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스리랑카 노동자의 풍등

한 스리랑카 노동자가 일하던 공사현장에 떨어져 있던 풍등에 다시 불을 붙여 날렸다. 심심파적이었을 것이다. 경찰이 이 노동자가 날린 풍등을 대한송유관공사 고양 저유소 폭발화재의 직접적 원인으로 특정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동정론이 우세한 가운데 처벌을 주장하는 소수의견도 있다.논란에 앞서 이 스리랑카 노동자를 덮친 나비효과는 비극적이다. 애초에 풍등을 날린 곳은 저유소에서 800m 떨어진 한 초등학교였다. 학부모회가 주최한 행사에서 지난 8년간 해마다 날렸다고 한다. 그 수많은 풍등 중 하나가 하필 3년전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의 손을 타고 저유소를 향했다. 휘발유 탱크는 폭발했고, 스리랑카 노동자는 인생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이 노동자에 대한 동정여론에 공감이 간다. 무심하게 날린 풍등이 저유소 폭발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증폭된 원인 규명이 중요했다. 풍등의 불씨가 떨어져 저유탱크 잔디밭을 18분이나 태우는 장면이 저유소 모니터가 생중계했지만 이를 지켜본 송유관공사 직원은 없었다. 저유탱크 주변의 화재를 알려줄 시스템도 없었다. 작년말에 풍등을 관리할 소방법 개정이 있었지만, 풍등을 날리는 것은 불법도 아니고, 금지구역을 설정한 것도 아니다.재미삼아 재활용한 풍등 하나가 저유소 폭발로 증폭된데는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 송유관공사의 부실한 방재시스템, 관련 법규의 모호함이 더 큰 원인일 것이다. 한 외국인 노동자를 화재의 주범으로 단정하는 순간 화재 원인과 관련된 우리 내부의 문제점이 소실된다. 대형 저유시설의 화재 가능성을 증폭시켜 온 우리 내부의 문제를 주목하기 보다, 서둘러 희생양을 만들고 있다는 여론은 이성적이다.풍등은 불로 데워진 공기의 팽창력을 동력으로 솟아오른다. 불이 꺼지고 공기가 식으면 떨어진다. 그런데 저유소 잔디밭에 착륙한 문제의 풍등은 불씨를 안고 있었다. 스리랑카 노동자에게 화재의 책임을 미루고 넘어간다면 국가 방재시스템에 화근을 남기게 될테고, 국가중요시설을 향한 풍등의 습격은 계속될 것이다. 검찰이 10일 저유소 화재 피의자인 스리랑카 노동자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10 윤인수

[참성단]요즘 무슨 책 읽어?

얼마 전 길에서 옛 은사님을 만났다. 이런 저런 얘기 중 은사님이 이렇게 물었다. "자네 요즈음 무슨 책 읽나?" 의외의 질문이라 당황했다. 생각해보니 이런 질문을 최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나 역시 누구에게 "지금 무슨 책 읽어?"라고 물어본 적이 없다. 만나는 사람에게 "밥 먹었어?" 라는 말은 수없이 하면서도 "무슨 책 읽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를 사는 것이다.열어둔 창문 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는 건 책 읽기 좋은 가을이 왔다는 것이다. 설악산 단풍 소식은 책을 읽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 왔음을 의미한다. 올해가 '책의 해'라는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국민이 책을 너무 읽지 않으니 정부가 25년 만에 올해를 '책의 해'로 지정했다. 매달 책과 연관된 행사들이 지난 3월부터 연말까지 꾸준히 끊이지 않고 열린다. 하지만 이에 관심을 두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세종은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 어제 한글날, 언론들은 세종의 업적을 찬양하면서 가장 으뜸으로 '한글'을 꼽았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건 백성이 쉽게 글을 읽게 하기 위함이다.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라고 밝혔듯 왕은 혼자만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는 게 백성들에게 미안했을지도 모른다. 책 읽는 재미를 백성 모두가 공유하길 왕은 진정으로 원했을 것이다. 아무리 미디어 시대라지만 한글창제 572돌을 맞는 지금, 우리의 독서율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국민이 책을 읽지 않는 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루 평균 200권 이상의 신간이 쏟아지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출판량에도 불구하고 독서율은 OECD 최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5년 펴낸 '국민독서실태조사'보고서를 보면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65.3%였다. 2017년엔 60%로 더 떨어져 성인 10명 중 4명이 일 년 동안 책을 단 1권도 읽지 않았다. 왕의 깊은 뜻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책 읽기의 일상화'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이 순간만이라도 독서삼매경에 빠져야 할 때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은 한 달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리고 100일도 남지 않았지만 '2018년 책의 해'만이라도 이런 인사말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무슨 책 읽어?""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09 이영재

[참성단]한글날

한글은 쉽다. 창제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서문에서 장담한 대로다. '어리석은 백성이 쉬이 익힐 수 있는 스물여덟자'가 한글이다.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이병헌)가 어린 시동에게 약간의 무안만 당하면 금방 익힐 수 있는 문자가 한글이다. 세종이 백성을 가엾게 여기지 않았다면 유진 초이는 고애신의 고백 '보고십엇소'에 닿기까지 천자문을 외우느라 진땀을 흘렸을지도 모른다.세종이 백성이 배우기 쉬운 표음문자 창제에 전력을 기울인 이유는 표의문자인 한자(漢字)가 우리 언어와 맞지 않아서 '말하고자 할 바가 있어도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서였다. 백성 모두가 문자로 상통하는 조선을 꿈꾸고 실현한 것이다. 세종의 어진 마음 덕분에 한국어는 모든 소리를 한글로 옮길 수 있게 됐고, 한자로는 의미를 가두고 확장할 수 있게 됐으니, 후손들이 누리는 문자생활의 이익을 가늠하기 어렵다.그러나 바야흐로 한글 수난시대다. 형태는 무시로 훼손된다. 존맛탱(아 맛있다), 롬곡옾높(폭풍눈물), 사바사(사람 바이 사람. 사람마다 다르다) 등 급식 먹는 중·고생의 급식체는 해독불가다. 방송사 예능프로 자막은 난수표에 가깝고, 뉴스자막에서 오자는 일상이다. 문자의 품위는 비루해졌다. 시종일관 욕설로 일관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댓글공방을 보면 한글을 이렇게까지 막 쓸 수 있을까, 경이로울 지경이다.문자로 반목하는 정치권의 구태도 여간 걱정이 아니다. '최저임금'이라 쓰고 여권은 더 올려야 할 노동자의 최소임금이라 해석하고, 보수야당은 자영업자 말살 임금이라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겐 폐지의 대상이고 보수야당에겐 체제안위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보장이다. '종전선언',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정부여당과 보수야당, 미국과 북한의 입장과 해석에 차이가 확연하다.최소한 우리 내부에서는 합의된 의미로 새겨야 할 문자이다. 그래야 우리끼리 상생이 가능하고, 밖에 나가서는 힘을 받는다. 세종은 백성들이 문자로 상통하는 조선을 원했지만, 오늘 대한민국은 문자로 갈라지는 위태로운 시절이다. 문자가 문자 본래의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서로 소통해야 위대한 문자, 한글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08 윤인수

[참성단]당신은 행복합니까

유엔이 발간한 '2018 세계 행복보고서'를 보면 156개국 중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57위, 사회적 관계지수는 95위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9세 이상 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행복에 관해 물은 결과 '불행하다'는 답변이 73.4%에 달했다. 나이별로는 19~29세(76.9%), 30~39세(77.9%), 40~49세(75.7%), 50~59세(75.0%) 등 상당수 국민들이 자신의 불행을 호소했다.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무한경쟁, 자영업의 붕괴, 고용지표 악화 등 팍팍한 경제사정을 고려하면 지금 우리를 둘러싼 것이 '행복하지 않은 조건'들로 채워져 있는 것만은 분명한 모양이다.경인일보가 창간 73주년을 맞아 내놓은 화두는 '지금 우리 행복한가요'다. 이런 특집을 마련한 건 우리 사회가 그리 행복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독자를 대상으로 한 행복에 대한 조사 결과는 의외다. 응답자들은 행복의 1순위로 '가족'을 꼽았고, 절대다수가 '지금보다 앞으로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미래를 희망있게 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에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과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를 들었다. 칸트는 행복의 세 가지 조건으로 첫째 할 일이 있고,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셋째 희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행복학 권위자 에드 디너도 '모나리자 미소의 법칙'(21세기북스)에서 "지속적이고 완벽한 행복은 실현 자체가 불가능하니 조금 불행한 행복을 원하라"고 조언한다.헬렌 켈러는 자서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서 이렇게 적었다. '첫날에는 내게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해 준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오후에는 들과 산으로 가서 예쁜 꽃과 풀들을 볼 것이다. 저녁이 되면 황홀한 노을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것이다. 둘째 날에는 동트기 전 일어나 잠든 대지를 깨우는 태양의 장엄한 광경을 경건하게 바라볼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아침 일찍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밤에는 도시 한복판에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거리와 쇼윈도에 진열된 멋진 상품들을 보고 싶다.' 우리가 매일 마주쳐 행복이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의 사소한 것들이 헬렌 켈러에겐 절대적인 소원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07 이영재

[참성단]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지금의 가수 양희은을 있게 한 건 '아침이슬' 때문만이 아니다. 그녀의 목소리와 너무도 '딱' 어울렸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 불후의 명곡으로 양희은 더 유명해졌다. 가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국. 돌아서는 나에게 사랑한단 말 대신에 안녕…" 실연당한 연인들은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수많은 눈물을 흘렸다. 1936년 12월 11일.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는 전 세계를 향해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왕위를 포기한다." 왕의 마음을 흔든 건 이혼녀 월리스 심프슨 부인. 이혼녀와는 결혼할 수 없다는 영국교회의 반대에 "그녀가 없으면 왕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며 왕관을 버렸다. 그의 말은 전 세계 연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세기의 사랑에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부인 브리지트 트로뉴를 빠질 수 없다. 마크롱은 10학년이던 15세 때 프랑스어를 가르치던 40세 교사 브리지트 여사를 만났다. 브리지트는 3명의 자녀를 둔 유부녀. 심지어 브리지트의 딸은 마크롱과 같은 반 친구였다. 아들의 연애 소식을 들은 부모는 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그들의 불같은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 지난달 29일 중간선거 지원 유세 도중 "나는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폭탄 발언은 놀라웠다. 그는 "나는 과거에 매우 거칠었고 김 위원장도 마찬가지였지만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우린 사랑에 빠졌다"고 말했다. 앞 뒤를 떼고 이 부분만 들었다면 세계는 트럼프의 커밍아웃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어디로 튈지 모르는 두 사람의 성향 때문에 '사랑타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눈길도 만만치 않다. 어제 코리 가드너 민주당 의원은 "이혼을 대비한 혼전계약을 맺었길 바란다"고 했고,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 외교의원도 "독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말하는 것은 매우 쌀쌀하고 잔인하다"고 조롱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절친으로 알려진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 조차 "사랑같은 소리 집어 치우라. 김정은은 사랑할 구석이 아무것도 없다"고 일침을 놨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결판나면 "후폭풍은 끔찍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그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보다 '이루어 진 사랑'이 보는 이들에겐 더 좋다. 두 사람의 움직임을 전 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04 이영재

[참성단]과도한 대북(對北) 로맨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김 위원장의 '아름다운 편지'가 두 사람의 연정에 불을 붙였단다. 대한민국 대통령 비서실장은 출중한 외모로 김 위원장의 실세 피붙이 김여정의 팬클럽 회장에 당첨됐다. 당사자인 임종석 실장 대신 '외모패권'에 밀린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개했다. "사람들이 김여정의 팬클럽 회장을 하겠다고 난리였다"는 것이다.미북정상회담을 겨냥한 정치적 수사이자, 평양남북정상회담의 훈훈한 장면을 강조하는 여담으로 치부할 수 있다. 정식으로 평론하자면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조롱받기 십상일 게다. 하지만 현재 조성된 남북 평화무드에 취해 낙관적 언어유희가 난무하는 현실은 걱정이다.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적 선언"이라며 "북한이 약속을 어길 경우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고 미국에 북한과의 종전선언을 압박한 발언은 종전선언 자체의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우리와 미국은 종전선언의 몸값을 최대한 높여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실행 조치를 받아내야 할 입장이다. 기능을 다한 영변핵단지 폐기를 위해 종전선언 카드를 써버리면,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인정한 최대 60개의 북한 핵무기를 폐기하기 위한 외교카드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종전선언을 남북평화협정의 시발로 삼으려는 노심초사는 이해하지만, 그럴수록 종전선언은 귀하게 쓸 카드 아닌가.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남북철도 연결비용과 관련 "통일되면 다 우리나라 것이 된다"고 말했다. 지금 남북미 협상은 통일협상이 아니라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통한 남북체제 공존협상 아닌가. 또한 대통령 말대로 북한이 핵폐기 약속을 어기면 취소 가능한 종전선언이라면, 우리의 대북투자가 우리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물론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이 절체절명의 남북미 협상에서 대한민국의 실리를 챙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다. 다만 '트럼프의 사랑', '김여정 팬클럽 회장'류의 낭만적 에피소드와 낙관적 전망의 범람으로 엄숙한 시대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가 흐트러질까 저어할 뿐이다. 반대로 북한은 김정은 남매의 이미지 외교와 실무진의 실리 외교라는 전략적 톱니바퀴가 절묘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이다. 전체주의의 효율이 두렵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03 윤인수

[참성단]부러운 일본의 기초과학

2018년도 노벨상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혼조 다스쿠 교토대 명예교수가 선정됐다. 이로써 일본은 노벨상 생리의학상 분야에서만 역대 수상자가 5명이 됐다. 올해 118년째를 맞은 노벨상은 6개 분야에 걸쳐 총 924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중 일본인 수상자는 1949년 물리학상에 유카와 히데키 이래 27명(외국 국적 취득자 3명 포함)으로 늘었다. 이중 우리가 주목할 것은 23명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나왔다는 점이다.일본은 어떻게 기초과학의 강국이 됐을까. 메이지 유신 후 새로운 지식을 수용하며 근대화를 선도했고, 패전 후 정책적으로 과학기술을 육성한 것이 노벨상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우리가 2011년 설립한 기초과학연구원(IBS)의 모델이 된 '이화학연구소'를 일본은 1917년에 설립했다. 특히 70년대에 들어서 막대한 금액을 연구개발에 쏟아부은 것이 주효했다. 국가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R&D 예산을 GDP의 2% 이상 확보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1995년 '과학기술기본법' 제정으로 연구에 날개를 달았다.여기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은 기초분야 강국의 원인으로 꼽힌다.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스카와 도시히데·고바야시 마코토 교수는 대학 선후배로 만나 무려 35년간 소립자 연구의 한 길만 걸었다. 선배 마스카와가 소립자의 6개 쿼크 존재설을 제시하고, 후배 고바야시가 이론적으로 증명해낸 것이다. 특히 마스카와는 "노벨상 시상식 참석이 생애 첫 해외여행"이라고 밝혀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관심 분야에 몰입하는 오타쿠 문화가 한 우물을 파는 연구로 이어졌다. 올 수상자 혼조 교수의 "기초의학 연구자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수상 소감은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것이다.우리는 왜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할까. 전문가들은 국제공동연구 등 네트워크의 부족과 짧은 기초과학연구의 역사를 꼽는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기초과학연구가 시작된 것은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설립되면서부터다. 왜곡된 인식도 한 원인이다. 만일 우리도 일본처럼 한 분야에 집중 지원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특혜를 준다고 난리가 날 것이다. 우리가 노벨 문학상에 목을 매고 있을 때마다 "한국인은 책도 안 읽으면서 노벨문학상만 바라고 있다"는 외신들의 아픈 지적을 이제 곰곰이 생각해볼 때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02 이영재

[참성단]노인의 나라

노인복지법을 비롯한 각종 법률상 공경의 대상이 되는 노인의 기준 나이는 65세다. 전체인구 대비 65세 인구 비율로 유엔이 정한 기준대로라면 대한민국은 노인의 나라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2000년 고령화사회(7% 이상)에 진입한 지 18년만인 지난해 고령사회(14% 이상)로 진입했고, 8년뒤인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20% 이상)가 될 전망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추산에 따르면 2050년엔 65세 노인인구가 35.1%에 달해 일본과 별 차이없는 세계 2위 노인대국이 된다.노인의 나라를 향한 가속에 비해 대한민국 노인복지는 참담한 수준에서 답보중이다. 46.7%의 노인빈곤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1위이고, 공적연금을 비롯한 노인 소득보장제도 수준은 전세계 96개 나라 중 82위란다. 나이 들어 돈에 쪼들린 탓일까. 노인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다. 보건복지부의 '2017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5명 중 1명이 우울증을 앓는 가운데, 이중 6.7%가 자살을 생각해봤고 13.2%는 실제 시도했다니 장수시대의 우울한 풍경이다.유엔은 이미 2009년에 '100세 인간(homo hundred)시대'를 선언했다. 장수시대를 연 인류를 향한 축복 보다는, 장수시대를 대비한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 경고의 의미가 짙은 선언이다. 우리나라도 노인은 공경의 세대가 아니라 문제의 세대로 떠올랐다. 노인복지의 시발점을 지금처럼 65세로 고정시킬 경우 노인복지 예산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회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특히 저출산 현상의 고착으로 인해 노인세대를 떠받칠 청소년 세대가 급감하면서, 예산 등 공적 자원의 배분을 놓고 세대간 내전이 임박한 실정이다.노인 기준 연령을 상향조정하자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30년 전이면 몰라도 이제 65세라 해서 노인이라 자처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전히 팔팔한 심신으로 생산현장을 누비고 싶은 나이에 지하철 무임승차에 만족할 젊은 노인이 얼마나 될까. 오늘이 노인의 날이다. 전국의 100세 장수노인에게 청려장이 전달된다. 100세 노인에게 지팡이가 필요하듯, 젊은 노인에겐 지팡이 대신 일자리가 절실한 시대다. 일자리만 있다면 애매한 노인을 확 줄일 수 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01 윤인수

[참성단]건군 70주년 국군의 날

오늘은 70주년 국군의 날이다. 이전에는 육군은 국방경비대 창설일인 1946년 1월 15일, 해군은 해방병단 결단일인 1945년 11월 11일, 공군은 육군 항공부대에서 독립한 1949년 10월 1일을 기념해 군별로 행사를 치렀다. 그러다 이를 통합 1956년부터 오늘을 국군의 날로 못 박았다. 6·25전쟁 당시 우리의 3사단 23연대 군인들이 양양지역에서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날이 10월 1일이었기 때문이다.군 독재시절 국군의 날 행사는 북한에 보내는 경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정권의 권위를 과시하는 게 목적이었다. 준비도 요란해서 한 달 넘게 야영하며 행사를 위한 훈련을 하곤 했다. 연일 수원비행장을 이륙하는 비행기로 인해 소음이 심해지면 '곧 국군의 날이구나'할 정도였다. 마침내 그날, 대규모 병력이 미사일과 탱크 등을 앞세우고 군 통수권자에게 '충성!' 구호를 외치면 여의도가 '움찔'했다. 기념식 후 도심을 관통하는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유명 연예인들이 굳게 입을 닫고 행진하는 군인을 향해 마구 달려가 화환을 걸어주던 모습은 나름 '볼거리'였다.1980년대에 들어서 행사가 전시성이라는 비난을 받자 '3년마다' 규모 있게 치르기로 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조차도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던 그 해, 기념식 장소가 계룡대에서 성남 서울비행장으로 바뀌고, 시가행진도 부활됐다. 또 대규모 행사를 '5년마다' 치르기로 했다. 1998년 50주년엔 도심 시가행진을 벌였고, 2008년 60주년엔 테헤란로 일대에서 24종 86대의 대규모 군사 장비가 등장했고 2013년 65주년엔 숭례문~세종대로 구간에서 37종 105대 장비와 4천500명 병력이 참가한 시가행진이 열렸다.관례대로라면 건군 70주년인 오늘, 우리 군이 얼마나 성장해 왔는지 국민들에게 과시하는 행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 국군의 날 행사엔 우리 군의 보무당당한 행진을 볼 수 없게 됐다. 대신 용산전쟁기념관에서 가수 싸이와 걸그룹 등 인기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행사가 열린다. 남북대화로 인한 '평화의 시대'에 군사 퍼레이드가 모두에게 여러모로 불편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안보의 최후의 보루, '싸워 이기는 군대' 대한민국 국군의 강건한 모습까지 지웠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건군 70주년 국군의 날 아침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30 이영재

[참성단]뮌헨회담 80주년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가 뮌헨회담을 막 끝내고 돌아오던 1938년 9월 30일 그 날, 런던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영국 국민들은 공항까지 마중 나와 '평화협정서'를 들고 온 그를 뜨겁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외쳤다. "전쟁의 공포가 사라졌다!" 언론은 그가 총리 재임 중 기사 작위를 받는 영국 역사상 두 번째 인물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언론도 있었다. 영국 국민 앞에서 그는 히틀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 번 약속하면 믿을 수 있는, 협상 가능한 합리적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역사는 아무리 과정이 좋아도 결과가 형편없으면 실패한 것으로 기록된다. 체임벌린은 1938년 9월 29일 뮌헨에서 체코슬로바키아 수데테란트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히틀러와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그는 "더 이상의 영토 요구는 없다"는 히틀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이듬해 9월 1일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대전의 문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역사는 늘 아이러니다. 1945년 독일이 패배에 직면했을 때 히틀러는 자신이 궁지에 몰린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뮌헨이었어. 1938년 전쟁을 시작했어야 했어"라고 후회했다고 한다.뮌헨 회담은 '선의에 의존하는 협상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명제를 후세에 각인시켜 주었다. '적의 도발 앞에서 준비 없이 평화를 애걸하면 비극을 초래한다'는 역사적인 교훈도 남겼다.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전 참전을 결정했을 때도 '뮌헨의 교훈'이 인용됐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 내 강경파들은 케네디 대통령에게 "뮌헨 회담을 잊지 말라"며 전쟁을 독려했다.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며 존슨 대통령은 "나는 체임벌린이 아니다"라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역사는 지금도 체임벌린을 협상으로 평화를 얻으려다 더 큰 불행을 자초한 '무능한 총리'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1940년 11월 눈을 감은 그는 사전 유언장에 "뮌헨이 없었다면 우리는 1938년 파괴됐을 것이다. 나는 결코 역사가의 평가가 두렵지 않다"고 적었다.내일은 뮌헨회담이 열린지 꼭 80주년 되는 날이다. 굳이 달력을 뒤적이면서까지 이날을 떠올리는 건 남북·한미회담에 이어 북미회담이 논의 중인 지금, 우리에겐 왠지 그냥 넘길 날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다.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27 이영재

[참성단]방탄소년단(BTS)의 UN연설 메시지

방탄소년단(BTS)의 성공가도가 어디에 이를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올 한해에만 두번이나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차지하더니 급기야 유엔총회 연설로 세계적인 찬사와 주목을 받았다.대한민국 7인조 보이그룹 BTS는 지난 24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 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에서 7분 연설을 통해 전세계 청소년들에게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룹의 리더 RM(김남준)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틀에 저를 끼워 맞추는데 급급"하자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고, 심장은 멈췄고, 시선은 닫혔다"고 암울했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며 "오늘의 나이든, 어제의 나이든, 앞으로 되고싶은 나이든, 제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강조했다.RM의 연설은 BTS의 성장통을 그대로 담아낸 진정성 때문에 울림이 컸다. 2013년 데뷔할 당시 중소기획사의 그룹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방탄소년단은 멤버 7명 중 서울 출신이 전무하다. 하지만 청소년의 아픔과 고통을 대변하는 앨범을 발표하며, 멤버 전원이 SNS와 온라인 1인방송을 통해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저변을 넓혔다. 사투리 교정에 실패한 4명의 경상도 출신 멤버 2명은 경상도 사투리 배우기 개인방송을 할 정도로 자기 정체성이 확고했다. RM의 유려한 영어 실력은 해외팬들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멤버 각자의 노력이 그룹의 에너지로 모이자 폭발력이 세계로 확장됐다.스스로를 사랑하며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이름과 목소리를 찾으라"는 방탄소년단 김남준의 UN연설은 절망하는 지구촌 청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이자 절망의 밤하늘에 뜬 별자리가 됐을 것이다.그러나 모두가 BTS가 될 수 없고, 사실 BTS의 성취는 별 만큼이나 멀고 특별하다. 중요한 건 BTS의 메시지를 현실로 환원할 국가와 사회의 책무다. 추석연휴 취업 잔소리에 격분해 아버지를 흉기로 찌른 한 청년의 비극이 있었다. '3포세대'를 넘어 포기할게 너무 많아 'N포세대'라는 한국 청년들에게 제대로 방탄 역할을 하는지, 공존의 사다리를 매달아주고 있는지 국가와 사회의 성찰이 깊어질 때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26 윤인수

[참성단]추석 민심

민심(民心)에 대해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것이 미국 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의 사례다. 그는 부통령을 하다가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자 자리를 이어받은 운 좋은 대통령이었다. 닉슨의 '돌출 행동'에 데이고, 대통령을 쫓아냈다는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던 미 국민들은 포드에게 70%가 넘는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 포드는 이에 크게 고무됐다. 그는 높은 지지율을 미국 국민의 마음으로 생각했다. 그게 문제였다. 민심을 잘못 파악한 그는 취임 한 달 만에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닉슨에 대한 사면을 선언한다." 그게 끝이었다. 민심이 폭발했다. 지지율은 하루 만에 50% 밑으로 폭락했다. 다음 선거에서 카터에게 패한 포드는 대통령직에서 895일밖에 재임하지 못한, 5번째로 단명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무능한 대통령이란 딱지는 덤이었다. 민심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따지고 보면 '민심은 천심'처럼 추상적인 말도 없다. 정치가 국민의 행복권 실현을 위해 존재하는 한 이런 표현이 유효할 수 있어도, 그렇다고 민심이 '진리'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현대 사회에서는 민심이 정의나 진리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특히 정치인들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민심'이 튀어나올 때 특히 그렇다. 평소에는 민심을 헌신짝처럼 취급하다가 선거 전후 그들의 입에서는 민심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민심을 얻지 못해 선거에서 패했다.""표에 담긴 민심을 절대 잊지 않겠다." "민심 무서운 줄 이제 알았다." 등등.곧 추석이다. 장엄한 민족대이동이 연출될 것이다. 사통팔달 길이 뚫리고 고속도로 통행료까지 면제니 고향을 찾고 가족 친지를 만나는 게 더더욱 수월해졌다. 민심의 동향은 이 길을 따라 이곳저곳으로 빠르게 전파될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라는 호재가 있었다. 지난 추석 '촛불 민심'이 그랬듯이, 이번 추석엔 이 평양발 호재가 암울한 경제상황, 고용 불안, 청년 실업 등과 맞부딪혀 다양한 민심을 표출할 것이다. 그러니 청와대도 정부도 정치인도 이번 추석 민심 움직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 조상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했다. '넉넉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다.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준 자연의 섭리와 조상에게 늘 감사하고 혹시 내 주변에 불우한 이웃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정치가 아닌 이런 따듯한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추석 민심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20 이영재

[참성단]평양 정상회담 명암

예정대로라면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백두산 방문을 끝으로 오늘 청와대로 돌아온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9월 평양공동선언문'에 합의하기까지 평양 정상회담은 명암이 엇갈리는 장면과 화제로 풍성했다.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남북 정상의 상호신뢰 확인으로 보인다. 전격적인 4·27판문점 정상회담 이후 세번째 만남에서 두 정상은 모든 장면에서 서로를 향한 신뢰와 존중을 표현했다. 김 위원장의 문 대통령 환대는 최상급이었다. 21발의 예포, 정상 동반 카퍼레이드, 노동당청사 개방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받지 못한 예우였다. "대통령 각하!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는 각하를 영접하기 위하여 정렬하였습니다." 북한 육군대좌 김명호의 남한 대통령을 향한 사열보고가 아직도 귓전에 쟁쟁하다.적어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결정적인 한반도 정세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절박한 역사적 숙명 속에서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됐다. 두 사람의 만남은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자정에 트위터 반응을 내놓을 정도로 국제정세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 북핵 폐기를 놓고 희망사항은 다를지 몰라도, 현 정세에 상호 의존적 관계인 것만은 분명하다. 셔틀외교의 완성판인 김 위원장의 서울방문 확정이 이를 증명한다.그러나 아쉽고 불길한 장면도 없지 않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우리가 정권을 뺏기는 바람에 11년 동안 남북관계가 단절돼 여러 가지로 손실을 많이 봤다"고 한 발언은 곱씹을 대목이다. 만일 자유한국당 대표가 동행했으면 북한 사람 앞에서 시비가 붙었을 내용이다. 남북관계 11년 정체 이유는 다양하고, 그 중에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북한의 연속적인 핵실험 등 북측의 귀책사유도 많다. 현 한반도 정세를 바라보는 우리 내부의 엇갈린 시선을 여과없이 보여준다.정상회담 직전 미국 요청으로 열린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제재의 실효성을 놓고 미국과 중국·러시아가 거친 언쟁을 벌인 것도 예사롭지 않다. 외세의 개입은 노골적이다.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손 붙잡고 한반도 평화구상을 밀어붙이는데, 우리 내부와 외세의 대응은 엇갈리고 충돌한다. 낙관도 비관도 불허하는 한반도 정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19 윤인수

[참성단]다큐멘터리의 힘

바야흐로 다큐(docu)의 세상이다. 지상파건 종편이건 다큐를 내걸지 않으면 프로그램 행세를 할 수 없을 정도다. 다큐 세상, 시사 다큐, 다큐프라임 등등 온통 다큐일색이다. 예능프로라고 예외는 아니다. 다큐와 예능을 결합한 '리얼 예능'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다큐는 다큐멘터리(documentary)의 줄임말. 단어가 길어 번거로우니 뒤를 뚝 잘랐다. 다큐멘터리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사실(fact)과 현실(reality)이다. '다큐멘터리의 힘'은 이 단어에서 나온다. 다큐 프로가 난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다큐멘터리의 사전적 정의는 '사실에 입각한 촬영과 합리적인 재구성을 바탕으로 현실을 '기록'하는 영화'를 말한다.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서 팩트를 기록한다'는 의미도 있다. 다큐멘터리가 현실의 객관적 기록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객관성을 보장하고 있다고 믿으면 오산이다. 다큐멘터리는 감독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주관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성향이나 작품의 의도에 따라 그 방향성이 좌우된다. 그게 다큐멘터리의 매력적이다. 그러나 너무 한쪽으로 치우칠 경우, 다큐멘터리로서의 가치는 크게 훼손된다. 시위현장에서 진압하는 경찰과 저항하는 시위자를 어느 쪽에서 찍느냐에 따라 '폭력시위대'와 '폭력 진압 경찰'이라는 상반된 해석이 나온다. 종종 다큐멘터리가 '선전영화(propaganda film)'로 변질되는 것도 그런 경우다.다큐멘터리가 주는 감동의 크기는 극영화에 비할 바가 아니다. 파급력도 엄청나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직설적이고 강렬하기 때문이다. 울림이 크니 감동도 클 수밖에 없다. DMZ 국제 다큐영화제가 어느덧 10회를 맞았다. 레드카펫, 배우들의 화려한 의상, 눈부신 스포트라이트가 없어도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질은 높아진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앙뚜, 다시 태어나도 우리' 'B급 며느리' 같은 좋은 작품이 꾸준히 선을 보인 덕이다. 올해는 39개국에서 142편의 작품이 출품됐다. 어려움 속에서도 이만큼 성장했으니 '대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아웃사이더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일반인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고, 새로운 다큐영화제가 신설되고 있으니 이는 좋은 징후다. 지원이 더 강화되고 문호가 더 개방돼 작품의 수도 늘어나면 DMZ 국제 다큐영화제의 앞날은 더 밝아질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18 이영재

[참성단]이재명 빠진 특별수행단

오늘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휴전선을 넘지만, 경기도는 예상치 못한 정상회담 후폭풍을 겪고 있다. 정상회담 특별수행단에 접경지역 단체장 대표로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포함된 반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제외된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쉬쉬하는 분위기에 강도는 찻잔속 태풍이지만, 추측과 해석은 범상한 수준을 넘는다.강원도지사의 접경지역 단체장 대표성이 상식적인지에서 의문이 돋아났다. 인구와 경제력, 접경지역 기초단체 수, 향후 예상되는 교류협력의 규모 등 도세만 놓고 보면 경기도가 접경지역 대표 광역단체라는 현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이 지사는 취임후 전국 지자체 최초로 평화부지사직과 평화협력국을 신설하는 등 남북교류협력에 대비해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지난 추경에는 남북교류협력기금을 배 이상 확대했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그대로 경기도 경제비전으로 차용했다.이 지사 입장은 쿨했다. SNS에 정상회담 기간 다보스 포럼 참석 사실을 알리고 "문재인 대통령님, 박원순 시장님, 최문순 지사님 잘 다녀오세요"라는 응원을 남겼다. 하지만 도청 분위기는 다르다. 언론이 보도한 산발적인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도청 실무진이 이 지사의 특별수행을 추진했던 것만은 사실인 모양이다. 다보스 포럼 참석 포기 의사까지 표명했다는 후문이고 보면, 결과에 초연하기 힘든게 당연하다. 경중을 가려도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이 민간 모임인 다보스 포럼 참석 보다 훨씬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상황의 배경이 모호하니 추측의 난무는 당연지사다. 수행명단 작성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설 부터,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의장 자격으로 수행단에 포함된 사실에 견주어 차기 대권구도와 관련한 상상을 부추기는 해석까지 다양하다. 문 대통령의 남북평화 외교를 강력하게 지지해 온 이 지사 입장에서는 이런 봉변이 없다.4대 그룹 대표 포함에서 보듯이 정상회담 특별수행단 구성은 그 자체가 메시지이다. 반토막 난 정당대표 수행, 설(說)을 야기한 경기도지사 불참 등의 소동이 특별수행단 구성에 담을 대북 메시지를 흐렸을까 걱정이다. 불협화음을 불식시킬 정상회담의 성과를 기대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17 윤인수

[참성단]"고마워요 KT위즈"

KT위즈가 '마침내' 꼴찌를 '탈환'했다. 시작만 좋았다. 희망은, 4월 그때뿐이었다. 5월 말부터 조짐이 보였다. 투수진이 무너지고 타자의 배트 끝이 무뎌진 게 그즈음이었다. 대패하고도 여유 부리던 코치진과 선수 표정에서 불안감을 느낀 것도 그때였다. 연패에 분통이 터지는 것은 위즈 팬들뿐이다. 3루 쪽 상대 팬들은 그때마다 일제히 외쳤다. "고마워요 KT위즈."위즈가 패하면 상대 팬들은 "고마워요 KT위즈" "사랑해요 KT위즈"를 연호했다. 고맙고 사랑한다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연패에 빠진 팀이나 슬럼프를 겪는 선수들은 위즈를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펄펄 날았다. 위즈가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과 연패에 허덕이는 팀들에게 보약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지난 8월 5일 넥센전. 장단 20안타에 11볼넷을 묶어 무려 20점을 내준 끝에 20대2로 대패했다. 그날부터 힘을 얻은 넥센은 연전연승을 기록하더니 이젠 4위를 달리고 있다. 이날도 넥센 팬들은 위즈를 향해 "사랑해요 KT위즈"를 외쳐댔다. 위즈는 이제 9개 구단의 '도우미'가 됐다.장훈은 자서전 '방망이가 울고 있다'에서 "기교도 중요하지만 싸우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썼다. 위즈는 싸우려는 의지도, 이기겠다는 욕망도 없다. 타자가 1점을 어렵게 뽑아내면 투수들은 너무 쉽게 2점을 내준다. 파이팅은 물론 긴장감도 눈곱만치도 없다.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다. 흐리멍덩하다. 응집력도 전혀 없다. 다른 팀은 입을 꽉 물고 경기에 임하는데 위즈는 입을 벌리고 뛴다. 그러니 팀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중간 투수진이 이미 무너져 이기고 있어도 불안하다. 후반으로 갈수록 경기는 여지없이 뒤집힌다. 그러니 이런 말도 생겼다. "위즈 경기는 장갑을 벗어 봐야 해". 역전패가 다반사라 경기를 끝까지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5점을 앞서도 9회가 되면 불안한 것도 그래서다. 이런 식이면 내년에도 꼴찌 하지 말란 법도 없다.위즈는 유난히 꼬마 팬들이 많다. 9대7로 이기던 경기가 9대11로 뒤집히면(7월6일 롯데전) 이들은 실망감에 '그로기' 상태가 된다. 희망도 사라진다. 밥맛도 없다. 이제 더는 실망을 주지 말자. 남은 19경기라도 최선을 다해 꼬마 팬들 입에서 "고마워요 KT위즈" "사랑해요 KT위즈"가 저절로 나오게 해야 한다. KT위즈! 이제 제발 정신 좀 차리자!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16 이영재

[참성단]고위공직자 7대 배제 원칙

인사청문회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1787년부터니 햇수로 230년이 넘었다. 연방정부 공직자의 임명 권한을 놓고 대통령과 상원의원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자 '선 대통령 지명, 후 상원 인준'으로 선을 긋고 시작한 게 청문회였다. '도덕과 이념의 무덤'이라고까지 불리는 미국청문회는 그 목적과 범위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어 정쟁으로 악용되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우리는 2000년 6월 헌정사상 최초로 이한동 국무총리의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2003년엔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이, 2005년부터 국무위원을 청문회에 포함했다. 원래 공직을 수행해 나가는데 적합한 업무능력이나 인간적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증하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위장전입, 논문표절, 투기 의혹, 병역비리, 이중국적 등 사적인 것을 끄집어내 흠집 내기로 시작됐다. 여야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였다. 품격 없는 후보자와 의원들의 자기편 감싸기로 청문회는 정쟁의 장으로 변질됐다. 같은 문제로 청문회가 늘 시끄럽자 문재인 정부는 '고위 공직 후보자 임용 7대 비리 배제 원칙'이란 기준안을 만들었다. 위장전입, 불법적 재산증식, 논문표절 등 7개 조항에 위반되면 공직에 서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 제도를 처음 적용한 인사청문회가 10일부터 시작됐다. 결과는 참담했다. 8번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난 헌법재판소 재판관에서부터 아직 청문회를 하지 않았지만,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지역구 사무실 특혜 입주 의혹과 위장전입 전력에 이어 불법적 비서관 채용 문제까지 불거졌다. 7대 원칙이 무색해 진 것이다.관포지교(管鮑之交)로 잘 알려진 관중(管仲)은 '관자'(管子)에서 예절, 의리, 청렴, 부끄러움(禮義廉恥)을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다스리는 4가지 뼈대(四維)로 보았다. 이 중 한 개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없으면 위태롭게 되며, 셋이 없으면 근간이 흔들리고, 넷 모두 없으면 나라는 망한다고 했다. 20년도 안 된 청문회를 오랜 연륜의 미국과 비교한다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7대 원칙이 세워 진 이상 스스로 여기에 적용된다고 생각한다면 사퇴하던가 청문회에 서지 말았어야 했다.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했다면 이야말로 염치가 없는 것이다. 염치가 없는데 예의가 있을 리 없다. 어찌 이들을 믿고 법과 교육을 맡기겠는가.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13 이영재

[참성단]남북정상회담 동행요청 촌극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의 국회의장단과 외교통일위원장, 여야 5당 대표 남북정상회담 동행 요청과 관련해 정치권이 시끄럽다. 요청과 거절을 둘러싼 시비를 떠나 정말 궁금한 점이 있다. 정의용 특사가 지난 5일 방북에서 4·18 3차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할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정당 주요 인사의 동행 방북을 합의했는지 여부다.외교에서 의전은 생명이다. 핑퐁외교로 죽의 장막을 열었던 미중정상회담 당시 닉슨과 마오쩌둥은 악수와 미소를 주고받는 첫 대면부터 양국이 합의한 의전을 따랐다. 싱가포르 북미회담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키 차이를 고려한 의전이 관심을 끌기도 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를 우러러보는 장면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역으로 의전에 없던 파격을 연출해 회담의 주도권을 잡는 경우도 다반사다. 공격적인 악수로 악명 높은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 때 느닷없이 자신의 전용차 내부를 공개해 김 위원장을 당황시켰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깜짝 월경(越境)을 제안해 만만치 않은 내공을 과시했다.3차 남북정상회담도 양측이 합의한 의전이 있을 것이다. 국회의장단, 정당대표들은 국가의전서열 10위내의 주요 인사들이다. 이들이 대통령과 동행하는 문제는 당연히 사전에 합의할 중요한 의전이다. 북한과 합의된 사안이라면 정 특사의 방북 결과 브리핑에 중대한 누락이 있었던 셈이니 큰 문제다. 청와대의 단독 결정이라면 의전상 북한에 대한 실례다. 평양은 청와대가 즉흥적으로 부랴부랴 동행단을 꾸려 방문할 장소는 아니다.임 실장의 전격적인 동행요청은 상호 존중을 강조한 삼권분립의 원칙상 무례했다. 난데없이 '꽃할배' 운운한 대목에선 동행요청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헷갈린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거절의 이유가 우아했으면 좋겠다"고 거들었다.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한 야당대표들의 거절 이유를 야유한 것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갈 사람만 가자'는 냉소적 반응이고, 청와대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퇴근 시간에 밥먹자 했다가 부하직원들이 난색을 표하자 짜증내는 상사의 촌극을 닮았다.북한 비핵화의 분수령으로 주목받는 남북정상회담이다. 내부의 의전이 이 모양인데, 정상회담 의전의 주도권을 쥘 수 있을까 걱정이다. 평양의 김 위원장은 목숨을 걸고 문 대통령을 기다릴텐데 말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12 윤인수

[참성단]중국 축구감독 히딩크

추억이라고 다 아름다운 건 아니다. 2002년 월드컵이 하나된 마음으로 국민 모두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은 건 특이한 경우다. 지금도 귓가를 떠나지 않는 '대~한민국'과 '오~필승 코리아'의 함성. 월드컵이 끝나자 지독한 무력증에 빠져 허우적댔던 일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아름다운 추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2002년 월드컵은 우리를 4강까지 진출시켜준 거스 히딩크 감독과의 행복했던 '한달간의 동거'였다. 그의 '어퍼컷 세리머니'는 얼마나 통쾌했던가.혹독한 IMF는 국민들의 웃음을 빼앗아 갔다.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히딩크가 '불쑥'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가 타임지와 했던 인터뷰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됐던가. "한국민이 원하는 16강이 나의 바람은 아니다. 내게는 그 이상의 바람이 있다. 만약 6월을 끝으로 내가 한국을 떠나게 될지라도 한국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는 한국팀 감독이고 앞으로도 한국팀 감독이라는 것이다. 월드컵에서 우리는 분명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멋지게 약속을 지킨 히딩크를 우리는 가끔 한국인으로 생각했다.하지만 이제 추억의 히딩크가 악몽의 히딩크가 될 수도 있는 얄궂은 운명과 맞닥뜨리게 됐다. 히딩크가 2020년 도쿄올림픽 본선을 목표로 중국 21세 이하 감독을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한국팀 감독을 사임한 후 호주, 러시아, 터키 감독을 맡으며 자신의 축구인생을 걸어왔다. 그러나 21세 이하라 해도 중국 축구감독 히딩크 인생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중국인들이 대하는 한국 축구는 공한증(恐韓症)이란 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지만 트라우마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시진핑은 '월드컵 본선 진출과 중국 월드컵 개최, 월드컵 우승'을 3대 소원으로 꼽았다. 어디 이뿐인가. "중국이 월드컵을 개최하고 언젠가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의 축구 사랑은 끔찍할 정도다. 시진핑의 웅대한 꿈에 한국은 늘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히딩크가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21세 이하는 중국 축구의 미래다. 히딩크 아래서 탄탄한 기본기를 쌓고, 시진핑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다면 중국은 벅찬 상대가 될 것이다. 우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히딩크. 중국으로 가는 히딩크를 보며 스포츠의 세계가 냉혹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11 이영재

[참성단]대부도의 '그랑꼬또'

지금이야 방조제 도로로 연결돼 섬이랄 수도 없지만 대부도는 대교로 연륙된 선재·영흥도로 이어지는 수도권의 드라이브 명소다. 대부도를 찾으면 포도원들이 줄줄이 눈에 띈다. 도로변에는 포도농가들이 그럴듯하게 작명했지 싶은 '비가림 포도'나, '알솎음 포도'를 판매하는 간이매대가 늘어서 주말 행락객을 유혹한다.포도는 포도주, 즉 와인으로 가공돼야 부가가치가 급상승한다. 문제는 국내에서 와인을 제조해도 시장의 호응이 신통치 않은 점이다. 서구의 와인문화가 워낙 독보적이라서다. 와인이 빠진 그리스·로마의 신화를 상상하기 힘들다. 플라톤은 와인을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 예찬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최초로 행한 기적이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이고, 최후의 만찬에서는 포도주를 자신의 성혈로 여기라 했다. 신화시대의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기독교의 제의에 이르기까지 포도주의 위상은 절대적이다.와인으로 숙성된 서구문화인 만큼 프랑스, 이탈리아의 유럽이 와인산업을 장악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여기에 대항해시대 유럽에 정복당해 와인문화권에 포함된 남북아메리카가 가세해, 글로벌 와인시장을 놓고 벌이는 유럽중심의 구세계와 칠레와 미국 등 신세계 사이의 시장쟁탈전이 치열한 실정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이후 와인시장이 확장된 국내에서는 구세계 와인을 고급주로, 신세계 와인을 대중주로 취급하는 경향이 뚜렷하다.지난 주말 명품 포도밭 대부도에서 와인 페스티벌이 열렸다. 대부 포도로 만든 지역 와인 '그랑꼬또'를 알리기 위한 축제였다는데 각계 명사와 일반 와인 애호가들의 시음평이 좋았다고 한다. '그랑꼬또(Grand Coteau)'는 불어로 큰 언덕을 뜻한다. 큰 언덕 대부(大阜)를 곧이 곧대로 상표로 옮겼으니, 작지만 강한 자존심이 프랑스 전통 와이너리 못지 않다. 그래서인가 출시 19년만에 그랑꼬또는 아시아 와인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차지하며, 국내외 소믈리에에 극찬을 받는 와인으로 성장했다.여기에 이르기까지 대부 포도의 품질을 믿고 19년 동안 와인을 빚어온 대부도 토박이 김지원 그린영농조합 대표의 뚝심이 있었다. 한 병의 와인에는 세상의 어떤 책보다 더 많은 철학이 있다는 말처럼, 그랑꼬또는 오랜 세월 김 대표의 희로애락으로 숙성됐을 것이다. 조급증이 일상화된 시대에 시간이 일으키는 기적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해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10 윤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