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바이든 시대 개막

'미국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 연설 중 백미(白眉)로 꼽히는 대목이다. 그는 무기력한 시대, 신임 대통령으로서 미국 국민의 분발을 촉구했다.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재선 취임연설문은 고작 135단어에 불과했다. 연설에 걸린 시간이 2분이 못됐다. 가장 긴 취임사는 1841년 윌리엄 헨리 해리슨 대통령의 8천445단어 분량 연설이다.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 속에 2시간이 넘도록 연설을 한 후유증인지 해리슨은 취임 한 달 만에 폐렴으로 숨졌다. 역사상 가장 긴 취임연설을 한 주인공이 가장 짧은 재임 기간이라는 기록도 세웠다.게티즈버그 연설의 주인공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재선 취임연설은 역대 미 대통령 취임사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아무에게도 적의를 품지 말고 모두에게 자선의 마음으로 의로운 편에 굳건히 서서 우리가 처해 있는 일을 끝내도록 노력합시다. 이 나라의 상처를 싸매도록 온 힘을 다합시다. 전투에서 쓰러진 사람과 미망인, 고아들을 돌보도록 애씁시다'라고 연설을 마쳤다. 분량은 짧았으나 남북전쟁으로 갈라진 미국을 통합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로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었다는 평이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취임식에서 "미국은 시험을 받았고 우리는 더 강해졌다"며 "우리는 어제의 도전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동맹을 복구하고 다시 한번 세계에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의 고립주의적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힘이 아닌 동맹과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재정립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은 축제의 장이 아닌 전시 상황을 방불케 했다. 코로나19 등으로 관람석은 성조기로 채워졌고, 2만5천여명의 군인들이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식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전날 고별 연설에서 새 정부 출범을 축하한다면서도 바이든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의사당 점거 사태까지 유발한 트럼프의 지저분한 뒤끝이다. 유례가 없는 혼란과 분열의 시기에 바이든 시대가 막을 열었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1-01-21 홍정표

[참성단]경기도 '배달특급' 실험

2010년 '우아한형제들'을 창업한 김봉진은 스마트폰 배달대행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배민)'을 출시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수거한 전단지로 배달대행 음식점 네트워크를 만들어 키운 배민이 이젠 4조8천억원짜리 배달앱 최강자로 성장했다. 배달앱(요기요·배달통) 운영사인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가 배민을 인수하겠다며 평가한 기업가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연말, 요기요와 배달통 매각을 조건으로 DH의 배민 인수합병을 승인했다. 천문학적인 현금과 경영 참여를 보장받은 김봉진은 우아하게 성공신화의 정상을 지르밟았다.창업자의 유니콘 '배민'. 하지만 음식자영업자와 배달노동자에겐 상전 중의 상전이다. 연초 눈 쌓인 도로 위에서 배달 라이더들은 오토바이 곡예를 벌였다. 비판 여론이 폭주하자 놀란 배달앱들은 일방적으로 배달을 셧다운 시켰다. 그러자 이번엔 코로나19 이후 배달에 목을 맨 많은 음식점들이 하루 장사를 접어야 했다. 배달앱에 종속된 배달 노동자와 음식자영업자의 구차한 현실이 폭설로 여지없이 드러났다.배달앱에서 음식점들이 벌이는 경쟁은 살벌하다. 배달 수수료와 광고비 부담은 필수고, 고객들이 지불해야 할 배달비를 떠안기도 한다. 비용이 늘어난 만큼 매출을 늘리기 위해 배달앱 광고에 목을 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고객 평점은 저승사자다. 악질 고객의 별 1개에 매출이 곤두박질친다. 음식에서 맛과 정서는 사라졌다. 시간 엄수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배달 노동은 지속 가능성이 없다. 자산이라곤 온라인 네트워크뿐인 배달앱만 비정규 노동과 영세 자본 위에서 환하게 웃는다. 배달앱은 인공지능이 인간과 자본을 지배하는 미래를 보여준다.경기도 공공배달앱 '배달특급'이 주목받는 배경이다. 지난해 12월1일 오산, 화성, 파주시에서 시범서비스를 실시한 '배달특급'은 수수료 1%에 광고비도 없다. 지역 화폐 할인혜택도 있다. 자영업자와 소비자 상생 배달 플랫폼이다. 덧붙여 고객 갑질의 온상인 고객 평점 제도는 없었으면 한다.경기도는 배달특급 서비스를 올 3월까지 수원 등 6개 시·군으로, 연말엔 27개 시·군으로 확대하기로 하고 가맹점을 모집하고 있다. 배달특급이 성공해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공식 SOC사업으로 확대되길 바란다. 도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있어야 한다. 민간 배달앱 영업 구조는 너무 비정하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1-20 윤인수

[참성단]코로나 1년의 신세계

1년 전 오늘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나왔다. 국내 입국한 중국 여성이었다. 당시만 해도 정확한 학명 없이 '우한 폐렴'으로 불렸다. 이 여성은 인천의료원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완치된 뒤 귀국했고, "한국 의료진은 나의 영웅"이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코로나 청정국의 미담은 2월18일 대구에서 31번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악몽으로 변했다. 신천지발 집단감염이 발생한 것이다. 첫 확진자 발생 후 1차 대유행까지 채 한 달이 안 걸렸다.신천지교회, 사랑제일교회, 겨울철 등 세 차례 대유행을 거치면서 지난 1년 동안 7만3천115명이 확진됐고, 1만2천364명이 치료 중이며, 1천283명이 사망했다. 특히 수도권 겨울 집단감염인 3차 대유행이 정점이었다. 전체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올 겨울에 발생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민간인 사망 기록일 듯 하다. 물론 전 세계 코로나 환자가 1억명에 육박하고 사망자가 200만명을 넘어선데 비하면 선방한 것은 맞다. 하지만 비극은 절대적이라 상대평가가 불가능하다.코로나로 열린 신세계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인류는 이동을 멈추고 국경과 집안에 갇혔다. 온라인 네트워크가 비대면 세계의 확실한 지배자로 떠올랐다. 방역의 전권을 쥔 권력과 시민사회의 갈등은 민주주의, 인권 등 오프라인 시대의 핵심 가치를 위협하고 있다. '노 마스크(No Mask)'를 고집하던 트럼프는 탄핵심판대에 올랐고, 존슨 영국 총리는 죽다 살아나고서야 마스크를 썼다. 스웨덴의 자연집단면역 실험은 대참사로 막을 내렸다. 신천지와 사랑제일교회를 쥐잡듯 잡았던 우리 정부를 향해 서울 동부구치소 재소자는 "살려달라"로 외쳤다.세계 최초로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표준을 만든 K-방역의 위세는 백신 확보 경쟁에서 뒤지면서 빛이 바랬다. 무엇보다 정부의 자의적인 방역기준에 저항하는 민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2월 마스크 없이 신촌상가를 방문해 "손님이 적으니 편하시겠다"고 농담을 건넨 정세균 국무총리는 1년 만인 지난 1월 국회에서 위기의 자영업자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목구멍에 거미줄을 치게 된 자영업자에겐 유머도 눈물도 무의미하다.전문가들은 코로나가 독감처럼 풍토병으로 정착할 것으로 전망한다. 코로나 1년 인류가 치른 희생이 너무 크다. 차라리 코로나를 독감 정도로 여기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한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1-19 윤인수

[참성단]현실이 된 '벚꽃 엔딩'

지난해 3월21일, 전국 처음으로 창원에 벚꽃이 피었다. 따뜻한 겨울 날씨에 평년보다 8일가량 일찍 꽃망울을 터뜨렸다고 한다. 주요 도시의 벚꽃 개화시기는 대구 3월22일, 부산 23일, 광주 27일, 대전 30일 서울 4월6일, 인천·춘천 4월8일이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 국내 대학들 얘기다. 벚꽃이 일찍 피는 지역에 소재한 학교부터 폐교한다는 암울한 현실을 빗댄 표현이다. 말대로라면 경상·전라 지역 대학들이 먼저 문을 닫고 다음은 충청, 강원, 수도권 순서가 될 것이다.2021학년도 정시모집 마감 결과 전국 주요대학들의 경쟁률이 지난해보다 크게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주요 8개 대학의 평균 경쟁률은 4.73대1로, 서울대를 제외하고 모두 하락했다. 지방거점국립대학들도 하락 폭이 컸다. 전남대는 2.70대1에 머물렀고, 경북대 3.11대1, 전북대 3.17대1이었다. 수도권 대학은 평균 4.8대1로, 지난해 5.1대1보다 0.3 포인트 낮아졌다.정시모집에서 각 대학은 가·나·다 군(群)으로 나눠 학생들을 뽑는다. 응시생은 최대 3곳까지 대학을 지원할 수 있다. 이때문에 정시모집 경쟁률 3대1은 1대1과 같은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올해 지방 소재 대학들의 정시모집 경쟁률은 평균 2.7대1이었다. 상당수 학교가 정원을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입시 전문가들은 이른바 '벚꽃 엔딩'이 이제는 경고가 아닌 현실이 됐다고 진단한다.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지방대와 전문대에서 정원 미달에 따른 재정 악화로 폐교하는 학교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거다. 실제로 2024년에는 대입 가능 자원이 37만3천400여명에 그치면서 대학 정원의 25%를 채울 수 없는 것으로 예측됐다.학령인구가 급감하는데 대학 정원은 여전하다. 교육부는 대학 기본역량 평가를 통해 구조개혁을 유도하고 있으나 미미한 숫자다. 벚꽃이 이미 충청도를 지나 수도권 남부지역에도 개화했다고 아우성이다 비수도권은 대학마다 학생 충원에 비상이다. 장학금에 기숙사 확충은 대학 공통어가 됐다.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갈수록 떨어진다. 고학력 청년들의 실업률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대학을 없애야 나라가 산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1-01-18 홍정표

[참성단]육군참모총장 진정한 주임원사들

명량해전 전야. 이순신이 휘하 장수들을 불러모아 말했다. "병법에 이르길 반드시 죽으려 하면 살고(必死則生) 반드시 살려 하면 죽는다(必生則死) 하였다. 너희 각 제장들은 살 마음을 먹지 말라. 조금이라도 군령을 어기면(小有違令) 즉시 군율로 다스릴 것이다(卽當軍律)."명령은 지엄했지만 공포는 현실이었다. 해전 당일 삼백여척의 적선을 마주한 조선 수군은 겁에 질렸다. 이순신의 배가 적진을 향해 돌격했지만 부하 장수들은 전선 뒤에서 머뭇댔다. 장군은 깃발을 올려 집합 명령을 내렸고,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도착하자 일갈했다. "안위야 군법에 죽으려 하느냐." 뒤이어 도착한 중군장 김응함도 추상같이 질책했다. 정신이 번쩍 난 안위와 김응함은 그제서야 적진 한복판으로 돌격했다.죽음을 무릅쓰고 명령을 수행하는 조직이 군대다. 상관의 명령이 안먹히는 군대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 강한 군대와 유능한 지휘관들이 상명하복의 군기 유지에 애쓰는 이유다. 이순신은 군기 빠진 군관과 병졸들의 볼기를 쳤고, 탈영병의 목을 베어 군영에 효시했다. 군기 위반엔 인정을 두지 않은 덕분에 전장의 공포 한 가운데서 겁에 질린 부하를 적진에 돌격시킬 수 있었다.육군 부사관들이 육군참모총장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남영신 총장은 지난 연말 육군 주임원사들과의 화상회의에서 "나이 어린 장교가 나이 많은 부사관에게 반말로 명령을 지시했을 때 왜 반말로 하느냐고 접근하는 것은 군대문화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장교가 부사관에게 존칭 쓰는 문화, 그것은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발언했다. 이에 주임원사 몇 명이 총장 발언으로 "인격권을 침해당했다"고 진정서를 작성했단다.참모총장이 직접 훈시에 나설 정도면 장교와 부사관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인 모양이다. 실제로 장교의 반말 지시를 무시하고, 장교에게 경례를 생략하는 부사관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장교들이 부사관과 병사들에게 수모를 당하는 군기 문란 사건도 속출했다. 물론 장교들도 베테랑 직업군인을 예우하고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예우와 존중이 상명하복의 군기를 깨트릴 정도면 군대는 무너진다. 하물며 선임상사들이 4성 장군의 훈시를 치받았으니 볼장 다 본 군대 아닌가.부사관들은 '인격권 침해'를 우려하지만 국민은 '당나라 군대'를 걱정한다. 국민권익위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걱정된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1-17 윤인수

[참성단]'광주대단지 사건' 50주년

1960년대 후반, 서울시는 무허가 판잣집을 정리하기로 하고 광주군에 위성도시인 광주대단지를 조성해 이주할 계획을 세웠다. 철거민들에게 싼 가격에 토지를 분양해주고 세금을 면해주겠다고 했으나 이는 말뿐이었다. 주민 불만은 극에 달했고, 서울시장은 약속한 면담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주민들은 폭발했다. 1971년 8월10일 대단지 주민 5만여명이 성남출장소 앞에 집결했다. 이들은 세금 감면과 분양가 인하, 공장과 상업시설 설치, 취업센터 설치 등의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경찰기동대 700명을 투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분노한 주민들은 경찰을 제압하고 관리사무소와 파출소에 방화하는 등 대단지 전역을 초토화했다.지나던 승용차와 택시, 버스를 멈춰 세우고 승객들을 모조리 끌어내 운송 수단을 확보한 뒤 서울로 이동했다. 정부는 즉시 사과하고 이주민 요구를 전폭 수용하는 등 화를 달랬다. 이틀 뒤 서울시장이 광주대단지를 성남시로 승격하고 주민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시위대는 자진 해산했다.이 사건은 정부의 무계획적인 도시정책과 졸속행정에 반발한 해방 후 최초의 시민 생존권 투쟁이었다. 일부 학자는 이를 폭동으로 규정한다. 반면 처음부터 지역을 점거하고 폭력을 행사할 의도가 없었다는 점에서 무리가 있다는 견해가 맞선다.성남시가 '광주대단지사건 50주년'을 맞아 올바른 명칭 지정 등 기념사업을 벌인다고 한다. 사업추진위를 구성해 각종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서울대와 공동으로 학술토론회, 주민주도형 골목축제, 기획 공연 및 전시, 사적지 기념 동판 설치, 시민통합 토크쇼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대단지 사건은 전태일 분신사건과 함께 하위계층의 권익향상에 발자취를 남겼다. 세제지원과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하겠다는 약속을 이끌어냈다. 정부가 무력진압 대신 굴욕적인 협상을 택한 드문 사례다. 하지만 관련자 명예회복이나 보상은 여전히 미미하다.50주년을 맞아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100만 성남시는 서울에서 쫓겨난 빈민들의 서러운 눈물과 한(恨)을 딛고 일어섰다. 그런데도 정부의 부당한 폭력에 항거한 투쟁을 폭동이라 부른다. 명칭부터 바꿔야 한다. 거창한 포장은 아니더라도 '광주대단지(또는 성남) 항쟁' 정도는 돼야 어울릴 만하다./홍정표 논설위원

2021-01-14 홍정표

[참성단]기로에 선 'SNS 민주주의'

트위터가 트럼프 영구 퇴출을 발표했을 때 커다란 논란이 일 것으로 짐작했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의회의사당 점거 난동은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이다. 우방은 경악했고, 패권 경쟁국인 중국은 조롱했다. 글로벌 SNS 기업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트럼프 퇴출은 정의로운 심판처럼 보였다.이성은 늘 감성의 뒤를 따른다. 트럼프를 영구 퇴출한 트위터가 표적이 됐다.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SNS 기업들이 미국 대통령 입에 지퍼를 채운 초현실적인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나쁜 권력자라는 트럼프의 평판은 사실이지만 민간기업이 그의 자유를 제한할 권리는 없다는 얘기다.인권은 표현의 자유를 통해 구현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호하고 지지한다. 법에 의한 제한은 최소한에 그친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트럼프 퇴출은 이 원칙에 반한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공산주의, 전체주의 국가가 된다. 트위터가 자유민주주의의 심장인 미국 한복판에서 전제 권력을 행사하자 자유진영의 정치인들이 뒤늦게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선 이유다."미국 시민의 자유발언이 중국, 북한 같은 공산주의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스티브 데인스 미 공화당 상원의원의 탄식은 참담하다. 트럼프 변호가 아니라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경고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계정 영구정치는 문제"라고 가세했다. 의회 점거 사태와 트위터의 트럼프 계정 폐지로 미국의 온·오프라인 민주주의가 한꺼번에 추락했다.표현의 자유를 확장해 준 SNS가 이젠 저질 정치인들의 팬덤 정치 수단으로 변질한 건 사실이다. 트럼프가 증거다. '페북 정치'의 살벌한 대치로 합리적 대중을 소외시키는 우리 정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맹목적인 SNS 정치집단은 타인의 인권을 예사로 유린한다. 자유와 방종이 SNS 해방구에서 위험하게 동거 중이다. 그렇다고 SNS 기업의 개입을 허용할 수도 없다. 트럼프가 선례가 되면 여론에 의지한 자의적이고 선택적인 검열을 인정하는 셈이다. 선출된 권력이 무력해지고 시민권력이 왜곡될 수 있다.SNS 유저들의 이성 회복과 SNS 기업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자유민주주의 시민사회의 새로운 숙제로 떠올랐다. 'SNS 민주주의'가 기로에 섰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1-13 윤인수

[참성단]한의사들의 항변

현직 관리와 왕실의 종친만이 응시했던 과거시험을 '등준시(登俊試)'라 한다. '등준시무과도상첩'은 영조 때 시행된 등준시 무과 합격자 18명의 초상을 모아 놓은 화첩이다. 그런데 이 중 세 명의 얼굴이 '곰보'다. 마마(천연두)를 앓은 자국이다. 역병은 양반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전염병이 있으니 당연히 방역행정도 있었고, 왕명으로 역병 관련 의서도 발간했다.허준이 지은 '신찬벽온방'엔 역병 예방을 위해 환자를 등지고 상대하고, 병자의 옷을 시루에 찌라고 했다. 현대판 거리두기와 소독의 개념과 비슷하다. 하지만 바이러스를 몰랐던 시절이니 과학적 실증과는 거리가 먼 누적된 임상의 결과였을테다.현대 한의학은 허준 시대와 전혀 다르다. 한의대생들은 한의학과 양의학의 교과과정을 두루 섭렵하는 6년 커리큘럼을 이수해야 한다. 국가는 자격시험을 통해 한의사 면허를 주고, 전국 시·군·구 보건소에 공중보건한의사를 배치한다. 한의사도 의사, 치과의사와 같이 국가가 질병 치료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한 의료인이다.코로나19 사태에서 한의사들이 단단히 뿔난 모양이다.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방역 일선 참전 의사를 밝혔다는데 정부가 미적거렸다고 한다. 검체채취, 역학조사와 같이 교육받은 일반인도 가능한 기초 방역에도 한의사 투입을 주저하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역학조사관 80%가 공중보건한의사였고, 코로나 확진자 홈케어 시스템에도 한의사를 배치했지만 전혀 문제가 없었단다. 하지만 경기도 사례일 뿐이다.양의학계는 바이러스가 한의학 영역 밖이라는 입장인 모양이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방역을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해야 할 정부 입장은 이와 달랐어야 했다. 지난 1년, 한의사들을 검체채취, 역학조사, 경증환자 관리에 투입했다면 의료인력 대란도 막고 의미 있는 한의학적 임상 자료도 축적했을지 모른다. 중국은 양·한방 협진이 활발하다고 한다. 협진으로 사스 환자 사망률을 낮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정부가 코로나와의 방역 전쟁에서 양·한방을 구분하는 건 한가한 행정이다. 고양이 손발이라도 빌려 할 형국에 흑묘백묘 따지는 격이다. 하물며 국가 인증 의료인이다. 악착같이 활용방안을 찾아야 맞다. 정부는 의료자원을 낭비하고 한의사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니, 코로나 비상시국에 마주하기엔 민망한 장면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1-12 윤인수

[참성단]대기면성(大器免成)

동트기 전, 어둑한 식당 앞에 사람들이 몰려와 줄을 선다. 추위에 떨며 서너 시간을 기다리다 오전 8시쯤 문이 열리면 차례대로 입장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되풀이되는 미국 텍사스주 '스노스(Snow's)' 바비큐 식당의 진풍경이다. 직원이 10여명 남짓한데 요리는 86세 '투치 토마네츠 아줌마'가 전담한다.경력 60년의 아줌마는 평일에는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잡역부로 일한다. 출근하면 청소하고 나무를 단장한다. 그의 바비큐는 주말 하루만 허락된다. 토요일 새벽 1시에 일어나 바비큐 요리를 준비한다. 전체 소요시간은 12~16시간이다. 소·돼지·닭·칠면조를 전통방식으로 구워낸다. 화력이 절정인 숯불을 삽으로 화로에 붓고, 화덕에 고기를 올려 열기와 연기로 익혀낸다.'천상의 맛'이라는 투치의 바비큐를 맛보기 위해 미국 전역과 유럽, 아시아에서 손님들이 몰려든다. 수백 미터 줄을 서야 먹을 자격을 얻지만, '괜한 고생을 했다'는 사람은 없다. 여든 중반이 넘은 노구에도 여전히 식자재 구매부터 요리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다. 최고의 바비큐 장인은 여전히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한다.남편과 아들을 잃고 한동안 실의에 빠졌었다. 단골은 물론 먼 나라에서 온 식객들의 위로를 받으면서 다시 힘을 냈다. 전에는 까칠했는데 손님들과 더 가까워졌다. 덕담을 주고받으며 기념촬영을 하는 게 일상이 됐다. 덕분에 '한 입 베어 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는 마법의 바비큐는 여전히 진화 중이다. 80대 장인의 전설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 시리즈에 소개됐다. 어떤 시청자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꼭 가봐야 할 버킷리스트가 됐다'고 한다.노자의 도덕경에 '대방무격(大方無隔)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구절이 있다. 큰 사각(四角)은 모서리가 없으며,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는 거다. 늦은 나이에 출세하거나 이름을 떨치게 된 인사를 일컫는다. 어떤 학자는 노자가 말한 건 대기만성이 아닌 대기면성(大器免成)이었다고 한다. 큰 그릇은 완성됨이 없이 계속 만들어질 뿐이라는 것. '큰 사각은 모서리가 없다'는 전구(前句)와도 어울리는 해석이다. 끝없는 정진으로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는 것을 말한다. '그침이 없이 진화하는 나를 만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가르침을 새해 다짐으로 담는다./홍정표 논설위원

2021-01-11 홍정표

[참성단]'벙커 정치'와 트럼프의 몰락

자신이 선동한 폭도들이 의회의사당을 유린하는 동안 도널드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광기의 시간을 보냈던 모양이다. 국내 한 언론의 미 언론 보도 종합에 따르면 트럼프는 "거의 흥분 상태였고 완전히 괴물 같았다"고 한다. 의사당 폭도들을 "미국의 애국자"로 치켜세우면서, 자신의 부통령 펜스는 선거인단 개표를 막지 않는다며 배신자로 몰았다. 보도는 트럼프의 광증을 "현실을 직시할 수 없는" '벙커 멘탈리티'라 했다.'벙커 멘탈리티'는 고립무원의 비이성적인 심리상태를 의미하는 조어로 보인다. 외부와 단절된 벙커에 갇히면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이 불가능해진다. 베를린 함락 직전 총통벙커에서 결사항전을 지휘한 아돌프 히틀러의 최후가 그랬다. 그는 지하 10m 벙커 안에서 연합군에게 반격과 수비를 명령했지만, 이를 수행할 독일군은 궤멸했고, 2인자 헤르만 괴링은 대놓고 등을 돌렸다. 히틀러는 벙커 안의 가상현실에서 희망과 절망의 극단을 오가는 광기로 제국의 최후를 지휘했지만, 그렇다고 패전의 현실이 변할리 없었다. 그는 약혼녀 에바 브라운과 벙커 결혼식을 올린 다음 날 자살로 생을 마쳤다.임기 말 트럼프도 파국을 향하고 있다. 의사당 폭력 선동은 최악의 정치적 착란이었다. 민주당은 트럼프를 반란 선동자로 규정하고 탄핵을 예고했다. 반란자를 단 하루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에, 공화당도 변명할 엄두를 못 낸다. 백악관 참모들과 장관들은 정권에서 줄지어 하차했고, 대학들은 트럼프의 명예박사학위를 취소했다. SNS 대기업들이 결정적 한방, 벙커버스터를 투하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트럼프 계정을 영구정지하거나 폐쇄한 것이다. 트럼프는 벙커정치의 엑스칼리버를 압수당한 채 온라인 정치에서 삭제될 처지다.멘붕에 빠진 트럼프는 오락가락한다. 여론의 반전에 놀라 '질서있는 정권 이양'을 발표하면서도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엔 불참한단다. 강성 트럼프 지지자들은 연방의회, 주의회와 바이든 취임식을 겨냥한 무장봉기를 선동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미국의 상식은 트럼피즘의 비상식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결연하다.미국 민주주의는 주권재민을 염원했던 전 세계 이민자들이 일구어낸 유산이다. 그런 미국이 맥락 없는 포퓰리스트인 트럼프가 지지자들과 벙커 정치를 펼치자 속수무책으로 망가졌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와 국민은 트럼프를 역사적인 경종으로 기록할 것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1-10 윤인수

[참성단]함백산 추모공원

2015년 화성시가 비봉면 함백산 자락에 화장시설을 짓겠다고 하자 인접한 수원 서부권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후보지와 칠보산을 사이에 둔 호매실동 주민들은 수차례 집회를 열고 사업 백지화를 요구했다. 지역 정치권은 찬·반 진영으로 갈렸고, 경기도지사가 나섰으나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와 환경부의 심의를 통과하고 나서도 여진은 계속됐다.수원시는 화장장 수요의 시급성이 낮고 인근 39·42번 구도의 상습정체, 생태보전지 훼손 등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일부 주민들은 다이옥신 발생에 따른 건강 문제를 우려했다. 화장 시설 때문에 국도가 시도 때도 없이 막힌다는 주장은 최대치를 가정해도 지나치다는 게 교통전문가들의 견해였다. 무색·무취·무연의 첨단 친환경 공법이라는 화성시의 설명은 먹혀들지 않았다.함백산 추모공원이 오는 6월 개장한다. 5개 지자체가 30만㎡에 사업비 1천212억원을 공동 부담해 화장로 13기, 봉안시설 2만6천514기, 자연장지 2만5천300기를 확보한 종합 장사시설이다. 장례식장 8실, 주차장, 공원 등 필수 시설과 편의·휴식 공간을 갖췄다. 장례에서 봉안까지 원스톱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운영시스템을 적용한다.화성시민은 물론 공동사업주인 광명·부천·안산·시흥·안양시민 360만명이 특별 혜택을 받는다. 이들 지자체 주민들은 화장비로 16만원(외지인 100만원)만 부담하면 된다. 수도권에 교통이 편리해 봉안시설과 자연장지도 수요가 몰릴 전망이다. 장사시설이 부족해 애를 먹은 관련 지자체들은 해묵은 난제를 해결하게 됐다.추모공원은 2017년 준공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집단민원에 따른 갈등 조정에 시간을 빼앗기면서 4년여 늦어지게 됐다. 과학적 근거가 아닌 부동산가격 하락을 우려한 주민들의 단체행동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추가됐다. 지역 주민들은 지난 4년간 애먼 고생을 했다.가까운 길을 놔두고 굳이 먼 길을 돌아야 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함백산 공원은 지자체가 뜻을 모은 대표적 협업 사례로 꼽힌다. 악성 민원인 혐오·기피 시설로 골치가 아픈 시·군들에 모범 답안이 될 수 있다. 광역 폐기물처리시설과 하수종말처리장 등 응용 대상이 많다. 힘든 일은 나누고, 기쁨은 같이하는 게 이웃사촌이다. 함께 하면 너도 좋고, 나도 좋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1-01-07 홍정표

[참성단]K방역 불복 시위

목숨이 경각에 달린 민중의 세상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권력은 위험하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선동가들의 가짜뉴스였다. 문제는 이 가짜뉴스가 민생에 무관심한 프랑스 왕실의 태도를 정확하게 짚었고 민중의 분노를 유발했다. 민중은 대혁명으로 왕정을 절단냈다. 조정이 지방관리들의 가렴주구를 방치하자 조선 농민들은 전국에서 봉기했다. 임술년(1862년) 농민봉기로 조선은 급속히 쇠락한다. 철종이 민생 현장을 외면한 탓이다.K-방역에 저항하는 민심이 예사롭지 않다. 정부의 방역조치로 생계가 끊어진 자영업자들이 전국에서 "왜 우리만"을 외치며 불복 운동을 벌이고 있다. 헬스장 관장님들과 필라테스 원장님들이 영업금지에 반발해 업소 문을 여는 '오픈 시위'에 나섰고, 카페와 유흥업소 주인들도 동참했다. 코로나19 영업제한 조치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도 청구하고 나섰다.자영업 영업제한 조치의 형평성을 지적하고 호소하는 언론과 국민의 소리를 외면한 결과다.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도 등록된 업종에 따라 매장 영업이 달라지고, 아래층 태권도장엔 기합소리가 우렁찬데 헬스장은 불을 꺼야 한다면 분통이 터지는 건 당연하다. 영업금지는 자영업자의 밥그릇을 깨는 조치다. 공정하지 않다면 살기 위해 저항하는 건 민주적 권리다. 책상머리에서 생계금지 업종을 선별한 정부의 용기가 대단하다.서울동부구치소 문제도 간단치 않다. 공권력으로 가둔 수감자들의 인권은 전적으로 공권력이 책임져야 했다. 마스크도 안주고,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한방에 몰아넣었단다. 코로나19로 사망한 수감자를 가족에게 연락도 없이 화장했다는 의혹은 차마 믿기 싫다. 교정시설 코로나방역을 홍보한 법무부 유튜브 동영상은 앙투아네트 케이크에 버금간다. 서울동부구치소는 신천지교회와 세월호 사이에 머물며 정권을 괴롭힐 것 같다.문재인 대통령은 5일 국무회의에서 "코로나 확산세가 정점을 지나 조금씩 억제되는 모습을 보인다"며 "코로나 극복 모범국가"를 약속했다. 생계가 경각에 달린 자영업자들과 서울동부구치소 수감자들이 "살려달라"며 저항하고 읍소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낙관이고 여유인 듯 싶다. 대통령이 책상머리 관료들의 보고서를 내던지고 지금 당장 코로나 민생현장을 찾아 국민과 만나보길 권한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1-06 윤인수

[참성단]'우주의 기운'

1990년 2월14일. 미국의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는 태양계와 작별하기 직전 지구를 촬영한 사진을 전송해왔다. 사진 속에서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했다. 이후 '창백한 푸른 점'은 지구의 별칭이 됐다. 이 촬영을 주도한 칼 세이건은 동명의 저서에서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밝혔다.오래전부터 인류는 광대무변한 우주의 기운이 일정한 법칙과 규칙으로 인간의 삶에 관여한다는 운명론에 입각해 천체의 운행을 관찰해왔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하늘의 기운이 땅과 사람의 기운에 미치는 영향을 읽어내는 점성술이 성행했던 배경이다. 우주의 기운을 빌려 땅의 평화를 기원하는 제의는 그리스 신전에서 채화한 성화로 불을 밝히는 현대 올림픽에서도 면면히 이어진다. 우리 전국체전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채화한 성화를 밝힌다.우주의 기운, 천기(天氣) 읽는 일은 정치적으로 중요했다. 점성술을 신봉한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는 천둥을 두려워했고, 번개를 막기 위해 월계관을 썼다고 한다. 유교권의 황제나 군주들도 역병이나 기근이 발생하면 자신이 하늘의 기운을 역행한 죄를 자백하고, 천기를 살펴 제사를 지냈다. 제갈량이 하늘에서 동남풍을 빌려 적벽대전에서 승리했듯, 권력을 얻고 유지할 수만 있다면 '우주의 기운'을 마다할 리 없기는 현세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 일테다.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4일 시무식에서 할리우드 영화 '토르'의 대사에 나오는 '우주의 기운'을 언급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집중된 대전환의 시간이 우리 앞에 열리고 있다"고 밝혀 화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우주의 기운인 천심(天心)이 작동하길 바라는 덕담일 것이다.하지만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다. 유교 세계의 군주들은 민생을 통해 하늘의 기운을 보았다. 하늘은 백성들의 행·불행으로 군주의 정치를 심판한다 믿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금 우주의 기운이 아니라 정권의 사면이 더욱 간절한 처지이다. 민심을 읽지 못한 탓이다.지금 민생은 고단하고 민심은 흉흉하다. 정치인이라면 민생 안정을 위해 제 한 몸을 불살라야 할 시간이다. 민심은 그런 정치인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난장판에서 '우주의 기운'으로 한반도 평화를 예지하는 이인영 장관. 그를 바라보는 민심이 궁금하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1-05 윤인수

[참성단]낮술 금지령

전날 저녁 늦게까지 과음한 속은 숙취로 거북하다. 잦은 설사로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들끓는 속 쓰림에 자진 토를 한다. 해장국을 먹을 수 있는 정도라면 다행한 일이다. 아침·점심을 거르고 오후 서너 시쯤 반상 앞에 앉았으나 서너 숟가락에 그치고 만다. 위장이 다시 요동치면서 음식을 자꾸 밀어낸다. 20대 초반부터 40년 가까이 술과 함께 지냈으나 숙취로 인한 괴로움은 어찌해볼 방도를 찾지 못했다.아점 무렵, 쓰린 속을 달래볼 요량으로 찾아간 중화식당에서 어쩌다 해장술을 마주한 애주가를 보게 된다. 구석 자리에 똬리를 틀고 홀로 앉은 50대 사나이는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도 전, 벌써 두 잔째를 들이켰다. 단무지와 춘장을 찍은 흰색 양파를 집어 든다. 드디어 자장면이 나오고, 사내는 두꺼비 한 마리를 거뜬하게 해치웠다. 감히 넘볼 수 없는 고수의 위엄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전남 순천시장이 전국 처음으로 낮술을 금하는 행정명령을 발령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4일부터 17일까지 2주간 거리두기를 연장하면서다. 식당에서는 오전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주류판매를 할 수 없다. 주·야간 상시 점검반을 편성해 지도·단속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위반하면 무관용을 원칙으로 형사 고발과 강력한 행정조치를 하겠다고 한다.국민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더 커지게 생겼다고 걱정한다. '낮술 환영'은 언감생심이다. 반면 동감한다는 네티즌도 있다.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다 같이 노력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거다. 이참에 낮부터 술에 취하는 잘못된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한다.'승무'와 '지조론'을 남긴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은 초인적인 애주가였다. 술과 관련된 숱한 일화를 남겼고, 김삿갓·황진이·변영로와 더불어 4대 호주가(豪酒家)로 꼽힌다. 시인은 술을 말하면서 외주(畏酒)를 낮은 단계로, 낙주(樂酒,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를 주성(酒聖)의 경지로 평했다.시인은 마흔여섯에 이승과 작별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오랜 기간 병마와 싸웠다고 한다. 시인은 주도의 마지막 18단계를 폐주(廢酒)라 했다. 술로 인해 다른 세상으로 떠난 사람이다. 신축년 새해, 낮술 금지령을 핑계 삼아 금주(禁酒)에 도전해볼 만하지 않은가. /홍정표 논설위원

2021-01-04 홍정표

[참성단]유리창 대선정국

문재인 대통령은 SNS 신년 메시지 "모두의 삶이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 한 사람의 손도 절대 놓지 않고 국민과 함께 걷겠다"며 '국민 일상의 회복'을 약속했다. 2일 현충원 방명록에도 '국민의 일상을 되찾고 선도국가로 도약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연초부터 달아오른 여야 대권 경쟁으로 대통령이 코로나 방역에만 전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신년사에 선전포고를 담았다. "잘못된 정치의 근본을 바꿔야 나라가 바로 서고 국민이 살 수 있다"며 국민의힘이 "국민 공감 수권정당으로 우뚝 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본격화될 대선정국을 염두에 둔 출사의 변이다. 서울시장 보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긴 어둠도 새벽의 기운을 이길 수 없다"며 불퇴전의 의지를 과시했다. 야당은 이미 선거현장에 가 있다.여당의 간판 대권 주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신년사도 관심을 끌었다. 이 대표는 "인간의 얼굴을 한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각계의 협력과 참여를 얻겠다"고 문학적 서사로 대권포부를 밝혔다. 반면 이 지사는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며 경제적 기본권 확대, 공정 세상 실현, 복지 확대, 균형발전과 평화정착을 내세웠다. 대선 슬로건과 정책으로 손색이 없다. 이미 당내 경쟁은 시작됐다. 이 대표는 이명박·박근혜 사면론으로 중도층을 겨냥한 통합 행보를 시작했고, 이 지사는 '나까지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며 전략적 침묵으로 대응했다.하지만 여론의 가장 큰 관심은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신년사에서 "국민의 검찰이란 오로지 그 권한의 원천인 국민만 바라보고 좌고우면하지 않는 것"이라며 "국가, 사회의 집단적 이익을 내세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함부로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핵심 가치"라고 밝혔다. 정치권은 그의 신년사를 법과 정치 사이에 두고 어디에 가까운지 해석하느라 진땀을 흘린다.여권은 친문(親文)진영 대권 주자들이 고전하는 상황에서 이재명이 뜨고, 제1야당의 불임현상으로 윤석열이 우뚝 선 현재의 상황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선지형이다. 작은 돌팔매질 한번에도 깨질 수 있는 유리창 대선정국이 아슬아슬하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1-03 윤인수

[참성단]송구영신(送舊迎新)

삼백예순의 나날들/ 기쁨과 슬픔/ 아쉬움과 홀가분이 섞여 있다/ 우리 함께 했기에 좋았던 한 해/ 설레이며 새해를 맞이하라(서윤덕 시인의 '송년').2020 경자년(庚子年)은 전염병의 창궐로 일상이 무너진 참담한 한 해였다.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고, 살기 위해 흩어져야 했다. 상투적으로 건네는 '건강하시죠'란 인사말이 진심 걱정하는 마음 씀씀이가 됐다. 인적마저 끊긴 세모(歲暮)의 밤거리, 칼바람이 매섭다. 너도 답답하고, 나도 우울하다. 시인도 지난 삼백예순의 나날들이 '좋았던' 건 아닐 듯하다.정결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리라/ 그렇게 맞이한 이 해에는/ 남을 미워하지 않고/ 하늘같이 신뢰하며/ 욕심 없이 사랑하리라/ 소망은/ 갖는 사람에겐 복이 되고/ 버리는 사람에겐/ 화가 오느니/ 우리 모두 소망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황금찬 시인의 '나의 소망' 중에서).2021 신축년(辛丑年)이 밝았다. 동해안 정동진이 갇히고, 한남정맥 광교산을 둘러막아도 해는 솟아오른다. 새해를 맞는 마음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희망이 있고, 설레는 마음에 즐거움이 넘친다. 따뜻한 시선으로 이웃을 둘러보는 여유로움이 충만하고, 어린아이 같은 무구(無垢)한 마음을 가져본다. 수천 도(度) 열기를 응축한 시뻘건 해를 보면서 작은 소망 하나 축원(祝願)한다. 새해를 마중한 시인은 사랑과 소망을 노래했다.역술로 보면 신축년은 절기상 12월로, 새벽 1시 언저리다. 칠흑 같은 어둠과 꽁꽁 언 대지를 가리킨다. 좋은 징조는 아니라는 뜻이다. 국내 한 역술인은 천재지변과 홍수, 지진 등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 창궐을 예지해 유명세를 떨친 14살 인도 소년 아비냐 아난드의 예언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천재지변은 물론 전쟁과 이변으로 세계 경제가 붕괴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디난 일 애다디 말오 오는 날 힘써서라/ 나도 힘 아니 써 이리곰 애다노라/ 내일란 바라디 말오 오늘 나를 앗겨서라'(매암 이숙량(1519~1592). 오지 않은 앞날을 걱정하는 건 어리석고 부질없다. 미래의 명운은 신의 영역이다. 찰나를 머물다 가는 미물은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지난 일에 매달리지 말고 오늘 힘써 살아야 한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2-31 홍정표

[참성단]'2020년'

2020년이 오늘 하루를 끝으로 저문다. 올해도 늘 그렇듯 음력 경자년(庚子年)을 가불해 상서로운 기대로 양력 첫 날을 열었다. 경자년 흰 쥐가 다산과 재물을 상징한다며 풍요로운 한 해가 될 것이라 했다. 하지만 2020년 자영업자 주머니는 탈탈 털렸고, 나라 곳간엔 빚 문서만 쌓였다. 출산율은 역대 최악 기록을 갱신했다. 경자년 코로나19 대란에서 무사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 모든 일이 틀린 점괘 탓이라면 40여일 남은 경자년을 뭉텅 잘라내고 싶을 정도다.2020년은 인류 전체가 문명을 전환한 '코로나 원년'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멀리 볼 것 없이 우리 사회의 비대면 문화가 확산일로다. 기업들은 재택근무의 손익계산을 따져보며 화상회의를 정착시킬 태세다. 배달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수많은 식당들이 온라인 배달 플랫폼 기업에 종속되고 있다. 코로나가 온라인 산업혁명을 재촉하는 형국이다. 결혼식과 장례식은 간소해지고 송년모임은 사라졌다. 익숙해지면 문화가 된다. 코로나가 끝나도 코로나가 남긴 변화는 이어질 것이다.견딜 수 없을 만큼 어려웠던 시절, 서로 따뜻한 정이라도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참 살벌하게 서로 맞선 한해였다. 정치 탓이다. 코로나 때문에 광장에서 온라인으로 옮겨 간 정쟁은 서로를 죽이기에 충분했다. 연초 대통령은 "애벌레에서 나비로 탄생하는" 상생의 탈피를 다짐했지만, 나비는 날지 않았다."우리 절 밭두렁에 벼락 맞은 대추나무/ 무슨 죄가 많았을까 벼락 맞을 놈은 난데/ 오늘도 이런 생각에 하루해를 보냅니다.(무산 조오현 '죄와 벌')" 정권의 누군가가 선승( 禪僧)의 깨달음을 흉내만 냈더라도 정치가 이리 망가졌을까 싶다. 벼락 맞을 정치가가 없으니 국민만 벼락 맞은 대추나무 신세가 됐다. 아시타비(我是他非) 지옥을 2020년에 실어 보내긴 힘들 모양이다."어서 잊을 건 잊고 용서할 건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어요.(이해인 '송년의 시')" 그래도 연말이다. 한 해의 희로애락을 정리 정돈할 인연들이 그립고 보고픈 건 어쩔 수 없는 세모의 심경이다. 그런데 국민 전체가 5인 미만으로 흩어졌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연말 풍경이다. 낯설고 슬프다. 2020년, 네가 그랬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2-30 윤인수

[참성단]동부구치소 팬데믹

법무부는 지난 28일 초유의 구치소 수감자 소개작전을 벌였다. 코로나19에 확진된 서울동부구치소 수감자 345명을 청송교도소로 이송한 것이다. 이송 버스는 히터도 잠근 채 운행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전파될까 그랬단다. 청송교도소 교도관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7개 조가 돌아가며 2박3일 근무한 뒤 14일 동안 외부와 격리된다. 수감자와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됐다. 그렇다고 동부구치소가 한숨 돌린 것도 아니다. 이날 하루 230여명의 확진가가 추가로 쏟아져 나왔다.코로나 사태 초기 세계 각국에서 교도소 탈옥과 폭동사건이 속출했다. 브라질, 베네수엘라, 칠레 등 중남미 국가는 물론 이란, 스리랑카 교도소에서 코로나19 예방조치에 반발하거나 감염 공포에 휩싸인 재소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거나 집단탈옥을 감행했다. 미국은 교도소 감염과 폭동을 우려해 경범죄자들의 조기 석방을 단행했다. 이를 노리고 코로나에 걸리려 물컵을 돌려쓰다가 적발된 재소자들도 있었다.동부구치소 집단감염은 상식적으로 예상 가능한 참사였다. 교정시설 수용규정에 따르면 혼거실의 1인당 배정면적은 2.58㎡, 1평도 안 된다. 외부와 격리된 채 혼거실에 수용된 수감자들은 전염병의 손쉬운 표적이고, 일단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속수무책이다. 지난 20일 동부구치소의 한 수감자가 창틀에 매달려 옷가지를 흔들며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이 한 방송사 카메라에 잡혔고, 어제도 한 수감자의 절박한 '창문 SOS'가 포착됐다. 수감자들의 감염 공포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힘들다.교정시설 코로나19 대책은 이미 실행중이었어야 맞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된 법무부의 해명이 걸작이다. "수용자들에게 마스크를 매일 지급했다면 국민여론이 좋지 않았을 것"이란다.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 법무부는 형사 피의자 인권보호를 목청 높여 외쳤다. 피의사실 공표도 안 되고 포토라인도 없앴다. 그런 법무부가 교정시설 수감자에겐 인권보다 국민여론을 앞세운다. 인권의 보루인 법무부의 인권의식이 선택적이라면 심각한 문제다.동부구치소 팬데믹 이후에야 법무부는 교정시설 수용자들에게 KF 인증 마스크를 지급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수감 인원의 3분의 1이 감염됐고 어젠 사망자까지 발생한 사실이 확인됐다. 전형적인 사후약방문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2-29 윤인수

[참성단]취업 포기한 청년들

'프리터(Free + Arbeit)족'은 직업이 아르바이트인 젊은 층을 말한다.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 생계유지를 위해 알바를 한다. '니트(NEET) 족'은 일하지 않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들이다. 15~34살 취업인구 중 미혼으로 학교에 다니지도, 가사 일도 하지 않는다. 취업하겠다는 의욕도 없기에 의지가 충만한 프리터족과 구별된다.통계청은 지난달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쉬었다'는 응답자가 235만명이었다고 밝혔다. 이 중 4년제 대학을 나와 일하지 않고 구직활동도 하지 않으며 그냥 쉰 20·30대 청년이 19만3천명이다. 지난해 11월 대졸 청년 백수는 13만7천명이었다. 1년 전보다 40% 이상 늘어난 셈이다. 대졸 백수 중 20대는 10만6천명, 30대는 8만7천명이다.역시나 코로나19 탓이 크다. 기업 채용 규모가 확 줄어든 데다 주요 대면 업종의 부진이 심각하다. 숙박·음식점, 스포츠·예술, 여행·교육 서비스업 등 청년 고용 업종이 치명상을 입었다. 일자리를 찾다 지쳐 의욕을 잃은 청년세대가 늘어난 이유다.니트족은 소비 능력이 평균에 못 미친다. 이렇다 할 소득이 없으니 부모와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준다. 경제의 잠재성장력을 떨어뜨리고 경제 활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된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불안을 유발하는 사회병리 현상으로 취급된다.한국경제연구원은 이달 초 한국의 대졸자 취업률이 2009년 OECD 37개국 중 14위에서 2019년 28위로 14계단 크게 하락했다고 밝혔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청년대졸자 실업률은 2009년 6.1%에서 2019년 5.3%로 0.8%p 개선됐지만, 한국은 5.0%에서 5.7%로 0.7%p 악화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2.8%p(5.2%→2.4%), 일본은 2.1%p(4.7%→2.6%) 낮아졌다.새해에도 일자리 시장엔 먹구름이 짙다. 코로나 조기 종식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 일자리 창출은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좀비 기업이 늘어나는 민간 경제도 불안하다. 불과 2개월 뒤면 다시 졸업시즌이다. 통계로 보면 새내기 대졸자 중 30% 이상은 백수 대열에 강제 편입된다. 청년 취업시장이 한파(寒波)보다 더 꽁꽁 얼어붙었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2-28 홍정표

[참성단]코로나 사망자를 위한 애도

인종과 문화는 달라도 망자와 이별하는 상례(喪禮)는 엄숙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쟁과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는 예법이 무너진다. 대규모 전염병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엔 스페인 독감 사망자들을 한꺼번에 묻은 집단매장지가 도처에 산재한다. 실록에 1천400여건의 역병 기록을 남긴 조선 조정은 역병이 창궐할 때마다 버려진 시신을 모아 매장하거나, 그것도 힘에 부치면 한데 모아 화장하기도 했다.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존엄한 죽음이 불가능하긴 마찬가지다. 전 세계 누적 사망자가 174만여명인 상황에서 희생자에 대한 예의는 사라졌다. 발생 초기 중국에선 시신을 트럭에 한데 실어 처리한다는 얘기가 돌았고, 1등 국가인 미국에선 냉동 컨테이너에 시신을 보관하는 실정이다. 많은 국가에서 장례식은 생략됐고, 가족과 대면도 못한 채 화장됐다."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에 부고 소식을 알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르기로 하였습니다. 상주 000."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받은 4건의 SNS 부고 내용이 한결같았다. 그 밑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댓글이 빼곡하게 매달렸다. 부고를 알리는 상주나, 찾아가 애도하지 못하는 문상객들 모두 죄송하고 미안한 심경인 코로나19 장례식 풍경이 참담하다.일반 장례식 풍경이 이럴진대 코로나 사망자 유가족들의 심경은 어떨지 상상하기 힘들다.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코로나19 사망자 장례관리 지침'은 선 화장 후 장례가 원칙이다. 임종을 지켜보려면 의료진 수준의 방호복을 입어야 하지만, 고인과의 마지막 대면은 사실상 힘든 모양이다. 의료용 비닐백에 밀봉된 시신은 수의도 입지 못한 채 가능한한 당일 화장한다. 우리 장례문화에서 이런 식으로 부모와 혈육을 보내는 건 평생 한으로 남을 일이다.이렇게 시나브로 우리 곁을 떠난 코로나 사망자가 어제까지 808명이고, 12월 한 달에만 280여명이다. 요양병원에서 전원을 기다리다 사망한 고령자도 적지 않다. 상례의 생략도 가슴 아프지만, 최선의 치료를 받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두고두고 유족들을 힘들게 할 것이다.수십만명이 사망한 나라에 견주어 희생자가 적다고 자위할 일이 아니다. 목숨의 무게는 숫자를 초월한다. 당국의 코로나 브리핑 때마다 반복되는 희생자에 대한 애도가 가벼워 보인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국가 차원의 정중한 애도와 추모가 있어야 한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2-27 윤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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