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풍경이 있는 에세이]기차를 타고

커다란 창 가득한 하늘·산·시골집무자극 콘텐츠에 어느새 피로 '싹'버스에는 없는 운치 마음 '몽글몽글'도착 앞둔 기분이란 또다른 소중함떠나지 않았다면 못 느꼈을 '원점'요사이 부쩍 기차 탈 일이 많아졌다. 대전도 가고, 광주도 가고, 대구도 간다. 대구에서 다시 마산도 가고. 주로는 일 때문이다. 잦은 지방 출장의 고충을 아는 지인들은 "힘들겠다" 염려하지만 어쩐지 나는 이런 상황이 나쁘지 않다. 낯선 도시나 장거리가 주는 심리적 부담도, 몇 시간 동안 꼼짝없이 한 좌석에 앉아 이동해야 하는 불편도 제법 참을 만하다. 조금 과장하자면 요즘따라 괜히 기차 타는 일이 즐겁다.기차 타는 즐거움은 물론 역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차를 기다리는 일에서부터. 나는 발차 시간보다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앞서 역에 도착하기를 선호하는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여유를 좀 부려보는 게 좋다. 역사 내 상점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거나 비교적 한산한 식당이나 커피숍을 찾아 밥을 먹는다거나, 차를 마신다거나. 또, 구석 자리에 앉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넋 놓고 구경한다거나. 일찌감치 승강장에 나가 들고나는 기차 소리를 듣는다거나. 엊그제는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함민복 시인의 시 '서울역 그 식당') 같은 구절을 떠올리며 사람들로 꽉 찬 롯데리아에서 버거를 먹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알 수 없는 설렘과 막막함, 그리움을 느꼈다. 꼭 먼 곳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 여행자처럼. 그러나 너무 깊은 감상에 빠져선 곤란하다. 십오 분 전, 승강장 번호를 체크할 것. 대체로는 KTX를 타지만 시간이 좀 남을 땐 일부러 무궁화호를 탄다. KTX보다 어딘가 더 '기차스러운' 무궁화호. 바랜 빛깔의 시트나 커튼에 정감이 깃들어 있다. (저렴한 요금도 마음에 쏙 든다.) 무엇보다 내게는 KTX보다 무궁화호에 얽힌 추억이 많다. 특히 대학 시절 나는 정기적으로 무궁화호를 타고 마산 본가와 서울을 오갔다. 명절이면 현장 예매로 어렵게 구한 티켓을 쥐고 아주 뿌듯해하며 열차를 탔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 무렵 나는 늘 고단했는데, 열차에 오르기만 하면 금세 잠에 빠졌다. 장장 다섯 시간 반 동안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마산에서 내리지 못하고 종착역인 진주까지 갈 뻔한 적도 여러 번이다. 문득 눈을 뜨고 혼비백산하며 황급히 문을 나서던 기억. 기차에 올라 비로소 창밖을 내다보며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건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한동안 기차를 이용할 일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인지 어쩌다 갖는 기차 안에서의 시간이 특별하게 여겨졌다. 커다란 창 가득 펼쳐진 하늘과 산과 밭과 아기자기한 시골집들. 맑고 푸른 모든 것들. 유튜브에서 고르고 고르던 '무자극 콘텐츠'가 바로 여기 있었구나, 피로가 다 가시는 것 같았다. 바깥에 시선을 빼앗긴 채로 한참을 멍하니 있다 보면 누군가 슬며시 다가와 비타민 음료를 한 병 건네기도 했다. 일행과 좌석을 바꿔줘 고맙다는 뜻. 확실히 버스에는 없는 어떤 운치가 기차에는 있는 것이다!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문득, 계절이 바뀔 때쯤에는 진짜 기차여행을 해야겠다는 결심. 미국에서 공부하는 오랜 친구 E가 돌아오면 함께 바다열차를 타야지. 동해안 해안선을 배경으로 달리는 바다열차는 좌석이 아예 바깥을 향해 있다니, 지친 E에게 작은 선물이 될 것이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보면 금세 "우리 열차는 지금 종착역인 서울역에 도착"을 알렸다. 도착을 앞둔 기분이란 또 얼마나 소중한지. 기차 타는 즐거움의 백미는 다름 아닌 이것인지도 모른다. 서울역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가는 밤의 열차. 따스한 불이 켜진 승강장. 사람들은 열차가 멈추기도 전에 출구 근처에 길게 줄을 선다.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면 서둘러 내려 집으로 총총총 걸어가려고. 순간 노곤한 몸을 감싸는 어떤 안도, 안락. 잠시였으나, 떠나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감정. 원점, 다행히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9-07-25 박소란

[기고]아동학대를 방관하는 우리 모두가 가해자입니다

특례법 제정후 여전히 증가세재학대로 사망하는 아이 없도록지속적인 관찰·관리 매우 중요정부차원 안정적 예산 집행보호체계 마련 서둘러야최근 '미쓰백', '어린 의뢰인'등 아동학대와 관련된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하면서 '아동학대'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 아동학대는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사회 문제 중 하나이며 다른 이슈들에 비해 중요도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에 속한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아동학대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해왔으나 관련한 실질적인 법안이 만들어진 것은 불과 5년 전인 2014년이다.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만들어진 이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였고 2017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 기준으로 3만4천185건을 기록했다. 특례법이 만들어진 이후 5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아동학대 사망 사건들은 언론 보도를 통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문제들에 밀려 잠깐의 관심 후에 '이슈'에만 그치고 있다.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아동들이 희생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아동학대는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학대로 사망하는 아동이 없도록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관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2017년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의하면 아동학대 재발생 사례 건수가 2012년 914건, 2015년 1천240건, 2017년 2천160건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의 사례관리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의 제도 마련을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처벌 강화와 함께 학대의 재발 방지를 위해 학대 피해 아동 가정의 가해자와 보호자들의 교육 및 상담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권한 등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더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반복은 안 된다. 아동학대로 인한 안타까운 뉴스가 언론의 관심을 받을 때마다 실제적인 예방대책을 위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정책으로 이어지는 데는 늘 한계가 있었다. 이제는 정부 차원에서 복권 기금 등으로 운영되는 아동학대 예산에 대한 편성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의 일반 회계로 전환하여 안정적으로 예산 집행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학대피해아동 가정의 사례관리에 관한 법안이 마련되어 학대피해아동의 가족이 상담, 교육 등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필자가 근무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아동보호 통합지원 전문서비스 모형을 적용해 사례관리 전체 단계에서 아동과 가족들이 상담 과정에 참여하고 아동의 보호자는 부모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재학대를 예방하고 학대피해아동이 원가정으로 복귀해 가족의 재결합을 통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전문적인 서비스도 제도적인 부분이 없어 한계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동학대로 벌어진 안타까운 일들을 누구의 탓이라고 전가하는 분위기나 이슈로만 그치는 현상에 머문다면 우리 모두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 차원의 제도 마련과 더불어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며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도와야 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재학대로 인해 사망하는 아동들이 없도록 실질적인 아동학대 사례관리 방안과 대한민국 아동보호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좀 더 안전한 세상이길 기대해본다./이승지 경기북부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이승지 경기북부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2019-07-25 이승지

[춘추칼럼]남북관계에서 지자체 역할의 중요성

제도적 장치로 서독인 자유롭게 동독 여행한반도 남북·남남·북북갈등 이념대결 존재'이산가족 북한 방문' 민간 자율 추진 바람직자치단체간 플랜짜고 北 교류의 장 끌어내야동서독의 경우 분단시기 상호 방문에 있어 제약이 많지는 않았다. 동독 내 서베를린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독 주민의 왕래를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를 갖추었다. 1970년대 초반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을 전후하여 교통조약이 체결되고 우편 통신 관련 조약들도 체결되었다. 서독의 동방정책은 당장의 통일이 어렵기 때문에 분단으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해소에 목표를 두었다. 동독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동독을 대화와 협력의 파트너로서 인정했다. 동독은 정상국가로서 인정받기 위해 주민 간의 왕래와 접촉을 허용하였다. 서독인들의 동독 왕래에 따른 통행료를 받을 수 있었고 동독을 찾는 서독인들에게 강제적인 환전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경제적 이득도 챙길 수 있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서독인들은 안전하게 동독을 여행할 수 있었고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국가가 나뉘어져도 이념이나 제도가 달라도 자유롭게 왕래하고자 하는 의지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핵심적인 기본권이다. 공산권 해체시기 독일인들의 외침은 국가의 통일이 아니라 여행의 자유였다. 인위적인 장벽에 의해 개인의 이동과 만남이 제약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에 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분단의 장벽 속에 갇혀 있는 남북 주민 간의 이동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남북은 동서독보다 상황이 훨씬 좋지 못하다. 정전 체제가 존재하는 데에다가 군사적 대치는 여전하다. 아직 한반도에는 남북갈등, 남남갈등, 북북갈등 등 중층적 이념대결 구조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간에는 왕래와 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는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남북 간 교류협력이 장려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그러한 계기를 마련하기 어려워졌다. 지금 북한과 새로운 협력을 도모하려 해도 대북제재로 인해 쉬운 상황이 아니다. 남북경제협력에 있어서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개성공단이 폐쇄된 이후로 이렇다 할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북제재로 인해 벌크 캐시의 이전이 허용되지 않고 있고 대북투자와 전략물자의 이전 금지에 따라 공단은 재개조차 하지 못한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완료 전까지 이러한 대북제재의 예외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을 늦추면서 미국의 눈치만 보고 있는 한국 정부를 오히려 비난하고 나섰다. 지난해 남북관계에 비해 올해 남북관계는 매우 소극적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그러한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북중관계이다. 최근 북한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점차 늘어나는 가운데 북중 경제협력의 확대를 모색하기 위한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다고 한다. 올해는 북중 수교 70주년이고 최근에는 시진핑 주석이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후 두 나라 간 정부 간, 민간 간 교류도 확대일로에 있다. 대북제재 국면에서 남북관계도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북중관계는 보다 확대될 것이다. 앞으로 북한이 교류협력의 대안적 기제를 중국에서 찾는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응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한 답답한 상황을 보고만 있어야 할까? 동서독의 사례처럼 어렵더라도 남북교류협력을 제도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우선 이산가족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이산가족들의 북한 방문과 왕래, 자유 관광을 허용해야 한다. 당국 간 이것을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여행사와 민간이 자율적으로 이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성공단 재개는 무조건 주장할 것이 아니라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초기 이행조치로서 검토되어야 한다. 즉 포괄적으로 대북제재를 해결하기 어려운 미국은 개성공단을 제재의 예외로 하여 북한의 초기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 내는 협상칩으로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방안을 미국에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북한은 남한을 개혁 개방의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우리와의 접촉면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 중국과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중국이 북한의 대부분 시장을 선점하면 남북한 통합은 더욱 어려워진다. 우리도, 북한도 100년을 앞서서 남북관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또 다른 방안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들 수 있다. 중앙정부에서 막히면 지자체 간 교류의 확대를 시도해야 한다. 이벤트 행사보다는 자치단체 간 교류의 큰 플랜을 만들고 계속 북한을 교류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통일부와 시도지사협의회가 이러한 취지를 담은 협약식을 개최했다고 한다.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에서 지방의 이해와 지자체의 역할이 이래저래 중요한 시점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7-25 양무진

[발언대]양파소비촉진의 나비효과를 기대하며

요즘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보복조치에 따른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전국민적인 관심사항으로 대두되면서 '양파가격 폭락문제'가 언론의 관심에서 좀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양파가격 폭락에 따른 농업인들의 타들어가는 시름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가운데 얼마전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모 유명인이 양파를 소재로 한 요리 레시피를 유튜브 채널에 올려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어려운 농촌을 돕자'라고 하면 "나 하나가 무슨 큰 도움이 되겠어?"라는 생각을 으레 해왔던 게 사실인데 이 유튜브 방송은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보통의 도시민인 우리가 양파재배 농가를 도울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무엇일까?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가족의 식탁에 양파요리를 많이 올리고 많이 섭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개인들이 속한 각 단체, 조직 차원에서 양파소비 촉진방법을 찾는 것이다. 농협에서도 양파소비촉진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전국 하나로마트에서는 양파소비 확대를 위해 파격적인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고, 각종 기부활동에도 양파를 이용하고 있다. 또한 양파즙이용확대 운동을 전사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농협이념중앙교육원에서도 교육참여활동 우수자 시상품을 기존의 공산품을 대체해 양파즙으로 주고 있다. 양파재배농가를 돕자는 취지를 이해한 수상자들도 양파소비촉진운동에 본인도 동참했다는 마음에 괜시레 뿌듯해 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양파재배 농가의 한숨소리에 작은 관심을 갖고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보자. 그리고 내가 먼저 작은 일부터 실천하여 양파소비촉진의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 주인공이 한번 되어 보는 것은 어떤가./김학수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김학수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

2019-07-25 김학수

[기고]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기리며

오는 7월 27일은 '유엔군 참전의 날'이다. 1950년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분의 희생이 있었다.22개국 195만명의 유엔군 참전용사분들은 한 번도 와보지도 못한 이름도 낯선 대한민국의 땅에서 피와 땀을 바쳤다. 정부는 그분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기 위해 정전 60주년이 되던 지난 2013년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제정하여 매해 국가보훈처 주관의 정부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6·25전쟁은 발발한지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뺏길 만큼 우리의 전력이 열세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여 북한의 남침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유엔결의문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유엔회원국 중 16개국이 우리나라에 전투병력을 보내왔고 6개국이 의료지원을 보내왔다. 열세했던 한국전쟁은 유엔군의 참전 이후 전세가 뒤바뀌었다. 우리가 38선을 탈환하고 압록강까지 북진하는 등 우세를 보였다가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는 등의 교착상태가 반복되는 와중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체결함으로써 3년여간의 전쟁은 휴전을 맞이하게 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휴전 이후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이는 6·25전쟁 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유엔군 참전용사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던 기념비 문구는 아직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조국은 그들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조국의 부름에 응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유엔군 참전용사분들의 희생에 다시 한 번 존경과 경의를 표하며,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정전이 된지 66년이 흐른 지금 꽃다운 희생의 피가 평화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최근 남북정상 및 북미정상 간의 만남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들을 제거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안착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평화의 한반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를 위해 땀과 피를 흘리며 희생하신 유엔군 참전용사분들의 희생과 공헌에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맞이하여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을 되뇌며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가지는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이주미 국립이천호국원 현충과 주무관

2019-07-25 이주미 국립이천호국원 현충과 주무관

[기고]왜(倭)의 경제침탈에 한 목소리로 대처해야

선조 23년(1590년) 조선 조정은 왜국(倭國)에 통신사 일행을 파견했다. 이듬해 귀국한 정사 황윤길(黃允吉, 서인)은 왜병이 반드시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고 말하자, 부사 김성일(金誠一, 동인)은 왜군의 침략 징후를 보았음에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보고한다.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안보를 해친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592년 조선은 왜(倭)의 침략을 받아 백성들의 생명과 국토가 유린당하는 대참사를 겪었다. 그런데도 조선은 당파싸움 속에서 국론이 분열되어 그로부터 300여 년 만에 또다시 왜국에 나라가 병합되는 수모를 당했다. 과거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은 망각의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옛날에는 땅을 지배해야 식민지였지만 현대에는 경제로 지배해도 식민지가 될 수 있다.요즘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가 심상치 않다.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가 독도 영공과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한 뒤 러시아는 영공침범을 부인하고 한국 조종사가 오히려 위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또한 왜국은 3개 반도체 소재에 대해 대(對)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가운데 화이트리스트(White List) 국가에서 제외하는 경제 보복도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 3개 소재에서 1천여 개 품목 규제로 확대된다. 왜는 타국을 침탈하는 습성에 따라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가하는 동시에 과거의 불법행위를 정당화시키려고 수출규제와 외교적 보복을 감행하고 있다. 왜의 DNA는 원천적으로 타국을 침략하게 돼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남북 간의 교류협력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찰총국 소속의 간첩을 남파하고 단거리 미사일 2발을 발사하는 등 국제적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에 정치권에서는 상대 탓만 하고 있다. 차제에 이것만은 분명히 말하고 싶다. 정부는 민족적 감정에 기인한 선동 형 대책보다 대왜(對倭) 경제의존도를 줄이는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반도체 소재에 관한 한 러시아가 불화수소 등 일부 소재를 제공할 의향을 밝혀온 점을 고려, 일본의 1천여 개 규제품목에 대해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것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미국을 압박하는 효과적 수단이 될 수 있을뿐더러, 일본과의 경제관계 재정립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또한 러시아도 왜국과 북방 4개 섬 분쟁이 있기 때문에 독도에 관한 한 우리나라에 우호적일 수 있다. 이러한 점이 이번 KADIZ 침범을 계기로 독도 영공이 한국 영유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도록 외교적 협상을 전개해야 하는 이유다. 그동안 미국을 짝사랑했는데 일본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애매하기 그지없다. 미국 일변도의 짝사랑에서 벗어나 러시아와도 부분적이나마 교제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략적 방안이 있으면 뭐하겠는가. 국가(國家)가 반으로 갈라진 것도 서러운데 국론(國論) 역시 반으로 나뉘어 버렸으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요즘 정치가 나라를 망친다는 소리를 심심찮게 듣는다. 국가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당리당략에 따라 '친일파' 또는 '좌파' 운운하는 국회의원들을 영구 추방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서로가 한 발씩 양보하여 최소한 왜국에 대한 사안만이라도 한목소리를 내야 또다시 시작된 왜의 경제침탈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 텐데 걱정이다. 제발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희망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초당적 방안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가 오죽하면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를 쓰지 않고 왜국(倭國)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진종구 환경안보아카데미 원장

2019-07-25 진종구 환경안보아카데미 원장

[경제전망대]재정확장 정책 필요한가?

순수 국가채무는 35.9%로 낮지만비금융공기업 부채비율 OECD 1위단기적 불경기엔 재정투입이 유리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땐 효과미미경기둔화 원인진단후 실행 나서야정부는 과감한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 재정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랏빚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2018년 기준 OECD 평균 국가채무 비율이 113%가 넘는데 우리는 국가채무 비율이 35.9%에 불과해 문제없다는 논리를 편다. 재정을 크게 확대하면 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에 문제는 없을까? 그만큼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까? 단정적으로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나랏빚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D1(국가채무)은 중앙·지방정부 부채, D2(일반정부 채무)는 D1에 비영리공공기관 부채를 합친 것이다. D2에 비금융공기업의 부채를 더하면 공공부문 부채 즉 D3가 된다. OECD는 D2를 주요 기준으로 삼는데 우리 정부가 밝힌 비율 35.9%는 D1이다. 일반적으로 D1~D3의 격차가 크지 않은데 우리나라는 비금융공기업 부채 비율이 통계를 발표하는 OECD 회원국 중 1위로 아주 높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D3는 60.4%여서 OECD 평균과 차이가 줄어든다. D3에도 포함되지 않는 금융공기업 부채도 우리나라만 정부가 지급보증을 선다. 우리나라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우리는 작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했는데 유럽 선진국이 고령사회로 진입할 때 국가부채 비율은 우리보다 낮았다. 그리고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충당부채가 D3에는 빠져 있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지급보장을 하지 않으므로 국가부채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가 책임져야 할 개연성이 높은데 국민연금을 부채에서 제외하면 잠재적인 국가부채가 적어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국민연금은 그때그때 걷어서 주는 부과식이어서 정부 부채와 무관하다. 하지만 우리는 적게 받고 많이 돌려주는 적립식이어서 나중에 고갈되면 세금이 들어갈 수 있다.요약하면 국가 간 비교에 범주가 좁은 D1이나 D2가 많이 쓰이지만, 넓은 테두리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외국과 다른 불안 요인이 많아서 장기적 재정 건전성에 대해 낙관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재정 확대 정책을 자제해야 하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장기적으로 낙관할 수 없지만, 현재 여건으로 보면 재정 여력이 충분하므로 일시적 재정 확대 정책에 따른 부담이 크지 않다. 정부가 단기적인 불경기에 재정을 투입해서 경제를 살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필요하다. 국제금융위기 이후 유럽은 상대적으로 재정 긴축 정책을, 미국은 재정 확대 정책을 폈다. 국제금융위기 직후 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은 긴축 정책을 편 유럽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보수적인 정치인이나 경제학자들은 확장적 재정정책이 재정 건전성 악화, 시장의 신뢰 붕괴,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거라고 경고했다. 대략 10년이 지난 지금 돌아다보면 케인지언 경제학자들 예측이 맞았다. 유럽은 경기회복 속도가 매우 느렸고 미국은 상대적으로 빨라서 최근에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퍼부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국가부채 비율만 40% 선에서 200% 넘게 늘었다. 최근에서야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다소 경기가 살아난 상태다. 이렇듯 재정 확대 정책은 성공과 실패 사례가 있다. 그 차이를 가르는 원인은 뭘까? 원론적인 지적이지만 불경기가 유효수요 부족 때문이면 재정 확대 효과가 있다. 투자와 소비심리가 위축돼서 잠재성장률보다 실제 성장률이 낮을 때 정부가 돈을 풀면 경기회복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잠재성장률이 낮아졌고 실제 성장률과 격차가 작다면 재정 확대가 정부 빚만 늘릴 뿐 별 도움이 안 된다. 따라서 재정 확대 정책을 펴기 전에 성장률 둔화 원인을 먼저 진단할 필요가 있다. 단언할 수 없지만, 현재의 경기둔화에는 구조적인 요인과 심리적 요인이 섞여 있는 듯하다. 잠재성장률은 보통 낮아지더라도 급속히 나빠지지는 않는데 실제 경기둔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재정 확대가 필요하지만, 투자와 소비를 억제하는 요인을 제거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재정을 얼마나 쓰느냐 이상으로 중요한 대목이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허동훈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허동훈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19-07-24 허동훈

[참성단]친일파 명문장

"소요 당시 본인의 두 차례에 걸친 경고에는 단지 조선독립이라는 말이 허망한 것이니 망동하여 생명을 사상(死傷)하는 화에 빠지지 말고 급히 구하라는 뜻으로만 말하였거니와, 이번에 여러분이 지난 잘못을 후회하는 때가 오니 본인이 다시 한마디를 더하는 것은, 독립이라는 주장이 허망함을 여러분이 확실히 깨닫는 것이 우리 조선 민족의 장래 행복을 설계하는 것임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완용은 3·1운동이 확산되자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3회에 걸쳐 '경고문'을 실었다. 앞의 글은 3차 경고문의 일부분으로 문장 첫머리의 '소요'는 3·1운동을 말한다. 매일신보에 친일파들이 기고한 글을 엮은 '친일파 명문장 67선'에는 이완용의 글 외에도 일제를 찬양하거나 황국신민이 될 것을 독려하는, 더 나아가 일제의 전쟁에서 목숨을 바칠 것을 종용하는 글이 다수 등장한다. 지금 읽어보면 역겹기 그지 없지만 당시 힘없는 민초들로서는 이들 지식인의 수려한 문구에 일부 혹했을 터이다.그런데 요즘 이완용의 '경고문'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경고문에서 몇 단어만 바꿔보았다. '소요'를 '불매운동'으로, '독립'을 '원자재 국산화'로 대치하는 식이다. 불매운동 반대론에도 합리적 이유가 없지 않은 만큼 과도한 비약일 수 있겠으나 다양한 사고에서 본질을 들여다보자는 취지로 감히 다시 써본다. "'불매운동'이 일어날 당시 본인의 두 차례에 걸친 경고에는 단지 '원자재 국산화'가 허망한 것이니 망동하여 국가 경제를 망치는 화에 빠지지 말고 급히 구하라는 뜻으로만 말하였거니와, 이번에 여러분이 지난 잘못을 후회하는 때가 오니 본인이 다시 한마디를 더하는 것은, '원자재 국산화'가 허망함을 여러분이 확실히 깨닫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 행복을 설계하는 것임을 말하려는 것이다." 조선의 마지막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우연이겠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성과 똑같다)는 조선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것(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그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정치적 대립을 '당쟁'으로 깎아내리고, 조선을 그저 이씨(李氏)들만의 나라인 양 '이씨조선'으로 폄하하는 등 조선 백성들에게 열등감과 패배주의를 심는 데 주력했다. 그 교육의 연장선에 있어서일까? 이완용의 경고문과 비슷한 글을 요즘 적잖이 보고 있다. / 임성훈 논설위원

2019-07-24 임성훈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지래자역: 올 것을 알려면 거슬러 가봐야 한다

순역(順逆)이란 개념은 주역에 그 원리적 의미가 들어있다. 주역에 '數往者順 知來者逆'이라고 하였다. 순은 지난 일을 헤아리는 일이다. 역은 다가올 것을 아는 일이다. 逆이란 글자는 풀이 땅에서 나와 자라 올라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씨앗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하는 흐름이 逆이라는 것이니 시간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逆이다. 사람으로 치면 세상에 없던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늙어서 결국은 죽는 흐름이 逆으로 진행되는 흐름이고 그 반대의 흐름이 順이다. 그러니 지금의 나를 생각해볼 때 향후 전개될 흐름이 逆인데 이 흐름을 따라가 생각해볼 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세월이 逆이다. 그리고 이미 지나온 세월은 훤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니 잘 헤아려보기만 하면 된다. 지난 세월을 헤아리는 일은 그저 과거의 족적을 따라 기억의 데이터를 떠들어보면 된다. 그러나 올 것을 아는 것은 거꾸로 가야하기 때문에 거슬러서 미리 가보아야 한다. 앞으로 펼쳐질 세월이 궁금하거든 앞으로 올 세월을 미리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보라는 뜻이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이 占이다. 뿌리에서 줄기에서 가지에서 잎에서 꽃에서 열매로 오지 않은 시간을 역류(逆流)하는 것이 점의 기본 아이디어이다. 점이란 이렇게 미래를 과거로 바꿔놓는 것이다. 맞고 틀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미래 예측의 모든 행위는 미래를 과거처럼 처리하고 싶은 욕구에서 나온 것이다. 미래는 누구나 알 수 있는 거시적 관점의 미래가 있고 누구도 알 수 없는 미시적 관점의 미래가 있다. 지구가 미래에 없어질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미래이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없어질지는 누구도 모르는 미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을 거슬러 여행을 해본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7-24 철산 최정준

[노트북]기초문화재단의 역할

얼마 전 출입하는 문화재단 담당자에게 문화재단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 재단에서 최근 이렇다 할만한 좋은 콘텐츠를 발견하지 못해서다. 그렇다고 이곳 관계자들이 일을 안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자는 이 문화재단의 상황을 충분히 잘 알고 있다. 올해 시가 재정 문제로 행사·축제성 예산을 삭감하면서 그동안 운영하던 문화예술 사업에 비상이 걸렸다. 기존 진행하던 행사와 공연은 유지해야 하고, 예산은 줄었으니 질 좋은 콘텐츠를 기대하는 건 사실 논리적이진 않다.사정을 알고 있지만, 방문할 때마다 기획 공연과 새로운 사업에 대해 묻게 된다. 이곳에 있는 훌륭한 인적 자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풍부한 아이디어를 가진 문화예술경영 전문가들이 많지만, 여건상의 문제로 능력을 발휘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늘 안타깝다. '지방 출자·출연기관'인 문화재단은 문화정책을 전문적·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자체가 조례 제·개정을 통해 설립한 기관이다. 쉽게 말해 문화예술경영 전문가를 고용, 지역 문화예술인에게는 교육과 공연 등의 기회를, 시민에게는 질 좋은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기초문화재단은 현재 경기도 내 15개가 설립돼 운영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들 중 몇몇 문화재단은 앞서 이야기한 문화재단처럼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인력, 예산 등의 문제로 운영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도 있고, 시에서 내려오는 소위 '택배사업'들을 안고 가다 보니 제대로 된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는 곳도 여럿 있다.앞으로 도내 여러 지역에서 문화재단 설립을 계획 중이다. 가장 먼저 평택과 과천이 내년 1월 문화재단 출범을 앞두고 있다. 이 두 곳이 기존 문화재단이 가진 문제점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운영을 놓고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특히 문화재단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이 두 곳 역시 특별하지 않은, 그냥 여느 지역에 있으니까 생겨난, 기능을 잃은 곳으로 전락할 수 있다. /강효선 문체부 기자 khs77@kyeongin.com강효선 문체부 기자

2019-07-24 강효선

[기고]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대처

청구권협정서 촉발된 강제징용 한일갈등대법원 '개인피해자 손해배상' 가능 판결日, 일괄해결 해석… '제3국 중재위' 요구우리측 외교 노력 '현명한 절충안' 찾아야일제강점기의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촉발된 한일 간의 갈등이 강대강의 대결구도로 치닫고 있다.일본 정부는 징용 배상판결과 관련해서 한일청구권협정(이하 청구권협정)에 근거한 중재위원회 구성에 한국 정부가 응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 정부는 일본이 제안하는 제3국 중재위원회는 수용할 수 없으나, 건설적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한 다른 형태의 중재는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일본 스스로 천명한 자유무역 원칙에 위반된다는 점 등 그 부당성을 국제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호소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국론의 결집을 요구하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일본이 취한 조치의 부당성을 피력하고, 일본 정부가 스스로 수출 규제조치를 철회하도록 하는 노력은 필요하고 적절한 조치이다.문제는 우리의 바람대로 일본이 응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대안을 찾기 위해서 아이디어와 지혜를 모으기 위한 노력이 국내에서 활발하고 자유롭게 전개되어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제기된 주장이 우리에게 불리하고, 일본에 유리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을 친일파라는 프레임으로 비난한다면, 이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치명적인 방해가 됨은 물론이고, 종국적으로는 국익도 크게 해치게 될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조치가 징용피해자에 대한 우리 법원의 배상 판결에서 시작된 만큼, 한일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1965년 한일 간에 체결된 청구권협정에서 징용피해자에 대한 배상문제가 어떻게 처리되었고, 청구권협정의 해석과 관련하여 분쟁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결하도록 절차가 규정되어 있는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청구권협정 제2조에서는 한일 양국은 양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제3조에서는 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은 일차적으로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하되, 이렇게 해결할 수 없는 분쟁은 제3국의 중재위원이 포함된 중재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청구권협정 제2조와 관련하여, 우리 대법원은 2012년과 2018년(다수의견)에 청구권협정의 체결 경과와 전후 사정을 종합해 볼 때, 청구권협정으로 한국인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렸다.반면에 일본 정부는 징용과 관련된 일본 정부 차원의 보상 및 배상 문제는 물론 가해자 개인 및 기업 차원의 보상 및 배상 문제도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일괄 해결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청구권협정 제2조의 해석과 관련하여 한일 양국 간에는 분쟁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청구권협정의 해석에 관해서 분쟁이 있으면 청구권협정 제3조에 따라 일차적으로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하되,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제3국의 중재위원이 포함된 중재위원회에서 해결해야 한다. 한일청구권협정은 살아 있는 국제법규범이다. 우리 마음대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 방향은 분명하다. 현재의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우리 정부는 문제의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이러한 의미에서 현재 우리 법원에 압류되어 있는 강제 징용 일본 기업 자산의 매각 조치를 유보함으로써 일본을 외교의 협상장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양국 간의 갈등과 이견을 해소하기 위한 지혜로운 절충안도 모색되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우방인 미국을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진정한 극일(克日)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한 국민적 역량의 결집이 요구된다./임종훈 홍익대 법과대학 초빙교수임종훈 홍익대 법과대학 초빙교수

2019-07-24 임종훈

[경인칼럼]'인천e음카드'에는 슬로건이 없다

전세계 다양한 화폐 고유한 문화적 특성지역 주민의 철학과 가치관 내재돼 있어어떻게 설계 했으며 무엇을 배려 했는지인천지역화폐엔 고민·성찰 찾을수 없다지역화폐의 원형은 영국의 선구적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웬이 고안한 '노동증서'다. 사회주의(socialism)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협동조합운동을 창시한 오웬은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과 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가치를 노동시간으로 환산해 노동증서를 발행해주면 이를 다른 구성원이 제공하는 물품이나 서비스와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화폐와는 별개였다. 이를 위해 1832년 런던에 전국등가노동교환소까지 설립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역화폐 '레츠(LETS :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도 이 노동증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로부터 150년 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코목스밸리의 작은 마을 커트니(Courteney)에서 발행된 지역화폐가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다. 출발점은 열악한 경제상황이었다. 지역에 있던 공군기지가 이전하고, 마을주민들의 생계수단이던 목재산업이 침체하면서 실업률이 18%까지 치솟았다. 빈곤과 궁핍이 마을을 휩쓸었다. 한 세기 반 전 영국의 노동자들이 처했던 상황과 똑같았다. 이 마을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마이클 린턴이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돈이 없으니까 노동을 해주고 물품을 받는 형태의 가치교환이었다. 곧 컴퓨터를 이용해 거래관리시스템을 개발했다. 회원으로 가입한 지역주민들이 이를 이용해 노동과 물품과 기타 서비스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1983년 '레츠'의 태동이다.현재 전 세계 지역화폐는 3천여 종에 이른다. 이름도 '레츠', '녹색달러', '페이퍼', '타임달러' 등 지역별로 다양하다. 당초 노동과 물품의 등가교환 개념이었던 지역화폐는 시간이 흐르면서 본래의 역할에 충실한 '공동체 통화(community currency)'와 현금적 성격이 강화된 '지역 통화(local currency)'로 나눠지게 된다. 일본만화 '아톰'의 탄생지인 도쿄 다카다노바바에서 2004년 탄생한 '아톰 통화'는 지역, 국제, 환경, 교육 등 4개의 주제와 관련된 사회공헌활동에 참가한 주민들에게 지급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에선 재해복구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도 성공한 사례로 손꼽히는 영국 최대의 지역화폐 '브리스톨 파운드(Bristol Pound)'는 영국의 법정화폐인 '파운드'와 등가교환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현금성 지역화폐다.특히 '브리스톨 파운드'는 올해 돌연 대한민국 지역화폐의 총아로 떠오른 '인천e음카드'와 비교해서 살펴볼 만하다. 브리스톨은 영국 남서부의 경제를 책임지는 중심도시로 2018년 기준 46만명인 인구는 주변부까지 합치면 100만명에 이른다. 이곳에도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금융위기의 짙은 먹구름이 몰려왔다. '브리스톨 파운드'는 불안정한 세계경제에 대한 각성과 대응의 차원에서 이듬해인 2009년 출범했다. "우리 도시의 경제시스템이 우리의 지역경제에 위해를 가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공동체들로부터 부를 짜내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환경을 손상시키고, 불평등을 영속시키며, 인식할 수 없는 복제품들로 시내 중심가를 동질화시키고 있다. 이에 우리는 2009년 초, 한 식당 테이블에 모여앉아 뭔가를 하기로 결정했다. 브리스톨 파운드는 우리가 사는 방식과 돈을 받고 일하는 방식을 재정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동체가 주도하는 운동으로서 설립됐다" 그들이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는 출범의 취지다.전 세계 여러 국가 여러 지역의 다종다양한 지역화폐에는 저마다 고유한 문화적·인구적 특성, 그리고 지역주민의 철학과 가치관이 내재돼 있다. '브리스톨 파운드'의 슬로건 '우리의 도시, 우리의 화폐(Our City Our Money)'에는 그들이 왜 지역화폐를 생각해냈고, 어떻게 설계했으며, 무엇을 배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녹아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천의 지역화폐에는 어떤 철학과 가치관이 내재돼 있는가? 어떤 고민과 성찰이 녹아들어가 있는가? 안타깝게도 인천의 지역화폐 'e음카드'에는 슬로건이 없다./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9-07-23 이충환

[생활법무카페]빚 많은 부친 별세, 상속포기·한정승인 어떻게

돌아가신 분의 상속채무(빚)가 많은 경우 상속인들은 상속포기와 한정승인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상속포기는 상속개시로 발생하는 상속인의 권리, 의무의 승계를 상속개시시로 소급하여 상속인 지위를 소멸시키는 상속인의 의사표시로서, 상속포기 신청이 수리되면 상속포기자는 상속인 지위를 포기하였으므로 상속인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상속포기는 민법에 정한 대로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법원에 신고하여야 하는 요식행위이므로 단순 작성한 상속포기각서만으로는 효력이 없고, 상속개시 후에 가능하므로 상속개시 전에 한 상속포기약정은 무효입니다.한편, 한정승인은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이 상속채무 자체는 승계를 하되, 그 채무를 상속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변제할 책임을 지고, 그 상속재산 범위 이외의 채무는 변제할 책임이 없게 되므로 상속인 본인의 고유재산으로는 책임지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일반적으로 한정승인을 어렵게 생각하셔서 상속포기가 더 간편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상속포기는 상속포기를 한 상속인을 제외한 나머지 상속인에게 상속인의 지위가 옮겨지게 됩니다. 즉, 1순위 상속인들이 전부 상속포기를 하더라도, 2순위, 3순위 상속인들에게 상속이 이어지게 됩니다.따라서 실무에서는 여러 상속인들까지 엮이지 않게 하려고 상속포기와 한정승인 제도를 병행하여 신청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예컨대 아버지가 사망 후, 어머니와 자녀1·2가 있는 경우 자녀1이 한정승인을 신청하고, 어머니와 자녀2는 상속포기 신청을 함으로써 손주들이나 2순위, 3순위 상속인들까지 가지 않도록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피상속인의 적극재산과 채무내역 및 상속인들의 각자 상황에 맞추어 상속재산과 상속채무를 총제적으로 파악하여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적절한 시일 내에 알맞은 절차를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주영민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수원지부주영민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수원지부

2019-07-23 주영민

[참성단]SNS 여론전

지난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보수 블로거 200여 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소셜미디어 총회'를 가졌다. 명색이 소셜미디어 총회인데도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등 소셜미디어 관련 기업은 초청받지 못했다. 대신 총회는 이들 기업에 대한 성토장이 됐다.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내년 대선에서 당선되지 못한다면 몇몇 회사는 문 닫을 줄 알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이들 기업의 창업자와 대표이사가 민주당 지지자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트위터 중독자' 트럼프가 이들 기업을 혐오하면서도 선뜻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중단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 같은 '아웃사이더'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SNS를 통한 '여론전'이 큰 몫을 했음을 잘 알고 있어서다. 지금 미국은 진보와 보수가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이런 정치의 극단화 배경에 SNS가 있다. 진즉 이를 간파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이 퇴임 인터뷰에서 "그릇된 정보와 음모론이 여과 없이 확산하는 SNS 때문에 유권자가 양극화됐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SNS로 공유되는 당파적 발언이나 가짜 뉴스의 위력을 발판으로 트럼프는 마침내 대통령이 됐다.최근 11일간 43건의 글을 SNS에 올려 '폭풍 페북'논란을 일으켰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SNS의 대일 '여론전'을 당분간 접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곧이 믿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조 수석은 18대 대선을 앞두고 "'묵언안거(默言安居)'에 들어간다"고 한 적이 있다. 2년 전엔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수락사'라는 글을 올리면서 "강단으로 복귀할 때까지 SNS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다. 지난해 7월 SNS를 재개한 후 10월엔 '양승태 사법 농단' 사건과 관련해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공개 비판해 사법부 독립 침해논란을 불렀다.조 수석의 SNS에 대한 관심은 트럼프와 비교될 만큼 각별하다. 그렇다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의 지위로 하는 SNS로 국론이 분열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진보 보수가 사사건건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 말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더욱이 조 수석은 곧 있을 개각에서 법무부 장관 물망에 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진보=애국' '보수=매국'을 암시하는 듯한 SNS는 더는 곤란하다. 조 수석이 이번 약속은 지킬지 두고 볼 일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7-23 이영재

[아침단상]어떻게 책을 읽어야만 할까?

주어진 교과서에 대한 이해자신이 설정한 문제해결 중요정확한 맥락도 짚어야독서의 모든 과정 거치면앎에서 삶으로 나가는 지름길수업 시간에 어떤 방식으로 독서를 해야 할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거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과 만난다. 그러나 수업 상황에서의 교과서 읽기는 학습 목표가 주어지고 그에 맞는 읽기 자료를 분석하게 된다. 또한 학습 활동을 통해 인지적인 앎의 지평을 넓히면서 수업이 마무리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책 읽기를 좋아하는 학생들도 수업 시간에는 다소 지루함을 느끼거나, 자신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책 읽기를 다소 소홀히 한다. 이것은 독서의 실제성과 수업 시간의 책 읽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서의 실제성을 수업 시간에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일단 주어진 읽기 자료나 교과서에 제시된 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교과서에 제시된 읽기 자료는 학습 목표를 충실히 이해하기 위한 텍스트다. 이것은 저자가 관심을 갖고 있거나 저자 자신의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해놓은 텍스트로, 교과서를 만든 이들이 제시해놓은 읽기 자료이다. 이러한 저자 중심의 텍스트를 독자 중심의 텍스트로 변환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 해결 과정으로서의 독서 방법이 필요하다. 먼저, 자신에게 놓인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어진 학습 목표를 과연 이해하고 있는지, 내가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문제를 인식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는 자신이 그동안 학습했던 내용들을 떠올리거나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을 점검하는 지성화의 단계가 필요하다. 교과서에 제시된 준비 활동이 이러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자신이 해결하고 싶은 것들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문제를 확정하는 단계다. 이러한 과정이 끝나면 제시된 학습 목표에 맞게 교과서의 읽기 자료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시된 내용의 모든 것을 다 분석하거나 이해할 필요는 없다. 주어진 학습 목표에 맞는, 자신이 설정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필요에 따라서는 교과서에 제시된 읽기 자료의 전문을 찾아 읽거나 관련된 텍스트를 찾아 읽으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두 번째, 맥락화 과정이 중요하다. 독서 상황에서 맥락은 항상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맥락이 관여하고 있다고 해서 독자가 자신의 독서 경험에 맥락을 직접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반영 여부는 맥락을 자신의 독서 상황에 반영하는지의 유무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독서 상황에 주어진 맥락을 자신의 문제 상황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맥락화에는 인식의 상관성과 텍스트 간 상관성을 기초로 하는 방법이 있다. 먼저, 인식의 상관성에 기초한 방법이란 여러분의 현재 경험을 과거의 경험이나 미래에 겪게 될 경험에 연결시키거나 자신과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즉, 현재 자신의 독서 상황에서 설정한 문제를 과거의 독서 경험과 연관시키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서 계획을 세우는 활동 등을 말한다. 또한 '타자화된 나'와 대화를 통해 자신의 문제나 독서 상황을 끊임없이 점검해 나아가는 방법을 말한다. 주의할 점은 맥락화의 초점이 텍스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독서 경험이나 독자 자신에게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텍스트 간 상관성에 기초한 방법이다. 이것은 텍스트A로 텍스트B를 이해하고, 다시 텍스트B로 텍스트A를 이해하면서 자신의 해석 텍스트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이 A라는 텍스트를 읽고 있다면, A텍스트의 난도나 이해 정도에 따라 B텍스트를 활용하여 A텍스트를 이해하는 방법이다. 만약 A텍스트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면 다소 어려운 B텍스트를 활용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주의할 점은 텍스트 간 상관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이 만들어 내는 해석 텍스트로 이들을 융합하지 않는다면, 두 개의 텍스트를 활용하는 방법은 의미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책을 읽는 방법에는 왕도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를 인식한 후, 독서 경험을 한다면, 수업 상황에서도 독서의 실제성을 회복하는 한편 앎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이희용 안산 대부고 교사·교육학 박사이희용 안산 대부고 교사·교육학 박사

2019-07-23 이희용

[수요광장]강사 일자리 박탈하는 강사법의 역습

대학, 재정난에 해고·신규임용 제한과목 축소로 학점 이수 더 어려워져시행 앞두고 대책 내놨지만 역부족정부, 처우개선 위해 재정지원 우선누구를 위한 법인지 씁쓸한 느낌만오는 8월 1일부터 강사법이 시행된다. 강사법은 2010년 고달픈 시간강사의 비애를 호소하며 생을 마감한 조선대 강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그 이듬해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강사법)이 마련되었다. 이후, 전례 없이 긴 유예기간을 거쳐 드디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강사법의 핵심 내용은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 방학기간에도 급여를 지급하고 1년 이상의 임용과 3년 동안의 재임용 절차를 보장하는 시간강사에 대한 처우 개선을 담고 있다. 하지만 처우개선이라는 강사법의 취지에 맞게 강사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시행을 앞두고 강사들이 대량 해고되면서 강사법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논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사법 관련해서 이런저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강사를 직접 고용하는 사용자 측인 대학가는 가중되는 재정난을 호소하며 기존 강사들을 해고시키거나, 신규 임용을 제한하고 있다.피해는 강사뿐 아니다. 강의를 들어야 할 대학생들의 과목이 축소되어 수강 학점 이수가 어렵게 되었다. 심지어 졸업을 못하게 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올 학기 초 대학가의 수강신청 대란도 강사법이 만들어낸 풍경 중 하나다. 개설 과목이 줄어들어 수강신청이 어렵게 되자 학생들 사이에 수강신청 과목을 사고파는 일까지 생겼다. 한마디로 강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마련된 법이 이들의 일자리를 박탈시키고 있다. 이도 모자라 학생들의 수업권 침해까지 일으키고 있어 강사법이 누구를 위한 법인지 그 모순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든다.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417개 대학의 올해 1학기 강의 수가 지난해보다 6천655개 감소했다고 한다. 대학들은 올 1학기에 2만여명의 강사를 해고하면서 발 빠르게 강사법 시행에 대응하고 있다. 과목을 통폐합하거나 대형 강의로 바꾸고 전임교원의 강의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강사 인원을 줄이고 있다. 이외에도 겸임교수나 초빙 또는 명예교수에게 강의를 맡기는 등 여러 방법으로 강사 신규 임용을 제한하고 있다. 교육부는 대학들의 선제 대응과 관련해 "2019년 1학기에 미리 강사 수를 축소한 대학을 조사해 2019년 2학기 고용 현황을 2018년 2학기 또는 그 이전 학기와 비교해 그에 따른 페널티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강의를 못하게 된 해고강사들에 대하여 이런저런 대책을 내놨지만 문제를 해소하는 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오히려 대학의 강사 대량 해고 이전에 교육부의 장치 마련이나 구체적 대안 제시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강의를 줄인 대학에 지원금을 줄이는 등 정부의 페널티 방침이 이제 와서 얼마나 실효성을 나타낼지는 미지수다. 어쨌든 이제 법·제도가 마련되고 정부의 방침이 나왔다. 이 법의 수용자인 대학들이 강사들의 처우 개선에 얼마나 공감하면서 법을 준수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이제 공은 강사들을 직접 고용하는 사용자 측인 대학에 넘어간 셈인데 대학도 학생수가 줄고 있는 구조조정기인 만큼 법 이행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법과 제도는 수요자와 공급자 간에 이해가 상충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 기존의 경우 공급자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정부 정책이야말로 수요자 중심의 정책이라는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대학 교육의 질을 올리고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려면 정부의 재정 지원이 먼저라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교육부 예산에 시간강사 처우개선비로 288억원이 반영됐다. 원래 여야가 합의했던 550억원의 절반 규모인데, 국립대 시간강사의 처우개선을 위해 71억원이 배정된다. 나머지 217억원은 사립대 시간강사 명목인데 대폭 삭감된 예산으로 시간강사의 처우가 개선될지 염려스럽다.필자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수년간을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지내며 힘든 시간을 보낸 경험 때문인지 강사법 시행에 유독 관심이 많이 간다. 강사법이 누구를 위한 법인지 씁쓸한 느낌도 든다. 강사들의 처우 개선 문제가 결코 강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공적 영역이라는 문제의식이 필요해 보인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9-07-23 김정순

[오늘의 창]지역상권 살리기 희망은 있다

최근 경기도의회는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 설립' 출연금이 담긴 2019년도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이 정책사업은 경기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기존 지역상권에는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요즘 지역상권은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 상점 등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따라 소규모 상점, 전통시장 등 기존 상권은 위축되거나 무너질 위기에 처해있다.가평지역도 예외일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전통시장인 가평 잣 고을 시장이 상인들의 자구적 변화를 통한 출구전략을 마련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가평 5일장 외 상설시장이 없던 지난 2015년 가평읍 재래시장과 5일 장터 인근 상인들은 상인회를 구성하고 가평 잣 고을 전통시장을 출범했다. 이듬해부터는 사례조사를 비롯해 상인대학, 맞춤형 교육 등을 이수하는 등 상인들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다', '1인 사업장이다' 등의 핑계는 교육 불참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상인들의 인식 변화도 생겨났다. 시장의 변화에 가평군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민관 협력의 장도 마련됐다. 그 결과 지난 2017년 '골목형 시장 육성 사업'과 '주차환경 개선 사업', 2018년 '경기도 우수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돼 현재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상인 등은 이러한 변화의 결과물 등에 환호했고 그 성과로 인한 자신감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하지만 신설 상설 시장 위치 등을 두고는 5일장, 재래시장, 인근 상점 등 단체·계층 간 견해차 등 의견 상충의 시련도 겪었다. 이 시련은 아직도 진행형이나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기 위해 각 주체는 물론 지자체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만큼 곧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상권 활성화라는 대의명분(大義名分)이 문제의 해결책이란 것에는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김민수 지역사회부(가평) 차장김민수 지역사회부(가평) 차장

2019-07-22 김민수

[기고]일본을 이기는 길, 소재 국산화

희소금속 확보 적극 나선 일본 '소재강국''전자재료' 기초분야 기술개발 집중 강화전략물자 1700개 중 100여개 韓산업 타격日 노림수 분석하고 '장기적 국산화' 대응 2010년 9월 중·일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당시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희토류 수출 규제를 한 사례는 일본으로서는 무척 충격적이었다. 중국의 당시 희토류 수출규제는 스마트폰, 에너지 절전형 가전, 차세대 자동차 등 일본의 첨단기술 제품 생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중국 의존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희토류 사용량을 감소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 결과 혼다자동차는 희토류 조달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의 모터기술을 확보했다. 도요타자동차는 작년 2월 희토류 핵심물질인 네오디뮴 사용량을 최대 50% 줄여도 종래의 성능을 확보할 수 있는 자석을 공개했다. 중국의 수출규제 여파로 일본 기업들은 거래처 다변화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일본의 희토류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80%에서 2017년 60%로 떨어졌다.일본에는 창업한지 50년 이상 된 기업이 1천여개나 된다. 그중에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무라타제작소'가 있다. 무라타제작소는 1944년 창업했다. 종업원은 현재 7만 7천500명이다. 21개국에 해외법인이 있다. 이 회사 생산품 중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부품만 6가지다. 노트북 등에 쓰이는 충격 진동 감시센서 부품 점유율은 95%이고 통신회로에 들어가는 세라믹 발진자는 75%, 근거리 무선통신 모듈은 55%, 스마트폰 한 개당 1천여개 들어가는 콘덴서 부품의 점유율은 40%다. 무라타제작소는 이런 부품을 팔아 작년에 사상 최대인 1조 5천750억엔(16조 9천억원)매출에 영업 이익률은 16.9%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그렇다면 무라타제작소의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무라타는 원료와 설비에서 높은 진입장벽을 쌓는데 집중했다. 주원료인 세라믹을 외부업체에서 조달하지 않고 직접개발 공급한다. 원료와 설비를 만드는 기술이 쌓이니 자연스럽게 기술응용도 수월해졌다. 일본 정부가 지난 4일부터 우리 반도체 제품의 핵심소재인 플루오드 폴리이미드를 포함해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등 3가지 부품에 대해 규제를 한다고 발표했다. 3가지 부품은 일본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특히, 포토레지스트(감광액)는 공정 10%에만 쓰지만 없으면 우리 반도체는 궤멸 수준이다. 이들 소재의 원료는 모두 희소금속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자원빈국이지만 오래전부터 산업에 필요한 광물자원을 세계 여러나라에서 확보해 왔다. 희소금속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TV나 카메라, 스마트폰 같은 최첨단 IT제품과 최신 군사무기들은 희소금속 없이는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소재강국이 되었던 것은 희소금속 확보에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기업들은 오래전부터 정부 지원을 받아 자원 메이저의 프로젝트에 참가해 필요한 희소 자원을 확보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희토류이고 니켈, 망간, 코발트, 리튬, 인듐 등이다. 일본은 자원이 없다는 약점을 강점으로 극복했다. 일본은 기술의 우위성을 자원확보의 우위성으로 전환하는 정책으로 활용했다. 특히 전자재료 기초분야에 대한 기술개발을 집중적으로 강화했다. 일본정부가 집중 관리하는 전략물자는 1천700여개나 된다. 우리 정부는 이 중 우리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핵심물자를 100여개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가 내놓은 제재조치에 대해 우리 정부의 대책은 수출규제 감시, 국제공조, WTO제소, 수출규제 맞불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런 대책은 현재로서는 큰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우리정부는 좀 더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맞대응이나 으름장보다는 어디서부터 뭐가 문제였는지 차분히 복기해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실질적 대책과 일본의 노림수와 취약점을 잘 분석해 대응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소재 국산화이다. 정부는 기업, 학계, 연구소 등과 힘을 합쳐 소재 산업 전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대책에는 우리 산업에 필요한 광물자원 확보에서부터 신기술개발, 생산, 판매까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 실천하기를 권한다./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

2019-07-22 강천구

[참성단]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한류스타들의 활약으로 세계 주요 도시마다 한글을 새긴 티셔츠를 입은 현지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샤넬의 수석디자이너였던 칼 라거펠트는 생전에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자"라고 극찬했다. 거장의 안목대로 유럽 패션계는 최근 한글의 조형미를 패션 아이템으로 주목하고 있다. 한글이 없었다면 한류열풍은 죄다 한자로 알려졌을 테고, 한류가 아닌 중국몽의 지류 쯤으로 전락했을지 모를 일이니 모골이 송연하다.언어와 문자는 민족에게 공동체의 동질성과 문화의 정체성을 부여한다. 한마디로 민족의 혼과 얼이 말과 글, 모국어에 담겨있다. 한민족은 반만년 같은 말을 썼지만 문자를 빌려쓰는 바람에 중국 문화에 종속됐다. 한민족이 문자독립으로 동질성과 정체성을 비로소 완성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덕분이다.한국인의 얼과 혼이 담긴 한글, 훈민정음이 최근 볼썽사나운 논란에 휩싸였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불법적으로 점유한 채 국가기관인 법원과 문화재청을 농락중인 개인 소장자 때문이다. 지난 15일 "상주본은 국가 소유"라는 대법원 판결이 났지만, 소장자인 배익기씨가 1천억원을 요구하며 국가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배씨의 몽니는 해괴망측하기 짝이 없다.1천억원의 근거는 재판과정에서 상주본의 가치가 1조원이라는 감정가에서 비롯된 모양이다. 배씨는 10% 가격에 넘겨주면 싼 거 아니냐는 식인데 말이 안된다. 1조원 감정가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라는 평가로 해석해야 이성적이다. 괘씸한 건 국가소유 보물을 빼돌리고 천문학적 흥정을 벌이는 심보다. 문화재청은 배씨의 몽니로 나라의 보물을 찾지 못할까봐 법적 대응도 자제한 채 그를 설득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 전형필이 일제와 6·25전쟁 중에도 지켜낸 '안동본'과 문제의 '상주본' 두권 뿐이다. "나랏말싸미 듕귁에달아···"를 담고 있는 훈민정음 언해본에 앞서 세종 당대에 발간된 한글창제의 원리를 담은 국보 중의 국보다. 이를 갖고 나라와 국민을 희롱하다니 가당치 않다. 배씨에게 국민성금을 거둬주고 박물관 관장을 시켜주겠다는 상주시의 제안은 코미디다. 배씨에 대한 국가의 대응이 추상 같아야 한다. 마침 한글창제 과정을 담은 사극 영화 '나랏말싸미'가 내일 개봉한다니 배씨의 몽니가 새삼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됐다. / 윤인수 논설위원

2019-07-22 윤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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