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데스크 칼럼]인천 송도국제도시 마지막 땅 11공구

'외국인 투자기업 유치'에 목맬 이유 없고저층 제조시설 많아 중·고밀도 개발 필요좋든 싫든 2·4·5·7공구 변화시킬 수 없듯과거실패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인천, 경제자유구역을 말하다'라는 책이 올해 2월 나왔다. 인천연구원 허동훈 박사가 쓴 책이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저자는 2000년부터 14년간 인천연구원(당시 인천발전연구원)에서 인천경제자유구역(송도·청라·영종) 관련 연구를 많이 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장, 에프앤자산평가 고문으로 근무하다가 다시 인천연구원에 들어갔다. 이 책은 에프앤자산평가 고문으로 있을 때 출간했다.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천경제자유구역을 다루고 있다. 특히 저자는 송도국제도시를 깊이 있게 들여다봤다. 이 책은 친절하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출범과 개발 과정을 자세하게 서술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주요 프로젝트와 개발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할 땐, 국내외 사례를 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저자는 비판적이다. 수익시설(아파트 등)과 비수익시설(오피스 등) 개발을 묶어 민간에 맡기는 '연동 개발 방식' 등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인천경제자유구역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과 애정이 느껴진다.송도 개발에 참여했거나 이 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을 것 같다. 갯벌을 메워 땅을 만들고, 서울도 아닌 인천 외곽의 허허벌판에 기업의 투자를 유치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다. 지금의 송도는 상전벽해라 불릴 만큼 성장했다. 국내 다른 경제자유구역에는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개발 초기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땅이었다. 도로 등 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으며, 돈이 없어서 매립공사 대금을 땅으로 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국비 지원, 규제 완화, 투자 유치 등의 부문에서 정부의 전폭적인 도움이 있었다면 '연동 개발', '헐값 매각', '투자기업에 유리한 협약'이 최소화하지 않았을까.'인천, 경제자유구역을 말하다'에는 공감하는 내용이 많다.첫 번째는 외국인투자기업 유치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 외국 기업이 일정 비율 이상의 주식 또는 지분을 보유하면 외투기업이라고 한다. 송도 등 인천경제자유구역에는 '무늬만 외투기업'이 적지 않다. 또한 외투기업이 아니더라도 산업 발전을 이끌고 일자리를 창출할 국내 기업이 많다. 웃지 못할 일도 있다. 송도 한옥마을에 있는 음식점이 가짜 외투법인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면서 업체 대표가 옥살이 했다. 가짜 외투법인을 내세워 임대차 계약을 맺은 건 백번 잘못한 게 맞다. 하지만 한국의 음식을 외국인에게 알리는 음식점까지 외국 기업의 투자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두 번째는 중·고밀도 개발이 필요하다. 송도에는 저층 연구·제조시설이 많다. 저층 건물을 볼 때면 토지 이용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넓은 땅을 지상 주차장으로 쓰는 기업도 있다. 땅은 조성원가 수준으로 싸게 살 수 있으니 최대한 넓게 확보하고, 건물은 높을수록 건축비가 많이 드니 최대한 낮게 지으려는 것 아닌가 싶다. 송도 땅값이 비쌌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기 어려울 것이다.'인천, 경제자유구역을 말하다'는 송도의 마지막 땅인 11공구 개발 방식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송도 11공구는 과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저자의 바람처럼 지금까지 겪은 시행착오가 11공구에서도 반복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미 건물이 들어선 도시 공간은 시장 여건이 변한다고 해도 바꾸기 어렵다. 좋든 싫든 송도 2·4공구와 5·7공구를 다른 모습으로 되돌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제 남은 땅은 사실상 11공구밖에 없다.'(인천, 경제자유구역을 말하다)/목동훈 인천본사 경제부장목동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19-08-04 목동훈

[노트북]죽산 조봉암 60주기 추모식 참석한 청년들

강화에서 나고 자란 죽산 조봉암(1899~1959)은 일제강점기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해방 이후 제헌 국회의원과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다. 조봉암은 2·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이승만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이승만 대통령은 장기집권에 가장 위협적인 정치인으로 죽산을 생각했다. 조봉암은 1956년 진보당을 창당한 이후 간첩 누명을 쓰고 1959년 7월 31일 사형이 집행됐다. 헌정 사상 첫 번째 '사법살인' 희생자인 조봉암은 2011년 대법원 재심을 통해 간첩죄 무죄를 선고받고 복권됐다. 간첩으로 몰린 52년 동안 '금기어'가 된 죽산을 기억하고 명예 회복에 앞장선 이들은 죽산이 태어난 곳이자 정치적 기반이었던 인천의 사람들이었다.지난달 31일 오전 11시 서울 망우리 공원묘역에서 죽산의 60주기 추모식이 엄수됐다. 망우리 공원묘역은 행정구역상 서울 중랑구지만, 경기도 구리시와 맞붙어 있는 서울의 끝자락이다. 이날 인천, 경기, 서울지역에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주요 도로 곳곳에서 차량 정체가 심했다. 행사 취재를 위해 인천 구월동에서 망우리 공원까지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데만 2시간 넘게 걸렸다. 인천에서 죽산을 기리기 위해 60주기 추모식을 찾은 수많은 이들이 이처럼 어렵게 죽산 묘역에 당도했다.올해 추모식에는 처음으로 '청년 조봉암'이라는 단체의 대학생 14명도 참석했다. 이들은 추모식에서 노래 '상록수'와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평화통일을 지향한 죽산의 뜻을 잇겠다고 했다. 이제는 죽산이 '독재의 희생자'나 '이념 갈등의 상징'이 아니라 새 시대를 여는 청년들에게 '평화통일의 선구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1919년, 21세의 조봉암은 강화도의 대서소(代書所)에서 일하는 평범한 청년에 지나지 않았다. 그해 강화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동참하고, 옥고를 겪으면서 일제강점기 엄혹한 현실에 눈을 떴다. 이번 60주기 추모식에서는 죽산이 자신처럼 "현실에 눈을 뜨라"고 청년들에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박경호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pkhh@kyeongin.com박경호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2019-08-01 박경호

[춘추칼럼]용기 없는 삼류 정치에서 벗어나라

경제 비상시국에 갈등만 증폭시키는 정치美민주주의 지탱 '다수결원칙' 한국 무너져흑백논리 갇혀 지지세력 눈치만 보지말고내부에는 쓴소리·상대에는 관용 베풀어야일본 경제 보복, 수출과 내수 부진, 한국 WTO 개도국 지위 박탈 등 경제 비상시국이다. 그런데 초당적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할 여야는 서로를 향해 죽창을 겨누고 있다. 정부 여당은 자유한국당을 향해 친일 프레임을 씌우고 야당은 정부가 관제 민족주의로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행복을 책임져야 할 정부는 우왕좌왕하고,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는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를 강력 비판하고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확대하며 세계 여론에 호소해야 하나. 이것은 본질적인 해법이 아니다. 정부가 고도의 외교력을 회복하고 협치의 리더십을 펼쳐야 한다. 최근 방문한 미국 보스턴에서 미국 민주주의 정신을 지탱하는 힘과 위대한 정치 지도자의 삶을 만났다. 1620년 메이플라워를 타고 영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넘어온 청교도들은 보스턴 근처 플리머스에 도착하기 전 배 안에서 41명이 협약을 체결했다. 질서와 안녕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하나의 시민 정치체제를 만들고 필요한 법률과 공직을 제정하여 이에 복종한다는 것을 서명했다. 중요 문제에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다수결의 원칙을 따를 것을 약속했다. 이런 메이플라워 협약에 바탕을 둔 다수결의 원칙이 미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한국 의회 민주주의와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있다. 법률 제·개정 절차를 관통하는 기본은 다수결의 원칙이다.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회 선진화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5분의 3 이상 법칙을 준수한다. 이런 국회 선진화법에 따른 선거법 개정과 사법개혁을 연계한 패스트트랙 지정이 정국 파행의 원인이 되었다. 이제 국회 마비법으로 전락한 국회 선진화법은 개정돼야 한다.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민주주의가 작동되고 성숙해진다. 대화와 타협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자신만이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도그마에 빠지면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여당은 야당을 친일이라고 매도하고 야당은 여당을 종북이라고 낙인찍으며 진영의 논리에 빠지면 극단과 배제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민주주의 없는 민주화'라는 기형적인 상태가 지속된다. 흑백 논리가 아니라 흑과 백이 섞이면서 만들어지는 회색이 아름다워야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는 법이다. 무너지고 있는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힘은 용기에서 나온다. 보스턴에는 미국 제35대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 도서관 및 박물관이 있다. 그곳은 케네디 대통령의 삶과 리더십을 보여주는 각종 상징적인 유산, 그리고 동서 냉전시대에 맞섰던 그의 용기와 도전 정신이 깊이 배어있다. 케네디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극단적인 정치투쟁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신념을 위하여, 대중들의 비난과 반발을 감수했던 무명의 8명의 정치인을 소개했다. 이들은 자신이 소속된 정당과 동료들로부터 버림받고 언론으로부터도 돌팔매질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케네디는 지금의 미국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세계 최강국을 건설하는데 이들의 용기가 큰 힘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용기에 대한 이런 믿음 속에서 '뉴프런티어 공약'을 실천하고 냉전시대 최악의 핵무기 사태였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과감하게 해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세력의 눈치만 보고, 황교안 대표와 한국당도 태극기 세력과 친박에게만 눈높이를 맞추면 용기 없는 삼류 정치가 된다. 여당 의원들이 정부의 실정에 대해 가혹하게 비판하고 야당 의원들도 당 지도부의 잘못에 대해 쓴소리를 해야 몰락한 정치가 복원되고 대결 정치가 사라진다. 이제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지지자들로부터 미움받을 용기를 보여주고 상대방의 기능과 역할을 인정하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주의가 살고 경제 위기도 극복된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08-01 김형준

[풍경이 있는 에세이]기녀시인 운초(雲楚)의 탑시(塔詩)

미모·재능 탁월한 평안도 성천 기생유명 시인이자 선비인 김이양 만나스승·연인관계로 왕성한 창작활동서울 돌아간 후 소식없자 쓴 시'부용상사곡' 임향한 마음 구구절절성천의 기생 운초 김부용은 송도의 황진이, 부안의 이매창과 더불어 3대 기녀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녀의 생몰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820년쯤 나서 1869년쯤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기녀시인으로는 드물게 '운초집'이라는 문집이 있고 주옥같은 한시 300여 편을 남겼다. 남긴 시에는 그녀가 평안북도 성천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출신이 비천하지 않았는데 어떤 연유로 기녀가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는 타고난 미모와 천부적인 재능으로 열여섯 살에 가무는 물론 시문에까지 능한 성천의 명기가 되어 있었다.성천부사 환영연회에 불려나간 운초는 부사가 보여주는, 평양감사로 와있던 연천 김이양의 서신 속에 자신이 지었던 시편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이 서신을 계기로 그녀는 평양으로 연천을 만나러 가게 된다. 성천부사가 평양감사에게 인사를 가는데 동행하자는 것이었다. 어려서 지은 자신의 시를 적어보낸,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며 지체 높은 대감을 만나게 된 것이다. 연천 김이양(1755~1845)은 77세로 홍안백발의 노익장을 과시하는 고고한 선비이자 인자한 할아버지였다. 연천은 운초를 기생으로 대하지 않고 시인으로 맞았다. 그녀는 연천과 능라도며 부벽루며 모란봉이며 을밀대를 두루 돌면서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꿈같은 며칠을 보냈다. 성천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초는 자진해서 연천을 모시고 살고 싶다고 진언했다. 연천은 이미 상처한 지 3년이나 지난 때여서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운초에게 연천은 시를 논하는 문우이며 시를 깨우치는 스승이자 후견인이었다. 연천으로 하여 기적에서 빠진 운초는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신혼의 달콤한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달 후 연천은 호조판서가 되어 서울로 돌아갔다. 석 달이 지나도록 연천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운초는 애간장이 타들어갔다. 그때 쓴 시가 '부용상사곡'이라는 탑시다. 글자의 배열을 탑처럼 쌓는 것이어서 시에 문리가 튼 시인만이 쓸 수 있는 형식이었다. '이별하니/그립습니다/길은 멀고 편지는 더딥니다/생각은 거기 있고 몸은 여기 있습니다/비단수건은 눈물에 젖었건만 가까이 모실 날은 기약이 아득합니다//……//은장도 들어 약한 창자 끊어버리기는 어려운 일 아니오나 비단신 끌며 먼 하늘 바라보니 마음에는 의심도 많이 떠오릅니다//……//연약한 아녀자가 슬픔을 머금고 황천객이 되어 외로운 혼이 달 아래서 길이 울며 따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로 끝맺는 탑시는 구구절절이 그리움의 노래다. 헤어져 있는 동안에 미친 듯 쓴 오언절구가 많다. '봄바람은 화창하게 불어오는데/서산에는 또 하루해가 저무는구나/오늘도 임 소식은 끝내 없건만/그래도 아쉬워 문을 닫지 못하네'에는 임을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연천은 운초의 마음을 헤아려 '운초에게 주다'라는 시를 쓴다. '왕년에 오강 땅에서 인연 맺었고/금년에 또 해서 물가에 함께 있노라/나와의 만남 늦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니/번소도 끝끝내 백낙천을 못 떠났소/술 따르는 얌전함이 세속 상대보다 어질고/시에 대한 소견은 당나라 때 못지 않네/고요한 밤 책상에 기대 읊는 소리 맑고 밝아/시경 빈풍 칠월편을 낭랑히 외고 있네'는 아마도 평양감사 시절에 운초와 함께 했던 기억을 상기시키려 했던 작품으로 읽힌다. 운초와 연천이 남산 기슭의 녹천장에서 함께 한 15년은 두 사람에게 시에 대한 열정과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하게 해준 찬란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연천이 감기를 앓다 세상을 떠난 것이 그의 나이 91세였다. 운초는 '연천의 죽음을 곡하며'라는 조시로 영혼을 위로한다. '풍류와 기개는 산수의 주인이시고/경술과 문장은 재상이 될 재목이셨지/십오년 살아오다가 오늘 눈물 흘리니/높고 넓은 덕 한 번 끊어지면 누가 다시 이으랴'에는 떠난 시인에 대한 지극한 존경과 사랑이 넘친다. 아름다운 삶이었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2019-08-01 김윤배

[기고]경기문화재단 단상

수많은 시행착오·경험 바탕 기초문화재단과의 네트워크 구축상호성장동력 공통분모 찾아야각 문화재단이 겪는 현실의 문제 함께 풀어가는 매개자 역할 기대1997년은 대한민국 문화지형도에 큰 밑그림이 그려진 해다. 바로 경기문화재단이 설립됐기 때문이다. 당시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 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지방출자출연법)이 제정되기 이전이라 민법에 근거해 첫발을 내디뎠다.이후 대규모 택지개발 등 경기 도내 매장문화재 발굴사업 활성화에 따라 부설기관으로 현재 경기문화재연구원의 전신인 기전매장문화재연구원을 설립했고 경기북부의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북부사무소 설치(2003), 경기도박물관과 경기도미술관 등 통합(2008), 남한산성 유네스코 등재(2014) 등 굵직한 행보를 이어갔다.경기문화재단은 첫 공공문화재단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전문화예술'이란 이름으로 발행했던 계간지에서 알 수 있듯이 '기전(畿甸)'은 나라의 수도를 중심으로 뻗어나간 가까운 행정구역을 뜻한다. 이렇듯 경기문화재단은 단순한 행정구역 차원을 넘어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역문화의 교두보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현재 경기도는 15개의 기초자치단체 문화재단이 운영 중이며, 전국적으로 기초문화재단 70개와 광역문화재단 16개 등 총 76개 문화재단이 지역문화예술의 성장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특히 이들 대부분 문화재단이 경기문화재단의 정관을 참조하여 설립했으며, 운영적인 측면에서도 경기문화재단의 노하우를 벤치마킹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경기문화재단은 또 다른 도약을 꿈꾸고 있다. 최근 개최한 뮤지엄 독립 토론회가 그것이다. 토론회는 지난 2008년 경기도박물관과 경기도미술관, 실학박물관 등을 통합하여 운영한 결과와 향후 비전을 다룬 자리였다. 여기서 대세는 뮤지엄을 분리하여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것. 통합 당시 시너지 효과를 강조했던 기조에서 한발 물러선 분위기다. 어떻든 10여년이 지난 상황에서 변화의 모색은 필요한 시점이다.이와 함께 경기문화재단은 1997년 수원 북문농협 건물에 첫 사무실을 마련한 이후 2001년부터 사용했던 인계동 사무실을 조만간 비울 예정이다. 빠르면 오는 9월 경기상상캠퍼스(구 서울대 농생명대학·수원시 서둔동)로 본사를 이전한다. 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는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경기상상캠퍼스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딱딱한 사무실이 아닌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현장으로 이동해야 한다"며 말뿐인 개혁과 변화가 아닌 실천의 의지를 피력했다.또한 강헌 대표이사는 경기도 내 15개 기초문화재단을 포함한 31개 시·군과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하여 직접 해당 지역을 방문하며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경기문화재단의 행보는 변화를 지켜보는 방관자가 아닌 변화의 바람을 주도하는 문화재단 맏형의 면모가 느껴진다.다만, 맏형의 역할은 계속돼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을 문화재단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초문화재단과의 과정형 성과중심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상호성장동력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보여주기 협력보다는 역사문화적 연계와 인문학적 배경을 토대로 문화예술자원을 공유할 필요성이 있다.문화행정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기초와 광역문화재단이 따로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주어진 환경과 여건이 다를 뿐 지역의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정책발굴과 예술인 지원, 문화예술교육, 펀드레이징 등 고유 목적사업의 완수는 매한가지다.굳이 사족을 달자면 경기문화재단이 각 문화재단이 겪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매개자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경기상상캠퍼스에서 새롭게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경기문화재단의 22살 젊은 청년 정신의 발현이 기대된다./이형복 수원문화재단 기획홍보팀장이형복 수원문화재단 기획홍보팀장

2019-08-01 이형복

[참성단]새우깡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 /아이 손 어른 손 자꾸만 손이 가~." 국민 스낵 농심 새우깡의 CM송이다. 1971년 출시한 이래 새우깡만큼 전 세대로부터 사랑받는 스낵도 드물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00년 동안 장수할 식품으로 새우깡을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짭짤하고 고소한 맛, 씹을 때 '바삭'거리는 그 독특한 소리로 새우깡은 외국에서도 인기가 높아 현재 7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처음엔 서해새우, 새우뻥, 새우튀밥 등의 이름이 거론됐다고 한다. 그러던 중 오너의 막내딸이 아리랑 노래를 부르면서 '아리랑'을 '아리깡'으로 잘못 발음한 데서 힌트를 얻어 새우깡이 됐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생산 첫해엔 20만 박스가 판매됐다. 이듬해부터 주문이 몰려 20배가 넘는 425만 박스가 팔렸다. 기름이 아닌 뜨거운 소금의 열로 튀기고, 무엇보다 국내산 생새우를 쓴 게 '대박'의 원인이었다. 새우깡 한 봉지에는 5~7cm 크기의 새우가 3~5마리 들어간다. 군산 등 서해안에서 잡은 꽃새우가 주로 사용된다. 농심은 이를 위해 연간 400t가량의 꽃새우를 구매해 왔다. 이는 군산 꽃새우 생산량의 70% 규모다. 하지만 농심은 3년 전부터 국내산과 미국산을 반반씩 사용하고 있다. 국산새우에 문제가 발견돼서다. 농심은 내년부터 새우깡의 원료를 미국산으로 전량 바꾸기로 했다. 폐플라스틱 등이 섞인 새우로는 더는 식품 제조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군산 어민들이 크게 반발했다. 정치권까지 가세해 "농심이 값싼 외국산으로 주원료를 대체하려고 한다"며 문제를 제기하며 논란이 커졌다. 반면 국민들 사이에선 "군산 새우를 다시 쓴다 한들 불안해서 어떻게 새우깡을 먹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정부가 서해 꽃새우의 안전성에 대한 전면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새우깡 논란이 서해 수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확산했기 때문이다. 바다가 플라스틱 조각으로 몸살을 앓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년 평균 800만t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고, 지름 5㎜ 이하의 미세 플라스틱 입자 50조 개 이상이 지금도 바다에 떠다니고 있다. 지난해엔 국내 특정 지역 굴과 바지락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식탁에 오르는 수산물에 이어, 이제 새우깡으로 번진 플라스틱 논란은 해양오염의 주범인 우리 인간에게 신이 내린 준엄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8-01 이영재

[데스크 칼럼]경제 위기의 대한민국

기업인 하나같이 "경영하기 힘들다" 한숨반도체 호황 옛말… 삼성전자도 실적 부진日 '화이트리스트'서 제외땐 화학 등 타격국가비상상황, 외교적 해법등 역량 모아야우리나라 경제가 안팎으로 힘들다. 국내에선 '기업 운영하기 어렵다'고 하고, 해외에선 미·중 무역 전쟁 후폭풍을 더해 최근에는 일본 경제 보복까지 우리나라가 마치 동네북이 된 느낌이다. 기업인들을 만나봐도 하나같이 '경영하기 힘들다', '직원들 월급 주기도 벅차다', '이러다 문 닫겠다' 등 경제에 부정적인 표현이 많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은 온통 '힘들고 어렵다'는 말만 들은 것 같다.그러나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경제를 이끌고 있는 대기업도 힘든 시기를 맞았다. 반도체 호황을 누렸던 것도 엊그제 일이 됐다. 31일 공시한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 실적은 한마디로 참담한 기분이다. 삼성전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의 대표주자다. 그럼에도 올 2분기에는 양대 '주력' 사업인 반도체와 스마트폰 부문의 부진이 겹치면서 1년 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영업이익을 거뒀다. 특히 반도체 사업의 흑자가 3조원대에 그치면서 최근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지난해 50%를 훌쩍 넘었던 반도체 영업이익률은 겨우 20%를 웃돌면서 수익성도 급격히 나빠졌다.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4~6월) 연결기준 확정 실적으로 매출 56조1천300억원, 영업이익 6조6천억원을 올렸다. 매출은 전분기(52조3천900억원)보다 7.1% 늘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58조4천800억원)에 비해서는 4.0% 감소한 수치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14조8천700억원)에 비해 무려 55.6% 줄었다. 역대 최고기록이었던 지난해 3분기(17조5천700억원)와 비교하면 3분의 1수준에 머문 것이다.매출에서 영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영업이익률은 11.8%로 전분기(11.9%)보다 더 떨어졌다. 지난 2016년 3분기(10.9%)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게다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다운턴(하락국면)'이 예상보다 길어지는 가운데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 등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연말까지 본격적인 회복세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온다.그러나 가장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등의 악재다. 미·중 무역전쟁에 지친 우리나라 경제가 이번에는 일본의 경제 보복에 또 한 번 위기를 맞은 것이다. 일본 정부는 2일 각의에서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지를 결정한다.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 일본은 자의적으로 한국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품목을 중심으로 대(對)한국 수출 절차를 대폭 강화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1천100여개 대 한국 수출 물품은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뀐다. 이들 품목을 한국으로 수출하려면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이 같은 조치는 우리나라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주력하는 전기차나 일본 의존도가 높은 화학, 정밀기계 등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일 주요 산업의 경쟁력을 비교한 결과 방직용 섬유, 화학공업, 차량·항공기·선박 등의 대일 수입의존도는 90%가 넘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다.전기차 배터리와 수소전기차 탱크에 들어가는 필수 소재부품 역시 상당수가 일본산이다. 국내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배터리 업체들은 백색국가 배제에 대응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현재 우리나라는 국가비상상황에 직면했다. 국내외 여론전을 지속적으로 펼쳐 일본의 경제 보복을 외교적 해법으로 풀 수 있도록 주력해야 한다. 또 실무적으로도 만반의 대비를 하는 등 국가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신창윤 경제부장신창윤 경제부장

2019-07-31 신창윤

[오늘의 창]반도체 핵심부품 공단만이라도 이천에

지난 23일 이천시청 대회의실에서 엄태준 시장과 시·도의원들이 일본정부의 반도체 부품·소재 수출규제 조치에 따른 '반도체 핵심부품·소재 제조공단 조성 촉구' 기자회견을 가졌다.이날 엄 시장은 "수출규제 조치로 인한 우리나라 피해를 최소화하고 우리나라 미래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한다"며 "반도체 핵심부품 및 소재에 대한 국산화 추진을 위해 SK하이닉스 본사가 있는 이천시에 반도체 핵심부품 및 소재 제조공단을 조성해달라"고 정부에 호소했다. 수도권규제로 용인의 SK하이닉스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현대 엘리베이터 이전 등 마치 '눈뜨고 도둑맞은 기분'을 애절하게 표현했다.공장 물류절감, 생산성 향상보다는 자의가 아닌 타의로 공정과 무관하게 기업이 분산되는 모양새다. 공장조성을 위해 토지를 제공한다 해도 규제로 인해 100인 이상 기업들이 매년 떠나는 현실에 시민들의 불만은 쌓여만 가고 있다. 이와 함께 엄 시장은 "사통팔달 교통망과 기존 인프라가 갖춰진 이천시에 반도체 관련 업체들이 입주해야 어떤 외부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반도체 기술 강국이 될 수 있다"며 "이천시 차원에서도 금융 및 세제 지원 등 가능한 행정·재정적 지원을 총동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에도 허공에 맴도는 울림으로만 생각하는 정부에 시민들의 마음은 더욱 슬퍼진다. 시민들은 SK하이닉스는 이천시 재정수입의 30%를 차지하는 향토기업으로 2007년 초 구리공정 문제로 SK하이닉스 이천공장의 증설이 어려울 때 시민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M14, M16 증설이 가능토록 하며 '운명 공동체'라고 생각하고 있다.이제는 이천시민들에게 특별한 희생에 대한 특별한 보상이 제대로 되도록 시민 모두 또다시 단합해 '반도체 핵심부품·소재 제조공단 조성'만이라도 꼭 이뤄내야 하지 않을까./서인범 지역사회부(이천) 차장서인범 지역사회부(이천) 차장

2019-07-31 서인범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막현호미: 은미함보다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마음이 심란해질 때 잔잔하게 해주는 힘이 '중용'이란 책에 있다. 고전마다 지니고 있는 힘이 있다고 볼 때 '중용'은 마음의 심층으로 들어가 보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심층으로 들어가 보면 표층에서 보고 느꼈던 것과는 다른 경계를 보고 느낄 수 있다. 표층은 잘 보이기 때문에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심층은 관심을 가지고 들어가 보지 않으면 볼 수가 없는 경계이다. 그런데 왜 자꾸 옛 어른들은 심층으로 들어가 보라고 할까? 철학적으로 표층은 현상이고 심층은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현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과 개념으로 다가온다. 익숙하기 때문에 의심을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므로 본질을 놓치기 쉬우니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본질을 살펴보라고 한다. 본질을 조절해야 현상이 조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층의 본질세계는 포착하기 힘드니 현상에 익숙해진 인식으로 포착하기엔 너무 작다. 무엇이든 커야 잘 보이는데 너무 작으니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다. 이렇게 보기도 힘들고 잡기도 힘든 것을 보고 잡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중용'에서는 홀로 있을 때 챙겨보라고 권유한다. 남들과 교류하여 희로애락이 발현되기 전 나 홀로 있는 시간에 희로애락이 발현하는 기틀을 통찰해보라는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습관적으로 발현되는 나의 감정의 속모양을 나 홀로 있을 때 가끔씩 점검해보라는 것이다. 홀로 있을 때의 은미한 마음이 남들과 같이 있을 때의 마음으로 훤히 드러나게 되니 신독(愼獨)을 부탁한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7-31 철산 최정준

[참성단]축구 자본주의와 No-Show

'축구 자본주의'의 저자 '스테판 지만스키'는 "축구의 성장은 시장의 힘을 보여주는 가장 순수한 사례"라고 했다.이에 대한 설명을 요약해 본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수입이 증가하고, 여가 시간이 늘고, 세계화가 진행되고, 방송 기술이 발달하면서 스포츠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여기에는 스포츠 스타의 인기가 높아진 것도 한 몫 했다. 스타플레이어도 수많은 추문을 일으키지만 은행가나 CEO, 정치인과 달리 스포츠 선수의 성적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스포츠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사람이 증가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건 축구다. 축구에 버금갈 만큼 세계적 주목을 받는 스포츠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을 때 축구는 그 돈을 잘 받기만 하면 됐다. 이 모든 일이 아무런 계획이나 준비, 규제 없이 일어났다."이렇게 갈무리를 하고 보니 한 장면이 떠오른다. '호날두 노쇼(No-Show)' 사건이 벌어진 상암월드컵경기장의 풍경이다. 호날두는 객관적 실력으로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스포츠 스타다. 여성편력으로 인해 크고 작은 스캔들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화려한 개인기로 전세계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를 보기 위해 국내의 수많은 축구팬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관객들이 무려 60억원을 냈는데, 주최측은 그 돈을 지만스키의 표현대로 '잘 받기만' 했다.이러한 정황을 빗대 상암에서 지만스키의 이론이 입증됐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쨌든 지만스키가 문장 마지막에 지적했듯이 '이 모든 일이 아무런 계획이나 준비, 규제 없이' 일어나다 보니 결국 사달이 났다. 당시 경기를 관람한 관중들이 경기 주최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 소장을 인천지법에 제출한 것이다. 인천을 시작으로 앞으로 유사한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이번 사태를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해본다. 시장경제는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따른다. 수요(호날두가 뛰는 것을 보는 것)와 공급(호날두가 실제로 뛰는 것)이 불일치하는데도 일방적으로 수요공급 곡선을 그려 입장료만 받아 챙긴 것은 시장경제를 훼손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소송은 시장을 교란한 외국의 거대 축구자본을 향해 국내 축구팬들이 옐로카드를 꺼내 든 것에 비유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자본주의 법정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궁금하다. / 임성훈 논설위원

2019-07-31 임성훈

[경제전망대]화폐에 대한 소고(小考): 리브라와 지역화폐

페이스북 암호자산 '리브라' 주목신뢰성·자금세탁등 우려 무한연기국내, 지자체 주도 지역화폐 반향인천이음등 호평… '수용성' 핵심지역공동체 공감대 유지등은 숙제최근 페이스북의 암호자산 리브라(Libra)가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지난 6월 18일에 페이스북은 당사의 방대한 고객층(월평균 사용자 24억명)을 대상으로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송금·결제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금융소외계층(약 17억명으로 추산)도 포함하여 금융편의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야심찬 계획(백서)을 발표하였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이 높은 가치변동성으로 인해 (대안)화폐로서 인정될 수 없음이 점차 뚜렷해지던 차에 제시된 리브라는 화폐에 가까운 여러 특징들을 구비하여 각국 중앙은행들을 긴장시켰다.비트코인 등이 법정화폐로부터의 독립, 즉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것과는 달리 리브라는 국채, 은행예금 등으로 이루어진 안전자산 바스켓과 연동하는 등 법정화폐와 연계함으로써 가치의 안정화를 꾀한다는 점, 사용자가 수십억명에 달해 수용성이 높은 점 등이 정책당국으로부터는 우려감을, 암호자산 시장참가자들로부터는 시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 모았다. 이에 따라 연초에 430만원대에 머물던 비트코인 가격이 6월 26일에는 1천684만원까지 급등하였다.페이스북의 각국 금융규제에 대한 순응 의사 표명에도 불구하고 미국 의회 등의 공개적인 우려와 반대에 부딪혀 페이스북은 백서 발간 한 달도 안되어 리브라 발행을 무기 연기하였다. 주된 쟁점은 여러 차례 개인정보 유출 사건 등으로 거액의 벌금을 부과받은 페이스북 자체의 신뢰성, 방대한 글로벌 네트워크에 기반한 송금서비스 등이 가져올 수 있는 금융불안정 리스크, 자금세탁 우려 등이었다. 한편, 국내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화폐로서 지자체가 주도하는 지역화폐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를 도입하는 광역 및 기초 지자체수가 작년 66곳에서 올해에는 177곳으로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형태 및 운영방식은 다양하지만 지역화폐의 공통점은 법정화폐와는 달리 화폐의 범용성을 공간적으로 제약하여 지역 소상공인 등의 매출 향상을 직접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발행 및 운용 비용, 소비자의 선택을 제약하는 데에서 오는 불편함에 대한 재정 지원(캐시백) 등 비용이 소요된다. 이러한 비용에 비해 소상공인들의 매출 증가가 지역 내 생산 및 일자리 증가, 더 나아가 지자체 세수 증가 및 재정자립도 제고로 이어지는 등 편익이 더 크다면 해당 지역화폐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지역화폐 중에서도 금년 5월 초 출시된 '인천이(e)음'의 확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지역화폐든 리브라든 모든 화폐의 성공의 관건은 수용성이고 이는 네트워크 규모, 즉 이용자수 또는 가맹점수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인천이음카드는 일단 성공적으로 보인다. 이용액에 한도를 두지 않아 가입자수 증가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으면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지만, 출시 3개월 만에 지역민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인지도를 높였고 지역공동체에 대한 인식 제고 등 무형의 성과도 기대된다.그러나 소비자의 선택을 지나치게 제약하지는 않는지, 재정여력이 서로 다른 기초지자체 간 또는 소비여력이 다른 소비자간 형평성 문제를 어떻게 보완할지, 지역공동체에 대한 공감대를 어떻게 유지하고 제고할 것인지 등 몇 가지 중요한 해결과제는 남아 있다. 또한 인천경제가 폐쇄경제가 아닌 이상, 공급사슬 등을 통해 거래의 일정 부분은 결국 지역 외로 다시 유출되는 만큼 지역화폐 도입의 순효과(net effect)에 대한 분석은 일정 기간 경과 후 엄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아울러 중장기적으로는 유출되는 자금보다 지역 내에서 부가가치로 창출되거나 유입되는 자금이 더 큰 경제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미래유망산업에서의 창업 활성화와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 지역민들의 역내소비 진작 못지 않게 외지인들이 인천에서 보다 많이 소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관광산업 활성화 등에 지역화폐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김현정 한국은행 인천본부 본부장김현정 한국은행 인천본부 본부장

2019-07-31 김현정

[노트북]세대차이

최근 온라인상에 재미난 게시물이 돌아다녔다. 요즘 세대는 전화받는 손 모양이 다르다는 것으로, 사소한 동작 하나로 세대를 구분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유선전화 송수화기 모양을 흉내 내려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는 동작은 청소년들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다.기존에 보유하던 유선전화를 해지한 가구 비율이 지난 2012년 8.53%에서 지난해 26.86%로 급증했으며, 지난해 유선전화 미가입 가구는 전체의 44.24%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영상통화에도 익숙한 세대로서는 과거의 정서를 공감하기 힘들다. 겪어본 이들만이 주황색 공중전화 상단에 남겨진 동전을 추억할 뿐이다. 그만큼 세대가 빨리 변했다.몇 세대 앞서 대한민국은 국권을 강탈당하고 수많은 국민이 일제에 고초를 겪었다. 그중에는 고향산천을 떠나 상하이와 난징, 항저우 등에서 투쟁하던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올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역사교육이 이뤄지고 있으나, 선진국 반열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세대가 늘어날수록 민족의 아픔에 공감하는 분위기는 점점 희박해질 것이다.얼마 전 김포교육지원청 주관으로 김포 학생대표 87명이 중국 항일유적지를 탐방했다. 교과서에서 접한 임시정부를 찾아 김구 선생 집무실을 둘러보고, 홍커우공원에서는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을 체험했다. 습도 때문에 체감온도가 48℃까지 치솟는 폭염 속에 학생들은 독립운동가들이 이역만리에서 얼마나 고생했을지 몸으로 겪었다.독립유공자 후손 노승연(통진중 3) 학생은 "난징 위안소 유적 진열관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심했다는 것을 느꼈고, 조선혁명정치군사간부학교에서는 나라를 위해 열정을 불사른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며 "이국땅에서 돌아가신 분들께 참배하면서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학생들은 탐방 마지막 날 어떻게 국력을 키워 설움을 당하지 않을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김우성 지역사회부(김포) 기자 wskim@kyeongin.com김우성 지역사회부(김포) 기자

2019-07-30 김우성

[경인칼럼]한일무역전쟁과 아베 정권의 책략

위안부합의 무력화·강제징용배상 등 불만韓 국론분열 유도 정권교체 바라는 모양새우리가 소재 국산화 성공땐 일본도 큰 타격日 경제예속 벗어날 근본적 대책 '몰입'할때한일간 무역전쟁이 악화일로이다.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소재의 수출규제에 이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법령 개정을 즉각 강행할 전망이다.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품목의 수출 절차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전략물자를 가지고 경제보복을 확대할 경우 한국은 군사정보공유협정인 지소미아를 파기하는 것으로 결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자국의 제품 판매를 막아 우리 경제의 숨통을 죄겠다는 일본의 수출규제는 '자해 공갈'의 수법과 흡사하다. 일본 무사들의 할복이나 악명높은 가미가제 특공대의 자살공격처럼 자신을 파괴하면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는 일본 스타일이다. 일본의 책략이 단기적으로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표 집결을 노린 카드라고 보는 것은 사태의 일면만 본 것이다. 한국을 경쟁국가로 규정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헌법개정을 통한 군대의 부활이라는 일본 우익의 정치적 목표 때문이다.아베 책략의 목표 중의 하나는 한국의 정권교체이다. 한국의 국론분열을 유도하고 눈엣가시 같은 문재인 정권에 타격을 가함으로써, 향후 정권교체까지 내심 기대하는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가 합의해준 '위안부 합의'를 무력화하고 한국의 대법원이 강제징용배상 판결을 내렸는데도 '적극적' 대응을 취하지 않고 있다고 간주하고 있다. 비핵화협상과 남북정상회담으로 북미, 남북간의 관계가 급진전 과정에서 일본이 느끼는 소외감도 작용하고 있다. 북일관계는 첫 단추도 꿰지 못한 아베 총리로서는 이래저래 불만이다. 한국경제가 장기불황의 일본경제를 추격하고 있다는 불안의식도 한 원인이다. 불황의 원인을 외부에 전가하고, 실패한 아베노믹스의 면죄부까지 만들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아베 총리는 한국 대법원이 내린 일본 전범기업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한국정부가 적극적 대응 방안을 가져오면 협상하겠다고 공언했다. 한국이 대법원의 판결을 수정하거나 철회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알고 있다. 일본은 타협 없는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대화와 협상이 아니라 보복과 역보복, 추가보복의 악순환을 거듭하다가 최악의 상황에서 협상의 문은 열릴 것이다. 현단계에서 한국이 굴복 외에 일본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 낼 카드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의 배경이 단순하지 않으며 일본 우익과 아베 내각의 집권 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입체적인 대응전략을 가져야 한다.다만 일본의 경제보복이 한국과 세계 경제, 마침내 불황에 시달리는 일본 경제도 위태롭게 하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유효하다. 한국 반도체 생산의 차질은 세계 각국의 경제로 확산되고 일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만약 한국이 반도체 소재의 구매를 다변화하거나 국산화까지 성공한다면 일본의 소재 산업은 최대 판로를 잃고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된다. 미국도 결국 개입해야 한다. 아베정부가 벌이는 무역전쟁으로 중국이 최대수혜자가 되는 것은 미국에게는 또 다른 재앙이기 때문이다.한일 무역전쟁에서 시간은 한국의 편일까? 국력을 총동원하여 한일무역 역조의 주범인 부품산업의 자립화 계획을 추진하는 것이 전제된다면 전화위복이다. 우리 경제는 수출이 늘면 일본산 부품수입을 늘려야 하는 구조이다. 최근 10년간 누적된 대일적자만 307조가 넘는다. 한국이 수출로 번 돈을 고스란히 일본에 바치는 과잉의존 구조 때문에 우리 경제의 숨통을 일본이 쥐고 흔드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한일간의 무역역조를 바로잡기 위한 장기 계획을 세우고 경제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수립에 '몰입'할 때다./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2019-07-30 김창수

[참성단]대통령 휴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매년 한 달간 여름휴가를 보냈다. 이라크 전쟁이 터졌을 때도 워싱턴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별장에서 업무를 수행했다. 푸틴과 정상회담도 이곳에서 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매년 겨울 휴가를 고향인 하와이에서 골프를 치며 보냈다. 일주일간 휴가비용은 대략 4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45억 원에 이른다. 8년 재임 중 휴가비로만 1억 달러를 지출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휴가 중 숙박비는 본인 부담이지만 전용기 에어포스원 경비와 경호원 숙소 비용은 백악관 예산에서 지출됐다.외국 정상들은 휴가 중 큰일이 생겨도 일정을 취소하는 경우는 드물다. 1995년 보스니아 특사가 지뢰폭발 사고로 순직했을 때, 콜로라도에서 3주 휴가를 보내던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장례식에 잠시 참석한 후 다시 휴가지로 돌아갔다. 2013년 5월 런던에서 2명의 모슬렘에게 영국군이 참수당하는 테러가 발생했지만,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사건 3일 후 스페인 휴양지로 휴가를 떠났다. 대통령이 집무실을 비워도 무탈하게 돌아가는 시스템 때문이다.우리나라 대통령은 휴가를 쓰면서도 여론의 눈치를 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두 아들의 검찰 조사와 수해 등으로 2년간 휴가를 가지 못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수해가 발생하자 휴가를 중단하고 복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건 때문에 여름휴가를 취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로 휴가를 가지 못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달랐다. 취임한 지 보름도 안 돼 연차 휴가를 떠났다. 공교롭게 휴가 중 북한의 미사일 발사소식을 듣고도 휴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연차 휴가 사용 의무화'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읽혔다. 북한이 ICBM을 발사했을 때도 출발을 하루 늦췄을 뿐, 휴가를 다녀왔다.그러던 문 대통령이 국내·외 현안으로 올 여름휴가를 취소했다. 그런데 휴가 취소를 발표한 날 제주도에서 주말 휴식을 즐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청와대는 "주말에 다녀온 개인일정"이라고 했으나 지역 언론 보도 후 하루가 지나 사실을 인정해 모양새가 나빠졌다. 휴가 반납의 취지도 반감됐다. 미리 공개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통령이 누려야 할 당연한 휴가에 이처럼 말이 많은 건 그만큼 세상이 어수선하고 국민들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탓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7-30 이영재

[기고]놀라운 기부문화의 태동

죽기 전에 재산의 95%사회 환원 밝힌 빌 게이츠 귀감회장의 기부행위를 보고사원들까지 따라하는 모습 등우리 사회도 나눔의 싹 트고 있어기부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나라는 미국 사회인 것 같다. 그만큼 사회가 안정되어 있고 각종 사회복지사업이 잘 되고 있다는 말도 되겠다. 수년 전 미국의 부호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 빌 게이츠는 죽기 전에 재산의 95%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그는 내가 받은 선물이 엄청날수록 사회를 위해 값지게 써야 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모범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가 설립한 재단에서 2014년까지 기부한 금액은 430억 달러가 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부호에서 지금은 세계 최고의 기부왕이 된 셈이다. 이렇게 거액을 사회를 위해 써달라고 내놓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분명 이는 경영자의 철학이 담겨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난달 신문 지상을 통해 미혼모를 위해 써달라고 100억원을 기부한 국내 한 기업인을 보았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어서 인터넷에 들어가 기부자인 '박한길' 회장을 쳐 보았다. 박 회장은 네트워크 유통사업을 하는 '(주)애터미'의 회장이었다. 기부행위가 이번뿐 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사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 180여억원을 기부해 오고 있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원칙, 동반성장, 나눔과 더불어 영혼을 경영하라'는 철학이 담긴 미션을 보면서 기업이 날로 발전해갈 수 있음을 느꼈다. 7월 12일 이 회사의 '성공 아카데미'가 일산 킨텍스 전시실에서 있었다. 전국 회원은 물론이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회원까지 1만5천여명의 회원이 참석해 세미나를 하고 성공사례를 발표하는 자리였다.이날 행사의 클라이맥스는 최고 판매회원에게 주어지는 '임페리얼 마스터' 등극이었다. 임페리얼 마스터에게는 10억원의 승급 상금과 각종 혜택이 주어지는 제왕적인 자리다. 두 명의 승급자 중 한 회원이 여자의 몸으로 열세 살 되던 해에, 오빠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공장에서 직공생활을 하며 받았던 봉급을 아버지에게 드리며 생활해왔다는 고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시대를 살아온 나도 발표자와 한마음이 되어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다시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그러한 어려움이 있었기에 오늘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목청 높여 열변을 토하며, 이 상금 전액을 사회를 위해 기부하겠다고 천명했다. 일만 오천명의 회원들을 놀라게 한 이 발표를 들으면서 회원 모두가 회의실이 떠나갈 듯한 기립 박수를 보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잠시 장내의 흥분을 가라앉힌 후 그녀는 회장님이 100억원을 기부했으니 나는 10억원만 기부해도 회장님과 라이벌이 되지 않겠냐는 농담도 하면서 즐거움을 표현했다. 기부행위란 이와 같이 나눔으로써 즐겁고 행복을 느끼는 것임을 모두가 공감하는 자리였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금은 많이 내보았다. 지난봄에도 동해안 산불로 피해지역 복구에 써달라고 초등학생에서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성금을 냈었다. 성금도 포괄적인 의미로는 기부행위에 해당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자발적인 기부행위와 묘한 차이를 느끼는 것은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국민으로서 내 책임을 다했다는 생각의 차이인 것 같다. 빌 게이츠는 일천억 달러가 넘는 재산 중에서 일천만 달러만 자식에게 상속하고 나머지는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하였다. 우리도 이제는 기부문화에 눈을 뜰 때가 되었다.우리 속담에 '왕대그루에서 왕대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 회장님의 기부행위를 보고 사원이 큰 금액을 기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도 미래를 위해 밝은 기부문화의 싹이 트고 있음을 느끼는 자리였다./변광옥 수필가변광옥 수필가

2019-07-30 변광옥

[수요광장]50 이후 더 나은 삶을 위한 '전환의 기술'

대접받던 어제의 기억은 지우고…하루빨리 독립생활자 능력 갖춰야기존 인맥 대신 '느슨한 관계' 구축돈 잘 못 벌어도 의미 있는 일 하기걸으면서 생각하고 글로 옮겨보자대기업 정년퇴직예정자 대상 강의 기회가 있었다. 휴양지의 화려한 호텔에서 진행되는 교육이었지만 참석자들의 분위기는 그리 밝지 못했다. 퇴직 후 계획에 대해서도 대부분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막연한 상태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중장년세대들은 주된 일(자리)을 떠나 새로운 일과 삶을 준비해야 한다.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도 아무 문제 없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변화는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그래서 전환의 기술이 필요하다. 너무 급하거나 무리한 전환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진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한번 살펴보자.# 나는 자연인이다지위와 역할로 대접받던 어제의 기억은 하루빨리 지우자. 그리고 당장 뭘 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부담도 내려놓자. 이제 나는 뭐든 할 수 있고 꼭 잘하지 않아도 된다. 명함이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다.# 혼자서도 잘해요자연인의 자유도 무조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그림자노동을 감당해 왔던 가족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하루빨리 독립생활자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스스로 일을 완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듯한 말만 하면 알아서 척척 해내는 훌륭한 직원들은 이제 내게 없다. 누구나 언젠가는 홀로 남는 시대,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살림의 주체가 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절실한 생존의 기술이다. 사회혁신도 좋지만 스스로 1인분의 삶을 감당하는 자기혁신이 우선이다.# 관계능력 강화인맥에 메이지 말고 느슨한 연결의 관계망에 어울려 보자. 혈연 지연 학연은 물론 다양한 명분의 끈으로 이어진 사람들, 이해관계가 앞서고 알게 모르게 경쟁과 서열이 작동하는 그 인맥들, 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에게 신뢰와 충성을 증명해야 하기에 부담스럽고 피곤하다. 그나마도 현직에서 물러나면 상당수는 다시 보기가 어색한 관계로 전락하고 만다.이제 혈연 지연 학연의 부담스런 인맥이 아닌 가치와 취향을 공유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느슨하고 자유로운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해 보자. 이러한 커뮤니티는 관리가 필요한 부담스런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나답게 그답게 우리답게 어울릴 때, 우리 삶은 더욱 아름답고 풍부해질 것이다. 특히 내가 사는 동네에서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돈독한 이웃은 어쩌면 나중에 가족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으니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 N잡러평생직장, 평생직업이 사라진 시대. 이제는 투잡, 스리잡을 넘어 멀티잡을 할 수 있는 N잡러만 살아남는 시대라고 하니 더욱 노오~력 해서 우리도 N잡러가 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더 이상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풀타임 잡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과 활동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하면 어떨까? 나를 위한 일, 공동체를 위한 일, 우리 사회를 위한 일, 그리고 돈 버는 일과 돈은 잘 못 벌어도 의미와 가치 있는 일. 이렇게 말이다. 일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벌이는 좀 줄겠지만 의미 있는 존재로서 나이들 수 있을 것이다.# 걷기와 글쓰기치유와 성찰을 위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을 나는 아직 모른다. 나름 치열하게 살았고 세상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느껴진다면 걷자. 걸으면서 생각하고 생각을 글로 옮겨 보자. 마주하기 두려워 마음 깊숙이 꼭꼭 숨겨두고 차마 열어 보지 못한 아프고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면, 과감히 열어 마주해 보자. 우리 모두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삶의 스토리텔러이다. 나는 누구이고 왜 여기에 있는지, 이제 또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덧 훌쩍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우리가 살아야 할 시간은 상상 이상으로 길며 그저 노후 걱정만 하며 지내기엔 우리에게 아직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남아있다. 혹자는 장수의 축복이 아닌 저주라고 비관하기도 하지만 이 정도 기술이면 이제야말로 우리 인생의 전성기를 누릴 만하지 않을까?/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

2019-07-30 김수동

[오늘의 창]안성지역화폐 성공, 市와 시민의 합작품

민선 7기 우석제 안성시장이 취임과 함께 공약사항으로 추진한 지역화폐인 '안성사랑카드'가 발행 3개월 만에 지역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시민들은 지역화폐의 성공에 대해 우 시장의 올바른 정책 방향 제시와 시 공무원들의 실효성 높은 제도 마련, 시민들의 애향심 등 3박자가 만들어낸 합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당초 지역사회에서는 지역화폐의 발행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경기도가 발행한 지역화폐와의 중복성은 물론 공무원 복지포인트를 비롯한 청년배당 및 각종 처우개선비 등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방안에 대한 적절성 등이 문제로 불거졌다.하지만 지역화폐 제도가 시행되니 이 모든 우려 섞인 문제들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이 수치로 드러났다. 시가 올해 4월 1일자로 발행한 지역화폐는 지난 9일을 기준으로 정책수당은 18억9천197만9천원, 일반발행은 15억6천352만1천원 등 총 34억555만원에 달했다. 발행된 지역화폐 중 정책수당은 15억4천657만9천원이 사용됐고, 일반발행 또한 8억1천923만3천원이 사용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역화폐가 선순환 되고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목적도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특히 일반발행의 경우 지난 5월 15일까지는 5억1천700만원이 충전돼 1억3천300만원이 사용됐지만, 시가 지역화폐 판매를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확대 판매한 이후 1개월여 만에 충전금액 15억여원에 사용금액도 8억여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시가 집계한 지역화폐 사용처를 봐도 일반한식과 서양음식, 중국식, 스낵, 주유소 등 대부분 소상공인들이 운영하는 점포임이 확연히 드러난다.우 시장과 시는 이 같은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민선 7기의 기치인 '즐거운 변화 행복한 안성'을 위해 새로운 시정 및 시책을 발굴해 19만 시민들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 나가길 기대한다./민웅기 지역사회부(안성) 차장민웅기 지역사회부(안성) 차장

2019-07-29 민웅기

[이영재 칼럼]그때는 몰랐다

주변국 사이 갈팡질팡, 구한말과 겹쳐 보여조·청·일·러서 한·미·일·북·중·러로 늘고북한이 핵보유국, 그때보다 복잡하고 험악또 잘못 선택한다면 후세 무능한 조상으로 그때는 몰랐다. 역사는 무조건 외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역사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무조건 외우는 거다." '미친개'란 별명을 갖고 있던 국사 선생님도 박달나무를 허공에 휘두르며 그때 그렇게 말했었다. "백제멸망 660 정말 슬픈데 /고구려도 망했다 668/ 발해건국 699에 번영하다가/ 멸망이 웬 말이냐 926." '연대 강박증'에 시달리던 우리는 윤극영의 동요 '반달'을 개사한 이런 노래도 불렀다. 하긴 당시 시험문제의 수준도 이랬다. '다음 사건을 시대순으로 옳게 나열한 것은 ?'. 그래서 '미친개'가 무조건 외우라고 했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역사는 외우는 게 아니라 이해해야 한다는 걸. '한국사 연표'를 직접 만드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도 후에 알았다. 기존의 연표를 대충 눈으로 읽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다. 내 손으로 연표를 작성하되 여유가 있어 세계사 연표까지 함께하면 금상첨화다. 국사와 세계사를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이른바 '일타쌍피'. 가령 '고구려가 낙랑군을 점령한 313년 그해, 콘스탄티누스가 밀라노칙령을 공포해 기독교를 공인하고, 백제를 번성케 한 근초고왕이 죽던 해(375년)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이런 식이다. 눈을 감으면 뭔가가 그려진다.그때는 몰랐다. 역사는 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발원지에서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흐름만 알면 역사공부는 끝난 거다. 그래서 연표가 중요하다. 이탈리아 메디치가의 번영으로 피렌체의 르네상스 문화가 절정을 구가하던 1453년, 동방의 조그만 나라 조선에서는 수양대군이 친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권력이 뭐라고, 그걸 잡기 위해 쇠몽둥이로 무자비하게 정적을 제거하고 '피의 축제'를 벌이며 마침내 조카의 목숨까지 빼앗은 그때, 먼 나라에선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간중심의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었다. 가슴이 뭉클하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연표 때문에 가능한 상상이다.하지만 이런 연표도 근대사에 이르면 혼란을 맞게 된다. 우리 근대사가 썩 유쾌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정말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건이 수없이 일어나서다. 1866년 병인양요,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시작으로 신미양요(1871), 운요호 사건(1875), 강화도조약(1876), 임오군란·제물포조약(1882), 갑신정변(1884), 동학운동·청일전쟁 (1894), 을미사변 (1895), 아관파천(1896), 대한제국선포(1897), 을사조약·가쓰라 태프트 밀약 (1905), 한일합병(1910)까지 매년 매월 국운을 뒤흔든 사건이 일어났다.무엇하나 뺄 거 없이 '조선'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가 감당하기에는 엄청난 사건들이었다. 연표만 가지고는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이 사건들이 계산된 듯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근대사 교육은 중립적인 시각을 가진 누군가의 설명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미친개'는 어설픈 민족주의자였다. 청나라,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의 움직임은 생략한 채 우리 입장만 가르치려고 했으니 불쌍한 '조선'이 왜 백척간두에 놓였는지 어린 학생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최근 우리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가 마치 구한말 같다고 한다. 헷갈리던 근대사를 다시 공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소리까지 들릴 정도다. 주변국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가련한 모습이 구한 말과 겹쳐 보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조·청 ·일 ·러 4개국에서 한·미·일·북·중·러 6개국으로 늘어난 것도 그렇고, 한반도가 두 쪽으로 갈라졌으며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란 사실 때문에 상황은 그때보다 복잡하고 훨씬 더 험악하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E. H.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비록 반복되는 역사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지만 답은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 알았으니 무능했던 우리의 조상들이 택하지 않은 길로 가면 된다. 만일 이번에 또 길을 잘못 선택한다면, 우리는 후세에게 130년 전 조상보다 더 무능한 조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다시 그 길 앞에 선 대한민국. 슬프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7-29 이영재

[전호근 칼럼]오지 않은 학생들의 이야기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결석한 학생열외자·꼴찌들의 이야기에 가까워내가 궁금한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모든 것을 던져 이룬 일등의 성취사람들 삶을 보려하지는 않아…지난 학기 학교 축제 기간 중 강의에 출석하는 학생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강의를 듣기 위해 한결같이 출석하는 성실한 학생들을 바라보고 정성을 다해 강의했지만 나오지 않은 학생들에게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왜 결석했을까? 나는 강의 들으러 온 학생들이 왜 왔는지는 궁금하지 않았지만 결석한 학생들의 사정은 무척 궁금했다. 학생들이 강의에 출석하는 이유는 거개가 같을 테지만 결석한 이유는 다 다를 것이었기 때문이다.축제가 끝난 뒤 나는 지난 시간 출석하지 않았던 학생들에게 무슨 재미난 일이 있어서 강의에 나오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다.한 학생은 신종 독감에 걸렸는데 친구들에게 옮길까 봐 안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이 학생은 친구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이타적인 이유로 결석한 것이다. 거룩한 학생이다.또 다른 학생은 학과대표로 뽑혀 축구 시합에 나가느라 강의에 오지 못했다고 했다. 시합에 이겼느냐고 물었더니 아깝게 졌다고 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축구에 인저리 타임이 있는 것처럼 내 강의에도 인저리 타임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뛰라고 이야기했다.또 한 학생은 게임을 하느라 밤을 새워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아주 솔직한 학생이다. 자신에게 불리함에도 진실을 밝힌 학생에게 칭찬을 해주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또 어떤 학생은 미리 나에게 사정을 알리고 허락을 구했다. 학교에서 개교 7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있어 티켓을 신청했는데 운 좋게 당첨되었단다. 무슨 공연인지 물어보았더니 무려 프랑스 오리지널팀을 초청하는 레미제라블 뮤지컬이란다. 나라도 강의 빼먹고 갈 것이라고 이야기해줬다.또 병무청 신체검사를 받느라 참석하지 못한 학생도 있었다. 국가의 정당한 부름에 따른 이런 학생은 국가가 보호해야 할 것이다.결석하지 않고 강의실에 온 학생 중에는 지난밤 학과 주점에서 과음한 탓에 강의시간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잔 학생도 있었다. 내 강의가 얼마나 듣고 싶었으면 저런 몸을 이끌고 강의실까지 찾아왔을까 싶어 감동받았다. 내가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실은 이런 학생들 때문이다.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결석한 학생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일등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열외자, 꼴찌들의 이야기에 가깝다. 하지만 내가 그들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세상 사람들은 일등 이야기를 열심히 퍼나르지만 일등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뻔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축구 황제로 불렸던 에우제비오는 "모든 경기를 마지막 경기라 생각하고…", 히딩크 감독은 "나는 아직도 승리에 배가 고파서…" 죽어라 뛰었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 미국육상대회에서 마지막 순간 결승선을 향해 몸을 던져 일등을 차지한 허들 선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김연아 선수의 발이나 이상화 선수의 발이나 모두 상처투성이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던져 이룬 일등의 성취는 영광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 해도 재미는 별로 없다. 사람들이 삶을 보려 하지 않고 일등으로 귀결된 경쟁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꼴찌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이야기가 다 달라서다. 프로야구 원년 팀 중 만년 꼴찌였던 '삼미 슈퍼스타즈'만이 유일하게 소설로 쓰인 까닭도 다르지 않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치기 힘든 공을 치기 위해 밤새 배트를 휘두르고 잡기 힘든 공을 잡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일등들은 죽었다 깨나도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그러니 말이다. 일등들은 꼴찌들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들은 단지 당신들처럼 모든 것을 던지지 않았을 뿐이다. 당신들이 던져버린 것들 중에, 그리고 그들이 던지지 않은 것 중에, 혹 던지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지 어찌 알겠는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7-29 전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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