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춘추칼럼]모든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편의점·대형마트 입점 '소멸되는 동네슈퍼'도시재생으로 새롭게 꾸며지는 '마을 공간'시간 흐름에 쇠락하는 것들 그저 바라볼뿐2019년엔 남긴 여백에서 새로운 탄생 기대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즈음이 되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밀려온다. 인류의 역사 자체가 생성과 소멸의 과정이다. 그렇게 수 천 년을 반복해온 일이지만 여전히 사라지는 것들은 아쉽고 슬프며, 새롭게 태어나는 것들은 벅차고 기쁘다. 우리는 매일 맞이하는 밤과 낮처럼 그 둘 사이에서 살아가지만, 문제는 그 둘의 균형이 흔들릴 때이다.서울시 성북구 성신여자대학교 근처 골목에는 오래된 동네슈퍼가 있다. 정확하게는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지금은 물건을 팔지 않고 낡은 간판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무 간판에는 하얀색 페인트로 쓴 '봉다리슈퍼'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담겨 있다. 원룸이 많은 대학가 주변이라 장사가 될 법도 하지만, 10여 년 전 바로 옆에 편의점이 들어서면서 이 작은 가게는 판매 물품을 조금씩 줄이면서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몇 년 전 마지막 들렀을 때 팔고 있는 품목으로는 생수가 유일했다. '봉다리슈퍼'는 대형마트와 편의점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낡은 간판으로 마지막 호흡을 연명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동네의 작은 가게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도시의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류 문명의 힘으로 세운 도시의 유효기간이 만료되면서, 다시 새롭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조금씩 다듬고 고쳐서 살아갈 것인가 하는 관점의 차이가 있다. 재건축과 재개발을 넘어 도시재생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등장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순간이고, 새롭게 조성된 매끄러운 편의공간에 금방 익숙해지고 만다. 자본의 특징은 '탐식'이다. 서울의 사례로만 보자면, 홍대에서 삼청동으로, 가로수길로, 서촌으로, 성수동으로, 끊임없이 먹이를 찾아 이동한다. 현재로서는 이 포식자를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나마 희망을 걸 수 있는 곳이 '공공'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쉽지 않다. 정부나 지자체도 공공의 이름으로 '주인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공이나 개인의 소유 개념을 넘어 '공유'(commons) 개념의 확장을 통한 새로운 공간의 확장이다. 단계적으로 '공공의 공간'을 '공유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을 혹은 동네라는 이름의 지역에서 주민과 예술가, 청년 등 다양한 주체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공간의 경험을 막연하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공간'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편리하고 기분 좋게 드나드는 공간일수록 자본이나 공공 등 소위 '주인'의 행세가 가장 적은 곳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난 가을 한 연출가와의 대화에서 "연극인들(예술가들)은 공간을 잃는 일에 익숙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묘한 슬픔이 밀려왔다. 그는 공공의 공간에서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하면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공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의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일종의 체념이자 현실에 대한 인정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공간을 잃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잃는 일' 너머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원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할 것입니다.'라는 태도가 있었다. 그 태도는 단순한 결심이나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축적으로 만들어낸 삶의 표현이었다. 시인 고정희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여백을 남긴다' 중)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쇠락하고 사라지는 것들을 지켜볼 뿐이다. 그것은 참으로 쓸쓸한 일이다. 그렇지만, 시인이 노래하듯이, 사라지는 것들이 남긴 그 여백에서 새로운 탄생을 기대한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에는 파괴와 죽음이 아니라 창조와 생명이 넘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8-12-27 권경우

[발언대]사회적 약자보호, 얼마나 노력했나

2018년 한해를 마감하려니 서운함과 아쉬움이 뒤섞인다. 우리는 조직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졌나. 또 '사람이 핵심'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얼마나 행동으로 실천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것들을 평가하면서 더 나은 방향을 위해 마음을 다잡을 때다.안성경찰서에서는 윤치원 서장의 취임 일성인 사회적 약자 보호 지침에 따라 전 직원이 혼연일체가 돼 안성시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어떻게 사랑을 받을지 고민하고 지혜를 모으고 있다. 이를 토대로 최고 고객인 민원인 방문 시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편안한 느낌을 주기 위해 민원인 쉼터 추가 신설, 민원인 전용 주차장 확대, 오지마을 법률상담, 깨끗한 내리 만들기, 탄력순찰, 불법촬영근절을 위한 빨간원 홍보 등을 펼쳤다. 특히 우리 안성경찰서는 그동안 경찰서라고 하면 죄를 짓지 않았어도 무섭고 가기 싫은 곳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모든 경찰관들이 친절을 기본으로 세밀하고 자세한 안내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추진해 왔다.안성경찰서는 또 법을 위반한 범죄자들에게는 엄정한 자세로 조사를 실시해 자신의 죄를 스스로 뉘우칠 수 있도록 하고, 법을 지키는 선량한 시민들에게는 가족과 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을 감싸 안는 감동 경찰행정을 펼쳤다. 이 결과 우리 안성경찰서는 '2018년 고객만족도 평가' 경기도 내 3위를 차지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우리 안성경찰서는 이 같은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대민서비스를 위한 노력에 진력을 다할 것이다. 또 우리 안성경찰서는 치안 고객서비스의 방법을 알게 된 만큼 이런 경험을 후임자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전달해주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지난 2002년 월드컵 신화의 슬로건이었던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로, 기회는 노력하는 자에게 주어지고, 땀은 진실하다고 했다. 안성경찰서는 꿈과 희망이 있는 기적의 동산이다. 비장한 각오로 밝은 새해를 맞이한다./이우희 안성경찰서 경무계장이우희 안성경찰서 경무계장

2018-12-27 이우희

[참성단]'GP 철조망 액자'와 군인정신

선조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온 황윤길과 김성일의 엇갈린 보고에 휘둘리는 동안 이순신은 왜란에 철저하게 대비했다. 병선을 수리하고 군사를 조련하고 군량을 채워놓았다. 거북선을 건조한 이튿날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순신은 즉시 제해권을 장악해 일본 병참선을 두동강 냈다.7년 전쟁 동안 옥포해전부터 명량, 노량해전에 이르는 전승신화로 영해를 장악한 그가 없었다면 전쟁의 양상은 달랐을 테고 역사는 더 참혹한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今臣戰船 尙有十二(금신전선 상유십이: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사옵니다.)' 그를 시기한 선조의 박해는 졸렬했으나, 성웅(聖雄)의 군인정신은 한결 같았고, 조선은 보전됐다.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의 크리스마스 지휘서신이 화제다. 성탄 명절에도 해외 전선을 지키는 장병들에게 "조지 워싱턴 장군이 1776년 델라웨어강을 크리스마스 때 건넌 이후 미군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휴일을 잊었다"며 "야전과 바다에서, 명절과 밤에도 눈을 부릅뜨라"고 명령했다. 국민을 대신해 장병들을 향한 존경과 감사도 표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에게 해고 통보를 받은 처지다. 미국 여론은 매티스 마저 잘라버리는 트럼프의 광증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정치와 상관없이 군인정신을 유지하라'는 매티스의 고별명령에 안도할 것이다.대한민국 육군이 얼마 전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파괴한 비무장지대 GP(감시초소)의 철조망으로 액자를 만들어 전방시찰에 나선 여당 의원들에게 선물로 돌렸다. GP 파괴는 비무장지대의 긴장완화를 위한 정치적 합의다. 그러나 군의 입장에서는 전선 경계전략에 차질이 발생한 비상상황이다. 파괴된 GP와 철거된 철조망을 경계근무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경종으로 여겼어야 했다. 정치가 긴장을 풀더라도 전선의 군인은 군인정신으로 꼿꼿해야 한다.'사단 전 장병은 한반도 평화수호를 다짐하며, ○사단을 방문하신 ○○○의원님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액자 문구도 가관이다. 대한민국 군인의 수호 대상은 영토와 국민이지, 정치의 영역인 한반도 평화가 아니다. 장병들이 왜 국회의원을 기억하는가. 정작 전선의 장병들을 기억하고 존경해야 할 사람들은 국회의원이다. 개념 없는 철조망 액자에는 군인정신이 없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2-27 윤인수

[기고]보헤미안 랩소디가 주는 교훈

지난 11월 27일자 경인일보에 실린 이남식씨의 칼럼 '보헤미안 랩소디가 주는 교훈'을 읽었다. 글의 핵심 주장은 "'동성애 비판'할 권리 위협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인 듯하다. 칼럼이 발표된 직후 전국의 80여 개 인권·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그의 혐오선동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대학가에서도 성명을 통해 이씨의 낙후한 인권의식을 비판했다. 이씨의 글 곳곳에는 시대착오적 인권의식이 깔려 있었다. '엄친아' 운운하는 부분에서는 능력주의적 시각이, 다른 멤버들과 다른 '인도계'임을 굳이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이주민을 타자화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자신의 주장을 위해 성소수자와 HIV 감염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의도적으로 증폭하는 모습에는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별금지법의 취지를 제멋대로 왜곡하며 차별금지의 본령을 훼손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 모두를 권위있는 남성 지식인이 주는 '교훈'의 형태로 포장·유통하려는 모습에 매우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칼럼에서 이씨는 "(동성애자들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지 않도록 하되"라며 점잖은 단서를 붙이는 한편, "이를 부추기거나 보다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개인의 성적 지향을 조장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생활방식이라고 보는 낙후한 인식이다. 이는 "성적 지향은 선택이므로 차별해도 된다"라는 주장을 펴기 위한 것임이 글의 말미에 드러난다. '동성애적 성적지향으로 인한 에이즈'로 죽었다며 프레디 머큐리를 언급하는 부분을 보자. 여기서는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확대하려는 부박한 의도가 읽힌다. '동성애적 성적지향으로 인한 에이즈'라는 표현은 악의적이고 비과학적이다.HIV는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감염에 취약한 인구 집단이 있을 뿐이다. 성인보다 아동·청소년이, 이성애자보다 동성애자가, 그리고 성폭력·성매매에 노출된 사람들처럼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집단일수록 HIV 감염에 더 취약하다는 사실의 의미를 되새겨보라. 한국질병관리본부가 "HIV 감염인의 감염경로, 성적 지향 등 성 정체성에 특히 주목함으로써 차별적 인식을 강화하지 말라"고 거듭 권고한 것(언론과 미디어를 위한 HIV/AIDS 길라잡이, 2012)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유엔에이즈(UNAIDS)도 공포와 낙인을 확산하는 것은 오히려 공중보건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환경이 조기검진과 적절한 치료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HIV의 효과적인 예방을 위해서는 감염인에 대한 의료차별을 철폐해야 하며, 취약그룹이 HIV 검진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프레디 머큐리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은 1991년의 일이다. 그간 의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HIV는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 되었다. 이제 HIV 감염이 왜 일어나는지,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 만약 감염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AIDS라는 질병과 HIV 감염인에 대한 편견이 한국사회에 얼마나 만연한지 돌아보기를 제안한다. 그리하여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간적인 눈높이를 유지하기 위한 저마다의 역할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보헤미안 랩소디가 주는 교훈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권순부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외부인사 글은 경인일보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권순부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2018-12-27 권순부

[풍경이 있는 에세이]시작할 수 없다

마음 잡고 희망가져야 한다는 말 대신하루하루 보통의 삶 사는게 중요하고충분하다고 누군가 말해 줬으면…실패후 천천히 일어서려는 것도결국 잘 살아보려고 하는 마음인데캐럴이 흐르는 커피숍에서 이 글을 쓴다. 테이블마다 삼삼오오 모여앉은 사람들은 뭔가 재미난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소리 높여 웃는다. 연말의 알 수 없는 열기는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에도 한동안 계속되는 것 같다. 아침에 본 TV 뉴스 화면에는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이 비췄다.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의 크리스마스는 1월 7일. 각종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된 광장에 선 한 시민은 홍조를 띤 얼굴로 "벌써 새해가 온 것 같아요. 이 설렘을 그대로 안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새해, 새날, 새로운 뭔가를 기대하는 마음. 순수함과 온화함으로 한껏 부푼 날들. 그러나 나는 이런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특별한 목표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아울러 새해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해'라는 말을. 그 말에 담긴 순결하고 간절한 이미지가 불편해서다. 새것, 깨끗한 것, 그러므로 더럽혀지기 쉽고 깨지기 쉬운 것을 생각하는 일은 그 자체로 조금 괴롭다. 올해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취직을 해야지, 담배를 끊어야지 결심하며 생활을 돌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역시 망쳐버렸군, 재빨리 체념함으로써 안정을 되찾는 사람도 있다. 내가 바로 후자다. 새해가 새해로서의 정자세를 유지하려 안간힘 쓰는 것을 나는 좀처럼 견디지 못한다.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밤이면, 나는 주로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한다. 그러니까 가장 사소하고 하찮은 뭔가로 그 시간을 서둘러 보내버린다. 일찌감치 자리 깔고 누워 요란하게 꾸민 '연예대상'이나 '연기대상'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새해 첫날에는 여느 휴일과 다름없이 늦잠을 자고, 점심 무렵 느릿느릿 일어나 인스턴트 몇 가지로 '아점'을 해결한다. 이는 과장이나 꾸밈없이 새날을 시작하는, 아니 새날을 잊는 나만의 요령 같은 것이다. 이렇게 새해에 깃든 강박을 깨부순 뒤에야 비로소 나는 늘 하던 일에, 늘 하던 방식으로 몰두할 수 있다.언제부터 이런 식의 마음을 갖게 되었는가 하면, 잘 모르겠다. 처음부터 새해를 기피(?)한 것은 아닐 텐데. 더듬어보면 한때 나는 새해를 맞는 의식에 제법 적극 동참한 적도 있었다. 스물한 살 되던 해에는 타종 행사를 보기 위해 친구들과 보신각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지금에 와 그때 그 타종 소리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종각역의 넘쳐나는 인파에 밀려 계단에서 신발이 벗겨졌는데 그걸 찾느라 한참 동안 바닥을 기었던 일이 떠오른다. 행사가 끝난 후 쓰레기로 뒤덮인 종로 거리를 걷던 일. 바가지요금 때문에 폴라로이드 사진사와 실랑이를 벌이던 일. 진저리를 치고는 두 번 다시 그런 데는 가지 않았다. 그보다 더 어릴 적에는 용꿈을 꾼 일도 있었다. 새해 첫날 꿈에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오르는 용을 본 뒤 한동안 막연한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후 행운이라 할 만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기억하건대 그해 우리 가족은 도리어 집을 잃고 쫓기듯 먼 도시로 이사를 했다. 이런 일들은 이제 그저 우스꽝스러운 이야깃거리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새해가 뭐 별거냐. 그저 오늘의 내일 아니겠냐"하는 식의 상투적인 말로 끝나고는 한다.때로는 누군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아니라도 괜찮다고. 그런 마음 없이도 그럭저럭 살 수 있다고. 때가 되면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내고, 희망을 불러야 한다는 말 대신. 그냥 보통의 하루하루를 사는 일이 중요하다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렇다면 나도 흔쾌히 대꾸할 것이다. 실은 공허한 꿈, 헛된 약속이 아니라 시시로 도래하는 어떤 실패를 애정한다고. 실패 후에 천천히 일어서는 일을. 결국, 이 또한 잘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임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연말이든 연시든 아랑곳 없이 마감은 마감이다. 앞에 둔 노트북의 빈 한글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본다. 잘 쓰고 싶은 열망. 이런 열망이 가득한 채로는 언제나 그렇듯 단 한 줄도 시작할 수 없는 것이다./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2018-12-27 박소란

[발언대]외국인 피의자 관련 법령개선 시급

외국인 형사사건 피의자에 대한 강제 출국 등 문제점 등이 드러나면서 법령 개선 등이 요구된다.얼마 전 외국인이 술에 취하여 내국인과 시비가 되어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인 피의자(가해자)도 속지주의 원칙상 내국인과 같이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다만, 외국인이기 때문에 수사단계에서 영사기관 통지 및 외교관 면책특권 등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처리 규정을 두고 있다.문제는 외국인 피의자가 불법 체류자일 경우 신병처리의 문제가 생긴다. 가령, 외국인 노동자가 내국인에게 중범죄(살인, 강도, 마약, 중상해 등)를 저지르면 신병을 확보, 구속하여 수감시설에서 그 죗값을 치르게 하나 경미한 범죄(단순 폭행, 소액 절도 등)를 저지르면 사건 경위 및 조사 후 즉시 신병을 외국인보호소에 인계, 이후 일정 기간(1개월 내) 보호소에서 대기 후 강제 출국을 당하게 된다.올 한해 경기 북부권에서 강제 출국당한 사례는 49건에 달한다. 이럴 때 외국인 피의자에 대한 신병 확보가 어려운 관계로 여죄 수사는 물론, 피해자 입장에서는 민사소송 또는 상호 간의 합의를 한 피해회복도 불가능하게 된다. 물론 현행법상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경우 구속의 사유로 규정되어 있고 이런 외국인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도 있다.그러나 가벼운 사건임에도 피해회복을 위해 구속을 할 수밖에 없다면 내국인과 비교했을 때 차별적 처우의 문제가 될 수 있고, 수형 시설의 한계, 구속의 상당성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수사기관의 요청 당사자인 피해자의 신청 등이 있을 때 강제 출국 절차를 강제로 정지시킬 수 있는 법령과 그에 따른 지침 등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김민규 가평경찰서 수사과김민규 가평경찰서 수사과

2018-12-26 김민규

[기고]지역 맞춤형 대책으로 미세먼지 줄이기

30억 투입 도로 청소차 확충 비산먼지 줄여먼지억제제 살포 사업비도 50%이상 증액항만 미세먼지 저감·발전소 가동 제어 등국가기반시설 관련 시·정부 적극협조 필요여섯 달 넘게 이어진 파란 하늘이 물러가고 다시 미세먼지가 높아지고 있다. 계절적 특성으로 높아지는 게 일반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11월 초순부터 들이닥친 주의보, 비상저감조치 등을 보면서 앞으로 남은 동절기가 걱정스러운 요즈음이다.올해는 유난히 초가을까지 대기상태가 양호하다는 보도가 많이 있었다. 실제 미세먼지는 어떤 수준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까지의 결과로는 매우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인천은 9월 누적기준, 미세먼지가 전년도 48 ㎍/㎥에서 올해 38 ㎍/㎥로, 초미세먼지는 26 ㎍/㎥에서 22 ㎍/㎥로 줄었다. 또한 같은 호흡권인 서울에 비해서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모두 1 ㎍/㎥씩 적게 측정되었다. 대기질 개선효과가 더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앞서 인천시는 배출원 및 오염현황을 면밀히 분석하여 '2020 미세먼지 저감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세부정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하게 진행된 대책이 미세먼지 저감의 정도를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초미세먼지 배출원 중 가장 큰 부분인 비산먼지 저감을 위해 올해는 30억여 원을 투입, 도로청소차량을 확충하여 도로먼지를 저감하였으며 배출가스 저감장치 부착이나 먼지억제제 살포사업도 전년도보다 50% 이상 증액하는 등 투자를 늘리고 있다. 발전이나 산업분야에서도 배출량 저감 협약, 자발적 감축추진 등 관리를 강화하는 중이다.물론, 인천시 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감소세가 나타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요인은 여러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대기오염 추이의 가장 큰 요인이 되는 기상조건을 분석해보면 올해는 전년도에 비해 봄철 강우량이 88.3㎜에서 349.7㎜로 증가하고 월별로 고르게 분포하여 미세먼지 오염도 감소에 영향을 주었다. 국외 오염유입 감소도 한 몫 하고 있는데 최근 분석에 따르면 베이징의 대기오염이 35% 감소하는 등 실제 중국의 미세먼지는 감소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바람의 상시 영향을 받는 우리의 미세먼지 증가도 둔화되는 것이다.그러나 외적인 감소요인만을 기대하기엔 미세먼지의 위협은 여전히 심각하다. 다른 지역과의 협력, 중국발 오염물질 유입에 대한 대응도 해야 하지만 자체 발생에 대한 해결은 중요하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종합대책과 같이 우리 시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여러 자료를 통해 제시되고 있지만 우리 시 대기오염은 영흥화력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배출원 및 항만, 산단 등 국가기반시설들의 기여도가 매우 높다. 시 차원의 미세먼지 저감대책은 현재 진행 중이지만 앞으로도 다각도로 검토하고 과학적으로 검증하여 확대해 나아가야 한다. 특히, 여러 이해관계와 공익적 측면이 혼재하는 국가기반시설에 관련된 부분은 더욱 그러하므로 시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의 협조와 여건조성도 같이 가야 할 부분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항만 미세먼지 저감, 발전소 제어, 차량운행 제한 등 여러 가지 대책 모색이 좋은 사례다.이제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가 고민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처음부터 최고의 효과를 가져오는 최선의 정책을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가까운 곳에서부터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실천하는 것이 미세먼지 저감의 첫걸음이라 할 것이다. 종합대책 추진과정에서 여러 가지 논의와 검토가 있겠지만 꾸준하게 실행하고 개선하면서 그 방법과 대상을 넓혀 간다면 '마음 놓고 산책할 수 있는 인천'이 가까워질 것이다./이성모 인천보건환경연구원장이성모 인천보건환경연구원장

2018-12-26 이성모

[참성단]'김정호' & '민경욱'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과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이 집권세력과 보수야당의 내면을 보여주는 프리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각각 공항갑질과 유권자 모욕 논란을 일으킨 두 의원은 해명과정을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력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김 의원은 신분증을 꺼내 달라는 공항 보안요원의 요구에 국회의원 신분을 밝히며 규정에 없는 갑질을 한다고 핏대를 세우고 욕설까지 했다고 한다. 해명이 가관이었다. 자신이 보안요원에게 갑질을 당했고, 시민을 대표해 항의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비난 여론이 커지자 음모론으로 맞섰다. 김해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자신을, 시쳇말로 공항공사가 엿먹였다는 취지였다.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공격이라고도 했다.문제의 보안요원은 스물네살의 공항공사 협력사 직원이다. 공항공사는 김 의원이 속한 국토교통위 산하기관이다. 감히 김 의원에게 갑질하고 엿먹일 입장이 아니다. 김 의원의 억지는 '나는 무조건 옳다'는 독선(獨善) 말고는 설명이 어렵다. "사찰 DNA가 없다"는 정권 성선설과 맥락이 같다. 결국 김 의원은 사과했다. 하지만 김 의원을 통해 권력 핵심의 독선을 짐작한 국민의 경계심은 커졌다.민 의원은 "잘 지내냐"는 인사말에 "이번 정부에서는 잘 지낸다"고 답한 여성 유권자에게 침을 뱉었다. '고맙다고 더 분발하겠다'고 정중하게 답해야 옳았다. 보수에 적대적인 현장민심의 사례로 당 지도부와 공유하고, 대변인이 한 유권자의 직설에 감사를 표했으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앞에서 뱉으면 모욕이고 뒤돌아 뱉으면 모욕이 아니다? 황당하다. "비염"은 뭐고 "부덕의 소치"는 뭔 소린가. 잘 지낸다는 유권자에게 왜 침을 뱉나. 상대가 남성이었다면 멱살잡이가 벌어졌을지 모른다. 민 의원은 자유한국당의 보수혁신 의지에 침을 뱉은 셈이고, 모른 체 하는 당 지도부의 시계는 박근혜 탄핵에 머물러 있다.자신의 갑질을 힘 없는 청년의 갑질로 둔갑시키고 과대망상적 음모론으로 덮으려는 여당 의원. 머리 조아리고 고마워해도 모자랄 직언에 침을 뱉은 야당의원. 두 의원은 집권세력과 제1야당의 정체를 거울처럼 보여주었다. 감사할 일인가? /윤인수 논설위원

2018-12-26 윤인수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불사주야: 밤낮 그치지 않는다

지구의 밤과 낮은 수많은 세월 동안 되풀이되었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길들여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의 생체주기이다. 인간의 생체주기뿐만 아니라 동물들이 지닌 저마다의 생리적 습성도 밤과 낮이 만들어낸 부분이 크다. 식물도 마찬가지이고 무생물이라 부르는 토석의 성질에도 영향을 주었다. 사람만 생각해보더라도 대부분 밤이 되면 자고 낮에는 활동을 한다. 이렇게 지내온 세월이 아득하다. 그런데 공자는 물의 흐름이 밤낮에 구애받지 않는 현상을 보면서 자주 찬탄하였다. 물의 흐름은 밤이나 낮이나 할 것 없이 계속해서 흐른다. 맹자는 물이 계속 흐를 수 있는 이유는 근원이 있는 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근원이 있는 물은 점진적으로 흘러 결국은 대해에 이르기 때문에 사람도 근본에 대한 인식과 발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자가 물을 찬미한 것도 이런 이유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우리의 의식과 관련해 생각해볼 수도 있다. 우리의 의식은 낮과 밤의 의식이 판연히 다르다. 낮에는 의식이 성성하지만 밤이 되어 잠에 들면 의식적인 주도력을 상실해 버린 채 그동안의 습성에 딸려간다. 꿈이 대표적이다. 깊은 잠에 들면 내가 있는지조차 느끼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불사주야를 밤낮 그치지 않는 본래의 마음자리라는 뜻으로 새겨볼 수도 있다. 인간이 밤낮으로 여일한 그 마음자리를 회복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새롭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공부를 성취한 도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늘 이런 지경을 말씀하신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2-26 철산 최정준

[경제전망대]계양테크노밸리 발표를 보고

국토부, 산업 기능엔 신경 안쓴 듯'고도제한 완화'로 사업성 높여야연구개발 중심 기업 집적효과 민감주거단지 '南'·산단 '北' 배치 필요수요조사로 분양가 등 조건도 제시정부가 발표한 제3기 신도시에 계양테크노밸리가 포함됐다. 계양테크노밸리는 굴포천 서쪽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해 335만㎡의 첨단산업단지를 개발하는 사업으로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토부는 얼마 전까지 첨단산업단지 지정이 어렵다며 주거 위주로 개발할 뜻을 내비쳤다. 판교신도시를 개발할 때도 국토부는 벤처기업 수요가 부족하고 과밀억제권역이라는 이유로 첨단산업단지에 부정적이었다. 손학규 지사와 경기도가 330만㎡의 첨단산업단지가 필요하다고 고집(?)을 부려 그나마 66만㎡의 판교테크노밸리가 지정됐고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성공적이다.이번에도 국토부는 서울 집값 안정을 우선시하고 계양테크노밸리 산업 기능에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렇게 되면 인천 원도심이나 검단 신도시 개발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며 걱정하는 인천시민이 많았다. 하지만 다행히 인천시의 노력 덕분인지 주거와 산업 비중이 5:5로 결정됐고 주거용지 면적도 우려했던 것보다 작다. 90만㎡의 산업단지 면적은 판교테크노밸리보다 크고 마곡R&D산업단지와 비슷한 규모다. 주거단지 개발이 원도심 개발에 부담을 주겠지만 계양테크노밸리는 서울 바로 옆이므로 서울에서 인구 유입이 많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산업단지의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돼서 직주근접이 잘 이루어진다면 부작용을 더 줄일 수 있다.계양테크노밸리의 개발을 위해 몇 가지 짚어보자. 중요한 사안 중 하나는 고도제한이다. 우리나라는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권고' 규정을 따라 활주로 반경 4km 이내 45m 고도제한을 적용하고 있다. 김포공항 활주로 높이를 고려하면 계양테크노밸리에 해발 57.86m 이상의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 대략 아파트 13층 높이다. 업무용 건물 층수는 그보다 낮다. 마곡도 이렇게 개발됐으니 개발에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고도제한 완화로 용적률이 높아지면 사업성이 높아져 계양테크노밸리 개발에 큰 도움이 된다. 고층 아파트가 사업성이 높다는 점은 자명하다. 요즈음 서울 주변에서 지어지는 지식산업센터는 20층을 넘는 경우가 많다.수도권의 다른 테크노밸리와 경쟁해야 하므로 사업성을 무시할 수 없다. 용적률을 높이지 않아도 건폐율을 줄이고 공개공지를 늘려 도시를 더 쾌적하게 만들 수 있다. 2015년 항공법(현 공항시설법) 개정으로 고도제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하지만 고도제한 완화를 검토 중인 ICAO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며 국토부가 세부 기준을 정하지 않아 법 개정의 실효성이 없는 상태다. 라스베이거스에는 공항 주변에 고층 호텔이 즐비한데 국토부는 ICAO만 쳐다보고 있다. ICAO의 결정이 계양테크노밸리 분양 시점 앞이 될지 뒤가 될지 알 수 없다. 일부러 개발을 늦출 필요는 없지만, 고도제한 완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산업단지 배치 문제를 보자. 아직 결정된 게 아니어서 별 의미는 없지만 공개된 개발구상도를 보면 산업단지가 주거지역을 띠처럼 길게 둘러싸고 있다. 연구개발 중심의 기업은 일반 공장보다 집적효과에 민감하다. 서로 모여 있어야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혁신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이왕이면 한쪽으로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계양테크노밸리는 북서쪽이 김포공항 소음의 영향을 받는다. 주거단지를 남쪽으로, 산업단지를 북쪽으로 할 필요가 있다.수요조사도 필요하다. 판교테크노밸리와 마곡R&D산업단지는 제조업이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제조업이 허용되는 지식산업센터가 주류다. 판교는 처음부터 임대를 허용해서 규모가 작기 마련인 벤처기업이 입주할 수 있었다. 임대를 주목적으로 하는 컨소시엄에도 필지를 분양했다. 마곡에선 대기업과 중견기업만 입주가 가능했다. 하지만 기존 입주기업도 입주 후 5년 후엔 여유 공간을 재임대할 수 있고, 서울시도 강소기업을 위한 건물을 직접 짓기 시작했다. 마곡에서도 벤처기업과 소규모 기업 입주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제조업 허용 여부와 분양방식, 입주수요에 대해서는 도시계획 용역회사가 판단하기 어렵다. 수요조사를 통해 시행사나 기업에 직접 물어봐야 한다. 물론 가격을 제시하지 않고 구매 의사를 물어볼 수는 없으므로 예상 분양가와 용적률 등 조건을 제시하고 기업의 의견을 조사해야 한다./허동훈 에프앤자산평가 고문허동훈 에프앤자산평가 고문

2018-12-26 허동훈

[참성단]웜비어 사망 배상판결

2016년 2월 29일 한 미국 청년이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울먹이며 북한의 체제 선전물을 미국으로 반출하려 했다는 혐의를 인정했다. 버지니아 대학생 오토 웜비어였다. 관광회사를 통해 북한을 방문했다 1월 2일 귀국 비행기 탑승 전에 억류된 지 두 달만에 범죄자로 북한 매체에 등장한 것이다.북한 최고재판소는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체제 선전물을 절도했다는 그에게 국가전복음모죄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검사는 무기를 구형했지만 "사회주의 복을 누려가는 태양 민족의 참모습을 직접 보도록 하자"는 변호로 감형됐다는 것이 북한 매체의 보도였다. 하지만 웜비어는 태양 민족의 참모습을 오래 보지 못했다. 사회주의 복도 웜비어만 비켜갔던 모양이다. 북한은 2017년 6월 12일 혼수상태로 웜비어를 석방했고, 그는 귀국한 지 엿새만에 사망했다. 국제사회는 경악하고 분노했다.멀쩡한 자식을 잃은 웜비어 부모는 진상규명을 위해 북한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지난 10월 북한을 상대로 11억달러 배상소송을 냈다. 미국 법원은 24일(현지시간) 북한이 5억113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판사는 "북한은 웜비어에 대한 고문, 억류, 재판외 살인과 그의 부모에 입힌 상처에 책임이 있다"며 "웜비어 부모는 북한이 아들을 붙잡아 전체주의 국가의 볼모로 쓰는 잔혹한 경험을 직접 했다"고 밝혔다.북한이 배상할리 없다. 미국내 압류할 북한 자산도 없다. 웜비어 사망에 대한 북한 책임을 기록에 남긴 상징적 판결이다. 웜비어 부모도 "김(정은) 정권이 아들의 죽음에 법적이고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세계가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는 성명을 냈다.지금 북한은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와 탈북민 3명 등 6명의 대한민국 국민을 최장 5년 이상 억류 중이다. 3명의 선교사는 무기노동교화형을 받았다. 기독교계가 이들의 구조를 요청했지만 정부의 답변은 애매했다고 한다. 실제로 세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거론조차 안됐다. 답답했는지 한 교회가 정부의 구조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진행중이다.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억류 중인 우리 국민의 석방을 촉구하면서 "정부가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 웜비어 사망 직후로, 그의 사망에 격노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목전이던 때였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2-25 윤인수

[기고]'경찰대학 축소 개혁안'에 대해

수사·행정 등 실무교육 4년 이수배명 받으면 6년간 의무 복무'승진 독식' 주장 사실과 달라오히려 비경찰대 출신들과 경쟁조직 활성화 등 긍정적인 면 많아필자는 업무와 관련하여 30여 년간 경찰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12년간 한국총포협회 중앙회장을 역임하면서 경찰청을 비롯하여 각 지방경찰청까지 두루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외부 인사로는 대한민국 경찰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다. 따라서 경찰업무와 조직문화, 심지어 서풍(署風:경찰서마다 독특한 풍습)까지 알고 있어 경찰에 대해 가장 많은 비판적인 칼럼을 쓰기도 했다.요즘 경찰대학 선발 인원감축과 병역특례를 폐지하는 등의 '경찰대 개혁안'이 나온 것은 지난해 2월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 학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학원생들 간에 대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순경에서 시작하는데, 경찰대를 졸업하면 곧바로 간부가 되는 게 합당한지 근본적 검토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되었으며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비경찰대 출신들이 경찰조직의 개혁과 변신을 위해 경찰대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심지어 순경 출신 한 경찰관계자는 "경찰대 출신은 현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관리자로 일선에 배치되고, 소위 진급이 잘 된다는 정보·경비·감찰 등 주요 요직과 승진을 독식한다"는 등의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그러나 비경찰대 출신들이 경찰대 출신들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 주된 이유는 경찰은 군(軍)처럼 계급사회인데, 나이 어린 경찰대 출신을 상관으로 모시기가 불편하다는 게 주된 이유지만, 국민들 입장에서 볼 때 경찰이 얼마나 공정하고, 친절하며 질 높은 대국민 서비스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의 관점이 된다.먼저 경찰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등 아주 우수한 실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1개 시도에서 경찰대학에 입교하는 사람은 연간 4~5명에 불과하다. 또한 경찰대학에선 수사·행정·법률 등 경찰관으로 갖춰야 할 실무 교육을 4년간 이수하고, 배명 받으면 6년간의 의무 복무기간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사병이고, 육사를 나왔다는 이유로 장교가 되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또한 경찰대학 출신이 승진을 독식한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경찰대학 출신들이 비교적 승진이 빠른 것은 사실이지만, 총경급 승진인사에서는 경찰대, 간부후보, 일반직(순경 출신)을 각각 30%씩 거의 균등하게 안배하고 있다. 따라서 능력 위주의 인사가 아니라 조직의 사기를 위하여 출신별로 안배하기 때문에 오히려 능력 있는 경찰대학 출신들이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른 조직도 학연·지연 간의 경쟁과 갈등이 있기 때문에 경찰대와 비경찰대 간의 경쟁은 오히려 조직을 활성화 시키는 등 긍정적인 면이 많고, 특히 경찰대는 경찰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경찰대학 출신들은 예의 바르고,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 강해 조직문화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적인 경찰문화가 많이 개선된 것도 경찰대학 출신들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경찰 대학생들은 잘못된 관행을 과감히 개선했고, 뛰어난 업무 능력과 투명하고 합리적인 민원처리는 경찰에 대한 대국민 신뢰를 높였다는 것을 자타(自他)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일례로 서울의 일부 경찰서가 경찰 대학생을 집중 배치한 결과 민원이 감소했다는 통계도 있어, 경찰대학은 경찰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오히려 경찰대학을 육성 발전시켜야 할 마당에 '경찰대학 축소 개혁안'이 나온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오수진 전 한국총포협회 중앙회장오수진 전 한국총포협회 중앙회장

2018-12-25 오수진

[수요광장]여기 '독거중년'이 있습니다

관계 단절된 작은 집과 방에서홀로 비싼 주거비 부담하며 살아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름 인정하고서로 포용하는 '사회적 우정의 시대'잃어버린 '함께 사는법' 다시 배워야여기 '독거중년'이 있습니다. 청년도 아닌 노인도 아닌 신혼부부도 아닌 다문화가정도 아닌 예술인도 아닌…. 그 아무것도 아닌 중장년 1인가구입니다. 기존 주택시장에서 공급되는 집들은 너무나 비싸고 마음에 들지도 않습니다. 비싼 집을 살 만한 여유도 없지만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지 않는 집을 사기도 싫습니다. 집을 소유하지 않으니 전세난민이 되었습니다. 공공임대주택과 사회주택의 그 촘촘한 입주자격조건, 신기하게도 나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주거복지제도,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독거중년은 지금 관계가 단절된 작은 집과 방에서 홀로 비싼 주거비를 부담하며 살고, 아니 살아내고 있습니다.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혼자 살면 자유롭고 편하겠다고. 맞습니다. 그러나 불편함도 많습니다. 혼자 밥해 먹고 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간편식 위주의 식사가 반복되니 건강을 잃기도 쉽습니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보호자가 어디 있냐고 묻습니다. 나는 나를 보호해야 합니다. 셀프로. 어느덧 노화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점점 무거워지는 삶의 무게가 이제는 버겁습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이웃 하나 없는 속에서 모든 사람을 경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택배 하나도 조심스럽고 배달음식도 시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주위에 사람이 없어도 불안하고 낯선 사람은 더욱 불안합니다. 결국 집은 잠만 자고 나가는 온기 없는 공간이 되었습니다.내가 선택한 혼자의 삶, 당당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살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차별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시선은 차갑습니다.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전통적 가부장제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속에서 우리는 비정상 가족입니다. 4인 가구와 비교 시 3배 가까이 비싼 주거비를 부담하고,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지만 사회는 우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독립적이면서도 고립되지 않는 집, 굳이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적정 비용으로 쫓겨날 염려 없는 집, 그 누구도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는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집 어디 없을까요? 사실 주거 이전의 근본적인 질문은 바로 '독거'가 아니라 '단절된 사회관계'입니다. '관계의 단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하는 문제입니다. 이미 홀로 사는 삶은 전 세대에 걸쳐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청년 1인가구는 독거중년이 되고, 독거중년이 독거노인이 됩니다. 외로움은 지구상의 모든 고령화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사회병리 현상입니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자본과 시장은 사업의 기회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1코노미, 욜로, 나 혼자 산다…, 매우 디테일하고 유혹적인 마케팅으로 관계가 단절된 혼삶과 각자도생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정부는 유효기간이 한참 지난 정상가족으로의 회귀를 고집하는 저출생고령화 정책에 어마어마한 예산(지난 10년간 무려 127조원이라는)을 쏟아붓고 있지만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우리가 원하는 것은 혼삶도 정상가족도 아닙니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차별하고 구분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포용하는 사회적 우정의 시대를 원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개인 간 세대 간 단절된 사회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어느덧 우리가 잃어버린 함께 사는 법, 그것을 다시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혈연 지연 학연을 넘어 다양한 가치와 취향을 추구하는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관계근력을 키우고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여야 합니다. 지역마다 이러한 주민자치 공동체 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공간과 인프라를 제공하여 그 누구도 고립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활기 있게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야 합니다.이곳에도 '독거중년'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녀)는 혼자가 아닙니다./김수동 더함플러스협동조합 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협동조합 이사장

2018-12-25 김수동

[노트북]'돈만 아는 저질'

적십자가 그려진 하얀 빵모자를 쓰고 화려한 셔츠에 민망할 정도로 달라붙는 스키니진을 입은 가수를 본 적이 있는가. 자칭 '민중 엔터테이너' 야마가타 트윅스터(한받)다. 그는 2009년 희대의 명곡 '돈만 아는 저질'을 발표했다. 이 노래는 '동숙의 노래'(문주란 1966년 데뷔곡) 중반부 '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를 반복하며 20세기에서 21세기형으로 전환되는데, 디스코 비트 속에 한받은 '돈만 아는 저질'을 반복하다 흐지부지 마이크를 내려놓는다.인명은 재천(在天)이라지만, 살릴 수 있었다. '돈만 아는 저질'들이 없애버린 고압산소치료 챔버를 찾아 헤매느라 허비한 그 시간과 거리가 짧았더라면 말이다.20세기 중반에 태어난 어른들은 날이 추워지면 연탄을 땠다. 연탄가스를 먹고 눈이 안 떠져 흔들어 깨워진 뒤 싱건지(동치미) 국물 한 사발 들이켠 경험은 소중한 추억이다. 싱건지 국물에도 정신이 안 들면 보건소로 옮겨져 산소 캡슐에 들어가서 살아남은 어른들을 말한다.의료계에 따르면 1970~80년대 국가 정책에 따라 300여 의료기관에 고압산소치료 챔버가 설치됐다. 보통 보건소에 뒀는데, 여건이 안 되면 중소병원에 위탁해 운영했다. 난방 연료가 연탄에서 석유, 도시가스로 진화했다. 자연히 가스 중독 응급환자는 사라졌고 고압산소치료 챔버는 도태됐다. 돈이 안 됐기 때문이다. 가스 중독 사고는 사라지지 않았다. 수원골든프라자와 같은 다중이용시설 화재 현장과 강릉 펜션 일산화탄소 누출 사고뿐 아니라 밀폐된 지하 공사현장, 최첨단 반도체 공장 등 곳곳에 가스 중독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21세기 소녀·소년들이 기댈 곳은 이제 싱건지 국물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고압산소치료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한 요양(의료)기관은 2015년 전국 111곳에서 2018년 9월 159곳으로 늘었다. 보유 의료기관이 늘어났지만, 24시간 고압산소치료 챔버 전문인력이 상주하는 의료기관은 턱없이 부족하다. 뒤늦게 경기도의회 의원들이 공공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과 의정부병원에 설치할 계획을 세웠다. 살려야 한다. 1인용은 2억원, 6인용은 6억원, 10인용은 10억원이다. /손성배 사회부 기자 son@kyeongin.com손성배 사회부 기자

2018-12-25 손성배

[경인칼럼]교착국면과 남북 교류협력

상호주의 원칙따라 평등한 분야부터 추진'분단 70년' 차이 극복위한 양측 노력 필요지식재산권 보호등 관련법·제도 우선 정비문화예술·스포츠·학술교류 활발히 이뤄져야눈앞에 다가온 듯했던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이다. '선 비핵화'를 내세우는 미국과 '동시적 상응조치'를 내세우고 있는 북한 간의 줄다리기가 몇 달째 팽팽하다. 대화 기조와 유화적 제스처는 유지되고 있을 뿐 교착 타개의 책임은 상대편에 서로 떠넘기는 상황이다. 지루한 교착국면에서 초조한 것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버리고 비핵화를 선언한 북한이다. 파부침선(破釜沈船) 했지만 강화된 경제 제재로 성과를 낼 수 없게 되었으니 딜레마인 것이다. 중재자를 자처한 한국의 입장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미국은 남북 협상에 제동을 걸고, 북한은 미국 눈치만 본다고 불만이다.북미협상의 교착상태는 처음이 아니다. 제1차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격렬한 상호비방을 주고받았으며 싱가포르선언 이후에도 상당기간 답보상태였다. 우리 정부는 북미 협상의 교착 상태를 여러 차례 해결해 왔듯이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북미 간의 협상이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중재를 해나가야 한다. 북한이 원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와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평화협정이고 이를 위한 실질적 협상의 신속한 진전이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달성될 때까지 기존 대북 제재를 유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북한은 적대행위가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핵 폐기 요구에는 응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합의와 실천으로 신뢰를 쌓고 큰 과제를 해결해나갈 수밖에 없다.미국은 우리 정부에 속도 조절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제재와 무관한 남북이 교류협력 사업에 오히려 속도를 내는 것이 북한과 미국의 협상을 촉진하고 속도감을 부여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비핵화 협상의 교착국면이 길어지면서 협상의 동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공존한다. 최악의 경우 2017년의 위기상황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 비핵화 협상에서 속도는 중요하다. 이미 임기의 반환점을 지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며, 임기 내에 정치적 위기에 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 경우 비핵화 협상은 과거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 합의한 제네바 합의와 경수로지원사업의 운명처럼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전철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현재 남북이 추진하고 있는 육로와 철도, 항공로의 연결은 통일한국을 위한 기초 사회적 자본이다. 이 사업은 남북한의 공동번영을 위한 투자이면서 평화체제로의 이행이 불가역적임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며, 동맹국들에게 적극적 협상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제재국면에도 가능한 교류협력 사업을 발굴하여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교류는 상호주의의 원칙에 따라 진행되어야 하며 비교적 평등한 분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남북한이 상호 이해가 깊어져야 한다.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이 넘었다. 언어와 민속과 같은 문화적 차이는 물론 경제 제도와 생활, 행정, 교육, 법률 등 사회 제도의 이질감이 크다.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남북 양측의 노력이 필요하다. 남북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교류와 협력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남북한의 교류 협력이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관련법을 비롯한 제도가 먼저 정비되어야 한다. 남북한의 지식과 정보의 교류 촉진을 위해서는 지적 재산권이 남북한에서 동시에 보호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스포츠와 문화예술 및 학술 교류는 언제든 가능한 사업이다. 평창올림픽에서 남북은 단일팀을 구성하여 참가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단일민족임을 천명하고, 남북 화해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문화예술행사를 통한 문화예술작품과 문화예술인의 교류는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 파급력이 크므로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또 학술교류도 남북한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중단되지 않고 추진돼온 사업이다./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8-12-25 김창수

[전호근 칼럼]편지

3년전 수강생 졸업 앞두고 보낸 안부훌쩍 성장한 향기로운 소식 읽으며 송나라 주돈이의 '애련설' 생각했다1학년 학생들 마지막 시험후 인사그 모습 사랑스럽고 대견해 보였다3년 전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 졸업을 앞두고 편지를 보내왔다. 종종 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지만 이처럼 훌쩍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혼자 읽기 아까워 이곳에 나눈다.안녕하세요 교수님. 저는 2015년 1학기에 경희대에서 교수님의 고전읽기 강의를 수강했던 연극영화학과 학생입니다. 저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으며 학교생활을 돌아보던 중 제게 가장 큰 인상으로 남은 분이라 이렇게 안부 차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성실하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 학생이라 아마 절 기억하지는 못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난이 깊은 풀숲에 있어 찾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그것이 향기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는 공자의 말을 자신의 사유로 풀어내는 것이 기말 시험이었습니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저는 신동엽 시인의 '오렌지'를 말머리에 쓰고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글로 썼습니다. 또 제가 예술을 하는 것과 여성인 자신을 인정하기 위해, 나의 향기를 긍정하기 위해 누군가의 코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사실 저는 유학을 비롯한 한국철학에 흥미가 없던 학생이었고 당시 교수님의 수업도 학점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강했습니다. 한국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왠지 보수적이고 정체되어 있을 것 같다는 편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그토록 중시하는 '인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답변을 유학 고전강의에서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교수님은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두 개의 팔과 다리가 존재하고, 말을 할 수 있으며, 남성과 여성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등 그런 다수의 보편성에 기대는 분류가 아니라 스스로 누군지 알고 그 정체성에 충실한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강의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공감과 위안 그리고 충격을 받았고 그 학기 교수님과 함께 한 시간에 대해 두고두고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 매우 비관적이고 모든 학문의 역사와 인간 사회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어떤 강의를 듣고 감동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오만하고 자의식이 과잉된 일이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작업하는 모든 창작물과 세상에 쌓여있는 인류의 산물이 헛되게 느껴져 의욕을 잃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세월에 구애받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이 다른 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누군지 탐구하면서 스스로 점점 더 견고해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의 강의가 누군가에겐 과거를 읽는 일이 어떻게 미래의 가치로 연결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람과 사람이 만든 것들에 환멸을 느낄 때 교수님의 강의가 주셨던 희망을 떠올리는 것처럼요. 교수님처럼 꾸준히 기억하고 기록하고 한 곳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건강한 겨울 보내시고 오래도록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OOO 올림.나는 이 향기로운 편지를 읽으면서 송나라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을 생각했다. 그는 연꽃을 칭송한 글에서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 맑아진다는 말(香遠益淸)을 남겼는데 나는 이 표현이 그저 문학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이 학생의 편지를 받은 뒤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편지를 받은 다음 날 일어났다. 그날은 내가 가르치는 1학년 학생들이 마지막 시험을 치른 날이었다. 답안을 쓴 뒤 인사하고 나가는 한 명 한 명이 전에 없이 사랑스럽고 대견해 보여 나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지가 학생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 자체를 변화시킨 것이다.앞으로 나는 모든 학생들을 이 학생을 대하듯 만날 것이다. 그러니 이 편지의 향기는 후배들에게도 전해져 멀리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향기는 홀로 있어도 가두어지지 않는 법이다. 학생의 바람처럼 나는 오래도록 행복할 것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12-24 전호근

[참성단]2018 성탄절 풍경

"조용한 아기의 호흡/ 강물도 바다도 잠이 들고/ 하늘만 살아서 눈 위에 오는데/ 입가에 서리는 미소, 그것은/ 사랑이요, 사랑이며, 사랑이라.('아기예수')" 시인 황금찬은 오직 사랑만이 예수 탄생의 의미임을 노래했다. 생전에 '시는 신을 기억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했을 만큼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그에겐 당연했던 성탄 찬송이다.아시아에서는 드물게 한국은 성탄절을 휴일로 지정한 국가다. 기독교는 전래 이후 한국 근현대사의 어려운 고비를 민초들과 함께 헤쳐왔다. 굴곡 많은 역사를 관통하는 고난 속에서 기독교는 대중에게 큰 의지가 됐다. 교세가 커지면서 교회세습 등의 적폐도 생겼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남긴 사랑의 복음은 치유 능력이 여전하다. 이제 성탄절은 종교를 초월해 전 국민이 한해의 노고를 위로하고 덕담과 선물로 사랑을 나누는 연말 세시풍속으로 자리잡았다. 굳이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의 상업화를 비난할 필요가 없다. 어느 사회에나 잠시 쉬어갈 시간과 판타지는 필요하다.하지만 사랑으로 가득 차야 할 성탄절 즈음해서 한국사회는 한 해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니 참 공교롭고 난처하다. 과거정권 적폐청산, 사법농단 의혹, 최저임금 갈등, 유치원 비리 파동, 미투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성탄절 풍경이 을씨년하다. 청년실업이 중장년층으로 번지고, 기업이 사라진 도시는 활력을 잃었다. 문제를 해결할 정치는 아집과 독선으로 중증이다. 민간인 사찰의혹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두들겨 맞겠지만 맞으며 가겠다"고 버틴다. 그의 말에 예수의 십자가 고행을 연상할 이가 있을지 궁금하다.지금 국민의 심정을 유안진의 시를 빌려 "주님/ 지금 제 마음은 황량한 들녘/ 승냥이떼 울부짖는 야밤중 홀로 버려진 새끼짐승('내 가슴을 말구유로')"이라 말하면 과장일까. 2018년 성탄절 즈음 우리 사회는 이해인 수녀의 노래대로 "당신이 사랑으로 오신 날/ 아직 사랑의 승리자가 되지 못한 부끄러움/ 그대로 안고 당신 안에 서('성탄 시')"있는 형국이다.성탄절이다. 황금찬의 기도가 이 땅의 갈등하고 대립하는 모든 이의 가슴을 때리길 기원해본다. "나와 또 내 마음속에 다시 와야 할 아기! 예수여.('아기예수')" /윤인수 논설위원

2018-12-24 윤인수

[시인의 꽃]나의 노래는

나의 노래는 / 라일락꽃과 그 꽃잎에 사운대는 / 바람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너의 타는 눈망울과 / 그 뜨거운 가슴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저어 빨간 장미의 산호빛 웃음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항상 별같이 살고파하는 네 마음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흰 나리꽃이 가쁘도록 내쉬는 짙은 향기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꽃잎이 서로 부딪치며 이뤄지는 죄 없는 입맞춤 속에 있다.//나의 노래는 / 소쩍새 미치게 우는 어둔 밤엘랑 아예 찾지 말라.//나의 노래는 / 태양의 꽃가루 쏟아지는 7월 바다의 푸르른 수평선에 있다.신석정(1907~1974)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노래가 숨어 있다. 길을 가다가 문득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한 소절 노래는, 무의미한 소리가 아니라 내면의 유의미한 언어다.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상황과 만났을 때 돌출되는, 나오는 '나의 노래'는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예측 불과하게 작동된다. 봄날 길을 걷다가 라일락꽃과 그 꽃잎에 살랑거리는 바람 속에서, 누군가의 타는 눈망울과 그 뜨거운 가슴 속에서, 빨간 장미의 산호빛 웃음 속에서, 나의 노래를 만난다. 때로는 별같이 살고파하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흰 나리꽃이 가쁘도록 내쉬는 짙은 향기 속에서, 꽃잎이 서로 부딪치듯 일어나는 사랑처럼 죄 없는 입맞춤 속에서도 터져 나오는 노래는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기쁨의 노래' 인 것. 그러나 소쩍새 미치게 우는 그러한 밤, 나의 노래는 "아예 찾지 말라"라는 것은, 밖에서 안으로 부르는 '슬픔의 노래'로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나의 노래는 시들지 않는 "태양의 꽃가루 쏟아지는 7월 바다의 푸르른 수평선"위에 떠있는 청춘과 같이.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2-24 권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