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춘추칼럼]가짜뉴스·현상왜곡은 모두의 적이다

美 연구소, 北 삭간몰 기지 속임수라 보도협상 진전없는 민감한 시점 뜬금없는 악재20년 전 '금창리 핵의혹' 불신만 키운 전례현상타파 거부하면 한반도는 영속적 분단 며칠 전부터 난데없이 미국 한 연구소의 분석보고서 내용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미국의 한 언론이 이를 북한의 거대한 속임수·기만 등으로 보도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우선 연구소 보고서에 언급된 삭간몰 미사일 기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우리 군 정보 당국도 파악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동 기지가 비핵화 협상의 중요한 축인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연관이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지금 핵·미사일 관련 북미 간 협상이 진행 중이며 오히려 앞으로의 협상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 기지 폐기문제를 미국과 합의하기도 전에 뒤통수를 쳤다느니 기만하고 있다고 하니 선후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가 굳이 북한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뒤통수를 맞은게 누군지 좀 더 명확히 살펴볼 일이다. 지금은 매우 민감한 시점이다. 6·12 센토사 합의 이후 북미 간 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북미 간 교착국면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 차례 중재에 나서 북미 간 초기 조치의 연결점을 찾기도 하였다, 9·19 남북정상선언에서의 비핵화 관련 합의가 그러한 것이다. 막상 초기 조치로 들어가려니 북한과 미국은 상대방의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여전히 모든 핵 프로그램의 신고를 비핵화 및 제재해제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으며 북한은 핵동결에 따른 미국의 상응조치를 요구하고 있는 국면이다. 얼마 전 개최하기로 한 북미 고위급 대화의 연기도 명목상의 이유야 어찌되었든 양측의 입장차이가 명백히 좁혀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초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여전히 염두에 두고 있으며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2차 정상회담의 준비는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직 내년 초까지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비관적이나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지난한 협상의 과정에서 경계할 점은 상황의 변화와 뜬금없는 악재이다. 미국 중간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하원의 다수를 차지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입지에 변화 가능성이 생겼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잘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북미 협상의 운전자를 자처하고 북한문제 당사자인 우리도 미국 의회 및 조야에 퍼지고 있는 북핵해결 무용론에 대해 많은 설명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보다 정말 경계할 것은 이러한 상황의 변화에 편승한 근거없는 기사들과 어떤 의도가 내포된 주장들이다. 의도를 내포한 주장들은 사안을 왜곡시키고 불신을 조장하고 문제 해결을 지연 시킨다.20년 전으로 되돌아 가보자. 북미 제네바 합의가 체결된 이후 1998년 8월 미국 언론은 갑자기 북한이 몰래 핵개발을 지속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북한이 영변 핵 시설 인근의 평북 금창리에 핵시설을 운용하고 있다는 이른바 '금창리 핵의혹'이 그것이다. 북한은 이를 부인했지만 미국은 사찰단을 꾸려 금창리를 방문하였다. 그러나 사찰단은 텅빈 동굴만 발견했을 뿐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북미 간 불신은 더욱 커졌고 제네바 합의 이행은 늦춰졌다. 뒤늦게 페리 프로세스로 북미 수교협상이 진행되었지만 1~2년간 소비한 시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400여 년 전 우리 역사를 살펴보자. 정유재란 당시 조선의 조정은 일본에서 흘린 허위정보를 신뢰하여 이순신에게 출병명령을 내렸다. 거짓정보라고 판단한 이순신은 출병하지 않았다. 일본군은 당시 조정 내에 만연한 당파싸움을 이용하여 이순신을 모함·체포케 만들었다. 이후 등장한 원균은 칠천량 전투에서 왜군에게 처참히 패하였다. 민감한 시기에서 어떤 사안 하나가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음은 여러 역사적 사건이 증명한다. 지금 한반도는 현상유지 세력과 현상타파 세력 간의 거대한 기싸움이 충돌하고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70년 분단구조에 우리의 삶과 미래를 맞춰놓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우리의 삶의 양식을 바꾸려 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지도 잘 살펴보지도 않고 거부하고 경계를 한다. 이는 미국도, 주변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상을 타파하는 것은 늘 어렵고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을 왜곡하고 조장하면서 현상을 유지하려 해서는 안된다. 계속 그렇게 된다면 우리 한반도는 영속적으로 분단구조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가짜뉴스·현상왜곡은 모두의 적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8-11-15 양무진

[참성단]박두진 문학관

1992년 프랑스에서 로마 문화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도시 '베종 라 로망(Vaison la Romaine)'에 대규모 홍수가 발생해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세계 각국에서 지원이 빗발쳤다. 시는 고마움의 표시로 '자르뎅 드 뇌프 드무아젤(아홉아씨 공원)'을 만들어 세계 9개 도시로부터 시인 1명씩 추천받아 9년 동안 모두 81개의 시비를 설치키로 했다. 아시아 도시로는 처음으로 시인 추천도시로 선정된 안성시는 시인 박두진을 추천해 2001년 6월 21일 시비제막식을 가졌다. 시비 앞면에는 시인의 대표 시 '해'의 첫 구절을 한글로, 뒷면에는 불어로 새겨 넣었다. 박두진은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1939년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이들이 공동시집 '청록집'(靑鹿集)을 펴낸 것은 1946년이었다. 청록집에는 박두진의 시 12편 등 39편의 시가 실려있다. 박두진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바탕을 둔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 조화라는 시풍을 보여줬다. 청록파로서 순수미와 인간미는 물론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평화 공존을 염원했다. 자연은 청록파 시 세계의 모태이자 고향이었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암울한 현실을 외면한 채, 한가하게 자연을 노래했다고 청록파 시인을 비판하는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박두진의 '해'는 자연만 노래한 게 아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에서 '해'는 암울한 시대에도 꺾이지 않는 시대 저항정신의 표현이다. 박두진의 시에는 어둠, 공포와 갈등의 세계를 벗어나 밝고 아름다운 삶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고 이를 초월한 희망을 노래했다. 박두진의 자연은 조지훈, 박목월의 자연과 전혀 다르다.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후기 시에 가서 사회적 불의에 항거해서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시를 쓰게 된다.오늘 안성시 보개면 복평리 296에 박두진 기념관이 문을 연다. 시인 탄생 100주년이 되던 2016년 첫 삽을 뜬 문학관은 1만512 ㎡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시인의 친필원고, 시집, 유품, 수석, 글씨와 그림 등이 상설 전시된다. 우리는 문학관에서 박두진의 삶과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15 이영재

[기고]2018년 제10대 경기도의회 첫 행정사무감사를 받고

통합 3년째를 향해가는 우리 기관(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이하 경과원)은 지난 11월 12일 경기도 산하기관 중 처음으로 행정사무감사(이하 행감)를 받았다. 대기실이 마련돼 있지도 않아 복도 한 귀퉁이에 준비실을 꾸렸고 직원들은 모니터를 통해 흘러나오는 의원들의 질의와 요구자료를 즉석에서 타이핑해 제출했다. 복합기는 쉼 없이 출력물을 쏟아냈고 의원님들의 한마디에 복도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현안이 많았고 걱정도 많았다. 무능한 원장이 떠난 자리는 갑질이 채우고 운영 부실이 채웠다. 감사원 조사까지 받은 사례는 벌써부터 주목의 대상이었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관심사였다. 행감 직전 터져 나온 부서장 갑질 사건도 걱정스러웠고 인수위 요청에 따라 감사가 진행된 전산시스템 개편 건도 정조준 대상이 될 게 분명했다.포문을 연 건 초선 의원이었다. 통합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전임 원장의 재앙에 가까운 인사 난맥을 지적하면서도 통합까지 먼 길 가신다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신 분도 계셨다. 낙하산이 채운 자리를 빼고 나니 본부장 다섯이 대행이요, 원장마저 대행인 체제가 경기도에서 가장 큰 공공기관 중 하나인 경과원의 오늘이다. 시대 정신을 언급하고 조직 내 갑질 문화를 개선하라는 요구는 일침이었다. 서른 명 넘는 직원이 연판장을 썼어도 경징계밖에 하지 못하는 게 공공기관의 문화고 현실이다. 이 기회에 조직 내 갑질 문제를 지적해 주신 원미정 의원께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이날 일침이 더 나은 조직을 만드는데,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도민들을 위해 더 잘 일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비정규직 전환 역시 의원님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시대의 목소리다. 의원들께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혹여 있을지 모를 급여의 차이, 성과급 등 여러 면모를 고루 살펴 주셨다. 통합 첫해 가장 먼저 노조가 나선 일이 비정규직 처우의 정상화였다. 화두인 정규직 전환 이야기도 이어졌다. 왜 성과가 없냐는 것이다. 불안해하는 비정규직원들의 마음을 살피시라 두 번 세 번 원장 대행을 채근한 의원님들의 한 마디가 직원들의 불안한 날들을 하루라도 줄여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경력직 채용 기준을 낮추라는 요구는 아쉬운 대목이었다. 전문성 있는 인재채용을 위해 문호를 넓히라는 것이다. 연초부터 경기도는 부서장 이상의 경력직 채용기준을 낮추라고 요구했다. 공무원 출신 낙하산 자리 마련이 이유라고 의심을 할 정황이 있었다. 민선 7기 시작된 이후 뜸했던 이야기가 행감장서 흘러나왔다. 전문성 있는 인재를 채용할 방법은 많다. 그런데 '경제와 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 같은 두루뭉술한 기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대상이 될 기준을 내밀면 과연 전문성 있는 인재가 뽑힐까? 오히려 더 꼼꼼하고 정밀한 기준을 만들라는 게 바람직한 게 아닐까?7월 1일 취임하신 의원님들의 첫 행감이자 새롭게 출범한 상임위원회 체제의 첫 행감이었다. 새삼 행정사무감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조광주 경제과학기술위원장께서 말씀하신 바처럼 예산 낭비를 바로잡고 기관운영을 점검하는 행정사무감사다. 예산은 주권자 도민의 세금이고 그래서 한 푼도 허투루 쓰여서는 안 된다. 세금 집행을 감시하는 게 주권 위임받은 대리자의 책무이고 이를 감사받는 것은 그 세금을 집행하는 기관이 져야 할 책임이다. 각자의 책무와 책임을 지고 공격과 방어가 오고 간다. 경험 많은 의원들은 능숙했고 초선들은 열정적이었다. 지방자치제도의 고질적 문제인 전문성 부재도 목격됐다. 기관의 현실이나 맥락은 무시하고 질의만 늘어놓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파행에 이른 행감도 뉴스가 됐다. 매해 같은 풍경이 연출된다. 내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지방분권화가 가속될수록 현란하고 화려해질 것이다. 이 끝없는 전쟁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의원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시정을 요구하고 직원들이 밤새 자료를 만들어내는 이유도 하나다. 이 모든 전쟁은 오로지 도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이기영 道경제과학진흥원 노조 위원장이기영 道경제과학진흥원 노조 위원장

2018-11-15 이기영

[풍경이 있는 에세이]이모티콘의 마음

메시지 주고받을 때마다 꼭 사용때로 말보다 선명하고 효과적 전달실제 표정 숨긴채 습관처럼 눌러만사에 지친 우리 기대고 싶은 것대신 감정노동하는 노고 짠해진다나는 이모티콘 애호자다.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마다 한두 개씩은 꼭 사용한다. 즐겨 쓰는 이모티콘은 대체로 이런 모습이다. 입을 헤벌리고 세상 걱정 없이 웃거나 굵직한 눈물을 쏟으며 펑펑 울거나, 두 눈에 커다란 하트를 그리거나 아니면 화를 이기지 못해 입에서 불을 뿜거나 난동을 부리며 상을 엎거나…. 곰곰 생각해보니 평소의 내게는 없다시피 한 표정, 평소의 나는 결코 하지 못할 행동 들이다. 그러나 메신저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문제 될 게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모두는 진짜 내가 아니니까. 진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가짜도 아닌, 그런 묘한 위치에 이모티콘은 존재하는 것 같다.때로 말보다 선명하고, 그럼으로써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지만 사실 이모티콘을 쓰는 일은 그 자체로 재미있다. 앙증맞고 귀여운 이모티콘 캐릭터들은 채팅창 이편과 저편을 두루 웃게 한다. 실제 나는 전혀 유머러스한 사람이 아님에도 몇몇 이모티콘 덕분에 대화를 덜 지루하게 이끌 수도 있다. 일순 우리는 화기애애해진다. 어려운 부탁을 하거나 또 그런 것을 거절할 때도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정말 미안" 뒤에 눈두덩이 퀭한 오리의 얼굴을 붙여둘 수 있으므로. 이따금 "죄송해요 좀 늦을 것 같아요" 하고 엉엉 울면 상대는 "괜찮아요 천천히 오세요" 하며 활짝 웃는다. 순한 동물의 표정을 빌려. 그럴 땐 어쩐지 마음이 놓인다. 만약 이모티콘이 없었다면 관계를 맺고 잇기란, 세상을 살아가기란 훨씬 팍팍했을 것이다. 무뚝뚝한 성격의 내가 장난기 가득한 이모티콘들을 거리낌 없이 늘어놓는 것을 보고는 놀랍다거나 의외라거나 하는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지만, 한편 속내를 금세 간파해버리는 이도 있다. "뭐냐? 또 이모티콘으로 대충!" 예민한 사람은 눈치채곤 한다. 딱히 하고 싶은 말이 없거나 이렇다 할 대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 애써 떠올리기 귀찮을 때,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을 가볍게 그렇지만 상대의 기분을 해치지 않고 모면하고 싶을 때에도 슬그머니 이모티콘을 앞세운다는 것. 한두 개의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예의를 차린다는 것. 그러므로 "대충!" 하는 지적은 좀 뜨끔하다. 그러나 이는 단지 나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메신저 단톡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글보다 이모티콘이 많은 경우가 심심찮다.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이때의 이모티콘이 품은 의미를. 그 속내 따위 아랑곳없이 어피치도, 프로도도 여전히 해맑지만.이 지나친 해맑음 때문일까. 이모티콘 가득한 대화를 주고받다 막상 실체를 대면했을 때, 상대가 조금도 다정하지 않은 사람임을 알아버렸을 때 우리는 적잖이 놀란다. 실망한다. 왜 너는 이모티콘이 아닌가 말이다. 진실은 늘 그렇듯 불편한 것.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저만치 멀찍이 선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본의 아니게 보게 된 것이다. 환한 표정의 이모티콘을 연이어 날리는 그가 실제로는 전혀 웃고 있지 않은 것을. 이모티콘 뒤의 표정이 꼭 이모티콘 같을 수야 없는 법이지만 그 모습이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습관처럼 이모티콘 버튼을 누를 때의 나, 나 자신의 굳은 표정이 연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듯 모두 이모티콘 뒤에 숨어 있구나. 웃을 수 없을 때도 웃는 척, 괜찮지 않을 때도 괜찮은 척. 전혀 좋지 않은 순간에도 '좋아요'를 빼먹지 않듯이. 속엣말을 잔뜩 늘어놓은 뒤 장난이라는 듯 ㅋㅋㅋ를 붙이는 심정과도 같은 것일 테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좀 더 솔직할 수 없나. 진짜가 될 수 없나.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누운 이모티콘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만사 힘든 것이다. 쉬고 싶은 것이다. 기대고 싶은 것이다. 이모티콘에게라도 좀. 어째서 우리는 이토록 지쳤나. 우리를 지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어느 틈에 진심을 드러낼 여력마저 잃고 살게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새삼 우리 참 애쓴다는 생각. 이 와중에도 과장된 'OK'를 그리며 웃고 있을 또 다른 내가 떠오른다. 그나저나, 불철주야 헌신하는 이모티콘을 생각하면 조금 짠하다. 격한 감정노동 뒤에 점차 소실될 이모티콘의 진짜 마음이 걱정스러워진다면, 실없는 소리 말라 핀잔을 듣겠지만. 그렇지만, 이모티콘의 노고는 과연 누가 덜어줄 것인가./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8-11-15 박소란

[데스크 칼럼]노무현의 인사법

장관 퇴임후 시장 수행비서에 90도로 인사진정성 묻어나 상대방 마음 움직이게 해지난 지방선거때 허리 굽혔던 정치인들지금은 목이 '뻣뻣'… 그땐 정중한척 했을뿐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집 창문 밖에 한 달가량이나 조기(弔旗)를 내걸었던 인천시 공무원이 있다. 그는 왜 그랬을까. 이념 성향이 진보적인 것도 아니다. 이른바 '노빠'도 아니었다. 그는 딱 한 차례 인간 노무현과 만났을 뿐이었다. 그 만남이 그렇게 만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천생 시골 사람 같은 소박함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날 때고 그는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이른바 노무현의 인사법은 그렇게 퍼져나갔다. 조기를 내걸었던 그 인천시 공무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마치 부모라도 돌아가신 양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조기를 내거는 것 말고는 그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아직도 보수적 성향의 이 공무원은 잘 알지도 못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왜 그렇게 애통해 했을까. 아주 사소한 인연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타계하기 7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6대 해양수산부장관을 그만둔 이듬해, 제16대 대통령 취임 1년 전인 2002년이었다. 노무현 전 해수부장관이 인천시청을 찾았다. 최기선 인천시장 시절이었다. 노 전 장관이 시장실에 들어서면서 최 시장의 수행비서와 먼저 인사를 나눴다. 노 전 장관은 그 수행비서에게 허리를 거의 90도로 꺾으며 악수를 청했다. 7급이었던 그 수행비서는 장관을 지낸 분에게 그렇게 정중하게 인사를 받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정말 깜짝 놀랐다. 깍듯이 인사하던 그는 이듬해 대통령이 되었다. 이 또한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그 7급 공무원의 마음속에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크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찰나였다. 그는 어디를 가나 자신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정중한 인사를 받은 것을 이야기하고 다녔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그랬고, 퇴임하고 나서도 그랬다. '꼴통'까지는 아닐지라도 꽤 보수적인 편에 들던 그는 어느새 노무현 전도사가 돼 있었다. 그랬으니 그가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집 앞에 조기를 한 달이나 내걸었던 것은 전혀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뒤늦게 조기를 본 어떤 이들은 6월 6일 현충일에 내건 조기를 깜박 잊고 거두지 않고 있는 줄로 알기도 했다. 인사 한 번의 힘은 이렇듯 강한 여운을 남겼다.'인사(人事)'. 선생님께 인사를 여쭙다라고 할 때의 '인사'와 승진 인사를 단행하다라고 할 때의 '인사'는 같이 쓴다. '인사는 만사(萬事)'라고 말할 때 보통은 '승진 인사'의 그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노무현의 인사와 인천시 7급 공무원의 사례에서 보듯 깍듯한 인사의 의미까지 더해야 할 듯하다. 상대방에게 정중하게 인사만 잘해도 그 상대의 맘을 통째로 잡을 수 있으니 어찌 '인사를 만사'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음을 담은 인사는 상대의 맘까지 움직이게 마련이다. 노무현의 인사는 늘 그랬다. 그 태도에서부터 진정성이 묻어났다.불과 5~6개월 전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지방선거 후보자들로부터 만날 때마다 귀찮을 정도로 90도 인사를 받곤 했다. 머리를 땅에 닿을 듯 인사하던 그들이 아직도 그렇게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하는가. 아무리 둘러봐도 많지가 않다. 허리를 숙이기는커녕 오히려 목에 깁스라도 한 듯이 뻣뻣한 경우가 많다. 선거의 계절에만 잠깐 정중한 척했을 뿐이다. 하물며 가을 들녘의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우리의 정치인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정치판에는 벼만도 못한 인간들이 태반이다. 진보니 보수니, 이념을 떠나서 인사만큼은 모든 정치인들이 노무현을 닮았으면 좋겠다./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8-11-14 정진오

[오늘의 창]안성과 평택 사이좋은 이웃 되려면

우리나라 속담에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안성시와 평택시의 경우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최근 안성과 평택은 상수원보호구역 해제와 스타필드 안성 건립, 송전철탑 건설 등의 현안 문제를 두고 보이지 않는 골 깊은 갈등을 겪고 있다. 상수원보호구역 해제 문제는 평택에 위치한 미군부대 비상급수 시설인 유천취수장으로 인한 각종 개발 규제 범위가 평택은 2%에 불과한 반면 안성은 98%에 달해 두 지자체 간의 불균형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문제다. 스타필드 안성 건립 문제도 안성과 평택의 접경지역인 안성IC 인근에 지어질 예정이어서 골목상권 붕괴와 교통체증을 우려한 평택의 반대 입장과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원하는 안성 간에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안성 원곡·양성면에 설치될 송전철탑 건설 문제 또한 평택에 위치하고, 삼성전자가 입주하는 고덕산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진행되는 사업으로 평택을 위해 안성이 희생하는 모양새인 만큼 두 지자체 간 찬·반으로 의견이 나눠 공방 중이다. 이런 갈등구조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권을 쥔 사람들은 시장과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각자의 지역에서 표를 먹고 사는 선출직 공무원들이다. 그렇기에 수십 년간 상호 간의 주장과 입장만을 앵무새처럼 되뇌며,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기자는 '소통'을 제시하고 싶다. 물론 두 지자체에 속한 주민들을 중심으로 말이다. 안성과 평택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문화와 경제 등 각종 분야에서 겹치는 매개체가 없어 교류 또한 미비한 실정이다. 그로 인해 안성과 평택 주민들은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데다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도 부족하다.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가장 빠른 때다. 이제부터라도 안성과 평택 주민들을 중심으로 하는 상시적인 교류협력체를 구성해 주민들 간에 긴밀한 소통과 교류를 이어 나가야 한다.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상대를 올곧게 바라보는 시선과 각자 처한 입장을 이해한다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것임을 단언한다. 평택이 고향이고, 안성이 외가인 기자에게는 두 지자체가 사이좋은 이웃사촌이 되길 희망한다. /민웅기 지역사회부(안성) 차장 muk@kyeongin.com민웅기 지역사회부(안성) 차장

2018-11-14 민웅기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습이불찰: 익숙하면서도 살피지 못한다

가족이나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습관은 보기 쉽고 알기 쉽다. 그래서 그에 관한 예측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신이 습관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맹자는 사람들의 이런 경향에 대해 "행동하면서도 분명히 인지하지 못하며 익숙하면서도 살피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습관은 말 그대로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 익숙해져서 관성이 붙은 것이다. 눈에 보이는 행동뿐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도 습관이 있다.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에 행동으로 드러나는 습관의 뿌리는 생각에 있다. 더 넓게 말하면 마음에 있다. 습관이란 마치 물과 같아서 물을 독사가 먹으면 독을 뿜어내고 소가 먹으면 우유를 내놓는 것과 같아서 그것 자체는 중립이다. 익숙하게 길들여지는 원리는 중립이지만 그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를 만든다. 애초부터 좋은 내용만 익숙하게 길들였으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습관은 좋지만 어떤 습관은 좋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성찰(省察)이니 성찰은 반성과 관찰이다. 반성은 성찰의 방향을 자신 내부로 되돌리는 것이고 관찰은 그렇게 되돌려서 제대로 보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비유하면 반성은 방향의 전환이고 관찰은 살피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물건은 방향이 제대로 잡히고 힘이 가해지면 그리로 가게 되어있다. 일상의 습관에 대해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1-14 철산 최정준

[경제전망대]믿음과 신뢰로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

사회적 신뢰는 공동체 결속과상생협력의 기반 다지는 무형자산대립·갈등 보다는 관용 베풀고변화된 모습으로 평화롭게 살아야그 길이 진정한 시대적 사명이다반세기 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역만리 지구 반대편의 조그마한 나라, 외딴 섬에서 한센인들을 위한 간호활동에 전념했던 오스트리아 출신 소록도 천사 마리안느 스퇴거(84)와 마가렛 피사렉(83) 간호사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분들이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바친 헌신과 봉사는 그 어떤 조건도 없었다. 그리고 나이 들어 그들에게 '짐이 돼선 안된다'며 간단한 편지 한장만 남기고 2005년 이맘때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분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사랑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큰 믿음과 신뢰였기에, 그들이 떠난 지금에 와서도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마리안느-마가렛 노벨평화상 범국민 추천위원회'를 설립하여 100만 명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분들은 천직으로서 사명감과 천성적인 장인정신이 있었기에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직업이 있다. 생계직, 전문직, 천직이 그것이다. 생계직은 일하는 목적이 주로 돈을 버는 데 있다. 일을 하는 본인을 포함해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며, 취미활동이나 여가생활을 즐기기 위함이며, 전문직은 일을 하는 목적이 돈이나 명예를 얻는 데 있으며, 전문직 종사자들은 돈과 함께 사회적 지위나 명성을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천직은 일 그 자체가 좋아서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가지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 스스로 만족을 얻음과 동시에 이웃과 사회에 기여하고 공헌한다는 점에서 더 큰 행복을 느낀다. 대다수의 공직자와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천직의 의미를 되새기며 헌신과 봉사로 성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매스컴을 보면 전문직이면서도 공적인 소임을 다 하지 못하고 사욕을 채우기 위해 각종 비리에 빠져들어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17년도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적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각각 중앙정부 부처 41%, 법원 34%, 국회 15%로 나타났다.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마저 사법농단 의혹으로 국민들에게 불신을 안겨주고 있으며, 의료기기 영업사원의 대리수술이 관행처럼 행해졌다는 병원의 민낯은 상상할 수 없는 충격 그 자체로 다가왔고, 아이들에게 써야 할 돈을 일부 원장 등이 서류를 위변조하여 사적으로 유용한 사립유치원의 비리며, 금융기관과 공공기관 등에서 불거져 나온 채용비리 등으로 야기된 국민적 불신은 정부나 사회 전반에 걸쳐 신뢰를 받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회적 신뢰는 사회공동체의 결속과 상생협력의 기반을 이루는 무형의 자산이다. 물적 자본, 인적자본과 더불어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의 토대가 되는 사회자본이다. 또한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과 행복감을 높여주는 핵심요소인 것이다. 최근에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죄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소수 국민의 인권과 권익을 보호하려는 새로운 변화의 조짐을 감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도 11년을 끌어온 백혈병 보상 기준안을 새롭게 마련하였다. 이와 같이 대기업들이 선도적으로 직원들을 배려하고 우대하며 직원에게 재투자하는 기업인의 자세가 함께 잘사는 기업가 정신이며 이러한 선순환이 직원들로부터 일에 대한 즐거움과 천직으로서의 애사심을 고취시키며 결과적으로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사회 전반에서 대립과 갈등보다는 포용과 배려의 분위기가 형성되며 변화하고자 하는 모습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이며 시대적 사명"이라며 정책 기조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함께 이겨내겠다고 밝혔다. 이는 적폐가 청산되고 정의로운 사회로 바뀌면서 국민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잘사는 나라로 나아갈 수 있는 진정한 길이고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김기승 LX(한국국토정보공사) 경기본부장김기승 LX(한국국토정보공사) 경기본부장

2018-11-14 김기승

[참성단]대학수학능력시험

오늘 전국 1천190개 시험장에서 59만4천900여명의 수험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다. 오전 8시40분부터 오후 5시40분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한 8시간 동안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탐구영역, 제2외국어/한문 시험문제 풀이로 대학입학 진로가 결정된다.한국사회에서 대입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고착된 학력중심 사회구조는 대입에 목숨을 거는 교육과정을 잉태했다. 작금의 청소년 세대는 유아교육부터 시작해 초·중·고 교육과정과 사교육으로 중무장한 대입전사로 봐도 무방하다. 운동장을 버리고 교실과 학원을 전전한 지난한 수련과정이 수능시험장에서 결판난다. 성년 통과의례로는 너무나 치열한 육박전이다.자녀와 공동운명체인 학부모의 심정도 비장하다. 아이가 걷자마자 자녀의 대입 병참기지를 꾸려 온 부모들이다. 대입 병참기지 최상의 조건은 조부모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이란다. 병적인 대입 경쟁을 풍자하는 자조적 농담? 아니다. 누구나 열망하는 환상적인 조건이다. 사정이 이러니 대입수능의 여파는 국민 전체에 미친다.병적인 대입경쟁이 사회의 건강과 연대를 해칠 정도에 이르렀다는 문제의식은 이미 오래전에 확정됐다. 역대 정권 모두 이를 고친다고 대입 시험제도와 입학전형에 손대고 고쳐 온게 수십년이다. 하지만 제도를 신설하고 전형을 이리저리 꼬아대도 소용이 없다. 사교육 시장의 기민한 대응과 학부모의 호주머니는 언제나 정부의 정책을 압도했다. 최근에는 입시개혁의 근간이던 학생부 위주 수시전형마저 흔들리고 있다. 잇따른 학생부 조작사건, 숙명여고 교무부장 사건의 여파로 수능 위주 정시전형을 확대하자는 여론이 높아졌다.정부의 무능한 정책, 사교육 시장의 권위, 부모의 열렬한 후원이 만들어 낸 대입제도의 병리현상 한복판에서 오늘 미래의 동량들이 대입수능 시험지를 풀고 있다. 시험을 방해하는 일체의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그나마 여기까지 오느라 지친 수험생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특히 고사장 주변 소음, 소란은 절대 안된다. 전국의 수험생이 가진 실력을 남김없이 발휘하기 바란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14 윤인수

[기고]2018년 제10대 경기도의회 첫 행정사무감사를 받고

통합 3년째를 향해가는 우리 기관(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이하 경과원)은 지난 11월 12일 경기도 산하기관 중 행정사무감사(이하 행감) 첫 테이프를 끊었다. 대기실이 마련돼 있지 않아 도의회 복도 한 귀퉁이에 준비실이 꾸려졌고 직원들은 모니터를 통해 흘러나오는 의원들의 질의와 요구자료를 즉석에서 타이핑해 관련 부서로 보냈다. 복합기는 쉼 없이 출력물을 쏟아냈고 의원님들의 한마디에 복도에서는 탄성과 한숨이 흘러나왔다.현안이 많았던 만큼 걱정이 많았다. 무능한 원장이 간 빈자리는 때로 갑질이 채우고 때로 운영 부실이 채웠다. 감사원 조사까지 받은 사례는 행감 전부터 주목의 대상이었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주요 의제 중의 하나였다. 행감 직전 터져 나온 부서장 갑질 건도 걱정스러웠고 민선 7기 인수위 요청에 따라 진행된 전산시스템 개편 건 역시 정조준 대상이 될 게 분명했다.포문을 연 건 한 초선 의원이었다. 중복 지원 사례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통합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전임 원장의 재앙에 가까운 인사 난맥을 지적하기도 했고 화학적 통합까지 먼 길 가신다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신 분도 계셨다. 도 공무원들이 채워 넣었던 자리를 다 빼고 나니 본부장 다섯이 대행이요, 원장마저 대행인 체제가 경기도에서 가장 큰 공공기관 중 하나인 경과원의 오늘이다. 원장을 두들겨야 살판도 명분도 날 의원들께서도 풀이 죽지 않으셨을까? 시대정신과 조직 내 갑질 비판은 날카로운 일침으로 다가왔다. 서른 명이 넘는 직원이 연판장을 써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고작해야 경징계밖에 하지 못하는 게 산하공공기관의 문화고 실체다. 이런 곳이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기관에 선정되는 기관의 이면이다. 이 기회를 통해 조직 내 갑질 문제를 지적해 주신 원미정 의원께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하자고 상처를 입히고 배를 연다. 이날의 일침이 더 나은 조직을 만드는데,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도민들을 위해 더 잘 일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비정규직 전환 역시 의원님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시대의 목소리다. 의원들께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혹여 있을지 모를 급여의 차이, 성과급 등 여러 면모를 고루 살펴 주셨다. 이미 통합 첫해 가장 먼저 노조가 나선 일이 비정규직 처우의 정상화였다. 최근 화두인 정규직 전환 이야기도 이어졌다. 왜 아직까지 아무런 성과가 없냐는 것이었다. 불안해하는 비정규직원들의 마음을 생각하라며 두 번 세 번 원장 대행께 약속을 요구한 의원님들의 한 마디가 직원들의 불안을 단 하루라도 줄여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경력직 채용 기준을 낮추라는 요구는 아쉬운 대목이었다. 전문성 있는 인재 채용을 위해 문호를 넓히라는 것이 이유다. 사실 연초부터 경기도는 부서장 이상의 경력직 채용기준을 낮추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경기도 출신 공무원 낙하산 자리 마련이 이유라고 의심할 정황이 곳곳에 있었다. 민선 7기 시작된 이후 한동안 뜸했던 요구가 행감장에서 다시 흘러나왔다. 전문성 있는 인재를 채용할 방법은 많다. 그런데 '경제와 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 따위의 기준, 말하자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포함될 수 있는 기준을 내미는 것은 전문성 있는 인재를 받아들이기 위한 기준일까? 전문성 있는 인재가 경기도 경제와 기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경과원에서 기여하길 바란다면 더욱 꼼꼼하고 정밀한 기준을 제시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7월 1일 처음으로 취임하신 의원님들의 첫 행감이요, 새롭게 출범한 상임위원회 체제의 첫 행감이었다. 경험이 많은 의원들은 갖고 계신 경험을 십분 활용하셨고 반면에 부족한 경험을 노력과 진심으로 채우신 분도 계셨다. 그 가운데서 한국의 지방자치제도를 논할 때 흔하게 부각되는 전문성 부재도 목격됐다. 기관이 처해 있는 현실, 역사와 맥락들 따위는 아랑곳없이 준비한 질의만 늘어놓는 모습은 많은 직원을 하여금 한숨을 짓게 했다. 국감과 꼭 같은 이유로 파행에 이른 행감이 뉴스가 되었다. 의원들은 무성의한 태도를 지적하며 소리치며 직원들은 과하다고 반박한다. 해마다 같은 풍경이 연출된다.본사에서는 올해 행정사무감사를 꽤나 많은 직원들이 지켜봤다고 한다. 어딜 가든 행감 이야기가 주제였고 의원님들에 질의와 보직자들의 답변이 수다의 주제였다. 새삼 행정사무감사와 지방자치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조광주 경제과학기술위원장께서 모두에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산 낭비를 바로 잡고 기관 운영을 감시하기 위한 행정사무 감사다. 주권을 대리받은 의원님들은 그야말로 대리 받은 주권의 힘으로 잘못된 행정과 예산낭비를 바로 잡아주신다. 더러는 아쉬움이 있고 과해 보이는 지적도 있다. 각자의 역할이 있다. 의원님들은 공격하고 기관은 방어한다. 의원님들은 원칙을 내세우고 기관은 현실을 말한다. 아마 그 어디쯤에 정의가 있고 온전한 지방자치제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의원님들은 눈에 불을 켜고 질의를 하고 직원들은 밤을 새워 자료를 만들어 낸다. 입장은 다르지만 우리가 각자의 역할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고 또 한 가지 이유 때문이어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이 아닌 도민을 위해 일을 하기 때문이다. 도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월급을 받기 때문이다./이기영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노동조합 위원장이기영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노동조합 위원장

2018-11-14 경인일보

[노트북]온전한 도시를 위한 교통대책 기대한다

월요일 아침 화성 동탄2신도시에서 서울행 버스에 탑승한 적이 있다. 타는 과정부터가 고역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이중 삼중으로 늘어서 있었다. 수십 분을 기다려야 겨우 버스를 탈 수 있다 보니 2~3개 정거장을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도 부지기수. 설상가상 버스 배차간격은 길게는 50분에 달했다. 한 대를 놓치면 수십 분을 기다려야 한다. 교통 상황에 따라 출근시간을 제대로 맞출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기약 없는 기다림, 버스에 오르기 위한 전쟁에 진이 빠졌다. 동탄2신도시의 수많은 서울행 승객들에겐 일상인 모습이다. 김포 한강신도시·파주 운정신도시·남양주 다산신도시 등 경기도내 대규모 택지개발 지구가 안고 있는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신도시 주민들의 일터가 서울에 몰려있지만 정작 서울에 갈 수 있는 수단이 충분치 않은 탓이다.정부는 서울 주택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경기도 곳곳에 신도시를 조성해 집을 지어올렸다. 서울과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조금 더 저렴하고 깨끗한 아파트. 집 걱정에 시름하는 도시민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터지만 현실은 달랐다. 택지개발 지구로 계획된 부지의 3분의 1이 아파트가 지어지지 못한 채 미매각·미착공 상태로 방치되고, 그나마 아파트가 들어선 지역들도 미분양 문제를 겪고 있는 실정이다.정부가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다시금 3기 신도시 등 택지개발 카드를 꺼내들자 2기 신도시 등 대규모 택지개발 지구의 문제가 떠올랐다. 교통망을 새롭게 조성하려고 해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교통망·자족기능이 갖춰지지 않아 입주 수요가 낮아지다 보니 사업성을 확보할 수 없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이들 지역이 정부의 '예타 면제' 등에 사활을 걸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온전한 도시가 되려면 모든 일상이 도시 내에서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일터'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부터 해야 한다. 정부는 연말까지 2기 신도시 등에 대한 교통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특단의 조치를 기대한다. /강기정 정치부 기자 kanggj@kyeongin.com강기정 정치부 기자

2018-11-13 강기정

[경인칼럼]시선의 확대, 행동의 확산

방송정책 수립·집행하는 해외전문가들드론촬영법 등 무료 프로그램 놀라워 해미디어교육 해외 무상지원 가능성 물음에마냥 마다하기에는 너무 미안한 마음 커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를 찾는 해외전문가들의 발길이 잦다. 주로 방송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담당하는 위치에 있는 각국의 고위직 공무원들이거나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다. 지난주만 해도 두 개의 그룹이 센터를 찾았다. 화요일에 방문한 이들은 아시아-태평양 방송개발기구(AIBD) 회원국 관계자들이었다. 한국은 26개 회원국들로 이뤄진 AIBD의 집행이사국인데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최하고 AIBD와 시청자미디어재단이 공동주관하는 '시청자권익증진 국제세미나'가 서울에서 열렸다. 이 세미나의 첫째 날, 참가자들은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시청자권익증진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인 뒤 곧바로 인천으로 이동했다.먼저 송도국제도시의 해송중학교에서 '찾아가는 미디어버스'의 실제 교육현장을 참관했다. '찾아가는 미디어버스'는 시청자미디어센터를 직접 이용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이동형 미디어교육프로그램이다. 방송체험시설과 VR장비를 갖춘 대형차량 2대가 강원도 산골부터 제주도와 서해 덕적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누빈다. 이날은 AIBD 관계자들을 위해 도심에서 운영한 예외적인 경우였다. 이어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교육프로그램 전반과 시설·장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마침 다목적 홀에서 진행 중인 드론 촬영교육을 참관하고, 1인 미디어 스튜디오에서는 직접 실시간 방송에도 참여했다. "와우, 원더풀!" "잇츠 그레이트!" 탄성이 이어졌다.금요일 방문그룹은 한국교육학술정보원과 시청자미디어재단 등이 공동주최한 '2018 미디어·정보리터러시 국제심포지엄'의 기조강연자와 각 세션별 주요 발제자들이다. 기조강연을 맡았던 폴 미할리디스 미국 에머슨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메이저 언론에도 기고하고 있는 미디어리터러시와 시민미디어운동 전문가다. 해마다 5개 대륙의 청년미디어제작자 70여 명과 교수 12명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3주 동안 모여 사회변화를 위한 독특하고 창의적인 미디어리터러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미디어와 글로벌 변화를 위한 잘츠부르크 아카데미' 이사로서의 활약상이 특히 두드러진다.미디어·정보리터러시 글로벌협의회(GAPMIL) 부의장인 하린더 팔 싱 칼라 인도 펀잡대 교수,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디지털시민성교육위원회의 가이드라인 개발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알렉산드로 소리아니 이탈리아 볼로냐대 교수, 유엔 전기통신연합(ITU) 전문가인 데이비드 라이트 영국 인터넷안전센터 소장 등은 각 세션에서 주제발표를 했다. 이들 역시 세미나의 주요 일정으로서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의 실제 현장인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를 찾은 것이다.센터를 둘러본 대부분의 해외전문가들은 동영상 제작, 1인 미디어 실습, 드론 촬영 등 기존 미디어부터 최첨단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와 관련한 모든 교육프로그램이 무료로 제공된다는 사실을 놀라워한다. 그리고 이런 시설과 장비를 갖춘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설립이 전국적으로 계속 추진되고 있는 현실을 부러워한다. 지난주에 방문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특히 우리와 이웃한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 관계자의 부러운 반응을 온몸 가득히 느낄 때마다 가슴이 뜨끔하다. 우리는 지금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그 위상에 걸맞게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그날도 실제로 한 전문가는 우리 미디어교육시스템의 해외 무상지원 가능성을 내게 물어왔다.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 내부에서 그러한 논의가 진지하게 이뤄지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해 전 현지를 방문해 여건을 살피기까지 했다. 여러 이유로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또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쯤 다시 들여다볼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도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밀어야 할 손길을 마냥 접어두기에는 그 시간 쌓이게 될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의 크기가 너무 클 것 같다. 시선의 확대, 사고의 확장, 행동의 확산이 필요한 시점이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8-11-13 이충환

[참성단]하늘 위 주유소

최신예 전투기라 해도 원거리 공격작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연료 보급이다. 적진을 공습하거나 공중전을 벌일 때 최소 한두 곳의 경유지에서 연료를 보급한 뒤 이동해야 한다. 우방국이 있다면 그곳의 기지를 이용하면 되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작전수행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하늘 위 주유소'라 불리는 공중급유기다. 최초의 공중 급유는 1923년 6월로 미 육군 항공단 소속 DH-4B 복엽기가 연료탱크에 호스를 장착해 비행 중인 다른 항공기에 연료를 주입하는 데 성공했다. 두 달 후에는 9차례의 공중급유 끝에 무려 37시간 비행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고속 비행하면서 기름을 주고받아야 하므로 공중 급유에는 늘 위험이 따랐다. 우주 비행 같은 고도의 기술도 필요했다. 급유 중엔 공중급유기와 전투기는 기름을 공급하는 붐(Boom)과 수유구가 붙어 있는 상태로 5분가량 비행을 해야 한다. 급유기와 전투기 사이 거리와 고도를 유지해야 하는 기술이 필요해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정작 사용되지 못했다.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50년 B-29 폭격기를 공중급유기로 개조한 KB-29M 공중급유기 80대를 전력화하면서 '항공전의 혁명'을 불러왔다. 2005년 7월, 1조4천881억원 규모의 우리 공군 공중급유기 사업 기종으로 모두 미국 보잉사가 선정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동안 우리 공군이 미군 급유기로 공중급유 훈련을 해왔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미군 급유기의 지원을 받아 연합작전을 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에어버스사가 선정됐다. 그동안 전투기를 구매할 때 내세운 '한미 동맹'이 무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북한도 공중급유기 도입 결정에 대해 '전쟁범죄 행위'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그제 우리 공군 전투기의 작전 반경을 획기적으로 늘려 줄 공중급유기 1호기가 도착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보잉사를 제치고 선정된 유럽 에어버스 D&S사의 'A330 MRTT'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 3대가 더 도입된다. 공교롭게도 공중급유기가 도착하는 날, 중동부전선 철원지역 비무장지대(DMZ)에선 굴착기를 동원한 감시초소(GP) 철거 작업이 진행됐다. 같은 날 하늘 위엔 주유소가 설치되고 지상엔 GP가 철거되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13 이영재

[기고]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노숙인에게 밥 한끼 대접한 여성은그 여느 사람들처럼 방관하지 않고용기를 내 행동으로 '사랑' 실천한것요즘 시대가 필요로 하는진정한 사회복지 가치 아닌가 싶다20여 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필자가 근무했던 직장은 '사랑의 열매'로 알려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였다. 지금은 회사들이 당직제도가 많이 사라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순번제로 점심 당직제도가 있었다. 청명했던 그날 필자는 당직을 서고 오후 1시쯤 혼자 점심식사를 하러 즐겨 찾던 회사 근처 단골 설렁탕집을 찾았다. 점심당직의 좋은 점은 비록 혼자 식사를 하지만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일반적인 점심시간이 아닌 1시 이후에 식사를 할 수 있기에 번잡하지 않고 여유 있게 맛집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날 찾은 단골 설렁탕집은 조금 큰 규모로 손님이 다 빠져나가고 두셋 테이블 정도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설렁탕이 나오고 막 한술을 뜨려는 순간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 한 분이 노숙인 한 명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근데 들어오는 두 사람의 느낌이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여성의 목에는 신분증을 패용하였고, 세련된 원피스에 깔끔한 정장구두, 잘 손질된 헤어스타일, 모습만 봐서는 누가 봐도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처럼 보였다. 반면 노숙인은 남성이었는데 몇 달은 감지 않은 것 같은 떡진 머리에 수염은 긴 머리를 연상케 했으며, 다 해지고 더럽혀진 옷에 이불 보따리 같은 큰 포대기를 어깨에 메고 같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냄새는 또 어떻고.스치는 생각이 왜 하필 저 노숙인이 이 식당에 들어와서 모처럼 맛난 식사를 즐기려는데 밥맛 떨어지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내 생각이 정말 부끄러울 정도로 어리석게 느껴지고 말았다. "사장님 혹시 이분 여기서 식사해도 될까요?" 사장 아주머니는 노숙인을 보며 순간 멈칫하더니 홀을 한번 둘러보고는 손님도 빠져나가고 마침 빈 테이블이 많아서인지 괜찮다고 하셨다. 여성은 설렁탕 값 5천원을 사장 아주머니에게 주면서 "이분 여기서 식사 잘하고 가실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러고는 노숙인에게 "아저씨 식사 맛있게 하시고 건강하세요"라고 하면서 공손히 인사하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아마 본인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의 대화가 내 머리를 한 대 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난 사회복지를 한다고 하면서 노숙인에게 밥 한 끼 사준 적이 있었던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금활동한답시고 좋은 곳만 찾아다니지는 않았는지. 아니 오히려 그들을 보면 불결하게 느껴져 돌아서서 가지 않았던가? 심리학에서는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는 것이 있다. '구경꾼 효과'라고도 하는데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경우, 곁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방관함으로써 생기는 여러 현상 가운데서도 특히 어려운 처지에 놓인 낯선 사람을 도와주지 않을 때 흔히 쓴다. 사람들이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데는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나 성격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그러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 주위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와줄 확률은 낮아지고,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지 시간은 더 길어진다. 아무 대가 없이 남을 도우려는 마음, 남을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 인간만이 지닌 그 불가사의한 힘을 일컬어 '사랑'이라고 한다. 노숙인에게 밥 한 끼를 대접한 여성은 그 여느 사람들처럼 방관하지 않고 의지를 가지고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 의 한 시구처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그날 그 여성은 나에게 묻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물음은 지금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노숙인에게 여성은 분명 뜨거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노숙인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사줄 수 있는 행함과 용기, 그것이 요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사회복지의 가치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사회복지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매년 신입생을 받을 때면 무엇보다도 사회복지는 인간존중의 가치를 가지고 이론과 관념만이 아닌 결단과 행함이 필요하다고 이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20여 년 전 깊어가는 가을 어느 날,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해준 그 여인과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게 아쉽다. 지금도 이맘때가 되면 모르는 노숙인을 도와주었던 그 모르는 여자가 생각난다. 아름답게…./조승석 경인여자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조승석 경인여자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2018-11-13 조승석

[수요광장]국감장의 '수준 미달·품격 실종' 제발 사라져야

여야간 정쟁과 날세운 공방 '여전'정책·현안에 대해 유치한 질문호통·삿대질 등 '망신주기' 일관피감기관 무성의한 답변도 '눈살'허용범위 정할 매뉴얼 마련 시급지난달 29일 막을 내린 국정감사는 많은 숙제를 남겼다. 이번 국감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 1년여 문재인정부는 국가 체질의 기본기를 다지는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이에 대한 진지한 점검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정책들이 어디를 향하고, 또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국민적 관심사가 높았던 것이다. '포용국가'를 지향하는 문재인정부의 협치와 통합에 거는 국민적 기대도 컸다. 하지만 이번 국감 현장에서 보인 정치인들의 모습은 실망을 감출 수 없게 했다. 국격이 높아지고 시대가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국감장에서는 실력도, 의지도, 품격도, 성의도 없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세상은 이렇게 빨리 바뀌는데 국감장 모습은 이토록 안 바뀌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여야 간 정쟁과 날선 공방이 여느 때보다 유독 많았다. 일단 상대 당을 비방하는 데 모든 초점이 맞춰진 것 같았다. 정작 날카로워야 할 피감기관의 정책과 현안에 대해선 맥 빠지는 질의가 많았다. 국감이란 행정부에서 하는 일을 국민의 시각에서 점검하고 문제점이 있다면 바로 잡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국민 기대와는 다르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장면들이 국감장에서 노출됐다. 의원들의 비합리적이고 유치한 질문, 왜곡되고 과장된 공격은 오로지 '피감자 망신주기'가 목적인 듯 보였다. 그나마 2년 연속 '국감 홈런'을 날린 박용진 의원(민주당), 서울시 채용비리 의혹을 제기한 유민봉 의원(한국당) 등 몇몇 유능한 공격수의 활약 덕분에 체증이 조금이나마 풀렸을 뿐이다. 물론 철저하게 준비된 피감 기관장들은 의원들의 공격에도 아랑곳 않고 진솔하게 답변하거나 노련하게 대응하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책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 좋은 평가를 받은 기관도 눈에 띄었다. 이와는 다르게 날카로운 질문이든 무딘 질문이든 '검토하겠다'는 식의 무성의한 답변만 반복하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피감기관도 있었다. 국감장에서 저급한 고성이 오가고 상스러운 삿대질이 난무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바뀔 조짐이 안 보인다. 의원들이 피감기관을 죄인 취급하듯 하며 권위적인 태도로 호통치고, 무안 주고, 버럭 화내는 모습은 국민 공감을 얻기 어렵다. 의원들은 피감기관 관계자들에게 질문을 쏟아놓고, 피감기관이 답을 하려 들면 '됐어요'라고 하면서 말을 잘라버린다. '방송 분량 욕심' 때문인지 보좌진이 준비해 올린 원고를 큰소리로 계속 읽어 내려간다. 애당초 피감기관에 답변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바쁜 시간 쪼개 성실하게 준비한 증인이나 참고인들의 답변은 종종 이렇게 무시됐다. 이런 모습을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올해 국감에선 신선한 풍경도 눈길을 끌었다. '책(冊)' 형태의 정책자료집들이 주목을 끌었다. 국감 질의시간은 깊이 있게 정책을 논의하기엔 시간적 제한이 있는데 정책 제안을 통해 피감기관의 개선을 이끌기 위해선 정책자료집을 통한 소통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국감장 풍경이 발전적으로 변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의원들의 날카로운 공격과 피감기관의 성실한 수비 외에도 국감을 둘러싼 또 다른 중요한 축은 언론의 사명과 역할이다. 잘 준비된 의원의 수준 높은 질의와 무성의한 의원의 질의 수준을 구체적인 보도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피감기관장의 능력과 노력을 국민들이 잘 분별할 수 있도록 언론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언론보도는 확실한 검증을 바탕으로 치우침 없이 공정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합리적인 국감을 위한 시스템 개선과 해서는 안 되는 구체적 매뉴얼 마련도 시급하다. 분명한 문제제기 대신에 막말과 호통으로 망신주기식 국감은 더 이상 안 된다. 이런 풍경은 사라져야 한다. 정책 검증과 현안 문제로 국민적 관심사를 끌어내 국민들에게 흥미를 일깨워야 한다. 국감 진행과 관련해 어느 수준에서 허용 범위를 정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8-11-13 김정순

[오늘의 창]칭찬으로 직원들을 춤추게 하자

"인명구조는 순간의 강도 높은 훈련보다는 일상의 습관적인 훈련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지난 2일 이천소방서 대월 119안전센터에서는 쉬는 시간에도 틈틈이 뒤뜰에 나가 인명구조탑에 올라 수직이동 수평이동, 개구부를 만든 맨홀 통과 등 쉴 틈 없이 오가며 습관처럼 훈련에 임하는 대원들을 쉽게 볼 수 있다.항공구조대에서 근무했던 한 대원이 20여명의 동료들과 장장 4개월여 만에 2층 높이의 구조 훈련탑을 지난 10월말 공들여 만들어 냈다. 자체 안전도 등을 검토한 결과 소방 학교의 대형 구조탑 보다는 못미치지만 수상구조를 제외한 모든 훈련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천여만원의 경비가 소요된 구조 훈련탑은 본서에서 일부, 철재 구입부터 용접 등 시공까지 도맡아 용역비가 거의 투입 되지 않은 순수 대원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그래서인지 대원들은 기초훈련에 임하는 자세부터가 남다르다. 훈련은 물론 관리를 위한 부식 방지 등 원활한 훈련의 관리, 점검도 이들의 몫이 됐다.이제는 본청 자산으로 귀속되겠지만 경기도 내 유일한 훈련 탑으로 인근 시·군대원들까지 이용하고 있다. 앞으로 관리·훈련 지도에 따른 부담으로 대원들은 더욱 피곤해질 수밖에 없게 됐지만 우뚝 서 있는 훈련탑에 성취감도 높다. 이번 구조 훈련탑 완공으로 직원들은 습관적 훈련으로 인명구조사 2급 자격을 취득한 대원도 2명이나 된다. 그러나 정작 고된 작업으로 훈련탑이 완성됐지만 일부 대원 및 민간 자율 단체 임원들은 칭찬에 인색한 공직사회에 서운함을 표출하고 있다. 대원들과 함께 제작에 임한 일부 민간인과 대원들은 '고생했다. 고맙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도 했다.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찬을 받기 위해 고맙다는 감사의 말을 듣기 위해 한 일은 물론 아니지만 늦지 않은 시점에 노고를 치하하고 표창이라도 상신해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칭찬에 고래는 춤을 추겠지만 인간은 힘을 얻지 않는가. /서인범 지역사회부(이천) 차장 sib@kyeongin.com서인범 지역사회부(이천) 차장

2018-11-12 서인범

[자치단상]김포 100년, 그 길을 열겠습니다

예부터 '할아비의 강'으로 불린 한강하구평화시대 '조강 통일경제특구 조성' 제안'해안일주경관도로' 건설 대표 관광자원화남북 자매결연·수학여행단 교류도 구상2018년 9월 19일 남북 정상은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드는 데 합의하고 역사적인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문에는 동·서해 북방한계선 일대 일정구역을 완충수역으로 지정해 한강(임진강)하구를 공동이용하고, 평화수역과 공동어로 구역을 설정해 남북 어민의 안전한 어로활동을 보장하고, 서해경제공동특구를 조성하며, 서해선 철도 및 도로를 연결하기로 하는 등 의미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합의문에 따라 경기 서북부 지역은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블루오션이 될 예정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김포시는 한반도 평화문화의 중심도시로서 통일한국을 만드는 선봉이 될 것이다.남북 대결의 최전선이었던 김포시는 이제 평화시대로 나아가는 격동의 현장에서 한반도 평화의 중심지로 비상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화'를 김포의 50년, 100년 먹거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강하구 뱃길열기 등 남북 공동활용,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산업, 평화관광사업, 남북 교류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결실을 볼 때 비로소 김포는 평화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이 될 수 있다.한강하구는 김포가 보유한 천혜 자원이다. 한강하구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으로 예부터 할아비의 강 '조강'이라 불리고 있다. 조강은 다시 예성강과 만나고 염하를 품으며 서해로 흐른다. 그러하기에 한강하구 강녕포, 조강포, 마근포를 잇는 뱃길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때 삼남지방의 물자를 한양으로 실어나르는 중요한 물길이었다.지난 70여 년간 막혀 있던 이 뱃길은 앞으로 서울과 평양, 남북을 잇는 '평화의 젖줄'이 될 것이다. 조강을 열면 개성과 인천항, 인천공항, 평택항으로 연결되는 환 서해벨트가 완성된다. 따라서 '조강'을 남북교류의 입지적 중심이자 한반도의 변화를 주도해 갈 전략적 요충지로 재정립해야 한다.나는 조강을 평화시대 전략요충지로 재정립할 방안으로 '조강 통일경제특구 조성'을 제안한다. 조강의 양안인 남측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와 북측 개성시 판문군 조강리에 첨단복합형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조강을 가로지르는 조강평화대교(가칭)를 연결함으로써 남북교류의 마중물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경제특구는 약 330만㎡(100만평, 북측 조강리 50만평·남측 조강리 50만평)의 IT중심 중공업단지를 조성하고, 조강평화대교는 길이 2㎞ 왕복 6차선으로 중간 지점 교량상판 하부에 만남의 광장을 설치한다는 구상이다. 경제특구가 조성되면 북한의 인적·광물자원을 활용할 수 있어 내수 및 수출 경쟁력이 강화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또한 민관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남북 단일시장 협력방안을 마련, 단계적 생활공동체 형성으로 남북통일에 이바지할 수 있다.또 하나, 평화교류 분위기가 확산 중인 때 김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사업은 '해안일주경관도로'다. 해안일주경관도로는 전류리에서 시작, 민통선에 가로막혀 지금껏 일반 시민의 발길이 닿지 못하는 시암리·마근포리·개곡리·보구곶리를 거쳐 대명항까지 47㎞ 구간 일주도로다. 이 도로가 건설되면 철책과 한강, 북한땅을 한 번에 볼 수 있어 김포시를 대표하는 관광자원이 될 게 분명하다.커다란 둑을 무너뜨리는 건 작은 구멍에서 시작된다. 남북평화시대를 넘어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부 역할뿐 아니라 민간의 교류와 협력이 축적돼야 한다. 나는 지난달 접경지역 10개 시·군협의회 회장에 선임됐다. 회장에 선출되면서 접경지역 지자체 간 민간교류 실천을 위해 협의회 단체장들의 방북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성사된다면 휴전선을 사이에 둔 남북 지역 간 자매결연, 그리고 양 지역 간 학생 수학여행단 교환 등 실질적인 교류사업을 제안할 예정이다.민선 7기 김포시장으로서 임기 동안 김포를 평화시대 한반도의 중심도시로 만드는 초석을 다지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 그리하여 김포 100년의 길을 열겠다./정하영 김포시장정하영 김포시장

2018-11-12 정하영

[참성단]방탄소년단의 역습

일본 방송사들의 방탄소년단(BTS) 방송출연 취소 사태가 국제적인 파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 TV아사이가 BTS 멤버 지민이 2년전 착용한 광복절 티셔츠를 문제삼아 예정된 방송출연을 취소한데 이어 NHK, 후지TV도 출연검토를 보류하자 세계 유력 매체들이 일제히 한일관계를 재조명하고 나선 것이다.대중음악 매체 빌보드는 "국가 간의 오랜 정치 문화 사회적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 역사를 거론했다. 미국 CNN과 영국 BBC도 일본 방송이 원자폭탄 티셔츠를 이유로 BTS의 방송출연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CNN은 '일본의 점령으로 수백만의 한국인이 고통을 겪은 사실'을, BBC는 '일제 강제징용자 배상판결 이후 냉각된 한일관계'를 상세히 보도했다. 전범국 일본의 과거가 새삼스럽게 떠오른 것이다.방탄소년단을 응원하는 팬클럽 아미(ARMY)의 방탄 활약도 대단하다. 이들은 구글 등 인터넷 검색창을 통해 'Why BTS'를 열심히 검색하고 퍼나르고 있다. 일본 방송이 BTS 출연 취소 결정 이유를 확인하는 검색어는 '왜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는가?(Why did japan invaded korea?)'라는 연관 검색어로 번지면서, 전세계 아미들이 일제의 아시아 침략사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BTS 방송출연 금지 배후에는 일본 방송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세력이나 단체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 결정에 적나라하게 반발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 극우매체 및 단체가 의심된다. 하지만 과녁 설정에 실패했다. 제2의 비틀즈로 떠오른 BTS의 글로벌 위상을 너무 쉽게 봤다.BTS에 열광하는 일본 열도의 열기는 오히려 높아졌다. 아홉번째 싱글앨범 타이틀곡인 'FAKE LOVE(페이크러브)'는 일본 오리콤 차트 1위를 질주 중이고 13일 도쿄를 시작으로 내년 2월까지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를 순회하는 돔 투어 공연은 38만장 전석이 매진됐다. 일본 주요 도시에 불어닥칠 BTS 열기는 방송도, 극우세력도 통제하기 힘들 것이다. BTS사태로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피해자 코스프레로 전범의 역사를 덮어 온 일본의 퇴행적 역사인식만 도드라졌다. 일본 방송이 벌집을 건드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12 윤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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