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접경지역 개발 예산 왜 못쓰고 돌려주나

접경지역 발전종합계획은 정부가 국가안보를 위해 불이익을 받고 있는 휴전선 접경지역 발전과 주민 생활여건 개선을 위해 시행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시작돼 2030년까지 20년간 총 18조8천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할 계획이다. 경기·인천에서는 강화·옹진군과 동두천·고양·파주·김포·양주·포천시, 연천군이 대상 지역이다. 정부는 이들 지역에 매년 수백억원의 예산을 책정하고 있으나 실제 집행률은 50%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해당 지자체의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게 주 요인이라고 한다. 어렵게 확보한 예산을 쓰지 않으면 반납해야 하고 그만큼 주민 혜택도 줄어들게 된다.최근 경기도가 도의회에 제출한 2019회계연도 결산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 7개 시군에 교부된 특수상황지역 개발사업 예산은 35개 사업 497억4천880만원이다. 예산은 시군이 제안한 사업의 규모에 따라 분배됐다. 하지만 실제 집행액은 164억8천240만원으로, 전체 예산 중 46.6% 수준에 그쳤다. 고양시평생학습관 건립사업은 4억5천만원이 교부됐으나 한 푼도 집행되지 않았다. 장애인복지센터를 함께 건립하기로 하면서 도시관리계획 결정이 지연된 때문이다. 김포시 애기봉 평화생태공원~태산 패밀리파크 간 도로개설사업은 20억4천만원이 편성됐으나 투자심사 등 사전절차가 늦어져 마찬가지인 상황이다.접경지역 발전종합계획은 해당 지역의 개발을 촉진하고 낙후된 주민 생활여건을 개선해 주겠다는 정부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런데 도시관리계획 변경 절차나 주민 협의, 군부대 동의 등 사업 지연의 이유로 절반 넘는 지원예산이 제때 쓰이지 못한다. 사업계획 변경 등 계획 자체가 바뀌는 것도 배정된 예산마저 쓰지 못해 불용처리되는 관행의 원인이 된다. 불용 예산은 반납되거나 다음 해 예산 책정에서도 불이익을 받는 등 직·간접 피해가 불가피하다. 지역 개발은 늦어지고 주민 혜택은 줄어드는 것이다.경기·인천 접경지역은 국가안보의 여건으로 지난 60년간 재산 피해와 생활 불편을 겪어왔다. 군사시설 보호구역에 수도권 규제 등 거미줄 규제로 인해 지역발전이 정체돼 있다. 접경지역 개발사업예산은 해당 지자체와 주민의 요구에 따라 책정된 것이다. 낙후된 지역과 주민을 위해 집행돼야 하는 예산이 이월되거나 반납되는 현실은 이해하기 힘들다. 불용예산을 줄이기 위한 지자체의 치밀한 사업 추진 계획과 적극 행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0-06-11 경인일보

[사설]폭염 속 코로나19 의료진, 이대로 놔둬선 안된다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코로나 19 의료진이 폭염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마스크를 쓰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는 날씨에 전신방호복을 입고 실외 업무에 투입되다 보니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의료진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9일 인천 미추홀구 관교동 남인천여자중학교에서 보건소 직원 3명이 열탈진 증상을 보이며 쓰러졌다. 이들은 확진자가 발생한 이 학교에서 방호복을 착용한 채 '워크스루' 방식의 선별진료소 업무를 보던 중이었다. 어지럼증, 전신쇠약, 과호흡 등의 증상을 호소하던 이들은 119구조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이중 1명은 아직 입원 중이다. 인천뿐 아니라 전국 곳곳의 선별진료소에서는 이처럼 의료진들이 코로나19 뿐 아니라 폭염이라는 이중의 적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선별진료소에 투입되는 의료진은 무게만 6㎏에 달하는 레벨D 방호복과 덧신을 착용하고 손에는 방역 장갑을 낀다. 얼굴에는 공기정화필터가 장착된 N95마스크와 고글을 쓰고, 안면을 가리기 위한 '페이스 쉴드'를 추가로 착용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할 지경인데 이들은 대부분 야외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서 업무를 봐야 한다.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근무 환경이다. 요즘처럼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땀 배출은 커녕 통풍도 안되는 방호복을 입고 있으면 몇 분 지나지 않아 방호복 안에 입은 옷이 다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라고 한다. 코로나19 시대에 최고의 '극한 직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올 여름 기온이 평년보다 더 높을 것이라는 기상청 전망까지 나온 터라 이들의 안전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선별진료소 등 방역 일선에 투입되는 의료진은 전쟁에서 최전선에 투입된 군인이나 다름없다. 군인에게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기저하는 물론이고 국민의 안전마저 담보할 수 없게 된다. 지금 코로나19 의료진은 방한복을 입고 아프리카에서 전쟁을 치르는 군인이나 다름없다. 날씨가 더 더워지기 전에 보건당국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맞물려 일각에서는 검사대상자와 의료진 사이에 아크릴 벽을 설치해 손만 뻗어 검체 검사를 할 수 있는 '글로브월'(Glove-wall)방식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재정부담이 다소 커지더라도 방역의 효율성을 저하시키지 않으면서 의료진도 보호하는 방안을 서둘러 발굴, 시행해야 할 때다.

2020-06-11 경인일보

[사설]기본소득 논의보다 더 절실한 고용대책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고용지표가 1999년 통계집계 이후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고용부진이란 유령이 우리 사회를 공포 속에 몰아넣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예상대로 5월 실업자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이후 21년 만에 기록한 '고용쇼크' 그 자체다.1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올 5월 실업자는 127만8천명으로 지난해 동월보다 13만3천명 증가했다. 취업자 수는 2천693만명으로 전년보다 39만2천명이 줄어 3개월 연속 감소했다. 3개월 연속 취업자 수가 줄어든 것은 세계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9년 10월~2010년 1월 4개월 연속 감소를 기록한 이후 처음이다.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인 전체 고용률도 60.2%로 1년 전보다 1.3%포인트 내려갔다.이 여파로 월 7천억원대를 유지하던 실업급여 지급액도 5월 1조162억원을 기록했다. 실업급여액이 1조원을 넘어선 것 역시 1995년 고용보험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이다. 두말할 것 없이 고용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실업급여 증가를 나쁘게 볼 것만도 아니다. 실업급여는 말 그대로 실업자가 재취업할 수 있도록 실직기간 보험금을 지급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립금이 고갈되면서 정부가 3차 추경에 실업급여 3조4천억원을 긴급편성한 게 영 개운치가 않다. 앞으로도 고용사정이 크게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더 그렇다.그런데도 정치권은 고용문제보다 기본소득 논의에 푹 빠져 있다. 소위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나서 기본소득 도입 논쟁에 뛰어들었다. 두말할 것 없이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기본소득제 관련 법률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고 미래통합당도 이에 질세라 기본소득제 도입에 대한 발언 강도를 점점 높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약속이나 한 듯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선 모두 입을 닫고 있다. 지금은 기본소득 논의보다 당장 고용대책에 온 힘을 쏟을 때다. 잡은 물고기를 나눠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더 중요하다. 재정 건전성이 위험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도 가장 기본적인 고용대책은 외면한 채 기본소득에 빠진 정치권을 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온다.

2020-06-10 경인일보

[사설]군공항 이전 특별법 개정안의 의미

수원 군공항 이전사업은 지난 2017년 예비 이전 후보지로 화옹지구가 선정된 이후 진전이 없다. 수원시가 민간공항을 함께 유치하자고 제안했지만 화성시는 반대 입장에 변함이 없다. 두 지자체 주민들의 갈등도 깊어지는 양상이다. 이처럼 이전사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국회에서 의미 있는 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절차적 시한을 명시해 사업이 무한정 늦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국가의 직접 지원 근거를 마련해 해당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크게 줄이자는 취지를 담았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교착상태인 수원 군공항 이전사업에 활로가 트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지난 8일 국회의원 15명이 발의한 '군 공항의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은 절차별 기한을 명시한 게 핵심 내용이다. 사업단계에 따라 적용되는 시한을 규정함으로써 구속력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이전 예정지 주민 반대를 이유로 절차를 이행하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을 타개하겠다는 의도에서다. 구체적으로 예비 이전 후보지가 선정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군 공항 이전 후보지 선정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또 이전 후보지가 선정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이전부지 선정계획을 수립·공고하도록 했다. 국가가 직접 이전 주변지역에 대한 지원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새 공항 건설비용이 현재 군 공항의 가치를 넘어서면 초과비용에 대해선 국가가 직접 지원해야 한다.개정안은 지지부진한 수원과 광주 군 공항 이전 사업을 겨냥하고 있다. 걸림돌을 제거해 사업 추진에 탄력을 주자는 것이다. 실제 개정안이 시행되면 국방부도 지금처럼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힘들 전망이다. 법정시한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것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사업비 측면에서 차이가 나는 금액을 전액 국가 지원사업지로 활용해 이전 주변지역에 지원할 수 있게 된다. 국고보조금으로 도로·철도 등 기반시설 비용 충당이 가능해진다.수원 군공항 이전사업이 자꾸 늦어지면 피해 규모는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소음피해에 따른 국가 보상액은 계속 커지고 있다. 두 지자체와 주민들의 갈등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더 미룰 수 없는 국가 현안사업이다. 특별법 개정안은 이런 절박한 사정을 반영한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개정안 발의가 수원시와 화성시간 꽉 막혀버린 대화의 물꼬를 트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

2020-06-10 경인일보

[사설]달라진 국회, 일하는 국회가 이 모양인가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상임위원회 구성과 위원장 선출 법정 기한인 8일에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지난 5일 통합당 의원들이 퇴장해 범여권 의원들만 자리를 지킨 반쪽 개원에 이은 파행이다. 여·야는 상임위 구성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꾸리기로 합의해 초유의 파국은 피했다. 특위는 상임위별 위원 정수를 확정해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했다. 민주당 6명, 통합당 4명, 비교섭단체 1명 등으로 구성됐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특위 구성을 수용하면서 12일까지 양당이 상임위 선임 명단을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시한을 넘기면 여야 합의에 상관없이 본회의를 열겠다고 압박했다. 21대 국회가 초반부터 국민 신뢰를 저버리는 구태(舊態)를 보여주고 있다.여·야가 다투는 핵심 쟁점은 법제사법위원장 자리 문제다. 통합당은 17대 이후 이어진 관례대로 제1 야당에서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상임위의 원활한 운영과 효율성 제고를 위해 양보할 수 없다고 맞선다. 통합당은 자구 심사권을 가진 법제특별위원회와 검찰 법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을 관할하는 사법위원회로 나누어 여야가 나눠 갖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법사위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과 배치된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법제특별위가 만들어지면 각 상임위가 통과시킨 법안을 다시 심사하는 사실상 상원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양당은 법사위원장 자리만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의지를 서로에게 각인했다. 당분간 냉각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원 구성이 자꾸 늦어지면 국회에 대한 국민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일하는 국회, 달라진 국회란 말은 공허해진다. 시작이 요란해서는 끝이 좋을 수 없다. 양당은 며칠 늦춰진 시한이라도 꼭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국민은 법사위와 위원장에 별 관심이 없다. 이참에 비대해진 법사위의 기능과 위상을 덜어내기 위한 개혁입법에 나서야 한다.국회 원 구성이 연장된 시한을 못 지키고 또 미뤄지는 건 불행한 일이다. 국민들은 벌써 21대 국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접고 있다. 아무리 포장을 잘해도 국민 눈에는 밥그릇 싸움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21대 국회는 이전과 다르다'거나 '일하는 국회'라는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여야는 양보와 타협의 정신으로 기한 내 원 구성을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바란다. 과거와 다른 국회를 보여주기 위한 시간은 많지가 않다. 불과 사흘이다.

2020-06-09 경인일보

[사설]정부·여당 성의를 걷어찬 북한의 진의가 궁금하다

북한이 어제 '대남(對南)사업'을 '대적(對敵)사업'으로 전환한다고 밝히고, 그 첫 조치로 남북간의 모든 연락채널을 차단했다. 지난 4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 우리 정부와 탈북민 단체를 향해 모욕적인 언사를 담은 담화를 발표하고 금강산관광 폐지, 개성공단 철거,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 군사합의 파기를 경고한 지 5일 만의 일이다.우리 정부와 여당은 김 부부장의 담화 발표와 동시에 즉각적으로 최대한의 성의를 표시했다. 청와대는 "대북전단은 백해무익한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는 전단살포 금지법안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민주당 김홍걸 의원은 김 부부장의 담화발표 다음날 '대북전단 살포 제한법'을 발의했고, 김태년 원내대표는 원구성 직후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탈북민 단체의 6·25 대북전단 살포계획을 막기위한 군병력 동원까지 주장했다.그러나 북한은 우리 정부·여당이 보수진영의 반발과 표현의 자유 논란에도 불구하고 표시한 최대한의 성의를 깡그리 무시하고, 남한을 적으로 재규정한 뒤 첫번째 실행조치로 모든 통신채널을 걸어 잠근 것이다. 이같은 북한의 행보는 대북전단 시비가 특정한 전략· 전술적 목표를 실행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 만일 최고 존엄의 권위와 북한체제를 위협하는 대북전단 자체만 문제 삼았다면, 우리 정부·여당의 성의 표시로 충분했을 것이다.현 시점에서 우리의 대응은 대북전단 시비에 담긴 북한의 진정한 메시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심각한 경제난에 처한 북한이 국제적인 대북제재 해소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은 국제외교의 상식이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제재를 주도하는 미국과의 직접 대화는 막히고, 우리 정부의 대북 독자 지원은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의 의도적 남북긴장 조성을 한반도 문제를 다시 국제무대에 올려놓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 철거, 군사합의 파기 등 액션 플랜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면 국지적 도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이다.정부·여당이 북한의 대북전단 시비 자체에만 집중한 것은 북한의 진정한 의도를 오독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속내를 신속히 파악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대북 경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2020-06-09 경인일보

[사설]대통령의 시민단체 성찰 요청과 윤미향의 언론 탓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에 대해 처음으로 입장을 표명했다.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없는 위안부 운동을 생각할 수 없다"며 "특히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라고 밝혔다. 이어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위안부 진실의 산증인들이자 누구의 인정도 필요없이 스스로 존엄하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위안부 운동의 주체임을 강조한 것으로 너무도 당연한 언급이다. 이 할머니를 향한 일부 네티즌들의 패륜적 발언에 대해 유감표명이 없었던 점은 아쉽다.대통령은 이어 "이번 논란은 시민단체의 활동방식이나 행태를 되돌아볼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들이 운동에 집중하느라 투명한 회계관리에 소홀했던 관행을 성찰해야 한다는 요청으로 해석된다. 이 또한 당연한 요청이고, 대안으로 기부금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 시민단체의 기부·후원금 회계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대안은 시의적절했다.대통령은 "위안부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운동의 대의를 손상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 위안부 운동 전체에 대한 공격이 가해져서는 안된다"고 했다. 결론은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굳건히 지켜져야 한다"였다. 이 또한 백번 옳은 말이다. 정의연 전 이사장 윤미향 의원에게 속았다는 이 할머니의 주장에 언론이 귀기울여 보도하고 추가취재를 통해 해묵은 의문점을 제기하고,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도 위안부 운동의 대의를 굳건히 지키기 위한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의혹들의 사실 여부를 확정해야 위안부 운동은 새로운 출발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정의연 사태의 최종 종착지에 대해 대한민국 대통령, 언론, 검찰은 이견이 있을 수 없다.하지만 윤 의원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윤 의원은 위안부 피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 소장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해 언론과 검찰 탓을 했다. 8일 의원회관에선 대기 중이던 취재진을 향해 "내가 죽는 모습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것이냐"고 거칠게 항의했다. 정의연 사태의 본질은 이 할머니의 "속았다"는 주장과 회계부정의혹의 사실 여부다. 사실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사태의 시발은 이 할머니의 분노를 초래하고 회계부정 시비를 자초한 윤 의원의 부덕과 불찰이다. 쉼터 소장의 불행을 자책하기에 앞서 언론과 검찰 탓으로 돌리는 모습이 민망하다. 윤 의원의 남 탓 언행으로 위안부 운동의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대통령의 충정이 흐려진 듯해 안타깝다.

2020-06-08 경인일보

[사설]'현대판 노예'라 자조하는 아파트경비원들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최모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지 내일로 꼭 한 달이 된다. 최씨는 지난 4월 21일 입주민 심모씨와 주차문제로 다툰 후 심씨의 지속적인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다 지난 달 10일 불행한 선택을 했다. 최씨의 죽음은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빈소가 차려진 경비실에는 애도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갑질'은 일부 몰지각한 입주민에 의해 벌어지는 이례적인 일로 여겨진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갑질이 일반적인 인식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음이 경인일보 취재 결과 드러났다.경인일보가 최씨의 죽음을 계기로 취재·보도한 기획시리즈 '현대판 머슴 전락한 경비원'에선 최씨가 겪은 상황과 충격적일 정도로 흡사한 입주자대표회의 임원의 갑질 행태가 드러났다. 인천의 한 아파트단지 경비원들은 한 입주자대표회의 임원의 차량도 관리해야 한다. 주차공간이 부족해 이중주차가 불가피하지만, 자신의 차 앞에는 이중주차를 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임원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씨의 비극도 이중주차에서 비롯됐다. 또 다른 아파트단지의 경비원은 자신의 출퇴근용 차량을 아파트 주차장 대신 단지 내 길가에 세워놓아야 한다. 입주자대표회장이 입주민의 주차 공간을 차지한다며 도로에 세우도록 지시해서다. 취재에 응한 경비원들은 자신들을 '현대판 노예'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고용불안' 때문에 갑질을 당해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아파트 경비원의 인권과 관련해 풀어야 할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경비용역업체 소속으로 아파트에 파견되는 경비원은 입주민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사용자가 입주민이 아닌 경비용역업체이기 때문이다. 현행 경비업법상 경비업무 이외의 잡무를 해서는 안되는 경비원이 온갖 잡무를 떠맡아야 하는 현실도 문제다. 법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대량해고가 우려되는 터라 청소와 분리수거, 주차관리, 택배 접수·보관 등 숨돌릴 틈 없이 잡일을 하면서도 숨을 죽일 수밖에 없다. 저열한 인성에서 비롯되는 갑질을 사회적 비난만으로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치권이 나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마침 최씨의 죽음 한 달에 즈음해 21대 국회도 출범했다.

2020-06-08 경인일보

[사설]생활방역 두 달째, 수도권 확산 차단이 관건이다

현충일인 지난 6일은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체계를 '생활속 거리두기'(생활방역)로 전환한 지 꼭 한 달이 되는 날이다. 국민들은 이때 쯤이면 상당 부분 코로나19에 대한 통제가 가능해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매년 1만여명이 참석한 현충일 추념식이 300여명의 최소 인원으로 진행된 것에서 보듯 일상의 회복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오히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감은 날로 증폭되고 있다.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생활방역 두달 째를 맞는 7일 0시 기준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57명이 늘었다. 전날의 51명에 이어 이틀째 생활방역 유지 기준선을 넘은 것이다. 생활방역으로 전환할 당시 보건 당국은 '신규 확진자 수 2주간 일평균 50명 미만', '감염경로 미파악자 비율 5% 미만' 등을 생활방역 유지 기준으로 제시했다. 기준을 웃도는 신규 확진자 수도 문제지만 감염원을 알 수 없는 환자 집계 또한 심상치 않다. 최근 2주간 신고된 신규 확진자 중 감염 경로가 파악되지 않은 환자는 10%에 육박한다.심각한 것은 국민의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에서 집단발병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7일 신규확진자 57명 가운데 국내 발생 확진자 53명을 지역별로 보면 대구 1명을 제외하고 서울 27명, 경기 19명, 인천 6명 등으로 수도권에서만 52명이 나왔다. 이 추세라면 지금까지의 누적 확진자가 974명인 서울과 934명인 경기는 조만간 누적확진자 수 1천명 돌파라는 불명예스런 통계를 접해야 한다. 서울 이태원 클럽, 경기 부천 쿠팡물류센터, 수도권 개척교회 모임 집단감염의 여파가 지속되는 데다 최근 서울에서 건강용품 방문판매업체와 탁구장이 새로운 집단발병지로 떠오른 터라 수도권에서의 코로나19 확산세는 당분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수도권이 뚫리면 지금까지 코로나 19 확산 저지를 위해 기울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생활방역 기준을 웃도는 그래프가 꺾이지 않는다면 앞서 정부가 시사했듯이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체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방역 체계의 전환만이 능사는 아니다. 문제는 실천이다. 지난 한달 간 수도권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은 주로 '거리두기'가 지켜지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방역수칙 준수가 '수도권 발 2차 대유행'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길 때다.

2020-06-07 경인일보

[사설]1366경기센터 직장내 괴롭힘 의혹 철저히 밝혀야

여성가족부는 '여성긴급전화1366'을 설치해 운영 중이다.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등으로 긴급한 구조·보호 또는 상담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이 언제든 피해 상담을 받도록 해 여성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경기·서울 각 2개소를 비롯해 전국 시·도에 1개소씩 전국에 18개 1366센터가 운영 중이다. 광역단체가 직영하거나, 비영리법인·민간단체에 위탁운영할 수 있다. 시·도는 관리감독을 하고, 여가부는 운영비를 지원한다. 여성인권 보호의 전초기지인 셈이다.그런데 1366센터에서 일하는 여성직원들이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나왔다. 발원지는 여성긴급전화1366 경기센터다. 센터에 근무 중인 상담원 A, B씨가 업무배제·언어폭력 등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다며, 센터장을 중부고용노동청경기지청에 제소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물론 센터장은 이를 부인하고 있어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중요해 보인다.하지만 A씨가 주장하는 피해사실은, 만일 사실이라면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이다. A씨는 센터장이 지난해 운영비리가 밝혀져 문을 닫은 대전의 한 성폭력상담소 비리사건과 관련, 내부고발자로 자신을 지목한 뒤, 퇴사 각서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센터장은 팀장회의에서 녹취록까지 틀어주며 해당 목소리가 A씨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에대해 센터장은 "내부고발자로 말한 적 없다"고 밝혔다. 대신 "해당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부인인지 시인인지 어처구니 없는 해명이다.정부 부처를 대신해 여성인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공적기관의 장이, 기본권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마저 없어 보이니 황당하다. 설사 A씨가 내부고발자라 하더라도 센터장은 A씨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어디서 구했는지 녹취록까지 제시하며 A씨를 지목했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대전 성폭력상담소의 내부고발자는 따로 있었고, 내부고발자의 신원을 공개한 관련자들은 기소까지 된 상황이다. 1366경기센터장이 앞장서 다른 지역 단체비리 내부고발자 색출에 나선 이유를 모르겠다.1366경기센터는 한 사회복지법인이 위탁운영 중이다. 직원 임면권이 법인에게 있다. 지방노동청은 제소 내용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경기도와 여가부의 추가 조사 및 조치가 신속하게 이루어지기 바란다.

2020-06-07 경인일보

[사설]무산위기 놓인 성노예 피해자 기림일 행사

8월 14일로 예정된 한 일본군 성 노예 피해자 기림일 행사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 함께 추진되는 인권증진 사업 등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지난 3년간 경기도 위탁을 받아 이 사업을 주관한 나눔의 집이 논란에 휩싸이면서 사업자 선정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7일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정의기억연대 회계 부정의혹의 파장이 나눔의 집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기념 사업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와 특정 인사를 둘러싼 의혹과 논란이 확산하면서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인권 증진을 위한 노력이 무력화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커진다.도는 지난 3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기념사업 관련 민간보조사업자 공모를 재공고했다. 도는 지난달 8~15일까지 공모를 진행했지만 지원 단체가 한 곳도 없었다고 밝혔다. 9일 마감하는 재공고에도 지원하는 단체가 없으면 또 공고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사업은 2017년부터 3년간 이어졌다. 성 노예 피해자 기림일(8월 14일) 행사 주최, 피해자 관련 작품 활동, 피해자 명예회복과 인권 증진이 주요 사업으로 예산 5천만원이 책정돼 있다. 3차 공고에서도 사업자가 선정되지 못하면 행사 자체를 포기할 처지라는 게 도 입장이다.그동안 사업을 주관해온 나눔의 집은 응모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후원금 사용 관련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야 하는 데다 소장까지 사직 처리된 마당에 사업 참여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일부 후원자들은 이미 후원금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나눔의 집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관련 사업을 주최·주관해온 대표 단체로 꼽히지만 현재는 각종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나눔의 집 직원 7명은 운영진이 막대한 후원금을 현금과 부동산으로 적립해 노인요양사업에 사용하려 한다며 국민신문고 등에 민원을 제기하고 안 소장과 전 사무국장을 경찰에 고발한 바 있다.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부정 의혹과 나눔의 집 부실 운영 논란에도 불구, 기념 사업과 부대 행사는 정상 개최돼야 한다. 도는 각별한 관심과 노력으로 사업이 무산되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다. 어려운 처지이지만 나눔의 집이 사업에 참여하는 게 최선의 방안으로 보인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새 사업자를 구하거나 관련 업체에 수의계약 방식으로 맡겨도 된다. 일본의 만행과 인권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보듬는 노력은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2020-06-04 경인일보

[사설]대학가 부정행위 방지 시스템 구축해야

대학가에서 온라인 시험의 약점을 이용한 부정행위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인하대 의과대학 학생 91명이 온라인 시험에서 집단으로 부정행위를 했다가 적발된 데 이어 서강대에서는 일부 학생들이 중간고사 답안 내용을 공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건국대에서도 일부 학생들이 모여서 시험을 보거나 대리시험을 친 학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사례들이 단지 몇몇 대학에서 드러났을 뿐이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온라인 시험의 맹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당사자들이 내린 진단인 만큼 신빙성을 더해준다. 정상적으로 시험을 본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교 당국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부정행위자에 대해 '0'점 처리를 하거나 사회봉사 명령을 내려서 수습될 일이 아니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다. 학내에서 편법과 반칙, 거짓이 난무하는 것은 지성의 요람으로서 대학의 가치와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다. 학생에 대한 평가가 최고의 공정성을 담보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공정한 평가는 학문적 측면에서 대학 본연의 기능과도 직결된다. 교수는 시험을 통해 학생들의 이해도를 측정하고 이를 교수법에 반영함으로써 학생들의 지적 성장을 도와야 한다. 평가가 올바르지 않다면 이러한 학문적 프로세스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사실 이번 부정행위는 온라인 강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학점 관리가 취업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서 학생들의 양심에만 맡긴 채 공정한 시험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었다. 대학 당국이 이같은 지적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면 지금 벌어지는 혼란을 상당 부분 줄였을 것이다. 학생들의 등록금에는 공정한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비용도 포함됐을 터다.지금 대학가의 최우선 과제는 온라인 시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익숙하고 손쉬운 방법이라 해서 대면시험으로 전환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머리를 맞댄다면 대면 시험에는 못 미치더라도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채점이 까다롭고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시험을 레포트로 대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솔로몬의 지혜를 찾는 것은 이제 대학의 몫이다.

2020-06-04 경인일보

[사설]유턴기업 수도권규제 완화, 더 확대하고 신속해야

정부는 지난 1일 대통령이 주재한 비상경제회의에서 리쇼어링(Reshoring·해외 진출 기업 본국 회귀)에 대한 수도권 규제를 풀겠다고 밝혔다. 국내 유턴기업에 대해 수도권 공장총량제 범위 안에서 사업부지를 우선 배정하고, 제한적이나마 이전 보조금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수도권만 제외한 유턴기업 지원정책이 무의미하다는 산업계의 지적에도 요지부동이었던 그동안의 태도를 전향적으로 수정한 셈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어렵고 힘들고 위급하다는 방증일 것이다.국회는 지난해 말 '해외진출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유턴기업지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13년 제정된 유턴기업지원법의 지원내용이 미미해 해외진출 기업 국내 유턴 효과가 미미하다는 판단하에, 지원내용을 대폭 강화해 법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결단에 따른 것이었다. 유턴 기업에 대한 세제지원은 물론 유턴 기업의 입지·설비 보조금 지원 확대가 핵심이었다. 그런데 유턴기업 지원정책은 오로지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만 한정됐다. 오려면 지방으로 가고 수도권은 피하라는 메시지였다.당장 산업계는 말이 안된다고 반발했다. 국내복귀를 희망하는 기업들의 복귀 1순위 희망지인 수도권을 제외한 지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지적은 타당했다. 당시 국내 유턴기업은 6년 동안 60개에 불과했다. 미국과 일본의 리쇼어링 실적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타개하자는 법개정을 하면서 수도권을 유턴기업 지원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정부의 유턴기업에 대한 수도권규제 완화는 실기했다. 불과 6개월 뒤에 풀어줄 규제를, 그때 풀지 않는 바람에 낭비한 시간이 아깝다. 그 사이 기업유치를 위한 각국의 지원경쟁은 더욱 확대됐고, 반대로 최저임금·주5일제 등 국내 노동유연성은 더욱 경직됐다. 해외진출 기업들의 국내복귀 여건이 악화된 것이다. 이런 마당에 수도권 유턴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첨단산업이나 연구개발(R&D) 센터로 제한한 것은 또 다른 규제일 뿐이다.더 큰 문제는 벌써부터 지방 정치권이 이마저 막고 나선 점이다. 궁지에 몰린 정부는 유턴기업지원법 재개정을 서두르겠지만, 지방출신이 압도적인 국회에서 시비를 걸면 재개정 여부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 유턴기업 지원정책이 진심이라면 정부가 할 일은 명확하다. 수도권규제를 과감하게 완화하고, 관련 법을 신속하게 개정해야 한다.

2020-06-03 경인일보

[사설]초 슈퍼 3차 추경안, 적재적소에 투입되길

정부가 35조3천억원 규모의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편성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서다. 올 들어서만 세 번째 추경으로 모두 더하면 59조2천억원 규모다. 특히 3차 추경은 사상 최대였던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8조4천억원보다 많은, 역대 단일 추경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특히 이번 3차 추경안은 24조원을 국채발행으로 재원을 조달함으로써 나라 살림 적자비율도 사상 최대가 된다.3차 추경안을 짤 수밖에 없는 것은 코로나 사태가 불러온 암울한 경제 탓이다. 돈을 쓸 데는 많은데 세수는 극도로 부진해 현기증이 날 정도다. 당장 올해 세수는 예상보다 18조원 정도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사태로 기업 실적과 고용기반이 무너져 세수에 큰 구멍이 났다. 그러니 이를 극복하기 위한 초 슈퍼 추경 예산을 이해 못 하는 바가 아니다. 위축된 경기를 보강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데 재정이 필요하다면 때를 놓치지 말고 써야 함은 물론이다. 국채 발행도 마찬가지다.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나라빚이다. 재정 건전성 악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국가채무비율은 지난해 말 37.1%에서 43.7%를 넘어 내년 초 50% 선에 이를 전망이다. 정부는 여전히 안전하다고 장담하지만, 국가 채무를 감당할 수 있는 아무런 대책 없이 재정만 확대하다 어려움에 직면한 사례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았다. 그리스, 스페인 등이 모두 그런 경우다. 물론 국가채무비율이 OECD 평균인 110%에 비해 양호한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를 믿고 중장기 재정 건전성 관리에 소홀 했다가는 낭패를 볼 가능성도 있음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지금이 재정을 풀어야 할 때라는 것은 대부분 전문가가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돈 푸는 것 말고 무엇을 했는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저임금 인하, 소득세·법인세 인하, 근로시간 변경 등 기업을 옥죄는 각종 규제를 풀어 기업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는지 뒤돌아 봐야 한다. 각종 규제는 그대로 놔둔 채 단지 돈을 쏟아 붓는 것만으로 위기가 극복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찌 됐건 코로나 발 위기 극복을 위한 3차 추경인 만큼 이른 시일 내 국회를 통과해 하루속히 집행돼야 한다. 재정이 쓸데없이 낭비되지 않고 효과적으로 사용되는지도 철저하게 감시해야 함은 물론이다.

2020-06-03 경인일보

[사설]지자체 상대 수천억 소송, LH 대승적으로 풀어야

상당수 지방자치단체들과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지금 수천억원이 걸린 소송을 진행 중이다. 10여년 이상 진행된 소송의 성격상 그 전말을 소상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핵심은 이렇다. 일정규모 이상의 공동주택개발사업자는 1995년 제정된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폐촉법)'에 따라 폐기물처리시설을 설치하거나 폐기물부담금을 지방자치단체에 납부해야 한다. 폐기물부담금 부과 주체는 물론 지자체이고, 납부의무자는 공공주택 공급사업을 독점해 온 공기업 LH였다.하지만 LH는 이 법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2기 신도시사업부터 지자체들을 상대로 폐기물부담금 취소 소송을 개시했다. LH는 특히 폐기물처리시설 내 주민편익시설 설치비, 폐기물처리시설 지하화 비용을 부담금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했다. 법원은 LH의 손을 들어주어 지자체들은 이미 납부받은 폐기물부담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토해냈거나 내야 할 형편에 몰렸다. LH의 소송에 걸린 지자체가 경기도 11개를 비롯해 전국 19개에 달하고, 하남시 한 곳의 소송금액이 1천345억원이다. 도내 3개 지자체는 최고 수백억원을 토해냈고, 8개 지자체도 법원 판결 추세상 부담금 부과 취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동병상련의 지자체들은 폐촉법 개정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 5월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폐촉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사업시행자에게 주민편익시설 설치비용과 폐기물처리시설 지하화 비용을 부담시킨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 법은 향후 공동주택개발사업부터 적용된다. 최근 지정된 3기 신도시도 해당되지 않는다. 개정법은 LH의 부담 확대가 정당하다고 했지만, 과거의 부당한 소송은 막지 못한다. 그 결과 지자체들은 개정법에 따르면 당연히 납부받아야 할 부담금을 포기해야 한다. 그로 인해 발생한 손실은 시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폐기물처리시설에 대한 국민 인식은 계속 엄격해지는 추세다. 지자체들이 주민편익시설 설치비와 시설 자체를 지하화하는 비용을 폐기물부담금에 포함시킨 것도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결과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LH는 사업 자체를 진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부를 대행해 공공주택 공급을 독점하는 LH가 사업진행을 위해 폐기물부담금을 납부한 뒤, 사업을 마치면 되돌려달라고 소송을 벌이는 일 자체가 위선적이고 편법적이다. LH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개정법 취지에 맞추어 소송을 취하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2020-06-02 경인일보

[사설]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근대건축물 보전

인천의 도시변천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근대건축물 하나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보도에 따르면 인천부평미군기지 인근에서 영업한 '미군클럽' 중 유일하게 남아있었던 '드림보트클럽' 건물이 최근 철거됐다. 이 건물은 문화역사전문가들로부터 일제 침략 이후 미군이 상주하며 생활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한 근대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부평 미군기지 '캠프마켓'이 반환되는 것과 맞물려 미군기지 맞은편인 '신촌'의 역사를 상징하는 유일한 건물이 철거된 것이다. 건물이 철거된 자리에는 4층짜리 현대식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사실 낡고 오래된 건물은 도시화에 밀려 사라지는 게 일반적이다. '드림보트클럽' 또한 언젠가는 철거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기록화 작업 등 이 건물에 깃든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시도조차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점이다. 이 건물 뿐만이 아니다. 개항기 이후 외국과의 교역 중심지였던 만큼, 다양한 근대건축물과 근대산업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인천에서는 이같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인천 최초의 소아과로 알려진 신포동 자선소아과를 비롯해 근로보국대합숙소, 조일양조장과 동방극장, 비누공장이었던 애경사 등 과거 인천시민들의 생활상과 개항기 인천의 주요 산업상황을 알 수 있는 근대건축물의 철거 사례는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공교롭게도 이들 건축물이 사라진 자리에는 대부분 주차장이 들어섰다.'드림보트클럽' 철거가 특별히 아쉬운 것은, 무분별한 근대건축물 철거 방지를 위해 마련된 제어 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사례라는 점이다. 부평구는 지난해 근대건축물을 지키겠다며 구가 직접 향토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이 조례는 일제강점기의 역사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근대건축물이라는 평가 속에 인천시립박물관이 '인천 근·현대 도시유적'에 포함시킨 '아베식당'이 철거된 것을 계기로 제정됐다. '드림보트클럽' 철거는 이 조례가 무용지물임을 보여 준 셈이다.문화재가 아니면서 보존가치를 인정받는 근대건축물의 상당수는 개인 소유이다. 이 때문에 현행법상 지자체 차원에서 철거를 막기가 어려운 것은 맞다. 이러한 현실의 벽을 극복할 수 있는 보존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0-06-02 경인일보

[사설]모두가 패자인 화성 태안3지구의 불행

한국토지주택공사(LH) 화성사업본부가 지난달 초 화성 태안3지구 내 주거전용 단독주택용지를 분양한다는 공고를 냈다. 총 122필지, 3만1천㎡를 협의양도인택지 공급대상자로 선정된 원주민들에게 우선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 토지보상 이후 16년 만이다. 2003년 택지개발사업지구로 지정된 뒤 민원 발생으로 사업이 중단됐다 재개되는 과정에서 사업주체인 LH와 주민, 지자체 모두 피해자가 됐다. 그 사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던 주민들은 죽거나 늙었고, 가정이 파탄되는 등 고통을 겪었다. 공기업의 일방적인 사업 추진이 빚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승자가 없는 태안3지구의 불행은 무리한 사업 추진에서 비롯됐다. 옛 대한주택공사는 1998년 송산동과 안녕리 일원 118만8천㎡를 공영개발해 아파트와 단독주택 3천800가구를 짓기로 했다. 2003년 개발계획 승인에 이어 2004년 토지 보상에 나섰다. 하지만 공사에 착수해 공정률 10%인 시점에서 사업이 중단됐다. 지구 인근에 산재한 문화재가 암초였다. 지구 인근에는 세계문화유산인 융건릉과 국보를 소장한 용주사, 경기도 지정문화재인 만년제가 산재해 있다. 지구지정을 철회하라는 시민단체와 불교계의 거센 반발을 이겨낼 수 없었다.애초부터 택지개발에 부적합한 지역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사업은 계속 추진됐고, 정부는 2009년 중재안을 내놓았다. 한옥숙박시설(3만㎡), 근린공원(32만㎡), 역사공원(12만㎡)이 사업 계획에 포함됐다. 이후에도 8년간 사업 추진은 지지부진했고, 2017년에야 택지조성공사가 본격화됐다. 2018년 원주민들은 경기도, 화성시, LH를 상대로 사업 지체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1인당 최대 1억9천만원)을 제기했다. 법원은 개발과정에서 문화재를 간과한 사실은 인정되나 고의성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봤다. 패소한 주민들은 보상이 아닌 8천만원의 소송 비용만 떠안을 처지가 됐다.16년 세월이 흐르면서 원주민들의 고통과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보상금은 어느새 사라졌고, 빈손이 되자 이런저런 불행이 닥쳤다. 원주민들이 자기 돈으로 택지를 공급받을지 걱정인 상황이다. LH도 보상비와 금융비용 등의 부담으로 수천억원 적자를 볼 처지가 됐다. 지역과 주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추진했던 태안3지구의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송비까지 내야 할 처지인 원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줄 정책적 배려와 지원 대책이 절실하다.

2020-06-01 경인일보

[사설]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의 교훈

인천에서 '붉은 수돗물'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5월30일 인천시 서구 지역의 가정집에서 붉은 수돗물이 나온 것을 시작으로 중구 영종과 강화 지역으로까지 번진 붉은 수돗물 사태는 전국적인 이슈로 떠오르며 사태의 원인 분석에서부터 수습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의 관심을 모았었다. 사태 발생 1년이 지난 지금은 사태를 은폐하려고 정수장 탁도계를 임의로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 공무원들에 대한 재판만을 남겨두고 있다.1년이 지났지만 붉은 수돗물 사태는 행정기관의 신뢰와 관련 기관의 초기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돌아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태가 발생하자 피해 지역 주민들은 물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음식도 만들어 먹지 못하는 등 엄청난 불편을 겪어야 했다. 학교에서 급식이 중단되는가 하면 지역 병원에서는 생수 구입에 애를 먹는 등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사태 초기 "수질검사 결과 적합판정이 나왔으니 수돗물을 안심하고 마셔도 된다"는 식의, 주민정서와 동떨어진 대응으로 일관했다. 결국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사태 발생 후 5일이 지나 인천시의 공식사과가 나왔지만 한번 실추된 행정에 대한 신뢰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기술적으로는 붉은 수돗물 사태 당시 탁도계에 이상이 발견됐는데도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같은 총체적 부실은 2개월 넘게 이어진 사태 장기화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사태수습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보상 부문에 투입된 혈세만 수백억원 규모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에 대한 보상금은 67억원, 피해 가구에 면제해준 상하수도 요금은 270억원에 달한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붉은 수돗물 사태가 결과적으로 인천시 상수도 행정의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인천시는 최근 붉은 수돗물 사태 1년을 맞아 내년까지 527억원을 투입해 '수돗물 스마트 관망관리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올 하반기부터 정수장은 물론 배수지 수질을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수질 민원만 전문적으로 해결하는 '워터케어' 공공서비스를 도입하는 것 등이 골자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추진하는 사업인 만큼, 인천시는 국내 상수도 행정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는 각오로 획기적인 결과물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2020-06-01 경인일보

[사설]21대 국회 협치로 입법권력의 권위 세워야

21대 국회가 출범했다. 21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지난 30일 개시된 것이다. 21대 국회는 민주화 이후 전례 없었던 실험적 국회가 될 전망이다. 여당이 지난 총선에서 전대미문의 압승을 거두었다. 그 결과 21대 국회 의석분포는 전체 300석 중 범진보·범여권이 190석(더불어민주당 177석, 정의당 6석, 열린민주당 3석, 기본소득당 1석, 시대전환 1석, 무소속 2석), 범보수·범야권이 110석(미래통합당 103석, 국민의당 3석, 무소속 4석)이다. 표면적으로는 민주당과 통합당의 양당체제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민주당이 입법권력인 국회를 장악한 구조이다.민주당은 개헌 빼고는 법안, 예산안 처리를 마음 먹은대로 할 수 있다. 통합당이 정부,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은 반대 발언과 국정조사권 외에는 없다. 반대 발언은 회의록에만 남을 뿐이고, 국정조사권을 발동해봐야 조사위원회의 운영은 여당에 넘겨줘야 한다. 이러한 국회지형은 민주당이 국회의 견제 권한을 포기하면 입법, 행정, 사법의 3권분립을 토대로 한 대한민국 민주질서가 무너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결국 21대 국회 운명은 초거대 의석을 지배하는 민주당이 이처럼 특별한 상황을 민주적으로 관리할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렸다. 하지만 조짐은 썩 좋지 않다. 민주당은 야당 몫인 법사위원장직 획득에 올인하고 있다. 법안 통과의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를 관행대로 야당에게 주면 입법이 정략에 막힐 수 있다는 논리다. 이를 위해 여야가 상임위를 배분하던 관행을 철폐하거나, 법사위의 법안 체계심사 및 자구심사 기능을 폐지하겠다고 야당을 압박 중이다. 야당은 이에 맞서 국회의장단 선출을 위한 개원국회 보이콧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민주당이 의석수로 밀어붙이면 이러한 여야 대치도 사실상 무의미하다. 3차 추경도 정부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규모로 해줄 수 있다. 공수처 7월 출범 및 공수처장 임명도 마찬가지다. 당정회의에서 논의된 모든 현안을 뒷받침할 모든 법안이 국회에서 일사천리로 통과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 대의기구의 정도인지 국민들은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민주당이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 야당의 가치를 인정할 때 국회는 통크게 굴러갈 수 있다. 민주당은 스스로 국회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야당의 견제를 존중하고, 야당과의 협치를 국회운영 제1원칙으로 삼기 바란다.

2020-05-31 경인일보

[사설]응급환자 수술 못하는 백령도의 의료환경

지난 15일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에서 20대 여성이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이 여성은 오전 11시40분께 사고를 당했으나 오후 10시께야 응급수술을 받았다. 기상상황이 좋지 않아 헬기가 뜰 수 없었고, 가천대 길병원 의료진은 해군 고속정을 타고 섬으로 들어가야 했다. 10시간이 지난 뒤 응급수술을 받은 환자는 다발성 장기손상으로 끝내 소생하지 못했다. 지난 3월에는 폐렴 증세를 보인 70대 여성이 헬기가 아닌 군 경비정에 실려 이송되기도 했다. 섬 주민들은 열악한 응급의료체계에 분노하면서 의료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5천244명이 거주하는 백령도의 의료기관은 인천의료원이 운영하는 백령병원이 유일하다. 지난 2014년 개원했고, 상근 의사 2명과 공중보건의 8명이 근무한다. 전문의는 9명이지만 심각한 외상 환자를 응급 수술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상근 전문의 진료과목이 마취과와 치과이기 때문이다. 한때 내과 전문의가 있었으나 지난해 퇴직 이후 후임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과 지역사회는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하는 후진적 의료환경이 개선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다. 지난 21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섬 내 자체 응급수술이 가능한 전문의료팀과 다양한 진료과를 배치해 달라"는 주민 청원이 올라왔다.뒤떨어진 의료환경을 개선하려는 정부 당국과 의료계의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말 서해 최북단 백령도를 오가는 여객선에 응급환자를 위한 의료 설비를 갖추겠다고 밝혔다. 백령병원은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협진을 강화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군부대 의료인력과 협업체계를 강화해 공공의료 수준을 높이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 응급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 의료인력과 장비가 확보돼야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게 지역사회의 시각이다.백령도 주민들은 지난 3월 공적 마스크를 공급받지 못했다. 안보의 상징인 서해 최북단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변변한 의료시설도 없어 응급수술이 불가능한 의료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서해5도 주민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사고를 당한 응급 중환자가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하는 후진국형 사태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주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의료시설 확충이 급하고도 절실하다. 단기 처방으로 전문의를 확보하고 의료장비를 보강해야 한다. 주민 눈치를 보며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2020-05-31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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