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경인칼럼]이젠 이재명 지사가 거대권력이다

건설공사 원가공개·토지 공개념 적용 주장정책구상 집행 경기도 아닌 전국으로 영향'이해찬과 공감' 여당내 의미있는 정치행위소중하게 쓰겠다는 '공적권력' 실체는 현실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최근 정책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공공에서 민간까지 건설공사 원가공개를 강행했다. 공공건설공사비 절감을 위해 표준시장단가 적용범위를 확대하겠다며 행정안전부에 관련규정 개정을 압박중이다. 특히 11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토지공개념 현실화에 대한 공감대를 과시(?)한 대목은 인상적이었다. 이 지사는 이날 예산정책협의차 도청을 방문한 이 대표 앞에서 "부동산 문제, 경제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축이라 생각한다"며 "모든 토지에 대해 공개념을 적용해 일정액의 (국토)보유세를 부과하자"고 주장했다. 주장에 그친게 아니라 경기도가 시범을 보일 수 있도록 법적 지원을 요청했다. 실세 대표인 이 대표는 "토지공개념을 도입해놓고 실제로 20년 가까이 공개념의 실체를 만들지 않다보니 집값이 폭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고 호응했다.한달전 본란에서 이 지사에게 모든 의혹은 법에 맡기고 도정에 전념할 것을 요청했었다. 표준시장단가제도 확대 등 의미있는 '이재명표 도정'이 '의혹 공방'에 매몰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때에 비하면 이 지사의 도정 집중력이 현저하게 회복된 것으로 보이니 반가운 일이다. 물론 이 지사가 만들어 낸 정책이슈들이 정부의 협조와 여론의 호응속에 순조롭게 실현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다만 지방선거 전후와 취임 이후 시달렸던 의혹에서 벗어나 도정 수행자라는 본연의 면모를 회복한 현상 자체가 의미있는 진전인 건 틀림없다.그래서 이 지사에게 추가 요청을 해본다. 다름 아니라 자신의 위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필자의 견해를 말하자면 이 지사는 이제 거대한 권력이다. 이 지사의 정책구상과 집행의 결과가 미치는 영향력은 성남시장 시절과 비할바가 아니다. 실제로 건설업계는 이 지사로 인해 난리가 났다. 건설원가 공개, 표준시장단가제 확대가 건설업을 고사시킬수 있다는 반발이 예사롭지 않다. 그는 성남시장 시절 현장검증을 마쳤다지만, 정책의 영향이 성남에 제한적인 상황과 경기도, 나아가서 전국으로 확대되는 상황은 전혀 다르다. 분명한 건 한국 건설업계가 이재명의 한마디에 자지러질 정도가 된 현상이다. 경기도지사 이재명은 이제 큰 권력이다.이 지사의 정치적 언행도 마찬가지다. 그의 한마디는 전국적인 정치적 파문을 초래할 수 있다. 이해찬-이재명의 토지공개념 공감은 정책이면서 정치다. 이 지사의 경기도가 앞장서고 이 대표의 여당이 후원해 국토보유세로 무장한 토지공개념제도가 정책으로 다듬어진다면 나라와 정국이 발칵 뒤집어진다. 공감은 경기도청에서 두 사람이 했지만, 논란은 대한민국 전체를 삼킬 폭발적인 의제다. 이와 별개로 '이해찬-이재명의 공감' 자체가 여당내 정치지형에서 매우 의미있는 정치행위다. 김진표의 탈당압박은 사라지고 '이해찬-이재명 공감'이 주목받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경기도지사 이재명 뿐 아니라, 정치인 이재명도 이젠 거대 권력이다.이 지사는 자신을 향한 각종 의혹에 대해 '거대 기득권의 이재명 죽이기 음모'로 규정했었다. 이젠 아니다. 이 지사는 주체가 불분명한 음모로 죽기에는 실체가 너무 분명한 거대한 공적 권력으로 성장했다. 음모에 희생되는 약자 코스프레는 부자연스럽다. 권력을 경기도민과 국민을 위해 소중하게 쓰겠다는 겸손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권력의 실체는 현실이다.권력이 커질수록 도전하는 세력도 많아지고 도발의 강도도 거세진다. 권력 생태계의 자연현상이다. 중요한것은 응전의 방식과 태도다. 이 지사는 최근에 페이스북 팔로워 5천명에게 실천적 지지로 큰 방패가 되어달라 요청했다. 페이스북 5천 결사대가 이 지사 권력의 크기에 걸맞는 응전의 방식인지 의문이다. 논쟁적이고 소모적이고 일방적일수 있다. 공적 권력의 크기에 맞는, 제시하는 담론의 규모에 어울리도록 응전의 방식과 도구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8-09-11 윤인수

[노트북]허위매물 신고 압박으로 집값 잡힐까

지난 4월 취재 뒷이야기로 아파트 입주민들의 가격 담합 및 왜곡을 다룬 바 있다. 부동산에 의뢰된 아파트인데도 가격이 집주인의 의사보다는 부녀회 등 아파트 주민 단체가 행사한 압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내용이다. 특히 일부 아파트에서 주변 공인중개사들에게 주민단체가 정한 가격대로 중개하겠다는 서약서나 동의서까지 받는 실태까지 보도했다. 현행 부동산 법으로는 이들의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방도가 없어 수년째 지지부진한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내용도 덧붙였다.그로부터 5개월. 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았지만 아파트 가격은 오히려 더 널뛰었다. 부진한 매매 거래 속에 호가가 계속 오르는 비이상적인 현상은 더 가속화됐다.정부가 반년 가량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예상대로 아파트 주민단체의 이기적인 담합은 심화됐고 가격도 시장거래가 아닌 인위적인 요소에 더 영향을 받았다. 매물 가격을 높여 그 가격보다 낮을 경우 허위매물로 신고하는 불법 행위가 아파트 단지들 사이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인근 부동산은 일감 확보와 허위매물 신고 압박에 입주민들의 입맛대로 아파트 가격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난 4월 6천700건이던 허위매물 신고는 지난달 2만1천800 건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뒤늦게 정부는 지난 10일 허위매물 신고가 유난히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현장조사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조직적으로 허위 매물 신고를 통해 부동산을 압박했다면 업무방해로 처벌할 수 있다는 엄포도 놓았다. 하지만 이미 오른 집값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이도 손에 든 사탕을 뺏으면 우는 법인데, 정부의 뒷북 조치가 어떤 결과를 나타낼지 관심이 모아진다. /황준성 경제부 기자 yayajoon@kyeongin.com황준성 경제부 기자

2018-09-11 황준성

[수요광장]혐오표현 금지와 일본사회의 대처

'혐한시위' 日 시민사회 대응 활발정부·국회·지자체 대책법 등 마련최근 한국서 벌어지는 상황 암시차별·배제 맞서 대항하기 위해선사회적 연대 강화 등 대비책 필요최근 뉴스와 인터넷 기사에 담긴 댓글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특정 대상에게 쏟아내는 혐오의 말과 글이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쏟아지는 혐오의 말들을 보다가, 얼마 전 보았던 일본의 혐한 시위가 떠올랐다. "방사능보다, 조선인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 "바퀴벌레 같은 조선인을 몰아내자"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부 일본인들의 시위를 볼 때마다 가슴이 섬뜩해 짐을 느낀다. 가슴이 뜨끔한 이유는 재일교포와 한국인들을 향한 혐한구호들이, 최근 한국사회에서 소수자들에게 향하는 혐오표현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혐한 및 혐오시위에 대해 활발한 시민사회의 대처가 있고,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이에 대응한 제도변화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달리 한국사회의 혐오표현 금지는 크게 후퇴하고 있다. 2017년 충남도 인권조례는 폐지되었고, 부천에서 추진되던 혐오표현금지 조례는 반대세력에 의해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일본사회가 혐오표현과 시위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일본에서는 2005년 '혐한류'라는 제목의 만화책이 출판되었다. 이름처럼 한국과 한국인을 혐오하는 내용의 책이었다. 이후 혐한기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7년에는 '재특회'로 불리는 '재일조선인의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모임'이 결성된다. 재특회는 2009년 재일동포 자녀들이 다니는 교토조선제일초급학교 앞에서 혐오시위를 벌였으며, 이후 일본의 극우시민운동단체들과 일본 각 지역에서 헤이트스피치를 쏟아내며 혐오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에 대한 일본사회의 대응이다. 2013년 초부터 혐오시위대보다 더 많은 일본 시민들이 혐오 반대시위를 시작한다. 2013년 6월이 지나서는 혐한 시위대의 열 배인 2천 명에 이르게 되고, 급기야는 한인상가가 밀집한 신오쿠보에서 벌어진 혐한시위대의 행진을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인간 띠를 만들어 저지시켰다고 한다. 일본 시민사회의 대응에 이어, 일본 정부와 국회는 혐오발언 대책법(본방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위한 대응의 추진에 관한 법률안)을 2016년 5월 통과시켰다. 처벌규정이 없는 이념법이라는 한계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 법안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에 상처를 입히고 사회에 차별의식을 생겨나게 하는 차별적 언동, 사회로부터의 배제, 권리 또는 자유 제한, 명백한 증오 혹은 차별의식 또는 폭력을 유발하는 것 중 어느 목적으로든 행해지는 것을 혐오발언으로 규정하였다. 또한, 차별해소와 계몽활동 인권 교육 등 노력하는 것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지방자치단체 또한 혐오시위와 발언에 제동을 걸고 있다. 2016년 5월 가와사키시에서는 혐오발언 관련 단체의 공원 사용 허가를 불허하였고, 재일교포가 많이 거주하는 오사카시는 혐오발언 규제 조례를 2016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혐오발언에 관한 신고가 들어오면, 전문가 심사를 거쳐 혐오발언을 행한 단체의 이름을 공개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이 시정권고 한다. 또한, 최근 일본 도쿄에서는 성소수자 및 외국인에 대해 혐오발언을 할 가능성이 있는 단체에 대해 공공장소 사용금지 조례가 추진 중이라고 한다. 혐오발언대책법이 만들어지고 각 지자체가 조례 또는 시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시행하게 된 것은 일본 시민사회의 노력과 시민들이 행동과 연대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런 일본의 사례는 최근 부쩍 혐오발언과 시위가 증가하고 기존에 있던 인권조례마저 폐지되고 있으며, 이슬람반대, 차별금지법 반대 그리고 동성애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개별적인 차별받는 소수 당사자의 힘만으로 혐오에 대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혐오 행위 또는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 자체를 처벌해 이를 범죄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고, 더불어 사회 전체가 혐오와 차별이 바로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공동 대응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사회를 둘러싼 차별과 혐오에 대항하기 위해 차별과 배제에 맞서며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며 모든 면에서의 대처가 필요하다. 혐오에 대항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2018-09-11 이완

[열린글밭]건축에 빠진 경영학도 두번째 이야기, 파리로 가다

기괴하고 독특한 작가들 세상그들의 표현 보는 재미가 있었고 그중 유난히 설치 미술이 좋았다나에겐 모든게 흥미롭게 다가와결국 공간디자인 공부하러 떠났다창의적인 일에 대한 갈망으로 디자인을 공부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디자인 중에서도 어떤 분야를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는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은 것인가? 어떤 작품을 보았을 때 흥미를 느끼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 한 것은 미술관을 가는 것이었다. 평소에 유일한 취미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미술관을 가는 것이었는데, 이상하게 미술관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미술관에서도 유난히 내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설치 미술이었다. 갤러리를 들어가면 설치미술품이 있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갔고 그 앞에서 한없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없이 작품 앞에 서있는 나 자신을 보고 느꼈다. 내가 미술관을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높은 천장에 텅 비어있는 흰색 공간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명상을 해도 좋을 것 같은 그 공간이 예술작품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표현의 자유였다. 예술품을 보면 작가의 머릿속 깊은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기괴하고 독특한 그들만의 세상을 표현해 놓은 것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에서 유난히 왜 설치 미술이 좋을까'를 생각해보다가 깨달았다. "아 나는 공간을 이용하는 어떤 작품에 관심이 있구나." 공간과의 관계 즉, 공간과 작품 간의 스케일 관계, 형태와 공간 간의 관계 그리고 작품 색깔과 흰색공간과의 관계. 이 모든 것들이 나한테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런 나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선택한 것이 공간 디자인이었다. 그렇게 나는 파리로 공간디자인을 공부하러 떠났다. 파리에서 공간디자인을 공부한 곳은 '에꼴 까몽도'라는 학교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학교 건물이 파리 퐁피두센터를 닮았다는 것이었다. 내부 구조물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건물이었다. 강의실은 유리로 뒤덮여 있어서 실내가 다 보였고, 기본적으로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 그리고 공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수단인 엘리베이터와 계단 또한 밖으로 나와 있었다. 퀴노 블루만(Cuno Brullmann)이라는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가 설계를 했는데 파리 퐁피두센터와 비슷한 건축물을 많이 지은 것 같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퐁피두센터를 지은 렌조 피아노(Renzo Piano),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gers)와 같이 일을 했던 경력이 있었다. 이렇게 퐁피두센터 같은 학교에서 나의 디자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디자인 수업 첫 번째 과제는 공간에 관한 것이었다. 5cm×5cm 정사각형 형태 11개를 가지고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어떻게 디자인 학교에 들어왔지만 디자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특히나 20년이 넘게 획일적인 공간인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나로서는 다양한 공간을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손 가는 대로 정사각형 두꺼운 종이를 이리저리 배치해보다가 그대로 풀을 붙여서 학교에 가져갔다. 나는 뭔가 그래도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고 가져갔는데, 교수님이 내 작품을 보시더니 한마디 하셨다. "이건 아냐. 건축이 아냐. 뭔가가 부족해!"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머리가 순간 띵 해졌다. 그리고는 빠르게 내 옆을 지나가는 교수님을 붙잡고 물었다. "아니 도대체 어떤 부분이 잘못된 건가요? 어떤 게 건축적이지 않은 거죠?" 나의 질문에 교수님은 나를 빤히 보더니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그냥 내 옆을 지나갔다. 이날부터 나의 디자인공부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1학년 마지막 발표가 있었다. 우리 학교는 공간 디자인과 오브제 디자인을 같이하는 학교로 유명했다. 이날은 오브제 디자인 마지막 발표날이었다. 내 차례가 오자 나는 오브제 용도와 디자인 콘셉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발표가 끝나자 교수님이 한마디 하셨다. "음, 이건 우리 할머니라면 사용하지 않을 거야." 나는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난 교수 할머니를 위해 디자인한 게 아니야"라고 속으로 외쳤다. 내가 상상한 파리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권선영 건축작가권선영 건축작가

2018-09-11 권선영

[참성단]중국 축구감독 히딩크

추억이라고 다 아름다운 건 아니다. 2002년 월드컵이 하나된 마음으로 국민 모두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은 건 특이한 경우다. 지금도 귓가를 떠나지 않는 '대~한민국'과 '오~필승 코리아'의 함성. 월드컵이 끝나자 지독한 무력증에 빠져 허우적댔던 일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아름다운 추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2002년 월드컵은 우리를 4강까지 진출시켜준 거스 히딩크 감독과의 행복했던 '한달간의 동거'였다. 그의 '어퍼컷 세리머니'는 얼마나 통쾌했던가.혹독한 IMF는 국민들의 웃음을 빼앗아 갔다.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히딩크가 '불쑥'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가 타임지와 했던 인터뷰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됐던가. "한국민이 원하는 16강이 나의 바람은 아니다. 내게는 그 이상의 바람이 있다. 만약 6월을 끝으로 내가 한국을 떠나게 될지라도 한국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는 한국팀 감독이고 앞으로도 한국팀 감독이라는 것이다. 월드컵에서 우리는 분명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멋지게 약속을 지킨 히딩크를 우리는 가끔 한국인으로 생각했다.하지만 이제 추억의 히딩크가 악몽의 히딩크가 될 수도 있는 얄궂은 운명과 맞닥뜨리게 됐다. 히딩크가 2020년 도쿄올림픽 본선을 목표로 중국 21세 이하 감독을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한국팀 감독을 사임한 후 호주, 러시아, 터키 감독을 맡으며 자신의 축구인생을 걸어왔다. 그러나 21세 이하라 해도 중국 축구감독 히딩크 인생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중국인들이 대하는 한국 축구는 공한증(恐韓症)이란 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지만 트라우마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시진핑은 '월드컵 본선 진출과 중국 월드컵 개최, 월드컵 우승'을 3대 소원으로 꼽았다. 어디 이뿐인가. "중국이 월드컵을 개최하고 언젠가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의 축구 사랑은 끔찍할 정도다. 시진핑의 웅대한 꿈에 한국은 늘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히딩크가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21세 이하는 중국 축구의 미래다. 히딩크 아래서 탄탄한 기본기를 쌓고, 시진핑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다면 중국은 벅찬 상대가 될 것이다. 우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히딩크. 중국으로 가는 히딩크를 보며 스포츠의 세계가 냉혹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11 이영재

[오늘의 창]가평 '뮤직 빌리지 사업'이 성공하려면

몇 년 전 '넥스트 경기 창조오디션' 본선 심사에서 가평군이 급부상하며 경기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디션 본선에서 가평군의 '뮤직 빌리지 사업'이 대상(굿모닝상)을 차지, 사업비 신청액 100억원 전액을 지원받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가평군은 자라섬, 남이섬, 재즈축제 등 우수한 관광자원과 연계한 관광 인프라를 구축해 침체된 지역경제의 활로를 모색하고자 폐역사에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관광 융복합시설인 '뮤직 빌리지 조성 사업'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선정 이후 군은 부지확보, 각종 심의 절차 등을 거쳐 마침내 지난 2017년 2월 '국내 1호 음악 마을'을 자청하며 가평군 뮤직 빌리지 사업의 첫 삽을 떴다. 군은 올해 말까지 가평역 폐철도 부지 3만8천여㎡에 뮤직 존을 비롯해 플라자 존, 숙박 및 체류 존, 커뮤니티 및 상업 존 등으로 나눈 문화복합 타운을 조성, 미래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로드맵도 내놨다.하지만 환희로 시작해 기대 속에 추진된 이 사업이 내년 본격 개장을 앞두고 우려의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음악 마을 조성 사업의 한계로 지적돼 온 주민들의 낮은 체감도와 사업 성공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 등이다. 국내 1호라는 미지의 사업과 선구자들(?)의 미완의 계획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는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특히 몇몇 주민 들은 본격 운영에 앞서 사업 주체자들과 더불어 지역의 주체인 주민들의 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미래성장 동력을 표방한 뮤직 빌리지 사업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생발전'이라는 대명제 아래 지역사회 주체들의 관심과 동참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 지역사회의 대체적인 여론이다. 가평의 미래 성장을 이끌 이 동력의 원천은 지역과 주민이 함께할 때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민수 지역사회부(가평) 차장 kms@kyeongin.com김민수 지역사회부(가평) 차장

2018-09-10 김민수

[자치단상]안산시·학교·사회 '교육복지' 함께 고민

'고교 무상급식' 내년 전 학년 확대 실시'안산품은학교' 혁신교육 모범사례 꼽혀다문화학생 잠재능력 계발도 적극 지원미래인재 육성위한 정책 발굴 집중 계획'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지역사회와 학교의 연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많은 지방도시가 교육을 위해 다양한 투자를 하며 안산시 역시 제도적인 제약과 재정적 한계 속에서도 학교 및 지역사회와 협력해 여러 지원을 하고 있다. 민선7기 안산시도 안산의 특성이 반영된 혁신교육 정책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경기도교육청과 함께 혁신교육지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교육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안산시, 교육청, 마을, 시민사회, 주민 등이 함께 협력하고 연대하고 있다. 먼저 민선7기 안산시 핵심공약 중 하나인 고등학교 무상급식 지원을 3학년을 대상으로 우선 실시하고 내년에는 전체 학년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2019년부터는 지역 내 중·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 약 1만2천744명에게 교복 구입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보편적 교육복지를 실현함은 물론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는 주요 목적도 포함돼 있다. 학생들이 '나와 내 가족이 살고 있는' 안산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교육장도 마련하고 있다. 안산시는 다양한 생태자원과 천년의 역사, 그리고 다문화 도시로서의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자원을 이용한 체험교육을 통해 안산시의 가치에 대해 배우고 안산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혁신교육지구 과제 중 하나인 '안산품은학교'의 경우 안산의 생태자원과 역사를 통해 안산을 이해하는 현장 중심 교육으로 지역기반 혁신 교육의 모범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모든 학생들이 악기를 배우거나 글쓰기를 공부할 수 있는 '에코(Eco)-문화예술 행복학교'에서는 지역 내 예술가, 문학가 등이 전문 강사로 교과수업에 참여하는 등 지역 인적자원을 활용한 학교 교육에 동참하고 있다. 안산형 진로 맞춤 프로그램도 지원하고 있다. 일반 고등학교의 진로교육을 지원하는 '일반고 개별화 교육과정 다함성 프로젝트'를 내년부터 특성화 고등학교를 포함한 24개 전체 고등학교로 확대하며, 진로 코칭이나 전문 직업체험, 부모 교육 등의 교육지원 시책도 대폭 보완할 예정이다. 안산시의 다문화 학생에 대한 배려도 특별하다. 다문화라는 특수성을 고려한 다양한 교육을 통해 잠재능력을 계발하고 자신의 세계를 넓혀 세계시민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단순 언어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배우며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안산시는 국내 최초로 외국인에게 어린이집에 이어 유치원 등 누리과정 학비를 지원한다. 외국인 아동 누리과정 학비는 민선 7기 안산시의 공약사업으로 지난 7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는 외국인 아동의 보육료를 지원하는 것에서 시작해 관내 유치원에 등록된 외국인 아동을 대상으로 유아 학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확대된다. 현장체험 학습을 위한 지역교육 인프라도 지속적으로 발굴해 안산지역교육청과 연계하는 등 도시 전체가 즐거운 교육의 장이 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교육경비를 지원하는 학교환경개선사업에도 적극적이다. 안산시는 올해 160억 원의 예산으로 919개의 사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단순한 환경개선보다는 학교와의 공감대를 통해 미래인재를 육성하는 정책과제에 집중할 계획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을 바꾸는 것은 교육'이라는 표현은 분명한 사실이다. 교육은 현재의 도시를 살리고 인재를 양성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걸음이 될 수 있다. 안산시는 학생, 교사, 학부모가 만족하는 새로운 교육이 될 수 있도록 모든 관계자들과 소통하며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안산시가 혁신교육의 메카가 되도록 더 많은 노력을 할 계획이다. 즉 시와 학교, 지역사회가 보다 더 결합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지역의 교육생태계를 완성해 갈 것이다. 무엇보다 학생, 교사, 마을활동가 등이 함께 '교복 입은 시민'인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점에서 안산시는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를 구축한다는 목표로 안산교육지원청과 협력해 학생들의 보편적 교육복지 실현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시행해 나갈 것을 약속한다./윤화섭 안산시장윤화섭 안산시장

2018-09-10 윤화섭

[참성단]대부도의 '그랑꼬또'

지금이야 방조제 도로로 연결돼 섬이랄 수도 없지만 대부도는 대교로 연륙된 선재·영흥도로 이어지는 수도권의 드라이브 명소다. 대부도를 찾으면 포도원들이 줄줄이 눈에 띈다. 도로변에는 포도농가들이 그럴듯하게 작명했지 싶은 '비가림 포도'나, '알솎음 포도'를 판매하는 간이매대가 늘어서 주말 행락객을 유혹한다.포도는 포도주, 즉 와인으로 가공돼야 부가가치가 급상승한다. 문제는 국내에서 와인을 제조해도 시장의 호응이 신통치 않은 점이다. 서구의 와인문화가 워낙 독보적이라서다. 와인이 빠진 그리스·로마의 신화를 상상하기 힘들다. 플라톤은 와인을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 예찬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최초로 행한 기적이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이고, 최후의 만찬에서는 포도주를 자신의 성혈로 여기라 했다. 신화시대의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기독교의 제의에 이르기까지 포도주의 위상은 절대적이다.와인으로 숙성된 서구문화인 만큼 프랑스, 이탈리아의 유럽이 와인산업을 장악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여기에 대항해시대 유럽에 정복당해 와인문화권에 포함된 남북아메리카가 가세해, 글로벌 와인시장을 놓고 벌이는 유럽중심의 구세계와 칠레와 미국 등 신세계 사이의 시장쟁탈전이 치열한 실정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이후 와인시장이 확장된 국내에서는 구세계 와인을 고급주로, 신세계 와인을 대중주로 취급하는 경향이 뚜렷하다.지난 주말 명품 포도밭 대부도에서 와인 페스티벌이 열렸다. 대부 포도로 만든 지역 와인 '그랑꼬또'를 알리기 위한 축제였다는데 각계 명사와 일반 와인 애호가들의 시음평이 좋았다고 한다. '그랑꼬또(Grand Coteau)'는 불어로 큰 언덕을 뜻한다. 큰 언덕 대부(大阜)를 곧이 곧대로 상표로 옮겼으니, 작지만 강한 자존심이 프랑스 전통 와이너리 못지 않다. 그래서인가 출시 19년만에 그랑꼬또는 아시아 와인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차지하며, 국내외 소믈리에에 극찬을 받는 와인으로 성장했다.여기에 이르기까지 대부 포도의 품질을 믿고 19년 동안 와인을 빚어온 대부도 토박이 김지원 그린영농조합 대표의 뚝심이 있었다. 한 병의 와인에는 세상의 어떤 책보다 더 많은 철학이 있다는 말처럼, 그랑꼬또는 오랜 세월 김 대표의 희로애락으로 숙성됐을 것이다. 조급증이 일상화된 시대에 시간이 일으키는 기적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해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10 윤인수

[홍창진 칼럼]결심과 실천

'사랑' 말로 하기는 참 쉬워혈연외에 어떤 사랑도 없다면동물의 왕국과 무슨 차이일까행복이란 서로 움켜쥐는게 아니라주고 받는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스스로를 "바보"라고 칭했습니다. 말로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믿는 자'의 삶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며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했지요.매 주말 강론을 통해 신자들에게 '행동의 중요성'을 전해야 하는 성직자들의 흔히 경험하는 속내를 김 추기경은 팔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 솔직하게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부끄럽다는 그 고백 이면에서 오히려 강한 실천 의지가 느껴집니다. 실천하지 못했다는 반성은 곧 실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바보 선언'을 한 그의 삶에서 여느 고위 성직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사회 참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시대의 어른조차도 결심에서 실천에 이르는 길이 이토록 멀고 험한 것이라면 우리는 어떨까요?조카뻘 되는 어느 여자 이야기입니다. 미국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들른 한인성당에서 교포 2세 남자를 만났습니다. 서른쯤인 여자는 한국에서 취업을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미국 여행길에 혹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고 합니다. 남자는 편의점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 현지 명문대를 졸업한 뒤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둘은 첫눈에 서로 호감을 느껴 몇 차례 데이트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 여자가 귀국하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남자는 결혼을 결심하고 한국에 와 청혼을 했습니다. 여자의 부모에게도 허락받은 뒤 둘은 바로 미국에 건너가 남자의 부모에게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마침 미국에 갔을 때 사업을 하는 남자의 고모가 여자의 취직까지 해결해 주었습니다. 누구나 인생에 한두 번쯤 큰 행운이 온다고 하는데, 마침 그 여자에게 그런 행운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그러나 한국에 들어온 여자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예비 시댁 식구들과의 첫 식사 자리에 남자의 누나가 나왔는데 중증 발달장애자였던 겁니다. 물론 남자가 데이트 중에 장애인 누나가 있다고 얘기는 했지만,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하니 충격이 무척 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끝내고 둘이 있을 때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누님을 돌볼 능력이 없어지면 그때는 자기가 맡아서 돌봐야 한다고….여자에게는 인생에 한두 번 찾아오는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이 역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도 반대했고 친구들도 말리고 나섰습니다. 여자는 생각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결혼할 수 없다.' 중증 장애를 지닌 누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건 감내하기 힘든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여자는 행운을 불운으로 결론짓고, 미국행을 포기하기로 했답니다.사랑을 말로 하기는 쉽습니다. 남의 위대한 사랑에 박수 치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실천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만일 중증 장애를 지닌 딸을 보살피는 부모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TV에 방영된다면,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감동의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여자도 그런 프로그램을 보았다면 감동의 눈물을 흐리며 동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내 일이 되었을 때는 상황이 180도 달라집니다. 혈연으로 묶인 관계가 아닌 다음에야, 헌신하는 사랑을 감내하는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 없으면 이 세상은 사막처럼 답답해질 것입니다. 혈연 외에는 어떤 사랑도 없다면 동물의 왕국과 무슨 차이일까요? 약육강식만이 존재하는 살벌한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이란 움켜쥐는 것이 아닌,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서 생기니까요. 어느 누구도 여자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강요하지 못했습니다. 사랑은 스스로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그의 부모는 또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겠지요. 그들의 손을 잡아 줄 용기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여자가 한 사람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더 이상 삭막해지지 않으면 참 좋겠습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8-09-10 홍창진

[시인의 꽃]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김춘수(1922~2004)'누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서로의 관계맺음을 표상하는 것처럼 이름이 잦아드는 것은, 그 만큼 관계맺음에서 멀어진다는 것. 안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인바, 기억 속에 당신의 이름을 꺼내어 호명함으로써 '내가' 여기 '그에게' 살아 있음을 승인받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사실상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행위로서 자아는 타자의 생각 속에 이름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마치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아무것도 아니며 길가에 지나는 사람들같이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것같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유의미한 그 무엇인가 된다. 당신은 이름 속에 들어있고, 이름은 당신이라는 기억으로 타자에게 전치되는 것이기에, 당신의 그 이름은 누군가에게 당신이 가진 '빛깔과 향기'로서 살아있다. 그렇지만 꽃과 같이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피어 올려야 하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9-10 권성훈

[발언대]수의계약대상 금액범위 확대해야 한다

지역의 건설업체 일감 증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금액기준에 따른 2인 이상 견적서 제출 수의계약대상 금액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금액기준에 따른 수의계약 대상은 추정가격 기준 종합공사가 2억 원 이하, 전문공사가 1억 원 이하, 전기 등 그 밖의 공사는 8천만 원이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은 일반경쟁 입찰이 원칙이다. 천재지변, 금액기준 등에 따른 수의계약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2007년 9월 일부 개정된 이후 인건비, 자재비, 기타경비 등 물가상승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동일한 시설공사 물량 대비 10여 년 전에 비해 현재 설계금액은 상승됐다. 이는 곧 시군 지역 내로 제한하는 견적 입찰 소액공사 감소로 이어져 해당 지역 내 업체는 직접 수주하는 일감이 감소되고,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체결하는 계약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려고 '지방재정법'에서 규정하고 있던 지방자치단체의 계약처리 관련 사항을 분리 규정하는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지방계약법)'이 지난 2005년 8월 제정 공포된 이후 2006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또한 지방계약법은 16회, 동법 시행령 64회, 동법 시행규칙 26회에 걸쳐 일부개정 또는 타법 개정되어왔다. 하지만 지역 건설업체의 경영과 고용안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의계약 대상 금액기준 규정에 대한 개정은 단 한차례 밖에 개정되지 않았다. 연천군의 경우 최근 5년간 계약체결 기준으로 2인 이상 견적서 제출 수의계약 대상범위 금액을 현행 규정에서 정하고 있는 추정가격 기준 종합공사 2억 원 이하에서 4억 원 이하로, 전문공사 1억 원 이하에서 2억 원 이하로, 전기 등 그 밖의 공사는 8천만 원에서 1억 5천만 원 이하로 각각 확대할 경우 매년 20~30%의 물량을 지역 업체가 추가 수주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법과 제도는 시대의 변화와 환경에 맞게 개정되어야 한다. 지난 5월 기획재정부가 전문공사 등에 대한 지역제한 경쟁 입찰 대상금액을 7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2인 이상 견적서 제출 수의계약 대상 금액기준'을 확대하는 '지방계약법령' 개정도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 법령개정은 분명 지역 업체의 경영난 해소와 고용안정을 가져오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권영민 연천군 계약팀장권영민 연천군 계약팀장

2018-09-09 권영민

[기고]인천시, 한국근대문학관 적극 지원해야

2013년 9월 인천 중구에 한국근대문학관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국문학을 전공한 인천 사람으로서 매우 뿌듯했다. 전국 최초의 공공종합문학관이 들어섰다는 사실도 기뻤지만 그것이 우리 근대사에 매우 의미 있는 곳인 개항장에서 문을 연 까닭이다.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면서 학생들을 데리고 문학관을 다녀오는 것은 날을 잡아 행사를 치르듯 가야 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가까이 손쉽게 갈 수 있는 일상의 일이 되었다. 교실에서 배운 문학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현장의 학예사를 통해 다시 설명을 듣는 것은 학생들에게 우리 문학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더욱 폭넓게 하는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또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인천에 대한 자부심까지 함께 키우는 특별한 교육적 효과를 가져온다. 이것은 비단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 인천 시민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천은 단일 도시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고 인구도 300만이 넘는 광역시이지만 한편으로는 서울에 근접해 있다는 이유로 문화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다. 인천에는 무언가 내세울 만한 것이 많지 않다는, 일종의 문화적 갈증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인천 중구의 한국근대문학관이 더욱 좋은 문학관으로 자리매김하여 전국의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그런데 좋은 문학관이란 대체 무엇일까. 학생은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려고 할 때 가장 학생답고 예뻐 보이는 것처럼 문학관은 말 그대로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여 이를 시민들에게 알차게 소개할 수 있을 때 가장 문학관답고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넓은 부지를 확보하여 화려한 시설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관람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문학관이 문학관다울 수 있는 본질적 요건은 결국 그 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의 수와 콘텐츠의 질에 달려 있다. 좋은 문학관은 이처럼 국내의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방대하게 보유하고 있을 때 비로소 그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보증하며 빛을 낼 수 있다. 기획 전시와 상설 전시 운용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도, 이를 통해 근대 문학사의 흐름을 짚어내어 관람객에게 작품에 대한 이해와 감상의 안목을 제공하는 것도 모두 그 시작은 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의 수에 기인하며 그 질에 비례하는 것이다. 개관 5주년을 앞둔 현재의 한국근대문학관은 정기적인 기획 전시와 낭독콘서트 운영,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토요문화프로그램,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 강좌 프로그램 사업, 그리고 상설 전시실의 보완과 시설 확충 등으로 매년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다. 그런데 조금 아쉬움이 있다면 문학관으로서 자료의 수집에 좀 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는 점이다. 시, 소설, 수필 등 주요 근대 문학 작품들의 초판본들을 비롯하여 희귀본들에 대한 장서 확보는 문학관의 위상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잣대가 될 것이다. 우리 근대 문학을 알리는 문학관으로서의 본질에 더 충실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관련 자료의 확보에 관심을 갖고 공을 들였으면 좋겠고 이와 관련된 전시가 더욱 다채롭게 기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마침 시장님도 새로 취임한 마당에 인천시가 문학관의 가치를 재인식해서 획기적인 지원책을 폈으면 한다. 이만한 문학관은 전국 어디에도 없는데 조금 더 힘을 보태서 시민들에게 자부심이 되는 문학관으로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런 일로부터 새로운 문화도시 인천을 만드는 일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이동구 인천 광성고 교사이동구 인천 광성고 교사

2018-09-09 이동구

[참성단]오주석의 서재

2005년 2월 7일 자 신문에는 무심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스쳐 갈 부고 기사가 귀퉁이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수원출신 49세 소장 미술사학자 오주석(吳柱錫). 생전 그는 언론의 조명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진흙 속의 진주인 채로 젊은 생을 마감했다.어디에서건 우연히 잡은 그의 책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을 꼼꼼히 읽은 사람들은 그의 이력 중 '2005년 2월 5일 백혈병으로 별세'라는 마지막 글귀에 이르면 백이면 백 "아!"라는 탄식을 내뱉게 된다. 그 소리가 크면 클수록 그는 이 책에 흠뻑 빠진 사람이다. 그날 밤 그는 오주석의 생애가 궁금하고 "왜 내가 그의 강의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까"라며 잠을 설칠지도 모른다.오주석이 가장 사랑했던 화가 김홍도의 '씨름'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렇다. '등장하는 사람은 모두 22명인데 오른쪽 위의 중년 사나이를 보세요. 입을 헤 벌리고 재미있게 보고 있죠? 재미있으니까 윗몸이 쏠렸죠? 그 옆 장가든 친구는 씨름판에 오자마자 팔베개를 했군요. 씨름판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얘기죠. 왼쪽 관람객 중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자는 갓도 삐딱하게 쓰고. 하여간 성격도 소심하고 영 시원치 않죠?' 이런 해설에 일반 독자는 말할 것도 없고 전문가들도 열광했다. 입에서 입으로 알려진 이 책은 스테디셀러가 됐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해설을 다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할 것이다.오주석의 호는 '후소(後素)'다. '논어'에 나오는 '그림은 먼저 바탕을 손질한 후에 채색한다'는 '회사후소(繪事後素)'에서 따왔다. '사람은 좋은 바탕이 있는 뒤에 학문과 지식을 더해야 함'을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새털처럼 가벼운 '예능 인문학'이 판치는 지금, 인품과 학식 모두 출중했던 오주석이 더욱 더 그리운 것이다.인문학 도시 수원에 오면 화성 말고도 반드시 들러야 할 새로운 명소 하나가 더 생겼다. 지난 5일 개관한 '열린공간 後素 '다. 행궁 인근 사가(私家)를 수원시가 사들여 오주석의 공간으로 꾸몄다. 1층은 전시실, 2층은 생전 오주석이 모은 자료와 책들로 '오주석의 서재'가 복원됐다. 13년 전 타계한 한 젊은 미술사학자를 과감하게 다시 불러낸 수원시의 결단도 놀랍거니와, 무엇보다 수원은 '오주석의 서재'로 인문학 도시의 튼튼한 초석이 마련됐다. 그를 수원의 문화콘텐츠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이제 그건 살아 있는 자의 몫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09 이영재

[김나인의 '생활관상']억만금을 주고도 강제로 꾸미거나 살 수 없는 것이 눈빛이다

선(善)과 악(惡)으로 갈리는 업보얼굴 모습 변화시킬 수 있지만 눈의 형상·눈빛은 바꿀 수 없어하늘영역의 가치 기준이기 때문에관상학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눈이 어둡고 흐릿하며 술에 취한 듯 초점이 흩어지고 눈동자가 불명하거나 흰자위에 붉은 줄이 생기면 기혈작용이 막혀있다는 징후이니 마음에 근심을 안고 사는 사람이며, 현재의 운이 불길하다 말할 수 있다. 평소와는 달리 눈이 갑자기 튀어나온 듯 보이며, 눈동자가 간질간질하고 무겁고 아픈 증상이 생기면 해와 달이 구름 속에 갇혀 정기를 잃어버린 것과 같으니 신변에 불리한 일이 생긴다 보는 것이다.아무리 얼굴이 맑고 풍륭해도 눈빛이 흐릿하고 초점이 흩어지고 어두우면 잘 되어가던 일도 갑자기 막혀 고전하게 되며 심하면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 등으로 생명에까지 위태로운 일이 발생 되는 것이다. 중병으로 죽어가던 사람도 눈빛이 밝아지고 은은한 광채가 발하면 그때부터 회복되기 시작하여 건강을 되찾게 되나, 이와 반대로 안신이 꺼져가는 불빛처럼 흐릿하고 탁해지면,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니 부귀영화도 물거품처럼 흩어져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눈은 크기와 상관없이 광채가 나고 초점은 분명하며 맑고 선명해야 정신기(精神氣)의 상태가 온전하고 기혈작용이 정상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마음의 바탕에 담긴 정신의 상태에 따라 운의 흐름이 눈에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니, 그래서 눈은 마음의 거울이고, 마음을 담은 그릇이라 말하는 것이다.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건강해 보여도 얼굴에 담겨있는 기색의 형상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에 따라 상(相)은 변하고 바뀌게 된다. 좋은 생각, 배려와 관심 그리고 작은 성의와 정성이 그 사람의 명운을 좋게 만드는 경우가 흔한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이익이 아닌 타인을 위하는 마음으로부터의 출발, 그것이 양심이며 양심이란, 내가 행하여 싫은 것은 남에게도 보여주거나 강제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배고픈 사람이 더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나누어 함께 먹는 일, 그것이 선업이고 양심 있는 삶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본의 아니게 남에게 피해와 상처를 남기는 일이 너무도 많다. 무심코 던진 사소한 말 한마디가 상대방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고, 작은 배려가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사람이 행하는 모든 행동은, 그것이 비록 미미하고 사소하여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일이라 해도 모두가 선(善)이든 악(惡)이든 업(業)을 남기는 일이며, 훗날 과보가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 오는 것이니, 이 업보에 따라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어 명운의 틀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은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선업과 악업은 남몰래 숨어 행한다 하여 언제까지나 감출 수만은 없는 일이며, 드러내놓고 행한다 하여 모두가 칭송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이해가 아닌, 갓 태어난 어린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생명의 소중함 외에 그 어떤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진정한 배려요 선업이라 할 수 있다. 선을 행하는 마음에 사람이든 동물이든 가릴 것은 없다. 이런 실천을 행하는 사람의 마음의 바탕에서 돋아나는 눈빛은 그래서 맑고 밝고 선명하며 은은한 광채를 발하는 것이다. 이런 눈빛을 가진 사람에게 어찌 자손에게 이로움이 없다 말하며, 그 집안이 흥함을 의심하겠는가. 때가 되면 반드시 발하는 것이 과보이니, 훌륭한 부모를 둔 것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생을 하며 살아온 것도, 형제 덕이 있고 좋은 친구를 만나는 일도, 좋지 않는 친구를 곁에 두어 쇠락의 길을 동행하는 것도 모두가 전생의 과보일진대, 누군들 부잣집에서 태어나 고생 없이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망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라도 부모를 직접 선택하고, 자신의 얼굴을 직접 만들고, 세상에 태어나는 날을 직접 가리어 세상에 나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니 이것이 숙명이요, 과보에 따른 현생에서의 출발선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 의지와 맞물려 운명이라는 틀에서의 또 다른 업보를 만들게 되는 것이고, 이 업보가 선(善)과 악(惡)이라는 어떤 결과물로 나타나는바, 얼굴 모습은 다르게 꾸미고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지만, 눈의 형상과 눈빛의 기색만은 그 어떤 것으로도 꾸미거나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인간 의지를 넘어서는 하늘의 영역에서의 가치기준에 기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상학에서도 눈의 형상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

2018-09-09 김나인

[월요논단]석가모니의 비구 승가 해산과 탁발 없는 조계종

걸식은 육신 욕망 끊는 수행이자가장 적극적인 무소유의 실천타인 통해 자신 존재 깨닫는 계기한국 1964년부터 '탁발 금지'타당한 근거 어디엔가 있길 바라당분간 조계종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불교계 상황은 암울할 듯하다. 총무원장 설정을 탄핵했다고는 하나, 그간 만연했던 악습을 청산해 나갈 세력이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조계종의 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측에서는 현재의 간선제를 반대하고 있다. 선거인단 대부분이 자승 전 총무원장의 영향력 아래 있으므로, 자승 전 총무원장의 지원을 받는 후보가 새로운 총무원장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 기실 자승 전 총무원장을 둘러싸고 제기된 여러 의혹들도 사소하다 치부하기는 곤란한 수준이다.혼란한 불교계를 접하면서 석가모니의 비구 승가 해산 일화가 떠올랐다. 공양물의 배분을 두고 비구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자 석가모니는 승가를 해산시켜 버렸다. 이후 뉘우친 비구들이 하나, 둘씩 다가와 사죄하며 모였을 때 석가모니는 다음과 같이 설하였다. 출가의 목적이 생활필수품을 마련하는 데 있지 않고, 깨달음을 얻는 데 있다는 내용이었다."걸식이라는 것은 삶을 영위하는 가장 미천한 방법이다. 세상에서 걸식하러 돌아다닌다는 것은 욕하는 말이다. 하지만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바른 목적을 추구하는 자라서 걸식하는 삶을 산다. 왕에게 이끌려서도 아니고, 도둑에게 이끌려서도 아니며, 빚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생계 때문에도 아니다. 오직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탄식·고통·절망에 빠져 있고, 괴로움에 압도당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괴로움의 무더기가 끝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다."(상윳따니까야- '걸식경')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비구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 즉 걸식(乞食, 탁발)이 아닐까 싶다. 주지하다시피 음식 섭취 문제는 생존에 직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식하라는 것은 음식마저도 소유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초기승가에서는 음식에 대한 집착 및 욕망을 막기 위하여 음식의 저장·취사를 금지하였다. 그러니 걸식은 육신의 욕망을 끊어내는 수행이자 가장 적극적인 무소유의 실행이었던 셈이다. 또한 낮은 자리로 내려갔으니 하심(下心)을 수행하는 방편이기도 하였으며, 타인을 통하여 비로소 자신이 존재할 수 있음을 매양 깨닫게 되니 아상(我相)을 끊어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겠다. 다른 한편에서는 걸식 과정에서 중생의 삶을 이해하고 포교해 나가기도 했으리라.중요한 수행 방식이었던 만큼 석가모니 역시 걸식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예컨대 잡아함경의 '걸식경(乞食經)'을 보면, 가사 입고 지팡이 짚은 석가가 아침 일찍 발우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걸식하는 면모가 표현되어 있다. 심지어 탁발에 실패하여 굶는 일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래도 석가는 걸식의 원칙에 따라 공양을 걸렀다. 마명(馬鳴)의 '붓다차리타'에 따르면, 인간의 숙명에 대해 고뇌하는 태자에게 사문(沙門)의 삶을 일러준 존재는 정거천(淨居天)의 왕이었다. 출가한 태자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도 처음 들었던 사문의 생활 방편, 즉 걸식을 이어나갔으니 끝까지 초발심을 이어나간 셈이라고 하겠다.한국의 조계종에서는 1964년부터 탁발을 금지하고 있다. 탁발 금지의 이유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대략 네 가지 정도가 확인되었다. 승려라 사칭한 이들로 인해 발생하는 민폐를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이 많았고, 타 종교에 대한 배려라는 주장도 있었다. 일각의 주장이기는 하나, 화폐를 중심으로 경제 체제가 바뀐 데 대한 적응이라는 해석도 있었고, 승려의 품위를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설도 나타났다. 글쎄, 나로서는 이 가운데 어느 것도 탁발 금지의 근거로 타당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모쪼록 내가 아직 확인하지 못한 탁발 금지의 타당한 근거가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기를 희망해 본다. 계율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비구라면 마땅히 걸식으로써 삶을 이어나가야 했던 시대의 치열한 수행 자세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드러난다면 더욱 반가운 일이겠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8-09-09 홍기돈

[발언대]식스팩 거절근육을 만들자

멋진 식스팩 근육을 가진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우리 몸에 근육이 필요한 것은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멋진 몸매는 덤이다. 멋진 근육을 만들기 위해 식(食)습관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면 근육통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꾸준히 운동을 하면 어느새 근육통은 사라지고 근육이 만들어지는 것이다.공직자들에게 꼭 필요한 근육이 있다. 바로 '거절근육'이다. 공직자들은 부정청탁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 거절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쉽지 않다. 상대방이 대부분 공직자들과 친분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단절이나 직·간접적인 불이익도 공직자들이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청탁금지법 제7조 제1항은 좋은 명분이 된다. 최초 부정청탁을 받았을 경우 이를 거절하는 의사를 명확히 표시하도록 공직자들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량한 공직자를 보호하기 위한 청탁금지법 제정취지와도 일맥상통한다. 튼튼한 거절근육이 필요한 이유다.식스팩이 그렇듯 거절근육도 절대로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오랜 관행인 부정청탁과 금품제공도 꾸준한 생활 속 청렴실천을 통해 바꿔 나갈 수 있다. 부정청탁과 금품제공이라는 유혹을 견뎌낼 수 있는 힘도 결국은 거절근육에서 나온다. "없던 일로 할 수 있지?" 업체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은 기관장이 담당 공무원에게 한 말이다. 해당 기관장은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과태료 1천만원을 부과받았다. 물론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안됩니다"라고 거절한 부하 직원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튼튼한 거절근육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들 마음 속에 거절근육을 만들 수 있는 훌륭한 헬스기구다. 건강한 몸을 위해 근육이 필요하듯 청렴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거절근육이 꼭 필요하다. 멋진 식스팩이 모든 공직자들 마음 속에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김주원 국민권익위원회 청렴교육 전문강사김주원 국민권익위원회 청렴교육 전문강사

2018-09-06 김주원

[춘추칼럼]정말, 사람이 먼저다

文정부 '지역밀착형 생활 SOC' 정책 제시많은 편의시설 '왜 개점휴업인지' 살펴야 주민과 공동체활동 역량갖춘 활동가 부족실생활에 필요한 사람 발굴 미래 달려있다문재인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Social Overhead Capital) 투자 정책 카드를 들고 나왔다. 핵심은 '생활 SOC' 개념이다. 지금까지의 사회간접자본 투자, 즉 4대강 사업과 같은 대형 토목공사와의 차별화를 통해 지역밀착형 생활 부문에 다양한 사업을 통한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 등을 꾀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당장 2019년도에 국비 8조7천억원과 지방자치단체 매칭 예산을 합치면 12조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될 전망이다. 구체적으로는 '10분 내 체육시설' 등 편의시설 확충에 1조6천억원, 노후 공공임대주택 시설개선과 같은 생활안전 인프라 확충에 2조3천억원, 취약지역 도시재생 사업에 1조5천억원이 투입된다.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역밀착형 생활 SOC' 개념은 환영할 만한 정책이다. 기존의 도로, 철도, 건설 등 개발 위주의 사업이 아니라 체육센터, 박물관, 도서관, 어린이집, 공공의료기관 신설, 전통시장 등 실제 주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생활문화시설 중심의 사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람들이 정책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은 결국 자신들의 일상적 삶의 과정에서 느끼는 체감도와 맞닿아 있다. 단순히 국가 차원에서 진행되는 대단한 변화나 발전은 더 이상 개인이 자신의 삶의 변화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생활 SOC는 그러한 구체적인 삶의 과정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공간과 시설 등을 통한 정책의 개입을 가능하게 만드는 작용을 할 것이다. 지난 9월4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시 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도 "그동안 우리는 대규모 SOC 위주의 정책을 펼쳐 경제를 발전시켰지만 상대적으로 우리 일상에서 필요한 생활 기반 시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앞으로는 공공 투자도 지역 밀착형 SOC로 전환해 나갈 것"이라고 하면서, "생활 SOC는 사람에 대한 투자이며 지역에 대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구산동도서관마을에 대해 "지역 주민이 주도하고 지자체와 정부가 지원하는 주민 참여와 협치의 대표적인 모델"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이번 '지역밀착형 생활 SOC' 정책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도로나 철도 건설에서 생활편의시설로의 사업 방향이 전환되었다는 점만 강조하게 되면, 결국에는 같은 비슷한 '건설' 사업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번 정책과 예산이 정말 지역에 대한 투자가 되려면 지역에서 생활편의시설 등이 어떻게 기능하고 운영되는지를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지금 많은 지역에서 절대적 공간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산 부족과 운영 관리 등의 문제로 인해 많은 생활문화시설이 개점 휴업인 상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런 문제가 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업은 단기적으로 예산이 투입되는 여타의 사업과 크게 구별되지 않을 것이 뻔하고 인구절벽과 같은 다양한 사회문제 앞에서 향후 발전적인 모습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문제는 결국 사람이다.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현장을 누비면서 활동할 수 있는 민관의 활동가가 얼마나 많은가의 문제이며, 공간을 운영하면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다양한 공동체활동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주체들이 얼마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 지점에서 정부가 '생활 SOC' 사업의 중요한 방향을 설정해 두지 않으면 지역과 동떨어진 형태로 남아 소수 정치인의 업적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지금 지역에는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 부족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작은 동네 기반의 지역사회 활동에 등장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책을 썼다. 사람이 중요하다. 이제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사람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진짜 실생활에서 필요하고 중요한 사람을 발굴할 것인지에 국가의 미래뿐만 아니라 지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8-09-06 권경우

[기고]부평 뮤직위크와 음악도시의 길

인천 부평 곳곳을 음악열정으로 가득 채운 뮤직위크가 지난달 23~25일 열렸다. 부평공원 및 신촌지역 일대, 부평역 지하상가(모두몰)와 부평 문화의 거리, 도시재생사업대상지인 굴포천먹거리타운 등 3곳을 중심으로 전문공연팀에서 음악동아리를 아우르는 70여 개 팀이 3일 동안 100여 차례에 걸쳐 길거리 버스킹, 북콘서트, 뮤직살롱을 꾸몄다.뮤직위크는 시민들이 살아가는 장소를 기반으로 시민들과 함께 부평을 음악도시로 가꾸어가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그곳의 사람을 즐겁게 해주어야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음악도시사업을 즐기게 하자는 것이다.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에 걸쳐 진행되는 문체부의 부평 음악융합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 3년차(2016~2020년)를 맞아 올해 3월부터 사업의 재정비계획이 수립되었다. 핵심가치는 장소의 음악중심 문화재생이다. 음악을 수용, 향유하는 생활환경이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음악과 관련한 문화산업도, 문화재생을 통한 도시의 지속가능한 발전도 불가능하다.부평은 오랜 역사성을 지닌 도시이지만 근대를 거치면서 외부 요인들에 의해 내발적 발전이 질곡, 왜곡되어 왔다. 일제강점기의 군수기지, 해방 후 미군기지 애스컴시티, 개발독재에 의한 수출산업단지 조성 등 도시화과정 자체가 삶의 자기결정권과 문화주체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기도 했다.지금 부평은 대중음악을 중심에 두고 문화특화지역 조성, 나아가 문화도시로의 발전을 꿈꾸고 있다. 그 출발점은 과거 부평의 미군기지 애스컴시티를 통해 해외의 대중음악이 한국으로 소개, 보급되는 창구였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비록 외생적 요인에 의해 형성, 소멸되었지만 그 당시 음악의 창조적 재생을 통해 지역의 대중음악씬(SCENE)이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 2020년 이후 미군기지 반환과 연계될 수 있다면 더욱 실체화될 것이다.뮤직위크에 이어 10월 26일과 27일에는 지난 5년간 축적된 부평 밴드페스티벌을 업그레이드해 대중음악을 즐기는 경인권의 젊은 계층이 참여하는 부평음악도시축제 '뮤직게더링 2018'이 준비되고 있다. 미디어와 대자본에 의해 공장식으로 제작돼 소비되는 일방적, 몰지역적인 음악산업시스템에 대응하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보고자 함이다.'뮤직게더링 2018'은 홍대 앞 라이브클럽과의 제휴, 협력을 통해 지역기반의 대중음악씬을 만드는 것을 중심에 두고 있다. 이와 함께 홍대 앞 라이브클럽데이와 인천 부평 라이브공연 공간의 협력 프로그램과 함께 애스컴시티의 음악적 재창조 프로그램이 신촌지역에서 진행될 예정이다.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장소기반의 뮤직위크, 홍대지역과 인천 부평지역 대중음악의 연대에 의한 지역 기반의 대중음악생태계 형성이라는 양날개를 통해 부평은 음악중심 문화도시로 날아오를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모든 사업들은 부평을 음악중심 문화도시로 바꾸어나가려는 거버넌스 체계로 수렴된다. 위로부터의 탑다운 방식의 사업이 사업종료 무렵에는 시민이 주도하는 아래로부터의 버텀업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시민, 청년문화기획자들을 대상으로 자기주도형 지원공모사업도 본격적으로 펼칠 계획이다.2020년까지 주어진 시간과 재원으로 부평이 제대로 된 음악중심 문화도시로 가기에는 그 한계가 뚜렷하다. 다행히 올해부터 부평이 추진해온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을 예비단계로 설정한 문체부의 '5개년 문화도시 조성사업'이 개시된다. 사업을 완성하기 위한 사다리가 만들어진 셈이다.무엇보다 뮤직위크와 뮤직게더링을 통해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이 지역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토대로 내년부터 사업성과를 인천시 전체차원에서 공유하고 지역 자산화하여 문화도시 지정을 위한 계획 수립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최정한 부평 음악융합도시 조성사업 총괄기획가최정한 부평 음악융합도시 조성사업 총괄기획가

2018-09-06 최정한

[참성단]유감! 경기필하모닉

지휘자 성시연 퇴진 이후 경기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자리는 공석이었다. 공교롭게도 경기필하모닉 상주 공간인 경기도 문화의 전당도 내부수리가 진행 중이었다. 지휘자도 없고 연주회장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지난 5월 상임 지휘자로 이탈리아 출신 마시모 자네티가 낙점됐다. 문화의 전당 역시 오는 11일 재개관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재개관 후 첫 번째 공연으로 자네티의 데뷔 연주회가 잡혔다. 이런 스케줄은 의심의 여지 없는 너무도 당연한 결정이었다.경기필하모닉 역사상 첫 외국인 상임 지휘자, 리모델링이긴 하지만 무려 180억원이 투입된 후 새로 문을 여는 연주회장. 도민의 기대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자네티가 8일 경기필하모닉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먼저 공연을 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상 데뷔연주회가 서울에서 열리는 것이다. 도민들은 크게 당황했다. 새집에 입주하면서 집들이를 남의 집을 빌려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8개월의 보수공사, 상임 지휘자의 공백을 아무런 불평 없이 묵묵히 기다려 준 도민들의 입장에선 '충격' 그 자체다. "'경기필하모닉'의 간판을 떼서 '서울필하모닉'으로 바꾸라"는 열혈팬들의 주장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만일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필하모닉 데뷔 연주회를 뮌헨이나 프랑크푸르트에서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됐을까'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꿈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세계적인 음악평론가 볼프강 슈라이버는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필하모닉 데뷔연주회, 즉 베를린 청중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적었다. '2002년 9월 7일. 첫 콘서트는 대성공이었다. 베를린필하모닉은 최고의 긴장감과 기쁨을 안고 말러의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오케스트라, 언론, 청중의 반응을 그저 행복감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뭔가 모자라는 듯했다. 은발의 곱슬머리가 뿜어내는, 상냥하면서도 힘찬 자태와 우아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생동감이 베를린을 뒤덮었다. 새로운 예술감독에게 거는 기대가 치솟아 올랐다. 베를린 청중은 그를 신뢰했고, 래틀 역시 베를린 청중을 신뢰했다'.경기도민도 그런 감동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기대는 무산됐다. 서울에서 먼저 연주하던 관행, 서울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은 전 지휘자 한 명으로 충분하다. 이제 이런 한심한 행위가 더는 자행돼선 안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06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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