서 관련자에게 파면이나 무죄 등 비교적 가벼운 처벌만 내려졌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국민방위군의 지휘체계가 우익 청년단체인 대한청년단에 기반하고 있어서였다.신성모 국방장관이 바로 대한청년단 단장을 역임한 인물이었다. 진실화해위원회도 "책임자인 교육대장은 대부분 대한청년단과 청년방위대 출신의 방위중령이 임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이들의 경력 등에 대한 인사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이후 국회가 국민방위군 폐지 법안을 50년 4월 통과시키며 조직은 사라지게 됐고, 국방장관 해임과 재수사 등의 절차가 진행됐다. 재수사에 따르면 현금 24억여원과 양곡 1천800여 가마가 부정처분된 것으로 확인됐다. 1950년 대한민국 정부의 총 예산은 1천55억원 규모로, 국방예산은 그중 250억원 가량이었던 것으로 미뤄볼 때 대형 군납 비리에 해당한다.그 결과, 국민방위군 사령관과 부사령관, 재무실장, 조달과장, 보급과장 등 5명이 같은 해 8월 처형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같은 시기 대한청년단 출신 국회의원의 모임인 신정동지회 재정책임자가 구속되며, 횡령금이 정치권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더 이상 국회의원들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정부는 횡령 액수 외에 국민방위군 피해 규모를 정확하게 조사하지 않았고, 사망·실종 사실 역시 유족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현재 국민방위군은 기억 속 잊힌 군인들이 되고 말았다.진실화해위원회는 "국민방위군이 해체된 뒤 국방부에서는 공식적으로 사망자가 1천234명이라는 피해상황을 발표했으나 38만여명에 달하는 낙오자의 행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5만여명이 사망하였다는 (당시)언론보도나 국회의 피해상황 보고내용을 보면 이 사건으로 인한 피해가 발표와는 달리 심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 일지 참조 /김태성·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2020-06-15 김태성·신지영

[잊힌 군인들 '국민방위군'·(2) 일기로 되돌아 본 한국전쟁과 생활상]中共敵이 부산근처까지… 金烏山은 전화를 입어 무참히 불탔다

1950년 12월~ 1951년 3월까지 여정속 당시 식생활등 짐작 가능'포성 은은히 들리며 속리산 공비잔적 소탕'… 잔혹한 현실 마주'다찌노미 할때 고치장의 맛'… 남아있던 일본문화의 흔적 발견국민방위군 고 유정수씨가 남긴 일기 속에는 1950년대 당시의 식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은 물론 한국전쟁의 참혹함과 교육대 생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일기에 나타난 한국전쟁은-1950년 12월부터 1951년 3월까지 작성된 유씨의 일기는 수원에서 청도 교육대로 이동하고, 다시 귀향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예비부대 성격을 지녔던 국민방위군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실제 전투에 참여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지만, 이동과정과 교육대 생활 속에서 한국전쟁의 단편을 표현한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그가 51년 1월 경상북도 청도의 교육대에 도착한 뒤 작성한 일기에는 "교관왈 '전황은 현재 중공적이 부산근처까지 왔으리라고 추측된다 하며 화성군 피난민은 대전, 전주, 대구 등지에 집결되어 있다고' 모두들 집 식구가 어찌 되었을까 하고 잠도 자지 못하며 근심들 한다"(51년 1월 12일)는 내용이 나온다.1950년 11월 중국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했고, 서울이 다시 북한군에 넘어가는 1·4후퇴를 계기로 전선이 밀리고 만다. 이런 상황이 일기에 표현된 것이다. 귀향 여정이 담긴 51년 3월 일기 속에는 남겨진 북한군이 산속으로 숨어들어 소규모 게릴라 활동을 하는 이른바 '빨치산'의 모습도 나타난다.그는 51년 3월 9일 일기를 통해 "보은까지 오는 도중 도로변도 몹시 파괘되었다 어재 저녁부터 포성이 은은히 들리며 오는대 지방인의 말을 들으니 보은군 북방30리에 있는 속리산에서 공비잔적을 소탕하는 중이라고 한다"는 구절이 그렇다.또 51년 3월 6일 일기에는 "금오산(경상북도 구미시·칠곡군·김천시의 경계에 있는 산)은 무참히도 전화를 입어 완전히 소화되어 버린 채 있었다"는 구절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이 표현돼 있다.■ 국민방위군 교육대·50년대 생활상-급조된 국민방위군 교육대는 정병을 양성할 역량이 없었다. 부정한 방식으로 국민방위군이 받아야 할 물자가 착복돼 열악한 환경 속에서 폭력적인 방식으로 훈련이 진행됐다."주식후 겁내며 기다리든 무서운 기합을 받았다 이유는 변소사번이 불찰하여 청결정돈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 개인적으로 잘한 사람도 있으나 대대 전체적으로 보아 불미하니까 연대기합을 받으라는 것이다. 약 20회 엎두러뻐처를 하곤 장작개비로 다섯 대식 맞었다"(51년 1월 10일)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유엔군이 주요 도로를 보급로로 사용하며 민간인 출입을 통제했기 때문에 국민방위군은 산길 등을 통해 교육대로 이동해야만 했다. 제대로 보급품을 받지 못한 여정이었기에 인근 민가에서 도움을 받는 일이 허다했다.50년 12월 25일 일기에는 "주인 왈 먼저 통과한 부대들의 난복이란 말할 수 없다 수저는 모다 잃고 그릇도 깨틀고 자기네 세도만 믿고 부량을 부리고 하니 하니곱고 귀찮아 영업을 중지한다고 하며 지방 아는 손님이 오면 방으로 모셔 슬그머니 대접한다"는 구절이 있다.보급이 없다 보니 유씨는 징집 당시 가져온 돈으로 식사를 해결하곤 했다. 인절미(50년 12월 26일)를 사먹거나 교육대에서 외출할 때 음식을 사는 방식이었다. 51년 1월 7일 일기에는 "외출은 대대장 혹은 주번사령의 허가 없이는 엄금이다. 그래서 울타리 사이로 도식(암매식)하는 자가 많다. 들키기만 하면 기합(?)이다. 그래도 암매식한다"는 구절에서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내 슬쩍 외출하여 탁주일배를 하였더니 기분이 좋다 주가부억에서 '다찌노미'(입음)을 할 때 살광(선반을 가리키는 경기방언)에 놓인 '고치장'의 맛. 집을 떠난지 처음 먹어보는 '무상치'의 맛이란 각별하다"(51년 1월 9일)는 기록이 있다. 다찌노미는 서 있는 상태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식당을 이르는 말로 당시까지 남아 있던 일본문화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다. /김태성·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한국전쟁 당시 국민방위군 징집에 응해 전장에서 일기를 기록한 故 유정수씨가 남긴 당시 신분증 등 유품.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2020-06-15 김태성·신지영

'진중일지'쓴 유정수는 누구인가

화성서 3남2녀 집안의 장남 출생의왕 부곡초교 교사 재직중 징집노트·펜 챙겨 당시 행적들 기록국민방위군 일기를 쓴 유정수(1925~2010)씨는 3남2녀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쟁통에도 일기를 집필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지식인이었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한국전쟁 당시 유씨는 의왕 부곡초등학교(당시 화성군 일왕면)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선린상업학교 전수과(현재의 야간제) 3년을 졸업한 그는 일본에서 발행된 셰익스피어 작품을 통독할 정도로 문학에 큰 관심을 보였다.일본은 명치(1868~1912)·대정(1912~1926)·소화(1926~1989) 등 시기마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번역을 달리했는데, 각 시기의 번역본을 모두 섭렵할 정도였다.서양작가 중엔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괴테, 도스토옙스키를 즐겨 읽었고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작품도 좋아했다. 일본 작가 중엔 일본 근대문학의 초석을 놓은 나쓰메 소세키,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에 큰 관심을 보였다.삼국지·서유기·홍루몽 등 중국소설과 홍명희의 임꺽정과 같은 소설도 즐겼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경성 삼립상회의 직원으로 일하던 시기엔 점심 값을 아껴 문고판 서적을 구입할 정도였다.그가 나고 자란 마을의 분위기도 전쟁 중 일기를 집필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화성시 요당리는 1960년대까지 24호 정도가 모여 있는 소규모 촌락이었는데, 작은 마을에서 15명의 박사 인재를 배출할 정도로 높은 학구열이 있었다고 한다.1950년 12월 23일 국민방위군 징집에 응한 그는 노트와 펜을 챙겨 자신의 행적을 자세히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의 지식인 면모는 일기 속에도 잘 표현돼 있다.51년 1월 17일 일기에는 "나는 내가 혹시 전장에 나가 죽는다 하더라도 나의 후계를 잇다는 봉건적 풍습으로해서 양자를 한다거나 하는 것을 싫여한다 인수가 있다 장자건 차자건 따질것 없이 집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면 고만이다 만일 내가 전사한다면 윤수(유씨의 아내)는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용감한 길로 나서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새로운 행복을 찾을 이 당연지사요, 신시대에 맞는 사상이다. 허례를 타파하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남존여비의 봉건사상에 매여 있지 않고 자유와 선택을 중요시하는 근현대적 사고가 엿보인다.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1970년까지 교사로 근무한 유씨는 이후 과수원을 운영하고 지역활동에 참여하는 등 삶을 이어오다 지난 2010년 숨을 거뒀다. 교사 재직 시절엔 월부로 출판사의 책과 잡지를 구매할 정도로 문학에 관심을 이어갔다.생전 그는 먼저 국민방위군 경험을 꺼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보다 불과 2~3살이 많은 청년들은 강제징용의 피해를 받았고,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동년배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국군에 자원 입대를 해야 하는 시대였다.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모두 겪은 그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여겼다고 한다. 유씨의 아들인 유창희 씨는 "아버지는 언제나 긍정적이셨고 무엇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셨던 지식인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진보적인 생각을 말씀하시곤 했다"고 회상했다. /김태성·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2020-06-15 김태성·신지영

수원시의회 군소음보상법 주변지역 피해보상 대책마련 강력 촉구

수원시의회(의장 조명자)가 15일 개회한 제352회 제1차 정례회 제1차 본회의에서 국방부가 추진하고 있는 군용비행장·군사격장 소음방지 및 피해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군소음보상법) 하위법령 제정에 있어 군소음 피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지원이 이루어지길 강력 촉구했다.그동안 피해지역 주민들은 소음으로 인한 피해를 소송에 의해서만 배상 받아왔지만, 지난해 11월 '군소음보상법' 제정으로 소송 없이 보상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그러나 국방부가 제시한 하위법령안은 보상기준이 엄격하고 소음대책 피해지역 경계가 모호해 보상금 지급과 관련하여 갈등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호진 의원은 제안 설명에서 "소음보상 기준이 민간항공 소음보상기준과 형평성이 맞지 않고, 소음 피해지역의 경계도 피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이어서 "하위법령에 포함된 소음대책지역 시설물 설치제한에 있어서도 과도한 규제를 완화해 주민 재산권 침해를 최소화하고, 주민지원사업 및 소음방지대책사업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날 시의회는 결의문을 통해 소음대책 지역에 대해 ▲보상기준을 민간비행장과 동일한 75웨클로 할 것 ▲시설물 설치 제한 완화로 사유재산권을 보장할 것 ▲ 주민지원사업의 법적근거 마련 ▲ 소음영향도 90웨클 이상 지역 내 토지 소유자가 국방부 장관에 토지매수 청구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할 것 ▲보상금 감액조항 삭제 및 소음대책지역 경계구분을 지형·지물 기준으로 하여 보상범위를 확대해줄 것을 촉구했다.시의회는 이 같은 내용의 결의문을 국회의장, 행정안전부, 전국의 지자체 등에 전달할 예정이다./김영래기자 yrk@kyeongin.com수원시의회 소속의원들이 15일 군소음보상법 주변지역 피해보상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수원시의회 제공

2020-06-15 김영래

[잊힌 군인들 '국민방위군'·(1) 70년 만에 돌아온 선임하사의 일기] '대책없는 징집' 수많은 희생에 책임도 없었다

수십만 '민간인'으로 구성됐던 軍극한 추위·배고픔 '지옥같은 고통'故 유정수씨 일기 통해 참상 확인한국전쟁 70년, 6월의 역사는 치유되지 않는 민족의 슬픔이다. 그 슬픔의 가운데 기억 속에서 잊힌 군인들이 있다. 바로 '국민방위군'이다. 수십 만의 민간인으로 구성된 국민방위군은 이들에게 쓰여야 할 국고와 물자를 간부들이 착복해 수만명이 굶거나 얼어 죽는 비극을 겪었다.참상 후, 이들에 대한 재조명이나 명예회복은 이뤄지지 않았다. '증언'만 있고, '사료'는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경인일보는 이 사건의 결정적 사료가 될만한 국민방위군의 일기를 발굴했다. 고(故) 유정수씨가 남긴 일기에는 국가의 부름에 응해 전장에 뛰어들었지만, 지옥 같은 현실과 마주한 국민방위군의 처절한 생활상이 담겨 있다. → 편집자 주'사랑하는 내 어머니와 아내와 동생들에게 이 기록을 드리노라'.국민방위군 사건을 재조명해 줄, 유정수(1925~2010)씨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수원군 양감면 요당리(현재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에서 태어난 그는 국민방위군에 징집된 1950년 12월 23일부터 이듬해 3월 10일까지 76차례 일기를 작성했다. 그중 내용 없이 날짜와 요일만 명기한 게 2차례고 가장 긴 일기는 759자, 가장 짧은 일기는 단 3자만 기록했다.극한의 추위와 굶주림 속에 이동하는 과정을 기록한 일기들은 대체로 짧고, 교육대에 도착한 뒤 일과와 심경을 담은 일기는 상대적으로 긴 편이다.징집령에 따라 수원에 집합한 그는 대오도 갖추지 못한 채 국민방위군 제22교육대가 있는 경상북도 청도로 향한다. 용인-장호원-문경-상주-의성-영천을 거쳐 청도에 도착한 뒤, 대구-김천-보은-청주를 지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일기의 중심이다.이 시기는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해 국군과 유엔군이 전선을 남하하는 상황이었다. 북한군이 다시 서울을 점령한 1·4후퇴를 앞두고 국민방위군이 먼저 소개되기 시작했고, 그들은 인솔자도 지휘계통도 없이 목적지만 전달받고 무작정 남행길에 나섰다.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이 사건을 조사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당시)정부는 미처 관리대책 등을 마련하기도 전에 중공군의 남침으로 인하여 급속히 수십만에 달하는 국민방위군을 남쪽으로 무리하게 이동시키기 시작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주민통제가 강화되고, 수집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등 무리가 잇따랐다"면서 "워낙 급작스런 이동작전이었으므로 피복, 식량, 의약품, 수용시설 등 모든 면에서 준비가 부족하여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였다"고 설명한다. 정부의 졸속행정이 피해를 낳은 셈이지만 현재까지 국민방위군 희생에 대한 어떤 보상도 사과도 이뤄지지 않았다. /김태성·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한국전쟁 당시 국가의 부름에 응해 국민방위군으로 전장에 뛰어든 고 유정수씨가 남긴 일기장 복사 촬영본.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2020-06-14 김태성·신지영

[잊힌 군인들 '국민방위군'·(1) 故 유정수씨 일기 속 '그날의 기억']청도까지 '죽음의 행군'… 가족 떠올리며 '死地서 버텼다'

수원운동장·인천 축현초교등 집결… 장호원 거쳐 경상도 교육대 진입4홉의 식량 배식·횡령 여파 짐작 대목등 '고난·궁핍' 흔적 고스란히1951년 3월 "고향산천 가까우니 모두 얼굴에 희색"으로 일기 끝맺어국민방위군 고 유정수씨의 일기에는 고난과 궁핍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 속에서도 놓치지 않았던 건 가족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었다.1950년 12월 23일 첫 일기는 "오늘 8시까지 집합이라고 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는 "수원시 공설운동장에 가서 집합하였다. 궹장이 많은 사람의 물결 아마 만여명은 데리라"고 징집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같은 날 일기에서 그는 "고생은 이제부터다 지금부터 출발해서 목적지는 김량장(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이라고 한다. 길은 유리쪼각으로 포장한것 같이 어름으로 깔리고 갈래를 지나서부터는 가 일층 심하다"고 살을 에는 추위 속에 먼 길을 나서는 모습을 표현했다.국민방위군은 서울(창덕궁), 경기북부(안산초등학교·아현초등학교), 경기남부(수원운동장), 인천(축현초등학교·동산중학교) 등에 집결했다. 인천에서 출발한 대오는 해군함정을 타거나 육로로 이동했고, 나머지 수도권 장정들은 대개 장호원-문경-영천을 거쳐 경상도로 진입했다.수원을 출발한 유씨 일행 역시 용인, 장호원, 문경, 상주, 의성, 영천, 청도로 이동한다.그의 일기 곳곳에서 혹한 속 이동의 어려움을 묘사하는 장면을 찾아볼 수 있다. "23일 김량장에 와서 추워 떠를때 연대장이 훈개하여 가로대 지난밤 여기서 동사자가 3명 났으니 너이들도 정신차리라는 것이였다"(50년 12월 25일 일기)는 대목이나 "이화령(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 넘어 문경착, 죽을 고생을 한 기억이야 생사 잊지 못할터" 같은 구절이 그렇다.12월 23일 출발한 그는 해를 넘겨 1월 4일 청도에 도착했다. 추위와 함께 유씨를 괴롭힌 건, 배고픔이었다. "군위남방 2k 지점에서 유숙. 밥이 적어"(51년 1월 1일), "식사는 백미1일4합(홉)반이다 찬은 간장 된장과 된장국을 끓여주는대 때에 따라서는 이상 세가지중 한가지 밖에 없고 국만을 밥에 부어줄때가 많다"(51년 1월 7일)고 그는 썼다.일기에 따르면 이들에겐 하루에 4홉의 식량이 배식됐다. 10홉은 1되와 같은데, 1되는 곡물을 두 손으로 움켜 잡았을 때 잡히는 정도의 양을 뜻한다. 당시 전쟁포로에겐 국민방위군보다 더 많은 1일 5홉5작(홉보다 작은 단위)의 식량이 주어졌다.천신만고 끝에 교육대에 도착한 뒤로도 추위와 배고픔은 이어진다. 청도에서의 교육대 생활을 기록한 일기에서는 그 동안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던 국민방위군 횡령 사건의 여파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등장한다. 군 간부들은 국민방위군 몫으로 편성된 예산은 물론이고 식량도 중간에서 빼돌렸고, 이는 곧 국민방위군 민초들의 고통으로 되돌아왔다."내무실이 추어서 병자가 속출하는대 의무실에 설비도 약도 부족하여 곤란이다. 내무실 통교실 마루 바닥에 지직, 집, 가마니 등을 두서너겹 깔었으므로, 잘적에는 침구라야 담요 1매뿐인지라 모두들 춥다고 떠든다"(51년 1월 11일)거나 "이 고장에 거처한 이래 처음 겨끄는 모진 추이다 실내에 102명이 한 대끼여 자건만 찬바람이 얼골을 스처, 방안은 싸늘한 기운이 스쳐든다. 밤새도록 기침하느라고 혼이났다"(51년 1월 13일)는 데서 열악함을 가늠할 수 있다.또 "훈련에 자신이 없는 내가 건강에도 자신이 없다. 기침이 어떻거면 가라앉일까? 이리궁리 저리궁리 하다가 별 도리없어 고만이다 의무실이 엉터리인 가닭이다"(51년 1월 14일)라고 썼다.식량 부족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주먹밥에 소곰도 없다"(51년 1월 29일)는 지경에 이르더니 "식사는 오날부터 일식에 1합(홉)1작으로 주러 붙고, 국도 없어 어느때는 메르치 여나문마리, 또는 된장 한숫가락 때로는 고등어나 갈치 조기 같은 것을 오, 육인 앞에 짜게 쩌서 한 토막식 준다. 국을 끓여 준대야 맨 된장 국이라 간을 않처서 맹물 같은대 그나마 반사발 밖에 않준다"(51년 2월 19일)는 수준에 달했다.이런 모진 역경을 견디게 해 준 건 결국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이었다. 그는 51년 1월 17일 일기에서 "어잿 밤에는 잊어지지 않는 꿈을 꾸었다. 즉 다음과 같다 집에 도라갓는데 윤수(유씨의 부인)가 밥을 갓다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잘때에 건넛방에 할머님이 생존자와 같으신 모습으로 누어 기시고 희수랑 이삼인이 같이 누어있었다. 나의 아들이라고 하는 어린아이가 재롱을 떠는대 내가 안어주면 좋와한다"고 기록했다."지반식구는 어찌 지내고 잇나? 자나깨나 생각이다 숙부께서는 어떻게 되신 것일까. 윤수야 잘지내느냐 넘어 나의 염려하다가 병이나 나지 않았는지 굳세게 이 세상을 사러다오-"(51년 2월 25일)라고 쓰기도 했다.춥고 배고픈 고난도 희망을 꺾지 못했다. "누구나 머릿속에 훤히 띠이는 것은 그 풍성진 음식과 삿듯한 의복이다. 그리고 세배 단이는 이곳사람을 보면 고향 동리에서 흥성맛고 즐거웁고 재미나던 동리의 설날 광경이 눈에 환-하게 보이는 듯하다"(51년 2월 6일)던 그는 51년 3월에 이르러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길에 "이제 고향산천이 보일 듯이 가까우니 모두들 얼굴에 희색을 띄우고 집에가서 가족 만나보고 음식해먹을 이야기로 발아픈 것은 잊는다"고 일기를 맺었다. /김태성·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한국전쟁 당시 국민방위군으로 활동한 고 유정수씨의 아들 유창희씨가 아버지의 증언을 토대로 일기장 내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일기장 앞에 놓인 사진 속 인물은 전장속 일기를 작성한 고 유정수씨.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2020-06-14 김태성·신지영

'알아서 교육대로 가라'… 고령자도 예외없던 국가의 명령

민간인을 '제2국민병' 강제 징집대부분 산길 이동 동사·아사 빈번낙오자 27만여명… 사망자수 불명국민방위군은 한국전쟁 당시 반강제로 징집된, 민간인으로 구성된 부대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북진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중국군 개입으로 전선을 남하하기 시작한다.서울이 북한군에 의해 다시 점령되는 1·4후퇴를 앞두고, 정부는 부랴부랴 민간인을 징집해 국민방위군으로 편성했다.1951년 국회 조사에 따르면 국민방위군 징집총수는 60만 명 이상이다. 이들은 남쪽 지역에 설치된 교육대로 이동해야 했다. 징집된 민간인에겐 목적지만 주어졌고, 알아서 그곳까지 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 지도 참조한반도 전역의 주요 도로는 유엔군이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방위군 대부분은 산길을 이용해 남하할 수밖에 없었다. 12월부터 1월 사이 가장 추위가 맹렬한 시기, 제대로 된 피복과 음식 없이 급하게 이동하며 많은 수의 국민방위군이 거리와 산속에서 동사하거나 아사했다.여기에 이들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교육대는 시설이 열악했고, 그곳에서 발생한 장티푸스 등의 질병으로 또다시 많은 국민방위군이 희생됐다. 국회 조사 결과, 교육대에 수용된 인원은 38만여명이고 낙오자는 27만여명이다. 이동과정과 교육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숨졌는지는 현재까지 정확히 확인된 바 없다.2000년대 들어 이 사건을 조사한 진실화해위원회는 피해 대부분은 기아와 전염병으로 발생했으며 희생자의 규모는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국민방위군은 징집부터 불법 소지가 다분했다. 앞서 1949년 8월 6일 대한민국 정부는 병역법을 공포하며 현역 군 복무를 마친 남자를 예비병역-후비병역-제1국민병역으로 편입해 18년 동안 국방의 의무를 다하도록 설정했다. 지금의 예비군-민방위와 비슷한 개념이다.제1국민병역 외에 병역을 마치지 않은 만17세~40세 남자를 '제2국민병'으로 소집할 수 있도록 했는데, 국민방위군은 바로 이 제2국민병이 흡수돼 만들어진 민간인 부대였다.1950년 12월 17일 공포된 국민방위군 설치법은 '지원에 의하여 국민방위군에 편입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강제 징집이 이뤄졌고 40세가 넘는 고령자나 학생·공무원 등도 예외 없이 징집 대상이 됐다. /김태성·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2020-06-14 김태성·신지영

탈북단체 석모도 쌀 페트병 '구상권' 청구한다

탈북단체 등이 오는 21일 강화 석모도 해상에서 쌀이 담긴 페트병을 북측에 보내겠다고 밝힌 가운데 인천시가 해양경찰과 함께 이들 단체에 대해 해양환경관리법 등을 적용, 강력 대처하고 구상권까지 청구하기로 했다. 인천시는 접경 지역인 강화도 일대를 '위험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14일 인천시 관계자는 "탈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와 쌀 페트병 해상 전달 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대책을 15일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선 인천시는 탈북단체가 예고한 강화 석모도에서의 쌀 페트병 전달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이들 단체에 해양환경관리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시는 쌀이 담긴 페트병을 해상에 띄우는 것 자체를 오염물질 배출 행위로 보고 인천시 특사경, 해경, 해수부 등과 함께 해양관리법 위반 혐의로 단속·수사하고 고발 처분한다는 계획이다. 만약 탈북단체가 쌀 페트병을 해상에 띄울 경우 해경 함정과 어업지도선이 즉각 수거 할 수 있도록 조치하기로 했다.이와 함께 접경 지역인 강화도를 위험 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미 경기도는 지난 12일 김포, 파주, 연천 등 접경지역을 재난 및 안전기본법에 따른 위험구역으로 지정해 선포했다.인천시 관계자는 "서해5도, 강화도 인근은 서해북방한계선(NLL)이 지나는 곳으로 언제든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곳"이라며 "탈북단체 행위가 주민들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는 만큼 강력 대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왼쪽)가 지난 8일 오전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석모리 한 해안가 진입로에서 통행을 막아선 주민에 반발하고 있다. /연합뉴스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지난 8일 오전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석모리 한 해안가 진입로에서 통행을 막아선 주민들에 반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06-14 김명호

공군작전사령부, 2020년 전반기 특수임무소대(반) 헬기 레펠 훈련 시행

'실전 보다 더 실전처럼'.공군작전사령부(이하 공작사)가 지난 1일부터 2주간 교육사령부 정보교육대대에서 비행기지 군사경찰대대 특수임무요원 1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2020년 전반기 헬기레펠 훈련'을 가졌다.이번 훈련은 특수임무요원들의 임무 역량을 강화하고 유사시 대테러 작전 수행 절차를 숙달하기 위해 마련됐다. 훈련에 참가한 특수임무 요원들은 공군 제6 탐색구조 전대(이하 6전대) 특수탐색구조대대 훈련장에서 헬기레펠 설치 방법과 하강자세를 숙달하는 등 지상 훈련을 실시했다.이후 훈련 참가자들은 HH-60 헬기에 탑승해 교육사령부 정보교육대대 낙하산 강하 훈련장 10m·15m 상공에서 각 1회씩 하강하는 실전 훈련을 가졌고 이를 통해 자신감을 배양했다.이들은 훈련 이후 토의와 강평을 통해 개인별 임무 기량을 평가하며 보완사항을 점검하고 작전 노하우를 공유했다.훈련을 주관한 공작사 기지방어과장 우종성 대령은 "테러 등 긴급상황 발생 시 대테러 초동조치 부대로서 현장 작전 종결 능력을 보장하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실전적이고 강도 높은 훈련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한편 공작사는 예하부대 특수임무소대(반)의 임무수행 능력을 구비하기 위해 연 2회 정례적으로 헬기레펠 훈련을 실시한다. 평택/김종호기자 kikjh@kyeongin.com2020년 전반기 헬기레펠 훈련에 참가한 요원들이 하강 후 경계 자세를 취하며 실전과 같은 상황에서의 대응 기량을 점검하고 있다. /공군작전사령부 제공특수임무 요원들이 헬기레펠 훈련에 참가해 10~15m 상공에서 실제 하강을 실시하고 있다. /공군작전사령부 제공

2020-06-14 김종호

반환 13년만에… '파주 캠프 스탠턴 부지' 산단개발 추진

市·GS건설 '사업 기본협약' 체결교통 인프라 확충후 기업들 '눈길'2025년까지 87만여㎡ 3400억 투입월롱면 '캠프 에드워즈'도 곧 협약한국에 반환된 뒤 13년간이나 방치됐던 파주시 광탄면 소재 미군 캠프 스탠턴 부지 총 87만여㎡의 개발사업에 시동이 걸렸다. 지난 2004년 미군 부대가 철수하고 2007년 국방부에 반환된 후 환경복구를 거쳐 대학 유치 등 개발사업이 시도됐으나 번번이 무산되면서 지금껏 방치돼 왔던 곳이다.파주시는 10일 오전 시청 비즈니스룸에서 최종환 시장, 이상기 GS건설 인프라부문 대표 간 캠프 스탠턴 산업단지개발사업 기본협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섰다.시는 앞서 지난해 초 '파주 캠프 스탠턴 공여구역 주변지역 도시개발사업 제안 및 사업자 공모'를 거쳐 같은 해 7월 GS건설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GS컨소시엄에는 현재 법원읍 대능리에 추진되고 있는 법원2일반산업단지 시행사인 법원산단(주)와 하이투자증권 등이 참여하고 있다. GS건설 컨소시엄은 이곳에 제조·물류시설, 방송 제작 시설, 970가구의 단독·공동주택용지 등의 산업단지 개발사업 추진을 제안했다.GS건설 컨소시엄은 내년 6월 초까지 파주시로부터 개발 계획 승인을 받으면 2025년까지 3천400여억원을 들여 캠프 스탠턴과 주변 지역 등 총 87만여㎡를 개발하게 된다. 1953년 주한미군에 공여돼 항공·기갑부대가 주둔한 캠프 스탠턴은 한국전쟁 중 전투기 충돌로 사망한 미국 제24보병사단 제15조종사였던 스탠턴(John B.Stanton) 중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최종환 시장은 "파주시를 포함한 접경지역 지자체는 지난 70여년간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하며 피해를 감내해 왔다"며 "주민숙원사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한편 지난해 캠프 스탠턴과 함께 캠프 에드워즈(월롱면 영태리)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도 조만간 파주시와 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파주지역 반환 미군기지 개발사업은 2018년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에도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해 기업들의 관심이 그다지 표출되지 않았다. 그러다 서울∼문산 고속도로는 내년 말, 광역급행철도(GTX-A) 운정 노선은 2023년 각각 개통되는 등 교통인프라가 확충되면서 기업의 관심이 커졌다. 파주/이종태기자 dolsaem@kyeongin.com10일 오전 파주시청 비즈니스룸에서 최종환 파주시장(왼쪽)과 이상기 GS건설 인프라부문 대표가 캠프 스탠턴 산업단지개발사업 기본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파주시 제공

2020-06-10 이종태

후보지 선정기한 못 박은 '수원군공항 이전' 날개 달까

이용빈 의원, 개정안 국회서 발의건의서~공고 시점 등 절차별 명시초과비용 국비 지원 근거 마련도부지선정 기한이 명시되지 않아 별다른 진전이 없던 수원군 공항이전사업에 탄력을 줄 법안이 발의됐다.별다른 처리기한이 없어 제자리걸음을 거듭한 화성 화옹지구에 대한 결정이 진전할 근거가 생기게 됐다.이용빈(민·광주광산갑) 국회의원 등 15명은 지난 8일 제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군 공항의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이 의원은 "군 공항의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2013년 4월 제정됐고, 군 공항 소음으로 국가가 부담해야 할 보상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음에도 부지 선정 기한이 정해지지 않아 국방부가 이전 예정지 주민 반대를 이유로 절차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개정안엔 지방자치단체의 이전 건의서 제출부터 부지 선정계획 수립과 공고 시점까지 절차별 기한을 명시했다.먼저 예비이전후보지 선정기한과 절차를 규정했다. 또 군 공항 이전부지 선정위원회를 예비이전후보지가 선정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구성하도록 하고, 이전후보지가 선정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이전부지 선정계획을 수립·공고하도록 명시했다.아울러 국가가 직접 이전 주변지역에 대한 지원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새로운 공항 건설비용이 현재 군 공항의 가치를 넘어서면 초과비용에 대해선 국가가 직접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이렇게 국가의 직접지원 근거가 마련되면 지자체의 부담은 크게 줄게 된다.현재 군 공항 이전사업은 '기부 대 양여'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기부 대 양여란 지자체가 군 공항을 조성해 국방부에 기부하고, 국방부는 기존 군 공항부지를 지자체에 넘겨주는 방식이다. 법 개정안에선 사업비 측면에서 차이가 나는 금액을 전액 지원사업비로 활용해 이전 주변지역에 대해 지원하도록 명시했다. 또 국고보조금을 활용해 도로·철도와 같은 기반시설 설치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해당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정체된 군 공항 이전사업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4년 3월 20일 전국 최초로 이전건의서가 제안된 수원 군 공항도 지난 2017년 2월 16일 화성 화옹지구를 예비 이전 후보지로 선정했지만, 수년째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김동필기자 phiil@kyeongin.com수원 군공항 비행장 전경. /경인일보DB

2020-06-09 김동필

"접경지역 섬, 수도권 핀셋 규제완화해야"

市 '정비계획법 개정' 국토부 건의강화·옹진 군사시설 묶여 '이중고'미군 공여구역 수준 '배려' 첫 요구인천시가 강화·옹진군 등 접경지역 섬을 주한미군 주둔지 주변처럼 수도권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국가 방위를 위해 희생을 한 곳인 만큼 주한미군에 땅을 내준 지역과 비슷한 수준의 규제 완화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인천시는 국토교통부에 이 같은 내용의 수도권정비계획법(이하 수정법) 개정 건의를 했다고 8일 밝혔다. 인천시 관계자는 "강화·옹진군을 수도권 울타리에서 아예 제외해달라는 게 아니라 낙후된 지역 개발을 위해 '핀셋 규제 완화'를 해달라는 것"이라며 "지난 5일 국토부에 건의서를 보냈고, 관련법 개정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수정법은 수도권에만 인구와 산업이 집중되지 않도록 서울·인천·경기지역의 과도한 개발을 규제하는 법이다. 강화·옹진군의 경우 북한과 인접한 군사 요충지로 이미 군사시설 관련 규제에 묶여있는데 행정구역상 인천시라는 이유만으로 수정법 적용을 받아 이중 규제의 고충을 겪고 있다.인천시는 그동안 '서울특별시와 그 주변 지역'으로 정의된 수도권에서 강화·옹진군을 빼달라는 지역적 개념의 수정법 개정을 건의했지만, 이번에는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처럼 안보를 위해 희생한 지역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정책 논리를 처음 제기했다. 주한미군 부대 주변 지역은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에 따라 공장 신설이나 대학 설치 등에 대한 수정법 규제를 일부 적용받지 않는다. 인천에서는 부평구 6개 동이 해당하고, 경기도는 14개 시·군의 102개 읍·면·동이 이런 혜택을 받는다. 인천시 관계자는 "강화와 옹진이 지리적으로 서울 주변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수도권이라는 점은 인정하되 접경지역이라는 특수성을 반영해달라는 취지로 접근하려 한다"며 "강화·옹진 지역 주민들도 주한미군 주둔지 못지않게 군사 안보적으로 유무형의 고통 분담을 해왔다"고 말했다.인천시는 수정법 2조(정의)에 접경지역에 대한 정의를 추가하고, 각종 행위제한 사항을 규정한 수정법 8조에 '접경지역은 행위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항목을 신설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인천시는 최근 21대 국회가 개원함에 따라 강화·옹진 지역구 의원인 미래통합당 배준영 의원을 비롯한 지역 정치권에도 수정법 개정과 관련한 입법을 적극 건의할 방침이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백령도 전경 /경인일보DB

2020-06-08 김민재

무력충돌 방지 주춧돌 군사합의 잇단 파기경고…'안전판' 위기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을 해소하고 무력충돌을 막는 주춧돌로 평가돼온 9·19 남북군사합의서가 뜻밖의 위기를 맞았다.남북 및 북미관계 교착 국면이 지속되는 가운데 탈북민들의 대북전단 살포 문제로 군사합의서 파기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전문가들은 7일 군사합의서가 파기되면 남북은 '냉전시대'로 되돌아가 충돌 위험 고조뿐 아니라 유·무형의 경제적 손실, 무한 군비경쟁 등을 우려했다.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담화를 통해 탈북민의 대북전단 살포를 거론하며 "있으나 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어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대변인은 김 제1부부장 담화 하루 뒤인 5일 내놓은 담화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직시하면서 대결의 악순환 속에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이 우리의 결심"이라며 "어차피 날려 보낼 것, 깨버릴 것은 빨리 없애버리는 것이 나으리라는 것이 우리 입장"이라고 주장했다.무엇을 깨겠다는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은 것으로 미뤄 적대행위 중지를 명기한 군사합의서를 지칭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대북전단이 군사합의서에 명기된 '기구'(氣球) 범주에 포함되느냐는 해석이 분분하다. 군사합의서(1조 3항)은 군사분계선(MDL) 상공에서 모든 기종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는데, 기구는 MDL로부터 25㎞ 이내 지역에서 띄우지 못하도록 했다. 여기서 언급된 '기구'는 군사적 목적의 정찰 도구를 지칭한다.전문가들은 상대편 최고지도자를 비난하는 내용의 인쇄물을 제작해 날려 보내는 행위 자체는 군사합의서에 명시된 '모든 공간에서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 취지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남북은 9·19 군사합의서를 통해 지상 MDL로부터 5㎞ 내에서 포병 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했다. 이 구간에서 정전협정 이후 총 96회의 상호 포격전이 있었다. 만약 이 합의가 파기되면 소규모 포격과 훈련이 국지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고, 이미 철거한 확성기 방송 시설을 복원해 상호 비방에 나설 수도 있다.동·서해 NLL(북방한계선) 일대(서해 덕적도~초도, 동해 속초~통천)의 일정 구역을 완충수역(동해 80㎞·서해 135㎞)으로 지정해 포 사격과 기동훈련도 중지했다. 북한 해안포 포구 덮개와 남북 함정의 함포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 폐쇄 조치도 이행되고 있다.이 합의서 이전 남측은 북측이 NLL 인근으로 해상 사격을 하면 동종 무기로 동일한 수량 만큼 대응 포격을 가했다. 만약 북측 포탄이 NLL을 넘어오면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합의서로 이런 행위는 중지됐지만, 파기되면 NLL 해상 사격훈련 재개는 불 보듯 뻔하다.NLL 일대가 '평화의 바다'로 남으려면 완충구역 운영 합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완충구역 합의가 준수돼야만 서해 해상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 설정 합의가 이행될 수 있어서다.남북이 MDL 상공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 2018년 11월 1일부터 이행하는 것도 군사합의에 따른 것이다.서부지역 상공은 MDL에서 20㎞, 동부지역은 40㎞ 안의 지역에서 정찰기와 전투기의 비행이 금지됐다. 서부지역 10㎞, 동부지역 15㎞ 안에서 무인기도 비행할 수 없다. 기존에는 MDL에서 남북 8㎞가량이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됐었다.공중 완충구역에서는 전투기의 공대지 유도무기 사격 등 실탄을 동반한 전술훈련도 금지됐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은 공중 전술훈련 구역을 상당폭 뒤로 물렸다. 공중 완충구역이 무효가 되면 해당 구간에서 무인기 정찰 활동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MDL 일대에 배치된 남북 대공무기도 상시 사격태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군사합의에 따라 DMZ 내에서 상호 1㎞ 이내에 근접 설치된 GP(감시초소) 10개를 폭파했다. 이어 남북은 모든 GP 철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 만약 합의가 깨지면 철거된 GP 시설 복원도 예상된다. 남북 GP에서는 총구를 상호 겨냥해 상시 개방해놓아 충돌 위험이 큰 곳으로 지목된다.남북이 접경지대에서 우발 충돌을 막고자 분단 이후 처음 합의한 '교전규칙'도 무의로 돌아갈 수 있다.양측은 군사합의서에 따라 2018년 11월 1일부터 '지·해·공 작전수행절차'를 시행하고 있다. 지상과 해상에서는 경고방송→ 2차 경고방송→ 경고사격→ 2차 경고사격→ 군사적 조치 등 5단계 절차를 마련했다. 공중에서는 경고교신 및 신호→ 차단비행→ 경고사격→ 군사적 조치 등 4단계로 이행토록 했다.어떻게든 우발적인 출동을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이선 작전수행절차가 탄생했다고 국방부 관계자는 강조했다.정부와 군 당국은 체결 1년 9개월여인 군사합의서가 한반도 전쟁 위험 해소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한다.정부 관계자는 "남북이 어렵게 머리를 맞대어 군사합의서 문구 하나하나를 조율하는 데 무진장 애를 썼다"면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군사합의서는 파기해서는 안 된다. 만약 파기된다면 '안전판'이 사라져 2018년 이전의 극한 대치 상황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전문가들도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한 남북 정상의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정신이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합뉴스남북 군사합의 위기. 사진은 판문점 모습. /연합뉴스DB위기를 맞은 남북군사합의. 사진은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북한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을 교환하는 모습. /연합뉴스DB

2020-06-07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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