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송구영신(送舊迎新)

삼백예순의 나날들/ 기쁨과 슬픔/ 아쉬움과 홀가분이 섞여 있다/ 우리 함께 했기에 좋았던 한 해/ 설레이며 새해를 맞이하라(서윤덕 시인의 '송년').2020 경자년(庚子年)은 전염병의 창궐로 일상이 무너진 참담한 한 해였다.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고, 살기 위해 흩어져야 했다. 상투적으로 건네는 '건강하시죠'란 인사말이 진심 걱정하는 마음 씀씀이가 됐다. 인적마저 끊긴 세모(歲暮)의 밤거리, 칼바람이 매섭다. 너도 답답하고, 나도 우울하다. 시인도 지난 삼백예순의 나날들이 '좋았던' 건 아닐 듯하다.정결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리라/ 그렇게 맞이한 이 해에는/ 남을 미워하지 않고/ 하늘같이 신뢰하며/ 욕심 없이 사랑하리라/ 소망은/ 갖는 사람에겐 복이 되고/ 버리는 사람에겐/ 화가 오느니/ 우리 모두 소망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황금찬 시인의 '나의 소망' 중에서).2021 신축년(辛丑年)이 밝았다. 동해안 정동진이 갇히고, 한남정맥 광교산을 둘러막아도 해는 솟아오른다. 새해를 맞는 마음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희망이 있고, 설레는 마음에 즐거움이 넘친다. 따뜻한 시선으로 이웃을 둘러보는 여유로움이 충만하고, 어린아이 같은 무구(無垢)한 마음을 가져본다. 수천 도(度) 열기를 응축한 시뻘건 해를 보면서 작은 소망 하나 축원(祝願)한다. 새해를 마중한 시인은 사랑과 소망을 노래했다.역술로 보면 신축년은 절기상 12월로, 새벽 1시 언저리다. 칠흑 같은 어둠과 꽁꽁 언 대지를 가리킨다. 좋은 징조는 아니라는 뜻이다. 국내 한 역술인은 천재지변과 홍수, 지진 등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 창궐을 예지해 유명세를 떨친 14살 인도 소년 아비냐 아난드의 예언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천재지변은 물론 전쟁과 이변으로 세계 경제가 붕괴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디난 일 애다디 말오 오는 날 힘써서라/ 나도 힘 아니 써 이리곰 애다노라/ 내일란 바라디 말오 오늘 나를 앗겨서라'(매암 이숙량(1519~1592). 오지 않은 앞날을 걱정하는 건 어리석고 부질없다. 미래의 명운은 신의 영역이다. 찰나를 머물다 가는 미물은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지난 일에 매달리지 말고 오늘 힘써 살아야 한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2-31 홍정표

[참성단]'2020년'

2020년이 오늘 하루를 끝으로 저문다. 올해도 늘 그렇듯 음력 경자년(庚子年)을 가불해 상서로운 기대로 양력 첫 날을 열었다. 경자년 흰 쥐가 다산과 재물을 상징한다며 풍요로운 한 해가 될 것이라 했다. 하지만 2020년 자영업자 주머니는 탈탈 털렸고, 나라 곳간엔 빚 문서만 쌓였다. 출산율은 역대 최악 기록을 갱신했다. 경자년 코로나19 대란에서 무사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 모든 일이 틀린 점괘 탓이라면 40여일 남은 경자년을 뭉텅 잘라내고 싶을 정도다.2020년은 인류 전체가 문명을 전환한 '코로나 원년'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멀리 볼 것 없이 우리 사회의 비대면 문화가 확산일로다. 기업들은 재택근무의 손익계산을 따져보며 화상회의를 정착시킬 태세다. 배달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수많은 식당들이 온라인 배달 플랫폼 기업에 종속되고 있다. 코로나가 온라인 산업혁명을 재촉하는 형국이다. 결혼식과 장례식은 간소해지고 송년모임은 사라졌다. 익숙해지면 문화가 된다. 코로나가 끝나도 코로나가 남긴 변화는 이어질 것이다.견딜 수 없을 만큼 어려웠던 시절, 서로 따뜻한 정이라도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참 살벌하게 서로 맞선 한해였다. 정치 탓이다. 코로나 때문에 광장에서 온라인으로 옮겨 간 정쟁은 서로를 죽이기에 충분했다. 연초 대통령은 "애벌레에서 나비로 탄생하는" 상생의 탈피를 다짐했지만, 나비는 날지 않았다."우리 절 밭두렁에 벼락 맞은 대추나무/ 무슨 죄가 많았을까 벼락 맞을 놈은 난데/ 오늘도 이런 생각에 하루해를 보냅니다.(무산 조오현 '죄와 벌')" 정권의 누군가가 선승( 禪僧)의 깨달음을 흉내만 냈더라도 정치가 이리 망가졌을까 싶다. 벼락 맞을 정치가가 없으니 국민만 벼락 맞은 대추나무 신세가 됐다. 아시타비(我是他非) 지옥을 2020년에 실어 보내긴 힘들 모양이다."어서 잊을 건 잊고 용서할 건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어요.(이해인 '송년의 시')" 그래도 연말이다. 한 해의 희로애락을 정리 정돈할 인연들이 그립고 보고픈 건 어쩔 수 없는 세모의 심경이다. 그런데 국민 전체가 5인 미만으로 흩어졌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연말 풍경이다. 낯설고 슬프다. 2020년, 네가 그랬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2-30 윤인수

[참성단]동부구치소 팬데믹

법무부는 지난 28일 초유의 구치소 수감자 소개작전을 벌였다. 코로나19에 확진된 서울동부구치소 수감자 345명을 청송교도소로 이송한 것이다. 이송 버스는 히터도 잠근 채 운행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전파될까 그랬단다. 청송교도소 교도관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7개 조가 돌아가며 2박3일 근무한 뒤 14일 동안 외부와 격리된다. 수감자와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됐다. 그렇다고 동부구치소가 한숨 돌린 것도 아니다. 이날 하루 230여명의 확진가가 추가로 쏟아져 나왔다.코로나 사태 초기 세계 각국에서 교도소 탈옥과 폭동사건이 속출했다. 브라질, 베네수엘라, 칠레 등 중남미 국가는 물론 이란, 스리랑카 교도소에서 코로나19 예방조치에 반발하거나 감염 공포에 휩싸인 재소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거나 집단탈옥을 감행했다. 미국은 교도소 감염과 폭동을 우려해 경범죄자들의 조기 석방을 단행했다. 이를 노리고 코로나에 걸리려 물컵을 돌려쓰다가 적발된 재소자들도 있었다.동부구치소 집단감염은 상식적으로 예상 가능한 참사였다. 교정시설 수용규정에 따르면 혼거실의 1인당 배정면적은 2.58㎡, 1평도 안 된다. 외부와 격리된 채 혼거실에 수용된 수감자들은 전염병의 손쉬운 표적이고, 일단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속수무책이다. 지난 20일 동부구치소의 한 수감자가 창틀에 매달려 옷가지를 흔들며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이 한 방송사 카메라에 잡혔고, 어제도 한 수감자의 절박한 '창문 SOS'가 포착됐다. 수감자들의 감염 공포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힘들다.교정시설 코로나19 대책은 이미 실행중이었어야 맞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된 법무부의 해명이 걸작이다. "수용자들에게 마스크를 매일 지급했다면 국민여론이 좋지 않았을 것"이란다.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 법무부는 형사 피의자 인권보호를 목청 높여 외쳤다. 피의사실 공표도 안 되고 포토라인도 없앴다. 그런 법무부가 교정시설 수감자에겐 인권보다 국민여론을 앞세운다. 인권의 보루인 법무부의 인권의식이 선택적이라면 심각한 문제다.동부구치소 팬데믹 이후에야 법무부는 교정시설 수용자들에게 KF 인증 마스크를 지급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수감 인원의 3분의 1이 감염됐고 어젠 사망자까지 발생한 사실이 확인됐다. 전형적인 사후약방문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2-29 윤인수

[참성단]취업 포기한 청년들

'프리터(Free + Arbeit)족'은 직업이 아르바이트인 젊은 층을 말한다.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 생계유지를 위해 알바를 한다. '니트(NEET) 족'은 일하지 않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들이다. 15~34살 취업인구 중 미혼으로 학교에 다니지도, 가사 일도 하지 않는다. 취업하겠다는 의욕도 없기에 의지가 충만한 프리터족과 구별된다.통계청은 지난달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쉬었다'는 응답자가 235만명이었다고 밝혔다. 이 중 4년제 대학을 나와 일하지 않고 구직활동도 하지 않으며 그냥 쉰 20·30대 청년이 19만3천명이다. 지난해 11월 대졸 청년 백수는 13만7천명이었다. 1년 전보다 40% 이상 늘어난 셈이다. 대졸 백수 중 20대는 10만6천명, 30대는 8만7천명이다.역시나 코로나19 탓이 크다. 기업 채용 규모가 확 줄어든 데다 주요 대면 업종의 부진이 심각하다. 숙박·음식점, 스포츠·예술, 여행·교육 서비스업 등 청년 고용 업종이 치명상을 입었다. 일자리를 찾다 지쳐 의욕을 잃은 청년세대가 늘어난 이유다.니트족은 소비 능력이 평균에 못 미친다. 이렇다 할 소득이 없으니 부모와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준다. 경제의 잠재성장력을 떨어뜨리고 경제 활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된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불안을 유발하는 사회병리 현상으로 취급된다.한국경제연구원은 이달 초 한국의 대졸자 취업률이 2009년 OECD 37개국 중 14위에서 2019년 28위로 14계단 크게 하락했다고 밝혔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청년대졸자 실업률은 2009년 6.1%에서 2019년 5.3%로 0.8%p 개선됐지만, 한국은 5.0%에서 5.7%로 0.7%p 악화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2.8%p(5.2%→2.4%), 일본은 2.1%p(4.7%→2.6%) 낮아졌다.새해에도 일자리 시장엔 먹구름이 짙다. 코로나 조기 종식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 일자리 창출은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좀비 기업이 늘어나는 민간 경제도 불안하다. 불과 2개월 뒤면 다시 졸업시즌이다. 통계로 보면 새내기 대졸자 중 30% 이상은 백수 대열에 강제 편입된다. 청년 취업시장이 한파(寒波)보다 더 꽁꽁 얼어붙었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2-28 홍정표

[참성단]코로나 사망자를 위한 애도

인종과 문화는 달라도 망자와 이별하는 상례(喪禮)는 엄숙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쟁과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는 예법이 무너진다. 대규모 전염병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엔 스페인 독감 사망자들을 한꺼번에 묻은 집단매장지가 도처에 산재한다. 실록에 1천400여건의 역병 기록을 남긴 조선 조정은 역병이 창궐할 때마다 버려진 시신을 모아 매장하거나, 그것도 힘에 부치면 한데 모아 화장하기도 했다.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존엄한 죽음이 불가능하긴 마찬가지다. 전 세계 누적 사망자가 174만여명인 상황에서 희생자에 대한 예의는 사라졌다. 발생 초기 중국에선 시신을 트럭에 한데 실어 처리한다는 얘기가 돌았고, 1등 국가인 미국에선 냉동 컨테이너에 시신을 보관하는 실정이다. 많은 국가에서 장례식은 생략됐고, 가족과 대면도 못한 채 화장됐다."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에 부고 소식을 알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르기로 하였습니다. 상주 000."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받은 4건의 SNS 부고 내용이 한결같았다. 그 밑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댓글이 빼곡하게 매달렸다. 부고를 알리는 상주나, 찾아가 애도하지 못하는 문상객들 모두 죄송하고 미안한 심경인 코로나19 장례식 풍경이 참담하다.일반 장례식 풍경이 이럴진대 코로나 사망자 유가족들의 심경은 어떨지 상상하기 힘들다.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코로나19 사망자 장례관리 지침'은 선 화장 후 장례가 원칙이다. 임종을 지켜보려면 의료진 수준의 방호복을 입어야 하지만, 고인과의 마지막 대면은 사실상 힘든 모양이다. 의료용 비닐백에 밀봉된 시신은 수의도 입지 못한 채 가능한한 당일 화장한다. 우리 장례문화에서 이런 식으로 부모와 혈육을 보내는 건 평생 한으로 남을 일이다.이렇게 시나브로 우리 곁을 떠난 코로나 사망자가 어제까지 808명이고, 12월 한 달에만 280여명이다. 요양병원에서 전원을 기다리다 사망한 고령자도 적지 않다. 상례의 생략도 가슴 아프지만, 최선의 치료를 받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두고두고 유족들을 힘들게 할 것이다.수십만명이 사망한 나라에 견주어 희생자가 적다고 자위할 일이 아니다. 목숨의 무게는 숫자를 초월한다. 당국의 코로나 브리핑 때마다 반복되는 희생자에 대한 애도가 가벼워 보인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국가 차원의 정중한 애도와 추모가 있어야 한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2-27 윤인수

[참성단]코로나 크리스마스

해외입국자 2주 격리 조치로 올해 산타클로스는 내년 1월9일에나 온다는 유머에 어른들은 웃지만, 어린이들은 정색한다. 지난달부터 세계 각국에서 산타의 썰매 운행과 선물 배송이 가능할지 묻는 어린이들의 민원이 쏟아졌다. 절박한 민원에 어른들의 답변도 진지하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산타클로스는 국제 통행허가증을 갖고 있다"며 썰매 운행을 약속했고,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소장은 "북극에 가서 산타에게 직접 백신 주사를 놓았다"며 선물 배송을 장담했다.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는 올해도 산타 위치추적 서비스를 제공한다.분장한 산타와 어린이가 만나는 산타클로스 이벤트도 코로나19 버전으로 변형됐다. 오프라인 행사에선 산타는 마스크를 쓴 채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어린이와 만나야 한다. 이도 불안한 부모들은 온라인 화상회의 시스템인 '줌'에 산타를 초대한다니 코로나 이후에도 번창할 사업일 듯싶다. 모두 크리스마스 동심을 지켜주기 위한 어른들의 눈물겨운 노력들이다.하지만 어른들의 크리스마스는 훈훈한 사연 한자락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삭막하다. 어제부터 시행된 수도권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으로 성탄절 거리들이 텅 비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부터는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전국으로 확대된다. 연말연시를 전후한 해넘이, 해돋이 명소들도 폐쇄됐다.한 해의 수고를 위로하며 공동체의 연대를 다지던 인간관계들이 모두 분리된 채 사람들은 집 안에 갇혔다. 지난달부터 성탄 대목을 준비했던 자영업자들은 줄줄이 폐업안내문을 내걸고 있다. 산타는 올테지만 썰매에 선물을 실어야 할 부모들의 지갑은 썰렁하다.이번 크리스마스 최고의 선물은 누가 뭐래도 코로나 백신이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풍족하게 확보한 국가들은 이미 국민들에게 속속 성탄절 백신 선물을 배달 중이다. 성탄절 만찬을 즐기는 행복한 가족들을 창밖에서 훔쳐보는 성냥팔이 소녀가 된 기분이다.1년 내내 정부가 시키는 대로 코로나와 맞서 온 착한 국민들이다. 그런 국민을 정부는 K방역의 주역이라고 떠받들었다. 착한 순서로 따지면 산타의 백신 선물을 제일 먼저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데 한국 산타의 썰매엔 아무 것도 없다. 괜히 억울하고 눈물 나는 코로나 크리스마스 풍경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2-23 윤인수

[참성단]미 육군대장의 백신 사과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보급과 배송을 총괄하는 '초고속 작전(Warp Speed)'의 책임자는 구스타브 퍼나 육군대장이다. 퍼나 대장은 화이자 백신 공급 디데이 직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디데이는 2차 세계대전 종결의 시작이었다"며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이 바로 그곳"이라고 강조했다.그러나 백신 공급이 개시되자마자 14개 주에서 백신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퍼나 대장은 지체 없이 국민을 향해 사과했다. "내 잘못이다. 백신 확보 계획에 실수가 있었고 의사소통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데 대해 책임을 지겠다"며 주지사들에게 "사과를 받아달라"고 했다. 백신만 기다리는 민심이 들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즉각적이고 솔직한 사과로 막아냈다. 미국은 현재 화이자에 이어 모더나 백신까지 순조롭게 공급 중이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화이자와 모더나가 백신 계약을 재촉하고 있다며 갑의 여유를 부렸다. 4천400만명 분의 백신이 확보됐다고도 했다. 대통령은 코로나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3차 대유행이 한창인 지금 백신은 없고 접종계획도 이리저리 흔들린다. 급기야 정세균 국무총리가 화이자, 모더나의 내년 4분의1분기 접종 불가를 시인했다. 캐나다와 뉴질랜드가 남는 백신을 이웃나라에 나눠준다는 마당에, 우리는 당분간 백신을 구걸해야 할 처지가 됐다.문재인 대통령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몇 번이나 강조한 백신 확보가 안 된 상황과 관련해 청와대 참모들을 질책했다는 전언이다. 안민석 의원이 "사실은 아주 무서운 분"이라 했던 문 대통령이 화를 냈으니, 백신 문책 인사가 있을지 궁금해진다.안면마비 등 부작용을 들어 백신 안전성 검증이 먼저라며 '백신 백수(白手)' 현실을 강변한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도 부적절해 보인다. 우리가 유일하게 확보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보다 안전성이 떨어져 생산허가가 지연되고 있다. 내년 1월 이 백신이 실제로 공급돼도 많은 국민이 접종을 망설일 수 있다. 김 원내대표는 솔선해서 접종을 해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정치지도자다. 그때도 접종 부작용을 지켜볼 건지 지켜볼 일이다.정부 여당이 백신 지연 사태에 대해 솔직한 설명과 사과를 고려해보길 권한다. 진정한 사과는 망신이 아니라 자존심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2-22 윤인수

[참성단]'중대재해기업처벌법'

지난 한 해 전국 산업 현장에서 재해를 당한 노동자는 10만9천242명으로, 재해율은 0.58%다. 2018년도 10만2천305명보다 6천937명(6.7%) 늘어난 수치다. 근로현장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855명으로, 10만명 당 0.46명이었다. 원인별로는 추락 사고(떨어짐)가 40.6%를 차지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제조업과 건설현장에서 주로 발생하는 끼임 사고(12.4%)와 부딪힘 사고(9.8%)가 뒤를 이었다.지난 20일 평택시의 한 물류센터 신축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골격이 무너져 내려 노동자 5명이 10m 아래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3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고는 공사현장 6층 높이 자동차 진입 램프 구간에서 발생했다. 사상자는 모두 중국 국적의 노동자들이었다.지난 10월에는 광주시 곤지암읍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천장 철공 위에서 작업하다 15m 높이에서 떨어져 숨졌다. 같은 달 5일에는 하남시 망월동 건축 공사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중국 국적의 40대 노동자가 추락해 숨지는 등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실제 올해 상반기 건설업 사망사고는 25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29명보다 25명(10.9%) 늘어났다. 이 가운데 추락 사고가 전체의 49%(126명)나 됐다.건설 현장에서 중대사고가 나 여럿이 죽거나 다쳐도 법인대표에 대한 처벌은 미미한 정도에 그친다. 대체로 현장 책임자를 처벌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상례다. 때문에 노동계를 중심으로 처벌 규정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다.국회가 입법을 추진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경영 책임자까지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으로, 재해를 줄여 노동자들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의 입장이 갈리고 사용자와 노동계가 맞서면서 찬반논란이 거세다. '세계 최고 수준의 형벌이다'는 주장에 '해외는 상한 없는 무기징역'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경영계는 '누가 건설회사 사장 하겠느냐'는 볼멘소리다.죄와 벌은 균형추가 맞아야 한다. 다수의 인명을 앗아간 사고가 났는데 벌금 몇 푼으로 그치는 건 너무 가볍다. 그렇다고 중대사고가 날 때마다 대표를 구속한다면 구인난을 겪을지 모른다. 진도가 더디더라도 법 제정 이전에 충분한 논의와 공감대 조성이 필요해 보인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2-21 홍정표

[참성단]'아시타비'(我是他非)

교수신문이 2001년부터 연말이면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한 해의 한국 사회상을 압축해 보여주는 '거울'이다. 사회의 길흉화복이 대체로 국정의 결과인 만큼, 정권을 향한 촌철살인에 대중은 무릎을 쳤다.'올해의 사자성어'는 집권 내내 박근혜 정권의 뼈를 때렸다. 집권 첫해인 2013년엔 '도행역시'(倒行逆施)로 아버지 박정희 시대와 단절하지 못한 인사와 정책을 비판했다. 세월호 참사와 정윤회 국정개입 사건이 터진 2014년의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다. 2015년은 연초부터 메르스 사태가 터졌고 대응은 부실했다. 집권여당(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이 보수혁신 깃발을 들자,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라는 한마디로 내쳤다. 그해 사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로 인해 세상의 도리가 혼란해졌다는 얘기다.2016년 사자성어 '군주민수'(君舟民水)'는 박근혜 정권이 국정농단 게이트로 분노한 민심에 엎어진 장면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박근혜가 '도행역시'나 '지록위마'쯤에서 정신 차렸다면 '군주민수' 만큼은 면했지 싶지만, 허망한 상상이다.전 정권에 실망한 교수들은 문재인 정권 첫해인 2017년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다. 박근혜 정권 적폐 청산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2018년엔 격려에 경고를 담아, '임중도원'(任重道遠),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고 했다. 정권은 지방권력을 싹 쓸어 담았지만, 일자리가 줄면서 민심을 건드렸다. 국민지지와 국정능력의 키 높이가 다른 상황을 경고하며, 분발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더니 조국 사태로 나라가 두 동강 난 지난해엔 '공명지조'(共命之鳥)라 했다. 서로 싸우다 모두 망한다는 뜻인데, 그래도 진보와 보수를 향한 양비론으로 애써 균형을 유지했다.그런데 올해는 출처도 없는 '아시타비'(我是他非)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인 '내로남불'을 그대로 한자로 옮겼다. 내로남불은 지난해 '조국의 적은 조국'이라는 '조적조(曺敵曺) 버전'으로 회자됐다. 올해 들어선 전 정권의 윤석열 좌천을 비난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찍어내기, 여당 단체장들의 성추행 스캔들로 무수히 반복됐다. '파사현정'에서 시작해 '아시타비'라면 급전직하(急轉直下)다. 집단지성인 교수사회가 울린 경종이다. 문재인 정권이 '아시타비'를 지워버릴 사자성어를 만들어 내길 바란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2-20 윤인수

[참성단]임대주택 후폭풍

"이 정부 들어 집값을 이렇게 올려놓고 임대주택 건설계획만 논하는 것을 보는 국민은 속이 썩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대통령의 임대주택 발언에 대한 비판이다. 청원인은 "수도권 집값이 2~3배 오르고, 젊은이들이 '영끌 대출'로 집을 산다"며 "여기에 대한 대책이 임대주택이라면 나라를 사회주의로 만들고 싶은 것이냐. 왜 누구나 임대주택에 살아야 하느냐"고 주장했다.문재인 대통령이 동탄 공공임대 주택을 찾은 뒤 후폭풍이 거세다. 국민의힘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난 11일 문 대통령의 임대주택 방문을 연출하기 위해 인테리어 보수비용 4천290만원 등 4억5천여만원을 지출했다고 주장했다. 당 의원실이 LH로부터 받은 자료라고 한다. 행사대행용역 비용만 4억1천만원이다.해당 임대주택 거주자들도 불만이다. 한 주민은 온라인 공공임대주택 커뮤니티에 대통령이 방문할 주택을 급하게 꾸미느라 새벽까지도 드릴 소리가 들렸다는 글을 올렸다. 해당 단지 입주민들 주택은 하자보수 처리도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하자가 많으니 고칠 게 많았고, 그럴싸하게 포장해 국민 앞에 '보여주기 쇼'를 했다는 거다.청와대는 대통령의 '13평, 4인 가족' 발언은 왜곡됐다고 했으나 여진은 멈추지 않는다. 한 청원인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부터 개인 자산 모두를 코로나19로 애쓰는 의사와 병상 확보, 백신 수입을 위해 기부하고 13평 임대주택에 살며 솔선수범하길 간곡히 청원한다"고 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부동산이 폭등하고 전·월세가 자취를 감췄는데도 정부가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은데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 같다"고 했다.방문 현장에서 대통령을 수행한 변 내정자도 덩달아 구설에 올랐다. 실패를 거듭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옹호하는 발언을 들어 야당은 '기대할 게 없다'는 반응을 내놨다. "쓰레기차 피하니 X차 만나게 됐다"고 혹평한다. 그가 사장으로 있던 LH 직원은 내정 소식이 알려진 뒤 SNS에 '우리는 쾌재를 불렀다'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비판 글을 올렸다.정부가 스무 차례 넘게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으나 집값은 불기둥이다. 새해 부동산 가격이 2% 정도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코로나와 함께 부동산이 대한민국을 흔드는 양대 악재가 됐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2-17 홍정표

[참성단]누가 '개미지옥'에 빠졌을까

명주잠자리는 우리 산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곤충이다. 고운 이름은 비단천(명주) 처럼 맑고 투명한 날개 덕분이다. 이런 명주잠자리의 유충 이름이 개미귀신이라니 반전이다. 다른 잠자리 유충들은 물속에서 모기 애벌레인 장구벌레를 잡아먹는다. 반면 개미귀신은 개미를 잡아먹기 위해 수변지대 근처 모래밭에 깔때기 모양의 함정을 파는데 이름이 개미지옥이다. 함정에 굴러떨어진 개미는 탈출하려 기를 쓰지만 시지프스의 돌처럼 되떨어지는 모래 탓에 결국은 개미귀신의 먹이가 된다. 개미지옥이라는 이름값이 부족하지 않다.연초 취임한 추미애 법무장관이 인사를 통해 측근 검사들을 해산했을 때 윤석열 검찰총장은 고립무원의 개미지옥에 갇혔다. 이 정도면 자진사퇴가 관행인데 그는 버텼다. 개미지옥은 더 깊어졌다. 채널A사건과 범죄자 김봉현 옥중편지를 근거로 수사지휘권을 박탈당했다. 그래도 윤석열은 개미지옥 탈출을 포기하지 않았다.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했다. 추미애는 버티는 윤석열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징계위에 회부했고, 모두 윤석열의 최후를 예상했다.어제 새벽 법무부 징계위가 윤석열에게 정직 2개월을 결정하자, 대통령은 이를 재가했고 추미애는 사의를 밝혔다. 개미지옥의 윤석열이 죽은 건지 산 건지 애매하다. 지난 1년간 그를 잡으려던 추 장관과 여당의 집요한 모래 공세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되돌아보면 개미지옥 상황이 이상하긴 했다. 대검찰청에 윤석열 지지화환이 쇄도했고, 검사들은 윤석열 구하기에 나섰고, 법무부 감찰위원 전원은 징계불가를 권고했고, 법원은 윤석열 직무정지를 풀어줬다. 개미지옥이 깊어질수록 윤석열 지지율은 치솟았다. '정직 2개월'은 오히려 여권의 윤석열 사태 출구전략으로 해석될 지경이다.그렇다고 개미지옥 싸움이 끝난 것도 아니다. 윤석열은 이미 법적 대응을 선언했다. 공방의 당사자는 검찰총장과 대통령이 될 전망이다. 개미지옥 전쟁 2라운드다. 이렇게 되면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가 누구고 개미귀신이 누구인지 헷갈린다.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개미귀신이 개미사냥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개미귀신이 개미지옥을 잘 못 팠거나, 특별한 행운이 개미를 도왔을 것이다. 아니면 개미의 내공이 남달랐든지. 아무튼 개미지옥을 탈출한 개미가 아주 없진 않은 사실이 새삼 흥미로롭다./윤인수 논설실장

2020-12-16 윤인수

[참성단]김종인의 대국민 사과

정당이나 정치지도자에게 대국민사과는 괴로운 일이다. 여론의 지지를 먹고 사는 처지에 전 국민을 향해 머리를 조아릴 형국이라면, 민심은 이미 돌아설 대로 돌아섰을테니 그렇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홍걸, 홍업 두 아들의 뇌물수수죄에 연달아 국민에게 사과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여론에 놀라서 두 차례나 대국민 사과를 한데 이어, 친형인 이상득의 불법정치자금 범죄에도 사과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세월호 참사에 고개를 숙였다.사과는 잘하면 전화위복이 되고 못하면 더 큰 낭패를 당한다. 사과하고도 더 큰 비난을 받는 연예인들이 부지기수고 망한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형용 모순에 가까운 '사과의 기술', '사과의 정석'이 회자되는 이유다. 기술과 정석이라지만 '문제 발생 즉시 사과하라', '진정으로 사과하라', '상대가 용서할 때까지 사과하라' 등등 사과의 사전적 뜻풀이에 가깝다. 정치인의 사과가 빛이 바래는 이유는 지연 사과, 대리 사과, 빈말 사과인 경우가 많아서다. 특히 선거를 전후한 당리당략형 사과는 신물 날 정도다.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구속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잘못은 집권당의 잘못이라며 "간절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지난 5월 광주를 찾아 5·18 희생자 묘역에 무릎 꿇고 "죄송하다"고 울먹이며 사죄한 장면에 비견할 만큼 감동적인 명문이다. 아쉬운 건 일독할 만한 명문장들이 사과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 점이다. 사과문은 '2020년 12월15일 국민의힘'으로 끝나는데, 다수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사과에 반대하거나 불평한다. 여당의 비아냥이 아니더라도, 김종인 개인의 사과인지 제1야당의 공식 사과인지 국민들은 헷갈린다.김 위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결단한 건 범죄가 소명된 당 출신 전직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하고 신생을 위해서일 것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도 제1야당의 신생은 절실하다. 지방, 중앙, 입법권력을 독점한 1당 독주 정권은 두 날개로 날아야 할 민주주의에 위협적이다. 좌익의 건강을 위해서도 우익의 정상화는 절실하다. 야당 복원의 자양분인 정권 비판이 커진 지금이 호기이다.그런데 우익 복원의 계기로 삼자던 대국민 사과 대열부터 흩어졌다. 우익 복원엔 기적 같은 행운이 필요할 듯 싶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태로운 외날개 비행은 계속될 모양이다./윤인수 논설실장

2020-12-15 윤인수

[참성단]필리버스터 최장 기록

'약탈자'란 뜻의 필리버스터(filibuster)는 서인도의 스페인 식민지와 함선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1854년 미국 상원에서 캔자스주 신설 법안을 막으려 반대파 의원들이 의사진행을 방해하면서 정치적 의미로 쓰였다. 이후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거나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의사진행을 고의 방해하는 행위를 뜻하게 됐다.'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이름을 알린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국내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을 갈아치웠다. 장장 12시간 47분이다. 이전 기록은 2016년 테러방지법 입법 반대토론 때 이종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세운 12시간 31분이었다. 윤 의원은 대공수사권을 국가정보원에서 경찰로 넘기는 국정원법 개정안 처리를 막기 위해 연단에 섰다.'철의 의원'으로도 불리는 그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마이크를 내려놔야 했다. 앞선 토론자 김병기 민주당 의원이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방역상의 이유로 발언을 강제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동료 의원은 "윤 의원의 의지가 강해 돌발 변수가 없었다면 연설은 더 길어졌을 것"이라고 한다.민주당은 당초 야당 의원들의 무제한 토론을 허용하기로 했다. 정부·여당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며 자당 의원들에게 맞불 토론에 나서도록 했다. 그런데 국민의힘 초선의원 전원이 참여하기로 하자 태도를 바꿨다. 민주당이 상정한 '토론종결 동의'는 찬성 180표로 통과됐다. 국회법상 재적 의원 5분의3(180명) 이상 찬성하면 필리버스터를 끝낼 수 있다.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표결에 의해 필리버스터가 종료된 것은 처음이다. 민주당은 무제한 토론을 강제로 끝낸 뒤 곧바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전체 의석수의 60% 이상을 점유한 절대 다수당의 위력시위다.국회에서 처음 필리버스터를 시도한 인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1964년 야당 의원 시절, 동료인 김준연 자유민주당 의원의 구속을 저지하기 위해 무제한 토론을 실행했다. 원고도 없이 5시간 15분 발언해 김 의원의 구속동의안을 무산시켰다. 김 대통령이 계셨다면 토론을 강제종결한 민주당에 어떤 태도를 보였을지 궁금하다. 반대는 자명(自明)했을 것이고, 지도부에 죽비를 내리쳤을지 모른다./홍정표 논설위원

2020-12-14 홍정표

[참성단]조두순 출소 풍경

12월12일 조두순이 안산 자택으로 돌아왔다. 나영이(가명)에게 금수 같은 죄를 저지른 대가로 12년 징역형을 모두 마친 이날 아침 서울 남부구치소에서 출소한 것이다. 그가 도착한 자택 골목은 아수라장이 됐다. 항의하는 주민, 유튜버, 경찰이 조두순을 중심으로 한데 엉켜 큰 소란이 일었다. 이날 0시 기준 1일 확진자 950명은 국내 코로나19 발생 이후 최대였지만, 그를 향한 적대감이 코로나 공포보다 컸던 셈이다.조두순을 향한 국민적 적대감은 죄와 벌의 격차 때문이다. 죄는 입에 올리기조차 혐오스럽다. 인두겁을 쓰고 할 짓이 아니었다. 벌은 인자했다. 강간으로 5년, 살인으로 2년 징역형을 살았던 전과 17범이 가중 처벌은 커녕, 술에 취했다는 진술만으로 무기징역에서 12년으로 감경받았다. 조두순 여론에 놀란 정치권은 지난해부터 조두순 관련법을 무더기로 쏟아냈지만, 그의 처벌을 늘릴 수는 없었다.그 바람에 여론이 조두순을 사회적 감옥에 재수감하는 형국이 됐다. 조두순의 정상적인 사회복귀는 힘들 것이다. 전자발찌 보다는 시민의 시선 때문이다. 국민들, 특히 안산 시민들이 한사코 그를 격리하려는 이유는 재범의 우려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조두순을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나 사이코패스로 진단한다. 이들은 충동적이며 교활하고 죄책감이 없다. 오스트리아 연쇄살인범 잭 운터베거는 첫 번째 살인으로 복역하던 중 세상을 감쪽같이 속인 연극으로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출소 후 소설가, 기자로 명성을 누리면서도 오스트리아 미국에서 여성들을 연쇄적으로 살해했다. 범죄 충동은 마약과 같다.조두순도 나이만 먹고 그냥 나왔다. 그는 죗값을 치렀다고 생각할 수 있다. 68살 먹은 출소자에 대한 사회적 적대감이 부당하다며 적대감을 느낄 수 있다. 사이코패스 범죄 충동을 부추길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조두순 동네 주민들은 공포에 시달리고, 유튜버들은 조두순 특수를 겨냥해 어떤 기행도 마다치 않을 기세다. 그가 출소할 때 걸친 롱패딩 제조업체는 언론에 로고를 모자이크 처리해달라고 읍소한다. 더 곤란한 건 법정형을 다 마친 출소자를 향한 사회적 조리돌림에 동조하거나 모른척하면서 겪어야 하는 인권의 상대성과 양심의 불편이다.어처구니없는 처벌과 범죄인 교화에 무관심한 교정행정으로 겪는 정서적, 사회적 비용이 너무도 크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2-13 윤인수

[참성단]자영업자의 국민청원

'가는 날이 2단계', '코로나보다 화병(火病)에 먼저 간다', '마른하늘에 500명'. 수원에서 한우구이 식당을 하는 40대가 페북에 코로나 관련 유행어라며 올린 글의 일부분이다. 자영업자의 힘겨운 버티기 실태와 정부의 방역 대책에 대한 비판을 풍자와 해학으로 담아냈다. 읽다 보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마냥 웃을 수도 없게 된다.그는 지난 여름 SNS에 글을 올려 멀쩡히 다니던 공기업을 그만두고 자영업의 길을 택했던 사실을 밝히면서 "후배들아 사표 절대 내지 마라, 내라고 해도 끝까지 버티라"고 충고했다. 얼마 전 수도권이 2.5단계로 격상된 날에는 "저녁 전에 발표해줘서 고맙다. 밥을 먹은 후였다면 체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연말이면 보너스를 얼마나 줄지 고민했는데, 직원 13명의 급여를 걱정하는 날이 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라고 푸념했다.청와대 게시판에 '코로나 전쟁에 왜 자영업자만 일방적 총알받이가 되나요?'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이 올랐다. 며칠 만에 참여인원이 10만명을 넘어섰다.자영업자로 추정되는 청원인은 코로나 규제방향을 보면 90% 이상 자영업자만 희생을 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집합 금지할 때 그 엄청난 마이너스를 왜 자영업자한테만 책임을 다 지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했다.청원인은 자영업자가 원하는 건 코로나로 집합금지가 되면 대출 원리금 상환도 정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대료도 그 기간엔 받지 말도록 해야 하며 각종 공과금도 사용하지 못한 만큼 줄여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이제 대출도 막히고 집도 줄이고 가진 거 다 팔아가면서 10개월을 버텨왔다"며 "제발 부탁 드립니다. 마지막 생명줄마저 끊어지기 전에 절규하며 호소합니다"라고 끝맺음했다. 최근 모 식당업주는 "지난 추석 때 3단계로 격상해 짧고 굵게 끝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방역과 경제를 다 잡겠다며 냉·온탕을 오가는 바람에 자영업자들만 피해가 커졌다고 비판했다.코로나로 모두가 힘들어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사정이 더 나빠 보인다는데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텅 빈 가게를 지키는 주인장을 보면 덩달아 가슴이 내려앉는다. 대통령은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했는데, 자영업자들은 '추위가 언제까지일지 몰라 힘들고 두렵다'고 한다./홍정표 논설위원

2020-12-10 홍정표

[참성단]'백신 전쟁'

'2020 코로나 대침공'. 2020년 새해 벽두 세계를 기습 침공한 코로나19에 인류는 속수무책이었다. 인류는 이동을 멈추고 언택트 사회에 갇혔다. 셧다운을 반복한 거대도시들은 활기를 잃었다. 미국은 노마스크(공화당)와 마스크(민주당)의 정치적 내전으로 내상이 심각하다. 지난 1년 6천688만여명이 감염됐고, 154만여명이 사망했다. 우리의 희생도 컸다. 확진자는 4만명에 육박했고, 556명이 사망했다.(질병관리청 12월9일 현황) 하지만 무증상 감염자가 얼마나 활보하는지 파악조차 힘들다.다행히 인류는 2020년이 가기 전에 희망의 등대를 밝혔다. 백신을 무기로 코로나19에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지난 8일 90세 영국인 마거릿 키넌이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을 최초로 접종했다. 백신 대량 접종이 개시된 것이다.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자본을 모았고 까다로운 임상시험 조건을 완화했다. 제약사들은 백신 시장을 겨냥해 속도경쟁을 벌였다. 일찌감치 팬데믹을 예상한 빌 게이츠도 민간에서 백신개발을 독려했다.코로나 침공에 맞선 지구연합 작전 결과 새로운 종류의 백신이 개발됐다. 유전자 백신(mRNA백신)이다. 인체에 유전자를 심어 코로나19와 유사한 단백질을 형성해 면역력을 만든다. 화이자와 모더나사의 백신이다. 비싼 가격과 초저온 유통이 단점이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존슨앤존슨사의 백신은 코로나 유전자를 바이러스에 심어 면역력을 만든다. 가격이 싸고 유통도 쉽지만 효과는 떨어진다.백신 개발로 코로나19에 대한 인류의 반격이 개시됐지만,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됐다. 백신 확보 전쟁이다. 개발 전에는 최빈국을 배려해 백신 평등론을 논의하던 선진국들이 백신을 선점하기 위해 난리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화이자 백신 수출을 제한하고 나섰고, 프랑스는 화이자에 공급계약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우리 정부도 뒤늦게 4천400만명 분의 백신 선구매 계획을 밝혔지만, 본격적인 대국민 접종은 내년 하반기 정도로 계획한 모양이다. 외국의 접종 동향을 살펴 백신의 안정성을 검증하겠다는 논리다. 하지만 3차 대유행의 양상이 심각하다. 미국과 영국처럼 백신 말고는 대책이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백신을 쌓아놓아야 한다. 정부의 태도가 너무 느긋해, 너무 늦을까 봐 조바심이 난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2-09 윤인수

[참성단]K방역의 위기

한해가 저물어가는데도 코로나19 악몽은 절정을 치닫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3차 대유행은 2월 1차, 8월 2차 대유행을 압도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달 중순 이후 1일 확진자가 300명을 넘어서더니 하순부터는 500명 이상으로 확대되고, 이달 들어서는 600명을 돌파했는데, 방역당국과 전문가들은 연말이면 1천명을 넘어설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2월 대구 1차 대유행과 마스크 대란이 벌어지자 뒤늦은 봉쇄조치와 방역정책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았지만, 정부는 신천지교회를 방탄조끼 삼아 1차 대유행 위기를 가까스로 막아냈다. 자발적인 봉쇄를 결단한 대구시민과 의료진들의 헌신으로 이루어낸 기적이었다. 덕분에 4월 총선을 앞둔 정권에게 전대미문의 악재가 전무후무한 호재가 됐다. 슈퍼 여당이 탄생한 것이다. 1차 대유행 이후 K방역은 정권의 소프트파워가 됐다. 국경봉쇄 없이 코로나19 대응에 성공한 K방역을 칭송한다는 외신이 국내언론을 통해 홍수처럼 쏟아졌다. 정부는 K방역의 요체인 3T, 신속한 검사(Test)·역학조사(Trace)·격리치료(Treat)를 코로나 대응 국제표준인 듯 자찬했다.하지만 3차 대유행으로 3T가 균열이 생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신속항원검사 도입을 지시했다. 가짜 음성 진단을 받은 보균자가 마음 놓고 돌아다닐까봐 정부가 무시했던 검사다. 대통령은 군과 경찰을 역학조사에 투입하라고도 했다. 중증환자 치료병상은 동나고, 경기도에만 자택 대기 중인 확진자가 400명 가까이 된다. 겨울 대유행 경고에도 불구하고 10월12일 거리두기 2단계를 1단계로 낮추었던 정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국민은 어처구니없다. 정부의 K방역 지침에 따라 죽을 고생하며 두 차례 대유행을 극복했는데, 3차 대유행이 터지자 진단장비는 허접해지고, 역학조사 인력이 모자라고, 치료병상이 고갈됐다니 말이다. 수십조 코로나 추경이 무색한 일이다. 국민의 인내심도 바닥났다. 자영업자는 생존투쟁형 영업을 위해 규제의 빈틈을 찾아내기에 여념이 없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지난달 설문조사에서 국민 절반 정도는 코로나19 감염이 '운수 소관'이라고 답했단다. 1년 내내 시달린 끝에 복불복식 체념인데, 방역을 위협하는 현상이다.K방역이 위기다. 1차 때의 신천지, 2차 때의 8·15 보수집회와 같이 탓할 대상도 없다. K방역의 실체가 처음으로 검증대에 올랐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2-08 윤인수

[참성단]일본의 '우주 굴기'

2013년 개봉한 미국영화 '그래비티(Gravity)'는 지구 600㎞ 상공에서 사고로 미아가 된 우주인의 생환과정을 그렸다. 우주공간에서 바라본 지구의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장면 연출이 인상적이다.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촬영상 등 7개 부문을 쓸어담았다.극 중 "우주에 있으면 무엇이 가장 좋아?"라는 조지 클루니의 말에 산드라 블록은 "고요함"이라고 한다. 둘이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는 장면에 숨이 멈춘다. 정말 조용한 우주의 장엄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새 우주에 무중력 상태로 떠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신비롭게 빛나는 푸른 지구의 잔상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일본의 무인 탐사선 하야부사 2호가 채집한 소행성 토양 시료가 지구에 도착했다. 지난 2014년 지구를 출발한 이후 6년 만의 귀환이다. 하야부사 2호는 송골매란 뜻인 하야부사 1호에 이은 두 번째 소행성 탐사선이다. 2003년 발사된 하야부사 1호는 규소질 소행성인 이토카와에서 토양 시료를 채취하고 10년 만인 2013년 지구로 돌아왔다.하야부사 2호는 2014년 12월 미쓰비시중공업이 함께 만든 우주로켓 H2A에 실려 발사됐다. 6년 동안 지구와 류구(Ryugu·지구 근접 소행성) 사이를 왕복하면서 52억㎞를 비행했다. 3억4천만㎞ 밖 류구 궤도에 도착해 흙과 암석 시료를 채취했다. 캡슐을 떨어뜨린 하야부사 2호는 다시 우주로 비행한다. 앞으로 11년 동안 100억㎞를 더 비행하며 다른 소행성 탐사에 나선다. 탄소질 소행성의 시료를 지구로 가져온 최초의 탐사선이 됐다.지난해 발사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소행성 탐사선 '오시리스-렉스'는 2023년 지구 귀환을 목표로 내년 3월 소행성 궤도를 떠난다. 중국도 달 표면의 샘플을 채취한 뒤 지구로 귀환하는 프로젝트를 착착 진행 중이다.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까지 '우주 굴기(굴起)'에 나선 것과 달리 대한민국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이미 운용했어야 할 달 궤도선은 2022년, 착륙선은 2030년으로 미뤄졌다. 우주 개발이 정치 논리에 밀려 오락가락한다. 우주항공연구원장은 직원을 폭행해 해임되는 사고를 쳤다. 연구원들의 파벌 싸움에 조직이 멍들고 우수 인력이 이탈한다. 뭘 해도 안 되는 집안은 다 이유가 있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2-07 홍정표

[참성단]국민방위군 유정수의 일기

경인일보는 지난 6월부터 국민방위군을 재조명하는 보도를 이어가는 중이다. 한 국민방위군의 일기를 입수한 것이 발단이 됐다. 고 유정수(1925~2010)씨가 남긴 일기다. 1950년 12월23일부터 다음해 3월10일 사이에 작성된 76편의 일기는, 60만 국민방위군이 감내한 죽음의 행진을 담은 76장의 다큐멘터리 슬라이드 필름과 같았다.남침을 감행한 북한군은 남한 점령지에서 수십만 청장년을 의용군으로 징발했다. 의용군은 전쟁터의 총알받이나 각종 부역에 동원됐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던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서울을 다시 내주어야 할 형편이 되자, 청장년 소개(疏開) 작전을 펼친다. 북한이 이들을 전쟁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국민방위군 창설과 소집명령의 배경이다. 국민방위군 대다수가 삼남(충청, 경상, 전라도) 이북의 서울·경기지역 청장년들이었다.60만명이 넘는 국민방위군은 사령부 장교들의 인솔에 따라 경상도에 산재한 교육대로 일제히 출발했다. 하지만 국민방위군을 소집한 나라의 관리들이 이들을 먹이고 입힐 예산을 몽땅 횡령했다. 남으로 향하는 이들의 행렬은 순식간에 죽음의 행진으로 돌변했다.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전염병에 걸려 죽은 사망자가 속출했지만 집계 조차 안 됐다. 수만명에서 수십만명으로 추산될 뿐이다. 1951년 3월 국민방위군이 사실상 해체될 때까지 단 4개월여만에 벌어진 참상이다.1951년 국민방위군 예산을 폭식한 군 간부 일부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은 없었다. 국방예산 비리 사건으로 일단락한 채 국가의 명령으로 자행된 '죽음의 기록'은 묻힌 채로 지금에 이른 것이다. 피해의 증언은 넘쳤지만, 피해자의 진술과 기록은 없었던 탓이다. '유정수 일기'가, 거시 역사를 드러낸 미시사의 걸작으로 손색없는 이유다.경인일보가 유씨 일기를 공개한 이후 국민방위군 관련 저서와 증언, 기록들이 속속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지난 5월 '2차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시작됐다. 2010년 해산한 1차 위원회는 기록의 희소성을 이유로 국민방위군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번엔 제대로 정리된 역사적 평가를 남겨야 한다. "사랑하는 내 어머니와 아내와 동생들에게 이 기록을 드리노라." '유정수 일기'의 첫 문장이다. 가족에게 남긴 진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맞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2-06 윤인수

[참성단]군 면제와 평발

'공포의 삼겹살' 김형곤은 1980년대 '유머일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등의 풍자 개그로 대중스타가 됐다. 2006년 3월 화장실에서 쓰러져 46세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의료계는 무리한 운동으로 120㎏이던 체중을 90㎏까지 감량한 게 화를 부른 것 같다고 했다.그가 스무 살 되던 해 징집영장이 나오자 살을 찌워 군(軍)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한동안 죽기 살기로 먹어댔다. 평소에도 과체중이던 몸이 110㎏을 웃도는 뚱보가 됐다. 역시나 신체검사에서 바라던 면제 처분을 받았다. 돼지처럼 먹고 마시고, 잠만 잔 보람이 있었다. 사람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던가.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판정관의 면제사유는 엉뚱한 데 있었다. 평발 때문이란다. 그가 TV 대담 프로그램에서 밝힌 유머러스한 군 면제 사연이다.비만과 평발(편평족), 시력 관련 병역판정 신체검사 기준이 완화됐다. 뱃살이 파도를 치고, 돋보기를 쓰는 지독한 근시라도 군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평발도 완전무장을 하고 구보를 뛰어야 한다. 호랑이에 독수리, 코브라 뱀으로 온몸을 도배했어도 현역 판정을 받게 됐다. 국방부가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 규칙'을 입법 예고했다. 진단 및 치료 기술의 발달 등 의료환경 변화에 따라 신체등급의 판정 기준을 개선해 병역 판정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높였다는 게 국방부 설명이다.입영 문턱을 확 낮춘 찐 사정은 자원부족 때문이다. 지금 기준은 2015년 현역병 입영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강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 잣대로는 적정 병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예측에 따라 5년만에 2014년 이전 기준으로 되돌리게 됐다.당장 군 전력이 약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관심 병사만 늘게 생겼다고 걱정한다. 예비 당사자들은 불만에, 실망스런 반응이다. '이참에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해 직업군인들이 병역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 평등 말만 하지 말고 여성들도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불과 수년 전, 35만명이던 징병대상 연령자가 2022년 이후 22만명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외국 용병이라도 수입해야 할 처지다. 저출산이 국방을 흔들고 있다./홍정표 논설위원

2020-12-03 홍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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