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참성단]불 꺼진 다다익선(多多益善)

1985년 11월 15일 국립 현대미술관 과천관 신축 상량식이 열렸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미술 관계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나선형 공간을 계단을 타고 빙 돌아 올라가게 만든 구조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구겐하임을 모방했다" "독창성이 없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김수근이 설계한 부여박물관의 '왜색 논란'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에는 꽤 시끄러웠다.결국 논의 끝에 그 공간에 백남준의 작품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됐다. 이게 '신의 한 수'가 됐다. 88올림픽 개막과 함께 설치된 백남준 비디오아트의 걸작 '다다익선'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름 7.5m 원형에 높이 18.5m, 개천절을 의미하는 1,003개의 모니터 속에는 서울의 풍경과 굿판 등 퍼포먼스 사진과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바이 키플링' 등 위성 프로젝트의 영상을 탑재했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려면 나사형 공간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이게 꼭 우리의 전통 '탑돌이' 의식과 비슷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역시 백남준은 천재였다. 다다익선은 기단부에 10인치 522대, 2단에 25인치 195대와 3단에 20인치 103대, 4단에 14인치 93대, 상륜부에 6인치 TV 60대로 이뤄졌다. 모두 브라운관인 탓에 그동안 중간중간 화면이 꺼져 2003년 전면 교체했다. 그 후에도 2010년 244대, 2012년 79대, 2013년 100대, 2014년 98대, 2015년 320대를 수리하거나 교체했다. 그러다 올 2월 가동이 완전히 중단됐다. 더는 브라운관 TV를 구할 수 없어서다. LCD 모니터로 교체하는 방안과 철거 후 오마주작품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두고 의견 조율 중이나 결론을 내지 못해 여전히 불 꺼진 상태로 있는 중이다.지난 12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 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이 문제를 거론해 다다익선이 또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백남준의 대표작이자 규모 면에서 가장 큰 작품. 외국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다다익선 미술관'으로 더 알려진 것도 그런 이유다. 특히 올해는 작품이 설치된 지 30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하지만 다다익선은 우리의 무관심속에서 8개월 째 먹통이다. 이는 우리 문화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말로만 자랑할 뿐, 정작 고국에서 백남준은 저평가된 예술가로 푸대접을 받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8 이영재

[월요논단]축제의 계절

평소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설렘과 즐거움 안겨주는 행사일회성 아닌 지속 연구·발전시켜 '그 책 축제는 가볼만하다' 라는좋은 평가가 나와야 할 것이다매년 9월과 10월이 되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축제들이 열린다. 지역 특산물 축제와 가을의 풍광을 만끽하기 위한 축제들이 대부분인데, 최근 몇 년 사이 각 지자체들이 책과 도서관에 관심을 기울이며 전국 곳곳에서 책 관련 축제들이 열리고 있다. 무엇보다 책을 주제로 하여 축제가 기획된다는 것은 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다.그런데, 전국에서 열리는 책 축제들을 보면 특색 있는 기획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곳에서 출판사 부스들을 줄지어 세워놓고 단순히 책을 전시·판매하는 것에 치중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지역의 책 축제를 그대로 들어다 다른 곳에 옮겨 놓는다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기서 거기인 비슷한 행사들이 많다. 이 와중에 출판사라도 재미를 본다면 다행이겠지만,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아 고스란히 다시 가져온다는 이야기도 많이 전해 듣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 축제를 즐기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축제인지 다시 한 번 되짚어보아야 하지 않을까?책 축제에 대해 아쉬움을 갖다보면 부산 국제영화제 같은 영화 관련 축제들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영화제가 있는데, 보통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특별한 장르의 영화를 수집해서 상영한다. 그리고 영화 상영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물론 책을 영화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긴 어렵지만, 영화제의 중심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화 그 자체가 주인이듯 책 축제 또한 책이 주인이 되어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더 이상 여러 출판사를 불러 모아 책을 전시하거나 책은 빠진 채 체험 행사들로 채워진 행사가 아닌, 지역문화와 어울리고 각자의 특색을 지닌 깊이 있는 책 축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몇년 전 프랑스에 살면서 책에 관련된 행사에 참석하는 기회가 있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의 탄생기념식을 하면서 그 작가의 삶에 대한 전시와 함께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생각하면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조용하면서 깊이 있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어가 부족하여 이해도가 낮았음에도 그 작가의 작품세계를 느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책 도시 베슈렐(Becherel)의 책 축제 또한 요란한 행사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책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책을 만져보고 바라보는 신비로움은 특별한 기억을 심어주었다. 책 만드는 과정을 직접 해보는 체험은 조용하고 진지하고 깊이 몰입되면서 설렘을 듬뿍 안겨주었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경험한 책 축제에는 책의 중요한 부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그림책 '중요한 사실'(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 최재은 그림.최재숙 옮김/보림)에서 그림책 작가는 본질적인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한 장면, 한 장면을 말해주고 있다. 눈은 차갑고, 가볍고, 하늘에서 살포시 내려오고,눈은 환하게 빛나고, 조그만 별이나 수정처럼 생겼어.눈은 언제나 차가워. 그리고 눈은 녹아.하지만 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눈이 하얗다는 거야.'눈이 하얗다'는 사실처럼 책 축제에서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조용하고 쾌적한 공간을 마련하여 한 명 한 명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만들고, 그 속에서 책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책과의 만남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에 책 행사의 열쇠가 있지 않을까.축제라는 것은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설렘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래서 우리는 축제를 기다렸다가 참여한다. 그런데 그 축제들이 일회성 행사로 행사를 위한 행사에 그치지 말고 '왜, 이 축제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물음과 답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조금씩 발전시켜서 축제 자체가 역사를 갖게 되어 '그 책 축제는 가볼만 하다'는 평가가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8-10-28 최지혜

[발언대]우리산업의 동반자, 외국인 고용허가제

최근 서울 도심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내국인과 차별 없는 근로조건을 요구하는 이주노동자 대회가 개최됐다. 같은 날 반대편에서는 최저임금의 최대 수혜자가 외국인 근로자라며, 불법체류자 추방 등을 주장하는 집회가 열렸다. 외국인의 국내유입에 따른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생 제도의 부작용을 보완하고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보다 안정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지난 2004년 도입된 제도이다. 2018년 10월 현재 약 25만여 명(비전문 취업 비자 소지자 기준)의 외국인근로자들이 한국의 산업 역군이 되어 우리 경제의 밑바탕을 함께 지탱하고 있다. 인천지역에만 약 3천770개 사업장에서 1만2천800여 명의 외국인근로자가 근무할 정도로 '고용허가제'는 이제 구인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의 산업현장에 있어 필수불가결의 제도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근로자, 특히 비전문 취업 비자(E-9)로 들어오는 경우 작업능력이 상대적으로 능숙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실 외국인근로자 재입국 제도'를 통해 한 사업장에서 4년 10개월 근무 후 재입국해 근무하는 외국인들은 숙련된 기능인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2018년 10월 현재, 인천 지역을 통해 입국하는 '성실 외국인근로자'만 해도 올해만 5천여 명에 육박할 만큼 사업체에서는 '전문'인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들을 위하여 '입국-체류-귀국'에 이르는 전 단계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특히, 문화와 언어적 차이에서 오는 여러 가지 갈등 해소와 근로자 숙련도 향상 등을 위하여 통역지원을 실시하고 있으며, 근로자의 숙련도 향상을 위한 재직 외국인근로자 훈련을 실시하여 근로자의 현장 적응력을 제고하도록 시스템적 지원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는 제조업 및 농축산·어업 사업주들에게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외국인고용사업체 역시 기술혁신 및 공정개발 등을 통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내국인 근로자가 취업하고 싶은 회사가 될 수 있도록 작업환경과 근로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 또한 병행해야 할 것이다./김현생 한국산업인력공단 중부지역본부장김현생 한국산업인력공단 중부지역본부장

2018-10-25 김현생

[춘추칼럼]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국정 운영

청와대 중심 정치 일상화·여당의 무기력언론자유 제한 등 대수롭지않게 간주하면정권 운명 바뀔수 있는 사태 발생할수도…국정 운영엔 무시할 만큼 사소한게 없다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은 1982년 '깨진 유리창 이론'을 발표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간단한 실험을 통해 이 이론은 입증됐다. 구석진 골목에 두 대의 차량을 주차시켰다. 한 대는 보닛을 열어둔 채, 다른 한 대는 보닛을 열고 앞 유리창이 깨져있도록 방치했다. 일주일을 관찰한 결과, 보닛만 열어둔 차량은 이전과 동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앞 유리창이 깨져있던 차량은 거의 폐차 직전으로 심하게 파손되고 훼손되었다. 이 이론이 주는 함의는 얼핏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일을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뒤집어 생각하면 최초의 변화를 야기한 작은 원인을 잡아내면 사태를 미리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4년 뉴욕시장으로 선출된 줄리아니는 이 이론을 적용해 지하철과 거리 곳곳에 그려져 있는 낙서를 지우는 운동을 전개했다. 결과적으로 시장 취임 2년 만에 중범죄가 50% 정도 줄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국정 운영과 접목시키면 주목할 만한 통찰력이 생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곧 1년 6개월을 맞이한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현 정부는 "이게 나라냐"를 외치면서 적폐 청산을 국정 운영의 핵심 기조로 삼았다.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열정과 도전은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 갤럽 조사 결과, 집권 2년차 2분기 문 대통령의 지지도(60%)는 비슷한 시기의 노태우(28%), 김영삼(55%), 김대중(52%), 이명박(27%), 박근혜(50%)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데 대통령의 높은 지지 속에서 권력의 3대 축인 당·정·청에서 그동안 우려할 만한 많은 일들이 발생했다. 가령, 통일부는 지난 15일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남북 고위급 회담을 풀(pool) 취재할 예정이었던 탈북자 출신 기자의 취재를 불허했다. 북한이 요청하지도 않았지만 상황의 특수성과 장소의 제한성을 근거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정무적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는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과 정면 배치된다. 정부는 작년 7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내세웠다. 탈북자는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고, 탈북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통일부가 탈북자라는 이유로 특정 기자의 활동을 제약한 건 분명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지난 3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흘에 걸쳐 대통령 개헌안을 발표했다. 국회에서 개헌안을 논의하기도 전에 청와대가 대통령 주도의 개헌안을 내놓은 것이 오히려 개헌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개헌만이 아니라 정부 부처를 제치고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청와대 중심 정치'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불만이 많았다. 현 정부 들어 6명의 장관급 인사들에 대해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지만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집권당인 민주당은 청와대의 졸속 인사 검증에 대해 비판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심재철 자유 한국당 의원이 청와대 업무추진비를 폭로했지만 민주당은 자료 취득 과정의 불법성에만 집중하면서 청와대를 방어하는데 급급했다. 집권당은 그동안 청와대 눈치만 보면서 스스로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하는 무기력의 극치를 보였다. 대통령 국정 운용 지지도가 높다고 "이것 하나 정도는 적당히 넘어가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향후 경제가 어려워지고, 한미 관계가 꼬이면서 대통령 지지도가 하락하면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더욱 강력하게 작동될 것이다. 청와대 중심 정치의 일상화, 여당의 무기력 심화, 언론 자유 제한 등을 사소한 일로 간주하면 정권의 운명이 바뀔 수 있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단언컨대, 국정 운영엔 무시해도 좋을 만큼 사소한 일이란 없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8-10-25 김형준

[풍경이 있는 에세이]페르소나의 정치학

일부 정치인 떠드는 말 거짓이란걸과거 발언통해 스스로 증명하는데여전히 가면 쓴채 큰소리 치고있다그들의 진짜 얼굴은 어디에 있을까너무 오래 탈 써서 아예 잃어버렸나잉그마르 베르히만이 1963년에 만든 '페르소나'라는 영화가 있다. 다소 어렵다는 평과 함께 인간의 심리를 철학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인정받는 작품이다.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유명 연극배우 엘리자베트가 '엘렉트라'를 공연하던 중 갑자기 말을 잃고 쓰러져 요양원으로 떠난다. 그녀를 돌보는 간호사 알마는 엘리자베트에게 인간적인 연민과 동정을 느낀다. 하지만 엘리자베트가 알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을 구경거리로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격적 태도로 바뀐다. 엘리자베트 남편이 방문했을 때 알마는 마치 엘리자베트라도 된 듯, 그녀의 말과 행동을 대변하는 이상한 증상을 보인다. 정신을 차린 후에도 알마는 점차 엘리자베트와 비슷해지다 마침내 두 인격이 하나로 겹쳐진다. 끝으로 가면서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데, 두 사람은 자아와 가면 사이에서 오히려 자신을 더 정확하면서도 고통스럽게 볼 수 있게 된다.'페르소나'는 원래 그리스 연극에서 '가면'을 뜻하는 용어로, 근대 심리학에서 '자아 밖의 자아' '가면을 쓴 인격' 등의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화배우나 탤런트가 극 중에서 연기를 하면 그 배우는 자신의 삶이 아닌 극 중 인물의 삶을 살게 되는데, 이것이 말하자면 배우의 페르소나이다. 하지만 페르소나가 영화배우에게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본래의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타자에게 비치고 싶은 또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다른 얼굴'이라는 이름으로 내재해 있다 어느 순간 밖으로 슬그머니 나타난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인 척한다든지, 불우한 처지에도 행복한 듯 포장하는 경우가 있다. 때에 따라선 타인에게 해를 끼칠 목적으로 선한 양의 가면을 쓰는 일도 있다.특히 옛날보다 미디어와 SNS가 생활의 중요 공간이 된 요즘은 이런 형상을 더 흔하게 볼 수 있다. 미디어와 SNS상에서는 상대방과 '진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 페르소나를 마치 나 자신인 것처럼 전면에 내세우기가 간편하다. 일례로 전화, 메일, 메시지 등을 통해 검찰이라고 사칭해 돈을 뜯어내려는, 소위 '피싱'이 요즘 심각하다. 그리 악의적인 것은 아니라 해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자신의 사진을 일명 '뽀샵' 처리해서 실제 모습과 다른 사진을 게재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타인에게 해가 되느냐 아니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둘의 근본적인 작동원리는 같다. 즉 내 얼굴이 아닌 '페르소나'를 내세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위장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진짜 얼굴과 페르소나 사이의 간격이 멀면 멀수록 진실로부터는 멀어진다. 특히 이것이 개인의 영역에서는 문제가 안 되지만, 타자와 어떤 식으로든 소통이 되는 과정에서는 '정치적'인 문제로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정치란 개인과 타자 사이의 권력관계이기 때문이다. 페르소나가 타자의 영역으로 손을 뻗치는 순간, 우리는 두 얼굴을 구별하기 위해 희생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진실과 허구 사이의 거리가 가까우면, 마치 알마가 엘리자베트에게 동정하고 연민을 느끼듯 타자를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그 틈새가 커져 임계점을 넘으면 자연히 알마가 속았다는 걸 알고 분노하듯 우리도 공격하게 된다. 한번 속고 나면 그 실망과 분노는 다시 원래의 얼굴을 보인다 해서 쉬 해소되지 않는다.나는 오늘 우리 사회 각처에서 그런 과잉된 페르소나를 본다. 일부 정치가는 지금 떠드는 말이 거짓이라는 걸 과거 자신의 발언을 통해 스스로 증명하는 데에도, 여전히 가면을 쓴 채 큰소리를 치고 있다. 대기업이 회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당한 수단을 쓴다는 걸 다 알고 있는 데도, 마치 국가 경제를 위해 헌신하는 듯 애국 마케팅을 강조하기도 한다. 적폐세력과 내통해 법질서를 무참히 짓밟아 놓고도 아직도 잘못한 게 없다고 국민을 한참 아랫것인 양 깔보는 자들도 있다. 그들의 진짜 얼굴은 어디에 있을까. 너무 오래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어서 이제 진짜 얼굴을 잊은 건 아닐까. 아예 잃어버린 건 아닐까./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2018-10-25 정한용

[참성단]최종현 학술원

수원이 배출한 기업인 SK 고 최종현 선대회장은 기업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인재 키우기'라고 보았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만큼 사람이 가장 큰 자원이고, 기업 경쟁력도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1974년 개인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만든 것도 그런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유학생을 선발했다. 그 조건이란 '학비·생활비 무료'였다. 1인당 국민소득 560달러이던 시절, 유학생 1인에게 연간 학비 3천500달러, 생활비 4천달러를 지원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지난 44년 동안 747명의 해외 명문대 박사를 배출한 것을 비롯해 3천700여 명의 장학생을 지원했다. 1973년 후원사를 찾지 못해 폐지 위기에 놓인 TV 프로그램 '장학퀴즈'를 살린 것도 그였다. 최 선대회장은 "청소년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라면 열 사람 중 한 사람만 봐도 무조건 지원하겠다"며 아낌없이 후원했다. 덕분에 장학퀴즈는 국내 최장수 TV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장학퀴즈 500회 특집에서 "장학퀴즈로 벌어들인 돈이 7조원쯤 될 것이다. 기업 홍보 효과 1조~2조원,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교육한 효과가 5조~6조원"이라고 말했다.최 선대회장은 인재 양성에 대한 많은 어록도 남겼다. 1978년 한국고등교육재단 지원으로 유학 가는 학생들에게 "21세기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되고 SK는 세계 100대 기업 안에 들어갈 것이다. 지금은 변방의 후진국이지만 인재양성 100년 계획에 따라 고도의 지식산업사회를 목표로 일등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 말은 현실이 됐다. 고인의 뜻을 기린 '최종현 학술원'이 다음 달 공식 출범한다는 소식이다. 최태원 회장과 SK(주)의 출연 등 1천억원이 바탕이 됐다. 국가의 앞날을 누구보다 더 걱정했던 최 선대회장의 애국심, 자나 깨나 인재 발굴에 골몰했던 뜨거운 열정을 고려한다면 '최종원 학술원' 출범은 사실 늦은 감이 있다. 10년 전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우리에겐 여전히 많은 인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최 선대회장이 타계한 지 20주기다. 고인의 뜻에 힘입어 '최종원 학술원'을 통해 한국의 미래를 이끌 많은 인재들이 육성되길 바란다.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을 묵묵히 수행했던 고인이 유난히 그리운 요즈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5 이영재

[기고]가정폭력, 자세히 알고 제대로 대처하자

앞으로 닥칠 피해 막막하지만또 한편으론 가정 유지를 위해 신고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지원제도가 있으니꼭 경찰에게 도움 받기를 바란다가정폭력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가정폭력 사건은 2015년 1만1천908건, 2016년 1만3천995건, 2017년 1만4천707건으로 매년 1천500여건 이상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정폭력은 무엇일까. 가정폭력은 쉽게 말해서 가정 구성원 일방이 그 상대방에게 신체적 또는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가정폭력의 범죄 유형은 형법상 상해, 유기, 학대, 감금, 협박, 강간 또는 강제추행, 명예훼손, 강요, 사기, 공갈, 재물손괴 등 다양하다. 지역경찰관서(일명 지구대 또는 파출소)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남편이 때린다'는 등의 이유로 각 지방경찰청 112종합상황실에 신고가 접수된다. 그러면 통상 코드0 또는 코드1(코드 네임은 긴급성과 중대성으로 나뉘며 숫자가 적을수록 사안이 중하다는 것이다)로 출동 지령을 하는데 이는 그만큼 가정폭력이 위험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가정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 112신고를 접수한 경찰관은 현장 출입 및 조사를 실시한다. 또한 가정폭력 범죄 특성상 응급조치를 하게 되어있다. 첫 번째로 폭력행위 제지, 가·피해자 분리. 두 번째로 피해자 보호시설 연계. 세 번째로 피해자 치료기관 인도. 네 번째로 임시조치를 신청할 수 있음을 통보해준다. 임시조치는 검사 직권 또는 사법경찰관이 검사에게 신청하여 법원에게 청구하는 것이다. 다음은 임시조치의 내용이다. ▲1호 피해자가 주거하는 방실로부터 퇴거 등 격리 ▲2호 주거, 직장 등에서 100m 이내 접근 금지 ▲3호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4호 의료기관 위탁 ▲5호 유치장, 구치소 유치가 있다.하지만 수많은 가정폭력 범죄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피해자는 가정의 유지를 위해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다양한 제도를 지원하고 있다. 첫 번째로 피해자 임시숙소 제도가 있다. 이는 각 경찰서 청문감사실에서 운용하는 것으로 가해자와의 분리를 위해 임시로 거처할 곳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에도 사용할 수 있는 단기간 지낼 수 있는 제도이다. 두 번째로 심리지원 제도이다. 가정폭력 상담 경찰관은 피해자의 요청 시 피해자의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고, 심리상태를 평가하여 피해자지원센터와 연계하여 지속적으로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또한 긴급여성전화 1366을 통하여 의료기관 및 전문상담기관과 상담을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의료 지원이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피해가 확인될 경우 신체적, 정신적 의료비를 지원해주는 제도이다. 신청 절차는 병원에서 치료받은 진료비 영수증과 가정폭력 피해상담사실확인서 등을 소지하여 보호시설이나 의료기관, 관할 시·군·구에 제출하여 청구하면 된다. 좀 더 구체적인 절차에 대하여 궁금하다면 여성긴급전화 1366을 통해 상담받을 수 있다. 네 번째로 무료법률지원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전화 132), 한국가정법률 상담소(전화 1644-7077)를 통해 무료로 법률적 구조를 지원하는 제도이다. 마지막으로 신변보호 제도이다. 가정폭력 가해자는 보복 우려가 있기 때문에 경찰 민원실에 방문하여 신변보호 대상자 신청을 하게 되면 심사를 통해 선정이 된다. 이 경우 경찰은 주거지 순찰을 주기적으로 하고, 스마트 워치 대여(긴급 시 누를 경우 자동적으로 112신고)를 해줌으로써,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 대부분은 범죄 피해로 인해 앞으로의 생활이 막막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정을 유지해야 된다는 생각에 신고 여부를 혼자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를 위한 다양한 지원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니 혼자 힘들어 말고, 꼭 경찰에게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고정민 부평경찰서 철마지구대 경장고정민 부평경찰서 철마지구대 경장

2018-10-25 고정민

[기고]새로운 인천, 민선7기 시정운영계획

'시민과 함께하는 시정'등 5대 핵심 목표20대 전략·138개 과제·재정·입법 추진향후 4년간 비전·철학등 '큰 방향' 제시소통 통해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노력인천광역시는 지난 10월 15일 민선 7기 출범 100일을 맞아 향후 4년간의 시정운영계획을 발표했다. 민선 7기 시정운영계획은 지난 선거기간 캠프에서 수립했던 정책·공약, 당선 직후 '새로운 인천 준비위원회'에서 검토한 사항 등을 기본으로 취임 후 시 내부와 시민사회 및 전문가들이 주신 의견을 종합적으로 반영하여 새로운 인천특별시대를 위한 지향점을 제시하고 실현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이번 계획 수립은 우선 미래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기본이 되는 시정비전 슬로건을 시민의 참여에 의해 설정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으며, 세부적인 시정전략 등을 마련하기 위해 내·외부 전문가 TFT를 구성해서 좀 더 체계적으로 계획을 수립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여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도록 정비하고 각종 토론회를 통해 시민들에게 시정운영 방향을 알리고 시민의 바람을 시책에 반영하는 소통 과정을 거쳤다.주요 내용은 시민과 함께 수립한 시정비전 '살고 싶은 도시, 함께 만드는 인천'을 구현하기 위한 5대 시정목표인 ▲시민과 함께하는 시정 ▲더불어 잘사는 균형발전 ▲대한민국 성장동력 인천 ▲내 삶이 행복한 도시 ▲동북아 평화번영의 중심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20대 시정전략, 138대 과제와 재정 및 입법 추진 계획이다. 5대 목표와 전략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첫 번째 시정목표인 '시민과 함께하는 시정'은 시민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시민을 시정의 중심에 모시겠다는 민선 7기의 철학을 담았다. 두 번째 목표는 도시 불균형 문제를 해소해서 시민 모두가 지역과 상관없이 잘사는 인천을 만들어 가자는 철학을 담은 목표로 '더불어 잘사는 균형발전'이다. 세 번째로 우리 인천은 세계적인 허브공항과 경제자유구역, 항만, 산업단지 등 산업구조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할 수 있는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지라 볼 수 있다. 이에 우리 인천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바탕으로 인천의 성장이 대한민국의 성장을 이끌 수 있도록 혁신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 생태계 조성, 창업과 일자리 창출을 실현하고자 하는 '대한민국 성장동력 인천'을 목표로 삼았다. 네 번째 목표인 '내 삶이 행복한 도시'는 시민이 삶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한 도시 인천을 궁극적인 시정 목표로 삼아 우리 시에 맞는 촘촘한 복지 정책을 마련했다. 마지막 다섯째 목표인 '동북아 평화번영의 중심'과 관련해서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평화의 흐름이 인천의 번영을 이끌 수 있도록 남북간 경제협력, 역사·문화교류, 동북아 평화교류의 거점 육성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의 지적처럼 해사법원 인천유치, 극지연구소 독립,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 및 규제 특례도입 등 주요 현안이거나 장기 민원에 대한 내용이 일부 빠진 것도 사실이지만 어느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다양한 분야를 포함하려고 노력했다.이번 시정운영계획은 향후 4년간 민선 7기가 나아갈 비전과 철학, 목표 등 큰 방향을 제시하고 공약을 바탕으로 한 138개 과제들을 포함해 시정을 운영하겠다는 의미로 이해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시정운영계획은 이대로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닌, 향후 성과분석과 여건변화를 반영하여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보완할 계획이며, 원도심 활성화 계획 등 구체적인 분야별 종합계획도 후속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그리고 위에서 지적한 현안들은 과거부터 우리 시에서 중점적으로 관리해온 과제들로 지역 국회의원과의 정책간담회를 비롯하여 중앙부처에 지속적으로 건의하고 있으며, 또한 일상 업무로서 앞으로도 계속 관리를 해가고 풀어나갈 계획이다. 시정계획에 대해 긍정적 시각뿐만 아니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하나, 부정적 견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또한 중요하다. 민선 7기의 새로운 비전은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부족한 점에 대한 문제 제기 등 다양한 참여가 이루어질 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인천은 서울, 부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인구 300만을 넘어선 대도시로서 대한민국 2대 도시로 발돋움해야 할 때다. 민선 7기가 출범한 지 이제 100일 남짓 지나고 있다.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격려와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통해 시민과 함께 '살고 싶은 도시 인천'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박찬훈 인천시 정책기획관박찬훈 인천시 정책기획관

2018-10-24 박찬훈

[오늘의 창]책임지지 않는 권한

미사강변도시 일반상업지역에 오피스텔을 신축하려던 한 시행사가 하남시로부터 '하남교육지원청(이하 교육지원청)과의 협의불가'를 이유로 건축허가 신청이 불가처분되자 마지막 선택수단으로 행정심판을 선택했다.시행사가 인·허가권을 가진 관(官)을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한다는 것은 자칫 사업의 존폐를 담보해야 하는 위험부담을 떠안는 일로 흔치 않은 일이다.추후 행정심판 결과가 '인용'으로 된다면 해당 시행사는 오피스텔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돼 한숨을 돌리게 되겠지만, 그동안 입은 수십억원의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기각' 결정이 내려지면 행정소송을 가거나 아예 사업을 포기해야만 한다.현재 건축허가 불가처분의 원인이 교육지원청의 '협의 불가'인데도 불구하고 해당 행정처분과 관련해서는 제3자에 해당되기 때문에 시행사가 교육지원청을 상대로 책임을 물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사실상 교육지원청이 해당 시행사에 미사강변도시의 과밀학급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비친다. 시행사도 "우리를 볼모로 LH에 학교 신설을 요구하는 것 아니냐"는 불편한 감정을 토로하고 있다.이러한 갈등은 미사강변도시의 과밀학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교육지원청은 과밀학급의 문제가 오로지 LH의 잘못된 도시계획으로 벌어진 일이라며 전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은 미사강변도시 토지이용계획을 마련할 당시 동의를 했고, 학급당 학생 편성기준을 당초 35명에서 30명으로 줄인 것도 과밀학급의 한 원인이라는 LH의 반박에 먼저 명확한 답변을 내놔야 할 것이다. /문성호 지역사회부(하남) 차장 moon23@kyeongin.com문성호 지역사회부(하남) 차장

2018-10-24 문성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소이수신: 몸을 닦기 위한 방법

닦는다는 말은 길을 닦으면 수도(修道)이고 마음을 닦으면 수심(修心)인데 몸을 닦으면 수신(修身)이다. 수신은 몸을 씻는다는 세신(洗身)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수심을 포함한 말이다. 마음이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존재이지만 당장에 존재하는 몸을 이야기하면 한량없는 마음은 그 가운데 갖추어져있다고 볼 수 있다. 심신을 닦아나가는 문제는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 사람마다 가장 중요한 문제다. 또한 사회속의 생활인으로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다. '중용'에서는 몸을 닦아나가는 방법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하나는 호학(好學)이고 하나는 역행(力行)이고 하나는 지치(知恥)이다. 호학(好學)은 배움을 좋아한다는 뜻이고, 역행(力行)은 힘써 실행한다는 뜻이고 지치(知恥)는 부끄러움을 안다는 뜻이다.여기에서의 배움이란 중용의 도리에 관한 배움을 말한다. 어떤 것이 진정 인간으로서 내가 가야 할 길인가? 이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호학(好學)이며 이렇게 되면 지(知)에 가까워진다. 그것을 알고는 힘써 행하는 실행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역행(力行)이다. 알고 나서 실행하려면 자신의 사사로움을 극복해야 하니 역행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인(仁)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이다. 배우고 실천하는 학행(學行)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나태함을 부끄럽게 여기며 자신을 분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태해질 때 부끄러워할 줄 알고 분발시키는 힘은 용기(勇)에 가깝다. 삼달덕(三達德)이라 부르는 지인용(知仁勇) 세 가지는 배우고 행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데서 이루어지니 이것이 몸을 닦기 위한 방법이다. 확충해보면 비단 몸을 닦는데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고 어떤 기술적인 분야에서도 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24 철산 최정준

[참성단]맥아더 동상 방화

동상을 순례하면 그 나라의 역사를 일별할 수 있다. 동상은 역사와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민족적, 정치적 시선의 변화에 따라 국내외 갈등의 중심에 선 동상이 적지 않다. 프랑스 식민지들은 해방이 되자마자 잔다르크 동상부터 참수해버렸다. 최근에는 뉴질랜드와 호주가 제임스 쿡 선장 동상 훼손을 놓고 이주 국민과 원주민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의 위인이 피해 당사국과 민족에겐 침략의 상징이다.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관통한 우리도 마찬가지다. 일본과는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다. 2011년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이후 일제 피해를 당한 동남아 각국은 물론 유럽과 미국에까지 진출한 소녀상은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고발하는 표상이다. 지난 9월 일본 우익분자가 대만 타이난시의 위안부 동상을 발로 찼다. 국내 여론은 마치 우리 소녀상이 모욕당한 듯 분노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에게 눈엣가시다.박정희 동상을 둘러싼 시비는 업적과 과오가 너무 뚜렷해서다. 이념적, 정파적 시선이 한쪽만 본다. 지난해 박정희 탄생 100년을 맞아 기념재단은 기증받은 그의 동상을 세울 자리를 물색했다. 하지만 광화문은 서울시가, 용산 전쟁기념관과 상암동 박정희기념관은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동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약속으로 지어진 박정희기념관 창고에 들어가 있다. 그의 과오에만 집중하는 세력이 대세인 탓이다. 딸 박근혜가 탄핵당하지 않았으면 그의 동상은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궁금하다.그런데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방화사건은 확정된 역사적 사실을 전제하면 이해하기 힘들다. 인천상륙작전으로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켜 자유 대한민국의 영토를 지켜 낸 맥아더의 업적은 객관적이다. 최근 인천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죽산 조봉암 동상 건립 반대 여론이 일고 있다. 조봉암은 전향한 공산주의자였다. '전향'을 빼고 '공산주의자'만 보는 시선이니 수많은 탈북 전향자를 국민으로 품은 현실과 어긋난다. 마찬가지로 반미단체 회원이라는 이 모 목사가 하필이면 방화시위의 자유까지 지켜 준 맥아더를 표적으로 삼은 건 명백한 오조준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24 윤인수

[경제전망대]비경제활동인구에도 관심을

능력 갖추고도 일자리 부족으로구직 포기하는 육아·가사종사자들 성장 잠재력 유지·확충위해서는이들의 경제활동 참가가 필수적인천시의 취업지원 당면한 과제고용이 경제정책의 중심에 서면서 일자리와 관련된 이들에게 새로운 현상이 생겼다. 매월 12일 전후가 되면 긴장이 역력하다. 통계청의 고용동향이 발표되는 날이다. 중앙이건 지방이건 초미의 관심사인 일자리정책 수행결과 성적표를 받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일자리에 관한 한 인천은 그동안 얼굴 들기가 민망했다. 16개 시·도 가운데 실업률은 거의 예외 없이 바닥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최근 온 나라가 일자리에 매달리는 가운데 인천의 실업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9월 12일 발표된 최근의 고용동향이다. 인천의 실업률은 금년 3/4분기 중 4.0%로 아직 전국 평균에 비해 0.2%p가 높다. 하지만 연령별로는 청년실업률이 같은 기간 중 8.8%로 전국 9.4%를 0.6%p 상회하고 있다. 30세에서 59세 이하의 핵심생산층 역시 2.8%로 전국 2.9%에 비해 0.1%p가 낮다. 다만, 60세 이상의 실업률은 3.9%로 전국 2.3%와 1.6%p의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인천의 실업률은 전국 16개 시·도 중 7위, 7개 특별·광역시중 6위이다. 지난해 1/4분기만 해도 실업률이 전국 1위였던 점을 감안하면 근래에 보기 드문 좋은 성적이다. 하지만 마치 '불황형 무역수지 흑자'처럼, 좋기는 좋은데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요인들이 있다. 우선, 인천은 조선업이 거의 없어 지난해 하반기에 불어 닥친 조선업 구조조정의 여파를 피했다. 자동차공업의 대량 실직이 있었지만 인천은 그런대로 버티면서 대량해고는 면했다. 도소매업 등 서비스업이 사드사태 이후 중국관광객의 급격한 감소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타격을 받았지만 인천에는 원래 중국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와중에 다행으로 인천을 통한 수출이 그런대로 실적을 내어 주었다. 이에 더해 자영업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실업을 흡수하면서 취업자 비중을 높여준 것도 인천의 실업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제는 광주를 제외한 대도시가 모두 인천보다 실업률이 높아졌다. 인천이 특히 잘 했다기보다는 다른 도시가 어려움을 겪은 때문이니 '불황형 고용호조'라고 할만하다.인천의 실업률이 낮아졌는데도 좋아하지 못하고 '불황형'이라고 굳이 평가절하하는 저변에는 인구구조의 문제가 있다. 통계청의 인구추계를 감안한 인구구조상 인천은 몇 년 안에 노령층을 제외하면 일할 사람이 모자랄 지경에 이른다. 금년 3/4분기 중 인천의 청년실업자는 2만5천명이다. 인천의 청년인구는 보수적으로 전망하더라도 2020년까지 2만4천명 이상이 줄어든다. 핵심생산층의 실업자 역시 3만3천명이지만 핵심생산층 인구도 2021년까지 3만4천명 이상 감소가 추정된다. 그런 가운데 60세 이상 노령층 인구는 변함없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 확실하다. 노령층 인구가 '연로'를 이유로 점차 경제활동에서 물러나면 실업률 계산에서도 제외되기 때문에 인천의 실업률은 추세적으로 하락하겠지만 부양인구에 비해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것이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이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인천이 성장력을 유지하려면 먼저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여야 한다. 경제활동참가율이란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와 구직자의 비율을 말한다. 하지만 인천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이미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인천보다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은 충청남북도와 제주도는 농업과 관광업 등 겸업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아 경제활동참가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인천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기가 쉽지 않은 뜻이다.따라서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경제활동 인구를 경제활동 인구로 끌어들여야 한다. 비경제활동인구란 육아, 가사, 통학, 연로, 심신장애 등의 이유로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인구를 말한다. 이에는 취업의사와 능력을 갖추고도 일자리 부족으로 구직을 단념한 인구가 포함된다. 많은 경우 실업자는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구직을 포기하고 비경제활동인구에 편입되지만 성장잠재력의 유지와 확충을 위해서는 최소한 이들의 경제활동 참가가 필수적이다. 취업의사와 능력이 있는 육아 및 가사종사자, 취업준비생, 그냥 '쉼'을 선택한 구직단념자, 멀쩡한 체력에도 불구하고 나이만을 이유로 물러서야 하는 노령근로자가 모두 스스로 부양대상 인구에서 벗어나와 인천을 부양하며 성장력을 유지할 역군이라는 점에서 이제 이들에 대한 취업지원이 인천의 당면과제임을 강조하고자 한다./김하운 인천사회적은행 (사)함께하는 인천사람들 대표이사김하운 인천사회적은행 (사)함께하는 인천사람들 대표이사

2018-10-24 김하운

[노트북]문화의 힘

얼마 전, 취재차 한 서양화가를 만났다. 양주의 작은 마을에 작업실을 열었는데, 그 아래 '그림가게'를 열고 단돈 9만원에 자신의 창작작품을 팔고 있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거나, 작품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미술을 공부한 전공자였고 미술협회 회원인 정통(?)작가다.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기자에게 그는 경험을 들려줬다. "우연히 동네 고깃집에 들렀는데, 내 그림이 벽에 걸려있었다. 내가 작업실을 정리하다 버린 그림이었다. 그래서 이 그림을 아느냐, 왜 걸어두었냐 물어봤더니 '나는 평생 그림을 벽에 걸어본 적이 없는데, 이 그림을 본 순간 벽에 걸어보고 싶었다'며 행복해했다. 동네 편의점 사장은 3일을 고민하다 내 그림을 사갔다. 나중에 그 사장의 딸이 '평생 엄마가 그렇게 행복해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나와 부둥켜안고 울었다. 동료들은 이런 나의 행동을 싫어하지만, 나는 9만원의 액면이 중요하지 않다. 예술의 본질이 그렇다."전 세계에 K-팝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방탄소년단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기획사의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소기획사여서 방탄소년단은 애초부터 엄청난 자본과 물량으로 승부하는 그룹이 아니었다. 대신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선율과 가사로 세계 팬들을 사로잡았고 유튜브 등 SNS 채널을 통해 그룹과 음악을 알리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팬들과 소통하며 외연을 확장했다. 지금의 인기는 오로지 방탄소년단이 가진 문화콘텐츠의 힘만으로 해낸 성과였다.역사를 돌이켜보면 문화는 늘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정치력을 과시하기 위해,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아니면 가장 손쉽고 티 나게 수혜를 베풀 수 있는 복지수단으로 쓰이기 일쑤였다. 그것은 보수건 진보건 구분이 없다. 새천년이 밝았고, 역사상 처음 민주당이 경기도정을 장악했다. 하지만 문화정책은 달라진 게 없다. 이제는 문화가 가진 스스로의 힘을 믿어도 되지 않을까. /공지영 문화부 기자 jyg@kyeongin.com공지영 문화부 기자

2018-10-23 공지영

[경인칼럼]분노의 화염에 휩싸인 그라운드 제로사회

PC방 알바생 살해한 청년의 범행 동기사립유치원 비리·공기업 고용세습 의혹갈등서 촉발된 '격분' 법과 제도로 수렴돼야더이상 먹이 없을때 분노는 정치로 향할것PC방 아르바이트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청년의 범행 동기는 작은 분노였다. 자리에 쌓인 꽁초를 치워달라며 시비가 붙었고, 게임비 환불 요구를 거절당하자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 시비의 내용과 게임비 천원의 사소함에 비하면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분노는 너무 컸다. 범인은 이제 거꾸로 사회적 분노에 직면해있다. 가족이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하고 경찰이 정신감정을 의뢰하자 100만명 넘는 시민이 청와대 청원게시판을 점령했다. 심신 미약에 의한 감경을 우려하며 엄벌에 처해달라는 요구다. 검경과 법원이 시민의 분노를 외면하기 힘들게 됐다.최근 우리 사회에 분노의 무한 충돌 현상이 뚜렷하다. 이념과 계층과 상관없이 공생하던 공동체가 적대적으로 대치하며 분노를 표출한다. 이념적 진영과 계층 내부에서 분노가 분화하고 확대된다. 이를 자양분 삼아 이념과 계층 간의 오래된 적대는 더욱 단단해지고 상대를 말살하려는 분노의 화염은 더욱 거세진다.사립유치원 회계비리 사태로 유아교육 공동체가 쑥대밭이 됐다. 학부모들은 정부 지원금으로 명품 핸드백과 성인용품까지 구매했다는 비리 명세서에 몸서리쳤다. 사립유치원을 향한 분노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예전 같으면 유치원 쪽에서 납작 엎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사립유치원 측은 오히려 여당과 정부를 향해 분노를 터트린다. 토지와 건물을 투자해 유아교육을 떠 받쳐온 영리사업자의 공적기여는 아랑곳 없이 사립유치원 전부를 비리집단으로 낙인 찍었다며 저항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비리 유치원 한 곳만 폐쇄해도 아이들이 갈 곳이 없는 현실에서 학부모와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분노를 가슴에 품은 채 계속 얼굴을 맞대고 있다.서울교통공사를 비롯한 공기업 고용세습을 둘러싼 분노의 충돌도 심상치 않다.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의 이익을 공기업 임원과 노동조합이 챙겼다는 의혹은 특혜 취업 규모가 늘어나는데 비례해 취업준비생들의 분노도 커지고 있다. 취준생들은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좋은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진보 정부의 선의를 의심하고 있다. 공기업 고용세습을 향한 분노의 본질은 일자리 축소라는 현실적 손실이 아니라 신뢰 붕괴에 따른 배신감이다. 민노총과 청년계층은 진보 진영 기반의 주축이다.분노는 갈등에서 촉발된다. 갈등이 상식적으로 제도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분노를 낳고, 분노는 배설의 대상을 찾아내 비대해진다. 분노의 배설에 대충은 없다. 배설의 대상을 탐색하는 집요함과 맹목성은 최초의 갈등을 초월하고 또 다른 분노를 증식한다.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정당의 궤멸적 붕괴가 이런 과정을 밟았다.결국 사회적 분노는 제도와 법으로 수렴돼야 한다. 다양한 층위의 분노는 정당에 수렴돼 국회에서 공적인 분노, 공분(公憤)으로 조절돼야 한다. 상식과 규범에 따라 합리적으로 조정된 공분으로 공동체의 공의와 정의 실현의 동력으로 변주하는 것이 정치가 할 일이다. 한국 사회의 불행은 바로 이 지점, 정치의 분노 조절 기능이 작동을 멈춘데 있다. 자유한국당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립유치원 비리에 입다물고 있고, 더불어 민주당은 공기업 고용세습 의혹을 '거짓'이라고 분노한다. 한국 정치는 분노 조절 스위치를 끈 것도 모자라, 상대를 향한 원초적 분노를 사회에 환원해 다시 키우는 분노 배양기가 된지 오래다. 사법부는 폭주하는 분노를 감당하지 못한 채 분노의 대상으로 전락했다.제도와 법이 방치한 분노의 화염이 우리 사회를 그라운드 제로 상태로 만들고 있다. 더 이상 먹이가 없을 때 분노는 정치를 향할 것이다. 그 분노가 궤멸상태의 보수 정당을 50년 이상 말살할지, 진보정권의 자충수로 작용할지 아무도 모른다. 한국 정치는 벼랑에 서있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2018-10-23 윤인수

[참성단]음서(蔭敍)

음서제가 도입된 건 997년 고려 목종 때였다. 관리의 자식이나 친척을 과거시험 없이 관리로 채용하는 게 목적이었다. 초기엔 직위에 제약을 뒀다. 명문가가 아니어도 우국충정이 충만하고, 학문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은, 과거를 통해 등용된 인재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음서제 출신들이 가문의 힘으로 요직을 차지했다. 폐해가 얼마나 심했던지 심지어 5세 아이가 음서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고려는 그러다 망했다.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같은 신진세력들이 음서제의 폐단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공신들과 왕 주변에 서성이던 최측근 신하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음서제 적용 범위를 '공신이나 2품 이상 관의 자(子)·손(孫)·서(壻)·제(弟)·질(姪), 실직(實職) 3품관의 자손으로 제한한다'고 '경국대전'에 명문화시켰다. 그런데 조선도 고려와 같은 길을 걸었다. '한번 금수저는 대역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영원한 금수저'였던 것이다. 이러고도 조선이 500년이 유지됐으니 '기적'이었다.음서제가 출현한 지 1000년이 지난 지금,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 및 고용세습 의혹으로 우리 사회가 또 한 번 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음서제가 사라지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유명 로펌의 경우 정치인, 고위관료 등 유력가의 자식이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다는 '현대판 음서제'가 논란이 된 지 오래다. 대기업 노조의 고용세습도 이미 오래된 관습이었다. 지난 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이 공개한 고용노동부 자료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현재 현대자동차, 금호타이어 등 15개 기업의 단체협약에 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사망 질병 등에 걸렸을 경우 배우자나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조항이 들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청년 백수'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들은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취업절벽' 앞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는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다. 그런데 한쪽에선 귀족노조 고용세습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공공기관 채용과 정규직화 과정에서 '그들만의 검은 거래'가 자행되고 있다니 이 청년들의 탄식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었다. 이 약속은 현대판 음서제를 뿌리 뽑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3 이영재

[수요광장]한 미얀마 외국인노동자의 죽음

출입국단속반에 쫓기다 추락 뇌사한국인 4명에게 장기기증후 사망단속과정서 매년 사망자 나오는데유감 표명·재발방지 대책도 없어이참에 사고없도록 전면 재고해야얼마 전 한 외국인노동자의 미담기사를 보았다. 뇌사상태에 빠져있던 외국인노동자가 한국인 4명에게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서는 외국인노동자가 왜 뇌사에 빠졌는지는 주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미얀마 노동자의 사망사건에 대해 다른 곳에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2018년 8월 22일 미얀마인 노동자 딴쩌떼이씨는 경기도 김포의 건설 현장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갔고, 식당에 출입국단속반이 들어왔다. 창문을 통해 달아나려던 미얀마노동자는 8m 아래의 공사현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후 119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사에 빠졌고, 한국에 입국하여 아들을 돌보던 아버지가 결국 장기기증을 선택하게 되었다. 묻혀서 사라질뻔했던 한 외국인노동자의 죽음의 과정이 장기기증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들이 발견되었다. 목격자와 대책위에 따르면, 추락장소는 정상적인 상태라면 추락하지 않을 장소였다. 추락 후 119에 신고사항도 의문이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추락사실을 인지한 이후 바로 신고했다고 했는데, 119신고자는 현장 소장이었다고 한다. 이 단속과정에서 다수의 외국인노동자가 체포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추락하고 사망해 이른 상황에서 구호에 집중해야 될 공무원들이 계속해서 단속에만 매달렸다는 점은 사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또한 병원의 최초 사망진단서에 사망원인이 자살로 표기되어 있던 부분도 진실을 밝혀내야만 한다.외국인노동자가 단속과정에서 죽음에 이른 일은 처음이 아니다. 2006년 4월 17일 경기도 부천에서 단속반에 쫓기던 인도네시아인 노동자 '누루푸아드'씨가 3층에서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 다음날 사망했다. 이후 법무부의 외국인 단속 및 보호 업무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 이듬해인 2007년 2월 27일 여수 보호소 화재로 보호 중에 있는 외국인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중상을 입은 참사가 일어나게 된다. 다수가 사망하고 중상을 입는 대형 사고를 겪은 후에야 정부는 단속 및 보호 과정에서 안전과 인권보호를 우선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법무부 출입국 단속반에 의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과정에서 거의 매년 사망사고가 나고 있으며, 부상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2010년 10월 29일 베트남 노동자 찐 꽁 쿠안(35)씨가 단속을 피하려다 추락해 사망하는 등, 2008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10명의 외국인노동자가 단속과정에서 사망했으며, 부상자도 80여 명이 넘는다. 대형사고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내고, 단속과정에서 매년 사망자가 나오고 있으며, 올해에도 결국 한 젊은 외국인노동자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거의 매년 사망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그 흔하디흔한 유감 표명도 재발 방지 대책 발표 또한 없다. 이렇게 사망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선대책 발표는커녕 심지어 의견표명조차 없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딴쩌테이씨의 죽음에 관한 의문을 밝히기 위해 발족한 시민사회대책위가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 소장을 면담하려고 했으나, 이마저도 거절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를 필두로 한국 정부가 외국인노동자를 얼마나 업신여기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외국인노동자가 아니었다면, 과연 이런 어이없는 무대응이 가능키나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스리랑카 외국인노동자를 화재로 인해 전소된 국가시설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구속시켜려다 국민들의 분노를 산적이 있었다. 자신을 대변하기 어려운 외국인노동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고 근본적인 문제점들은 은폐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얀마 노동자의 사망 건과 관련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직권조사가 진행 중에 있으며, 이 사항과 관련하여 UN인권관련 고위전문가 또한 시민사회대책위와 당시 현장의 목격자를 만나 당시 상황을 청취했다고 한다.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며, 국제적으로도 관심사가 되었다. 진실을 한 점 의혹 없이 밝혀내고, 이참에 다시는 이런 허무한 죽음이 없도록 단속과정 전반을 전면 재고해야 한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2018-10-23 이완

[기고]동네서점의 변신과 부활을 주목한다

'2018 발견! 경기 동네서점展'지식창조의 근거지로 거듭나고정신적 가치상승의 주춧돌이 돼 4차산업혁명시대 문화예술강국자리잡는데 이바지하길 소망한다기원전 5세기경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는 "남의 책을 많이 읽어라. 남이 고생하여 얻은 지식을 아주 쉽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그것으로 자기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고 미국의 사상가 겸 시인인 에머슨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많은 경우에 자신의 미래를 만드는 것과 같은 뜻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독서는 다양한 분야의 간접경험을 통해 지식, 역사, 문화, 정보를 습득하고 자기계발, 사고의 확장 등 우리의 삶 속에서 중요한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독서를 위해서는 읽을 도서를 구입해야 하는 게 선결과제인데 책을 구입하는 과정은 여러 방법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에 들르거나 컴퓨터 안에 들어있는 온라인서점을 클릭해서 구입할 수도 있다. 예전 젊은 시절 필자는 책을 구입할 때면 서점, 책방, 문고 등의 이름으로 간판이 올라간 동네서점을 들르며 지난날의 따뜻한 정취와 매력도 느끼며 책과 접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을 돌아보면 과거 학구열과 열독 열풍으로 호황을 누리던 동네서점은 하나하나 그 모습을 감추더니 지금은 동네서점으로서 명맥을 이어가는 서점을 찾아보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워진 것이 지금의 안타까운 현실이다.여기에 하나 더 안타까운 것이 10월 초에 공개한 경기도 '독서실태 관련 여론조사' 결과인데 문제적 내용은 수도권 주민 10명 중 1명은 1년간 책을 1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경기·서울·인천 주민 2천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11.9%(261명)는 '지난 1년간 전자책포함 1권 이상의 책을 읽은 경험이 없다'라고 응답했으며 책을 안 읽게 된 이유는 '책 읽기가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에 가장 많은 사람(35.2%)이 답했다. 여타 다른 이유로 '직장(학교)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가 26.4%,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가 13.0% 등으로 뒤를 이었다.이러한 시대적 독서실태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며 세간의 이목을 모으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책을 읽는 장소생태계가 상큼하게 변화하고 있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과거의 따뜻하고 정겨운 동네서점이 우리동네 단역에서 조연으로 조연에서 주인공으로 나서며 우리와 가깝고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다. 바로 경기도가 지난해 5개 시(市)의 소규모의 이색적인 동네서점 16곳에서 특별한 문화행사를 펼친데 이어 2018년 책의 해인 올해도 작지만 특색있는 동네서점 21곳을 선정해 '2018 발견 경기 동네서점전'을 오는 26일부터 진행하는 것이다. '개성을 담다! 가치를 발견하다!'라는 주제 아래 26일 오후 7시 성남시 정자동 '좋은 날 책방'에서의 개막식을 시작으로 11월 4일까지 2주간 금·토·일요일마다 동네 서점별로 백일장, 글쓰기 교육, 북콘서트, 강연 등 흥미롭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이번 경기 동네서점전 내용을 들여다보면 '생각을 담는 집'(용인)에서 용인시인 김종경의 '시로 읽는 우리동네 용인', 꿈틀책방(김포)에서 은유 작가에게 배우는 '일상의 글쓰기', ch공감(하남)에서는 '사랑한다면 음악공부 절대 시키지 마라'라는 주제로 김이곤 예술감독의 샹송공연, 그리고 필자가 사는 고장인 고양의 미스터버티고에서 임경선 작가의 '곁에 남아 있는 사람'으로 성찰해보는 우리 삶의 태도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동네서점 곳곳에서 전개된다. 느림과 여유를 준비해야 되는 책 읽기는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최적화된 정보를 찾아 미래를 설계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이번 '2018 발견! 경기 동네서점展'을 통해 우리 생활 속 동네서점이 지식창조의 근거지로 거듭나고 인간의 정신적 가치상승의 주춧돌이 되어 4차 산업혁명시대 우리나라가 문화예술강국으로 자리 잡는데 이바지하길 간절히 소망해본다./김달수 경기도의회 의원 (민주당·고양10·문화체육관광위원장)김달수 경기도의회 의원 (민주당·고양10·문화체육관광위원장)

2018-10-23 김달수

[오늘의 창]이재명 지사, 국감때 처럼만…

지난 19일 열렸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는 예상보다 싱겁게(?) 끝났다. 경기도 내부에선 "선방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평론가들은 "이재명의 판정승"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각종 의혹들을 마이크 앞에서 재탕하는 수준에 그친 의원들의 준비 부족도 있지만, '경청'을 시작으로 '논리적인 반박'을 펼친 이재명 지사의 태도변화가 무엇보다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탈당 권유·압수수색 등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다는 일명 탄압론에 대해서는 "인생무상"이라고 답하며, 야당 의원과 함께 웃는 여유도 보였다. 이재명 지사에게 이번 국감은 정치인이자 경기지사로서 관록이 생겼다는 것을, 도민들에게 알리는 기회가 됐다.4년 전 성남시장이던 당시, 판교 환풍구 사고의 증인으로 국감에 참석해 의원들과 고성을 주고받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이재명 지사의 이미지는 각종 논란과 의혹에 고초를 겪으면서, '드세다'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특히 지난 6월 경기지사 당선 확정 후 방송언론과의 인터뷰는 이런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약속되지 않은 질문이 던져지자 인터뷰를 셀프종료하는 모습이 전파를 통해 전국에 전해졌고, 이 지사의 대표 이미지로 각인된 셈이다. 억울한 일이 있을 땐 분을 참지 못하고, SNS를 통해 '버럭'했다. 지지자는 공감했지만, 이런 모습에 당혹하는 대중들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이재명 지사는 이번 국감을 통해 이미지 반전의 기회를 만들어 냈다. 이 지사는 부드러움 속에 더욱 강해졌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주장을 더욱 굳세게 했다. 국감을 통한 이 지사의 변화는 이미지메이킹을 통해 이뤄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주권자의 대표인 국회의 질문에 보다 성실하고 진실 되게 응한 것이고, 또한 그런 모습 속에 도민과 국민은 그에게 호감을 보내고 있다. 이 지사는 가장 서민적이자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꼽힌다. 일반 대중은 이 지사의 '경청'과 '부드러움'에 박수를 보냈다. 그가 경기도정의 다양한 현안에서도, 이 같은 새로운 장점을 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태성 정치부 차장 mrkim@kyeongin.com김태성 정치부 차장

2018-10-22 김태성

[이영재 칼럼]나폴레옹과 모니퇴르

동서고금 막론 권력자들 비판적 뉴스 경계당정, 1인미디어 '가짜뉴스 진원지'로 판단국가가 나서 손 보려한다면 부작용은 더 커표현의 자유등 민주주의 기본가치 훼손때문프랑스혁명 직후 분위기를 작가 앙드레 모루아는 '밀고가 시민의 의무였고, 단두대는 미덕의 제단이었다'며 한 줄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혁명은 많은 피를 불렀다.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 그 틈을 이용해 권력을 장악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그 지긋지긋한 피를 더 흘려서는 민심을 얻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언론이었다. 언론을 장악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언론과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쿠데타 직전에 73개였던 파리의 신문사가 1800년에는 13개만 남았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1805년 그는 비밀경찰 책임자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내 이익에 반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인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1811년 신문은 4개만 남았다. 모두 친나폴레옹계 신문이었다. 정부의 실정(失政)은 물론 국민의 피폐한 삶은 한 글자도 보도되지 않았다. '모니퇴르'도 그중 하나였다.모니퇴르는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시민들 편에 섰던 신문이다. 덕분에 혁명 후 프랑스 최고 언론의 위치에 섰다. 시민들은 모니퇴르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자 그의 편에 섰다. 나폴레옹이 권력을 잃고 엘바 섬으로 유배된 후에는 부르봉 왕조에 붙어 나폴레옹을 공격했다. 그러던 중 1815년 3월 1일.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했다.이 소식을 모니퇴르가 모를 리 없었다. 나폴레옹이 파리로 입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일. 그 기간 모니퇴르의 1면 헤드라인은 수없이 바뀌었다. '식인귀, 소굴에서 탈출 - 호랑이, 카르프에 나타나다-괴물, 그레노블에 야영-폭군, 벌써 리옹에 진입-찬탈자, 수도 100㎞에 출현-보나파르트, 북으로 진격 중 -나폴레옹, 내일 파리 도착 예정-나폴레옹 황제, 퐁텐블로 궁에 도착하시다-어제 황제 폐하께옵서 충성스런 신하들을 대동하시고 퇼드리 궁전에 납시었다.' 언론의 변절을 지적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은 비판적인 뉴스의 확대를 경계한다. 권력을 위태롭게 한다고 믿어서다. 나폴레옹은 언론과 전쟁을 치르면서 "적대적인 신문 4개가 총검 1천개보다 더 무섭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나폴레옹은 파리에 입성한 후 모니퇴르를 정부 기관지로 만들었다.후세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이 언론을 탄압하지 않았다면 프랑스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거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언론이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견제했다면 대륙 봉쇄령이나 스페인 전쟁, 러시아 침공은 수정됐을 것이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은 그의 권력은 더 오래갔을 거란 얘기다. 언론 탄압은 나폴레옹의 최대 실수였다. 나폴레옹도 파리의 신문들이 어용이란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그들의 기사를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정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외국에선 어떻게 평가되는지 궁금해 영국 신문들을 밀수해서 읽었다.당·정이 1인 미디어를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보고 규제하려는 모양이다. 지난 2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에 대해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사회의 공적으로, 사회 불신과 혼란을 야기하는 공동체 파괴범이며 민주주의 교란범"이라고 비판한 이후, 법무부와 민주당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법무부는 '가짜뉴스 엄정대처'라는 보도자료를 돌리고, 민주당 가짜뉴스대책특위도 전문가를 불러 토론회를 하는 등 가짜뉴스 근절에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그런데 걱정이다. 박정희 정권때부터 여러 번 독재 권력을 지켜본 입장에서 지금의 상황이 마치 과거로 회귀한 느낌이 들어서다. '유언비어'나 '괴담'이 아닌, 정말 가짜뉴스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 부작용은 분명 클 것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나서서 손을 보려 한다면 그 부작용은 더 크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민주주의 기본 가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1인 미디어를 규제함으로써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모니퇴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뇌 과학자 이반 로버트슨은 '승자의 뇌'에서 "진정한 승자는 자신의 자아가 늘 위험하고 사나운 개라는 사실을 알고, 권력이란 무거운 짐을 잘 사용하기 위해 그 개를 멀찍이 떼어놓는다"고 적었다. 지금 딱 어울리는 말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2 이영재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