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존엄사 권리

중증환자에게는 '죽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잭 케보키언이란 의사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죽음의 의사(Dr. Death)'로 불렀다. 1990년부터 98년까지 중증환자 130명을 '죽음의 길'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그중엔 3~5년 더 연명할 수 있는 50대 알츠하이머 환자도 있었다. 고통의 눈물을 흘리는 환자의 몸에 그는 기꺼이 약물을 투입했다. 하지만 루게릭병에 걸린 환자의 안락사 장면을 CBS 대표 시사프로그램 '60분'에 제공한 게 문제였다. 법원은 '2급 살인죄'로 그에게 10~25년 징역형을 선고했지만, 미국 내에서 안락사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촉발했고 이 덕분에 오리건, 몬태나, 워싱턴주가 존엄사를 합법화했다.소생 불가능한 중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계속 해야 하느냐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국내에서 존엄사 즉 '연명치료'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것은 2008년 '김 할머니 사건'이다. 김 할머니는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이 됐다. 가족들은 병원 측에 연명치료 중단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2009년 5월 희망이 없는 연명치료를 환자 측이 중단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하지만 논의과정이 길어지면서 '연명의료결정법 (존엄사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건 이보다 늦은 2018년 2월이었다. 이후 연명 의료를 거절한다는 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지난해 말 53만667명에 달했고 이 중 8만3명이 자기결정권에 따라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존엄사를 맞았다.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연명치료에 집착하기보다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탓이다.그제 경인일보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사전 연명의료의향서' 제도가 최근 노인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유행처럼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고통스러운 삶을 연명하는 불치병환자로 무의미한 치료를 하면서 가족에게 고통을 주느니 사리판단이 가능한 지금, 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본인이 직접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등록기관이 전국적으로 396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신문은 '노년의 슬픔'을 안고서 등록기관을 찾는 노인들을 가리켜 '존중받지 못하는 '존엄사권리''라는 서글픈 헤드라인을 달았다. '어떻게 삶을 잘 마무리할 것인가'는 우리 인류의 영원한 숙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20-01-16 이영재

[참성단]'배드 파더스'와 '페인트'

양복을 입고 뒷짐을 지고 있는 한 남성을 배경으로 '양육비 미지급'이란 붉은색 글씨가 선명하다. 이혼 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온라인 웹사이트 '배드 파더스'의 초기 화면이다. 화면을 내리면 이른바 '나쁜 아빠'의 얼굴 사진과 이름, 나이, 주소, 직업 등 신상정보가 줄줄이 뜬다. 이들의 신상을 공개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사이트 운영진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개인의 명예 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한 판결이다. 실제로 이 사이트로 인해 현재 113건의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해결됐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국가에서 버려진 아이를 키워 주는 양육 공동체가 실현된 미래 사회가 소설의 배경이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국가에서 설립한 'NC 센터'에서 19세까지 생활할 수 있다. 그 전에 입양을 원하는 부부가 나타나면 가정을 꾸릴 수 있는데, 아이들이 직접 부모를 선택한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소설 제목인 '페인트'는 아이가 부모를 선택하기 위해 실시하는 면접(parent's interview)을 뜻하는 소설 속 아이들의 은어다. 선택받은 부모는 각종 혜택을 받는 대신 제대로 아이를 키우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주인공 '제누 301'의 페인트 과정을 통해 좋은 부모란, 나아가 가족의 의미란 무엇인지를 청소년의 시선에서 질문하는 작품이다.이 소설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소설과 현실 사이에서 뭔가 교집합의 빗금이 읽히기 때문이다. 우선 소설 속에서 정부는 아이를 잘 낳지 않고, 낳아도 키우지 않으려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해지자 국가의 사활을 건 프로젝트로 NC센터를 설립한다. 저출산에 부모의 자녀 방임, 학대 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과 비슷하다. 또 이번 판결은 기본적으로 당연히 해야 할 부모의 도리마저 사회 시스템의 통제 영역으로 들어왔음을 시사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소설에서도 아이를 육체적· 정서적으로 돌보고, 아이를 입양한 부모가 제대로 아이를 돌보는지 감시하는 주체는 시스템이다.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는 게 우리네 부모의 모습이었다. 인류의 소중한 가치 중 하나인 부성애마저 시스템이 강제해야 하는 과정을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임성훈 논설위원

2020-01-15 임성훈

[참성단]출판기념회

우리 국민의 독서율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한국 성인 10명 가운데 4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치고 너무 낮은 독서율에 외국인들은 의아해 한다. 그런 나라에서 이맘때가 되면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책을 사고파느라 북새통을 벌이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4·15총선을 앞두고 전국을 들썩이게 하는 정치인 출판기념회 때문이다. 선거법상 총선 D-90일이 되는 16일부터는 국회의원과 예비후보들의 출판기념회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오늘이 그 마지노선이다. 국회의원은 연간 1억5천만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까지 후원금 모집이 가능하다. 그러나 출판기념회의 수익은 후원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횟수와 한도제한도 없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할 의무도 없다. 그러다 보니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 모금 행사로 변질한 지 오래다. 출마자에게 '눈도장'을 찍거나 이른바 '보험'을 들어야 하는 이들에겐 출판기념회 초대장은 '청구서'나 다름없다. 유명 정치인의 경우 적게는 1억~2억원, 많게는 10억원이 넘게 책이 팔린다고 한다. 일반 서점과 다른 것은 정가 1만5천원의 책이 10만원에, 때로는 100만원에 팔린다는 점이다.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처음부터 책 읽기가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책이 엉성하다. 물론 정성이 가득 담겨 있는 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함량 미달이다. 선거를 앞둔 출판기념회의 경우는 급조해서인지 특히 그렇다. 자화자찬 수필이 주류여서 읽는 것도 고역인 경우가 많다. 찾는 이들 역시 '얼굴도장 찍기'가 목적이라 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방명록에 서명한 후 봉투를 전달하고 책을 한 권 받아들지만,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허망한 출판기념회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정치인의 책은 보좌관이 써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대필 작가가 맡는다. 좀 알려진 작가는 한 건당 2천만원, 무명작가는 500만원 정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용도 투철한 국가관을 바탕으로 고난을 이겨낸 인간승리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 희망과 비전을 첨가하면 '뚝딱' 한 권의 책이 완성된다. 원래 출판기념회는 집필의 산고와 출간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소박한 뜻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숭고한 뜻이 온데간데없다. 책 한 권 만드는데 3m짜리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진다는 걸 정치인들은 알고 있을까. /이영재 논설실장

2020-01-14 이영재

[참성단]'진중권 호루라기'

1980년대 대학가 운동권에 주체사상을 전파한 '강철서신'의 필자 김영환은 북한 대남방송과 일본에서 출간된 서적을 통해 주체사상에 입문한 자생적 주사파였다. 민족해방(NL) 계열 운동권의 핵심이자 주사파 이론의 대부인 그는 두 번의 밀입북을 통해 조선노동당에 가입하고 '관악산 1호'라는 암호명과 공작금을 받아와 민주민족혁명당(민혁당)이라는 지하당을 조직한다.김영환은 북한 주체사상연구소 학자들과의 토론 끝에 주체사상에 대한 회의감도 함께 가져왔다. '당과 수령의 오류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느냐'는 요지의 그의 질문에 북한 학자들은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주체사상 이념에 경도된 남한 청년이 주체사상의 성지에서 주체사상의 모순에 직면한 것이다. 주체사상의 무오류성에 환멸을 느낀 그는 결국 1997년 민혁당을 해산하고 북한 민주화를 위한 시민운동가로 전향한다.최근 정치권에서 진중권 전 동양대교수가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조국 사태 이후 정권과 여당과 진보지식인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 중이다. 진중권은 문재인 정권의 탄생을 기원하고 성공을 지지했던 진보진영의 '내부자'였다. 그런 진중권이 유시민의 조국 옹호를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체주의 선동의 언어'라고 직격했다. 그에게 조국은 더 이상 친구 '국'이가 아니라 타락한 진보지식인의 전형이다. 서초동 조국기 부대를 네오 나치에 비유했다. 정의당을 탈당하고 당이 준 감사패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정권의 검찰 학살을 비난하고, 윤석열을 지지한다. 그를 향해 진보진영은 배신감을 토로하고, 보수진영은 전향의 가능성을 엿본다.그러나 진중권은 뼛속까지 진보다. 그는 진보의 가치와 정의를 오염시키는 위선, 허위, 아류와 싸우는 것이지 진보의 가치는 소중하게 여긴다. 진중권은 이익을 위해 가치를 포기하는 진보를 가짜로 규정하고 내부에서 봉기한 것이다. 진짜가 배신할 이유가 없고, 보수 전향은 어불성설이다. 김영환은 토론 자체가 봉쇄된 주체사상의 전체주의에 절망해 전향했지만, 진중권은 진영내부의 토론을 원한다.진중권은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궁핍해진 진보적 가치와 정의의 위기를 알리는 호루라기 역할을 자처한 것으로 보인다. 진보 정권에겐 다행한 일이다. 박근혜 정권과 보수세력은 호루라기가 없어 철저히 망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20-01-13 윤인수

[참성단]적설량 '0'

누구에게나 '인생의 노래'라는 게 있다. 이른바 '18번'. 내겐 송창식 첫 번째 앨범에 수록된 '밤눈'이 그런 경우다. 송창식 작곡 최인호 작사. '한밤중에 눈이 나리네 /소리도 없이 /가만히 눈감고 기울이면/까마득히 먼 데서 /눈 맞는 소리/흰 벌판 언덕에 눈 쌓이는 소리'. 아주 아주 오래전 눈 내리던 날 밤, 이 노래를 들으며 하염없이 걷다가 지지대 고개를 넘어 군포사거리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결국, 폭설로 바뀌면서 모든 교통편이 끊겨 그 먼 눈길을 다시 걸어 돌아와야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좋았다.지금은 찾기 힘들지만, 예전 동네 골목 입구엔 전파상과 음반가게가 흔하게 있었다. 눈이라도 내려달라고 애원하듯, 겨울이 오면 이곳의 낡은 스피커를 통해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살바토레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Tombe La Neige)다. 이 노래 덕분에 아다모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샹송 가수가 됐고, 세 번이나 한국을 찾았다. 우리나라 남녀가수들이 앞다퉈 번안해 불렀는데 특히 김추자의 노래가 일품이었다. '눈이 나리네/당신이 가버린 지금/눈이 나리네/외로워지는 내 마음/눈에 그리던 따듯한 미소가/흰 눈 속에 가려져 보이질 않네'.지난달 적설량이 역대 12월 중 최저였다고 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주요 관측지점의 최심신적설 합계는 0.3㎝로 나타났다. 이는 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래로 가장 적은 12월 적설량이다. 최심신적설은 24시간 동안 새로 내려 쌓인 눈 중 가장 많이 쌓인 곳의 깊이를 뜻한다. 그동안 최저 기록은 1998년의 0.6㎝였다. 특히 인천을 포함해 전국 10곳의 적설량은 '0'이었다. 올겨울 들어 단 한 번도 눈이 내리지 않은 것이다.눈이 내리지 않는 대신 12월 강우량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 같은 원인은 두말할 것 없이 전 세계에 불어닥친 이상 기후 탓이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비가 차지하고 있으니 눈과 관련된 노래가 나올 리 만무하다. 이런 날씨라면 천하의 송창식이라도 '밤눈'같은 곡을 다시는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송창식의 '밤눈'과 살바토레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가 흘러나와야 제맛이다. 이제 두 달여 남은 겨울, 우리는 눈다운 눈을 볼 수 있을까. 적설량 '0'으로 겨울의 추억 하나를 잃은 것 같다. /이영재 논설실장

2020-01-12 이영재

[참성단]디지털 세

1662년 영국에는 '난로세'가 있었다. 집집이 설치된 벽난로에 1개당 2실링씩 부과했다. 하지만 반발이 크자 1689년 폐지됐다. 1698년 러시아에는 '수염세'가 있었다. 수염을 기르려면 부자들은 재산 정도에 따라 연간 30~100루블을 내야했다. 프랑스에서는 혁명 직후 신설된 '창문세'로 주택의 창문 개수에 따라 세율을 매겼다. 세금을 피하려면 창문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세금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현재 유럽에 불고 있는 '디지털 세' 역시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산물이다.이탈리아가 지난 1일부터 '디지털 세' 시행에 들어갔다. 세계 연매출 7억5천만유로, 자국 내 연매출 550만유로(약 71억원) 이상의 IT 기업에 매출액의 3%를 세금으로 부과한다. 세율은 인터넷 거래액의 3%. 이 제도 도입으로 연간 7억유로(9천20억원)의 세수가 추가로 확보될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도 오는 4월부터 전 세계 연 매출 5억파운드(약 7천638억원), 영국 내 연 매출이 2천500만파운드(약 382억원) 이상인 기업에 대해 영국 내 매출의 2%를 '디지털 세'로 걷기로 했다. 모두 'FANG'(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을 겨냥하고 있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에서도 '공정 과세'를 외치며 '디지털 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마치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유럽국가들이 앞다퉈 '디지털 세'를 도입하는 것은 미국에 본사를 둔 IT 기업들이 돈은 자국에서 벌고 세금은 내지 않는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어서다. 그 선두에 미국과 '무역분쟁' 논쟁을 벌인 프랑스가 있었다. 지난해 1월부터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 기업의 알파벳 앞글자를 딴 'GAFA 세'를 유럽에서 가장 먼저 거둬들인 프랑스는 전 세계적으로 연매출 7억5천만유로, 자국 내 2천만유로(약 324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거대 IT 기업을 대상으로 연간 총매출의 3%를 세금으로 부과하고 있다.구글은 우리나라에서 유튜브와 구글 플레이로만 연간 5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법인세는 미미한 수준이다. 매출의 상당수를 아시아본부가 있는 싱가포르로 돌려 세금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의 제1의 원칙이다. 조세회피 방지를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활발한 지금이야말로 '디지털 세'를 논의할 적기다. /이영재 논설실장

2020-01-09 이영재

[참성단]평화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

"전쟁은 물론 모든 폭력은 선택의 문제이며, 우리는 늘 전쟁 대신 평화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인지뢰 금지와 제거를 위해 일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조디 윌리암스'가 2005년 '무장분쟁 예방을 위한 세계시민사회 대회'에서 한 말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을 벌일 수도, 대화와 협상 같은 평화적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중동 지역에서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그 울림이 증폭되는 듯하다.국내 1호 평화학 박사인 정주진 박사의 주장을 접하다 보면 평화적 방법을 선택하는 게 왜 중요한지 분명해진다. 그는 우선 '전쟁은 분노와 증오를 키운다'고 역설한다.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지는 전쟁과 테러와의 상호작용을 들어 '전쟁으로 안전과 자유를 지킨다'는 구상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도 설명한다. '뛰어난 군대와 성능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단언한다. 실제로 미군은 베트남전에서 땅굴로 이동하며 작전을 펼치는 게릴라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9·11 테러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전에서도 첨단무기로 무장했음에도 불구, 곤혹스런 지상전을 벌여야 했다. 이란 역시 아프가니스탄과 마찬가지로 국토 대부분이 산악과 고원지대인 터라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대목이다.무엇보다 '전쟁에서는 모두가 패배자'라는 주장은 무게감을 더한다. 일단 전쟁이 터지면 아군, 적군, 민간인 할 것 없이 억울한 희생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1·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는 무려 8천700만 여명이다. 한국전쟁에서는 156만 명, 베트남 전쟁에서는 200만~38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사망자도 수십만 명이다. 전쟁 때문에 생긴 질병과 기근으로 인한 사망자도 부지기수다. 전쟁 대신 평화를 선택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미국과 이란 간 전운이 짙어질수록 일각에서는 세계적인 확전의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제3차 세계대전에서는 어떤 무기가 사용될 것 같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제3차 세계대전에 어떤 무기가 동원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4차 세계대전에선 어떤 무기가 동원될지 단언할 수 있습니다. 몽둥이와 돌입니다." 각국의 지도자들이 이 말을 되새겼으면 하는 요즘이다. /임성훈 논설위원

2020-01-08 임성훈

[참성단]플라스틱 대한민국

플라스틱은 1869년 미국의 존 하이엇이 코끼리의 개체 감소로 당구공의 원료였던 상아 가격이 급등하자 대체 재료를 찾다가 개발했다. 용어는 '생각한 대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의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됐다. 가볍고 튼튼해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모든 공산품에 사용할 수 있는 '만능 소재'로 큰 인기를 끌었다. 저렴하기까지 해 현대인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혁신적인 발명품이란 찬사까지 받았다. 20세기 산업에 미친 영향 때문에 석기·청동기·철기시대를 거쳐 현대를 '플라스틱 시대'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하지만 이제 플라스틱이 환경 오염의 최대 주범이 됐다. 뚜렷한 대체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사이, 지구는 마구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954년 연간 150만t이 생산되던 플라스틱은 현재 매년 3억 t이 넘게 생산된다. 플라스틱은 여전히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존재지만 문제는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매년 버려지는 플라스틱 1천만t이 바다로 흘러가 해류를 따라 떠돌다 북태평양 환류 해역과 남태평양, 인도양 등에 거대한 플라스틱 섬을 만들고 있다. 북태평양에는 한반도의 7배 크기의 플라스틱 섬도 존재한다. 미세하게 쪼개진 플라스틱은 해양 먹이사슬을 무너뜨리고 오염된 생선이 우리의 식탁에 버젓이 오른다.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한국지부가 '플라스틱 대한민국' 보고서를 내놨다. 제목도 참 고약하다. 하지만 플라스틱 사용량 세계 1위 답게 보고서를 보면 왜 그런지 수긍이 간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비닐봉지는 235억개, 페트병 49억개, 플라스틱 컵 33억개다. 1인당 연간 비닐봉지 460개(9.2㎏), 페트병 96개(1.4㎏), 플라스틱 컵 65개(0.9㎏)를 사용한 셈이다. 페트병을 나란히 세우면 지구 10.6바퀴를 돌고, 플라스틱 컵을 쌓으면 달까지 닿는다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한때 '신의 선물'이라 불렸던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 전 세계가 고군분투 중이다. 물론 우리도 이에 동참하고 있지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이해도는 여전히 낮다. 어영부영하다가는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 '플라스틱 대한민국' 보고서의 결론을 한 줄로 요약하면 '플라스틱 발생 자체를 줄여라'다. 이를 꼭 실천해 플라스틱 사용 1위 국가의 오명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20-01-07 이영재

[참성단]봉준호, 골든글로브 거머쥐다

전 세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화제가 있다. 모두 특별하지만, 그중 베를린, 칸, 베니스를 세계 3대 영화제로 꼽는다. 이중 우리와 가장 연관이 깊은 영화제는 아마도 베를린 영화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영화제 출품작이 1956년 제7회 베를린영화제에 출품된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이어서다. 또 있다. 강대진 감독의 '마부'는 1961년 제11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 특별상을 받아 '한국 영화 최초의 국제영화제 수상작'으로 기록되고 있다.역사가 가장 깊은 칸 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우리 영화가 초청된 건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처음이다. 비록 수상에 실패했지만 임 감독은 2002년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은 2004년 '올드보이'로 심사위원 대상, 2009년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특히 2007년 전도연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아 '칸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이밖에 2010년에는 이창동 감독이 '시'로 각본상을 받았다.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는 홍상수(2010), 김기덕 (2011) 감독이 최고상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5월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을 '황금사자상'이라고 부른다. 2012년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이 상을 받아 한국영화 최초의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장편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김기덕은 2004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감독상(은곰상)도 받아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한국영화 최초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77회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거머쥐었다. 시상식장에선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 그 언어는 영화."라는 한국어 수상소감이 처음으로 울려 퍼졌다. 큰 경사다. 골든글로브상은 90여 명의 세계 각국 신문 및 잡지 기자로 구성된 '할리우드 외신 기자협회(HFPA)'가 주는 이른바 '기자 영화상'이다. 단지 투표자 수가 너무 적어 제3 세계 영화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박하다는 지적을 늘 받아왔다. 하지만 '기생충'은 이런 할리우드 영화계의 높은 콧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내달 9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 골든글로브가 아카데미의 전초전인 만큼 사상 최초의 오스카상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20-01-06 이영재

[참성단]참수작전

'참수(斬首)작전'은 적의 핵심 수뇌를 사살하는 것으로 미군의 정규 작전으로 자리 잡은 지 꽤 오래됐다. 1989년 12월 20일 파나마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가 '정당한 명분 작전'이란 참수작전으로 실각한 케이스다. 말이 참수작전이지 사실상 침공이었다. 작전에는 데브그루와 델타포스가 주축이 된 2만명의 미군이 투입됐다. 데브그루는 해군 특수전 부대 네이비 실의 여러 팀 가운데 가장 뛰어난 요원만을 모아놓은 '실 6팀'의 별칭이고, 델타포스는 미 육군의 일급 특수부대다. 당시 작전으로 노리에가는 포로로 잡히고 예르모 엔데라의 친미 정부가 수립됐다.2011년 5월 1일 0시30분 작전명 '제로니모'의 빈 라덴 참수작전에는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실 요원 20여 명이 참여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작전 개시 명령이 내려지자 이들은 빈 라덴이 은신해 있던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한 저택을 급습했다. 그로부터 약 40분 뒤 작전은 끝나고 빈 라덴은 사살됐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제로 다크 서티'는 빈 라덴 참수작전을 가장 실제에 가까우면서도 심도 있게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다. '제로 다크 서티'란 자정에서 30분이 지난 시간 AM 12:30을 뜻하는 군사용어.참수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하려면 무엇보다 정보·감시·목표획득·정찰 능력이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보원이나 내부 협조자 등 인적네트워크, 즉 휴민트의 조력이 필요하다. 제거해야 할 적 수뇌부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수시로 자리를 옮기기 때문이다. 적 수뇌부는 위성의 추적을 피하려고 밤이나 흐린 날 외출하는 경우가 많아 내부 제보가 없으면 참수작전의 성공을 장담할 수가 없다. 참수작전에는 위치나 동선파악에 한 치의 오차가 없어야 한다.지난 3일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부대인 쿠드스군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참수작전에는 '닌자 폭탄'이 탑재된 요인 저격용 드론 '리퍼(Reaper·MQ-9)'와 동선을 파악하고 공격하는 '임기표적(臨機標的)' 방식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정부 통신 도청과 비행 정찰, 그리고 비밀 정보원의 최종 확인을 통해 솔레이마니의 움직임이 완벽하게 파악된 것이다. 참수작전은 미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는 특별 임무를 수행한다고 해서 '닌자 포스'라고도 불린다. 현재 주한 미군에도 공격형 드론 '그레이 이글(MQ-1C)' 12대가 배치돼 있다. 아마도 김정은 위원장에겐 성가신 존재일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20-01-05 이영재

[참성단]인간 프란치스코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이 요즘 인기다. 감독, 각본, 배우가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루는 영화는 그리 흔치 않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예술, 건축 등을 통한 인문학적 상상력도 좋지만, '다키스트 아워', '보헤미안 랩소디' 등 전기영화에서 남다른 재주를 보여준 앤서니 매카튼의 각본은 흠잡을 데가 없다. 연출과 대본이 훌륭해도 배우가 이를 받쳐주지 못한다면 '오아시스 없는 사막'일 터. 하지만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연기한 앤서니 홉킨스와 교황 프란치스코의 조나단 프라이스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이 영화의 미덕은 권위의 교황이 아닌, 인간적 교황에게 초점을 맞춘 점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전임 베네딕토 16세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인해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프란치스코 교황의 속명). 권위적이며 보수적인 베네딕토 16세와 개방적이며 진보적인 베르골리오가 짧은 시간 함께 지내며 서로를 아는 과정을 그린다. 둘 사이에 벽이 무너지자 교황이 "요즘 주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추기경에게 고해성사를 부탁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절정이다. 그는 말한다. "당신은 신이 아니에요. 신과 함께 우리는 움직이고 살고 존재합니다. 신과 함께 살지만 신은 아니에요. 우리는 인간일 뿐입니다."'두 교황'보다 먼저 개봉한 빔 벤더스 감독의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워드' 역시 교황의 인간적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맨 오브 히스 워드(man of his word)'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을 뜻한다. 벤더스의 카메라는 리우데자네이루 바르지냐의 빈민가, 유대인 학살 추모관, 나폴리의 난민 수용소, 필리핀의 수해 현장 등 가난, 질병, 재해, 전쟁의 상처를 보듬는 인간적인 교황의 길을 따라간다.손을 잡고 끌어당기는 여성 신도에게 화를 내고, 손등을 내리친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동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다. "여성 신도가 경솔했다"는 쪽과 "교황이 지나쳤다"는 비판 의견이 맞서며 인터넷을 달구자 교황이 직접 나섰다. 교황은 "우리는 자주 인내심을 잃곤 한다. 나 역시 그렇다. 미안하다"며 쿨하게 사과해 오히려 큰 감동을 준 것이다. 주교 시절부터 썼던 철제 십자가 목걸이를 그대로 거는 등 '신의 대리인'보다 '인간'으로서 프란치스코의 고정관념 파괴는 끝이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20-01-02 이영재

[참성단]경자년에 듣고 싶은 'O.K'

'오케이'(O.K)만큼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언어학자 멘켄은 'O.K'에 대해 '미국이 낳은 가장 성공적인 단어'라고 평했다.O.K의 어원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우선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이 판사시절, 'All correct'(좋소)라고 사인하려다가 'Oll korrect'라고 잘못 적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19세기 중반, 보스턴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어떤 단어의 첫 글자를 비슷한 발음으로 바꾸는, 일종의 말장난이 유행했다고 하는데, 이와 무관하지 않을까 싶다. 이보다 더 지지를 받는 '대통령 기원설'(?)이 있다. 미국의 8대 대통령 마틴 반 뷰런의 지지단체 중 하나인 'Old Kinderhook Club'의 약칭, 즉 'O.K.Club'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Kinderhook'는 밴 뷰런이 태어난 뉴욕주의 마을 이름이다. 이 밖에 북미 인디언 언어에서 비롯됐다는 등 수 많은 주장이 있는데 멘켄은 O.K의 어원을 11가지로 분류하기도 했다.이처럼 어원도 불명확한 'O.K'란 단어가 최근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얼마 전 수도권의 한 아파트단지에 '배송 수레로 인한 소음으로 수레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었다. 누군가 강하게 소음 민원을 제기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안내문 위에 덧붙인 메모 쪽지 한 장이 뜻밖의 반전(?)을 이끌어냈다. "10층은 그대로 수레 사용해 주세요. 그게 우리의 민원임. 10층은 수레 OK!"라고 적힌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은 것이다. 이어 초등학생 포함, 많은 주민들이 가세해 "택배 아저씨 고생 많으신데 힘들게 하지 마세요! 택배 아저씨 수레, That's OK!","걱정 마시고 안전하게 배달을 부탁드립니다. 수레 OK♡" 등의 메시지를 전하는 등 O.K 릴레이가 펼쳐졌다. 전화를 주면 직접 내려가서 배송물품을 받겠다는 주민도 나타났다. 결국 관리사무소측은 메모 쪽지가 덕지덕지 붙은 안내문을 회수했다고 한다.프랑스의 소설가 '쥘 르나르'는 '좋은 말 한마디는 형편없는 책 한 권보다 낫다'고 했다. '수레 OK'라는 배려의 한마디가 택배 노동자들에게 상처를 줄 게 뻔한 '수레사용금지' 공지를 무력화(?)시킨 것도 비슷한 맥락일 듯싶다. 경자년에는 보다 많은 '선의의' O.K소리를 듣고 싶다. /임성훈 논설위원

2020-01-01 임성훈

[참성단]2019 세모 유감

올 한해가 다 저물었다. 지난 1년의 족적이 만족스러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후회와 아쉬움이 짙어지는 시간이다. 크레타 섬의 자유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I hope for nothing).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I fear nothing). 나는 자유롭다(I am free)"는 묘비명을 남겼다. 사람들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꼭 닮은 카잔차키스와 같이 초월적 자유를 만끽하길 희망하지만, 현실에선 바라는 것도 두려운 것도 많아 스스로를 속박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의 연말 정서는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 가깝다.어디 보통 사람들 뿐이랴. 대한민국이 지난 한 해 겪은 다사다난을 생각하면 참 용케도 버텨왔다 싶다. 압권은 '조국사태'였다. "누군가의 인격을 시험해보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보라"고 한 링컨의 명언은 유효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족의 반칙과 편법은 그가 권력을 가지지 않았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 전 장관의 입과 혀는 자신과 가족을 덮친 화와 근심의 문이 됐다. 불행한 건 조국의 불운이 국민의 불화로 전이된 점이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분리된 광장정치는 국회가 중심인 대의민주정치의 몰락을 예고했다. 진보의 인격이 드러났지만 보수의 품격은 바닥을 긁었고, 국민을 통합할 정치력은 고갈됐다.경제는 "바닥을 쳤다"는 정권의 호언과 달리 무저갱을 향해 자유낙하 중이다. 직장인이 아파트를 사기 위해 한푼도 안쓰고 돈을 모아야 할 햇수가 점점 연장되더니, 이제 평생을 모아도 안될 지경이 됐다. 쉬어야 할 노인들의 일용직은 늘었지만 일해야 할 청장년의 일자리는 줄었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북한이 막말로 모욕하고, 중국이 홀대할 때 마다 화가 솟구치는데, 정작 대통령이 인내하니, 굴욕이 일상이 됐다. 국민들은 정권과 정치권에 크게 바란 것이 없다. 양처럼 착한 국민에게 정치는 혼란으로 두려움을 심고, 맹목적인 진영 전쟁에 부역을 요구했다.불온하고 각박한 기운이 2019년 마지막 날과 함께 소멸되길 바란다. "작년도 금년도 꽃은 항상 아름다운 그대로 피고 있는데 세세년년 사람은 같지 않다"는 고문진보의 글귀 대로, 새로운 소명을 받은 새 인물들의 출현을 고대하며 올 한 해를 보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12-30 윤인수

[참성단]선거연령 18세

혼인·운전면허 취득·신용카드 발급·8급 이하 공무원 임용·입대 나이는 18세다. 영상물 등급 평가도 18세를 기준으로 한다. 그런데 유독 참정권만은 만 19세로 그동안 모순이란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세계에서 선거 연령을 19세로 정한 나라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나라가 18세로 압도적으로 많다. 인도네시아 등 4개국은 17세, 16세인 나라도 오스트리아, 쿠바를 비롯해 6개국이나 된다. 의미 없는 선거지만 북한도 17세에 선거권을 준다.한국의 선거연령은 1948년 제헌 헌법에서 만 21세로 정한 이래 1960년 3차 개헌 때 만 20세로, 2005년 여야 합의로 19세로 두 번 조정이 있었다. 그 이후 각종 선거 때마다 야당은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자고 줄기차게 요구했고, 여당은 끊임없이 반대했다. 야당이 이처럼 요구하는 것은 인구가 점차 고령화되면서 보수 성향이 짙은 60대 이상 유권자들의 영향력이 커진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대선 TV토론에서 선거연령 질문이 나오자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북한도 17세죠"라며 "19세는 세계적으로 아주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선거연령 18세'는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 나이를 낮추면 10대의 표가 진보에 유리한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2012년 아르헨티나 하원은 선거 나이를 16세로 낮추는 법안을 야당의원이 집단 퇴장한 야밤에 131대 2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법안을 처리했다. 당시 여당은 젊은 층에 인기가 있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3선 개헌선 의석 확보를 위해 16세 이하로 낮출 때 발생하는 130만 표가 필요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집권 여당은 패배하고 대통령의 3선 도전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우리나라 선거 연령이 만 18세로 낮아졌다. 새로 편입되는 '젊은' 유권자는 53만2천295명으로 전망된다. '젊은 표는 진보'라고 생각하는 '4+1'협의체는 환호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1020 세대'가 '3040 세대'보다 보수화돼 선거연령 하향이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여기에 '학교의 정치화'를 경계하는 분위기와 고등학생들을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들의 표심은 그렇다 치고, 참정권의 확대로 이제 '18세'는 명실상부, 우리 사회의 확실한 기준 나이로 자리 잡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12-29 이영재

[참성단]재벌가 경영권 분쟁

재벌가의 경영권 분쟁은 우리나라에선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거의 모든 재벌가가 상속문제를 둘러싸고 부자간 형제간 심지어 시숙 간, 숙질 간 피 튀기는 싸움을 벌였다. 마치 세렝게티를 둘러싼 사자들의 권력투쟁을 보는 것 같다. 최근 이런 분쟁으론 롯데가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형제까지 나서 얽히고설키며 벌였던 경영권 다툼은 신동빈 회장의 승리로 끝났지만, 기업이미지는 크게 실추됐다.대표적 경영권 분쟁은 현대가였다. 2000년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정몽구와 정몽헌은 그룹 패권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언론은 이 싸움을 '왕자의 난'이라고 명명했다. 결국,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두 아들을 불러 '3 부자 퇴진'까지 선언했지만, 장자 정몽구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현대자동차를 그룹에서 떼어내 독립했다. 그 후 정몽헌 회장이 투신자살하면서 현대그룹을 맡은 현정은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두고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시숙의 난'을 벌였고, 현대건설 인수전 때는 시아주버니인 정몽구 회장과 한판 붙었다.'공동 소유, 공동 경영'으로 '형제경영'의 모범을 보인 두산그룹도 창업 109주년인 2005년 박용성 회장의 취임을 두고 전임인 박용오 회장이 반발하면서 '형제의 난'을 불러왔다. 비자금 조성내용을 검찰에 투서하는 등 막장 싸움으로 번졌다. '재산' 앞에선 가족애도 인화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박용오 전 회장은 집안에서 제명됐고, 이후 2009년 자살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다.한진가에서 한바탕 전쟁이 시작될 모양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반기를 들었다. 권력에 도전하는 것은 그만큼 힘이 있다는 의미다. 지주회사 한진칼의 지분은 남매간과 모친 등 네 사람이 엇비슷해 경영권 분쟁이 예상됐다. 문제는 그게 한진가라는 점이다. '땅콩 회항' '물컵 갑질' 등 자식들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상상 못 할 곤욕을 치르던 고 조양호 회장이 생을 마감한 게 불과 8개월 전이다. 그런데 지금 문제의 주역들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한진 칼은 '강성부 펀드' 등 외부 주주들의 지분율이 유난히 높은 기업이다. 자칫 다음 주주총회에서 조 씨 일가는 경영권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재벌가의 속성인가. 생각할수록 한심할 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12-26 이영재

[참성단]기적은 없었다

전쟁에 참전했던 이들의 경험담을 듣다 보면 '전쟁은 인류가 만든 가장 파괴적인 형태의 폭력'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전쟁은 적개심의 대상인 적군은 물론이고, 아군인 자신에게도 파괴적이다. 실제로 총격전을 경험한 베트남 참전용사 중에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식의 자포자기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내놓고 러시안룰렛 게임에 뛰어든 이들도 있다고 한다.이처럼 적대감과 비이성적 파괴본능만이 이글거리는 전투 현장에서 누군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다면?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진 1914년, 영국군과 독일군이 '지옥의 참호전'을 벌이던 벨기에 이프로 전선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병사들이 고향에 두고 온 연인이나 가족을 생각하면서 불렀는지 양 진영의 참호 여기저기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왔다. 양초로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도 등장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한쪽이 먼저 노래를 부르면 다른 한쪽이 '화답송'을 부르는 식으로 캐럴 부르기 릴레이가 펼쳐지기도 했다.급기야 독일 병사들이 손에 촛불이나 작은 트리를 들고 하나둘 참호 밖으로 걸어 나왔고 영국 병사들도 총을 버리고 그들을 맞이했다. 이들 사이에는 맥주와 담배 등 선물도 오갔다. 생각지도 못한 돌발상황에 당황한 지휘관들마저 축제 분위기를 깰 수 없어 크리스마스에 한해 총부리를 거두기로 신사협정을 맺었다. 양 진영은 각자의 진지 사이에 버려진 '적군'의 시신도 수습해 주었다. 비록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다시 포성이 터져 나왔지만, 이 '기적 같은'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진한 여운을 남겼다. 영화 외에도 다른 매체를 통해 많이 소개된 에피소드인만큼,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듯하다.하지만 이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기자 또한 'B급 세계사'(김상훈 저)란 책을 통해 독일군과 영국군이 맥주잔을 들고 함께 찍은 사진을 접하지 않았다면, 감동을 주기 위해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했을 것이다. 책에는 영국 일간지 '데일리미러'가 이 사진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내용이 소개돼 있다.예상했던 바이지만, 크리스마스에도 우리의 정치권에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신사협정은커녕, 없는 전쟁도 벌일 태세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온갖 독설과 야유가 난무하는 정치권이 전쟁터보다 더 살벌한 것 같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12-25 임성훈

[참성단]우주군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자 미국은 '스푸트니크 쇼크'에 빠졌다. 4년 후인 1961년 4월 12일 소련의 공군 중위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지구 밖으로 나가 "지구는 푸른 빛"이라는 메시지를 지구로 보내자 미국은 '가가린 쇼크'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더는 밀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미국이 본격적으로 우주 탐사에 나서면서 바야흐로 미·소간의 우주 경쟁이 시작됐다.초기엔 소련의 일방적 승리였다. 1959년 9월 소련은 루나 2호를 보내 달 표면을 촬영했고, 다음 달엔 루나 3호가 달 뒷면을 촬영해 지구로 전송했다. 1966년 2월에는 무인 탐사선 루나 9호를 달에 착륙시켰다. 하지만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키고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인류의 첫발을 디디면서 우주경쟁은 미국의 승리로 싱겁게 막을 내렸다. 특히 소련의 붕괴로 재정이 열악해지면서 사실상 우주는 우주왕복선이 날아다니는 등 미국의 독무대가 됐다.하지만 2014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속 2만5천㎞의 속도로 표적을 향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RS-26 아방가르드'를 공개하고, 이듬해 중국도 전략 핵·미사일 부대인 제2포병을 확대한 전략지원군 안에 항공우주군을 창설하면서 우주 경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특히 올 1월 중국이 달 탐사선 창어 4호를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시키는 데 성공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곧바로 우주군 창설을 선언했다.20일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수권법'에 서명하면서 미국은 72년 만에 새로운 군대인 '우주군(Space Force)' 창설에 필요한 입법을 완료했다. 우주군은 미국의 5군인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해안경비대에 이은 6번째 군대다. 1947년 공군이 육군에서 떨어져나와 별도 군으로 창설된 이후 미국에 새로운 군대가 생긴 셈이다. 우주군은 영화 '우주전쟁'이나 '인디펜더스 데이'처럼 외계인의 침공에 대항하는 '우주 방위군'과는 다른 의미다. '지구를 지킨다'가 아니라 우주의 패권을 차지하는 게 우선이다. 23일 중국이 "우주 평화와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발끈한 것도 그래서다. 이제 우주도 강대국들의 전쟁 영역이 됐다. 어찌 됐건 달 탐사선을 보내겠다는 계획이 번번이 무산되는 우리에겐 모두 꿈같은 이야기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12-24 이영재

[참성단]김정은의 크리스마스 선물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는 논쟁거리다. 예수 탄생을 기리는 기독교의 명절을 국가적 축제로 치르면서 종교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 때문이다. 그래서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할러데이'로 인사를 대신하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성탄'을 '명절'쯤으로 격하하는데 대한 기독교인들의 반감도 만만치 않다. 아들 부시 대통령은 '해피 할러데이' 카드를 발송했다 기독교인들의 거센 반발에 진땀을 뺐다.그래도 크리스마스는 굳이 성탄의 의미와 상관없이 전 세계의 축제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한 해를 다 보낸 사람들이 가까운 이들과 감사의 선물과 덕담을 나누는 것 만으로도 크리스마스의 효용은 충분하다. 미국 작가 마리 엘렌 체이스가 "크리스마스는 단순한 하나의 날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상태"라고 말한 그대로다. 올더스 헉슬리는 "크리스마스는 자본주의의 도매상"이라고 비판했지만, 감사와 사랑으로 교감하고 공감하는 하루 정도는 허락해도 좋을 것이다.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우울하게 만든 대형 참사도 적지 않다. 국내에선 1971년 발생한 대연각 호텔 화재 참사가 대표적이다. 크리스마스 아침 호텔 커피숍 프로판 가스통의 폭발로 인한 화재로 163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5년 캘리포니아의 복지시설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는 무슬림 극단주의 부부의 총기난사로 아수라장이 됐다. 14명이 숨지고 범인 부부는 사살됐다.올해는 사랑과 평화의 하루를 위협하는 일이 없길 바라지만, 난데 없는 김정은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한반도에 긴장감이 고조 중이다. 북한은 지난 3일 "우리가 미국에 제시한 연말 시한부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제재해제를 안하면 핵실험이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할 수 있다는 겁박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포장했다.미국은 공중 정찰자산을 총동원해 북한 전역을 감시하고 있다. "더 잃을 게 없다"고 뻗대는 북한을 향해 한·미 특수부대의 북한요인 생포훈련 장면을 공개하며, '잃을 게 있음'을 경고했다. 말로 해결하자는 입장이지만 군사적 압박은 북미 정상회담 이전으로 회귀한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어제 중국으로 날아갔다. 시진핑에게 김정은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말려달라 부탁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의 크리스마스 선물 개봉이 임박했다.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크리스마스가 될 모양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12-23 윤인수

[참성단]美의 기준

시대에 따라, 그리고 나라마다 미인의 기준은 다르다. 동양과 서양의 절세미인을 말할 때 예외 없이 거론되는 것은 양귀비와 클레오파트라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것 만큼 그토록 미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기록에 따르면 양귀비는 날씬한 개미허리가 절대 아니었다.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땀을 흘릴 정도로 뚱뚱했다고 한다. 키는 155㎝ 정도. 클레오파트라도 매부리코에 그리 크지 않은 키, 두껍다고 느껴질 정도의 입술의 주인공으로 오히려 남성 이미지가 강했다고 한다.이들을 절세미인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영화 덕이 컸다는 설도 있다. 영화 클레오파트라 역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맡으면서 그녀의 모습을 클레오파트라로 생각하고, 중국 배우 판빙빙이 양귀비역을 맡으면서 그녀의 날씬한 몸매와 갸름한 얼굴을 양귀비로 상상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태백이 양귀비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한 것을 보면 그녀의 얼굴은 달걀형이 아니라 후덕하다고 할 만큼 둥그렇게 생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의 미모가 당시 로마와 당나라 남자들의 혼백을 뺏었다고 하니 미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해온 게 확실하다. 나라마다 미인의 기준도 다르다. 아프리카의 경우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느 지역은 살이 쪄야 미인으로 결혼 전 살을 찌우느라 특별히 마련된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몇 날을 보내기도 한다. 입술이 두꺼운 걸 으뜸 미인으로 치는 곳도 있다. 심지어 목이 길어야 미인이라고 하는 곳도 있어 일부러 여러 개의 링을 목에 채워 인위적으로 목을 늘리는 경우도 있다.2019 미스 월드 대회에서 자메이카 국적의 흑인 여성 토니 앤 싱이 영예의 왕관을 차지했다. 앞서 열린 2019년도 미스 유니버스, 미스 USA 대회 등 세계 5대 대회에서 모두 흑인이 왕관을 차지하며 '블랙 퀸' 시대를 열었다. 특히 미스 유니버스로 선발된 미스 남아공 조지비니 툰지의 수상소감이 주는 메시지는 그 울림이 크다. "나는 나와 같은 피부색과 머릿결, 생김새를 가진 여성들이 결코 아름답다고 여겨지지 않는 세상에서 자랐다. 하지만 오늘로 그런 관념이 깨질 때가 됐다." 피부가 하얗고 키가 크며 육감적인 몸매를 미의 덕목으로 삼았던 기존의 편견을 깨야 한다는 의미로 들려서다. 세상이 변하듯, 미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 그래도 분명한 건, 진정한 아름다움엔 반드시 내면적 아름다움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12-22 이영재

[참성단]메이저리거 김광현

세계 야구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미국 메이저리그(MLB)다. 한국이나 일본프로야구에서 아무리 출중한 기량을 갖고 있어도 MLB에 가면 신인 대접을 받는다. 대한민국 부동의 4번 타자 박병호도 그랬고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를 호령했던 마무리 오승환도 그랬다. 여기에는 아시아 야구를 한 수 아래로 보는 자만감도 깔렸다. 2016년 스즈키 이치로가 미·일 통산 4천257안타를 쳐 피터 로즈의 MLB 최다안타(4천256개) 기록을 넘어섰을 때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일본리그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건방을 떤 것도 그래서다.노모 히데오는 MLB의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에서 통산 123승을 거뒀다. 이 기록에는 미국의 내로라하는 투수들도 하지 못한 양 리그 노히트 노런 경기도 포함된다. 그런데도 2014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히데오는 겨우 6표(1.1%)를 얻는 데 그쳤다. 인종차별 의심이 갈 정도로 너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MLB에는 보이지 않는 이런 인종차별이 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가 1999년 경기 도중 퇴장을 부른 그 유명한 두발차기는 인종 차별에 대한 일종의 항의였다. 2년 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뛰었던 김현수는 경기 도중 관중석에서 날아온 빈 병에 맞을 뻔했다.미국에서는 아이들이 왼손을 쓰면 "야구를 시키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만큼 야구는 왼손잡이에게 유리한 스포츠다. 왼손 투수는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공을 던지기 전의 몸 방향이 1루를 향하고 있으니 주자를 볼 수 있어 견제하기도 쉽다. 같은 속도라고 해도 왼손투수의 공은 오른손 투수 공보다 더 빠르게 느껴진다. 41세에 미 메이저리그 최고령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랜디 존슨도 왼손투수다. MLB 스카우터들은 왼손투수를 엄청나게 선호한다.인천 SK 와이번스의 왼손 에이스 김광현이 메이저리거가 됐다. 경사다. 그를 놔준 구단의 용기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팀도 11차례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른 명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다. 3진을 의미하는 33번의 등번호도 부여받았다. 느낌이 좋다. 치열한 선발 경쟁은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나마 경쟁자들이 오른손 투수란 것이 큰 다행이다. 실력을 키워라. MLB에서 살아남으려면 실력밖에 없다. 성질이 못돼도 실력이 있으면 우대받는 곳이 MLB다. 오승환의 귀국으로 허전했는데 김광현을 볼 수 있다니 벌써 행복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12-19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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