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미투(Me Too) 열풍 그 이후

올해 1월 현직 검사 서지현이 검찰 내부의 성폭력 실상을 폭로하면서 미투운동 열풍이 순식간에 대한민국을 덮쳤다. 대한민국 공권력의 상징인 검사마저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서 검사의 폭로가 도화선이 돼 사회 각계각층의 미투 폭로로 들불처럼 번졌다.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먼저 문화계가 거덜났다. 시인 최영미의 시 '괴물'의 'En 선생'이 재조명되면서 문단의 거목 고은 시인은 수원시가 제공한 광교 집필실에서 물러나는 한편 문학관 건립사업은 흐지부지됐다. 연극계 대부 이윤택, 오태석을 비롯해 영화계의 김기덕, 조재현 등이 차례차례 피해자에게 호명됐다. 정치권에선 여권의 피해가 컸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수행여비서의 미투로 정치자산을 모두 잃었고, 서울시장 도전에 나섰던 정봉주 전 의원은 수많은 알리바이를 내세워 버티다가 결정적 증거 앞에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성추행 의혹을 받은 민병두 의원은 의원직 사퇴서를 던졌다.미투운동은 부수적인 논란도 많았다. 배우 조민기의 불행한 죽음으로 여론재판에 의한 사적 제재의 적정성 논란이 일었고, 진보진영을 강타한 미투운동의 적폐세력 음모설로 시끄러웠다. 수원교구 한만삼 신부의 선교지 성폭력사건은 교계 일각에서 그를 두호하는 바람에 교계 전체를 힘들게 했다.하지만 뜨거웠던 미투운동 열기는 남·북·미 정상회담, 6·13 지방선거를 거치며 급격히 시들었다. 사퇴 의사를 철회한 민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장이 됐다. 고은 시인은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명예회복에 나섰고, 안 전 지사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며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서 검사는 안태근 전 검찰국장과 법정 공방 중이다. 엊그제 한 방송에서 배우 조재현의 새로운 성폭력 의혹을 방영했으나, 그동안 죄인을 자처했던 조씨도 이번엔 적극적으로 맞서고 나섰다.열풍은 가라앉고 가해와 피해의 실체를 가리는 일이 차분하게 진행중인 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권력에 의한 성폭력 근절을 위해 국회에 넘긴 미투 관련법 대부분이 국회에 계류중인 건 이해하기 힘들다. 들끓는 여론에 놀라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던 여야 정당이 정작 법 통과에 미적거리니 그렇다. 여론에 반응했다 여론에 무심해지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08 윤인수

[참성단]전기 누진제의 역설

좌·우파의 경제 오류를 함께 비판하는 학자로 유명해진 조지프 히스는 저서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마티 刊)에서 낮은 전기요금으로 분배정의를 겨냥하는 좌파의 시도는 '공정가격의 오류'라고 비판했다. 낮은 전기료의 혜택이 저소득층에 국한되지 않는 것은 사실상 수요 공급의 왜곡된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물건을 많이 사면 가격이 싸지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다. 전기는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가격이 비싸진다. 누진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사용 전력량에 따라 처음 200kwh까지는 1kwh당 93.3원이다. 하지만 400kwh를 초과하면 1kwh당 280.6원으로 최대 3배를 더 낸다. 전기는 한국전력이 만든 상품이다. 하지만 적자가 나도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한전 주가는 2008년 8월 평균 3만1천원이었다. 10년이 지난 어제 주가는 3만450원. 10년 전 그대로다. 한전은 올해 1분기에 2천504억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2분기 역시 수천억 원대 적자가 확실시되고 있다. 생산원가는 오르는데 판매가를 올릴 수 없어서다. 그래도 망하지 않는 것은 적자를 정부가 메워주기 때문이다. 무슨 돈으로? 물론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누진제는 70년대 석유 파동 때 에너지 과소비를 막고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전제조건이 있다. 저소득층은 전기를 조금 소비하고 고소득층은 전기를 많이 소비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저소득층의 전기 사용량이 많고, 소득이 많은 맞벌이 부부 등을 포함해 1~2인 가구의 전기사용량이 오히려 적다. 노약자가 많고, 다자녀 가구일수록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전기사용이 많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누진제가 명분을 잃었다는 지적이 이래서 나왔다. 그런데도 당정은 7·8월 두 달간 누진제를 완화해 주기로 했다. 1단계·2단계 누진 구간을 늘려 1단계는 200kwh에서 300kwh로, 2단계는 400kwh에서 500kwh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면 총 2천761억원의 요금인하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혜택을 온전히 저소득층이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또 요금인하 효과만큼 한전이 입을 손실은 저소득층 지원에 쓸 예산으로 정부가 메워주게 될 것이다. 전력만 풍족하다면 이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다. 그런데도 탈원전 정책으로 일관하는 정부.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07 이영재

[참성단]불자동차 BMW

애플 1천828억 달러, 구글 1천321억 달러, 마이크로소프트 1천49억 달러. 지난 5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브랜드 가치평가 1~3위 글로벌 기업들이다. 삼성은 476억 달러로 7위를 차지해 아시아 기업 최고 브랜드로 톱10에 이름을 올렸다.기업 브랜드는 그 자체로 중요한 자산이다. 평판이 좋은 브랜드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고, 충성스러운 고객층을 형성해 미래의 시장을 보장한다. 최근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한 애플은 브랜드 자체가 혁신과 문화의 아이콘으로 전지구적인 추종자를 거느린다. 구찌, 프라다, 루이뷔통에 대한 열광은 비판받을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당연히 기업들은 브랜드 가치를 지키거나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특히 대형사고에 대한 위기대응 방식이 중요해졌다. 책임을 미루고 발뺌하다가 오명을 키운 사례가 많아서다. 미국 석유회사 엑손모빌은 알래스카 해안 2천㎞를 오염시킨 유조선 좌초 사건으로 70억 달러의 사고수습 비용을 쓰고도 업계 1위에서 3위기업으로 전락했다. 2009년 미국에서 발생한 페달게이트로 도요타는 천만대 리콜비용은 물론 소비자에게 11억달러를 물어줘야 했다. 이와 별도로 시가총액 22조원이 증발했다.서민에게는 꿈의 자동차인 BMW가 한국에서 단단히 사고를 쳤다. 올해에만 32대의 BMW 520d 승용차가 주행중에 불이 났다. 가장 최근엔 안전진단까지 받은 자동차마저 불이 나면서, 차주들은 현재 진행중인 리콜마저 믿지 못하겠다고 아우성이다. BMW는 왜 한국에서만 불자동차가 된건지 설명을 안하고,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대책이라고 내놓은게 주행자제다. 원인도 모르고 대책이 한심하니 BMW는 여기저기서 주차거부를 당하고, 차주들은 집단소송에 나섰다. 314억 달러의 BMW 브랜드 가치가 무색해졌다.6일 BMW코리아가 대국민사과를 했다. BMW 본사는 기자회견에 기술자를 보낸게 고작이니, 이 또한 한국 고객과 한국을 무시한 처사 아닌가. 미국에 '디젤 게이트' 손해배상금으로 147억 달러를 낸 폴크스바겐이 한국에선 141억원의 과징금으로 면피한 전례를 따를 셈인가. 물렁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그런데 정작 지난달 BMW 국내판매량이 24.2% 증가했다니 황당하다. 명품 브랜드 BMW를 향한 집착과, 불자동차 BMW에 대한 불만의 공존이 기이하다. BMW가 얕잡아볼 만 하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06 윤인수

[참성단]인천 1978년 동일방직

1978년 3월 10일 근로자의 날 행사가 최규하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행사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을 즈음, 50여 명의 여성이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식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기념식은 중단되고 생중계되던 방송은 세 번이나 끊겼다. 한국노총행동대에 두들겨 맞고 머리채를 잡히며 밖으로 끌려나간 이들은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었다.그로부터 10여 일 후, 3월 26일 새벽 5시30분 여의도 5· 16광장. 수십만 명이 모인 부활절 새벽 연합예배는 기독교방송이 전국에 라디오 중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6명의 여성노동자가 단상 중앙을 점거하고 구호를 외쳤다. "동일방직 문제 해결하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에 2주 연속 발생한 사태는 우리나라 노동 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대사건이었다.이 둘 다 1978년 2월 21일 인천 동일방직에서 일어난 사건이 발단이었다. 이날은 동일방직 대의원 대회가 예정된 날이었다. 새벽 6시경 남성노동자들이 투표작업을 준비 중인 노조사무실로 난입해 똥물을 뿌리고 여성조합원의 얼굴에 인분을 묻히는 '똥물 투척 사건'이 일어났다. 훗날 중앙정보부가 개입한 것으로 밝혀진 이 사건은 이듬해 8월 YH 여공 신민당사 농성사건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박정희 유신정권이 몰락하는 도화선이 됐다. 그래서 한국 현대사에 동일방직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이런 역사적 의미가 깊은 인천 동일방직이 8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경인일보는 동일방직이 지난해 말 가동을 끝내 공장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대신 이 자리에 산업사적, 노동사적 의미를 살려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동일방직은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그늘진 노동현장과 시대의 아픔 등 한국경제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적 공간이다. 1934년 일본 동양방적 인천공장으로 문을 연 동일방직은 강경애의 소설 '인간문제'의 문학적 무대이기도 하다. 공장 내 일부 건축물을 '노동사 박물관'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그래서 설득력을 주고 있다. 현장 보존은 산업화시기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을 여성노동자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일지도 모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05 이영재

[참성단]수원 야행(夜行)

60년대 수원 화성 풍경은 꼭 이랬다. '서문은 서 있고 동문은 도망가고 남문은 남아있고 북문은 부서졌고'. 그때, 공심돈 옆 무너진 성곽에서 연을 날리며 가끔 이런 상상을 했다. 왕도 여기에 서서 저 들판을 쳐다보았을까. 무너져 내려 초췌한 화령전 돌담길을 지날 때는 왕도 이 길을 걸었을까. 서문에서 북문으로 한달음에 뛰면서도 이 성곽 길을 왕도 걷지 않았을까. 왼쪽으로는 화홍문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고, 앞으로는 멀리 광교산의 우람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오는 방화수류정을 찾았던 그 뜨거웠던 여름날, 왕도 여기에 올라 저 연못에 비친 물그림자를 보았으리라 생각했다.그때는 정조가 대단한 왕인지도 몰랐다. 어린 우리에게 그저 뛰어놀고 기어오르던 성곽에 불과했던 화성이, 그때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며 쌓았던 눈물의 성인지도 몰랐다. 성이 조금씩 복원되고 떨어져 나간 문이 제자리를 찾아 그 형태가 온전히 돌아오자 비로소 정조가 위대한 군주였음을 알게 되었다. 정조의 8일간 화성 행차보고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는 '1795년 윤 2월 14일 11시 정조는 군복을 입고 말을 타고 수원행궁 낙담헌을 나와 강무당을 거쳐 성곽 길을 밟았다. 북문인 장안문에 이르러 "전에 성 밖에 개간할 만한 땅이 있다고 했는데 그곳이 어디냐"고 묻자 장용외사 조심태는 서북쪽 대유평을 가리켰다. 왕은 화홍문을 거쳐 방화수류정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어릴 적 상상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정조는 담 길과 성곽 길을 걸어 방화수류정에도 올랐다. 그로부터 223년 후, 그때 정조가 걸었던 그 길을 걸으며 화성의 진가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수원 야행'이 8월 11·12일, 9월 7 ·8일 두 차례에 나눠 진행된다. 올해 타이틀은 '밤빛 품은 성곽도시, 2018 수원 문화재 야행'이다. 이번 수원 야행은 야경(夜景)·야화(夜畵)·야로(夜路)·야사(夜史)·야설(夜設)·야식(夜食)·야시(夜市)·야숙(夜宿) 등 8야(夜)를 주제로 저녁 5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진다. 8월에는 화성행궁과 행궁광장, 공방길, 신풍동 일대에서, 9월에는 장안문에서부터 화홍문에 이르는 수원화성의 성곽 길, 방화수류정, 수원천 변에서 진행된다. 모두 의미 있고 가슴설레는 야행이지만 개인적으로 2차 야행이 더 마음에 끌리는 건 순전히 어릴 적 추억 때문일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02 이영재

[참성단]죽산 조봉암 서훈 논란

지난달 31일 서울 망우리 공동묘역에서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 59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최악의 폭염속에서도 죽산의 행적을 추모하고 기리는 후배 정치인들이 함께했다. 참석자들이 죽산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을 한목소리로 다짐해 특별했다. 의지만 보면 60주기를 맞는 내년안에 결판낼 듯한 기세다.식민시대와 해방정국을 관통한 죽산의 생애는 파란만장했다. 인천 강화 출신인 그는 모스크바 유학생 출신의 공산당원이었다. 1924년 조선공산당 조직을 주도했고, 일제의 대대적인 공산당 단속에 걸려 7년간 신의주 감옥에 갇혔다 1941년 출옥했다. 1945년 해외와 비밀연락 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해방이 되자 풀려났다.해방 이후 그는 박헌영을 비판하고 공산당과 결별한 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돼 초대내각의 농림부장관을 지내면서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독재자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평화통일론으로 맞서 2, 3대 대통령선거에서 선전했다. 하지만 이승만 사법부는 그가 창당한 진보당의 평화통일 정강을 반공법 위반으로 걸어 사형을 선고해 1959년 7월 31일을 교수형을 집행했다. 이른바 진보당 사건이다. 진보진영이 죽산을 각별하게 여기는 이유다. 고 노회찬 의원은 해마다 추모식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올해도 추도사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2011년 1월 대법원은 진보당 사건 재심을 통해 원심을 파기했다. 그동안 실정법 위반을 이유로 반려됐던 독립유공자 추서가 곧바로 신청됐지만 국가보훈처가 제동을 걸었다. 1941년 일제에 국방헌금 150원을 기부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같은해 4월 나라를 빼앗긴 통절한 심경을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절규한 위암 장지연 등 19명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일제협력을 이유로 취소한 정부입장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국가보훈처가 죽산의 독립유공 서훈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제는 증명하기도 힘든 단편적 흔적으로 역사적 삶 전체를 규정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아서다. 죽산의 부인이자 공산당원이었던 김조이는 납북돼 생사가 묘연한데도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한 정부 아닌가. 그 시절엔 공산당 활동도 독립투쟁의 방편이었다는 후대의 아량은 죽산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오늘의 시선으로, 진영을 잣대삼아 서훈이 오락가락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죽산의 명예회복이 진영을 초월한 역사적 관용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01 윤인수

[참성단]대통령 휴가 도서목록

열악한 독서율로 어려움을 겪는 출판계가 그나마 반짝 여름 특수를 누리는 것은 여름휴가 때 명사(名士)들의 독서목록 때문이다. '명사들이 휴가지에 갖고 가는 도서'가 발표되면 확실히 판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의 여름휴가 독서목록은 발표될 때마다 '흥행이 확실시'되는 베스트셀러 보증수표였다. 도서목록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지난해 여름 고 노회찬 의원이 '김지영을 안아주세요'라고 적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한 '82년생 김지영'은 그것만으로도 초대박 베스트셀러가 됐다.미국 백악관도 해마다 대통령이 휴가때 읽는 책 목록을 발표한다. 처음부터 그런 제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1961년 라이프지는 잠들기 전 반드시 30분이라도 책을 읽었다는 '존 F 케네디의 애독서 10선'을 실었다. 이언 플레밍의 '007시리즈'는 이 목록 덕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후 미국에서는 매년 여름 휴가철이면 대통령의 여름휴가 가방에 들어가는 도서목록을 공개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대통령의 한마디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2010년 여름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지까지 들고갔던 조너선 프랜즌의 장편 소설 '자유'를 읽고 "굉장한걸!"이라고 했던 한마디로 이 책은 100만부 넘게 팔리는 초 베스트셀러가 됐다.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은 여름휴가 기간 읽을 도서선정에 공을 들여 매년 '독서 목록'을 공개해 왔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휴가를 떠나면서 휴가지가 어디인지, 휴가 때 무슨 책을 읽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도 따로 휴가 도서목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휴가에서 돌아온후 SNS를 통해 "책도 읽지 않고 무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며 "휴가 중 읽은 '명견만리'는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밝혔다. '명견만리'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음은 물론이다. 올해도 청와대가 대통령의 휴가 도서 목록을 공개하지 않자 출판계에선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기대했던 '여름 반짝 특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짧은 휴가기간에 정해진 목록의 독서를 의무적으로 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지적도 있다. 쉴 때는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들의 독서목록에는 향후 국정운영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 메시지를 들을 수 없게 된 건 아쉽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31 이영재

[참성단]뉴스메이커 '이재명'

6·13지방선거가 끝난 지 한달 보름이 지났지만, 경기도지사 '이재명' 이름 석자는 지금도 바쁘다. 선거에 당선된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장들의 이름은 이제 집무실에 갇혔다. 하지만 이 지사의 이름 석자는 집무실과 도정현장 보다는 뉴스메이커로 세상의 관심 속에서 부유중이다.'이재명'을 둘러싼 화제는 논쟁적이다. 바른미래당과 김부선씨와의 법적 다툼은 경찰의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심상치 않은 확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공영방송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인 주진우와 바른미래당 김영환 전 의원은 시차를 두고 경찰서 입구에서 여배우스캔들 공방을 벌였다. 역시 경찰조사를 받은 작가 공지영은 이재명 저격을 멈출 기세가 아니다. 최근 출간한 신작 '해리'가 '진보의 탈을 쓴 위선적인 무리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조폭연루설'은 여배우스캔들 만큼이나 이재명을 화제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SBS 방송은 사업가로 변신한 국제마피아파 주요인물 L씨와 지사의 관계를 짐작케하는 정황들을 열거했다. 이 지사는 "이재명이 조폭배후면 대한민국 경찰과 정부도 조폭배후냐"며 L씨는 성남시장 직무수행중 만난 인연일 뿐이라고 해명했다.그런데 이 지사가 검찰수사를 촉구한 이후 휴지기에 들어서던 조폭연루설이 뜻밖에 민주당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불거졌다. 경선 후보인 수원 출신 김진표 의원이 "당과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며 이 지사의 자진탈당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 지사에 대해 적대적인 당내 친문(親文)세력의 지지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정치공학적 분석에도 불구하고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김부선, 바른미래당, SBS 대(對) 이재명의 전선이 김 의원 발언으로 인해 '이재명 탈당 찬반'이라는 당내 전선으로 번진 것이다.이 지사의 말 대로 이 모든 논란들이 '거대 기득권의 이재명 죽이기' 차원의 실체없는 '설(說)'이라면 억울해도 보통 억울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의 '설'들이 이 지사가 살아오며 맺은 인연에서 비롯됐으니, 설(說)을 토해내는 설(舌)만 탓하기엔 그의 공적 위상이 너무 커졌다. 이 지사는 어제부터 여름휴가 중이다. 이 모든 논란을 작파하고 오롯이 도지사 직분에 전념할 방안을 찾아내 복귀하기 바란다. 적요한 공간을 찾아 명상에 잠겨보길 권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7-30 윤인수

[참성단]김지하의 절필(絶筆)

'김 강사와 T 교수' '창랑정기(滄浪亭記)' 등 작품으로 주목받던 현민 유진오는 해방되자 절필을 선언하고 문단을 떠났다. 그리고 헌법학자로, 야당 정치인으로, 법제처장으로 문학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수필문학의 대가 금아 피천득은 1970년대 중반에 갑자기 절필을 선언했다. "어느 날 보니 내가 전보다 못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가 이유였다. 금아는 서초동 자택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절필 약속을 지켰다.자발적 절필 작가들에게 그 이유는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사회적, 정치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절필을 선언하고 훗날 다시 문단으로 복귀하는 작가도 많다. 김주영, 박범신, 김영하, 고종석, 신경림도 이런저런 이유로 절필을 선언했다 다시 문단으로 돌아와 왕성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하지만 타의에 의해 절필하는 경우도 있다. '해빙기의 아침' '부초'로 70년대 최인호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한국 최고의 인기작가였던 한수산은 1981년 5월 제주도에서 집필 중 보안사 요원에게 체포돼 서울로 압송됐다. 그리고 노태우가 사령관이던 국군보안사령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신문 연재소설 '욕망의 거리' 내용 일부를 문제 삼은 것이다. 유난히 감수성이 뛰어났던 그가 고문으로 받았던 정신적 충격은 너무도 컸다. 그는 절필했고 한동안 일본에서 생활했다.절필을 강요받은 작가도 있었다. 신경숙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과 '전설'의 문장을 표절했다는 시비에 걸려 여기저기서 절필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그는 사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임기응변식 절필 선언은 할 수 없다. 나에게 문학은 목숨과 같은 것이어서 글쓰기를 그친다면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다" 라며 절필을 거부했다.올해 등단 50주년을 맞는 시인 김지하가 절필했다는 소문이 지난주 문단을 뜨겁게 달궜다. 신간 시집 '흰 그늘'의 출판사가 내놓은 보도자료에 이번 시집을 끝으로 더는 집필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시집 서문에 "마지막 시집이다/교정하지 않는다/마지막 다섯 줄 '아내에게 모심'/한편으로 끝이다/이제 내겐 어릴 적 한(恨)/'그림'과 산밖에 없다/끝"이라고 써 절필이 사실처럼 돼버렸다. 우리 문단에 김지하처럼 한(恨) 많은 시인을 찾기 어렵다. 상상 못 할 모진 고난에도 붓을 꺾지 않던 그다. 쉽게 절필할 그가 아니다. 문단이 그를 주목하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29 이영재

[참성단]유령사회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는 유령사회(幽靈社會)에 살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유령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회사 자금을 빼돌리는 '유령회사', 건강보험 비용 허위 청구를 위한 '유령환자', 일부 성형외과에서는 '유령의사'가 불법 대리수술인 '유령수술'을 한다. 보험금을 노린 환자들을 상대로 허위 입원 서류를 발급해온 '유령병원', 삼성증권의 '유령 주식', 연금수급 대상자가 사망한 뒤 이를 감추고 가족이 받는 '유령연금' 등등 우리 사회는 이미 유령들로 가득 차 있다. 어제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가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유령 연금'으로 살아가는 가족의 슬픈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우울한 주제를 훈훈한 가족애로 승화시켰다고 해서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다. 히로가즈 감독은 2010년 7월 말 '동경 최고령 남성'으로 등록된 111세 할아버지가 실제로는 30년 전에 숨진 것으로 드러나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당시 사건 후 일본정부와 지자체는 긴급 조사에 들어갔는데 그 결과가 놀라웠다. 거주지가 확인되지 않는 100세 이상 고령자가 23만4천354명, 이 가운데 120세 이상은 7만7천118명, 150세 이상은 884명이었다. 나가사키(長崎) 현에는 200세 남성이 호적상 생존하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장수 대국'이란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일본의 고령자 통계가 모두 엉터리였던 것이다. 그때 나온 신조어가 '유령고령자'다. 24일 경인일보는 인천의 공공도서관 도서 구매 입찰을 노린 가짜 서점이 300여 곳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고발기사를 내보냈다. 취재기자는 그런 서점을 '유령서점'이라고 지칭했다. '서적 도·소매업'으로 사업자 등록만 내면 실제로 서점을 운영하지 않더라도 도서구매 입찰 참여가 가능한 한심한 조례가 원인이었다. 불법이 아니니 '청소용역업체', '소방설비업체', '유통상사업체'가 버젓이 도서납품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말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다. 인천의 94개 '진짜 서점'들은 이런 '유령서점'때문에 지금도 경영난으로 가게 문을 닫을지 말지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유령서점이 인천에만 존재하는 건 아닐 것이다. 당장 '고스트버스터즈'를 호출해서라도 우리 사회를 좀먹은 이 땅의 유령들을 모두 쫓아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26 이영재

[참성단]중년의 희망 '버스기사'

여러 단편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 표현하는 예술장르인 옴니버스(Omnibus, 모든 이를 위한)는 대중교통수단인 버스의 표준어이다. 1827년 프랑스의 온천장 주인이 호객을 목적으로 운영한 마차에 옴니버스라 붙인 호칭이 번져, 합승마차를 뜻하는 명사가 됐다. 서부개척시대의 역마차가 대표적인 옴니버스인 셈인데, 미국에서 버스로 줄여 부른게 오늘에 이른다.버스는 현대 도시문명의 살아있는 유산이다. 버스가 등장해 대중교통 시대를 연 덕분에 도시가 성장했고, 도시와 도시가 연결됐다. 한국에서도 버스는 박정희의 산업화 시대를 견인한 주역이었다. 노동자를 공장으로, 학생을 학교로 실어날랐던 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어떻게든 올라타려는 승객이나 버스에 간신히 매달린 채 개문발차를 감행하던 안내양 까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를 합창했던 절박한 시대의 자화상이었다.비행운 처럼 뽀얀 흙먼지를 날리던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에 면해 있으면 그나마 벽촌을 면했고, 70년대 들어 잇따라 개통한 경부, 영동고속도로를 질주하던 고속버스는 도시의 부와 문명을 시골 구석구석에 전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처음 탔던 유년시절의 고속버스는 충격적인 체험이었다. 시내버스와 시외버스의 치열한 경쟁이 없는 쾌적함이 고운 유니폼을 입은 여승무원이 나눠준 사탕보다 달콤했던 모양이다. 자라면 저리 되리라, 단정한 제복 차림의 운전사를 흠모했던 기억이 새롭다.본보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내 운전학원과 면허시험장에 1종 대형면허를 따려는 5, 60대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운수종사자가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고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버스 기사가 부족해진데 따른 재취업 행렬이다. 도는 2022년 까지 8천여명의 버스 기사를 양성하기 위해 예산까지 늘렸다고 한다.버스는 여전히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이다. 하지만 버스 기사의 과로운행이 빚은 대형사고로 악명이 높았다. 또 준공영제가 시행되는 지역은 구직난으로, 그렇지 않은 지역은 구인난에 시달린다니 지역별로 다른 보수차이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차제에 근로시간이 단축되고, 준공영제가 정착돼 버스기사가 중년의 직업으로 정착된다면 시민들도 환영할 일이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아직도 어느 외진 산골에선 사람이 내리고 싶은 자리가 곧 정류장"이라는 여유가 생길듯 싶어서다. 실업대란 시대에 버스업계의 구인난이 신기하면서도 반갑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7-25 윤인수

[참성단]노회찬이 남긴 '양심의 저울'

23일 오전 느닷없이 타전된 노회찬 의원 사망 뉴스에 놀랐다. 그의 유서를 읽고는 심경이 착잡해졌다. 유서에 담긴 그의 진심을 헤아리자 111년 만의 폭염에도 등골이 서늘해졌다.노 의원은 유서에서 진실을 고백했다. "드루킹의 경공모로 부터 모두 4천만원을 받았다." 잘못을 시인했다. "(경공모)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자책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스스로 검사가 됐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노 의원이 자신에게 내린 최종형량은 '목숨'이었다.양심(良心)의 무게를 고민하게 된다. 이집트 신화는 양심의 무게를 깃털로 쟀다. 사람이 죽어 정의의 방에 들어가면 자신의 심장과 깃털을 천칭에 올려 무게를 견준다.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우면 양심불량으로 판정돼 괴물의 먹이로 떨어졌다. 양심은 옳고 그름과 선악을 판단하는 도덕적 의식이다. 인간이라면 최소한 깃털 만큼의 양심을 가져야 한다는 은유다.깃털 만큼의 양심 마저 간직하지 못한 사람들로 혼탁한 세상이고, 정치권은 더욱 그렇다. 어제 말과 행동이 오늘 다르고 내일 변하는 팔색조 양심을 소신으로 치장하는 사람들 투성이다. 그래서일까. 노 의원이 드루킹 특검과 맞설 것이 당연시됐던 참이다. 하지만 간디의 말 대로 양심은 세상에서 유일한 독재자였나. 노 의원은 지금껏 지켜온 양심의 명령에 따라 스스로 심판대로 오르고 말았다. 평생 헌신했던 진보정당이 안착하는 상황을 원내대표인 자신이 망칠 수 있다는 자괴감도 그의 양심을 괴롭혔지 싶다. 세간엔 노 의원의 죽음을 그동안의 정치자금 관행이나 사회 주류층의 병리적 행태에 비추어 과도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대세인 모양이다.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는 심정의 반영일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노 의원의 양심 과잉인지, 아니면 그 선택이 과했다는 우리 사회의 반응이 양심 결핍인지 또렷하게 구분하기 힘들어 괴롭다.노 의원이 돈을 받았다는 2016년 3월이면 4·13 20대총선 열기가 한창일 때다. 얼마나 많은 불법정치자금들이 오갔을까. 양심의 무게야 각자가 정하는 것이니 기준을 세울 수 없다. 다만 정치인들이 노 의원의 빈소에서 각자 양심의 무게를 달아보고 오길 바란다. 노회찬은 한국 정치에 양심의 저울을 남기고 갔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7-24 윤인수

[참성단]하늘 '廣場'으로 떠난 최인훈

스무 살 넘어 읽은 소설 중 인생의 지침을 흔들었던 것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두 개의 소설을 꼽는다. 하나는 김승옥의 '霧津紀行'이고, 또 하나는 최인훈의 '廣場'이다. 물론 그 외 많은 작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뿜어내는 폭발적인 열정과 슬픔을 이기는 것은 단언컨대, 없다. 전후 한국 현대 문학은 이 두 개의 소설에서 시작됐다.4·19세대 문학평론가 김현은 '정치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였다고 볼 수 있다'고 단언했다. 60년 10월 '새벽'지에 발표된 원고지매수 600장에 불과한 이 중편소설 하나가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광장'이 발표된 이후 '최인훈의 광장'은 한데 묶여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80년대 젊음을 보냈던 우리가 이럴진대, 4·19세대가 '광장'에서 느낄 감흥이 어떨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최인훈의 광장' 주인공 이명준은 밀실과 광장으로 상징되는 남과 북의 정치 현실에 환멸을 느끼며 제3국으로 가는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린다.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히 들어찬 동중국 바다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러져 간다'로 시작되는 광장의 첫 구절은 우리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광장'은 분단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의 출현을 알렸다. 이 모두 4· 19혁명이 있어 가능했다.지독히도 책을 읽지 않는 시절이지만 '광장'이 지금껏 꾸준히 읽히는 것은 남북이 대치하는 분단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 민족의 분단 상태가 지속하는 한 '광장'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억압받아 온 이데올로기의 전반적인 상황을 증거하는 발언으로 거듭 읽힐 것이다. 그리고 분단 상황이 해소되고 이데올로기로부터도 해방되고 나서도 그것은 그래도 여전히 읽힐 것이다' 라고 말했다. '광장'은 지금까지 204쇄 70만부가 팔렸다.'광장'의 최인훈이 23일 오전 10시46분 별세했다. 향년 84세. 함경북도 회령 태생으로, 이제 그 역시 고향 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 수많은 실향민 중 한 명이 되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23 이영재

[참성단]부러진 애국심

1944년 1월 25일 오전 7시 40분 8명이 탑승한 B-24J 폭격기가 중국 쿤밍(昆明) 비행장을 이륙했다. 이들의 임무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에서 보급품을 받아 오는 것. 이들이 다니던 '험프'는 날씨가 변화무쌍해 '지옥으로 가는 길'이란 별명이 붙은 '악명 높은' 항로였다. 불행하게 이 비행기는 이륙한 지 3시간 후 지상과의 연락이 끊겼다.미국은 1947년 '험프'에서 추락한 비행기 잔해와 실종된 미군 유해를 찾는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300여 구의 시신을 수습했지만, 이들이 탄 B-24J 폭격기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수색은 계속됐다. 마침내 2012년 10월, 군인·의사·고고학자·인류학자·항공기전문가로 구성된 수색팀이 인도 동북부 히말라야 산맥 2천820m의 바위투성이 산 계곡에서 처참한 모습의 비행기를 발견했다. 추락한 지 68년 만이었다. 이 업무를 담당한 곳이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You are not forgotten)'를 모토로 하는 미 국방성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이다. 미국인의 '자발적 애국심 발전소'로 불리는 곳이다.17일 포항에서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이 이륙 도중 추락해 5명의 해병대원이 목숨을 잃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잔해와 시신. 사고현장은 너무 끔찍해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정부의 사고 처리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사고 현장을 즉시 공개하지 않았을 뿐더러, 청와대 대변인이 뜬금없이 "수리온의 성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마린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투였다. 대통령의 애도 역시 사고 3일 후에야 나왔다. "유족들이 의전 등이 흡족하지 못해 짜증이 난 것 같다"는 국방부 장관의 발언은 사과 후에도 여전히 유족과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있다. 미국이 최강국이 될 수 있었던 건 전쟁과 훈련 도중 발생한 그 어떤 사고라도 신속히 원인을 밝혀내고, 끝까지 시신을 찾아 가족 품에 돌려주는 '국가의 의무'를 다 하기 때문이다. '험프' 수색이 이를 증명한다. 훈련 중 목숨을 잃은 장병은 물론 유가족의 슬픔과 고통을 가벼이 여긴다면 우리는 절대 강한 국가가 될 수 없다. 마린온의 부러진 날개로 5명의 해병이 순직했지만, 그들의 고귀한 '애국심'마저 부러뜨려선 안 된다. 장병의 영결식은 사고 6일이 지난 오늘, 해병대장으로 열린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22 이영재

[참성단]고승호와 돈스코이호

1894년 7월 25일 인천 옹진군 울도 인근 해상에서 일본 전함의 포격으로 영국 국적 상선 고승호(高陞號)가 침몰했다. 청나라가 조선에 파견할 군인 수송선으로 활용하기 위해 빌린 이 배엔 청군 1천200여 명이 타고 있었다. 고승호의 침몰은 청일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러나 탐욕스러운 인간들에게 역사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고승호가 침몰한 그 날부터 청나라의 군자금으로 쓰일 은덩이와 은화 약 600t이 실려 있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소문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 그리고 근래까지 약 100년에 걸쳐 계속됐다. 그리고 2001년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운영하던 대아실업의 투자사인 '골드쉽'이 고승호 발굴에 성공했다.문제는 주식시장. 발굴이 진행되려는 시점에 대아건설 주식이 급등했다. 2001년 7월 30일 신문마다 이런 기사가 실렸다. '주식시장에서 '대아건설은 40%의 지분을 갖고 있는 보물선 인양업체인 골드쉽이 청일전쟁 당시 서해안에 침몰한 고승호에서 은괴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가격제한폭까지 오르는 등 요동을 치면서 '보물선 관련주'들도 덩달아 초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막상 인양된 고승호에는 소문과는 달리 약간의 은화와 엽전, 총기류, 탄알, 쌍안경, 선박용 온도계, 군인 신발, 도자기류 등이 발견됐다.1905년 러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울릉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돈스코이호가 연일 화제다. 한 기업이 '150조원의 금괴가 실린 보물선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관련 주가가 급·등락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2003년 6월 3일 신문마다 이런 기사가 실렸다. '3일 증시에서는 보물선 관련주들이 급등해 주목을 받았다. 동아건설이 울릉도 저도 앞바다에서 금괴를 실은 것으로 알려진 제정 러시아의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침몰선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발단이 됐다. 이에 따라 장외시장에서 200~300원대에 불과하던 동아건설 주가가 800원대까지 뛰었다.' 하지만 동아건설은 그해 부도가 나 사라졌다.끔찍한 폭염으로 불쾌지수가 연일 치솟고 있는 요즈음이다. '보물선' 소식이 청량제가 되어 서민들의 더위를 조금이라도 씻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더 '선'을 넘는 것은 곤란하다. 허황한 꿈이 횡행하고, 거기에 사람들이 현혹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19 이영재

[참성단]'트럼프 리스크'

미국 조야가 한 목소리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혼쭐내고 있다. 미·러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2016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자국 정보기관 조사결과를 비난하면서 푸틴 대통령을 옹호한 게 발단이 됐다. 여당인 공화당부터 발끈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미국 대통령으로서 가장 수치스러운 행동"이라고 머리를 저었다. 민주당 척 수머 상원 원내대표는 "미국의 적을 옹호한 대통령"이라며 "미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합세했다. 존 브레넌 전 CIA국장은 트럼프의 기자회견을 아예 "반역적"이라고 규정했다.언론의 비판은 더한데 보수 언론이 한 술 더 떴다. 트럼프가 사랑하는 폭스뉴스사의 한 진행자는 기자회견 생방송 도중 "좌파냐 우파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잘못된 일"이라며 "구역질 난다"는 극언을 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적국의 범죄 지도자와 공모한 것"(워싱턴 포스트), "트럼프가 푸틴의 발아래 누웠다"(뉴욕 타임즈), "미국 대통령을 더 이상 자유세계의 지도자라 부를 수 없게 됐다"(CNN) 등 미국 유력매체들은 현직 대통령을 '미국의 공적'으로 취급했다.트럼프는 모처럼 주눅든 표정으로 "말 실수"였다 해명했지만, 이번 기자회견 사태로 대통령을 향한 미국 주류사회의 의심은 회복 불가능 수준으로 깊어졌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지독한 자기중심적 정치와 맥락 없는 언행으로 국제질서를 혼란에 빠트렸다. 동맹은 당황했고, 적국은 미소지었고, 미국은 부끄러워했다. 미국 외교분야의 거물인 조지프 나이는 저서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에서 중국을 비롯한 세계강국과 미국 국력을 일일이 견주어보고 "미국의 세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현재의 트럼프 리스크를 감안해 개정판을 낸다면 결론이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미국 국내는 물론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과 하다 못해 북한까지 트럼프 리스크에 맞서거나 요령있게 관리 중인 국제정세다. 문제는 우리다. 트럼프 리스크의 직접 영향권에서 대처가 애매하다. 당장 북한핵을 요절낼 기세는 온데간데 없이 미북정상회담 이후부터 '세월아 네월아'니, 부동산 사업차 김정은을 만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미·중 관세전쟁으로는 대한민국 수출을 압박하고, 안보와 무역 등 돈 내놓으라 트집 거는 분야가 한 두개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 북핵 해결 없이 전대만 털릴까 걱정이다. 적극적으로 트럼프 리스크를 관리할 때가 됐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7-18 윤인수

[참성단]성희롱 논란 고전문학 수업

고등학교 때였다. 교과서 한 권만 들고 들어오는 국어 선생님이 계셨다. 수업이 시작되면 늘 "지난 시간 어디까지 배웠지?"라고 말했고, 우리가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요!"라고 하면 "그럼 오늘은 구지가(龜旨歌)를 배우자"며 칠판에 향가를 적어 내려갔다. 일필휘지였다. 물론 책은 들춰보지도 않았다. 향가가 이두를 통해 암호처럼 해독되는 과정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런 선생님의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우리는 향가 25수를 그렇게 배웠다.향가는 통일신라 때 크게 유행하다 고려 초 소멸한 시가(詩歌)로 요즘으로 치면 인기가요다. 당시에는 훨씬 많은 노래가 불렸겠지만, 불행하게도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만 전해진다. 순수한 우리 글로 표현할 수 없어서 이두(吏讀), 즉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빌려서 표기했다. 그러다 보니 해석에 어려움이 따르고 해독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오곤 했다. 그래도 향가는 신라 문학이라는 것 외에도 훈민정음 이전의 고어(古語)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자료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향가를 수록해 가르치는 것은 문학적 또는 역사적으로 '꼭 알아야 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우리의 향가처럼 일본에는 만엽집(萬葉集)이 전해져 내려온다. 상당수 작품이 지나치게 선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만엽집을 '일본 정신의 고향'으로 추앙하고 있다. 이영희(李寧熙) 전 국회의원은 7권의 저서를 통해 만엽집이 '고대 한국어를 이두체로 기술한 4천516수의 노래묶음'이라고 단언한다. 일본학자들은 기겁하지만, 일본인조차 해석 못 한 만엽집 일부를 이 전 의원은 고대 한국어로 모두 해독했다. 한자가 5세기 왕인박사 등 백제 학자에 의해 일본에 전해진 걸 떠올리면 이영희의 해독은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수업 도중 향가 '구지가'의 해석을 놓고 인천의 한 사립여고 교사가 성희롱 논란에 휩싸였다고 한다. 구지가의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란 대목에서 거북이 머리가 남근(男根)으로 해석된다는 교사의 설명이 성희롱이었다는 것이다. 학교 측은 A교사를 수업에서 배제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구지가가 이 정도면 처용가(處容歌)를 가르칠 땐 어땠는지 궁금하다. 우리 고전문학엔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가 꽤 많다. 이 잣대라면 우리의 고전문학 수업은 모두 중단되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17 이영재

[참성단]고희 맞은 대한민국 헌법

오늘로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 70주년을 맞았다. 1948년 5·10총선거로 구성된 제헌국회는 7월1일 '대한민국'을 국호로 확정하고, 12일 대한민국 헌법을 성안해 17일 내외에 공포했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하고 정부를 구성한 뒤 8월15일 대한민국 수립을 선포했다.링컨은 "국가는 거기에 거주하는 국민의 것"이라고 했다. 무엇으로 이를 확인하는가. 헌법이다. 헌법은 자유로운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장전이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헌법 10조~39조만 온전히 작동해도 국민은 존엄과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국민 개개인이 헌법을 숙지하고 생활의 준칙으로 삼으면 수많은 사회적 갈등이 해소될 것이다.가령 대한항공 조씨 일가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는 헌법 11조2항의 정신을 존중했다면, 아랫사람들을 그리 함부로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씨 일가 뿐인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정신대로라면 특권의식에 기생한 갑질문화가 발붙일 자리는 없다. 갑질문화는 국민의식이 헌법정신에 못미친다는 증거다. 법 앞의 평등이 돈 앞에서 깨지는 사회는 천박하다.최근 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는 최저임금 논란도 헌법에 기초하고 있다. 정부는 근로자의 고용증진과 적정임금 보장으로 최저임금제 시행(헌법 32조1항) 의무를 수행했지만, 편의점 사장들을 비롯한 소상공인들은 생존권 위기를 호소하며 '헌법에 입각한 국민저항권'으로 맞서고 있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바람에 죽게 생겼으니, 최저임금에 불복하겠다는 얘기다.최저임금 현상유지로 인간적 생존을 유지해달라는 편의점 사장들의 헌법적 권리와, 대폭인상으로 적정임금을 보장하라는 근로자의 헌법상 권리가 충돌한 것이다. 결국 최저임금법의 합리적 운용을 통해 양측의 헌법적, 헌법상 권리를 조화시켜야 할 정부만 사면초가 신세가 됐다.물론 소상공인들의 국민저항권이 헌법에 부합할지는 따져 볼 대목이 많다. 다만 편의점 사장님은 절망하고 아르바이트생은 불안하다니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결과가 '국민의 행복추구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선의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이해가 엇갈리는 모든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려는 정부의 헌법상 의무수행은 매우 섬세해야 한다는 교훈은 남았다. 제정 70주년을 맞는 헌법의 정의를 곱씹어봐야 할 시절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7-16 윤인수

[참성단]여의도 포청천 문희상

8선 이만섭 전 의원은 14대, 16대 두 번 국회의장을 지냈다. 그는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지는 법안 처리를 무척 싫어했다. 14대 의장 때 통합선거법 등의 날치기 처리를 위한 본회의 사회를 거부하면서 김영삼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다. 16대 땐 새천년민주당이 국회 원내 교섭단체의 구성 요건을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상임위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키자 "날치기는 안 된다"며 법안의 본회의 처리를 끝내 거부했다. 그는 국회가 정부가 보내온 법을 통과시키기만 하는 '통법부(通法府)'가 돼선 안 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진 국회의장이었다. 3공화국 이후 권력의 양지에서만 지냈다는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의장 시절 그에 대한 평가가 후한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문희상(경기 의정부갑)의원이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경기도 출신 국회의장은 1·2대 신익희 의장 이후 64년 만이다. 문 의장은 여야를 넘나드는 폭넓은 인맥과 특유의 친화력, 여기에 청와대에 대한 영향력도 상당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국회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지금, 국회 기능을 살리는데 나름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문 의장은 별명이 많다. 북송 시절 명판관 포증(包拯)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판관 포청천'의 주인공과 닮았고, 균형 잡힌 일처리를 한다고 해서 '여의도 포청천'이란 별명이 붙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얻은 '개작두', 외모 덕분에 '겉은 장비 속은 조조' '웃는 돼지' 등 다양한 별명도 갖고 있다. 문 의장은 우락부락한 외모와 달리 '할 말은 하고 풍류도 아는, 여의도에 얼마 남지 않은 정치인'이다.최근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의회주의자’ 문희상이 국회의장이 돼서 다행이다. 의장 수락연설에서 “첫째도 협치, 둘째도 협치, 셋째도 협치”라고 말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힘으로 야당을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린다.정치인은 이해와 현실을 좇고, 정치가는 시대와 역사를 읽는다고 한다. 국회의장이란 자리는 국회 의원이 국민을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자리다. 권력을 쳐다보지 말고 늘 국민의 편에 서서 의회민주주의 전통을 지키는 국회의장이 되길 바란다. 실제 '여의도 포청천'이 돼서 퇴임 후에도 "문희상은 '현실 정치인'이 아닌 '시대의 정치가' 였다"는 평가가 내려지길 기대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15 이영재

[참성단]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2018

세계 3대 영화제로 베니스, 칸, 베를린 영화제를 꼽는다. 각자 색깔과 특성이 다르다. 칸이 작가주의 작품을 선호한다면, 베니스 영화제는 예술적인 작품을, 베를린 영화제는 철학적이고 실험적이며 진보적인 영화를 선호한다. 이들 영화제는 자신들의 색을 갖기 위해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계적인 영화제가 되려면 이들처럼 연륜이 쌓여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정체성 논란을 빚으며 영화제 존폐를 논할 정도의 우여곡절도 겪어야 한다. 그러면 영화제에 나름의 고유 색깔이 입혀진다.부천 판타스틱 영화제(BIFAN)가 어제 개막했다. 22회째다. 역대 BIFAN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으라면 1회 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킹덤'일 것이다. 이 공포 영화는 BIFAN을 다른 영화제와는 분명히 다른, 특별하게 뭔가가 있는 영화제로 각인시킨 일등공신이었다. 이 영화 덕분에 BIFAN은 장르영화제 마니아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아왔다. 표현의 억압과 금기에 도전하는 작품들을 여과 없이 소개하면서, 다양성을 겸비한 독자적인 영화제로의 위치를 굳건히 할 수 있었다. 너무하다 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되는 성과 폭력, 타락한 사회를 시원하게 조롱하는 '그들만의 향연'이었다. 반대로 장르영화제가 갖는 한계는 일반인들의 진입을 막는 벽이었고, 그것은 주최 측에게 늘 커다란 고민이었을 것이다.20회를 기점으로 BIFAN은 큰 변화를 맞았다. 애초 영화제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마니아부터 일반 관객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제로 탈바꿈한 것이다. 당시 '코리안 판타스틱' 경쟁 부문을 신설하고, 가족을 위한 '패밀리 존'을 부활시킨 것도 그런 이유다.올 BIFAN엔 53개국에서 290편의 작품을 출품했다. 개막작에 오성윤·이춘백 감독의 애니메이션 '언더 독', 폐막작이 인도영화 '시크릿 슈퍼스타'인 것은 나름 의미심장하다. 그렇다고 호러 영화가 빠진 것은 아니다. 이름만으로도 오싹한 웨스 크레이븐, 조지 A 로메로, 토브 후퍼 감독의 특별전 '3X3 EYES: 호러 거장, 3인의 시선'은 영화제 고유의 색깔을 지키겠다는 주최 측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특별전만으로도 이번 폭염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여건에도 영화제를 이만큼 성장시킨 BIFAN 집행위원회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부산이 부럽지 않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12 이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